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우화] 외로운 두더지
두더지는 혼자였어.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지.기억도 가물가물한 아주 오래 전에,두더지도 낯선 동물과 맞닥뜨린 적이 있기는 했었어.하지만….
맨 처음에 만난 동물은 토끼였지.토끼는 아무 스스럼없이 두더지에게 깡충깡충 뛰어 왔어.그리고는 불쑥 앞발을 내밀었지.
“만나서 반갑다.우리 친구 할래?”
그러나 두더지는 얼른 뒤로 물러났어.
“넌 나랑 너무 많이 다르게 생겼어.몸은 너무 하얗고,눈알은 또 너무 빨갛잖아!”
토끼는 무안했어.그래서 말없이 숲 속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찌르륵찌르륵 멧새 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지.
“아,참 고운 목소리야! 어디서 나는 소리지?”
두더지는 갈참나무 가지에 앉아서 꽁지를 달싹이고 있는 멧새를 발견했어.
‘저런 새와 친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고운 노래를 들을 수도 있고 저 먼 세상 얘기도 해 줄 텐데….’
두더지는 가슴이 벅차올랐어.그렇지만 다음 순간 중얼거렸지.
“치,저 새는 나를 분명히 좋아하지 않을 거야.난 노래도 못하고 날 줄도 모르잖아? 어쩌면 날 멍청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두더지는 공연히 돌멩이를 걷어찼어.그 바람에 멧새는 날아가 버리고 말았지.쓸쓸해진 두더지는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면서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어.
“아,배고파! 지렁이 녀석들은 다 어디 갔어?”
두더지는 먹이를 찾기 위해 땅바닥에 고개를 킁킁거렸어.그때 멧돼지가 나타나 뿔을 내밀었지.뿔에 걸려있던 통통한 지렁이가 흔들거렸어.
“야,이거 너 먹을래?”
두더지는 멧돼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
“넌 참,친절하구나.그렇지만 왜지? 어째서 내게 따뜻하게 구는 거야?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냐구?”
기가 막혔어.멧돼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만 꿈벅거렸지.
그 다음에 만난 동물은 고슴…,그래 고슴도치라고 했지.온몸을 뾰족한 침으로 둘러 쓴 그 동물은,보기보다 무척 싹싹했어.
“나랑 같이 놀자.난 참 심심해.”
고슴도치는 한발 바짝 다가섰어.
“왜 이래?”
두더지는 손사래를 치며 뒤로 풀쩍 물러났지.
“너랑 안놀아.네 가시에 찔리면 어떻게 해?”
고슴도치가 원래 다정한 성품이라든가,침을 창처럼 세우는 경우는 공격을 당할 때뿐이라는 것을,두더지는 알 수가 없었던 거야.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고슴도치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두더지는 오래도록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앉아 있었어.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재잘거리는 밝은 목소리가 들렸지.두더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지.
“안녕하세요!” “안녕!” “아저씨 안녕!”
꼬마 땃쥐들이었어.여섯 마리나 되는 꼬마 땃쥐들이 엄마 땃쥐의 허리에 한 줄로 줄줄이 매달린 채 저마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소리친 거야.이렇게 밝고,쾌활하고,거리낌없는 목소리를 들어본 것이 얼마 만인지!
“으응,그,그래…”
엉거주춤 땃쥐 가족의 인사를 받은 두더지는 허둥대기 시작했어.이 반가운 마음을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거든.망설이던 두더지는 기껏 이렇게 물었어.
“너희들은 그렇게 희한한 꼴로 어딜 가는 거냐?”
사실,앞선 녀석의 허리 언저리를 꼭 물고 한 줄로 졸졸 움직이는 땃쥐 가족의 모습은 조금 우습기도 하지.하지만 그렇다고 해도,희한한 꼴이라니! 아니나 다를까,멋쩍어진 꼬마 땃쥐들은 공연히 찍찍 수선을 떨고 엄마 땃쥐는 샐쭉 삐쳐버렸어.
‘무례한 두더지 같으니라구! ’
엄마 땃쥐는 콧등을 움찔거리며 흥,콧방귀를 뀌었지.그리고는 찬바람 소리가 나게 휙,돌아섰어.엄마 등에 줄줄이 매달려있던 새끼들이 으악,으악,소리를 질러댔지.땃쥐 가족은 두더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도 전에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어.
밤이 되었지.두더지는 땅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았지.하늘엔 별이 가득했어.
‘아,나는 혼자야!’
두더지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지.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어.날이 밝으려면 아직도 멀었고.두더지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어.외로움을 잊으려면 차라리 몸이라도 바삐 움직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지.그래서 두더지는 밤새 일을 하기로 했어.느릿느릿 지렁이를 잡기 시작했지.
한 마리,두 마리,세 마리….
두더지는 굴을 파고 지렁이를 차곡차곡 쌓아 놓았어.
삼십마리,사십마리,오십마리….
이제는 정말 아무도 두더지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어.두더지는 점점 더 외로움을 탔지.몰래 땅을 파고 들어가 혼자 웅크리고 있기도 하고,눈이 침침해지도록 밤마다 울기도 하면서.
지금도 두더지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어.아무도 없는 땅속에서 하루종일 애꿎은 지렁이만 잡아대면서.
파랑새 어린이의 ‘외톨이 두더지’에서
●작가의 말 이렇게 지렁이를 잡아다 쌓아놓곤 하는 두더지가 꽤 많다고 합니다.그 자료를 읽으면서 저축을 하고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바람직한(?) 교훈 대신,외로움을 잊기 위해 일벌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아무래도 제가 친구와 사귀는데 서툰 두더지와 더 많이 닮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