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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 막히는 휴가철에도 호젓한 파주·연천

    차 막히는 휴가철에도 호젓한 파주·연천

    때로는 호젓한 경기 북부로 발길을 돌릴 일이다. 휴가객들로 도로가 몸살을 앓는 이맘때는 더욱 그렇다. 파주와 연천이 대표적이다. 최전방 도시로 인식되지만 이들 지역에 늘 전쟁의 기운만 감도는 건 아니다. 몇 가지 조심할 것들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절정의 휴가철에도 한결 여유롭게 쉬다 올 수 있다. 콩 볶는 소리가 이방인을 맞는다. 어느 부대에선가 사격훈련이 있는 게다. 가끔 포 쏘는 소리도 들린다. 역시 전방도시답다. 파주, 연천 등 비무장지대(DMZ) 인접 지역을 여행할 때는 몇 가지 조심할 게 있다. 꼭, 그리고 늘 기억해야 할 건 목함지뢰다. 임진강 줄기를 따라 종종 발견된다. 피하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임진강변엔 아예 발 딛지 않는 거다. 또 있다. 사격훈련 표시 붙은 곳은 얼씬대지 않는다. 그러면 위험할 게 없다. 종종 탱크 같은 철갑차량들이 도로를 오가는 경우도 있다. 다른 지역에서 이런 장면 보려면 박물관이나 가야 한다. 한데 이 일대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후방’ 지역에 사는 이들에겐 이마저 진기한 볼거리에 속한다. ●현대식 건축물·조형물의 조화 ‘헤이리’ 파주 여정의 들머리는 헤이리다. 현대식 건축물과 조형물들이 어우러진 곳. 구불구불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갤러리와 카페, 공방, 서점, 레스토랑 등이 빼곡해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임진각 평화누리는 이미 수도권 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여행지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무거운 분위기가 짓누르던 최전방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이 밝고 평화롭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분수 주변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바람의 언덕’ ‘음악의 언덕’ 등에선 시원하고 상큼한 평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파주를 대표하는 인물은 율곡 이이(1536∼1584)다. 임진각을 지나 북녘땅을 향해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파주의 진면목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이 이이와 연계된 공간들이다. 파주는 이이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외가인 강원도 강릉이지만, 본가가 있던 곳은 파주였다. 자신의 호 또한 파평면 율곡리 지명을 따 지었다고 전해진다. 5세 때인 1541년 처음 파주 땅을 밟은 이후, 자주 파주를 찾아 은거했다. 그만큼 파주엔 그의 흔적 남은 곳이 많다. ●자운서원 등 율곡 이이 유적지 곳곳에 대표적인 곳이 법원읍 동문리 율곡 유적지다. 자운서원과 율곡의 가족묘, 율곡기념관 등이 한곳에 모여 있다. 자운서원은 1615년 율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에 의해 조성됐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소실됐다가 1970년 복원됐다. 2013년엔 국가 사적(제525호)으로 승격됐다. 서원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 하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뿜어내는 묵은 향기는 건물의 크기를 뛰어넘고도 남는다. 자운서원 옆은 가족묘다. 이이의 묘,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버지 이원수의 합장묘 등 13기가 조성돼 있다. 화석정은 이이가 자주 찾아 시상을 떠올렸다는 정자다. 율곡 유적지에서 9㎞ 정도 떨어져 있다. 건물 정면의 ‘花石亭’ (화석정)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고 전해진다. 안쪽엔 율곡이 8세 때 처음 지었다는 시 ‘팔세부시’(八歲賦時)가 걸려 있다. 무엇보다 화석정의 자랑은 탁월한 전망이다. 정자 앞에 서면 임진강과 DMZ 일대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임진강·DMZ 풍경 한눈에 보는 화석정 화석정에 얽힌 이야기도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몽진하던 선조 일행이 임진나루를 건널 때 화석정을 태워 불을 밝혔다는 것이다. 이이가 선조의 몽진을 예견하고 정자 기둥에 기름을 발라두라는 예언을 남겼다는 게 이야기의 요지인데, 지나치게 부풀려진 느낌이 없지 않다. 임진나루와 화석정은 거의 1㎞ 가까이 떨어져 있다. 화석정 불빛이 닿기엔 먼 거리다. 주변 관아 건물을 태워 불을 밝혔다고 적은 징비록이 좀 더 현실적이지 싶다. 전설의 진위는 논외로 하더라도 ‘십만양병설’을 내세운 이이와 이를 무시한 선조의 악연이 얽혀 있는 곳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선조 이야기 깃든 임진나루는 아쉽게도 들어갈 수 없다. 허가받은 어부 외에 민간인은 일절 출입할 수 없다. 화석정에서 임진강변으로 나가면 율곡습지공원을 만난다. 공한지를 활용해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규모는 작아도 연꽃정원과 조롱박터널, 호박 터널 등 다양한 볼거리와 만날 수 있다. 배경 삼아 사진 찍기 좋은 설치미술 작품들도 조성돼 있다. 율곡습지공원 인근에 장산전망대가 있다. 민통선 안쪽의 초평도와 굽이돌아가는 임진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주차장은 없고, 적당한 공간에 차를 대고 300m 정도 산길을 걸어가야 나온다. 인적 드문 데다, 전망도 빼어난 만큼 꼭 찾아보는 게 좋겠다. 율곡수목원은 아직 정식 개장하지 않았다. 정비가 끝난 지역에 한해 부분 개방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입소문을 덜 탄 만큼 한적하게 쉬다 올 수 있다. 조선 세종 때의 명재상이었던 황희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임진강 옆 반구정(伴鷗亭)이다. 1449년, 당시 87세였던 황희가 18년 동안이나 재임했던 영의정에서 물러난 뒤 갈매기(鷗)를 벗 삼아(伴) 여생을 보냈다는 곳이다. 6·25전쟁 때 허물어진 걸 1967년 옛 모습대로 복구했다. 반구정도 빼어난 풍경 전망대다. 맑은 날 오르면 멀리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다소 떨어져 있긴 하나 ‘용미리마애이불입상’도 잊지 말고 찾는 게 좋겠다. 거대한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다. 투박한 생김새에서 토속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웃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는 것도 이채롭다. ●1500년前 삼국시대 영토 전쟁 흔적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임진강 유역은 예부터 전쟁의 땅이었다. 1500년 전인 삼국시대에도 임진강을 끼고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당시 흔적들이 임진강변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특히 고구려의 자취가 많은데, 이는 당시 신라·백제연합군에 밀려 한강지역에서 패퇴한 고구려가 임진강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연천 호로고루성과 당포성, 은대리성 등 이른바 ‘고구려 3성’이다. 이들 3성을 두루 관통하는 특징은 삼각형의 현무암 절벽을 타고 앉았다는 것이다. 이는 가장 중요한 볼거리이기도 하다. 절벽 바깥쪽, 그러니까 임진강과 접한 부분은 높이 20m에 이르는 주상절리 지대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흐른 흔적이다. 화구에서 흘러나온 마그마가 급격히 식으면서 생긴다. 이 주상절리 절벽이 자연적인 방어선 노릇을 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이 같은 특성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세 성 모두 물살이 약해지는 여울목에 자리잡았다는 것도 동일하다. 이런 지형은 대개 포구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당시에도 포구들이 있었고, 3성은 이를 방비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고구려 3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건 호로고루성이다. 이 일대에서 가장 많은 고구려 기와가 발견되기도 했다. 오는 12~21일 ‘통일바라기축제’도 열린다. 수천 그루의 해바라기들이 호로고루성 일대를 노랗게 물들인다. 당포성은 접근성이 좋다. 주변도 깔끔하게 정비됐다. 성에 오르면 임진강과 파주, 동두천의 산군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은대리성은 주변 소나무숲과 삼형제 바위 등이 멋들어지게 어울렸다. 글 사진 파주·연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가는 길 자유로를 통해 접근하는 게 가장 알기 쉽다. 율곡습지, 수목원, 반구정 등을 하나로 묶고 다소 떨어진 율곡유적지와 용미리마애이불입상을 묶어 도는 게 효율적이다. 호로고루성 인근에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의 능이 있다. 당포성 인근에서는 숭의전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와 7왕을 제사지내던 곳이다. →맛집 화석정이 있는 임진나루 주변에 민물고기 매운탕집들이, 반구정 주변엔 장어집들이 몰려 있다. 대부분 맛집으로 소문난 곳들이다. 해마루촌(www.haemaru.org)에서는 장단콩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다. 연천 쪽에선 불탄소가든(834-2770)이 유명하다. 참게와 메기, 배가사리(동자개) 등을 넣어 끓여낸 매운탕이 맛있다. 재인폭포 인근에 있다. 한탄강오두막골(832-4177)은 가물치구이와 민물새우탕으로 이름난 집이다. 전곡읍내에서 가깝다.
  • 세계유산 등재 1년 기념 백제역사유적 백서 발간

    세계유산 등재 1년 기념 백제역사유적 백서 발간

    백제역사유적지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주년 백서가 발간됐다. 백제세계유산센터는 1일 ‘2015년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 전 인류의 유산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276쪽짜리 백서를 펴냈다고 밝혔다. 센터는 등재 과정과 노하우를 담아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 중인 다른 자치단체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발간했다고 했다. 백서는 세계유산의 이해, 잠정목록 등재와 추진단 활동, 등재신청서 작성과 제출, 등재 심사, 백제역사유적지구의 가치 등 8장으로 이뤄졌다. 센터 관계자는 “국내에서 12번째로 세계유산에 등재됐지만 이 과정을 백서로 발간한 것은 매우 드물다”고 설명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1주년 백서 발간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1주년 백서 발간

    백제역사유적지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주년 백서가 발간됐다. 백제세계유산센터는 1일 ‘2015년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 전 인류의 유산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276쪽짜리 백서를 펴냈다고 밝혔다. 센터는 등재 과정과 노하우를 담아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 중인 다른 자치단체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발간했다고 했다. 백서는 세계유산의 이해, 잠정목록 등재와 추진단 활동, 등재신청서 작성과 제출, 등재 심사, 백제역사유적지구의 가치 등 8장으로 이뤄졌다. 센터 관계자는 “국내에서 12번째로 세계유산에 등재됐지만 이 과정을 백서로 발간한 것은 매우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세계유산 등재는 1994년 공주 무령왕릉(송산리고분군)이 잠정목록에 오르며 시작됐다. 2010년 충남 공주·부여와 전북 익산의 유적이 각각 잠정목록이 됐으나 이듬해 3개 시·군을 묶어 백제역사유적지구로 통합했다. 이어 2012년 백제세계유산센터가 출범했다. 3개 시·군과 충남·전북도 공무원 10명으로 구성된 센터가 설립되면서 지자체가 힘을 합쳐 주도적으로 등재를 추진했다. 세계유산 등재 후 8개 백제역사유적지구에는 방문객이 2배 넘게 늘었고, 전남 순천시(낙안읍성) 등이 준비과정을 배우려고 방문하기도 했다. 센터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전국의 지자체는 물론 중앙부처 등에도 백서를 배포해 백제를 적극 알릴 참이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한옥 이미지 살리기 세계유산 지키는 길”

    “한옥 이미지 살리기 세계유산 지키는 길”

    “내 마을이 인근 문화재로 인해 낙후돼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다면 어느 누가 문화재에 애정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문화재가 있어 마을이 더 살기 좋아져야 사람들이 문화재를 더 아끼고 보존합니다. 문화재로 삶이 윤택해지면 문화재를 지키지 말라고 해도 지킵니다.” 경주·공주·부여·익산 등 신라·백제 4개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을 이끌고 있는 나선화(67) 문화재청장의 소신이다. 그의 이 같은 지론이 최근 성과를 내고 있다.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시작된 한옥 지원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고도가 살기 좋은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 생활 환경이 낙후돼 살기 힘들고 자녀도 제대로 키울 수 없다며 외면했던 젊은이들까지 고도로 되돌아오고, 상가가 조성되면서 지역 경제도 살아나고 있다. 나 청장은 “고도가 생명력을 얻으면서 사람들 인식도 ‘문화재로 인해 피해를 본다’는 데서 ‘문화재로 인해 삶이 풍요로워진다’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나 청장은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고도를 둘러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고도라고 하는데 말만 고도지 고도 이미지와 어울리는 게 전무했기 때문이다. 허허벌판에 탑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거나 붕괴된 성곽만 있는 등 죽은 땅이나 매한가지였다. 인근 주민들의 삶도 열악했다. 나 청장은 ‘이래서는 관광객들이 찾고 싶은 마음 자체가 들지 않겠다’고 여겨 고도 옛 모습 복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고도를 길이길이 보존하는 방법은 고도 이미지를 되살리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4개 고도는 세계유산이에요. 그에 걸맞게 세계적인 명소가 되려면 우리만의 문화적인 특성이 있어야 합니다. 전 세계의 삶의 모습이 하나가 돼 가면서 각국의 전통이 더 주목을 받고 있어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주거 공간인 한옥은 우리의 전통 건축양식입니다. 한옥 조성으로 고도 이미지가 되살아나면 외국 관광객들도 더 많이 고도를 찾을 겁니다.” 나 청장은 고도 유적지 주변 전봇대들의 전선 지중화 사업도 지자체와 협의해 추진하고 있다. 현재 경주 유적지 주변 2㎞, 공주 2㎞, 부여 5.68㎞ 정도의 전선 지중화가 진행됐다. 나 청장은 “익산은 올해부터 의욕적으로 하려 하고 있다”며 “한옥과 어우러져 고도의 역사적 가치가 제대로 발현하려면 전선 지중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청량하다, 고도에 부는 한옥 바람

    청량하다, 고도에 부는 한옥 바람

    지난 20일 충남 공주 송산마을. 한옥과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옛집이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곳곳에서 한옥 신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박연수 공주시 고도육성팀장은 “예전 이 마을은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는 죽은 곳이었는데, 한옥 지원 사업으로 생기를 되찾고 있다”고 했다. ●생기 되찾은 공주 송산마을… 에어컨 없어도 시원 송산마을은 무령왕릉을 비롯해 백제 웅진 도읍기의 왕실 무덤 7기가 모여 있는 ‘송산리 고분군’에 인접해 있어 40년 넘게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다. 집이 주변 도로보다 낮아 비만 오면 침수되기 일쑤였다.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펄펄 끓었다. 집이 허물어져도 고칠 수 없었고, 증개축을 하지 못해 겨울 추위와 여름 무더위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그랬던 마을이 최근 들어 확 바뀌기 시작했다. 완공돼 주민이 살고 있는 한 한옥으로 들어가 봤다. 푹푹 찌는 바깥과 달리 시원했다. 에어컨, 선풍기 같은 냉방 장치가 하나도 없는데도 청량한 기운이 감돌았다. 박대수(56)씨는 “정부에서 한옥과 담장 신축에 1억 2000만원을 지원해 준다고 해서 부모님 편하게 사시라고 대출을 조금 받아 지었다”며 “옛날엔 문화재 인근 마을이라 집을 고치지도 새로 짓지도 못했는데, 이젠 정부에서 집 지으라고 지원금까지 주니 주민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1억원 지원받은 공터, 고풍스런 체험형 숙소 변신 송산마을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떨어진 공산성 인근 지역도 한옥 건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곳은 식당과 숙박시설 밀집 지역이라 송산마을보다 규모가 큰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비용 관계로 신축을 하지 못한 식당이나 숙박업소는 정부로부터 3000만원을 지원받아 외관을 기와로 고풍스럽게 꾸몄다.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공터에 한옥 체험 게스트하우스를 지은 신영기(48)씨도 정부로부터 1억원을 지원받았다. 1층은 살림집, 2층은 숙박시설이다. 신씨는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살다 한옥 지원 사업 얘길 듣고 이곳으로 옮겨 왔다. 아이들이 전통을 체감하며 지낼 수 있어 좋다. 주말엔 관광객들로 2층 방이 꽉 찬다”고 했다. 송산마을과 공산성 인근에 한옥 7채를 짓고 있는 한옥전문업체 한옥애 공병곤(56) 대표는 “2018년까지 한옥 신축 신청이 꽉 차 있다. 다른 업체 3~4곳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하다. 지금은 한옥이 오밀조밀 모여 있지 않은데 2년 뒤쯤엔 자연스럽게 한옥마을이 조성될 것”이라고 했다. 경주·공주·부여·익산 등 신라와 백제의 고도(古都)가 옛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시작된 한옥 지원 사업이 올 들어 본궤도에 오르면서 죽은 마을들이 생명력을 되찾고 있다. ‘고도 보존’에서 ‘고도 보존 및 육성’으로 정책을 바꾼 점과 1억원 지원책이 주효했다. ●2018년까지 경주·공주·부여·익산 각 100채 신축 지난해 시작된 고도 한옥 지원은 2018년까지 4년간 479억원을 투입해 주거와 가로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고도별 한옥 100채씩을 짓는 게 목표다. 한옥 신축 1억원, 가로변 건축물 외관 개선 사업 3000만원, 담장 및 대문 2000만원, 간판 200만원 등을 보조한다. 지원 대상 지역은 경주 인왕동과 황남동(35만 7559㎡), 부여 쌍북1리(8만 1310㎡), 공주 송산리 고분군과 정지산 주변(26만 6863㎡), 익산 금마 고도지구 내 일원(37만 92㎡)으로, 문화재 보호 구역으로 지정돼 수십 년간 개발을 하지 못한 지역들이다. 김삼기 문화재청 고도보존육성과장은 “고도 주변 주민들 여론조사를 했는데 주거 환경 개선 의견이 제일 많았다”며 “2004년 3월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고도 주변 지역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이 가능해진 데 이어 지난해 예산이 마련되며 한옥 신축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민들 한옥 인식 긍정적으로 변화… 올 사업 늘어 4개 고도 한옥 신축은 지난해 30채에서 올 상반기에만 50채로 급증했다(표 참고). 공주의 한옥 신축이 가장 두드러진다. 지난해 16채로 4개 고도 중 가장 많은 데 이어 올 상반기에만 19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자체 공무원들의 노력 덕택이다. 담당 공무원들은 지난해 1월부터 고도 지역 내 전 가구를 방문하며 한옥 지원 사업을 홍보했다. 처음엔 주민들이 집을 짓는 데 정부에서 1억원을 지원해 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한옥은 살기 불편하다는 왜곡된 정보도 떠돌았다. 이정열 공주시 고도육성팀 주무관은 “수십 년간 규제만 해온 관에 대한 불신이 컸고, 그런 정부에서 큰 금액을 지원해 줄 리 없다는 생각이 팽배했다”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불신과 오해를 풀었다”고 했다. 이수정 문화재청 고도보존육성과 학예연구사는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은 기존 규제 중심 보존·관리에서 벗어나 문화재로 인한 직간접적인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획기적인 정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주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현대판 서울’ 충주… 고구려·백제·신라 삶이 공존했다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현대판 서울’ 충주… 고구려·백제·신라 삶이 공존했다

    중원문화권이란 충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북도 일대를 가리킨다. 한반도 중심부의 내륙인 이 지역은 고구려·신라·백제가 각축을 벌인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니 삼국의 문화유산이 두루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삼국의 문화가 남아 있다는 것은 이주한 삼국의 주민들이 자신들이 가져온 문화를 유지한 채 정주(定住)하며 삶을 이어 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칠금동에서 4세기 백제 철 생산 유적 확인 충주 칠금동에서는 최근 4세기 백제의 철 생산 유적이 확인됐다. 악성(樂聖) 우륵의 전설이 담긴 탄금대 남쪽에서 전형적인 백제의 원형 제련로를 비롯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련로, 철광석 파쇄장 같은 체계적인 철 생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유구를 찾아낸 것이다. 충주는 진천과 더불어 백제의 철 생산 기지였다. 하지만 백제는 이후 중원에서 지배력을 잃는다. 한성백제를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천도하게 만든 고구려는 한강 상류의 충주 일대까지 점령한다. 고구려는 한동안 이 지역의 지배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적지 않은 고구려 사람들이 충주 지역으로 이주한 듯하다. 고구려 조각 양식을 가진 봉황리 햇골산 마애불상군(群)의 존재는 고구려계 주민들이 신라 지배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살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고구려 양식 봉황리 마애불… 주민들 거주 보여줘 봉황리 마애불은 1978년 정영호 교수가 단국대 조사단을 이끌고 처음 조사해 학계에 보고할 때부터 ‘600년 무렵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각 보살상의 갸름한 상호(相好)는 고구려 불상의 상호와 유사한 양식이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의 대좌는 고구려 금동불 대화의 형태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했다. 충주에서 발견된 ‘고구려 양식 마애불’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됐다. 간다라 미술의 탄생 과정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 서북부까지 진군하고 곧 물러났지만, 따라왔던 그리스계 주민들이 남아 살면서 그리스 문화를 이식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햇골산 마애불의 존재도 장수왕의 군대는 ‘충주 고구려비’를 남기고 물러갔지만, 고구려 이주민은 마애불을 조성해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대로 눌러살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구려계 주민은 충주는 물론 소백산맥의 죽령 남쪽 오늘날의 영주 일대까지 넓게 퍼져 살았던 것 같다. 부석사 창건 설화에는 의상대사를 방해하는 ‘500명 남짓한 도둑의 무리’가 등장하는데, 학계는 이들을 고구려 유민으로 본다. 정확히는 이 지역에 눌러살던 고구려계 주민들이었을 것이다. 부석사 창건은 676년이다. 6세기 말 조성된 고구려계 벽화고분이 풍기에서 부석사로 가는 중간인 순흥 읍내리에서 발견된 것도 같은 이유다. ●신라 ‘제2의 수도’ 국원소경 설치·가야 주민도 이주 신라가 충주 일대의 지배를 공고히 한 것은 진흥왕 시절이다. 진흥왕은 557년 이곳에 국원소경(國原小京)을 설치한다. 훗날 전국에 모두 5개의 소경을 설치한다지만 국원소경은 경주에 이은 사실상의 제2수도였다. 진흥왕은 국원소경에 경주의 귀족과 부호의 자제를 옮겨 살게 했다. 귀족과 부호가 옮겨 살려면 이들에 예속된 적지 않은 사람들도 따라가야 했다. 이주민의 숫자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신라가 당시 복속한 가야의 주민들도 충주로 옮겨 살게 했다는 것이다. 가야금으로 대가야연맹의 통합을 이룬 우륵도 이주민 대열에 끼어 있었다. 충주에서 우륵의 존재는 지금도 절대적이다. 탄금대(彈琴臺)는 글자 그대로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다. 호암동에는 우륵당이 지어져 충주 시립 우륵국악단이 그의 예술 정신을 기리고 있다. 충주에선 해마다 9월 우륵문화제도 열린다. 이렇게 보면 삼국시대 충주는 고구려·백제·신라는 물론 가야 주민들까지 한데 모여 살던 독특한 분위기의 도시였을 것이다. 한반도 전체에서 사람들이 대거 한 도시로 몰려든 것은 20세기 서울 이전에는 충주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충주는 지금 충청도 땅이지만 충주 사람의 조상은 고구려 출신일 수도, 백제 출신일 수도, 신라 출신일 수도, 가야 출신일 수도 있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dcsuh@seoul.co.kr
  • [자치광장] ‘6000년 선사 마을’ 품은 서울/이해식 서울 강동구청장

    [자치광장] ‘6000년 선사 마을’ 품은 서울/이해식 서울 강동구청장

    최근 ‘마을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서울의 마을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마을의 흔적이 생생한 서울 암사동 유적에 주목해야 한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처음 드러난 암사동 유적은 여러 차례 발굴조사 결과 선사시대부터 약 40기의 집터가 발견되었다. 현재까지 발굴된 가장 큰 규모이다. 주요 유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빗살무늬토기’가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전체를 삼등분하여 각기 다른 문양을 그려 넣었는데 손톱무늬, 무지개무늬, 문살무늬, 생선뼈무늬 등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뽐내고 있다. 토기 외에도 수렵과 어로 활동을 짐작하게 하는 그물추와 갈판, 갈돌, 돌화살촉, 돌도끼, 긁개, 탄화된 도토리 등도 있다. 신석기 시대인의 생활상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약탈과 전쟁의 도구들 없이 오로지 생활도구들만이 발굴됐다는 사실에서 그 시대가 얼마나 평화로웠을까를 짐작해볼 수 있다. 올해 4월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지원으로 재개된 암사동 유적 발굴조사에서는 신석기시대 유구뿐 아니라 옥으로 만든 장신구가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매우 질이 좋은 연옥에다 형태도 정교해서 당시의 미적 수준이 우리의 일반적 인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양양 오산리 유적을 세계 고고학 사전에 올리고 암사동 유적 발굴에도 참여한 바 있는 세라 넬슨은 2002년 ‘영혼의 새’라는 장편소설을 썼다. 한국의 신석기 유적이 배경인 이 소설은 당시 사회가 모계 사회의 종교 공동체였음을 가정하고 있는데, 다양한 생활도구들이 제사의식에 쓰였고 미적인 도구들이 동원되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암사동 유적에서 옥 장신구가 발견된 것은 이 대목에 비추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적에서 발굴된 유구와 유물들로 우리가 신석기 시대인의 생활상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좀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추가적인 발굴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과제는 상상력을 좀더 발휘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강동구는 암사동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더 흥미로운 문화·예술적인 성과를 축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올해 10월 어김없이 선사문화축제가 암사동 유적지에서 열린다. 특별히 ‘서울 암사동 유적’의 학술적인 가치 조명을 위한 국제학술회의도 열린다. 고령임에도 넬슨도 온다고 한다. 광대한 상상력의 원천이 잠재된 축제와 학술회의에 많은 분의 참석을 기대한다. 이런 노력으로 서울을 600년 도시에서 한성백제의 2000년을, 더 나아가 선사유적의 6000년을 품은 도시로 부를 수 있는 날을 함께 만들어 가자.
  • [열린세상] 광해군의 길, 인조의 길/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열린세상] 광해군의 길, 인조의 길/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광개토대왕비문’에서 고구려인들이 시조 추모왕을 천제지자(天帝之子), 즉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자국을 천하의 중심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수(隋)·당(唐)과 격렬하게 충돌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백제 역시 1971년 공주에서 발견된 무령왕릉 지석에 자국 임금의 죽음을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붕(崩)으로 표현했다. 이런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은 비단 이들 두 나라가 갖고 있던 광활한 대륙과 일본 열도라는 영토의 상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이 천하의 중심, 즉 주인이란 역사관까지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이후 들어선 여러 나라, 특히 조선은 북벌을 준비하던 정도전을 제거한 이후 명나라의 제후국을 자처했다. 내용상으로는 왕위 계승권이나 인사권, 군사권, 외교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독립국이었지만 형식상으로는 중국의 조공 체제에 들어가는 제후국이 된 것이다. 이는 중원의 통일제국과 직접 충돌을 막고 국체를 보존하려는 외교정책의 산물이었다. 중국과 조공 체제를 맺음으로써 밖으로는 국체를 보존하고 안으로는 왕권의 안정을 꾀하려는 것이었다. 문제는 중원의 주인이 교체되는 격변기였다. 북방 기마민족이 흥기할 경우 기존 제국과 신흥 강국 사이에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후금(청)이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임란 때의 동맹국 명(明)과 신흥 제국 청(淸) 중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했을까. 광해군이 선택한 것은 등거리 외교였다. 명나라가 이기면 기존 외교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청나라가 이기면 새로 형성되는 청나라 중심의 조공 체제에 들어가면 된다는 판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광해군 11년(1619) 명나라가 조선군 파병을 요구했다. 야당인 서인들은 물론 여당인 북인들까지 파병에 동의했다. 그러나 광해군의 생각은 달랐다. 광해군은 “급히 수천 군병을 뽑아 의주(義州) 등지에 대기시켜 놓고 기각(?角·협격)처럼 성원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에 적합할 듯하다”라고 주장했다. 군사를 압록강까지만 보내 파견하는 시늉을 하는 한편 혹시 모를 후금의 남하에도 대비하겠다는 양수겸장(兩手兼將)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 방안이 여야 모두에 의해 거부되자 광해군은 강홍립(姜弘立)에게 1만 3000여 군사를 주어 압록강을 건너게 했다. 강홍립은 무과(武科)가 아니라 문과(文科) 출신이었다. 게다가 어전통사(御前通事)를 겸할 정도로 중국어에 능했다. 광해군은 파병을 외교의 연장으로 보았던 것이다. 강홍립은 청나라 임금에게 조선의 현실을 설명했고, 청도 조선이 처한 현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광해군의 등거리 외교를 상국 명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지은 서인들이 인조반정이란 이름의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서인 쿠데타 정권은 광해군의 현실 위주 외교정책을 숭명반청(崇明反淸)이란 이념 문제로 변질시켰다. 광해군은 청나라에 쫓겨 조선으로 들어온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1567~1629)을 해도(海島)에 거처하게 해서 청나라의 반발을 누그러뜨렸다. 반면 인조는 즉위 직후 모문룡의 차관 응시태(應時泰)를 명정전(明政殿)에서 접견하고 군마와 식량을 대주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인조 5년(1627·정묘년) 청나라가 정묘호란을 일으킨 데는 인조 정권이 모문룡을 후원하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됐다. 이후에도 조선은 친명 일변도의 숭명반청이란 이념적 외교정책을 고수하다가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을 맞이했다. 정묘·병자호란은 외교 문제를 이념으로 변질시킨 서인 정권이 자초한 전란이자 광해군이 임금 자리에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불필요한 비극이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도 비슷하다. 미국이 명나라라면 중국은 청에 비유할 수도 있다. 미국이 명처럼 몰락하지는 않겠지만 과거 같은 팍스아메리카 체제는 더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조 정권이 외교 문제를 이념 문제로 변질시키는 바람에 발생했던 비극을 재연해서는 안 된다. 광해군의 길을 걸을 것인지, 인조의 길을 걸을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국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암사동 유적지서 신석기·삼국시대 유물 1000점 출토

    암사동 유적지서 신석기·삼국시대 유물 1000점 출토

    국내서 보기 드문 옥 장신구 출토… 당시 토목건축 구조 등 유추 가능 서울 강동구가 19일 암사동 유적 발굴현장에서 신석기시대와 삼국시대의 주거지 11기의 유구(遺構)와 옥 장신구 등 유물 1000여점이 나왔다고 밝혔다. 유구는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자취를 말한다. 강동구는 지난 4월 20일부터 문화재청,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암사동 유적지(300평 규모)에서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암사동 유적에서 학술 발굴조사가 재개된 건 40년 만으로, 1970년대 조사가 진행됐던 사적의 중심부(암사동 유적 전시관)와 약 100m 떨어진 곳이다. 특히 이번에 출토된 신석기시대 옥 장신구는 제주 고산리, 부산 동삼동, 가덕도 장항유적, 인천 운서동 유적 등 10여곳에서만 확인된 희귀한 것이라고 강동구는 전했다. 조사 시행 기관인 한양대 문화재연구소의 배기동 소장도 “신석기시대 주거지에서 잘 발견되지 않는 옥 장신구가 출토됐다”면서 “선사시대 한강유역의 생계경제뿐만 아니라 예술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옥 장신구 외에도 빗살무늬토기, 어망추 등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이 출토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주거지 5기 유구와 수혈 유구(구덩이 모양의 집터) 등 삼국시대 초기의 문화 양상을 보여 주는 자료들도 확인됐다. 발굴이 이뤄진 암사동 유적지는 삼국시대 백제 초기의 성인 풍납토성에서 약 2.5㎞ 떨어져 있어 당시 한강변의 자연제방을 따라 집단 거주지가 형성됐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해식 구청장은 이날 유적지 일대에서 열린 현장설명회에서 “이번 발굴조사를 토대로 한 10월 국제학술회의에서 암사동 유적의 새로운 가치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주민과 함께 암사동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서울 강동구, 신석기시대·삼국시대 주거지 11기, 유물 1000여점 출토

    서울 강동구, 신석기시대·삼국시대 주거지 11기, 유물 1000여점 출토

    서울 강동구가 19일 암사동 유적 발굴현장에서 신석기시대와 삼국시대의 주거지 11기 유구(遺構)와 옥 장신구 등 유물 1000여 점이 나왔다고 밝혔다. 유구는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자취를 말한다. 강동구는 지난 4월 20일부터 문화재청,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암사동 유적지(300평 규모)에서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암사동 유적에서 학술 발굴조사가 재개된 건 40년 만으로, 1970년대 조사가 진행됐던 사적의 중심부(암사동 유적 전시관)와 약 100m 떨어진 곳이다. 특히 이번에 출토된 신석기시대 옥 장신구는 제주 고산리, 부산 동삼동, 가덕도 장항유적, 인천 운서동유적 등 10여 곳에서만 확인된 희귀한 것이라고 강동구는 전했다. 조사 시행 기관인 한양대 문화재연구소의 배기동 소장도 “신석기시대 주거지로서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옥 장신구가 출토됐다”면서 “한강유역 선사시대 의 생계경제뿐만 아니라 예술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옥 장신구 외에도 빗살무늬토기, 어망추 등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이 출토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주거지 5기 유구와 수혈 유구(구덩이 모양의 집터) 등 삼국시대 초기의 문화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들도 확인됐다. 발굴이 이뤄진 암사동 유적지는 삼국시대 백제 초기의 성인 풍납토성에서 약 2.5㎞ 떨어져 있어 당시 한강변의 자연제방을 따라 집단 거주지가 형성됐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강동구와 한양대 문화재연구소는 이날 오후 5시 암사동 유적지 일대에서 ‘서울 암사동 유적 발굴조사’ 현장 설명회를 열었다. 이해식 강동구청장과 배 소장, 김성일 한양대문화재 연구소 부소장 등이 참석해 경과보고를 했다. 이 구청장은 “이번 발굴조사를 토대로 한 10월 국제학술회의에서 암사동 유적의 새로운 가치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주민과 함께 암사동 유적 세계유산 등재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더민주 손혜원 포럼에 새누리 정진석 나타난 까닭은?

    더민주 손혜원 포럼에 새누리 정진석 나타난 까닭은?

     국회 문화·관광산업연구포럼(이하 문화관광포럼)은 18일 창립모임을 갖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손혜원 의원과 최명길 의원을 공동 대표로 선임했다. 책임연구위원은 더민주의 소병훈·전현희 의원이 맡았다.  손 의원은 이날 낮 의원회관에서 열린 창립모임에서 “지역별로 역사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관광콘텐츠를 개발하고 활성화해야 한다”면서 “호남, 충청, 수도권에 걸쳐 발전했던 백제는 중국, 일본과 교류도 활발했는데 이를 문화관광콘텐츠로 되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손 의원이 이끄는 포럼의 정회원으로 참여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은 “고무적인 프로젝트”라며 “특히 지역구인 충남 공주 부여 청양이 백제의 옛 수도라 많은 기대가 된다”고 화답했다. 더민주 추미애 의원도 “서울에도 역사성이 있는 곳이 많고, 광진구에도 아차산성이 있다”며 “스토리텔링이 잘 이루어지면 성공적일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회원으로는 정 원내대표와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을 비롯해 더민주의 원혜영, 추미애, 이상민, 도종환, 권칠승 의원 등이 동참했다. 손 의원은 이날 백제와 신라의 유물을 소장한 일본 궁내청의 유물 수장고 쇼소인과 백제를 통한 문화관광콘텐츠의 개발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군대가 위풍당당’했던 군위 그 이름 걸고 K2 유치의 꿈

    ‘군대가 위풍당당’했던 군위 그 이름 걸고 K2 유치의 꿈

    땅값 저렴해 사업비 마련 수월 김영만 군수 “재도약 발판 기회” 경북 군위(軍威)군이 대구공군기지(K2)를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군대가 위풍당당하다’ 해서 붙여졌다는 지명에 걸맞은 계기가 마련될지 군민들의 관심이 쏠린다. 군위 지명은 1300여년 전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백제 공격을 앞두고 군사를 지금의 군위 땅에 주둔시킬 때에 그 위세가 당당하다 하여 붙였다고 전해진다. 군위군의 여러 마을 이름은 군사용어와 관계가 있는 곳이 많다. 효령(孝令), 소보(召保), 우보(友保), 산성(山城) 등 면의 명칭과 군위읍 무성(武成)리, 산성면 무암(武岩)리, 효령면 성(城)리, 효령면 장군(將軍)리 등이다. 군위군은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공항과 K2 공군기지를 인근 지역으로 통합 이전할 것을 지시한 이후 바로 유치 희망 의사를 밝혔다고 13일 밝혔다. 그 전날에는 군위지역 기관·단체장 60여명으로 대구공항·K2 공군기지 유치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켜 본격적인 유치 활동에 들어갔다. 군은 서부권이 대구 도심과 30분 거리에 있는 데다 땅값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해 패키지 이전 사업비 마련도 수월하다는 장점을 내세웠다. 또 군 공항 2.7㎞, 민항 3.2㎞에 이르는 활주로를 함께 건설할 수 있는 부지 1828만㎡를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대구신공항을 유치하게 되면 공항을 짓는 6년 동안 해마다 1조 50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10만 6000명의 고용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또 공항 이전으로 연간 2729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도 기대된다. 앞서 군위군은 지난 2월 대구 북구의 50사단을 유치하겠다고 선언했다. 북구 칠곡에 있던 50사단을 이전하겠다고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상기 당시 국회의원이 밝힌 덕분이다. 김영만 군수는 “K2 등을 적극 유치해 지역의 심각한 인구감소와 재정악화 등을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면서 “신라가 통일 대업을 달성하는 전초기지로 군위를 활용했던 것처럼 군위를 재도약시키는 발판의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현재 군위의 인구는 2만 4130명으로 울릉군(1만 203명), 영양군(1만 7765명)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적다. 올해 재정자립도도 5.7%로 전국 최하위권이다. 한편 K2 이전 및 대구신공항 등의 유치전에는 의성·예천군, 영천시 등 4개 시·군이 가세한 상태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위풍당당한 군대’가 머물던 군위군(軍威郡), 대구공군기지 유치로 지명의 위세를 떨칠까

    경북 군위군(軍威郡)이 대구공군기지(K2)를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군대가 위풍당당하다’해서 붙여졌다는 지명에 걸맞은 계기가 마련될지 군위군민들의 관심이 쏠린다. 군위 지명은 1300여년 전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백제 공격을 앞두고 군사를 지금의 군위 땅에 주둔시킬 때에 그 위세가 당당하다 하여 붙였다고 전해진다. 군위군의 여러 마을 이름은 군사용어와 관계가 있는 곳이 많다. 효령(孝令), 소보(召保), 우보(友保), 산성(山城) 등 면의 명칭과 군위읍 무성(武成)리, 산성면 무암(武岩)리, 효령면 성(城)리, 효령면 장군(將軍)리 등이다. 군위군은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공항과 K2 공군기지를 인근 지역으로 통합’이전할 것을 지시한 이후 바로 유치 희망 의사를 밝혔고 13일 밝혔다. 그 전날에는 군위지역 기관·단체장 60여명으로 대구공항·K2 공군기지 유치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켜 본격적인 유치 활동에 들어갔다. 군은 서부권이 대구 도심과 30분 거리에 있는 데다 땅값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해 패키지 이전 사업비 마련도 수월하다는 장점을 내세웠다. 또 군 공항 2.7㎞, 민항 3.2㎞에 이르는 활주로를 함께 건설한 수 있는 부지 1828만㎡를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대구신공항을 유치하게 되면 공항을 짓는 6년 동안 해마다 1조 5000억원의 생산 유발효과와 10만 6000명의 고용효과를 군위군이 누릴 수 있다. 또 공항이전으로 연간 2729억원의 생산유발효과도 기대된다. 앞서 군위군은 지난 2월 대구 북구의 50사단을 유치하겠고 선언했다. 대구 북구 칠곡에 있던 50사단을 이전하겠다고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상기 당시 국회의원이 밝힌 덕분이다. 김영만 군위군수는 “K2 등을 적극 유치해 지역의 심각한 인구감소와 재정악화 등을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면서 “신라가 통일 대업을 달성하는 전초기지로 군위를 활용한 역사를 부흥시켜 군위 재도약시키는 발판의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현재 군위의 인구는 2만 4130명으로 울릉군(1만 203명), 영양군(1만 7765명)에 이어 전국에서 3번째로 적다. 올해 재정자립도도 5.7%로 전국 최하위권이다. 한편, K2이전 및 대구신공항 등의 유치전에는 의성·예천군, 영천시 등 4개 시·군이 가세한 상태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캄보디아 자생식물에서 미백·주름개선 효능 확인

    캄보디아 자생식물에서 미백·주름개선 효능 확인

    국립생물자원관은 10일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캄보디아 자생식물인 ‘디프테로카르푸스 인트리카투스’에서 미백과 피부 주름 개선, 항알레르기 효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1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생물자원의 발굴부터 산업화까지’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된다. 캄보디아에서 원주민들이 집과 마차 등을 만들 때 인트리카투스를 사용한다. 동남아시아에 흔하다. 높이 15~30m, 직경 60~80㎝ 정도 자라며 약용보다는 목재로 주로 활용됐다. 생물자원관은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캄보디아 산림청과 2014년부터 2년간 공동연구를 통해 식물의 추출물이 합성 미백제인 알부틴보다 높은 멜라닌 생성 억제 효능을 확인했다. 생물자원관은 생물자원의 산업화엔 약효도 중요하지만 자연생태계 내 생물량이 풍부해야 높은 활용도를 나타낸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또 경기과학기술진흥원·캄보디아 산림청 등과 공동으로 3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생물자원관은 정부 간 네트워크를 갖추지 않은 바이오산업계에선 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아프리카 등으로 협력국가를 확대하는 한편 생물소재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한국인 듯 일본인 듯 썸타는 섬

    한국인 듯 일본인 듯 썸타는 섬

    때로는 한 줄의 정보만으로 짐을 꾸리는 일도 있다. ‘쓰시마 왕복 선비 3만 9000원’. 한 선박 회사 홈페이지에 뜬 내용이다. 물론 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른바 ‘땡처리’ 상품으로, 열심히 ‘클릭질’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뜻하지 않게 국경을 넘은 건 그 때문이었다. 뭐 대단한 행장 꾸릴 것도 없다. 평소 국내 여행 가는 차림에 여권 하나만 더 챙기면 된다. ●부산~쓰시마 거리 49.5㎞… 섬 내 표지판 한글 병기 비슷한 풍경도 많아 쓰시마는 남북 82㎞, 동서 18㎞로 길쭉한 섬이다. 면적은 제주도의 절반이 채 못 된다. 섬 외형은 고구마를 닮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전한 곳도 쓰시마 아닌가. 우연 치고는 참 묘하다. 부산에서 쓰시마 북단 히타카쓰까지는 불과 49.5㎞다. 일본 본토 후쿠오카에서 쓰시마까지의 거리 132㎞에 견줘 얼추 3분의1에 불과하다. 거리가 가까우니 ‘양국’ 간 교류도 활발하다. 쓰시마 주민들은 부산 국제시장에서 각종 공산품을 사가고, 우리는 쓰시마에서 밥을 먹고 여행을 하고 각종 토산품을 사온다. 쓰시마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90% 이상이 한국인이고, 섬 내 여러 표지판에 한글이 병기돼 있으니 ‘일본 속 한국’이라 해도 틀리지 않겠다. 한데 거리는 가까워도 풍경은 꽤 다르다. 일본 특유의 거무튀튀한 삼나무 숲과 아름다운 해변이 조화를 이뤘는데, 꼭 강원도 해안마을과 제주도 중산간을 뒤섞은 듯한 모양새다. 가까운 만큼, 가는 방법도 쉽다. 부산 등 남해안뿐 아니라 수도권 주민들도 당일 여정이 가능하다. 서울역에서 부산행 첫 KTX를 타면 오전 7시 52분 부산역에 도착한다. 쓰시마까지 가는 대부분의 배편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다만 새벽부터 서둘러야 하는 데다, 관광 명소 부산을 건너뛰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부산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쓰시마를 다녀오는 여정이 좀더 합리적이지 싶다. 부산에서 쓰시마까지는 오션플라워호와 코비호, 비틀호 등이 운항한다. 대아고속 오션플라워호의 경우 주중 번갈아 1회씩 히타카쓰와 이즈하라까지 운항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2회 운항한다. 자세한 운항 일정은 대아고속 홈페이지(intlkr.dae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쓰시마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꼼꼼하게 살펴보는 게 좋겠다. ●국제운전면허증 지참해야 렌터카 빌릴 수 있어… 자전거 여행도 가능 부산역에서 부산국제여객터미널(www.busanpa.com)까지는 불과 700m 거리다. 걸어서 20분이면 닿는다. 택시를 타려면 꼭 ‘선상주차장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택시로 5분이면 여객터미널에 도착한다. 승용차로 부산까지 갈 경우 여객터미널 주차장에 대 놓으면 된다. 짐은 부산역 유료 로커에 넣어 둔다. 크기별로 다양한 로커가 마련돼 있다. 면세점은 한국 쪽에만 있다. 선박에서도 면세품을 판다. ‘면세 쇼핑’이 목적이라면 참조하시길. 여행에 앞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여권과 국제운전면허증이다. 반나절의 짧은 여정이지만 엄연히 국경을 넘나드는 여행이다. 여권을 지참했는지 거듭 확인하는 게 좋다. 국제운전면허증은 렌터카를 빌릴 때 필요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쓰시마를 돌아보는 건 쉽지 않다. 차를 빌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히타카쓰 등 항구 주변에 렌터카 업체들이 많다. 대부분 한국말이 통해 어렵지 않게 빌릴 수 있다. 차량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개 하루 6000엔(약 6만 9600원)을 넘지 않는다. 기름값은 하루 1000엔이면 충분하다. 차는 대부분 경차다. 섬 내 도로폭이 좁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382번, 39번 등 대표적인 도로들은 왕복 2차선이지만 나머지 도로들은 교행해야 하는 구간이 많다. 자전거를 가져가는 이들도 제법 많다. 선사에 따라 다르지만 오션플라워호의 경우 2만원 안팎의 추가 요금을 내면 배에 실을 수 있다. 현지에서 자전거를 렌털할 수도 있다. 다만 습한 여름이다 보니 도로에 물기가 많아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풍경 위주 여행은 히타카쓰·역사 중심 탐방은 이즈하라 이번 여정에선 히타카쓰를 들머리 삼았다. 쓰시마 가장 북쪽에서 출발해, 섬을 관통하는 382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간 뒤 섬 오른쪽의 39번 도로를 이용해 복귀하는 일정이다. 남쪽의 이즈하라가 쓰시마 중심지이긴 하지만, 그만큼 번잡한 것도 사실이다. 풍경 위주의 여정이라면 히타카쓰를, 역사 중심의 탐방을 계획한다면 이즈하라를 들머리 삼는 게 좋다. 히타카쓰 항에 내리면 ‘빨리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볼 수 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차를 빌리고, 주변 마트에서 후다닥 간식거리도 준비한다. 히타카쓰 항구 위에 ‘일본 100대 해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미우다 해변, 한국전망대 등이 있다. 날씨 좋으면 부산이 보인다는 ‘이국이 보이는 언덕의 전망대’, 망원경으로 거제도를 볼 수 있다는 ‘기사카 전망대’ 등 유난히 우리 땅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많지만 다 돌아볼 수는 없다. 382번 도로에 올라타면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382번 도로는 쓰시마의 핵심도로다. 북단 히타카쓰에서 남단 이즈하라를 잇는다. 목적지는 에보시다케 전망대다. 쓰시마에서 가장 빼어난 조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전망대 주차장에서 5분 남짓 걸어 오르면 수많은 섬이 펼쳐진 아소만 풍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백제·신라 향한 와타즈미 신사… 모기하마 해변 물빛은 일품 전망대 아래는 와타즈미 신사다. 풍어와 뱃길 안전을 돕는 해신(海神)을 모시는 신사다. 특이한 건 신사로 드는 문, 즉 도리이의 형태다. 와타즈미 신사 앞으로 5개의 도리이가 일직선으로 서 있는데, 그 가운데 두 개는 갯벌에 세워졌다. 이 탓에 만조 때면 도리이가 2m 정도 바닷속으로 잠긴다. 도리이가 선 방향도 이채롭다. 일본 건국신화의 주인공이 도래한 방향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백제(공주) 혹은 신라(서라벌) 쪽을 향하고 있다는 추측이 무성하다. 현지인들은 다섯 개의 도리이가 신과 인간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라고 믿는다. 도리이를 하나 지날 때마다 식욕 등 인간의 5가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도 한다. 와타즈미 신사의 또 다른 명물은 경내에 있는 소나무다. 용이 승천하는 형상이라고 한다. 신사 뒤의 삼나무 숲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쓰시마 남단의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은 ‘은어가 돌아온다’는 뜻의 계곡이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뤄진 계곡 옆에 캠핑장 등을 갖춰 피서지로도 인기가 높다. 이즈하라의 가네이시 성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결혼봉축기념비가 있다. 돌아오는 길에 모기하마 해변은 잊지 말고 찾을 것. 아직 이름이 덜 알려져 한국인보다 일본인들이 더 많이 찾는 곳이다. 오키나와의 해변을 보는 듯한 이국적인 물색이 일품이다. 작은 섬이지만 음식은 맛있다. 로쿠베는 고구마를 갈아 만든 국수다. 강원 정선의 올챙이 국수 비슷하다. 톤짱은 한국인들이 전했다고 추정되는 양념 돼지 불고기다. 우리나라 불고기처럼 짭조름하면서 단맛이 난다. 카스텔라 안에 달콤한 팥소가 든 카스마키도 토속 음식으로 꼽힌다. 에도시대에 쓰시마 도주를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밸류’ 등 마트에서 파는 포장 식품들도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글 사진 부산·쓰시마(일본)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난 1일 ‘이비스 앰배서더 부산 해운대’가 문을 열었다. 중저가의 깔끔한 숙소를 찾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해운대가 코앞인 데다, 동백섬 등 명소들과의 접근성도 좋다. 이비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객실을 보유한 호텔 체인인 아코르호텔(www.accorhotels.com)의 대표적인 이코노미 브랜드다. 오전 4시부터 조식을 제공하는 ‘이비스 키친’을 비롯해 ‘스위트 베드’ ‘15분 개런티 서비스’ 등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객실 구성도 다양하다. 모두 5가지 타입인데, 3인 이상 여행객을 위한 트리플룸 및 패밀리룸, 2개의 객실을 연결한 커넥팅룸 등을 조성한 것이 특히 눈에 띈다. ‘이비스 앰배서더 해운대’는 지상 20층, 지하 3층 규모다. 해운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루프톱과 라운지바, 피트니스센터 등 부대시설을 갖췄다. 같은 날 서울 을지로에선 ‘이비스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이 문을 열었다. 개관을 기념해 ‘이비스 앰배서더 해운대’는 8월 말까지 홈페이지 예약객에 한해 10% 할인한다. ‘이비스 앰배서더 동대문’은 8월 28일까지 최대 20% 할인된 7만 2000원부터 객실을 제공한다.
  • 1400년 전 한성백제 행렬의 주인공이 되세요

    1400년 전 한성백제 행렬의 주인공이 되세요

    ‘한성백제문화제에 참여하러 오세요.’ 서울 송파구가 오는 10월 6일부터 9일까지 나흘간 열리는 ‘2016 한성백제문화제’에 함께할 참가자를 모집한다. 송파구 거주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참가 분야는 한성백제역사문화 거리행렬, 한성백제 체험마을 자원봉사, 청소년 예능 동아리 공연 및 프린지 공연 등이다. 올해로 16회를 맞는 한성백제문화제는 서울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역사문화 축제로 송파구는 물론 서울시민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초창기 송파구 안 작은 행사로 열렸던 이 문화제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유망축제’로 선정되는 등 국내외 관광객들이 주목하는 역사문화 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게 송파구 측의 설명이다. 거리행렬 참가자는 백제 의상을 착용하고 분장을 한 뒤 맡은 배역에 따라 퍼레이드에 참여한다. 병사, 상인, 귀족 의복을 입고 14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한성백제 체험마을에선 대장간, 주막, 싸전 등 장터 거리를 비롯해 점집, 약방, 백제병영에서 백제인 일상 체험을 하거나 관광객을 돕는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 특히 한성백제 전국창작동요제, 전국 청소년 예능 동아리 공연, 프린지 공연은 전국적으로 참가자를 모집해 공연의 질과 관객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유일하게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한성백제후손’ 분야는 부여 서씨, 의령 여씨, 연씨, 진씨, 국씨가 지원할 수 있다. 백제 의상을 입고 혼불 채화식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진다. 문의는 송파구 문화체육과(02-2147-2831).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일왕 밤늦게 찾은 두 미소… 한·일 반가사유상 1400년 만에 조우

    일왕 밤늦게 찾은 두 미소… 한·일 반가사유상 1400년 만에 조우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특별 전시 중인 한·일 두 나라의 반가사유상 두 점을 보기 위해 4일 밤늦게 도쿄국립박물관을 찾았다. 아키히토 일왕 내외는 이날 일반 관람시간이 끝난 뒤 저녁 8시부터 미야타 료헤이 일본 문화청장, 도쿄국립박물관 관계자 등의 영접을 받으며 1층에 마련된 특별 전시실을 돌아봤다. ‘미소 짓는 부처님:두 반가사유상’이란 제목의 특별전에는 6세기 작품인 한국의 국보 제78호 금동 반가사유상과 7세기 작품으로 일본 국보인 나라(良)의 주구지 소장 목조 반가사유상이 서로 마주 보게 전시돼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50여분간 박물관에 머물면서 관계자들로부터 전시회 설명을 듣고 특별전 추진위원장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 주일 한국대사관 이희섭 대사대리 등과 환담을 했다. 특히 10여분 동안 두 불상을 자세히 살피고 비교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양국 수교 50주년을 기념한 불상 전시는 지난달 한국국립중앙박물관에서 먼저 열렸다. 이어 많은 일본인의 관심 속에서 지난달 21일부터 이곳에서 열린 전시회는 다음달 10일까지 계속된다. 일본 언론들은 ‘1400년 만의 조우’란 표현을 쓰면서 이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도쿄의 외교가에서는 일왕 부부의 특별전 행차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만 82세의 고령인 아키히토 일왕과 81세인 왕비가 밤늦게 일반 전시가 끝난 뒤 찾은 것에서 한국에 대한 우호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위안부 합의 전까지 최악의 상태로 흔들리던 두 나라 관계가 회복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평소 한국과의 친근감을 여러 차례 피력해 왔다. 지난달 이임 인사차 황거를 찾은 유흥수 당시 주일 한국대사에게 “내 몸에는 한반도의 혈통이 흐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아키히토 일왕은 2001년 12월 18일 기자회견에서는 “간무(桓武) 천황(제50대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다”며 “한국과의 깊은 연을 느낀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또 2004년 8월에는 당숙인 아사카노미야를 충남 공주의 무령왕릉에서 제사를 올리게 한 적도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여름이 왔다… 더위를 잊다

    여름이 왔다… 더위를 잊다

    여름이다. 놀기 딱 좋은 계절이다. 때맞춰 전국에서 축제의 향연이 펼쳐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16 문화관광축제’ 가운데 휴가 시즌인 7~8월에 열리는 축제들을 모았다. 외국인 30만명과 즐겁고 신나는 머드 체험 전 세계 마니아들이 기다려온 보령머드축제가 오는 15~24일 지난해보다 확장된 대천해수욕장 내 머드축제장에서 열린다. 올해로 19회째. 보령머드축제는 축제기간 동안 30여만명의 외국인이 방문할 만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진 축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글로벌 축제’로 선정,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육성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축제의 문은 가수 싸이가 연다. 관객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스탠딩 공연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어 머드 가요제(가칭), 군악대 공연, 록 페스티벌 등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이 요일별로 펼쳐진다. 머드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대형머드탕, 머드슈퍼슬라이드, 갯벌게임 등 전통적인 프로그램 외에도 설치미술 ‘발견’(머드광장로 입구), 공군 블랙이글스 에어쇼, 뷰티박람회(시민탑광장) 등 다양한 부대 행사를 준비했다. 주행사장인 대천해수욕장은 지난달 18일 개장했다. 대천관광협회의 숙박현황 모니터링 시스템(stay.daecheonbeach.kr)을 이용하면 주변 숙박업소들의 예약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홈페이지:www.mudfestival.or.kr 고려청자 본고장… 청자·다기 세트 등 세일 전남 강진은 9~14세기 500여년간 청자를 생산했던 곳이다. 전국 400여기의 가마터 중 188기가 보존돼 있고,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고려청자의 80%를 만들어 낸 청자의 본고장이다. 단절됐던 옛 장인들의 예술혼을 되살리고 고려청자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해마다 청자축제를 연다. 올해는 7월 30일~8월 7일 대구면 청자촌 일대에서 열린다. 청자의 전시·판매(전 품목 30% 할인), 가마 굽기 체험 등 메인 행사 외에도 생활자기 등의 즉석경매, 다기 세트 등의 ‘폭탄 세일’(70%)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준비했다. 올해는 특히 어린이 복합놀이공간을 조성해 운영한다. 화목가마에서 요출된 청자를 운반선까지 가져가는 청자운반행렬도 준비했다. 관광객들이 고려시대 서민복장을 착용하고 진행한다. ■홈페이지:www.gangjinfes.or.kr 천연기념물 반딧불이가 펼치는 빛의 향연 전북 무주를 가로지르는 남대천은 반딧불이 서식지로 유명하다. 반딧불이는 이제 천연기념물(제322호)로 지정될 만큼 전국 어디서든 보기 힘든 곤충이 됐지만, 무주 반딧불축제장을 찾으면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4년 내리 최우수축제로 선정된 무주반딧불축제는 오는 8월 27일~9월 4일 남대천, 반디랜드 등에서 열린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반딧불이 신비탐사’다. 사방이 어둑해질 때쯤 참가자들이 반딧불이 서식지를 찾아가는 행사다. 짝짓기를 위한 수컷 반딧불이의 혼인 비행을 보며 생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테마파크형 생태관인 ‘반디나라관’에서는 수만 마리의 반딧불이가 펼치는 빛의 향연과 마주할 수 있다. 아울러 행사 기간 동안 남대천에서 두문마을 낙화놀이가 열린다. ‘밑줄 쫙 긋고’ 기억해야 할 이벤트다. ■홈페이지:www.firefly.or.kr 탐진강·편백숲 우드랜드서 물싸움 ‘대한민국 축제콘텐츠대상’에서 4년 내리 대상을 차지한 저력의 축제다. 올해는 정부 지정 ‘우수축제’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오는 29일~8월 4일 탐진강과 편백숲 우드랜드 일원에서 시원하게 펼쳐진다. 핵심 프로그램은 네 가지다. ‘살수대첩 퍼레이드’는 군민과 관광객이 하나가 되어 물싸움을 벌이는 거리 퍼레이드다. 컬러 파우더로 교전을 벌이고 중간중간 공연도 즐길 수 있다. 헬기까지 동원되는 ‘지상 최대 물싸움’은 매일 오후 2시에 진행된다. ‘맨손 물고기 잡기’ ‘수상 줄다리기’ 등도 관광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프로그램이다. ■홈페이지:www.jhwater.kr 백제 여름밤 향 품은 연꽃을 벗삼아 백제의 여름밤을 체험할 수 있는 축제다. 백제 무왕(서동)과 선화 공주의 사랑이야기가 모티브다. 오는 8~17일 서동의 탄생설화가 전해지는 포룡정 등 부여서동공원 일원에서 펼쳐진다. 사랑이야기가 주제다 보니 주로 야간에 로맨틱한 이벤트들이 열린다. 매일 밤 8시 진행되는 서동선화 퍼레이드, 매일밤 9시 포룡정에서 열리는 사랑의 풍등 날리기 등이 메인 행사다. 행사장 주변은 각종 경관조명으로 볼거리를 더했다. 매주 금, 토요일엔 길거리 음식 위주의 ‘백마강 달밤 시장’이 열린다. 서동공원 야간경관은 지난달 24일부터 공개되고 있다. ■홈페이지:www.부여서동연꽃축제.kr 내성천에서 은어 잡고 추억 쌓고 경북 봉화는 낙동강과 내성천, 운곡천이 흐르는 맑은 물의 고장이다. 특히 내성천은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 은어가 서식했던 곳이다. 당시 은어 보관용 석빙고가 따로 세워질 만큼 명성이 대단했다. 은어축제도 내성천이 주무대다. 오는 30일~8월 6일 열린다. 요즘 내성천엔 은어가 없다. 하류에 댐이 생기면서 은어가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은어가 회귀하는 날까지 청정한 환경을 가꾸자는 게 축제의 기본 정신이다. 핵심 프로그램은 은어잡이(반두·맨손)다. 물장난 페스티벌 등 다양한 수변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홈페이지:www.bonghwafestival.com 이순신 장군 호국정신 계승·선양 한산대첩 424주년을 기념하고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계승·선양하는 축제다. 8월 11~15일 통영시내 통제영, 이순신 공원 등에서 열린다. 축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고유제 봉행을 시작으로, 삼도의 수군을 집결시켜 봄, 가을에 거행했던 군사점호 ‘군점’(통제영 세병관)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진다. 하이라이트인 ‘거북선출정식’은 수항루에서 소규모 출정식 형태로 매일 진행된다. 통영 앞바다가 한산대첩의 격전지로 변하는 장관을 지켜볼 수 있다. 국가지정무형문화재인 통영오광대, 승전무, 남해안별신굿 등 다양한 공연도 이어진다. ■홈페이지:www.hansanf.org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남한강 차지하는 자 한반도를 가지리라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남한강 차지하는 자 한반도를 가지리라

    조세제도를 확립하고 나면 지방에서 걷은 세곡(稅穀)을 수도로 나르는 조운 제도를 구비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배를 건조하고, 세곡을 운반해 배에 실을 수 있는 조창을 세워야 했다. 전국적으로 고려시대에는 13곳, 조선시대에는 12곳의 조창을 운영했다. ●영남 북부 세곡 남한강 조창 통해 운반 그런데 충청·호남 지역과 영남 서부에는 조창을 두었지만, 영남 북부에 조창이 없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이 지역 세곡은 어떻게 운반했을까. 한강의 수운은 지금 팔당댐과 4대강 사업에 따른 보(洑)에 막혀 두절된 상태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덕흥창, 조선시대에는 가흥창이라고 불린 남한강 상류 충주에 설치된 조창이 있었다.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잇는 조령은 그저 영남 선비들이 과거 보러 한양을 오가던 작은 길이 아니었다. 영남 북부 지역 세곡은 달구지에 실린 채 조령을 넘어 충주 조창으로 운반됐다. 충주에서 조운선에 실린 영남 세곡은 2~3일이면 한양이나 개경에 닿았다. 강원도 지역 세곡도 마찬가지였다. 원주 흥원창은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내륙 수운의 요지에 자리잡았다. 흥원창이 있었던 원주 부론면이라면 고려시대 거찰(巨刹) 법천사를 떠올리는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법천사터에 있던 지광국사현묘탑은 우려곡절 끝에 경복궁 마당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해체 수리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법천사와 지척의 거돈사, 섬강 상류의 흥법사, 그리고 남한강을 조금 내려간 여주의 고달사는 모두 고려시대 국사(國師)나 왕사(王師) 반열에 올랐던 고승들이 은퇴하고 머무는 하안소(下安所)로 지정됐다. 유사시에는 뱃길로 빠르게 개경을 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로 시작하는 유명한 시다. 충주 목계나루는 남한강 수운의 역사를 1973년 팔당댐 건설 이전까지 이었다. ‘목계장터’에도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라는 대목이 보인다. 장돌뱅이들을 태운 나룻배가 아니라 화급을 다투는 군선(軍船)이라면 아차산 아래 광나루에 닿는 시간은 훨씬 단축됐을 것이다. ●‘중원’ 충주, 삼국 각축 벌이던 요충지 고려·조선 시대 남한강 수운의 양상을 장황하게 나열한 이유는 삼국시대에도 결코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흔히 중원(中原)으로 불리는 충주 일대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각축을 벌인 지역이다. 결국 진흥왕 이후 신라가 이 지역을 안정적으로 경영했고, 그것은 삼국을 통일하는 중요한 동력의 하나였다. 중원이란 매우 상징적인 표현이다.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천하를 차지한다’는 표현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지만 지금은 사업가들도 흔히 입에 올린다. 최근까지도 충북에 중원군(中原郡)이라는 행정구역이 남아있었던 것은 진흥왕이 이곳에 설치한 국원경(國原京)을 경덕왕이 중원경(中原京)이라 개칭한 역사의 연장선상이다. 신라는 통일을 이룬 국토의 중심부라는 뜻에서 중원이라는 개념을 세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중원, 즉 충주 일대를 차지한 신라가 한반도 전체를 차지했다. ●충주 지배 세력 한강 유역 일대도 장악 삼국시대 중원의 주인과 서울 일대의 주인은 대부분의 기간이 일치했다. 충주를 지키고 있으면 한강 유역까지 쉽게 차지하고 지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반대로 충주를 잃으면 한강 하류 방어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성백제가 한강 하류에서 명맥을 유지한 기간도 충주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던 기간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백제가 서울을 버리고 공주로 천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결정적으로 고구려가 충주 일대 지배권마저 확보함에 따라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고 싶다. 충주 고구려비는 건립 당시 중원 일대가 신라 영토이기는 했지만, 고구려군이 주둔해 사실상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정황을 알려준다. 같은 차원에서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통일에 이르기까지 지켜낼 수 있었던 것도 충주를 손아귀에 넣었기 때문이다. 충주에 병력과 군수품을 집결시킨 세력은 뱃길로 빠르면 하루에 보급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세력은 병력과 군수품 조달 속도에서 열세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남한강 수로가 가진 역사적 중요성은 엄청나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 역사성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dcsuh@seoul.co.kr
  •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 1주년 학술대회 새달 4~5일 열린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 1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다음달 4~5일 익산과 부여 등에서 열린다. 전북도와 익산시, 충남도와 공주시·부여군이 공동 설립한 백제세계유산센터는 29일 ‘세계유산 백제역사지구의 보존과 활용’이란 주제로 이 같이 학술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4일 원광대 아트스페이스홀에서 있을 학술대회는 유적 보전 등에 대한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 한국위원회 이혜은 위원장이 기조강연을 한다. 이어 학계, 연구소, 언론계 등 각 분야의 전문가 주제발표와 토론회가 펼쳐진다. 중국과 일본의 세계유산 전문가들이 자국의 등재유산 보존과 활용 방안을 설명하다. 5일에는 공주, 부여, 익산 주민들이 다른 지역 백제역사유적지구를 교차 방문해 세계유산의 가치를 되새기는 기회를 갖는다. 백제세계유산센터 이사장 김일재 전북도 행정부지사는 “이번 학술대회는 등재 1주년을 기념하고 세계유산을 잘 활용한 사례를 찾아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려는 것”이라며 “백제 역사와 문화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주 송산리고분군, 부여 정림사지, 익산 미륵사지 등 8개로 구성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지난해 7월 4일 ‘한·중·일 3국 고대왕국의 교류와 백제의 특출한 역사 및 문화를 잘 증거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국내 12번째로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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