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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곡 계모, 징역 15년 확정 “계모가 저지른 학대 혐의 살펴보니” 경악 그 자체

    칠곡 계모, 징역 15년 확정 “계모가 저지른 학대 혐의 살펴보니” 경악 그 자체

    칠곡 계모, 징역 15년 확정 “계모가 저지른 학대 혐의 살펴보니” 경악 그 자체 징역 15년 확정 의붓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이른바 ‘칠곡 계모’ 사건의 피고인 임모(37)씨가 징역 15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칠곡 계모사건은 2013년 8월 임씨가 당시 8살 난 의붓딸 A양의 배를 수차례 밟고 주먹으로 때리는 등 무자비하게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당시 임씨는 A양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외상성 복막염으로 숨지게 했고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A양의 언니 B양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등 파렴치한 행태를 보여 큰 비난을 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10일 상해치사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임씨에게 징역 15년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임씨가 의붓딸을 학대하도록 방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해 아동의 친아버지 김모(39)씨는 징역 4년이 확정됐다. 1심은 임씨에게 징역 10년, 김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1심 선고 이후 애초 공범으로 기소됐던 A양의 12살 난 언니 B양도 사실은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은 이후 임씨 등에게 B양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세탁기에 가두거나 성추행하는 등 학대, 폭행하고 동생을 죽였다고 허위 진술하도록 강요한 혐의를 적용해 추가기소 했다. 이 사건의 1심은 임씨에게 징역 9년, 김씨에게 징역 3년을 각각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두 사건을 병합해 심리하고 임씨에게 징역 15년을, 김씨에게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칠곡 계모’ 징역 15년 확정

    ‘칠곡 계모’ 징역 15년 확정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10일 상해치사 및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임모 씨(37·여)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5년과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임 씨의 학대 행위를 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피해 아동의 친아버지 김모 씨(39)에게는 원심이 선고한 징역 4년을 확정했다. 검찰은 “김 씨도 임 씨와 함께 학대행위에 대한 공동정범으로 판단해야 함에도 방조 행위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원심이 위법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임 씨는 2013년 8월 14일 오후 경북 칠곡 자신의 집에서 피해자 A 양(당시 8세)이 시끄럽게 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배 부위를 발로 밟거나 주먹으로 때린 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해 이틀 후 장간막 파열에 따른 외상성 복막염으로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결국 묻혀버린 진실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결국 묻혀버린 진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원근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의 부실한 사건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허원근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며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원근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원근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허원근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칠곡 계모, 징역 15년 확정 “의붓딸 폭행하고 언니에게 뒤집어 씌워”

    칠곡 계모, 징역 15년 확정 “의붓딸 폭행하고 언니에게 뒤집어 씌워”

    칠곡 계모, 징역 15년 확정 “의붓딸 폭행하고 언니에게 뒤집어 씌워” 징역 15년 확정 의붓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이른바 ‘칠곡 계모’ 사건의 피고인 임모(37)씨가 징역 15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칠곡 계모사건은 2013년 8월 임씨가 당시 8살 난 의붓딸 A양의 배를 수차례 밟고 주먹으로 때리는 등 무자비하게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당시 임씨는 A양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외상성 복막염으로 숨지게 했고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10일 상해치사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임씨에게 징역 15년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임씨가 의붓딸을 학대하도록 방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해 아동의 친아버지 김모(39)씨는 징역 4년이 확정됐다. 1심은 임씨에게 징역 10년, 김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1심 선고 이후 애초 공범으로 기소됐던 A양의 12살 난 언니 B양도 사실은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은 이후 임씨 등에게 B양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세탁기에 가두거나 성추행하는 등 학대, 폭행하고 동생을 죽였다고 허위 진술하도록 강요한 혐의를 적용해 추가기소 했다. 이 사건의 1심은 임씨에게 징역 9년, 김씨에게 징역 3년을 각각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두 사건을 병합해 심리하고 임씨에게 징역 15년을, 김씨에게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군 부실 수사만 인정해 3억원 지급 확정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군 부실 수사만 인정해 3억원 지급 확정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군 부실 수사만 인정해 3억원 지급 확정 허원근 일병 사건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군의 부실 수사만 인정한 것이어서 유족들의 반발을 샀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양측의 공방은 이어졌고, 결국 논쟁은 법정으로 갔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의문사로 남게 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결론 내린 이유는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의문사로 남게 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결론 내린 이유는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의문사로 남게 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결론 내린 이유는 무엇?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어” 결국 영구미제 사건으로…대체 무슨 일?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어” 결국 영구미제 사건으로…대체 무슨 일?

    허원근 일병 사건, 결국 영구미제 사건으로…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어” 대체 왜? ‘허원근 일병 사건’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원근 일병 사건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했다.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원근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의 부실한 사건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결국 의문사로 남게 돼 ‘안타까워’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결국 의문사로 남게 돼 ‘안타까워’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 일병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 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어” 이유 보니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어” 이유 보니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 일병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 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어..” 유족에 3억원 지급 판결 확정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어..” 유족에 3억원 지급 판결 확정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원근 일병 사건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원근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의 부실한 사건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허원근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원근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원근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허원근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의문사로 남게 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유족 울분

    허원근 일병 사건, 의문사로 남게 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유족 울분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의문사로 남게 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유족 울분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유족에 3억 지급 판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유족 “잘못된 판결” 울분

    허원근 일병 사건, 유족에 3억 지급 판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유족 “잘못된 판결” 울분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유족에 3억 지급 판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유족 “잘못된 판결” 울분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유족에 3억 지급 판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된 일?

    허원근 일병 사건, 유족에 3억 지급 판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된 일?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유족에 3억 지급 판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된 일?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고 밝혀 유족들의 반발을 샀다. 대법원은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도대체 무슨 일? 충격

    허원근 일병 사건, 도대체 무슨 일? 충격

    ‘허원근 일병 사건’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 일병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 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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