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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멕시코 도시 메리다·욱스말(세계 문화유산 순례:20)

    ◎자연과 조화된 장엄한 피라미드군…/연못·우물 중간크기 저수시설 「세노테」/찬란한 문명 원동력/언덕·산세 최대이용 피라미드·궁성 건축/마야인 지혜에 감탄/마법사 피라미드 높다란 외벽에 기하학적 무늬 가득 멕시코 남동부 유카탄 반도는 마야문명의 중심지다.그리고 스페인이 식민지문명을 처음 심은 지역이기도 했거니와,초기 한국이민사가 기록한 「에네켕 농장」도 이 반도에 있다.그래서 카리브해로 둘러싸인 유카탄은 신비감과 호기심을 안겨주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40분쯤 걸렸을까.유카탄 반도의 주도인 메리다(Merida)에 닿았다.인구 70만의 중소도시답게 한적하고 여유로웠다.그런데 주민들을 만나고 나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하나같이 머리가 크고 목이 짧아 키가 작달막할수 밖에 없는 주민들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인상은 아주 선량했다.이들이 바로 고대 마야족의 혈통을 간직한 마야유카탄족이었다.마야문명의 순수성과 원시성이 절로 엿보였다. 유카탄에 와서 느낀 궁금증의 하나가 강이 드물다는 사실이었다.마야인들은 과연 인류문명의 생성근원인 물을 어떻게 조달했을까.그러나 의문은 이내 풀렸다.연못과 우물의 중간크기쯤 되는 세노테(Cenote)라는 저수시설이 그 해답이었다.마야인들은 현명하게도 세노테를 이용한 관개기술을 일찍 터득했다.세노테는 바로 풍요로운 마야문명의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유카탄 지역 마야유적지 곳곳에서 세노테가 발견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했다. 메리다 시내를 빠져나와 남쪽으로 70㎞쯤 차를 달린지 그리 오래지 않아 욱스말(Uxmal)을 알리는 푯말이 나타났다.욱스말은 인근의 마야판·치첸이차와 함께 후기 고전기 마야문명의 중심지다.기원(AD)700년∼1100년 사이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또 간혹 기원전(BC)3∼4세기의 유적도 발굴됐다.욱스말 유적지는 크게 「마법사의 피라미드」와 수도원,공놀이 유기장인 후에고 데 펠로타(Huego de Pelota),엄청나게 크다는 뜻을 가진 「그란 피라미드」,궁성터 등으로 나누었다.욱스말 유적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마법사의 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왔다.마법사들끼리 놀음을 해 게임에 진 마법사가 하루만에 지었다는 그럴듯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피라미드 뒷면의 경사가 급한 계단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오른쪽으로 당시 제사장들이 살던 수도원이 보이고,왼쪽으로는 후에고 데 펠로타가 한눈에 들어왔다.그리고 사라진 문명의 위대성을 그 잔영으로나마 보여주는 여러 궁성터와 피라미드들이 죽 늘어섰다. 「마법사의 피라미드」외벽면에는 기하학적 무늬가 가득했다.이와 함께 물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착(Chac)이 휘어진채 삐죽 튀어나왔다.그 벽면을 따라가다 아치형 문을 거쳐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섰다.이 아치형 문은 흔히 알려진 둥근 모양이 아니라 지붕이 뾰족하고 각이 진 것이 특이했다.아치형 문 안쪽에는 누군가 살았을 법한 한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 있다.그러나 좁은데다 창문과 화장실이 전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사람이 산 방으로 보기는 어려웠다.그렇다면 마법사나 신이 거처한 공간으로 덮어두어야 더 신비로울 것이다.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테오티와칸에서와 마찬가지로 머리장식 크리스테리아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여기서 5m쯤 밑으로 내려가면 마치 입을 크게 벌린듯한 모양의 문이 또 나타났다.신의 입을 닮은 문이라고 했다.그러니까 인간들은 이 문을 거치면서 신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영광을 체험했던 것이다. 「마법사의 피라미드」를 내려와 너른 광장에 닿았다.광장 주위에 사제들의 거처 수도원이 자리했다.현재 발굴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수도원 옛 건물마다에는 테오티와칸에서도 보았던 풍요를 상징하는 상상속의 뱀 릴리프가 벽면을 빼곡히 메웠다. 후에고 데 펠로타로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후에고 데 펠로타는 마야인들의 생활상을 살필수 있는 또다른 유적이었다.높이 4m 길이 34m의 높다란 벽이 폭 10m쯤 되는 뜰 양쪽으로 늘어섰다.벽면에는 트럭바퀴처럼 생긴 커다란 돌고리가 달려 있다.당시 마야인들은 어깨와 엉덩이로 고무공을 튀겨 이 고리를 통과시키는 놀이를 했다는 것이다.게임의 승자는 신의 은총을 받았다.그러나 손으로 공을 던져도 좀처럼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이 역시 마야문명의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다.후에고 데 펠로타는 메소 아메리카 문명권에서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모두를 지녔다. 왕족들이 살았다는 궁성터에는 지금 3개의 건축물만이 우뚝했다.그중 2개는 10여m 높이의 돌담위에 서있고,하나는 평지에 버티고 있다.평지의 건물은 아마도 부속건물이었을 것이다.궁성터를 보면서 한가지 궁금증을 지울수 없었다.명칭은 궁성이지만 반드시 왕이 존재했었느냐는 것이다.지금까지 발견된 마야문명 유적 어디에서도 당시에 왕이나 왕족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그렇다면 궁성터에는 누가 살았을까.의문 투성이의 마야유적지는 빠져들수록 불가사의할 뿐이었다. 욱스말 유적은 자연조건이 최대한 활용됐다.그것은 마야인의 지혜이기도 했다.언덕이나 산세(산세)를 그대로 이용,피라미드와 궁성을 지었다.마야인들은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문명을 발달시켰던 것이다.욱스말은 지금으로 말하면 대도시다.근처 10∼100㎞ 이내에 카바(Kabah)·사일(Sayil)·슬라팍(Xlapak)·랍나(Labna)등 위성도시까지 거느리지 않았던가.이들 도시들은 신성한 길 혹은 하얀 길을 의미하는 삭베라는 교통로로연결됐다. 욱스말은 일종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였다.그러나 세노테로도 감당하기 힘든 물 부족 현상과 치첸이차라는 새로운 도시의 발달로 쇠퇴해 버렸을 것이다.마야의 구도시 욱스말,아직도 오늘을 살고있는 작달막한 마야유카탄족들에게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지도 모른다. ▷여행가이드◁ 메리다 시내에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다.웬만한 호텔들이 모두 관광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며,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욱스말 유적지까지는 대략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유적지에 들어가려면 입장료(16페소)와 문화진흥기금(10페소)를 합해 26페소(미화 4달러)를 내야하며,유적지 안에서 다시 14페소(미화 2달러)를 지불해야 한다.카바·사일 등은 대부분 10∼20페소.단 일요일은 무료다.식사는 메리다 시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갖가지 멕시코 요리는 물론 메리다 특유의 음식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수 있다.
  • 저무는 ’96년… 「은혜」를 생각하자(박갑천 칼럼)

    일은 잔뜩 벌여놓은채 마무리짓진 못한 경우들이 많다.그건 남에게 되통스런 모습만 보일뿐이다.시작하다가 흐지부지 도깨비꼴이 된다면 옛시조마따나 『가다가 중지 곧하면 아니감만 못하다』.이런 경우를 일러 『소인은 시작은 있되 끝이 없다』(소인유시무종:「진서」)면서 옛사람들도 경계했다.그게 자발없어 뵌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걸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용두사미)라 했다.이말은 「벽암집」의 진존자 얘기에서 나왔다.그는 깊은 경지에 이른 고승이었다.어느날 한스님을 만나 말을 주고받는데 상대가 갑자기 『에잇!』하고 소리친다.네뚜리로 여기는구나 싶어 움츠렸다가 고개를 드니 또 『에잇!』.진존자 눈에는 그가 제법 도를 깨친듯하고는 있지만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일 것 같은 앙달머리로 비쳤다.그래서 땀직하게 나무란다.『그대는 에잇에잇 하면서 위세는 좋지만 그다음엔 무엇으로 마무리지으려는고』 상대방은 자기 엄펑소니 속셈이 드러난걸 알고서 뱀의 꼬리를 내보이고 말았다는 것이다.알맹이가 따르지 못하는 시작은 위세가 좋다해도 마침내 되양되양해 뵐뿐이다.그러느니 차라리 뱀의머리로 시작했다 뱀의 머리로 마무리짓는 한결같음이 얼마나 더 바람직스러운가. 『세상사람들이 일을 해나가면서 거의 이루어내다가 실패하거니와 나중 삼가기를 처음과같이 한다면(신종여시) 실패가 없을 것이다』.「노자」(64장)에 나오는 이 「신종여시」는 「서경」(태갑하편)에도 보인다.용두사미됨을 경계하는 가르침이다.새해의 의욕찬 계획을 탓함이 아니다.그자세를 끝까지 이어나가라는 뜻.그러나 사람들은 한해를 보내면서 새해아침 생각을 뒷갈망 못했다는 회한에 젖으며 살아온다. 설사 이것저것 아쉬움이 남는다 하더라도 베풂받은 은혜에 대한 고마움만은 느끼면서 이해를 넘겼으면 한다.「한비자」(열림하편)의 말을 떠올린다.『…주주라는 새는 머리가 무겁고 꽁지는 굽어있어 강물을 마시려면 고꾸라진다.그래서 다른 새가 그 날개를 물어주고 있어야만 물을 마실수 있다』.그것이다. 『굴껍질 하나만 먹어도 동정호 잊지 않는다』지 않았던가.주주는 날개 물어준 새의 은혜를 잊지않아야한다.하물며 사람이겠는가. 이해에 가버린 어른 친지들을 떠올리며 서산마루를 지켜본다.누구나 가는 길이어니….고개숙인다.〈칼럼니스트〉
  • “역사” 「베짜기 개미」를 아시나요

    ◎숲속서 곤충·새·뱀 등 마구잡이 사냥/자신몸 500배 무거운 짐도 거뜬히 옮겨 만일 곤충에게도 올림픽이 있다면 역도 금메달은 아프리카 베짜기 개미(Weaver Ants·점선안)에게 돌아 갈 것이다.이 작은 「역사」들은 군개미(Army Ants)처럼 걷한 대오를 지어 숲속을 순찰하며 사냥한다. 그러나 개미들이 먹이를 찢어 나눠갖고 가는 것과는 달리 이 개미들은 때때로 먹이를 나무 꼭대기에 있는 둥지까지 그대로 끌고 올라간다.이들의 포획물엔 커다란 곤충도 있지만 새·뱀·도마뱀 등과 작은 포유류도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말이다. 사진은 개미가 자신의 몸무게보다 500배 무거운 새를 선반위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모습. 개미는 발위에 있는 강력한 흡입대를 이용해 끈질기게 발위에 있는 강력한 흡입대를 이용해 끈질기게 새를 붙잡고 있다.
  • 국제사서함 통해 반입하기도/국제마약 거래 수법·실태

    ◎뱀 위장·팬티속 숨겨… 수법 날로 교묘/콜롬비아 등 남미산까지 반입 “충격” 마약의 국내 밀반입 경로가 미국과 아시아를 벗어나 콜롬비아·나이지리아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특히 마피아와 함께 세계 3대 국제범죄조직으로 불리는 홍콩의 「삼합회」와 일본의 「야쿠자」가 한국을 주요 마약시장으로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서울지검에 적발된 주요 사례 및 수법을 소개한다. ▲삼합회 개입 밀수=홍콩 구룡반도 신사쵸이에 있는 호스트바 「조이클럽」의 마담 박선수(41·여)는 삼합회 산하 「14K」단의 조직원 관지강(29·보험회사 직원)으로부터 산 히로뽕 37g을 지난 6월과 7월 3차례에 걸쳐 김포공항을 통해 반입.박선수의 밀수에 자신을 얻은 관지강도 지난 8월과 10월 히로뽕 367g을 부츠와 팬티 속에 숨겨 밀수. 삼합회는 전세계에 8개 계파 57개 조직에 8만여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마약 밀매,매춘,도박 등을 통해 연간 2천1백억달러(1백60조원 상당)의 불법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4K」단은 헤로인 등 마약밀매를 통제하는 조직이다. ▲뱀으로 위장한 밀수=지난 6월 중국 대련을 출발해 인천에 입항한 대원페리호의 여객 휴대품 가운데 화주가 표시되지 않은 뱀이 든 플라스틱 상자 3개 발견.인천세관의 소각 과정에서 지게차 운전사가 상자 안에 비닐봉투에 싸인 히로뽕 83g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수거해서 팔려다 적발. ▲국제특급우편을 이용한 밀수=지난해 8월 히로뽕 밀매범 정봉한(36·무직)은 일본 도쿄의 한 커피숍에서 일본인 나타토모로부터 산 히로뽕 10g을 영양제 캡슐에 넣은 뒤 소포로 위장해 국제특급우편을 이용해 서울 종로3가에 있는 한 당구장으로 보내는 수법으로 밀수. ▲야쿠자가 낀 밀수=지난해 12월 김상락(25·무직)은 일본 교토에서 야쿠자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나카이로부터 히로뽕 50g을 산 뒤 일본인 운반책으로 하여금 팬티 속에 숨겨 김포공항을 통해 반입하도록 교사. ▲국제사서함을 이용한 대마초 밀수=지난 해 8월 나이지리아에 있는 무역업자 아수주 치에두 죠는 항공우편을 통해 대마 3.1㎏이 든 소포를 한 국내 무역업자 앞으로 발송. ▲남미산 헤로인 밀수=지난 8월 30살 가량의 콜롬비아인 아수주는 남미산 헤로인 약 45g을 김포공항을 통해 밀수.남미산 마약이 국내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국제 마약밀수조직 11개파 적발

    ◎「삼협회」·「야쿠자」 등 6개국 범죄조직 연계/검찰/코카인 등 395억대 밀반입… 내·외국인 38명 구속 홍콩의 「삼합회」,일본의 「야쿠자」 등 6개국 국제범죄조직과 연계된 국제 마약밀수조직 11개파 57명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지검 강력부(서영제 부장검사)는 2일 히로뽕·코카인·헤로인·대마초 등을 밀수·밀매해 온 삼합회 조직원 관지강씨(29·홍콩) 등 내·외국인 38명을 향정신성 의약품 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김경희씨(36·여) 등 3명은 입건하고 오시마 에미씨(26·여·미국) 등 외국인 8명을 포함,13명을 수배하는 한편 오네카 조지 오부무헤씨(30) 등 나이지리아인 3명을 강제 출국시켰다. 적발된 사람 가운데 외국인은 미국·일본·중국인 각 2명,홍콩인 1명,나이지리아인 8명,콜롬비아인 1명 등 6개국 16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공항·항만·국제우편 등을 통해 히로뽕 7.8㎏,헤로인 45.5g,코카인 46.3g,대마초 3.1㎏ 등 모두 3백95억여원어치를 국내에 몰래 들여온 혐의를 받고 있다.검찰은 이 가운데 히로뽕 1.9㎏ 등 1백억여원어치의 마약을 압수했다. 관지강씨는 삼합회 산하 범죄조직인 「14K」단의 일원으로,지난 10월 등 2차례에 걸쳐 히로뽕 372g(시가 17억여원)을 신발 밑창에 숨겨 들여와 국내에서 판 혐의를 받고 있다. 홍콩의 삼합회 조직원이 마약을 국내에 들여오고 미국산 코카인,나이지리아산 대마,남미산 헤로인 등이 밀반입된 사실이 드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미국 마약청·중국 국가금독위원회 등 6개국의 마약 수사당국과 공조,국제 마약밀매조직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히로뽕을 영양제 캡슐에 담아 국제우편으로 우송하거나,평소 거래하던 국내 수입업자의 우체국 사서함으로 무역용품과 함께 마약을 보내오는 등 신종 수법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중국산 뱀을 수입하는 것처럼 꾸며 뱀상자 안에 히로뽕을 담아 들여오다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 동물이동통로 「밀렵꾼 통로」 우려는 기우/하대성(공직자의 소리)

    11월4일자 모 일간지에서 한 독자가 지리산 야생동물(곰)이동통로 건설에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은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의견이라고 보아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생존이 확인되고 있으나 밀렵과 서식지 단절 등으로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이에 따라 환경부에서는 과거 도로개설전에 반달가슴곰 등 야생동물의 최대 이동통로였던 「통목」지점에 이동통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도로건설 등으로 인한 야생동물 서식지 단절에 따른 문제는 미국.독일.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70년대부터 이미 잘 인식되어 있다.이에따라 선진국에서는 건설사업시 사전에 생태적 단절을 방지하기 위한 이동통로를 건설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으며 환경영향평가에도 야생동물의 이동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이동통로를 설치하면 이것이 오히려 곰을 잡으려는 밀렵꾼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전문 밀렵꾼들의 활동양태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우리나라에는 수십년전부터 전문밀렵꾼들은 반달가슴곰의 주서식지에 올무나 폭약을 설치하여 포획해 오고 있다. 따라서 밀렵꾼들이 이동통로에서 일년에 겨우 몇차례 지나는 곰을 기다려잡는 방법은 단속요원에게 적발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올무나 폭약을설치하는 방법보다 포획가능성이 훨씬 낮으므로 통로자체가 곰생존에 위해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추측은 기우라고 본다. 앞으로 환경부의 권유에 따라 전. 현직 포수,지역주민 등으로 구성된 지리산자연생태보존회가 수시로 감시하며 위험물을 제거할 것이며 국립공원관리공단도 밀렵감시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이동통로를 설치할 경우 곰을 비롯한 야생동물이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잘 이용한다」는 것이다. 미국자료에 따르면 이동통로및 유도시설을 적절히 조성해주면 잘 이용한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으며 캐나다 밴프공원에서는 25개의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개설하고 있고 독일과 일본 등도 뱀이나 개구리 등의 이동통로까지 건설하고 있다. 이제까지 곰의 개체보호는 환경부의 소관은 아니었으나 생태계 정상의 동물보호차원에서 이동통로 건설, 지리산생태보존회 결성 등을 시도하여 학계전문가와 포수를 포함한 현지관계자들과 함께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생활양식이동성 위협실태 등을 심층 검토하여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 멕시코 멕시코시티(세계 문화유산 순례:14)

    ◎3천년의 역사가 숨쉬는 거대한 「도시 박물관」/「소칼로」 대성당앞 광장에는 화려한 의상의 원주민들이 날마다 향냄새나는 껌질 태우며 멕시카제국의 영광 되찾아 줄 신을 부르는 의식을 올린다 멕시코는 전역에 걸친 유적지가 자그만치 4만여곳에 이르는 것을 보면 나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적지인 셈이다.이 가운데 멕시코시티는 유네스코로부터 도시 전체를 하나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대단위 유적지다.올메카,테오티와칸,마야 등 고대문명의 흔적들은 물론 스페인 정복기(1521∼1810년)문화까지를 포함한 3천여년의 역사가 도시 곳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인류학박물관은 멕시코시티 시내 중심가에 있다.멕시코 문명의 실상을 조감하자면 반드시 들러야 했다.1964년에 개관됐다.멕시코 전역에 흩어진 유물들을 시대별로 구분해놓은 10개 전시실을 갖춘 1층에서 원주민의 생활상을 재현한 2층 민속학박물관으로 연결됐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을 맨 먼저 맞는 유물은 「올메카의 머리상」이다.멕시코만 인근 타바스코주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올메카 문명을 일으킨 주인공들의 석상이기도 했다.입술이 두껍고 코가 낮았다.눈까지 작아 영락없는 동양인 모습을 한 이같은 큰 머리 석상은 멕시코에 많이 남아있다.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질감이 풍부하고 투박한 모습에서 모태문명의 원시성이 짙게 우러났다. 올메카 문명은 발생하고 나서 두 갈래로 갈렸다.그 한줄기가 멕시코 중앙고원의 테오티와칸 문명(AD 200년경∼AD 650년경)·톨테카 문명(AD 700∼AD 1100년)·멕시카 문명(14세기∼16세기)이다.이와 더불어 멕시코 남부 및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엘살바도르·온두라스에서는 전·후기 마야문명(AD 200년경∼∼AD 1521년)이 발전을 거듭했다. 멕시코에 와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멕시코 문명에서 흔히 거론되는 아즈테카(Azteca)문명이 그것인데,이를 멕시카(Mexica)라는 용어로 쓴다는 점이었다.멕시코 사람들은 이를 전설과 연관시켰다. 전설은 1150년경까지 아지틀란이라는 곳에 살던 아즈텍족이 새로운 땅을 찾아 유랑생활을 하던중 우이칠로포치틀리라는 신을 만나는데서 시작됐다.이때 신이 하늘을 날고있던 독수리를 가리키며 『너희에게 번영과 안정을 줄테니 저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에 나라를 세우라』는 계시를 내렸다.아즈텍족이 독수리를 쫓아 가보니 과연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현재 멕시코시티의 한 부분인 테노치티틀란이라는 얘기다.그리고 신은 또 『너희는 아지틀란을 떠났으니 이제부터는 아즈텍족이 아니라 멕시카족이라고 부르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유적관람을 위한 동선은 박물관에서 과달루페 성당으로 이어졌다.중심가인 레 포르마 거리 북쪽끝에 위치한 이 성당은 멕시코인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우뚝 서있는 성소다. 1533년 건축된 이래 수세기동안 전세계 성직자와 신도들의 순례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성당은 1531년 12월12일 테페약 언덕을 지나던 한 농부앞에 발현한 성녀 과달루페의 계시에 따라 축성됐다고 한다.발현 당시 과달루페는 한겨울에 장미를 만발시키는 기적을 행했다는 이야기도있다.이 때문에 해마다 성녀발현일이면 예수의 고행을 따르려는 신도들이 성당 입구부터 강단까지 무릎으로 기어 열정적인 신앙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과달루페 성당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3문화광장」이 있다.고대 문명·식민지 문명·현대 문명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상거래 지역으로 짐작되는 멕시카족의 틀라텔롤코 피라미드와 17세기에 지어진 산티아고 성당,그리고 현 멕시코 외무부 건물이 모여있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테노치티틀란의 위성도시 성격을 띠었던 틀라텔롤코는 당시 멕시코 계곡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3문화광장」에서 다시 20여분가량 시내로 차를 몰아 「소칼로 광장」에 닿았다.「소칼로 광장」은 본래 테노치티틀란이었다.그런데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바꿔 버렸다는 것이다.사방이 각각 240m나 되는 이 광장은 북쪽에 대성당,동쪽에 국립궁전,남쪽에 연방정부 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전형적인 도심구조를 보여주었다. 「소칼로 광장」의 대성당은 200여년에 걸쳐 완공됐다.대성당 자리는 본래 멕시카인들이 인신공양한 해골들을 모아두던 곳이었다.본 건물은 1548년 완공됐으나 17세기 들어 남쪽부분이 바로크 양식으로,북쪽부분이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확장돼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모습이 하모니를 이루었다.이 성당의 검은색 피부를 가진 예수상은 유명한 성물이다.식민정복지에서 원주민을 끌어 안으려 노력한 선교의 한 단면이 들여다 보였다. 성당앞 광장에서는 날마다 흥미로운 의식이 벌어졌다.새의 깃털을 단 화려한 머리장식에 의상을 차려입은 원주민들이 향냄새 나는 코팔나무 껍질을 모닥불처럼 태웠다.그리고 원무(원무)를 추며 흥겹게 돌아갔다.또 하나같이 프라일레라는 나무껍질을 말려 엮은 장식을 발목에 달아 춤을 추며 돌아갈 때마다 「딱,딱」부딪치는 소리를 냈다.그렇게 코팔타는 냄새와 프라일레 소리로 지난날 멕시카제국의 영광을 되찾아줄 신을 날마다 불러댔다. 그런데 이 의식을 유심히 살펴보노라면 원주민 무리속에서 다수의 백인들이 발견됐다.백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그렇다고원주민쪽에도 끼지 못하는 멕시코의 에트랑제들,이들을 「패스포트 퀘스천」(Passport Question)이라고 불렀다.멕시카 후예들에게 동화되고 싶어하는 이들의 몸부림은 역사의 아이러니 바로 그것이었다.
  • 멕시코 테오티와칸:하(세계 문화유산 순례:13)

    ◎「페허의 성도」엔 문명의 수수께끼만…/“「사자의 길」 양면 계단 딸린 고대는 무덤인가 피라미드인가” 해와 달을 섬겼던 사람들이 남긴 유적지 테오티와칸의 대통로 「사자의 길」은 무척 넓었다.「달의 피라미드」를 내려오면 남쪽으로 3.2㎞에 걸쳐 뻗친 이 길과 바로 연결됐다.폭이 좁게는 43m,넓게는 145m나 되는 길 양쪽으로 계단이 딸린 고대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래서 길을 걷는 느낌 보다는 웅장한 석조궁전 뜰 한가운데 서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돌을 높게 쌓아 올리고 계단까지 내놓은 고대의 존재는 무엇일까.어떤 이는 무덤으로 여기기도 했다.또 흑요석과 같은 물건들을 거래한 장시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그러나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고대에 관한 이 두가지 추측 말고도 미니 피라미드였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미니 피라미드가 오히려 더 설득력을 지녀 그럴듯해 보였다.「태양의 피라미드」나 「달의 피라미드」를 축소한 일종의 미니어처로,단위에 작은 신전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견해다.그러고 보면 테오티와칸은 피라미드의 도시인지도 모른다. 「사자의 길」은 「달의 피라미드」꼭대기 제단에 올릴 제물용 인간들이 길게 줄지어 대기했던 길이었다고 한다.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과 함께 테오티와칸에 왔던 선교사 디에고 두란은 제물로 사라질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수㎞씩 줄지어 서있었다고 기록했다.제사장은 이들의 가슴에서 칼로 도려낸 심장을 제단에 바쳤다는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의 달력(월역)개념으로는 1년을 18개월 혹은 20개월로 계산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평균 18일이나 20일마다 한번씩 제사를 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그만큼 제물의 수요도 많아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을 것이다. 최근의 고고학 발굴자료에 의하면 「사자의 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남쪽으로 3.2㎞ 정도가 더 이어졌고 동서로 뻗은 또 다른 큰 길이 존재했다.그리고 이 도시를 크게 4개 부분으로 나누어 구획한 흔적도 찾아낸 것으로 보고됐다. 이 고대도시의 너무나도 광대한 규모에 그만 기가 질렸다.사라진 문명을 증거하려는 고대인의 외침이 당장이라도 들릴 것 같아 현기증마저 느껴졌다.그러는 사이,「사자의 길」왼쪽으로 640㎡에 달하는 「시우다데이라」(성채)앞에 다가섰다.성채 중앙에는 「깃털달린 뱀의 피라미드」가 우뚝했다.그것은 피라미드라기 보다는 걸작의 조각품이었다. 테오티와칸 사람들은 뱀을 풍요를 상징하는 영물로 보았다.또 뱀은 하늘과 땅속·인간세상을 자유롭게 오가며 신과 인간을 연결해 준다고 생각했다.메소 아메리카 문명권의 대부분 유적지에서 뱀의 모습을 새긴 조각이나 벽화가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기원(AD)250년쯤 건축된 「깃털달린 뱀의 피라미드」는 현재 아메리카 대륙에 남아있는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조형물이다.사방 모서리가 많이 허물어지기는 했으나 외부장식이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풍요의 상징으로 외벽을 둘러친 뱀의 형상과 그 사이사이 조각된 조개와 물고기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듯 생동감이 넘쳤다. 테오티와칸은 단지 신들을 위한 도시만은 아니었다.이는 「사자의 길」양쪽 평지에 넓게 분포돼 있는 제사장과 민간인들의 거주지를 보면 확실했다.주거유적들은 이 고대도시가 실용성도 갖추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크고 작은 집터마다 우물·상하수도·증기목욕탕 시설 등 오늘날의 가옥구조에서나 볼 수 있는 편의시설 흔적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융성했던 문명은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렸다.한때 중앙 아메리카 지역에서 위세등등하게 문화적 영향력을 떨쳤던 성도가 하루아침에 폐허로 변해버린 것이다.그 이유의 하나가 외침에 의해 멸망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리고 어떤 전문가들은 사회체제 붕괴에서 멸망의 근거를 찾고 있다.새로운 귀족계급의 등장은 신관계급과의 대립을 가져와 결국은 신정일치체제 몰락을 부추기고 말았다는 것이다.하지만 테오티와칸 문명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는 학설과 주장만 무성할 뿐 아직까지 명확한 해석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듯 테오티와칸은 문명의 수수께끼를 깊숙히 간직했다.이 때문에 고대 멕시코의 순수한 문명의 원천이기도 한 테오티와칸은 고고학자들에게는 여전히 도전의 대상이 되고 있다.테오티와칸 문명의 주인공들은 어디서 온 누구였으며,또 어디로 갔을까.그 궁금증을 풀지 못한채 돌아 서야 했다. ◎여행가이드/입장료 1,800원… 유적지 주변 숙박시설 없어 테오티와칸 유적은 하루면 둘러볼 수 있다.유적지 주변에는 별다른 숙박시설이 없어 멕시코시티내에 숙박을 정할 수밖에 없다.유적지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다소 불편하고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시내에서 유적지까지는 40여분 정도.입장료는 16페소(한화 1천800원)이며 유적지 내에 있는 박물관 등에 들어갈때는 요금을 따로 내야 한다.박물관 입장료는 10페소(한화 1천200원)내외.유적지 주변 천연동굴을 이용한 음식점에서 멕시코 전통음식으로 색다른 식사를 즐길 수 있다.음식값은 70∼80페소(한화 7천∼8천원)정도면 충분하다.단 물·음료수와 팁은 별도 계산해야 한다.
  • 멕시코 테오티와칸:상(세계 문화유산 순례:12)

    ◎해발 2,300m 고원에 「신들의 도시」 우뚝/격자형 도시에 전성기 인구 20만/거대한 피라미드 가파른 꼭대기마다 인간의 능력 초월한 불가사의한 신전이… 남북 아메리카 대륙 사이를 길고 좁다란 회랑처럼 잇고 지나간 멕시코.3천년 이상의 찬란한 문명흔적이 남아있지만 서글프게도 그 문명의 의미들을 정확히 읽어내기는 힘들게 됐다.문명의 주역들이 거의 기록을 남기지 않은 탓에 신화나 전설의 베일속에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고대 문명을 좁은 시각으로 대해서는 안된다.흔히 마야문명의 발원지 정도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멕시코·과테말라·엘살바도르 등 중앙아메리카에 깊이 뿌리내렸던 이른바 메소(Meso)아메리카 문명의 중심축이었던 것이다.그래서 사라진 문명의 발자취 가운데서 살아남은 문명유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50㎞ 가량 떨어진 지역을 중심으로 했던 테오티와칸(Teotihuacan)문명이다. 기원전(BC)200년∼기원(AD)650년 사이에 존재한 이 문명유적은 표고 약 2천300m의 멕시코 중앙고원에 자리했다.테오티와칸 문명은 그 전성기에 인구가 20만명에 이르는 이 지역 가장 큰 고대도시를 형성시켰다. 멕시코시티 중심가에서 40여분 가량 차를 달리니 멀리서부터 피라미드 꼭대기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 왔다.적지않은 규모의 유적지임이 쉽게 짐작됐다.그러나 막상 입구에 들어서자 엄청난 도시규모와 거대한 피라미드의 위용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넓이가 23.5㎢에 달하는 이 도시는 격자형으로 설계된 도시구조가 정교했다.그리고 60m가 넘는 우뚝한 피라미드,그 피라미드의 가파른 경사면 정상에 올라앉은 신전은 참으로 놀라웠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고대사회의 대역사는 불가사의한 신비로 다가왔다.후대인들이 극도의 경외감을 느낀 나머지 「신들의 도시」라고 불렀던 까닭이 이해됐다.이 도시는 지정학적 위치 또한 절묘했다.도시 자체가 멕시코 계곡과 푸에블라 계곡을 이어주는 천혜의 통로에 자리잡아 기름진 골짜기를 품에 안고 있다.그 골짜기로는 여러 갈래의 내가 흘러 물이 풍족했거니와 이 일대가 화산지형이라 당시농사도구나 용기·무기를 만드는데 중요한 소재가 됐던 흑요석이 넉넉했다.풍요로운 문명지의 요건을 충분히 갖춘 셈이다. 테오티와칸 문명은 BC 1200∼200년경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올메카(Olmeca)문명을 모문명으로 발흥했다.올메카 문명은 유적이나 유물 등을 통해 볼때 현재로서는 멕시코 지역에 존재했던 가장 오래된 문명이었다.테오티와칸 문명은 제단문화가 특히 발달했던 올메카 문명으로부터 종교와 제사의 전통을 물려받았다.피라미드형 신전과 제단을 많이 남긴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유적지는 크게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 「깃털달린 뱀의 피라미드」 「사자의 길」로 구성돼 있다.꼭대기마다에 모두 신전을 이고 있는 테오티와칸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는 의미가 크게 달랐다.이집트의 것은 무덤인 반면 테오티와칸 문명 유적의 피라미드는 신전이나 제단의 구실을 했다.그리고 이집트와는 달리 테오티와칸의 피라미드에는 오늘날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르내렸다. 그러나 피라미드가 제구실을 다하던 시절에는 제단 바로 앞까지만 사람이 올라갈 수 있었다.제사가 이루어지는 성전이나 성전위의 크리스테리아(Cristeria·지붕장식)에는 제사장외엔 일반인의 발길이 닿지 못했다고 한다.이는 멕시코 지역에 있는 다른 모든 피라미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이들 피라미드는 어떤 특정한 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기본적으로 다신교 사회였던 올메카 문명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거대한 「태양의 피라미드」는 4층으로 이루어졌다.높이 63m,한변의 길이가 225m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에 기가 질린 탓도 있었으나 경사면이 급해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마침 정상에서는 한무리의 관광객들이 두팔을 크게 벌리고 하늘을 향해 태양신에게 올리는 축원 의식을 흉내내고 있었다.기원 1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태양의 피라미드」는 이 고대도시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이다.하루에 3천명의 인력을 투입해도 피라미드를 완공하는데 적어도 30년은 걸렸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피라미드는 마치 새로운 세계를 향한 하늘의 안내 표지판처럼 고대도시 한복판에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대부분의 고대문명이 그렇듯 태양과 달을 숭배했던 테오티와칸인들에게 「태양의 피라미드」는 정신적 중심을 잡아주었을 것이다. 「태양의 피라미드」 정상에 다달으니 주변 유적지가 한눈에 들어왔다.지금은 양쪽으로 「달의 피라미드」를 비롯한 몇개의 피라미드만을 거느리고 있을 뿐이다.그러나 전체 도시의 90%가 아직도 발굴이 안된채 땅속에 파묻혀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이 고대도시를 호락호락하게 보고 넘어갈 수 없다. 「달의 피라미드」에 오르는 길은 「태양의 피라미드」보다는 수월했다.기원 2세기 후반에 건축된 이 피라미드는 42m로 높이가 조금 낮은데다 경사가 비교적 완만했다.그러나 한변의 길이가 145m에 이를 정도로 이 역시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이었다.과거 「달의 피라미드」 정상에는 무게가 20t이 넘는 대형 조각상이 있었다고 한다.「달의 피라미드」는 「태양의 피라미드」와 함께 훌륭한 한쌍의 모뉴먼트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같은 형태가 테오티와칸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에도 태양을 머리에 인 첨탑과 달을 인 첨탑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인류 문명의 공통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 김신조씨/“핵심 공작원은 탈출했을 것”/무장공비­수색 이모저모

    ◎북 특수군 「무식량 10일 생존」 고난도 훈련/코브라헬기 등 투입 공비 섬멸작전 전환 군 수색대는 무장공비 침투 엿새째인 23일 총력을 기울여 잔당 소탕작전을 계속했다. ○…국방부와 합참은 소탕작전이 23일로 6일째가 되자 자칫 장기전에 돌입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하는 모습들.국방부 관계자는 『도주중인 공작조 등은 특수훈련을 철저히 받은 프로급 공작원들로 추정된다』며 작전의 전환 가능성을 시사. ○…군은 이에 따라 작전의 조기종결을 위해 금명 2.75인치 로켓 76발 등을 장착할 수 있는 전투헬기인 코브라를 도주중인 무장공비의 은신예상지역인 칠성산주변에 집중투입키로 하는 등 지금까지의 생포위주에서 완전섬멸위주로 작전을 전환할 방침. 군의 한 관계자는 『현재 5명으로 추정되고 있는 도주중인 무장공비가 군의 포위망을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들의 훈련정도로 보아 장기간 은신이 가능하다고 판단,사태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 이같은 조기섬멸작전을 펴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 군의 이같은 방침은 생포된이광수의 진술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로 드러나 또 다른 무장공비 생포의 필요성이 줄어든 데다 작전지역내에 거주하는 민간인을 이미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켜 대규모 중화기의 작전이 가능해진데 따른 것. ○…이번에 남파된 북한 무장공비들이 소위 이상 장교로 구성된데다 나이도 평균 30세 이상이어서 상당기간 특수부대에서 근무한 베테랑일 것으로 군 당국은 추정.군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북한군 특수부대의 복무기간은 일반 보병(10년)보다 2년 정도 긴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또 특수부대원들은 통상 보병에서 4∼5년 가량 복무한 사람 중에서 차출되며 이때 보병에서 사병으로 근무하다 특수부대에 전출되면 하사관으로,또 하사관에서 전출될 경우엔 장교로 임관된다는 것. ○…북한군 특수부대의 생존훈련은 남한 특수부대에 비해 훨씬 강도가 높다는 관측.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특전사,해군 수중폭파대(UDT/SEAL),해병 특수수색대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특수부대들의 경우 통상적으로 산악지대에서 3박4일 정도의 생존훈련 과정을 거치지만 북한군특수부대는 함경도와 강원도를 잇는 낭림산맥 등 험준한 지역에서 부대 단위로 10여일 이상 솔잎 버섯 달래 산토끼 뱀 수액 등을 섭취하면서 상대편 추격대들을 따돌리고 은폐 엄폐 생존 도피 등을 하는 고난도의 훈련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7월초 김포를 통해 귀순한 최승진씨(29·전 북한군 경보도지도국 산하 38항공육전여단 상사)에 따르면 부대 전체가 낭림산맥에서 실시된 생존술 훈련에 투입됐다 허기와 갈증으로 낙오돼 다른 부대가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투입될 정도로 혹독하다는 것. ○…도주중인 무장공비들이 북상하기 보다는 오히려 남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대두.포위망이 광범위한 상황에서 이들은 수색대가 예상 북상로를 미리 차단,매복하고 있는 점을 간파해 오히려 경계가 허술한 태백산맥 이남의 산악지대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일부 군사관계자들은 설명.즉 이미 강원도 지역을 벗어나 경상북도나 충청북도 북부의 산악지대로 이동,비트를 구축한 뒤 북측과 무선교신을 통해 지령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지난 68년 1·21사태 당시 무장공비로 남파돼 청와대 근처까지 진출했다 생포된 김신조씨(55·기독인 귀순용사선교회 이사장)는 23일 이번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관련,『도주중인 핵심공작원 2명은 이미 교전지역을 벗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해 눈길.김씨는 『북한은 공작원 1명을 양성하기 위해 수년간 교육 등 공을 들인다』며 『북한에서 거물급에 속하는 이들은 승조원(전투원)이나 안내원 수백명과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현재 교전을 벌이고 있는 잔당들도 공작원의 안전한 도피를 위해 교란작전을 펴며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것으로,극단적으로 말하면 공작원을 뺀 승조원이나 안내원은 모두 공작원 보호를 위한 일종의 소모품이라는 것. 그는 또 『좌초된 잠수함의 임무는 분명 공작원의 대동 월북 또는 공작원 남파를 위한 것』이라며 『공작원들이 단파라디오를 통해 북한의 지령을 받고 전투원 등을 사살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분석.또 『김일성부자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찬 전투원들도 공작원과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안전 등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데 순순히 동의했을 것』이라고 설명.
  • 무장공비 8명 어디로 갔나/구덩이 파고 산속 은신 가능성

    ◎하루 50㎞ 주파… 휴전선쪽 도주/북과 교신한후 귀환 시도할듯 18일 강원도 강릉 해상으로 침투한 무장 공비 가운데 8명은 어디로 갔을까.또 어떤 경로를 통해 탈출을 시도할까. 생포된 공비 이광수(31)가 잠수함을 타고 침투한 공비가 모두 20명이라고 밝힘에 따라 자살하거나 생포된 12명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의 행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군 당국은 이들이 청학산 기슭에 은신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나 새벽에 상륙한 점으로 미뤄 날이 밝기전에 군경의 포위지점에서 이미 상당한 거리를 벗어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보고 있다.잘 훈련된 정예 병력일 경우 육상이나 해상을 통해 야간에 포위망을 뚫고 탈출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은신했다면 이른바 「비트」를 이용해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다.산속에 지름 1m,깊이 1m 정도의 구덩이를 파고 낮에는 숨어있다가 밤에 탈출을 시도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예상 도주로는 육상과 해상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공비의 경우 남파전에 돌아가기 위한 제 2의 접선장소가 이미 지정돼 있는 게 관례라고 보면 단파무전기 등으로 북쪽과 교신하면서 다른 잠수함이나 잠수정을 이용해 귀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예요원들인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훈련을 통해 하루 50㎞ 이상을 주파하는 능력을 갖춘 만큼 육상을 통해 귀환을 시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침투공비 일당이 집단 자살한 청학산에서 휴전선까지는 불과 60여㎞에 불과해 하루 정도면 거뜬히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 때는 황병산과 노인봉 등을 거쳐 휴전선 부근의 향로봉·건봉산으로 향하는 코스가 이들의 도주로로 점쳐지고 있다. 공비들은 통상 2∼3일분의 비상식량을 소지하고 있는데다 잡히지만 않을 경우 충분히 연명이 가능하다.도망가면서 풀뿌리를 캐먹거나 뱀·쥐·개구리 등 야생 동식물로 식사를 대신할 수도 있다. 군 당국은 공비 이광수가 생포 직후 3일동안 굶어 배가 몹시 고프다고 말한 점으로 미뤄 민가로 내려와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큰만큼 주민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고 덧붙였다.실제로 이날 저녁 강릉 시내 민가에서 식량을탈취해갔다.
  • 중국산 뱀 1만여마리 밀수/중국인 선장 영장

    【부산=이기철 기자】 부산·경남본부세관은 9일 중국산 뱀 1만여마리를 몰래 들여온 라이베이라 국적 화물선 아시아 마리타임호(4천8백11t급)의 중국인 선장 장언씨(33)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장씨는 지난 8일 상오 9시30분쯤 중국산 능구렁이 1만1백60마리와 독사 2백10마리 등 시가 1억원 상당의 뱀 1만3백70마리를 상자 1백30개에 담아 배 창고에 숨겨 부산항으로 들여온 혐의다.
  • 곰소비 1위국(외언내언)

    사람만이 아니라 원숭이·침팬지를 포함한 모든 영장류들은 뱀을 싫어한다.자연에서 한번도 본일이 없는 경우에도 두려워 한다.수십억년에 걸쳐 유전자속에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기억이 전수됐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그런가하면 뱀은 많은 신화와 종교상징들에서 파괴적이지만 창조적 동물로 나타난다.이 역시 수억년 생물역사에 무슨일인가 있었을 것이다. 곰은 뱀보다 요란하지는 않다.특별하게 우리의 창조신화 단군의 유래에서 한국인의 창조자 역할을 한다.그러니 끝내 밝혀지진 않을테지만 한국인의 유전자 기억에 곰은 무엇인가 말하고 있을 것이다.이것이 오늘 유행하고 있는 웅담보신추태의 배경일지 모른다.약학적으로 웅담이 정력과는 관계가 없다해도 한국인은 이를 믿지 않는다.이역시 한국인만의 유전자 자료일 수 있다. 그러나 곰보신의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10월6일부터는「야생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의해 웅담과 사향의 수입이 금지된다.아메리카 북극곰만이 아직 해당국가 승인이 있으면 국제거래가 가능하다.하지만 국제환경단체가 촉각을 세우고 있는데 미국과 캐나다가 북극곰장사를 할리가 없다.우황청심환이나 기응환이 어떻게 품귀현상을 빚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런가하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국이 세계 곰소비의 1위국이라는 국제연구보고서까지 발표됐다.미국환경조사단체인 인베스티게이티브 네트워크와 하와이대가 내놓은 멸종위기 곰 불법거래 조사보고서「숲에서 약국으로」는 70년대부터 93년까지 합법적으로 한국이 수입한 웅담만 곰 7만마리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이것은 사실이다.구체적 수치로도 이기간 4천1백35㎏을 수입했는데 곰 한마리당 웅담은 평균 60g이다. 문제는 우리는 곰의 유전자를 갖고 있으니까 곰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데 있다.멸종위기 곰을 잡는 것은 이시대 가치로는 구제불능의 야만성으로밖에 평가되지 않는다.국제법 위반자로 어떤 형태로든 실형을 받을수도 있다.국가이미지에도 영향을 준다.졸부의 난장판같은 이미지는 아마 스스로도 원치 않을것이다.〈이중한 논설위원〉
  • 일본의 「EEZ」발효를 보고/박춘호 전 고대법대 교수(특별기고)

    ◎“한·중·일 해양경계 영토와 분리 논의해야”/감정적 대립 지양… 상호 타협·협력 모색할 때 조국의 신성한 영토의 모습을 놓고 농담을 하자는 뜻은 아니다.그런데 세계지도위의 한반도는 아세아대륙의 밑바닥에 붙어있는 토끼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호주에는 위아래가 거꾸로 된 세계지도를 파는 서점이 많이 있다.이 지도위에서는 한반도의 모습이 마치 태평양을 바라보고 우뚝 서있는 충무공 이순신장군 같이도 보인다.그것도 아시아대륙의 위에 서서 말이다. 이제 동북아제국의 바다에 관한 관심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지난 20일을 기하여 일본에서는 소위 바다의 헌법이라고 불리는 유엔해양법협약과 이것을 수용하기 위한 8개의 국내법이 발효됐다.요즘 자주 논의되고 있는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본격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이 지역에서는 일본이 먼저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이 유엔협약은 한국과 중국에 대하여 일본에 앞서 이미 발효했는데,한­중양국 역시 EEZ에 관한 국내법을 준비중이어서 곧 공포되리라고 전한다. 한편 EEZ제도가 국제사회에서 비공식적으로 합의된 것은 1970년대 중엽이었고,주요 해양국들이 이 제도를 국내법으로 시행한 것은 1977년이어서 이 해를 「200해리 원년」이라고도 부른다.다시 말하면 동북아지역에서는 200해리 시대의 개막이 20년쯤 뒤진 것이다.물론 북한은 1977년에 EEZ를 선포했고,일본도 그 해에 어업에 관해서만 200해리 수역을 잠정적으로 시행해왔으나,이 두 예는 지역적인 차원에서는 큰 의의가 없었다. 동북아지역에서 200해리 시대의 개막이 이렇게 늦어진 까닭은 두가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첫째,한­중­일 3국은 모두 400해리 이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각기 200해리수역을 선포하면 세나라의 경제수역이 2중 3중으로 겹치게 되어 심각한 경계문제가 생긴다.둘째,한­일간에는 독도영유권문제가,그리고 일­중간에는 센가구군도영유권 문제가 있어서 이러한 영토문제 때문에 바다의 경계문제를 쉽게 합의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그런데 영토문제가 개입되어 있는 해역에서 해양경계문제는 영토문제를 먼저 합의하거나 분리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게다가 이 지역의 영토문제에는 역사적 이유때문에 국민감정이 너무도 깊이 뿌리박고 있어서 해양경계문제와 분리하여 다루는 길밖에 없다.3개국 정부 당국도 각기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하는데,이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다행한 일이다. 우선 한­중­일 3개국간의 EEZ경계문제를 간단히 요약해보자.먼저 한­일간에는 동해와 동중국해에서의 경계문제가 있는데,동해의 일부에는 이미 1974년에 맺은 경계선이 있다.이것은 앞으로 1986년에 북한과 소련이 맺은 EEZ·대륙붕경계선까지 연장되어야 한다.동중국해에는 1978년에 발효한 한­일공동개발협정이 50년간 존속하게 되어 있어서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것이나 중국은 이것을 처음부터 반대하고 있어서 분쟁의 소지가 없지 않다. 한­중간에는 동중국해외에 황해의 경계문제가 만만치 않다.이와 관련하여 지난 5월15일에 공포된 중국의 직선기선은 몇가지 점에 있어서 무리한 주장을 내포하고 있어서 이에 관하여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일­중간에는 역시 동중국해의 EEZ·대륙붕경계문제가만만치 않는데,이것은 궁극적으로 한­중­일 3국이 합의해야 할 문제로 집약된다. 동북아지역에서도 200해리 제도란 이제 국제법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문제로 등장했다.따라서 한­중­일 3국도 이제는 해양경계문제로 인한 대립을 지양하고 타협과 협력을 모색할 시점에 이르렀다.다른 지역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만이 그렇게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영토문제는 뿌리깊은 국민감정 때문에 합의나 사법적 절차를 거쳐서 해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따라서 독도문제만 나오면 흥분하여 우리 것이라고 고함을 치는 것은 이젠 그만두고,조용히 개발에 힘쓸 때가 왔다.계속 떠들어야만 그 영유권이 보전된다면 어딘가 잘못돼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끝으로 정부는 해양수산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늦게나마 매우 경하할 일이다.단지 12개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것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부처·집단이기주의가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보도는 보다 못해 가엾은 생각마저 든다.1961년까지 해무청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던 해양관계기구들이 그 해에 불행히도 풍지박산한 이래 우리의 해양관계산업은 온갖 수모를 겪고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해양시대를 눈앞에 두고 집안에서 옹졸한 이해다툼을 계속하는 것은 뱀이 제꼬리 씹어먹는 꼴이다.이왕 신설될 기구는 과감히 완전 통합만이 남아있다. 용단을 기대해 본다.
  • 거문고 명인 김무길(이세기의 인물탐구:99)

    ◎웅건하고 청완한 가락으로 녹기금의 멋 구사/국악적 분위기서 성장… 구전심수로 악기익혀/신쾌동·한갑득 양대 유파의 가락 모두 섭렵 흔히 거문고산조를 가르켜 「무애의 강에 내리는 빗물」이라고 말한다.강상에 비가 내리니 수면 위에서 노는 파문은 비의 꽃인 양 수만가지 흐느낌이 형형색색이다.손과 줄이 눈부시게 어울려 「큰 줄은 소나기 쏟아지듯 급하고(대현조조여급우) 작은 줄은 갸냘프기가 속사김과도 같아(소현절절여사어)」 듣는 이의 가슴에 촉촉히 스며든다. 김무길이 거문고를 앞에 놓고 왼손으로 괘를 짚어 음높이를 조절하면 유현이 밀고 당기는 농담이 흥청거리다가도 오른손으로 술대를 잡아 머리쪽의 줄을 치면 공중에서 놀던 솔개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히듯 호방한 남아의 기개로 우람하게 울부짖는다.대점으로 줄을 찍기도 하고 소점으로 줄을 뜯기도 하면서 술대가 문현을 힘차게 타면 슬,유현이 살짝 넘기면 기,대현이 다시 둥소리로 받아 슬기둥슬기둥 소리에 대명천지가 열리고 덧없는 인생 달랠 길 없어 애간장이 다 녹는다.깊은강이 멀리 흐르는 이치를 유유히 간직한 채 거문고 육현은 무위자연의 세계를 정금미옥으로 펼쳐나간다. 거문고산조는 백낙준에 의해 처음 짜여졌고 그에게서 신쾌동·박석기가 배웠으며 박석기에게서 한갑득이 배웠다. 신쾌동은 백낙준의 가락을 가장 많이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보다 정세한 농현과 복잡한 장단,거기에 가락을 더하고 다듬어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한갑득은 「편편이 나는 범나비같이 때로는 놀란 새 뱀을 쪼듯」 느리고 빠른 안배에 따라 두손의 수법을 자재롭게 움직이면서 연주자의 기량에 흥과 청을 맡기는 분방한 금도가 특징이다.정해진 수법에 구애됨이 없이 연주자의 애환을 담아 진흙속에 뿌리내린 연꽃의 향취를 은은히 풍겨나게 한다. 바로 이 거문고산조의 양대유파를 고루 섭렵하고 어느쪽이랄 것 없이 각유파를 능란하게 연주하는 이가 김무길이다.그는 86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장원에 올라 거문고연주에서의 성가와 지위가 더욱 탄탄한 것이 되었다. 김무길은 임춘앵·김경애·전황 등의 창극단에서 살림을 맡고 있던 국악인 김봉현의 3남1녀중 장남.부친은 전남 곡성군 옥과 출신으로 명고수 김명환과 동향이고 한갑득명인과도 막역지우로서 해방이전에 한갑득과 여성국극단을 따라 서울에 정착했고,김무길은 서울 종로 낙원동에서 태어났다.어릴 때부터 국악적 분위기가 몸에 배어 창과 장고장단에 심취하더니 13살 되던 해 비원 앞에 있던 한갑득문하에 들어가 거문고를 배우기 시작했다.구전심수로 악기를 익힌 마지막 세대인 셈이다. 스승댁에서 거문고 한대목을 배우고 나오면 발걸음 하나에도 장단을 맞춰 「살징뜰 살징뜰 살찌르르 징징」 그날 배운 것은 구음으로 외워두었고 한여름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이웃의 안면방해를 의식하여 이불속에서 손전등을 켠 채 밤샘연습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갑득의 극진한 가르침 아래서 거문고산조를 배우다가 당시 인사동에 처음 생긴 국악예고에 진학,학교에서 거문고를 가르치던 신쾌동을 만난 것이 한갑득의 노여움을 사게 됐으나 그로서는 학교의 스승을 피할 수가 없어 한동안 신쾌동 휘하에 머무는 시기를 거쳤다.신쾌동 또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는 가운데 특히 타고난 자질과 빼어난 기량을 보이는 김무길을 극진히 총애하여 후에 그의 뒤를 잇는 신쾌동거문고산조의 이수자가 되게 했다. 그러나 신쾌동의 가락이 웅건하고 남성적이며 짜임새가 완벽한 반면 한갑득류는 변화무쌍한 음색에 농현이 많고 연주법이 엄격하지 않아 그로서는 양스승을 모두 사사하고 싶은 생각에 한갑득스승 앞에 세번씩이나 무릎을 꿇고 빈끝에 어렵게 스승의 노여움을 풀었고 미처 배우지 못한 「산조」 한바탕중 자진모리부분을 10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익힌 일화를 지니고 있다. 혹독한 학습시기를 지나 호남일인일기대회와 아시아민속예술경연대회 특상으로 국악계의 시선을 모으는 기대주로 성장했으나 거문고만으로는 생계를 이을 수가 없어 70년대 초반 그는 대림산업소속으로 파이프배관공이 되어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된 적이 있고 1년만에 돌아와 이번엔 분식집이라도 내기 위해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던중 때마침 국립국악원의 교사직에 추천되어 다시 자신의 정도인 금선을고를 수 있게 되었다. 김무길은 거문고 전바탕을 연주하는 데 있어 어느 한 스승에 치우침이 없이 한번 신쾌동류를 연주하면 다음은 반드시 한갑득류를 연주한다.그의 연주는 선율이 단순하고 반복되는 음이 많으면서도 무기교의 기교로 왕유의 「이윽고 달이 빛을 안고 찾아오는 죽림」과 강희안의 「가는 음율 솔바람과 어울리는 녹기금의 멋」을 구사하여 점차로 절대음악에 눈떠갔다. 지난 91년 국립국악원 국악당에서 열린 「그동안의 독공을 자랑하고 대성을 위한 은비의 무대」를 보고 원로 성경린씨가 『웅건하고 청완한 가락을 성취하니 가위 명인반열』이라고 한 것은 국악인 최상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김무길의 예인으로서의 자세는 옛것을 지키고 현대화나 서구화를 극구 꺼리는 전통파의 한사람이다.그의 연주는 「일시에 피어나는 꽃의 미가 아닌 오랜 풍상을 겪은 고목의 미」이기 때문이다.성격 또한 거문고가락처럼 우직하고 담박하면서도 고집이 세고 옳은 일이 아닌 것에는 지조를 굽히지 않는다.가족은 박초월 판소리 「수궁가」의 계승자인남해성이수자로 인정받은 부인 박양덕과 딸 미선(중앙대 예대4년·거문고전공)이 그의 뒤를 잇고 있고 아들 성혁(추계예대)도 아쟁을 배우고 있다. 최근 새로 이사한 그의 반포동 집에는 스승 신쾌동·김윤덕·한갑득등에게 물려받은 명금들이 작은 바람소리에 소스라칠듯 문풍지를 울리는 가운데 그는 스승들의 유파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동살풀이」장단을 넣어서 만든 「김무길류 거문고산조」를 이루려는 연구에 전력하고 있다. 기쁨이나 슬픔·동경이나 이상에 구애되지 않고 들뜬 변화를 읽어낼 수도 없는 그의 가락은 당대 향산거사가 노래한 「비시무성승유성」,이른바 「소리 없는 것이 있을 때보다 더 유감하다」는 거문고의 정취와 정조를 얻어내었고 이제 애써 줄위의 음을 다루지 않아도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명률의 경지에서 「무하유의 이상향」을 거침없이 펼치려는 시기다. □연보 ▲1943년 서울출생 ▲1956년 한갑득거문고 사사 ▲1957년부터 신쾌동거문고 사사 ▲1962년 서울국악예고 졸업 ▲1963년 호남일인일기 경연대회 및 아시아민속예술경연대회 특상 ▲1966년부터 한갑득거문고 사사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신쾌동거문고산조 전수생 ▲1978년∼88년 국립국악원 수석 ▲1981년 신쾌동류 거문고산조 발표 ▲1982년 한갑득류 거문고산조 발표 ▲1983년 한갑득류 거문고산고 발표 ▲1985년 독일 백림음악제참가 공연 ▲1986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장원,중요무형문화제 제16호 거문고산조 신쾌동류 이수자지정,국립영화제작소 영화「거문고」출연 ▲1987년 신쾌동류 거문고산조 CD출반,신쾌동류 거문고산조 전바탕독주 ▲1990년 소련순회공연 ▲1991년부터 서울국악예고 및 중앙대출강,국립국악원 무형문화재정기공연 「김무길 거문고산조(신쾌동류)」발표 ▲1992년부터 한국국악협회이사,전북대·목원대출강,삼성문화재단초청 베트남 중국공연,국악원 일요·토요명인전 신쾌동류 및 한갑득류 거문고산조 전바탕독주회 ▲1996년 「한갑득류 거문고산조(75분)」「신쾌동류 거문고산조(60분)」전바탕CD출반(서울음반) KBS 국악대상(94년)
  • 국내 첫 「누드쇼」 시선 집중/누드모델협 출범기념… 전라로 연기

    ◎입장권 최고 30만원… 220여명 관람 국내 최초의 누드쇼가 28일 하오 7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이날 누드쇼는 취재진·사진작가·화가 등 2백여명과 객석위치에 따라 30만원·20만원·10만원짜리 표를 사서 들어온 일반유료관객 20여명 등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가운데 20여분동안 계속됐다. 한국누드모델협회(회장 하영은)가 창립기념식에 이어 2부순서로 펼친 이날 쇼는 소속 여성누드모델 7명이 몸이 비치는 얇은 천을 두르고 무대에 오른뒤 공연도중 천마저 벗어던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을 내보였으며 얼굴과 몸에 장미꽃이나 뱀 등을 현란하게 장식한 상태에서 음악에 맞춰 춤과 갖가지 포즈를 대담하게 연출하기도 했다. 주최측은 『누드모델로서 갖춰야 할 표정과 몸짓 등을 쇼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누드모델도 당당한 직업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 뇌물의 역사/존 T 누난 지음(화제의 책)

    ◎중세이후 뇌물의 유형·해악성 등 상세 소개 기원전 3천년경에도 있었다는 뇌물 수수행위의 역사를 미국 현직 판사의 입장에서 사례중심으로 다룬 연구서.저자는 엄격한 개신교적 관점에서 뇌물의 해악성을 광범위하게 지적한다. 특히 영국과 미국 역사의 경우 뇌물의 개념은 공직윤리 및 성윤리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강조한다.한 예로 헨리 제임스의 소설 「대사들」을 보면 공직윤리가 성윤리보다 한층 강조되고 있는데 이것은 미래의 미국사회를 정확하게 예측한 대목이라는 것.또 뇌물을 주고받는 것은 그 사회의 순결을 짓밟는 행위로 마치 배우자와의 서약을 무시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성적인 타락과 같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한 사회가 뇌물을 법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엄격히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전제하는 저자는 『뇌물에 관한 한 원흉은 아담도 이브도 뱀도 아닌 「사과」』라는 성서적 해석을 재치있게 원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원저는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뇌물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이번에 나온 번역서에서는 중세이후부터만다뤘다.도서출판 한세.이순영 옮김.9천원.〈김종면 기자〉
  • “애완동물 전담부서 신설하자”/윤신근 동물보호연구회장(발언대)

    ◎국내 애완동물 3백만마리… 시장규모 1천5백억/해외자본 시장잠식 막고 「동물학대국」 오명 벗어야 국내 애완동물수가 3백만마리를 넘어섰다.애완동물 동호인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엄청난 변화다.게다가 개나 새가 고작이던 애완동물의 종류 또한 무척 다양해졌다.요즈음엔 애완용 페릿에서 거북이 이구아나 뱀 등 별의별 동물들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이에따른 애완동물시장도 1년에 1천5백억원규모에 달한다.전문가들은 잠재시장만도 3천억원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일본의 경우 개 사료시장만도 1조원에 달한다.영국의 경우엔 애견관련업종 시장규모가 3조2천억원에 달해 1조2천억원인 육아시장보다 2조원이 더 많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지금부터 애완동물 시장을 조사하고 보호해야 한다.여기에는 물론 정부의 노력이 필수적이다.어떤 동물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 어디에 어느만큼 분포하고 있는지 조사하고 분석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하루빨리 애완동물을 담당할 전담 부서를 설치해야한다.현재 동물을 담당하는 부서는 농림수산부산하의 가축위생과가 전부다.이 과는 단지 소 말 등 산업용 동물들의 방역이나 검역 및 축산등을 관리한다.그러나 애견 등 애완동물 관련부서는 없다.굳이 따지자면 애견단체 등의 설립을 허락하는 축산과가 고작이다.하지만 축산과 역시 애완동물업계에 대해선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얼마전인가 서울 퇴계로 애완거리에 방역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당시 구청의 보건위생계와 서울시의 도시계,산업과 등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었다.모두 애완동물업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그러다 수의사를 담당하는 산업과가 책임을 떠맡긴 했지만 실로 씁쓸한 뒷맛이 아닐 수 없었다. 애완동물은 어느새 사회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외로운 노인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사춘기인 청소년들에겐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아준다.애완동물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커지고 있다.특히 국제화·세계화시대를 맞아 물밀듯 밀려오는 외국자본들로부터 한국의 애완동물업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자료는꼭 필요하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등 우리와 경쟁을 하고 있는 신흥 경제국들조차 애완동물업계에 대한 정보를 갖고 선진국들의 동물보호 외압(?)에 대항하고 있다.또 이 자료를 바탕으로 동물정책에 유독 민감한 선진국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에비해 한국은 어떤가.「보신탕나라」라는 오명속에서 「동물학대국」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이때 이같은 엄청난 자료를 이들 선진국들에게 보여주며 『우리도 이만큼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어떨까. 일본의 경우는 수의사는 물론 애완동물을 돕는 정부부처가 3∼4개에 달한다.후생성 농림성은 물론 청소년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문부성까지도 애완동물업계를 지원한다.사회가 발전하고 선진화될수록 애완동물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도 높아질 것이다.그래서 우리도 체계적인 애완동물에 관한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 추락 미기 첫 시신 발견/한인교포 1명 탑승 확인/동체위치 파악

    【워싱턴·마이애미 AFP AP 연합】 미국 마이애미 인근 늪지대에 추락한 미 벨류젯항공사 소속 DC­9 사고 여객기 잔해에서 처음으로 시신이 발견됐다고 마이애미 WSVN TV 방송이 13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구조팀들이 12일 밤 수색 작업을 중단하기 직전 시신들의 일부를 발견했다고 전했으나 아직 이와 관련한 공식적 확인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 교통안전위원회(NTSB)의 로버트 프랜시스 부의장은 해군 구조 전문인력과 함께 13일 재개된 잔해 수색작업과 관련,『악어와 뱀이 우글거리고 진흙과 물로 가득찬 이 늪지대에서 사고기를 발견해낼 방법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일부 늪지대에서 물을 빼거나 제방을 사고 현장에까지 늘리는 방안이 현재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프랜시스 부의장은 12일 늪지대에서 DC­9 제트기 엔진과 잔해 일부를 찾았다고 밝혔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막대기 작업을 벌인 수색팀들의 말을 인용,폭 6∼9m,길이 18∼21m에 이르는 비행기 동체 부분의 위치를 파악했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외무부 “30대 여 김이선씨” 한편 외무부는 13일 사고 여객기 탑승객가운데 재미교포 김이선씨(여·36·캔자스주 거주)로 파악된 한국인 1명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란 다하여라”(박갑천 칼럼)

    옛날에는 시묘풍습이 있었다.어버이가 돌아가면 상주가 묘서쪽에 여막을 짓고 3년동안 모셨던 일이다.윤국형의「문소만록」에는 고려말 정몽주가 한이후 조선조로 와서도 효심 깊은 사람들이 본받았다고 써놓고 있다.시묘하는 효성에는 호랑이가 감동한다는 설화도 적잖다.상주와 친구가 돼주면서 등에 태워 심부름도 가고 기운 잃지않게 산짐승을 잡아다 바치기도 한다. 설사 시묘는 않더라도 부모상을 당하면 3년동안 검소하게 살아야 했다.먹는 것도 죽 뿐이니 애통함과 영양부족으로 죽는 경우도 생겼다.유몽인의 「어우야담」에 그런 얘기들이 적혀있다.영의정을 지낸 홍섬도 그런사람.그는 어머니가 아흔이 되자 돌아갈날에 대비하여 미리부터 먹는 것이 가년스러워졌다.3년상을 치르자 이내 죽는다. 유극신도 그렇게 죽고 필자 유몽인의 생질인 최은도 어머니 여의고서 비실비실 죽는다.그걸 해망쩍다고 탓할 일이겠는가.그래서 정승지낸 정광필이『우리집은 효자를 원치 않노라』고 말함으로써 성현한테 죄를 지었다는 비난도 일었던 모양이다.하지만 이 얘기를 소개하는 유몽인은 『부모된자 이 말이 없지못하리라』면서 정광필을 편들어주고 있다. 「지나친형식」이라는 시비가 따를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효의시절이 있었다.이색도 그의「목은집」에서 휴가(상을 치르게하면서 조정이 주는 말미)가 끝나자마자 바로 『공무를 보았다』고 자탄하고 있는데 하물며 오늘날 부모상 때문에 공무를 오랫동안 젖혀둘수 있겠는가.다만 시묘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까닭은 효의 정신이 희미해져 있는 오늘을 되돌아 보자는데 그뜻이 있을 뿐이다.공원묘지의 어버이 누운자리를 묻고선 가보지 않았다는 얘기도 듣는 세태 아닌가. 「효경」에는 오형의 종류는 3천가지이지만 그죄에 있어서는 불효보다 더 큰게 없다고 써놓고 있다.「부모은중경」은 그「큰죄」에 대한 징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아비무간지옥에서 무쇠뱀과 구리개에 의해 받는 고통등등….그건 믿거나 말거나로 친다더라도 효를 그렇게 공리적 눈길로 볼일은 물론 아니다. 8일은 어버이날.카네이션 달아드리는 날이 아니라 3백65일이 이날 같아야 한다는 뜻을 갖는 날이다.『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란 다하여라/지나간후면 애닯다 어이하리/평생에 고쳐 못할일이 이뿐인가 하노라』­송강정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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