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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의 강화도… 역사는 흐른다

    6월의 강화도… 역사는 흐른다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 강화도는 고려의 도읍 개성과 조선의 도읍 한양에 가까워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몽골 침입 당시 고려의 임시수도 역할을 하는가 하면 개화기 서구열강과 일제가 할퀸 역사의 아픈 상처도 고스란히 품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강화를 ‘2018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강화도로 역사 탐방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경기 김포와 인천 강화를 잇는 강화대교를 건너 차로 25분쯤 달리니 첫 목적지 강화평화전망대다. 강화도 북단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까지는 불과 2㎞ 남짓. 2층과 3층 전망대에서 보이는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망원경에 눈을 가까이 댔다. 들녘에 농사일 하러 나온 북한 주민 수십명이 렌즈 너머로 분주히 움직였다. 헤엄쳐 건널 만큼 지척이건만 해안가에는 철조망이 꼿꼿이 서 있다. 두 땅 사이로 유유히 흘러온 한강은 이곳에서 바다가 된다.●비극의 근대사 강화도조약 맺었던 ‘연무당 옛터’ 전망대 1층에는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 안쪽 기둥과 벽에는 방문객들이 남긴 통일 염원 메시지가 주렁주렁 걸렸다. 전망대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48번 국도로 접어들면 얼마 안 가 강화산성 서문이 보인다. 맞은편은 쓰라린 역사가 서린 연무당 옛터다. 1875년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일제는 이를 빌미로 이듬해 강화도 연무당에서 조선과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를 체결한다.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이다. 아픔으로 점철된 한국 근대사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조선은 이를 계기로 일제에 부산, 인천, 원산을 개항한다. 지금은 새로 놓인 비석과 안내판만 덩그러니 있는 공터지만 강화읍내를 둘러보는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연무당 옛터에서 차로 5분, 도보로 15분 거리에 강화고려궁지가 있다. 야트막한 언덕 위 고려궁지 입구 계단에 서면 남쪽으로 강화읍내가 발아래다. 1231년 몽골이 고려를 침략해 오자 고종은 이듬해 강화로 피란한다. 이후 원종이 몽골과 화친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강화는 38년간 고려의 도읍이었다. 다만 고려의 흔적을 기대하고 왔다면 적잖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몽골의 요구로 당시 궁궐과 성곽이 모두 파괴됐기 때문이다. 영화는커녕 굴욕의 세월만 보내다 흔적마저 사라진 도읍이었던 탓이다. 현재는 조선시대 행궁으로 쓰일 당시 처음 지어진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등이 남아 있다. 그마저도 병자호란·병인양요 때 소실됐다가 1970년대 이후 복원했다. ●몽골 요구로 흔적 없이 사라진 고려 도읍 ‘강화고려궁지’ 외규장각에 들어가 의궤 관련 전시물을 둘러봤다. 의궤는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와 건축 등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한 종합보고서다. 이곳에 보관됐던 의궤는 왕이 친히 열람하던 것이지만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약탈됐다가 2011년에야 반환이 마무리됐다. 외규장각 뒤편으로는 고려궁지 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400년 세월 동안 고려궁지를 지켜온 동헌 앞 아름드리 나무도 볼만하다. 강화도 동쪽 해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섬 전체를 빙 둘러 설치된 5진 7보 53돈대 중 가장 대표적인 유적을 돌아볼 차례다. 강화8경에 꼽히는 갑곶돈대, 광성보, 초지진은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사이에 차례로 자리하고 있어 해안가를 따라가며 둘러보기 좋다.강화대교 코밑 갑곶돈대로 향하니 바로 옆 강화역사박물관이 먼저 보였다. 1~2층 전시관에는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강화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특히 외세 침략기마다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온 강화인지라 이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역사를 훑어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와 해안가 낮은 언덕의 갑곶돈대에 올랐다. 1866년 프랑스 극동함대 병력 600여명이 이곳으로 상륙해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건너편 육지와 섬 사이를 흐르는 강 같은 바다 ‘염하’를 바라보다 정자(이석정)에서 쉬었다. 어느덧 따가워진 6월 햇볕을 피해 앉으니 섬을 지나 불어온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해안동로를 따라 차로 15분 남짓 남쪽으로 달리면 광성보다. 강화도 동해안에서 육지 쪽으로 유독 툭 튀어나온 곳에 위치한 광성보는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군대와의 격전지다. 광성보 내 너른 산책로를 거닐며 무명용사들의 무덤인 신미순의총 등을 둘러볼 수 있다.●병인·신미양요 때 함락됐던 뼈아픈 역사 ‘초지진’ 초지대교에 이르기 전 초지진이 있다. 넓지 않은 진 둘레를 옹골찬 모양으로 둘러싼 성벽이 인상 깊지만 한눈에도 새로 쌓아 올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함락된 데 이어 일제에 의해 파괴됐다가 1973년 복원됐다.초지진까지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강화도를 떠나기 못내 아쉬워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전등사로 향했다. 언덕을 오르고 매표소를 넘자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400년 된 나무 여러 그루 사이로 700살 된 나무까지 보였다. 오솔길을 따라 10여분을 쉬엄쉬엄 오르니 옹기종기 모인 절 건물들이 보였다. 마당 한편 범종은 보물 제393호. 그 너머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건물이 보물 제178호 대웅전이다. 세월이 묻은 현판과 서까래가 운치 있다. 섬을 나설 때는 초지대교를 건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낙조에 마음이 끌려 차를 돌렸다. 800년 전 고려의 왕도 강화의 낙조를 바라봤을까. 염해에 비친 석양이 구슬펐다. 글 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여행 수첩 →강화군 주요 관광지 11곳 중 3곳 이상 방문 시 할인요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3곳 이상 15%, 5곳 이상 20% 할인된다. 여행 전 방문할 곳을 미리 정해 놓고 처음 가는 곳에서 입장권을 한 번에 구입하는 게 유리하다. 8곳 이상일 땐 입장권을 이틀간 사용할 수 있다. 전등사는 별도요금을 받는다. 어른 3000원. →평화전망대를 나올 때는 해병대 초소에 ‘민북지역 출입증’을 잊지 말고 반납하자. 무심코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낭패를 겪을 수 있다.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궁예가 불 지르고 왕건이 중건한 영월 흥녕사 터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궁예가 불 지르고 왕건이 중건한 영월 흥녕사 터

    법흥사(法興寺)가 있는 강원 영월군 무릉도원(武陵桃源)면은 2016년 수주(水周)면이 이름을 바꾼 것이다. 무릉도원이 중국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이상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릉도원면으로 이름을 바꾸자 “이러다 유토피아면도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무릉도원면에는 예부터 무릉리와 도원리가 있었다. 나름대로 역사성과 동떨어진 작명(作名)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도화원기’는 어부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강을 따라 계곡 깊숙이 들어가다 복숭아꽃 만발한 살기 좋은 산속 마을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금은보화와 산해진미가 널린 호화로운 천국이 아니라 달콤한 향기가 감돌고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소박한 꿈속의 마을이다. 무릉도원면이 그런 동네다. 많은 사람이 찾아들면서 법흥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름다운 계곡에는 펜션이며 캠프장이 수없이 들어섰다.법흥사는 영월과 평창, 횡성에 걸쳐 있는 해발 1167m의 사자산 아래 자리잡고 있다. 절을 창건할 때 도승(道僧)이 사자를 타고 왔다고 하여 사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자는 부처를 상징한다. 깨달음을 이룬 이가 앉는 자리가 사자좌(獅子座)이고, 그가 말하는 진리의 가르침이 사자후(獅子吼)다. 법흥사는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한 곳으로 꼽히는 성지다. 신라승려 자장(590~658)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전수받아 643년 돌아왔다.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에 이어 마지막으로 사자산에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당시 사자산에 창건한 절 이름은 흥녕사(興寧寺)였다.진신사리란 부처의 유골이니 적멸보궁은 곧 부처의 무덤이다. 한국 불교에만 있다는 적멸보궁은 진신사리를 모신 무덤과 그 무덤을 바라보며 배례하는 전각을 가리킨다. 부처의 유골이 묻혔다면 그 산 전체가 적멸보궁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대산, 태백산, 영축산, 설악산이 모두 부처의 무덤이고, 사자산이 또한 그렇다. 흥녕사는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禪宗)이 사회 변화를 주도하던 신라 말 다시 역사에 등장한다. 철감 도윤(797~868)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을 개창한 곳은 화순 쌍봉사지만, 그의 제자 징효 절중(826~900)이 흥녕사에 머물며 선맥을 이어 감에 따라 문파의 중심지로 부각된 것이다. 흥녕사는 역사에 기록된 대로 891년(신라 진성여왕 5) 병화로 소실된 것을 944년(고려 혜종 1) 중건했다. 그 뒤 다시 불타서 천년 가까이 소찰(小刹)로 명맥만 이어 오다가 1902년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몽감(夢感)에 의하여 중건하고 법흥사로 개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은 1912년 다시 소실됐고, 1933년에는 적멸보궁을 지금의 터로 이전 중수했다고 법흥사 측는 홈페이지에 밝히고 있다. 그런데 작고한 미술사학자 호불 정영호 선생의 1969년 동국대 석사학위 논문이 ‘신라 사자산 흥녕사지 연구’다. 그는 1955년 절터를 처음 답사한 뒤 1967년과 1968년 신라오악종합학술조사단의 일원으로 현장을 다시 조사했다. 1934년생이니 일선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 35세가 되어서야 석사학위 논문을 쓴 것이다. 선생은 논문에 ‘현재 절터 일대는 경작지로 변해 지상의 유구마저 파괴되고 광활한 사역에는 주초석 몇 점만 잔존하여 청자 및 기와 조각을 수집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어 ‘유물은 모두 석조물로 고려 초기에 건립된 징효대사보인탑비를 비롯해 석조부도 2기와 석실, 석관, 석조불대좌 등이 오래된 것으로 잔존한다’고 덧붙였다. 법흥사를 두고는 ‘금세기에 들어와 흥녕사 옛터에 조영된 사찰로 선문과는 직접 관련은 없다’고 적었다.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법흥사를 돌아봤다. 법흥계곡을 따라 난 길이 끝날 때쯤 나타나는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새로 지은 일주문이 보인다. 사실 ‘새로 지은’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은 약간의 시간차가 있을 뿐 모든 전각을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 일주문에서 조금 더 차를 달리면 놀이공원을 방불케 할 만큼 넓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법흥사와 적멸보궁을 찾는다는 뜻이다. 차에서 내리면 절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적송숲이 먼저 눈길을 끈다. 이 정도의 노거수(老巨樹)가, 그것도 토종 적송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절 초입에 보이는 2층 전각은 원음루다. 부처의 가르침을 소리로 전하는 법고, 운판, 목어가 있다. 이 세 가지와 더불어 사물(四物)을 이루는 범종은 극락전 앞에 있다. 원음루에 다가가니 1층에 ‘금강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성역(聖域)이다. 정면으로 곧바로 난 산길로 10분 남짓 오르면 적멸보궁이다. 전각 안에는 다라니경을 외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밖에도 두 손을 모으고 수없이 전각을 도는 기도객들이 보인다. 전각 너머에 정영호 선생이 언급한 석분이 있다. 입구가 직사각형인 석분은 기도를 위한 돌방으로 안쪽으로는 사리를 모셨던 돌널이 있다고 한다. 다시 산을 내려오면 원음전 서쪽은 극락전 권역, 동쪽은 요사채 권역이다. 요사채 권역에 숙소로 쓰는 듯한 큼지막한 전각에 붙은 ‘흥녕원’(興寧院)이라는 편액이 눈길을 끈다. 구산선문 시절의 흥녕선원 터에서 법등(法燈)을 이어 가고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서쪽의 극락전 앞마당은 뭔가 채워지지 않은 듯 황량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극락전 오른쪽에 보이는 커다란 비석이 흥녕사터 징효대사탑비다. 비문에는 징효 절중이 출생해서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이 실려 있다. 비석은 대사가 입적하고 44년이 지난 944년(고려 혜종 원년)에 세워졌다. 왼쪽 산비탈에는 그의 부도가 있다. 비문에 새겨진 내용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절중과 후삼국의 관계다.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알려진 궁예는 오늘날 영월 남면의 세달사에서 머리를 깎았다. 양길도 멀지 않은 원주에서 세력을 키웠다. 흥녕사가 소실된 891년의 병화는 ‘북원의 적수 양길이 그 부장 궁예를 보내 백기(百騎)를 거느리고 북원 동쪽의 부락과 명주 관할인 주천 등 십여 군현을 침습하게 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학계는 본다. 궁예가 군사를 몰아 험준한 영월 지역으로 들어간 목적은 사자산문의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한편 징효대사탑비의 건립과 흥녕사의 중건은 고려 왕실이 주도했다. 탑비에 적힌 시주자 가운데 왕요군(王堯君)과 왕소군(王昭君)은 훗날 정종과 광종이 되는 태조 왕건의 아들들이다. 또 태조의 제15비 광주원부인과 제16비 소광주원부인, 혜종비 후광주원부인의 아버지인 광주(廣州)의 왕규를 비롯해 왕건의 장인들도 다수 참여했다. 결국 절중과 사자산문이 궁예와는 적대적이었던 반면 왕건과는 우호적이었음을 보여 준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리그 오브 레전드. 2018 아시안게임 시범종목 채택

    리그 오브 레전드. 2018 아시안게임 시범종목 채택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가 2018 아시안게임 공식 시범종목으로 선정됐다.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시범종목에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리그 오브 레전드의 제작사 라이엇게임즈는 15일 시범종목 선정 소식을 알리며 “리그 오브 레전드가 최고 인기 e스포츠 종목으로, 전 세계 14개 지역에서 e스포츠 리그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자평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플레이어가 하나의 캐릭터를 선택해 특정 지도에서 레벨과 기술을 올리고 아이템을 갖추면서 강화, 상대방 진영을 파괴하는 실시간 공성전 게임이다. 아시안게임 출전 45개국에서 참가하는 지역별 예선전은 6월 중, 본선 경기는 8월 말부터 진행된다. 예선전을 통과한 8개팀이 본선행 티켓을 얻는다. 한국, 중국, 대만, 홍콩, 일본이 포함된 동아시아 예선전은 치열한 경쟁을 고려해 3장의 본선 진출권이 주어졌다. 그 외에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 지역 예선전에는 1장씩의 진출권이 주어진다. 재러드 케네디 라이엇 게임즈 e스포츠 공동총괄은 “올림픽 대회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전 세계 선수들의 꿈이며, 이번 아시안 게임 시범종목 채택으로 최고의 LoL 선수들이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2018 아시안게임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및 팔렘방에서 8월 18일부터 9월 2일(현지시간)까지 진행된다. 아시안게임 LoL 경기 및 중계는 텐센트와 OCA(아시아 올림픽 평의회)가 공동으로 관리한다. 방송 일정에 대한 정보는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평화기원’ 10만 연등 동대문~종로 물들인다

    ‘평화기원’ 10만 연등 동대문~종로 물들인다

    부처님오신날(5월 22일)을 봉축하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 연등회가 내달 11~13일 서울 조계사와 종로 일대에서 열린다. 대한불교조계종 연등회보존위원회는 25일 “올해 연등회는 한반도 안팎의 급박한 정세 속에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로 우리 마음과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혔다. 내달 연등 행렬에 앞서 이날 오후 7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대형 석가탑등이 밝혀지며 봉축을 알렸다.연등 행렬은 새달 12일 오후 7시부터 서울 동대문을 거쳐 종로 일원, 조계사로 이어진다. 북한 문헌을 토대로 재현한 보산개, 연꽃수박등 등 19점의 ‘북한등’이 선두에 서고, 참가자 전원이 드는 10만개 연등에는 한반도 평화와 화합을 염원하는 기원지가 달릴 예정이다. 올해 테마 연등은 한반도 평화를 연주하는 ‘주악비천등’이다. 주악비천은 옛 벽화와 범종 등에 등장하는 상상 속의 천녀다. 연등행렬 종료 후 종각사거리 일대에서는 다양한 전통공연 등과 아울러 ‘회향한마당’ 등이 진행된다. 연등 행렬은 13일에도 서울 인사동과 종로 일대에서 펼쳐지며, 새달 11~22일 조계사 옆 우정공원, 삼성동 봉은사, 청계천 등지에서 전통등 전시회가 동시 다발적으로 열린다. 특히 청계천에서는 ‘영원한 동심, 빛으로 만나는 불심의 세계’라는 주제로 옛날이야기와 설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형상화한 등이 도심을 장식할 예정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자연이 할퀴고 인간이 파괴했던 신라의 사찰… 파편으로 남은 역사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자연이 할퀴고 인간이 파괴했던 신라의 사찰… 파편으로 남은 역사

    강원도 양양 미천골을 과거에는 흔히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부르곤 했다. 그만큼 백두대간 동쪽 골짜기 첩첩산중에 깊이 자리잡은 동네다. 미천(米川)이란 쌀뜨물이 흘러내려 가는 시내라는 뜻이다. 대개 공양 시간이 다가오면 시냇물이 온통 허예질 만큼 많은 쌀을 씻어야 하는 큰 절에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미천골이라는 이름을 낳은 절이 선림원(禪林院)이다. 절터는 미천골자연휴양림 매표소에서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1㎞ 남짓 올라가면 나타난다. 이렇듯 깊은 산골짜기에 통일신라 시대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사찰이, 그것도 바로 옆을 흐르는 시내에 미천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한 규모로 세워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이제 선림원 터를 찾기가 매우 편해졌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지난해 완전 개통됐기 때문이다. 서양양 나들목에서 선림원 터는 자동차로 10분 남짓 거리다. 미천골이 오지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은 육로(陸路) 중심의 사고 때문이기도 하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이전 양양에서 백두대간을 넘는 길은 두 갈래였다. 한계령을 거쳐 인제로 가는 44번 국도와 구룡령을 넘어 홍천으로 가는 56번 국도다. 한계령은 익숙해도 구룡령은 낯선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해발 1058m의 구룡령은 1004m의 한계령보다 높다. 그럼에도 수운(水運)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절에는 구룡령이 큰길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구룡령은 한계령보다 넘어가는 길이 조금 평탄했다는 것이다. 구룡령 너머의 홍천강은 북한강으로 이어진다. 조선 시대에도 양양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홍천에서 배를 타는 것이었다. 구룡령 산길에서 멀지 않은 선림원은 과거 중요한 교통로 주변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선림원은 좁은 계곡에 축대를 쌓아 넓은 터를 확보하려 했던 모습이다. 1985년과 1986년 동국대 조사단의 발굴과 2015년 양양군이 한빛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한 발굴 조사 결과 전모를 알 수 있었다. 최근의 정비 사업으로 쌓은 돌계단을 오르면 균형 잡힌 모습의 삼층 석탑이 나타난다. 전형적인 신라 석탑으로 기단에 팔부중상을 네 면에 돋을새김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석탑은 발견 당시 무너져 있었다고 한다. 그 뒤편은 큰 법당 터다.삼층 석탑에서 절터 반대편을 보면 규모 있는 비석이 하나 보인다. 홍각선사비다. 홍각선사가 입적한 직후인 886년(신라 정강왕 원년) 세워진 것이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과 용틀임하는 모습의 지붕돌만 제 것이다. 몸돌은 2008년 복원했다. 그 앞에는 높이 2.92m의 석등이 보인다. 지붕돌의 귀꽃 조각이 몇 개 떨어져 나갔지만 거의 완벽한 모습이다. 동국대 조사단의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선림원은 국립춘천박물관이 일부 잔해를 소장하고 있는 이 절 동종의 주조 연대인 804년(신라 애장왕 5년) 창건 이후 홍각선사 시대에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후 10세기 전반 대홍수에 따른 산사태로 매몰됐고, 사찰의 기능도 정지됐다는 것이다.작고한 미술사학자 정영호 선생은 1966년 ‘지난해 처음으로 답사했을 때 석등의 각 부재가 원위치에서 흩어져서 반쯤 흙에 묻혀 있는가 하면 화사석은 축대 밑으로 굴러떨어져 있었지만 점검해 보니 복원이 가능함을 알 수 있었다’고 ‘양양 선림원에 대하여’라는 글에 적었다. 이렇게 삼층 석탑과 석등은 지금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산비탈 초입에는 기단부만 남은 부도가 있다. 역시 팔각형의 전형적인 신라 부도다. 홍각선사탑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삼층 석탑과 석등은 물론 홍각선사탑과 탑비 모두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이다.선림원이라면 아무래도 비운의 신라 범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선림원 터는 1948년 목기(木器)를 만드는 사람들이 집을 짓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다. 범종은 명문(銘文)이 있어 일찍부터 주목 받았다. 2011년 세상을 떠난 미술사학자 황수영 선생은 ‘해방 이후 최초로 접한 중요문화재의 출토’라는 글에서 선림원 터와 범종의 발견 당시를 회상했다. 이야기는 그가 1948년 국립박물관에 취직이 되어 고향 개성에서 짧은 교직을 중단한 뒤 상경했고, 그 직후 출장 명령을 받고 양양 현지로 떠나는 데서 시작한다. 황 선생을 비롯한 조사단은 이해 6월 교통 사정으로 현장 직행이 불가능하자 평창 월정사로 가서 산행으로 선림원 터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월정사에 이르러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선림원 터는 당시 분단의 경계였던 38도선에서 10리(4㎞)도 떨어지지 않았고, 그 남쪽 오대산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서울로 돌아와 ‘이 새로운 종을 군 장비를 이용해 보다 안전한 월정사로 후퇴시키는 좋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다. 황 선생이 당시 문교부로부터 ‘선림원 종을 군부대가 신설된 산중직로(山中直路)로 월정사에 옮겨놓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1950년 1월 4일이었다고 한다. 황 선생이 월정사 칠불보전에서 범종을 마주한 것은 1월 6일이다. 그는 ‘그다지 크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신라종으로서의 전형을 완비한 참으로 아담한 자태에 먼저 환희하였고, 또 안도하였다’고 적었다. 이어 ‘나는 즐거움이 솟아올라옴을 느꼈다. 성냥을 켜서 세부의 문양을 보았고 쌍비천 주악상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세 번 조심스럽게 종을 울려 보았다. 맑고 깨끗한 신라의 종소리가 적막을 뚫고 산곡(山谷)에 반향되었다’고 회상했다. 선림원 종을 ‘아담한 자태’라 한 것은 용뉴를 포함한 높이가 122㎝, 용뉴를 제외한 몸체 높이가 96㎝, 구경이 68㎝로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황 선생은 ‘명문을 땅에 누워서 들여다 보고 탄성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는데, 이 종은 특이하게도 14행 143자에 이르는 명문이 몸체 내부에 양각되어 있다. 선림원 범종은 6·25 전쟁의 와중에 우리 스스로 파괴하고 말았다. 1951년 1·4 후퇴 당시 사찰 소각령에 따라 월정사의 모든 전각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고, 칠불보전의 범종도 녹아버린 것이다. 황 선생은 ‘후퇴에 앞서 그 넓은 마당에 굴리기만 하였어도 남았을 것 아닌가’하며 안타까워했다. 절반 이상 녹아버린 범종의 잔해는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지금 국립춘천박물관에서는 범종 파편을 포함해 다양한 선림원 출토 유물을 만날 수 있다. 홍각선사비의 비신 파편과 삼층 석탑의 기단 아래서 나온 소탑(小塔)들, 발굴 조사에서 수습한 용면와 두 점과 화려한 연꽃무늬 수막새 두 점도 전시하고 있다. 그러니 선림원의 역사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춘천박물관을 찾는 것이 필수적이다. 선림원 터에서 춘천박물관까지 이제 고속도로를 타면 1시간 남짓 만에 도착한다.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양양과 춘천을 묶는 하루 여행 코스로도 무리가 없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포토 다큐&뷰] 신비의 소리 천년의 울림…장인의 손끝 열정의 떨림

    [포토 다큐&뷰] 신비의 소리 천년의 울림…장인의 손끝 열정의 떨림

    지난 2월 강원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세계인의 축제이며 평화잔치인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화려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지구촌에 울려 퍼졌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범종으로 알려진 ‘오대산 상원사 동종(銅鐘)’(통일신라 725년·국보36호)을 표현한 ‘평화의 종’ 소리에 맞춰 개회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을 한 것이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홀로그램 영상으로 구현하며 70억 세계인에게 ‘평화를 향한 염원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로 감동을 주었다. 범종(梵鐘)은 사찰의 법구사물(法具四物) 중 하나로 고대부터 현재까지 오랜 기간 만들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범종은 정교한 세부장식과 웅장한 울림소리로 동양 삼국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종 안에 추를 매달고 종 전체를 흔들어 소리를 내는 서양종과 달리 표면에 치는 자리를 만들고 그 부분을 당목(撞木)으로 쳐서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사람이 우는 듯 소리가 죽었다 되살아나기를 1분 넘게 반복하는 ‘맥놀이 현상’은 듣는 이로 하여금 환희심을 일으킨다.●백제 제철단지 진천… 원광식 주철장 평생 바쳐 신라 종소리 재현·7000개 종 제작 예부터 살기 좋은 고을이라 ‘생거진천’(生居鎭川)으로 불리던 충북 진천은 고대 철(鐵) 생산 유적지와 고대 제철로가 발견된 곳으로 일대가 철을 대량 생산, 공급했던 백제의 중요한 제철단지(製鐵團地)의 하나로 판단되고 있다. 원광식(77·국가주요무형문화재 제112호·범종제작성종사 대표) 주철장(鑄鐵匠)은 통일 신라의 종소리를 찾아 평생을 바친 장인이다. 경기 화성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종 제작을 업으로 살아온 할아버지와 8촌 형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17살 때, 충남 예산 수덕사가 광복 후 최대 규모의 종 제작 계획을 세웠다는 소식은 원씨가 범종 제작에 평생을 걸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원씨는 머리를 깎고 수덕사에 들어가 대웅전이 보이는 한구석에 주물공장을 세운 뒤 꼬박 3년을 보낸 끝에 “종소리가 30리를 간다”는 수덕사의 종을 완성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는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타며 범종 제작자로서 명성을 얻어 나갔다. 하지만 옛날 장인들이 만들어낸 신비의 소리를 재현하지 못했던 까닭에 가슴 한구석은 여전히 허전했다. 천년의 종소리를 재현해 내겠다는 열망에 빠진 그는 종 제작 비법을 밝혀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절을 방문해 일제가 빼앗아간 신라·고려시대의 종 5개를 실리콘으로 복제해 이 중 1개를 주물기법으로 복원했다.결과는 참담했다. 신라종의 은은한 소리와는 영 딴판이었다. 그래서 옛 조상들이 사용했던 ‘밀랍주조’ 기법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기법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을 뿐 조선 중기 이후 맥이 끊겨 국내 어느 문헌에서도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스스로 비법을 찾아내는 도리밖에 없었다. 혼자서 종을 만들고 부수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밀랍주조법의 비밀이 종 틀의 주재료인 흙의 성분에 있다는 판단에서 종 틀로 쓸 흙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녀야 했다. 마침내 신라 수도인 경주 일대를 샅샅이 뒤져 문양을 새기거나 미려한 거푸집을 만들기에 좋은 뻘돌(이암·泥巖)을 발견했다. 7년간의 연구 끝에 흙틀을 재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가 재현해낸 전통밀랍주조기술은 범종의 모형을 정교하게 만든 뒤 이를 곱게 빻은 이암 가루에 전분 등을 섞은 흙으로 거푸집을 만들어 싸고, 안의 밀랍을 녹여낸 자리에 1200도의 쇳물 (동과 주석 합금)을 부어서 만들어내는 작업이다.●“은은한 소리 오래가도록 종 밑 울림통 파 놓아” 외길 인생도 맥놀이 같아 그의 공장인 성종사(聖鐘社)의 작업장은 때마침 주문이 들어온 범종을 만드는 작업으로 분주했다. 거푸집에 쏟아지는 펄펄 끊는 쇳물은 빨갛다 못해 샛노랗게 끓어 올랐다. 쇳물을 운반할 용기가 레일을 타고 용해로에 다가가자, 커다란 쇠갈고리로 들어 올려 시뻘건 쇳물을 들이붓는다. 다시 서서히 공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용기 속의 쇳물이 마지막 거처로 옮겨갈 차례다. 거푸집을 해체하고 열흘가량 마무리 잔손질을 하면 비로소 맑고 긴 여운을 지닌 아늑한 ‘신라의 소리’를 제대로 품은 범종이 태어나는 것이다.원 장인은 “은은한 소리가 오래가도록 종 밑에 울림통을 파 놓은 것이 우리 선조들의 지혜” 라고 말했다. 종 표면의 아름다운 문양도 최적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곳에 자리해야 한다. 그는 “표면의 무늬가 종의 좌우를 비대칭으로 만들어 맥놀이를 극대화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달려온 외길 인생은 범종 소리의 맑고 긴 맥놀이에 사로잡힌 세월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종만도 조계종의 본산인 조계사를 비롯해 오대산 상원사 범종, 광주 민주의 종, 충북 천년대종, 싱가포르 복해선원 종 등 7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절이나 지방자치단체에 걸린 이름값 하는 종들은 모두 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장 앞마당에는 크고 작은 범종 서너개가 매달려 있다. 원씨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당에 나와 종을 친다. 그는 “인간은 기껏 백년을 살지만 종은 천년 이상을 간다”며 “지나온 시간은 천년 전 장인의 지혜를 배우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을 이었다. 종을 치는 그의 손끝에서 식을 줄 모르는 장인의 열정이 뿜어져 나왔다. 글 사진 진천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이응노와 수덕여관을 넘어서 만나는 예산 수덕사(修德寺)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이응노와 수덕여관을 넘어서 만나는 예산 수덕사(修德寺)

    “모두 같은 민족 아닙니까?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동백림에 간 것은 자식의 소식을 듣고, 거기서 만날 수 있다고 해서 간 것입니다...그 아들을 만나게 해 주겠으니 오라고 했을 때, 거절합니까, 만났다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그만둡니까.” 세계적인 추상화의 거장, 고암(顧庵) 이응노(李應魯·1904~1989) 화백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법정 구속되기 전의 마지막 최후 진술이다. 동백림 사건은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으로 194명에 이르는 유학생들과 교민들이 동베를린에 위치한 북조선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교육을 받아 대남적화활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음악가 윤이상을 비롯하여 천상병 시인 등이 연루되었고, 결국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으나 대법원 최종심에는 간첩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가 한 명도 없는 ‘구름같은’ 간첩단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이응노는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다. 이후 이응노는 수덕사 앞 수덕여관에서 삶의 한 부분을 내려 놓는다. 이응노의 삶과 수덕여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충청남도 예산 수덕사로 가 보자. 충청남도 덕숭산(德崇山)에 위치한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도의 절답다. 겉으로는 무심한 듯 소란스럽게 이름 내지는 않았으나, 내실은 진즉부터 으뜸인 불교 도량임에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수덕사는 백제계 사찰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유서 깊은 절집일 뿐만 아니라, 맞배지붕 양식으로 이름 알려진 고려시대(1308년)의 대웅전이 세월에 푹 곰삭은 나무 기둥들과 함께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한 때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로 불리어 알려질만큼 훌륭한 비구 스님들을 배출하는 명문 선원인 ‘견성암’도 수덕사에 위치한다. 여기에 더해 현재 수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5대 총림 가운데 하나인 덕숭총림으로 많은 스님들이 강학과 참선정진하는 종합교육도량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충청남도 내포 일대의 36개 말사를 관장하는 제7교구본사이기도 하니 중부 지역에서는 단연 손꼽히는 사찰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수덕사를 더욱더 유명하게 만든 것이 바로 수덕사 일주문 옆에 위치한 수덕 여관이다. 수덕여관은 이응노 화백이 1945년 3월, 일본 패망을 앞두고 징용을 피해 수덕사 인근 비구니가 쓰던 절집을 손수 구입한 곳이다. 이후 이응노 화백의 처(妻) 박귀희 여사(1909~2001)가 이곳을 여관으로 운영하며 프랑스로 떠나버린 남편을 기다리면서 자식을 길러내었다. 지금도 수덕여관 주변에는 이응노 화백이 동백림 사건의 옥고를 치른 후 이곳에 머물면서 손으로 직접 새긴 문자 추상 암각화가 곳곳에 남아 있다. 만물의 흥망성쇠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진 이 암각화는 지금도 50여년 전의 이야기를 생생히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수덕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충청도 근역에는 단연 으뜸인 사찰이다. 수덕여관의 역사를 함께 2. 누구와 함께? - 나이드신 부모님과 천천히 3. 가는 방법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 79 - 예산버스터미널 → 수덕사 (요금 1,760원/ 1시간 소요) 4. 감탄하는 점은? - 고려시대의 대웅전, 수덕여관 인근의 이응노 화백의 암각화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주말에는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수덕여관 인근의 암각화, 대웅전, 범종루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소머리국밥 ‘한일식당’, 곱창 ‘신창집’, 수제비 ‘대흥식당’, 국수 ‘쌍송국수’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sudeoksa.co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추사고택, 한용운 생가터, 장영실 과학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수덕사는 가파른 계단이 많은 사찰이어서 천천히 올라가도록. 이응노 화백의 삶을 이해한 뒤 수덕여관을 둘러 본다면 한 예술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예술로 이해할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평창 완전 정복] 묘기 대신 스피드… 10개 메달 걸린 ‘눈 위의 서핑’

    [평창 완전 정복] 묘기 대신 스피드… 10개 메달 걸린 ‘눈 위의 서핑’

    ‘눈 위의 서핑’으로 불리는 장애인 스노보드는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에서 첫선을 보이는 종목이다. 2014 소치대회에서 알파인스키 세부종목(시범종목)이었는데 이번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동계올림픽 스노보드는 평행대회전, 하프파이프, 스노보드 크로스, 빅에어, 슬로프스타일 등 총 5개 종목으로 치러진다. 하지만 패럴림픽에서는 ‘스노보드 크로스’(SBX), ‘뱅크드 슬라롬’(BSL) 2개 종목으로 펼쳐진다. 경기 등급에 따라 모두 10개 금메달을 다툰다.장애인 스노보드 경기는 장애 종류에 따라 분류된다. 손목 이상의 상지장애(SB-UL)와 무릎 위의 하지장애(SBLL-1), 무릎 아래의 하지장애(SBLL-2)다. 선수들은 자신의 신체에 맞게 제작한 보조기구를 착용할 수 있다. 하지만 보드는 비장애인 장비와 같아야 한다. 경기는 시간 채점 방식으로, 결과는 장애 등급을 가리지 않고 적용된다. 스노보드 크로스는 4명을 한 조로 비장애인 종목처럼 뱅크, 롤러, 스파인, 점프, 우탱 등 다양한 지형지물로 구성된 코스에서 경주한다. 예선에서는 선수 혼자 주행한 기록으로 순위를 매겨 상위 2명이 결선에 오른다. 결선에선 2명씩 경쟁하며 승리한 선수가 다음 라운드에 나간다. 금메달까지 남자는 4차례, 여자는 3차례 결선을 치른다. 뱅크드 슬라롬은 기문 코스를 회전하며 내려오는 기록으로 순위를 매긴다. 알파인스키 회전 경기(Slalom)를 스노보드를 타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선수들이 회전을 원활하게 하도록 각 기문에는 ‘뱅크’(경사면)가 조성된다. 세 차례 주행을 통해 얻은 선수의 기록 중 상위 2개를 합산해 순위를 정한다. 대한민국에선 김윤호와 박수혁, 박항승, 최석민이 출전한다. 김윤호(35)는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힌다. 2016~2017년 각종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20위권에 들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1월 핀란드국제대회 스노보드 크로스 부문에서 17위를 기록했다. 대표팀 막내 박수혁(18)도 화려한 비상을 꿈꾼다. 지난해 뉴질랜드에서 열린 서던헤미스피어컵과 월드컵 뱅크드 슬라롬 부문에서 각각 11위에 올랐다. 특히 지난해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가 선정한 ‘종목별 주목할 선수 10인’에 올라 기대를 더한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한국 첫 스키 메달, 2002년 패럴림픽서 이미 나왔네

    한국 첫 스키 메달, 2002년 패럴림픽서 이미 나왔네

    시각 등 장애 유형 따라 경기 세분화 알파인스키, 한상민 설상 유일 메달 스노보드, 폭주족 출신 김윤호 주장 노르딕 복합, 신의현 한국 첫 金 유력 9일 막을 올리는 평창동계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에선 설상 경기로 알파인스키와 스노보드의 알파인 종목, 크로스컨트리스키와 바이애슬론의 노르딕 종목이 열린다. 빙상에선 휠체어 컬링과 아이스하키가 치러진다. 올림픽에서 체중을 따져 세부종목이 열리는 것처럼 패럴림픽에서는 장애 유형에 따라 세부종목을 나눈다. 여기에 남녀, 또는 혼성 대결이 겹쳐져 메달이나 순위를 매긴다.회전 기술과 속도 경쟁의 조화를 겨루는 알파인스키는 1976년 초대 동계패럴림픽인 오른스퀄드빅(스웨덴) 대회에서 채택됐다. 한국은 1992년 5회 티니·알베르빌(프랑스) 대회부터 출전했다. 장애 유형에 따라 시각장애(B 1~3), 입식(LW 1~9), 좌식(LW 10~12)으로 나뉘고 남녀 활강, 슈퍼대회전, 대회전, 회전, 슈퍼복합 등에서 금메달 30개가 나온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미국)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상민이 평창에서도 좌식 스키에 나선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통틀어 설상 스키에서 유일한 메달 주인공이다. 4년 전 소치 대회에서 알파인스키의 시범종목으로 열렸다가 이번에 정식종목으로 독립한 스노보드는 상지장애(SB-UL), 하지장애(SB-LL 1~2)로 분류돼 기문을 돌아 내려오는 기록을 따지는 뱅크드 슬라롬, 뱅크 등 다양한 지형지물로 꾸려진 코스에서 진행되는 스노보드 크로스 등 10경기를 치른다. 과거 폭주족으로 오토바이를 타다 두 다리를 잃은 김윤호가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크로스컨트리스키는 눈 쌓인 산이나 들판의 일정 코스를 빠르게 완주하는 경기로 좌식, 입식, 시각장애로 나뉘어 18개 세부종목과 2개의 혼성 종목을 다툰다. 바이애슬론은 크로스컨트리스키와 사격이 결합된 경기로 시각장애, 입식, 좌식으로 경기 등급을 분류한다. 1994년 릴레함메르(노르웨이) 대회부터 정식 종목이 됐다. 세부종목은 18개다. 둘을 합쳐 ‘노르딕 복합’이라고 하는데 한국 선수단 금메달 후보로 첫손에 꼽는 신의현이 나서는 종목이다. 그는 지난해 리비브 파라노르딕 스키월드컵 2관왕을 차지했다. 역시 한국 선수 첫 금메달이어서 평창 대회에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아이스하키는 종전 아이스슬레지하키에서 2016년 11월 명칭을 바꿨다. 올림픽 아이스하키와 달리 하지 장애를 가진 남녀 선수들이 함께 출전할 수 있는데 실제로 여자 선수들을 보긴 힘들다. 다섯 살 때 왼쪽 다리를 절단한 정승환은 이미 두 차례 패럴림픽을 경험했고 2009·2012·2015년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세계선수권 최우수선수(MVP)를 잇달아 꿰차 월드스타 반열에 올랐다. 휠체어 컬링은 2006년 토리노(이탈리아) 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됐는데 반드시 여자 1명을 포함하도록 한 게 눈에 띈다. 홍일점 방민자를 필두로 서순석, 이동하, 정승원, 차재관이 ‘올림픽 감동’ 잇기에 나선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120개국 총잡이들, 창원서 ‘평화의 축제 ’ 쏜다

    120개국 총잡이들, 창원서 ‘평화의 축제 ’ 쏜다

    국제사격연맹(ISSF) 주관으로 4년마다 열리는 지구촌 사격인들의 최대 축제인 제5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오는 8월 경남 창원에서 열린다. 세계 최고 총잡이를 가리는 대회다. 아시아권에서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개최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우리나라는 1978년 서울대회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ISSF는 2012년 4월 런던 총회에서 2018 창원대회 개최를 결정했다. 창원시는 2015년 세계사격선수권 대회조직위원회를 출범시켜 대회 준비에 온 힘을 쏟고 있다.●거리 곳곳 홍보탑ㆍ현수막… 분위기 고조 대회조직위와 ‘창원시 대회준비단’은 대회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경기장 마무리, 자원봉사자 모집, 개·폐회식 행사 점검 등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대회가 가까워지면서 ISSF에서도 개최지 준비 상황을 수시로 점검한다. 창원시 길거리 곳곳에는 대회를 알리는 홍보탑과 현수막이 설치되는 등 대회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사격선수권대회는 하계올림픽, 강원 평창에서 열리고 있는 동계올림픽, 월드컵축구대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과 함께 세계 5대 스포츠 축전으로 꼽힌다. 세계사격선수권대회는 올림픽 정식 종목에 한정하지 않고 사격 모든 종목 경기가 열린다.●총 60개 종목… 금메달 수 236개 ISSF 공인 사격경기는 소총·권총·산탄총·러닝타깃으로 구분된다. 거리와 자세에 따라 다시 세부 종목으로 나누고 남자, 여자, 남자 주니어, 여자 주니어로 구분해 경기한다. 올해 대회에는 정식 종목 59개와 시범종목 1개 등 60개 종목이 펼쳐진다. 올림픽 사격경기에서는 개인전만 열리지만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는 3명씩 참가하는 단체전도 있다. 금메달 수는 개인종목 65개, 단체종목 171개다. 조직위는 2014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제51회 대회 참가국 규모 등으로 미뤄 올해 창원대회에는 120개 나라에서 선수와 임원 등 4500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숙박시설과 교통수단 등을 준비하고 있다. 대회조직위 측은 북한 참가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직위는 안상수 창원시장과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 황용득 대한사격연맹회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창원시·경남도·경찰·소방 공무원 등 60여명이 조직위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다.●8월 31일 팡파르… 16일간 탕!탕!탕!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는 창원시 의창구 창원국제사격장과 진해구 해군교육사령부 사격장 등 두 곳에서 열린다. 대회 기간은 8월 31일부터 9월 15일까지 16일간이다. 8월 31일과 9월 15일은 공식 입국일 및 공식 출발일이다. 9월 1일 공식 훈련을 시작하고 오후 6~7시 창원체육관에서 개회식(개막식)이 열린다. 실제 경기는 2일 시작돼 폐회식이 열리는 14일까지 이어진다. 조직위는 개막식 행사에서 지역 문화·예술의 차별성과 독창성을 보여 주는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정병산 자락에 있는 창원국제사격장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도심 속 국제사격장이다. 면적 14만 7088㎡다. 이번 대회를 위해 2015년 10월 리빌딩에 들어갔다. 10m 100사대, 25m 70사대, 50m 80사대, 결선경기장 15사대, 클레이 6면 등 경기시설과 부대시설이 이달에 모두 완공된다. 대회조직위는 창원대회를 상징하는 엠블럼과 슬로건, 마스코트 등을 확정해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조직위는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3연패’ 대기록을 달성한 진종오 선수와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사격 금메달리스트 김장미(26·우리은행) 선수를 대회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이성경 조직위 홍보부장은 “대회 기간에 경기장 안팎에서 대회 운영을 지원하는 자원봉사자 280명을 다음달 말 선발해 교육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4월 70개국 참가 ISSF 월드컵으로 시설 점검 프란츠 슈라이버 ISSF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기술대표단이 지난해 3월과 11월 창원을 방문해 창원국제사격장을 비롯한 대회 관련 시설을 둘러봤다. ISSF 기술대표단은 “창원국제사격장은 경기장 동선이 짧은 데다 주변 환경이 편안하고 안락해 세계 최고 수준 시설”이라고 칭찬했다. 창원시는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오는 4월 70개국에서 선수단 1000여명이 참가하는 ‘ISSF 창원 월드컵사격대회’를 열어 창원사격장 시설을 점검하고 국제사격대회 운영 경험을 익힌다. 창원시는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를 발판으로 글로벌 관광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서울에서 ‘2018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와 함께하는 창원 방문의 해’를 선포하고 관광객 유치에도 집중하고 있다. 곽기권 창원시 행정국장은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열리면 세계 각국 선수·임원 가족을 비롯해 많은 외국 관광객이 창원을 방문하는 가운데 지구촌 눈과 귀가 창원으로 쏠리게 될 것”이라며 “산업·관광 도시 창원이 세계 곳곳에 널리 각인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크루즈 관광객 유치 업계에 인센티브 시는 창원 방문의 해인 올해 국내외 관광객 1500만명 유치를 목표로 관광업계에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등 공격적인 관광 마케팅을 펼친다. 해양관광 활성화를 위해 크루즈 관광객 유치 보상금을 신설했다. 외국인 100명 이상이 배에서 내려 창원 지역 유료 관광지 1곳 이상을 방문하면 1인당 1만원씩을 크루즈 운영사업자에게 지급한다. 황규종 창원시 관광과장은 “올해 관광객 유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체관광객을 많이 유치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관광 진흥 조례를 일부 개정해 인센티브를 현실에 맞게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시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 동안 한파 속에서도 창원을 방문한 관광객은 50만 9668명으로 지난해 1월 35만 3441명보다 15만 6227명(44%)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는 봄으로 접어들고 축제가 열리면 관광객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전국 최대 벚꽃축제인 진해군항제(4월 1~10일)를 비롯해 젊은이들의 케이팝 경연대회인 케이팝월드페스티벌, 마산가고파국화축제, 조각비엔날레 등은 특색 있는 유명 축제로 해마다 국내외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글 사진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장덕철 ‘그날처럼’, 발매 7주 만에 가온차트 2관왕

    장덕철 ‘그날처럼’, 발매 7주 만에 가온차트 2관왕

    그룹 장덕철이 발매 7주차 만에 가온차트 2관왕의 주인공이 됐다.18일 가온차트에서는 “지난 11월 28일에 발매된 장덕철의 신곡 ‘그날처럼’이 가온차트 2주차(2018.01.07~2018.01.13) 디지털종합, 스트리밍종합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해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고 발표했다. 다운로드종합 차트에서는 볼빨간 사춘기의 ‘#첫사랑’이 1위를 차지했으며, 앨범종합 차트에서는 인피니트 (Infinite)의 새 앨범 ‘TOP SEED’가 1위에 진입했다. 글로벌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소셜차트에서는 방탄소년단의 ‘MIC Drop (Steve Aoki Remix) (Feat. Desiigner)’가 2주 연속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2주차 디지털종합차트 TOP100에 랭크된 신곡은 2위 볼빨간 사춘기 ‘#첫사랑’, 4위 김동률 ‘답장’, 15위 인피니트 (Infinite) ‘Tell Me’, 17위 오마이걸 (OH MY GIRL) ‘비밀정원’, 30위 블락비 (Block B) ‘떠나지마요’, 89위 자이언티(Zion.T) ‘하루 일과 - 슬기로운 감빵생활 OST Part 9’ 등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뺏긴 범종 찾으러 갔다가… 대신 가져온 중국 종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뺏긴 범종 찾으러 갔다가… 대신 가져온 중국 종

    강화도 전등사(傳燈寺)는 삼랑성(三郞城)이라고도 하는 정족산성(鼎足山城) 안에 있다. 삼랑성은 이름처럼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해발 220m의 정족산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냈다는 마니산의 동북쪽 줄기다. 해발 469.4m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마니산의 정상 언저리에는 단군의 제사터라는 참성단(塹城壇)이 있다.  이런 곳에 자리잡은 강화도 대표 사찰의 역사가 간단할 리 없다. 전등사 홈페이지는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이래 현존하는 최고(最古) 도량이다.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진종사(眞宗寺)라 했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인 381년 창건설이 전한다. 고구려의 불교는 372년 전진의 순도(順道)가 불경과 불상을 가져오고, 374년 동진의 아도가 들어와 불법을 전파하면서 시작됐다. 창건설대로라면 대단한 역사를 갖고 있다. 전등사에 가려면 정족산성의 남문이나 동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 성에는 동·서·남·북쪽에 각각 문이 있는데, 오랫동안 문루가 없었다고 한다. 조선 영조 때인 1739년 강화유수 권교가 남쪽에 문루를 지어 종해루(宗海樓)라 했는데, 세월이 흘러 무너진 것을 1976년 복원했다. 정족산성이 물론 전등사의 담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산성이 사실상 성속(聖俗)의 경계를 확실히 가르고 있기 때문인지 전등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축대 위에 지은 대조루(對潮樓) 아래로 절 마당에 올라서면 곧바로 1621년(광해군 13) 지은 대웅보전이 나타난다.전등사는 명성에 걸맞게 규모가 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범종을 모신 전각이 둘이나 들어서 있다. 대웅보전에서 바라보아 대조루 오른쪽 것을 종루(鐘樓), 종루에서 마당 건너 극락전 아래 있는 것을 종각(鐘閣)이라 부른다. 극락전은 산내암자인 극락암의 큰법당이다.당초 종루에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철종이 있었으나 2004년 새로 지은 종각으로 옮겼다. 지금 전등사의 예불에 쓰이고 있는 범종은 이때 새로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종루의 새 종은 큰 특징 없는 전통 범종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종각의 철종은 불교나 전통문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의 눈에도 우리 범종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 높이 1.64m의 전등사 철종은 중국 송나라시대 것이다. 몸체에는 ‘대송회주수무현 백암산숭명사 소성정축세 병술염3일주 종1과’(大宋懷州修武縣 百巖山崇明寺 紹聖丁丑歲 丙戌念三日鑄 鐘一顆)라 새겨져 있다. 북송 철종(哲宗) 4년인 1097년(고려 숙종 2) 허난성(河南省) 회경부(懷慶府) 수무현(修武縣)의 백암산 숭명사에서 조성한 종이다. 백암산은 지금의 천문산(天門山)으로 추정된다. 송나라시대 범종은 중국에도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조성 시기와 주체를 알 수 있으니 가치는 높다. 전등사가 송나라시대 철종을 갖게 된 경위는 매우 흥미롭다. 고고학회장을 지낸 역사학자 김상기(1901~1977)는 보물 지정 당시 전등사 주지와 지역 인사들을 인터뷰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일제는 무기를 만들고자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각종 금속류를 닥치는 대로 수탈했다. 금속문화재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전등사 범종도 인천 부평의 일본육군조병창(造兵廠)으로 실려갔다.일제가 패망하자 전등사 스님들은 범종을 되찾으려 조병창으로 갔다. 하지만 전등사 종은 이미 간 곳을 알 수 없었고 마당에 나뒹구는 중국 종들을 발견하고는 그 가운데 하나를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당시 조병창 뒤뜰에는 일본군이 중국에서 약탈한 범종을 비롯한 갖가지 금속문화재가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일제는 1939년 부평 산곡동 일대에 소총·탄환·포탄·군도는 물론 전쟁 막판에는 군용차량과 소형 잠수정까지 생산하는 군수품 생산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해 1941년 완공했다. 일본 오사카에 있던 육군조병창의 산하 공장으로 일본열도 밖에 세워진 유일한 조병창이었다고 한다.광복 이후 인천박물관 초대관장이 된 미술평론가 이경성(1919~2009)도 1946년 3월 당시 김재원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부터 인천 조병창에 중국의 큰 종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부평을 찾는다. 이때 인천박물관은 중국 종 3구와 향로 2점, 관음보살상, 동물형 대포 등을 넘겨받았다. 지금 인천시립박물관 야외전시공간에서 볼 수 있는 중국 종 3구가 이것이다. 인천박물관의 중국 종은 각각 금나라, 원나라, 명나라 시대 만들어진 것이다. 금나라(1115~1234) 철종은 높이가 2.58m에 이르니 전등사 철종보다도 훨씬 크다. 그동안 송나라 것으로 알려졌지만 명문에 보이는 충익교위(忠翊校尉)가 금나라 전기에만 있었던 관직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원나라 성종 치세인 대덕 2년(1299) 주조된 범종은 높이가 2.4m다. ‘황제만세 중신천추’(皇帝萬歲 重臣天秋) 같은 명문이 상단에 자리잡고 있다.높이 1.4m의 명나라 종은 부평 조병창에서 수습한 중국 종 가운데 가장 작다. 숭정 11년(1638) 태산행궁(泰山行宮)이 조성한 것이다. 곧 태산행궁이라는 도관(道館), 곧 도교사원에 걸려 있던 종이다. 그러니 불교사찰의 범종(梵鐘)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공예실에서 볼 수 있는 명나라시대 청동관음보살좌상은 조형미가 매우 뛰어나다. 높이 70㎝로 윤왕좌(輪王座)를 하고 있다. 인도 신화의 이상적 제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취하는 자세라고 한다. 앉은 자세에서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올려놓은 뒤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다. 공예실 입구에는 역시 조병창에 있던 높이 1m 안팎의 초대형 향로 2점이 전시되어 있다. 전등사 철종과 인천박물관의 중국 종은 모두 중국 허난성 일대에서 주조되거나 사용되던 것이라고 한다. 전쟁이 조금만 더 지속됐어도 한꺼번에 용광로에 들어가 총알이나 대포알이 됐을 것이다. 전등사 옛 종을 비롯한 우리의 많은 금속문화재도 이렇게 사라졌다. 국내의 중국 종은 이 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철종, 백운사 철종, 백양사 동종 등 4~5구가 더 있다. 이 가운데 높이 90㎝의 백운사 철종은 경남 밀양 영천암에 있다. 명나라 ‘성화(成化) 23년’(1487) 명문이 있다. 영천암의 옛 이름이 백운사였던 듯하다. 이 종 역시 광복 이후 고물상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하니 일제의 금속문화재 수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김포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세울 2m짜리 ‘평화의 종’ 주조식

    김포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세울 2m짜리 ‘평화의 종’ 주조식

    경기 김포시는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에 건립될 ‘세계평화의 종’ 주조식이 11일 오후 충북 진천군 성종사 주조실에서 열렸다고 밝혔다. 세계평화의 종은 한강하구와 북녘 일대를 조망하는 월곶면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 건립될 예정이다. 대한민국평화통일국민문화제 조직위원회와 사단법인 우리민족교류협회가 추진한다. 디자인은 영국의 세계적 산업디자이너이자 1982년 오스크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감독 아널드 슈워츠먼(81)경이 맡았다. 56년간 범종 제작의 외길을 걷고 있는 원광식(75) 주철장이 제작한다. 지난해 에밀레종을 복원해 실제와 99%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장인이다. 이 평화의종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서려 있는 비무장지대의 녹슨 철조망과 탄피들을 녹여 만든다. 매년 정전기념일 등에 공식 타종할 예정이다. 평화의종은 높이 2m, 하단 둘레 163㎝ 규모로, 제작비 18억원이 투입된다. 서체는 훈민정음체를 집자해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살리고, 당좌에 한국전쟁 참전 16개국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형상을 조각한다. 좌우 비천상은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한민족의 기원을 담아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비둘기의 모습을 새긴다. 유영록 시장은 “수도권 최북단 한강하구 애기봉에 남북평화의 종 건립을 추진한 김영진 위원장님을 비롯해 송기학 이사님과 원광식 주철장께 감사드린다”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평화명소가 되도록 끝까지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천주교 평신도들 “답게 살겠습니다”

    천주교 평신도들 “답게 살겠습니다”

    천주교가 정한 ‘한국 평신도 희년’이 본격 개막됐다. 지난 19일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가 일제히 희년 선포식을 갖고 평신도 희년 행사에 돌입했다.서울대교구는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평신도 희년’ 선포 미사를 봉헌하고, 내년 평신도 주일(2018년 11월 11일)까지 기쁨과 희망, 은총을 나누는 해로 지낼 것을 다짐했다. 희년 선포 미사에 참석한 신자 1200여명은 ‘한국 평신도 희년’ 개막과 함께 교회와 사회, 가정을 위한 새로운 복음화의 증인으로 나설 것을 되새겼다. 광주대교구도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평신도 희년 선포식을 가졌고,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도 선포 미사를 주례하는 등 전국에서 ‘평신도 희년’ 개막을 일제히 알렸다. 이에 따라 각 교구와 한국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한국평협)는 주보와 행사를 통해 희년의 의미를 전하며 한 해를 보내게 된다. 특히 한국평협은 평신도 희년을 맞아 한 해 동안 나눔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실천사업을 벌여 나갈 것을 선언했다. 평신도 사도직의 올바른 이해를 다지기 위한 신자 재교육과 함께 아시아 교회를 위한 나눔사업, 북녘 형제들을 위한 기도 운동, 그리스도인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이 눈에 띈다. 평신도들은 특히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에 매진할 계획이다.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앞서 한국평협이 처음 발의해 종교계와 공직사회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생활 속 바른 생활 실천운동이다. 지난 18일 천주교, 불교, 원불교, 개신교, 유교 등 7대 종단이 서울 종로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답게 살겠습니다’ 범종단 다짐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국평협 권길중 회장은 명동성당 희년 선포 미사 중 “한국 평신도 희년을 맞아 가정과 본당, 교구 공동체가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염 추기경에게 다짐문을 봉헌했다. 염 추기경은 미사 강론을 통해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세워진 한국 교회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그동안 받은 은총을 기쁜 마음으로 이웃에 나누고 베푸는 해로 보내자”고 전했다. 앞서 한국 주교단은 지난 10월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설립 50주년이 되는 내년을 희년으로 지내게 해 달라’는 한국평협의 건의를 받아들여 ‘한국 평신도 희년’을 선포했었다. 교황청 내사원에 전대사 수여 요청 공문도 보냈다. 이에 교황청 내사원은 한국의 ‘평신도 희년’을 맞아 전대사를 받기 위한 조건을 담은 교령을 주교회의에 보내기도 했다. 교황청 내사원은 “참으로 죄를 뉘우치고 사랑을 실천하며 통상적으로 이행돼야 하는 조건을 충족할 때, 전대사가 연결돼 있는 교황 강복을 베풀 수 있도록 기꺼이 허락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각 교구는 희년 동안 성지순례, 평신도 행사 참여, 기도 등 교구 지침에 따른 신앙활동을 할 경우 신자들에게 전대사를 수여한다. 전대사를 받기 위해서는 ▲희년 개막·폐막 미사에 참례하거나 ▲교구장 주교가 정한 희년 행사나 신심 행위에 경건히 참여하고 ▲각 교구장이 지정한 희년 순례지를 순례한 뒤 그리스도인 소명의 충실성, 사제와 수도 성소, 인간 가정 제도의 보호를 위해 기도하며, 주님의 기도·사도신경·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부르는 간구로 기도를 마치면 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범종단 다짐대회 실시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범종단 다짐대회 실시

    18일 7대 종단 평신도들 참가한 가운데 진행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의 범종단 다짐대회가 18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다.이날 행사에는 7대 종단의 평신도 1000여명이 참여한다. 이들 종단의 평신도 70여명으로 구성된 ‘답게사는 합창단’은 공연도 예정돼 있다고 주최 측이 설명했다.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열린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범종단 다짐대회‘ 기자간담회에서 범종단 운동본부’의 김성곤 이사장은 “세월호 참사는 지도자와 국민들의 책임부족의 결과였다”면서 “후진적 사건에 대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책임이 있다는 자각에서 시작된 시민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다짐대회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답게사는 합창단’은 국내에서 인정하는 종교인 7개 종단의 평신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여 이뤄졌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 합창단은 각 종단이 화합하여 ‘답게살겠습니다’ 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위해 한층 더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답게살겠습니다’ 운동은 국내 7대 종단의 평신도들에 의해 전개되는 실천운동으로, 이웃과 종교 상호간의 경청과 이해 및 화합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새로운 변혁을 기운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그 취지라고 주최즉이 설명했다.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민족종교까지 국내 모든 종교의 평신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답게살겠습니다’ 관계자는 “이 운동은 최근 사회 곳곳에 불신과 갈등, 분열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웃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한 이해와 화합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며 관심을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성호 선임기자의 종교만화경] 힘과 부로 억압해선 평화 못 이뤄… 탈성장·탈성직·탈성별 지향

    [김성호 선임기자의 종교만화경] 힘과 부로 억압해선 평화 못 이뤄… 탈성장·탈성직·탈성별 지향

    한글날인 지난달 9일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감리교신학대. 교정과 강의실마다 각양각색의 교회와 개신교 단체 130곳이 부스를 차려놓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모두 일반인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작은 교회와 단체들. 이른바 대형 교회가 아닌, 초대 교회 본연의 의미를 되살리자는 소규모 교회들의 결집이었다. ‘작은 교회 한마당’. 2013년부터 ‘작은 교회 박람회’로 매년 열려오다 올해 5회째를 맞아 ‘한마당’이란 타이틀로 바꿔 열렸다. 그 파격의 행사를 주관해온 건 바로 개신교 초교파 단체인 생명평화마당이다.생명평화마당. 그 모임의 시작은 2010년 부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4대강 문제며 환경 파괴, 남북관계 경직이 일반인의 최대 관심사였을 때였다. 평신도, 목회자, 신학자 800명이 모여 이른바 ‘그리스도인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은 바로 생명과 평화임을 만천하에 천명한 개신교계의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 선언의 정신을 이어 가자며 발족한 게 생명평화마당이다.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방인성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김경호 예수살이 총무가 주도했다. 그 태동 모델은 독일 평신도들이 해마다 개최하는 ‘교회의 날’이다. 매년 주요 도시를 바꿔가면서 여는 이 행사는 평신도와 교회들이 모여 독일의 첨예한 이슈와 현안에 어떻게 대응하고 헌신해야 할지를 토론하고 해법을 찾아내는 종교적 행사로 널리 알려졌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지역사회와 사회 전체를 위해 헌신의 몸짓을 결집하는 자리로 유명하다. 생명평화마당은 독일 ‘교회의 날’을 모델로 삼았지만 조금 차별화된다. 바로 한국교회가 섬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자성의 단체라는 것이다. ‘기독교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생명평화의 바른길을 제시하자.’ 처음엔 주로 환경 파괴와 한반도 갈등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선언하는 목회자, 신학자, 활동가들의 연대로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적 목소리에 가려진 생명과 평화의 길을 다시 보게 됐고 그래서 2013년부터 시작한 게 ‘작은 교회 운동’이며 그 실천적 행사가 바로 작은 교회 박람회다. ‘작은 교회 운동’이란 무엇일까. 한마당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성장·대형화에 대한 경계와 함께 작음의 성서적 의미를 입에 올렸다. “힘과 부의 크기로 억압한다고 해서 평화가 이뤄지는 게 아니지요.” “낮은 곳에서 섬김으로 모든 다양성을 존중할 때 평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체적으로 지역사회를 어떻게 섬길지를 이제 고민해야 합니다.”그 말마따나 생명평화마당의 ‘작은 교회 운동’은 세 가지를 지향한다. 바로 탈성장과 탈성직, 탈성별이다. 무엇보다 한국교회의 성장주의를 이제 탈피하자는 것이다. 교회가 너무 성직자 중심인 상황에서 신도들이 맹종하게 된다는 교회 현실의 개선도 담고 있다. 여기에 교회 내 각종 차별로 신음하는 신도들의 고충을 듣고자 한다. 교회의 규모는 복음의 본질에 가깝게 갈수록 작은 공동체가 돼야 하며 작은 공동체가 돼야 이 세 가지를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한마당을 다녀간 인원은 줄잡아 3000명에 이른다. 그 방문객 중에는 스님과 천주교 신부, 원불교 교무 등 이웃 종교 성직자뿐 아니라 일반 신도들도 대거 눈에 띄었다. 초종교 행사로 번지는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그 ‘탈경계’와 작은 교회들의 이례적인 만남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양한 목회를 하고 있는 교회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어요. 나 자신이 너무 편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반성했습니다.”(윤철구씨·52) “우리 교회만 색다른 목회와 신행을 하는 줄 알았는데, 지향점이 다른 작은 교회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목회와 교회 형태는 달라도 모두 식구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심정희씨·48) ’박람회는 보여주고 알리는 행사지만 한마당은 전시가 아닌 실질적인 나눔과 연대의 시작입니다.’ 생명평화마당의 새 전환이란다. 지금까지의 작은 교회들의 연대는 이제 지역과 범종교의 차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작은 교회 박람회’ 행사를 연 1회의 모임에서 지역에서 수시로 열리는 작은 교회 연합 행사로 바꿀 계획이다. 우선 내년에는 부산, 광주, 대전, 전주에서 소규모 한마당 행사를 잇따라 열겠단다. 그 종착점은 결국 종교 간 교류를 통한 종교 역할 다지기로 매듭지어질 것 같다. kimus@seoul.co.kr
  • 쉬어가볼까 더 늦기 전에

    쉬어가볼까 더 늦기 전에

    먼 길 날아온 기러기가 쉬어 가는 정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북 완주의 비비정(飛飛亭)입니다. 정자 앞을 흐르는 만경강과 모래톱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를 ‘비비낙안’(飛飛雁)이라 부르며 완산8경의 하나로 꼽는다니 필경 수묵화 같은 비경이 펼쳐지는 장소겠지요. 게다가 단풍으로 이름난 대둔산이 지척이고 삼례문화예술촌 등 독특한 여행지도 주변에 널렸으니 주저할 게 있겠습니까. 그저 행장 꾸려 떠나면 되는 것이지요.비비정(飛飛亭)이 선 곳은 삼례읍의 만경강 초입이다. 전주천 등 크고 작은 하천들이 합류하는 지역이다. 예전엔 큰 개천이란 뜻의 한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정자 이름은 장비와 악비, 두 중국의 장수 이름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비비정을 1573년(선조 6년)에 처음 조성한 이가 무인 최영길이었다는 걸 떠올리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진다. 비비정에서 본 기러기떼… 완산8경, 비비낙안 (飛飛落雁) 이 일대 풍경을 따로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 일컫기도 한다. 완산8경의 하나로, 비비정에서 한내 백사장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는 것을 일컫는다. 정자 이름을 지은 이가 이런 중의적인 풀이까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비비’라는 표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건 분명한 듯하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40~50년 전만 해도 이 일대는 잔풀 하나 없는 하얀 모래밭이었다고 한다. 이 멋진 풍경 속에 어찌 기러기만 있었으랴. 너른 강물 위로 목선들이 오가고, 모래밭은 술추렴하는 사내들의 불콰한 얼굴로 가득했을 터다. 그러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강안으로 제방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갈대와 풀 등이 터를 잡으며 점차 모래밭도 사라졌다는 것이다.여러 전란 등을 거치며 사라졌던 비비정은 1998년에 복원됐다. 비비정은 건물 자체로는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세월의 흔적이 깃들지 않은 탓이다. 한데 주변 풍광과 어우러지는 모습은 정말 멋들어지다. 만경강이 뱀처럼 휘돌아가고 그 너머로 억새 무성한 습지가 넓게 퍼져 있다. 드넓은 호남평야는 가을걷이를 앞둔 벼들로 온통 노란빛이다. 저물녘엔 더 멋지다. 해가 익산 쪽으로 넘어갈 때면 사위가 시뻘겋게 물든다. 불 칼처럼 빛나는 만경강 위로는 기러기들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내려앉는다. 이건 뭐 딱 ‘한 폭의 그림’이다. 이 장면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정자 바로 뒤 카페다. 삼례 출신의 사내가 낙향해 운영하는 업소다. 이 카페 옥상에 올라가면 이 ‘그림’을 온전히 담을 수 있다. 염치가 있으니 최소한 차 한 잔은 마셔야겠지만 그쯤의 값어치야 하고도 남는다.비비정 오른쪽은 옛 만경강 철교(등록문화재 579호)다. 길이는 476m. 문화재청에 따르면 옛 만경강 철교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목교로 건설됐다. 당시만 해도 한강철교 다음으로 긴 교량이었다. 이어 1928년 호남평야의 쌀 등 농산물 수탈을 목적으로 철교로 다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내내 자행됐던 수탈의 역사를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증거물인 셈이다. 그러다 2011년, 바로 옆에 새 다리가 놓이면서 철교로서의 기능을 잃었다.일제 수탈사 서린 만경강 폐철교, 예술열차 칙칙폭폭 철교 위엔 예술열차가 세워져 있다. 퇴역 열차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식당 겸 카페 등으로 구성됐다. 예술열차 안에서 주변 풍경을 내다보는 맛도 각별하다. 비비정 뒤편은 카페 비비낙안이다. 옛 물탱크를 리모델링한 전망대와 도회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카페 건물이 어우러진 곳이다. 기껏해야 ‘동네 뒷산’ 정도의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사방이 훤히 트인 덕에 비비낙안에서 굽어보는 미감은 아주 색다르다. 왼쪽으로는 너른 만경평야와 대둔산 등 호남의 산들이 걸개그림처럼 어우러져 있다. 정면으로는 전주 시가지 풍경과 모악산 등이 어울려 있고, 오른쪽으로는 익산 쪽 풍경이 아스라하다. 전망대는 옛 물탱크 위에 세워져 있다. 양수장에서 물을 퍼 올려 익산 등으로 보내던 설비라고 한다. 그러니 언덕 아래 옛 삼례양수장(등록문화재 221호)과는 한 세트인 셈이다. 비비정 일대는 몇 년 전만 해도 삼례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이었다. 변변한 땅뙈기 하나 없는 이들이 만경강 인근의 자투리땅에 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됐다. 나날이 쇠락해 가던 마을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기 시작한 건 비비정 농가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부터다. 비비정 레스토랑은 ‘엄마의 레시피’를 맛볼 수 있는 집이다. 가난해도 자식에겐 맛있는 밥을 먹이려 했던 마을 엄마들이 정성껏 만든 음식들을 낸다. 알음알음 입소문이 퍼져 이젠 ‘농가 집밥’을 맛보려는 식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비비낙안 언덕에서 일제강점기 때 조성됐다는 계단을 내려가면 비비정 레스토랑이 나온다. 비비낙안 카페 건물과 쌍둥이라 할 만큼 빼닮은 건물이다. 농가 레스토랑 앞은 옛 삼례양수장이다. 붉은 벽돌의 옛 건물과 모던한 레스토랑 건물이 제법 잘 어울린다. 비비정 마을에서 길 하나 건너면 삼례문화예술촌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양곡창고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비주얼미디어(VM)아트미술관과 디자인박물관, 책박물관, 목공소 등 독특한 공간이 모여 있다. 옛 삼례역을 활용한 ‘세계 막사발 미술관’도 예술촌 초입에 있다. 완주에선 호수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는 맛이 각별하다. 완주가 뜻밖에 깊은 풍경을 갈무리하고 있는 곳이라는 걸 새삼 일깨워 준 것도 바로 이 구간이다. 경천저수지와 대아저수지, 동상저수지 등을 따라 실로 다양한 풍경과 만날 수 있다. 호수와 나란한 도로 주변은 대개 단풍나무다. 아직 일러 붉어지지는 않았지만, 만추에 이를 무렵이면 실로 농염한 풍경을 선사하지 싶다. 대아호와 동상호 주변 풍경이 특히 빼어나다. 732번 지방도가 두 호수를 바짝 끼고 도는 드라이브 코스다. 차량 통행량이 적어 적요하고, 높은 산과 깊은 물이 번갈아 차창에 매달린다. 눈이 호강하는 순간이다.울긋불긋 단풍·그림 같은 폭포, 위봉재에서 만난 ‘비경’ 동상면 쪽에서 위봉재를 넘다 보면 능선 중턱의 도로에서 폭포를 만난다. 위봉폭포다. 폭포는 길 건너편 산자락에 펼쳐져 있다. 차를 몰아가다 이게 뭔가 싶어 초점을 맞추다 보면 뜻밖에 제법 긴 폭포가 암벽 위에 걸려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폭포는 60m 높이를 2단으로 굽이쳐 떨어진다. 폭포수는 굵지 않다. 타래에서 풀린 명주실 가닥을 닮았다. 폭포 주변으로는 근육질 사내의 ‘알통’을 닮은 바위절벽이 둘러쳤다. 울긋불긋한 단풍과 암벽, 그리고 명주실 같은 폭포가 기막히게 어울렸다. 도로에서 폭포까지 목재데크가 놓여져 있다. 계단을 따라 10분 정도 내려가면 폭포와 마주할 수 있다. 위봉재 너머엔 위봉산성이 있다. 조선 숙종 원년(1675)부터 7년에 걸쳐 쌓았다는 성이다. 안내판은 “유사시 전주 경기전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옮겨 보호하기 위해 조성됐다”고 적고 있다. 당초의 성의 규모는 16㎞에 달했다는데, 지금은 높이 3m의 아치형 석문과 복원된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위봉산성을 내려서면 송광사와 만난다. 열십자 형태의 범종각(보물 1244)이 인상적인 절집이다. 이런 형태의 범종각은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대둔산을 빼놓을 수 없다. 겨울 설경 못지않게 가을철 단풍 명소로 이름을 날리는 산이다. 단풍과 암릉의 변주곡이 이제 막 시작됐으니 다음주 초반까지는 화사한 단풍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길:비비정은 호남고속도로 삼례 나들목으로 나오는 것이 가장 간명하다. 비비정 주변에 농가 레스토랑, 비비낙안 카페 등이 밀집돼 있다. 삼례문화예술촌도 멀지 않다. 예술촌 안 시설물은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이다. 대둔산 케이블카는 오전 9시~오후 6시,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주말에는 더 자주 오간다. 왕복 9000원.→맛집:경천저수지를 끼고 있는 화산면은 붕어찜이 유명하다. 가장 오래됐다는 산수장가든(263-5078), 약수가든(262-2602), 화산식당(263-5109) 등이 이름났다. 비비정 레스토랑(291-8609)은 평일 오후 2시 30분께 문을 닫는다. →잘 곳: 대둔산 주변에 펜션이 많다. 대둔산 안쪽으로도 대둔산장 등 숙소들이 있다. 지은 지 다소 오래된 곳들이어서 값이 저렴한 편이다. 대둔산 관광호텔은 리모델링 공사 중이다.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현대미술을 품은 천년 고찰 전등사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현대미술을 품은 천년 고찰 전등사

    강화도 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인 서기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아도화상이 진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1282년 고려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송나라에서 펴낸 대장경을 펴내 봉안하도록 하면서 옥등을 시주한 것을 기념해 ‘불법의 등불을 전하는 사찰’이라는 뜻을 지닌 전등사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른다. 전등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장소로 꼽힌다. 사찰을 에워싸고 있는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인 부여, 부우, 부소가 쌓았다고 전해지는 성이다. 산의 지형을 이용해 능선을 따라 축조한 성의 길이는 2300m나 된다. 고려시대에 전등사는 대몽항쟁의 근본 도량으로 팔만대장경을 판각했으며 조선시대엔 가람 뒤편의 정족산 사고에서 250년간 조선왕조실록과 왕실문서를 보관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엔 프랑스군을 물리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국가사적 삼랑성과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대웅보전, 약사전, 범종,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각종 탱화 등 소중한 문화유적과 문화재가 가득한 전등사는 국내 유일의 현대미술 사찰로 새롭게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1600년을 이어온 유서깊은 사찰에서 현대미술을 만난다는 것은 파격 그 자체다. 전등사에서는 2008년부터 매년 10월 삼랑성역사문화축제가 열리는 시기에 맞춰 정족산 사고에서 매년 현대 미술특별전시를 열고 있다. ‘현대 중견작가전’이라는 타이틀로 소개된 현대미술 작가들이 지금까지 수십 명에 이른다. 그동안 수집한 현대미술 작품은 300여점에 이른다. 2012년 “21세기 시대정신이 담긴 불사(佛事)”를 자랑하며 241㎡ 규모로 신축한 무설전(無說殿)에서는 ‘국내 유일의 현대미술 사찰’ 전등사의 파격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말없이 설파한다는 뜻을 지닌 불국사 ‘무설전’에서 착안해 이름을 지은 이곳은 조성 당시부터 국내 대가들의 작품으로 법당을 꾸며 화제가 됐다.무설전의 석가모니불과 보현·문수보살 등 불상은 광화문 세종대왕상으로 유명한 조각가 김영원 홍익대 교수가 제작했다. 불상은 청동으로 불상을 만든 후 금박을 입히는 대신 자동차 도색에 쓰이는 흰색 우레탄 도료를 입혀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풍긴다. 본존불의 얼굴은 석굴암 본존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지만 보살상의 얼굴은 요즘 세대에게 친숙한 인상을 찾아 이미지를 부여했다. 본존불 뒤편의 후불화는 오원배 작가가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 오 작가는 석굴암처럼 둥근 공간에 부처님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존자 등 십대제자를 배치한 후불화를 프랑스 유학시절 배운 정통 프레스코 기법으로 완성했다. 서양의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부드러운 색감과 불제자들의 친근한 표정은 보는 이를 다가서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다. 법당 내부의 전체 공간구성은 이정교 홍익대 공간디자인과 교수가 맡았다. 천장에 단청을 칠하지 않고 일반적인 법당에서 흔히 보는 연등 대신에 분홍색의 꼬마 연등 999개를 설치작품처럼 배치해 불교의 정적인 분위기와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한다. 서운스님을 기리며 ‘서운 갤러리’라고 이름 붙인 무설전 내의 상설전시공간에서는 종교와 무관하게 전등사가 소장한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번갈아 소개하고 있다. 민정기, 서용선, 곽훈, 노상균, 김태호, 문범, 한만영, 강애란, 조덕현, 문경원 등 쟁쟁한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가람의 뒤편 산길을 따라 5분 남짓 올라가다 보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켠에 서있는 정족산사고가 있다.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472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곳이다. 1181책에 이르는 정족산사고본은 실록 중에서 유일하게 전책으로 남아 현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보관했던 역사적인 장소에서 열리는 ‘중견 작가전’이 올해로 10회째를 맞아 성황리에 열렸다. 꺾어지는 해인 만큼 많은 공을 들인 올해 전시의 주제는 ‘성찰(省察)’이다.첫회 째부터 전시기획을 맡아온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 역사발전의 견인역할을 한다”면서 “역사적 장소인 전등사 경내에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보관한 사고에서 현대미술 특별전시를 연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윤교수는 “첫 회를 시작할 때만해도 이렇게 오래 지속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열 번째를 맞게 됐다”면서 “전등사와 인연이 깊은 중견작가들을 초대해 전등사 대웅보전과 성찰이라는 두가지 주제로 신작을 발표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10년간 빠짐없이 참여한 오원배 동국대교수를 비롯해 강경구, 공성훈, 권여현, 김기라, 김용철, 김진관, 이종구, 이주원, 정복수 등 10명의 중견 작가들이 동참했다. 전등사의 대웅전은 아담하지만 내용은 그 어느 사찰의 대웅전 보다 충실하다. 조선시대 중기 건축으로 보물 제 178호로 지정된 대웅전의 기둥은 배흘림 기법을 보이고 있고 목조석가여래삼존불(보물 제 1785호)의 수미단과 닻집의 조형성이 탁월하다. 도편수와 마을 주모의 사랑과 배신이야기를 담은 처마밑의 특이한 조각상도 유명하다. 작가들은 대웅전의 구석구석을 답사하며 예술적 영감을 얻고 작품을 제작했다. 오 교수는 대웅전 불상의 뒷모습과 인간의 시선, 강화도의 옛 지도를 바탕으로 한 자연의 모습이 이어진 3편의 연작을 선보였다. ‘관자재’와 ‘운석’을 출품한 강경구 작가는 “수백년 간 건물의 일부로 안과 밖의 세상을 연결해 준 대웅전의 문과 우주 속의 운석처럼 막막한 세계를 떠도는 인간의 삶을 생각해 봤다”고 설명했다. 공성훈 작가는 불상 앞의 촛불 그림과 함께 무심하게 흘러가는 하늘의 구름과 시간을 품은 아침바다, 권여현 작가는 일상 속의 성찰을 표현한 ‘병목생화’와 ‘인타라망’을 출품했다. 김기라 작가는 두 개의 원형 LED로 만든 ‘광배-두개의 둥근 원’과 설치작품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을 선보였다.강화에서 태어나 전등사와 인연이 깊은 김용철 작가는 대웅보전 내부에 있는 이미지를 이용해 큰 사랑을 표현한 작품을 완성했다. 김진관 작가는 대웅보전 지붕의 네 귀퉁이를 받치고 있는 유명한 나부상을 한지에 채색으로 그렸고 이주원 작가는 여의주를 한지에 그리고 LED조명을 비추는 작품을 선보였다. 푸른 밤하늘에 떠있는 달과 전등사 대웅보전을 그린 이종구 작가의 ‘대웅보전-전등사’는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진다. 정복수 작가는 자신의 독특한 기법으로 불상을 재해석한 ‘불성의 초상’을 선보였다. 전통 고찰에 현대미술을 끌어들인 주인공은 전등사 회주 장윤 스님이다. 장윤 스님은 “전통적으로 불교 사찰을 조성할 때 당대 최고 장인들을 모셔다 조각과 회화 작업을 하게 했다”면서 “문화재 사찰이라고 해서 고려시대 조선시대 양식의 불상과 불화를 찍어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으로 무설전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교가 전통만을 고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신라와 고려의 승려들이 멀리 유학을 가서 앞선 문화를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전통을 지니고 있다”면서 “전등사도 전통사찰이지만 현대미술을 비롯해 음악회, 연극, 마당놀이 등 현대인이 좋아하는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화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서울올림픽 성공 기여’ 김운용 타계…세브란스병원에 빈소

    ‘서울올림픽 성공 기여’ 김운용 타계…세브란스병원에 빈소

    88 서울올림픽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3일 오전 노환으로 타계했다. 86.김 전 부위원장은 전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날 오전 2시 21분 별세했다고 고인측이 알렸다. 고인은 1986년 IOC 위원에 선출된 뒤 대한체육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IOC 집행위원과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국제대회 유치 등에 기여한 한국스포츠의 큰 별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회식 때는 역사적인 남북 선수단 동시 입장을 이끌어냈다. ‘태권도 대부’로 불리는 그는 1971년부터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아 세계태권도연맹(WTF) 창설하는 등 태권도의 세계화를 주도하고 태권도가 올림픽 시범종목을 거쳐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 스포츠외교에 독보적인 스타로 존재했지만 말년은 그리 밝지 못했다. IOC 위원으로 선출된 뒤 능숙한 외국어와 폭넓은 대인관계를 통해 국제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2001년에는 ‘스포츠계 대통령’으로 불리는 IOC 위원장 선거에도 출마했다. 그러나 1999년에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캔들에 연루돼 IOC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는 등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벌어졌던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과정에 강원도 평창의 유치 ‘방해설’ 탓에 국회 청문회에도 출석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2004년 2월 체육회와 세계태권도연맹 운영 과정에서 횡령 등의 죄목으로 수감돼 사실상 국제 체육계를 떠났다. 이듬해 7월 싱가포르 IOC 총회를 앞두고 결국 IOC 위원직마저 스스로 내려놓았다. 하지만 고인은 최근까지도 한국 체육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 말 올림픽운동 증진, 한국스포츠 발전과 스포츠외교 강화, 태권도 육성과 세계화 등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사단법인 김운용스포츠위원회를 설립했고 이달 말에는 2017김운용컵국제오픈태권도대회도 개최할 예정이었다. 더 최근에는 대한체육회가 11월 발간할 예정인 스포츠영웅 김운용 편 구술 작업을 체육언론인회와 진행해왔다. 지난달 27일 열린 진천선수촌 개촌식이 공식 석상에 고인이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자리가 됐다. 2013년 3월 기자가 만났을 때 김 전 부위원장은 두 가지 면에서 기억에 남았다. 첫째는 비상한 기억력이다. 30년이 훨씬 지난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건설에 들어간 건축자재의 수량을 정확히 기억해내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리고 특유의 건강 관리.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차례 한 시간 이상 수영을 즐긴다고 했다. 그러나 그 역시 하늘의 부름을 끝내 뿌리치지 못했다. 빈소는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유족은 장례 절차를 협의 중이다. 족으로는 부인 박동숙 여사와 아들 정훈, 딸 혜원·혜정씨가 있는데 고인은 피아니스트 혜정씨와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3일 노환으로 타계…86세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3일 노환으로 타계…86세

    ‘한국스포츠의 거목’인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3일 오전 노환으로 타계했다. 86세.김 전 부위원장은 전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가 3일 오전 2시 21분 별세했다고 고인 측이 알렸다. 김 전 부위원장은 1986년 IOC 위원에 선출된 뒤 대한체육회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IOC 집행위원과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국제대회 유치 등에 기여한 한국스포츠의 큰 별이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회식 때는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선수단 동시 입장이라는 역사를 끌어냈다. ‘태권도계 대부’로 불리는 그는 1971년부터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아 세계태권도연맹(WTF) 창설하는 등 태권도의 세계화를 주도했다. 국기원장도 지낸 그는 특히 태권도가 시범종목을 거쳐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IOC 위원으로 선출된 뒤 능숙한 외국어와 폭넓은 대인관계를 통해 국제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2001년에는 ‘스포츠계 대통령’으로 불리는 IOC 위원장 선거에도 출마했었다. 그러나 1999년에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캔들’에 연루돼 IOC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는 등 순탄치 않은 길을 걷기도 했다.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벌어졌던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과정에서는 강원도 평창의 유치 ‘방해설’이 대두하면서 국회 청문회에도 출석했었다. 그러다가 2004년 2월 체육회와 세계태권도연맹 운영 과정에서 횡령 등의 죄목으로 수감돼 IOC 위원직 제명 위기에 몰렸고 2005년 7월 싱가포르 IOC 총회를 앞두고 결국 IOC 위원직마저도 스스로 내려놨다. 하지만 고인은 최근까지도 한국 체육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 말에는 올림픽운동 증진, 한국스포츠 발전과 스포츠외교 강화, 태권도 육성과 세계화 등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사단법인 김운용스포츠위원회를 설립했다. 이달 말 2017김운용컵국제오픈태권도대회도 개최될 예정이다. 최근에는 대한체육회가 11월 발간할 예정인 스포츠영웅 김운용 편 구술 작업을 체육언론인회와 함께 진행해왔다. 지난달 27일 열린 진천선수촌 개촌식은 고인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자리가 됐다. 고인의 빈소는 일단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장례 일정 및 절차는 유족이 협의 중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동숙 여사와 아들 정훈, 딸 혜원·혜정 씨가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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