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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준강간·준강제추행도 가정폭력

    앞으로 배우자 등 가족에 대한 준강간, 준강제추행도 가정폭력범죄특례법상 성범죄로 간주돼 처벌될 전망이다. 일반 성범죄에 비해 가볍게 다뤄져 온 가정 내 성범죄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강화되는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15일 가족 구성원을 강간, 강제추행은 물론 준강간, 준강제추행, 성범죄를 시도하려다가 실패한 미수범과 성범죄 상습범을 모두 가족폭력범죄 죄목에 추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가정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법사위 관계자는 “동거인, 이혼 후 재결합 가정 등을 다 포함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가족 구성원들에 의한 성범죄는 가정폭력범죄로 규정돼 있지 않아 법률적 보호와 지원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배제돼 왔었다. 만장일치로 법사소위를 통과한 법안은 남은 법사위 전체회의 등에서도 무난히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은 이정선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대표 발의를 했지만 1년 넘게 계류돼 있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 등 야당 의원들도 동참했다. 법사소위는 또 가정 폭력을 저질러 보호 처분을 받은 사람이 상습적으로 보호 처분을 위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처벌 조항을 신설하기로 했다. 가정폭력 신고 의무자의 범위도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종사자, 국제결혼중개업자와 그 종업원 등으로 확대, 피해자의 명시적인 반대 의견이 없으면 즉시 신고할 수 있도록 해 다문화 가정폭력에 대한 피해자 보호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학교·어린이집 등 신고 의무자들이 업무 중에 가정폭력범죄를 알고서도 신고하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는 처벌 규정도 새롭게 만들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중앙부처 국정현안 중간점검] (11)법무부

    [중앙부처 국정현안 중간점검] (11)법무부

    2008년 조두순 사건, 2010년 김길태, 김수철 사건, 2011년 영화 도가니로 촉발된 광주 인화학교 사건까지.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아동·청소년 성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흉악한 성범죄자를 막는 대응 체계와 법망이 허술하다는 여론의 질타가 거셌다. ●성폭력 대응체계 日서 견학와 이 때문에 성폭력 범죄 대응이 법무부의 현안이었다. 일부의 반발에도 올해 인터넷 성범죄자 신상공개 시스템(아동 대상 성범죄자 알림e제도), 화학적 거세로 불리는 ‘성충동 약물치료제도’ 같은 성범죄 재발방지 대책을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앞서 2009년 시작된 전자발찌(성범죄자에 대한 전자장치 부착)제도와 2010년 시행된 ‘범죄자 DNA 신원확인 정보 이용 및 보호법’까지 포함하면 대응 체계상으로는 적어도 세계적인 수준의 성범죄 방지 체계를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조만간 성폭력사범을 대상으로 한 심리치료센터도 개설될 예정이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의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설치나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영상녹화 원스톱지원시스템과 여성아동 전문보호시설 확충 같은 대책들은 성범죄 예방과 보호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계기로 손꼽힌다. 실제 지난 4일에는 일본의 법학교수, 변호사, 검사 등으로 구성된 정신의료법연구회 회원들이 국내 성폭력범죄의 대응 체계를 벤치마킹하려고 견학을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성범죄 관련 사범은 2010년 2만 1116명으로 4년 전(1만 5819명)에 비해 33.5%나 늘었고, 처벌이 대폭 강화된 지난해 증가율은 15.6%로 오히려 평균치의 2배 가까운 증가세를 나타냈다. 특히 미성년자와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최근 5년간 30% 가까이 늘어나 피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국민의 법 감정과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에도 사법당국은 여전히 성범죄에 관대한 편이라는 지적이 많고, 수사 당국의 허술한 범죄자 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대법원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전자발찌 착용 명령 기각률은 2009년 12.4%, 2010년 24.5%, 2011년 상반기 43.8%로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 사건의 경우 1심 판결의 절반 가까이가 집행유예로 결론났고, 장애인 대상 성폭력 사범의 기소율은 39.6%로 일반 사범(42.4%)에 비해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범죄예방교육 선행돼야 또 조건부 교육으로 성매수 사범을 기소유예 처분해주는 존스쿨제도를 미성년 성범죄자나 재범자가 편법으로 이수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성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제도 도입과 강력한 처벌 같은 외형적인 체계뿐만 아니라 범죄를 예방하는 교육이나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 같은 내실 있는 계기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다미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관은 “성범죄 처벌이 강화돼도 실제 처벌받는 비율이 낮은 데다, 여전히 가부장적 인식을 바탕으로 법정에서 아동이나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사법부의 보수적 태도도 개선돼야 한다.”면서 “전자발찌나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 같은 강력한 제도가 도입됐지만 사후약방문식 성격이 강한 만큼 성폭력 수감자에 대한 형기 중 교정교육 강화와 사회 전반의 성폭력 예방 인식을 높일 수 있는 장기적인 문화 개선도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9) 강릉 40대 여인 살인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9) 강릉 40대 여인 살인사건

    2003년 3월 22일 새벽 강원도 강릉시의 한 연립주택. 4층에 불이 났다는 신고에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문안에서 잠긴 집안은 연기와 화기로 가득했지만 아무리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간 소방관들은 20여 분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불이 시작된 곳을 찾으려고 방을 하나씩 뒤지던 신입 소방관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는 급히 선배를 불렀다. “여, 여기···. 칼 맞은 시체가 있어요.” 사건은 경찰로 이관됐다. 희생자는 집주인 A(여·당시 49세)씨. 시신은 침대방 한쪽 이불더미 밑에 숨겨져 있었다. 범인은 이불을 태워 시신 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를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듯했다. 불에 탄 시신은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마지막 저항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법의학에서 말하는 투사형 자세(Pugilistic Attitude)였다. 고온에 오랫동안 노출된 시신의 근육이 수축하면서 일어나는 일종의 열강직 현상이다. 보통 사람의 몸은 펴는 근육(신근)보다는 당기는 근육(굴근)이 더 발달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열강직 현상도 당기는 근육에 많이 나타난다. 불에 탄 시신은 손목과 팔꿈치를 오므리는 권투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사인은 다발성 자창(刺創·찔린 상처). 범인은 A씨의 등과 왼쪽 팔 등을 무려 35군데나 찔렀다. 매우 당황했거나 복수심에 불탄 자의 소행으로 보였다. 칼의 방향을 봐서 범인은 오른손잡이였다. 범인은 안방과 작은방, 거실과 드레스 룸 등 4군데에 동시에 불을 놨다. 이상한 점은 화재 현장 여기저기서 화장품 향이 진동한다는 것이었다. 원인은 곧 밝혀졌다. 거실 바닥에 뚜껑이 열린 채 어지럽게 널려 있는 스킨로션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발화 지점에서 발견된 에틸알코올과 같은 성분임이 드러났다. 영악하게도 범인은 에틸알코올이 들어간 화장품을 집안 곳곳에 뿌린 뒤 불을 붙인 것이다. 범행 현장에 불을 지르는 범인들은 화재와 함께 증거가 될 만한 모든 것이 날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지문이나 족적은 물론이고, 범행 시각이나 도주로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오산이다. 방화든 실화든 화재 현장에 완전 연소가 일어나는 일은 드물다. 알코올이나 휘발유 등 인화성 물질도 바닥이나 벽틈에 모두 연소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화재 잔류물 역시 남기 마련이고 그 속에선 증거물이 고스란히 나온다. 오히려 불을 붙이는 과정에서 불은 범인에게 방화범이라는 꼬리표를 남기는 경우가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면식범에 의한 계획된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강제로 문을 연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집주인을 알거나 집 열쇠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집안에 불을 놓은 뒤 열쇠로 문을 잠그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 나갔다고 봤다. 이런 추리 뒤에는 현관 외에는 나갈 다른 길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범행 장소가 연립주택의 맨 꼭대기 층이어서 창문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옥상 지붕이 너무 가파르고 미끄러워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었다. 귀금속을 챙기지 않은 것도 원한에 의한 범행을 의심케 했다. 경찰은 피해자 주변인들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수사는 겉돌았다. 의심할 만한 용의자들은 알리바이가 명확했다.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한 상황. 방화 현장을 다시 뒤지던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현관 안전핀이 눌러져 있다.”는 보고였다. 일반적으로 보조 잠금장치인 안전핀은 집 안에서만 누룰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밖에서 열쇠로 잠궈도 안전핀은 눌러지지 않는다. 아파트 현관의 안전핀이 눌린 상태라는 것은 즉, 범인이 현관이 아닌 제3의 통로로 도주했다는 이야기다. 뒤늦게 확인한 옥상에는 뜯겨진 방충망과 범인이 버린 장갑이 보였다. 면식범만을 쫒던 경찰은 수사 방향을 재설정해야 했다. 막막하기만 했던 수사는 A씨의 휴대전화를 찾으면서 활기를 띠었다. A씨의 휴대전화를 훔쳐간 범인은 대담하게도 범행 후 사흘 동안 이 휴대전화를 이용하다가 인근 시외버스터미널에 버렸다. 휴대전화 사용명세서를 뽑아본 경찰은 황당했다. 전체 20여 통의 전화 중 대부분이 속칭 폰팅으로 불리는 음란성 유료전화를 거는 데 이용됐다. 마치 규칙이라도 정한 듯 폰팅은 짝수날에만 이어졌다. 범인은 그렇게 죽은 여인을 끝까지 이용했다. “사람을 죽인 날, 그것도 죽은 사람 전화로 폰팅하는 걸 보면 이거 완전 중독인데요.”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하루 10통씩 폰팅하던 놈이 홀수날엔 왜 한 건도 전화를 안 했을까…. 황 형사. 격일제로 근무하는 경비원이나 공익근무요원 중에서 동종 전과자부터 뽑아봐.” 폰팅업계 특성상 경찰이 협조를 받아내기 쉽지 않았다. 경찰은 범인이 건 한 통의 114 안내전화에 주목했다. 범인이 안내받은 곳은 강릉시 주문진에 있는 한 세탁소였다. 경찰은 한 20대 남자가 여관에서 “세탁물을 가져가라.”는 전화를 한 것을 확인했다. 남자가 맡긴 무스탕 점퍼 소매에는 혈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죽은 A씨의 피였다. 경찰은 잠복 끝에 K(21)씨를 검거했다. 예상대로 K씨는 격일로 근무하는 시청 공익근무요원이었다. 그는 순순히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카드 빚에 시달리던 K씨는 혼자 귀가하는 A씨를 보고 집을 털 생각을 했다. 처음엔 배달원을 가장해 집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속아 넘어가지 않자 옥상을 통해 집으로 침입했고, 범행이 발각되자 엉겁결에 칼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형사들을 기막히게 한 것은 범행 후 그의 행적. 피 묻은 20만원을 들고 그가 간 곳은 PC방이었다. K씨는 말을 이었다. “형사 아저씨. 그날 저 죽는 줄 알았어요. 불은 놨지. 연기는 나지. 근데 현관문이 안 열리더라고요.” 소년의 티를 갓 벗은 20대 초반의 살인자는 그래도 제 목숨 귀한지는 알고 있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8) 살인자가 남긴 화장품 향기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8) 살인자가 남긴 화장품 향기

     2003년 3월 22일 새벽 강원도 강릉시의 한 연립주택. 4층에 불이 났다는 신고에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문안에서 잠긴 집안은 연기와 화기로 가득했지만 아무리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간 소방관들은 20여 분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불이 시작된 곳을 찾으려고 방을 하나씩 뒤지던 신입 소방관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는 급히 선배를 불렀다. “여, 여기···. 칼 맞은 시체가 있어요.”  사건은 경찰로 이관됐다. 희생자는 집주인 A(여·당시 49세)씨. 시신은 침대방 한쪽 이불더미 밑에 숨겨져 있었다. 범인은 이불을 태워 시신 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를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듯했다. 불에 탄 시신은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마지막 저항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법의학에서 말하는 투사형 자세(Pugilistic Attitude)였다. 고온에 오랫동안 노출된 시신의 근육이 수축하면서 일어나는 일종의 열강직 현상이다. 보통 사람의 몸은 펴는 근육(신근·伸筋)보다는 당기는 근육(굴근·屈筋)이 더 발달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열강직 현상도 당기는 근육에 많이 나타난다. 불에 탄 시신은 손목과 팔목을 오므리는 권투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에 수사는 산으로  사인은 다발성 자창(刺創·찔린 상처). 범인은 A씨의 등과 왼쪽 팔 등을 무려 35군데나 찔렀다. 매우 당황했거나 복수심에 불탄 자의 소행으로 보였다. 칼의 방향을 봐서 범인은 오른손잡이였다. 범인은 안방과 작은방, 거실과 드레스 룸 등 4군데에 동시에 불을 놨다. 이상한 점은 화재 현장 여기저기서 화장품 향이 진동한다는 것이었다. 원인은 곧 밝혀졌다. 거실 바닥에 뚜껑이 열린 채 어지럽게 널려 있는 스킨로션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발화 지점에서 발견된 에틸알코올(ethyl alcohol)과 같은 성분임이 드러났다. 영악하게도 범인은 에틸알코올이 들어간 화장품을 집안 곳곳에 뿌린 뒤 불을 붙인 것이다.  범행 현장에 불을 지르는 범인들은 화재와 함께 증거가 될만한 모든 것이 날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지문이나 족적은 물론이고, 범행 시각이나 도주로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오산이다. 방화든 실화든 화재 현장에 완전 연소가 일어나는 일은 드물다. 알코올이나 휘발류 등 인화성 물질도 바닥이나 벽틈에 모두 연소되지 않은채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화재 잔류물 역시 남기 마련이고 그 속엔 증거물이 고스란히 나온다. 오히려 불을 붙이는 과정에서 불은 범인에게 방화범이라는 꼬리표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면식범에 의한 계획된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강제로 문을 연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집주인을 알거나 집 열쇠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집안에 불을 놓은 뒤 열쇠로 문을 잠그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 나갔다고 봤다. 이런 추리 뒤에는 현관 외에는 나갈 다른 길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범행 장소가 연립주택의 맨 꼭대기 층이어서 창문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옥상 지붕이 너무 가파르고 미끄러워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었다. 귀금속을 챙기지 않은 것도 원한에 의한 범행을 의심케 했다. 경찰은 피해자 주변인들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수사는 겉돌았다. 의심할만한 용의자들은 알리바이가 명확했다.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한 상황. 방화 현장을 다시 뒤지던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현관 안전핀이 눌려져 있다.”는 보고였다. 일반적으로 보조 시건장치인 안전핀은 집 안에서만 누룰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밖에서 열쇠로 잠궈도 안전핀은 눌러지지 않는다. 아파트 현관의 안전핀이 눌린 상태라는 것은 즉, 범인이 현관이 아닌 제3의 통로로 도주했다는 이야기다. 뒤늦게 확인한 옥상에는 뜯겨진 방충망과 범인이 버린 장갑이 보였다. 면식범만을 쫒던 경찰은 수사 방향을 재설정해야 했다.  ●폰팅에 중독된 20대 살인자  막막하기만 했던 수사는 A씨의 휴대전화를 찾으면서 활기를 띠었다. A씨의 휴대전화를 훔쳐간 범인은 대담하게도 범행 후 사흘 동안 이 휴대전화를 이용하다가 인근 시외버스터미널에 버렸다. 휴대전화 사용명세서를 뽑아본 경찰은 황당했다. 전체 20여 통의 전화 중 대부분이 속칭 폰팅으로 불리는 음란성 유료전화를 거는 데 이용됐다. 마치 규칙이라도 정한 듯 폰팅은 짝수날에만 이어졌다. 범인은 그렇게 죽은 여인을 끝까지 이용했다.  “사람을 죽인 날, 그것도 죽은 사람 전화로 폰팅하는 걸 보면 이거 완전 중독인데요.”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하루 10통씩 폰팅하던 놈이 홀수날엔 왜 한 건도 전화를 안했을까. 황 형사. 격일제로 근무하는 경비원이나 공익근무요원 중에서 동종 전과자부터 뽑아봐.”  폰팅업계 특성상 경찰이 협조를 받아내기 쉽지 않았다. 경찰은 범인이 건 한 통의 114 안내전화에 주목했다. 범인이 안내받은 곳은 강릉시 주문진에 있는 한 세탁소였다. 경찰은 한 20대 남자가 여관에서 “세탁물을 가져가라.”는 전화를 한 것을 확인했다. 남자가 맡긴 무스탕 점퍼 소매에는 혈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죽은 A씨의 피였다. 경찰은 잠복 끝에 K(21)씨를 검거했다. 예상대로 K씨는 격일로 근무하는 시청 공익근무요원이었다. 그는 순순히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카드 빚에 시달리던 K씨는 혼자 귀가하는 A씨를 보고 집을 털 생각을 했다. 처음엔 배달원을 가장해 집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속아 넘어가지 않자 옥상을 통해 집으로 침입했고, 범행이 발각되자 엉겁결에 칼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형사들을 기막히게 한 것은 범행 후의 행적. 피묻은 20만원을 들고 그가 간 곳은 PC방이었다.  K씨는 말을 이었다. “형사 아저씨. 그날 저 죽는 줄 알았어요. 불은 놨지. 연기는 나지. 근데 현관문이 안 열리더라고요.”  소년의 티를 갓 벗은 20대 초반의 살인자는 그래도 제 목숨 귀한 지는 알고 있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욱 잔인한 교통사고 위장 살인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살인현장 속 왠 대변(?)검사…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진실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엽기살인마는 피가 다르다(?) 혈흔 속 性염색체가 ‘악마의 姓’ 을 지목하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물 마시던 A씨의 갑작스런 사망 왜?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엄마…알고보니 생활반응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성형수술 자국이 일러준 주검의 주민번호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20대 여성이 남긴 마지막 글씨…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 살인…‘전류반’은 못 숨겼네 몸에 남은 전기충격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 사회 첫발 20대女 살해한 택시기사, 흙탕물이… 돈 버리고 납치 이상한 택시 강도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DNA는 남자라고 말하는데 살인 현장에 남은 ‘그 남자’의 립스틱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흉기에 17번 찔려 죽은 여자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8) 다발성 손상이 남긴 진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8) 다발성 손상이 남긴 진실

    2004년 4월 28일 경기 안성시 외곽의 도로변 산자락. 나물을 뜯던 동네 여인들이 뼈만 남은 사람 팔을 발견했다. 바로 옆 헤집어진 흙바닥 틈으로는 백골이 된 머리뼈도 보였다. 주변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굶주린 산짐승들이 누군가의 묘소를 건드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추슬러 쏜살같이 산을 내려왔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동네 어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상적으로 묘를 썼다면 그렇게 동물이 시신을 훼손할 정도로 얕게 묻을 리도, 근처에 썩는 냄새가 진동할 리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 감식반은 엎어진 채 매장돼 있는 여성의 시체를 발견했다. 시신은 땅바닥에서 30㎝ 정도 깊이에 묻혀 있었다. 마음이 급한 누군가가 시신을 숨기려 한 정황이 역력했다. 최초 팔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다른 신체의 일부도 발견됐다. 산짐승들 때문에 주검은 비록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에 여성은 억울함을 풀 기회를 얻었다. 여성은 분홍색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키는 170㎝가량. 비교적 큰 체구였다. 하지만 그 이상을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신분증이나 지갑이 없었고, 손가락은 심하게 부패해 지문 채취가 불가능했다. 감식반은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긴 뒤 실종자 명단을 뒤지기 시작했다. ●교통사고·추락사고로 인한 메세레르 골절 시신은 숨을 거둘 당시의 정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사인은 다발성 손상. 부러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갈비뼈는 무려 17곳이 나갔다. 부검의는 여성의 왼쪽 다리 뼈와 아래·위 팔뼈를 유심히 살폈다. 부러진 곳은 하나같이 쐐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순간적으로 휘어지던 뼈가 더 버티지 못하고 충격의 반대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갈라진 모습이었다. 메세레르 골절.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신체가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생기는 손상이다. 경찰은 일단 그녀가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숨진 뒤 이곳에 매장된 것으로 추리했다. 그렇다면 추락과 교통사고 중 어느 것이 원인이었을까. 비밀은 부러진 다리뼈에 숨어 있었다. 부검의는 뼈를 추슬러 부러진 부위의 정확한 높이를 쟀다. 사인이 교통사고였다면 그녀의 다리뼈에는 자동차 범퍼와 부딪칠 때 생긴 골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동차 범퍼의 높이는 차종마다 다르다. 일반 세단형 승용차는 50㎝ 안팎이고 소형 트럭이나 소형 버스는 60㎝,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대형 트럭, 버스 등은 이보다 높다. 여기에는 물론 변수가 있다. 급제동 여부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는 순간 자동차 앞부분이 아래로 숙여지기 때문에 손상 부위가 실제 범퍼의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자리 잡게 된다. 사고 당시 신발의 높이도 변수가 된다. 숨진 여성의 넓적다리뼈는 발바닥으로부터 65㎝ 정도 높이에서 부러져 있었다. 결론적으로 여성은 승용차보다는 범퍼가 높이 달린 트럭이나 SUV 등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기서 잠깐, 보행자가 차와 부딪쳤을 때 뼈가 견뎌낼 수 있는 강도를 따져 보자. 흔히 예상하는 것보다 세지 않다. 건강한 성인 남자라도 시속 25㎞로 서행하는 경차(약 650~700㎏)와 부딪쳐 뼈가 부러질 수 있다. 경차의 속도가 시속 45㎞까지 올라간다면 부딪힌 사람은 예외 없이 뼈가 부러진다. 물론 뼈가 약한 여자나 노인, 아이들은 더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진다. 여성의 신원이 확인됐다. 열 달 전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인근 동네 새댁 A(당시 33세)씨였다. 이가 빠진 모양과 키, 사라질 당시 입고 있던 옷, 나이답지 않게 많았던 새치까지 모든 것이 일치했다. 2003년 7월 초 A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구멍가게 여주인이었다. “아마, 가게 문 닫을 시간이었죠. 밤 10시 20분쯤 남편 끓여 준다며 라면을 사 갔어요. 아… 새댁이 나간 후 ‘쿵’ 하는 소리가 났어요. 무슨 일이 있나 나가 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10개월 전 현장에 떨어진 손톱만한 크기의 증거 강력반 형사들은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사고 차량의 운전자가 시신을 숨겼다고 판단했다. 이제 10개월 전 인적 드문 시골길에서 뺑소니를 친 범인을 찾을 차례. 막막해하는 형사들에게 반장은 호미를 하나씩 건넸다. “다들 현장에 나가서 후딱 증거 찾아와.” 산도적 같은 덩치의 강력반 형사들은 투덜거리며 호미를 들고 A씨의 예상 경로를 따라 길가를 뒤졌다. 그렇게 현장 뒤지기를 몇 시간. 한쪽에서 “찾았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께 5㎜, 지름 2~3㎝ 정도의 엄지손톱 크기만 한 플라스틱 조각 3개였다. 그곳에서는 몇년 동안 한 건의 교통사고도 없었다. 경찰은 차량정비 전문가들을 통해 그 조각들이 1991~1996년식 SUV 갤로퍼의 방향지시등 덮개임을 알아냈다. 당시 안성과 충북 진천 등 그 일대의 해당 차종 소유자는 286명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A씨가 사라진 당일의 행적과 차량 보험처리 여부, 방향지시등 교체 여부 등을 조사했다. 한 명씩 용의선상 인물을 좁혀 가는 과정에서 범인이 먼저 움직였다. 최근 방향지시등은 물론 엔진까지 교체한 같은 동네 주민 B(43)씨였다. 그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바로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그는 도주 과정에서 가족에게 뺑소니와 암매장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은 안성 시내를 뒤져 B씨를 검거했다. 그런 독한 짓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날 밤 B씨는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앞에서 오는 대형 트럭의 전조등이 시야를 가리는 순간 차량 오른쪽이 뭔가를 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그는 ‘들짐승이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차를 몰았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몇 시간 뒤 다시 돌아와 살펴보니 논두렁에 A씨가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논두렁에서 새댁을 꺼내 차에 실은 그는 차를 몰았다. 우선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갈림길이 나왔다. 한쪽은 병원을, 다른 한쪽은 산을 향하는 길이었다. 핸들의 방향에 따라 그의 운명이 바뀌는 자리였다. 잠시 후 그의 차는 산쪽을 향하고 있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28)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28)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

     2004년 4월 28일 경기도 안성시 외곽의 도로변 산자락. 나물을 뜯던 동네 여인들이 뼈만 남은 사람 팔을 발견했다. 바로 옆 헤집어진 흙바닥 틈으로는 역시 백골이 된 머리뼈도 보였다. 주변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굶주린 산짐승들이 누군가의 묘소를 건드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추슬러 쏜살같이 산을 내려왔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동네 어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상적으로 묘를 썼다면 그렇게 동물이 시신을 훼손할 정도로 얕게 묻을 리도, 근처에 썩는 냄새가 진동할 리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쇄골모양으로 부러진 뼈…메세레르 골절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 감식반은 엎어진 채 매장돼 있는 여성의 사체를 발견했다. 시신은 땅바닥에서 30㎝ 정도 깊이에 묻혀 있었다. 마음이 급한 누군가가 시신을 숨기려 한 정황이 역력했다. 최초 팔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다른 신체의 일부도 발견됐다. 산짐승들 때문에 비록 주검은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에 여성은 억울함을 풀 기회를 얻었다. 여성은 분홍색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키는 170㎝가량, 작지 않은 체구였다. 하지만 그 이상을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신분증이나 지갑이 없었고, 손가락은 심하게 부패해 지문 채취가 불가능했다. 감식반은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긴 뒤 실종자 명단을 뒤지기 시작했다.  시신은 숨을 거둘 당시의 정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사인은 다발성 손상. 부러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갈비뼈는 무려 17곳이 나갔다. 부검의는 여성의 왼쪽 넓적다리 뼈와 아래위 팔 뼈를 유심히 살폈다. 부러진 곳은 하나같이 쐐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충격에 순간적으로 휘어지던 뼈가 더 버티지 못하고 충격의 반대방향으로 비스듬하게 갈라진 모습이었다.  메세레르 골절(Messerer´s fracture).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신체가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생기는 손상이다. 경찰은 일단 그녀가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숨진 뒤 이곳에 매장된 것으로 추리했다.  그렇다면 추락과 교통사고 중 어느 것이 원인이었을까. 비밀은 부러진 넓적다리 뼈에 숨어 있었다. 부검의는 뼈를 추스러 부러진 부위의 정확한 높이를 쟀다. 사인이 교통사고였다면 그녀의 다리 뼈에는 자동차 범퍼와 부딪힐 때 생긴 골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동차 범퍼의 높이는 차종마다 다르다. 일반 세단형 승용차는 50㎝ 안팎이고 소형트럭이나 소형버스는 60㎝,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대형트럭, 버스 등은 이보다 높다.  여기에는 물론 변수가 있다. 급제동 여부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는 순간, 자동차 앞부분이 아래로 숙여지기 때문에 손상 부위가 실제 범퍼의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자리잡게 된다. 사고 당시 신발의 높이도 변수가 된다. 숨진 여성의 넓적다리 뼈는 발바닥으로부터 65㎝ 정도 높이에서 부러져 있었다. 결론적으로 여성은 승용차보다는 범퍼가 높이 달린 트럭이나 SUV 등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기서 잠깐, 보행자가 차와 부딪혔을 때 뼈가 견뎌낼 수 있는 강도를 따져보자. 흔히 예상하는 것보다 세지 않다. 건강한 성인 남자라도 시속 25㎞로 서행하는 경차(약 650~700㎏)와 부딪혀 뼈가 부러질 수 있다. 경차의 속도가 시속 45㎞까지 올라간다면 부딪힌 사람은 예외 없이 뼈가 부러진다. 물론 뼈가 약한 여자나 노인, 아이들은 더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진다.  여성의 신원이 확인됐다. 열 달 전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인근 동네 새댁 A씨(당시 33세)였다. 이가 빠진 모양과 키, 사라질 당시 입고 있던 옷, 나이 답지 않게 많았던 새치까지 모든 것이 일치했다.  2003년 7월 초 A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구멍가게 여주인이었다.  “아마. 가게 문닫을 시간이었죠. 밤 10시 20분쯤 남편 끓여준다며 라면을 사갔어요. 아…새댁이 나간 후 쿵하는 소리가 났어요. 무슨 일이 있나 나가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10개월전 현장에 떨어진 손톱크기의 증거  강력반 형사들은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사고차량의 운전자가 시신을 숨겼다고 판단했다. 이제 10개월 전 인적드문 시골길에서 뺑소니를 낸 범인을 찾을 차례. 막막해 하는 형사들에게 반장은 호미를 하나씩 건넸다. “다들 현장에 나가서 후딱 증거 찾아와.”  산도적 같은 덩치의 강력반 형사들은 투덜거리며 호미를 들고 A씨의 예상 경로를 따라 길가를 뒤졌다. 그렇게 현장을 뒤지기를 몇시간. 저쪽에서 “찾았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께 5㎜, 지름 2~3㎝ 정도의 엄지손톱 크기만한 플라스틱 조각 3개였다. 그곳에서는 몇년 동안 한 건의 교통사고도 없었다. 경찰은 차량정비 전문가들을 통해 그 조각들이 1991년~1996년식 SUV 갤로퍼의 방향지시등 덮개임을 알아냈다.  당시 안성과 충북 진천 등 그 일대의 해당 차종 소유자는 286명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A씨가 사라진 당일의 행적과 차량 보험처리 여부, 방향지시등 교체 여부 등을 조사했다.  한 명씩 용의선상 인물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범인이 먼저 움직였다. 최근 방향지시등은 물론 엔진까지 교체한 같은 동네주민 B씨(43)였다. 그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바로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그는 도주과정에서 가족에게 뺑소니와 암매장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은 안성 시내를 뒤져 B씨를 검거했다.  그런 독한 짓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날 밤 B씨는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앞에서 오는 대형 트럭의 전조등이 시야를 가리는 순간. 차량 오른쪽이 뭔가를 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그는 “들짐승이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차를 몰았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몇 시간 후 다시 돌아와 살펴보니 논두렁에 A씨가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논두렁에서 새댁을 꺼내 차에 실은 그는 차를 몰았다. 우선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갈림길이 나왔다. 한쪽은 병원을, 다른 한쪽은 산을 향하는 길이었다. 핸들의 방향에 따라 그의 운명이 바뀌는 자리였다. 잠시 후 그의 차는 산쪽을 향하고 있었다.  유영규기자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흔해서 더욱 잔인한 교통사고 위장 살인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살인현장 속 왠 대변(?)검사…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진실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엽기살인마는 피가 다르다(?) 혈흔 속 性염색체가 ‘악마의 姓’ 을 지목하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물 마신던 A씨의 갑작스런 사망 왜?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엄마…알고보니 생활반응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성형수술 자국이 일러준 주검의 주민번호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20대 여성이 남긴 마지막 글씨…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 살인…‘전류반’은 못 숨겼네 몸에 남은 전기충격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 택시에 튄 흙탕물이 살인자를 뒤바뀌 놓다 돈 버리고 납치… 이상한 택시 강도 25) 담배꽁초에 묻은 립스틱 DNA 검사해보니 살인 현장에 남은 ‘그 남자’의 립스틱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흉기에 17번 찔려 죽은 여자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범퍼가 남긴 ‘메세레르 골절’
  • 장애인 성폭력 초범도 전자발찌

    앞으로 장애인을 대상으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면 초범이라도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를 찬다. 또 강도 범죄 피의자도 전자발찌 부착 대상에 포함된다. 법무부는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검사가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한 법 조항 5조 1항에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해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때’를 신설했다. 특히 범행 횟수를 명시하지 않아 단 한 차례 범행에도 전자발찌를 찰 수밖에 없다. 법무부는 장애인 대상 성폭력 범죄는 주로 친족이나 이웃 주민 등 면식범에 의해 일어나며 범행이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은밀하게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전자발찌 부착 대상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도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피의자는 형 종료 뒤 5년 이내에 재범했을 때, 강도죄를 3차례 이상 저질러 상습성이 인정되거나 검사가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할 때 전자발찌 부착 대상이 되도록 했다. 현재는 성폭력, 살인, 미성년자 유괴 범죄만 전자발찌를 차는데 강도죄 또한 이들 범죄만큼이나 위험성이 크고 재범률이 높다고 법무부는 봤다. 법무부 측은 “강도죄는 통상 치밀한 계획에 따라 타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은밀하게 행해지기 때문에 국가기관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관찰한다면 다른 범죄군보다 범죄 유혹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7)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7)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기억의 보편적 원리 중 하나는 실제 회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은 저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재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199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보 2003년 3월 23일 새벽 인천 중구의 한 무역회사 사무실. 이곳 사장 K(당시 46세·여)씨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무슨 원한에서인지 범인은 잔혹하게도 그녀의 몸을 17차례나 반복해 공격했다. 사인은 다발성 자창(刺創). 과다출혈로 말미암은 쇼크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감식반은 몇 번이고 현장을 뒤졌지만 혈흔도, 지문도, 족적도 찾을 수 없었다.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에서 경찰은 어렵사리 목격자를 한 명 찾아냈다. 사건이 나던 날, 옆 건물에서 야간 경비를 섰던 A씨였다. A씨는 자정 무렵 문제의 사건 현장으로 누군가 차를 몰고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았다. 차의 번호는 물론이고 종류나 색상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피곤함에 지친 야간 경비원이 옆 건물까지 챙길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지능적인 범인은 칠흑 같은 밤 차의 미등까지 끈 채 차를 몰았다. 경찰은 A씨의 동의를 얻어 법최면(Forensic Hypnosis) 수사를 시도했다. 흐릿한 그의 기억 속에서 범인의 흔적을 끌어낼 마지막 기회였다. “시간을 5일 전으로 돌립니다. 당신은 야간 근무를 서고 있습니다.” 최면 상태에 들어간 A씨의 뇌는 사건에 관한 정보를 기대 이상으로 많이 담고 있었다. 언뜻 보긴 했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 뇌 한쪽에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다. 법최면은 이런 기억의 파편을 의식의 세계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A씨는 차량이 들어온 시간을 22일 밤 11시 40분쯤으로 기억해 냈다. 주차 후 차에서 내려 회사로 들어가는 용의자의 뒷모습도 기억해 냈다. 평소에 보던 옆 회사 직원은 아니라고 했다. 최면 수사관은 다시 A씨의 기억을 23일 새벽 1시 30분으로 되돌렸다. 앞서 낯선 차가 빠져나갔다고 진술한 시간이다. 그렇게 기억의 실타래를 찾는 도중 A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남자가 황급히 나와 시동을 걸고 있어요. 화물차와 부딪칠 뻔하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어요. 어어… 차의 모습이 보여요.” A씨의 뇌는 용케도 브레이크 등이 켜지는 찰나 잠시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동차를 기억하고 있었다. 차는 빨간색, 일반 세단과 달리 트렁크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A씨는 또 다른 목격자가 있음을 기억해 냈다. 부딪칠 뻔한 화물차 운전사였다. 경찰은 해당 차량을 수배했다. ●잘못된 정남규 몽타주 바로잡아 법최면은 범죄 수사에 최면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건 현장에 단서는 없고 목격자나 피해자만 있을 때 최면을 걸어 희미한 기억을 구체화하고, 이를 통해 수사에 필요한 단서를 끌어내는 수사 방식이다. 최면은 이렇게 뇌 어딘가에 숨어 있는 기억을 끌어내는 단서를 제공한다. 강호순과 정남규, 유영철까지 최근 초강력 흉악범죄 수사에는 모두 최면 수사가 활용됐다. 아직 최면을 통해 얻어낸 목격자 진술의 법적인 증거 능력은 없다. 단, 모아 낸 증언을 통해 악마의 퍼즐과도 같은 사건을 재현하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증거를 잡아내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최면 수사가 ‘기억의 왜곡’을 수정하는 역할도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몽타주다. 보통 범죄 피해자들이 기억하는 범인의 얼굴은 실제보다 험상궂다. 두려움의 기억이 용의자의 인상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법최면은 이런 오류를 최대한 보정한다. 실제 비 오는 목요일의 살인자로 불린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남규도 이렇게 만든 몽타주에 꼬리가 밟혔다. 2004년 2월 주택가 뒷골목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됐다. 며칠 후 한 30대 남자가 현장 근처 중국집을 찾아왔다. 며칠 전 여자가 죽지 않았느냐고 물은 그는 주변을 서성이다 사라졌다. 경찰은 범행 현장을 다시 찾은 범인이라고 여겨 중국집 종업원에게 최면 수사를 시행했다. 중국집 종업원의 최면 속에서 떠올린 얼굴. 2년 후 정남규를 잡은 수사관들은 깜짝 놀랐다. 몽타주가 그야말로 판박이였다. ●범인·비밀 있는 사람은 최면 잘 안걸려 그럼 최면은 누구에게나 통할까. 답은 ‘아니오’다. 최면은 무의식 속에서 기억을 찾아내는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혼수상태처럼 의식을 잃은 상황에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최면에 절대 걸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에겐 최면을 걸 수 없는 이유다. 어렵게 최면을 거는 데 성공한다 해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에 대해선 입을 닫는다. 이 때문에 범인 또는 경찰에게 뭔가 숨기고 싶은 사람에게 최면 수사는 무의미한 결과만을 가져온다. 10년 전인 2001년 5월 19일 서울 성동구 주택가에서 토막 난 4세 여아의 시신이 발견됐다. 9일 전 실종된 아이였다. 다시 3일 뒤 경기 광주의 한 여관에서 아이 시신의 나머지 부분이 발견됐다. 그 방에 투숙했던 손님이 놓고 갔다고 본 경찰은 범인의 인상착의를 알아내기 위해 여관 여종업원에게 최면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경찰은 최면 수사를 포기했다. 최면 유도가 반복됐지만 여종업원은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여종업원은 최면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최면 유도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최면 수사관은 담당 형사에게 “여자가 뭔가 수상하다.”고 귀띔했다. 수상한 여성의 진실은 일주일 후 범인이 잡히고 나서 밝혀졌다. 종업원은 여관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은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간의 성매매 사실이 경찰에 발각될 것이 두려워 스스로 뇌를 굳게 닫은 채 최면을 거부했던 것이다. ●최면은 ‘마법의 물약’아닌 연구해야 할 과학 최면 유도에는 개인차도 있다. 이를 최면감수성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감정 표현이 자유롭고 집중력이 강한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은 최면에 잘 걸린다. 반면 매사에 의심이 많고, 비판적인 판검사, 형사, 기자 등의 직업군은 최면에 잘 걸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치는 않지만 최면이 걸린 상황에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를 속여 마음속에 거짓을 진실이라고 각인해 놓은 경우다. 단언컨대 최면은 판타지 영화 ‘해리포터’ 속의 ‘베리타세움’(진실을 말하게 하는 마법의 물약)이 아니다. 오히려 더 연구하고 개발해야 할 ‘과학’이다. 그만큼 철저한 전문가 양성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토막살인 범인 잡으려 여관女에 최면 걸었더니…

    토막살인 범인 잡으려 여관女에 최면 걸었더니…

    “기억의 보편적 원리 중 하나는 실제 회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기억을 못하는 것은 저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재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199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보 중에서> 2003년 3월 23일 새벽 인천 중구의 한 무역회사 사무실. 이곳 사장 K씨(당시 46세·여)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무슨 원한에서인지 범인은 잔혹하게도 그녀의 몸을 17차례나 반복해 공격했다. 사인은 다발성 자창(刺創). 과다출혈로 말미암은 쇼크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감식반은 몇 번이고 현장을 뒤졌지만 혈흔도, 지문도, 족적도 찾을 수 없었다.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에서 경찰은 어렵사리 목격자를 한 명 찾아냈다. 사건이 나던 날, 옆 건물에서 야간경비를 섰던 A씨였다. A씨는 자정 무렵 문제의 사건 현장으로 누군가 차를 몰고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았다. 차의 번호는 물론이고 종류나 색상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피곤함에 지친 야간 경비원이 옆 건물까지 챙길 이유는 없었다. 지능적인 범인은 칠흙 같은 밤 차의 미등까지 끈 채 차를 몰았다. 경찰은 A씨의 동의를 얻어 법최면(Forensic Hypnosis) 수사를 시도했다. 흐릿한 그의 기억 속에서 범인의 흔적을 끌어낼 마지막 기회였다. “시간을 5일 전으로 돌립니다. 당신은 야간근무를 서고 있습니다.” 최면상태에 들어간 A씨의 뇌는 사건에 관한 정보를 기대 이상으로 많이 담고 있었다. 언뜻 보긴 했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 뇌 한쪽에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다. 법최면은 이런 기억의 파편을 의식의 세계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A씨는 차량이 들어온 시간을 22일 밤 11시 40분쯤으로 기억해 냈다. 주차 후 차에서 내려 회사로 들어가는 용의자의 뒷모습도 기억해 냈다. 평소에 보던 옆 회사 직원은 아니라고 했다. 최면 수사관은 다시 A씨의 기억을 23일 새벽 1시 30분으로 되돌렸다. 앞서 낯선 차가 빠져나갔다고 진술한 시간이다. 그렇게 기억의 실타래를 찾는 도중 A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남자가 황급히 나와 시동을 걸고 있어요. 화물차와 부딪힐 뻔하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어요. 어어…차의 모습이 보여요.” A씨의 뇌는 용케도 브레이크 등이 켜지는 찰나, 잠시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동차를 기억하고 있었다. 차는 빨간색, 일반 세단과는 달리 뒷 트렁크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A씨는 또 다른 목격자가 있음을 기억해 냈다. 부딪칠뻔한 화물차 운전사였다. 경찰은 해당 차량을 수배했다.   ●악마의 퍼즐 맞추기…잘못된 기억을 보정하라 법최면은 범죄수사에 최면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건 현장에 단서는 없고 목격자나 피해자만 있을 때 최면을 걸어 희미한 기억을 구체화하고, 이를 통해 수사에 필요한 단서를 끌어내는 수사방식이다. 최면은 이렇게 뇌 어딘가에 숨어 있는 기억을 끌어내는 단서를 제공한다. 강호순과 정남규, 유영철까지 최근 초강력 흉악범죄 수사에는 모두 최면수사가 활용됐다. 아직 최면을 통해 얻어낸 목격자 진술의 법적인 증거능력은 없다. 단, 모아낸 증언을 통해 악마의 퍼즐과도 같은 사건을 재연하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증거를 잡아내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최면수사가 ‘기억의 왜곡’을 수정하는 역할도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몽타주다. 보통 범죄 피해자들이 기억하는 범인의 얼굴은 실제보다 험상궂다. 두려움의 기억이 용의자의 인상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법최면은 이런 오류를 최대한 보정한다. 실제 비오는 목요일의 살인자로 불린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남규도 이렇게 만든 몽타주에 꼬리가 밟혔다. 2004년 2월 주택가 뒷골목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됐다. 며칠 후 한 30대 남자가 현장 근처 중국집을 찾아왔다. 며칠 전 여자가 죽지 않았느냐고 물은 그는 주변을 서성이다 사라졌다. 경찰은 범행 현장을 다시 찾은 범인이라고 여겨 중국집 종업원에게 최면수사를 시행했다. 중국집 종업원의 최면 속에서 떠올린 얼굴. 2년 후 정남규를 잡은 수사관들은 깜짝 놀랐다. 몽타주가 그야말로 판박이였다. ●최면과 해리포터의 마법의 물약 그럼 최면은 누구에게나 통할까. 답은 ‘아니오’다. 최면은 무의식 속에서 기억을 찾아내는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혼수상태처럼 전혀 의식을 잃은 상황에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최면에 절대 걸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에겐 최면을 걸 수 없는 이유다. 어렵게 최면을 거는 데 성공한다 해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에 대해선 입을 닫는다. 이 때문에 범인 또는 경찰에게 뭔가 숨기고 싶은 사람에겐 최면수사는 무의미한 결과만을 가져온다. 10년 전인 2001년 5월 19일 서울 성동구 주택가에서 토막 난 4세 여아의 시신이 발견됐다. 9일 전 실종된 아이였다. 다시 3일 뒤 경기 광주의 한 여관에서 아이 시신의 나머지 부분이 발견됐다. 그 방에 투숙했던 손님이 놓고 갔다고 본 경찰은 범인의 인상착의를 알아내기 위해 여관 여종업원에게 최면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몇시간 후, 경찰은 최면수사를 포기했다. 최면유도가 반복됐지만 여종업원은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여종업원은 최면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최면유도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최면 수사관은 담당 형사에게 “여자가 뭔가 수상하다.”고 귀띔했다. 수상한 여성의 진실은 일주일 후 범인이 잡히고 나서 밝혀졌다. 종업원은 여관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은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간의 성매매 사실이 경찰에 발각될 것이 두려워 스스로 뇌를 굳게 닫은 채 최면을 거부했던 것이다. 최면유도에는 개인차도 있다. 이를 최면감수성이라고 불린다. 일반적으로 감정표현이 자유롭고 집중력이 강한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은 최면에 잘 걸린다. 반면 매사에 의심이 많고, 비판적인 판·검사, 형사, 기자 등 직업군은 최면에 잘 걸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치는 않지만 최면이 걸린 상황에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를 속여 마음 속에 거짓을 진실이라고 각인시켜 놓은 경우다. 단언컨대 최면은 판타지 영화 ‘해리포터’ 속의 ‘베리타세움’(진실을 말하게 하는 마법의 물약)이 아니다. 오히려 더 연구하고 개발시켜야 할 ‘과학’이다. 그만큼 철저한 전문과 양성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긴장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대변이 결정적 증거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여성 유린 위해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그녀가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죽은 여성이 남긴 데스노트…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치밀한 남편 ‘전류반’은 못 숨겼네 찌릿찌릿 전기충격기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두려움이 만든 ‘자기 폭력적 자살’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 용의자 중엔 없는데…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 택시강도의 진실…흙탕물이 살인자를 지목하다 25) 담배꽁초에 묻은 립스틱 DNA 검사해보니 살인 현장에 남은 ‘그 남자’의 립스틱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 독일 여행자 ‘먹은’ 식인족 수배사진 보니…

    여행지에서 실종된 독일 여행객이 식인종에게 먹힌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해외 언론들이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는 여행 가이드 앙리 아이티의 사진을 공개했다. 스테판 레이민이라는 이름의 이 독일 여행객은 최근 여자친구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누쿠히바섬을 찾았다가 실종됐다. 당시 레이민은 현지 여행 가이드인 아이티와 전통 염소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으며, 함께 섬을 찾았던 레이민의 여자친구는 가이드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조사단은 깊은 숲 속에서 다 탄 장작과 일부 뼈, 재 등을 발견했다. 여기에는 사람의 턱 뼈와 치아, 치아 치료에 주로 사용되는 봉(Falling)등이 포함돼 있었다. 경찰은 이것이 사람을 난도질 해 조각을 낸 뒤 불에 올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장한 몸집과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용의자 아이티는 카이오이 부족(Kaioi tribe)으로, 왼쪽 어깨에 눈에 띄는 문신을 가지고 있다. 이 문신은 마이오이 부족의 전사들이 주로 하는 문신으로 보인다고 독일 타투 전문가는 밝혔다. 식인종 전문가인 건돌프 크루거 박사는 “현재의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기독교를 믿고 글을 쓸 줄 아는 만큼 교육을 받은 이들”이라면서 “하지만 이번 범죄는 부족의 오래된 종교적 의식 때문에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찰은 현장의 흔적으로 보아 사람을 난도질 해 조각을 낸 뒤 불에 태운 것으로 추정하고, 증거물을 수집해 레이민의 신원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칠 것으로 알려졌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6)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6)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접촉한 두 물체 사이에는 반드시 물질 교환이 일어난다.”(에드몽 로카르·1877~1966) 근대 법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카르의 ‘교환법칙’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학들에게 절대명제로 여겨진다. 수사관과 감식반원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현장을 수십번씩 뒤지고, 부검의가 시신 옆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불안감에 떠는 사람들도 있다. 범행현장 또는 시신과 접촉했던 범인들이다. ●변태성욕자인 척 하고 싶은 좀도둑의 트릭(?) 2007년 1월 8일 새벽 2시 부산의 어느 동네. 가게에 도둑이 들었다는 신고를 받고 달려간 현장. 절도 사건의 목격자를 찾으려고 옆집을 찾아간 김 순경이 마주친 것은 집주인의 시신이었다. 다락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람은 식당 주인 A(여·당시 62세)씨였다. 시신은 빨간 겨울 점퍼에 방한바지를 입은 채 전기장판 위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겨울 밤 난방이 안 되는 다락방으로 추위가 들어올세라 단단히 채비를 했지만 불청객의 침입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방안은 말끔했다. 범인이 깔끔하게 치운 게 아니라면 피해자가 순식간에 당했다는 얘기다. 노인의 양쪽 눈꺼풀에선 일혈점이, 얼굴에는 울혈이, 목에는 까진 상처가 남아 있었다. 목졸림에 의한 질식사로 보였다. 주름진 손가락엔 반지 자국만 남아 있었다. 평소 노인이 끼던 금가락지를 빼간 것이다. 감식을 진행하던 형사가 순간 눈을 찡그렸다. 범인이 사망자의 시신을 훼손했기 때문이었다. “반장님. 이거 완전 변태 아잉교. 동종 전과자부터 뒤져 볼까예.” “미리 단정 짓지 말그라. 놈이 잔머리 굴리는 걸 수도 있다.” 범인이 현장에 접근한 경로는 죽은 노인의 목에 새겨져 있었다. 경찰은 목덜미에 작은 나무가시들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가시는 식당 뒤쪽 허름한 합판으로 만든 나무 문과 같은 종류였다. 지난밤 범인은 장갑을 낀 채 힘으로 나무문을 밀고 들어왔고, A씨의 목을 조르는 과정에서 앞서 장갑에 묻은 나무가시가 다시 피해자에게 옮겨 간 것이라는 추리가 가능했다. 실제 뒤쪽 나무문은 누군가 강제로 부수고 밀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범인은 적어도 가게 구조를 아주 잘 아는 사람. 하지만 한밤엔 주인 눈에 띄지 않도록 몰래 숨어야 하는 관계였다. 피해자가 옷을 입은 상태로 숨진 탓에 감식은 겉옷부터 하나씩 안쪽으로 진행됐다. 테이프를 이용해 세밀하게 미세증거물을 수집하는 과정이다. 노인이 입고 있던 빨간 점퍼에서는 파란색 섬유 몇 올이 발견됐다.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몇 올의 섬유가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이 될까. 답부터 이야기하면 ‘그렇다’다. 섬유는 일상적인 접촉만으로도 생각보다 많은 양의 전이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외제 오토바이가 탐이 나 누군가 안장에 한번 앉아 봤다고 치자. 인조가죽으로 만든 안장에 뭐가 남았을까 싶겠지만 앉은 자리엔 바지 섬유가 전이된다. 물론 오래 앉아 있을수록, 강하고 거칠게 비비며 뽐낼수록 떨어져 나가는 섬유의 양은 늘어난다. 작은 양이지만 무슨 바지를 입은 사람이 안장에 앉아 있었는지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접촉 조건(면의 거칠기나 접촉 강도)이 같다면 섬유의 길이와 굵기, 직조 방법 및 성분에 따라 전이되는 양도 달라진다. 범행 현장에서 섬유증거가 발견되면 수사관들은 될수록 증거물이 인조섬유이길 바란다. 같은 옷이라도 부위별로 섬유의 굵기, 염색의 정도, 꼬임의 양 등이 천차만별인 천연 섬유보다는 인조섬유 쪽이 증거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시신의 손톱 밑에서 미세한 혈흔이 발견됐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조차 DNA가 나올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할 만큼 적은 양이었다. ●파란 점퍼가 주인의 목줄을 죄다 범행 일주일째. 형사들은 식당 주변에서 탐문조사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소득을 올리지는 못했다. 복잡한 사건에 얽히고 싶지 않은 탓인지 주위 사람들은 말을 아꼈다. 그러던 중 주민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동네 건달인 B(49)씨가 최근 “금반지를 팔았는데 돈이 꽤 나가더라.”고 떠벌리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별다른 직업도, 가족도 없는 그에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금붙이가 생길 리 없다는 생각에 동네 사람은 수군댔다. B씨는 죽은 A씨의 집에서 하숙을 한 적이 있어 누구보다 집 구조를 잘 알았다. 경찰은 일단 B씨를 만나 보기로 했다. “어데예. 증거 있습니꺼.” 경찰서에서 B씨는 큰소리부터 쳤다. 일종의 자기방어인 듯했다. 그러나 목소리와 눈빛의 떨림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그의 코에는 손톱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예상대로라면 죽은 A씨가 마지막 남긴 방어흔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아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정황만으로 그를 잡아 놓을 수는 없었다. 경찰은 일단 B씨의 손톱과 타액을 채취하고 일단 그를 풀어 줬다. 다음 날 날아온 국과수 감정회보서에는 피해자의 손톱 밑 혈흔과 B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용의자는 경찰서를 나오자마자 도망쳤다가 형사들에게 잡혀 왔다. 그는 여전히 당당했다. 경찰은 용의자의 집에서 찾은 또 하나의 증거를 들이밀었다. 죽은 노인의 몸에 섬유 증거를 남겼던 바로 그 파란색 점퍼였다. 범인은 증거가 남아 있을까 하는 걱정에 옷을 세탁했지만 점퍼엔 여전히 문을 통과할 때 묻었던 나무가시가 남아 있었다. B씨는 고개를 떨궜다. 곗돈을 탔다는 이야기를 듣고 돈만 훔치러 들어갔다가 걸려 얼떨결에 살인을 했다고 했다. 치정살인이나 변태성욕자의 살인으로 가장하기 위해 시신을 훼손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혈혈단신인 그에게 늘 따듯한 밥 한 공기를 건네며 가족처럼 챙겨줬던 은인을 살해하고 B씨가 챙긴 돈은 11만 8000원과 금가락지 한개가 전부였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범죄는 26]파란옷을 입은 살인마, 변태로 위장해…

    [범죄는 26]파란옷을 입은 살인마, 변태로 위장해…

     “접촉한 두 물체 사이에는 반드시 물질 교환이 일어난다.”(에드몽 로카르·1877~1966)  근대 법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카르의 ‘교환법칙’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학들에게 절대명제로 여겨진다. 수사관과 감식반원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현장을 수십번씩 뒤지고, 부검의가 시신 옆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불안감에 떠는 사람들도 있다. 범행현장 또는 시신과 접촉했던 범인들이다.    ●변태성욕자인 척 하고 싶은 좀도둑의 트릭(?)  2007년 1월 8일 새벽 2시 부산의 어느 동네. 가게에 도둑이 들었다는 신고를 받고 달려간 현장. 절도 사건의 목격자를 찾으려고 옆집을 찾아간 김 순경이 마주친 것은 집주인의 시신이었다. 다락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람은 식당 주인 A씨(여·당시 62세)였다.  시신은 빨간 겨울 점퍼에 방한바지를 입은 채 전기장판 위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겨울 밤 난방이 안 되는 다락방으로 추위가 들어올세라 단단히 채비를 했지만 불청객의 침입은 예상하지 못한듯 했다. 방안은 말끔했다. 범인이 깔끔하게 치운 게 아니라면 피해자가 순식간에 당했다는 얘기다. 노인의 양쪽 눈꺼풀에선 일혈점이, 얼굴에는 울혈이, 목에는 까진 상처가 남아 있었다. 목졸림에 의한 질식사로 보였다. 주름진 손가락엔 반지 자국만 남아있었다. 평소 노인이 끼던 금가락지를 빼간 것이다. 감식을 진행하던 형사가 순간 눈을 찡그렸다. 범인이 사망자의 시신을 훼손했기 때문이었다.  “반장님. 이거 완전 변태 아잉교. 동종 전과자부터 뒤져 볼까예.”  “미리 단정 짓지말그라. 놈이 잔머리 굴리는 걸수도 있다.”  범인이 현장에 접근한 경로는 죽은 노인의 목에 새겨져 있었다. 경찰은 목덜미에 작은 나무가시들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가시는 식당 뒤쪽 허름한 합판으로 만든 나무 문과 같은 종류였다. 지난밤 범인은 장갑을 낀 채 힘으로 나무문을 밀고 들어왔고, A씨의 목을 조르는 과정에서 앞서 장갑에 묻은 나무가시가 다시 피해자에게 옮겨 간 것이라는 추리가 가능했다. 실제 뒤쪽 나무문은 누군가 강제로 부수고 밀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범인은 적어도 가게 구조를 아주 잘 아는 사람. 하지만 한밤엔 주인 눈에 띄지 않도록 몰래 숨어야 하는 관계였다.  피해자가 옷을 입은 상태로 숨진 탓에 감식은 겉옷부터 하나씩 안쪽으로 진행됐다. 테이프를 이용해 세밀하게 미세증거물을 수집하는 과정이다. 노인이 입고 있던 빨간 점퍼에서는 파란색 섬유 몇 올이 발견됐다.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몇 올의 섬유가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이 될까. 답부터 이야기하면 ‘그렇다’다. 섬유는 일상적인 접촉만으로도 생각보다 많은 양의 전이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외제 오토바이가 탐이 나 누군가 안장에 한번 앉아 봤다고 치자. 인조가죽으로 만든 안장에 뭐가 남았을까 싶겠지만 앉은 자리엔 바지 섬유가 전이된다. 물론 오래 앉아있을수록, 강하고 거칠게 비비며 뽐낼수록 떨어져 나가는 섬유의 양은 늘어난다. 작은 양이지만 무슨 바지를 입은 사람이 안장에 앉아 있었는지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접촉 조건(면의 거칠기나 접촉 강도)이 같다면 섬유의 길이와 굵기, 직조 방법 및 성분에 따라 전이되는 양도 달라진다. 범행 현장에서 섬유증거가 발견되면 수사관들은 될수록 증거물이 인조섬유이길 바란다. 같은 옷이라도 부위별로 섬유의 굵기, 염색의 정도, 꼬임의 양 등이 천차만별인 천연 섬유보다는 인조섬유 쪽이 증거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시신의 손톱 밑에서 미세한 혈흔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조차 DNA가 나올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할 만큼 적은 양이었다.    ●파란 점퍼가 주인의 목줄을 죄다  범행 일주일째. 형사들은 식당 주변에서 탐문조사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소득을 올리지는 못했다. 복잡한 사건에 얽히고 싶지 않은 탓인지 주위 사람들은 말을 아꼈다. 그러던 중 주민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동네 건달인 B씨(49)가 최근 “금반지를 팔았는데 돈이 꽤 나가더라.”고 떠벌리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별다른 직업도, 가족도 없는 그에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금붙이가 생길 리 없다는 생각에 동네 사람은 수군댔다. B씨는 죽은 A씨의 집에서 하숙을 한 적이 있어 누구보다 집 구조를 잘 알았다. 경찰은 일단 B씨를 만나보기로 했다.  “어데예. 증거 있습니꺼.”  경찰서에서 B씨는 큰소리부터 쳤다. 일종의 자기방어인 듯했다. 그러나 목소리와 눈빛의 떨림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그의 코에는 손톱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예상대로라면 죽은 A씨가 마지막 남긴 방어흔이였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아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정황만으로 그를 잡아 놓을 수는 없었다. 경찰은 일단 B씨의 손톱과 타액을 채취하고 일단 그를 풀어 줬다.  다음날 날아온 국과수 감정회보서에는 피해자의 손톱 밑 혈흔과 B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용의자는 경찰서를 나오자마자 도망쳤다가 형사들에 잡혀왔다. 그는 여전히 당당했다. 경찰은 용의자의 집에서 찾은 또 하나의 증거를 들이밀었다. 죽은 노인의 몸에 섬유 증거를 남겼던 바로 그 파란색 점퍼였다. 범인은 증거가 남아 있을까 하는 걱정에 옷을 세탁했지만 점퍼엔 여전히 문을 통과할 때 묻었던 나무조각이 남아 있었다. B는 고개를 떨궜다. 곗돈을 탓다는 이야기를 듣고 돈만 훔치려 들어갔다 걸려 얼떨결에 살인을 했다고 했다. 치정살인이나 변태성욕자의 살인으로 가장하기 위해 시신을 훼손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혈혈단신인 그에게 늘 따듯한 밥 한 공기를 건네며 가족처럼 챙겨줬던 은인을 살해하고 B씨가 챙긴 돈은 11만 8000원과 금가락지 한개가 전부였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뉴 캅스-수사 버전을 올려라] (3부) 국민의 경찰로 가는 길 ② 주민이 원하는 치안 따로 있다

    [뉴 캅스-수사 버전을 올려라] (3부) 국민의 경찰로 가는 길 ② 주민이 원하는 치안 따로 있다

    지난 9월 27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한 고급 주택가. 한 집의 대문이 열려 있었다. 택배 배달이 왔다간 뒤 가사도우미가 미처 잠그지 못해서다. 마침 이 집 주변을 배회하며 기회를 노리던 ‘부잣집 전문털이범’은 “이때다.” 싶었다. 집안으로 들어간 그는 가사도우미 몰래 다이아몬드, 금거북이, 시계, 반지 등 각종 귀금속을 훔쳐 호주머니에 넣고 집을 빠져나와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집 주변에 폐쇄회로(CC) TV들이 설치돼 있었지만, 범인이 집안으로 침입하는 모습은 찍히지 않았다. CCTV의 사각지대를 교묘히 노린 것이다. 부자 동네에는 다른 주택가보다 값비싼 귀금속 등을 가진 주민들이 많을 확률이 높다. 때문에 철저한 방범·보안장치에도 불구, 한탕을 노리는 절도범의 ”매력적인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실제 최근 3개월 사이 서울 성북동 부자동네서 10여건의 절도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곳들은 대낮에 집이 비어 있거나 문이 열려 있었던 공통점이 있다. 집이 넓다 보니 CCTV의 사각지대도 많다는 지적이다. 부유층이 사는 지역은 아니지만 집이 촘촘하게 붙은 일반 주택가도 절도범들에게는 비교적 손쉬운 범행대상이다. 물론 한몫 챙기기는 어렵지만 방범이 허술한 탓에 침입과 도주가 용이한 까닭이다. 범죄는 지역 환경에 따라 발생 종류와 빈도에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성범죄 사건은 주로 도심지로부터 떨어져 있거나 인적이 드문 지역에서 자주 발생한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곳에서는 외국인 범죄가 많기 마련이다. ●절도·성범죄 지역 CCTV·야간조명 밝게 17일 서울신문이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입수한 ‘서울지역 구별 5대범죄 발생현황’에 따르면 2007년부터 올해 9월까지 관악구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은 1049건으로 나타났다. 이어 송파구(884건), 강남구(855건), 광진구 (761건), 서초구(726건), 구로구(715건) 순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야산이 인접한 지역이거나 유흥가 주변, 좁은 골목이 있는 주택가 등에서 성폭행이 많이 일어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아동성범죄 사건은 중랑구와 영등포구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지난해 각각 16건씩 일어났다. 경찰은 “좁은 골목이 많은 지역인 데다 저소득 가구가 많아 ‘방임 아동’이 적지 않은 탓에 아동들이 성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하루 평균 62건씩 일어나는 ‘외국인 범죄’는 구로구와 영등포구, 경기 안산 단원구가 압도적이다. 구로구 가리봉동, 안산 단원구 원곡동 국경없는마을 등은 조선족을 비롯한 동남아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특히 원곡동에는 거주민의 68%에 이르는 약 4만명(미등록 포함)이 외국인이다. 외국인 범죄가 많을 수밖에 없다. 경찰서별로 살펴봐도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외국인 범죄 발생 건수는 서울 구로서가 2346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안산 단원서(2212건), 서울 영등포서(2195건) 순이다. 지역별 범죄 발생 빈도와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들의 치안 요구도 다르다. 절도나 성범죄가 잦은 지역에서는 “CCTV를 더 설치해 달라. 거리 조명을 밝게 해 달라. 방범활동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한다. 조사를 받거나 업무 목적으로 경찰서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야간이나 주말에 통역사가 즉각 오지 않아 불편함이 크다. 경찰서에 통역사가 항시 상주하도록 조치해 달라.”고 요구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경찰의 치안 활동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잖다. 경찰도 ‘지역경찰 활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중요 범죄보다 실제 주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범죄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등 국민중심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범죄 지역 경찰서 통역사 배치 하지만 경찰의 지역별 맞춤식 치안활동은 아직 활성화돼 있지 않다. 주택가에는 아직 CCTV의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 성범죄 발생 우려가 높은 주택가 방범 활동은 형식적이라는 시민들의 불만도 높다. 특히 외국인 범죄를 수사하는 외사계 소속 경찰관의 숫자는 전체 경찰의 1.1%에 불과한 1000여명에 불과하다. 단원서, 구로서·영등포서 등에는 통역할 인력이 부족해 외국인 범죄 대응에 있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경찰이 5대 범죄 등 주요 발생 사건에 수사의 초점을 맞춰 검거 실적을 올리려는 관행을 버리지 못하다 보니 지역별 맞춤식 치안에 소홀한 것”이라면서 “국민들이 바라는 치안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 지역 경찰의 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자문기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자문단 곽대경(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박행렬(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유정현(한나라당 의원), 이동희(경찰대 법학과 교수),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윤호(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표창원(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특별취재팀 백민경, 이영준, 윤샘이나, 김진아기자 [독자의 제보를 받습니다] 서울신문은 ‘뉴 캅스(New Cops), 수사 버전을 올려라’ 기획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경찰 수사로 피해를 입었거나 비리 등을 목격한 독자의 제보를 받습니다. 사회부 경찰팀(전화 02-2000-9172~6) 또는 white@seoul.co.kr로 연락 바랍니다.
  • 아동 성범죄 절반 하교 시간대 발생

    13세 미만의 아동 성폭력 범죄의 취약 시간대는 정오부터 오후 6시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이 16일 낸 ‘2011년 범죄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 성폭력 범죄는 1175건이 발생했다. 51.2%인 454건은 정오~오후 6시 사이에 일어났다. 밤 시간대인 오후 8시~오전 4시가 17.6%, 오후 6~8시 14%, 오전 9시~낮 12시 9.6% 등의 시간대가 뒤를 이었다. 일반 성폭력 범죄의 44.5%가 밤 시간대에 집중되는 것과 비교하면 아동 성범죄는 주로 하교 시간대에 발생한 것이다.아동 유괴범죄도 정오~오후 6시 사이에 56.4%가 일어났다. 범죄 장소는 주거지가 41.4%로 가장 많았고, 노상이 17.6%, 숙박업소가 7.1%이었다. 아동 성폭력 범죄는 5건 가운데 1건 이상이 이웃과 친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저질러졌다. 아는 사람이 가해자인 경우는 27.6%였고, 특히 이웃은 12.1%, 친족은 10.8% 등이었다. 정상적인 정신 상태의 범행이 72.8%, 술에 취한 상태는 20.8%로 집계됐다. 범죄자 전과를 보면 초범이 40.8%인 309명, 재범은 59.2%인 449명이다. 동종 전과자의 비율은 65.7%에 달했다. 이 가운데 1년 이내에 다시 범행을 한 사례가 31.5%이다. 연령별로는 40대 성폭력범이 203명, 10대 182명, 30대 131명, 50대 115명, 20대 95명, 60대 77명, 70대 이상 27명 순이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기관총 팔아요~” 핫도그 노점상 알고보니…

    ”혹시 기관총 있어요?” 기관총, 샷건 등 무시무시한 총기류를 불법으로 팔던 사람들이 기소됐다. 황당하게도 이들은 핫도그 노점에서 총을 팔았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검찰은 기관총 등 불법총기류와 메탐페타민(각성제)을 핫도그 노점에서 판매한 호세 길버트 오티즈 등 2명을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산호세 지역에 핫도그 노점을 차려놓고 기관총, 샷건 등 총 17정의 총기류를 불법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비밀스러운 범죄는 역시 첩보를 입수하고 손님으로 가장한 경찰에게 덜미를 잡혔다. 산호세 비밀경찰이 이들에게 접근해 핫도그 대신 총을 주문하자 이를 판매한 것.      경찰은 “이 핫도그 가게에서 소총(rifle), 권총(pistols), 산탄총(sawed-off shotguns)등 여러 정을 샀다.” 며 “그 중 한명은 메탐페타민도 팔고 있었다.” 며 황당해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사설] 성폭력 동료 감싸는 울산 ‘도가니’ 공무원

    자신이 맡고 있는 지적장애 여중생을 강간하려 한 울주군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을 선처해 달라고 전국의 복지 관련 공무원들이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사회복지단체 어린이들한테까지 서명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법원은 팬티 차림으로 칼을 들고 장애 학생 혼자 있는 집에 들어간 것은 강간 의사가 있었다며 이 ‘도가니’ 공무원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가해자가 피해자 측과 합의를 했다는 점에서 영화 도가니가 없었다면 판결이 어떻게 나왔을지 모를 일이다. 죄가 커도 합의는 면죄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성폭력 범죄는 어떠한 이유로든 옹호될 수 없다. 더구나 지적장애인은 누구보다 성폭력으로부터 우선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 중의 약자다. 그런데 서명을 한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이 “가해자가 성실하게 살아왔고, 이번 일은 실수였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한 것은 제정신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무리 가재는 게 편이라지만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낄 장애아이들한테까지 서명을 받았다니 소름 돋을 일이다.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기득권층의 인식이 도가니를 빼닮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울주군을 ‘도가니군’으로 개명해야 한다는 분노와 비판이 터져나오는 것도 다 이런 이유다. 울주군 복지공무원들의 낯 뜨거운 행태는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 단면이다. 백번 양보해도 공복(公僕)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당시 국민참여재판에 참가한 여성단체가 탄원서에 서명한 공무원 명단 공개를 울산지법에 정보공개청구했지만 거부됐다고 한다. 보호할 가치가 있는 공무원만 보호돼야 한다. 누구보다 공직자는 사회적,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항거불능의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처벌도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 조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 檢 “모든 공무원범죄 지휘” vs 警 “檢수사는 경찰이”

    檢 “모든 공무원범죄 지휘” vs 警 “檢수사는 경찰이”

    검찰과 경찰의 형사소송법 시행령(대통령령) 초안이 확정되면서 두 기관 사이에 마찰음이 고조되고 있다. 검경 간 힘겨루기, 이른바 ‘수사권 조정 2라운드’가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검찰과 경찰이 각각 지난 10일과 13일 국무총리실에 제출한 초안의 핵심 쟁점은 크게 5가지다. 무엇보다 공무원 범죄에 대한 수사 지휘권을 둘러싸고 심각하게 맞부딪치고 있다. 검찰과 법무부의 경우, 공무원 범죄는 사안의 심각성과 국민에 미치는 파장 등을 고려해 검찰이 수사 초기부터 사건을 지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반면 경찰은 특정 사건에 전·현직 검사 및 검찰청 공무원이 포함돼 있으면 경찰이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넣었다. 경찰의 이 같은 초강수는 검찰이 정보수집과 탐문 등으로 내사 범위를 축소한 조치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찰 측은 “검사의 수사 지휘 범위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수사 공정성이 저해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제한이 필요하다고 봤다.”면서 “수사를 마친 이후에 검찰이 개입해야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법적 장치를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측은 이에 대해 “어불성설”이라며 발끈했다. 내사 규정에 대한 대립도 치열하다. 양보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경찰은 수사 대상 모르게 진행되는 게 내사인 만큼 수사와는 엄연히 구분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내사가 편의상 용어인 데다 외부의 감시나 견제를 피하기 쉬운 경찰의 내사를 둘러싸고 문제가 생긴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부작용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맞서고 있다. 검찰 초안에는 수사개시보고서 작성 전이라도 ▲체포영장·압수수색 영장이나 허가서 신청 ▲현행범 긴급체포 ▲사건관계인 조사 ▲공공기관·공사단체에 필요한 사항 조회 등을 하면 수사를 개시한 것으로 보고 검찰의 지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관행상 내사로 인정해 경찰 자율에 맡겨온 수사활동 대부분을 이번 기회에 수사 범위에 포함시켜 검찰 지휘에 두려는 의도로 비친다. 수사개시보고서 작성도 논란의 대상이다. 수사지휘 범위를 명확히 하고, 경찰이 자체 판단에 따라 사건을 내사종결하면 관련 기록을 검찰에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보고서 작성을 의무화했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경찰은 “지나친 수사통제”라며 들끓고 있다. 경찰이 ‘수사의 경합’ 조항을 만들어 범죄인지서 작성이나 입건 시점 등을 고려해 수사를 먼저 시작한 쪽이 사건을 진행하도록 하는 내용을 넣은 데 대해서도 검찰은 “중복 수사 사건의 경우 현재 검찰이 수사할 기관을 정하도록 돼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경찰이 내놓은 검사의 수사 지휘에 대한 이의신청도 만만찮은 대목이다. 검찰 측에서는 “절대불가”,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반응이다. 경찰은 “그랜저 검사 사건에서 보듯이 완벽한 개인이나 기관이 없는 만큼 판단착오나 비리 연루 등의 관련성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조항 신설 배경을 설명했다. 초안 제출 자체에 대해서도 두 기관 간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경찰청이 수사지휘 및 이에 대한 이의신청, 검·경협의회 구성 등에 관한 19개 조문을 작성, 총리실에 제출하자 검찰은 법무부를 거치지도 않고 총리실로 시행령 초안을 보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경찰은 “대통령령 초안을 한마디 말이나 협의, 상의도 없이 먼저 제출한 것은 검찰 측”이라면서 “이미 지난 6월 합의된 내사 규정에 대한 부분을 건드린 것 역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5)살인 현장에 남은 ‘그’의 립스틱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5)살인 현장에 남은 ‘그’의 립스틱

    “301호라꼬예? 같은 신고만 벌써 5번째 아잉교? 근데 가봤더니 아무 것도 아이던데예.” “그기 아이라 사람이 죽었다니까요.” 2001년 7월 27일 경남 창원의 한 오피스텔. 결과적으로 경찰은 이틀간 같은 집에 5차례나 출동해서야 빼어난 미모의 죽은 여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사망자는 인근에서 소주방을 운영하는 A(당시 41세)씨였다. 장롱 속 시신을 발견한 것은 남동생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열어 본 옷장에 그녀는 목이 졸린 채 숨져 있었다. 시신 발견 시간을 늦추기 위해 누군가 그녀를 옷장 속에 넣어 놓은 것이었다. 이틀 전 이웃들은 심하게 싸우는 소리를 들어 신고했다고 했지만, 누가 드나들었는지 본 사람은 없었다. 범인은 A씨의 손과 발을 묶은 후 장롱 속에 욱여넣었다. 얼마간을 웅크려 있었는지 피가 몰린 자국인 시반이 등에 몰려 있었다. 피살자의 목에는 스타킹과 실타래가 칭칭 감겨 있었다. 손으로 목을 조른 후 스타킹 등으로 다시 한번 숨통을 조인 듯 보였다. 배꼽 위에는 6㎝ 정도 칼에 베인 상처가 나 있었다. 싱크대 위 피묻은 과도가 범행 도구였다. 직장(直腸)온도 등을 통해 대략 계산한 A씨의 사망추정 시간은 약 48시간 전. 하지만 경찰은 정확한 시간은 탐문수사를 통해 확인하기로 했다. 시신의 부패가 진행 중이면 과학수사반은 헨스게 도표 등 일반적인 사망시간 추정법을 쓰지 않는다. 무리한 계산으로 오차 범위가 늘면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망시간을 찾아내는 연구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여전히 미완의 단계다. ●3명의 남자 DNA 범인은 그중 하나 A씨가 혼자 살았던 오피스텔은 살인현장치고는 너무 깨끗했다. 출동한 경찰은 이 때문에 출동했다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손님이 왔었는지 방바닥엔 과일 접시와 2개의 방석이 놓여 있었다. 싱크대 속 밥공기도 2개였다. 반면 어디에도 외부침입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면식범에 의한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범인이 시가 2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 가지 않은 것도 이런 확신을 뒷받침했다. 4차례에 걸쳐 정밀 감식이 진행됐다. 감식반은 숨진 A씨를 덮었던 이불과 쓰레기 속 휴지,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 지문이 묻은 생수통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청으로 보냈다. 검사 결과 현장에서 확인된 DNA는 모두 3개였다. 범인이 죽은 그녀 위에 덮어 놓았던 이불,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 쓰고 난 휴지에서 각각 다른 세 남자의 DNA가 검출됐다. 이불에서 나온 것은 A씨의 애인 B씨 DNA였다.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그는 “애인 집에서 내 DNA가 나오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며 펄쩍 뛰었다. 그는 사건 전날 A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나마 밖에서 만났고 그 후에는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B씨는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경찰은 휴지와 담배꽁초에 흔적을 남긴 남성 2명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DNA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 남편과 그녀가 운영하던 소주방의 단골, 이웃집 남자 등 경찰은 무려 100여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지만 모두 DNA가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문감식 결과도 실망스러웠다. 범인을 잡았을 때 대조는 가능하지만, 해당 지문만으로는 범인이 누군지 특정할 수 없다는 결과였다. 결국 경찰은 수사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 남자가 남긴 립스틱 자국 사건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 수사팀이 통신회사에 의뢰한 오피스텔 전화통화 내역이 날아왔다. 경찰은 당일 오전 8시 13분 마산의 한 지하상가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전화에 주목했다. 죽은 여성 A씨의 마지막 통화였다. 2분 49초 동안 A씨와 통화한 그는 같은 장소에서 연달아 2통의 전화를 더 걸었다. 경찰은 해당 통화내역을 따라갔다. 그곳은 M주점과 B단란주점이었다. 두 주점과 A씨 소주방 사이에 공통점이 발견됐다. 최근 생활정보지에 여종업원 구인광고를 냈던 것이었다. M주점 사장은 수화기 너머 공중전화로 걸려온 통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여종업원을 구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목소리가…, 어딘가 남자 같았어요.” 순간 수사관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담배꽁초에 남은 립스틱 자국이었다. “왜 그걸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범인은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어.” 경찰은 트랜스젠더인 남자가 피해자와 구직 문제로 통화를 하고 그의 오피스텔을 방문했다가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 일대 주점에는 트랜스젠더 한 명이 여종업원이 되고 싶다며 술집을 찾아왔다가 거부당하면 행패를 부리고 돈을 뜯어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추정연령도, 인상착의도 같았다. 경찰은 이 사람을 찾는 데 총력을 다했다. 전국 경찰서를 상대로 트랜스젠더 관련 사건을 확인한 결과 제주에서 트랜스젠더 한 명이 술집 주인으로부터 돈만 챙겨 달아난 사건이 접수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이 확인한 그의 신원은 C(31)씨. 놀랍게도 범행 현장 생수병에 남긴 지문은 그의 오른손 지문과 일치했다. 결국 경찰은 고향으로 도주한 C씨를 검거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그는 최근 마산·창원·부산 일대를 돌며 술집 일자리를 구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8년 동안 여성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성 전환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주인들은 그를 내쫓기 일쑤였다. 사회가 자신을 차별한다고 생각한 C씨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행패를 부리거나 난동을 피웠다. 그렇게라도 돈을 받아내야 분이 풀렸다. 시신이 발견되기 이틀 전인 7월 25일, 아침 일찍 A씨와 전화통화를 한 그는 밤 10시쯤이 돼서 A씨의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일종의 면접이었는데 이야기가 잘 풀렸다. A씨는 마치 친언니처럼 C씨를 대했다. 저녁을 못 먹었다는 말에 선뜻 미역국에 밥까지 내줬다. 그렇게 고용 계약을 할 때쯤 C씨는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1번으로 시작하는 주민증을 본 A씨는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남자를 쓸 수는 없다고 했다.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C씨가 한바탕 악담을 퍼붓고 오피스텔을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A씨가 최후의 한마디를 했다. “별 미친 놈 다보겠네. 세상이 참말로 말세다 말세….” C씨는 순간의 분을 참지 못했고,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글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그래픽 강미란 기자 mrkang@seoul.co.kr
  • 그 남자가 남긴 립스틱 자국…옷장 속의 시신

    그 남자가 남긴 립스틱 자국…옷장 속의 시신

    “301호라꼬예? 같은 신고만 벌써 5번째 아잉교? 근데 가봤더니 아무 것도 아이던데예.” “그기 아이라 사람이 죽었다니까요.” 2001년 7월 27일 경남 창원의 한 오피스텔. 결과적으로 경찰은 이틀간 같은 집에 5차례나 출동해서야 미모의 죽은 여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사망자는 인근에서 소주방을 운영하는 A씨(당시 41세)였다. 장롱 속 시신을 발견한 것은 남동생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열어 본 옷장에 그녀는 목이 졸린 채 숨져 있었다. 시신의 발견 시간을 늦추기 위해 누군가 그녀를 옷장 속에 넣어 놓은 것이었다. 이틀전 이웃들은 심하게 싸우는 소리를 들어 신고했다고 했지만, 누가 드나들었는지 본 사람은 없었다. 범인은 여성의 손과 발은 묶은 후 장롱 속에 우겨넣었다. 얼마간을 웅크려 있었는지 피가 몰린 자국인 시반이 등에 몰려 있었다. 피살자의 목에는 스타킹과 실타래가 칭칭 감겨 있었다. 손으로 목을 조른 후 스타킹 등으로 다시 한번 숨통을 조인 듯 보였다. 배꼽 위에는 6㎝ 정도 칼에 베인 상처가 나있었다. 싱크대 위 피묻은 과도가 범행 도구였다. 직장(直腸)온도 등을 통해 대략 계산한 여성의 사망추정 시간은 약 48시간 전. 하지만 경찰은 정확한 시간은 탐문수사를 통해 확인하기로 했다. 시신의 부패가 진행 중이면 과학수사반은 헨스게 도표 등 일반적인 사망시간 추정법을 쓰지 않는다. 무리한 계산으로 오차의 범위가 늘면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망시간을 찾아내는 연구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여전히 미완의 단계다.   3명의 남자 DNA 범인은 그중 하나 A씨가 혼자 살았던 오피스텔은 살인현장 치고는 너무 깨끗했다. 출동한 경찰은 이 때문에 출동했다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손님이 왔었는지 방바닥엔 과일 접시와 2개의 방석이 놓여 있었다. 싱크대 속 밥공기도 2개였다. 반면 어디에도 외부침입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면식범에 의한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범인이 시가 2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가지 않은 것도 이런 확신을 뒷받침했다. 4차례에 걸쳐 정밀 감식이 진행됐다. 감식반은 숨진 A씨를 덮었던 이불과 쓰레기 속 휴지,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 지문이 묻은 생수통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청으로 보냈다. 검사 결과 현장에서 확인된 DNA는 모두 3개였다. 범인이 죽은 그녀 위에 덮어 놓았던 이불,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 쓰고 난 휴지에서 각각 다른 세 남자의 DNA가 검출됐다. 이불에서 나온 것은 A씨의 애인 B씨 DNA였다.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그는 “애인 집에서 내 DNA가 나오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며 펄쩍 뛰었다. 그는 사건 전날 A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나마 밖에서 만났고 그 후에는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B씨는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경찰은 휴지와 담배꽁초에 흔적을 남긴 남성 2명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DNA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 남편과 그녀가 운영하던 소주방의 단골, 이웃집 남자 등 경찰은 무려 100여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지만 모두 DNA가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문감식 결과도 실망스러웠다. 범인을 잡았을 때 대조는 가능하지만, 해당 지문만으로는 범인이 누군지 특정 할 수 없다는 결과였다. 결국 경찰은 수사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 남자가 남긴 립스틱 자국 사건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 수사팀이 통신회사에 의뢰한 오피스텔 전화통화 내역이 날아왔다. 경찰은 당일 오전 8시 13분 마산의 한 지하상가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전화에 주목했다. 죽은 여성 A씨의 마지막 통화였다. 2분 49초 동안 A씨와 통화한 그는 같은 장소에서 연달아 2통의 전화를 더 걸었다. 경찰은 해당 통화내역을 따라갔다. 그곳은 M주점과 B 단란주점이었다. 두 주점과 A씨 소주방 사이에 공통점이 발견됐다. 최근 생활정보지에 여종업원 구인광고를 냈던 것이었다. M주점 사장은 수화기 너머 공중전화와의 통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여종업원을 구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목소리가?, 어딘가 남자 같았어요.” 순간 수사관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담배꽁초에 남은 립스틱 자국이었다. “왜 그걸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범인은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어.” 경찰은 트랜스젠더인 남자가 피해자와 구직 문제로 통화를 하고 그의 오피스텔을 방문했다가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 일대 주점에는 트랜스젠더 한 명이 여종업원이 되고 싶다며 술집을 찾아왔다가 거부당하면 행패를 부리고 돈을 뜯어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추정연령도 인상착의도 같았다. 경찰은 이 사람을 찾는 데 총력을 다했다. 전국 경찰서를 상대로 트랜스젠더 관련 사건을 확인한 결과 제주에서 트랜스젠더 한 명이 술집 주인으로부터 돈만 챙겨 달아난 사건이 접수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이 확인한 그의 신원은 C씨(31)씨. 놀랍게도 범행 현장 생수병에 남긴 지문은 그의 오른손 지문과 일치했다. 결국 경찰은 고향으로 도주한 C씨를 검거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그는 최근 마산·창원·부산 일대를 돌며 술집 일자리를 구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8년 동안 여성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성 전환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주인들은 그를 내치기 일수였다. 사회가 자기를 차별한다고 생각한 C씨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행패를 부리거나 난동을 피웠다. 그렇게라도 돈을 받아내야 분이 풀렸다. 시신이 발견되기 이틀 전인 7월 25일, 아침 일찍 A씨와 전화통화를 한 그는 밤 10시쯤이 돼서 A씨의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일종의 면접이었는데 이야기가 잘 풀렸다. A씨는 마치 친언니처럼 C씨를 대했다. 저녁을 못 먹었다는 말에 선뜻 미역국에 밥까지 내줬다. 그렇게 고용 계약을 할때 쯤 C씨는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1번으로 시작하는 주민증을 본 A씨는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남자를 쓸 수는 없다고 했다.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C씨가 한바탕 악담을 퍼붓고 오피스텔을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A씨의 최후의 한마디를 했다. “별 미친 놈 다보겠네. 세상이 참말로 말세다 말세?.” C씨는 순간의 분을 참지 못했고,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긴장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대변이 결정적 증거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여성 유린 위해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그녀가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죽은 여성이 남긴 데스노트…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치밀한 남편 ‘전류반’은 못 숨겼네 찌릿찌릿 전기충격기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두려움이 만든 ‘자기 폭력적 자살’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 용의자 중엔 없는데…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4회]택시강도의 진실…흙탕물이 살인자를 지목하다
  • 대법원도 ‘도가니 국감’… 인화학교 솜방망이 판결 질타

    대법원 국정감사에서는 영화 ‘도가니’로 촉발된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의 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집중적으로 따졌다. 특히 법원이 장애인 성범죄의 구성 요건인 ‘항거불능’을 소극적으로 해석한다는 지적과 함께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5일 국감에서 “최근 9년간 장애인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5명 중 1명은 항거불능이 인정되지 않아 무죄 판결이 났다.”며 항거불능 조항에 대한 사법부의 적극적인 해석을 요구했다. ‘신체·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한 성폭력 특별법이 입법 취지와 다르게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폭행 범죄를 바라보는 법원과 국민 간의 온도 차도 문제로 들었다.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국민참여재판의 성범죄 실형률이 70.9%로 성범죄 양형 기준을 강화한 이후 일반재판 실형률 45.8%보다 높았다.”면서 “성범죄는 국민 법감정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 국민참여재판을 의무화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철래 미래희망연대 의원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항거불능 조항을 법원이 지나치게 확대 해석, 가해자가 무죄 등을 선고받게 하는 독소조항으로 변질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춘석 민주당 의원은 “항거불능 조항을 삭제해도 상관없을 것”이라면서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도 일본이나 영국, 미국 등처럼 우리나라도 폐지하는 것이 옳지 않으냐.”고 물었다. 이은재 한나라당 의원은 인화학교 사건과 관련, “법원이 기가 막힌 일을 저질렀는데도 반성하진 못할망정 변명만 하려 한다.”면서 “사과할 건 사과하라.”고 대법원 측을 몰아붙였다. 대법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오는 24일 양형위원회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기수 양형위원장은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성범죄 양형 기준을 수정했지만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촉발된 국민 여론을 양형 기준에 반영하기 위해 오는 24일 양형위 임시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임시회의에서는 아동·장애인 대상 성범죄 양형 기준의 보완 필요성 및 방법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은 영화 ‘도가니’와 실제 사건이 다소 차이가 있음을 전제한 뒤 “성폭력 범죄는 마지 못해 합의해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 사건의 합의와 다르게 다루는 등 특수성을 양형에 반영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겠다.”면서 “하급심을 강화해 판결이 잘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공소시효 개정과 관련해서는 입법부의 권한임을 주지시키면서 “폐지하거나 아동이 성인이 된 이후에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적절히 개정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사법부가 성폭행 사건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지적을 받아들인다.”면서 “성범죄 관련 법률이 정비되고 엄격한 양형 기준이 시행되면 법관의 양형 감각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이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보석조건부 영장제 도입 여부도 논란이 일었다. 이정현 의원은 “돈 많은 사람은 죄 지어도 돈 쓰고 전관 써서 빠져나가고 특별면회, 병보석, 가석방도 잘 받는다.”면서 “가진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게 된다면 아무리 좋은 의도로 도입해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처장은 “대법원에서는 제도 개선을 위해 꾸준히 연구해 왔다.”며 추진 의사를 내비쳤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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