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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말라카 해협

    해군이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하게 된다고 한다.한국형 구축함(KDX-Ⅲ)에 최첨단 이지스 전투 체계를 장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떠 다니는 요새라는 이지스 함을 갖게 되면 한국 해군은 ‘대양 해군’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한다.멀리 동남아의 말라카(Malacca) 해협까지도 작전 반경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해군력을 말하라면 기껏 연평도나 떠 올리는 우리네이고 보면 말라카 해협이 얼른 가슴에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말라카해협은 여느 뱃길이 아니다.태평양에서 남중국해를 거쳐 인도양에 이르는 ‘바다 비단길(Silk Road)’의 길목이다.상품이나 석유를 중동이나 유럽으로 실어 가고,사 오는 유일한 교통로이다.세계 13위 무역국이요,세계 4대 석유 수입국인 우리에겐 말라카 해협은 ‘생명선’일 것이다.그럼에도 속수무책이었다.손이 미치지 못했다.그러나 이지스함이 생기면 달라진다.말라카 해협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말라카 해협은 마(魔)의 뱃길이기도 하다.폭이 좁은 곳은 40㎞밖에 안 된다.골목길 수준이다.유조선같은 대형 선박만 하루에 200척이 오가기에는 턱없이 비좁다.대한해협도 아무리 좁아도 50㎞가 넘는다.뿐만이 아니다.평균 수심이 50m에 불과하고 중앙과 연안 곳곳에는 여울이 도사리고 있다.능숙한 항해사라도 900㎞ 말라카 해협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가는 참사를 면키 어렵다. 말라카 해협에는 암초만 있는 게 아니다.밤낮없이 해적이 들끓고 있다.오가는 상선이 모두 사냥감이 된다.폭이 좁아지면서 다른 배와 충돌을 피하느라고 속도를 줄이면 자동 소총과 위성위치시스템(GSP)까지 갖춘 초고속 해적선이 접근한다.잔인한 수법은 옛날 해적과 똑같다.선원을 수장시키고 물건과 함께 배를 통째로 빼앗아 달아난다.한해 평균 500건의 해적 사건 60% 가까이가 말라카 해협 일대에서 벌어 진다.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은 컴퓨터 게임에서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성능을 발휘한다고 한다.얼마 전 서해교전 때처럼 스틱스 미사일의 전파가 감지돼도 피할 필요가 없다.고속정이나 경비정 수를 헤아리며 해군력을 비교하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서해 교전 같은 불상사는아예 없을 것이다.그리고 말라카 해협의 해적들도 한국 상선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기다려 진다. 정인학 논설위원
  • [씨줄날줄] 꽃게

    꽃게는 암컷은 암갈색,수컷은 짙은 녹갈색으로 삶으면 새빨개진다.꽃게찜,꽃게탕,꽃게장 등 식용으로 사랑받는다. 얕은 바다나 내만(內灣)의 수심 30m쯤 되는 모래바닥에 사는 꽃게는 산란기인 5∼9월 중국 양쯔강 하구에서 한반도 서해로 이동한다.한반도 수역에서는 서산 앞바다와 연평도 사이가 최대 서식지다.7∼8월 산란기를 전후한 4∼6월과 9∼11월이 꽃게잡이의 적기다. 북한에서 꽃게는 외화벌이의 중요한 수단이다.특히 해군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사업이다.북방 한계선(NLL) 인근의 꽃게 황금어장에는 북한의 해군사령부 소속 어선들만 조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해교전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지만 99년 연평해전과 마찬가지로 외화벌이 할당량을 채우느라 꽃게잡이 어선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일으켰을 수도 있다. 연평해전과 서해교전 모두 6월에 발생한 것은 북한과 남한이 산란기인 7월부터는 꽃게잡이를 금지하기 때문이다.산란기를 바로 앞둔 6월 말은 꽃게잡이의 절정기다. 남한의 중형 어선은 이틀만조업을 하지 못해도 7000만∼8000만원의 손해를 본다고 한다. 북한은 우리측이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한다. NLL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남한측은 53년 이후 NLL이 50년 가까이 실효적으로 인정돼 왔으므로 ‘응고됐다.’고 주장해 왔다.그러나 북한의 배들이 그동안 한해에도 수십차례씩 NLL을 침범했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북한은 연평해전 이후 ‘서해 5도 통항 질서’를 발표해 서해 5도 북쪽에 설정된 NLL은 인정할 수 없으며,남한에서 서해 5도에 이르는 뱃길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해역이라고 주장했다.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 어선들은 NLL남쪽에서도 당당하게 꽃게잡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연평해전과 서해교전은 남북한의 영해분쟁이지만 꽃게잡이가 빌미가 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남북한이 긴장완화를 원한다면 꽃게분쟁이 다시는 해역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협상을 벌여 공동 어로 구역을 설정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할 듯 싶다. 황진선 논설위원
  • 백제 ‘일광삼존불’ 日서 복제품 온다

    일본 나가노(長野)현 시민들이 과거 백제의 불교전파에 감사하고 한·일 양국의 친선을 다지기 위해 백제가 일본에 전한 불상의 복제품을 반환하는 운동을 벌여 불교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5일 태고종에 따르면 나가노현 ‘도래문화(渡來文化·한국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에 문물을 전해 줌)를 아는 모임’은 나가노현 선광사에 봉안된 ‘일광삼존불(一光三尊佛)’의 모형 불상을 조성,이를 부여 조왕사에 전달하기 위한 회향법회를 오는 9일 나가노현에 있는 일본 태고종 총본사 금강사에서 갖는다. ‘도래문화를 아는 모임’은 나가노현 선광사 암자인 현증원 주지 후쿠시마(福島)를 주축으로 결성된 시민들의 자생적인 모임.과거 한·일 양국의 교류를 추적하는 등 우호증진을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그 첫 사업으로 ‘일광삼존불’반환운동을 벌이게 됐다. ‘일광삼존불’은 백제 성왕(聖王)이 조성하여 552년 선광사에 전해줘 봉안된 아미타불.일반인에게는 전혀 공개되지 않은 채 10년에 한번씩 일왕만 친견할 정도로 귀하게 대접받는 불상이다.선광사는일본 국민이 매년 700만명쯤 참배하는 일본 최대의 사찰.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전야제 행사 때 범종을 타종한 바로 그 사찰로,백제인들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래문화를 아는 모임’은 이 불상의 신비성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불교를 전래해 준 한국(백제)에 사은하는 뜻에서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벌인 끝에 ‘일광삼존불’과 똑같은 불상을 금동으로 조성하게 됐다. 이들은 특히 불상을 옛 백제 수도인 부여에 봉안하기에 앞서 9일 법요식을 여는것을 시작으로 도쿄 오사카 등지의 백제와 인연이 있는 일본 사찰에서 순회전시한다.그 다음 9월 중순쯤 일본을 출발,백제가 일본에 문물을 전해준 뱃길을 따라 10월초 조계종 사찰인 부여 조왕사에 봉안할 예정이다.9일 법요식에는 한국 태고종 이운산 총무원장과 ‘도래문화를 아는 모임’의 후쿠시마 회장과 회원 1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6월을 맞으며

    누가 봄이 너무 짧다고 했던가? 며칠 비가 내리더니,어느새 광화문 주위의 가로수 잎들이 한껏 푸르름을 더해가고우리 곁을 스치는 바람은 계절이 여름으로 다가서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하루가 다르게 월드컵 열기가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2년 전 남북정상회담으로 우리 국민들은 물론전세계가 환호했던 그 때를 떠올려본다. 분단 반세기만에남북의 두 정상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서로 손을 맞잡는 모습은 지금도 우리들 마음에 큰 감동으로 남아 있다.실로역사적 대사건이던 그 날 이후,남과 북은 엄청난 변화를보여주었다.중단됐던 대화가 재개되고,흩어진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났으며 끊어진 철길과 뱃길,하늘길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가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지난해의 경우 9000명가까이 이르고 있으며,남북간 교역도 4억달러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남북관계가 다소 소강국면을 보이면서 실망과 비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기대했던 만큼 남북관계가 빠르게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남북정상회담 2주년을 맞으면서,우리는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정확히 되새길 필요가 있다.지금 세계 모든 국가들은 체제와 이념의 대결을 넘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만약 남과북이 지난날과 같이 적대와 반목을 거듭하면서 민족의 역량을 소모한다면 우리 민족의 밝은 장래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단 한번 남북의 정상이 만났다고 해서 반세기 동안쌓여온 불신의 벽이 하루 아침에 허물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그렇지만 남북정상회담은 새로운 세기의 시작과 함께남북관계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대결과 반목을 거듭하면서 멀어져 가는 관계가 아니라,화해하고 협력하면서 서로 다가서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시적 변화에 일희일비하는것이 아니라,높이 나는 새와 같이 민족의 장래를 멀리 내다보면서,6·15 남북공동선언을 바탕으로 한 걸음씩 평화와 화해협력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모처럼 마련된 기회를 살려 평화공존의 남북관계를 실현해 나가는 것은 이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책무이며,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이다.이를 위해서는 자신감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국민총생산 규모(27대 1),무역고(170대 1),석유소비량(220대 1),민주화를 이루어낸 정치·사회적 저력을 감안한다면 민족의 장래는 우리가 이끌어나갈 수밖에 없다.물론 때에 따라 우여곡절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남북관계가 평화와 공존공영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역사의 큰 흐름이라는 신념을 갖고 일관성있게 노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기다리든,기다리지 않든 봄은 오고또 여름이 오듯이 남북관계가 빠른 시일 안에 원상회복되고 화해와 협력의 푸르름으로 빛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정세현 통일부장관
  • 백령도 ‘기암괴석’ 神이 빚었을까

    인천 연안부두로부터 뱃길 240㎞.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에도착하는 순간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은 것은 유난히 짠 느낌으로 다가오는 까나리 익는 냄새였다.섬 구석구석 까나리액젓을 담가놓은 붉은 고무통이 없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백령도에서 가장 빼어난 볼거리는 해안의 기암괴석들이다. 특히 섬 북서쪽 끝자락에 자리잡은‘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두무진(頭武津)은 보는 이들의 넋을 빼놓을 정도로 아름답다. 장군들이 회의를 하는 모습을 닯았다고 해 붙여진 장군바위를 비롯해 선대암,촛대바위,형제바위,코끼리바위 등이 늘어서 있다.섬 남쪽 콩돌해안 인근에서는 용틀임바위와 사자바위,연봉바위가 볼 만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바위이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촛대바위.그러나 그 닮은 모양으로 따진다면 백령도의 촛대바위가 단연 으뜸이다. 건너편 벼랑에서 본 용틀임바위는 보는 이의 몸을 빨아들이려는 것처럼 관능적이고 고혹적인 느낌을 준다. “언젠가 누드 사진 작가라는 사람을 데려왔더니 대번 ‘모델이 알아서 옷을 벗겠구만.’이라고 말하데요.”라며 길을안내하던 백령면사무소 직원이 귀띔해준다. 콩돌해안은 콩 모양의 작은 자갈로 이루어졌다고 해 이름붙여졌다.천연기념물 392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양한 색깔의 콩돌이 쌓인 해변을 맨발로 걷는 느낌이 상쾌하기만 하다. 백령도의 관문 용기포 선착장 밑으로는 길이가 4㎞에 달하는 ‘사곶 천연 비행장’이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 해안과 함께 세계에 두 곳 밖에 없다는 천연 비행장으로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작전에 이용했다고 한다. 지금도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백사장이 단단하다. 백령도는 심청전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두무진 1㎞ 앞바다는 심청이 공양미 300석에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로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연봉암은 심청이 연꽃을 타고 흘러가다 걸린 바위라고 해 이름붙여진 바위다.백령도 북동쪽 섬 가장높은 곳엔 이러한 효녀 심청을 기리기 위한 심청각이 세워져 있다. 백령도가 초행길이라면 ‘백령8경’을 따라 여행길에 나서면 편리하다. ‘선대비경’(신선이 노닐었다는 두무진 절경),‘백사청송’(천연비행장의 흰 모래와 푸른 소나무의 조화),‘남산두견’(남쪽에 보이는 두견새),‘해구오수’(오후에 바위에 오른물개),‘해모오정’(물까마귀 모자의 애틋함),‘추야안비’(가을밤에 갈매기 나는 모습),‘서해낙조’(기암괴석 사이로지는 주홍빛 낙조),‘객선입항’(선착장으로 배가 입항하는장면)이 백령8경으로 전해진다. 백령도 글 임창용기자 sdragon@ 여행 가이드 ◆가는길=지난 98년부터 쾌속선이 운항된 이후 백령도 가는 길이 훨씬 가까워졌다.인천 연안여객선터미널(연안부두)에서 10시간 이상 걸리던 것이 지금은 4시간도 채 안걸린다.오전 7시10분,낮 12시10분,12시40분 3차례 배가 출발한다.배삯은 편도 4만 3300원.왕복 8만 5600원. 연안부두까지는 경인고속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좌회전해인항로를 거치는 코스가 편하다. 백령도에는 마을버스가 있지만 하루 2차례만 운행되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개인 여행이라면 렌터카(032-836-7001),개인택시(836-0117·0016)를이용하면 된다. ◆먹거리와 특산품=인근 바다에서 금방 낚아 올린 자연산회 맛이 뛰어나다.이곳엔 양식장이 없고 양식 물고기도 반입되지 않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우럭,놀래미,광어가주요 횟감이다.1㎏에 4만원 정도.포구 인근 어느 횟집이나 값이 비슷하다.단체 관광일 경우 어선을 빌려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다.두무진·사항·용기 포구 인근이 주요 낚시터다. 멸치와 비슷한 까나리로 담근 액젓은 1년동안 숙성되는동안에 비린내가 없어져 담백한 맛이 특징.5ℓ 한 통에 1만원이다. ◆잠잘 곳=호텔은 없고 여관과 민박이 있다.여관방 값은 2만 5000∼3만원,민박은 2만원 정도.여름 성수기 때는 10∼20% 비싸게 받는다.문의 옹진군 백령면사무소(032-836-1771).
  • 연륙교 놓이면 좋을줄 알았는데…

    “연륙교가 놓여졌다고 해서 나아진 게 없어요.”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주민들은 요즘 심기가 불편하다.지난해 11월 영흥대교 개통으로 육지화된 뒤 혜택보다는 부담만 늘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급격하게 늘어 깨끗하던 섬마을이 주말·휴일이면 쓰레기 천지로 변해버린다.다리 개통전 하루 0.6t에 불과하던 쓰레기가 요즘은 1.4t으로 두배 이상 늘어나면서 쓰레기 치우는 일이 주민들의 주요일과가 되다시피했다. 더욱 짜증나는 것은 보험료 문제다.연륙교 설치로 영흥도가 도서·벽지지역에서 해지됨에 따라 건강보험료 경감률이 50%에서 22%로 낮아지면서 보험료가 크게 올랐다.그렇다고 마을에 병·의원이 늘어나 의료혜택이 좋아진 것도아니다. 인천∼영흥도간 뱃길이 끊기면서 생긴 버스도 주민들에게 원성이 높다.버스가 하루 4회 운행에 그치는데다 경기도대부,남양,비봉,사강 등을 돌아 인천까지 가기 때문에 2시간30분 이상 걸리기 일쑤다. 주민들은 시화방조제 도로가 확장돼 버스가 운행되면 운행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운임도 현재 5500원에서 1000원가량 내린다는 소식에 기대를 걸어왔다.그러나 지난 3월확장도로가 완공됐음에도 유지관리 책임 등을 놓고 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가 갈등을 빚어 개통이 늦어지고 있다. 주민 김모(45)씨는 “지자체간의 싸움때문에 애매한 주민들만 골병이 든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2000-9595)
  • 울산서도 일본간다

    울산시와 일본 기타큐슈(北九州)사이의 첫 뱃길이 25일 열린다. 울산시는 동구 방어동 울산항 예전부두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이날 낮 12시20분 한·일 국제여객선 취항식을 갖는다고 23일 밝혔다. 심완구(沈完求)울산시장과 해양수산부 관계자,취항 여객선회사인 ㈜무성 관계자,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취항을 축하하는 각종 행사와 국제여객터미널 개장에 이어오후 1시30분 여객선 ‘돌핀 울산호’가 일본 기타큐슈를 향해 첫 출항한다. 울산시와 기타큐슈 사이의 한·일 국제여객 항로 거리는 123마일로 운항시간은 3시간이다.매일 왕복 한차례씩 정기적으로 운항한다.오전 9시30분 기타큐슈를 출발해 낮 12시30분울산에 도착한다.오후 1시50분에는 기타큐슈로 출발해 오후4시50분 도착한다. 취항 선박 ‘돌핀 울산호’는 ㈜무성이 호주 선박회사로부터 137억원을 주고 구입한 790t급 쾌속 여객선으로 길이 54.6m,폭 15.2m,높이 5.5m로 속력은 41노트이다.정원은 승무원10명을 포함해 423명이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부산~日 후쿠오카항로 국적 여객선 20일 첫 취항

    부산과 일본 후쿠오카(福岡)를 잇는뱃길에 국적 여객선이 처음으로 취항한다. 부산에 본사를 둔 미래고속㈜(대표 김창중)은 20일부터부산∼후쿠오카 항로에 정원 222명의 초고속 여객선 코비호(KOBEE·303t)를 매일 운항한다고 15일 밝혔다. 코비호는 최고 속도가 시속 87㎞로 부산∼후쿠오카를 2시간50분만에 달릴 수 있다. 코비호는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월·수·금요일 오전 9시30분 ▲화·목·일요일 오전 11시15분 ▲토요일에는 오전 9시에 출항한다.배삯은 왕복 17만원,편도 8만 5000원.다음달말까지는 20% 할인해 준다. 부산과 후쿠오카 항로에는 카멜리아호와 비틀호,제비호등이 이미 운항하고 있으나 모두 일본 선사들이 투입한 것으로 국적 여객선은 코비호가 처음이라고 미래고속은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대한매일 신춘문예/ 심사평

    예심을 통과해서 본심에 오른 작품 수는 9편이었는데,그 중4편을 제외한 나머지는 어쩌다 한 번쯤 써 본 듯한 조야한공작품들로 질적으로 현저하게 낮은 수준을 보였다.그래서우선 심사하기에는 편했지만,예심에서 탈락한 수백 편의 응모작들의 작품 수준이 그보다도 더 못했으리라는 생각에 입맛이 쓰다.물론,이러한 현상은 요즈음 거의 모든 문예 현상모집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그렇지만,대학의 문예창작과가 대거 늘어나고,문화센터를 비롯한 많은 사설 단체들에 문예창작 강좌가 개설되어 있는 등,십년전에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게 일어나고 있는 문예 창작의붐을 생각하면,그 성과가 너무 빈약한 것에 실망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응모자들을 성별로 따져 보자면,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이것은 문학 창작의 붐을 일으키는 것은 주로 여자들이고,남자들은 여자세에 밀려 여성화 되고 있음을 뜻한다.물론 여성적 가치의 문학화·예술화는 여자뿐만 아니라,남자에게도 바람직하다.남자는 누구나 그 내면에 여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여성 작가들은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특히 일상 속의 감성적 디테일을 즐겨 다루게 되는데,문제는 작품에 형상화된 감성들이 천박하고 값싸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것이다.이번에 응모한 작품들도 대부분 그러한 수준이어서안타깝다.예컨대 감성이 병든 젊은이들이 연출해내는 우울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적잖은데,너무 손쉬운 처리도 문제이지만,우선 그러한 소재의 선택 자체가 진부하고 도식적이다.소비향락 문화 속에서 마냥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저 젊은 군상 속에 그처럼 병든 자들이 있다면,무엇 때문인지 정당한해명을 위한 이성의 작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좀 과격한 이분법으로 말해서,감성과 일상의 미시 서사가 여성적인 것이라면,이성과 역사의 거시 서사는 남성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어느 한 쪽 문학만 존재하는 이러한 불구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남성적 가치들에 토대를문학이 한시 바삐 복권되어야 하겠다. 최종 후보로 오른 네 작품은 ‘쇼윈도’,‘달력’,‘여름나기’,‘강물의 대화’였다.‘쇼윈도’는 요즘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인 피어싱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다분히 엽기적이긴 하나 내용이 부실했고,치매를 앓고 있는 노파와 손녀가 한 방에 기거하며 겪는 갈등 관계를 그린 ‘달력’은 거칠어서 오히려 싱싱하고 구수한 입담이 좋았으나,이야기를 하다 만 것처럼 끝마무리가 무성의했고,‘여름나기’는 문체의 지적인 시도 자체는 격려할만 하나,지나친 언어 유희가 큰흠이었다.당선작으로 선정된 ‘강물의 대화’도 약점이 있긴 했지만,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무엇보다 자료를 별로 가공하지 않고 집어넣은 듯한 부분이 눈에 거슬렸다.그럼에도 불구하고,모태 귀환이라는 새롭지 않은 주제를 남한강의 뱃길따라 흘러 온 옛 서정과 성공적으로 어우러지게 하여 잔잔한 우수를 자아내게 하는 시적 역량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김원일·현기영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강물의 대화-정다일(2)

    “지낼만 하다 안 하다 그런 구분을 버렸습니다.그저 내마지막 정처(定處)이려니 하는 거지요.한 십 년이 돼 가나요.처음엔 묵정밭에 흑염소를 치며 그럭저럭 살았습니다. 이젠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잊었다하는 게 옳겠지요.그동안 내 대화상대라는 것이 강물이거나 그 물결이거나 그아래 조약돌이거나 그 사이 물고기들이었으니….” 나도 이곳에서 강물과 대화하던 시절이 있었다.어둑어둑산줄기와 물줄기를 덮어먹는 어둠이 밀려드는 저녁이면 나는 강으로 내려갔다.그곳에서 어린 나는 밤새 내 곁을 스치며 흘러가는 강물을,몇날 며칠 강물에 씻겨도 사라지지않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을,그리고 쿨럭쿨럭 마른기침에 몸을 뒤척이며 깨어나는 강의 새벽을,그것들에 홀로 사무쳐밤을 새워 울어야 하는 소쩍이의 서러움 따위를 생각했다. 매일 저녁 강에 나가 새롭게 흘러온 강물을 만났다.나는그 저녁 무렵을 좋아했다.저 강 양편의 산줄기 밑자락으로거뭇거뭇 이내가 밀려들고, 강 수면으로 하루살이가 발버둥을 치고,물고기가 뛰어오르는 시간.나는 그 시간이면늘어딘 가로 떠나고 싶어 강에 나가 종이배를 띄우고는 했다. 어떤 날은 내 고무신까지 띄워 보냈기에 어머니가 미탄 장에 가서 사온 신발을 내 발에 억지로 꿰어맞출 때까지나는 맨발이었다.그 무렵 나는 눈치챘다.이내가 곧 어둠이되어 강을 덮어먹는 먹장구름처럼 밀려들 때면 이 강의 저녁을 견디는 일이란 참으로 고단한 짓이라는 것을. 그 날,그러니까 어머니 곁에서 아예 사라지겠다고 처음으로 훌쩍강을 등지던 시간도 저녁쯤이었다.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났고,어머니는 이 개자리집이 마지막 거처였습니다.” 술잔을 들다 우뚝 멈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는 개자리집에서 젊은 시절부터 강을 오르내리는뗏꾼들을 상대로 주막을 열었다. 뗏목은 아우라지를 지나조양강을 거쳐 밤이나 낮이나 떠내려왔다. 뗏꾼들은 험한황새여울을 지나가기 위해 무당소에 이르면 강변에 뗏목을 댔고, 개자리주막으로 올라와 술을 청했다.좋은 시절이었다. 강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마루 밑의 개도 낮술에취해 어슬렁거리다 잠들었다 했을 정도로 흥청거렸다. 뗏목의 끝물이었다. 궁궐떼는 물론이고 서까래떼도 보기어려웠던 뗏목 막바지였다.하루종일 지켜봐야 겨우 부동떼나 화목떼 서너 바닥 내려가면 그만이었다. 그동안 나귀에봇짐을 싣고 부지런히 강마을을 찾아 강을 오르내리던 한남정네가 그 어름에 이 짓도 마지막이라며 개자리주막을스쳐갔다. 칠족령을 넘어 상류의 강마을 찾아간다는 그 남정네는 이튿날 믿지 못할 강바람 같은 기약 하나를 떨구고갔다.이번에는 기어코 이 강의 최상류 오대산 우통수까지다녀오겠다고 했다.그리고 한세월 개자리에서 등 붙이고살겠다고 했다.하지만,아무리 먼 길이라 해도 한 달포면우통수를 돌았을 터이고,또 한 달이면 강을 되짚어 내려왔을 시간이 흘렀건만 코끝도 보이지 않았다.남정네는 징용끌려가 감감무소식인 남정네들만큼이나 돌아올 줄 몰랐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2년이 지났다.강에는 날마다 남정네의 소식을 묻는 물푸레나무 나뭇잎배가 띄워졌다. 3년으로 접어들던 어느 보름달 밝은 밤이었다.마루 밑 누렁이가 달을 베어 물고 컹컹 짖어댔다.한 사내가 절퉁절퉁몸을 심하게 기우뚱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루에 털푸석 주저앉은 사내가 다짜고짜 청했던 물 한 대접을 들이붓고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문지방을 넘었다.사내야 그 남정네가 맞건만 그 좋던 풍채는 다 어디에 떼어먹히고,머리는 쑥대머리요,걸친 것이라곤 어느 집 똥수세미요,다리 한짝은 뒤틀린 싸릿가지 모양으로 배배 꼬였다. 반딧불에 글을 읽어도 좋았을 눈빛이었건만 꾸물꾸물 진물이 배어나는눈자위엔 쉬파리만 닝닝대며 꼬여들었다. 이 강의 시원이우통수가 아닌 검용소란 말이여? 밤낮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렸다.정성이 지극했음인지,남정네는 일년을 반 토막낸그 여름에 훠이훠이 강을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을회복했다.그런 그가 가을 무청을 엮어 뒤꼍 바람벽에 주렁주렁 시래기를 매달아놓고는 또 길을 나서겠다고 말했다. 고향 청풍에 다녀오겠다는 남정네의 말은 아직 색깔 하나변하지 않았던 무청처럼 시퍼렇게 당찬 것이 믿을 만했다. 내 맘에는 그래도 느이 아부지가 첨부텀 끝까정 애오라지내 남정네였다야.니는 느이 아부지를 그래 빼다박았으면서두 성정은 으째 그리두 다른지….어머니의 이야기는 늘 그사람을 내 아버지로 오금박아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남정네와의 언약을 무당소 깊은 강 밑에 갈무리해두었다.하지만 그뿐이었다.강바람을 타고 오르내린 소식몇 점이 무당소를 회오리쳐대다가는 떠내려갔을 뿐이다. 한 뗏꾼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무당소 앞에서 굿을 하던무당이 굿판에 도취되어 스스로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사라져버렸다는 무당소.어머니는 밤을 낮 삼아 무당소 기슭에 넋을 놓고 주질러앉았고,속절없이 흘러가는 강물만 하염없었다.강물은 어머니의 돌팔매질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한바탕 회오리바람 같은 푸념이 지나가고 나면 어머니는 뗏목아라리를 부르며 강을 쓰다듬었고 자신을 위로했다.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도록 가지만, 금전으로 사귄 정은잠시 잠깐이라네.우리 맺은 언약이 강물에 흘러갔나니. 구시월 막바지에 서리맞은 국화라.나를 보세요,함께 갑시다. 그믐 초승달이 뜨도록 놀다 가세요.무당소 황새여울에 떼를 띄워놓았네.무당소 개자리집아 술상 차려 놓게나. 내가 흥얼거리던 뗏목아라리를 따라 부르던 그의 눈빛이먹먹해져 있다. “충주댐 아랫마을에 살았던 때가 있었지요. 저녁이면 버릇처럼 충주호에 낚싯대를 담갔습니다.간혹 낚시를 따라온어머니가 이 아라리를 불렀지요.아버지가 부르던 소리라며.호수에 수장된 어머니와 나의 고향이 낚싯바늘을 물어줄리도 없었건만,우리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흘러간 뗏목아라리를 부르곤 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나는 끔찍한 선물을받았습니다.” 그의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 것은 뱀장어였다. 그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강에는 뱀장어가 많이 살았다. 하지만 고향남태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충주호에 갇힌 뱀장어는 사람 팔뚝만큼이나 살이 뒤룩뒤룩 올라 있었다. 그 날, 그는낚싯대를 꺾어버렸다.그 뒤부터 밤이면 지붕 위 허공 어디에선가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선 살찐 뱀장어가 뒤척였다. 강에서 살던 뱀장어는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무려 3,000㎞나 떨어진,자신이 태어났던 태평양 먼바다로 헤엄쳐 가야한다.뱀장어는 자신의 알이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먹히지않도록 하기 위해서 칠흑의 어두운 그믐날에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 최후를 맞이한다.다시 태어난 뱀장어 치어 댓닢뱀장어는 바다 물결에 실려 한반도까지 오며 실뱀장어로바뀌어 봄이면 서해와 남해로 흘러드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이것이 뱀장어가 가고 싶은 길이다.하지만 이땅의 강은 이미 뱀장어의 강이 아니다.하구둑이나 수중보가 가로막고 길을 터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빈 주전자를 들어 그에게 흔들어 보인다. 술잔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던 그가 빈 주전자에 옥수수 막걸리를 가득 채워 들어온다. 오래도록 말없이 천장을바라보던 그가 입을 연다. “이 강물에 어머니를 잃고, 나는 정처 없는 떠돌이가 되었지요. 길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길을 잃는 일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길을 잃을 때 길의 본질을 만나게 됩니다.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백척간두의 순간에머무르고자 했습니다.잃어버린 길을 잇기 위해 동강으로들어왔다고 하면 그대의 궁금증이 조금 풀릴는지요.” 그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그 낭떠러지의 허공이 가난하게떠난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여백이 되는지를,그 여백은 정처를 정하면 충만해지는지를.하지만 나는 말로 만들어내지못한다. “내 어린 시절의 강에는 뱀장어보다 열목어(熱目魚)가많았습니다.” 눈에 열이 많아 그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이 더 찬 상류로상류로 올라가야만 하는 물고기.어린 내 친구들은 그 물고기를 엿메기라 불렀다.우리는 싸리나무 낚싯대로 고등어만한 열목어를 낚아 올리고는 했다.그 엿메기를 잡는 날은최고의 낚시꾼이 되었다.개울 한가운데 바위 위에 앉아 열목어를 낚아채다 보면 낭창낭창한 싸리나무 낚싯대가 부러지기도 했고,물고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물 속으로 풍덩빠지기도 했다.그래서 물고기를 잡다가 열목어도 잡지 못하고 물에 빠지면 엿메기를 잡았냐며 놀려대기도 했다. 어린 내가 어찌 열목어의 열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살다보면 세상에는 열을 올려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그래서 저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는 것을 어찌알았겠는가. 나는 이 강의 개자리집에 돌아와서야 내 눈에식혀야 할 열이 참으로 많이 박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대의 바짓가랑이에 휩쓸려온 바람에는 저 먼 북태평양 베링해의 냄새가 묻어 있습니다.연어를 만나기 위해 남대천에 가본 적이 있는지요. 10월의 남대천에는 베링해를떠나온 연어가 산란절식(産卵節食)으로 상류로 거슬러 오릅니다. 섬세한 지도를 그릴 줄 아는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강의 냄새를 떠올리고,밤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가늠해낸답니다.그대는 무엇을 나침반 삼아 이곳까지 왔는지,그대는 어느 시절 어느 세월을 휘돌아 여기까지 거슬러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어쩌면 내 대답을 듣기 위해 청한 물음이 아닐 수 있다.나는 길을 나서기 전, 나침반으로동서남북을 가늠해보고 지도를 펼쳐 길의 처음과 끝을 짚어보며 준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어디서 휘어져 산모롱이를 돌아나가고 어디서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건너야 하는지를 살피지 못했다.길에 서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낯선 길에서 깃들 곳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힘겨운가를,얼마나 서러운가를…. 한강 하류에 사는 동안 나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을해 저녁이나 밤이면 집으로 돌아왔으며, 일요일이면 밀린빚을 청산하듯 하루종일 잠을 잤으며, 우리 가족은 살강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대로 지낼 만한 사이였다. 그도시에서의 20여 년은 그렇게 짜지도 맵지도 않은 적당한즐거움과 적당한 상실감으로 흘려보낸 시간들이었다.그 시간이 얼마나 밍밍한 시간,아니 세월이었는지를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곳 개자리로부터 나는 철저히 도망치려했으며 깨끗이 잊고 싶어했다. 아내의 부탁을 나는 기꺼이받아들였다. 아내가 딸 나나의 교육을 위해 불현듯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겠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베링해의 물결은 지금이 아니라 이후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아내는 5년 전 캐나다로 떠난 처형네를 찾아갈 것이다. 처형네 세탁소에서 한 3년 다림질을 하다 보면 이 땅에서의 기억은 다 증발될 것이다.아내는 나의 옛날을 다 증발시키고 싶어한다.나나를 위해 내일만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잊고 살 수는 없는거야? 아내는 나의 정처를 모른다. 아내는 지금 나에게 연락할 수 없다.이곳은 핸드폰 불통지역이다. “어딜 가나 적응하려 애쓰는 건 정신보다 몸이 먼저지요. 하지만 상처를 만나 먼저 시름에 겨워하는 것은 정신이 아닐는지요.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강물처럼 소리소문 없이 빠져나가는 시간이더군요.” 어머니는 나이 마흔을 넘겨서야 얻은 자식 때문이었는지멍울은 조금씩 가시는 듯했다.뗏목이 사라지고,남정네가사라진 강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산자락 비탈밭을 일구기시작했다.이 일대 밭은 모두 어머니가 화전으로 일구어냈다.밤이면 산비탈에선 파란 도깨비불이 일었다.큰물이 지는 여름이면 무당소에서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밤새 꾸르릉꾸르릉 이무기 우는 소리가 강을 흔들어댔다. 한낮에도 산그늘이 지는 무당소 뼝대에서는 뻐꾸기가 무섭다며 뻐버꾸뻐꾹 울어댔다. 뻐꾸기가 우는 여름이면 어머니는 말했다. 세월처럼 무서븐 게 없다드니 참말이네. 내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이곳을 떠나면서부터 어머니는허물어지기 시작했다.밭은 하나둘 묵정밭으로 변해갔고,개자리집에는 머리 풀어헤친 귀신이 산다는 소문으로 흉흉했다.아랫마을 사람들도 발길을 끊었다.밤이면 승냥이처럼울어대는 어머니의 곡성이 강을 타고 내려가 아랫마을을하얗게 흔들어 깨우곤 했다.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더먼 곳으로 떠났고, 어머니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무당소로걸어 들어갔다. “강이 꽝꽝 얼었어요. 누치도 잡고, 보고 싶다던 무당소밑바닥도 실컷 봐요.…,먼저 나갑니다.” 마당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밤새워 술 마신 티가묻어 있지 않다.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다시 이불 속으로묻는다.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아내는 내가 돌아가지않아도 나나의 손을 잡고 예정된 시간에 공항으로 나갈 것이다.나는 이불 속에서 머리를 흔들어본다.머릿속은 끊임없이 윙윙 울리고 있다.겨울 하늘 높이 날아올라 팽팽하게당겨진 연줄이 우는 소리 같다. 어젯밤 그는 말했다.밤새 강이 얼 것이며,날이 새면 누치를 잡으러 가자고.요즘도 1월이면 무당소는 물론이고 1㎞상류까지 얼어붙는다고 했다.이 강줄기를 타고 올라오는누치는 100마리쯤이 한꺼번에 떼를 지어 몰려올 때도 있다.지난 겨울엔 강바닥이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 누치떼가 올라왔다.겨울이 되면 찬물에 산란하기 위해 상류로올라오는 것이다.얼음썰매를 타고 누치를 찾아 강을 오르내리며 이마에 땀이 배어날 시간이 흘러갈 즘이면 강바닥을 뒤집는 누치떼를 만날 수 있다.도끼와 작살을 움켜쥐고얼음 위를 질주하며 누치떼를 쫓다보면 놈들은 숨을 헐떡이며 꼼짝도 못하고 강바닥에 엎드려 있다.누치는 얼음장아래 찬물에서 쫌만 움직여도 곧바로 뼈 가운데로 얼음이생겨 오래 달릴 수가 없어요.누치가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서 있을 때 도끼로 얼음을 깨고, 작살로 단방에 찔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또 무엇인가를 이야기했다. 그렇다,북진나루. 나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다.그는 마당에 없다.저 아래 무당소에서 움직이는 그가 조약돌처럼 작게 보인다. 개자리에 앉은 내 몸도 이제는 보호색을 띠어 강변의 자갈밭을 닮아있지 않던가요.그의 말처럼 그는 개자리에 앉아 조약돌을 닮아가고 있다. 나는 어젯밤 그가 고향 이야기를 할 때,그도 어쩌면 슬픔하나를 갈무리해두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그는 어머니를생각하면 먼저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고 말했다.충주댐이막히면서 청풍의 절반쯤은 물에 잠겼지요.하지만 남한강뱃길이 있던 시절엔 제천의 중심이었습니다.서울에서 올라온 돛단배들은 소금에 절인 바닷물고기며 온갖 물건들을그득그득 싣고 북진나루로 들어왔지요.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봇짐장수였던 우리 아버지는 서울 물건들을 사서 나귀에 싣고 남한강 강마을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그 강물에아버지를 빼앗겨버린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돌아가시기며칠 전에야 말했지요. 동강에 한번 가보자.느 아부지 여즉 거서 잘 살고 있는지? 강은 정말 꽝꽝 얼어붙었다.그는 누치를 찾아 상류로 더올라갔는지 보이지 않는다.군데군데 얼음구멍을 낸 흔적이보인다. 얼음은 유리처럼 맑아 무당소의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물고기의 비늘이 얼핏 물 밖의 햇살을 받아내며 반짝 물살을 뒤집는다.그 물고기는 어머니의 하얀 버선을 닮았다.그토록 보고싶었던 무당소의 강바닥.하지만 어제의 그 강물은 이미 떠나고,얼음장 밑으로는 오늘 지금의강물이 흐르고 있다. 나는 거울처럼 맑은 강물 위에 내 얼굴을 댔다.어머니의유품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나를 쫓아온 댓돌만한 거울이그랬듯 얼음거울 역시 나를 다 비추지 못한다.하지만 나는알고 있다. 아무리 비춰 보아도 내 안에는 내가 없다는 것을.어린 시절의 내 강물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내 몸은 메말라 있다는 것을. 나는 몸을 뒤집어 무당소에 눕는다.하늘은 눈이 시리도록푸르다.그곳에서 깨알같던 점 하나가 점점 커지며 검은 불덩이로 변해 무당소로 떨어지고 있었다.내 이마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다.내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간다.곤두박질치던 그것은 무당소 바위벼랑에 다다른 순간,다시 파랗게 얼어붙은 하늘로 솟구친다.교미 중인 검독수리 한 쌍이다.어머니는 무당소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던 그 해 겨울,내게 말했다.언제 청풍 북진나루에 가보거라.느이 아부지 거서 여적 잘 살고 있는지? 나는 비틀걸음으로 상류로 오른다.
  • [대한광장] 금강산과 왕회장의 아들들

    명실공히 새 천년의 첫 해인 2001년(辛巳年)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함에 있어 전후,좌우,상하 어디를 둘러봐도 막히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정치·경제·사회·통상·남북문제가 모두 꽉 막혀 숨쉬기도 답답하다.일찍이 다산 정약용이 갈파한 맺힌 것을 푸는 특단의 대책이 더없이 간절하다(丁若鏞 通塞議). 그 중에서도 남북한 간에 막힌 곳을 뚫고 화평을 정착시키는 일은 초미지사(焦眉之事)라 할 만큼 중요하고 심각하다.미국 뉴욕테러사건을 계기로 부시 정권이 이곳 저곳에서 일으키고 있는 전쟁의 불똥이 한반도로 튀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미리 방비하여야 하고,최근 남북한에 일고 있는 정치·군사적 불안정이 국제적 긴장요인으로 확산되는것도 미리 막아야 한다.그래서 국제 평화네트워크 정옥식대표같은 이는 지금이야말로 평화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절실하다고 절규한다. 맞는 말이다.정부와 정치권이 이런저런 사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에 대하여는 민간기업과 시민단체들이 스스럼없이 나서야 한다.그 대표적인 것이 교착상태에 빠진 금강산 관광사업이다.이는 누가 뭐라해도 50여년의 민족분단사에 남북화해와 협력을 형상화시킨 획기적인 평화의 상징사업이다.1999년 서해교전이 한창일 때도 금강산 평화의 뱃길은 그치지 않았고,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와중에도 수천 명의 남쪽 사람들이 금강산 산길을 평화롭게 오르내렸다. 이렇듯 금강산 관광은 한반도에 전쟁 위험과 충돌 가능성을 미리 봉쇄하고 전쟁 불똥이 다른 지역에서 튀어 오는것도 차단하는 엄청난 효과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첫번째 공훈과,마지막 성공도 지금은 고인이 된 강원도 통천(금강산) 출신의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몫이다. 죽음을 앞두고 그가 보여준 평화와 통일의 집념과 수구초심(首丘初心)은 1998년 11월 마침내 금강산 관광 길을 열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가 살았을 때는 아들 회장들이 적통(嫡統)을 다투려 서로 금강산사업을 맡겠다고 이른바 ‘왕자의 난’까지 일으켰다.그가 죽고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제 금강산 평화의 뱃길이 끊겨질 운명에 놓였는데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뒷짐을 지고 있다.그것도 ‘돈’,즉 누적된 부채와 적자운영 때문에 중단될 것이라는데 모른 체들 하고 있다. 물론 부시정권의 등장과 극우 보수분위기의 확산 여파로관광객이 줄고 양쪽 정부의 무성의로 적자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고 하더라도,자신들의 아버지 필생의 유업이 바야흐로 문을 닫게 되었는 데도 딴청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왕회장은 저승에서 회한에 젖어 통곡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아들들이 이러하니 국민여론은 더욱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보수언론과 정치권은 아예 신이 나 ‘퍼주기론’을 다시 펼칠는지 모른다. 그러나 평화의 값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데,금강산 관광의 전쟁억제 역할을 어떻게 내버려두란 말인가.이같은 교착상태를 정면으로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아버지의 숭고했던 남북평화 의지와 통일에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자식들이 앞장서야 한다.그래야 국민들이 감동하고 양쪽 정부도 각성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금강산관광 살리기에 자신들의 사재부터 얼마간 내놓아야 국민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본다.그리고 전사적으로,모든 현대그룹이 역량을 총동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감동이 없이는 자칫 국민과 정부로부터 외면받아 금강산 평화사업은 중단될지 모른다.그렇게 될 경우 그 아들들은 두고 두고 국민들의 비웃음과 세계인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다.그들이 꿈꾸고 있는 대망과 대박의 꿈도헛되이 한갖 물거품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국민을 움직여야 금강산 관광이 산다.왕회장의 아들들이여,부디 고 정주영씨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금강산관광의 막힌 곳을 먼저 뚫어라. 그래야 양쪽 정부도 제 역할을 할 것이며,금강산은 세계유일의 평화지대로서 민족분단 슬픔을 녹일 수 있다.우리국민들은 왕회장 일가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갈망한다. 김성훈 중앙대교수경실련 통일협회 이사장
  • 양구 ‘육지속 섬’ 상무룡마을 57년만에 뱃길 열린다

    화천댐 건설로 ‘육지 속의 섬’으로 고립된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무룡 2리에 57년만에 뱃길이 열린다. 양구군은 28일 양구읍 월명리 선착장에서 임경순(任璟淳)군수와 마을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파로호 상류지역 주민들의 숙원인 ‘상무룡호’(18t급)진수식을 갖는다. 상무룡호는 길이 21.12m의 철제선박으로 오지마을 교통수단 개선을 위해 군비 1억1,533만여원과 주민부담 1,281만여원 등 모두 1억2,815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지난 44년 화천댐 건설로 육로가 수몰된 뒤 지형이 험해육지와 이어진 방산면쪽에서 접근도로를 개설하기 힘들었던 이 곳은 그동안 주민들이 소형 농선(農船)이나 어선에의존해 왔다. 이같이 고립된 마을에 이번 ‘상무룡호’운항으로 상무룡 2리 22가구 주민들의 숙원이 해결됐으며,대형 덤프트럭도 실을 수 있어 앞으로 마을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한편 이날 진수식에서 마을주민들은 임 군수와 선박 건조를 맡은 조선소 관계자에게 감사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
  • “풍전등화 금강산관광 살리자”

    금강산 관광사업 살리기에 시민단체들이 발벗고 나섰다.남북화해의 상징인 이 사업이 누적된 경영악화로 중단 위기에놓인 상황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취지다. 경실련 통일협회와 평화통일시민연대,한민족물자교류협의회 등 20개 시민사회 단체들로 이뤄진 ‘금강산을 사랑하는 범국민연대 준비위원회’(공동대표 李長熙 외대 교수 등)는 20일 낮 서울 명동에서 가두캠페인을 갖고 금강산 관광사업을되살리기 위한 국민서명운동을 벌였다.이와 별도로 김성훈(金成勳) 전 농림부장관 등 ‘금강산 범국민연대’ 집행부 29명은 ‘시민단체 금강산 평화관광 다녀오기 캠페인’의 하나로 이날 속초항에서 간단한 집회를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한뒤 금강산으로 떠났다. ‘금강산 범국민연대’측은 또 ‘금강산 평화관광 살리기를 위한 국민청원운동’ 선언문을 발표,“남북관계 변화와 신뢰구축의 산증인인 금강산관광이 미국의 대북 강경책과 남북한 당국의 방관과 약속 불이행,일부세력의 반대를 위한 반대로 풍전등화의 신세가 됐다”면서 “금강산 관광사업 중도포기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며,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99년 6월 서해교전의 위기에서도 금강산행 뱃길은 끊어지지 않았고,남북간 군사적 충돌이 상호 보복으로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평화의 사도 구실을 해왔다”면서 “이 고비를 슬기롭게 넘긴다면 남북관계는 6·15 공동선언 이후 또 한번의 질적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들의지지와 참여를 호소했다.오는 27일에는 ‘금강산 평화관광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주제로 여야 의원과 전문가,통일부및 현대아산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개최한다. ‘금강산 범국민연대’는 새해 1월 중순 공식 출범한다.참여단체의 수를 크게 늘리고 김수환(金壽煥) 추기경과 송월주(宋月珠) 스님,강원룡(姜元龍) 목사,서영훈(徐英勳)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 원로들을 고문단으로 영입,범국민운동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단기적으로는 ‘금강산 다녀오기 캠페인’을 적극 펼쳐 뱃길을 잇고,중·장기적으로는 북한 당국의 특구지정과남한 당국의 일정한 지원을 이끌어 낸다는 방침이다. 김규철(金圭喆) 집행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이 대신하고 있는 평화유지 비용은 막대하다”면서 “정부는 청소년들이 평화통일 체험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경호기자 jade@
  • 리뷰/ 브로드웨이 롱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10여년이 넘게 롱런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뉴욕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보고싶어 한다는 명물 레퍼토리다. 남녀 주인공의 주옥같은 노래,객석 천정에서 무대로 내리꽂히는 거대한 상들리에,환상적인 운무 속 뱃길,화려한 가면무도회의 의상과 춤….공연 내내 쉴 새 없이 펼쳐지는크고 작은 볼거리와 삽입곡들은 공연과 별도로 회자되는것들이다. 이같은 명성에 힘입어 지난 2일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오르게 된 ‘오페라의 유령’은 100억원이라는 거대 제작비와 국내 공연사상 처음인 네티즌 펀드,미국 브로드웨이뮤지컬 제작진의 영입 등 숱한 화제를 낳았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를 떨치지 못했다.하지만 개막공연 분위기만 볼 때 일단 낙관해도 좋을 것 같다. 막이 오르면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귀에 익은 노래,한치의 오차도 없이 짜맞춘 장면 전개와 무대세트의 전환은역시 개막공연 예매 첫날 전석매진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해외 스태프의 숨결과 손길이 무대 전반에 담겼지만 역시우리 공연계의역량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무대로 볼 수있다. 주역들은 내로라는 뮤지컬 스타들도 탈락의 고배를마셔야 했던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발탁된 실력파들이다. 무대에서는 주인공 팬텀과 상대역 크리스틴이 극 전반을주도하지만 무용수와 극장 관계자 등 주변 인물들의 역할도 간단치 않은 기량을 요구한다. 주인공 팬텀(윤영석)의 연기가 다소 불안하긴 했지만 상대역인 크리스틴(이혜경)과 그의 애인 라울(류정한)의 안정적인 노래와 연기가 이를 보충하는 데 손색이 없었다. 오히려 팬텀보다는 크리스틴과 라울의 연기가 튈 정도로돋보였다. 이번 공연은 브로드웨이 제작진이 관여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공의 보증수표를 발행한 것이지만,공연은 역시무대 위에서 혼을 사르는 연기자의 몫이다.브로드웨이 공연에 손색없는 연기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공연계의 역량 축적을 볼 수 있게 해준 무대였다. 김성호기자 kimus@
  • 영흥도는 대중교통 사각지대

    지난달 15일 인천시 옹진군 영흥대교(영흥도∼선재도)가개통됐지만 대중교통수단이 취약한 데다 뱃길마저 끊겨 주민들의 불편이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영흥대교 개통으로 인천∼영흥도간 여객선 운항이 1일부터 중단됨에 따라 주민들은 육상교통을 이용해야 하나 인천∼영흥도간 교통수단은 시외버스가 유일하다. 그러나 이 버스는 고작 하루 4회 운행하는 데다 요금마저 성인 5,500원,학생 3,900원 등 턱없이 비싸 주민들에게부담이 되고 있다. 운행간격도 3∼4시간에 달해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던 배편만도 못하다.게다가 매송·남양·사강 등을 우회하기때문에 편도 운행시간이 2시간30분이나 소요돼 주민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주민 김모씨(50)는 “영흥대교 개통으로 섬에서는 벗어났지만 교통은 오히려 불편해졌다”면서 “버스노선 확충 등대중교통 수단을 시급히 늘려야한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 [대한광장] 희망 잃어버린 사회

    ‘문명충돌론’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새뮤얼 헌팅턴은 최근 발간된 ‘문화가 중요하다’는 책의 서문에서 “나는 1990년대 초 가나와 한국의 1960년대 초반 경제 자료들을 검토하게 됐는데,60년대 당시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이 아주비슷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고 썼다.한국은 정치·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한 반면 가나는 그렇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두 나라의 문화차이라는 것이다. 헌팅턴의 분석대로 우리는 짧은 기간에 세계가 경탄할 만한 발전을 이룩해냈다.20세기의 전반부를 망국과 식민의 고통속에 보낸 민족이 그 후반부를 경제발전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특이한 케이스인 것이다. ■지향점 상실한 사회. 그러나 21세기 초엽에 들어선 지금 우리는 또다시 위기를맞고 있다.우리 국민들이 ‘희망’을 상실한 것이 위기의 징후인데,그 이유는 지향점을 잃었기 때문이다.60년대 초반의가난 속에서는 근대화라는 지향점이 있었고,군부독재에 시달리던 80∼90년대에는 민주화라는 지향점이 있었는데,이 두가지 목표를 대충 달성한 지금 우리는 지향점을 상실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주도세력이나 대안세력이 없다.물론 수많은 말의 성찬은 있지만 공허한 수사일 뿐 그 누구의 가슴에도 와 닿지 못한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희망을 상실하게했을까? 반세기 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국민의 정부가 준실망이 가장 클 것이다.국민들은 개발독재 과정에서 구조화된 부조리를 조광조처럼 참신한 개혁정치가가 척결해 주는한편 경제발전이란 장점은 황희처럼 경험도 풍부하고 깨끗한 청백리가 이어주기를 바랐다.물론 일부 성과는 있었지만 그런 성과는 소수의 부패한 선무당 패거리가 뒤덮어 버리고 말았다.그 결과 비난이 비등하자 이른바 대권주자들은 ‘네 탓’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정작 자신들의 책임은 어디로 증발했는지 민초들은 어리둥절하고 있다. 과거에는 야당에서 희망을 보았지만 지금의 야당에서 희망을 찾는 국민은 보기 어렵다.그저 현 정권의 대척점에 있기에 반사이익을 얻는 또 하나의 희망 없고 대안 없는 정치집단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지난 20세기가 19세기와 달랐던 것 이상으로 21세기는 20세기와 다르다.자본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던 시대가 20세기라면 21세기는 정보와 지식이 자본의 힘을 능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다.그러나 우리 사회의 주도세력 대다수는 아직도 20세기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몇 푼으로 시작해 당대에 세계 최고의갑부가 됐다는 일화는 남의 일일 뿐이다. ■시야 외부로 돌려야. 우리 사회는 남에게는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지만 그 칼끝이자신에게 향하면 철밥통을 움켜쥐고 저항하는 극단적 집단이기주의가 난무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인물들은 자신의책임을 뒤집어씌울 희생양을 찾아 눈을 번득이고 있고 그 결과 우리 국민들은 희망과 지향점을 상실하고 이 땅을 떠나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내부 파쟁에 쏟는 정력을 밖으로돌리는 그곳에 희망이 있을 것이다.험한 뱃길과 미지의 실크로드를 두려워하지 않은 고대인들의 도전정신을 따라 시야를 밖으로 돌리는 그곳에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있을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금강산관광 결산…‘6,000억 적자’ 애물단지로

    현대아산이 금강산 사업을 시작한 지 18일로 3주년을 맞는다.지난 98년 11월 금강호의 출항으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사업은 3년이 지난 지금 적자투성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18일 금강산에서 현대아산과 북한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공동으로 기념식을 갖지만 금강산 관광사업은 현재최악의 위기에 처해있다. [6,000억 적자] 지금까지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은 10월말 현재 42만여명으로 2,59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그러나 여객선용선료 등 원가에 턱없이 부족,4,400억원의 운영적자를 냈다. 그나마 지난해에는 22만명이 다녀왔지만 올 들어서는 월평균 5,000여명으로 줄었다.적자누적으로 관광선을 4척에서 1척으로 줄인 탓이다. 현대아산은 지금까지 금강산 관광사업에 1조4,000억원을 쏟아부었다.여기에는 2005년 3월까지 지급키로 한 관광대가 9억4,200만달러 가운데 지금까지 북측에 송금한 3억7,900만달러는 빠져 있다. 이같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현대아산은 3년동안 6,000억원의손실을 냈다. 적자가 누적되면서 공동사업자였던 현대상선마저 손을 뗐다.현대아산은 자본금(4,500억원) 잠식중에 있다. 관광공사가 남북협력기금에서 450억원을 지원,한때 형편이나아지기도 했으나 육로관광 등의 성사지연 등을 이유로 더이상의 지원은 미루고 있다. [얻은 것은?] 금전적으로는 손실이 났지만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민간차원의 금강산 관광이 한반도 긴장완화에기여했기 때문이다.이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사업이 중단되면 복원이쉽지 않고,남북관계 역시 후퇴할 가능성이 많다”며 “현대아산이 아니더라도 이 사업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한다”고말했다. [어떻게 될까] 현대아산은 육로관광과 금강산 일대의 관광특구 지정이 이뤄지면 연간 45만여명이 금강산을 찾아 2003년부터는 60억원의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6월8일에는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이 방북,육로관광과 특구지정 등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아직 이행이 되지 않고 있다. 6·8합의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간 관계증진이 긴요한데 당국간 협상이 결렬되는 등 호전기미를 보이지 않고있다. 결국 금강산 관광사업의 성패는 남북당국의 관계개선에 달려 있는 셈이다.문제는 현대아산이 그 시점까지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 ■끊긴 뱃길만큼 쓸쓸한 동해항. 금강산 관광사업이 시작된 지 만 3년,통일에 대한 기대와설렘으로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출항지 동해항은 지금 끊긴 뱃길만큼이나 쓸쓸하다. 98년 첫 뱃길을 열었던 금강호가 최근 선주사인 말레이시아 스타크루사에 반환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일말의 기대마저 사라지는 느낌이다. 다만 또다른 관광선 봉래호가 반환협상이 이뤄지지 않아 애물단지로 전락한 채 정박해 있을 뿐이다. 한때 유람선 3척과 쾌속선 1척 등 모두 4척의 배가 출항하면서 금방이라도 통일소식을 실어올 것 같던 금강산 관광사업은 관광객의 지속적 감소로 지난 6월말 동해항을 통한 운항이 전면중단됐다. 남은 것은 속초항을 드나드는 쾌속선 설봉호만이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한때 관광객들로 북적대던 동해항 여객터미널은인적이 끊겨 적막하기만 하고 터미널내 100여명에 이르던 출입국 심사 및 검역 직원들은 모두 철수했다. 호황을 기대하며 들어섰던 25개 항만운송사업체와 관광선 용품 납품업체들도 대부분 떠났다. 금강산관광지원사업소까지 신설하고 동해항 주변인 송정동일대 도로 확·포장과 도시기반시설 정비 등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던 동해시도 최근 관련 지원업무를 종결했다.지난 6월말까지 지방세와 관광선 운영관련 용역비 및 관광객 매출액 등으로 지역에 168억여원의 경제기여 효과가 있었다는 정도만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동해시는 이제 침체된 동해항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세자유지역으로 지정하고 컨테이너 물동량 확보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동해항이 통일의 전초기지로 북적이는 날이 언제 다시 올지 주민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동해 조한종기자 bell21@
  • [씨줄날줄] 울릉도

    동해의 파수꾼 울릉도(鬱陵島)가 위기를 맞고 있다. 상주인구 1만명이라는 마지노선이 무너졌다.일제 강점기인 1932년 이후 69년 만의 일이다.올해 초까지만 해도 울릉도를 터전으로 삼고 있는 주민이 3,840가구에 1만426명이었는데 최근 9개월 사이에 또 39가구 436명이 떠났다.의료시설과 같은 생활기반 시설이 빈약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자녀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육지로 떠난다고 한다. 울릉도의 역사는 신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우산국으로 불렸다가 고려 시대에는 우릉도(羽陵島)로,조선 시대에는 무릉도(武陵島)로 명명됐다고 한다.중앙의 행정력이 미치지못하며 해적의 본거지가 되자 공도(空島) 정책으로 한동안무인도가 되기도 했다.그러다 울릉도가 비어 있는 것을 틈타 왜구들이 드나들자 고종 즉위 19년째 되던 1882년에 왜구를 소탕하고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한편 1900년에는 행정구역을 손질하며 이름을 지금의 울릉도로 바꿨다. 울릉도의 성쇠는 오징어와 운명을 같이했다.부근에서 오징어가 많이 잡히던 1974년에는 주민등록 인구는 무려 2만9,810명에 달했다.오징어를 잡으러 외지에서 온 사람들까지 합하면 7만명에 육박했다고 한다.그러나 이를 정점으로 해마다 많게는 600여명에서 적게는 300여명씩 줄었다.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자녀들의 명문 학교 진학을 먼저 고려하게 됐다는 것이다. 울릉도는 용암이 분출해 만들어진 화산섬이다. 73.15㎢로서울 여의도의 20배가 조금 넘고 주위에는 44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딸려 있다.하와이를 비롯한 대개의 화산섬들이그렇듯 자연경관이 수려하다.또 기후도 해양성 기후로 육지와 다르다 보니 섬잣나무·솔송나무·너도밤나무 같은 육지에서 볼 수 없는 나무들이 39종이나 자라고 있다.섬 전체가한 폭의 그림이요,생태 학습장인 것이다. 울릉도의 진가는 동해의 파수꾼이라는 대목에서 더욱 빛난다.강원도 삼척에서 따지면 134㎞,경북 포항에서 재면 217㎞나 되는 넓고 푸른 동해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동쪽으로 94㎞ 앞에다 독도라는 보초까지 세워 놓지 않았던가.올 가을에는 단풍놀이 대신 울릉도를 한번 다녀올 일이다.뱃길로 넉넉잡아 3시간이면 닿을 울릉도를 찾아 소중함을 직접 느껴 보았으면 하는바람이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한강 그곳에 가면] 육지속 호수 ‘소양댐’

    물안개 피는 춘천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간직한 육지속의거대한 호수 소양댐이 벌써부터 초가을 정취를 담아내고있다. 지난 봄의 가뭄과 여름의 집중호우를 의연하게 담아낸 댐 주변 길섶에는 코스모스와 풀벌레가 어우러지고 울창하게 늘어선 활엽수들이 벌써부터 누런 낙엽을 드리우고있다. 아침 저녁 싸하게 피어 오르는 물안개도 여름을 저만치 밀어내고 있다. 소양댐은 춘천시와 인제군,양구군,고성군,홍천군 등 강원도 영서지역 5개 시·군을 흐르는 유역면적만도 2,703㎢에이르는 장대한 담수호다. 저수용량 29억t,물 깊이만도 198m로 상상을 초월한다. 73년 국내 처음 만들어진 다목적 사력댐(돌과 자갈을 쌓아 만든 댐)으로 댐 자체도 볼만하지만 주변의 청평사와 세월교 등 볼만한 곳도 많다. 우선 댐에 오르면 탁트인 담수호와 함께 호수 건너에 붙여 놓은 ‘소양강다목적댐’의 대형 글자가 눈에 들어오고선착장에서 오가는 배들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정상에는 커피숍과 식당 그리고 길가에 늘어선 알루미늄박스 상인들이 철마다 맛깔스런 음식을 내밀며 분위기를돋군다.요즘에는 산더덕이나 옥수수,찐고구마 등 고향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음식들이 정겹다. 댐에 오르기 위해서는 평일의 경우 승용차로 바로 댐까지오를 수 있지만 주말이나 관광철에는 입구에 승용차를 주차한 뒤 셔틀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소양댐이 간직한 청평사는 가을이 좋다.댐에서 뱃길로 10분, 또다시 터벅걸음으로 30분이면 사찰까지 족하다. 천년사찰로 향하는 길은 계곡과 산이 잘 어우러져 있어 세상근심 덜고 홀가분하게 돌아오기 안성마춤이다. 소양호 한쪽에 우뚝 솟아있는 오봉산 기슭에 자리한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창건됐으며 조선 명종때 보우선사가 중건,대사찰이 되었단다.한국전쟁때 거의 소실된것을 70년대 전각들을 새로 짓고 회전문을 보수하고 범종각과 요사채를 앉혔다. ‘섬 속의 절’ 청평사로 이어지는 길은 철길, 버스 혹은승용차, 뱃길, 걷는 길 등 교통편을 갈아타는 재미 때문에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짱’이다. 소박하고 단아한 정취를 풍기는 청평사 위로 우뚝 솟은오봉산(해발 779m)은 아기자기한 암릉길의 스릴에다 바위봉우리 아래 소양호가 펼쳐져 있어 산행후 관광과 뱃길의재미까지 겸할 수 있어 가족 산행지로도 제격이다. 댐으로 오르기 전 소양댐을 건설할 당시 놓았다는 샘밭골삼거리와 동면 월곡(月谷)리를 잇는 ‘세월교’도 명물이다.콧구멍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다 해서 일명 ‘콧구멍 다리’로도 불리는 이 다리는 여름이면 춘천시민들의 피서지로,겨울이면 낚시꾼들의 빙어잡이 명소로 인기다. 세월교주변의 카페와 막국수집들도 덩달아 호황이다. 세월교는 달빛을 씻으며 마음을 정갈하게 헹구는 세월(洗月)의 다리라는 뜻.수온차가 심해 이곳에는 사철 물안개가피기도 한다. 소양댐은 내륙의 바다인 만큼 새벽이면 주변 어부들이 그물을 걷기 위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물살을 가르는 생활터전이기도 하다. 예전같으면 노를 저어가며 몇 시간씩 그물걷이에 나섰던 어부들. 이제는 동력선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얼마전 오음리고개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육지속의 섬이었던 호수건너 마을품안리와신이리 주민들의 생활터전이기도 했다. 오지마을이 다 그렇듯 품안리는 목적없이 한가로움을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물속의 또하나의 마을인 신이리 곳곳에서는 고기를 낚는조사(釣師)들이 눈에 띈다. 보트를 갖고 있는 어부들은 이들을 낚시터로 안내해주면서 배삯을 받거나 민박으로 부수입을 올리지만 IMF 이후로는 이마저도 신통치 않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올 가을여행은 조용한 소양댐으로 떠나보자.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
  • 전북 진안 용담호 배 좀 띄워주세요

    “용담댐에 물이 차면서 길이 끊겼습니다.뱃길이라도 열려야 생업에 지장이 없습니다” 전북 진안군지역 4개면 주민 3,000여명이 영농과 임야관리애 필요한 길이 물에 잠겼다며 배를 띄워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진안 용담다목적댐은 올들어 집중호우가 내리면서방류량보다 유입량이 많아 해발 250여m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다. 때문에 아직 이설도로가 완공되지도 않았는데 기존 도로가 물에 잠겨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도로 수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은 정천면 망화·모정리,안천면 삼락리,상전면 수동·월포리,용담면 수천·호계리,주천면 신양리 등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설도로 9개 노선 18.3㎞의 도로가 언제 완공될지 모르기 때문에 우선 배를 띄워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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