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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향 명승지로 가족나들이/추석연휴에 가볼만한 곳

    ◎수도권­근교 공원마다 민속놀이·가두공연 풍성/중부권­초가을 뱃길따라 단양팔경 유람 좋을듯/영남권­신라의 맥박이 뛰는 토함산 일출은 장관/호남권­승주 낙안읍성 조선시대 민가 정취 “물씬” 오는 14일부터 17일까지는 한가위 연휴.고향을 찾는 귀성객들은 4일도 짧지만 집에서 연휴를 보내는 사람들은 추석날 제사를 지낸뒤 성묘를 하고 나면 시간적 여유가 많다.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가볍게 찾을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외국인 장기자랑도 펼쳐 ▷수도권◁ 과천 서울랜드는 가족들이 윷놀이와 투호,제기차기 등 민속놀이를 즐길수 있도록 연휴기간동안 연꽃분수 주변에 민속놀이 한마당을 개설하고 한가위 특집 퍼레이드도 선보인다.16,17일에는 전통민속 놀이팀인 ‘뿌리패’가 사물놀이와 농악놀이로 흥을 돋운다.하오 10시까지 개장한다. 용인 애버랜드도 14∼17일까지 순라군(포졸)과 뺑덕어멈 등 고전해학 캐릭터들로 분장한 공연단들이 가두행진을 벌인다.17일에는 250여명의 공연단원이 나와 왕의 행차를 재현한 어가행렬,친영의례,강무시취 등 조선시대 궁중행사 퍼레이드를 벌이며 16∼17일에는 외국인 장기자랑도 펼쳐진다.하오 9시까지 문을 연다. 잠실롯데월드는 15∼17일 하오 8시에 가족대항 윷놀이 대회를 연다. 16,17일 하오 4시에는 김덕수 사물놀이 초청공연이 펼쳐지며 하오 1시와 3시에는 민속박물관에서 화관무,살풀이 등 한가위 민속한마당이 열린다. 용인 한국민속촌은 추석날인 16일 낮 12시30분 북청사자놀음을 공연하며 17일 하오 3시30분 같은 장소에서 송파산대놀이를 공연한다.공연장 주변에서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속씨름,줄넘기,투호놀이,줄당기기 대회가 곁들여진다.민속촌은 이와 함께 송편 빚어보기,햇곡식 찧기,인형놀이마당 등의 행사도 개최한다. 이밖에 서울시내 5대 고궁이 개방되며 특히 덕수궁,경복궁,창경궁에는 널뛰기,제기차기,팽이치기,윷놀이,투호 등을 즐길수 있는 실습장이 마련된다.10일부터 21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광장에서는 전통민속놀이마당이 개설돼 윷,제기,팽이,줄다리기,굴렁쇠,투호 등을 즐길수 있다. 귀성인파가 한산해지면 경춘가도,팔당유원지 등의 국도를 승용차로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묘미다.수도권의 달맞이 명소로는 임진각을 비롯 서울 북악 스카이웨이·남산 팔각정·행주산성·남한산성 등을 꼽을수 있다. ○동해 달맞이·야경은 황홀 ▷중부권◁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은 추석 연휴기간동안 평소처럼 문을 연다.민속놀이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가을 초입의 호수를 구경하는 것도 괜찮다.충주호 유람선은 이 기간동안 충주댐 선착장에서 단양 장회나루까지 100리의 뱃길을 하루 4∼6차례 운행한다.소요시간은 1시간10분. 청명한 하늘과 산자락 그림자가 드리워진 잔잔한 호반풍경은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가족과 함께 하는 초가을 여행치곤 감출 맛이 그만이다.배를 타고가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월악산과 단양팔경중 하나인 옥순동,도담삼봉 너머로 다가오는 소백산의 웅장한 자태 등은 뱃길관광의 백미이다. 소백산맥의 끝머리에 있는 월출산은 천황봉,구정봉,향로봉 등의 산세가 빼어나게 아름답다.특히 용암골이라고 불리는송계천 골짜기 동쪽 능선에 얹혀 있는 월대에서의 달맞이는 장관이다. 손수운전자는 충남 서산군 천수만 방조제로 나가면 서해 낙조를 즐길수 있다.간월암,부남호 등의 명소는 물론 인근에 아산,온양,덕산,도고온천 등 이름난 온천이 있어 귀로에 몸을 풀수도 있다. 경포대는 예로부터 관동팔경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경포대에서만 볼수 있는 해돋이와 낙조,달맞이,고기잡이 배의 야경,초당마을에서 피어 올리는 저녁연기 등은 경포팔경이라 하여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칭송대상이 돼왔다.하늘과 바다,호수,술잔,그리고 마주앉은 님의 눈동자에 똑같은 달이 다섯개나 뜬다는 경포호는 이곳을 찾는 누구에게든 선경에 몰입하게 한다.추석은 물론 평소에도 달맞이 인파로 붐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는 명절 또는 연말,연초가 되면 실향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멀리 금강산을 바라볼수 있는 것은 물론 푸른 바다에 이어진 낙타봉과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온다.전망대에 오르면 북녘땅에 해가 떠 오르는 것을 볼수도 있다. ○한복아가씨 선발대회 ▷영남권◁ 대구 우방타워랜드는 16일에는 영타운무대에서 트로트 가수왕 선발대회를 개최하며 16∼17일 이틀동안 국악과 재즈의 만남 행사를 연다.이 행사에는 대금,사물놀이와 색소폰,전자바이올린,재즈 싱어 등이 한데 어울린다.또 17일에는 한복 아가씨 선발대회가 열려 입상자에게는 상금 1백만원을 비롯 해외여행권 등 푸짐한 시상품이 주어진다. 경주는 발닿는 어느 곳이나 신라의 맥박이 느껴지는 역사의 고장이다.경주의 동쪽 끝을 감싸고 있는 토함산은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토해내는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토함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푸른 바다가 하늘과 맞닿고 서쪽으론 하늘을 찌를듯한 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진다.맑은날 토함산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한마디로 장관이다.그 유명한 동해 해맞이는 대기에 습기가 적은 가을철에 제대로 볼수 있느니 만큼 추석 연휴기간동안 한번 부지런을 떨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한가위 달맞이도 이에 못지 않다.동해바다로 쏟아지는 달빛에 흠뻑 젖어볼수 있기 때문이다. 망양정,월송정,불영사,백암온천 등이 이어지는 울진 인근의 동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달려보는 것도 괜찮다. 부산 해운대는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누구나 손쉽게 접근할수 있어 한가위 때마다 달맞이 구경꾼들로 붐빈다. 부산 인근의 통도 환타지아는 16∼17일 이틀동안 한가위 큰 잔치를 벌인다.전통 놀이패의 민속공연이 하루 세차례 펼쳐지며 하오 7시30분에는 입장객들을 대상으로 트롯 가요제,트롯 청백전,트롯 따라하기,한가위 한복콘테스트 등 다양한 게임식 행사를 갖는다.입상자에게는 연간회원권,캐릭터 상품 등이 제공된다. ○광주비엔날레도 계속 ▷호남권◁ 승주 낙안마을은 조선시대 민가를 보존한 민속촌으로 전통적인 한가위 분위기에 젖어볼수 있다. 호남 5대 명산중 하나인 영암 월출산은 이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달맞이 명소.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기묘하고 빼어난 산세가 절경을 이룬다. 암봉 사이로 두둥실 떠가는 달의 모습은 기암괴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춘향의 도시 남원과 내장산,덕유산,덕유산,무주 구천동 등이 모두 2∼3시간 거리에 있어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한번 둘러봄직 하다. 광주 중외공원 일대에서 개최되고 있는 광주 비엔날레는 추석 연휴에도 계속 이어진다. 광주 인근에는 전통정원이 널려 있어 정원을 둘러보면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수 있다.담양군 남면 일대에는 자연의 운치가 그대로 살아있는 소쇄원,송강 정철의 풍류를 느낄수 있는 식영정,배롱나무로 둘러선 자연속의 휴식처 명옥헌 등의 명소가 있다.담양호를 끼고 도는 드라이브코스도 환상적이며 굽이굽이 산자락에서 호수를 보고 달리는 맛도 뛰어나다. 동계 무주유니버시아드 대회이후 전주∼진안간 국도는 호남의 새로운 관광벨트로 부상되고 있다.전주와 무주가 시원스럽게 이어진데다 주변에 관광지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 방문 여로(경수로 착공 방북취재기:상)

    ◎북 도선사 “자주 봐야 정들죠”/항구 썰렁… 인적 드물고 낡은 선박 10여척 정박 북한 땅 신포는 그곳에 있었다.우리가 다가갔다.92년 9월 평양 남북 고위급회담 이후 정부대표단과 한국기자단의 첫 북한방문이었다.남북교류의 새 장을 여는 경수로 착공식 취재는 단 하루,함남 신포의 양화라는 외곽항구와 금호지구 경수로 건설부지 등 제한적인 지역에서 제한된 북한주민들을 만나는 것이었다.방북단의 취재내용을 ‘북한 방문 여로’ ‘1997년 북한 사람의 생활’ 등으로 나눠 두차례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 주〉 닫혀 있는 땅 북한 함경남도 신포로 향하는 뱃길은 잔잔했다. 18일 저녁 7시.강원도 동해항에서 경수로 관련 한·미·일 정부대표단,원전건설 합동시공단 대표단,한·미·일 3국 공동취재단을 태운 한나라호는 조용한 밤바다를 헤쳐 나갔다. 19일 새벽 1시 30분.조타실 항로계기판의 점멸 등이 깜박였다.이른바 알파지점.북한이 군사경계지역으로 부르는 지점에 도착한 것이다.이제부터 북한 영역이었다.깜깜한 밤바다에 북한측 경비정은 보이지 않았다. 아침 7시 간간이 내리는 비와 바다안개속에 드디어 북한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함남 신포 금호지구 경수로 부지와 12㎞정도 떨어진 양화항.북한측 도선사의 안내로 한나라호는 한때 북한 동해안의 가장 큰 어항이었다는 양화항에 접안했다.한참 붐빌 아침시간의 부두였지만 북측 사람들은 안전요원,세관원 등 불과 십수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부두에는 길이 1백여m되는 시멘트 건물 어판장이 있었지만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를 사수하자’라는 오래된 페인트 글씨만 쓰여있을뿐 인적은 없었다.항구에도 녹슨 철선만 10여척 정박해 있을 뿐이었다. 배에서 내려 단층 블럭 건물인 양화항 입국세관에 들어섰다.경수로 건설공사 때문에 임시로 설치된 세관은 다섯 명의 북측 세관원외에는 아무도 없었다.일부 취재진의 망원카메라 등 취재 장비의 통관에 대한 실랑이가 있었지만 비교적 입국 수속은 쉽게 끝났다.세관을 통과한 뒤 만난 첫 북한 주민은 음료와 담배 등을 파는,세관에 설치된 외화벌이 상점 ‘양화카운트’ 점원이었다.평양에서 왔다는 북한 여점원은 ‘안녕하십니까,반갑습니다’라는 인사로 대표단을 맞았다. 이어 대표단은 최근 경수로 부지공사를 위해 급히 만든 진흙탕길 비포장 도로를 30분정도 달려 경수로 부지인 신포 금호지구에 도착했다.부지는 정리가 안된 넓은 들판과 어인봉이라는 야산만 가로놓여 있는 허허벌판이었다.내리는 빗속에 경수로 예정부지는 온통 진흙밭이었다.그러나 막상 부지 착공식이 시작되자 한미일 정부대표들과 북한측 대표들의 표정은 역사적인 대사업의 의미를 되새기듯 밝으면서도 장엄했다. 하오2시30분.드디어 금호지구에 폭발음이 들렸다.경수로 부지 왼편에 가로놓인 어인봉 마지막 능선 6부지점 정도에 설치된 발파현장에서 폭발음과 함께 오색연기가 피어 올랐다.부지 한쪽에서는 국산 굴착기가 북한 땅에 최초로 삽을 꽂았다.남북간 대규모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착공식 후 우리 근로자들의 임시숙소인 강상리 게스트 하우스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남북대표와 미·일 대표들은 서로 ‘축하한다’며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부지착공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양화항으로 돌아오는 밤길에도 비가 내렸다.취재단을 태운 미니버스는 양화항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마주오는 트럭을 피하려다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옆 옥수수밭 도랑에 빠져 전복위기를 맞기도 했다.일행들은 비에 젖고 진흙투성이가 됐지만 경수로 착공의 의미를 되새기며 웃는 모습이었다. 다른 일행을 태웠던 버스로 갈아타고 양화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마친 시간은 밤11시.일행은 “야간은 출항이 안되니 아침에 떠나라”는 북한측의 지시에 따라 양화항에 접안한 배에서 1박했다. 20일 아침 10시.북측 도선사의 안내로 양화항을 떠났다.8㎞ 떨어진 파일러트 스테이션(도선지점)에서 북한측 도선사는 배에서 내려 돌아갔다.북측 도선사는 “자주 봐야 정들지요,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했고 우리측 대표단은 “이제 자주 오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 북 신포 파견 근로자들/외로움·음식고생 ‘2중고’

    ◎일 끝나고 갈곳없고 TV는 정치선전뿐/가공식품 주로 먹어 식상… 휴가만 고대 경수로가 들어설 북한 신포 금호지구현장은 국내 협력업체 기술자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곳이다.현대,대우 등 국산상표를 부착한 덤프트럭,불도저 등이 길거리를 누비는 모습은 이곳을 국내 건설현장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남한에서 뱃길로 12시간에 불과한 이곳 근로자들의 생활은 열사의 땅인 중동생활 못지않게 어려움이 많다.한국인 근로자들이 이곳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길이 없다는 것.지난 4일 개통된 전화를 통해 가족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지만 근로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4개의 전화회선만으로는 폭주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근무와 휴식시간으로만 이뤄진 단조로운 생활도 이들의 고독감을 더하고 있다.작업이 끝나는 5시 이후에는 특별히 갈 곳도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저녁에 나오는 북한 중앙방송에 대해 식상한 것도 이미 오래다.TV화면을 통해 드라마나 쇼프로그램을 보면서 오락거리를 찾는 것은상상하기 어렵다.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북한체제의 정치선전물이기 때문이다.TV방송이 끝나는 하오 10시30분부터는 ‘림꺽정’‘홍길동’‘춘향전’ 등 북한영화와 가요 등을 비디오로 보여주지만 근로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미흡하다. 먹는 것도 만족스럽지 않다.수해와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할 때는 그나마 진수성찬이라고 자위해보지만 신선한 채소를 구하지 못해 1차 가공된 식품을 주로 접해야 하는 근로자들로서는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다. 근로자들이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휴가.정부대표는 6주 근무후 2주를,한전 근로자들은 2개월 근무뒤 2주의 휴식시간을 제공받도록 돼있지만 각 회사마다 휴가기준이 달라 아직 최종 결정이 나지 않았다.
  • 아프리카대륙 ‘폭풍의 곶’/‘희망봉’으로 가자

    ◎대서·인도양의 파도 어우러진 청정 해역/쪽빛바다·병풍 둘러친 천혜의 절벽 장관/케이프타운서 해안길따라 50㎞ 여정 ‘남아공 여행의 꽃’ 남위 34도21분25초,동경 18도28분26초­.1488년 아프리카대륙의 남단을 확인하고 귀항하던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르돌로뮤 디아스는 대서양과 인도양의 파도가 한데 어우러져 거세게 일렁이는 바다 너머로 어렴풋이 다가선 육지의 한자락을 발견하고는 ‘폭풍의 곶’으로 이름 붙인다.그로부터 9년뒤 바스코 다 가마는 이 ‘곶’을 지나 인도로 가는 뱃길을 열었고 이 소식을 들은 포르투갈 왕 후안2세는 ‘폭풍의 곶’을 ‘희망의 곶’으로 바꿔 불렀다.이 때부터 이‘곶’은 인도로 가는 긴 항해에 지친 유럽 뱃사람들의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 됐다. 아프리카대륙의 남서단 희망봉은 남아공 여행의 꽃.초등학교 시절 지리책에서 배웠던 현장을 확인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이 되지만 이보다 더욱 여행객을 설레게 하는 것은 남아공 제3의 도시로 케이프주의 주도인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에 이르는 약 50㎞의 여정. 쪽빛으로 빛나는 바다,병풍처럼 이어지는 천애절벽,코끝을 간지럽히는 맑고 깨끗한 바람,얕으막한 구릉과 키 작은 풀숲 사이로 뛰노는 타조와 얼룩말 등….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으로 가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대서양을 끼고 희망봉을 본 뒤 인도양을 끼고 돌아오는 것.8시간과 4시간 코스가 있으며 느긋함을 즐기려면 8시간 코스가 좋다.케이프타운 도심의 호텔에서 출발하는 8시간 코스의 값은 어른 42달러,어린이 21달러. 케이프타운을 출발한 버스는 도심을 벗어나면 막바로 대서양을 오른쪽으로 끼고 그림처럼 펼쳐 진 해안길을 달린다.해안을 따라 백인들의 별장이 처마를 맞대고 늘어서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한다.넬슨 만델라의 집권으로 혹독한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 헤이드)은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흑인들이 이곳을 마음대로 드나들지는 못한다.조깅을 즐기는 백인들의 모습만이 눈에 띄어 유럽의 전원도시가 연상되지만 흑백간의 경제적 불균형이라는 ‘남아공의 고민’을 상징처럼 말해주는 곳이기도 하다.20여분쯤 별장지대를 달리면 하우트만에 이른다.이곳에서 유람선을 타고 다시 10여분쯤 가면 물개섬을 만난다.300∼400여마리의 물개들이 바위섬을 안식처로 삼아 관광객을 맞는 모습은 한가롭기만 하다. 물개섬을 뒤로한 버스는 1922년 완공된 채프만 언덕길을 힘겹게 오른 뒤 이내 탁 트인 대서양 해안길을 내닫는다.운이 좋으면 대서양에서 유영을 즐기는 고래를 볼 수 있다.몸 길이 20∼30m,무게 60톤이 넘는 고래들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의식한 듯 꼬리를 하늘로 치켜들어 재롱을 부리곤 한다. 고래찾기에 몰두하며 1시간 조금 넘게 더 달리면 희망봉 자연보존지역이 나타난다.사람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꽃괭이밥(옥살리스) 등 키 작은 풀과 관목,얼룩말과 타조 등 남아프리카 특유의 자연을 차창으로 스치며 40여분쯤 달리면 희망봉이 나타난다.거친 파도가 포말로 부서지는 벼랑을 배경으로 아프리카 남서쪽 끝임을 알리는 푯말뿐이지만 푯말을 껴안고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케이프타운 시내에도 짭짤한 볼거리가 많다.이 가운데 테이블 마운틴과 라이언 헤드,워터 프론트 등은 빼놓을수 없는 명소.해발 1천86m의 테이블 마운틴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책상처럼 평평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정상에는 3개의 연못이 있다.사자의 머리 모양을 한 바위산 라이언 헤드와 함께 케이프타운의 상징. 한편 케이프타운은 남반구에 위치에 있어 우리나라와는 계절이 반대다.여름에는 섭씨 40도를 오르내리지만 겨울 평균기온은 섭씨 5∼17도로 우리나라 늦가을과 비슷하다.시차는 우리나라보다 7시간이 늦고 화폐단위는 랜드(1랜드는 한화 약 210원).서울에서 직항은 없고 홍콩 콸라룸푸르 싱가포르 등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 본사 김인철 기자 환경부 생태조사단과 백령도·대청도 가다

    ◎물범·범부채 등 희귀동식물 곳곳에… ‘생태계 보고’/대청부채·모감주나무 야생… 동백군락도/북위42도 이북서만 사는 물범떼 유유히 서해바다 최북단 백령도 및 대청도는 알려진대로 생태계의 보고였다. 백령도에서는 민물가마우지의 서식지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됐으며 용기포 앞바다 바위섬은 북반구에서 가장 낮은 위도상에 위치한 물범의 서식지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대청도에서는 희귀식물인 붓꽃과의 ‘대청부채’가 야생상태로 일부 서식하고 있었다.멸종위기식물인 ‘범부채’도 백령도와 대청도 해안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청도는 50여그루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는 북방한계지였으며 백령도는 ‘모감주나무’의 북방한계지였다. 지난 2일 상오 10시쯤 환경부 생태조사단은 서해 일원에 내렸던 폭풍주의보가 해제되자 북반부 최남단의 물범 서식지인 용기포 앞바다로 향했다.제2차 자연환경 전국 기초조사의 하나로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6일까지 7일간의 일정으로 백령도및 대청도를 비롯,서해 인근 도서의 생태계를 조사하던 중이었다. 배가 안개를 가르며 포구를 떠난지 20여분뒤 “100m 앞 바위섬을 주시하라”고 선장이 소리쳤다.멀리 안개속에 물범 20여마리가 3조각의 조그만 바위에 배를 깔고 한가로움을 즐기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길이 160∼170㎝,몸무게 130∼180㎏의 포유동물인 물범들은 배가 퉁퉁대며 접근하자 일제히 바다속으로 다이빙,간간히 머리를 내밀며 수영을 즐겼다. “북위 42도 위쪽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범이 북위 37도에 위치한 백령도 앞바다에서 번식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현상입니다.세계적으로도 희귀종인 물범이 주 서식처인 찬 바다를 떠나 어떤 경로로 이곳 서해까지 들어오게 됐고 어떤 방식으로 머물며 번식하고 있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조사단원인 한상훈 박사(동물학)는 “백령도의 물범떼는 세계적으로도 보호할 가치가 매우 높은 희귀동물”이라면서 “제331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82년 이후 숫자가 계속 주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만큼 정부및 현지주민들의 적극적인 보호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령도에서 뱃길로 30여분 남쪽에 위치한 대청도는 살아 꿈틀대는 지질생태의 보고였다.길이 2㎞의 아름다운 농리해변이 5∼6년 사이에 모래가 밀려들면서 바다쪽으로 200∼300m 가량 전진했는가 하면 옥죽포 해안에서 700∼800m나 떨어진 내륙에는 해풍에 실려 날라온 바닷모래가 만든 해안사구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조사단원인 홍성조 박사(지형)은 “길이 1㎞,넓이 500m,연면적 50만㎡ 크기의 해안사구는 국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지형”이라고 설명하고 “칼날모양의 선이 선명한 이곳 해안사구를 천연기념물로 지정,뛰어난 풍광을 보존하고 관광자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강에 화물·여객선 뜬다/2002년부터

    ◎내년중 물류터미널 등 착공 오는 2002년부터 한강에 화물선과 여객선이 뜬다. 서울시는 25일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인운하사업이 완료되는 2002년에 컨테이너 등을 실은 화물선과 승객을 태운 여객선이 한강에 운항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시는 이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내년 3월까지 마치고 곧바로 공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시는 프랑스 세느강 등 선진국의 예를 감안하되 가급적 우리 실정에 맞는 선박 운행규모,물류시설,선착장,육상교통 연계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특히 물류터미널 가능지역과 물동량의 종류등은 프랑스 항만청 등 외국기술자의 자문을 받아 결정하기로 했다.물류 터미널 후보지는 난지도·뚝섬·잠실·미사리 등 4곳이 거론되고 있다. 시는 한강 주운을 통해 바다모래 등 건설자재·생활쓰레기 및 수출·입 화물운송을 비롯,인천∼서울간 등 여객선을 취항시켜 수도권의 수상교통망을 확충할 방침이다. 특히 경인 운하를 통과한 화물선 등이 미사리까지 운항할 수 있도록 잠실 수중보에 배가 통과할 수 있는 갑문을 설치하고 한강 수위를 평균 2.5m로 유지하기 위해 행주대교 하류 신곡수중보를 높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강에 뱃길이 열리면 화물수송에 따른 물류비용을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육상 교통난 완화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강은 그동안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10여개의 시민공원과 유람선을 운항하는 시민 여가공간 정도의 소극적인 방식으로 이용해왔다』면서 『경인 운하 개통과 함께 한강 뱃길이 열리면 한강은 명실공히 경제수역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밝혔다.
  • 중국 계림/산수의 절묘함에 감탄이 절로…/한국인 관광 러시

    ◎우뚝우뚝 솟은 조각군상의 연봉… 철따라 새맛/1백리 이강 풍광은 영욕과 우수번뇌 잊게하고…/한국인 올들어 2만5천명 찾아 관광객수 「서열 2위로」로 50년대 중국 외교부장이었으며 중국 굴지의 현대시인으로 꼽히는 진의가 그 산수의 절묘함에 감탄해 「정작 신선이 될 수 없을지언정,차라리 계림사람이 되어라」(불원주신선 원주계림인)고 노래한 계림. 산과 물,그리고 기후가 기막힌 조화를 이뤄 중국이 「신이 빚어낸 최고의 자연 걸작품」이라며 「천하제일명승」으로 자랑하는 계림 관광권에 한국인 관광러시가 대단하다. 올 관광객수에서 일본에 이어 2위로 뛰어올라 계림시 당국은 한국인 유치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한국인이라면 극진한 대접을 아끼지 않는다. 한국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계림지역 관광규모에서 일본·미국·유럽국가 등 유수의 관광대국들에 이어 5위에 그쳤으나 올들어 9월말까지 2만5천여명을 기록,이 지역 서열2위의 「관광대국」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동기에 비해 무려 1백%이상 늘어났다.계림지역의 1년간 해외관광객수는40만∼50만명 규모여서 한국의 실세를 쉽게 가늠할만 하다. 중국 대륙 남단 광동성과 운남성 사의의 광서장족 자치구의 이강 유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계림 산수는 평지에 마치 조각품군상처럼 우뚝우뚝 솟아오른 연봉과 유장하게 흐르는 강줄기,그리고 남방기후로서는 드물게 4계절이 분명해 철따라 바뀌는 자연색조 등이 어우러져 예부터 숱한 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을 잡아놓았으며 중국 산수화의 대표적 풍광이 되어왔다. 이같은 곳에 올들어 한국 관광객이 대규모로 몰려드는 것은 우선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자연적 신비로움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 중국의 개혁·개방이래 그동안 중국관광은 백두산과 북경·서안·상해 등 대도시 위주로 전개되었으나 백두산의 관광은 여름 한철에만 허용되는데다 대도시는 더이상 큰 매력을 끌지못해 계림으로 몰려드는 것으로 관광업계는 풀이한다. 같은 동양권 정서를 지닌 한국인들이 동양적 매력을 최대한 뽐내고 있는 계림을 찾는 연유는 계림시에서 발행한 가이드북의 서문에서도 잘 알 수 있다.「계림의 산과 물은 그 하나마다 모두 시요,노래로 인구에 회자된다.계림을 보지 못한 사람은 늘 계림을 한번 찾아보고 싶어하며 한번 계림을 찾았던 사람은 다시 보고 싶어한다.백리 이강을 유람하며 풍광에 젖어들면 모든 영욕과 우수번뇌를 잊게될 것이다.일단 신선의 경지에 들어와보길 청한다」 취재중에 식사를 함께한 계림시인민정부 구엄명 부시장은 『한국의 제주도와 자매결연을 맺고 한국관광공사와도 적극 교류하고 있다』며 한국관광객이 이 지역 수익증대에 매우 중요함을 추어올리면서 한국인들이 더 많이 찾아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계림시에서 이강을 거슬러 3시간 가량 선상유람을 함께한 계림시 여유국 황영청 부국장은 거나하게 취흥이 오른 상태에서 「산청 수수 동기 석미:산은 푸르고 물은 빼어나며 동굴은 기이하고 돌은 아름답다」라고 글귀를 적어주며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계림관광권은 발길닿는데마다 천하절경이어서 세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다.아무데를 가더라도 감탄이 연발한다. 구태여 꼽자면 백리 이강 선상유람을 빼놓을 수 없다.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물과 바람이 수직으로 깎아놓은 석회암 기암절벽들을 감상하면 된다. 뱃길 곳곳마다 동네아이들이 헤엄치면서 유람객들에게 「선물」을 던져줄 것을 요구해 잔재미을 더해준다. 또 시 외곽에 있는 노적동굴도 필수 코스.제주도 만장동굴보다도 큰 규모에 기기묘묘한 형상이 헤아릴 수도 없다. 여유가 있다면 시내 극장에 가서 소수민족 공연을 관람하는 재미도 괜찮다.장족을 비롯해 남방의 경족(경주)·묘족·동족(동주) 등 수십 소수민족의 전통기예를 즐길 수 있으며 특별히 한국관광객을 위해서인지 북방 조선족의 전통가무도 곁들여진다. 지금은 북경이나 상해·홍콩 등을 거쳐 들어가야 하기때문에 다소 불편이 있으나 시 당국은 곧 연간 5백만명 수용규모의 신공항이 완성되면 한국과의 직항로도 개설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에 대한 계림의 손짓이 갈수록 강렬하다.
  • 국회 통일외무위 대북정책 토론(정가 초점)

    ◎권 부총리/“「평화정착」 대북정책 변함없다”/“감상주의 벗고 안기부 기능 강화하라”­여/“국민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냉철하라”­야 24일 통일원을 상대로 한 국회 통일외무위 전체회의에서 관심은 무장공비침투사건 이후 정부의 대북 정책기조에 쏠렸다. 여야의원들의 상황인식과 주문은 다양했다.대북정책을 안보태세 강화 위주로 바꾸자는 의견과 종전의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공안통」이라 할 수 있는 신한국당 유흥수의원과 자민련 이건개의원은 강경한 대북정책을 요구했다.이의원은 『지난해 우리가 쌀 15만t을 실어 보낸 뱃길로 북한은 무장공비를 내려 보냈다』며 『이번 기회에 정부는 북한에 대한 감상적 자세를 버리라』고 요구했다.유의원도 『정부의 「민족우선주의」가 지나치게 순진하고 감상적이지 않느냐』고 지적한 뒤 경수로 지원 속도를 늦추고 안기부등 대공기관의 기능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국민회의 의원들의 시각은 달랐다.『대북정책이 갈팡질팡해 왔다』고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막상 대북기조의 변화는원치 않았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해 지는 것을 우려했다. 정희경의원은 『장관이 바뀔 때마다 북한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달라졌다.하다못해 대통령의 기분이나 말에 따라 극단적으로 좌충우돌했다』고 주장했다.정의원은 『사건이 날 때마다 국가 예산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며 새해 국방비 예산의 증액을 반대했다.김상우·양성철 의원도 『국민감정과 별개로 정부는 냉철히 대응해야 한다』며 대북정책기조의 변화를 반대했다. 6공때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했던 자민련 박철언 의원은 색다른 의견을 냈다.『자유민주체제 수호는 엄격히 하되 통일정책은 대승적 차원에서,대북정책은 공작적 차원에서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자민련 이동복 의원은 관련법규를 들어 『지난해 정부가 북한에 쌀을 지원하면서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한 것은 명백한 탈법행위』라고 지적한 뒤 감사원의 감사를 요구했다. 권오기 통일부총리는 『대북정책은 상대가 있는만큼 우리가 선택하는 부분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적응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전제,『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권부총리는 『지금까지 대북정책도 북한이 우리 생각대로 움직이리라는 전제아래 추진하지는 않았다』며 향후 대북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권부총리는 이어 『정부는 통일보다 한반도 평화정착이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에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 병사들의 산화를 애도하며(사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공비소탕을 하던 소중한 우리 젊은이들이 적탄에 쓰러지고 있다.이 분하고 원통한 죽음의 대가를 그들은 무엇으로 치를 것인가.얼마나 더 죄를 지어야 그들의 악행은 끝날 것인가. 굶고 헐벗는다기에 우애를 발휘하여 옛날 동족살해의 전쟁범죄도 접어두고 쌀이며 담요,어린아이 먹을 거리를 정성스레 실어보낸 바로 그 뱃길로 야반에 쳐들어와 이렇듯 꽃다운 목숨을 앗아가는가.그 죄업을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 걸핏하면 굶주린 인민을 「자살훈련」시켜 소모품삼아 내던지는 「주체사상왕조」의 세습독재와 우리는 다르다.법의 수호를 받으며 인권과 자유를 누리는 국민이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지원한 떳떳한 군인들이다.그 귀한 목숨이 시대착오적 가공의 모험주의와 그 수하가 펼치는 최면술에 빠져버린 공비집단에 의해 이렇게 스러져가는 일이 분통스러워 통곡한다. 아직도 다 소탕하지 못한 잔당이 수풀 우거진 깊은 산속에서 횡행하고 있으니 우리의 또 다른 희생을 부르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군인간 아들의 모든 부모마음을생각하며 잔당이 빨리 소탕되도록 마음졸이며 빈다. 22일 저녁에 우리는 KBS­TV가 비쳐주는 북의 잠수함이 좌초한 물속을 보았다.공비들이 필사의 탈출을 벌인 흔적이 너무도 생생했다.은혜를 악으로 갚는 무리가 기왕에도 숱하게 드나들었다는 물길에서 이번에 이런 좌초를 하게 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이렇게라도 그들의 악행을 잠시 멈추게 하기 위하여 어떤 보이지 않는 섭리가 이런 벌을 내렸을 것이다. 또 이런 방법으로라도 안보불감증에 걸려 당면한 안보상황에서 환상을 보는 정신 못차리는 우리에게 경고하기 위해 이런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주저 없이 몸을 던져 조국을 지킨 젊은이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준 교훈에 옷깃을 여미며 분단된 조국에 태어나 짧게 살다가 통한의 죽음을 한 병사들의 영전에 엎드려 명복을 빈다.
  • 태국 아유타야(세계 문화유산 순례:8)

    ◎불탄 왕시·목잘린 불상… 「장엄한 폐허」/무자비한 버마군 약탈·파괴 흔적 그대로/14세기 동서무역 중심 아유타야왕국 수도/“참행에 신체변화” 불상은 하나같이 여체닮아 수코타이가 태국문화의 뿌리를 상징한다면 아유타야는 굵은 줄기라 할 만하다.수코타이왕국에서 싹튼 태국문화는 아유타야왕국(1350∼1767)때 번성했다.그 나라 수도가 방콕 북쪽 72㎞쯤에 있는 아유타야였다.강 세줄기로 둘러싸여 섬과 다름없는 이 소도시에는 지금도 옛날 영화)를 보여주는 유적이 곳곳에 널려 있다. 수코타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유타야의 중심부에는 벽으로 둘러싸인 왕궁단지가 자리잡았다.그곳에 들어서면 바로 왕사 「프라 시 산펫」이 있다.산펫은 그야말로 「장엄한 폐허」였다.불에 타 시커멓게 변한 체디(불탑)들,바닥에 뒹구는 붉은 벽돌들.그러나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못 없는 불상들이었다.경내를 다 둘러보아도 얼굴 있는 부처님은 두엇에 불과했다.미소짓지 않는 불상,팔다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불상을 보노라니 가슴이 저렸다.이처럼 철저한 파괴는 무엇에서 비롯됐을까. 크메르제국이 샴족에게 쫓겨 앙코르를 버리고 달아났듯이 아유타야왕국은 이웃 버마군에게 멸망당했다.아유타야를 점령한 버마군은 산펫을 무자비하게 깨부수고 보물을 약탈했다.당시 이곳에는 1백70㎏의 금을 입힌 불상이 있었는데 이 금을 녹이고자 불을 질러 사원을 불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그렇더라도 같은 불교도인 버마군이 불상의 목을 자른 까닭은 무엇일까. 그나마 우뚝 솟은 거대한 체디 3기가 마음을 위로한다.왕들의 유해를 모셨다는 이 체디에는 사방에 계단이 있다.올라가보았더니 널길(선도)입구는 붉은 벽돌로 막아놓았다.사방을 내려다보고 유네스코가 「아유타야의 폐허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고 한 이유를 터득할 만했다.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역시 사람이 저지른 파기와 약탈이었다. 왕궁단지를 나와 정문앞 「비하라 프라 몽콘보핏」에 들렀다.1956년 복원했다는 몽콘보핏은 사원이라기보다는 예불당에 속한다.그 안팎은 신도로 붐볐다.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사람들은 향과 초를 불상앞에피워놓고 연신 절을 하거나 또는 산통을 흔들며 갖가지 형태로 소원을 빈다.본당에는 태국에서 가장 크다는 청동좌불상이 자리잡았다.왕국 멸망때 버마군에게 약탈당했다가 절을 복원하면서 돌려받은 이 청동상은 마치 은진미륵이 앉아 있는 듯 거대하다. 화교의 절 「왓 프라차오 파난초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온통 한자로 뒤덮인(태국인은 한자를 상용하지 않는다) 이 절에는 크고 작은 불상이 워낙 많아 사람이 꽉 차도 불상의 수효에는 미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주불은 앉은 키 19m인 좌상으로 온몸에 금을 입혀 휘황찬란하다.아유타야시민이 가장 존경한다는 이 불상이 1325년쯤 조성됐으니 파난초엥은 아유타야왕국보다 역사가 오랜 셈이다. 특이한 것은 불상이 하나같이 여체를 닮아 가슴은 봉긋하고 허리는 가늘다는 점이다.그렇다고 불상의 성을 따질 필요는 물론 없다.『수행을 많이 하면 그같은 신체적 변화가 온다』는 이 절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면 누구나 의문이 풀릴 것이다. 아유타야에는 이밖에도 ▲프레스코벽화와 정교한 조각기둥들이 볼만한 「왓 수완다람」 ▲2.5㎏의 황금염주를 꼭대기에 얹은 80m 높이의 「체디 푸카오통」 ▲작은 앙코르 와트인 「왓 차이왓타나람」등 명소가 많았다.아유타야유적은 폐허가 된 곳이건 온전히 남거나 복원된 곳이건 모두 장엄했다.그 이유는 간단하다.당시 아유타야는 세계무역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동서무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이곳에는 영국·네덜란드·포르투갈등 서양배를 비롯해 중국·인도·아랍·일본배가 들락거렸다.무역선은 샴만(타이만)으로 들어와 차오프라야강을 거슬러 아유타야에 진입했다.역사가들은 그때 아유타야가 런던·파리보다 더 큰 도시였으리라고 추정한다. 아유타야시 남쪽을 흐르는 차오프라야강가로 나갔다.아유타야의 젖줄인 차오프라야강은 오늘도 흐른다.1시간남짓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많은 배가 물길을 따라 오갔다.쇳덩어리를 가득 실은 바지선이 지나간 뒤를 「통통통」소리를 내며 유람선이 따라간다.언제부터인가 고개를 내밀고 이방인을 쳐다보던 새끼악어는 눈길이 마주치자 냉큼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강은 오늘도 흐른다. ◎여행가이드/방콕서 버스·열차 수시로/체증심해 자전거관광 편리 아유타야는 방콕에서 육로로 1시간 거리이므로 방콕에 있으면서 하루쯤 시간을 내 관광할 만하다.에어컨버스와 열차편이 시간마다 있다.다만 교통체증이 심해 여유 있게 계획을 짜야 한다.아유타야시내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유적지간 거리가 걷기에는 멀고,그렇다고 꼭 차를 타야 할 만큼 멀지도 않기 때문.자전거대여점이 많이 있다.수코타이관광도 마찬가지. 특색 있는 관광으로는 선상유람이 있다.방콕에서 배를 타고 차오프라야강줄기를 따라 아유타야로 가 그곳에서도 뱃길로 유적지를 돈다.식사·음료를 제공한다.흠이라면 값이 비싸고(3만5천원쯤),유적지를 몇군데밖에 못본다는 점.유명호텔에서 매일 상오8시 출발한다.
  • 물의 도시 길림(송화강 5천리:5)

    ◎풍만댐에 뱃길 끊기고 거대한 호수가…/일제 11만명 동원 동북최대 발전소 건립/호반 35만㏊ 자연보호구역 “동·식물 낙원”/“흥학구국”의 본당 육문중에 김일성 황금조상 “눈살” 길림성 길림시는 물의 도시다.장장 5백95㎞를 달려온 송화강이 길림에 이르면 머뭇거렸다.그래서 넓어진 강폭은 도시의 그림자를 담아냈다.고구려의 북강중진이었던 길림을 아직도 강성이라 부르는 까닭도 여기 있다.봄날 강가의 버들이 피어 강심에 투영되면,백거이의 시 한구절이 떠오를듯 아름다운 강변도시였다. 그 길림시에 가면 송화강은 사람들을 늘 강가로 유인했다.그리고 강가 나루터에는 유람선이 나그네들을 기다렸다.유람선이 강 양안의 고층건물을 따돌리고 하류쪽으로 한 시간을 남짓 물살을 갈랐다.민가가 드문드문한 장둔을 지나 아집(아십)에 닿을 무렵 깎아지른 벼랑이 한쪽 시야를 가려버렸다.마애각(마애각)과 아집정이 올라 앉은 벼랑인데,정각안에는 「유청솔병도차」라는 글을 새긴 화강암비석이 서 있다. 이 비문에 나오는 유청은 명나라 연호로 영락15년(1420년)에 송화강의 수상교통을 열기위해 파견한 관리다.명나라 조정은 표기장군요동도사도지휘사 유청을 송화강유역 아집에 보냈는데,그의 임무는 배를 건조하는 일이었다.그는 이듬해부터 선덕7년(1432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송화강유역에 머물면서 배를 만들었다.그 기록이 아집바위벼랑 위에 있는 비석인 것이다. 그로부터 길림은 동북지방의 중요 조선기지가 되었다.당시에 만든 배는 전함과 곡물을 실어나르는 운양선,병정을 싣는 객운선 따위였다.아집에서 송화강 하류를 따라 흑룡강 노아간도에 이르는 물길에는 수십척의 배가 떠서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덩치가 큰 배들은 송화강하류를 떠다녔고,그보다 작은 매생이나 나룻배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그런데 지금은 길림시 삼도나루터에서 24㎞를 올라가면 뱃길이 끊기고 말았다. 배가 상류를 더 거슬러 올가가지 못하는 까닭은 거대한 댐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그 댐은 50년대까지만 해도 동아시아에서 제일을 자랑했던 풍만수력발전소다.1936∼1942년10월까지 7년에 걸쳐 쌓은 이 댐은 길이 1천18m,높이 91m로 동북지방 주전력공급원이 되고 있다.일제가 11만명의 노동자를 동원했는데,사고로 죽은 사람만도 5천1백11명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이는 공식발표한 통계이고,일제는 말을 안 듣거나 병든 노동자들을 산채로 수백명씩 불태워 죽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명관리 유청 수상교통 열어 일제는 비인도적 살생이 천인공로할 비인도적 처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1941년5월 풍만댐에 공인위령탑을 세웠다.일제가 패망한 뒤에는 중국기술자들이 댐을 관리하면서 기술인재들을 키워냈다.풍만에서 배출한 6백명의 기술자들은 중국 전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데 크게 공헌했다.오늘날 중국의 국무총리 이붕도 일찍 풍만수력발전소장을 역임한 바 있다. 풍만수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송화강상류의 지도가 바뀌었다.맑은 구슬이라 하여 동북의 명주로 불리는 송화호가 생겨난 것이다.길이 2백㎞,가장 넓은 구간의 폭은 10㎞,넓이 5백㎦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다.최대 저수량 1백8억㎥나 되는 송화호는 수심도 깊어 75m까지 내려가는 지점이 있다.그러니물 절반에 고기 절반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했다. 송화호 호반 35만4천98㏊는 자연보호구로 지정되었다.호수 양쪽의 산은 물론 송화강상류와 휘발하가 만나는 합수목까지가 자연보호구로 들어가 있다.보호구역 전체의 71%를 차지한 삼림지대는 희귀식물의 군락지이거니와 동물들이 낙원을 이루었다.식물은 99과 5백93종,동물은 1백여종으로 조사되었다.산삼과 같은 진귀한 약초가 자생하는가 하면,곰 사슴 사향노루가 서식하고 있다. 그 경치로 말하면 송화호반이야말로 산자수명하여 동북 제1의 절경을 자랑했다.그래서 자연보호구내 7백㎦라는 광활한 지역이 국가중점풍경구로 지정받았다.이 풍경구 안에는 송화호호텔을 비롯한 각종 위락시설이 들어서 전국 곳곳의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송화호 주변은 점차 공해로 찌들어가는 도시에 비해 아직은 쾌적하기 짝이 없는 선경인지도 모른다. 길림시에서 풍만까지는 뱃길로 24㎞다.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람선은 숨이 차서 2시간40분이 걸렸다.그러나 물길을 따라 내려올 때는 순풍에 돛을 단 듯이 1시간만에삼도나루에 닿았다.길림시지구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전보청사며 천주교회당,은하빌딩 등 많은 고층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강바람에 후련해졌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그래도 우뚝한 북산이 보여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길림시 북산 기슭에는 중국 바깥에까지 널리 알려진 육문중학교가 있다.창문들이 열려 마치 해죽 웃는 것처럼 보이는 4층 교사건물이 시야로 들어왔다.이 학교는 1917년 천진 남개대학출신의 지식인들이 흥학구국을 위해 꾸린 명문 사립학교로 출범했다.제1대 교장 한내경은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학비를 면제해주었다.더구나 항일구국에 뜻을 둔 조선의 열혈청년들을 받아들여 보호하고 키웠다. 육문중학교에는 기라성 같은 교사들이 초빙되었다.중국의 대문호 노신의 후배인 상월 선생이 그런 분이다.1902년 하남성 나산현 태생인 상월선생은 노신의 일기중에 이름이 29번이나 나올 정도다.당대의 중국 엘리트들이 중원을 벗어나 동북 변방까지 와서 교편을 잡은 것을 보면 육문중학교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호텔 등 위락시설 빼곡히 육문중학교에 들렀을 때 북한 김일성주석의 조상 두 구를 만났다.하나는 지금의 4층본관 뒤쪽 구관 단층건물 앞에 있고 또 하나는 구관 건물안에 있었다.그런데 구관 건물안에 있는 그의 청년시절 조상은 진짜 황금을 칠했다는 것이다.금빛의 화학적 도금이 아니고 순금을 녹여 황금물을 발랐다는 사실이 왠지 꺼림칙했다.그가 1927∼30년까지 이 학교에 적을 두었다는 연고로 조상을 세울 수는 있겠으나,화려한 치장은 육문중학 건학정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황금조상은 중국에 사는 조선족 이황이라는 사람이 돈을 대서 만들었다고 한다.그 높이는 몸체가 80㎝,좌대가 15㎝로 되어 있다.몸체 높이는 김주석의 나이 80살을,좌대 높이는 생일인(4월)15일을 뜻했다는 것이 학교측 안내자의 설명이다.다시 말하면 1992년 4월15일 그의 80돌 생일을 기념하여 만든 조상인 것이다.그러나 역사에서 불멸은 없다.그도 가버렸고,또 퇴색하고 있지 않은가….육문중학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다시 바라본 송화강 물길은 여전히 유유했다.
  • 꽃잎같은 여자 물위에 지고(공연화제)

    ◎한국여인의 한 「햄릿」 여주인공 삶과 병렬/통속적 이야기 바탕 인간존재의 의미 해부 갖가지 억압적 상황 속에서 한많은 인생을 살아온 한국여인의 삶을 셰익스피어의 「햄릿」,하이네 뮐러의 「햄릿머신」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오필리어의 삶과 병렬·충돌시킨 작품이 화제의 연극으로 떠오르고 있다. 극단 서전의 「꽃잎같은 여자 물위에 지고」(채승훈 작·연출)가 그것으로 서울 동숭동 대학로 성좌소극장(745­3966)에서 공연중이다. 이야기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시골 강변마을 여인이 아이를 유산시킨 뒤 남자를 찾아 서울로 오면서 시작된다.그러나 남자는 찾지 못한채 여공·술집작부·창녀 등의 생활로 전전한다.다른 남자를 만나 다시 사랑하게 되지만 그에게서도 버림받고 만다.결국 고향을 찾아가는 뱃길에서 여인은 죽음을 택하게 된다. 3류소설에나 나올법한 통속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비극과 희극의 극단적 교차,동양적 주술의 세계와 서양적인 연극술의 대비를 통해 인간존재의 문제를 파고들고 있다. 뛰어난 작품분석을 통해 열정과 광기어린 무대를 꾸민다는 평가의 연출자 채승훈씨 역량이 빛을 발하며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 수상자인 김호정과 에너지 넘치는 연기력을 인정받는 이연규가 호흡을 맞춘다. 9월15일까지.하오 4시30분·7시30분.〈김재순 기자〉
  • 황해권 문화교류 실증 확인

    ◎한·중·일 학자 새달 20일 동국대서 학술회의/고대항로 탐사 뗏목 오늘 중국 영파서 출발/벼농사­고인돌 전파과정·조선문화 등 추적 중국과 한반도를 잇는 황해 뱃길에 대한 1천20㎞ 대장도의 뗏목탐사와 황해권에 대한 현지 학술조사를 바탕으로 고대 한·중 문화교류를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이색적인 국제학술회의가 다음달 한국에서 열린다. 동국대와 한국탐험협회,중국 항주대가 오는 8월20일 동국대 문화관 예술극장에서 한·중·일 3개국 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하는 「황해문화의 어제와 오늘」이란 주제의 국제학술회의. 이 회의에 앞서 한국의 황해문화 대탐사팀(대장 윤명철)이 지난 6월5일 중국 절강성 영파에서 뗏목 진수식을 가진데 이어 22일 중국 영파를 출발,8월5일까지 상해앞 해상인 승사열도∼흑산도∼고군산도∼인천항에 이르는 1천20㎞ 고대항로를 추적하는 뗏목 대장도에 들어간다.윤명철 대장과 한국탐험협회의 안동주 사무국장·홍선표 탐험부장,김성식씨(해동화재근무)등 4명으로 구성된 탐사팀은 이날 길이7m·무게4백50㎏ 규모의 대나무 뗏목에 승선,고대 한반도와 일본으로 향하던 배들의 출항지인 영파를 출발해 인천까지의 항해 흔적을 1시간 단위로 추적,한·중간 고대항로를 실증 확인하게 된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황해 해역의 뗏목탐사와 국내학자들의 중국 현지답사를 토대로 ▲양자강 유역과 한국문화의 관련성 ▲황해 해양력이 양국 문화에 끼친 영향 ▲21세기에 대비한 황해권의 새로운 경제블록 가능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다.참여 학자는 한양대 김병모 교수(고고학과),중국 항주대의 김건인(한국연구소 부소장)·모소석 교수(절강성 고고학회 회장),동국대 조영록 교수(사학과),안승모 국립전주박물관 연구실장,일본 나가사키대학 시바타 게이시 명예교수,윤명철 한국탐험협회 사무총장(동국대 사학과 강사)등. 여기에서는 특히 중국내 가장 활발한 한국학 연구활동을 벌이는 항주대 한국연구소의 김건인 부소장의 사회로 모소석 교수가 「벼농사 및 고인돌문화의 전파과정과 황해」,시바타 게이시 교수가 「황해에서의 조선문화」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황해권 한·중교류에 대한 중국·일본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를 위해 동국대 조영록·정태섭 교수(역사교육과)와 주성지씨(동국대 사학과 박사과정)로 구성된 국내 학술조사팀은 중국 절강성지역 벼농사문화를 비롯해 이 지역의 고인돌 유적지,의천 대각국사가 창건한 항주 고려사,서긍의 고려도경에 기술된 항로에 대해 집중 조사할 예정이다. 동국대 조영록 교수는 『과거 문화가 국제성을 띠고 해양적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성에서 이번 황해관련 학술행사가 큰 의미를 갖고있다』면서 『황해의 전략·교역·문화적 가치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해 향후 전개될 문화교류의 방향과 정치·외교적 모델 설정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김성호 기자〉
  • 끊어진 뱃길 잇기/임영숙 논설의원(굄돌)

    사천성을 포함해서 중국의 4개성을 약 40일에 걸쳐 여행해 본 짧은 경험에 의하면 우리 입맛에 가장 맞는 중국음식은 절강성의 영파 요리가 아닐까 싶다.「작은 상해」로 불리는 영파의 항구와 연결된 운하옆에 자리잡은 음식점에선 해산물 요리만 내놓았다.그것은 여행지의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한 일행이 비상식품으로 준비해 온 김치의 인기를 떨어뜨릴만큼 맛 있었다.그뿐인가.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산하는 우리와 전혀 달랐지만 이상스럽게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초행길임에도 영파는 우리에게 결코 낯선곳이 아니었던 것이다.중국의 해안지방엔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데 특히 영파는 황해에서 표류하면 해류를 따라 도착하게 되는 곳으로 우리 고대 소설에까지 그 지명이 등장하고 있다.고려시대엔 영파와 항주를 통한 우리 스님들의 구법활동이 활발했다는 기록도 있다.그 결과 「고려사」라는 이름의 절이 영파에 세워졌다.고려 문종의 넷째 왕자로 한국 천태종의 창시자가 된 대각국사 의천은 송나라에 유학,당시 명주로 불리던 이곳 영파의 아육왕사 등을 찾고 귀국한 후 화엄경과 금2천냥을 보낸다.그 돈으로 건립해 화엄경을 봉안했던 장경각이 「고려사」다.지금은 폐허가 됐지만 지난 1940년대 초까지도 고려사엔 북송의 시인 소동파와 대각국사의 조상이 봉안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 영파를 지난 5일 출발했던 「700년전의 약속」호가 11일 목포항에 도착했다가 다시 일본 후쿠오카와 요코하마로 계속 항해하고 있다.MBC가 제작한 이 배는 700년전 원나라의 무역선으로 영파를 떠나 일본으로 가다가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던 해저유물선을 복원한 것이다.오늘 7월20일엔 또 중국과 한반도의 고대인들이 수천년전에도 교류했다는 가설을 입증하기위한 뗏목 「동아지중해」호가 영파에서 인천을 향해 출항한다. 두 배의 항해는 「바다의 날」이 새로 지정된 올해,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끊어진 옛 뱃길을 다시 이어 줄 뿐만 아니라 한국이 동북아를 주도하는 국가로 떠오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두 배의 안전항해를 기원한다.
  • 중국 해적선(외언내언)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해적에게 시달려 왔다.삼국시대 신라를 괴롭혔던 왜구는 일본을 거점으로 한 해적집단들.울진에 천리장성을 쌓아 왜구의 침입을 막기도 했다. 왜구는 그 뒤 고려말·조선초기에 최고로 기승을 부려 그 피해가 막심했다.왜구 외에도 서남해에서는 중국 해적들이 발호,뱃길을 위협했다.당나라를 왕래하던 선박이 풍랑과 해적의 약탈을 피해 무사히 항해할 수 있기란 하늘의 벌따기였다. 9세기 통일신라때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상을 장악함으로써 서해상의 해적은 궤멸된다.중국에 이르는 뱃길이 비로소 안전해지고 청해진은 해상왕국을 이룬다.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키로 한 것은 당나라에 있을때 신라에서 잡혀와 노예로 팔리고 있는 동포들의 참상을 보고나서다. 중국에서는 진·한대에 산동성연안에 해적이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당·송·원·명대에는 강절·복건·광동등 남중국해가 해적의 근거지가 됐다. 1975년 월남패망이후 월남인들의 보트피플이 남중국해를 뒤덮었을 때 중국인 해적선들이목숨을 건 탈출자들을 덮쳐 악명을 떨쳤다.이들은 현대판 해적들로 당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요즘 서해 공해상에서 우리 어선들이 중국의 해적선에 공격을 받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그들은 어선이라고 하지만 흉기를 휘두르고 어구나 장비를 탈취해 가고 금품을 빼앗아가는 횡포는 해적행위에 다를 바가 없다.여러 척이 떼지어 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것도 해적들의 상투적 수법이다. 국제법상 해적은 인류의 공적으로 간주되고 있어 어느나라 군함이든 해적선을 나포하여 자국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우리어선 피해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공해상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외교적 문제로 확대될까봐 적극 대응을 안하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명백한 해적행위를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일.장보고의 등장이 기대된다.〈반영환 논설고문〉
  • 사랑과 엄격의 조화를 생각한다(박갑천 칼럼)

    살아계시다면 80줄인 처고모님 생각이 난다.젊어서 남편 여의고 홀로 남매를 키워냈다.그 가정교육은 다슴어미(계모)란 말 들을 만큼 서릿발쳤다.이를테면 초등학생 아들에게 시키는 심부름.광주에서 진도본가로 보내어 쌀가마니를 가져오게 했다.아슬아슬한 기찻길 뱃길이건만 그 똘똘이는 영락없이 해냈으니 대견하다.그도 이제 50대후반.중소기업을 튼실하게 끌어간다. 『자비와 평등과 박애와 환희와 행복과…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만 한없이 많이 가지고 사는이가 어린이』(소파 방정환의「어린이예찬」)다.더구나『고슴도치도 제새끼는 함함하다 한다』지 않았던가.그러니 사람의 남의 어린이 아닌 제자식 사랑이야 더 말할게 없다. 그렇긴 해도 그자식을 어떻게 키워내느냐 하는 것은 동서고금 모든 어버이의 과제.사랑만으로 그느를 때 자칫 만무방이나 맹문이로 될수도 있다.응석받이로 자란자식 제아비 수염 뽑는다고 했다.귀엽다고 오냐오냐로 속뽑히면 못된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심지약한 것도 오냐오냐로 키운 옰.어려움을 못견디고 온실에서자란꽃 눈서리에 시들듯 꺾여버린다.최근 잇따른 과학기술원(KAIST)학생들 자살사건을 보면서도 해보게된 생각이다. 『자식을 사랑하거든 매를 많이 때리고 자식을 미워하거든 먹을 것을 많이 주라』(「명심보감」훈자편)는 논리가 그래서 나온다.속설이기는 하지만 호랑이도 새끼를 벼랑에서 굴린다음 살아 남은놈만 키운다지 않던가.「채근담」도 이같은 인생의 기미를 이렇게 풀이한다.『역경에 있으면 그 몸둘레가 모두 약이라 모르는 사이 절조와 행실을 닦게되나 순경에 있으면 눈앞이 모두 칼과 창이라 기름을 녹이고 뼈를 깎아도 알지 못하느니라』 오늘의 우리사회 어버이들은 그 자식에게 「칼과 창같은 사랑」만 쏟아붓고 있는것 아닌지.자기감정 싣지 않아야할 「사랑의 매질」의 참뜻을 모른채 버릇없는 푸석이로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랑의 매질」도 그렇다.그 자격은 자신에게 엄격한 어버이에게만 생겨나는것.맹자어머니를 보자.어느날 이웃에서 잔치에 쓰려고 돼지 잡는 것을 본 맹자는 무엇하려고 저러느냐고 어머니에게 묻는다.어머니는무심코 『너 먹이려고 잡는단다』고 대답한다.그러고선 아차 거짓을 가르친다 싶어 푸주에서 돼지고기를 사다 먹이고 있다.이래서 맹모단기교훈도 먹혀든다. 5일은 어린이날.사랑과 엄격이 조화로운 가정교육을 생각해 보게 한다.〈칼럼니스트〉
  • 경남 사천 동자상 돌벅수(한국인의 얼굴:64)

    ◎문관예복 차림의 도깨비 얼굴/작고 매서운 눈·처진 입 모습에 심술이… 돌장승에 불교적 요소를 가미한 현상은 여러 군데서 나타나고 있다.그저 돌장승을 만들어놓고 미륵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거나,실제 불상양식을 빌려 이마에 백호도 표현했다.그리고 불교조각에서 보이는 문수동자를 모방한 돌장승까지 만들어 세웠다. 경남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에서 벅수라 하는 돌장승중에는 동자상이 끼어 있다.이 마을에는 전해오는 돌장승 8기 가운데 4기가 동자상이었으나 2기는 근래 도둑을 맞았다.동자상은 소로를 사이에 두고 약간 높은 언덕바지의 수장승 돌벅수 2기를 마주하고 섰다.돌벅수는 나이가 들고 동자상은 나이가 어려 장유유서의 층서관계를 따져서인지 높고 얕은 장소를 골라 세웠다. 동자상이 문수보살을 닮은 부분은 머리칼을 다듬은 헤어스타일이다.머리 위쪽을 쌍갈래로 따올려 마치 뿔처럼 보였다.그 유명한 강원도 평창 오대산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221호) 두발과 흡사했다.그러나 옷매무새는 문인석에서 보이는 유교풍이다.더구나 홀을 끌어안아 쥔 포즈를 취해 유교적 체취가 짙게 우러났다.독특한 현상의 돌장승이다. 이들 동자상 돌벅수의 눈은 아주 작다.일반적으로 눈이 큰 돌장승양식의 통례를 벗어나 눈이 작을 뿐더러 매섭다.매서운 눈은 문수동자의 두발을 한 이 동자상이 지닌 외형상의 모순이기도 하다.작은 눈을 소복하게 양각해버려 감았는지 떴는지를 분간하기 어렵다.입은 꼭 다물었다.입가가 양쪽으로 처져내려와 심술궂어 보이는 구석도 있다.다른 지역의 돌장승의 입가가 위로 휘어올라간 것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눈썹을 포함한 눈부위와 앞으로 숙어진 큰 귀가 유난히 위로 올라붙었다.그리고 기다란 코에 매달린 듯한 가늘고 작은 입,빠른 하관이 가세하여 약간은 괴기한 얼굴이다.도깨비얼굴이 그럴까….그것도 날렵한 도깨비일 것이다.그 얼굴에 문수동자 머리를 올려주고 점잖기만 한 문관예복을 갖추어놓았으니 우스울 수밖에 없다.만든 사람 심성에 담긴 해학이 보인다. 도깨비를 잘 친해놓으면 재물을 안겨준다는 민담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가산리에는 얼핏 도깨비를 연상할 수 있는 동자상이 있어서인지 옛날에는 인근 7개군의 곡물이 몰려들었다.조선시대말까지 가산리 조창에서는 거두어들인 조곡을 갈무리했다가 뱃길로 제물포에 보냈다.당시는 마을도 번창하여 3백호에 이르는 대취락을 이루었다.조창에 조운의 뱃길이 있는 가산리에는 자연스럽게 사람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민속도 풍요로웠다.정월 초하루 8기나 되는 돌장승 벅수 앞에서 지내는 용천제로 시작한 제의와 놀이는 정월 보름날까지 이어졌다.정월 보름날 마을에서 놀던 「가산오광대」탈놀이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73호로 지정되어 오늘날에도 맥을 잇고 있다.
  • 독도를 지켜온 사람들/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서울논단)

    오늘은 일흔일곱해째를 맞는 3·1절이다.만만치 않은 세월이 흘렀건만 역사에 각인된 그날이 조금도 마모한 흔적이 없다.더구나 일본이 우리 동해 먼 바다의 섬 독도를 이러쿵저러쿵하는 통에 더욱 새로워질 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는 일본의 망언을 못된 잠꼬대 정도로 여겼다.그런데 요즘 일본 고위관료들의 잇따른 망언은 사정이 달랐다.어떤 계략을 망언의 복선으로 깔았다는 사실이 이내 드러나고 말았다.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면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선포한다는 것이 그 계략이었던 것이다.주권국가의 영토를 넘보는 일본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이제 극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따위의 감상적이고 관념적인 감정차원을 넘어섰다.독도문제는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어 스스로 지키지 않을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한 느낌이다.그래서 세개의 작은 바위섬이 뚜렷하게 떠올랐고,옹색한 섬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잦아졌다.그 절해고도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국토 사랑에 있다.머나먼 섬일지라도 마음속에 좀더 가까이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다. 국민 누구인들 독도를 생각하지 않을까마는 어민들의 심정을 더 헤아려본다.남쪽 제주도 북제주군 어민들이 일본 망언을 규탄하러 독도로 떠날 것이라는 뉴스가 며칠전 신문에 났다.선조들이 띠배를 저어 파도와 싸우면서 바다를 지켰을 때 입었던 제주도 전통의 갈옷차림으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독도를 지키지 않으면 생존의 터전 동해어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뱃길을 재촉했을 어민들의 절박한 얼굴을 보는듯 눈에 선하다. 조선시대 숙종때 부산사람 어부 안용복은 일찍 독도에 눈을 돌렸다.태어나고 죽은 연대가 불분명한 하찮은 신분이었지만 그는 선각자였다.16 93∼96년까지 울릉도·독도 근해에 출어하면서 몰래 고기를 잡는 일본어민을 힐책하고 배를 내쫓았다.심지어는 일본어선을 추격,일본땅에 들어가 담판까지 지은 인물이다.그뿐이 아니라 근래에도 독도를 지킨 민간인들이 있다.삼대에 걸쳐 울릉도에 살면서 19 53년 독도의용대를 조직한 홍순칠이라는 이가 바로 그다. 오늘날 주권국가들이 선포를 서두르는 EEZ도 수산자원과 해저광물자원을 보존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특히 수산자원은 해저광물자원에 비해 곧바로 손을 댈 수 있는 가시자원이어서 우선은 수산자원을 중시하는 경향이다.그래서 수산업계의 어민들의 생존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이 EEZ라 할 수 있다.일본이 만약 독도를 기선으로 EEZ를 설정한다면 어민들의 장래는 뻔한 것이다. 그러나 경상북도 울릉군 도동 3번지 독도는 사수의지가 살아있는 한 엄연한 우리땅이다.고대 사료나 영유권을 확인하기 위해 조선시대에 만든 각종 관찬자료는 이를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있다.또 지리나 지질학,국제법과 같은 현대학문을 동원해도 우리가 독도를 영유하기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그리고 독도를 늘 임시 어로기지로 삼았던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를 가지도라 했다.울릉도 방언으로 물개가 「가제」니까,가지도는 물개가 많은 울릉도 말의 우리 섬인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일러 부르는 다케시마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일본의 왜구들은 중·근세를 통해 노략질한 우리땅 모두를 뭉뚱그려 다케시마라고 하지 않았던가.침략의 치부만을 드러내는 의미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아무쪼록 일본은 2일 한·일 정상의 방콕대좌에서 우리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바란다.그것은 과거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자 아시아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 전국 「독도사랑」 열풍/「우리땅」노래 재유행·경비대에 엽서보내기

    ◎국민 94% “정규군에 경비 맡기자” 일본의 망언을 계기로 독도를 주제로 한 노래가 다시 유행하고 독도 경비대에 위문편지 보내기 캠페인이 펼쳐지는 등 독도를 사랑하고 지키자는 열기가 확산되고 있다.기상청도 때맞춰 독도에 무인 기상관측망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공동체 의식개혁 국민운동협의회」(공개협·공동 상임의장 고건)는 15일 상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길에서 독도 사진과 함께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인쇄된 카드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독도경비대에 위문카드 보내기운동을 펼쳤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백리…」로 시작,독도를 소개하고 역사적으로도 우리 땅임을 강조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최근 다시 각광.80년대 초 가수 정광태씨가 불러 히트했던 가요로 최근 「독도 붐」을 타고 다시 애창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는 한 달에 7∼8개에 불과하던 이 노래의 음반 판매량이 하루 10여개로 30∼40배 가량 늘었고 음반 도매점인 서울 서초동 동아레코드에도 소매상들의 주문이 하루 20여건씩쇄도. ○…여론조사기관인 SRC리서치는 서울 시민 4백51명을 대상으로 독도에 관해 설문조사.그 결과 응답자의 94.3%가 독도경비를 경찰이 아닌 정규군에 맡겨야 한다고 했으며,98.1%가 「독도에 가고 싶다」고 밝혔다.일본 망언에 대한 정부의 대처에 대해서는 51.1%가 「잘 하고 있다」고 평가한 반면,37.6%는 「대체로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
  • 경주∼울릉도 화상연결 첫 영상재판 이모저모

    ◎울릉도법정 판사자리엔 대형모니터/“잘 들리고 잘 보입니까…” 장비 점검부터/“도박벌금 1만원” 어민 “정말 편리해졌다” 『지금부터 원격영상재판방식으로 민사조정사건 95머 1577호 보증채무금사건의 심리를 시작하겠습니다.울릉도등기소에 계신 신청인과 피신청인 두분은 경주지원에 있는 재판장의 모습이 잘 보입니까.목소리도 잘 들립니까』 『예.잘 보이고 들립니다』 9일 상오 대구지법 경주지원 3호법정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경주와 울릉도를 화상으로 연결하는 영상재판이 열렸다. 경주지원 김원종판사는 8천7백만원의 보증금지급을 구하는 신청인 박모씨와 피신청인 김모씨를 울릉도등기소에 마련된 임시법정에 앉혀놓고 재판을 시작했다. 1만1천여 울릉도주민이 민사조정사건이나 즉결심판 같은 비교적 간단한 재판을 받으려면 종전까지 사나흘에서 1주일을 허비해야 했다.4시간의 거친 뱃길을 헤쳐 포항까지 간 뒤 다시 관할법원이 있는 경주까지 버스로 가야 했다.날씨가 나쁘면 배편이 결항되기 일쑤였다. 법정에는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자리에 20인치짜리 모니터가 자리잡았다.울릉도등기소에 있는 소송당사자 앞에도 법복을 입은 근엄한 판사 대신 52인치짜리 초대형모니터가 설치됐다.또 다른 방청객용 모니터도 있었다. 모니터 이외에도 중계카메라와 마이크,그리고 서류전송장비 등이 갖춰졌고 참여계장 1명이 울릉도에서 보내는 소송관련 서류를 전송받고 장비를 다뤘다. 첫 화상재판의 선고는 벌금 20만원형이었다.김판사는 노래방에서 소란을 피우다 즉심에 회부된 회사원 김모씨(30)에 대해 『죄질이 나쁘지만 우발적인 행위임을 감안해 벌금 20만원을 선고한다』고 밝혔다.화면에서도 반성하는 김씨의 표정이 역력했다. 도박을 하다 즉심에 회부돼 벌금 1만원형을 받은 어민 최모씨(45)는 재판이 끝난 뒤 『정말 편리해졌다.그동안 경주까지 가서 재판을 받느라 생업에 지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심리적 거부감과 생소함 때문에 화상재판이 어색하리라고 예상됐으나 일반재판과 마찬가지였다.주위가 산만한 일반재판보다 오히려 집중감과 긴장도가 더한 것 같았다. 재판이 끝난 뒤 김판사는 『얼굴을 맞대지 않아서인지 처음엔 서먹서먹하기도 했으나 금방 적응됐다』고 말했다.법원측은 용모와 목소리를 고려해 비디오형인 김판사를 첫 화상재판의 판사로 선택했다고 한다. 대법원은 9억여억원을 들여 영상재판시스템을 설치했으며 오는 27일에는 춘천지법 홍천군법원에서 강원도 인제·양구간에 두번째 화상재판을 갖는 등 도서벽지 주민에게 편리한 사법서비스를 늘려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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