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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한중일은 접촉이 필요하다/번역가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한중일은 접촉이 필요하다/번역가

    요즘 아내를 보면 책과 신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유튜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내는 몸이 안 좋으면 의사의 채널을, 집에 하자가 생기면 인테리어 업자의 채널을 찾아 정보를 얻는다. 국내외 뉴스도 구독 신청한 몇 가지 뉴스 채널을 통해 접한다. 아내 같은 사람들에게는 레거시 미디어가 시야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나도 유튜브에 들어가 검색창에 ‘중국’을 넣고 검색을 해 보았다. “호주 ‘내가 괴롭힐 차례’, 中 닥공에 ‘정면충돌’ 작전”이라는 뉴스가 화면 맨 위에 떴다. 중국의 무역 보복에 시달리던 호주가 중국에 반격을 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내가 괴롭힐 차례’, ‘정면충돌’ 같은 강경 발언은 그 안에 없었다. ‘일본’을 검색하니 “‘일본에 지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말 같지도 않게 질문한 일본 기자를 오징어 만들어 버린 한국 선수”라는 개인 채널의 동계올림픽 뉴스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역시 내용과 제목이 거의 무관했다. 둘 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트래픽 장사를 노리는 ‘혐오 뉴스’였다. 요즘에는 이런 뉴스가 ‘국뽕 뉴스’와 함께 유튜브 공간을 도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요즘 부쩍 혐중, 혐일의 견해를 내비친다. “도대체 중국은 왜 우리 전통문화를 빼앗는 거야?”, “일본은 성찰이라는 걸 모르는 나쁜 민족이야”라는 식으로 화를 내면서 말이다. 그럴 때면 입을 다문다. 혐오 뉴스가 유발하는 분노가 앞서면 차분히 문제를 논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6년 사드 사태, 2019년 일본 수출제한조치 분쟁으로 멀어진 한국과 중국, 일본의 관계는 코로나19로 교류가 어려워지면서 한층 악화됐다. 그 증거가 바로 온라인 공간을 점령한 혐중, 혐일 뉴스이며 또 이 뉴스는 우리 국민의 혐중, 혐일 정서에 기반한다. 우리의 이런 ‘이웃 나라 혐오증’은 과연 언제나 사그라질까. 누구는 “중국이 고대사 왜곡을 중지하면”이라고 할 것이다. 또 누구는 “일본이 전쟁 범죄를 사죄하고 배상 책임을 피하지 않으면”이라고 할 것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언제나 그렇게 될 것이며 또 그렇게 되더라도 해묵은 혐중, 혐일 정서가 잘 해소될 수 있을까. 작년 가을, 공무원인 후배 P가 4주 격리를 무릅쓰고 장쑤성 저우산시에 가서 한중 지자체 교환프로그램에 따른 업무를 경험하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 J는 한중 양국의 무복(巫服)을 비교, 연구하겠다며 얼마 전 자료 조사차 중국에 다녀왔다. 그 바람에 겨울방학을 통째로 양국의 격리로 날렸다. 나 역시 국경만 열리면 즉시 중국에 건너가 끊긴 한중 출판교류를 재개할 작정이다. 접촉이 중요하다. 세 나라의 관계가 아무리 냉랭해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접촉이 개별적으로 이어진다면, 그래서 세 나라가 함께할 가능성을 상상하는 이들이 계속 존재한다면 훗날 혐중과 혐일의 정서는 뜻밖에 쉽게 가실 수도 있을 것이다.
  • [열린세상] 지금 이 순간에 귀를 기울이고/박산호 번역가

    [열린세상] 지금 이 순간에 귀를 기울이고/박산호 번역가

    20대에 통역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영어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귀를 혹사한 후 어느새 텔레비전 볼륨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높이는 나를 발견하고 알았다. 내 청력이 많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결국 대학원엔 가지 못했고, 그 후로 귀를 혹사시킬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다시는 영어 테이프를 그렇게 열심히 들을 일도 없었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찾아들을 만큼 음악에서 위로를 느끼지도 못하는 나이가 돼 버렸다. 그랬다. 어느덧 삶에 찌든 중년이 돼 버린 것이다. 그랬던 내가 요 몇 년 사이에 인터넷으로 각종 블루투스 이어폰의 품질을 비교 분석하고, 지인들에게 추천도 받아서 가성비 좋다는 이어폰 두 쌍을 장만해 번갈아 끼며 다시 귀를 고문하게 됐다. 코비드 바이러스와 같이 찾아온 재테크 열풍 때문이었다. 아무리 돈을 모르고 돈에 무심하게 살아온 나이지만 이러다 진짜 벼락거지를 넘어서서 큰일 나겠다 싶은 위기감에 설거지를 하면서, 거실 바닥을 닦으면서, 강아지 해피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서도 열심히 유튜브로 재테크 강의나 영상을 보고 들었다. 그렇게 2년 동안 열심히 이어폰을 끼고 세상의 소리를 들었는데…. 두어 달 전 어느 일요일 아침 커피를 마시는데 갑자기 귓속에서 윙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사이렌이 울리는 줄 알고 딸에게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가 딸의 황당한 표정을 보고 그 윙 소리가 내 귀에서만 들린다는 걸 알았다. 윙 소리는 하루 종일 울려 댔고, 일요일이라 병원도 갈 수 없었던 나는 놀랍기도 하고 무서워서 몸의 일부처럼 끼고 다니던 이어폰을 케이스에 넣고 서랍에 처박아 버렸다. 다음날인 월요일엔 그 윙 소리가 오후까지 들리다 밤에 멈췄고, 그다음 날인 화요일엔 오전까지 들리다 말았다. 어느 날 더이상 윙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세상이 퍼붓는 소리 대신 내 삶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할 때는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었고, 거실 바닥을 닦을 때는 밀대에 달린 걸레가 바닥을 빠닥빠닥 문지르는 소리를 들었고, 마른 낙엽 더미 위를 해피가 버석버석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소리, 쌓인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는 소리를 들었다. 아침에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갈 때는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까치 소리, 사냥개처럼 달려오는 해피를 피해 후드득 날아가는 이름 모를 새들의 날갯짓 소리, 빗방울이 흙바닥을 타닥타닥 때리며 축축하게 젖어드는 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온 세상이 신기하고 흥미로운 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무려 반백년 만에 깨달으면서 마음이 서서히 편해졌다. 주식을 사야 한다고, 코인이 폭락했다고, 아직 오를 아파트는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아직도 돈 공부를 안 하고 있냐고 야단치는 세상의 소리를 들을 땐 항상 쫓기는 사람처럼 답답하고 불안했는데, 자연과 생활과 생명이 내는 소리가 날 달래 주고 안아 줬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십시오. 손을 씻을 때에도 거기에 수반되는 모든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 물이 흐르는 소리와 물이 닿는 느낌, 손의 움직임, 비누의 향기 등을 놓치지 마십시오. 고요하지만 강렬한 현존의 감각을 느껴 보십시오.” 톨레의 말처럼 일상에 집중해 수행하는 경지까진 이르지 못했지만 언젠가 반드시 당도해야 한다고 생각한 미래의 목적지를 향해 조바심을 내며 달려가는 대신 지금 이곳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자 마음이 고요해졌다.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으니 전보다 더 부자가 되진 못했지만 전보다 더 가난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면 된 것이 아닐까.
  • 성노동자 목소리 전달한 男번역가 “‘범죄 VS 노동’ 이분법 너머 현실 봐야”

    성노동자 목소리 전달한 男번역가 “‘범죄 VS 노동’ 이분법 너머 현실 봐야”

    영국의 성노동자인 두 여성 몰리 스미스와 주노 맥의 저작 ‘반란의 매춘부’(오월의봄)가 최근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책을 번역한 이는 전직 중·고교 사회 교사이자 현재 대학 강단에서 예비 교사들을 가르치는 이명훈(38)씨. 이씨를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책은 ‘반성매매’와 ‘성노동론’ 같은 매춘을 둘러싼 이분법을 넘어 성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보자는 취지로 쓰여졌다. 지인들과의 스터디를 통해 책을 먼저 접했던 이씨의 제안으로 한국 출간이 이뤄졌다. 이씨가 성노동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성노동에 종사했던 지인들이 폭력·협박에 시달린 경험을 마주하면서부터다. 그는 “가장 열악하고 낙인찍힌 곳이지만 누군가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일자리일 수도 있는 성노동이 되도록 덜 폭력적이고 덜 억압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남성 구매자, 여성 판매자’로 철저히 젠더화된 성매매 시장에서 성노동자의 글을 남성이 번역했다는 것에 오해를 사지 않을까 걱정도 컸다고 한다. 한 때 필명 출간도 고려했다는 그는 “단지 성구매를 하지 않겠다 약속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만이 성매매 문제 해결에 대한 남성들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제도, 문화 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노동자와 함께 고민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책은 범죄 혹은 노동이라는 양극단 속 정작 매춘부의 삶, 성노동자 당사자의 목소리는 지워졌다고 말한다. 이씨는 “매춘을 노동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성구매자의 성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며, 성산업이 좋은 일터라는 말과도 거리가 멀다”고 힘주어 말했다. 성매매 문제의 해법을 위해 범죄화나 비범죄화, 구매자는 처벌하고 판매자는 처벌하지 않는 이른바 ‘노르딕’ 모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공권력에 의한 단속을 강조하게 되면 당장 성노동을 하면서 개인이 직면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성노동 이외에 다른 선택지를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조건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부차적으로 여겨지게 돼요. 형법적 변화에 갇히지 말고, 성노동자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상법, 노동법 등을 망라한 포괄적인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내가 바라지 않는 나라/번역가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내가 바라지 않는 나라/번역가

    이틀 전 중국인 여학생 Y를 만나러 시내에 나갔다. 중국어학원에서 일하는 그녀는 일이 바쁘다며 석사논문 제출을 한정 없이 미루고 있다. 학원 공강 시간마다 근처 스터디 카페로 달려가 논문 자료를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다가 문득 그녀가 언제 고향에 다녀왔는지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다녀온 게 2019년 설이에요. 3년이 다 돼 가네요. 엄마는 전화만 걸면 어서 다 정리하고 돌아오라고 난리예요”라고 Y는 우울한 어조로 말했다. 한국의 많은 중국인 유학생들이 이렇게 오래 고향에 못 가고 있다. 중국 입국자는 기본 격리 기간이 착륙지에서 3주, 원하는 지역에서 1주, 이렇게 도합 4주다. 더구나 격리 기간의 호텔비, 식사비, 검사비는 본인 부담이다. 어떤 중국인 여학생은 “귀국하면 격리비로 아이폰 2대값이 날아가요”라고 푸념했다. 시간적, 금전적 출혈 때문에 그들은 고향에 못 가는 것이다. Y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그래요. 중국 정부의 방역이 너무 엄격하기는 하죠”라고 한 뒤 마지막으로 “한국인은 중국인을 절대 이해 못 해요”라고 체념 섞인 어조로 말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너무나 익숙한 패턴이었다. 내가 한마디 더 하면 “땅이 너무 넓고 사람도 너무 많아요, 중국은. 어쩔 수 없어요”라고 답할 테고 그래도 좀 심하지 않느냐고 또 물으면 “문화대혁명 때를 생각해 보세요. 중국은 계속 조금씩 나아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라고 답할 것이다. 중국인들은 자국 문제점에 대해 지적을 받으면 거의 예외 없이 ‘중국 예외론’과 ‘천진한 낙관주의’를 펼친다. 그들이라고 왜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모르겠는가. 하지만 사회와 국가를 하나로 바라보는 그들의 의식 속에서 국가는 늘 개인보다 우선한다. 설령 국가의 정책이 불합리해도 서구의 ‘시민 불복종’ 권리 같은 것은 그들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다. 혹시 드물게 불복종의 단초가 나타나도 당국의 추상같은 검열에 바로 삭제된다. 지난해 12월 코로나로 봉쇄된 중국 시안시에서 프리랜서 기자 장쉐(江雪)가 열흘간 관찰한 현장 상황을 올린 글 속에도 그런 단초가 존재했다. 심장병 발작으로 병원에 실려간 노인이 ‘위험구역’에서 왔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당해 숨진 일에 분노해 그녀는 “이 세상에서 외딴 섬인 사람은 없으며 한 명 한 명의 죽음은 곧 모든 사람의 죽음이다. 바이러스는 이 도시에서 생명을 앗아가지 않았는데 다른 것이 정말로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당국의 획일적 방역 정책에 대한 비판은 화제가 됐지만 이내 검열의 희생물이 됐다. 국가주의의 세례 아래 대다수 국민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정당한 비판 여론이 촘촘한 검열의 체에 걸러지는 곳. 내 나라든 이웃 나라든 부디 그런 곳이 아니었으면 하는 게 내 간절한 바람이다.
  • [열린세상] 외로움이란 질병/박산호 번역가

    [열린세상] 외로움이란 질병/박산호 번역가

    어쩌다 보니 개와 고양이를 같이 키우게 됐다. 원래부터 이럴 계획은 아니었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재작년 겨울 초입에 온몸이 광기 어린 에너지로 넘치는 깜장 시바 강아지 한 마리를 새 식구로 맞이했다.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고양이 송이에게 괜찮겠냐고 물어보진 않았다. 당연히 안 괜찮다고, 싫다고 할 게 뻔했기 때문에. 그렇게 아슬아슬한 동거가 시작됐다. 성격이 까칠한 송이는 예상대로 느닷없이 자신의 보금자리에 쳐들어온 강아지 해피를 마땅치 않아 했다. 하나 처음에는 어른으로서 관용을 베풀어 내 주먹보다 작은 해피가 울타리 속에서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을 때 소리 없이 다가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냄새를 맡아 보곤 슬쩍 뒤로 물러나는 정도로만 접촉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해피가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짧은 평화도 막을 내렸다. 새로 온 집의 모든 곳, 모든 것에 촉촉한 검정 코를 갖다 대고 냄새 맡고, 핥고, 씹고, 물어뜯어야 직성이 풀리는 강아지 해피와 지난 8년간 우아하게 자신의 왕국을 호령한 갈색 고양이 송이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어느 날 송이가 발톱을 세운 채 날리는 펀치에 맞아 귀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해피를 보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송이는 하루아침에 안방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런 결정을 송이는 당연히 끔찍하게 여겼다. 이해한다. 어느 날 들어온 시커먼 털 뭉치 한 마리 때문에 자신의 세계가 방 한 칸으로 쪼그라들었으니. 그러나 송이에게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외로움이었다. 송이는 식구들이 거실에서 혹은 주방에서 다 같이 있을 때면 별안간 처절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처음에는 어디 아픈가, 아니면 다쳤나 싶어서 놀라 뛰어갔는데. 그때마다 송이는 울음을 그치고 할짝할짝 사료를 먹거나, 내 옆에 다가와 종아리에 작은 얼굴을 대고 부비부비하거나, 흰색과 갈색이 섞인 길고 아름다운 꼬리로 내 종아리를 휘감았다. 그때 알았다. 송이가 외롭다는 걸. 송이의 그런 마음을 짐작했을 때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노리나 허츠가 쓴 ‘고립의 시대’에는 코로나 때문에 방문객들이 올 수 없는 도쿄의 스미다 아쿠아리움에서 뱀장어들이 사육사를 보고도 모래 속으로 파고드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봉쇄 기간이 길어지면서 뱀장어들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육사들은 시민들에게 아쿠아리움으로 화상 전화를 걸어 뱀장어들에게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게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뱀장어들도 외로움을 탄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증명된 셈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에게 외로움은 온몸에 서서히 퍼지는 독과 같다는 점은 분명하다. 고양이도 외롭고, 뱀장어도 외롭다. 식구들이 송이를 달래 주려고 안방에 들어가 있으면 강아지 해피는 두 발로 서서 안방 울타리 문을 앞발로 탁탁 치며 성질을 낸다. 나도 그 안에 같이 있고 싶다고. 나만 소외되고 싶지 않고, 좋아하는 이들과 같이 눈을 맞추고 놀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무서운 기세로 퍼지는 오미크론 바이러스 때문에 그러한 최소한의 만남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다. 외로워하는 송이 옆에 가만히 있어 주고, 안방으로 들어오겠다는 해피를 쓰다듬어 주고, 모래 속으로 고개를 파묻는 뱀장어들에게 화상 전화를 걸어 주는 것처럼 외로워하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전할 방법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비정상이 정상에게/번역가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비정상이 정상에게/번역가

    대학에 입학할 때 장래 희망이 교사였다. 나이 들어 들어간 대학이니 교사자격증을 따서 어떻게든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푼 마음으로 교직 과목을 신청했건만. 어느 날 사범대 교학과에서 부르더니 수강 신청을 취소하란다. 검정고시생이 교직을 수강하고 교사가 되려면 이런저런 서류 작업이 복잡하단다. 결국 ‘정상적인’ 교육도 받지 못한 주제에 ‘정상적인’ 교육기관에서 ‘정상적으로’ 배우고 자란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겠느냐는 얘기였다. 사실 ‘정상’으로서의 삶을 별로 살아 보지 못했다. 태생은 가난하고, 부모는 내가 일곱 살 때 이혼해 헤어지고, 중학교ㆍ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대신하고, 남들이 학교에 다닐 나이엔 인쇄소, 금방, 공장 등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열아홉, 스물에 다녔을 대학을, 군복무를 마친 후 스물여섯 나이에 노크한 것도 그래서다. 내가 소위 ‘정상인’이 되지 못한 이유는 순전히 가난 때문이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에도 고등학교 대신 공장에 취직하고, 다시 8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가까스로 대입 검정고시의 기회를 얻었다. 가난이라는 놈이 원래 그렇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목을 잡고, 남들에게 하찮기만 한 가치나 기회에 목숨을 걸게 하고, 가족ㆍ이웃과 얼굴을 붉히고 싸우게 만든다. 선택 하나 하나에 생계가 달리고 운명을 걸어야 하니 왜 아니겠는가. 당연히 나도 살아오면서 욕도, 싸움도 많이 했다. 번역가로 데뷔하고 제일 먼저 얻은 별명이 그래서 ‘욕쟁이 번역가’다. 추리, 범죄 소설들을 옮기면서 거친 욕들을 찰지게 옮겼더니 독자들이 감동(?)한 것이다. 그러니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 노재승이라는 청년이(그 후 자진 사퇴했다) 보기에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한심하고 ‘비정상적’일까? 1) 가난하게 태어난 게 무슨 자랑이라고 이렇게 신문 지면에까지 징징대며 2) 받은 교육이라곤 대부분 독학에 검정고시고 3) 올바른 부모는커녕 부모가 이혼 후 10대부터 지방을 전전하며 혼자 살았다. 게다가 4) 입까지 더러워 별명이 ‘욕쟁이’라지 않는가. 그 청년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한 것도 역사가 그리 깊지는 않다. 그때도 ‘정상’은 ‘비정상이 아니다’라는 의미보다 ‘확률상 평균적이고 평범하다’는 ‘average’의 개념으로 쓰였다. 요컨대 사회 분포도가 넓다는 뜻이다. 그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부모 말 잘 듣고 평범하게 중고등학교 졸업해 평범한 대학 생활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해서 ‘정상인’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난하면 맺힌 게 많다”거나 “올바른 부모 밑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빨치산을 유공자로 치켜세운다”는 얘기는 얼마나 평범할까?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은 자유가 뭔지도 모른다”는 어느 대선 후보의 주장은 얼마나 정상적일까? 사람을 정상, 비정상으로 나누는 역사가 깊지도 않지만 생명력도 오래가지 못한다. ‘Life is in Transitions’(2020)의 저자 브루스 파일러는 출생, 교육, 취직, 결혼, 은퇴처럼 생애 일정표대로 진행하는 삶을 정상(normal)으로 보는 대신 선형적(linear) 삶이란 개념을 도입한다. 그렇지 못한 삶은 비선형적 삶이겠으나, 그에게 21세기 격동기 속에서 선형적 삶은 정상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마케팅 전문가 세스 고딘의 ‘We are All Weird’(2011)에 따르면 “정상을 지향하는 대중 중심의 마케팅은 끝났다. 이제 세상은 ‘이상한 것’을 ‘이상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따라서 그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 아니, 이런저런 논란을 다 떠나서 60대 꼰대답게 노재승 청년에게 한마디 충고는 건네고 싶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 함부로 걷어차지 말게나. 정작 걷어차인 건 당신네들이 아닌가 말이다.”
  •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다정한 것에 고개를 숙이다/번역가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다정한 것에 고개를 숙이다/번역가

    공부하러 먼 나라에 가 있는 딸은 매일 하루 두 번 아내와 영상통화를 한다. 아침에 등교하기 전에 한 번, 밤에 잠자리 들기 전에 한 번. 그것도 매번 30분에서 1시간씩 긴 대화를 주고받으니 늘 아내 옆에 있는 나로서는 의아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대체 무슨 할 이야기가 저렇게 많을까. 친구, 선생님, 공부 이야기에 매끼 밥 지어 먹는 이야기까지 온갖 화제가 난무한다.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차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외로움을 잘 타는 딸과 근처에 마음 맞는 이웃이 없는 아내가 서로 멀리 떨어지면 얼마나 적적할까 싶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영상통화 기술의 발전 덕분에 오히려 전보다 더 가깝고 깊게 마음을 나누고 있다. 혹시 우리 집 모녀만 이러는가 싶어 출강하는 대학원 학과의 중국인 여학생들에게 가족과 자주 영상통화를 하느냐고 일일이 물어보았다. 예외 없이 그렇다고들 했다. 또한 역시 예외 없이 엄마하고만 영상통화를 한다면서 아빠하고는 안 하거나 가끔 인사만 나눈다고 했다. 학과에 중국인 남학생이 전무해 못 물어보기는 했지만 남학생에게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엄마에게든 아빠에게든 매일 영상통화를 하는 남학생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이 안 갔기 때문이다. 확실히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다정함이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가정은 줄곧 다정함을 배우는 학교였다. 연애 당시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엄격한 교사로서 내게 공감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다정한 소통의 방식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군부 독재와 산업화의 시대에 극도로 남녀 분리적인 동시에 남성중심주의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남녀 분반이었고, 남중ㆍ남고를 나왔으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간신히 또래 여성과 소통할 기회를 얻었는데, 겨우 1년 만에 군대를 가야 했다. 그 와중에 한국 남성사회 특유의 위계질서와 경쟁의식이 정신에 아로새겨진 채 아내와 처음 연애란 것을 시작했으니 아내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돌아보면 그때 아내가 포기하지 않고 그래도 잘 가르쳐 보자고 마음먹어 준 것이 내게는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전화할 때는 항상 상냥한 어조로 말해 줘”, “같이 걸어갈 때는 앞장서지 마”, “가족한테는 ‘사랑한다’, ‘좋아한다’고 자주 말해 줘야 해”, “대화할 때는 해결책을 주려 하지 말고 그냥 안아 주고 다독여 줘” 등등 아내가 내준 갖가지 구체적인 숙제를 해 나가면서 나는 좀더 덜 공격적이고 더 협조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을 진화심리학에서는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라고 부른다고 한다. 자기가축화를 통해 내 부족한 친화력을 높여 조금이라도 ‘야생 상태’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면 아마 아내와 딸이라는 ‘진화된 다정한 인류’ 사이에서 완벽하게 왕따가 돼 버렸을 것이다. 저명한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인류의 진화사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렵채집 시기에 인류가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은 조상들이 식량 채집을 위해 사물, 동식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 말이 옳다면 우리는 민주화된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십만 년 전 수렵채집 시대의 마음을 갖고 태어난 것이니 누구나 살아가면서 그 야생의 마음을 진화시켜 좀더 다정해질 필요가 있는 셈이다.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아무래도 여성이 남성보다 그 진화에서 앞서 있는 듯하다. 2002년 6월의 어느 여름날 저녁이 생각난다. 당시 우리 가족은 서로 1만㎞나 떨어져 있었다. 아내와 딸은 뉴질랜드에서, 나는 서울에서 1년 넘게 얼굴을 못 본 채 살았다. 그날은 한국 월드컵 대표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지만, 나는 번역 일에 치여 식당에서 혼자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에게서 국제전화를 받았다. 아내는 언제나처럼 밝고 다정한 목소리로 딸을 데리고 그곳 교민들과 함께 단체 응원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비싼 전화요금 때문에 몇 마디도 못 하고 전화를 끊어야 했지만, 그 다정한 목소리에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 느꼈던 것 같다. 세상의 다정한 것들에는 어떻게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고.
  • ‘행동하는 철학자’ 베유 다시 읽기

    ‘행동하는 철학자’ 베유 다시 읽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행동하는 지성’으로 꼽히는 시몬 베유(1909~1943)의 대표작이 잇따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알베르 카뮈, 앙드레 지드, TS 엘리엇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준 베유의 힘, 불행, 선(善), 은총에 대한 독특한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문학과지성사는 2008년 출간된 ‘중력과 은총’의 개정판을 선보였다. 베유가 죽은 뒤인 1947년 사상적 동지 귀스타브 티봉이 그의 원고를 묶어서 낸 책으로, 윤진 번역가가 책에 등장하는 문학 작품과 성경 인용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새로 덧붙였다. 이 책은 삶을 밑으로 끌어내리는 중력에 맡겨진 인간의 불행과 초자연의 빛인 은총을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내용을 담았다. 베유는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거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신의 섭리가 있다’는 식의 믿음을 통해 종교에서 위안을 얻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을 ‘실재’로 인정하고 그 자체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한 그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나 세계가 완벽해질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관념도 현실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세계를 능동적으로 변혁시킬 가능성을 부정하는 이런 주장은 유럽 사회가 믿어 온 합리성과 진보가 전쟁을 통해 무너져 버린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출판사 리시올은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이 책은 트로이 전쟁을 그린 고대 서사시 ‘일리아스’를 힘의 논리로 바라본 철학서다. 1939년 독일이 유럽을 침략하자 평화주의를 포기한 베유는 “일리아스의 진짜 주인공, 진짜 주제, 중심은 힘”이라며 “힘은 자신에게 종속된 사람을 사물로 만들어 버린다”고 말한다. 힘의 논리는 사람의 영혼을 종속시키며 이렇게 힘에 종속된 사람은 사물로 전락한다는 의미다. 그는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건 힘에 당하는 사람이건 모두 영혼이 파괴된다고 주장한다.이 밖에 새물결 출판사가 국내 처음 선보이는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은 신학적인 글과 철학적·정치적인 글 여러 편을 묶은 책이다. 우리가 가짜 신을 믿는 이유는 선과 행복이 불가능한 이 세계에서 헛된 기대를 하고 헛된 희망을 품기 때문이라고 베유는 주장한다.
  • 단죄와 진상 규명 없는 역사는 치유할 수 없을까

    단죄와 진상 규명 없는 역사는 치유할 수 없을까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사죄 없이 사망하면서 국가 폭력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다시 조명받게 됐다. 역사의 법정엔 공소시효가 없다지만, 1948년 제주 4·3을 시작으로 한 국가 폭력 희생자들의 고통은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한(恨)으로 남길 수밖에 없을까.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인 이성아 작가의 장편 소설 ‘밤이여 오라’는 이처럼 국가 폭력에 연루된 개인의 비극적 이야기와 폭력의 트라우마를 이겨 내려는 인물들의 분투를 그렸다. 2015년 독일어 번역가 변이숙은 자신이 번역한 작품의 저자 마르코의 초대로 크로아티아를 방문하던 도중 잊고 싶은 20여년 전의 추억을 떠올린다. 독일에서 짧은 유학생활을 했던 이숙은 대학 선배 현기표와 동거하게 됐고, 연락이 끊긴 기표를 찾으러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공항에서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갔다. 이숙은 하루아침에 자신이 북한 공작원으로 분류된 기표의 애인으로 낙인찍힌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이숙뿐 아니라 마르코의 입을 통해 1990년대 내전과 인종청소를 겪은 발칸반도와 한국의 상황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특히 제주 4·3 피해자의 후손이기도 한 이숙의 시선을 통해 김영삼 정부 시기까지도 이어진 간첩단 조작 사건 등 대한민국의 민낯을 여과 없이 펼쳐보인다. “용서니 화해니 하는 것들이 정치적인 제스처일 뿐이라는 걸 얼마나 더 지켜봐야 해? (중략) 죄의식은 늘 피해자들의 몫이야. 가해자들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감수성이 없으니까”(188쪽)라는 마르코의 말은 확실한 단죄와 진상 규명 없이는 비극의 굴레를 끊을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듯하다. 하지만 작가는 분노와 탄식만 내보이지 않는다. 치유와 화해의 시각으로, 참극의 슬픔을 이해하는 연대가 필요할 때 우리는 그 폭력을 온전히 멈추게 될 것이라고 답한다. 우리가 등한시한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인정해야 좀더 큰 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고 목놓아 호소한다. 한 여인의 우수와 고독을 전하는 감수성 깊은 사유의 힘이 돋보인다.
  • 호주 방송인 런던까지 가 아델 인터뷰하며 “노래 못 들어봤는데요”

    호주 방송인 런던까지 가 아델 인터뷰하며 “노래 못 들어봤는데요”

    영국의 팝스타 아델(33)이 6년 만에 새 앨범 ‘30’을 오는 26일(이하 현지시간) 출시하는데 호주의 한 방송 진행자가 지난 4일 런던까지 날아가 그녀를 인터뷰하면서도 미리 앨범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채널7에서 방영되는 ‘위크엔드 서프라이즈’를 공동 진행하는 맷 도란이 장본인이라고 영국 BBC가 22일 소개했다. 그는 호주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이혼한 뒤 홀로 아들을 키우며 네 번째 정규 앨범을 준비한 아델의 심경을 들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붙잡았다. 방송국은 아델과의 인터뷰 기회를 따내고 그와 두 동료를 파견하고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100만 호주달러(약 8억 6000만원)를 들일 정도로 정성을 들였는데 정작 인터뷰하는 기자는 그 앨범을 미리 들어보지도 못한 채 아델과 마주앉은 것이었다. 결국 소니 뮤직은 화가 잔뜩 치밀어 도란과 아델의 인터뷰 동영상을 건네지 않고 보류시켰다. 소니의 동영상을 보면 그는 아델의 면전에서 이런 고백을 하면서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를 한다. 아델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다. 소니는 앨범 수록곡들을 담은 이메일을 발송했는데 그는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그는 일간 오스트레일리안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냥 지나친 것이지 의도적으로 빠뜨린 것이 아니다”며 “지금까지 내가 놓친 이메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메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아울러 생방송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일을 빌미로 정직 징계를 받았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도란이 실수한 것도, 그가 변명하는 것도 음악팬들 사이에 재미있고 웃긴다는 반응을 낳고 있다. 하지만 웃을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이도 있다. 영화 각본을 쓰는 브라이어니 키드는 “정말 열정적인 예술 저술가들이나 평론가들은 공짜로 일하거나 리뷰 한 건에 고작 40달러를 받고 일하는데 반면에 이런 (작자들도)”이라고 글을 끝맺지 못했다. 같은 이름의 호주ABC 방송 정치부 기자는 도란 진행자가 더 많은 비난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역시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서 도란 진행자가 “에이 좀 봐주지(Go easy on me)”라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Easy on me’는 아델의 새 앨범 타이틀 곡이기도 하다. 아델의 새 앨범이 워낙 기대를 모으는 터라 각국 방송사들이 고액을 건네고 독점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영하는 모양이다. 워낙 침체된 음악시장을 단숨에 요동치게 할 자극제로 ?활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내에서도 오는 30일 밤 9시 MBC 창사 60주년 특별기획으로 ‘원 데이 위드 아델’이 방영된다. 해외 팝스타 혼자의 시간에 황금시간대를 할애했다. 로스앤젤레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공연과 오프라 윈프리와의 대면 인터뷰로 꾸며지는데 DJ 배철수의 해설과 영화번역가 황석희씨의 자막이 함께 한다. 배철수는 “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의 새로운 앨범과 그 첫 라이브 무대를 직접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 그 기다림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 [열린세상] 거인의 어깨 위에서/박산호 번역가

    [열린세상] 거인의 어깨 위에서/박산호 번역가

    얼마 전 번역서 한 권을 마감했다. 이번 책은 내용이 유난히 까다롭고 어려워 고전을 면치 못한 채 작가를 찾아가 항의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코로나 덕분에 그 무모한 계획은 상상에 그쳐야 했지만. 번역하다 보면 어렵고 힘든 작품을 종종 만나지만 이번은 정말이지 20년 가까운 번역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결국 탈이 났다. 바쁜 와중에 잠시 틈을 내 근처 호수공원을 걷고 온 다음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데다 다리가 너무 저려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증상이 시작됐다. 병원에 가 보니 척추분리증이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과로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지병까지 발병했다. 어쩔 수 없이 편집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며칠 쉬었지만 그런 내내 앉아도 누워도 불편했다. 대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머리, 어깨, 발, 무릎, 발 순서로 찾아오는 통증을 참고 일해야 하나. 영화는커녕 남들 아파트는 몇 배에서 몇십 배가 오르고,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들은 주위에 넘쳐나는데…. 집도 절도 없이 아픈 식구 병구완하느라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버린 채 소처럼 일만 하는 나는 순식간에 ‘벼락거지’가 된 것 아닌가. 그때 우연히 주 샤오메이란 중국 피아니스트가 쓴 ‘마오와 나의 피아노’란 책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 샤오메이는 1949년 상하이 출생으로 음악 교사인 어머니가 장만한 피아노와 세 살 때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의 천재성은 일찍 발견돼 11세에 베이징중국음악학원에 입학하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 재능에 꽃을 피운다. 하나 열두 살에 생애 첫 리사이틀을 앞두고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고, 문화혁명 속에서 재교육 수용소로 보내져 5년간 살게 된다. 바퀴벌레가 득시글거리는 짚단에서 자고, 요강으로 썼던 것 같아 절로 구역질이 나는 그릇에 죽을 담아 먹고, 매일 음표 하나 보지 못한 채 낮에는 꽁꽁 언 땅에 삽질을 하고, 밤에는 동료들과 같이 자아비판과 감시를 하고 당하는 참혹한 수용소 생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동안 잊고 있던 음악의 열정을 그곳에서 되찾아 어머니에게 세 살 때부터 친구였던 피아노를 수용소로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피아노와 다시 만난 후로 그는 한 번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엄마의 식량 배급표 한 장으로 두 모녀가 끼니를 때우고, 넓은 세계에서 음악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꿈을 좇아 홍콩을 거쳐 LA에서 파리로 가는 험난한 여정에서 때로는 가정부로 일하고, 때로는 홍등가의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피아노가 망가지지 않도록 겨울에 난방도 하지 못하는 파리의 다락방에 사는 그녀를 구원한 건 끝없는 연습과 명상 그리고 노자 철학이었다. 지금은 아래로 내려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위로 오르고 있네 그려. 그땐 모르고 있지만. 지금은 위로 오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래로 내려가고 있네, 그려. 일하고 일하라, 꾸준히 쉬지 않고, 어느 날엔가 기대하지도 않는 가운데, 그대는 바라던 목표에 이르리. 결국 주 샤오메이는 평소 그가 존경하던 화가 정판교가 남긴 위의 글처럼 음악이 끝나도 청중들이 자리를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인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가 된다. 주 샤오메이의 일생이 놀라운 것은 문화대혁명이란 암흑기를 같이 겪으며 꿈뿐만 아니라 인생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동료 음악가들, 혹은 그 고통을 이겨 내고 음악가가 됐다 해도 생활 혹은 돈에 일상이 잠식당한 다른 음악가들과 달리 언제나 음악 하나만을 바라보며 끝까지 우직하게 걸어갔다는 점이다. 그런 그를 동료와 친구들은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며 도와줬다. 그런 주 샤오메이의 일생을 읽는 며칠 동안 나는 가시지 않는 허리 통증과 어려운 텍스트와 씨름하는 고통보다 인생엔 더 큰 고통이 있다는, 너무나 당연하고 엄혹한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침내 일가를 이룬 거인들의 삶을 통해 평범한 우리는, 나는 위로받게 된다. 마감이 끝나고 주 샤오메이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들었다. 지극히 그다운 연주였다.
  • ‘타이타닉’ 번역·시력 감퇴… ‘야인시대’ 시라소니 근황

    ‘타이타닉’ 번역·시력 감퇴… ‘야인시대’ 시라소니 근황

    2002년 방송된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최고의 맨손 싸움꾼 시라소니 역할을 맡았던 배우 조상구. 그는 2015년 방송된 KBS1 ‘징비록’을 이후 모습을 감췄다. 오랜 번역 활동으로 인한 시력 감퇴 등 건강 이상으로 연기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상구는 15일 유튜브 ‘근황올림픽’을 통해 “처음에는 계단도 못 올라갈 정도로 걷는 것도 힘들었다”라며 “높낮이가 구별이 안 됐고, 운전도 못 했다. 움직이면 저 스스로 보호하려고 그러는지 눈이 감겨 버린다. 아무리 뜨려고 해도 제 의지로 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억지로 손으로 눈꺼풀을 올리며 운전했다는 그는 그것조차도 힘들어진 지 4년이 됐다고 했다. 지금은 다행히 보는 데는 지장이 없다면서 “병명은 안 나온다. 정신적인 게 아니겠나”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이게 번역 때문에 이런 거다”라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상구는 경력 19년의 외화 번역가였다. 1400편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타이타닉’ ‘제5원소’ 등 대작들의 번역도 맡았다. 조상구는 “(번역을 하다 보면) 많이 듣는 경우 한 대사만 20번 정도 다시보기를 하게 된다. 한 번 다시보기 할 때마다 노이즈가 생긴다고 한다. 아마도 눈에 영향이 갔을 거다”라고 말했다. ‘타이타닉’ 같은 것을 번역하면 얼마나 받냐는 질문에 그는 “(번역 일로) 많이 받은 금액이 250만원”이라며 “야인시대 하면서 ‘번역 안 해야겠다’ 생각했다. 너무 지겨웠지만 고마웠던 직업”이라고 회상했다. 조상구는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도 겪었다. 그는 “차에서 어르신이 내리시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니 잡아드렸다”라며 “다른 어르신이 다 내린 줄 알고 차 문을 사정없이 닫았다. 잘렸는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손가락 접합 수술을 받고 외관상으로는 사고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힘들다며 “멀쩡하게 있다는 게 감사한 것”이라며 웃었다.조상구는 지금도 아이들이 ‘시라소니’를 알아본다고 했다. 신기한 마음에 “아저씨를 어떻게 아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자신의 유행어를 따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조상구는 ‘야인시대’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장세진과 유튜브를 시작했다. 그는 야인시대를 사랑해주었던 시청자들을 향해 “삶이란 게 원래 힘들지 않습니까”라며 “힘든 시기 더불어서 잘 견뎌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인사했다.
  • 아델 특집콘서트, 30일 MBC서 만난다

    아델 특집콘서트, 30일 MBC서 만난다

    MBC TV는 영국 출신 팝스타 아델의 특집 콘서트를 오는 30일 국내 최초로 방송한다고 16일 밝혔다. 아델 정규 4집 ‘30’의 발매를 기념해 열린 이번 콘서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그리피스 천문대 야외무대에서 진행됐으며 새 앨범 수록곡을 처음 공개했다. 또 오프라 윈프리와 아델의 인터뷰가 진행돼 새 앨범 작업 과정, 이혼 이후의 삶, 체중 감량,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의 경험 등 솔직한 이야기가 담겼다. MBC는 “아델의 음악을 국내 시청자들이 더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팝 전문 DJ 배철수의 해설과 영화 전문 번역가 황석희가 옮긴 한국어 자막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MBC 창사 60주년 특별기획 ‘원 데이 위드 아델’은 오는 30일 오후 9시 방송된다. 아델은 지난달 신곡 ‘이지 온 미’(Easy on Me)와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으며 오는 19일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어느 날 번역가가 모두 사라진다면/번역가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어느 날 번역가가 모두 사라진다면/번역가

    2014년 더이상 번역을 하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한 적이 있다. 거래하던 출판사에서 형편이 어렵다며 번역료를 깎겠다고 나선 것이다. 출판사 사정이야 모르는 바 아니라 “어쩔 수 없죠, 뭐.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라고 대답은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자 울컥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번역을 시작한 지 15년. 그간 출간한 번역소설도 60여권이니, 이 바닥에선 어지간히 뼈가 굵었건만 번역료가 오르기는커녕 이런 식의 후려치기에 속절없이 당하기만 하다니. 더욱이 믿을 만하다는 이유로 점점 어려운 원서만 맡기는 바람에 번역료 수입도 줄어들던 터였다. 결혼한 지 20년. 이놈의 번역에 목을 매다가는 평생 남편 노릇도, 아버지 노릇도 변변히 못하겠다 싶었다. 나는 다음날 거래하는 출판사를 돌아다니며 책을 돌려주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 후 세월은 흐르고 난 여전히 책을 번역하면서 지낸다. 애초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모를까 나이 들어 어디 취직하기도 어렵고 목구멍은 포도청이라 은근슬쩍 은퇴를 번복하고 만 것이다. 난 그나마 형편이 나은 경우다. 지금껏 일거리가 끊긴 적은 없고 그 이후 번역료가 오르지는 않아도 더이상 깎이지도 않았다. “죽어라 일하면 자기 몸 하나 버틸 수 있어도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건 포기해야 하는 직업, 번역가”가 정설이 된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전문, 전업으로서의 직업이 못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부분 과외로 다른 일을 하든가, 아니면 나처럼 가족의 수입에 기대어 살고 있다. 최고 수준의 외국어와 우리말 능력, 풍부한 전문 지식과 상식을 갖추어야 가능하다는 직업치고는 참으로 초라하기가 짝이 없는 성적이다. 2018년 잡코리아의 설문조사는 10년 내에 사라질 직업 1위로 ‘자랑스럽게’ 번역가를 선정했다. 인공 번역기의 눈부신 발전이 그 이유란다. 내가 보기에 인공 번역기로 출판 번역을 대체하려면 100년은 기다려야겠지만 그것도 번역과 번역가에 대한 상당한 투자가 선행될 때 얘기다. 구글의 번역 최고 담당자 마이크 슈스터도 “보통 기계한테 한 쌍의 언어 번역을 훈련시키는 데 1억개의 학습 사례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실 번역기가 제구실하기 전에 번역가들이 굶어서 멸종할 가능성이 더 크다. 번역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누구나 한다. 중세는 번역을 통해 휴머니즘에 눈을 뜨고 일본은 메이지유신의 꽃을 피웠다. ‘채식주의자’와 ‘기생충’,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좋은 번역이 한몫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은 번역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고민을 하지 않는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왜 우리나라에선 닌텐도를 만들지 못하느냐?”며 관료들을 야단치고, 국감장에서는 “왜 KBS는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느냐”고 힐난하듯 “왜 번역이 개판이냐?”고 번역가를 욕하고 따질 뿐 그간의 사정과 이유에는 다들 고개를 돌리고 만다. “번역청을 설립하라”는 우석대 박상익 교수의 애원도, “번역가를 전문가로 여기고 정신적ㆍ물질적 대우를 해 주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라”는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호소도 그저 업계의 한탄에 그치고 만다. 출판 번역이 왜 자꾸 뒷걸음질치는지는 나를 보면 안다. 20년 동안 90권 넘게 번역을 했지만 지금도 한 달 수익이 20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제법 잘나간다는 내가 그럴진대 누가 이 일을 직업으로 삼으려 하겠는가. 날림 번역으로도 먹고살기 어려운 판에 어느 누가 소명의식을 갖고 작업에 임하겠는가. 번역도 출판의 일부이니 출판사가 어려우면 어쩔 도리가 없지 않으냐고 되물으면 나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따금 잡코리아의 예언대로, 10년 후 번역가가 모두 사라지고 난 후의 세상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 세상이 오면 난감해지는 건 그저 출판사뿐일까.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는 무고할까. 그런 세상을 상상할 때마다 슬며시 미소 짓는 것은 순전히 내 심술 탓만일까.
  •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뭔가에 여생을 바친다는 것/번역가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뭔가에 여생을 바친다는 것/번역가

    독서 모임에서 오랜만에 두 제자를 만났다. 각기 출판사와 웹소설 기획사에서 일하는 그들은 모두 내년 출간 계획을 짜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했다. “출간 계획은 윗선에서 짜는 것 아닌가? 너희는 그렇게 바쁠 게 없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선생님. 그게 바로 지금 저희가 할 일이에요.” 나는 그제야 그들이 벌써 팀장급이 돼 각기 직장에서 미래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인 내 눈에는 여전히 어리게만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이미 경험과 감각 면에서 한창 무르익은 능력을 발휘하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인 것이다. 순간 며칠 전 중문과 교수로 일하는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앞으로 대학 구조 조정기에 우리 학과가 살아남을 수 있게 전공 방향과 커리큘럼을 잘 정리해 후배 교수들한테 물려주는 거야.” 그때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게 무슨 난데없는 소리예요. 형, 퇴직하려면 얼마나 남았는데요.” “나 6년 후면 퇴직이야.” 아연한 내 눈에 새삼 성글어진 선배의 머리숱과 힘 빠진 어깨가 선명하게 비쳤다. 대만의 인문학자 양자오는 인간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다들 적어도 내일, 내년에는 자신이 죽을 리 없다고 철석같이 믿으면서 꼭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산다고 말한 바 있다. 내가 딱 그런 꼴이다. 그래서 나도 나이 들어 가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변화를 인지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양자오는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그 유한성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게 일종의 자기 최면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게 옳다는 것일까. 시시각각 줄어드는 자기 수명을 늘 체크하면서 지금 남아 있는 과업이나 못다 이룬 꿈에 열중하라는 것일까. 그게 맞다면 계산해 보자. 2005년 78.6세였던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2050년 86세가 될 것이라고 한다. 도중에 의외의 죽음을 맞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내게 남은 수명은 36년, 날짜로 치면 1만 3140일이다. 휴대폰 달력의 오늘자 메모란에 13140을 찍고 매일 13139, 13138, 13137… 이렇게 역순으로 줄여 가며 여생이 다 사그라질 때까지 뭔가에 집중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내게 그 ‘뭔가’는 또 무엇일까. 중국의 저명한 학자 이중톈은 2013년 66세의 나이에 신화 시대부터 덩샤오핑 시대에 이르는 중국사 전체를 36권으로 정리하겠다고 선포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역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021년 현재 ‘이중톈 중국사’의 기술은 제23권 명나라 영락제 시대에 이르렀다. 그는 어느덧 74세가 됐는데도 여전히 중국 남방의 어느 소도시에서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이 시리즈의 한국어판 역자인 나는 이 노장의 열정이 놀랍고도 두렵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고작 제16권을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는 끝내 죽음과의 경주에서 승리해 36권을 완간할 수 있을까. 또 나 역시 무사히 한국어판 36권을 완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중톈 중국사’는 그의 마지막 역작일 뿐 나는 그 시리즈의 한국어판을 내 마지막 역작으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정쩡한 50대 초입에서 그저 배회하고 있을 뿐 이중톈처럼 어떤 과업의 완수를 내 삶의 종착점이자 과녁으로 삼고 나 스스로를 쏘아 날리겠다는 마음가짐이 돼 있지 않다. 이따금 강남의 빌딩숲 사이를 헤맬 때면 난 어떤 스산한 느낌에 머릿속이 아득해지곤 한다. 언젠가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 뒤에도 강철과 콘크리트와 통유리로 이뤄진 이 거대한 구조물들은 계속 멀쩡히 이렇게 우뚝 서 있을 게 아닌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내 눈이 지각하고 내 의식이 재구성하지 않는 세계가 어떻게 내 사후에도 여전히 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존재 자체가 미심쩍은, 내가 부재하는 미래의 세상을 위해 내가 뭔가에 여생을 바치는 게 과연 지혜로운 일일까. 사실은 오늘 이 시간에도 내가 속한 이 세상의 운행을 위해 내게 부과된 역할을 바쁘게 수행하며 살아가면서도 문득문득 이런 허황된 상념에 빠지곤 한다.
  • [이은혜의 책 사이로 달리다] 독서와 개인 취향/글항아리 편집장

    [이은혜의 책 사이로 달리다] 독서와 개인 취향/글항아리 편집장

    독서에서도 에너지의 들고 남을 잘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어떤 책은 읽으면 에너지를 충전받는 느낌이 드는 반면 그 반대의 책도 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은 읽는 이의 텍스트 취향과 다소 관계 있고, 독서를 마쳤을 때 온 힘을 쏟을 만한 것이었나 하는 반추와도 관련된다. 가령 나는 탕누어의 ‘역사, 눈앞의 현실’이나 존 맥피의 ‘이전 세계의 연대기’를 읽었을 때 에너지 손실률 제로, 획득률 100%였다. 탁월한 두 책에선 저자가 평생 갈고닦은 세계관이나 글쓰기 기술이 압축돼 펼쳐지고, 난해한 문장들을 번역가가 꽤 많이 해결해 독서는 탄탄대로를 걷는다. 탕누어의 책을 번역한 김태성, 김택규, 김영문은 복잡한 문장 구조 탓에 혀를 내두르며 저자를 원망했다. 하지만 독자는 이런 과정 덕분에 탄복하며 읽기만 하면 된다. 그 길 위에서는 탕누어의 생각들이 선진 시대와 현대를 종횡하면서 철학과 문학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기에 시대적 이질감과 문명 간 생각의 격차는 사라지고 원하는 깊이까지 들어갈 수 있다. 맥피가 30년에 걸쳐 쓴 ‘이전 세계의 연대기’를 읽는 독자들은 지질학과 암석학, 지구과학에 익숙하지 않아 자신의 낮은 문해력을 실감하며 미국의 ‘80번 주간 고속도로’의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야 한다. 그렇지만 저자가 평생 발밑을 내려다보며 품은 호기심과 그것의 비밀을 풀 열쇠를 쥐고서 힘껏 독려하므로 독자는 몇 번이고 완주할 의지를 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독서를 마쳤을 때는 뭔가로 가득 찬 느낌만 남는다. 이렇게 충만해진 에너지는 어디로 흘러갈까. 내 경우는 고스란히 다른 책에 투여한다. 가령 ‘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이 그런 대상이다. 이 책은 미국의 한 발효 전문가가 수십년간 시도해 온 발효 기술을 900쪽에 담은 것으로, 발효 음식이나 음료의 기원, 발효 종자를 얻는 과정, 경험에서 배운 발효 노하우 등을 적고 있다. 이것을 읽으면 음식에 대한 세계관을 바꾸게 되고, 직접 발효 음식을 만들겠노라는 의지를 불태우게 되며, 세상의 모든 음식을 발효·비발효의 관점으로 보게 될 정도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독서 후 나는 에너지를 빼앗기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의 냄새도 맛도 잊은 채 오로지 텍스트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이 책은 계속 부엌을 오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실용서 범주에 드는 후자와 같은 책들의 미학은 뭘까. 그것은 행동하도록 동기부여를 한다. 가령 주식 투자 책을 읽으면 주식 계좌를 트고, 달리기 책을 읽으면 밖으로 나가 뛰게 된다. 이런 책들은 인생의 참맛이 책 바깥에 있음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하지만 실용의 세계에 대해 지식을 안겨 주는 책들은 (본질적으로 똑같은 책임에도) 독서를 방해한다. 사실 독서란 세상의 온갖 움직임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안으로 집중하려는 의지의 행위다. 그것은 원거리에서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게 하고, 각자의 생활 속 소음들을 숨죽이게 만들며, 우리가 한시바삐 붙좇고 있는 가치들이 과연 그럴 만한 것인가 점검하게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일부 책은 좁은 생각 속에 나를 가두고 내면에서 뭔가 질적인 변화를 이뤄 내기도 전에 문맥의 흐름을 끊고 머릿속을 음식과 투자와 운동의 의지로 충만하게 만드니 세상과의 거리두기는 실패하기 쉽다. 실용서와 비실용서의 유익함을 독자들은 안다. 다만 어떤 책은 나를 분해하면서 자신과 세계, 그리고 역사에 대한 통찰의 지류들을 내 안으로 끌어와 커다란 강을 만드는 반면 또 다른 종류의 책들은 실행력을 키우면서 나의 기능들을 훈련시켜 유용한 인간으로 만든다. 이때 그 실행력은 세상의 목소리들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큰데, 그 소리는 부와 권력, 힘과 친밀할 때가 많다. 아니,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모종의 소유욕으로 귀결되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나에겐 이런 종류의 책을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쉽게 양서로 꼽을 수 없는 이유가 된다.
  • 대산문학상에 김언·최은영·차근호·최돈미

    대산문학상에 김언·최은영·차근호·최돈미

    제29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김언(48) 시인, 최은영(37) 작가, 차근호(49) 극작가, 최돈미(59) 번역가가 선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은 3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올해 대산문학상 수상작을 발표했다. 대산문학상은 ‘민족 문화 창달’과 ‘한국 문학의 세계화’라는 설립 취지에 따라 매년 시, 소설, 희곡, 평론, 번역 등 5개 부문(희곡과 평론은 격년제)을 시상하는 국내 최대 규모 종합문학상이다. 수상자에겐 부문별 상금 5000만원과 함께 양화선 조각가의 청동 조각 상패 ‘소나무’가 수여된다. 수상작은 김언 시집 ‘백지에게’, 최은영 장편소설 ‘밝은 밤’, 차근호 희곡 ‘타자기 치는 남자’, 최돈미 번역가가 영문으로 번역한 김혜순 시집 ‘죽음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Death) 등 4개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백지에게’에 대해 “말의 꼬리를 물면서 연쇄적으로 펼쳐 가는 언어가 매력적으로, 슬픔과 죽음을 넘어서는 아스라한 목소리를 들려줬다”고 평가했다. ‘밝은 밤’에 대해서는 “외증조 할머니로부터 이어지는 여성 4대의 일대기를 통해 공적 역사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장대하게 재현했다”고 호평했다. 군부 독재 시절인 1983년을 배경으로 경찰관의 고뇌를 다룬 ‘타자기 치는 남자’는 억압과 권력의 폐해와 피해자의 영혼을 독자와 관객들에게 환기시킨 것으로 평가됐다. 최 번역가는 원작에서 나타난 죽음의 목소리와 한국적 애도 과정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김 시인은 “시집 제목을 정하면서 내심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생업에 쫓기며 틈틈이 시를 썼는데, 조금은 더 여유를 갖고 찬찬히 시를 써 나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 작가는 “데뷔한 지 8년이 됐는데 생각만큼 많은 작품을 쓰지 못했고 머뭇거리는 시간도 많았지만 이젠 많이, 빨리 써야겠다는 생각은 좀 내려놨다”며 “독자들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어떤 사람의 삶도 작지 않다, 자신의 삶도 마찬가지다’고 생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함께 발맞춰 걷다 보면 오늘을 또 견딜 수 있어

    함께 발맞춰 걷다 보면 오늘을 또 견딜 수 있어

    교통사고로 어린 딸을 잃은 ‘성수’는 삶의 동력을 잃고 아내와도 이혼하게 된다(‘사라지는 것들’). 해외로 떠난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관현악단 연주자는 아끼던 기타를 중고 시장에 내놓는다(‘미스터 심플’). 예기치 못한 대지진으로 일터를 잃은 종묘 해설사에게 당국의 문화재 복원 의지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스노우’).황순원문학상, 문지문학상을 받은 정용준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선릉 산책’ 속 인물들은 인생에서 저마다 실패와 상실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한편으로 이들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에는 어떤 대답도 찾지 못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남아 있는 이들’에게 억지로 해답을 찾아 주기보다 이들과 묵묵히 발을 맞추며 잔잔한 위로를 전한다. 소설에는 스스로를 괴롭히고 서로를 괴롭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어린 딸을 잃은 성수가 딸의 교통사고를 직접 목격한 어머니와 강화도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부주의로 손녀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그만 살기로 했다”고 선언한다. 납득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애도가 끝이 없어서다. ‘미스터 심플’의 주인공 프리랜서 번역가 ‘나’와 빨래방에서 만난 관현악단 연주자는 모두 불행한 가정사 탓에 자신에게조차 진짜 마음을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들은 중고물품 직거래 플랫폼에서 몇 차례 거래하면서 마음을 터놓고 자기 안의 슬픔과 대면하게 된다. 한편으로 소설 속 인물들은 주로 산책하면서 해답 없는 문제에 몰두하거나, 대화를 나누며 알기 어려운 진심에 가닿고자 애쓴다. 표제작 ‘선릉 산책’에서 발달 장애 청년 한두운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맡은 ‘나’는 두운과 선정릉 공원을 같이 걷는다. 처음에는 침을 함부로 뱉고 혼자서 식사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두운의 모습에 불쾌하고 당혹스러웠지만, 그의 놀라운 권투 실력을 알게 되면서 편견과 오해를 허물어 간다. ‘두 번째 삶’의 주인공 준범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남한강 산책로를 걸으며 10년 전 자신의 학교폭력으로 사망한 지운과 자신과 지운을 이간질한 동급생 한준일을 생각한다. 작가는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보다 나쁜 짓을 저지르게 한 사람을 어떻게 단죄할 것인가란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이들이 저마다 감정에 맞서는 이야기의 끝에서 손쉬운 해답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사라지는 것들’의 성수가 “흔들흔들 걷는 엄마가 찍어 놓은 발자국에 발을 포개어 걸었다”(40쪽)는 것처럼 조용한 산책의 시간이 쌓이다 보면 기분이 나아지고 우리 삶의 버거움도 한층 덜어 낼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작가는 “어떤 사람이든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비극이 있다”며 “우리가 슬픔이라고 생각한 감정도 시간이 많이 지나면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보석같이 단단하고 긍정적인 에너지 같은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을 산책하듯 가볍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표제작을 ‘선릉 산책’으로 정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인물들이 내딛는 여정에 따라 흘러가는 단편 7편이 주는 감동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읽으면서 불행을 되새기게 되지만 슬픔을 슬픔 아닌 쪽으로 보내는 작가의 섬세한 시선과 필력 덕 아닐까.
  •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함께하는 강서 행복한 인문학당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함께하는 강서 행복한 인문학당

    서울 강서구는 주민 인문학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행복한 인문학당’을 개설해 수강생을 모집한다고 21일 밝혔다. 강서 행복한 인문학당은 강서구 대표 강좌로 주민들이 행복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5년부터 연 2회씩 정기강좌를 마련해 고정 수강층을 확보해 왔다. 지난 상반기엔 영화를 주제로 온라인 강좌를 개설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강좌도 상반기에 이어 영화를 주제로 연출, 장치, 번역, 평론 등 영화 전반에 관해 다룬다. 강의 주제는 ▲시대를 보여주는 결정적 한 장면(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영화 속 음식 이야기(푸드 스타일리스트 정영선) ▲영화에서 훔치고 싶은 것들(번역가 이미도) ▲좋은 영화를 향한 지도(영화평론가 이동진) 등이다. 교육은 오는 26일부터 4주에 걸쳐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네이버 밴드를 통해 진행된다. 강서구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30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 신청은 오는 25일 오전 10시부터 강서평생학습관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수강료는 1만원이다. 구 관계자는 “지난 상반기 호응에 힘입어 더 깊이있는 테마로 영화 인문학 강좌를 준비했다”며 “삶의 지혜를 넓히고 영화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기회이니 주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2년 만의 대면 수업/번역가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2년 만의 대면 수업/번역가

    지난주 화요일 거의 2년 만에 대학에서 대면 수업을 시작했다. 그날의 첫 수업에 들어가 보니 여러 명이 빠져 있었다. 집안 사정으로 지방에 가 있어서 못 온다고 한 학생도 있었고, 아무 설명 없이 결석한 학생도 있었다. PCR 검사까지 받아 가며 힘들게 수업에 온 학생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래도 그들은 다 3, 4학년이어서 최소한 1년은 캠퍼스 생활을 맛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엄습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벌써 졸업이 코앞인 셈이어서 이제야 겨우 대학 강의실에 들어올 수 있게 된 1, 2학년 못지않게 어이가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대면 수업이 좋나요, 비대면 수업이 좋나요?” 나는 대뜸 이 질문부터 던졌다.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다들 쭈뼛대기만 했고, 그들의 표정을 읽으려고 해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여의치 않았다. 아마 한편으로는 좋고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싫고 귀찮을 것이다. 선생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오랜만에 1시간 반 가까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했는데, 앞으로 다시 일주일에 사나흘씩 그렇게 출퇴근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찔했다. 하지만 그날 두 번째 수업에서 만난 두 대학원생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20대 중국인 여학생인 그들은 한국 유학 후 내리 두 학기를 동영상 수업만 들었기 때문에 대면 수업을 할 수 있게 된 것 자체에 감격했다. 그 중 구이저우성 출신 A가 소리쳤다. “학부 강의도 청강할 거예요. 한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어요!” 산지인 구이저우성은 중국에서도 깡시골에 속한다. 기껏 한국의 대도시에 유학을 왔는데, 매일 좁은 셋방에 처박혀 밤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산둥성 출신 B는 대도시 지난에서 왔지만, 한국어를 잘 못하고 성격도 소극적이어서 코로나 시국의 한국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너희, 못 먹어 본 한국 음식 있으면 다 말해!” 수업을 마치고 젊은이는 절대 안 갈 듯한 오래된 고깃집에 함께 갔다. 둘 다 양념 돼지갈비를 못 먹어 봤다고 해서였다. 아침을 늦게 먹어 입맛이 없던 내가 가위를 들었다. 고기가 금세 익길래 서둘러 고기를 썰어 나눠 주며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선생님, 완전 감동이에요. 꼭 아빠 같으세요.” 아니,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었기로서니 이제 학생한테 오빠도 아니고, 삼촌도 아니고, 아빠 같다는 소리를 듣게 됐나. 서글픈 생각이 확 들려는데 문득 A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갔다. B가 또 말했다. “저희는 이번 추석에도, 지난 설에도 집에 못 갔어요. 우리 중국인은 설 연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잖아요. 하지만 중국에 가면 자가격리 3주, 한국에 돌아오면 자가격리 2주여서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감당할 수 없었어요. 부모님도 오지 말라 하시고….” 내가 무슨 위로를 해줄 수 있었겠나. 잠자코 고기만 굽고 있다가 불쑥 부모님과 통화는 자주 하느냐고 물었다. 역시 한국이나 중국이나 딸은 달랐다. 아침저녁으로 영상통화를 한다고 했다. “따님하고 매일 영상통화하지 않나요? 얼마 전에 영국 갔다면서요.” 맞다. 내 딸도 지금 해외살이 중이다. 난생처음 집을 떠나서 그런지 역시 매일 한두 시간씩 엄마와 열렬히 영상통화를 한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전에 이미 완성됐지만, 보편화되지 못한 기술과 미리 예견되었지만 실현되지 못한 사회상이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생활 속에 성큼 들어왔다. 이 감염증은 조만간 인류에 의해 통제되겠지만 우리의 바뀐 삶 중 상당 부분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미래를 구성할 것이다. 방금 친한 중국 작가에게 메시지가 왔다. 내일 중국 문단에서 온라인 작가 간담회가 열리는데, 한국의 중국 문학 번역가 자격으로 참가해 몇 마디 해주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정중히 사양하며 말했다. “2년 동안 중국에 갈 기회도, 중국인을 만날 기회도 없어 중국어를 다 까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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