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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DJ」 선봉 나선 유준상 의원(정가 초점)

    공천헌금 파문의 장본인 유준상 의원(국민회의)이 22일 마침내 탈당했다.유의원은 탈당선언을 하면서 김대중 총재에 대한 공격고삐를 더욱 죄는 듯 했다.당원이 아닌만큼 마음놓고 공격하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김총재의 굴레에서 벗어나 후련하다』고 소감을 밝힌 뒤 『김총재의 비리와 위선의 정체를 밝히는데 앞장서겠다』며 반DJ의 선봉임을 자처했다.『2천년전 브루터스가 조국 로마를 위해 시저를 죽였다』며 김총재에 대한 비난이 공천탈락의 한풀이가 아님을 강변했다.그러나 『정치헌금의 공범』이니 『지역패권주의에 편승한 과거』등의 표현으로 자성하는 모습을 애써 강조했다.뱀소동 등 최근의 처신을 의식한 듯,『국회의원 더 하자고 김총재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한 10년세월을 눈물로 회개한다』고도 했다. 무소속출마 부분에 와서는 목소리를 낮췄다.유의원은 『등록 마감일인 27일까지 출마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출마시 표가 신통치 않을 경우 정치생명에 「치명적」이라고 판단한듯 하다.『내가 당선되는 것이 최우선 목표지만 다른 당 후보가 당선돼 국민회의 공천이 잘못됐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고 밝혀 불출마도 점쳐진다.〈오일만 기자〉
  • IQ보다 EQ 중시 교육을/문용인(서울광장)

    어제 아침 조간신문에 조그맣게 실린 기사 하나가 지금껏 내내 머리속에 맴돌고 있다.경기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었다.19세난 아들이 44세인 자신의 어머니를 목졸라 죽이고 치정에 의한 살인으로 위장했다가 발각된 사건이다.또하나의 부모살해라는 패륜사건이 일어난 셈이다. 나의 뇌리 속에 계속 남아 있는 의문은 무엇이 엄마를 살해케 했는가 라는 것이다.그 전날까지만 하여도 엄마와 아들 사이는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그런데 무엇이 그 자식으로 하여금 어머니를 목졸라 죽이게끔 했는가? 이것을 지난 4,5백년간의 왜곡된 문명사의 발전탓으로 돌리고 현재의 잘못된 교육적 관행의 탓으로 돌리면 너무 허황되고 추상적인 사변이라 꾸짖을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내 머리속에는 그런 해석이 계속 머물고 떠나질 않는다.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의 시기 이래로 교육을 통해서 개발하고자 한 인간의 소질·적성·능력은 무엇이었는가? 이른바 합리적 사고능력으로 대변되는 논리·수학 및 자연과학적 지식이었다.인간 속에잠재된 무수한 능력과 소질·적성 중에서 그런 합리적 사고능력만이 가치로운 것으로 인식되었는바 정서와 감정 그리고 정신적 품성과 품격의 문제는 계속 경시되어 왔다. 이미 15,16세기 이래로 풍미되기 시작한 부국강병이라는 정치와 국제사회의 생존논리는 과학과 기계,기술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소질·적성·능력의 개발에만 주력하도록 문명과 교육의 진로에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이른바 똑똑한 아이를 가치롭게 여기고,품성이 좋고 곧은 아이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아이로 대접받는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것이다.이런 풍조는 학교와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집안의 부모들조차도 똑똑한 아이를 더 선호하지 품성이 좋고 곧은 아이를 선호하지 않는다.사회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려면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문제해결 잘하고 경쟁에서 악착같이 이겨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지난 4,5백년간의 동·서양의 교육은 합리적 사고와 이성능력과 자연과학적 지식의 배양에 몰두되어 왔고 윤리·도덕의 정신과 성숙한 인격,깊고 심오한 품격을 지닌감성의 개발과 배양에는 지극히 소홀히 해왔다.이런 현상을 일컬어 교육학자들은 IQ를 중시하고 EQ를 소홀히 해온 문명과 교육의 역사라고 요약해서 말하곤 한다. 서양의 교육을 포함해서 우리나라의 교육은 결국 IQ에 연연하고 매달려온 교육이랄 수 있다.IQ만 높으면 모든게 다 잘 되는 것으로 착각해 왔으며 IQ와 같은 능력을 갖추면 사회적 출세와 성공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으로 믿어왔다.그래서 부모도 교사도 학생도 사회도 IQ에 언제나 연연해 한다.그것이 바로 성공의 예언 표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IQ에 매달려 있고 연연해 하는 동안 소홀히해서 못 발견해내고 못 개발해낸 EQ때문에 인간의 삶은 대단히 삭막해져 왔다.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희·로·애·락·애·오·욕이라는 일곱가지 감정이 솟게 마련인데 그런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고 다스려줄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감정의 관리능력이 결여된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부딪치는 사람들간의 긴장과 갈등이 속출하는 것이다.감정의 조절과 관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어느정도는 할 수 있다.그러나 감정이 격할 때에는 훈련받은 사람만이 품격있고 세련되게 감정을 표출한다. 파충류에 속하는 뱀은 원색적인 욕망으로서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때와 장소와 대상에 따라 조절하는 조절장치가 없다.그래서 그들을 우리는 살모사라고 부른다.사람들은 원색적인 감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장치를 뇌구조상 가지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연습과 경험을 통해서 활성화 되어야 제기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수백년동안 그런 뇌구조상의 기능을 개발하는데 소홀히 해왔다.IQ만을 개발하고 EQ를 소홀히 해온게 바로 그것이다.따라서 광주의 19세난 살모의 10대도 결국은 EQ를 발견하고 개발하는데 소홀히 해온 이 문명과 교육의 한 희생자라고 나는 보는 것이다.
  • 여야 「공천헌금」 공방 가열

    ◎신한국­“말썽 나자 은폐 공모… 수수사실 입증/국민회의­“15대선 헌금 안받아… 법정대응 불사” 신한국당 기현정 부대변인은 국민회의 권노갑 선대위 상근부의장이 신한국당의 국민회의 공천헌금 의혹제기에 대해 음해라고 반박한데 대한 논평을 내고 『공천헌금을 요구받은 당사자인 유준상의원에 의해 밝혀진 것』이라고 일축했다. 기부대변인은 『14대 총선 때 김대중 총재와 공동대표였던 민주당 이기택 상임고문 간에 공천헌금의 착복 또는 유용여부가 말썽이 되자 공개질의 요구를 덮기로 공모한 사실도 그 실체를 증명하는 것』이라며 『이고문이 당시 6대4의 지분을 갖고 전국구 후보 8명 공천을 합의한 것으로 미루어 명백한 사항』이라고 되받아쳤다. 기부대변인은 『이같은 사실을 우리당 총장의 음해라고 해대는 것이야 말로 김총재의 20억+α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며 『오죽 억울하면 유준상 의원이 뱀소동까지 일으켰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앞서 국민회의 권노갑 선대위상근부의장은 이날 상오 기자간담회를 갖고 『15대총선공천과정에서 지역구는 물론 전국구도 일체의 헌금을 받은 일이 없다』면서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이 이 문제에 대한 음해를 계속할 경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총재는 13대건 14대건 공천헌금을 직접 받은 일이 전혀 없다』면서 『13대때는 비서실장이던 내가,14대때는 조승형 당시비서실장이 헌금을 받아 당에 전달했고 그 내용은 선관위에 정식 보고됐다』고 말했다. 권부의장은 『14대 총선당시 김대중 이기택 공동대표의 승인하에 민주당에 들어온 공천헌금중 우리가 받은 헌금은 조실장을 통해 중앙당에 전달됐고 그 돈은 현 민주당소속 의원들의 선거자금으로도 쓰여졌다』고 말했다.〈박대출·오일만 기자〉
  • 북한 상품 전용판매점 북경에 “오픈”

    ◎도자기·그림·수공예품·뱀·인삼술 등 갖춰/한국관광객 겨냥… “주문땐 서울까지 우송” 북한상품 전용판매점이 북경에 최초로 문을 열었다.「평양상점」이란 이름으로 최근 조양구 조양공원안에 문을 연 이 상점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슴에 커다란 김일성배지를 단 20대초반의 북한처녀들이 조선족과 함께 안내와 판매를 맡고 있다. 1백70여평 남짓한 이 상점은 형식상 재미교포 무역상 윤영선씨(미국 영패밀리인터내셔널)와 조선족 실업가 김성수씨의 합작으로 발족됐다.그러나 실상은 북한대사관과 김씨의 합작기업으로 주요고객은 한국인관광객이나 현지주재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지난해말 평양에서 노동당산하 대성무역상사 고위관계자와 이 사업에 합의했다고 말했다.북한대사관 무역참사관들이 사업구상 초기부터 참가했고 주창순주중북한대사의 허가와 격려도 있었다는 귀띔이다.북한측은 물건을 대고 김씨는 장소등을 제공하는 형태로 매출액의 절반씩을 나누기로 했다는 것이다.물건은 윤씨가 북한에서 수입하는 형식으로 들여와 전시된다. 이곳엔 북한에서 최고성가를 올리고 있는 만수대창작단의 도자기와 그림·수공예품을 비롯해 술·담배등 기호품,안궁우황환)등 약품과 약재류,악세서리등이 구비돼 있다.장신구 및 장식품이 하나에 3만3천원꼴로 비싸긴 하지만 북한영화 비디오테이프도 있고 각종 그림엽서 및 서적도 보인다.우리 돈 3만∼7만원정도면 그럴듯한 도자기를 살 만하고 대형금강산그림도 10만여원이면 살 수 있다.술값은 비싼 편인데 개성고려인삼술·양덕불로술(뱀술)등이 눈에 띈다. 미술천재아동 오은별의 그림이 없느냐는 질문에 『오은별의 것은 물론 다른 물건도 주문하시면 2∼3일내로 도착되고 원하면 서울 주소로 우송도 해주겠다』고 북에서온 점원이 친절하게 답한다.「평양상점」근무를 위해 이달 중순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왔다는 20대초반의 앳된 5명의 북한처녀 판매원은 북한대사관 공관에서 기거한다.이들에게 한국의 쌀지원을 아느냐고 묻자 『북에도 쌀이 많은데 무슨 쌀지원』이냐며 모른 체했다.이들은 『온 지 이틀밖에 안됐지만 조국에 돌아가고 싶다』면서 『조국통일을 위해 여기에 와 일한다』고 말했다.상점 관계자는 올 3∼4월 상점확장에 맞춰 5명의 평양처녀가 더 올 것이라고 했다. 윤영선씨는 『북한유엔대표부의 지원으로 오는 3∼5월에 뉴욕·워싱턴·LA등에서 북한상품전시회를 갖기로 결정했으며 상설매장설치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김성수씨도 『중심가 쿤룬호텔부근에 건평 2천평의 4층 건물을 임대했으며 수리한 뒤 이곳으로 상점을 옮겨 본격적인 조선상품전시·판매장으로 만들어 관광의 명소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조선족기업가는 북한측이 도별 무역회사조직을 통해 이같은 외화벌이전문상점을 중국에 설치할 계획으로 알고 있다면서 무역관련부서의 경우 조선족과 교포등을 통한 접촉을 더욱 활발히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일 오자와의 「덤불 쑤시기」 발언/강석진(오늘의 눈)

    일본 속담에 「덤불을 쑤셔서 뱀을 나오게 한다」는 말이 있다.긁어 부스럼이란 우리 속담과 비슷한 뜻이다.최근 며칠 사이 일본 신진당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간사장의 발언을 보면서 떠오르는 말이다. 오는 27일까지 실시되는 당수 선거에 출마하고 있는 그는 지난 18일 『우리에게도 문제는 있지만 한국과 중국쪽도 반일교육을 철저하게 하고 있다.역사의 사실을 가르치는 것은 좋지만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서 반일교육을 하고 있는한 장래에 아무것도 좋은 것은 없다』고 한국과 중국의 역사교육에 불만을 제기했다.이에대해 한국 외무부는 19일 『한국의 역사교육은 있는 사실을 교육시키는 것으로 이를 반일교육이라고 단정하고 더욱이 정치적 의도에 의한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릇된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감』이라고 논평했다. 오자와는 20일 외무부 논평에 대해 『우선 일본인이 과거사를 바르게 인식해 겸허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면서도 『한국도 중국도 「일본은 적」이라고 하는 듯한 교육을 해서는 안된다.상호 신뢰해 가면서 협력할수 있는 좋은 장래를 만들자고 말한 것』이라고 「적」이라는 보다 강한 표현을 써가며 반론을 제기했다.게다가 그는 외무부의 논평에 대해 『(나의) 코멘트 전체를 보면 이해된다.그들의 이해는 단락적(본질을 무시하고 사물을 간단히 관련지음)』이라고 말했다.불만은 여전하고 비판은 수용하지 않았다. 그의 발언에 대해 당수 경선 경쟁자인 하타 쓰토무(우전자)부당수가 『상대의 입장에서도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당연하다. 올해 들어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실언은 한달이 멀다하고 반복돼 왔다.양국은 지난 11월 역사공동연구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합의한 바 있다.겨우 봉합해 해를 넘기고 있는 터에 오자와는 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평소의 직선적인 발언 태도로 보아 그가 당수선출을 앞두고 보수층을 염두에 둔 정치적인 계산하에 발언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하지만 덤불을 쑤시는 듯한 그러한 발언과 피해국가들의 당연한 반발이 대일 우호관계에 심각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오자와를 비롯한 일본의 일부 보수 정객들이 깨닫기를 다시 한번 충고하고 싶다.
  • 다리 지킬 「구렁이」가 어디 한 둘인가(박갑천 칼럼)

    공사하면서 돈 떼먹는 일은 옛날에도 있었던 듯하다.3백여년전의 「순오지」에도 그 얘기가 씌어 있다. ­한 스님이 사미를 데리고 길을 나서 냇가에 이르렀다.다리가 놓였건만 스님은 물을 건너려 한다.사미가 왜 그러냐니까 대답한다.『어떤 화주승이 이 다리를 놓으려면서 재물과 곡식을 많이 거두어 태반을 사사로이 쓰고서 남은 걸로 공사를 했구나.그러니 다리가 온전할 리 있겠느냐.화주승은 그 업보로 이물이 되어 이 다리를 지키고 있다.네가 그 형체를 보고 싶으냐』 스님이 능엄경을 외고서 얼마 있자 구렁이가 다리 아래서 기어나와 다리에 그 몸체를 걸치는데 두길은 됨직했다.그뒤를 이어 여러 마리 작은 뱀이 따라나와 구렁이 곁에 머리를 나란히 매고르게 늘어선다.사미가 저 뱀은 또 뭐냐고 묻는다.『저것들은 재물과 곡식을 운반할 때 잔챙이를 훔쳐먹어서 저렇느니라』 이를 소개한 지은이(현묵자 홍만종)는 이렇게 말한다.『비록 지어낸 말 같긴 하나 츱츱하게 감빠는 자들에게는 충격을 줄 것이다.만약 인과응보의 이치가 있다면 세상의 탐관오리는 죽어서 창고 안 구렁이로 안될 자 드물리라』 구렁이는 말할 것도 없지만 떡고물 훔쳐먹은 송사리도 뱀이 되어 다리 안 떠내려가게 지켜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겠다. 부실공사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건설관계법개정안이 18일 국회를 통과했다고 한다.그 소식에 접하면서 떠올려본 다리구렁이 이야기다.이 법에 의할 때 부실공사에는 최고 무기징역이라니 서릿발이 친다.삼풍백화점 붕괴참사라는 소를 잃고서 고쳐낸 외양간이라 하겠는데 인젠 소를 안 잃게 될 것인지 어쩐지. 공사부실은 「떼이는 일」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이 명목 저 구실로 따깜질당하는 공사비는 굴썩해져 간다.그것은 그동안 이른바 「통치자금」이라는 것 속으로 녹아 흘러들어가기도 했다.그렇게 백원 가지고 해야 할 일을 50원으로 뭉개대니 사상누각이 안될 수 있겠는가.그런 고리가 온전하게 끊겨야만 소를 온전하게 키워낼 수 있을 것이다. 법으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죈다면 백성은(법에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하여) 형벌 면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고 공자는 말한다(「논어」 위정편).덕과 예를 중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이 강화될수록 그 그물 뚫는 지혜는 더 악랄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공사비가 공사하는 데만 쓰일 수 있게 되는 장치. 구렁이·뱀의 교지부릴 길이 밑동서부터 끊겨야 한다.
  • 천경자 회고전(외언내언)

    원로 여류화가 천경자씨의 시적인 채색화들은 화려하면서도 고독하고 쓸쓸하면서도 화사한 여인의 내면심경을 섬세하게 드러내 보인다.굴곡 심한 삶과 정서적 갈등을 화면으로 승화시켜온 그는 초기에는 뱀을 자주 그렸다.뱀을 그리게된 밑바닥사연에는 「여인의 한」이 서려 있다. 사랑에 실패하고 가난에 찌들었던 젊은 시절,그는 무섭고 징그러운 뱀을 그리면서 삶에 대한 공포를 잊으려고 노력했다.훗날 천경자씨는 『25살이라는 젊은나이에 삶에 지치고 절망해서 뱀이라도 그려야 할 것 같아 35마리의 뱀이 우글거리는 「생태」를 그리면서 좌절을 극복한적이 있다』고 고백했었다.그래서 한때 「뱀의 화가」로 불리기도 했다.나이가 들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소재가 다양해졌지만….그러나 예나 이제나 즐겨 다루는 것은 여인·꽃·나비·새·초원의 동물 등 정감어린 소재들이다. 천경자씨의 성품은 매우 민감하다.작은바람소리 하나에도 무심하지 않아 옳지 않은 것에 동조하거나 싫은 것을 적당히 수용하는 법이 없다.그런 성품때문에 미술계를 한바탕 흔들어 놓았고 자신도 고통을 겪었다.이른바 「미인도 사건」.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한 천경자씨의 「미인도」를 놓고 작가자신은 가짜라고 주장했고 미술계는 진품이라고 우겨 엄청난 파문이 일어났다.진위는 아직도 가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작가를 믿지 못하는 세태」에 환멸을 느껴 한동안 붓을 꺾기도 했었다. 눈이 부시도록 강렬한 색채로 신비와 환상의 세계를 한껏 펼치는 천경자씨.그는 누가 뭐래도 한국채색화의 새로운 공간을 빚어낸 뛰어난 화가다.또 그의 작품들은 이미 한국현대미술의 한 유형이 되어 살아있는 미술사를 창출하고 있다. 천경자씨가 1942년 선전을 통해 데뷔한 이후 50년이 넘도록 그려온 대표적인 정수들을 모은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다.주제는 「천경자­꿈과 정한의 세계」.섬세한 감각과 신선한 상상력으로 한국화의 독창적 경지를 개척한 그의 회고전은 이채로우면서도 뜻깊은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 9일 상임위(국정감사 중계)

    ◎“한국중공업 「재벌예속 민영화」 없을것”/해안밀입국 중국교포 1백90명 검거­국방위/발전설비 일원화 해제 단계별로 추진­통산위 ▷국방위◁ ○…2군사령부에 대한 감사에서 중국인 조선족의 해안 밀입국 대책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이철 의원(민주)은 『해안선을 통해 밀입국한 중국교포들이 군의 해안선 경계작전에 의해 적발되는 경우가 드문게 문제』라며 실효성 있는 차단대책을 주문. 구자춘 의원(자민련)도 『2군사령부는 영·호남권 해안지역도 관할하고 있지만 해안 밀입국자에 대해 취약함을 노출했다』고 주장하고 『특히 북괴공작원이 중국계 조선족 밀입국자로 가장해 침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 나병선 의원(국민회의측 민주)은 『문민정부들어 해안선을 따라 구축돼 있는 철조망을 수거했다』면서 『현재 해안선을 따라 배치된 해안감시장비의 배치현황은 어떠하며 운용상 문제점은 무엇이냐』고 질의. 조성태 2군사령관은 답변에서 『현재 전방 못지않게 긴장속에서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그 결과 지난 5월 이후 해안을 통한 중국교포 밀입국자를 9차례에 걸쳐 1백90명을 검거했으며 지난달 9일에는 중국에서 뱀 8t을 밀수하는 밀수선을 잡은 바 있다』고 밝혔다. 조사령관은 또 『군부대가 대부분 5대강 수역내에 주둔하고 있어 환경보전 활동에 책임의식을 갖고 「1부대 1산 1하천 가꾸기 운동」을 정례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재해·재난 지원활동을 위해 군단장 책임하에 재해통제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답변했다. ▷통상산업위◁ ○…한국중공업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대부분의 의원들은 한국중공업 민영화 문제,발전설비 일원화 해제 및 발전시장 개방에 따른 수주확보대책,사우디 담수설비공사 부실문제등을 집중 추궁했다. 성무용·허화평·김채겸 의원(민자)등은 『한중의 민영화는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국민기업적 성격을 유지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발전설비업체로 계속 육성될 수 있는 쪽으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답변에 나선 이수강 사장은 『민영화 문제는 정부가 산업연구원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경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반영하고 특정재벌이 경영권을 일방적으로 장악하지 않는 방향의 민영화안을 올해안으로 확정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또 『발전설비 일원화 해제조치도 정부가 경쟁력 강화 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추진할 방침으로 있기 때문에 갑자기 경영이 악화되는 등의 일은 없을 것』이며 『사우디 담수설비공사문제는 당초예상보다 순이익폭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전체공사는 이익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농림수산위◁ ○…농림수산 위원회의 이날 농어촌진흥공사와 농지개량조합연합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농어촌 생활용수 오염에 대한 대책과 전국 수맥도 작성 현황 부진,농어촌 생활개선과 소득 증대 등 대단위 사업의 공사지연 이유 등을 집중 추궁. 민자당 이강두 의원은 『지하수 개발이 최선의 가뭄대책은 될 수 없다』며 『지표수개발 등 항구적인 가뭄대책이 무엇이냐』고 따졌다. 새정치 국민회의 김장곤 의원은 『영산강 2지구 등 5개지구 대단위 사업의 공사기간이 최고 14년까지 연장되는 과정에서 설계변경 등으로 모두 1천4백억원의 국고가 손실되고 연간 2조6천억원 가량의 농어가 소득이 손실을 보고 있다』고 질책. 민자당 정창현 의원은 『농조가 관리하고 있는 전국의 수리시설물 1만여개소 가운데 36%가 60년대 이전에 설치된 노후시설로 대형사고의 우려가 높다』고 밝히고 『더늦기전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 ▷문화체육공보위◁ ○…공보처에 대한 감사에서는 통합방송법 제정문제가 핫이슈였다. 야당의원들은 입법예고된 통합방송법이 현행 방송법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전혀 개선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더욱 노골화한 것이라고 몰아붙였다.그러나 야당측은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면서도 법 제정의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에 반해 여당의원들은 통합방송법을 충분한 의견수렴끝에 나온 것으로 긍정평가하면서 『정부는 방송을 장악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도 않으며 각 방송사도 자율성을 누리고 있다』고 반론을 전개했다. 박종웅·강용식 의원(민자)은 『방송환경변화에 따라 정부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통합방송법을 이번 국회에 제출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면서 『다만 위성방송 허가절차를 비롯,정보통신부와 완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CATV 차질과 같은 제2의 시행착오가 우려된다』고 걱정했다.특히 박의원은 『전체적으로 대통령령으로 넘긴 것이 41군데로 너무 많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등 방송법의 문제점 18가지를 조목조목 지적했고 오인환 공보처장관도 『연구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했다.
  • 중국산 농축산물 밀수 급증/추석전 1백일 단속

    ◎작년의 44배 405억대 적발/개고기·뱀 등 보신 품목 늘어/감자전분·콩·한약재 등 밀물/빈 은괴에 금괴 넣어오는 신종 수법 등장 최근들어 밀수꾼들로부터 각광을 받으면서 가장 성행하는 밀수품은 중국산 농림축산물로서 감자전분·흑콩 등 양허관세율이 5백%이상돼 시세차익이 매우 높은 품목과 개고기·뱀등 이른바 「보신」 품목인 것으로 집계됐다. 24일 관세청에 따르면 추석을 앞두고 지난 6월7일부터 1백일 동안 전국 세관 등이 밀수품을 특별 단속한 결과,수입가와 국내판매가의 차이가 보통 3∼5배에 이르는 농림축산물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적발한 규모보다 44배나 늘어난 4백5억원어치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산물이 80억원어치로 11.3배,한약재가 5억5천8백만원어치로 1.7배 증가했다. 전체 밀수 규모는 1천1백13억원 가량으로 지난해보다 2·3배 늘었다.반면에 농림축산물은 무려 44배나 불어나면서 전체 대비 구성비도 36%에 이르고 수산물도 10배 이상 늘어나 7%의 구성비를 보여 특히 우리의 먹거리에 대한 밀수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밖에 금괴·보석류가 4백31억원으로 전체의 38%,한약재가 1%를 차지했다. 농림축산물과 수산물의 밀수 규모가 이처럼 늘어난 것은 예년보다 한달 정도 빨라진 추석절을 겨냥한데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에 따라 농림축산물의 국제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수입품에는 국내산 시세와 비슷할 정도까지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중국산 감자전분 3천3백38t을 통관하면서 관세가 낮은 표백제와 의약품인 것처럼 속여 관세 차액 70억원 상당을 포탈하려 한 것이다. 대표적인 전통 밀수 품목인 금괴와 보석류에서는 신종 수법이 눈에 띈다.서울검찰청은 은괴 속을 정육면체로 비게 만든 뒤 지난해 8월부터 지난 6월까지 금괴 3천8백50㎏,시가 3백85억원어치를 그속에 넣어 몰래 들여와 관세 11억5천5백만원 상당을 포탈한 일당을 붙잡았다.
  • 울릉도에 희귀동식물 27종 서식/산림연구팀 3∼8월 조사

    ◎국내 미존재 기록 버섯류 15종 발견/서해안 일부 분포 해오라기도 존재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27종의 희귀 동식물이 울릉도에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울릉도가 우리나라 희귀 동식물의 보고임이 다시 입증된 셈이다. 산림청 연구팀이 지난 3∼8월 울릉도 전역을 대상으로 조사해 2일 발표한 산림 생태계 자료에 따르면 울릉도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으로 기록돼 있는 15종의 버섯류가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붉은 사슴뿔 버섯과 황색망사점균,노란귀 버섯,은색느타리 버섯 등이다. 또 육지에는 있으나 섬에는 없는 곤충류 10종도 울릉도 성인봉 원시림 지역에 서식한다.띠하늘소 등이다.울릉도 신기록종이다. 조류의 경우 우리나라 서해안 지역에만 일부 분포하는 해오라기가 울릉도에 서식하며,유럽산 귀화식물인 끈끈이대나물도 북면의 나리분지에 서식한다. 조사팀은 또 도동읍 안평전 주변에 학술적 가치가 높은 최대 수령 2백20년 가량의 적송 유적집단도 발견했다.천연보호림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뱀 등의파충류는 여전히 울릉도에는 서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6개 분야로 나눠 구성된 50여명의 연구팀은 오는 10월까지 조사를 계속해 울릉도에 서식하는 생물의 총 종류 수를 밝혀낼 계획이다. 연구팀의 조현제 박사는 『울릉도는 육지와 격리돼 비교적 양호한 자연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그러나 야생화된 염소와 고양이 및 토끼의 서석밀도가 계속 증가,울릉도 산림생태계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문제점이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 장신구·연근해 어업 등 10개업종/해외투자 새달 자유화

    ◎재경원,부동산임대 등 4개 제외 그동안 해외투자가 제한돼왔던 총 14개의 업종중 부동산관련 4개업종을 제외한 10개업종에 대한 규제가 다음달부터 풀린다. 재정경제원 방영민외국인투자과장은 3일 『해외투자의 자유화 및 개방화추세에 발맞춰 이달중 해외직접투자지침을 개정,다음달부터 10개업종의 해외투자를 자유화하기로 했다』며 『그러나 부동산관련 업종의 경우 실수요 기업의 활동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으나 개인의 해외투자는 국민의 정서 등을 감안,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제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투자가 자유화되는 업종은 ▲모조장신구체인 제조업과 화학제품인 날염폴리에스테르 감량가공업 등 공산품 제조업 2개업종 ▲혈액제제업 및 마약제조판매업 등 비공산품제조업 2개업종 ▲메주제조업과 당면제조업 및 밤·대추 등의 산림과실채취업 및 가공업,식용개와 뱀 및 지렁이사육업,연근해어선어업 등 농림수산분야 6개업종이다.해외투자가 제한되는 부동산관련 4개업종은 임대업과 부동산분양 및 공급업,오락 및 레저시설운영업,숙박업 등이다. 한편 재경원은 해외투자사업의 규모를 지금의 1천만달러이상에서 3천만달러이상으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 일본… 상처낸 자리 쑤시고 되후비고(박갑천 칼럼)

    『누에와 같다』는 일본말이 있다.「누에」는 딱새과에 속하는 호랑지빠귀를 이르는 한편으로 전설상의 괴상한 동물을 뜻하기도 한다.『누에같다』고 할때는 후자쪽이다. 「헤이케모노가다리」(평가물어:권4)에 무장이며 가인인 미나모토노요리마사(원뢰정)가 누에를 쏘아죽였다는 얘기가 나온다.이 괴물의 모습은 이렇다. 즉,머리는 원숭이요 몸뚱이는 너구리이며 꼬리는 뱀이고 손발은 호랑이인바 우는소리가 호랑지빠귀 비슷했다.이괴물 따라 정체불명인 사람,아리송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기이한 느낌을 주는 사람을 『누에같다』며 빗대었다. 그말그대로 누에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나라가 일본이다.아리송하게 처신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들에게는 또 「우미센 야마센」(해천산천)이란말도 있다.뱀이 『바다에 천년,산에천년』살면 용이 된다는 말을 줄여서 쓰는 것인데 그렇게 풍상을 겪는사이 교지가 발달했음을 이른다.그 「우미센 야마센」의 나라가 일본아닌가 한다. 「망언」으로 표현되는 「소리」를 한두번 나달거린 것이 아니다.구보다(구보전관일낭)로부터 치자면 정부요로의 사람이 한 것만도 열번은 넘는 것 아닐는지.그들이 낸 상처를 헤집는 살똥스런 화살이다.아프고 분해서 소리치면 「그래?그럼 약을 주지」 하는양 「사과」한다.그러고서 조금있다가 또후벼댄다.이짓을 몇십년 계속해온다.당하는 우리의 대응은 어떤가.그들이 들쑤시면 왁자하게 단세포적 반응을 일으키다가 이내 사그라든다. 이웃나라끼리는 침략하고 침략당하고 하는게 대체적인 세계사의 흐름이다.하건만 한일관계는 좀 유별나다.한국은 일방적으로 당해만 오는 것이니 말이다.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은 그들을 그느르며 은혜를 베푼 나라.그 은혜를 원수로 갚아내려오는 일본이다.그맥락 따라 시나리오라도 써놓은 듯이 침략합리화발언을 뜨문뜨문 내뱉는다.「누에」낯짝이다. 며칠전 같은날짜 신문에 난 독일 콜총리의 나치학살에 대한 발언과 일본연립여당의 「전후결의안」표현의 차이는 엄청나다.전자의 솔직함에 비겨 후자는「우미센 야마센」의 말재주.이웃집이 고약할때 내가 떠나면 되지만 이웃나라 보기싫다고 나라가 떠날 수도 없다.그들 속담대로 『독사새끼는 독사(마무시노고와 마무시)』.그런 독사의 용골대질을 당하며 살아가야 할 처지가 괴롭다. 「헤이케모노가다리」 첫머리에는 노자의 말을 빈 『오만한 헤이케(평가)는 오래 못간다』는 대목이 있다.이말을 천지신명 앞에서 곱씹어봐야 할 일본이다.
  • 결혼거절 앙심 뱀 우송/20대,야학 여선생 협박(조약돌)

    ○…서울 강서경찰서는 19일 최형준(26·폭력 등 전과3범·경기도 고양시 도해동 820)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최씨는 93년도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다니던 야학에서 알게 된 야학교사 이모씨(25·K국교교사·강서구 등촌동)에게 결혼해 줄 것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데 앙심을 품고 지난 15일 45㎝크기의 독사 한마리를 넣은 소포를 이씨 집에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 골동품 수집 붐(두만강 7백리:3)

    ◎“한국인에 팔면 큰돈 번다”달려들어/연변주변엔 고대유물·발해고분 널려/달러 갖고 강 건너가 북 유물 밀반출도 화룡에서 숭선까지는 90㎞가 떨어졌다.노과진에 이르고 나서부터 국도는 두만강을 따라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진다.가면서 오른쪽은 절벽이요 왼쪽은 두만강인데 벼랑 중간 못미쳐서 펌프물을 자아내듯 하는 작은 폭포가 조용히 떨어지고 있다.얼핏 보기에 엉덩이를 길쪽에 돌려대고 소변을 보는 형상이다.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이 절벽을 외설스럽게 개 무슨바위라고 불러왔다.그러나 요즘은 그냥 개바위라는 점잖은 이름을 붙여놓았다. 1993년8월 이 바위 밑으로 국도를 낼 때 세개의 완전한 공룡화석을 발견했다고 한다.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먼 옛날 연변땅에 털코끼리가 산 것으로 되어 있다.그런만큼 공룡화석 발견은 고고학연구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됨직한 일이었다.그 공룡화석이 숭선진 남석촌 최진을씨한테 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연변박물관에서 팔라고 해도 한국사람한테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해 거절했다는 이야기와 함께….나는 물어물어 최씨를 찾아갔다. 최씨는 뒤울안에서 허름한 종이상자를 들고 나오더니 그 속에서 공룡이빨화석 한조와 턱뼈 하나를 꺼내 보였다.이빨의 길이는 40㎝,너비는 10㎝,높이가 15㎝이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밭고랑같이 패어들었다.두 이빨 사이 거리는 40㎝정도였다니 주둥이의 크기가 한아름이 실했을 것이다.턱뼈는 너비가 15㎝,길이가 22㎝,굵기가 7㎝나 됐으나 완전하지 못했다. 『이나마 건진 거이 다행입네다.도로 일꾼들이 막무가내 바수어대는 걸 빼앗아왔디요.큰 일을 치를 뻔했수다.일꾼들 말을 들으면 애초 크기는 10m가 넘었다고 기래요.허리가 휘유둠한 거이 똑 올챙이 같았다고 합데다』 ○공룡이빨 소중히 보관 최씨가 공룡화석을 발견했다는 전갈을 듣고 도로 작업현장에 달려갔을 무렵에는 이미 화석이 몇 동강 박살이 난 뒤였다는 것이다.뼈를 가루내어 먹으면 만병통치라는 말에 공룡화석은 해머로 맞고 불에 그을리기를 여러 차례.그렇게 서너시간 수난을 겪었다.최씨는 가까스로 턱뼈 일부와 이빨 몇점을 건졌다.그런데 최씨는 이화석을 한국인 골동품상에 팔면 큰 돈을 번다는 확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연변 도처에서는 석기시대 돌도끼·돌자귀 등으로부터 철기시대 유물,그리고 발해시대 유물들을 주워올 수 있었다.내가 태어나 22년을 살아온 화룡시 서성진 북대촌에는 발해시기 무덤들이 수없이 많았다.70년대초까지만 해도 발해 선조들의 해골이 대굴대굴 굴러다녔고 도자기며 동거울이며 장식품들이 발길에 차일 정도였다.화룡시 용화향 상화촌 유인철이란 사람이 자연보석구슬을 얻었다.유리알처럼 투명한데 하늘에 대고 보면 기와집 앞으로 강이 나타난다.빙빙 돌리면 강물이 흐르고 돌리는 속도가 빠를수록 물살이 세찼다.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잃어버렸는데 아마 두만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떨어뜨린 것 같다고 했다. 상화촌에서는 갑옷을 주워왔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마을에 병이 성했다.노인들이 갑옷을 파왔기 때문에 옛 장수가 노하여 벌을 받는 것이라고 해서 점쟁이를 불러다 방책을 하고 갑옷을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상화촌 허정윤(64)노인은 돼지우리를 짓느라 돌각담을 파헤치다가 석기를 발견했다.돌이 좋은지라 숫돌로 썼는데 물에 숫돌을 넣으면 「웅…」하고 벌이 이사하는 소리를 내더란다.유물들이 큰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올해 찾아보았더니 없어졌다고 아쉬워했다.역사유물에 대해 이만큼이라도 깨닫게 해준 것은 한국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 수교뒤 붐 일어 1992년부터 한국의 골동품 장사꾼들은 중국대륙을 휩쓸고 다니며 골동품에 대한 계몽운동을 일으켰다고 할까….옷보따리를 꿍쳐메고 두만강을 건너가 명태며 오징어며를 힘겹게 지고 가서 팔던 일부 조선족은 골동품을 밀수하기 시작했다.강건너 북한땅 민간에 수장되어 있는 오랜 병풍이며 도자기며 심지어는 장롱 따위도 들여왔다.그리고 나서 고려 청자·조선 백자·고서화 등이 한국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어떤 한국인은 호주머니를 두둑히 채워와서 조선족을 도와준답시고 자금을 대주기도 한다.자금이 많든 적든 한국인이 돈을 대고 중국 조선족이 몸을 던지게 마련이다.돈을 받은 조선족 선봉장들은 달러를 가지고 강을 건너가서는 골동품을 사온다.이런 물건들은 야밤 두만강 도하작전으로 옮겨지기도 하지만 통 크게도 백주에 해관을 통해 운반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국의 G실업(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3 D빌딩) 대표라는 김모씨(43)는 19 94년 벽두부터 연변을 넘나든 한국의 골동품상인.그의 말에는 미더운 구석이 하나도 없다. 『벌써 20여년간 골동품과 벗해 살아왔다구.한국에서 나만큼 골동품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고 봐야겠지.몇해전에 우리 집에 도난사건이 나 귀중한 골동품 40점을 잃어버렸다구.그 다음부터 골동품과 멀리 했었어.이번에 다시 시작한 것은 국회의원으로 계시는 우리 신우형님의 정치자금 때문이지 뭐야.김영삼 대통령이 실명제를 실시하면서 정치인들이 곤경에 빠졌어.골동품으로 차기 국회의원 선거비자금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라구』 ○일본경유 대거 유입 골동품 장사꾼들은 대개 사기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연길시 하남가의 한 사람은 북조선으로 친척방문을 갔다가 조선시대 백자를 사왔다.그런데 한국인한테 팔려고 감정을 해보니 한국에서 요새 만든 물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골동품 붐이 일자 한국의 골동품 장사꾼들이 가짜를 만들어 일본을 경유하여 북한으로 보내 중국에 팔았다는 것이다.가짜가 어찌나 횡행하였든지 세계적 명품의 바이올린도 연변에 3개나 굴러다녔다. 하여튼 골동품 붐은 한국인,중국 조선족,북한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반목을 몰고오고 있다.
  • 연변동포작가 류연산씨 한·중 국경르포(두만강 7백리:1)

    ◎화룡 8순노인 “강 건너 뼈 묻었으면”/중국땅에 이주했지만망향의 한 때문에 못떠난다/강너머 들려오는 고국 기차소리… 그리움 사무쳐 사연많은 두만강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동북으로 달려 7백리.이름하여 두만강이다.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으로서 중국 조선족과 북한 동포들이 강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닌채 살아 가고 있다.서울신문은 그 강 유역에 얽힌 사연들을 현지 연변 조선족 작가 류연산(38)씨가 엮는 「두만강 7백리」를 새로 연재한다.두만강 양안(양안)에서 한쪽은 변화의 회오리 바람속에 놓여 있고 다른 한쪽은 극도로 폐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민족의 이야기다.이 시리즈 집필을 위해 작가 류연산씨는 2개월 남짓 두만강 7백리를 답사했고 사진은 본사 김윤찬 차장이 촬영했다. 배낭을 등짐삼아 두만강 7백리를 굽이굽이 돌아 가노라니 깊은 정회가 가슴에 스며들고 마음은 곧 애수에 젖는다.나뭇잎이 져 버린 산야가 사뭇 허전한데 밤새 강물도 꽁꽁 얼어붙었다.물결이 넘실댈 두만강의 봄은 아직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김정구 선생의 흐느끼는 목소리에 얹혀 한민족 가슴에 설움을 심어준 이 노래는 답사길에 오른 내 가슴을 적신다.이주민 3세인 젊은 심정이 이러할진대 그 당시 조상들이 살아온 고난의 시대를 구태여 말해서 무엇하랴. 광복전 김정구 선생이 연변공연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자 장내는 눈물바다로 변했다.그 이튿날 도문(오늘의 연변조선족 자치주 도문시)에서는 한 여인이 두만강에 몸을 던졌다.기약도 없이 돈벌이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못한 여인이 삶의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다.그만큼이나 한많은 사람들이 두만강가에서 모진 삶을 살았다다. 화룡시 노과진 노과촌(화용시 노과진 노과촌)을 찾았을 때 조창렬(85·함경북도 경선군 주을면 봉파리 태생)노인은 피맺힌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 주었다. 『부모님이 낳은 지 일곱달되는 나를 업고 이곳으로 이사왔디요.그때 증조부님은 굶어 죽더라도 조상산소를 버리고 갈 수 없다고 불호령을 쳤다지 뭡니까.막무가내로 자식의 등허리에 업혀 고향을 떠나온 노인은 운명을 앞두고 조상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수다.사람이 팔십이면 쌀벌레라는데 죽어서도 고향땅에 묻히지 못할 걸 생각하면 나는 잠이 안오우다.저 강이 야속하고 인생이 원통할 뿐이외다』 아버지 시신까지는 귀향시키고 외롭게 떨어져 늪골(노과의 원명)을 지키고 있는 노인은 쓸쓸해 보였다. 『삐익』 그 집앞 두만강건너에서 증기기관차가 끄는 열차가 기적을 뽑는다.노인은 그 쪽에 망연한 눈길을 주고는 한숨 짓는다.열차는 조선 삼형제굴을 지나 남촌굽이로 뱀같이 구불구불 흘러온다.애달프다.저 기찻길은 서울도 통하고 중국도 통하건만 고국 땅 허리의 군사분계선과 국경선이 발목을 잡고 있다. 두만강에 얽힌 32년전 19 63년 12월27일의 이야기 하나를 꺼내고자한다.무산쪽으로 달리는 99 31호 열차에서 청년 둘이 뛰어 내렸다.쇠처럼 굳은 언 땅에 나뒹굴던 그들은 벌떡 일어서면서 옷을 벗어 던지고 강쪽으로 달려갔다.그들은 얼음장이 둥둥 떠내리는 물에 서슴없이 첨벙첨벙 뛰어들었다.바로 조선 청진철도국 백암열차구 차장 김형호와 함북 무산 임산사업소 공무직장 선반공 최상현이었다.이수촌(지금의 노과진 이수촌)에서 5백여m 떨어진 두만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자 아이들을 구하러 물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때 물에 빠졌던 여자 아이 가운데 하나가 지금 중국 화룡시 팔가자진(화용시 팔가자진) 부진장의 부인인 한친선(원명 한순자·45)이다. 19 64년 1월9일 화룡인민영화관에서는 중조 인사 7백여명이 김형호·최상현의 살신성인적 용기를 기리기 위한 대회를 거행했다.이 자리에서 한순자의 부친 한창도는 구명은인한테 감사드리는 의미에서 딸의 이름을 한친선으로 고쳐 부를 것을 약속했다.그날 저녁 연변가무단은 김형호·최상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각색한 가극 「친선의 물결」을 공연했다. 이러한 옛날 일을 회상하는데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다.30여년전 이른바 중조 친선의 미담은 오늘날에 와서 많이 퇴색해 버릴만큼 세월이 변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십년 대동란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한때 중국과 북조선관계에 틈이 생겼다.조선의 은인들과 빈번한 편지거래를 가졌던 한친선은 처녀시절에 수정주의 조선간첩 혐의를 받기도 했다.중조관계가 완화된 후엔 연락처를 몰라 문안편지 한장 전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나는 지난 연말 두만강 답사길에서 북조선에 사는 김형호 소식을 들었다.용정시 백금향(용정시 백금향)의 최몽필(48)문화잠장이 북조선에 갔다가 그를 우연히 만났다는 것이다. 『재작년 가을 웅기로 친척방문을 가게 됐드랬습니다.도문해관을 넘어 북조선 남양에 이르렀더니 뉘엿뉘엿 해가 지더군요.그곳에서 밤을 나고 이튿날 웅기행 열차를 탈 수 밖에 별도리가 없었디요.기래서 짐들을 보관시키고 갖고 간 쌀과 고기며 술을 가방에 넣고는 무작정 아무 집이나 찾아갔습니다.남양군 남양읍 42반이라고 쓴 벽돌집이었는데,방에 앉아 유심히 집안을 뜯어보다가 깜짝 놀랐댔시요.북조선 정부에서 발급한 라성교(조선전쟁 당시 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고 희생된 중국 지원군 병사)식 영웅이라는 훈장과 중국 정부에서 발급한 상장들이 액틀속에 정히 넣어져 벽에 걸려 있었댔습니다.그 전에 두만강에서 우리 조선족 처녀들을 구해준 김형호 그 사람이었습네다.우리는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네다. 나는 김형호의 이야기를 들은 대로 화룡시 팔가자진에 사는 한친선 여인에게 전했더니 퍽 감격스러워 했다. 오늘 우리는 도문에 가면 중조교두를 마주하고 선 친선탑을 볼 수 있다.문화대혁명시기 이 자리에는 모택동 사상이 조선에 비치라는 의미에서 조선쪽을 향해 선 모택동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었다.문화대혁명이 끝난 70년대 말에 모택동 동상을 폭파하고 거대한 두 손이 악수하는 모양의 친선탑을 세웠다.자초에는 중국과 조선의 혁명적 친선을 상징하는 뜻이었으리라.하지만 시대의 발전에 따라 이제는 그 이미지가 폭을 넓혀 두만강 건너 한반도전부를 포함하게 되었다. 연변의 친선탑은 군사분계선에 의해 대립된 남북한 통일의 그날을 고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작가약력 ▲중국 길림성 화룡시 서성진 북대촌출생 ▲연변대 조선어문학부 졸업 ▲중산대 철학부 연수 ▲단편소설「푸른매」로 문단데뷔,「아 쪽박새」「인생숲」 등 중·단편소설 60여편 발표 ▲「해란강」「청춘무대」등 문학상과 전국소수민족 우수도서 편집상 수상 ▲현재 연변작가협회 이사,연변조선족 문화연구회 회장,연변 인민출판사 문예부 편집위원
  • 외국산 가짜백사 팔아/1억원 사취 2명 영장

    서울경찰청은 15일 외국에서 싼값에 밀수입한 뱀을 국내에서 잡은 백사라고 속여 1억여원을 사취한 소명만(38·동작구 상도2동 582)씨 등 2명에 대해 상습사기및 관세법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김종만씨(45)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소씨등은 93년9월 태국에서 10여만원에 밀수입한 뱀 1마리를 이모씨(61·도봉구 번동)에게 우리나라에서 잡은 백사라고 속여 1천5백만원에 판 것을 비롯,지금까지 10여명에게 밀반입한 외국산 가짜 백사를 팔아 1억여원을 사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 키질 천불동/무자트강 40m벼랑위 석굴236개(서역문화기행:10)

    ◎석가 고행 그린 미륵설법도 등 “벽화의 보고”/인도불교문화 동점 중간역… 쿠차·위구르·중국 3가지 문자·풍속 엿보여 쿠차에서 키질천불동을 찾아가는 73㎞는 감탄의 협곡이었다.쿠차에서 서쪽 바이청(배성)까지 그 중로에는 두개의 천불동이 있었다.기암절벽을 병풍으로 두른 염수 계곡을 따라 잠시 북상하면 문득 뻘겋고 황량한 촐타크산을 만나는데 그 바른쪽에 쿠무투라(고목토랍)천불동이 열린다.이곳 사람들은 「아래쪽 천불동」으로 부른다.여기서 다시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방불케하는 도깨비 형상의 뻘건 바위의 협곡을 빠져나오면 활짝 트인 고비사막.그 건너편으로 하얀 눈 모자를 눌러 쓰고 서쪽으로 달리는 천산산맥과 동행한다. 거기서 만난 고비사막 그 대부분은 회백색의 황량이지만 쿠차강 언저리는 기름진 초원이었다.바른편으로 하얀 천산,왼편으로 빨간 촐타크산,그렇게 선연한 색채의 무한속을 덜커덩거리다 필자는 불현듯 서울에 두고온 대칸짜리 집 한채와 반생을 넘게 일심전력 주워모은 만권의 책이 아침 햇살에 희끈거리는 먼지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났다. 다시 좌회전,촐타크산의 지맥인 밍우타크산(명옥달격산)의 허리를 넘어 서면 동에서 서로 흐르는 무자트강(목찰제하)이 보인다.산과 강사이에는 기름진 총림에 갈대가 우거졌고,그 북쪽 벼랑 40m쯤의 높이로 비둘기집처럼 네모난 석굴들이 일렬,혹은 이렬·삼렬 횡대로 서 있는데 그 2백36개의 석굴군을 통틀어 「키질천불동」으로 불렀다. ○모래돌 퇴적 벼랑이뤄 그것들은 몇 만년전 모래돌이 퇴적한 벼랑이었다.그것들이 석굴로 개착된 것은 기원1∼2세기 동한후기,불교의 동점때 시작해서 13세기 이슬람교에 밀려나기까지 1천여년에 걸친 일이다.바로 승려와 불도들이 불상을 모시고 종교의식을 올리는 불전으로서의 지제굴,승려들이 기도하면서 고행하는 선굴,그리고 승려들이 생활하는 승방으로서의 비가라굴,그리고 물건을 저장하는 창고굴등의 구실을 했었다. 키질석굴은 카슈가르에 남은 삼선동보다 약간 늦지만 돈황의 막고굴보다 1세기 이상 앞선 것으로 판명된 중국서북지역 최초의 천불동이었다.그 규모나 가치로 보아돈황의 그것보다 초라하고 엉성하지만 키질천불동의 석굴 양식이나 벽화의 내용,기법에 있어 인도의 불교문화가 동점하는 중간역이 분명했다.그속에 쿠차·위구르·중국등의 세가지 문자와 풍속이 출현하는가하면 서역의 간다라미술의 동점이 역력했다.예를 들어 타원형의 얼굴에 가는 눈썹과 높은 코,넓은 턱에 엷은 입술,그리고 물결치는 헤어스타일,그러한 불상이 곧 간다라의 그것이었다. 석굴은 2㎞의 벼랑에 동서로 분포되어 있었다.그 가운데쯤 남북을 움푹 자른 작은 골짜기를 중심으로 서쪽에 81개,골짜기에 55개,동쪽에 1백개의 석굴이 분포되었는데 형체가 온전하거나 벽화를 보유한 것은 1백군데에 미치지 못했다. 석굴의 양식으로 볼때 그 절대다수가 지제굴이었는데 지제굴은 인도에서 전래한 원초적인 형태로 석굴의 안쪽에 기둥을 두고 기둥뒤로 반원형,기둥밖으로 사방형,곧 말굽모양의 중심주형과 다만 네모뿐인 방형,리고 불전을 전후 2개실로 나뉘고 전실 중앙에 입불을 모신 대상형 등 세가지가 있는데 중심주형으론 4호·7호·8호·13호·17호등 40개굴,방형으론 3호·9호·14호·39호·40호등 23개굴,대상형으론 47호·48호·60호·1백36호 등 4개굴이 있었다.용도와 내실을 갖춘 승려의 생활 공간인 비가라굴로 2호·5호·6호·10호·15호 등 31개굴이 있었다. 그러나 키질 천불동의 영혼은 석굴에 있지 않고 거기 벽면마다 그려진 벽화임을 누구나 부인하지 않는다.그 벽화가 자그마치 1만㎡에 달했다.그중 가장 보편적인 주제로 석가모니 전생에 노루나 곰·토끼등 짐승이 되었던 사적을 그린 본생고사가 70여종,석가모니의 일생에 있었던 각양각색의 형을 그린 불전고사가 60여종,다시 인과보응의 설법을 도해한 인연고사가 40여종이 있었다.이밖에도 약간의 천궁기락도·비천도·동물도·천상도 등이 있었지만 그림 자체가 불법을 설명하는 시각적인 강론인만큼 그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오현의 구자비파 발견 필자는 서쪽 벼랑의 석굴부터 순례를 시작했다.그 최서단의 8호굴은 중심주형 지제굴로 높이 6m쯤의 비교적 큰 석굴이었다.비록 그 벽화의 대부분이 벗겨지거나 탈색되었지만 마름모의 무늬,곧 능격화아래 희미하게나마 오현의 비파,곧 당시에 나오는 구자비파를 발견했을 때의 감격은 대단했다.안내자의 손전등을 빌려 그 높은 벽면을 열심히 비추었지만 오현은 더욱 가물가물 침침한 것이 안타까웠다. 8호굴과 비슷한 서쪽 벼랑을 사다리로 10m쯤 올랐을 때 거기 17호굴이 있었다.키질에서는 특굴로 알려져서인지 그 입장료도 곱으로 비쌌다.거기는 키질 특유의 문양인 마름모 무늬의 천장 아래 정병을 가진 미륵보살이 많은 협시 보살을 거느린 「미륵설법도」를 비롯해 석가모니의 생전 고행을 그린 본생고사가 널려 있다. 17호굴의 아래로 역시 특굴로서의 38호굴은 「음악동」으로 불릴만큼 많은 보살이 피리·공후·북·비파등의 악기를 들거나 원형의 천장에는 기다란 낙천도가 흐르는 선율처럼 그려져 있었다.그런가 하면 선연한 마름모 바탕에 두마리 꿩의 「쌍치도」도 눈에 띄었다. 다시 그 옆으로 나란히 있는 47호굴과 48호굴은 모두 대상형의 지제굴이었는데 18m가 넘는 높은 석굴속에 16m의 불상이 버티고 서 있고,그 좌우로 다섯렬의 좌불들이 빽빽했지만 휑하게 쓸쓸한 공간에서 망망했던 찰나,필자는 그 왼쪽 벽면에서 호랑이에게 몸을 바치고 그 먹이가 되는 「사신사호」의 본생고사에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었다. ○독일인이 훔쳐간 흔적 서쪽 벼랑 중앙쯤의 76호굴은 궁융굴,석굴은 직방형이지만 천장은 활모양의 반원형,그런데 그 천장엔 공작의 현란한 날개만 남아 있었다.물론 독일사람에게 절도당한 것이다.이 천장에 저토록 현란한 공작의 날개가 온전한 모습으로 거드름을 펼 수 있더라면 얼마나 광채로울까. 바로 그 옆에 대상형 지제굴 77호굴.그 널따란 석굴의 천장은 너울너울 신나게 춤추는 보살의 무기도,격렬한 선율을 타고 무녀의 귀고리·면사·스카프·치마등이 물결치고 있었다.그리고 후실의 용도에는 꿩·양·사슴·오리·말·호랑이·원숭이등 열한가지 동물이 칙칙한 색상으로 생동했다. 그 옆으로 80호석굴,거기 본생고사와 인연고사에는 한마당 지옥이 그려졌는데 석가모니 앉은 땅밑으로 누군지 사람의 머리를 불로 태우는 끔찍한 장면이 자못 리얼했다. 이밖에 화랑식인 석굴로는 석가모니일생의 각종 형상을 종합한 불전고사 50여폭의 1백10호굴과 호랑이·사자·사슴·개·오리·꿩·토끼·뱀·말·곰·기러기등 열여덟가지 동물이 사실적으로 혹은 인상적으로 그려진 2백24호 굴은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키질천불동에서 잊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그 하나는 인도사람으로 정승의 자리를 마다하고 쿠차로 도망왔던 구마라옌(구마라염)의 아들인 구마라주바(구마라십·Kumarajuva 344∼413)가 여기서 나서 출가하여 「대품반야」,「법화」,「유마힐」 등 74부 3백84권을 중역함으로써 남조의 진체,당의 현장등과 함께 중국 삼대불경번역가로 지위를 굳힌 사람이다.마침 지난해 가을 9월17일부터 키질천불동에 있는 키질석굴연구소에서는 그의 1천6백50주 탄신을 기념하는 국제세미나를 개최하고 그 동상을 세웠다. 또 하나는 우리 교포 화가인 한낙연씨(?∼1947).1946년 이곳에 와서 벽화를 임모하다가 결국 석굴의 미술을 고증하는 전문가가 되어 오늘의 69호굴을 발견하고 각 석굴의 벽화를 통일,정리하여 일련번호를 만든 공을 남긴 사람이다.두번째의 정리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1947년6월,그는 비행기사고로 조난당하고 지금 10호석굴에는 그의 작업일지가 석각되어 있다.
  • 화가 천경자/화려한 색조…꽃·뱀·여인집착(이세기의 인물탐구:68)

    ◎독창적 화풍… 한색깔 고르려 수십번씩 검토/91년 「미인도사건」뒤 잠적… 심한 우울증 앓아/묵화 능한 어머니 곁에서 그림 시작… 글솜씨도 뛰어나 천경자 「깊은 우물속에 깔린 신비한 보라색과도 같은 「한」과 「찬란한 절대 고독」의 이미지,꽃과 뱀과 여인과 화려한 파스텔조의 환상적인 색조라면 누구라도 쉽게 화가 천경자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화면은 날이 갈수록 청청하여 영혼과 빛과 눈부신 색채의 향연을 변함없이 변주하고 있다.그림 외에 글솜씨로도 유명한 그는 수필집 「한」의 경우 「한이 한없이 나간다」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였고 70년대 남태평양 풍물전을 비롯한 해외스케치전은 관람객이 줄을 짓는 이변을 낳았다.어쨌든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중에서 대중적인 인기스타가 아닌 이상 글과 그림으로 이처럼 폭넓게 회자된 인물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이 전시한 그의 「미인도 모사품사건」이후 그는 한때 화단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당시 이 작품의 진위여부를 놓고 『내그림이 아니라』는 작가의 주장과 『작가의 그림이 틀림없다』는 미술계와의 팽팽한 대립속에서 작가를 믿지 못하는 세태에 심한 환멸을 느낀 나머지 그는 오랫동안 심적 타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대인관계 비사교적 그의 성품은 그가 좋아하는 미모사만큼이나 민감하다.작은 바람소리 하나에도 무심하지 않아 옳지 않은 것을 동조하거나 싫은 것을 적당히 수용하는 법이 없다.대인관계도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로서는 전혀 비사교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가리고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그림도 그렇다.색깔을 쓸 때도 발색을 억제하는 반대색을 쓰기 위해 연보라·남보라·황토에서 녹청을 동원하고 그것이 이 그림에서 얼마만큼 확실한 효과를 나타내는가를 까다롭게 따진 다음 이를 선택한다.그러고 나서도 멀리서,가까이서 수십번씩 견주어보고 3∼4개월이 지나 썩 괜찮다는 결론이 나올 때 비로소 화폭 앞을 떠난다. 이른바 동양적인 정조를 바탕으로 하는 그의 작품에서의 조형적 특징은 「천경자풍의 인물을 전형화」하는 데 결정적 성공을 거둔 점이다.평론가 심항섭은 동양화의 인습에서 벗어나 섬세한 감각과 신선한 착상력을 지닌 그의 그림에 대해 『화가로서의 최종적인 꿈인 자기만의 화풍을 선명히 세웠고 색채선택과 배치에도 그만의 확고한 독창성을 성취하고 있다』고 단적으로 평한다.즉 「새로운 조형적 가치실현」과 「개별적 형식의 완결」이라는 어려운 등식을 동시에 갖추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초기에는 주로 뱀(사)의 무리에서 느낀 감흥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표현했고 특히 부산 피란시절에 발표한 서른다섯마리의 뒤엉킨 뱀의 「생태」는 풍경과 정물에 집착하던 화단에 커다란 충격의 논란을 던졌다.이후 초현실적인 시적 이미지들이 화면을 지배하면서 그는 자전적 요소를 띤 모티브로 아네모네·라일락·팬지·아스파라거스 같은 요요한 이향이 가득한 꽃무리 속에 화사하게 떠오른 여인의 희구를 그려내고 있다. 그의 운명은 그가 항상 예감한대로 줄기차게 쏟아져내리는 폭포수와 같진 않았다.세차게 흘러내리다가 어느 대목에선가 브레이크가 걸리듯 곤두박질치는 아픔과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마치 파란을 자초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따라서 한이 많고 고독하다고 하지만 그의 한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한이며 고독 또한 그러하다. 어릴 때는 연극배우를 꿈꾸기도 하고 노랑·파랑·분홍색등 밀랍냄새가 코를 찌르는 오사마(왕양)크레용과 미쓰보시수채화물감을 으깨고 주무르면서 묵화·서도에 능한 어머니 박운아여사 곁에서 그는 하루종일 그림그리기를 지루해 하지 않았다. ○여동생 죽음에 충격 광주농고 졸업후 군청에 다니던 부친(천성욱씨)은 딸이 의과대학에 가기를 원했으나 그의 심성과 감성을 이해한 어머니가 패물과 논을 팔아 마련해준 여비로 어렵게 도쿄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3년만에 돌아오자 집안은 몰락했고 그의 결혼실패에 이어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의 죽음,그 불운의 소용돌이에 말려 시련을 견디고 있을 때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는 불상사가 겹쳤다.언젠가 그는 「낙인」이란 수필에서 「나의 인간성에 배어 있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적요한 낙인은 바로 부친의 불행과 이 여동생의 죽음 때문에 박힌 슬픔의 표적」임을 밝힌 적이 있다. 화가의 일생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에는 가정과 인간에의 정이 스민 화면에 「고통과 황홀감을 공존」시켜왔고 자녀가 모두 출가하고 평생의 반려이던 어머니마저 85년 타계후 가정도 혈육도 떨쳐버린 상황에서 그는 「꽃도 피고 가족도 많던 시절에는 생기찬 리듬감이 화면에 넘쳤으나」 이제는 대양에 뜬 섬처럼 오로지 홀로 남아 「화가」로 존재하는 자신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설령 찬란한 미래가 또 있다 하더라도 그는 「비오지 않은 가문 봄날,움트려고 파닥거리는 라일락나무 같은 과거에 더 깊은 애착과 미련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자녀는 2남2녀. 모사품사건이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글은 쓰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빛과 색채의 순례자로서 그는 정밀(정밀)한 시적 정취와 아름다움을 넘어선 승화된 고독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9년전부터 살고 있는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의 모든 방은 그가 그린 그림만이 가득,그속에서 지난 4년간 예술원 회의에 나간 외에 올 11월1일부터 한달간 호암미술관이 초대한 화력 50년전과 80년이후 15년만의 개인전을 위한 작업에만 온통 매달려 있다.회고전 성격을 띤 이 전시에는 그가 직접 소장하고 있는 42년 선전 입선작들과 부산시절의 「생태」,최근작인 「우수의 티나」 「누가 울어」시리즈등 평생의 화업이 한눈에 펼쳐진다. 거의 하루종일 화폭 앞에 대좌한 채 이제로부터 몸속에 침잠한 예술적 기운을 한점 미련없이 출산시키는 순간이다.그 외엔 영화광이던 젊은 시절을 되살려 공포영화·공상영화를 보거나 겐자브로의 소설을 읽는다.여전히 걸어다니는 화폭처럼 화려한 옷차림을 즐기고 아침시간에 커피 한모금,지난해부터 술은 하지 않는다. ○화사한 옷차림 즐겨 그는 특유의 호남사투리로 아무리 괴롭고 슬픈 것을 말할 때도 웃고 또 별로 슬프지 않은 일도 그가 한을 담아 말하면 왠지 콧날이 시큰해지는 순수한 감동과 감상을 잃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그러나 나이에 따라 슬픔이나불행은 역시 세월의 금사망속에 망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버리고 관유온자한 자세로 자신에게 얼마나 더 충실할 수 있는가를 때때로 자문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의 삶은 그대로 예술에 집결하고 귀결하고 있으며 그의 그림들은 「서정적인 분위기」와 「서정시적인」 내용을 함축하면서 작품 하나하나가 「천경자사」라는 하나의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남과 다르다.그리고 지금 「고독으로 미채(미채)된 삼림속에 그가 꿈꾸는 예술의 전당을 짓기 위해」 화폭이라는 그만의 광산에서 그는 진짜 보석을 캐내고 있는 것이다. 사치하리만큼 눈부신 색채의 범람으로 그의 화면은 한층 탁마된 다이아몬드를 구사하고 어느때는 투명한 루비며 사파이어가 그림의 창안에서 언뜻언뜻 상서로운 광채를 발한다.인물의 눈이라든가 중요한 부분에 미점으로 사용하는 금분조차도 단순히 호사스러운 치장이 아닌 것이 세상사로부터 절연된 듯한 순화된 감정과 표정은 그 자체가 그대로 「극미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연보 ▲1924년 전남 고흥 출생 ▲1941년광주욱고녀 졸업 ▲1944년 도쿄녀미전졸업, 일본문전 무감사작가 소한천청·부산금성사사.재학중 일본문전·청금회전 입선,조전(선전)「조부상」(23회)「노부」(24회)연입선 ▲1946년 첫개인전(광주여고 강당) ▲1949년 서울개인전(동화백화점화랑) ▲1949∼52년 조선대 교수 ▲1952∼74년 홍익대 교수 ▲1953년 부산 개인전 ▲1954∼74년 홍대교수 ▲1955년 대한미협전서 「정」으로 대통령상 수상,백양회 창립멤버 ▲1960∼81년 국전 초대작가및 추천작가 심사위원 심사위부위원장 운영위원역임,국전 초대출품 ▲1963년 도쿄개인전(서촌화랑) ▲1965년 도쿄개인전(이토화랑) ▲1967년 말레이시아 초대전 ▲1969년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고에즈 연수,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사모아 타이티 첫스케치 여행,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1970년 남태평양 풍물전 ▲1973년 현대화랑 초대전 ▲1974년 아프리카 풍물전 ▲1977년 한국현대동양화 유럽순회전 ▲1978∼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이후 예술원 회원전 출품 ▲1979년 인도 중남미 풍물전 ▲1980년 개인전(현대화랑) ▲1981년 하와이등 미주지역스케치 ▲1990∼94년 권옥연 변종화 윤중식과 4인전(이목화랑),멕시코여행 오월문예상(65년) 서울시문화상(71년) 3·1문화상(75년) 예술원상(79년) 은관문화훈장(83년) 수필집 「언덕위의 양옥집」「여인소묘」「유성이 가는곳」「한」「자유로운 여자」「쫑쫑」「캔맥주 한잔의 유희」「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자서전 「내 슬픈전설의 49페이지」,기행문 「천경자 남태평양에 가다」「아프리카 기행화문집」 등
  • 보건진료소(외언내언)

    세계보건기구는 80년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보건의료사업으로 농어촌 보건진료소사업을 꼽고 있다.의사가 없는 농어촌 벽·오지 2천45개 보건진료소에서 81년부터 간호사나 조산사 1명이 24시간 주민의 1차의료를 무리없이 담당해온 것을 드물게 잘한 일로 평가한 것이다. 농어촌 벽·오지에는 예나 지금이나 노인과 부녀자가 많다.노인들의 퇴행성질환이나 감기몸살 분만 농삿일 물일로 인한 만성질환,해충이나 뱀에 물리는 사고등 환자는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데 가까이는 병·의원이 없고 그런데 갈 만한 의료비부담력도 없다. 정부가 군단위 보건소나 면단위 보건지소에 의사를 강제배치하여 이들 지역을 원격지원하도록 했지만 아직도 일부지역이 그런 것같이 쉽게 이들에게 연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보건진료요원들이 예방과 응급조치 및 환자 이송등 필요한 의료를 담당해 왔다. 보건진료요원들은 거의가 간호전문학교이상 학력자들.상당한 경력자중에서 선발되고 일정기간 교육후 군수가 별정직 6,7급공무원으로 배치하여 진료소에서 생활하며 지내고있다.진료소운영은 지역주민대표로 구성된 보건진료협의회가 담당한다. 최근 행정당국이 이런 보건진료소운영에도 운영효율이라는 기업경영원리를 적용,40여곳을 폐쇄하려 하고 있어 논란이 많다.주민 이용률이 낮고 인근에 도시가 형성되어 개인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1곳 22.5평인 건물신축비와 장비 및 보건진료원급여 뿐인데 이 돈이 부담스럽다는 논리도 된다. 농어촌 벽지보건진료소는 정부가 주민에게 의료복지를 보장하는 기본기구다.이미 도시화되어 사의료를 이용할 수 있는 곳에서도 공의료체계는 필요하다.지역주민 동의 없이 없애서는 안된다.
  • 공직부정의 말로를 보라(사설)

    갖가지 어려움을 딛고 평생을 바쳐 구청장직에까지 올라갔을 50줄의 공직자가 부정을 눈감아주며 얼마간의 검은 돈을 즐겨온 죄로 쇠고랑을 차고 40대인 공무원은 야산에서 목을 맸다.쥐도 새도 모르게 축재해서 돈에 여한없이 살아보리라고 마음먹고 저지르는 것이 부정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방식으로든 죄업을 치르게 되고 남는 것은 비참한 낙인뿐이게 되는 것이 공직부정의 최후요 말로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가족을 잘 살게 해주고 싶어서 저지른 죄라고 변명하지만 사회에 죄짓는 일은 결국 가족에게도 죄인이 되고 만다.어떤 물질적인 호강도 가장의 파렴치한 죄를 상쇄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더구나 감옥에 가고 목매어 죽어야 할 만한 죄를 짓는 아버지를 만들면서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란 없다. 생명처럼 소중한 자식들에게 있어 「죄지은 아버지」만큼 불명예스럽고 불행스럽고 부담스러운 존재는 없는 것이다.실제로 가족 때문에 유혹을 당했다는 많은 공무원의 경우 유혹에 넘어가 가족을 호강스럽게 해준 경우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속에 가족을 몰아넣은 경우가 거의 전부일 것이다.게다가 그 불행은 자녀의 장래와 혼사,출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형은 모범적이고 아우는 부정과 연루되어 구속된 공무원집안이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다.그 형이 아우 때문에 도세파동에 휘말리면서 자신의 고통을 『이건 사는 게 아니다』라고 표현한 일이 있다.그 말은 아주 명증하게 그의 상태를 설명해준다.그런 삶에는 사는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이건 사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후회와 한탄을 하고 있는 공무원이,표면화한 경우말고도 속으로 더 많이 있을 것이다.목을 죄며 다가오는 조사에 가위가 눌려 야산으로 달려나가 스스로 목을 맸을 때는 그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겠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죄지은 공무원들이 이렇게 많이 쏟아지는 것은 개인의 불행 못지않게 국가적으로도 큰 불행이다.벗어날 길이 없어 보이는 만년 가난만이 주어진 채 뱀의 혀처럼 널름거리는 유혹이 즐비한 세무공무원의 경우 그것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그렇게 자기 앞의 삶은 빈곤하면서유혹이 많은 자리일수록 여러가지로 감시감독의 기능이 철저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가 세금을 도둑맞는 일을 방지하는 일로도 중요하지만 훈련된 공무원인력을 타락시켜 못쓰게 만드는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다.거기다가 국민으로 하여금 겪어야 하는 좌절감과 무력감을 생각하면 감시감독의 부실은 범행의 방조행위라고 할 만큼 크다.도세정국이 남기는 교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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