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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함양군수 김종직을 아십니까?(상)

    요즘 세상을 혼란스럽다고들 한다.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믿어버리는 풍조,가정의 해체,학교와 학문의 붕괴,스승과 제자 관계의 변질,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의 부패와 무능이 국민을 끊임없이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모두 걱정하며 불안한 나날을 산다.오늘은 이같은 불안과 근심을 덜고,어쩌면 혼돈의 우리 시대를 편안하게 해줄 묘책을 찾게 될지도 모를 곳으로 길을 떠나기로 했다. 경상남도 함양으로 간다.함양은 산 너머에 또 산이 있고,고개 너머에 또 고개가 있는 두메 산골이다.바깥에서 함양으로 들어가는 길은 크게 세 길이 있는데,진주에서 가는 동쪽길과 전라북도 남원에서 가는 남쪽길,그리고 전라북도 장수에서 가는 북쪽길이다.요즘은 전라남도 구례에서 지리산 노고단을 넘어서 오는 서쪽길도 생겼으니 옛날의 그 첩첩산중이 사통팔달로 트인 곳이 되었다. 함양 가는 네 길은 모두 저다마 예사롭잖은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 ●신라·백제 국경 맞닿았던 첩첩산중 북쪽길은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계내면 장계리를 잇는 육십령(六十嶺)고개를 넘는 길이다.육십령은 해발 734m나 되는 가파른 고갯마루인데,옛적에는 화적떼가 밤낮으로 들끓어서 육십 명이 모여야 간신히 넘을 수 있었다 하여 육십령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첫걸음 하는 이들은 자신의 운전면허증이 진짜인지를 혹독하게 시험당한다는 우스갯말이 생길 만큼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고 내린다.하지만 어머니 품같은 덕유산의 여름 철쭉과 겨울 눈꽃은 천하제일이다.그러나 무엇보다 뜻깊은 역사는 이 육십령이 백제 사람과 신라 사람이 넘나들면서 서로의 문물을 뺏고 빼앗기는 통로였다는 점이다. 남쪽길은 경남 함양군 함양읍 죽림마을과 전북 남원군 동면 성산마을이 코를 마주대고 동서로 앉아 있는데 50m쯤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너무나 완연하다.그래서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있는 고개를 두고 남원사람들은 ‘팔량’이라 부르고 함양사람들은 ‘팔령’이라 부른다. 서쪽길은 전남 구례에서 화엄사와 천은사를 지나 지리산 노고단 산자락을 가파르게 기어올라 성삼재를 넘어야 한다.이 길도 육십령 넘는 길 못지않게 운전 솜씨를 시험받게 되는 아기자기한 산길이다.성삼재를 넘으면 곧바로 뱀사골 계곡이다. 뱀사골 끝자락에 실상사가 있고,다시 용유담 계곡 길을 따라 내려가면 경상도와 전라북도 경계를 지나 함양으로 들어서게 된다.곧장 변강쇠 전설의 고장이자 눈망울이 가장 아름다운 장승이 있는 벽송사도 있다.용유담 계곡이 끝나면서 엄천강이 시작되는데 엄천강 맑은 물길을 따라 가다보면 함양군 휴천면 엄천 마을이 산자락에 보듬겨 있고,마을 앞 길가에서 자그마한 비석 하나를 만나게 된다. 엄천강 기슭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펀펀한 돌 하나를 주워다 생긴 그대로 세운 비석에는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先生) 관영차밭(官營茶園) 조성터(造成址)”라 씌어 있다. 동쪽 길은 진주에서 오는 국도 3호선과 대전 충무간을 잇는 대진고속도로가 훤하게 뚫렸다.나그네는 엄천마을 앞에 있는 그 비석의 앞면과 뒷면을 다 읽고는 잠시 함양의 옛일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최치원·정여창·박지원 등 名목민관 부임 지금의 함양군은 1914년까지만 해도 안의군(安義郡)으로 독립해 있었던 안의면(安義面)을 아우르게 되면서부터 그 역사와 문화가 더욱 깊은 유서를 지니게 된 고장이다.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이기도 했는데,사철 마르지 않는 여러 줄기의 개천과 강 좌우에 펼쳐진 넓고 비옥한 토지에서 나는 곡식을 차지하기 위한 양측의 마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에 에워싸여 있어서 풍부하고 좋은 목재와 땔감,약초와 산나물이 많고 밭자락 땅심도 좋아서 밭농사도 논농사 못지않았다. 이같이 좋은 생활 조건들로 인해 함양군으로 통합되기 이전 안의현(安義縣),함양현(咸陽縣) 시절의 현감이나 군수,관아의 육방관속 아전들 중에는 오히려 탐학과 부정부패를 일삼아서 백성들을 고통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던 이들도 많았던 것 같다. 이런 폐단이 단절되지 않고 있는 중에도 함양 땅의 지도자로 왔다 간 이들 중에는 참으로 훌륭한 어른들이 적지 않았다.그분들은 비단 지난 어느 시대의 함양군수나 안의현감에 그치지 않고,시간을 뛰어 넘어 지금 이 시대에까지도 좋은 지도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민족의 양심이자 살아 있는 정신의 사표이다. 첫 번째 어른은 891년에 함양태수를 지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다. 두 번째는 1471년에서 1474년까지 함양군수를 지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며, 세 번째는 1495년에서 1498년까지 안의현감으로 재직했던 일두(一) 정여창(鄭汝昌) 선생이고, 네 번째가 1791년에서 1796년까지 안의현감을 지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선생이다. 네 분 어른 모두 우리나라 역사에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뿌리깊은 정신의 샘물이며 의리와 예절,무엇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도 사무치게 그리운 이름으로 살아 있다. 지리산과 가야산을 낀 마을마다 신비로운 행적을 남겨 놓은 사람 최치원은 함양 태수를 지내면서 해마다 범람하는 위천을 막기 위해 고심했는데,위천 가에다 손수 심어 가꾸었다는 상림(上林)의 거대한 잡목숲의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학사루를 지어 지금도 한 목민관의 선행을 기리고 있다. 정여창은 김종직 선생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 김굉필(金宏弼)과 함께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의 길로 들어서 저 향기롭고 빛나는 영남사림의 계승자가 되기도 했던 어른이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영국의 셰익스피어,독일의 괴테,중국의 소동파가 있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 최고의 대문호였다.그런 그가 안의현감으로 재직한 6년 동안에 보여 준 성공한 목민관으로서의 생생한 증거는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제도를 표방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든 공직자와 정치인을 포함한 교육자,사회지도층 사람들에게 왜 이 땅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지를 아프게 따져 묻고 있다. 함양군수 김종직은 1431년 지금의 경남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한재마을에서 태어났는데,아버지 김숙자(金叔滋)는 그에게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다. 김숙자는 고려말 조선초 전환시대의 도학사상을 이끌었던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 중심의 의리파(義理派) 학통을 계승하여 아들 김종직에게 이어준 분이다.정몽주,길재를 의리파라 부르는 것은 고려말 국내외적인 현실을 인식함에 있어서 일단 고려왕조를 존속시키면서 점진적으로 개혁을 해나가자고 했던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몽주·길재의 義理派 학통 계승 이에 반하여 고려왕조는 수명이 다했으므로 새로운 왕조인 조선조를 창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정도전 등은 정치 권력을 장악하였고,의리파는 학맥을 계승했다.이렇게 이어진 도학사상의 학통은 김종직에 이어 김굉필과 정여창에게 물려졌고,조광조(趙光祖)에 이르러 도학사상의 절정기를 맞았었다.도학사상은 국내적으로는 불의(不義)에 대하여 항쟁하고,외적의 침략이 있을 때는 국가를 수호하는 강력한 의리사상을 지니고 있는데,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의리파의 특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특히 국내적인 문제에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온몸으로 이를 바로잡으려고 싸우는 태도는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함양 농민들이 빠져있던 세금제도의 모순에 따른 고통을 깨끗이 척결해 보임으로써,도학사상이 흔해빠진 논리의 유희가 아니라 세상을 깨끗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실천적 학문임을보여준 첫 사례였다.백성이 행복해야 나라가 산다는 김종직의 철학적 명제가,함양군수라는 직급이 매우 낮은 지방관직을 맡았을 때 실천된 점은 오늘날 이 나라의 공직자와 정치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에 신선한 충격이 되고 있다.
  • 주말매거진We/서울탱고-돌아가는 삼각지

    대중가요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인 가요순위 프로그램 20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이 노래는 흔히 삼각지 입체교차로와 결부돼 우리의 기억 한편에 자리잡고 있지만,노래는 입체교차로가 들어서기 1년 전에 만들어져 사실상 무관하다.입체교차로가 사라진 오늘의 삼각지에는 배호가 남긴 굵직한 발자취만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개발시대의 상징,삼각지 입체교차로 최근 용산 미군기지 이전문제로 주목을 받는 삼각지 일대의 행정구역 명칭은 용산구 한강로 1가동이다.이촌동이 아파트촌으로 개발되기 전에는 한강이 범람하면 삼각지 일대는 물바다가 돼 억새풀이 우거진 늪지를 이뤘다.까닭에 이곳은 ‘새펄’이라고 불렸다.세월이 흐르면서 ‘새펄-새뻘-세뿔’로 발음되다 일제시대 토지조사사업 과정에서 ‘세뿔’ 곧,‘삼각’(三角)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한강과 서울역,이태원 등 세 갈래로 통하는 길이라는 의미로 삼각지라 했다는 설도 있다. 삼각지에 입체교차로가 들어선 것은 1967년.입체교차로는 한강과 서울역,용산구청,이태원 등 4방향 교차시설로 67년 2월 착공된 뒤 그해 12월 준공됐다. 삼각지 입체교차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입체교차로였기 때문에 얽힌 사연도 많다. 이곳 토박이 김영환(59)씨는 “당시에는 입체교차로가 생소했기 때문에 관광코스로 각광받았다.”면서 “입체교차로에 들어선 차가 방향 감각을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내려간 일이 비일비재했고,입체교차로를 한 바퀴 돌 때마다 1년을 더 산다고 해 시골 노인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7번을 돌고 갔다는 일화도 있다.”고 전했다. 입체교차로는 갈수록 심해지는 교통 체증과 지하철 4·6호선의 개통,구조물의 노후화 등으로 94년 철거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노래와 입체교차로는 무관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는 입체교차로가 들어서기 1년 전인 66년에 만들어져 입체교차로와는 사실상 무관하다.노랫말은 연인을 만나러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내용이지만,실제 ‘돌아가는’ 또는 ‘회전하는’ 입체교차로의 준공과 더불어 더더욱 우리의 뇌리에 남게 됐다. 특히 입체교차로가 사라진 삼각지의 빈자리는 배호가 남긴 굵직한 발자취가 메우고 있다.2000년 11월 대중가수로는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로터리가 접해 있는 한강로 1가 121∼221번지에 이르는 길(한빛은행에서 국방부 서문까지의 500m 도로)의 법정 지명이 ‘배호길’로 명명됐다.이어 2001년에는 로터리 인근에 배호의 노래비도 세워졌다. 김선중(46) ‘배호기념사업회’ 회장은 “배호는 급성신장염이라는 병마와 싸우다가 71년 2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지금도 우리 곁에 이처럼 남아 있다.”면서 “이는 ‘돌아가는 삼각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KBS가요베스트 20주 연속 1위 드럼 연주자로 출발해 ‘히트곡 제조기’라는 명성을 얻을 만큼 가수로도 성공한 배호.당시 가요계에서는 드물게 절규하며 울부짖는 이른바 ‘솔’(Soul)풍의 창법을 구사했다. 배호는 64년 ‘두메산골’로 정식 데뷔했지만 독특한 창법 때문에 큰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67년 2월 발표한 ‘돌아가는 삼각지’로 당당히 스타 반열에 오른다. 특히 이 곡은 극장의 ‘대한뉴스’에서 삼각지 입체교차로를 홍보하기 위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전국적인 인기몰이에 성공,‘KBS 가요베스트’에서 20주 연속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수립했다. ‘돌아가는 삼각지’는 27만장(현재가치 270만장,이하 괄호안은 현재가치 환산치),연이어 발표된 ‘안개 낀 장충단공원’은 50만장(500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당시 신설 음반사인 ‘아세아레코드’가 대형 음반사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했다. 특히 ‘돌아가는 삼각지’의 작곡가이자 아세아레코드 사장이던 배상태씨가 배호의 전속사(뉴스타레코드)에 해약금으로 지불한 돈은 단돈 1000원(10만원).하지만 ‘돌아가는 삼각지’의 취입료로 지불한 돈은 30만원(3000만원)이다. 이어 배호는 아세아레코드로부터 전속료로 68년에 50만원(5000만원),69년 1월에 100만원(1억원)을 각각 받았다. 69년 7월에는 당시 전속료 최고액인 150만원(1억 5000만원)에 지구레코드와 계약했다.배호의 ‘몸값’이 3년 만에 1500배 뛴 셈이다. 배호는 6∼7년여의 짧은 가수 활동에도 불구하고무려 250여곡을 취입해 30여곡의 히트곡을 남겼다.앨범은 옴니버스 앨범을 포함해 60여장에 이른다. 이같은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배호의 팬 500여명이 ‘배호기념사업회’를 만들어 ‘트로트 가요제’ 등을 개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세훈 기자 shjang@
  • 함혜리 특파원의 파리지앵 스타일/레이스의 화려한 진화

    |파리 함혜리특파원|레이스의 화려한 변신이 시작됐다.주로 여성들의 속옷에서 섹시함을 강조할 때나 고급 여성맞춤복의 우아하고 섬세한 장식으로 사용돼 온 레이스가 최근들어 일반 여성복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이브생로랑 리브고슈,소니아 리키엘,랑벵,장폴 고티에 등의 유명 메이커의 디자이너들은 앞다퉈 레이스를 이용한 의상들을 선보이고 있다.톰 포드가 디자인한 이브생로랑 리브고슈의 원피스가 대표적이다. 랑벵의 디자이너 알베 엘바즈는 올 겨울 시즌을 위해 검은색 레이스를 얇은 주름으로 접어 장식한 드레스를 내놓아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소니아 리키엘은 특히 레이스를 즐겨 사용해 온 디자이너.지난 1968년 가슴부분을 레이스 처리해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블라우스를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후 그녀는 레이스를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다른 소재와 결합시키면서 새로운 효과를 시도하고 있다.“레이스는 피부에 문신을 한 묘한 느낌을 준다.”는 그녀는 2003∼2004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레이스를 이용한 트렌치코트와 원피스 시리즈를 발표했다. 레이스는 가죽이나 금속 느낌의 번쩍이는 옷감,실용적인 저지 등과 매치될 때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로샤스는 향수 발매 60주년을 기념해 프레타포르테 라인을 재가동하면서 레이스를 이용한 클래식한 디자인의 의상외에 금속 느낌이 나는 옷감에 레이스를 조화시킨 의상들을 출시했다. 프랑스 레이스제작자협회의 리디아 그랑진은 “여성들은 란제리를 변형시킨 속옷 같은 겉옷을 즐겨입고 있으며 레이스는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면서 “기하학적이고 현대적인 디자인이 범람하고 있지만 여성스러움을 강조할 수 있는 꽃 무늬 레이스는 여전히 각광받는 소재”라고 말했다. 이처럼 레이스가 디자이너들에게 각광받으면서 생산제품의 90%를 65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레이스전문회사 솔스티스의 매출도 최근 2배 이상 늘었다.솔스티스에 따르면 샤넬·루이비통 등 고급 브랜드들은 자사의 로고가 박힌 레이스를 주문해 오고 있으며 대중적인 브랜드인 모르간·쿠카이 등도 레이스 주문량을 크게 늘렸다. lotus@
  • “우리 고전읽기 필요”/‘청소년 위한 장길산’ 낸 황석영씨

    “외국 번역물이 범람하는 것을 보고 정서적 균형을 위해서라도 청소년용 우리 고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4년 전부터 작업했습니다.” 작가 황석영(사진·61)씨가 ‘청소년을 위한 장길산’(책이있는마을 펴냄)을 내고 13일 낮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작가는 청소년용 장길산의 의의를 “좋은 생각을 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정리한 뒤 “본격 문학이지만 무협소설 요소를 갖춰 흥미로운 데다 평범한 백성이나 가난한 사람을 구하는 의적 이야기를 담고 있어 민주시민으로 자라나는 데 좋은 토양이 될 것”이라고 풀어냈다. 이를 위해 여러가지를 신경썼다.원작을 장길산 위주로 줄이고 옛말이나 쓰지 않는 표현은 쉽게 풀어쓰거나 대폭 줄였다.황석영씨는 청소년용 장길산의 중요성을 비유적으로 들려줬다.“최근 소설과 영화로 ‘반지의 제왕’을 접하고 놀랐습니다.가상 세계를 다루는 솜씨가 세상을 잊게 하는 ‘마약’ 같은 요소가 있더라고요.팬터지라도 현실과 들락날락해야 하는데 가상 속에서만 사고하는 작품이 문화의 중심부로 자리잡으면 큰일 아닙니까?” 이종수기자 vielee@
  • [발언대]병역기피 조장 사이트 강력 조치를

    인터넷 상에 병역기피를 조장하는 불건전 사이트들이 범람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급기야 국회나 언론,시민사회단체가 나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병무청은 국민 제보와 자체 검색 결과 ‘문신만들기’,‘군대면제·연기’ 등의 내용을 담은 20여개의 사이트를 대상으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심의를 의뢰해 왔다.또 병무청 홈페이지에 지난해 9월부터 ‘병역불건전 사이트신고란’(www.mma.go.kr)을 개설해 제보를 받는 등 적극 대응해 왔다.지난 7일자 서울신문 10면에 게재된 ‘사이버 병역전쟁’기사도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기사에 언급된 ‘특례넷’,‘징병제를 반대하는 모임’,‘모병제 추진 국민연대’ 등의 모임들은 “징병제라는 제도는 후진국에만 남아있는 제도다.”,“조금이라도 아픈 것 같으면 무조건 진단서를 떼고 병명을 만들어라.”라는 식의 글들을 사이트에 올렸다.이는 신성한 병역의무를 국민에게 잘못 인식토록 하거나 병역의무자들에게 병역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처럼 오해를 줄 수있다고 판단했다.또 병역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군 장병의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정통위에 심의를 의뢰했다. 그 결과 ‘특례넷’ 등 해당 사이트 운영자들은 정통위의 시정요구에 따라 해당정보를 자체 삭제하는 등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그렇기 때문에 형사고발 등 별도의 조치도 현재로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병무청은 불건전한 인터넷 사이트의 내용에 대해 정통위에 심의를 의뢰하거나 해당 인터넷 운영회사에 시정을 요구하고 있으며,정통위 등 관계기관의 조치결과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병무청으로서는 악의적으로 밉보인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을 길들이거나 국민의 자유나 기본권을 제한할 의도가 전혀 없다.병무청은 앞으로도 국민들의 병역의무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송두표 병무청 공보관
  • 15명쯤은 죽어도 눈 깜빡않는 ‘人災공화국’ “도시재난 섬뜩하게 담을 작정”/새 영화 구상하는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영화계에선 흔히 올해를 ‘봉준호의 해’라고 말한다.그런데 정작 그의 반응은 덤덤하다.“그저 두번째 장편 ‘살인의 추억’을 만들었고 세번째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해”라고 차분하게 말한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때 봉준호(34)감독이 주목받는 이유는 두가지.‘살인의 추억’으로 관객 520여만명을 동원하면서 10여개의 국내외 주요 영화제 상을 휩쓸었다는 점과,한국 영화계가 그의 독특한 영상언어에 거는 기대가 계속 높다는 점이다. 그는 여느 스타 못지않게 바쁘다.언론들의 세칭 ‘연말 정산’ 코너에 불려다니느라 스케줄이 빽빽하다.게다가 새 영화 시나리오와 내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선보일 ‘디지털 삼인삼색전’준비 등 눈코 뜰 새 없는 일정에 이동 중 김밥으로 식사를 때우기 일쑤다. 그가 집행위원으로 있는 영화아카데미 20돌 기념 영화제 폐막식을 앞둔 21일 서울 종로구 선재아트센터 앞에서 그를 만났다.인터뷰는 ‘올해의 추억’보다는 ‘내년의 계획’에 무게를 두었다. ●2003년 이후 첫 화제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세번째 영화.“도시 재난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아직 구체적 그림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고교 2학년 때부터 찍고 싶었던 작품입니다.” 유달리 사회현실에 민감한 감독인지라 담을 메시지가 궁금하다.“대구 지하철 참사,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대형 참사가 많은 ‘인재(人災)공화국’이어서인지 한국에선 15명 정도가 죽어도 눈하나 깜빡이지 않습니다.인명에 무감각한 세태를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영화적 상상력으로 그려서 우리 사회의 히스테리를 찍는거죠.” 늘 새로운 것을 찾는 그의 설명을 듣노라면 벌써 호기심이 커진다.이어 이야기는 디지털 영화로 옮겨갔다.그는 최근 아카데미 영화제 출품작을 비롯, ‘디지털 삼인삼색전’ 등 디지털영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한번도 디지털로 영화를 찍은 적이 없어 욕심만 갖고 있다가 ‘살인의 추억’을 끝낸 뒤 한영애의 뮤직비디오와 ‘이공’출품작을 디지털로 만들어 봤습니다.” 논리적이고 달변인 그의 말은 내년 4월 전주에서 상영할 ‘모자이크 다큐멘터리:인간 조혁래’로 달렸다.“지하주차장,결혼식장 등 어디에서건 우리 일상이 모두 찍히고 있지 않습니까?그런 형식으로 한 인간의 5년간 행적을 연출된 다큐형식으로 담습니다.이미지가 넘치는 시대에 ‘사실적 이미지‘가 무엇인지가 새해 제 화두입니다.물론 세번째 장편에서도 탐색할 예정입니다.” ‘살인의 추억’이 가져온 명성이 그 를 억누르지 않을까? 두번째 영화라는 점과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 무거움은 더할 성 싶다. “흥행을 의식하지 않고 장편 두편을 소신껏 만들었는데 결과는 ‘하늘과 땅’입니다.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로 지옥을 맛봤고 ‘살인의 추억’으로 천당을 다녀왔습니다.아무도 흥행을 점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 독창적으로 작품을 만들겠습니다.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습니다.” 잠깐 영화 밖으로 나와 ‘스크린 쿼터제’로 말줄기를 틀었더니 입장이 단호하다.“한국 영화에 특혜를 주자는 게 아니라 잘 하니까 계속 보호하자는 장치입니다.우리 나라에서 베스트10에 든다고 생각하는 좋은 제도인데 왜 없애려는지 모르겠습니다.”●2003년 한해 비록 덤덤하게 반응해도 올 한해는 그에게 남달랐을 것.다시 물으니 “그렇게 크게 뜰 줄 몰랐습니다.아마 사건의 실제성이 관객을 움직였나 봅니다.”라고 살짝 미소짓는다.그러나 여전히 차분하다.숱한 상 중에서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와 영화평론가협회가 주는 상이 제일 기뻤다고 한다. “영화제 시사회에 참석한 외국인들이 제가 강조한 웃음과 긴장 포인트에 똑같이 공감하는 걸 보고 보편성을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또 흥행작을 외면하는 비평가들이 제 손을 들어준 것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습니다.” ●2003년 이전 그는 볼거리가 빈약하던 중학생 때 TV드라마나 AFKN을 즐겨보다 영화광이 됐다.할리우드 대중스타들의 비키니 차림이 범람하던 ‘로드쇼’등 영화잡지 틈새에 숨어있던 값진 글들을 스크랩하면서 할리우드 키드의 꿈을 키웠다.연세대 사회학과에 들어간 뒤 전공보다는 영화 동아리 ‘노란 문’에서 열정을 쏟았다.졸업후 영화 아카데미 11기로 그 꿈에 한걸음 다가갔고 장편 두편을 통해 ‘대표감독’으로 성큼 자랐다. 그의 꿈은 진행형이다.더 완벽한 꿈은 영원한 현역.“제작이나 교수보다는 임권택 감독처럼 끝까지 현장에 남고 싶습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열린세상] ‘수신료’ 엉뚱한 해법

    KBS의 수신료 분리 징수안을 놓고 갈등과 힘 겨루기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이와 관련해 엉뚱한 해법을 하나 제시하고자 한다.현행 체제대로 운영하되 ‘수신료’라는 말 대신 ‘공익방송 부담금’이라고 부르자는 것이다.겨우 그까짓 이름 하나 바꾸는 거냐고 핀잔을 주기 전에 다음 얘기부터 들어보기 바란다.조지 오웰의 정치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가공할 통제사회는 단어를 없앰으로써 주민들의 사고의 폭을 줄이고자 한다.표현할 말이 없으면 생각 자체가 불가능해지고,어휘가 줄어들면 결국 의식의 한계도 좁아진다는 것이다.언어가 곧 생각이라는 작가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런데 언어결정론을 주장한 워프(Whorf)와 사피어(Sapir)의 가설에 의하면 실제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언어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인간의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언어체계와 언어구조이며 언어는 한 사람의 현실인식과 환경인식,사고과정과 사고방식,나아가 세계관을 결정짓는다. 이런 의미에서 현행 ‘수신료’를 ‘공익방송 부담금’이라고 부르는 일은 KBS로 하여금 늘 공영방송으로서의 본분을 명심해 우리 사회 공익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게 하고,국민들에겐 이를 감시하고 심판할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는 묘책의 출발점이 된다.명분도 뚜렷하다.상업화와 저질화가 범람하는 오늘날 방송 현실이 매우 걱정되기 때문에 공익방송을 위한 부담금을 내서라도 방송환경을 정화할 필요가 있다.이에 반해 ‘수신료’는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TV 시청행위 대가로 지불하는 요금’ 정도로 인식되기 때문에 이를 혼자서 꼬박꼬박 챙기게 해달라는 KBS의 대 국민 호소는 얄미운 투정처럼 여겨질 수 있다.물론 공정성 훼손에 따른 문제제기로 야기된 작금의 갈등 본질을 덮기에도 역부족이다. 아직도 이름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작명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들을 소개한다.통상 대규모 군사작전에는 그 성격을 규정하는 이름,즉 작전명이 붙는다.재미있는 것은 전쟁을 둘러싼 여론이나 오래 기억되는 정도가 작전의 성패가 아니라이름 자체와 관련이 깊다는 점이다.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는 것이 1991년 걸프전을 일컫는 ‘사막의 폭풍’인데,이에 대해선 사막에서의 전쟁 성격이 잘 부각된 이름 덕을 톡톡히 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정치적 담론이 생산·소비되는 과정을 보면 이런 현상을 좀 더 이해하기 쉽다.예컨대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신념을 유포하기 위해 종종 정치적 언어를 조작한다.언어사용이 정치적 신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미국이 레이건 대통령 시절 그라나다를 침략하면서 ‘구출임무 수행(rescue mission)’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은 자국민은 물론 세계인들로 하여금 미국에 유리한 현실인식을 유도하기 위한,계산된 조작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미디어가 최종적으로 선택해 전달하는 용어들이 왜 중요한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노 대통령은 ‘탈당’한 것일까,‘당적 이탈’한 것일까? 재신임 발언은 ‘승부수’인가,‘고뇌에 찬 결단’인가? 10분의1 발언은 ‘정치도박’인가,‘자신감의 표현’인가? 정 반대의 시각이랄 수 있는 이 두 가지 용어가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유통되었으며,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규정지어졌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과제임에 틀림없다.물론 이 때 용어사용이 모든 인식을 좌우한다고 맹신하는 것은 금물이다.‘핵쓰레기장’이라고 불리던 것을 언론이 일사불란하게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나 ‘원전센터’라고 명기하고 있건만 국민들의 인식은 여전히 요지부동인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우선되어야 한다.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KBS는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 태어나길 촉구한다.누구나 ‘공익방송 부담금’을 기꺼이 내겠다고 할 만큼 공익적이 되어달라. 오 미 영 경원대교수 신문방송학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佛 젋은이들 “”미국식이 좋아””

    이라크전을 거치며 프랑스는 전세계 반미주의의 선봉에 선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파리의 젊은이들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미국의 랩 음악을 들으며 맥도널드에서 코카콜라를 마시고 빅맥을 맛있게 먹는다.이들이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목이나 광고문구에서도 영어를 그대로 사용한다.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계기로 명백하게 드러났던 프랑스 지식인들과 지도층 사이의 반미정서와는 판이한 현상이다.이들에게 미국식 대중문화에 대한 거부감이란 거의 없다.정치는 정치고,문화는 문화인 것이다.물론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파리 함혜리특파원|샹젤리제에 있는 음반전문 매장 버진스토어에서 만난 다비드(20)는 미국의 랩 음악을 즐겨 듣는다.다비드에게 좋은 음악을 꼽아 보라고 하자 에미넴,알 켈리,피프틴센츠,스놉독 등 미국의 랩가수들 이름이 술술 흘러나온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미국 스타일의 점퍼에 청바지,야구모자,굵은 금목걸이에 농구화를 신고 있다.이렇게 갖춰 입는 데 적지않은 돈을 썼을 것이 확실하다. 미국 마이애미·시카고·뉴욕·로스앤젤레스 등을 여행한 적이 있다는 다비드는 “스포츠건 음악이건 모든 분야에서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의 나라가 미국”이라며 “이라크 사태를 계기로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미국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되기는 했지만 나는 반미감정을 가진 적이 한번도 없다.기회가 되면 미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스타일’ 선망하는 젊은이들 영어와 프랑스어 2개 언어로 가르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제라르(16)는 지난 여름방학때 한달 동안 미국에 다녀와 친구들로부터 동경의 대상이 됐다고 자랑한다. 제라르는 “사람들도 솔직담백하고 친절했으며 도시들도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것보다 실제로 여행해 보니 훨씬 마음에 들었다.”며 “가능하면 미국 대학으로 유학가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문화의 다양성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매우 관대한 편이다.그렇지만 프랑스 지식인들은 미국문화에 대해서만은 유독 거부반응을 보이며 서유럽 사회의 반미담론을 주도해 왔다. 프랑스와 미국은 2차대전 이전까지 어느 나라보다 우호적인 관계였다.하지만 샤를 드골 대통령이 미국의 패권주의에 반발하며 자주노선을 주창한 이후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는 반미정서가 폭넓게 형성됐다.코카콜라와 맥도널드 불매운동을 벌인 나라가 프랑스였으며 미국이 유엔의 승인없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개시할 때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주의에 정면으로 반발했던 나라가 프랑스였다. 이런 사회·정치적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10∼20대 초반의 젊은 층에서는 미국의 대중문화를 추종하는 성향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GAP·나이키매장 북적… TV선 美시트콤 자국문화 수호를 강조하는 프랑스에서 미국식 대중문화가 범람하고 있다는 증거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파리 시민들의 자존심이라는 샹젤리제 거리에는 디즈니 스토어와 플래닛 할리우드,미국 캐주얼 의류 GAP과 스포츠웨어 나이키,퀵실버 매장이 번창하고 있다. 스크린쿼터제를고수하고 있지만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가 극장가를 점령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이고 안방극장에서는 미국식 시트콤이 판을 치고 있다. 프랑스 텔레비전에서는 엄숙한 토론 프로그램보다는 ‘프렌즈’‘앨리 맥빌’ 등 뉴욕 젊은이들의 생활상을 담은 시트콤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30대의 한 인기 앵커는 퀴즈 프로그램에 나와 ‘프렌즈’의 내용을 소상히 꾀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도 한다.미국에서 유행하는 리얼리티쇼의 포맷을 그대로 들여온 프로그램이 인기고 ‘스타 아카데미’‘팝스타’처럼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프로그램도 많다.요리문화가 발달하고 식도락의 국가로 알려진 프랑스지만 샹젤리제 거리의 맥도널드점에는 언제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미국의 전통적인 축제인 핼러윈데이는 90년대 이후 프랑스 어린이들 사이에 새로운 축제로 간주되고 있으며 크리스마스 못지않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최고급 백화점인 갤러리 라파예트는 독신자들이 많은 미국 뉴욕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마켓 데이팅’을본뜬 행사를 열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의 문화적 대결구도를 다룬 ‘프랑스인,미국인’이라는 책을 쓴 파스칼 도드리는 프랑스의 미국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에 대해 “프랑스인들의 미국에 대한 감정은 자존심과 열등감이 복잡하게 얽힌 애증의 관계와 같다.”고 말했다. 정치적·경제적으로 강한 나라가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현실에서 1등국의 지위를 빼앗긴 프랑스의 상한 자존심은 반미감정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체질적으로 미워하는 것은 아니며,내심 부러워하는 것이 사실이라는 아이로니컬한 분석이다. ●문화잠식 우려 목소리도 자본주의를 최우선시하는 미국식 문화가 프랑스 젊은이들의 사고와 일상생활을 잠식하는 데 대해 지식인들은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오랫동안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던 패권국의 지위를 2차대전 이후 급속히 성장한 미국에 내준 것에 우선 자존심이 상하고,예전에는 프랑스어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언어였지만 지금은 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나아가 오랫동안 갈고 닦아온 프랑스의 수준 높은 문화가 ‘천박한’ 미국문화에 밀려 사라질 것을 프랑스 사회는 우려하고 있다. 파리정치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바네사(28)는 “거대자본,대량생산으로 요약되는 미국식 대중문화가 프랑스에 상륙한 것이 최근의 일은 물론 아니지만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며 “청소년들이 무비판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문화이기 때문에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면서 “지식인들이 젊은 세대의 무조건적인 미국문화 추종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문화의 균형감각이 깨지고 이로 인해 프랑스 문화가 미국문화에 잠식당해 사라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lotus@ ■노천카페 낭만 사라지나 |파리 함혜리특파원|길가의 카페에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앞에 놓고 ‘해바라기’하며 신나게 수다를 떠는 파리지엔들.흰색 앞치마를 두르고 콧수염 휘날리며 커피를 나르는 카페의 가르송(남자점원)들…. 파리 하면 연상되는 이같은카페 풍경에도 ‘아메리칸 스타일’의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다.동네 카페들이 손님이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달리 부드러운 재즈풍의 음악이 조용히 흐르고 현대적이고 깔끔한 실내장식을 한 미국식 카페에는 항상 젊은이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특히 내년 초 미국의 거대 커피 전문점인 ‘스타벅스’ 1호점이 파리 중심가인 오페라대로 26번지에 문을 열면 프랑스 특유의 카페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스타벅스 열풍은 이웃나라 영국을 점령한 지 이미 오래이지만 카페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에는 아직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주변의 카페,바,브라스리(선술집) 등의 반발을 생각해서인지 예고 간판도 없고 소리소문없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하지만 새로 생긴 근사한 식당과 카페 등을 찾아내 친구·연인과 함께 시간 보내기를 즐기는 파리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스타벅스의 프랑스 진출이 화제다. 지난 주말 여자친구와 런던 여행을 다녀왔다는 다미앙은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미국 커피체인점 스타벅스에서 새로운 카페 문화를 맛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의 카페나 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쿨한’ 분위기와 엄청나게 큰 컵에 담긴 달콤한 크림커피의 맛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며 “파리에 문을 열면 여자친구와 당장 다시 찾고 싶다.”고 한다.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에 익숙해 있는 프랑스 사람들이 스타벅스의 커피 맛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프랑스 카페에서 보통 커피를 시키면 아이들 소꿉만한 작은 잔에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가져온다.블랙 초콜릿을 곁들여 마시는 에스프레소 커피는 느슨해진 신경을 적당히 자극하기 때문에 피로를 푸는 데 효과적이어서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 후나 오후 시간에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겨 마신다.프랑스 사람들은 아메리칸 스타일의 연한 커피를 우스갯소리로 ‘양말 빤 국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파리시내의 대형서점 프나크 내에 있는 커피전문점에 근무하는 로라는 “스타벅스 커피가 아무리 맛이 있어도 프랑스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지는 못할 것”이라며 “하지만 호기심 많은젊은이들의 발길을 모을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스타벅스의 프랑스 진출은 맥도널드 햄버거의 진출 당시 못지않게 미국문화 유입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거리를 제공할 것이 분명하다.
  • 국산둔갑 中김치 범람/원산지표시위반 385곳 적발

    국내산으로 둔갑한 수입산 김장양념과 김치가 시중에 범람하고 있다. 올 김장철에 유달리 ‘가짜 농산물’이 판치는 이유는 냉해와 태풍피해로 고추 등의 작황이 크게 부진해 시중에서 귀해지자 업자들이 중국 등지에서 값싼 수입산을 무더기로 들여와 국내산으로 속여 팔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올해 고추 생산량은 13만 2000t으로 지난해보다 32%나 감소했다.양파와 마늘도 각각 20%,4%가 감소하는 등 대부분의 양념채소류가 한해 농사를 망쳤다. 반면 고추·마늘·양파의 올해 수입량은 17일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3배 이상 증가한 15만 8013t에 이른다.특히 중국 등지에서 들여온 포장김치는 37배 이상 폭증한 2만 2727t이나 됐다.1∼2개월 사이에 들어온 물량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10월14일부터 지난 12일까지 원산지표시위반 농산물 단속에 나서 전북 덕구시에 있는 김치제조업체 D식품 등 385개 업체를 적발했다.이 가운데 196개 업체는 검찰에 통보돼 형사입건 처리했다.적발 업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단속실적(112건)보다 3.5배나 증가했다. D식품 대표 양모(40)씨는 지난달 19일 중국에서 포장김치 2만 4400㎏을 수입,‘순국산’이라고 겉 포장을 바꾼 뒤 정상가보다 3배 이상의 폭리를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가짜 포장김치는 전주와 서울 등지에 초등학교 급식용과 대형할인점 및 인터넷 판매용으로 납품됐다. 김경운기자 kkwoon@
  • 낙엽천국/늦가을 경남 함양 上林나들이

    낙엽만큼 상반된 느낌을 주는 게 있을까.낙엽을 밟으며 사랑을 키우는 연인이 있는가 하면,흩날리는 낙엽을 맞으며 실연의 아픔을 삭이는 사람도 있다.이파리를 떨군 나뭇가지는 앙상하기 이를데 없지만 그 아래 수북하게 쌓인 낙엽더미는 푸근함을 준다.그래서 감성이 풍부한 사람치고,젊었을 적 지는 낙엽을 보고 시인 흉내 한번 안내본 사람 없을 것이리라.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인공 활엽수림 2만여평 지는 가을을 만나러 경남 함양 상림(上林)에 갔다.누군가 상림을 ‘낙엽의 천국’이라고 했었지.그래,기왕 낙엽을 밟으려면 천년이 넘는 연륜이 쌓인 활엽수림에 가보자.놀랍게도 상림은 1100여년전 조성된 인공활엽수림이다.통일신라 말 진성여왕 때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천령군(함양의 옛이름) 태수 부임후 조성했다고 한다.마을을 가로지르던 위천(渭川) 범람을 막기 위한 호안림(護岸林)이다.당시 심은 나무들이야 모두 늙어 죽었지만 그들은 대를 이어 씨앗을 뿌렸고,1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귀중한 활엽수림으로 남았다.상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국내 유일의 활엽수림이다.당시엔 상림과 하림을 합쳐 6만여평이었으나,지금은 길이 1.4㎞,폭 200m,2만7000여평만 남아 있다. 크고 작은 활엽수들이 가득 들어찬 상림.여름이면 하늘을 덮어 한 줌 햇살도 허용치 않을 만큼 무성했던 이파리들이 지금은 반쯤 졌다.숲 가운데 난 큰 길은 물론,사이사이 오솔길은 온통 낙엽 천지.길이 아닌 숲속으로 들어가니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더미가 부스럭거리며 낯선 손님을 경계한다. 상림엔 수십년에서 수백년 수령의 110여종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란다.졸참나무,느티나무,팥배나무,사람주나무,감나무 등이 주요 수종.나무의 종류가 다양하고 나무 굵기도 제각각이어서 통일신라 때 조성됐던 숲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낙엽색깔도 조금씩 다르다.참나무 계통은 떨어질 때부터 갈색이지만,느티나무나 감나무 이파리는 떨어진 뒤에도 완전히 마르기 전까지는 붉거나 노란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낙엽더미 속 아이들 천진함에 웃음 절로 상림 이곳저곳엔 사진작가들이 삼각대를 받쳐놓고 가을이 내려앉는그림을 잡고 있다.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찍으며 이들은,화려함을 뒤로하고 거름으로 썩고자하는 자연의 겸허함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침 인근 유치원에서 소풍을 나왔다.어른들에겐 사색의 대상인 낙엽도 아이들에겐 그저 놀이의 수단일 뿐.두 손 가득 낙엽을 집어 뿌려대는 아이들 표정에 천진함이 넘친다.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까르르 까르르’ 내는 웃음소리에 심각한 척 고독을 ‘씹던’ 어른들도 슬며시 미소를 머금는다. 상림엔 숲을 가로지르는 실개울과 군데군데 세워진 함화루,초선정,화수정 등 정자들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숲 한편엔 최치원 신도비와 척화비 등 함양에서 선정을 베푼 위정관들을 기리는 비석들을 모아놓았다.또 최치원을 비롯해 연암 박지원,김종직 등 함양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던 대학자 11명의 흉상을 세워놓은 인물공원이 조성돼 있다. ●지리산 북부 한신계곡 수려함 일품 들판 한 가운데 조성된 상림의 평탄함이 아쉽다면 지리산 북부 한신계곡으로 발길을 돌려보자.마천면 백무동에서 세석고원까지의 험준하면서도수려한 계곡미가 일품. 맑고 고운 물줄기가 10㎞ 정도 이어지는 이곳은 원래 한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지만 늦가을 풍치도 그만이다.특히 백무동부터 첫나들이 폭포까지 계곡과 절벽을 사이에 두고 평탄한 오솔길이 2㎞ 정도 이어지는데,어지러이 나뒹구는 낙엽과 아직 색깔을 잃지 않은 단풍 물결이 만추의 서정을 빚어낸다.이 오솔길은 어린 아이들도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잘 닦여져 있다.1960년대 초 한 벌채업체가 목재 운반을 위해 조성한 도로였다고 한다.숲속 길을 한참 걸어가면 등산로와 계곡이 만나게 되는데,그 지점에 첫나들이 폭포가 있다.20여개의 물줄기를 자랑하는 이 폭포는 바람폭포로도 불린다.폭포수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제 다리 아래로 쏟아지는데,다리 위에서보다는 아래서 위로 보는 풍광이 더욱 장관이다.한신계곡의 등반 기점인 백무동까지는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용추 자연휴양림선 숙박도 가능 안의면에 위치한 용추계곡도 가벼운 산행을 즐기며 가을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곳.계곡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분 정도 올라가자 용추사가 나오고,그 아래 15m 높이의 용추폭포가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낸다. 폭포를 지나 소로에 접어드니 바람에 쓸린 낙엽이 수정처럼 맑은 계곡물에 쏟아져 내린다.용추계곡 끝에는 함양군에서 조성한 용추 자연휴양림(055-963-9611)이 있어 산책과 산림욕을 즐기기에 좋다.예약하면 휴양림내 산막에서 묵을 수도 있다.숙박료는 2.7평형(4인용) 3만원,4.5평형(6인용) 4만원. 글·사진 함양 임창용기자 sdargon@ 가이드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88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함양IC 표지판이 보이면 빠져나와 우회전해 5분쯤 가면 함양읍이다.가던 길로 직진해 읍내를 지나가면 위천이 나온다.위천을 건너기전 우회전해 천변 도로를 5분쯤 달리면 상림과 만난다.한신계곡은 함양읍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용추계곡은 북쪽으로 각각 이정표를 따라가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까지 고속버스가 5회 출발한다.함양읍에서 택시를 타면 상림까지 기본요금에 갈 수 있다. ●숙박 상림 주변 및 함양읍내에 별궁장여관(055-963-9241∼3),상림장여관(055-963-1170) 등 여관이 많다.함양읍 죽림리 가재골관광농원(055-963-9952),인산동천관광농원(055-963-8793) 등을 찾으면 전원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정여창 고택 함양 지곡면엔 조선 전기의 유학자 정여창의 후손인 하동 정씨들의 집성촌이 있다.정여창 고택은 하동 정씨의 종갓집.3000여평의 대지에 총 17동의 건물을 지었으나 지금은 12동만 남아 있다.경북지역의 폐쇄적 공간구조와 달리 안채와 사랑채 등이 개방식 구조로 분할되어 집이 밝고 화사하다.솟을대문을 통해 마당에 들어서면 ㄱ자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다.정원 한편의 굽은 소나무와 배롱나무 등이 선비의 은은한 멋을 풍긴다. 건축 당시의 모습을 상당부분 유지하고 있어 남도 고건축 연구의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는 양반가옥이다.문의 함양군청 문화관광과(055-960-5555). 식후경 예나 지금이나 귀한 손님상에 빠지지 않는 요리중 하나가 소갈비찜이다.함양 안의는 갈비찜,그중에서도 안의고추갈비찜(사진)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체인점이들어서 있지만 어디 본고장의 맛을 따라가랴.상림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거창 방면으로 가다보면 안의면사무소 소재지가 나온다.갈비찜 간판을 단 식당이 꽤 많다.토박이인 듯한 할아버지가 맛있다고 가리키는대로 들어간 곳이 ‘옛날할머니 갈비식당’. 메뉴는 안의고추갈비찜과 갈비탕 딱 두가지.갈비찜은 1접시에 2만5000(2인)∼3만5000원(3인),갈비탕은 5000원이다.혼자 왔으니 1만5000원짜리로 만들어달라며 떼를 쓰다시피해 갈비찜을 시켰다. 붉은 빛이 도는 고기와 몇가지 야채,갖가지 고명이 어우러진 갈비찜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인근 거창이나 산청에서 기른 한우고기에 매콤한 청양고추와 풋고추,붉은 고추로 맛을 내 매콤달콤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난다.육질이 참 부드럽고 쫄깃하다.찬 물에 핏물제거 5시간,갈비 삶는데 8시간,양념에 재어 다시 조리는데 1시간 반 등 총 15시간의 공이 든다는 주인의 자랑 때문인지,맛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055)962-0163.
  • 茶 “마시는게 아니라 수행입니다”한국차 문화운동 펼쳐온 여연 스님

    “차(茶)의 기본은 겸손과 덕행입니다.그런데 요즘은 정신은 사라진 채 달이고 마시는 기술과 형식에만 치우쳐 안타깝습니다. 고려 도공의 혼이 담기지 않은 요즘 청자가 ‘현대 자기’일 뿐 고려청자가 될 수 없듯이 우리 고유의 온전한 가치와 정신을 담지 못한 차는 한낱 음료수일 따름입니다.” ●“때묻지 않은 인성과 같은 차” 쌀쌀한 날씨이지만 산에는 여전히 푸른 빛이 휘돌아 대롱대롱 매달린 감 몇 개만이 유난히 붉은 기운을 퍼뜨리는 전남 해남 두륜산 자락.대흥사 대웅전을 지나 가파른 숲길을 40여분 남짓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다른 일지암에서 만난 암주 여연(57)스님은 초의선사(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을 거듭 읊었다. “예부터 차와 생활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초의선사는 차의 성품을,삿됨이 없어서 어떠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때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같은 것으로 보았지요.” 여연 스님은 외래문화의 범람 속에 차만이라도 우리 민족문화의 건강한 주체성을 찾자는 차문화운동을 일관되게 펼쳐온 조계종 스님.한국의 다성(茶聖)으로 통하는 초의선사 장의순(張意恂)이 말년 40년을 보낸 한국 차의 성지 일지암을 13년간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다. 초의선사는 이곳에 머물면서 다산 정약용,완당 김정희 등 당대의 석학들과 차를 매개로 종교와 신분을 초월한 인연을 맺었으며 그 유명한 ‘동다송’‘다신전’같은 저술을 남겼다. 지금의 일지암은 차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지난 1978년 복원해 대흥사에 기증한 것으로,초의선사의 살림채였던 자우산방과 작은 법당,허름한 요사채를 갖추고 있다.“초의선사가 주창했던 ‘다선일미(茶禪一味)’는 비단 불교에 국한하지 않는 사상입니다.모든 주장과 사상은 궁극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화합의 원칙을 강조한 셈이지요.요즘 각별히 새길 만한 이론입니다.” 흔히 불가에서 차는 스님들이 의례로 마시는 것이라지만 여연 스님에게 있어서 차는 수행은 물론 우리의 것을 사랑하기 위한 각별한 방편이었다.출가 동기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던 스님이 초의선사의 흔적이 남은 일지암을 택해 지키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연세대 철학과재학시절 신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당시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였던 김흥호 목사의 공개강연을 듣고 인생행로를 바꾸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학자였던 김흥호 목사는 벽암록이며 노자·장자 같은 동양철학을 두루 꿴 석학이었습니다.하루 한가지 반찬에 한끼 밥만 먹는 1종식을 어기지 않는 도인이었지요.자신에 철저하면서 열린 생각을 가진 목사의 모습에서 새벽별같은 빛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결국 졸업하던 해 가을 가출했으나 마음 둘 곳을 정하지 못한 채 태백산을 방황하다가 우연히 한 선방에서 만난 학승으로부터 해인사 이야기를 듣고 해인사로 출가,지난 연말 입적한 혜암 전 조계종 종정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았다(스님은 혜암 종정의 네번째 상좌).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스님은 해인사에서 만난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에게도 할 말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74년 본격적으로 ‘차' 입문 “인도 다람살라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때였지요.성철 스님을 만나,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한번에 500∼600명이 몰리지만 불법을 전할 잡지를만든다면 1만명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간곡히 말씀을 드렸지요.” 그래서 창간된 게 월간 ‘해인’지다. 1974년 해인사 강단에서 차를 익히기 시작한 스님은 당시 한국 차의 거봉이었던 효당 스님 밑에서 본격적으로 차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1977년 전국 10개 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한국대학생차연합회를 결성한 주역이다. 이같은 이력을 눈여겨본 대흥사가 지난 90년 스님을 일지암 암주로 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80년대 중반 한때 재야운동에도 몸담았지만 당시 변혁세력이 해방신학이니 사회과학에 치우친 데 불만,대승불교승가회란 조직을 만들었다.이 조직은 나중에 정토불교승가회와 합쳐 지금 대표적인 불교 실천단체인 실천불교승가회가 됐다. “당시 대학가나 지식인 사회에 밀물처럼 밀려드는 서구문화에 아무 비판없이 빠져드는 세태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그에 맞선 대안으로 차 문화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지금 차 인구가 300만을 넘었다고 하지만 차를 제대로 알고 마시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일지암 앞 텃밭과 뒤뜰에서 직접 일구어 딴 찻잎으로 만들어낸 차에는 스님의 법명인 ‘여연차’라는 이름을 붙였다.‘여연차’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차’로 통한다.일지암을 찾는 도반이나 지인,뜨네기들에게 베푸는 스님의 차 인심도 넉넉하다. ●현대를 결합한 전통으로 계승 “이제 마시는 음료로서의 차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화와 결합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코드로서의 차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우리 차가 온전하게 계승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단순한 흉내내기를 넘어 역사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신라차’‘고구려차’‘선차’ 등 각양각색의 이름을 지닌 차들이 난무하지만 사실상 깊이 들여다보면 내용없는 형식의 홍수일 뿐”이라는 스님은 그래서 지난 2000년 일지암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초의차문화연구원’을 발족시켜 초의선사의 전반적인 사상을 발굴하고 있다. 차에 관심이 많은 불교계,학계,언론계 인사 32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달 중순 광주 ‘예술의 거리’에 번듯한 사무실을 마련할 예정이다. “현실을 직시하여 역사의질곡을 극복하려는 주체적인 노력이 없다면 관념의 유희에 매몰돼 참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스님은 “전통이란 그릇 속에 현대를 채워야 하며 우리 차도 같은 이유에서 발전시켜야 한다.”며 일지암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해남 일지암 글·사진 김성호기자 kimus@
  • [열린세상]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지금 가을은 그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세간의 어려움 때문에 가을의 낭만보다는 싸늘한 인간적 아픔이 살을 파고 든다.올해의 이 길목에서 유난히도 많았던 자살사건 특히 가족단위 집단 자살사건은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한 단면을 보여 주었다.심화되어 가는 빈부격차와 극단적인 이기주의,어느 한 곳에도 따뜻하게 발 붙일 수 없는 사회에서 인간이 선택해서는 안 되는 최후의 절망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야만성과 문명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란 원시인이자 야수 야만인이자 우상숭배자이고 동시에 이성과 사랑 정의를 누릴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정의한 적이 있지만 요즘 같아선 오직 야수성만이 지배하는 사회로 비친다.절제되지 않는 일차적인 욕망과 감정이 넘실거리는 사회.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괴로운 사회이지만 한편 먹고 살 만한 사람은 그들대로 욕망의 배출구를 찾지 못해 안달을 하는 사회이다. 한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영화 ‘바람난 가족’이나 TV 일일극‘앞집 여자’는 어지러운 이 땅에서 방황하며 살아가는 한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다.“남편 말고 애인이 필요해.” “아내 말고 여자가 필요해.”라는 말은 얼크러진 우리 사회의 내밀하게 가려진 부분을 잘 들추어주고 있다.아니 어쩌면 남성중심적 가족이라는 억압질서의 허위의식을 강력하게 고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앞으로 전개되는 21세기는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전통적인 결혼제도나 가족제도까지도 소멸할 것이라는 관련 연구자들의 보고도 있다.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정상적인 것보다는 비정상인 것이,원칙보다는 변칙이 지배하는 요즘의 사회문화 추세이다.무엇이 올바른 가치의 기준인지조차 헷갈리는 세상이다.이 속에서 참되고 올바른 진정성을 갖는 사랑보다는 비정상적이고 약삭빠른 사랑이 범람한다.혼란과 모순으로 가득찬 삶속에서도 밤하늘의 샛별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잊혀지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지난해 5월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때 전남 영광에서 올라갔던 75세의 정귀업 할머니.그녀는 23살 때 헤어진 북쪽의 남편을 52년만에 만난 것이다.당시 수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TV에서의 상봉장면은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가시밭길도 그런 가시밭길이 없어라우.꽃방석 깔아줘도 가지 않을 길을 50년 넘게 혼자서 훠이훠이 걸어 왔어라우.눈물을 밥 삼아 살아왔지요.‘눈이 높아 못오나 길을 몰라 못오나’라는 노랫말이 내 삶의 노래가 됐지요.” 상봉하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구절구절 슬픔이 담겨있는 그 자체로서 고도로 집약된 하나의 시 구절이었다.52년간의 세월이 농축된 한편의 연가였다. 정귀업 할머니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시골에 남았다.남편은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지만 6·25전쟁으로 행방불명된 것이다.남편 사이에 아이 하나가 있었지만 4살 때 병으로 숨졌다고 한다.그녀는 지금껏 남편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혼자서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고 돌아온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남편이 살아있다는 그런 믿음의 그늘에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그녀라고 해서 젊은 날의 욕망이 없었겠는가.사랑은 믿음 속에서 오래 참고 기다린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우리는 기존의 가치와 도덕,진리마저도 새롭게 해석되고 도전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요즘의 세태 속에서 정귀업 할머니와 같은 사랑의 진정성도 새롭게 도전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쓸쓸한 가을에 다시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정귀업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이다. 신 일 섭 호남대교수 동양사
  • 하천둑 156곳 집중호우 수위보다 낮아/“이러다 또 수마에 먹힌다”

    경기도내에서 하천설계기준에 맞지 않거나 계획홍수위보다 낮게 설치돼 항상 홍수위험을 안고 있는 교량 및 하천둑이 576곳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도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제방높이(계획홍수위보다 0.6∼1.2m 높게 설정)보다 낮은 교량이나 교량길이가 하천폭보다 짧은 교량 등 하천설계기준에 맞지 않게 설치된 도내 교량이 420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107개는 제방높이보다 낮고 137개는 교각과 교각사이 간격이 좁아 물 흐르는 단면이 부족한 교량이다.또 176개는 교량길이가 하천폭보다 짧아 물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설계기준 미달 교량은 지방도에 23개,시·군도에 117개,농어촌도 등 기타 도로에 280개가 있다. 계획홍수위보다 낮은 하천둑도 156곳 306㎞에 달했다.시·군별로 보면 수원시의 서호천과 원천천,황구지천 등의 둑 10곳,성남시 상적천과 여수천 등의 둑 5곳,고양시 관내 벽제천·성사천 등의 둑 15곳,이천시 장암천·중리천 등의 둑 17곳이 계획홍수위보다 낮았다. 계획홍수위는 30년 또는 100년 만에 한 차례 올 수 있는 최악의 집중호우를 감안,설정한 홍수위이다. 따라서 계획홍수위보다 낮게 설치된 하천둑이나 하천설계기준에 맞지 않게 설치된 교량은 예상외의 집중호우가 내릴 경우 언제라도 범람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상태다. 계획홍수위보다 낮은 교량 및 하천둑은 지난 84년 시작된 하천정비기본계획 시행 이전에 건설된 것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는 “계획홍수위보다 낮다는 것은 범람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며 “현재 연차사업으로 계획홍수위보다 낮은 교량 및 하천둑에 대해 재가설 및 돋우기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데스크 시각] 전시행정서 실속행정으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번성기의 로마인들은 도로·교량 등 사회 인프라의 구축에 열심이었다.광대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잘 닦여진 그물망 같은 가로망이 필연적이었을 것이다.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로마제국의 통치자가 된 티베리우스는 국민들의 인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그는 아우구스투스가 대형 건축물을 짓고 국민들에게 취임축하 보너스를 듬뿍 준 것과는 달리 아우구스투스가 구축해 놓은 국가 시스템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대형 공공사업을 펼치기보다는 기존의 도로나 교량,성벽 등을 유지,보수하는 데 힘을 썼다. 70년대 개발시대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완공식을 갖는 것이 관행이었다.다리나 도로,건물,아파트를 완공한 뒤 박 대통령이 해당 부처 장관,공사 관계자 등 귀빈들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는 모습은 대한뉴스나 TV를 통해 많이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다.국민들에게 치적을 홍보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전시행정이라는 비난도 피할 수 없었다. 사라에 버금가는 위력을지닌 태풍 매미가 우리나라를 할퀴고 간 지도 한달이 가까워 오고 있다.많은 사람들이 복구의 손길을 놀리고 있지만 워낙 생채기가 깊어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따르면 태풍 매미의 피해액은 4조 2225억원에 이르며 인명피해는 사망,실종자 포함 131명인 것으로 집계됐다.수해는 주로 국가가 관리하는 국가하천보다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소하천에서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해대책본부는 하천 890곳,소하천 1372곳 등 2676곳이 유실됐다고 밝혀 이를 뒷받침해 준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제방쌓기 등 개수(改修)가 필요한 하천은 국가하천보다는 지방하천이 훨씬 많다고 한다.국가하천(88곳) 2984㎞ 가운데 81.5%인 2433㎞가 개수됐지만 지방하천 3만 2460㎞ 가운데 완전개수된 구간은 60%인 1만 9547㎞에 불과하다.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물난리를 겪은 낙동강도 대부분 소하천이 범람해 피해를 입었다. 건교부는 2011년까지 국가·지방하천에 모두 제방을 쌓으려면 11조 5000억원 이상이 필요한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하지만 1992년부터 2001년까지 해마다 치수에 투입된 국가 예산은 4154억원으로 연평균 국민총생산(GNP) 409조원의 0.1%에 지나지 않는다.반면 같은 기간 도로사업에는 치수의 10배가 넘는 4조 8258억원을 쏟아부었다. 하천 개수예산이 적은 것은 전시행정의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교량과 빌딩,도로건설은 가시적이고 화려하다.주민들이 변화를 피부적으로 느낄 수 있다.그래서 “높은 건물은 도시의 상징이고 넓은 도로는 도시의 이념이다.”라는 말도 있다.실제 높은 건물과 넓은 도로만큼 업적이 뚜렷이 나타나고 오랜 기간 그 흔적을 남기는 것도 없다.반면 하천정비는 별로 ‘빛’이 나지 않는 사업이다.수해가 발생하면 재해 방지의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평상시는 치수사업의 시급성을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그러나 치수사업은 국민의 안위와 직결된 ‘실속있는 행정’이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해마다 되풀이되는 재해에서 벗어나려면 어리석기라도 해야겠다. 임태 순 전국부장
  • [열린세상] 일본문화개방, 새로운 기회

    일본은 언제부턴가 경제왕국으로 떠오르더니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산업에서도 국제적인 점유율과 인지도를 확보한 지 오래다.미국 영화에서 보면 일본의 사시미가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취급되고 홈웨어 대신 유카타와 하오리가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한다.그만큼 일본에 대한 선호가 곳곳에 파고 들어 있다는 의미다.그렇다면 우리에게 일본은 경계해야 할 만한 대상인가. 이번 일본대중문화 완전개방을 두고 네티즌들은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일제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유감이 남아 있지만 청소년들은 일본을 특별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나라중의 한 나라로서 일본문화가 아닌,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자는 식이다. 주체적인 문화수용력이 성숙되지 못한 시점에서 일본 대중문화를 무제한적으로 개방하는 것은 역시 시기상조가 아닌가.또는 사회전반에 끼칠 충격과 문화산업적 측면에서도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은 만만치 않다.그러나 일본영화 체험은 저질로 지칭되는 원조교제·폭주족·이지매 등이 우리나라에 침투하여 이미 회오리바람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98년 이후 단계적 개방을 거치는 동안 일본적인 과묵하고 차가운 폭력과 무자비하고 가혹한 폭력 등을 우리 청소년들은 역설적 비디오 게임이나 서바이벌 게임 정도로 받아 들인다는 보고가 있었다.우리나라엔 수많은 일본영화 동아리가 있고 최근에는 ‘메가박스와 함께 하는 일본영화 여행’이 진행중이다. 이처럼 일본대중문화 개방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수없이 되풀이된 논의선상에서도 뾰족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았다.그 시기를 언제로 잡느냐만 남았을 뿐 서서히 개방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다만 가장 주목되는 것은 돈이 되는 것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입업자들의 역할이다.국민은 모든 것을 다 향수할 권리가 있으므로 마구잡이로 불량품을 들여온다면 그로 인해 야기될 사회적 혼돈양상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거기에 걸맞은 냉엄한 여과장치가 필요할 수밖에없다.따라서 영화등급 역시 청소년 보호와 국민정서 순화 차원에서 적절하고 현명한 잣대를 가져야 한다.그러자면 수입업자가 제시한 관람 신청등급이 제한상영이 되는 예가 속출할 수도 있다. 또 일본문화 베끼기에 급급했던 가요나 방송 등 저작권 문제도 가차없이 도마에 오를 것이다.전면개방 전까지는 눈감고 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은 뻔하다.그러나 이 역시 언젠가는 부닥쳐야 할 현실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찾고 무장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대중문화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문화상품이 된 것은 저급문화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의 핵심에서 고급문화가 도도하게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전후 두 차례나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영화에서도 70여개가 넘는 국제영화제상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이에 비해 우리는 남의 잘난 꼴을 보지 못한다.고급문화나 저급문화를 한꺼번에 뒤섞어 놓고 모든 것은 똑같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려 든다. 일본은 고급문화를 극진하게 대접하면서 대중문화는 고급문화가 자생시킨 또다른 문화의 형태임을 엄연히 차별시키고 있다.그들은 남의 잘난 것을 인정하고 승복할 줄 아는 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인생이란 머무는 일이 없는 변화의 연속이다.우리는 지금 정치구도 전체의 변화뿐 아니라 문화구도의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변화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피폐의 파장이 조장될 수도 있다.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대등한 문화교류의 파트너로 받아 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면서 오늘의 개방과 변혁을 발전의 기회로 삼아 나가야 한다. 이세기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前 대한매일 논설위원
  • 美 허리케인 강타 큰 피해

    |워싱턴 백문일특파원|18일(현지시간) 미국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주 해안에 상륙한 초특급 허리케인 ‘이사벨’의 영향으로 350만명이 정전피해를 입었고,19일 새벽현재 최소 14명이 숨지는 등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날 노스캐롤라이나주와 버지니아주의 30여개 시와 카운티들을 주요 재해지역으로 선포하고 복구를 위해 연방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노스캐롤라이나주,버지니아주,워싱턴시,메릴랜드주,웨스트버지니아주,델라웨어주,펜실베이니아주,뉴저지주 등 8개 시·주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휴교령을 내렸다. 이사벨에 의해 19일 새벽 현재 버지니아주 9명,노스캐롤라이나주 1명,메릴랜드주 2명,뉴저지주 1명 등을 포함해 최소 14명이 목숨을 잃었다.특히 버지니아주에서는 쓰러진 나무가 집을 덮쳐 1명이 사망하는 등 나무에 깔려 2명이 숨졌고,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전기복구에 나섰던 전력회사 직원 1명이 감전사하는 바람에 전기 복구 작업 자체가 큰 차질을 빚었다. 정전피해도 잇따라 노스캐롤라이나주와 버지니아주 남부에서만 200만명이 정전피해를 입는 등 최소 350만명이 정전피해를 겪고 있다.또 포토맥강이 일부 범람하면서 적어도 25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교통장애도 이어져 수도 워싱턴 등 동부 주요도시에서 적어도 항공기 2000편이 결항되고 19개 공항이 폐쇄됐다.수도 워싱턴에서도 이날 비상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대부분의 학교가 휴교하고 대중교통도 운행을 멈췄으며 각종 기념관과 박물관도 문을 닫았다.36만여명의 연방정부 공무원들도 업무를 중단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 상륙당시 시속 160㎞의 강풍을 동반했던 이사벨은 이날 밤을 고비로 풍속 105㎞의 열대성 폭풍으로 약화됐으나 동부 해안을 따라 북상을 계속하고 있어 미국 동부 전역에서 초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날 낮 허리케인의 눈이 근접했던 노스캐롤라이나주 오크라코크 섬에는 한때 시속 257㎞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강풍과 함께 해일이 몰아닥쳐 섬의 나무들이 무더기로 뽑히고 주민들이 완전 고립됐다. 미국 기상당국은 현재 빠르게 북상중인 이사벨의 크기가 이탈리아 면적에 맞먹을 정도로 크고 150∼250㎜의 비를 뿌릴 것으로 관측했다. 이사벨은 버지니아 북부를 지나 펜실베이니아주 서부,뉴욕주 서부를 거쳐 20일쯤 캐나다에서 소멸될 전망이다. mip@
  • 美동부 허리케인 ‘상륙’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 동부 해안 도시들이 강풍과 폭우에 대비하는 가운데 최고 13.5m의 파도를 동반한 허리케인 이사벨이 18일 오전(한국시간 18일 밤) 노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주의 해안에 상륙했다.앞서 연방재해당국은 동부 연안과 저지대 내륙지방 주민 30만명에게 긴급 소개령을 내렸다. 이사벨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케이프 해테라스 남남동쪽 450.5㎞ 해상에서 시속 169㎞의 강풍을 동반한 채 시속 22.5㎞로 북북서진,이날 해안을 강타했다.이사벨은 특히 대다수의 허리케인이 해안을 따라 북상했던 것과 달리 내륙을 관통할 것으로 예상돼 더욱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국립기상청은 앞서 최고 풍속이 시속 168㎞인 2급 이사벨이 18일 아침 노스캐롤라이나에 상륙,워싱턴 서쪽의 버지니아를 거쳐 북쪽을 지나갈 것이며 영향권은 뉴저지와 남쪽의 사우스캐롤라이나에까지 광범위하게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시속 256㎞인 5급에서 2급으로 둔화되기 했으나 체사피크만을 거치면서 내륙성 열대폭풍으로 다시 세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재난의 위협은 결코 줄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특히 봄과 여름 동안 워싱턴 일대의 잦은 비로 땅이 더이상 비를 흡수할 여력이 없어 약간의 폭우에도 침수와 포토맥강 등의 범람이 우려된다.기상청은 5∼10㎝의 비만 내려도 범람할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 예상되는 강우량은 20㎝가 넘는다고 밝혔다. 때문에 워싱턴 등 미 동부지역의 기능이 일시 마비됐다.이사벨의 영향권에 있는 대부분의 주와 시들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연방정부는 18일(현지시간) 하루동안 일을 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앞서 17일 저녁 허리케인을 피해 메릴랜드 캠프 데이비드 별장으로 피신했다.대통령 전용기 ‘에어 포스 원’을 비롯한 군용기와 군함들은 영향권에서 벗어난 안전지대로 이동했으며, 기지 내 군인 가족들에는 전원 소개명령이 내려졌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18일 또는 19일까지 문을 닫았으며 워싱턴 일대의 지하철인 메트로와 시가 운영하는 버스도 아침부터 운행을 중단했다. 메트로 당국은 돌풍이 불 경우 지하철 선로에 승객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항공기의 이착륙과 동부지역의 철도운행도 하루 동안 멈췄다. 마크 워너 버지니아 주지사는 수십년만의 ‘최악의 폭풍’이라며 17일 저녁부터 18일까지 외출을 삼갈 것을 권유했다.비상사태가 선포된 노스캐롤라이나,메릴랜드,버지니아,웨스트 버지니아,델러웨어,워싱턴시 등은 나중에 연방정부로부터 구제자금을 우선 지원받을 수 있으며 주 방위군을 피해지역에 긴급 배치할 수 있다. mip@
  • 빗줄기속 報恩 땀방울/“작년 루사때 전국서 온정의 손길” 강릉 주문진 40명 이웃마을 돕기

    “지난해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니 이번에 피해를 본 분들을 도와드리는 게 당연하죠.” 지난해 태풍 루사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뒤 복구공사를 통해 올해 수해를 피한 마을 주민들이 이웃 동네의 수재민 돕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태풍 ‘매미’가 할퀸 뒤 5일 만에 또다시 비가 내린 18일 오전.강릉시 주문진읍 장덕2리 주민 40여명은 빗줄기 속에서도 왕산면 대기2리 백합농장에 모여 지난 13일 농장 옆 대기천이 범람하면서 비닐하우스를 덮친 토사를 삽으로 연방 걷어내고 있었다. ●작년 루사 피해 딛고 옆 동네 수재민 돕기 나서 트럭과 승합차에 나눠 타고 1시간30분 거리인 농장에 도착한 이들은 빗줄기가 굵어지자 작업을 서둘렀다.무릎까지 차오른 흙더미를 헤쳐 가며 후텁지근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업을 하는 주민들은 연방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장덕2리는 지난해 태풍 ‘루사’의 피해로 마을 전체가 초토화됐다. 일주일 가까이 길과 전력,상하수도가 끊기고 외부와 고립됐다.전체 104가구 가운데 80가구가침수되고,22가구가 물길에 떠내려가는 등 멀쩡한 집이 없었다.30만평의 농경지도 3분의2 이상 물에 잠기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랐다.‘루사’ 피해 이후 주민들은 “또 당할 수 없다.”며 스스로 팔을 걷고 나서 취약지역을 보강했다. 마을 하천인 신리천의 폭을 60m로 두배 가까이 넓히고,기존의 물길을 복구해 범람 가능성도 최소화했다.이 때문에 올해는 농경지 2000여평만 유실됐다. ●거센 빗줄기에 힘든 줄 모르고 복구 도와 장덕 2리 주민들은 지난 15일 주민 회의를 통해 일손이 급한 다른 마을을 돕기로 의견을 모았다.삽,곡괭이 등 작업도구와 자체 성금으로 마련한 10㎏짜리 쌀 63부대를 이날 트럭과 승합차 9대에 나눠 실었다. 삽으로 토사를 퍼내던 부녀회장 김경자(53)씨는 “지난해 서울,경기 등 전국 각지의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마을이 루사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면서 “마을 주변뿐 아니라 더 많은 피해를 입은 남부 지역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 46채의 비닐하우스 가운데 20여채가 매몰·침수돼 3000여만원의 피해를 입은 농장 주인 최명룡(42)씨는 장덕2리 주민들이 퍼낸 흙을 트랙터에 싣고 대기천 주변에 쌓아 올렸다. 최씨는 “장덕2리 주민들이 아니었다면 땅에 묻힌 백합을 건지는 것은 꿈도 못 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땜질식 복구도 문제 이날 오후 비가 이어지면서 대기천의 물줄기도 빨라졌다.오전에 내려진 호우주의보가 호우경보로 확대 발령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장덕2리 청년회 회장 함대호(51)씨는 “물난리에 시달리다 보니 이젠 빗줄기만 봐도 덜컥 겁부터 난다.”면서 “하늘이 어쩌면 이렇게 야속하냐.”고 한숨을 쉬었다.다행히 대기천의 수위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들은 이번 피해가 천재라기보다 인재에 가깝다고 입을 모았다.지난해보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았는데도,피해 규모가 예상 밖에 큰 것은 정부의 ‘땜질식 복구공사’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장덕2리 주민 정호륭(60)씨는 “지난해 해당 관청에서 현장에 와 보지도 않고 하천 복구 공사를 하려고 해 시청까지 가서 항의했다.”면서 “지난해 복구 공사를 제대로 했다면 올해 고통이 덜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릉 이두걸기자 douzirl@
  • 태풍피해 강원·경남 르포 / ‘두번째 水魔’ 강릉 옥계면 산계리

    “2년 연속 물난리를 겪어 울부짖을 힘도 없지만,그래도 모진 게 목숨이라고 살아 남아야지.” 17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 3리 황지미골 주민 윤종성(65)씨는 헬기를 통해 긴급 공수된 소형발전기를 집 앞 돌더미에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루사로 컨테이너 생활하던 할머니가 매미로 목숨 잃어 태풍 ‘매미’로 마을이 전쟁터처럼 파괴된 데다 친누나처럼 따르던 이웃 김정운(88) 할머니가 13일 새벽 컨테이너에서 잠을 자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탓이다.김 할머니는 지난해 태풍 루사 때 집이 떠내려 가자 컨테이너에서 살던 중이었다. 윤씨는 지난해 간신히 집을 건졌으나 2년째 수백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집 앞 300여평의 텃밭에 심었던 고추들이 모조리 물살에 떠내려 갔고 500여평의 콩과 들깨밭은 절반 이상 진흙에 파묻혔다.윤씨는 “그래도 고향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오늘 밤엔 오랜만에 전기라도 들어와 한결 낫다.”며 한국전력 직원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발전기를 설치했다. ●농작물 흔적없이 쓸려가 빚더미 생활이 곳은 마을을 관통하는 산계천이 지난해에 이어 범람하는 통에 8.8㎞의 마을 도로 대부분이 유실됐다.전기와 전화도 끊겼다.심지어 상하수도 시설도 사라져 식수도 부족하다. 수해는 해발 872m인 자경산의 골짜기에 자리잡은 산계 3리에 집중됐다. 80여가구 가운데 20여가구가 침수됐고,농지 2만평 가운데 5000여평이 물에 잠겼다. 특히 지난해 수해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임시로 지내던 컨테이너 박스 6개가 거센 물살에 흔적도 없이 떠내려갔다. 주민만 물난리를 겪은 것이 아니다.추석 명절과 겹치는 바람에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가족들도 공포에 떨어야 했다.김길자(67·여)씨는 “서울·부산 등지에 사는 다섯 아들 가족이 고립되는 바람에 몰고 온 차는 그냥 둔 채 야산을 따라 밧줄을 잡고 동네를 겨우 빠져나갔다.”고 몸서리쳤다. ●피해 복구 나선 주민들 하지만 주민들은 “마냥 낙담할 수만은 없다.”며 강한 재기의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지난해 유례없는 피해를 경험한 탓인지 복구를 위한 손길도 빨랐다.남아 있는 밭의 작물을 돌보고,부서진 집이나 마을 시설 복구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산계 3리 유병용(53) 이장은 “주민들이 수해에는 이골이 났는지 재기를 위한 움직임도 빠르다.”고 말했다. 마을 근처 시멘트공장 근로자들의 자원봉사도 이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지난 14일 새벽부터 매일 40여명씩 마을에 나와 밤늦게까지 도로 복구,진흙 제거 작업 등을 돕고 있다.강원도에서는 미처 지원하지 못하는 포크레인·굴착기 등 중장비도 10여대나 동원됐다. L시멘트공장 권오철(36) 과장은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사회를 가만히 볼 수 없어서 나왔다.”면서 “임시 도로가 개통될 이번 주말까지는 마을 복구에 힘을 보탤 것”이라며 토사를 연신 삽으로 걷어냈다. 강릉 이두걸기자 douzirl@
  • 기고 / 태풍 ‘매미’와 지도자 역할

    중국 5경의 하나로 ‘尙書’라고도 불리는 서경(書經)을 보면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나온다.이 말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겨 쓰면서 유명해졌다.그러나 대부분 ‘철저히 준비하면 잘못된 결과를 줄일 수 있다.’는 정도로 의미를 알고 있으나 이 말은 전혀 다른 뜻을 담고 있다. 서경은 ‘유비무환(有備無患)’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것이나 어지러워지는 것은 오로지 관리들에게 달려 있다.벼슬은 사적인 관계가 아닌 능력에 따라 주어야 하며,악행을 저지르지 않은 현명한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스스로의 능력만을 뽐내다가는 오히려 그 공을 잃게 될 것이다.오로지 자신의 업무에 사심 없이 임하면 매사에 늘 철저히 대비하게 될 것이고,대비가 되어 있으면(有備) 우환도 없다(無患).” 태풍 매미가 남긴 상처가 너무 크다.짧은 시간 머물렀으면서도 많은 피해를 주었다.태풍의 강도가 워낙 센 탓이기도 하지만 인재의 측면도 강하다.도처에서 무사안일과 태만의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감사원의 사전 지적에도 그대로 방치하다가 19명의 인적피해와 1900여억원의 재산 손실을 낸 마산에서는 해일이 닥쳐오는데도 아무런 경고도 없었다.낙동강 도진제 같은 지천둑의 붕괴나 김해시 한림면의 강물 범람에 의한 배수펌프장 정전 등의 사고도 이미 지적돼왔다고 한다.지난해 태풍 루사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던 강릉시 시사천 공원묘역 지역에서는 또다시 인명피해가 재발됐다. 이번 태풍의 직접 피해를 입은 일본에서는 사망자가 한 명뿐이라는데 우리는 사망과 실종인원이 100여명을 넘어섰고 재산피해도 수조원에 이른다니 정말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이는 ‘능력을 제대로 갖추고 사심 없이 매사에 임함으로써 늘 철저히 자신의 맡은 바 책무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적어 비롯된 인재인 것이다.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책임을 따지고 성토한다.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그런 문제점을 간과하고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담당 공무원들에게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 공무원들을 지휘하고 통제했던 고위 관리들과 그런 공무원들을 감독하고 지도하라고 뽑아준 정치가들에게서 우리는 책임의 원천을 찾아야 한다.그리고 그런 단체장이나 지도자,정치가들을 뽑은 국민들 모두가 궁극적인 책임을 나눠져야 할 것이다. 서경의 유비무환 구절이 있는 대목은 당시의 명재상이었던 열명(說命)이 당시의 왕이며 재상에 대한 임명권자였던 고종에게 자신의 인사관리의 기준을 보고하던 내용이다.지금은 어떤가? 누가 최종적인 임명권자인가? 바로 우리들 유권자이다.그런 단체장과 정치인들을 선택한 우리가 바로 사태의 책임자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끔찍한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도 쉽게 잊는다.그러고는 막상 선거를 할 때는 사적인 인연이나 지역적 연고에 의해 표를 던진다.그리고 그렇게 뽑힌,무능하고 게으르며,사적 이익에만 몰두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뽐내는 사람들에 의해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 인재를 막고 안전하며 건실한 사회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드러난 과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그래서 분명한 기준으로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붕어가 좁은 어항 속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 수 있는것은 방금 본 것도 잊어 버려 몸을 돌릴 때마다 새로운 풍경에 감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우리도 그들의 무능과 부패와 게으름과 권력의 전횡을 잊으면 어항 속의 붕어처럼 깔보임을 당해,어떤 큰 재난을 겪게 될지 모른다. 유관웅 SMI 드림빌더 대표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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