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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절 49돌 기념행사/“재미있고 다채롭게”/범국민 축제로 유도

    ◎인기 체육·연예인 경축식 초청/특별 문화행사 다양하게 준비/글짓기·그림그리기·웅변대회도 열기로 올해 제49주년 광복절 행사는 되도록 많은 국민이 참여하고 관심을 갖도록 하자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정부는 광복 5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한해 내내 국가적 행사를 벌일 계획을 짜고 있다.올해는 그에 앞서 국민들의 관심을 고조시킬 필요가 있어 광복절 행사를 다채롭게 가지기로 한 것이다. 가장 특색있는 것은 15일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거행되는 경축식이다.경축식이라면 흔히 딱딱하고 의례적이라는 인상을 준다.올해는 거기에서 탈피,재미있게 행사를 꾸며 되도록 많은 시민이 TV를 통해서도 시청하게끔 유도한다는 방침이다.예년과 달리 일반인 5백명에게도 초청장을 발송,전체 참석규모를 1천6백명으로 늘렸다. 경축식이 재미있으려면 역시 참석인사가 일반의 눈길을 끌어야 된다.이번에는 인기 체육인·연예인이 대거 경축식에 초청되었다.마라톤 영웅인 손기정옹과 황영조선수를 비롯,현정화(탁구)전병관(역도)김수령(양궁)선동렬 장종훈(야구)홍명보(축구)씨 등이 체육계 대표로 참석한다.연예계 인사로는 안성기 이덕화 강수연(영화배우)박인수 오현명(성악가)이미자 최희준(가수)박동진 성창순(국악인)김을동 박규채(탤런트)구봉서(희극인)씨 등이 포함되어 있다. 경축식장 분위기도 전통을 살려 새로 꾸미기로 했다.전통복식의 의장대(62명)와 취타대(37명)를 식장 주변에 배치해 경축분위기를 북돋울 계획이다.의장기도 황룡 백호 현무 주작 청룡을 나타내는 5방기와 12간지 가운데 상서로운 6가지 동물을 상징화한 6정기를 식장 좌우에 도열시키기로 했다. 광복절 경축식말고도 갖가지 문화행사를 다양하게 준비되고 있다.KBS의 「열린 음악회」 프로그램을 광복절 특집으로 꾸며 8·15전야에 방영한다.또 광복절을 전후해 전국에서 태극기와 무궁화 및 애국가를 소재로한 글짓기와 그림그리기·웅변대회를 연다.덕수궁 청소년음악제(20일)국립 중앙극장광장 판소리마당(20일)도 계획되고 있다.전국 주요 시·도청 앞에 홍보탑도 세웠다. 창덕궁을 제외한 고궁및 능원이 14∼16일 국민에게 무료로개방된다.광복회원들에게는 철도 버스의 무임승차와 국립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의 무료입장 혜택이 주어진다.
  • 격조높은 증화(백제를 다시본다:23)

    ◎세련된 색조의 능산리고분 사신도/청룡·백호상 역동적… 동양사상 펼쳐/무령왕릉 왕비목침 장식화도 걸작/공주 송산리 고분벽화는 초기수준… 고구려 벽화와 비슷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지상에 드러난 백제의 회화를 만날 길이 없다.다만 여러 장르의 고분미술을 통해 백제회화의 잔영을 들여다 보아야만 했다.고분미술에서 회화를 찾자면 이른바 고분벽화가 가장 큰 캔버스의 그림일 것이다. 고분벽화는 주검을 거두어들인 무덤 속 널방(현실)의 벽면과 천장에다 그렸다.백제의 벽화고분은 웅진시대의 충남 공주시 송산리 6호분과 사비시대의 부여읍 능산리 벽화고분이 유명하다.웅진시대 중기의 송산리6호분 벽화가 지극히 간략한 필치의 회화라면,사비시대 후기의 능산리 고분벽화는 원숙하고 세련된 필치로 색조를 자유로이 구사한 본격적 회화라 할 수 있다. ○회화유물 극히 적어 그래서 이들 2기의 고분 속에 그린 벽화는 뚜렷이 구분된다.시대적으로 앞뒤의 관계가 있는 이들 고분벽화 가운데 좀 늦은시기의 부여 능산리 고분의 그림을 먼저 살펴보면 한마디로 격조 높은 백제적 회화다.캔버스로 보아도 무리가 없는 이 고분의 벽면은 물갈음한 화강암(천장과 서벽)과 편마암(동벽과 북벽)으로 되어있다.물론 거대한 널돌(판석)인데,벽면에 직접 사신도를 그렸다.그리고 천장에는 연화문과 비운문을 형상화했다. 동벽 중앙의 청용은 살아서 꿈틀대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S자형으로 용틀임을 한 몸통과 딱 벌린 입에서는 혀가 길게 나와 사뭇 역동적이다.그리고 한껏 벌린 다리가 위로 치켜든 꼬리와 함께 생동감을 안겨준다.상상의 동물 용을 그토록 실감나게 표현한 백제인들의 솜씨가 놀랍거니와 동양적 심성을 활짝 열어보인 풍부한 사고력 또한 높이 사고싶다. 서벽에 그린 백호는 머리를 위로 쳐든채 꼬리는 한껏 굽혀서 역시 위로 뻗치고 있다.눈에다가는 붉은 칠을 해서 튕겨나올듯 부릅떴다.그리고 입 언저리로 길게 내민 혀,가슴에 돋친 비운문이 어울려 백호의 위엄은 대단하다.널방에 침범할 수도 있는 사기를 얼씬도 못하게 미리 쫓아버리려는 형상이다.그러나 널방에 스며든 습기로 인해 백호의 몸통 아래쪽이 빛바래버린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백호 허리 윗부분 공벽에는 원을 그려넣고 10개의 작은 반원을 같은 간격으로 돌려놓았다.원 내부에는 두꺼비를 배치,월상을 표현했다.또 백호를 그릴 때 남겨둔 머리와 꼬리부분의 공벽은 비운문으로 채워 백호의 동작이 더욱 날쌔보인다.특히 백호도의 월상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형상이기도 한 것이다. 남벽의 주작도는 널방 입구,다시 말하면 널방문 위에 그렸다.주작 주위에는 인동문을 배치했다.벽을 살피다가 북벽을 향해 돌아서면 이를 어쩌나,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든다.그 이유는 북벽에 남아 있어야할 현무도가 지워져있기 때문이다.세월이 그만큼이나 흘렀는데 흔적이 뚜렷하길 바라는 마음이 욕심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애석한 심사를 금할 길이 없는 것이다. ○현무도는 지워져 다행히도 천장화가 비교적 잘 남아 한숨을 돌리게 된다.연화문을 그리고 사이사이와 주변에 하늘을 표상하는 비운문을 박았다.연화문은 꽃술 가운데 주문을 장식했는데,연꽃술은 8잎으로 되어있다.연화문은모두 7개로,이 가운데 3개는 남북을 잇는 1줄에 가지런히 배치한데 이어 4개는 좌우에 각각 2개씩 그려넣었다.연꽃을 그리는데 사용한 색깔은 분홍색,갈색,황색,검은색이다. 공주 송산리 6호분은 그림을 그려넣은 벽면부터가 부여 능산리 벽화고분과 다르다.능산리 벽화고분의 벽이 물갈음한 넓은 널돌인데 비해 송산리 6호분은 널방의 4면벽을 문양벽돌로 쌓은뒤 그림을 그릴 부분만 진흙을 발랐다.그리고 나서 호분(조개껍데기를 구워서 만든 안료의 일종인 백색분)으로 벽화를 그렸다.뒷날 사비시대 고분벽화처럼 사신도를 그렸다. 송산리 6호분의 벽화는 널방 동벽에 청룡,서벽에 백호,북벽에 현무,남벽 입구 위쪽 벽에는 주작과 일월상을 그리는 형식을 취했다.청룡도는 머리에 뿔 2개가 달린 쌍각청용이다.허공을 뛰어달리는 용의 자세로 짐작된다.백호도는 백묘기법을 써서 그렸음에도 패기찬 자태가 잘 표출되고 있다.왼쪽 앞다리는 올리고 뒷다리를 전후로 벌려 달리는 모습을 했다. 이러한 백호도는 회화기법은 다르나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나온다.고구려벽화의 백호는 몸체가 가늘고 긴데 비해 백제의 것은 비교적 굵은 편이다.현무도는 퇴색되어 뱀과 거북이 얽힌 흔적을 찾기가 힘들지만 주작은 형태를 알아볼 만큼은 남아있다.두 날개를 위로 힘껏 펼친 주작이 꼬리털을 날리면서 막 비상하려는 자태를 하고 있다.그 주작의 양쪽에는 흰색으로 그린 동심원이 배치되었다. 백제의 회화에서 고분벽화는 분명한 대작이다.그렇다면 무덤에 넣은 껴묻거리(부장품)의 장식화들은 소품에 해당하는 백제의 회화일 것이다.사비시대에 축조된 도성 이웃의 지배자무덤들은 일찍 모두 내부가 파괴되어 장식화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웅진시대 무덤의 사정은 다르다.지난 1971년 당시 세기적 발견으로 평가되었던 공주 무령왕릉 출토유물의 장식화들은 백제미술의 백미를 이룬다. 무령왕릉 출토 왕비의 나무베개(목제두침),장식화와 나무발걸이(목제족좌) 장식문양은 걸작이다.나무베개 장식화는 베개의 나무 표면에 주칠을 하고,우선 금박으로 거북등문양(구갑문)을 넣었다.그 거북등문양 안에는 흰색·붉은색·검은색깔·금니등으로 세필의 비천상·주작·어용·연화문을 그렸다.특히 비천상의 경우 천의를 날리면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했고 주작은 두 날개를 부채꼴로 펼치면서 긴 꼬리를 번쩍 들어올렸다. ○백묘기법으로 그려 어룡은 먹선과 금니를 함께 사용해 그렸다.가는 먹선으로 윤곽을 긋고 몸뚱이와 꼬리는 금니로 처리했다.전체적으로 V자형을 이룬 이 나무베개의 어룡은 바다속에서 헤엄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백제회화유물이 아주 극소수인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 무령왕릉출토 나무베개의 그림들은 귀중한 회화자료가 될 것이다. 무령왕릉의 나무발걸이에 나타난 장식문에서는 비운문이 단연 으뜸이다.역시 주칠을 한 발걸이 표면에는 금박띠를 돌리고 그 안에다 좌우대칭의 먹선 비운문을 그렸다.비운문은 바람을 타고 하늘에 두둥실 떠 있다.요즘으로 말하면 디자인에 가까운 장식문양임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독특한 회화성을 지녔다.그 온화한 필치의 백제회화를 흔히 만날 수 없게 굴러가버린 역사의 수레바퀴가 비정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그래서 백제미술을 대하면 늘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사신도/동 청령­서 백호­남 주작­북 현무/방위신 표현… 중앙의 황룡은 거의 생략 고분속의 벽화 사신도는 널방(현실)의 4방벽면에 청룡·백호·주작·현무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이 사신도는 방위신을 표현한 것이다.방위신에는 본래 청룡·백호·주작·황룡 이외에 황룡을 포함해서 오신수가 있는데 벽화에서는 황룡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신격의 짐승(신수)은 음양오행설및 이십팔숙법과 관련되었다.28개 별자리를 중앙·동·서·남·북의 다섯 방향에 따라 나누고 그 별자리의 모양을 따서 환상적인 신수를 만들었다.그리고 신수를 숭배했다.방위신은 방위에 따라 빛깔과 형태를 달리한다.이를테면 중앙에는 황룡,동쪽에는 청룡,서쪽에는 백호,남쪽에는 주작,북쪽에는 뱀과 거북이 뒤엉킨 현무를 배치했다.또 천장에는 상서로운 동물들과 해·달·별·꽃 등을 그려넣었다. 일부 고분의 벽화에는 사신도를 각 벽면의 중앙에 배치하고 나머지 공백은 산수화·구름무늬·연꽃무늬·당초무늬와 인동무늬·불꽃무늬로 채웠다.그래서 마치 사신도가 여러 장식무늬 바탕 위에 그린 것처럼 착각되기도 한다.그러나 사신도는 어디까지나 사신이 주제가 된 것이다.충남 공주시 송산리 6호분의 벽화는 중앙에 사신만을 그려 대체로 고구려 고분벽화를 연상시킨다.부여 능산리 고분은 4방벽에 사신도,천장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를 그렸다. 벽화는 널돌(판석)로 널방벽을 축조할 경우 직접 돌벽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회를 바른 다음 벽면에 그렸다.그림을 그릴 때는 묵선으로 밑그림을 먼저 쳤다.더러는 밑그림이 없이 곧바로 색깔을 써서 그리는 백묘법을 사용하기도 했다.백제 벽화고분에서 널방벽 널돌에 회칠을 하지 않고 직접 그림을 그린 경우는 사비시대에 축조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벽화고분이다.그리고 앞서 웅진시대에 축조한 공주시 송산리 6호분은 백묘법으로 그린 고분벽화라 할 수 있다. 백제 벽화고분 속의 사신도는 형상의 특징을 잘 잡아내어 자유롭고 박력있게 표현한 고대회화로 결론지어도 좋을 것이다.
  • 작곡가 이봉조 추모앨범 발매/「안개」·「무인도」 등 인기곡 수록

    87년 타계한 작곡가 이봉조씨의 추모앨범이 킹 레코드사에서 제작,최근 발매됐다. 「어제처럼 오늘도,오늘처럼 내일도」란 타이틀의 이 앨범은 이씨의 음악적 업적을 널리 알린다는 취지로 지난 91년 설립된 「B·J 음악재단」(이사장 현미)이 그동안 열린 행사들을 하나로 모은 것. 이번 추모음반은 주로 그의 전성기에 만든 노래들을 원곡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에 맞게 편곡해 싣고 있다.현미를 포함해 최희준 패티김 김준 정훈희 임희숙 최백호 인순이 이문세 등 신구세대 가수가 참여해 「안개」를 비롯,「떠날 때는 말없이」 「무인도」 「꽃밭에서」「웃는 얼굴 다정해도」등 이씨가 작곡한 노래들을 불렀다. 수록곡 중 유일하게 이씨의 작품이 아닌 타이틀곡 「어제처럼 오늘도,오늘처럼 내일도」(김준 작사 김명수 작곡)는 참여가수 모두가 함께 불렀다. 32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이봉조씨는 63년 「밤안개」로 가요계에 데뷔,87년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까지 작곡가이자 색소폰 연주자로 명성을 떨쳤다.5개 국제가요제 수상경력이 있을만큼해외에서 인정받는 몇 안되는 국내 음악인중 한사람이었으나 전성기인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한데다 지병까지 악화돼 별세 직전까지 활동을 중단했었다.
  • 묘제의 특징(백제를 다시본다:22)

    ◎부여지역선 굴식돌방무덤이 주류/석실바닥 장방형… 삼국중 가장 발달/아치형 널방·물갈음한 널동 등 독특/토착묘제인 독무덤도 능산리·중정리일대 다소 분포 우리는 옛 무덤을 가리켜 고분이라고 부른다.그러나 고고학에서는 옛 무덤이라고 해서 모두 고분의 개념을 부여하지 않는다.역사적이나 고고학적으로 자료가 될 수 있는 무덤을 고분으로 파악하고 있다.또 고분은 시대에 따라 여러가지 양식으로 만들어지는데 그 무덤의 축조방식을 묘제라 일컫는 것이다.삼국시대의 무덤,특히 지배계급으로서의 실력자들의 무덤은 도읍지를 중심으로 축조된다.그것도 언덕처럼 생긴 거대한 분구를 이룬 무덤들이 떼로 만들어지고,돌널(석곽)이나 돌방(석실)등의 내부구조를 갖추었다.또 거기에는 껴묻거리(부장품)를 넣어 무덤의 주인공이 지배층이었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 백제시대의 고분 역시 도읍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그리고 지역과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백제의 고분 변천은 크게 전기(AD2세기∼475년)한성(서울)시대,중기(AD475∼538년)웅진(공주)시대,후기(AD538∼660년)사자(부여)시대로 구분한다.전·중기를 거쳐 사비시대에 이르면 잘 정비된 무덤이 영조되어 백제고분문화의 진수를 오늘날까지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고분 내부구조 다양 사비시대 고분들은 다양한 묘제를 가지고 출현했다.널무덤(토광묘)을 비롯,독무덤(옹관묘),화장무덤,구덩식돌널무덤(횡혈식석실분)등이 그것이다.이 가운데 백제후기 사비시대 도읍지였던 부여지역에서는 굴식돌방무덤이 특히 주류를 이루었다.그리고 백제불교의 일본전파를 뚜렷이 입증하는 화장무덤과 더불어 여러점의 뼈그릇(장골용기)도 남겨놓고 있다. 사비시대의 굴식돌방무덤은 언덕 위나 언덕 비탈,언덕 앞자락을 입지로 잡아 축조했다.또 산기슭이 부채꼴로 펼쳐진 지세를 이용한 흔적도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부여 능산리 고분군의 경우 지형을 살펴보면 북쪽에 높은 산이 있고 앞쪽에 해당하는 남쪽에는 평지가 있다.그리고는 서쪽에는 나성이위치한 언덕이 뻗쳐있고 동쪽에는 이에 상응하는 언덕이 자리잡았다.외형이 반구형인 언덕으로 서상총,동상총,동하총등의 왕급 무덤들이 축조되었다. 이들 능산리 굴식돌방무덤은 내부구조는 신라·가야의 고분보다 다양하다.굴식돌방무덤은 고구려를 필두로 신라·가야에서도 일찍부터 나타나지만 5세기중엽 백제지역에서 가장 다양하게 변화하고 발전한다.고구려와 가야의 굴식돌방무덤의 기본평면이 방형이라면 백제의 굴식돌방무덤은 장방형으로 발전하는 것이다.또 돌방무덤을 만드는데 사용한 석재,벽면의 구성및 천장형태,널길(선도)의 위치 등도 백제적 특징을 지니고 나타난다. 백제 굴식돌방무덤들은 몇가지 형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그 하나의 예가 주검을 안치한 널방(현실)의 평면이 장방형을 이룬 가운데 사방의 벽을 돌멩이와 막돌을 포개 안쪽으로 기울게 쌓은 형식이다.이 때에 천장은 큰 널돌(판석)4∼5장을 덮어 마감하고 널길은 남벽 동쪽으로 치우쳐 터놓았다.이 형식의 대표적 고분유적으로 부여 능산리 할석총이 있다. ○고구려·가야식 탈피 그 다음 형식은 널방의 평면은 역시 장방형이지만 사방의 벽을 다듬은 돌이나 물갈음한 큰 널돌을 가지고 축조한 굴식돌방무덤이다.이 형식의 굴식돌방무덤 천장은 대개 양쪽 끝이 경사지거나 평평한 평천장을 이룬다.또 천장이 반원통을 이룬 경우도 있다.널방 바닥에는 1∼2개의 널받침(관대)을 마련했다.널길은 남벽 좌우 한쪽에 치우친 것과 중앙에 위치한 예가 있는데 널길 입구에는 돌문(석비)시설을 갖추었다. 이같이 다듬거나 물갈음한 널돌을 사용한 굴식돌방무덤으로는 능산리 제3호분,능산리 벽화고분,능산리 중하총이 꼽힌다.이들 고분은 저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능산리 서하총의 경우 널방의 동·서벽은 잘 다듬어진 큰 널돌을 각각 4장씩 맞물려 세우면서 북벽은 위아래로 2장을,남벽은 널길문 위에 1장을 세워놓았다.천장은 동서벽 위에 1단의 고임돌을 안쪽으로 기울어지게 놓고 널돌 4장을 가로질러 마감시켰다. 능산리 벽화고분은 널방의 사방벽면과 천장을 1장짜리 화강암·편마암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그 거대한 판돌을 물갈음한 뒤에 세우고 나서 그림을 그렸다.벽면에다는 사신도,천장에다는 비운과 연화도를 그려넣은 이 벽화고분 바닥에는 장방형 벽돌을 깔았다.벽돌을 가지고 널받침도 만들었다.한마디로 죽음의 세계를 화려하게 가꾸어준 고분이라 할 수 있다. 주검의 집을 멋을 부려 축조한 또 다른 예는 능산리 중하총에서도 찾아진다.널방의 4면벽을 벽돌모양으로 가지런히 다듬은 돌로 쌓았다.그 공인들 오죽했으랴,하는 마음이 든다.동서벽에 해당하는 긴벽을 쌓으면서도 예사롭게 처리하지 않고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점점 오그라뜨렸다.그래서 널길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면 아치형 널방을 만나는 것이다.널방 바닥에는 방형의 널돌을 바둑판처럼 깔고 석회를 발랐다. 이 가운데 능산리 벽화고분과 중하총은 사비시대 백제고분의 백미다.삼국시대에 백제고분에서만 볼 수 있는 수준높은 건축기술의 산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백제시대 고분을 통틀어보면 삼국 어느 나라에 비해 다양하게 변화하였고 백제적인 독자성을 끊임없이 추구했다.전기 한성시대에는 고구려적 요소의 돌묻이무덤(적석총)과 봉토분을 차용했으나 이를 곧 탈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따라서 중기웅진시대에는 돌묻이무덤 대신에 분구의 외형이 반원형을 닮은 가장 백제적인 봉토분이 출현하는 것이다. ○벽화고분 등 백미 우리는 지금까지 사비시대를 중심으로 그 이전 한성과 웅진시대의 고분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그러나 백제강역의 토착묘제로서의 독무덤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는 독무덤을 기술할 차례가 되었다.광복을 맞기 직전에 왕급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산리 고분군이 있는 이웃에서 60∼90㎝가량의 구덩을 파고 묻은 독널(옹관)들이 발견되었다. 이밖에 부여 중정리에서는 부식된 암반 중심부에 지름과 깊이가 각각 30㎝정도인 구덩을 파고 안에 뼈단지를 묻은 다음 돌로 덮은 뼈단지무덤도 발견되었다.부여 염창리에서도 비슷한 뼈단지가 출토되는 등 사비시대 도성 언저리의 여러 독무덤 존재는 흥미를 끄는 무덤유적이기도 하다. 어떻든 고분은 후세 사람들에게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많은 자료를 던져준다.당시의 사상으로부터 문화와 예술,때로는 결정적 역사기록까지도 제시하고 있다.특히 제사유적설이 있는 김동용봉봉래산향로 출토지점 바로 옆이 능산리 고분군이고 보면,두 유적은 같은 역사와 맞물려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능산리고분/모두 7기로 왕급 무덤 추정/백제 굴식돌방무덤의 대표적 유적 백제 전시대에 걸쳐 백제문화요소를 가장 많이 함축한 고분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고분군이다.부여읍에서 논산가는 길을 따라 동쪽으로 3㎞ 떨어진 해발 1백21m의 능산리산 남쪽 경사면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고분군은 3기씩 앞뒤로 2열을 이루고,맨 뒤에 1기가 더 있다. 왕릉으로 전해지는 이 고분군이 학계에 알려진 것은 1915년 일인학자 구로이타(흑판승미)가 2호(중하총)와 3호(서하총)를 조사하고부터다.이어 1917년 야스이(곡정제일)가 1호 (동하총)와 4호(서상총),6호(동상총)를 각각 발굴조사했다.이 가운데 1호분에는 사신도 벽화가 그려져 유명한 고분으로 떠올랐다. 이 고분군이 들어앉은 자리와 주변지세는 명당으로 알려졌다.동쪽에 청룡,서쪽에는 백호에 해당하는 능선이 튀어나왔다.또 앞으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냇물과함께 더 멀리에는 주작으로 풀이될 수 있는 안산이 솟았다.그 너머로는 백마강이 흐르니,풍수지리적으로 입지조건을 잘 갖춘 형국이라 할 수 있다. 발굴 당시 이미 도굴되어 부장품은 거의 없었다.단지 도굴자들이 내팽개친 몇점의 유물만이 수습되었을 뿐이다.5호분 널받침 위에서 칠목관조각,금동맞새김장식,금동꽃모양장식이 나왔다.그리고 2호분에서는 칠기조각,여러점의 금동못 등이 나와 사비시대 백제의 공예술이 상당한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짐작케했다. 이 고분의 축조연대는 2호분이 6세기 중엽,1호분이 7세기 전후,3·4호분은 7세기 이후로 편년되었다.이들 고분을 통해 본 사비시대의 문화상은 외래문화를 백제화한 본격적인 백제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한성시대의 고구려 문화 영향기나,웅진시대의 중국 남조문화수입기와는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 궁궐:6(서울 6백년 만상:43)

    ◎창경궁/1909년 행락장소로 전락/일제,전각 60여채 헐고 동·식물원지어/창경원으로 개명… 6·25거치며 황폐화 융희 원년(1907년).순종황제가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하면서 창경궁은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일제는 이듬해부터 「창덕궁 전하」로 전락한 순종의 마음을 달래준다는 명목으로 창덕궁에 인접해 있는 창경궁의 전각들을 헐어내고 곰과 호랑이·공작등 각종 동물과 조류를 모아 동물사를 만들었다. 이때 일제가 헐어버린 전각은 무려 60여채로 옛 근농장터에는 못을 파서 춘당지라는 연못을 만들었고 연못 북쪽에 일본식 수정을 지었으며 근처에 식물원과 박물관을 세워 궁궐의 위엄은 찾을 길이 없었다. 일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조가 자신의 생모이자 사도세자 빈인 혜경궁홍씨를 위해 지어준 자경전을 헐고 이곳에 일본식 빨간 벽돌건물을 지어 「이왕가박물관」이라고 이름지었다.이 건물은 1937년 덕수궁에 총독부박물관이 건립되면서 전시된 유물을 옮기고 장서각이란 이름을 얻었다.이후 창경궁 복원이 이뤄진 최근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다 지난 92년 빗발치는 여론에 밀려 철거되는 운명을 맞는다. 일제가 얼마나 조선의 민족정기를 끊는데 혈안이 돼있었느냐하는 것은 풍수사상으로 볼때 장서각은 좌청용,식물원은 우백호의 자리인데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창경원은 1909년 11월1일 순종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한 개원식을 갖고 일반에 공개됐다.처음엔 창덕궁의 동쪽에 있다고해 「동원」이라고 불렀으나 얼마뒤에 창경궁의 위치를 나타내는 「창경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7만평규모로 동양최대였던 창경원이 일반에 공개되자 장안은 온통 술렁거렸다.서민들에게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온갖 진귀한 동물과 식물을 구경한다는 것 말고도 임금이 사는 궁궐에 들어갈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매력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신문은 창경원을 『청량리밖과 노들강변,우이동이 놀기는 좋아도 피곤한 몸을 쉬기엔 창경원이 제일이다』고 적은뒤 몰려드는 인파가 『구름같다』고 표현하고 있다.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었지만 현실이 그랬다. 봄이면 서울시민들의 시속(시속)으로까지자리매김했던 「야사쿠라」(밤벚꽃 놀이)의 시작은 1924년부터인 것으로 전해진다.서울인구가 28만명에 불과했던 시절 하루저녁 밤벚꽃 놀이를 즐긴 시민이 전체의 1할이 넘는 3만명으로 기록됐다.예나 지금이나 행락객의 수를 높여잡는 것이 언론의 속성이긴 하지만 많은 숫자임에는 틀림없다. 서울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잡은 창경원에 어느날 동물들의 신음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패망직전의 일제는 1944년 미군이 창경원을 공습하면 맹수들이 우리를 뛰쳐나와 시민들을 해칠것이라는 그럴듯한 구실을 붙인뒤 독극물을 먹여 호랑이·사자·곰·표범등 수많은 동물들을 죽인 것이다. 조선조의 몰락과 거의 동시에 태어난 창경원은 일제의 패망과 6·25를 거치며 완전히 황폐화됐다. 1954년 김태선서울시장을 중심으로 「창경원 재건위원회」가 구성됐다.그리고 이듬해 4월6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창경원은 다시 개원됐다.이때 동물가족수는 1백여종 5백여마리로 시민들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 “세계적 희귀종” 백호 탄생/용인자연농원서… 4㎏짜리 암컷

    흰색바탕에 검은 줄무늬,창백하고 푸른색 코등 신비한 모습의 영물로 알려진 세계적인 희귀종 백호 1마리가 탄생,화제가 되고 있다. 용인자연농원은 22일 미국산 5살 동갑내기 백호인 설호와 설후사이에서 지난 5월11일 백호 2세「피스」양이 태어나 현재 체중 4㎏의 건강한 상태라고 밝혔다. 「피스」(평화)라고 이름지어진 이 아기백호는 현재 「양모」인 사육사 이양규씨(25)에 의해 인공포육실에서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사육되고 있다.이는 고양이과 맹수들이 습성상 또는 급격한 환경변화등으로 새끼를 물어 죽이는 사례가 많아 이를 예방하기위한 조치이다.
  • 북 벌목공 5명 서울 왔다/시베리아서 탈주/합법절차 거친 첫 귀순

    ◎“자유·인권중시 외교 계속”/정부 시베리아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벌목공 5명이 제3국을 거쳐 18일 하오 김포공항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시베리아벌목공의 귀순을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공식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기호외무부대변인은 이날 발표문을 통해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일하다 독립국가연합 지역으로 탈주한 북한 벌목공 최청남 김동운 김승철 백호철 원유진씨등 5명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이날 하오 서울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장대변인은 『정부는 시베리아벌목장을 탈출한 이들이 자유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귀순을 희망함에 따라 인도적 차원에서 귀순을 허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자유와 인권중시의 신외교를 실천해 나간다는 문민정부의 강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면서 『정부는 앞으로도 이같은 입장을 계속 견지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대변인은 그러나 『이들의 신변안전문제와 보안유지를 희망하는 관련국의 입장을 고려해 이름 이외에 귀순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김포공항에 도착한 벌목공들은 공식환영행사나 기자회견 없이 간단한 입국절차를 마친뒤 바로 정부당국자들과 함께 공항을 떠났다. 귀순자들은 곧 직업훈련기관에 위탁돼 사회적응을 위한 직업훈련을 받게될 것이며 귀순북한동포보호법에 따른 정착금을 지원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 「받들어 칼」 의장대(청와대)

    「받들어 칼!」이란 독특한 의전관행이 청와대에 있다.관행이라 해봐야 역사가 3년도 안되긴 했다.그러나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외교의전인데다 양식의 독특함으로 해서 국제외교가의 화제행사가 됐다. 어느나라나 임지에 부임한 대사들은 그나라 국가원수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게 마련이다.본국에서 받아 온 신임장을 주재국 원수에게 전달하는 행사다.대사들에게 있어 신임장 제정은 주재국에서의 첫번째 공식행사이자 그나라 원수와 대면하는 첫 기회가 되고 있다.그만큼 대사들에겐 의미있는 행사다.이 행사에서 대사들은 전통의장대를 사열하면서 「받들어 칼!」이란 경례의 특이한 감동을 받고 있는 것이다. 30명의 국방부 전통의장대는 청와대 본관 현관입구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의 10m 거리에 양쪽으로 도열한다.조선시대의 포도청 군사복장에 왼손에 긴칼을 쥐고 있다. 신임장을 제정할 대사가 차에서 내려 현관에 들어서면 의장대장(장창구소령)의 「받들어 칼!」이란 구령이 떨어진다.의장병들은 허리를 15도쯤 구부리면서 두손으로칼을 받들어 순한국식 경의를 표시한다.「받들어 칼!」 경례를 받으면서 대사들은 온몸을 훑는 짜릿함을 맛본다고 한다. 전통의장대는 청와대를 방문하는 국빈들에게 서울이 도쿄나 워싱턴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진 고도임을 실감하게 해준다. 청와대 앞뜰에서 열리는 국빈환영행사 때 국빈은 육·해·공군 의장대에 이어 전통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덤덤하게 「받들어 총!」 경례를 받으며 걸음을 옮기던 국빈들도 전통의장대 앞에 이르면 묘한 긴장을 느낀다고 한다.오색찬란한 5방6정기 22기가 「받들어 칼!」 구령과 함께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국군국악대(대장 김호석소령)의 대취타조가 「무령지곡」을 연주하면 「원더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는 것이다.「무령지곡」은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고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중한 음악.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찬가에 해당한다. 현대도시 서울만 생각하고 있던 국빈들도 「무령지곡」과 「받들어 칼!」 경례를 받고는 서울이란 도시의 역사와 한국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이때의 전통의장대는 43명으로 늘어난다. 국방부에 전통의장대가 탄생한 것은 91년 9월이다.91년 6월 당시 노태우대통령은 미국방문에서 독립전쟁 때의 군복차림으로 나온 전통의장대로부터 상당한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노대통령은 귀국하자마자 전통의장대의 구성을 지시했고 같은 해 10월 몽골대통령의 청와대 방문때 처음으로 이 의장대가 선을 보였다. 기수단의 5방6정기는 예전 왕의 행차때 사용하던 기를 고증해 재현했다.5방은 동서남북과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청룡·백호·주작·현무·황룡이 그려져 있다.6정은 6명의 의로운 신하를 뜻하며 12간지중 짝수 간지의 상징동물로 그려져 있다. 전통의장대의 복장은 조선조 말기의 포도청 복제를 고증해 재현한 것이다.의장대장은 포도대장의 복장이고,의장병은 포도대장밑의 장교복장을 입는다. 요즘 사람들에겐 생소한 「받들어 칼!」 구령은 「받들어 총!」에서 따왔다.본래 조선시대에 검으로 예를 표할 때는 땅에 무릎을 꿇고 칼을 받쳐드는 것이었다고 한다.그러나 의장대가 무릎을 꿇기는 어려워 칼을받쳐들되 허리를 15도가량 굽히고 있다.
  • 채색화 30년 결산전 개최/오랑자씨(인터뷰)

    ◎“한국적 소재로 새로이 변모”/꽃·잉어 그린 「전설」등 38점 선보여 『대학졸업반때의 국전 입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30년이 됐어요.나름대로 작품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을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됐는데…허무한 것같아요』 작품생활 30년을 결산하는 전시회를 26일부터 5월1일까지 서울갤러리에서 열고있는 채색화가 오랑자씨(51). 8년만의 개인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엔 잉어와 꽃을 함께 그린 1백50호짜리 89년작품 「전설」을 비롯해 1백호이상 11점등 모두 38점을 선보이고 있다. 수묵산수에서 배운 기법을 채색화에 도입해 꼼꼼한 화풍을 일궈온 오씨는 색채와 형상의 섬세함으로 인해 감수성강한 사실주의 작가로 불려왔다. 국전 입선때의 초기부터 지난 80년까지 꽃과 새등을 은은한 서정으로 화면에 담았다면 그 이후엔 색채의 강렬한 느낌을 강조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한때 열대성 꽃등 강한 이미지의 형상에 심취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한국적인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가장 한국적인 소재가 가장 세계적인 소재라는 명제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우리 것이 좋아지는게 신기해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신의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는 오씨는 따라서 이번 전시회에 상당수 내놓은 한국적인 소재의 작품들을 또하나의 새로운 변모로 주의깊게 봐달라고 주문한다.
  • “회화의 시인” 미로 작품 국내 첫 나들이

    ◎가나화랑 20일부터·줄리아나 아트캘러리 5월말 기획전/가나화랑/조각·세라믹 등 60년대작품 조명/줄리아나/장르 대표작 모아 세계관 한눈에 「회화의 시인」「피카소 이후 세계최대의 화가」등으로 불리다 지난 83년 타계한 초현실주의작가 호안 미로(1893∼1983년)의 작품전을 국내에서 잇따라 볼수있게 됐다. 가나화랑이 오는 20일부터 5월7일까지 마련하는 「미로작품전」과 줄리아나 아트갤러리가 5월말부터 한달동안 기획할 예정인 「호안 미로 종합전」이 그것으로 국내 화랑이 주선하는 미로의 첫 한국전이란 점에서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미로 탄생 1백주년인 지난해부터 경쟁적으로 추진해온 두 화랑의 미로전은 같은 미로 회고전의 성격이면서도 시기와 양식별 차이를 보이는 기획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 모을 전망이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출신인 호안 미로는 빈센트 반 고흐,폴 세잔,앙리 루소로부터 예술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면서 시어와 음조를 색으로 나타내려 애썼던 독특한 초현실주의작가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미로 탄생 1백주년을 맞아 뉴욕현대미술관에서는 대규모 미로회고전이 열려 1백56점의 회화와 1백46점의 드로잉,조각작품,도자기등 미로의 대표작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가나화랑이 봄전시로 설정,의욕적으로 추진해 성사시킨 「미로작품전」은 지난해 미로회고전에 가장 많은 작품을 출품했던 뉴욕 아쿠아벨라화랑과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컬렉션등이 소장한 작품중 조각 22점,회화 5점,판화 10점등 모두 37점을 소개한다.미로가 회화보다는 조각,세라믹,판화제작에 치중했던 60년대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40년대와 70년대 작품들도 일부 전시한다.이중 대표적 조각인 「새」와 3백호짜리 대형유화 「여인과 새」는 특히 눈에띄는 작품. 지난해 가나화랑과 비슷한 시기부터 국내 미로전을 추진해온 줄리아나아트갤러리의 「호안 미로 종합전」은 파리의 를롱화랑과 호안 미로재단이 소장한 작품중 대표작들을 선보이게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로가 생존할때의 전속화랑이자 사후 그의 유작을 관리해온 를롱화랑과 호안 미로재단의 소장품가운데 선별한 작품전이란 점에서 미로의 작품세계와 특징을 소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회화 조각 판화 드로잉등 미로가 전 생애에 걸쳐 몰두했던 다양한 양식에 걸쳐 50여점이 소개되는데 2백호 크기의 대형판화와 대형조각도 공개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험한 말씨는 여유없는 마음에서(박갑천 칼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한다.그렇긴 해도 가는 말이 곱지않다 하여 오는 말 또한 곱지않게 되돌리면 이번에는 그 말의 질이 가는 방망이에 오는 홍두깨로 되어 사태는 점점 험악해진다.그래서 곱지않게 가는 말을 고운 오는 말로 받아 넘기는 지혜는 세상살이 어디에서나 요청된다.정치인들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할 것이다. 묵은 얘기긴 하지만 일본의 의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한 애꾸눈 의원이 일어나 연설하면서 『목하 세계정세를 관망하건대…』 하고 허두를 꺼내었다.그러자 한쪽에서 야유가 터져나왔다.『뭐라고? 눈 둘로도 관망하기 어려운데 하나 가지고 뭘 관망한다는 거야』.야비한 표현이었다.홍두깨 가는 말이 튀어나갈 판이었건만 그 의원은 고운말로써 간단하게 야유의원의 입을 꿰매어 버렸다.­ 『일목요연하거든』 말이란 하다보면 빗나가 아차 실수를 하는 수도 있다.그걸 타내어 탓하기로 들면 또 끝이 없다.임금 앞에서 했던 백사 이항복의 「지나친 익살」 의 경우를 놓고 한번 생각해 보자.그가 여러 신하와 함께 야대하는가운데 얘기가 백호 임제에 미쳤다.임백호가 일찍이 자기가 중국의 육조오대때를 살았다면 돌림천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는 말에 좌중이 박장대소 했다.거기까지는 좋았다.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런데 근년에 다시 웃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임금이 누구냐고 물을 수밖에. 『예,이덕형입니다.그가 임금의 망에 오른바 있습니다』 이항복과의 일화가 많이 전해지는 그 한음이덕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농담이라 해도 어느 시대의 어느 안전인가.임금이 크게 웃었으니 망정이지 목이 열개라도 견뎌날 일이 아니었다.그를 깨달은 백사도 고개숙인다. 『성상의 크고 깊은 은덕이 아니면 신이 어찌 천지간에 용서 받을수 있겠습니까』 (성호사설) 얼마전에 있었던 여야 「입」 들의 질낮은 입겨룸질이 입입의 입방아에 올랐다.그런 각박한 표현들은 마음의 여유 없고 유머 감각도 없는 오늘의 우리 정치수준을 되짚어 보게도 한다.「일목요연」 한 대거리를 일구요연하게 하면서 국민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물할수는 없었던 것일까. 예로부터 입은 화의문(구시화지문)이라 했으니 어느 경우건 조심해서 열어야 한다는 것은 진리다.하지만 잘못된 말의 꼬리를 잡고 마냥 늘어져 나갈 일도 또 아니다.험한 말씨라도 웃음판되게 되받을수 있는 정치무대를 보고 싶어진다.
  • 한국산하 누비는 한국호랑이는(박갑천 칼럼)

    주먹패끼리 한바탕 붙을양으로 마주섰다.입으로 길게 뒵들 짬도 없다.한쪽에서 대뜸 이렇게 으름장을 놓는다.『이봐.인왕산모르는 호랑이도 있나?』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우백호를 이루는 산이 인왕산이다.한국의 호랑이는 반드시 이 산을 한번은 와본다는 옛말이 전해져 내려오기에 하는 말.주먹깨나 쓴다면서 나를 못알아봐? 하는 뜻이다. 저런 산에 호랑이가 내려왔을까 싶어 뵈지만 옛날의 인왕산은 지금보다 훨씬 울창했다.호랑이의 「순례지」가 될 수 있을만큼.「용재총화」(용재총화:3권)등에 보이는 고려 명장 강감찬의 얘기도 서울 호랑이에 관한 것이다.그가 한양판관으로 부임하자 부윤이 호환 많음을 걱정한다.이에 강감찬이 중으로 탈바꿈해 있는 늙은 호랑이를 불러 호통치니 이튿날 호랑이 수십마리가 동쪽 교외로 빠져나갔다. 호랑이는 건국신화에 나온다.그만큼 우리와는 가까웠다는 뜻이다.맹수이기에 화를 당하는 일도 많았지만 한편 산신령으로 존경받기도 한다.민담 또한 적지 않다.그런 민담가운데는 호랑이를 희화화 한것도 보인다.두려움을 희석시키자는 뜻이었을까.곶감이 무서워 도망친 호랑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신부의 알몸뚱이를 보고 나둥그러진 오대산 호랑이도 있다. 강원도 산골 신혼부부가 친척집에 갈일이 생겼다.오대산 높은 봉우리를 넘는데 기척이 이상하여 신부가 고개를 드니 산마루에서 호랑이가 이쪽을 내려다본다.떨렸지만 신부는 처녀때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여자가 벗고 누워서 기면 무서워 도망친다는….신부는 옷을 벗었다.하늘을 향해 누운 자세로 두다리를 앞으로 하고 눈을 모들뜨면서 두팔은 뒤로 하여 땅을 짚은채 엉금엉금 호랑이한테 다가갔다.호랑이는 이 괴물을 바라본다.앞다리는 제것보다 훨씬 크고 빨간 입은 세로 찢어졌는데 수염도 장군감이다.꼬리(풀어진 머리칼)또한 치렁치렁 힘깨나 쓸 것같지 않은가.무서워 뒷걸음질치다가 낭떠러지에서 뒤로 넉장거리하며 죽는다. 가을이면 순종 백두산(한국)호랑이 한 쌍이 서울에 올 예정이다.김대통령 방중기념으로 중국정부가 선물한 것인데 시베리아나 벵골산 호랑이밖에 없던터여서 반가운 일이다.하지만 이소식에 접하면서 우리에 갇혀 「이민」오는 호랑이 아닌,한국의 산야를 동서남북으로 누비고 다니는 「인왕산 호랑이」를 기려본다.그게 사람의 위선을 대갈하는 연암 박지원의 「호질」의 호랑이다.그런 호랑이가 북한땅에는 상당수 있다고 들린다.동물도 휴전선을 못넘는 것인가.
  • 신명범씨 일서 개인전/18∼27일 동경 구락부

    ◎「서체적 상형화」 52점 선보여 흙의 정감을 통해 인간적 아름다움을 표현해온 화가 신명범씨(53)가 개인전을 오는 18일부터 27일까지 일본 도쿄미술구락부에서 갖는다. 홍익대 미대 출신인 신씨는 지난 91년 일본 도쿄의 유명 화랑인 히라노 고토켄화랑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일본무대에 진출한 서양화가로 작품세계가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독특함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히라노 고토켄화랑 초대로 마련된 이번 행사는 신씨가 일본에서 갖는 두번째 전시회로 신씨의 작품중 52점이 소개되는데 이가운데 40여점이 1백호 이상 대작이고 나머지는 30호 안팎의 소품이다. 특히 이번 전시 작품들은 신씨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여인 항아리 물고기 나무 해 달등의 이미지가 여전하면서도,상형문자의 발전과정과 비슷한 서체적 상형화를 보이는 새 경향을 띠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 서울시 초·중등 교장­교감급 인사

    서울시교육청은 25일 국민학교(초등) 교장·교감급 1백38명과 중·고등학교(중등)교장·교감급 63명에 대한 승진및 전보·전직 인사를 오는 3월1일자로 단행했다. ▷초등◁ △영본 김상기△잠신 도재희△영남 송규석△흥일 김성렬△고은 이해성△삼정 이만규△거여 이규현△독립문 이병완△창동 권오용△봉천 진재명△길음 임경보△청룡 심영희△하일 김용규△송중 김홍갑△신구로 김천수△방화 이정세△대림 김영진△창천 이창재△명신 이은수△명덕 김명범△미동 김춘보△신북 김찬유△양명 권일호△신내 이창길△세검정 이강오△면북 이일헌△가산 이명희△난화 서기철△대신 김동환 △신석 이찬우△중마 이석구△중대 이강신△오륜 이일△가원 배동식△석관 이종춘△강월 권혁신△을지 김은식△청량 한정현△백운 김용환△신용산 구본애△역삼 박옥자△영도 유천형△원명 황의범△광남 박은식△상월 조한욱△숭덕 김동소△아주 이규창△한서 차원재△신남성 금기훈△구산 조태길△갈산 김익수△언북 유지우△신방학 남상문△신남 김숙경△구의 유항하△양천 박병춘△양목 서형석△우장 유부상△창서 이홍준△아현 유정자△선곡 지기상△양강 김영삼△언주 박로성△신월 신창재△개포 정훈△서래 김완기△신정 심선영 △강서교육청 이준순 황명자 변정숙 정정헌 박찬성 손호찬△북부〃 하헌태 최금옥 이삼만 공항식 이수철 박권태△남부〃 권석숭 최장호 이우영 백명순△동작〃 이명남 임병수 이민언 이희정 김용운△동부〃 임백호 김세환 김원기 △강서교육청 홍성애△북부〃 한상애 노태창△서부〃문재옥 김평호 이광호 홍봉표 김기태△강동〃 김제문 최기종 우지형△강남〃 송임헌△동작교육청 송태순 심정우 이근선 이수웅 △자양 곽석연△신사 김증회△중랑 윤종길△시흥 구두회 △북부교육청 학무국장 이완주 △강서교육청 박종옥△남부〃 신근우△동부〃 김주남 김종건 이용근 △중부교육청 장학사 최오복△강서〃 〃 최각경△서울시〃 초등장학과 〃 이형직△강동〃 〃 오상탁△강동교육청 장학사 서옥석△동부〃 〃 이복일△북부〃 〃 최선익△서울교원연수원 교육연구사 장재영△동부교육청 장학사 진장관△서부〃 〃 조재욱△동작〃 〃 오효숙△과학교육원 〃 김태서 홍순길 △교육부 정신교육장학관실 교육연구관 김영숙△국립교육평가원 장학사 김지도△강동교육청 〃 박상렬△남부〃 〃 서영석 김군자△서울시〃 초등교직과 〃 유복길△〃 초등장학과 〃 홍대식 △북부교육청 장학사 정종구 중등 △장안중교장 김미자△공릉중〃 고헌식△신방학중〃 김이태△삼정중 윤성하△전농중〃 최문길△동대문여중〃 김성분△당산중〃 박대규△신상중〃 조남기△강남중〃 안정엽△난우중〃 정귀주△영등포중〃 조승관△중계중〃 홍정훈△천일중〃 하석호△방원중〃 신두영△대왕중〃 이종현△문성중〃 윤정옥△종암여중〃 강신호△양화중〃 양원△개봉중〃 유찬영△신양중 황영연△상도중〃 김조령△개포중〃 손상철△영림중〃 윤종영△홍은중〃 이경복△연천중〃 소진률△원촌중〃 김교모△용강중〃 박성순△장승중〃 최창희△성동고〃 김화곤△명일여고〃 김덕순△경기기공〃 장옥용△송파공고〃 박승헌△강남공고〃 신현구△서초전자공고〃 권령목△강서공고〃 신흥균△광양중〃 윤명렬△숭인여중〃 이명숙△신창중〃 김정자△천호중〃 김경수△대청중〃 김중진△신구중〃 한의수△구일중〃 원병엽△중평중〃 김영주△문정중〃 강우희△방이중〃 윤영수△풍납중〃 최락훈△경원중〃 강희돈△대명중〃 명로걸△신동중〃 권용자△신서중〃 지윤호△언남중〃 백필균△사당중〃 강태중△개웅중〃 이치종△금호여중〃 문상렬△역삼중〃 이종면△잠신중〃 조명현△서울특별시 교육연구원 교육연구관 유청자△서울교원연수원〃 김덕자△서울시교육청 학교체육과 장학관 김명완△〃과학교육원 교육연구관 이영일△〃과학기술과 장학관 김우탁△〃중등장학과〃 이중중△〃중등교직과〃 송영재
  • 미분양 아파트 급증/한달새 2천5백호

    경기회복 추세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의 미분양 물량은 계속 늘고 있다. 21일 건설부에 따르면 올 1월말까지 분양공고를 내고 3순위에서도 분양되지 않은 아파트는 서울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7만9천9백59가구(민간부문 7만2천9백76가구,공공부문 6천9백83가구)였다.지난 연말의 7만7천4백88가구에 비해 1개월만에 2천4백71가구가 늘어난 것이다.
  • 재불화가 김희정씨 11년만에 첫 귀국전

    ◎진화랑서 26일까지/“힘있는 환상적 화면 연출” 국내화단에 소개된 적이 없는 재불 신예 여성화가 이산 김희정씨(29)가 고국을 떠난지 11년만에 서울 진화랑(738­7570)에서 첫 귀국전을 갖고 있다. 15∼26일. 영등포여고 2학년때 파리로 유학, 국립 아카데미 호데레와 국립 파리 보자르, 국립 파리 아르데코를 차례로 수학한 김씨는 지난91년 현지의 에스칼리에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져 호평을 받았다. 이번 서울전도 에스칼리에갤러리가 진화랑에 김씨를 추천, 성사됐다. 1백호이상 대작 20점을 비롯, 그간의 대표작 30여점을 들고온 그의 작품들은 유학중의 작업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열정적인 화면으로 구성돼 있다. 빛과 어둠이 서로 어울려 소용돌이에 휘말린 듯한 그림은 물과 불, 돌풍과 물살, 절벽과 동굴과 숲등을 안은채 지각변동을 일으키는듯한 「생성적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환상적이면서도 힘있는 회화세계를 통해 현대미술의 매력을 음미케하는 남다른 재능을 보여주는 김씨는 새롭게 주목할 인물로 평가된다. 미술평론가 이일씨는 생소한 이 젊은 작가의 가능성을 크게 내다보며 『원초적 자연과의 동화를 보여주는 무한공간을 담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3월18일부터 21일까지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니카프미술제에 진화랑 초대작가로 출품한뒤 다시 파리로 돌아가 작품활동을 한다.
  • 달뜨면 가오리다 상·하/이명한 지음(화제의 책)

    ◎조선조 대문장가 임제의 일대기 담아 조선조 중기 대문장가인 백호 임제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 임제는 평안도 도사로 부임길에 황진이의 무덤앞에서 추모제를 올리며 『청초 욱어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로 시작하는 시를 지어 후에 이 일로 관직에서 쫓겨나 방랑시인으로 전국을 떠돌았던 인물. 소설 「달뜨면…」은 지은이가 임제의 문집과 「대동야승」「연려실기술」등 사료를 근거로 하고 나주 회진 임씨문중의 자료와 증언을 참고해 임제의 일대기를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 특히 임제를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당리당파에 휩쓸리지 않고 타락한 사대부들에게 혹독한 풍자와 야유를 일삼았던 기개높은 인물,강직한 민족주의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상권은 유년시절과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유년기,하권은 소·대과에 차례로 급제한후 잠깐 몸담았던 벼슬을 떨치고 방랑시인으로 전국을 주유하게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린세상 각권 5천원.
  • 골동품가에도 “장씨파문”/장씨,“출소후 1백억대 현금 구입”

    ◎업계,“20억어치 정도… 거의 가까일것” 3백억원대를 호가한다는 큰손 장영자씨 소장의 골동품들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진품들인가? 그녀가 12년전에 드러난 1백억원대의 골동자산외에도 최근 출소한후 현금 1백여억원상당의 골동품을 사들였다는 진술에 따라 세인의 관심을 끌고있다. 그러나 고미술업계에 따르면 『장씨가 출소후 골동가에 나타나 도자기류의 골동품을 매입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점포없는 중개인인 이른바 「나까마」들로부터 20억원대 정도를 어음거래한 걸로 알고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녀의 이같은 골동품 거금매입 주장은 자금추적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라는게 업자들의 얘기다. 이러한 분석은 지난82년 장여인이 처음 사기사건을 벌였을 당시 비슷한 규모인 1백억원대의 골동품을 재산으로 제시,이를 압류한 검찰의 요구로 시가와 진위여부를 감정한 고미술업계 전문가의 증언에서 더욱 확실하게 유추할 수 있다.12년전 그녀의 소장품감정을 맡았던 전고미술협회 회장 공창호씨는 『당시 서화등 골동품이 1백억원규모를 넘는다했는데 정작 실물을 보니 1천점정도에 90%가 가짜나 전혀 돈이 안되는 것들로 전부 따져서 5억원정도였다』고 말했다.『당시 장씨는 부도를 내기 직전 가짜인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마구 사들인 걸로 알고 있으며 그때 부도를 내고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골동품상 강대욱이란 사람과 주로 거래했다』고 덧붙였다.공씨가 그당시 감정한 장씨의 소장품들중에는 그야말로 웃지못할 가짜들이 수두룩했다는데 『기록에도 없는 충무공의 「혈죽도」란 작품은 돼지피로 그린 황당한 작품이었고 도자기나 서화도 이미 가짜미술품이 나타나기 시작한 한말이나 일제때의 엉터리 작품들이었다』고. 그녀는 사들인 서화들을 한번 펴봤다가 둘둘 말아놓은 상태로 쌓아두었다고 하며 82년 당시 거주지인 서울 강남구 청담동주택 2층에 꾸며놓은 법당에는 서양화가 김모씨에게 주문해 자신의 얼굴을 모사한 부처형상의 1백호크기 그림을 걸어두고 유명인사들을 초대하기도 했다고 한다.예술품을 사기행각에 철저히 이용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그녀인 셈이다.
  • 북한산 전/「서울의 맥」 웅장한 산세 “생생”

    ◎학고재서 문봉선씨의 60점 21일부터 선보여/실명제 이후 화랑의 수익 첫 공개키로/작품거래실적 밝혀 높은 세율 개선 건의 전시회 내용이나 체제면에서 매우 획기적인 개인전이 열리게 돼 신년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1일부터 2월3일까지 서울 인사동 학고재(739­4937)에서 열리는 한국화가 문봉선씨(34)의 「북한산」그림전­.지난 3년간 북한산만 1백여차례 답사하며 그린 북한산그림 60여점을 출품,서울정도 6백주년을 맞는 올해의 의미를 더하는 기록으로 남기게 된다.게다가 작품가격과 화랑의 판매수익을 전면 공개하여 금융실명제 실시이후 미술시장 최초로 이 제도에 합당한 형식을 취하는 전시가 된다. 지난 87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중앙미술대전 대상,동아미술상 최고상등을 모두 거머쥐며 한국화단의 기린아로 부상한 문씨는 이번 전시에 내놓는 그림들을 소품기준 호당 10만원,1백호크기의 대작은 8백만원선에 작품가를 제시한다.이와 함께 학고재대표 우찬규씨는 전시장 입구에 작품가격표를 내걸고 작품거래실적 일체를 국세청등 관련부처에 숨김없이 공개할 방침이다.『당국은 화랑이 신고하는 거래내역을 믿지않고 화상들은 현행 세제아래에서 존립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어 문제점들을 속시원히 드러내 놓고 양측이 타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같은 일을 추진하게 됐다』는 우씨는 『혼자 힘으로 어려워도 세율인하를 요구하는 화상입장에 서서 현행세금을 적용할때 과연 얼마만큼 부담이 되는가를 따져보고 검증해보자는 각오』라고 그 취지를 밝혔다. 현실적으로 미술품의 세율은 판매총액의 22∼42%가 화상의 판매이익으로 간주되는데 화상들은 세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이고 세무당국은 세금을 제대로 내지않기 때문에 높은 세율을 매길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씨와 의기투합,이번 전시에 나선 작가 문씨는 아직 미술시장의 인기작가군에 진입할만한 경륜은 아니나 그 작업에 대한 평가는 A급에 속한다.『붓과 먹을 쓰는데 섬세한 감각을 갖고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농담의 변화와 세필의 끊어치기가 생생하게 살아있어서 단조롭다거나무성의함이 보이지 않는 미덕을 보인다』(미술평론가 유홍준)는 등의 평가가 있다. 대상에 대한 주관적 관점을 절제하고 그 느낌을 철저히 관객에게 넘겨주는 그는 북한산을 그리면서 산세를 화면속에 담아내기 위해 산의 주름을 표현하는 방식에 새롭게 눈을 돌렸다고 한다.『북한산 구석구석을 다 가봤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곳이 많고 그려보고 싶은 곳도 많다.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웅장한 산세와 사계절을 표현하려면 더 깊은 노력이 따라야한다.앞으로도 계속 북한산과 씨름하겠다』 북한산에 대한 애정이 절절한 작가의 말에서 보이듯 그의 북한산 그림들은 오늘 우리 서울의 맥을 깊이있게 담아내고 있다.
  • 풍수/남산이 누에머리… 잠실에 뽕나무 심어(서울 6백년 만상:3)

    ◎백두산기 응집된 국토의 중핵이 한양/전국 산수의 정기 모인 북악이 중심부 남산의 형상은 누에머리와 흡사하다.그 남산의 지기를 왕성하게 만들기위해 입쪽인 지금의 잠실에 누에의 먹이가 되는 뽕나무를 대량으로 심었다.사평리로 불리던 이 땅은 그래서 잠실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서울을 대표하는 숭례문,흔히 말하는 남대문의 현판을 세로로 세웠다거나 광화문앞에 물짐승인 해태 석상을 세워둔 것도 모두 풍수에서 유래한다.숭례를 세로로 세워놓고 보면 불길을 제압하는 모양이요 물짐승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모양의 화산인 관악산의 불길이 한양 혈터인 경복궁에까지 미치지 못하도록 막아 준다고 믿은 풍수에서 비롯됐다. 한양땅 지금의 서울은 한마디로 풍수에서 말하는 탐랑목성래용의 천하대길 명당이다.역성혁명으로 어렵게 왕위에 오른 이태조가 종묘사직과 자손만대의 평안을 약속받기위해 심사끝에 정한 도읍지이다. 『함경도 안변부 철령의 한 맥이 수백리를 내달아 솟아올라 도봉산 만장봉이 된다.여기서 남서쪽으로 달려가다가 우뚝일어선 것이 삼각산 백운대요,남으로 내려온 지맥이 백악(북악산)이다.동·남·서 세방향이 강이고….여러 강이 얽힌 사이에 위치한 백악은 전국 산수의 정기가 모인 곳이다』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이 펴낸 「동국산수록」은 「국토지맥의 원천인 백두산 기가 응집된 국토의 중핵이 한양이며 그 가운데서도 북악은 중심부」라고 한양 맥세를 설명하고 있다. 한양의 도시건설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청룡은 동쪽의 낙산(종로구 동숭동일대 뒷산),백호는 서쪽의 인왕산,주작은 안산인 남산과 조산(주산과 마주보는 손님산)인 관악산이라는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유학자들의 풍수지리적 해석의 틀속에서 이루어졌다. 정도 당시 정도전등 이론주의자와 무학대사등 실용주의자들은 풍수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무학은 정도전등과 달리 인왕산을 주산으로 궁궐은 남향이 아닌 동쪽으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만약 무학의 주장이 받아들여 졌더라면 서울중심부와 주요도로는 세종로(당시 관청들이 늘어서 있던 육조거리)가 아닌 종로3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며 서울의 중심은 서북쪽에 덜 치우쳐 보다 균형적인 공간배열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악을 주산개념으로 볼때 서울은 두가지 약점을 갖는다.그 하나는 주산 북악이 규모가 작은데다 손님격인 관악산이 훨씬 크고 높다는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경복궁을 주궁으로 하는 서울이란 터는 운명적으로 손님,즉 외세의 간섭·신하의 모반·하극상 사건을 잉태하고 있다는 풍수지리적인 해석에 도달한다.또 서쪽의 우백호인 인왕산 맥에 비해 장손을 상징하는 좌청룡 낙산지맥이 너무 짧고 빈약해 조선왕조내내 맏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경우가 오히려 이례적이었다는 해석이다.이 때문에 4대문중 동대문만이 「지」자를 더 넣어 흥인지문 4글자로 만들었으며 여느곳과 달리 전투를 위한 옹성으로 동대문을 쌓은것도 지세의 허약을 보완하고 동쪽의 외세(일본)의 기운을 막아내라는 뜻이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원래 풍수지리는 전쟁을 위한 병법에서 나와 도시개발·건축등 민간생활에 응용된 것으로 땅을 살아있는 생명,유기체로 보았다.이런관점에서 볼때 북악산근처는 머리,세종로등 관청가는 가슴,용산과 강남쪽은 복부가 된다.또 여의도는 서울의 지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경비원이며 시녀역할인 나성이 된다.이러한 위치때문에 국회와 증권으로 상징되는 경제가 북악 즉 정치의 시녀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속설도 있다.청와대의 터가 풍수적으로 좋은 터가 아니며 상징적으로도 높은곳에 밑을 내려다보는 위압적인 상태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풍수지리적으로 이렇듯 기가 뭉쳐있는 북악과 경복궁사이인 속기처에 일제총독의 숙소와 총독부를 지은 것은 기가 몸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게 목을 꽉 움켜잡고 있는 형상이다.국토의 핵심지에 점령자의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일일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 백성들에게는 왕조와 국가의 멸망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한양이라는 천년왕도로서의 권위와 신비가 모든 백성들의 가슴속에서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바로 그러한 사건으로 일제도 그점을 노렸을 것이란 해석이다. 오늘의 풍수전문가들은 실용과 경관적인 아름다움이 풍수지리의 양대 기둥이라고 말한다.자연적 입지가 인간들의 심성과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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