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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동러시아를 가다:1

    ◎본사 이기동특파원 현장르포/두만강하구/「한민족의 한」 서린 동토… 남북합작 꿈 “일렁”/개방바람 타고 「3각특구」로 각광/“한국서 왔다”에 군차량까지 선뜻 내주며 취재 안내/개발결실땐 한인정착촌이 중심권으로 부상 시베리아의 동쪽끝 러시아 원동지방이 1월1일 블라디보스토크 개방과 함께 긴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겨울이면 영하 40도를 오르내리고 바다가 얼어붙는 이곳은 우리민족의 근대사 한토막이 버려져있는 한맺힌 땅이기도 하다.구한말 굶주림을 견디다못해,그후에는 일제의 핍박에 고향땅을 두고 두만강을 건넌 우리 선조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곳이다.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끌려가기까지 20여만명의 선조들이 그땅에서 살았고 지금도 10여만명의 우리 동포가 살고 있는 곳이다.서울신문은 이기동모스크바특파원을 이곳으로 보내 「금단의 굴레」를 벗어던진 원동러시아의 변모하는 모습과 거기서 살아온,그리고 살고있는 한인들의 실상을 취재,신년특집기획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주). 두만강­.일제통치하 나라 없는 우리 민족이 앓아야 했던 이산과 망향의 상흔을 가장 가슴아프게 전해주는 민족의 강. 나라 잃은 백성들,조국땅에서 굶주리고 버림받은 숱한 우리 혈육들이 이 강을 건너 만주로 시베리아로 흩어져간 한맺힌 강이다.일제로부터 해방된지 반세기.서울에서 기차로 5∼6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이 강을 가기 위해 기자는 남의 땅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로,블라디보스토크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다시 기차로 10여 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분단의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영하40도 오르내려 두만강을 끼고 있는 북한·러시아의 국경도시 하산은 4백여 가구에 주민 1천명이 사는 작은 강변마을이다.불과 한달여 전까지만 해도 외국기자라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금단의 군사지역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측의 블라디보스토크,나홋카,포시예트,하산지대를 잇는 경제특구개발에 포함된 탓에 외국인들에게도 개방,개발 분위기에 조금씩 들떠가고 있다.하산마을 초입으로 들어가는 도로에 설치된 국경경비대 검문소의 차단기는 말끔이 치워져 이방인의 출입에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 하산지구 국경경비를 관장하는 슬라비앙카주둔 국경경비대에 취재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포시예트 최고회의의장을 찾아갔더니 젊고 활기찬 고르부노프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32)의장은 공식적으로 하산에 취재온 「최초의 한국기자」라며 협력해 줄 것을 흔쾌히 약속했다. 2시간만에 군당국으로부터 『취재해도 좋다』는 정식허가가 나왔고 놀랍게도 국경경비대 포시예트지구에서 군용 지프까지 취재차량용으로 제공해 주면서 서툴지만 한국어를 곧잘하는 장교 한사람까지 따라붙여 주었다. ○외국인에 최근 개방 잿빛 날씨속에 기자앞에 모습을 드러낸 두만강은 수량이 많지 않아 얼어붙은 강물이 강폭의 절반 정도를 채우고 있었다.한반도와 러시아땅을 잇는 유일한 다리인 두만강 철교위로 때마침 목재와 소련제 카마즈 트럭을 가득 실은 열차 한대가 북한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산읍 최고회의의 스테파노프 이반 블라디미로비치(31)의장은 길이를 제외하고는 두만강철교에 대한 소상한 소개를 해주었다.북한에서는 조소친선교라 부르고 러시아측에서도 같은 뜻의 러시아어로 「모스트 드루즈바」라고 부르는 이 철교가 개통된 것은 1959년 8월.그 이전에는 해방직후인 46년 자동차 목교가 이 자리에 건설됐었고 51년 철도목교가 대신 들어섰는데 57년에 있은 연해주(프리모리 크라이)대홍수 때 이 철도목교가 파괴돼 잠시 임시철교가 가설돼 있었다. 스테파노프의장은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두만강 일대 개발계획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북한은 향후 20여년에 걸쳐 총3백억 달러를 투자해 이 일대에 세계최고수준의 공업지대를 조성한다는 개발안을 91년 10월 밝힌바 있다.일차적으로는 북한의 선봉,러시아의 포시예트,중국 훈춘으로 연결되는 소3각권으로 국제적인 경제특구를 이 지역에 만든다는 의욕적인 개발계획이다. UNDP(유엔개발계획기구)가 적극 나서고 남북한과 중·소·일등 주변국 모두가 적극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는 두만강하구개발계획이 결실을 맺을 경우 하산지구 일대는 그 중심권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북한·중국 3국 국경이 연결되는 교통요충지로서 하산을 통하면 기차 자동차로 그리고 두만강하구 준설작업이 완성되면 뱃길로도 어느 방향으로든 갈수 있다』면서 『남북한이 빨리 통일돼 한국의 질좋은 기계 제품들이 북한을 통해 철도로 이곳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두만강 개발계획이 결실을 맺을 경우 하산일대는 우리 민족의 「한맺힌 땅」에서 남북한이 경제협력을 통해 통일의 날을 앞당겨 줄 희망의 땅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하산지역은 현재 소련극동지역에 거주하는 10여만명의 한인들에게는 바로 고향같은 곳이다.한인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첫발을 디딘 곳이 바로 하산마을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 일대이기 때문이다.1863년 13가구의 한인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최초로 자리를 잡았던 곳이 인근의 자바이칼스키 카자키 마을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립도서관의 한 문서보관소에는 당시 하산지역 러시아군수가 이들 한인 13가구의 이주를 정식으로 허가한 증명서가 보관돼 있는데 기자는 블라디보스토크역사연구소의 알렉산더 페트로프(40)박사가 갖고 있는 이증명서 사본을 통해 한인들의 이주 연도와 가구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곳곳에 한글식 지명 한인들이 이주해와 살면서 이 지역 일대에는 앞산·하산·백산·수풍·남강 같은 한글식 지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하산마을 어귀에는 북한으로 연결되는 철도가 가로지르는 작은 둔덕같은 산이 있는 데 이 산밑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마을이름이 하산.러시아 이름 하산(XACAH)은 당시 한인들이 붙인 조선 이름 하산을 음차한 것이다. 연해주(프리모리 크라이)일대에는 지금도 그 당시 이런 식으로 한인들이 붙인 우리식 이름들이 많이 있는데 한인들은 지금도 이 이름들을 사용한다.예를들면 블라디보스토크는 해삼위.당시 해삼이 많이 잡히던 지역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소왕령(우수리스크),수청(파르티잔스크·이 마을 옆을 흐르는 파르티잔스키강물이 맑다 하여 붙여진 이름),동개터(동쪽이 열리는 곳·나홋카),목구(포시예트),흥개호(항카호수),하마탕(라즈들느이),연추(그라스키노),신안천(페르바야 레츠카)등 현재 이곳에 사는 한인사이에 통용되는 이런 식의이름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남아있는 건 지명 뿐이 아니다.
  • 천직의 등대지기 39년/안영일씨(이사람)

    ◎“사람 그립다는건 처절한 고통이죠”/두 차례 낙도 탈출끝에 「희생의 의미」 체득/태풍속 칠흑바다 지킬땐 새 보람에 “희열”/“조각에 일가견”… 「고독의 철학」 작품으로 승화/섬마을 전전 떠돌이 생활에 자녀교육애로 안타까워 『외롭고 고된 세월의 연속이었지만 내가 택한 길이기에 후회않고 정년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망망대해 외딴 섬에서 뱃길 잡아주기 39년.강산이 바뀌어도 몇번은 바뀌었을 기나긴 세월 갈매기를 벗삼아 등대를 지키며 고독과 싸워온 외곬등대인 안영일씨(60·여수지방해운항만청 오동도항로표지관리소장·기능6등급)는 남다른데가 있는 사람이다. 파도소리와 흰갈매기로 도시인들에게는 낭만의 대명사로 느껴지는 등대지기는 알고보면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다. ○“감방아닌 감방생활” 안씨는 감방아닌 감방에서의 생활을 두번의 좌절끝에 천직으로 삼아 오늘에 이르러 이제는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등대의 산증인이 됐다. 안씨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곳은 동경1백27도46.2분 북위34도44.5분 여수 앞바다오동도항로표지(등대)관리소. 지난 89년6월 이 등대관리소장으로 부임해온 안씨는 옛날 낙도에 있을 때보다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어 좋지만 등대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이 해이해질까봐 긴장을 풀지않고 지낸다. 그는 이곳 등대관리소 관사에서 한살아래인 부인 박종례씨,그리고 직원 2명과 함께 살고 있다.오동도등대는 육지와 방파제로 연결될 만큼 가까워 다른 등대에 비하면 근무환경이 상당히 좋은 편이지만 등대업무 성격상 외부와 격리된 생활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시 출퇴근 어려워 이곳의 근무는 하루 3교대가 원칙이나 정시 출퇴근이 아니기 때문에 일이 있으면 지속근무해야 한다. 일상업무외에도 풍속·풍향·파고·강우양·해수온도·염분도등을 하루에 몇번씩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일손을 거들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10초에 한번씩 빛을 내주는 등명기와 30초마다 나팔소리를 내는 안개(무)신호기를 손질,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태풍예보가 있을 때는 직원 모두가 이것저것을챙기느라 긴장속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기가 일쑤다.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혹시나 뱃길을 잃은 선박이 있지 않을 까 등대의 생명선인 등명기의 불빛을 주시하며 올빼미같은 생활을 마다하지 않는다. 계기고장으로 뱃길을 잃은 선박은 등대불빛과 나팔소리로 거리나 방향을 잡고 운항하기 때문에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교통고등학교 입교 안씨가 그동안 이런 식으로 뱃길을 잡아 구조해준 선박은 어림잡아 1백여척에 달한다. 안씨가 등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6·25동란중인 52년9월. 서울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던 그는 전쟁이 나자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그러나 8식구가 당장 끼니를 때우지 못할 어려운 지경에 빠졌다.장남인 안씨는 마침 항로표시 공무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응시,합격했다.당시 부산초량 역구내에 있던 6개월 과정의 교통고등학교에 입교해 등대업무와 관련된 통신·전기·설계제도·특별등기및 무신호기작동법을 배웠다. 등대지기로 기본기를 익한 안씨는 이듬해 5월 당시만해도 목포에서 배로 8시간이나걸리는 하조도로 발령받아 등대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 한달은 고생되고 가족이 그리웠지만 호기심에 참고지냈다.서울서 자란 안씨는 이때 처음 살아서 펄펄뛰는 물고기를 보았고 미역·파래등 해조류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알게됐다. 이렇게 시작된 생활이 두달쯤 되니 먹는 문제로 차츰 고통스러지기 시작했다.밥을 직접 해 먹어야 했는데 쓸만한 취사도구가 없는데다 연료도 마땅치 않았다. 디젤 폐유를 때서 밥을 짓는데 그을음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거기에다 육지에서 공급해주는 된장·간장등 부식이 떨어져 월남미와 통보리가 3대7로 섞인 맨밥을 씹을 때는 눈물이 났다. 안씨는 두달을 버티다 등대지기를 포기하고 하조도를 도망치다시피 빠져 나온다. 부산집으로 돌아왔으나 할만한 일이 없었다.두달을 빈둥대다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하조도에 들어갔으나 이번에도 두달을 견디지 못했다.두번째는 식생활문제가 아니라 고독과의 싸움에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도대체 사람이 그리워서 살 수가 없었다.집에 다시 돌아왔으나 새로운갈등이 시작됐다.젊은 나이에 적응을 못하고 방황한다는 자괴심이 가슴을 짓눌렀다. 독실한 카톨릭집안에서 성장한 안씨는 신앙심으로 모든 역경을 이길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힘들고 외롭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일이 아닌가.내몸을 불살라 캄캄한 밤바다의 빛이되자.길잃은 뱃사람들에게 항로를 안내해 주자』 오랜 고민끝에 다시 한번 등대인이 되겠다고 결심,하조도행 배를 탔다.마음이 흔들릴때마다 입술을 깨물며 자신을 채찍질했다.「낙오자」란 불명예를 씻기위해 남보다 두세배 더 열심히 일했다. 안씨는 하조도에 근무하면서 결혼해 가정을 꾸몄다.세월이 지나는 동안 외로움과의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게 되고 낙도의 불편한 생활도 천직이라 여기고 견딜수 있게 됐다.3년 가까이 있다가 56년12월 두번째 임지인 남해의 자개도로 옮겼다. 자개도는 결딜만 했다.그후 바라도·거문도·소리도·돌산도·백야도등 낙도를 전전하며 근무했다.한곳에 두번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주민들과는 무척이나 친숙하다. 문명의 혜택이 별로 없는 주민들에게 안씨는 만물박사로 통해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는다.손재주가 뛰어난데다 전기·전자제품에 일가견이 있어 주민들의 고장난 전기·전자제품은 모두 그의 솜씨로 제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60년대초 소리도(남해)등대에 근무할 때는 마을청소년 10여명에게 라디오수리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안씨는 또 미술에 남다른 재주가 있어 시간이 나는대로 그림을 그리고 나무와 돌로 조각품을 만들어 썰렁한 섬마을과 등대주변환경을 아름답게 꾸미기도 했다. 안씨가 본격적으로 등대환경조성작업에 손댄 것은 바로 전임지였던 거문도에서다. 안씨는 거문도가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경치가 아름다운 등대주변이 관광명소로 돼가자 5개년계획으로 등대조각공원을 만들기로 했다.오동도로 자리를 옮긴 요즘에도 거문도 공원안에 전시할 작품을 만드느라 시간이 날때마다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그동안 만들어 놓은 작품중 「혼」과 「작품S」는 이미 현지에 전시돼 있다. 안씨의 작품은 대부분 고독한 인간의 굳센의지,자연과 바다와 인간의 조화를 소재로 한 것이다. 안씨가인간의 외로운 정신세계를 작품소재로 선호하는 것은 아마도 수십년간 고독속에서 터득한 생명철학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 부부야 그렇다지만 그간 자식들에게 너무 고생시킨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며옵니다.그러나 애들이 이제는 다 커서 이 애비의 마음을 알아주니 한결 가슴 뿌듯합니다』 안씨는 슬하에 둔 네자녀(2남2녀)가 낙도를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이 육지에 나가 자취를 해가며 공부할 때 가장 가슴아팠다고 했다. 그렇게 큰 네자녀중 맏아들 호석씨(36)는 어려운 신학공부를 마치고 현재 목포북교동성당에서 신부로 봉직하고 있다. ○명예퇴직 그날 향해… 안씨는 39년간의 등대지기 생활을 하면서 집 한칸도 마련하지 못했다.항상 박봉에 허덕이는 구차한 생활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등대인의 생활인 만큼 명예로운 퇴직을 위해 정년이 될때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근무할 생각이란다.
  • 남포직할시(새로 쓰는 북녘지리지:6)

    ◎서해안 작은 어촌이 대표적 수산 기지로/간석지 1천6백여 정보는 농경지로 개발/「특급연합기업소」 많아 총포류도 대량 생산 ▷자연과 생태◁ 시의 서부를 오석산줄기가 남북으로 시원하게 가르고 있는 가운데 국사봉(5백6m)오석산(5백66m)백암산(4백19m)등 고만고만한 산들이 서로 키다툼을 하고 있다. 지세는 대부분의 지역이 오랜 세월의 풍파에 깎이고 씻기어 이루어진 구릉성 언덕벌(준평원)과 대동강 연변의 퇴적평야등 평평한 평야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북부지역에는 강선벌 청산벌 채성벌,중부지역에는 룡강벌 구룡벌등이 펼쳐져 있으며 대동강 하류에는 와우도 가덕도 압도 제비섬 언정도 일출도 사엽진도등의 섬들이 떠 있다. 서해안 일대는 거의가 식량증산을 위해 일군 1천6백여정보의 간석지. ◎룡강엔 밤나무 단지 시는 또 동부와 남부 지역으로 흐르는 대동강과 봉상강 인황천 삼화천 서천 등을 거느리고 있다. 시의 남부 지역에는 온대 남부계통 식물인 고욤나무 생강나무 분지나무,룡강군 옥도리 삼화리 룡흥리 일대에는 밤나무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산과일 산나물 약초도 풍부하며 멧돼지 노루 꿩 너구리 승냥이 부엉이 뻐꾸기등이 서식하고 있다. ▷산업·경제 동향◁ 시의 공업은 기계로부터 조선 유색금속 유리 편직 건재 화학 식료 광업 제염에 이르기까지 그 분야가 다양하며,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 남포제련연합기업소 남포조선연합기업소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등 특급 연합기업소가 수두룩 하다.금성뜨락또르(트랙터)종합공장은 특히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전쟁용 총포류를 만드는 병기공장도 이곳에 있다.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는 주로 여러 규격의 발전기 변압기 용접기 용접봉 전주 등 전기기계 전기소재를 생산하고 있으며,남포제련합기업소에서는 각종 유색금속과 여러 규격·재질의 유색금속압연제품을 내놓고 있다. 금성뜨락또르종합공장의 주제품은 「천리마」호 「풍년」호 등의 트랙터와 불도저,벼종합수확기 탈곡기를 포함한 농기계. 지난 5월 대형 부도크 「회령623호」를 건설한 것으로 전해진 남포조선연합기업소는 그동안 「대성산」호,「대보산」호등 1만t급의 선박과 각종 군용선을 건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북한의 조선능력은 현재 전국 각지 조선소의 능력을 모두 합쳐도 연간 21만t에 불과하며,엔진을 비롯한 주요 기자재는 소련·동구 국가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시에는 이밖에도 유리제품 생산공장이 있어 판유리 화학유리 광학유리 압연유리등 여러 유리제품이 생산되고 있으며,도자기 신발 의약품 식품 피복 직물등을 만들어내는 지방공업 공장들도 적지않다. ◎벼·강냉이 주로 생산 시의 경지면적은 전체 시 넓이의 39.1%로 그 가운데 논이 46.7%다.청산벌 태성벌 룡강벌에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주요 알곡으로 벼 강냉이 수수 콩 밀등도 생산된다.관광코스로 지정될만큼 외국인에게 널리 공개·선전되고 있는 이곳 청산벌 청산협동농장의 관리위원장인 안금희여인은 지난해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에 뽑히기도. 원래 어촌이었던 시는 지금도 북한내 대표적인 수산기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주요수산물은 조기 갈치 가자미 미역 바지락 등등…. ▷교통·운수◁ 시에는 평남선(평양∼남포)평안선(남포∼온천)등의 철길과 평양∼남포 고속도로등 자동차 길이 있으며 남포항은 중국의 칭타오 텐진 뤼타등과 뱃길로 연결된다.이밖에도 육·해 운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서해갑문이 건설되어 있다. 1986년 6월에 완공된 이 서해갑문은 대동강 하구에 외해를 가로막아 건설한 길이 8㎞의 다목적댐. 이 댐은 2천t급(1호갑실)5만t급(2호갑실)3만t급(3호갑실)의 선박이 동시에 통과할 수 있는 3개의 갑실과 36개의 수문으로 되어 있다.이 댐은 인근 간척지에는 농업용수를,공장지대에는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순천과 재령의 농공지대와는 대운하로 연결되고 있다.또한 댐제방에는 철길과 차도·보도를 부설,평안남도와 황해남도 사이의 차량운행시간을 크게 단축시키고 있기도. ◎폐수 몰려 공해 심각 그러나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댐 건설이후 시 연근해 일대주민들이 이 지역 공장 기업소에서 흘러나오는 폐수가 역류,악취에 시달리고 있으며 댐 상류는 수온이 상승하는등 어업에 폐해를 주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승·유물·유적◁ 룡강의 안성리에는 5세기의 「고구려벽화무덤(능)「룡강큰무덤」「쌍기둥무덤」등이 있으며 대안과 성암리 사이에는 고구려 후기의 벽화무덤인 「대안리 제1호무덤」이 있다. 고구려때 쌓은것으로 알려진 둘레 5㎞이상 높이 2.5∼5m되는 황룡산성이 오석산을 감싸고 있으며 룡강읍에서 약 4㎞떨어진 석천산마루와 그 주변의 「석천산 고인돌떼(군)」는 장관을 이룬다.이들 고인돌은 모두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무려 1백20개가 한데 몰려있다. 태성리의 고구려고분 「연화벽화무덤」과 삼묘리의 「강서세무덤(강서삼묘)」「큰무덤(대묘)」「중무덤(중묘)」「작은무덤(소묘)」도 유명하다. 서해갑문 55㎞ 이웃에 원산 송도해수욕장과 명성을 다투는 서해해수욕장이 있으며 그 부근에 「백리청년과수원」이라 불리는 대규모 과수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수산청 흑산도 어촌 지도사 이군승씨(이런 공무원)

    ◎외딴섬에 「기르는 어업」 뿌리 내리기 10년/24세때 모두가 외면하는 곳 자원… 선진어업 가르쳐/김·우렁쉥이 양식 성공… 어민들 “도사” 별명/주민들과 동고동락… 자녀교육 상담까지 서남해의 외딴섬 흑산도.이름 그대로 하늘과 바다가 온통 푸르다못해 검게 보이는 이곳엔 예상과는 달리 회색 빛깔의 인공어초가 즐비하게 쌓여있고 가두리 양식장의 주황빛 부표들이 점점이 떠있다.한때는 고기잡이배들이 수천척씩 몰려 파시를 이루었던 곳이었지만 어선들은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고 대신 그 자리에 길러서 잡는 어구와 시설물들로 메워지고 있는 것이다.흑산도를 양식 어업의 중심지로 바꾸어 놓은 주역은 어촌지도사 이군승씨(33)이다. 해풍에 검게탄 얼굴,젊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표정이 믿음직스럽다.이곳 어민들은 그를 「도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목포서 뱃길로 7시간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수산직 기술공무원인 어촌지도사를 부르기 쉽게 줄여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것.그러나 사실은 그가 외딴섬 어민들에게 새로운양식기술 등을 보급하고 최신 어업경영기법 등을 가르쳐 주면서 고기에 관한한 진짜 「도사」라는데서 붙여진 애칭이라고 한다. 『전에는 이 섬에 부임하면 다음날 부터 도시로 되돌아 가려고 했답니다.제가 10년 가까이 붙박이처럼 이곳에 남아서 어촌지도를 꾸준히 했다고 분에 넘치는 별호를 붙여준 것 같습니다』 이씨는 이 곳에 근무한지 1년만에 승급의 우선권이 주어지자마자 이곳을 떠날 수도 있었지만 「잡는 어업을 기르는 어업」으로 힘겹게 돌려놓았기에 그 열매를 직접 보고싶어 지금까지 남아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가 흑산도로 부임한 것은 82년말.그때만해도 이곳엔 전기는 물론 직통전화조차 없었고 먹는 물사정도 나빴다.또한 목포에서 뱃길로 6∼7시간이 걸려야 닿을수 있는 오지였기 때문에 아무도 이곳 근무를 희망하지 않았다. 수산청 어촌지도소에서는 궁여지책으로 1년이상 근무하면 승진시키고 다른 어촌지도사들의 봉급이나 출장비에서 10%정도를 떼내어 지원해주는 방안까지 제시했다.이같은 특전으로 이씨의 전임자가 부임했었으나그는 1년만에 승진되자마자 곧 철수했고 그뒤로 후임자가 또 없었다. 이같은 사실을 알게된 이씨는 당시 24세의 젊은 나이인데다 근무하고 있던 해남은 이미 선진어법이 보급돼 더이상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판단,이곳 외딴섬의 근무를 자원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 와보니 넘어야할 어려움과 고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는 불편한 생활여건 보다도 외딴섬의 특성상 옛 씨족사회의 관습이나 의식이 그대로 남아있고 외지인에 부리는 텃세가 심해 더 안주하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제가 찾은 주민들은 저를 외면했습니다』 특히 주민들은 넓고 주인없는 바다에서 그물만 던지면 고기를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데 무슨 선진어법이 필요하냐면서 그의 지도에 시선조차 주지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주민들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추구했다.그 방법은 선진어법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확실한 지름길임을 실제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83년 도목리 어촌계에서 김양식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연 소득 1천2백만원 여름에 육지에서 조개껍질에 김의 씨를 뿌려 키운뒤 가을철이 되면 바다속의 시설에 옮겨심어 재배하고 이를 기계로 말리는 방법으로 다음해 1㏊에서 4천만원의 소득을 올려 시설비등을 제외하고 1천만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이렇게되자 그토록 두껍던 주민들과의 벽이 차츰 얇아졌다.이씨의 성공사례를 눈으로 지켜본 35가구가 그해 김양식사업에 뛰어들었다.7년이 지난 현재 주민들은 김양식으로만 연간 30억원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지난 86년엔 남해·동해안에서만 양식이 가능한 우렁쉥이양식을 이 섬에서도 시도해 보기로 결심,어민후계자인 장현수씨(32)에게 한번 길러보도록 권유했다. 이씨의 지도로 장씨는 50만원을 투자해 2년만에 1백40만원의 순수익을 올리게 됐다. 『혹시 잘못해서 실패라도 하는 날이면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탑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제 일같이 일했습니다』이씨는 주민들이 잠자는 밤에도 몇차례씩 양식장을 둘러보곤 했다.그의 이같은 열정에 감복하지 않는 주민이 없었다.그는 어업지도 이외에도 자녀교육이라든가 가족간의 갈등에 관한 상담에도 나섰다.그는 처음엔 몰랐으나 점차 자신을 의지해오는 주민들에게 가르쳐줄 것이 거의 바닥이 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그래서 어업기술은 물론 철학 심리학 교육학 등에 관한 1천여권의 책들을 사들여 틈틈이 읽고 스스로 터득한 기술과 학문을 주민들에게 나눠졌다.그의 이같은 인간적인 행동으로 주민들은 이제 그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한다. 1천1백여가구의 어민들은 이제 기르는 어업으로 연간 가구당 평균 1천2백만원의 소득을 올려 풍요롭고 경쟁력 있는 어촌으로 탈바꿈했다. 『처음엔 어민들중에 물고기나 김의 질병관리를 소홀히 했다가 예상보다 소득을 못올리고는 지도사인 저를 무조건 탓하기도 했습니다.그럴때는 당장 짐을싸 뭍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한두번 마음먹은 것이 아닙니다』 그럴때마다 그는 성공한 어민들을 예로 들면서 실패원인을 같이 정밀분석해 다음해에 높은 소득을 올리도록 도왔다. ○“제2의 고향 지킬터”그는 지금도 소흑산도 홍도를 포함한 11개 유인도와 89개 무인도를 자신의 유일한 발인 90㏄ 오토바이를 타거나 소형어선을 몰고 다니며 밤낮으로 어업지도를 하고 있다.『아마 제가 다닌거리는 지구를 두바퀴이상 돈셈은 될겁니다』 지금은 직급도 6급대우인데다 한달 봉급으로 75만원을 받고 있어 일하는 보람도 그만큼 크다고 말한다.중매결혼한 부인 김영심씨(32)와 국민학교 5학년인 딸,2학년인 아들등 세가족과 함께 그동안 줄곧 셋집에 살다가 지난해말 비로소 융자받은 5백만원을 포함해 1천만원으로 흑산면 예리에 25평 규모의 내집을 장만했다. 취재를 끝내고 흑산도를 떠나는 기자를 배웅하는 이씨는 거센 해풍과 파도에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는 홍도의 풍란처럼 기르는 어업이 자생력을 갖출 때가지 흑산도를 제2의 고향으로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 북한행 콘돌호선장 고영룡씨(인터뷰)

    ◎“쌀 실은 뱃길,「통일 물길」됐으면…”/“막판에 뱃머리 되돌리게 될까 불안도” 『분단이래 남북교역의 물꼬가 형식적으로나마 풀린 것같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이번 물자 직교역을 계기로 삼아 순수 민간교류가 확대되고 더나아가 남북통일이 앞당겨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북한에 첫 수출할 통일쌀 1차분 5천t을 싣기 위해 전남 목포항에 정박중인 세인트빈센트선적 콘돌호(6천3백t급)선장 고영룡씨(37)는 북한에 공식적으로 입항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선박 선장으로서 감격스럽기까지 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쌀 직수출은 3국간 무역보다 원가절감은 물론 남과 북사이에 형성된 마음의 벽을 헐어내리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이같이 소중한 남북 직교역이 부디 헛되지 않게 남북 당국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갖고 꾸준한 대화를 통해 이 겨레의 숙원인 통일의 그날까지 연결해야 할 것입니다』 고선장은 그러나 지난 5월에는 목포항에서 이틀동안을 기다리다가 직교역이 무산돼 뱃머리를 돌렸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혹시 막판에 무산되지나 않을는지 한가닥 불안을 나타내기도 했다. 고선장은 한국해양대학 30기 출신으로 10여년간 「바다의 사나이」로서 험한 파도와 싸우며 살아왔다. 지난 88년 선장으로 승진한뒤 올 4월 콘돌호를 맡아 동남아지역에서 부정기항로를 뛰다 이번에 「북한최초 입항」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고선장은 『통일쌀 5천t분 선적이 완료되는 오는 28일쯤 북한 나진항으로 출항할 것으로만 알려졌을뿐』이라고 말했다.
  • 중국에 「40만평규모 한국공단」 조성/천진·청도·진황도중 입지택일

    ◎토개공 설명회 50년간 임차… 전자·식품업체등 유치 한국토지개발공사는 중국에 40만평 규모의 한국기업 전용공단을 조성,국내기업들을 입주시킬 계획이다. 토지개발공사는 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중국진출 희망업체들을 대상으로 중국내 한국전용공단의 개발에 관한 설명회를 갖고 중국 천진·청도·진황도 중 한곳을 선정,모두 1백50억∼2백억원을 투자해 40만평 규모의 전용공단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토지개발공사는 이들 3개지역이 전기·통신·용수시설 등 공장가동에 필요한 기반시설이 비교적 완비돼있고 종업원들의 주거 및 생활을 위한 용지를 확보하는데 용이할 뿐아니라 원자재·상품의 운송에 필요한 교통 및 유통시설도 다른 지역보다 양호하다고 밝혔다. 이들 지역은 또 한중직교역이 본격화되면 뱃길로 불과 하룻만에 닿을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으며 투자경비도 태국·인도네시아 등 아세안국가들보다 훨씬 덜 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지역내 공단건설에 필요한 투자액(토지비용포함)은 평당 7만8천∼13만3천원으로다른 아세안지역 국가들보다 20%이상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소득세율도 30%이나 경제기술개발지구내 기업들은 우대조치를 받기 때문에 세율이 15%로 인하되며 10년이상 경영할 경우 처음 2년간은 세금이 완전 면제되고 3∼5년간은 세금이 50% 감면돼 조세제도도 다른 국가에 비해 유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용공단의 임차기간은 50년이고 유치업종은 전자·기계·통신·자재·식품·유리공업 등이며 공단에 입주하는 업체들은 용지를 분양받은뒤 양도나 임대 및 저당권설정이 가능하다. 토지개발공사는 지난해 11월과 지난 5월에 두차례 중국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한 결과를 토대로 이같은 결론을 내리고 앞으로 참여희망업체들과 협의를 거쳐 전용공단조성지역을 확정할 방침이나 천진과 청도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 홍콩 탐문도/대중 밀수출 메카로(세계의 사회면)

    ◎연 10억불… 본사 합법수입량의 15%/고속보트 동원,벤츠차까지 암거래 홍콩의 2백36개 부속 도서중의 하나인 탑문섬이 최근 또다시 대중국 밀수의 전진기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탑문섬은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삼는 인구 1백여명의 조그마한 섬이었으나 지금은 텔레비전·비디오·냉장고는 물론 자동차까지도 중국 본토에 밀수출하는 어엿한 밀수 전진기지로 탈바꿈 했다. 이섬은 중국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뱃길로 25분밖에 걸리지 않아 밀수 전진기지로서 손색없는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이섬을 통해 중국 본토로 밀수출된 밀수품의 총액은 10억 달러 규모이며 이는 중국 본토에 수입되는 총 물량의 15%에 해당한다.중국 당국은 이섬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밀수품 때문에 정상적인 유통질서가 무너진다고 하소연 하면서도 교묘하고 은밀한 이 밀수기지를 소탕하는데는 애를 먹고 있다. 「밀수의 메카」라 할수있는 탑문섬은 역사적으로도 밀수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지난 49년 중국 본토에서 공산혁명이 성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섬은 밀수의 대명사로 불렸으며 70년대에는 비록 세가 약해지긴 했으나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밀수 단속임무를 맡고 있는 한 관리는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보다 많은 소비재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밀수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며 『홍콩제 TV나 냉장고등이 2배 이상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탑문섬을 발판으로 움직이는 밀수꾼들은 가히 「엔테베작전」을 능가할 정도로 기동력을 발휘하며 첨단장비도 활용해 단속원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이들은 달없는 밤을 틈타 고속보트를 이용,80노트의 속도로 기동력있게 「작전」을 수행하며 롤렉스 금딱지 시계와 금목걸이등을 주렁주렁 달고 마중나온 탑문섬 주민들과 현장에서 거래를 한다. 밀수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1백여척의 거선이 정박할수 있는 토로항으로 얼마전엔 메르세데스 벤츠 자동차까지 이곳에서 실려 나갔다.이들 밀수꾼들은 또 최근 하나의 거대한 조직으로까지 발전,홍콩까지 세력을 확장하려 하고 있으며 대담한 행동도서슴지 않아 홍콩당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홍콩정부는 이 때문에 중국정부와 공동으로 밀수단속에 나서려 했으나 중국 관리들의 부패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몇주전 밀수를 뿌리뽑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마련,시행에 들어 갔다.새로 마련된 방안은 고속보트의 건조를 금하고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의 운반은 특별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홍콩 해상기동타격대 부대장인 시보우른씨는 『이번 조치로 밀수단속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벌써부터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그러나 단속업무를 직접 관장하고 있는 현지 경찰들은 이같은 조치로 밀수를 근절시킬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시한다.경찰들은 밀수꾼들이 워낙 교묘하게 밀수품을 식품이나 과일등으로 위장해 반입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조치의 시행에도 불구,적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 “소련은 이제 밝혀야 한다”/장정행 국제부장(데스크시각)

    1983년 9월. 아직 초가을 이었지만 북방의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던 사할린의 바다는 창자를 끊는 듯한 통곡으로 가득했다. 이달 1일 새벽 KAL007기를 타고 뉴욕을 떠나 서울로 오다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공격으로 수중고혼이 된 승객 2백69명의 유가족들이 사랑하는 부모 아들 딸을 찾아 흔적도 없는 망망대해를 향해 울부짖었다. 세계가 다 함께 분노하고 상상할 수 없는 소련의 만행에 치를 떨었다. 사할린을 마주하고 있는 일본 최북단의 조용한 어항인 와카나이는 희생자들의 유품이라도 확인하려는 유가족들과 사고경위를 밝히려는 각국의 조사단,취재진들로 연일 붐볐다. 미국·일본,그리고 우리나라의 함정과 선박들이 사고해역에 몰려 한달 이상의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바닷가에 떠내려온 사고기의 일부 잔해와 승객들의 유류품 몇 조각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사고경위를 밝힐 수 있는 블랙박스도 발신음까지 포착했으나 끝내 회수하지 못하고 말았다. 소련 영해인 사고지점을 일찌감치 둘러싸고 있던 소련 함정들의 집요한 방해 때문이었다.소련은 무고한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유가족들의 뱃길마저도 함정과 전투기로 위협했다. 유엔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이 천인공노할 만행을 규탄하고 나서자 소련은 사고발생 3일 만에 타스통신을 통해 KAL기 격추사실을 시인하고,그러나 이 여객기가 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얼토당토 않은 어거지를 썼다. 9일에는 오가루코프 참모총장 겸 제1국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수호이 15전투기가 미사일로 KAL기를 격추시켰으며 KAL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출격전투기와 기지와의 교신내용을 분석,소련측이 경고나 강제착륙의 시도없이 격추를 명령했음이 밝혀져 있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건 경위는 아무것도 없는 형편이다. 다만 소련의 자유화바람을 타고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가 당시 수색작업에 동원됐던 잠수부,출격전투기의 조종사 등을 광범위하게 취재,최근 10회에 걸쳐 사건의 내막을 보도하여 진상의 일부가 알려졌을 뿐이다. 이 보도에 이어 공개된 사건 직후의 해저상황을 촬영한 몇 장의 사진은 소련이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지금은 퇴역해 있는 출격전투기의 조종사는 당시 KAL007기가 여객기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명령에 따라 격추시켰다고 증언하고 있다. 수색에 동원됐던 잠수부들은 블랙박스로 보이는 오렌지색 상자도 분명히 인양했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의 한소관계는 83년과는 판이하게 변했다.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적대관계에서 협조관계로 바뀌었으며 빈번한 교류와 함께 정식으로 국교가 수립되었다. 19일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샌프란시스코 모스크바에 이어 세번째 한소정상회담을 갖는다. 비록 일본방문 후의 귀국길이고 회담장소가 서울이 아닌 제주도이긴 하지만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국방문은 세계사에 남을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비단 한소관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소련의 위상도 이제는 더이상 냉전체제의 한쪽 우두머리가 아니라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동참하는 위치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제는 KAL사건의 진상을 밝힐 때가 됐으며 또 당연히 밝혀야만 한다. 이 같은 불행한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련은 최소한 현재까지 그들이 알고 있는 사건경위와 왜 격추시켰는지를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도 항공계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KAL기의 항로이탈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회수한 블랙박스를 공개하여 국제적인 분석을 하도록 해야 한다. 거대한 보잉747점보기를 민간여객기로 알아보지 못했다든가,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승객 2백69명을 태우고 KAL기가 첩보활동을 했다는 등의 어거지로 사건의 진상을 더 이상 묻어두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이제 막 본격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한국이 KAL기 사건의 피해당사국이기 때문에 앞으로 두 나라 관계의 발전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사건의 진상공개와 함께 그에 합당한 사과가 있어야만 한다. 소련은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45년 동안이나 자신들의 행위가 아니라고 부인해 왔던 1940년의 폴란드군 대량학살 사건을 소련비밀경찰의 소행이라고 인정했고,「프라하의 봄」을 무참히 짓밟았던 68년 8월의 체코 무력침공도 소련정부의 과오였음을 솔직이 시인했었다. 그러나 소련은 KAL기 사건에 대해서만은 최근까지도 계속 「더 이상 아는 것이 없다」는 식으로 발뺌하고 있다. 이달 내한했던 로가초프 외무차관은 사건진상의 공개를 바라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에 『냉전시대에 발생했던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대답하며 관련자료가 추가로 입수되면 한국측에 전달하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려 버렸다. 급속한 접근과 빈번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가 모스크바에 대해 느끼는 인상은 어딘가 음흉하고 어둡다는 쪽이 아직도 강하다. 소련 대통령이 역사적인 방한을 하고 두 나라 정상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 정답게 상호 관심사를 의논하는 마당에,그깟 이미 흘러간 불행한 사건을 더 이상 굳이 들출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소 두 나라가 경제적이나 통일·안보적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하여 참다운 협력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간의 신뢰가 회복돼야 하며 이 같은 신뢰를 쌓는 첫걸음이 KAL사건의 진상공개와 사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2백69명의 원혼과 그 유가족들을 달래고 평화를 사랑하는 자유세계에 소련의 변화를 확신시켜 주는 길이기도 하다.
  • 새 시장 맞는 「서울특별시」(사설)

    질척하고 혼미한 늪으로 우리를 허우적거리게 만든 「수서」는 서울땅이다. 땅은 비좁고 살집은 모자란 1천만 서울시민의 문제가 야기한 이 오욕의 지진은 서울시청을 진앙으로 하고있다. 마침내 53일의 단명한 시장을 내고 새시장을 맞은 서울시는 아직도 여진의 불안정함 속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서울시는 혼미속에서 탈출해야 한다. 교통문제 환경문제 상하수에서 쓰레기문제,민생치안에서 복지문제에 이르기까지 하루라도 행정의 흐름이 막히면 1천만이 질식할 지경인 이 거대한 도시가,더는 수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수는 없다. 서울은 도시라기 보다는 나라에 가까운 규모의 행정기구다. 나라중에서도 작지 않은 나라다. 물리적 규모도 엄청나지만 그 안에 혼재된 문제와 잠재된 난제들이 속수무책으로 쌓여있는 도시다. 이런 서울시가 시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당장 명쾌한 해결의 상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기는 하지만 시장은 시장이다. 아무리 거대한 전함이라도 함장에 의해 뱃길은 운행되듯이 시장의 키잡이에 의해 서울시는 전진한다. 행정스타일,건강정도,세계관,정의수준이 남김없이 투영되게 마련이다. 수서사태가 우리에게 불행한 일이기는 했으나 이 사태를 통해 우리에게 조심스럽지만 어떤 신뢰의 실마리는 잡게 해주었다. 서울시 공무원들이 별 상처없이 이 사태를 넘길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진앙에 위치했으면서도 결정적인 수뢰의 함정에 걸리지 않고 이 폭풍우를 이겨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심증을 주는 것이다. 들리는 말인즉 「한보」라는 기업의 뇌물공세에서 자기방어를 하기 위하여 고위급이나 하위급의 시공무원 모두가 갖가지로 세심한 노력을 했었다고 한다. 「외밭에서 신들메를 고치지 않는」 치밀한 노력을 전직원이 했던 결과가 희생의 최소화를 부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독직에서 이만큼이라도 자기보호를 하려는 풍조가 서울시에 형성되었다면 어쨌든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런 풍조가 전행정에 확산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또한 신임시장에게 우리는 유능하고 정당하기를 바란다. 무능한 솜씨로는 이 공룡같은 시정을 감당할 수 없다. 몸을 사리고 개인적인 보신에만 전념하는 공직자로서도 이 자리는 감당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정의롭고 정당하지 않으면 또한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 아무리 선명하게 운영해도 「복마전」의 혐의를 벗기 어려운 것이 서울시가 지닌 본원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시장과 부시장을 함께 물러나게 한 이번 사태로 전 서울시공무원은 가뜩이나 의기소침해 있고 그들을 상대로 하는 천만시민은 불만과 불편이 가중되어 있다. 우선은 이 당면한 현실들을 풀어가는 일도 급하다. 신임 이해원시장은 인망이 높고 매우 유능한 공직경력을 지닌 노련한 공직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작고 단견한 생각으로 일생동안 쌓아온 공직인의 명예를 함부로 더럽히지 않을 인사로 기대하고 있다. 소신껏 시민의 편에 서서 차근차근 시행정을 주도하도록 당부한다.
  • 「걸프 파고」에 시베리아철도 “각광”

    ◎“뱃길은 불안”… 업계,수출 화물 탁송다툼/보험요율·위험부담 큰 해상운송 기피/개전후 육로쪽에 몰려 작년 18% 증가/한·소 경협도 한 원인… 수에즈운하 봉쇄땐 더 심할듯/중국 횡단철도도 곧 완성… 운임·시간 한층 유리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잡아라」. 걸프전쟁의 여파로 수에즈운하를 경유해 유럽·중동으로 가는 뱃길이 불안해지자 시베리아 횡단철도(TSR:Trans Siberian Railway)를 잡으려는 화주들의 눈치싸움이 치열해 졌다. 국내 TSR화물의 70% 이상을 취급하고 있는 우진쉬핑을 비롯,오람해운·우정해운 등 운송대행업체에는 걸프전쟁 개전이후 종전보다 4∼5배 이상 TSR 이용을 위한 문의전화가 걸려오고 있으며 대유럽수출 컨테이너 물동량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복합운송체계의 전형 TSR는 육·해·공을 연계하는 전형적인 복합운송시스템으로 「보내는 사람의 공장에서 받는 사람의 대문앞까지」(도어 투 도어) 화물을 수송해 주는 점이 해상수송과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TSR를 이용하려면 먼저 일본과 소련의 합작선사인 나빅스라인을 통해 부산에서 TSR가 시작되는 소련의 보스토치니항까지 해상으로 화물을 운반해야 한다. 그 다음 TSR를 통해 유럽으로 보내는 방법은 4가지가 있다. 첫째는 TSR가 시작되는 극동의 보스토치니항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소련국경까지 수송한 뒤 다른 철도로 환적,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철도 수송루트가 있다. 둘째로는 보스토치니항으로부터 발트·아조프해에 연한 소련의 항만까지 철도로 수송하고 최종 목적지인 유럽 항만까지는 선박으로 보내는 해상수송 방법이다. 셋째는 보스토치니로부터 브레스트간을 철도로 수송한 뒤 유럽대륙의 최종목적지까지 트럭으로 수송하는 방법이며 넷째는 보스토치니 또는 유럽의 공항에서 최종목적지까지 비행기로 수송하는 형태가 있다. 이처럼 부산∼보스토치니∼시베리아 횡단철도∼유럽간 구간의 육상수송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걸프전쟁 발발이후 유럽·중동행 해상수송비용이 전쟁위험보험 할증요율의 인상 등으로 급증한데다 수송시간이 길어지고 화물에 대한 위험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해상운임도 20%나 인상 걸프전쟁으로 수에즈운하의 봉쇄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일부 유럽항로 및 북아프리카에 취항하는 선사들은 아프리카의 희망봉 또는 태평양을 거쳐 파나마운하로 우회하고 있고 해상운임도 전쟁위험 할증료 등으로 20%나 올랐다. 이에 따라 종전에 STR를 전혀 이용하지 않던 유럽의 중부해안지역행 화물까지 TSR를 통한 내륙수송로로 몰리고 있으며 만일 수에즈운하가 봉쇄될 경우 그 물량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TSR수송은 이제까지 해상운송 수단보다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용대상 지역도 아프가니스탄·이란 등 중동 내륙지역과 동구·북구행 정도에 불과했다. TSR 운임이 해상운송비보다 약 2백달러 이상 비싼데다 운송기간도 평균 30∼35일로 해상운송의 25∼30일보다 평균 5일 정도가 더 걸리기 때문이다(이란행 화물의 경우 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TSR 수송비는 3천∼3천3백달러). 그러나 걸프전쟁으로 TSR가 해상운임에 비해 약 1백달러 이상 싸졌고 운송기간도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할 경우와 비슷하거나 빨라져 이제 영국·중부유럽행 화물도 TSR 수송이 인기를 끌게 됐다. 실제로 유럽·북아프리카·지중해 지역행화물이 희망봉을 우회하거나 태평양을 통해 중미의 파나마운하로 돌아갈 경우 종전보다 각각 15일이 더 걸린다. ○안정성면서 크게 유리 더욱이 TSR는 화물운송의 안전성면에서 해상운송보다 훨씬 유리한 것으로 분석돼 해상운송의 대체수단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한햇동안 TSR를 이용한 수출컨테이너물량은 7천1백75TEU(20피트 컨테이너 한개를 의미하는 단위)로 89년의 6천9백25TEU에 비해 18% 증가했다. 이 기간중 헝가리를 비롯,유고·체코·루마니아·불가리아 등 대동구권 수출이 활기를 띤데다 지난해 8월의 걸프사태 이후 이란행 화물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TSR 통과화물을 보면 ▲유고가 6백64TEU로 전년도의 33TEU에 비해 약 20배나 늘어난 것을 비롯,▲루마니아가 4백84TEU로 약 1백배 ▲체코가 91TEU로 49% ▲헝가리가 9백17TEU로 24%의 신장세를 각각 기록했다. 해상수송망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동구권 지역의 화물이 급신장한 것이다. 해운업계는 걸프전쟁의 요인외에도 최근 우리나라가 소련측에 30억달러 상당의 경협자금을 대주기로 한 것을 계기로 그동안 둔화됐던 대소수출이 활기를 띠게돼 TSR이용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이 마음놓고 TSR를 이용하기에는 아직 난관이 적지 않다. ○보스토치니항구 적체 TSR 수송로의 극동지역 관문인 보스토치니항의 결빙과 TSR 물량의 약 90%가 이 항구에 몰려 화물적체가 심각한 실정이다. 또 소련 내륙지역으로 운송할 경우에는 컨테이너 수송열차가 어디쯤 달리고 있는지 또는 어느 역에서 대기하고 있는지를 추적하기 어렵고 복합연계 수송체제가 갖춰지지 않아 내륙지까지 원활한 수송서비스가 미흡하다. 이밖에도 TSR를 이용하려면 보스토치니에서 소련 컨테이너로 화물을 옮겨실어야만 빈컨테이너를 되돌려 받을 수 있고 20피트 컨테이너만 수송이 가능한 점도 단점으로 꼽힌다. 수출업계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잘알고 있으면서도 걸프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TSR루트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수송루트다변화 기대 한편 국내 해상화물 운송주선 업계에서는 올 상반기중 완공될 예정인 중국횡단철도(TCR)를 통한 새로운 유럽·중동행 수송루트를 개척하는데도 힘을 쏟고 있다. 업계는 TCR 루트를 이용할 경우 TSR 이용시에 비해 훨씬 운송비용과 시일이 단축될 것으로 기대,TCR 운영권자로 예정된 중국 대외무역운수총공사(SINOTRANS)측과의 협의를 구체화하고 있다. 이에대해 백원재 무협 하주운송과장은 『73년 정부의 6·23 선언을 계기로 TSR를 이용하는 한소항로가 개설된 이래 최근 한소관계의 개선으로 올 상반기중 정기직항로가 개설될 예정』이라고 밝히고 『TSR에 이어 TCR가 개통되면 이제까지 주로 해상수송 루트에 의존해 왔던 유럽·중동행 수송로가 다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한∼중/카페리항로 황금노선 등장

    ◎교포·한국관광객에 큰 인기/취항 두달만에 여객 1만명 육박 지난해 9월 개설된 한국과 중국간 카페리항로가 고국을 방문하는 중국교포들은 물론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있어 황금노선으로 부각되고 있다. 13일 해운항만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9월15일 사상 처음으로 인천과 중국 산동성 위해시를 잇는 항로에 취항한 골든브리지호(4천3백t급)가 초기에는 1항차에 승객을 1백여명씩 밖에 태우지 못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2백50∼3백명 수준을 유지,양국간 인적 물적교류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주 2항차(왕복 4항차)씩 운항하고 있는 골든브리지호는 첫 취항한 지난해 9월 8백57명에 불과하던 승객을 10월에는 1천5백61명,11월에는 2천5백65명으로 신장시킨데 이어 12월에는 4천1백74명으로 두달반만에 4천명을 돌파하는 초고속 신장을 거듭하고 있어 양국간을 잇는 뱃길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말까지 이 항로를 이용한 승객은 출항 4천4백13명,입항 4천7백46명 등 9천1백59명으로 출입항여객수가별 차이없이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국적별 여객수를 분석해 보면 중국인이 6천6백95명으로 전체의 62.2%를 차지했고 한국인은 2천6백35명으로 28.8%,대만인은 6백52명으로 7%,기타 1백77명으로 2%를 차지했다.
  • 경인운하 하반기 착공/행주대교∼인천 백석동

    ◎폭80m·길이 19.7㎞/3천억 들여 90년대 중반 완공/9백t급 바지선 9척 운항/영종도 공항 영결산업·관광개발 효과기대 서울과 인천을 뱃길로 연결하는 총연장 43㎞의 경인운하가 올 하반기에 착공된다. 건설부는 5일 서울∼인천간 육상교통난을 완화하고 상습수해지역인 굴포천주변 저지대의 항구적인 홍수예방을 위해 총공사비 3천억원을 들여 행주대교 아래쪽에서 인천 백석동까지 폭 80m,길이 19.7㎞의 운하를 만들기로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운하가 될 경인운하는 행주대교 아래 경기도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에서 한강지류인 굴포천을 따라 인천 북구 계양동을 거쳐 백석동까지 뚫린다. 이 운하는 행주대교에서 계양동까지는 기존 굴포천을 확장,준설하고 계양동에서 백석동까지는 김포평야를 가로지르는 수심 2.5m의 수로를 파는 방법으로 건설된다. 또 바닷물의 역류를 막기위해 폭 26m,깊이 1백93m의 갑문 2개가 만들어지고 폭 20m의 배수문도 설치된다. 이 운하가 만들어지면 9백t급 바지선 9대로 구성된 주운선단이 운항,인천항으로 들어오는 화물을 육로를 통하지 않고 바로 서울로 실어올 수 있게 되며 서울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인천 앞바다 매립지로 운반할 수 있게 된다. 건설부는 이 운하건설을 위해 올 예산에 1백억원을 확보하고 늦어도 하반기중에는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또 조기완공을 위해 이 운하건설을 맡을 수자원공사로 하여금 다각적인 자금조달 방안을 강구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 운하가 90년대 중반에 완공되면 앞으로 건설될 영종도 국제공항·서해안고속도로·자유로등과도 입체적으로 연계돼 서해안지역 개발 및 관광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소년ㆍ소녀가장 “자립만세”/뽀빠이 이상용씨 「강화여름캠프」 성황

    ◎전국서 43명 모여 자긍심 고취/“이젠 자심감 갖고 살아갈래요” 방학이 되어도 남들처럼 피서는 생각지도 못하던 소년소녀가장과 결손가정의 어린이들이 「여름방학캠프」에서 모처럼 시름을 잊고 활짝 웃었다. 11일 하오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강화청소년심신수련장」. 뽀빠이 이상용씨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어린이보호회가 10일부터 3박4일의 일정으로 이곳에 문을 연 「뽀빠이캠프」에 들어온 43명의 남녀어린이들은 불볕더위에 아랑곳없이 구슬땀을 흘리며 힘을 모아 진흙벽돌로 모형첨성대를 쌓고 있었다. 『언니ㆍ오빠들과 힘을 합쳐 모형을 만들다 보니 협동심도 배우고 즐거웠습니다』 3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천애고아가 된 강미영양(12ㆍ마산S국교 5년)은 진흙벽돌이 하나씩 쌓히면서 첨성대가 완성되자 신기하기만 한듯 박수를 그치지 않았다. 지난83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모범어린이를 대상으로 시작,매년 무료로 실시돼온 이 캠프는 올해에는 특히 좌절하기 쉽고 자칫 빗나가기 일쑤인 이들 불우어린이들에게 자신감과자긍심을 심어주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회장은 『불우한 환경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당장의 물질적인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자기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잠재력을 개발시켜줘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부모가 없는 어린이가장인 이들은 특히 핸드볼국가대표선수였던 김명순씨(28)가 찾아와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얘기하자 두손을 힘껏 쥐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전남 신안군에서 뱃길을 타고 온 김현주양(16ㆍ신안B중3년)은 『부모님이 안계셔 괜히 기가 죽곤 했는데 언니의 고생담을 듣고보니 나도 누구 못지 않게 훌륭하고 떳떳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라고 말했다.
  • 부천 중동/아파트 4만가구 건립/1차분 8월 분양… 17만명 수용

    ◎92년까지… 시청등 34개기관 이전 건설부는 9일 경기도 부천 중동신도시 개발계획을 확정,17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4만2천5백가구의 주택을 짓기로 했다. 중동신도시의 개발면적은 1백64만5천평으로 7천2백억원의 사업비로 92년말까지 택지조성 및 도시기반시설공사가 마무리될 계획이다. 건설부는 중동지역을 부천의 중심지로 개발하기 위해 시청ㆍ시의회ㆍ법원ㆍ검찰청ㆍ교육청ㆍ세무서 등 34개의 공공기관을 이전하기로 했다. 또 서부지역 중심도시로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자족도시로 육성하고 교통편의를 위해 지구중심을 지나는 연장 10.9㎞의 8차선 동서관통도로와 길이 6.6㎞,6차선인 경인국도우회도로를 건설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굴포천을 정비하여 앞으로 건설될 경인운하와 연결되는 뱃길을 만들어 물자와 관광객을 실어나르기로 했다. 중동신도시의 토지이용계획은 33.2%인 54만5천9백평이 택지로 조성되고 9.5%인 15만6천3백평은 상업용지로,57.3%인 94만3천1백평은 공공시설용지로 짜여져 있다. 또 주택은 아파트가 4만1천4백20가구,단독주택1천80가구등 4만2천5백가구가 건설되며 아파트는 서민용위주로 82.2%인 3만4천60가구가 전용면적 25.7평이하로 건설된다. 아파트 가운데 1차분 3천6백가구는 8월쯤 분양될 예정이다. 부천시관계자는 중동신도시에 1천5백여개의 아파트형 공장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동지구에는 국민학교 14개,중학교 8개,고등학교 8개등 모두 30개의 학교가 세워지며 34개의 공원이 조성된다. 중동신도시의 인구밀도는 ㏊당 3백15명으로 분당(2백13명)과 산본신도시(4백6명)의 중간수준이다.
  • 90년대를 연다/새희망을 가꾸는 사람들:1

    ◎“새해 복많이…” 「30년 소망」 첫 통화/안도 등대장 성보환씨의 “말띠해 만세”/전국에서 마지막으로 전화설치/“「정보화 시대」 혜택 실감 이젠 고도가 아니지요”/뱃길 3시간… 3가구 6명이 한지붕에 『지난 밤 아무 사고도 없었습니다. 바다 역시 파도가 그리 높지 않아 잔잔했고요. 아! 그리고 서과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경오년 새아침. 서해 고도 안도에 찬란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 상오7시30분 인천항만청 서승규표지과장(52)에게 지난밤 상황을 보고하는 이곳 등대장 성보환씨(59)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 밝았다. 등대지기 30년만에 처음으로 찍찍거리는 무전기 소리대신 똑똑한 목소리를 주고 받으며 직속 상급부서인 인천해운항만청에 전화보고를 마친 성대장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듯 얼굴가득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인천에서 서남쪽으로 70㎞,항만청 행정선으로 3시간30분이나 가야하는 서해 돌섬 안도에 경오년 1월1일 0시를 기해 꿈에 그리던 전화가 개통된 것이다. 이 섬에 가스등 무인등대가 처음으로 세워진 1911년이후 79년,성대장의 부임으로 유인등대가 된지로부터는 5년만에 이루어진 경사다. 지난87년 6월30일 우리나라 전국 전화망이 완전 자동화됐고 88년 9월에는 전화 1천만회선을 돌파했으나 전세계 1백53개국 1백80개 지역과 즉시 자동통화를 가설,이제는 전기통신부문 세계 10위,아시아 2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이지만 안도의 전화가설은 또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전화개통으로 비로소 산간벽지,절해고도를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우리나라 어디든지 전화가 가설된 것이다. 꿈의 세계라 일컬어지는 2천년대 정보화 사회의 터전을 완전히 마련한 셈이다. 안도의 전화가설은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벌이고 있는 농어촌 통신 현대화사업중 5백22번째 섬마을 사업으로 우리나라의 1가구라도 살고 있는 유인도중 마지막이었다. 유인도라지만 이 섬은 해발 47m 면적 6백14㎡에 불과한 2개의 바위섬으로 성대장과 부인 오세련씨(56),직원 김경철(35)ㆍ김진영씨(27) 부부와 딸 가희양(3),직원 박상철씨(29) 등 등대지기 3가구 6명이 한지붕밑에 살고 있는 것이고작인 외딴섬이다. 비록 식수조차 자체로 마련하지 못해 모든 식량과 식수ㆍ부식 등 생필품 일체를 보름에 한번씩 인천항만청에서 오는 행정선의 보급에 의존하지만 인천항의 관문을 지키는 등대로서의 중요성은 이미 일제시대 때부터 인정받아 왔다. 지난59년 소청도 등대를 시작으로 연평도ㆍ목덕도ㆍ선미도ㆍ부도 등 인천항만청 소속 등대를 두루 거친 성대장의 새로 개통된 전화에 대한 감회는 남다르다. 전화가 없었던 안도에서의 생활은 현대속의 원시생활이나 다름없었다. 위독한 환자가 생겨도 육지와 연락할 수 없어 지난72년 아들을 잃은 것을 비롯,일반여객선이 없어 육지와 편지도 주고 받지못해 세상이 시끄러울 때면 인천과 서울에 살고 있는 맏아들 기수씨(29)와 맏딸 옥란(32)ㆍ둘째딸 옥빈씨(28) 등 자식들의 안부조차 알 수 없어 답답하다. 보름에 한번씩 오기로 되어있는 항만청 행정선에 모든 보급품과 육지소식을 의존하지만 사방이 뾰족한 돌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라 파도가 조금이라도 일면 배를 대지 못하기 일쑤다. 전화는 컴퓨터ㆍ팩시밀리(FAX)ㆍTV 등과 함께 정보화 사회의 기본적으로 필수적인 장비다. 정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안도의 전화가설로 정보화 사회를 향한 기반조성이 완료됐다고 보고 오는 2천년까지 모두 63조원을 들여 단계적으로 뉴미디어를 개발,보급하기로 했다. 우선 91년까지 화상회의와 텔레텍스ㆍ비디오텍스ㆍ유선TVㆍ고속FAXㆍ열차전화ㆍ원격감시시스템을,96년까지 컴퓨터 3백22만대 보급과 함께 화상전화와 시내외 통신망 디지틀완성을,2천년까지 컴퓨터 1천만대 보급을 마친다음 2천1년에는 전화망과 텔렉스망,데이타통신망 등 모든 통신방식이 하나로 묶여지는 종합통신망이 완성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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