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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스크바 3상회의(새로쓰는 한국현대사:8)

    ◎미,「신탁통치」 제의… 좌·우 극렬대립 초래/처음엔 온국민 “반탁”… 며칠새 좌익은 “보탁” 돌변/해방정국 혼란의 늪에… 「남북분단 고착」 빌미로/“한국문화·생활수준 높다” 미 군정서도 신탁 반대 광복의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19 45년 겨울 모스크바에서 불어온 한줄기 삭풍은 민족의 가슴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미국 소련 영국 중국 등 4개국이 한반도를 최장 5년 동안 신탁통치한다」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은 비보 그것이었다. ○미 43년초 탁치 첫언급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은 분노로 들끓었다.새 국가의 체제를 놓고 경쟁하던 우익·좌익 양대 세력은 반탁,찬탁으로 갈라서 서로가 적대관계 노선을 치달았다.또 한민족의 신탁통치 반대투쟁 과정을 지켜본 미·소 양국은 「한반도 독차지」의 야욕을 포기하고 자국 세력권에 각각 단독정부를 세우는 쪽으로 선회해버린다.결국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몰고온 「신탁통치 바람」은 남북분단을 고착하는 빌미로 작용했을 뿐이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은 이처럼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확한 내용은 물론 어느 나라가 신탁통치 계획을 주도했는지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한반도를 신탁통치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이를 실현시키려고 애쓴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인 1943년 초 이같은 구상을 처음 드러냈다.그해 3월27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국 외상 이든과 만난 자리에서 전후 한국과 인도차이나에 신탁통치를 실시할 뜻을 비쳤다.이어 11월 열린 테헤란회담에서 루즈벨트는 소련의 스탈린에게도 같은 생각을 슬쩍 흘렸다. ○루스벨트 구상 흘려 이후 미국의 계획은 갈수록 구체화됐다.43년 12월 카이로회담에서는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독립시킨다는 표현으로 나타났다.그리고 얄타·포츠담회담에서는 더욱 은밀하게 추진된다.루즈벨트가 얄타회담에서 필리핀을 예로 들며 한국에서도 20∼30년간의 훈련기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에 스탈린은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고 대답하기에 이른다. 전쟁이 끝나 38선을 경계로 남북에 미·소 양군이 진주하고 군정이시작되면서 「신탁통치」건은 얼핏 사라지는 듯 했다.그러나 10월1일 미국 삼성조정위원회는 맥아더 장군에게 「미군정에 이어 효과적인 4국 신탁통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섭을 시작하라」는 통고를 보낸다.이어 미국이 신탁통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 고위관리의 발언으로 명확하게 표출됐다.국무성 극동국장 J C 빈센트는 그달 중순 외교정책협의회 포럼에서 『한국에는 당장 자치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우선 신탁관리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내용은 즉시 한국 언론에 보도돼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매일신문(10월20일자)은 논평에서 신탁통치 기도를 『그것은 식민지화이며,다름아닌 쇠사슬』이라고 비난했다.좌우익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우익인 한민당은 미군정과의 협력을 중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좌익인 인민공화국도 『신탁통치를 강제 결의한다면 한국인은 목숨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식민지의 연장” 비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국립문서보관소(WNRC)에서 최근 찾아낸 미 외교문서와 「신탁통치에 관한 보고서」 등에 따르면 주한 미군정도 사실상 신탁통치안을 반대했다.하지의 정치고문 랭던은 11월20일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해방된 한국을 한달 동안 관찰한 경험에 미루어 신탁통치는 불가능하므로 철회해야 한다』고 충고했다.그 까닭을 『한국은 일제치하를 제외하면 남다른 역사를 산 민족이고,문자해득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문화와 생활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하지도 이 무렵 합동참모본부에 보낸 보고서 「한국의 상황」에서 『신탁통치가 지금 또는 장차 적용된다면 한국인들은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우익지 “소련서 제안” 이런 상황속에서 12월16일 소련 수도 모스크바에는 미국의 번스 국무장관,소련의 몰로토프 외상,영국의 베빈 외상 등 3명이 회동했다.얄타회담의 후속으로 마련된 이 모임에서는 한국 말고도 유럽·아시아지역의 여러국가들에 대한 처리방안이 논의됐다. 삼상회의 마지막날인 27일 「한국에 관한 결정」이국내에 보도됐다.우익지의 대표격인 D신문은 27일자에서 「워싱턴 25일발 합동 지급보」란 설명을 붙여 그 내용을 전했다.『소련은 신탁통치 주장,소련의 구실은 분할 점령,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란 제목의 기사는 벌집을 쑤셔놓은듯 파급이 컸다.미국의 「성조지」와 KPP통신도 이날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결국 이같은 첫보도는 한국민에게 ▲「모스크바 결정」의 주내용은 신탁통치 실시이고 ▲이를 주장,관철시킨 쪽은 소련이라는 인상을 깊이 각인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이 회담에서 미국은 4대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5년 동안 실시하되 1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제의했다.반면 소련은 한국의 정당·사회단체와 협의해 임시정부를 수립한 다음 4개국이 원조하자는 안을 내세웠던 것이다. 「한국에 관한 결정」은 미·소 양국안을 절충한 형태로 내려졌다.4개항의 요지는 ①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 ②준비모임으로 미소공동위원회 구성 ③5년 이내의 신탁통치 실시 ④2주 내 남북 주둔군사령부 대표자회의 개최 등으로 돼 있다.따라서 절차상 예비기구 설치를 규정한 조항을 빼놓고 본 주요내용은 「임시정부 수립」과 「5년 이내 신탁통치 실시」이다.특히 「임시정부 수립」에 우선 목표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공산주의 음모」 오해 당시 일반적인 국민감정은 「어떤 형태로든 외국 지배가 연장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백성의 분노는 당연히 왼쪽을 겨냥했다.더욱이 처음 반탁에 동참했던 좌익세력이 며칠새 찬탁으로 입장이 돌변하면서 「신탁통치 기도는 공산주의의 음모」라는 시각이 자리를 굳혔다.그러나 사실은 곧바로 드러났다.46년 1월25일 소련 타스통신은 『신탁통치를 제안한 쪽은 미국』이라며 미국안을 공개했다. 미국이 신탁통치를 먼저 제의했다는 증거는,서울신문사 특별취재반이 역시 WNRC에서 입수한 「번스 국무장관이 주한미군 정치고문 베닝호프에게 보낸 전문(46년 1월26일)」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이 전문은 「타스통신 보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묻는 베닝호프에게 보낸 답신으로,번즈 장관은 『그 내용이 맞다』고 시인한 뒤 『하지 장군이 적절하게 판단해 처리하도록』지시했다. 하지만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의 핵심내용이 무엇인지,누가 신탁통치를 획책했는지가 새로 밝혀졌다고 해서 대세가 달라지지는 않았다.반탁·찬탁 투쟁을 통해 이미 전면전에 들어간 좌우익 세력은 상대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이에 따른 좌우익 충돌은 해방정국을 더욱 깊은 늪으로 빠뜨렸다. ◎한·소 신탁통치 결정 속셈/자기세력권 확보에 유리 판단/한국독립과는 무관… 냉전체제 대비 노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에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미국·소련 양국의 속셈은 무엇일까.신탁통치 구상이 처음 나와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결정되기까지 양국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미국은 전후 세계 질서 재편의 한 방안으로 한반도를 비롯한 여러 식민지 국가들을 신탁통치령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미국의 의도는 명확하다.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측을 주도한 미국은 전후세계가 자국 중심으로 개편되기를 원했다.다른 나라보다 보유 식민지가 적었던 미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패전국은 물론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은 영국·프랑스의 식민지들을 「민족 독립」의 명분으로 풀어주고자 했다.이는 실질적으로는 해당국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독립한 국가들을 자연스럽게 자국 세력권으로 유도하는 방안이었다.또 당시 이미 싹트고 있던 냉전체제에 대한 대비이기도 했다. 한국에 「4국 신탁통치」가 실시되면 미국은 영국·중국과 손잡고 소련을 견제함으로써 한국을 미국 세력권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같은 이유로 소련은 처음 신탁통치안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그러나 「8·15」 후 북쪽에 진주한 소련은 신탁통치를 하더라도 한반도를 공산주의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나름대로 갖게 됐다.북쪽은 물론이고 남쪽에도 좌익세력이 만만치 않아 결국 대세를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소 양국의 신탁통치 결정은 애당초 한국에 자주독립국가를 세운다는 것과는 상관 없었다.한반도에 들어선 정부를 자국 세력권으로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고 그 전략으로서 신탁통치가 양국의 입맛에 들어맞았을 뿐이었다.
  • 불교거점도시 쿠차(서역 문화기행:9)

    ◎시원1백여채는 흙담만 남아/3세기 서역정치의 중심… 7백년간 영화/쿠차강 벼랑에 석굴 여러개 산재… 베제크리크 천불동 흡사 카슈가르에서 쿠차까지 사막 7백50㎞.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장장 15시간을 덜커덩거려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천산남로가 천산산맥과 타클라마칸사막이란 장관들을 좌우에 놓고 그를 줄곧 볼 수 있는 데다 서역 역사의 중심을 이제사 찾아가는 길이어서 였다. 쿠차의 옛 이름으로 구자 굴지 고차등이 있지만 모두 쿠차라는 위구르말을 다르게 표기했을 뿐이다.서한때만해도 겨우 36국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는데 동한때 반초(반초·33∼103)가 서역을 확장하던 기원 91년엔 「서역도호부」를 두어 서역정치의 중심으로 부상,당나라때 「안서도호부」로 지속되었다. 쿠차는 기원3세기부터 11세기까지 서역에서 불교의 거점으로 가장 그 꽃을 피웠던 곳으로 스바시(소파십)에 두군데의 자오후리사원외에도 키질(극자이)석굴을 비롯하여 쿠무토라(고목토랍),키질가하등 세군데의 천불동이 있다.무엇보다 당나라의고승 현장이 인도에서 귀국할 때 여기서 두달을 머물면서 쿠차의 융성한 불교와 음악을 그의 「대당서역기」에 대서특필한 바 있었다. ○혜초,한달 걸려 통과 필자가 쿠차를 특별히 동경했던 연유는 따로 있었다.신라의 혜초가 인도로부터 장안으로 돌아갈 때,바로 카슈가르에서 쿠차로 뚫린 이 코스를 장장 한달이나 걸어서 당시 정치·군사의 중심지였던 쿠차를 그의 「왕오천축국전」에 기록하였고,고구려 출신의 명장인 고선지(?∼755)는 당 천보(742∼755)연간에 서역방위 총사령격인 「안서도호」를 지내며 천하를 호령했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서역의 악기,특히 쿠차를 대표하는 갈고는 꼭 우리나라의 장구를 닮았기에 똑같은 흥을 느꼈고,또 최근 필자는 돈황의 막고굴보다 한세기 앞서 착굴되었던 키질천불동의 벽화를 정리하여 일련번호를 엮었던(1946∼47)최초의 키질 전문가가 우리의 재중동포 한낙연(?∼1947)씨임을 발견했기에 그렇다. 쿠차의 가을은 상쾌했었다.길에는 온통 코스모스였고 호마와 노새가 끄는 마차가 한가로웠다.멀리 해발 2천m가넘을 법한 뻘건 암벽의 촐타크(확이달격)산,그리고 보다 멀리 만년설의 하얀 천산산맥이 둘렀건만 시가는 넓고 사람들도 훤칠했다. 옛날 「양서」의 「제이전」에 쿠차의 외성은 장안성에 견줄만하고 가옥은 장려하다고 기록되었다.그 외성을 찾으려 필자는 맨 처음 쿠차의 옛 성곽을 찾았다. 쿠차의 간선도로 서쪽에는 인민공원,그 건너편 7m 높이에 5m 폭의 토성,그 허무러진 폐허가 보였다.그 밑으로 작은 개울,개울옆으로 쿠차 고성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그 토성은 40m 간격으로 넓은 장벽을 세운 채 옛날의 궁궐을 휘감았는데 자그마치 7∼8㎞에 달한다고 했다.그 안에서 출토된 기와나 벽돌의 무늬와 크기는 장안 대명궁에서 발굴된 그것들과 비슷했다는 르포를 본 일이 있었다. ○40m간격으로 토성 이곳이 한때 쿠차국 국왕의 궁궐임은 물론 당나라때 「안서도호부」의 주둔지였으니 1천2백50년전 우리 고선지장군이 호령하던 곳에 필자가 서 있는 셈이었다. 「산 깊숙한 곳에,하나의 강을 사이에 두고 2개의 가람이 있었다.둘 모두 자오후리라 이름했지만 위치에 따라 동·서로 불렸다.…서문밖 좌우에는 높이 90여자의 불상이 서 있고,절은 백여채요 승려가 5천여명…사람들은 공덕을 다투어 쌓고,…불상의 장엄은 사람의 공력을 뛰어넘었네라.…」 위의 글은 현장의 「대당서역기」에서 자오후리사원에 관한 기록을 발췌한 것이다.비록 자오후리의 확실한 명칭과 위치를 밝힌 바 없지만 그 내용으로 보아 오늘의 스바시(소파십)에 있는 자오후리사원을 지칭함에는 의심할 바가 없다. 필자는 쿠차 고성에서 북쪽으로 23㎞ 지점에 있는 자오후리를 찾았다.쿠차 시가를 벗어나 일로 정북을 향하여 지프를 몰았다.쿠차강의 긴 다리를 건너자 촐타크산이 화염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화염산의 머리가 타원형으로 다소곳한데 비해서 촐타크산은 들쭉날쭉한 적갈색 바위.위구르말로 「촐」이 「황량」을 뜻한다는 데 실상은 더 했다.더구나 촐타크의 아래로 뿌연 산등성이와 모랫벌,그 가운데로 쿠차강,강바닥의 하상조차 뿌옇게 말라 비틀어진 채 였으나 붉은 산등성이는 몹시 환상적이었다. 현장의 기록대로 「산깊숙한 곳」이요,「하나의 강을 사이에 두고 두개의 가람이 있었 지만」,높이 90여자의 불상은 물론 백여채의 사원 건물들은 모두 풍화중인 흙담들로 침묵만 흘렀다. 필자는 서쪽 언덕에 있는 자오후리사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산기슭을 오르다가 문득 건너 동쪽 사원의 최북단에 절반쯤 무너진 탑신을 보았다.그쪽으로 건너가기까지 족히 반시간은 걸렸다. 그 탑의 중턱에 올라 동서 양쪽의 자오후리사원을 굽어보는 감격은 무너질듯한 그것이었다.자오후리 사원의 강역이 7천㎦.그러니까 투루판에서 보았던 교하 고성이나 고창 고성보다 넓었다.교하나 고창이 다목적용 성곽이었음에 비추어 자오후리의 성곽은 오직 사원용이었으며 그 범위은 서역 최대의 것이었다. 비록 그 연대를 확정할 순 없지만 1978년5월에 출토된 위진·남북조와 당대의 철·동·도기와 벽화·전폐·간찰등으로 미루어 멀리는 위진시대요,늦게는 당말연대까지 적어도 7백년의 영화를 누렸던 불교 사원도시였음이 틀림 없다. 서역의 역사가 위대한 것은 인류가 황량하고 척박한 자연과 고투하는 데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을 잃어버린 흙과 모래를 빚어 인류의 문화를 창조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석양이었다.그 사양속에 자오후리 사원 유적지는 자욱한 언덕들.동쪽 사원은 산의 비탈따라 전개되었고 서쪽 사원은 사원의 본당이나 강원·승방등이 밀집된 모양이다.그래도 높이 10m의 담들은 동서에 널려 있다.서쪽의 본당으로 보이는 입구쪽 토담은 봉화대에 상당할만큼 중후했고,그 둘레도 어림잡아 3백m는 넘을만했다. ○흙·모래로 문화창조 안내자가 필자를 서쪽 사원 북단으로 인도했다.거기서 놀란 것은 쿠차강을 굽어보는 벼랑에 여러개의 석굴이 뚫렸는데 그 위치나 구조가 투루판의 베제크리크천불등을 방불케한 때문이었다.다만 규모가 작을 뿐이었다.석굴에서 내려오는데 길 바닥에 방사선 모양의 파란 덩굴에 수박잎모양의 큼직한 잎새들이 싱싱하게 자라서 적어도 한평쯤의 땅을 휘덮고 있었다.들수박이라했다.서역의 사막만을 방황하는 나그네에겐 또 한가지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쿠차로 돌아오는 도중,필자는 「키질가하토탑」을 굳이 찾기로 했다.쿠차 북쪽 12㎞지점에 있는 이곳을 찾기위해 쿠차에서 자오후리사원 중간쯤 도로에서 서쪽으로 돌아 작은 구릉을 한참동안 달렸다.그 왼쪽엔 염수계곡으로 수만년전 지구의 조륙운동으로 말미암아 벽해가 상전된 지질 변화로 만들어 진 곳이다. 염수계곡위로 우뚝 솟은 15m의 토탑.사막에서 자라는 풀인 소소초같은 것을 배합한 판축법으로 세운 흙탑인데 적어도 2천년을 견딘 이 탑의 툭불거져나온 위치와 상단의 망루적인 구조로 보아 봉화대로 단정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키질가하토탑에서 동쪽을 조망하면 불과 2㎞ 전방에 송송 구멍이 뚫린 벌집처럼 또 하나의 천불동이 보였다.이름하여 「키질가하천불동」.거기도 46개나 되는 석굴이 모여 촌락을 이루었는데 대체로 당대에 개착된 것으로 키질천불동보다 늦은 연대라했다. 서쪽으로 40㎞ 지점엔 또 하나의 천불동이 있다.이름하여「쿠무토라천불동」으로 그 휘하에 72개의 석굴을 거느리고 있다한다.필자는 키질가하토탑아래 우두커니 서서 성큼 다가오는 황혼에 쫓겨 지프에올랐다.어디를 보아도 천불동,누가 버린 땅이라하랴! 『선생! 제가 어릴적만해도 쿠차의 왕자가 어디쯤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위구르족 기사의 말이었다.정녕 그들 나름의 왕국이 청말까지도 실재했을지 모른다.
  • 「난파 위기」 민주호 “갈팡질팡”/「분당」기로에 선 계파 움직임

    ◎중도파 “대표유고 선언” 주장… 동교동계선 만류 16일 이기택대표의 탈당결심이 전해지자 민주당은 벌집을 쑤신듯 발칵 뒤집어 졌다.최고위원들조차도 『즉각 권한대행을 선출하자』는 주장에서부터 『진의부터 확인하자』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가족 및 측근들과 함께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대표직 사퇴후의 행보를 구상하며 주말을 보낸 이대표는 16일 상오 김창석공보비서를 당사로 보내 빠르면 오는 18일 대표직사퇴와 탈당을 단행할 계획임을 전달.이대표는 그러나 곧바로 박지원대변인과의 전화통화에서 『여러가지 대안 가운데 하나가 발표된 것으로 결심을 굳힌 것은 아니다』고 해명. 이에 따라 이날 최고위원간담회에서도 상오에는 『대표의 유고를 선언하고 권한대행을 선출하자』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으나 하오 회의에서는 일단 17일까지 김원기최고위원을 통해 이대표의 진의를 확인한 뒤 유고여부를 결정하기로 정리.이대표의 「치고 빠지기」식 행동을 놓고 이날 회의에서 중도파인사들은 『부끄럽고비극적』(조세형),『이대표의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정대철),『떳떳이 당에 나와 태도를 밝혀야 할 것』(김원기)이라고 흥분.그러나 이부영최고위원은 『정말 당을 깨자는 것이냐』면서 동교동계와 일부 중도파 최고위원들이 이대표와 갈라서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맹렬히 비난한 뒤 퇴장. ○…이대표는 탈당발언후 이날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개혁모임을 이끄는 이부영최고위원과 극비리에 회동해 탈당에 대비한 세규합에 나선 모습. 이날 회동에서 이최고위원은 이대표의 탈당을 극력 반대하면서 그러나 탈당을 결행한다면 이에 적극 동조할 뜻임을 밝혔다는 후문.이와 관련,당주변에서는 이최고위원과 박계동·원혜영의원등 최소한 개혁모임의 「민련」출신의원 8명이 이대표와 동반탈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 ○…이날 저녁 이틀동안의 칩거를 끝낸 이대표는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침에 공보비서가 한 발표는 내 진의와는 다르다』고 해명.이대표는 『탈당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한 게 없다』고 말하고 『그러나 대표경선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대표직을 사퇴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 이대표는 이어 자리를 옮겨 박일·강창성·이장희 의원등 측근의원 14명과 함께 앞으로의 거취문제를 논의.
  • 벌꿀/조혈작용·간장보호·질병 저항력 증진(최선록 건강칼럼:53)

    ◎매일 한숟갈씩 복용… 코감기 쉽게 치료 벌꿀은 자연감미료로써 다시 정제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자연식품이자 건강식품이다. 일반적으로 벌꿀과 꽃꿀을 동일하거나 비슷한 식품으로 알고 있지만 서양사람들은 꽃꿀을 넥타(NECTAR),벌꿀을 허니(HONEY)라 하여 용어자체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꽃꿀은 식물이 꿀벌이나 다른 곤충들을 유인하기 위해 꽃에서 분비하는 단물질인 반면 벌꿀은 벌들이 꽃꿀과 꽃가루를 비롯,식물에서 얻은 다른 물질을 모아 먹이로 완성시킨 다음 벌집에 저장한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벌꿀은 꽃이 피는 계절에 따라 아카시아꿀 싸리꿀 유채꿀 밤꿀 메밀꽃 밀감꿀 자운영꿀 클로버꿀 잡화꿀 등 종류가 다양할 뿐 아니라 꿀에 따라 맛,빗깔,향기도 각기 다르다. 영양학적으로 벌꿀의 성분은 밀원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나지만 1백g당 열량은 2백94㎉로 쇠고기나 달걀의 2배,우유보다 5배가량 높고 주성분은 포도당,과당이며 단백질,회분,비타민이 풍부하다. 특히 비타민 B₁,B₂,B6,판토텐산,니코틴산,콜린,엽산,비타민C 등을 함유하고 있는 영양식품으로 각종 질병 치료에 널리 복용되고 있다. 어른의 1일 꿀 섭취량은 최소한 30∼40g 정도는 먹어야 하며 국민학교 저학년의 어린이들은 5∼15g이 알맞는 양이다.이를 밥숟가락으로 환산하면 어른은 1일 2숟갈이며 어린이는 차숟갈로 2∼3회 먹으면 된다.꿀은 아무때 먹어도 좋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먹는 것이 바람직하며 적어도 1개월 이상 꾸준히 먹어야 뚜렷한 치료효과가 나타난다. 건강한 사람이 꿀을 매일 먹으면 원기가 왕성해지고 심장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으며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증진시키는 동시에 피로 회복이 빨라진다. 더욱이 꿀에는 피를 만드는 조혈작용,간장보호작용,술 마신 다음날 아침의 숙취제거,기침을 없애주는 진해작용,소변이 잘 나오는 이뇨작용,신경통과 불면증 치료 등 다양한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겨울철에 추위를 잘타는 사람에게 꿀은 좋은 보약이 된다.매일 식사 때마다 꿀 1숟갈씩 먹으면 추위를 이겨내는 내한성체질을 갖게된다.또 코감기에 자주 걸리는 사람이 꿀을 복용하면 쉽게 치료되고웬만한 감기는 가볍게 넘기게 된다.
  • “대책없는 규제완화는 곤란”/새 경제팀 정책선회 움직임

    ◎삼성차 허용후 재벌집중론 대두/과잉·중복투자 막으려면 “필요악” 새 경제팀 출범 이후 산업정책의 방향이 선회하는 조짐이다.홍재형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의 대재벌정책 발언과 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의 산업정책 정리 구상,한국중공업과 가스공사의 민영화 재검토 움직임이 그것이다. 홍부총리는 지난 23일 취임회견에서 『경제 세계화의 관점에서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과도한 사업 다각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업들이 이런 부문은 진출하지 않겠다는 네거티브 리스트를 제시,발표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그러나 이 발언이 재계에 파문을 일으키자 개인 소신으로 돌림으로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박재윤 통산부 장관도 『신경제를 추진한 지 2년이 지난 만큼 산업정책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기술도입 신고를 신규 진입규제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은 아는 바 없다』고 했다.이는 이달 초 정부가 삼성 승용차를 허용하면서 밝힌 신규투자 자유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발언이다. 박운서 통산부 차관은 12월 초 『정부가 민간자율,세계화를 외치면서 차종별·기업별로 신규 투자를 하라 말라는 것은 문제』라며 『기술도입 신고 자체도 문제이지만,기업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기술내용을 정부가 가타부타 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기술도입 신고 등 기존 수단을 규제차원이 아닌,본래 목적대로 운용하겠다고 다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새 경제팀 출범 이후 불거진 재벌정책 및 산업정책과 관련된 언급들은 그 전과 기조가 분명하게 달라졌다. 이는 삼성의 승용차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삼성에 승용차 사업이 허용되자 재계는 기술도입 신고와 같은 진입장벽이 무너지고,신규 투자가 기업자율에 맡겨지는 게 아니냐는 신호로 이해한 게 사실이다. 업종전문화 시책도 삼성의 승용차 진출로 퇴색됐다.유화업계는 92년부터 시행해 온 투자제한이 내년에 모두 풀릴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정책의 부재라는 비난과 함께 문어발식 기업확장 및 경제력 집중문제가 다시 제기됐다고 볼 수 있다.경제력 집중문제가 경기 활성화에 밀려후퇴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중공업과 한국가스공사의 민영화 방침을 재검토키로 한 것도 재벌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당초 계획대로 민영화가 추진되면 거대 공기업인 한국중공업과 가스공사는 1∼2년 안에 재벌에게 넘어갈 공산이 크다.재계의 판도를 바꿀 두 공기업의 민영화는 가뜩이나 안 좋아진 대재벌 정서에 기름을 붓는 격이어서 연구기간 연장이라는 명분으로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통상산업부 등 산업정책 부서가 요즘 새해 업무계획을 세우면서 고심하고 있다.삼성 승용차를 허용하면서 내세운 논리를 산업정책에 대입할 경우 신규 투자제한이나 유화업종의 투자지침을 모두 없애야 하나,현실적으로는 과잉·중복투자 문제가 따르게 된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정부의 산업정책이 규제완화와 자율화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지만,삼성 승용차로 조성된 투자자유 분위기나 무작정의 규제완화는 곤란하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들이다. 새 경제팀이 재벌정책과 산업정책을 삼성 승용차 문제와 덜 부딪치면서 어떻게 정리할 지관심이다.자칫 신규진입 철폐선언이 「삼성 봐주기」용 명분이었다는 의혹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 JP 퇴진론의 표와 이/최내무 발언이 부른 「공론화」 이후

    ◎“역할 끝났다”↔“필요하다” 평가 갈려/지방선거등 상황 변해야 위상 바뀔듯 최형우 내무장관의 「JP(김종필 민자당대표의 애칭) 퇴진론」이 오랜만에 「정치」를 만들었다.김영삼 대통령의 유감표명으로 외형상 사태는 진정되고 있다.그러나 최장관의 발언은 이미 김종필대표의 의미,역할을 둘러싼 논쟁을 공론화시키고 난 뒤였다. 논쟁은 어떤 결말이 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김대통령의 유감표명도 논쟁을 끝내지는 못한다.논쟁이 끝나려면 두가지 가운데 하나가 필요하다.김대표가 민자당의 가장 강력한 대권후보로 자리매김이 되든지,아니면 당을 떠날때이다.어떤 형식이 되든 정치적 결말이 날 때까지 논쟁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논쟁은 단순하다. JP퇴진론은 시대가 바뀐 만큼 그의 역할도 끝났다는 데서 시작된다.이 전제위에서 최장관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퇴진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내년초 전당대회에서 용퇴하도록 하고 당을 실세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JP의 역할이 끝나지 않았다는 주장도 만만치않다.이 주장은 길게는 다음 총선까지 당의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또 김대통령의 통치권누수현상의 방지를 위해 김대표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이들은 현실적으로 김대중 아시아·태평양재단이사장이 다음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때 그에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김대표 뿐일 것이라고 사고를 연장한다. 이들 논쟁의 사이에는 계파간의 이해가 개재돼 있다.이야기하는 사람의 직접적인 정치적 이해도 깔려 있다.이를테면 김대표만이 김이사장을 대적할 수 있다는 주장에 역할이 소진됐다고 믿는 사람들은 『김대표의 퇴진이 김이사장의 출마를 막는 방법』이라고 전혀 다른 방향의 논리를 내세운다. JP본인은 최근 그의 퇴진론이 제기되자 『지방자치제선거까지는 물러나려 해도 형편이 못된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충청도 정서등을 들어 퇴진론의 예봉을 피하려는 것이다.그는 지방선거가 끝나면 총선까지의 역할을 새로이 강조할 것이다.모든 정치인의 머리에는 「대권」의 꿈이 있다.상황에 따라 이를 분장할 뿐이다.김대표 역시 핍박 속에서도 언젠가 올지도 모를 기회를 위해기다리는 것이다.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실제로 김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의중이 없을수도 있고,의중보다 상황의 전개가 더 중요한 탓이다.김대통령 역시 JP만큼이나,기대방향은 다르지만 상황의 변화를 체크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상황의 변화가 JP의 위상변화를 부르게 된다.새정부 출범후 아직은 뚜렷한 정치상황의 변화가 없다.그 첫 정치상황의 변수가 내년 지자제 선거다.이런 점을 들어 JP의 내년 초 전당대회 조기퇴진은 잘못 짚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JP는 「표」가 적다.때문에 언제나 흔들린다.김대중이사장 같은 튼튼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3당 합당후의 「김영삼대표」처럼 정국을 뒤흔들 수준의 국회의원이나,위력적인 유권자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그에게는 두가지의 정치적 무기가 있다. 그 하나는 그가 제3공화국이래 여권·보수세력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김대통령의 어떤 판단에는 이런 점이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는 그가 끝을 화려하게 만들줄 아는 정치인이란 점이다.그는 그의 정치역정에서 취임 때보다 퇴임 때 더 큰 파문을 만들어 왔다.이는 눈에 보이는 파괴력이다.그는 사표를 내는 효과를 극대화 하고,이를 다음 재기의 발판으로 깔아 놓곤 했다. 관측통들은 JP가 국회가 끝나면 목소리를 낼 것으로 이야기한다.그는 조직의 질서를 존중하기 때문에 큰일이 많은 국회회기 동안에는 신상문제로 잡음을 내 「충성스럽지 못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가 목소리를 내면 다시 논쟁은 격렬해진다. ◎민자 「JP퇴진론」 발빠른 진화/“전당대회 관련 벙긋도 말라” 함구령/최내무,“김대표 퇴진 주장은 와전” 해명 민자당의 문정수 사무총장은 14일 『전당대회와 관련해서는 누구도 입도 뻥긋말라』고 「엄명」을 내렸다.스스로도 전당대회 때까지는 이 사안을 놓고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절대로 않겠다고 선언했다.김종필대표의 거취문제와 이어지는 내년 전당대회에서의 지도체제 개편론이 제기되면서 또 다시 두드러져 나온 계파간의 갈등이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온통벌집을 들쑤셔놓은 듯한 이번 파문은 김영삼대통령의 조기진화를 위한 질책을 계기로 일단 물밑으로 가라앉게 됐다.그럼에도 JP(김대표의 애칭)문제는 민자당의 역학구도상 터질 시기만 남은 「시한폭탄의 뇌관」이라는 점에서 위기의식은 점차 높아져 가고 있다.이날 당무회의가 시종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고,끝난 뒤에도 당무위원들이 여기저기 모여 당이 돌아가는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이러한 배경을 깔고 있다. 이때문에 민자당,특히 그 책임의 일단이 있는 민주계 인사들은 이 「뇌관」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김대표의 불편해진 심기를 달래고 어수선해진 당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일에 착수했다.문총장은 이날 상오 11시쯤 김대표를 따로 찾아가 유감과 사과의 뜻을 전했다.이번 파문의 주인공인 최형우 내무부장관도 이날 아침 40분 남짓 자기말이 「김대표의 일선퇴진」주장으로 번진 것에 대해 「와전」됐다고 해명했다.서청원 정무장관 또한 『집권여당에서 대표나 부총재직의 경선은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문사무총장은 『당 대표를바꾸는 문제는 대통령만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아랫사람」의 소관이 아님을 상기시키면서 최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함을 지적했다.강삼재기조실장은 『김대표를 경질하면 또 다시 토사구팽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라면서 『더욱이 대표를 헌신짝처럼 버려서는 어떻게 지자제선거를 치른다는 말이냐』고 충청권의 민심이반을 걱정했다.박범진대변인은 이날 고위당직자 회의의 결과에 대해 『전당대회는 3당합당 정신을 존중하는 쪽으로 당의 활성화를 모색하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JP측은 민주계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김대표가 측근들에게 경위를 알아보도록 지시했으며,문총장에게도 이를 다시 확인하는등 민첩하게 대처하고 있는 움직임이 이같은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JP를 믿고 있는 몇몇 공화계 인사들도 민주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이종근·구자춘·김동근·김영광의원등과 최재구고문·강현욱당무위원등은 이날 상오 김대표 집무실을 찾았으며 공화당 출신 지구당위원장들이 상경하는등 민감한 반응이다.김동근·구자춘의원은 『경선은 지금의 계파싸움을 더욱 부추길 뿐』이라고 부총재 경선론을 일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JP의 뜻대로 되더라도 잠복기에 접어든 지도체제 개편론이 내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른 모습으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판에 박힌 「직업체제」 무너진다(현장 세계경제)

    ◎19C초 집약노동위해 「직장」 등장/복잡 다양한 현대엔 한계점에/경직된 근무형태·위계질서 탈피 “새바람” 어느날 졸지에 직장에서 쫓겨나는 「실직」에 대한 불안이 우리들 모두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다.그러나 세계적 경제잡지 포천은 최근호에서 「정작 우리가 지금 눈을 뜨고 대비해야 되는 것은 직업 그자체의 소멸 현상」이라는 색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직업」은 태고적부터 있어왔던 인간의 노동을 근대적으로 조직화하면서 보편화됐으나 이제 유용성을 다해 사회적 골동품에 가깝다.직업의 종언은 세계 모든 사람들을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빠뜨릴 터이나 동시에 광활한 기회의 땅으로 안내할 것이다. 날마다 경영혁신에 의한 감원 뉴스가귓전을 때린다.2000년 쯤에는 모든사람들이 1주일에 30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활동으로 즐겁게 보내리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건만 2000년을 눈앞에 두고 보니 그때엔 우리들중 절반은 주당 60시간의 격무에 시달리고 나머지 절반은 실직자 신세일 것으로 점쳐지는 형편이다.무엇이잘못된 탓일까. ○사회적 골동품 전락 정부나 지도층 인사들이 우리 일반 근로자들에 대해 무관심한 탓도 아니다.우리들에게 일방적인 충성을 강요해 우리들의 노력 덕분으로 성장했던 직장 조직이 어느날 우리들의 뒷덜미를 강타한 탓도 아니다.모든 문제을 일으킨 원흉으로 괴물시되어온 다른 나라들의 경쟁력도 아니다.우리가 직시해야 되는 현실은 이 보다 훨씬 괴기스럽다.왜냐하면 사라지는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니라 직업 그자체이기 때문이다. 마치 생물학적으로 할당된 시간대를 다 소진해 버린 생물종처럼 지금 직업이 소멸되고 있다.세계는 창조성과 생산성에서 바야흐로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직업은 미래 경제현장에서 한줌의 땅도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과거,현재와 마찬가지로 해야할 일거리는 미래에도 수북이 쌓여 있을 것이나 이 일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직업이란 방식으로 처리·해결되지 않게 된다.사실 상당수의 많은 조직체들이 이미 탈직업의 길을 걷고 있다.우리가 망각하고 잘못 길들여져서 그렇지 직업은 결코 인류의 천연적 상황이 아닌 사회적 인공물에 지나지 않는다. ○조직재편은 미봉책 직업은 19세기초 산업화 도정의 국가에서 필요한 일거리들을 일괄화(패키지)하면서 태어난 근대의 산물이다.인류는 직업을 갖기 전에도 지금처럼 열심히 일했지만 붙잡고있는 일거리 종류나 일하는 장소나 시간시간의 일정 등이 지금과는 딴판으로 유동적이었었다.지금은 세계인 모두가 인이 박혀있지만 근대의 직업은 출현 당시 깜짝 놀라도록 새로운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의 세계가 다시 변하고 있다.2백년전 직업을 창조했던 부대조건들인 대량생산과 대조직이 사라져 간다.오늘날의 조직체는 무수한 직업들이 벌집처럼 묶여있던 형태에서 벗어나고 있다.단위 직업들로 축조된 구조물에서 해야될 일거리들이 구획된 들판으로 바꿔간다. 현재도 직업은 이 「일」들판 위에 겹쳐세운 인공물인데 어느 일이든 현재의 틀대로라면 기존 직업 단위군에다 이들 사이를 조정하는 새 직업군을 첨가하게 된다.경제가 아주 느린 속도로 변할 땐 이 직업 틀과 일,들판 간의 괴리는무시할 정도로 미미하다.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경제에선 일들이 제기하는 다양한 문제를 순간순간 해결하기에는 「직업」틀은 너무 경직돼 있다. 목적인 일의 완수와 수단인 직업 체제 간의 이같은 단층현상이 심해지자 조직체는 직업수를 줄이는 감원과 대대적인 조직재편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사태의 본질을 읽지못한 단방처치에 불과하다.87년부터 92년까지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대량감원을 실시했던 미국 기업중 노동비용의 절감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이 호전된 곳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개인 자율성 극대화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현재의 직업체제를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탈직업 체제의 「직업이후」 시대에도 일과 조직체는 물론 고용현상도 상존하지만 피고용자의 마음가짐이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사업체로 여기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복잡한 위계질서는 발을 붙일 여지가 없다.마이크로소프트사나 인텔사에서 직업이후시대의 피고용자 상을 얼추 그려볼 수 있다.이 조직체들은 직업(JOB)이 아니라 특정한 일거리(프로젝트)를 건축석재로 삼고있다.이런 조직에 고용되면 특정 프로젝트 팀에 배치되는데 소속 팀이 고정되지 않고 변하며 그와함께 책임과 임무가 달라진다.또 대부분 한 팀에만 붙박혀 있지 않고 서너개 프로젝트팀에 동시에 참가,근무일정·구성원·임무·복무장소가 제각각 다름에 따라 위계질서가 자연스레 필요없게 돼 「윗사람이 아닌 서로에게 보고하는」 풍토가 조성되는 것이다. ◎포천지 「탈직업시대」 맞아 이색주장/버려야 될 직업신화 7가지/“40세이후 전직 말라” “인기직종이 안정된 미래”/“출세하려면 세일즈맨 되라” 등 선입관 타파를 2백여년 역사의 근대적 「직업」이 곧 종말을 고하리라고 예언한 포춘지는 탈직업시대를 맞아 현재의 직업인들이 과감하게 깨뜨려 버려야할 「직업에 관한 7개의 신화」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신화1=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면 현재의 직장을 그만둬서는 안된다. 다른 일자리를 희소하게 하는 요인이 실은 현재의 일자리를 임시방편으로 여기게 하는 그 요인이다.그런데 그 요인 역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신화2=최상의 일자리는 최상의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들 몫이다. 물론 이말은 절반만 진실이다.그것은 자격요건 일반에 대한 개념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예전의 자격요건에는 학위나 공식적인 자격증,유사직장에서의 경력기간및 추천서들이 포함돼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이같은 요건들이 허풍아니면 꽁무니를 빼는 상투어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자격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욕망,그일이 요구하는 바를 할 수 있는 능력,적성및 다양한 재능 등이다. ▲신화3=시의에 알맞은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이 곧 안정된 미래를 보장한다. 이조언 또한 경제의 제분야가 팽창하고 탈직업화에서 제외되는 분야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결코 현명한 짓이 못된다.「졸업」이란 영화에서 더스틴 호프만은 성형외과업을 가질 것을 권고받았지만 오늘날에는 컴퓨터나 생물공학이 권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신화4=40세가 넘어서는 감히 전직하려 하지말라. 현재의 직업 세계가 분명 연령차별이 일반적이지만 이 직업세계를 우리는 곧 벗어날 것이다.탈직업시대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얼마만큼 가치 있는가에 따라 보수가 정확히 주어진다.의료보험이나 퇴직적립금 등에 대한 회사들의 부담이 지금보다 훨씬 약화돼 구직시 나이가 큰 요인은 못된다. ▲신화5=중요한 것은 우리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이다. 현재도 IBM이나 교육부등 영향력과 재원을 많이 가진측이 우리들에게 원하는 바에 우리의 욕구를 길들이고 순응시키는 때 「성숙하다」는 칭찬을 듣고있다.그러나 갈수록 더 우리가 순응해야는 되는「그들」은 조직체가 아니라 고객으로 바뀌고 있다. ▲신화6=오늘날 출세하려면 세일즈맨이 될 필요가 있다. 역시 절반의 진실에 불과한 말이다.어느 물건이나 팔 수 있었던 옛날식 세일즈맨들은 요즘 다른 직업인 만큼이나 불안한 상태다.이제는 그 자신이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는 상품을 가진 새타입이 필요한 때다.새 유형의 직업인은 옛날식 세일즈에 대한 경험이나 관심이 없어도 어떤 거래도 성사시킨다. ▲신화7=어떤 책임을 지고있는 자리에 있다면쉽게 사표를 던지지 못한다. 이 규칙은 위험을 잘못 인지하고 있다.진실로 책임이 있다면 미리 내다보고 항구적인 경력을 키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한때 좋은 일자리 그자체였던 책임있는 위치는 이제 반대로 위험한 자리가 됐고 반면 한때 불안한 프리랜스라는 활동이 이제 각광을 받고 있다.
  • 꿀벌/춤과 소리로 의사소통

    ◎미서 로봇 실험… 먹이­위험물 발견땐 신호보내/주파수 높낮이로 식별… 먹이 접근땐 격렬한 춤 즐겁게 춤을 춤으로써 의사를 전달하는 동물은? 정답은 제비가 아니라 꿀벌이다. 꿀벌은 윙윙거리며 꽃주위를 그냥 날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꿀이 있는 위치,주변의 위험물 등을 정확한 「스텝」을 밟음으로써 동료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최근호는 꿀벌들의 이러한 하이테크 춤사위가 어떻게 정보를 전달하는 지에 대한 해석을 싣고 있다. 꿀벌의 춤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은 지난 40년대 독일 뮌헨대학의 카를 폰 프리시교수에 의해서 처음 알려졌다.그후로 60년대에 들어와서 꿀벌의 의사소통이 움직임뿐만이 아니라 윙윙거리는 소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구는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그전까지 과학자들은 벌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꿀벌이 춤과 소리의 절묘한 배합에 의해 의사를 소통한다는 이론은 현대의 첨단과학에 의해 한층 더 확실해졌다.미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볼프강키르히너교수팀은 꿀벌과 똑같은 움직임과 소리를 내는 로봇을 만들어 실험을 했다.그 결과 꿀벌이 그 로봇에 다른 벌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실을 알아냈다.다음 문제는 꿀벌의 춤의 어느 부분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고빗사위가 되는가이다. 일단 한마리의 꿀벌이 먹이에 접근하면 아주 낮은 주파수를 가진 소리를 발산한다.그러면 같은 벌집에 사는 벌들이 그 소리를 감지해 우르르 몰려오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꿀벌이 먹이에 접근하면 할수록 더 격렬하고 빠르게 춤을 춘다는 사실이다.이런 움직임과 이로 인한 소리를 감지하는 부분은 꿀벌의 안테나 안쪽에 위치한 「잔스턴 조직」이라는 부분이다.이 조직은 양방향으로 되어 있어 좌우에서 오는 소리를 스테레오로 들을 수 있다. 이렇게 꿀벌들은 좌우에 도달하는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진 소리를 분석,먹이를 발견한 꿀벌이 어디에 있는 지,먹이는 어떤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일단 이런 신호를 받은 뒤에 쫓아오는 꿀벌들은 날개를 파닥거려 멈추라는 회신을 보낸다.이런 식으로 앞서가던 벌과 뒤에 남은 무리가 만나 먹이를 향해 돌진하게 된다. 키르히너박사는 『이런 연구가 계속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꿀벌뿐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의 의사소통방법이 규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투자자 집단항의… 러 전국이 “벌집”/「MMM」사 파산의 파장

    ◎주가 15만루블짜리가 사흘새 9백루블로 대폭락/일확천금이 재앙으로… 시장경제도입 값비싼 대가 러시아가 시장경제 개혁시험을 시작한 이래 최대의 금융사고가 발생해 연일 러시아 전국이 들끓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6일 러시아 최대 투자금융회사인 MMM(창업주인 Mavrodi 3형제의 성을 딴 것)사가 주식시장에서 자사주식의 거래를 중지시키면서 시작,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왔다.이 회사의 주식보유자수는 자그만치 1천만명에 달한다.곧이어 주가가 떨어지면서 25일까지 15만루블(약 75달러)에 거래되던 MMM의 주식은 불과 3일만인 28일 9백50루블(50센트)로 급락했다. 정부에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주가가 계속 급락하자 성난 투자자 수만명이 연일 MMM본사와 모스크바시내 지점들에 몰려가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시내 바르샴스카야가에 있는 MMM본사 주변은 지하철역 주변,전화부스,도로변을 이들이 완전 점령,아수라장을 연출했다.회사대표인 세르게이 마브로디회장은 지난 29일 투자자들 앞에 나와 결국 『회사로선 더이상 손쓸 여력이없다』며 사실상 파산선고를 했다. 그러면서 그는 29일자를 기해 주식거래는 일단 정상화한다고 밝혔다.매매가액은 1천루블.불과 수일전 15만루블이던 주가가 1천루블로 떨어진 것이다.MMM사측의 이같은 결정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엔 현재 『파산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부류와 『투자자들이 외면하지 않는다면 재기할 수 있다』는 부류로 전망이 나누어져 있다. MMM사의 성공은 자본주의의 초입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러시아 보통사람들 사이엔 바로 전설같은 이야기였다.이 회사는 금년 1월초에 설립돼 주가예고제와 인기탤런트를 출연시킨 호화 TV광고 덕분에 불과 반년만에 러시아내 최대 투자회사로 자리를 잡았다.수개월만에 매매가격이 2천6백% 올랐고 MMM 주식은 곧 「일확천금」의 대명사가 됐다. 갑자기 자사주식에 대해 매매중지를 시킨 MMM사측의 처사에는 의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그러나 현재 러시아정부는 이런 금융회사들을 관리·규제할 법적 뒷받침이 돼 있지 못하다.러시아당국은 지난 3월부터 MMM사가 장외주식거래를 하는 사실을 적발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1천만명의 피해자가 생긴 사건인데도 아직 수사도 시작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결말지어질지는 두고볼 일이다.하지만 러시아국민들은 일확천금이 하루아침에 재앙으로 바뀔 수도 있고 또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던 시절은 분명 지났다는 값비싼 교훈 하나를 또 얻었을 것같다.
  • 조선왕조때도 없던 일이…/「울음바다 평양」을 보며/이문구

    북녘 김형에게 계속되는 불볕 더위에다 북한 주민들의 딱한 모습까지 겹친 요즈음 얼마나 답답하십니까.하지만 저도 답답한 심정을 이기지 못하여 붓을 들었으니 양해 해 주시기 바랍니다. 따지고 보면 김일성의 사망이야 말로 그리 뜻밖의 일도 놀라운 일도 아닐 뿐 아니라 아쉽고 섭섭한 일도 아니었습니다.살만큼 살다가 갈 때가 되어서 간것 뿐이니까요.더욱이 향년 여든둘은 누가 뭐래도 호상이 아닐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물론 이쪽에서도 그의 죽음에 일말의 아쉬움을 느낀 사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요.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처럼 합의를 봤던 남북 정상회담이 무산된 데에 대한 아쉬움,다시 말하면 「죽으려면 일찌감치 죽든지 아니면 좀더 있다가 정상회담이나 하고 죽든지」했어야 옳다는 평론적인 여운이 흐른 것 뿐이었고,지상의 약속보다 지하의 예약에 따라 영결종천 할 수 밖에 없었던 인생의 한계 내지 일종의 자연현상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쪽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저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느닷없이 왠 기미년(1919년)고종황제의 인산장면이 다나오나 하고 착각을 했었습니다.흰저고리와 검정치마가 그렇고 남녀노소 없이 땅바닥에 부복하여 호천고지하는 호곡이 그러했습니다.그렇지만 그것은 소년소녀의 붉은 목도리와 그네들 앞에 버티고 선 것이 대한문이 아닌 높이 36m짜리 황금칠을 한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 동상이었기에 역사책에서 본 제국시대의 흑백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 수가 있었습니다.한결같이 체통도 없이 인사불성이 되어 가슴을 쥐어뜯거나 이마를 땅에 짓찧어가며 몸부림치고 울부짖는 꼴도 또한 황제의 인산에 없는 장면이었습니다.따라서 저 사람들도 과연 김씨 이씨 박씨 정씨 최씨 등 2백49성의 하나로 이쪽 사람들과 똑 같이 김치하고 밥먹는 한 동포란 말인가 하고 의심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그들의 본적지가 모두 김일성과 같이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의 만경대라고 하더라도 그토록이나 낯선 몰골로 일사불란하게 발작하여 실성할 수가 있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우리에 갇혀살면서 「당신이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주체성 없는」구호가 입에 발리도록 주체사상 교육으로 세뇌당한 49년 세월을 접어 생각하면 이해를 못할 바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주체사상 교육의 본질이 저마다 타고난 주체성을 제거하고 객체성으로 대체해 우상에 대한 종속물로 처리함과 아울러 집단적인 성형수술을 겸행하여 얼굴없는 인간으로 개조함에 있었으니,오늘날의 집단적인 히스테리야말로 주체사상 교육의 성공적인 결과라고 할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당신만 있으면 우리도 이긴다」고 받들어온 김정일의 재산상속을 기정사실화 하고 「슬픔을 힘으로 바꾸어 또다른 한 분의 탁월한 수령으로 오늘의 비통을 용기로 바꾸자」는 구호를 제창하게 된 것도 주체사상 교육을 가장한 「객체사상 교육」의 성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쪽도 갑자기 초상난 집에 상주가 어리석거나 줏대가 없으면 으레 집안싸움이 일어나기 십상입니다.하물며 그쪽에서 졸지에 신을 잃은 사람들의 허망과 허탈감인즉 오죽하겠습니까.쑤셔놓은 벌집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짐짓 꿀벌의사회를 생각해 봅니다.꿀법이 새 여왕벌의 등장과 함께 분봉할 때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습니다.외부의 자극을 받아 흥분하면 주인도 못 알아보고 덤비는 것이 꿀벌의 자기방어 본능입니다.그러나 일부러 자극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 여왕벌을 비롯하여 수벌과 일벌도 조용히 제 일에 매달리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구태여 고종황제 인산 때의 조문객이 만세운동으로 돌아섰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동해와 서해에 새로운 「보트 피플」의 출현도 바라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분봉이 안정되면 꿀을 물어나르듯이 그쪽 나름의 개방과 개혁을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 새는 다시 오는데…/김정(일요일 아침에)

    어설펐던 70년대 어설프게 서울이라는데서 살림을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으레 겪기 마련이듯이 정붙이고 살 집을 찾을때까지 꽤 여러번 이사를 했다.이사의 횟수가 두자리수로 넘어갈 때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살 집을 찾던끝에 북한산 자락에 집을 정한게 80년대 끄트머리였다.집 자체 보다는 바라보기 좋은 산이 앞에 있어 굳이 택했던 집터가 알고보니 바로 공사장의 코앞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도시계획에 들어있었던 걸 전혀 모르고 산자락의 녹음과 새소리를 온통 내것 인줄 알고 지낸게 불과 3년이었다.그제서야 황황히 집을 팔고 떠난 사람의 미심쩍은 표정이며 내 분수에 과분하다 싶은 자연의 혜택이며가 다시 짚어 보아졌다. 이미 글렀다는 생각을 한자락 깔고서도 동사무소로,구청으로 도시계획의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러 쫓아다녔다.그러나 아무도 정확한 내용은 일러주지 않고 계획단계일 뿐이라고 발뺌들을 했다.큰산을 가로질러 고가도로를 만들거라는 소문이 있는가하면 집앞 바로 2∼3m에서 길이 날거라는둥 소문은 무성한데 확실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그런 중에도 단지안의 주민들 태도는 두갈래였다. 나라에서 한다고 하면 당하는 수밖에 없다는 체념파와 설마 이런 큰 산을 헐어내고 그런 짓을 하겠느냐는 회의파가 그것이었다.그러나 그 두갈래 태도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치하는 점 하나는 자신들이 나서서 어째보지는 않고 누가 나서면 뒤는 따라가는 시늉을 하겠다는 것이었다.난생 처음 탄원서라는 걸 써서 구청으로,건설본부로,심지어는 무섭다는 청와대까지 보내 보았다.답장은 한결 같았다.아직 확실한 계획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흐지부지 1년여가 지나는동안 아직 오지않은 일을 걱정하여 이미 주어진 것을 잃을 이유은 없다는 신통(?)한 생각을 해내고 주어진 것만이라도 적극적으로 누리기로 작정하였다.드물긴 해도 꿩도 날아오고 이름모르는 노란새 까만새들도 내려앉는 빈터에 빵부스러기나 잡곡들을 뿌려주면서도 작정했던대로 즐겨지지는 않고 슬며시 부아가 치미는 건 어쩔수가 없었다.이 새들은 다 어디로 가며 저 나무들은 다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조바심에약을 쳐 주느라고 거랬는지 그해에는 생전 본 적도 없는 벌떼들이 베란다 끝 바깥벽에 커다란 벌집까지 지어 놓았다.빨랫대에 흰 빨래를 탁탁 털어 널 수 있어 좋고,볕바른데 장독대를 내놓을 수 있어 좋고,비가 오면 산냄새가 나서 좋고 눈오면 나무 꼭대기의 눈이 좋다고 은근히 뽐내며 살던데 대한 벌이라도 내린건가?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의 어느날,단 하룻밤 사이에 소문도 없이 산위의 소나무들은 난데없이 뽑히고 불도저 소리가 요란했다.그제서야 여기저기 하소연한들 가는 정권은 가서 모르고 오는 정권은 새로 와서 모른다는 식이 되고 말았다. 우선 무엇보다도 끔찍한 일은 그렇게 푸르고 다정한 산의 이마를 함지박 파내듯 들어낸다는 사실이었다.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한 도로확보라는 화급한 명분에 밀려 몇백년이 걸려도 생겨나지 않을 산 하나를 숟가락으로 수박 속 파내듯 통째로 파내 버리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그후로 2년여동안 계속된 폭파와 굴착으로 새들은 모두 집을 잃고 정수리가 허옇게 드러난 산은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먼지만 날려 보냈다.장독 뚜껑도 열어놓지 못하고 빨래도 탁탁 털어 널지 못한건 고사하고 방안에 앉아서도 지진이 난것마냥 흔들어대는 폭파음에 놀라는 것도 지칠 무렵인 올봄부터 신기하게도 새들이 다시 오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산 깨부수기는 대충 끝난 모양이었다.터진 이마빼기 사이사이로 나무들도 무너진 모습으로나마 푸른 잎을 내보내고 그 푸른 잎위에 작은 새가 내려 앉기도 하는 것이었다.2층의 할머니는 기다렸다는듯이 빈터에 인분을 듬뿍 묻고 호박을 심고 간장독·된장독 뚜껑을 열심히 열어놓고 있었다.한꺼번에 무너진 자연앞에서 놀란 가슴으로 날아갔던 새들이 조금씩 돌아와 주는 것이 대견하고 반가워 틈날때마다 나무꼭대기를 올려다 보며 중얼거린다. 『작은새야 고맙다.어디론가 가버릴 생각말고 어서 내려 앉아봐.그러나 어쩌랴? 핵무기가 어쩐다면서,전쟁이 날거라면서,사재기를 해샀는다는 이런 인간들 앞으로 다시 와 달라는 부탁이 염치없이 들리겠지만 올수만 있다면 가끔 나무끝에 앉아주렴』
  • 홍등가:하(서울 6백년 만상:31)

    ◎퇴폐 극성… 10대매춘 사회문제로/미아리·천호동일대 텍사스촌 유명/30∼50대여인 시중 「과부촌」도 등장 서울의 홍등가에는 서비스산업이 다양하게 발전되기 시작한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종래의 창녀와는 다른 「겸업」과 「프리」창녀가 등장했다.호스티스·마사지걸·안마사·면도사등이 당시 생겨난 새로운 직종으로 종사자수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크게 늘었다. 이들 환락업소들은 한결같이 시설은 고급화하면서 내용은 퇴폐로 줄달음쳐 몸을 파는 여성들을 양산했다. 청량리「588」,서울역·영등포역·「종 땡땡」(종삼)주변등 사창가의 매춘부도 기존 포주에 고용돼 있는 윤락녀와 독립해서 영업을 하는 「프리」(프리랜서에서 따온 말)로 나뉜다.이 둘은 모두 「벌집」이라 불리는 방을 얻어 호객행위를 했다.「프리」가 되면 5∼6명이 돈을 갹출,벌집의 방을 2∼3개 빌려 장사를 할 수도 있다.반면 방을 얻지 않고 사창가 주변을 서성대며 남자를 유혹,인근 여인숙으로 유인해 영업하는 「개인택시」들도 있었다. 여관에서도 매춘은 성업중이었다.손님이 요구하면 조바는 「보도집」이나 「밥집」에 전화를 걸어 속칭 여관발이(콜걸)를 불러준다.서울의 봉천동이나 회현동·장안동의 여관촌들은 매춘영업이 본업인 경우가 많았다.이런 여관들은 물침대에 회전침대를 비치해 놓았는가 하면 침대위에 대형거울을 걸어 놓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미아리 텍사스촌이나 천호동「423」,청계천·대지극장 뒷골목의 술집등에선 「즉빵」 혹은 「즉석불고기」라는 이름의 매춘행위가 술집내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90년대에 들어 서울 홍등가의 「퇴폐 메뉴」는 끝없이 개발·확산된다. 「과부클럽」「과부촌」이란 상호의 술집이 속속 등장했다.주변에 뿌려지는 안내문은 「미인과부 ○○명,독신녀 ○○명,이혼녀 ○○명,팁 절대사절」이란 문구아래 친절하게도 약도까지 그려놓고 있다.이런 술집에서는 30∼50대의 꽃뱀들이 술시중을 들어주며 노골적으로 외박을 나가자고 유혹한다. 향락업소의 급격한 번창은 10대의 매춘이라는 중병을 앓게 한다.「10대는 그랜저,20대는 르망」.10대를 고용한 포주는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20대를 고용하면 르망밖에 타지 못한다는 얘기다. 업소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젊고 예쁜 아가씨를 고용하다보니 생긴 현상이다.10대 매춘이 성행하면서 18세이상 「영계」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풋살구」로 불리는 17세 미만이라야 대접받는 요지경 세상이 됐다. 이들 미성년자 매춘은 무허가 변태업소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미아리 대지극장 뒷골목의 술집과 천호동 423일대 화양동등지가 「영계촌」으로 유명하며 회현동·신설동에도 10대 소녀들이 많다. 이처럼 정도이래 서울의 풍류와 향락의 변천사는 미성년자 인신매매까지 나돌며 성병 확산,범죄의 증가등으로 격세지감을 느낄만큼 어두운 얼굴을 갖고 있다.
  • 개천∼순천 철도 39㎞ 전철화 매듭(북한 이모저모)

    ◎“조선후기 「위정변유론」에 긍정적인 평가/나뭇잎 발효 메탄가스 생산법 개발 “자랑” ○모종법 「영양알모」 보급 ○…북한은 최근 냉습한 토양에서도 잘자라는 새로운 벼모종 재배 방법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고 조선신보 최근호가 보도. 「영양알모」라고 불리는 이 방법은 벌집처럼 생긴 수지판의 각 구멍마다 영양흙을 3분의2정도 채우고 싹틔운 볍씨를 넣고 흙을 채워 기른후 모잎이 4개 이상 자랄때 뿌리에 영양흙이 달린 채로 모를 낸다는 것. 이 방법은 수지층이 보온역할을 함으로써 씨앗이 땅속의 냉기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적절한 수분과 양분이 유지돼 모가 튼튼하면서도 빨리 자라는 장점이 있어 4월초에 씨를 뿌려도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이 신문은 소개. ○가중된 수송난 타개 위해 ○…북한은 수송물량의 86%를 철도에 의존하고 있음을 감안,철도전기화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은 올해들어 지난 2월 평남 덕천시 철기산∼형봉,관평∼회둔간을 전철화 한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평남 개천∼순천간(39㎞)전철화를 완공. 북한이 수송량의대부분을 철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험준한 지형조건과 동·서해의 분리로 도로 및 해운 수송망이 극히 취약하기 때문. 북한철도는 총연장 가운데 98%가 단선인데 심각한 전력난으로 인한 잦은 정전과 전압강하로 운행중단 및 지연사례가 빈발하여 수송난을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라고. ○연변 「평양도서관」 개설 ○…북한과 중국의 연변조선족자치주 합작으로 연변도서관안에 「평양도서관」이 최근 개설됐다고 연변방송이 최근 보도. 북한의 도서·출판물을 집중 소개하게 될 「평양도서관」은 북한의 출판물교류협회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도서관협회가 합작,개설한 것으로 북한측은 이 도서관에 정치 경제 문학예술분야를 망라한 2천여종 1만여권의 북한도서를 제공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당기관지 노동신문 보도 ○…북한은 최근 나뭇잎이나 풀을 이용해 메탄가스를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실용화 했다고 당기관지 노동신문 최근호가 소개. 이 신문에 따르면 국가과학원 열공학연구소와 한 종축장의 기술진들이 함께 연구 개발한 이방법은 발효탱크안에 적당한 수분을 함유한 나뭇잎이나 풀과 같은 유기물질을 가축배설물이나 소헉회등과 함께 넣고 발효시켜 가스를 생산한다는 것. ○“민족자주고취 이바지” ○…북한은 조선 후기 주자학을 「정학」으로 삼고 천주교를 배척한 위정척사론에 대해 『민족자주정신과 반침략애국 정신을 높여주었다』면서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평양에서 발간되는 철학잡지 「철학연구」는 최근호에서 인민대중의 자주적 요구와 이익을 옹호하고 그 실현에 긍정적 역할을 한 사상은 진보적이며,그와 배치되는 부정적 역할을 한 사상은 반동적이라고 규정하면서 위정척사론의 「진보성」을 주장.
  • 북,핵시설 이전중/지하통로 통해 은폐의혹/북경 핵전문가 주장

    【북경 AFP 연합】 북한은 현재 핵관련 의혹시설들을 해체해 평양주위에 벌집처럼 연결된 지하통로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북경의 핵전문가들이 25일 주장했다. 이들 전문가들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측의 적극적 역할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영삼대통령의 방중을 하루 앞두고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이곳 소식통들은 김대통령이 닷새동안의 중국 방문중 한국의 경제력을 이용,중국이 북한핵문제 해결에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하도록 유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국이 이문제에 대한 입장을 당장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영 인디펜던트지의 몰락/서정아 국제1부기자(오늘의 눈)

    「독립성」이란 전세계 언론인의 이상을 성공적으로 「실험」해오고 있는것으로 평가되던 영국의 인디펜던트지가 창간 8년만에 그 신화의 막을 내리고 언론재벌에 합병돼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이클 헤젤타인 무역·산업장관이 18일 데일리 미러지를 발간하는 미러그룹 주도의 컨소시엄에 인디펜던트를 합병토록 결정했다고 발표,영국 언론계가 벌집을 쑤셔놓은듯 들끓고 있다.전국지 20개 가운데 10개가 데이비드 몽고메리 미러그룹 회장,루퍼트 머독 더 타임스지 사장 두사람 소유가 되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인디펜던트의 몰락과정은 신문산업에 불어닥친 자본의 바람,이를 바탕으로 한 신문사간 이전투구식 과당경쟁 등 오늘의 언론계가 처한 위기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86년 10월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중견 기자 3명이 30개 회사로부터 공동출자를 받아 「편집,재정,운영의 독립」을 내걸고 설립한 인디펜던트.관급기사를 줄이고 발로 뛰어 쓴 기사를 중시한 인디펜던트는 빠른 속도로 20∼40대 지식인층을 파고들었다.「한번도 새로운 고급신문이 성공한 예가 없다」는 1백30년 영국 언론사의 금기를 깨고 창간 2년만에 발행부수에 있어 기성 고급지들과 같은 대열에 올랐고 92년에는 타임스를 앞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기적의 신문」 인디펜던트는 93년들어 급격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전후 최악이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일요판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를 발행한 것이 실수였다. 총자본액의 10%가 넘는 빚을 얻어 만든 일요판은 처음 몇개월간 반짝 인기를 누렸으나 1년이 못돼 부수가 급격히 떨어졌다.또 휴일없는 격무에 시달린 사원들의 사기 저하로 신문의 질도 떨어지게 됐다. 여기에 더 타임스가 막강한 재정을 무기로 평일판의 가격을 45펜스에서 30펜스로 내리는 지가전쟁을 선포하자 인디펜던트의 어려움은 더욱 심각해졌다. 인디펜던트는 고급신문,독립신문이란 차별화를 고집하며 구독료를 오히려 올려 받는 모험을 감행했으나 불경기에 시달린 때문인지 독자들은 끝내 인디펜던트와 그 이상을 외면했다. 이같은 인디펜던트의 실패가 자칫 신문의 질이 돈의힘을 이길수는 없는일이라는 징크스로 굳어질까 세계 언론인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 남북특사교환접촉 완전 결렬/정부,새달 대북 유엔제재 추진

    ◎“대화재개 가능성 없다” 판단/금명 통일전략회의/대북정책 전면 재검토/북,판문점대좌서 일방 퇴장 정부는 남북한특사교환을 위한 19일의 제8차 판문점실무접촉이 완전 결렬됨에 따라 빠르면 4월말쯤 유엔안보리에서 1단계로 경제제재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추진하는등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이끌어내는 일에 착수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금명간 통일관계전략회의를 열어 유화책과 설득중심의 대북정책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면재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핵문제등을 논의할 북한과의 대화창구는 계속 열어놓을 방침이다. 이날 판문점실무접촉이 결렬된뒤 이영덕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대북성명을 발표,『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에 불성실하게 임했을 뿐아니라 핵문제해결을 위한 남북특사교환마저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심각한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정부는 앞으로 북한핵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 협조를 긴밀히 하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부총리는 『북한이 대화를결렬시킨 것은 그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며 그 어떤 구실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하루빨리 핵문제해결을 위한 대화에 호응해 나올 것』을 북한측에 촉구했다. 정부는 이날 북한의 태도에 비추어 당분간 북한과 대화재개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유엔안보리의 제재를 성사시킬 정부차원의 구체적인 전략을 강구할 방침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는 북한측의 태도를 보아가며 경제제재,정치·외교제재,군사제재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날 하오 외무부 김삼훈핵담당대사주재로 대책회의를 갖고 중국·러시아등 안보리상임이사국 주재공관에 긴급전문을 보내 우리정부의 그동안 노력을 설명하고 안보리의 북한제재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하도록 지시했다. ◎다음 일정도 못잡아 【판문점=구본영기자】 남북한은 19일 상오10시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양측간 특사교환을 위한 8차실무접촉을 갖고 절충을 벌였으나 북측이 일방적으로 회담장에서 퇴장함으로써 완전결렬됐다. 이날 접촉에서우리측은 북한핵문제해결을 위한 특사교환절충이 북측의 불성실한 태도로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경고하고 조속히 특사교환에 합의할 것을 촉구했으나 북측대표단은 종전주장을 되풀이하다가 회담시작 55분만에 일방적으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 양측은 9차접촉일정도 정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이날 접촉에서 우리측의 송영대수석대표는 첫 발언에서 『북한이 지난해 10월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개시이후 ▲2개 요구조건제시 ▲2개 요구사항추가 ▲특사의 임무추가 ▲공동보도문 발표요구등 4단계에 걸쳐 특사교환을 가로막는 빗장을 걸었다』면서 『북한은 특사교환과 무관한 문제를 배제하고 절차문제토의에만 힘을 쏟을 수 있도록 태도를 변화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북측 박영수단장은 기조발언을 통해 『남측이 전쟁의 벌집을 터뜨리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으며 필요한 모든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면서 『남측이 우리와 결별하려면 결별하든지,명백한 태도를 표명할 것을 마지막으로 강조한다』며 회담을 결렬시키겠다는 자세를 분명히 했다. 이날 접촉에는 우리측에서 송수석대표와 장재용외무부미주국장·김일무국무총리실심의관이,북한측에서 박영수단장을 비롯한 3명의 대표가 각각 참석했다.
  • 유전공학의 발달/하지홍(굄돌)

    20세기 전반부를 일컬어 물리과학의 시대라 한다면 후반부는 생명과학시대라 할 수 있겠다.생명과학의 꽃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유전공학이 20세기 마지막 10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력은 아직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미미하여 피부에 와닿는 바가 별로 없다.그러나 20세기초에 발달한 현대 물리학은 정보 통신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그 영향력은 지대하여 단 한건의 광케이블 화재가 온 나라를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유전공학이라면 무슨 이상한 동물이나 식물을 만들어내는 현대의 연금술이 떠오를지 모르겠다.물론 자연에 없는 동식물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하는 유전공학자들도 많이 있지만 유전공학은 우리의 정신생활에도 깊은 영향을 줄수 있는 과학기술분야이기도 하다. 현재 유전공학은 생물진화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도대체 유전공학이 진화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유전자는 살아있는 화석이며 족보 두루마리라는데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에 유전자 연구는 진화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고인류학자들이 흩어진 뼈조각들을 주워모아 인류진화사를 엮어내고 돌도끼나 토기파편을 연구함으로써 초기 인류 문명사를 풀어낼수 있듯이 유전공학자들은 이제 세포속에 감추어져 있는 유전자 족보를 해독하기 시작한 것이다.진화에 관한 많은 사실들이 유전자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는데 인류학자나 진화연구자들이 화석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들이 대부분 진실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또한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 유전자 연구를 통해 밝혀졌는데 다름아닌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형제라는 것이다.모든 생물들 즉 한포기 잡초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일한 암호와 문법체계로 이루어진 유전자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이것은 태초에 한분이신 조물주에 의해 생물체들의 공통조상이 창조되었으며 이로부터 온갖 생물들이 진화 발전되어 나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유전공학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세상은 우리가 상상했던것 보다 엄청나게 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참으로 신비로운 내면의 체계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막 깨닫게 된 것이다.
  • 미 가주에 살인벌떼 비상/콜로라도강 기습… 가을께 LA 도달

    ◎브리질서 번식… 남미 휩쓸고 북상/적 만나명 최고 수천번 “벌침공격” 미캘리포니아남부 로스앤젤레스지역에 살인벌떼 비상이 걸렸다고. 살인벌떼가 남미에서 연간 4백∼5백㎞의 속도로 북상하면서 현재 미·멕시코 국경을 건너 애리조나주의 콜로라도강 맞은편에 도달해 올가을,빠르면 그 이전에 로스앤젤레스 지역에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 이 벌떼는 지난 1956년 브라질에서 품종개량을 위한 연구용으로 도입했다가 상자에서 빠져나와 번식한 아프리카산 꿀벌로서 남미지역을 휩쓸면서 북쪽으로 계속 이동,미국땅으로까지 번졌다. 이 벌은 평상시 꽃가루를 찾거나 새로운 집단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일반 꿀벌과 다름없이 온순하고 공격성이 없지만 벌집을 만들고 나면 꿀을 보호하기 위해 포악할 정도로 외부의 자극에 민감해 진다고. 잘못해서 벌집을 건드린다거나 단순히 개가 짖는등 벌집에 대한 공격으로 인지되는 자극이 가해지면 전체의 절반이 즉각 「가미가제」식 공격에 나선다는 것. 성이 나면 반경 4백여m까지 한시간 이상 목표를 찾아다니게 되며 적을 만나면 수십번에서 수천번을 쏘게 되는데 벌침에서 다른 벌들을 끌어모으는 냄새가 발산돼 한꺼번에 수천마리의 공격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에 「살인벌떼」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 색밝힌 뒤끝은 어둡나니(박갑천 칼럼)

    그리스 신화에서 처음으로 남녀관계를 갖는 지상의 「남자」는 프로메테우스의 아우 에피메테우스이다.상대는 대신제우스가 보낸 미태의 판도라.그는 지상에 온 최초의 여자였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자기뜻을 거역하면서 인간세계에 불(화)을 갖다준데 대한 보복으로 온갖 악이 들어있는 상자를 판도라한테 들려 인간세계로 보낸다.이를 두고 여성이 생겨나면서부터 이세상에는 악이 시작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특히 미녀인 경우 더 가시가 돋친다면서.이 또한 『여자 셋이 모이면 간(관)사해진다』는 식의 서양판 남성중심사상이 만들어낸 신화이며 해석이라 하겠다. 제우스는 보통 바람둥이가 아니다.권좌를 악용하여 남의 아내도 예사로 가로채는 버릇이고 보면 판도라도 곱게 내려보냈을 것 같지 않다.아무것도 모르는 에피메테우스에게 남녀 사이의 기쁨을 알려주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하여간 제우스는 판도라의 핏속과 판도라의 상자 속에 정상하지 못한 불륜의 남녀관계까지를 함께 넣어 보낸것 같다.그래서 「판(모든)도라(선물)」 아니겠는가.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겁탈하건 암피트뤼온의 정숙한 아내 알크메네를 사통하건 제우스는 바람을 피워도 뒤탈이 없다.최고신이기에 남편쪽에서 「영광」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그러나 판도라의 상자를 받고 열어버린 인간세계의 일이 제우스 같을순 없다.「햄릿」의 비극이 왜 생기겠는가. 그래서 「이춘풍전」의 이춘풍은 평양기생 추월이한테 빠져 망신을 하고 「배비장전」의 배비장은 제주기생 애랑이한테 잡혀 이(치)까지 빼는 곤욕을 치른다.지족선사의 10년면벽 공든탑도 황진이의 요염 앞에 무너져 내리고 청환을 역임한 금극화는 태종의 국상에 기생과 통정하여 폐족(폐주)의 형벌을 받는게 아니던가.(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 지구촌이 불륜(범죄)문제로 시끄럽다.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은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계속 전파를 탄다.클레스틸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여비서와 놀아났다는 것이고 영국보수당 또한 장관하며 의원들의 엽색행각으로 벌집 쑤셔놓은 듯하다.일본 교토대학 교수의 성추문도 지구촌의 입방아거리.그러는 한편에서는 남편의 성기 자른 보비트부인을 모방한 범죄가 세계적 유행기류를 탄다.섬뜩해지는 세상이다. 옆길로든 정사는 쌓아올린 업적에 먹칠을 한다.일신을 파멸로 몰고가기도 한다.신은 에이즈(AIDS)로 경고하고도 있건만 사람들은 듣는둥 마는둥이다.역시 판도라의 상자가 문제인가.
  • 노스중령과 김종휘씨/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요즘 미국의 신문·방송들은 「올리브 노스,상원의원에 출마」를 연일 주요기사로 보도하고 있다.「미국판 의리의 돌쇠」로 통하는 노스는 오는 11월 버지니아주의 상원의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27일부터 본격적인 캠페인에 들어갔다. 올리브 노스전해병중령,그는 지난 85∼86년 레이건대통령시절 백악관의 안보보좌관실에서 정치군사담당부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른바 이란­콘트라사건의 핵심역할을 했다. 레이건­부시공화당정권의 최대 멍에가 되었던 이 사건은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질을 석방시키기 위해 이란측에 무기를 비밀리에 판매하고 이 돈으로 니카라과의 콘트라 우익 반군을 지원한 사건이었다.당시 의회는 콘트라 반군에 대한 군사원조를 금지하고 이란에 대한 무기판매도 불법화 했다. 86년 11월 이 사건이 폭로되자 워싱턴정가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했고 의회는 즉각 특별검사를 임명,사건의 진상파악에 착수했다.이듬해인 87년엔 노스는 의회에 불려나와 증언을 해야만 했다. 당시 그는 『대이란비밀무기판매대금을 콘트라 반군을 위한 자금으로 돌린것은 순전히 미국의 국가이익을 보호하기위한 애국적 동기에서 한것이며 이의 기획과 작전은 정치공작을 맡고있는 본인이 입안한것』이라고 증언했다.레이건대통령과 부시부통령에게까지 「흙탕물」이 튀기지 못하게 스스로 「십자가」를 졌다.그러나 나중에 의회에서의 위증과 관련문서의 파괴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항소,결국은 풀려났다. 이 사건의 월시특별검사는 7년간에 걸친 조사를 끝내고 최근 최종보고서를 제출,레이건­부시가 이 사건을 알고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지금도 「노스중령」으로 호칭되는 노스는 강경우파 보수주의의 깃발을 들고 우선 6월의 공화당후보지명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유세활동을 펴고있다.이미 선거자금으로 1백만달러나 모금했고 후보지명획득에 필요한 7천명의 대의원중 현재 5천명을 확보했다. 그의 경쟁자는 고존슨대통령의 사위로 버지니아주지사 출신인 민주당의 찰스 롭 상원의원으로 막강하지만 최근 혼외정사설,전화도청사건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언론매체의 화려한 조명속에 정치무대로 뛰어든 「돌아온 노스」를 지켜보면서 율곡비리사건으로 미국에서 도피생활을 하고있는 김종휘전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모습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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