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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방대책 철저한 재점검을(사설)

    전국에 걸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가 쏟아져 곳곳에서 인명과 재산피해가 잇따르고 있다.기상대에 따르면 장마전선이 오는 15일까지 우리나라에 걸쳐 있게 돼 곳에 따라 아직도많은집중호우가예상된다고한다.앞으로 얼마나 더 큰장마피해가 있을지 걱정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호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장마에 대비한 당국의 대책과 관계공무원들의 비상체제가 아직도 허술한 점을 드러내고 있다는데 있다. 엊그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지역에 내린 비로 입은 물난리만 해도 그렇다.집중호우라고는 하지만 불과 1백㎜ 안팎의 비에 예년과 똑같은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는 것은 어딘가 수방대책이 허술하다는 점을 입증해주는 것이었다.게다가 2단계 비상근무령이 내려져 하수국·도로국·주택국등의 관계자들이 합동근무를 해야 하는데도 재해대책본부엔 하수국 직원이외에 타국직원은 근무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당국의 수해방지대책의 실상을 보는 듯하다.크게 반성할 대목이다. 수도 서울의 수해대책이 고작 이 정도라면 다른지방의 경우는 더할것이다.수해대책에 대한 이같은 당국의 만성적인 타성은 시급히 청산되지 않으면 안된다. 장마철이 되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예상하지 않는바는 아니다.자연재해라는 것이 워낙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울 뿐만아니라 설령 예측한다 하더라도 이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그렇지만 아무리 예고없이 찾아오는 자연재해라 해도 사전에 대비를 철저히 한다면 그 피해는 최소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특히 장마전선이 우리나라에 접근하기 훨씬 이전부터 수해대비를 해왔고 집중호우에 대한 예보도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물난리는 더이상 겪지 말아야 한다. 특히 매년 겪는 일이지만 수해는 거의 저지대에서 발생하고 있다.따라서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의 피해가 많게 마련이다.당국은 수해대책을 세우고 시행할 때 이들 저소득층의 생활을 보호한다는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더 큰 피해를 입지 않게 하기위해 수해대책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위험지역은 없는지,하수구가 막힌 곳은 없는지,고장난 펌프장은 없는지를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관계공무원들의 비상근무체제도 차제에 완벽하게 갖추도록 해야 한다. 수해는 그 예방대책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사후의 이재민 구호와 복구작업도 소홀히 함이 없어야겠다.수해복구장비나 인원등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하루빨리 이를 보충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할 것이다.
  • 호우·해일 전국 큰 피해/전주 최고 282.8㎜

    ◎12명 사망·실종… 이재민 속출/농경지 7천2백89㏊ 침수/오늘도 1백20㎜ 더 내릴듯 천둥·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가 3일째 쏟아진 13일 가옥과 농경지가 침수되고 교통이 두절되는 등 전국 곳곳에서 비피해가 잇따랐다. 또 이날 상오 일본 홋카이도 서쪽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의 영향으로 동해안 지역에 해일이 일어 선박 57척(해경 집계)이 침몰하거나 파손됐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지난 11일부터 내린 호우로 이날 현재 12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2백19가구의 주택과 농경지 7천2백89㏊가 물에 잠겼으며 모두 39가구 1백26명의 이재민이 났다고 밝혔다. 또 주택 32채,하천시설 10곳,수리 및 소규모시설 29곳,축대·담장·축사 등 21곳이 파손된 것으로 집계됐다. 기상청은 『중부지방에 걸친 강한 비구름대의 영향으로 중부 및 영·호남북부지방에 시간당 10∼30㎜의 집중호우가 내렸으며 14일에도 곳에 따라 30∼1백20㎜가 더 오겠다』고 예보하고 『이번 비는 15일 상오까지 이어진 뒤 16일 소강상태를 보이다 17일부터 장마전선이 다시 활성화돼 전국에비를 뿌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호우는 특히 농경지가 많은 호남지방에 집중적인 피해를 가져왔다. 전주의 2백82.8㎜를 비롯,평균 1백70여㎜의 폭우가 쏟아진 전북지방에는 김제·정읍·고창 등 농경지 4천6백79㏊가 침수됐고 전남지역은 2천1백㏊의 논·밭이 물에 잠겼다. 서울에서는 이날 상오 11시30분쯤 강남구 잠실동 탄천고수부지 강남면허시험장 1만4천여평이 침수돼 이날 치를 예정이던 실기시험이 23일로 연기됐다. 한편 서해중부 해상의 폭풍과 동해안의 해일로 동·서해안 연안 여객선 10개 항로의 운항이 중지됐으며 선박 3만4천여척과 피서객들이 대피해 있다. 이날 하오 11시까지 지역별 강수량은 전주 2백82·8㎜,부안 2백30㎜,광주 1백95㎜,서울 1백86㎜,원주 1백76㎜,선산 1백71㎜,수원 1백60㎜,거창 1백53㎜,대구 1백22㎜ 등이다. ◎아파트 붕괴위험/주민 긴급대피 【전주=조승용기자】 13일 하오 3시쯤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산 220의1 신천지아파트 D동 40가구 주민들이 장마비로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며 경찰과 전주시청에 신고했다. 주민들은 『이 아파트가 야산을 깎아 축대를 세워 준공했으나 장마비로 축대에 물이 스며들어 지반이 약해진데다 아파트 곳곳에 균열이 생겨 붕괴의 위험이 높다』고 주장했다. 전주시와 경찰은 이에따라 토목관계 전문가들을 불러 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 아파트 지반과 아파트 뒤 절개지 축대에 상당량의 물이 스며 붕괴 위험이 높다고 판단,이날 하오 4시쯤 입주민 40가구 1백50여명 전원을 인근 전주교대로 긴급 대피시켰다. 전주 대산건설(대표 황길평)이 지난 89년 완공한 이 아파트는 그동안 부실시공으로 아파트 벽면 곳곳에 균열이 생기고 물이 스며들어 주민들이 하자보수를 요구하며 관계기관에 여러차례 진정하는 등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 벼락칠땐 귀금속 휴대 “금물”/장마철 낙뢰피해 예방요령

    ◎금목걸이·반지·골프채 위험/큰나무 피해 엎드려야 안전/맞으면 10억v의 전류 통과 벼락을 동반한 집중호우가 계속되면서 인명피해가 잇따르고 있다.지난 주말에도 2명이 목숨을 잃고 3명이 크게 다쳐 벼락 피해예방을 위한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 번개는 구름속에서 분리,축적된 음·양의 전하끼리 또는 구름속의 전하와 지면에 유도되는 전하 사이에서 생기는 불꽃방전이다.이 불꽃이 지상으로 이어지면서 물체나 지점에 충격을 가할 때 이를 벼락이라고 한다. 벼락이 칠때는 10억v 정도의 전압과 5만 암페어의 전류가 흘러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갖고 있다.전류가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이나 짐승이 맞으면 벼락의 전기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면서 절명케하거나 크게 화상을 입힌다. 천둥번개가 칠때는 외출을 삼가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이다.이런 날씨에 외출을 하거나 들판에서 일을 하는 경우이면 피해예방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벼락이 칠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의 자세이다.일반적으로 벼락의 피해는 서있을 때가 제일 위험하다.앉아있더라도 골프채,낚싯대 등을 쥐고 있으면 벼락을 끌어 들일 위험이 높다.따라서 들판에서 벼락이 칠때는 물체에서 손을 떼고 낮은 자세로 엎드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차량운행시는 차를 세우고 차안에 머무는 것이 좋고 전화중이면 바로 끊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넓은 벌판에서 벼락이 치면서 세찬 소나기가 내릴때 큰 나무 아래로 대피하는 것은 금물이다.이때는 움푹 파인 곳이나 동굴로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전기가 잘 통하는 금목걸이나 반지 등 귀금속도 가능하면 잠시 몸에서 떼어 놓아야 한다.
  • 전국에 오늘도 큰비 내린다/최고 1백50㎜

    ◎경남에 호우경보… 15일까지 계속/11·12일 호우… 낙뇌 등에 9명 사망·실종 【전국 종합】 11일 낮부터 12일까지 전국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가 쏟아져 8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으며 도로가 불통되고 가옥 및 농경지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12일 벼락에 맞거나 급류에 휩쓸려 8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이날 하오12시 현재 전주 2백6·8,완주 1백84,광주 1백79.7,서울 95.3㎜의 강우량을 기록한 가운데 경남 서부내륙지방에 호우경보가,경북 및 경남 중부내륙·전북지방에 호우주의보가 각각 발효중이다.기상청은 『13일까지 서울 등 중부지방에 30∼70㎜,호남 및 충청에 60∼1백50㎜,영남 20∼60㎜ 등의 비가 더 내리겠다』고 예보하고 『이번 비는 15일까지 이어지겠으며 총예상강우량은 1백50∼2백30㎜가 되겠다』고 전망했다. 이번 비는 특히 강한 천둥·번개를 동반해 곳곳에서 낙뢰사고가 속출했다. 한편 이번 호우로 연안여객선 10개 항로 55척의 운항이 통제되고 있으며 1만2천7백6척의 각종 선박이 항·포구에 대피해 있다.
  • “오늘의 한국민주화 「제2한강기적」”/한미정상회담 첫날 이모저모

    ◎황영조우승 들어 강인성 찬사/클린턴/“대한 안보협력 매우 값진 투자”/김 대통령 ▷청와대 도착◁ ○…클린턴대통령 내외는 서울공항에서 검정색 리무진을 타고 하오 2시42분 청와대본관 현관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김영삼대통령 내외의 영접을 받았다. 클린턴대통령은 김대통령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면서 김대통령과 악수했고 김대통령은 영어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대답.클린턴대통령은 손명순여사에게도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 힐러리여사도 김대통령과 손여사에게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 김대통령 내외와 클린턴대통령 내외는 이어 나란히 현관 로비에 들어섰고 클린턴대통령은 로비 오른쪽편에 마련된 방명록에 「빌 클린턴」이라고 서명. 이어 두나라 대통령 내외는 1층 계단에 서서 기념촬영. ○…이어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본관2층 접견실에서 단독정상회담을 시작. 두 대통령은 먼저 사진기자들을 위해 다시한번 선채로 악수를 한뒤 상대측 배석자들과도 악수를 나누고 좌정. 김대통령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다리를 포개고 앉았고 클린턴대통령은 혈색좋은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띤채 두다리를 가지런히 하고 바로앉은 자세.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도쿄에서 열린 G­7 회담에 대해 잠시 언급했는데 클린턴대통령이 회담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전하자 김대통령은 회담에서 클린턴대통령의 역할이 성공적이었다며 축하인사. 이어 클린턴대통령은 작년에 김대통령과 함께 선거운동기간을 보낸 점을 지적하면서 당시 김후보의 활동에 무척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인사. ○…클린턴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하오 2시 부인 힐러리여사와 함께 미공군 1호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영접나온 한승주외무장관과 반갑게 악수. ▷정상회담◁ ○…두사람의 단독회담시간은 당초 예정보다 배정도 늘어난 55분간 진행. 이어 두대통령은 접견실옆의 집현실로 자리를 옮겨 외무·국방장관등 배석자들을 참석시킨 확대회담을 시작. 두대통령은 여기서도 먼저 카메라를 위해 다시 악수를 나눈뒤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의 차례로 각기 배석자들을 소개. 김대통령은 『단독회담에서대단히 유익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처음 만났지만 옛 친구를 만난듯 시간이 길어졌고 모든 문제에 걸쳐 의견을 교환했다』고 좌중에게 설명. 김대통령은 이어 『올해는 마침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4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우리 두사람은 지금껏 한미동맹관계가 매우 효율적으로 지속되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상호이익을 위해 유지·강화되기를 희망하며 미국의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언급. ▷국회연설◁ ○…하오 4시45분 여의도 국회에 도착한 클린턴대통령은 의장접견실에서 이만섭국회의장,김종필 민자·이기택 민주당대표,황락주·허경만 국회부의장등과 20여분간 환담. 클린턴대통령은 이어 이광로국회사무총장의 안내로 본회의장에 입장,이국회의장의 환영사를 경청한뒤 30여분동안 연설.클린턴대통령은 이날 예전의 미대통령들과는 달리 프롬프터(영상자막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특유의 힘차고 자신감있는 어조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기조를피력. 클린턴대통령은 특히 김영삼대통령의 출범을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민의 업적』이라며 거듭 축하한뒤 『언젠가는 한국의 인위적인 분단이 끝날 것으로 믿는다』고 자신에 찬 어조로 언급. 클린턴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은 서구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라 대내정신에서 생기는 것이며 보편적 열망』이라고 역설하며 공개된 선거,노조,언론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뒤 「아시아민주주의방송」창설을 제안. 클린턴대통령은 『바르셀로나올림픽때 한국의 황영조선수가 최후의 언덕을 넘어 우승할 수 있었던 에너지·지구력은 한국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그런 정신을 존경한다』는 말로 연설을 마감. 이날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클린턴대통령은 모두 7차례에 걸쳐 의원들의 박수를 받았으며 연설을 마친뒤 앞쪽과 중앙통로에 앉은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힐러리여사와 함께 퇴장. 한편 이날 연설도중에 김영진의원등 민주당 소속 의원 10여명은 『쌀은 우리 민족의 혼』이라고 한문과 영문으로 쓴 종이 피켓을 자신들이 앉은 의석에서 들고 있으며 미국의 쌀 수입개방 압력에 대한 항의의 뜻을 전달. ▷청와대 만찬◁ ○…김영삼대통령이 클린턴대통령 내외를 위해 이날 저녁 청와대 본관에서 베푼 공식만찬은 저녁 8시쯤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시작돼 10시까지 진행. 김대통령은 만찬사에서 클린턴대통령 내외의 방한에 환영의 뜻을 거듭 표한뒤 『각하의 이번 한국방문은 민주주의와 개방경제 그리고 지역평화를 함께 추구하는 우리 두나라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 클린턴대통령은 답사에서 우리나라의 민주발전을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하고 『대통령각하께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기 쉽지 않을때 용기있는 목소리로 민주주의를 외쳤다』며 김대통령의 민주화공적을 치하. 이날 양국대통령의 만찬사와 답사는 당초 통역없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클린턴대통령이 즉석에서 통역을 요청,순차통역으로 진행됐으며 클린턴대통령은 통역으로 인한 답사시간이 길어지자 당초 배포했던 답사내용중 상당부분을 생략. 만찬을 마친뒤 김대통령 내외는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숙소로 향해 출발하는 클린턴대통령 내외를 본관 현관에서 전송. 이날 만찬 참석자들은 새정부 출범후 간소해진 의전절차에 따라 연미복 대신 평복정장을 입었고 부인들은 한복차림이었으며 식사메뉴는 순수한 한국식에따라 신선로에 곁들인 국과 밥이 주식으로,구절판 호박죽 잣죽 전등을 후식으로 제공. 한편 김대통령은 11일 클린턴대통령과 함께 조깅을 한 직후 「대도무문」이라는 친필휘호를 선물할 예정. □클린턴대통령 수행원 명단 ◇백악관 ▲로이 닐 대통령비서실차장 ▲브루스 린지 백악관인사국장 ▲데이비스 거겐 대통령자문관 ▲조지 스테파노폴리스 대통령정책담당선임보좌관 ▲마크 기어렌 대통령홍보실장 ▲마샤 헤일 대통령일정담당보좌관▲디 마이어스 대통령공보비서관 ▲낸시 헌라이시 대통령일정담당부보좌관 ◇국가안보회의 ▲앤터니 레이크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 ▲윌리엄 이토 국가안보회의 행정보좌관 ▲제레미 라스너 대통령특별보좌관(의회담당) ▲샌드라 크리스토프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보좌관 ▲짐 리드 국가안보보좌관비서관 ◇국무부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 ▲토머스 도닐른 홍보담당차관보 ▲윈스턴 로드 동아태차관보 ▲레이몬드 버가트 주한미대사대리 ◇국방부 ▲레스 애스핀 국방장관 ▲짐 클래퍼 국방정보본부장 ▲로버트 앨리스국제안보담당부차관보 ◇재무부 ▲래리 서머스 재무부국제담당차관 ▷클린턴대통령 답사◁ 대통령각하내외분,그리고 귀빈여러분!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쉽지 않은 때에 각하께서는 민주주의의 대변자였습니다.각하께서 보여준 용기는 한국민이 보다 새로운 차원에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 왔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각하의 지도력은 한국민들을 보다 강력하게 발전시키고 싶어하는 위민적 충정의 발로인 것으로 믿어집니다. 한국의 발전은 군인·근로자·기업가·교사·학생등 이 아름다운 나라를 정치경제적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해온 수많은 한국민들의 몫입니다. 서정주씨는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밤새도록 천둥과 번개가 울었나보다고 썼습니다.그러나 아침이 되었을 때 한송이 국화는 활짝 피어납니다. 한국국민들은 이제 자랑스럽게 활짝 피어났습니다.축의를 드립니다. 나는 모든 한국민들이 백두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북한사람들이 서울의 위용을 목격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합니다.그리고 반드시 그날이 오리라고 확신합니다.통일되는 날 미국은 한국의 곁에 나란히 서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조국을 성취하려는 한국민들의 친구가 되고 동맹국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김영삼대통령 만찬사◁ 존경하는 클린턴대통령각하 내외분,그리고 내외귀빈여러분! 우리 두나라 국민은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는 전환기에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켜 새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한안보협력이 매우 값진 투자였음은 오늘의 발전된 한국이 실증해 주고 있습니다.한미안보협력을 바탕으로 확보된 평화속에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의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습니다.북한은 모험주의적 대결정책을 고집하고 있으며 핵무기개발의혹으로 한반도와 전세계의 평화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한미간의 긴밀한 공조체제는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노력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나는 각하께서 「신태평양공동체」를 주창하신 것을 유념하고 있습니다.우리 두나라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지속적인 번영에 기여하기 위해 동반자관계를 확대해야 합니다. 나는 앞으로 두나라의 경제관계가 단순한 교역파트너로부터 과학·기술·산업·문화·예술등 모든분야에서 협력하는 명실상부한 포괄적 동반자관계로 발전되기를 기대합니다.
  • 산행때 폭우 대비 이렇게/물 불어난 계곡 건너지 말도록

    ◎야영은 장마 최고 수위보다 높은곳서/비올때 텐트 비닐로 덮으면 질식 위험 피서로 알맞은 여름철 등산.그러나 장마와 급격한 기상변화로 비 피해가 우려된다. 국내 산악조난사고 통계를 보면 46%가 여름철에 집중해 있으며 이중 대부분이 비피해와 관련된 것들이다.따라서 여름철 등산은 짙푸른 녹음을 즐길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지만 많은 위험도 함께 지니고 있다 하겠다.특히 장마기간중이라도 잠깐 햇볕든날 반짝 산행을 감행하는 등산애호가들이 많아 그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고 하겠다. 또 여름철 산은 종종 급격한 기상변화로 예상치 못한 비피해를 몰고오기 때문에 산행에 있어 항상 비에 대한 대비책이 요구된다.여름철 등산 비피해 대비요령을 알아봤다. ◇배낭꾸리기=여름철 등산 배낭에는 비가 오면 안의 내용물들을 집어넣을수 있도록 한쪽을 봉한 비닐자루를 항상 지참하는 것이 좋다.특히 습기에 약한 사진기나 손전등·라이터·지도·나침반 등을 위한 조그만 비닐봉지도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가 온다고 배낭을 비닐로덮어씌우는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요인이 된다.가끔 라디오로 일기예보를 경청하되 국지예보는 잘 맞지 않으므로 과신하지 말아야 한다. ◇복장=햇빛이 나고 날씨가 덮더라도 비와 습기를 막아주는 방수투습성 재킷과 물에 젖어도 보온이 되는 모직 상의류를 여벌로 반드시 준비해가야 한다.여름철이라고 해서 반팔 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산행에 나섰다가 비를 만나면 여지없이 졸리고 짜증이 나는 저체온증에 걸리기 쉽다. 비에 대비한 방수투습성 의류를 고를때는 어깨에 봉제선이 들어가 있지 않은것을 택하는 것이 좋다. ◇계곡횡단=여름철 산행중 폭우를 만났을때 가장 곤란한 것은 물이 불은 골짜기를 건너는 일이다.여름철 산악조난사고 대부분이 물이 불은 골짜기를 건너다 일어났다. 물이 불은 골짜기는 얕아도 물살이 거세 위험하므로 되도록 건너지 말고 지도를 참조해 다른 길을 잡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정 건너야 한다면 하류보다는 물줄기가 약하고 가는 상류로 올라가 건너도록 한다. 이도 어렵다면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야영하며 물이 줄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야영=계곡가에서 야영할 경우 지난 장마때 물이 최대한 차올랐던 선을 확인하고 그 선 위에 야영지를 정해야 한다.텐트를 칠때는 덧씌우개(플라이)가 텐트 본체에 닿지 않도록 팽팽히 당겨주어야 비가 오더라도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물고랑도 덧씌우개 경계선 안쪽으로 파야 빗물이 텐트 바닥으로 스며들지 않는다.천으로된 덧씌우개 대신 비닐을 텐트 위에 덮는 행위는 자칫 환기구까지 막아 질식사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낙뢰예방=비가 오면 자주 찾는 능선길은 천둥번개가 치면 낙뢰(벼락)를 맞기 쉽다.머리카락이 쭈빗거리며 곤두서거나,등산로에 설치된 철책·전선 등에서 푸른빛이 나타나거나 또는 피켈·배낭의 프레임·텐트의 금속제 폴 등에서 스파크 현상이 일어나는 등의 방전현상이 있으면 벼락권에 들어있다는 징후이므로 일대를 신속히 벗어나거나 짐을 벗어버려 위험을 피해야 한다. 산의 정상이나 능선,나무가 적은 암벽,외따로 서있는 나무밑,철책이 가설된 등산로,넓고 평탄한 지형에설치된 텐트 등은 낙뢰의 표적이 되므로 피해야 한다.이밖에 낙뢰는 직접 맞지 않더라도 지표를 통해 우리 몸에 치명적인 상해를 줄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 과전류 차단기 작동·누전 확인/장마철 감전 예방

    ◎큰건물 누전경보장치 서둘러 설치/번개칠땐 재료 접촉 금지/농촌 양수기 등 보호 설비 갖추어야 장마철이 되면 감전의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연일 비가 오면 대기중 습기가 높고 가옥을 비롯한 각종 건축물의 전기설비와 금속물질등이 누수로 인해 통전·감전사상자가 발생하기 쉽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우기를 맞아 7월 한달을 장마철 전기안전 강조기간으로 설정,국민들의 감전예방에 주력하고 있는데 장마철 전기 안전사용 요령을 알아본다. 일반가정에서는 집안 전기설비중 누전차단기나 과전류차단기가 확실하게 작동하는지 미리 확인 해두는것이 중요하다.누전차단기에 붙은 빨강 혹은 초록색 버튼을 눌러 손잡이 스위치가 순간 차단되는지를 점검,자동작동 여부를 알아둘것. 큰건물에서는 누전이 되면 경보가 울리는 누전경보장치를 설치하면 침수시 자동으로 경고벨이 작동,위험요인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일단 번개가 시작되면 안테나가 설치된 TV 플러그는 반드시 뽑는것이 안전하다.특히 번개가 치는동안은 건물내외에서 전기가설을 하거나 금속성 재료를 만지는 일이 없어야 하며 농촌에서는 전깃줄이나 전기기계를 들고 농로를 다니는것은 절대 금물이다. 처마를 통해 들어오는 전선껍질이 벗겨졌을 경우에도 이 나선에 빗물이 흘러내리면서 건물 쇠붙이같은곳에 누전,감전되기 쉽다.따라서 처마로 들어오는 전선이 건물 모서리와 맞닿아 껍질이 벗겨져있지 않은지 특히 양철지붕인 경우엔 전선이 늘어져 닿아있지 않은지 살피도록 한다.전선이 노후됐을 경우 지붕위나 건물벽등에 늘어져 있게되면 전선피복 흠집을 통해 누전될 수 있으므로 가까운 전기공사업체에 의뢰,수리 하도록 할것. 또 장마철 지하가 침수되는 경우 지하실에 설치된 콘센트나 전기배선이 침수되면 바닥에 고인물에 통전돼 물을 퍼내려고 들어설때 맨발로 들어서면 감전됨을 알아둘것. 농촌의 경우 양수시설은 대개 들판에 있고 전기배선은 집에서 끌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들판에 있는 전기 스위치(두꺼비집)는 오랫동안 강한 햇볕을 받아 손잡이가 파손되고 전선 접속나사가 빠져있거나 전선피복이 갈라져 사용시 감전 혹은 합선될 염려가 있다.따라서 농촌 양수기와 개폐기 전선등은 햇볕가리개나 빗물차양등 보호설비를 갖추는것이 좋다.강한 태풍으로 전선이 늘어지거나 끊어지면 절대 접근하지말고 「123」전기고장 신고전화나 가까운 한전 사업소에 연락하도록 한다.전기제품이 침수됐을 경우엔 세척하여 그늘에 잘말린다음 취급처에 연락 ,사후봉사로 점검을 받아 사용 하는것이 안전하다.이밖에 기타 전기 안전관리에 관한것은 한국전기안전공사(02­440­22 71)로 문의하면 상세히 알려준다.
  • 전주 1백98㎜

    【전국 종합】 전국이 장마권에 들어간 가운데 28일 밤부터 29일까지 내린 비로 전북과 충청 남부지방 곳곳에서 농경지가 물에 잠기고 산사태가 나는 등 비 피해가 잇따랐다. 이 비로 29일 상오 4시20분쯤 전주 완산구 효자동 2가 상록어린이집 뒷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김삼규씨(44)의 슬레이트 집을 덮쳐 김씨의 부인 정경순씨(36)와 아들 종표군(11)이 흙더미에 깔려 숨졌다.이날 상오 6시10분쯤에는 전남 완도군 약산면 가래리 마을앞 1백50m 해상에서 목선을 타고 낙지를 잡던 최병희씨(65·완도군 약산면 장용리 976)가 천둥 번개소리에 놀라 바다에 빠져 숨졌다. 또 정주시 농소동 참외 재배단지와 남원군 운봉면 화훼단지 5백여㏊를 비롯,전북 도내 농경지 5천2백여㏊가 물에 잠겼다. 특히 전북지방에는 이날 하오 6시 현재 전주의 1백98.7㎜ 최고로,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 전국에 장마호우/기상대/남부에 경보… 150∼250㎜ 예상

    ◎중부엔 강풍동반 폭우/정주 어제 1백20㎜ 쏟아져/농경지 5백㏊ 침수/서울은 8㎜ 내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8일 전북 정주지방에 최고 1백20㎜의 집중호우가 쏟아진 것을 비롯,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려 농경지가 침수되고 빗길교통사고가 일어나는등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랐다. 서울에서는 이날 하오 부터 내린 비로 도심교통이 체증을 빚어 퇴근길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으며 호우경보가 내려진 경남북과 전북 정읍·김제군 일대에서는 저지대 농경지 5백여㏊가 침수되는가 하면 전주시 팔복동 제1공단 순환도로 6㎞가 물에 잠겼다.또 전남과 충청지방 곳곳에서는 많은 도로가 유실되기도 했다.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서해남부및 남해전해상에는 3∼4m의 높은 파도가 일어 항·포구마다 많은 어선들이 발이 묶였다. 기상청은 이번 장마가 『일본 규슈지방에 머물고 있던 장마전선이 활성화되면서 빠르게 북상,강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구름대가 형성돼 영·호남지역에 많은 비가 내렸다』고 밝히고 이 비는 30일 새벽까지 서울등 경기·강원지방에 40∼1백㎜,충청지방 70∼1백30㎜,남부 1백50∼2백50㎜의 비를 내린뒤 소강상태를 보이다 다음달 3일부터 다시 계속되겠다고 예보했다. 29일 0시 현재 강우량은 정주 1백20㎜,부안 1백5.7㎜,전주 93.3㎜,거창 91㎜,장수 85㎜,대구 81.4㎜,합천 63.5㎜,남해 57.5㎜,부여 49.5㎜,광주 40.8㎜,대전 34.1㎜,서울 8.1㎜등이다.
  • 김정일 선전에 백두산 자연현상까지 미화(북한 이모저모)

    ◎농촌총각 결혼문제 심각… 처녀들 이주 장려 ○정일봉에 신기한 현상 ○…북한의 중앙방송은 2일 김정일의 출생지로 선전하고 있는 백두산밀영 정일봉 상공에 지난 5월23일 전례없는 번개와 우레,큰비가 내리는 등 신기한 자연현상이 잇따랐다고 주장. 북한방송은 이날 현지 주민의 목격담이라면서 『밤 10시경 정일봉 상공으로부터 백두산쪽으로 유난히 눈부시고 댕기처럼 길다란 불줄기가 먹장구름을 갈기면서 건너갔으며 잠시후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요란한 우레소리가 땅위의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 또한 『예로부터 6월말이나 7월초에야 볼 수 있었던 번개와 우레,큰비가 5월에 나타난 것만도 양강땅이 생긴이래 처음인데 그 모든 현상이 전례없는 것으로 해서 목격자들이 받은 인상은 더욱 강렬했다』고 이 방송은 주장. ○노래까지 만들어 권장 ○…북한에서도 농촌총각들의 결혼문제가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북한에서 농촌총각 결혼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청장년층에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3D현상(더럽고,위험하고,어려운일 기피현상)의 하나로서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처녀들이 거칠고 힘든 농촌으로 시집가기를 꺼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따라 북한은 최근들어 처녀들의 농촌진출을 적극 장려하기 위해 「도시처녀 시집와요」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어 각지에 보급하는 한편 이 노래를 소재로 같은 제목의 극영화까지 제작한 것으로 평양방송이 5일 보도했다. ○“사회주의 고수” 결의 ○…북한은 최근 생산현장에서 「전시가요」(군가)를 대대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1일 북한각지의 사회주의 건설장들에서 「전시가요」가 힘있게 울려퍼지고 있다고 전하면서 6·25당시 불렸던 「우리의 최고사령관」「결전의 길로」「강철의 대오는 전진한다」「복수하리라」등이 폭넓게 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전승」(휴전협정)40주를 맞으며 생산현장의 건설자들이 「전시가요」를 부름으로써 제국주의자들의 도전과 침략을 분쇄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고수해 나갈 결의를 다지고 있다면서 필승의 신념을 간직,생산과 건설에서 혁신을 일으킬 것을 강조했다. ○농가별 가축사육 독려 ○…북한은 최근 각지 협동농장과 농가별로 초식 집짐승을 많이 기를 것을 독려하고 있다. 북한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최신호에 게재한 「풀먹는 집짐승을 많이 기르자」제하의 글을 통해 『풀먹는 집짐승을 많이 기르는 것은 고기생산을 빨리 늘리는 좋은 방도의 하나』라고 지적하고 각지 농촌들에서 초식 집짐승을 많이 기르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을 촉구했다. 또한 목초지와 방목장 확보를 위해 간부들이 현지답사를 통해 적지를 찾아내고 기존의 목초지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양,염소,게사니(거위)등을 방목하기 위한 사업에 힘쓸 것도 요구했다.
  • 영호남 큰비… 20명 사망·실종/장흥 177㎜ 최고

    ◎곳곳서 산사태·도로 불통/농경지 3만㏊ 침수·유실/선박 1백여척 침몰·파손 1일 밤부터 2일 하오 늦게까지 전국에 강한 바람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가 쏟아져 19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등 비피해가 잇따랐다. 이번 비바람으로 선박 1백여척이 부서지고 농경지 3만여◎가 침수됐으며 전남에서만도 비닐하우스 5만여평이 물에 잠겼다.또 이날 하룻동안 제주∼부산,서울∼속초 등 일부 지역에서 모두 38편의 항공기 운항이 취소됐으며 여객선 운항이 전면 중단돼 섬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발이 묶였다. 이처럼 인명피해가 많았던 것은 해상에서 조업하고 있던 선박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강풍에 휘말려 침몰하거나 좌초됐기 때문이다.인명피해는 전남에서 14명,부산과 경남에서 6명이 발생했다. 이번 비는 이날 하오10시까지 전남 장흥지방에 1백75㎜가 내린 것을 비롯,설악동 1백58·5㎜,고흥 1백29·5㎜,산청 1백11·6㎜,서울 78㎜ 등이 내렸다.기상청은 3일하오 늦게 비가 그칠것이라고 예보했다. 2일 상오11시쯤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 북방52마일 해상에서 선원 8명을 태우고 항해중이던 인천 선적 남해호(선장 강정윤·42)가 구조요청을 한 뒤 통신이 끊겼다.또 전남 여수시 오천동 해안에 정박중이던 경남 남해 선적 운지호가 파도에 휩쓸려 선원 곽형점씨(33·여)등 2명이 숨져 전남에서만 모두 5건의 선박 사고로 14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경남 고성·거제와 부산에서도 고기잡이를 하거나 배를 선착장으로 옮기던 6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특히 이날 전남 해안지방에는 모두 1만2천여㏊의 보리밭이 물에 잠기고 5만여평의 비닐하우스가 부서졌다. 경남지방에서도 논밭 1만여㏊가 침수되고 감·사과 등 과일나무 가지가 부러지는 등 농가 피해가 속출했다. 한라산 지류의 36개 하천이 넘쳐 하류의 제주도 저지대 주민들이 대피소동을 벌이기도 했으며 풍랑으로 모두 1백여척의 배가 파손되거나 침몰했다. 강원도 정선군 고천리 야산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한춘근씨(33)의 집 등 가옥 3채가 파손되는 등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사망 및 실종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사망 ▲곽형점 ▲정달문(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김석근(49·목포시 상동) ◇실종 ▲강정윤 ▲김재호(60·인천시 남구 주안동 465의15) ▲함창순(52·〃동구 화수동 2의7) ▲김호남(41·〃남구 주안동 400의8) ▲김상문(30·〃중구 항동 7의27) ▲최진호(28·서울 동대문구 휘경1동 167의25) ▲소용제(32·인천 중구 항동 7가 27의50) ▲김승호(32·〃남구 용현2동 55의12)(이상 남해호 선원) ▲박근호(56·부산 동래구 수안동 353) ▲박인갑(44·〃동래구 안락1동 1024) ▲조수조(33·경남 충무) ▲양용수(37·〃) ▲지동식(39·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551) ▲김광수(43·부산시 영도구 청학1동) ▲박점종(42·전남 여천군 돌산읍) ▲김의석(41·전남 신안군 흑산면 심리) ▲인도네시아인 선원
  • 건축가 엄덕문씨(이세기의 인물탐구:29)

    ◎자연이 담긴 한국적 건축문화 선도/「최상의 기능·최고의 미」 조화이룬 공간 추구/물욕없는 양심파… “대담·화기살린 구조” 정평/모두 격찬한 세종문화회관이 대표작… 데생·서악에도 빼어나 아름다운 푸른 자연을 경관으로 그 경관을 캔버스삼아 삶의 공간을 설계하는 예술가.괴테가 말한 것처럼 「단 한번도 살아보지 못할 건물을 낳기위해」원로건축가 엄덕문씨는 그때마다 모든 영혼,모든 마음,모든 정열을 그곳에 쏟아 붓는다. 하나의 건축이 지나치게 잘 꾸며졌다는 사실은 건축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별개일지 모른다.그것이 올바른 장소에 세워졌느냐,어떻게 쓰일 건물이냐에 따라 기능적인 특징을 질서정연하게 갖춰야만 비로소 최고의 미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둥근 초가지붕과 미닫이창,쪽마루와 굴뚝과 사립짝,싱싱한 소나무 숲속에 둘러싸인 삼칸두옥은 얼마나 표정이 풍부한가.여기에 에메랄드비색같은 하늘과 햇빛·한가로운 구름의 모습,바람에 흔들리는 풍경(풍경)소리조차 건축에 포함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엄덕문 건축의 언어다.이를테면 온기와 화기,개성과 낭만,무한한 자연에의 추구가 엿보일 때만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을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 된다는 논리다. 그는 모름지기 우리 건축계의 원로이자 현대건축의 선두주자의 한 사람이면서도 좀처럼 자신의 치적이나 업적을 앞세우는 법이 없다.겸허하게 주변에 양보하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일요화가회서 활동 다만 음악에 심취했던 일,화가 이마동 박광진씨등과 어울려 일요화가회에서 그림그리던 일만은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는 어쩌면 성악가가 됐을지도 모른다.「토스카」에서의 「별은 빛나건만」,도니체티「사랑의 묘약」중에서 「남모를 눈물」의 라멘토소 탄식은 그의 많은 노래 중에서도 절창으로 손꼽히는 레퍼토리들이다. 그러나 완고한 엄친은 그를 노래부르지 못하게 했고 그림물감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생전에 서양화가 이마동씨는 그의 「대한민국에서 알아줘야 할 데생실력」을 못내 아까워했고 그는 부친이 돌아가시자 취미삼아 여기로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투시도를 그릴 때도 그는 절대로 자를 대는 법이 없다.지우개로 지우지도 않는다.자를 대면 선은 죽어버린다.그래서 그가 그려온 투시도는 한폭의 그림과도 같이 삶의 여러 모습과 잔잔한 시어를 오밀조밀 담고있다. 그는 뛰어난 예술적 감각,예술적 정서를 지닌 반면 영묘하거나 민첩한 재기가 번뜩이는 수재형과는 유형을 달리한다.언제나 넉넉하고 신중하고 건실하다.마치 큰날개로 범상하는 알바트로스처럼 천천히 크고 넓게 그리고 높고 길게 나는 편에 속한다. 그는 동경유학시절 미국의 세계적인 예술건축가 F L 라이트의 데이코쿠(제국)호텔을 보고 건축의 기능과 미의 조화에 일찍이 눈떠갔다.단순한 호텔건물이 아닌 호텔의 기능을 최상으로 살리면서 현대적 건축양식과 동양의 전통미를 절묘하게 절충한 점이 놀라웠다. ○라이트작품에 감동 더구나 「라이트작품집」에 실린 「카프만의 집」은 혼도직전의 감동과 함께 그가 걸어가야할 건축의 방향과 목적을 번개처럼 일깨워주었다. 폭포가 쏟아지는 천연바위 위에 지은 이 별장은 자연 그대로의 일부였으며 건축과 자연과의 대선율적 조화를 단적으로 성취시킨 걸작품이었기 때문이다.인간이 없는 자연,자연이 없는 인간은 상상할 수 없었고 인간이 바로 이 지구상의 주인임을 각성시킨 예였다. 건축에 관한한 더 이상의 망설임이란 있을 수 없었다.건축은 도시를 형성하는 그림이었고 교치와 아치의 거대한 조형세계였다.부친을 원망하며 못내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음악과 미술이 그곳에 도사려 있었다.좋아하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작업에 그는 당연하게 취할듯이 빠져들어갔다. 작품을 보면 그사람의 인간됨을 알수 있듯이 그가 이뤄논 건물들은 한결같이 스케일이 방대하고 대담하고 헌칠한다. 세종로 한복판,사방 어디서 보아도 그 위풍당당한 세종문화회관의 호쾌한 선만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궁궐의 열주를 변형시킨 8각기둥과 8m나 곡선이 뻗어나간 캔틸레버,만자창살로 처리된 벽면등은 「동양최대의 문화예술전당」이란 찬사에 걸맞게 진실하고도 견실한 구조기술과 「예술적 조형미 단연압권」으로 개관당시부터 신문방송의 대대적인 기대를 모았었다. 이른바 엄덕문의 「최상의 기능·최고의 미」를 실현시킨 「세종문화회관식 건축」의 탄생이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여유만만 작작유여하다.이기심이나 경쟁심이 없어 언제나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6·25직후 불어닥칠 건설붐에 앞서 낙후된 건축기술을 향상시킨다는 차원에서 후배인 김중업씨를 프랑스에 유학시킨 일화는 건축계의 미담으로 남아있다. 모두들 가난하고 절박하게 어려웠던 부산피란시절,풍산산업 김영구사장이 그에게 「프랑스 유학」을 권유했을때 그는 「나대신 재능있는 후배」를 밀었고 김중업씨가 건축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연구소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홍대에 건축과 창설 그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세워지면 의욕적인 동료들을 작업에 참가시켰고 동료중의 하나가 공금실수를 저질렀을때도 수년에 걸쳐 자신의 빚처럼 갚아나갔다.또 조각가 윤효중씨와 함께 홍대에 건축과를 창설,국전 미술부문에 「건축」을 포함시킨 공로자이기도 하다. 나이 40을 넘긴 지난 60년,그가 다닌 일본 조도전대공고는 전문대 교육수준이라면서 한양대 홍대 이대에 출강하는 교수신분으로 뒤늦게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생생한 현장경력만으로 충분히 교수자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남들이 다밟는 절차에서 특혜자가 되긴 싫다고 굳이 대학과정을 졸업했다. 많은 건축가들,이를테면 건축원로 김희춘씨와 먼저 세상을 떠난 김수근·김중업씨 등이 그들의 집을 짓지 못한 것처럼 그도 지금까지 자신이 지은 집에서 살아본 적이라곤 없다.지금도 둔촌동의 한 빌라에서 5남매를 출가시키고 부인 고희용여사와 둘이 살면서 공용택지주변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이 취미다. 한창 부흥부의 도움으로 국민주택을 지을때도 20평규모 50가구씩 50동의 배당을 받았으나 건축가의 양식으로 형편없이 허술한 집을 지을수 없다는 신념에서 2m 도로폭을 4m로,좀더 탄탄하고 실용적인 건축자재를 써서 30가구로 줄어든 바람에 업자들과 관계자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다.돈과는 상관없이 양심에 어긋나는 일에는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않아 그의 결벽과 청렴은 지금도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있다.오죽하면 건축가 홍순오·송민구씨가 『엄덕문이가 화를 냈다면 그를 화나게한 사람은 틀림없이 나쁜 사람』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엄덕문씨는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서 태어났다.부친 엄항주씨는 경남 충무,옛통영 나전(나전)칠기의 장인으로 이왕직의 교사였고 명공 김진갑 김봉명의 스승이기도 하다.성격이 유별나고 꼿꼿하기만 한 부친의 엄한 가정교육이 그의 인격과 성격을 형성해왔다고 할 수 있다.다만 부친의 추호도 용서함이 없는 단호함에 비해 그는 「성실·정직·효도」의 가훈아래서 부모말씀에 극진히 순종하고 반듯하게 처신하여 일제시대때는 동네에서 주는 효자상을 받기도 했다.그는 너무 단단하여 부러지기 쉬운 성격보다 만사를 부드럽게 포용하고 수용하는 편에 속한다. ○장인집안서 태어나 『해방된지 반세기를 바라보건만 우리 정서와 한국적 감각으로 이루어진 고유한 현대 한국건축문화를 창조하지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러운 그는 이제 우리의 멋과 미를 현대건축에 접목시킨 「우리의 것」을 창출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의자하나라도 인체구조에 알맞게 가장 편안한 기능을 살려야만 최고의 미라 할 수 있다.디자인만의 아름다움은 이미 아무런 의미도 아니다』 그는 최근 마포에 있는 도원빌딩에 홍역문의 이미지를 건물입구에 적용시키고 부분 부조와 떡살무늬 솥뚜껑과 만자창살을 적절하게 살린 한국적 현대건축을 시도한바 있다.그리고 미완성이긴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최고의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의지로 충주호수 관광설계에 임하고 있다. 라이트가 「카프만의 집」을 지은것은 69세,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완성한 것은 그가 작고하던 해인 92세,물론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인생은 50부터나 60부터가 아닌,지금 무엇인가 자신의 일을 시작하고 있다면 그나이 나름대로 의미를 지닌것이 아니겠는가고 묻는다. 건축가로서 국전의 영예인 심사위원장을 거쳤고 대한민국문화예술상에서 건축으로는 처음 미술부문을 수상,오랜 파란끝에 예술성취를 이루는 모습은 체관으로 자연을 응시하는 청결과 정열,그나이 나름대로의 의미와 투철한 사명감이 담겨 보는이로 하여금 절로 경외가느껴지게 한다. ▷연보◁ ▲1919년 서울 출생 엄항주씨와 김수경여사의 3남4녀중 셋째(장남) ▲1943년 일본 조도전대학 공고건축과졸업 ▲1960년 한양대 공대 건축과졸업 ▲1946년부터 한양대 출강 ▲1954년 신건축 문화연구소 창설 ▲ 〃 대한민국 건축학회 이사 ▲1956년 홍대 건축과 창설(조각가 윤효중씨 등과) ▲1956∼69년 홍대 및 이대 미대 교수 ▲1956년 국전에 「건축」부문 참여 ▲1956∼80년 국전 추천작가·초대작가·국전 운영위원 ▲1960∼81년 국전 심사위원 ▲1964년부터 일본건축가협회 초청 한국대표참석이후 각종 국제회의 참가 ▲1970∼72년 한국 건축가협회 회장 ▲1970년 UIA(국제건축가연맹)회원 ▲ 〃 예총 상임이사 ▲1971년 서울특별시 행정 자문위원 ▲1977년 서울특별시 도시재개발 심사위원 ▲1980년 국전 심사위원장 ▲1988년 엄덕문 건축상 제정(매년 시행) ▲1990∼91년 대한민국 건축대전 운영위원장 ▲1992년 한국건축가협회 작가상 심사위원장 ▲현 재엄·이 건축연구소 회장·조도전 도문 건축회 회장·한국건축가 협회 명예이사 남서울 컨트리클럽하우스·리틀엔젤스 예술회관·세종문화회관·정부제2종합청사(과천)·롯데호텔(을지로입구)·롯데백화점·대한교육보험(교보빌딩)본사사옥및 전국 각 지사 빌딩·중소기업은행본점·단양 한국시멘트공장·남산외인주택·외인아파트·도원빌딩(마포)·충주호수일대 관광시설설계·이승만전대통령동상·민충정공·세종대왕·이율곡·다산·4·19학생의거기념탑 좌대및 구조물 일체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석탑산업훈장(세종문화회관설계공로)89 제21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미술부문)·초평건축상 수상
  • 최고 1백20㎜ 호우예상/서해·남해 서부해상엔 폭풍경보

    ◎호남·제주 호우주의보 2일은 전국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리겠다. 기상청은 1일 『기압골의 영향으로 2일 전국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60∼1백20㎜의 많은 비가 내리겠고 곳에따라 집중호우와 강한 바람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번 비는 3일 상오까지 이어진뒤 하오부터 점차 개겠다. 한편 기상청은 1일 하오11시를 기해 호남및 제주지방에 호우주의보를 내렸으며 2일 새벽3시를 기해 서해및 남해서부 전해상에 폭풍경보를 발효시켰다.
  • 군경 검문검색 체계에 “구멍”/무장탈영병 난동의 문제점

    ◎4시간만에 서울 잠입… 검문 2번뿐/경찰 뒤늦게 출동… 도주로 차단 실패 19일 발생한 무장탈영병 총기난동사건은 수류탄과 실탄을 가진 탈영병이 겹겹이 설치돼 있는 검문소를 거의 제재를 받지않고 통과,수도 서울까지 들어왔다는 점에서 군경의 검문검색활동에 적지않은 허점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또 자격에 결격사유가 있는 병사를 병기를 담당하는 보급담당요원으로 삼은 것도 군인사및 군병기관리에 문제점이 있음을 노출시킨 것이다. 한마디로 전화기의 군기강 해이에서 빚어진 어처구니 없는 사고라고 볼 수 있다. 임채성일병은 서울로 오기까지 4시간여동안 2번만 검문검색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임일병이 속해있는 군단의 관할지역내에만 검문소가 6개나 있는데다 군단지역외에 서울로 오기까지는 최소한 2∼3개의 검문소를 더 통과해야 하는데도 임일병은 상오7시20분 군부대 이웃과 상오9시30분 광릉검문소등 2곳에서만 검문을 받아 군의 검문검색 위수지역관리 등에 큰 맹점을 드러냈다. 또 임일병이 서울에 잠입한 뒤에도 1시간남짓 서울경찰지휘부가 자리를 비워 경찰지휘계통의 공백상태를 보인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날 서울시내 과·서장등 총경이상 고위경찰간부들은 상오9시30분부터 11시20분까지 서울시청에서 계속된 서울시 대통령업무보고에 참석,모두 자리를 비워 탈영병 임일병이 상오10시34분 동대문 이스턴호텔에 나타났을 때까지도 경찰은 지휘부의 통솔을 받을 수 없었다. 경찰은 뒤늦게 「번개작전」에 나섰으나 임일병이 혜화동까지 진출할 때까지 도주로를 차단하지 못했다. 지난해 태인종고를 졸업한 임일병은 그해 8월 자원입대,수도기계화사단에 배치돼 단기하사 교육을 받던 중 근무이탈로 구속기소돼 기소유예처분을 받고 강등된 뒤 현부대에 재배치됐다. 또 중학2년때 머리와 장파열로 입원치료를 받은 뒤 성격이상 증세를 보여왔으며 지난해 4월에는 서울에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돼 보석으로 풀려난 경력이 있는데도 하사관학교에 아무 문제없이 입대했고 자대에 배치된 뒤에도 탄약을 관리하는 2·4종 병과로 무기고열쇠를 관리해 온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임일병의 일기장에는 『거지가 되더라도 이승보다 저승이 낫다』『육단리­다목리­사창리­춘천(2시간소요)­대전­태인』등의 글이 적혀있어 사전에 탈영준비를 철저히 했던 것으로 나타나 문제사병에 대한 지휘관의 관리도 허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방부대의 경우 해당 지휘관이 매주·매월마다 문제사병과의 면담 등을 통해 이상유무를 상급지휘관에게 보고해야 하는데도 탈영과 전과경력이 있는 임일병의 경우 전혀 그런 조치가 없던 것으로 밝혀져 이번 사고는 충분한 사전대책 미흡으로 발생한 사고였다고 할 수 있다.
  • 전차대대 부대장 영내 법당 폐쇄(조약돌)

    ◎3백여신도,“종교탄압” 규탄대회 ○…부천시 불교연합회(회장 임영담 석왕사주지)와 대한민국예비역법사회등 불교단체회원 3백여명은 3일 낮12시 경기도 시흥시 육군번개부대 예하 전차대대 앞에 모여 부대장 조병석중령의 영내 법당폐쇄와 불상 화형등 일련의 불교탄압행위에 대한 규탄집회를 갖고 원상회복및 관련자 문책등 정부의 상응한 조치를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서 불교단체회원들은 지난해 4월 부임한 기독교신자인 이 부대 대대장 조중령이 지난 2월 중순쯤 영내 법당인 「호국신흥사」를 철거,창고로 사용케 했으며 법당에 모셔져 있던 불상을 태우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그들은 또 조중령이 이에앞서 군불자에 대한 종교행위를 방해하고 차별인사등 탄압을 자행해 이를 규탄하기 위해 집회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집회장소에 나온 번개부대 부사단장 신인섭대령은 『자체조사를 실시한 결과 문제가 된 법당은 육군에서 인가된 정식법당이 아니고 또 풍경소리가 야간근무에 방해됐기 때문에 철거됐다』고 밝히고 『불상과 기타 성물들은창고에 그대로 보존이 돼있다』고 설명했다.그는 『조중령의 종교탄압부분은 계속 수사중이며 그같은 사실이 발견되면 인사조치 하겠다』고 말했다.
  • 팀스피리트 훈련 오늘 시작

    「팀 스피리트」93 한­미 합동기동훈련이 2일 중부전선 ○○기지에서 육군 쌍룡부대 장병 ○○○○명의 출정식을 시발로 시작된다. 오는 18일까지 계속될 이번 훈련은 지난 91년이후 2년만에 전개되는 것이다.미 2사단(번개사단)은 오는 7일 하와이의 히캄기지를 떠나 중부전선에서 한국군과 함께 합류,훈련에 들어간다.
  • 20년전 제자와의 만남/홍창선 강원도 양구군 비봉국교 교사(교창)

    『기사님,공수리 배터까지 갑시다』 분교장 주임교사 회의에 참석하기위해 출장을 나왔다가 도일국교(파로호 변의 분교)까지 가는 길이었다. 피곤한 탓인지 그만 깜박 잠이 들었다. 『손님,다왔습니다.혹시 도촌국민학교에 근무하신적이 있지 않으세요?』 『제가 최 아무개예요』 『아니 자네가 그 유명한 고물박사 최아무개란 말인가?』 때아닌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파로호 호수변은 웬바람이 그렇게도 세게 불었는지…. 한사코 마다하는 나에게 택시요금을 도로 넣어주고 간 최군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20년전의 추억이 스쳐갔다. 초임지였던 도촌국교에서 난 그해에 6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도촌국교는 수복지구에 있었고 근처에 군부대의 사격장이 있어 일부 아이들은 사격 연습이 끝난틈을 이용해 탄피를 줍거나 주변에 파묻힌 고철들을 캐내 용돈을 만들어 쓰거나 엿과 바꿔먹곤 했었다. 그 당시 탄피를 줍거나 고철을 캐다가 운좋게 쇳덩어리라도 찾아내면 이빨로 깨물어 신주인지 구리인지를 구별해내는 「쇠붙이 박사」가 바로 최군이었다.그해 여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어느날 하오시간부터 보이지 않는 최군을 걱정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 수업을 마쳤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리고 최군의 담임임을 확인하더니 지서까지 나와달라는 것이다. 『글쎄 이녀석이 장마에 패인 웅덩이에서 Y중계소 안테나 어스 구리판을 잘라 돌로 짓이겨 엿장수에게 팔려다가 신고로 붙들렸소.선생님이 수업중 학생이 도망가서 어떤 짓을 하는지도 몰라도 되는거요』 어린학생을 「도둑놈」운운하는 통에 담당경찰과 옥신각신 몸싸움을 했고 한동안 교장선생님과 함께 교육청과 지서를 번갈아 다니며 곤욕을 치렀었다. 최군과의 이런 인연이 있기 20년째인 지난해 5월 스승의 날에는 바로 그때의 제자들이 부부동반으로 나를 초청하는 자리를 마련해 이제 학부형이 된 제자들과 옛이야기로 정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때 그자리에서 최군의 소식을 들었다.제자들은 『고철을 줍던 녀석이 기어이 쇠를 주무르는 사업을 하여 성공해 돈도 제법 모았고 지금은 이곳에서 택시 기사겸 택시사업을 하고 있다』며 지금도 끼리끼리 모이면 그때 일들을 화제로 삼곤한다는 것이다.
  • 시인 정현종씨(이세기의 인물탐구)

    ◎사물의 핵심 꿰뚫는 파격적 시어 계발/「도시기질」 집착… 신선한 지적감수성 돋보여/자제된 행동·감정처리… 「침묵의 미」에 눈뜬 사색형/생명있는 모든것 포용할 자세로 시작몰두 「특이한 지적 예리성」과 「황홀하게 축제화된 미적 감동의 세련된 형상화 작업」­. 65년3월 까다롭기로 유명한 시인 박두진씨의 화려한 추천사와 함께 정현종이 문단에 등단했을 때는 그는 당장 젊은 평론가들에게 둘러싸여 「경쾌한 에피큐리안」으로 지칭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빛나며 아름다웠던 추천시 「독무」는 젊은 날의 추억처럼 우리들의 가슴에 남겨져 잊을수 없는 명시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후 신촌역 부근이나 태평로 순화동 인사동 남산길등 그가 생계를 위한 직장을 전전하던 무렵 그는 서울의 어느 길목에 서있어도 당황하며 망설이는 모습,겨울날 빈들에 홀로선듯 눈가에 외롭고 춥고 공허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을 보고 시인 고은씨는 「수묵같은 눈동자」라 했고 평론가 김현은 「깨끗하고 맑은 눈」이라 했다. 눈끝이 치켜올라간,그러나 사납거나 날카롭거나 속된 기미는 찾아볼 수 없이 단순하게 「마음의 창」같은 눈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색의 깊이를 짚어볼수 없는 신비감 때문에 그 속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남에게 나를 드러내보이지 않으려는 겸허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명철의 기색인지는 짐작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지나 여전히 싱싱한 탄력성을 지닌 시들이 「샘처럼 솟아나고 꽃처럼 피어나자」그의 눈빛은 허공 한 끝을 스치는 짧은 허무나 명철의 멋이 아닌 인간과 사물을 향해 직관으로 치닫는 눈빛,그래서 그의 시마저도 머리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그의 눈빛에서 빛으로 비쳐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형이상학적 초월 추구” 그가 사랑해 마지않고 또 그를 끈질기게 지켰던 김현도 「정현종은 형이상학적 초월을 꿈구는 에피큐리안」이라 했고 이 「에피큐리안」속에는 그의 시적 공간과 구조의 한계를 밝히려는 의혹이 다분히 숨겨져 있었으나 「한 시인이 자기특유의 시적 표현방법을 가지고 시적으로 높은 경지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그런 의미에서 정현종은 「한국 현대시의 표현법과 소재 면에서 큰 충격을 준 시인」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사막에서도 불 곁에서도/늘 가장 건장한 바람을,한끝은/쓸쓸해 하는 내 귀는 생각하겠지,/생각하겠지 하늘은/곧고 강인한 꿈의 안팎에서/약점으로 내리는 비와 안개,/거듭 동냥 떠나는 새벽거지를,/심술궂기도 익살도 여간 무서운/망자들의 눈초리를 가리기 위해/밤 영창의 해진 구멍으로 가져가는/확신과 열애의 손의 운행을,/…. 「곧고 강인한 꿈」 「약점으로 내리는 비」 「확신과 열애의 손의 운행」등등 파격적 시어들은 서정시와 향토시에 익숙해있던 독자들에게 느닷없는 경이를 안겨주면서 「사물에 대한 신선한 감수성과 독특한 서구적 조사법」이란 김현의 호평에 한결같이 공감대를 형성해갔다. 정현종은 전에도 그랬지만 후배들과 그의 제자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지금도 「그의 유년시절을 완강하게 숨기고」그의 시의 고뇌가 주는 배경을 설명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때 이미 문학에서 「침묵에 가장 가까운 것은 시」이며 「시는말이 배제되지 않는 침묵의 공간」임을 알고 있었거나 「시는 시 자체일뿐」시를 이루는 배경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뜻으로 이를 묵살했는지도 모를 일이다.어쨌든 그는 어느 장소에서도 그의 시외엔 다른 말들은 별로 늘어놓지 않으려 들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경기도 고양군 화전에서 보냈다.대광중때부터 다시 서울에 올라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그이전 10여년을 서울 변두리에서 농촌생활을 했다고는 하지만 시골에서 와서 도시에서 세련되어 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시어선택에서 보듯 완강하게 도시기질을 고집하는 형이다. 꾸밈없이 깍듯한 예의,낯선사람에 대한 낯가림,그러면서 자신의 할 바를 과장하지 않고 단정하게 해낸다. 집안은 엄격한 가톨릭 가문으로 가톨릭 본명은 알베르토.그러나 대학시절 채풀시간을 자주 걸러 칼바르트와 니버에 관한 리포트를 추가로 제출하여 뒤늦은 정식졸업을 한 에피소드가 있다. 중학교 시절에 살았던 만리동고개,카바이트 불을 밝혀놓고 책을 빌려주는 서점에 드나들면서 그는 보들레르의 「여인들의 술」처럼 「달랠길 없는 뜨거운 섬망」의 술대신 왕성한 독서에 빠져 그의 손가락이 넘기는 책장은 「슬기로운 회오리바람의 날개」였으며 그는 그 날개를 타고 「몽상의 천국」을 마음껏 누비는 사춘기를 보냈다. 종로2가 르네상스 음악실에선 바하의 「마태수난곡」에 탄복하여 무릎꿇었고 영화 「로얄발레」를 보고는 「육체가 저렇게 아름다울수 있는가」란 충격에 그는 「그 충격이 번개처럼 와서 내 자신의 육체에 우뢰로 흐르다가 감동의 전율」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발레에 미쳐 「이사도라 던칸 자서전」서문을 써주는등 춤은 마침내 「꽃의 침묵」이기를 기원하고 있다. ○음악·춤에 심취하기도 그러나 춤이나 음악에 대한 감동은 문학소년시절 누구가 접할수 있는 흔한 경험이겠지만 연대 숲에서의 그의 존재와 우주에 관한 이야기만은 이 시인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수가 있다. 그는 수줍어하는 성격탓에 결핏하면 혼자서 울창한 숲속을 거닐었고 그날도 우연히 그속에 앉아있다가 돌하나를 집어 숲 저쪽으로무심하게 내던졌다고 한다. 「숲 위쪽에서 던진 돌은 저아래 어디엔가 떨어졌다.돌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지구무게만한 어떤 느낌이 마치 지진처럼 내속으로 지나가는걸 느꼈다.즉 내가 방금 던진 돌에 의해,나에 의해,여기서 저기로 옮겨진 돌에 의해 우주의 공간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그것이었다.내가 던진 돌하나가 우주의 균형을 바꾼다!」 그 소리는 그의 귀를 「깊이」열어주었고 그의 마음속에서 아마도 그의 육체가 땅에 떨어질때까지 그 소리를 듣게 되리란 것이다. 그는 부모님 타계후 집에서 나와 신촌에서 혼자서 자취를 했다.이 자취방에서 김현 김치수 김승옥과 어울려 거의 매일이다시피 꽁치안주와 소주에 빠져 그들은 문학을 논했던 것같다. 그러다가 72년 첫시집 「사물의 꿈」을 민음사에서 펴냈다. 이 시집으로 인해 그는 문단데뷔이후 처음,아니 난생처음으로 말할수 없는 감격의 순간을 맛보게 됐다고 자랑한다. ○자아·우주에 대해 사색 이 시집은 김현 김치수와 김병익 김주연 이청준 홍성원 황동규 황인철등 평론가 작가 시인 친구들과 「잿빛먼지 황급하게 불어대는 좌절감의 청량리 부근」에서 밤마다 술잔앞에서 내통해 마지않던 문단선배 고은씨가 돈을 모아서 내준 것이기 때문이다. 고은씨는 그가 시를 쓰지않으면 「시 쓰기가 얼마나 힘드는가」를 알면서도 그를 미워할만큼 「우리시대의 언어의 정령」과 만나고 있음을 자축하기 위해 그가 시집내는데 앞장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요즘도 술을 마신다.문지(문학과 지성사)사람들과,또는 동료교수들과 학생들과 호프집에도 간다. 단지 좋아하는 술을 평생동안 즐겨마시기 위해 폭음,폭주는 삼간다. 또 어느 자리에서나 두드러지지 않으려 든다.처신하는 바를 적절히 자제하고 운신의 폭을 파급시키지 않는다.웃음소리도 말소리끝에 「하,하,하,하」라고 문장을 읽는 것처럼 시늉만 할 뿐이다. 기계에 대해선 도무지 무지하여 다른 작가 교수들은 수년전부터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그는 오래지녀온 만년필 「쉐퍼」로 글을 쓴다.17년쯤 살고있는 동부이촌동 렉스아파트에서 신촌까지 운전을 할줄 몰라 버스나 택시를 타고있다.가족은 부인 이유미씨와 그리고 아들 민우(연대4). 이렇게 감정내색을 좀체 하지않는 그도 89년 대학후배이자 제자인 시인 기형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땐 서대문 적십자병원 영안실에서 남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새벽 2시까지 남아 허공에 잠깐 눈을 돌리는듯한 문단초기의 공허한 그늘을 눈가에 드리워 보였다. 다음해 그의 친구 김현의 죽음은 너무나 허탈하여 도무지 실감할수 없는 듯,「너는 아프냐…너는 아프구나」를 되풀이하더니 이른바, 맥주거품은 늘 왕관모양!/구름모양!부풀어 올랐고/그야 우리는 왕관부터 구름을 마셨으며/…의 김현을 위한 유명한 「황금취기」시리즈를 남기고 있다.김현은 문단의 「별」이었으며 그의 죽음은 문단전체의 통한이었다. 본래 익살스럽거나 짓궂은 구석은 없으나 그는 날이 갈수록 술을 마셔도 말을 줄이고 있다.그는 시인으로 사는동안 「상투적으로 사고하지않고 사물의 핵심을 투철히 바라보는자」 「불가능을 꿈꾸는자」이고자 꿈꾸는지도 모른다.또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록을 번역하는 동안 말이 말하고자 하는 한계를 알게되었고 말의 그런 모습에 절망한 나머지 「침묵」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그의 두 눈은 이제 「아는것」으로부터 마음껏 자유로워져 요즘은 인간과 사물과 그 주변을 둘러싼 모든 생명있는 것을 사랑하는 인류애의 눈빛,눈빛으로 비쳐오는 시가 아닌,삶에 대한 분노와 파란과 비애의 극복이 담긴,심장을 울리는 뜨거운 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 보 ▲1939년 12월 서울 용산 출생 정재도씨와 방은련여사의 3남1녀중 셋째(차남) ▲65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 현대문학지를 통해 시 「독무」「화음」「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데뷔 ▲66년 「사계」동인 (황동규·박이도·김화영·김주연·김현) ▲70∼73년 서울신문사 기자 ▲74∼75년 미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 자작시 「고통의 축제」영역 참가 ▲75∼77년 중앙일보기자 ▲77∼82년 서울예전 교수 ▲82년 스웨덴 스톡홀름대·핀란드 헬싱키대 개최 「현대문학 포럼」참가 ▲90년 샌프란시스코 휘트랜드재단주최 「문학회의」참가 ▲82년∼현재 연세대국문과교수 ▲72년첫시집 「사물의 꿈」(민음사),제임스 볼드윈 「또 하나의 나라」번역 출간,로버트 푸르스트·예이츠시선집 번역 ▲74년시선집 「고통의 축제」 ▲75년산문집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78년시집 「나는 별아저씨」(민음사) ▲79년크리슈나무르티 「아는것으로부터의 자유」번역 출간(정우사) ▲82년시론집 「숨과 꿈」(문학과 지성사) ▲84년시집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문학과 지성사) ▲89년 시집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세계사),산문집 「생명의 황홀」(세계사),파블로네루다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세계사) ▲92년 시집 「한 꽃송이」(문학과 지성사·이 시집으로 이상 문학상수상)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6)

    ◎유년시절:4/5세때 살던 강동군 내동마을 개명/혁명사적지 지정… 행적과 함께 미화/50세 넘도록 묻어뒀다가 뒤늦게 “조명” 60년대 후반부터 봉화리 “우상화” 김일성은 그가 어릴 때 만경대를 떠나고 거기에서 1백50리가량 동쪽에 있는 평남 강동군 고읍면 동삼리 내동부락에 가있었던 사실을 역시 50세가 넘도록 전기에서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평양종실중 중퇴 그는 김형직이 강동에 있었던 사실이 일제 관헌자료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안 60년대 후반부터 이 시기의 자기 행적을 우상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형직은 평양 숭실중학교를 중퇴한후 만경대에 있어서 순화학교 교사를 하였다.그후 1916년 봄에 강동의 내동부락에 가서 명신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된다.60년대 중반이후의 전기들에 의하면 그는 그후 17년 가을에 조선국민회가 검거되자 그 곳에서 체포되었다고 한다. 한편 김일성은 부친보다 1년 늦은 17년 봄에 내동부락에 가서 18년 봄에 만경대에 돌아온 모양이다.만5세때 일이므로 그가 이 시기의 자기 행적을 잊어버려도 부자연하지않는 시기이다. 그러나 지금 그곳은 강동군 봉화리라고 지명이 바뀌어지고 「혁명사적지」로 조성되어 있다.또 이 시절의 김일성에 대한 「사적」들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창작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⑴평등주의…1917년 가을,봉화산에 살맹이가 빨갛게 익었을때 그는 친구들과 가서 그것을 땄다.나중에 모였을때 보니 그들이 딴 살맹이 양은 제각기 달랐다. 김일성은 그것을 모두 한곳에 모으도록 하고 아이들의 머리 수만큼 따온 살맹이를 똑 같이 나누어 주었다. ⑵군마놀이(말바위놀이)…학교 뒷산의 언덕에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널려 있었다.그는 이것을 말로 간주하여 그중에서 가장 큰 바위에 자신이 올라 타고 다른 바위에 아이들을 앉혀 「조선군대 말타고 나간다!」,「우리군대,장수군대 번개번쩍 나간다」등의 구령을 외치고 놀았다. ⑶연설…김일성은 명신학교교실에서 가르치는 부친의 말을 교실 밖에서 들었고 학생들의 글소리를 그대로 외웠다. 부친은 일제의 죄행을 단죄하고 반일투쟁을 호소하는 연설문을 그에게 써주었다.그래서 그는 기념일이나 학예회,시국강연회,토론회,노래보급회,글짓기모임 등에 나가면 이러한 곳에서 연설하였다. ○대연설가로 선전 「김일성의 어린시절」이야기는 크게 나누면 부친 김형직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기 전과 체포 후로 나뉘어진다.부친의 체포 자체는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김일성의 성장과정을 소설화하면 그 스토리는 이러한 순차성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일화」들은 김형직 「체포」이전의 이야기들인데 그 우상화작업의 내막을 들여다 보면 이상과 같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조작물이다. 예를 하나만 들면 1910년대는 한문을 큰 글이라 하여 숭상하고 한글은 암클이라고 멸시한 반봉건사회였다.그런데 김일성은 「한글」쪽에 정통하여 「한문에 소양있는」부친으로부터 한글로 쓴 원고를 받고서는 가는 곳마다 연설했다고 쓰고 있는데 이러한 연설은 「일제를 단죄하고 반일투쟁을 호소」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어린아이 장난을 과장한 만경대의 군사놀이나 강동의 군마놀이 같은 수준이 아니라 그는 만5세에 한글을 아는데 그치지 않고 대중을 선점선동하는 타고난 대연설가로 되어버렸다. 그런데 「김일성의 어린시절」은 사실이야 어떻든지간에 김형직이 「체포」되어 투옥되었다는 이야기부터 「원수에 대한 증오」가 김일성의 「실천투쟁」과 결부되게 된다. ⑷투쟁…1917년 가을 김형직이 일제에게 체포되었을 때 그는 부친을 잡아가는 일본경찰을 향하여 돌맹이를 던지려고 하였다.모친이 그를 제지하자 그는 분노의 울음을 터뜨렸다. ○실천투쟁과 결부 모친은 김형직이 지붕의 기와 밑에 감추어 놓은 비밀문건을 불사르고 경찰이 장롱을 수사하려 들자 앞을 가로막고 나서면서 그들의 낯짝에 침을 뱉었다. 김일성은 이런 모친을 보면서 일제에 대한 증오심에 불탔다. 그후 강반석은 아이들을 데리고 1918년 봄에 만경대로 돌아온다. ①「무지개 비낀 만경봉」86∼104면 ②같은 책 105∼109면
  • 선택의 기로에 선 평양(정경문화포럼)

    ◎남북기본합의서 성실한 이행 급선무/지식층불만·경제난 해소 절박한 시점 한동안 따뜻한 봄기운이 감돌던 한반도에 먹구름이 몰려 들고 있다.언제 천둥·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휘몰아칠지 알수 없는 난기류에 빠져 있다. 91년12월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채택됐고 지난9월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기본합의서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부속합의서까지 발효됐으나 그이후 남북관계가 갑자기 냉각,한발짝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로 예정됐던 「남북화해공동위원회」를 비롯한 정치·군사·교류등 각분야의 공동위원회가 북측의 거부로 잇따라 무산됐는가 하면 쌍방군사당국의 직통전화개설도 실현되지 못했다.오는 12월21일 서울에서 열기로 예정된 제9차 남북고위급회담의 개최여부도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 있다. 북한의 러시아주재대사 손성필은 지난 14일 우리정부가 팀스피리트훈련재개방침을 철회하지 않는한 제9차회담을 거부할 것임을 시사했다. 남북관계가 어째서 이처럼 냉각되고 말았는가.한편으로는 대화를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도발을 서슴지 않는 북한의 이중적인 대남책략때문이다.김일성주석이 북녘땅에 공산정권을 수립한 이후 단 한번의 수정도 없이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는 대남정책의 기본논리는 「하나의 조선」이다.이 논리는 남쪽에 친북단체를 조직,혁명역량을 축적한 다음 결정적인 시기에 이땅 전체를 적화통일해보겠다는 가당찮은 체제이념이며 북한으로서는 불변의 국가이념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 적발된 「남조선노동당간첩사건」이다.남북기본합의서는 서로의 체제를 인정,상호 비방·중상을 않기로 되어 있으나 평양당국은 기본합의서 발효이후 대남 비방·중상을 오히려 강화해 왔으며 급기야는 대규모의 간첩망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이 사건으로 구속된 간첩들은 그들의 죄과를 순순히 자백했다. 그런데도 평양당국은 이 사건을 우리정부의 자작극이라고 떼를 쓰면서 남북관계가 냉각된 책임을 오히려 이쪽에 전가하고 있다.그야말로 「도둑이 매를 든」꼴이다. 올해 중단했던 팀스피리트훈련을 내년에 재개하기로 한 우리정부의 방침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당연한 대응이며 그들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성실히 이행하고 책임있는 국제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기위한 경고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북한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첫째는 권력승계의 문제이다. 북한 정무원 김영남외교부장의 최근 발언대로 그곳에서의 부자권력승계는 거의 끝난 상태이다.『정치·경제·외교·군사·문화등 모든 사업을 김정일이 한몸에 지니고 영도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카리스마에 있다.분단이후 47년간 북녘땅을 통치해온 김일성주석은 현대의 어떤 독재자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안정된 기반을 유지해 왔다.그러나 김정일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카리스마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80년 제6차 노동당대회에서 그를 후계자로 정한뒤 줄기차게 김정일우상화운동을 펼쳐 왔으나 그것이 성공했다는 징후는 찾아 볼수가 없다.아버지의 카리스마가 아들에게는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지금 평양의 집권층에는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테크너크랫 계층과 「개방은 체제자체를 붕괴시킬 우려가 있다」는 군부및 혁명1세대간 강·온파의 갈등이 내연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그러나 김정일의 고민은 집권층내부의 갈등보다 이른바 「인텔리계층」(약 1백50만명으로 추정)의 동향에 있다.그래서 요즈음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인텔리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지난 9월20일 평양방송이 인텔리계층의 충성과 효성을 강조한데 이어 10월6일 중앙방송은 인텔리계층의 체제반대투쟁의 위험성을 우회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미국 컬럼비아대 제럴드 커티스 교수는 평양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생기를 잃은 체념의 도시」라고 묘사했는데 이것은 북한인텔리계층의 동향에 그대로 대입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이들의 체념이 분노로 폭발한다면 북한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북한이 직면해있는 또하나의 어려움은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평양당국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대일수교와 대미관계개선을 서두르고 있으나 핵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그들은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핑계로 남북상호사찰을 기피하고 있으나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끼리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는 상호사찰실시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그런데도 이를 끝내 거부한다면 민족에 대한 배신이며 국제사회에서의 신의를 저버리는 파렴치한 소행이 아닐 수 없다. 평양의 집권층으로서는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핵무기개발을 추진하겠지만 그래서는 체제를 지탱하기 어렵고 경제를 살릴 수도 없다. 평양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우리는 평양이 슬기로운 선택의 결단을 내려주기 바란다.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고뇌에 찬 선택이겠지만 언젠가는 올바른 선택이었음을 스스로 기뻐하는 날이 올 것임을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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