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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직자 에세이] 이어도, 저 평화의 땅을 찾아

    세계지도 어디를 뒤져봐도 발견할 수 없는 섬.그러나 제주도민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그리움으로 전설처럼 떠도는 섬.제비가 강남 가는 길의 남쪽바다 어디쯤,그곳에 ‘이어도’가 있다. 아무도 이어도를 본 사람은 없다.그곳을 본 사람은 천국 같은 그곳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돌아오지 않았다. 예의 제주 해안가 사람들은 어머니는 해녀,아버지는 ‘풍선’이라는 돛배로 전복을 따고 고기를 잡으며 살았다.지아비가 망망대해 뱃길을 떠났지만 온다간다 기별이 없을 때 섬에 남은 사람들은 그가 이어도로 갔다고 믿었다.그 곳에서 현세의 모든 고난과 갈등을 벗고 지극히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뿐 어느 문헌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어도는 그러나 ‘이어도 사나’라는 제주해녀의 노래로 막연하나마 실체가 전해지고 있다.“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우리 어멍 날 날적에/어느 바당 미역국 먹엉…/짐녕뒷개 나 가온 섬이여/잠자당도 세한숨 난다/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는 이청준의소설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지만 이후 같은 제목 정태춘의 노래로 더 가슴을 울린다.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 곳이 어디메뇨/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어둠 속으로 물결 너머로/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라는 구절은 언제 들어도 좋다.몇해 전 국립해양조사원은 마라도 서남쪽 150㎞ 지점에 위치한 소코트라초(Socotra Rock)를 해도상에 이어도로 표기한 바 있다. 1488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이끄는 포르투갈 탐험대는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양으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게 된다.디아스 일행은 이곳이 아프리카의 끝이라 확신했고,이곳을 돌면 인도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이후 이곳은 희망봉이라 불리며 미지의 대륙 아시아로 가는 유럽인들의 뱃길이 된다. 이어도와 희망봉의 절묘한 조화,그 어울림처럼 제주가 21세기 대한민국의 희망봉으로 떠오르고 있다.38년 도민 숙원을 담아 출범한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이어도의 꿈을 현실로 바꿔 놓기 위해당당히 드넓은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가고 있다.이제 이어도는 그저 막연하게 ‘기다리거나 찾아가는’ 땅이 아니라 도민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나가는’,탐라 천년의 꿈을 완성시키자는 우리 모두의 의지인 것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는 결코 제주도민만의 이상향을 실현하자는 게 아니다.세계 평화의 섬,동북아 신문명의 중심지로서 한국사회 전체를 이끄는 예인선으로,세계인 누구나 동경하는 신세계로 만들자는 것이다. 계미년 새해가 밝는다.태양이 변함없이 떠오르듯 우리는 이제 한 해를 시작하는 희망의 이야기를 가슴의 빗장을 열고 진솔하게 나누어야 할 것이다.누군가의 말처럼 ‘희망이란 오늘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다가서는 창(窓)’이기 때문이다.
  • 北, 미사일 수출 시인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3일 담화를 통해 “우리나라 무역 짐배인 ‘서산호’에는 예멘과의 합법적인 무역계약에 따라 미사일 부품과 일련의 건설자재들이 있었고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부합되는 모든 항행 조건들을 다 갖추고공인된 뱃길로 정상 항행을 하고 있었다.”면서 “미국이 백주에 이를 침범한 것은 공화국의 자주권을 침해한 용납못할 해적행위”라고 비난했다. 대변인은 또 “우리는 미국의 항시적인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미사일을 생산하고,외화벌이를 목적으로 그것을 수출하고 있는데 대해 명백히 밝힌 바 있다.”고 밝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거문도

    거문도는 여성적 섬세함이 가득한 섬이다.기암괴석들은 섬을 둘러싸고 있되 거칠지 않다.겨울 문턱에 들어섰지만 철모르는 야생꽃이 바위틈에 얼굴을내밀 정도로 기후가 온화하다.산엔 진초록 동백숲이 들어차 있고,나무마다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꽃망울이 가득 매달려 있다. 그래선지 겨울을 맞은 육지 사람들은 누이 품속같이 포근한 거문도를 찾는다.12월,겨울 문턱에 찾은 거문도.여수항을 떠난 배가 300리 뱃길을 달려 처음 닿는 곳은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거문항이다. 거문도는 동도(東島),서도(西島),고도(古島) 3도로 이루어져 있는데,거문리는 고도에 자리잡은 거문도의 중심지.여관과 민박집,식당들이 몰려 있다.거문도 나들이도 이곳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먼저 10년전 생긴 연륙교인 ‘삼호교’를 타고 서도로 건너간다.서도의 수월산 남쪽 끝 봉우리엔 ‘우리나라 최초’‘동양 최대’란 수식어가 붙은 거문도등대가 있다.1905년 불을 밝힌 이 등대는 40㎞ 밖에서도 불빛을 볼 수있다고 한다. 이곳은 등대 자체보다도 등대까지 오를 때 지나는 동백숲길과,등대에서 바라보는 거문도 비경이 포인트다. 수월산엔 동백나무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뒤덮여 있다.전체 나무의 70%가 동백나무다.나무들도 수십년에서 수백년 자라 뒤엉키면서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육지에도 동백나무 군락이 몇 군데 있지만 막상 이곳을 찾아본 이들은 다른 곳은 눈에 차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동백숲엔 아직 푸른 빛이 도는 꽃망울이 가득 매달려 있다.이따금씩빨갛게 꽃을 피운 것도 있는데,꽃이 제법 많은 곳은 벌써 떨어져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거문도 동백은 지금부터 하나둘씩 꽃망울을 터뜨리다가 2월이면 만개해 온 산을 붉게 물들인다. 등대 옆 전망대에 오르면 수월산 동쪽 사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깎아지른듯한 절벽아래 솟은 바위들,바위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만들며 부서지는 파도,벼랑을 날아 오르내리는 갈매기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수월산이란 이름이 생긴 유래가 재미 있다.이 산은 평탄한 바윗길을 사이에 두고 둘로 나뉘는데,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이면 바닷물이 ‘쉽게’ 산(바윗길)을 넘나든다고 하여 수월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바윗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 봉우리엔 등대가,또 한쪽 봉우리엔 보로봉이 자리잡고 있다.보로봉 오르는 길도 동백나무 터널을 이룬다.바윗길 곳곳엔 바위틈을 비집고 얼굴을 내민 야생화들이 겨울이란 계절을 무색케 한다. 거문도는 약 한 세기전 영국이 러시아 남진을 막기 위해 강제 점령했던 역사적 아픔의 현장.1885년 영국 해군이 점령해 2년여간 주둔했으며,당시 섬에서 사망한 군인묘지가 아직 거문리에 있다.원래 9기의 묘가 있었다고 하나지금은 3기만 남아 있다. 거문항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28㎞쯤 가면,바위 봉우리가 100개에서 하나 모자라 이름 붙여졌다는 백도다.35개 섬이 상백도와 하백도로 나뉘어 군도를 이루고 있는데,부처님바위,피아노바위,도끼바위,형제바위,물개바위 등 기암괴석들이 자태를 뽐낸다. 백도는 우리나라에서 아열대 희귀동식물의 서식밀도가 가장 높은 곳.가마우지를 비롯한 휘파람새 동백새 바다직바구니 흑비둘기 등 30여종의 조류와,풍란 땅채송화 등 해양식물 43종이 서식하는 생태보고다.현재 생태계 보존을위해 백도 일원은 명승지 제7호로 지정돼 있으며,일반 관광객들의 상륙이 금지돼 있다.때문에 배를 타고 섬 주위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거문항에서 유람선 ‘두리둥실호’를 타고 백도를 둘러본 뒤 다시 거문항으로 돌아오는 데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유람선이 거문항에서 부정기적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미리 시간을 알아보고 나서는 게 좋다. 거문도 임창용기자 sdragon@
  • 레저단신

    ●휘닉스파크 스키 초보자도 산 정상에서 산 밑까지 질주할 수 있는 ‘파노라마’슬로프를 최근 개장했다.초보용 정상코스로는 국내 첫 슬로프.폭 65m의 초광폭,2.4㎞의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산 능선을 따라 슬로프를 조성해 경사를 평균 10도로 낮췄기 때문에 가족 단위의 초보자들도 어려움 없이 달릴 수 있다. 휘닉스파크는 또 대연회장과 공동 취사시설을 갖춘 76실 규모(800명 수용)의 유스호스텔 ‘휘닉스빌’을 최근 개장했다.(02)508-3400. ●거문도관광여행사 뱃길로 한려수도를 지나 섬진강을 거슬러오르는 이색 크루즈상품 ‘드림세일링’을 내놓았다.여수 향일암 일출 감상후 여객선터미널에서 유람선 ‘아라리호’를 타고 오동도와 광양만을 지나 섬진강 하동포구까지 이르는 코스로,바다와 강을 아우르는 국내 첫 크루즈 상품이다.080-665-4477. ●롯데월드 겨울방학을 맞아 ‘2002 겨울방학 스포츠 대특강’을 마련했다.10일부터 스케이트와 수영,볼링 등을 초급,초중급,중급,중상급,상급 등 5개반으로 선착순 접수하며,각 종목 10일 속성반도 운영한다.일정은 내년 1월3일부터 2월27일까지이며,수강료는 스케이팅 9만원,수영 6만원,볼링 4만원.(02)411-2000. ●서울랜드 부모의 어린시절을 보여주는 ‘그때 그시절’ 특별전을 내년 2월23일까지이벤트홀에서 연다.극장앞 풍경,교실 모습,도시 거리 등 60여개의 테마로 구성된 세트장을 마련했다.전시와 함께 ‘어릴적 놀이 체험’ 및 ‘도자기 체험’,‘그 시절 먹을거리 코너’ 등을 마련,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02)504-0011.
  • 이번주말 젓갈여행 어떨까

    밥숟가락 무거울 때 입맛 돋구는 데 젓갈만한 게 있을까.갓 퍼낸 쌀밥 한술 떠 숙성한 조개젓 한점 얹어 먹다 보면 언제 입맛이 없었느냐는 듯 밥 한 주발이 뚝딱이다. 이번 주말 딱히 나들이할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면 충남 논산으로 젓갈 여행이나 떠나보면 어떨까. 12일부터 18일까지 강경읍 강경포구,젓갈시장 및 옥녀봉 일대에서 전국 최대의 ‘강경젓갈 축제’가 펼쳐진다. 100년 전통의 강경 젓갈은 현대인 입맛에 맞게 저염도 및 저온 처리시설로 숙성시키는 게 특징.토굴이나 저온 저장고에서 3개월간 숙성시킨다. 올해로 6회 째인 강경젓갈 축제엔 매년 수십만명이 찾아오며,1만명 이상이 직접 젓갈을 구입해 간다.젓갈가격은 가을에 담그는 새우젓(추젓)이 1㎏에 5000∼7000원,황석어젓 2000∼4000원,조개젓 1만∼1만5000원,명란젓 2만5000∼3만원이다.이번 축제에선 상인들이 예년의 할인판매 대신 덤을 듬뿍 주기로 했다. ‘강경 그리고 젓갈! 그 맛과 멋으로의 초대’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에선 12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갱갱이별곡을 주제로한 마당극,옥녀봉에서의 선녀춤,농악한마당,나루터에서의 가을음악회 등이 이벤트행사로 열린다. 또 관광객 젓갈김치 담그기를 비롯,젓갈 주먹밥 체험,젓갈통 메고 달리기,젓갈 캐릭터 그려주기 등 젓갈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이밖에 금강변에서 강경포구 뗏목타기,강경포구 뱃길여행,황포돛대 재현 등이 이어진다.문의 강경젓갈추진위원회(041-730-1701∼3). 임창용기자
  • 활짝 열린 ‘南北의 길’/ 하루 1000여대 ‘하늘길 지킴이’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개최로 남북간에는 획기적인 쌍방향 ‘남북의 길’이 열렸다.지난달 23일 평양∼원산∼김해를 잇는 ‘하늘길’이 열렸으며 닷새만인 28일 오전에는 만경봉92호가 부산항에 닻을 내림으로써 역사적인 동해 ‘뱃길’이 처음 열렸다.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하늘과 뱃길을 여는 ‘첨병’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인천관제소 24시 평양측 관제사:“줄루 알파(ZA),여기는 에코 델타(ED).트랜스퍼(항공기 정보전달) AK923편.고도 3만 9000피트.칸수지점 이동중.5분후 핸드 오프(항공기관제이양).” 우리측 관제사:“에코 델타,여기는 줄루 알파.AK923편 레이더 포착,핸드 오프.수고했음.” 지난달 27일 오전 10시49분.북한 선수단 2진 152명을 태운 고려항공 소속 전세기 AK923편이 평양 순안비행장을 이륙한 뒤 평양관제구역을 막 벗어나 우리측 비행정보구역으로 들어서기 직전 평양관제소와 인천관제소(항공교통관제소)간에 이루어진 교신내용이다. 여기서 ‘줄루 알파’는 우리측 관제사의 애칭이고 ‘에코 델타’는 평양측 관제사의 애칭이다. 대개 각국의 관제사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애칭을 갖고 교신을 한다.또 칸수(KANSU)지점은 동경 132도28분,북위 38도38분에 위치한 공해상공(울릉도 동북쪽 160㎞)으로 평양관제구역과 인천관제구역의 교차점이다.특히 칸수지점은 하루 40편 가량의 국제선 항공기가 통과할 정도로 동해상의 새로운 영공 관문으로 각광받고 있다.고려항공 전세기는 오는 14일쯤 아시안게임이 끝날 무렵 김해공항에 두차례 정도 이착륙할 예정이다. 요즘 우리나라 전역의 영공출입을 허가하고 통제하는 하늘의 불침번 인천관제소(소장 박향규)가 무척 바빠졌다.평소 인천관제소의 고공관제를 거치는 항공기는 하루 평균 860대.이 중 국내 공항에 이착륙하는 항공기는 650대 가량이고 나머지는 그냥 통과하는 외국의 항공기들이다. 그러나 최근 8월과 9월 두달동안 하루 평균 1000대 이상으로 관제 수량이 급증했다. 우리측 영공을 노크하는 항공기들이 부쩍 늘어난 이유는 최근 새로 뚫린 남북간 동해 직항로에다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선수단을 수송하는각국 전세기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11일 말레이시아 승마선수들이 사용할 말 12마리가 특별 전세기편을 이용,김해공항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이란,우즈베키스탄,카타르,키르키스스탄,중국 등 10개국 소속 전세기들이 아시안게임 기간에 증편됐다.또 오는 18일까지 부산과 타이베이간 전세기가 각각 7회 운항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인천관제소 중앙 레이더실에 근무하는 200명의 관제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지내고 있다.만약 한 순간이라도 관제 실수를 하는 날에는 대형참사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항공교통관제소의 한판식(48) 관제실장은 “관제사들은 하루종일 긴장속에 살아야 하는 고독한 직업이다.”면서 “현재 30명의 민간항공기 관제사와 4명의 군용기 관제사가 각각 한 팀이 되어 하루 3교대씩,24시간 우리 영공을 0.1초도 놓치지 않고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시간과 공간이 다른 독특한 근무 분위기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색지대다.몸은 한국에 있지만 근무시간은 영국 그리니치천문대시간과 똑같이 움직이고 있다.지구상의 모든 항공기 관제는 국제표준시계를 기준으로 정한다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원칙 때문이다. 비행기의 관제는 대개 3단계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인천발 도쿄행 비행기일 경우 이륙시에는 인천관제탑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이륙 후 지상 2만 2000피트 상공까지는 서울접근관제소의 관제를 받는다. 그 다음에는 인천관제소가 관제한다.동해상공 칸수구역을 통과함과 동시에 도쿄관제소에 관제이양을 하면서 우리측 관제가 모두 끝나게 된다.우리나라 영공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들은 그 반대 순이다. 인천관제소의 관제구역은 우리측 비행정보구역(FIR)의 국제항공로 11개와 국내항공로 5개 등 약 40만㎢의 영공구역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비행정보구역의 항공기 관제 업무를 담당하는 항공교통관제소가 대구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이전한 것은 1년전 이맘때. 급증하는 항공교통 수요에 대비해 3년여 동안 611억원의 예산을 들여 새로운 첨단 교통관제시스템을 구축하면서부터다.이로 인해 항공기 항적 동시처리능력이 350대에서 1000대로 늘어났다. 항공교통관제소는 1952년 주한 미공군이 대구비행장에 설치한 뒤 58년부터 국방부가 인수,운영해 오다 95년 건설교통부로 이관됐다. 김문기자 km@ ■부산 항만관제소 “뱃길로 온 北손님도 우리가 인도” “만경봉92호,여기는 부산관제소입니다.” “부산입네까? 여기는 만경봉92호입니다.” “아,예.부산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저는 델타입니다.콜사인(호출부호) 주십시오.” 지난달 28일 새벽 5시30분 부산항만관제소와 만경봉92호 사이에 역사적인 첫 교신이 이루어졌다. 이어 7시30분쯤 항만관제소의 지시에 따라 도선사(導船士·파일럿) 박영철(56·부산 도선사협회장)씨가 파일럿 전용인 동백섬호를 타고 만경봉92호쪽으로 달려갔다. “만경봉92호,여기는 부산관제소입니다.우리 파일럿이 귀국 선박으로 가고 있습니다.좌현에서 배에 태우고 안전하게 입항하십시오.” “부산관제소,알았습네다.” 이어 부산관제소는 부산외항에서 출항중인 아일랜드 선적 1만t급 상선을 무선으로 호출했다. “아일랜드호,여기는 부산관제소.귀선과 만경봉92호가 조우할 위험이 있으니 만경봉92호 뒤쪽으로 선수를 돌리십시오.” 잠시후 만경봉92호는 부산관제소의 지시에 따라 부산 앞바다의 경도 섬과 외국 선박들을 피해 조심조심 다대포항으로 입항했다. 부산시 영도구 조도에 위치한 부산항 관제소는 1분당 5건 이상,하루 1000여건 정도 교신이 이루어질 정도로 숨가쁘게 돌아간다. 관제소에서 일하는 항만 관제사는 일반인들에겐 낯선 직업이다.항공 관제사가 하늘의 비행기를 안전하게 이착륙시키거나 공중 충돌을 방지하는 일을 한다면,항만 관제사는 항만에 드나드는 각종 선박을 교통정리하는 전문가다. 우리나라는 지난 90년부터 본격적인 항만관제 시스템을 갖췄다.부산항 관제실은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다. 이곳에서는 실장 1명을 포함,19명의 운영요원이 연중무휴 24시간 일하고 있다.이곳에서 일하는 관제사들은 대부분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들이다.국내 첫 여성관제사인 김인숙(29)씨도 이들과 함께 근무중이다. 항만 관제사는 3급 항해사 이상의 면허를 갖고 승선 경력이 3년 이상 돼야 관제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부산항의 관제구역은 해운대 동백섬∼오륙도∼생도∼서도를 잇는 항계선 안쪽이다.부산항에 입항하려는 선박들은 해상 5∼6마일 해점에서 진입보고(개항질서법)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부산 앞바다의 작은 섬인 조도,영도,용호동 등 5곳에 설치된 항만 레이더가 선박들의 움직임을 샅샅이 체크하면서 부산항 관제실로 실시간 상황 중계를 한다. 만경봉92호에 승선했던 도선사 박영철씨는 “만경봉92호 승무원들은 영어실력이 유창했다.”면서 “같은 민족이어서 외국 승무원들보다 매우 호의적으로 대해 줬다.”고 말했다. 부산 김문기자 ■해경 경비선 15척에 특공대까지… 긴박했던 '만경봉 92호' 호송작전 지난달 28일 오전 만경봉92호가 부산 다대포항에 입항하기까지 해양경찰이 펼친 해상호송 작전은 한편의 007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긴박하고 치밀하게 전개됐다. 이날 새벽 5시30분 부산 항만 관제소와 만경봉92호 사이에 첫 교신이 이뤄진 직후 부산 해경은 다대포동남쪽 25마일 해상에서 제1선 대기중인 1005호 경비함에 기동지시를 내렸다.3단계의 호송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어 301함과 경비정 3척으로 구성된 제2선팀이 부산항 제8부두에서 다대포 동남쪽 15마일 해상의 ‘브라보 해점’으로 긴급 발진했다. 새벽 어둠이 완전히 걷힌 아침 7시 정각,파고가 2m로 높아진 브라보 해점.제1선에서 호송해온 1005호함이 맨 먼저 보이기 시작했고 곧이어 만경봉92호의 굴뚝에 새겨진 인공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005,여기는 301.지금부터 우리가 접수하겠습니다.” “수신완료,수고바람.” “만경봉92.여기는 301.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다대포항까지 우리가 안내하겠습니다.” “반갑습네다.301.” 우리측 해경과 만경봉92호간의 삼각 교신 후 만경봉92호 좌우현과 선미에 각각 경비정 1척씩이 배치됐다.301함이 0.6마일 정도 앞에서 기동하면서 2단계 호송작전에 돌입했다. 약 30분쯤 뒤 다대포 앞바다 5마일 해점에 이르자 검역 및 세관선,출입국관리선 등 5척이 만경봉92호에 다가갔다.우리측 관리들이 승선해 입국절차에 들어갔다. 바로 이때 한반도기 등을 단 어민총련 소속 어선 49척이 갑자기 나타나 만경봉92호로 일제히 접근하면서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자 인근에서 몰래 대기중인 경비정 3척이 긴급 출동,이들의 기동을 가로막았다.해경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경비정 2척을 추가로 출동시켰고 다대포항 인근에 대기중인 해경 특공대 8명을 특수경비 작전에 투입했다. 아침 8시.만경봉92호가 내항으로 들어가 접안하자 2시간여에 걸친 호송작전은 무사히 끝났다. 부산 김문기자
  • 밤섬 실향민들의 고향 방문

    ‘마포나루에서 한강을 건너던 황포돛배로 고향 밤섬을 찾는다.’ 철새들에게 고향을 빼앗긴 마포구 당인동의 ‘밤섬’ 주민 200여명이 다음달 2일 고향 방문에 나선다. 이들은 마포구 관계자들과 함께 이날 오전 11시 한강시민공원 선착장을 출발,그리던 고향땅 ‘밤섬’을 밟는 것.실향민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기 위해서다. 고향가는 뱃길에는 그들 또는 고향의 조상들이 수백년 전부터 만들어 사용했던 전통 황포돛배와 바지선이 이용된다. 고향에서 이들은 먼저 그 옛날의 선착장(지금의 서강대교 밑)부근에서 귀향제를 지내고 자신들의 방문을 조상과 마을신께 알린다. 실향민 대부분은 34년째 강건너 언덕배기 마포구 창전동으로 옮겨 살고 있지만 1년에 단 한차례 이 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 밤섬이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도심속의 철새도래지로 알려지면서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탓이다. 밤섬은 지난 1968년 한강물길을 곧게하고 여의도 개발에 필요한 석재조달을 위해 폭파돼 주민 62가구 443명이 강제 이주됐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책/인듀어런스-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극한 상황서 빛난 위기관리 능력

    마르코 폴로,페르디난드 마젤란,로알 아문센….인이 박히도록 들어온 세계적 탐험가들 뒤에 나란히 놓여 마땅한 이름이 하나 더 있다.어니스트 섀클턴.미국의 자유기고가 캐롤라인 알렉산더가 쓴 ‘인듀어런스-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뜨인돌 펴냄)는 목숨을 담보한 그의 남극탐험기를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고 있다. ‘새삼 웬 남극탐험기?’라며 의아해할 독자들도 있겠다.그러나 술술 책장이 넘어가는 당의정 같은 신간들 틈바구니에서 오히려 책은 진가를 더한다.책의 원제인 ‘인듀어런스’(The Indurance)는 1914년 27명의 탐험대를 태우고 남극탐험을 떠났던 배의 이름.예기치 않은 재난으로 사투를 벌이다 전원이 무사생환하기까지 634일간의 투쟁기인 책은,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질만한 한편의 인간승리 드라마다.위기를 극복하는 자세와 지혜,특히 CEO 독자들에게는 위기관리 능력과 진정한 리더십을 제시한다. 1914년 12월5일.아일랜드 태생의 패기만만한 극지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26명의 탐험대원들을 이끌고 남극대륙횡단길에 올랐다.‘인내’를 뜻하는 배 이름도 자신이 직접 붙였다.그러나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탐험은 실패하고,그것이 ‘위대한 실패’로 두고두고 세인들의 입길에 오르내릴 것이란 사실을. 인듀어런스호는 남극권의 관문인 사우스 조지아 섬의 포경기지를 출발,어마어마한 얼음 장애물들을 헤치며 1600㎞를 무사히 항해했다.그런데 운명이 장난을 걸어왔다.부빙(떠다니는 얼음덩어리)들 사이에 배가 갇히더니 설상가상 기온 급강하로 다음날엔 꼼짝없이 얼음바다에 묶이고 만 것.1915년 1월24일.최종 목적지까지 고작 150㎞를 남겨놓고서였다. 남극의 망망한 얼음바다 위에서 뱃길을 열려는 대원들의 투쟁의지는 눈물겨웠다.칼과 쇠지렛대로 부빙들을 잘라내봤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부빙에 묶인 지 꼭 한달만인 2월24일 탐험대장 섀클턴은 눈물을 머금고 항해중단을 선언했다. 대원 들의 면면은 다양했다.일반선원에서부터 전문선원 의사 사진작가 조각가 목수….이 책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가 사진작가 프랭크 헐리다.대자연을 상대로 한 대원들의 피나는 투쟁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해둔 덕분에 책은 그 어떤 재난영화보다 더 사실적 감동이 있는 다큐멘터리가 됐다. 1916년 8월30일.전 대원들이 온전히 구조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섀클턴은 냉정을 잃지 않는 리더십을 발휘했다.그러나 책은 단순히 섀클턴 개인의 탐험일지 쪽에 무게를 싣진 않았다.죽음의 바다에 갇혀서도 대자연의 질서 앞에 겸손했던 대원들의 자세도 오래도록 뇌리에 남을 듯하다.“환상적인 저녁이다.반짝거리는 서리가 대기를 가득 채웠다.”“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얼음꽃은 분홍색 카네이션이 만발한 꽃밭을 닮았다.”(헐리의 일기) 남극의 광활한 얼음바다,부빙에 갇혀 점점 기울어가는 배,섀클턴과 대원들의 지리한 투쟁일지 등을 현장사진들로 음미하는 맛은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과정으로서의 실패’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무릎을 칠만하다.죽음의 사우스 조지아 섬을 마침내 빠져나오며 섀클턴은 되뇌었다.“고통당하고 굶주렸지만 승리했고,기었지만 영광을 잡았다.” 3만원. 황수정기자 sjh@
  • [씨줄날줄] 말라카 해협

    해군이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하게 된다고 한다.한국형 구축함(KDX-Ⅲ)에 최첨단 이지스 전투 체계를 장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떠 다니는 요새라는 이지스 함을 갖게 되면 한국 해군은 ‘대양 해군’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한다.멀리 동남아의 말라카(Malacca) 해협까지도 작전 반경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해군력을 말하라면 기껏 연평도나 떠 올리는 우리네이고 보면 말라카 해협이 얼른 가슴에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말라카해협은 여느 뱃길이 아니다.태평양에서 남중국해를 거쳐 인도양에 이르는 ‘바다 비단길(Silk Road)’의 길목이다.상품이나 석유를 중동이나 유럽으로 실어 가고,사 오는 유일한 교통로이다.세계 13위 무역국이요,세계 4대 석유 수입국인 우리에겐 말라카 해협은 ‘생명선’일 것이다.그럼에도 속수무책이었다.손이 미치지 못했다.그러나 이지스함이 생기면 달라진다.말라카 해협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말라카 해협은 마(魔)의 뱃길이기도 하다.폭이 좁은 곳은 40㎞밖에 안 된다.골목길 수준이다.유조선같은 대형 선박만 하루에 200척이 오가기에는 턱없이 비좁다.대한해협도 아무리 좁아도 50㎞가 넘는다.뿐만이 아니다.평균 수심이 50m에 불과하고 중앙과 연안 곳곳에는 여울이 도사리고 있다.능숙한 항해사라도 900㎞ 말라카 해협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가는 참사를 면키 어렵다. 말라카 해협에는 암초만 있는 게 아니다.밤낮없이 해적이 들끓고 있다.오가는 상선이 모두 사냥감이 된다.폭이 좁아지면서 다른 배와 충돌을 피하느라고 속도를 줄이면 자동 소총과 위성위치시스템(GSP)까지 갖춘 초고속 해적선이 접근한다.잔인한 수법은 옛날 해적과 똑같다.선원을 수장시키고 물건과 함께 배를 통째로 빼앗아 달아난다.한해 평균 500건의 해적 사건 60% 가까이가 말라카 해협 일대에서 벌어 진다.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은 컴퓨터 게임에서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성능을 발휘한다고 한다.얼마 전 서해교전 때처럼 스틱스 미사일의 전파가 감지돼도 피할 필요가 없다.고속정이나 경비정 수를 헤아리며 해군력을 비교하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서해 교전 같은 불상사는아예 없을 것이다.그리고 말라카 해협의 해적들도 한국 상선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기다려 진다. 정인학 논설위원
  • [씨줄날줄] 꽃게

    꽃게는 암컷은 암갈색,수컷은 짙은 녹갈색으로 삶으면 새빨개진다.꽃게찜,꽃게탕,꽃게장 등 식용으로 사랑받는다. 얕은 바다나 내만(內灣)의 수심 30m쯤 되는 모래바닥에 사는 꽃게는 산란기인 5∼9월 중국 양쯔강 하구에서 한반도 서해로 이동한다.한반도 수역에서는 서산 앞바다와 연평도 사이가 최대 서식지다.7∼8월 산란기를 전후한 4∼6월과 9∼11월이 꽃게잡이의 적기다. 북한에서 꽃게는 외화벌이의 중요한 수단이다.특히 해군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사업이다.북방 한계선(NLL) 인근의 꽃게 황금어장에는 북한의 해군사령부 소속 어선들만 조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해교전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지만 99년 연평해전과 마찬가지로 외화벌이 할당량을 채우느라 꽃게잡이 어선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일으켰을 수도 있다. 연평해전과 서해교전 모두 6월에 발생한 것은 북한과 남한이 산란기인 7월부터는 꽃게잡이를 금지하기 때문이다.산란기를 바로 앞둔 6월 말은 꽃게잡이의 절정기다. 남한의 중형 어선은 이틀만조업을 하지 못해도 7000만∼8000만원의 손해를 본다고 한다. 북한은 우리측이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한다. NLL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남한측은 53년 이후 NLL이 50년 가까이 실효적으로 인정돼 왔으므로 ‘응고됐다.’고 주장해 왔다.그러나 북한의 배들이 그동안 한해에도 수십차례씩 NLL을 침범했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북한은 연평해전 이후 ‘서해 5도 통항 질서’를 발표해 서해 5도 북쪽에 설정된 NLL은 인정할 수 없으며,남한에서 서해 5도에 이르는 뱃길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해역이라고 주장했다.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 어선들은 NLL남쪽에서도 당당하게 꽃게잡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연평해전과 서해교전은 남북한의 영해분쟁이지만 꽃게잡이가 빌미가 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남북한이 긴장완화를 원한다면 꽃게분쟁이 다시는 해역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협상을 벌여 공동 어로 구역을 설정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할 듯 싶다. 황진선 논설위원
  • 백제 ‘일광삼존불’ 日서 복제품 온다

    일본 나가노(長野)현 시민들이 과거 백제의 불교전파에 감사하고 한·일 양국의 친선을 다지기 위해 백제가 일본에 전한 불상의 복제품을 반환하는 운동을 벌여 불교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5일 태고종에 따르면 나가노현 ‘도래문화(渡來文化·한국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에 문물을 전해 줌)를 아는 모임’은 나가노현 선광사에 봉안된 ‘일광삼존불(一光三尊佛)’의 모형 불상을 조성,이를 부여 조왕사에 전달하기 위한 회향법회를 오는 9일 나가노현에 있는 일본 태고종 총본사 금강사에서 갖는다. ‘도래문화를 아는 모임’은 나가노현 선광사 암자인 현증원 주지 후쿠시마(福島)를 주축으로 결성된 시민들의 자생적인 모임.과거 한·일 양국의 교류를 추적하는 등 우호증진을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그 첫 사업으로 ‘일광삼존불’반환운동을 벌이게 됐다. ‘일광삼존불’은 백제 성왕(聖王)이 조성하여 552년 선광사에 전해줘 봉안된 아미타불.일반인에게는 전혀 공개되지 않은 채 10년에 한번씩 일왕만 친견할 정도로 귀하게 대접받는 불상이다.선광사는일본 국민이 매년 700만명쯤 참배하는 일본 최대의 사찰.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전야제 행사 때 범종을 타종한 바로 그 사찰로,백제인들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래문화를 아는 모임’은 이 불상의 신비성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불교를 전래해 준 한국(백제)에 사은하는 뜻에서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벌인 끝에 ‘일광삼존불’과 똑같은 불상을 금동으로 조성하게 됐다. 이들은 특히 불상을 옛 백제 수도인 부여에 봉안하기에 앞서 9일 법요식을 여는것을 시작으로 도쿄 오사카 등지의 백제와 인연이 있는 일본 사찰에서 순회전시한다.그 다음 9월 중순쯤 일본을 출발,백제가 일본에 문물을 전해준 뱃길을 따라 10월초 조계종 사찰인 부여 조왕사에 봉안할 예정이다.9일 법요식에는 한국 태고종 이운산 총무원장과 ‘도래문화를 아는 모임’의 후쿠시마 회장과 회원 1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6월을 맞으며

    누가 봄이 너무 짧다고 했던가? 며칠 비가 내리더니,어느새 광화문 주위의 가로수 잎들이 한껏 푸르름을 더해가고우리 곁을 스치는 바람은 계절이 여름으로 다가서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하루가 다르게 월드컵 열기가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2년 전 남북정상회담으로 우리 국민들은 물론전세계가 환호했던 그 때를 떠올려본다. 분단 반세기만에남북의 두 정상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서로 손을 맞잡는 모습은 지금도 우리들 마음에 큰 감동으로 남아 있다.실로역사적 대사건이던 그 날 이후,남과 북은 엄청난 변화를보여주었다.중단됐던 대화가 재개되고,흩어진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났으며 끊어진 철길과 뱃길,하늘길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가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지난해의 경우 9000명가까이 이르고 있으며,남북간 교역도 4억달러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남북관계가 다소 소강국면을 보이면서 실망과 비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기대했던 만큼 남북관계가 빠르게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남북정상회담 2주년을 맞으면서,우리는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정확히 되새길 필요가 있다.지금 세계 모든 국가들은 체제와 이념의 대결을 넘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만약 남과북이 지난날과 같이 적대와 반목을 거듭하면서 민족의 역량을 소모한다면 우리 민족의 밝은 장래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단 한번 남북의 정상이 만났다고 해서 반세기 동안쌓여온 불신의 벽이 하루 아침에 허물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그렇지만 남북정상회담은 새로운 세기의 시작과 함께남북관계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대결과 반목을 거듭하면서 멀어져 가는 관계가 아니라,화해하고 협력하면서 서로 다가서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시적 변화에 일희일비하는것이 아니라,높이 나는 새와 같이 민족의 장래를 멀리 내다보면서,6·15 남북공동선언을 바탕으로 한 걸음씩 평화와 화해협력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모처럼 마련된 기회를 살려 평화공존의 남북관계를 실현해 나가는 것은 이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책무이며,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이다.이를 위해서는 자신감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국민총생산 규모(27대 1),무역고(170대 1),석유소비량(220대 1),민주화를 이루어낸 정치·사회적 저력을 감안한다면 민족의 장래는 우리가 이끌어나갈 수밖에 없다.물론 때에 따라 우여곡절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남북관계가 평화와 공존공영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역사의 큰 흐름이라는 신념을 갖고 일관성있게 노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기다리든,기다리지 않든 봄은 오고또 여름이 오듯이 남북관계가 빠른 시일 안에 원상회복되고 화해와 협력의 푸르름으로 빛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정세현 통일부장관
  • 백령도 ‘기암괴석’ 神이 빚었을까

    인천 연안부두로부터 뱃길 240㎞.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에도착하는 순간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은 것은 유난히 짠 느낌으로 다가오는 까나리 익는 냄새였다.섬 구석구석 까나리액젓을 담가놓은 붉은 고무통이 없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백령도에서 가장 빼어난 볼거리는 해안의 기암괴석들이다. 특히 섬 북서쪽 끝자락에 자리잡은‘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두무진(頭武津)은 보는 이들의 넋을 빼놓을 정도로 아름답다. 장군들이 회의를 하는 모습을 닯았다고 해 붙여진 장군바위를 비롯해 선대암,촛대바위,형제바위,코끼리바위 등이 늘어서 있다.섬 남쪽 콩돌해안 인근에서는 용틀임바위와 사자바위,연봉바위가 볼 만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바위이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촛대바위.그러나 그 닮은 모양으로 따진다면 백령도의 촛대바위가 단연 으뜸이다. 건너편 벼랑에서 본 용틀임바위는 보는 이의 몸을 빨아들이려는 것처럼 관능적이고 고혹적인 느낌을 준다. “언젠가 누드 사진 작가라는 사람을 데려왔더니 대번 ‘모델이 알아서 옷을 벗겠구만.’이라고 말하데요.”라며 길을안내하던 백령면사무소 직원이 귀띔해준다. 콩돌해안은 콩 모양의 작은 자갈로 이루어졌다고 해 이름붙여졌다.천연기념물 392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양한 색깔의 콩돌이 쌓인 해변을 맨발로 걷는 느낌이 상쾌하기만 하다. 백령도의 관문 용기포 선착장 밑으로는 길이가 4㎞에 달하는 ‘사곶 천연 비행장’이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 해안과 함께 세계에 두 곳 밖에 없다는 천연 비행장으로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작전에 이용했다고 한다. 지금도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백사장이 단단하다. 백령도는 심청전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두무진 1㎞ 앞바다는 심청이 공양미 300석에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로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연봉암은 심청이 연꽃을 타고 흘러가다 걸린 바위라고 해 이름붙여진 바위다.백령도 북동쪽 섬 가장높은 곳엔 이러한 효녀 심청을 기리기 위한 심청각이 세워져 있다. 백령도가 초행길이라면 ‘백령8경’을 따라 여행길에 나서면 편리하다. ‘선대비경’(신선이 노닐었다는 두무진 절경),‘백사청송’(천연비행장의 흰 모래와 푸른 소나무의 조화),‘남산두견’(남쪽에 보이는 두견새),‘해구오수’(오후에 바위에 오른물개),‘해모오정’(물까마귀 모자의 애틋함),‘추야안비’(가을밤에 갈매기 나는 모습),‘서해낙조’(기암괴석 사이로지는 주홍빛 낙조),‘객선입항’(선착장으로 배가 입항하는장면)이 백령8경으로 전해진다. 백령도 글 임창용기자 sdragon@ 여행 가이드 ◆가는길=지난 98년부터 쾌속선이 운항된 이후 백령도 가는 길이 훨씬 가까워졌다.인천 연안여객선터미널(연안부두)에서 10시간 이상 걸리던 것이 지금은 4시간도 채 안걸린다.오전 7시10분,낮 12시10분,12시40분 3차례 배가 출발한다.배삯은 편도 4만 3300원.왕복 8만 5600원. 연안부두까지는 경인고속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좌회전해인항로를 거치는 코스가 편하다. 백령도에는 마을버스가 있지만 하루 2차례만 운행되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개인 여행이라면 렌터카(032-836-7001),개인택시(836-0117·0016)를이용하면 된다. ◆먹거리와 특산품=인근 바다에서 금방 낚아 올린 자연산회 맛이 뛰어나다.이곳엔 양식장이 없고 양식 물고기도 반입되지 않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우럭,놀래미,광어가주요 횟감이다.1㎏에 4만원 정도.포구 인근 어느 횟집이나 값이 비슷하다.단체 관광일 경우 어선을 빌려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다.두무진·사항·용기 포구 인근이 주요 낚시터다. 멸치와 비슷한 까나리로 담근 액젓은 1년동안 숙성되는동안에 비린내가 없어져 담백한 맛이 특징.5ℓ 한 통에 1만원이다. ◆잠잘 곳=호텔은 없고 여관과 민박이 있다.여관방 값은 2만 5000∼3만원,민박은 2만원 정도.여름 성수기 때는 10∼20% 비싸게 받는다.문의 옹진군 백령면사무소(032-836-1771).
  • 연륙교 놓이면 좋을줄 알았는데…

    “연륙교가 놓여졌다고 해서 나아진 게 없어요.”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주민들은 요즘 심기가 불편하다.지난해 11월 영흥대교 개통으로 육지화된 뒤 혜택보다는 부담만 늘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급격하게 늘어 깨끗하던 섬마을이 주말·휴일이면 쓰레기 천지로 변해버린다.다리 개통전 하루 0.6t에 불과하던 쓰레기가 요즘은 1.4t으로 두배 이상 늘어나면서 쓰레기 치우는 일이 주민들의 주요일과가 되다시피했다. 더욱 짜증나는 것은 보험료 문제다.연륙교 설치로 영흥도가 도서·벽지지역에서 해지됨에 따라 건강보험료 경감률이 50%에서 22%로 낮아지면서 보험료가 크게 올랐다.그렇다고 마을에 병·의원이 늘어나 의료혜택이 좋아진 것도아니다. 인천∼영흥도간 뱃길이 끊기면서 생긴 버스도 주민들에게 원성이 높다.버스가 하루 4회 운행에 그치는데다 경기도대부,남양,비봉,사강 등을 돌아 인천까지 가기 때문에 2시간30분 이상 걸리기 일쑤다. 주민들은 시화방조제 도로가 확장돼 버스가 운행되면 운행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운임도 현재 5500원에서 1000원가량 내린다는 소식에 기대를 걸어왔다.그러나 지난 3월확장도로가 완공됐음에도 유지관리 책임 등을 놓고 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가 갈등을 빚어 개통이 늦어지고 있다. 주민 김모(45)씨는 “지자체간의 싸움때문에 애매한 주민들만 골병이 든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2000-9595)
  • 울산서도 일본간다

    울산시와 일본 기타큐슈(北九州)사이의 첫 뱃길이 25일 열린다. 울산시는 동구 방어동 울산항 예전부두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이날 낮 12시20분 한·일 국제여객선 취항식을 갖는다고 23일 밝혔다. 심완구(沈完求)울산시장과 해양수산부 관계자,취항 여객선회사인 ㈜무성 관계자,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취항을 축하하는 각종 행사와 국제여객터미널 개장에 이어오후 1시30분 여객선 ‘돌핀 울산호’가 일본 기타큐슈를 향해 첫 출항한다. 울산시와 기타큐슈 사이의 한·일 국제여객 항로 거리는 123마일로 운항시간은 3시간이다.매일 왕복 한차례씩 정기적으로 운항한다.오전 9시30분 기타큐슈를 출발해 낮 12시30분울산에 도착한다.오후 1시50분에는 기타큐슈로 출발해 오후4시50분 도착한다. 취항 선박 ‘돌핀 울산호’는 ㈜무성이 호주 선박회사로부터 137억원을 주고 구입한 790t급 쾌속 여객선으로 길이 54.6m,폭 15.2m,높이 5.5m로 속력은 41노트이다.정원은 승무원10명을 포함해 423명이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부산~日 후쿠오카항로 국적 여객선 20일 첫 취항

    부산과 일본 후쿠오카(福岡)를 잇는뱃길에 국적 여객선이 처음으로 취항한다. 부산에 본사를 둔 미래고속㈜(대표 김창중)은 20일부터부산∼후쿠오카 항로에 정원 222명의 초고속 여객선 코비호(KOBEE·303t)를 매일 운항한다고 15일 밝혔다. 코비호는 최고 속도가 시속 87㎞로 부산∼후쿠오카를 2시간50분만에 달릴 수 있다. 코비호는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월·수·금요일 오전 9시30분 ▲화·목·일요일 오전 11시15분 ▲토요일에는 오전 9시에 출항한다.배삯은 왕복 17만원,편도 8만 5000원.다음달말까지는 20% 할인해 준다. 부산과 후쿠오카 항로에는 카멜리아호와 비틀호,제비호등이 이미 운항하고 있으나 모두 일본 선사들이 투입한 것으로 국적 여객선은 코비호가 처음이라고 미래고속은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강물의 대화-정다일(2)

    “지낼만 하다 안 하다 그런 구분을 버렸습니다.그저 내마지막 정처(定處)이려니 하는 거지요.한 십 년이 돼 가나요.처음엔 묵정밭에 흑염소를 치며 그럭저럭 살았습니다. 이젠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잊었다하는 게 옳겠지요.그동안 내 대화상대라는 것이 강물이거나 그 물결이거나 그아래 조약돌이거나 그 사이 물고기들이었으니….” 나도 이곳에서 강물과 대화하던 시절이 있었다.어둑어둑산줄기와 물줄기를 덮어먹는 어둠이 밀려드는 저녁이면 나는 강으로 내려갔다.그곳에서 어린 나는 밤새 내 곁을 스치며 흘러가는 강물을,몇날 며칠 강물에 씻겨도 사라지지않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을,그리고 쿨럭쿨럭 마른기침에 몸을 뒤척이며 깨어나는 강의 새벽을,그것들에 홀로 사무쳐밤을 새워 울어야 하는 소쩍이의 서러움 따위를 생각했다. 매일 저녁 강에 나가 새롭게 흘러온 강물을 만났다.나는그 저녁 무렵을 좋아했다.저 강 양편의 산줄기 밑자락으로거뭇거뭇 이내가 밀려들고, 강 수면으로 하루살이가 발버둥을 치고,물고기가 뛰어오르는 시간.나는 그 시간이면늘어딘 가로 떠나고 싶어 강에 나가 종이배를 띄우고는 했다. 어떤 날은 내 고무신까지 띄워 보냈기에 어머니가 미탄 장에 가서 사온 신발을 내 발에 억지로 꿰어맞출 때까지나는 맨발이었다.그 무렵 나는 눈치챘다.이내가 곧 어둠이되어 강을 덮어먹는 먹장구름처럼 밀려들 때면 이 강의 저녁을 견디는 일이란 참으로 고단한 짓이라는 것을. 그 날,그러니까 어머니 곁에서 아예 사라지겠다고 처음으로 훌쩍강을 등지던 시간도 저녁쯤이었다.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났고,어머니는 이 개자리집이 마지막 거처였습니다.” 술잔을 들다 우뚝 멈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는 개자리집에서 젊은 시절부터 강을 오르내리는뗏꾼들을 상대로 주막을 열었다. 뗏목은 아우라지를 지나조양강을 거쳐 밤이나 낮이나 떠내려왔다. 뗏꾼들은 험한황새여울을 지나가기 위해 무당소에 이르면 강변에 뗏목을 댔고, 개자리주막으로 올라와 술을 청했다.좋은 시절이었다. 강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마루 밑의 개도 낮술에취해 어슬렁거리다 잠들었다 했을 정도로 흥청거렸다. 뗏목의 끝물이었다. 궁궐떼는 물론이고 서까래떼도 보기어려웠던 뗏목 막바지였다.하루종일 지켜봐야 겨우 부동떼나 화목떼 서너 바닥 내려가면 그만이었다. 그동안 나귀에봇짐을 싣고 부지런히 강마을을 찾아 강을 오르내리던 한남정네가 그 어름에 이 짓도 마지막이라며 개자리주막을스쳐갔다. 칠족령을 넘어 상류의 강마을 찾아간다는 그 남정네는 이튿날 믿지 못할 강바람 같은 기약 하나를 떨구고갔다.이번에는 기어코 이 강의 최상류 오대산 우통수까지다녀오겠다고 했다.그리고 한세월 개자리에서 등 붙이고살겠다고 했다.하지만,아무리 먼 길이라 해도 한 달포면우통수를 돌았을 터이고,또 한 달이면 강을 되짚어 내려왔을 시간이 흘렀건만 코끝도 보이지 않았다.남정네는 징용끌려가 감감무소식인 남정네들만큼이나 돌아올 줄 몰랐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2년이 지났다.강에는 날마다 남정네의 소식을 묻는 물푸레나무 나뭇잎배가 띄워졌다. 3년으로 접어들던 어느 보름달 밝은 밤이었다.마루 밑 누렁이가 달을 베어 물고 컹컹 짖어댔다.한 사내가 절퉁절퉁몸을 심하게 기우뚱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루에 털푸석 주저앉은 사내가 다짜고짜 청했던 물 한 대접을 들이붓고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문지방을 넘었다.사내야 그 남정네가 맞건만 그 좋던 풍채는 다 어디에 떼어먹히고,머리는 쑥대머리요,걸친 것이라곤 어느 집 똥수세미요,다리 한짝은 뒤틀린 싸릿가지 모양으로 배배 꼬였다. 반딧불에 글을 읽어도 좋았을 눈빛이었건만 꾸물꾸물 진물이 배어나는눈자위엔 쉬파리만 닝닝대며 꼬여들었다. 이 강의 시원이우통수가 아닌 검용소란 말이여? 밤낮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렸다.정성이 지극했음인지,남정네는 일년을 반 토막낸그 여름에 훠이훠이 강을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을회복했다.그런 그가 가을 무청을 엮어 뒤꼍 바람벽에 주렁주렁 시래기를 매달아놓고는 또 길을 나서겠다고 말했다. 고향 청풍에 다녀오겠다는 남정네의 말은 아직 색깔 하나변하지 않았던 무청처럼 시퍼렇게 당찬 것이 믿을 만했다. 내 맘에는 그래도 느이 아부지가 첨부텀 끝까정 애오라지내 남정네였다야.니는 느이 아부지를 그래 빼다박았으면서두 성정은 으째 그리두 다른지….어머니의 이야기는 늘 그사람을 내 아버지로 오금박아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남정네와의 언약을 무당소 깊은 강 밑에 갈무리해두었다.하지만 그뿐이었다.강바람을 타고 오르내린 소식몇 점이 무당소를 회오리쳐대다가는 떠내려갔을 뿐이다. 한 뗏꾼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무당소 앞에서 굿을 하던무당이 굿판에 도취되어 스스로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사라져버렸다는 무당소.어머니는 밤을 낮 삼아 무당소 기슭에 넋을 놓고 주질러앉았고,속절없이 흘러가는 강물만 하염없었다.강물은 어머니의 돌팔매질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한바탕 회오리바람 같은 푸념이 지나가고 나면 어머니는 뗏목아라리를 부르며 강을 쓰다듬었고 자신을 위로했다.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도록 가지만, 금전으로 사귄 정은잠시 잠깐이라네.우리 맺은 언약이 강물에 흘러갔나니. 구시월 막바지에 서리맞은 국화라.나를 보세요,함께 갑시다. 그믐 초승달이 뜨도록 놀다 가세요.무당소 황새여울에 떼를 띄워놓았네.무당소 개자리집아 술상 차려 놓게나. 내가 흥얼거리던 뗏목아라리를 따라 부르던 그의 눈빛이먹먹해져 있다. “충주댐 아랫마을에 살았던 때가 있었지요. 저녁이면 버릇처럼 충주호에 낚싯대를 담갔습니다.간혹 낚시를 따라온어머니가 이 아라리를 불렀지요.아버지가 부르던 소리라며.호수에 수장된 어머니와 나의 고향이 낚싯바늘을 물어줄리도 없었건만,우리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흘러간 뗏목아라리를 부르곤 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나는 끔찍한 선물을받았습니다.” 그의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 것은 뱀장어였다. 그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강에는 뱀장어가 많이 살았다. 하지만 고향남태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충주호에 갇힌 뱀장어는 사람 팔뚝만큼이나 살이 뒤룩뒤룩 올라 있었다. 그 날, 그는낚싯대를 꺾어버렸다.그 뒤부터 밤이면 지붕 위 허공 어디에선가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선 살찐 뱀장어가 뒤척였다. 강에서 살던 뱀장어는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무려 3,000㎞나 떨어진,자신이 태어났던 태평양 먼바다로 헤엄쳐 가야한다.뱀장어는 자신의 알이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먹히지않도록 하기 위해서 칠흑의 어두운 그믐날에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 최후를 맞이한다.다시 태어난 뱀장어 치어 댓닢뱀장어는 바다 물결에 실려 한반도까지 오며 실뱀장어로바뀌어 봄이면 서해와 남해로 흘러드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이것이 뱀장어가 가고 싶은 길이다.하지만 이땅의 강은 이미 뱀장어의 강이 아니다.하구둑이나 수중보가 가로막고 길을 터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빈 주전자를 들어 그에게 흔들어 보인다. 술잔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던 그가 빈 주전자에 옥수수 막걸리를 가득 채워 들어온다. 오래도록 말없이 천장을바라보던 그가 입을 연다. “이 강물에 어머니를 잃고, 나는 정처 없는 떠돌이가 되었지요. 길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길을 잃는 일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길을 잃을 때 길의 본질을 만나게 됩니다.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백척간두의 순간에머무르고자 했습니다.잃어버린 길을 잇기 위해 동강으로들어왔다고 하면 그대의 궁금증이 조금 풀릴는지요.” 그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그 낭떠러지의 허공이 가난하게떠난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여백이 되는지를,그 여백은 정처를 정하면 충만해지는지를.하지만 나는 말로 만들어내지못한다. “내 어린 시절의 강에는 뱀장어보다 열목어(熱目魚)가많았습니다.” 눈에 열이 많아 그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이 더 찬 상류로상류로 올라가야만 하는 물고기.어린 내 친구들은 그 물고기를 엿메기라 불렀다.우리는 싸리나무 낚싯대로 고등어만한 열목어를 낚아 올리고는 했다.그 엿메기를 잡는 날은최고의 낚시꾼이 되었다.개울 한가운데 바위 위에 앉아 열목어를 낚아채다 보면 낭창낭창한 싸리나무 낚싯대가 부러지기도 했고,물고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물 속으로 풍덩빠지기도 했다.그래서 물고기를 잡다가 열목어도 잡지 못하고 물에 빠지면 엿메기를 잡았냐며 놀려대기도 했다. 어린 내가 어찌 열목어의 열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살다보면 세상에는 열을 올려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그래서 저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는 것을 어찌알았겠는가. 나는 이 강의 개자리집에 돌아와서야 내 눈에식혀야 할 열이 참으로 많이 박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대의 바짓가랑이에 휩쓸려온 바람에는 저 먼 북태평양 베링해의 냄새가 묻어 있습니다.연어를 만나기 위해 남대천에 가본 적이 있는지요. 10월의 남대천에는 베링해를떠나온 연어가 산란절식(産卵節食)으로 상류로 거슬러 오릅니다. 섬세한 지도를 그릴 줄 아는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강의 냄새를 떠올리고,밤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가늠해낸답니다.그대는 무엇을 나침반 삼아 이곳까지 왔는지,그대는 어느 시절 어느 세월을 휘돌아 여기까지 거슬러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어쩌면 내 대답을 듣기 위해 청한 물음이 아닐 수 있다.나는 길을 나서기 전, 나침반으로동서남북을 가늠해보고 지도를 펼쳐 길의 처음과 끝을 짚어보며 준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어디서 휘어져 산모롱이를 돌아나가고 어디서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건너야 하는지를 살피지 못했다.길에 서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낯선 길에서 깃들 곳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힘겨운가를,얼마나 서러운가를…. 한강 하류에 사는 동안 나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을해 저녁이나 밤이면 집으로 돌아왔으며, 일요일이면 밀린빚을 청산하듯 하루종일 잠을 잤으며, 우리 가족은 살강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대로 지낼 만한 사이였다. 그도시에서의 20여 년은 그렇게 짜지도 맵지도 않은 적당한즐거움과 적당한 상실감으로 흘려보낸 시간들이었다.그 시간이 얼마나 밍밍한 시간,아니 세월이었는지를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곳 개자리로부터 나는 철저히 도망치려했으며 깨끗이 잊고 싶어했다. 아내의 부탁을 나는 기꺼이받아들였다. 아내가 딸 나나의 교육을 위해 불현듯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겠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베링해의 물결은 지금이 아니라 이후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아내는 5년 전 캐나다로 떠난 처형네를 찾아갈 것이다. 처형네 세탁소에서 한 3년 다림질을 하다 보면 이 땅에서의 기억은 다 증발될 것이다.아내는 나의 옛날을 다 증발시키고 싶어한다.나나를 위해 내일만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잊고 살 수는 없는거야? 아내는 나의 정처를 모른다. 아내는 지금 나에게 연락할 수 없다.이곳은 핸드폰 불통지역이다. “어딜 가나 적응하려 애쓰는 건 정신보다 몸이 먼저지요. 하지만 상처를 만나 먼저 시름에 겨워하는 것은 정신이 아닐는지요.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강물처럼 소리소문 없이 빠져나가는 시간이더군요.” 어머니는 나이 마흔을 넘겨서야 얻은 자식 때문이었는지멍울은 조금씩 가시는 듯했다.뗏목이 사라지고,남정네가사라진 강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산자락 비탈밭을 일구기시작했다.이 일대 밭은 모두 어머니가 화전으로 일구어냈다.밤이면 산비탈에선 파란 도깨비불이 일었다.큰물이 지는 여름이면 무당소에서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밤새 꾸르릉꾸르릉 이무기 우는 소리가 강을 흔들어댔다. 한낮에도 산그늘이 지는 무당소 뼝대에서는 뻐꾸기가 무섭다며 뻐버꾸뻐꾹 울어댔다. 뻐꾸기가 우는 여름이면 어머니는 말했다. 세월처럼 무서븐 게 없다드니 참말이네. 내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이곳을 떠나면서부터 어머니는허물어지기 시작했다.밭은 하나둘 묵정밭으로 변해갔고,개자리집에는 머리 풀어헤친 귀신이 산다는 소문으로 흉흉했다.아랫마을 사람들도 발길을 끊었다.밤이면 승냥이처럼울어대는 어머니의 곡성이 강을 타고 내려가 아랫마을을하얗게 흔들어 깨우곤 했다.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더먼 곳으로 떠났고, 어머니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무당소로걸어 들어갔다. “강이 꽝꽝 얼었어요. 누치도 잡고, 보고 싶다던 무당소밑바닥도 실컷 봐요.…,먼저 나갑니다.” 마당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밤새워 술 마신 티가묻어 있지 않다.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다시 이불 속으로묻는다.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아내는 내가 돌아가지않아도 나나의 손을 잡고 예정된 시간에 공항으로 나갈 것이다.나는 이불 속에서 머리를 흔들어본다.머릿속은 끊임없이 윙윙 울리고 있다.겨울 하늘 높이 날아올라 팽팽하게당겨진 연줄이 우는 소리 같다. 어젯밤 그는 말했다.밤새 강이 얼 것이며,날이 새면 누치를 잡으러 가자고.요즘도 1월이면 무당소는 물론이고 1㎞상류까지 얼어붙는다고 했다.이 강줄기를 타고 올라오는누치는 100마리쯤이 한꺼번에 떼를 지어 몰려올 때도 있다.지난 겨울엔 강바닥이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 누치떼가 올라왔다.겨울이 되면 찬물에 산란하기 위해 상류로올라오는 것이다.얼음썰매를 타고 누치를 찾아 강을 오르내리며 이마에 땀이 배어날 시간이 흘러갈 즘이면 강바닥을 뒤집는 누치떼를 만날 수 있다.도끼와 작살을 움켜쥐고얼음 위를 질주하며 누치떼를 쫓다보면 놈들은 숨을 헐떡이며 꼼짝도 못하고 강바닥에 엎드려 있다.누치는 얼음장아래 찬물에서 쫌만 움직여도 곧바로 뼈 가운데로 얼음이생겨 오래 달릴 수가 없어요.누치가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서 있을 때 도끼로 얼음을 깨고, 작살로 단방에 찔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또 무엇인가를 이야기했다. 그렇다,북진나루. 나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다.그는 마당에 없다.저 아래 무당소에서 움직이는 그가 조약돌처럼 작게 보인다. 개자리에 앉은 내 몸도 이제는 보호색을 띠어 강변의 자갈밭을 닮아있지 않던가요.그의 말처럼 그는 개자리에 앉아 조약돌을 닮아가고 있다. 나는 어젯밤 그가 고향 이야기를 할 때,그도 어쩌면 슬픔하나를 갈무리해두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그는 어머니를생각하면 먼저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고 말했다.충주댐이막히면서 청풍의 절반쯤은 물에 잠겼지요.하지만 남한강뱃길이 있던 시절엔 제천의 중심이었습니다.서울에서 올라온 돛단배들은 소금에 절인 바닷물고기며 온갖 물건들을그득그득 싣고 북진나루로 들어왔지요.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봇짐장수였던 우리 아버지는 서울 물건들을 사서 나귀에 싣고 남한강 강마을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그 강물에아버지를 빼앗겨버린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돌아가시기며칠 전에야 말했지요. 동강에 한번 가보자.느 아부지 여즉 거서 잘 살고 있는지? 강은 정말 꽝꽝 얼어붙었다.그는 누치를 찾아 상류로 더올라갔는지 보이지 않는다.군데군데 얼음구멍을 낸 흔적이보인다. 얼음은 유리처럼 맑아 무당소의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물고기의 비늘이 얼핏 물 밖의 햇살을 받아내며 반짝 물살을 뒤집는다.그 물고기는 어머니의 하얀 버선을 닮았다.그토록 보고싶었던 무당소의 강바닥.하지만 어제의 그 강물은 이미 떠나고,얼음장 밑으로는 오늘 지금의강물이 흐르고 있다. 나는 거울처럼 맑은 강물 위에 내 얼굴을 댔다.어머니의유품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나를 쫓아온 댓돌만한 거울이그랬듯 얼음거울 역시 나를 다 비추지 못한다.하지만 나는알고 있다. 아무리 비춰 보아도 내 안에는 내가 없다는 것을.어린 시절의 내 강물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내 몸은 메말라 있다는 것을. 나는 몸을 뒤집어 무당소에 눕는다.하늘은 눈이 시리도록푸르다.그곳에서 깨알같던 점 하나가 점점 커지며 검은 불덩이로 변해 무당소로 떨어지고 있었다.내 이마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다.내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간다.곤두박질치던 그것은 무당소 바위벼랑에 다다른 순간,다시 파랗게 얼어붙은 하늘로 솟구친다.교미 중인 검독수리 한 쌍이다.어머니는 무당소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던 그 해 겨울,내게 말했다.언제 청풍 북진나루에 가보거라.느이 아부지 거서 여적 잘 살고 있는지? 나는 비틀걸음으로 상류로 오른다.
  • 대한매일 신춘문예/ 심사평

    예심을 통과해서 본심에 오른 작품 수는 9편이었는데,그 중4편을 제외한 나머지는 어쩌다 한 번쯤 써 본 듯한 조야한공작품들로 질적으로 현저하게 낮은 수준을 보였다.그래서우선 심사하기에는 편했지만,예심에서 탈락한 수백 편의 응모작들의 작품 수준이 그보다도 더 못했으리라는 생각에 입맛이 쓰다.물론,이러한 현상은 요즈음 거의 모든 문예 현상모집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그렇지만,대학의 문예창작과가 대거 늘어나고,문화센터를 비롯한 많은 사설 단체들에 문예창작 강좌가 개설되어 있는 등,십년전에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게 일어나고 있는 문예 창작의붐을 생각하면,그 성과가 너무 빈약한 것에 실망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응모자들을 성별로 따져 보자면,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이것은 문학 창작의 붐을 일으키는 것은 주로 여자들이고,남자들은 여자세에 밀려 여성화 되고 있음을 뜻한다.물론 여성적 가치의 문학화·예술화는 여자뿐만 아니라,남자에게도 바람직하다.남자는 누구나 그 내면에 여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여성 작가들은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특히 일상 속의 감성적 디테일을 즐겨 다루게 되는데,문제는 작품에 형상화된 감성들이 천박하고 값싸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것이다.이번에 응모한 작품들도 대부분 그러한 수준이어서안타깝다.예컨대 감성이 병든 젊은이들이 연출해내는 우울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적잖은데,너무 손쉬운 처리도 문제이지만,우선 그러한 소재의 선택 자체가 진부하고 도식적이다.소비향락 문화 속에서 마냥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저 젊은 군상 속에 그처럼 병든 자들이 있다면,무엇 때문인지 정당한해명을 위한 이성의 작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좀 과격한 이분법으로 말해서,감성과 일상의 미시 서사가 여성적인 것이라면,이성과 역사의 거시 서사는 남성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어느 한 쪽 문학만 존재하는 이러한 불구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남성적 가치들에 토대를문학이 한시 바삐 복권되어야 하겠다. 최종 후보로 오른 네 작품은 ‘쇼윈도’,‘달력’,‘여름나기’,‘강물의 대화’였다.‘쇼윈도’는 요즘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인 피어싱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다분히 엽기적이긴 하나 내용이 부실했고,치매를 앓고 있는 노파와 손녀가 한 방에 기거하며 겪는 갈등 관계를 그린 ‘달력’은 거칠어서 오히려 싱싱하고 구수한 입담이 좋았으나,이야기를 하다 만 것처럼 끝마무리가 무성의했고,‘여름나기’는 문체의 지적인 시도 자체는 격려할만 하나,지나친 언어 유희가 큰흠이었다.당선작으로 선정된 ‘강물의 대화’도 약점이 있긴 했지만,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무엇보다 자료를 별로 가공하지 않고 집어넣은 듯한 부분이 눈에 거슬렸다.그럼에도 불구하고,모태 귀환이라는 새롭지 않은 주제를 남한강의 뱃길따라 흘러 온 옛 서정과 성공적으로 어우러지게 하여 잔잔한 우수를 자아내게 하는 시적 역량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김원일·현기영
  • [대한광장] 금강산과 왕회장의 아들들

    명실공히 새 천년의 첫 해인 2001년(辛巳年)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함에 있어 전후,좌우,상하 어디를 둘러봐도 막히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정치·경제·사회·통상·남북문제가 모두 꽉 막혀 숨쉬기도 답답하다.일찍이 다산 정약용이 갈파한 맺힌 것을 푸는 특단의 대책이 더없이 간절하다(丁若鏞 通塞議). 그 중에서도 남북한 간에 막힌 곳을 뚫고 화평을 정착시키는 일은 초미지사(焦眉之事)라 할 만큼 중요하고 심각하다.미국 뉴욕테러사건을 계기로 부시 정권이 이곳 저곳에서 일으키고 있는 전쟁의 불똥이 한반도로 튀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미리 방비하여야 하고,최근 남북한에 일고 있는 정치·군사적 불안정이 국제적 긴장요인으로 확산되는것도 미리 막아야 한다.그래서 국제 평화네트워크 정옥식대표같은 이는 지금이야말로 평화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절실하다고 절규한다. 맞는 말이다.정부와 정치권이 이런저런 사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에 대하여는 민간기업과 시민단체들이 스스럼없이 나서야 한다.그 대표적인 것이 교착상태에 빠진 금강산 관광사업이다.이는 누가 뭐라해도 50여년의 민족분단사에 남북화해와 협력을 형상화시킨 획기적인 평화의 상징사업이다.1999년 서해교전이 한창일 때도 금강산 평화의 뱃길은 그치지 않았고,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와중에도 수천 명의 남쪽 사람들이 금강산 산길을 평화롭게 오르내렸다. 이렇듯 금강산 관광은 한반도에 전쟁 위험과 충돌 가능성을 미리 봉쇄하고 전쟁 불똥이 다른 지역에서 튀어 오는것도 차단하는 엄청난 효과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첫번째 공훈과,마지막 성공도 지금은 고인이 된 강원도 통천(금강산) 출신의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몫이다. 죽음을 앞두고 그가 보여준 평화와 통일의 집념과 수구초심(首丘初心)은 1998년 11월 마침내 금강산 관광 길을 열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가 살았을 때는 아들 회장들이 적통(嫡統)을 다투려 서로 금강산사업을 맡겠다고 이른바 ‘왕자의 난’까지 일으켰다.그가 죽고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제 금강산 평화의 뱃길이 끊겨질 운명에 놓였는데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뒷짐을 지고 있다.그것도 ‘돈’,즉 누적된 부채와 적자운영 때문에 중단될 것이라는데 모른 체들 하고 있다. 물론 부시정권의 등장과 극우 보수분위기의 확산 여파로관광객이 줄고 양쪽 정부의 무성의로 적자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고 하더라도,자신들의 아버지 필생의 유업이 바야흐로 문을 닫게 되었는 데도 딴청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왕회장은 저승에서 회한에 젖어 통곡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아들들이 이러하니 국민여론은 더욱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보수언론과 정치권은 아예 신이 나 ‘퍼주기론’을 다시 펼칠는지 모른다. 그러나 평화의 값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데,금강산 관광의 전쟁억제 역할을 어떻게 내버려두란 말인가.이같은 교착상태를 정면으로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아버지의 숭고했던 남북평화 의지와 통일에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자식들이 앞장서야 한다.그래야 국민들이 감동하고 양쪽 정부도 각성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금강산관광 살리기에 자신들의 사재부터 얼마간 내놓아야 국민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본다.그리고 전사적으로,모든 현대그룹이 역량을 총동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감동이 없이는 자칫 국민과 정부로부터 외면받아 금강산 평화사업은 중단될지 모른다.그렇게 될 경우 그 아들들은 두고 두고 국민들의 비웃음과 세계인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다.그들이 꿈꾸고 있는 대망과 대박의 꿈도헛되이 한갖 물거품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국민을 움직여야 금강산 관광이 산다.왕회장의 아들들이여,부디 고 정주영씨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금강산관광의 막힌 곳을 먼저 뚫어라. 그래야 양쪽 정부도 제 역할을 할 것이며,금강산은 세계유일의 평화지대로서 민족분단 슬픔을 녹일 수 있다.우리국민들은 왕회장 일가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갈망한다. 김성훈 중앙대교수경실련 통일협회 이사장
  • 양구 ‘육지속 섬’ 상무룡마을 57년만에 뱃길 열린다

    화천댐 건설로 ‘육지 속의 섬’으로 고립된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무룡 2리에 57년만에 뱃길이 열린다. 양구군은 28일 양구읍 월명리 선착장에서 임경순(任璟淳)군수와 마을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파로호 상류지역 주민들의 숙원인 ‘상무룡호’(18t급)진수식을 갖는다. 상무룡호는 길이 21.12m의 철제선박으로 오지마을 교통수단 개선을 위해 군비 1억1,533만여원과 주민부담 1,281만여원 등 모두 1억2,815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지난 44년 화천댐 건설로 육로가 수몰된 뒤 지형이 험해육지와 이어진 방산면쪽에서 접근도로를 개설하기 힘들었던 이 곳은 그동안 주민들이 소형 농선(農船)이나 어선에의존해 왔다. 이같이 고립된 마을에 이번 ‘상무룡호’운항으로 상무룡 2리 22가구 주민들의 숙원이 해결됐으며,대형 덤프트럭도 실을 수 있어 앞으로 마을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한편 이날 진수식에서 마을주민들은 임 군수와 선박 건조를 맡은 조선소 관계자에게 감사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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