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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 혀’ 가진 미라, 이집트서 발견… “저승의 왕과 대화”

    ‘황금 혀’ 가진 미라, 이집트서 발견… “저승의 왕과 대화”

    이집트에서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들과 독특한 형태의 ‘황금 혀’ 미라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집트 유물부의 지난달 29일 공식 발표에 따르면 현재의 아부시르 인근에 존재했던 고대도시인 타포시라스 마그나 내의 매장실 16곳이 발견됐다. 16곳 중 한 곳에 매장돼 있던 미라의 입 안은 혀 모양의 황금으로 꾸며져 있었다. 미라의 주인은 약 2000년 전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 이집트를 다스렸던 프롤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5~30년) 시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인이 사후세계에서도 말을 할 수 있도록 황금을 이용한 혀를 만들어 함께 매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세상을 떠난 고인은 혀가 제거된 채 방부처리 됐으며 이후 황금으로 만든 혀로 대체됐다. 황금 혀가 있다면 고인이 내세에서 오시리스와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약 2000년 전 전에는 죽은 사람의 혀를 내어주면 오시리스가 그들의 영혼에 자비를 베풀어 줄 것으로 믿었다”면서 “황금 혀를 가진 유골은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해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오시리스는 땅의 신 게브와 하늘의 신 누트의 아들로, 죽은 자들의 신으로 숭배돼 왔다. 저승의 왕이 된 오시리스는 식물의 싹이 나는 것에서부터 나일 강의 연례적인 범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지하세계로부터의 생명을 부여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다만 고인이 생전 언어 장애가 있었는지, 특별히 황금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해당 유적지에서는 황금 혀를 가진 유골 외에도 여성을 위한 장례식 가면이나 황금 조각, 황금 화환과 대리석 가면 등의 유물이 추가로 발견됐으며, 특히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가면은 높은 수준의 장인정신과 이를 착용한 사람의 특징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포토] 홍수로 사라진 중국 지린성 투먼의 관광 조형물

    [포토] 홍수로 사라진 중국 지린성 투먼의 관광 조형물

    중국 지린성 투먼(圖們)에서 바라본 북한 남양. 2019년 9월(위)에는 있던 두만강 변 관광 조형물이 지난해 10월(아래)에는 사라진 상태다. 지난여름 홍수로 두만강이 범람해 투먼 일부 지역이 침수됐던 만큼 맞은편 북한도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 WHO “코백스 백신 배송 지연될 지도…” 주요국 백신 사재기 비판

    WHO “코백스 백신 배송 지연될 지도…” 주요국 백신 사재기 비판

    WHO 사무총장 “지난해 44건·올해 12건 제조사-국가 간 직접 공급계약”“부국의 백신 선확보… 부국에선 3900만회·빈국에선 25회 접종 양극화” “백신 이기주의 범람 때문에 우리는 참혹한 도덕적 실패 직전에 와 버렸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18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백신 분배의 불공정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최근 열린 WHO 이사회에서 “부유한 나라의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가난한 국가 취약계층보다 앞서 백신을 맞는 것은 불공정 행위”라며 이같이 말했다. WHO는 49개 부유국이 제조사와 직거래를 통해 3900만회 백신 접종을 실시한 반면, 가난한 국가에선 25회분 접종이 이뤄지는 실상이라고 지적했다.부유국들이 백신 제조사와 직거래를 하면서 다음달로 예정된 코백스(COVAX) 백신 배포가 지연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코백스는 WHO가 코로나19 백신의 전 세계 원활한 공급을 위해 백신 생산시설에 공동투자해 백신을 확보, 전 세계에 배분하는 프로그램이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지난해 백신 제조사와 국가 간 44건의 양자간 공급 계약이 체결됐고, 올해 들어 최소 12개의 계약이 더 맺어졌다”면서 “이 계약들의 여파로 코백스 배송이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백신 이기주의가 강해질수록 코로나19와 경기침체로부터의 회복이 늦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국가들이 백신 사재기보다 공정한 분배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역대 가장 큰 공룡 타이틀 바뀌나…신종 추정 용각류 화석 발견

    역대 가장 큰 공룡 타이틀 바뀌나…신종 추정 용각류 화석 발견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된 화석으로 남아있는 한 공룡이 지금까지 지구상에 등장한 가장 큰 육지 동물일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아르헨티나 과학연구위원회 등 연구진은 2012년 네우켄주 칸델레로스(Candeleros) 지층에서 현지 고생물학자들이 처음 발굴한 공룡 화석을 자세히 분석해 가장 큰 용각류인 티타노사우루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아냈다.티타노사우루스는 거대한 몸집과 기둥처럼 두꺼운 네 다리 그리고 긴 목과 꼬리로 특징지어지는 공룡 집단이다. 연구진은 이 화석 속 공룡이 아직 신종인지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기존 용각류 화석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번 발견은 전문가들은 몇백만 년 전 거대 공룡 용각류가 어떻게 진화했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더욱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번 공룡 화석은 칸델레로스 지층에서도 진흙투성이었던 범람원의 퇴적층으로 추정되는 부분에서 나왔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칸델레로스 층에서 부분적으로 발굴된 이 티타노사우루스는 가장 큰 티타노사우루스 중 하나로 여겨질 수 있다”면서 “아마 파타고티탄이나 아르젠티노사우루스와 체질량이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2012년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발굴된 파타고티탄은 몸길이 37m에 달하고 몸무게는 무려 76t에 이르며, 아르젠티노사우루스는 몸길이 35m, 몸무게 70t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번에 발견된 티타노사우루스의 몸길이는 37m보다 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현재 ‘MOZ-Pv 1221’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이번 화석 표본은 일부 꼬리 척추뼈와 골반뼈 24점뿐이지만, 앞으로 같은 지층에서 더 많은 화석 골격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연구진은 이 공룡의 다리 뼈들도 발견했지만 아직 발굴하지 못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발굴된 화석의 부분적인 특성으로는 아직 이 공룡이 살아있을 때 몸무게가 얼마나 많이 나갔는지를 추정할 수 없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연구진에 따르면, 나우켄주는 약 9800만 년 전 수많은 용각류 종의 서식지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각각의 용각류 종은 생태계와 먹이사슬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연구진은 “이 지층에서 발견된 이 공룡 화석은 백악기 후기가 시작했을 때 작은 크기의 리브바치사우루스와 가장 크거나 중간 크기의 티타노사우루스가 공존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백악기 연구’(Cretaceous Research) 최신호(1월 12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트로트 예능 홍수 속 표절 분쟁까지…TV조선, MBN에 소송한다

    트로트 예능 홍수 속 표절 분쟁까지…TV조선, MBN에 소송한다

    ‘내일은 미스트롯’과 ‘내일은 미스터트롯’ 이후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이 범람하자 TV조선이 비슷한 포맷을 선보인 타 방송사에 표절 소송을 내기로 했다. TV조선은 MBN ‘보이스트롯’과 ‘트롯파이터’가 자사의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 포맷을 표절했다는 내용증명을 MBN에 발송했고 조만간 소장을 접수한다고 18일 밝혔다. ‘보이스트롯’과 ‘트롯파이터’ 재방송 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할 수도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TV조선이 2019년 2월 ‘미스트롯’, 지난해 1월 ‘미스터트롯’ 시리즈를 선보인 뒤 MBN은 지난해 7월 트로트 오디션 ‘보이스트롯’, 12월 ‘보이스트롯’ 우승자 등이 출연하는 ‘트롯파이터’를 시작했다. 국내 방송사 간 표절 소송은 매우 드물지만 TV조선은 “방송사의 독창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소송 이유를 설명했다. TV조선 측은 “지난해 12월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증명을 여러 차례 발송했으나, MBN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아 소송으로까지 번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앞서 트로트 예능이 붐을 이루면서 지상파를 비롯한 대부분의 방송사는 지난해 오디션 프로그램을 줄줄이 제작했다. 꾸준한 시청률을 거두자 비슷한 예능 프로그램이 쏟아졌고, 최근에는 시청자의 피로감 등이 문제로 꼽히기도 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반년 지나서야… 호남 물난리 따져보겠다는 속셈 모를 정부

    정부가 6개월 만에 전북 진안 용담댐과 임실 섬진강댐 하류지역 수해 원인 조사에 나서 ‘늑장 대응’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전북도는 환경부가 1월 중에 용담댐·섬진강댐 하류 수해 원인 조사용역 보고회를 열고 주민들의 의견을 들을 방침이라고 11일 밝혔다. 조사 결과는 오는 6월쯤 나올 예정이다. 지난해 7월 하순부터 8월 초 사이 용담·섬진강댐의 갑작스런 방류로 피해가 발생한 충청·호남 지역 수재민들은 앞으로도 6개월을 더 기다려야 피해 보상 규모를 알 수 있게 됐다. 특히 물관리 주무 부처인 환경부가 산하기관인 수자원공사의 부실한 댐 관리를 정확히 진단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수재민들은 법규정 미비로 사유재산 피해를 구제할 방안이 없어 유명무실한 조사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수해 발생 직후 만들어진 범정부 풍수해대응혁신추진단도 제구실을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북도의회 이정린(남원1) 의원은 “포항 지진 사태처럼 수해 직후 특별법을 제정했으면 이렇게 조사가 늦어지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신속한 조사와 구제를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 안호영(민주, 완주·무주·진안·장수) 의원 등 여야 의원 10명은 지난 8일 수자원 시설로 인한 수해 주민들을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환경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뒷북 발의했다. 한편 수자원공사는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로 용담·섬진강댐의 범람이 우려되자 방류량을 급격히 늘려 하류 지역에 수해가 발생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주민대표, 지자체, 전문가가 참여하는 과정에서 착수가 늦어졌으나 신속한 조사를 통해 합당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여름 물난리 겨울에야 늑장 조사

    정부가 뒤늦게 전북 진안 용담댐과 임실 섬진강댐 하류지역 수해원인 조사에 나서 ‘늑장 대응’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전북도는 환경부가 1월 중에 용담댐·섬진강댐 하류 수해원인 조사용역 보고회를 열고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할 방침이다고 11일 밝혔다. 용담·섬진강댐 하류 수해원인 조사 결과는 오는 6월쯤 나올 예정이다. 이에따라 지난해 7월 하순부터 8월 초 사이 용담·섬진강댐의 갑작스런 방류로 피해가 발생한 충청·호남지역 수재민들은 앞으로도 6개월을 더 기다려야 피해 보상 규모를 알 수 있는 실정이다. 특히, 물 관리 주무 부처인 환경부가 산하기관인 수자원공사의 부실한 댐 관리를 얼마나 정확히 진단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해민들은 법규정 미비로 물난리로 인한 사유재산 피해는 구제할 방안이 없어 유명무실한 조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대규모 수해발생 직후 만들어진 범정부 풍수해대응혁신추진단도 제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북도의회 이정린(남원1) 의원은 “포항 지진사태처럼 수해 직후 특별법을 제정했으면 이렇게까지 수해 조사가 늦어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신속한 원인조사와 구제방안을 촉구하는 대 정부 건의안을 재검토 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뒤늦게 호들갑을 떨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 안호영(민주. 완주·무주·진안·장수) 의원 등 여야 의원 10명은 수자원시설로 인한 수해 주민들을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환경분쟁조정법 개정안을 지난 8일에야 발의했다. 한편 수자원공사는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로 용담·섬진강댐의 범람이 우려되자 방류량을 급격히 늘려 하류지역에 헤아리기 힘든 수해가 발생했다. 피해지역은 용담댐 하류 충남 금산, 전북 무주 등 4개 시·군, 섬진강댐 하류 전북 남원·임실·순창, 전남 광양·구례, 경남 하동 등 6개 시·군이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폭우에 구례에서 남해 무인도로 떠내려가 구조된 한우 출산

    폭우에 구례에서 남해 무인도로 떠내려가 구조된 한우 출산

    “남해군 여러분들이 무인도에서 구조해준 우리 소가 송아지를 출산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축년 소의 해를 맞아 새해 초부터 경남 남해군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6일 남해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7·8일 폭우 때 섬진강이 넘치면서 전남 구례군 한 농가에서 강물에 휩쓸려 남해군 앞바다까지 떠내려갔다가 구조된 한우가 지난 5일 암송아지를 낳았다.이 소는 폭우 당시 섬진강 범람으로 급류에 휩쓸려 구례군에서 남해군 고현면 갈화리 난초섬까지 55㎞를 떠내려 간 뒤 무인도에서 4일을 보냈다. 무인도에 소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남해군과 남해축협, 갈화어촌계원들은 8월 11일 난초섬으로 들어가 탈진한 소를 극적으로 구조했다. 남해군은 공수의사를 동원해 오염성 폐렴 증상이 있는지를 검사했다. 영양제 를 주입하고 스트레스를 방지하는 치료도 했다.특히 검사 과정에서 이 소가 임신 4개월인 것으로 확인돼 세심하게 보살폈다. 구조팀은 이 소에 달려 있는 식별 번호표를 확인해 소를 전남 구례의 주인에게 인계했다. 소를 무사히 구조해 보내준 남해군에 그동안 감사의 마음을 여러번 전한 소 주인은 지난 5일 암송아지를 낳았다는 소식을 남해군에 알렸다.남해군 관계자는 “극적으로 구조된 소가 소띠 해를 맞아 건강한 암송아지를 출산한 것을 계기로 남해군과 구례군에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안철수와 단일화’ 고민 깊어지는 국민의힘

    ‘안철수와 단일화’ 고민 깊어지는 국민의힘

    4·7 재보궐선거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 안철수(얼굴) 대표가 1위를 달리는 가운데 국민의힘이 후보 선출 방식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5일 2차 회의를 열어 경선 일정을 확정하고 후보 검증을 위한 ‘시민검증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다만 경선 방식을 두고는 내부 격론을 벌였으나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정권 심판’ 프레임으로 짜여 가면서 국민의힘은 선거 연패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넘쳐 나고 있다. 이날 오신환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는 등 지금까지 7명이 출사표를 던지고, 나경원 전 의원·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대어급도 곧 출전하는 ‘후보 범람’ 상황은 국민의힘의 기대치를 방증한다. 그러나 당 밖의 안 대표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승리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한계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결국 안철수와의 단일화가 관건인데, 국민의힘은 안 대표가 입당해 경선을 치르는 것을 원한다. 특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입당 후 경선 외 다른 방안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이번 선거는 정권 심판론으로 결정이 날 것”이라며 “일치된 생각을 갖고 훌륭한 후보를 선출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신년 맞이 각종 여론조사에 부동의 1위를 기록한 안 대표가 ‘호랑이 굴’로 들어갈 가능성은 낮다. 안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들과 자신이 모두 참여해 한 번에 후보를 결정하는 ‘원샷 경선’을 선호한다. 결국 국민의힘 최종 후보와 안 대표 간 단일화로 결론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이를테면 나경원·오세훈이 먼저 합친 뒤 안철수와 겨뤄 야권 단일후보를 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후보들의 생각이 다 달라 이 경로를 따를지도 미지수다. 나 전 의원은 국민의힘 당내 경선을 치른 후 안 대표와 시민경선을 치러 단일화하는 방안을 선호한다. 김근식(경남대 교수) 후보는 안 대표까지 모두 참여해 3회 여론조사를 거쳐 후순위를 차례로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방식을 제안했다. 국민의힘이 후보 선출 방식을 놓고 고민하는 사이 안 대표는 국민의힘 주자들과 격차를 더욱 벌이기 위해 연초부터 선거전에 올인하고 있다. 그는 이날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을 방문해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아동전담주치의 제도 도입을 제안하는 등 현장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2020년 섬진강 수해 극복 기록 책으로 발간

    2020년 섬진강 수해 극복 기록 책으로 발간

    경남 하동군은 지난해 8월 7∼8일 섬진강 일대에서 발생한 집중호우 피해와 복구 활동 등을 정리해 엮은 책 ‘2020년 8월 섬진강 범람 수해극복기록’을 발간했다고 5일 밝혔다.수해 극복기록 책 발간 계획은 수해 복구가 대략 마무리된 지난해 8월 중순 추진됐다. 집중호우와 섬진강 범람으로 인한 재난상황, 피해현황, 복구 및 구호활동 등을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상세한 자료수집이 빠르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책 기획·발간을 담당한 기획예산과는 군청 모든 부서에서 이뤄진 피해 상황 기록, 응급복구 과정, 사진첩 등을 일차적으로 수집했다. 군은 군민이 제보한 사진과 숨은 미담 사례 등도 최대한 조사하는 등 형식적인 수해 백서가 아닌 진정한 수해 극복기록을 담았다고 밝혔다. 책은 모두 450쪽 분량이다. 수해발생 및 피해현황, 초동 대응(재난본부가동·응급구호), 응급복구 및 특별재난지역 선포, 수해발생 원인 및 개선사항 등 4부로 구성돼 있다. 수재민의 수해극복 이야기, 미담사례, 언론보도 자료, 수재의연금품 기부현황 등도 부록으로 수록했다. 군은 수해의 원인부터 선제적 응급복구 과정은 물론 수해발생 원인에 따른 개선 사항까지 담겨 있는 수해극복기록 책자가 앞으로 집중호우 대응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수해 아픔을 위로하며 구슬땀을 흘린 9643명 자원봉사자와 수재민의 아픔을 함께하며 온정의 손길을 보내준 267명의 물품 기부자, 2360명의 의연금 기부자까지 상세히 수록했다. 발간된 300여권 책자는 재난대책지침서가 될 수 있도록 공공기관과 유관기관 등에 배부한다. 윤상기 하동군수는 “굴삭기를 타고 수마가 할퀸 현장에 방문했을 때 수재민의 탄식과 한숨밖에 없었지만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총력을 기울여 일주일 만에 응급복구를 마무리했다”며 “수해 극복기록이 군민의 안전을 지키는 수호 책자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만질 수 없음을 만지는 언어:촉각의 소노그래피/전승민

    문학의 칼 칼날과 포옹할 수 있을까? 한강에게 언어는 세계와 자신을 가르는 칼이다. 언어는 전체 의미 중에서 표현 가능한 부분만을 잘라 기표에 담으므로 진실은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왜곡된다. 그래서 문학 하는 이들에게 언어는 축복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고통이다. 문학의 괴로움은 그것이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비-진실해지는 이 운명에서 비롯한다. 현실의 경험을 기표로 쪼개어 재조합하는 언어로는 그 어떤 실재에도 완벽히 다다를 수 없다. 현실을 조각내지 않는 언어는 과연 가능할까?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2011)은 진실을 조각내는 언어의 칼금과 대결하며 날것 그대로의 진실을 포착하려 한다. 그것은 현실을 분절하는 한계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을 가장 훼손하지 않는 순수한 상태의 언어에 의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언어가 언어이기를 포기할 때 획득되기에 순수를 추구할수록 더욱 비-순수해지는 역설 속에 있다. 그 ‘순수’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사람에게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은 어떤 인과나 합리적 추론으로 증명되는 참인 명제가 아니라 오직 몸으로 살아낼 때만 느끼는 힘의 압력으로 다가온다. 소설의 남자와 여자는 이 거대한 진실을 유한한 인간의 몸뚱이로 견디는 사람들이다. 남자의 진실은 영원한 실명, 여자의 진실은 계속되는 실어이다. 그러나 그들의 상실과 고통은 보상이나 처벌의 체계에서 비롯하지 않으며 당위나 인과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 각자의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영원히 실패한다. 예정된 실패의 운명 속에서 ‘희랍어 시간’이 길어 올리는 물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삶을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치는가이다. 이 궁극의 물음에 대해 소설은 질문으로 되돌아가 그것을 파괴하는 재귀적인 답을 제시한다. 삶이 인간에게 들이미는 통각은 소거되어야 할 병증이 아니라 그가 살아 있음을 감각하게 하는 생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설은 인물의 아픔에 관한 원인을 굴착하기보다 그 아픔을 온몸으로 함께 통과한다. 서사는 플롯의 인과와 시간의 합리적 흐름에 복무하지 않고 다만 고통의 양태와 통각을 소슬히 응시하기 위해 흐른다. 그래서 ‘희랍어 시간’에서의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고 소설의 언어 역시 일반의 언어로부터 탈구되어 있다. 요컨대 한강은 인간과 문학이 삶에 대해 제기하는 근본적인 질문, 그러나 ‘왜’로 시작할 수밖에 없으므로 언제나 오류일 수밖에 없는 어떤 질문과 대결한다.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105쪽) 신성의 잠재태로서의 고통 ‘희랍어 시간’의 시간은 환(環)으로 흐른다. (“세상은 환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입니다.” 26쪽) 소설에서 읊어지는 보르헤스의 말처럼 첫 번째 장은 ‘1’에서 시작해 21번째 장까지 진행된 후 마지막 장에서 ‘0’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1에서 0을 향해 구부러지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삶이 전생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전사(前史)는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2013)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1) 남자와 여자는 ‘해부극장’ 연작에 나오는 백골의 전생이며, 백골의 고통은 곧 여자가 느끼는 통증이다. 그것은 말의 소리가 신체의 발음 기관을 경유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갈 때 발생하는 비릿하고 붉은 통각이다.2) 세 치의 혀와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들, 헐거운 말들, 미끄러지며 긋고 찌르는 말들, 쇳냄새가 나는 말들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찼다. 조각난 면도날처럼 우수수 뱉어지기 전에, 막 뱉으려 하는 자신을 먼저 찔렀다.(‘희랍어 시간’·165쪽) 여자의 고통이 언어가 파열될 때 발생한다면 남자의 고통은 반대로 무언가가 덩어리로 뭉개질 때 발생한다. 완전히 실명하게 되리라 진단받은 마흔을 목전에 두고, 그는 마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것처럼 16년간의 독일 생활을 접고 모국으로 돌아온다. 사물과 풍경의 날카로운 경계는 그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진다. 그는 실명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신이 없다. 남자의 삶 역시 독일과 한국에서 보낸 시간으로 분절되어 있으므로(“그때 내 인생은 거의 정확히 절반씩 두 언어, 두 문화로 쪼개어져 있었던 셈입니다.” 40쪽) ‘희랍어 시간’은 여자와 남자가 공유하는 고통 그 배면의 시간이다. 여자는 두 번째로 찾아온 실어 증상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강의를 신청하고, 남자는 자신을 둘로 쪼개는 힘을 피해 “수천 년 전에 죽은 언어 (…) 마치 고요하고 안전한 방”(119쪽)과 같은 희랍어 속으로 숨어든다. 이 공통의 시간 너머에 있는 그들의 고통에는 이유가 없다. 백골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아픔은 단지 붉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성에서 비롯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파야만 하는 것이다. 까닭 없이 고통받는 인간은 신을 찾아 헤맨다.3) 소설의 1인칭 화자는 마지막 장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남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의 고해는 세 통의 편지로 이루어진다. 가장 먼저 발송되는 편지는 독일에서 살던 시절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사과문이다. 그녀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장애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녀를 욕망한다.(“우리는 언젠가 함께 살게 될 것이고, 나는 눈이 멀 것이라고. 내가 보지 못하게 될 때, 그때는 말이 필요할 거라고.” 47쪽) 그는 “백치처럼 순진하게”(47쪽) 그녀에게 독순술 수업에서 배운 대로 말을 해 보라고 요청한다. 남자는 그녀의 청각장애를 자신의 예정된 실명과 동등하게 고려하지 못한다. 그녀의 독순술이 그의 ‘결핍’을 보충하는 자질이 될 이유는 조금도 없다. 누군가의 언어 행위는 그의 자발적 선택과 의지에 의한 것이지 다른 이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언어는 강요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가 그녀에게 품는 모든 욕망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정당화되고 그것이 그녀에게도 좋은 것이라 ‘백치처럼’ 그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녀는 사과하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세계를 두 눈으로 또렷하게 볼 수 있다고 해서 타인의 고통을 왜곡되지 않은 상(像)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부 사물을 보는 눈과 인간의 고통을 보는 눈은 다르다. 한편으로, 인간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것은 그 또한 다른 인간으로부터 상처받을 수 있음을 내포한다. 두 번째 편지의 수신인은 여동생 란이다. 그는 여동생에게, 앞으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될 그의 운명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똑같은 병을 앓았던 아버지였음을 말한다. 그의 시력 상실은 부계 유전질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어스름이 정말 완전한 밤으로 이어지는지”(82쪽)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자신과 똑같은 아들을 끝까지 멀리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데에 결국 실패하면서 삶으로부터의 자기 소외 속에 생을 마감한다. 그는 어둠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삶의 빛 속으로 한 발짝도 걸어 나가지 못했던 셈이다. 이제, 앞서 소설이 던진 유일한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 도착한다. 인간이 부서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영혼 안에 어리석고 나쁜 것과 함께 어떤 좋음 또한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통을 감각하고 수용하는 능력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새’는 그것의 체현물이며(“그의 얼굴 속에 새 같은 무엇인가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 따스한 감각이 그녀에게 즉각적인 고통을 일깨운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147쪽) 개별 존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영혼과도 같은 것이다.(“새 같은 무엇인가가 문득 육체를 떠났고, 그 육체는 더이상 어머니가 아니었다.” 145쪽) 말하자면 새는 인간이 생의 통각에 반응하는 마음의 일부로서 육체와 정신을 이어 준다. 새를 통해 인간은 육체의 통증을 실존적인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뒤에서 논의되겠지만, 인간은 역설적으로 바로 이 ‘새’로 인해 자기 파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새를 두고 인간이 각자 품고 있는 어떤 신성(神性)의 잠재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유한자로서의 운명에 함몰되지 않고 ‘인간적이지 않은’ 차원으로 도약하게 만드는 그 무엇은 분명 신성하다. 요컨대 인간은 선험적인 신성을 배태하므로 고통받는다. 여자는 특히 이 신성의 언어적 측면이 육화된 존재다. 문자가 소리로 변할 때 언어가 겪는 분절의 고통을 그녀는 자기 몸의 통증으로 겪는다. 심장과 혀를 경유하여 귀로 도달하는 모든 파열하는 소리는 여자에게 폭력이다. 그래서 실어증은 파괴하는 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대응이다. 침묵은 그녀를 에워싸고 보호한다. 실어의 원인은 심리치료사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55쪽)다. 여자는 언어의 신성 그 자체이지만 이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녀 역시 구원을 바란다. 어머니가 뱃속의 그녀를 지우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현실 속 무언가의 실존이 얼마나 연약하고 위태로운 우연에 기대고 있는지 아는 그녀는, 그래서 무언가의 존재를 위협하거나 변형시키는 힘에 대해 온몸으로 대항한다. 그녀에게 폭력은, 어떤 존재를 그것의 고유한 자리로부터 박탈시키는 모든 종류의 유형력이다. 목소리 역시 그러하다. 음성은 공간을 점유하면서 다른 존재들을 밀어낸다.(“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51쪽) 여자에게 말은 육체적인 고통이다. 그러므로 실어는 존재들을 지켜내기 위해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는 사랑의 행위-신의 사랑이다. 그녀는 말하지 않는 대신 언어를 시선으로 번역한다. “신은 보는 존재이거나, 시선 그 자체인 건가요?”(104쪽)라는 대학원생의 물음은 반쯤 정답을 향해 있다. 타인의 고통을 무참히 다룬 죄를 고해하고 받은 상처를 토로하던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남자가 찾던 신의 모습은 여자의 몸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점점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그는 과연 그녀를 ‘볼’ 수 있을까? 신과 인간의 소노그래피 그녀가 희랍어로 힘겹게 써 내려가는 시는 마치 예수가 부활하기 전 무덤 속에서 썼으리라 짐작되는 것이다. 한 여자가 땅에 누워 있다. 목구멍에 눈(雪) 눈두덩에 흙. (64쪽) 차가운 무덤 속에 묻힌 신의 눈에는 흙이 있고, 입과 목은 차가운 눈으로 막혀 있다. 그녀는, 신은 말할 수 없다. 무덤 안은 남자와 여자가 발 딛고 있는 현실 세계다. 카타콤베 묘지에 갔던 남자의 기억이 떠오른다. 여러분, 왜 관 속에 유골이 없을까요? (…) 박물관에 가져다놓은 거 아니에요? (…) 누군가가 훔쳐갔나요? (…) 다아 여기 있습니다. (…) 관 속에 보이는 흙을 분석하면 칼슘과 인 성분이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수천 년이 흐르면, 사람의 뼈가 삭아서 이런 흙이 되는 겁니다.(153쪽) 백골은 전생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남자는 자신이 곧 그 백골이라는 것을 안다.(“수천 구의 육체들이 뼈까지 깨끗이 삭아버린 거대한 무덤 속에, 그토록 따뜻한 몸을 가진 우리가 모여 있었다는 게.” 155쪽) 그는 구토감을 느낀다. 온몸에 묻은 죽음의 흙냄새와 어둠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여자에게 고해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이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음을 전혀 알지 못한다. 마치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채 그가 정원지기인 줄로만 알고 예수의 시신이 어디에 있느냐 묻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다.(요한복음 20:15) 그는 앞으로 펼쳐질 영원한 어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신에게 거듭 질문한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내 말, 거기서 듣고 있나요?(161쪽) 두 사람의 과거로 구부러졌다 돌아오곤 하던 현재는, 남자와 여자가 ‘어둠’ 속에서 서로 마주하게 되는 배타적인 둘만의 시간, 즉 17장부터 21장까지의 시간 동안 직선으로 그러나 더 천천히 흐른다. 건물 안으로 날아온 새를 구하려던 남자는 발을 헛디뎌 안경을 깨뜨리고 강의실로 돌아가지 못한다. 밖으로 나온 여자가 남자의 소리를 듣고 그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그녀가 그에게로 다가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무언가를 감지하고 밖으로 나간다. 빈자리들이 이상한 통각을 띠고 그녀의 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질끈 눈을 감아보았다. 그녀의 시간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어긋난 것 같았다.(160쪽) 남자의 시간이 그녀에게로 다가갔던 것이다. 그는 점점 흐릿해지는 자신의 시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다.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됩니다.(39쪽) 두 사람의 대화는 남자의 빈자리가 발생시키는 시간의 진동을 여자가 감지하면서 시작된다. 이 시간의 감각은 파동의 형태로 전달된다. 남자는 여자의 구두 소리를 듣고 난간을 주먹으로 두드려 자신이 있음을 알린다.(“듣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이 진동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133쪽) 여자가 ‘들은’ 것은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아니라 그녀의 몸 전체, 피부 세포에 닿아 그것들을 흔드는 진동이다. 그들의 대화는 시신경에 의한 시선도, 청신경에 의한 소리를 통해서도 아닌 바로 이 촉각의 소노그래피(sonography)를 통해 이루어진다.4) 시인이 존재들에게 엑스선을 투과시켜 백골들의 영상을 얻어낸다면(“검푸른 뢴트겐 사진에 담긴 나는/그리 키가 크지 않은 해골” ‘해부극장 2’) 소설 ‘희랍어 시간’에서는 소노그래피를 통해 육체의 말랑한 조직들, 피부나 혀, 심장에서 반향된 영상을 보여 준다. 엑스선은 말랑한 것들을 찍을 수 없고 초음파는 뼈를 투과할 수 없다. 통증은 말랑하고 붉은 것의 감각이다. 뼈에는 통각 세포가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뼈가 육신을 가졌을 적의 고통의 서사다. 소노그래피의 언어는 존재 자체가 내뿜는 파동이므로 소리로 쪼개지지 않는 언어다. 이것 역시 몸으로부터 유래하지만 “폐와 목구멍과 혀와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날아”(55쪽) 가는 목소리가 갖는 폭력성은 없다. 여자가 말 대신 택한 시선의 언어 역시 그런 점에서 비육체적이다.(“시선만큼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접촉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느꼈다. 접촉하지 않으면서 접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55쪽) 이때 접촉의 감각은 시각이나 청각이 배제된 상태의 대리보충, 즉 실제 피부의 감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5) 소노그래피의 촉각은 오감의 유무와 관계없이 존재가 뿜어내는 살아 있음의 파동, 즉 여자가 말한 ‘시간’의 감각이다. 한강은 특유의 독특한 문체로 두 인물 사이에 반향되는 소노그래피를 형상화한다. ‘희랍어 시간’에는 큰따옴표나 작은따옴표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뜻 자유간접화법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자유간접화법은 문장 안에서 형식적 서술자와 서술 내용이 담는 의식의 주인을 불일치시키며 서술자보다 인물을 부조한다. 그러나 한강의 문장에서 3인칭 화자는 남자와 여자의 의식 이면으로 유보되지 않는다. 따옴표 없이 곧장 전해지는 말은 인물의 목소리를 3인칭 서술자와 동일한 층위에 위치시키며 그들 간의 위계를 무너뜨린다. 모든 소리는 세계의 일부로 스며들어 있다. 소설은 이 지점에서 자기 안으로 시를 틈입시킨다. 인용부호에 의해 절단되지 않는 하나의 커다란 말뭉치(corpus)를 만들어 내는 서술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3인칭 서술자 각각의 인격을 부각한다. 목소리들이 어우러지는 한 공간-소설 안에서 인물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시가 되고 그들의 모든 말은 행과 연의 형식으로 배열된다. ‘희랍어 시간’은 세 인격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소리 풍경(soundscape)이다.6) 그녀는 그의 말을 똑똑히 듣고 있다. (…) 그녀는 그를 똑똑히 보고 있다. (…) 그늘진 그의 얼굴을, 그녀는 지금 온 힘을 다해 건너다보고 있다.(169쪽) 촉각의 소노그래피가 만드는 소리 풍경 안에서 듣는 일은 곧 보는 일이며, 보는 일은 곧 듣는 일, 존재의 파동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일이다. 진동은 소리가 글자로 박제되는 것과 달리 발생하고 감각되는 즉시 사라진다. 나타남과 동시에 사라지는 소노그래피는 존재를 파열시키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다만 투명하게 통과한다. 모든 인물의 말이 인용부호 없이 제시되지만 특히 여자의 목소리는 서사 세계 안에서도 음성화되지 않는 가장 시적인 목소리다. 여자의 문장들은 기울어지면서 남자의 목소리와 구분된다.7) 19장 ‘어둠 속의 대화’ 후반부에는 이렇게 목소리가 뒤섞이면서 두 사람의 파동이 중첩되는 대목이 있다.8) 서사 표층에서 실제로 발화되는 음성은 남자의 목소리뿐이므로 소노그래피가 아니라 일반적인 감각으로 읽어낼 경우, 소설은 오직 남자의 독백으로만 가득 찬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의 대화는 각자가 소환하는 기억의 단위들로 교환되며 소리가 아닌 언어, 파동의 접면들이 교차하며 이루어진다.(“잉크 위에 잉크가, 기억 위에 기억이, 핏자국 위에 핏자국이 덧씌워진다.” 155쪽) 언어의 칼금을 막아내기 위해 언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소설은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서로 겹치며 일으키는 간섭을 현상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화해할 수 없었다.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이 모든 곳에 있었다. (…) 독한 취기 같은 피로가 그녀의 의식을 둔하게 만든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꿈인 것처럼, 아주 먼 곳에서부터 토막토막 끊긴 채 울려온다.(166쪽) 여자의 파동은 남자에게로 전해진다.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있어요. 더이상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어요. 그녀는 그의 얼굴을 응시하려 애쓴다. 초점 없는 그의 눈을 또렷이 마주 보려 애쓴다.(167쪽) 여기서 남자의 응답은 여자의 파동과 똑같은 기울임체로 발화된다. 두 존재가 고막을 통해 소리를 교환하지 않고도, 살을 맞대지 않고도 그 무엇보다 깊은 층위에서 교감하는 장면이다.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과거로 여러 통의 편지를 쓰던 인간은 신의 고통 안에서 그와 함께 현재적으로 공명한다. 이 장면에서 남자의 목소리는 여자의 그것으로 중첩되며 같은 기울임체로 서술되지만, 여자의 목소리는 남자의 그것으로, 다시 말해 기울어진 목소리가 평평하게 바뀌지는 않는다. 여자는 신성의 체현자이기 때문이다.(“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그런 침묵을 본 건 처음이었어.” 78쪽) 구원의 빛이 침묵의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온다. 나를 만지지 마라 이제, 소설의 질문에 대한 두 번째 답이 제시된다. 인간의 혼이 파괴되지 않는 이유는 고통을 감각하는 신성이 서로에게 중간태인 동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대 희랍어에는 수동태와 능동태가 아닌 제3의 태, 중간태가 있다.(18쪽) 중간태는 어떤 행위가 주어에 재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대상에게 했던 행위가 다시 주체로 돌아오는 이 재귀적 운동은 소노그래피의 언어가 보이는 양태다. 소노그래피의 방식은 그 자체로 중간태적 추론이다. 그는 대상에게로 뻗어 나간 자기 파동의 반향을 소노그램으로 읽어 낸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의 원인을 축자적으로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에게 계속해서 질문하는 일이다. 아무리 유사한 경험을 하더라도 고통은 결코 동일한 정도로 감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의 아버지는 남자와 같은 유전질환으로 인해 시력을 이미 잃은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동일한 조건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주파수를 오롯이 피부로 느끼는 일이다. 그것은 타인의 삶을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그의 삶을 추체험하는 일이다. 가령, 남자가 곧 실명하리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불투명한 비닐봉지를 자기 눈에 갖다 대며 “이건 소파고 이건 책장이야. (…) 이렇게 걸어도 안 넘어질 수 있어.”(146쪽)라며 일부러 왔다 갔다 하던 여동생처럼 말이다. 동생은 오빠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닥칠 ‘어둠’이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을 거라는”(147쪽) 위로를 보낸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은 내가 영영 닿을 수 없는 점근선의 영역이다. 반면 마지막 고해, 요아힘과의 이야기는 남자 역시 언어의 육체성이 자아내는 폭력을 경험했음을 들려준다. 그 폭력은 곧 타인의 고통을 주체의 자기동일성 안으로 포획하여 해석해 버리는 일이다. 요아힘은 남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욕망을 타인과 자신의 고통 안에서 어떻게 겹쳐 두어야 하는지 모르므로 남자에게 상처만을 남긴다. 그는 고통의 완전한 극복과 단절을 믿는다. 시한부 선고의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병실의 벤젠 냄새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10쪽) 말하는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꼭 같은 경험을 몸의 기록으로 가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어둠과 죽음의 병실을 물리친 그에게 생의 감각은 생동하는 육체의 폭발적인 감각, 물컹하고 뜨거운 것이다. 요아힘은 여자에게는 고통이었던 육체적인 것과의 접촉을 갈망한다. 남자가 어둠을 품은 이라면 요아힘은 빛의 질서를 품은 이다. 남자가 비논리와 모순을 껴안는 문학을 사랑한다면 요아힘은 사고를 명징하게 자르는 철학을 사랑한다. 고통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났다고 믿는 이의 강한 확신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누구보다도 눈을 멀게 만든다. 자신이라면 완전한 어둠이 다가올 그때를 위해 점자를 배워 두겠다는 철학자의 명랑한 조언은 남자의 신앙인 소멸의 이데아를 산산조각 낸다. 다시 한번, ‘백치처럼’ 순진한 이 조언은 남자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요아힘에게 그것은 단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소멸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말이야… 그건 깨끗하고 선하고 숭고한 소멸 아닐까? 그러니까, 소멸하는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깨끗하게, 아름답게, 완전하게, 어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진눈깨비 아닐까?(118쪽) 이것 봐. 죽음과 소멸은 처음부터 이데아와 방향이 다른 거야. 녹아서 진창이 되는 진눈깨비는 처음부터 이데아를 가질 수 없는 거야.(118쪽) 빛이 소멸한 세계에서 앞으로의 생을 계속해야 하는 남자에게 요아힘의 논증, 어둠 속에는 좋음의 이데아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반박은 그의 마지막 희망을 꺼트린다.(“네 말을 들은 순간, 덧없는 전 세계가 빛을 잃었지.” 118쪽) 그래서, 점자를 통해 남자와 진정으로 닿기를 바라던 요아힘의 욕망은 언어의 폭력적인 육체성과 실상 같은 것이다. 남자는 요아힘으로부터 깨닫는다. 자신이 독일에서 여자에게 던진 사랑의 말, 너는 나의 목소리가 필요할 테니 같이 살게 될 것이라는 그 고백이 폭력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받은 상처로부터 타인에게 준 상처를 깨달은 마리아는 이제 눈앞에 현전한 예수ㅡ언어의 육신을 본다. 신과 인간의 목소리는 구별되지 않고 한데 뒤섞인다. 남자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신의 파편들,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희랍어 시간의 여자 그 자체다. 그녀의 이름은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100쪽)이다. 고통받는 두 인간의 신성은 한데 섞이고 소노그래피는 중첩된다. 말할 수 없는 이와 볼 수 없는 이의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해는 공통원소 없는 그 존재들의 배면에서 투명한 파동을 통해 전해진다. 파동은 한 곳으로 수렴하지 않고 서로의 몸 안을 투과하며 지나간다. 이제, 신은 요아힘과는 다른 ‘접촉’의 방식으로 남자를 구원하고 눈으로 목이 막혔던 그녀 역시 그 구원으로 인해 부활한다. 따로따로 제시되던 목소리는 한 연으로 묶이면서 말을 주고받는 직접적인 대화의 국면에 도달한다. 1인칭 단수 화자들은 ‘우리’를 직감한다. 어두운 초록색 흑판에 백묵으로 문장을 쓸 때 나는 공포를 느껴요. (…) 태연하게 내 혀와 이와 목구멍으로 발음된 모 음운들에 공포를 느껴요.(167쪽) 구원은 끝없이 멀어지는 존재가 내 안으로 들이닥쳐옴을 느낄 때 일어난다. 부활한 예수는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마라”(Noli me tangere)는 말을 남기며 떠나간다.(요한복음 20:17) 멀어지는 자신을 붙잡지 말라는 이 말은 타자를 주체의 자기동일성 안으로 납치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타자를 몇 번이고 무한히 떠나보냄으로써 그의 존재를 부조하라는 율법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를 부축해 그의 집까지 데리고 온 여자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손바닥에 쓴다. 그녀가 그에게 최초로 대답한 말은 떠난다는 말이다.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171쪽) 두 사람이 가장 가까워지는 이 접촉은 소설이 시종일관 지양해 온 폭력적인 접촉과 다르다. ‘어둠 속 대화’의 절정 이후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그러나 두 몸의 접촉 이후 다만 ‘모른다’는 진실의 무자비한 범람만이 남자를 압도한다.(“심장과 심장을 맞댄 채 여전히 그는 그녀를 모른다.” 183쪽) 그가 그녀를 안자마자 뒤이어 열네 번의 ‘모른다’가 연속해서 등장한다. 그래서 그가 그녀에게 입을 맞출 때까지도 둘의 접촉은 항구적인 비접촉이 되는 것이다. 강력하게 현전하는 단 하나의 진실은 “맞닿은 심장들, 맞닿은 입술들이 영원히 어긋”(184쪽)나는 ‘시간’이다. 마리아는 이제 떠남 속에서 빛이 아닌 어둠을 본다. 이때의 ‘봄’은 시각과 무관하게 생의 파동을 온몸으로 수용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뛰는 기적을 의미하지 않는다.9) 그것은 죽음 안에서 떠나가는 생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구원은 영생이 아니라 떠나감의 현전 안에서 일어난다. 보르헤스가 말한 시간-존재를 태우는 불(122쪽)이 여자와 남자를 통과하고 나면 새는 날아가고 백골만이 남는다. 개별 존재의 신성이 육신 속에서 체현된 것이 새라면 죽음 이후부터 그 신성은 뼈들이다. 플라톤이 말했듯 진실에 대한 앎은 전생으로부터 온다. 우리는 그것을 다만 상기할 뿐이다. 전생의 기억은 시로 돌아온다. 그때 우리는 바다 아래의 숲에 나란히 누워 있었어요. 빛도 소리도 그곳에는 없었지요. (…) 마침내 당신이 아주 작은 소리를 낼 때까지, 입술 사이로 둥글고 가냘픈 물거품이 새어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곳에 누워 있었어요.(185~186쪽, 21장 ‘심해의 숲’) ‘심해의 숲’의 다른 이름은 ‘해부극장 3’으로 부활 이후 무덤가에 나란히 누운 여자와 남자의 그림이다.10) 죽었던 신과 고통받는 인간이 함께 나란히 누울 수 있다면, 인간의 신성은 더는 논증이 불필요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인간의 혼이 파괴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신의 신성과 달리 인간의 신성은 죽음으로부터 몸을 ‘일으켜’ 고통을 내려다보는 일이 아니라 다만 죽음 안에서 옆에 누운 다른 이의 뼈를 쓰다듬는 일이다.11) 구원을 바라던 신은 부활하여 드디어 입술을 연다. 시종일관 남자의 목소리를 사용하던 1인칭 화자는 마지막 장 ‘0’에서 오직 한 번 여자의 목소리로 발화한다. 현전하는 이 말씀, 로고스는 음성도 문자도 아니다. 그것은 그 무엇도 파괴하고 밀어내지 않는 언어, 촉각으로 전해지는 파동의 말씀이다. 남자와 여자는, 우리는, 그리고 인간은 영원히 어긋나는 방식으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결국, 구원의 반증은 ‘우리’라는 단어다. 그래서 소설은 ‘0’의 끝에서 다시 ‘1’로 돌아간다. 신은 말한다. 에모스, 에메테로스. 나의, 우리들의.(10쪽) 역설의 구원 한강의 문학에서 시간은 정말로 환(環)처럼 흐른다. 그러므로 ‘희랍어 시간’이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이미 읽은 이가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그는 눈사람이다.(‘작별’12)) 언 몸이 진눈깨비로 흩날리며 조금씩 사라지는 중이다. 눈사람은 남자가 갈망하던 소멸의 이데아의 현현이면서 새와 백골의 중간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장 많은 것을 안다. 그는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몸 안의 심장을 얼리는 한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피와 살과 내장과 근육이 있는 몸을 다시 갖고 싶지 않”(150쪽)다고 확신한다. 아이와 애인과 가족과 작별하며 그가 마주하는 최후의 질문은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150쪽)이다. 이는 ‘희랍어 시간’이 던지는 질문과 같은 물음이다.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13)는 물음이다. 그리고 그 최후까지 남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눈(雪)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소멸하는 것처럼 한강의 인물들은 사랑할수록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러나 바로 그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서로의 “진동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투명한 접지”(‘작별’, 133쪽)가 된다. 나와 당신은 같아질 수 없으므로, 당신은 언제나 나를 떠나는 중이므로 나는 당신과 연결된다. 눈사람은 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실체는 다만 촉각의 소노그래피뿐이며 그것은 “변함없이 진동하며 두 사람 사이에 고요히 걸쳐져 있”(134쪽)음을 안다. 그리고 이 파동을 타고 전해지는 “무색무취인 데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고요함이어서 거의 인간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134쪽)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랑은 강렬한 접촉이 아니라 다만 끝없이 멀어지는 ‘사이’에서 전해진다. 언어는 이때 비로소 완전한 순수에 도달한다. 의미는 분할되거나 상실되지 않는다. 따옴표로 분절되지 않는 목소리들이 행과 연을 만들면서 소설 속에 시를 쓴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죽음 안에서 삶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 ‘작별’과 ‘희랍어 시간’의 마지막 장면이 모두 두 존재의 입맞춤으로 끝나는 것은 붉은 혀와 입술이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지만 또한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는 뜻일 테다. 우리는 서로를 만지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진실을 감각한다. 나의 파동이 쓰다듬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살이 아니라 다만 당신의 뼈, 시간의 불에 타고 남은 마지막 눈의 결정이다. 내가 당신으로부터 멀어지기에 당신은 나를 구원한다. --------------------------------------------------------------------------------------------- 1) 시집의 해설을 쓴 비평가 역시 한강의 시들은 “말과 동거하는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제시한다”는 점에서 시의 화자들을 ‘희랍어 시간’ 속 남자와 여자로 잠시 연결하며, ‘희랍어’를 “순수한 언어의 능력에 집중하는 소설”이라 평한 바 있다. 조연정, 해설 ‘개기일식이 끝나갈 때’,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142~143쪽. 2)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구불구불 휘어진 혀가/ 내 입천장에/ 매끄러운 이의 뒷면에/ 닿을 때//(…)// 나에게 붉은 것이 있다,라고/ 견디며 말한다” 한강, ‘해부극장 2’, 한강, 위의 책. 3) “진심이야./ 후회하고 있어./ 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 한강, 위의 글. 4) 소노그래피는 초음파를 이용해 시각 영상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5) 양현진은 실명과 실어가 몸짓, 촉각에 의한 소통에 주목하게 한다고 본다. 그러나 피부의 직접적인 접촉과 몸짓만을 대화로 보는 것은 국소적인 독해다. 소설에서 시각과 청각이 배제될 때 도드라지는 것은 시간, 즉 파동의 흐름이다. 양현진, ‘한강 소설의 촉각적 세계 인식과 소통의 감수성’, ‘한국문학이론과비평’, 70집,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16. 6) 사운드스케이프는 여러 가지 소리의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듣는 영상’으로 단지 소리가 만드는 공간적 환경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지각하는 청취자의 지각 속에서 그려지는 풍경이다. 7) 한강은 대상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기울임체를 사용한다. 시집에 수록된 ‘해부극장 2’의 백골과 ‘조용한 날들 2’에 등장하는 달팽이의 목소리가 그렇게 나타난다. “(건드리지 말아요) (…)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8) 서로 다른 두 개의 물질이 동일한 시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로 다른 두 개의 파동은 동일한 공간에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두 파동이 동일한 지점에서 교차할 때 일으키는 상호작용을 파동의 중첩 현상이라 한다. 9)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걸 믿는 게 아니라, 죽음 앞에서 꿋꿋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장뤼크 낭시, ‘나를 만지지 마라’, 이만형·정과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37쪽. 10) 한강의 시 ‘해부극장’ 연작은 두 편뿐이지만 소설의 ‘심해의 숲’은 남자가 쓰는 또 한 편의 시다. 11) 낭시는 예수의 부활을 수직 변화로 이해하지만 소설이 말하는 인간의 신성은 수평적이다.“이 ‘자세’가 (…) ‘부활’을, 다시 말해 ‘들어올림’이라는 사태를 만든다. (…) 무덤의 수평성과 직각을 이루는 수직성으로서의 들림 혹은 일으켜 세움인 것이다.” 장뤼크 낭시, 위의 글. 12) 한강, ‘문학과 사회’, 2017년 겨울호, 문학과지성사. 13) 한강, ‘회상’, ‘서랍에’, 문학과지성사, 2013.
  • “대멸종 주기는 2700만 년…우리은하 궤도 따라 결정” (연구)

    “대멸종 주기는 2700만 년…우리은하 궤도 따라 결정” (연구)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 그리고 양서류를 포함한 육지 동물의 대량 멸종이 약 2700만 년을 주기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나 나왔다. 이는 이전에 보고된 해양 생물의 대량 멸종과 일치하는 것이다. 미국 뉴욕주립대 등 연구진은 또한 이번 연구에서 대량 멸종이 주로 소행성 충돌과 파괴적인 화산 폭발인 대규모 범람현무암의 분출과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런 요인은 왜 대량 멸종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잠재적인 원인을 제시해준다. 이에 대해 연구 주저자 마이클 램피노 뉴욕대 생물학부 교수는 “소행성 충돌과 범람현무암의 화산작용을 만들어내는 지구 내부 활동의 주기는 지구가 2700만 년마다 우리은하의 혼잡한 영역을 지나는 궤도에 따라 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잘 알려진 대량 멸종은 약 6600만 년 전으로, 공룡을 포함한 땅과 바다에 사는 모든 종의 70%는 지구에 거대한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로 갑자기 사라졌다. 그 뒤 고생물학자들은 생물 종의 90%가 사라진 해양 대량 멸종이 무작위적인 사건이 아니라 약 2600만 년의 주기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발견했다. 램피노 교수와 공동저자인 카네기과학연구소의 켄 칼데이라 박사 그리고 뉴욕대 데이터과학센터의 주유홍 박사과정 연구원은 이번 연구에서 육지 동물의 대량 멸종 기록을 조사했다. 그러고나서 육지 동물의 대량 멸종이 해양 생물의 대량 멸종과 일치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은 또 육지 동물 종의 멸종에 관한 새로운 통계 분석을 진행했고, 이런 멸종 사건이 약 2750만 년이라는 유사 주기를 따른다는 점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땅과 바에서 주기적인 대량 멸종을 일으키는 것일까. 연구진은 지구 표면에 충돌하는 소행성이나 혜성에 의해 생성되는 크레이터의 연대 역시 멸종 주기에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주기적인 소행성 또는 혜성 소나기가 2600만 년에서 3000만 년마다 태양계에서 일어나 주기적인 충돌을 낳아 주기적으로 대량 멸종을 초래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태양과 행성들은 약 3000만 년마다 은하수로 불리는 우리은하의 붐비는 중간 평면 영역을 지난다. 그 기간 소행성 또는 혜성 소나기가 지구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영향은 광범위한 암흑과 추위, 산불, 산성비 그리고 오존 파괴 등으로 나타나 육지와 해양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잠재적인 멸종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램피노 교수는 “땅과 바다에서, 그리고 2600만 년에서 2700만 년의 주기 동안 지구의 대재앙 같은 이런 영향은 대량 멸종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간주한다는 생각에 신빙성을 더한다”면서 “실제로 땅과 바다에서 일어난 대량 멸종 중 3건은 이미 지난 2억5000만 년 동안의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사건 3가지와 동시에 일어났다고 알려졌으며 각각은 세계적인 재앙을 일으켜 대량 멸종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연구진은 대량 멸종에 관한 또 다른 가능성 있는 설명을 발견하고 놀랐다. 이는 범람현무암 분출로 불리는 것으로, 용암이 광대한 지역을 뒤덮는 거대한 화산 폭발을 말한다. 땅과 바다에서 일어난 8건의 우연적인 대량 멸종은 모두 범람현무암 분출 시기와 일치했다. 이런 분출은 짧은 기간에 혹한과 산성비, 오존 파괴 그리고 증가한 방사선 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치명적인 온실 효과를 초래해 해양의 산성화로 산소 부족을 일으킬 수 있다. 끝으로 램피노 교수는 “세계적인 대량 멸종은 아마 때때로 상호적으로 작용하는 가장 큰 소행성 충돌과 거대한 화산 폭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역사 생물학’(Historical Biology) 최신호(12월 10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갈 길 바쁜 CJ라이브시티 … ‘맹꽁이’ 때문에 차질

    갈 길 바쁜 CJ라이브시티 … ‘맹꽁이’ 때문에 차질

    연간 2000만 명의 관광객이 찾게 될 일산 CJ라이브시티 건설사업이 ‘맹꽁이’때문에 차질을 빚게 됐다. 12일 경기 고양시에 따르면 일산동구 장항동 30만2265㎡에 1조8000억원을 들여 건설중인 CJ라이브시티는 실·내외 4만2000석 규모의 아레나 공연장 건축심의까지 마쳐 오는 2023년 말 완공해 2024년 개장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난 2018년 6월 사업 부지를 가로지르는 한류천이 멸종위기종인 맹꽁이 서식지로 조사되면서 생태자연도 1등급으로 지정 고시된 사실이 최근 뒤늦게 확인됐다. 생태자연도 1등급이 되면 하천의 원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다리를 놓는 등 경관 조성이 사실상 어렵다. 고양시와 ㈜CJ라이브시티 측은 약 450억원을 들여 현재 3등급인 한류천 수질을 2등급으로 끌어 올리고 관광객들이 건너 다닐 수 있도록 다리를 놓을 예정이다. 수질개선 등급과 방법을 놓고 고양시와 CJ가 오랫동안 갈등을 빚다, 1년 전 극적 합의를 봤는데, ‘쓸데 없는 일’을 한 셈이다.한류천은 30만㎡ 규모의 CJ라이브시티에서 유일하게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인데다, 아레나 공연장과 인접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공간이다. 1기 신도시인 일산에서 오폐수관이 잘못 연결돼 분뇨가 흘러들면서 악취가 진동하는데다, 장마철 범람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류천의 수질개선 없이는 CJ라이브시티를 명소로 만들수 없다. 이때문에 고양시와 CJ는 작년 12월 문제 해결을 위한 세부방침을 세우고 ‘한류천 수질개선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수질을 2등급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하천의 폭과 수심을 조정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고양시 관계자는 “한류천은 자연생태하천으로 볼 수 없어 맹꽁시 서식지로는 부적합하다”면서 “맹꽁이 서식지 변경 같은 의견을 환경부에 내는 등 대안을 마련중”이라고 말했다. CJ 관계자는 “삼일회계법인과 연세대 도시공학과에 의뢰해 추정한 결과 CJ라이브시티가 개장하면 아레나·콘텐츠 놀이시설·상업 및 숙박시설 등에서 5800여명의 직접고용과 연간 최소 2000만 명의 관광객 방문이 예상됐다”면서 “조속히 해법을 찾아 2024년 개장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베네치아 ‘모세의 굴욕’… 홍수예방 8조 쏟고 침수

    베네치아 ‘모세의 굴욕’… 홍수예방 8조 쏟고 침수

    이탈리아의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홍수는 이례적이지 않다. 최근 2년 동안만 봐도 매년 초겨울 며칠 동안 베네치아의 75% 이상은 물에 잠긴 상태였다. 사람들은 ‘조금씩 가라앉아 사라질 수도 있는 도시’라며 베네치아를 여행 버킷리스트에 올린다. 믿음과 다르게 학계에선 베네치아 침하가 2000년 이후 멈췄다는 측량도 내놓아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말이다.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지난 8일(현지시간) 2명의 사망자를 내고 산마르크 광장을 비롯한 베네치아 전역을 다시 집어삼킨 홍수는 예측할 수 없었던 이례적 사건이자 인재(人災)로 평가됐다. 지난해까지 없었던 해상차단벽 ‘MOSE’(모세)가 여름에 완공돼 ‘겨울 홍수 없는 베네치아’라는 기적에 대한 믿음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아드리아해 바닷물이 베네치아와 연결되는 수로 입구 3곳에 높이 30m의 철 구조물 78개로 세운 차단벽이다. 선박 통행에 방해가 안 되도록 평소 바닷물 속에 있지만, 48시간 전 예보에서 도시 쪽으로 밀려오는 조수(만조) 수위가 1.3m보다 높아지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 최대 3m 높이의 만조를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전날 만조 수위는 최고 1.5m로 1.3m보다 높았기 때문에 모세가 작동해야 했지만, 앞서 기상 당국이 만조 수위를 1.22m로 낮게 예측한 탓에 모세는 멈춰 있었다. 17년 동안 60억 유로(약 8조원)를 투입해 만든 모세를 가동조차 못해 보고 홍수 피해를 또 입은 것이다. 이에 모세 작동기준을 만조 수위 1.2m로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치고 있다.116개 섬이 409개 다리로 연결된 도시인 베네치아에선 국지성 폭우나 하천 범람 때문에 홍수가 생기는 게 아니라 비바람과 범람한 바닷물이 섞여 ‘짠물 홍수’를 일으킨다. 특히 매년 9월부터 이듬해 4월 지역풍 영향으로 바닷물 만조 수위가 높아지는 ‘아쿠아 알타’(높은 물이란 뜻)가 발생하면 베네치아는 홍수에 취약해진다. 만조 수위가 1.1m가 되면 보행자 대상 경계령이 발동되고, 그보다 5㎝만 수위가 더 올라도 명물인 곤돌라 운행이 중단된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1983년 모세 설계라는 대공사를 기획하고, 2003년 공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베네치아는 모세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원래 2011년 가동 예정이었지만 기술적인 난관, 예상보다 불어난 건설 비용, 정계 인사들이 대거 연루된 부패 스캔들을 거치며 완공이 지연됐다. 결국 지난 7월에야 완공된 모세를 시험가동했고, 이후 몇 주 뒤 1.35m 만조의 바닷물을 막아 내는 성과도 냈지만 정작 이번에 홍수가 날 때 모세는 멈춰 있었다. ‘모세의 기적’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베네치아의 실망감은 어느 때보다 더 커졌다. 시민단체 베네치아닷컴을 이끄는 마테오 세치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겨울 홍수라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모세가 있으면 홍수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비밀의 숲 너머 낭만을 거닐다

    비밀의 숲 너머 낭만을 거닐다

    보통 습지 하면 키 낮은 풀과 질퍽한 땅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대구 달성습지는 다르다. 낙동강에 바짝 붙어 있긴 해도 질퍽하지는 않다. 육지화됐기 때문이다. 이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경관이다. 달성습지 안으로 들어가면 예상과 다른 풍경에 놀란다. 습지라기보다 숲에 가까워서다. 겉보기와 달리 숲 그늘도 제법 깊다. 달성습지를 에두르고 있는 달성습지 10리길을 돌아봤다.대구의 수변공간 중 자연적인 모습을 가장 잘 유지하는 곳 중 하나가 달성습지다. 낙동강과 금호강, 대명천 등이 합류하는 곳에 형성된 습지는 총면적만 약 2㎢에 이른다. 대표 동물인 맹꽁이(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와 희귀식물인 모감주나무 등 약 230종의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달성습지 십리길의 들머리는 ‘달성습지 생태학습관’이다. 시청각실과 365오픈스튜디오 등을 갖춘 체험 학습 공간이다. 외관은 흑두루미가 날개를 편 형상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달성습지는 흑두루미 수천 마리가 겨울을 나던 곳이었다. 수많은 철새들이 하늘길을 오가다 들르던 휴게소이기도 했다. 생태학습관 외형은 그러니까 당시와 견줄 만한 생태 환경을 복원하겠다는 바람과 각오를 표현한 것일 터다. 생태학습관 옥상 전망대에서 달성습지 전경을 일별한 뒤 트레킹에 나선다. 생태학습관 오른쪽은 대명유수지다. 낙동강 범람을 막기 위해 강둑과 성서산단 사이에 조성한 공간이다. 여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소개되면서 요즘 대구의 새로운 ‘핫플’로 훌쩍 뛰어올랐다. 너른 억새밭 사이에서 ‘인생샷’을 남길 수 있어 평일에도 나들이객들의 발길이 잦은 편이다. 강둑길을 따라 걷는 맛이 각별하다. 동요에서처럼 ‘나귀 타고 장에 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는 둑방길이다. 발에 와닿는 흙의 감촉도 새롭다. 둑방길 끝자락에서 아래로 내려서면 숲이 시작된다. 은행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숲 등이 순서대로 나온다. 숲의 나무들은 간격이 지나치게 조밀하다. 그런데도 간벌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숲을 가꾼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어딘가 보통의 숲과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전영순 숲해설가는 “오래전 보상을 노리고 조림을 한 몇몇 사람들 때문에 나무들이 밀식됐다”며 “습지에 인위적으로 간섭할 수 없어서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간격이 조밀한 탓인지, 나무들은 둥치는 굵어지지 못한 채 위로만 높게 솟구친 모양새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숲이 제법 깊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숲을 지나고 나면 전형적인 습지가 나온다. 강물이 휘돌아 가고 물억새와 왕버들나무, 느릅나무 등이 습지 여기저기에 자유롭게 자라고 있다. 습지의 매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달성습지 너머는 강정고령보 공원이다. 대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디 아크’가 이곳에 있다. 디 아크는 이집트 출신의 건축가 하니 라시드가 설계했다. 물수제비, 수면 위로 솟구치는 물고기, 한국의 전통 도자기인 막사발이 건축 콘셉트라고 한다. 탐방로는 생태학습관 왼쪽의 사문진나루터까지 이어진다. 낙동강 위로 난 데크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나루터다. 사문진나루터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피아노가 들어온 곳이다. 역사공원, 전통 주막거리 등이 조성돼 있다. 주막집에서 뜨끈한 국물에 후루룩 말아 먹는 국밥 맛이 별미다. 고령의 특산물인 대파를 뭉텅 썰어 넣어 맛도 순하다.내친김에 도동서원과 고령 쪽의 은행나무숲까지는 돌아보는 게 좋겠다. 고령 좌학리 은행나무숲은 달성습지에서 차로 15분 거리다. 드라마 ‘프로듀사’, ‘킹덤’ 등이 촬영된 곳. 고령 지역에선 결혼 사진 촬영명소로 알려졌다. 수백 그루의 은행나무들이 낙동강을 따라 늘어서 있다. 바닥에 뒹구는 노란 잎 사이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남다른 경험일 듯하다. 은행나무 숲의 공식 명칭은 낙동강22공구은행나무캠핑장이다. 낙동강을 따라 좀더 내려가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대구 달성 도동서원이다. 좌우대칭이 엄격히 적용된 건물의 앉음새가 일품이다. 서원 앞 늙은 은행나무가 주는 풍경의 깊이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다. 은행나무는 서원이 시작될 때부터 400여 성상을 한자리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글 사진 대구·고령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향촌동 판코리아 위 골목에 연탄갈비와 옛날 국수를 내는 집들이 많다. 값은 무척 싸다. 잔치국수가 2000원, 연탄갈비는 2인분 1만원, 반인분 3000원이다. 소고기 뭉티기도 한 접시에 1만 8000원이면 맛볼 수 있다. 소주 반 병에 연탄갈비를 묶어 3500원 세트로 팔기도 한다. 값은 싸도 맛은 저렴하지 않다. 특히 멸치 향이 강한 국수 국물은 한겨울 추위를 녹이기에 제격이다. 잔치국수에 기름기 뺀 연탄갈비를 얹어 먹는 것도 별미다. ‘너구리’ 등이 알려졌다. -상인동 일대에 대구의 독특한 먹거리인 소고기 뭉티기를 내는 집들이 몰려 있다. 유명 뭉티기 맛집들에 비해 값이 한결 싸다. 앞산 해넘이 전망대에서 멀지 않다. -요즘 유행하는 개화기 복장은 대여료가 2만원 선이다. 대화의 장 옆 향촌부띠끄에서 빌릴 수 있다. 향촌부띠끄 안에 마련된 개화기풍의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도 많다. -대화의 장은 오전 10시 30분 이전엔 출입 불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조치다.
  • [문화마당] 정보와 예술을 품은 광고판/최나욱 건축평론가

    [문화마당] 정보와 예술을 품은 광고판/최나욱 건축평론가

    코로나19 탓에 유동인구가 줄고 도시가 휑하다. 건물 단위에서 사라진 것은 광고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사람들이 도시를 돌아다니지 않으니, 굳이 돈 들여 광고를 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한다면 자못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사진가 조반니 하니넨은 이 편견을 뒤집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수없이 쏟아지던 지난 5월 밀라노의 광고판을 대여해 여러 가지 작업을 발표했다. 유례없을 정도로 스산해진 도시에서 과연 누가 보겠나 싶지만, 반대로 조반니는 ‘광고판이 담긴 도시 사진’을 다시 찍어 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 때문에 한산해진 도시 사진들을 나날이 찍고 공유하는 중이다. 지금처럼 도시의 광고판이 널리 선보일 날이 또 언제 있겠는가.” 평소 같았다면 광고가 집행되던 기간에만 거리의 사람들에게 보였겠지만, 역사적으로 기록될 작금의 ‘사람 하나 없는 밀라노 사진’과 함께 이 사진은 꽤나 광범위하게 소비될 것 같다. 도시를 직접 경험하는 일은 분명히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으로 ‘도시 자체’의 이미지는 여느 때보다 주목받는 것이다. 한때 불편한 도시 공해처럼 여겨지던 광고판이 반대로 오늘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도시 이미지의 정보 요소로 위상이 바뀐 것도 그 방증이다. 광고와 정보의 차이는 사람들이 원하냐 원하지 않냐의 여부인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따라 이 관계 또한 전복된다. 이는 루이비통의 아티스틱 디렉터 버질 아블로가 한참 전부터 해 왔던 주장을 연상하게 한다. 패션업계에서는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일이 성공의 징표나 다름없었는데, 아블로는 그것의 비합리성을 지적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진짜 기능을 다시 이야기한 바 있다. 앞으로 매장은 ‘무언가를 파는 곳’이 아니라 ‘그곳에 있다’는 광고판의 기능이 전부라고 말이다. 심지어 매장에는 와이파이만 있으면 된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매장 경험에 집중하고 있을 때 아블로가 이미지의 경험을 얘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반니의 작업은 도시 경험을 이미지를 이용해 설명한다. 상당수의 직접 경험이 어려워져만 가는 상황은 건축과 도시 분야에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컨대 공간을 찾아 경험하는 게 어려워진 오늘날에도 과연 건축의 본질을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곳곳을 경험하는 지금 우리에게 도시는 어떤 것인지 등등. 한때 너무 당연하게 믿어 왔던 믿음들이 깨져 가고 변화하는 중이다. 보이는 층위와 방법이 달라지면서 언젠가 광고였던 게 정보가 되기도, 광고판은 도시 이미지를 형성하는 중요한 건축 요소로 기능하기도 한다. 거리두기와 함께 ‘이미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온 경험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일련의 경험마저도 점차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더욱 비판적 역량이 요구된다. 그저 뻔한 유행과 감상을 반복하는 이미지 대신 말이다. 가령 그저 ‘비어 있다’는 황량한 감정을 조장하는 도시 이미지들의 반복은 예술적으로도 진부한 어휘이지만, 사회적으로도 사람들을 우울감에 빠뜨리는 일차원적인 기록 사진을 벗어나지 못한다. 직접 경험을 대리하는 역할로서 이미지는 갈수록 많은 것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지금 팬데믹 시대가 분명 비극일지라도, 특정 시대를 기록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어느 예술가들은 단순한 감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통찰과 해석으로 나아가야 한다.
  • [여기는 남미]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멕시코 도심에 악어가 우글우글

    [여기는 남미]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멕시코 도심에 악어가 우글우글

    허리케인 에타가 휩쓸고 간 멕시코 도심 곳곳에 악어떼가 들끓고 있어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악어의 출현이 잦은 곳은 침수와 홍수가 일어난 멕시코 남동부 지역이다. 대형 극장 앞을 악어가 거니는가 하면 주차된 자동차 밑에서 악어가 불쑥 튀어나오는 등 도심이 악어천국으로 변하고 말았다. 현지 언론은 "주도 타바스코와 인근 지역에서 주민들이 잡은 악어가 최소한 7마리에 달한다"며 "보고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도심에서 잡힌 악어는 더욱 많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허리케인 에타로 침수와 홍수 등의 피해가 발생한 곳은 치아파스, 베라크루스, 타바스코 등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27명이 사망하고, 이재민 18만5000여 명이 발생했다. 물에 잠기거나 파손된 주택은 7만2000채에 이른다.특히 타바스코주(州)의 주도 비야에르모사와 인근 지역에선 강이 범람하면서 큰 피해가 났다. 공포의 악어떼는 재난을 틈타 도심으로 밀려왔다. 도심에 출몰하는 악어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덩치가 큰 녀석들이다. 현지 일간 헤럴드는 "길이 3m 이상 되는 악어를 봤다는 목격담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악어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현하고 있다. 성인 허리춤까지 물이 차오른 침수지역은 물론 대로에서까지 악어가 목격되고 있다. 주민들은 악어 공포에 집에서도 불안에 떨고 있다. 비야에르모사의 주민 파블로는 "악어를 봤다는 이웃 주민들의 말을 듣고 혹시라도 침수된 집에 악어가 들어올까 걱정돼 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침수지역에선 생필품을 사려고 외출하는 것도 걱정거리다. 여자주민 후아니타는 "마트에 가려면 무릎까지 물이 차오른 곳을 지나야 하는데 악어가 있을지 몰라 며칠째 외출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심으로 흘러들어온 악어가 주민을 공격한 사건도 있었다. 현지 일간 엘솔데멕시코는 "비야에르모사의 라벤타 지역에서 한 주민이 악어의 공격을 받아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강물이 범람하면서 악어떼가 몰려왔지만 앞으로 물이 빠진다고 악어떼가 물러가진 않을 것"이라며 "주택 정원 등에 악어가 숨어 있을 수 있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봉제 주름잡던 동네… 개발과 보존 사이 ‘박제된 시간’

    봉제 주름잡던 동네… 개발과 보존 사이 ‘박제된 시간’

    북서울꿈의숲과 동남쪽으로 맞닿아 있는 서울 성북구 장위동은 서울의 과거가 박제된 듯이 남아 있는 곳이다. 1960년대에 지어진 국민주택단지와 성북동이나 한남동에 비견되던 고급 주택단지는 옛 모습을 다소 잃었지만, 변함없이 공존하고 있다. 더딘 개발의 역설적 효과로 장위동은 수십년 전 서울의 아슴푸레한 기억을 바로 눈앞에 소환해 준다. 그렇지만 서울의 다른 동네와 마찬가지로 변두리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개발 욕구가 보존 정책과 부딪치며 오랫동안 갈등을 빚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2회 김중업의 장위동 이야기 편은 지난 24일 오전 10시 서울지하철 6호선 돌곶이역에서 출발했다. 역에서 이어진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좌우로 작은 봉제 업체들이 눈에 들어온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장위동은 2000여개의 작은 봉제공장들이 밀집한 서울 패션산업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띄엄띄엄 소규모 업체들이 산재해 있어 그 시절의 명성은 잃었다. 미싱 소리가 가득했을 거리는 휴일이라 한산하다. 군데군데 ‘미싱사 구함’, ‘미싱 수리’ 등의 간판만 드문드문 보일 뿐 적막감이 감돈다.장위동에 봉제공장이 들어온 것은 1980년대라고 한다. 1970년대에 준공된 6개 동의 건어물 상가에 봉제업체와 자수업체가 들어오고부터다. 장위동은 이후 동대문 패션산업의 배후 단지로 성장했다. ‘내외’(NAEWAY)라는 상표로 와이셔츠, 점퍼 등을 만들어 판 신사복 전문업체 ‘내외패션’ 본사도 장위2동 새마을금고 앞에 있었다. 지금도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가 돌곶이역 근처에 있어 이곳이 한때 봉제 중심지였음을 알려준다. 셔츠 전문 공장들이 많았던 장위동의 봉제산업은 2002년 월드컵 때 ‘Be the Reds’라고 적힌 붉은색 티셔츠를 만들어 내면서 ‘절정기’를 맞았다. 그러나 물밀듯이 들어온 외국 의류의 범람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서울미래유산의 후원으로 ‘봉제양명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부활’을 꿈꾸고 있다. 발걸음을 재촉해 다다른 곳은 장위 전통시장. 토요일인데도 상인들은 아침 일찍부터 가게를 열어 손님을 맞고 있다. 일을 마치고 장을 보러 온 봉제공들로 붐볐을 시장은 이곳저곳에 세월의 더께가 겹겹이 쌓여 있다. 이 시장은 400여m의 길이에 170여개의 가게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지금은 재개발사업으로 두 동강이 나 5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60여개 규모로 줄어들었다. 시장에는 어려운 이웃들이 아무나 가져갈 수 있는 식재료를 넣어 두었다는 냉장고가 있다. 쌀쌀한 날씨에 온기가 전해져 온다.전통시장과 접한 곳에 장위동 후생·국민주택단지가 있다. 6·25 한국전쟁의 전후(戰後) 주택난을 해결하고자 1950~1960년대 다양한 이름의 주택단지가 주요 도시에 지어졌다. 재건주택, 후생주택, 부흥주택, 국민주택 등인데 부족한 자재로 공병대를 동원해 짓다 보니 부실 공사를 피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는 청량리, 수유동, 갈현동, 불광동, 수유동, 남가좌동 등에서 지금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958년에 들어선 장위동 후생주택을 자세히 살펴보니 벽체가 축대처럼 돌을 쌓은 모양이다. 처음에는 주먹돌이 들어간 흙벽돌을 썼다고 하는데 중간에 수리한 집들도 많다. 60년의 세월을 건너왔지만, 아직 단단해 보인다. ‘돌집’이라는 이름이 달갑지 않겠지만 겨울에 따뜻해서 좋다는 주민도 있다고 한다. 1층은 온돌이고 난방이 되지 않는 2층은 일본식 다다미로 만들었다. 장위동 국민주택은 1964년에 입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총면적이 5만 9000여㎡에 이른다는 조사가 있다. 장위초등학교에서 성북동 동아에코빌아파트에 이르는 장월로의 좌우 양쪽에 걸쳐 있다. 상당수 주택이 연립주택으로 재건축하는 등 단지가 변형되었지만 원래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각기 다른 시기에 형성된 후생주택과 국민주택의 원형을 확인하고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국민주택단지는 장위뉴타운 15구역 안에 있어 개발과 보존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다. 서울시와 성북구는 2018년 이곳을 정비구역에서 주민투표를 거쳐 직권해제했다. 주민들은 소송을 내 서울시와 다투고 있다. ‘서울고법 판결에서 이겼다’는 조합 측의 알림 글이 눈에 띄었다. 재개발로 시가 10억원이 넘는 새 아파트들이 이미 들어선 구역도 있으니 해제된 구역 주민들이 반발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해제 구역의 일부에서는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13구역이 그런 곳이다. 골목길을 한참 걸어 도착한 곳이 ‘연주황골목’이다. 서울시 가꿈주택 골목길사업 1호로 24가구가 참여했다. 장위동에 감나무가 많아서 연주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지은 지 수십년이 더 되어 보이는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골목길이 아늑하고 아름답다. 담장을 낮추고 벤치와 화단을 만드니 이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 정도라면 개발 유혹을 견디고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법도 하다.장위동은 조선 순조의 셋째 딸이며 조선시대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와 연관이 있다. 윤의선에게 하가(下嫁)한 덕온공주는 1844년(헌종 10년) 헌종의 계비를 간택하는 행사에 참석했다가 급체로 사망했다. 덕온공주는 장위동에 안장됐는데 묘소는 개발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부마 남녕위 윤의선은 1865년 장위동 묘소 근처에 공주를 위한 재사(齋舍)를 짓고 살았다. 이런 인연으로 2012년부터 장위동에서는 덕온공주와 윤의선의 혼례를 재현하는 ‘장위부마축제’가 열리고 있다. 윤의선은 덕온공주와의 사이에 후사가 없어 윤회선의 아들 윤용구를 양자로 삼았다. 윤용구는 고종 8년에 문과에 급제, 벼슬이 예조·이조판서에 이르렀다. 그는 경술국치 후 일제가 남작 작위를 주었지만, 거부하고 ‘장위산인’(獐位山人)이라 자칭하며 장위동 재사에서 은거했다고 한다. 재사는 돌곶이역에서 북서울꿈의숲으로 이어진 도로 오른쪽 중간쯤에 있다. 서울시 민속자료 25호다. 이 집을 김진흥이라는 사람이 사들였다가 1998년 불교교단에 기증했다. 그래서 이름은 ‘김진흥 가옥’이지만 ‘진흥선원’이라는 절로 사용되고 있다. 답사단은 장위동 속의 부촌이었던 ‘동방단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급주택들이 들어서 있던 곳으로 북서울꿈의숲과 접한 장위1동 언덕배기다. 1949년 서울로 편입될 당시 인구가 수천명에 지나지 않았던 장위동은 1950년대까지 대부분 논밭으로 이뤄져 있었다. 지금의 장위1동의 구릉지와 농토는 대부분이 윤용구의 후손들 소유였다. 6·25전쟁 이후 후손들은 옛 단위로 10만평에 이르던 넓은 땅을 팔았는데 그 땅을 사들인 것은 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이었다. 주택이 부족하던 시절에 자금력이 풍부한 보험회사에게 토지를 매입해 주택단지를 건설하도록 유도한 것은 정부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이름이 동방주택단지로 붙여진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지금도 동방고개, 동방어린이공원과 같이 동방 자가 붙은 이름을 찾을 수 있다. 동방주택단지는 정릉동에도 있었는데 장위동 단지가 4.6배나 더 컸다고 한다. 1968년 발행된 ‘동방생명 10년사’에 따르면 장위동 동방주택단지의 면적은 10만평보다 훨씬 큰 16만여평이었다. 그런데 이곳 주택들은 면적이 겨우 10평 안팎인 국민주택단지와는 대조를 이룬다. 대지가 100평이 넘는, 당시로서는 최고급 주택이었다. 서민주택 보급이라는 정부의 의도는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동방생명은 토지와 주택 분양으로 큰돈을 벌었을 것이다. 동방단지는 군 장성들과 유명 연예인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했다. 황영시, 노재현 같은 이름을 알 만한 장군들도 이곳에 살았는데 동방단지에 사는 ‘별’이 모두 32개였다는 말이 있다. 연예인으로는 문희와 이상해가 한때 거주했다고 한다. 대부분이 빌라 같은 공동주택으로 바뀌었지만 커다란 단독주택들이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전해 준다. 그중에 장위동 230의 49의 집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1980년대 한국의 중산층 주택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1970년에 건축되었다가 1986년 건축가 김중업과 김수근이 리모델링한 집이다. 성북구가 이 집을 사들여 ‘김중업 건축문화의 집’으로 명명했다. 1층에는 장위마을 홍보실 등이 있고 위층에는 김중업 전시실 등이 있다. 답사단이 차례로 집 내부를 구경했다. 리모델링한 지도 30여년이 지났지만 실내외의 호화로움은 여전하다. 동방단지에서 길을 내려오면 도로를 건너 북서울꿈의숲에 이른다. 답사단은 창녕위궁재사에 모여 이번 답사를 마무리한다. 국가등록문화재 제40호인 이곳은 조선 순조의 둘째 딸이자 덕온공주의 언니인 복온공주와 부마 창녕위 김병주의 재사다. 한일병합 후 김병주의 손자 김석진이 울분을 참지 못하여 자결한 곳이기도 하다. 숲속에 합장됐던 복온공주와 부마의 묘소는 경기 용인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조선 말기 두 공주와 부마들, 그 후손들의 굴곡진 삶이 장위동 역사의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장위동에서는 개발을 둘러싼 갈등과 알력이 10여년째 이어지고 있다. 장위동의 문제만이 아니라 서울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보다는 둘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은 답사의 수확이었다. 편리함만 추구하다 과거를 의식 없이 지우다 보면 역사와 기억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손성진 서울신문 논설고문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해설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 ■다음 일정 제23회 노량진 산책 ●출발 일시 10월 31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선 넘는 일요일] 스커트, 파워숄더, 핫팬츠… 요즘보다 더 ‘힙한’ 1970년대 레트로 패션

    [선 넘는 일요일] 스커트, 파워숄더, 핫팬츠… 요즘보다 더 ‘힙한’ 1970년대 레트로 패션

    “저 패션이 1970년대 트렌드였다고?”지난 8월 공개된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Dynamite(다이너마이트)’가 공개됐을 때,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복고풍 패션’이었다. 다소 촌스러운 나팔바지와 상의, 조끼, 바지로 이루어진 스리 피스 슈트(Three-piece suits) 패션까지 보여준 방탄소년단의 모습은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과거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했다.이뿐 만이 아니다. EXO-SC의 세훈&찬열은 지난 7월 디스코(Disco) 리듬이 돋보이는 힙합 곡 ‘10억뷰’를 발표했고, 마마무 또한 9월에 통통 튀는 레트로 사운드의 ‘WANNA BE MYSELF’를 공개했다. 이들은 뮤직비디오에서 화려한 컬러의 디스코풍 의상과 1970년대를 대표하는 일명 ‘청청패션’이라 불리는 데님(Denim) 패션을 선보이며 레트로 감성을 자신들만의 색깔로 재해석했다. 디스코 패션이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것은 불황기였던 1970년대. 그 당시 서울신문이 발행한 ‘선데이 서울’을 살펴보면 짧은 길이의 핫팬츠(Hot pants)와 슬랙스와 유사한 벨 보텀(Bell bottom)은 물론 미니, 미디, 맥시스커트 등 다양한 길이의 스커트가 자주 등장한다. 또한 플로럴 프린트(Floral print) 같은 화려한 꽃무늬의 원피스가 유행하면서 자유로운 감성의 ‘히피 룩(Hippie look)’ 스타일도 유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선데이 서울’에 등장하는 일반인들의 의상을 살펴보아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다양한 길이의 스커트와 ‘청청패션’이라 불리는 데님 패션이다. 당시엔 아슬아슬하게 짧은 미니스커트와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미디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이 거리를 휩쓸었고, 청자켓과 청바지, 청치마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7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일로 통이 큰 나팔바지와 길이가 긴 ‘롱롱 원피스’ 등을 꼽을 수 있지만, 특히 ‘슈트(Suit)’의 모습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당시 남성들에게 슈트가 각광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들 못지않게 여성들도 슈트를 즐겨 입은 모습을 선데이 서울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1970년대에는 남성과 동등해 보일 수 있는 슈트가 여성들에게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우리가 흔히 ‘어깨뽕’ 의상이라고 말하는 ‘파워 숄더(Power shoulder)’가 유행하기도 했다. 사실 1970년대는 전 세계적인 석유 위기와 환경 문제가 대두된 불황의 시기였다. 특히 환경 문제의 심각성이 공론화되면서 친환경적인 패션산업이 등장하며 면, 실크, 모 등의 천연섬유가 인기를 끌었다. 또한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지속되는 불안과 갈등의 환경 속에서 젊음과 자유를 상징하는 데님 스타일이 대중화되었고, 반체제 패션의 상징이었던 펑크 패션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화려하고 과감한 스타일의 의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이처럼 온갖 패션이 범람했던 1970년대 레트로 패션이 온 세계가 코로나로 위기를 맞은 지금, 가을과 함께 찾아왔다. “패션은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라는 말처럼, 전 세계적인 위기의 코로나 시대에 레트로 패션 열풍이 다시 찾아왔다는 것은 지금 우리들에겐 자유와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아닐까. 글 임승범 인턴 seungbeom@seoul.co.kr영상 임승범 인턴 장민주 인턴 goodgood@seoul.co.kr
  • 영산강 죽산보, 8년 만에 결국 해체

    영산강 죽산보, 8년 만에 결국 해체

    전남 나주의 영산강 죽산보가 건설 8년 만에 결국 해체된다. 광주 승촌보는 상시 개방하기로 했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28일 영산강·섬진강유역관리위원회(유역관리위원회) 본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역관리위는 이를 국가물관리위원회에 제시했다. 국가물관리위는 이를 심의한 뒤 조만간 해체 또는 상시 개방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유역관리위의 결정은 지난해 2월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가 제시한 방안과 같다. 앞서 금강유역물관리위는 지난 25일 세종보 해체, 공주보 부분 해체, 백제보 상시 개방이라는 금강 3개 보 개선 방안을 의결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금강·영산강 수계의 일부 보들이 해체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해당 보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 등은 각각 존치와 전면 해체를 놓고 격돌, 갈등이 지속될 전망이다. 영산강뱃길복원 추진위와 영산포홍어상인회원·농업인 등으로 구성된 ‘죽산보철거 반대 투쟁위’는 앞서 지난 25일 전남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금강수계의 세종보 등을 포함해 철거 대상 3개 보의 건설 및 해체 비용이 2700여억원에 달하는 등 국민 혈세 낭비가 예상된다”며 “농업용수 이용과 관광객 유치 등을 위해서라도 죽산보를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광주전남지역 20여개 환경·시민단체로 구성된 ‘영산강재자연화시민행동’은 이날 유역관리위가 열린 나라키움광주통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죽산보와 승촌보 모두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평·나주 등 수계 인근 일부 주민도 “최근 폭우로 문평천이 범람했는데, 이는 죽산보 때문에 본류의 물이 원활하게 유통되지 못하면서 피해가 발생했다”며 보 철거를 요구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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