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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인 첫 LA시장 브래들리 사망/20년간 5연임… 인종화합 헌신

    ◎92년 흑인폭동으로 공적 퇴색 미국 로스앤젤레스시에서 최초 흑인시장으로 인종화합에 헌신했던 톰 브래들리 전 시장이 29일 심장질환으로 타계했다.향년 80세. 지난 73년부터 93년까지 20년동안 유례없는 5연임의 기록을 세운 그는 시정부를 소수민과 여성에게 개방하고 이민들이 대부분인 도시빈민에 대한 사회복지혜택을 확대하는 등 다인종 화합에 앞장선 인물. 텍사스 목화농장에서 태어나 노예였던 할아버지와 소작농인 아버지 밑에서 불우한 소년기를 보낸 뒤 경찰관으로 공직을 투신했으나 인종적 한계를 느끼면서 퇴직,정계에 진출했다. LA시장 재직시 휴일도 없이 하루 16시간씩 시정에 몰두한 일벌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그는 LA를 태평양 연안의 최대 금융도시로 성장시켰고 아시아 시장을 겨냥,항만과 공항을 짓는 등 인프라를 확충,태평양 무역의 LA시대를 열었다.84년에는 올림픽을 개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정치적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두 차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고 로드니 킹사건의 여파로지난 92년 발생한 LA 흑인폭동으로 20년간 쌓아온 공적에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공직을 떠났다.
  • 2002년 대입개선안 특징/한 분야만 뛰어나도 상위권大 간다

    ◎학업성적보다 개개인 특기·개성에 더 비중/교육정상화 계기… 전형자료 공정성이 관건 18일 발표된 2002학년도 대학입시 개선시안은 무시험 전형 실시와 특별전형의 대폭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시험 성적이 대학 합격을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이었으나,2002학년도부터는 성적의 비중은 크게 줄어드는 대신 학생 개개인의 특기나 품성,장인정신,개성 등이 선발기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과 공부에서는 다소 뒤지더라도 한 분야만 뚜렷이 잘하면 일류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셈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입학의 최소 자격기준으로 한정하거나 모집단위의 특성에 따라 일부 영역만 반영토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전형자료를 점수화 또는 순위화하는 방안을 자제하고 국·영·수 위주의 대학별 고사를 전면 금지시킨 것도 마찬가지다. 대학입시제도의 이같은 획기적인 변화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요구되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력을 양성한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말하자면 남보다 뛰어난 특기만 갖고 있으면 교과성적에 관계없이 우수학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안은 또 2003년부터 전문대 이상 대학의 정원이 고교 졸업자 보다 8만여명이나 남아돌게 돼 각 대학의 정원축소가 불가피한 현실도 감안됐다. 무시험 전형은 金大中 대통령의 교육개혁의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수능점수 위주의 선발방법을 지양하고 인성과 지도자로서의 능력 및 사회봉사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자질을 평가,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 金대통령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모집인원과 선발방법이 다양화되는 특별전형은 다원화 시대,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21세기에 가장 적합한 학생선발 형태로 받아 들여진다. 컴퓨터 활용능력에 관한 ‘정보소양 인증제’를 도입한 것도 같은 기준에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초·중등교육은 입시 위주의 ‘공부벌레’를 양성하는 데서 벗어나 학생의 개성을 살리는 교육정상화의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문제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각종 전형자료의 공정성 확보가 대표적인경우다. 교육부와 일선 고교,대학이 모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2002년 대입개선안 주요내용/모집단위별 특정과목만 내신 활용/본고사­특차모집 폐지… 논술은 허용/컴퓨터소양인증제 도입… 전형 반영 오는 2002학년도부터 적용되는 대학입시 개선시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생선발 전형자료◁ ▲학교생활기록부=반영여부를 대학 자율에 맡기고 교과성적은 지금처럼 평어(절대평가 방식)와 과목·계열별 석차(상대평가 방식)를 모두 활용하되,단 매식을 파일식으로 바꾼다. 학생의 특기·활동·성취도 등도 중요하게 반영하고 교과성적도 대학 및 모집단위의 특성에 관련된 과목만 활용토록 한다. ▲대학별 고사=모든 대학은 국·영·수 위주의 본고사를 실시할 수 없고 필요시 논술고사만 치를 수 있다. ▲수능=현행 틀을 유지하되 점수는 최소자격기준으로만 활용,입학여부에 주는 영향력이 대폭 낮아지도록 한다. ▲면접=학력 이외의 인성,가치관,사고력,지도력,협동심,폭넓은 독서 여부,의사표현능력등을 평가하고 수험생이 제출한 자료를 확인하기 위한 총체적 평가방법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전형요소 포함여부는 대학자율이다. ▲비교과 전형자료=학생활동,특별활동,동아리활동,수상경력,효행,특수기능 보유,각종 자격증 등을 포함한다. 대학은 추천서,수학계획서,자기소개서,에세이 등을 요구할 수 있고 학생부에 기재하거나 별첨자료로 첨부된다. ▲컴퓨터 교과=수능 선택과목에 포함하지는 않고 재학중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능력을 익힐 수 있도록 통과여부만 나타내는 ‘정보소양인증제’를 도입한다. 취득여부는 학생부에 기재한다. 대학은 인증 여부를 모집단위에 따라 전형요소로 삼을 수 있다. ▷전형유형 및 방법◁ 특별전형 및 대학의 독자적 기준에 의한 학생선발을 확대한다. 추천제도 학교장 외에 담임교사,교과교사,종교지도자,교육감,자치단체장,산업체 등으로 다양화하고 전형방법도 일괄합산,전형자료별,다단계 등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예컨대 지도력과 봉사활동 등으로 모집인원의 10%,내신과 다양한 자료로 20%,수능과 심층면접으로 30%,특기로 10%,성적 이외의 방법으로 30% 등 다양한 선발방식이 다양해진다. ▷전형 일정◁ 수시·정시모집으로 나눠지고 대학은 연중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된다. 수능성적 우수학생 유치 수단으로 전락한 특차모집은 없어진다. ▷기타◁ 고교등급제는 학생들의 고교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정시모집 복수지원에 따른 미등록·추가등록 등을 없애고 수험생의 편의를 위해 공동관리기구 운영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즉 수험생은 지금처럼 여러 대학에 복수지원하되 지원 대학간 선호 순위를 적어내고 대학도 전형결과에 따라 합격순위를 제출하면 공동관리기구가 선호순위와 합격순위를 컴퓨터로 조합,1개 대학에만 최종 합격토록 하고 이를 대학에 통보,발표케 하는 것이다.
  • 생태계 관찰제도/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자연을 자연스럽게 놔두면 생물은 다른 생물의 무제한 번식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그러나 포식동물이 멸종위기에 이르면 설치류나 곤충의 수를 적절히 제어할 수 없고 살충제로 흰개미를 박멸하면 토양을 양호하게 통기(通氣)시킬 수가 없게 된다. 농약을 남용한 결과 거미류가 감소해서 벼의 해충인 멸구류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또 어떤 생물이 그 기주생물(寄主生物)을 전멸시키면 다음 생물도 자신의 먹이 결핍 때문에 자멸하게 된다. 자연은 냉엄하여 한치의 양보 없이 자신에게 주어졌던 피해를 인간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기를 사양치 않는다. 그래서 자연의 생태계는 그 비밀을 캐낼 수 없으리만치 복잡하고 오묘해서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신의 영역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최근의 급격한 기후변화와 홍수도 그 한 예이다. 전남 신안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내 우이도에서 희귀곤충인 큰조롱박먼지벌레와 청띠제비나비등의 서식을 확인한것을 계기로 환경부는 ‘생태계 변화 관찰’제도를 마련, 내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하게 된다고 한다. 멸종 위기 야생동식물등의 서식지, 도래지, 번식지와 우수생태지역의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대상지역에 사는 현지 주민과 전문가들을 선정해서 생태계 변동상황을 수시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연생태계 모니터링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좀더 세분화되고 발전된 셈이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가로수 700여만 그루에는 각각의 이름과 호적이 표시 되어있다. 독일에서는 자기집 정원에 있는 나무를 옮겨도 관계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나무를 베면 반드시 신고하되 주민이 이를 결정하는 주민중심체제가 특징이다. 우리의 생태계 변화 관찰도 지자체의 협조를 받아 주민중심제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내 고장을 내가 지킨다는 자세로 나무 한 종(種)만이라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보호하는 애정이 더할 수가 있다. 보호 야생동식물을 포획·채취·훼손하는 행위는 물론 덫을 놓거나 올무설치, 유독물 살포에 이르기까지 내집을 지키듯이 철저히 살펴서 조처할 수가 있다. 이런 작은 운동이 큰 뿌리가 되어 자연재해의 엄중한 문책을 면할수도 있게 된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을 가꾸어 우리의 생명을 담고 지구와 인간의 공존을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생태계변화를 지키는 관찰자가 돼 보자.
  • 전남 신안군 群島/희귀 동식물 寶庫

    자연보호중앙협의회(회장 李仁圭 서울대 교수)가 지난 14∼18일 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牛耳島) 인근 37개 섬에서 4종의 희귀 동·식물을 발견했다. 희귀 동·식물은 국내에서는 아직 보고되지 않은 구멍장이버섯과(科)의 버섯,환경부가 희귀 곤충으로 지정한 큰조롱박먼지벌레,홍단딱정벌레,순배기나물 군락(群落) 등이다. 이번 탐사에서는 국내 미기록종 버섯 3종이 처음 발견됐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흑비둘기(215호) 팔색조(206호)도 목격됐다.
  • 춘천 국제 인형극 축제 개막/‘어린이에 꿈과 사랑을’

    ◎국내외 67개 극단 17일까지 111차례 공연 경제난에 물난리까지 겹쳐 실종돼버린 올여름 휴가철. 방학을 맞은 자녀들과 아직 피서를 못한 가정이라면 이번주 춘천으로 가보자. 전원도시 춘천의 풍광을 만끽하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극잔치까지 감상할 수 있다. ‘어린이에게 꿈을,모두에게 사랑을’을 캐치 프레이즈로 내건 제10회 춘천인형극제가 13∼17일 강원도 춘천어린이회관과 시민회관,춘천문화예술회관 등 시내곳곳에서 펼쳐진다. 지난 89년 지방문화축제로 시작,이제는 국제규모의 문화축제로 자리매김한 행사다. 올해에는 6개국 7개 해외극단과 국내 37개 전문인형극단 및 23개 아마추어 인형극단 등 모두 67개 극단이 참가,무려 111회 공연을 벌인다. 참가 극단수만큼 인형극의 종류도 다채롭다. 손 인형극과 막대 인형극,줄인형극,그림자 인형극,탈 인형극,복합극 등. 소리,예루,누렁소 등 국내 인형극단은 ‘송아지를 낳은 염소’ ‘꼬마물고기 레오의 모험’ ‘애벌레의 노래’ 등 다양한 공연을 올린다. 해외초청작으로는 체코 오스트라바 주립극단의 ‘요정 애니가 휘파람을…’과 독일 막데부르그 시립극단의 ‘길을 나선 페호’,일본 밍와자극단의 ‘없어진 골프공’ 등 7편이다. 대학 인형극 동아리인 경북대 ‘아이사랑’과 경원대 ‘색종이’등은 단독공연과 함께 12,13일 춘천시민회관에서 경연대회를 펼친다. 축제기간동안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마련된다. 13일 하오 6시부터 시청∼공지천∼어린이회관 구간에서 시가퍼레이드가 열리며 14∼16일 어린이회관 야외에서는 어린이들이 직접 인형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인형공방도 운영된다. 또 심야카페 공연과 마술공연,어린이 인형캠프 등 이벤트도 마련된다. 입장료는 국내극단공연은 3,000원,해외극단 5,000원,아마추어극단 무료.(02)3673­4591
  • ‘모기대란’… 見蚊拔劒해야겠구나(박갑천 칼럼)

    “좀벌레는 작지만 기둥과 대들보를 쓰러뜨리고 모기와 등에는 작지만 소와양을 도망치게 한다”. (談叢편)에 쓰여있는 말이다. (人間訓편)에도 비슷한 말이 보인다. 작은것이 큰 것을 이겨낸다는 비유로 쓴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모기가 사람을 쫓아내게 된 곳이 있어 어리둥절하게 한다.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오대·오천마을 주민들 신세가 그렇다. 논밭일을 하려면 대낮에도 긴팔옷을 입고 얼굴에 방충망을 써야하며 해가 지면 나들이를 못할정도로 모기떼가 극성이라는 것 아닌가. 벌써 10년째. 그들은 정든 고향이고 뭐고 쓸데없으니 어디론가 이주시켜달라고 호소한다. 얼마전 텔레비전에도 그 모기떼 화면이 나왔는데 중국이나 아프리카쪽 메뚜기떼 공습을 연상케하는 살풍경이었다. 이나 (釋名)에는 물(늪)에 사는 문모조(蚊母鳥)가 모기를 입으로 뿜어낸다 했는데 그게 이땅에 떼거리로 몰려와서 양산해내고 있기라도 한다는 걸까. 한데 문제는 그곳이 유독 심하다는 것뿐 많아지고 독해진 현상은 전국적이라는 데 있다.모기는 해마다 여름이면 윙윙거려오는 해충이다. 그래서 농촌의 여름밤 풍경을 묘사하면서는 으레 웅신하여 괄지않게 타는 모깃불 연기가 나온다. 그 매캐함속에 텃밭에서 자란 옥수수를 쪄먹으면서 할아버지의 도깨비얘기도 듣는다. 그런 연유로 모기가 생풀타는 냄새 싫어한다는 전설도 나온다. 경기도 포천(抱川)산골에서 있었던 일이다(朴榮濬편 9권). 아들 3형제둔 집에서 딸하나 갖고자 기도한 끝에 소원을 이룬다. 그딸이 여남은 살 된 여름날 집안사람들이 조잡들어 하나둘씩 죽어간다. 누이동생을 수상하게 여긴 한 오빠가 왜놈이 쳐들어오니 숨어야 한다면서 둥덩산 풀더미속에 그를 밀어 넣고 불을 지른다. 누이동생은 산속여우였다.불에 타죽은 여우의 사윈재는 날아가 모기로 된다. 그때문에 모기는 여우를 닮아 피를 빨고 풀타는 냄새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생풀 타는 냄새 싫어한다는 것도 옛얘기. 요즘모기는 독한 약제냄새도 우습게 여긴다. 약제와의 싸움에서 이겨낸 ‘적자생존’의 후예들이기에 그런것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이악스럽고 표독스러워진 사람따라 그리됐다 할수 있는일. 모기잡으려고 칼뺀다(見蚊拔劒)는 말도 이젠 과장이라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폭탄이라도 꺼내야 이‘모기대란’을 평정할수 있을 것 같지않은가.
  • 반딧불이·울도하늘소…/희귀곤충 인공번식 성공

    ◎농진청·에버랜드 잇따라 개가 울도하늘소와 반딧불이 등 멸종위기에 있거나 상업적 가치가 있는 곤충의 대량 인공 번식이 잇따라 성공을 거두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1년 전 경안천에서 채집한 반딧불이 700여마리를 지난 달 30일 1만여마리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반딧불이 애벌레는 1급수에서만 살아 환경지표로 꼽히는 곤충.반딧불이 자체는 천연기념물이 아니지만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곳은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돼 있다.현재 전북 무주군 설천면 남대천,충남 천안군 광덕면,경기도 수원시 광덕천 등에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무주군과 잠사곤충연구소에서도 인공 번식을 시도하고 있으나 삼성에버랜드가 앞섰다. 이에 앞서 지난 해 11월 농촌진흥청 증식시스템 연구실에서는 울도하늘소와 광대노린재를 인공으로 대량 번식시켰다.울도하늘소 몇 십마리가 알 애벌레 성충을 합쳐 6,000∼7,000마리로 늘었고,광대노린재는 역시 3,000여마리로 증가했다.울도하늘소는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최근 채집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귀한곤충이다.광대노린재 역시 야외에서 관찰하기 쉽지 않다. 증식시스템 연구실에서는 지난 해 호랑나비와 배추흰나비의 인공 번식에도 성공했다.호랑나비와 배추흰나비는 희귀곤충은 아니지만 문진(文鎭·책장이나 종이쪽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누르는 물건) 장식 또는 모자이크 등 상업적으로 많이 이용되기 때문에 인공 번식이 의미가 있다.울도하늘소와 호랑나비 인공번식법은 현재 특허 출원 중이다.잠사곤충연구소에서는 이밖에 기능이용연구실을 중심으로 식물의 꽃가루 수정을 돕는 기영벌 인공 번식에도 상당한 진전을 보고 있다.
  • 빗나간 오렌지족/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머리는 짧게 깎아 올려세우거나 컬러 블리치를 넣고 옷은 베르사체나 겐조를 입는다. 재규어나 무스탕을 타고 오늘은 어디가서 놀까만을 열심히 생각한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비디오케에서 일본가수 니카야마 미호나 구도 시즈카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밤이되면 로바다야키, 나이트클럽에 드나들었으나 나이트클럽은 고3때 졸업. 이제는 룸살롱이나 호텔 멤버십바, 게이바가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하루에 쓰는 유흥비는 100만원에서 200만원. 매사에 고민도 없고 사려도 깊지 않다. 외모와 돈이 인생의 전부이며 어떤 차를 가졌느냐, 무엇을 입었느냐만이 인생의 척도다. 이런 부유층 아들들이 술집에서 돈이 떨어지자 유흥비 마련을 위해 강도짓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이란 흔해빠진 것이어서 없으면 남의 돈을 훔칠 수도 있고 빌릴 수도 있지 뭐가 잘못이냐는 식이다. 지난 93년, 이런 얼빠진 족속들이 히로뽕 투약 사건으로 검찰에 적발됐을때 그들의 졸부(猝富) 부모들이 짙은 화장에다 요란한 옷차림으로 나타나서 ‘내돈 멋대로 쓴다’고 큰소리치는바람에 수사관들이 입을 다물지 못한 적이 있다. 오죽하면 매스컴들이 ‘벌레먹은 오렌지족’ ‘지구를 떠나라’고 했겠는가. 일정한 직업도 없고 학업에도 뜻이 없으며 향락 퇴폐풍조로 사회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이들은 바로 암적(癌的)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또 용돈이나 주면 부모노릇을 다하는 것으로 아는 부모가 과소비와 향락을 부추기는 주범인 셈이다.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탈선행동과 무분별한 환락을 일삼는 이들을 건강한 내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봐 겁난다. 철이 없다고 하기엔 스무살이 다된 나이다. 더구나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잃고 거리를 방황하는 시기다. 심심풀이 아르바이트에 심심풀이 강도짓이라니 그들이 정말 이 나라의 젊은이들인가 묻고 싶다. 열심히 살고자 하는 신선한 노동에 찬물을 끼얹는 이런 범죄자들은 일고의 여지 없이 따끔하게 다스려야 한다. 그런 아이들을 거리에 내동댕이치듯 내놓는 부모도 용서받아선 안된다. 죄의식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며 내일도 희망도 꿈도 없는 바보라면 정말 ‘지구를 떠나라’고말하고 싶다.
  • 대통령께 드리는 국난극복을 위한 제언/金承均(서울광장)

    ◎개혁작업 운동권 동참시켜야 ‘言論開塞 興亡所係’(언로의 여닫힘에 따라 흥망이 좌우된다)이 글은 유신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70년대 중반 민주화의 염원을 담아 金大中 대통령이 써 주신 글로써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문득 위 글귀의 뜻을 생각하고 소중한 기회이기에 고언을 드립니다. 건국이래 지금까지 50여년동안 한국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변란이 계속돼 왔습니다.참담한 전쟁이 몰고 온 해독은 물질적 파괴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을 부수면서 정신적 공황상태로 이어졌습니다. 朴正熙 대통령의 군사쿠데타에 이은 유신독재,全斗煥·盧泰愚 대통령의 집권은 군사문화를 만연케 했습니다.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친 데카당적 전후문화,정글의식,제로섬 사고등은 더불어 사는 사회건설을 막았습니다.이러한 현상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이어졌고 급기야 한국경제를 IMF지배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군사문화는 대북정책에도 족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햇볕론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햇볕론은 절대적 선은 아닙니다.북쪽을 대등한 통일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궁극적인 해결방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는 것은 민족을 위난에서 구하고 나아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며 세계평화에 초석을 까는 역사에 순응하는 길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수정사건을 기화로 호전주의자들은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망쳐버리려 획책하고 있습니다.미사일이 쏟아지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교류와 교역을 끊임없이 추진하고 있는 중국·대만 관계와 홍콩을 반환 받고도 1국 2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을 타산지석으로 삼으십시오. ○꽃다운 희생 정권교체 초석 대통령께서 달력을 들추어 보시면 3·1절로부터 11월3일 학생의 날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애국애족적 발자취를 한 눈에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김귀정·김세진·이재호·박종철·이한열·강경대 등 300명을 웃도는 꽃다운 청춘 학생들의 순국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그들의 죽음이 정권교체의 초석이 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민족의 지도자는 풀 한포기벌레 한마리에도 애정을 갖는 자애로움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지금 정부가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오직 북한입니다. 그럼에도 북한과 교류 협력을 모색하는 전향적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그런데 학생운동의 전통을 이어 받은 정통성 있는 학생단체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이것은 논리적으로나 학생운동의 전통에 비춰볼 때 잘못된 것이며 개혁 주체를 분열시키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단호히 시정해야 합니다. 지금 구조조정에서부터 정부가 하려는 개혁은 많습니다만 성과는 적습니다.도처에 기득권 세력이 만만찮은 기세로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며 개혁을 주도하는 주체세력이 미약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기도 합니다.북한의 식량위기, 남한의 경제위기는 민족전체로 볼 때 내우외환의 위기입니다.이런 민족적 위기를 동포애를 바탕으로한 지원과 협력으로 극복해 낼 때 민족동질성은 급속히 회복될 것이며 전화위복의 전기가 마련될 것입니다. ○이적단체 규정은 잘못 학생들도 쇠몽둥이와 화염병을 버려야 합니다.시위는 민중을 자기편에서게하고 자기가 옳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전하는 것입니다.그러나 과격한 모습은 옳지 않습니다.이 시기에는 개혁작업에 동참하는 것이 옳습니다.노동자 실직자와 더불어 학생이 국난극복의 선두에 서서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이들을 개혁작업에 동참시키는 큰 정치를 구상해 보십시오.
  • 도시벽면 綠化 바람직(사설)

    푸르게 우거진 도시는 생각만해도 신선하고 싱그럽다. 환경부가 추진하고 있는 도시벽면녹화(壁面綠化)작업은 인구집중과 건물밀집으로 녹지공간이 감소되고 있는 추세에서 추진되는 작업이어서 여간 반갑고 눈에 뜨이는 발상이 아니다. 벽면녹화란 시멘트건축 벽면을 담쟁이등 덩굴식물로 도포하는 방법으로 유럽에서는 이미 수백년전부터 덩굴식물에 의한 벽면녹화가 실시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1940년대 본격적인 벽면녹화가 추진되어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 녹화작업이 정착된지 오래다. 공항에서 도쿄시내로 들어서는 1시간 이상의 거리는 길 양편이 담쟁이덩굴 벽면이 도열되고 섬세하게 전정(剪定)된 가로수들은 살아있는 조형물을 보는듯한 쾌적함을 전해준다. 유럽의 도시들도 담쟁이덩굴에 싸인 집과 건물이 마치 숲속의 별장인듯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외국의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는 대부분 덩굴식물벽면으로 설치되어있다. 서울에서는 그동안 황폐한 도심에 정서를 심는다는 차원에서 세종문화회관 계단과 시청앞에서광화문에 이르는 구간에 보리밭을 가꾸거나 코스모스며 봉선화 화분을 내놓고 있지만 너무나 초라하여 아예 없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80년대 초반에는 시멘트빌딩 벽면에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성행하기도 했지만 역시 치졸과 조잡성으로 환영받지 못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나온 벽면녹화작업은 삭막한 도시가 어느 정도 구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더구나 담쟁이덩굴은 자생력과 생명력이 강한데다 적은 예산에 비교적 작업이 단순하여 당장 실천해도 무리가 없을것 같다. 그러나 담쟁이등 덩굴식물은 겉으로는 아름다우나 벌레가 많이 끼고 콘크리트나 벽돌을 부식시키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환경부조사에 따르면 건물벽을 덮고있는 덩굴식물은 실제로 건물내부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할뿐아니라 콘크리트 표면의 균열을 방지한다니 더욱이나 호감이 간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덩굴식물로 녹화된 건물이 지진이 났을 때 붕괴방지를 위한 보강재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녹색은 사람들에게안심과 안정을 준다.우리나라 도시의 건물은 획일적으로 각지고 딱딱한 형태로 담쟁이덩굴 녹화가 어느정도 부드러움을 조성해줄 것에 틀림없다. 단지 벽면녹화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그에 대한 주변효과와 장단점에 대해 조경이나 식생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살아있는 싱싱한 식물이 우리의 보금자리와 일터를 감싼다는 자체만으로 도시와 자연과의 가장 이상적인 교류라는 차원에서 적극 벽면녹화를 권장해도 좋을것 같다.
  • 金 전경련 회장대행 현장 우선주의 시동

    ◎재계 대변 논리는 “물러서라”/사무국·경제硏에 탁상논리 배제 주문/현실적 기업애로 해결·정책방안 요구 “재계를 대변할 게 아니라 경제정책을 리드해 나가라” 金宇中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대행이 특유의 ‘일벌레 기질’을 발동했다. “책상머리에 앉아있지만 말고 기업의 애로를 찾아 해결하고,제도적으로 고칠 것은 정책대안을 마련하라”고 전경련 사무국과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에 주문하고 나섰다. 직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밤늦게 까지 불이 켜지고 출근 시간도 이달부터 아침 8시로 한시간 앞당겨졌다. 변화의 조짐은 지난 달 17일 金 회장이 崔鍾賢 현 회장을 대신하면서부터 시작됐다. 金 회장은 ‘집권’ 3일 뒤에 긴급 회장단회의를 갖고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를 수용키로 한 데 이어 1일에는 예정에 없이 ‘당일 연락’으로 15명의 회장단 중 와병 중인 崔 회장을 빼고 긴급 호출했다. 2일엔 전경련 회장실로 바로 출근,사무국 임원과 한경연 실장급 이상 20여명을 회장실로 불러놓고 4일의 청와대 오찬회동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론에 치우친 건의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 팩트(사실)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 발레리나 金純晶(이세기의 인물탐구:170)

    ◎‘동양적 발레’ 자신만의 이미지/타고난 연습벌레… 고난도 테크닉 모두 소화/안무하고 춤춘 ‘신화의 끝’ 발레팬 사로잡아 지난 해는 발레리나 金純晶에게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해였다. 87년 국립발레단 창단 25주년 기념으로 무대에 올렸던 ‘노틀담의 꼽추’를 10년만에 다시 춤춘 것과 그가 몸담고 있는 동덕여대에 무용과가 정식 출범한 것.거기다 제자들과 ‘공기의 정(精)’을 공연했고 그가 안무하고 춤춘 창작발레 ‘머물며’가 민속춤제전에서 안무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그중에서도 ‘노틀담의 꼽추’는 표현영역의 확장과 무용수로서의 도약(跳躍)을 보여준 결정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이 무대에서 그는 에스메랄다의 야성과 순결한 여심을 생기발랄과 스며드는 슬픔으로 표현하여 관객을 감동시켰다. 그의 요염함은 이미 86년 ‘튜닉 팬터지’에서 발휘되기 시작하여 그가 춤추었던 우아한 ‘백조의 호수’와는 달리 클래식의 베일을 활짝 벗고 ‘깨끗하고 담백한 느낌과 탄탄한 춤집’을 각인시켰다. ○‘머물며’로 안무상 수상 또한 쌍꺼풀이없는 고전적인 눈매와 긴 팔다리는 ‘동양적 발레’라는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무리가 없었다.이후 ‘돈키호테’를 마지막으로 프리마의 지위와 호칭,주어진 공간에서는 자신의 내부에 숨겨진 철학과 사색을 쏟아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87년 발레단을 떠나 그는 자신만의 창작발레에 몰두하게 되었다.만약 그가 지금까지 대극장무대에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의 변화된 김순정의 창작발레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타를 만들지 않는 국립발레단에서 명실공히 5년간의 프리마시대를 마감하고 이번엔 부군인 朴丙煥씨(외교통상부 근무)를 따라 발레의 본고장인 영국에 유학,런던 라반센터와 로열발레 아카데미에서 마치 춤추지못해 한이라도 된 듯이 밤낮없이 연습에 매달렸고 몸을 회전시키는 필루에트와 푸에테,아티튀드와 바느질 스텝인 부레에 이르기까지 난이도가 높은 갖가지 테크닉들을 몸의 일부처럼 익혀나갔다. ○발레 본고장 런던 유학 그리고 2년만에 영국에서 돌아와서 선보인첫작품 ‘빛깔’은 ‘그의 모든 것이 그속에 다 들어있다’는평을 받을 수있었다.그때도 여전히 무용수로서 특출했던 프리마의 매력을 상실하지 않았고 격조와 힘과 꿈틀대는 생의 갈망이 춤속에 건재하고 있었다.백색 의상에 꽃을 들고 유년기의 환상을 다스리는 그의 빛깔은 거의 발레작품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었으며 국립발레단의 클래식발레를 사랑하던 팬들은 더이상 김순정만의 순백의 감수성과 정결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안무하고 춤춘 작품중에서 ‘신화(神話)의 끝’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간주곡과 비제의 ‘카르멘’ 전주곡에 의존한 이 작품은 ‘강렬한 음악으로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 드라마틱한 분위기’로 젊은 발레팬들의 눈길을 일시에 사로잡았다. 맨발과 토슈의 대비,발끝에서 튕기는 힘의 배분은 ‘감정처리의 성숙함’과 ‘신성(神性)에서 벗어나려는 인간다운 갈망’을 보여주었고 결국은 신과의 대결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으로 겸허하게 마무리짓는 것이 특징이다.평론가 김경애는 ‘몸선의 지시언어(指示言語)’는 시종 아름다움을 동반하면서도 필요이상으로 덧칠하지 않고 사유와 성찰,자신의 기질탐구를 세세히 제시하기를 잊지않았다’고 평한다. ○신선한 현대적 무대 창출 과연 정열적이고도 순발력있는 싱그러움으로 그는 젊은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끊기듯 이어지는 감정의 전이는 불협화음적인 파괴미(破壞美)마저 창조하는 가하면 억압속에서 자유롭고 싶은 의지를 스타의 카리스마로 온몸에 담아낸다.이 역시 뛰어난 기교없이는 불가능한 표현이며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일상적인 모습은 어느때보다 신선한 현대적 무대를 창출해낸다.이른바 성격을 연출하는 춤에서 고난도의 기교를 무기로 하는 고전발레에 이르기까지 전천후로 춤추는 김순정의 기량은 나이에 비해 이미 모든 것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한 차원이라고 할수 있다. 그가 무용을 하게된 것은 어머니 김남숙씨가 딸의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여 10살되던 해 남산어린이회관에 있던 부설 무용반에 데려가면서 부터다. 그곳에서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배울수 있었고 고3때 이화여대가 주최하는 전국무용콩쿠르에서 최우수상,서울대 사대 체육과에 진학하면서 이대와 경희대로 이어지는 무용계의 인맥에서 다소 소외되는 감이었으나 피나는 연습으로 외로움을 달래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최고의 발레리나가 될 것을 굳게 다짐했다’고 말한다.대학 3학년때 무용협회가 주최하는 신인무용콩쿠르에서 글라즈노프 작곡의 ‘사계’로 문공부장관상,다음해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수상하면서 교사자격증을 반납한채 지체하지않고 그는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별로 커보이지 않는 체구에 작고 야무진 얼굴,억척스럽다고나 할만큼 노력에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그는 화려한 세트나 기괴한 몇개의 동작만으로 창작성을 부르짖는 주변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신에서 땀이 배어나는 춤’으로 삶의 절규를 간절하게 춤추어 낸다.‘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정의가 죽어버린 부당함으로부터,위선과 가증스러움이 포장된 이중인격이 판을 치는 속에서’ 오로지 탈출하기 위해 그의 온몸은 솟구쳐 오르는 열기로 무대에서 언제나 활활 타오르고 있다. ○자신의 단점 보완 극복 그런 중에도 끊임없이 자기를 지키고 남의 장점을 존중하며 자신의 단점을 보완,극복하기를 잊지 않는다.가족은 그의 예술을 이해하여 역사와 철학 등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부군과의 사이에 아들(재영·10) 하나.부친은 서울대 경영대 김원수 교수다. 긴 명상속에서 작품을 분석하고 기획하는 그는 디베르시티망과 트릭까지도 철저히 연구하는 학구파로서 내면에 깔린 심성을 건드려 김순정의 춤을 이룩하려는 야심에 차있다.그의 꿈은 러시아의 마야 풀리체스카야나 스승이던 이시다 다네오,불멸의 폰테인 마곳처럼 70세가 넘어서도,아니면 그 이상 무대에서 춤추는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은 것이다. □연보 ▲1960년 서울출생 ▲1978년 이대주최 전국학생무용콩쿠르 최우수특기상 ▲1979년 서울예고졸업 ▲1982년 신인무용콩쿠르 발레부문 특상 및 문공부장관상 ▲1983년 서울대사대 체육과졸업(임성남 박혜련 진수인 사사),동아무용콩쿠르 대상,국립발레단초청 ‘백조의 호수’및 ‘세헤라자데’출연 ▲1983­87년 국립발레단에서 ‘처용’‘배비장’‘춘향의사랑’‘고려 애가’외 ‘호두까기인형’‘카르멘 조곡’‘노틀담의 꼽추’등 주역 ▲1985­92년 충남대 한성대 숭의여전등 출강 ▲1987년 이대 교육대학원졸업 ▲1987­89년 영국 라반센터 및 R·A·D(로열 무용아카데미)연수 ▲1990­91년 국립발레단 주역 ▲1991­95년 청주대 동덕여대강사 1993­현재 한국발레연구회이사, 바탕 춤전 ‘빛깔’안무 출연 ▲1994년 개인발표회, 한일댄스 페스티벌 ‘일상의 꿈’안무·출연 ▲1995­현재 동덕여대무용과 교수 ▲1997년 국립발레단 ‘노틀담의 꼽추’,민족춤제전 ‘머물며’안무출연 올해의 안무가상(97년) ‘몽유(夢遊)’‘공주무덤’‘길위에서’‘풀피리의 춤’외 다수
  • 만화광 어린이들 어쩌면 좋을까요/빼앗고 감추는 엄마태도는 역효과

    ◎느긋한 마음갖고 독서습관 교정해야/위인전보다 줄거리 뚜렷한 책 권할것/폭력·性 취급않는 좋은 만화는 권장할만 초등학교 4학년생 현철이는 ‘책벌레’.하지만 현철이 엄마는 걱정이 태산같다.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책이라는 것이 만화와 명랑동화 일색이기 때문.현철이는 한동안 ‘짱구는 못말려’라는 만화에 푹 빠져살았다.주인공 짱구가 유치원생이라 아이들용이겠거니 했던 엄마는 우연히 책장을 떠들어보다 뒤로 넘어질뻔 했다.주인공 아이의 관심이라곤 온통 성적인것 뿐인,유치원생 탈을 쓴 성인물임이 확연했던 것. 사단법인 어린이도서연구회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만화밖에 모르는 아이를 상담하는 엄마들 전화가 걸려온다.걱정은 두가지.폭력,성을 스스럼없이 다루는 저질만화가 너무 많다는 점과 만화에 길든 아이가 본격적인 책과는 아주 멀어져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이 탄 나머지 만화를 아예 빼앗아 감추는 엄마들도 있다.그러면 엄마 몰래 더욱 탐닉하게 하는 역효과만 초래한다는 것이 어린이도서연구회 곽정란 사무총장의 지적.“만화광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전후해 활자에 맛들여야 할무렵 방치되거나 너무 수준높은 책만 접한 나머지 이미지 위주 만화문화에 그대로 중독돼 버린 경우가 많다.절대 강제로 만화를 뺏지 말고 아이의 독서습관을 교정해 가야 한다.시일이 꽤 걸리겠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의 변화를 유도하라”는 것. 만화만 보는 아이들에겐 일단 좋은 만화를 골라 줘야 한다.좋은 만화는 만화의 유해환경에서 아이를 지키고 아이를 본격독서로 이끄는 길잡이 노릇을 한다.△어린이들만의 세계와 정서를 어른 시각으로 왜곡하지 않고 △역사,문화,전통 등을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그린 것,△활자가 잘거나 그림이 조악하지 않고 좋은 지질에 인쇄상태가 선명한 것,교과서만하거나 그보다 큼지막한 것이 좋다(도움말 서울 YWCA 어린이분과). 이런 아이들에게 활자 책을 권할 때 일반적 위인전이나 명작동화는 먹히지 않는다.만화의 뚜렷한 기승전결,빠른 진행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들에겐 동화도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줄거리가 뚜렷한 것 △아,바로 우리 얘기구나 느낄 정도로 아이들 생활이 실감나게 그려진 책을 골라 줘야 한다. ◇98년 서울 YWCA가 추천한 좋은 어린이 만화 =△맹꽁이 서당(윤승운·웅진출판) △옛날옛날에 효자가 살았는데(김순길·KBS문화사업단) △형따로 아우따로(김준범·초록배) △아빠 어릴적엔(강모림·서울문화사) △안녕하세요? 세바스찬입니다(심혜진·〃) △아기자기 색동(한승원·학산문화사)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추천하는,책을 싫어하는 아이가 재미 있게 읽을만한 도서목록 =△상계동 아이들(노경실·산하) △하늘꿈 마을(조성자·대원사) △누가 호루라기를 불어줄까(이상락·창작과비평사) △내 친구 비차(노소프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사계절) △하늘을 나는 교실(에리히 케스트너·시공사) △생명이 들려준 이야기(위기철·산하) △아기도깨비와 오토제국(이현주·웅진) △따뜻한 사람(박상규·산하) △밤티마을 큰돌이네집(이금이·대교)
  • 조화 미덕 가르치는 김치케이크(박갑천 칼럼)

    魚叔權의 에 서로 어울리지않는 풍경을 예로 든 대목이 있다.맑은샘에 발을 씻는것,거문고를 태워서 학(鶴)을 삶는것,소나무 사이에서 길잡이가 외치는것,초헌에 말채찍,짚신에 징,거적문에 쇠돌쩌귀…따위.오늘날이라면 안짱다리(밭장다리)의 미니스커트,갓쓰고(도포입고) 오토바이타기…같은 풍경이 끼일수도 있겠다. 김치와 빵하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부터 온다.피자와 빈대떡,커피와 식혜같이.한데 서울의 한 호텔에서 김치와 빵을 섞어만든 김치케이크를 선보였다.프랑스인 주방장이 ‘합격’판정을 내렸다니 코큰 이들 혀끝에도 구뜰했던 모양.호텔측에서는 기네스북 한국협회에 등록을 요청하는 한편 반응을 봐가며 수출도 해볼 요량인 것으로 알려진다. 음식에는 서로 맞는것이 있는가하면 맞지않는 것도 있다.지난날에도 찰떡을 먹으려면서는 동치미국물이 따랐다.동치미국물은 좋은 소화제로 되었던 것이리라.돼지고기에 새우젓이나 메밀국수에 무강즙따위도 그런 관계였다고 할 것이다.물론 상극인 경우도 있다.그 사례를 가정실학의 보감이었던 빙허각이씨(憑虛閣李氏)의 [규합총서]에서 보자.두부를 많이 먹고서 배가 불러 숨이 막힐때 무강즙이나 행인즙 새우젓국은 좋으나 데운술을 마시면 “즉사한다“니 겁이 난다. 거기 쓰여있는 바 어울리지않는 음식의 사례는 많다.몇가지만 더 들어보면 이렇다.“게(蟹)와 감·배·꿀을 함께 먹지말고 조개와 초를 함께 먹지말라.머리털이 생선속에 있는걸 먹으면 죽고 메기와 형개(荊芥)를 함께먹으면 죽는다.소·양·돼지고기를 뽕나무로 삶거나 구워먹으면 뱃속에 벌레가 생긴다” “생·숙지황류는 마늘·파·무를 꺼리고 구기자는 사람젖과 우유를 꺼리며 모든 뿔(角)든 약과 녹용은 소금을 꺼리고 파와 부추는 꿀을 꺼리며…”.그밖에도 상극되는 음식은 많다.김치케이크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라는 느낌으로 서름하다는 것뿐 실제에서는 아주 어울리는 먹을거리인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종족끼리 어울려서 나온 튀기에 미인이나 재사가 많다고 한다.얼핏 이질적인 듯해도 조화로운 동질성이 있다는 뜻이리라.가령 의학만해도 동과 서가 다르지만그 조화로써 치료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철학도 그점이 중요해지는 것이고.그러니 종교 또한 배타적으로 나갈일은 아니다.김치케이크가 그 대목을 가르쳐 주는 양하다.
  • 헝그리 犯罪/李世基 社賓 논설위원(외언내언)

    피카소는 청색시대에 어찌나 가난했던지 고양이가 밖에서 소시지를 물고 들어오면 고양이의 소시지를 나누어 먹었다.영화 ‘빠삐용’에서는 지치고 허기진 죄수가 사형을 앞두고도 쥐와 바퀴벌레를 잡아먹는다.영국의 저명한 J M 머리는 ‘빵이 없는 사람에게 정신적 자유란 무슨 소용이냐’고 통박한다.그런 따위는 야심적인 이론가나 정치가들에게 가치있을 뿐 굶주림 앞에서는 체면이고 위신이 있을 수 없다.오죽하면 굶주린 개가 사자를 겁내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외환위기에 따른 경제·사회 불안으로 실업자들의 생계형 범죄와 민생침해 재산범죄가 급증하는 요즘이다.절도사건은 작년 1,2월 두달사이에 1만549건이던 것이 올 1,2월에는 1만4천501건,강도사건도 같은 기간보다 55%나 늘어났고 사회에 불만을 표시하는 ‘얼굴없는’ 연쇄방화도 잇따른다고 한다.여기에 가계파탄이 일면서 가장들의 사고위장(事故僞裝) 자살도 한몫을 하고 있다.마치 1930년대 미국 공황(恐慌)때 가족을 위해 보험금을 노리고 자살한 ‘세일즈맨의 죽음’을 방불케 하는 사회현상이다.이른바 공황기에 나올 수 있는 전형적인 범죄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막바지에서 빚어지는 비극이다. 소설 ‘분노의 포도’는 ‘굶는 자는 분노(憤怒)하는 자’라고 쓰고 있다.굶주리고 있는 자식과 가족을 위해선 못할 짓이 없다는 뜻이다.그래서 지난해 봉제공장에서 해고된 뒤 생후 6개월된 아들의 분유값을 위해 고철을 훔친 생계범죄는 많은 사람들의 동정을 사기도 했다.그러나 불경기와 실업이 범죄를 정당화 시킬 수는 없다.IMF는 누구나 다같이 겪는 시대의 아픔이자 고통이다. 가족을 위한 범죄가 그 가족들에게 오히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범죄는 한번이지만 죄의식(罪意識)은 평생을 간다는 차원에서 무엇이 최선의 길인가를 먼저 심각하게 생가해야 한다.살길을 찾아보기도 전에 범죄유혹으로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긴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최후의 순간까지 가장(家長)과 부모된 자존심으로 이성과 냉정을 지킬 줄 알아야겠다.
  • 제임스 녹스 폴크(美國의 대통령 문화:17)

    ◎美 영토 2배로 확장해낸 ‘전쟁 영웅’/멕시코와 3년전쟁서 텍사스州 등 7개州 점령/중앙銀 개설­관세인하 등 국가재정 안정 주력 【콜럼비아(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인내의 술잔은 이제 비었습니다.멕시코는 우리의 영토를 침범했고 미국인의 피를 미국 땅 위에 흐르게 했습니다.” 1846년 5월12일,텍사스병합을 위해 멕시코의 선공을 기다리고 있던 11대 미국대통령(1845­1849) 제임스 녹스 폴크는 선전포고를 위해 의회에 보낸 교서의 앞부분에서 이같이 단호한 결의를 나타냈다. 미역사상 유일하게 하원의장 출신인 그는 미국의 기존 영토를 두배로 확장,서부 경계를 미시시피강에서 대서양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동시에 미국을 대륙국가로 만든 용감하고 뚝심있는 대통령으로 미국민들에 기억되고 있다.폴크는 7대 대통령으로 대중의 시대를 개막시키고 영토확장의 불을 당겼던 앤드루 잭슨의 열렬한 추종자로 ‘영 히커리’(Young Hickery)라는 애칭으로 불렸다.잭슨의 강인함을 히커리나무에 비유해 붙여졌던 ‘올드 히커리’에서 따온 것이었다.○40세때 연방하원의장 피선 1795년 노스 캐롤라이나주 멕킨버그 카운티에서 스코틀랜드인 후손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폴크는 10살때 아버지를 따라 테네시주 콜럼비아로 옮겨살게 됐으며 그후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을 다닌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다.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다시 테네시로 돌아와 당시 하원의원이던 필릭스 그룬디의 지도로 법학을 공부,24세에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여 콜럼비아에서 개업했다. 폴크는 스승이 앤드루 잭슨의 친한 친구였던 것을 계기로 잭슨과 교류를 갖게 됐으며 민주당에 입당하게 됐다.그는 주하원의원을 거쳐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후 1835년에는 하원의장에 선출됐다.나이 40세때 였다.168㎝로 미국인으로서는 작은 키에 체격이 다부져 ‘땅딸보 나폴레옹’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던 그는 7선의원으로 두차례 하원의장을 역임한뒤 39년에는 테네시주지사에 당선됐다.그는 자연스레 반 뷰렌 대통령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지목됐으나 지명도가 낮다는 이유로 민주당 전국전당대회는 그의 후보지명을 거부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는 연거푸 주지사 선출에서 고배를 마시게되자 마치 그의 정치생명은 끝난듯이 보였다.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으며 마침내 44년 볼티모어 민주당 전국전당대회가 그에게 행운을 안겨주었다.당시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반 뷰랜과 루이스 캐스가 끝내 승자를 가리지 못하자 9차 투표에서 당의 화합을 이룰 인물로 폴크가 극적으로 부상,후보로 지명됐던 것이다. 정치생명이 끝난 것으로 알려져 있던 폴크의 지명에 대해 헨리 클레이를 후보로 지명했던 상대편인 휘그당은 해보나마나한 게임이라며 냉소를 보였다. 그들은 ”제임스 녹스 폴크가 누구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폴크가 대통령에 부적격자라는 점을 집중 강조했다.반면에 폴크는 당시 미국민들의 영토확장 욕구를 간파,“텍사스와 오레곤의 병합”을 구호로 내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단임으로 그 약속을 이룰 것임을 공약했다. 선거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폴크의 승리로 끝났다.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취임사에서 ‘한 당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임을 강조,소신있는 통치를 위해 당의 영향력에 분명한 선을 긋는 단호함을 보였다. 그는 취임 이듬해부터 3년간 계속된 멕시코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텍사스에 이어 뉴멕시코,아리조나,캘리포니아,네바다 유타주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한 것은 물론 멕시코시티까지 함락했다. ○스페인령 쿠바도 구입 시도 폴크는 멕시코 전체를 미국령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까지도 있었으나 48년2월 강화조약으로 전쟁은 끝났으며 멕시코정부는 1천500만달러라는 헐값에 오늘날 미국땅의 7분의1에 달하는 1천300만㎢의 땅을 미국에 양도해야 했다. 폴크는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구입,멕시코만을 내해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성사단계에 이르렀으나 의회의 반대로 쿠바 구입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오늘날 미국사가들이 당시 폴크의 선견지명을 따랐다면 오늘날처럼 미국이 쿠바로 인해 골치를 썩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간선거 이후에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휘그당이 다수당이 되는 바람에 집권 후반기 정국운영에 많은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관세 인하를 위한 새 관세법과 워싱턴에 중앙은행,주요도시에 국유은행을 설치하는 독립은행법을 통과시키는등 국가의 재정안정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일벌레 폴크’라고 불릴 정도로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의 폴크는 1849년 대통령 퇴임후 콜럼비아의 사저로 돌아와 3개월만에 과로와 콜레라로 54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19세기 상류층 생활용품 집대성”/임기중 최초 우표발매­첫 야구경기 개최도/존 스탠위치 폴크 박물관 큐레이터 【콜럼비아(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테네시주 주도(州都) 내슈빌에서 남쪽으로 60㎞ 떨어진 인구 3만의 콜럼비아시는 11대 대통령 제임스 폴크의 체취가 곳곳에 서려 있다.웨스트 스트리트 7가에 위치한 폴크 대통령의 사저는 폴크 생전의 유품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었으며 큐레이터 존 스탠위치씨는 폴크 관련 22개소의 위치와 사연을 기록한 ‘폴크 따라 걷기’라는 소책자를 주며 한차례 돌아볼 것을 권했다. ­먼저 이 소책자에 관해 설명해달라. ▲시내에 산재한 폴크가(家)와 관련된 유적들을 걸어다니면서 체계적으로 볼수 있게 만든 것이다.폴크가의 집들과 부친 새뮤얼 폴크가 딸인 나오미의 결혼기념으로 선사한 집.폴크의 변호사 사무실,당시 법원,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폴크의 환영대회가 열렸던 스테이트 뱅크 앞 광장,그들이 출석하던 교회,학교 등 모든 것이 나타나 있다. ­박물관으로 꾸며진 사저의 소장품은 어떤것들이 있나. ▲이 집은 1816년 폴크가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에 공부하러 가있을때 지은 집으로 폴크가 대통령 퇴임후 돌아와 숨질때까지 살았다.퇴임후 백악관에서 가져온 집기들과 19세기 테네시 상류층이 사용하던 생활용품들이 잘 보관돼 있다.그 가운데 특히 폴크가 부인에게 선사한 취임기념 부채,폴크의 선거포스터 등은 매우 귀중한 것이다. ­부인 사라 폴크는 어떤 유형의 퍼스트 레이디 인가. ▲사실상 폴크의 보좌관으로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폴크 못지 않게 부인도 일을 좋아했다.그들이 백악관에 들어온후 백악관 내에서 술과 파티와 카드가사라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이들은 오락은 일에만 탐닉했다. ­소개할만한 폴크의 또다른 업적은.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업적이 많다.스미소니안 박물관 개관,최초의 우표 발매,미국내 최초의 야구시합 개최 등도 그의 임기중 일이다.
  • 현대무용가 安信姬(이세기의 인물탐구:166)

    ◎섬광 폭죽인듯 폭발하는 춤사위/대한민국무용제서 대상·개인연기상 등 휩쓸어/‘지열’로 일 국제페스티벌 딛고 아시아 스타 浮上 스포트라이트속에 정지된 安信姬의 포즈는 ‘그 자체가 춤의 시(詩)’라고 할 수 있다.신체의 사선(斜線)을 축(軸)으로 삼아 아이키도 돌기며 바운징으로 그가 돌아가야할 ‘길’에서 배회하고 ‘섬과 섬사이’를 떠돌면서 고뇌하는 현대인의 이미지를 불꽃같은 감성으로 춤추어 낸다.‘춤은 춤으로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그는 공연때마다 ‘무진장의 에너지를 폭죽처럼 터뜨리고’‘내쏘듯 날카로운 섬광’을 무대중앙에 흩뿌리기도 한다.안신희란 존재는 이미 ‘춤과 사색,행위의 철학’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무용가이다.어느때는 ‘조롱에 갇힌 새’,어느때는 ‘이 세상의 모든 자유를 지닌 해방감’에서 단순한 극과 극이 아닌,중용의 조화를 얻기 위한 내심의 춤을 구축하기 때문이다.‘춤’은 그의 ‘숙명’이자 잠시도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천부의 인연으로 그는 언제부턴가 ‘춤의 심연’에 깊이 빠져버렸다. ○“춤은춤으로 보여준다” 그가 만든 춤중에서 특히 관객의 시선을 끈 것은 지난 83년 일본 현대무용협회와 코파나스회가 공동주최한 제1회 국제 현대무용페스티벌에서 춤춘 ‘지열(地熱)’을 들 수 있다.‘지열’은 서구적인 차별성과 한국적인 특성을강조한 작품으로 춤추고 났을 때의 무용수는 한바탕 굿판을 끝낸 신들린 무녀(巫女)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긴 박수소리와 함께 그가 도취에서 깨어나자 일본 매스컴들은 그를 일약 ‘아시아의 신데렐라’로 부상시켰고 아사히신문과 주간‘아사히 저널’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신비로운 무대’제하로 ‘이번 축제에서 오늘의 춤을 보여준 것은 객석에 시종 싸늘한 긴장을던진 안신희의 지열이 단연 압권’이라는 평을 보냈다. ‘지열’을 전환점으로 그는 다시 대한민국 무용제에 ‘섬’으로 도전했고 시인 정현종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구절과 ‘그 섬에 가고 싶다’는 테마로써 ‘섬은 다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는 섬의 이상향을 역동적으로 풀어나갔다.그리고 그는 더이상 여러그룹속의 안신희가 아닌 대한민국 무용가로 떠올랐다.무용인 최대의 영예인 대상·개인연기상·미술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는 과정에서 평론가 박용구 조동화 김영태씨는 ‘뛰어난 리듬감각과 문학적 작품성은 올해 무용계가 얻은 최대의 수확’임을 전제,‘스타성이 있는 현대무용가’로서 ‘박력과 자기춤에 몰입하는집중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며 ‘자기 욕심을 포기할줄 모르는 안무가’로평했다. ○활화산­불생의 무용 안신희는 전남 구례에서 양조장과 정미소,과수원을 경영하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어릴때는 부친 安基浩씨를 따라 풍광이 수려한 지리산에 오르거나 섬진강 지류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춤의 흐름을 몸속에 싹 틔울수 있었다.초등학교 5학년때 집안이 서울로 이사,그때까지는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으나 배화여중때부터 춤추기 시작하여 ‘악바리’‘연습벌레’라는 별명을 들을만큼 춤에 대한 강한 집념을 불태웠다.그때도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포즈에 한치의 흔들림을 용납하지 않아 이완과 수축,스피드와지속이라는 범위속에서 반드시 명확성과 평정성 민감성을 끌어냈고 ‘완벽’이라는 해답을 얻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첫무대는 74년 스승인 육완순교수가 안무한 ‘슈퍼스타’다.‘늘씬한 키에 쭉뻗은 몸매,아름다운 외모가 풍기는 이지적인 분위기’로 그는 다음해엔 1개월간 미국공연,83년까지 유럽순회공연에 합류했다.그는 크거나 작은 어떤무대도 겁내지 않는 무대체질이 천성이기도 하다.한때는 알렉산더 고두노프의 예술성과 테크닉,극적인 춤의 특성에 매료되었고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적 카리스마,마곳 폰테인의 지고지순한 삶을 선망하면서 직관적인 선택과 엄격한 훈련으로 불균형과 비대칭,현대생활에서의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은유적으로 부합시키는 무용구조를 성립해 나갔다. 그의 무용의 길은 한동안 탄탄대로 였으나 대학 3학년때 부친의 사업실패로 대학원진학을 앞두고 고향인 구례에 칩거한 적이 있다.그러나 ‘무용의 길은 너무 멀다’는 것과 ‘예술가는 어려움을 이길줄 알아야만 거듭난다’는뼈아픈 경험끝에 무용없이는 ‘공기없이 사는 것처럼’ 무의미하다는 결론아래 한때는 밤낮없이 기도에 매달려야 했다.끝내 ‘하나님이 대로(大路)를 열어주실 것같은 강한 암시’를 받았고 그 시절에는 적선동에 방한칸을 얻어 신촌까지 걸어다니면서도 다시 ‘춤출수 있다’는 기쁨과 샘솟는 창작의지로 창작무용들을 얼마든지 만들어냈다.‘교감’‘13월의 여행’‘청동무늬’‘전설’등은 그때의 산물이다. ○미­유럽순회 공연도 원로 평론가 박용구씨는 ‘안신희는 마치 불을 보면 뛰어드는 나비처럼 그의 춤은 자신의 몸을 사르는 활화산의 무용이자 불새의 무용이며 그의 춤에접하면 고압선에 감전된듯 강한 전율을 느낀다’고 평한다.최근의 그의 춤은 무르익은 성숙을 보이면서 아무런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지상 최대의 자유를 춤으로 구조화하는 시기다.객석의 애증의 그림자마저 읽게된 그는 자연과 문화와의 경계선을 추구하면서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처럼 더높이 더멀리 날기 위한 모든 과정을 뛰어넘고 있다.실제로 그의 무용언어는 연극적 대사가 느껴지는 절규와 경악과 유기적인 삶의 풍경을 흐르는 강물처럼 표현해 낸다.가족은 그의 무용적 삶을 이해하는 부군 韓基天씨와 아들 누리(12살)가 있다.오늘의 한국무용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안신희가 이룬 성좌는 누구보다 밝고 극명하다.한때는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슬픈’ 희비애락에 침몰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몸속으로부터 솟구치는 득의의 춤을 추게 되었고 쏘는듯 날카로운 춤의 빛줄기는 관객의 가슴에 언제라도 진한 감동을 던져준다.그는 자기 세대에서 만인의 시선을 받는 춤꾼으로서 지금부터가 ‘안신희 무용’을 위한 비상(飛翔)직전의 출발선상에서 고고하게 서있다. ◇연보 ▲1957년 전남 구례출생 ▲1974년 육완순무용단 ‘슈퍼스타’출연 및 미국지역순회 공연 ▲1983년 안신희 무용발표회,육완순무용단 ‘슈퍼스타’유럽순회 공연 ▲1984년 이대 교육대학원졸업,프랑스 소르본대학 무용과수업 ▲1992년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과 레닌그라드국립발레단 합동공연 ‘만가’출연(소련 모스크바·레닌그라드) ▲1993년 대전 EXPO개막축제안무 ▲1996년 서머아트페스티벌 및 빛고을창작무용제 ‘꾼들’안무·출연 ▲1998년 5월 국제현대무용페스티벌 ‘존재’’고향에 대한 보고서’ 안무·출연 한국현대무용협회 및 한국현대무용진흥회이사,21C선교무용위원 현대무용분과위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강사 대한민국무용제 신인상(81년) 대한민국무용제·대상 및 개인연기상(83년) 코파나스상(84년) ‘2천년대를 달리는 한국의 예술가’(92년)선정,‘부상하는 한국의 아티스트’ 선정
  • 천적/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소설가 오영수의 ‘두꺼비’는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단편이다. ‘두꺼비는 썩은 것을 먹지않고 파리나 벌레같은 미물을 먹되 개나 고양이같이 어금어금 씹어서 미각’을 즐기지도 않는다. 파리를 잡을때는 신중한 동작으로 다가가되 파리가 앞발을 맞비비는 정도라도 움직이면 접근하지 않는다. 파리의 동작을 적당히 계산해 두었다가 그야말로 눈깜짝할새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먹어치운다. 그런 두꺼비가 경북 문경의 한 저수지에서 저보다 몇배나 더 큰 황소개구리의 배를 졸라 죽인 사건을 두고 학계의 천적논란이 분분하다. 산란기때의 강한 힘으로 껴안는 습성에다 시력이 나빠서 황소개구리를 같은 두꺼비로 혼동했다거나 독성이 강한 물질로 질식사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다. 과연 자연의 오묘한 생태계는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신의 영역’이다. 자연의 먹이사슬관계만 봐도 신기하고 신비롭다. 작은 나뭇가지의 수액을 빨아먹는 진딧물은 거미의 먹이가 되고 거미는 박새같은 작은 새에게, 박새는 큰새인 참매에게 잡아먹힌다.나뭇잎이 떨어져 썩으면 지렁이의 먹이가 되고 지렁이는 개똥지빠귀, 개똥지빠귀는 다시 참매에게 잡아먹힌다. 또 뱀은 들쥐의 천적이고 무당벌레는 진디의 천적으로 한 종류의 식물을 중심으로 여러 방면의 방산형을 이루고 있다. 그동안 황소개구리는 거대한 몸집에 왕성한 번식력으로 숫자가 늘어난데다 물고기 뱀 토종개구리 등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바람에 ‘생태계 파괴자’로 골칫거리가 되어왔다. 그런 참에 두꺼비가 황소개구리의 ‘천적’으로 등장했다면 그처럼 고마운 노릇은 다시 없을 것이다. 하긴 오영수의 작품대로 두꺼비는 하도 엉뚱하고 의뭉스러워서 언제 어떤 일을 벌일지 예측불허기 때문에 늘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먹고(포식자) 먹히는(피식자) 먹이사슬관계는 정확하게 유지돼야만 천적이라고 말할수 있다. 황소개구리만 늘어나고 뱀과 물고기가 씨가 마른다면 자연의 질서는 깨어지게 마련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먹고 먹히는 식물연쇄가 고른 평균율을 유지할 수 있을때 온화한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 우리의삶은 평화로워진다.
  • 포항공대생은 ‘야행성’/재학생 37% 일주일 내내 아침 걸러

    ◎과다한 학업부담·기숙사생활 한몫 【포항=이동구 기자】 공부벌레인 포항공대생들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새나라의 어린이’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포항공대 학생생활연구소(소장 김정기)가 최근 재학생 344명을 대상으로 대학 생활습관 및 적응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평균 새벽 2시(주중 새벽 1시 40분,주말 2시 20분)에 잠자리에 들어 상오 9시(주중 8시 40분,주말9시 20분)쯤 일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하루 생활리듬을 나타내는 ‘서캐디언 리듬’ 척도(수치가 높을 수록 저녁활동형에 가까움)로 볼때 미국 대학생들의 평균이 23.58 (최고 55점)인데 비해 포항공대생들은 29.67로 전형적인 야행성이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1주일중 평균 1.81회만 아침을 먹으며 ‘먹지 않는다’고 응답한 학생이 전체응답자의 36.5%(122명)에 달했다. 술먹는 횟수를 묻는질문에 한달 평균 4회 이상이 28.8%로 가장 많았고,1회 24%,2회 18.9%였다.‘전혀 마시지 않는다’는 14.7%에 불과했다.담배의 경우 비흡연자가 67.7%였으며 흡연자도 하루 반갑 이하를 피우는 것으로 나타나 다른 학교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연구소는 이처럼 포항공대생들이 야간에 활동적인 것은 교수들의 연구참여,퀴즈등 과다한 학업부담과 학생전원이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했다.
  • 명성황후 피란 일화(비록 남가몽:4)

    ◎뱃사공에 금반지 빼주고 한강 건너 피신/경기도 광주땅 지나는데 아낙네들 험담/“중전때문에 이 고생… 군졸에 밟혀 죽었다”/두달후 환궁 “아낙네마을 없애 버려라” 1882년 6월의 임오군란으로 민비는 실각하고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됐다. 대원군으로서는 실각한지 8년만의 일이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대원군이 운현궁에서 창덕궁까지 가는데 여덟 사람이 메고 가는 가마(팔인교)를 탔고 앞뒤에는 파초선을 든 하인들이 그를 인도했다.대원군의 공복 등에는 거북 등(구배)이 붙어 있어 사람들은 그가 곱추처럼 보여 아니꼽기만 했다.더욱 가관인 것은 그동안 운현궁 사랑방을 출입하던 문객,즉 가신들을 중앙과 지방의 요직인 각 도 감사(도지사)와 유수(시장) 그리고 군수직에 임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난을 피해 한강을 건너가던 민비는 전혀 다른 처지에 놓여 있었다.그러니 그야말로 절치부심 이를 갈며 복수심에 불타 있었다. “중전이 나루터에 서서 급히 사공을 불러 배위에 올라타니 수레바퀴같은 붉은 해는 비웃듯이 솟아 오르고삼각산의 뜬 구름도 즐겁기나 한 듯 뫼 위에서 피어나고 있었다.삼국지에 보면 옛날 한나라 환관 십상시의 난에 개똥벌레가 한소제를 북망산천으로 인도하였고 채모 장군이 추격함에 유비가 말을 타고 단계천을 뛰어 건넜다고 하는데,그 쓸쓸한 모습이 옛날이나 지금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드디어 뭍에서 내려 길을 가다가 얼마후 깨끗한 여관에 들어가니 아침밥을 지어 바치는데 한나라 광무황제가 호타하에서 먹던 보리밥처럼 꿀맛과도 같았다.그러나 비록 이같이 배고프고 목마른 가운데서도 단맛을 느끼지 못하였다.도로를 왕래하는 사람이 시끄럽게 자주 서울의 군란소식을 전하여 주었는데 들어보니 곤궁(민비) 전하가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지 못하겠고 혹은 서거하였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이었다.그 밖에 흉흉한 설은 이루 다말하기 어려웠다. 듣기를 마치고 드디어 수레를 타고 수행원의 보호를 받으며 바로 충주 옛고을로 향하여 편안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잠시 화를 피하였다. 며칠이 지나 잠깐 조보에 발표된 내용을 보니 ‘민중전이 군란의 와중에서 서거하여 백성은 부모를 잃은 것 같이 슬퍼하고 모두 흰옷을 입었고 온 나라는 악기를 일체 연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생국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명성황후가 여주로 피난할 때 남긴 일화가 많다.한강을 건널때 사공이 민비를 건네줄 수 없다고 버티었다고 한다.한강을 차단하라는 긴급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사공의 주장이었다.이에 민비는 즉각 금가락지를 빼어 사공에게 던져 주었고 사공은 뇌물을 받고서야 순순히 배를 저었다는 것이다. ○대원군,시신없이 국상 채비 한강을 건너 충주로 가는 도중에도 괘씸한 일이 일어나 민비의 가슴을 쥐어짰다.경기도 광주땅을 지나가다가 교자꾼들이 가마를 길에 놓고 잠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길가던 아낙네들이 “이렇게 어여쁘신 아가씨가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다. 민비는 재치있게 “서울에서 충주로 피난가는 길이요”라고 대답했다.그러자 아낙네들이 “중전인가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예쁜 아가씨까지고 생하는 구려” 하면서 “중전은 군졸들에게 짓밟혀죽었다고 합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괘씸한 생각이 들었겠는가.민비는 이들의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두달 후 서울로 환궁하자 곧 아낙네들이 사는 마을을 없애버리라고 명령했다.또 수행원들이 “한강의 뱃사공은 어떻게 하오리까” 하고 묻자 민비는 “그대로 두라”고 했다 한다.그도 그럴것이 사공이 뇌물을 거절하고 한강을 건네주지 않았던들 민비는 잡혀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에서는 대원군이 민비의 국상을 서둘렀다.시신이 없어 국상을 치를 수 없다는 반대가 강했다.그러나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대원군은 민비의 옷을 시신으로 삼아 염을 한뒤 관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그리고는 장례식부터 치러 민비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다.생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장례식부터 치르려 한 대원군의 심사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할 것이다.그래서 그런지 대원군은 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청국군에게 납치되어 머나먼 중국땅으로 끌려가고 말았고 민비는 살아 돌아왔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몇 개월이 지났다.고종과 세자는 아득하게 소식을 알지 못하여 마음이 슬프고 애통할 뿐이었다. 이 때에 군란의 소요가 가라앉자 곤궁 전하는 고종에게 소를 올려 ‘신은 죽지 않고 지금 충주 장호원 등지의 민가에서 피란하고 있으며 처분이 어떠하신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고종 부자분은 소를 자세하게 살펴본 뒤에 심신이 황홀하여 꿈결도 같고 술에 취한 것도 같았다.즉시 궁궐로 돌아오라는 뜻을 담은 교를 내려 조처를 취하니 하늘의 해가다시 밝았고 땅의 바람이 일어나 솟아오르는 듯하였다.안으로 3천명의 관료와 밖으로는 800명의 관료가 축하하여 일시에 만세를 부르니 남산과 북악의 초목과 곤충들도 모두 정채가 감돌았다. 우선 급무는 공로가 있는 자에게 시상하는 건이었다.무슨 벼슬로 상을 줄것인가.양주목사 자리이다.양주목사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이번에 충주까지 수레를 태워주고 수행하여 보호하는 일을 맡은 홍태윤(홍계훈의 잘못)이었다.” ○한때 ‘육백팔흑’ 유행 임오군란으로 민비가 자취를 감춘 것이 6월이요,돌아온 것이 8월이었으니 불과 두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당시 사람들은 6월에 흰 옷을 입고 울었다가 8월에 검은 갓을 쓰고 살아돌아온 국모를 환영했다 하여 육백팔흑이란 말이 유행했다 한다. 명성황후를 업고 나온 공으로 양주 군수로 발탁된 홍계훈 이외에도 서울에서 충주로 가는데 필요한 여비 500궤미(말을 판 돈이었다)를 댄 조충희는 전남 영광군수로 임명되었다.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북청 물장수 출신의 이용익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과 충주를 왕래하면서 중앙의 정세 변동을 민비에게 보고하였으니 그 뜨거운 충성심과 추종을 불허하는 건각은 역사상 유례없는 것이었다.홍계훈은 뒷날 동학란 토벌대장으로 이름을 날리며 이용익은 대한제국의 탁지부대신을 맡아 이른바 광무개혁을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임오군란은 개항 6년만에 국고가 바닥이 나 군인들이 들고 일어난 대사건으로 조선왕조가 망해가는 첫걸음이었다.그러므로 민비와 대원군 사이의 사전쟁 이상의 것이었다.이 군란으로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 서울이 분탕질을 당하고 일본군이 인천항에 상륙하여 열강에 의한 내정간섭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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