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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의 뮤지엄 천국] 영국박물관 일본실의 백제관음

    [이은미의 뮤지엄 천국] 영국박물관 일본실의 백제관음

    지난해 런던에 있는 영국박물관을 찾았다. 덴마크국립박물관 객원연구원으로 2년 동안 유럽에 머무르면서 한 번은 가보리라 작정했던 터였다. 세계 문명을 보여 주는 전시실 사이를 거닐다가 일본실에 들어서면서 예기치 못한 만남에 놀랐다. 전시실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아 주는 늘씬하고도 우아한 자태의 부처님, 일본 호류지(法隆寺)의 백제관음이 아닌가. 오래전 일본 나라현 한적한 동네의 유서 깊은 절에서 만나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 불상이 틀림없다. 설명문을 보니 한자로 백제관음입상(百濟觀音立像), 영어로 구다라 관음상이라고 정확하게 이름이 적혀 있다. ‘구다라’는 일본에서 백제를 부르는 말이다. 어떻게 일본이 자랑하는 국보급 불상이 영국박물관 일본 상설실에 전시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영국박물관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박물관이라 해도 그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의문은 설명문을 읽으면서 허망하게 풀렸다. 이 불상은 ‘진품’이 아닌 ‘복제품’이었다. 비록 1930년쯤에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가짜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영국박물관은 일본실에서 만나는 첫 작품으로 이 복제품 불상을 전시했을까. 일반적으로 박물관의 본질은 유물에 있다고 한다. 진짜 유물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전시의 정수를 맛보게 해 주고 전시의 명성을 좌우한다. 유럽에서도 수준 높은 일본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진 영국박물관이다. 백제관음은 누가 어디에서 제작했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 불상을 전시실 입구에 전시함으로써 이러한 제작지에 관한 논란을 뛰어넘어 고대 일본의 문화가 아시아 주변국과의 교류와 영향 속에서 성립했음을 선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백제관음 앞에는 18세기에 만들어진 나전칠기 시계도 전시돼 있었다. 이는 일본의 근대문화가 고대 아시아 대륙과의 교섭을 바탕으로 하는 전통의 토대 위에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 준다. 전시실 입구의 두 전시물은 일본 문화가 세계와의 교류 속에서 성립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전시의 기본 의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선택인 셈이다. 소위 ‘일본적인’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는 미술 명품을 진열하던 과거의 일본실과는 사뭇 다른 접근이다. 이 도입 전시물을 지나면 일본의 역사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순으로 다양한 유물을 통해 다차원적으로 펼쳐진다. 외국 박물관 일본실이나 중국실에 비해 빈약한 한국실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수준 높은 한국 문화를 보여 주기에는 유물의 양과 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박물관 일본실의 사례를 보면 우리 문화를 해외 박물관에서 외국인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꼭 여러 점의 국보급 진품이 동원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박물관 전시는 전시물을 통해 맥락을 만들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육적이고도 정치적인 장이다. 유물이 주인공인 전시회도 있지만 유물이 보조 수단인 전시도 성공적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우리라면 한국 미술 전시회에 중국에서 만든 논란이 있는 불상을 전시회 프롤로그에 내세울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영국박물관 일본실 전시를 보고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였으면 높였지 ‘일본 문화는 한국의 아류’라고 생각한 관람객은 아마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문화 중심주의는 박물관의 전시 기획자들이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국박물관 전시도 일본인이 아니라 아마도 영국인이 기획했기에 객관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 [현장 행정] 확 달라진 몽촌토성 풍경…확 높아질 한성백제 위상

    [현장 행정] 확 달라진 몽촌토성 풍경…확 높아질 한성백제 위상

    “몽촌토성이 위치한 올림픽공원은 종종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로 비유됩니다. 앞으로는 센트럴파크를 보고 서울의 올림픽공원을 떠올리길 하는 바람입니다. 620년 한성백제 역사를 품은 몽촌토성을 찾는 발걸음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질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성큼 다가온 가을을 알리는 비가 내린 지난 28일 박춘희 서울 송파구청장은 올림픽공원 안의 몽촌토성 탐방로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박 구청장이 이날 평소 즐겨 입는 정장 재킷이 아닌 파란색 점퍼 차림을 한 이유는 지난해에 이어 올 5월부터 3개월여 동안 12억원을 들여 개선한 몽촌토성 탐방로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몽촌토성길 1.7㎞ 구간을 자연친화적인 마사토로 바꿔 ‘아름다운 길’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를 포함해 올해 새 단장된 구간의 길이는 총 4172m, 1만 4040㎡ 규모다. 경사진 길에는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켜지는 태양열 LED 데크 나무계단을 설치해 자칫 발을 헛딛거나 미끄러질 위험을 줄였다. 화장실에는 장애인 편의를 위한 자동 출입구가 설치됐다. 홍정희 송파구 역사문화재과장은 “이번처럼 대대적인 개선 작업은 올림픽 개최를 위해 1986년 공원이 만들어진 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30여년 동안 탐방로 곳곳은 움푹 패이는 등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탐방로를 찾는 시민 수는 점점 느는데, 재정비가 더디게 진행되다 보니 양방향으로 거닐기가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주민도 적지 않았다. 가락동에 거주하는 김명희(62·여)씨는 “장미 공원까지 17분 거리라 43만평 공원이 마치 우리 집 정원이라 생각하고 걸어서 자주 온다”면서 “탐방로가 야자수 매트와 흙으로 바뀌어 시멘트였던 예전에 비해 산책하기가 훨씬 안전해졌다”고 말했다. 구청장의 현장 시찰에는 한성백제에 대한 교육을 거쳐 역사 해설사가 되는 ‘한성백제 문화플래너 양성 교육’ 과정에 참여 중인 이들도 동행했다. 구는 사단법인 ‘문화살림’과 함께 올 2월 40명의 문화플래너를 모집했다. 그중 한 명인 박은진(37·여·서울 성동구)씨는 “조선왕조 500년 못지않게 유구한 역사를 품은 몽촌토성이 송파를 넘어 전국, 세계로 알려지길 바란다”면서 “역사적 중요성이 덜 강조돼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1982년 사적 제297호로 지정된 몽촌토성은 3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 구청장은 주민을 마주칠 때마다 개선된 탐방로에 대한 의견을 묻고는 직원에게 후속 조치를 지시했다. 그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토성을 찾는 구민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며 “공원이 조성되면서 유물이 적잖이 훼손되기도 했지만, 앞으로는 역사성을 복원해 한성백제의 위상을 되찾을 일만 남았다”고 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장수목장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장수목장

    “얘는 뛰기 위해 태어났어. 뛰는 게 생존이야!” 비록 한국에서는 그리 큰 흥행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거장(巨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필모그래프 중 가장 아끼는 영화 중의 하나라고 손꼽히는 ‘워 호스(2014)’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말(馬)이다. 1차 세계 대전 중 자신이 애지중지 기르다 군수물자로 징발된 말 ‘조이’를 전쟁터 한 가운데서 다시 만난 주인공 ‘알버트’에게 조이는 더 이상 말이 아니라 가족과 진배없는 존재다. 이렇듯 영화 속 대사처럼 인류에게 말(馬)이라는 존재는 분명 ‘가장 희한한 동물’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요사이 대한민국 말들의 심정은 참으로 억울할 게다. 삼국 시대부터 ‘과하마’, ‘양마’(良馬), ‘국마’(國馬), ‘향마’(鄕馬) 등등 흡사 지금의 자동차 이름 짓듯 그리도 말 품종을 촘촘히 나누면서 말을 귀히 여겼던 선조들이 보시기에, 최근 말을 둘러싸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한참이나 기함하실 노릇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어디에선가는 말들은 여전히 뛰기 위해 태어나고 있고, 뛰고 있다. 전라북도 장수에 있는 한국마사회의 렛츠런팜 장수목장이다. ‘가성비 최강’. 한국마사회의 렛츠런팜 장수목장을 방문하고 난 뒤 뒷머리부터 제일 먼저 올라오는 생각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족 나들이 장소를 찾는다면 렛츠런팜 장수목장은 완벽한 모범 답안이다. 과천의 시끌시끌 마권(馬券)이 오가는 경마장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원래부터 있어왔던 말들의 고향을 방문한 느낌 가득한 곳. 특히 어스름 해질 무렵의 육십령 고갯길에서 바라보는 장수목장은 말 그대로 유럽의 어딘가를 연상케 한다. 우선 장수목장은 백두대간의 굵직굵직한 산들이 연달아 잇닿아 있고, 남덕유산(해발 1507m)과 맞닿은 중간 너르고 평평한 초원에 연면적 46만평의 모양새로 앉아 있다. 위로는 덕유산, 아래로는 지리산과 연이어 있어 전라도와 경상도, 백제와 신라가 이 곳을 경계로 나눠진 곳이기도 하다. 또한 목장 초입에 접어들려면 고갯길이 60개가 넘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육십령(해발 734m) 고개를 지나야 하는 데 이 또한 경관 수려함은 전라북도의 으뜸이다. 렛츠런팜 장수목장은 한국마사회에서 직영하는 목장이다. 주로 이곳에서는 경주마 국내 자급을 위하여 우수 씨수말을 통한 교배 분양, 경주마 생산기술인력 양성, 국내산 경주마 후기 육성 기능 강화를 목적으로 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이중 씨수말을 통한 교배 분양은 장수목장의 가장 중요한 설립 목적으로, 4월말에서 6월말 사이에 주로 교배가 이루어지며 일반인들에게도 개방을 하고 있다. 씨수말은 하루에 3번 교배를 하며, 경주마의 경우 인공 수정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최고 씨수말의 경우 가격이 41억에 달해 마방(馬房)도 대리석으로 마감된 방에서 홍삼을 먹을 정도로 관리를 받는다고 하니 ‘말 팔자가 상팔자’인 듯하다. 또한 렛츠런팜 장수목장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가족 관람객들을 위한 체험 장소가 많다는 것이다. 어린이 간이 체험승마장, 마필체험 학습장, 놀이터, 잔디광장. 트랙터 관람 등등 온 가족이 같이 어울릴만한 승마 체험 시설이 많아 이 곳을 방문한 관람객들의 만족도는 대단히 높은 편이다. 늦여름 혹은 초가을, 두고두고 맘 한켠에 담아두고 싶을 정도로 시원한 장수의 드넓은 목장은 언제나 추천 여행지 1순위다. <렛츠런팜 장수목장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이라면 방문해도 후회 없는 최고의 승마 체험장소. 2. 누구와 함께? -아이들과 함께, 가족 나들이 3. 가는 방법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육십령로 764-5 / 063)350-3700 4. 감탄하는 점은? -드넓은 평원에서 느끼는 대자연의 힘. 승마 체험의 여유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비상업적인 시설 공간으로 관람객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음. 6. 꼭 봐야할 장소는? -트로이목마, 승마체험장, 트랙터 관람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장수한우명품관(352-8088), 토옥동송어횟집(353-1216), 순대국밥 ‘양지가마솥’(352-2476), 돈까스 ‘육십령휴게소’(353-1964), 물짜장 ‘용반점’(351-0637)/지역번호 063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krafarm.kra.c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임실 치즈마을, 논개사당 10. 총평 및 당부사항 -승마체험을 하지 않더라도 백두대간 한 자락에 펼쳐진 초원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추억이 될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단독] 생리대 0.4%만 안전·유효성 검사받았다

    제조사 “기준 준수” 구두 통보만 식약처 “검사 인력 턱없이 부족” 유해성 논란이 일고 있는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가 제품을 허가받을 당시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면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009년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받은 생리대는 1082개 품목 가운데 4개(0.4%)에 그쳤다. 제조사가 일정 규격 기준을 맞추겠다고 하면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면제하는데, 식약처는 생리대 제조사가 규격 기준을 준수했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 생리대 제조사가 식약처로부터 받은 판매 허가는 사실상 제조사의 ‘구두 통보’였다. 양승조(더불어민주당)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 27일 식약처에서 받은 생리대 인허가 자료에 따르면, 깨끗한나라는 2007년부터 릴리안 생리대 75개 품목에 대해 신고·허가를 받으면서 모든 품목의 안전성·유효성 심사자료 제출을 면제받았다. 식약처는 생리대 제조업체가 식약처 고시(의약외품에 관한 기준 및 시험방법)에 따라 생리대 기준규격을 맞추겠다고 하거나, 이미 허가된 품목과 같은 성분으로 생리대를 만들면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면제하고 있다. 릴리안은 식약처가 제시하는 기준규격을 맞춘다고 했기에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면제받았다. 식약처가 제시하는 기준규격은 형광증백제, 산·알칼리, 색소, 포름알데히드, 흡수량, 삼출 등 9개 항목이다. 이 기준에는 생리대 재료로 적합한 화학성분과 제조법 등이 나열돼 있다. 릴리안뿐만 아니라 다른 생리대들도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대부분 면제받았다. 2009년 이후 시중에 유통된 1082개 품목 가운데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받은 4개 품목은 완전히 새로운 화학물질을 쓰거나, 기능성이 강화된 상품들이다. 매우 특이한 경우에만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했다. 식약처는 생리대 제조사가 규격기준을 준수했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 생리대 제조사가 기준규격을 지켰다는 내용을 식약처에 제출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깨끗한나라 역시 릴리안 생리대를 허가받으면서 규격기준을 지켰다는 내용의 자료를 식약처에 내지 않았다. 식약처는 생리대 제품이 시중에 유통된 이후 정기적인 품질 점검을 하고 있다. 식약처는 2015~2016년 릴리안 35개 품목을 포함한 생리대 252품목이 품질관리 기준에 적합한지 검사했다. 그러나 이는 ‘사후약방문’식 대처라는 지적이다. 문제가 생기고 난 후에야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생리대 규격기준을 출시 전에 검토하기에는 검사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해명했다. 식약처가 마련한 생리대 규격 기준에는 발암물질에 대한 기준조차 없다.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가 “국내 생리대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 등 발암물질이 검출됐다”고 발표하고 나서야 식약처는 이 문제를 인지했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문제가 심각해진 최근에서야 내년 10월 끝나기로 예정된 생리대 유해평가 기준에 대한 연구용역을 앞당기기로 했다. 지금은 발암물질에 대한 시험법과 유해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양승조 위원장은 “제조사가 식약처 고시의 맹점을 이용해 기준규격에 적합하지 않은 생리대를 만들었어도, 식약처는 이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허가를 내줘야 했던 상황”이라며 “관련 부분의 법령 개정과 제도 개선을 통하여 국민이 안심하고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속히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단독]생리대 릴리안, 안전성 유해성 검사 면제받았다

    [단독]생리대 릴리안, 안전성 유해성 검사 면제받았다

    유해성 논란이 일고 있는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가 제품을 허가받을 당시 안전성·유해성 검사를 면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009년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안전성·유해성 검사를 받은 생리대는 1082개 품목 가운데 4개(0.4%)에 그쳤다. 제조사가 일정 규격 기준을 맞추겠다고 하면 안전성·유해성 검사를 면제하는데, 식약처는 생리대 제조사가 규격 기준을 준수했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 생리대 제조사가 식약처로부터 받은 판매 허가는 사실상 제조사의 ‘구두 통보’였다. 양승조(더불어민주당)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 27일 식약처에서 받은 생리대 인허가 자료에 따르면, 깨끗한나라는 2007년부터 릴리안 생리대 75개 품목에 대해 신고·허가를 받으면서 모든 품목의 안전성·유효성 심사자료 제출을 면제받았다. 식약처는 생리대 제조업체가 식약처 고시(의약외품에 관한 기준 및 시험방법)에 따라 생리대 기준규격을 맞추겠다고 하거나, 이미 허가된 품목과 같은 성분으로 생리대를 만들면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면제하고 있다. 릴리안은 식약처가 제시하는 기준규격을 맞춘다고 했기에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면제받았다. 식약처가 제시하는 기준규격은 형광증백제, 산·알칼리, 색소, 포름알데히드, 흡수량, 삼출 등 9개 항목이다. 이 기준에는 생리대 재료로 적합한 화학성분과 제조법 등이 나열돼 있다. 릴리안 뿐만 아니라 다른 생리대들도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대부분 면제받았다. 2009년 이후 시중에 유통된 1082개 품목 가운데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받은 4개 품목은 완전히 새로운 화학물질을 쓰거나, 기능성이 강화된 상품들이다. 매우 특이한 경우에만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했다. 식약처는 생리대 제조사가 규격기준을 준수했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 생리대 제조사가 기준규격을 지켰다는 내용을 식약처에 제출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깨끗한나라 역시 릴리안 생리대를 허가받으면서 규격기준을 지켰다는 내용의 자료를 식약처에 내지 않았다. 식약처는 생리대 제품이 시중에 유통된 이후 정기적인 품질 점검을 하고 있다. 식약처는 2015~2016년 릴리안 35개 품목을 포함한 생리대 252품목이 품질관리 기준에 적합한지 검사했다. 그러나 이는 ‘사후약방문’식 대처라는 지적이다. 문제가 생기고 난 후에야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생리대 규격기준을 출시 전에 검토하기에는 검사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해명했다. 식약처가 마련한 생리대 규격 기준에는 발암물질에 대한 기준조차 없다.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가 “국내 생리대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 등 발암물질이 검출됐다”고 발표하고 나서야 식약처는 이 문제를 인지했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문제가 심각해진 최근에서야 내년 10월 끝나기로 예정된 생리대 유해평가 기준에 대한 연구용역을 앞당기기로 했다. 지금은 발암물질에 대한 시험법과 유해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양승조 위원장은 “제조사가 식약처 고시의 맹점을 이용해 기준규격에 적합하지 않은 생리대를 만들었어도, 식약처는 이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허가를 내줘야 했던 상황”이라며 “관련 부분의 법령 개정과 제도 개선을 통하여 국민이 안심하고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속히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사설] 번지는 ‘케미포비아’… 화학물질 등록 일정 당기라

    ‘살충제 달걀’에 이어 ‘독성 생리대’와 ‘간염 소시지’ 파동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케미포비아’(화학물질 공포)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대체 무엇을 먹고 마시고 써야 할지 모든 국민이 엄두를 내지 못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보건 당국이 안전성을 보장한 생리대에서까지 독성물질이 발견됐으니 이런 국민적 공포감도 무리가 아니다. 국가적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된 가습기 살균제 참극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가운데 제2, 제3의 살균제 파동이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는 지경이다. 엊그제 불거진 릴리안 생리대 파동은 문제의 원인이 개별 업체의 잘못이나 감독 당국의 태만을 넘어 제도의 허점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릴리안 생리대 4개 제품만 해도 이미 지난 4~5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실시한 품질관리 기준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것들이다. 형광증백제, 산·알칼리, 색소, 포름알데히드 여부 등 9개 항목만 검사하도록 기준이 설정돼 있고 문제가 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은 아예 배제돼 있었으니 부적합 판정을 내리려야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생리대 가운데 릴리안 생리대만 문제일 수가 없는 셈이다. 지난 5월 화학안전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에 담긴 화학물질은 1만 8770종이다. 이 가운데 연간 1t 이상 제조하거나 수입해 쓰는 물질만도 6574종이다. 그런데 이 화학물질들 가운데 독성을 포함해 위해성 여부를 파악하고 있는 물질은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85%는 여전히 얼마나, 어떻게 인체에 해로운지조차 오롯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파동, 릴리안 생리대 파동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할 상황인 것이다. 케미포비아를 막을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화학물질 등록 일정을 앞당겨야 한다. 정부는 내년 6월 연간 1000t 이상 사용되는 물질 510종을 우선 등록하게 하고, 이후 3단계에 걸쳐 2030년까지 1t 이상 사용 물질 약 7000종을 모두 등록토록 한다는 방침이나 이런 대응으론 화학물질이 야기하고 있는 당장의 위협으로부터 국민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위해성 시험평가나 시험자료 구입에 큰 비용이 들고, 이 때문에 상당수 영세 업체들의 경영 부담이 가중된다는 이유로 등록 시점을 늦출 상황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만나 재발 방지를 다짐한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 옛 4대문 안의 도심 재생사업… 역사·미래유산 권역으로 개발

    ‘아시아 문화심장터 프로젝트’는 김승수 전주시장이 내세우는 핵심 정책이다. 전주시의 옛 4대문 안에 있는 구도심 100만평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도록 균형 있게 리모델링하는 사업이다. 김 시장은 앞으로 전주시의 운명은 외곽을 에워싼 신도시보다 구도심 100만평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왕조 발상지’와 ‘후백제의 도읍지’라는 문화유산을 품은 구도심이 전주의 정체성을 지켜내고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통문화 중심 원도심 재생사업은 전라감영, 경기전, 풍패지관, 풍남문, 남부시장 등 전주 4대 부성 주변 역사와 문화자산을 활용해 낙후된 구도심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영화의거리지구, 공공기관거점지구, 전라감영지구, 전통문화지구 등 4개 지구로 분류해 특색 있게 개발된다. 중앙동, 노송동, 완산동, 동·서학동 55만평은 ‘역사도심 재창조 권역’으로, 나머지 45만평은 ‘미래유산 관광벨트’로 각각 구분해 개발한다. 지난 1월에는 중앙동, 풍남동 등 원도심 143만㎡를 역사문화 공간으로 재생하는 계획이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으로 최종 확정돼 아시아 문화심장터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태평성대 누리는 삼각산 아래 명당 순국선열을 품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태평성대 누리는 삼각산 아래 명당 순국선열을 품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3차 ‘자유를 위한 함성’ 편이 지난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일대에서 진행됐다. 혹서기를 피해 3차례의 야간답사가 이어진데다, 멀리 서울의 북서단 삼각산 아래까지 사람들이 찾아올지 우려했지만 기우에 그쳤다. 30여명의 ‘미래투어’ 팬덤은 열 일을 젖혀두고 동참했다. 집결지인 국립4·19민주묘지까지 오려면 지하철역에서 버스나 택시를 갈아타야 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 지도사는 젊은 엄마의 감성으로 투어단을 이끌었다.국립4·19민주묘지와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의 묘역을 품에 안은 삼각산은 고리타분한 옛 지명인가. 그렇지 않다. 삼각산은 서울이 왜 서울인지를 밝히는 중요한 근거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태조가 무학을 시켜 도읍 터를 정하도록 했는데 무학이 삼각산 백운대에서 맥을 따라 만경대에 이르고 다시 서남쪽으로 비봉에 갔다가 돌비석에 새겨진 ‘무학오심도차’(無學誤審到此·무학이 길을 잘못 찾아 여기에 온다)라는 여섯 글자를 보았는데 이는 도선이 세운 것이었다. 문득 깨달은 무학은 길을 바꿔 정남 쪽 맥을 따라 백악산에 도착했다. (중략) 드디어 궁성 터를 정했는데 고려 때 오얏을 심던 곳이었다”라는 일화를 전한다.●역사적 근거 명확한 ‘오얏 심던 곳’… 현재 ‘번동’ 삼각산과 한양천도에 얽힌 도참설과 풍수설화 중 귀담아들을 만한 부분이다. 떠도는 설화 대부분이 ‘믿거나 말거나’ 식이지만 ‘오얏을 심던 곳’은 역사적 근거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도선대사의 ‘도선비기’에 전해지는 ‘목자득국’(木子得國·이씨 성을 가진 자가 나라를 얻는다)의 도참설을 깨고자 고려 조정이 이씨를 상징하는 오얏(李木·자두나무)을 한양땅에 심었다가 자라면 베어버리도록 했는데 이때 윤관 장군이 지휘관으로 파견됐고, 그 직책이 벌리사(伐李使)였으며, 지역명이 벌리(伐李)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벌리는 번리를 거쳐 오늘의 번동이 됐다. 오패산 혹은 벽오산이라고 불리다가 ‘북서울 꿈의 숲’ 공원이 조성됐다. 번동은 우이동, 수유동, 미아동과 함께 강북구의 법정동을 이루고 있다.●910여년 전 고려 중기부터 ‘한양 천도’ 시도 우리는 흔히 한양이 620여년 전 하루아침에 부각된 땅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자 하는 시도는 910여년 전 고려 중엽부터 끈질기게 이어졌다. 개경(개성)을 수도로 둔 고려는 고구려의 서경(평양), 신라의 동경(경주)과 함께 백제의 옛 수도에 남경(한양)을 두어 삼국의 융합을 원했다. 삼각산 아래 마을은 실제로 고려가 도읍 후보로 검토한 유력지였다. 후보지 4곳은 백악, 용산, 노원, 해촌(옛 다락원, 현재의 도봉산역)으로 노원과 해촌이 삼각산과 한강 사이의 명당지로 꼽혔다.도참서 중의 하나인 ‘삼각산명당기’에 따르면 삼각산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한 선경으로 산맥이 삼중, 사중으로 등져 명당을 수호하고 있어서 태평성대를 누릴 땅이라고 했다. 도참설대로 이씨가 역성혁명에 의해 왕조를 세웠으니 도읍을 옮기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결국 오얏나무가 무성한 ‘약속의 땅’ 한양으로 천도했다. 다만 좀 더 넓고, 평평하고, 한강의 조운이 편리한 곳을 찾아 이동한 까닭에 백악을 주산(主山)으로 하되 삼각산을 진산(鎭山)으로 삼았다.●북서울 3개구 ‘도봉·노원·강북’은 하나의 뿌리 고려의 개성과 조선의 한양을 잇는 두 갈래 길이 개성~장단~적성~녹양~노원~안암~제기~동대문 길과 개성~임진~벽제~영서~무악재~서대문 길이다. 벽제 혜음령이 너무 험해 좀 시간이 걸려도 노원 길을 선호했다. 이 일대를 서울의 북쪽 교외를 이르는 북교(北郊)라고 통칭했으며, 도성의 채소 및 땔감 제공지이자 중인 이하 양민들이 죽으면 묻히는 안식처가 됐다. 오늘의 도봉구, 노원구, 강북구 등 3개 구를 북서울이라고 한다. 북쪽으로 삼각산, 서쪽으로 우이천을 경계 삼아 성저십리(城底十里)에 속했으며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했다. 이처럼 북서울 3개 구는 한 뿌리이다. 1949년 숭신면 전부가 성북구에 속했다가, 1973년 도봉구, 1988년 노원구에 이어 1995년에 강북구가 차례로 분가했다. 서울의 머리인 ‘세 개의 뿔’ 삼각산이라는 지역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고 생뚱맞은 명칭을 붙인 게 옥에 티다. 교통의 요지이자 들판이었던 노원구는 아파트의 숲으로 변했지만 삼각산이라는 압도적 자연경관을 가진 이 지역의 정체성은 바뀔 수 없다. 순국선열과 청소년 수련을 특화하는 생태역사문화특구로 자리매김하는 게 순리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지는 도봉> 집결일시: 26일 오전 10시 쌍문역 3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시 서울미래유산 (futureheritage.seoul.go)
  • 식약처 “릴리안 생리대 검사 바로 시행”…논란된 유해성은 내년 이후 확인 가능

    식약처 “릴리안 생리대 검사 바로 시행”…논란된 유해성은 내년 이후 확인 가능

    깨끗한나라에서 만든 생리대 ‘릴리안’에 대한 부작용 논란이 확산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품질검사에 바로 착수하기로 했다.하지만 부작용 논란의 핵심인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이번 검사에서 확인할 수 없다. 이 부분은 시험법 확립을 위한 연구가 끝나는 내년 이후에나 확인이 가능할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23일 “생리대 릴리안에 대한 추가 품질검사가 4분기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릴리안에 대한 소비자 불안이 가중되고 있어 제품을 수거하는 대로 검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식약처는 매년 생리대 품질검사를 진행한다. 전수조사는 아니며 정기점검이 필요하거나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한 제품을 중심으로 검사가 시행됐다. 릴리안은 2015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검사 대상에 포함됐다. 식약처는 2015∼2015년 2년간 릴리안 35개 품목을 포함해 생리대 252개 품목을 수거해 검사했으며, 해당 제품들은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 올해 릴리안 검사는 4∼5월에 실시됐으며 역시 적합 판정이었다. 검사 대상은 릴리안슈퍼롱오버나이트, 릴리안순수한면팬티라이너무향롱 등 4품목이었다. 식약처의 품질검사는 형광증백제, 산·알카리, 색소, 포름알데히드, 흡수량, 삼출 등 9개 항목에 대해 이뤄진다. 소비자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은 생리대를 속옷에 고정하는 접착제 부분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재 생리대에 대한 규제 항목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국내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에 대한 관리기준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는 외국도 마찬가지인 상태다. 이에 식약처는 ▲원료나 제조 과정에서 잔류할 수 있는 휘발성유기화합물에 대한 분석법 확립 ▲국내 유통 중인 생리대 중 해당성분 함유량 조사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지난해 10월부터 진행중이다. 류영진 식약처장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에 출석해 “원래 연구사업은 2016년 10월부터 2018년 10월까지로 잡혀 있지만 연구 기간을 최대한 앞당겨 결과를 도출해 내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릴리안을 사용하고 나서 생리량이 변하고 생리통이 심해졌다는 소비자 불만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나왔다. 소비자들은 소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법무법인 법정원은 지난 21일 포털 사이트에 ‘릴리안 생리대 피해자를 위한 집단소송(손해배상청구) 준비 모임’ 카페를 개설하고 “릴리안 제품을 사용한 뒤 신체적 증상 및 정신상 고통 등의 피해를 입은 소비자분의 피해 구제를 위한 ‘집단 소송’(손해배상청구)을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제조사인 깨끗한나라는 “사용하는 모든 재료는 안전성을 검증받았다”며 한국소비자원에 릴리안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조사를 진행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원도 휘발성유기화합물질을 어떤 방식으로 검사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무심코 지나친 우리 고장 소소한 이야기에 빠져봐

    서울 양천구는 지역 역사와 문화를 돌아보는 ‘해설이 있는 우리 고장 탐방교실’을 확대, 운영한다고 22일 밝혔다. 지난해 10~12월 3개월 하던 것을 올해는 오는 26일부터 12월까지 한다. 양천구는 “주민 호응과 만족도가 높아 1개월 더 늘렸다”고 설명했다. 탐방은 지역 내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족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한다. 코스는 목동·신월동·신정동 3개다. 1코스는 ‘달라진 목동의 모습’을 주제로 150년 된 느티나무, 파리공원, 축제 거리, 오목공원 등을 둘러본다. 2코스는 ‘자연과 함께 문화와 함께’라는 주제로 서서울호수공원, 신영시장, 신월청소년문화센터 등을 탐방한다. 3코스는 ‘역사를 품은 신정동의 모습’을 주제로 신트리공원, 삼국시대 백제 때 인천과 서울의 소금통로였던 정랑고개, 삼국시대 망을 보던 바위였던 우렁바위, 계남공원 등을 둘러본다. 코스마다 해설사가 동행하며 양천의 역사, 문화, 시설 등을 소개한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우리 고장 탐방교실은 내가 사는 고장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을 갖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많은 주민들이 참여해 가족, 이웃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당집 뒷마당서 나온 고대 유물… 동아시아 교류·해양 제례 흔적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당집 뒷마당서 나온 고대 유물… 동아시아 교류·해양 제례 흔적

    전라북도 부안이라면 주민들 스스로가 ‘축복의 땅’이라고 일컬을 만큼 관광 자원의 보고다. 개암사, 내소사, 월명암 같은 고찰(古刹)도 그렇지만, 아름다운 서해 바다 그 자체가 무한대의 가치를 지닌 관광자원이다.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에 이어 최근에는 자연친화적 관광 붐을 타고 곰소염전도 각광받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반도(半島)인 부안군에서도 가장 서쪽에 자리잡은 변산면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지의 하나다.변산이라면 해수욕장과 함께 채석강과 적벽강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파란만장한 역사가 깃든 중국 명승의 이름을 딴 것은 그만큼 경치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붉은색 바위 절벽이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북쪽 적벽강과 수만권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퇴적암층으로 이루어진 남쪽 채석강이 경계를 이루는 곳이 격포 죽막동(竹幕洞)이다. 1992년 국립전주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죽막동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큰 바다를 건너야 하는 뱃사람들의 기원이 담긴 국제적 해양제사유적이 확인됐다. 꼭 큰 바다를 건너지 않더라도 변산 앞바다를 삶의 밑천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과거든, 현재든 해신(海神)에 목숨을 의탁하기 마련인데, 민간신앙의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는 당집 수성당(水城堂)에서 활발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부안의 관광자원을 이야기한 것은 죽막동 유적의 가치가 아직은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죽막동은 고대 한·중·일 세 나라의 해양 교류 및 해양 제례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보여 주는 동북아시아 유일의 유적이다.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부안이 국내용 관광지였다면 죽막동 유적의 존재로 국제적 관광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그런데 막상 죽막동 유적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관광객이 승용차를 몰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나서 변산에 이르는동안 유적을 알리는 이정표는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다. 다만 격포에 들어서면 수성당으로 가는 작은 이정표가 하나 보일 뿐이다. 변산의 자연과 묶으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역사 관광 자원으로 죽막동 유적의 가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가장 많은 사람이 쓴다는 내비게이션에도 ‘죽막동 유적’은 들어 있지 않다. 그러니 죽막동 유적에 가려면 ‘수성당’을 입력해야 한다. 수성당이 1974년 전라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덕분일 것이다. 다행히 최근 문화재청이 ‘부안 죽막동 유적’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예고했다니 조만간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바다로 내민 해발 57m의 죽막동 언덕에 서면 왜 옛사람들이 제사 지내는 장소로 이곳을 선택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일망무제(一望無際)라는 표현이 실감이 나는데, 먼바다는 고사하고 변산 앞바다의 위도와 칠산바다에도 수많은 어민들의 고혼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수성당은 정면 두 칸, 측면 한 칸의 작은 기와집이다. 상량문은 1850년(철종 원년) 이전에도 신당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1864년(고종 원년)에 3차로 중수한 것을 1940년에 다시 중수했는데, 지금의 신당은 1973년 다시 지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원래의 모습은 잊혀진 것으로 보인다. 수성당은 지금도 살아 있는 민간신앙의 현장이다. 당집인 수성당뿐 아니라 주변에 무속인들이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자리를 다양하게 마련해 놓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바다 쪽으로 앉힌 작은 고깃배 한 척이다. 쌍촛대와 향로를 올려 놓았으니 풍어와 안전은 물론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를 올리는 장소일 것이다. 죽막동 유적이란 수성당 바로 뒤편의 넓지 않은 마당이다. 전주박물관에 따르면 유적은 발굴조사 당시에 이미 상당 부분 파괴된 상태였다. 1980년대 이후 해안경비가 강화되고 참호, 막사, 창고, 철책 등 군사시설물이 설치되면서 유적의 상당 부분이 잘려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대로 원형이 남아 있는 면적은 가로 8m에 세로 13m 정도였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50일 남짓한 발굴조사에서 거둔 성과는 엄청났다. 유물은 30㎝ 남짓한 두께로 종류도 다양하게 집중 퇴적되어 있었다. 해신에게 제사 지내는 데 사용한 용구를 의도적으로 파쇄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백제 유물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조선시대 유물도 그릇류를 중심으로 소량이 출토됐다. 규모가 큰 해양제사는 백제시대에 집중되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죽막동 유적의 출토 유물은 전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각종 항아리와 큰 독, 술잔, 기대(器臺)를 비롯한 토기와 무기, 마구, 갑옷, 거울을 비롯한 금속유물이 생각보다 다양하고 수량도 많다.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집중된 유물의 양상은 같은 시기 수장급 무덤의 부장품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제사의 주체가 지역 수장이거나 왕으로 대표되는 국가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학계에 따르면 토기류는 백제 것과 함께 대가야나 왜(倭) 계통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도 적지 않았다. 금속유물도 대가야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특히 돌로 만든 쇠도끼, 칼, 갑옷 등의 모조품은 일본 후쿠오카현 오키노시마 제사유적 출토품과 형태, 크기, 재질, 제작수법이 대부분 일치했다고 한다. 여기에 중국 남조(317~581)의 청자도 나왔다. 흙으로 빚은 말의 모형도 여럿 나왔는데 하나같이 머리와 다리는 떨어져 나간 채였다. 말을 바쳐 수신(水神)의 노여움을 푸는 의식은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흔히 행해졌다고 한다. 따라서 말의 축소 모형은 해신에게 바치는 공물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기와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것만 나왔으니 백제시대에는 노천 제사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정보를 종합하면 죽막동 유적이 국제적 성격의 제사터라는 것은 자명하다. 백제가 주도한 제사에 대가야, 왜, 중국 남조의 사신, 상인, 선원이 참여한 것인지, 각각의 세력이 별도로 제사를 지낸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하지만 이런 의문과 관계없이 당시 죽막동이 동아시아 해양 교섭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죽막동 유적을 찾는다면 전주박물관도 여행코스에 넣는 것이 좋다. 발굴 현장과 출토 유물을 함께 보면 유적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격포에서는 닭이봉 전망대에도 올라가 보기를 권한다. 채석강과 죽막동, 적벽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서해용왕에게 제사 지내는 데 죽막동보다 더 영험 있는 곳은 찾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느긋한 신선놀음 아직 늦지 않았다오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느긋한 신선놀음 아직 늦지 않았다오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이 경계를 맞댄 지역에 거친 산들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대야산(931m)입니다. 산이 깊으니 계곡이 발달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대야산은 괴산과 문경 양쪽 자락에 같은 이름의 계곡을 매달고 있습니다.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선유동(仙遊洞) 계곡입니다. 두 선유동 계곡은 각각 구곡(九曲)의 풍경을 품었습니다. 구곡은 선비의 유토피아지요. 몸을 정갈하게 하고 마음을 씻는 곳입니다. 옛 선비들이 ‘즐겨찾기’ 해 뒀던 곳이니 후세들이야 그저 믿고 찾으면 될 겁니다. 계절은 벌써 가을을 향해 갑니다. 하지만 정신이 바짝 들 만큼 시원한 물놀이와 볕에 달궈진 바위 위에서 즐기는 찜질의 재미를 아직은 놓칠 수 없지요. 게다가 이런저런 사연으로 ‘늦캉스’를 계획한 이라면 한 줌의 여름 볕이라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을 겁니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망연히 신선놀음하기 좋은 곳, 선유동 계곡입니다.괴산 선유동 계곡은 화양동 계곡과 가깝다. 예부터 화양동의 유명세에 가려져 있었으나 적요한 분위기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호사가들이 규모가 크고 웅장한 화양동을 남성적,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고 아기자기한 선유동을 여성적이라 구분 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유구곡을 지은 이는 퇴계 이황이다. 퇴계가 송면리 부근의 함평 이씨 집을 찾았다가 산세와 계곡의 풍광에 빠져 아홉 달을 머물면서재구곡을 정하고 이름을 지어 새겼다고 한다. 계곡의 길이는 2㎞ 정도다. 들머리는 제1곡 선유동문(仙遊洞門)이다. 층층 시루떡 같은 바위 앞으로 너른 계곡이 펼쳐져 있다. 수심이 얕고 물흐름이 느려 천연 풀장으로 제격이다. 휴가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제2곡 경천벽과 제3곡 학소암을 지나면 곧 제4곡 연단로다. 신선들이 금단을 만들어 먹고 장수했다는 곳이다. 두 개의 거대한 바위가 인상적이다. 연단로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면 제5곡 와룡폭(臥龍爆)이다. 40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너럭바위 위로 계곡물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린다. 폭포 아래는 너른 소다. 물놀이 기구에 올라타고 둥둥 떠다니고 싶은 곳이다. 선유동문에 견줄 만큼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다.제6곡 난가대(柯擡)와 제7곡 기국암(碁局岩), 제8곡 구암(龜岩) 등은 나란히 붙어 있다. ‘난가’는 말 그대로 도낏자루가 썩는다는 뜻이다. 바둑 따위의 놀이에 정신이 팔려 세월 가는 줄 모른다는 의미로 흔히 쓰인다. 난가는 바둑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이웃한 기국암은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바위다. 신선들의 바둑을 구경하다 집에 돌아가 보니 자신의 5세손이 살고 있었다는 나무꾼의 이야기가 전해 온다. 제9곡은 은선암(隱仙岩)이다. 이름처럼 신선들이 홀연히 사라졌다는 바위다. 세상 모든 것이 한여름밤의 꿈과 다름없다는 가르침이 이름에 담겨 있지 싶다. 은선암 앞은 너른 암반이다. 다리쉼하기 좋다. 은선암에서 작은 도로를 건너면 제비소다. 제비가 많았다는 제비바위 아래 푸른 빛의 소가 펼쳐져 있다. 제비소는 충북과 경북을 가르는 경계다. 제비소로 드는 물줄기 위에 놓인 작은 다리를 경계로 한쪽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 다른 한쪽은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다.제비소에서 버리기미재를 굽이굽이 넘으면 용추계곡이 나온다. 문경 쪽 선유동 계곡의 상류에 속하는 계곡이다. 핵심 볼거리는 용추폭포다. 2단으로 쏟아지는 폭포의 상단에 하트 모양으로 파인 소가 멋지다. 대야산 등산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볼 수 있다. 용추계곡 아래는 문경 선유동 계곡이다. 괴산 선유동과 마찬가지로 하류에서 상류로 이르는 구간에 순차적으로 구곡의 이름을 붙였다. 괴산 선유동에 퇴계의 숨결이 배어 있다면 문경 선유동에는 고운 최치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운은 문경 선유동의 아홉 절경을 찾아다니며 ‘선유구곡’ 등의 석각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신선들이 노닐었던 계곡의 들머리는 제1곡 옥하대다. 이어 영사석, 활청담, 세심대 등의 절경이 주르륵 펼쳐진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제9곡 옥석대다. 사실상 계곡의 들머리 구실을 하는 곳이어서 주차장과 식당 등의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다. 옥석대는 문경 선유동 계곡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곳으로 꼽힌다. 길게 파인 너럭바위 사이로 옥빛 계곡수가 쉼 없이 흐른다. 옥석대 초입에는 학천정이 세워져 있다. 그윽한 풍모의 정자와 깊은 계곡이 어우러진 모습이 일품이다. 학천정 옆의 큰 바위에 ‘산고수장’(山高水長)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덕을 높이 쌓고 마음 씀씀이를 넓게 하라는 가르침일 터다. 문경은 일제강점기에 전국에서 가장 먼저 탄광이 들어선 곳이다. 탄광이 사라지며 기능을 잃은 폐철로를 활용해 ‘철로 자전거’를 조성했는데, 이게 ‘레일 바이크’의 효시가 됐다. 철로 자전거는 진남역, 불정역, 구랑리역, 문경역, 가은역 등에서 탈 수 있다. 선유동 계곡이 깃든 가은읍은 한때 무연탄 산지로 활황을 누렸던 곳이다. 옛 영화의 흔적이 남은 관광지들이 제법 많다. 왕릉리의 가은역은 대표적인 등록문화재(제304호)다. 1955년 세워져 이듬해부터 영업을 시작했으니 살아낸 세월이 꼬박 62년에 이른다. 2004년에 폐역이 돼 현재는 관광 시설물로 활용되고 있다. 문경석탄박물관은 광산시대의 흥망성쇠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다. 가은역에서 양산천을 건너면 만날 수 있다. 가은 일대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과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가은역에서 400m쯤 떨어진 곳에 아자개 장터와 벽화거리 등이 조성돼 있다.문경에서 찾아야 할 명소 한 곳만 덧붙이자. 신라 때 열린 우리나라 ‘1호 고갯길’ 계립령이다. 문경과 충주를 잇는 고개로, ‘하늘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계립령이 이은 두 마을의 이름이 독특하다. 충주 쪽은 미륵리, 문경 쪽은 관음리다. 현세의 고통을 구제하는 관음의 대자대비와 내세의 염원이 담긴 미륵의 용화세상을 계립령 양쪽 기슭에서 동시에 만나는 셈이다. 충주 쪽은 걸어 올라야 하지만 문경 쪽은 포장도로다. 걷는 재미는 없어도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내친걸음 ‘김연아 소나무’까지는 다녀오는 게 좋겠다. ‘피겨 여왕’ 김연아의 스케이팅 자세를 빼닮았다는 나무다. 정상 어름에 있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괴산 쪽 선유동 계곡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 혹은 문경새재 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좋다. 다소 빠른 길인 중부고속도로 증평나들목에 비해 교통량이 적고 풍경도 빼어나다. 문경 쪽 선유동 계곡 역시 문경새재 나들목을 이용한다. 영강을 따라 경치 좋은 드라이브 코스가 열린다. 가은읍 내 아자개장터는 4일, 9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주말마다 할머니 장터 등 농특산물 판매장이 선다. 토요일에는 골동품 경매시장도 열린다. →맛집과 잘 곳: 강이 많은 괴산의 특성상 민물고기 매운탕 집들이 많다. 괴강매운탕 본가할머니집(832-2974·이하 지역번호 043)과 우리매운탕(834-0005)이 그중 알려졌다. 둘 다 괴산읍에 있다. 서울식당(832-2135), 토속정(832-0979) 등은 올갱이(다슬기의 사투리)탕을 잘한다. 잘 곳은 쌍곡, 화양동 등 유명 계곡 주변에서 찾는 게 좋겠다. 괴산펜션넷(www.goesanps.com)에 다양한 펜션들이 소개돼 있다. 문경은 약돌을 먹여 키운 돼지고기가 유명하다. 화강석 비슷한 약돌을 갈아 사료와 함께 돼지에게 먹이는데,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영양 성분도 강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새재할매집(571-5600·이하 지역번호 054), 문경약돌한우타운(572-2655) 등이 알려졌다. 가은읍 가은터미널 맞은편의 대복순대국밥(571-9991)은 광부들이 즐겨 먹었다는 석쇠불고기를 내는 집이다. 묵조밥을 내는 소문난식당(572-2255)도 맛집으로 꼽힌다. 유명 관광지인 문경새재 주변에 문경관광호텔(571-8001), 문경새재유스호스텔(571-5533) 등 깔끔한 숙소들이 많다.
  • 군위, 새달 9일 ‘삼국유사 골든벨’ 개최

    군위, 새달 9일 ‘삼국유사 골든벨’ 개최

    “‘삼국유사 골든벨’의 주인공에 도전해 보세요.”‘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군은 다음달 9일 삼국유사 골든벨 퀴즈대회를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올해로 9회째다. 참가 대상은 전국 고교 재학생이며, 신청은 삼국유사 퀴즈대회 홈페이지(www.삼국유사.com)에서 하면 된다. 참가비는 없다. 행사는 오전에 삼국유사 관련 권장도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예선(필기시험)에서 본선 진출자 50명을 가린 뒤 오후에 골든벨을 울리는 최후의 1명을 선발한다. 최우수상인 골든벨 주인공에게는 무열왕상(교육부 장관상)을 주고 2위 문무왕상(경북도지사상), 3위 선덕여왕상(경북도교육감상), 4위 진흥왕상(군위군수상), 5위(5명) 지증·법흥·진평·원성·경덕왕상을 수여한다. 총 800만원의 장학금을 준다. 이외에도 지도 교사상, 인솔 교사상, 본선 최다 진출 교사상 각 3명을 선발해 시상하고 상금 300만원을 준다. 야외무대에서는 특별 공연과 레크리에이션, 삼국유사 목판 인출, 우수 농산물 시식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삼국유사 골든벨은 2009년에 시작, 지난해 8회 대회까지 전국 753개 고교의 4578명이 참가해 실력을 겨뤘다. 연평균 572명이 참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김영만 군위군수는 “일연 스님은 우리 민족이 몽골의 침입으로 굴욕을 당하는 시기에 민족자주 의식을 깨우치고 후대에 민족혼을 심어 주기 위해 삼국유사를 편찬했다”면서 “삼국유사 골든벨 행사가 스님의 나라 사랑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일연(1206~1289) 스님은 군위 인각사에서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遺事)를 모아 지은 사서(史書) ‘삼국유사’를 완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전주지역 후백제 유적 34곳 발견…시, 복원한다

    전북 전주시가 후백제 유적 34곳을 새로 찾아냈다. 16일 전주시에 따르면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이 전주부사에 기록된 후백제 추정 산성터 등 1500만㎡를 답사하고 주민들과 면담조사를 통해 후백제 유적 34곳을 발견했다. 이번에 발굴된 후백제 유적은 성곽유적 12곳, 건축유적 6곳, 생산유적 5곳, 분묘유적 6곳, 생활유적 5곳 등이다. 성곽유적은 남고산성 추정 행궁지와 집수정지, 동고산성 집수정지 등이다. 건축유적은 황방산 건물지, 어은산 건물지 등이고 생산유적은 우아동 와요지와 도요지, 황방산 채석장이다. 분묘유적은 아중저수지 인근에서 무릉고분군이 대형 분묘형태로 발견됐고 중노송동에서도 고분군이 발굴됐다. 생활유적은 옥녀봉, 탄금봉, 매화봉 등에서 기와편, 가마벽체편, 관아전돌편 등이 확인됐다. 전주시는 전주가 후백제의 왕도라고 하지만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 구체적인 유적에 대해 집중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밀지표조사를 통해 기초자료가 확보된 만큼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해 발굴조사와 유적복원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신라왕 극락왕생 빈 백제 유민…불비상에 아로새긴 망국의 한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신라왕 극락왕생 빈 백제 유민…불비상에 아로새긴 망국의 한

    1960년 대학 탁본 과제 계기로 발견 …세종·공주 소재 7점 국보·보물로 지정 1960년 동국대 불교학과 2학년이었던 이재옥 학생은 집 주변의 문화재를 탁본해 오라는 방학 과제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이후 1970년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고 2011년 타계한 미술사학자 황수영 선생이었다. 학생의 고향은 오늘날에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로 바뀐 충남 연기군 서면 쌍류리였다. 그는 고향집에서 서쪽으로 언덕을 하나 넘으면 나타나는 세종시 전의면 다방리의 비암사에서 어릴 적부터 봤던 비석들을 떠올렸다. 극락보전 앞 삼층석탑의 3층 지붕에는 세 점의 검은색 비석이 있었다.이재옥 학생은 스님이 출타하기를 기다려 사다리를 놓고 석탑에 올라갔다. 하지만 처음 해 보는 탁본이라 표면의 이끼를 제거해야 하는 것을 몰랐던 데다 스님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서두르느라 찍힌 모양이 선명하지 않았다. 황수영 선생은 탁본을 새로 해 오라고 했고, 이재옥 학생은 다시 고향에 내려가 이번에는 이끼를 벗겨내고 제대로 탁본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외출했던 스님이 돌아왔고, 크게 혼이 났다. ‘부처님의 무덤’에 올라갔으니 당연한 일이다.탁본에 찍힌 명문(銘文)을 보고 황수영 선생은 조사단을 구성해 9월 10일 비암사로 향했다. 이날 확인한 것이 계유명전씨아미타삼존석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과 기축명아미타불비상(己丑銘阿彌陀佛碑像)과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彌勒菩薩半跏思惟碑像)이다. 국내에서는 처음 알려진 불비상이었다. 글자 그대로 비석 모양의 돌에 부처를 새겼다.이듬해 세종시 조치원읍 서창리 서광암에서 계유명삼존천불비상(癸酉銘三尊千佛碑像)이, 연서면 월하리 연화사에서 무인명석불비상(戊寅銘石佛碑像)과 칠존불비상이 조사됐다. 공주시 정안면 평정리에서도 삼존불비상이 확인됐다. 모두 삼국시대 백제땅이다. 한반도 다른 지역에는 없는 특정 불교조각이 일정 시기 좁은 지역에서 집중 조성된 것이다. 비암사 아미타삼존석상과 서광암 삼존천불비상은 국보로, 다른 5점의 불비상은 모두 보물로 지정됐다. 비암사 불비상 3점은 196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넘겨진다. 지금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유물로 대접받고 있다. 이제 팔순에 접어든 이재옥 선생은 여전히 비암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주시 정안면에 살고 있다. 역사에 남을 ‘중요한 발견’을 한 셈이지만, 이 때문에 비암사(碑巖寺)는 비암(碑巖)없는 절이 되고 말았고, 그는 미안한 마음에 오랫동안 비암사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술회하고 있다.서광암 삼존천불비상은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 박물관이 선사·고대문화실의 전시를 교체하고 있어 삼존비상을 볼 수는 없다. 공주 정안의 삼존불비상도 동국대박물관으로 넘겨졌다. 연화사의 두 불비상은 그대로 연화사에 있다. 서광암과 연화사는 모두 일제강점기 이후 세워진 사찰이라고 한다. 비암사 불비상도 다른 절에서 옮겨 왔을 가능성이 크다. 절 이름도 불비상을 옮겨 왔기에 이렇게 지었을 것이다. 황수영 선생은 비암사 불비상을 조사한 해 11월 ‘비암사 소장의 신라재명석상(新羅在銘石像)’이라는 논문을 처음 발표한다. 이후 최근까지도 적지 않은 미술사학자와 역사학자가 이들 불비상에 남겨 놓은 의문을 푸는 노력을 해 오고 있다. 불비상에 얽힌 의문이란 이런 것이다. 비암사 계유명삼존석상에는 ‘국왕·대신(國王·大臣) 및 칠세부모(七世父母)와 모든 중생(含靈·함령)을 위해 절을 짓고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과 함께 이 불사(佛事)를 주도한 이들의 벼슬과 이름을 새겨 놓았다. 그런데 신라 관등인 내말(乃末)·대사(大舍)와 백제 관등인 달솔(達率)이 한데 명기되어 있다. 연화사 계유명삼존천불비상도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학계는 계유년을 백제가 망하고 13년이 지난 673년(신라 문무왕 13)으로 추정한다. 조각 양식이 8세기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한다. 같은 이치로 무인년은 678년(문무왕 18), 기축년은 689년(신문왕 9년)으로 보고 있다. 망국민(亡國民)이 새로운 지배 치하에 막 들어서 조성한 불비상에 새긴 ‘국왕·대신’이 백제왕인지, 신라왕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백제왕과 대신으로 보는 학자들은 불비상을 백제 옛 땅에서 백제 유민들이 만들었다는 데 주목한다. 신라가 당나라와의 혈전을 앞두고 백제인들에게 관작을 주면서 회유하던 시기 망국의 군주와 대신의 극락왕생을 비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백제부흥운동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비암사 계유명삼존석상의 인왕상(仁王像)은 갑옷 차림에 왼손에는 긴 창을 들고 있고, 허리 장식은 X자형으로 교차되어 있는데, 사찰의 수호신이라기보다는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백제부흥군의 모습을 상징한다는 주장이다. 신라왕과 대신으로 보는 학자들은 명문의 백제 유민 대부분이 신라 관등을 갖고 있는데다 백제부흥운동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근거로 삼는다. 특히 계유명 불비상을 조성한 673년은 당나라가 백제 옛 땅에 설치한 통치기관인 웅진도독부를 내쫓은 이듬해라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신라가 백제 유민들의 역량을 당군 축출에 집결시키려면 황폐해진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만큼 불비상과 사찰 조성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라왕과 대신으로 보는 학자들도 불비상을 발원한 백제 유민이나, 조상(造像)에 참여한 백제 조각가들이 마음속으로도 새로운 지배자들의 발복을 빌었는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백제 유민과 조각가들은 망국의 현실은 인정하면서도, 백제인의 정체성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기에 옛 백제 양식으로 불상을 조성하지 않았겠느냐는 해석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종의 절충론이다. 일련의 불비상은 죽은 뒤 서방정토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아미타신앙에 기반한다. 따라서 ‘국왕·대신 및 칠세부모와 모든 중생’에는 백제 패망과 부흥운동 과정에서 죽은 중생, 당나라에 끌려간 1만 2000명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외적이고 표면적인 조성 목적은 신라왕과 대신들을 위해서라지만, 심정적으로는 백제왕과 대신들을 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불비상은 새로운 통치자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백제 옛 땅 유민들의 복잡한 심사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신라인으로 삶을 이어 가야 하는 망국민이기에 불상 및 사찰 조성에서도 타협하는 자세를 보여 주기는 해야 했으되 망국의 스타일로 불상을 만들어 사라져 간 사람들을 마음 한구석에 담아 두고자 하는 처연함을 불비상은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강감창 서울시의원 “석촌고분길 간판개선 주민 주도로 추진”

    강감창 서울시의원 “석촌고분길 간판개선 주민 주도로 추진”

    석촌호수~석촌고분간 명소화거리에 특화된 간판개선 사업이 주민들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송파구 주택관리과는 4일, 석촌동 주민센터에서 ‘석촌고분길 간판개선사업’ 에 대한 주민설명회개최와 함께 간판개선 주민협의회를 구성했다. 서울시의회 강감창 의원은 “성공적인 사업의 전제조건은 관주도에서 탈피한 주민선도형에서 시작된다”며, “주민, 건물주, 업소 대표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통해 간판이 아름다운 품격있는 고분길을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석촌호수~석촌고분길 관광명소거리 조성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간판개선 사업은 무분별한 간판을 정비하고 주변과 조화로운 간판개선을 통해 도시미관 향상과 경쟁력있는 가로조성을 기대하고 있다. 사업구간은 석촌동 레이크호텔~석촌고분간 300m구간이며, 사업구역내 27개 건물, 63개 업소, 179개 간판을 대상으로 간판제작과 건물외벽 마감에 필요한 사업비를 지원하게 되는데 건물주나 점포주의 자부담 없이 소요예산 3억은 전액 서울시비로 추진된다. 사업예산확보에 노력해 온 강감창 의원은 “석촌고분길 관광명소화 사업의 마무리단계가 간판개선사업인 만큼 내외국인에게 어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빛 노출과 규모는 매우 작게하고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표기된 공예품과 같은 간판을 만들어 거리의 품격을 높혀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사업추진의 추체가 될 간판개선사업 주민협의회가 손병화 위원장(마을기업 한성백제 이사장)을 비롯 건물주, 사업자, 주민대표 등 19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사업구간내 무허가 간판에 대한 자진정비, 개선간판 유지관리 협의, 예산지원에서부터 업체선정 및 디자인(안) 확정에 이르기까지 주요현안을 주민협의회를 통해서 결정된다. 강감창 의원은 간판개선사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고분길의 통일성은 유지하되 획일적이지 않도록 업소별․건물단위별 독창성이 반영된 특화된 디자인을 담을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촌고분길 간판개선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중화사업, 바닥공사, 조경사업, 조명사업의 후속사업으로 ♢8월 자치구와 주민협의회간 협약 채결, 정비시범구역지정 고시, 시공업체 공모, 9월 시공업체선정, 10월 동의서 징구, 11월 간판제작 및 설치, 12월 사업완료를 목표로 추진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창건설화 속 백제·신라 고승…山神으로 나란히 모신 선운사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창건설화 속 백제·신라 고승…山神으로 나란히 모신 선운사

    전북 고창 선운사는 사철 꽃세상이다. 1~4월에는 검붉은 동백꽃이 대웅전 뒷산에 가득하고 5~6월에는 우리 땅 어디나 그렇듯 야생화가 지천이다. 7~8월 절 마당은 배롱나무의 짙은 분홍빛으로 우아함을 더하는데 9~10월에는 훨씬 더 유혹적인 붉은색을 발산하는 석산이 주변 군락지에 만발한다. 석산이라는 표준말이 낯설다면 상사화나 꽃무릇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후엔 말할 것도 없이 단풍이 선운사가 들어앉은 도솔산을 물들인다.배롱나무 철의 선운사는 곱게 단장한 귀부인 같은 품위가 있다. 정문 역할을 겸하는 천왕문으로 들어서면 만세루를 조금 비켜난 절 마당 가운데 배롱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큰법당인 대웅보전의 양옆에도 두 그루가 호위하는 듯 장식하는 듯 꽃을 피우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배롱나무는 세 그루뿐인데도 부처님이 주인인지, 배롱나무가 주인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하긴 언젠가 ‘배롱나무가 곧 부처님이더라’는 시 구절을 읽은 것도 같다.오늘은 산신각으로 간다. 대웅보전과 만세루 구역 왼쪽으로 팔상전, 조사전, 영산전으로 둘러싸인 산비탈이다. 산신각은 정면 한 칸, 측면 두 칸으로 가장 전각이지만 두 폭의 산신도가 이채롭다. 수염이 하얀 산신이 하얀 부채를 들고 있는 산신도는 정면에서 보아 왼쪽 벽에 걸려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흔히 산신도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정면에 걸린 또 하나의 산신도에 자리잡고 있다. 호랑이 좌우에 맨발의 고승 두 분이 보이는데 왼쪽이 백제 검단선사, 오른쪽이 신라 의운화상이다. 백제 스님과 신라 스님이 어떻게 나란히 한자리에 앉아 있을까.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 검단선사 창건설과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 창건설, 신라 의운화상 창건설이 각각 전한다. 진흥왕 창건설은 호월자 현익이 1707년(숙종 33) 편찬한 ‘도솔산 선운사 창수승적기(創修勝蹟記)’에 보인다. ‘진흥왕이 왕위를 내려놓은 첫날밤에 이 산의 좌변굴(左邊窟)에서 수도하다 꿈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중애사를 창건하였으니 이것이 절의 시초’라는 것이다.진흥굴은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오르는 길 중간에 있다. 현익이 언급한 좌변굴일 것이다. 높이 4m, 폭 3m, 길이 10m 남짓한 동굴이다. 하지만 아무런 안내판도 보이지 않으니 탐방객들은 바로 곁의 600살짜리 천연기념물 장사송에만 관심을 보이고 진흥굴은 지나쳐버리곤 한다. 이렇듯 오늘날은 진흥굴의 존재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다. 신라왕의 백제 땅 사찰 창건설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진흥왕이 이곳에서 수도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설화의 형태로 전해진다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 그 설화를 모티브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양하게 상상의 날개를 펴보는 것이 요즘 각광받는 스토리텔링 아닐까 싶다.진흥왕은 불교의 정법(正法)으로 세계를 통치한다는 전륜성왕을 꿈꾸었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은 어려서부터 불교를 받들었다. 만년에는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스스로를 법운이라 이름지은 뒤 일생을 마쳤다’고 했고 ‘삼국유사’도 ‘진흥왕은 임종에 이르러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었다’고 적었다. 실제로 출가했는지는 이견도 없지 않지만 통일신라시대 이후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호불왕(好佛王)에 창건설을 의탁하는 것이 절의 형편을 트이게 하는 데, 최소한 위축시키지는 않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의운화상 창건설이 나온 것은 진흥왕 창건설이 지나치게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호월자 현익의 ‘대참사 사적기’에는 ‘법화굴에 머물며 수도하던 의운화상이 돌배에 실려온 불경과 불상을 봉안하고자 진흥왕의 시주를 얻어 대참사(大懺寺)를 개창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대참사는 오늘날 도솔암과 더불어 선운사의 양대 산내암자를 이루는 참당암이다. 선운사 역시 의운화상이 창건했다는 것이다. 검단선사의 창건 설화는 이렇다. 본래 절터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다. 스님이 용을 몰아내고자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 나가던 무렵 눈병이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넣으면 눈병이 나으니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와 큰 못은 금방 메워졌다. 그 자리에 절을 세우니 선운사다. 이 지역에는 난민이 많았는데, 검단스님이 소금을 구워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 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봄·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바치면서 보은염이라 불렀다. 민속학계는 검단선사와 용의 갈등을 외래종교로 막 전파를 시작한 불교와 용이 상징하는 토속신앙의 경쟁을 보여 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금속의 제련을 뜻하는 숯으로 못을 메웠다는 것은 선진문화로 주민을 감화시켰다는 의미이고 자염생산법을 가르쳐 준 것은 난민들의 생계 안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정기적으로 부처님에게 공양을 드렸다는 것은 그만큼 포교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오늘날 선운사는 검단선사 창건설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검단선사와 의운화상은 산신각 말고도 바로 옆 조사전에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나란히 영정이 모셔졌다. 역시 의운화상의 왼쪽에 자리잡고 있는 조사전의 검단선사 영정에는 ‘개산조 검단선사 진영’(開山祖 黔丹禪師 眞影)이라고 적어 놓았다. 조사전(祖師殿)은 글자 그대로 깨달음을 제자들에게 내려준 스승을 기리는 영당(影堂)이다. 백제를 침공해 한강 유역을 빼앗은 진흥왕이 퇴위 이후라고는 해도 백제땅으로 건너갈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의운화상 같은 스님이라면 영토의 경계가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운 역시 한때 암자가 50개에 이르렀다는 도솔산을 불국토(佛國土)로 만드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각각의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두 스님이 시간이 흐르면서 나란히 산신이라는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잡은 것은 자연스럽다. 선운사 창건 설화를 따라가다 보니 검단선사가 누구인지가 더욱 궁금해진다. 검단(黔丹)은 고유명사가 아닐 수도 있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했다는 묵호자(墨胡子)나 신라에서 활동한 아도화상(阿道和尙)도 모두 고유명사가 아니다. 묵호자는 얼굴이 검은 이방인, 아도화상은 아미타신앙, 즉 정토신앙을 포교하는 스님이라는 뜻이다. ‘해동고승전’도 아도화상을 오늘날의 인도인 서축(西竺) 출신이라고 했다. 검단선사도 글자 그대로 검붉은 얼굴색을 가진 서역 출신 스님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일 수도 있다. 선운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 중국 동진에서 건너온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백제 최초의 사찰 영광 불갑사와도 지척이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송파 “지역 새 특산품을 알려주세요”

    서울 송파구가 구만의 특색을 반영한 지역특산품 발굴에 나선다. 국내외 관광객에게 특산품을 알려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서다. 송파구는 오는 16일까지 지역 주민과 지역 사업장을 대상으로 송파의 역사·문화 등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특산품 개발 아이디어를 신청받는다고 3일 밝혔다. 구 홈페이지(www.songpa.go.kr)에서 신청서 양식을 다운받아 우편·이메일로 접수하면 된다. 이번 사업에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관광자원을 발판으로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거듭나겠다는 박춘희 송파구청장의 의지가 담겼다. 한성백제 시대의 역사문화 유적과 국내에서 가장 높은 롯데월드타워(123층) 등은 구가 자랑하는 관광인프라다. 구는 접수된 서류를 검토해 심의위원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심사에서 최종 선정된 아이디어는 이달 안에 구 홈페이지에 공지되며, 당사자에게는 개별 통보된다. 추후 선정된 특산품은 구관광정보센터에 상시 전시된다. 또 한성백제 문화제, 석촌호수 벚꽃축제 등 각종 축제와 행사 때 부스를 차려 판매하고 홍보한다는 방침이다. 박 구청장은 “대한민국 대표 국제관광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송파구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우리 구만의 차별화된 특산품을 찾아낼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절집 이야기…순천 선암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절집 이야기…순천 선암사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중 일부> 시인 정호승(68)에게 순천의 선암사(仙巖寺)는 위로이고 한(恨)이다. 그는 우리에게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서라도, 걸어서라도 선암사에 꼭 가라고 한다. 왜 굳이 저 멀리 순천의 선암사일까? 선암사야말로 눈물의 절이기 때문이다. 더 큰 눈물은 작은 눈물을 덮는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선암사가 소개된 이후 선암사에는 예전에 비해 부쩍 방문객들의 숫자가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순천의 선암사를 방문하기 전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선암사만의 힘든 역사를 미리 알고 가자. 전라남도 순천의 선암사다. 선암사는 익히 알다시피 조계종(曹溪宗)이 아닌 태고종(太古宗)의 대표 사찰이다. 태고종은 대처승 제도를 수용한 종법에 혼인이 허용된다. 바로 이 대처승 제도 때문에 해방 이후 많은 갈등이 불교계에 일어난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대처승은 사찰에서 물러가라”라는 요지의 유시가 본격적인 갈등의 시작이었으나 실은 해묵은 갈등의 표출에 불과하였다. 이후 대처승 측과 비구승 측은 오랜 힘겨루기를 한다. 이후 대처승 측이 1970년 ‘한국불교태고종’이라는 이름으로 창종하고 양측은 법적인 싸움을 일단락 짓는다. 하지만, 아직도 여러 사찰의 관할권을 놓고 해묵은 갈등은 그대로 남아 있다. 바로 선암사가 당시 대처승려 측의 대표 종찰로서 사찰 내외부에서 물리적 충돌 및 많은 갈등을 겪어 오면서 지금까지 한국 불교의 한 맥을 지키고 있는 눈물과 한(恨)의 사찰이다. 실제 일반인들에게 선암사가 널리 알려진 시기는 1990년 후반부터였다. 이는 소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75) 작가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조정래 작가의 부친이자, 현대시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의 저자인 조종현(1906∼1989) 시인이 선암사 부주지를 지낸 철운(鐵雲)스님이었다. 선암사는 말 그대로 천년사찰이라는 명칭이 어울린다. 사찰의 시작은 백제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백제성왕 5년(527)에 현재 비로암 자리에 해천사(海川寺)를 창건한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의천대각국사에 의해 호남지역의 중심사찰로 거듭난다. 하지만, 정유재란(1597) 시기에 거의 모든 전각이 불타고, 몇몇 부도와 보탑만이 남게 된다. 이후 거듭된 중건을 거치지만, 영조 때에 이르러 또다시 화재로 폐사지경까지 이른다. 이후 반복된 중건과 화재를 거듭하다, 결국 6·25전쟁으로 대부분의 전각들은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堂宇)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오랜 사찰로서의 풍광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현재 사찰 경내에는 보물 제395호 선암사 삼층석탑과 보물 제1311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 등 다수의 주요한 문화재가 있어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쉽게 돌려보내지는 않는다. <선암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꼭! 가 보았으면 한다. 송광사와 더불어 호남의 대표 사찰이다. 2. 누구와 함께? -혼자. 정호승의 시처럼 눈물이 난다면 걸어서라도. 3. 가는 방법은?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061-754-5953/ 순천역 시외버스정류장에서 1번 버스 4. 감탄하는 점은? -깊은 산세와 더불어 남아있는 사찰이 지닌 시간의 무게. 선암사 가는 길.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원래 호남지역에서는 유명했으며, 최근 방문객들이 부쩍 더 늘었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해우소, 대웅전, 삼층석탑, 승선교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호남의 한상 ‘대원식당’(744~3582), ‘명궁관’(741-2020), 돼지고기 김치찜 ‘진일 기사식당’(754-5320), 마늘통닭 ‘풍미통닭’(744-7041), 짱뚱어탕 ‘대대선창집’(741-3157), 떡갈비‘금빈회관’(744-5553)/ 지역번호 (061)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seonamsa.net/index_sas.ph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태백산맥 문학관, 순천만 정원, 낙안읍성 10. 총평 및 당부사항 -사찰로 가는 길이 아름답다.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여름 한낮 더위도 따라오지 못할 듯.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노동자 땀 서린 어제… 다문화 상징의 오늘… 디지털 노마드 내일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노동자 땀 서린 어제… 다문화 상징의 오늘… 디지털 노마드 내일

    서울신문이 서울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9회 ‘구로공단, 나비로 날다’가 지난 22일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에 걸친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를 오가며 진행됐다. 투어단은 해설을 맡은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의 조곤조곤한 안내를 따라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을 뚫고 2시간 30분 동안 가리봉동 일대를 누볐다. 참가자들은 ‘산업역군’들의 터전이던 ‘가리봉 벌집골목’과 굴뚝이 남아 있는 공장, 마리오사거리(옛 구로동맹사거리)와 가산디지털단지 오거리(가리봉 오거리) 곳곳에서 50년 전 수출 한국의 맥박, 노동운동과 야학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가리봉동은 산업화시대 수출 한국의 제1 전선이었다가 디지털시대 벤처산업 밀집 지역으로, 글로벌시대 다문화의 상징 공간으로 가파르게 진화했다. 가리봉은 누구나 아는 곳이기는 하지만, 정체성이 딱 떠오르진 않는다. 역사와 행정 단위와 생활공간이 불명확한 천의 얼굴 같은 복합공간이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공업단지인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이 오히려 친근하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던 산업화와 도시화, 노동운동의 요람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구로공단은 한국 산업사회의 출발점이다. 가리봉은 이 모든 것의 중심이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은 없다. 구로, 가산, 독산이라는 주변부의 이름 뒤에 숨어 있다. 또 한국수출산업단지, 한국산업단지공단, 서울디지털산업단지, 가산디지털단지, 구로디지털단지, G밸리로 변신을 거듭했다. 가산이란 가리봉동+독산동의 합성 지명이고, G밸리란 가리봉·구로·가산의 영문 첫 이니셜이다. 지하철 역명도 1호선은 독산역·가산디지털단지역·구로역, 2호선은 구로디지털단지역, 7호선은 남구로역이다. 가리봉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서울 최대의 인력시장이 서는 7호선 남구로역은 가리봉동으로 들어가는 옛 버스 종점 자리였고, 가산디지털단지역은 1968년 200만명의 인파가 몰렸던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때 생긴 가리봉역의 다른 이름이다.1967년 구로공단이었다가 2017년 G밸리가 된 가리봉동은 어떤 곳일까.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번갈아 점령한 한강 지천 안양천 변의 대촌, 골말, 모아래 마을에서 조선시대 이후 경기 시흥군 동면 가리봉리일 때까지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그러나 1963년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되고, 1995년 구로구와 금천구로 분구되면서 지형이 급변했다. 경부선 철도와 남부순환도로는 지역을 분절했고 사람들을 타자화했다. 산업화시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팔도의 젊은이들이 집결한 대표적 이촌향도(離村向都)의 공장 굴뚝이 불과 50년 만에 정보기술(IT)과 정보통신의 아파트형 공장으로 업종 전환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이 떠난 빈자리는 중국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초기 정착지로 변했다. 교통 여건이 좋고, 집값이 싼 가리봉은 서울에서 등록 외국인 비율이 34%로 가장 높다. 한국 속의 중국이다. 나비가 허물을 벗듯 현기증 나는 변화를 하고 있다. 1975년에는 서울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동네였다. 80년 초 200개가 넘는 섬유·의류·봉제, 전기·전자조립, 가발·잡화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체에서 11만명의 근로자들이 철야와 잔업을 밥 먹듯 했다. 전성기에 유동 근로자 40만명, 주민 40만명을 자랑하는 서울의 5대 상권이었다. 기숙사와 자취생활을 하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여성 근로자들이 주고객인 가리봉오거리 가리봉시장 우마길은 명동에 비교될 정도로 인파로 넘쳐났다. 구인과 구직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부동산 시세는 강남과 엇비슷했다. 가리봉오거리는 이 모든 것의 중심이었다. 공단로와 구로동길 그리고 남부순환로가 만나는 다섯 갈래의 길이다.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이 ‘가오리’라고 불렀던 생활과 휴식처였다. 주말과 수요일이면 고고장 7개가 해방구의 불야성을 이뤘다. 지금은 옌볜말이 표준어인 ‘옌볜거리’이거나 가리봉의 라스베이거스인 ‘가리베가스’라고 불리는 코리안드림의 잉태지다.1단지와 2단지를 잇는 공단로 양쪽으로 벌집, 벌통집, 닭장, 비둘기집, 토끼장이라고 불린 방 한 칸에 부엌이 달린 2평짜리 다가구주택이 줄을 지었다. 가리봉동에만 1779개(1982년 통계) 동이 몰려 있었는데 전체 벌집의 64%였다. 화장실 대변기는 65명당 1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향학열로 끓어올랐다. 밤이면 작업복을 벗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야학과 위장취업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육, 노동조합 가입과 탄압이 이어졌다. 지금의 마리오아울렛 사거리는 1985년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정치적 요구를 앞세운 지역정치 파업인 구로동맹파업과 노학연대투쟁의 현장이다. 노동자들은 가리봉오거리를 오가며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쳤다. 우리가 기억하는 구로공단은 500년 소비도시 서울에서 유일한 생산기지였다. 서울로 올라온 젊은이들이 수출의 10%를 담당해 ‘한강의 기적’을 일궈 냈다. 구로공단의 핵심 가리봉동 50년은 대한민국이 창조한 신도시 ‘강남 서울’의 역사 반백년과 맥을 같이한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은평의 어제와 오늘 > 일시: 29일(토) 오후 7시 연신내역 3번 출구 신청(무료):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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