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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길 SK(주) 상무 “맨투맨 홍보로 소버린 눌렀죠”

    “사람들은 대부분 거래관계가 있을 때만 자주 만나고 그 뒤엔 금세 잊어버리기 마련인데 다른 자리에서 또 만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있습니다.” 강성길(54) SK㈜ 상무의 말이다.홍보보좌임원 겸 프로축구단장을 맡고 있는 그는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강 상무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 상무가 홍보와 인연을 맺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지난 99년 SK㈜ 홍보·총무보좌임원을 맡고부터다.그룹을 통틀어 임원급중 홍보업무 전문가가 없어 그에게 중책이 맡겨졌다. 79년 SK㈜의 전신인 유공에 입사한 강 상무는 인력팀 팀장-총무,구매담당 겸 프로축구단장 상무보를 거쳤다.그의 좌우명인 ‘인화(人和)’도 인력팀장을 거치는 동안 온몸에 체화됐다. 그는 “직장인들이 갈수록 개인화가 심해져 조직 전체로 봐서는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가 없게 됐다.”면서 “이런 분위기에서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만큼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런 친밀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강 상무의 홍보전략은 SK그룹이 소버린 자산운용과의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민감한 사안이 생기면 ‘맨투맨’ 접촉을 통해 회사의 논리를 설파하고 인간적으로 설득하는 ‘발로 뛰는 홍보’ 실력을 발휘한 것.이런 노력이 쌓여 SK그룹 경영권을 노리던 소버린을 눌렀으며,홍보실은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이종락기자˝
  • [씨줄날줄] 1회용 대표/강석진 논설위원

    이번 총선에는 다섯번이나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손가락이 다섯개니 세기도 좋다.꼽아보자.탄풍(彈風),박풍(朴風),추풍(秋風),노풍(老風),정풍(鄭風)이다. 이중 사람 성씨 딴 바람 뒤에는 세 명의 위기에 처한 남자들 그림자가 어른거린다.요즘 이름조차 듣기 어려운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따스한 눈길 주는 이 드문 대구 바닥을 신발이 다 닳도록 훑고 다니는 민주당 조순형 대표,그리고 ‘4년 배부르려고 사흘 굶는다.’는 빈정거림을 들으면서 단식하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다. 2003년 6월 대표로 선출된 최병렬씨는 수락연설에서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다.”며 사자후를 토했다.11월에는 열흘 단식으로 특검법 정국을 돌파,당을 장악했다고도 했다.하지만 한나라당이 선거를 앞두고 먼저 침몰 조짐을 보이자 소속 국회의원과 당원들은 최 대표를 꽁꽁 묶어 바다에 던지듯 비례대표 자리조차 주지 않고 내쳐 버렸다.민주당 조순형 대표도 선출된 지 불과 5개월 만에 정치인으로서의 명예도,힘도 다 잃을 처지가 됐다. 정 의장은 노인 유권자 자극하는 말 한마디 했다가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권기홍 전 노동부장관 등 대구 출마자들이 백의종군하라며 ‘탄핵’하자,속절없이 주저앉았다. 당 대표라는 자리가 어느덧 쓰고 버리는 1회용 자리가 됐다.어제 대표를 뽑은 손으로 오늘 대표의 목을 떨구는 1회용 증후군이 주요 정당을 휩쓴다.왜일까.무엇으로 이 변화를 설명하나.대표들의 용렬함,한국 정치의 변화무쌍함,보스 정치의 종언.여기에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정당판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더하면 충분한 설명이 될까.앞으로도 ‘나무젓가락’이나 ‘종이컵’ 당 대표가 계속 나오게 되는 걸까.1회용품을 많이 쓰는 것은 환경에 좋지 않다는데…. 예전에는 총리가 주로 1회용 쓰고 버리기 인사의 대상이었다.정치적 위기가 오면 민심을 수습한다고 학계나 법조계 등에서 덕망있는 이들을 모셔 왔다.그러다간 다시 민심 수습할 일 생기면 온갖 책임과 오명 뒤집어씌워 물러나게 했다.그 병,그 사고 방식,그 수법이 주요 정당에서 도지고 있다.그래서일까.가벼움이 바람되어 날아간 휑뎅그렁한 자리,또 다른 가벼움이 차례를 기다리는 것만 같다.조그만 어려움도 참지 못하고,조그만 책임도 나눠 갖지 못하는 사이 정치는 늘 바람으로 왔다가 간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마당] 신분증 사회/성기완 팝칼럼니스트

    우리나라처럼 일상생활에 신분증이 자주 필요한 나라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물론 지금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라크 같은 나라와는 비교하기 힘들 것이다.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평상시에까지 거의 그런 나라에 준하는 신분증 검사를 요구받는 국민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다.더군다나 신분증 검사도 종류별로 받는다. 은행 같은 곳을 가도 그 점은 확인된다.통장이라도 교체하려면 반드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물론 그건 본인확인을 위해 당연한 일일 것이다.그러나 만일 운전면허증을 가져갔다면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주민증을 집에 놓고 온 사람은 ‘본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근처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등본을 떼어와야 한다.여권을 가지고 갔더라도 일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여권과 함께 다른 신분증 하나를 더 요구받는다.이번엔 은행 일을 마치고 운전을 한다고 치자.그렇게 되면 주민증은 소용이 없다.운전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시시각각 받는 검문에서 주민증을 제시했다가는 무면허 운전자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민중의 지팡이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경찰청에서 발행한 운전면허증은 은행에서는 반밖에는 효력이 없다.또 대한민국 외교부가 발행한 여권도 국내에서는 완전히 효과적인 신분증이 되지 못한다.행정자치부와 관련 있는 주민등록증도 경우에 따라서는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이다.이러니 한 지갑에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을 다 넣어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그렇게 되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만에 하나 지갑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잃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다시 동사무소에 가서 열 손가락에,혹은 최소한 엄지손가락에라도 검은 잉크를 덕지덕지 묻혀야 할지도 모르고,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면허증을 재발급받아야 할지도 모른다.아,귀찮고 짜증나 상상하기도 싫다. 은행에서 물어 보았다.왜 운전면허증은 안 되느냐고.은행에서는 운전면허증으로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대신 주민증은 행정자치부에 연락하면 확인이 된단다.그렇다면 그것을 통합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소리인데,은연중 은행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부족한 행정 시스템을 고객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된다.반대로 고객은 그 시스템의 한계를 묵묵히 참아주고 있는 것이고.이것이 행정편의주의 아니냐고 따져 보았더니 뜻밖의 대답이 나온다. “예금주 보호차원에서 하는 일들이니 이해하시죠.” 예금주 보호? 그런데 왜 예금주가 꼭 검문 받는 느낌을 받아야 하나.혹시 효과적인 은행돈 보호차원 아닌가.창구 밖의 개인을 제 마음대로 검사한들 정작 돈을 가지고 튄 사람들은 은행 내부에 있었다.400억원이나 되는 돈을 빼돌린 사람들이 누구였던가.그 400억원이 누구의 돈이었겠나.바로 고객돈 아닌가. 우리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한 개인의 신분이 즉각적으로 노출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잠시 검문 있겠습니다.”하는 경찰관의 말에 신분증을 빼 주면,10초도 되지 않아 경찰의 무전기에서는 내 주소가 들려 온다. 주민등록번호 하나로 그 어디에서도 나의 신용상태라든가 시민으로서의 경력 같은 것이 바로 확인된다.시스템이 효율적으로 굴러가도록 이런 사생활 노출을 군말 없이 참아주고 사는 서민에게 시스템은 자기가 편한 대로 신분증도 종류별로 요구하니 참 일상의 민주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성기완 팝칼럼니스트˝
  • [총선 D-1] “우리당 내분” 호남되찾기 총공세

    민주당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행보를 ‘쇼’라고 폄하하고 열린우리당 내부 균열을 겨냥한 ‘공세’로 대응했다.정 의장의 선대위원장 사퇴를 열린우리당의 ‘호남 버리기’로 규정하면서 민주당을 ‘큰 집’에 비유,돌아올 것을 주문했다.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13일 광주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영남의 운동권들이 분열을 시작하는 것이며 이들이 호남 민주세력을 들러리 세우고 (이제는)거추장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민주당 이름으로 뽑힌 의원들이 배신했지만 돌아올 수 있도록 (당을)재건해서 민주당의 주춧돌을 되살려 분열세력을 모으는 큰 집이 되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이어 “떠났던 사람들이 반성하고 복귀하면 다 받아들이겠다.”고 덧붙였다.추 위원장은 시민 500여명이 모인 광주공원 유세에서 “총선용으로 급조된 1회용 정당의 자멸”이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공격하며 “영남표를 얻는 데 호남이 장애물이 된다는 생각에 호남 민주세력을 버리기 시작했다.”면서 “노무현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정 의장이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노 대통령 측근 세력들의 압력에 밀려 사실상 ‘낙마’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깔려 있다.박준영 선대본부장은 기자들과 만나 “벌써 열린우리당은 내부 권력투쟁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 위원장은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3보1배 후 건강을 걱정해 주셨는데 사실 민주당을 걱정한 것”이라며 ‘DJ’와 민주당의 연을 강조하기도 했다.그는 오후 늦게 서울로 올라와 자신의 지역구인 광진을도 챙겼다. 박정경기자 olive@˝
  • 술따라 맛따라-금산 ‘인삼주’

    인삼은 오래전부터 쓰여온 고급 약재다.그래서 인삼주도 인삼 재배와 함께 자연스럽게 빚어마셨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삼주 하면 소주에 인삼을 통째로 넣어 오랫동안 우려낸 술을 떠올리게 마련이다.하지만 이는 편리함 때문에 익숙해진 방법일 뿐이다.전통적인 인삼주 빚기는 발효를 이용하는 것이다. 16세기 실학자였던 서유구가 지은 ‘임원십육지’ 제5권에 보면 인삼주를 ‘찹쌀,누룩,물,인삼으로 빚은 약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이로 미루어볼 때 이미 16세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선 인삼주를 빚어 마셨음을 짐작할 수 있다.다만 인삼은 예나 지금이나 고급 약재이기 때문에,서민층보다는 양반층에서 즐겼을 것으로 보인다. 인삼발효주는 현재 충남 금산군 금성편 파초리에서 김창수(55)씨가 빚고 있다.충남도 무형문화재(19호)로 지정돼 있는 금산인삼주 제조기능 보유자인 그는 사육신중 한 사람인 김문기의 후손.김문기 공이 김씨의 18대조다. 김문기 공은 지금의 금산읍 상옥리 자택에서 처음 인삼주를 빚어,대대로 집안 제사와 결혼 등 잔치에 가양주로 사용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6·25때 집안 족보 등 모든 문건이 소실돼,가양주 내력이 잊혀졌던 것을 김씨가 우연한 기회에 숙모님으로부터 집안의 인삼주 이야기를 듣고 재현에 나서 성공했다고 한다. “‘18세 되던 해 김령 김씨 집안에 시집을 오니 시가에서 인삼주를 빚어 제사와 명절에 쓰고 있었다.’고 숙모님이 말씀하시더군요.이후 1972년 양조장을 사들여 막걸리를 생산하면서 인삼주 재현에 나섰지요.빈약한 문헌을 바탕으로 제조와 시험에 들어갔는데,실패를 거듭하다가 8년만에 제대로된 인삼주를 빚게 되었습니다.” 김씨는 그동안 체계화한 양조법으로 인삼주를 생산해 금산지방의 ‘칠백의총 추향제’,‘금산 인삼제’ 등 각종 행사에 주류를 제공하고 있다.지난 2000년엔 아셈 회의에서 건배주로 사용돼 주목을 끌기도 했다. 발효 인삼주와 소주에 인삼을 넣은 인삼주와의 차이는 무얼까.김씨는 “소주에 인삼을 통째로,또는 썰어서 넣어 우려내면 인삼의 향 및 좋은 성분과 함께 몸에 해로운 불순물이나 섬유질까지도 술에 섞인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조금만 과음하면 숙취 때문에 두통이 오기 마련이라고.하지만 발효 인삼주는 발효 및 여과 과정에서 불순물은 제거되고,섬유질도 걸러져 숙취가 전혀 없다고 한다. 김씨가 술을 담글 때 넣는 인삼은 4,5년근.6년근을 쓰면 더 좋지만 채산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4,5년근도 맛과 향기면에서 6년근과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인삼은 쌀 대비 6.5%의 비율로 쓴다.인삼의 향과 맛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 수년간의 노력끝에 얻어낸 김씨만의 ‘황금비율’이다. 인삼주는 고두밥과 누룩가루에 인삼을 넣어 발효시켜 만든다.이때 인삼은 수삼을 톱밥처럼 분쇄해 쓴다.통째로 쓰면 발효가 되기 전에 썩어버리기 때문이다.또 수삼을 써야 향이 가장 좋다고 한다.빚은 술은 실내 온도 20도 정도에서 40일 정도 발효돼야 익는다. 김씨는 이렇게 빚은 13도의 인삼 약주와 함께 43도의 인삼 증류주도 생산한다.약주는 식당 등 업소에,증류주는 주요 백화점과 면세점에 주로 나간다.대부분의 민속주가 명절 선물용으로 90% 이상 나가는 통에 평상시엔 거의 손을 놓고 있는 반면,금산인삼주는 업소용 비중이 절반을 넘어 계절을 덜 탄다고. “금산인삼주뿐만 아니라 민속주는 명절이 아닌 평상시 즐기는 술이라야 합니다.위스키나 맥주를 찾는 사람중 10분의1이라도 전통 소주나 약주를 찾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 따라 빚어 보세요 재료:밀누룩,찹쌀,인삼 1.찹쌀 1말로 고두밥을 짓는다.고두밥을 찔 때 바닥에 솔잎을 깔면 술에서 은은한 솔향이 난다. 2.고두밥을 식혀 누룩가루 3되,인삼과 함께 항아리에 넣어 섞은 뒤,물 12ℓ를 부어 잘 젓는다.누룩은 통밀을 빻아 띄운 것을 사용하고 인삼은 4,5년근을 톱밥처럼 분쇄해 쓴다. 3.20도 정도의 실내에서 약 20일간 1차 발효시킨다.이때 항아리는 삼베보자기로 덮어둔다. 4.1차 발효가 끝나면 항아리를 완전히 밀봉해 40일가량 2차 발효시킨다.다 익은 술은 항아리 안쪽으로 골이 지면서 테가 생기는데,이때 술을 떠내거나 보자기 등을 이용해 짜내야 한다.약주 10ℓ 정도가 생산된다. 5.증류 인삼주를 만들려면 증류기를 이용해 약주를 증류하면 된다.증류 초기엔 60도 이상의 술이 나오다가 마지막엔 19도 정도의 소주가 나오는데,이를 적당히 섞어 40도 정도로 맞춘다. 글 금산 임창용기자 sdragon@˝
  • [We 동화] 하마의 팔자 타령

    수영이 필요한 동물들은 모두 그걸 배워 잘 할 수 있게 되었단다.남은 것은 바다표범과 하마와 펭귄,이렇게 셋이었어.그들은 뒤늦게나마 수영을 시작해야 했지. “에이,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아.뭔가….” 수영 강습을 가는 첫날,하마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이렇게 중얼거렸어.그때 펭귄이 다가왔지. “아니,너도 수영을 하려고? 그렇게 어마어마한 몸집으로?” 펭귄이 하마의 덩치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어. 하마는 순간적으로,미리 기다리고 있던 기분 나쁜 일이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지.그래서 퉁명스럽게 쏘아 붙였어. “네 걱정이나 해! 사실,넌 새잖아? 날지도 못하면서 이젠 헤엄까지 치려고?” 하마는 펭귄의 말을 되받아쳤지.펭귄도 화를 벌컥 냈어. “별꼴이야! 너야말로 남의 걱정 마.내가 걷든,날든,헤엄치든 무슨 상관이야?” “자,자,입씨름은 그만하시고 수영 강습을 시작합니다!” 돌고래 선생님이 소리쳤어.첫 시간은 우선 물속에서 걷는 연습을 시켰지.하마는 오히려 불안했어.첫번째 과정이 지나치게 쉬웠거든. “아침부터 기분이 찜찜하더니만,펭귄과의 싸움질로 액땜이 되려나?아직은 그럭저럭 견딜 만한데….저 녀석 때문에 어쩐지 맥이 빠지는 느낌이야.” 하마와는 달리,펭귄은 겅중겅중 물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 아주 재미있었지.하지만 바다표범은 키가 작아서 고개만 물 위로 내놓은 채,엉거주춤 뛰어올라 앞으로 나아갔어.하지만 중심을 잡지 못해서 삐뚤삐뚤 엉망이 되었지. 한 서른 번쯤 저쪽 끝까지 그렇게 왔다 갔다 한 다음 강습이 끝났지. 둘째 날은 입장이 바뀌었어.돌고래가 뒤로 돌아 뛰기를 시켰거든.그것은 펭귄이 제일 잘했고 그 다음이 바다표범.뚱뚱한 하마는 눈에 띄게 숨을 몰아쉬었지. ‘내 이럴 줄 알았어.어쩐지 일이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없지….지겨워.’ 하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어.자기도 모르게 지겹다는 말을 되뇌어 놓고는,대번에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던 거야.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보니,수영이 정말 지겨워졌어. 셋째 날이 되었어. 그 날은 얼굴을 물속에 담갔다가 꺼내는 연습을 했어.물론 물속에 있을 때는 입을 아주 조금만 벌리고 음- 소리를 내면서 숨을 내쉬고,고개를 든 후에는 파! 하는 소리를 내면서 짧고 힘차게 숨을 들이쉬어야 했지. “음 ~ 파!” “음 ~ 파!” 하지만 하마는 말을 듣지 않았어. ‘숨을 어떻게 참아? 난 못 해!’ 기껏 두어 번 숨쉬기 연습을 한 하마는,고개를 흔들며 요란하게 물을 털어 냈지.그러고는 물 속에서는 콧구멍 귓구멍을 아예 닫아 버리기로 마음먹었어.그렇지만,아무리 그래도 물을 전혀 먹지 않을 수는 없었지. “아이구,지겨워! 물을 너무 많이 먹게 되잖아? 난 물 먹는 게 싫다고,더러운 물을 먹는 게 진짜 싫어!” 하마는 수영에 대해 더욱 정이 떨어져 버렸지.자꾸만 저절로 ‘지겨워’ 소리가 나왔어.어거지로,어거지로 강습 시간을 때운 뒤에,하마는 부리나케 돌아가 버렸어. 그러고는…. 그 다음부터 나타나지 않는 것이야,영원히.바다표범과 펭귄이,물고기가 부럽지 않을 만큼 아주 멋지게 수영을 할 수 있게 될 만큼 날이 흘렀는데도. 어쩌다,하루종일 물 속에 살면서 왜 그리 수영이 서투르냐고 누군가가 물으면,하마는 이렇게 대답을 하지. “아,배우려고 했었지요.그런데….” 여기까지 말하고 하마는 멋쩍게 한 번 씨익 웃어. “아,글쎄 수영 강습 첫날,가는 길에서부터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더라고요.그러더니 영락없이 펭귄이란 녀석이 시비를 걸고….그 친구와 옥신각신하다 보니 왠지 기운이 쭉 빠지는 것이,내가 수영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더라고요.그러더니 아니나 달라? 연습하는 과정이 나한테는 영 안 맞는 거예요.그래서 걷어치워 버렸어요.그때 꾹 참고 수영을 완전히 익혀 놓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면 거짓말이지만,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 때 내가 지겹다는 단어 대신에,일부러라도 재밌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면,이야기는 전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허허,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것도 다 팔자려니 하고 살아야지.안 그렇습니까?” 글 이윤희 그림 이정아 작가의 말 속담중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믿습니다.좋은 말,긍정적인 말을 하면 좋은 일 긍정적인 일이 생기더군요.수영을 배우면서 이 이야기를 썼는데,이 봄에 다시 수영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 세창장애구두연구소 소장 남궁정부 소장

    유괴,납치,실종,살인,강도….경기 불황으로 생활이 어려워진 탓인지,아니면 다른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강력 범죄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고 세상 인심은 날로 각박해지고 있다. 그러나 팍팍해진 생활 속에서도 성실한 자세로 묵묵하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특히 어려운 사람들이나 거동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밝은 얼굴과 따뜻한 정(情)을 보듬고서. 장애인 구두 전문가인 남궁정부(南宮政夫·64) 세창장애구두연구소 소장은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이순(耳順)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해맑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그는 불의의 사고로 오른팔을 잃었으나 남은 왼팔 하나로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 구두를 제작하여 장애인들의 또다른 발 역할을 하고 있다. ●“장애인 되고 나니 장애인 심정 알아”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남궁 소장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그가 제작해준 장애인 구두를 신고 편안하게 생활하는 이들이 보낸 ‘감사의 편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구두를 신고보니 무엇보다 발이 편하고 외모가 깔끔해진 것이 기분 좋은 일이고,양복을 입은지도 얼마만인지 모른다.세창 사장님의 정성이 담긴 신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일산에서 장용식-”,“세창에서 제작한 구두를 신고 예전보다 편안한 자세로 걸을 수 있는 것은 물론,장시간 보행해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이에 감사를 드립니다.-서성옥-.”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이곳을 찾아온 임정분(38·여·경기도 남양주시 마석읍)씨는 “저의 경우 왼쪽다리가 조금 짧아 오른쪽과 균형을 맞춰주는 특수 구두가 필요했다.”며 “3년전 이곳에서 구두를 맞춰 신은 뒤 허리와 어깨가 항상 뭉친 것처럼 아프던 것이 말끔히 사라져 날아다니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남궁 소장이 구두와 인연을 맺은 것은 54년 전부터.아버지를 여의고 서울이 수복되던 1950년 가을 열두살나던 해 경기도 부평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그는 먹고 살기 어려워 서울 충무로 양화점의 사동(使童)으로 들어가 심부름을 하며 제화기술을 익혔다.그 덕택으로 순탄한 생활이 지속됐다. “그런데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습니까.1995년이었어요.지하철역에서 내리던 중 술기운에 그만 발을 헛디뎌 전동차에 팔이 끼는 사고를 당해 오른팔을 잃었습니다.눈 앞이 캄캄하더군요.그러나 고민하고 좌절한다고 해서 없어진 팔이 다시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그런 생각이 들자 빨리 잊어버리기 위해 10일만에 퇴원했습니다.” 의수(義手)를 하려고 돌아다니던중 장애인 구두를 제작하는 곳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할 일이 이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남궁 소장은 곧바로 장애인 구두사업 준비에 들어갔다.이때 주변 사람들은 “장애인 구두를 하면 못먹고 산다.”며 말렸다.특히 자식들은 “책 대여점 등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많은데 굳이 힘든 일을 하려고 하느냐.”며 극렬하게 반대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300만원으로 시작한 구두사업은 예상대로 형극(荊棘)의 길이었다.자식들이 주는 용돈과 아내가 벌어주는 돈으로 근근이 꾸려나가다 보니 직원 2명의 월급을 주지 못해 밤마다 한숨을 지어야 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깡소주’를 마신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슬그머니 오기가 생기더군요.어차피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인데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고 결심했습니다.조금만 더 해보자.‘무슨 수가 생기겠지.’하면서 참고 또 참았습니다.다행히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조금씩 들어와 겨우 생활을 꾸려가게 됐어요.” ●외국 원서 구해가며 최신기술 습득 애옥살이에도 장애인 구두기술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미국 국가신발소매자 협회에서 출간한 ‘장애인 맞춤구두’ 등 3∼4권의 외국 원서를 자식들에게 번역하도록 해 밤새워 읽어 발의 구조나 관절 등은 물론 장애인 구두의 최신 트렌드를 익혔다. “희귀병을 앓아 발바닥이 썩어 들어가 흉측한 모양의 발,발가락 자체가 모두 살속을 파들어가 뭉턱하게 생긴 발,한쪽 다리가 10㎝ 이상 짧아 목발을 짚어야만 하는 발….이들은 자신의 장애 때문에 남에게 발을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죠.심지어 남편이나 자식들에게까지 말입니다.그나마 내가 팔을 잃은 장애인이어서 그런지 편하게 대해줘 일하기가 수월해요.” 남궁 소장은 “이들 장애인들이 목발을 짚고 왔다가 자신이 만들어준 구두를 신고 목발을 놓고 가면서 ‘나는 선생님 덕분에 제2의 인생을 산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남궁 소장이 장애인 구두를 제작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대략 15일.가격차는 꽤 난다.20만원대에서부터 60만원이 넘는 비싼 구두도 많다. 그는 “장애인들 대부분이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데 그걸 뻔히 알면서도 비싼 값을 다 받아낼 수 없어 그냥 주는 대로 받을 때도 있다.”며 “이 때문에 비싼 가격에 팔아도 겨우 가게를 유지해갈 수 있는 정도일 뿐 돈벌이는 별로 되지 않은 편”이라고 전한다. ●“장애인구두 의료보험 적용돼야” 세창장애인구두연구소를 정기적으로 찾는 사람은 연간 4000여명.지방은 물론 미국과 일본 등 외국에서도 찾아올 만큼 널리 알려졌다.그는 지난 2000년 산업자원부가 선정한 신지식인이 됐고,2001년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보장구 엑스포’에 참가해 극찬과 함께 미국에 장애인구두 매장을 오픈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한국에서 할일이 많다며 거절했다. “지난 2001년 정부에서 켤레당 12만원에 장애인 구두 500켤레를 주문해왔습니다.이 액수로는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워 2002년에는 못한다고 했죠.그런데 지난해 문의해 보니 정부가 장애인 구두를 제작해주는 제도 자체가 아예 없어졌답니다.허∼참,이래도 되는 건지….” 그는 의수나 의족과 같은 다른 보장구는 가격의 80%를 의료보험으로 국가가 지원해 주는데 장애인 구두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무엇보다 의료보험 적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연락처 (02)477-9376,473-4545,홈페이지는 www.isechang.com. 글 김규환기자 khkim@ ●고마운 할아버지께 저는 17개월 된 현섭이 엄마입니다.우리 현섭이는 왼쪽 편 마비 아이입니다.복지관에서 세창장애구두연구소를 소개시켜줘서 15개월 때 깔창을 맞추었습니다. 그때는 걷지 못하고 왼쪽 발이 똑바로 바닥을 밟지 못했는데 지금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그리고 지금은 걷기 시작해서 신발을 맞추었는데 앞으로 제 희망은 정상아처럼 똑바로 걷는 것입니다.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할아버지께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감사합니다.” 세창 장애구두연구소 홈페이지 ‘글마당’ 에서˝
  • EBS 애니시리즈 ‘베지테일’ 방영

    EBS는 미국의 3차원 애니메이션 시리즈 ‘베지테일’을 5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5시10분에 방송한다.사람과 야채가 역할을 바꾸어 오이와 토마토 등이 전국 각지에서 배달된 아이들의 고민거리를 해결해 주는 25분 분량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감사하기’ ‘이기심버리기’‘힘든 일 이겨내기’ 등을 노래와 연극 등 다양하게 표현해 교육적 효과를 높였다.이 애니메이션은 가정용 비디오로도 만들어져 2000∼2001년에는 미국 내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 자연과 인간사 보듬는 두 시인의 노래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람이 무(巫)라면,시는 성스러움과 속됨이 만나는 곳에서 울리는 노래가 아닐까.많은 작가들이 도심의 번잡을 피해 창작에 매진하려 시골이나 한적한 공간으로 달음질치는 것도 성(聖)과 속(俗) 사이의 여유가 그리워서일 것이다. 최근 나온 두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창비사 펴냄)와 ‘나는 걷는다 물먹은 대지 위를’(민음사 펴냄)은 모두 성과 속의 경계에서 건져올린 노래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사를 보듬는 두 시인의 시선은 그래서 고즈넉하다. ‘이 환장할 봄날에’를 낸 시인 박규리는 삶 자체가 성과 속 사이에 있다.몸과 마음이 아파 찾아간 전북 고창 미소사에서 8년째 절을 찾는 이들에게 밥을 해주는 공양주로 일하고 있는 시인은 눈에 비친 승속(僧俗)사이에서 자신의 심정을 곡절히 담았다. 시인은 “명치끝에 돌덩어리 같은 이 일생(一生)”(‘무서운 잠’)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다.비록 “가슴속 켜켜이 몸 속속들이 문신 같은 상처”(‘이유없이 오고 흔적 없이 가는 건 없다’)로 새겨진 삶이었지만 시인의 시선은 여전히 세속에의 미련을 보여준다. 그러나 “세상에서 무서운… 흔들리는 제 마음”(‘사과꽃 한송이 떨어졌던가’)과 맞서며 “내 철없는 욕심과 부질없는 사랑이/상처 한줄 그을 줄 차마 어찌 알았으랴.”(‘주름’)라고 되돌아본 뒤 자신을 낮추면 “산꿩도,다람쥐도/저물녘 다 늙은 햇살도/쉬었다 간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시인의 특이한 체험과 상상력은 절제된 시적 긴장에 힘입어 여운이 오래간다.빼어난 서정미는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설운 눈물 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종탑 뒤에 몰래 숨어…”본 뒤 시인 자신이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치자꽃 설화’)라고 노래할 때 절정에 이른다. 해설을 쓴 시인 박영근은 ‘절집 세계의 일상과 리얼리티’라 묘사한다.또 신경림은 “칼날의 매서움과 봄 햇살의 부드러움 양면을 갖춘 한없이 젊고 풋풋한 시”라고 평한다. 한편 “말(言)과 절(寺)이 만나는 곳,속됨과 성스러움인 만나는 곳이 시(詩)”라는 원재길의 시도 공간은 다르지만 시선은 역시 성과 속의 경계에 있다. 강원도 원주에 칩거하면서 창작에만 전념하는 그의 시는 폭설을 치우면서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하지만(‘폭설’) “하늘을 닫고 구름을 접고 언덕을 훌훌 털어 머리에 베고”(‘나무 그늘에 누워’) 주위에 보이는 폐허위의 풀·새·물 등에서 시의 주제인 생명의 기운을 발견한다. 속에서 성스러움을 보는 시인의 눈은 젊은 날을 돌아보는 여유가 그득한 장시 ‘겨울에서 봄으로’에서 만개한다. “너의 청춘은 즐거웠는가.”라고 말문을 연 시인은 하루 산책길에 비친 거리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그 시절 겪은 많은 죽음을 추억하기도 하고 “저를 버리기 위해 마음의 모든 집 버리려” 스스로 택한 방황을 들려준다.그 여정에서 비치는 쓰레기 더미에 피는 꽃들,날벌레·땅벌레에게서 생명스러움을 목도한 뒤 석양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종수기자 vielee@˝
  • [오픈 코리아-소통하는 사회를 만들자]제2부(중)이기주의 극복사례-3 부안원전 실패에서 배운다

    원전수거물관리센터 유치를 둘러싸고 빚어진 ‘부안사태’는 지역이기주의의 실태와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째 계속된 부안사태는 한 가지 사안을 놓고 정부와 자치단체,찬반 주민들이 벌인 가장 길고 격렬한 시위였다. 부안사태는 앞으로 정부와 자치단체,주민,시민단체들이 지역이기주의를 해결하거나 미리 방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모두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수개월간의 격렬시위,군수 폭행,고속도로 점거,공공건물 방화 파괴,촛불시위,주민투표 등 지역이기주의를 둘러싸고 예견될 수 있는 사안들이 모두 발생한 유례없는 사태였기 때문이다. ●절차상 문제, 주민설득도 소홀 부안사태가 이 지경으로 흐른 것은 정부와 자치단체 등이 정확한 상황판단을 하지 못했고 안이하게 대처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우선 부안군은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우려되는 원전센터 유치사업을 주민공청회 한번 하지 않은 채 군수 단독으로 신청하는 모험을 감행했다.정부의 원전센터 모집공고 절차나 조건에 위배되지는 않았지만 군수의 독단적 결정으로 ‘절차를 무시한 행정행위’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김종규 군수 자신도 이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군수와 군의회 의장의 원전센터 유치신청 다음날 열린 군의회에서도 유치안건이 부결돼 정치적 조정력면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주민들에 대한 홍보나 설득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초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정부와 자치단체는 주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려 하기보다는 밀어붙이기식으로 나아가려다 때를 놓쳐 오히려 화만 키운 꼴이 됐다. 원전센터 유치 신청 이후 정부와 부안군,한국수력원자력㈜ 등이 나서 대대적인 홍보와 설득에 나서기만 했어도 민심이 그처럼 격화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지적된다.사후에라도 원전센터의 안전성,지역개발 청사진 등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면 주민들이 터무니없는 헛소문에 현혹돼 폭도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반핵단체들이 ‘핵은 곧 죽음’이라며 반핵 교육을 수개월간 전개했지만 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처해 주민들이 등을 돌리는 주요인이 됐다. 부안사태가 악화된 것은 소신없이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태도가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원전센터 유치에 나선 위도 주민들에게 현금보상이 가능하다고 했다가 다음날 백지화를 선언하는 등 스스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주민들의 반핵시위가 거세질수록 정부는 사업추진 의지를 확고히 하기보다는 한발짝씩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정부 각부처에서도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위도 주민들로부터 ‘섬사람만도 못한 정부’라는 비난을 샀다. ●오락가락한 정부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전체적인 로드맵이 없다는 사실도 극명하게 드러났다.정부는 자치단체장이 유치신청을 할 경우 원전센터사업은 그것으로 모든 상황이 끝난 것으로 착각했다.그 때문에 유치신청 이후 주민 설득과 사업추진 과정에서 나오는 문제점 해결 방안이 전혀 준비되지 않아 우왕좌왕하다가 기회를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지역이기주의에서 출발한 주민들의 반핵시위 본질을 꿰뚫어 보는 분석력과 이에 대한 신속하고 적절한 대처능력도 실망스러웠다. 지역이기주의는 민의가 높아질수록,자치제도가 활성화될수록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안사태를 모델케이스로 삼아 정부와 자치단체는 물론 주민들이 모두 ‘상생(相生)’의 길을 찾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발렌타인 데이에 우리 결혼해요] 노준영(35)·최윤경(29)씨

    “老총각 노준영,이제 NO총각을 선언합니다!” 2년 전 어느 날 가장 존경하는 대학 지도 교수님이 학교가 아닌 한 카페로 불러내셨다.한걸음에 달려나갔더니 교수님 앞에 웬 아리따운 아가씨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알고 봤더니 교수님이 두 청춘남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시려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소개팅’을 주선하신 것이었다.혼기가 꽉 찬 나이에도 허구한 날 컴퓨터 모니터만 보고 사는 제자가 안타까우셨나…. 그녀의 첫인상.시원한 강바람 같고,탁 트인 푸른 들판 같은 느낌이었다.쾌활한 목소리,예쁜 미소,귀여운 행동 모두가 뇌리에 각인됐다.‘아,이사람!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제 인연이라는 확신도.하지만 그녀는 어찌나 도도한지 도통 애프터를 받아주지 않았다.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법.그 후부터 ‘노준영의 사랑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틈새 파고 들기’,또는 ‘돌쇠의 마님 마음 열기’ 작전이었다.퇴근시간에 회사 앞에서 기다렸다 잠깐 얼굴 비추기,그녀의 저녁 약속 장소까지 동행해 주기,늘 웃는 모습 보여주기,표정 파악하며 이야기 들어주기,시시때때로 휴대전화 문자 보내기 등등.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그녀도 제 쪽을 바라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갖은 핍박에도 꿋꿋한 척했지만 사실 속은 숯검정처럼 타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는데,결국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지금 나의 예비신부는 우리의 스위트홈을 위해 인테리어를 구상 중이고,인터넷 요리사이트를 서핑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의 조리법을 익히고 있다.내가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위로해 주고,몸이 피로할 때는 재치있는 입담으로 웃게 해준다. 14일 밸런타인데이에 노준영과 최윤경의 초콜릿처럼 달콤한 사랑의 이중주가 시작된다.저희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길…. 더불어,평생 짝꿍을 만나게 해주신 교수님께,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 민씨 시사저널 회견 내용·파장

    ‘청와대·금융감독원·경찰이 조율,모금은 없는 것으로 하고 사건을 축소했다.’는 민경찬씨와의 인터뷰 기사가 보도되면서 653억원 모금의 실체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뜨거워지고 있다. ●“청와대와 말 맞췄다.” 10일 시사저널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민씨는 파문이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달 30일 “펀드가 아니라 투자회사이고 원리금 보장에 관한 약속이 분명 없었다.”고 모금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투자자 규모에 대해 “법적으로 50명 넘으면 문제가 있다니까 40명 전후로 조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2일 “청와대와 금감원은 다 조율이 됐다.”고 전제한 뒤 경찰 수사에 대해 “괜히 오버하는 거다.시늉은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차관급 인사 여부에 대해서는 “단순한 투자자이며 역할은 없다.”며 실체를 인정했다.지난 3일 인터뷰에서는 투자액과 관련해 “보통 10억원이 많다.5억원,10억원,20억원 단위로 받았다.한 사람은 8억원을 투자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4일 연행 직전에는 ‘청와대에서 민 원장을 버리기로 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지금 해명서를 만들어 내야할 것 같다.문재인 수석하고 해명서를 내기로 했다.”고 청와대와의 조율 사실을 다시 강조했다. 민씨는 또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민 원장이 투자자 수를 65명에서 47명으로 바꿨다고 밝혔다.’는 지적에 대해 “청와대에서 실수한 것 같다.”면서 “오늘 아침 문 수석하고도 통화했는데….”라고 말했다.구속된 6일 밤에는 “박 사장이라는 이름으로 이와 관련됐다고(해서 계좌를) 새로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경찰·변호인,“사실 아니다” 민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번 사건은 정권의 도덕성에까지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씨가 확인서까지 쓰면서 보도 내용을 부인했고,민씨가 청와대와 조율을 했다고 하면서 스스로 왜 이 이야기를 언론에 공개했는지 등 석연치 않은 부분도 적잖다. 민씨의 변호인 임기태 변호사는 “민씨가 ‘구속 전에 시사저널 기자와 한 이야기는 청와대와 금감원에 거짓말을 할 때 한 말이어서 믿을 것이 못 된다. 자신의 취지와는 다르게 해석해 보도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박 사장 관련 부분은 “펀드가 나오지 않으니까 경찰이 병원 식당운영권 피해자인 박 사장 관련 혐의로 구속을 시켰다는 취지로 말한 것인데,이를 시사저널은 계좌와 관련된 것처럼 해석했다.”고 밝혔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도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이상원 특수수사과장은 “8일 조사 때까지 민씨는 ‘모금 사실이 없다.’고 일관된 진술을 했다.”면서 “광범위한 계좌추적과 통화내역 조회 등 강도높은 수사를 하고 있는데 ‘조율’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 청풍리조트 첫 흑자 전환 ‘계륵’신세 면하나

    ‘이제부터는 ‘계륵(鷄肋·큰 도움도 안되지만 버리기도 아까운 물건)’신세를 면하게 되나?’ 국민연금기금으로 운영하는 휴양시설인 청풍리조트가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충북 제천에 있는 청풍리조트는 지난 2000년 9월 900억원을 투자해 문을 열었지만 줄곧 적자에 시달려 왔다.특1·2급 호텔 2개에 276개의 객실을 갖췄지만,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데다 교통도 불편해 이용객이 많지 않아서다.때문에 국정감사 때마다 연금기금을 방만하게 운용한 단골 사례로 의원들의 집중질타를 받아왔다. 실제로 개장 첫해인 2000년 3억 3000만원,2001년 4억 9000만원,2002년 7900만원 등 적자행진을 지속해 왔다.그러나 지난 2001년 12월 제천을 통과하는 중앙고속도로의 개통과 주5일 근무제의 확산으로 이용객이 늘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4200만원의 흑자를 냈다. 직장의 단체 교육연수가 꾸준히 늘고 타이완 등 동남아 관광객이 많아진 것도 한몫했다.하지만 지난해 운영비만 51억원이나 되는 상황에서 흑자 폭이 4000만원대에 불과해 여전히 경제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복지부 연금재정과 손진우 사무관은 “올해는 이용객이 처음으로 10만명에 육박하면서 흑자폭도 억대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건교부 ‘부패이미지 벗기’ 안간힘

    건설교통부 직원들이 부패 이미지를 벗기 위해 와신상담하고 있다. 최근 부패방지위원회 조사결과 건교부의 민원청렴도가 꼴찌로 나타나는 등 부패의 온상처럼 비쳐지자 이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버리기 위해 전 직원이 나섰다. 한편으로는 “부방위의 조사는 지방청 업무만 평가한 결과이기 때문에 본부 직원들은 억울하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건교부는 우선 정확한 자기 진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외부로부터 ‘쓴소리’를 듣기로 했다. 장·차관을 포함,본부 및 지방청의 서기관 이상 간부 182명이 30일 오후 2시부터 경기 성남 새마을연수원에서 ‘변화와 혁신을 위한 간부 연찬회’를 개최한 것이다. 연찬회에는 외부인사 4명이 초청돼,건교부를 향해 싫은 소리를 해댔다.전기정 대통령비서실 혁신기획비서관,윤은기 IBS컨설팅 회장 등이다. ‘건교부는 대민접촉이 많은 부처인데 섬세함이 부족하다.’ ‘대민부처이기 때문에 민원만족도 평가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해도,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쓴소리에 참석자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 함께 감사관실에서는 부정부패 방지 방안 마련에 나섰다.감사관실은 부정부패 방지 방안을 각 실·국별로 취합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도 안을 만들고 있다. 감사관실 김진숙 참여담당관은 “각 부서에서 낸 의견을 취합한 뒤 다음달 초 부패방지 방안을 확정,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건교부 직장협의회도 최근 분위기에 맞춰 6급 이하 직원들을 대상으로 부패고리를 끊기 위한 ‘출장 매뉴얼’ 작성을 검토 중에 있다. 연찬회를 주관한 이재홍 업무혁신추진단장은 “일부 직원들은 건교부가 비리의 온상으로 비쳐지고 있는데 대해 사기가 떨어져 있다.”면서 “이번 연찬회를 통해 부정부패 척결은 물론 우리가 왜 변해야 하는지 등을 깨우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 주말매거진We/호수의 요정 빙어를 찾아서

    “빙어회는 원초적인 생명의 맛이 있는 거 같아요.입안에서 파닥파닥하는 게.” 강원도 인제군 남면 남전리앞 소양강의 얼음 벌판은 200만여평이 넘는다.서울 여의도의 3배 가까운 넓이로 얼음 두께가 30㎝ 이상이라고 한다.마침 얼음에 구멍을 뚫고 빙어 낚시를 하던 최의현(38·경기도 의정부시)씨는 “빙어회는 비린 맛이 거의 없고 담백합니다.씹을수록 고소한 맛도 나고요.”라며 빙어를 치켜세웠다. 최씨가 의자 옆에 판 얼음 구덩이에는 빙어 대여섯마리가 헤엄치며 놀고 있었다.그의 낚시 전리품이다.그는 미리 준비해온 초장을 종이컵에 넣고,빙어 한 마리를 자랑스럽게 종이컵에 넣어 푹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한두 번 우물우물한 다음 소주도 한 잔 가져갔다. 그는 초장을 잔뜩 묻힌 빙어를 나무 젓가락으로 집어 딸 보람(의정부 신국초 4년·11)양에게 권했다.썰매를 타다 온 보람양은 “고기에서 풋과일 맛이 나요.”라고 말하는 게 해맑다.실제로 빙어는 맛이 담백하고 오이 맛이 난다.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과어(瓜魚)라고도 불렀다. 경북 문경에서 왔다는 송윤상씨는 “빙어를 잘못 다루면 빙어에 뺨 맞는다.”고 말했다.그는 커다란 사발에 든 빙어의 꼬리를 집어 들고는 빙어 머리를 사발 몸통에 부딪혀 기절시켰다.그리곤 초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송씨는 “빙어를 기절시키지 않은 채 초장에 찍으면 빙어가 요동치는 바람에 초장이 사방으로 튀고,입 주위가 엉망이 된다.”고 설명했다. 인제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국제슈퍼 주인 김영화(48·여)씨는 “빙어회에서 흙냄새가 난다면 인제 빙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김정순(25·여·강원 강릉시)씨는 “빙어회를 먹지 않으면 기운이 나지 않아요.”라며 겨울철에만 먹을 수 있는 게 아쉽다고 했다. 이렇듯 요즘 꽁꽁 언 소양강 상류에는 빙어 맛을 즐기려는 강태공으로 붐빈다.빙어 낚시는 어렵지도 않고,준비물이 비교적 간단하다.박상권 국제낚시 대표는 “주차장이나 빙판 곳곳에서 연 얼레처럼 생긴 낚싯대인 견지와 미끼를 빌려 빙어를 낚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낚싯대는 보통 6000원,미끼는 2000원.오랫동안 낚시를 하려면 의자가 필요하다.의자가 없으면 썰매를 빌려 앉아도 좋다.썰매는 대여료가 보통 4000∼5000원.빙어는 달 밝은 보름과 아침·저녁 무렵에 잘 잡힌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낚시를 위한 얼음 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다.얼음 두께가 20㎝ 이상이기 때문이다.손쉬운 방법은 다른 사람들이 뚫었던 구멍을 재활용하는 것이다.빙어를 많이 잡고 싶으면 낚싯대를 살짝 아래 위로 흔드는 고패질을 자주 해야 한다.입질이 전혀 없으면 다른 장소로 옮겨야 한다.빙어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어 그곳에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빙어 낚시의 미끼는 살이 토실토실 오른 구더기다.낚시로 갓 잡은 빙어를 어찌 회로 먹을 수 있을까? 박 대표는 “빙어는 입이 작아 구더기를 삼키지 못한다.”며 “그래서 낚시 바늘을 뽑아낼 때 미끼도 딸려 나와 빙어회를 즉석에서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는 게 빙어 낚시지만 간단한 일은 아니다.김민호(38·경기도 양평군)씨는 “낚싯바늘에 걸린 빙어를 떼내고,미끼를 끼워야 할 땐 장갑을 벗어야 하는데 손이 너무 시리다.”며 추위를 호소했다.그는 “한참 앉아 있으니 발도 시리고.추위가 가장 힘들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소주가 추위를 좀 달래준다고 슬쩍 덧붙였다. 인제 빙어는 회로 바로 먹어도 안전하다.신광용 인제군 보건소장은 “올 시즌 4차례에 걸쳐 빙어에 대한 기생충 검사를 국립보건원에 의뢰한 결과 모두 불검출로 나왔다.”며 “디스토마가 없다.”고 강조했다.이유로는 소양강 상류인 인제는 물이 1급수로 깨끗하고 빙어는 단년생으로 디스토마가 붙기 전에 죽어버리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그래도 빙어회를 바로 먹기에는 비위가 약하거나 찜찜한 사람은 튀겨 먹을 수도 있다.빙어 튀김을 위해서는 간단한 취사도구와 식용유,물과 밀가루를 준비하면 된다. 빙어를 먹을 수 있는 시기는 사실상 다음달 말까지.3월1일부터 20일까지는 산란 시기로 어획이 금지돼 있다.최성용 인제군 농업기술센터 수산개발 담당은 “빙어는 산란 후에 비실비실해지면서 영양가가 없어 찾는 사람이 드물어진다.”고 말했다. 도움말 국제낚시(033-461-1070) ■ ‘빙어천하’ 인제 100배 즐기기 ‘빙어의 고장’ 인제 지역의 식당가가 내놓는 빙어는 낚시가 아니라 그물로 잡은 것이다.소양강을 텃밭으로 삼는 어부가 63명이나 된다. 빙어 조업,즉 ‘빙어를 터는’ 현장을 따라가 봤다.한창 낚시를 많이 하는 신남선착장에서 10여㎞ 하류인 인제군 남면 상수리 일명 ‘양구선착장’.인제 어촌계 연합회 김충겸(38) 총무가 특수 강화 플라스틱(FRP)으로 만들어진 소망호(0.8t급)의 시동을 걸었다.소망호가 강심으로 나아가자 체감 온도는 영하 30∼40도로 떨어지는 듯했다.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이런 것인가. 10분가량 달려 도착한 곳은 신월리.그물을 쳐 둔 가장자리쪽으로 다가가자 5∼10㎝ 두께의 얼음이 금가면서 깨지는 소리가 쩍쩍 났다.군데군데 얼음 조각들이 마치 누더기 헝겊을 꿰맨 것처럼 얼어붙어 있었다.배가 지나간 흔적이다.김씨는 “얼음이 어중간하게 얼면 작업하기 가장 어렵지요.조금만 속도를 내면 배가 가벼워 얼음 위로 올라타는데,배에서 내리기엔 너무 위험하거든요.”라고 말했다.“얼음이 두꺼우면 걸어 들어가 전기톱으로 얼음을 썰어 작업하지요.” 빙어는 미리 그물을 쳐 두었다가 2,3일 뒤에 나가 그물을 거둬 올리는 정치망으로 잡는다.이렇게 해서 3개 어촌계가 연간 60∼70t 어획고를 올린다.고기잡이가 중단되는 겨울철 어부들에겐 짭짤한 수입원이다. 지난 시즌까지 빙어 터는 작업을 함께했던 김씨 부인 원정희(34)씨가 신남리 신남파출소옆에서 어부와 선녀(033-461-5778)라는 식당을 열었다.개업 연륜을 짧지만 신남리 주민들이 가장 먼저 입에 올리는 식당이다.남편이 잡아 온 것을 안주인이 빙어튀김(1만 5000원)과 빙어회(1만원)로 판다.특히 빙어회무침(1만 5000원)에는 배·쑥갓·깻잎·상추 등의 채소도 풍성하게 들어가 상큼한 맛을 더한다.붕어찜(3만·2만원)과 쏘가리 매운탕(5만·4만원)도 좋다. 또 남면 부평리의 신남선착장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대흥식당(033-461-4424)은 빙어회(1만 5000원)와 빙어튀김(1만원)을 잘한다.이 집의 튀김에는 깻잎을 잘게 썰어 섞은 것이 특징.깻잎이 튀김 기름의 느끼한 맛을 다 잡아준다.빙어 젓갈도 살짝 나온다.지난해 본격적으로 담그기 시작한 탓인지 빙어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다.짜지 않으면서도 빙어 감칠맛이 돌았다.모르고 먹으면 멸치젓으로 착각할 정도. 소양강에서 얼음이 가장 먼저 어는 남전리의 늘푸른식당(033-463-6361)은 전망이 좋다.강가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낚시나 썰매 타는 손님을 맞는다.강촌식당(033-461-7919)은 신남 선착장 내려가는 입구에 있어 왕복 손님들이 들끓는다.빙어회 1만 5000원,빙어 튀김 1만원. 서울과 인제를 오가는 길에 홍천군 상오안리의 장원막국수(033-435-5855)집은 한번 들를 만한 곳.순 메밀을 직접 반죽해 쓴다.검은 색깔이 아니라 희뿌연 색깔이 나는 것이 특징.따끈한 메밀 국수물이 겨울 추위를 녹이는데 좋다.보온병을 가져오면 메밀 국수물도 넣어준다.메밀 국수는 5000원. ■ 유옥선의 빙어요리 유옥선 내린음식연구회장은 찰옥수수·감자·인삼·약수 등의 요리 대회에 출전해 다수의 상을 받았고,인제군에서 유일한 한정식집 ‘요리천국’(031-461-8774)을 운영한다. ●빙어 꼬치구이 재료 빙어 500g(50∼60마리),유장(소금·후춧가루 1작은술씩,참기름 1큰술) 만드는 법 (1) 빙어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빙어의 중간 부분을 꼬치에 꿴다.(2) 빙어에 유장을 발라 초벌구이를 한다.참나무 숯불로 석쇠를 이용해 굽는다.(3) 초벌구이한 빙어에 유장을 다시 발라 노릇하게 구워낸다.팁 숯불이 없으면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약간 두르고 구워내도 좋다. ●빙어 돌이뱅이(조림) 재료 빙어 500g,무 ½개,양념장(간장 (A)컵,고춧가루 2큰술,다진 파·다진 마늘·들기름 1큰술씩).만드는 법 (1) 빙어는 씻어 놓고,무는 1㎝ 두께로 썬다.(2) 냄비에 무를 깔고 빙어를 돌려 얹은 다음 양념장을 ½만 끼얹어 끓인다.(3) (2)가 한소끔 끓으면 나머지 양념을 다 넣고 끓인다.(4) 무가 익을 때까지 끓여 국물을 조려낸다.무를 젓가락으로 찔러 들어가면 익은 것이다. ●빙어볶음 재료 마른 빙어 50g,고추장 1컵,꿀(또는 조청)·참기름(또는 식용유) 2큰술씩,통깨 1큰술 만드는 법 (1) 마른 빙어는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에 살짝 볶아 비린내와 잡내를 없앤다.(2)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빙어를 볶다가 고추장을넣고 볶는다.(3) (2)가 끓으면 꿀을 넣고 볶다가 끓으면 불을 끄고 통깨를 넣고 섞는다. ●빙어 저냐(동그랑땡) 재료 빙어 500g,당근·양파·피망 ½개씩,두부 ¼모,소금·다진 파·다진 마늘 1작은술씩,달걀 3개,후춧가루 약간,식용유·밀가루 적당량 만드는 법 (1) 빙어는 씻어 곱게 갈아 놓는다.(2) 당근·양파·피망·파·마늘은 다져 놓는다.(3) 두부도 물기를 빼고 다져 놓는다.(4) 달걀은 깨서 모아둔다.(5) (1)을 (2)와 (3)에 섞어 소금으로 양념을 하고 밀가루를 묻힌다.(6) (5)를 한 수저 떠 손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내고 밀가루와 달걀로 옷을 입혀 지져낸다. 인제 이기철기자 chuli@
  • 민주당 지도부 ‘타지역 출마’ 도미노

    20일 민주당 상임중앙위 회의가 대구에서 열렸다.조순형 대표 등 당 지도부가 몽땅 새벽기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갔다.전날 조 대표의 대구 출마 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한 행보다. ●조순형,“대구는 선친의 정치고향” 이날 조 대표가 도착한 동대구역에는 당원을 중심으로 150여명의 지지자들이 나와 플래카드와 꽃다발 등을 들고 조 대표 일행을 환영했다.조 대표의 대구행에는 추미애 장재식 상임중앙위원,유용태 원내대표,강운태 사무총장,장성원 정책위의장,김영환 대변인,김성재 총선기획단장,전성철 글로벌스탠더드기획단장 등 주요당직자들이 대거 동행했다. 대구시지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조 대표는 “개혁을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저부터 모든 것을 버리기로 작정했다.”며 “대구시민들께서 지역주의의 장벽을 허물려는 저의 외로운 결단에 힘을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이어 조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이미 입증하고 있듯이 부패한 개혁은 또 다른 부패를 낳을 뿐”이라며 “이번 총선을 통해 부패 한나라당 역시 역사의 무대 뒤로 퇴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조 대표의 대구 공략에 이어 한화갑 전 대표도 설 연휴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수도권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다.측근은 “당의 승리를 위해 자신이 수도권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전하고 “경기도 안산과 일산,서울 양천을 등을 출마지역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날 서울 출마를 선언한 김경재 의원은 “아직 출마 지역구를 결정하지 않았으나 서울 동작갑에 나서 서청원 한나라당 전 대표와 일전을 치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박상천 전 대표까지 서울 출마에 가세한다면 민주당은 강서갑(박 전 대표)-강서을(조재환 의원)-영등포갑(김민석 전 의원)-동작갑을 잇는 ‘남서울벨트’를 구축,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김민석,“정 의장,부산에서 붙자” 민주당은 조 대표의 대구 출마를 계기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에게 부산 출마를 촉구하는 등 압박에 나섰다.조재환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진정 전국정당이라면 정 의장도 이벤트정치를 즉각 중단하고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에서 출마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김민석 전 의원도 “정 의장이 부산에 출마한다면 한판 붙어볼 생각이 있다.”고 가세했다. 진경호기자 jade@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6)백제인의 사랑 질표율사(하)

    삼국시대 후반 백제는 신라와의 지루한 전쟁으로 몹시 불우한 시대를 이어갔다. 신라는 백제를 넘어서 당나라와의 보다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국력을 키우고 싶어했고,그러자면 백제는 신라에 가장 골치 아픈 장애물이 되었다.두 나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였다.신라의 집요한 침략전쟁 속에서 백제는 좌절하지 않기 위해 미륵신앙을 껴안았다.단순한 전쟁 회피나 불안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서가 아니라 신라의 군사 공격을 꺾어 응징하는 힘과 근원적으로 죽고 죽이는 살상전이 없는 세계에 태어나 살고 싶다는 구원을 향한 절절한 신앙이었다. 미륵신앙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백제인들은 백제 땅이 미륵부처가 강림하실 약속의 땅으로 선택되기를 희망하면서 미륵사를 크게 짓고 미륵부처가 오시기를 기다렸다.미륵사가 삼국시대를 통하여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은 백제인들의 그같은 소망이 투영된 백제인의 마음으로 이룩한 신앙의 결정체였다. 미륵신앙은 100년이 넘도록 뜨겁게 달아올랐다.온 나라가 미륵신앙의 성지였다. 이같은백제의 미륵신앙을 유심히 살펴보던 신라가 뒤늦게야 슬며시 미륵사상을 배워가더니 백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미륵신앙을 현실화시키기 시작했다. ●신라에 정복 뒤 좌절빠진 백제 유민 화랑도와 미륵사상을 연결시켜 현실적인 국력으로 바꿔낸 것이다.미륵신앙을 표방하는 사찰을 짓기도 했지만 미륵사상이 현실화된 화랑도를 통하여 군사력을 극대화시킨 신라는 그 힘을 바탕으로 삼아 백제를 정복해버렸다. 어이없게도 신라의 지배 아래로 떨어진 백제는 그들의 염원으로 이룩한 미륵성지들과 함께 소망의 땅에서 절망의 땅으로 쫓겨난 셈이 되고 말았다. 좌절감은 크고 깊었다.이제 백제인들은 백제 유민이란 말로 바뀌는 가혹한 운명에 놓였다.그 때부터 처절한 저항의 날들이 시작되고,원한 또한 깊어졌지만 한번 뒤바뀐 운명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신라는 아주 천천히 백제 땅과 사람을 신라의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갔다.먼저 백제의 역사를 신라기년(新羅紀年)으로 고쳐 신라기(新羅紀)에 삽입시켰다.백제를 정복한 지 100년이 가까워진 757년(경덕왕 16) 진표가 태어나 자란 고향의 땅 이름을 원래 지명인 두내산현에서 만경(萬頃)으로 바꾸었다.이는 정복지 백제에 대한 신라의 완전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진표는 이제 만경들판에서도 그치지 않는 백제유민들의 원한과 저주의 나날들이 미륵신앙의 힘으로 해원되어 신라와의 상생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이같은 격변속에서 진표는 아버지와 진지한 의논 끝에 금산사(金山寺)의 숭제(崇濟)법사를 의지하여 출가하기로 결심했다. ●유민들 고난 해결위해 ‘망신참회법’ 수행 숭제법사 또한 백제 유민으로서 일찍 당나라 정토종을 이끌던 선도(善導·613∼681)화상 법맥을 이어온 스님이었다.이제 진표는 스님이 되어 숭제법사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숭제법사는 진표스님께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을 주면서 각별한 수행을 권했다.점찰경이라고 부르는 이 경전은 말법시대(末法時代)가 되면 불교를 신앙하는 이들이 많은 어려움과 장애에 부닥쳐 수행에 곤경을 겪게 되고,산란한 마음때문에 갈피를 잡지못할 경우가 많게 된다고 했다.이때 숙세의 선악업보가 현재의 고락길흉을 점찰하여 참회하고 반성하면서 마음의 안락을 얻도록 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숭제법사는 진표스님에게 계법(戒法)을 지니고 미륵과 지장보살에게 참회하여 직접계법을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할 것을 당부했다. 진표스님은 백제 유민들이 100년 가까이 겪고 있는 그 고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과 능력을 구하기 위해 17년 간의 긴 고행에 돌입했다.육신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수행법의 하나인 망신참회법(亡身懺悔法)을 선택했다.육신을 버리지 않고는 깨달아지지 않는 수행법이었다.백제 유민들이 한 세기토록 겪은 육신의 고통을 자신의 한 몸으로 다 받아내겠다는 각오였다. 참회의 참(懺)은 산스크리트 Ksama의 음역으로 용서를 비는 것,뉘우치는 것을 뜻한다.내가 범한 죄를 부처 앞에서 고백하는 것,회개한다는 것인데,원시불교에서 비구는 자기가 범한 죄를 석가세존 또는 장로비구에게 고백하여 심판받도록 되어 있었다.비구는 보름마다 모여서 우포자타(uposatha·포살·布薩)라는 의식을 행하고,계율의 조목을 읽힐 때 마다 죄가 있을 때는 스스로 말하고 일어서야 했다.이렇듯 대승불교에서는 자기의 죄를 인정한 자는 모든 부처 앞에 참회하고,온몸을 던져 진리에 귀의하는 맹세를 하며,부처의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의 잘못을 거두어주는 은혜를 입음으로써 죄의 공포에서 해방된다고 했다. 이같은 의식의 궁극 목표는 죄의식이 전혀없어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라 하였다. 진표스님이 이같은 망신참회법을 선택한 것은 직접 자신이 진리를 체험하여 확신하기 위해서였다.그런 뒤 백제 유민들에게 참회의 필요성을 말하고,참회를 통하여 진정한 해방을 누리고 자유를 숨쉬고 사는 삶을 권하려는 것이었다.육신의 고통을 극복하는 참회법은 일찍이 석가모니 시대부터 있어왔다.하루에 한 끼,이틀에 한 끼,사흘에 한 끼를 먹거나,나무 열매나 꽃으로 요기를 하거나,한 다리를 들고서 있거나,진흙 먼지 속에 누워있거나,가시덤불 위에 누워있거나,물과 불 위에 누워있거나,어깨쭉지의 살에 구멍을 뚫고 그 속으로 끈을 밀어 넣어 나무가지에다 묶어놓고 피를 흘리며 매달려 있는등의 육신을 고통속으로 몰아 넣어 그 고통을 잊어버림으로써 위대한 정신을 깨달으려는 수행법이었다. 진표스님의 망신참회법은 이들 전통적 수행법보다 훨씬 더 처절했다. 760년(경덕왕 19) 쌀 20말을 쪄서 말린 것을 가지고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면서 백제 유민의 고통을 구원할 수 있는 깨달음을 구하지 않고는 살아서 그 방문을 걸어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미륵부처 앞에서 부지런히 계법을 구했다.대부분의 출가승려들이 해온 전통적 수행법에 따른 정진이었다.그러나 3년이 넘도록 미륵불은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았다.그때 진표스님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경전에 쓰여있는 수행법에 따라 참회하는 것만으로 백제 유민들의 그 오래고 참혹한 고난이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신라가 백제를 정복한 것은 땅 위에 백제 한 나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가가 서로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인정할 때는 피할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상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우주 모든 것의 상관성 깨달아 진표스님이 망신참회법 수행을 결심한 것은 신라의 백제 침공을 꾸짖고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그보다는 백제인들이 한 세기가 넘도록 미륵신앙을 지니고 혼신껏 기도했지만 그에 대한 회답이 신라의 지배 아래서 굴욕적인 삶을 살도록 한 것이라면,왜 그래야 했는지를 알고 싶었으며,장차 백제유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원한과 저주의 불길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 해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진표스님은 자신의 고통이 모든 백제유민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으며,그 끈은 모든 신라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주에서 홀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없고,태어나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있다는 깨달음이 진표스님의 확신으로 차올랐다.백제인들의 고통이 소멸되지 않고는 자신이 결코 안락할 수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다.이제 남은 문제는 백제인들의 고통을 없애줄 방법을 터득하는 일이었다.그 방법은 수행자 자신의 죄의식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참회법으로는 불가능한 차원에 닿아야만 깨달을 수 있음을 알고는 육신을 버리기로 했다.온 우주는 마음의 문제이지 육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장한 결심으로 21일 동안 육신을 던져넣는 참회수행을 단행했다.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진표스님을 안아 바위 위에 올려 놓고 사라졌다.다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수행을 강행했다.3일째 되자 팔과 다리가 부러져 일어서 걸을 수도,물건을 쥐기도 어려웠다.이제는 온몸을 굴려 언덕 아래로 떨어지는 참회수행을 계속했다.오직 마음으로 미륵을 불러 대답을 원했다.차츰 고통을 잊는 상태로 몰입했다.이제 온전한 것은 머리 뿐이었다.머리 마저 깨뜨려버림으로써 살고죽는 불편함마저 초월하고 싶었다.7일째 되던 날 밤 지장보살이 나타나 팔과 다리를 고쳐주고,가사와 발우를 전했다.수기(授記)가 내려진 것이다.그때부터 새로운 수행을 시작했다.21일을 다 채웠을 때 그토록 갈망했던 고통을 치유시키는 지혜가 터득되었다.금산사로 다시 돌아온 것은 29세 때였다.금산사에다 청동으로 빚은 미륵장육상을 모시고 그 아래서 외치기 시작했다.사자후(獅子吼)를 토한 것이다. ●신라 지도자들에도 참회 설파 만경들에서 농사짓던 이들이 미륵불을 기다렸지만 미륵불이 오지 않는 까닭을 말하면서 진정한 미륵을 만날 수 있는 비법을 설파했다.백제인의 마음속에는 신라를 향한 증오와 저주로 꽉 차있기 때문에 미륵의 소식이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이미 미륵은 와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했다.증오와 원한과 저주로 피흘리고 죽이는 일이 그치지 않는 한 미륵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설득했다.신라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백제인들뿐이며,백제인의 용서를 통해서만 신라가 나라다울 수 있고,신라가 나라다워야만 백제인의 마음에서 증오와 저주가 사라질 수 있으며,그래야만 공존과 상생을 이룰 수 있다고 절규했다. 신라의 지도자들을 향해서도 외쳤다.백제인을 능멸하고,빼앗고,죽이는 통치법으로는 신라도 끝없는 고난속으로 빠져들 뿐이며,오만과 편견과 무력으로 이룬 한 때의 번영이 더 큰 재앙으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면 참회하는 길뿐임을 설파했다. 신라인의 참회가 있어야만 백제인과 공존할 수 있음을 타일렀다.마침내 신라의 왕과 귀족,지도자들이 진표스님의 법문에 무릎을 꿇었다.진정한 통일신라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진표스님의 온 몸을 던진 백제 사랑은 한 시대의 고난과 불행을 극복해 내는 위대한 지도자의 참모습이었다.
  • “색소폰 불며 감성경영 배웁니다”한국쓰리콤 최호원 사장

    젊은 CEO의 경영화두는 ‘인화’일 때가 많다.능력과 패기는 넘칠지라도 인화나 팀웍을 원만하게 가꿔 나가는 데 취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적지않기 때문이다.조직이란 한 명의 뛰어난 인재가 아닌 여러 구성원이 협력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대표적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한국쓰리콤 최호원(45) 사장.지난 1999년 한국쓰리콤 설립과 동시에 차장으로 입사한 뒤 능력을 인정받아 2001년 40대의 젊은 나이에 사장에 올랐다.그는 수장(首長)의 가장 큰 역할은 여러 인재들이 협력체를 이룰 수 있도록 신뢰의 토양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시간이 날 때마다 직원들에게 ‘인화론(人和論)’과 ‘감성경영론’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신념은 입사 이후 변함이 없다.미국 본사의 경영방침까지 바꿔 놓았다.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한국쓰리콤은 다른 외국계 기업처럼 본사의 방침대로 직원들의 개별 실적을 평가해 보상했다.그러나 직원들의 개인주의 성향이 조직의 능률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깨닫고 본사를 끈질기게 설득했다.결국 개인이 아닌 팀 단위의 성과평가 시스템을 도입해도 좋다는 허락을 본사로부터 얻어냈다.이후 한국 한국쓰리콤의 모토는 ‘함께 일하고,함께 성공하자.(Work Together,Sucess Together)’가 됐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직원들을 보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보자고 다짐하며 하루 출근길을 시작한다고 했다.아침에 일어나면 누구보다 먼저 회사에 와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직원들의 마음을 열고 싶어요” 그는 요즘 색소폰에 빠져 있다. 어릴 적부터 기타 하나쯤은 잘 다룰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2001년 최고경영자에 오른 뒤에는 새로운 활력소가 더욱 절실해졌다.그러던 중에 지난해 3월 선배로부터 기타만 고집하지 말고 색소폰을 배워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실 음악에는 문외한입니다.악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그래서 시작하기 전에는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만 일단 일을 저질러 보기로 마음 먹었지요.우선 100만원을 주고 색소폰을 구입했습니다.음악교실 사이트들을 뒤적거리며부지런히 색소폰 관련 정보를 모았습니다.색소폰 전문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온라인을 통해 동영상 초보자 레슨도 받았습니다.” 색소폰을 산 뒤에는 빠짐없이 하루 1시간 이상 연습에 매달렸다.몇개월 동안은 아파트 창문을 걸어 잠그고 불어댔지만 아무래도 이웃에 폐를 끼칠 것같아 퇴근 뒤 집 근처의 연습실을 찾아갔다. 색소폰을 접하면서 자신에게 한가지 약속을 했다.연말 종무식 때 회사 직원들 앞에서 보란 듯이 연주회를 갖겠다는 것이었다.그러나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종무식을 앞두고 무리하게 연습하다가 탈장 진단을 받은 것이다.색소폰을 불 때 무리하게 복력(腹力)을 주면 장기가 압력을 받아 내려 앉는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탓이었다.아쉽기는 하지만 1년을 연기해 올 종무식 때의 연주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 소절씩 익히는 재미가 보통이 아닙니다.나만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연주할 수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시작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요즘에는 우리 가족간에 훌륭한 대화의 매개체 역할까지 하고 있으니 색소폰이 여간 고맙지 않아요.” 한국쓰리콤은 4년전까지만 해도 국내 네트워크 장비시장에서 1위를 달렸다.그러나 2000년 본사의 사업구조 변경 방침에 따라 잠시 핵심사업 분야에서 벗어나면서 1위 자리를 씨스코에 내줬다.강점을 지닌 사업부문에서 승부를 걸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판단에서 옛 사업구조로 돌아오는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올해 라우터 등 중대형 네트워크 장비 분야의 국내 매출 목표는 지난해의 2배를 웃도는 2000억원으로 잡았다.3년안에는 반드시 업계 1위 자리를 탈환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색소폰에 남달리 집착하는 것도 경영철학과 무관치 않다. “엔지니어 출신이다 보니 매사에 자꾸 기술적으로 접근하게 되더군요.기능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버릇을 좀처럼 버리기 어려웠어요.색소폰을 앞세워 직원들에게 부드러운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아무래도 근엄한 사장보다는 정감 있는 사장의 모습이 직원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노을진 해변에서 아내에게 색소폰 선율 선물하고싶어요”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라면 색소폰 열풍을 일으켰던 케니지의 감미로운 연주를 기억할 것이다.또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연주하던 드라마속 차인표의 근사한 모습에서 색소폰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색소폰이 멋진 남자를 완성시키기 위한 소품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그도 이런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아내와 겨울 여행을 떠나 노을빛 고운 해변에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들려주고 싶습니다.아마 연말쯤이면 가능하지 않겠어요.” 최 사장은 올 가을 지하철 자선연주회를 계획하고 있다.노년에는 노인정,고아원을 돌면서 외롭고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의 색소폰 선율을 선물할 예정이다.연주음반도 낼 참이다.쓰리콤 스위치를 사면 자신의 색소폰 연주음반을 끼워주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일할 때는 무섭게 몰아붙이지만 일을 떠나서는 한없이 편안한 경영자가 되고 싶다는 그에게 색소폰은 이제 일상의 작은 탈출 정도가 아닌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활력소가 돼가고 있는 듯하다. 박건승기자 ksp@
  • [CEO 칼럼] 인센티브 유혹과 함정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30여 년 전의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거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끔 손길을 멈추고 광고란에 눈길을 빼앗긴 적이 있을 것이다. 지난 60∼70년대의 구인(사원모집) 광고를 보면 사업체의 규모에 관계없이 거기 담긴 내용들이 엇비슷하다.기본급이 얼마이고 상여금이 몇 퍼센트인지는 구인광고에 포함돼야 할 필수 항목이었다.절대 가난을 면치 못했던 당시의 사회 상황에서는 ‘돈 많이 준다.’는 문구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유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단순 제조업이 대부분이었던 당시와는 달리 고도의 지식 산업사회로 탈바꿈된 오늘날은 ‘월급봉투의 두께’가 능력 있는 인재의 유치수단이 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생산효율을 높이는 방책이 되지도 못한다. 그런데 기업 경영자들은 바로 그 60∼70년대 구인광고식 유인책에 대한 유혹을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운 모양이다.같은 사업장에서도 개개인의 생산성을 토대로 차별적인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생산효율을 높일 뿐 아니라 조직이 당면한 과제들을 모조리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경영자들이 허다하다. ‘인센티브제’라는 금전적 보상제도는 나의 경영 경험에 비춰봤을 때 단순 반복적인 저기술 제조업에서만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그 경우에도 단지 양적인 측면의 성과만을 향상시키는 효과로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또 이 금전적 인센티브를 강조하는 것은 아무래도 통제적인 성격을 띠게 마련이며 이러한 통제는 그 대상으로 하여금 심리적 저항을 유발할 수도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도 바로 그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비록 경제적인 보상이 구성원들로 하여금 조직의 목표 달성에 매진하고 경영진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보상이 동기부여의 유일한 혹은 주요한 수단이 된다면 그 조직은 비효과적인 시스템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 저기술 제조업의 대부분이 저임금 국가로 이전되고 부가가치 높은 연구 개발 업무가 중심으로 자리잡은 우리의 산업구조 속에서 ‘인센티브’라는 당위성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그것의 효율을맹신하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다. 보릿고개 넘기가 힘에 겨웠던 시절에야 전답 많은 집 맏며느리로 딸을 출가시키려는 것이 부모의 소망이었지만,이제는 그 집 식구들의 성품과 가풍과 생활(근무) 환경을 조목조목 따지는 시대가 되었다. 답은 거기에 있다.즐겁게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드는 것이다.내가 경영을 맡고 있는 통신장비 회사의 연구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기를 원하는 바람을 가장 첫 자리에 두고 있었다. 즐겁고 흥겨운 직장 분위기에서 창의성과 자율성과 책임감이 함께 생기며,다양한 학습의 기회도 얻을 수가 있다. 즐거운 근무 환경 조성을 위하여 조직내 직무를 조정하는 등 장애 요소를 제거해 주는 일이,게시판에다 인센티브라는 미끼를 걸어 놓고 구성원들끼리 단순 경쟁을 유도하는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서두칠 이스텔시스템즈 사장
  • 67년부터 시나리오 집필 2004년 ‘장길산’ 작업까지 한국 드라마작가계 산증인 방송작가협회 이희우 이사장

    중학교 3학년 떠꺼머리 소년이 집에 오자,손윗형이 책 한권을 던져준다.프란츠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었다.“야,이거 10대때 썼다더라.천재 아냐?” 읽어 보니 ‘엉터리’였다.“이까짓 것,나도 쓴다.”며 쓴 소설 ‘인생일로’는 경향신문이 공모한 장편소설에서 당당히 예선을 통과했다.당시 응모작 100여편 중 예선을 통과한 소설은 20편.자신감을 얻은 소년은 그 때부터 하루종일 글만 써대기 시작했다. ●“글쓰는 것이 무작정 좋았지” 이희우(李憙雨·64)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은 그때의 치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고 했다.“제 인생을 바꾼 사건입니다.그 때까지만 해도 공부 잘하던 범생이었는데….” 그의 표현대로라면 ‘글을 쓴다는 것은 망가지는 것’이다.그렇지 않아도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이다.공부 등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리 없다.“방황도 많이 했지요.얌전하고 내성적이던 놈이 거칠것이 없는 개방적인 성격으로 변했습니다.허풍도 많이 늘었고.(웃음)” 그래도 글 쓰는 것이 너무 좋았다.좋은 대학 들어가 고시를본다는 애초의 인생설계가 불가능해졌지만 상관없었다.이 작가는 서라벌 예술대 문예창작과를 1961년 졸업하고 본격적인 문학청년의 길을 걷는다.66년에 쓴 소설 ‘홍익자활론’이 대한민국 문학상 신인상을 타는 등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다.그러나 ‘창구’는 너무 적었고,줄곧 작품을 발표할 매체 부족에 갈증을 느껴야만 했다.그때 극장에서 이탈리아 영화 ‘철도원’을 본 것이 인생의 또 다른 전기가 됐다. “원래 영상매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당시에는 방송은 아예 없고 영화가 유일한 영상매체였지요.” 영화는 그에게 대중들에게 좀더 큰 영향력을 가진 매력적인 신세계로 비쳐졌다.이른바 ‘순수문학’을 버리기로 결심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이희우는 67년부터 84년까지 영화 ‘만종’,‘왕십리’,‘별들의 고향’,‘봄 여름 가을 겨울’,‘마지막 찻잔’,‘메아리’ 등 수많은 영화 시나리오들을 썼다.상도 많이 탔다.71년 부일영화상,72년 국제영화상,73년 서라벌 예술상,74년과 80년 백상예술상,83년과 87년 대종상…. TV라는 신매체가 부상하던 78년에는,TBC ‘부부’를 시작으로 방송작가 길에 뛰어들었다.“당시 제 나이가 30대 후반이었죠.삶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쳐보고 싶었어요.자연스레 TV 단막극에 손이 갔습니다.” 그 때부터 4반세기 동안 드라마를 집필해왔다.‘노을’,‘축복’,‘봄비’,‘물망초’,‘일월’,‘형제의 강’,‘덕이’,‘오남매’….그를 ‘지나간 역사’쯤으로 취급하면 곤란하다.오랜 콤비인 ‘야인시대’의 장형일 프로듀서와 함께 올 6월 방영예정인 80부작 대하사극 ‘장길산’을 작업중인 쟁쟁한 현역이다.황석영 원작의 ‘장길산’은 SBS가 지난 94년 방송사상 최대액인 3억 3000만원에 판권계약을 하고 10여년째 드라마화를 벼르던 대작.지난 95년 황 작가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제작이 전면보류되었고,출소후인 지난 99년에는 남북합작 이야기까지 나왔으나,북한경비정 영해침범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긴장되면서 무산된 바 있다. ●“모든 역사는 가족사로 회귀한다” 이 작가의 작품들은 30대 후반 드라마 작가 초기 시절에는 주로 문학성 짙은단막극,40대 중반부터는 멜로물,50대 홈드라마,60대에는 시대극으로 정리가 된다.그러나 그 중심에는 항상 변함없이 ‘가족’이 있다.이유가 궁금했다. 그러자 뜬금없이 어린 시절 이야기가 튀어나온다.“6·25때 전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당시 서울 만리재 공덕동 집에는 돌 넣은 깡통을 연결한 ‘설렁줄’이 다른 집들과 연결돼 있었죠.인민군이 강제징집하러 돌아다니면 울리는 ‘비상연락망’입니다.그러면 청년들은 마루 밑에 숨고 ‘담치기’해 도망가죠.우리 꼬마들은 툇마루에 앉아 그걸 구경하고….” 잠시 회상에 잠기던 그는 “내 개인적인 추억만 봐도 그러하듯,개인사가 곧 시대사를 반영한다.”고 말했다.“역사의 근본은 가족입니다.최초는 개인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가족이죠.사회의 최소단위. 모든 역사는 결국 가족사로 회귀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들이 유난히 화해와 용서를 강조하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다.“역사 위에서 뚜렷이 갈라지는 선과 악도 원점인 가족사로 돌아가면 구별이 없어집니다.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화해와 용서죠.우리네들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고요.” 이 작가는 “물론 항상 멀리 바라보며 화해와 용서만 외칠 수는 없다.”면서 “그때그때의 현실적인 투쟁,개혁과 혁파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2월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장길산’의 테마이기도 합니다.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려고 옛 세상을 깨뜨리는 의적의 이야기죠.” 그는 “장길산은 힘과 조직으로 백성을 선동하는 흔한 의적이 아니라,백성들을 깨우쳐가며 함께 새 세상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변화라는 것을 깨달은 특이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그냥 활극이 아니라 그 깨달음의 과정을 그리는 데 집중해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는 것이다.“철학적인 의미에 욕심을 많이 내다보니 (시청률이) 조금 불안하기도 하네요.” ●“시청률을 건강한 잣대로 만드는 것이 방송작가의 사명” 이쯤되면 시청률 이야기를 안 꺼낼 수가 없다.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은 시청률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평소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양 목소리에 갑자기 열의가 실렸다.“시청률은시청자의 ‘회초리’입니다.유효한 도구죠.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시청자를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작금 지상파 방송사들의 시청률 지상주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좌판’에 ‘스낵’만 잔뜩 늘어놓고 있습니다.시청자에게 순간의 달콤함을 제공해 일시적으로 시청률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요.그러나 그것이 시청자와 작가,방송사 모두를 퇴락시키는 ‘바보짓’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지.방송문화가 퇴락하면 그 사회 전체가 영향 받습니다.국가적인 문제죠.” 이 작가는 그 해결책으로 방송사들의 균형잡힌 방송 편성 정책과 전문 방송 평론 집단의 육성 등을 요구했다.물론 방송작가의 ‘사명의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작가들은 시청자를 건강하게 성장시켜 올바른 안목을 키워줄 책무가 있습니다.시청자들의 취향을 기본으로 그 위에 무엇을 더해서 제공해야 할지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시청률이라는 잣대를 유효하고 건강한 도구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돼요.”능력면에서는 항상 감탄하는 요즘 젊은 작가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갑자기 침묵한다.“오로지 ‘장길산’에만 전념할 생각입니다.정말 부담없이 말해보라면.…가족들이 좀 섭하게 들을지 모르겠네요.그냥 다 떠나서 깊은 산속 산사에 들어가고 싶습니다.자연의 일부가 되어서 인생에 대해 궁구해보는 ‘설렘있는 편안함’을 누려보고 싶어요.” 채수범기자 lok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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