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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구영신 소망여행

    송구영신 소망여행

    12월31일 오후 5시40분에 전라남도 소흑산도에서 모습을 감춘 2006년의 해는 새해 1월1일 오전 7시26분 경상북도 독도에서 ‘황금돼지’띠의 첫 해로 떠오른다. 매일같이 뜨고 지는 태양이지만,12월31일과 1월1일에 뜨고 지는 해에는 특별함이 있다. 모두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와는 달리 송구영신(送舊迎新) 여행은 희망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 수평선을 희롱하듯 해돋이-해넘이의 장관을 지켜보며 이루지 못한 소망 등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미련일랑 훌훌 털어 버리고 희망찬 한 해를 설계해 보자. 남해와 동해가 만나서 이루는 절경의 바다, 부산 기장군 해안가에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는 해동용궁사와 땅끝마을 해남을 미리 다녀왔다. 각각 해돋이와 해넘이가 장관인 곳. 이밖에 전국 주요 일출-일몰 명소를 소개한다. 해남 김문·기장 손원천기자 km@seoul.co.kr ■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꼭짓점 부산 기장 해동용궁사 해맞이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을 지나 송정으로 가는 길목에 아담한 언덕길이 하나 있다. 달맞이 고개라고 불리는 이 고갯길은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와우산 능선을 열다섯번 돌아 넘는다고 해서 예로부터 15곡도라 불렸다. 달맞이길을 넘어 송정해수욕장∼수산전시관∼해동 용궁사∼기장군 대변항을 잇은 해안관광도로는 드라이브 코스의 백미. 이름만큼 고운 청사포 등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해안가 마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특히 해동 용궁사는 동해와 남해가 맞닿은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수상법당. 국내 3대 관음성지 중 한 곳이다. 근동에서는 일출명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너른 바다에서 들려오는 해조음과 독경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특이한 문화재는 없지만 늘 관광객들로 북적댄다. 처음 창건된 것은 고려 공민왕 때. 당시 이름은 보문사였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소실된 것을 1930년 통도사의 운강화상이 중창했고,1974년 정암스님이 지금의 해동용궁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 들어서자 12지신상과 함께 ‘소원 한 가지는 반드시 이뤄주는 해동 용궁사’란 팻말이 눈에 띄었다.‘운전하는 데는 조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부적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교통안전기원탑’도 서 있다.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고 했으니 이 참에 소원이나 빌어볼까. 교통안전까지 세심하게 기원해주는 절이니 다른 소원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게다. 교통안전기원탑을 지나면 108계단으로 이어진다. 계단 중간쯤 득남불(得男佛)과 학업성취불이 자리잡고 있다. 만지면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득남불의 둥근 배는 아들 바라는 이들의 손을 타 까맣게 윤이 나는 것이 기름칠이라도 해놓은 듯하다. 이름에 걸맞게 책을 보고 있는 학업성취불도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한다. 108계단을 지나면 드디어 해동용궁사의 전경이 막힘 없이 열린다.‘바다도 좋다 하고 청산도 좋다거늘 바다와 청산이 한곳에 뫼단 말가.’라고 했다는 춘원 이광수의 감탄이 가슴에 와 닿는다. 대웅전 앞을 지나 계단을 몇 걸음 올라가면 해수관음대불과 만나게 된다. 꼭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바로 그 불상이다. 바다를 굽어 살피듯 용궁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촛불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경건하기 이를 데 없다. 이뤄야 할 소망이 있으니 더욱 간절해지는 모양이다. 108계단에서 해안가로 빠지는 길목에 약사여래불이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 사찰에서 가장 바쁘신 분 중 하나다. 몸 아픈 이들이 병을 맡기고 가기 때문. 약사여래불을 지나면 동해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뜬다는 일출암이다. 지옥에 빠져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준다는 지장보살이 이방인을 맞는다. 연말연시만 되면 구름처럼 몰려든 중생들이 밤을 도와 소망을 빈다는 곳. 희망을 품고 왔든 가슴 한편에 남아 있던 미련을 버리려 왔든, 불상 옆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온갖 시름을 거두어 가는 듯하다. 기장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해돋이 명소 ●포항시 호미곶 경북 포항시 영일만에 위치한 호미곶은 우리나라 지도를 호랑이로 표현했을 때 꼬리에 해당하는 곳. 육당 최남선은 조선 10경 중 가장 아름다운 일출 장소로 꼽기도 했다. 청동 조형물인 ‘상생의 손’위로 떠오르는 해가 장관이다. 매년 12월31일 오후부터 새해 첫날까지 해맞이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경주 토함산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안개가 자주 끼는데, 마치 산이 바다에서 밀려오는 안개를 들이마시고 토해내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토함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늘과 바다가 동시에 붉게 물드는 모습이 장관이다. 감포의 문무대왕릉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 이맘 때면 해무가 자주 껴 갈매기떼의 군무와 함께 선경을 이룬다. ●영덕 강구항 남으로 포항시, 북으로는 울진군과 맞닿아 있는 조용한 포구. 선착장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풍광을 맞는 것도 좋지만, 해 뜨는 장소가 일정치 않기 때문에 삼사해상공원에서 보는 것이 수월하다. 강구항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삼사해상공원은 인공폭포인 천지연 등 볼거리와 놀거리가 많은 곳. ●동해 추암리 TV에 방영되는 애국가 일출 장면이 촬영된 장소. 해안 절벽과 동굴, 칼바위 등의 크고 작은 바위섬이 모여 장관을 이룬다. 추암이란 이곳의 촛대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해시와 삼척시 경계에 꽂아놓은 듯 우뚝 솟은 촛대바위 사이로 솟아오르는 해돋이는 동해의 절경으로 손꼽힌다. 특별한 적기 없이 사계절 내내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태백산 천제단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 특히 겨울철 설경이 비경을 이루는데, 일출과 어우러지면 선계가 따로 없는 곳이다. 산세가 험한 편은 아니지만, 해돋이를 보려면 야간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젠 등의 장비는 필수적으로 지참해야 한다. 매년 12월31일에는 태백산 등산로 일대와 해넘이를 황지연못 등에서 해넘이 행사를 가진 다음, 새벽 3시부터 산을 올라 오전 7시에 일출을 감상하는 행사를 벌인다. ●여수 향일암 향일암은 1300여 년 전 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 남해 수평선의 해돋이 모습이 장관이라는 뜻에서 향일암으로 이름지어졌다. 산길은 제법 가파른 편. 중간쯤에 암벽을 타고 오르기도 하고, 암자 근처에선 집채 만한 바위 사이로 난 석문을 통과해야 한다. 해가 뜨면 서서히 암자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동백과 바위로 둘러싸인 절의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 해넘이 명소 ●장화리(인천 강화) 서해안 3대 낙조로 꼽힌다. 동막리에서 장화리로 이어지는 강화도 남단의 해안도로는 드라이브를 즐기며 낙조를 감상하기에 그만. 석모도 남단의 민머루 해수욕장도 주요 포인트 중 하나다.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충남 태안) 대한민국 대표 낙조 포인트. 안면도 중간쯤 자리잡고 있다. 소나무가 자라는 할미바위 너머로 해가 진다. 모래밭도 단단해 백사장을 거닐기에도 좋다. ●솔섬(전북 부안) 전북의 대표적인 곳. 외변산 지역은 전체가 해넘이 감상포인트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쪽으로는 새만금간척지의 방조제 입구부터 남쪽의 모항 해수욕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바닷가에서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다. ●세방(전남 진도) ‘세방낙조’란 명성에 걸맞게 안면도 꽃지해수욕장과 쌍벽을 이룬다.‘세방 해안일주도로’가 일품 코스. 떨어지는 해가 가장 오래도록 머무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순천만 갈대밭(전남 순천) 칠면초보다 더 붉게 탄다는 것이 순천만 노을. 뱃길투어, 갯벌체험, 갈대산책 등을 위해서는 별량면 쪽이 편하지만, 순천만을 한눈에 굽어보려면, 순천만 최고의 낙조 포인트 해룡면 용산에 올라야 한다. ■ 땅끝마을 전남 해남 해넘이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다시 떠오를 거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대사로 유명한 말이다. 원저자 마거릿 미첼은 평생동안 이 한 작품만을 남겼고 또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서사시의 마침표라는 점에서 더욱 긴 여운으로 다가온다. 지난 주말 오후, 국토의 땅끝마을에 섰을 때 저 바다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붉은 태양을 보면서 문득 이 영화의 대사가 생각났다. 사랑, 질투, 이별, 전쟁…. 그 영화 속에 나온 인물들, 자신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거부할 수 없이 다가온 소용돌이의 삶 속에 몸을 던졌다가 그렇게들 돌아갔겠지. 그때나 지금이나, 또 그곳이나 이곳이나 하늘 아래 숨쉬는 삶의 땅이기에 희로애락 인간냄새 또한 다를 바 없을 터. 한해가 저무는 12월의 끝자락이다.2006년의 태양이 한해 동안 생겨난 인간사의 온갖 미련과 잡념의 티끌들을 송두리째 안고 바다 속으로 막 자맥질을 하려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2007년의 태양, 황금돼지의 태양을 잉태하기 직전 폭풍전야의 마지막 불끈거림이었다. 토말(土末)에서의 새해맞이 진행형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해남 김문기자 km@seoul.co.kr # 울고 왔다 웃고 가는 곳 설레는 마음을 갖고 땅끝마을까지 가는 길은 조금 멀게 느껴진다. 해남읍에서 버스를 타고 50분은 족히 걸렸다. 경운기를 운전하는 노인, 파란 보리밭에서 김매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운전기사가 “해남의 농토는 강원도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의 2배가 넘는다.”고 했다. 또 “여기는 울고 왔다, 웃고 가는 고장”이라면서 “해남의 부자들은 대부분 외지사람”이라고 귀띔한다. 잠시 후 ‘대한민국 땅끝마을’이라고 적힌 돌탑이 보인다.‘땅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라는 엄숙함이 앞선다. 누가 국토의 땅끝이라고 했던가. 반도의 맨 앞에서 모진 비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낸 첨병이요, 태곳적부터 한줄기 빛을 오롯하게 밝히며 묵묵히 ‘처음’으로 살아왔을진대 말이다. 땅끝마을 부두만 하더라도 보길도, 진도 등 남해안의 크고 작은 섬을 연결시키는 연락선이 하루에도 수십차례 기적을 울리며 떠나고 들어온다. # 해넘이·해돋이 축제 땅끝마을 부둣가 광장과 전망대에서는 매년 12월31일 해넘이·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올해가 11회째로 전국 각지에서 수만명이 찾는다. 특히 다도해의 절경과 일출·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지형조건을 지녔다. 이곳에서는 관광객 및 군민이 함께하는 콘서트, 전통놀이마당, 음식문화 잔치, 깜짝 이벤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아련하고 정이 넘치는 땅끝마을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오는 31일 자정무렵에 벌어지는 촛불의식과 달집태우기는 새해를 맞아 소망을 기원하는 하이라이트. 이어 여명의 북소리가 울려퍼지고 소망의 연날리기에 이어 장보고호에 탑승해 선상에서 해맞이를 하면서 횡간도와 노화도를 돌아보는 행사는 땅끝마을만이 간직한 특별 프로그램이다. 이밖에 송호해수욕장에서 2006년 마지막 해넘이를 보는 재미도 그만이다. 아울러 사구미해수욕장, 조각공원, 달마산 미황사, 자연사해양박물관, 두륜산 대흥사, 우항리 공룡화석지 등과 인접해 있어 가족끼리 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 ‘홍어의 고향’ 영산포아리랑

    ‘홍어의 고향’ 영산포아리랑

    뱃길마저 끊긴 저문 강은 또 얼마나 쓸쓸한가. 여린 물의 속살을 날선 갯바람이 할퀴는 겨울, 무량했던 옛날의 풍요는 간 곳 없고 오로지 쇠락의 적막에 몸을 떠는 강. 그래서 사는 일 숨가쁜 사람들이 찾아와 남몰래 마음을 풀어놓는 묵시의 강. 사람들은 그 강을 영산강이라고 추억했고, 근대를 지나면서 그 강에 기대어 살집을 늘려온 나주의 정체를 보고는 ‘전라도 다운 것의 상실’이라며 아쉬워 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전라도’라는 권역 명칭이 전주와 나주의 머릿글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때 지금의 도청 격인 나주목이 설치돼 있었던 그 나주와 영산강은 따로 떼어 말하기 어렵다. 곡창의 기능을 말하지 않더라도 나주가 나주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영산강에 기대어 터를 잡은 까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나주를 속속들이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 침묵의 강 홍어가 깨우다 영산강 하구언이 건설되면서 강의 물줄기를 막아 동양 최대의 담수호인 영산호를 만들면서 그 옛날 조운선이 드나들었던 ‘전라도의 대표 포구’ 영산포는 지금 거룻배조차 사라진 침묵의 강으로 변했고, 남도의 물산이 모여 흥청거리던 물길은 강바닥을 드러낸 채 ‘개발’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 병증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영산강에 젖줄을 대고 살아 온 수많은 사람들이 “옘병할 하구언 땜시 못살겄다.”며 영산강 뱃길 복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을까. 지금 나주와 영산강의 옛 영화를 간직한 것은 오로지 ‘홍어’뿐이다. 이제는 전국구 음식이 되어버린 홍어. 나주와 영산강을 거치지 않고는 그 홍어 식도락의 대표격인 홍탁삼합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바다 대신 강과 짝을 이룬 ‘영산포 홍어문화’를 의아해 한다. 거기에는 내력이 있다.1363년(고려 공민왕 12년) 당시 조정은 왜구가 극성을 부리자 흑산도에 사는 어민들을 영산강 하류의 남포, 즉 지금의 영산포로 강제 이주시키는 공도(空島)정책을 폈는데, 그 이주민들이 홍어를 먹기 시작하면서 ‘영산포 홍어’의 전통이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설도 있다. 신현만 나주시청 관광기획팀장은 “당시 공도정책으로 이주해 온 주민들이 살았던 섬이 흑산도 인근 영산도여서 그들의 집단 거주지를 영산포라고 불렀으며, 그들에 의해 홍어문화가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후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뱃길로 호남 물산의 집산지인 나주 영산포에 닿는 5∼6일 동안 자연스레 숙성돼 지금처럼 ‘썩혀 먹는’ 홍어문화가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 영산포구에 홍어음식점 30~40개 그 홍어가 나주의 오랜 잠을 깨우고 있다. 나주시 영산동 옛 영산포 포구에 조성된 ‘홍어의 거리’에는 줄잡아 30∼40개 홍어 음식점이 늘어서 나주와 영산포의 부활을 알리고 있다. 초행길의 나그네라도 이 거리에 들어서면 영산포와 홍어문화의 상관성을 알아채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옛적의 번화와 번성의 기억이 고스란히 홍어문화에 배어나는 곳이다. 영산포 홍어문화를 일군 양치권(영산강홍어 대표) 전 선창번영회장은 “홍어가 국민 음식으로 자리잡으면서 하구언으로 물길이 막혀 쇠락의 길을 걸었던 나주와 영산포 홍어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스럽다.”며 “지금이야 목포나 흑산도는 물론 전국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지만 만약 원조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면 영산포와 ‘영산포 홍어’는 항상 기억되고 또 회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장한 영산강의 물길 위로 미칠 듯 붉은 노을이 사위고 있었다.‘가장 전라도답다.’는 강, 그 강에 검붉은 노을이 비끼고, 끝없이 피어나는 물안개 속으로 임방울의 절창 ‘함평천지’가 나즈막히 깔리고 있었다. # 여행정보 시가지 곳곳에서 커다란 걸개그림으로 만나는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주몽)과 소서노 캐릭터가 이곳이 인기 사극 ‘주몽’의 촬영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나주배는 여전하며, 목사고을답게 나주목 객사였던 금성관, 목사내아와 정수루, 벽류정, 나주읍성의 동점문과 남고문이 남아 옛 영화를 증언하고 있다. 광주와 화순, 영암, 함평, 무안과 인접한 사통팔달의 교통요지로 해마다 천연염색문화제가 열리고 있으며, 영산강 물길을 따라 국내 유일의 강 등대인 영산포 등대와 삼한지 테마파크, 나주호관광단지 등이 있다. 골드레이크CC와 나주CC가 있어 여가문화를 한층 풍요롭게 한다. 항공편은 광주공항을 이용하면 되며,KTX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나주역까지 2시간55분이 소요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하행선 무안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곧장 왼쪽으로 꺾은 뒤 국도를 따라 20여㎞를 가면 나주시가지와 영산포에 다다르게 된다.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2) 전남 신안군 암태면 당사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2) 전남 신안군 암태면 당사도

    목포에서 직선거리로는 불과 20㎞이지만 뱃길로 2시간30분이 걸려 도착한 전남 신안군 암태면 당사도. 겨울의 찬 바닷바람이 배에서 내린 몇 안 되는 방문객을 종종걸음치게 한다. 면적은 4.38㎢, 둘레라고 해봐야 채 9㎞가 안 된다. 그나마 최근에는 가구 수가 줄어 학생이 있는 가구가 이주해 오면 주택개량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할 만큼 작고 외로운 섬이다. 물이 귀하다 보니 식수도 마을 뒷산 정상부근에 파 놓은 인공저수시설에서 받은 빗물을 사흘에 한번 꼴로 공급받는다. 주요한 생업은 김 양식업. 일제 시대부터 시작한 김양식으로 한 때 “개도 돈을 물고 다녔다.”는 말이 돌 정도로 호시절을 구가했지만 다른 지방의 김양식업이 성행해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시세가 폭락했다. 그러다 보니 빈집들이 하나둘 늘어나 이제 60여호에 주민 120여명 정도만 남았다. 그래도 주소득원은 여전히 김 양식업. 섬 대부분이 김발로 둘러싸여 있다.35년째 김발을 손질하고 있는 이상백(53) 이장은 바닷가의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김 자랑을 멈추지 않는다.“당사도 김은 전국에서 최고입니다. 다른 곳에선 김이 물에 잠겨서 자라는 부류식이지만, 여기서는 일정한 시간 햇볕을 받을 수 있는 지주식으로 재배해서 맛과 색깔에 있어서 비교가 안 됩니다.” 바닷가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암태 초등학교 당사도 분교에서는 섬에서 유일한 학생인 김정재(12)군이 선생님과 마주보며 대금 연주를 하고 있었다. 성만 알려줄 뿐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는 30대 초반의 오 교사는 “마을 사람들이 학교일에 적극적이고 애정과 관심이 높다. 무엇보다도 학교가 살아 남아야 섬도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학교 발전을 간절히 기원한다.”고 했다. 오 교사는 정재군에게 사회성을 길러주고 어휘력을 늘려주기 위해 신문을 읽히고 운동도 함께 한다. 학교는 주민들의 복사나 팩스 이용 및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는 공동의 사무공간이다. 장래 꿈이 컴퓨터 기술자인 김군에겐 친구가 없다. 그래서 “한 달에 두 번씩 본교가 있는 암태도로 가서 받는 협동수업이 기다려진다.”며 외로움을 표현한다. 최근 신안군은 당사도 분교에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학생이 이주하는 가구에 주택개량 자금을 지원하고, 소득원개발을 위해 8억원을 투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6가구가 지원을 하였고 지금도 계속 모집중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외지인의 발길이 잦아졌다. 마을의 반대편 방죽골에는 이순신 장군이 열두 척의 전함으로 명량해전을 치른 후 팠다는 우물이 있어서 가뭄에도 항상 샘물이 솟았다지만 이젠 제멋대로 자란 잡목으로 찾아갈 길조차 없다. 이름에 모래사(沙)가 들어 있을 정도도 모래가 많은 섬이었지만 과도한 모래채취로 검은 바위가 백사장 위로 흉칙하게 드러나 있어 당사도(唐沙島)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한다. 외로운 섬의 삶은 힘들고 척박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어 온기를 불어넣는다. 청각 장애인이면서도 ‘당사도의 맥가이버’인 부권수(45)씨다. 마을의 농기계나 선박, 가전제품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마을에서 김 양식에 사용하는 배도 부씨가 직접 만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소소한 민원 때문에 농사와 김양식에 지장을 받지만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고맙기만 하다.”며 싱글벙글이다. 청각 장애인인 아내와 항상 웃는 얼굴로 사는 그는 나보다 이웃이 먼저이고, 없이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조만간 입주할 도회지 사람들과 당사도 개발계획이 주민들에게 진정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더욱이 내년말 목포∼압해도간 연륙교가 개통되면 20여분 만에 당사도에 이를 수 있다니 도시인들의 거친 발길에 자연 경관이 훼손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이 기우(杞憂)이기를 바라며 돌아오는 뱃길을 재촉했다. 사진 글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섬에서 맛본 피자와 햄버거

    섬에서 맛본 피자와 햄버거

    이종욱_ 육군 병장, 인천 옹진군 백령면 아마 상병 때일 것이다. 나는 대대 정문 위병소에서 근무 중이었다. 서서히 다가오는 차를 검문하려고 세웠다. 앗! 대대장님 차였다. “차렷, 경례, 필승! 근무 중 이상 무!”를 외치고 나서 검문을 하였다. 차 안에는 대대장님 가족이 함께 타고 있었다. 후에 대대장님은 사모님이 마련해주신 햄버거와 피자를 쉬는 시간에 먹으라며 부대원들에게 건네셨다. 인천에서 뱃길로 네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이곳 백령도에는 햄버거와 피자가 아주 귀하다. 입대 후 처음 먹어보는 햄버거는 입 안에서 살살 녹는 꿀맛이었다. 대대장님 사모님은 이처럼 언제나 잊지 않고 간식거리를 보내주셨다. 그 덕분에 고향 경주와 한참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도 나는 어머니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약간은 수줍은 듯이 따뜻하게 웃으시며 간식을 준비해 오시던 대대장 사모님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우셨다. 나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사모님 같은 분과 결혼하겠다는 다짐을 할 정도였다. 대대장님 또한 아버지처럼 자상하신 분이다. 사모님 못지않게 먹을 것을 챙겨주시는 것은 물론, 4백여 명이나 되는 대대원의 이름을 모두 외우시고 사소한 일까지도 기억하시는 분이다. 한번은 양면 괘지에 편지를 쓰고 있는 나를 보시고는 며칠 후 예쁜 편지지를 사다주셨을 정도로 자상한 분이시다. 그랬던 두 분이 이제 대대를 떠나셨다. 이임식 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오신 사모님을 보자 나는 무척이나 서운했다. 언제나 부모님을 떠올리게 해주셨던 두 분께 정말 감사드린다. 대대장님, 사모님!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내년엔 잠실~여의도 뱃길 출근

    #2007년 6월 서울 잠실에 사는 김씨는 직장이 있는 여의도까지 한강을 오가는 수상택시를 타고 출퇴근한다. 그는 지하철 2호선 성내역 앞에 있는 ‘하이서울 바이크’ 정류장에서 무료 자전거를 탄다. 임대보증금을 내고 받은 카드를 바이크 보관대에 대면 ‘최신식 1인용 자전거’의 잠금 장치가 풀린다. 김씨는 몇분 후 잠실선착장에 도착하자 바이크 보관대에 자전거를 반납하고 수상택시에 올랐다.20여분 뒤 여의도 선착장에 도착한 김씨는 다시 바이크를 타고 직장이 있는 여의도역에 갔다. 그는 회사에 출근하는 게 아니라 피크닉을 나온 것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한강 수상택시 선착장과 지하철역 등을 오가는 무료 자전거시스템 ‘하이서울 바이크’가 내년 6월부터 잠실과 여의도에서 운영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24일 “하이서울 바이크는 지하철에서 내려 수상택시 선착장까지 빨리 가기 위해 내년에 수상택시 운행과 맞물려 도입하기로 했다.”면서 “단계적으로 아파트촌 앞에도 바이크 정류장을 만들어 주민들이 편리하게 한강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잠실과 여의도에 우선 도입한 까닭은 유동 인구가 많고 자전거 도로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성내역과 종합운동장역엔 내년 상반기까지 자전거 도로가 설치된다. 하이서울 바이크의 정류장은 잠실지구에선 선착장과 신천역, 성내역, 잠실역, 종합운동장역, 석촌역 등 6곳에 세워진다. 여의도지구에선 선착장과 여의나루역, 여의도역, 대방역 등 4곳에 우선 들어선다. 서울시는 이밖에 주민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단지와 빌딩 밀집지역에도 정류장을 추가로 설치하기로 했다. 바이크 정류장을 300∼400m에 한개꼴로 만들 방침이다. 앞으로 한강 선착장이 늘어나면 더불어 바이크 정류장도 더 많이 만들기로 했다. 하이서울 바이크는 중앙통제소에 보증금을 낸 임대인의 인적사항이 모두 기록된다. 따라서 파손되거나 분실되면 책임소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중앙통제소를 통해 실시간으로 바이크 운행상황이 전해지기 때문에 정류장에 바이크가 부족하면 남아도는 정류장에서 바이크를 찾아내 이송할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하이서울 바이크 시스템이 잠실과 여의도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프랑스의 리옹시처럼 바이크시스템을 도시 전역으로 확대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11시35분)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단양 8경의 절경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산과 강을 유람하는 것뿐 아니라 하늘을 나는 짜릿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레저 스포츠, 행글라이더,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해 본다. 또 충주호를 찾아 잔잔한 뱃길을 가르며 아름다운 기암절벽인 옥순봉, 강선대 등 단양 8경을 둘러본다.   ●행복의 오솔길(EBS 오전 6시20분) 어린이집에서 동화구연을하는 조송자 어르신을 소개한다.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동심에 빠져 사는 것이 건강 비결이라는데, 젊고 활기찬 인생을 사는 그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또 일 속에서 행복과 사랑을 찾는 실버내레이터모델 김종갑·최정복 부부를 ‘2006 노인 일자리 박람회’현장에서 만나본다.   ●TV 종합병원(SBS 오전 11시) 작년 봄 간이식 수술로 건강을 되찾은 건강역전 스토리의 첫 번째 주인공 양택조씨. 간암을 이겨낸 그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 병을 앓았을 당시의 상황 재연을 통해 그의 잘못된 생활습관을 알아본다. 간암을 극복한 양택조씨만의 건강관리 비법음식과 간암 예방에 좋은 음식을 공개한다.   ●두뇌발전소Q(MBC 오전 10시) 지구에서 만나는 화성, 피너클스. 사막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정체불명의 기둥들은 무려 1만 5000여개다. 혹시 이곳은 지구 속에 숨은 화성이 아닐까. 사막에 솟아난 기둥의 비밀을 밝혀본다. 선명한 분홍색의 호수, 핑크레이크. 그 색깔만큼 신비한 호수. 과연 미스터리한 분홍색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문난 칠공주(KBS2 오후 7시55분) 일한으로부터 미칠과 이혼했다는 말을 들은 설칠은 미칠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한 사실을 왜 말하지 않았냐며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당황한 미칠은 황급히 전화를 끊는다. 연락이 끊긴 미칠 때문에 걱정을 하던 설칠은 미칠이 쓰던 옷장을 뒤져보다 미칠의 산모 수첩을 발견하게 된다.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오전 10시) 1500년의 역사를 지닌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강성한 세력을 자랑하던 곳이다. 찬란한 역사에 빛나는 땅, 동 슬라브인들의 영혼이 깃든 도시,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고색창연한 매력을 따라가 본다.
  • [Local] 제주-통영 여객선 운항 재개

    제주 성산포와 경남 통영을 잇는 뱃길이 2년여 만에 다시 열린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제주해양관리단은 내년 5월부터 카페리 여객선이 성산포와 통영 사이 뱃길을 하루 1차례 왕복 운항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새로 취항할 카페리선은 정원 320명, 총톤수 2010t급 선박이다. 속력 21노트로 운항할 경우 성산포에서 통영까지 편도 6시간이 걸린다. 제주해양관리단은 지난 7일 제주도 서귀포시 ㈜아름다운 섬나라에서 제출한 해상운송사업면허신청에 대해 조건부 면허를 인가했다. 이 항로는 대아고속㈜의 만다린호가 지난 2002년 11월29일부터 2004년 6월22일까지 운항하다 중단한 항로로 제주 동부지역 주민들은 항로재개를 강하게 희망해 왔다.
  • [데스크시각] 한강 르네상스 성공의 조건/김성곤 지방자치부 차장

    보는 한강에서 즐기는 한강으로 바꾸기 위한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중이다. 노들섬 문화 콤플렉스 건설에서부터 공연전용 유람선의 운항, 여의도 샛강 잇기 등 33개의 사업이 줄줄이 대기중이다. 여기에 이벤트성 행사까지 합치면 향후 4년여 동안 한강에서 펼쳐질 사업은 100여개에 달한다. 이는 지난 1988년이후 18년 만의 대규모 한강 프로젝트이다. 당시 프로젝트가 하드웨어적인 것이었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적 요소가 어우러져 있다. 한강은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해왔다. 뱃길로 8도의 물품들이 오갔고, 주민들은 빨래도 하고, 멱도 감았다. 그런 한강이 시민들의 생활에서 유리돼 ‘관념’ 속으로 들어간 것은 한강종합개발계획을 비롯해 86∼88년에 벌인 한강 및 주변지역 정리계획이 마무리된 이후부터이다. 이때를 전후해 한강에 호안이 둘러쳐졌고, 강남쪽엔 올림픽도로가, 강북쪽엔 강변북로가 새로 뚫렸다. 한강변 지하에는 대형트럭 2대가 동시에 다닐 수 있는 대형 하수관로도 묻혔다. 더불어 상수원 취수원인 한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환경관련 규제가 가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 즈음부터 한강은 시민들의 품을 떠났다. 왕복 8차선의 도로가 양쪽을 가로막고 있어 바로 지척에 사는 사람들조차 오가기가 쉽지 않았으니 먼거리에 사는 시민들은 오죽했겠는가. 고작해야 여의도나 뚝섬, 잠실 등 몇몇 유원지를 찾는 정도였다. 한강이 범접해서는 안되는 강으로, 둔치는 가기가 쉽지 않은 곳으로 시민들의 의식속에 은연중 자리잡았다. 물론 지난해 4800만명이 한강을 찾았고, 올들어 10월말 현재 4500만명이 다녀갔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한강을 찾았지만 아직도 한강은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진다. 한강을 시민들과 친숙한 공간이자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 관광객 유치에 활용한다는 한강 르네상스 계획은 서울의 도시경쟁력은 물론 국가경쟁력 강화에도 바람직한 것이다. 한강의 수질이 2급수로 개선되고, 시민의식의 성숙과 레저 수요 등을 감안하면 지금이 한강을 친숙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 적기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추진에 앞서 몇가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선은 과욕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프로젝트나 이벤트성 기획 가운데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들이 적지 않다. 한강에 물을 빼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만든다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시정개발연구원의 시뮬레이션 결과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구상이 한강 르네상스의 진정성까지 훼손시킬 수 있다. 지난 1961년 하천법이 생긴 이래 한강에 나무 한그루 심을 수 있게 되기까지 38년(1999년)이 걸렸다. 이런 마당에 너무 과욕을 부리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단기적으로 길을 내 접근을 쉽게 하고 유람선 등 편의시설을 늘리는 것만도 큰 성과다. 물론 한강의 활용은 눈앞의 성과 못지 않게 후손을 위한 중장기적 프로젝트도 필요하다. 더불어 중앙정부의 제도적, 재정적 지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도 한강에서는 광고물 하나 설치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외국 공연단체가 둔치에서 공연을 하려다가 공연용 천막 설치가 어려워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일정 한도내에서 법규 적용 등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것들이 한강을 시민의 품속으로 되돌리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한강은 둔치(360만평)를 포함,1200만평(서울시계내)에 달한다. 세계적으로도 이 만한 면적의 공원(?)을 가진 도시는 많지 않다. 한강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하지만 우리가 잘 관리하고 활용했을 때에만 축복으로 남는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김성곤 지방자치부 차장 sunggone@seoul.co.kr
  • [씨줄날줄] 대운하/이용원 수석논설위원

    TV드라마 ‘연개소문’에서 배우 김갑수씨가 맡아 열연하는 수양제(양광)는 역사적 평가가 그리 높지 않은 인물이다. 아버지 수문제를 시해하고 제위에 오른 그는,612년 113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한 것을 비롯해 재위 중에만 고구려와 세차례 전쟁을 벌여 모두 실패한다. 이에 궁핍할 대로 궁핍해진 농민들은 도처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수양제는 결국 618년 피살된다. 한나라 멸망후 360여년만에 중국 대륙을 다시 통일한 수 왕조가, 양제의 실정 탓에 30년도 채 안 돼 깃발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수양제에게도 높이 평가받는 부분이 있다. 중국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대운하를 완공한 공이다. 중국의 강은 대개 동서로 흘러 남북간 교통은 상대적으로 불편했다. 그래서 일찍이 진·한 시대부터 부분적으로 개척한 운하를 수양제가 전면 보수하는 한편 일부 구간은 새로 개통해 중국 내륙의 물길을 완성하는 업적을 이룬 것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수양제는 길이가 200장에, 높이가 4층이나 되는 용주(龍舟)를 타고 대운하를 오르내리며 백성에게 위세를 과시했다고 한다. 또 용주 뒤에는 각각 전사 800명을 태운 5층 높이의 오아(五牙)라는 전선(戰船)이 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수양제 때 완공된 대운하는 이후 중국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정치·문화 중심지인 화북 지방과 산물이 풍부한 강남 지방이 활발히 교류하면서 상생효과를 낳은 것이다. 그 결과 수를 뒤이은 당·송 시대는 중국 역사의 전성기로 꼽힌다. 아울러 중국 전역이 정치적 통일체로서 자리잡는 데도 큰 몫을 했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 가운데 하나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독일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경부운하’와 금강·영산강을 잇는 ‘호남운하’를 개통하는 데 이어,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신의주까지 물길을 내겠다는 구상이다. 그 말 많던 청계천 복원사업을 잡음 없이 처리해 한국의 명소로 만든 이 전 시장인 만큼 ‘한반도 대운하’의 꿈도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국토 내륙의 경관을 즐기며 서울∼부산을 뱃길로 오가는 그날은 과연 올까.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가족과 떠난 가을섬 승봉도

    가족과 떠난 가을섬 승봉도

    아침저녁으로 부는 쌀쌀한 바람에 단풍잎이 뒹구는 10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는 하나 ‘산’이외에는 마땅히 갈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이들을 위해 가을 섬을 추천한다. 철 지난 가을 섬은 한적해 사색의 계절을 느끼기에 그만이다. 또 날씨도 좋고, 먹을 거리도 풍부해 가을 여행지로 좋다. 특히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그저 세상 시름을 잠시 접어두고 하루를 편안하게 쉬다 오기에 ‘딱’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승봉도에 다녀왔다. 아무도 살지 않는 사승봉도, 저녁노을이 곱게 지는 이일레 해수욕장, 낚싯바늘을 던지기만 하면 딸려오는 물고기 등 그저 1박2일 동안 가족들과 즐기기에 좋은 섬이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혹시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 문명의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과 벗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꾸어보신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승봉도에서 배로 10분 거리인 사승봉도에 한번 가보세요. 진정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 은빛 모래밭의 무인도, 사승봉도 승봉도에서 조그만 통통배로 5분정도 시원스레 달리자 눈앞에 광활한 은빛 모래밭이 펼쳐진다. 바로 여기가 무인도인 사승봉도이다.‘모래의 섬’ 사도(沙島)로도 불리는 이곳은 썰물 때면 동북쪽으로 길이 2㎞, 서북쪽으로 길이 2.5㎞의 드넓은 백사장이 가을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배가 제대로 접안할 부두 시설도 없어 사다리를 이용해서 바다와 백사장이 맞닿는 곳에 내린다. 물론 깊이가 무릎 정도라 안전하다. 바지를 걷고 바다를 걸어 사승봉도의 넓은 모래사장에 발을 디뎠다. 썰물 때만 드러나 바닷물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드넓은 모래밭에서 한가롭게 먹이를 찾던 갈매기들이 낯선 인기척에 놀란 듯 하나둘씩 자리를 내어준다. 백사장 뒷산에는 곰솔(해송)과 참나무, 오리나무, 칡덩굴 등이 무성하게 숲을 이룬다. 단풍이 들만도 한데 소나무가 많아서일까 아직도 푸른 기운이 넘쳐난다. 한낮이라도 가을인데 의외로 맨발로 걷는 바닷물과 모래밭은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 모래밭 발자국 소리에 놀라 제 집으로 찾아들어간 게와 그 녀석들이 가지고 놀던 조그만 모래 공(?)이 여기저기 빼곡하다. “바다 생태계의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골뱅이가 많아요. 원래는 바다에서 잡히던 것인데 지난해부터는 이곳 백사장으로 올라와요. 저기요 저렇게 조금 솟아오른 작은 구멍 보이죠. 저런 곳에 골뱅이가 있어요.”라고 민경용(38)선장이 일러준다. ‘에이 무슨 골뱅이야’ 반신반의하며 손으로 파보았다. 아니 파는 것이 아니라 살짝 모래를 걷어내자 진짜 골뱅이가 나온다. 참 신기하다. 갯벌에서 여러 가지를 잡아 보았어도 갓난쟁이 주먹만한 골뱅이는 처음이다. 넓은 모래밭에는 ‘물 반 골뱅이 반’이다. 그냥 땅위에 나와 있는 녀석들만 주워도 비닐봉지 하나가 너끈히 채워진다. 경기도 평촌에서 온 아줌마들은 난리다.“어머 자연산 골뱅이야. 오늘 저녁에 안주하면 되겠네.”라며 사승봉도의 아름다움보다 골뱅이 잡는 매력에 ‘푹’빠져버렸다. 서북쪽 모래밭 끝 갯바위 틈을 들척이자 갯고둥과 소라가 잔뜩 들러붙어있고 놀란 달랑게와 방게가 몸을 감춘다. 역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서 그런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두 시간을 돌아다니다 바위 그늘에 앉아 잠시 쉬었다. 파도 소리와 파란 하늘, 적막함이 감도는 섬의 모습에 마치 원시인이 된 기분이다. 사승봉도에는 두 군데 우물이 있어 간단하게 몸을 씻을 수 있다. 정기적으로 배가 다니지 않았는데 올해부터 왕복 1만원을 내면 사승봉도까지 태워주는 통통배가 생겼다. 피서철에는 섬 관리비로 1인당 3000원을 내야 하는데 요즘은 받지 않는다. 만약 텐트를 가지고 무인도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도 있다. # 매력 덩어리 승봉도 승봉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에 속한 4개의 유인도 중 하나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뱃길로 1시간20분,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선 50분 걸린다. 승봉도는 ‘봉황이 나는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 승봉도에는 80가구 160여명이 선착장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자그마한 섬이다. 느린 걸음으로 2∼3시간이면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지만 섬이 갖춰야 할 최적의 조건은 다 갖췄다. 기암괴석과 바다낚시, 해수욕장뿐 아니라 소라따기, 낙지잡기, 바지락 캐기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섬에는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이 없다. 민박집에서 제공하는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데 걸어 다니며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정겨운 인심, 호젓한 마을풍경을 직접 체험하는 맛도 쏠쏠하다. 섬 남쪽 이일레해수욕장은 승봉도의 대표 해변. 폭 40m, 길이 1.3㎞의 아담한 백사장은 경사가 완만하고 썰물 때도 갯벌이 드러나지 않는다. 물이 빠지면 바로 옆 장골해수욕장과 이어져 해안선 산책코스로 제격이고, 해변에서 바라보는 낙조 또한 장관이며 해수욕장 뒤편 해송 숲은 걸으며 사색에 잠기기에 아주 좋다. 선착장에서 5분 거리인 동양콘도 뒤편 모래해변은 바다학습장이다. 물 빠진 갯벌에서 조개를 캐거나 낙지를 잡을 수 있어 도시 아이들에게 ‘딱’이다. 남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부두치는 모래와 자갈, 조개껍데기가 그림처럼 어우러진 곳이며 삼각형 모양의 독특한 목섬은 썰물 때 모래톱으로 연결돼 걸어서 들어가는 체험도 재미나다. 이밖에 구멍으로 연인 사이가 통과하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깃든 남대문 혹은 코끼리바위도 볼 만하다. # 물 반 고기 반인 승봉도 앞바다 승봉도는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이다. 이맘때면 씨알 굵은 우럭, 놀래미, 광어 등이 낚싯바늘을 집어넣으면 바로 물고 올라온다.1인당 3만 5000원만 내면 바다에서 4시간 정도 낚시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준다. 배로 20여분 나가서 금도, 공경도, 사승봉도 앞에서 낚시를 하는데 배에서 회로 먹고 저녁에도 안주를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잡는다. 물론 자연산으로 말이다. 아이들과 재미 삼아 즐기면 손맛도 입맛도 즐길 수 있어 1석2조가 따로 없다. ■ 인천 연안부두~승봉도 쾌속정 70~100분 소요 # 여행정보 승봉도 선창휴게소(032-831-3983,www.isunchang.com)는 사승봉도와 낚시투어를 주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깨끗한 민박뿐 아니라 직접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로 끓여주는 매운탕과 회도 일품이다. 또 승봉도에서 인심 좋기로 소문난 일도네민박(032-831-8942,user.chol.com/~jkp1119/)도 추천한다. 좀 나은 숙소를 원한다면 승봉도 선착장 부근에 150실 규모의 동양콘도미니엄(www.dycondo.com,02-2604-6060)을 권한다. 방에서 내려다보는 서해 바다의 풍경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섬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콘도로 동남아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승봉도로 가는 배는 우리고속페리(www.wk.co.kr,032-887-2891~5) 소속 쾌속정 파라다이스(1일 2회)로 1시간10분, 대부해운(www.daebuhw.com,032-887-6669)과 진도운수(www.jindotr.co.kr,032-888-9600) 소속 카페리호(1일 1회)로 1시간40분 걸린다.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도 대부해운(032-886-7813) 소속 카페리호(1일 1회)로 1시간20분쯤 걸린다.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9) 볼음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9) 볼음도

    아는 사람만 몰래 찾아가는 가깝고도 먼 섬. 새들의 낙원. 넓은 농토보다 더 넓은 갯벌을 간직하고 분단의 혜택(?)까지 누리는 ‘볼음도’는 하늘·땅·바다가 맑은 천혜의 섬이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갈매기의 마중을 뒤로하고 뱃길로 1시간 남짓을 달리면 서해바다의 평화로운 섬이 맞이한다. 마을까지 들어가는 길가엔 아담한 황토집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갯벌을 향한 논둑에는 메뚜기들이 후두둑 날아가고 길모퉁이에서는 이름 모를 작은뱀이 자기 덩치보다 큰 개구리를 휘감고 낑낑거리고 있다. 갯벌의 유일한 이동수단인 경운기를 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영뜰갯벌을 가로지르면 개흙에 말뚝을 박아 그물을 걸어놓은 수백미터의 건간망(建干網)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온다. 그물망에는 기름값도 안 나올 정도의 망둥어와 복어 몇 마리뿐이다. 몇 마리의 물고기지만 어부는 그래도 열심히 그물을 손질한다. 섬 면적의 4∼5배나 되는 갯벌에는 천연기념물인 저어새·도요새·노랑부리백로 등 온갖 텃새와 철새들이 자태를 뽐내듯 날아다니며 경운기 길을 열어준다. 광활한 갯벌에 띄엄띄엄 상합을 캐는 사람들이 한낮의 햇살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다. 섬의 북단에는 바닷물에 떠내려 온 것을 심었다는 수령 800년의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가 있다. 예전에는 매년 1월30일이면 풍어제를 지냈지만 6·25 이후 출어가 금지되어 사라졌단다. 은행나무 옆 볼음저수지는 60여만평의 논에 청정농수를 공급하고 날씨가 좋은 날은 5.5㎞ 떨어진 북한 황해도 연백염전까지 보인다고 한다. 농업과 함께 부업으로 그물을 매기도 하지만 볼음도 주민의 주업은 농업이다. 가구당 평균 경작면적이 1만 5000평이나 되는 대표적인 ‘농사짓는 섬’이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낙향한 오형단(48)씨는 4H활동을 하는 농민후계자로서 누구보다 볼음도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쌀시장 개방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친환경농법으로 좋은 품질의 쌀을 생산하는 것”이라며 청정지역인 볼음도에서 쌀이야말로 시장경쟁력이 있다고 자신있어 한다. 오씨는 현재 ‘친환경쌀작목반’을 이끌면서 6만평의 논에 우렁이농법을 사용하여 공동작업으로 쌀을 생산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섬 전체의 벼농사는 무농약 재배를 하였다. 전현원(63)씨는 객지생활 40여년 만에 병든 몸으로 지난 9월초에 섬에 돌아왔다.“고혈압과 심장병으로 집에서 마을회관까지 300m 거리를 몇 번을 쉬어서 갔지만 지금은 식사량도 늘고 활동도 왕성해서 일거리를 찾는다.”며 밝은 표정으로 섬 자랑을 늘어놓는다. 한때 학생수가 모자라 휴교하였다가 다시 문을 연 ‘서도중학교 볼음분교’에 근무하는 강정숙(57)씨.“섬주민들의 의식이 높고 학생들도 도덕교과서처럼 반듯해서 애착이 더 가요.” 외지로 진학하는 학생들 또한 우수해서 교육에 더욱 보람을 느낀단다. 올곧은 마음으로 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새들을 보물처럼 보듬는 갯벌과 하늘과 바다가 맑은 볼음도. 청정지역이며 천혜의 고장을 떠나는 이에게는 아쉽기만 한 섬으로 다시 와 닿는다. 글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경찰의 날 2題] 섬마을 사부님

    [경찰의 날 2題] 섬마을 사부님

    인천 연안 부두에서 뱃길 따라 2시간30분 동안 가야 하는 서해안의 작은섬 풍도(豊島). 이곳의 치안을 관할하는 경기 안산경찰서 풍도분소 김요한(36) 경장은 섬마을 아이들에게 ‘사부’라고 불린다. 태권도 공인 4단인 김 경장의 제자는 모두 7명. 매주 2차례 김 경장에게서 태권도를 배운다. 지난봄부터는 풍도분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원 하나 없는 이곳 아이들에게 김 경장의 가르침은 너무나 소중하다. “아이들이 육지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모두 단증을 따게 하는 게 목표인데 아이들이 잘 따라줘서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수산자원이 풍부하다고 해 ‘풍성할 풍(豊)자’ 풍도라 이름 붙여진 섬에는 60가구 10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이 작은 섬의 경찰관은 김 경장 단 한명이다. 그래서 교대시간이 없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김 경장은 경찰이라기보다는 그저 ‘맘 좋고 잘생긴 젊은이´다. “범인을 잡는 경찰이란 생각보다는 마을 일을 도와주는 청년 정도로 보시는 것 같아요.” 실제 하루 일과도 도시 경찰과는 다르다. 하루 한 차례 인천에서 들어오는 여객선을 기다리는 노인들을 위해 짐을 실어주고 부리는 일은 빼놓을 수 없다. 순찰을 돌다가 노인이나 마을 아낙들 허드렛일을 거드는 것도 그의 몫이다. 풍도에는 소방서나 동사무소가 없다. 아픈 사람이 생기면 환자를 이송하는 119구급대원 일도, 주민들의 행정서류를 팩스로 전해주는 동사무소 직원 일도 그의 업무다. 자리를 비울 때면 ‘민간인’ 아내가 민원전화를 받아준다. 사실 그를 외딴 섬마을로 이끈 것은 아들의 천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병원을 들락거리던 아들은 섬 생활 1년 만에 건강해졌다.“정이 들어 떠날 때 힘들 것 같아요. 언제 이별할지 모르지만 가는 날까지 주민들에게 좋은 경찰로 남고 싶어요.”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한강 뱃길 출근 내년엔 현실로

    한강 뱃길 출근 내년엔 현실로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버스를 타고 들어서자 오른쪽에는 하늘공원, 왼쪽에는 노을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쪽에는 과거 쓰레기 동산이었던 난지도의 모습을 잊지 말라는 듯 마포자원회수시설의 굴뚝이 우뚝 솟아 있다. 저 굴뚝이 머지 않아 전망대로 거듭난다니, 서울시가 계획하고 있는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사이를 잇는 ‘하늘다리’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높이 96m에 길이만 450m에 이를 하늘다리 전망대에서는 선유도와 여의도지구는 물론 멀리 한강 하구의 고즈넉한 모습도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서울시가 유람선을 타고 한강을 둘러보며 ‘한강르네상스’의 청사진을 가늠해볼 수 있는 선상 기자설명회를 열었다. 아직은 과거의 무분별한 개발로 척박해진 모습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지만, 둔치 곳곳에 푸르게 뿌리를 내리는 나무들을 보며 머지않은 미래에 진정한 서울의 젖줄로 거듭날 한강의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볼 수 있었다. 선착장에 가기 위해 지나친 난지 지구 캠프장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반팔로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이 눈에 띄었다.3년 뒤 월드컵 공원과 시민공원을 잇는 길이 50m의 보행녹도가 완성되면 그곳에서 달리기 내기를 하는 아이들로 활기가 넘칠 것이다. 난지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상류 쪽으로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양화대교 북단 즈음의 언덕에 높게 솟은 십자가가 보인다.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로 수많은 신자들이 피를 흘렸던 절두산이 바로 저곳이다. 서울시의 계획대로 내후년 절두산 성지 주변에 홍보관과 학습관이 설치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어두운 우리 근대사에 대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평일 오전, 요트 몇 척만이 유유히 떠가고 있는 한강은 유난히 넓어 보였다. 차를 타고 무심히 다리를 통해 건너다니기만 했던 한강의 폭이 1㎞나 된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다. 곧 내년 가을부터 운행될 관광콜택시와 수륙양용버스가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외국인들은 철마다 물새떼들이 찾아와 알을 품는 밤섬을 지나치면서 서울에 이런 곳이 있냐며 눈에 휘둥그레질 것이다. 직장인들도 ‘오늘은 차가 막혀 배를 타고 출근했다.’고 예사롭게 말하게 될 것이다. 유람선이 잠수교 밑을 지나자 차들이 쌩쌩 속도를 내며 달리는 반포대교가 올려다 보인다. 하지만 눈을 감으니 내년이면 완성될 반포대교 낙하분수가 조명을 받아 반짝일 환상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쯤이면 보행전용도로로 바뀔 잠수교에서 유람선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이들도 있으리라. 이날의 짧은 여정은 수중보가 설치되어 있는 잠실대교를 앞둔 선착장에서 끝이 났다. 지금은 4m정도의 낙차가 나는 수중보까지 갈 수 없지만, 배가 지나다니게 되면 항로를 잇는 갑문 역할을 해줄 것이다. 잠실 선착장에 내리니 밑둥 지름이 40㎝가 넘는 나무들이 곳곳에서 인사를 했다. 이팝나무와 느티나무, 메타세콰이어 등 인공그늘막을 대신해줄 아름드리 나무들은 4년 안에 한강 둔치의 자전거 도로를 따라 5000그루나 자리를 잡게 된다. 이 나무들은 지난 수해 때 한강 둔치가 며칠씩 침수됐을 때에도 끄떡없이 견뎌냈다. 한강을 푸르게 할 이 ‘친구’들이 궂은 비바람에도 굳게 뿌리내려주길 바라며 잠실 선착장을 떠났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수몰 마을 옥천 용호·석호리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수몰 마을 옥천 용호·석호리

    상가 사이로 좁게 얽힌 도로를 타고 옥천 읍내를 벗어나자 두루뭉술한 흰 구름을 느릿느릿 흘려보내는 가을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청호 푸른 물결 위에도 하나 가득 구름이 담겨 있다. 잘 찍어 놓은 슬라이드 사진을 연상시키는 것이 게으른 나그네가 털렁거리며 걷기 좋은 날씨다. 502번 지방도로의 포장이 끝난 부근에서 작은 나무판에 휘갈겨 쓴 이정표는 용호리 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용호리는 대청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파일’,‘쑥마루’,‘방개’ 등 정겨운 이름의 자연부락으로 이뤄진 제법 큰 마을이었다. 담수로 마을 대부분이 수몰되고 지금은 고향을 떠나지 못한 8가구 9명의 주민만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슬레이트 지붕에 호박나물을 널고 있던 심삼녀(62)씨를 붙잡고 동네 내력을 물었다.“쓸데없는 것 묻지 말고 점심은 했어? ” 이방인의 점심 걱정부터 하는 인정이 도시인인 기자에게는 다소 생경하다. 잠시후 아랫집에선 매운탕, 옆집 주민은 김치 한 보시기, 윗집 아주머니는 밭에서 갓 따온 빨간 고추가 달다며 권한다. 즉석에서 외지인의 방문을 환영하는 조촐한 파티가 벌어졌다. 훈훈한 인심이 가을 햇살만큼이나 따사롭다. 수확철에 멧돼지가 다 된 농사를 망칠까봐 걱정하는 주민들. 이들이 바깥나들이를 하려면 산길을 차로 1시간 넘게 돌아 나가야 한다. 때문에 군청에서 위탁받은 배가 석호리와 용호리 사이를 운항하는데 옥천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동네 사람 전원이 배를 타고 장을 보고 온단다.‘선장 박수성’이라고 쓰여진 명함을 건네는 박수성(72)씨는 이런 연유로 마을의 온갖 대소사를 챙기는 일까지도 하는 대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용호리에서 한 굽이 뱃길을 돌아야 보이는 석호리에는 현재 진걸, 돌거리 마을만이 수몰을 면한 채 남아 있다. 배 위에서 바라본 진걸 마을은 빨강, 파랑, 원색의 함석지붕을 얹은 고만고만한 가옥이 10여채 늘어서 있다. 선착장에서 배를 묶고 있던 손학수(58)씨가 반갑게 맞는다. 대청호에서 붕어를 잡아 생계를 꾸리는 어부다. 해가 서쪽 산머리에 걸릴 즈음이면 미리 보아둔 곳에 그물을 놓는다. 양손에 그물을 잡고 모터는 발로 운전을 한다. 걸쭉한 입담으로 각박한 세상에 대한 ‘욕’을 해가며 그물을 놓는 솜씨가 정말로 예술이다. 호수를 향해 근사한 테라스가 열린 집이 있어 주인을 찾았다.“여행을 하던 중에 진걸 마을 풍경에 반해 눌러 살게 됐답니다.” 정태경(55)씨가 마을의 독거노인들을 돌보며 살고 있었다. 밤나무와 호두나무가 많아 아침 산책길에 줍는 밤과 호두가 매일 한 주머니씩은 된다며 호두를 대접한다. 물에 갇힌 마을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사연을 안고 수몰 전 옛 추억을 더듬으며 비탈에 남은 손바닥만한 땅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네들의 꿈도 물속에 잠긴 마을과 함께 사라진 듯하지만 소박한 꿈을 찾는 그들의 일상만큼은 무척 바쁘게 보였다. 뽀얀 물안개가 아직 수면 위에 머물고 있는 새벽. 일터로 향하는 마을 사람들 어깨 위로 짙은 가을이 내려앉는다. 글 강성남기자snk@seoul.co.kr
  • ‘먼바다’ 섬주민 22년 숙원 풀었다

    ‘먼바다’ 섬주민 22년 숙원 풀었다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와 삼산면 손죽도 등 외딴섬 주민들이 기상관측상 ‘먼바다’를 ‘앞바다’로 지정해 달라는 오랜 숙원을 풀었다. 이 지역은 여수에서 뱃길로 1∼2시간, 거리로는 20∼27㎞ 떨어져 있으나 ‘먼바다’로 분류된 구역이다. 지역주민 550여가구 1400여명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내려지는 각종 기상특보에 생활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에 두차례 육지를 오가는 뱃길이 끊기기 일쑤였고,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손을 쓸 도리가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어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주민들은 기상특보가 내려질 경우 앞바다에 나가지도 못했다. 광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2002∼2004년 연도·손죽도 등 남해서부 ‘먼바다’에 발효된 기상특보 발효일수는 399일로 사흘에 한번꼴이다.‘앞바다’는 266일에 불과했다. 기상청은 ‘예보업무 규정’을 통해 동해전역은 12해리(22㎞), 서남해안은 20해리(37㎞) 이내를 각각 ‘먼바다’와 ‘앞다바’를 가르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규정을 적용할 경우 남면 연도와 삼산면 손죽열도, 인근 초도군도는 최고 26㎞쯤 떨어져 ‘앞바다’에 속한다. 기상청은 그러나 지난 1984년 구역설정 당시 이들 지역을 ‘먼바다’로 지정했다. 예보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이후 주민들은 각종 불편을 겪었고 급기야 지난해 8월 ‘남해서부 앞바다와 먼바다 경계구역을 조정해 달라.’는 집단민원을 기상청에 제출했다. 기상청은 현지답사와 해양기상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들여 지난 7월1일자로 이들 섬에 대한 예보구역을 ‘앞바다’로 조정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밤배타고 한라산의 가을로

    ‘우린 밤배 타고 한라산 간다.’ 지난 9일 새벽 6시 제주시 건입동 제주항 여객선터미널. 여객선에서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등산복 차림의 남녀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여객선은 전날 금요일 오후 7시 부산항을 떠나 꼬박 밤을 새워 제주 바닷길을 달려왔다. 인근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 이들은 서둘러 막 가을이 시작된 한라산으로 떠났다. 금요일 밤배를 타고 토요일 아침에 제주에 내려 한라산에 오른 후 토요일 밤배를 타고 되돌아가는 제주 무박3일 한라산 여행. 이모(44·부산시 남구 대연동)씨는 “잠자리가 좀 불편하지만 비싼 항공료나 숙박비 부담도 없고 이른 아침에 동네 뒷산처럼 한라산에 오를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이처럼 뱃길을 이용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지난해 113만여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23%나 된다. 올 들어서도 86만 1724명(8월말 기준)이 뱃길을 이용해 제주를 찾았고 연말까지 110만명 돌파가 무난할 전망이다. C여객선사 관계자는 “뱃길은 수학여행 학생들이 주고객이었지만 지난해 토요휴무제 실시이후 친구나 직장동료로 보이는 등산객 차림의 단체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제주행 항공기 편도요금 수준인 8만∼9만원대의 초저가 뱃길 한라산 등산여행 상품의 인기가 높다.8만∼9만원이면 부산∼제주, 인천∼제주 왕복뱃삯(3등실)에다 제주항에서 한라산까지 왕복버스, 점심도시락, 하산후 제주의 청정해수탕을 즐기는 기회까지 제공된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접점 못찾는 ‘직도 사격장’

    접점 못찾는 ‘직도 사격장’

    전북 군산 해상의 무인도인 직도 한·미 공군 사격장에 자동채점장비(WISS) 설치를 놓고 국방부와 군산시 및 주민들이 29일 공청회를 가졌으나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민측은 “직도에 폭격장이 설치되면 어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고군산 해양관광벨트 조성, 새만금 개발사업 등에 막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면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사격장 설치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반면 공군본부측은 “직도에 WISS가 설치되면 어로통제구역이 반경 18㎞에서 9㎞로 축소돼 어민의 어업권이 확대돼 경제적으로 보탬이 된다.”면서 대직도는 연습탄만, 소직도는 실폭탄만 사용하게 돼 대직도의 생태계 복원이 가능하다고 설득했다. 군산시는 오는 9월19일까지 자동채점장비 설치에 필요한 산지전용 허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뜨거운 감자’인 직도 문제에 대한 양측 입장을 점검해 본다. 전북 군산시에서 뱃길로 59㎞ 떨어진 바위산인 직도는 1971년부터 35년 동안 한·미 공군의 해상 폭격장으로 사용돼 온 무인도이다. ●군산시민 강력 반발 군산시는 요즘 ‘정부의 밀어붙이기 작전’과 ‘주민들의 결사반대’ 사이에서 여론도 진정시키고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해답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방부가 지난 16일 두번째 산지전용 허가신청서를 접수하자 시민들은 더욱 거세고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다.1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군산발전비상대책위’(대표 이만수 전 군산시의장)는 이날 “국방부가 시와 시민들의 동의도 없이 정해진 일정에 따라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이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들 단체는 ▲어민 생존권 보장과 피해 보상 ▲정부와 국방부의 일방적인 미 공군폭격장 검토 철회 ▲사격장 활용 즉각 중단 ▲국방부장관 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5일 출범한 ‘매향리 국제폭격장 직도 이전 저지를 위한 군산대책위원회’ 최재석 집행위원장도 “직도 사격장은 시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WISS 설치를 용인할 경우 앞으로 직도 사격장은 주한 미공군과 아시아 태평양지역 미공군의 폭격훈련장이 되면서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진원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전북도와 군산시가 어설픈 정부지원을 기대하며 군산을 팔아 낙후된 전북경제의 책임을 모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이들 단체는 홍보전과 함께 국방부 항의방문, 대규모 거리집회 등 강력한 반대투쟁을 시작할 계획이다. 직도를 점거하는 ‘직도현장방문 투쟁’을 공세적으로 전개해 나갈 방침이어서 정부와 충돌이 예상된다. 직도 인근 말도 이장 고영곤(47)씨도 “35년 동안 황금어장을 눈앞에 두고 조업을 못했으니 피해보상은 물론 앞으로의 생계대책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 시민들의 반발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 때문이다. 주민들은 정부에서 직도가 매향리 대체 사격장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자동채점장비가 설치되면 주한 미공군은 물론 아시아에 주둔 중인 미군이 국제폭격장으로 활용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정부가 군산시에 약속했던 국책사업들이 수포로 돌아간 것도 감정을 상하게 한 주요인이다. 방폐장 유치에 적극 나섰던 군산시민들은 결국 경주의 들러리로 전락했고, 대통령 공약사업인 군산경제자유구역 지정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분개하고 있다. 군산시가 여러 차례 방폐장 후속대책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시민들의 주장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윤우 공군작전훈련처장 문답 공군본부 윤우 작전훈련처장(준장)은 29일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직도 자동채점장비(WISS) 설치 방침과 관련,“직도에 자동채점장비를 설치하면 경제적·환경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밝혔다. 윤 처장은 이날 전북 군산시 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직도사격장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토론회’에서 “직도에 WISS가 설치되면 어로통제구역이 반경 18㎞에서 9㎞로 축소돼 어민의 어업권이 확대돼 경제적으로 보탬이 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주민과 시민단체 등이 제기한 문제제기에 대한 윤 처장의 설명. ▶한·미 공군이 30여년 전부터 직도를 사용했는데 왜 지금 WISS를 설치하나. -지난해 매향리사격장 폐쇄에 따라 주한미군은 유일하게 평가장비가 있는 강원도 필승사격장에서만 훈련하고 있다. 그러나 필승사격장은 산악지형상 저고도사격이 요구되는 A-10기는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직도에 WISS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직도사격장과 관련한 한·미간 합의내용을 공개할 수 있나. -한·미군 간 협의절차가 진행중이며, 공식적으로 합의된 사항은 없다. ▶주민 반발이 거세면 미 공군이 옮겨오지 못하나. -직도사격장은 현재 상태에서 WISS만 설치될 뿐, 미 공군 병력이 추가로 이전해오는 것은 아니다. 주민이 반발한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사안이 아니다. ▶WISS는 미군지원시설 아닌가. -직도에 설치되는 WISS는 우리 공군의 사격훈련 효과를 증대시키는 장비이고 향후 모든 공군사격장에 설치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미군전용시설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직도사격장이 새만금∼고군산군도를 연결하는 해양관광벨트 조성을 저해하지 않나. -직도사격장은 새만금 관광단지 조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WISS가 설치되면 정확한 탄착점 확인이 가능해 사격 고도를 현재보다 6∼8배 상향 조정, 소음을 대폭 감소시키는 등 해양관광벨트 조성사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직도사격장도 방폐장 문제처럼 주민투표로 결정할 사안 아닌가. -방폐장은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데다 3개 지역에서 경쟁적으로 유치하려는 사업이어서 주민투표 대상에 해당하지만 WISS설치는 주민부담과 관계가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어로통제 구역 축소로 어민피해가 감소하기 때문에 주민투표 대상이 될 수 없다. ▶WISS설치 추진 방향은. -WISS설치 문제는 국가안보 전략상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중요한 사업이다. 지자체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관리권 전환을 통한 해결방법도 생각하고 있으나 그런 방법까지 동원되지 않도록 정부차원에서 최대한 성의를 다할 것이다. 군산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직도는 어떤 섬 직도는 전북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산 144·145번지에 있는 무인도이다. 군산에서 서쪽으로 59㎞, 말도에서는 22㎞ 떨어져 있다. 면적 3만 1376평의 대직도와 4432평의 소직도로 구성돼 있다. 1971년부터 현재까지 한·미 공군이 해상 실무장 폭격훈련장으로 공동 사용하고 있다. 주변에는 말도에 60여명, 방축도에 160여명, 명도에 80여명 등 모두 3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들 유인도는 직도와 18∼20㎞가량 떨어져 있다. 주민들은 직도 인근에서 조업을 하다 불발탄이 폭발해 1997년과 1999년,2000년 3차례에 걸쳐 3∼4명이 사상했으며 폭격기의 잦은 사격으로 소음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현재 직도 사격장에서의 한국 공군과 주한 미 공군의 훈련량은 80대 20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주한 미군측이 30%까지 확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인도인 직도는 한때 ‘갈매기 섬’이라고 불릴 정도로 바다새의 낙원이었으며 주변은 서해의 황금어장이었다. 그러나 지난 35년 동안의 폭격 훈련으로 황폐화됐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관련 정보 소상히 밝힌 후 주민동의 구해야” “국방과 외교문제라고 해서 지역주민들의 여론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동신 군산시장은 29일 “직도 문제는 주민들의 삶과 직결된 것인 만큼 민주적 절차에 따라 시민들의 여론을 수렴해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책사업이지만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난 만큼 투명하고 공정한 주민의견 수렴과정을 거쳐 동의를 구하는 것이 해법을 구하는 지름길이라는 설명이다. “국방부는 우선 주민들이 궁금해 하는 직도 사격장 관련 정보를 정확히 공개하고 납득이 갈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해야 합니다.” 문 시장은 “자동채점장비 설치후 피해가 줄어든다는 증거와 관련정보를 밝힌 뒤 설득력있고 합당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직도 문제는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가 정부이기 때문에 국가관리 차원에서 정부가 먼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정부가 국방과 외교논리를 앞세워 주민들의 삶의 문제를 권위적인 행태나 힘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시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동안 정부가 방폐장,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 국책사업 추진과정에서 신뢰를 잃어 보다 적극적이고 성의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여론을 무시하고 사격장 문제를 해결하려면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문 시장은 “정부가 국방과 주민의 삶의 문제를 대등한 위치에서 공평한 가치관으로 해결하려 노력한다면 주민과 시의회가 여론을 수렴해 문제해결 방안을 찾아볼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9) 문경길(하)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9) 문경길(하)

    고모산성을 지난 옛길은 문경읍을 거쳐 새재길로 들어선다. 문경읍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하늘재길을 이용했다. 안태현(38) 문경새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하늘재는 문헌상 가장 오래된 고개로 서기 156년 신라 아달라 이사금 3년에 개통됐다.”며 “신라시대에는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군사도로 등의 역할을 했으나 조선초 문경새재에 그 역할을 넘겨주면서 관도로서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했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한양과 동래를 잇는 옛길의 중심에 있다. 당시 새재는 일본에서 오는 사신 일행과 중앙에서 부임하는 관리들, 과거길에 올랐던 영남의 선비를 비롯한 보부상들로 늘 붐볐던 길이었다. 뿐만 아니라 영남의 세곡과 궁중 진상품 등이 새재를 통해 충주의 남한강 뱃길과 연결되어 서울 한강 나루터에 닿았다. ●조선시대 한양·동래 잇는 옛길의 중심 따라서 예로부터 ‘문경’이라 하면 ‘새재’를 연상케할 정도로 문경새재의 명성은 높았다. 새재는 여러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새들도 이 고개에 막히면 넘지 못한다고 해서 유래됐다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또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라는 옛 문헌의 기록도 있다. 그리고 ‘새’를 ‘사이’로 풀어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의 고개,‘새로운’으로 풀어 ‘새재’로 해석하기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엔 왜군이 북진할 때 신립 장군이 천혜의 요새인 이 새재를 지키지 못하고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가 전멸당한 통한도 간직하고 있다. 새재공원 입구에서 제1관문인 주흘관까지는 3.5㎞.‘영남제일관’이라는 현판글씨가 보인다. 주흘관은 사적 제147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 숙종 34년(1708년)에 축조됐다. 정면 3칸, 측면 2칸, 협문 2개가 있으며 개울물을 흘려 보내는 수구문이 있어 3개 관문 가운데 가장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제1관문을 지나 조금 오르면 오른편에 큰 기념탑이 하나 나온다. 경북도가 개도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1996년에 세운 타임캡슐이다. 첨성대형을 띠고 있으며 100품목 475종의 물품이 매설돼 있다. 이 캡슐은 경북개도 500주년이 되는 2396년 10월 23일에 후손들의 손에 의해 개봉된다. 타임캡슐 건너편에는 고려와 백제시대의 왕궁, 초가집 등이 들어선 KBS드라마 ‘태조왕건’ 촬영장이 보인다. 이 곳이 문경새재를 ‘한국의 할리우드’로 도약시켰다.‘무인시대’,‘불멸의 이순신’,‘해신’ 등의 대하드라마가 촬영됐고 최근 흥행 신기록을 세운 ‘왕의 남자’의 장면 일부도 문경새재에서 촬영됐다. 이 곳에서 30년째 살고 있다는 이승원(58)씨는 “드라마촬영장 일대에는 20여가구의 주민들이 살았으나 지난 1996년 문경새재 관리사무소 밑으로 이전했다.”고 말했다. 촬영장을 지나면 조선시대 길손들의 숙박과 물물교환장소로 이용됐던 조령원터가 나온다. 지난 1977년 두차례에 걸쳐 발굴작업을 벌여 기와와 토기, 자기, 담뱃대, 손칼 등이 출토 되었다. ●드라마 ‘태조왕건´등의 촬영장 조령원터에서 용추로 오르다 보면 왼편에 초가 한 채가 보인다. 문경시청 엄원식(38) 학예사는 “이 초가는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을 오르던 선비와 전국을 누비던 상인들 그리고 갖가지 사연을 품고 새재길을 넘다들던 사람들이 여행의 피로를 풀고 정분을 나누던 주막이다.”고 설명했다.1993년까지 장사를 했으나 지금은 건물만 남아있다. 팔왕폭포라고도 불리는 용추는 하늘과 땅의 모든 신인 팔왕과 선녀가 어울려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 새재 주민들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들도 이 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용추 바로 위 오른쪽 길가에 있는 교구정은 관찰사들이 업무를 인수 인계하던 곳이다. 안 학예연구사는 “교구정은 조선시대 새로 도임하는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하는 관찰사가 관인을 인계하던 곳”이라며 “지금은 건물 형태와 규모는 알 수 없고 주춧돌만 남아 옛 정취를 말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500m쯤 더 가면 훈민정음으로 쓴 ‘산불됴심’표석이 눈에 띈다. 당시에도 산불이 골칫거리였던 모양이다. 제2관문 들어서기 전에 만나는 조곡폭포는 근래에 문경시에서 만든 폭포. 비록 인공폭포이긴 하나 시원한 물줄기가 무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관문 제2관문 ‘조곡관´ 제2관문 조곡관은 문경새재 3개 관문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조선 선조 27년 1594년에 설치됐다. 제1,3관문보다 100여년 앞선 것이다.1907년 일제에 의해 없어졌으나 1975년 복원됐다. 문루이름도 옛 조동문을 버리고 조곡관이라고 적었다.2관문을 지나자 관광객들 발길이 뜸했다. 안 학예연구사는 “대부분 관광객들이 2관문 옆에 있는 조곡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되돌아 간다.3관문까지 왕복하는 관광객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조곡관을 지나 500m쯤 가면 자연석을 깎아 ‘새재아리랑’을 새긴 비를 만난다.‘문경새재 물박달나무/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홍두깨 방망이 팔자 좋아/큰 애기 손질에 놀아난다/문경새재 넘어 갈제/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라는 노래에서 갖가지 사연을 안고 고개를 넘나들었던 나그네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다. 새재아리랑비에서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진을 쳤다는 이진터를 지나 1㎞쯤 가면 대동여지도에도 표기돼 있는 동화원이 길손을 맞는다. 동화원은 제3관문 못미쳐 있는 새재의 마지막 마을이다. 고려 왕건이 남쪽을 칠때 행재소로 사용한 곳이다. 고려 공민왕은 이 곳에 행궁을 짓고 홍건적의 난을 피했다고 전해지고 있다.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몇 가구가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떠났다. 마침내 제3관문인 조령관에 도착했다.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해 선조때 쌓았고 숙종때 중창했다. 제3관문을 기준으로 남쪽은 경북 문경이고 북쪽은 충북 충주다. 제3관문 오른쪽에는 군막터가 있다. 이곳은 조령관을 지키던 군사들의 대기소가 있었던 곳이다. 왼편에는 산신각이 있다. 새재를 넘나들던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여기에서 빌기도 했다. 새재를 넘으면 한양은 삼 사일 앞으로 성큼 다가선다. 문경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장원급제 길’ 문경새재 예로부터 영남의 많은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갔다. 영남에서는 한양으로 가는 길이 남쪽의 추풍령과 북쪽의 죽령, 그리고 가운데 문경새재가 있었다. 그런데 영남 선비들은 문경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는 선비들의 금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경새재를 ‘과거길’ 또는 ‘장원급제의 길’로 부른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문경새재입구에는 선비상이 우뚝 서 있다. 또 제2관문에서 동화원을 지나 제3관문 아래쪽에는 책바위가 있다. 책바위에는 장원급제와 관련된 전설이 인근 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전설에 따르면 옛날 문경새재 인근에 살던 큰 부자가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아들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허약해 용한 도사를 찾아가 물으니 “집을 둘러싼 돌담이 아들의 기운을 누르고 있으니 아들이 직접 담을 헐어 책바위 뒤에 쌓아놓고 정성을 들여 기도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 부자는 도인의 말대로 3년 동안 아들에게 담장의 돌을 하나씩 책바위 뒤로 옮기게 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아들의 몸이 튼튼해졌으며 공부도 열심히 해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고 출세해 가문을 일으켰다. 이후 이곳을 넘나들던 선비들이 책바위 앞에서 소원을 빌면 장원급제했다는 것. 현재의 책바위는 지난 1998년 문경시가 이 전설에 따라 재현해 놓은 것이다. 입시 철만 되면 하루 수백여명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책바위를 찾아와 합격을 빌고 간다. 문경시는 최근 책바위 주변을 새단장했다. 책바위 뒤편 돌무더기 위에 화강암으로 된 높이 1.6m, 폭 0.5m크기의 입석을 세운 뒤 주변에 대나무를 심고 등산로를 보수했다. 안태현 문경새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경쟁률은 자그마치 수천대 1이나 되었다.”면서 “이런 이유로 문경새재를 넘은 영남선비들의 합격률도 알려진 것과는 달리 크게 높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경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15) 아랍에미리트 무역허브 두바이

    [이슬람 문명과 도시] (15) 아랍에미리트 무역허브 두바이

    아랍에미리트의 무역도시 두바이는 사막을 낙원으로 바꾼 21세기 오아시스의 신기루다. 진주 조개잡이를 하던 자그만 어촌이 이제는 세계 최고라는 무수한 브랜드를 가진 지구촌 무역·금융 허브로 급성장하고 있다.180층 세계 최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사막에 잔디를 심어 2시간마다 물을 주는 세계최고의 골프장도 건설했다. 그뿐이랴. 바다에 떠 있는 초호화 세븐 스타 호텔을 짓고, 바다를 매립하여 세계지도를 본뜬 인공섬을 만들어 분양하고 있다. 그 자존심 강하다는 아랍 지역에서, 유일하게 모국어인 아랍어가 통용되지 않을 정도로 국제화된 도시가 두바이다. 석유가 고갈되면 아랍은 끝장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아마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적인 밀 수출국이고, 국제적인 관광·쇼핑·스포츠·금융 허브로서 발돋움하고 있는 두바이의 모습을 보고는 생각을 고쳐먹게 될 것이다. 두바이는 원래 걸프해의 고대 무역항이었다. 인도양과 아라비아해가 만나는 걸프해의 입구에는 해마다 4월이면 계절풍인 몬순이 불기 시작한다. 이미 7세기부터 이 몬순을 타고 상인들은 인도나 중국으로 배를 저어갔다. 배에는 진주조개에서 채취한 영롱한 진주알과 금 세공품, 이웃 오만과 예멘 등에서 구입한 값비싼 향료와 약초를 잔뜩 실었다. 그러고는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니면 풍랑을 만나 영영 못 돌아올지도 모르는 긴 항해를 떠났다. 그래서인지 두바이에서 선원들을 만나면 웃음 속에서도 알 수 없는 슬픔이 묻어난다. 걸프해의 옛 항구 두바이에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상인들과 물건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렇지만 두바이 선원들은 더 이상 목숨 걸고 뱃길로 나가지 않는다.1940년대 양식 진주의 개발로 선원들의 생계가 한때 어려워졌지만,1966년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두바이에는 넘쳐나는 물건과 밤낮 구분 없는 흥청거림, 길거리를 메운 자동차만 가득하다. 지평선을 삼켜버린 고층 첨단빌딩으로 그 옛날 사막은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40도를 웃도는 날씨에 실내 스키를 즐기는 아이들의 표정에 어안이 벙벙하다. # 인도인과 세븐 스타 호텔의 절묘한 공존 10년만에 다시 찾은 새벽 도시에는 인도 사람들만 가득하다. 지나가는 택시를 세우고 흥정을 한다. 그도 역시 인도 서부도시 케랄라에서 왔다고 한다. 박물관 수위, 기념품 가게 주인, 주유소 직원, 환전하는 은행 창구원도 대부분 인도인들이다. 심지어 커피 한잔 마시러 잠깐 들른 카페테리아에서는 젊은 아랍인들이 영어로 인도인 점원에게 음식주문을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40만 두바이 인구 중에서 시민권을 가진 아랍 토착인은 20%에 불과하다고 하니 이 도시를 먹여살리는 것은 온통 인도 중심의 외국인인 셈이다. 지금 두바이에는 옛날 아랍 도시의 분위기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옛 모습이 궁금하여 시내에 있는 두바이 박물관부터 찾았다. 1787년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해 놓은 알 파히디 성채에 꾸며진 박물관은 작은 규모였지만, 두바이의 모든 것을 압축해서 잘 전시해 놓았다. 역사·민속·자연사 박물관 기능을 모두 갖춰 두바이의 참 모습을 떠올리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성채 안으로 들어가니 정원에는 두바이의 전통 목조 가옥과 진주잡이를 하던 목선을 그대로 복원해서 전시해 놓았다. 진흙으로 벽을 바르고 대추야자 잎으로 지붕을 엮었다. 고급주택이 늘어선 해변가 거주지 주메이라로 가보았다. 은은한 푸른 색이 감도는 배 모양을 한 건물 한 채가 바다 위에 떠 있다. 소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초호화 호텔로 잘 알려진 별 일곱개 부르즈 알 아랍 호텔이다. 구경하는 입장료만 50달러를 받는다. 엘리베이터도 천장도 벽도 온통 금으로 치장해 놓았다. 아래층에서 2층 로비로 가는 높은 벽면 전체를 수족관으로 만들어 놓아 호텔로 오르면서 바다 밑에서 수면으로 나가는 감동을 연출해 놓았다. 하룻밤에 수천달러씩 하는 방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지배인은 끝까지 나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 43도 날씨의 실내 스키장 시내 중심가의 쇼핑 센터는 고급스러운 카페와 레스토랑, 갤러리가 있는 문화공간으로 없는 것이 없는 작은 지구였다. 다른 쪽 실내 스키장에서는 리프트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영하의 온도에서 입김을 호호 불며 아랍의 젊은이들이 신나게 스키를 즐기고 있다. 아랍커피의 본산에 왔으니 쓰디쓴 모카 커피 오리지널 한 잔 마시고 싶었으나, 스타벅스 커피와 인스턴트 커피에 밀려 어느 커피숍에서도 전통 아랍커피는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무더운 바깥으로 나왔다. 오후 1시, 시계탑의 온도는 43도를 가리킨다. 때묻지 않은 두바이의 냄새를 맡고 싶어 옛 항구로 발길을 돌렸다. 대추야자가 늘어선 작은 공원을 지나 건너편 전통시장 수크로 가는 통통배에 올라탔다. 더위에 한참을 짜증을 내며 기다리는데 20명을 채워야 떠난단다. 뱃삯으로 우리돈 300원 정도하는 2분의1 디르함을 받는다. 두바이 옛 항구에는 아직도 거대한 목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다. 전통시장 수크에는 진정한 삶이 있었다. 인도인과 하얀 터번을 둘러 쓴 두바이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흥정하고 차 마시는 시장에서 나는 진정한 두바이를 보았다. 그 옆 금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랍 지역 최대의 금시장이라 한다. 가게마다 금이 넘쳐난다. 가느다란 금 목걸이나 금반지가 아니라 금 옷이나 금 머플러를 연상케 하는 굵고 화려한 세공의 금 덩어리들이 눈을 부시게 한다. 나는 황금색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고 머리에 새겼다. 구름 한 점 없는 강한 햇살에 빛나는 그 황금색을 어떤 화가나 카메라도 도저히 담아낼 수 없을 것 같다. 석양이 몰려오면서 두바이를 떠날 채비를 한다. 사막 모래가 식으면 이곳 사람들은 텐트를 치고 밤의 문화를 시작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텐트를 칠 공간마저 부동산 개발로 빼앗긴 두바이 사람들은 모래 대신 아파트의 화려한 카펫 위에서 전혀 새로운 밤의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다만 잠 속에서 신드바드의 꿈을 꾸면서 옛날을 희미하게 기억하게 될까? 이희수 한양대 교수·이슬람문화연구소장
  • 이젠 물이 썩어간다

    폭우 속에 떠내려온 수해목과 각종 쓰레기로 강원도내 계곡과 하천이 몸살을 앓고 있다. 앞으로 폭우와 태풍이 더 몰려오면 대형 피해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24일 강원도에 따르면 수해를 입은지 1주일이 지났으나 긴급복구와 구호를 우선하다 보니 산간계곡과 주요댐에는 적게는 수십t에서 많게는 수백t씩의 수해목과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돼 있다.이 때문에 악취를 풍기고 또다른 폭우와 태풍으로 2차 피해까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같은 쓰레기는 지난 17일 현재 전국의 육상 2만 373t 등 모두 3만 7583t 규모에 이른다. 이러한 수해목과 생활쓰레기, 건축폐자재 등이 댐처럼 쌓여 있어 큰 비가 또 내리면 다시 물길을 가로막으며 응급복구된 도로와 임시교량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설악산 자락의 오색천 주변과 양양∼오색간 도로변, 오색 주전골계곡, 한계령계곡 등에는 수만t의 수해목이 손도 못댄 채 그대로 쌓여 있다. 양양군은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빠른 수거와 처리가 필요한 수해목만도 3만여t으로, 이의 처리비용에 16억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소양호와 춘천댐 등 주요 댐들도 상류에서 떠내려온 각종 쓰레기들로 거대한 매립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인제군 수산리와 양구군 원리 일대 소양호는 상류에서 뿌리째 뽑혀 떠내려온 나무와 간벌목 등이 물에 둥둥 떠 있다. 호수 곳곳에 쌓인 쓰레기 중에는 온갖 생활용품뿐아니라 빈 농약병, 죽은 가축들까지 떠다니며 썩고 있어 악취를 풍기고 있다. 인제군 남면 수산리 심성흠(52)씨는 “집중호우로 소양호 일대가 거대한 쓰레기 매립장으로 변해버렸다.”며 “쓰레기가 장기간 방치될 경우 수질오염이 불가피한 만큼 수거작업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댐 상류지역이 수해로 유입된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앓으며 뱃길과 상수원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나 수자원공사, 한강수력발전처 등 관계당국은 아직 쓰레기 제거에 대해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소양강댐관리단 관계자는 “워낙 양이 많아 처리에 수개월이 걸릴 것 같다.”며 “아직 처리비용조차 산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자치단체 관계자들도 “쓰레기가 어디에 떠내려와 있는지 위치에 따라 처리주체가 달라진다.”며 “수만t의 쓰레기 처리가 쉽지 않고 돈도 많이 들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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