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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해외 저널에 ‘공저자 끼워넣기’ 들통…논문 게재 취소된 교수

    [단독]해외 저널에 ‘공저자 끼워넣기’ 들통…논문 게재 취소된 교수

    교신저자인 교수, 핵심적 기여 안한 제자 ‘제1저자’로 제출해외 저널 “연구부정 행위”…대학 연진위, 예비조사 착수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가 연구에 크게 기여하지 않은 제자를 1저자로 올린 논문을 해외 저널에 투고했다가, ‘공저자 끼워넣기’가 들통나 논문 게재가 취소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해당 교수가 속한 대학의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를 진행 중이다. 15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서대문구 소재 한 사립대 A교수는 2019년 지도 중인 박사 과정생 C씨를 제1저자로, 자신이 지도했던 석사 졸업생 B씨를 제2저자로 올린 논문을 해외 유명 학술지 출판사가 운영하는 저널에 투고했다. 같은 해 11월 논문 게재가 결정되자, 대학원 홈페이지에 이를 연구실적으로 게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C씨가 해당 논문에 핵심적 기여를 하지 않았음에도 교신저자인 A교수가 C씨를 부당하게 제1저자로 등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논문은 B씨 등이 2014~2015년 일본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영문 페이퍼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고 수업에서 제출했던 한글 보고서의 연구결과나 시사점 등 일부를 영문으로 번역해 짜깁기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B씨의 동의 없이 작성·투고됐기에 해외 저널이 논문 게재를 결정한 뒤에서야 B씨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됐다. A교수는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1저자인) 박사 과정생 C씨가 (B씨의) 보고서에 논문 방향성, 문헌조사, 시사점 등을 넣고 논문으로 발전시켰다”면서 “학계에서 다툼을 일으키는 게 좋지 않다고 판단해 C씨와 함께 자진해서 해당 저널에 게재 취소 요청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외 저널은 이를 “연구윤리 부정 행위”로 판단하고 지난해 7월 해당 논문을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출판사 윤리위원회는 “저널 편집위원회는 조사 과정에서 해당 논문에는 참고 문헌으로 표시가 되지 않은 보고서 내용이 포함된 것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저널은 2020년 7월 논문 게재를 철회하기로 했다”면서 “저널과 출판사 양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과한다”고 B씨에게 공문을 보냈다. A교수가 속한 대학의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지난달 이러한 내용을 파악하고 이달 초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처리절차에 따르면 연진위는 최대 30일간 예비조사를 통해 조사위원회를 꾸리고 본조사에 착수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현지통역사 매칭앱 위지니…“다국가 통역사 매칭 통해 호평”

    현지통역사 매칭앱 위지니…“다국가 통역사 매칭 통해 호평”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상황 속에서도 해외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인들은 세계 곳곳 고객사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글로벌 비즈니스 분야에서 소통은 여전히 사업 내용의 당락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해외 통역사 매칭 어플리케이션 ‘위지니’는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현지 통역사를 구할 수 있는 장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위지니는 다양한 국가의 전문 해외현지통역사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로, 전 세계 언어 통역을 가능케 하며 비즈니스의 성공을 이끄는 파트너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현재 통역 가능 국가는 베트남과 라오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이 있다. 또한 태국과 캄보디아, 미얀마와 몽골은 물론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을 포함해 아르메니아, 조지아(그루지아) 등까지 총 25여개국이다. 위지니는 보편화된 언어인 영어권 국가뿐 아니라 전문적인 통역이 필요한 비영어권 국가의 통역 서비스를 다수 제공해 다양한 비즈니스 고객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또한 계약 관련, 경제, 금융, IT 및 미디어, 법률과 마케팅, 예술과 교육 등 여러 분야와 관련된 현지 통역사를 보유하고 있어 보다 정확도 높은 통역을 실시한다. 이러한 통역사 인력 풀(pool)은 1000명에 이른다. 코디네이터와 보통-고급으로 구분된 통역사들은 필요한 업무에 따라 적재적소에 투입할 수 있다. 모든 업무에 관해 비서 역할을 하는 코디네이터는 통역 중급 이상의 실력에 공항 픽업, 서류대행, 번역업무 등을 대행한다. 혹여 비즈니스와 의뢰인 수행 통역, 전화 통역 서비스, 무역 관련 기타 파트너사 회의 등을 진행하는 경우라면 보통 등급의 통역사와 연결이 가능하다. 기술 통역 및 기타 무역에 관한 프레젠테이션, MOU 체결과 행사 진행, 고위 인사 진행 등을 전문 통역하는 경우에는 고급 등급의 전문 통역사를 배치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위지니는 현지법인 설립의뢰 및 고객 맞춤 해외 시장 조사 등의 서비스도 마련하고 있다. 해외 17개국 전문 컨설팅 업체와 함께 전문 변호사 및 회계사를 통한 법인 설립을 지원한다. 맞춤형 해외 시장 조사 서비스는 각 분야별 간단한 기초조사부터 심층조사까지 필요한 자료들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수집해 전달한다. 수도 정보와 언어, 인구, 종교의 정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국가별 정보 및 외교부 홈페이지 연결로 해당 국가의 안전 여행 정보까지 제공한다. 또 주요 여행지, 음식점 등의 API 연동을 통해 여행지와 식당, 호텔 등에서 앱을 연계할 있도록 하는 등 폭 넓은 서비스도 마련하고 있다. 위지니 나상백 대표는 “최근에는 국내를 벗어나 해외기업 및 외국인을 위한 영문버전을 추가했으며, 이로써 외국인도 자사 앱을 통해 통역사를 매칭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장했다”며 “앞으로 더 나아가 총 50여개 국가로 통역 가능 국가를 넓히며, 비즈니스 파트너들의 성공적인 해외 출장의 길라잡이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웹드라마·단편영화… 문화재청의 ‘이유있는 도전’

    웹드라마·단편영화… 문화재청의 ‘이유있는 도전’

    때는 1720년 안동 병산서원. 번번이 과거시험에 낙방해 서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유생 3인방이 야밤을 틈타 스승의 방에 시험지를 훔치러 들어갔다가 ‘경자유랑기’란 책을 발견한 뒤 300년 미래로 떨어진다. 2020년 경자년으로 시간 이동한 이들은 서원 관리자의 딸인 또래 ‘서연’을 만나 전국의 서원을 돌며 과거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 지난달 온라인에 공개된 웹드라마 ‘삼백살 20학번’은 10~15분 분량 에피소드 6편으로 구성된 판타지 사극이다. 조선 도령들과 현대 여성의 재기 발랄한 청춘 드라마인 듯싶지만 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을 알리기 위해 문화재청이 제작한 홍보 영상이다. 문화재청이 웹드라마를 제작한 건 처음이다. 박영록 세계유산팀 연구사는 “문화유산을 홍보하는 영상은 다큐멘터리가 일반적인데, 젊은층에게 보다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웹드라마 형식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반응은 호의적이다. 문화재청 유튜브 채널에서 6편 합산 조회 수는 11일 현재 2만여회에 육박한다. 자막을 요청하는 해외 시청자도 적지 않다. 문화재청은 영어 자막에 이어 일본어와 중국어 자막을 곧 지원할 예정이다. 그리스어와 베트남어 자막은 한류 팬들이 자발적으로 번역해 달았다.문화재청은 단편영화도 만들었다.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은 매년 봄 궁중문화축전 때 경복궁 흥례문에서 치르던 궁궐 호위군 사열의식인 첩종 행사를 20분 분량의 단편 영화 ‘첩종-조선을 지켜라’로 각색해 지난달 31일 온라인에 공개했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 영화 ‘명량’의 신재명 무술감독, 배우 태인호 등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박상훈 궁능유적본부 주무관은 “올해 오프라인 행사를 열지 못해 온라인 콘텐츠로 전환하면서 단순히 사열의식만 보여주는 대신 스토리를 입혀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영화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문화재청의 문화유산전략도 변화에 직면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궁궐, 세계유산, 자연유산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는 현재의 위기를 기회 삼아 바이러스에 지친 국민을 치유하는 비대면 문화유산 힐링(치유) 콘텐츠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문화재청이 SK텔레콤과 함께 한국의 전통춤 태평무를 증강현실(AR) 콘텐츠로 재탄생시킨 ‘태평하기를’ 영상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 양성옥 명인과 세계적인 안무가 리아킴이 협업한 영상은 유튜브 채널에서 17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소리와 영상미를 결합한 ‘문화유산 ASMR’ 콘텐츠도 화제가 됐다. ASMR은 청각으로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로, 지난해 초 공개된 국가무형문화재 제87호 명주짜기 영상은 조회 수가 246만회에 달했다. 고리타분하고, 낡은 것으로 치부되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문화유산 미래 전략’에서 AR, 가상현실(VR) 등 실감형 기술을 활용하고, 다른 장르의 문화예술과 결합해 문화유산을 보다 신선하고 흥미로운 콘텐츠로 부각하겠다고 밝혔다. 박정섭 코로나19대응반 사무관은 “사회 변화에 맞춰 대중이 요구하는 비대면 문화유산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할리우드 진출하는 임상수 감독…휴 잭맨·브래드 피트 등 주연배우 물망

    할리우드 진출하는 임상수 감독…휴 잭맨·브래드 피트 등 주연배우 물망

    임상수 감독이 영화 ‘소호의 죄’로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 소식을 전했다. 열매엔터테인먼트는 11일 임 감독이 미국 영화 ‘소호의 죄’(Soho Sins)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소호의 죄’는 뉴욕 예술계의 전면에서 파격적인 후원과 구매로 예술시장을 주도하며 존경 받았으나, 이면에서는 부도덕과 비윤리를 일삼는 뉴욕 신흥 부자들의 뒤틀린 삶과 범죄적 문제를 다룬 동명의 범죄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현재 세계적 미술 매거진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 편집장으로 있는 원작자인 리처드 바인(Richard Vine)은 2016년 자신의 비평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출간했다. 미국의 평단과 일반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바 있으며 국내에도 지난해 서울셀렉션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돼 호평을 얻었다. 원작 소설 ‘소호의 죄’는 뉴욕 예술계에서 ‘골든 커플’로 불리며 최대 후원자로 추앙 받던 올리버 부부의 아내가 자신의 최고급 로프트에서 시체로 발견되며 시작한다. 올리버 부부의 가장 친한 친구인 주인공 잭슨이 사설탐정과 함께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도니다. 뉴욕 맨해튼에서 소호가 세계 예술계의 수도로 군림했던 90년대,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추악한 사건들의 진실이 드러난다. ‘소호의 죄’는 예술계의 은밀한 이야기를 치밀하고 흥미롭게 그려내며 곳곳에 유명 미술작가들의 실명과 작품이 등장해 미술 애호가들에게 읽는 재미를 더한다. ‘소호의 죄’ 제작은 미국 영화업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인 도나 스미스(Donna Smith)가 대표로 있는 2W 네트워크(2W Network)가 맡는다. 도나 스미스는 “‘소호의 죄’는 전통적인 누아르 장르로 제작될 예정인데, 임상수 감독이 ‘하녀’ ‘돈의 맛’ 등에서 보여준 수려한 미장센과 창의적인 촬영기법 등이 매우 인상 깊었다”며 임 감독의 독특한 인물 분석 및 치밀한 미장센 연출 역량,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 등을 높이 평가했다. ‘소호의 죄’는 한화로 약 330억 정도의 순 제작비가 투자될 예정이며, 2021년 7월에 프리 프로덕션을 거쳐 같은 해 하반기 크랭크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연 배우로는 ‘엑스맨’ 시리즈의 울버린으로 잘 알려진 휴 잭맨과 ‘가을의 전설’, ‘세븐’, ‘오션스 일레븐’, ‘애드 아스트라’ 등 수 많은 히트작에 출연한 브래드 피트가 물망에 올라 출연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민 콘텐츠 에디터 maryann425@seoul.co.kr
  • 전월세 대출이자 지원·고고생 무상교육 확대… 광명시, 새해 달라지는 것

    전월세 대출이자 지원·고고생 무상교육 확대… 광명시, 새해 달라지는 것

    경기 광명시가 새해 들어 신혼부부와 청년들에게 전월세 대출이자를 지원하고 전 고고생에게 무상교육을 확대 시행하는 등 30만 광명시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알찬 정책을 추진한다. 11일 광명시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길어짐에 따라 일자리·복지 분야 지원을 더 확대한다. 다음달 택배기사 및 대리운전기사·학습지 교사 등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가 철산동에 문을 연다. 이곳에는 남녀 휴게실과 회의실·교육실 시설이 갖춰지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시는 올해 생활임금으로 지난해보다 1.5% 인상된 1만 150원을 지급하고, 공공일자리 참여 기준을 중위소득 60% 이하 또는 재산 2억원 이하에서 중위소득 70% 이하 또는 재산 3억원 이하로 완화했다. 여성새일센터를 통해 여성인턴을 채용하는 기업에 지난해보다 80만원 늘어난 320만원을 지원하며 여성인턴에게는 인턴 종료 후 6개월 이상 근속 시 60만원을 지원한다. 광명시는 영세 사업주의 경영 부담을 덜고 저임금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인건비를 지원한다. 새해부터 생계급여를 신청하는 65세 이상 노인과 30세 이상 한 부모가족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신청 가구의 소득과 재산이 생계급여 기준에 충족되면 생계급여를 지급한다. 또 모든 장애인연금 기초급여수급자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한다. 만18세 이상 중증장애인 중 소득하위 70% 이하에 지급한다. 6세 이상 기초생활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게 지급하는 문화누리카드 발급액이 기존 9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랐으며 주거급여 수급가구에서 부모와 떨어져 사는 20대 청년에게 주거급여를 별도로 제공한다. 지난해 고등학교 2·3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올해 1학년까지 확대되는데, 수업료와 납부금을 학교장이 정하는 사립학교는 제외된다. 아이돌봄서비스 이용 시간이 연 720시간에서 840시간으로 늘어나고 비용은 자격 기준에 따라 기존 85%에서 최대 90%까지 확대 지원한다. 광명소하휴먼시아4단지 주민공동시설에 경기도 거점형 아동돌봄센터가 상반기 중 문을 연다. 학기 중에는 오후 2~7시, 방학 중에는 오전9시~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기존에 각 동의 통장 등이 전달하거나 등기우편으로 보냈던 민방위 교육훈련 통지서를 모바일로 받아 볼 수 있으며, ‘정부24’에서 직접 사진을 올리고 수수료를 납부하면 여권 재발급 신청이 가능하다. 시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세부담을 완화하고자 주택공시가격 6억원 이하 1가구 1주택자의 재산세를 감면해준다. 주택공시가격 5억~6억원은 0.35%, 2.5억~5억원은 0.2%, 1억~2.5억원은 0.1%, 1억원 이하 0.05%씩 낮추어 3년간 감면할 계획이다. 신혼부부·청년들을 대상으로 전월세 대출이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부동산 가격 폭등과 취업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신혼부부와 청년들의 주거비용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다. 신혼부부에게 해마다 1회씩 3년간 가구당 최대 195만~225만원(연간 최대 65만~75만원), 청년은 3년간 가구당 최대 90만~120만원(연 최대 30만~4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시는 다문화가정의 지역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광명소식지를 광명시 거주 다문화가족 인구가 가장 많은 3개 국가 중국·베트남·일본 언어로 번역해 제공한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나라 빼앗긴 왕의 눈물 이슬되어 참새 발 적신 곳 ‘노작’의 꿋꿋함 이곳에

    나라 빼앗긴 왕의 눈물 이슬되어 참새 발 적신 곳 ‘노작’의 꿋꿋함 이곳에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중략)//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홍사용,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에서) 세상 어느 곳이든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눈물의 왕이 사는 나라. 어머니께서 그토록 울지 마라 당부했지만 끝내 흐르는 눈물에 어머니와 나를 모두 가두어버린 시인이 사는 나라다. 그리하여 이곳은 여 리고 가여운 왕이자 시인이며 또 ‘나’인 사람이 기어코 흘리고 마는, 아침 이슬 같은 눈물에 다리가 젖어버린 참새의 터다. 빼앗긴 나라의 왕이자 시인인 ‘나’는 혼자 우는 버릇이 단단히 들린 채로 어머니의 당부마저 눈물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이 시를 지은 홍사용 시인은 노작(露雀), 소아(笑啞), 백우(白牛)라고 지은 여러 호들 중에서 ‘노작’을 주로 사용했다. ‘노작’은 이슬 로(露)에 참새 작(雀)자를 쓴다. 선생이 살던 시대는 그를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이면서 독립투사로 만들 수밖에 없던 일제강점기. 나라와 자신의 처지가 원통하여 밤새 흘린 눈물이 새벽이슬이 돼 가녀린 참새의 다리마저 젖게 한다는 뜻을 호로 삼을 수밖에 없던 이의 자리란 또 얼마나 외롭고 애달팠을 것인가.노작은 190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사망 후 백부가 살고 있는 화성으로 이주해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며 자랐다. 서울 휘문의숙을 졸업한 1919년에 기미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휘문의숙 재학 시절에 교우들과 문집을 간행했고, 졸업 후에는 문예지 ‘백조’와 ‘흑조’ 등을 기획해 창간했다. 노작 외에도 박종화, 나도향, 현진건, 이상화, 김기진 등이 합류해 만든 ‘백조’는 3호까지 나왔다. 편집은 노작이 맡았지만 발행인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1호는 배재학당의 교장이었던 아펜젤러, 2호는 보이스 여사, 3호는 러시아에서 망명한 훼루훼로로 외국인들을 내세웠다.●박종화·나도향·이상 등과 ‘백조’ 발간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총독부에 의해 검열당한 채 간행된 문예지 ‘백조’ 곳곳에는 출판물에서 내용을 밝히지 않으려고 지운 자리에 ‘O’ 혹은 ‘X’로 표시한 복자(伏字)가 곳곳에 표시돼 있다. 작가의 사상과 문장을 검열한 뒤에 출간을 허가했던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난 아픈 역사적 사료인 셈이다. 노작은 ‘백조’의 창간과 함께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이때 ‘나는 왕이로소이다’, ‘묘장’,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 등의 시를 발표했다. 선생은 시뿐만 아니라 소설 ‘저승길’, ‘뺑덕이네’, ‘봉화가 켜질 때’ 등을 썼고 희곡으로 ‘할미꽃’, ‘출가’, ‘제석’ 등의 희곡이 있다. 수필과 여러 비평문도 발표하면서 다방면의 글쓰기 작업들을 하는 동시에 1923년에는 토월회(土月會)에 가담해 문예부장을 맡기도 했다.“현실에 토착해 있되 이상은 명월같이 높게 가져야 한다”며 발족한 연극문화운동단체 ‘토월회’는 도쿄에서 유학 중이던 김기진, 김복진 등이 매주 한 번씩 모여 시를 낭송하고 그림을 감상하며 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십일월(十一月)에 결성됐다는 뜻으로 토월회라 부른다는 말도 있다. 당시 조선의 연극은 주로 신파극이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된 극단이 없이 여기저기서 파편화된 채 단발성 공연으로 진행되기 일쑤였다.●‘나는 왕이로소이다’ ‘묘장’ 등 시 발표 노작은 대중 속에 파고들어 깨우치는 데 연극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1927년엔 산유화회를 조직해 연극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대중적인 연극을 통해 민족의 아픔과 정한을 표출하고자 한 선생의 의도가 시대의 필요와 맞아떨어지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일제 검열로 대본 전체가 삭제, 압수되고 공연의 막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 속출했다. 선생은 조선총독부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끝내 연극운동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번역극과 다채로운 신극 운동을 전개해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토월회는 경영난으로 1931년에 해산하게 된다.노작은 일제에 항거하는 작품들을 활발히 썼지만 저돌적인 투사의 문장이 아닌 1920년대 초에 붐이 일었던 낭만주의운동에 힘입어 향토적 서정, 자전적 전기 등의 감상이 짙은 작품들을 주를 이뤘다. 대다수 낭만주의 시인들이 외국 풍조에 영향을 받은 시들을 쓸 때 선생은 민중의식이 깃든 민요에 관심을 갖고 민족적 서정성을 끝없이 탐구하고 형상화했다. 그런 이유로 민요시, 향토시로 분류되기도 하는 그의 시들은 주로 비애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어 ‘비애의식을 민족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통적인 맥락에서 시를 창작하고 민족적인 이념과 독립의 의지를 시와 희곡 및 소설 등을 통해 널리 알리고자 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일제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꿋꿋하게 독립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던 선생은 해방을 맞이해 근국청년당 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러다 1947년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생전에는 책을 출판하지 않았다가 1976년에 와서야 유족들이 시와 산문을 모아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난 2010년에는 유년기를 보내고 그의 묘지가 있기도 한 경기도 화성에 노작 홍사용 문학관이 개관되기에 이른다. ●오늘날 토월극장 이름 ‘토월회’서 비롯 나는 홍사용 시인을 고등학교 3학년 때 언어영역의 지문으로 나왔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로만 알고 있었다. 사는 곳의 지척인 화성 동탄 신도시에 문학관이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노작과 홍사용 그리고 시의 제목은 여전히 뇌리에서 각기 따로 놀았다. 그러다 몇 년 후에야 시와 시인, 문예지 ‘백조’와 지금의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이 ‘토월회’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곳과 인연이 닿아 이 년 넘게 소설창작과 단편소설읽기 강좌를 진행하게 된 후에야 비로소 선생의 발자취에 대해 본격적으로 인지했다. 문학관의 지척에 살면서도 조금 더 빨리 선생의 자리에 대해 숙고하지 않은 것은 내 게으름의 탓일 것이다.오랜만에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신도시의 유일한 문학관답게 문화적인 정취를 원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시와 연극, 소설로 대중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자 했던 선생의 뜻에 걸맞게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노작 출판학교, 노작문학제, 노작 문예지 ‘백조’의 발간, 작가의 방 대관사업, 노작홍사용단막극제, 노작문학상 등을 비롯해 문예강좌, 청소년 문예교실, 우리동네 작은 영화관, 문학이 함께하는 음악회, 시인과 함께 걷는 시숲 길, 문학현장답사, 산유화극장 정기공연 등과 시민극단 연극동아리까지 시와 희곡, 수필과 소설을 아우르는 프로그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유튜브까지 진출해 온오프라인을 종횡무진하는 프로그램들의 목록을 보며 1920년대 초에 낭만주의 문학의 선두주자이며 문학사를 주름잡던 선생의 활동을 겹쳐 보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터. 현존하는 여러 문학관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가히 손꼽힐 정도로 체계적인 외향과 내실을 다져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문학관 곳곳에서 선생이 살다 간 발자취와 시대정신, 문학에 대한 열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시도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는 주변의 시민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홍사용’이라는 이름을 신도시의 문화거점으로 우뚝 서게 한 노력의 발로다. 문학관이 시민들과의 소통을 최우선하고 글자와 문장을 넘어서서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손택수 관장의 의지가 특히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에 호응하듯이 주체적으로 문학관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모습이야말로 이 자리를 자리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문장’이 아닐까. 이 모든 일들이 한 세기 전에 노작이 행했던 시대정신과 민족의식에 대한 문학적인 물음에 대한 후대의 답임을 보여 주고 있는 공간이었다. 당대의 호명으로 박제된 이름만이 아니라 오로지 선생의 작품과 민족정신을 일깨우던 자리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돼 생생하게 사람들 곁에서 살아 있는 문장으로 다가서는 그 이름. 그리고 그것을 일깨우는 여러 사람의 땀과 마음들. 나라를 빼앗긴 왕의 눈물이 이제는 동이 틀 무렵의 이슬이 돼 참새의 발을 씻어 주는 곳, 노작 홍사용 문학관이다.소설가 이은선
  • “北 8차 당대회 사업총화결정서 채택 5년 뒤로” 오보 나온 경위

    “北 8차 당대회 사업총화결정서 채택 5년 뒤로” 오보 나온 경위

    북한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닷새에 걸쳐 사업총화(결산) 보고와 토론이 있었지만, 결론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국내 언론들이 오보를 냈는데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미국 윌슨센터 연구위원으로 연수 중인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0일 조선중앙통신의 영문 번역문 중 ‘The congress decided to examine and adopt the resolution on the first agenda item at the next congress after the leadership body of the 8th Party Central Committee to be newly elected forms the resolution drafting committee and sums up creative and constructive opinions through inter-sector consultative meetings’의 한 대목 ‘at the next congress’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표현 때문에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에 대한 결정서가 9차 당대회에서 채택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데 조선중앙통신의 국문 문장은 “의견들을 종합한 다음 대회에서 심의하여 채택”하는 것으로 돼 있어 의견들을 종합한 후 (이번) 대회에서 채택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정 위원은 지적했다.  만약 북한이 9차 대회에서 결정서를 채택할 계획이었다면 “의견들을 종합한 후 다음 대회에서 심의하여 채택”한다고, ‘종합한’과 ‘다음’ 사이에 ‘후’라는 단어를 넣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흥미로운 것은 국내 일부 언론과 조선중앙통신의 영문 번역자 모두 ‘다음 대회’, 즉 9차 대회에서 결정서를 채택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는 사실이라고 짚었다.  조선중앙통신은 결국 나중에 ‘at the next congress’라고 번역한 부분을 삭제하고 ‘The congress decided to examine and adopt the resolution on the first agenda item after the leadership body of the 8th Party Central Committee to be newly elected forms the resolution drafting committee and sums up creative and constructive opinions through inter-sector consultative meetings.’로 수정했다. ‘다음’을 ‘next’가 아니라 ‘after’로 바꾼 것이다. 조선중앙TV의 리춘희 아나운서도 “의견들을 종합한 다음, 대회에서 심의하여”라고 띄어 읽어 이번 대회가 이어지는 후속 기간에 결정서가 채택될 것임을 시사했다. 당대회가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게 됐다.  앞서 다음 대회에서 결정서로 채택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아주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2016년 열린 7차 당대회만 하더라도 나흘간 진행된 대회에서 1∼2일차에 김 위원장의 개회사와 사업총화 보고 후 3일차 회의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에 대하여’라는 결정서를 채택했다. 7차 대회 결정서는 경제 건설과 핵무기 건설을 함께 추진한다는 ‘핵·경제 병진노선’과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등 굵직한 내용을 담았다. 김정은 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최고 수위에 높이 모신다’고 결정서에 먼저 규정하고 뒤이어 4일차 회의에서 당 규약을 개정해 김정은을 당 위원장으로 추대하기도 했다.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지만 남조선(남한)이 끝내 전쟁의 길을 택한다면 정의의 통일대전으로 반통일세력을 쓸어버린다’ 등 향후 국방과 대외관계에 대한 기본 방침도 결정서에 명시했다.  1980년 10월 열린 6차 당대회 때도 당시 김일성 당 총비서가 첫날 사업총화보고를 하고 폐회 전날 결정서를 채택했다.  한편 5년 만에 노동당은 규약을 개정해 국방력 강화 내용을 명시했고, 노동당의 정무국이 폐지되고 비서국이 부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8차 당대회에서 당 규약 개정에 관한 결정서가 채택됐다며 “(서문에)공화국 무력을 정치 사상적으로, 군사 기술적으로 부단히 강화한 데 대한 내용을 보충했다”고 10일 보도했다. 특히 당 규약에 “조국 통일을 위한 투쟁 과업 부분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을 제압해 조선(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 데 대해 명백히 밝혔다”고 전했다. 기존 당 규약 서문에는 김정은 당 위원장의 “자위적인 전쟁억제력 강화” 성과만 언급했을 뿐 국방력 강화 목표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이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통신은 “각급 당 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 직제를 책임비서, 비서, 부비서로 하고 정무국을 비서국으로, 정무처를 비서처로 고쳤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비서국을 정무국으로 바뀐 뒤 5년 만에 다시 이전 체계로 회귀한 셈이다. 당 정치국과 당중앙검사위원회의 권한을 추가하고 효율적으로 규정을 손질했다.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를 결정하며 국가 중요 간부 임면 문제도 토의하도록 했다. 특히 정치국 상무위원이 위임을 받아 회의를 사회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현재처럼 김정은 당 위원장이 직접 사회하지 않아도 당 정치국 회의가 열릴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현재 5인 체제의 상무위원회가 확대되고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북한은 지난 5일부터 8차 당대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전날까지 4개 의정 가운데 ▲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 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 당 규약 개정 등 3개 의정을 마무리했다. 당 중앙지도기관 선거만 남은 상황인데 앞의 해석처럼 결정서 채택 과정이 남아 있다면 언제 당대회가 마무리될지 예측하기 힘들게 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밖에서 본 한국미술의 과거와 현재, ‘외국 연구자의 한국미술 연구’전

    밖에서 본 한국미술의 과거와 현재, ‘외국 연구자의 한국미술 연구’전

    “동아시아 미술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빈 박람회에 있었던 일본 공예품 전시를 통해서였는데, 당시에는 ‘조선미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정도로 조선미술에 입문할 수 있는 책이 적었다. 현존하는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조선미술에 관한 통사를 저술하는 것은 아직까지 아시아 언어나 유럽 언어로 결코 시도된 적이 없다. 이를 달성하는 것이 ‘조선미술사’의 목적이며, 온 세계에 조선미술의 의미를 밝히고 알리는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독일 성 베네딕도회 신부이자 한국학자 안드레아스 에카르트(1884~1974)는 1929년 독일어와 영어로 출간한 ‘조선미술사’에 대해 이렇게 자평했다. 에카르트는 1909년 조선에 선교사로 파견돼 숭의학교 초대 교장, 경성제국대학 언어·미술사 강사 등으로 활동하다 1928년 귀국했고, 이듬해 한국미술을 통사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을 펴냈다. 이 책은 74년 후인 2003년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권영필 역, 열화당)라는 제목으로 완역됐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한국미술을 연구하고 저술한 외국 연구자들의 인명 정보와 연구 결과를 한자리에 모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외국 연구자의 한국미술 연구’전이 서울 종로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 말부터 현재까지 한국미술을 다룬 16명 외국 연구자들의 단행본과 번역본, 전시 팸플릿, 기사, 사진 등 아카이브 100여 점이 선보인다. 김달진 박물관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외부 활동이 어려워진 시기에 한국미술의 위치를 보다 국제적 시각에서 가늠하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소개했다.일본 민예운동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1922년 조선미술에 대한 주요 미학 개념을 정리한 ‘조선의 미술’을 펴냈다. 조선의 미를 ‘비애의 미’로 규정한 그의 연구는 ‘야나기 신드롬’과 아울러 식민사관이란 비판을 받았다. 미국 조지아대 교수 엘렌 프세티 코넌트는 19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에서 해방 이후 최초로 열린 ‘한국현대회화전’을 기획한 연구자다. 한국에 두 차례 방문해 전시 작품을 직접 선정하는 등 동양미술 전공자로서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전시라는 평가를 들었다.1세대 한국미술 연구자들에 대한 자료와 더불어 동시대 활발히 활동 중인 제인 포탈 영국박물관 아시아부 큐레이터, 샬롯 홀릭 런던대학 SOAS 교수, 부르글린트 융만 전 미국 UCLA대 교수, 조 앤기 미시건대 교수, 키다 에미코 일본 오타니대 한국미술전공 준교수, 후루카와 미카 한국미술연구자에 관한 정보와 자료들도 만날 수 있다. 또한 권영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송미숙 성신여대 명예교수, 이성미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등 국내 학자들의 인터뷰 영상도 소개된다. 전시는 4월 24일까지이며, 관련 단행본도 비매품으로 출간됐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똑똑 우리말] 동장군/오명숙 어문부장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삼한사온’이란 말이 그립기까지 하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죽는다”는 속담처럼 소한(5일) 추위가 예사롭지 않다. 이 같은 추위를 두고 흔히 ‘동장군’이 찾아왔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익숙한 말이긴 한데 왜 하필 추위를 장군에 비유했는지 궁금하다. 동장군은 혹독한 추위를 의인화한 것으로 겨울철 주기적으로 남하하는 시베리아 한기단을 말한다. 이 동장군이라는 말을 우리 속담이나 설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프랑스 나폴레옹1세가 러시아로 쳐들어간 사건에서 유래된 말이다. 1812년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1세는 예상치 못했던 매서운 추위에 수많은 희생자만 남긴 채 대패하게 된다. 승승장구하며 유럽을 휩쓸던 나폴레옹은 이 전쟁에서 패퇴하면서 결국 몰락하게 된다. 이를 두고 영국 언론이 ‘추위 장군을 뜻하는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 덕에 열세에 놓였던 러시아가 승리했다’고 표현했다. 동장군이란 명칭이 등장한 건 일본에서다. 일본 작가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번역할 때 ‘제너럴 프로스트’를 한자어로 ‘冬將軍’, 즉 ‘후유쇼군’이라고 표현했다.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오늘날 혹독한 추위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에서 ‘동장군’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최초의 사례는 1948년 10월 15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oms30@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디지털과 아날로그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디지털과 아날로그

    지난해 추석 즈음 랜섬웨어 공격으로 컴퓨터에 있던 자료를 다 잃어버렸다. 외장하드를 본체와 연결해 둔 것도 불찰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는 말의 뜻을 실감했다. 문서는 물론 20년 가까이 찍은 사진도 다 날아갔다. ‘사진으로 세상읽기’ 연재도 이젠 접어야겠다고 마음을 비웠다. 모든 흔적이 사라지는 경험이었다. 한참 망연자실해하다가 오래전 구석에 처박아 둔 외장하드 두 개를 발견했다. 다행히 문서는 거의 다 건졌다. 하지만 사진은 최근 몇 년 치를 다 잃었다. 이 일을 겪으며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먼저 디지털의 허망함이었다. 한순간의 실수로 순식간에 다 사라지다니. 20여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연구서 집필을 위해 수백 권의 영문 자료에서 필요 부분을 우리말로 번역해 저장한 문서 파일이 사라진 것이다. 파일 이동을 하다가 버튼을 잘못 누른 모양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도트프린터’로 출력해 뒀다는 것. 프린트물이 없었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뻔했다. 평소 사용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약칭 OED·전 20권)은 2000년 무렵 CD로도 출시됐다. 써 보니 종이책보다 한층 편리했다. 그러나 컴퓨터 운영체제(OS)가 업그레이드되면서 지금은 구동이 안 된다. 한동안 잘 썼지만 이젠 무용지물이다. 요즘은 다시 종이책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참고한다. 1947년 사해 연안 쿰란에서 기원전 1세기 유대교 종파인 에세네파의 문서가 발견됐다. 이른바 ‘사해 두루마리’다. 양피지에 기록된 문서가 무려 2000년 뒤에 발견된 것이다. 사막의 건조한 기후 덕분이었다. 이런 일이 디지털 세계에서도 가능할까? 1990년대 널리 사용되던 플로피 디스켓도 이젠 읽을 수 없게 됐는데 말이다. 디스토피아 영화, 소설에서는 문명 파괴 후 석기 시대로 돌아간 인류의 모습이 그려지곤 한다. 상상컨대 퇴보하긴 하겠지만 석기 시대까지는 아니고 로마제국 멸망 후 고전문명이 파괴된 중세와 비슷해질 것 같다. 그 시절이 오면 종이책을 통해 문명을 재건하지 않을까. 페트라르카 등 중세 말기 휴머니스트들이 평생을 바쳐 필사본을 발굴함으로써 르네상스 문명을 열었듯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지만 이젠 외장하드 케이블을 반드시 본체와 분리한다. 그리고 온라인 클라우드에 중요 자료를 꼭 저장해 둔다. 디지털 시대를 버티는 방법이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계명대 대학원 통번역학과, 대구MICE 얼라이언스 회원사로 활동

    계명대 대학원 통번역학과, 대구MICE 얼라이언스 회원사로 활동

    계명대학교 대학원 통번역학과가 대구 MICE 얼라이언스 회원사에 가입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대구 MICE 얼라이언스는 대구 지역 MICE 산업 관련 기업체와 기관으로 구성된 단체로 대구에서 개최하는 MICE 관련 행사를 성공적으로 유치하고 개최하기 위해 모인 공동 마케팅 협력체이다. 2011년 11월에 출범해 2020년 12월 현재 대구광역시를 비롯해 ㈜엑스코, 호텔인터불고 대구 등 67개의 회원사가 활동 중이다. 대구시 국제회의 유치 전담기구인 대구컨벤션뷰로가 사무국을 담당하고 있다. 계명대학교 대학원 통번역학과는 대구 유일의 통번역 전문 석·박사 교육기관으로서 2010년에 개설됐다. 한국외대 통번역학과 출신 교수진을 영입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통번역 관련 고등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계명대 통번역학과 교수진과 졸업생들은 지난해 10월 대구에서 열린 제72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를 동시통역했으며, 메디엑스포, 대구국제로봇비즈니스포럼 등 지역 내 각종 국제행사에 통번역 전문 인력으로 참여하고 있다. 통번역학과 재학생들 역시 교내외 통번역센터를 통해 수출상담회, 기업 행사 및 비즈니스 미팅 등에서 전문 통역 인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각종 번역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여 통번역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계명대학교 통번역학과는 이번 MICE 얼라이언스 가입을 통해 소속 통번역 전문인력의 활동 범위가 더욱 넓어질 것이라 기대하며 대구·경북지역 내 국제행사에 더욱 활발히 참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통번역 전문 인력의 경우 수도권에 집중되어 지역에서 수급이 어려웠으나 이번 계명대 대학원 통번역학과의 대구 MICE 얼라이언스 회원사 가입을 통해 각종 국제 행사에서 지역 인재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만질 수 없음을 만지는 언어:촉각의 소노그래피/전승민

    문학의 칼 칼날과 포옹할 수 있을까? 한강에게 언어는 세계와 자신을 가르는 칼이다. 언어는 전체 의미 중에서 표현 가능한 부분만을 잘라 기표에 담으므로 진실은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왜곡된다. 그래서 문학 하는 이들에게 언어는 축복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고통이다. 문학의 괴로움은 그것이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비-진실해지는 이 운명에서 비롯한다. 현실의 경험을 기표로 쪼개어 재조합하는 언어로는 그 어떤 실재에도 완벽히 다다를 수 없다. 현실을 조각내지 않는 언어는 과연 가능할까?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2011)은 진실을 조각내는 언어의 칼금과 대결하며 날것 그대로의 진실을 포착하려 한다. 그것은 현실을 분절하는 한계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을 가장 훼손하지 않는 순수한 상태의 언어에 의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언어가 언어이기를 포기할 때 획득되기에 순수를 추구할수록 더욱 비-순수해지는 역설 속에 있다. 그 ‘순수’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사람에게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은 어떤 인과나 합리적 추론으로 증명되는 참인 명제가 아니라 오직 몸으로 살아낼 때만 느끼는 힘의 압력으로 다가온다. 소설의 남자와 여자는 이 거대한 진실을 유한한 인간의 몸뚱이로 견디는 사람들이다. 남자의 진실은 영원한 실명, 여자의 진실은 계속되는 실어이다. 그러나 그들의 상실과 고통은 보상이나 처벌의 체계에서 비롯하지 않으며 당위나 인과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 각자의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영원히 실패한다. 예정된 실패의 운명 속에서 ‘희랍어 시간’이 길어 올리는 물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삶을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치는가이다. 이 궁극의 물음에 대해 소설은 질문으로 되돌아가 그것을 파괴하는 재귀적인 답을 제시한다. 삶이 인간에게 들이미는 통각은 소거되어야 할 병증이 아니라 그가 살아 있음을 감각하게 하는 생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설은 인물의 아픔에 관한 원인을 굴착하기보다 그 아픔을 온몸으로 함께 통과한다. 서사는 플롯의 인과와 시간의 합리적 흐름에 복무하지 않고 다만 고통의 양태와 통각을 소슬히 응시하기 위해 흐른다. 그래서 ‘희랍어 시간’에서의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고 소설의 언어 역시 일반의 언어로부터 탈구되어 있다. 요컨대 한강은 인간과 문학이 삶에 대해 제기하는 근본적인 질문, 그러나 ‘왜’로 시작할 수밖에 없으므로 언제나 오류일 수밖에 없는 어떤 질문과 대결한다.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105쪽) 신성의 잠재태로서의 고통 ‘희랍어 시간’의 시간은 환(環)으로 흐른다. (“세상은 환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입니다.” 26쪽) 소설에서 읊어지는 보르헤스의 말처럼 첫 번째 장은 ‘1’에서 시작해 21번째 장까지 진행된 후 마지막 장에서 ‘0’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1에서 0을 향해 구부러지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삶이 전생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전사(前史)는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2013)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1) 남자와 여자는 ‘해부극장’ 연작에 나오는 백골의 전생이며, 백골의 고통은 곧 여자가 느끼는 통증이다. 그것은 말의 소리가 신체의 발음 기관을 경유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갈 때 발생하는 비릿하고 붉은 통각이다.2) 세 치의 혀와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들, 헐거운 말들, 미끄러지며 긋고 찌르는 말들, 쇳냄새가 나는 말들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찼다. 조각난 면도날처럼 우수수 뱉어지기 전에, 막 뱉으려 하는 자신을 먼저 찔렀다.(‘희랍어 시간’·165쪽) 여자의 고통이 언어가 파열될 때 발생한다면 남자의 고통은 반대로 무언가가 덩어리로 뭉개질 때 발생한다. 완전히 실명하게 되리라 진단받은 마흔을 목전에 두고, 그는 마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것처럼 16년간의 독일 생활을 접고 모국으로 돌아온다. 사물과 풍경의 날카로운 경계는 그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진다. 그는 실명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신이 없다. 남자의 삶 역시 독일과 한국에서 보낸 시간으로 분절되어 있으므로(“그때 내 인생은 거의 정확히 절반씩 두 언어, 두 문화로 쪼개어져 있었던 셈입니다.” 40쪽) ‘희랍어 시간’은 여자와 남자가 공유하는 고통 그 배면의 시간이다. 여자는 두 번째로 찾아온 실어 증상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강의를 신청하고, 남자는 자신을 둘로 쪼개는 힘을 피해 “수천 년 전에 죽은 언어 (…) 마치 고요하고 안전한 방”(119쪽)과 같은 희랍어 속으로 숨어든다. 이 공통의 시간 너머에 있는 그들의 고통에는 이유가 없다. 백골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아픔은 단지 붉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성에서 비롯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파야만 하는 것이다. 까닭 없이 고통받는 인간은 신을 찾아 헤맨다.3) 소설의 1인칭 화자는 마지막 장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남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의 고해는 세 통의 편지로 이루어진다. 가장 먼저 발송되는 편지는 독일에서 살던 시절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사과문이다. 그녀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장애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녀를 욕망한다.(“우리는 언젠가 함께 살게 될 것이고, 나는 눈이 멀 것이라고. 내가 보지 못하게 될 때, 그때는 말이 필요할 거라고.” 47쪽) 그는 “백치처럼 순진하게”(47쪽) 그녀에게 독순술 수업에서 배운 대로 말을 해 보라고 요청한다. 남자는 그녀의 청각장애를 자신의 예정된 실명과 동등하게 고려하지 못한다. 그녀의 독순술이 그의 ‘결핍’을 보충하는 자질이 될 이유는 조금도 없다. 누군가의 언어 행위는 그의 자발적 선택과 의지에 의한 것이지 다른 이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언어는 강요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가 그녀에게 품는 모든 욕망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정당화되고 그것이 그녀에게도 좋은 것이라 ‘백치처럼’ 그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녀는 사과하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세계를 두 눈으로 또렷하게 볼 수 있다고 해서 타인의 고통을 왜곡되지 않은 상(像)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부 사물을 보는 눈과 인간의 고통을 보는 눈은 다르다. 한편으로, 인간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것은 그 또한 다른 인간으로부터 상처받을 수 있음을 내포한다. 두 번째 편지의 수신인은 여동생 란이다. 그는 여동생에게, 앞으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될 그의 운명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똑같은 병을 앓았던 아버지였음을 말한다. 그의 시력 상실은 부계 유전질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어스름이 정말 완전한 밤으로 이어지는지”(82쪽)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자신과 똑같은 아들을 끝까지 멀리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데에 결국 실패하면서 삶으로부터의 자기 소외 속에 생을 마감한다. 그는 어둠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삶의 빛 속으로 한 발짝도 걸어 나가지 못했던 셈이다. 이제, 앞서 소설이 던진 유일한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 도착한다. 인간이 부서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영혼 안에 어리석고 나쁜 것과 함께 어떤 좋음 또한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통을 감각하고 수용하는 능력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새’는 그것의 체현물이며(“그의 얼굴 속에 새 같은 무엇인가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 따스한 감각이 그녀에게 즉각적인 고통을 일깨운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147쪽) 개별 존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영혼과도 같은 것이다.(“새 같은 무엇인가가 문득 육체를 떠났고, 그 육체는 더이상 어머니가 아니었다.” 145쪽) 말하자면 새는 인간이 생의 통각에 반응하는 마음의 일부로서 육체와 정신을 이어 준다. 새를 통해 인간은 육체의 통증을 실존적인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뒤에서 논의되겠지만, 인간은 역설적으로 바로 이 ‘새’로 인해 자기 파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새를 두고 인간이 각자 품고 있는 어떤 신성(神性)의 잠재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유한자로서의 운명에 함몰되지 않고 ‘인간적이지 않은’ 차원으로 도약하게 만드는 그 무엇은 분명 신성하다. 요컨대 인간은 선험적인 신성을 배태하므로 고통받는다. 여자는 특히 이 신성의 언어적 측면이 육화된 존재다. 문자가 소리로 변할 때 언어가 겪는 분절의 고통을 그녀는 자기 몸의 통증으로 겪는다. 심장과 혀를 경유하여 귀로 도달하는 모든 파열하는 소리는 여자에게 폭력이다. 그래서 실어증은 파괴하는 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대응이다. 침묵은 그녀를 에워싸고 보호한다. 실어의 원인은 심리치료사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55쪽)다. 여자는 언어의 신성 그 자체이지만 이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녀 역시 구원을 바란다. 어머니가 뱃속의 그녀를 지우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현실 속 무언가의 실존이 얼마나 연약하고 위태로운 우연에 기대고 있는지 아는 그녀는, 그래서 무언가의 존재를 위협하거나 변형시키는 힘에 대해 온몸으로 대항한다. 그녀에게 폭력은, 어떤 존재를 그것의 고유한 자리로부터 박탈시키는 모든 종류의 유형력이다. 목소리 역시 그러하다. 음성은 공간을 점유하면서 다른 존재들을 밀어낸다.(“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51쪽) 여자에게 말은 육체적인 고통이다. 그러므로 실어는 존재들을 지켜내기 위해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는 사랑의 행위-신의 사랑이다. 그녀는 말하지 않는 대신 언어를 시선으로 번역한다. “신은 보는 존재이거나, 시선 그 자체인 건가요?”(104쪽)라는 대학원생의 물음은 반쯤 정답을 향해 있다. 타인의 고통을 무참히 다룬 죄를 고해하고 받은 상처를 토로하던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남자가 찾던 신의 모습은 여자의 몸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점점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그는 과연 그녀를 ‘볼’ 수 있을까? 신과 인간의 소노그래피 그녀가 희랍어로 힘겹게 써 내려가는 시는 마치 예수가 부활하기 전 무덤 속에서 썼으리라 짐작되는 것이다. 한 여자가 땅에 누워 있다. 목구멍에 눈(雪) 눈두덩에 흙. (64쪽) 차가운 무덤 속에 묻힌 신의 눈에는 흙이 있고, 입과 목은 차가운 눈으로 막혀 있다. 그녀는, 신은 말할 수 없다. 무덤 안은 남자와 여자가 발 딛고 있는 현실 세계다. 카타콤베 묘지에 갔던 남자의 기억이 떠오른다. 여러분, 왜 관 속에 유골이 없을까요? (…) 박물관에 가져다놓은 거 아니에요? (…) 누군가가 훔쳐갔나요? (…) 다아 여기 있습니다. (…) 관 속에 보이는 흙을 분석하면 칼슘과 인 성분이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수천 년이 흐르면, 사람의 뼈가 삭아서 이런 흙이 되는 겁니다.(153쪽) 백골은 전생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남자는 자신이 곧 그 백골이라는 것을 안다.(“수천 구의 육체들이 뼈까지 깨끗이 삭아버린 거대한 무덤 속에, 그토록 따뜻한 몸을 가진 우리가 모여 있었다는 게.” 155쪽) 그는 구토감을 느낀다. 온몸에 묻은 죽음의 흙냄새와 어둠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여자에게 고해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이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음을 전혀 알지 못한다. 마치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채 그가 정원지기인 줄로만 알고 예수의 시신이 어디에 있느냐 묻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다.(요한복음 20:15) 그는 앞으로 펼쳐질 영원한 어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신에게 거듭 질문한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내 말, 거기서 듣고 있나요?(161쪽) 두 사람의 과거로 구부러졌다 돌아오곤 하던 현재는, 남자와 여자가 ‘어둠’ 속에서 서로 마주하게 되는 배타적인 둘만의 시간, 즉 17장부터 21장까지의 시간 동안 직선으로 그러나 더 천천히 흐른다. 건물 안으로 날아온 새를 구하려던 남자는 발을 헛디뎌 안경을 깨뜨리고 강의실로 돌아가지 못한다. 밖으로 나온 여자가 남자의 소리를 듣고 그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그녀가 그에게로 다가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무언가를 감지하고 밖으로 나간다. 빈자리들이 이상한 통각을 띠고 그녀의 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질끈 눈을 감아보았다. 그녀의 시간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어긋난 것 같았다.(160쪽) 남자의 시간이 그녀에게로 다가갔던 것이다. 그는 점점 흐릿해지는 자신의 시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다.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됩니다.(39쪽) 두 사람의 대화는 남자의 빈자리가 발생시키는 시간의 진동을 여자가 감지하면서 시작된다. 이 시간의 감각은 파동의 형태로 전달된다. 남자는 여자의 구두 소리를 듣고 난간을 주먹으로 두드려 자신이 있음을 알린다.(“듣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이 진동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133쪽) 여자가 ‘들은’ 것은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아니라 그녀의 몸 전체, 피부 세포에 닿아 그것들을 흔드는 진동이다. 그들의 대화는 시신경에 의한 시선도, 청신경에 의한 소리를 통해서도 아닌 바로 이 촉각의 소노그래피(sonography)를 통해 이루어진다.4) 시인이 존재들에게 엑스선을 투과시켜 백골들의 영상을 얻어낸다면(“검푸른 뢴트겐 사진에 담긴 나는/그리 키가 크지 않은 해골” ‘해부극장 2’) 소설 ‘희랍어 시간’에서는 소노그래피를 통해 육체의 말랑한 조직들, 피부나 혀, 심장에서 반향된 영상을 보여 준다. 엑스선은 말랑한 것들을 찍을 수 없고 초음파는 뼈를 투과할 수 없다. 통증은 말랑하고 붉은 것의 감각이다. 뼈에는 통각 세포가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뼈가 육신을 가졌을 적의 고통의 서사다. 소노그래피의 언어는 존재 자체가 내뿜는 파동이므로 소리로 쪼개지지 않는 언어다. 이것 역시 몸으로부터 유래하지만 “폐와 목구멍과 혀와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날아”(55쪽) 가는 목소리가 갖는 폭력성은 없다. 여자가 말 대신 택한 시선의 언어 역시 그런 점에서 비육체적이다.(“시선만큼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접촉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느꼈다. 접촉하지 않으면서 접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55쪽) 이때 접촉의 감각은 시각이나 청각이 배제된 상태의 대리보충, 즉 실제 피부의 감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5) 소노그래피의 촉각은 오감의 유무와 관계없이 존재가 뿜어내는 살아 있음의 파동, 즉 여자가 말한 ‘시간’의 감각이다. 한강은 특유의 독특한 문체로 두 인물 사이에 반향되는 소노그래피를 형상화한다. ‘희랍어 시간’에는 큰따옴표나 작은따옴표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뜻 자유간접화법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자유간접화법은 문장 안에서 형식적 서술자와 서술 내용이 담는 의식의 주인을 불일치시키며 서술자보다 인물을 부조한다. 그러나 한강의 문장에서 3인칭 화자는 남자와 여자의 의식 이면으로 유보되지 않는다. 따옴표 없이 곧장 전해지는 말은 인물의 목소리를 3인칭 서술자와 동일한 층위에 위치시키며 그들 간의 위계를 무너뜨린다. 모든 소리는 세계의 일부로 스며들어 있다. 소설은 이 지점에서 자기 안으로 시를 틈입시킨다. 인용부호에 의해 절단되지 않는 하나의 커다란 말뭉치(corpus)를 만들어 내는 서술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3인칭 서술자 각각의 인격을 부각한다. 목소리들이 어우러지는 한 공간-소설 안에서 인물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시가 되고 그들의 모든 말은 행과 연의 형식으로 배열된다. ‘희랍어 시간’은 세 인격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소리 풍경(soundscape)이다.6) 그녀는 그의 말을 똑똑히 듣고 있다. (…) 그녀는 그를 똑똑히 보고 있다. (…) 그늘진 그의 얼굴을, 그녀는 지금 온 힘을 다해 건너다보고 있다.(169쪽) 촉각의 소노그래피가 만드는 소리 풍경 안에서 듣는 일은 곧 보는 일이며, 보는 일은 곧 듣는 일, 존재의 파동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일이다. 진동은 소리가 글자로 박제되는 것과 달리 발생하고 감각되는 즉시 사라진다. 나타남과 동시에 사라지는 소노그래피는 존재를 파열시키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다만 투명하게 통과한다. 모든 인물의 말이 인용부호 없이 제시되지만 특히 여자의 목소리는 서사 세계 안에서도 음성화되지 않는 가장 시적인 목소리다. 여자의 문장들은 기울어지면서 남자의 목소리와 구분된다.7) 19장 ‘어둠 속의 대화’ 후반부에는 이렇게 목소리가 뒤섞이면서 두 사람의 파동이 중첩되는 대목이 있다.8) 서사 표층에서 실제로 발화되는 음성은 남자의 목소리뿐이므로 소노그래피가 아니라 일반적인 감각으로 읽어낼 경우, 소설은 오직 남자의 독백으로만 가득 찬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의 대화는 각자가 소환하는 기억의 단위들로 교환되며 소리가 아닌 언어, 파동의 접면들이 교차하며 이루어진다.(“잉크 위에 잉크가, 기억 위에 기억이, 핏자국 위에 핏자국이 덧씌워진다.” 155쪽) 언어의 칼금을 막아내기 위해 언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소설은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서로 겹치며 일으키는 간섭을 현상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화해할 수 없었다.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이 모든 곳에 있었다. (…) 독한 취기 같은 피로가 그녀의 의식을 둔하게 만든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꿈인 것처럼, 아주 먼 곳에서부터 토막토막 끊긴 채 울려온다.(166쪽) 여자의 파동은 남자에게로 전해진다.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있어요. 더이상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어요. 그녀는 그의 얼굴을 응시하려 애쓴다. 초점 없는 그의 눈을 또렷이 마주 보려 애쓴다.(167쪽) 여기서 남자의 응답은 여자의 파동과 똑같은 기울임체로 발화된다. 두 존재가 고막을 통해 소리를 교환하지 않고도, 살을 맞대지 않고도 그 무엇보다 깊은 층위에서 교감하는 장면이다.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과거로 여러 통의 편지를 쓰던 인간은 신의 고통 안에서 그와 함께 현재적으로 공명한다. 이 장면에서 남자의 목소리는 여자의 그것으로 중첩되며 같은 기울임체로 서술되지만, 여자의 목소리는 남자의 그것으로, 다시 말해 기울어진 목소리가 평평하게 바뀌지는 않는다. 여자는 신성의 체현자이기 때문이다.(“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그런 침묵을 본 건 처음이었어.” 78쪽) 구원의 빛이 침묵의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온다. 나를 만지지 마라 이제, 소설의 질문에 대한 두 번째 답이 제시된다. 인간의 혼이 파괴되지 않는 이유는 고통을 감각하는 신성이 서로에게 중간태인 동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대 희랍어에는 수동태와 능동태가 아닌 제3의 태, 중간태가 있다.(18쪽) 중간태는 어떤 행위가 주어에 재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대상에게 했던 행위가 다시 주체로 돌아오는 이 재귀적 운동은 소노그래피의 언어가 보이는 양태다. 소노그래피의 방식은 그 자체로 중간태적 추론이다. 그는 대상에게로 뻗어 나간 자기 파동의 반향을 소노그램으로 읽어 낸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의 원인을 축자적으로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에게 계속해서 질문하는 일이다. 아무리 유사한 경험을 하더라도 고통은 결코 동일한 정도로 감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의 아버지는 남자와 같은 유전질환으로 인해 시력을 이미 잃은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동일한 조건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주파수를 오롯이 피부로 느끼는 일이다. 그것은 타인의 삶을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그의 삶을 추체험하는 일이다. 가령, 남자가 곧 실명하리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불투명한 비닐봉지를 자기 눈에 갖다 대며 “이건 소파고 이건 책장이야. (…) 이렇게 걸어도 안 넘어질 수 있어.”(146쪽)라며 일부러 왔다 갔다 하던 여동생처럼 말이다. 동생은 오빠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닥칠 ‘어둠’이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을 거라는”(147쪽) 위로를 보낸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은 내가 영영 닿을 수 없는 점근선의 영역이다. 반면 마지막 고해, 요아힘과의 이야기는 남자 역시 언어의 육체성이 자아내는 폭력을 경험했음을 들려준다. 그 폭력은 곧 타인의 고통을 주체의 자기동일성 안으로 포획하여 해석해 버리는 일이다. 요아힘은 남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욕망을 타인과 자신의 고통 안에서 어떻게 겹쳐 두어야 하는지 모르므로 남자에게 상처만을 남긴다. 그는 고통의 완전한 극복과 단절을 믿는다. 시한부 선고의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병실의 벤젠 냄새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10쪽) 말하는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꼭 같은 경험을 몸의 기록으로 가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어둠과 죽음의 병실을 물리친 그에게 생의 감각은 생동하는 육체의 폭발적인 감각, 물컹하고 뜨거운 것이다. 요아힘은 여자에게는 고통이었던 육체적인 것과의 접촉을 갈망한다. 남자가 어둠을 품은 이라면 요아힘은 빛의 질서를 품은 이다. 남자가 비논리와 모순을 껴안는 문학을 사랑한다면 요아힘은 사고를 명징하게 자르는 철학을 사랑한다. 고통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났다고 믿는 이의 강한 확신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누구보다도 눈을 멀게 만든다. 자신이라면 완전한 어둠이 다가올 그때를 위해 점자를 배워 두겠다는 철학자의 명랑한 조언은 남자의 신앙인 소멸의 이데아를 산산조각 낸다. 다시 한번, ‘백치처럼’ 순진한 이 조언은 남자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요아힘에게 그것은 단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소멸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말이야… 그건 깨끗하고 선하고 숭고한 소멸 아닐까? 그러니까, 소멸하는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깨끗하게, 아름답게, 완전하게, 어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진눈깨비 아닐까?(118쪽) 이것 봐. 죽음과 소멸은 처음부터 이데아와 방향이 다른 거야. 녹아서 진창이 되는 진눈깨비는 처음부터 이데아를 가질 수 없는 거야.(118쪽) 빛이 소멸한 세계에서 앞으로의 생을 계속해야 하는 남자에게 요아힘의 논증, 어둠 속에는 좋음의 이데아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반박은 그의 마지막 희망을 꺼트린다.(“네 말을 들은 순간, 덧없는 전 세계가 빛을 잃었지.” 118쪽) 그래서, 점자를 통해 남자와 진정으로 닿기를 바라던 요아힘의 욕망은 언어의 폭력적인 육체성과 실상 같은 것이다. 남자는 요아힘으로부터 깨닫는다. 자신이 독일에서 여자에게 던진 사랑의 말, 너는 나의 목소리가 필요할 테니 같이 살게 될 것이라는 그 고백이 폭력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받은 상처로부터 타인에게 준 상처를 깨달은 마리아는 이제 눈앞에 현전한 예수ㅡ언어의 육신을 본다. 신과 인간의 목소리는 구별되지 않고 한데 뒤섞인다. 남자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신의 파편들,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희랍어 시간의 여자 그 자체다. 그녀의 이름은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100쪽)이다. 고통받는 두 인간의 신성은 한데 섞이고 소노그래피는 중첩된다. 말할 수 없는 이와 볼 수 없는 이의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해는 공통원소 없는 그 존재들의 배면에서 투명한 파동을 통해 전해진다. 파동은 한 곳으로 수렴하지 않고 서로의 몸 안을 투과하며 지나간다. 이제, 신은 요아힘과는 다른 ‘접촉’의 방식으로 남자를 구원하고 눈으로 목이 막혔던 그녀 역시 그 구원으로 인해 부활한다. 따로따로 제시되던 목소리는 한 연으로 묶이면서 말을 주고받는 직접적인 대화의 국면에 도달한다. 1인칭 단수 화자들은 ‘우리’를 직감한다. 어두운 초록색 흑판에 백묵으로 문장을 쓸 때 나는 공포를 느껴요. (…) 태연하게 내 혀와 이와 목구멍으로 발음된 모 음운들에 공포를 느껴요.(167쪽) 구원은 끝없이 멀어지는 존재가 내 안으로 들이닥쳐옴을 느낄 때 일어난다. 부활한 예수는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마라”(Noli me tangere)는 말을 남기며 떠나간다.(요한복음 20:17) 멀어지는 자신을 붙잡지 말라는 이 말은 타자를 주체의 자기동일성 안으로 납치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타자를 몇 번이고 무한히 떠나보냄으로써 그의 존재를 부조하라는 율법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를 부축해 그의 집까지 데리고 온 여자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손바닥에 쓴다. 그녀가 그에게 최초로 대답한 말은 떠난다는 말이다.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171쪽) 두 사람이 가장 가까워지는 이 접촉은 소설이 시종일관 지양해 온 폭력적인 접촉과 다르다. ‘어둠 속 대화’의 절정 이후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그러나 두 몸의 접촉 이후 다만 ‘모른다’는 진실의 무자비한 범람만이 남자를 압도한다.(“심장과 심장을 맞댄 채 여전히 그는 그녀를 모른다.” 183쪽) 그가 그녀를 안자마자 뒤이어 열네 번의 ‘모른다’가 연속해서 등장한다. 그래서 그가 그녀에게 입을 맞출 때까지도 둘의 접촉은 항구적인 비접촉이 되는 것이다. 강력하게 현전하는 단 하나의 진실은 “맞닿은 심장들, 맞닿은 입술들이 영원히 어긋”(184쪽)나는 ‘시간’이다. 마리아는 이제 떠남 속에서 빛이 아닌 어둠을 본다. 이때의 ‘봄’은 시각과 무관하게 생의 파동을 온몸으로 수용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뛰는 기적을 의미하지 않는다.9) 그것은 죽음 안에서 떠나가는 생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구원은 영생이 아니라 떠나감의 현전 안에서 일어난다. 보르헤스가 말한 시간-존재를 태우는 불(122쪽)이 여자와 남자를 통과하고 나면 새는 날아가고 백골만이 남는다. 개별 존재의 신성이 육신 속에서 체현된 것이 새라면 죽음 이후부터 그 신성은 뼈들이다. 플라톤이 말했듯 진실에 대한 앎은 전생으로부터 온다. 우리는 그것을 다만 상기할 뿐이다. 전생의 기억은 시로 돌아온다. 그때 우리는 바다 아래의 숲에 나란히 누워 있었어요. 빛도 소리도 그곳에는 없었지요. (…) 마침내 당신이 아주 작은 소리를 낼 때까지, 입술 사이로 둥글고 가냘픈 물거품이 새어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곳에 누워 있었어요.(185~186쪽, 21장 ‘심해의 숲’) ‘심해의 숲’의 다른 이름은 ‘해부극장 3’으로 부활 이후 무덤가에 나란히 누운 여자와 남자의 그림이다.10) 죽었던 신과 고통받는 인간이 함께 나란히 누울 수 있다면, 인간의 신성은 더는 논증이 불필요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인간의 혼이 파괴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신의 신성과 달리 인간의 신성은 죽음으로부터 몸을 ‘일으켜’ 고통을 내려다보는 일이 아니라 다만 죽음 안에서 옆에 누운 다른 이의 뼈를 쓰다듬는 일이다.11) 구원을 바라던 신은 부활하여 드디어 입술을 연다. 시종일관 남자의 목소리를 사용하던 1인칭 화자는 마지막 장 ‘0’에서 오직 한 번 여자의 목소리로 발화한다. 현전하는 이 말씀, 로고스는 음성도 문자도 아니다. 그것은 그 무엇도 파괴하고 밀어내지 않는 언어, 촉각으로 전해지는 파동의 말씀이다. 남자와 여자는, 우리는, 그리고 인간은 영원히 어긋나는 방식으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결국, 구원의 반증은 ‘우리’라는 단어다. 그래서 소설은 ‘0’의 끝에서 다시 ‘1’로 돌아간다. 신은 말한다. 에모스, 에메테로스. 나의, 우리들의.(10쪽) 역설의 구원 한강의 문학에서 시간은 정말로 환(環)처럼 흐른다. 그러므로 ‘희랍어 시간’이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이미 읽은 이가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그는 눈사람이다.(‘작별’12)) 언 몸이 진눈깨비로 흩날리며 조금씩 사라지는 중이다. 눈사람은 남자가 갈망하던 소멸의 이데아의 현현이면서 새와 백골의 중간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장 많은 것을 안다. 그는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몸 안의 심장을 얼리는 한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피와 살과 내장과 근육이 있는 몸을 다시 갖고 싶지 않”(150쪽)다고 확신한다. 아이와 애인과 가족과 작별하며 그가 마주하는 최후의 질문은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150쪽)이다. 이는 ‘희랍어 시간’이 던지는 질문과 같은 물음이다.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13)는 물음이다. 그리고 그 최후까지 남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눈(雪)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소멸하는 것처럼 한강의 인물들은 사랑할수록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러나 바로 그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서로의 “진동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투명한 접지”(‘작별’, 133쪽)가 된다. 나와 당신은 같아질 수 없으므로, 당신은 언제나 나를 떠나는 중이므로 나는 당신과 연결된다. 눈사람은 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실체는 다만 촉각의 소노그래피뿐이며 그것은 “변함없이 진동하며 두 사람 사이에 고요히 걸쳐져 있”(134쪽)음을 안다. 그리고 이 파동을 타고 전해지는 “무색무취인 데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고요함이어서 거의 인간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134쪽)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랑은 강렬한 접촉이 아니라 다만 끝없이 멀어지는 ‘사이’에서 전해진다. 언어는 이때 비로소 완전한 순수에 도달한다. 의미는 분할되거나 상실되지 않는다. 따옴표로 분절되지 않는 목소리들이 행과 연을 만들면서 소설 속에 시를 쓴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죽음 안에서 삶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 ‘작별’과 ‘희랍어 시간’의 마지막 장면이 모두 두 존재의 입맞춤으로 끝나는 것은 붉은 혀와 입술이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지만 또한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는 뜻일 테다. 우리는 서로를 만지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진실을 감각한다. 나의 파동이 쓰다듬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살이 아니라 다만 당신의 뼈, 시간의 불에 타고 남은 마지막 눈의 결정이다. 내가 당신으로부터 멀어지기에 당신은 나를 구원한다. --------------------------------------------------------------------------------------------- 1) 시집의 해설을 쓴 비평가 역시 한강의 시들은 “말과 동거하는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제시한다”는 점에서 시의 화자들을 ‘희랍어 시간’ 속 남자와 여자로 잠시 연결하며, ‘희랍어’를 “순수한 언어의 능력에 집중하는 소설”이라 평한 바 있다. 조연정, 해설 ‘개기일식이 끝나갈 때’,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142~143쪽. 2)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구불구불 휘어진 혀가/ 내 입천장에/ 매끄러운 이의 뒷면에/ 닿을 때//(…)// 나에게 붉은 것이 있다,라고/ 견디며 말한다” 한강, ‘해부극장 2’, 한강, 위의 책. 3) “진심이야./ 후회하고 있어./ 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 한강, 위의 글. 4) 소노그래피는 초음파를 이용해 시각 영상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5) 양현진은 실명과 실어가 몸짓, 촉각에 의한 소통에 주목하게 한다고 본다. 그러나 피부의 직접적인 접촉과 몸짓만을 대화로 보는 것은 국소적인 독해다. 소설에서 시각과 청각이 배제될 때 도드라지는 것은 시간, 즉 파동의 흐름이다. 양현진, ‘한강 소설의 촉각적 세계 인식과 소통의 감수성’, ‘한국문학이론과비평’, 70집,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16. 6) 사운드스케이프는 여러 가지 소리의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듣는 영상’으로 단지 소리가 만드는 공간적 환경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지각하는 청취자의 지각 속에서 그려지는 풍경이다. 7) 한강은 대상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기울임체를 사용한다. 시집에 수록된 ‘해부극장 2’의 백골과 ‘조용한 날들 2’에 등장하는 달팽이의 목소리가 그렇게 나타난다. “(건드리지 말아요) (…)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8) 서로 다른 두 개의 물질이 동일한 시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로 다른 두 개의 파동은 동일한 공간에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두 파동이 동일한 지점에서 교차할 때 일으키는 상호작용을 파동의 중첩 현상이라 한다. 9)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걸 믿는 게 아니라, 죽음 앞에서 꿋꿋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장뤼크 낭시, ‘나를 만지지 마라’, 이만형·정과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37쪽. 10) 한강의 시 ‘해부극장’ 연작은 두 편뿐이지만 소설의 ‘심해의 숲’은 남자가 쓰는 또 한 편의 시다. 11) 낭시는 예수의 부활을 수직 변화로 이해하지만 소설이 말하는 인간의 신성은 수평적이다.“이 ‘자세’가 (…) ‘부활’을, 다시 말해 ‘들어올림’이라는 사태를 만든다. (…) 무덤의 수평성과 직각을 이루는 수직성으로서의 들림 혹은 일으켜 세움인 것이다.” 장뤼크 낭시, 위의 글. 12) 한강, ‘문학과 사회’, 2017년 겨울호, 문학과지성사. 13) 한강, ‘회상’, ‘서랍에’, 문학과지성사, 2013.
  • 떡은 ‘Rice cake’이 아닌 ‘Tteok’...‘한식 메뉴 영문 표기’ 제대로 잡는다

    떡은 ‘Rice cake’이 아닌 ‘Tteok’...‘한식 메뉴 영문 표기’ 제대로 잡는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떡’을 영어로 소개해야 한다면 과연 어떻게 표현할까? 대부분은 ‘rice cake’ 혹은 ‘Korean traditional rice cake’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한국 음식 ‘떡’은 가래떡, 절편, 송편, 시루떡, 찹쌀떡, 오메기떡 등 각각의 떡이 가진 특징과 종류가 다양함에도 외국인에게 ‘rice cake’이라는 단어로 알려지고 있다. 또 곰탕을 ‘Bear soup’, 육회를 ‘Six times’, 매생이 전복죽을 ‘Every life is ruined’으로 표기한 잘못된 한식 메뉴의 영문 표기 사례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한식의 명칭을 외국인들이 알기 쉽게 영어로 번역한 것인데, 번역기 사용 등으로 인해 잘못 번역된 상태로 메뉴판에 등록된 것이다.이렇듯 한식 메뉴의 표준화된 영문 표기법이 없어 혼란만 앞섰던 한식 명칭의 번역. 이제부터는 표준화된 한식 메뉴판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지난 9월 1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2021년 예산안’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내 3000곳, 해외 3000곳 한식당에서 일관되고 통일된 메뉴를 표기할 수 있도록 ‘한식 메뉴 영문화 작업’을 시행한다고 한다. 이 작업은 한식포털(www.hansik.or.kr)의 ‘한식 메뉴 외국어 표기법’에 등록된 한식 메뉴 영문 표기 700여 가지를 기반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새로운 한식 메뉴의 개발로 영문 표기의 추가가 필요할 경우, 국립국어원과 협의를 거쳐 추가될 예정이다. 그동안 ‘한식의 영문 표기’와 관련된 의견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네티즌들은 특히 “티라미수(Tiramisu·커피, 크림치즈 등으로 만든 이탈리아 디저트), 감바스(Gambas·스페인식 새우 요리)와 같은 외국 음식은 현지에서 부르는 명칭 그대로 부르면서 왜 한국의 떡, 전, 어묵 등은 ‘Rice cake’, ‘Korean pancake’, ‘Fish cake’로 부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과도한 친절은 한국의 정체성을 잃는다”라며 “명칭은 한국어 발음 그대로 표기하고 영어로 상세 설명을 표기하면 되지 않느냐”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2018년에 방영된 tvN <윤식당>에서는 불고기를 ‘Bulgogi’로, 소고기 비빔밥을 ‘Beef bibimbap’으로, 호떡 아이스크림을 ‘Hoddeok with Ice cream’으로 표기 후 상세 설명을 적어놓기도 했다. 앞으로 추진하는 ‘한식 메뉴 영문 표준화 작업’은 ‘한식포털 한식 메뉴 영문 표기법’에 등록된 한식 영문 표기를 바탕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고추장(Gochujang)’, ‘팥빙수(Patbingsu)’ 등과 같이 한국어 발음 그대로 표기될 것으로 보인다. 메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경우 상세 설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한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도 높아졌지만, 메뉴판의 한식 표기 오역 등으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었다”며 “이번 한식 메뉴 영문 표준화 작업을 통해 그 혼란을 해소하고 한식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영상 장민주 인턴기자 goodgood@seoul.co.kr
  • ‘전통주 덕후’, 한국 전통주 소믈리에 더스틴 웨사

    ‘전통주 덕후’, 한국 전통주 소믈리에 더스틴 웨사

    “오늘은 40여 가지나 되는 술을 뽑아내야 돼서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지난 11일 종로구 효자동 한옥집에서 만난 미국인 더스틴 웨사(38)씨가 취재진을 보자 준비하고 있던 술 증류 장비를 점검하며 내뱉었다. 그는 위스키나 와인보다 막걸리를 더 사랑하는 한국 전통주 소믈리에로 전통주를 연구하고 홍보하는 일에 오랜 시간을 바쳤다. 여러 방송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지난 9월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신기루 식당’에서 홀팀을 맞아 전통주 추천은 물론 다양한 술과 음식의 찰떡궁합을 선보였다. 그는 또한 전국의 산과 들, 바다로 직접 나가 토종 식재료를 채집하고 즉석에서 요리하는 팝업 레스토랑 ‘야생 식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미식가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전 입맛이 조금은 까다로운 편이에요. 몇몇 분들이 직접 만든 술을 맛봐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만든 술이 어떤 음식과 어울리겠느냐”라고 물어보기도 해요. 물론 기본적으로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음식과 어울릴 수 있겠다’라고는 얘기는 해드리지만 제 입맛에 맞지 않는 술은 다른 분들께 절대로 추천하지 않아요.” 그가 말하는 한국 전통주의 매력은 무엇일까. 전국 양조장을 찾아다니면서 고된 발품을 팔면서까지 찾고자 하는, 그가 추구하고 찾고자 하는 전통주는 어떤 맛일까. 다음은 더스틴 웨사씨와의 일문일답(Q) 한국에서 생활한 지는한국에 온 지 15년 정도 됐다. 내 인생에서 한 곳에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던 곳이 서울이다. 그만큼 한국을 빼놓고 나의 인생을 생각할 수 없다. 지금은 한국 전통주 역사와 술 만드는 과정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통주를 맛보고 연구하면서 전통주 소믈리에란 직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 삼겹살엔 소주, 파전엔 막걸리처럼 우리가 기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전통적인 페어링보다 좀 더 다양한 음식에 맞는 술을 매칭해 주는 일도 하고 있다. 올 한 해 코로나가 심각했지만 지방에 계신 유명 양조 명인 밑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개인적으론 운이 좋았던 거 같다. (Q) 전통주 소믈리에를 유명 레스토랑에서 VIP 대접하는 이유많은 음식이 와인과 페어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어떤 요리가 어떤 와인과 잘 어울리는지, 제공된 음식의 격을 높여줄 수 있는 와인은 어떤 건지. 한국음식뿐만 아니라, 북유럽, 중국, 프랑스 음식과 어떤 술이 잘 어울리는지 찾아내고 추천하고 있다. 그런 일이 너무 재밌다. 물론 무료로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건 덤이다. (Q) 한국 전통주에 빠지게 된 계기이렇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원래는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공부하러 왔는데 한국말이 너무 어려웠고 한국어 시험 볼 때마다 매번 떨어졌다. 그래서 포기했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음식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한국 발효문화에 대해 공부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냥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보단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는 게 더 좋았다. 결국 한국 발효음식과 전통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공부하게 됐다.(Q) 여러 종류의 전통주 자격증 보유자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 증류주 마스터 자격증 등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다. 전통주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전통주에 대해 관심만 가지고 있다면 자격증을 따놓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한국에서 전통주 자격증 따는 게 크게 어렵진 않은 거 같다. 내 스스로 전통주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잘났다’, ‘대단한 사람이다’라는 건 아니지만 전통주에 대해 나 스스로 ‘시작했다’란 표시다. 이걸 가지고 ‘과연 내가 어디까지 갈 건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Q) 외국인이 만든 전통주를 맛 본 주변 분들의 반응오랫동안 이태원 경리단에 살고 있다. 이곳에 계신 토박이 분들께선 저를 이십 대 초반에 봤기 때문에 외국 사람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다. 하지만 외국인이 한국 전통주를 만든다는 건 신기해하고, 과연 어떤 맛일까, 외국인의 손맛은 어떤 걸까 하는 궁금증은 있다. 반응은 좋은 편이다. 전통주 맛은 달고, 새콤달콤, 신맛, 톡 쏘는 맛, 드라이한 맛 등 다양하다. 저희 동네 사시는 분들은 단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 제가 만든 술은 원주에 가까워 18도 이상 나오니깐 독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주변에 직접 술을 만든 경험이 많은 바텐더 하는 친구들은 맛보고 한 단어로 ‘크리미’라고 얘기한다. 걸쭉하면서 향은 좀 달고 부드러운 느낌이라고 할까. (Q) 대부분의 단맛이 나는 전통주와 달리 본인이 지향하는 맛은전통주의 맛을 말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맛을 제일 많이 표현한다. 제가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문헌 속 ‘가마’, ‘동’ 등 전통적인 계량법에 의한 전통주 제조법을 당시 쓰였던 재료들을 리터, 킬로로 똑같은 비율로 환산해서 40여 가지의 술을 담궜다. 옛날 사람들은 어떤 입맛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술이 인기가 많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단맛보다 신맛, 드라이한 맛을 내는 술이 굉장히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이 얘기는 옛날 사람들도 쌀, 누룩, 물, 온도 등의 다양한 비율을 통해서 단맛을 내는 술도, 톡 쏘는 맛을 내는 술도, 드라이한 술도 원하는 맛은 다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입맛이 모두 제 각각이지만, 전 단 것보다는 드라이한 맛을 더 좋아한다. 단 거는 많이 마시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잘 땡기는 술은 수제맥주처럼 쌉싸름하고 시원하면서 드라이한 맛이 아닐까.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입맛도 많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맛의 술이 음식과 함께 할 때 더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Q) ‘걸쭉한’, ‘아릿아릿한’ 등 놀라운 한국어 능력가끔씩 술맛을 설명할 때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모르고 쓸 때도 있다.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아 우회적으로 돌리면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명인들과의 대화에서 그분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표현들이 머릿속에 흡수돼 자동적으로 나오기도 한다. ‘꽐라’, ‘진상’ 같은 단어들도 주위 젊은 한국 친구들을 통해 쉽게 익히게 된 거 같다. 물론 저는 술이 약해 아직까지 ‘진상’ 된 적은 없다. 수업 시간에 레시피를 적을 때도 한국말로 적는다. 영어로 적으면 한국말을 머릿속에서 번역하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문법이나 철자가 틀려도 일단 적어놓는다. 내가 적은 거 나만 알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Q) 고추장도 직접 만들어 본다는 데한두 번 정도 만들었는데 잘 나올 때는 꽤 맛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사서 먹는데, 솔직히 말해 사서 먹는 게 두말할 나위 없이 훨씬 맛있다. 전통주 소믈리에로 발효에 대해서 공부를 계속하다보니깐 김치, 간장, 된장과 같은 발효음식에도 관심이 생겨 고추장을 만들기 시작한 거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이것저것 다 해보는 중이다. (Q) 한국 음식(반찬)의 매력이라면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국 음식을 말할 때 삼겹살, 무침, 브라운 수프, 레드 수프 등으로 크게 구분해서 이해하고 있는 거 같다. 아마도 탕이 갈색과 빨간색으로 나눠져서 그런 말을 하는 거 같고 삼겹살은 워낙 외국인에게 유명한 음식이고. 하지만 한국 음식은 정말 다양하다. 해산물만 보더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개불도 참기름에 찍어 먹는다. 또한 바다 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식감도 좋은 굉장히 특별한 재료들이 많다. 한국 사람들은 바닷속 바닥에 있는 ‘청각’으로 어떻게 동치미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해봤다. 요리는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고 이것저것 만들어 보는 거를 좋아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김치나 여러 반찬 만드는 법을 알고 싶어서 요리책 몇 권 사서 뭔지도 모르는 ‘명란젓찜’ 같은 것도 시도해봤다.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느낌, 음식이 완성되어 가는 느낌이 좋았다.(Q) 전통주 관련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는데유튜브 콘텐츠들 대부분은 한국 전통주와 문화에 대한 거다. 기관과 일할 때도 있고, 일반 기업이랑 일할 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전통주의 맛과 매력을 알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했으면 한다. 저보다 경험도 많고 대단한 술을 만드는 전국의 전통주 명인들의 양조장을 소개하고 그분들의 제작 노하우를 홍보하기도 한다. 혹자는 ‘더스틴 양조장’ 하나 만들어 보는 게 어때라고 말을 하는 분도 계시지만 저는 나만의 양조장을 지금으로서는 만들 생각 없다. 가끔 친한 명인들께서 함께 콜라보레이션 해보자는 말씀은 하신다. (Q) 채널에 소개하는 양조장 선택 기준이 있다면맛은 어떤지, 어떤 음식이랑 잘 어울리는지 봐달라고 술을 보내주는 곳도 있다. 고마운 마음으로 맛보고 나의 느낌을 전달해 드린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입맛이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라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술은 어떤 음식이랑 어울릴 거 같다는 정도의 조언은 해드리지만,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추천은 하지 않는다. 어떤 전통주를 맛보고 관심이 생기면 만드신 명인을 직접 찾아가 자세히 물어보고 작업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얻어 집에서 만들어 보기도 한다. 입이 무거운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의 명인들께선 노하우를 알려주신다. (Q) 유튜브 찍을 때 술맛을 설명하는 게 어렵지 않은지술맛 보면서 단도, 산미, 도수, 찹쌀을 썼는지 멥쌀을 썼는지, 단양주인지 이양주인지 혹은 삼양주인지, 밀누룩인지, 쌀누룩인지, 전통누룩인지 아닌지 등에 대한 베이스를 깔고 질문을 돌린다. 그리고 이후에 뿌리야채를 넣었는지 등도 물어보고 풀 향기가 나면 어떤 풀인지도 물어본다. 사과 맛이 난다든가 하면 덜 익은 아오리인지, 부사인지 등도 물어보기도 한다. 때론 시인이 표현하는 것처럼 맛과 풍미를 느끼면서 자동적으로 말이 나온다. (Q) 전통주 매력을 젊은이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안한국 젊은 분들이 전통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유는 전통주를 많이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전통주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단지 전통주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방법으로 관심을 갖도록 해준다면 문제될 게 없다. 나도 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아는 거다. ‘이 술은 유기농 쌀로 만들었고, 몇 백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술’, ‘우리 고유의 역사가 농축된 술 맛’ 등의 접근 방법은 나이 드신 분들께는 어필될 수 있겠지만 젊은 분들에겐 호기심이 전혀 안 생길 거다. 병 디자인도 예쁘게 만들고 젊은 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활용해 접근해야만 가능하다. (Q) 전통주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쌀, 누룩, 물 이 세 가지다. 깊이 공부하기 전에는 레시피가 몇 개 없었다. 찹쌀 80%, 멥쌀 20% 아니면 반대로 찹쌀 20%, 멥쌀 80%로 만든 거 외엔 없었다. 거기에 단호박을 넣으면 단호박 막걸리, 야생 영지버섯을 넣으면 쓴맛의 막걸리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이젠 관심이 바뀌었다. 향을 넣어서 술을 만드는 것보다는 쌀, 누룩, 물 세 가지만 가지고 술을 뽑아내는 거다. 이 세 가지의 기본 재료를 조금씩 건들면서 비율과 숙성시간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나오게 하는 거다. 또한 이들의 다양한 배합을 통해 내 입맛에 맞는, 내가 원하는 술을 만들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Q) 계획과 소망한국 전통주가 충분히 알려질 때까지 방송 등을 이용해서 계속 홍보하고 싶다. 한국에서 기반을 잘 다지고 나서 뉴욕, 싱가포르, 파리 등 해외로 많이 소개하는 중심에 서고 싶다. 그런 마음 자제로 한국 전통주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할 계획이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기자 sungho@seoul.co.kr
  • 김구·이동녕 등 요인 뒷바라지 26년… 살림 도맡은 ‘임정의 어머니’

    김구·이동녕 등 요인 뒷바라지 26년… 살림 도맡은 ‘임정의 어머니’

    “임정의 살림은 석오장(이동녕)과 백범(김구) 몇 분이 거의 다 짊어지다시피 한 상태였는데 돈이 바닥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면 그야말로 끼니가 간데없어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면서 한 술씩 얻어 드시기까지 했다.”(‘장강일기’·정정화) 정정화 선생은 1920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1946년 귀국할 때까지 임시정부 살림을 책임지고 요인들을 뒷바라지한 ‘임시정부의 안주인’이었다. 김구, 이동녕, 이시영 등 임정 요인들 가운데 선생이 지어 준 밥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김구는 여기저기 다니다가 “나 밥 좀 해줄라우” 하면서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임정의 살림은 늘 궁핍해서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고 그럴 때마다 선생은 자신의 잘못인 듯 애간장을 태웠다.선생은 1900년 8월 3일 수원 유수를 지낸 정주영의 2남 4녀 가운데 셋째 딸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향 충남 예산에 많은 땅을 가진 부자였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신식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러나 어깨너머로 천자문과 소학을 떼었고 성인이 돼 영어와 신학문을 공부해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선생의 인생은 겨우 열 살에 동농 김가진의 3남 김의한과 결혼하면서 완전히 바뀐다. 김가진은 황해도 관찰사, 농상공부 대신 등을 지낸 구한말의 문신이었다. 그러면서 대한협회 회장을 맡아 국권 회복에 앞장서고 경술국치 후에도 대동단을 결성해 총재로 활동한 우국지사였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10월 김가진은 아들 김의한과 중국 상하이로 망명,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대한제국 대신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운동에 뛰어든 인물이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중국행을 뒤늦게 안 스무 살의 ‘겁 없는 여인’은 이듬해 1월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일제의 눈을 피해 단신으로 상하이로 갔다. 가자마자 접한 것은 독립운동이라는 대의명분보다 먹을 것마저 부족한 가난이었다. 상하이 임정 가족들의 생활은 주먹덩이밥과 한두 가지 반찬으로 때울 정도로 어려웠다. 누구나 값싼 천으로 만든 중국 의복 창산(長衫)을 걸치고 헝겊신을 신고 다녔다. “이름, 명예, 자존, 긍지보다는 우선 급한 것이 생활이었다. 포도청 같은 목구멍이었다. 머리를 내밀고 팔다리라도 내놓을 만한 누더기 한자락이 절실했던 것이다.”(‘장강일기’)●외동아들 김자동, 현재 기념사업회장 맡아 홀몸으로 중국에 건너왔듯이 선생은 중국에 온 지 겨우 달포쯤 지난 후 홀로 독립운동 자금을 구하러 국내로 잠입하겠다고 ‘당돌한’ 결정을 내린다. 갓 스물의 당찬 아낙네는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3·1운동 직후 일제의 서슬이 퍼렇던 국내로 숨어들어 왔다. 임정의 지시를 따라 이곳저곳을 다닌 끝에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돈을 구해 중국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도 돈을 구해 무사히 귀환했지만 세 번째에는 일제에 붙잡히고 말았다. 동행인이 장담하는 바람에 인력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다 체포돼 신의주 경찰서로 끌려가 이틀 동안 고초를 당한 후 풀려났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1922년 7월 4일 일흔이 넘은 나이에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시아버지 김가진이 세상을 떴다. 네 번째로 국내에 들어왔을 때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친정아버지가 별세했고 선생은 상을 치른 후 1923년 7월 다시 상하이로 돌아갔다. 선생은 1928년 외동아들 김자동을 낳았다.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으로 불리는 김자동(92)은 광복 후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번역하기도 했다. 현재는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망명 10년째이던 1929년 7월 선생은 여섯 번째로 다시 고국 땅을 밟은 뒤 1년 6개월간 체류했다. 하지만 국내의 분위기는 지인들도 선생을 냉대할 만큼 변해 가고 있었다. 1931년 초 선생은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면서 독립이 되기 전에는 귀국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임정은 일제의 체포를 피해 상하이를 탈출, 자싱(嘉興)으로 옮겨 갔다. 선생은 그곳에서도 임정 요인들과 식구들을 챙겼다. 김구는 남호라는 호수의 배 안에서 은신했다. 김구에 대한 추적이 강화되자 임정은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를 가흥으로 모셔 왔다. 선생은 곽 여사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김구의 식구들을 보살폈다. 한번은 곽 여사의 생신 때 비단 옷을 사다 주었는데 곽 여사는 “지금 우리가 이나마 밥술이라도 넘기고 앉았는 건 온전히 윤 의사의 피값이야. 피 팔아서 옷 해 입게 생겼나”라고 야단을 치며 물려오라고 했다.●20여년 모셨던 이동녕 선생 임종 끝까지 지켜 그 무렵인 1935년 11월 선생은 임시정부 여당으로 창립한 한국국민당에 가입했다. 독립운동 단체에 적(籍)을 두게 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임정과 지도부는 후난(湖南)성 창사(長沙)로 옮겨 갔다. 선생은 이시영을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이듬해 5월 우익 3당 통합 회의 도중 이운환이 3당 대표들에게 권총을 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김구는 중상을 입었고 현익철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절명하고 말았다. 이들을 간호하고 보살핀 것은 선생이었다. 일본의 공격이 거세지자 임정은 또다시 창사를 떠나 광주를 거쳐 포산(佛山)으로 옮겨 갔다. 1938년 가을부터 선생은 임정의 안살림을 본격적으로 맡게 됐다. 딸린 가족이 없는 이동녕 등 국무위원들을 수발하며 살았는데 선생은 혼자 망명 생활을 하던 너덧 사람을 광복이 될 때까지 모셨다. 포산 생활도 잠시였고 임정 식구 100여명은 일본군의 공습을 받으며 기차로, 배로 목숨을 건 피난을 계속했다. 힘든 여정 속의 뒷바라지는 선생의 몫이었다. “밥은 배 위에서 삼시 세끼를 다 해먹을 수밖에 없었다. (…) 국무위원 전원을 돌봐 드려야 했으므로 (…)육지로 올라가서 시장을 봐 오는 것도 일 중의 하나였다.”(‘장강일기’) 임정 식구들은 한 달 열흘을 배 위에서 지내기도 하는 등 장쑤성에서 출발한 후 장장 5000㎞의 대장정 끝에 치장(江)에 도착했다. 치장에서도 선생은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안주인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1940년 3월 선생이 아버지처럼 여기며 20여년 동안 모셨던 이동녕이 별세했다. 마지막 열흘 동안 곁을 지킨 사람도 선생이었다.치장 근처 충칭(重慶)으로 옮긴 임시정부는 1940년 5월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광복군을 창설해 당·정·군 체제를 갖추었다. 정정화도 한국독립당 창립 당원이 됐고 같은 해 6월 한국독립당 여성 조직인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 간사로 선출됐다. 1941년 1월 임정 가족들은 충칭 근처의 투차오(土橋)로 이사해 5년 동안 모여 살았다. 여기서도 선생의 역할은 컸다. 특히 남편이 일제에 체포된 부인과 가족들의 바느질도 해 주며 보살폈다. 외국 손님 접대 등 임정의 큰일도 총책임을 맡았다. 장준하 등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 출신 청년 50여명을 위해 선생은 투차오의 교회 강당을 개조해 임시 막사로 제공하고 동생처럼 돌봤다. 1943년 2월 한국애국부인회 재건대회에서 선생은 훈련부 주임으로 선임됐다. 한국애국부인회는 국내외 동포 여성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며 독립운동 참여를 호소하고 광복군을 위문하는 등 독립운동 지원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 갔다. 그러던 중 선생은 투차오에서 광복을 맞았다. 선생은 임정 요인들이 충칭을 떠나고 나서도 투차오에 남아 뒤처리를 마치고 이듬해 5월 9일에야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았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8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임정 요인들은 선생의 정성 어린 뒷바라지에 힘든 투쟁 속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나아가 26년이라는 기나긴 임시정부의 타국살이도 선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인권 강화하되 불법 브로커 처벌 강화”…난민법 개정안 입법예고

    “인권 강화하되 불법 브로커 처벌 강화”…난민법 개정안 입법예고

    정부가 난민신청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난민제도 남용을 막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한다. 법무부는 28일 ▲난민심사의 전문성 강화 ▲난민제도 남용 방지 ▲난민신청자·인정자 처우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난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난민신청자들은 신청서를 접수하거나 불인정결정·이의신청기각결정 통지서를 받을 때도 통·번역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 면접 과정을 녹음한 자료의 열람과 복사가 허용된다. 기존에는 난민면접 때만 통역이 제공돼 난민신청자가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자료 열람도 제한돼 난민신청자들의 권리가 침해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난민심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난민신청 접수와 심사는 법무부 장관이 지정한 거점기관에서 집중 처리하게 된다. 난민 전담 공무원도 배치된다. 상대적으로 여건이 열악한 소규모 지방출입국이나 외국인 관서에 난민신청을 한 외국인들은 제대로 통·번역 서비스 등을 지원받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또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이의신청 제도의 효율성도 강화된다. 법무부는 법 개정을 통해 이의신청을 심의하는 난민위원회 위원을 기존 15명에서 최대 50명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의신청 사례가 복잡해진 현실을 고려한 조치다. 난민법이 시행된 2013년과 비교하면 난민신청 국가는 29개국에서 지난해 기준 66개국으로 다양화됐고 이의신청 건수도 12배 늘었다. 법무부는 “지역·종교·인권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 전문가 위원을 확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는 난민제도의 남용을 막고 심사의 신속성을 높이기 위한 내용도 포함됐다. 특히 앞으로 중대한 사정변경이 없다면 난민 재신청이 불가능해진다. 법무부는 “현행법상 재판까지 거쳐 불인정결정이 확정된 난민신청자가 중대한 사정변경 없이 난민신청을 다시 해도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체류연장 방편으로 난민제도를 남용하는 사례를 막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 이러한 재신청자에 대해 2주 이내 난민인정 심사 부적격결정을 하고 부적격결정을 받고 나면 이의신청이나 행정심판을 제한하게 된다. 또 난민신청 사유가 난민법상 난민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는 ‘명백히 이유 없는 신청’으로 보고 신속히 불인정 결정을 하게 된다. 난민신청자가 허가 없이 해외로 출국할 경우 신청을 철회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불법 난민 브로커에 대한 처벌도 강화된다. 이번 개정안에는 허위 자료나 부정한 방법으로 난민인정 신청을 하도록 알선한 사람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처벌 조항이 포함됐다. 영리 목적으로 알선 행위를 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법무부는 오는 2월 6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을 두고 의견을 수렴한 뒤 난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위기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위기

    장마가 유난히 길던 지난여름 나는 20세기 말에 본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 한 편을 떠올리곤 했다. 영화 속 도시에는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돌고 있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어둠 속으로 자꾸 몸을 숨긴다. 영화평에는 세기말, 고독, 우울이라는 단어들이 자주 등장했다. 2020년 한국의 여름도 비와 바이러스와 고독과 우울이 결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무렵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짙은 잿빛으로 드러난 땅의 맨살 위를 들불처럼 달리는 선홍색 불꽃과 피어오르는 희뿌연 연기가 비현실로 보이는 광경. 영구동토층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이미 녹았다가 얼었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시베리아의 산불을 찍은 사진이었다. 너무 자주 언급돼 이제는 위기보다 일상이 돼 버린 지구온난화의 얼굴이었다. 과학자가 아니라도 사람들 대부분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해결 방법도 안다. 간단하고 유일한 방법은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고심한 끝에 북극에서 녹고 있는 얼음 대신 유리 가루(이산화규소)를 뿌려 태양 광선을 반사하자는 응급 처방을 내놓는다. 아직은 공장도 자동차도 비행기도 멈추지 않으며, 당장은 화석연료, 전기, 음식, 어떤 에너지 소비도 줄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지난봄에 타고 다니던 낡은 차를 없앴다. 호기롭게 결단을 내렸으나 허전함과 무기력감에 시달렸다. 마음을 달래려고 신차 모델이며 중고차 가격을 검색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0년 자동차 판매량은 약 40~50% 늘었다. 혹시나 대중교통에서 전파될지도 모를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가용 구입이 늘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위기의 일부’가 돼 버리는 이와 같은 상황을 여전히 ‘위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산업혁명 이후 문명은 성장, 생산, 소비라는 가치를 고수하며 달려왔다. 역설적인 것은 끊임없이 지구의 위기를 경고해 온 과학기술이 생태 파괴의 문명을 이끌어 온 주역이라는 사실이다. 과학기술은 주로 소비 욕망 창출을 위한 도구적 이성으로 기능한다. 모든 욕망이 원래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건 아니다. 모니터 속 신형 테슬라를 보기 전까지 나에게 빨간 전기 자동차에 대한 욕망은 없었다. 욕망은 대부분 새롭게 태어난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욕망이 새로운 기쁨이 되는 한계를 넘어선 것 같다. 여기저기서 플라스틱 오염, 여섯 번째 대멸종, 호르몬을 파괴하는 POPs, 핵폐기물 같은 단어들을 만나면 위기가 아니라 이미 엄청난 재난 속에 내가 들어와 있음을 실감한다. 정치, 사회, 생태 문제들이 모두 뒤엉킨 실타래로 단단히 얽혀 있다. 어느 하나를 잡아당겨 매듭을 푼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우울한 얘기 좀 그만해요!” 늘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식구가 타박한다. “그렇게 종말이 두려우면 뭐든 막을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잖아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게 생활하는 5억명이 배출하는 탄소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나는 다만 이렇게 쓴다. 최근에 번역을 마친 책은 로마제국의 몰락 과정을 다룬 것이었다. 급격한 기후 변동과 팬데믹을 겪으면서 로마인들이 종말론에 사로잡히게 됐다는 내용이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그러나 흔히 상상하듯 파멸이 임박했다는 의식이 사람들을 절망과 불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의식은 혼란스러운 시대에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파멸이 임박했다는 의식일지도 모른다. 모든 역할과 책임을 과학기술에 떠넘긴 채.
  • 은평, LED게시대로 디지털 홍보 강화

    은평, LED게시대로 디지털 홍보 강화

    서울 은평구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역 근처에 ‘발광다이오드(LED) 전자 게시대’를 설치하고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고 27일 밝혔다. 구는 LED 전자 게시대 사업은 민간투자사업으로 거리에 무분별하게 현수막이 내걸려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고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디지털 광고를 충족하기 위해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선 구는 녹번역, 불광역, 구산역 등 3곳에 LED 전자 게시대를 설치하고 시범운영한 뒤 문제점을 보완해 내년 1월부터 정상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은평구는 시범운영 기간에 코로나19로 인한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한파 대비 국민 행동 요령, 오늘의 날씨 등을 안내한다. 정상 운영할 때는 지역에 있는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홍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소식, 문화·예술·체육 등 민간 행사 관련 내용도 송출할 예정이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LED 전자 게시대를 통해 공공용, 상업용 광고를 송출하게 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와 민관 정보 교류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소상공인 및 전통시장 홍보를 통해 코로나19 등으로 침체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데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문화마당] 이 시대의 마에스토소/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문화마당] 이 시대의 마에스토소/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작곡자가 남긴 악곡에 적혀 있는 지시사항을 따르고 연주자가 해석을 함으로써 악보에 있는 음표들은 느낌과 감정을 가진 소리의 표현 예술이 된다. 달콤하게, 구슬프게, 열정적으로, 애절하게, 기쁘게, 사랑스럽게, 외롭게, 자유롭게 등 악보에 쓰여 있는 다양한 형용사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고스란히 느끼는 감정들이다. 왜 그를 사랑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는 언제나 힘들 듯이, 모든 감정은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하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부심과 자긍심, 타인에 대한 질투와 혐오ㆍ복수심ㆍ경쟁심,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욕망과 탐욕, 그 선택에 따른 후회와 비탄 등 거의 모든 감정들은 우리의 이성적 제어를 벗어나 있다. 대부분의 감정들이 이처럼 인간의 본능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음악에서 쓰이는 다양한 감정 표현 중에 마에스토소(Maestoso)라는 지시가 있다. 위엄 있게, 장엄하게, 위풍당당하게 정도로 번역한다. 이 마에스토소가 왜 눈에 띄는가 하면, 이 표현은 본능이 아닌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야만 하는 캐릭터이자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감정의 일종이라 볼 수는 없지만, 표현예술을 하고자 하는 연주자, 연기자들에게 자주 필요한 캐릭터 중 하나이다. 장엄한 존재가 신과 자연 이외에 무엇이 더 있으랴. 감히 인간이 위엄 있고 장엄하고자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험하고 또한 오만한 것인지. 시민과 군중을 통솔하기 위해 허세의 어깨는 뒤로 젖혀지고, 허영의 콧대는 높아져 있다. 왕정시대와 군국주의시대가 팽배했던 인류 전반의 역사에서 나온 모든 문화 창작물은 그래서 마에스토소를 빼놓고는 말하기가 어렵다. 왕과 군대의 성격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마에스토소라는 형용사는 또한 그래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순수한 감정에서 드리워지는 성격이나 행동양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위협받은 느낌을 감추고 상대를 겁주기 위해 몸을 부풀리는 고양이처럼 그 내면에는 불안함이 존재한다. 만약에 누군가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됐다고 치자. 그 말과 행동에서는 다듬어진 사회적 예절이 아닌 진정한 속내가 본능적으로 나오게 된다. 있는 감정 없는 감정 모두 가슴속 바닥에서 긁어내어 다 토해 내게 된다. 술에 취했는데 위풍당당한 사람은 없다. 이성적 혹은 전략적으로 만들어지는 성격이자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만약 술에 취해 위풍당당해진다면 절묘한 코미디 소재거리가 될 것이다. 연기자를 비롯한 모든 표현예술가들은 그 감정을 투명하고 진실되게 표현하기 위해 묘사해야 하는 역할로 감정이입을 하고, 그 역할을 스스로 본인의 삶에 대입하기까지 한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본능적인 희로애락을 표현하기 위해 민얼굴을 드러내고 벌거벗는 마음으로, 무대 의상을 입는 동시에 겉치레를 벗는다. 희로애락을 삶에 대입하고 감정을 쏟아 보지만, 위엄 있음이라는 건 여간해선 이입하기가 힘들다. 그 대상이 어차피 연기였는데 그것을 재차 연기하는 이중연기이기 때문이다. 겉치레를 벗었는데 그 안에 여전히 겉치레를 입고 있는 꼴이라 할까. 어떤 면에서는 어렵고 어떤 면에서는 반대로 쉬울 수 있는 게 바로 연기를 연기하는 게 아닐까 싶다. 신과 자연이 아닌 인간이란 존재로서의 존엄을 찾고자 하면 왕과 권력자가 아닌,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며 선을 이룬 용감한 시민 영웅들과 순직장병, 독립투사들을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그들을 보고 동경하고 감사하며 그들의 가족을 위로하고 희망을 품는 감정을 가져 마땅하다. 이는 진실된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 외교부 이어 통일부 ‘아전인수’ 인용… 당사자 “실망했다”

    외교부 이어 통일부 ‘아전인수’ 인용… 당사자 “실망했다”

    통일부가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해외 인사의 인터뷰를 ‘아전인수’ 격으로 인용한 데 대해 당사자가 “실망했다”고 유감을 공개 표명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칼 거슈먼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장은 22일(현지시간)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통일부가 대북전단 활동과 관련한 언론 인터뷰 내용을 잘못 사용했으며 이에 대해 실망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지난 15일 표현의 자유, 북한 인권 문제 등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한 쟁점에 대해 통일부 입장을 정리한 설명자료를 배포했는데, 여기에 담긴 거슈먼 회장의 발언이 원래 취지와 다르게 사용됐다는 것이다. 당시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가 북한 인권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점을 설명하며 “거슈먼 회장도 지난 6월 12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정보 유입 방법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고 썼다. 거슈먼 회장이 인터뷰에서 NED가 대북전단 살포를 지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정보 유입 방법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이렇게 인용한 것이다. 발언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인터뷰 전체 맥락을 보면 취지를 왜곡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거슈먼 회장은 대북전단 효용성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우리 정부의 대북전단 규제에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최근 외교부도 강경화 장관의 CNN 인터뷰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서 진행자의 발언을 오역해 논란이 됐다. 진행자는 2014년 북한이 대북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포를 발사한 사례를 듣고는 “풍선에 고사포로 대응하다니 너무 지나쳤다”고 말했는데, 외교부는 이를 “대북전단 살포나 북측의 발포 등의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고 번역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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