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농경유물 대량 출토/삼한시대 추정/광주서
◎80㎝ 벼껍질층·목제기구 포함/빗자루 등 당시 생활 복원 길터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563 일대에서 우리나라 고고학 발굴사상 처음으로 소택지유적을 확인한 국립광주박물관은 이 유적발굴을 통해 19일 다양한 목제기구를 비롯,토기 짚가공품 씨앗등 기원전 1세기경의 농경생활 유물을 대량으로 수습했다.
국립광주박물관이 지난 5월부터 발굴한 이 유적(11×11m)은 영산강 지류 극락강이 범람하면서 퇴적층을 이룬 저습지대 유적으로,최대 80㎝ 두께의 벼껍질 층과 함께 생활유물인 목제기구가 주로 출토되었다.이같은 벼껍질층은 세계 벼농사 유적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 밝혀졌다.
목제유물은 나무칼(목검),옻칠을 입힌 칼집,칼자루와 장식,활등의 무구류와 낫,괭이,도끼자루등의 농기로 되어있다.이밖에 자귀자루와 같은 공구류,목기와 뚜껑,나무문짝,쐐기,짚신을 만들때 사용한 나무골(목형)이 목제유물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후기 민무늬토기시대 유물인 굽다리잔 잔 대접 바리등의 토기가 나왔다.또 씨앗류로는 벼 불탄 쌀(탄화미)보리 가래 호두 살구 참외 박씨등을 수습했다.
벼농사와 관련한 또 다른 유물로 짚을 꼬아만든 새끼가 발견되었다.이와 더불어 삿자리,칡을 동여 만든 빗자루,짐승가죽,노끈을 엮어 만든 주머니,천조각을 발굴함으로써 당시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식생활을 가늠하는 자료로 우렁이 조개 다슬기등의 민물 조개류와 소뼈,사슴뼈가 나왔다.
이번 발굴에서 얻은 또하나의 수확은 발화대와 회전막대의 출토다.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불을 얻는데 필요한 어떤 자료도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었다.
국립광주박물관 이건무 관장은 『이 유적 발굴을 계기로 우리나라 선사문화의 복원은 물론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가 맞물린 당시 사회문화체계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