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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의통해 해결” 정부설득 가능성/BOA 왜 어음회수 했나

    ◎정상화후 우선변제 보장 받은듯 쌍방울그룹이 부도를 모면한 것은 미국 BOA(뱅크 오브 아메리카) 서울지점이 은행마감 직전에 어음을 회수했기 때문이다.은행감독원은 ‘BOA의 착오’라고 얼버무리지만 전후사정을 감안할 때 다른 사정이 있는게 분명하다. 발단은 BOA가 10일 하오 5시쯤 태도를 바꿔 9일 돌렸던 견질어음을 회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부터.BOA서울지점장은 은행감독원 한백현 신용분석과장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 본사와 연락한 적은 없다.한국경제의 어려움을 감안,견질어음을 회수키로 독자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그러나 BOA 서울지점은 지난 6일 본사로부터 “쌍방울개발이 부도 위험이 있으니 쌍방울에 대한 견질어음을 만기 전에 돌려라”라는 지시를 받고 실행에 옮겼던 점으로 미뤄 10일의 조치가 순전히 서울지점장의 자발적인 판단은 아닌 것으로 짐작된다. 지난 1일 아세아종합금융이 쌍방울 어음을 돌렸을때 재경원은 아세아종금에 압박을 가해 자금회수를 유예시켰었다.금융계에서는 이번에도 정부가 역할을 했을 것으로본다.이같은 징후는 여러군데서 나타난다.쌍방울이 9일 1차부도를 내자 10일 하오 청와대와 재정경제원이 대책회의를 가졌다.정부는 BOA가 쌍방울로부터 자금을 회수할 경우 다른 외국계 은행도 국내기업에 빌려준 자금을 조기회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게다가 기아사태와 정치권의 비자금 파문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쌍방울까지 무너지면 경제가 걷잡을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특히 호남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부담도 작용했을 법하다.재경원 관계자는 “부도가 나도 어차피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BOA가 굳이 쌍방울을 부도나게 할 이유가 있느냐”며 “일단 정상화시킨뒤 BOA가 실익을 챙기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말해 정부의 개입을 뒷받침했다. 재경원은 쌍방울의 경우 기아와 달리 쌍방울구단과 무주리조트 매각 등 자구노력이 원만히 진행되고 있어 회생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따라서 부도를 내기보다 화의를 통해 쌍방울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낫다고 BOA를 설득했을 공산이 크다.BOA도 부도책임을 지기보다는 정상화 이후의 우선변제 등을 보장받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어음회수의 조건으로 이같은 거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서로가 ‘차선의 선택’을 택한 것만은 분명하다.
  • 침체되는 변경무역(김정일의 북한:10)

    ◎북 교역물자 바닥… 통상구 11곳 거래 줄어/민둥산 천지에 목재수출도 한계 맞아/민생투자 확대… 경제복구만이 해결책/“사올 물건이 없다” 조선족 보따리장수 발길 끊어 중국 임강에서 시장의 안내로 민간인 통제구역인 임강시­북한 중강진시를 연결하는 다리 중간까지 갈수 있었다.아래에는 압록강이 도도히 흐르고 건너 초소에는 북한군 병사가 쌍안경으로 경계하면서 어디엔가 전화하는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곳 임강­중강진 통상구는 중국과 북한간에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상호간에 교역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압록강·두만강을 따라 1천406㎞의 국경지대에는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통상구 11개가 설치돼 있다.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에서 매일 약 200여대의 트럭이 목재를 싣고 이 다리를 건너 임강에 와 식량과 교환하는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대부분 민둥산인 북한에서 계속 목재를 수출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니,그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들어 점차 거래가 줄어들고 있으며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자문자답(자문자답)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시장은 꼭 안내하고 싶은 곳이 있다고 말했다.함께 간 곳은 압록강에 있는 조그만 모래섬으로 위락시설을 갖춘 공원이었다.김일성과 모택동간의 회담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지대에 있는 모든 섬들은 북한령으로 합의했기 때문에 모든 섬들은 북한령이다.그러나 이 섬만은 중국령이 됐다는 것이다.그것은 이곳이 본래 섬이 아니라 모래톱이어서 김일성­모택동 합의사항에서 제외돼 중국령으로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중국령이 된 뒤 임강시에서 이를 개발해 공원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작년 교역액 260억원 조그마한 위락시설이지만 요모조모 갖춰져 저녁이 되니 가족 동반객,남녀 데이트족,놀러나온 선남선녀들로 제법 북적거리기 시작하면서 썰렁하고 캄캄한 북한과 대조를 이뤘다.특이한 것은 공원 중앙에 커다란 야외 무도회장(입장료 1인당 1원·한화 100원)이 있는데,동네 미남미녀 10여명이 파트너를 기다리고 있었다.필자 일행도 들어가 보라고 해 잠깐 구석에 앉았다.아무에게나 춤을 신청해 춰보라고 하지만 춤문화에 깜깜한우리 일행은 꿀먹은 촌놈처럼 어정쩡하게 앉아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행중에 춤에 자신이 있다는 한두사람이 함께 간 안내양과 춤을 추기 시작했다.그러나 중국인들과 비교해 보니 그건 춤이 아니라 그냥 끌어안고 왔다갔다하는 모습이다.얼마 안돼 안내양이 안되겠다는 듯이 춤을 멈추고 돌아왔다.발을 너무 자주 밟아서 안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춤문화는 익히 정평이 나 있지만,이런 오지에서도 여전해 자유스런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수십리 밖에 사는 사람들도 이곳에서 춤을 추기 위해 화려하게 차려 입고와 호흡이 맞는 파트너와 춤을 추려고 기다리고 있었다.춤을 추고 있는 몇쌍은 직업적인 댄서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어 보는 이들에게도 아름답게 보여 춤하면 퇴폐적으로 흐르는 우리 문화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다음날 하루종일 압록강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달려 장백현에 도착했다.임강­중강진시와 마찬가지로 장백현­북한 혜산시 통상구로 지정된 곳이다.이곳에서도 북한에서 목재를 싣고와 식량과 교환한다고 한다.작년 교역액은 중국돈으로 2억6천만원(한화 2백60억원)이었다고 장백현의 한 공무원이 알려줬다.이러한 거래는 공식거래로 이뤄지는 것으로 물물교환의 형태로,당일거래로 이뤄지기 때문에 지점이나 지사를 두고 있지 않다고 한다.교환비율은 어떻게 정하느냐는 질문에 국제시세에 맞춰 사전에 정해 놓은 교환비율을 적용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사적거래나 밀무역은 얼마나 되는지 포착하기 어렵지만 당국에서 통제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사적거래는 고향방문의 형태가 일반적인데,북한에서는 중국으로 오기 어렵지만 장백현에 사는 사람들은 비자없이 혜산시에 30일동안 체류할수 있기 때문에(혜산시 이외의 곳을 방문하려면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함) 고향방문 신청을 하고 식량을 가져가 인삼·명태 등과 교환해 돌아온다고 한다.그러나 요즘은 북한에서 교환해올 만한 상품이 거의 없어 사적거래나 밀무역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시장경제 도입 실험대 옛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체계가 일시에 시장제도를 채택하면서 사회주의 체제가붕괴된데 비해 현재까지 중국은 시장경제를 점진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잘 조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따라서 체제유지가 우선인 북한은 중국의 점진적 개방정책 노선을 견지할 것이라는 것이 예견됐다. 전환되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를 보면서 북한 체제도 개방과 시장제도의 도입이 필연의 수순임을 감지할 수 있지만 체제유지라는 절체절명의 명제에 빠져 개방과 시장제도의 도입을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이미 84년 합영법을 제정해 제한적으로 자력갱생을 통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을 수정,문호개방을 준비했으며 91년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 설립안을 발표해 시장경제의 제한적 도입과 세계시장을 상대로 한 개방정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다른 한편으로는 북·중 변경무역을 통해 인접지역간에 필요한 상품들을 초급적인 국제무역방식으로 상호교역함으로써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기능을 보완하면서 시장제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현재 북·중 변경무역은 양국 정부가 지정한 통상구(구안)안에서 이뤄지고 있는데,1류 통상구는 중국 도문­북한 남양,집안­만포,삼합­회령,단동­신의주의 4곳에 설치돼 있고 2류 통상구는 중국 권하­북한 원정리,고사자­샛별,개산둔­종성,남평­노덕리,숭선­무산,장백­혜산,임강­중강진의 7군데 설치돼 총 11곳에 통상구가 설치돼 있다. 북한의 개방정책이 현실화되고 있는 두가지는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와 통상구라고 할 수 있다.이 두가지 정책이 성공되도록 돕는 것은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북한 경제를 돕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통상구 활성화 시급 그러나 북한에서 교환해 올 상품이 거의 없는 상황이므로 통상구를 활성화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같다.이는 북한의 산업 복구와 발전이 선행돼야만 하기 때문이다.현재 중국에서 북한으로 문호가 개방돼 있으므로 시장 메카니즘 형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물물교환의 형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국제통화로 거래되는 형태로 바뀔 것으로 예견된다.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북한은 상반기에도 민생에 필요한 투자는 안전에도 없이 금수산기념궁전 성역화 사업,김일성 부자 현지 지도비 및 사적비 사업 등 정치선전 상징물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세계 청년학생 축전에 500명을 파견한다느니,전세기를 낸다느니 하고 있다.북한은 정치도 중요하지만 산업이 발전하고 통상구가 활성화돼야 인민이 먹고 입을수 있도록 하는데 힘써야만이 체제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 목동천변 2.5㎞ 말끔히/서울신문사­서울시 한강지키기 캠페인

    ◎신현중 등 11개교 4천여명 구슬땀 서울신문사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마련한 ‘깨끗한 한강지키기 묵동천 현장캠페인’이 13일 상오 서울 중랑구 월릉교 묵동천 둔치에서 펼쳐졌다. 이날 행사에는 여름방학을 앞둔 서울 신현중 등 11개교 4천여명의 중·고교생들이 한강지키기 환경파수꾼으로 나섰다. 참가 학교는 신현중외에 장안중 태릉중 중화중 중랑중 면목중 혜원여고 면목고 중화고 송곡고 한세전산고 등이다. 중랑천,양재천,탄천에 이어 올들어 네번째 실시한 이날 행사에는 이중호 서울신문사 환경운동본부장을 비롯,이문재 중랑구청장,백현진 중랑구의회 의장 등과 시민 100여명도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상오 9시30분 중랑구 수림대공원 앞 묵동천 둔치에 모여 행사 선언식을 마친뒤 하천을 따라 묵동교까지 2.5㎞를 걸으며 주변의 쓰레기를 말끔히 치웠다. 쌍용그룹 사물놀이패가 흥을 돋우는 가운데 학생들은 비닐,폐프라스틱 용기,빈병 등을 주워 쓰레기 봉투에 담았고 환경 봉사원들은 강물속의 오물을 수거했다.불과 2시간만에 10여t의 각종 쓰레기가 모이자 하천 주변은 한결 깨끗해 졌다. 교육부 환경부 서울시교육청 한국방송공사(KBS)가 후원하고 한국암웨이사가 협찬했다.
  • 무산읍선 3만명 운집 울부짖기도/중 접경서 본 북녘

    ◎TV 이례적 낮방송… 김일성 일대기 등 방영 무산과 혜산 등 북한과 중국 접경지대의 북한지역에서는 8일 김일성 사망 3주기 및 탈상을 맞아 성대한 추모대회가 열렸다.또 북한 관영 중앙TV도 지난 7일 밤에 이어 이날 상오 6시부터 추모 특집을 대대적으로 편성,북한 주민들의 추모열기를 고취시켰다. 중앙TV는 7일밤 김일성 일대기와 지난 94년의 마지막 신년사,김일성의 유훈 관련 방송,김일성의 항일투쟁에 대한 증언 등을 방송한데 이어 이날 새벽부터 ‘김일성 수령님의 유지를 받들어 조선은 조선식 사회주의를 고수하기 위해 견결히 투쟁하자’는 등의 본격적인 김일성 사망 3주기 추모프로그램을 방영. 조선족 경모씨(48)는 “북조선(북한)에서는 공휴일과 일요일을 빼고 낮에 TV방송을 하는 경우가 없다”며 “오늘 거의 24시간 가까이 김일성 추모특집을 하는 것을 보니 북조선의 극심한 식량난 빌미를 제공한 김일성은 죽어서도 행복한 인물” 이라고 한마디. ○무산읍 운도앙 꽉 메워 ○…중국 노과향과 마주보고 있는 함경북도 무산군 무산읍 인민체육장에서는 이날 상오 8시 시보가 울리자 평양과 동시에 3만여명의 북한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김일성 추모3기 대회를 성대히 거행. 무산읍 및 인근 농촌지역에서 몰려든 3만여명의 북한주민들은 무산읍 인민체육장의 운동장과 스탠드를 꽉 메운채 사회자의 김일성 업적에 대한 추모사가 계속되는 동안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특히 ‘김일성 수령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이 나올때는 거의 신들린듯 울부짓기도. ○헌화후 추모행진 벌여 ○…중국 장백현 맞은편에 있는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서도 수만명의 북한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일성 추모행사를 열렸다.추모행사를 마친 1천여명의 추도객들은 보천도 전투 기념탑에 헌화하고 묵념을 한뒤 김일성 추모행진을 벌였다. 북한은 중국의 조선족및 무역일꾼들이 김일성 추모행사에 참가하도록 하기 위해 북한·중국 접경지대 해관(국경세관)중 유일하게 혜산해관을 개방했는데 이날 추모식장으로 가는 조선족 및 무역일꾼들의 모습은 거의 없어 한산한 분위기.
  • 독도사랑 문화한마당/선상결혼식 등 이색행사

    독도가 우리 땅임을 전세계에 확인시키기 위한 제1회 「독도문화 한마당」행사가 6일 하오 2시30분 독도 앞바다에서 열렸다. 부산 극일운동시민연합(의장 황백현) 주최로 열린 이 행사는 시민연합회원과 관광객 등 4백38명을 태운 포항∼울릉간 정기여객선 선플라워호(2천4백t급·선장 김상준)가 독도 앞바다에 도착한 뒤 곧바로 시작됐다. 2∼3m의 높은 파도속에 여객선이 독도 주변을 2차례 선회하는 동안 황의장의 사회로 시작된 이날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독도는 우리땅」 노래합창에 이어 독도사수 결의문 채택하고 사진촬영대회 등을 가졌다. 황의장은 『독도사랑은 말로만 되는것이 아니며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고 강조하고 앞으로 정기적으로 열릴 독도문화 한마당 행사에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이날 행사에는 선상 결혼식과 은혼식도 함께 열려 눈길을 끌었다.
  • 돌아오는 농촌:2(테마가 있는 경제기행:49)

    ◎복합영농으로 이룬 꿈/“고품질 농산물로 개방파고 넘겠다” □U턴 전 ·농고 졸업후 도시로 ·컴퓨터 부품업체 취업 ·월 80만원·연 1,500만원 ·항상 쪼들리는 생활 □결행 동기 ·미로같은 직장생활 ·도시 적용 노력실패 ·허약해지는 부모님 ·돌볼 사람없는 논·밭 □U턴 후 ·전략작목 포고버섯 ·벼 6백가마 수확 ·한우 15마리 키워 ·순 소득 6천만원 전남 장흥군 장동면 용곡리 백현씨(32세)는 올해 귀농 3년째인 농업경영인이다.그는 복합영농으로 부농꿈을 실현한 케이스.그가 가진 영농자원은 논 6천평과 밭 1천400평,그리고 야산 2만평.야산의 일부에 표고농장을 조성하고 집 안마당의 일부를 소 사육장으로 개조해 한우 15마리를 키우고 있다.올해 총순소득은 6천만원. 그는 94년초까지 충북 청주에서 컴퓨터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근로자였다.월급은 80만원.보너스를 합쳐도 연간 1천5백만원이 채 안됐다.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항상 쪼들리는 생활이었다.하숙과 자취를 반복하며 도시생활에 적응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농고 출신이었지만 장래를 위해 도시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91년 고향을 떠나왔기 때문이다.그는 2남1녀중 장남으로 85년 강진농고를 졸업했다. 『청주에서의 직장생활은 끝이 안 보이는 미로 같았습니다.진취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바라던 당초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허약해지는 부모님의 건강,돌볼 사람이 없는 논과 밭,고교 재학시절에 배운 영농기술….그는 3년만에 다시 농촌으로 돌아왔다. 그는 전략작목으로 표고버섯을 선택했다.쌀농사보다 2∼3배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데다 고향 장흥군 장동면일대는 표고재배의 최적지이었기 때문이다.『이곳은 평균 해발 250m로 주변지역보다 약 100m정도 높은 분지입니다.이런 지형적 요인으로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겨울에는 매우 추워 표고재배에 적합한 기후조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부친이 전부터 소규모로 해오던 표고농장을 넓히고 4만본의 표고목을 설치했다.표고농사는 표고목을 세우는 작업이 가장 힘이 든다.참나무를 1.1m 길이로 잘라 50여개의 홈을 파고 수작업으로 일일이 종균을 심은 다음 표고목을 2개씩 서로 비스듬히 마주보게 세운다.이 작업은 보통 4년마다 한번씩 한다.하루 30명씩이 투입돼 보름이상 작업해야 1만본정도의 표고목을 설치할 수 있다. 표고목에 주입된 종균이 나뭇속을 오르내리며 잘 번식할 수 있게 하려면 1년에 네번이상 표고목을 뒤집어 세워야 한다.그 다음에는 적기에 수확하는 것이 중요하다.수확기를 하루만 넘겨도 버섯갓이 펴지고,비를 맞으면 물먹은 솜처럼 물버섯이 돼 상품가치를 잃는다.표고는 갓이 두껍고 클수록 값이 나간다.그중에서도 갓머리가 희고 꽃무늬가 새겨진 백화고는 삶으면 향기가 나고 영양가도 높아 최상품이다. 백씨는 올해 총순소득의 절반인 3천만원을 표고농사에서 벌었다.『영농비가 많이 들어가는 편이지만 소득이 높기 때문에 해볼 만한 작목입니다』 표고목 1개를 설치하는 데는 2천5백원의 비용이 먹힌다.작년에는 대만수출이 끊어지는 바람에 값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었지만 올해는 작황이나 가격이 모두 좋은 편이라고한다. 장흥표고는 지형적인 요인으로 폼질이 좋아 상인에게 인기가 높다.장동면농협이 설치,운영하는 장흥표고경매장은 수확기인 3∼10월 매주 두번씩 열린다.경매가 열리는 날에는 전국 30여곳에서 표고상인이 몰려들어 한적한 마을이 장터로 변한다. 백씨는 올해 표고농사 말고도 논농사에서 벼 600가마를 수확했다.예년보다 20%정도 수확량이 늘었다.『올해 같은 대풍은 생전 처음입니다.벼가 등이 터질 정도이니까요』 알곡이 너무 잘 여물어 밤껍질이 갈라지듯 벼껍질이 저절로 갈라져 터지고 있다는 것이다.그는 트랙터와 콤바인·이앙기·건조기·농작업용 6인승화물차를 갖고 있다.보다 과학적인 영농이 되도록 하기 위해 내년엔 컴퓨터도 구입할 계획이다. 그는 야산을 이용해 한우목장을 경영해보는 것이 소망이다.현재 15마리에 불과한 사육두수를 100마리 선으로 늘려볼 계획도 갖고 있다.귀농 이듬해인 지난해 결혼해 첫딸을 두었다.부모님과 할머니를 모시고 4대가 한집에서 산다.농산물개방파고를 헤쳐나갈 방안을 묻자 대뜸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해 폼질로 경쟁하겠다』고 말한다.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면 교육문제는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했다.그는 『기계화영농이 빨리 정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특히 농기계값을 대폭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 “북­중 국경지대 「밀무역루트」 10곳 있다”

    ◎양국세관·초소 묵인하에 생필품 등 거래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의 밀무역규모가 커지면서 두만강과 압록강변에 10개의 밀무역경로가 생겼으며 이 밀무역로는 「교역통상구」로 불려지고 있다. 통일원 남북회담사무국,법무부,관세청 등이 지난 5월 공동실시한 「중국·북한간 통상구 실태조사 출장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과 중국 국경지역에 설치된 교역통상구는 두만강변에 6곳,압록강변에 4곳 등 모두 10곳이며 압록강변의 일부 교역통상구를 제외하고는 양국 세관이나 초소에서 묵인하고 있는 무역경로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통일외무위 소속 양성철의원(국민회의)은 이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교역통상구는 중국 조선족의 주도로 생기기 시작했고 한 통상구에 북한∼중국의 강변도시가 쌍을 이뤄 각각 하나씩의 사무소를 개설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두만강변의 경우 ▲온성 샛별군(북한)∼사타자(중국) ▲남양시∼도문시 ▲종성∼개산둔 ▲회령시∼삼합 ▲노덕리∼남평 ▲무산시∼승선이 각각 교역통상구를 이루고 있으며 이중 4곳은교량으로,2곳은 소형화물선으로 주민과 물자가 오가고 있다.특히 남양시∼도문시간은 철도가 있어 대량수송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록강변의 경우 ▲혜산시(북한)∼장백현(중국) ▲중강진∼임강시 ▲만포∼집안시 ▲신의주∼단동에 각각 교역통상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밀무역루트를 통해 오가는 물자의 경우 중국은 북한으로부터 철강·목재·아연·동·규사·실리콘·주방용 천연가스·명태·갈치·조기·신덕샘물·골동품등을 주로 반입하는 반면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옥수수·밀·쌀·식용유·석탄·석유·운동화·세숫비누·재봉틀·냉장고·흑백TV 등을 사들이는 것으로 나타나 북한내 식량과 생필품 부족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 벌금만 내고 훈련기피/예비군 이례적 구속

    예비군 훈련을 상습적으로 기피해 온 명문대 출신의 30대 과외교사가 경찰에 구속됐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10일 개인 과외교사 백현상씨(32·서울 중구 충무로4가 120의 3)를 향토예비군 설치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94년 S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학원 강사와 고액 개인 과외교사를 하고 있는 백씨는 지금까지 13차례나 예비군 훈련에 불참하면서 고발될 때마다 벌금만 내온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 한국의 흙불/내년 동계U대회 「미술전」 밝힌다

    ◎「스포츠·문화 만남」 큰 잔치… 내년 1월 무주서 개최/국내외 작가 2백여명 참가,작품만들기 비지땀/길이 1백80m 대형 호프만식 가마 눈길… 전원 기숙사서 생활 97동계U대회기념 미술행사인 「한국의 흙불」전 작업이 한창인 전북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익산시내에서 차를 달려 30분쯤 거리에 있는 이곳 율촌리 벽돌공장인 성광요업의 대형 가마에는 평균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속에도 조각과 도예작품을 만드느라 예술혼을 불태우는 작가들의 몸놀림이 분주하다.국내 1백15명,해외 37명 등 1백52명의 작가와 조수 92명,봉사단 43명등 모두 2백87명이 내년 1월 무주리조트에 전시될 작품을 만들어내느라 여념이 없는 것. 지난 1일부터 인근 원광대 기숙사에 머물고 있는 이들 작업단은 상오9시면 어김없이 이곳에 나와 하오7시까지 쉼없는 작업을 강행하고 있다.작업현장은 너비 2.3m,높이 2.5m,길이 1백80m크기의 대형 호프만식 가마의 내부와 양옆,그리고 가마 위.독일에서 유래된 이 호프만식 형태의 가마는 일제시대 전국에 걸쳐 성행했으나 지금은 거의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성광요업측도 이 가마를 폐기처분하려던 것을 원광대 정동훈교수(46)가 교섭을 벌여 작업장으로 결정하게 됐다.작가들이 공들여 만든 작품들은 바로 이 가마에서 소성돼 완성품으로 모습을 나타낸다. 개인당 1t씩의 옹기점토를 받은 작가들은 자신들이 동반한 조수나 주최측에서 배려한 조수들과 팀을 이루어 호흡을 맞춘다.말과 언어는 달라도 작품 만드는 정성만큼은 그 어느 팀도 만만치 않다.한국 기후에 익숙지 못한 외국작가들은 더위를 식히느라 속옷까지 벗어던진 채 몰입하고 있다. 작가중에는 국내 조각분야에 강태성(이화여대 명예교수)배형식(원광대)전뇌진씨(홍익대)와 예술원회원 백문기씨,강관욱 전 전남대교수,김수현(충북대)박종대(군산대)백현옥(인하대)전준(서울대)황순례교수(전주대)가 눈에 띈다.도예분야에서는 권순형(서울대 명예교수)원대정씨(홍익대˝),황종례 전 국민대교수,임무근(서울여대)조정현(이화여대)한길홍교수(서울산업대)가 나섰다.또 외국작가로는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의 탐 스펜스키(메릴랜드주립대)토머스 로스 교수(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대)와 독일작가 숄처 클라우스도 참여하고 있다. 탐 스펜스키 교수는 『체육과 문화의 연결 차원에서 이례적인 이벤트로 생각해 한국측의 초청에 선뜻 응했다』면서 『한국의 문화재와 인삼,독수리를 조합해 스포츠와 문화융합의 이미지를 강조한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무근 교수는 『이번 이벤트는 작업과정에서 도예와 조각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례적인 것으로 국내외 작가들의 의욕적인 모습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변화하는 밀수루트(압록강 2천리:31)

    ◎고기잡이배 위장 강상서 물물교환/강물 길어오는척 하며 물동이 바꿔치기도/연변조선족 국경세관 매수… 북건너가 “장사”/연길∼장백 버스승객 절반이 보다리 장사… 짐져주고 푼돈받기도 압록강 양안에는 10개소의 국경세관이 있다.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장백∼혜산,임강∼중강,집안∼만포,관전∼초산,단동∼신의주가 마주한 가운데 세관을 두었다.일요일을 제외한 평일 낮이면 중국쪽 세관에는 북한땅으로 장사를 떠나려는 사람이 늘 웅성댔다.그중에서 산더미만큼이나 짐을 꾸린 사람과 말을 걸어보면 모두가 연변사람이다. 연변사람이 두만강유역을 마다하고 압록강유역으로 몰려든 까닭은 무엇인가.두만강유역 세관을 통관하기보다 압록강유역 세관을 빠져나가기가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는 압록강유역 사람에 비해 일찍 개방의 물결을 탄 연변사람이 북한을 상대로 하는 장사에서 단맛을 보고 너도나도 두만강을 건너다니며 세관원 버릇을 잘못 들여놓은 데서 비롯되었다.이쪽저쪽 세관원한테 경쟁이라도 하듯 뇌물을 찔러 여간한 물건이나 돈을 주고는 매수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보따리장수가 압록강유역으로 몰려들었다.매일 한 차례씩 연길∼장백을 연결하는 버스손님 가운데 절반이상이 연변의 장사꾼이다.이들은 코밑의 두만강 건너 북한땅에 가기 위해 압록강으로 돌아 우회하고 있는 것이다.요령성 단동시에 사는 친구 황윤삼의 집에 묵을 때 그의 어머니가 푸념삼아 무심코 흘려보내던 말을 귀담아들었다. ○세관마다 무장 경비병 『연변사람 때문에 우리가 골탕을 먹는다꾸마.뇌물 찡궈주는 버릇을 해놔소리 여기 사람들 푼전벌이도 막았지비.젠장 양쪽 세관들에 뜯기고 친척들 만나 농가주고 나면 아무일도 아이되지 않겠슴등.연변사람들 골치아프다이』 압록강연안은 깊은 산지가 많은 데다 개방시기도 연변보다 늦었다.따라서 조선족의 생활이나 의식도 연변에 뒤떨어졌다.그들의 국경 나들이 단독장사는 주머니형편이 좋지 않아 엄두도 못낸다.자기 짐에 연변장사꾼이나 북한에 사는 중국화교의 짐을 덤으로 더 져다주고 몇푼씩 뒷돈을 받는 것이 고작이다.돈이 있으면 제 장사를 하는데 뼛골빠지는 힘을 들여 남의 장사만 해주는 꼴이 되었다.요령성 관전현 석호구향 보산촌 탁창린(52)도 그런 조선족이다. 『중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조선의 친척을 1년에 한 차례씩 찾아가볼 수 있디요.또 조선에서는 중국에 사는 친척을 3년에 한번은 방문할 수 있도록 허가해준다고 기래요.기래서리 나는 매년 신의주에 사는 누님집을 찾아가디요.쌀과 옷가지,술 따위를 갖고 가서 주는데 갈 때면 의례히 남의 짐이 더 많습네다.커다란 보따리 하나 건네주면 3백원을 받디 뭔네가.통이 큰 장사꾼들은 원체 짐이 많아서리 통과를 못하니까 우리 같은 사람 부려먹는 겁네다.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합네다만 노자라도 덜자는 심산에서 짐을 지디요』 오염된 두만강물이 맑은 압록강물을 흐려놓는 꼴이기는 하지만 연변 장사꾼이 거상은 아니다.어디까지나 보따리장사꾼일 뿐이다.비록 남의 등을 빌렸을지라도 세관을 거쳐 들어가니까 절반은 합법이라고 할까.양쪽 세관을 그렁저렁 이용하는 보따리장사꾼은 약과고 밀수도 성행하고 있다.세관마다에 총을 멘 경비병이 있고2천리 국경선 안정구간에 무장경찰대가 물론 보초를 선다.불법월경범은 구류와 함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담배 한보루에 동 1㎏ 그러나 국경에는 구멍이 있게 마련이다.겨울이면 강 한복판 얼음에 구멍을 뚫어 양안 마을에서 물을 길어다 먹는 터라 아낙들이 서로 물동이를 바꿔치기하는 방법으로 거래하는 경우도 있다.여름에 물이 불면 헤엄을 쳐서 국경을 넘나들기 일쑤다.강폭이 넓은 하류에서는 고기잡이를 하는 척 뱃머리를 서로 대고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바꾸어온다는 것이다.국경선을 넘나드는 시기는 얼음이 어는 겨울도 꽤 선호되었다. 요령성 관전현 장전향 나고소촌은 북한의 삭주군 수풍리와 마주한 작은 마을이다.그러나 수풍발전소가 있는 마을이어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2백여가구가 사는 마을 전체를 6개 소조로 나누었는데 조선족 13가구는 제4조에 소속했다.이들 소조의 조선족은 소수임에도 요즘 잘 살고 있다.소조의 소조장 부인 손금숙(38)아주머니의 말에는 희떠운 구석도 있었으나 꽤 재미를 보는 듯싶었다. 『우리 조선족은 논농사를 지어 겨우 먹고 살았디요.근래는 밀수덕에 돈푼이나 쥐게 됐습네다.싸구려 담배 한보루에 동 1키로를 바꾸는데 륙원 벌이는 거뜬하단 말입네다.배를 타고 강에 나가 고기그물을 늘여놓다가 기회만 다면 슬쩍 바꿔치기를 하니 귀신인들 알겠습네까.어떤 때는 한족들의 통역을 해주고 수고비를 챙기디요.통역은 되도록 여자들을 써서리 우리 조선족 여자들이 돈을 잘 벌디요.강건너 사람들도 여자가 나가면 별 의심하지 않고 쉽게 접촉하네까…』 거래는 모두가 물물교환이다.조무래기밀수도 그러하지만 여법한 무역 역시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지난 1994년께만 해도 계약한 물건을 북한에 보내주고 필요한 물건을 뒤에 받았지만 지금은 맞바꿈하는 동시교역방법을 채택하고 있다.엄청난 금액의 물건을 보내주고 맞먹는 물건을 받지 못해 파산한 업체가 많아 동시교역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피해를 중국쪽에서만 보는 것은 아니다.양쪽이 피장파장이어서 북한쪽에서 물건을 못받는 경우도 있다.지난해 7월 신의주에서 단동의 어느 업체로물건값을 받으러 왔다가 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빚을 진 단동의 업체는 융숭한 대접으로 빚을 얼버무릴 요량을 대고 신의주에서 온 사람에게 주연을 베풀고 잠자리에 아가씨를 넣어주었다.그런데 경찰의 단속에 걸려 신의주 사람은 강제추방되고 아가씨는 벌금 8천원도 모자라 매음죄로 구류를 살았다.술집주인은 아가씨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5만원의 벌금을 물었다. ○배고파 국경넘기도 밀수나 무역은 돈을 벌기 위한 짓이다.이와는 달리 헐벗어 춥고 못 먹어서 배가 고프기 때문에 국경선을 넘는 일도 은밀히 이루어졌다.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길림성 장백현 14도구진의 조선족은 기막힌 사연 하나를 털어놓았다. 『지난해 겨울이었댔는데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디.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가 하고 막 불을 죽인 참이어서 다시 불을 켰수다.문을 열었더니 강건너 사는 사촌이 불쑥 나타납데다.그 추운 설한인데 핫바디에 양말도 안 신고 머리를 수건으로 싸맨 꼴은 정말 딱해 못볼 지경이었수다.뒷골방에 숨어 꼭 일주일을 묵었디요.떠나던 날 밤에 쌀 한포대와 밀가루 한포대,부식을 챙겨주었댔습네다.짐보따리를 새끼줄에 묶어 얼음판이 된 강을 건너는 것이 멀리 보입데다.자세히 건너다보니까 식구들이 다 나와 반기는데 울음이 왈칵 치밀었디요』 압록강유역 조선족의 인정은 아직도 메마르지 않았다.그래서 북한의 친척이 얼음이 풀리고 나서도 건널지 모를 압록강 물길을 걱정했다.
  • 악화되는 식량난(북녘국경지대 지금은…:5)

    ◎춘궁기 북한주민 국경넘어와 양식구걸/“새땅찾기” 개간사업에 야산은 온통 “민둥산”/북친척방문 조선족 자기먹을 양식 따로 휴대/원자재 바닥나 공장기계 멈추고 상점 진열대는 텅비어 압록강 건너 신의주를 마주보고 있는 중국 요령성 란동시 세관 옆의 허름한 버스정류장.60년대 한국의 시골버스를 연상케 하는 2대의 버스가 북한으로 가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그 버스는 보통의 버스가 아니었다.절반으로 나누어 뒷부분은 짐을 싣도록 개조된 「절반의 버스」였다. 그 절반의 버스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징표다.북한에서 필요한 식량이나 생활필수품을 보다 많이 싣고 가기 위해 버스를 개조한 것이기 때문이다.그날도 짐칸은 양식이나 식용유 등을 넣은 상자로 한치의 빈틈도 없이 가득찼다. 버스는 보통 하루에 1∼2회씩 「양식」과 북한의 친척을 방문하는 조선족을 태우고 국경을 넘는다.북한으로 막 떠나려는 버스에는 10여명의 북한 방문객이 타고 있었으며 조그마한 버스정류장은 이들을 환송하는 조선족으로어수선했다. 아내를 환송하기 위해 나왔다는 조선족 황모씨(43)는 『중국에서는 북한의 식량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조선족이 북한에 갖고 가는 양식에 대해 거의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는 『조선족은 양식이든,생활필수품이든 자신이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모두 챙겨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길림성 장백현에서 만난 조선족 최모씨(53)는 『옥수수·감자를 먹을 정도면 잘 먹는 축에 든다』며 『많은 북한주민은 풀뿌리나 칡뿌리 등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고 말했다.조선족은 이 때문에 북한의 친척을 방문할 때 자기가 먹을 양식과 친척에게 줄 양식을 갖고 가는 것이 상례화돼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함경북도 무산군 노덕리와 강폭이 1백m쯤 되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중국 길림성 화용시 덕화진 남평촌.2백∼3백가구가 오순도순 모여 사는 농촌마을이다.서정적인 농촌풍경이 한가롭지만 이곳 주민은 커다란 걱정거리가 생겼다.중국인 양모씨(58·여)는 『춘궁기를 맞아 끼니거리가 없는 북한의 무산군 주민이 하루가 멀다 하고국경을 넘어와 밥을 얻어먹거나 양식을 구걸해가는 통에 안줄 수 없어 고민』이라며 그들의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함경북도 회령의 상황도 암담하다고 한다.최근 회령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선족 김모씨(42)는 『회령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죽음의 도시」 같았다』고 말했다.『식량난에다 원자재마저 부족해 대부분의 공장이 가동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오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거리의 상점에는 진열된 물건도 없고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회령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안내원에게 친척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그러나 안내원이 『친척이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며 친척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렇지만 거듭 간청해 돌아오기 전날에야 겨우 친척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준비해간 건면(밀가루국수) 50근과 사탕·과자 등을 내놓았다.친척은 『7개월동안 양식을 배급받지 못했다며 우리 두 식구가 반년은 먹을 수 있다』고 즐거워했다고 한다.왜 만나려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친척은 『대접할 음식이 없어 초청을 못했다』고 말해 그는 한동안 할말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길가에 20대청년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안내원에게 『왜 저러냐』고 묻자 『간질병이 도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그러나 나중에 한 주민에게 묻자 『못먹어서 그렇디요』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고 그는 전했다. 북한은 날로 악화되고 있는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숭선진에서 만난 조선족 김모씨(36·여)는 『북한은 식량절약을 위해 「하루 한끼 먹기운동」 「새 땅 찾기운동」등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새 땅 찾기운동은 야산에 새로운 땅을 개간하는 것. 북한은 이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뙈기전을 허용하고 있다.뙈기전은 주민이 아침저녁으로 짬을 내 야산을 개간해 만든 조그마한 땅이다.그는 『뙈기전에서 생산한 양식은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주민이 뙈기전 개간에 온통 신경을 쓴다』고 설명한다. 뙈기전과 산에 밭을 만드는 국가적 개간사업으로 북한의 야산은 나무를 찾아볼 수 없는 민둥산으로 변해 있었다.지난해 일어난 대홍수 원인중의 하나도 개간사업이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북한은 식량난에 대한 주민의 불만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한국의 전쟁준비설을 선전하고 있다고 한다.고구려의 도읍지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서 만난 조선족 강모씨(46)는 『북한은 식량난을 무마하기 위해 「한국에서 전쟁을 벌이려 한다」고 선전하며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전했다.〈중국 길림성 집안에서=김규환·김명환 기자〉
  • “새정치위한 당대표 교체 당연”/물러나는 김윤환 대표 문답

    ◎“자리 연연안해… 전국위 끝내고 중·일 여행 계획” 신한국당 김윤환 대표위원은 25일 김영삼 대통령과 청와대 오찬회동을 마친뒤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8개월여만에 대표직을 물러나게 된데 대한 소회를 피력했다.다음은 일문일답. ­대통령과 어떤 얘기를 나눴나. ▲대통령께서 『사의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셨다.『수고 많았다』면서 『특히 총선등 어려운때 대표를 맡아 고생했다』고 노고를 치하하셨다. ­사의 수락에 따른 심경은. ▲총선을 끝낸 뒤 새로운 정치구상과 당체제 정비를 위해서는 대표를 교체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한다.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그래서 총선 직후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일괄사의 표명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아 그뜻을 대통령께 전달했던 것이다. ­후임에 대한 언질은 없었나. ▲일절 없었다. ­전국위 일정이 예상보다 앞당겨졌는데. ▲당초 5월 10일쯤으로 생각하신 것 같다.그러나 전국위가 너무 늦어지면 당의 공백현상이 지속되므로 빨리 치르는 게 낫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결국 대통령 일정을 고려해 7일로 조정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7일까지는 대표 아닌가.전국위가 끝난뒤 부부동반으로 일본이나 중국 등을 여행할 계획이다. ­국회의장직 제의가 있었나. ▲(웃으면서)무슨 쓸데없는 소리냐.나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8개월여 동안 5·18특별법과 정기국회,총선등을 치르면서 대표직을 맡았던 소회는.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를 위해 일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치적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박찬구 기자〉
  • 회색도시 혜산(북녘국경지대 지금은…:1)

    ◎황폐한 민둥산 아래 혜산이/홍수에 씻긴 계단밭 심각한 식량난 상징/압록강 빙판서 중국인과 먹거리 “암거래”/초병감시 피해 빨래터서 아낙네들 물건 흥정/오징어·명태 서너마리 입쌀·담배 등과 맞마꿔/“왜 양말 안신느냐”에 “건강해서…” 신경질적 답변 중국 국경에서 바라본 북한의 국경도시 혜산은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을 겪고 있는 오늘의 북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혜산은 중국 길림성 장백현에서 불과 2백m.우중충하고 낡아빠진 건물로 가득찬 회색빛 도시 혜산은 역사의 시계가 정지한 듯한 북한의 오늘을 상징하고 있었다. 연길시에서 자동차로 18시간.혜산은 압록강건너 바로 코앞에 나타났다.인구 3만명의 양강도 도소재지.그러나 중국의 도시와는 달랐다.중국의 도시들은 경제개발등으로 활기에 넘쳐있으나 혜산은 도소재지임에도 불구하고 활력과 생명력을 잃어버린 도시처럼 보였다.밤이 되자 혜산은 중국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휘황찬란한 간판은 물론이고 전깃불조차 찾기 어려운 적막의 도시로 변했다. 혜산을 더욱 초췌한모습으로 만든 것은 「황폐한」뒷산이었다.한톨의 양식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밭으로 개발한 뒷산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앙상한 모습이었다.자연의 본래 모습을 잃은 「개발된 산」은 홍수의 원인이 되어 오히려 식량난을 부채질하는 역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장백현 국경다리에서 4㎞쯤 떨어진 오연포 공업구.오연포와 바로옆에 있는 혜산시를 왕래하는 북한사람은 대부분 등에 배낭 같은 것을 지고 있었다.중국인 팽덕리씨(여·47)는 『그들이 지고 있는 것은 먹을 양식』이라고 말한다.그녀는 『옥수수나 감자면 좋은 편이고 칡뿌리나 풀뿌리도 있다』고 설명한다. 장백현 강둑에서는 자주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그러나 그것은 흥에 겨운 낭만적 휘파람 소리가 아니다.강둑 군데군데 모여있는 3∼5명의 사람이 밀무역을 하기 위해 북한인을 불러내는 생존을 위한 휘파람 소리다.팽씨는 『밀무역이라야 북한인은 명태나 낙지(마른 오징어를 지칭) 서너마리를 내놓고,중국사람은 입쌀(현미) 2∼3㎏과 담배 몇갑을 주는 정도의 물물교환』이라고 말한다. 하오 2시.국경다리에서 오연포에 이르는 압록강 얼음위에는 사람이 10여명씩 군데군데 모여 떠들썩하다.1백m도 안되는 강폭 얼음위에 밀무역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북한의 아낙네들이 얼음을 깨고 만든 물웅덩이 앞에 앉아 빨래를 하거나 물깃는 시늉을 한다.그 주위를 10여명의 중국사람이 둘러싼다.북한 초병의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그 안에서 물물교환식 밀무역이 이루어진다.세계는 컴퓨터 판매가 이루어질 만큼 정보화 시대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북한의 국경에서는 원시적 물물교환이 중요한 삶의 하나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북한 초병의 감시의 눈을 피해 20대 북한 여인이 흥정을 한다.가난에 찌든 모습의 그녀는 양말도 없이 얇은 비닐신만 신고 얼음위에 앉아있다.『왜 양말을 신지 않았느냐』고 묻자,『건강해서 신을 필요가 없다』고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인다. 그 옆에서도 한 아낙네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빨래」를 하고 있다.오른손으로 방망이질을 하면서 왼손으로는 품속에서 낙지를 얼른 꺼내 보이고는 품속에 다시 넣었다.그런 동작을 서너차례 반복한뒤 그녀는 빨래를 머리에 이고 돌아갔다.『그녀의 동작에는 언제,어디서 다시 만나자는 암시가 있다』고 조선족 곽모씨(37)는 설명했다. 그녀가 돌아간 후 「아기」를 업은 다른 아낙네가 강을 건너온다.사람들이 다시 그녀를 둘러싼다.그러나 그녀가 업은 것은 아기가 아니다.밀무역할 명태나 낙지를 아기처럼 위장한 것이다.거래가 이루어진뒤 그녀는 다시 국경을 넘는다.밀무역을 하던 조선족 이모씨(32)는 『저렇게라도 밀무역하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축에 든다』고 말하고 『밀무역해봤자 손해볼 때가 많지만 북한주민이 불쌍해 계속한다』고 털어놨다. 국경에서 밀무역을 하는 북한인은 대부분 여자들이다.하루 하루 고달픈 생활의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북한 아낙네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밀무역을 한다.그러나 국경초소에 있는 북한군의 감시의 눈도 밀무역은 눈감아줄 때가 많다고 한 조선족은 말했다.먹을게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란다. 가난이 일상화된 북한인의고달픈 생활.영하의 날씨는 그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고 춥게하는 듯했다.그러나 국경에도 멀지않아 봄은 찾아올 것이다.국경의 봄은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겠지만 북한사람의 생활에는 「봄」이 찾아올 것 같지않다.국경도시 혜산은 내일도 한 겨울일 것 같다.〈장백현(중국)=동북아기획취재팀 김규환 기자〉
  • 독도 동∼서도 매립/어업기지 등 건설/극일운동연 추진

    【부산=이기철기자】독도의 동·서도사이 바다를 메워 독도를 유인도로 만들려는 시민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이는 독도에 대한 우리의 영유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극일운동 시민연합(의장 황백현)은 17일 독도의 동·서도사이 매립을 위한 기초자료를 모으기 위해 오는 21일 현지답사를 실시키로 했다.이번 독도답사에서 두섬사이의 거리와 수심,주변여건 등을 조사한다. 극일운동 연합은 독도 동·서도 사이 매립공사에는 1천억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독도수호의지를 전국민운동으로 확산시켜 모금운동을 펴기로 했다. 연합은 독도에 주민을 상주시키기 위해 동도와 서도사이 8천∼1만평의 바다를 매립해 어업기지,수산물 가공공장,바닷물 담수화 시설등을 만드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 민주당 공천자 219명 명단

    ▷서울◁ ◇종로=노무현(50·전의원) ◇중=미정 ◇용산=강창성(68·현의원) ◇성동갑=임종인(39·변호사) ◇성동을=설영주(43·정당인) ◇광진갑=강수림(48·현의원) ◇광진을=박석무(53·현의원) ◇동대문갑=장광근(42·현의원) ◇동대문을=김성식(38·당부대변인) ◇중랑갑=신형식(36·전개혁신당부대변인) ◇중랑을=조명원(47·변호사) ◇성북갑=이철(49·현의원) ◇성북을=황호산(37·전경실련서울시정연구위원) ◇강북갑=전대렬(54·4월혁명연구소연구원) ◇강북을=이기탁(42·한국정치전략연구소장) ◇도봉갑=안평수(46·당정책실장) ◇도봉을=유인태(49·현의원) ◇노원갑=유영래(49·기조실부실장) ◇노원을=이문옥(56·전감사원감사관) ◇은평갑=장두환(47·전개혁신당기조실장) ◇은평을=이장희(61·현의원) ◇서대문갑=박경산(37·전의회정치연구회이사) ◇서대문을=김태원(46·변호사) ◇마포갑=김용(48·한국원자력연구소 정책실장) ◇마포을=장신규(38·전경실련기획실장) ◇양천갑=서경석(47·전경실련사무총장) ◇양천을=이두엽(40·전KBS프로듀서)◇강서갑=박계동(43·현의원) ◇강서을=고진화(33·전민주개혁정치모임청년위원장) ◇구로갑=정병원(59·새한토건대표) ◇구로을=이승철(32·국민고충처리위 전문위원) ◇금천=이원영(41·변호사) ◇영등포갑=한경남(50·전전노련의장) ◇영등포을=김인동(60·전서울시기획관리실장) ◇동작갑=장기표(49·전민중당정책위원장) ◇동작을=김왕석(43·중앙대교수) ◇관악갑=김기정(42·바우테크대표) ◇관악을=이상호(44·전교조쟁의국장) ◇서초갑=곽일훈(54·정치개혁시민연합 지도위원) ◇서초을=안동수(54·변호사) ◇강남갑=홍성우(57·변호사) ◇강남을=이재경(31·전젊은연대 기획위원장) ◇송파갑=양문희(55·현의원) ◇송파을=김종완(64·현의원) ◇송파병=박인제(44·변호사)◇강동갑=이부영(54·전의원) ◇강동을=장기욱(52·현의원) ▷부산◁ ◇중·동=김정길(51·전의원) ◇서=최기복(49·통일산하회 부산지부장) ◇영도=김형기(34·조직국부장) ◇부산진갑=서종범(40·사랑의전화 대표) ◇부산진을=황백현(49·부산경실련상임위원) ◇동래갑=노재철(35·국민연합부산본부 상임위원) ◇동래을=정인조(52·대한약사회 약학위원장) ◇남갑=미정 ◇남을=허종복(55·부산JC회장) ◇북·강서갑=우주호(44·부산경실련사무총장) ◇북·강서을=안병해(39·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 ◇해운대·기장갑=이기택(58·현의원) ◇해운대·기장을=김기우(49·부산대교수) ◇사하갑=조경태(28·부산전문대 강사) ◇사하을=김도강(38·국회의원 보좌관) ◇금정갑=이황규(55·부산대교수) ◇금정을=김재규(48·부산민족민주운동연합 공동의장) ◇연제=미정 ◇수영=손태인(49·전총재특보) ◇사상갑=조용호(40·국제화전략연구원장) ◇사상을=정윤재(32·정당인) ▷대구◁ ◇중=이강철(48·정당인) ◇동갑=임대윤(39·전대표비서실차장) ◇동을=유중근(53·육원건설대표) ◇서갑=우동철(63·민족통일촉진회장) ◇서을=미정 ◇남=김진태(41·대구·경북 80년민주화동지회장) ◇북갑=이윤기(41·대구경실련정책실장) ◇북을=정병철(51·전경북일보편집부국장) ◇수성갑=권오선(37·정당인) ◇수성을=정상태(50·황금관광호텔대표) ◇달서갑=서정대(43·전국택시노조 대구시지부장) ◇달서을=미정 ◇달성=미정 ▷인천◁ ◇중·동·옹진=이신웅(55·인천도시문제연구소 이사장) ◇남갑=유종섭(45·정당인) ◇남을=안영근(37·전개혁신당조직국장) ◇연수=서상섭(46·나라정책연구회 부회장) ◇남동갑=김종용(38·21세기사회발전연구회 정책실장) ◇남동을=박호영(56·우성성업회장) ◇부평갑=정정훈(62·전의원) ◇부평을=정화영(47·한겨레문고대표) ◇계양·강화갑=김말용(68·현의원) ◇계양·강화을=정해남(53·전의원) ◇서=손기선(43·변호사) ▷광주◁ ◇동=김범태(42·진보정치연합 지도위원) ◇서=최운용(52·5·18민중항쟁동지회운영위원) ◇남=미정 ◇북갑=박대원(47·낙안건설대표) ◇북을=미정 ◇광산=미정 ▷대전◁ ◇동갑=김덕경(40·전대표비서실차장) ◇동을=강구철(42·대구민주시민회장) ◇중=김홍철(43·시민운동가) ◇서갑=윤석대(30·전대협부의장) ◇서을=이희원(50·정당인) ◇유성=이병영(49·전원자력연구소 원전프로젝트팀장) ◇대덕=김원웅(52·현의원) ▷경기◁ ◇수원장안=유용근(55·전의원) ◇수원권선=김정태(56·남북민간교류협회 사무총장) ◇수원팔달=김대권(38·수원경실련 전문위원) ◇성남수정=김준기(58·신구전문대교수) ◇성남중원=김일주(53·고려대교육대학원교수) ◇성남분당=성유보(52·전한겨레신문 편집국장) ◇의정부=미정 ◇안양만안=김준용(38·전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 ◇안양동안갑=최병권(39·전중앙일보기자) ◇안양동안을=송운학(43·전경실련기획실장) ◇부천원미갑=하장보(53·정당인) ◇부천원미을=조영상(35·변호사) ◇부천소사=이홍종(41·이철정책연구소장) ◇부천오정=원혜영(45·현의원) ◇광명갑=최정택(55·정당인) ◇광명을=김승남(30·전 남총련의장) ◇평택갑=박정수(48·도서출판 민족과 미래 대표) ◇평택을=장기천(57·정당인) ◇동두천·양주=김형광(61·전의원) ◇안산갑=문영희(52·전한겨레신문논설위원) ◇안산을=장경우(53·전의원) ◇고양갑=이근진(53·전신한국당정책위원) ◇고양을=홍기훈(42·현의원) ◇과천·의왕=김부겸(38·당부대변인) ◇구리=조정무(55·기호일보논설위원) ◇남양주=민병주(58·교사) ◇오산·화성=우호태(37·도의원) ◇시흥=제정구(52·현의원) ◇군포=여익구(49·전 민불련의장) ◇하남·광주=곽인식(57·전민추협운영위원) ◇여주=이규택(54·현의원) ◇파주=박영석(48·파주민보회장) ◇연천·포천=김유근(52·정당인) ◇가평·양평=조정용(55·산업교통신문사대표) ◇이천=황규선(59·동국대교수) ◇용인=나진우(50·용인JC회장) ◇안성=이무역(54·농촌생활경제연구소장) ◇김포=윤문수(33·농어민후계자) ▷강원◁ ◇춘천갑=최윤(39·춘천경실련사무국장) ◇춘천을=유남선(49·정당인) ◇원주갑=박정원(41·상지대교수) ◇원주을=안재윤(32·원주살리기운동본부장) ◇강릉갑=함영회(50·정당인) ◇강릉을=최욱철(44·현의원) ◇동해=미정 ◇태백·정선=최승영(32·민주개혁정치모임이사) ◇속초·고성·인제·양양=조영두(44·세린산업대표) ◇삼척=장을병(63·당공동대표) ◇홍천·횡성=신현택(55·대한제분조합이사) ◇영월·평창=엄화렬(59·전감사원감사과장) ◇철원·화천·양구=김철배(58·정당인) ▷충북◁ ◇청주상당=신창민(55·중앙대교수) ◇청주흥덕=정기호(54·현의원) ◇충주=정기영(37·한국정치연구회연구위원) ◇제천·단양=김대부(34·외국어학원대표) ◇청원=신언관(39·전농사무국장) ◇보은·영동·옥천=최극(63·정당인) ◇진천·음성=구자웅(47·충주MBC아나운서) ◇괴산=김연태(58·공인회계사) ▷충남◁ ◇천안갑=우부길(54·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연구위원) ◇천안을=박동인(57·한서통신이사) ◇공주=윤완중(50·건국대총동창회장) ◇보령=미정 ◇아산=이진구(56·국제사면위원회한국위원) ◇서산·태안=문석호(36·변호사) ◇금산·논산=강희재(45·전수자원공사노조위원장) ◇연기=김준회(53·대학강사) ◇부여=김택수(52·한일고대사연구회이사장) ◇서천=나소렬(37·공군사관학교교수) ◇청양·홍성=홍문표(49·88올림픽조직위전문위원) ◇예산=김성식(57·민추협상임위원) ◇당진=정석래(45·당진군JC회장) ▷전북◁ ◇전주완산=미정 ◇전주덕진=임광순(58·정당인) ◇군산갑=양재길(47·당정책위원) ◇군산을=고홍길(52·당교육연수원부위원장) ◇익산갑=손인범(39·전북환경운동연합운영위원) ◇익산을=박경철(40·시민연합대표) ◇정읍=김원기(58·현의원) ◇남원=최회원(46·국회정책연구위원) ◇김제=미정 ◇완주=허위남(53·알파약업사대표) ◇진안·무주·장수=최팔용(58·풍인건설회장) ◇임실·순창=미정◇고창=미정 ◇부안=김일범(57·부안신문회장) ▷전남◁ ◇목포·신안갑=미정 ◇목포·신안을=미정 ◇여수=미정 ◇순천갑=미정 ◇순천을=미정 ◇나주=미정 ◇여천=미정 ◇광양=미정 ◇담양·장성=기로을(60·전남매일논설위원) ◇곡성·구례=미정 ◇고흥=미정 ◇보성·화순=정인환(49·당대외협력위부위원장) ◇장흥·영암=미정 ◇강진·완도=미정 ◇해남·진도=임종필(43·당농수산국장) ◇무안=미정 ◇함평·영광=김기수(54·정당인) ▷경북◁ ◇포항북=방무성(54·미주한국민주회의의장) ◇포항남·울릉=김병구(49·포항지방자치연구소장) ◇경주갑=한점수(55·경북대교수) ◇경주을=윤석보(52·눌산건설대표) ◇김천=박련옥(58·전KBS대구방송국아나운서) ◇안동갑=권오을(39·도의원) ◇안동을=신종철(44·사회문제연구소이사장) ◇구미갑=윤상규(35·오리온전기노조위원장) ◇구미을=윤정석(58·전농의장) ◇영주=박찬극(54·동양석재대표) ◇영천=이준우(57·한민족통일국민운동협의회공동의장) ◇상주=미정 ◇문경·예천=안희대(43·전민청련집행국장) ◇경산·청도=김경윤(56·부산조산관리이사) ◇고령·성주=김창문(59·고령군체육회부회장) ◇군위·칠곡=권천문(53·국회사무관) ◇의성=이왕식(44·21세기경제사회연구원이사) ◇청송·영덕=박명규(44·대구경북민통련상임위원) ◇영양·봉화·울진=김종복(43·전불교사회문화협의회사무총장) ▷경남◁ ◇창원갑=이상익(42·YMCA마창사무총장) ◇창원을=이주영(44·변호사) ◇울산중=송철호(46·변호사) ◇울산남갑=한만우(48·변호사) ◇울산남을=이규정(54·전의원) ◇울산동=미정 ◇울산울주=권기술(57·전민추협 민주통신부주간) ◇마산합포=박정규(42·전국연합마창위원장) ◇마산회원=박재혁(35·정당인) ◇진주갑=미정 ◇진주을=강갑중(47·전경상대총학생회장) ◇진해=최혁(55·유니세프한국위원회진해회장) ◇통영·고성=송성욱(41·변호사) ◇사천=유홍재(41·삼천신보사장) ◇김해=이광희(38·김해환경보존회장) ◇밀양=미정 ◇거제=지만호(50·매일건강신문회장) ◇의령·함안=이정환(34·함안군농민회장) ◇창녕=박상곤(54·남발개발이사) ◇양산=박수근(62·한국노총위원장) ◇남해·하동=최종림(53·우성정밀대표) ◇산청·함양=도상수(63·산청석재대표) ◇거창·합천=백신종(43·극일운동시민연합공동의장) ▷제주◁ ◇제주=신두완(65·정당인) ◇북제주=강희찬(58·현의원) ◇서귀포·남제주=미정
  • 망언철회 요구 일본 원정 시위/2개단체 회원

    【도쿄 연합】 극일운동시민연합(의장 황백현) 회원 등 20여명은 3·1절인 1일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일본의 독도망언 철회와 사죄를 요구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또 광주 5·18 민주항쟁동지회 대표자 박판석씨(42) 등 회원 3명도 이날 외무성 앞에서 일본의 독도망언 등에 항의,삭발 시위를 벌였다. 극일운동시민연합 회원 등은 컬러 독도 그림이 그려진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고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망언을 철회하고 즉각 사죄할 것을 일본에 요구했다. 5·18동지회 회원들은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다.일본정부는 독도망언을 철회하고 대한민국정부에 즉각 사죄하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걸고 시위를 벌였다.
  • 일 독도망언속 다시맞은 3·1절/「망언규탄」·「극일함성」그날처럼

    ◎“선열의 자주정신 계승” 메아리/1백여 문인 “독도지키기” 다짐 일본의 잇따른 「독도 망언」으로 반일감정이 높아진 가운데 3·1절 77돌을 맞았다. 1919년,그날의 함성만큼이나 뜨거운 극일의 목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진다.각계각층에서 일본을 규탄하고 선열을 기리는 다양한 모임과 행사가 잇따른다. 문인 1백여명은 1일 상오 8시 독도에서 3·1절 기념행사를 갖는다.「96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위원장 서기원)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기념사,고유문 낭독,축시 낭송,결의문 채택,만세삼창 순서로 3시간 남짓 진행된다. 문인들은 고유문을 통해 『독도는 만년토록 동해의 등대로써 나라의 안녕에 이바지하였으며,그 극진함이 하늘에 닿아 천년토록 국가의 고임을 받았다』고 상찬하고 『우리가 이곳에 닿은 것이 매우 늦었으나 이로부터 자주 찾고 글로써 국토를 지키고 가꾸기에 게으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김후란시인의 축시 「독도는 깨어 있다」 낭송에 이어 ▲한국과 일본은 국가간 공익질서를 상호 숭상·수호하는 동반자 관계를 정립하고 ▲일본은 두나라 후손에게 참화와 질곡을 남긴 책임을 반성하며 ▲일본은 억지를 쓰는 구시대적 망상에서 깨어날 것 등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다. 독립기념관(단장 박유철)은 통일염원의 탑에서 3·1정신의 계승을 다짐하는 「통일염원의 종 타종식」을 갖는다.각계 대표 22명이 참석해 33번 종을 친 뒤 조국통일 실현의지와 일본의 독도망언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낭독한다. 「사랑의 실천 국민운동본부」(대표회장 유호준 목사)는 상오 11시 한일 과거청산 범국민운동본부,순국선열유족회,6·3동지회,한국기독교총연합 등 8개 단체와 공동으로 「3·1절 나라사랑 범국민운동 대행진」을 갖는다.2천5백여명이 참가하는 가운데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앞에서 종로3가 탑골공원까지 대형 태극기와 순국선열 영정을 앞세워 행진한다. 「삼일운동 기념사업회」(이사장 이원범)도 상오 8시 탑골공원을 청소한뒤 국민대 조동걸교수를 초청,「3·1운동의 현대적 의미」라는 제목의 강연회를 갖는다.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은 하오 2시 종묘공원에서 「3·1 민족자주정신 계승 및 군국주의 부활 반대 결의대회」를 갖고 일본의 망언을 엄중 경고한다. 서울시는 낮 12시 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우고 조국통일과 번영을 기원하는 「보신각 타종행사」를 갖는다.기미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의 유족 19명,3·1독립운동 유족 14명 등 33명이 참석해 33번을 타종한다. 나라밖 행사도 다채롭다.「극일운동시민연합」(의장 황백현)과 「흥사단」(이사장 김종림) 회원 10여명은 상오 11시 도쿄 일본국회 앞에서 대형 독도그림을 내걸고 3·1절 기념식 및 독도망언 규탄대회를 갖는다.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회장 배해원) 회원 15명은 사이판에서 열리는 태평양전쟁 징용 희생자 추모비 건립 행사에 참가한다.
  • 법관 6백70명 인사

    대법원은 26일 이주흥 사법연수원 교수를 법원행정처 송무국장으로 전보 발령하는 등 지법의 부장 이하 일반 법관 6백70명에 대한 전보 및 신규임용 인사를 3월1일자로 단행했다. 인사의 내용은 전보 4백52명,겸임 또는 파견 34명,시·군 판사 임용 62명,신규임용 1백22명 등이다. 새로 임용된 법관 가운데는 정인숙 변호사(사시 31회)와 김태호 변호사(사시 34회) 등 변호사 2명도 포함돼 있다. ◇전보 ▼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나천수 유원규 이인재 임승순 백영엽 김이수 △서울지법 최정수 장경삼 심재돈 전민기 이주흥(법원행정처) 차한성(법원행정처) 정덕흥 이태운 한정덕 박성철 김영식 김태훈 이종찬 김용주 김재구 조건호 서태영 △서울가정법원 박준수 김능환 △서울지법 동부지원 윤여헌 한종원 김남태 △〃 남부지원 심명수 박병효 박유신 전수안 △〃 북부지원 이두환 송흥섭 최세모 △〃 서부지원 이국주 △〃 의정부지원 손기식(지원장) 김호윤 △인천지법 김숙 서현석 백현기 김택수 △수원지법 이교림 김진권윤병각 △〃 성남지원 오세빈(지원장) 채규성 △춘천지법 강릉지원 이재홍(지원장) 김치중 △대전지법 송정훈 이성보 △〃 천안지원 김종백 △청주지법 김홍엽 △대구지법 김수학 김중수 △〃 김천지원장 이동명 △〃상주지원장 조용구 △부산지법 황형모 박창현 권오봉 유승정 양인석 박삼봉 △〃동부지원 장해창 △〃울산지원 박용수(지원장) 조병현 윤재윤 △창원지법 안영율 문흥수 △〃 진주지원 윤승진(지원장) 이인복 △〃 밀양지원장 김건익 △광주지법 윤우진 △〃 장흥지원장 박용규 △〃 순천지원 김지형 △전주지법 심병연 김용헌 △〃 군산지원 윤영선(지원장) 김희태 △〃 정읍지원장 오진환 ▼대법원 재판연구관 지대운 이대경 유남석 한기택 이광범 손태호 정덕모 조희대 최병철 송영천 백춘기 이국환 이근우 임한흠 ▼고법판사 △서울고법 김상철 이혜광(법원행정처) 윤홍근(헌법재판소) 박종연(법원행정처) 성락송 김주현(헌법재판소) 조해현 김재복 김경선(법원행정처) 김창보 이현승 권순일 이기택(법원행정처) 강일원(법원행정처) 문용호(법원행정처) 조경란 강훈 이충상 강민구 박형남(법원행정처) 양호승 박철 황용경 박윤창 김상근 김석웅 석창목 허근령 최상렬 이원일 정일성 하광용 박희문 강재철 박현순 최강섭 홍지훈 김윤기 강형주(법원행정처) 조해섭 이근윤 박영하 정종식 이재철(헌법재판소) △대전고법 이장석 김수경 이건웅 신동윤 김명재 임시규 장석조 △대구고법 주호영 김세진 은상길 조용식 이기광 김제식 △부산고법 신창수 김종기 최호근 강창옥 △광주고법 김진상 최진수 박종문 변현철 전오영 김영진 김상준(광주고법 제주부) ▼지법판사 △서울지법 심상철 신형근 강현 임숙경 박시환 조병훈 박찬 김문석 곽종훈 김동윤 여상훈 박동영 김형진 박태동 박승문 김종훈 안재현 윤영미 이정미 문용선 황대현 한창호 전광식 박대준 박관근 이우재 김무겸 김중곤 최영용 이한주 이승연 김세연 김은미 김철만 박범계 안기환 홍중표 김인욱 오승종 정준영 정태학 김창희 안호봉 이근패 김철현 손차준 한창호 최인규 고재민 이원범 이병세 이헌섭 안영길 이용구 이상철 홍진원 김영수 정선재 이은희박형준 양사연 박보영 김득환 이강원 여훈구 신석중 조용균 민유숙 이규진 △서울가정법원 최동식 장상익 김옥신 조용연 변동렬 김승표 최혜이 김범수 장순재 김학종 △서울지법 동부지원 조동섭 임수식 조승곤 홍경호 한명수 김명수 변환철 백제흠 이상윤 한양석 박정익 홍승철 홍석범 고원석 △〃 남부지원 김충섭 유철환 신태길 강승준 김경란 황일호 홍임석 양재영 안창환 서민석 손왕석 이주성 이종석 박해식 홍지욱 △〃 북부지원 김경배 임종헌 강영수 정효채 심준보 이재성 이상인 박혁 이동신 김희동 한범수 △〃 서부지원 손수일 신귀섭 김현석 박은영 우라옥 윤경 조용준 이승섭 이민영 황정근 김정학 △〃 의정부지원 박순성 유승남 이응세 조한창 이승호 김명숙 조현일 조휴옥 △인천지법 이원형 이재영 한숙희 안승호 박형명 황병하 이경구 성지용 정대홍 박희승 △〃 부천지원 김광태 △수원지법 이상원 이경철 조일영 이명규 양현주 배호근 방희선 임범석 손주환 △〃 성남지원 이성복 장성원 문영화 심갑보 김규병 △〃 여주지원 원유석 오재성 △춘천지법 이태수 김주택 △〃 강릉지원 채동헌 윤현주 홍대식 △〃 속초지원 오금석 △대전지법 한상곤 윤병구 전주혜 이선애 허용석 황성주 이은신 석동규 △〃 홍성지원 이진만 설범식 염기창 김홍준 임판 △〃 강경지원 강을환 △〃 서산지원 김남근 이성구 김정욱 신봉철 △〃 천안지원 배준현 이강훈 오선희 △청주지법 여미숙 정승원 △〃 충주지원 조남대 △〃 제천지원 이영진 △대구지법 황현호 홍기태 장희천 김찬돈 조창학 김채해 고성효 최종한 노태악 장성욱 이영숙 엄종규 △〃 안동지원 남근욱 김형한 △〃 경주지원 이백규 강석동 이담 김정도 진성철 △〃 김천지원 곽상현 △〃 상주지원 오재덕 손대식 △〃 의성지원 김창종(지원장) 임동규 △〃 영덕지원 강윤구 △부산지법 조정래 박성철 우성만 나병영 배광국 지영철 윤근수 임성근 구남수 박민수 김지영 김태창 정진호 △〃 동부지원 권기훈 김재호 박효관 김태용 임복규 윤종수 박용표 이광만 △〃 울산지원 박종민 이종언 김상환 이일주 장준현 김동윤 전호종 △창원지법 문종식 정한익 황규훈이기영 김주호 강후원 △〃 진주지원 하현국 정은영 △〃 통영지원 정상철 소영진 김원태 △〃 밀양지원 김규태 △〃 거창지원장 최윤성 △광주지법 노영대 국상종 유상재 윤종구 김정만 최승록 △〃 목포지원 박순관 손창환 이영무 △〃 순천지원 이상민 김정호 박경호 노만경 박재형 김전근 강성국 이인형 △〃 해남지원 박길성 금광수 △전주지법 김동국 △〃 군산지원 김인겸 김종필 △〃 정읍지원 박재완 △제주지법 홍승면 권오창(광주고법 제주부) 신흥철(광주고법 제주부) 한창훈 양경승 ◇겸임 및 파견 △겸임 한덕렬(법원행정처) 이상선(대구지법 소년부지원장) 오세화(부산지법 소년부지원장) 이재강(광주지법 소년부지원장) 문정현(광주지법 장흥지원) △겸임해임 하철용(서울지법) 박일환(서울지법) 김용덕(서울고법) 한위수(서울고법) 황찬현(서울고법) 최성준(서울고법) 김용출(광주지법) △복귀 정해남(서울지법) △파견기간 연장(96년 3월1일부터 96년 8월31일까지) 여상조 곽경직 최재형 임준호 이경민(이상 헌법재판소) 김영갑(공정거래위원회) ◇시군법원 판사 △지명 진광엽(고양시,파주시) 윤병철(포천군,철원군) 신용락(용인시) 정진경(오산시,안성군) 이상용(안산시) 정병혁(광명시) 유홍섭(광주군) 오금석(고성군) 박성규(양양군) 이상주(예산군,보령시,서천군) 성지호(당진군) 이상훈(보은군,괴산군,지천군) 김필곤(청도군,경산시,영천시) 이찬우(칠곡군,성주군,고령군) 오재덕(예천군) 손대식(문경시) 임동규(청송군,군위군) 강윤구(울진군,영양군) 이일주(양산시) 정호건(김해시) 황태진(진해시) 이영동(함안군,의령군) 김양규(하동군,사천시) 권은민(거제시,고성군) 박병칠(담양군,곡성군,화순군) 정경현(나주시) 이창한(함평군,무안군,영암군) 김대원(고흥군,보성군) 김홍도(광양시,구례군) 좌진수(여천시,여수시) 유제산(완도군) 정종(진안군,임실군,무주군) △지명해제 김범수 오승원 지영철 차기환 박보영 이강원 장석조 홍석범 이태섭 은상길 이상선 박승렬 조육신 황병하 박해식 이경구 박영화 양현주 하현국 소영진 최호근 김정학 김전근 김영권 최진수 전오영 김영진 최승록 정충모 오기두 ◇신규임용 △서울지법 박이규 이승한 박태준 이정석 김철환 홍동기 김경호 박종욱 김유진 이입래 유용현 조양희 신숙희 이석종 오경미 이우철 최석문 △〃 동부지원 위현석 박영재 이현 최주영 △〃 남부지원 조용현 심우용 문정일 김용철 김춘호 △〃 북부지원 장훈 최은배 양정일 이용운 △〃 서부지원 황현찬 김성진 이재구 김양희 △〃 의정부지원 유용호 정창호 이승택 진상범 △인천지법 연운희 김관중 성수제 김하늘 김기영 이근수 고창후 김용배 △〃 부천지원 정정미 △수원지법 문준필 곽병훈 이동근 임정수 구회근 왕정옥 김진석 최호영 문주형 △〃 성남지원 김재승 △춘천지법 김우수 박석곤 △〃 강릉지원 남기주 △대전지법 하명호 최태형 이승연 김종건 최영남 송봉준 김행순 곽내원 박순영 △청주지법 박종택 한재철 이진규 △대구지법 정인숙 권순형 김성수 손봉기 박정희 최의호 장순욱 이재근 이상균 이병삼 이정호 △〃 경주지원 채희철 △부산지법 이채문 한영표 조규현 조성제 전병관 박인식 고영태 김태호 강석규 정희권 박진영 △〃 동부지원 박창렬 △〃 울산지원 정성태 배인구 △창원지법 이정호 문혜정 이양수 이종용 노갑식 정세진 △〃 진주지원 손병준 △광주지법 정재규 이우용 유승관 김종원 신택호 김상채 송기석 손도일 곽용섭 △〃 순천지원 강경운 △전주지법 강인상 김선태 서현무 조윤희 △〃 군산지원 정지승 △제주지법 박미리 진종한
  • “독도 동·서도 매립 유인도 건설 하자”(조약돌)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독도의 동·서도 사이를 매립해 유인도로 만들자는 이색 주장이 제기돼 눈길. 부산의 극일운동시민연합(의장 황백현)은 13일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본의 망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는 독도를 매립해 공간을 넓힌 뒤 사람이 1년 내내 거주하여야 한다고 주장. 황의장은 『한국인이 상주하고 있는 섬에 대해서는 일본측도 더이상 영유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상징적 의미로 전국 각지의 흙과 돌을 옮겨 독도의 동·서도를 매립하자』고 제안.
  • 단동시 영화산기슭 항미원조기념관(압록강 2천리:23)

    ◎한국전 유물 1천여점 10곳에 전시/부지 18만㎡에 연건평 1만2천㎡… 58년 건립/김일선·모택동 친필서한·명령서등도 전시/영웅실엔 전사한 모택동 맏아들 석고상도 중국과 북한이 손을 잡고 치른 한국전쟁을 통해 오늘의 단동시인 당시 안동은 영웅도시가 되었다.그로 인해 1958년 9월 중앙문화부의 비준을 거쳐 안동에 이른바 항미원조기념관이 세워졌다.이 기념관이 오늘의 모습으로 확장된 것은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19 93년의 일이다.기념관의 확장은 19 83년 북한을 방문하고 귀국하는 길에 단동(안동)에 들른 중앙군사위 부비서장 홍학지의 주선으로 실현되었다. ○등소평 친필 든 탑 세워 항미원조기념관은 단동시 한복판에 우뚝 솟은 영화산기슭에 있다.글자 그대로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북한)을 원조한 전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의 현판은 당시 중국인민항미원조총회 곽말약(곽말약)이 썼다고 한다.18만㎡나 되는 부지에 1만2천㎡에 이르는 건물을 지었다.그리고 지난 1953년에는 등소평동지의 친필이 든 높이 53m의 탑을 세웠다.탑높이 53m는 1953년의 정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기념관에는 10개의 전시실을 두어 한국전쟁에 관한 1천1백8건의 문물이 전시되었다.이 가운데 주목을 끈 자료는 김일성이 모택동주석에게 보낸 친필서한이다..연합군의 반격으로 위기에 처하자 중국의 지원을 간곡히 요청한 김일성의 친필서한은 여러 자료 가운데 백미인지도 모른다.김일성 서한 옆에는 중국 인민지원군 조직을 채근한 모택동의 친필 명령서가 나란히 진열되었다. 그러니까 대륙의 거인이던 모택동의 휘필 한점은 결과적으로 중국을 스탈린과 김일성이 합작한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그 명령에 따라 1백만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전화속으로 뛰어든 것이다.장백현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조선족 서군(65)선생의 회고담을 들어보면 당시 중국지원군 참전상황이 잘 드러난다.19 50년 당시 장백현 공청단위원회 선전부장이던 그는 한달 훈련을 받고 중국지원군 고사포부대 제1사 제1탄소속 부중대장으로 참전했다. 『가을이 깊을대로 깊은 10월19일로 기억하지비.그날밤에 안동을 떠나 장전하구로 와서 이내 압록강철교를 건넜수다.극비의 행동이라 중국말도 못하게 했고 중국을 떠날 때 글이 있는 물건은 못 지니게 했구마.삭주를 거쳐 평안남도 북진에 도착한 것이 10월28일인가,그렇지비.그날밤 거기서 5리쯤 떨어진 영봉에서 우리 지원군과 미군이 첫접전을 붙지 않았겠슴둥.그게 운산전투였지지비』 그 운산전투에서 미군은 3일간 포위되었다.11월1일 미군이 포위망을 뚫었으나 지원군은 미군 2천명을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렸다.그 무렵에 지원군을 「38군」이라고 불렀는데 모택동이 「만세 38군」이라는 친필까지 내려 전공을 치하했다.그러나 지원군의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특히 서군선생이 소속된 고사포부대는 박살이 났다.장비가 일본군이 쓰던 것이라 포탄이 포신에서 발사되어도 12초가 지나야 터졌다.그런 상황이어서 미군의 포격과 공습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서군선생이 소속한 고사포부대는 12월25일 압록강을 다시 건너 요령성 금주시로 철수했다.거기서 소련제37.85포로 재무장하고 이듬해 3월18일 집안을 거쳐 만포로 건너갔다는 것이다.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에 비해 모든 장비가 열세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단동의 항미원조기념관에서도 확인되었다.기념관내 공군진열실에서 본 쌍방의 공군장비에서는 너무 엄청난 차이가 났다.당시 중국인민해방군은 전체 전투기가 2백대도 안되었지만,연합군비행기는 1천2백대였다는 것이다. ○연합군 비해 장비 열세 1951년 3월15일 지원군 공군사령부가 안동에 창설되었다.사령원은 유진이었는데,더러 미그15기가 F84 미군기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그러나 공중전 전과는 미미한 것이어서 조선인민군과 함께 대공포화에 중점을 두었다.요령성 관전현 석호구향 보산촌에 사는 김창권(66)씨는 전쟁 때 고사기관총소대에 복무했다.방호산이 사령으로 있던 조선인민군 제5군단 12사 1연대 1중대 고사기관총소대 사수이던 그는 당시 활동상을 소상히 이야기해주었다. 『우리 고사기관총소대는 대우가 달랐디요.일반전투원은 하루 배식량이 8백g이었는데 우리는 1천g이었단 말입네다.12.7㎜ 소련제 고사기관총으로 무장했는데,재수가 좋으면 적기를 명중시켰디요.함경남도 함주군에 주둔할 때니끼리 1951년 1월18일 오전쯤 됐을 겁네다.미군기 한대가 저공으로 공격해와서리 갈겼디요.그거이 명중되어 처음 한대를 잡고서리 뒤에 두대를 더 잡았디 뭡니까.그래서리 전사영예훈장 2급을 받았댔습네다』 그에게는 일생동안 무료치료에 자식의 대학진학특전 등이 돌아왔다.그러나 중국으로 오는 바람에 한때 무효가 되었으나,지난 1987년 전공을 다시 인정받아 지금은 매달 3백원씩 연금을 받는다는 것이다.그는 전쟁을 회고하기를 떴다하면 미군 비행기고,아군기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말로 대신했다.그렇듯 연합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는 바람에 북한은 물론 중국쪽 국경지대에도 낙하산부대들이 투하되었다. 1952년 11월15일 백두산일대에 낙하산병이 투하되자 장백·임강·무송현이 발칵 뒤집혔다.경찰과 민병대가 동원되어 5주야를 산을 수색했다.이들에 의해 1명이 사살되고 15명을 포로로 잡았다.「장백현지」를 보면 이보다 앞서 1951년 6월29일 낙하산 침투병을 잡는 데 공헌한 장백현 12도구 사람 채후남(1888∼1974년)이야기가 인물록에 나온다.채후남은 마을에 살다 행방불명된 김형길이라는 청년이 낙하산으로 떨어져 이미 이사한 어머니를 찾아 숨어든 것을 신고했다는 것이다. ○관광·참배객 줄이어 항미원조기념관 맨 위층에 마련한 전쟁묘사공간 「청천강전역」은 스케일이 엄청 컸다.그림과 실물조각,조명과 음향이 한데 어울린 이 공간은 높이 17m,너비 1백32m나 되었다.마치 전장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그 공간을 넋잃은 듯 바라보는 노인이 있어서 말을 걸어보았다.아니나다를까,전쟁에 참가했다는 노인이었다.자신을 평안북도 창성 태생으로 지금은 단동시에 사는 조선족 최정근(69)이라고 소개했다. 『은산전투를 마치고 청천강으로 나갔다.나는 포병이라 부근부대를 뒤따라 조을리에 이르니 전투가 끝났다고 그라데…,시체가 즐비해서 밤이면 얼어서 뻣뻣한 미군시체를 바람막이로 쌓아놓고 잠을 잤디 않았갔수.죽은 미군 신발을 벗겨 신는 것은 약과고 속옷까지 벗겨 입었으니 원….손을 옷속에 넣으면 이가 한줌씩 잡혔으니 별도리가 없었디』 전쟁은 가혹한 것이었다.항미원조기념관 영웅모범열사실에는 모택동의 맏아들 모안영의 석고상이 전시되었다.지원군사령부 근무중 미공군 폭격에 사망한 그의 유해는 북한에 묻혀 있다.어떻든 전쟁은 비극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그렇다면 항미원조기념관은 전쟁예찬이 아닌 전쟁억제에 더 큰 비중이 깔려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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