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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격리 5일 이탈했다가 벌금 700만원…20차례 거짓말, 징역 6개월

    격리 5일 이탈했다가 벌금 700만원…20차례 거짓말, 징역 6개월

    지난해 1월 8일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지 1년하고도 한 달이 지났다. 현재까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사례는 모두 158건으로 대부분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서비스를 통해 살펴본 결과 감염병예방법을 위반해 기소된 사건 중 가장 높은 벌금형이 선고된 건 벌금 700만원이 선고된 사례였다. 선고된 벌금형 액수 대부분이 100~300만원 사이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2주 중 5일이나 격리지 이탈한 운동선수 해외에서 활동하던 운동 선수 A씨는 지난해 3월 국내로 입국해 자가격리 조치 통지를 받았으나 이를 따르지 않은 혐의가 인정돼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지난해 3월 30일부터 4월 13일까지 자신의 주거지에 머물러야 했음에도 4월 1일과 5일(2회), 8일, 9일 다섯 차례에 걸쳐 격리 장소를 이탈했다. 해제를 나흘을 앞둔 9일 경우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해 4시간 30분동안 서울 마포에 위치한 한강유원지와 경기 광명, 군포, 과천, 안산 등 경기 일대는 물론 서울 용산구, 서초구 등 서울 일대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고통 분담을 하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할 때 그 비난 가능성이 적지 않고, 이탈 행위를 반복한 점은 불리한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아 국민 건강의 위해를 발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은 점, 초범인 점, 젊은 운동선수로서 그 장래 활동을 감안할 필요가 있는 점,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은 A씨에게 유리한 정상이라고 판단했다.●이동 동선 20차례 거짓 진술 ‘징역 6개월’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징역형이 받은 사례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역학조사에서 자신의 동선을 수십차례 걸쳐 거짓 진술한 B씨에 대해 법원은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B씨는 지난해 5월 코로나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서울의 한 지역을 방문했음에도 6일 뒤 코로나 선별진료소에서 만난 역학조사관에게 해당 지역에 방문한 사실이나 자신이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한다는 사실을 숨긴 채 말하지 않았다. 이어 다른 두 명의 역학조사관으로부터 재차 조사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3번에 걸친 역학조사를 받으면서 직업과 이동동선 등에 대해 20번 이상 거짓의 사실을 진술하거나 사실을 누락·은폐했다”며 “이로 인해 6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파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에 대한 코로나 검사가 이뤄져야 해 수많은 사람이 장기간 자가격리 조치에 들어가게 됐다”며 B씨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사설] 공수처에 쏟아지는 고위공직자 범죄 제보

    막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사건이 쏟아진다고 한다. 지난달 21일 김진욱 공수처장이 정식 임명되고 정부과천청사에 현판을 달아 국민들에게 공수처 출범을 알린 다음날부터 사건 접수를 시작했는데, 보름 만인 지난 5일까지 모두 100건이 접수됐다는 것이다. 아직 전자접수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현재는 우편이나 방문을 통해서만 사건 접수를 하는데 이 정도라니 국민들의 공수처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전자접수 시스템까지 갖춰지면 고위공직자 범죄 혐의 제보·고소·고발 사건이 밀물처럼 밀려들 가능성도 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국가정보원·감사원·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소속 3급 이상 공무원,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 장성급 장교 등으로 대략 7000여명 정도다. 여기에 일부 전직까지 포함하면 1만여명의 뇌물수수, 직권남용 등 직무 관련 범죄를 수사한다. 국민의 수사 요청이 쏟아지는 이유가 혹시 고위공직자들의 위법적 행태가 일반적인 예상보다 심각한 탓이라면 씁쓸한 일이다. 제보된 숫자만으로 평가하자면 수사 대상의 1%에 가까운 전현직 고위공직자, 또는 그 가족이 직무 관련 범죄에 연루됐다고 봐야 한다. 장관급 이상에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뒤로 후보자들에 대한 각종 제보가 쏟아지고, 그중 일부가 사실로 확인되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공수처에 쏟아지는 제보를 그저 허위 제보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공수처 출범 이전 검찰과 경찰이 공직 범죄 수사를 도맡았지만, 공직비리는 근절되지 않았다. ‘제 식구 봐주기’와 고위직 실세 등에 대한 정무적 판단 등이 횡행하다 보니 우연치 않게 수사 그물망에 걸려들더라도 “왜 나만 괴롭히느냐”거나 “재수 없이 걸렸다”며 반발하기 일쑤였다. 최근에도 서울남부지검이 라임 사태 주범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서 술 접대를 받은 현직 검사 3명 중 2명을 ‘금액 미달’을 이유로 불기소한 일이 대표적이다. 공수처는 접수 사건에서 옥석을 가려 직접 수사하거나 검경에 이첩해 공직사회에 청풍을 불어넣길 바란다. 윗물이 썩으면 아랫물도 당연히 혼탁해진다. 고위 공직사회가 투명·청렴하다면 중간간부나 하위공직자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 개연성이 낮아질 것이다. 어제 김 처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만나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니 공수처와 검찰이 견제와 협력의 묘미를 살려 공직비리 척결에 일로매진하길 바란다.
  • 낙동강변 살인 누명 가족도 옥살이…‘위증·위증교사 혐의 유죄’ 재심청구

    낙동강변 살인 누명 가족도 옥살이…‘위증·위증교사 혐의 유죄’ 재심청구

    경찰의 고문 수사로 ‘낙동강변 살인 사건’ 범인으로 몰렸던 피해자의 가족들도 재심 청구에 나선다.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최인철(60)·장동익(63)씨는 지난 4일 재심에서 사건 발생 31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이들이 누명을 벗자 당시 재판 과정에서 억울하게 구속됐던 피해자 가족도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1990년 1월 4일 발생한 낙동강변 살인 사건을 수사한 부산 사하경찰서 경찰들은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해 허위 자백을 받아 낸 뒤 최씨와 장씨를 강도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1992년 최씨의 처남이 법정에서 사건 당일 최씨가 대구의 처가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증언했다. 하지만 사하서는 이 증언이 위증이라며 이번엔 처남을 수사했다. 경찰은 최씨의 부인이 동생에게 위증을 부탁해 법정에서 거짓 증언했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최씨의 처남은 위증 혐의로 그해 5월, 부인은 위증교사 혐의로 6월에 구속됐다. 둘은 7월 30일 1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2개월과 1개월씩 옥고를 치렀다. 1심에서 최씨의 처남은 징역 5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부인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최씨와 장씨 재심 변호를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이달 중순쯤 부산지법에 재심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당시 처남의 증언은 사실이었고, 위증교사 또한 없었던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또 “최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만큼 연관된 재판에서 위증으로 몰렸던 부인과 처남의 재심 또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낙동강변 살인’ 위증으로 몰렸던 피해자 가족도 재심 신청한다

    ‘낙동강변 살인’ 위증으로 몰렸던 피해자 가족도 재심 신청한다

    경찰의 고문 수사로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피해자 가족들이 재심청구에 나선다.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최인철(60),장동익(63)씨는 지난 4일 재심을 통해 사건 발생 31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이들이 누명을 벗자 당시 재판 과정에서 억울하게 구속됐던 피해자 가족도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1990년 1월 4일 발생한 낙동강변 살인사건을 수사한 부산사하경찰서 경찰들은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뒤 강도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이어 1심 재판이 진행되던 1992년 최씨의 처남이 법정에서 사건 당일 최씨가 대구의 처가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증언했다. 하지만, 사하서는 이 증언을 위증이라며 이번엔 처남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최 씨의 아내가 동생에게 위증을 부탁해 법정에서 거짓 증언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최 씨의 처남은 위증 혐의로 그 해 5월, 아내는 위증교사 혐의로 6월에 각각 구속됐다. 두 사람은 7월 30일 1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각각 2개월과 1개월씩 옥고를 치렀다. 이 재판에서 최 씨의 처남은 징역 5월에 집행유예 1년을, 아내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최씨와 장씨 재심 변호를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이달 중순쯤 재심을 부산지법에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당시 처남의 증언은 사실이고,위증교사 또한 없었던 것으로 파악했다”며 “이들은 당시 살인자 가족으로 낙인찍혀 항소는 엄두도 못 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최 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만큼, 연관된 재판에서 위증으로 몰렸던 아내와 처남의 재심 또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이춘재 누명 쓴 동생 매질 또 매질… 결국 암 생겨 27세에 떠나”

    “이춘재 누명 쓴 동생 매질 또 매질… 결국 암 생겨 27세에 떠나”

    1990년 1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악기 공장에서 성실히 일하던 동생이 갑자기 사라졌다. 일주일 뒤 동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 벌어진 화성 여중생 살인사건(이춘재 9차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됐다는 뉴스에서였다. 영상 속 윤모(당시 20세)군은 모자이크 된 채였지만 영락없는 동생이었다. “그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일주일 동안 사라졌던 동생이 TV에 살인범으로 나오고 있었었으니까. 부모님이나 저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죠.” 지난 2일 경기 화성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난 윤씨의 형 윤동기(57)씨에겐 30년 전 그날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가족들이 동생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명백했다. 동생을 범인으로 지목한 경찰이 5일 동안 동생을 감금한 채 거짓 조서를 쓰게 했기 때문이다. “수사관들이 여럿 붙어서 겁박하고 마대자루에 넣어 때리는데 무슨 수로 버티겠어요. 가족한테서도 아무 연락이 없으니 ‘가족마저 나를 버렸구나’ 싶어 자포자기한 거였죠.” 동생은 밤낮없이 이어진 경찰의 가혹행위에 27차례나 거짓 진술서를 썼다. 남은 건 경찰이 불러준 대로 현장 검증을 하는 것뿐이었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윤씨는 곧장 변호사를 선임해 현장 검증이 이뤄지던 곳으로 향했다. “동생을 처음 딱 봤는데 덩치도 있던 녀석이 잔뜩 주눅이 들어선 고개를 들질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동생한테 가서 말했어요. “○○아 형이 왔다. 변호사도 사서 왔다. 담임선생님, 친구들, 동네 사람들 아무도 네가 했다고 생각 안 한다. 그러니까 이제 바른 대로 말해라”라고요. 그제서야 동생이 저를 보면서 “나는 범인 아닙니다” 하는 거예요. 그대로 검증이고 뭐고 전부 철수했죠.” 이튿날 동생은 전날보다 부은 얼굴에 반질반질한 연고를 잔뜩 바른 모습으로 면회실에 나타났다. ‘혐의를 부인한다며 경찰들이 또 매질을 한 거구나’라고 윤씨는 생각했다. 동생은 수사기관이 일본에 의뢰한 유전자 검사 결과가 도착해서야 겨우 살인 혐의를 벗었다. 그러나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기까지 3개월 동안 독방에 구금됐다. ●강제 추행 누명 씌워 집유… 3개월 독방 수감 윤씨는 경찰이 동생을 흉악범으로 만들기 위해 강제추행이라는 ‘누명’을 씌웠다고 보고 있다. 당시 피해자의 아버지였던 이발소 주인은 10여년 뒤 윤씨에게 ‘그땐 미안했다. 증거도 없고 범인이 누구라고 지목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도와 달라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동생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을 시간에 일어난 여러 건의 강제추행 혐의를 뚜렷한 증거 없이 엮으려 한 정황도 훗날 드러났다고 윤씨는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지만 평범한 삶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범인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탓일까. 동생의 몸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됐다. 첫 수술에서만 4개의 갈비뼈를 제거했다. 가장 역할을 하던 윤씨는 동생과 부모님이 충격을 받을까 봐 암이란 단어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얼마 뒤 동생의 병이 재발하면서 그마저도 소용없게 됐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아버지는 생전 땅을 사기 위해 모아 뒀던 돈을 5000원짜리 뭉치로 보자기에 고이 싸뒀었는데, 그 돈마저 동생의 변호사 선임비나 병원비에 전부 들어갔다. 강력한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 없게 된 동생을 집으로 데려온 것도 입원비를 댈 형편이 못 돼서였다. “몸에 주먹보다 커다란 욕창까지 생겨 매분 매초가 고통스러웠을 텐데 어떻게 집에서 버티겠습니까. 견디기 어려웠던 동생이 어머니한테 ‘뭐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해 어머니가 자릴 비웠을 때 직접 119에 연락해서 병원에 갔을 정도니까요.” 7살 터울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1997년 결국 스물일곱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재발 이후 5년간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동생은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서 당한 일들에 대해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범의 혈액형으로 알려졌던 B형(실제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기만 해도 잡혀 가던 시절이어서였는지, 가족들 모두 이미 고통 속에 살고 있어서였는지 윤씨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직 진범이 잡히지 않은 때였고, 사람들의 관심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 뒤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당시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나왔다. 감독은 이듬해 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에 용의자로 등장한 박현규(배우 박해일 분)의 모델이 1997년 병으로 사망한 공장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언급했다. 경찰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점, 외국(미국)에서 온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 결국 풀려 났다는 점 등 동생과 닮은 점이 많았다. 정작 윤씨는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동생을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한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을 그린 건데 어떻게 그걸 보겠습니까. 개봉 전에 동생에 대해 묻는 사람도 없었고, 거기 용의자로 나온 사람은 다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진범이 잡히기 전에 개봉한 영화라 당시엔 박현규가 진범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른 출연 배우도 시나리오상 박현규가 범인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9년 사건 발생 30여년 만에 경찰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이춘재를 지목했다. 1994년 처제를 강간한 후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그는 그해 10월 자신이 처제 살해 외에도 14건의 살인과 34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윤씨, 진범 이춘재 중학교 급우로 기억해 윤씨는 ‘이춘재’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중학교를 함께 다니며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급우였다. “설마설마했어요. 같은 중학교에 남학생이 120명밖에 없었는데 그중 하나였으니까.” 이춘재로 인해 억울한 일을 겪은 동생을 안타까워하던 윤씨는 동시에 과거 어머니가 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1980년대 중반 동네에서 칼에 13차례나 찔린 채로 발견됐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범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윤씨는 해당 범행이 이춘재의 소위 1차 연쇄 강간 사건(1986)보다 앞서 벌어진 것이긴 하나 이춘재의 범행 수법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봤다. “당시 어머니가 40대였는데 이춘재는 나이를 가리지 않았잖아요. 범행 도중에 입에 흙을 집어넣고 ‘서방은 뭘 하냐, 아들은 뭘 하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해요.” 어머니를 공격한 범인이 만일 이춘재라면, 그때 이춘재가 잡혔다면 가족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윤씨는 생각했다. ●어머니 동네서 13차례 칼에 찔려… 수법 유사 윤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윤씨는 진범이 드러나자 동생이 입은 피해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수사기관에 동생의 수사 자료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도 했다. A4 용지 6상자에 달하는 서류가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 받은 건 일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조사관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달 25일엔 이춘재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이나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 ‘초등생 살인사건’ 피해자 고 김현정양의 아버지 김용복씨와 함께 ‘이춘재 피해자들’을 대표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찾았다. 과거 공권력의 반인권적인 행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춘재가 자백한 살인 범죄는 모두 그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성폭행·강도 범행 34건 중 25건은 증거 부족이나 피해자 진술 부족 등을 이유로 범죄 혐의에서 빠진 상태다. 이춘재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다. 그때 당시 진범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던 피해자 외에도 수사기관의 무리한 수사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의 가족도 그만큼 고통받았다. “사람들이 물어봐요. 소송 생각은 안 해봤냐고. 지금까진 정말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럴 여력이 없었어요. 여길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였고요. 근데 이제 저희를 돕겠다고 나서 준 변호사들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동생의 억울한 마음도 풀고, 어머니 사건의 진상도 캤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혈안이 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던 나쁜 사람들 전부 책임을 져야지요.”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 놓고 경찰·법무부 ‘영장 신경전’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 놓고 경찰·법무부 ‘영장 신경전’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위장수사 법제화를 놓고 경찰과 법무부가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법’(아청법) 개정안에 대한 기관 간 입장차를 조율하기 위해 지난 3일 이용구 법무부 차관과 송민헌 경찰청 차장을 국회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는 위장수사를 위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지를 놓고 검찰과 경찰의 기싸움이 벌어졌고 견해 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장수사는 범인 검거를 위해 경찰이 신분을 속이고 수사 대상자와 접촉하거나 특정 조직에 잠입해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을 말한다. ‘n번방’ 사건과 같이 해외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행해지는 디지털 성범죄는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IP 추적이 어렵고 엄격한 보안체계를 유지해 수사가 쉽지 않아 위장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앞서 n번방이나 박사방 등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디지털 성범죄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해 점점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위장수사가 필수라는 게 경찰 입장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경찰의 권한 남용을 막으려면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헌법상 영장은 검사가 청구하면 판사가 발부한다. 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아청법 개정안은 경찰이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할 때 다른 방법으로는 범죄 실행을 저지할 수 없는 등의 경우 신분을 위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관 간 견해차가 큰 만큼 향후 개정안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논의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더라도 심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이춘재 대신 범인으로 몰려 고초 겪은 동생…암으로 27살에 세상 떠나”

    “이춘재 대신 범인으로 몰려 고초 겪은 동생…암으로 27살에 세상 떠나”

    이춘재 사건 범인으로 몰린 동생경찰 가혹행위에 27차례 거짓 진술유전자 불일치로 결국 무혐의 판정석방 후 원인불명 악성 종양 발견중학교 동창이던 이춘재 자백에피습 당한 어머니 사연 떠올라1990년 1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악기 공장에서 성실히 일하던 동생이 갑자기 사라졌다. 일주일 뒤, 동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 벌어진 화성 여중생 살인사건(이춘재 9차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됐다는 뉴스에서였다. 영상 속 윤모군(당시 20세)은 모자이크 된 채였지만 영락 없는 동생이었다. “그 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일주일 동안 사라졌던 동생이 TV에 살인범으로 나오고 있었었으니까. 부모님이나 저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죠.” 지난 2일 경기 화성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난 윤씨의 형 윤동기(57)씨에겐 30년 전 그날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가족들이 동생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명백했다. 동생을 범인으로 지목한 경찰이 5일 동안 동생을 감금한 채 거짓 조서를 쓰게 했기 때문이다. “수사관들이 여럿 붙어서 겁박하고 마대자루에 넣어 때리는데 무슨 수로 버티겠어요. 가족한테서도 아무 연락이 없으니 ‘가족마저 나를 버렸구나’ 싶어 자포자기 한 거였죠.” 동생은 밤낮없이 이어진 경찰의 가혹행위에 27차례나 거짓 진술서를 썼다. 남은 건 경찰이 불러준 대로 현장 검증을 하는 것 뿐이었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윤씨는 곧장 변호사를 선임해 현장 검증이 이뤄지던 곳으로 향했다. “동생을 처음 딱 봤는데 덩치도 있던 녀석이 잔뜩 주눅이 들어선 고개를 들질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동생한테 가서 말했어요. “○○아 형이 왔다. 변호사도 사서 왔다. 담임 선생님, 친구들, 동네 사람들 아무도 네가 했다고 생각 안 한다. 그러니까 이제 바른대로 말해라”라고요. 그제서야 동생이 저를 보면서 “나는 범인 아닙니다”하는 거에요. 그대로 검증이고 뭐고 전부 철수했죠.” 이튿날 동생은 전날보다 부은 얼굴에 반질반질한 연고를 잔뜩 바른 모습으로 면회실에 나타났다. ‘혐의를 부인한다며 경찰들이 또 매질을 한 거구나’라고 윤씨는 생각했다. 동생은 수사기관이 일본에 의뢰한 유전자 검사 결과가 도착해서야 겨우 살인 혐의를 벗었다. 그러나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기까지 3개월 동안 독방에 구금됐다. 윤씨는 경찰이 동생을 흉악범으로 만들기 위해 강제추행이라는 ‘누명’을 씌웠다고 보고 있다. 당시 피해자의 아버지였던 이발소 주인은 10여년 뒤 윤씨에게 ‘그 땐 미안했다. 증거도 없고 범인이 누구라고 지목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도와달라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동생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을 시간에 일어난 여러 건의 강제추행 혐의를 뚜렷한 증거 없이 엮으려 한 정황도 훗날 드러났다고 윤씨는 말했다. “억울하게 죽어 간 하나뿐인 동생”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지만 평범한 삶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범인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탓일까. 동생의 몸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됐다. 첫 수술에서만 4개의 갈비뼈를 제거했다. 가장 역할을 하던 윤씨는 동생과 부모님이 충격을 받을까봐 암이란 단어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얼마 뒤 동생의 병이 재발하면서 그마저도 소용없게 됐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아버지는 생전 땅을 사기 위해 모아뒀던 돈을 5000원짜리 뭉치로 보자기에 고이 싸뒀었는데, 그 돈마저 동생의 변호사 선임비나 병원비에 전부 들어갔다. 강력한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 없게 된 동생을 집으로 데려온 것도 입원비를 댈 형편이 못 돼서였다. “몸에 주먹보다 커다란 욕창까지 생겨 매분 매초가 고통스러웠을텐데 어떻게 집에서 버티겠습니까. 견디기 어려웠던 동생이 어머니한테 ‘뭐 좀 사다달라’고 부탁해 어머니가 자릴 비웠을 때 직접 119에 연락해서 병원에 갔을 정도니까요.” 7살 터울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1997년 결국 스물 일곱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재발 이후 5년간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동생은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서 당한 일들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범의 혈액형으로 알려졌던 B형(실제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기만 해도 잡혀가던 시절이어서였는지, 가족들 모두 이미 고통 속에 살고있어서였는지 윤씨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직 진범이 잡히지 않은 때였고, 사람들의 관심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살인의 추억, 어떻게 보겠나” 그로부터 5년 뒤,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당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나왔다. 감독은 이듬해 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에 용의자로 등장한 박현규(배우 박해일)의 모델이 1997년 병으로 사망한 공장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언급했다. 경찰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점, 외국(미국)에서 온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 결국 풀려났다는 점 등 동생과 닮은 점이 많았다. 정작 윤씨는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동생을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한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을 그린 건데 어떻게 그걸 보겠습니까. 개봉 전에 동생에 대해 묻는 사람도 없었고, 거기 용의자로 나온 사람은 다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진범이 잡히기 전에 개봉한 영화라 당시엔 박현규가 진범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른 출연 배우도 시나리오 상 박현규가 범인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9년, 사건 발생 30여년 만에 경찰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이춘재를 지목했다. 1994년 처제를 강간 후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중이던 그는 그해 10월 자신이 처제 살해 외에도 14건의 살인과 34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피습 당한 어머니 사건 해결됐더라면” 윤씨는 ‘이춘재’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중학교를 함께 다니며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급우였다. “설마설마 했어요. 같은 중학교에 남학생이 120명 밖에 없었는데 그 중 하나였으니까.” 이춘재로 인해 억울한 일을 겪은 동생을 안타까워하던 윤씨는 동시에 과거 어머니가 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1980년대 중반 동네에서 칼에 13차례나 찔린 채로 발견됐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범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윤씨는 해당 범행이 이춘재의 소위 1차 연쇄 강간 사건(1986)보다 앞서 벌어진 것이긴 하나 이춘재의 범행 수법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봤다. “당시 어머니가 40대였는데 이춘재는 나이를 가리지 않았잖아요. 범행 도중에 입에 흙을 집어 넣고 ‘서방은 뭘 하냐, 아들은 뭘 하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해요.” 어머니를 공격한 범인이 만일 이춘재라면, 그 때 이춘재가 잡혔다면 가족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윤씨는 생각했다. 윤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윤씨는 진범이 드러나자 동생이 입은 피해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수사기관에 동생의 수사자료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도 했다. A4용지 6상자에 달하는 서류가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 받은 건 일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조사관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달 25일엔 이춘재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이나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 ‘초등생 살인 사건’ 피해자 고 김현정 양의 아버지 김용복씨와 함께 ‘이춘재 피해자들’을 대표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찾았다. 과거 공권력의 반인권적인 행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춘재가 자백한 살인 범죄는 모두 그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성폭행·강도 범행 34건 중 25건은 증거 부족이나 피해자 진술 부족 등을 이유로 범죄 혐의에서 빠진 상태다. 이춘재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다. 그 때 당시 진범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던 피해자 외에도 수사 기관의 무리한 수사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의 가족도 그만큼 고통받았다. “사람들이 물어봐요. 소송 생각은 안해봤냐고. 지금까진 정말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럴 여력이 없었어요. 여길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였고요. 근데 이제 저희를 돕겠다고 나서준 변호사들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동생의 억울한 마음도 풀고, 어머니 사건의 진상도 캤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 혈안이 되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던 나쁜 사람들 전부 책임을 져야지요.” 화성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아파트 돌아다니며 설선물 테러…초등생 3명 잡았다

    아파트 돌아다니며 설선물 테러…초등생 3명 잡았다

    대구 달성군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 택배를 연이어 파손하고 식용유·밀가루를 바닥과 도어락에 뿌린 범인이 붙잡혔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3명이었다. 6일 달성경찰서는 해당 아파트에 있는 CCTV를 분석한 결과 범인은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3명으로 확인돼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 4일 아파트 주민이 직접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화제가 됐다. 이 주민은 ‘아파트 난리났네요’라는 제목으로 “초등학생 3명이 아파트 각 동을 돌아다니면서 택배 포장을 다 뜯고, 여기저기 다 던져놨다. 선물 세트로 온 식용유나 밀가루, 로션 크림, 건강보조제, 과일 등도 닥치는 대로 오만 곳에 다 뿌려놓고 밟아서 터뜨려놨다”고 밝혔다. 사진에는 아파트 복도 바닥에는 밀가루가 흩어져 있고, 아파트 계단에는 “기름으로 미끄러우니 계단출입을 삼가주시기 바란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게시자는 “주민 한 분은 식용유를 밟고 넘어지셨다. 세대 도어락에도 로션을 떡칠해 놔서 도어락이 고장난 집만 5~6세대”라며 “경찰차 6대가 왔고, 이후 폐쇄회로(CC)TV 영상으로 잡았다”고 심각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주민들도, 관리실도, 입주자대표회의도, 초등학생 부모들도 다 멘붕”이라며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요? 초등학생이라 처벌도 안 된다고 들은 것 같다. 내일도 지옥문이 열릴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사건을 저지른 학생 3명 중에는 10세 미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만 10세 미만은 ‘범법소년’에 해당돼 범행의 고의성이 있어도 형사처분과 보호처분 모두 받지 않는다. 만 10세~14세 미만인 ‘촉법소년’은 형사처분 대신에 보호처분만 받게 된다. 다만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자 보호자에게 민법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부모들이 자체적으로 피해 변상하겠다고 약속한 상황이다. 다른 조치에 대해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정부 ‘약촌오거리 배상 사건‘ 항소 포기… 수사 형사·검사는 항소

    정부 ‘약촌오거리 배상 사건‘ 항소 포기… 수사 형사·검사는 항소

    지난 2000년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이후1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가 정부와 당시 수사담당 형사, 진범을 불기소 처분한 검사로부터 13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은 가운데 정부가 5일 항소포기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당시 수사담당 형사는 지난달 29일, 진범을 불기소 처분한 검사는 1일 항소심 재판이 진행된다. 법무부는 5일 “약촌오거리 사건 피해자가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의 1심 국가일부패소 판결에 대한 항소 포기를 승인했다”면서 “피해자의 약 10년간의 억울한 옥고 생활과 가족들의 피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 및 가족들의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해 항소 포기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법무부는 또 국가의 배상책임이 명백하고, 1심 판결에서 인용된 위자료 액수가 다른 과거사 사건에서 국가배상금으로 인용된 액수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달 13일 정부 배상책임을 규정한 1심 법원 판결이 확정된다면 피해자에 대한 정부 배상 절차가 진행된다. 그러나 일부 피고들의 항소로 2심 재판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에 정부 배상 절차도 그만큼 지연될 여지가 커졌다. 약촌오거리 사건은 2000년 8월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의 버스정류장 앞길에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다방 배달일을 하던 당시 15세의 피해자가 경찰의 가혹행위 때문에 허위자백을 해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사건 발생 3년 뒤인 2003년 경찰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확보해 재조사, 진범의 자백까지 받아냈지만 검찰은 진범을 불구속 수사지휘한데 이어 2006년 진범의 번복 진술을 근거로 불기소 처분했다. 피해자는 지난 2010년 만기출소해 2013년 재심을 청구, 2016년 11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경찰, 낙동강 살인사건 재심 무죄에 사과

    경찰, 낙동강 살인사건 재심 무죄에 사과

    경찰의 고문으로 살인죄 누명을 쓰고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해자 2명에게 경찰이 공식 사과했다. 경찰청은 5일 사과문을 통해 “재심 청구인과 피해자, 가족 등 모든 분들께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수사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와 인권중심 수사원칙을 지키지 못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며 이로 인해 재심 청구인 등에게 큰 상처를 드린 점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재심 판결 선고문과 재판에서 확인된 수사상 문제점을 분석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앞으로 수사단계별 인권보호 장치를 촘촘히 마련해 수사 완결성을 높이고 공정한 책임수사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낙동강변에서 괴한들이 승용차를 타고 데이트하던 남녀를 납치해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하고 남성을 다치게 한 사건이다. 경찰은 사건 발생 1년 10개월 뒤 최인철(당시 30세)씨와 장동익(33)씨를 용의자로 붙잡았다.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 복역한 두 사람은 2013년 모범수로 풀려났다. 두 사람은 검찰 수사 때부터 경찰의 고문을 당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검찰청 과거사위원회는 2019년 4월 고문으로 이 사건의 범인이 조작됐다고 발표했고 부산고법은 전날 두 사람이 청구한 재심에서 강도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경찰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낙동강변 살인’ 31년 만에 무죄

    경찰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낙동강변 살인’ 31년 만에 무죄

    살인죄 누명을 쓴 채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른바 ‘낙동강변 살인 사건’ 피해자들이 31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당시 고문한 경관 등의 공개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부장 곽병수)는 4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한 최인철(60), 장동익(63)씨가 낸 재심청구 선고 재판에서 강도살인 혐의 등에 대해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또 최씨의 공무원 사칭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6개월 선고유예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이 영장 없이 이들을 불법으로 체포했고 수사 과정에서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는 점, 당시 함께 수감된 사람들의 진술, 고문과 가혹행위로 이뤄진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무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무죄 선고 뒤 최씨는 “누명을 벗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쁘다”면서도 고문 경찰관에 대해 “그런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겠느냐. 그 사람들은 악마다. 절대 용서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장씨도 “저와 같은 사람이 더 있어선 안 된다. 100명의 진범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낙동강변 살인 사건은 1990년 1월 4일 낙동강변에서 데이트하던 남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사건으로 당시 미궁에 빠졌다. 사건 발생 1년 10개월여 뒤 경찰은 최씨와 장씨를 살인 용의자로 검거했다. 이들은 검찰에서도 고문을 당해 허위 자백했다며 억울함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최씨 등은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한 끝에 2013년 모범수로 출소했다. 최씨 등은 2017년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사건 관할이 부산고법에 있다는 이유로 사건이 2018년 1월 고법으로 이송됐다. 이후 부산고법은 6차례의 심문을 벌여 지난해 1월 재심 결정을 내렸다. 2019년 4월 대검 과거사위원회가 고문 등으로 범인이 조작됐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재심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변호사 시절 변호인을 맡아 주목받기도 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의자 무죄 ...31년 만에 누명 벗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의자 무죄 ...31년 만에 누명 벗었다

    살인죄 누명을 쓴 채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른바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들이 31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곽병수)는 4일 강도살인 피의자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최인철(60),장동익(63) 씨가 낸 재심청구 선고 재판에서 강도살인 혐의 등에 대해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씨의 공무원 사칭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6개월 선고유예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이 영장 없이 이들을 불법으로 체포했고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와 물고문 행위를 당했다며 일관되게 진술하는 점, 당시 함께 수감된 사람들의 진술 ,고문과 가혹행위로 이뤄진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는 점 등을 종합해볼때 무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낙동강변에서 데이트하던 남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사건으로 당시 미궁에 빠졌다. 사건 발생 1년 10개월 여뒤 경찰은 최씨와 장씨를 살인 용의자로 검거했다. 이들은 검찰에서도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했다며 억울함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결국 법정에서 최씨 등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하고 2013년 모범수로 출소했다. 2019년 4월 대검 과거사위원회로 부터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재심 논의가 본격 이뤄졌다. 앞서 법원은 최 씨 등이 2017년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사건 관할이 부산고법에 있다는 이유로 2018년 1월 고법으로 이송했다.이후 부산고법은 6차례의 심문을 벌이고 지난해 1월 재심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변호사 시절 변호인을 맡아 주목받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2016년 이 사건을 다룬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35년 변호사를 하면서 한이 남는 사건”이라고 말 한 적이 있다. 재판부는 판결후 “공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인권 침해가 의심되는 경우를 별도의 재심사유로 규정할 것인지 등을 고민해야한다”며 “재심청구인들과 가족들에게 30년 가까운 기간에 걸친 고문 피해의 호소에 이제야 일부라도 응답하게 된 것에 사과한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잠실세무서에서 흉기 난동…범인 사망·3명 부상

    잠실세무서에서 흉기 난동…범인 사망·3명 부상

    서울 잠실세무서에서 한 남성이 세무서 직원들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3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쯤 송파구 잠실세무서 3층 민원실에서 50대 남성인 피의자 A씨가 세무서 직원 3명을 흉기로 찔렀다. 이후 A씨는 무언가를 꺼내 마신 뒤에 바닥에 쓰러졌다. A씨는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흉기에 찔린 세무서 직원들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현재까지 A씨는 잠실세무서에 자주 방문하는 사람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가해자는 세무서 직원들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며 “국세청에서 정황 조사를 하고 있으나 피해자들이 충격을 받아 조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독극물 검사 등을 통해 A씨의 사망 원인과 A씨의 범행 경위, 동기 등을 확인 중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서울 잠실세무서 흉기 난동…범인 사망·3명 부상(종합)

    서울 잠실세무서 흉기 난동…범인 사망·3명 부상(종합)

    피해자 3명 부상…생명 위독하지 않아 서울 잠실세무서에서 민원인이 흉기로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1분쯤 송파세무서에서 민원인 A씨가 남성 1명과 여성 2명 등 총 3명에게 상처를 입힌 뒤 자해했다. 범행은 3층 민원실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피해자들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생명이 위독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확한 범행 경위와 동기 등을 확인 중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경찰에서 ‘송파세무서’가 아닌 ‘잠실세무서’라고 알려와 수정합니다.
  • ‘약촌오거리’ 경찰 이어 檢도 배상 불복 항소

    ‘약촌오거리’ 경찰 이어 檢도 배상 불복 항소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 최모(37)씨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에 대해 당시 수사 검사가 불복해 항소했다. 2일 법원에 따르면 2003년 진범을 불기소 처분한 전직 검사 김모씨는 전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 이성호)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최씨에게 가혹행위를 해 거짓 자백을 받아냈던 전직 경찰 이모씨도 지난달 29일 항소하면서 이 사건은 서울고법에서 다시 판단을 받게 됐다. 피해자 측 박준영 변호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검사 김씨가 항소를 하기 전 내게 연락해 항소가 책임을 부인하기 위함은 아니라면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겠다고 했다”면서 “사과를 한다면 피해자는 검사가 지는 손해배상 책임을 감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달 13일 최씨와 가족들이 제기한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총 16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고, 김씨와 이씨가 각각 전체 배상금의 20%를 부담하도록 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약촌오거리’ 검사도 손해배상 불복 항소…박준영 변호사의 ‘변’(종합)

    ‘약촌오거리’ 검사도 손해배상 불복 항소…박준영 변호사의 ‘변’(종합)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최모(37)씨에게 국가와 경찰관, 검사 등이 13억원의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에 해당 경찰이 항소한 데 이어 전직 검사도 판결에 불복해 항소에 나섰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직 검사 김모씨의 소송을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은 전날 서울중앙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사 김씨와 함께 소송에서 패소한 전직 경찰관 이모씨도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29일 항소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은 상급심 법원인 서울고법의 판단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건 목격자가 경찰의 고문·폭행에 범인으로 최씨는 16세였던 2000년 전북 익산 영등동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택시 운전기사 유모(당시 42세)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년을 확정받고 복역했다. 최씨는 당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 수사에 협조했지만 오히려 경찰로부터 폭행과 고문을 당해 범인으로 몰렸다. 견디다 못한 최씨는 결국 “시비 끝에 택시기사를 살해했다”며 거짓 자백을 했고, 재판은 정황증거와 진술만으로 진행됐다. 진범 찾았는데…검사 “물증 없다” 종결 처리 최씨의 억울한 옥살이가 10년까지 이어지지 않을 기회도 있었다. 최씨가 복역 중이던 2003년 수사기관은 2003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용의자 김모(40)씨를 붙잡았다. 그러나 검찰은 확실한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용의자 김씨를 기소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처리했다. 10년간 복역 후 2010년 만기출소한 최씨는 억울한 복역에 더해 사망한 택시기사의 사망보험금 1억 4000만원에 대해 구상권 청구를 당하자 2013년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허위로 자백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2016년 11월 “피고인이 불법체포·감금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다”면서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의 판결로 진범 김씨는 구속됐고,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을 확정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법원 “국가가 최씨·가족에게 16억원 지급” 지난달 13일에는 최씨가 억울한 옥살이에 대해 국가와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검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최씨의 승소로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 이성호)는 국가가 최씨에게 13억여원, 최씨 어머니와 동생에게 3억원 등 총 16억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경찰·검사도 배상금 부담해야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 이씨와 검사 김씨는 전체 배상금 중 각각 20%씩 부담해야 한다. 이씨는 사건 당시 최씨를 강압 수사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경찰 중 한 명이고, 김씨는 최씨의 수감 이후 진범으로 밝혀진 용의자를 불기소 처분한 검사다. 재판부는 “익산경찰서 경찰들이 영장 없이 원고 최씨를 여관에 불법 구금해 폭행하고 범인으로 몰아 자백 진술을 받아냈다”며 “사회적 약자로서 무고한 원고에 대해 아무리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도 과학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위법한 수사를 했다”고 지적했다. 또 “검사는 최초 경찰에서 진범의 자백 진술이 충분히 신빙성이 있었는데도 증거를 면밀히 파악하지 않고 경찰의 불기소 취지 의견서만 믿고 불기소 처분을 했다”며 “이는 검사로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위법”이라고 설명했다. 박준영 변호사 “검사, 항소 전 전화…사과 뜻 전해” 한편 최씨의 소송대리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검사가 항소가 책임을 부인하는 차원이 아니라고 전해왔다며 다각적인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검사(김씨)가 항소를 하기 전 제게 전화를 걸어왔다”며 “항소가 책임을 부인하기 위함은 아님을,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도 책임을 그대로 져야 한다면 누가 용기를 낼 수 있을까”라며 “이 사건의 과오를 가지고 해당 검사의 공직생활 전반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옳지 않다”고 썼다. 아울러 “검사가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진정성 있게 사과한다면 최씨와 가족들은 검사가 지는 손해배상 책임을 감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21세 청년 억울하게 사형당한 ‘중국판 이춘재’ 사건…진범 사형집행

    21세 청년 억울하게 사형당한 ‘중국판 이춘재’ 사건…진범 사형집행

    ‘여성 4명 성폭행 뒤 살해’ 진범 사형집행1995년 21세 청년이 누명 쓰고 사형당해2005년 진범 자백으로 ‘오심사형’ 논란‘오심사형’ 유족, 4억 3천만원 배상받아 중국의 대표적인 ‘오심 사형’으로 꼽히는 사건의 진범에 대해 당국이 사형을 집행했다. 2일 온라인 매체 펑파이에 따르면 허베이성 한단시 중급인민법원은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죄를 저지른 왕수진을 이날 형장으로 압송해 사형시켰다. 그는 지난 1993년 11월 허베이성 스자좡 교외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하는 등 1995년 7월부터 모두 4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하거나 살해하려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 여성 4명 중 1명만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법원은 “왕수진이 고의로 살인을 저질렀고, 수단이 잔인하며 결과가 심각하다”며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판시했다.문제는 앞서 스좌장 사건으로 엉뚱한 인물이 이미 사형됐다는 점이다. 21세 청년 녜수빈이 스자좡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1994년 체포됐고, 다음해 사형이 집행됐다. 녜수빈이 억울하게 사형당한 진실은 10년 후인 2005년 왕수진의 자백을 통해 드러났다. 왕수진은 공안 조사 과정에서 여러 명의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고 자백했는데, 피해자 중 녜수빈이 죽였다는 여성도 포함됐던 것이다. 왕수진의 진술로 당시 중국 내에서 ‘오심 사형’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고, 당국은 이 사건을 중대사건으로 규정해 재수사를 벌였다.녜수빈은 결국 2016년 최고인민법원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됐다. 허베이성 고급인민법원은 이듬해 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국가가 부모에게 268만 위안(약 4억 3537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부모는 당초 1391만 위안(약 23억 6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중국판 이춘재’ 사형 집행…누명 쓰고 죽은 청년의 억울한 사연

    ‘중국판 이춘재’ 사형 집행…누명 쓰고 죽은 청년의 억울한 사연

    ‘중국판 이춘재’의 사형이 집행됐다. 2일 펑파이 등 현지매체는 부녀자 4명을 강간·살해한 왕슈진(王书金)에 대해 사형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날 허베이성 한단시 중급인민법원은 최고인민법원 허가 아래 왕씨를 처형했다. 최고인민법원은 1993년 11월과 1994년 11월, 1995년 7월과 9월 허베이성 한단시 광핀현에서 발생한 4건의 부녀자 강간·살인 및 살인미수사건에 대해 왕슈진의 유죄가 인정된다며 사형 집행을 명령했다. 최고인민법원은 1982년 이미 다른 강간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왕슈진이 범행을 뉘우치지 않고 출소 후에도 일관되게 강간과 살인이라는 악질적 범행을 일삼았으며, 범행 수법이 악랄하고 잔인해 사회에 큰 위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다만 왕슈진이 진범을 자청한 ‘스자좡 옥수수밭 강간살인사건’은 끝내 그의 범행으로 인정되지 않아 영구 미제로 남게 됐다. 왕슈진은 2005년 1월 허난성 싱양시의 한 벽돌공장에서 일할 당시 춘절 기간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것을 수상히 여긴 공안에게 붙잡혔다. 검문에서 가짜 신분이 들통난 그는 자신이 허베이성에서 6건의 강간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그가 자백한 범행 6건 중에는 1994년 8월에 발생한 ‘스자좡 옥수수밭 강간살인사건’도 포함돼 있었다. 해당 사건은 사건 두달 만에 동네 청년 니에수빈(聂树斌, 당시 21세)이 범인으로 체포돼 이듬해 사형까지 일사천리로 마무리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10년 만에 나타난 왕슈진이 그 사건의 진범이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하나의 살인사건에 범인이 둘인 상황이 되어버린 셈이다. 왕슈진의 자백대로라면 니에수빈은 무고한 희생자였다. 니에수빈은 체포 때부터 줄곧 억울함을 주장했다. 모친 역시 아들이 누명을 쓰고 살인범으로 몰렸다고 탄원했다. 항소심에서 검찰마저 자백만 있을 뿐 다른 증거는 없다며 수정 형을 요청했다. 하지만 사형은 예정대로 집행됐고, 니에수빈은 체포 7개월 만에 총살당했다. 사법기관에게도 찝찝함으로 남은 니에수빈 사건은 왕슈진 등장으로 10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수사기관 판단은 달랐다. 왕슈진 자백을 검증한 수사기관은 스자좡 사건 등을 뺀 나머지 사건만 혐의가 인정된다며, 총 4건의 강간살인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검찰 역시 4건의 범죄 사실만이 명백하고 증거가 확실하며 공소 요건이 충족된다고 판단해 그를 기소했다. 2007년 1심 판결에서 왕슈진에게 사형을 선고한 한단시 중급인민법원 역시 스자좡 사건은 배제했다. 왕슈진은 반발했다. 자신이 범행을 자백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2013년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이 타당하다며 사형 선고를 유지했다. 다만 니에수빈 사형이 정당했는지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음을 인정, 오랜 재심 끝에 2016년 12월 니에수빈에게 무죄를 선고했다.최고인민법원은 니에수빈 유가족에게 국가가 268만 위안(약 4억 6300만 원)을 보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년 만에 아들의 누명을 벗기게 된 니에수빈의 어머니는 “왕슈진이 아니었다면 무죄 판결도 끌어내지 못했겠지만, 이미 아들은 그가 저지른 범죄 때문에 세상을 떠난 뒤”라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제는 니에수빈 어머니의 생각과 달리 스자좡 사건이 영원히 미제로 남게 됐다는 점이다. 2일 왕슈진 사형을 집행하면서도 최고인민법원은 끝까지 스자좡 사건이 그의 범행이 아니라고 봤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증거 불충분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고인민법원 형사3조정부 책임자는 “아무리 자백을 했더라도 피고인의 진술만 있을뿐 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에는 유죄 성립이 불가하다. 반대로 피고인 진술이 없더라도 증거가 확실하고 충분하면 유죄 선고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니에수빈이 사후에나마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처럼, 왕슈진도 스자좡 사건 진범으로 보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그의 자백이 스자좡 사건의 핵심 내용과 다른 점도 있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왕슈진과 같은 성범죄자에 대해 중국은 형범 제236조에 따라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을 구형한다.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나 2인 이상의 집단 성폭행 사건, 중상 혹은 사망과 같은 엄중한 결과를 초래한 사건에 대해서는 최대 사형까지 선고한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약촌오거리 사건’ 경찰 이어 검사도 손해배상 불복해 항소

    ‘약촌오거리 사건’ 경찰 이어 검사도 손해배상 불복해 항소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최모(37)씨에게 국가와 경찰관, 검사 등이 13억원의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에 해당 경찰이 항소한 데 이어 전직 검사도 판결에 불복해 항소에 나섰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직 검사 김모씨의 소송을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은 전날 서울중앙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사 김씨와 함께 소송에서 패소한 전직 경찰관 이모씨도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29일 항소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은 상급심 법원인 서울고법의 판단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건 목격자가 경찰의 고문·폭행에 범인으로 최씨는 16세였던 2000년 전북 익산 영등동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택시 운전기사 유모(당시 42세)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년을 확정받고 복역했다. 최씨는 당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 수사에 협조했지만 오히려 경찰로부터 폭행과 고문을 당해 범인으로 몰렸다. 견디다 못한 최씨는 결국 “시비 끝에 택시기사를 살해했다”며 거짓 자백을 했고, 재판은 정황증거와 진술만으로 진행됐다. 진범 찾았는데…검사 “물증 없다” 종결 처리 최씨의 억울한 옥살이가 10년까지 이어지지 않을 기회도 있었다. 최씨가 복역 중이던 2003년 수사기관은 2003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용의자 김모(40)씨를 붙잡았다. 그러나 검찰은 확실한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용의자 김씨를 기소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처리했다. 10년간 복역 후 2010년 만기출소한 최씨는 억울한 복역에 더해 사망한 택시기사의 사망보험금 1억 4000만원에 대해 구상권 청구를 당하자 2013년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허위로 자백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2016년 11월 “피고인이 불법체포·감금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다”면서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의 판결로 진범 김씨는 구속됐고,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을 확정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법원 “국가가 최씨·가족에게 16억원 지급” 지난달 13일에는 최씨가 억울한 옥살이에 대해 국가와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검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최씨의 승소로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 이성호)는 국가가 최씨에게 13억여원, 최씨 어머니와 동생에게 3억원 등 총 16억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경찰·검사도 배상금 부담해야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 이씨와 검사 김씨는 전체 배상금 중 각각 20%씩 부담해야 한다. 이씨는 사건 당시 최씨를 강압 수사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경찰 중 한 명이고, 김씨는 최씨의 수감 이후 진범으로 밝혀진 용의자를 불기소 처분한 검사다. 재판부는 “익산경찰서 경찰들이 영장 없이 원고 최씨를 여관에 불법 구금해 폭행하고 범인으로 몰아 자백 진술을 받아냈다”며 “사회적 약자로서 무고한 원고에 대해 아무리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도 과학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위법한 수사를 했다”고 지적했다. 또 “검사는 최초 경찰에서 진범의 자백 진술이 충분히 신빙성이 있었는데도 증거를 면밀히 파악하지 않고 경찰의 불기소 취지 의견서만 믿고 불기소 처분을 했다”며 “이는 검사로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위법”이라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57억 횡령·뇌물수수’ 홍문종 1심 4년형

    ‘57억 횡령·뇌물수수’ 홍문종 1심 4년형

    홍문종(66) 친박신당 대표가 50억원대 횡령과 뇌물수수 혐의가 1심에서 유죄로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김미리)는 1일 홍 대표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범인도피 교사 혐의에 징역 3년을, 뇌물수수 혐의에 징역 1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도주할 우려가 없어 법정 구속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홍 대표가 국회 미래창조방송통신위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2013년 6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IT업체 관계자로부터 고급 차량을 제공받은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뇌물 액수를 산정할 수 없는 경우라 보고 특가법상 뇌물수수 대신 형법상 뇌물수수죄만 인정했다. 2012년 사학재단인 경민학원 이사장·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서화 매매대금 명목으로 교비 24억원을 지출한 뒤 돌려받은 혐의, 2010년 의정부 소재 건물을 경민대 교비로 사들이면서도 기부받는 것으로 처리해 경민대 재산을 경민학원으로 전출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다만 IT 관계자로부터 공진단과 현금 등 3000만원을 받은 혐의와 다른 횡령·배임 혐의는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단을 받았다. 검찰은 홍 대표에게 총 75억원대 횡령·배임과 8200여만원의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고, 재판부는 57억원의 횡령과 액수를 산정할 수 없는 뇌물수수를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정해진 용도로만 사용해야 할 학원과 학교 재산을 개인 재산처럼 전횡해 등록금을 낸 학생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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