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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공간] 도시 녹지 낮출 수 있는 곳은 낮추자/이도원 서울대 환경계획학 교수

    도시의 도로를 눈여겨 본 적이 있는가. 흙길보다 깔끔해 보이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곳엔 미세한 물질이 어딘가에 쌓여 있다. 사람이 만든 먼지와 오물도 있고, 자동차가 내뿜은 검댕과 질소산화물 그리고 황산화물도 있다. 길 위의 물질은 어디로 갈까. 바람이 불면 휘날리고 비가 내리면 씻긴다. 바람에 쓸린 물질은 공기가 아니면 낮은 곳으로 가기 십상이다. 도시의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찾아가보면 무엇이겠는가. 바로 배수구다. 비가 내리는 동안 도시를 씻어 내린 물질은 배수구로 빠져나간다. 그런 까닭에 도시의 공기와 땅은 오염물질을 주는 곳이고, 배수구 물이 모이는 하천은 그것을 받는 곳이 된다. 비바람이 불어 도시가 깨끗한 만큼 강물과 바다는 오염된다. 이쯤 되면 물은 묻는다.“막가자는 겁니까?” 도시는 대답한다.“아니, 최선을 다해보지만 어쩔 수 없네요.” 과연 오늘의 도시는 강과 바다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도시 녹지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기능은 여러 가지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우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생산한다. 삭막한 도시의 녹지라도 여러 종류의 생물이 깃들 수 있다. 나무와 잎이 생산한 유기물을 먹고 사는 벌레나 다람쥐와 같은 초식동물과 그들을 노리는 양서류 또는 새 그리고 포유동물들이 먹이를 찾고 깃들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도시 녹지는 잎과 줄기로 빗물을 차단하고, 토양에 유기물을 보탬으로써 빗물이 쉽게 땅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스며든 물을 일부는 토양이 간직한다. 땅 속 깊이 들어가는 물은 지하수를 충원한다. 녹지에 의해서 차단된 물과 토양수는 증발되거나 식물이 흡수하여 증산되면서 도시 열섬 효과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녹지는 땅위로 흐르는 물을 정화한다. 키가 작고 촘촘히 자라는 풀은 흐르는 물의 유속을 줄여 씻겨가는 먼지를 가라앉힌다. 식물의 죽은 잎이나 뿌리 또는 죽은 나뭇가지에 삶터를 잡은 미생물은 빗물에 씻겨가는 질소산화물이나 황산화물을 부지런히 흡수한다. 결과적으로 이웃의 물로 들어가는 오염물질의 양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이런 녹지의 정화기능을 북돋우려면 땅 위를 흐르는 빗물과 녹지가 접촉할 수 있는 면적과 시간을 늘려주면 줄수록 좋다. 과연 우리는 빗물과 녹지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려고 노력하는가. 아니 오히려 방해하는 모습을 더 많이 만든다. 길이나 운동장에 굳이 흙을 쌓아 올린 다음 풀과 꽃을 심는다. 비가 와서 생기는 물길이 녹지를 거칠 기회가 줄어든다. 더구나 높은 화단의 흙은 비바람에 날리거나 씻겨서 주변을 너저분하게 만든다.. 만약 수풀지역이 차도나 인도보다 상대적으로 낮으면 어떻게 될까. 도로를 씻은 빗물은 낮은 수풀지역을 거치기 쉬워진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풀의 토양과 미생물이 흐르는 물에 포함된 물질을 잡고 분해할 기회가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수풀을 지나는 물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충원할 수 있다. 식물이 생산한 유기물이 많은 흙에는 빈틈이 많고 그 사이로 물이 스며들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제 도시에 자리잡는 녹지를 도로나 생활공간보다 낮출 수 있는 곳은 낮추자. 그리하여 도로를 씻은 빗물이 수풀을 통과하면 미생물과 동물·식물에 의해서 정화되고 또 지하수로 침투되는 빗물의 양도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지역에서 이런 제안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눈이 내린 도로에 뿌린 소금이 물에 녹아 토양에 스며들면 나무나 풀이 고사할 수 있는 곳에서는 녹지를 주변보다 높게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그래서 낮출 수 있는 곳을 낮추자고 말한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계획학 교수
  • [주말탐방] 모기와의 전쟁

    [주말탐방] 모기와의 전쟁

    길이 0.5㎜에 체중 3㎎의 가녀린 몸매. 하지만 1억년전 중생대부터 지금까지 세찬 변화를 이겨낸 생태계의 강자다. 주인공은 바로 모기다. 모기를 가리키는 한자어인 ‘문(蚊)’에 ‘글월 문(文)’자가 들어간 까닭은, 모기가 웽웽거리는 소리로 사람을 물기 전 경고를 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다는 뜻이라고 한다. 어느덧 한겨울에도 일상의 동반자로 다가오는 모기. 싫지만 집과 사무실, 지하철에서 마주쳐야 하는 모기를 들여다보면 그리 멀리할 일도 아니다. 그녀의 삶에 관해 살펴 본다. “웅∼엥∼엥.” 서울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선수촌에 사는 회사원 이성현씨는 지난 1일 모기 한 마리 때문에 밤새 뒤척였다. 이씨는 “성내천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인지 유독 모기가 많다.”면서 “8층인데도 모기가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한국존슨 김대훈 연구원은 10월말 제주도에 출장갔다가 바깥에서 모기에 물렸다. 명색이 모기 전문가인데 가을에 실내에서 물리기는 했으나 바깥에서는 처음이다. 김 연구원은 “날씨가 추워지면 모기는 활동하지 않는데 워낙 남쪽이라 온도가 따뜻해 모기가 활개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모기가 찬바람이 불면 알아서 물러난다는 속설과는 달리 철모르고 버티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고 건물 난방시설이 잘 갖춰지면서 모기들이 실내로 몰리고 있는 탓이다. 급기야 지방자치단체들마저 ‘모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박멸작전에 들어갈 정도다. ●체감 숫자는 확 늘어 서울의 경우 밖에서 채집된 모기의 개체수는 뚝 떨어진 반면 ‘집모기’는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른바 일상에서 만나는 모기는 ‘빨간 집모기’와 그 변종인 ‘지하 집모기’이다. 서울시가 시내 10곳의 보건소 바깥에 모기유인장치(유문)를 설치한 뒤 채집한 모기수는 1999년 1만 4700마리에서 2005년 1170마리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10월 한달 동안 25개 구청에 접수된 모기관련 민원건수는 459건으로 지난해(465건)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박민수 보건정책과장은 “전체적으로는 줄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바깥에서 측정한 모기일뿐 실내 모기에 대한 민원은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웬만해서는 모기관련 민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뤄 보면 상당히 많은 수치”라고 말했다. 최근 진해의 매립지에서 극성을 부리는 깔따구떼(모기의 일종)를 보면 시도때도 없는 모기의 왕성한 번식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모기약 판매량을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신세계 이마트 전국 100여개 매장의 모기약 판매량은 지난해에 비해 9월 14.1%,10월 14.3%나 늘었다. 인터넷 쇼핑몰인 옥션 역시 지난달 모기약 판매량이 두배나 늘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11월에는 모기용품을 매장에서 대부분 철수시키는데 올해에는 꾸준히 팔리고 있어 모기관련 용품을 계속 진열하고 있다.”고 말했다. ●18℃ 넘으면 흡혈활동 겨울이 다가오는 데도 이처럼 모기가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도심 의 열섬현상과 지구 온난화, 건물 난방시설의 구비 등으로 인해 서식환경이 따뜻해진 것이 꼽힌다. 모기는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체온이 외부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기온이 높을수록 체온이 올라가면 대사활동이 활발해지고 성장·번식도 빨라지는 셈이다. 원칙적으로 모기가 활동하는 ‘마지노선’격의 온도는 14도. 모기의 흡혈활동은 18도 이상부터 시작된다. 겨울철 실내온도가 20도 안팎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을 모기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바깥이 추워지면서 실내에 모여드는 모기도 많아져 그로 인한 불쾌지수도 높아지게 된다. 한국위생곤충연구회 이동규 회장(고신대 보건환경학부 교수)는 “아파트에서 보이는 모기는 중앙난방식인 경우 지하 보일러실, 중앙난방이 아니면 지하 정화조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겨울철 월동모기는 에너지가 없어 대사하지 않고 견디다 죽는 게 정상이지만 요즘에는 그 공식이 깨졌다.”고 말했다. ●유충 박멸이 더 효과적 이런 가운데 바빠진 곳은 모기 방역을 하고 있는 일선 구청. 그동안 흰 연기를 내뿜어 모기를 죽이는 연막소독을 했지만, 최근에는 연막소독이 주민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권고에 따라 장구벌레(유충) 제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모기의 활동반경이 대개 1㎞로 어차피 태어난 곳에서 맴도는 것이라면, 성충이 되기 전에 화근을 모두 없애자는 것이다. 모기 경계령 1순위로 꼽히는 곳은 바로 지하 정화조이다. 지하공간이 원래 따뜻한데다 정화조 물질이 부패하면서 추가로 열이 발생케 된다. 습기가 많고 따뜻한 곳에 사는 장구벌레에게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국립보건원 이원자 팀장은 “모기 성충은 장구벌레 발생장소의 수천배 이상의 면적으로 확산되기 때문에 모기 유충을 없애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면서 “장구벌레는 물에서만 살기 때문에 발견하기 쉬운데다 많이 모여 있어 박멸에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모기를 잡거나 약을 뿌릴라치면 날아가지만 장구벌레는 가만히 있는 특성상 70배나 높은 박멸효과를 거두게 된다. ●겨울 소독 늘리기로 서울시는 올해 겨울 방역소독 비율을 15%에서 20%로 늘려잡고, 장구벌레의 제거도 50%까지 늘리는 고육책을 짜내고 있다. 광진구는 내년 3월까지를 모기 박멸기간으로 선포했을 정도다. 양천구는 전염병관리법상 30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에 대해서 방역을 하게 되어있지만, 모기가 자주 출현하는 300가구 미만의 공동주택 140단지(1만 5352가구)에 대해서도 방역을 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도 이같은 현상으로 지금까지 10월까지만 하던 모기 밀도조사를 이번에 처음 11월 중순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질병관리본부 신이현 연구관은 “높은 온도가 지속된다면 한겨울에도 순간적이나마 모기가 들끓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모기 서식환경이 좋아지는 만큼 조만간 모니터링 결과를 분석해 모기의 생태를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김유영 서재희기자 carilips@seoul.co.kr ■ 모기 퇴치법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쳤다면 모기를 보고 칼을 빼어든다는 ‘견문발검(見蚊拔劍)’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가정집에서 모기를 줄이려면 모기가 좋아할 만한 환경을 없애는 게 급선무이다. 새끼모기인 장구벌레가 물이 있는 곳에서 살기 때문에 주택가 주변의 웅덩이, 플라스틱 생수병이나 빈 깡통의 고인물, 드럼통, 폐타이어, 꽃병, 빈 항아리 등에 물이 고여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비 온 뒤 웅덩이의 고인 물을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모기는 2㎜의 구멍일지라도 자기 몸을 최대한 움츠려 비집고 들어오기 때문에 창문에 설치한 방충망에 구멍이 없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또 방충망과 벽이 만나는 곳의 틈도 모기가 애용하는 출입구다. 이 경우 실리콘을 이용해 틈새를 단단히 막고 주변에 모기약을 뿌려둔다. 모기는 출입문에 붙어서 쉬다가 문을 열 때 들어오므로 출입문에 모기약을 뿌려도 좋다. 보일러실이 있다면 폐수탱크 안에 있는 물은 모기의 산란장소가 된다. 따라서 폐수탱크의 물을 주기적으로 배수시키거나 모기의 천적인 미꾸라지 한두마리를 약간의 먹이와 함게 넣어두면 해결된다. 등산하면서 몰려드는 모기를 쫓기 위해 팔을 휘저으면 냄새를 더욱 증가시켜 모기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기피제를 바르는 게 낫다. 모기는 땀냄새, 발냄새, 스킨 등 화장품 냄새, 술 냄새를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는 씻고 자는 것이 필수다. 창문을 활짝 열고 모기향을 피우면 별반 소용이 없다. 바람 따라 모기향도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잠자기 두시간 전 창을 닫고 미리 모기향을 피운 다음 잠잘 때는 덥더라도 창을 닫아놓는 게 효과적이다. 특히 24시간 전자모기향을 켜놓는 집이 많은데 낮은 농도라도 장시간 노출되면 두통, 현기증 등의 증세를 일으킬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더구나 날씨가 추워지면 여름보다 환기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모기에 대한 진실과 오해 ●모든 모기가 흡혈귀? 아니다. 암컷만 피를 빤다. 암컷은 수컷과 교미한 뒤 알을 성숙시키기 위해서 단백질을 필요로 한다. 보통 자기 몸무게의 2∼3배에 해당되는 3∼10㎎의 피를 뱃속에 채운다. 모기의 배 안에는 안쪽에 여분의 주름이 있어 한번에 많은 피를 저장할 수 있다. 피를 배불리 먹을수록 낳는 알의 숫자도 많아진다. 수컷은 과일이나 나뭇잎의 진액을 먹고사는 ‘초식 곤충’이다. 더군다나 수컷은 더듬이에 털이 많아서 사람의 피부를 뚫을 만큼 주둥이가 발달되지 못했다. ●물기 전 피부에 마취? 아니다. 보통 모기에 물리는 순간 아픔을 느끼지 못하다 나중에 가려워지는 건 모기가 마취성분을 피부에 미리 바르기 때문이라는 건 속설일 뿐이다. 모기가 피를 빨아들일 때에는 6개의 침돌기를 사용한다. 직경이 20∼60㎛에 불과하다. 이 정도 굵기는 피부를 뚫을 때 여간해서 신경을 건드리지 않아 침돌기가 들어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또 모기의 침은 피를 빨기 전 사람 몸 안으로 들어간다. 이때 말라리아·뇌염·황열병 등 모기 매개 전염병이 옮겨질 수 있다. 모기에 물린후 가려워지는 것은 이같은 물질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때문이다. ●내성이 생겼다? 아니다. 물론 살충제를 뿌리고 뿌려도 모기가 죽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살충제를 오랫동안 써왔기 때문에 모기가 내성이 생겨 강해진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살충제의 주성분이 되는 피레스로이드계가 쓰인 것은 1950년대부터. 한국존슨 김대훈 연구원은 “모기가 내성이 생기려면 최소한 100년이 지나 유전자 자체가 변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살충제에 대해 내성이 생겼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설명했다. 인체에 해롭지 않도록 약효를 약화시킨 탓이라고나 할까. ●웅∼소리의 정체는? 성충인 모기는 성충이 된 지 1∼2일 내에 교미를 시작한다. 수컷이 밤에 수백마리씩 떼를 지어 3m 내외의 공중에서 정지비행을 하면서 암컷을 유혹한다. 그러면 암컷은 무리속에 들어와 교미를 위해 자신이 선택되길 기다린다.1초당 250∼500번의 날갯짓에서 나오는 비행음은 종(種)에 따라 파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들은 비행음을 듣고 같은 종인지 감지한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모기의 힘 “모기가 파나마 운하 건설을 중단시켰다니.” 모기는 제국주의 시대 서양 사람들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미국의 경우 17세기 아프리카에서 2000만명의 노예가 들어오면서 숲모기도 함께 들어왔다. 모기로 인한 대표적 피해사례는 1881년 시작된 프랑스의 파나마운하 건설 중단사태다. 당시 건설 노동자들은 대부분 오두막에 거주했는데, 이들은 모기가 전염병의 매개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방충망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 결과 모기들은 오두막에서 노동자의 피를 마음껏 빨아먹기 시작했다. 결국 말라리아로 1200여명이 죽은 뒤 공사는 1884년 중단됐다. 이 사업에 돈을 댔던 수만명의 투자자들은 30억달러 상당을 날렸다. 이후 미국은 1904년 이 공사를 인수한 뒤 가까스로 공사를 끝냈다. 기원전 4세기 유럽·아시아·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얼굴) 대왕은 자신이 정복한 영토에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 등 70여개의 도시를 세웠다. 하지만 이처럼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던 알렉산더 대왕은 어이없게도 33세의 나이에 모기에 물려 죽으면서 원대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사망 후 대제국은 분열됐다. 칭기즈칸이 서유럽 점령을 포기하고, 나폴레옹의 군대가 이탈리아에서 패한 원인도 말라리아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콜럼버스는 모기만 있는 곳을 발견했다고 해서 ‘모기 제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클레오파트라가 눈화장을 짙게 한 이유는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기를 내쫓기 위해서라는 속설도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정글아이/자비네 퀴글러 지음

    “1970년대말 내 나이 5살. 선교사인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를 따라 들어간 서파푸아 오지 정글은 나에게는 문명세계보다 행복한 천국이었다.” 독일 국적으로 부모를 따라 인도네시아 서파푸아 정글에서 원시부족인 ‘파유족’과 함께 12년이란 시간을 보낸 백인 여자아이 자비네 퀴글러.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와 30대에 접어든 그녀의 삶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출간과 동시에 17개국에서 번역, 소개된 ‘정글아이’(자비네 퀴글러 지음, 장혜경 옮김, 이가서 펴냄)는 시간이 멈춰버린 정글에서 원시인 친구들과 함께 뛰놀았던 푸른 눈 백인 소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명세계와 고립된 낯선 땅에서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동물과 물고기를 잡았던 그녀는 식구들의 정글 적응기와 원시부족의 삶, 그리고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왔을 때 부딪혀야 했던 혼란과 갈등을 가식없이 담담하게 풀어낸다. 정글세계를 미화하지도, 문명세계를 비난하지도 않지만 꿈에도 정글이 나타날 정도로 정글세계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잘 그려진다. 파유족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구운 벌레를 간식으로 먹고 껌 대신 박쥐 날개를 씹으며 활과 화살을 갖고 놀면서 그들의 삶에 동화됐다. 병원도 없고 맛있는 아이스크림, 심지어 물을 담을 플라스틱 통조차 없지만 그녀의 가족에게 부족함은 없었다. 필요한 모든 것은 정글 자연속에서 얻을 수 있었고 정글의 충고에 귀 기울이면 모든 것이 해결됐기 때문. 그녀는 오히려 문명사회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털어놓는다.1년 내내 흘러나오는 온수, 원하는 건 뭐든지 살 수 있는 슈퍼마켓, 전기와 전화 등 없는 것이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과 담배에 의존하며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문명세계는 정글 생활보다 더 많은 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글은 모든 것이 분명하다. 친구와 가족을 적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고 고기 한덩이라도 모두 나눈다.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간단명료한 것이다. 17세에 스위스 기숙사로 돌아오면서 문명세계를 접한 퀴글러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정글을 떠나고서야 기차를 처음 본 그녀는 문명의 ‘낯섬’과 ‘위험함’에 충격을 받는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극단적으로 다른 두 세계 사이에서 완전한 정글아이도 아니고 문명인도 아닌 채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방식의 삶을 인정하고,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배웠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퀴글러는 “10살짜리 아이를 혼자 정글 한 가운데 던져 놓는다면 살아돌아올 수 있지만 대도시 한 가운데 버려둔다면 분명히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복잡한 문명세계에 고립된 사람들이라면 문명밖 세계에서 산 정글아이가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이미 익숙해진 ‘이성’이라는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말이다.1만 2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기생충알 김치 파문] 기생충알 인체 유해한가

    [기생충알 김치 파문] 기생충알 인체 유해한가

    일부 국산 김치에서 검출된 개·고양이 회충란이 사람에 얼마나 해로울지가 최대 관심사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문제없다. 국산 김치 검사에 참여했던 서울대 수의과대학 윤희정 교수는 3일 “이번에 검출된 개·고양이 회충란은 모두 미성숙란이었다.”면서 “미성숙란을 먹더라도 몸속에서 자라지 않고 100% 몸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전혀 유해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개·고양이 회충란 외에 발견된 다른 회충란도 사람의 것인지 다른 동물의 것인지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성숙하지 않은 미성숙란이라 역시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기생충은 미성숙란→자충포자란(애벌레가 들어 있는 기생충알)→성충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중 미성숙란을 먹으면 종류를 불문하고 인체에 감염되지 않는다. 자충포자란 상태가 된 기생충알을 먹어야 기생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 윤 교수는 “김치나 배추에서 검출된 미성숙란이 자충포자란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동안 온도·습도·산도가 맞아야 한다.”면서 “자연상태로 보관 중인 배추에 뭍어 있는 미성숙란이나 냉장보관 중인 김치에 들어있는 미성숙란이 자충포자란으로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상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손운목 교수도 “개·고양이 기생충의 자충포자란의 경우 인체에서는 성충으로 자라지 않는다고 학계에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최악의 경우 자충포자란을 먹어 기생충에 감염됐다 하더라도 구충제만 먹으면 어떤 기생충도 없앴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국산김치는 믿을 만하네요”

    “국산김치는 믿을 만하네요”

    “두포기에 배를 반개나 넣어요. 집에서 담는 것보다 양념이 더 푸짐해요.” 지난달 27일 충북 진천군 광혜원에 자리한 D김치 공장. 배추김치를 담그는 체험단 주부 27명은 소풍 나온 초등학생 마냥 설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 샛별마을 주부들은 이날 오전 10시, 대형버스에 몸을 실었다.11월1일부터 12월16일까지 진행되는 ‘김장투어’를 미리 체험하기 위해서다. 최근 중국산 김치 파동으로 포장김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자 동원이 김장공장을 견학하고 직접 배추김치를 담그는 행사를 기획한 것이다. ●양념 듬뿍… 40대~60대 주부들 ‘손맛 자랑´ 버스로 2시간을 달려 진천공장에 도착한 주부들은 사무실 뒤편에 자리한 1000평 규모의 김치공장으로 이동했다. 한쪽 벽면을 유리로 꾸민 공장안은 안쪽까지 훤히 보였다.100여명의 직원은 연구실 연구원처럼 흰 가운과 모자·마스크·장화로 감싸고 있었다. 흰색 타일이 깔린 바닥에는 배추를 씻은 물이 흘러내렸다. 하루 20t의 김치가 생산되는 곳이지만, 음식쓰레기를 그때그때 치워 지저분하지 않았다. 김치를 담그는 직원은 대부분 손맛을 자랑하는 40∼60대 지역주부들. 재료는 원산지가 확실한 우리 농산물만 고집한단다.1년 단위로 계약,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채소를 키우도록 했다고 김일상 공장장이 설명했다. 김치공장에서도 김치는 주부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우선 해남배추를 짜지 않게 절여 물기를 뺀다. 무 쪽파 부추 마늘 생강 고춧가루 참치액젓 새우젓 등을 넣어 기계로 저어 김치양념을 만든다. 유일하게 기계가 사용되는 순간이다. 생산라인에 일렬로 선 주부 직원들이 배추를 들추며 배추벌레가 없는지 하나하나 확인한다. 그리고 배추포기 사이사이에 양념을 속속 넣는다. 생산라인 끝부분에선 무게를 달아 포장한다. 한 체험단 주부는 “집에서 담글 때보다 더 정성스럽다.”고 감탄했다. 체험단 주부들도 직접 김치를 담그러 공장 옆에 마련된 시연장으로 향했다. 흰색 위생복으로 갈아입고, 앞치마에 머리망을 둘렀다. 팔엔 토시, 손엔 장갑을 꼈다. 마지막으로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에어샤워룸을 지나야 했다. 거센 바람이 몸 곳곳을 훑고 지나갔다. 성질 급한 주부들이 그냥 통과하려 반대문을 열었지만 에어샤워가 끝나기 전에는 반대쪽 문이 열리지 않는다. 개수대 위에는 배추 3∼4포기와 양념소, 배가 준비돼 있다. 앞쪽 탁자에는 취향에 따라 추가하라고 무 쪽파 부추 마늘 생강 등 김치양념이 놓여 있다. 김장투어 때는 잣 밤 생굴 생새우 대추 등도 준비할 예정이다. “너무 싱겁지 않아? 고춧가루가 더 필요하네.” “우리 아빠는 심심한 걸 좋아하더라구.” 왁자지껄한 수다에 시연장은 어느새 시골 아낙네들의 김장 담그는 풍경과 닮아갔다. ●김치 10㎏ 담그면 5만 5000원 모든 재료가 깔끔히 준비된 덕에 4㎏ 김치담그기는 40여분 만에 끝났다.10∼20㎏분량 김치도 1시간30분이면 완성된다. 김치전문가 덕에 새내기 주부인 기자도 ‘생애 최초 김장 담그기’에 성공했다. 김경애(70)할머니는 “중국산 김치 때문에 포장김치 사먹기가 겁났는데 걱정을 덜었다.”고 만족해했다. 담근 김치는 냉장보관 상태로 3일후에 배달된다. 김치 10㎏을 담그면 5만 5000원,20㎏을 담그면 10만원이다. 진천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지난 60년은 그만두고 양류목운(楊柳木運)의 해에는 갑자기 군대가 소요를 일으켜 여(女)군주가 도망을 칠 것이다. 만일 동남쪽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하게 되리라. 나라의 태공은 푸른 바다에 외로운 그림자가 되어 신세가 처량해질 것이나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백성들은 달아나 숨기 바쁘니, 삼강오륜이 끊어지도다. 하늘 재앙 혹독해 벌레의 독을 무어라 형언하랴. 부자가 먼저 죽나니 후회해도 소용없도다.”(경주이선생 가장결) ‘정감록’의 일부로 돼 있는 ‘경주이선생’의 첫 대목이다. 정치적 격변을 알리는 끔찍한 예언이 쏟아져 나온다. 그 내용을 일일이 살피기에 앞서 우선 거기에 보이는 연도 표기방식이 특이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양류목운’이라고 했다. 음양오행설에 입각해 임오년과 계미년의 운세를 말한 것이다.‘경주이선생’은 조선 후기에 정착된 편년체 예언이 분명한데, 특히나 음양오행설로 육십갑자를 푼 셈이다. ●한국의 운세를 나무에 빗대는 이유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이란 나라의 운세는 나무 운세(木運)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이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그랬다. 다들 우리나라를 나무(木)로 상정했다. 그 기원은 지금부터 약 650년 전인 고려 공민왕 6년(1357)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음양오행에 달통해 사천소감 벼슬에 있던 우천흥이란 일관(日官)이 있었다. 그는 공민왕에게 올린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도선국사가 지은 ‘옥룡기’(玉龍記)란 예언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지맥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 지세가 물(북쪽)은 뿌리요, 나무(남쪽)는 줄기가 됩니다.” 우천흥은 도선이 한 말이라며 자신의 견해에 권위를 부여하려 애쓴다. 과연 이 주장이 도선에게서 비롯됐는지는 증명할 길이 없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는 백두산을 뿌리로 삼아 지리산까지 줄기가 뻗친 한 그루의 나무로 이해된 사실만은 틀림없다. 역사 기록을 좀 더 살펴보면 그보다 200년쯤 앞서 고려 인종 때도 비슷한 인식이 존재했음이 증명된다. 알다시피 묘청은 도읍을 서경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는데, 그 역시 고려란 나라를 한 그루 나무로 보았다. 묘청이 서경에 새 궁궐터로 잡은 곳이 ‘대화세’(大華勢), 즉 큰 꽃봉오리 형상의 명당이었다. 그는 나라 전체를 커다란 나무로 인식했고, 그 중에서 지세가 강한 여러 명당을 꽃으로 간주했다. 대화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꽃 즉, 최고의 길지를 뜻했다. 한국이 음양오행으로 보면 나무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고대 중국에서 비롯된 듯하다. 한반도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쪽에 위치하는데, 나무가 바로 동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먼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동국(東國)’ 또는 ‘진단(震檀)’이라 불렀다. 동쪽 나라를 뜻하는 ‘동국’이야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진단’의 진(震) 역시 팔괘의 하나로 동쪽을 가리킨다. 단(檀)은 우리나라의 시조가 단군이라서 덧붙여진 것이다. 우리나라를 동쪽 나라라 하고 그래서 나무 운세로 보는 것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표현된 것이다. 지구가 둥근데 하필 우리나라를 동쪽으로 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정약용이나 홍대용과 같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마침내 지구가 둥글다든가 자전하는 줄을 알게 돼 중국적 세계관에 본격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동쪽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인습의 뿌리는 정말 끈질기다. 빠뜨릴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역시 ‘고려사’에 실려 전한다. 한국 고대 풍수지리의 아버지라 할 도선국사가 고려 태조 왕건이 태어날 집터를 정할 때의 전설이다. 그 때도 나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선은 왕건의 아버지 왕륭과 함께 곡령 고갯 마루에 올라 지맥을 두루 살폈다. 위로 천문을 보고 아래로는 시수(時數)를 살핀 다음 그는 이렇게 말했다.“이곳 지맥은 임방(壬方:북쪽)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물을 어머니(水母)로 삼은 나무(동쪽)가 줄기인데, 말머리 명당에 이르러 멈춰선 형세입니다. 공 역시 물의 운명이오니 마땅히 물의 대수(大數·물의 수는 1과 6으로 6이 대수다)에 따라 집을 지어야 합니다. 대수인 6에 6을 곱하면 36구가 되는데 이것이 천지의 대수에 부응합니다. 제 말대로 하시면 내년에는 반드시 성스러운 아들(미래의 임금)을 낳게 될 것이오니 이름을 부디 왕건이라 하십시오.”(고려사 세계 7) 도선은 태조 왕건의 운세를 나무로 보고, 그 아버지는 나무를 살리는 물이라 여겼다. 마찬가지로 송악 명당이 있게 한 뿌리는 백두산인데 북쪽의 임방에 위치하므로, 오행으로 풀이해 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비해 송악 명당을 낳은 금강산과 태백산 등 백두대간은 송악에서 바라보면 동쪽에 위치해 나무로 간주됐다. 따지고 보면 송악 역시 그 나무의 꽃 또는 열매에 해당해 근본적으로는 나무로 파악됐다. 도선의 머릿속에서 송악과 고려 태조 왕건은 나무로 동일시되었다. 나무인 왕건이 태어나서 자랄 집은 당연히 물이라야 하므로 대수 36구가 길하다는 결론이 나왔으며, 송악에는 푸른 소나무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 도선의 처방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의 운세는 늘 나무로 파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壬午와 癸未가 楊柳木이 되는 이유 오행상생설로 보면 나무를 살리는 것은 다름 아닌 물(水), 죽이는 것은 불(火)이다. 따라서 나무인 한국에게 물의 해는 길하고 불의 해는 흉하다는 식의 운세 풀이가 나오게 된다. 흉한 해 즉, 불(火)로 정의되는 해는 말(午)의 해요, 그 뒤를 이은 양(未)의 해도 좋지 않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런데 한국의 운세는 말과 양 등 십이간지(十二干支)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육십갑자를 구성하는 열 개의 천간(天干)이 또 있어서다. 나무에 해로운 불은 병정(丙丁) 둘이며, 이로운 물이 또 두 가지이다. 임(壬)과 계(癸)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임과 계년이라면 나라 운세가 보통은 아주 좋다. 하지만 십이간지인 말과 양의 해가 나무와 상극인 관계로 임오년과 갑신년의 운세는 상생과 상극이 맞부딪쳐 어정쩡해진다. 비유하자면 어린 나무(柔木)다. 역술가들은 임오년과 계미년의 국운을 흔히 양류목(버드나무) 운세라 부른다.‘경주이선생’도 예외가 아니어서 버드나무 운세라는 말로 두 해의 운세풀이를 시작한다. 하고 많은 나무 가운데서 버드나무란 또 무엇일까? 옛 사람들은 버드나무라면 으레 생명력이 끈질기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명유(名儒) 하서 김인후는 귀양 가는 친구에게 뜰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기도 했는데, 버드나무가 정든 임을 상징하기도 했지만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버드나무는 가늘고 긴 가지가 특별하다. 축 늘어진 모양은 마치 미인이 긴 머리를 풀어헤친 듯도 하려니와 하늘하늘한 여인의 허리를 연상케 한다. 낙락장송의 꼿꼿한 기개는 아닐지라도 유려함과 생명의 활기가 느껴지는 나무다. 버드나무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물이 올라 푸르름을 선사하기도 한다. 부드러움 속에 강인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양류목’ 운세는 다소 불리한 가운데도 끝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날 가능성을 가진다. 말과 양의 해라면 나무가 죽을 수이고, 특히 큰나무가 해를 많이 입을 운이다. 다행히 임과 계년이라서 다 죽지는 않는다. 산불 때 그렇듯 큰 나무는 힘없이 쓰러지되 작은 나무는 도리어 살아남을 운세다. ●임오군란과 양류목운 다시 맨 앞에서 인용한 ‘경주이선생’의 첫 대목을 상기해보자. 고종19년(1882) 임오년의 정세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참 많다. 첫째, 군대의 소요가 일어난다는 예언이 있는데 그 해에는 실제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당시 정국은 대원군을 중심으로 한 수구파가 개화파와 대립하는 형세였다. 개화파는 사실상 국왕 고종과 명성황후가 손수 이끌다시피 했다. 왕이 개화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개화파 관료가 점차 조정에 많이 임용되었다. 고종18년(1881)에는 신식군대인 별기군까지 창설되었는데, 소외감을 느낀 구식 군인들은 그것을 왜별기(倭別技)라 부르며 분통을 터뜨렸다. 과거 대원군이 집권하던 시절만 해도 구식 군인들에 대한 대우는 좋았다. 하지만 개화정책이 추진되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져 그들은 봉급이 13개월치나 밀리는 등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다. 재정을 담당하는 선혜청 당상이자 병조판서였던 민겸호야말로 이런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 구식 군인들의 믿음이었다. 마침 그해 6월, 전라도에서 올라온 세미(稅米)가 서울에 도착하자 구식 군인들에게도 1개월분의 급료가 지불되었다. 그런데 선혜청 담당 관리들의 농간으로 겨와 모래가 섞인 쌀이 지급되자 구식 군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해 무장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평소 불신하던 민겸호의 집에 난입했고, 장차 민씨 일파의 보복이 있을까 염려한 나머지 반대파인 대원군에게 의지했다. 대원군은 몰래 심복을 보내 구식 군인들을 통솔했고 이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자신의 재집권을 꾀했다. 그 바람에 구식 군인들의 폭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군인들은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강화한 뒤 명성황후의 측근들과 개화파 주요 관리들의 집을 차례로 습격했다. 대원군의 밀명에 의해 그들은 친왕적이고 개화정책에 우호적이던 대신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부자가 먼저 목숨을 잃는다.”는 ‘경주이선생’의 예언처럼 부와 권세를 부리던 사람들이 상해를 입었다. 개화파의 군사적 기반인 별기군 병영도 무사하지 못했다. 구식 군인들은 일본인 교관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를 살해했고, 일본 대사관에도 침입해 13명의 일본인 목숨을 빼앗았다. 둘째, 예언서 ‘경주이선생’에는 여 군주가 도망친다고 돼 있는데, 실제로 실권을 행사하던 명성황후가 충주로 도피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구식 군인들은 돈화문을 통해 창덕궁 궐내로 난입했다. 그들은 개화파의 우두머리라며 명성황후를 제거할 계획이었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수구파의 우두머리인 대원군의 조종을 받은 것이었다. 목숨이 위급해진 왕후는 무예별감 홍재희의 도움을 얻어 충주 장호원에 있던 친척집으로 피신했다. 셋째, 국태공이 납치된다는 예언도 적중해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었다. 국왕인 고종은 임오군란으로 벌어진 정치적 난맥상을 진정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해 일단 대원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시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대원군은 왕의 의지에 상반된 조치를 연달아 취했다. 대원군은 그동안 실시돼온 개화정책을 거의 모두 파기했다. 별기군을 혁파하고 구식 군대인 5군영을 복구하였으며, 신식 정부기관인 통리기무아문을 없애고 3군부를 설치했다. 대원군은 최대의 정적인 명성황후의 실종을 서둘러 사망으로 단정하고 국상을 치렀다. 개화파로서는 큰 타격이었다. 그러자 개화파는 톈진(天津)에 주재하던 영선사 김윤식을 통해 청나라에 군사적 후원을 부탁했다. 청나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했다. 오장경(吳長慶)이 이끈 청나라 군대 4500명이 서울로 급파됐다. 그는 군대를 앞세워 한국의 내정에 직·간접으로 간섭하였고, 자신을 찾아온 대원군을 불법 체포해 톈진으로 압송했다. 한국 내에서 청나라의 입지를 강화시킬 방안에서였다. 이로써 나는 새도 떨어뜨릴 듯하던 ‘호랑이’ 대원군은 권좌에서 영원히 축출되었다. 예언대로 되고 만 것이다. 이밖에도 ‘양류목운’의 예언은 적중했다.“손님이 주인행세를 할 것”이라 했는데 과연 오장경이 지휘하는 청나라 군대가 멋대로 주인행세를 한 것이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임오년은 ‘경주이선생’이 말하듯 숱한 사건이 터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나라가 아주 망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충주로 피난한 명성황후도 무사했고, 불시에 청나라로 붙잡혀간 대원군도 다시 귀환할 수 있게 된다. ●갑신정변까지 ‘경주이선생’에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경주이선생’에는 고종21년(1884)에 일어난 갑신정변도 정확히 예측돼 있다.“정중수운(井中水運)은 자미(북두성) 자리에 저녁 무지개가 뜬 형국이다. 그러다 다시 동쪽으로 달아나리라. 나라에 변고가 일어나 죽음이 참혹하구나. 남북 군사들이 부딪쳐 화가 점차 심한 불길처럼 번져나갈 것이다.”자미성이라면 천자 또는 임금을 가리킨다. 그 자리에 무지개가 뜨는 것은 무척 흉하다. 무지개는 하늘에 보이는 벌레로 해석되기 때문에 변란이 일어난다는 예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고 한 것도 불길하며, 변란의 주체가 동쪽으로 달아난다고 한 것도 심상치 않다. 더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남과 북의 세력이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대립한다고도 했으므로 후환이 두렵다. 이 예언대로 한 해가 흘러갔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김옥균과 박영효를 비롯한 개화파 청년 인사들이 그 해 10월17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들의 정변은 일단 성공했으나 지지기반이 미약했던 탓에 정권이 오래 가지 못했다. 겨우 사흘밖에 집권하지 못해 ‘삼일천하’란 다소 비웃는 듯한 표현까지 등장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신정변의 역사적 의의는 크다. 한국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위로부터의 근대적인 개혁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김옥균 등 정변의 주체세력은 그들 스스로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양반 출신이었지만, 오랜 사회적 악습으로 남아 있던 문벌 타파를 실천하고자 했다. 개화당 인사들은 능력 본위로 인재를 등용하자며 평등권을 부르짖었다. 아쉽게도 정변은 실패로 돌아갔고 후유증도 심각했다. 서울에 와 있던 청나라 장수 위안스카이의 무력 공세에 밀린 김옥균과 박영효 등은 후일을 기약하며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 사건 이후 한국은 일본과 청나라의 세력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불쌍한 처지에 놓인다. 청·일 양국은 그 이듬해인 1885년 4월 18일, 톈진조약을 체결해 장차 한국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할 경우 두 나라가 동시에 군대를 파견하기로 약속하기에 이른다. 과연 갑신정변이 일어 난지 정확히 10년 뒤인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청·일 두 나라는 톈진조약에 의거해 한국에 동시 출병했고, 마침내 한국을 독점하기 위해 청·일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로써 일본은 장차 한국을 병합할 기초를 다진다. 불행의 씨앗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맞는 ‘경주이선생’ 갑신정변을 분기점으로 잘 맞아 들어가던 ‘경주이선생’도 틀리기 시작해, 고종 23년(1886) 이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유는 무척 간단하다. 맞고 틀리고는 ‘경주이선생’이 저술된 시기와 직접 관계가 있다. 나는 이 예언서가 1884년 갑신정변이 끝나자마자 쓰였다고 본다. 이미 다 알고 쓴 것이라서 1880년대 초반의 일은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정도로 딱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한 1886년 이후를 무슨 수로 맞히겠는가? 맞는 예언서는 이미 예언서가 아니다. 그것은 술사를 비롯한 민중의 역사적 인식이 기록된 일종의 역사서일 뿐이다. 그 때 있었던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주된 관심사만을 한데 주워 담은 역사 말이다. 예언은 사실 미래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뜻밖에도 거기에 민중의 역사적 기억이 집적돼 있다.‘경주이선생’에는 특히 민중이 바라본 정치와 경제 이야기가 많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도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권력과 돈의 향방을 따진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피플 인 포커스] 패트릭 피츠제럴드 특별검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대통령 정권의 핵심부에 칼끝을 들이대는 패트릭 피츠제럴드(44) 특별검사는 누구인가. 피츠제럴드 특별검사는 2003년 12월부터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누설한 ‘리크게이트’ 수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피츠제럴드 검사는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대부분 직접 조사했으며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수를 기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피츠제럴드 검사는 또 비밀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신분을 누설한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를 법정구속하는 등 강경자세를 보이고 있다.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이 기소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체니 부통령의 연루 여부도 집중 조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백악관이 ‘쑥대밭’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피츠제럴드는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로 뉴욕 브루클린에서 성장했다. 고교시절 성적이 좋았고, 앰허스트 대학도 우등 졸업해 하버드 법대에 진학했다. 1993년 뉴욕에서의 초임검사 시절 조직범죄 소탕에 나서 유명한 마피아 두목 존 감비노를 감옥으로 보냈다. 또 같은 해 세계무역센터 폭발 및 1998년의 해외 미국 대사관 연쇄 폭파 사건을 수사하면서 오사마 빈 라덴을 범인으로 지목, 그의 조직원들을 구속하기도 했다.2001년 이후 시카고 근무 시절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시 직원을 채용한 리처드 댈리 시장과, 향응을 받고 관급공사를 낙찰받게 한 조지 라이언 일리노이 주지사를 고발했다. 피츠제럴드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그가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전혀 동요하지 않는 일벌레로 평가하고 있다. 피츠제럴드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가 평생 검사 말고는 해본 일이 없어서 세상을 선과 악, 흑과 백으로 단순화시켜 보는 경향이 있으며 밀러 기자의 구속에서도 나타나듯이 법을 매우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해석한다고 꼬집었다. dawn@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3) 차와물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3) 차와물

    새벽달빛이 창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풀벌레소리는 어느새 수곽의 물소리에 젖어들고 있다. 새벽예불을 위해 가만히 문을 열면 사방은 바로 고요해진다. 인간의 소음에 모든 삼라만상이 긴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분별과 자만으로 인해 자연과 소통하지 못한다.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인류최악의 강진도 제일 먼저 동물들이 그 반응을 보인 것은 그 같은 자연과학적인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문을 열고 나와 발우를 부여잡고 청수(淸水)를 공양하기 위해 자우홍련사 툇마루를 나선다. 오렌지처럼 푸른 달빛이 축축한 대지에 차가운 기운을 전달하고 있다. 맑고 청아한 물소리가 내 영혼을 먼저 깨운다. 초의스님이 그토록 사랑했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샘물인 유천의 물소리다. 산등성위에 살짝 얹힌 두개의 바위 틈 사이로 대나무가 박혀 있다. 그 대나무를 타고 세 개의 작은 수곽을 지나 유천의 물이 숙성되면 암반으로 흘러넘친다. 마치 안개비처럼 산구름처럼 소리없이 물이 흘러내린다. 그 물소리가 혼탁한 세상을 맑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유천에 가볍게 반배를 한다. 그리고 발우를 수곽에 얹으면 또르륵 이슬방울처럼 스며드는 유천의 물은 마치 광망한 바다에 아침을 물고 나오는 붉은 해가 세상에 젖어들 듯 장엄한 울림을 전해준다. 발우에 담긴 유천의 물을 부처님께 공양한다. 지심귀명례 지심귀명례. 물에 대해 초의스님은 이렇게 말했다.“물은 차의 몸이요 차는 물의 정신이 되는 것이다.” 물은 차의 맛을 좌우한다.“나에게 젖샘이 있어 이 물을 떠서 찻물을 끓이면 수벽탕이나 백수탕이 돼버리니 어찌하면 목멱산 아래 해거옹에게 이 물을 드릴 수 있을까.”라며 찻물을 끓이는데, 좋은 물을 권하고 있다. 찻맛의 절반은 물맛이라는 말이 있다. 차는 물에 우려내는 것이므로 물의 등급에 따라 찻맛과 그 효능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옛 차인들은 물을 차를 내는 데 가장 우선순위로 두었다. 차를 우려내는 데 있어서 물은 그 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찻물을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게 되었다. 그나마 좋은 찻물을 먹을 수 있었던 산골이나 시골지역도 개발의 바람과 대기오염으로 인해 그 안전성을 보장받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은 현대산업사회의 폐해가 자연환경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차인들에게 차의 물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차는 좋은 물을 통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의스님은 “차는 물의 마음과 정신이요, 물은 차의 몸이니 참 된물(眞水)이 아니면 다신(茶身)을 나타낼 수 없고, 참된 차 (眞茶)가 아니면 수체(水體)를 나타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물과 제대로 된 차가 만났을 때 좋은 차는 그 생명력이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떤 물이 참된 물일까. 환경이 오염돼 버린 현재의 지구촌에서는 좋은 물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만 옛날 차인들이 추천했던 물의 품수(品水)를 통해 차를 우려내기 위한 참된 물을 정의해볼 뿐이다. 물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에서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졌다. 물의 존재는 곧 생명체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좋은 물을 마시면 육신과 영혼을 증장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나쁜 물을 먹었을 때는 육신과 영혼을 갉아먹는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말로 순수한 물은 바로 깨달음을 얻은 부처 같은 물이다.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취(無臭)한 것이 참된 물인 것이다. 초의스님께서는 이렇게 소중한 물에 대해 여덟가지 덕(八德)이 있다고 했다. 가볍고(輕), 맑고(淸), 시원하고(冷), 부드럽고(軟), 아름답고(美), 냄새가 나지 않고(不臭), 비위에 맞고(調滴), 먹어서 탈이 없는(無患) 여덟가지로 물의 덕을 설명하고 있다. 초의스님의 설명에 따른다면 물은 완전무결한 식품이다. 인간이 즐길 수 있는 모든 맛과 효용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이렇게 완전무결한 것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에는 품천(品泉)이 있다. 육우는 (다경)에서 물의 등급을 “산의 물을 쓰는 것은 상품이고, 강물은 중품이며 우물물은 하품이다.”고 평하고 있다.(자천소품)(煮泉小品)에는 “돌은 금의 근본이요, 돌에서 흐르는 정기는 물을 낳는다.”고 깊은 산중에서 나오는 물이 최고임을 밝히고 있다. 산중의 물중에서도 최고는 이름난 명산의 샘물이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샘물은 바로 돌샘이다. 돌은 산의 뼈요, 물은 산의 골수같은 것이기 때문에 돌샘에서 나오는 샘물이 최고인 것이다. 돌샘은 산의 정기가 모인 것으로 담백하고 맑고 차기 때문에 물을 길어놓아도 오랫동안 물의 기운이 그대로 유지된다. 산중의 물중 산마루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 가벼우며, 돌 사이에서 나는 석간수는 맑고 달며, 자갈샘은 차갑다. 땅밑의 샘은 담백한 물을 뿜어내고 황석(黃石)에서 솟아나는 물은 좋은 물이다. 다만 청석(靑石)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결코 좋지 않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계곡의 물은 발원지에서 멀수록 좋으며 그 흐름이 조용하고 완만하게 흐르며 맑아야 한다. 또한 계곡 위쪽의 인적이 끊어진 곳이어야 한다. 흐르는 물이 발원지에서 멀수록 좋은 것은 물이 흐르면서 광물질 이물질 등이 자연스럽게 여과되어 어느정도 흐르면 담백한 물이 되기 때문이다. 좋은 명산의 물중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샘에 고여 있는 물이다. 물이 넘쳐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는 것은 샘이 죽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물도 함께 죽어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음은 강물이다. 강물 역시 명산을 발원지로 해서 시작해 흐르는 물이 좋다. 강물은 또한 오염도를 줄이기 위해 가능하다면 인간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 좋으며 빛깔은 맑으며 물맛은 지극히 찬 것이 좋은 것이다. 다음은 우물물이다. 인가가 밀집된 지역에서 인공적으로 솟아나게 하는 샘물인 우물물 중에서도 돌이나 모래속에서 솟아나는 상품의 물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물물은 가까이에 있는 인간의 오물이 섞일 수도 있고, 기름진 논이나 비옥한 땅에서 건수가 스며들 가능성이 많아서 제일 하품으로 쳤던 것이다. 이밖에도 호수물, 빗물, 웅덩이물 등이 있으나 찻물로서 적합하지 않다. 물은 흐르는 유천(流川)이 좋고 돌틈의 석간수가 솟아나는 샘물이 좋다. 물의 종류에는 하늘의 은택으로 내린 샘물인 영천(靈泉),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늘 물인 천수(天水), 바위틈에서 솟아 흐르는 지천(地泉), 강물인 강수(江水), 우물물인 정수(井水), 유황성분이 함유된 온천(溫泉),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약수(藥水)가 있다. 이중에서 현재 찻물로 쓰일 수 있는 물은 영천 지천 정수 정도일 뿐이다. 현대에는 그 만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물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다천(茶泉)이 몇군데 존재한다. 신라시대의 다천으로 사선(四仙)들이 차를 달여마신 강릉 한송정, 보천과 효명 두 태자가 차를 달여마시고 차공양을 올린 오대산 서대 우통수, 고려시대 송악의 안화사(安和寺) 샘물, 충주의 달천수(達川水), 금강산에서 시작되어 한강으로 흐르는 우중수(牛重水), 속리산 삼타수(三陀水), 초의스님이 마셨던 두륜산 일지암의 유천(乳泉)등이 있었다. 현존하는 다천중 가장 유명한 것은 경주 기림사의 오종수(五種水)다. 석간수로 최상의 찻물로 꼽히며 물색이 음수(陰水)중 음수인 감로수(甘露水), 물맛이 젖처럼 달콤하며 마시면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지는 화정수(和靜水), 물에 기운이 있어 장수가 된다는 장군수(將軍水), 눈이 맑아지는 물인 안명수(眼明水), 까마귀가 쪼는 자리에 물빛이 배어 그 자리를 파서 감로수가 샘솟았다는 오탁수(烏啄水)가 그것이다. 초의스님이 계시던 일지암의 유천(乳泉)도 명수(明水)중 명수다. 초의스님은 “나에게 젖샘(乳泉)이 있어 이 물을 떠서 찻물을 끓이면, 수벽탕이나 백수탕이 돼버리니, 어찌하면 목멱산 아래 해거옹에게 이 물을 드릴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고 있다. 일지암의 유천은 찻물로는 최상의 물로 평가할 수 있다. 오죽하면 초의스님이 젖샘이라고 불렀겠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써야 할 찻물은 어떤 것이 있는가. 차를 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물의 소중함과 귀함을 알고 있으나 도시에서 찻물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우선 가장 좋은 찻물은 아침일찍 인근에 있는 높은 명산의 약수터 물을 길어 오는 것이다. 국가기관으로부터 검증을 받은 약수터인가를 확인한 후 찻물을 먹을 만큼 길어다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2∼3일 동안 먹는 것이다. 그다음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생수(生水)다. 인위적으로 생산한 생수는 요즘 차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생수의 생명은 짧다.3∼4일이 지나면 생수의 본 성품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정수기를 통해 걸러진 물도 찻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정수기를 통해 정수된 물은 많은 부분에서 물의 본 성품을 강제로 빼앗아버려 썩 좋은 찻물은 아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가장 흔히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이다. 수돗물을 찻물로 쓰기 위해서는 하루쯤 침전해야 한다. 침전하는 도구로는 옹기항아리가 가장 좋으며 유리병도 무방하다. 옹기항아리나 유리병 바닥에 삼투압을 할 수 있는 물질인 맥반석, 돌, 굵은 모래등을 가라앉혀 놓으면 맛있는 물을 얻을 수 있다. 여름에는 뚜껑을 삼배보자기로 덮는 것이 좋으며 겨울에는 본래 뚜껑을 덮어두면 된다. 한 항아리의 물은 3분의2만 쓰고 나머지는 허드렛물로 쓰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일지암 암주 ■ 김노경과 초의스님 ‘유천일화’ 일지암에는 유천이란 샘물이 있다. 유천(乳泉)은 말뜻 그대로 마치 어머니의 가슴에서 나오는 젖처럼 맑고 담백한 천상의 물이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생명을 기르는 젖과 같은 샘이다. 명나라 전예형은 (자전소품)에서 “젖샘이란 종유석의 샘이며 산골의 고수다. 그 샘물의 빛깔은 희고 비중은 무겁다. 매우 달고도 향기로워서 마치 감로와 같다.”고 적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물에 대한 비유다. 유천에 대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바로 추사의 부친인 김노경과의 일화다. 추사의 부친이었던 김노경은 일지암에서 가까운 완도 고금도에 유배를 왔다. 그곳에서 4년을 보낸 김노경이 마침 그 유배가 풀렸다. 해배가 되어 서울로 돌아가던 도중 김노경은 일지암을 들를 결심을 했다. 그가 촉망하는 아들 추사의 인품에 비해 초의스님의 인품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노경은 초의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학식과 선풍이 뛰어남을 알았다. 그런 그가 초의스님이 권하는 유천을 맛보았다. 김노경은 중국의 유명한 차와 물에 대해 깊은 조예가 있었다. 유천의 물을 맛본 김노경은 “일지암 유천의 물은 그 물맛이 ‘수락’보다 더 좋다.”고 극구 칭찬을 했다. 일지암 유천의 물맛은 참으로 뛰어나다. 당나라 때 소이는 (탕품)에서 물을 끓이는 기술에 따라 3품, 뜨거운 차를 잔에 따르는 솜씨에 따라 3품, 탕기의 종류에 따라 5품, 물을 끓이는 땔감의 종류에 따라 5품 등으로 분류했다. 소이는 이 중 가장 잘 끓인 물을 ‘득일탕’(得一湯)이라 했고 그 다음을 어린탕, 너무 많이 끓어버린 물을 백수탕으로 구분해놓았다. 좋은 물도 물이지만 좋은 용기에 잘 끓여야 제대로 된 찻물이 된다는 뜻이다. 소이는 “사람이 백살을 넘은 것처럼 너무 오래끓은 물을 이야기하다가, 때를 놓치거나, 볼일 때문에 내버려두다가 비로소 사용하려면 물은 이미 성품을 잃은 뒤다. 감희 묻거니와 머리털이 희고 얼굴이 창백한 나이 많은 늙은이가 활을 들고 과녁을 맞힐 수 있겠는가. 아니면 씩씩하게 높은 곳을 올라가거나 활발하게 걸어서 멀리까지 갈 수 있도록 돌이킬 수 있겠는가.” 끓인 물이 차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것은 조금 과장일 수 있다. 그러나 물 못지 않게 끓이는 물에 대한 차인의 정성은 소중해야 한다.
  • 아파트야 공원이야

    아파트야 공원이야

    “우린 아파트 공원으로 놀러간다.” 아파트 단지가 공원화되고 있다. 건설업체들이 주차장만 빼곡히 들어섰던 아파트 단지를 앞다투어 주민들의 쾌적한 휴식 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삭막한 콘크리이트 바닥이 웰빙공간으로 태어나면서 입주민들은 모처럼만에 제 권리를 찾았다. 아파트 내부 설계·인테리어 혁명에 이어 외부도 미래형 주거단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실개천·연못…이웃사촌 만남의 장소 주차장으로 뺏겼던 아파트 단지가 조경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실개천과 연못을 만들어 사계절 물이 흐르는 공원으로 바뀌고 있다. 경기도 부천 중동역 대우건설 푸르지오 아파트. 아파트를 들어서면 마치 푸른 공원에 놀러온 기분이다. 지난 9월 입주한 이 아파트는 단지에 소나무 생태연못이 설치돼 있다. 조경 소나무와 수생식물이 잘 가꿔져 늘 푸른 동심을 자극한다. 어린이들의 자연 학습장으로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단지가 공원으로 변하면서 어른들의 모임도 바뀌었다. 연못 주변에 있는 조각 작품을 사이에 두고 입주민들이 얼굴을 맞대기 시작했다. 쾌적한 공원이 아래 위층 서로 외면하고 나 몰라라 하던 사이를 따뜻한 이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웃 간의 정을 나누고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아파트에서도 ‘이웃사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민 이경미씨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면서 “공원처럼 조성된 단지 덕분에 이웃사촌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통미 넘치는 웰빙공간 지난 5월 입주한 안성 공도 쌍용 스윗닷홈 단지는 전통 기와 지붕, 연못, 그네, 태극마당 등을 갖추고 있다. 동마다 테마공원을 갖춘 자연친화형 아파트 단지다. 태극기의 태극문양과 하늘(天), 땅(地), 해(日), 달(月) 등의 사괘를 상징화한 독특한 조경이 특색있어 보인다. 기존 아파트 부지에 있던 소나무 숲에서 그대로 옮겨 심은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단지를 둘러싸고 있어 산책을 물론 삼림욕과 조깅도 즐길 수 있다. 공원은 자연스럽게 대화가 단절된 삭막한 아파트 주민의 커뮤니티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주민간 단절된 대화를 이끌어내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공원아파트=돈 되는 아파트 이달 말 입주하는 서울 역삼 래미안 아파트 단지는 벌써부터 화제다. 입주 예정자들의 반응도 그만이다. 쾌적한 웰빙공간을 누리는 동시에 ‘돈 되는’ 아파트에 입주하게 돼 싱글벙글이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소는 다른 아파트보다 프리미엄이 높게 붙어 있다고 전한다. 이 아파트에는 생태공원과 테마정원이 조성돼 주민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도심에서 보지 못한 식물·곤충 등을 살필 수 있는 자연생태 공원을 꾸몄다. 연못과 실개천도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었지만 자체 순환식 수질관리로 1급수 못지 않게 수질 관리를 해준다. 대나무 숲길, 은행나무길, 풀벌레공원 등 아파트 단지내 테마정원 등도 조성했다. 중앙공원에는 300년 된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인공 분수대를 설치, 주민 대화 공간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이용승 부장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자연과 함께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데 모자람이 없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외관 디자인이 경쟁력… 특허 등록 배타적이던 건설업체들이 아파트 외관 디자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쟁 업체 입주 단지를 몰래 돌아보기도 하고, 설계를 훔치기도(?) 한다. 중견 업체들은 브랜드 가치 높은 대형 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눈에 띄는 단지 조성에 더 열성이다. 동일하이빌 아파트 단지는 어디를 가나 눈에 띈다. 이 회사는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단지를 조성하는 데 선도 역할을 했다. 실개천, 분수 광장 등을 설치하고 주민 편익시설도 멋스럽게 설계했다. 용인 동일 하이빌 아파트 단지는 대형 업체 단지 설계팀과 설계 사무소 직원들이 자존심을 벌이고 구경을 왔던 단지다. 대림산업은 아예 외관 디자인에 대해 특허 등록을 했다. 단지 배치뿐만 아니라 조경 시설 등의 독특한 설계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취지다. 글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얘들아, 원숭이·구관조 만져볼래”

    “얘들아, 원숭이·구관조 만져볼래”

    ‘만지면서 배우세요.’ 서울시시설관리공단은 연말까지 매월 넷째주 토요일 능동 어린이대공원 열대동물관에서 초등학생들을 위한 ‘놀토 동물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원숭이 구관조 등의 동물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며 직접 만져볼 수 있다.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등의 곤충표본을 만들어보는 기회도 갖는다. 전화로 신청하면 된다. 참가비는 1만 5000원. 또 12월까지 유치원·초등학생 단체를 대상으로 동물을 만져 보며 먹이를 주는 ‘코코의 동물학교(1인당 3000∼5000원)’,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에코스쿨’도 함께 운영된다. ‘에코스쿨’에 참여하면 호랑이·사자 등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동물에 대해 배운 뒤 수료증도 받을 수 있다. 참여비는 2인 가족당 1만원이며 1인 추가시 5000원씩 더 내야 한다.(02)450-9381∼2.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깔깔깔]

    ●남자들 ‘쉬’ 하는 유형 *견공형 : 볼일을 볼 때 한쪽 다리를 살짝 들고 보는 남자.*개구쟁이형 : 소변 줄기를 변기의 위, 아래 그리고 좌우로 휘두르며 열심히 파리나 벌레를 맞히려고 애쓰는 남자.*매사조심형 : 의사가 허리가 안 좋으니 무거운 것(?) 들지 말랬다고 뒷짐 지고 누는 남자.*소심형 :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면 소변을 눌 수 없어 아무도 없을 때 볼일을 보는 남자.*사팔뜨기형 : 옆 사람 것은 어떤지 훔쳐보면서 소변 누는 남자.*오리발형 : 소변 누다가 방귀를 뀌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옆 사람을 쳐다보는 남자.*터프가이형 : ‘거기’에 남은 소변을 털어내기 위해 ‘거기’를 변기에다 탕탕 치는 남자.*매사깔끔형 : 소변이 다 마를 때까지 ‘거기’를 50회 이상 터는 남자.
  • ‘가을 친구’ 잠자리 보러가요

    서울대공원에서 다양한 잠자리를 관찰할 수 있는 ‘가을 잠자리 축제’가 열린다. 서울시는 8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대공원 곤충관에서 이같은 축제를 연다고 7일 밝혔다. 축제는 ‘가을 잠자리 특별전시회’와 ‘곤충서적 베스트셀러 저자와의 만남’ ‘종이·나무로 곤충만들기’ ‘가을 곤충 아카데미’로 나뉘어 진행된다. 전시회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12∼13㎝의 꽃잎꼬리잠자리, 한국에서 가장 작은 10∼14㎜의 꼬마잠자리, 지난해 국내에서 65년만에 발견된 희귀종인 큰긴무늬왕잠자리 등 잠자리 92종의 표본과 사진을 볼 수 있다.‘저자와의 만남’은 이달 매주 일요일 열린다.‘신기한 곤충 세계로’의 저자 김태우씨,‘곤충의 비밀’ 저자 이수영씨 등 곤충서적 베스트셀러 작가 6명이 사인회를 갖는다. 이어 오는 31일까지 매일 가족과 함께 종이를 접거나 나뭇가지를 이어붙여 잠자리, 무당벌레, 나비 등 곤충모양을 만들어보는 ‘곤충만들기 체험’이 진행된다. 참가비는 3000원이다. 9일과 15∼30일 매주 토·일요일 열리는 ‘가을곤충 아카데미’에서는 서울대 장이권 연구교수 등 곤충 관련 전문가 7명이 ‘우리나라의 우는 곤충들’ ‘한국 잠자리의 세계’ ‘한국의 거미와 외국의 거미’ 등 다양한 곤충을 주제로 강의를 한다. 초등학교 3∼6학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8일부터 대공원 홈페이지(grandpark.seoul.go.kr)에서 선착순으로 참가신청을 받는다. 참가비는 1인당 5000원.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웃기는 영어(14)

    Taxi Drivers’ Favorite Jokes Two worms who live under a golf course wake up one morning.One says to the other,“Go up top and see if it’s raining.” The other worm says,“I don’t want to.If it is raining,I’ll get all wet.” So they argue back and forth like this until they decide to draw straws.One of them wins,and the other has to go up and check. Just at this minute two women golfers happen to be passing overhead.One mentions that she has to pee,and the other woman says,“Hey,look.There is nobody else around.Why don‘t you do it right here?” So the woman squats down and takes a piss at the exact moment the little worm breaks through the surface.He takes one look around,gets totally drenched,and hurries back down below. The other worm says,“So,I see it’s raining.” “Yeah,” says the worm,wiping off his face.“As a matter of fact,it’s raining so hard that the birds are building their nests upside down!” (Words and Phrases) worm:벌레 wake up:일어나다 go up top:맨 위로 올라가다 get all wet:흠뻑 젖다 back and forth:이러니저러니 draw straws:짚으로 하는 제비를 뽑다 check:살피다 just at this minute:바로 이 때 pass overhead:머리 위로 지나가다 pee: 오줌을 누다 squat down:쪼그리고 앉다 take a piss:오줌을 갈기다 break through the surface:땅 표면을 뚫고나오다 take one look around:한 번 휘둘러 보다 get totally drenched:흠뻑 젖다 hurry back down below:아래로 급히 되돌아오다 wipe off∼:∼을 훔치다 build a nest:둥지를 틀다 upside down: 거꾸로 (해석) 골프 코스 아래에 사는 벌레 두 마리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한 벌레가 다른 벌레에게 말하길,“맨 위로 올라가 비가 오고 있는지 알아봐.” 다른 벌레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비가 오고 있다면 흠뻑 젖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은 짚으로 제비를 뽑을 때까지 티격태격 다투었습니다. 둘 중에 하나가 이기고 다른 벌레가 위로 올라가 비가 오는지 살펴봐야 했습니다. 바로 이 때 두 여성 골퍼가 위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오줌이 마렵다고 말하자, 다른 사람이 “여기 봐. 주위에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여기서 누지 그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갈겼는데, 바로 이 때 그 조그만 벌레가 땅 표면을 뚫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벌레가 한 번 휘둘러보고는 온 몸이 흠뻑 젖어 급히 땅 아래로 되돌아왔습니다. 다른 벌레가 말하길,“아, 비가 오고 있구나.” 얼굴을 훔치며, 원래 벌레가 말했습니다.“그래. 사실, 비가 너무 세게 와서 새들이 둥지를 거꾸로 틀고 있을 정도야!” (해설) 땅 밑에 사는 벌레들이 기어 나올 때인가 봅니다. 두 벌레가 서로 상대방에게 밖에 나가 비가 오는지 알아오라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비를 뽑아 진 사람이 위로 올라가 알아보고 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려고 땅위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친구와 골프를 치러 온 여자가 자기들 외에 아무도 없자 쪼그리고 앉아 바로 그 자리에다 오줌을 갈겨댔습니다. 오줌 세례를 맞고 급히 되돌아온 벌레가 말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압권입니다. 세찬 오줌발에 여자의 거시길 덮고 있는 숲이 한 쪽으로 뉘여진 모습을 보고 새들이 거꾸로 둥지를 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Life Essay for Wrighting 묻어둔 세월(다시 다가온 시련) 집안을 꿈에 부풀게 했던 대사명(大使明) 덕에 한참 공부할 나이를 집안의 작은 머슴으로 보낸 김 회장은 실업고를 졸업하고 5급 공무원에 합격, 외부 공사판 감독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꿈이 없는 보통 사람의 경우엔 5급 공무원 생활도 시골에선 안정된 생활로 반쯤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회에 눈을 뜨고 인생이라는 먼 항해를 준비하는 김회장에게 5급 공무원 현장 감독 생활이란 인생의 무덤을 의미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기에 직장에선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지만 그렇게 보내는 하루하루를 김회장은 견딜 수가 없었다. 번민과 번민을 거듭한 끝에 김회장은 아버지와 식구들 몰래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밤잠을 거른 지 2년 만에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몰래 대학을 준비하다 아버지에게 들켜 실컷 혼나고,“네가 대학에 붙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If you pass a college entrance exam,I’ll eat my hat.)”는 반대 속에서 꿈에 그리던 대학 진학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엔 실업고를 졸업하고 예비고사에 합격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시기였기에 집안의 반대도 아들 보호 차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그런 상황에서의 대학 진학 준비란 무모한 도전이었기에 김 회장의 대학 진학은 별을 딴 것과 진배없었다. 직장 생활 중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아픔과 괴로움으로 몇 날을 고통 속에서 보내곤 했는데 이제 대학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 자신의 대입 준비를 위해 많은 격려를 해준 친구가 토목과를 다니고 있었기에 미래에 그 친구와 많은 일을 이루기 위해 건축과를 지원하게 된다. 장밋빛 꿈들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공부하는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며 보내던 대학 시절. 그렇게 나를 격려하고 나를 위해 꿈을 함께 꾸어 주었던 친구가 군대 생활 중 죽음을 맞게 된다. 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곳에서 이토록 번민하며, 답도 없는 질문들을 찾아 헤매는가? 끝없이 생겨나는 많은 질문들에 답을 찾지 못하고, 친구와 꾸었던 많은 꿈들에 밧줄을 동여매고, 무심히 대학을 졸업한다(He just graduated from the university without finding any answers to infinitely many questions that had arisen,holding back many dreams that he and his friend had dreamed together). ■ 절대문법 (7) 자리매김 학습 문법 능력은 의사소통 능력의 주요 구성 성분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의사소통을 할 때에 지켜야 할 문법 규칙이 없다면 언어 사용은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영어 문법 규칙에서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문장에서 쓰이는 단어의 자리 개념이다. 지난 시간까지 문장을 구성하는 기본 자리에 위치할 수 있는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를 중심으로 하여 단어의 자리와 특성, 그리고 역할을 살펴보았다. 이상의 네 가지 품사는 문장 구성에 핵심이 된다. 특히 영어 문장은 동사를 기준으로 하여 앞뒤에 위치하는 자리에 따라 역할과 특성이 달라지므로 문장 구성의 핵심 단어가 위치하는 자리 개념을 순서대로 이해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오늘은 한국어에 없는 자리 개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영어와 한국어의 문법에서 가장 차이 나는 개념 중의 하나가 관사이다. 영어는 거의 대부분의 명사가 관사와 함께 쓰인다. 관사는 영어를 사용하면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것인데 이의 적절한 쓰임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Woman is actor.(x) The woman is an actor.(o) 관사는 반드시 명사 앞에 위치하여 관사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살려준다. 그리고 관사의 뒤에 오는 명사가 정해진 것인지, 정해지지 않은 것인지를 알려주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관사의 자리와 역할,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A bird lived in the tree. 이 문장은 새가 살았는데 나무에 살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a bird이므로 새로운 정보로 정해지지 않은 한 마리 새를 나타내고 있으며,the tree 라고 했기 때문에 나무는 이 문장을 쓴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특정한 나무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관사는 문장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살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 논두렁 우렁이 만져봐요

    논두렁 우렁이 만져봐요

    환경오염으로 사라져가는 토종 민물고기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한국 토종 민물고기 생태체험전’이 12월 18일까지 롯데월드 어드벤처 3층 특별 전시장에서는 열린다. 쉬리, 어름치, 각시붕어 등 우리나라 토종 물고기를 비롯해 주위에서 쉽게 보기 힘든 황쏘가리, 열목어 등 천연기념물, 식인 물고기로 유명한 피라니아 등 100여종 1만여마리의 민물고기를 3개 전시 테마관에서 만날 수 있다. 탑을 쌓아 새끼를 기르는 어름치, 조개에 알을 낳는 묵납자루, 굴을 파고 알을 지키는 밀어, 거품집에 알을 낳는 버들붕어,‘민물고기의 귀족’ 황쏘가리 등 우리 하천 생태계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물고기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어릴적 개울가나 논두렁을 옮겨놓은 듯한 10여개의 자연 생태연못과 살아 있는 송사리나 우렁이 등을 풀어놓아 아이들이 직접 만져보며 관찰할 수 있는 체험공간을 마련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400m에 이르는 전시관 전체 벽에는 붉은 단풍나무와 밤나무 등 가을 낙엽길 풍경 사진이 걸려 있다. 또 귀뚜라미와 풀벌레 생태관에서 들리는 청량한 풀벌레 울음소리는 가을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어드벤처 입장손님은 누구나 무료. 단체의 경우 사전 예약하면 생태체험 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다.www.lotteworld.com,(02)411-2000. ●63빌딩 홈페이지 새 단장 사이버세계 같은 우주공간으로 변신한 63빌딩의 홈페이지가 새롭게 단장했다. 커플끼리 데이트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해피 커플즈’, 와인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와인앤피플’ 등 온라인 커뮤니티 만들었으며, 홈페이지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면 받게 되는 포인트를 모아 현금처럼 쓸 수 있도록 했다. 13일까지 홈페이지 곳곳에 숨겨둔 보물아이콘을 찾아 클릭하는 ‘63보물찾기’,63빌딩 상품 구성을 간단한 퀴즈로 알아보는 ‘63퀴즈이벤트’ 등 홈페이지 개편 기념 이벤트에 참가하면 푸짐한 상품도 나누어준다.www.63.co.kr,(02)789-5557. ●멕시코의 다양한 문화 체험 삼성어린이박물관에서는 찬란한 고대 문명을 이룩한 멕시코의 건축·요리·놀이 등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10월 한달간 연다. 마야·아스텍 문명의 유적지로 잘 알려진 멕시코의 대형 건축물인 피라미드 블록 쌓기, 포크 댄스 라마리에타 배우기, 엉덩이 축구 울라마와 전통축제 체험 외에 엄마와 함께 참여하는 타코 요리 만들기, 사막에서 쓰는 그늘 모자 만들기 등 다채로운 내용으로 꾸며졌다. 어린이들이 직접 멕시코 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다.www.samsungkids.org,(02)2143-3600. ●싱가포르 여행객 경품 대잔치 싱가포르관광청은 싱가포르항공과 공동으로 오는 31일까지 싱가포르·빈탄을 다녀오는 모든 여행객에게 추첨을 통해 현대 쏘나타 승용차를 비롯한 다양한 선물을 나눠준다. 참가 방법은 두가지. 여행사에서 응모권을 받아 홈페이지에서 신청하거나 여권 스탬프, 비행기표 등 증빙자료를 싱가포르관광청에 제출하면 나눠주는 응모권을 받아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된다.kr.visitsingapore.com,(02)399-5570.
  • [어떻게 지내세요] 두번째 음식점 사장님 된 전 세계챔프 유명우씨

    [어떻게 지내세요] 두번째 음식점 사장님 된 전 세계챔프 유명우씨

    “우리나라 복싱계가 침체돼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저 1970∼80년대 황금기 향수에만 젖어 있는 것 같아요.” 80년대 세계 경량급 최고의 복서 유명우(42). 불멸의 기록은 여전하다. 은퇴하기까지 세계 주니어플라이급 사상 최다 방어(17차)와 최단시간 KO승(2분46초), 국내선수 중 세계타이틀 첫 재탈환, 최다연승(36승) 등을 수립했다. 이같은 기록은 지독한 연습의 결과라는 점에서 돋보인다. 일발필도의 펀치는 없었지만 현란한 연타와 몸놀림, 정확한 펀치로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은 아직도 올드 팬들의 눈에 선하다. 유씨는 현역시절의 ‘연습벌레’라는 별명처럼 은퇴 후에도 다른 챔프들과는 달리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오는 10월 말 경기도 수원시 조원동에 ‘신토오리’라는 200여평 규모의 오리 전문 음식점을 오픈할 예정. 앞서 같은 동네에서 지난 5년 동안 운영했던 ‘유명우 가마솥설렁탕집’에 이어 두번째. 그는 “음식점 경영에는 어느정도 자신이 붙었다. 여러 코스의 오리요리로 손님들의 입맛을 더욱 즐겁게 할 것.”이라며 웃는다. 특히 설렁탕집을 하면서 어깨너머 익힌 요리솜씨를 활용, 틈틈이 주방도 들락거릴 생각이다. ‘신토오리’는 순수 토종오리를 표방하고 있다.“돈을 많이 벌어 복싱에 자질있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역 때보다 몸무게가 10㎏정도 불었다는 그는 앞으로는 세계 챔프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서울 신림동의 ‘유명우 범진권투체육관’에서 후배들을 지도한다. 또 지인이 운영하는 천안과 오산 등지의 체육관을 찾아 왕년의 솜씨를 과시하는 등 국내 복싱발전에 나름대로 힘을 쏟고 있다. 특히 현재 유일한 세계 챔피언인 지인진 선수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주며 그의 롱런을 돕고 있다. 후배들에게 “선천적인 복서가 아니고 노력으로 정상에 올랐다. 복싱에는 왕도가 없다.”며 늘 연습을 강조한다. 93년 9월 은퇴할 때까지 18억여원의 대전료를 받았다. 평소 꼼꼼한 성격답게 매니저료 등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 수입으로 은퇴 후 집안의 예식장 사업을 도왔다. 주변의 많은 유혹도 있었지만 돌다리를 두드리는 식으로 무리하지 않게 음식업에 뛰어들어 차근차근 사회에 적응해왔다. 슬하에는 고교 2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을 두었다. 아들은 복싱을 무척 좋아하지만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젠 우리나라의 복싱계도 일본처럼 활로를 찾아야 해요. 협회도 참신한 인재를 발굴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아무튼 제2, 제3의 지인진을 반드시 키워내겠습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1)-창업주 故조홍제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1)-창업주 故조홍제 회장家

    효성의 입사 면접은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예컨대 ‘한강의 물 무게는 얼마나 되나, 대한민국 바퀴벌레의 총 수는.’등의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대략, 약, 수준,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고 불확실한 답을 내놓는다면 효성에선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효성은 숫자에 관해 근거 없는 ‘적당주의’를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이는 효성 창업주인 고 만우 조홍제 회장의 경영 스타일에서 비롯됐다. 그는 어떤 사항이든 계수화해서 보고 받기를 좋아했으며, 그래야 납득을 했다. 만우 회장도 중요한 경영상의 결재를 할 때는 철저히 계수에 입각해서 처리했다. 특히 신규 사업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마저 계산에 넣고 사업을 추진했을 정도다. 시쳇말로 “1년간 지급하는 로열티와 그 기술을 이용해 얻은 이익을 금액으로 계산해 향후 10년간의 수지계산서를 만들라.”고 한다면 요즘 실무진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것이다. 그러나 만우 회장은 40년전에 이를 당연하게 지시했으며, 당시 효성 실무진도 이에 익숙했었다. 그의 이같은 ‘계수 경영’은 그만의 독특한 성냥개비 계산법을 낳았다. 그가 계산하기 위해 손가락에 성냥개비를 끼우고 슬슬 돌릴라 치면 실무자들은 계산이 혹시 틀리지 않았을까 긴장하곤 했다고 한다. 그의 꼼꼼한 경영 스타일은 창업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효성의 주력 사업으로 훗날 나일론을 선택하기에 앞서 만우 회장은 공학과와 경제학과 출신의 엘리트 10여명을 뽑아 당시엔 생소한 기획부를 구성, 무려 2년간 20여종의 유망 업종을 검토하게 했다. 오늘날 효성의 제조업 전통과 실속 우선주의, 심사숙고형 기업 문화, 철저한 계산으로 돌다리도 두드리는 사업 풍토 등은 만우 회장이 효성에 남긴 유산들이다. 또 꼬장꼬장하고 대쪽같은 그의 성격은 효성을 늘 정치권과 거리를 두게 했으며, 생전에 2세들의 분가를 마무리한 것은 ‘돈 만큼은 가족이라도 철저해야 한다.’는 그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최근 재계의 불미스러운 일련의 일들을 보면 만우 회장의 혜안이 놀랍기만하다. ●늦되고, 어리석은 만우(晩愚) 만우 회장은 모든 게 늦었다. 신학문을 접한 것이 17세였고, 고보(중·고등학교)에 들어간 것이 약관(弱冠)을 앞둔 19세였다. 또 대학을 졸업한 것이 이립(而立·30세)이었으며, 사업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 불혹(不惑·40세)을 넘어서였다. 그리고 효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독자 사업을 시작한 것이 이순(耳順·60세)을 앞둔 56세였으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는 스스로 늦되고, 어리석다는 뜻으로 호를 ‘만우(晩愚)’로 지었다. 그러나 출발이 늦었을 뿐 그의 성취는 작지 않았다.1960년대 부실기업이었던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을 정상화시켰으며, 현재 나일론 세계 4위, 타이어코드 세계 1위인 동양나이론(현 효성)을 설립했다.70년대엔 효성금속과 효성기계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한때 총 24개 계열사의 재계 5위 그룹으로 성장시켰다.40∼50대를 받쳐 삼성 성장에 일조를 했던 만우는 56세의 늦은 나이에 창업, 불과 10년 만에 효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올려 놓은 것이다.1981년 포천이 뽑은 500대 기업 속엔 만우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된 효성과 삼성이 나란히 포함됐다. ●진정한 가장은 애처가 늦었던 만우 회장이 빠른 것도 있었다. 그는 15세 때 집안 뜻에 따라 진주 하씨가의 차녀 정옥(작고)씨와 결혼했다. 당시 하씨가는 진주에서 쌀 2000섬 규모의 부호로 개화한 집안이었다. 부인 정옥씨는 신학문을 깨친 신식 여성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교 생활이 몸에 밴 만우였지만 아내 사랑만큼은 각별했다고 한다. 만우는 무슨 일이든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엔 ‘팔불출’ 소리를 들을 만한 행동이었다. 회사에 있다가도 아내가 아프다고 하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열 일을 다 제쳐놓고 들어왔다. 또 틈을 내 여행도 같이 자주 다녔다. 사업에서 물러났을 때엔 매일 아침 아내와 함께 창경원 산책을 취미로 삼았으며, 함께 시장에 나가 장을 보는 것도 즐겼다. 특히 만우 자신도 말년에 몸이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아내의 병수발을 자식 몫으로 두지 않았다.78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만우는 아내의 상청(혼백을 모시는 제단을 마련하는 일) 돌보는 일을 1년간 직접 했다. 당시 만우 자신도 간병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던 심한 신부전증을 앓고 있었다. 만우는 사람을 고를 때도 이런 점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사람을 쓸 때 세가지를 봤다. 첫째가 반골 유무, 둘째가 지론 출중이며 셋째가 진정가장(眞正家長)이었다. 반골 유무와 지론 출중은 누구든지 고려할 만한 요소이겠지만 진정 가장은 꽤 이채롭다. 만우는 가정이 제대로 서야 사회와 국가가 제대로 선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직원 중에 바람을 피우거나, 첩을 얻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내치라고 했다. 실제로 부장급의 한 직원은 여자 문제로 이혼을 하게 되자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가정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회사를 어떻게 다스리겠나.”이것이 만우의 생각이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과 동업 만우 회장의 회고록 ‘나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당시 자금난을 겪고 있던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에게 자금을 빌려준 계기로 동업을 시작했다. 만우 회장은 어린 시절 호암(고 이병철 회장의 호)의 친형인 병각씨와 지기여서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만우와 호암의 동업은 사실상 삼성이라는 대그룹의 출발점이었다. 고 이 회장의 기획력과 만우 회장의 꼼꼼한 일처리는 자산규모 1700만원의 삼성물산을 설립 3년 만에 48억원이라는 순이익을 올리게 했다. 삼성물산의 성공은 제일제당(현 CJ그룹)과 제일모직 등의 제조업 진출로 이어졌다. 특히 제일모직은 만우 회장이 자금 마련부터 기계설비 발주, 기술 숙련 등 모든 과정을 진두 지휘했다. 제일모직의 당시 ‘골덴덱스’는 영국제와 마카오 복지를 대체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듯 조·이 투톱 체제는 불과 10년 만에 삼성을 명실공히 한국 제일의 재벌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이 회장은 돌연 만우 회장에게 동업 청산을 요구했으며, 만우도 ‘이쯤에서 재산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흔쾌히 동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분 문제에 대한 의견 조율이 안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점차 깊어갔다. 이 과정에서 만우는 4·19와 5·16 군사 쿠데타로 이어진 급변하는 정국에서 삼성 대표로 부정 축재자라는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쓰고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정국이 점차 안정되면서 호암과 만우는 다시 재산 분배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옳다, 그르다 싸우기만 하면 자기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만우는 결국 3억원을 받는 것으로 삼성과의 모든 정리를 마무리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56세였다.15년간 대주주이자 경영인으로서 삼성을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키우는 데 일조를 했지만 그 ‘끝’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만우는 ‘나의 회고’에서 당시 이 결정을 이렇게 밝혔다.“오늘날 70년을 살아오는 동안 내가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수많은 어려운 결단 가운데서도 가장 현명한 결단이 아니었나싶다.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분배받을 재산에만 연연했더라면 내 독자사업은 시작도 못해보고, 재산은 재산대로 찾지 못한 채 끝나게 되었으리라.” 그러나 만우와 호암의 결별에도 양가의 인연은 대(代)를 이어 지속됐다. 만우 회장의 장남인 조석래 효성 회장과 호암 회장의 차남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다. 또 조 회장의 부인인 송광자(61) 여사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는 서울대 미대 동창이다. 3세로 내려오면 인연은 더 깊고 다양해진다. 조 회장 차남인 조현문(36) 효성 전무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친구 사이다. 장남인 조현준(37) 부사장과 이 상무는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같이 공부했다. 삼성가인 이재현 CJ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의 아들인 김재열(이건희 회장 사위) 제일모직 상무 등도 조 회장가(家)의 3형제(현준·현문·현상)와 잘 어울린다. 조 부사장은 “같은 또래인 데다 어린 시절부터 잘 어울려 요즘에도 운동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했다. ●사돈들의 활약 효성은 재벌가 가운데 사돈들의 활약이 유달리 두드러진다. 특히 만우 회장은 건강이 악화되면서 아들 후견인의 역할을 사돈들에게 맡겼다. 장남인 조석래(70) 회장의 장인인 송인상(91) 한국능률협회 회장은 만우의 지기이자 조 회장의 후견인이었다. 송 회장은 재무부 장관과 한국수출입 은행장을 두루 거친 경제계의 거물로 조씨가와 사돈을 맺기 전부터 만우와 친분이 두터웠다.78년 만우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엔 사위를 도우며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송 회장은 80년부터 16년간 동양나이론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으며, 지금은 효성 고문으로 있다. 차남인 조양래(68) 한국타이어 회장에겐 처남들의 경영 참여가 눈에 뛴다. 외환은행장을 지낸 손위 처남 홍용희씨가 고문으로 활약했으며, 또 다른 손위 처남인 홍건희 한국타이어 부회장도 경영에 참여할 정도로 한국타이어는 한때 ‘조·홍’ 공동 경영체제를 이뤘다. 삼남 조욱래(56) 동성개발 회장도 장인인 김종대 전 대전피혁 회장의 경영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만우 회장은 77년 대전피혁을 28세에 불과한 욱래 회장에게 맡기고 난 뒤, 사돈인 김종대 전 농림부 장관에게 아들의 뒷일을 맡겼다. 경험이 부족한 아들의 단점을 김 전 장관에게 보완해 달라는 뜻에서다. 김 전 장관은 회장직을 맡아 경영에 나섰다. ●양말 빠는 회장님 만우 회장은 자식들이 혹시나 ‘부잣집 아들 병’에 걸릴 것을 몹시 경계했다. 이 때문에 일부러 엄하게 대했을 뿐 아니라 확실한 경제 개념을 심어주기 위해 어릴 때부터 용돈 예산을 짜게 했다. 또 아들들이 유학을 떠날 때는 유학 기간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최소 경비를 한꺼번에 쥐어주며 돈이 남든지, 모자라든지 간에 더 이상의 용돈을 보내주지 않았다. 덕분에 2세들은 유학 시절에 툭하면 접시 닦이를 해서 학비를 벌어야 했다. 그러나 만우가 늘 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중학교에 다니던 양래가 영어책을 잃어버려 난감해 할 때 친구에게 그 영어책을 빌려오게 한 뒤, 밤새 직접 필사를 했다. 또 장남인 석래가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사업차 방문한 만우는 장남의 하숙집에 널려 있던 양말을 깨끗이 빨아 놓을 정도로 자식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는 공석에선 자식이라도 하대를 하지 않았다. 조 회장은 선친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선친은 자식을 키운다고 할까, 믿어준다고 할까 하는 점이 굉장히 강해요. 당시 일반적인 가정과 달리 아들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하고, 자식들의 결정을 무척 존중해 주셨습니다.”실제로 만우 회장은 조 회장이 전공으로 경영학을 선택하기를 바랬지만, 공학을 전공하겠다는 아들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만우는 “재산이라는 것은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가 들어오기도 한다. 자식에게 재산보다는 스스로 일해서 생활해 나갈수 있는 능력을 꼭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화려하게 뻗은 2세 혼맥 조씨가(家)의 혼맥은 여느 재벌가 못지않게 사통팔달로 뻗어 있다. 전직 대통령가(家) 뿐 아니라 정·관·재계 골고루 인연이 닿아 있다. 만우와 부인 하 여사는 슬하에 3남 2녀를 뒀다. 장녀와 차녀인 명숙(작고)씨와 명률(78)씨는 만우가 고향인 함안 군북에 있을 때, 인근 대지주 집안에 시집보냈다. 장녀 명숙씨는 진주여고를 졸업한 뒤, 진양 대지주인 허정호(80)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세브란스의전(현 연세대 의대) 학생이었던 정호씨는 신한병원 원장을 지냈다. 둘째 딸 명률씨는 산청 대지주인 권동혁가(家)의 장남인 병규(80)씨와 인연을 맺었다. 병규씨는 한때 효성건설 회장을 역임했다. 효성의 혼맥은 장남인 조석래 회장의 결혼으로 정·재계 중심부로 들어간다. 학업 때문에 결혼이 늦은 조 회장은 그의 나이 32세 때, 송인상 회장의 3녀 광자씨를 평생의 배필로 맞아들였다. 조 회장은 처가를 통해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과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과 동서지간이 된다. 또 신 전 회장가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연결되며, 이 회장가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연이 닿아 있다. 차남인 조양래 회장은 66년 지인의 소개로 법조계 원로인 홍긍식 전 변호사협회 회장의 차녀인 문자(64)씨와 혼례를 치렀다. 조 회장은 이명박 서울시장과 사돈지간이다.3남인 조욱래 회장은 경기여고 교장인 손영경씨의 중매로 김종대 전 농림부 장관의 딸인 김은주(50)씨와 결혼했다. 김 전 장관은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의 부친인 고 신덕균 전 신동방 명예회장의 처남이기도 하다. 조씨가의 혼맥은 방계도 만만치 않다. 만우 회장의 동생인 고 조성제 대전피혁 사장은 5남 3녀를 통해 관·재계의 명망가를 사돈으로 맞아들였다.3남 경래(73)씨는 홍재선 전 전경련 회장의 딸 애수(68)씨와 결혼했으며,4남 익래(70)씨는 원용필씨의 딸 정선(68)씨와 결혼했다. 원용필씨는 원용석 전 경제기획원 장관의 친형이다. 장녀 장숙(68)씨는 정종철 전 서울시장의 아들 창순(70)씨와 결혼했다. golders@seoul.co.kr ■ 조석래 회장의 ‘명문 처가’ 조석래(70) 효성 회장의 처가인 송인상(91·효성 고문) 한국능률협회 회장의 가계도를 들여다보면 화려하다는 단어가 부족할 정도다. 송씨가(家)는 고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 가문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한국 상류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가와 사돈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정·관·재·법조계에 이르기까지 ‘그물망 혼맥’으로 촘촘히 엮여 있다. 송 회장 본인도 일제시대의 식산은행을 시작으로 재무부 이재국장과 한국은행 부총재, 부흥부장관, 재무부 장관, 룩셈부르크 대사,EC대사, 한국수출입은행장, 동양나이론(현 효성) 회장 등 관·재계를 넘나드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슬하에 1남4녀를 둔 송 회장과 최연순(91) 여사는 딸을 모두 국내 대표 집안에 시집보냈다. 특히 손주들의 통혼을 통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집안과도 연결된다. 장녀 송원자(66)씨는 이봉서(69) 전 상공부 장관과 인연을 맺었다. 이 전 장관은 경기고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나왔으며, 현재 부동산임대업체인 단암산업 회장이다. 이 전 장관의 부친 고 이필석옹은 상업은행장과 국제화재 회장을 지냈다. 이 전 장관의 3녀인 혜영(33)씨는 1997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장남 정연(42)씨와 화촉을 밝혔다. 두 사람은 정연씨의 친구 소개로 만나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혜영씨는 숙명여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정연씨는 현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 회장의 차녀 길자(63)씨는 신명수(64) 전 신동방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신 전 회장과 길자씨는 2남 1녀를 뒀으며, 장녀인 정화(36)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40)씨와 결혼했다. 재헌씨는 미국 조지타운대를 나와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한나라당 이 전 총재와 노 전 대통령은 송 회장가(家)를 통해 ‘사돈의 사돈’인 셈이다. 이렇게 가지치기를 하게 되면 송 회장가는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과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김승연 한화 회장과도 이어진다. 3녀 송광자(61)씨는 조 회장과 67년 결혼해 현준-현문-현상 3형제를 뒀다.4녀 송진주(59)씨는 주관엽(61)씨와 혼인했다. 진주씨는 서울대와 예일대(박사)를 거쳐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예산 샌님’ 조홍제 前회장 만우 조홍제 전 회장의 별명은 샌님과 구두쇠였다. 만우의 고향 사람들은 그를 그냥 샌님도 아닌 ‘예산 샌님’이라 불렀다. 미리 예산을 꼼꼼하게 짜놓고 융통성 없이 그대로 집행하는 데서 비롯됐다. 당시 도움을 받기 위해 만우 회장의 사무실 문턱을 넘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만우가 배정해 두었던 예산이 바닥나기 일쑤였다. 그러면 만우는 “올해 예산이 떨어졌으니까 내년에 보자.”고 했다고 한다. 만우의 먼친척 동생인 조영제씨의 회고는 이렇다.“사회봉사도 회사 경영과 마찬가지로 예산 집행을 한다 이겁니다. 요즘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40년전에 그런 경비를 예산짜서 집행하는 기업가가 대한민국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만우는 구두쇠로도 유명했다. 그냥 구두쇠가 아닌 ‘통 큰’ 구두쇠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신발장에 남은 것은 밑창이 다 닳은 구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화다. 그는 내의도 해진 것을 기워입었으며, 양복 역시 다 떨어져 못 입게 되기전까지 새 양복을 맞추는 법이 없었다. 그의 근검절약 정신은 가족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자식들에게 용돈을 줄 때는 늘 빠듯하게 줘 낭비하는 버릇을 갖지 않게 했으며, 손자에게 주는 세뱃돈도 천원짜리 한 장으로 때우곤 했다. 만우는 자신이 먹고, 쓰고, 입는 데에는 한없이 검소했지만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엔 수십억원을 내놓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쓸 때는 쓰고, 쓰지 않을 때는 쓰지 않는, 그런 구두쇠였다. 만우가 돈을 아끼지 않은 곳은 교육 사업이었다. 대학시절 은사 권유로 교수가 될까 했던 만우는 1950년대부터 영남장학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으며, 고향 함안군의 몇몇 학교에 시설을 마련해 주었다.76년엔 운영 부실로 재정난에 빠진 동양학원의 이사장을 맡아 대규모 채무를 해결해줬으며, 학습환경 개선을 위해 당시로서는 거금인 25억원을 내놓았다. “나는 학교에서 돈 한푼 가져가지 않을 겁니다.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선생님들은 오직 좋은 교육만을 해주시기 바랍니다.”만우 회장이 이사장으로서 원했던 유일한 소망이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1)일본 차의 유래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1)일본 차의 유래

    우리나라 가을이 마치 새빨간 화로에서 불꽃이 일 듯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이라면, 일본의 4월은 폭죽처럼 화려하게 터져버리는 벚꽃의 계절이다. 매년 4월이 되면 필자는 일지암 초의차문화연구원들과 함께 일본의 사스마야키를 방문해 차회를 연다. 사스마야키에는 14대 심수관가가 있는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 매년 초대되어 매화꽃이 휘날리는 아름다운 남중국해를 보며 차회를 연다. 일본과의 차회는 단순한 차회가 아니다.7년 왜란 속에서 치욕의 한을 안고 일본에 건너온 조선인 도공들의 혼과 넋을 달래는 것이다. 벚꽃이 휘날리는 화려한 생의 찬미와 그 이면에 깃든 우리 조선 도공들의 400년 아픈 넋을 눈물로 받아 차 한잔을 올리고 아득한 회한을 풀어내는 것이다. 겨우내 눈밭 속에 속눈을 감추고 누워 있던 초록 보리싹이 파릇파릇하게 피어날 때 떠나도 떠나도 머문 그 자리! 머물러 머물러 주저앉아도 시방을 떠도는 그 자리에 향긋한 차향에 실려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전해오는 도공의 혼들에 대한 귀향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일본은 참으로 가깝고 먼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차의 나라로 불린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핑퐁외교’를 했듯,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차외교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방문한 미국의 지도자들을 상대로 한 일본 지도자들의 차외교는 세계적으로 일본의 정신문화가 매우 높은 경지에 있음을 선전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일본차와 한국차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먼저 일본에 차를 전래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동대사요록에 따르면 백제의 행기 스님이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당시 일본의 문화는 매우 후진적이었다. 일본과 가까웠던 백제의 스님들이 그 문화를 전파한 흔적들이 기록들로 남아 있는 것은 그같은 사실을 잘 말해준다. 차와 그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차의 원류는 ‘초암차’다. 초암차에 일본다도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일본다인들은 ‘와비’로 부른다.‘와비’는 우리말로 자득(自得), 한적한 정취, 소박하고 차분한 멋, 혹은 한거(閑居)로 설명할 수 있다.‘와비’는 부유한 귀족층이 많은 돈을 들여 호사를 자랑하며 물질적인 향락을 추구했던 것과는 반대로 가난함, 진지함, 청순함 속에서 화려함을 멀리한 정신세계를 추구했다. 당시 차인들은 한적한 곳에 소박하고 검소한 다실을 세우고 검박하고 자연스러운 조화를 추구했다. 이것이 바로 일본다도의 핵심인 ‘와비’의 정신이다. 일본차의 또다른 이야기는 바로 ‘말차’다. 일본 말차의 뿌리는 중국 송나라 때 황룡파에서 선을 배운 에이사이 선사다. 중국에서 선을 배운 에이사이는 당시 중국선가의 일반적인 차수행법이었던 말차법을 배웠다. 일본으로 귀국한 에이사이는 규수평호도 고춘원에 차의 모종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말차법도 함께 보급하게 되었던 것이다. 에이사이는 그가 모시던 가마쿠라 막부의 3대장군 미나모토 사네토모가 병에 걸리자 ‘끽다양생기’에서 말차를 “양생의 선약”이라고 하고 그 약용효과와 각성작용을 설명했다. 사네토모는 에이사이의 말차로 인해 그 병이 치료되자 일본의 ‘육우’로 받들여졌다. 에이사이 말차는 그후 그가 주석하던 가마쿠라 수복사, 교토 건인사 등 일본 선종사찰의 다례로 정착됐다. 말차의 보급은 에이사이에서뿐만 아니다. 당시 일본의 많은 승려들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차를 접한 그들은 일본으로 돌아와 차 문화를 조금씩 뿌린 것이다. 일본 최초의 차밭인 ‘히요시다원’의 기록은 805년 일본 승려 사이초에 의해 전해진다. 당나라에 유학을 간 사이초는 중국 천태산에서 차의 묘목을 가져와 일본의 히에이산에 재배했다고 한다. 헤이안시대 에이추 선사의 활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에이추는 사가천왕에게 전차를 바쳤고 천왕은 그에게 긴끼지역에 황실전용 다원을 만들도록 했다. 가마쿠라시대에는 송대에서 유행했던 투다, 즉, 차 겨루기가 있었다.1332년 서로 대립되는 사원측의 사람과 귀중한 소유물을 걸고 하는 차겨루기가 일상화됐다. 찻물을 마셔보고 결과를 적던 채점표가 있을 정도였다.‘태평기’에는 “대숙소에 일곱 군데를 꾸미고, 일곱 가지의 차를 갖추어, 칠백 가지의 내기를 거는 물건을 쌓고 일흔 모금의 본비차를 마신다.”는 기록이 있다. 투다가 얼마나 일상화되어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큰 차담기’(大茶盛) 풍습도 당시에 전해진다. 율종의 노장이었던 에이손 선사는 1239년 정월 보살도 정진을 마치고 차를 올린 뒤 그 차를 여러 스님들에게 마시게 했다. 이같은 다법은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서대사의 큰 차담기 시초가 됐다. 큰 차담기는 지름 30㎝가 넘는 큰 찻잔에 차를 담아 참가자들에게 마시도록 하는 차 잔치의 풍습 중 하나다. 차문화가 왕성하게 일본사회 전반에 스며들면서 무가정치는 새로운 전기의 일대 변혁을 맞이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하는 모모야마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때 일본의 차 산업은 꽃을 피운다. 우치를 중심으로 시즈오카 시미즈 일대에 차 산업이 본격화 됐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다방인 살롱문화가 정착되었다. 그것은 오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차 산업에 대한 관심과 보호 때문에 가능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직접 우치에 가서 다기와 차 만드는 것을 봤을 뿐만 아니라 차의 명가였던 모리집안에서 융숭한 차 대접을 받기도 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모리가에게 봉토를 부여하고 우치향에서 어차를 봉공하는 역할을 맡겼다. 당시 우치가에는 차를 섞는 가마가 48개, 그리고 차를 만드는 일꾼이 5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모모야마 시대는 차문화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대였다고 보여진다. 일본의 대표적인 차인은 바로 센리큐 선사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스승이었던 센리큐 선사는 불안정한 서민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칠대로 거칠어진 무사들의 정서를 부드럽게해 안정적인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차를 보급했다. 센리큐는 다도를 권력 속에서 일상의 중생들에게 회향해냈다. 그래서 세상의 고통으로 마음이 황폐해진 중생들에게 마음의 평정·적정 경지를 안겨주는 아름다운 세상이 차의 예(禮)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노력했다.“끝없는 마음의 헤아림 다도와 함께 족하구나.”라고 노래했던 센리큐는 다도에 있어서 형식이나 규범보다는 ‘정성어린 깊은 마음’ 속에서 탄생하는 고요한 가라앉힘의 세계를 더욱 사랑했던 것이다. 센리큐는 차가 직접 사람들의 감각에 다다를 수 있는 창조적인 길을 꽃피워내고, 나아가 사람의 마음에 깊은 환희와 감동을 줄 수 있는 다구를 창안했다. 그리고 그곳에 꽃을 꽂아 차실의 우주를 새로 꾸리고 그것으로 점다(點茶)하는 이상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센리큐는 저 우아하고 섬세한 아름다운 보석의 눈물 같은 고려다완, 가을날 청정한 호수 속에 어리는 안개 같은 청자를 즐겨 썼을 뿐만 아니라 다다미 두 장의 넓이에 소우주 같은 차실을 만들었던 것이다. 에도시대에 피어난 다도는 센리큐의 할복자살로 쇠퇴기를 맞이한다. 정치이념에 의해 좌지우지됐던 다도관이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어지는 가운데 많은 유파들이 생긴다. 에도 말기부터 다인들은 직제화되었다. 다인들의 직제화는 일본다도의 계보화를 촉진시켰다. 오늘날 우라센케, 오모데센케이 등 일본 내 대표적인 유파들이 이때 탄생한 것이다. 메이지초기 일본의 다도는 사회변혁기를 맞아 단절상태에 빠진다. 개화와 개방이라는 사회적 혼란기를 맞아 차에 종사하던 관리들의 일터인 다이묘나 장군 등 후원자가 없어짐에 따라 실업자가 생겨 다도계가 불황의 늪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다도는 메이지 중기 대두된 내셔널리즘에 따르는 전통문화에 대한 자각과 다례의 재발견 때문에 살아났다. 다도의 후원자였던 대명 대신에 메이지유신으로 성장한 재계의 거물들이 다도에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일본 다도 중흥의 기초는 1898년 다나카 센쇼유다. 일본다도학회를 창설, 스승에서 제자에게만 전수되던 밀밀의 다도를 대중화시키는 헌다행사를 창안, 성공시킨 인물이다. 일본의 다도는 아직도 ‘중생들의 정성어린 깊은 마음’을 사랑하는 센리큐 그 차체다. 그는 “다도를 행함에 있어 마음이 맑고 깨끗하도록 수행의 덕목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 고목이 눈에 의해 쓰러진 것처럼 서투른 솜씨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불완전한 미의 극치를 찬양했다. 센리큐는 차 한잔 속에 담겨진 정성과 인정의 향기, 그 속에 어린 손님과 주인의 마음이 화합으로 만나 이루어진 오묘한 소우주의 평정심이 진정한 차의 미학임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일깨우고 있다. 일지암 암주 ■ 일본차의 근원 초암차는 ‘김시습 茶’ 일본다도의 근원은 초암차(草庵茶)다. 차를 연구하는 많은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일본 다도를 대표하는 초암차의 연원을 매월당 김시습에서 찾고 있다. 김시습은 조선을 대표하는 차인 중 한 사람이다.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 머물며 ‘금오신화’를 집필하며 자신이 살던 초막 인근에 차나무를 직접 재배해 차를 우려 마셨다. 일본은 당시 경남지역, 특히 웅천 등지에 많은 일본인들이 무역을 하며 한국문화를 접하고 있을 때였다. 일본은 당시 조선과 외교할 수 있는 외교가로 일본승려들을 이용했다. 그들은 당시 중앙의 관료들뿐만 아니라 지방의 토호, 문인 그리고 유명한 스님들을 찾아 직접 교류하기도 했다. 그같은 일본승려 외교관 중 한 사람인 준초라는 스님이 1460년대 중후반경 경주 용장사에서 은거하고 있는 김시습을 방문했던 것이다. 당시 김시습은 하늘이 훤히 내다보이는 작은 암자에서 살고 있었다. 폭악무도한 세상에 대해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었던 김시습은 스스로 머리를 깎고 설잠이란 법명을 가진 승려가 되었다. 승려가 된 김시습은 이곳 저곳을 떠돌며 작은 초당을 짓고 차와 참선 그리고 집필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그런 김시습이 머물고 있는 암자는 그야말로 한평 남짓한, 그러나 온 우주를 담고 있는 담백함이 깃든 곳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암자를 감싸고 있는 또 다른 우주는 바로 화경청적한 자연이었다. 풀벌레 소리 들리고 나비가 훨훨 날아다니며 춤을 추는 그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마시는 차는 바로 자연의 완벽한 고요함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바닥보다 낮게 설치한 땅화로, 찻사발 등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일본차에 물들어 있던 준초라는 스님에게는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사료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승려는 그후 한 두차례 더 매월당 김시습을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시습은 그같은 사실을 ‘유금오록’이란 시집에 담고 있다.‘일동승 준 장로와 이야기하며’라는 시에서 김시습은 “고향을 멀리 떠나니 뜻이 쓸쓸도 하여/옛 부처 산 꽃속에서 고적함을 보내누나/최 차관에 차를 달여 손님앞에 내놓고/질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르네/봄 깊으니 해월이 쑥대 문에 비치고/비 멎은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선의 경지나 나그네정 모두 아담하나니/밤새 오순도순 이야기할 만하여라.” 그같은 김시습의 차법을 준초등 일본승려들은 ‘선차’(禪茶)라 불렀다. 김시습의 선차는 작고 소박한 차실, 차마시는 법의 고요함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차선일미의 정신과 내용이 일치하는 일본 초암차의 근원이 되었다. 초암차는 간소하고 서민풍의 차법을 선보인 무라다 주코에서 시작돼 다케노 조 그리고 센노리큐에 의해 완성된다.
  • 휘성, 그 사랑愛 물들다

    휘성, 그 사랑愛 물들다

    이 男子. 가을에 만나기엔 제격이다. 긴 여운을 남기는 진하고 촉촉한 그의 음색은 아침 저녁 피부에 와닿는 가을 공기만큼이나 알싸하다. 아직 스물 세살의 청춘. 불과 데뷔 3년의 짧은 이력. 그렇건만 정규 앨범을 3장이나 냈고, 모두 최고 수준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녹록지 않은 경력으로 남자 R&B 가수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가수 휘성(23)이 가을 바람과 함께 돌아왔다. 손에 4집 새 앨범을 들고.1년만이다. 청명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 26일 오후 광화문 거리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엔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듣는 노래를 부르려 애썼어요. 과거 아팠던 사랑 경험에 대한 제 자신의 의문과 여러가지 느낌들을 고스란히 노래에 녹였죠.” 그래서일까. 이번 4집 앨범은 문패부터 심상치 않다.‘Love… Love…? Love…!’. 그가 직접 붙인 제목이다. “사랑을 알아가는 단계를 표현한거죠.‘Love’는 어릴적 사랑에 대한 막연한 느낌의 단계,‘Love…?’는 성장하면서 첫사랑과 이별 등을 통해 사랑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단계,‘Love…!’는 그 경험이 쌓여 사랑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린 상태를 의미해요.”자신은 느낌표의 단계에 있으며, 그가 정의하는 사랑은 ‘지키는 것’이란다. 자신과 상대의 감정, 주변 상황 등 사랑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을 때 이별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그의 사랑 철학. 1집 ‘안되나요’,2집과 3집 ‘위드 미’와 ‘불치병’ 등 사랑 노래라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이지만, 이번 앨범에 수록된 17곡은 모두 제목처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짧은 시간이지만 지금껏 15번의 사랑과 아픈 이별을 겪었죠. 그 경험과 느낌들을 노래에 담으려 했어요.” 타이틀곡은 휘성의 감성이 잘 살아있는 ‘굿바이 러브’(Good Bye Luv)’. 하지만 그는 “17곡 모두가 타이틀곡이나 마찬가지”라며 미소 짓는다. 앨범 전체가 한편의 사랑 소설처럼 일관된 흐름으로 느껴지도록 만들었단다. 이별 뒤의 아픔을 노래한 ‘일년이면’과 슬픈 발라드곡 ‘울보’, 현악 연주가 애절함을 더하는 ‘하늘을 걸어서’ 등도 휘성 특유의 촉촉함이 잘 묻어난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곡은 ‘러브샤인’(Luv Shine). 그가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다.“만들어서가 아니라 그 선율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가슴에 와 닿더라고요.” 그는 여전히 ‘미완성 단계’다. 더 진화해나갈 잠재적 여력을 지닌 ‘∼ing’ 상태라고 할까. 이 말에 본인도 머리를 끄덕인다. “누구 처럼 ‘완성된 가수’로 안주하고 싶지 않아요. 제 안에 있는 장점을 취해서 굳혀 나가고, 아직 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골라서 도전하고 싶죠. 결과가 어떨지, 완성될지는 모르는 고난의 연속이겠지만, 점점 발전해 나가고 싶답니다.” 그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진화했다고 느끼는 부분은 ‘감정 표현’.“솔직히 1집때는 그저 멋들어지게 소리만 내는데 급급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요. 음색도 멋있고, 감정 표현 테크닉도 많이 키웠다고 자부해요.”여태껏 발표한 앨범 가운데 이번 4집만큼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었다며 활짝 웃는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음악적 천재성을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가수다.“무언가 부족했을 때 서서히 늘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빈자리’가 있을 때 넓힐 수 있는 것이겠죠. 저는 특히 ‘집착’이 강하거든요. 제가 한것은 무조건 잘돼야 직성이 풀려요. 이번 4집이 잘 안되면 ‘무서운 일’(?)을 저지를지 제 자신도 몰라요.(웃음)”하긴 성대에 물혹이 4개나 생겼음에도 녹음실을 떠나지 않았다는 지독한 연습벌레가 그다.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스포츠서울 박진업기자
  • 학교급식 위생 “너무해”

    초·중·고교의 급식운영 상태가 엉망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나 유해물질이 나오는 플라스틱 식기구를 사용하는가하면 일부 학교에서는 결핵 보균자를 조리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25일 국무조정실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과 5월 2차례에 걸쳐 서울·부산·광주·대전·경기·강원·충북·전남교육청 산하 70개 초·중·고교의 학교급식 운영실태를 특별점검,255건을 적발했다. 유형별로는 ▲급식운영관리 부적정 95건 ▲위생관리 부실 76건 ▲식재료관리 허술 34건 ▲예산집행 부적정 40건 ▲기타 10건 등이었다. 인천의 모 중학교는 유통기한이 지나 색깔까지 변한 쌀 12.4㎏을 급식용으로 사용했다.서울 모 중학교는 보존기간이 최고 1주일가량 지난 육류 등 식재료를 폐기처분하지 않고 보관해 오다 적발됐다. 경기도 구리시내 2개 고등학교는 구내매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빵과 삼각김밥을 판매했으며 서울 모 중학교와 광주 모 고등학교는 두부 등을 끓는 물에 삶아 조리하는 과정에서 환경호르몬 등 유해물질이 나오는 플라스틱 바구니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리실내 위생상태도 불량했다. 수원의 한 중학교는 조리실과 식당내에 파리가 서식하고 벌레가 기어 다니는데도 그대로 방치했으며 특히 서울과 대전 상당수 고등학교는 녹이 슬거나 껌 또는 음식물 찌꺼기가 그대로 붙어 있는 식판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모 초등학교와 모 여고는 충분한 검증절차 없이 결핵 보균자를 조리원으로 채용, 물의를 일으켰다. 구리 모 고등학교는 부적합 판정을 받은 정수기를 그대로 사용해 오다 적발됐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무더위·잦은 비에 ‘봉화 송이’ 명성 흠집

    경북 봉화 등 송이 집산지의 채취 농가와 산주들이 무더위와 많은 비로 채취량 감소와 품질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3일 송이 집산지인 봉화·영덕·울진군 등에 따르면 최근 높은 기온과 잦은 비로 송이 채취량이 줄고, 품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지난 9일부터 수매에 들어간 봉화군산림조합의 경우 추석 다음 날인 19일 하루 441㎏의 송이가 수집된 이후 물량이 줄기 시작해 현재는 지난해 이맘때보다 20%가량 줄어든 하루 200㎏ 안팎에 그치고 있다. 영덕군산림조합도 최근 들어 하루 500㎏ 남짓으로 지난해보다 20∼30% 줄었으며, 울진군산림조합은 출하량이 적어 지난해보다 열흘 정도 늦은 지난 20일부터 수매를 시작했다. 출하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오히려 약세다. 추석 이후 수요가 크게 줄면서 최근 들어 1등급 1㎏이 20만∼23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여기에다가 송이 품질도 예년만 못해서 1,2,3등품 비율보다 등외품의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봉화군산림조합에서 송이 선별작업을 하는 신성용(36)씨는 “예년과 달리 수집되는 송이의 상당량이 벌레가 파먹은 흔적이 있는 등외품이다.”며 “이는 더운 날씨 탓에 각종 벌레들의 활동이 활발한 데다 이들이 송이를 갉아 먹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상품(上品) 송이에 하자가 있다는 소비자들의 항의도 잇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산림조합 관계자들은 “현재 송이 포자 형성은 양호한 상태이지만, 본격적인 송이 채취 시기인 10월 까지 더운 날씨가 지속된다면 송이 생장에 차질이 생겨 올해 채취량이 흉작이었던 지난해 수준에도 못미칠 것”으로 우려했다.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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