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백현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신촌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지역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중일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터널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041
  • 13회 미술대전/대상 정석수의 「남부정류장」

    ◎우수상 하연수(한국화)·최활영(양화)·백승관(판화)·전종무(조각)씨/모두 1천9백9점 응모… 3백25점 입상/입상작은 새달부터 「과천미술관」서 전시 제13회 대한민국미술대전(2부 구상계열)에서 영예의 대상은 양화부문에 「남부정류장」을 출품한 정석수씨(30·대구시 남구 대명2동 1900의36)가 차지했다. 26일 상오 심사결과를 발표한 한국미술협회(이사장 박광진)는 이번 구상부문 미술대전에는 모두 1천9백9점이 응모한 가운데 양화부문의 대상을 포함,4개부문(양화 한국화 조각 판화)에서 3백25점(한국화 1백37점,양화 1백22점,판화 25점,조각 41점)의 입상작을 냈다고 밝혔다. 우수상 수상자는 ▲한국화부문에 「여인­향기」를 출품한 하연수씨(26·서울 마포구 창전동 6의151) ▲양화부문에 「청적 Ⅱ」를 출품한 최활영씨(27·부산시 영도구 청학1동 389) ▲판화부문에 「진화­Ⅲ 94­10」을 출품한 백승관씨(34·서울 양천구 신정동 신시가지아파트 905­1204) ▲조각부문에 「황후의밥 걸인의찬」을 출품한 전종무씨(33·서울 중구 신당3동 349의224 다세대201호)가 각각 결정됐다. 이종무 심사위원장은 『이번 미술대전에서는 지난해에 비해 출품수가 많이 준 반면 뛰어난 작품이 적지않게 눈에띄었다』면서 『출품작의 감소는 미술대학의 지도계획과 교수분포에 큰 원인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입상작은 10월1일부터 18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되는데 이어 수원(11월13∼18일 경기도문화예술회관)부산(11월20∼29일 부산문화회관)제주(12월3∼12일 제주문예회관)에서 순회전시된다. ◎대상받은 정석수씨/사실화의 새로운 의미 표출에 노력 『사실화의 새로운 의미를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작품을 내왔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돼 영광입니다』 제13회 대한민국미술대전(2부 구상계열)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정석수씨(30)는 지난해 미술대전에서 겪었던 낙선의 아픔을 깨끗이 씻은듯 앞으로 계속 정진할 각오를 밝혔다. 수상작 「남부정류장」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동생의 모습을 거의 사진에 가까운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 계명대서양화과 재학시절부터 주로 인물화에 치중해오던중 세대간의 갈등을 다룬 연작 4부작을 구상,이번 수상작은 그 첫번째 작품으로 화면구성과 색감처리에서 높은 작품성을 일구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인간의 생활속엔 수많은 갈등이 내재돼있고 진정한 의미의 삶이란 갈등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의미한다고 본다』는 정씨는 사실적인 기법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대학시절 은사들로부터 부분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가장 보탬이 됐던 스승은 「명화집」이라고 귀띔하는 그는 그림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이 화집을 자주 볼 것을 권하기도. 아직 미혼으로 현재 대구의 미술학원강사로 일하는 그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사람사는 모습과 그 진정한 의미를 담아내기 위한 고민이 가장 큰 고민이 될 것 같다』며 웃는다. ○입상자 명단 ▷특선◁ ◇한국화=박순철 박진순 김옥경 김정숙 주영옥 최광석 서일석 김경희 조현동 홍소안 송환아 이관성 조용백 김범수 ◇양화=박혜경이명수 김윤택 주영웅 김태균 서중규 이팔용 이점실 박봉춘 고기범 박 용 송하준 ◇조각=배승현 전덕제 조숙의 이기수 ◇판화=엄대상 박 훈 ▷입선◁ ◇한국화=이현아 최한용 서태섭 최기성 문운식 유흥수 구본순 서성기 박봉열 이서정 윤덕자 이은영 임명숙 노윤경 오유진 최원석 박혁기 박선진 이청초 박무길 김길동 김남주 조남윤 진인범 이화길 이남미 윤경옥 김동환 곽수봉 장현재 이은영 유영열 양동언 임갑재 유기종 이의재 배석미나 이진심 이만식 고선희 김인선 홍푸르메 장 철 김창웅 김현주 이혜연 우승현 정영미 김재구 박영일 김영권 백현호 김영주 성민홍 최전숙 강남곡 이승철 장희영 최승규 함용식 정동복 최진호 유철수 하영준 이은호 김명연 최은미 박태홍 문제성 장안순 모용수 박찬석 김호중 백동칠 임녕하 정영남 김희남 이경모 박계수 강상복 김미경 오숙인 임상빈 이은경 이영환 윤의중 정선심 박운용 정성봉 윤경숙 남학호 이정선 이미자 유광덕 손성완 최명순 김충식 정형열 구경회 황규덕 박완용 권영주 서수령 차연우 이철규 양명이 임소형 송민섭 정근호 박정환 이송아 정난옥 김의신 송현정 김은경 안용철 사지혜 박수인 최정도 박윤호 정성태 조 선 ◇양화=임흥빈 유성복 서송숙 장미혜 김대필 고진오 이정희 박근희 임현규 박상덕 정종기 이경준 김종한 권영술 예양해 권순교 이길성 김복남 엄윤숙 이승봉 이재용 김대하 박만수 김원중 지태섭 문명호 김봉진 유봉현 김예순 김도영 손영선 정계령 최경옥 정청향 김장혁 전태영 김광강 정태영 김형돈 박희옥 이동숙 황경원 김영대 소영욱 박성민 이창규 곽동경 안정균 박계현 하명수 김광수 조몽룡 송길호 박수남 안창표 이봉수 윤장렬 민경숙 정창기 양환태 김명수 이구일 김종길 김순영 맹문주 배수봉 김종한 모종애 황 란 신은봉 조경자 이근복 김인배 박경민 이강미 소순희 최성배 윤석수 김정숙 문춘길 장동문 지창림 최경철 강금석 남기종 한혜영 강연태 조순미 여재식 김은희 김경란 심유림 권진용 전용훈 강승완 조 헌 박천복 김홍렬 유영복 오효석 이형삼 문정애 임정렬 송상섭 한송철 유재하 신홍직 문정호 ◇조각=전용환 박민섭 안철영정두진 노정용 이교동 이상근 이규동 전상욱 방주혁 이상호 조성재 박상희 이경순 송바우 노세주 최부윤 백승업 김동숙 윤기호 최진수 배정길 백은하 박정용 김봉균 김형득 이상춘 송광희 지헌명 천종권 김용진 박영선 고갑주 국경오 최정유 임종필 ◇판화=이숙영 오기옥 조은휘 전종수 노현임 민경희 최수진 전영근 박정호 정기준 조혜경 최병구 박구환 조용훈 유재웅 서정봉 임병중 백성혜 한소영 김예영 정희경 신승균
  • 정상회담 빠를수록 좋다/김형국(대북정책 새 접근)

    ◎핵연료봉 재처리시간 주지말아야 북한 김일성사후의 새로운 지도체제는 장례식 이후에 공식적으로 윤곽을 드러내겠지만 그동안 명실공히 제2인자로 군림해 왔던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할 것이 거의 틀림이 없다. 김일성의 영향력 아래서 후계자로 지목받은 이후 가능한 공공행사의 참석을 피해왔던 김정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혹자는 그의 비정상적인 사생활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고 혹자는 그가 비범한 두뇌와 논리를 가진 자로 평가하고 있다. 어떤 경우이든 앞으로 그의 행동은 향후 남북관계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정부가 현재 남북정상회담의 개최원칙에는 변함이 없으면서도 북한의 권력계승이 완전히 완료된 후에 정상회담개최를 위한 시기나 조건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나름대로 신중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을 정점으로 하는 북한의 신체제는 아주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상당기간 권력기반을 공고히 해나갈 것으로 분석된다.일부의 평가처럼 그의 권력승계 이후 당장 족벌간,파벌간 권력투쟁이 일어나거나 군부와의 마찰 등을 상정하는 것은 북한의 정치권력을 서구의 시각으로 보는데서 연유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정일체제는 그동안 김일성이 근 반세기동안 구축해온 「주체노선」의 큰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과거 소련의 스탈린이나 중국의 모택동이 사망한 후에 풍미했던 전임자에 대한 격하운동은 김일성사후의 북한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더욱이 군사쿠데타에 의한 전혀 새로운 지도층의 확립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김일성은 『일제로부터 민족해방을 가져오고 미제국주의로부터 인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강압적인 방법으로 그의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너무나 확고히 굳혀왔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러한 명분과 카리스마를 꺾을 자는 없는 것이다. 김정일체제는 그러나 새로운 지도자로서 이미지의 구축을 필요로 할 것이다.그러한 이미지는 이른바 「인민의 행복과 안녕」을 구두로서가 아니라 현실로서 보장해야만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만약 이같은 「물질적인 보상」이인민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으면 이미지 구축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체제유지 자체가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김정일체제는 생전에 우상화했던 김일성을 이제는 신격화시키고 김일성이 죽기 전에 추구하려 했던 정책노선을 당분간 답습할 것으로 예상된다.왜냐하면 이 길만이 김정일지도체제의 조기정착을 가능하게 하고 김일성이 구사했던 방대한 권력의 공백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김정일체제의 갑작스런 대외정책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그것은 김일성노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뿐아니라 김일성노선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자신의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것이기 때문이다.김정일체제가 개방을 추구한다 해도 지금까지의 『주체성을 훼손받지 않는』 극히 제한적인 범위내에서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김정일체제의 성격을 감안하여 우리의 대응에 관해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남북정상회담을 가급적 신속히 재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북한의 김정일체제가 사실상 구축된 이상 남북한 정상이 하루빨리만나는 것이 한반도의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남북한간이 더이상 경쟁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온 세계가 다 알고있는 이상 회담결과의 성패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북한 신지도층의 핵에 대한 의견과 김일성의 고려연방제 통일안에 대한 견해를 직접 알아보는 것만해도 큰 소득이 될 것이다.대화가 없는 대결보다는 대화가 있는 대결이 훨씬 안정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둘째,북한핵문제를 고려하여 가급적 8월말전에 1차 회담을 갖고 이어 적절한 시기에 2차 회담을 곧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리고 남북관계에 관한한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좋다. 북한이 지난 6월 원자로에서 꺼내 냉각저수조에 보관중인 연료봉은 8월말이면 재처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정상회담의 주요한 의제의 하나가 한반도의 비핵화문제라면 가능하면 8월말 전에 만나는 것이 북핵개발의 저지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북한의 내부정세를 빨리 안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에서 한·미·일 공조체제를더욱 공고히 해야할 것이다. 한국전쟁을 일으킨 전범으로 치부되어야 마땅할 김일성의 돌연한 죽음이 분단 반세기만에 찾아온 남북화해의 기회를 또다시 지연시킨 아쉬움을 남겼듯이 김정일체제의 구축을 도와주는 것은 분명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이 아이러니를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는 과거의 일들을 미래지향적 시각으로 분석할 때 비로소 생명력이 주어지는 것이며 당대의 사건들은 역사적 사명감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져야 미래의 역사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을수 있는 것이다.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만취상태 여성도 성폭력 유발 책임”(조약돌)

    ◎서울지법,미수범 영장기각 ○…서울 형사지법 백현기판사는 23일 서울 용산경찰서가 강모씨(27·도봉구 미아동)에 대해 강간미수혐의로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기각사유에 대해 『피해자인 홍모씨(21)가 밤늦은 시간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는등 범행을 유발한 잘못이 크다』면서 『강씨가 아직 미혼인 청년이고 초범인 점등을 고려,구속영장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법원의 이같은 처분은 최근 「성희롱재판」으로 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여성에게도 성폭력유발책임을 묻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강씨는 지난 22일 하오9시쯤 친구가 다니는 회사의 경리직원인 홍씨와 함께 술을 마신뒤 홍씨의 취한 모습을 보고 충동을 느껴 『집에 바래다 주겠다』면서 서울 용산구 원효로3가 B여관으로 데려가 강간하려다 홍씨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미수에 그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었다.
  • 유혈의 검은 대륙/종족분쟁에 끝없는 내전…

    ◎총선앞둔 남아공/흑·백 분리자치주의자 “선거불참” 저항/흑·흑 갈등에 1만5천명 정치폭력 희생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과연 소수 백인통치의 역사를 털어버리고 흑·백 공존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낼 것인가.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실시될 예정인 남아공 사상 최초의 흑·백 다인종 총선에서 3백50년간 계속돼온 소수 백인통치에 종지부를 찍을수 있을 것인지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까지는 여론조사결과 넬슨 만델라가 주도하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지지율이 한결같이 60%를 넘고있어 순조롭게 총선이 이뤄질 경우 ANC의 집권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다.그러나 정국불안의 불씨가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있어 남아공 총선정국은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 48년 현 국민당 집권이후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로 일컬어지는 대표적인 인종차별정책을 채택,전체인구의 13.6%에 불과한 소수 백인들이 75.2%에 달하는 흑인들을 지배하는 기형적인 정치체제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지난 89년 인종차별정책의 대표적 인물인 피터 보타 대통령이 물러나고 현재의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남아공 정정은 급변했다.90년 2월에는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27년간 수감생활을 하던 넬슨 만델라가 석방됐고 이어 33개 흑인저항단체들이 합법화 됐다.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만델라를 흑인의 공식대표로 인정하고 91년 12월 남아공 26개 흑백 정당대표들의 모임인 「민주남아공회의」(CODESA)를 구성,93년 7월엔 흑인의 참정권을 인정하는 새 헌법을 제정하고 다인종 총선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이와함께 총선을 관장할 과도행정평의회(TEC)를 출범시키고 과도헌법안에 대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소수 백인통치 종식을 위한 절차를 밟아나갔다. TEC는 흑·백인 정당대표들이 참여하며 정부 결정사항에 거부권을 행사할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구로 흑인들은 TEC에 참여함으로써 남아공 사상 최초로 정치에 참여할수 있게된 셈이다. 과도헌법안은 양원제와 대통령 간선제를 채택했으며 4개주와 보푸타츠와나·트란스케이·시스케이·벤다등 4개 흑인자치국을 포함한 10개 홈랜드(흑인거주지구)로 이뤄진 현재의 행정구역을 해체,새로 9개의주로 재편하도록 규정했다. 본래 흑인거주지구는 남아공 전체 영토의 13%에 불과한 불모지로 전체 흑인의 75%를 거주시키고 참정권을 박탈하는 대신 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흑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같은 행정구역 재편은 한편으로 백인들만의 자치국가를 건설하려는 백인 보수세력과 흑인 분리자치주의 세력들의 저항을 가져왔다.백인우익단체의 연합체인 「아프리카너 국민전선」(AVF),최대 흑인부족인 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IFP),흑인자치국인 보푸타츠와나등이 지난해 7월 연방제 실시에 맞서 자치권 확보를 위해 「자유동맹」을 결성한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7일에는 보푸타츠와나 흑인자치정부가 갑자기 총선불참을 선언,총선 참여를 요구하고 ANC를 지지하는 흑인들의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이 과정에서 백인 우익무장세력 5천여명이 루카스 망고페 보푸타츠와나 자치국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폭동현장에 진입,한때 보푸타츠와나 경찰과 충돌하는 위기상황을 빚기도 했다. 보푸타츠와나 자치정부는 이 폭동의 후유증으로 무너지고 자유동맹 내부의 분열이 초래했다.보푸타츠와나와 AVF의 일부 세력이 총선불참 대열에서 이탈하고 현재는 단지 줄루족의 인카타 자유당과 신나치주의 백인단체인 「아프리카너 저항운동」(AWB)등 자유동맹내 일부세력들만이 총선불참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AWB는 1만여명에 달하는 자체 무장병력을 보유하고 있어 총선정국의 무시못할 장애물이 되고 있으며 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 지도자 망고수투 부텔레지는 여전히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울것을 주장하며 총선불참을 분명히 하고있다. 다른쪽에서는 줄루족의 족장인 굿윌 즈웰레티니가 지난달 줄루족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총선정국을 긴장으로 몰고갔다.또 지난 6일에는 줄루족 거점인 나탈주와 콰즐루 홈랜드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황에서 줄루족 2만5천여명이 창과 도끼등을 들고 독립국가건설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에따라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만델라 ANC의장은 줄루족을 총선에 참여시키기 위한 회담을 잇따라 열었으나 현재까지는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있는 상태다. 「남아공의 고르바초프」로 일컬어지는 데 클레르크 대통령 등장이후 만델라가 석방되고 흑인단체가 합법화된 뒤에도 지금까지 정치폭력으로 사망한 사람은 무려 1만5천여명에 이르고 있다.그중 절반이상은 ANC와 인카타 자유당 지지자들간 흑·흑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정국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선거를 앞두고 과거 정권의 일부분을 담당해 온 남아공내 백인들이 속속 국외로 빠져나가는등 행정공백현상도 두드러지고 있어 총선전은 물론 이후에도 남아공은 쉽게 평정을 찾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첫 자유총선 어떻게 될까/만델라 첫 흑인대통령 확실/ANC,전체의석 65%이상 차지할듯/새정부 과도연정성격… 99년까지 존속 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IFP)등 일부정파가 선거참여를 계속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9일 남아공정부와 최대 정치세력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일단 「힘에 의한 총선강행」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3백50년 남아공 역사상 처음인 이번 다인종 자유총선은 지난해 12월 현 남아공정부와 25개 정파가 도출해 낸 새헌법에 따라 실시되는 것이다. 관심의 초점인 대통령은 국가원수로 제헌의회에서 부통령과 함께 간선으로 선출된다.부통령은 하원에서 80석 즉 20%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들이 후보를 지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오는 26일부터 3일간 실시되는 총선에서는 지방의회의원도 함께 선출되며 지방의회가 구성되는대로 자체 행정부를 조직토록 돼 있다. 새로 구성되는 중앙정부는 오는 99년까지 존속하는「과도연정」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이후에는 지방정부가 상당부분 독자적인 권한을 갖는 미국식 연방제를 채택하고 백인거주지역의 자치권을 인정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현지 유력일간지인「선데이 타임스」의 여론조사는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가 흑인유권자의 세(전체의 75.2%)를 몰아 전체의석의 3분의2가 넘는 65%를 차지,압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집권 국민당은 16%,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과 백인 극우정당들은 기껏해야 2.5%정도의 의석을 차지하게 될것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의회에서 선출토록 돼 있는 대통령직은 자연스레 만델라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이나 정작 만델라는 『국민화합차원에서 대통령은 비ANC출신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장애물은 나탈주와 콰줄루자치지구를 활동무대로 한 줄루족의 인카타 자유당(IFP)과 극우백인 보수세력들.이들은 소위「자유동맹」을 결성,흑·백 양쪽으로 분리된 자치정부를 요구하고 있다. 5백50만명의 줄루족을 대표하는 IFP의 당수 망고수투 부텔레지는 아직도 소요를 지휘해가며 느슨한 연방제형태의 분리자치주의를 고수,선거불참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남아공 공산당(SACP),범아주회의(PAC)등도 선거를 반대하는 흑인강경세력가운데 하나이다.백인 극우세력 가운데는 신나치주의를 표방하는 「아프리카너 저항운동」(AWB)이 있는데 이 단체는 1만명의 자체 무장병력으로 각종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26개 정파가 망라된 과도행정평의회(TEC)가 주관하고 세계1백60여개국에서 파견된 참관인들이 행정감독과 지원을 펴게 된다. ◎“킬링필드” 르완다/민간인 수천명 인접국가로 줄이어 탈출/수도 키갈리 병원마다 참혹한 시체더미 ○…종족분쟁 재연 3일째를 맞은 8일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는 생지옥을 방불케하는 아수라장의 모습을 연출.이곳에서의 살인행위는 대부분 투치족과의 권력분배를 거부한 르완다정부군 및 대통령경호원들이 저지르고 있다고. 반군세력인 르완다애국전선(RPF)지도자 폴 카가메는 『키갈리는 어떠한 정부나 권위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 무정부상태다.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질서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돌에 맞아 죽기도 ○…키갈리에서 활동중인 국제적십자사 간부 필립 게일라드씨는 한 병원에서만 연고자를 찾는 시체가 공시장에 4백구 가량 포개져 있었으며 또 이보다 많은 시체들은 장소부족 때문에 병원 앞에 짚더미처럼 쌓여 있었다고 밝히고 총·칼·심지어 돌에 맞아 죽은 남녀 민간인과 군인의 시체들이 뒤섞여 있었다고 설명. ○…현지 유엔관리들과 외교관들은 아가테 우윌링이마나 르완다총리와 공보장관등 3명의 각료,6∼7명의 지도층 인사,약 20명의 성직자,수십명의 구호요원들이 정부군에 살해됐고 우윌링이마나총리를 경호했던 벨기에출신의 유엔평화유지군요원 10여명도 고문을 받은 뒤 피살됐다고 전했다.이에따라 50명의 정부고위관리들이 현지 프랑스대사관에 몸을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호대가 저질러” ○…이같은 살륙행위는 대부분 약 7백여명의 대통령경호대원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고.르완다의 다수종족으로 군을 장악하고 있는 후투주 중에서도 강경파인 이들은 투치주에 대한 양보에 반대하고 있는데 투치주뿐만 아니라 후투주 온건파들까지 무차별 살해하고 있다.일부 외교관들은 이들이 후투주내의 다른 온건파들에게 대통령직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같은 학살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분석. ○“반역자 체포 주력” ○…르완다 군사령부는 이날 르완다 라디오방송을 통해 이들 경호대원들을 겨냥,『성난 병사들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수치스런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면서 『이들 반역자들을 반드시 체포하겠다』고 다짐.그러나 대부분 투치주으로 구성된 RPF 지도자들은 이날 정부군의 폭력을 규탄하면서 질서회복을 위한 군사공격을 시작하겠다고 위협했다. ○…테오게네 루다싱와 RPF사무총장은 이날 RPF 사령부가 있는 우간다 접경 무린디에서 『위기국면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질서회복조치 시급 ○…르완다의 종족대립은 수도 키갈리에서 남부지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고국제자선의료단체인 「국경없는 의사」(MSF)가 8일 밝혔다.이 단체는 후투족이 투치족 원주민을 위협하는 부타레 지역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MSF는 의사와 구호봉사자 62명을 이같은 상황 때문에 이웃 부룬디로 소개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의료진과 의료장비 10t을 르완다 수도로 투입하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르완다인 수천명이 8일 내전을 피해 탄자니아로 탈출했다고 국제구호위원회(IRC)가 밝혔다.IRC는 4천명이 탄자니아로 탈출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응가라로모여들 것으로 전망했다.탄자니아의 IRC 직원은 약 15만명이 응가라로 올 것으로 본부에 보고했다.한편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은 르완다 및 부룬디인 약 5천명이 자이르로 피신해 왔다고 전했다.
  • 한양대 산업연구원(국제화 앞서간다:24)

    ◎21세기 대비 산학협동 앞장/미·일·독·불 기업과 첨단기술 공동연구/자기부상 열차 등 국책사업에도 참여 「국제산학협동으로 21세기를 대비하자」 지구촌의 세계화·개방화에 발맞춰 국제화에 앞장서고 있는 한양대학교 부설 산업과학연구소(소장 하백현)는 대학과 외국기업이 함께 연구·개발하는 국제산학협동체제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로 꼽히고 있다. 이 연구소는 본교 공대와 자매결연돼 있는 외국대학과의 공동프로젝트 추진과 함께 국내의 대기업과도 끊임없는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국제화로 발돋움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66년 3월 설립된 산업과학연구소에는 현재 8개 연구부(건설·도시환경·전기전자·금속재료·기계·화학·산업·에너지)에 59개 연구실이 있다.「21세기는 기술시대」라는 대명제아래 산업과학의 전문성과 세분화를 통해 첨단핵심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있는 이곳은 국내 대학 부설연구소가운데 단일규모로는 최대라는 것을 자부심으로 느끼고 있다. 대부분 공학계열 교수들인 산업과학연구소 교수들은 거의매년 여름·겨울방학을 이용해 자매결연을 맺었거나 유학을 다녀온 학교의 친분있는 교수와 합작으로 그 나라의 유수한 기업체의 공동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여기에는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웨스팅 하우스와 일본의 도시바,미쓰비시,일본전력중앙연구소,후지등이 포함돼 있다.프랑스의 알스톰,독일의 지멘스등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국제산학협동의 대표적 사례는 현동석교수(45·전기공학과).현교수는 지난해 베를린 공과대학의 켈민 호이만교수와 지멘스사의 고속전철첨단기술인 전력변환장치 ICE프로젝트 공동연구작업을 했다.이번 여름방학에는 하바로프스크공대의 초청을 받아 놓고 있다.이에앞서 지난 88년에는 뮌헨공대에서 연구용으로 썼던 지멘스의 로봇을 학생들의 현장실습을 위해 사비를 털어 사왔다.장래 국제화에 대비할 수 있는 고급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리포트나 시뮬레이션이 아닌 현장실습이 중요하다는것이 현교수의 지론이다. 현교수는 『1백39명인 공학계열교수들 가운데 80명이상이 매년 외국기업체와의 공동프로젝트와 관련해외국대학과 기업체를 다녀오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은 국제화시대에 부응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말했다. 국내기업과의 산학협동도 산업과학연구소가 국제적인 연구기관으로 발돋움 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있다.최근 이 연구소가 선경 기아 대우등 국내기업과의 산학협동 실적을 보면 지난 91년에 1백91건,92년에 1백57건(안산캠퍼스의 생산공학연구소분리독립),93년에는 2백40건등으로 기업체의 신기술개발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국내기업체뿐 아니라 국책사업에서도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임달호교수(62·전기공학과)가 연구·개발해 실용화단계에 까지 와 있는 선형모터를 이용한 차세대 엘리베이터(대우스폰서),차세대 자기부상열차(금성산전스폰서)가 산학협동의 한 예다.이밖에 이만영 명예교수(전자통신과)는 암호이론을 체계화 한 「암호학과 보안통신」과 「오류정정부호이론」을 집필,이 분야에서 세계 최초라는 업적을 세웠다.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자연과학서적 전문출판사로 알려진 미국의 맥그로힐에서 펴낸 이 책들은 미국에서 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산업과학연구소의 국제산학협동체제는 국경을 초월해 자본과 기술의 비교우위를 이용한 개념으로 어려운 파고가 예상되는 국제화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한 표본이 되고 있다. ◎하백현소장/“대학도 생산적 활동 시작해야”/이론연구­현장활동 병행의식 필요 『국제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21세기는 기술우위의 시대가 될것이며 이에따라 기술개발이 국제화의 가장 절실한 과제라고 봅니다. 한양대산업과학연구소 하백현소장(58)은 『기초응용의 원리에만 의존하면 정보화시대에 앞장설 수가 없다』며 『대학연구소는 이론과 함께 실질적인 연구활동도 병행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제 대학도 급변하는 변화의 시대에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이고 의욕적인 생산적인 활동을 시작해야 합니다.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대학연구소는 특정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하기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뒤따라 힘든 실정입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겠다는 사고의 전환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연구소는 중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해서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본산지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그 연구과제도 창조적인 목적성을 가진 특정분야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하소장의 생각이다. 『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대학과 기업이 협동해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는 방향으로 산학협력체제가 활성화돼야 합니다』 지난 60년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67년부터 모교인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하소장은 72년 프랑스 리용대학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난해부터 산업과학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다. 『기업들이 대학에 투자하는 것을 단순히 돈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데서 탈피해야 한다』는 하소장은 『기업도 산학협동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인식해야 앞서 갈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소장은 또 『대학역시 교수연구논문을 국제학회지에 투고하면 유능하고 국내에서 발표하면 별볼일 없다는 식의 사고를 털어버려야 한다』며 『대학의 특성을 감안해 집단적 연구보다는 능력있는 교수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사회에도 도움이 되고 이것이 바로 국제화로 나아가는 첩경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회사내의 부서 통폐합 단체교섭 대상 아니다”/대법 판결

    부서 통폐합은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닌 경영진의 순수 결정사항이므로 이를 이유로 한 파업등 노동쟁의 행위는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박순서 대법관)는 27일 백현선씨(서울 양천구 목동)등 한일개발 전직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시,『 불법파업을 주도한 원고들의 해고는 정당하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영악화 등의 이유로 인한 부서폐지 결정은 경영조직변경에 관한 경영주체의 결정 사항이므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회사 사정상 불가피한 부서폐지 문제를 이유로 파업을 한 것은 불법 쟁의행위인 만큼 이로 인한 해고는 정당하다』고 밝혔다.
  • 승용차­택시 추돌/승객등 4명 사망

    14일 0시20분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올림픽대교 부근 올림픽대로에서 잠실방향으로 달리던 서울 2스6695호 포텐샤 승용차와 서울 1바9203호 택시가 추돌사고를 일으키면서 길옆의 가로수를 들이받아 택시운전사 김백현씨(53)등 4명이 숨지고 승용차에 타고 있던 김정훈군(20)등 2명이 중상을 입었다.
  • 머뭇거림 없는 물갈이혁명/우홍제(데스크시각)

    이제 우리 국민들은 공직자 재산공개와 관련,많은 사실들을 매우 명확히 알수 있게 됐다. 우선 한 나라의 경제를 망치고 정치 사회적 윤리기반을 무너뜨리는 투기를 선도하면서 인플레를 부추긴 자들의 숨겨진 실상을 낱낱이 확인했다.또 고위공직자들인 이들이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국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했는지도,더불어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지도 어렵잖게 가늠할수 있게 됐다.더이상 선양이란 낱말이 어울리지 않게되어 앞으로 정치활동에서 손을 떼야만 할 인사들이 누구인지도 알게 됐다. ○투기범 상층부에 부동산 투기꾼들이 대거 적발되고 거액의 세금이 추징되는 소란이 수십번 있어 왔지만 그래도 투기심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그린벨트 규제 완화설은 공직자들의 소유분이 많아서 기회만 있으면 튀어 나온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지도층 엘리트답게 재산증식3분법에 따라 부동산 예금·증권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고 이번 재산공개때 예금 증권이 적은 것은 가·차명등으로 교묘히 위장 분산시켰을것이란 짐작도 쉽게 할수 있는게 요즘 분위기다.역시 신고규모가 적었지만 값비싼 보석류가 많을 것이란 점도 생각못할사람이 없다. 우리는 그동안 투기란 말이 나올때마다 「동네 북」격으로 주로 재벌기업을 질타했다. 기술개발등의 확대 발전적 투자는 뒷전으로 미루고 부동산 등의 투기에 열을 올렸음을 매도했다.투기와 관련된 이들의 비리는 구체적인 숫자로 자주 밝혀졌던 바이다. 그러나 지난 봄에 이은 이번 재산공개로 정·관·경의 상위계층이 부패의 공범자임은 거듭 확인된 셈이다. 모든 분야에 있어 발전의 가장 큰 장애가 되는 병목(Bottleneck)은 병의 아래가 아니라 언제나 상층부에 있음은 깨끗한 사회건설을 위해 잊혀져선 안될 경구일 것이다. 이런 항변을 하는 사회정서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비록 부도덕한 방법을 쓰거나 직위를 이용해서 치부했다 치더라도 어느 누가 이들에게 선뜻 돌을 던질만큼 투기와 축재를 외면하고 살았는가.때문에 넓게 보면 누구나가 다 부패의 무리에 속하는게 아닌가 하는 셈이다. ○「모두 부패」의 함정소년이 던지는 돌과 개구리의 이솝우화에 빗대어 재산공개파동의 조기종료를 강조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많이 가진자들이 거액의 뭉칫돈으로 투기열풍을 일으킬 때 가난한 서민이 몇푼 안되는 부동산 매입에 참여했다고 이를 부정축재의 공범행위로 서슴없이 몰아 붙일수 있을까. 그것은 차라리 없는자 적게 가진자들이 상대적 빈곤감·박탈감에서 벗어나고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얻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으로 이해되는게 보다 정확한 시각일 게다. 이같은 맥락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새 문민정부가 정·관계의 대대적이고 근본적인 물갈이혁명을 추진함에 있어 조금도 머뭇거릴게 없는 것으로 본다고 해도 지나친 얘기는 아닐 것이다. 물론 정화조치에 따른 정치·행정부문의 공백현상이 우려되긴 하지만 먼 국가장래의 득실을 고려하면 그러한 현상은 일시적인 금단증세일 뿐이다.이러한 증세가 완전치유될 때 일반국민들은 기꺼이 마음속으로부터 새 정부의 개혁에 동참할 것은 두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떤 국가사회가 부정부패의 오랜 껍질을 깨고 깨끗하게 새 모습을 갖출수 있는 기회는 매우 드문 사실을 세계 역사는 잘 말해준다.○기득층 대난설 유포 그런 관점에서 실명제와 재산공개라는 2대혁명적 장치를 어렵사리 확립한 신한국시대는 깨끗한사회 조성노력을 단회성으로 끝낼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며 이같은 장치의 역동작용을 항구적으로 유지시킴으로써 화석처럼 마비된 공직사회의 윤리감각을 확연히 일깨워야 할 것이다. 실명제·재산공개에 따른 부의 영향을 확대해석하면서 그럴듯한 대란설까지 들먹이는 기득권계층의 목소리 때문에 개혁의 강도가 낮아지거나 그 속도가 늦춰질 수는 없다. 이들 계층은 언제나 변화이전의 상태로 복귀하려는 속성과 과거 즐거웠던 시절이 다시 오리란 환상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 법관 114명 인사/대법/고­지법 순환배치 역점

    대법원은 26일 이종욱 서울지법 의정부지원장을 부산고법 부장판사로,김동건 법원행정처 조사국장을 대구고법 부장판사로 승진발령하는 등 고법 부장판사급이하 법관 1백14명에 대한 승진 및 전보인사를 오는 9월1일자로 단행했다. 대법원은 또 이달말로 10년의 임기가 만료되는 법관 62명중 대구지법 신평판사를 제외한 61명을 연임시켰다. 대법원은 이번 인사에서 사법부 개혁안에 따라 기능이 강화된 인사위원회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했으며 고법과 지법의 순환근무에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고법부장 승진=▲대구고법 김동건 ▲부산〃 이종욱·조중한 ▲광주〃 황인행 ◇지법부장 승진=▲대구지법 이교림 ▲부산〃 임승순·서현석·안영문 ▲부산〃울산지원 백현기 ▲창원지법 민경도 ▲창원〃진주지원 윤병각 ▲광주〃순천지원 채규성 ▲전주〃 백영엽·김택수 ▲전주〃군산지원 김호윤 ▲전주〃정주지원 김이수 ◇고법판사 승진=▲서울고법 박홍우·홍기종 ▲서울〃(공주지원장) 한병의 ▲서울〃 임종윤·강현·박시환·박찬·조배숙·조병훈·임숙경▲대구〃 허명·김익환 ▲부산〃 이강남·나병영·김진영·강현안·김신 ◇고법부장 전보=▲서울고법 이상현·신정치·이강국·김경일 ▲대구〃 김성한 ◇지법부장 전보=▲사법연수원 교수 박일환·이동흡·오세빈·이주흥 ▲서울민사지법 박장우 ▲〃(건설관리국장) 하철용 ▲〃 정호호·심명수·양상훈 ▲서울형사지법(조사국장) 우의형 ▲〃 김시수·김인수 ▲서울가정법원 정덕흥 ▲서울지법 동부지원 이광렬 ▲〃북부〃 현순도 ▲〃의정부지원장 최병학 ▲〃의정부지원 정은환 ▲인천지법 강민형·이태운 ▲수원〃 서태영·김용주 ▲〃여주지원장 송동원 ▲대구지법 서정석·이인환 ▲부산〃 한기춘 ▲창원〃진주지원장 서희석 ▲전주〃군산지원장 오영권 ◇고법판사 전보=▲서울고법 송영헌·홍경호 ◇지법판사 전보=▲서울민사지법 이현승·김선흠·유영일 ▲서울가정법원 정용상 ▲서울지법 북부지원 홍중표 ▲수원〃성남〃 최중현 ▲대전지법 임시규 ▲부산〃 강창옥 ▲부산〃울산지원 김태창 ▲광주지법 정경현 ▲광주〃해남지원 최승록 ◇신규임명=▲대전지법 임판 ▲부산〃동부지원 김지영 ◇기타=▲서울지법 남부지원장 직무대리 유대현 ▲부산〃동부〃 김적승 ▲광주지법 수석부장〃 맹천호 ▲부산지법 동부지원장 직무대리해제 안석태 ▲법원행정처 건설관리국장 겸임해제 손기식 ▲재판연구관 지명 김선중·길기봉·변종춘·정장오·김형진·배용범·심병련·전병식·김상호·김태우 ▲서울민사지법 판사 직무대리 이수형 ▲청주지법 영동지원장〃 김용헌 ▲대구지법 판사 〃 김수학·이선우▲부산지법 판사〃 박창현·권오봉·신우철·권건우 ▲대전지법 공주지원장 직무대리해제 안철철 ▲법원행정처 조사심의관 겸임 정현수 ▲〃송무심의관 겸임 주한일 ▲대전고법 판사 직무대리 이혜광·임준호 ▲대구고법 판사〃 손대호 ▲부산〃판사〃 곽경직 ▲헌법재판소 파견 서상홍·이인복·구만회 ▲서울고법 판사 허문
  • 행정공백 없게 국정 책임수행/현 총리 각의 지시

    현승종국무총리는 7일 국무회의에서 『서비스요금등의 인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정부가 할 일을 다하지 못해서 물가가 제멋대로 오른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관계부처에서 각별히 노력하라』고 강조했다. 현총리는 『정권이양을 앞둔 요즈음 사회일각에서 공직사회의 동요나 이로인한 행정공백현상을 우려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말하고 『흔들림없이 소신있고 책임있게 국정을 수행해 안정된 정부이양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21)

    ◎소년시절:2/“김형직에 워싱턴행적 배웠다”/82년엔 없던 “가정교육” 이번전기 삽입/“중국귀화 교육” 팔도구소학교에 편입/김일성 “공부잘했다” 회고록서 자랑 회고록에서는 김일성의 외삼촌인 강진석이 1921년 4월에 평양에서 체포된 후 더 이상 임강에 살 수 없게 된 김형직이 장일현팔도구로 이사하셨다고 쓰고 있다. 임강은 독립운동단체들의 활약이 맹렬한 지방으로 1920년 7월에는 봉천군벌 고문으로 있었던 판본준마(사카모토)의 사간도탐사반이 독립운동가들을 대거 검거하는 「모예산사건」이 있었다.김형직과 같은 자산가였던 이두희,그리고 정단등 10명이 체포되었는데 모두 유하현삼원포의 독립군중앙총단장 조맹희계통이었다. ○친지 검거로 이사 사카모토 수사반은 백산무사단 계통인 팔도구소학교 교사 김관계(김보안)는 체포하지 못하였다.그러나 같은 백산무사단 계통인 김형직이 수사당하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독립운동에 관여한 혐의가 그에게는 그만큼 적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강진석이 체포되면서 김형직도 임강을 떠나지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팔도구까지 2백50리를 이사 갈 때는 전도사 방사현이 동행했는데 압록강과 팔도구하의 합수목에 있는 마을에 광제의원을 차리게 되었다.김일성은 21년 여름에 이곳 팔도구소학교 2학년에 전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에서 말하는 임강소학교의 정식명칭이 모예산현립소학교였던 것과 같이 팔도구 소학교도 그 정식명칭은 장백현립제칠분교이다.장백현의 동남단에 현치인 장일부가 있는데 거기에 현립제1분교가 있었고 거기에서 압록강을 따라 대체로 서쪽 하류로 나가면서 제3·제4 등 분교가 설치되어 임강현경인 팔도구에 제7분교가 있었던 것이다.중국측에서는 이 학교들을 정몽학교로도 불러 팔도구소학교는 제칠정몽학교라 하였다. 팔도구의 제7정몽학교는 1917년에 설치되었다.그 12년 후가 되는 1929년의 통계에 의하면 귀화한인인 교원이 1명만 있었고 아동은 8명 밖에 되지 않았다.당시는 4년제 소학교였으므로 단순계산으로는 한 학년에 2명 꼴이었다.너무 학생수가 적어서 새삼스럽게 놀랄 정도이다. 1927년 일제가 영사분관을 모예산에 설치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임강현 지사장극상은 이를 재만한인의 탓으로 돌리고 임강현에 거주하는 한인에게 퇴거를 강요하였다.이러한 압박으로 당시 임강현에서는 한인 5백∼6백명이 현경 밖으로 도피했다. 팔도구는 임강현 바로 동쪽에 있는 한인촌락이므로 이러한 영향을 받아 1929년에는 그곳의 주민들이 아주 적었던 모양이다.이것이 팔도구소학교의 학생수 8명이란 통계에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러나 일제의 영사분관 설치책동이 없었던 1925년의 인구통계를 보더라도 팔도구의 인구는 4백명,호구는 75호였다. ○학생 겨우 15∼16명 당시의 취학률은 인구의 4%정도로 추정되므로 김일성이 있었던 1921∼2년 께의 팔도구소학교는 학생수 15∼16명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이 학생수로는 4개 학년으로 나누어 1개 학년에 각각 4명 정도인데 이 4개 학년을 교원 1∼2명이 복식수업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었다. 김일성은 회고록에서 당시 공부를 잘 했다고 자랑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쓰고있다. 「내가 다니는 팔도구소학교는4년제 중국인학교였는데 수업도 중국말로 하고 취급하는 과목도 중국의 것이었다.시내에는 조선학교가 없었다」. 장백현은 식민지 조선으로부터 빠져 나온 한인이 거의 전부였으므로 소학교에는 중국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그러나 이 학교는 한인을 귀화시켜 중국에 정착하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김일성이 있었던 1921년 당시 이 학교의 주된 교과목은 수신·국문·사회·산술 등이었는데 수신이란 유교사상이며 국문이란 한문이었다.당시는 아직 백화문(보통 중국말)은 가르치지 않았다. 필자는 평전에서 이 학교에서는 한국어도 약간 가르친 것이 아닌가고 추측했지만 김일성은 이상의 글에서 이 학교에서는 한글교육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한글과목은 없어 그 대신 그는 김형직으로부터 개별교육을 받았다고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버지는 나에게 우리 글과 지리,조선역사를 배워주고 레닌·손문·워싱턴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었다… 그 덕으로 나는 그 때 「조선문위인」「조선영웅전」「노국혁명사와 레닌」같은 좋은 책들과 신문·잡지들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의 말은 북한의 이전 전기에는 없었던 말들이다.82년 전기에서는 김형직이 임강에서 가정교육에 열심이었다는 말이 나오지만 팔도구에서까지 그랬다는 말은 없다. 팔도구소학교 시절 그가 레닌·손문·워싱턴의 이야기를 듣고 조선의 위인이나 영웅,그리고 노국혁명사와 레닌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는 것도 금시초문이다. 강진석이 체포되자 같은 우익단체인 백산무사단에 관계하였던 김형직은 겁을 먹고 팔도구에 피난하였다.그러나 김형직이 「노국혁명사와 레닌」같은 책을 자식에게 가르쳤다는 선전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가 되어도 이런 식의 날조가 진행중이다. ①「세기와 더불어Ⅰ」72면 ②같은 책 72면
  • 중립정부 책임론/강력한 정부만이 중립을 지킬수 있다(사설)

    지난10월 현승종국무총리를 수장으로 한 선거관리 중립내각이 출범했을때 국민들은 새로운 경험을 맞는 신선함으로 해서 전폭적인 지지와 기대속에서 이를 환영한 바 있다. 또한 우리는 이 선거관리중립내각이 갖는 역사적인 사명과 채무의 막중함에 비추어 중립내각은 채임내각이며 그럴수록 강력한 소신과 권한으로써 그 임무를 수행해 나가야 할것임을 강조했던 터였다.현총리내각의 의미와 입지,그리고 국민의 지지는 아직 변함없을 것이다. 현총리내각은 출범에 당해서 관권개입방지와 일선행정기관의 선거개입시비소지 등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공무원들에게 엄정한 정치적중립을 견지할 것을 지시했다.중립내각의 이같은 확고한 공명의지와 정책소신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현총리의 국회임명동의과정에서 보였듯이 국민과 정치권의 전폭적인 지지 환영속에서 출범한 중립내각에 대해 우리가 서슴없이 「책임내각」이며 「강력내각」이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소신껏 책임행정을 구현해야 한다고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 중립내각이 출범한지 두달이되었다.중립내각최대의 과제인 대선은 진행되고 있고 정부의 중립의지와 공명관리소신은 한치도 흔들림이 없어보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중립」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고 현장에서 시행할 일부 일선공직자들의 자세가 그것이다.추찰컨대 그들은 선거관리중립의 의미와 입지를 숙지하지 못하는것 같다.한마디로 「중립」이니까 움직이지 않는다는 입장일 것이다.그렇다면 이것은 대단한 착각이고 중대한 오산이다.엄정중립은 「한가운데 서있음」이 아니다.대열에서의 이탈도 아니고 엉거주춤 양다리 걸치기도 아니며 무책임과 무사안일은 더구나 아니다.공직의 도리와 공무원신분을 잊은듯 손놓고 관망하는 자세는 더욱 안되는 것이다. 저 위에서 말단에 이르기까지 선거관리 중립내각산하의 성원이라면 오히려 공명정대한 선거관리를 위해 공명을 저해하고 정대한 선거관리업무를 방해하는 모든 사안과 사례들은 가차없이 적발하고 경고하며 사직의 처벌에 돌려야 한다.왜 그것을 못하는가. 강조컨대 중립은 무소신,무채임의 대명사가 아니다.오랜 고사끝에 시대적인 소명과 국민적 요청에 부응하여 「중립」에 헌신하고자 세상에 나선 현총리요 그 내각이다.그가 공명 안되면 물러나겠다는 불퇴전의 결의와 소신으로써 국정을 수행하겠다고 했을 때 대통령과 국민들은 합의로써 이 내각에 대해 실로 막중한 책임과 함께 강력한 힘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선거관리중립내각이 출범했을 때 많은 국민들은 이제 관권선거가 사라지게 됐으니 공명선거가 이뤄질것 임에 틀림없겠다는 기대를 갖고 또 그렇게 믿어마지 않았다.그런데 이런 기대와 믿음은 미구에 깨질수밖에 없었다.중립내각의 의지와 힘을 과소평가한 일부 정치권인사들의 사전선거운동,금품의 살포,갖가지 위법·탈법 비리가 횡행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일부 공무원들의 그릇된 중립관이 횡행했다고 할 수 있다.부분적인 현상이지만 적잖은 일선 공직자들이 「공무원 중립」을 내세워 통상적업무마저 기피해 행정공백현상을 빚거나 대권 또는 정권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운채 일손을 놓고 있는 사태마저 빚고 있다. 과거 선거때마다 관권시비에 시달려온 공무원들이 이번에는 선심행정의 오해와 골치아픈 민원발생을 두려워해 각종 인허가업무나 사업착수를 대선이후로 미루고 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강력한 중립정부,책임있는 선거관리내각의 산하 공무원들 자세는 그런것이 아니다.선거는 물론이고 모든 국정과 행정사무를 보다 적극적으로 집행처리하고 힘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그릇된 중립해석이나 자의적인 중립명분을 내세워 그렇게 행동했다면 그런 공무원 공직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지금 당장 그 자리를 물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중립정부 책임내각의 공복으로서의 도리와 사명감을 갖고 그 자리에 남아있겠다면 지금부터 이렇게 해야 할 것이다.즉 김권과 혼탁 비이의 소지들을 단호히 도려낼것이며 숱한 반칙과 불법·탈법 사례들을 과감하게 적발해서 일벌백계의 처벌에 돌리라는 것이다. 우리 선거사의 적폐들은 무책임 무소신의 중립이나 경고 충고 지적같은 처방으로써는 결코 스러질수 없다.책임이 수반된 중립과 강력하고도 합법적인 정부권력만이 그 일을 해낼수 있다.강력한 중립정부의현승종총리 책임내각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 30대 재벌 가지급금 동결/공명선거장관회의/기업자금 대선유입 차단

    ◎자금유용업체 세무조사/공권력 취약지 집중투입 「금권」 감시/“행정공백없게 공무원 기강확립” 정부는 3일 기업자금의 선거유입을 차단키 위해 선거기간중에 한해 계열주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대여금·가지급금 등의 신규취급억제조치를 종전 10대그룹에 한해 적용해오던 것을 30대그룹산하 전 기업체로 확대키로 했다. 정부는 이날 현승종국무총리 주재로 제6차 공명선거관리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하고 특히 10대그룹 소속기업체 및 거액신규여신취급기업체에 대해서는 여신변동상황을 철저히 점검,여신증가가 현저한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금유용여부를 은행감독원등 감독기관에서 정밀조사키로 했다. 정부는 이와함께 국세청·금융감독기관·주거래은행·기타금융기관간의 협조체제를 구축,자금흐름의 정보를 집중 관리하고 각종 세무조사때 기업자금을 선거자금 등으로 변칙유출해 세금을 탈루했는지 여부를 중점 조사키로 했다. 현총리는 이날 『모든 공무원이 금권·타락선거근절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금권선거의 근원적 차단에는 미흡하고 국민들도 속시원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공공연한 금품살포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행위로 보고 새로운 각오로 금권선거척결에 임해달라』고 지시했다. 현총리는 이어 『재무부·국세청등 관련기관은 기업자금의 선거유입차단을 위한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 줄 것』을 강조했다. 이용만재무장관은 보고에서 『은행감독원의 「자금유용방지특별전담반」,증권감독원의 「증시조달기업자금특별점검반」등을 활용,필요할때 합동점검반을 구성,기동성 있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이장관은 『은행감독원은 5대그룹기업의 여신변동 상황을 매일,10대그룹기업의 여신변동상황은 5일마다 점검하고 하루 5억원이상 신규대출업체에 대해서는 매일 점검키로 했다』고 보고했다. 별지 김동익정무1장관은 이날 회의내용과 관련,『정부는 현재 특정기업이 부당하게 선거에 참여하고 이 문제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을 내리게됐다』면서 『정부는 선거에 개입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선거후까지도 금융 및 행정제재등을 통해 반드시불이익이 돌아가도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김장관은 금융 및 행정제재조치는 현재까지 적발된 기업들에 대해서까지도 소극적용될 것이라고 밝혀 이미 적발된 기업들도 제재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현 총리,각의지시 현승종국무총리는 3일 국무회의에서 『선거철과 연말을 맞아 일부 기관에서 근무기강이 흐트러지거나 선거중립을 내세워 통상적 업무처리마저 기피해 지연시키는등 행정공백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과 보고가 있다』면서 『지금까지 추진해온 주요 국정과제가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소속공직자들을 부단히 독려하고 기강을 점검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 미,소말리아에 파병/부시,유엔 다국적군 참여 결정

    ◎2만명 규모… 구호품 공급선 우선 확보/“무장세력 공격제압”… 치안회복 도울듯 미국이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 지상군 파병을 제의한 것은 일단 인도주의차원의 고려에서 나온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소말리아에서는 수십만명의 주민들이 기근으로 죽어가고있는데도 유엔의 긴급구호식량은 제대로 배급이 되지 않고있다.종족들간에 내전이 치열해 치안부재상태가 오래된 때문으로 미국등지에서 공수된 식량이 거의 중간에서 약탈되고말기 때문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유엔측이 비상한 조치의 강구를 미국등에 호소해왔고 이에 부시행정부가 단안을 내린 것으로 일단 풀이된다. 부시대통령은 추수감사절휴가를 떠나기 하루전인 25일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루에도 수천명씩 아사하는 소말리아주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구호식량의 안전한 공급선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아래 유엔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미지상군을 파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병력의 규모와 관련,워싱턴 포스트는 사단규모인 2만명수준이 될것으로 보도했다.이처럼 미국의 지상군이 대규모로 소말리아에 진주하게 되면 그 임무는 어디까지나 유엔의 구호식량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주민에게 확실이 배급되도록 하는데 국한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소말리아가 내전상태를 끝내고 국가로서 정상을 되찾도록 하는데까지의 역할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병력규모의 판단과 관련,미국방부와 합참측은 이왕 지상군을 파견한다면 현지 지방별무장세력의 공격이나 도발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지상군과 다국적군의 기본임무는 우선 항만·도로·구호품배급지의 경계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식량과 의약품,기타 보급품이 소말리아인들에게 적절히 배급되고 나면 최소한의 배급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병력만 남겨두고 대부분의 병력은 바로 철수한다는 계획이다. 유엔이 미국의 이같은 제의를 공식 수용하면 미국은 노스 캐롤라이나의 포토 브락에 주둔하고있는 제82공수사단병력을 파견할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이 병력의 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2천명규모의 수륙양용부대가 별도로 동원된다.이 부대는 지상주력군의 철수후에도 연근해에 주둔,소말리아의 유엔상주군이 현지 지방무장세력들의 위협에 직면할 때에 즉각 대처하는 임무도 띨것으로 전해졌다. 소말리아는 지난해 독재자 모하마드 시아드 바르가 축출된뒤 지방별 파벌들간에 내전이 벌어져 무정부상태가 됐고 기근마저 겹쳐 혼돈과 아사의 참상을 빚어왔다. 특히 최근에는 유엔군으로 5백명의 파키스탄군이 파견되었으나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하고있는 무장세력이 이들을 공항에 감금하는등 유엔의 권능이 사실상 무시되어왔다.소말리아의 혼돈이 지속되고 아사자는 계속 늘어가자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소말리아에 대한 신탁통치방안도 제기되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있으나 비동맹국가들과 이웃 아프리카나라들은 이에 반대하고있다. 부시대통령이 정권이양기에 처해있으면서도 대규모병력의 파견을 결정한 배경에는 세계유일의 군사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역할을 앞으로도 수행할 것이라는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당선자의 메시지가 있었기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클린턴은 지상군의파병움직임에 대해 부시행정부의 소말리아 기아해결노력을 지지한다고 언급함으로써 이를 뒷받침했다. 또한 미국의 정권교체기를 맞아 이란 이라크 북한등 세계의 「말썽국가」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수행강도를 얕잡아보는 것을 미리 차단하는 효과도 계산에 넣었을 것으로 짐작된다.정권말기의 레임덕현상은 불가피하다해도 대외정책의 공백현상은 결코 초래할 수 없다는 미국의 강력한 메시지라고 할수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0)

    ◎김형직의 사망신화:1/“일경에 연행도중 탈출하다 동상” 미화/“공산당 싫어해 피살” 무사단원이 증언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은 1925년 5월 이후에 백두산 서남쪽인 장백현 팔도구에서 백두산 북쪽인 무송에 이사한 것으로 보인다.무송은 백산무사단과 광정단의 발생지였고 26년에는 한때 정의부의 총지부가 있었다. 그러나 김형직은 1926년 6월5일에 32세로 갑자기 사망한다. ○26년 갑자기 사망 김일성은 이 사망의 원인을 1917∼18년 평양감옥에 투옥된 김형직이 병약하였던 것과 24년말 팔도구 내안인 평북 후창군 포평에서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후창경찰서로 호송되는 도중 연포리의 주막집에서 탈출할때 입은 동상이 악화되었다는데 돌리고 있다.사인은 직접적으로는 연포리에서 얻었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일찍이 이 주장에 대한 반박논문을 쓴 일이 있었다.그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①24년말 김형직을 연행한 경관은 아키시마(추도)와 또 한명의 조선인 경관이라고 주장하는데 68년에 발간된 「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은 도보로,72년에 발간된백봉의 「인류해방의 구성 김일성원수」는 호송차로 김형직을 연행했다고 주장을 달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탈출을 성공시킨 인물 황씨는 술병을 들고 그들을 뒤쫓아 연포리 주막에서 순사 2명을 취하게 하였다.그 틈을 타서 김형직은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씨가 호송차를 어떻게 술병을 들고 뒤쫓았는지의 설명이 불가능하다.68년 전기를 72년 전기가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은 이 일화가 창작의 하나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된다.물론 그후의 전기들에서는 두 경관은 다시 「걸어가게」되었다. ②연포리라는 곳은 한반도에서도 가장 추운 중강진 근처의 산간부락으로 영하30도를 오르내리는 곳이다.24년말이면 12월이 되는데 이런 혹한에서 탈출하여 산마루까지 올라가면 「심한 동상」으로 끝나는 정도가 아닐 것이다. ③연포리는 인가가 드문 중간고지이지만 후창과 포평에는 경관들이 아주 많았다.가령 두 경관이 김형직을 놓치더라도 그후의 그들의 경계망을 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52년 전기엔 없어 이상인데 필자는 여기에 1960년초까지발간된 김일성의 전기들에는 이러한 「일화」가 없었다.그의 만주행은 김형직이 김일성을 「데리고」만주로 갔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따라서 이 「일화」는 1960년에 있었던 조선노동당 제4차대회 이후 김일성의 「만주단독행신화」를 우상화하기 위하여 꾸며진 창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필자의 논문은 87년에 발간된 김일성평전에 실렸다.그런데 김일성은 이번에 나온 「세기와 더불어」에서 필자의 견해를 다시 논박하는 듯한 장대한 이야기를 꾸미고 있다. 그 내용인즉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의 초가을,김일성은 무임소상이었던 한글학자 이극로를 평안북도에 파견하였는데 그는 김형직이 탈출한 연포리의 주막을 들렀다는 것이다.그 주막은 당시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이극로에게 김형직 탈출의 이야기를 한 인물은 한국전쟁보다 훨씬 이전인 1930년 그가 신간회대표단에 망라되어 길림에 갔는데 이때 만난 황백하였다는 것이다.황백하는 길림소년회에 김일성과 같이 있었던 황귀간의 아버지이다. 이런 말을 늘어놓은 김일성은 이극로가 「혁명전통」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하며 무척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말 자체가 역시 날조라고 보고 있다.김일성이 50년 초가을에 그런 말을 들었다면 52년 전기에는 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가 문제로 되기 때문이다. 이극로는 82년에 죽었는데 김일성은 그가 죽어서 10년된 후에 이런 말을 끄집어 내고 있다. ○우상화위해 창작 이번 회고록은 김형직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두세번 「심한 동상」을 입히고 도중에서 마적때에까지 털리게 하고 있다.김형직이 중병에 걸리지 않으면 안되도록 새로 만든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진상은 아래의 증언에 있는 것이다. 「나는 형직 등과 같이 독립운동단체의 하나인 백산무토단에 관계하고 있었다.단장은 김호라는 사람이었는데 우리는 모두가 순전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런데 이 무렵에 공산당운동이 성하게 되었다.그렇게 되자 자연히 독립운동진영에 금이 가서 분열하였다.한방의사였던 김형직은 독립군에는 약을 주고 치료하여 주었는데 공산당은 냉대하였다. 그러한 형직을 반동분자라 하여 공산당원들이 어느날 밤 습격·살해하였다. 김성주(김일성의 본 이름)는 자기 부친이 누구에게 죽었는지도 모르면서 지금 공산당운동에 광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증언을 한 이도일은 1930년대 일제의 주주로 전락하여 김일성 토벌에 동원된 인물이다.그러나 그는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도 구출하여 김형직의 아들이라고 갖은 배려를 다 돌려준 인물이기도 하다.또 그가 말하는 당시의 소란한 세상도 필자의 연구와 일치한다. 김형직은 건강한 몸으로 있었지만 테러리즘에 희생되어 급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①「4인의 김일성」이명영저 일본 성갑서방간 242면 ②「세기와 더불어1」109면 이하 ③「4인의 김일성」242면
  • 새 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9)

    ◎김형직의 행적/세브란스의전 가짜 졸업증 내걸어/한의로 번 돈 일부 독립자금에 쓴듯/1925년 일제기록엔 「개전자」로 회고록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김형직이 어떻게 의학공부를 했으며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버지는 병석에 있으면서도 책을 읽었다.한동안은 눈병을 잘 고친다는 왕고모부 김승현네 집에서 보양을 하며 감옥에서 시작한 의학공부를 하였다」. ○18년경 한방 공부 여기서 김일성은 부친이 감옥에 갔다고 써 있지만 필자는 이것은 믿을 수 없다고 전번에 지적하였다.그러나 김형직이 1918년경에 서당교사를 그만둘 생각을 가지고 한방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배운 것을 가지고 한방의를 시작할 때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을 한다.북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선생께서는 평양에 있는 동지들에게 연락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졸업증을 구해다가 펼쳐놓고 환자들의 병을 보시었다」. 김일성은 자기 아버지가 가짜 의사였다고 북한에서 이렇게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중학교 2학년 중퇴생인 김형직은 무면허 서양의사가 되어 무지한 한인들을 기만하고 착취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무면허의사 시인 그는 이러한 수법으로 임강에서는 순천의원,팔도구에서는 광제의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무지무지하게 많은 돈을 벌었다. 25년 4월에 조사된 김형직에 관한 일제기록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팔도구,의자,김형직,삼십삼,배일,천원(자산을 말함­인용자),평남 평양출신,한학의 소양이 있다.대정8년 3월 조선독립 소요사건의 주모자였다가 관헌의 체포가 두려워서 동년 5월 대안으로 도주하고 당시 불령배(불녕배)의 오이를 잡고 있었으나 개전후 의사에 종사함」. 여기에는 25년 4월에 자산으로 일화 1천엔을 가지는 장백현 제일의 부자 김형직의 인적사항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한학에 소양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한방의로 돈을 벌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또 일제는 김형직이 「개전」했다고 쓰고 있는데 이는 그의 정치활동이 일제의 눈에는 크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으로 된다.광정단의 총무는 일종의 사무직이었고 그것도 비밀리에 맡았기 때문에 일제는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활동 주목 못받아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오동진,강제하,김시우(김시우로도 쓴다)등이 김형직의 「동지」였다고 몇번이나 강조하고 있다.그런데 오동진은 대한통의부와 대한정의부의 재무부 위원장이었고 강제하는 정의부가 설립한 화성의숙의 재무부담당이었다.김시우도 1921년 당시 임강현에 1부로부터 5부까지 있었던 백산무사단의 제1부에서 역시 재무를 맡고 있었다. 김형직은 축재의 과정에서 독립자금 공급에는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①「세기와 더불어,1」34년 ②「불로리 혁명투사 김형직선생」1968년 당간.60면 ③평전 35면 ④평전 127면,한국독립사 357∼358면.
  • 새 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8)

    ◎김형직의 행적/1920년대 민족주의 단체 활동/만주·임강·장백현 팔도구서 한의사로/25년 광정단 지방조직의 총무 명단에 김일성의 외가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독립운동에 참가한 인물을 찾으면 그의 외삼촌인 강진석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920년 봄에 임강에 있는 매부 김형직을 찾고 있다.회고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18년 이주 「강진석외삼촌이 림강에 들어와 백산무사단을 조직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백산무사단은 평안도지방의 독립운동자들을 중심으로 무어진 무장단이다.이 무장단의 본부는 림강현에 있었다.백산무사단의 국내활동지점은 중강,초산,후창을 비롯한 평안북도 일대와 멀리 평양,수천,강서 지방에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이것은 일본으로 귀화한 김정명(시천정명)교수가 발굴한 사료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이다.김일성은 이 자료를 입수하여 백산무사단의 본부를 「임강」이라고 왜곡하고 마치 강진석이 조직한 것처럼 이렇게 말한 것이다. 백산무사단은 3·1운동직후에 백두산 북쪽인 무송현에서 결성된흥업단과 동체이명으로 보이는 단체이다.그 간부에는 김호,윤세복(윤세덕),김성규가 있었다.20년이 되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매제와 가입한 듯 「무토단은 무송현화개산에 근거하고 김성규를 단장으로 윤세복을 총무로 하는 단체로서 무송,안도내를 그 세력범위로 하여 목하 열심히 단원의 모집에 힘써 왔다고 하나 하등 실력이 없다.무장단체로서 들을 가치가 없는 단체이다」 일제기록에 의하면 김형직은 북한이 주장하는 18년 가을이 아니라 18년 5월경에 평북 중강진으로부터 압록강 대안인 만주 임강으로 이주하고 있다.그런데 20년 봄에 강진석이 찾아와 임강에서 백산무사단에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김형직도 이때 입단한 것으로 보인다.김형직은 21년 여름 임강 동쪽에 있는 장백현팔도저로 다시 이주하게 되는데 임강에 있을 때와 같이 한방의를 하는 한편 민족주의 단체에 소속하고 있었다. ○「흥업단」의 이명 그간 흥업단은 군비단,태극단,광정단 등과 22년 여름에 통합하여 광정단으로 개편된다.이때 단장은 김호익(김호림,김호라고도 쓴다).군무장은 강진건,총무장은 군비단출신인 윤덕보였다.이중 강진건은 해방후 돌아와 북한의 요인으로 된다.아마도 김형직과의 인연으로 그렇게 된 것일 것이다.광정단은 대한통의부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대한정의부는 25년 1월,통의부,광정단 기타 10여개의 단체가 모여서 길림지방에 본부를 두고 성립하였다.광정단에서는 김호림이 민사부위원장으로 참가하고 있다. ○요인으로 귀국 25년 3월 광정단의 단장은 윤덕보였다.당시 이 광정단의 지방조직은 제1서부터 제4서까지 장백현에 있었다.그제4서는 팔도구에 있었고 서장이 박만석,총무가 김형식,재무 김상만,서기 김덕칠이었다.형직과 형식은 일본어 발음으로 다같이 「교쇼구」이므로 김형식은 김형직의 오기로 되는 것이다. 김형직은 따라서 1925년에는 백산무토단·광정단·정의부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①현대사 자료 28,15면 ②「세기와 더불어1」60·61면 ③조선독립운동사 ④,김정명편 9백95면 ⑤평전 85면 ⑥평전 35면 ⑦한국독립사 3백59면 ⑧평전 87면
  • 2025년 부산/야자나무가 가로수로/기상청

    ◎지구 온난화따른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대관령서 벼농사… 이모작 보편화/제주는 열대로… 파인애플 등 자생/해수면 20㎝ 높아져 해안침수 예상/CO₂ 증가가 주인… 생태계 대변화 예고 앞으로 한 세대쯤이 지나면 민물고기매운탕을 맛볼 수 없고 사과주산지가 대구에서 태백산 고랭지로 이동할 것 같다. ○사과는 태백산서 또한 서울은 제주도처럼 난대기후대로 변하고 제주도는 대만처럼 준 열대지방이 돼 바나나·파인애플이 야외에서 생산되며,부산과 광주는 아열대지방처럼 야자수가 가로수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전망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분석에 따른 것이다. 24일 기상청등 기상관계기관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오는 2025년 우리나라 전체평균기온이 섭씨 1도정도,2050년엔 섭씨 3·5∼4도 상승하면서 자연생태계가 변해 예기치 못한 현상들이 한반도 곳곳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해양생태계도 먹이사슬의 공백현상을 초래,서식지 이동이 불가능한 호수나 강의 민물고기가 자취를 감출가능성이 높다. 기후대의 변화로 농업전반에도 변혁이 예상되는데 농작물 재배가 가능한 기간이 길어지고 태백산에서는 사과가 많이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벼농사의 경우 중부지방에서도 2모작이 보편화될뿐아니라 대관령정도의 산간지방에서도 재배가 가능할 전망이다.그러나 급격한 기후변화에 따른 기술개발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수확량은 전체적으로 30%가 감소될 것이라고 기상연구소와 농업진흥청은 예상하고 있다. ○수확량 대폭 감소 기온상승으로 2025년 서울의 연평균기온은 섭씨 15도가 돼 서귀포와 비슷해지고 부산은 18도로 올라 일본의 가고시마 남쪽과 같은 아열대기후가 되며 서귀포는 대만과 비슷한 열대기후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기온상승으로 병충해와 잡초가 급증하고 재배농산물의 품종·수량·품질 등이 변하는 한편 토양과 수질이 오염될 우려가 크다. 강수량도 계절별 차이가 커 봄에는 15% 증가하나 여름에는 10%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또 지구기온상승으로 극지의 빙하가 녹으면서 바닷물이 많아져 해수면이 평균 20㎝이상높아진다. 따라서 경사가 완만한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은 해안 공업단지와 도시의 침수피해가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함께 천연자원분포및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수력·동력등 기존 에너지원의 손실도 클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동안 공해처리를 잘못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금보다 2배이상 증가할 경우 우리나라 전체평균기온은 섭씨 3∼4도나 급상승해 생태계에는 예측이 불가능한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기상청은 이와관련,『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내 사전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최소한의 기후변화에 적응하기위해 저지대 둑건설,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기체를 덜 배출하는 에너지및 물질개발,신품종 농작물개발 등에 하루바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젊은 춤꾼 12명 가을춤판 수놓는다

    ◎「춤의 해」 집행위,24일까지 문예회관­마로니에공원서 잔치/김용철·백현순 등 신진안무작품 경연/대상 3개작품엔 뉴욕공연 기회제공 우리 무용계의 새로운 흐름을 엿볼수 있는 「젊은 춤꾼들의 가을잔치」가 11일부터 24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과 마로니에공원에서 펼쳐진다.이 행사는 20대중반에서 30대중반에 이르는 신진무용가 12인이 안무한 작품을 놓고 경연형식으로 치러지게 된다. 이번 춤잔치를 앞두고 예선을 통과한 안무자는 서울시립무용단의 김용철,「춤자하무용단」의 박경리,「ㄹ무용단」의 김수현,인천시립무용단의 이순,대구무용단의 백현순(이상 한국무용),경희대의 조교인 박해준.이밖에 한양대와 뉴욕대학원을 졸업한 최상철,박화경,컨템퍼러리무용단의 김희진,서울현대무용단의 장애숙(이상 현대무용),동아대와 체육과학대학에 각각 재직중인 백연옥과 황규자(발레)등으로 돼있다.이들은 두팀씩 짝을 이뤄 3일동안 공연에 나설 예정.또 24일에는 12개팀이 모두 출연,작품하이라이트를 모아 꾸미는 갤러쇼를 연출한다. 주최측인 「춤의해」집행위원회는 올해를 계기로 이루어진 10여개의 크고작은 행사가운데 「젊은 춤꾼들의 가을잔치」를 「전국무용제」와 함께 연례화시킬 계획을 세울 정도로 이번 행사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왜냐하면 지금까지 한국춤연구회나 현대무용진흥회주최로 이루어진 신인들의 데뷔무대가 장르별로 이루어지는데다 학맥,인맥등에 묶여 정당한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행사는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의 3장르가 한자리에서 펼쳐짐으로써 무용예술의 다양성을 확인하는 한편 다른 장르의 장점을 차용할수 있는 기회가 되고있다.또 아메리칸댄스페스티벌(ADF)의 총감독 찰스 라인할트가 심사위원으로 초청돼 우리춤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있는 좋은 기회로도 여겨진다. 춤의해 집행위원회는 대상수상자 3명을 선발,해외무대에 설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했다.수상자들은 11월12일부터 15일까지 공연예술의 본거지인 뉴욕 세인트마크극장에서 공연을 갖고 17 ∼ 18일에는 근처의 뉴헤븐으로 옮겨가 한국무용에 관한 강좌와 함께 공연을 가질 예정.세인트마크극장은 70년이후 포스트모던댄스의 산실로 널리 알려진 무대로 젊은 무용가들에게 선망의 장소이기도 하다. 행사일정과 작품명은 다음과 같다. ▲11∼13일 하오7시30분=김용철의 「서투른 여행자」,박경리의 「해원비나리­혼사굿」,김수현의 「더이상 나는 것이 인간의 꿈이 아니다」 ▲14일∼16일=이순의 「삶에 들다」,박해준의 「금지된 장난」,최상철의 「심심한 여자」 ▲17∼19일 백연옥의 「내일 아침에는」,백현순의 「밥」,박화경의 「릴리스 미 불나비­정인숙」 ▲20∼22일=김희진의 「조감」,황규자의 「세개의 연못」,장애숙의 「향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