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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야·잉카유물 한눈에/「중남미 문화원」 생겼다

    ◎고양에… 가면등 1천5백여점 전시/전멕시코대사 이복형씨 27년간 수집 마야·아즈테카·잉카등 화려했던 중남미의 문화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중남미 문화원」이 건립됐다. 이 문화원은 국내 유일의 중남미문화 전시공간이 될 뿐만아니라 아시아에서도 개인이 소장한 중남미 최대전시관으로 평가돼 학계와 학생등 관심있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 302에 위치한 중남미문화원은 1천2백평 대지에 연건평 3백평,지하1층·지상1층규모로 회화·토기·도자기·가면등 1천5백여점의 중남미 문화유물을 전시,오는 10월7일 개관된다. 이문화원을 개설한 전멕시코대사 이복형원장(63)은 『10만이 넘는 한국인이 중·남미대륙에 정착해 살고 이들 국가와 정치·경제등 다방면에 걸쳐 교류가 확대되는 시점에서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우리의 문화를 전달할 때 돈독한 관계를 다질 수 있어 문을 열었다』고 밝혔다. 문화원에는 4개 전시홀과 영상세미나실,갤러리·연구실등이 갖춰져 있고 건물양식도 중앙홀의분수대,붉은 바닥장식·스테인드 글라스·기와등 중·남미풍으로 지어졌다. 전시홀중 토기전시실에는 주로 멕시코와 중미일대의 토기가 수집,전시돼 있는데 마야토기(AD 550∼950)를 비롯,코스타리카·파나마일대 조로테가토기등 기원전 1세기부터 14세기까지 다양한 토기를 선보이고 있다. 석기및 목기실에는 9∼12세기 당시 인디오들이 영혼과 물질을 혼합한 신비의 상징으로 숭배됐던 뱀모양의 멕시코 퀘잘코아뜰석조물등 코스타리카및 멕시코의 석기·목기가 주류를 이룬다. 가면전시실에는 인디오들의 축제·카니발·의식용등으로 사용되던 가면이 나무·가죽·천·철기·석기등 다양한 재료와 색채를 이용,화려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민속공예실에는 스페인과 동양의 영향을 받은 도자기·비단과 재봉틀·마구·악기·항아리·접시등 서민용품들이 전시됐다. 이들 유물은 이원장이 지난 67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아르헨티나·코스타리카·도미니카공화국·멕시코대사를 역임하는등 중·남미에서 27년간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골동품및 공예품점,벼룩시장등을뒤져 모은 것이다.(0344)62­9291
  • 패망의 설화(백제를 다시본다:28)

    ◎의자왕 실정 등 좌절의 역사 우회 표출/천정대 전설은 흥수·성충 유폐 비판/「철 먹어치운 딱정벌레」선 멸망 암시/「계백 키운 호랑이 석달사흘 통곡」엔 백제인 자존심 깃들어 설화를 통해 백제인의 의식을 살피는 일은 그것이 역사적 사실의 확인 여부를 떠나서 꽤 흥미있는 일이다.왜냐하면 설화는 역사 현실에 대한 민중의 의식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백제설화가 생각보다 많이 채록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런대로 지금까지 알려진 설화들이 꽤 전해지고 있다. 사비시대가 막을 내리고 유민들이 항쟁을 벌인 시기는 백제로서 비극의 시대다.그 무렵 좌절의 역사가 더러 설화로 우회되어 나타났다.의자왕이 말년 실정을 거듭한 끝에 패망한 역사와 관련한 「희녀대」전설 역시 이 범주에 속한 것이다.사비성 밖 반월성 부근에 있는 희녀대에는 전국에서 뽑혀 온 처녀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백제가 망할 때 이 여자들이 모두 희생되어 백제에는 고운 모습의 여자들이 없어졌다.이는 「삼천궁녀」전설과 통하는 이야기라고도 할수 있다. ○「삼천궁녀」 전설 비슷 부여 규암면에 있는 「천정대와 임금바위 신하바위」전설은 의자왕의 실정을구체적으로 보여준다.천정대는 임금이 정승될 신하의 이름을 적어 넣으면 도장이 찍혀나오는 곳이다.의자왕은 흥수와 성충이 직간을 하자 다른 사람의 이름만을 적어 넣었더니 도장이 찍혀나오지 않았다.그럼에도 의자왕은 이들을 유폐시켜 나라가 망했다는 이야기다. 서산에 있는 「안흥목과 불가사리」전설은 백제 멸망의 징후를 보여준다.사비성에 남편을 보내고 바느질 품삯으로 사는 여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딱정벌레가 나타나 가슴을 찌르고 사라졌다.며칠 후 그 딱정벌레는 사비성의 쇠붙이를 모조리 먹어치워 황소만해졌다가 안흥에 이르러 신진도 물살에 뒤집혀 죽었다.딱정벌레가 남편이 전쟁에 나간 여인의 가슴에 붙어있었다는 것은 전쟁에 나가 죽은 병사들의 혼과 수절하는 여인들의 한이 어우러진 것을 상징한다.또 사비성의 쇠를 모조리 먹었다는 것은 백제에서 무기를 만들 쇠가 없게 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임천면에 구전되어 온 「성흥산성과 일곱왕자」는 성흥산성에서 일곱왕자와 항전하던 윤충이 사비성에 갔다가 모함을 받아서 죽었다는 내용이다.은산면에도 윤충이 나오는 「삼괴정의 세 장수」이야기가 있다.윤충이 세 장수와 함께 왕에게 충간끝에 옥에 갇혔다가 탈옥하여 은산에 은거하며 국난에 대비한다.그러나 윤충은 흑치상지의 배신으로 죽고 장수들은 왕자들의 권력다툼으로 패하고 말았다는 줄거리다. 이 두 전설은 시간적으로 맞지않지만 전설은 이를 문제시하지 않는다.요는 백제 유민들에겐 윤충이 백제의 국난을 위해 싸우려다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의자왕의 어리석음 때문에 죽는 다는 것이다.장수들이 지도자들의 권력싸움과 동료들의 배신으로 패한 것이 안타깝다는 울분을 설화를 통해 달래고 있다. ○윤충 모함받아 죽어 그러면서도 막상 백제가 망하고 의자왕을 비롯한 관료와 백성들이 당으로 잡혀간다니까 백성들이 의기투합하여 모인다.양화면의 원당산 또는 사당산이라고 불리는 곳이다.이름 그대로 당을 원망한다,또는 당을 향해 화살을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유래된 민요가 「산유화가」이다.부여지역 백제인들의 국가에 대한 집단의식이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소정방과 관련된 전설로는 「조룡대」전설을 비롯해서 「석연지와 백제탑」「맹괭이방죽」「군장동」「문동교」 등이 있다.「석연지와 백제탑」은 소정방이 「대당평재국비명」을 석연지에 새기려 하자 석공이 이를 거절한다.소정방이 이번에는 백제탑에 그 글귀를 새기려하나 석공은 탑 앞에서 죽어버린다.석공의 백제혼을 이야기한 것이다.그러나 실제로는 석연지와 백제탑에는 소정방이 새긴 비명이 남아 있다.이 전설은 수모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치욕을 유민의 입장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민중의식을 담은 것이다. 「조룡대」전설은 각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주된 내용은 소정방이 당군을 이끌고 조룡대에 이르러 돌풍으로 더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백마를 이용하여 용을 낚았다는 내용이다.각편에 따라 용의 화신은 의자왕,무왕,간신인 구가,천일장군 등으로 나온다.다만 의자왕이나 구가일 경우에는 이들에 대한 민중들의 부정적 시각이 드러나 죽은 시신이 떨어져 썩은 냄새가 난다는 구릿내로 되어 있다.그러나 무왕이나 천일장군일 경우에는 호국신답게 무왕이 밤에 도사로 변신하여 소정방을 괴롭혔다거나 소정방이 천일장군의 짝인 암룡을 잡기위해 강에 소금과 독약을 넣었다고 하여 그의 잔인성을 고발하고 있다. ○소정방 잔인성 고발 백제유민들의 국가에 대한 집단의식이 극명하게 나타난 설화는 「맹광이 방죽」이다.이름난 점쟁이 이민광이 계룡산 치마바위 아래 숨어있는 의자왕을 소정방의 위협에 못이겨 알려주고 난 뒤 뱀한테 물려죽었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이 역시 의자왕이 나라를 망친 장본인일지라도 배신자는 용서할 수 없다는 백제유민들의 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표뜸과 계백장군」은 패배한 백제장수들에 관한 대표적인 전설이다.계백은 다섯살이 될 때까지 호랑이에게서 키워졌다.어릴 때는 홍수를 건너 서당엘 다녔고 성장해서는 호랑이의 도움으로 많은 무공을 세웠으며 그가 죽자 호랑이가 석달 사흘을 울었다는 것이다.백제유민의 입장에서 비록 전쟁에서 진 장수이지만 근본은 신이성 내지 신통력을 가진 존재로 그의 패배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님을 밝혀 백제유민들의 정신적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다. 끝으로 백제유민,특히 여인들의 항거를 통해 유민의식을 보여주는 전설로 부여의 「각시바위」「가음산 궁녀바위」「낙화암과 삼천궁녀」「마가산 선녀」「연화지의 두 도령」,당진의 「영웅바위의 한」,청양의 「장수바위」「고란초」,서산의 「은행나무와 사자암」,금산의 「창평의 중바위」,대덕의 「새여울 두 처녀의 우정」 등이 전한다. ◎설화의 의미/건국·인물탄생의 사실 반영/「곰나루 전설」로 마한인의 유래 추정도 설화는 역사를 반영한다고 한다.설화의 내용이 곧 역사는 아닐지라도 역사적 사실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설화연구자들은 백제의 시조 온조가 남하하기 전 마한지역의 선래 토착인들이 누구였는지도 설화를 통해 추정하기도 한다. 공주 「곰나루전설」은 곰과 어부가 교혼을해 살다가 어부가 인간 세상이 그리워 도망가자 곰이 자식과 함께 강에 뛰어든뒤 금강에서 거룻배가 자주 뒤집어져 사람들이 곰의 사당을 짓고 곰을 제사지냈다는 이야기이다.이 설화는 이 지역의 선래 토착인들이 북쪽에서 이주한 곰 신앙 부족의 후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백제 무왕이 되었다는 서동이나 후백제 시조인 견훤의 탄생설화는 지렁이와 과부가 교혼을 해서 낳았다는 수평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이에비해 단군 주몽 혁거세 등 다른 국조 영웅들의 탄생설화는 천부지모의 수직적 구조를 보여준다. 이 두 설화는 마한지역에 온조부족 이외에 적어도 서로 다른 신화의 세계관을 지닌 두 부족이 공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백제 초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청양군 「고금티 곰 울음」전설은 이들 서로 다른 부족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줄거리는 이렇다.백제군사에게 어미 곰을 잃은 아기 곰이 고개너머 다른 어미 곰과 아기 곰을 만났다.그러나 그 어미 곰 마저 백제군사에게 잡혀갔다.아기 곰들은 서로 의지하고 살려고 했지만 숯 굽는 사람들이 피우는 연기 때문에 고개를 넘어갈 수 없어 서로 울부짖으며 혼자 늙어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곰은 물론 마한지역에서 곰을 숭배하며 살아온 부족을 상징하는 것이다.결국 이 전설은 백제군사들이 이 지역의 곰 부족을 분열시켜 축출한 비극적인 역사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뱀의 갈라진 혀 짝 찾는데 이용

    ◎유일한 감각기관… 양방향으로 감지 암컷위치 가늠 뱀의 갈라진 혀는 배우자를 찾기위해 쓰인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미 과학월간지 「디스커버」최근호는 포크처럼 양쪽으로 갈라진 뱀의 혀가 이성이 있는 곳을 알아내 접근하는데 주로 쓰인다고 전한다. 미 코네티컷대학 생물학과 커트 슈웽크교수에 따르면 뱀의 혀는 일종의 「케모리셉터」로 작용을 한다.케모리셉터란 주변에 있는 화학물질들(여성호르몬 등)을 잡아들여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신경세포의 일부분이다.뱀이 계속해서 혀를 낼름거리는 이유도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분석」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다른 동물과는 달리 후각이나 청각 등이 별로 발달하지 못한 뱀들은 혀가 거의 유일한 감각기관이다. 뱀이 혀를 이용해 배우자를 찾아내는 방법은 일종의 「스테레오 시스템」이다.예를들어 양쪽으로 갈라진 혀의 오른쪽 부분에서 왼쪽보다 더 많은 화학물질이 감지되면 뇌는 오른쪽으로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린다.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하면 결국에는 교미상대가될 암컷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게다가 뱀들은 워낙 넓은 지역에 퍼져 살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멸종의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게 슈웽크교수의 설명이다.
  • UIP 직배영화/“주요 개봉관 완전 점령”

    ◎최후 저항 「피카디리」도 함락… 5년만에 석권/졸작끼워 강매… 직배사 횡포에도 굽신/방화물량부족… 외화복사본 제한 풀려 지난 7월말 우리 영화계에는 작지만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서울 시내 주요 개봉관가운데 하나인 피카디리가 처음으로 UIP가 직배한 「아빠와 한판승」을 내건 것이다. 피카디리는 전국 3백50여 개봉관가운데 직배영화 상영을 거부해 온 유일한 극장이었다.그러니까 지난 89년 10월 영화인들이 미국의 직배영화를 상영하던 서울의 S극장과 K극장에 뱀을 투입하는등 직배 반대 투쟁을 벌인 이후 5년만의 일이다.마지막 보루가 무너졌다고 할까.여타의 개봉관들은 모두 2∼3년전부터 직배영화를 상영해왔다. 직배사로서는 5년만에 우리나라의 모든 개봉관에 자신들의 영화를 내걸 터전을 마련한 셈이다.그동안 직배 영화를 찾는 관객들의 숫자도 계속 늘어나 지난해에는 전체 관객의 약 47%를 차지했다.관객가운데 절반이 직배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피카디리가 직배영화를 상영하게 된 것은 직배사들이 배급하는 영화는 늘어나는데 반해 국내 영화사들이 수입하는 영화는 작품 자체도 시원치 않고 편수도 현저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마땅하게 내걸 한국영화가 여러편 있는 것도 아니다.직배 영화가 늘어난 이유가운데 하나는 올해부터 영화의 복사 벌수 제한 조치가 해제됐기 때문이다. 지난 5년동안 직배사는 철저하게 장사 속으로 우리 영화계를 대해왔다.89년만 하더라도 직배사와 극장의 수익금 분배율 및 광고비 부담률이 3대7이나 2대8 정도였다.그러나 요즘에는 그 비율이 역전돼 6대4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수익금 분배율과 광고비 부담률이 점차 직배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돼 온 것이다.더욱이 이 비율조차 우리에게 더 불리하게 조정돼 7대3이나 8대2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 영화계 일반의 시각이다. 최근에는 직배사들이 한걸음 더 나아가 흥행성이 높은 영화 1편과 흥행성이 떨어지는 영화 여러편을 한데 묶어 배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따라서 흥행영화로 돈을 번다고 해도 나머지 영화에서 까먹을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럼에도 직배사에 잘보이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일부 극장은 스스로 자신의 수익금 분배율을 낮추면서까지 직배 영화를 상영하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직배사의 장사속에 놀아나고 있는 셈이다.조금씩 조금씩 직배영화라는 단맛에 길들여지다보니 집도 절도 빼앗기게 된 형국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피카디리가 지금껏 우리 영화계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극장 운영 능력,주위의 격려등이 보탬이 됐다는 평가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좋은 한국 영화를 많이 상영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91년 겨울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여름 「장군의 아들 2」,92년 여름 「결혼 이야기」,93년 겨울 「그대안의 블루」,93년 여름 「그여자 그남자」,94년 겨울 「투캅스」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 영화계의 현주소와 우리 영화를 진흥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영상문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일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우리 영화계가 아무런 실속없이 직배사의 장사 속에 휘둘리고 노리개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영화 진흥과 육성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 격조높은 증화(백제를 다시본다:23)

    ◎세련된 색조의 능산리고분 사신도/청룡·백호상 역동적… 동양사상 펼쳐/무령왕릉 왕비목침 장식화도 걸작/공주 송산리 고분벽화는 초기수준… 고구려 벽화와 비슷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지상에 드러난 백제의 회화를 만날 길이 없다.다만 여러 장르의 고분미술을 통해 백제회화의 잔영을 들여다 보아야만 했다.고분미술에서 회화를 찾자면 이른바 고분벽화가 가장 큰 캔버스의 그림일 것이다. 고분벽화는 주검을 거두어들인 무덤 속 널방(현실)의 벽면과 천장에다 그렸다.백제의 벽화고분은 웅진시대의 충남 공주시 송산리 6호분과 사비시대의 부여읍 능산리 벽화고분이 유명하다.웅진시대 중기의 송산리6호분 벽화가 지극히 간략한 필치의 회화라면,사비시대 후기의 능산리 고분벽화는 원숙하고 세련된 필치로 색조를 자유로이 구사한 본격적 회화라 할 수 있다. ○회화유물 극히 적어 그래서 이들 2기의 고분 속에 그린 벽화는 뚜렷이 구분된다.시대적으로 앞뒤의 관계가 있는 이들 고분벽화 가운데 좀 늦은시기의 부여 능산리 고분의 그림을 먼저 살펴보면 한마디로 격조 높은 백제적 회화다.캔버스로 보아도 무리가 없는 이 고분의 벽면은 물갈음한 화강암(천장과 서벽)과 편마암(동벽과 북벽)으로 되어있다.물론 거대한 널돌(판석)인데,벽면에 직접 사신도를 그렸다.그리고 천장에는 연화문과 비운문을 형상화했다. 동벽 중앙의 청용은 살아서 꿈틀대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S자형으로 용틀임을 한 몸통과 딱 벌린 입에서는 혀가 길게 나와 사뭇 역동적이다.그리고 한껏 벌린 다리가 위로 치켜든 꼬리와 함께 생동감을 안겨준다.상상의 동물 용을 그토록 실감나게 표현한 백제인들의 솜씨가 놀랍거니와 동양적 심성을 활짝 열어보인 풍부한 사고력 또한 높이 사고싶다. 서벽에 그린 백호는 머리를 위로 쳐든채 꼬리는 한껏 굽혀서 역시 위로 뻗치고 있다.눈에다가는 붉은 칠을 해서 튕겨나올듯 부릅떴다.그리고 입 언저리로 길게 내민 혀,가슴에 돋친 비운문이 어울려 백호의 위엄은 대단하다.널방에 침범할 수도 있는 사기를 얼씬도 못하게 미리 쫓아버리려는 형상이다.그러나 널방에 스며든 습기로 인해 백호의 몸통 아래쪽이 빛바래버린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백호 허리 윗부분 공벽에는 원을 그려넣고 10개의 작은 반원을 같은 간격으로 돌려놓았다.원 내부에는 두꺼비를 배치,월상을 표현했다.또 백호를 그릴 때 남겨둔 머리와 꼬리부분의 공벽은 비운문으로 채워 백호의 동작이 더욱 날쌔보인다.특히 백호도의 월상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형상이기도 한 것이다. 남벽의 주작도는 널방 입구,다시 말하면 널방문 위에 그렸다.주작 주위에는 인동문을 배치했다.벽을 살피다가 북벽을 향해 돌아서면 이를 어쩌나,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든다.그 이유는 북벽에 남아 있어야할 현무도가 지워져있기 때문이다.세월이 그만큼이나 흘렀는데 흔적이 뚜렷하길 바라는 마음이 욕심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애석한 심사를 금할 길이 없는 것이다. ○현무도는 지워져 다행히도 천장화가 비교적 잘 남아 한숨을 돌리게 된다.연화문을 그리고 사이사이와 주변에 하늘을 표상하는 비운문을 박았다.연화문은 꽃술 가운데 주문을 장식했는데,연꽃술은 8잎으로 되어있다.연화문은모두 7개로,이 가운데 3개는 남북을 잇는 1줄에 가지런히 배치한데 이어 4개는 좌우에 각각 2개씩 그려넣었다.연꽃을 그리는데 사용한 색깔은 분홍색,갈색,황색,검은색이다. 공주 송산리 6호분은 그림을 그려넣은 벽면부터가 부여 능산리 벽화고분과 다르다.능산리 벽화고분의 벽이 물갈음한 넓은 널돌인데 비해 송산리 6호분은 널방의 4면벽을 문양벽돌로 쌓은뒤 그림을 그릴 부분만 진흙을 발랐다.그리고 나서 호분(조개껍데기를 구워서 만든 안료의 일종인 백색분)으로 벽화를 그렸다.뒷날 사비시대 고분벽화처럼 사신도를 그렸다. 송산리 6호분의 벽화는 널방 동벽에 청룡,서벽에 백호,북벽에 현무,남벽 입구 위쪽 벽에는 주작과 일월상을 그리는 형식을 취했다.청룡도는 머리에 뿔 2개가 달린 쌍각청용이다.허공을 뛰어달리는 용의 자세로 짐작된다.백호도는 백묘기법을 써서 그렸음에도 패기찬 자태가 잘 표출되고 있다.왼쪽 앞다리는 올리고 뒷다리를 전후로 벌려 달리는 모습을 했다. 이러한 백호도는 회화기법은 다르나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나온다.고구려벽화의 백호는 몸체가 가늘고 긴데 비해 백제의 것은 비교적 굵은 편이다.현무도는 퇴색되어 뱀과 거북이 얽힌 흔적을 찾기가 힘들지만 주작은 형태를 알아볼 만큼은 남아있다.두 날개를 위로 힘껏 펼친 주작이 꼬리털을 날리면서 막 비상하려는 자태를 하고 있다.그 주작의 양쪽에는 흰색으로 그린 동심원이 배치되었다. 백제의 회화에서 고분벽화는 분명한 대작이다.그렇다면 무덤에 넣은 껴묻거리(부장품)의 장식화들은 소품에 해당하는 백제의 회화일 것이다.사비시대에 축조된 도성 이웃의 지배자무덤들은 일찍 모두 내부가 파괴되어 장식화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웅진시대 무덤의 사정은 다르다.지난 1971년 당시 세기적 발견으로 평가되었던 공주 무령왕릉 출토유물의 장식화들은 백제미술의 백미를 이룬다. 무령왕릉 출토 왕비의 나무베개(목제두침),장식화와 나무발걸이(목제족좌) 장식문양은 걸작이다.나무베개 장식화는 베개의 나무 표면에 주칠을 하고,우선 금박으로 거북등문양(구갑문)을 넣었다.그 거북등문양 안에는 흰색·붉은색·검은색깔·금니등으로 세필의 비천상·주작·어용·연화문을 그렸다.특히 비천상의 경우 천의를 날리면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했고 주작은 두 날개를 부채꼴로 펼치면서 긴 꼬리를 번쩍 들어올렸다. ○백묘기법으로 그려 어룡은 먹선과 금니를 함께 사용해 그렸다.가는 먹선으로 윤곽을 긋고 몸뚱이와 꼬리는 금니로 처리했다.전체적으로 V자형을 이룬 이 나무베개의 어룡은 바다속에서 헤엄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백제회화유물이 아주 극소수인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 무령왕릉출토 나무베개의 그림들은 귀중한 회화자료가 될 것이다. 무령왕릉의 나무발걸이에 나타난 장식문에서는 비운문이 단연 으뜸이다.역시 주칠을 한 발걸이 표면에는 금박띠를 돌리고 그 안에다 좌우대칭의 먹선 비운문을 그렸다.비운문은 바람을 타고 하늘에 두둥실 떠 있다.요즘으로 말하면 디자인에 가까운 장식문양임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독특한 회화성을 지녔다.그 온화한 필치의 백제회화를 흔히 만날 수 없게 굴러가버린 역사의 수레바퀴가 비정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그래서 백제미술을 대하면 늘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사신도/동 청령­서 백호­남 주작­북 현무/방위신 표현… 중앙의 황룡은 거의 생략 고분속의 벽화 사신도는 널방(현실)의 4방벽면에 청룡·백호·주작·현무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이 사신도는 방위신을 표현한 것이다.방위신에는 본래 청룡·백호·주작·황룡 이외에 황룡을 포함해서 오신수가 있는데 벽화에서는 황룡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신격의 짐승(신수)은 음양오행설및 이십팔숙법과 관련되었다.28개 별자리를 중앙·동·서·남·북의 다섯 방향에 따라 나누고 그 별자리의 모양을 따서 환상적인 신수를 만들었다.그리고 신수를 숭배했다.방위신은 방위에 따라 빛깔과 형태를 달리한다.이를테면 중앙에는 황룡,동쪽에는 청룡,서쪽에는 백호,남쪽에는 주작,북쪽에는 뱀과 거북이 뒤엉킨 현무를 배치했다.또 천장에는 상서로운 동물들과 해·달·별·꽃 등을 그려넣었다. 일부 고분의 벽화에는 사신도를 각 벽면의 중앙에 배치하고 나머지 공백은 산수화·구름무늬·연꽃무늬·당초무늬와 인동무늬·불꽃무늬로 채웠다.그래서 마치 사신도가 여러 장식무늬 바탕 위에 그린 것처럼 착각되기도 한다.그러나 사신도는 어디까지나 사신이 주제가 된 것이다.충남 공주시 송산리 6호분의 벽화는 중앙에 사신만을 그려 대체로 고구려 고분벽화를 연상시킨다.부여 능산리 고분은 4방벽에 사신도,천장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를 그렸다. 벽화는 널돌(판석)로 널방벽을 축조할 경우 직접 돌벽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회를 바른 다음 벽면에 그렸다.그림을 그릴 때는 묵선으로 밑그림을 먼저 쳤다.더러는 밑그림이 없이 곧바로 색깔을 써서 그리는 백묘법을 사용하기도 했다.백제 벽화고분에서 널방벽 널돌에 회칠을 하지 않고 직접 그림을 그린 경우는 사비시대에 축조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벽화고분이다.그리고 앞서 웅진시대에 축조한 공주시 송산리 6호분은 백묘법으로 그린 고분벽화라 할 수 있다. 백제 벽화고분 속의 사신도는 형상의 특징을 잘 잡아내어 자유롭고 박력있게 표현한 고대회화로 결론지어도 좋을 것이다.
  • 소문난 음식점 별미강좌 인기

    ◎한식집 동촌/장아찌·홍합조림 등 밑반찬 중심/중국집 향원/중국음식의 고유한 맛내기 전수/호텔신라/매주 중식·양식·한식 번갈아 실시 『유명식당의 별미음식을 가정에서 직접 요리한다』 깨끗하고 전통있는 음식맛으로 소문난 호텔 및 식당들이 마련하는 고객 대상의 요리강좌가 살림 잘하는 주부들에게 인기를 끌며 자리잡아가고 있다. 유명음식점들의 경우 독특한 음식이 있다 해도 비법이라며 맛내는 방법을 안알려 온것이 상례라면 이런 강의를 갖는 곳들은 좀 특이한편. 호텔 요리 강습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은 호텔신라.지난 81년부터 「레이디스 클럽」회원을 중심으로 일식 중식 양식 한식등 각종 음식부문에 걸쳐 매주 1회 실시하고 있다.가입비 5만원에 1회 참가비는 재료비포함 2만∼4만원선.이곳은 결혼을 앞둔 미혼여성들이 많이 찾고 있다. 스위스 그랜드호텔이 주로 실시하는 것은 이탈리아 요리 강습.지난 89년 부터 시작,매년 봄·가을 2달 기간으로 하는 집중 코스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정식집 「동촌」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전통한정식에 들어가는 김장아찌 홍합조림등 갖가지 밑반찬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전통요리 전문가인 주방장겸 주인 조정강씨가 직접 강의를 맡고 있어 전통식을 배울 기회가 없던 젊은주부들에게 인기다. 김영삼대통령이 야당 총재시절 애용했던 식당으로 더 유명한 이 곳은 한달에 두번 금요일에 강의하고 있다. 회비는 1만원. 『중국음식점은 많지만 실제로 가정에서 중국요리를 해먹을 수있는 주부는 거의 없어요.비싸다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방법만 알면 중국 음식은 저렴한 비용으로 충분히 고유한 맛을 즐길 수 있어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전통중국요리점 「향원」을 15년째 운영하고 있는 화교 3세 이향방씨(46). 지난 88년부터 음식점 한쪽을 터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중국요리전문학원을 열고 전통중국요리 강습을 실시해오고 있다. 이 지역주부들을 비롯,외국에서 현지인들을 상대로 다양한 파티를 열어야 하는 대사부인들과 강남지역의 주부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한다.1920년대에 중국 상동지방에서 이민 온 외할머니에 이어 중국음식점을 열고 있는 이씨는 중국의 전통음식 문화를 한국 가정에 보급하는게 주 목적이라고. 「상해복무음식전문학교」와 결연을 맺고 김치·장아찌등 한국음식을 현지에 소개도 하고 있는 이씨는 한·중 수교 5년전부터 중국을 드나들며 각 지역의 요리법을 배웠고 대만정부 외교관이던 시아버지를 따라 대만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중국요리는 지역에 따라 큰 특징이 있다고 이씨는 설명한다.즉 가장 널리 알려진 북경요리는 중국 궁중요리가 많이 섞여 있어 담백한 맛과 화려한 외양이 특징이며 사천요리는 마파두부등 매콤한 맛이,상해요리는 해물을 이용한 요리가 두드러진다.특히 우리 입맛에도 맞는 민물게를 이용한 요리가 대표적이라고 한다.광동요리는 원숭이 고양이 쥐 뱀 개구리등에다 강한 향신료가 들어간 「별미음식」으로 유명하다.
  • 블루 모스크/이스탄불(아랍서 지중해까지:9)

    ◎섬세한 상감무늬 천장은 “환상적”/시내 7백여 사원중 으뜸… 첨탑 6개·보조돔 4개에 둘러싸인 중앙돔은 웅장 이스탄불에 있는 모스크는 모두 몇개나 될까. 터키정부의 공식조사에 의하면 7백여개.그날 나를 술타나메트 모스크까지 데려다 준 택시기사는 1천개가 넘는다고 했다.그 중에서 으뜸 가는 모스크,모스크 중의 모스크가 「술타나메트」다.일명 블루 모스크. 열 네살 어린 나이에 즉위한 아메드 1세는 신심이 깊은 술탄이었다.그는 유스티아누스 황제때 지은 아야소피아 성당에 버금가는 회교사원을 지어 신에게 헌정하고 싶었다.터를 물색하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마침내 아세궁전 자리가 사원터로 내정되었다.그리고 시인이며 상감세공에도 뛰어난,건축가 마메드 아가에게 이 성업이 맡겨졌다.1609년에 시작된 공사는 8년이 걸려 1617년에야 완성되었다.그때 아메드 1세는 『이제 나는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그리고 나서 얼마후 술탄은 죽었다. 그의 아들 오스만 2세는 부왕의 묘를 사원 가까이 만들어 안장했다. 이른 아침이었다.하늘은 흐리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 모스크 앞 녹지광장은 썰렁했다.그러나 바람의 심술은 봄의 정령이 흐드러지게 깃든 마로니에와 이팝나무들로부터 짙은 향기를 실어왔다. ○아메드 1세가 건립 모스크는 10시에 문을 열지만,광장 주변에는 볼거리들이 풍부했다.왕의 문지기집,학교,키오스크,연립상점들은 사원과 함께 설계된 복합건물이었다.또한 모스크 옆으로도 두 개의 방첨석탑(오벨리스크)이 있는 긴 장방형의 술타나메트 광장이 있었다.이곳은 비잔틴시대에는 십만 관중을 수용하는 전차경주장이었다고 한다.지금은 「독일인의 샘」으로 불리지는 팔각정자에서 황제는 경기를 관전하며 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작은 정자 하나에만도 이스탄불을 관통한 격전의 역사가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본래 정자의 양쪽 출입구 네 모퉁이는 조각가 리시포스의 청동작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하나는 사자와 함께 있는 전사,헤라클레스,질주하는 말,뱀을 사로잡은 독수리가 그것이었다.그런데 이스탄불이 라틴족에게 점령되었을 때 이 청동조각들은 녹여져서 기념메달로 재생되었고,지금 세워져 있는 네 필의 청동 말은 베니스의 성 마르코 광장에서 옮겨온 것이다° 또한 두 개의 방첨석탑 중 하나는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집트 원정 기념으로 히에라폴리스로부터 운송해온 것인데,그것을 세우는데만도 32일이 걸렸다고 한다.석탑을 받치고 있는 받침대가 테오도시우스의 치적을 말해주는 양각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반해,위의 돌기둥에 새겨 있는 상형문자는 이집트 왕 투모시스의 통치 30년을 기념하는 글귀이다.「투모시스,오 호루스신의 권세와 그 승인이여」 두 대의 대형버스가 광장과 모스크 사잇길에 와서 멈춰섰다.서양인 관광객들이 길 위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등장은 모스크가 문을 열었다는 뜻이기도 했다.이제는 모스크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가봐야겠다. 원경으로 보이는 블루 모스크,여섯개의 미나렛과 네 개의 보조 돔에 둘러싸인 중앙 돔의 웅장한 조형미.여섯 개의 첨탑에는 열 여섯 개의 발코니가 있는데,그 숫자는 왕위를 이어온 술탄의 숫자와 같다.돔과 첨탑의 끝은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돔 내엔 채색유리창 아메드1세는 신심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스티아누스황제에 의해 만들어진 소피아성당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사원이 세워진 터가 소피아성당과 마주보이는 위치에 있다는 것부터 힘겨룸을 전제하고 있다. 그에 반해 이라크의 모스크에서는 하늘과 신에 대한 칭송과 경외를 면면히 느끼게 된다.그곳 모스크의 특징은 돔의 표면이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고,첨탑의 둥근 이온은 뮤에진이 하루 다섯 번 기도시간을 알릴 때,그늘에서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그곳에선 오직 무슬림만이 모스크에 출입할 수 있다. 블루 모스크 앞엔 이미 입장을 기다리는 관광객의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입장권을 따로 팔지는 않고 신발을 보관해주는 값으로 2천 리라를 받았다. 사원의 내부구조는 의외로 단순했다.천장이 높은 홀에 연분홍 대리석 기둥들이 전부였다.그러나 섬세한 상감무늬가 입혀진 천장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코란의 글귀가 새겨 있는 중앙 돔의 내부와 그 돔을 둘러싼 30개의 작은돔의 내부에는 반달형의 채색 유리창들이 있어 실내에 환상적인 무지개빛을 드리우고 있었다.유리창은 모두 2백60개인데 그 넓은 홀을 밝히기엔 다소 부족한 듯,중앙에 수백 개의 작은 전구를 매단 대형 조명기구가 늘어뜨려져 있었다. 바닥에 깔려있는 수백 장의 양탄자는 그곳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에 닳아 반질반질 했다.그러나 제한구역 너머,신도들이 예배를 보는 곳에 있는 양탄자는 새 것처럼 깨끗했다.마침 시골사람으로 보이는 중년의 터키인 부부가 제한구역 안쪽의 바닥에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앉아 있었다.이라크에서라면 이 모스크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그들 뿐 이었으리라. 「이슬람교도가 많은 도시」이스탄불은 이제 자신의 가장 내밀한 성소를 이교도들의 볼거리로 내어주고 있었다. 터키남자 그리고 나타샤. 그를 만난 것은 블루 모스크 옆의 「술탄 팝」이란 음식점에서였다. 『엊그저께 암만에서 이스탄불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당신을 봤어요』 몸에 붙는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 차림의 청년이었다.자동차 키를 만지작 거리며 그가덧붙였다. 『당신은 한국사람이죠?』 『네,당신은?…』 『터키사람이에요.나는 이스탄불에 살아요』 『반가워요.그럼…』 나는 자리를 찾아 앉았고 그 역시 다른 자리에 앉았다.주문한 음식을 먹고 있는 동안 그의 시선이 줄곧 내 옆얼굴을 따갑게 했다.거북함을 잊으려고 나는 친구에게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고나서 보니 그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음식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보라색 꽃더미가 눈을 부시게 하는가 싶었을 때,나무 아래 앉아 있던 그가 불쑥 일어나서 나에게로 다가왔다. 『아니?…』 『나는 사실 당신 자리로 가서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이스탄불에서 뭘 하세요?』 『나는 테훈이라는 호텔과 양탄자 도매상을 해요.그리고 도쿄에도 레스토랑이 하나 있어요.가끔은 일본 NHK의 프리렌서 일도 보구요』 그는 자기 명함을 나에게 주었다.셀라하틴 하쉐리엔이 그의 이름이었다.그는 내가 원한다면 자기 양탄자 가게를 구경시켜줄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양탄자 가게는 가까운곳에 있었다.천장이 낮고 안이 깊은 실내로 들어서기 전,문득 생각나는 말이 있었다.터키에 가면 이유없이 친절한 남자를 경계하라.하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굴 속으로 들어가야지? 『당신은 이스탄불에 얼마 동안 머물겁니까?』그가 물었다. 『내일 아침 10시 비행기로 떠나요』 『며칠간만 더 연기하세요.그러면 내가 이스탄불을 구석구석 구경시켜 줄 수 있어요.패라 팔레스 호텔 알지요.아가사 크리스티가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을 집필했던 방이 그곳에 있는데,나는 그 방의 VIP키도 가지고 있어요.원한다면 당장이라도 그곳에 가볼 수 있어요』 상점을 나올 때 나는 실크킬림(벽걸이)을 하나 사서 손에 들고 있었다.그는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8시에 그가 호텔 로비로 왔다.그는 말쑥한 정장차림이었다. ○「나타샤」들에 당해 나는 그에게 일행들이 남기고 간 쪽지를 보여주면서,그들과 합류하자고 제의했다.그는 이스탄불에서 제일 유명한 레스토랑에 예약을 부탁해 놓았는데 취소가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잠시후 우리는 그의 푸조차를 타고 일행들이 먼저 간 레스토랑으로 갔다.차를 주차시키고 돌아온 그의 손에는 장미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나는 내 생애에서 여자한테 두 번 꽃을 주었어요.한번은 우리 어머니한테,또 한번은 전 애인한테,그리고 지금 세번째 당신한테 꽃을 줍니다』 유부녀라는 사실을 밝히면 너무 잔인한 짓일까.난처했다. 『내 어머니는 프랑스인이에요.어머니한테 당신 얘기를 했어요.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렸어요』 나는 잠자코 음식만 먹었다.그가 감정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요.그러나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겠어요.당신 나이가 스무살이든 오십살이든,결혼을 했든,안했든 상관없어요.나는 당신이 좋아요』 식사를 끝내고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 나는 그만 그가 준 꽃을 놔두고 나왔다.그가 다시 가서 꽃을 가져와 도로 나에게 주었다. 그는 그날 저녁 나에게 모욕을 받은 듯이 화를 내며 돌아서 갔다.하지만 그는 재수가 좋았는지모른다. 요즘 터키에서는 「나타샤」란 노래가 유행하고 있다.나타샤란,터키와 이웃해 있는 나라들로부터 국경을 넘나들며 장사를 하는 보따리장수의 속칭이라고 한다.그런데 터키남자들이 러시아 나타샤들의 유혹에 빠져 가산을 날려보내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러니,마음이 헤픈 하쉐리엔이여.그대가 나타샤한테 반했더라면,호텔도 양탄자가게도 다 날려버리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 야외 질환예방 응급처치 요령/고대 구로병원 홍명호박사에 알아보면

    ◎독사에 물리면 입으로 독 빨아내야/열사병 증세땐 옷벗기고 얼음찜질/복통·설사엔 보리차 많이 마시도록 찜통더위로 산과 바다를 찾는 발길이 예년에 비해 빨라지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홍명호교수(가정의학)와 경희의료원 최현림교수(가정의학)의 도움말로 여름철 야외에서 발생할수 있는 질환의 예방및 응급처치요령을 알아본다. ■독사에 물렸을 때=뱀에 물리면 우선 그 뱀이 독성이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독니가 없는 뱀에 물리면 U자 모양의 흔적이 남는데 반해 독사에 물린 자국은 삼각형의 점(∴)으로 나타난다. 팔이나 다리를 물리면 상처부위에서 심장쪽으로 2∼3㎝ 떨어진 곳을 고무줄이나 끈으로 동여 맨다. 끈으로 묶은 부위가 부어 오르면 1시간 간격으로 끈을 다소 느슨하게 해서 약간 위쪽으로 옮겨 맨다.15분안에 병원에 갈수 없는 경우엔 즉시 깨끗한 칼로 상처부위를 깊이 0·5㎝,길이 1㎝정도로 째고 소독약을 발라준다.독을 빼내는 기구가 없으면 입에 상처가 없는 사람이 입으로 독을 1시간 남짓 빨아낸다. ■벌에 쏘였을 때=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고 얼굴이 부으며 메스꺼움을 느낀다.심할 경우 후두가 부어 호흡곤란과 청색증을 일으키며 혈압이 떨어지기도 한다. 몸에 박힌 벌침은 족집게로 반드시 빼내서 더이상 독소가 흡수되지 않도록 한다.쏘인 부위에 얼음찜질을 해주면 통증이 가라앉고 항히스타민제가 든 로션을 발라주면 가려움증이 없어진다.산에 오를 때는 벌을 자극하는 향수를 뿌리지 말고 밝은 색의 옷은 입지 않는게 바람직하다. ■열사병=정오∼하오 3시쯤 야외에서 활동을 많이 할 경우 탈수·갈증·두통·피로등이 찾아오면서 체온 조절중추가 고장나기 쉽다.체온이 섭씨 39도를 넘어서면 의식을 잃기도 한다.혼수가 되면 신속하게 옷을 벗기고 온몸에 얼음찜질을 하고 선풍기등을 틀어 준다. ■복통·설사=세균은 섭씨 4∼60도에서 번식하므로 음식은 4도 이하에 보관하고 60도이상 가열해 먹어야 설사를 예방할 수 있다.일단 복통이나 설사가 생기면 보리차·소금·설탕·이온음료등을 충분히 먹도록 하고 12∼24시간 정도 굶은 뒤 미음,죽,밥의순서로 식사를 한다.
  • 이스탄불/처녀의 탑(아랍서 지중해까지:8)

    ◎바다위 돌탑… 안개에 싸여 “섬뜩”/아테네때 조망대로 건립… 콘스탄티누스대제의 딸이 뱀에 물려죽은 전설 간직 이스탄불의 서안에 있는 돌마바체궁전 앞에서 그 탑을 처음 보았을 때 마음이 이상하게 섬뜩했다.탑은 이스탄불의 동안인 위스퀴다르지역의 바다 한가운데 희뿌연 안개를 휘감고 솟아 있었다. 궁전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의 설명에 의하면 터키말로 「KizKulesi·처녀의 탑」으로 불리는 그 탑은 본래 아테네의 알키비아데스에 의해 살라케해안의 조망대로 세워졌으나 1857년이후 지금까지는 등대로 이용되어왔다고 한다.하지만 그 설명은 내 마음을 스친 섬뜩한 신비감과는 무관한 듯했다. 그뒤 탑은 두번다시 내 앞에 자태를 드러내지 않았다.마치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춘 듯. 우리가 탁심거리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이 도시에 와서 무기같은 것이 내 속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껴요.저것이 눈앞에 보이는 것인가 하고 보노라면,그 너머에서 또다른 환영이 어른거려요.시공의 음영속으로 마음이 휙휙 감기는 기분이랄까」 내 얘기는 일행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사실 내 얘기는 주변분위기와 아주 동떨어진 것이었다. ○1백40년간 등대로 터키의 젊은 남녀들은 튀김닭이나 감자칩을 씹으며 콜라컵에 꽂힌 스트로를 빨면서 미국팝송에 맞추어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창밖으로 붉은 색의 이층버스와 노란색의 택시들이 줄지어 지나다녔고,어느 빌딩의 외벽에 설치된 실물모양의 대형넥타이는 이제 이스탄불이 더이상 코란을 정신적 지주로 삼지 않는다는 전시같았다(물론 지금도 이슬람은 여러 민족의 피가 뒤섞인 터키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동질성이다). 케말 아타튀르크는 연합군으로부터 자주권을 챙취한 뒤 서구화에 박차를 가했다.그는 이슬람계파에게 재갈을 물린 반면 라틴알파벳의 표기를 의무화했고,여성들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했다. 케말이 사망한 지 56년이 지난 오늘 대부분의 터키국민들은 그가 회교정통파들에게 맞서 자본주의경제이념을 받아들임으로써 터키의 경제사정이 다소나마 나아졌다고 믿고 있었다. 「돈이 조금 더 많아지면 그만큼 생활이나아지는 것이다」 대낮에도 탁심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그러나 정작 상점안에는 주인들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레신호텔의 수납일을 보는 타신씨에 의하면 최근들어 이스탄불을 찾는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어 불경기라고 했다.쿠르드족의 폭탄테러로 3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 때문이다. 로터리에 옹기종기 모여 서 있는 젊은이중 한 사람에게 테이프가게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친절하게 안내까지 해주고 나서 양품점의 상호가 찍힌 카드를 내밀었다.필요하면 연락해달라고 사뭇 신사답게 돌아선 그가,일행들이 터키의 민속음악테이프를 고르는 꽤 긴 시간 상점앞에 서 있었다. 탁심거리를 메운 인파중에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시골청년이라고 한다.말쑥하게 차려입은 그들은 두리번거리며 관광객을 찾고 있었다.상점에 손님을 끌어다주고 받는 약간의 돈이 그들의 벌이였다. 이 거리에서 고도 이스탄불의 자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협궤를 오가는 백년 나이의 전차뿐이었다. 그런데카데시로 불리는 전찻길주변으로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어느 샛길에서 「처녀의 탑」이 돌연 우리 앞에 나타났다. ○탁심가 인파 가득 저녁식사후 영화칼럼을 쓰는 L씨의 제의로 터키영화를 보기로 했다.영화관을 찾는 일은 마치 미로를 더듬는거나 다름없었다.길을 묻고 또 물어 골목 깊숙이 파묻혀 있는 영화관에 찾아가보기를 서너차례,그렇게 어렵게 찾아간 영화관에서는 「필라델피아」 「피아노」 「쉰들러 리스트」같은 미국영화 일색이었다.그중에 아무거나 한 편을 보아도 좋으련만 L씨는 한사코 터키영화여야 한다고 우겼다. 길도 꼬불꼬불,L씨의 막무가내의 고집까지도 가세해 선자리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깊숙한 미로 한복판… 언제부턴가 영화간판들,불이 환하게 밝혀진 텅빈 로비,행인들이 주고받는 이방의 언어,어둠속에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고양이들이 실제이면서 환영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생시가 아니라 꿈속 같다.나의 몽롱한 의식속으로 한 남자가 푸른 물길 저편에서 노란 노를 저어오고 있었다.그는 자주빛 소파에 앉은 채로 노를저어왔다.나는 그 괴상한 포스터 앞에서 한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내 의식은 그가 노를 저어오는 푸른 물빛으로 물들었다. 블루,블루,여기는 어디일까.그로부터 얼마 뒤였다.우리가 여러번 지나친 골목 한가운데서 짙은 블루 색조의 영화포스터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Kiz Kulesiasi klari(처녀의 탑으로)」 농염한 키스신을 클로즈업시킨 그 영화의 제목이었다. 갈라타다리를 건너거나 해안을 지나칠 때마다 줄곧 찾아도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린 듯 다시는 나타나지 않던 탑. 그럴 법했다.그것은 미로 깊숙한 데서 길을 잃어버릴 때만 나타나는 전설이었다. 콘스탄틴대제에게는 몹시 사랑하는 딸이 하나 있었다.왕은 그 딸이 뱀에게 물려 죽게 된다는 얘길 듣고 딸을 탑으로 피신시켰다.왕은 그 탑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뱀이 접근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그러나 뭍에서 가져간 과일바구니 속에 숨어 있던 뱀이 물어 공주는 목숨을 잃었다. 오스만시대에 나무로 재건축된 이 탑은 화재로 타버린 뒤 아메드3세때 돌로 다시 복구되었다. 영화관안은 물이 가득 찬 수조를 연상시켰다.커튼도,의자도,바닥도 모두 청색이었다.아들의 부축을 받고 머리 흰 노인이 천천히,아주 천천히 푸른 통로 사이로 걸어왔다.관객은 열 사람 남짓했다. 청색커튼이 미끄러지듯 양쪽으로 갈라지며 하얀 스크린이 나타났다.바깥세계와 전혀 다른 시간이 열린 것이다.40대의 남자가 거룻배를 타고 등대로 가고 있다.바다에는 비바람이 불어 파도가 뱃전을 때린다.남자는 오래된 탑의 모형을 소중하게 들고 있다.사공이 남자를 등대에 내려주고 뭍으로 돌아간다.남자는 등대꼭대기에 있는 어느 방으로 들어간다.오래전부터 비어 있은 듯 그 방에 있는 모든 것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다.녹이 슨 철침대,침대옆 벽에 걸려 있는 등대지기의 제복·모자,침대아래 놓여 있는 신발·벽거울·책상과 걸상… 모든 것이 등대지기가 살아 있을 때 그대로다. 남자는 모형을 책상위에 내려놓고 서랍을 열어본다.오래전 날짜의 소인이 찍힌 엽서 한장과 일기장. 남자가 일기장을 펼치자 내레이션이 깔린다(터키말이므로 뜻을 알 수 없다.그러나짐작컨대 그의 딸에 관한 얘기인듯).남자는 일기장을 반쯤 읽다 말고 자기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본다.거울에 나타난 얼굴은 그가 아니라 오래전에 사망한 등대지기다.두려움에 사로잡힌 채로 남자는 등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등대지기의 환영을 계속 뒤쫓는다.환영을 쫓는 사이 남자는 환생한 등대지기로 바뀐다. ○오스만때 재건축 그러자 그의 발길은 저절로 탑의 구석에 있는 하나의 방으로 이끌려간다.그 방의 문에는 녹슨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자물쇠를 부수고 남자는 안으로 들어간다.그 방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기미가 역력하다.푸른 시트가 덮여 있는 커다란 침대,촛농이 흐른 두개의 촛대,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그림.나신의 처녀가 횃불을 높이 쳐들고 어두운 바다를 비추고 있는데,나신의 남자가 등대를 향해 기를 쓰고 헤엄쳐가고 있다. 뭍에서는 등대지기의 딸이 어머니 몰래 집을 나와 거룻배를 타고 등대로 간다.그녀는 등대로 올라서자 횃불을 켜들고 바다를 비춘다.마치 남자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남자는 바다를 헤엄쳐 등대에 이르러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다.처녀는 이전에 그래왔듯이 촛대에 불을 붙인다. 딸과 아버지의 정사. 등대지기의 제복을 입고 남자는 집(등대지기집)으로 돌아간다.그의 아내가 남편의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키다가 분통을 터뜨린다.집을 나가서 그동안 무얼 하다가 이제서야 돌아오느냐고.아내는 분을 참지 못해 뜨거운 물 한바가지를 그의 국부에다 끼얹는다. 그후에도 두 사람은 등대에서 만나 정사를 계속한다.어느날 딸에게 생긴 남자 때문에 둘은 심하게 다투던중 촛불을 쓰러뜨려 방이 불에 탄다. 등대는 그후부터 어둠에 잠기고 다시는 불을 밝히지 않는 등대가 된다. 청색커튼이 열릴 때처럼 그렇게 천천히 일마즈 귀니감독의 이름 위로 닫혔다.
  • 일본을 보는 청소년들의 눈길은(박갑천칼럼)

    「산해경」은 고대중국의 지리책이지만 기서라 말하여지는 신화집이기도 하다.황당무계한 얘기들로 이어져 나간다. 가령 해경(해경:해외남경)에 나오는 삼수국사람들은 한몸에 머리가 셋이 달려있다.같은 해경의 대황서경에도 그런 사람 얘기가 나온다.『대황의 한 가운데에 대황산이 있다.해와 달이 지는 곳으로서 이곳의 어떤 사람은 얼굴이 셋인바 그는 전욱(전욱:중국전설에 나오는 오제의 하나)의 아들이다.세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삼면인)은 죽지 않는다』.작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신비와 로망의 세계를 마음껏 펼쳐보여 흥미롭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일본을 그같은 세개의 얼굴로 보고 있다.물론 괴물로서 그렇게 본것은 아니다.공보처가 전국 1천6백명 청소년을 대상으로한 여론조사결과에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앞으로 우리나라가 가까이해야 할 나라』로서 일본을 꼽았고(33.8%:2위 미국의 23.1%)『가장 본받아야할 나라』로서 일본을 들었는가 하면(61.4%:2위 독일의 11.2%)『경계해야할 나라』의 으뜸으로도 일본을 가리킨다(48.9%:2위 미국의 19.1%).우리 청소년들에게 비치는 일본의 얼굴은 생청스럽다. 『누에와 같다』고 하는 일본말을 떠올려본다.그들의 헤이케모노가타리(평가물어)에 미나모토노요리마사(원뢰정)가「누에」를 퇴치했다는 얘기가 나온다.76대 고노에(근위)임금을 놀라게한 누에라는 괴물은 머리가 원숭이,몸뚱이는 너구리,꼬리는 뱀,손발은 호랑이 같았다던가.그에 연유하여 정체불명의 인물이나 모호한 태도등 기이한 느낌을 주는 것에 대해 쓰고있는 말이다.우리 청소년들은 일본에서 그 누에의 모습을 본다는 것인가. 이웃사촌이라 했다.역사를 되짚어보느라면 사막한 일도 적잖이 저질러온 일본이지만 그러나 거기에 묻혀 현실을 도외시해서는 안되겠다고 하는 인보의식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있는것 같다.그런 너볏한 생각이 앞으로 가까이해야할 이웃으로 점찍은것 아닐까. 일본사람을 이르면서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친절하고 예절바른 국민이라고들 말한다.그 바탕 아래 패전국이면서도 지구촌의 경제대국으로 지금 떠올라 있다.본받아야 할 나라로 손꼽은 까닭이 그런데 있는 듯하다.그러면서도 경계해야 할것 또한 잊지 않는다.일부 국수주의자들의 소사스러운 언행뿐 아니라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현실을 주의깊게 보고 있는 때문이리라. 상대를 바로 볼수 있을때 대처 또한 바로 해나갈 수가 있다.우리 2세들의 눈길은 밝고 형평감각도 있어보인다.불행한 일은 다시 또 없어야 한다.
  • 세계 유명 다이아몬드 서울전

    ◎15C 최초의 약혼반지·빅토리아여왕반지 포함 「15세기 오스트리아 맥시밀리언 대공이 귀공녀 메어리의 손가락에 끼워준 청혼반지.19세기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이 약혼식날 선택한 뱀 문양의 다이아몬드반지…」등. 서양에서 결혼 및 약혼반지로 널리 쓰여져 왔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어느새 혼인 예물로 보편화된 다이아몬드(보석말 「영원」)의 변천사및 그 화려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린다(롯데백화점 청량리점 24∼29일,본점 31∼6월5일,잠실점 6월14∼19일). 「사랑의 선물 컬렉션」이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영국의 다이아몬드 원석회사 드비어스사가 다이아몬드 판촉의 일환으로 각국을 순회하며 개최하는 전시회.모두 28점이 선보이는데 대부분 유럽명문 가문의 소장품이나 그 복제품들로 비매품.시가로 따지자면 수십억원을 호가할 것이라는 것이 주최측의 설명이다. 문헌 기록상으로 최초의 다이아먼드 약혼반지라고 알려진 15세기 오스트리아 맥시밀리언 대공의 청혼반지(비엔나 쿤스시스토리시스 박물관 소장)를 비롯,이탈리아 스포르자 가문의 결혼반지,『하나님이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을 수 없다』는 문구가 새겨진 16세기의 짐멜(쌍둥이)반지,희귀한 유색 분홍빛 다이아반지,19세기 미국의 티파니가 개발한 빛이 58면 전체에 고루 도달해 불꽃광채를 보는듯하게 꾸며진 반지…등은 역사적 배경과 보석연마 기법 발달상을 보여줄 것으로 예견돼 벌써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중국뱀 9천마리/시중에 불법유통/30대업자 영장

    【부산=이기철기자】 부산본부세관은 29일 중국산 살모사와 까치독사등 뱀 9천여마리 시가 1억5천만원상당을 몰래 들여와 시중에 불법 유통시킨 부산진구 가야1동 지리산건강원 주인 김종오씨(38)에 대해 관세법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달아난 안명천씨(34·부산시 남구 민락동 403)등 2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이들은 지난 25일 한국산 뱀보다 싼 중국산 능사 2천5백20마리,까치독사 4천9백마리,살모사 2천2백마리등 모두 9천6백20여마리를 몰래 여와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 순흥고분 벽화 훼손/관리소홀로 봉분 파헤쳐져

    【영풍=한찬규기자】 경북 영풍군 순흥면 읍내리 소재 1천4백년전 고분인 순흥벽화고분(사적 313호)이 관리소홀로 벽화가 크게 훼손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10일 산불감시를 하던 영풍군 공무원들이 분묘앞 입구쪽에 높이 1m,너비 50㎝ 크기의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신고 함으로써 드러났다. 지난 85년 발견,발굴된 이 고분은 6세기말 것으로 지름12m,높이 3m정도 크기의 봉분으로 덮인 장방형 횡혈식 석실로 돼 있으며 석실내부 벽전체에는 뱀을 손에 잡고 있는 장사상등 인물화·연꽃·고기 모양·깃발등의 채색화가 그려져 있었다. 사적 313호인 이 고분은 발굴당시 유물을 모두 수습했었으며 벽화의 원형보존을 위해 통로를 폐쇄하고 주변에 모조고봉분을 만들어 일반에게 공개해오고 있다.봉분 관리기관인 영풍군은 그동안 관리예산을 전혀 확보하지 않은데다 관리책임자 조차 두지않고 인근 마을에 사는 농민을 명예환경감시요원으로 임명해 두고 있어 언제 누가 벽화를 훼손했는지 조차 파악되지 않는등 관리에 허술함을 드러내고있다.
  • 미동부 또 폭설/정전·휴교사태

    【워싱턴 AFP 연합】 미국 동부연안에 2일 또한차례 많은 눈과 비가 내리고 폭풍우가 몰아쳐 각지에서 정전 및 휴교 사태가 발생했다. 플로리다주 오칼라 근처에서는 선풍이 한 트레일러 주택 특약점을 강타하고 많은 가옥을 파손시켰으며 탤러해시에서는 19㎝의 많은 비가 내려 홍수가 발생,뱀과 따갑게 쏘는 개미들이 땅밖으로 떼지어 기어나왔다. 메릴랜드주에 내린 많은 눈으로 볼티모어­워싱턴 공항이 활주로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폐쇄,항공기의 이·착륙을 금지했고 메릴랜드주의 전체 국민학교 학생의 4분의3이 휴교로 등교하지 못했으며 기상예보자들은 메릴랜드주 서부지방에 60㎝의 눈이 내릴지 모른다고 대설주의보를 내렸다. 수도 워싱턴은 2일 러시아워에 교통혼잡을 겪었으나 올겨울 내내 이 지역을 휩쓴 수차례의 폭설과 혹한때와는 달리 연방정부의 관공서들이 정상근무를 했다. 버지니아주와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많은 눈과 비가 내려 정전으로 약1만5천명의 이용자가 불편을 겪었으며 버지니아주 서부지방의 강설양은 약13㎝였다.
  • 시급한 산성비 대책(사설)

    지난 1월중 서울 부산 대구 울산등 전국 주요도시에 기록적 강산성비가 내렸음이 환경처 조사로 밝혀졌다.PH(수소이온농도) 4.2는 이제 전국적 평균치가 된것 같다.구체적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는 시점에 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까지 산성비농도나 발표하고 있을 것이냐의 문제가 제기된다.하기는 벌써 각지역에서 산성비로 죽어가는 나무를 발견할수 있었다.소나무 전나무등의 황화현상은 곳곳에서 누구나 확인할수 있는 현실이다.군집 고사현상도 이구석 저구석에 늘고 있다.서울 남산의 경우 산성비는 수종의 단순화를 거쳐 뱀과 지렁이가 사라지는 생태계 천이현상까지 만들고 있다. 유럽이 경험한 산림황폐화현상이 우리에게 언제 나타날 것이냐의 전망도 그나름대로 나와있기는 하다.92년 산림청은 이를 20 20년으로 추정했다.그러나 이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라는 우려감을 떨치기가 어렵다.그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의 산성비 유발원인의 50%가 중국에서 오는 대기오염물질에 연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추정도 실은 우리것이 아니다.일본의 20개 산성비측정소에서 관측된 황산염이온의 근원을 추적한 결과 일본내 산성비 기여도에 중국 50%,한국 15%,일본내부 35%라는 결론을 내렸다.우리 환경기술연구소 견해는 현재 「30%이상」이다. 그런가하면 중국은 지금 92년 12%,93년 13%의 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그리고 이 성장의 에너지가 주로 석탄이다.이 기하급수적 피해증가까지 감안한 심각성을 이제는 참으로 본격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 79년 유럽 모든 나라는 「장거리 대기오염물질이동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미국과 캐나다도 91년 산성비원인물질을 대폭 줄이는 협정을 만들었다.우리 자신의 대기오염대책만이 아니라 지난해 일단 맺기는 한 한­일,한­중환경협정의 실제적 운용에 보다 체감적으로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산성비는 결국 인체의 건강을 위협한다.산성비는 알루미늄,카드뮴,수은,납등 위험한 금속을 보다 더 용해되기 쉽도록 만든다.이 용해된 금속은 토양과 하천을 거쳐 지하수·저수지·강으로 흘러 들고 상수원과 식용물고기까지를 오염시킨다.다음에는 상수도관을 용해시키고 유출된 유해금속이 식수를 오염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이 과정은 세계 도처에서 확인된 것이다. 산성비나 대기오염의 피해는 추상적피해라고 말한다.어떤 예고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산림이 고사하거나 기차선로가 삭아드는 피해이기 때문이다.이 피해는 실로 황당한 것이다.우리에겐 아직 낯선 일이지만 대기오염의 총량분석이나 그방출량의 국적별 분류,그리고 우리 자신이 해야할 각종 오염물질억지계획을 이제는 바로 정리하고 또 실시해야 한다.
  • 광견병 「북한개」가 감염원인듯/정부추정 발원원인

    ◎휴전선일대 서식 너구리가 북서 1차전염/경기북부지방 마을로 넘어와 개에 옮긴듯 지난 84년이후 잠잠했던 광견병이 10년만인 올해 다시 발생했다.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무서운 병이라 최근들어 보사부와 농림수산부에는 시민들의 문의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광견병에 걸리면 물조차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몹시 부어 『물만 봐도 겁난다』는 뜻에서 공수병으로도 불린다.지난 85년부터 10년째 이 병이 발생하지 않자 정부는 우리나라를 「광견병 비발생지역」으로 선포,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수역사무국에 통보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터였다. 정부는 10년만에 이 병을 가져온 전염원을 휴전선일대에 서식하는 오소리나 너구리등의 야생동물로 보고 있다.눈덮인 겨울에 먹이를 찾기위해 북한의 마을을 들락거리다가 광견병에 걸린 개와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병이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북한은 방역체계나 기술이 뒤떨어져 있어 광견병에 걸린 개가 많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북한의 개로부터 전염된 오소리나 너구리등이 강원도나 경기도북부지방의 민가에 내려왔다가 남한의 개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전염됐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올들어 지난 25일까지 발생한 8건은 경기도 연천이나 강원도 철원등 휴전선에 가까운 북부지방이다.뱀 같은 냉혈동물을 뺀 온혈동물에는 모두 전염된다.애견가들은 서둘러 예방주사를 맞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1300년전 정신세계(백제를 다시본다:5)

    ◎상징동물은 바로 백제인의 소우주/향로엔 짐승 39마리·수중생물 26마리/사슴은 영생·재생·원숭이는 장수의미/처음 나타난 기마무인상… 천리를 달리는 진취적기상 돋보여 백제의 동물에 대해서는 별로 전해진 것이 없다.선사시대 암각화나 고구려 고분벽화,신라 토우에는 많이 나타났지만 백제쪽으로 오면 동물이 상대적으로 희귀하였다.그런데 웬 일인가….부여 능산리 출토 금동향로에서 백제의 동물들이 한꺼번에 달려나왔다.1300여년전 백제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보게 하는 이들 동물은 고고민속학적 해석을 바닥낼 정도가 되었다. 향로에는 봉황을 비롯하여 상상의 날짐승과 길짐승,현실세계에 실재하는 호랑이·사슴·코끼리·원숭이 등 39마리의 동물상이 표현되고 있다.또 연꽃사이에는 두 신선과 수중생물인 듯한 26마리의 동물이 보인다.특히 이 향로의 기마인물상들은 백제미술품에서는 처음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곰은 모신적존재 전체적인 구성원리는 음양의 체계를 이루어 아래로 수중동물의 대표격인 용을 등장시키고,그 위로 연꽃과 수중의 생물,지상계에는 산악과 짐승 및 신선,천상계의 정상부는 원앙과 봉황을 배치하였는데,봉황은 양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동물이다. 백제금동향로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 가운데 특히 백제와 관련이 많은 곰,남방계 동물인 원숭이와 코끼리,백제미술품에서 처음 나타나는 기마상,신령스런 영매로서 영생과 재생의 상징인 사슴등이 민속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곰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한민주의 모신적 존재로서 한국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곰은 단군신화와 민간설화에서 여성으로 등장한다.환웅과 혼인한 융녀의 몸에서 단군이 태어난 건국신화,삼국유사에 신라 김대성이 토함산에 올라가 곰을 잡고 곰의 징벌이 두려워 그 자리에 곰을 위해 장수사를 지었고,고구려의 해모수는 유화를 웅신산 기슭 압록으로 유인했다는 역사문헌기록,여인으로 변한 곰이 나무꾼을 유혹해 동거한 금강(곰강)의 전설 등 곰은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곰 웅자」 붙은 지명이 웅천,웅촌,웅진,웅강,웅산 등으로 많다.특히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금강이 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명으로 흥미를 끈다.이 곰이 백제향로 정면에서 왼쪽에 꼬리를 치켜세우고 걸어가다 도인을 향에 되돌아 보고 있다. 선계의 산에 나타난 원숭이·코끼리·연꽃 등은 불교 문화를 수용한 세계관의 한 표현이다.입에 앞발을 대고 있는 원숭이가 뭐라고 귓속말을 전하는 듯하다.예로부터 「동국무원」이라 하여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던 것으로 원숭이와 얽힌 내용은 그리 흔치 않다.원숭이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는지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신라 토우의 원숭이는 부적으로 휴대하거나,부장품 혹은 각종 용기의 장식으로 사용되었고,십이지신상의 원숭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당당한 시간신이며 방위신으로 나타난다.청자,백자로 만든 원숭이는 도장,작은 항아리,연적,걸상에서 자연에서의 모습과 모자뉴대의 형상을 띠고 있다.옛 그림 속에서는 원숭이가 십장생과 함께 장수의 상징으로,자손 번창의 상징으로 스님을 보좌하는 역할로 묘사되고 있다. 기마인물상은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백제무인이 두발을 곧추세운 사나운 기세의 말을 타고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수평적으로 내닫고 있는 정적인 신라의 마각문토기·마형토기·기마인물토기·천마도등과 고구려 고분벽화의 말을 타고가는 기사도,말을 타고 활을 쏘는 수엽도,죽은 사람의 영혼이 타고 가는 개마도등과는 다르다.45도 각도로 위로 치고 나가는 금동향로의 백제 기마무인상에서는 천리를 달리는 진취적 기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말에 대한 표현방식은 시대에 따라서 문헌·유물·설화·신앙·놀이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말에 대해서 느끼는 관념은 변함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 같다.말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은 「신성한 동물」「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으로 수렴되었다.그래서 하늘의 사자,중요한 인물의 탄생을 알리고 얘기할 줄 아는 동물,예언자적 구실,영혼과 마을 수호신이 타는 승용동물,장수·신랑·선구자 등이 타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사슴과 새 그리고 맹호가 평화롭게 뚜껑의 맨 아랫부분에 부조되어 있다.사슴이 유유자적하며 선계의 산으로 오른다.사슴아래 나뭇가지에는 새가 앉아 노래하고 나무아래로 맹호가 포효하고 있다.백제인의 여유와 취미와 예술,그리고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오늘날의 민속이나 무속에서는 사슴이 중요한 신앙소로 등장하지는 않는다.그러나 상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정이 다르다.우리 민족은 사슴을 상상의 동물인 기린에 준하는 거룩한 동물로 숭상하였다. ○영원의 세계표현 사슴뿔은 남권의 상징이자 가부장및 공동체 수장의 상징일 수 있다.사슴뿔은 나뭇가지 모양을 하고 있고 봄에 돋아나 자라면서 딱딱한 각질로 되었다가 이듬해 봄에 떨어진다.그리고 다시 뿔이 난다.이러한 순환기능과 나무를 머리에 돋게 하고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동물은 사슴뿐이다.따라서 사슴은 대지의 원이를 갖춘 동물로 여겼다고 할 수 있다. 사슴의 출현은 좋은 일이 생길 징조로 보았다.청학이 신선의 벗이자 짝이듯이 사슴도 신선의 벗이자 시종이었다.사슴은 호랑이와 더불어 신선의 탈것으로 생각되었다.사슴은 상상의 동물인 기린과 닮아 작은 기린으로 여겼으며 신선으로 도인의 품성을 갖춘 것으로 인식했다. 금동향로의 1백개 부조상은 영원불멸의 하늘 세계의 상징으로서 봉황과 북방 설원에서 설매 끄는 사슴,상상의 동물인 공작,하늘을 나는 천마의 신성함,사람과 가장 가까운 영물로서 원숭이 등등 고대 백제인의 이상과 꿈,영원의 세계를 표현한 소우주라 할수있다. ◎백제인의 신앙생활/한국인 심성속에 자리잡은 동물/거북·학·기린 등 신령으로 모셔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삶을 지키기 위한 원초적 본능으로 신앙미술을 창조했다.선사암 각화등이 그 초보적인 신앙미술이다.신앙미술은 곧 여러가지 의미가 부여된 동물상징으로 발전함으로써 생활문화와 사상,관념,종교등을 표현하기에 이른다.그리고 동물은 원시시대이래 인간에게 때로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가하면 먹거리이기도 했다.그 힘은 노동력으로도 이용되어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한반도에서도 바위그림이나 동물벽화를 비롯해 토우,토기,고분벽화 등에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등장한다.이 동물들에도 제각기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제각기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상징이 숨겨져있는 것은 물론이다.청동기시대의 반구대암각화에는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과 사냥장면,개,사슴,호랑이,곰,물고기,거북,고래등이 묘사되어 있다.이 바위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생산활동인 고기잡이와 사냥,그리고 그 대상이된 동물들을 표현했다. 동물그림이 선사시대 바위그림에 못지않게 자주 나타난다.대상이 된 새는 학 꿩 공작 갈매기 부엉이 봉황 주작 닭등으로 현실의 새도 있고 상상속의 새도 등장한다.동물로는 범과 사슴 멧돼지 토끼 여우 곰등 산짐승과 소 말 개등 집짐승들이 그려져 있다. 신라의 동물상징은 주로 토우라 불리는 흙인형에서 나타난다.얼핏 살펴보아도 개 말 소 물소 돼지 양 사슴 원숭이 토끼 호랑이 거북 용 닭 물고기 게 뱀 개구리등이 눈에 뛴다.그런가하면 십장생 가운데 거북 학 사슴과 상상의 동물인 용봉황 기린등은 현재도 신령스런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고대인이 지녔던 정신세계의 일단이기도 한 동물의 세계가 이번에는 금동향로에 한꺼번에 나타나 백제인의 내면적 사상과 의식을 새롭게 조명할수 있게 되었다.
  • 동물의 수난(외언내언)

    노루는 일반적으로 흔한 편이지만 카메라에 쉽사리 포착되지 않을 만큼 날쌔고 기민하다.낳은 지 1시간이면 걸어다니고 사람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질주력이 특징이다.부부금실이 좋아서 한마리가 희생되면 몇달동안 근처를 떠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두루미 한쌍중 한마리가 숨지자 남은 한마리는 닷새동안 물한모금 마시지 않고 슬피 울다 탈진했다.결국 이 열녀두루미는 세속의 불륜·비이와도 대비되어 우리에게 뜨거운 감동을 안겨준 바 있다. 동물들이 자기네끼리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알려진 얘기다.하와이대 동물심리학 교수인 루이 하먼은 87년 돌고래와 강치는 「사람의 말뿐아니라 문장속 단어의 순서까지 터득했다」는 연구보고를 냈다. 이처럼 동물의 세계는 오묘기묘하며 그나름의 지혜와 감지로 생태계를 지켜나간다.집단이주 먹이사냥과 저장,새끼사랑과 적으로부터의 방어등 일사불란한 균형과 조화가 그것이다. 각종 공해와 무분별한 개발로 가뜩이나 멸종위기에 있는 뱀·개구리등 야생동식물이 불법포획·채취로 수난을 겪고 있다.이제는 굴삭기까지 동원하여 바위를 밀쳐내고 그 밑에서 겨울잠을 자려는 개구리마저 송두리째 잡아들인다.덫에 걸려 다리가 부러진 노루와 토끼가 절뚝거리면서 강산을 헤매다 죽어가고 이를 잡기 위한 그물과 덫과 독극물이 사방에 널려 있다.아마도 잘못된 보신풍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야생동물들은 영원히 수난을 면치 못할지도 모른다. 외국에는 「애니멀 웰 페어」라는 게 있다.즉 동물복지다.동물도 하나의 생명으로 자연상태속에서 그 수명을 유지할 권리가 있으며 인간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무자비하게 희생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생태계보호는 인간의 삶을 보호하려는 것이다.싱싱하고 활기찬 그릇에 우리의 생명을 담기 위해선 환경과 자연·생물의 보호는 「필수」가 아닐 수 없다.
  • 「치욕의 사적」 철거로 얻는것/홍기삼 동국대 교수(정경문화포럼)

    ◎과거은폐 아닌 민족정신 바로 세우기/남북통일 대비 민족박물관으로 신축 한일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떨쳐버릴 수 없는 글 한편이 있다.양계초의 「조선멸망과 이유」(1910)라는 글이다.아마도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대해 비판한 글중에서 이처럼 잔혹하게,가차없이 구체적으로 비난한 글은 그 짝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조선인을 멸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양계초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합병조약이 발표되자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오히려 조선을 위하여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조선 사람은 기뻐하고 만족해 하였으며 고관들은 날마다 출세를 위한 운동을 하여 새 조정의 명예스런 벼슬 얻기를 바랐으며 가볍게 즐기었다.무릇 조선사람 천만명 중에 안중근과 같은 사람이 하나 둘쯤 없었던 것은 아니다.내가 어찌 일률적으로 멸시하겠는가』 천만명중에 한둘쯤 있는 안중근정도를 제외한다면 조선인 전체를 일률적으로 멸시하기에 충분하다는 내용이다.웃어넘기자니 걸리는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고 정색을 하고 받아들이기엔 안하무인격인 그의 난폭한 비난을 견디어 내기가 어렵다.다음과 같은 대목은 더 구체적이다. 『중국편은 수년이 못되어 일본편이 되고 또 수년이 못되어 러시아편이 되고 또 변하여 일본편이 되었으니 오직 힘이 강하여 보살펴주거나 옹호해줄 수 있는 자면 따랐던 것이다.대개 전세계에서 개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조선이 그 으뜸이다.(중략)조선사람은 화를 잘 내고 일을 만들기를 좋아한다.한번 모욕을 받으면 곧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일어난다.그러나 그 성냄은 얼마 안가서 그치고 만다.한번 그치면 곧 이미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한민주에 대한 모멸은 이 정도로 그치지 않고 여러 부면에 대한 원색적 비난으로 계속된다.소위 근대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문학가로 명성 높은 양계초는 우리나라의 개화기 문사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중의 하나이다.그런 그가 조선은 가장 붕당이 많고 음모를 좋아하는 나라이며 외국의 전쟁이나 일어나게 하는 매우 상서롭지 못한 나라라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조선사회는 음험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항상 우수한 세력을 이루고 있다고도 하였다.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제 오직 더럽고 비린내나며 음침하고 어두운 낭패와 치욕의 사적만이 남았다.길이 백두산의 눈빛(설색)을 더렵혀서 씻을 수가 없게 되었다…』 「총독부」철거문제가 찬반양론으로 크게 갈리면서 치욕의 역사도 역사다라는 논리가 대두되었다.양이 말한 「치욕의 사적」을 상기하게 하는 대목이다.그런데 치욕의 역사도 역사라는 논리에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속의 과거사를 의미하는 부분도 함축되어 있다.그러나 이점은 곰곰 생각해봐도 매우 이상하다.「총독부」건물과 그 기능은 과거라는 시간의 화석속에 묻혀버린 역사의 퇴적층이 아니며 이미 과거 속으로 사라져간 사건도,산골이나 이름모를 들녘 어느 구석에 버려져있는 작은 비석같은 것도 아니다.그것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심장부에 우뚝서서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다.그것은 과거완료형으로 종결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속에서 구성적 기능을 수행하는 현재진행형의 「치욕의 사적」이다.치욕의 역사도 역사다라는 논리의허구성은 이 점을 간과한 것에 있다. 「총독부」를 헐자는 것은 치욕의 사적을 헐자는 것이지 과거를 은폐하자는 것이 아니다.그렇게 해서라도 민족의 비뚤어진 정신을 바로 세워보자는 것이지 어리석게 뒤늦은 분풀이를 하자는게 아니다.없앰으로써 얻어야할 소중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며 양과 같은 사람들로부터 참혹한 비난을 벗어나 당당한 민족의 미래를 지향해 가자는 뜻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 정부의 방침이 선철거 쪽으로 정해졌다하니 다음과 같은 두가지 문제를 지적해 두고자 한다. 첫째,단시일내에 박물관을 건립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점이다.수십년이 걸리더라도 부실한 공사를 해서는 안된다.그것은 또 하나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남북통일을 대비해서 명실상부한 민족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통일이 되면 남북의 유물은 물론이고 만주일대 고대유물의 풍부한 유입도 예상해야하기 때문이다.관련 당사자들의 진지한 사명감을 거듭 촉구하는 바이다.
  • 폭리 건강식품(외언내언)

    로얄젤리 효모 화분가공식품에서 스쿠알렌 케일 알로에와 개구리 달팽이 뱀에 이르기까지….사람들이 흔히 선호하는 건강식품들이다. 알레르기성 체질을 개선하는데 화분이 얼마나 큰 효력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증명할수는 없다.그러나 건강해지기 위해선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가리지않고 먹는다.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비싸고 구하기 힘들수록 건강에 강력한 효력이 있다고 맹신한다. 여기에 과대광고가 부추기고 나선다.「장수의 비약」「체중조절의 신기원」「노화 방지」「정력 강장」등은 업자들이 만들어낸 미사여구임에도 소비자는 분별없이 덤벼든다. 보약은 물론 자연건강식품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나 고르게 효험이 있는건 아니다.특수한 체질이나 질병이 있는 사람이 소문만으로 이런 식품을 먹었을 경우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역효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뱀·개구리를 생식했을때 이들 동물이 갖고 있는 기생충이 인체에 들어와 언어장애나 간질병을 유발한 의학계의 보고도 있다. 어느 식품이나 영양가를 지니고 있기때문에 특정식품만이 건강식품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단지 어떤 식품이든 잘먹으면 약이 되지만 전혀 반대로 독이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임어당은 「음식과 약에 관하여 」란 글에서 『중국인은 음식물을 영양분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또 음식을 약과 구별하지도 않는다.몸에 좋은 것은 약이기도 하고 음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다. 작년 한햇동안 1백40개사에서 수입한 건강보조식품은 1천6백50여건.보사부 조사에 따르면 3천2백원짜리 꽃가루제품을 37배가 넘는 12만원을 받은 예도 있다. 「건강」이라면 이성이 마비될 정도인 소비자의 우매를 틈탄 장삿속이다.건강식품에 대한 올바른 지도,또는 수입가에 대한 적정가 허가방안,식품에 대한 섭취방법과 부작용등의 기재사항을 부착,소비자들이 더이상 놀아나지 않게 보호해주는 방법을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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