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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명 당첨” 아파트 청약자 줄줄이 배출…수상한 고시원

    “18명 당첨” 아파트 청약자 줄줄이 배출…수상한 고시원

    “고시원 입주자 18명 청약 당첨” 수도권의 한 지역에서 고시원 입주자 18명이 주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이변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들은 진짜 고시원 거주자가 아니었다. 그 지역에서 나오는 아파트 청약 우선순위를 받기 위해 고시원에 이름만 걸어둔 이들이었다. 이 같은 청약시장 교란 행위들이 대거 국토교통부 특별사법경찰 조직의 수사로 덜미를 잡혔다. 국토부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이 26일 발표한 부동산 범죄 수사 및 9억원 초과 고가 주택 실거래 조사 결과를 보면 부동산 시장에는 규제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다양한 유형의 편법과 불법이 난무했다. 청약에 당첨된 18명의 고시원 주민들은 고시원 업주가 돈을 받고 위장전입을 받아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아파트 청약의 지역 거주자 우선순위를 얻기 위해 그곳에 살 생각도 없으면서 고시원에 주소를 걸었다. 5명의 위장전입자와 고시원 업주를 입건하고, 나머지 청약 당첨자 13명의 위장전입 혐의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기로 했다. 장애인 등 특별공급제도를 악용해 부정청약을 주선한 장애인단체 대표도 입건됐다. 한 장애인단체 대표는 2017년쯤 평소 알고 지내던 장애인과 국가유공자 등 총 13명에게 돈을 벌 기회를 주겠다며 접근해 이들의 명의를 빌리곤 브로커를 통해 수요자에게 아파트 특공을 알선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표는 그 대가로 당첨자들이 아파트를 전매해 얻은 프리미엄 중 수천만 원씩을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탈세 의심 사례 555건, 대출규정 위반 37건 대응반이 적발해 국세청에 인계한 탈세 의심 사례는 555건으로, 이 중에서 가족 등 특수관계간 탈세는 458건, 법인 탈세는 79건이었다. 한 제조업체는 대구 수성구에 22억원짜리 주택을 구입하면서 상호금융조합에서 법인사업자 대출 13억원을 받은 사실이 들통나 금감원 조사를 앞두고 있다. 의료업을 영위하는 한 개인사업자는 서울 강남구에 있는 70억원 상당 아파트를 매수했다. 하지만 그는 저축은행에서 의료기기 구입 목적 등을 위한 용도로 받은 개인사업자 대출 26억원을 집값에 보탠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 등은 그가 개인사업자 대출을 용도 외 사용한 것으로 보고 조사할 예정이다. 대응반이 대출규정 위반 등으로 금융당국에 넘긴 37건의 이상 거래 중 규제지역 주택 구입 목적의 기업자금 대출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은 14건, 대출금을 용도 외 유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것은 22건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호주에선 격리 수칙 어기면 징역 6개월형, 28세 여성에 철퇴

    호주에선 격리 수칙 어기면 징역 6개월형, 28세 여성에 철퇴

    국내에서도 코로나19 관련 방역 지침을 어긴 이들이 곳곳에서 이런저런 분란을 만들어내는데 호주에서는 격리 지침을 어긴 여성에게 징역 6개월형의 다소 무거운 벌을 내렸다. 애셔 페이 밴더 샌든(28)은 호주에서도 가장 많은 감염자가 나온 빅토리아주에서 한 달 동안 지낸 뒤 고향인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퍼스로 돌아왔다. 항공편을 이용한 뒤 자신이 비용을 부담해 호텔에서 14일 격리 생활을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샌든은 트럭에 몰래 숨어 주 경계를 넘어 퍼스로 돌아와 동거남 집에서 숨어 지내다 체포됐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에서는 진즉 격리 수칙을 어긴 사람에게는 징역 1년형에 5만 호주달러(약 4270만원) 벌금을 물리겠다고 공표했다. 그녀의 변호인인 존 해먼드는 의뢰인이 몸이 좋지 않은 자매를 돌보려고 빅토리아주로 떠났으며 적응하지 못해 돌아왔다며 동거남의 집에서 자가 격리를 철저히 했으며 다른 누구와도 접촉한 적이 없다며 억울해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은 샌든이 “거짓 투성이에 정직하지 못하다”며 징역형을 구형했다. 앤드루 매튜스 치안판사는 25일(현지시간) 그녀가 바이러스 확산을 불러올 수 있는 “아주 심각한 위반”을 저질렀다고 판결했다. 호주의 여러 주들에서는 2차 대유행 조짐에 주 경계를 넘나든 여행과 관련해 대폭 규정을 강화하고 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는 한 사람도 예외없이 주 안에 들어올 수 없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는 퀸즐랜드,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노던 테러토리, 태즈매니아 등이 아닌 곳에서 오는 이들은 반드시 격리하도록 했다. 뉴사우스웨일즈주는 빅토리아주를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은 14일 동안 호텔에 격리시키고 있다. 퀸즐랜드주는 지난 2주 동안 빅토리아, 뉴사우스웨일즈, 오스트레일리언 캐피탈 테러토리 같은 ‘핫 스팟’을 방문한 이들은 생활시설에 2주 동안 격리시키고 있다. 이렇게 엄격한 격리 정책이 시행돼 수천명의 발이 묶여 있으며 일부는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나도 장례식에 가보지 못하고 있다. 격리 세칙을 어겨 수감된 사람도 샌든 외에 세 명이 더 있다. 지난 4월 조너선 데이비드는 격리된 호텔을 벗어나 여자친구를 방문한 잘못으로 200일 징역형을 선고받고 나중에 한 달을 유예 받았는데 이 나라에서 격리 명령을 어겨 사법처리된 첫 사례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아프가니스탄 첫 여성 감독 사바 사하르 총격 받고도 목숨 건져

    아프가니스탄 첫 여성 감독 사바 사하르 총격 받고도 목숨 건져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사바 사하르(45)가 수도 카불에서 영화 작업을 하러 이동하던 중 총격을 받고 다쳤지만 목숨에 지장이 없다고 남편 에말 자키가 전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이면서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사하르는 25일(이하 현지시간) 카불 서쪽에서 차량을 타고 이동 중 세 명의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남편은 사하르가 복부에 총상을 입었지만 수술이 잘 끝났다고 전했다. 피격 당시 사하르의 차량에는 두 경호원, 한 어린이, 기사가 함께 탑승하고 있었는데 경호원들은 총상을 입었지만 어린이와 기사는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까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히고 나선 단체는 없다. 사하르가 집을 떠난 지 5분 뒤에 총성을 들었다고 자키는 말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총격을 받고 배에 총알을 맞았다고 말했다고 했다. 현장에 달려갔더니 모두들 다친 채였다. 아내가 응급처치를 받은 뒤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가 나중에 경찰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경찰관 교육도 받았고 여전히 내무부 소속으로 일하면서 영화 일도 한다. 자신의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일관되게 정의와 부패를 다룬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치 활동가나 인권 옹호자들을 겨냥한 공격이 늘어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한편 8년 전 영국 일요신문 옵서버는 사하르가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푸른색이 감도는 눈에 뾰족하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코에 피어싱한 채 촬영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난 아프간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보수주의자들이 자기 딸들과 아내를 집에 가둬두지 말고 교육을 받거나 돈을 벌거나 나라의 재건을 돕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하르는 작품마다 여자 주인공으로 등장해 탈레반이나 반군들, 마약계 거물 등 악당들에 맞서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싸우고 있다. 전통의상을 입고는 쿵후 식의 높은 발차기를 구사하고 희생자들을 어깨에 메고 안전한 곳으로 옮기며, 오토바이를 타면서 총을 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살해하겠다’는 식의 협박이 그치지 않고 여배우를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설사 배역과 장비, 스태프, 자금을 모두 갖추더라도 여전히 일터는 진짜 전쟁터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매일 아침 집을 떠날 때마다 죽을 수 있고 가족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덧붙였다. 사하르는 1996년 탈레반이 권력을 쥐고 영화 상영마저 불법화하자 파키스탄으로 피신했다. 그 뒤 미국에 망명을 신청해 2001년 비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탈레반이 몰락하면서 카불로 돌아와 영화사를 설립했다. 2004년 첫 영화 ‘법(THe Law)’ 시사회를 할 때는 소요가 우려돼 영화관 소유주가 경찰들을 부르기도 했으나 소란은 없었고 영화는 뜻밖에 흥행을 했다. 남편과 아이 등 개인사는 말하려 하지 않지만 이미 이혼을 했고, 자신의 직업을 지원하는 가족이나 친지도 엄마를 비롯해 자매 등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고 말한 점을 보면 자키는 새 남편으로 보인다. 사하르는 ”나는 사람들에게 아프간에 전투와 마약, 테러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다른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노력하다가 내가 죽게 된다면 기꺼이 그렇게 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여성이 행복해야 함께 사는 남성도 행복해”

    “여성이 행복해야 함께 사는 남성도 행복해”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오래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말할 수 없다.”(이주란 작가) 32년 세월을 거슬러 다시 나타난 소설을 두고 까마득한 후배는 이렇게 썼다. 첫 출간 당시 ‘가정파괴범’, ‘과격하며 성적 대결을 조장한다’는 꼬리표가 붙었던 책은 후배 작가에게 현실, 그 자체다. 최근 나오는 페미니즘 소설들에도 비슷한 수식들이 가끔 붙지만 달라진 점은 그런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는 거다. 한국 페미니즘 소설의 시초, 이경자(72)가 돌아왔다. 1980~1990년대, 페미니즘 1세대라 불리는 소설 두 권을 들고서. 최근 도서출판 걷는사람에서 복간된 ‘절반의 실패’와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는 각각 1988년과 1992년 첫 출간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두 책은 고부 갈등, 독박 가사와 육아, 가정 폭력, 남편의 외도, 혼인빙자간음, 성 착취, 빈민 여성 등 여성문제의 거의 대부분을 다루는 소설집이다. “제작비도 못 건지면 어쩌나 했어요. 내 나이 일흔둘에 ‘이혼을 꿈꾼다’가 뭐냐고 걱정을 했는데, 출판사 편집자들은 이게 너무 중요한 작품이고, 중요한 것에 비해서 평가받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작가의 걱정과 달리 책은 출간 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203명의 후원자로부터 670만원을 후원받았다.●“‘절반의 실패’, 결혼하지 않았으면 못 썼을 소설” 돌이켜 보면 작가에게 ‘절반의 실패’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나오지 않았을 소설”이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작가는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확인’이 당선돼 데뷔했다. “결혼 전에는 늘 내가 남자만큼 잘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아무리 소설도 쓰고 잘났다고 해봤자 집에서는 남편 밑에, 시집 밑에 있는 존재라는 것에 분노를 느꼈어요.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여성의 문제였고요.” 초판 머리말에 적힌 말이 이와 같은 맥락이다. ‘어머니라는 여자와 한패가 되는 것은 ‘지옥살이’가 될 거여서, 사람들을 부리고 억누르는 가장인 아버지를 선택했다. 결혼을 하고서야 옛날의 어머니와 똑같은 여자가 돼 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무엇이 여성의 삶을 이렇게 억누르는지를 고민했다.’(395쪽) 작가는 “이런 걸 요새는 ‘명예남자’라고 하더라”고 부연했다. 깨달음 후에는 ‘여성’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거의 모든 책을 끼고 살았다. ‘친족상속법’이라는 이름의 책을 들여다보며 성차별의 근간이 되는 당대의 법을 공부했다. 모르는 것은 취재하고, 더러 여성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는 고정희 시인이 이태영 박사가 있던 법률구조센터에서 일했던 때를 떠올렸다. “걔가 여자들 상담 자료 같은 거 저한테 보여주고, 그때 막 생긴 한국여성의전화에서도 자료를 줬어요. 매춘에 대해 쓰기 위해 미아리 텍사스 주위를 돌고, 경찰이 소개해 준 포주를 만나기도 했어요. 빈민 여성들 이야기를 쓰려고 식당에 위장 취업도 했고요. 그때는 이혼을 안 했기 때문에, 이혼한 여성들도 많이 만나서 얘기 들었죠.”(작가는 2003년 이혼했다.) 그렇게 나온 소설은 KBS 2TV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작가에게 여성단체협의회가 주는 올해의 여성상을 안겼다. 오늘날 ‘한국 페미니즘 소설의 시초’라는 평가도 듣지만 작가가 체감한 당시 분위기는 ‘싸늘’에 가까웠다. “그때 분위기가 그랬죠. 대꾸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 조롱이 많았고요. 그러나 지금은 싸늘하지 않죠. ‘절반의 시대’가 아무렇지 않게 먹히는 시대가 된 거예요.” ‘82년생 김지영’ 같은 소설들이 사회적으로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는 오늘을 보며 그가 느끼는 격세지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 이유는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문학의 밥값’이기 때문이다. “농부는 농사짓고, 기자는 취재해 기사 써서 밥값을 벌잖아요. 소설가는 사회 모순에 대해 질문하고 나름의 해답을 찾아 소설로 형상화하는 게 밥값이에요. 제가 리얼리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까닭은 지방 출신인 탓이라고 스스로는 생각한다. 자신이 서울 중산층 집안에서 자랐다면 이런 소설을 쓰지 못했을 거라고도 했다. “강원도 양양이라는 변두리, 분단의 상처, 노동자 아버지, 화전민 할아버지·할머니에게서 성장한 어떤 원초적인 건강성이라고 해야 하나. 사회적으로 얘기하면 낮은 위치이지만 건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거죠. 저를 ‘참 용감한 여자다’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제가 용감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꾀가 없다고 생각해요. 꾀가 없으니 이런 소설을 쓴다….”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단체 만들기 위해 노력” 그런 그가 2018년 2월 국내 대표 문인 단체인 한국작가회의의 이사장이 됐을 때 누군가는 ‘운명’이라 했다.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한창 수면 위로 떠오를 때였다. 취임 후 작가는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고 ‘성차별·성폭력 처리 및 예방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학계에서 ‘미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남자들이 여성을 자기하고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거예요. 제가 등단했을 때 그야말로 ‘성희롱의 바다’ 속에 있었어요. 여성하고 함께 일해본 적도 없으니 여성은 현모양처이거나 유락의 대상이었으니까….”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진보적인 남성도 생활 감정으로는 내려가지 않는 이론과 관념, 태도를 가진 것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가 겪은 한국작가회의는 남성 일변도와 함께 서울대 중심이었다. 일정 파벌·세력을 갖고 있지 않은 그가 임기 내내 주지한 것은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태도”다. “저는 굉장히 평화주의자인데, 평화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자기 존재감으로 서로 혼합돼서 살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받아야 하고요.” 독립적인 각자가 모여 독립적인 집단을 이뤄야 한다는 게 이경자가 이끄는 한국작가회의 2년의 가장 큰 모토였다. 작가회의가 특정 정치 이념으로 대표되는 걸 원치 않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제적인 독립을 중요하게 여겨 특정 출판사로부터 받던 지원도 끊었다고 했다. 맨몸으로, 혹은 단체의 수장으로 살아낸 페미니즘의 세월을 그는 “내 몸에 깃들어 있는 인격에 대한 인식”으로 풀어냈다. “저를 희롱하는 것은 제 인격을 희롱하는 것이고, 자기가 희롱할 수 있는 인격과 함께 산다는 건 스스로를 모독하는 거예요. 타인을 경멸하고 학대하면서 자신이 잘나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가학적인 거죠. 남성 중심의 가치 체계나 행동 규범, 사회 질서가 남성에게도 이롭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아야 해요. 함께 사는 여성이 행복해야 남성도 행복한 거고요.” 오늘날의 페미니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각 시대에는 그 시대의 페미니즘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서구식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영향으로 남녀 상관없이 극단적인 경쟁에 시달리고 있고, 욕망에 제한이 없어요. 요즘 시대의 의식 구조 속에는 로봇 같은 정서가 있는 것 같은데,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시대가 만들어낸 페미니즘이고요. 이경자의 페미니즘은 농경사회의 끝자락을 말하고 있죠.” 그러면서 남녀가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만의 이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맞물려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여성만을 위해서 뭔가를 하면 저항이 와요.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 해결책을 함께 찾아봐야 해요.”●“이제야 소설 쓸 수 있는 몸 됐다… 장편 3개 더 쓸 것” 작가회의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지 6개월, 그는 내년 9월이 임기인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작가회의 일을 놓고 나서야 소설을 쓸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 그다. “정신력의 크기가 작은 사람이라서, 문학하고 조직의 장하고는 함께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제 일을 그만두니까, 내 정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거 같아요.” 매일 아침,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를 들으며 창작욕을 끌어올리는 작가는 여전히 책상 앞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장편 세 개를 더 쓰는 게 목표다. 쓸 수 있는 몸, 젊은 생각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그는 말했다. “나는 나대로 살아야 하는데, 나를 에워싸고 있는 가짜 공식들이 있어요. 풍속, 가족제도, 남녀관계, 사회 등이요. 나를 둘러싼 잘못된 공식들에 나를 맞춰주면 생기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나는 누군가, 남존여비는 왜 생겼나, 가부장제라는 건 뭔가…. 끝없이 공부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노영민 “집값 MB 때도 올라… 현 정부 부동산 정책 효과 나타나”

    노영민 “집값 MB 때도 올라… 현 정부 부동산 정책 효과 나타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25일 국회에서 ‘부동산 정책’을 두고 정면으로 부딪쳤다. 노 실장은 아파트로 과도한 차익을 실현했다는 통합당의 비판에 “MB(이명박 정부) 때도 올랐다”고 반박했다.노 실장은 이날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합당 김정재 의원이 ‘3년 만에 (집값으로) 5억원을 벌지 않았느냐’고 질의하자 “15년 전에 산 아파트인데 왜 자꾸 3년을 이야기하느냐”며 “아파트 가격이 우리 정권에서 올랐느냐”고 받아쳤다. 김 의원이 최근 급락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에 대해 묻자 노 실장은 “다시 원상회복됐다”고 정색했다. 언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김 의원이 “장난하느냐”고 하자 노 실장은 “이 자리에서 제가 지금 장난하느냐. 싸우듯 하지 말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노 실장은 8·4 부동산 대책 효과에 대해서는 “그동안 계속된 부동산 안정화 정책에 따라서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세제·금융·공급·임차인 보호 등 완성된 4대 정책 패키지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주택시장 가격 상승률도 점점 둔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정부의 유일한 공식 통계에 의하면 8월 들어와 가격 안정세가 강화된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며 노 실장의 발언에 동조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여야의 코로나19 재확산 책임 떠넘기기가 반복됐다.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8·15 광복절 집회에 따른 피해 대응 방안을 묻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감염병예방법이나 민법 조항을 통해 처벌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상권까지 행사하는 것이 국민 정서에 부합한다”며 강도 높은 대응을 시사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기소가 된다면) 최고의 법정형을 구형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반면 통합당 조해진 의원은 8월 17일 임시공휴일 지정, 교회 소모임 허용 등 정부의 방역 완화 조치와 외식·숙박 쿠폰 배포, 특별여행주간 추진 등이 재확산 사태에 영향을 미쳤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정 총리를 압박했다. 이에 정 총리는 “지금 잣대로 그때 판단을 재단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면서 “17일 임시공휴일을 지정할 때는 안정된 상태였다. 지금 상황이면 그런 결정을 안 했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기적 관점에서는 고용보험료율을 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급격히 올릴 수는 없겠지만 적자 동향을 보면서 단계적으로 올리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시진핑 ‘금지령’에도...35kg 3살 딸에 먹방 시킨 부모

    시진핑 ‘금지령’에도...35kg 3살 딸에 먹방 시킨 부모

    3살배기가 11세 여아 평균 몸무게“조회 수 올려 돈벌이하려 했나” 지적 몸무게가 35㎏이나 나가는 3세 아동의 ‘먹방’(먹는 방송)이 아동학대 논란을 일으켰다. 25일 훙싱(紅星)뉴스에 따르면 광저우에 사는 페이치는 딸이 고기나 패스트푸드 등 음식을 먹는 모습을 동영상 앱에 올렸다. 하지만 많은 네티즌이 부모가 먹방으로 조회 수를 올려 돈벌이를 하려 한 것 아니냐며 학대 의혹을 제기했다. 페이치의 부모는 돈을 벌려고 딸의 먹방을 찍어 올린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페이치는 2018년 10월 동영상이 처음 올라왔을 때만 해도 체구가 작았지만, 몸무게가 계속 늘어나 이미 중국의 11세 여아 평균 체중에 이르렀다. 부모는 동영상을 찍은 것은 아이 성장 기록과 재미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딸이 태어날 때 몸무게가 4.5㎏이나 됐으며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집에만 오래 있고 운동을 하지 않다 보니 체중이 10㎏ 늘었다고 덧붙였다. 페이치의 먹방 계정은 동영상 앱에서 차단된 상태다.시진핑 “음식 낭비마라”...中 먹방 ‘불똥’ 중국에서는 최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음식 낭비 금지령 이후 먹방에 대한 눈초리가 매섭다. 중국 펑파이 신문은 최근 국영 중국 중앙(CC) TV가 음식을 낭비하는 먹방을 비난하는 방송을 내보내자 일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 폭식 먹방 방송을 금지시켰고, 일부 유명 주보(BJ)는 과거 먹방 동영상을 삭제했다고 전했다. 중국 언론은 시 주석이 “음식 낭비 현상이 가슴 아프다”면서 “음식 낭비를 단호히 막아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또 “중국의 식량 생산은 매년 풍족하지만, 식량 안보 위기의식은 여전하며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있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에 중국 일부 지방이 음식 절약을 취지로 한 ‘N-1 운동’을 시작했다. 음식 낭비를 막기 위해 음식점들이 고객들에게 사람 수보다 1인분 적은 음식을 시키라고 권유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교통사고로 잃은 딸 명의로 1억 기부

    교통사고로 잃은 딸 명의로 1억 기부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딸의 이름으로 1억원 기부를 약정했다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가 24일 밝혔다. 고 조은결(23)씨의 아버지 조동현(52)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딸아이가 그동안 국제구호단체에 후원을 해 온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며 “앞으로 받을 보험금을 포함해 제 딸의 목숨값으로 받은 보험금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사랑의열매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2384호 회원으로 등재됐다. 고인은 지난달 22일 인천 고잔톨게이트 요금소 인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음주운전을 한 운전자가 1차로로 차선을 바꾸다 앞서 가던 승용차에 부딪혔다. 이후 견인차와 순찰차가 출동해 차량 4대가 1차로에 그대로 서 있었다. 뒤이어 고인이 탄 차가 잠시 정차한 뒤 2차로로 빠져나가려고 할 때 뒤에서 고속으로 오던 승용차가 들이받으면서 고인 등 2명이 사망했다. 아버지 조씨는 “딸은 용돈을 받아도 쓰지 않고 평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생활비를 벌었다. 공부도 열심히 해 학교에서 장학금도 많이 받았다”면서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금이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교통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유족은 음주 상태로 고속도로에 정차하던 운전자와 이를 방조한 보험사 처벌 및 2차 사고 예방을 위한 순찰차량의 명확한 안전조치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렸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희귀병, 304위, 행운… 메이저 품은 마이너의 반란

    희귀병, 304위, 행운… 메이저 품은 마이너의 반란

    가장 낮은 세계랭킹 챔피언 대이변코로나 탓 결원으로 출전 기회 잡아8억원 상금, 2부·미니투어 총액 6배라임병 앓아 투어 데뷔 후 11㎏ 빠져세계랭킹 304위의 ‘무명’ 조피아 포포프(28·독일)가 희귀병과의 투병 속에서 여자골프 메이저대회 사상 최대 이변을 일으켰다. 포포프는 24일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열 트룬 골프클럽(파71·6649야드)에서 끝난 AIG여자오픈(전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7언더파 277타로 우승했다. 2006년 여자골프 세계랭킹이 도입된 이후 가장 낮은 순위로 우승한 메이저 챔피언이다. 2015년 LPGA 투어에 데뷔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아 1년 만에 시드를 잃은 포포프는 이후 2부 투어와 미니투어를 전전했다. 지난 7월 말 드라이브온 챔피언십에서는 동료인 아너 판 담(네덜란드)의 캐디백을 메기도 했다. 2부 투어에서는 준우승만 네 차례에 그쳤고 LPGA 투어는 물론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등 세계랭킹 포인트가 걸린 대회에서는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었다. ‘대박’의 조짐이 보인 건 2주 전 마라톤클래식에서 9위로 입상하면서부터. 그는 코로나19 탓에 생긴 결원 덕에 출전 기회를 잡았고 ‘톱10’에 들면서 받아낸 AIG여자오프 ‘땜빵’ 출전권으로 우승까지 일궈낸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됐다. 우승 상금 67만 5000달러(약 8억원)는 그가 각종 투어에서 벌었던 상금 총액 10만 8051달러의 6배 가까운 액수다. 남자 친구인 막시밀리안 멜리스가 캐디백을 메 준 포포프의 이날 우승은 특히 ‘라임병’이라는 희귀 질환을 이겨 내고 독일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정상을 밟았다는 점에서 더 각별하다. 그는 우승 인터뷰에서 “LPGA 투어에 처음 데뷔한 2015년 몸무게가 11㎏ 이상 빠졌다. 3년 뒤에야 라임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며 “지금까지도 관리하고 있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박인비는 이날 4라운드에서 5타를 줄인 최종합계 1언더파 283타로 단독 4위에 오르면서 6개월 만의 LPGA 투어 복귀전을 마쳤다. 그는 “첫날 6오버파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2∼4라운드 이븐파 안팎을 목표로 잡고 경기해 비슷한 결과를 봤다”면서 “아쉽지만 이날까지 잘 마무리한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민주당 당권주자들 “정부 부동산 정책, 효과 나타날 때까지 시간 필요”

    민주당 당권주자들 “정부 부동산 정책, 효과 나타날 때까지 시간 필요”

    더불어민주당 당권주자들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를 보냈다. 24일 이낙연·김부겸·박주민 당 대표 후보는 이날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의 인터뷰에 차례로 출연했다. 이들 후보들은 부동산 정책, 2차 재난지원금 등 공통된 질문을 받았다. 이낙연 후보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이 옳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면서 집으로 큰돈을 벌기는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집 없는 분들께 희망을 드리기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을 확대 공급하고, 실거주자에 세금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부겸 후보는 “국민이 회초리 든 것에 대해 죄송하다”며 부동산 민심 악화에 사과한 뒤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된 부동산 3법이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게 자리 잡을 때까지는 국민이 기다려주면 어떨까 싶다”며 “시장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조금 냉정을 찾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주민 후보는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 방향은 맞다”며 “다만 공급 대책의 경우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 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분명한 정책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다만 “기존 정책에 구멍이 있는 경우가 있었고, 그 구멍으로 투기 이익을 보려던 세력이 초과 이익을 노리는 경우가 나왔다”며 “그런 구멍을 메우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이 수정됐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했다.이들 후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응책으로 거론되는 2차 재난지원금을 두고는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 후보는 “전날 당정청 회의에서 이미 (논의 보류) 결론을 냈다. 지금은 방역에 집중할 때”라며 “이번 주말 코로나19 추가 확산 여부를 보고 (논의 재개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반면 김 후보는 “가능하면 논의를 앞당겨 추석까지는 지급되는 신속성을 발휘해야 한다”며 “일단 다 주고 소득 상위층은 연말정산이나 소득세 신고·납부 때 환수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전 국민 지급을 주장했다. 박 후보는 “제가 2차 재난지원금을 다른 누구보다 먼저 주장했다”며 “1차 재난지원금 효과는 6월 이후 많이 떨어져 있다”면서 재난지원금 지급 필요성에 동의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벌에 쏘여 심정지’ 60대 남성, 병원서 극적 소생

    제초작업을 하던 60대 남성이 벌에 쏘여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극적으로 소생했다. 24일 오후 2시 27분쯤 경기 광주시의 한 건물부지에서 예초기로 제초작업을 하던 A(64)씨가 벌에 머리를 5차례 정도 쏘였다. A씨는 출동한 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어지러움을 호소하다가 쓰러져 의식과 호흡이 없는 심정지 상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구급대원은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했고 A씨가 이송된 병원의 의료진도 심폐소생술을 계속해 A씨는 병원에 도착한 뒤 약 30여분 만에 호흡을 되찾았다. A씨는 현재 생명에는 이상이 없는 상태로 치료를 받고 있다. 소방 관계자는 “땅벌에 쏘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구급대원의 출동이나 심폐소생술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큰일 날뻔한 위급한 상황이었다”며 “제초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안전장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효리 새 예명 ‘마오’가 뭐길래…중국 네티즌 ‘난리’

    효리 새 예명 ‘마오’가 뭐길래…중국 네티즌 ‘난리’

    가수 이효리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새로 선보인 예명 ‘마오’를 두고 중국 누리꾼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22일 방송된 MBC ‘놀면 뭐하니?’에서는 프로젝트 그룹 ‘환불원정대’의 멤버로 이효리가 등장했다. 이효리는 제작자 ‘지미유’(유재석)와 면담을 하다가 자신의 예명을 언급했다. 이효리는 “글로벌하게 중국 이름 ‘마오’가 어떠냐”고 말했다. 방송 뒤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의 국부인 마오쩌둥(1893~1976)을 웃음 소재로 사용했다며 반발했다. 중국에서 ‘마오’(毛)는 마오쩌둥을 상징하는 고유명사처럼 쓰인다. 이효리가 마오쩌둥을 모욕했다는 주장이다. 일부 중국 누리꾼은 이효리의 소설네트워크서비스(SNS)를 찾아 “다른 나라 위인 이름으로 장난하지 마라”, “중국에서 돈 벌려면 마오라는 이름은 쓰지 마라”, “우리집 개 이름을 세종이, 중근이라고 부르면 듣기 좋나” 등 악플을 달았다. 이에 한국 누리꾼들은 이효리를 옹호했다. 이들은 “한국에서는 마오가 마오쩌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린 마오쩌둥에 관심이 없다” 등 반응을 보였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부러진 화살’ 정지영 감독, 스태프 임금 횡령으로 고발 당해

    ‘부러진 화살’ 정지영 감독, 스태프 임금 횡령으로 고발 당해

    영화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과 제작사가 스태프들의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인건비 목적으로 받은 지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24일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양태정 변호사는 공익제보자 한현근 시나리오 작가를 대리해 정 감독과 제작사 아우라픽처스를 업무상 횡령, 사기 및 보조금법 위반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한 작가는 정 감독과 아우라픽처스가 2011년 영진위가 영화산업의 안정적 제작환경 조성 및 영화 스태프 처우개선을 목적으로 ‘부러진 화살’의 제작사 아우라픽처스에 지급한 지원금을 스태프의 통장에 입금했다가 다시 영화 프로듀서의 계좌로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횡령했다고 밝혔다. 또한 2012년 ‘남영동1985’ 제작 과정에서 일부 스태프에게 지급한 급여 등을 아우라픽처스 대표의 계좌로 돌려 받았다고 주장했다. 아우라픽처스는 정 감독의 아들 정상민씨가 대표 이사를 맡고 있는 영화 제작사다. 한 작가는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의 성공으로 정 감독과 아우라픽처스는 수십억원을 벌었지만, 정작 함께 고생했던 스태프와 각본가 등 일부는 급여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부러진 화살’의 각본은 자신이 혼자 작성했으나 정 감독의 강요로 공동 각본자로 등록했다고도 주장했다. 한 작가는 ‘부러진 화살’과 지난해 개봉한 ‘블랙머니’의 각본을 쓰고 ‘부러진 화살’을 공동제작하는 등 정 감독과 오랜 세월 영화 작업을 함께 해왔다. 이에 대해 아우라픽처스 측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정상민 아우라픽처스 대표는 24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기사로만 내용을 접해 정확한 답변이 어려우나 ‘부러진 화살’은 제작비가 적은 영화로 제작비 외로 돈이 더 들어갔을 수는 있어도 제작사가 돈을 받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전용한 적은 전혀 없다”고 답했다. 정 감독의 강요로 ‘부러진 화살’ 공동 각본에 정 감독의 이름이 올라갔다는 한 작가의 주장에 대해서는 “두 분이 평소 작업하는 방식을 봤을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크레딧이라는 건 공표되기 전 여러 사람의 검증을 거치는 것이라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신천지 행사 다녀왔다” 거짓말… 경기남부경찰, 방역수칙 위반 288명 적발

    “신천지 행사 다녀왔다” 거짓말… 경기남부경찰, 방역수칙 위반 288명 적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코로나19와 관련 지난 2월부터 격리 조치를 위반하거나 역학조사 등을 방해한 혐의로 288명을 적발했다고 24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 중 혐의가 중한 1명을 구속 송치하고, 194명을 불구속 송치했으며, 현재 67명을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16명은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아 불기소 처분을 했다.구속 송치된 1명은 지난 2월 용인 처인구 보건소에서 “대구 신천지 교회에 다녀왔다”는 거짓말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아 보건소의 역학조사를 방해한 A(28)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식당에 배달원으로 취업해 일하던 중 주유 카드를 용도 외에 사용한 혐의로 경찰에서 절도 피의자 조사중 대구 신천지교회 행사에 다녀왔다고 허위신고 후 진단검사를 받는 등 역학조사 방해사실 사실이 들통나 구속됐다. 지난달 27일 김포의 해외입국자 임시생활 시설에서 자가격리 중 달아났던 베트남인 3명도 포함됐다. 이들은 입국후 1차검서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의무 자가격리 기간 1주일을 남기고 돈을 벌기위해 도주했다가 이틀만에 인천과 경기 광주에서 검거됐다. 종교집회를 자제해 달라는 행정 명령을 어기고 예배를 강행한 교회 관계자들도 적발됐다. 지난 4월 용인시 수지구의 한 교회 관계자 B씨 등 5명은 경기도의 종교집회 제한 및 금지명령에도 불구하고 현장 점검을 방해하고 집회 및 예배를 강행한 사실이 확인돼 집합금지 위반 혐으로 불구속 기소 됐다. 적발된 인원 대부분에게는 감염병관리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으나,행정 집행 도중 물리적인 피해를 주거나 역학조사에 혼란을 준 경우 등에는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도 포함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위반행위자 등의 소재 파악이 필요한 경우에도 수사·형사·외사 등으로 구성된 신속대응팀 730여명을 운영해 대응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방역수칙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는 중대한 불법이니만큼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처할 방침”이라며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위반행위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구속영장 신청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남영동1985’ 정지영 감독, 스태프 보조금 횡령 혐의로 고발돼

    ‘남영동1985’ 정지영 감독, 스태프 보조금 횡령 혐의로 고발돼

    시나리오 작가 한현근씨 “제작사와 함께 스태프 임금 빼돌려” 영화 ‘부러진 화살’, ‘남영동1985’ 등 정치·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 온 정지영 감독과 제작사가 스태프들의 인건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로부터 받은 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24일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양태정 변호사는 공익제보자인 시나리오 작가 한현근씨를 대리해 정 감독과 아우라픽처스를 업무상횡령·사기·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날 오후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스태프 지원 목적 지원금 빼돌렸다” 주장 한현근 작가는 정지영 감독 등이 2011년 영진위가 스태프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부러진 화살’ 제작사인 아우라픽처스에 지급한 지원금을 스태프 통장에 입금했다가 다시 프로듀서 계좌로 되돌려 받는 식으로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또 2012년 ‘남영동1985’ 제작 과정에서도 일부 스태프에게 지급한 급여를 제작사 대표 계좌로 되돌려 받는 식으로 횡령했다고 설명했다. “아우라픽처스, 정지영 감독의 가족회사” 한현근 작가 측은 “아우라픽처스는 정지영 감독의 아들이 대표이사를, 배우자가 감사를 맡은 가족회사”라면서 “정지영 감독은 사내이사로서 실질적인 경영권과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양 변호사는 “영진위와의 지원금 약정 단계에서부터 스태프에게 지급돼야 할 급여를 가로챌 의사를 가지고 영진위를 기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며 “이런 식의 편취행위는 업무상횡령·보조금법 위반에도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지영 감독과 오랫동안 영화 작업을 함께해 온 한현근 작가는 ‘부러진 화살’, ‘남영동1985’로 정지영 감독과 아우라픽처스가 수십억원을 벌었지만, 정작 스태프와 각본가 중 일부는 급여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지영 감독은 제작자로서 오랜 시간 스태프들을 혹사시키고 임금을 착취하는 일을 반복해왔다”며 “정지영 감독을 선배 영화인으로서, 한 사람의 영화감독으로서 좋아했고 그가 변화하기를 기다렸지만, 더는 그의 횡포를 좌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고발 계기와 경위를 설명했다. “감독 강요로 ‘부러진 화살’ 공동 각본자로 등록”또 ‘부러진 화살’의 각본은 한현근 작가 자신이 혼자 작성했는데, 당시 정지영 감독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정지영 감독까지 공동 각본자로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며 “영화는 이미 개봉됐지만 잘못된 크레딧을 바로잡아 바람직한 선례를 남기고 한국 영화계의 발전과 스태프 처우 개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지영 감독은 1982년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로 데뷔해 ‘남부군’(1990년), ‘하얀 전쟁’(1992년), ‘부러진 화살’(2011년), ‘남영동1985’(2012년) 등 사회·정치적 이슈를 다룬 영화들을 주로 연출해왔다. 2016년부터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블랙머니’를 선보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일제 초기 최대 섬유업체 경성직뉴/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일제 초기 최대 섬유업체 경성직뉴/손성진 논설고문

    민족 산업은 일제 지배 초기에 태동했고 섬유산업이 주도했다. 광고 속의 경성직뉴 주식회사는 일제 초에 한국인이 설립한 제조업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회사이며, 직조 분야에서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주식회사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는 1896년 설립된 조선은행이라고 한다. 경성직뉴는 1910년 서울 병목정(현 중구 쌍림동)에서 섬유 가내수공업자인 이정규, 김성기 등이 합명회사로 설립했다. 이듬해 신문에 주식 모집 광고를 내고 주식회사로 바꾸면서 회사 규모도 커졌다. ‘뉴’(紐)는 끈을 의미하는데 직뉴는 끈 중에서도 기계로 짠, 즉 제직(製織)한 끈을 말한다. 당시 한국인들이 많이 쓰던 허리끈, 대님끈, 주머니끈, 갓끈 등을 주로 생산했다. 1912년 5월 주식회사 경성직뉴의 사장이 된 윤치소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이승만 대통령 비서실장과 초대 내무장관을 지낸 윤치영의 형이며 귀족원 의원으로 친일 활동을 했던 윤치호의 종제(從弟)다. 윤치소의 아버지 윤영렬은 구한말 내무 참의와 안성군수 등을 지낸 관료였다. 윤치소는 이재(理財)와 경영에 밝아 일찍이 여러 사업에 손대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1909년 서울 종로에 ‘혁신점’이라는 제화점을 열었고 대한천일은행 감사, 분원자기 감사, 광업주식회사 사장을 지냈다. 경성직뉴의 경영 상태는 대체로 좋았다. 서울 전체 끈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던 1917년에 직공이 500여명에 이르렀고, 직뉴기를 400여대 보유하고 있었으며, 상당한 이익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으로 닥친 경제 불황과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는 서양 복식의 도입으로 그 이후 경영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1917년에 경성직뉴는 경성방직의 설립자인 김성수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윤치소는 회사 경영으로 번 돈을 농업에 투자하고 토지를 대량 매입했다. 윤치소가 보유한 땅은 200만평에 가까웠는데 윤보선이 광복 후 장안의 10대 지주라는 말을 들은 것은 부친의 덕이었다. 김성수는 1918년 경성직뉴에 신식 직기를 도입해 모시와 면포를 생산했다. 1922년에는 고무 제품을 생산하는 등 제품 다양화를 꾀했고, 1925년에는 회사명을 중앙상공주식회사로 바꿨다가 1944년에 경성직뉴를 경성방직에 합병했다. 공장 내부 사진을 보여 주면서 증축 소식을 전한 광고는 김성수가 경성직뉴를 인수한 다음해 게재한 것이다. 경성방직은 현재 경방그룹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성수의 여동생과 결혼한 고 김용완 전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았고, 현재 그의 두 손자인 김준·김담 형제가 그룹을 이끌고 있다.
  • “반성도 사과도 없는 ‘갑’… 동생 죽음 헛되지 않도록 더는 경비원 비극 없어야”

    “반성도 사과도 없는 ‘갑’… 동생 죽음 헛되지 않도록 더는 경비원 비극 없어야”

    “동생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어요. 워낙 착한데 겁도 많아 그 높은 데서 떨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 했어요. 얼마나 짓밟혔으면,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랬을까요. ‘갑’이라는 사람들은 이번 일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지난 5월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최희석(59)씨가 ‘억울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주민 심모(49)씨의 폭언과 폭행 등 갑질에 시달리다가 결국 삶을 마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국민이 분노했다. 주민들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렸고, “갑질 없는 곳에서 평안하세요” 등 추모의 메시지가 분향소를 가득 메웠다. 최씨는 그렇게 떠났지만 세상엔 숙제가 남았다. 갑질 없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의 형 최희철(가명)씨는 ‘경비가 맞고 억울한 일을 당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 달라’는 동생의 마지막 부탁에 난생처음 언론 앞에 나섰다. 최씨는 동생의 노제를 치른 지 딱 3개월 만인 지난 14일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슬픔에만 잠겨 있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최씨의 요구에 따라 익명으로 진행됐다. “큰형, 나 경비원 일 한번 해 보려고.” 최씨는 2년 전 동생의 말이 또렷이 기억난다고 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두 딸을 키웠던 동생은 나이가 들어 공사장 일이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형제는 40여년의 서울살이를 함께 하며 자주 왕래한 덕에 우애가 남달랐다. 최씨는 “주민들도 잘해 주고 일이 보람 있다”는 동생의 말에 안심했다.“동생이 원체 착실해요. 아파트에서 담배꽁초며 쓰레기며 기가 막히게 쓸고 닦고 성실하게 근무하니까 주민들도 다들 좋아했어요. 한번은 내가 ‘경비 일이 뭐가 그렇게 보람 있냐’고 물었더니 동생이 ‘살면서 이렇게 대우받지 못했는데 주민들이 잘해 주니까 참 좋다’며 ‘여기가 천국’이라고 하더라고요.” 최씨는 동생에게 닥칠 일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가 천국이라고 했던 일터가 어느 순간 지옥으로 변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뿐이다. 동생은 지난 4월 아파트 단지 내 이중주차가 된 심씨의 차를 밀었다는 이유로 심씨로부터 구타를 당했다. “(그만두라고 했는데도) 안 그만뒀으니 산으로 가서 나한테 100대 맞아라”, “아는 동생들을 시켜 쥐도 새도 모르게 산에 묻어 버리겠다”, “네가 죽거나 내가 죽어야 이 싸움이 끝난다”는 심씨의 말에 동생은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코뼈가 부러진 날(4월 27일)부터 동생이 완전히 불안증에 걸린 거예요. 하루에 두 번씩 우리 집에 와서 ‘나 좀 살려 달라’고 하고 밥을 줘도 ‘죽을 것 같다’면서 못 먹고. 두 발짝 걷고 나서 뒤를 돌아보고, 혹시 누가 자기를 쫓아올까 봐. 그래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약을 먹으면서 일을 계속 나갔어요.”결국 동생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숨지기 일주일 전 일이다. 다행히 아파트 주민이 뛰어내리려는 동생을 보고 말렸다. 주민들은 “경비 아저씨가 열심히 근무해 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며 대책 회의에 나섰다. 최씨의 형도 변호사를 구해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깊은 시름에 빠진 동생의 마음을 달래진 못했다. 최씨는 심씨의 행태를 ‘천인공노할 폭거’였다고 표현했다. 그 무렵 심씨는 오히려 동생이 자신을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코뼈를 부러뜨린 것이 자신이 아니라 친형인 최씨라고도 했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 중일 때도 “2000만원을 준비하라”는 협박 문자를 보내며 압박했다.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까지 괴롭힐 수 있나 싶더라고요. 내가 가서 아무리 얘기해도 동생이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는 공황 상태였어요. ‘아무도 날 도와줄 수 없고 저 사람은 아무도 못 말린다’는 좌절에 빠져 버린 거죠.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병원을 빠져나온 동생은 지난 5월 10일 새벽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급하게 휘갈겨 쓴 유서 몇 장이 현장에 남아 있었다. 평소 끔찍이 사랑한 두 딸에게도 제대로 된 편지를 남기지 못했다. 가족들에겐 믿을 수 없는 죽음이었다. 다음날인 11일 최씨는 동생과 함께 변호사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 둔 상태였다. 최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경비 일을 시작할 때 2~3년만 있다가 시골로 가서 같이 살자고 이야기를 해 뒀거든요. 땅도 집도 다 사 놨어요. 동생이 노동도 잘하고 집도 잘 고치니까 같이 늙어 가면서 재밌게 살자고 했는데….” 최씨는 이후 심씨의 재판을 지키고 있다. 심씨에게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감금·상해 등 7가지 혐의가 적용됐다. 빠르게 결론 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재판은 2개월이 지나도 제자리걸음이다. 심씨 측 사선변호인과 국선변호인이 연달아 사임했기 때문이다. “재판이 계속 연기되니까 실망스럽죠. 국선까지 사퇴하고, 이런 재판은 없는 것 같아요. 사건이 마무리돼야 우리 가족들도 모든 걸 잊고 일상에 복귀할 수 있을 텐데요.” 지난 21일 열린 재판도 “변호인이 선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술 기록을 열람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연기됐다. 민사재판도 진행 중이다. 1심은 지난 12일 심씨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유족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심씨가 소송에 응하지 않아 유족들은 무변론으로 승소했다. 하지만 지난 21일 심씨가 항소하면서 긴 싸움에 들어가게 됐다. “동생이 떠나고 우리는 계속 사과를 기다렸어요. 심씨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했다면 용서할 수도 있었어요. 기회를 줘도 나 몰라라 하는 걸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제 국민도 다 알잖아요. 그런데도 인정조차 안 하고 버티니 가슴이 아프죠.”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인 ‘갑질’ 문제를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게 했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등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한 ‘최희석 경비노동자 추모모임’은 이 사건을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최씨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동생의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을 찾아 설득하고, 정치권에도 관련 법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의 애끓는 목소리가 닿았는지 한 여당 의원이 이달 초 경비원에 대한 갑질을 막기 위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경비원이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명문화하고, 경비원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최씨는 “동생 사건이 묻히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며 “언론에서도 끝까지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이 언제냐’는 물음에 최씨가 답했다. “심씨의 재판을 떠나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 없어질 때까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갑질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자기가 필요해서 고용해 놓고 너는 을이니까 무시해도 된다면서 짓밟으면 되나요.” 얼마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계속되는 아파트 경비원 갑질 폭행을 멈출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경기 평택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행에 시달리던 경비원이 퇴사했다는 내용과 함께 폭행 장면을 담은 폐쇄회로(CC)TV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더는 제2, 제3의 최희석이 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동생을 먼저 보낸 형의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을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경비원 동생 떠나보낸지 100일, ‘지옥’의 일터는 계속되고 있다

    경비원 동생 떠나보낸지 100일, ‘지옥’의 일터는 계속되고 있다

    “동생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어요. 워낙 착한데 겁도 많아서 그 높은 데서 떨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 했어요. 얼마나 짓밟혔으면,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랬을까요. ‘갑’이라는 사람들은 이번 일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지난 5월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최희석(59)씨가 ‘억울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주민 심모(49)씨의 폭언과 폭행 등 갑질에 시달리다 결국 삶을 마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민이 분노했다. 주민들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렸고, 분향소에는 “갑질 없는 곳에서 평안하세요” 등 추모의 메시지가 가득 메웠다. 최씨는 그렇게 떠났지만 세상엔 숙제가 남았다. 갑질 없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의 형 최희철(가명)씨는 ‘경비가 맞고 억울한 일 당해서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달라’는 동생의 마지막 부탁에 난생 처음 언론 앞에 나섰다. 동생의 노제를 치른 지 딱 3개월 만인 지난 14일, 최씨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슬픔에만 잠겨 있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인터뷰는 최씨의 요구에 따라 익명으로 진행됐다. “큰형, 나 경비원 일 한번 해보려구” 희철씨는 2년 전 동생의 말을 또렷이 기억난다고 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두 딸을 키웠던 동생은 나이가 들어 공사장 일이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형제는 40여년의 서울살이를 함께 하며 자주 왕래한 덕에 우애가 남달랐다. 최씨는 “주민들도 잘 해주고 일이 보람있다”는 동생의 말에 안심했다. “동생이 원체 착실해요. 아파트에서 담배꽁초며 쓰레기며 기가 막히게 쓸고 닦고 성실하게 근무하니까 주민들도 다들 좋아했어요. 한 번은 내가 ‘경비 일이 뭐가 그렇게 보람있냐’고 물었더니 동생이 ‘살면서 이렇게 대우받지 못했는데 주민들이 잘해주니까 참 좋다.’면서 ‘여기가 천국이다’고 하대요.” 최씨는 동생에게 닥칠 일은 상상도 못했다. 그가 천국이라고 했던 일터가 어느 순간 지옥으로 변했다는 게 믿겨 지지 않을 뿐이다. 동생은 지난 4월 아파트 단지 내 이중주차가 된 심씨의 차를 밀었다는 이유로 심씨로부터 구타를 당했다. “(그만두라고 했는데도) 안 그만뒀으니 산으로 가서 나한테 100대 맞아라”, “아는 동생들을 시켜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산에다 묻어버리겠다”, “네가 죽거나 내가 죽어야 이 싸움이 끝난다”는 심씨의 말에 동생은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코뼈가 부러진 날(4월 27일)부터 동생이 완전히 불안증에 걸린 거예요. 하루에 두 번씩 우리 집에 와서 ‘나 좀 살려달라’고 하고 밥을 줘도 ‘죽을 것 같다’면서 못 먹고. 두 발짝 걷고 나서 뒤를 돌아보고, 혹시 누가 자기를 쫓아올까 봐. 그래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약을 먹으면서 일을 계속 나갔어요.”결국 동생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숨지기 일주일 전 일이다. 다행히 아파트 주민이 뛰어내리려는 동생을 보고 말렸다. 주민들은 “경비 아저씨가 열심히 근무해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면서 대책 회의에 나섰다. 최씨의 형도 변호사를 구해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깊은 시름에 빠진 동생의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최씨는 심씨의 행태를 ‘천인공노할 폭거’였다고 표현했다. 그 무렵 심씨는 오히려 동생이 자신을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코뼈를 부러뜨린 것이 자신이 아니라 친형인 최씨라고도 했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 중이던 때도 “2000만원을 준비하라”는 협박 문자를 보내며 압박했다.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까지 괴롭힐 수 있나 싶더라고요. 내가 가서 아무리 얘기해도 동생이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는 공황 상태였어요. ‘아무도 날 도와줄 수 없고 저 사람은 아무도 못 말린다’는 좌절에 빠져버린 거죠.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병원을 빠져나온 동생은 지난 5월 10일 새벽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급하게 휘갈겨 쓴 유서 몇 장이 현장에 남아 있었다. 평소 끔찍이 사랑한 두 딸에게도 제대로 된 편지를 남기지 못했다. 가족들에겐 믿을 수 없는 죽음이었다. 다음날인 11일 최씨는 동생과 함께 변호사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둔 상태였다. 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경비 일을 시작할 때 2~3년만 있다가 시골로 가서 같이 살자고 이야기를 해두었거든요. 땅도 집도 다 사놨어요. 동생이 노동도 잘하고 집도 잘 고치니까 같이 늙어가면서 재밌게 살자고 했는데….” 형 최씨는 이후 심씨의 재판을 지키고 있다. 심씨에게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감금·상해 등 7가지 혐의가 적용됐다. 빠르게 결론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재판은 2개월이 지나도 제자리걸음이다. 심씨 측 사선변호인과 국선변호인이 연달아 사임했기 때문이다. “재판이 계속 연기되니까 실망스럽죠. 국선까지 사퇴하고, 이런 재판은 없는 것 같아요. 사건이 마무리 돼야 우리 가족들도 모든 걸 잊고 일상에 복귀할 수 있을 텐데요.” 지난 21일 열린 재판도 “변호인이 선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술 기록을 열람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연기됐다. 민사 재판도 진행 중이다. 1심은 지난 12일 심씨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유족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심씨가 소송에 응하지 않아서 유족들은 무변론으로 승소했다. 하지만 지난 21일 심씨가 항소하면서 긴 싸움에 들어가게 됐다.“동생이 떠나고 우리는 계속 사과를 기다렸어요. 심씨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했다면 용서할 수도 있었어요. 기회를 줘도 나 몰라라 하는 걸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제 국민도 다 알잖아요. 그런데도 인정조차 안 하고 버티니 가슴이 아프죠.”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인 ‘갑질’ 문제를 수면 위로 다시 들어 올렸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등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한 ‘최희석 경비노동자 추모모임’은 이 사건을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최씨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동생의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을 찾아 설득하고, 정치권에도 관련 법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그의 애끓는 목소리가 닿았는지 한 여당 의원이 이달 초 경비원에 대한 갑질을 막기 위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경비원이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명문화하고, 경비원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최씨는 “동생 사건이 묻히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언론에서도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이 언제냐’는 물음에 최씨가 답했다. “심씨의 재판을 떠나서 우리 사회에 갑질 이 없어질 때까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갑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자기가 필요해서 고용해놓고 너는 을이니까 무시해도 된다면서 짓밟으면 되나요.” 얼마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계속되는 아파트 경비원 갑질 폭행을 멈출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경기 평택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행에 시달리던 경비원이 퇴사했다는 내용과 함께 폭행 장면을 담은 폐쇄회로(CC)TV가 공개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더는 제2의, 제3의 최희석이 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동생을 먼저 보낸 형의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오늘도 을들의 고통은 이어진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빈라덴 사살한 前 네이비실 대원, 기내서 ‘노 마스크’ 셀카 논란

    빈라덴 사살한 前 네이비실 대원, 기내서 ‘노 마스크’ 셀카 논란

    지난 2011년 5월 9·11 테러의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직접 사살했다고 주장해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던 ‘태양의 후예’가 이번에는 마스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 출신인 로버트 오닐(44)은 자신의 트위터에 여객기 기내에서 촬영한 셀카 사진 한장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오닐은 기내 좌석에 앉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환하게 웃고있다. 이에반해 사진 한쪽에는 마스크와 해병대 모자를 쓴 중년 남성 그리고 역시 마스크를 쓴 여성 승무원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이 사진과 함께 오닐은 비속어를 섞은 글을 올리며 마스크 착용을 조롱했다. 이 사진이 논란이 되는 것은 현재 미 항공사들이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승객들의 여객기 탑승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오닐의 행동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비웃는 것으로 한때 국가를 위해 싸웠던 군인이 팬데믹 기간 동안 마스크도 쓰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어났다.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파악한 해당 항공사인 델타항공 측은 향후 오닐의 자사 여객기 탑승을 아예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후 오닐이 올린 문제의 트윗은 5시간 만에 삭제되며 논란은 끝나는듯 했으나 오닐은 다시 델타항공을 저격하기 시작했다. 오닐은 "문제의 트윗은 아내가 지운 것"이라면서 "우리가 빈 라덴을 죽였을 때 델타 항공기를 타지 않은 것에 하나님께 감사하다"며 항공사를 조롱했다. 이같은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여론은 극명하게 갈렸다. 대체로 오닐의 경솔한 행동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류했지만 마스크 착용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가진 미국민들의 옹호 글도 만만치 않았다.   한편 오닐은 19세에 네이비실에 입대한 후, 실 요원 중 최정예만 선발되는 해군 특수전개발단(SEAL Team 6)에서 복무했다. 통상적으로 데브그루(DEVGRU)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부대는 육군 델타포스와 함께 미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의 지휘를 받아 대통령 직속명령을 수행하며 해당 부대원들의 신상정보 및 작전내용은 모두 극비로 취급된다. 그러나 오닐은 자신의 신상정보를 언론에 공개하고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주장하며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다. 그가 테러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나선 것은 20년 간의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지 못해 네이비실측으로부터 연금 등의 각종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2014년 상사로 전역한 이후 그는 강연과 TV 출연 등으로 큰 돈을 벌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주택 9채’ 서철모 화성시장 “살 집 한 채 남기고 처분”

    ‘주택 9채’ 서철모 화성시장 “살 집 한 채 남기고 처분”

    주택 9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서철모 경기 화성시장은 21일 “살 집 한 채는 남기고 처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 시장은 경실련이 지난 20일 수도권 기초단체장을 대상으로 3채 이상 다주택 소유자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노원 1채, 일산 2채, 군포 5채, 지방 1채 등 모두 9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시대와 사회 인식이 변하면서 공직자의 다주택 소유에 대한 비판의식과 국민의 눈높이가 바뀌었다”며 “이와 같은 인식에 공감하는 한편,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새로운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주택 처분 의사를 밝혔다. 또 자신을 둘러싼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속상한 감정도 토로했다. 서 시장은 “지난 1997년부터 지금까지 20년이상 서민적 식당을 운영하며 돈을 벌었으나 자영업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고 밝힌 뒤 “어느 순간 노후가 걱정됐고 지난 2006년 식당을 통해 번 돈으로 대출없이 5채의 아파트를 구입한 뒤 장기임대주택사업자에 등록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지난 2014년 부인명의로 2채의 아파트를 추가 구입했다고 밝힌 뒤 매입시점부터 장기임대사업 등록을 했다고 덧붙였다. 서 시장은 “임대사업은 서민들이 자신의 형편에 맞게 집을 선택해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순기능이 있으며, 임대차법으로 보장하는 국가의 장려사업이었다”며 “한 번도 주택 매매를 통한 이익을 취하지 않은 것은 물론 성실하게 세금도 납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부 언론에서 마치 투기를 노리고 최근에 아파트를 구입한 것처럼 보도되는 것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서 시장은 끝으로 “공직자가 도덕군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소신을 지키기 위해 겸손한 자세로 시정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이종실의 베트남 표류기] 잘나가던 대기업 주재원, 사표쓰고 창업해 성공한 비결

    [이종실의 베트남 표류기] 잘나가던 대기업 주재원, 사표쓰고 창업해 성공한 비결

    잘나가던 대기업 주재원이 어느 날 사표를 냈다. 정해진 탄탄대로를 벗어나 지금껏 가보지 않은 샛길로 빠져 보기로 했다. 어쩌면 애초에 정해진 길이란 없는지도 몰랐다. 현대건설과 포스코건설에서 건축 설계 전문가로 일한 20년의 직장 생활을 접고, 베트남 호치민에서 건축 설계업체 JNP를 설립한 최진혁 대표의 이야기다. 대학에서 건축학과를 전공한 그는 현대건설에 입사해 5년간 주요 프로젝트를 거친 후 2003년 포스코건설로 이직했다. 2007년 포스코건설의 ‘베트남 지역 전문가 1호’로 하노이•호치민에 파견, 호치민 인사대 어학당에서 하루 6시간씩 수업을 들으며 베트남어를 배웠다. 외국인 최초로 3개월 만에 정규 코스를 마무리한 뒤 언어 소통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되자, 그가 선택한 것은 바이크 종주였다. 베트남의 5개 직할시와 58개 성을 오토바이로 종주할 결심을 한 것. 보통의 해외 지역 전문가들이 착실하게 어학 공부를 마친 뒤 사무실에서 업무를 이어가던 ‘모범생’ 코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본사에서도 그의 ‘기행’에 가까운 모습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그가 생각한 ‘지역 전문가’는 사무실 책상이 아닌 현지인들과 문화를 속속들이 알아야만 한다고 여겼다. 유창한 베트남어를 하면서 오토바이로 시골길을 질주하는 한국인은 그들에게 퍽 생소하면서도 반가운 모습이었으리라. 이렇게 5개월의 긴 여정을 마친 후에는 베트남 사람들을 대하는 데 주저함이 사라졌다. 언어 소통에 무리가 없었고, 그들의 정서를 누구보다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그야말로 베테랑 ‘지역 전문가’가 됐다. 하노이에서 4년간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담당, 이후 호치민에서 5년간 설계 기술팀의 팀장을 맡다가 영업 팀장까지 도맡았다. 베트남 주재 9년 만인 2016년 본사에서는 대규모 희망퇴직을 추진했다. 포스코건설의 경영실적 악화로 포스코엔지니어링과 통폐합을 진행하면서 인력 감축이 진행된 것이다. 당시 그는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희망 퇴직자에게는 36개월분의 급여가 주어졌다. 오랜 해외 생활로 베트남에서의 일상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졌고, 무엇보다 자녀의 교육 문제도 큰 자리를 차지했다. 어려서부터 해외에서 교육받아온 딸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 한국으로 돌아가면 적응이 쉽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결국 그는 자진해서 ‘희망퇴직’에 손을 들었다. 단 2주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출중한 베트남어 실력과 현지에 대한 이해, 오랜 세월 축적된 기술력, 탄탄한 인맥… 20년간 한 우물을 파왔던 그에게 이미 탄환은 충분했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서 사업체를 꾸려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기업의 일원으로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른 책임감이 두려움으로 엄습해 밤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노력의 시간이 쌓여 이룬 실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현지인들을 채용해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회식 자리도 주기적으로 마련하며 팀워크를 다졌다. 덕분에 그의 고객층은 베트남 현지 기업이 50%, 한국 기업이 50%를 차지한다. 대규모 공장 건설부터 아파트, 주택 분야 건축설계도 책임지고 있다.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 거주한 지 어언 13년,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한국보다 베트남에 기회가 더 많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남아에서 가장 빠른 성장 속도를 기록하는 베트남의 건설 분야는 ‘블루 오션’이다. 파이의 한계치에 달한 국내 건설시장과 달리 베트남 건설시장 규모는 지난 2017년 연간 8.7% 증가한 127억 달러를 기록했다. 또한 베트남 부동산 시장은 제조업에 이어 외국인투자유치 분야 중 2위를 차지, 2018년 한 해 베트남 부동산 시장은 66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 이는 전년 대비 무려 116.6% 증가한 규모다. 건설업계의 대표적인 ‘블루오션’으로 꼽히는 이유다. 하지만 현지화와 문화의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리스크가 큰 지역이다. 그는 “여기서 통역을 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어를 공부한 것이지, 각 업계의 전문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통역에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모르는 것을 묻지 않고 마음대로 해석해서 오역하는 경우가 있어 나중에 가서 낭패를 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적어도 현지에서 돈을 벌고 싶으면 이들의 언어에 능통한 것은 기본 조건이라는 것. ‘대기업을 떠나 개인 사업하면서 후회한 적 없는지’ 묻자, 그는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일확천금은 아닐지라도 부족하지 않게 벌 수 있고, 무엇보다 마음이 평안하다”고 답했다. 최근 껀터시 최초의 29층 분양 아파트 프로젝트의 경합에서 1등을 기록, 본 설계를 진행하게 됐다. 코로나 여파로 얼어붙은 건설시장에서 따낸 쾌거다. 하나의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는 예술가의 정열, 그대로를 건축 설계에 담아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술가는 건축을 못 하지만, 건축가는 예술을 할 수 있다’라고 하지 않던가? 해외 주재원의 반란은 이렇게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성공’에 대한 최 대표의 사견은 이렇다. “이 세상 떠날 때까지 큰 걱정 없이 사람들과 술 한 잔씩 할 수 있는 것”. 결국 성공은 ‘행복을 누리는 자’의 몫이리라.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litta74.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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