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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소방, 119 출동기준 바꿨더니 동물구조활동 절반 줄어

    경기소방, 119 출동기준 바꿨더니 동물구조활동 절반 줄어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지난해 단순한 잠금장치 개방이나 간단한 동물구조의 경우 119 출동을 거부할 수 있도록 출동기준을 변경했더니 동물 관련 구조 건수는 절반가량 줄고 교통사고 구조 건수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도 소방재난본부가 발표한 ‘2018년도 경기도 구조 활동 분석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총 20만 1697회 출동해 15만46건을 구조 처리했으며 이를 통해 2만 1599명을 구조했다. 2017년 대비 도내 구조출동은 1만176회(5.3%), 구조 건수 767건(0.5%) 증가했다. 구조 인원은 890명(3.9%) 감소했다. 지난해 구조 건수 1위는 벌집 제거(3만 4208건)로 전체의 22.8%를 기록했다. 이어 교통사고(1만 8416건·12.3%), 동물포획(1만 5488건·10.3%), 화재(1만 4756건·9.8%) 순이었다. 2017년과 비교하면 벌집 제거 건수는 3만5577건에서 3만 4208건으로 3.8%, 동물포획은 3만 3331건에서 1만5488건으로 53.5%, 잠금장치 개방은 1만2894건에서 1만1813건으로 8.4% 감소했다. 교통사고 구조 건수는 1만 5441건에서 1만 8416건으로 19.3% 늘었다. 도 소방재난본부는 이런 변화의 원인으로 생활안전분야 출동기준 변경을 꼽았다.도 소방재난본부는 지난해 2월 생활안전분야 신고가 119에 접수될 경우 재난종합지휘센터가 신고자의 위험 정도를 ▲긴급 ▲잠재적 긴급 ▲비긴급 등 3가지로 판단해 출동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예를 들면 맹견이나 멧돼지, 뱀 등 위해동물이 주택가에 나타나면 소방서에서 출동하지만, 너구리나 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농수로에 빠지는 등 긴급하지 않은 상황은 의용소방대나 해당 시·군, 민간단체에서 처리하도록 통보하는 식이다.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2017년의 경우 전체 구조 건수 중 동물 관련 출동 건수가 46%였지만 지난해는 33.1%로 큰 폭으로 줄었다”며 “생활안전분야의 잦은 출동 요청으로 구조나 화재 활동이 방해받는 사례가 발생해 출동기준을 바꾼 것인데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도내 구조현황을 하루 기준으로 보면 매일 552회 출동해 59명을 구조한 것으로, 이는 2.6분마다 출동해 24분마다 1명을 구조한 것이다. 또 10년 전인 2009년 구조 건수인 5만859건과 비교하면 195%가 증가한 것으로, 해마다 지속해서 13.2%씩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가장 많이 구조 출동한 소방관서는 도농복합지역으로 벌집 제거와 동물구조가 많은 용인소방서(9559회)였고 이어 화성소방서(9317회), 수원소방서(8631회), 남양주소방서(8348회) 순이었다. 월별로는 벌들이 기승을 부리는 7∼9월(합계 37%)이, 요일별 구조 인원은 토요일과 일요일(합계 30%)이, 성별로는 남성이 1만 2569건(59%)으로 여성보다 많았다. 출동부터 현장 도착까지의 5분 도착률은 3만 7138회(21.6%)로 지난해와 동일하게 나타났다. 도 소방재난본부는 지난해 특수대응단, 수난구조대 등 총 902명의 구조대원이 구조 활동을 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춘절 후 부모와의 이별에 몸서리치는 中 ‘유수아동’의 눈물

    춘절 후 부모와의 이별에 몸서리치는 中 ‘유수아동’의 눈물

    “엄마, 가지 마!” 시골 마을 어귀에서 발버둥 치며 울부짖는 어린 여자아이의 동영상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다름 아닌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다시 돈벌이를 위해 도시로 떠나는 부모와 헤어지는 유수아동(留守儿童)의 눈물 어린 호소다. ‘유수아동’은 ‘남겨진 아이’라는 뜻으로 부모가 돈벌이를 위해 도시로 떠나면서 농촌에 남겨진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지난 11일 중국 구이저우(贵州)성 롱장(榕江)현의 한 마을 어귀에서는 떠나는 부모를 쫓아가 헤어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어린 여아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매년 춘절이면 도시로 돈을 벌러 떠났던 부모가 시골에 남겨진 아이들을 보러 돌아온다. 일 년에 한번 가장 오랜 시간 부모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아이들은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어김없이 이별의 시간은 다가오고, 부모는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도시로 떠난다. 친척 손에 남겨진 아이들은 또다시 부모와의 이별에 몸서리친다. 잠정 통계에 따르면, 현재 중국 농촌에 남겨진 유수아동은 700만 명이 넘는다. 베이징에 유수아동을 위한 공익재단을 창설한 언론인 출신의 뤼신위(刘新宇) 씨는 ‘유수아동 심리상태 백서’를 발표했다. 그는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부재가 불러온 결과는 참담하다고 전했다. 지난 4년간 유수아동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유수아동의 70%가 다양한 이상 증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수아동의 34%는 자살 성향이 높았고, 유수아동의 48.3%는 스마트폰 중독으로 집계됐다. 또한 유수아동의 10%는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부모가 사망하지 않았지만,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원망으로 바뀌면서 부모가 죽었다고 여김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6월 구이저우성 비제시의 한 농가에서는 부모 없이 지내던 5살, 8살, 9살, 14살짜리 4남매가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등학교 6학년 큰 아들은 ““죽음은 나의 오랜 꿈이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또한 재작년 안후이성에서 할머니와 살아가는 한 어린 남자아이는 엄마가 춘절에 가지 못하다는 전화를 받고, 이튿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밖에도 범죄 위험에 노출된 유수아동의 탈선, 범죄, 성범죄 등이 매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중국 정부는 지난 2016년 ‘유수아동 보호 강화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고, 유수아동 보호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유수아동의 범죄와 탈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고속 성장이 농민공의 희생 위에 이루어졌다면, 여기에는 농민공 자녀들의 희생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봉황망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북한 전쟁고아 기록정리가 남은 일…더 늦기 전에 끝내야”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북한 전쟁고아 기록정리가 남은 일…더 늦기 전에 끝내야”

    ‘독일서 韓문화재 발굴’ 김영자 박사가 말하는 ‘북한 전쟁고아’“한반도 현대사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아픔, 잊혀진 이들이 있다. 바로 북한의 전쟁고아야. 남편이 먼저 시작한 일인데 요즘은 그게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6·25 한국전쟁에서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전쟁고아가 많이 발생했지. 이들이 동유럽에서 위탁교육을 받다가 어느 날 하룻밤 새 갑자기 싹 사라졌거든. 이들에 대한 기록 정리가 여생의 일이 됐어.” 독일에 반출된 한국 문화재 발굴과 보존의 중심에 섰던 베커스 김영자(80) 박사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청했더니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나자고 했다. 김 박사는 “서울 지리를 잘 몰라 다른 곳은 잘 찾아갈 수 없어. 그런데 민속박물관은 찾아갈 수 있어.”라며 “1층 안쪽 커피숍에서 만나자.”라고 했다. 독일에서 50년째 사는 그가 박물관 1층에 커피숍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의 이력대로 문화재에 조예가 깊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민속박물관을 찾나 생각하고 설날 연휴인 지난 2일 약속 장소로 갔다.(※독일로 먼저 돌아간 남편이 북한 전쟁고아 사진을 보내주기까지 기사 발행이 미뤄졌다.) “체코의 北전쟁고아, 남편이 먼저 발굴60여명 작은 궁전서 5년간 위탁교육한국 모르는 남편 탓에 이 일에 빠져”‘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김 박사는 “나이가 이제 80인데 쉬어야지.”라며 잠시 뜸을 들였다. “남편(베커스 크리스토퍼·76)이 2015년 봄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체코의 어느 제후 궁전에서 북한 고아들이 1953~1958년까지 살았다는 기사를 읽은 거야. 아내의 조국 ‘코리아’라는 단어가 등장하니 솔깃했던 가봐. 남편이 당장에 차를 몰고 달려가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봤대. 60년이 훌쩍 지났으니 동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렵사리 수소문해서 기숙사 사감을 지냈다는 여성을 만났다고 해. 요양병원에 있는 그 여성이 나이가 많아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 정도였고, 정신이 오락가락했는데, 남편이 그 여성이 돌보고 교육했던 북한 고아들의 사진과 앨범, 이들이 돌아가서 그녀에게 보낸 엽서 등을 전달받았거든. 이 여성이 돌아가신다면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한 귀중한 자료도 그냥 재로 사라질뻔한 것이지. 그런데 남편이 한국말과 한국 사정을 잘 몰라 한계가 있으니, 내가 이 일에 끌려들어 간 거지.” “北전쟁고아 1958년 하룻밤에 귀국가서 ‘보고싶어’ ‘그곳이 천국’ 편지도1962년 이후엔 서신 왕래도 뚝 끊겨” 팔순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발음은 또랑또랑했고, 말은 박력이 있었고 빨랐다. 기억은 엊그제 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러더니 대뜸 김 박사가 “남한에선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한국에선 북한 전쟁고아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잘 모르고 있다.”라고 답했다. 사실 기자도 수년 전 여자배우 추상미가 감독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북한 전쟁고아들을 다뤘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한국 기자들이 우리 집에 많이 왔었어. 그때마다 남편이 북한 고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기자들이 ‘네, 네.’라고 대답했지. 그런데 기사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아 남편도 거의 포기했어.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도 있고 해서인지 한국에선 도통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 북한 고아 문제는 외국에서 더 관심이 있었어. 폴란드에서 북한 전쟁고아를 다룬 다큐 영화 ‘김귀덕(Kim Ki Dok)’이 2006년도에 먼저 제작됐거든.” 영화 ‘김귀덕’은 폴란드에서 무덤이 하나 있는데 이걸 파버릴까 하다 동양인 무덤이 여기에 왜 있지 하고 조사를 하다 보니 북한 전쟁고아였다는 이야기다. ‘김귀덕’은 유튜브로 검색하니 나왔지만, 한글이나 영어 자막이 달려있지 않아 보기가 쉽지 않았다.체코에 있던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했다. “체코의 작고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궁전인 발리치(Valec Valech)에 북한 고아 60여명이 위탁 교육을 받았어. 이 궁전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공공건물로, 보육원으로 쓰였거든. 전쟁고아를 남쪽 한국에선 나쁘게 말하면 선진국에 팔았지만, 북한에선 우방인 동유럽 국가에 위탁교육을 했던 거야. 최근에 한국 PD 한 사람이 취재차 왔었어. 이 궁전에 전쟁고아들이 있었다는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궁전 정원 한쪽 구석에 세워진 오벨리스크에 전쟁고아들이 위험하게도 올라가 영문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새긴 게 있거든. 글자가 많이 부식되고 상하고 있어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빨리 보존 조치를 취해야 해.” “北전쟁고아, 내 또래여서 더 동질감이들 북한서 어떻게 됐는지 문득 생각위탁 부모도 고령, 구술 정리도 시급” 김 박사의 설명은 계속됐다. 전쟁 직후 여력이 없던 북한은 1951년부터 전쟁고아들은 체코를 비롯해 구동독,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으로 위탁교육 명목으로 보냈다. 정확한 조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북한 전쟁고아는 몇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1958년 어느 날 김일성의 명령에 의해 북한 고아들이 어느 날 싹 귀국했어. 주위 사람들도 모르게 밤새 다 데려갔다고 해. 정성 들여 애들을 교육하고 돌본 엄마들은 ‘지금도 보고 싶어서 운다.’라고 해. 그리고 그 아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서 ‘엄마, 보고 싶어요.’, ‘그곳이 천국이었어요.’라는 내용의 엽서를 보냈지. 1962년 이후 편지 왕래마저 끊겼고, 그리곤 사라진 거지. 북한 전쟁고아들을 돌봤던 이들이 아주 고령이지. 더 늦기 전에 이들로부터 구술받지 않으면 전쟁고아의 기록은 사라질 수 있어.”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대개 6~12살쯤 되어 동유럽에 와서 몇 년 살았어. 돌아갈 때 나이가 많은 아이는 스무 살가량 됐고, 유럽 문화를 알고, 한창 정이 들 무렵이었지. 그때 동유럽이 사회주의 체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북한보다는 자유스럽고, 풍족했지. 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수용소로 끌려가서 자유스럽지도 못하고 혹사를 당한 것으로 추정돼. 북한에서 적응을 잘한 아이들은 동유럽 언어가 되니 고급 인력으로, 외교관으로 살아남았을 거야. 북한 전쟁고아들의 나이가 내 또래여서 더 동질감이랄까 연민이 느껴져.” “발리치 궁박물관장이 전시실 한 두 개를 내줄 테니 한국관 전시실로 꾸미라고 우리한테 제안했어. 이 궁전이 1976년 화재로 불탔는데, 문화유산이어서 EU가 겉모습은 복원해 줬거든. 내부는 아직 텅텅 비어 있어서 주로 콘서트나 미술관으로 이용해. 여기에 ‘당시 아이들이 입었던 옷, 당시 영상물, 동요 등을 전시하면 좋겠다.’라고 나랑 남편이 이야기하지. 전시관 기획 잘해서 신청하면 (발리치궁이) 자국 문화재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도 하더라.” 김 박사 부부의 집에서 발리치까지는 차로 3~4시간 거리여서 체코 문화와 맥주를 좋아하는 남편이 종종 놀러 간다고 했다.“1968년 장학금 받는다는 말에 獨유학레겐스부르크大 한국어문화 강좌 맡아직접 쓴 문법책 기초한국어 인기 여전” 베커스 김영자 박사는 어떻게 독일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193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그는 꽃다운 25살 때인 1965년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1년 장학금을 받게 해주겠다는 신부님의 말에 “아무것도 모르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땐 외국 나간다는 말에 무조건 좋았거든. 처음 수녀원에 도착해서 어학연수를 받는 동안 말이 안 통하니 많이 울었지. 뮌헨대학에 서양사와 독문학을 전공하고, 레겐스부르크대학에 입학해 서양사를 전공했지. 건축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애를 키우다 1975년에 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 1979년부터 레겐스부르크 시립박물관의 학예사로 근무하면서 인맥이 넓어졌고, 그때부터 한국과의 인연이 깊어졌지. 그러다 모교에 한국어문화 강좌가 개설되면서 교수가 된 거야. 1987년부터 정년퇴직한 2005년 9월까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쳤지. 자매결연을 한 동국대에 독일 학생들을 보내 문화교류도 시키고 했어. 동국대가 독일 대학과 자매결연을 한 첫 한국의 대학일 거야.” 그가 사는 레겐스부르크는 뭔헨에서 동북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맡을 사람으로 내가 뽑힐 때 독일어와 한국어가 되니, 한국사람이 한국어 가르치는 것을 처음엔 아주 쉽게 생각했어. 그런데 말은 잘해도 한국 문법을 모르니, 독일 학생들은 문법적으로 명확하게 설명이 안 되면 이해는커녕 공부하려고도 하지 않아. 얼마나 깐깐하고, 황당한 질문이 많이 날아들었는지. 한국에 들어와 시중의 문법책을 다 보고, 한국어학당을 다 가봤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 오죽 답답했으면 교육부에 들어가 ‘제대로 된 문법책 하나 내 놓으라.’라고 닦달했을까. 나중에 고등학교 국어 문법책을 하나 구해, 문법을 연구하면서 ‘기초한국어’를 썼어. 여전히 인기 좋아 지금도 잘 팔리고 있어. 한국으로 발령나서 가는 독일 외교관들이 ‘이 책을 들고가면 걱정이 없다.’라고 할 정도야. 한국어의 심화 과정과 한국 문화까지 소개하는 ‘한국어 플러스’도 냈어.” ‘삼국유사’ 독일어 번역…도서전서 호평“韓정체성 보여주는 역사책 내고파 번역” ‘삼국유사(국보 306호)를 독일어로 번역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김 박사는 그 뒷이야기부터 꺼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한국의 해’여서 삼국유사를 번역해 내겠다고 했더니 한국문학번역원이 글쎄, ‘삼국유사는 문학이 아닌 역사’여서 지원금 지원이 안 된다고 했거든요. 이런 소식을 들었던 당시 경북 군위군의 인각사 주지가 백방으로 뛰고 해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통하니 지원금이 나왔지. 당시 문학 100선이었는데 삼국유사가 더 들어가는 바람에 101선이 됐지. 출판기념회를 도서전에서 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문학번역원조차도 ‘선생님 번역 책이 최고.’라고 했지. 유럽에선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덜 알려진 게 아쉬웠는데,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역사책을 유럽에 내보이고 싶었거든. 그게 번역에 나서게 된 계기였어.” 국립민속박물관이 약속 장소로 정한 이유도 나왔다. 김 박사가 한국에서 가장 자신 있게 잘 아는 곳이기에 그렇다. 1906년 한국을 방문해 기록 사진을 남긴 독일군 장교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산더 대위의 사진 기증전시회가 2006년 4월 여기서 열렸다. 당시 김 박사가 사진과 함께 전시된 문서와 관련 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해 줬다. 또 2008년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의 선교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전시회가 민속박물관에서 열릴 때도 김 박사가 깊이 관여했다. 그가 유럽에서 수십년간 수집한 근대조선 사료를 고스란히 민속박물관에 기증했고, 베를린 등 유럽 골동품 가게나 벼룩시장 등에서 취미로 사모았던 인형 600여점을 2009년 기탁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독일 문화재를 발굴해 정리할 때 민속박물관 학예사들의 도움도 컸다. “겸재 금강산 화첩 발견도 드라마틱수도원 ‘한국에 귀한 것…팔 수 없어’왜관수도원에 영구임대 형식 반환돼”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그녀가 1999년 번역한 ‘수도사와 금강산’(노르베르트 베버 지음)을 꼽았다. “이 책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조선시대 미술사를 다시 쓰게 했거든.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장을 지낸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년)는 1925년부터 4개월간 선교차 방한해 금강산을 돌아보고 가면서 ‘금강산을 잘 그린 그림을 하나 사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금강산 등정에 동행한 독일인 헹켈이 나한테 선물을 했다. 수도원 박물관에 두었다.’라는 기록만 남겼지. 어디에서 어떻게 샀다는 말은 남기지 않았어. 어쩌면 이 선물이 금강산 화첩이었는지도 몰라. 그리곤 아프리카 선교를 가서, 그곳에서 선종하셨거든. 그러면서 그림이 책에 실렸어. 원서에 실린 이 그림을 본 한국의 한 미술사학자가 수도원에 편지를 써서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림이 있느냐.’라고 하니 당시 수도원장은 ‘모른다.’라고 딱 잡아뗐다는 이야기 전해. 수년이 흘러, 그런데도 아주 이상하니 국립박물관 학예관 한 명이 직접 가서 보겠다며 수도원을 방문한 거야. 그리고 갔더니 직사광선을 받는 곳에서 그림이 빛바랜 채 다 죽어가고 있는 걸 본거야. 이 학예관이 깜짝 놀라는 것을 본 박물관 신부님이 ‘우리 이런 것 또 있어’하면서 두 폭의 그림을 더 갖고 나왔던 거야. 또다시 놀라자 이번에는 소장한 그림을 모두 갖고 보여준 거야. 이게 모두 21첩,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첩이 된 거지. 발견 과정이 드라마틱해.” “이 그림들이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국보급 문화재 반환의 모범 사례지. 이 그림의 존재와 가치가 알려지면서 소더비 등 영국과 미국의 경매 회사들이 수도원에 그림을 팔라고, 그 비용으로 선교사업에 쓰라고 했어. 그렇지만, 예레미아스 슈뢰더 수도원 대원장이 ‘한국에 그렇게 귀한 것이라면 팔 수 없어. 돌려줄 거야.’라고 결심하고 자매관계인 경북 칠곡군에 있는 왜관수도원에 ‘국가에는 주지 마라.’는 단서로 영구임대하지. 난 반환된 겸재 화첩을 한국에서 보려고 겨우 날짜를 잡고 방문하기 1주일 전, 왜관수도원에 큰 불이 났어. 그 소식에 가슴이 철렁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지. 수도원이 거의 몽땅 다 불타버렸지. 다행히도 화첩은 다른 곳에 보관해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던 거야. 이런 보관의 이유로 반환된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첩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거지.” “韓근대복식 300벌 한꺼번에 나와불상·곤여전도 등 1200여점 보관유럽 최대 한국 유물 소장 박물관”김 박사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는 대학을 정년한 2005년부터 10년간 자원봉사직 학예사로 근무했다. “오틸리엔 수도원장이 한국 유물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합디다. 박물관에 가보니 조선시대 갑옷에 일본 사무라이 투구를 씌워 전시해 일본 유물로 착각하게 된 게 많았어. 설명도 엉터리가 부지기수였고. 동양관에는 한국·일본·중국 유물이 뒤섞여 있었던 거지. 선교박물관의 전시품 80%는 아프리카 것이었고, 나머지는 동양 3국의 유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뒤섞여 있는 거야. 나 혼자 어찌할 수도 없고 해서 민속박물관에 요청하니 학예사 4명이 3주간 파견 나왔지. 우리 다섯이 먼지 속에서 정리했지. 전시실을 정리하니 한국 유물 540점이 나왔지. 다음해에는 지하실 창고를 뒤지니 먼지가 두텁게 쌓이고 거미줄이 쳐진 곳에서 한국 유물이 수두룩하게 나왔어. 17세기 불상과 1869년의 곤여전도(坤輿全圖·세계지도) 등 모두 1200여 점이나 됐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2016년 한국관을 별도로 재개관한 거야.” “하루는 수사님이 불러서 수도원에 갔더니 함을 하나 보여주는 거야. 열어보니 좀벌레가 휙 하고 지나가. 신랑 저고리, 신부 치마를 비롯한 근대 복식 300여벌이 나왔어. 전문가도 아니고, 정리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알고 지내던 조우현 교수(성균관대 복식과)에 연락해 사정을 설명했어. ‘비행기 비용도, 작업비도 못 준다. 그래도 숙식은 제공해 줄 테니 와서 도와다오.’라고 부탁했지. 그가 조교 두 명을 데리고 와서 2주 동안 수도원에서 먹고 자면서 정리해 주고 갔지. 이게 1920년대 복식인데 보기보다 귀한 거야. 우리 한국에선 사람이 죽으면 옷을 불태우는 관습이 있어서 근대 복식이 예상외로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거야. 문화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국립민속박물관·서울시립역사박물관의 학예사들과 국외소재문화재단, 문화유산회복재단, 재정 지원을 해준 문화재청 등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야. 감사할 따름이죠.”“내 나이 팔순, 사명감 있는 후배 나서야” “무보수로 선교박물관에서 일할 때 힘들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이 있었어. 훼손되는 귀중한 한국 유물을 복원하려고 독일과 한국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정말 동분서주했거든. 이젠 후배들이 나서서 해야 하는데…. 한독 문화교류의 지식과 기반이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자기 분야가 아니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김 박사의 백발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달콤한 사이언스] 인공지능(AI)으로 ‘꿀벌’ 일병 구하기

    [달콤한 사이언스] 인공지능(AI)으로 ‘꿀벌’ 일병 구하기

    최근 호주 시드니대 연구진이 생태학 분야 국제학술지 ‘생물보존’에 전 세계 곤충종 41%가 개체수 감소를 경험하고 있고 3분의 1 정도는 멸종위기에 놓여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많은 생물학자들은 꽃가루를 옮기는 역할을 하는 벌의 급격한 개체수 감소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금세기 말에는 벌 구경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분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벌이나 나비의 개체수가 감소할 경우 생태계 전체가 파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벌의 개체수 감소는 살충제 같은 화학물질의 과다사용과 함께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충 증가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바로아 진드기’라는 해충이 벌집을 파괴해 벌의 장기적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벌을 키우는 양봉가들은 바로아 진드기 침입을 감시해 막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바로아 진드기의 침입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꿀벌과 벌집을 보호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EPFL) 신호처리 제5연구실(LST5)은 지역 양봉가들과 함께 인공지능(AI)를 활용해 침입한 진드기의 숫자를 계산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다. 양봉가들은 벌통 아래에 대놓은 나무판에 죽은 진드기 수를 세어 얼마나 감염됐는지를 파악하는데 이 방법은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진드기의 크기가 1㎜에 불과하고 나무판에 떨어져 있는 먼지나 오염물질들이 섞여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벌집이 한 두개가 아니라 많은 벌집을 갖고 있는 경우는 이런 방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할 수 있다. EPFL LST5 장 필립 티란 교수팀은 AI를 활용한 웹 기반 애플리케이션으로 진드기 숫자를 셀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벌을 키우는 사람들은 여전히 벌집 아래에 나무판을 대놓아야 하지만 예전처럼 일일이 육안으로 관찰해 진드기 숫자를 셀 필요가 없게 됐다. 그저 나무판을 찍어 온라인 사이트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연구자들은 진드기를 구분해낼 수 있는 앱을 개발하기 위해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해 나무판 위에서 진드기와 다른 오염물질을 구분해 인식할 수 있도록 학습시켰다. 또 양봉가들이 보내준 사진들이 선명하지 않고 역광 상태에서 찍혀 이미지를 인식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점을 연구진은 맞닥뜨렸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화질 선명도를 높이고 역광에서도 진드기만을 구분해 낼 수 있도록 컴퓨터를 학습시키는 한편 벌집마다 QR코드를 부여해 각 벌집마다 시간별, 장소별 죽은 진드기의 숫자, 현재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진드기 숫자, 다음 침투 장소 등을 예측할 수 있는 프로파일을 만들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앱은 죽은 진드기를 나무판에서 재빨리 인식하고 몇 초만에 벌집 하나 당 진드기가 몇 마리 죽었으며 그를 통해 얼마나 벌집에 남아있는지를 빠르게 인식할 수 있게 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AI 시스템은 벌의 생존을 위협하는 진드기의 확산 정도 등을 손쉽게 전국단위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티란 교수는 “지금까지는 진드기의 숫자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과도한 양의 살충제가 투입돼 벌들의 괴사를 부르는 등 문제가 심각했다”며 “이번 기술을 통해 벌과 벌집을 구할 수 있는 자료 확보는 물론 바로아 진드기의 확산 정도, 그리고 잠재적으로 진드기에 내성이 있는 벌을 찾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미니멀 라이프 권하는 책들… 비워 볼까요

    설 연휴를 지나고서 3000통이 넘는 이메일을 모두 비웠습니다. 받은 편지함에 적힌 숫자 ‘0’을 보니, 어찌나 시원하던지요. 이메일을 비운 계기가 된 건 요새 읽은 미니멀리즘 책이었습니다. 연초와 설 연휴 전후에 관련 분야 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책은 묵은 것을 정리하고, 가볍게 출발하기를 권합니다. 최근 재밌게 본 미니멀리즘 관련 책은 ‘나는 미니멀리스트, 이기주의자입니다’(홍시커뮤니케이션)입니다. 저자 시부야 나오토는 부유하게 살다가 부모가 이혼한 뒤 집안 형편이 나빠지며 최소한의 삶을 살겠다 결심합니다. 현재 그는 2평짜리 집에서 삽니다. 옷은 열 벌이 채 안 되고, 집에 냉장고도 없습니다. 대신 직접 장을 보고 고구마, 현미, 연어 등으로 꾸린 식사를 하루 한 끼만 합니다. 그의 삶을 보자니 예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비즈니스북스)가 떠올랐습니다. 두 책 모두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모두 버리라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강조합니다. 저자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 ‘이런 삶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마저도 듭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위한 정리 관련 책들도 눈에 띕니다. 정리 컨설턴트인 윤선현씨가 낸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정리를 시작했다’(인플루엔셜)가 읽어봄직 합니다. 정리를 하면서 삶이 반듯해지고, 인생도 바뀌었다는 내용입니다. 비슷한 책으로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더난출판사)도 유명합니다. 책 읽기가 귀찮을 때에는 온라인 카페에 들르며 미니멀하게 살아보길 다잡습니다. 회원들이 올린 집안 곳곳을 비운 사진을 보면 ´나도 정리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너무 많은 물건에 치이지 말고, 물건을 줄이고 자신에게 집중하자는 미니멀리즘. 연초를 맞아 나온 책을 읽어보고 우선 실천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며 책을 산다는 일 자체가 사실 이에 반대되는 일이긴 하지만요. gjkim@seoul.co.kr
  • 메이 “예정대로 새달 29일 EU 떠날 것”

    영국이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하고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 EU가 기존에 무역협정을 맺었던 69개국과 서둘러 양자 협정을 체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 협상은 지지부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3일(현지시간) 브렉시트 이행일(3월 29일)까지 불과 40여일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실제 무역협정을 맺은 국가는 스위스와 칠레, 페로제도, 세이셸 등 7개국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영국과 69개국의 통상 규모는 모두 1170억 파운드(약 170조원)로 영국 전체 무역 규모의 11%에 달한다. 영국이 대체 협정을 체결한 7개국과의 교역량(160억 파운드)은 69개국의 약 14%에 그쳤다. 영국이 기존 합의안에 따라 다음달 29일 브렉시트를 단행하면 2020년 말까지 전환(이행) 기간이 적용돼 그사이 EU가 무역협상을 맺은 국가와 협상을 진행할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러나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전환 기간이 생략돼 이들 국가와 통상 협정이 없는 공백 상태가 초래된다. 그럼에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날 ‘총리 질의응답’에서 “브렉시트 기한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며 예정된 날짜에 EU를 떠나겠다”고 못박았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인사이드] “중소기업 가라” 54만 취업준비생이 분노하는 이유

    [인사이드] “중소기업 가라” 54만 취업준비생이 분노하는 이유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20년 5.5억취업준비 기간 임금손실 11배 달해노동시장 이중구조 극복 방안 필요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격차가 큰 현실에서 장기간의 취업준비는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취업준비생은 해마다 늘어 2017년 기준 54만명에 이르지만, 이들의 선택에 대해 타인이 왈가왈부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성을 기준으로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20년 동안 대기업 직원과의 임금 격차가 5억 5000만원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14일 장인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작성한 ‘청년 취업준비생 증가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취업준비생 규모(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는 2013년 45만명에서 2017년 54만명으로 4년 만에 9만명이나 늘었다. 특히 남성 비율이 같은 기간 50.8%에서 55.6%로 크게 늘었다. 2017년 시험 분야별로 공무원 준비생이 40.6%로 가장 많았고 일반기업 20.0%, 미용사·조리사 등 자격증 준비 16.3%, 변리사·공인회계사 등 전문자격증 준비 6.6%, 공사·공단 등 공영기업체 5.7% 등의 순이었다. 취업준비 기간은 시험준비가 남성 평균 18.5개월, 여성 17.6개월로 가장 길었고 자격증 준비도 12.3개월, 12.1개월이나 됐다. 청년들이 최소 1~2년 동안 취업준비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남녀 각각 시험준비를 위해 쓰는 돈은 월 45만 3000원, 41만 7000원이었다. 취업준비 기간에 발생하는 월임금 손실은 4185만원이었다. 노동자가 30~99명인 중소기업에 취업한 20~29세 청년이 취업준비 기간 동안 벌 수 있는 임금이다. 여기에 취업준비에 필요한 비용 838만원을 더하면 취업준비생 단계를 거치면서 발생하는 손실은 5023만원이 된다.반면 노동자 500인 이상 대기업에 취업한 남성 대졸자가 30세부터 49세까지 근무하면 중소기업 노동자보다 5억 5122만원을 더 벌게 된다. 앞서 계산한 취업준비 비용과 손실의 11배에 이르는 수치다. 장 위원은 “즉, 취업준비를 통해 대기업에 취업할 확률이 11분의1, 9.1% 이상이라면 18개월 동안 취업준비생 기간을 감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여성 대졸자의 임금총액 차이는 4억 3332만원으로 남성보다 적지만 여전히 큰 격차인 것으로 분석됐다. 장 위원은 “대기업, 공기업 등의 지난해 채용인원은 5만명 수준이었는데 취업준비생의 규모 54만명은 기대소득의 차이를 고려했을 때 합리적인 수준을 벗어난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년 취업준비생이 많은 것은 양극화된 경제구조와 노동시장 이중구조하에서 기대소득을 극대화하려는 청년들의 합리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 위원은 “청년 개인들과 사회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이런 채용제도가 유지되는 것은 채용제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각 집단, 즉 공공부문과 대기업이 채용제도를 바꿀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며 “과도한 취업준비 경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나 비용은 각 취업준비생 개인이나 사회 전체로 귀착되고 채용자나 채용 집단은 그런 비용과 무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오히려 더 많은 지원자가 몰릴수록 더 우수한 인력을 뽑을 확률이 커지게 되고 지원기간이 늘어날수록 자신들이 원하는 직업능력을 갖추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채용제도를 각 채용기관이나 채용기업에만 맡겨 놓는다면 사회적 최적 균형이 달성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취업준비 장기화의 근본적 원인인 양극화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극복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효율적인 직무중심 채용 방식의 개발과 직무중심 인력운용시스템의 정착을 촉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 위원은 또 “공무원 채용도 시험제도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다양한 입직 경로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개방형 직위의 비율이 높은 기관의 사례에 대한 심층 분석을 토대로 채용 공정성의 확보 방안, 채용 후 전문성의 강화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조달환·이미도 측 “‘조들호2’ 하차 통보 받은 상황”

    조달환·이미도 측 “‘조들호2’ 하차 통보 받은 상황”

    배우 이미도와 조달환 측이 KBS2 드라마 ‘조들호2’ 하차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14일 이미도, 조달환 소속사 제이와이드컴퍼니 측은 “예정된 하차라고 알려졌지만, 예정된 하차가 아닌 하차를 통보 받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 매체는 KBS2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2:죄와 벌‘에 출연 중인 배우 조달환, 이미도의 하차에 대해 보도했다. 이에 ’조들호2‘ 측은“배우들도 본인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출연 당시 때부터 이 내용을 고지했다. 흐름상 자연스럽게 하차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제이와이드컴퍼니 측은 “일단 두 배우가 드라마에서 하차를 하는 게 맞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난감하고 당혹스럽다”며 “처음 출연할 때부터 ‘몇 회까지 나온다’는 구체적인 말은 없었지만 이렇게 10회에서 중도하차 할 줄은 몰랐다. 중도 하차 이슈는 우리도 갑작스럽다”고 밝혔다. 한편, KBS2 월화드라마 ’조들호2‘는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거악과 맞서게 될 조들호(박신양 분)과 그의 숙명적 라이벌 이자경(고현정 분)이 맞붙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변희봉은 극중 국일그룹 국현일 회장 역을 맡아 악의 축으로 활약 중이다. 매주 월, 화 오후 10시 방송된다.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안희정 부인, 2심 작심 비판 “미투 아닌 불륜…진실 밝히겠다”

    안희정 부인, 2심 작심 비판 “미투 아닌 불륜…진실 밝히겠다”

    2심에서 성폭행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부인 민주원씨가 페이스북에 “저와 제 아이들을 위해 진실을 밝히겠다”며 판결을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14일 민씨 페이스북에 따르면 그는 “아직도 이 사건이 믿어지지 않고 지난 1년여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조차 모르겠다”며 “제 한 몸 버티기도 힘든 상태에서 이런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너무 서럽다”고 말했다. 이어 “29년의 결혼 생활동안 오직 아이들과 남편만을 위해 살아온 제게 이런 모욕스러운 일이 생겼다는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더구나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인 제가 같은 일부의 여성들에게조차 욕을 먹어야 하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저는 김지은씨가 안희정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안희정씨를 믿었기 때문에 그 배신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며 “안희정씨를 용서할 수 없지만 재판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2심 재판은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작심한 듯 판결했고 저는 이제 안희정씨나 김지은씨에게 죄를 물을 수도, 벌을 줄 수도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민씨는 “게다가 이제는 안희정씨의 불명예를 아무 잘못 없는 저와 제 아이들이 가족이기 때문에 같이 짊어져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며 “그 불명예를 짊어지고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런 글을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참담하지만 저와 제 아이들을 지킬 사람이 이제 저 외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사람(김지은)이 적극적으로 제 남편을 유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김지은씨를 피해자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 또 “김지은씨보다 더 나쁜 사람은 안희정씨”라며 “가정을 가진 남자가 부도덕한 유혹에 넘어갔”고 “그의 어리석음으로 지지하던 분들에게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상화원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충남 보령에 있는 콘도 ‘상하원’에서 주한중국대사 초청행사를 연 2017년 8월 18일 상황이다. 행사가 끝난 뒤 별채 2층 침실은 안희정씨 부부가 사용하고, 1층은 김지은씨가 사용했다. 다른 일행들은 각자의 숙소에 머물렀다. 민씨는 “그날 새벽 무렵, 계단으로 누가 올라오는 소리에 저는 잠이 깼다”며 “1층에는 김지은씨 밖에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 사람이 김지은씨라고 생각했고, 자고 있는 안희정씨에게 ‘지은이가 이 새벽에 왜 올라오지?’하고 중얼거렸는데 안희정씨는 잠에 취해 있어 못들었는지 기척이 없었고 저는 그대로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방안까지 들어와 침대에 누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까지 봤다고 했다. 그는 “저는 당황해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사이 안희정씨가 잠에서 깼는지 ‘어, 지은아 왜?’라고 물었다”며 “그 소리를 듣자마자 김지은씨는 무척 당황한 듯이 ‘아. 어’ 딱 두 마디를 하고는 후다닥 방에서 달려 나갔다”고 주장했다. 민씨는 이튿날 오후 김지은씨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간밤에 도청직원들과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취해서 술을 깨러 옥상에 갔다 내려오다가 제 방이라 잘못 생각하고 들어갔다’고 사과한 일을 전하면서 “저는 어리석게도 그 말을 믿었다”고 썼다. 재판에서 그날 술을 마신 도청직원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는 김지은씨가 1심에서 설명한 상황을 언급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지은씨가 1심에서 “피고인(안희정)과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길까봐 걱정되기도 하여 2층 계단 앞에 쪼그리고 앉아 깜박 졸다가 일어나 숙소를 찾아가려다가 피고인과 눈이 마주쳤던 것 같다. 2층 방문은 불투명한 느낌이 났던 것 같고 제 기억으로는 실루엣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침실에 들어간 사실이 없고 나를 이상한 사람을 만들 의도를 가지고 한 진술로 보인다”고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민씨는 ”계단의 아래 중간 끝 어디에 앉아 있었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문과 가장 가까운 계단의 위쪽 끝에 앉아 있었다 하더라도 문까지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일어나면 벽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벽을 통해 실루엣이 비치고 눈이 마주쳤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부부가 잔 침대는 3면이 벽으로 둘러싸여져 있기 때문에 문 뒤에서 누운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는 것도 불가능하다면서 방 사진까지 공개했다. 이어 ”김지은씨가 자신의 방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방이라면 왜 그렇게 살며시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와 살금살금 들어와 조용히 있었을까“라며 ”진실만을 이야기하라“고 꼬집었다.그는 1심 재판부는 김지은씨가 안희정씨를 고소하기 전인 2017년 3월 5일에 자신이 구모씨에게 김지은씨가 상화원 부부침실에 들어온 적이 있다고 알리면서 도움을 청했다는 말을 믿었다고 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안희정씨와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믿어주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어떻게 있지도 않은 일을 그렇게 빨리 꾸며낼 수 있겠나. 그렇다면 왜 저를 위증으로 고소하지 않으셨나”라고 비판했다. 민씨는 “김지은씨가 상화원에 들어온 날은 김지은씨의 주장에 의하면 바로 2주 전 두 번이나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후”라며 “2번이나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 ‘수행비서의 업무를 철저히 행하고 한중 관계의 악화를 막으려는 의도로 안희정씨의 밀회를 저지하기 위해’ 성폭력 가해자의 부부침실 문 앞에서 밤새 기다리고 있었다는 김지은씨의 주장을 어떻게 수긍할 수 있다는 것인지 저는 진실로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제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이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제 증언을 인정받지 못하고 배척당했기 때문”이라며 “제가 경험한 사실을 왜 배척당해야하는 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주장했다. 또 “2심 판사님은 어떻게 실루엣이 비칠 수 있다고 하면서 그것만으로 눈이 마주쳤다는 김지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사실과 어긋나는 판결을 내리셨나”라며 “왜 제 경험을 거짓말이라고 하셨나. 제가 위증을 했다면 제가 벌을 받겠다”고 밝혔다. 민씨의 주장은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에 대한 해석이 1심과 달랐다. 1심은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2심은 김씨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감정을 진술한 만큼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또 업무상 위력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유형적 위력’일 필요는 없다고 봤다. 안 전 지사의 사회적 지위나 권세가 비서 신분인 김씨에게는 충분한 ‘무형적 위력’이었다는 설명이다. 안 전 지사 측이 김씨의 ‘피해자다움’을 거론하며 배척했던 피해 사실 요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김씨 측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했다. 안 전 지사 측은 “김지은씨가 피해를 당한 이후 도저히 피해자라고는 볼 수 없는 행동을 했다”며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수행비서로서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피해자의 모습이 실제 간음 당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며 이런 주장을 배척했다. 2심 재판부는 ‘동의 하에 성관계한 것’이라는 안 전 지사의 진술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17년 7월 러시아 출장에서의 첫 간음이 김씨가 수행비서 업무를 시작한 지 한달밖에 안된 시점이라는 점, 김씨가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였다는 점 등에서 합의된 성관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안 전 지사가 김씨에게 지속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한 부분에서 김씨의 의사에 반한 간음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김지은씨 측 변호인은 ‘2차 피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변호인은 중앙일보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민씨의 주장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공개된 1심 법정에서 이미 다 주장했던 증언“이라며 ”항소심에서 신빙성에 의심이 있고 다른 객관적 사실에 뒷받침하여 배척당한 것인데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렇게 2차 피해 가하는것에 대해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도 민씨의 긍이 “2차 가해”라고 항의했다. 공대위는 “가해자 가족에 의한 2차 가해는 일반적이고 많이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라며 “2차 가해 행위를 중단하길 바란다”며 “가해자 가족의 글은 1심 재판에서도 펼쳤던 주장이며, 2심 재판부에서는 다른 객관적 사실 등에 의해 배척됐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인터뷰] 쌍천만 ‘믿보배’ 주지훈 “부담감 있지만 더 묵묵히…”

    [인터뷰] 쌍천만 ‘믿보배’ 주지훈 “부담감 있지만 더 묵묵히…”

    “킹덤2 촬영 시작… 시즌1 떡밥 모두 회수”“물론 너무 좋고 행복하죠. 부담이 될 때도 있고요. 부담감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 ‘묵묵히 열심히 하자’ 되뇌고 있습니다.” 최근 1년간 제2 전성기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배우 주지훈(37)이 작품의 연이은 성공, 세간의 관심, 배우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다. 1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주지훈은 검정 트레이닝복 차림에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조금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아침 7시부터 (전날 첫 방송된 드라마 ‘아이템’) 반응과 댓글을 체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인사를 건넸다. 주지훈은 2017년 말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과 이듬해 ‘신과 함께-인과 연’으로 ‘쌍천만 배우’ 타이틀을 얻었다. 이어 ‘공작’, ‘암수살인’ 등을 통해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올해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공개된 드라마 ‘킹덤’과 MBC ‘아이템’ 등 굵직한 작품 주연으로 나서며 안방극장에서도 종횡무진하고 있다. ‘킹덤’ 작업에 관해 주지훈은 “싱가포르에서 1, 2부를 처음 보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김성훈 감독님께 무릎을 꿇었다”며 “김은희 작가님 필력과 감독님 연출력이 잘 버무려졌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회당 15억~20억원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킹덤’은 제작발표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조선판 좀비물’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해외 자본으로 제작된 작품이 국내 드라마 제작환경을 바꿔 놓을지도 주목을 끌었다. 주지훈은 “흥행공식이나 금기 등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웠다. (국내 제작 작품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손익이 맞물리는 부분이 있는데 넷플릭스는 그런 거 없이 쭉 가더라”고 설명했다. 주지훈은 조선 전역으로 퍼져가는 역병과 왕세자를 죽이려는 영의정 조학주(류승룡 분)에 맞서 유악한 티를 벗고 점차 성장해가는 왕세자 이창을 연기했다. 주지훈은 “신뢰할 수 있는 감독, 작가, 배우진을 만났다”며 “연기를 좋게 봐주셨다면 그런 신뢰가 관객에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말했다. 2006년 MBC 드라마 ‘궁’을 통해 모델에서 배우로 변신한 주지훈은 13년 만에 ‘킹덤’에서 다시 왕세자로 분했다. ‘궁’ 시절 아이돌 스타 같은 인기를 누렸다면 지금은 연기파 배우로 평가받는다. 주지훈은 “20대 중반엔 ‘나는 남자야. 다 컸어’라는 생각이 강했다. ‘궁’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청춘로맨스를 한두 편이라도 더 할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라며 “그런 아쉬움 때문에 지금 열심히 하고 있다”고 웃었다. 6부작으로 시즌1이 마무리된 ‘킹덤’의 시즌2 스포일러도 살짝 풀었다. 주지훈은 “어제(11일) 촬영을 시작했다. 시즌2에서는 시즌1에서 던진 ‘떡밥’을 100% 회수하고 떡밥을 또 던진다. 시즌1 끝났을 때랑 똑같은 감정이 들 수 있을 것”이라 귀띔하며 시즌3 제작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인터뷰] 쌍천만 ‘믿보배’ 주지훈 “부담감 있지만 더 묵묵히”

    [인터뷰] 쌍천만 ‘믿보배’ 주지훈 “부담감 있지만 더 묵묵히”

    “물론 너무 좋고 행복하죠. 부담이 될 때도 있고요. 부담감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 ‘묵묵히 열심히 하자’ 되뇌고 있습니다.” 최근 1년간 제2 전성기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배우 주지훈(37)이 작품의 연이은 성공, 세간의 관심, 배우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다. 넷플릭스 국내 첫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에서 주인공을 맡은 주지훈을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주지훈은 검정 트레이닝복 차림에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조금은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침 7시부터 (전날 첫 방송된 드라마 ‘아이템’) 반응과 댓글을 체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인사를 건넨 그는 수수한 차림새처럼 솔직한 태도로 인터뷰에 임했다. 주지훈은 2017년 말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과 이듬해 ‘신과 함께-인과 연’으로 ‘쌍천만 배우’ 타이틀을 얻었다. 이어 ‘공작’, ‘암수살인’ 등을 통해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올해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공개된 ‘킹덤’과 MBC ‘아이템’ 등 굵직한 작품의 주연으로 나서며 안방극장에서도 종횡무진하고 있다. 주지훈은 요즘 기분과 부담감을 묻는 질문에 “(‘신과 함께’) 김용화 감독님과 하정우 형이 술자리에서 해준 말을 인용하고 싶다. ‘작품이 잘 되고 안 되는 건 변수가 너무 많다. 내 덕에 잘됐다고 어깨 올리지 말고 최선을 다했다면 사랑을 덜 받아도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현재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킹덤’ 작업에 관해서는 “너무 재미있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지훈은 “싱가포르에서 1, 2부를 처음 보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김성훈 감독님께 무릎을 꿇었다”며 “김은희 작가님 필력과 감독님 연출력이 잘 버무려졌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회당 15~20억원의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킹덤’은 제작발표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조선판 좀비물’에 대한 관심 뿐 아니라 해외 자본으로 제작된 작품이 국내 드라마 제작환경을 바꿔 놓을지도 주목을 끌었다. 주지훈은 “흥행공식이나 금기 등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웠다. (국내 제작 작품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손익이 맞물리는 부분이 있는데 넷플릭스는 그런 거 없이 쭉 가더라”고 설명했다. 주지훈은 조선 전역으로 퍼져가는 역병과 왕세자를 죽이려는 영의정 조학주(류승룡 분)에 맞서 유악한 티를 벗고 점차 성장해가는 왕세자 이창을 연기했다. 주지훈은 “신뢰할 수 있는 감독, 작가, 배우진을 만나 축복받았다”며 “연기를 좋게 봐주셨다면 그런 신뢰가 관객에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장면 발성을 지적하는 반응에 대해서는 “긴박한 상황을 보여드리려고 발음이 씹혀도 그렇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 장면이 있다”며 “배우로서 손해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감독님과 현장 의견을 잘 따라가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2006년 MBC 드라마 ‘궁’을 통해 모델에서 배우로 변신한 주지훈은 13년 만에 ‘킹덤’에서 다시 왕세자로 분했다. ‘궁’ 시절 아이돌 스타 같은 인기를 누렸다면 지금은 연기파 배우로 평가받는다. 주지훈은 “20대 중반엔 ‘나는 남자야. 다 컸어’라는 생각이 강했다. ‘궁’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청춘로맨스를 한두 편이라도 더 할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라며 “그런 아쉬움 때문에 지금 열심히 하고 있다”고 웃었다. 6부작으로 시즌1이 마무리된 ‘킹덤’의 시즌2 스포일러도 살짝 풀었다. 주지훈은 “어제 촬영을 시작했다. 시즌2에서는 시즌1에서 던진 떡밥을 100% 회수하고 미친 떡밥을 또 던진다. 시즌1 끝났을 때랑 똑같은 감정이 들 것”이라고 귀띔하며 시즌3 제작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월드피플+] 세뱃돈 모아 엄마에 다이아반지 선물하는 10살 효자

    [월드피플+] 세뱃돈 모아 엄마에 다이아반지 선물하는 10살 효자

    세뱃돈을 모아 엄마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겠다는 10살 아들의 효심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칸칸신원(看看新闻)은 지난 11일 중국 후베이성 톈먼(天门)의 한 쇼핑몰 쥬얼리샵에 나타난 모자의 사연을 전했다. 어린 남자아이가 엄마를 끌고 와 주얼리 샵 진열대 앞에 섰다. 다름 아닌 자신이 모아온 세뱃돈 8800위안(146만원)으로 엄마에게 멋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기 위해서다. 점원이 얼마를 가졌느냐고 묻자, 아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8800위안이 있으니, 그 이하에 해당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모두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아들은 마음에 쏙 드는 반지를 골랐다. 금액은 8100위안이었다. 드디어 엄마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이 반지를 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이 거금으로 반지를 사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몇 차례 그냥 가자고 아들을 달랬지만, 아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하는 수 없이 엄마가 택한 방법은 5만 위안(829만원)이 넘는 반지를 고른 것, 아들이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니 아들이 쉽게 포기할 것이라는 심산이었다. 엄마는 “내가 마음에 드는 반지는 비싸니 네가 나중에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이 반지를 사주렴”하고 말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에게 반지를 선물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아들의 실망감은 펑펑 눈물이 되어 흘렀다. 엄마는 조용히 아들을 보듬어 안았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설득에 아들은 아쉬운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돌렸다. 어린 아들의 효심 어린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감동했고, 쥬얼리 샵의 종업원은 이 모습을 모바일 동영상에 담아 인터넷에 올렸다. 누리꾼들은 “내 아들도 커서 이런 효심 어린 아들이 되길 바란다”, “이런 아들을 둔 엄마는 복이 많네요”,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의 마음, 엄마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등의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김정은 시찰한 동인당 날짜지난 꿀로 23억원 벌금

    김정은 시찰한 동인당 날짜지난 꿀로 23억원 벌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시찰한 중국의 대표적인 제약회사 동인당이 유통기한이 지난 벌꿀 재료를 썼다가 책임자 14명이 처벌받았다. 중국경제망은 13일 지난해 12월 300년 역사를 지닌 베이징 동인당 공장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꿀을 쓴 사실이 발견된 이후 1408만 위안(약 23억원)의 벌금과 대량의 해고 처분이 내려졌다고 전했다.중앙기율위원회 베이징시 위원회 측은 12일 국유기업인 동인당이 품질관리에 차질을 일으켰다고 질책했으며 동인당 측은 꿀 문제와 관련해 벌꿀 사업 부문 동사장을 비롯해 7명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베이징 기율위는 “식품 안전이라는 마지노선을 건드리고 인민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 및 국유 자산의 권익을 손상시켜 엄중히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쑤광전 방송국이 폭로한 영상에 따르면 동인당은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임박한 꿀을 큰 통에 부은 사실이 드러났다. 큰 통에 있는 꿀은 벌에게 먹이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베이징 동인당 공장 원료 창고로 보내졌다. 베이징시 다싱구 식약국은 동인당이 지난해 10월부터 생산해 시중에 유통된 꿀 2284병 11만위안 어치를 압수했다.김 위원장은 지난달 9일 베이징 교외 이좡에 있는 동인당 공장을 방문해 전통 중의학을 활용해 약을 생산하는 방식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후 전통 약초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북한에서는 인삼협회와 인삼법이 만들어졌으며 유엔 대북 제재 영향을 받지 않는 제약산업을 통해 경제성장을 꾀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한편 중국 헤이룽장성의 고급 휴양시설 클럽메드에서 노로 바이러스에 8명이 감염되자 클럽메드 측은 12일 보상을 약속했다. 클럽메드 측은 숙박객 가운데 퇴실 이틀 안에 병원 치료를 받은 이들의 치료비를 모두 보상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클럽메드의 노로 바이러스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조사가 진행 중이다. 클럽메드 숙박객은 응급실에서 의사의 진료를 받지 못했고 스스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해야 하는 등 대규모 바이러스 감염에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중국 당국은 광둥성 축산 시장의 위생 불량 때문에 신종 감염병 사스(SARS)가 발생하고 멜라민 분유로 신생아들이 사망하는 등 일련의 사고 이후 식품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보건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금융기관과 해외투자 정보 공유 확대… 국부 증대 힘쓰겠다”

    “금융기관과 해외투자 정보 공유 확대… 국부 증대 힘쓰겠다”

    한국투자공사(KIC)는 한국의 ‘국부펀드’다. 외환보유액 등 나랏돈을 해외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수익을 내서 미래 세대를 위한 부(富)를 축적하는 공공기관이다. 2005년 7월 설립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으로부터 200억 달러를 위탁받은 뒤 위탁금 증액과 자체 수익 등을 합쳐 2017년 말 기준 1341억 달러를 운용하는 글로벌 투자시장의 큰손이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최희남(59) KIC 사장은 12일 서울 중구 회현동 KIC 본사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KIC의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일은 물론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도 힘쓰겠다”면서 “해외 투자 관련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은 국내 금융기관들에 해외 투자자들과 다리를 놔 주고 투자 노하우를 공유하는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KIC는 노무현 정부 당시 동북아금융허브 추진의 핵심 전략으로 설립됐다. →KIC의 국제금융협의체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반응이 좋다. -KIC는 글로벌 투자자라 해외 투자기관들이 새 아이디어나 상품을 갖고 먼저 찾아온다. KIC가 이들과 해외 진출한 국내 금융기관 사이에서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해외 지사가 뉴욕과 런던, 싱가포르 등에 있는데 ‘해외 지사 국제금융협의체’를 운영 중이다. 지사가 현지에 나간 은행, 증권사 등 민간 금융사와 연기금 등 공공투자기관을 초청해 KIC에 찾아오는 금융기관들의 정보를 공유한다. 뉴욕의 국제금융협의체는 2017년 11월, 런던의 국제금융협의체는 지난해 1월 출범했다. 행사가 지난해만 뉴욕에서 11회, 런던에서 2회 열렸다. 싱가포르는 올해 안에 신설할 계획이다.→국내 공공기관도 해외 투자에 관심이 많다. -KIC가 2014년 출범한 ‘공공기관 해외투자협의회’ 의장이다. 공무원연금공단과 군인공제회,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등 20개 기관이 참여한다. 협의회에서 공공 부문 투자기관들과 해외 투자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한다. 공동투자도 하는 등 공공 부문의 해외 투자 성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05년 설립한 뒤에 얼마나 벌었나. -그동안 지켜온 KIC의 투자 원칙은 장기·분산투자다. 그 결과 연환산 수익률 4.45%, 누적 수익 341억 달러다. 원화로 치면 36조 5347억원가량 벌어들인 셈이다. 특히 2017년 수익률은 16.42%로 수익이 183억 달러다. →지난해 수익률은. -지난해는 달러 강세와 경기 급락 우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금리 인상 및 유동성 축소, 미·중 무역전쟁 등 자본시장의 단기적 변동성이 커져 자산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지난해 8월 말 기준 수익률은 1.7%로 전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지난해는 1931년 이후 국제금융시장이 가장 흔들린 해였다. 지난해는 얼마의 수익률을 냈는지보다 얼마나 방어를 잘했는지를 봐야 한다. →올해 국제금융시장 전망은. -올해도 연초부터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을 비롯해 미국 정부의 셧다운이 장기간 이어졌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이 해소되지 않아 글로벌 경제 전반에 부담이다. 하지만 긍정적 신호에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전반적인 자산 가격 하락으로 투자 매력도가 높아졌다. 미국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도 완화됐다. 유럽과 중국 등 주요국의 경기 확장 정책 유지도 경기 반등에 도움을 줄 것이다. →KIC는 주로 어떤 자산에 투자하나. 최근 관심 있게 본 분야가 있다면. -해외 주식과 채권, 물가연동채, 원자재 등으로 구성된 전통 자산에 84%를 투자한다. 전통자산과 상관관계가 낮아 변동성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헤지펀드와 부동산, 사모주식, 인프라 등 대체자산에 16%를 투자한다. 최근에는 수익률을 높이고 투자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해 급변하는 글로벌 트렌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다양한 전자상거래 시장 성장에 맞춰 물류 서비스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본다. 데이터 통신량의 빠른 증가에 대응한 광통신 네트워크,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년층을 위한 헬스케어 및 거주시설 등에 대한 투자도 유망하다. →취임 1년이 돼 가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KIC는 기타공공기관이면서 금융투자기관이다. 근로 조건과 연봉, 정원 등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라야 한다. KIC는 다른 나라 국부펀드와 달리 지배구조가 투명하고 방만한 경영을 막을 수 있는 장치도 잘 갖춰져 있다. 금융투자기관의 특성을 일정 부분 반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역점 사업은. -자산운용 규모가 2000억 달러 이상으로 늘어날 것에 대비해 내년을 목표로 차세대 투자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투자 데이터 관리체계를 일원화해 통합 포트폴리오 관리체계가 고도화되면 장기적으로 비용이 절감되고 시스템 효율성이 늘어날 것이다. 기재부와 한은 등 기존 위탁기관으로부터의 추가 위탁은 물론 신규 위탁기관 유치도 계획하고 있다. 각종 공공기금 및 장기투자가 가능한 정부 소유 자산 등의 위탁을 적극 추진하겠다. 대담 전경하 경제부장 정리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한강 물류의 중심… 포구의 낭만 품고 ‘뱃놀이 김포’ 뜬다

    한강 물류의 중심… 포구의 낭만 품고 ‘뱃놀이 김포’ 뜬다

    “마근포구는 한강하구에서 가장 깊은 물속과 넓은 수변을 끼고 있어 수심이 깊은 곳에서 배들이 정박했다가 밀물 때 서울 마포나루로 다녔죠.” 경기 김포시 하성면 마근포 주민 김석태(80) 어르신은 12일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어 “6·25전쟁 이전 우리 마을엔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대부분 어업에 종사했고 어선을 많게는 두세 척이나 보유한 집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면사무소 소재지인 마을엔 소방서가 있었고, 도정공장 1개와 하성면 전 지역 쌀을 수매하던 공출창고 2개가 있어 쌀을 싣고 서울과 인천 등지로 실어 날랐다”고 덧붙였다. 김포문화재단으로부터 협조를 얻어 주민들과 동행해 포구를 둘러봤다.김포시 지명은 고어 ‘ᄀᆞᆷ포’에서 유래했다. 같은 계열인 감(甘), 검(檢, 儉, 劒, 黔)은 ‘거룩하다’는 뜻을 담았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구려 옛 땅 ‘검포’(黔浦)로 기록돼 있다. ’검’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의 검과 같은 의미의 고대어로 신성한 마을을 가리킨다. 757년 통일신라 경덕왕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최초로 김포라는 지명을 사용했다. 재단이 옛 포구에 대한 종합학술조사를 실시한 결과 근대 이후 김포엔 30여개 포구와 나루가 존재했다. 섶골나루를 비롯해 감암나루와 운영나루, 갑곶나루, 원머루나루, 신덕포나루, 대명나루, 전류리포구, 조강포, 강령포 등 크고 작은 나루와 포구가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1454) ‘경기’ 편에는 ‘한강이 서쪽으로 흘러 서해에 이르는 물길이 있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점에서 조강(祖江)이 시작된다. 강화를 만나는 지점에서 황해도로 흐르는 서쪽 유로와 강화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남쪽 유로인 염하 두 갈래로 나뉜다. 조강 서쪽 유로는 해서·관서지방 선박들이 주로 이용했고, 염하는 삼남 지방을 오가던 선박들이 이용했다. 포구별 인구와 어업인구, 배 수량까지 기록된 ‘한국수산지’(1908~1911)엔 당시 김포에서 가장 큰 포구 마을은 80가구를 웃돌았던 조강포와 강령포·마근포였다. 김석태 어르신은 “농사보다는 고기잡이로 제법 돈을 벌었다. 고기잡이 배가 한 번 나갔다 오면 뱃사람들이 곧장 주막으로 가다 보니 기생집이 4개나 될 만큼 당시 마근포 마을 경제가 컸다”고 말했다. 봄철이면 어선이 출항할 때마다 포구 앞 당산에서 용왕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노제를 지냈다. 현재 그 자리에는 군부대 초소가 들어섰다. 뿐만 아니라 포구 앞에선 뱀장어와 장어가 엄청 많이 잡혔다. 특히 비바람이 거세질 가을 무렵엔 만선을 이뤄 냄새가 마을에 진동할 정도였다. 아울러 마을엔 화재나 재난 때 긴급히 대피하라고 울리는 큰 비상 종이 있었다. 전종한(사회과학교육) 경인교대 교수에 따르면 20세기 초 포구별 토지소유 양상을 조사한 결과 염하 연안의 거점 포구들에 비해 조강 연안 거점 포구들에서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부재지주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재지주 거주지를 보면 조강포·마근포엔 서울, 강령포엔 개성 소유주 비율이 높았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서로 네트워크를 이뤘다. 김석태 어르신은 “당시 전태종씨라는 사람이 포구 쪽 토지를 5~6필지나 사들여 주택을 지었고, 서울 밤섬에 산다는 성산만씨는 전답 등 토지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부재지주들은 주로 대지 필지를 갖고 있어 포구 주변 대지를 중심으로 포구 관련 시설들을 지배했다. 김포 ‘지명유래집’에 따르면 3대 포구 중 마근포는 우리말 ‘막은 개’(개펄)라는 뜻으로 ‘막은’의 음을 따 ‘마근포’(麻斤浦)라고 불렀다. 원래 마근포 주변 마을에 물길을 따라 자리한 여러 포구들이 1919년 지도에는 금포리, 마조리로 표기되고 농경지로 간척됐다. 마근포는 한강을 거슬러 서울로 가거나 강 건너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면 정곶리 사이를 왕래하던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고 한다. 김석태 어르신은 “김해 김씨 집성촌인 마근포구 일대엔 20가구가 모여 살았다. 이젠 농지로 변해 주택지 뒤 야산에 있던 대나무숲만 일부 흔적을 보일 뿐이다”라고 고개를 저었다.당시 목선으로 직접 고기잡이를 다녔던 이 마을 김선구(81) 어르신은 “포구 마을에는 생선공판장이 있어 웅어나 숭어, 조기, 황복, 새우 등을 잡아 팔았다”며 “특히 여름철엔 별미인 깨나리 생선을 뼈째 발라 회로 즐겨 먹었다”고 전했다. ‘깨나리’는 세어라고도 불리며 가늘고 작은 물고기로 웅어와 매우 닮았다. 당시 김포 일대에 포구 관련 정박시설이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니고 주변 갯벌 등에 배를 댔다. 강령포에는 토담집 형태의 당집이 있어서 제사 도구를 보관했고 정월 초순 당제를 지냈다. 강령포 앞에 ‘노구여’라는 여(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가 있는데 이 역시 제사와 관련된 지명이다. 이 여로 인해 배가 자주 좌초돼 뱃사람들은 구리나 놋쇠로 만든 솥에 새로 밥을 지어 산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솥을 ‘노구솥’, 밥을 ‘노구메’라고 불렀다. 포구 근처에는 어물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한 토빙고와 새우젓 창고도 마련됐다. 고촌 섶골나루 근처에는 새우젓독을 만드는 가마도 있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배들은 물때를 맞추는 데 실패하거나 기상이 악화되면 며칠씩 옴짝달싹하지도 못했다. 여행객들은 숙식을 해결할 곳이 필요했는데 조선 중기까지는 원(院)이라고 일컬어지는 관영 숙박시설이 그 기능을 도맡았다. 대표적인 게 조강포에 자리했던 조강원이다. 그러나 관에서 설치한 원 기능이 점차 빛을 상실하고 시장유통에 따른 상인과 보부상들의 대거 활동으로 주막이 번창했다. 조선지지 자료에는 1919년 김포 포구와 관련된 주막 이름이 등장한다. 당시 통진군에는 원모루주막, 산성주막, 강령포주막, 조강가리주막, 조강리주막, 후평주막, 마근포주막, 전류리주막, 봉성리주막, 바삭바위주막, 조강거리주막 등이 있었다. 광복을 앞뒤로 한 시기까지 주막은 성업을 이뤘다.김포시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포구의 장점과 역사를 재조명하고 과거 정취를 살린 체험·관광자원으로 특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하성면 전류리 54-4와 봉성리 640-4 부지 1만 2500㎡에 포구공원과 물길 산책로를 조성한다. 국비 100억원을 투입해 2020년 착공, 2025년 완공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정왕룡 전 김포시의원은 “한반도 물류·관광·문화 중심지라는 인문학적 고찰이 필요하고, 한강하구의 물류 기능과 역사성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포구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행안부 지원방안은 근시안적 관광 볼거리 이벤트 성격으로 예산 나눠 먹기 개발로 이어질까 염려된다”며 “한강하구 일대에서 강화 따로, 파주 파로, 김포 따로가 아니라 조강권 남북 공동체 복원이라는 종합적 관점에서 함께 머리와 어깨를 맞대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김포는 30여개 포구와 나루터 있던 신성한 포구마을… “한반도 물길 물류 중심지였다”

    김포는 30여개 포구와 나루터 있던 신성한 포구마을… “한반도 물길 물류 중심지였다”

    “마근포구는 한강하구에서 가장 깊은 물속과 넓은 수변을 끼고 있어 수심이 깊은 곳에서 배들이 정박했다가 밀물 때 서울 마포나루로 다녔죠.” 경기 김포시 하성면 마근포 주민 김석태(80) 어르신은 12일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어 “6·25전쟁 이전 우리 마을엔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대부분 어업에 종사했고 어선을 많게는 두세 척이나 보유한 집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면사무소 소재지인 마을엔 소방서가 있었고, 도정공장 1개와 하성면 전 지역 쌀을 수매하던 공출창고 2개가 있어 쌀을 싣고 서울과 인천 등지로 실어 날랐다”고 덧붙였다. 김포문화재단으로부터 협조를 얻어 주민들과 동행해 포구를 둘러봤다. 김포시 지명은 고어 ‘ᄀᆞᆷ’ 포에서 유래했다. 지명이 생긴 지 1262년 됐다. 같은 계열인 감(甘), 검(檢, 儉, 劒, 黔)은 ‘거룩하다’는 뜻을 담았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구려 옛 땅 ‘검포’(黔浦)로 기록돼 있다. ’검’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의 검과 같은 의미의 고대어로 신성한 마을을 가리킨다. 757년 통일신라 경덕왕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최초로 김포라는 지명을 사용했다. 재단이 옛 포구에 대한 종합학술조사를 실시한 결과 근대 이후 김포엔 30여개 포구와 나루가 존재했다. 섶골나루를 비롯해 감암나루와 운영나루, 갑곶나루, 원머루나루, 신덕포나루, 대명나루, 전류리포구, 조강포, 강령포 등 크고 작은 나루와 포구가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1454) ‘경기’ 편에는 ‘한강이 서쪽으로 흘러 서해에 이르는 물길이 있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점에서 조강(祖江)이 시작된다. 강화를 만나는 지점에서 황해도로 흐르는 서쪽 유로와 강화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남쪽 유로인 염하 두 갈래로 나뉜다. 조강 서쪽 유로는 해서·관서지방 선박들이 주로 이용했고, 염하는 삼남 지방을 오가던 선박들이 이용했다. 포구별 인구와 어업인구, 배 수량까지 기록된 ‘한국수산지’(1908~1911)엔 당시 김포에서 가장 큰 포구 마을은 80가구를 웃돌았던 조강포와 강령포·마근포였다. 김석태 어르신은 “농사보다는 고기잡이로 제법 돈을 벌었다. 고기잡이 배가 한 번 나갔다 오면 뱃사람들이 곧장 주막으로 가다 보니 기생집이 4개나 될 만큼 당시 마근포 마을 경제가 컸다”고 말했다. 봄철이면 어선이 출항할 때마다 포구 앞 당산에서 용왕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노제를 지냈다. 현재 그 자리에는 군부대 초소가 들어섰다. 뿐만 아니라 포구 앞에선 뱀장어와 장어가 엄청 많이 잡혔다. 특히 비바람이 거세질 가을 무렵엔 만선을 이뤄 냄새가 마을에 진동할 정도였다. 아울러 마을엔 화재나 재난 때 긴급히 대피하라고 울리는 큰 비상 종이 있었다. 전종한(사회과학교육) 경인교대 교수에 따르면 20세기 초 포구별 토지소유 양상을 조사한 결과 염하 연안의 거점 포구들에 비해 조강 연안 거점 포구들에서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부재지주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재지주 거주지를 보면 조강포·마근포엔 서울, 강령포엔 개성 소유주 비율이 높았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서로 네트워크를 이뤘다. 김석태 어르신은 “당시 전태종씨라는 사람이 포구 쪽 토지를 5~6필지나 사들여 주택을 지었고, 서울 밤섬에 산다는 성산만씨는 전답 등 토지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부재지주들은 주로 대지 필지를 갖고 있어 포구 주변 대지를 중심으로 포구 관련 시설들을 지배했다. 김포 ‘지명유래집’에 따르면 3대 포구 중 마근포는 우리말 ‘막은 개’(개펄)라는 뜻으로 ‘막은’의 음을 따 ‘마근포’(麻斤浦)라고 불렀다. 원래 마근포 주변 마을에 물길을 따라 자리한 여러 포구들이 1919년 지도에는 금포리, 마조리로 표기되고 농경지로 간척됐다. 마근포는 한강을 거슬러 서울로 가거나 강 건너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면 정곶리 사이를 왕래하던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고 한다. 김석태 어르신은 “김해 김씨 집성촌인 마근포구 일대엔 20가구가 모여 살았다. 이젠 농지로 변해 주택지 뒤 야산에 있던 대나무숲만 일부 흔적을 보일 뿐이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당시 목선으로 직접 고기잡이를 다녔던 이 마을 김선구(81) 어르신은 “포구 마을에는 생선공판장이 있어 웅어나 숭어, 조기, 황복, 새우 등을 잡아 팔았다”며 “특히 여름철엔 별미인 깨나리 생선을 뼈째 발라 회로 즐겨 먹었다”고 전했다. ‘깨나리’는 세어라고도 불리며 가늘고 작은 물고기로 웅어와 매우 닮았다. 당시 김포 일대에 포구 관련 정박시설이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니고 주변 갯벌 등에 배를 댔다. 강령포에는 토담집 형태의 당집이 있어서 제사 도구를 보관했고 정월 초순 당제를 지냈다. 강령포 앞에 ‘노구여’라는 여(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가 있는데 이 역시 제사와 관련된 지명이다. 이 여로 인해 배가 자주 좌초돼 뱃사람들은 구리나 놋쇠로 만든 솥에 새로 밥을 지어 산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솥을 ‘노구솥’, 밥을 ‘노구메’라고 불렀다. 포구 근처에는 어물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한 토빙고와 새우젓 창고도 마련됐다. 고촌 섶골나루 근처에는 새우젓독을 만드는 가마도 있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배들은 물때를 맞추는 데 실패하거나 기상이 악화되면 며칠씩 옴짝달싹하지도 못했다. 여행객들은 숙식을 해결할 곳이 필요했는데 조선 중기까지는 원(院)이라고 일컬어지는 관영 숙박시설이 그 기능을 도맡았다. 대표적인 게 조강포에 자리했던 조강원이다. 그러나 관에서 설치한 원 기능이 점차 빛을 상실하고 시장유통에 따른 상인과 보부상들의 대거 활동으로 주막이 번창했다. 조선지지 자료에는 1919년 김포 포구와 관련된 주막 이름이 등장한다. 당시 통진군에는 원모루주막, 산성주막, 강령포주막, 조강가리주막, 조강리주막, 후평주막, 마근포주막, 전류리주막, 봉성리주막, 바삭바위주막, 조강거리주막 등이 있었다. 광복을 앞뒤로 한 시기까지 주막은 성업을 이뤘다. 김포시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포구의 장점과 역사를 재조명하고 과거 정취를 살린 체험·관광자원으로 특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하성면 전류리 54-4와 봉성리 640-4 부지 1만 2500㎡에 포구공원과 물길 산책로를 조성한다. 국비 100억원을 투입해 2020년 착공, 2025년 완공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정왕룡 전 김포시의원은 “한반도 물류·관광·문화 중심지라는 인문학적 고찰이 필요하고, 한강하구의 물류 기능과 역사성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포구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행안부 지원방안은 근시안적 관광 볼거리 이벤트 성격으로 예산 나눠 먹기 개발로 이어질까 염려된다”며 “한강하구 일대에서 강화 따로, 파주 파로, 김포 따로가 아니라 조강권 남북 공동체 복원이라는 종합적 관점에서 함께 머리와 어깨를 맞대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미국 석탄광산 개발 미끼로 사기 친 60대 재미교포 징역 3년

    울산지법 형사1단독 오창섭 판사는 미국 석탄광산 개발사업을 미끼로 지인들에게 1억 3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 기소된 재미교포 A(61)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A씨는 2007년 “미국 콜로라도주 석탄광산 개발사업과 관련해 한국에 사업소를 만들려고 한다. 자금을 투자하면 국내 사업소장을 맡기고 지분 3%를 주겠다”고 하거나 “국내 대기업과 협의 중인데 수백억원을 벌 수 있다. 1억원을 투자하면 1년 후에 7억원을 지불하겠다”라는 식으로 속여 지인 2명에게서 1억 34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1990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A씨는 2007년 한국에서 해외자원 투자 분위기가 고조되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재판에서 “당시 정상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으므로 범죄 고의가 없었고, 고소당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해외에 거주했으므로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이 당시 피해자들에게 제안한 사업 내용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고,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전혀 진척이 없었다”며 “피고인은 2009년 피해자들에게 투자금 반환을 약속했다가 연락을 끊고 미국으로 몰래 출국해 잠적했는데, 이는 형사처벌을 면할 목적이라고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업이 곧 성사될 것처럼 보이고자 서류를 교묘하게 조작하는 등 범행 수법이 불량하고,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해 실행했다”며 “해외로 도피하면서 피해 변제를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았고, 피해자들 때문에 사업이 실패한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는 등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와우! 과학] 뜨거운 여름에도 시원한 벌집의 놀라운 비밀

    [와우! 과학] 뜨거운 여름에도 시원한 벌집의 놀라운 비밀

    무더운 여름의 열기는 사람뿐 아니라 곤충에게도 치명적이다. 특히 좁은 둥지에서 여러 개체가 같이 생활하는 흰개미, 개미, 벌 같은 사회적 곤충은 잘못하면 군집 전체가 전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사회적 곤충 가운데는 흰개미처럼 내부의 열을 효과적으로 방출하는 둥지를 짓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벌이 벌집의 온도를 어떻게 조절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이 비밀을 풀기 위해 여러 센서와 카메라를 장착한 벌집을 이용해서 기온에 따른 꿀벌의 행동을 연구했다. 뜨거운 여름날 수많은 꿀벌과 애벌레가 움직이는 벌집 안은 외부보다 더 뜨거워진다. 따라서 이 열기를 빨리 배출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애벌레는 모두 죽게 된다. 그래서 꿀벌들은 살아 있는 냉각팬이 되어 뜨거운 열기를 밖으로 배출한다. 일단 뜨거운 공기가 밖으로 나가면 상대적으로 차가운 외부 공기가 자연적으로 흡입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수많은 벌이 중앙의 통제도 없이 온도를 적절히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연구팀은 2017년 무더운 여름에 진행된 실험에서 꿀벌들이 매우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적정 온도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꿀벌들은 각기 온도에 대한 감수성이 달라서 온도를 낮추기 위해 날갯짓을 시작하는 온도가 달랐다. 따라서 온도가 낮을 때는 적은 수의 개체만 날갯짓을 하지만, 온도가 높으면 많은 개체가 여기에 동참해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했다.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냉각을 위해 벌집의 출입구는 물론 뜨거운 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 공기를 내보내기 때문에 온도가 위험한 수준으로 상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흰개미의 자연 공기 순환 방식과 비교해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꿀벌의 방식은 단점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주로 높은 장소에 벌집을 짓는 벌의 경우 흰개미 탑 같은 형태로 건설이 어렵기 때문에 나름의 해답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여름철에도 수많은 벌이 날아다닌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냉방 방법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꿀벌 역시 흰개미만큼 놀라운 사회적 곤충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잘못된 정보로는 경기 개선 어려워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잘못된 정보로는 경기 개선 어려워

    예나 지금이나 정확한 정보의 가치는 크다. 정보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정보 취득 자체가 중요했다. 많은 정보가 유통되는 현대에는 정확한 정보를 취하고 부정확한 정보는 걸러 내는 판단이 중요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의사 결정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데, 특히 전쟁처럼 생사를 가르는 상황에서 정보 오류는 더욱 그렇다. 19세기 아편전쟁 당시 청의 직예총독 기선(琦善)은 영국군에 대한 청군(淸軍)의 군사적 열세를 보고했는데 황제의 분노를 산 기선이 벌을 받자 청군의 궤멸에도 신하들은 승전 보고를 계속했고, 결국 청은 영국에 굴욕적인 패배를 경험한다. 20세기 베트남전쟁 때도 미국의 승리가 어렵다는 정보는 묵살됐고 과장된 전투 성과 보고가 이어지며 확전으로 치달았는데, 결국 미국에 참담한 결과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전시(戰時)에 어떤 정보가 정확하고 어떻게 해석할지 사전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냉철한 의사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아 희망대로 판단하는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도 정보 자체가 불완전할 수 있고 해석이 혼돈스럽거나 결과가 혼재돼 판단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계량적 방법에 입각한 현대 이론이 발전하며 불확실성 속에서 알지 못했던 것들을 체계화된 지식과 정보로 전환할 수 있게 됐고, 완벽하지는 않아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지표가 의사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식을 갖추고 잘 훈련된 경제전문가를 활용하는 의미가 커졌다. 경제전문가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지표에서 뽑아 낸 정보로 현재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불확실해서 이러한 분석과 전망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모든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는 ‘전설의 은탄환(銀彈丸)’은 없고, 전문가적 시각으로 지표들을 수집ㆍ분석하고 여기서 뽑아 낸 정보를 충분히 활용해 적절히 대응하고 처방을 내리지 않으면 경제는 악화된다. 그런데 이러한 지표들은 경제정책에 대한 성적표와 같아서 그 움직임이 부진하면 당국 입장에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다. 집행된 정책이 실패로 인식되거나 궤도 수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실제 결과와 다른 해석을 원하기도 한다. 실제 어떤 지표는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기도 하다. 간단한 예로 경상수지가 흑자여도 그 원인이 수출 확대인지, 국내 경기 악화에 따른 수입 감소 때문인지, 수출 확대가 전반적인 기업경쟁력 향상 결과인지 일정 업종에 편향된 것인지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최근 경제지표와 관련된 해석의 예로, 소비지표와 관련된 경제체질 개선 논란이 있다. 지난해 민간 소비 증가율이 2.8%로 경제성장률 2.7%보다 높게 나타나자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제체질이 개선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성장에서 소비 비중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그런데 소비 기여도 증가는 사실 투자 감소와 관련이 높다. 또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서 소비증가율이 올랐다면 경제체질이 개선됐다고 하겠지만, 2018년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0.4% 포인트나 하락한 상황이다. 더구나 소비를 구체적으로 보면 2018년 상반기에는 주택 거래가 증가하면서 이와 관련이 높은 가구ㆍ가전제품 구입이 증가했다. 자동차는 개별소비세 인하 효과가 있어서 특히 내구재와 준내구재 중심으로 소비가 증가한다. 이런 품목은 최저임금 계층이 우선적으로 소비를 확대하는 품목이 아니어서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고용 사정이 나빠진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과 소비 역량은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소득 개선보다는 기존에 자산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고소득층 소득 증가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거시경제 변수가 경기 악화와 소득 격차 확대를 이야기하는데, 이를 외면하고 궤도수정이 아니라 기존 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해서는 안 된다. 어떤 정책이든지 성과가 부진하거나 부작용에 봉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나타날 때 이를 정확히 진단하고 수정해 나가는 결단, 동시에 이를 투명하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있어야 공감도 얻을 수 있다.
  • 골든글로브 스타보다 빛난 ‘워터 걸’ 생수회사에 소송 건 이유

    골든글로브 스타보다 빛난 ‘워터 걸’ 생수회사에 소송 건 이유

    ‘피지 워터 걸’로 유명해진 캐나다 모델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 생수 회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에 나섰다. 주인공은 지난달 초 할리우드에서 진행된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자나 시상자, 유명인 등이 목말라 하면 생수 병을 건네는 워터 걸로 활약한 켈리 스타인바흐(31). 그녀는 모델로 일할 때는 켈레스 커스버트란 예명을 쓰는데 골든글로브 시상식 도중 최우수 TV 배우 상을 받은 리처드 매든 등보다 더 카메라 시선을 빼앗아 입길에 올랐다. 주객이 전도됐다는 등 말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나 말거나 생수 병이 놓인 쟁반을 든 채 상큼한 미소를 짓는 그녀가 예쁘다고 사람들은 ‘피지 워터 걸’이라며 좋아들 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20만명을 넘어섰고, 여러 차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도 여러 건 맺었다. 그런데 그녀는 지난달 자신을 모델로 쓴 피지 워터와 모기업인 원더풀 컴퍼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글로벌 광고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자신과 닮은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원더풀 컴퍼니도 지난 8일(현지시간) 맞소송을 걸었다. 1년 독점 계약에 9만 달러를 주는 조건에 그녀나 에이전트 모두 “간단히 동의”했다가 이제와 딴 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자사를 상대로 50만 달러를 뜯어내려 한다며 “15분 정도 (시상식에) 얼굴을 내밀어 유명해져 돈을 벌었는데 자신에게 기회를 제공한 손을 물어뜯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스타인바흐는 지난달 LA 지역 방송인 KTLA 5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타들에게 물 먹이는” 역할에만 충실했을 뿐 사진 좀 찍어달라고 매달린 것은 아니었다며 “사진을 찍히려면 잘 보이고 봐야 한다. 단지 카메라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에 꼭 들어야 한다. 그러면 피할 수가 없게 된다”고 잘난 척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변호인 팀은 원더풀 컴퍼니의 맞소송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폄하했다. 변호인 케시아 레이널즈는 CBS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켈레스는 피지 워터나 원더풀 컴퍼니, 그 백만장자 주인에게 무릎 꿇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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