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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한 새해맞이 2선/선상에서 사찰에서 새해 소망 빌어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계절.어디 특별한 분위기 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데가 없을까.이른 새벽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남보다 한발짝 먼저 해를 맞는 선상일출은 어떨까.소복소복 눈이 쌓인 산사에서 하룻밤 묵으며 차분하게 새해를 설계해도 좋을 것이다.새해맞이 선상일출 및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선상 새해맞이 ●거문도,백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중에서도 제주도와 가장 가까운 섬.31일 송년의 밤과 새해 1일 아침을 맞이하는 1박2일 선상프로그램이 진행된다.31일 오후 여수항 출발,거문도에서 유람선으로 갈아타고 거문도 등대 및 낙조 감상,거문도 숙박,백도 앞바다 선상에서 일출제 행사 참여,거문도 육로관광 등이 포함돼 있다.2인1실 기준 11만 5000원.거문도관광여행사 (061)665-4477. ●정동진 골드코스트 유람선을 타고 정동진 앞바다에서 일출을 감상한다.강릉 금진항을 출발,아름다운 어촌마을인 심곡마을,모래시계공원 등 정동진 앞바다를 유람한다.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유람선을 따라 날아드는 갈매기를 벗삼아 관람하는 일출이 감흥을 자아낸다.일출 후엔 셔틀버스를 타고 정동진역,해돋이공원 등 인근 관광명소를 둘러본다.어른 1만 5000원,어린이 1만원.(033)644-5480. ●한려수도 유람선을 타고 한려수도의 빼어난 해안경치와 함께 일출을 감상한다.새해 1일 선상 해돋이를 위해 16척의 유람선이 모두 함께 바다로 나가는 대규모 행사를 연다.일출 조망후 연륙교,상족암,코끼리바위,동백섬 등을 유람하고 돌아온다.2시간 30분 정도 소요.어른 1만 5000원,어린이 8000원.삼천포유람선(055-835-0172·3). ●울산 간절곶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뜬다는 간절곶 앞바다에 쾌속 여객선 돌핀호를 타고 나가 일출을 감상한다.현대호텔 숙박,돌핀호 해돋이 감상,떡국 조식 등을 포함해 2인 기준 15만원.현대호텔울산(052)251-2233. ●보길도 뱃길 1일 새벽 완도에서 출발해 남해바다에서 일출 감상,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답사로 일정이 짜여져 있다.선상에서 새해맞이 떡국 먹기,소원성취 풍선날리기 등도 진행된다.어른 2만원,어린이 1만5000원.소안농협(061)553-8188.◆새해맞이 템플스테이 서울 조계사,공주 마곡사,순천 송광사,양양 낙산사 등 전국 12개 사찰이 31일부터 새해 첫 날까지 템플스테이 행사 및 다채로운 새해맞이 행사를 진행한다. 마곡사는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시간으로 자정 이전엔 한해의 반성을,이후엔 새해계획을 세우는 시간과 자신 및 가족,이웃에게 보내는 자비명상시간을 갖는다. 양양 낙산사에선 저녁 예불과 함께 새해 범종 타종 체험,발우공양,탑돌이,참선,다도 체험,촛불 행사 등이 이어지며,새벽엔 의상대에서 동해 일출 관람 시간을 갖는다. 경주 골굴사에선 동해안 문무대왕릉 앞 해맞이,선무도 기공 수련 등이 포함돼 있으며,서산 부석사에선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세상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사찰별 프로그램은 표 참조).조계종 템플스테이 담당(02)732-9925,720-7060∼4. 임창용기자 sdragon@
  • [길섶에서] 대마도 뱃길

    대한해협 물살이 거칠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토록 사람 속을 뒤집어 놓을 줄은 미처 몰랐다.남에서 동북으로 흐르는 빠른 조류와 불규칙적으로 부는 해풍 때문에 예부터 왕래가 쉽지 않았다는 대한해협을 대마도(對馬島)에서부터 부산까지 배로 건넜다.뭣 모르고 앞에 탔던 승객들은 너도나도 입을 틀어막고 뒷자리로 급히 이동하는 소동을 벌여야 했다. 그러나 더욱 몰랐던 것은 그 험한 부산∼대마도 뱃길이 주 5회 이상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주로 한국 사람들이 대마도 땅을 밟는다.이곳의 최익현 선생 순국비 앞에선 한국인 방문자들을 두 그룹이나 만났다.한국인들은 부산이 바라다보이는 이 섬 최북단 마을에 ‘한국전망대’도 세워 놓고 있다. 배에 비치된 한 책자에 따르면 부산∼대마도 뱃길은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격분한 일단의 한국인들이 선박회사에 요청해 1999년부터 열게 됐다고 한다.이 책자의 제목은 ‘대마도는 우리땅’.이 뱃길의 험난한 파도는 상반된 주장을 갖고 평행선을 긋고만 있는 두 나라 국민에게 자연이 보내는 심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신연숙 논설위원
  • 내고향 밤섬 뱃길로 다시가요/내일 방문… 귀향제 올리기로

    철새들에게 고향을 내준 마포구 당인동의 ‘밤섬 실향 주민’ 200여명이 28일 밤섬을 찾는다. 이들은 마포구(구청장 박홍섭) 관계자들과 함께 이날 오전 11시쯤 한강시민공원 선착장을 출발,고향 땅 밤섬을 찾아 실향의 아픔을 달랜다.고향가는 뱃길은 그들 또는 고향의 조상들이 수백전부터 만들어 사용했던 전통적인 황포돛배와 바지선을 이용한다.밤섬에서 이들은 가장 먼저 옛 선착장(지금의 서강대교 밑) 부근에서 귀향제를 지내고 자신들의 방문을 조상과 마을 신(神)에게 알린다. 실향민 대부분은 34년째 강건너 언덕배기 마포구 창전동으로 옮겨 살고 있지만 1년에 단 한 차례만 이곳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밤섬이 세계적인 도심속 철새도래지로 알려지면서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사람의 출입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긴 세월이 흘러 많은 주민들이 각지로 흩어졌지만 지금도 매년 음력 9월 초이튿날이면 창전동에 옮겨지은 부군당에 모여 조상과 부군신에게 섬의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리고 있다. 밤섬은 1968년 한강 물길을 곧게 하고 여의도 개발에 필요한 석재조달을 위해 폭파돼 당시 주민 62가구 443명이 강제 이주됐다. 이동구기자
  • [대한포럼] 남북경협의 두 얼굴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은 대북사업에 모든 것을 걸었고,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다.“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지만 아직까지 그의 유서에 화답을 보내는 기업인은 없는 것 같다.지난 5일동안 빈소를 지켰던 현대가의 형제들조차도 이 문제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특히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은 “대북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공식 발표하기까지 했다.돈도 구심점도 모두 잃고 무력해진 현대아산만이 외롭게 대북사업을 붙들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경협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한때 ‘북한 특수’ 기대를 부풀리며 인기 상종가를 쳤던 남북경협이 요즈음에는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돈 가진 기업인들 어느 누구도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다.이제 주식시장에서는 대북사업이 악재로 통한다.어느 기업이 대북사업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나면 어김 없이 주가가 폭락할 정도다.남북경협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던 김대중 정부 초기와는 너무도 판이한 모습이다.그때나 지금이나 남북경협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변함이 없는데 시장과 기업인들의 평가는 사뭇 달라졌다.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을까.김대중 정부 초기 시절로 돌아가 보자. “단절과 대결 속에 반세기를 살아온 분단 상황에서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을 관광할 수 있게 된 것은 획기적 사건으로 평가된다.남북화해와 협력의 역사적 전기를 마련하고 통일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족적 기대가 크다.”(대한매일 1998년 11월18일자 사설) 5년전 현대 금강호는 이렇게 민족의 염원을 싣고 금강산을 향해 첫 출항의 닻을 올렸다.금강호로 열린 금강산 뱃길은 2000년 6월과 8월에 각각 정주영·몽헌 부자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면담을 성사시켰다.또한 금강산 종합개발과 개성공단 건설 및 개성관광 사업 합의로 이어졌다.금강산 관광 사업에는 단순한 비즈니스 차원을 넘어 남과 북이 분단을 극복하고 공존공영하자는 민족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현대그룹은 남북경협 사업을 하면서 지난 5년간 1조원 이상의 손해를 봤다.사업 허가권자인 북한은 막대한 관광사업 대가를 챙겨가는 등돈만 밝혔고,걸핏하면 사업중단에다 번복·지연으로 현대를 궁지로 몰아갔다.게다가 서해교전,북핵 위기,사스 등의 외풍이 시도 때도 없이 불어닥쳐 30년 독점권을 획득한 철도·통신·전력 사업 등의 발목을 잡았다.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대북사업에 대해 “남북한 평화와 번영도 좋지만 개별기업이 떠맡기는 너무 큰 부담”이라고 말한다.한마디로 ‘밑 빠진 독’이라는 얘기다. 역사적 당위성과 수익성은 남북경협의 서로 다른 두 얼굴이다.중단 없이 계속돼야 할 민족적 과업이지만,그것이 사업인 한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현대와 정 회장의 비극은 아무리 민족의 과업이라 하더라도 수익성을 외면한 사업 추진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잘 보여준다.현대아산이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대북사업을 계속한다고 하지만 돈도 구심점도 없는 상태에서 수익성 없는 사업을 얼마나 추진력 있게 해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관광공사나 토지공사 등의 공기업이 일부 사업을 떠맡을 수는 있겠지만 총체적인 대북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남북경협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별 사업의 수익성을 높여주어야 한다.현대가 북한과 맺은 계약조건으로는 도저히 수익성을 맞추기 어렵다.따라서 재교섭을 통해 계약조건의 변경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북한은 경협사업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법적·제도적 환경 조성을 서둘러야 한다.우리 정부는 통일비용 부담이라는 관점에서 민간기업과의 역할 분담 및 재정지원 확대에 관한 장기 계획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염 주 영 논설위원 yeomjs@
  • [씨줄날줄] 남도대교

    지리산 맑은 물이 흘러 내려 섬진강과 만나는 곳에 화개장터가 있다.행정구역으로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곳은 우리나라 5대 시장의 하나로 꼽혔다.산과 강,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지리적 여건이 만들어낸 ‘섬진강의 보석’이었다. 이 곳에 5일장이 설 때면 내륙지방 사람들은 산나물과 곡식을 가져와 팔고,바닷가 사람들은 뱃길을 이용해 수산물을 가득 싣고 왔다.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이 모여들고,산과 들 바다에서 나는 온갖 것들이 걸쭉한 사투리와 뒤섞여 닷새마다 장을 펼치던 곳이다.그러던 것이 언제부턴지 교류가 뜸해지면서 예전의 활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강바닥이 높아져 물길은 끊어지고,강 양쪽을 연결해주던 나룻배도 멈췄다.수백년 ‘만남의 장’을 열어주었던 섬진강은 한동안 소통을 방해하는 단절의 장벽으로 변했다. 그 곳에 하동 사람들과 구례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두 지역 주민들은 지난 28일 전남 구례군 간전면 운천리와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사이를 연결하는 남도대교의 개통을 축하했다.나룻배의 정취는 사라졌지만 그 대신 사람과 차가 건너다닐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놓인 것이다. 다리는 통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건널 수 있게 해주는 교통수단이다.하천뿐만 아니라 호수나 해협,만,운하 등으로 끊긴 길을 연결시켜 주는 물리적 구조물이다.그러나 다리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인류의 선조들은 다리를 물리적인 구조물로만 보지 않고 정신적인 구조물로 인식했던 것으로 추정한다.로마사람들은 다리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상징’이라고 믿었다는 기록이 있다.실제로 로마시대에 세워진 많은 석조 아치교들은 신관들이 설계해 건설됐다고 한다.불교에서도 다리를 지어 중생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현세에서의 세 가지 공덕 중 하나라고 가르치고 있다.경주 불국사의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는 속세와 불국(佛國)을 연결하는 매개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리는 왕래와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만약 다리가 없었다면 인류는 아직도 원시적인 고립과 단절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남도대교가 동서로 갈라진 마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마음의 다리가 되길 기원해본다. 염주영 논설위원
  • 올여름 가볼만한 서해안 섬 3곳

    장고도 충남 보령시 대천항에서 서북쪽으로 21㎞ 떨어져 있는 섬.섬이 장구처럼 생겼다고 해 장고도란 이름이 붙었다.100여가구 300여명의 주민들이 어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어촌으로,곳곳에 백사청송(白沙靑松)이 해안을 덮고 있다. 특히 장고도 마을 뒤편의 당너머해수욕장과 명장섬 해수욕장은 알맞은 수심과 고운 모래로 해수욕을 즐기기에 그만이다.당너머해수욕장의 백사장 끝에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용굴이 있고,용굴 너머 북쪽으로 명장섬이 자리하고 있다.약 2㎞의 광활한 백사장이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이다.명장섬 주위엔 암초가 발달돼 있어 낚싯대를 드리우면 우럭,노래미 등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대천항 여객선터미널(041-932-3758)서 장고도까지 여객선이 1일 3회 운항되며,섬 내에선 걸어다녀도 충분하다.명장섬 인근에 바다사랑(041-931-3867),유리네가든(041-936-1484),당너머해수욕장 주변에 마도로스(041-932-3758)등 민박집이 있다. 백령도 서해안 해변은 경사가 완만하고 수온이 적당해 아이와 함께 해수욕을 즐기기에 알맞다.다만 펄층이 많아 물이 탁한 것이 흠.그러나 먼 바다로 나가면 청정한 물과 백사장,기암 절벽 등을 갖춘 섬이 수두룩하다.서해 최북단의 백령도와 충남 보령시 장고도,전남 신안군 임자도를 소개한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뱃길 240㎞.초쾌속선으로 4시간이 걸린다.하지만 먼 만큼 보람도 큰 곳이 백령도다.섬 북서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두무진은 ‘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릴 만큼 기암괴석이 아름답다.두무진 앞바다엔 심청이 공양미 300석에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전해내려오고,섬 북동쪽 꼭대기에는 효녀 심청을 기리기 위한 ‘심청각’이 세워져 있다. 백령도(인천시 옹진군)의 대표적 해수욕장은 섬 남쪽의 콩돌해안과 용기포 선착장 아래의 ‘천연사곶비행장’.콩돌해안은 콩 모양의 작은 돌멩이가 해변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물속에선 콩알만한 것이 물에서 멀어질수록 크기가 크다.매끈한 콩돌을 맨발로 밟는 느낌이 상쾌하다.해안은 경사가 가파른 편.따라서 어린아이들이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부적합하다. 길이가 4㎞에 달하는 천연사곶비행장은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 때 비행장으로 사용했던 해수욕장.지금도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백사장이 단단하지만 비행장으로는 쓰이지 않는다.경사가 완만하고 물이 맑아 아이들도 마음놓고 들어가 놀 수 있다. 인천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3차례 백령도행 배가 출발한다.배삯은 편도 4만 3300원. 섬에선 렌터카(032-836-7001),개인택시(032-836-0117)를 이용하면 된다. 면사무소 소재지를 중심으로 여관과 민박집이 많다.1㎏에 4만원이면 인근 해안에서 잡힌 싱싱한 우럭이나 노래미회를 맛볼 수 있다.문의 백령면사무소(032-836-1771). 임자도 예로부터 ‘임자도 처녀는 모래 서말을 마셔야 시집간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모래로 뒤덮인 섬이다.특히 섬의 북서쪽 대기리와 광산리를 잇는 길이 12㎞,폭 200m의 대광해수욕장에 서면 외국의 사막을 연상케 하는 엄청난 규모에 입이 딱 벌어진다.썰물때 백사장 너머 갯벌이 모습을 드러내면,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진흙을 온몸에 바르고 뒹굴다 바닷물에 뛰어들면서 해수욕을 즐긴다.해수욕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 낚시.민어,우럭,돔 등이 주로 잡힌다. 임자도행 배는 신안군 지도읍 점암선착장에서 1시간마다 출발한다.임자면 진리항까지 20분 소요.배삯은 800원.승용차는 1만3700원.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지도읍까지 고속버스가 매일 오후 4시15분 한차례 출발한다.배편 문의 점암여객매표소(061-275-9448).대광해수욕장 뒤편으로 최근 개장한 썬비치모텔(061-275-8484) 등 여관과 남정선씨 집(061-262-0566) 등 민박집이 제법 많다.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 제3세계 문화가 뜬다

    해외 문화교류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선진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제3세계가 교류국으로 떠오르고 있다.서양 문화 수입이라는 단계를 뛰어넘으면서,우리의 높아진 문화수준을 바탕으로 진정한 의미의 문화 다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미술교류의 시작 인도양에 떠 있는 섬나라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화가 세나카 세나나야케 초대전이 30일부터 5월6일까지 서울 인사동의 경인미술관과 공화랑에서 열린다.한국과 스리랑카가 국교를 맺은 1977년 이후 스리랑카 예술이 한국에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세나카는 스리랑카의 전통 미감을 현대적 조형언어로 다시 해석해냄으로써 국내외에서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등장하는 인물이나 동물은 한결같이 후광을 두르고 있는데,실제로 불교적 윤회를 표현하려 했다. 그는 독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0여개국에서 100여회의 개인전을 가졌다.작품은 미국 백악관,국제연합빌딩,베를린 주립미술관 등에 걸려있다.한국전에는 ‘도자기를 파는 여인들’‘코끼리와 여인’‘플라밍고’‘아침 요가’ 등 70여점을 출품한다. ●교류의 선두주자는 원장현 대금 및 거문고 연주자 원장현은 1992년부터 ‘한국과 아시아’라는 주제로 해마다 각국의 음악가들을 초청하여 연주회를 갖고 있다.그동안 인도와 이란·몽골 등의 전통음악가들과 연주했다.올해도 베트남 민속음악단을 불러 새달 1일 오후 8시 호암아트홀에서 베트남 민요와 민속악기인 단바우 독주 등을 선보인다.원장현은 “우리 음악도 세계 음악의 한 페이지”라면서 “주변과 대화하고 이해하는 공동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초대형 교류 추진하는 소리축제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올해 ‘미지의 소리를 찾아서-소리길 실크로드’라는 의욕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실크로드를 따라 융성했던 상업과 문화가 깃든 각 나라의 음악을 한 자리에서 감상해보자는 의도다. 유라시아 접경의 이탈리아 그리스 이집트 오만,서역의 터키 이라크 이란,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중국의 돈황과 우루무치,뱃길의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베트남 등 14개국 음악인 및 공연단을 초청한다는 계획이다.소리축제는 9월27일부터 10월5일까지 열린다. ●국가홍보를 위한 문화교류도 변한다 국립국악원은 지난 5일부터 15일까지 인도의 첸나이 뭄바이 뉴델리,방글라데시의 다카를 순회하며 연주회를 가졌다.스리랑카에서 한국전통음악이 연주된 것은 처음,인도에서는 두번째다. 그동안 국가홍보를 위한 해외연주야말로 몇몇 선진국에 집중됐던 것이 사실.이번 연주회는 제3세계 교류에 눈을 돌리는 신호탄이 됐다.무엇보다 인도는 전세계에서 서양음악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인도음악은 한국음악과 상당히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다. 김종면 서동철기자 jmkim@
  • 일본의 ‘구조개혁특구’

    ‘지방발 경제회생’이라는 특별임무를 띤 일본의 구조개혁특구가 21일 가동에 들어갔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이날 기타큐슈(北九州)시의 국제물류특구를 비롯한 57건의 특구 인증서를 해당 지방자치단체장 등에 교부했다.고이즈미 정권의 야심작인 구조개혁 특구는 과감한 규제완화로 지방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데 주안을 두고 있다.기타큐슈 등을 통해 일본의 특구제도를 살펴본다. |기타큐슈·나고 황성기특파원|부산에서 뱃길로 3시간 반 거리 기타큐슈의 북쪽,동해와 맞닿은 매립지.길을 내고 땅을 다지고 건설하는 공사가 매립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버려졌던 2000㏊의 광대한 매립지가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기타큐슈의 특구 현장이다. 지난 1월 중순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이 일본 정부에 낸 특구 구상의 상당수가 실체를 느끼기 힘든 무형의 제안이었다면,기타큐슈의 ‘국제물류 특구’는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현장이 존재해 실감이 든다. 24시간 통관·검역을 목표로 하고 있는 히비키 컨테이너 터미널에서는 크레인 설치가 한창이다.기타큐슈시 항만국의 이마나가 히로시 기획과장은 “국제물류 특구의 중심지로 2004년 4월에 오픈할 예정”이라고 설명한다.터미널 바로 옆 바다에서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입항도 가능하도록 수심을 15m로 고르는 바닥 퍼내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컨테이너 年 40만개 유치 목표 한해 40만개의 컨테이너 유치가 목표.한해 800만개인 부산항과 비교하면 적은 규모이지만 “기타큐슈 부흥의 메카로 삼는다.”(이마나가)는 꿈에 부풀어 있다. 터미널에서 승용차로 동쪽으로 이동하면 히비키나다 임해공업단지가 나온다.드문드문 공장이 들어서 있는 이곳도 매립지의 대부분이 공터이다. 기타큐슈시 기획정책실의 다니노부 마사오는 “규제에 묶여 매립지 지주들이 땅을 팔지 못하고 있으나 특구법 시행에 따른 규제 완화로 기업들이 싼값에 땅을 사들여 공장을 지을 수 있게 됐다.”고 특구의 장점을 강조했다.이곳에는 자동차부품,에너지산업과 함께 환경산업 등 30개사를 유치할 계획이다. 기타큐슈의 특구에서 엿보이듯 일본 정부의 구조개혁특구는 두 가지대원칙에서 진행되고 있다.첫째,보조금이나 감세 조치·재정 지원을 일절 하지 않고 둘째,국가가 아닌 지자체나 민간이 스스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내 특구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자체·민간이 특구모델 개발 일본 제1의 철강도시였던 기타큐슈는 2차대전 패전을 고비로 급격히 쇠퇴했다.철강의 중심이 동해권에서 태평양권인 지바나 가나카와로 옮겨가면서 한때 4만명이던 철강업 종업원이 지금은 4000명으로 줄었다. 퇴락의 길을 걷던 기타큐슈는 ‘환황해권의 허브 항구’라는 부흥 계획을 내걸고 재건을 꾀하던 중 때마침 일본정부의 특구 추진과 접합하게 된다. 특구의 중핵을 이루는 히비키 컨테이너 터미널은 기타큐슈가 창안한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 방식으로 운영된다.PFI는 공공시설의 건설·운영에 민간의 자금과 노하우를 활용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히비키 터미널의 경우 방파제 공사나 준설,터미널의 기초공사는 국가와 시가 맡고 지상의 크레인이나 하역기계,관리사무소는 민간운영회사가 맡는다. 38억 5000만엔의자본금 중 현재 싱가포르의 세계적인 항만관리회사 PSA가 34%를 출자하고 나머지를 신일본제철,미쓰이물산 등 16개사와 기타큐슈시가 분담 출자해 설립한다. “그동안 인천,홍콩 등을 경유해 오사카,도쿄를 거쳐 미국 서해안으로 향하던 ‘태평양 루트’가 주류였으나 아시아 경제발전에 의해 상하이나 부산,기타큐슈를 거치는 ‘동해 루트’가 중요해질 것”(이마나가)이라는 것이 국제물류특구의 전략이다. ●홍콩등 2개 금융기관 입주 ‘순조' 일본의 또 하나의 특구는 오키나와 나고(名護)시의 금융특구이다.돈을 들이지 않고 규제만을 풀어 경제 활성화를 노리는 구조개혁 특구와는 다르다.특구란 이름은 기타큐슈시와 다를 바 없지만 나고시의 경우 금융특구에 필요한 인프라 예산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세제면에서도 우대받는 ‘1국 2제도’를 취하고 있다. 나고시의 목표는 경제자립.전국 최고인 10%의 실업률,산업시설이라고 해야 종업원 200명의 맥주공장밖에 없는 나고시로서는 지방교부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이 숙원이다. 나고시의 다마키 쓰네미특구추진실장은 “올해 나고시 고교졸업자 60%가 취직을 못했다.파인애플 같은 농업은 국제경쟁에서 뒤지고 제조업도 중국을 따라잡지 못한다.남은 것은 금융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나고시의 모델은 아일랜드 더블린의 금융특구다.20%에 가까운 실업률로 유럽연합(EU) 권역에서도 빈국에 속하던 아일랜드는 1980년대 후반 금융특구로 생사의 승부를 걸었다.지금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프랑스를 제쳤다.금융 하나로 나라가 일어선 드문 사례이다.“더블린도 처음 7∼8년간은 고생을 했습니다.그런 면에서 나고시의 출발은 순조로운 편입니다.”(다마키) 입주하는 금융기관의 법인세 35% 감세,통신비 무료,저렴한 임대료 등의 특혜가 주어지는 나고시의 특구에 홍콩 등 2개 금융기관이 들어왔다.현재 고용은 60명 정도. “특구에서 10년간 고용 5000명이 목표”라는 다마키 실장은 “인구 5만 7000명의 나고시에서 5000명이라면 그 가족까지 쳐서 10%의 고용효과가 있으며 나고시의 자립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특구의 장래성을 평가했다. marry01@ ■특구 현황 일본 정부가 지난 1월 실시한 제2차 특구 모집에는 651건이 몰렸다.지방자치단체 외에도 기업이나 NPO(비영리조직)의 응모가 가능토록 한 탓에 1차 때보다 크게 늘었다.관광객 증대를 위한 한국인 무비자 특구,복권 특구,카지노 특구 외에도 주식회사의 학교·병원 운영이나 농업 참가 등이 눈에 띄는 특구 구상이다.이들 구상에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긍정적’으로 응답한 것은 27%.한국인 무비자의 경우 “불법체류·범죄가 많다.”고 해서,카지노는 “도박죄에 해당된다.”는 등의 이유를 붙여 거부했다. 끝까지 쟁점이 됐던 NPO의 학교 운영,주식회사의 병원 경영,막걸리 제조 자유화 가운데 학교 운영은 “모집 학생을 등교 거부 학생이나 학습장애아로 한정한다.”는 조건을 붙여 막판에 통과됐다.막걸리 제조·판매 자유를 허용하는 특구도 통과됐으나 당초 요청한 제조등록제나 간이납세제도는 중앙부처에서 인정되지 않았다.주식회사의 병원 경영도 의사회의 맹반발로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특정진료에 한정해 허용했다.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중앙부처나 이익단체의 저항에 당초 취지의 과감한 규제 완화는 실현되지 못했다는 평가이다.4월의 57건에 이어 5월에 추가로 50여건의 특구를 인증할 예정이다. ■기타큐슈 스에요시 市長 |기타큐슈 황성기특파원|“한국과 일본의 특구는 다릅니다.한 지역에 집중투자해서 지역 진흥을 하자는 것이 한국이라면 일본은 세금 우대도 안되고,새 예산이 들어가는 것도 안됩니다.규제 완화밖에 없습니다.” 국제물류 특구로 인증받은 기타큐슈시의 스에요시 고이치(68) 시장은 “새발의 피 같은 규제 완화이지만 그래도 숨통이 트인다.”고 강조한다.“(중앙)부처간 협의가 안 됐다거나 과장 지시라고 해서 안 되는 것이 일본에는 너무 많다.”는 그는 정부가 규제를 완화해 주고 지방은 특구 운용의 책임을 갖게 됨으로써 지방경제에 활기가 생겨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부가 매립지 토지이용 규제를 다소 풀어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불과 서너개의 규제를 푸는 데도 1년 반이 걸렸습니다. 어떤 규제를 어떻게 푸는가,민간은 어떤 완화를 원하고 있는지를 공부하고 정책화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만…” “기타큐슈에는 2000㏊의 광대한 매립지가 있고 기술이 있고,근대공업을 받쳐온 지역이라 전기,물,정보 같은 인프라가 있습니다.이런 지역 특성을 살려 저비용의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 특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철(鐵)의 도시’ 기타큐슈가 갖고 있던 유·무형 자원을 그대로 살리되 중앙의 규제로 꽉 막힌 부분을 특구법에 의한 지역한정의 규제 완화를 통해 앞으로도 풀어나간다는 전략이다. 스에요시 시장은 대담한 규제 완화,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뒤따르는 “한국,중국의 특구가 부럽다.”고 한다.한국 같은 특구를 해보라고 한다면 “모든 조직을 가동하고 지혜를 짜내 마음껏 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기타큐슈가 구상하는 특구의 중핵은 ‘히비키 컨테이너 터미널’에 컨테이너 물량을 대량 유치하는 것이다.부산,광양항이나 중국의 상하이가 라이벌인 셈이다. 부산을 꺾을 묘책이 있냐고 묻자 “한국은 우리를 전혀 겁낼 필요가 없다.”고 웃는다. “컨테이너 800만개물량의 부산과 20분의 1인 기타큐슈(40만개)가 경쟁이 될 리가 없다.”며 경쟁보다는 한국,중국과의 협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중국 물량이 향후 10년간 10배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중국으로 가는 컨테이너를 얼마나 기타큐슈로 돌릴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그는 “물류만의 싱가포르가 아니라 배후에 산업거점도 가진 물류와 산업의 세트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 특구의 최종적인 목표이다.
  • [이색 패키지투어] 하동포구 드림 세일링

    섬진강 하류는 강변 풍치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고 해 예부터 ‘하동포구 팔십리’라고 불린다. 뱃길을 따라 전국 제일을 자랑하던 하동김 산지 갈사도와 소머리 모양의 두우산,지금은 광양시 마을이 들어선 중섬이 이어진다.또 섬진교와 섬진강 철교,그 밑으로 백사(白沙)가 그림처럼 펼쳐지는데,백사 뒤편으로는 노송림이 숲을 이루어 별경을 자랑한다. 강을 좀더 거슬러 오르면 다압나루를 지나 풍요로운 악양 평사리 들이 다가오고,마을 뒷산엔 고소산성이 우뚝하다.악양루 그늘이 동정호에 비치고,해질녘 멀리 포구를 돌아오는 모습과 떨어지는 낙조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묵객(墨客)들의 시심(詩心)을 동하게 했다. 과거 범선이 오가던 이 뱃길은 산업화와 함께 끊어졌는데,최근 한 여행사가 이 뱃길을 오르는 여행상품을 내놓아 관심을 끈다.열차를 타고 여수에 도착,여객선터미널에서 유람선을 타고 오동도∼여천공단∼광양제철 코스를 지나 섬진강에 진입,섬진교 밑을 지나 하동포구공원에 상륙하는 크루즈 상품.한려수도와 하동포구 팔십리를 연계했는데,예의 돛단배보다야 못하지만 제법 운치를 느낄수 있다.거문도관광여행사(061-665-4477).
  • 금강산 육로관광 4월까지 예약 밀려

    금강산 육로 시범관광단이 1박2일과 2박3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옴에 따라 본격적인 금강산 육로관광시대가 열리게 됐다. 오는 21일부터 2∼3일 간격으로 매회 400∼500명이 금강산을 찾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금강산 관광이 상품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13시간에서 1시간대로 배를 이용하던 금강산 관광 초기에는 동해항에서 장전항에 도착하는데 13시간여가 걸렸다.이후 직선항로를 이용하면서 4시간 남짓으로 줄었지만 뱃길은 여러 면에서 불편했다.그러나 육로 시범관광단은 불과 1시간 20여분 만에 장전항에 도착했다.오가는 시간이 단축됨에 따라 요금도 25만원선으로 내려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금강산 육로관광객은 오는 4월까지 이미 예약이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현대아산에서는 1∼2년 후에는 100여만명 가량이 육로로 금강산을 찾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남은 과제는? 셔틀버스가 30분단위로 운행돼 자유롭게 숙소와 온정각,금강산 등산로를 오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쇼핑시설이나 골프장 등 놀이시설은 여전히 부족하다.관광객들은 돈을 쓰려 해도 쓸 곳이 없는 것이다. 북핵문제로 국내외에서 투자자를 모집하기가 어려운 것도 난제로 꼽힌다.김윤규 현대아산 사장도 “최근 사태로 해외투자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만약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면 다양한 금강산 상품을 내놓기가 어려워진다.그만큼 관광상품으로서의 매력은 반감되는 것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도 “육로관광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투자가 뒤따르지 않으면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윤선도 ‘어부사시사’ 무대 ‘보 길 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보길도로 이어지는 뱃길.선창을 넘어 코 끝을 스치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보길도에선 벌써 ‘봄의 반란’이라도 시작되었나? 한겨울을 나며 맵디매운 북풍에 길들여졌던 서울 나들이객의 코에,남녘 봄바람은 갓 추수한 햇벼를 찧어 지어낸 밥 맛처럼 달콤하기만 하다. 땅끝 선착장을 출발,넙도에 잠시 들른 배가 1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보길도 청별항.보길도를 처음 찾는 사람들은 섬의 아름다움에 취하기에 앞서 고산 윤선도에 대한 부러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출사와 유배를 거듭했던 고산에게 보길도는 ‘은둔의 섬’이었다.그러나 그는 초가삼간에서 짚신을 삼기보다는 연못과 정자를 멋스럽게 꾸며놓고 사시사철 시를 읊던 풍류객이었다. 그는 스스로 ‘은인’(隱人)라고 하면서도,숨어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풍류적 삶을 즐겼다.보길도는 한국 시조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고산의 ‘어부사시사’(魚夫四時詞)의 무대다. 고산의 체취는 보길도 구석구석에서 느낄 수 있는데,그중 대표적인 곳이 ‘세연정’(洗然亭)이다. 연못에 비친정자의 선명함만큼이나 세연정엔 벌써 봄빛이 완연하다.정자를 세우며 심었다는 동백은 앞다퉈 꽃망울을 터뜨리고,연못가에선 파란 생명들이 담수를 자양분 삼아 고개를 내밀어 방문객을 반긴다. 세연정은 주인의 풍류를 그대로 드러낸다.고산은 계류(溪流)에 보를 막아 계담(溪潭)인 세연지(洗然池)를 만들고,그 옆에 인공연못인 ‘회수담’을 조성해 물이 흘러 들게 한 다음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정자를 세웠다.그 정자가 바로 세연정이다. 고산이 ‘수석경’(水石景)이라고 이름붙였던 일곱 바위들과 고즈넉이 자리잡은 정자,동백나무 숲이 어우러진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절묘하다. 고산은 이곳에서 어부사시사를 지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와 춤을 추게 하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지금의 정자는 나중에 새로 복원한 것이지만,계류를 막은 보와 물가에 쌓은 석축은 상당 부분 당시의 것이 그대로 남아 있다.정자 옆의 노송도 그 굵기와 크기로 미루어 고산이 아끼던 친구였음이 분명하다. 고산의 ‘끼’는 부용리 뒷산인 안산 중턱에 지은 한 칸 정자 ‘동천석실’(洞天石室)에서도 드러난다.솔향 그윽한 산길을 15분 쯤 오르면 바위와 소나무숲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게 있는데,바로 동천석실이다. 고산은 여름철이면 이곳에 올라 마을을 굽어보며 글을 읽고 시를 읊었다.재미있는 것은 그가 마을의 집 마당에서 동천석실까지 밧줄을 매 필요한 것들을 올려보내게 했다는 사실.산 위에서 색깔이 있는 수기를 들어 색깔별로 미리 정해진 물건이나 주안상 등을 줄을 통해 올리게 했다고 한다. 발길을 돌려 보길도에서 가장 높은 격자봉(格紫峯·430m)에 올랐다.고산이 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섬의 형국과 혈맥을 파악하기 위해 올랐다는 산이다. 아침해가 떠오를 때 산의 전면이 붉은색으로 변한다고 해 적자봉(赤紫峯)이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산엔 동백과 소사,회양목,황칠,야생란,가시나무 등 난대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기암괴석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정상에 서면 바로 앞에 점처럼 떠 있는 복생도와 임금왕(王) 자 모양의 자지리섬이 한눈에 들어온다.복생도는 풍란향(風蘭香)으로 유명하다.자지리섬은 바로 그 옆의 복생도 때문에 구슬옥(玉)이 되어 대대로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보길도에선 꼭 여름이 아니라도 예송리 해수욕장에 한번 들러볼 만하다.길이 1㎞,폭 150m의 해변은 가무잡잡하면서도 동글동글한 자갈,이곳 주민들이 ‘깻돌’로 부르는 청와석(靑瓦石)으로 뒤덮여 있다. ‘차르르 차르르’,파도에 밀려 오르내리며 내는 소리에 누구든지 홀딱 빠져들기 마련인데,이 매혹적인 소리 때문에 ‘흑명석’(黑鳴石)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해안엔 소나무,동백나무,후박나무,잣밤나무,생달나무,광나무 등 수백년 전 섬 주민들이 방풍림으로 심은 상록수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 상록수림은 한여름이면 피서객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 준다. 보길도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kdaily.com ★여행가이드 ●가는길 해남 땅끝 선착장이나 완도 화흥포항에서 보길도행 배를 타야 한다.1시간 정도 소요.출항시간이 자주 바뀌므로 땅끝(061-533-4269)이나 완도(061-555-1010) 선착장에 미리 확인해야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또 출발할 때는 멀쩡하던 날씨가 변덕을 부려 배가 묶이기 십상이므로 완도 기상대(061-552-0131)에 날씨 상황을 미리 알아보아야 낭패가 없다.배삯은 6700원.1만 5000원을 내면 승용차를 싣고 갈 수 있는데,운전자는 배삯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나들목를 빠져나와 2번 국도와 13번 국도를 차례로 갈아타면 해남에 당도한다.해남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완도,813번 지방도로 갈아타면 땅끝마을로 갈 수 있다.섬에선 총 3대가 운영중인 버스(061-553-7077)나 택시(061-553-6353)를 이용하면 된다. ●숙박·먹거리 보길도엔 대부분의 집들이 민박을 겸한다.요즘같은 비수기엔 예약 없이도 2만원에 방을 구할 수 있다.그러나 피서철엔 예약이 필요한데,세연정 인근에서 찻집을 겸해 운영중인 ‘동천다려’(061-554-0868)가 추천할 만하다. 먹거리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게 없다.대부분의 식당이 민박과 겸하면서 음식을 내는데,5000∼7000원 정도면 생선구이와 찌개,몇 가지 반찬을 올려준다. ●가볼 만한 곳 고산의 유적과 예송리 해수욕장 이외에도 목섬과 남은사,솔섬 등이 가 볼 만하다.안산 7부 능선쯤에 자리잡은 남은사는 100여년 된 작은 암자.암자 자체보다는 그곳까지 가는 길의 갈대밭과 나무터널이 아름답다. 통리 해수욕장에 가면 하루 두차례 썰물 때마다 목섬까지 바닷길이 갈라진다.길을 따라 섬에 들어가면 부안의 채석강을 닮은 기암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정동리 앞에 있는 솔섬은 수백년 수령의 노송 수십그루가 심어져 있는 미니섬.이곳에서 보는 일몰은 고즈넉하고 한가로운 느낌을 준다.
  • [우리고장이 원조]땅끝마을

    한반도 최남단은 어디일까.백두산 천지에서 용틀임한 한반도 정기는 백두대간을 타고 힘차게 내뻗어 노령산맥 줄기가 다하는 곳에 똬리를 틀었다.민선이후 지방자치단체마다 관광상품 개발과 성과를 단체장 치적으로 내세우면서 ‘땅끝논쟁’에 불이 붙었다.전남 해남의 ‘원조 땅끝론’에 완도군이 ‘신 땅끝론’으로 맞받아치고 있다.뭔가 각오를 다지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제 ‘땅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자 출발점이 되고 있다.연말과 새해벽두면 국토순례단이 찾는 단골 출발점이자 수학여행단과 단체관광객이 몰려와 셔터를 눌러대는 물좋은 관광상품이다. ★해남 갈두마을 대한민국 전도를 펼쳐보라.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갈두(땅끝)마을은 보다시피 육지의 맨끝에 놓여 있다.각종 문헌에도 한반도의 땅끝으로 공인돼 있다.흔히 땅끝마을로 불리는 곳이 갈두마을이다.순 우리말로 칡머리라는 뜻이다.원님이 마을 진상품인 칡을 보고 이름지었다고 전해진다. 이 땅끝마을 끝에 있는 86년에 세워진 땅끝탑이 위도상으로 북위 34도17분21초로 기록돼 있다.한반도 뭍에서 이보다 더 낮은 위도는 없다.땅끝마을에서 12대째 사는 이장 김유복(55)씨는 “주민들이 국립지리원에 요청해 토말이란 한자말 대신 94년부터 순우리말인 땅끝으로 공인받았다.”고 말했다. 땅끝이 알려지게 된 것은 80년대 초반.윤선도 유적지인 완도 보길도를 찾는 사람이 급증함에 따라 땅끝마을이 뱃길(1시간)로 가는 최단항로로 개발되면서부터다. 땅끝에 가면 땅끝을 알리는 기념물이 3개나 버티고 있다.땅끝마을 바닷가에 서있는 땅끝탑(높이 10m)과 갈두산 사자봉 전망대 아래쪽에 땅끝비(1.2m)가 있다.삼각형의 땅끝탑에는 ‘우리나라 맨 끝의 땅,갈두리 사자봉 땅끝에서 서서 길손이여….’라고 새겨져 있다.사자봉 아래쪽에 묘비석처럼 생긴 땅끝비에는 ‘태초에 땅이 생성되었고 인류가 발생하였으니….’라는 시를 우록 김봉호선생이 남겼다. 군은 사자봉에 있던 기존 땅끝 전망대를 헐어내고 지난해 33억원을 들여 전망대를 새로 세웠다.남북통일을 염원하고 21세기 세계로 뻗어가는 대륙의 출발점을 지향,‘동방의 횃불’을 형상화한조형물이다.지하 1층 지상 9층에 높이 39.5m로 전망탑과 소망 새기기 판 115개가 부착돼 있다. 해남군은 86년 송호리에 460억원을 들여 2006년까지 20년 계획으로 ‘땅끝 관광지’를 만들고 있다.조금 떨어진 통호리 9만 8000㎡에는 100억원으로 2004년까지 조각공원을 조성중이다.기반공사를 마치고 올부터 장승 30점,조각작품 20점,미술관 1동을 설치한다. 해남군 공보계 조충범(50·6급)씨는 “지난해 땅끝에서 마련한 해맞이에 관광객 1만 5000명이 몰려와 소원을 빌었고 지난 한해동안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128만여명으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황도훈 해남 문화원장 1861년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서 한반도 남쪽의 끝을 ‘갈두’로 표기했고 현재도 이 지명이 남아 있다.‘갈두’를 ‘토말’로 하다가 지금은 ‘땅끝’으로 부른다. 여기서 한양까지 1000리,한양에서 함북 온성부까지 2000리로 잡아 한반도를 3000리로 보았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만국경위도에서 남쪽 기점을 해남현으로 잡았다.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도 “3000리 금수강산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해남 땅끝에서 함북 온성까지로 잡아 3000리 금수강산이며,대륙에서 내려온 우리민족이 이곳에서 발을 멈추고 한겨레를 이루었다.”고 적었다. 반도의 끝이란 모름지기 대륙에 이어진 곳이라야지 바다를 건너서 땅끝이 있다면 제주도를 한반도의 땅끝으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완도가 땅끝이라는 주장은 그야말로 억지다.또 국민 정서적으로도 맞지 않다.다리가 연결된 섬이 육지라면 그런 육지는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완도 넉구지 지난해 광주와 전남 도심 곳곳에 내걸린 ‘신 땅끝 완도에서 해넘이와 해맞이를’이라는 플래카드가 눈길을 끌었다. 완도에서는 ‘원조 땅끝론’ 시대는 가고 ‘신 땅끝론’ 시대가 왔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주민들은 “시시각각으로 세상이 변하고 있다.바다가 육지가 되고,있던 섬도 사라진다.완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완도읍 중도리 고갯마루인 넉구지는 북위 34도16분59초다.해남 땅끝보다 1분이상이 적으니까 말하자면 직선거리로 따져도 1850m나 아래쪽에 있는 셈이다. 2대째 고향을 지키는 중도리 이장 최광채(48)씨는 “70년대까지 넉구지에 5∼6가구 사람이 살았으나 간첩이 출몰한 이후 지금은 군부대 초소만 있다.”며 “2∼3년전부터 신 땅끝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 68년 섬과 뭍을 잇는 완도대교가 놓이면서 완도는 도서촉진법상 육지로 분류되고 있고 지도상으로도 맨아래쪽이다. 이 때문에 완도군은 정부로부터 도서개발비를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97년 개정된 도서개발촉진법 시행령 제1항에 ‘도서(섬)는 만조시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을 말한다.’고 규정돼 있다.하지만 2항에서 방파제나 교량으로 육지와 연결된 때부터 10년이 지난 섬은 더 이상 해상의 섬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공박하고 있다. 완도군은 넉구지에서 3㎞ 떨어진 정주산 일대 5만 6000여㎡에 60억원을 들여 전망대와 진입도로,주차장,산책로,조각공원을 조성한다.다음달 공사에 들어가 내년까지 마무리한다. 전망대는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전망대 바닥 부분을 50.7m로 높여 총 높이는 57.7m로 한다.1층에는 특산품 판매장과 휴게실·식당·전시장 등을 갖추고 2층에는 망원경을 갖춘 전망실로 꾸민다. 완도군 경제정책팀 김승조(40·7급)씨는 “완도(청해진)는 장보고 대사의 찬란한 해양문화를 꽃피운 역사유적지가 산재하며 이를 신 땅끝 관광지와 연계해 해양역사의 체험 및 휴양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해남·완도 남기창기자 kcnam@kdaily.com ★김희문 완도문화원장 연륙이 된 뒤 완도는 지도상에서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하고 있다.주민들은 해남 땅끝보다 아래쪽에 있으므로 당연히 완도가 새로운 땅끝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위도상으로 볼 때 ‘넉구지’는 왕두산 끝자락이다.한때는 넉구지를 산의 이름을 따 왕머리라고도 불렀다.그 옛날 바다를 항해하던 배들이 뭍이 가장 가까운 이곳 넉구지에 배를 대고 올라왔다는 기록이 있다. 1605년 가리포진(현 군청자리)의 방어를 책임진 최광 첨사가 완도 앞바다에서 왜구를 전멸했다.이후 한 많은 왜구의 시신이 밀려서 비가 오거나 궂은 날씨가 되면 떠올라이들의 넋이 운다고 해서 넉구진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도 있다. 지난해 군민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신 땅끝인 이곳을 널리 알리고 관광상품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아무튼 완도대교 개통 이후 이제 완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옛날 사고방식대로 해남만이 땅끝이라는 고집은 접어야 한다.
  • [공직자 에세이] 이어도, 저 평화의 땅을 찾아

    세계지도 어디를 뒤져봐도 발견할 수 없는 섬.그러나 제주도민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그리움으로 전설처럼 떠도는 섬.제비가 강남 가는 길의 남쪽바다 어디쯤,그곳에 ‘이어도’가 있다. 아무도 이어도를 본 사람은 없다.그곳을 본 사람은 천국 같은 그곳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돌아오지 않았다. 예의 제주 해안가 사람들은 어머니는 해녀,아버지는 ‘풍선’이라는 돛배로 전복을 따고 고기를 잡으며 살았다.지아비가 망망대해 뱃길을 떠났지만 온다간다 기별이 없을 때 섬에 남은 사람들은 그가 이어도로 갔다고 믿었다.그 곳에서 현세의 모든 고난과 갈등을 벗고 지극히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뿐 어느 문헌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어도는 그러나 ‘이어도 사나’라는 제주해녀의 노래로 막연하나마 실체가 전해지고 있다.“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우리 어멍 날 날적에/어느 바당 미역국 먹엉…/짐녕뒷개 나 가온 섬이여/잠자당도 세한숨 난다/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는 이청준의소설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지만 이후 같은 제목 정태춘의 노래로 더 가슴을 울린다.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 곳이 어디메뇨/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어둠 속으로 물결 너머로/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라는 구절은 언제 들어도 좋다.몇해 전 국립해양조사원은 마라도 서남쪽 150㎞ 지점에 위치한 소코트라초(Socotra Rock)를 해도상에 이어도로 표기한 바 있다. 1488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이끄는 포르투갈 탐험대는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양으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게 된다.디아스 일행은 이곳이 아프리카의 끝이라 확신했고,이곳을 돌면 인도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이후 이곳은 희망봉이라 불리며 미지의 대륙 아시아로 가는 유럽인들의 뱃길이 된다. 이어도와 희망봉의 절묘한 조화,그 어울림처럼 제주가 21세기 대한민국의 희망봉으로 떠오르고 있다.38년 도민 숙원을 담아 출범한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이어도의 꿈을 현실로 바꿔 놓기 위해당당히 드넓은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가고 있다.이제 이어도는 그저 막연하게 ‘기다리거나 찾아가는’ 땅이 아니라 도민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나가는’,탐라 천년의 꿈을 완성시키자는 우리 모두의 의지인 것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는 결코 제주도민만의 이상향을 실현하자는 게 아니다.세계 평화의 섬,동북아 신문명의 중심지로서 한국사회 전체를 이끄는 예인선으로,세계인 누구나 동경하는 신세계로 만들자는 것이다. 계미년 새해가 밝는다.태양이 변함없이 떠오르듯 우리는 이제 한 해를 시작하는 희망의 이야기를 가슴의 빗장을 열고 진솔하게 나누어야 할 것이다.누군가의 말처럼 ‘희망이란 오늘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다가서는 창(窓)’이기 때문이다.
  • 北, 미사일 수출 시인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3일 담화를 통해 “우리나라 무역 짐배인 ‘서산호’에는 예멘과의 합법적인 무역계약에 따라 미사일 부품과 일련의 건설자재들이 있었고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부합되는 모든 항행 조건들을 다 갖추고공인된 뱃길로 정상 항행을 하고 있었다.”면서 “미국이 백주에 이를 침범한 것은 공화국의 자주권을 침해한 용납못할 해적행위”라고 비난했다. 대변인은 또 “우리는 미국의 항시적인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미사일을 생산하고,외화벌이를 목적으로 그것을 수출하고 있는데 대해 명백히 밝힌 바 있다.”고 밝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거문도

    거문도는 여성적 섬세함이 가득한 섬이다.기암괴석들은 섬을 둘러싸고 있되 거칠지 않다.겨울 문턱에 들어섰지만 철모르는 야생꽃이 바위틈에 얼굴을내밀 정도로 기후가 온화하다.산엔 진초록 동백숲이 들어차 있고,나무마다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꽃망울이 가득 매달려 있다. 그래선지 겨울을 맞은 육지 사람들은 누이 품속같이 포근한 거문도를 찾는다.12월,겨울 문턱에 찾은 거문도.여수항을 떠난 배가 300리 뱃길을 달려 처음 닿는 곳은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거문항이다. 거문도는 동도(東島),서도(西島),고도(古島) 3도로 이루어져 있는데,거문리는 고도에 자리잡은 거문도의 중심지.여관과 민박집,식당들이 몰려 있다.거문도 나들이도 이곳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먼저 10년전 생긴 연륙교인 ‘삼호교’를 타고 서도로 건너간다.서도의 수월산 남쪽 끝 봉우리엔 ‘우리나라 최초’‘동양 최대’란 수식어가 붙은 거문도등대가 있다.1905년 불을 밝힌 이 등대는 40㎞ 밖에서도 불빛을 볼 수있다고 한다. 이곳은 등대 자체보다도 등대까지 오를 때 지나는 동백숲길과,등대에서 바라보는 거문도 비경이 포인트다. 수월산엔 동백나무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뒤덮여 있다.전체 나무의 70%가 동백나무다.나무들도 수십년에서 수백년 자라 뒤엉키면서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육지에도 동백나무 군락이 몇 군데 있지만 막상 이곳을 찾아본 이들은 다른 곳은 눈에 차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동백숲엔 아직 푸른 빛이 도는 꽃망울이 가득 매달려 있다.이따금씩빨갛게 꽃을 피운 것도 있는데,꽃이 제법 많은 곳은 벌써 떨어져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거문도 동백은 지금부터 하나둘씩 꽃망울을 터뜨리다가 2월이면 만개해 온 산을 붉게 물들인다. 등대 옆 전망대에 오르면 수월산 동쪽 사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깎아지른듯한 절벽아래 솟은 바위들,바위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만들며 부서지는 파도,벼랑을 날아 오르내리는 갈매기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수월산이란 이름이 생긴 유래가 재미 있다.이 산은 평탄한 바윗길을 사이에 두고 둘로 나뉘는데,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이면 바닷물이 ‘쉽게’ 산(바윗길)을 넘나든다고 하여 수월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바윗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 봉우리엔 등대가,또 한쪽 봉우리엔 보로봉이 자리잡고 있다.보로봉 오르는 길도 동백나무 터널을 이룬다.바윗길 곳곳엔 바위틈을 비집고 얼굴을 내민 야생화들이 겨울이란 계절을 무색케 한다. 거문도는 약 한 세기전 영국이 러시아 남진을 막기 위해 강제 점령했던 역사적 아픔의 현장.1885년 영국 해군이 점령해 2년여간 주둔했으며,당시 섬에서 사망한 군인묘지가 아직 거문리에 있다.원래 9기의 묘가 있었다고 하나지금은 3기만 남아 있다. 거문항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28㎞쯤 가면,바위 봉우리가 100개에서 하나 모자라 이름 붙여졌다는 백도다.35개 섬이 상백도와 하백도로 나뉘어 군도를 이루고 있는데,부처님바위,피아노바위,도끼바위,형제바위,물개바위 등 기암괴석들이 자태를 뽐낸다. 백도는 우리나라에서 아열대 희귀동식물의 서식밀도가 가장 높은 곳.가마우지를 비롯한 휘파람새 동백새 바다직바구니 흑비둘기 등 30여종의 조류와,풍란 땅채송화 등 해양식물 43종이 서식하는 생태보고다.현재 생태계 보존을위해 백도 일원은 명승지 제7호로 지정돼 있으며,일반 관광객들의 상륙이 금지돼 있다.때문에 배를 타고 섬 주위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거문항에서 유람선 ‘두리둥실호’를 타고 백도를 둘러본 뒤 다시 거문항으로 돌아오는 데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유람선이 거문항에서 부정기적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미리 시간을 알아보고 나서는 게 좋다. 거문도 임창용기자 sdragon@
  • 레저단신

    ●휘닉스파크 스키 초보자도 산 정상에서 산 밑까지 질주할 수 있는 ‘파노라마’슬로프를 최근 개장했다.초보용 정상코스로는 국내 첫 슬로프.폭 65m의 초광폭,2.4㎞의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산 능선을 따라 슬로프를 조성해 경사를 평균 10도로 낮췄기 때문에 가족 단위의 초보자들도 어려움 없이 달릴 수 있다. 휘닉스파크는 또 대연회장과 공동 취사시설을 갖춘 76실 규모(800명 수용)의 유스호스텔 ‘휘닉스빌’을 최근 개장했다.(02)508-3400. ●거문도관광여행사 뱃길로 한려수도를 지나 섬진강을 거슬러오르는 이색 크루즈상품 ‘드림세일링’을 내놓았다.여수 향일암 일출 감상후 여객선터미널에서 유람선 ‘아라리호’를 타고 오동도와 광양만을 지나 섬진강 하동포구까지 이르는 코스로,바다와 강을 아우르는 국내 첫 크루즈 상품이다.080-665-4477. ●롯데월드 겨울방학을 맞아 ‘2002 겨울방학 스포츠 대특강’을 마련했다.10일부터 스케이트와 수영,볼링 등을 초급,초중급,중급,중상급,상급 등 5개반으로 선착순 접수하며,각 종목 10일 속성반도 운영한다.일정은 내년 1월3일부터 2월27일까지이며,수강료는 스케이팅 9만원,수영 6만원,볼링 4만원.(02)411-2000. ●서울랜드 부모의 어린시절을 보여주는 ‘그때 그시절’ 특별전을 내년 2월23일까지이벤트홀에서 연다.극장앞 풍경,교실 모습,도시 거리 등 60여개의 테마로 구성된 세트장을 마련했다.전시와 함께 ‘어릴적 놀이 체험’ 및 ‘도자기 체험’,‘그 시절 먹을거리 코너’ 등을 마련,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02)504-0011.
  • 이번주말 젓갈여행 어떨까

    밥숟가락 무거울 때 입맛 돋구는 데 젓갈만한 게 있을까.갓 퍼낸 쌀밥 한술 떠 숙성한 조개젓 한점 얹어 먹다 보면 언제 입맛이 없었느냐는 듯 밥 한 주발이 뚝딱이다. 이번 주말 딱히 나들이할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면 충남 논산으로 젓갈 여행이나 떠나보면 어떨까. 12일부터 18일까지 강경읍 강경포구,젓갈시장 및 옥녀봉 일대에서 전국 최대의 ‘강경젓갈 축제’가 펼쳐진다. 100년 전통의 강경 젓갈은 현대인 입맛에 맞게 저염도 및 저온 처리시설로 숙성시키는 게 특징.토굴이나 저온 저장고에서 3개월간 숙성시킨다. 올해로 6회 째인 강경젓갈 축제엔 매년 수십만명이 찾아오며,1만명 이상이 직접 젓갈을 구입해 간다.젓갈가격은 가을에 담그는 새우젓(추젓)이 1㎏에 5000∼7000원,황석어젓 2000∼4000원,조개젓 1만∼1만5000원,명란젓 2만5000∼3만원이다.이번 축제에선 상인들이 예년의 할인판매 대신 덤을 듬뿍 주기로 했다. ‘강경 그리고 젓갈! 그 맛과 멋으로의 초대’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에선 12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갱갱이별곡을 주제로한 마당극,옥녀봉에서의 선녀춤,농악한마당,나루터에서의 가을음악회 등이 이벤트행사로 열린다. 또 관광객 젓갈김치 담그기를 비롯,젓갈 주먹밥 체험,젓갈통 메고 달리기,젓갈 캐릭터 그려주기 등 젓갈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이밖에 금강변에서 강경포구 뗏목타기,강경포구 뱃길여행,황포돛대 재현 등이 이어진다.문의 강경젓갈추진위원회(041-730-1701∼3). 임창용기자
  • 활짝 열린 ‘南北의 길’/ 하루 1000여대 ‘하늘길 지킴이’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개최로 남북간에는 획기적인 쌍방향 ‘남북의 길’이 열렸다.지난달 23일 평양∼원산∼김해를 잇는 ‘하늘길’이 열렸으며 닷새만인 28일 오전에는 만경봉92호가 부산항에 닻을 내림으로써 역사적인 동해 ‘뱃길’이 처음 열렸다.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하늘과 뱃길을 여는 ‘첨병’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인천관제소 24시 평양측 관제사:“줄루 알파(ZA),여기는 에코 델타(ED).트랜스퍼(항공기 정보전달) AK923편.고도 3만 9000피트.칸수지점 이동중.5분후 핸드 오프(항공기관제이양).” 우리측 관제사:“에코 델타,여기는 줄루 알파.AK923편 레이더 포착,핸드 오프.수고했음.” 지난달 27일 오전 10시49분.북한 선수단 2진 152명을 태운 고려항공 소속 전세기 AK923편이 평양 순안비행장을 이륙한 뒤 평양관제구역을 막 벗어나 우리측 비행정보구역으로 들어서기 직전 평양관제소와 인천관제소(항공교통관제소)간에 이루어진 교신내용이다. 여기서 ‘줄루 알파’는 우리측 관제사의 애칭이고 ‘에코 델타’는 평양측 관제사의 애칭이다. 대개 각국의 관제사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애칭을 갖고 교신을 한다.또 칸수(KANSU)지점은 동경 132도28분,북위 38도38분에 위치한 공해상공(울릉도 동북쪽 160㎞)으로 평양관제구역과 인천관제구역의 교차점이다.특히 칸수지점은 하루 40편 가량의 국제선 항공기가 통과할 정도로 동해상의 새로운 영공 관문으로 각광받고 있다.고려항공 전세기는 오는 14일쯤 아시안게임이 끝날 무렵 김해공항에 두차례 정도 이착륙할 예정이다. 요즘 우리나라 전역의 영공출입을 허가하고 통제하는 하늘의 불침번 인천관제소(소장 박향규)가 무척 바빠졌다.평소 인천관제소의 고공관제를 거치는 항공기는 하루 평균 860대.이 중 국내 공항에 이착륙하는 항공기는 650대 가량이고 나머지는 그냥 통과하는 외국의 항공기들이다. 그러나 최근 8월과 9월 두달동안 하루 평균 1000대 이상으로 관제 수량이 급증했다. 우리측 영공을 노크하는 항공기들이 부쩍 늘어난 이유는 최근 새로 뚫린 남북간 동해 직항로에다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선수단을 수송하는각국 전세기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11일 말레이시아 승마선수들이 사용할 말 12마리가 특별 전세기편을 이용,김해공항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이란,우즈베키스탄,카타르,키르키스스탄,중국 등 10개국 소속 전세기들이 아시안게임 기간에 증편됐다.또 오는 18일까지 부산과 타이베이간 전세기가 각각 7회 운항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인천관제소 중앙 레이더실에 근무하는 200명의 관제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지내고 있다.만약 한 순간이라도 관제 실수를 하는 날에는 대형참사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항공교통관제소의 한판식(48) 관제실장은 “관제사들은 하루종일 긴장속에 살아야 하는 고독한 직업이다.”면서 “현재 30명의 민간항공기 관제사와 4명의 군용기 관제사가 각각 한 팀이 되어 하루 3교대씩,24시간 우리 영공을 0.1초도 놓치지 않고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시간과 공간이 다른 독특한 근무 분위기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색지대다.몸은 한국에 있지만 근무시간은 영국 그리니치천문대시간과 똑같이 움직이고 있다.지구상의 모든 항공기 관제는 국제표준시계를 기준으로 정한다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원칙 때문이다. 비행기의 관제는 대개 3단계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인천발 도쿄행 비행기일 경우 이륙시에는 인천관제탑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이륙 후 지상 2만 2000피트 상공까지는 서울접근관제소의 관제를 받는다. 그 다음에는 인천관제소가 관제한다.동해상공 칸수구역을 통과함과 동시에 도쿄관제소에 관제이양을 하면서 우리측 관제가 모두 끝나게 된다.우리나라 영공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들은 그 반대 순이다. 인천관제소의 관제구역은 우리측 비행정보구역(FIR)의 국제항공로 11개와 국내항공로 5개 등 약 40만㎢의 영공구역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비행정보구역의 항공기 관제 업무를 담당하는 항공교통관제소가 대구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이전한 것은 1년전 이맘때. 급증하는 항공교통 수요에 대비해 3년여 동안 611억원의 예산을 들여 새로운 첨단 교통관제시스템을 구축하면서부터다.이로 인해 항공기 항적 동시처리능력이 350대에서 1000대로 늘어났다. 항공교통관제소는 1952년 주한 미공군이 대구비행장에 설치한 뒤 58년부터 국방부가 인수,운영해 오다 95년 건설교통부로 이관됐다. 김문기자 km@ ■부산 항만관제소 “뱃길로 온 北손님도 우리가 인도” “만경봉92호,여기는 부산관제소입니다.” “부산입네까? 여기는 만경봉92호입니다.” “아,예.부산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저는 델타입니다.콜사인(호출부호) 주십시오.” 지난달 28일 새벽 5시30분 부산항만관제소와 만경봉92호 사이에 역사적인 첫 교신이 이루어졌다. 이어 7시30분쯤 항만관제소의 지시에 따라 도선사(導船士·파일럿) 박영철(56·부산 도선사협회장)씨가 파일럿 전용인 동백섬호를 타고 만경봉92호쪽으로 달려갔다. “만경봉92호,여기는 부산관제소입니다.우리 파일럿이 귀국 선박으로 가고 있습니다.좌현에서 배에 태우고 안전하게 입항하십시오.” “부산관제소,알았습네다.” 이어 부산관제소는 부산외항에서 출항중인 아일랜드 선적 1만t급 상선을 무선으로 호출했다. “아일랜드호,여기는 부산관제소.귀선과 만경봉92호가 조우할 위험이 있으니 만경봉92호 뒤쪽으로 선수를 돌리십시오.” 잠시후 만경봉92호는 부산관제소의 지시에 따라 부산 앞바다의 경도 섬과 외국 선박들을 피해 조심조심 다대포항으로 입항했다. 부산시 영도구 조도에 위치한 부산항 관제소는 1분당 5건 이상,하루 1000여건 정도 교신이 이루어질 정도로 숨가쁘게 돌아간다. 관제소에서 일하는 항만 관제사는 일반인들에겐 낯선 직업이다.항공 관제사가 하늘의 비행기를 안전하게 이착륙시키거나 공중 충돌을 방지하는 일을 한다면,항만 관제사는 항만에 드나드는 각종 선박을 교통정리하는 전문가다. 우리나라는 지난 90년부터 본격적인 항만관제 시스템을 갖췄다.부산항 관제실은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다. 이곳에서는 실장 1명을 포함,19명의 운영요원이 연중무휴 24시간 일하고 있다.이곳에서 일하는 관제사들은 대부분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들이다.국내 첫 여성관제사인 김인숙(29)씨도 이들과 함께 근무중이다. 항만 관제사는 3급 항해사 이상의 면허를 갖고 승선 경력이 3년 이상 돼야 관제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부산항의 관제구역은 해운대 동백섬∼오륙도∼생도∼서도를 잇는 항계선 안쪽이다.부산항에 입항하려는 선박들은 해상 5∼6마일 해점에서 진입보고(개항질서법)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부산 앞바다의 작은 섬인 조도,영도,용호동 등 5곳에 설치된 항만 레이더가 선박들의 움직임을 샅샅이 체크하면서 부산항 관제실로 실시간 상황 중계를 한다. 만경봉92호에 승선했던 도선사 박영철씨는 “만경봉92호 승무원들은 영어실력이 유창했다.”면서 “같은 민족이어서 외국 승무원들보다 매우 호의적으로 대해 줬다.”고 말했다. 부산 김문기자 ■해경 경비선 15척에 특공대까지… 긴박했던 '만경봉 92호' 호송작전 지난달 28일 오전 만경봉92호가 부산 다대포항에 입항하기까지 해양경찰이 펼친 해상호송 작전은 한편의 007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긴박하고 치밀하게 전개됐다. 이날 새벽 5시30분 부산 항만 관제소와 만경봉92호 사이에 첫 교신이 이뤄진 직후 부산 해경은 다대포동남쪽 25마일 해상에서 제1선 대기중인 1005호 경비함에 기동지시를 내렸다.3단계의 호송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어 301함과 경비정 3척으로 구성된 제2선팀이 부산항 제8부두에서 다대포 동남쪽 15마일 해상의 ‘브라보 해점’으로 긴급 발진했다. 새벽 어둠이 완전히 걷힌 아침 7시 정각,파고가 2m로 높아진 브라보 해점.제1선에서 호송해온 1005호함이 맨 먼저 보이기 시작했고 곧이어 만경봉92호의 굴뚝에 새겨진 인공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005,여기는 301.지금부터 우리가 접수하겠습니다.” “수신완료,수고바람.” “만경봉92.여기는 301.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다대포항까지 우리가 안내하겠습니다.” “반갑습네다.301.” 우리측 해경과 만경봉92호간의 삼각 교신 후 만경봉92호 좌우현과 선미에 각각 경비정 1척씩이 배치됐다.301함이 0.6마일 정도 앞에서 기동하면서 2단계 호송작전에 돌입했다. 약 30분쯤 뒤 다대포 앞바다 5마일 해점에 이르자 검역 및 세관선,출입국관리선 등 5척이 만경봉92호에 다가갔다.우리측 관리들이 승선해 입국절차에 들어갔다. 바로 이때 한반도기 등을 단 어민총련 소속 어선 49척이 갑자기 나타나 만경봉92호로 일제히 접근하면서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자 인근에서 몰래 대기중인 경비정 3척이 긴급 출동,이들의 기동을 가로막았다.해경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경비정 2척을 추가로 출동시켰고 다대포항 인근에 대기중인 해경 특공대 8명을 특수경비 작전에 투입했다. 아침 8시.만경봉92호가 내항으로 들어가 접안하자 2시간여에 걸친 호송작전은 무사히 끝났다. 부산 김문기자
  • 밤섬 실향민들의 고향 방문

    ‘마포나루에서 한강을 건너던 황포돛배로 고향 밤섬을 찾는다.’ 철새들에게 고향을 빼앗긴 마포구 당인동의 ‘밤섬’ 주민 200여명이 다음달 2일 고향 방문에 나선다. 이들은 마포구 관계자들과 함께 이날 오전 11시 한강시민공원 선착장을 출발,그리던 고향땅 ‘밤섬’을 밟는 것.실향민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기 위해서다. 고향가는 뱃길에는 그들 또는 고향의 조상들이 수백년 전부터 만들어 사용했던 전통 황포돛배와 바지선이 이용된다. 고향에서 이들은 먼저 그 옛날의 선착장(지금의 서강대교 밑)부근에서 귀향제를 지내고 자신들의 방문을 조상과 마을신께 알린다. 실향민 대부분은 34년째 강건너 언덕배기 마포구 창전동으로 옮겨 살고 있지만 1년에 단 한차례 이 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 밤섬이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도심속의 철새도래지로 알려지면서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탓이다. 밤섬은 지난 1968년 한강물길을 곧게하고 여의도 개발에 필요한 석재조달을 위해 폭파돼 주민 62가구 443명이 강제 이주됐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책/인듀어런스-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극한 상황서 빛난 위기관리 능력

    마르코 폴로,페르디난드 마젤란,로알 아문센….인이 박히도록 들어온 세계적 탐험가들 뒤에 나란히 놓여 마땅한 이름이 하나 더 있다.어니스트 섀클턴.미국의 자유기고가 캐롤라인 알렉산더가 쓴 ‘인듀어런스-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뜨인돌 펴냄)는 목숨을 담보한 그의 남극탐험기를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고 있다. ‘새삼 웬 남극탐험기?’라며 의아해할 독자들도 있겠다.그러나 술술 책장이 넘어가는 당의정 같은 신간들 틈바구니에서 오히려 책은 진가를 더한다.책의 원제인 ‘인듀어런스’(The Indurance)는 1914년 27명의 탐험대를 태우고 남극탐험을 떠났던 배의 이름.예기치 않은 재난으로 사투를 벌이다 전원이 무사생환하기까지 634일간의 투쟁기인 책은,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질만한 한편의 인간승리 드라마다.위기를 극복하는 자세와 지혜,특히 CEO 독자들에게는 위기관리 능력과 진정한 리더십을 제시한다. 1914년 12월5일.아일랜드 태생의 패기만만한 극지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26명의 탐험대원들을 이끌고 남극대륙횡단길에 올랐다.‘인내’를 뜻하는 배 이름도 자신이 직접 붙였다.그러나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탐험은 실패하고,그것이 ‘위대한 실패’로 두고두고 세인들의 입길에 오르내릴 것이란 사실을. 인듀어런스호는 남극권의 관문인 사우스 조지아 섬의 포경기지를 출발,어마어마한 얼음 장애물들을 헤치며 1600㎞를 무사히 항해했다.그런데 운명이 장난을 걸어왔다.부빙(떠다니는 얼음덩어리)들 사이에 배가 갇히더니 설상가상 기온 급강하로 다음날엔 꼼짝없이 얼음바다에 묶이고 만 것.1915년 1월24일.최종 목적지까지 고작 150㎞를 남겨놓고서였다. 남극의 망망한 얼음바다 위에서 뱃길을 열려는 대원들의 투쟁의지는 눈물겨웠다.칼과 쇠지렛대로 부빙들을 잘라내봤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부빙에 묶인 지 꼭 한달만인 2월24일 탐험대장 섀클턴은 눈물을 머금고 항해중단을 선언했다. 대원 들의 면면은 다양했다.일반선원에서부터 전문선원 의사 사진작가 조각가 목수….이 책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가 사진작가 프랭크 헐리다.대자연을 상대로 한 대원들의 피나는 투쟁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해둔 덕분에 책은 그 어떤 재난영화보다 더 사실적 감동이 있는 다큐멘터리가 됐다. 1916년 8월30일.전 대원들이 온전히 구조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섀클턴은 냉정을 잃지 않는 리더십을 발휘했다.그러나 책은 단순히 섀클턴 개인의 탐험일지 쪽에 무게를 싣진 않았다.죽음의 바다에 갇혀서도 대자연의 질서 앞에 겸손했던 대원들의 자세도 오래도록 뇌리에 남을 듯하다.“환상적인 저녁이다.반짝거리는 서리가 대기를 가득 채웠다.”“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얼음꽃은 분홍색 카네이션이 만발한 꽃밭을 닮았다.”(헐리의 일기) 남극의 광활한 얼음바다,부빙에 갇혀 점점 기울어가는 배,섀클턴과 대원들의 지리한 투쟁일지 등을 현장사진들로 음미하는 맛은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과정으로서의 실패’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무릎을 칠만하다.죽음의 사우스 조지아 섬을 마침내 빠져나오며 섀클턴은 되뇌었다.“고통당하고 굶주렸지만 승리했고,기었지만 영광을 잡았다.” 3만원. 황수정기자 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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