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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00년 전 찬란했던 가야… 고대 동아시아 테크노밸리 입증”

    “1600년 전 찬란했던 가야… 고대 동아시아 테크노밸리 입증”

    22개국 연맹·연합으로 존재했던 ‘가야’ 독립성 유지하며 삼국과 600여년 공존 막연하게 보존만 강요하는 문화재 한계 도시에 활력 불어 넣을 수 있게 활용해야“1600여년 전 22개국이 연맹 혹은 연합 상태로 실존했던 가야는 이웃 백제, 신라가 힘으로 이합집산했던 것과 달리 각기 독립적인 상태에서 상호 긴밀하게 교류하고 협력했습니다. 앞으로 가야문화사가 복원되면 영호남의 구분과 장벽은 말끔히 사라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경북도·경남도·전북도·가야문화권지역발전시장군수협의회 주최, 문화재청 후원, 서울신문사·국립중앙박물관 주관으로 열린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및 영호남 화합을 위한 포럼’ 행사가 열렸다. 포럼의 첫 기조발표자로 나선 곽용환(경북 고령군수) 가야문화권지역발전시장군수협의회 의장은 “가야 연맹은 600여년이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삼국과 어깨를 겨뤘고 평화롭게 공존했다”고 가야의 정체성을 화두로 던지며 이같이 밝혔다. ●가야금 본향 고령, 세계 현악기 도시들과 교류 곽 의장은 “그러나 통일신라와 고려 이후에 고착된 ‘삼국시대’ 논리로 인해 가야사가 역사 속에서 외면받아왔다”면서 “가야는 공존의 영역이 한반도에만 국한하지 않고 일본과 중국에까지 미쳤으며, 찬란한 문화·유적 발굴로 가야가 고대 동아시아의 테크노밸리였다는 점이 입증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에 대한 인식 전환 방안도 제시했다. 곽 의장은 “지금까지 문화재는 막연히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했으나 최근 들어 국민들이 문화재를 활용하고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역사적 특성과 함께 다양하고 풍부한 도시환경을 만들어 문화재가 있는 도시에 활력이 넘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곽 의장은 가야문화의 세계화 노력도 소개했다. “악성 우륵의 고장이자 가야금의 본향인 고령군은 바이올린 도시 이탈리아 크레모나를 비롯한 일본, 중국, 스페인의 대표적인 현악기 도시들과 교류 협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유물 발굴·도시계획 조정 등 관련법 제정해야 채미옥 대구대 초빙교수는 ‘가야문화권의 조사, 정비방안과 지역 개발 방법’ 주제 발표에서 가야의 역사성 규명과 체계적인 활용 틀을 만드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5개 광역시도, 46개 시군구에 걸친 가야문화권 개발이 지자체 간 과열 경쟁과 졸속 발굴, 역사적 실체 규명보다는 지역활성화라는 미명하에 문화유산이 훼손될 수 있다”면서 “주관 부서 논란도, 부처 간 주도권 문제가 아닌 개발과 보전의 사전적 갈등관리체계 구축 및 각 전문 부처의 상호 협업 체계 차원에서 조명돼야 한다”고 했다. 또 “장단기적으로 유물 발굴이 필요한 지역의 도시계획이나 개발계획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우리가 다가서기까지 1600년을 기다려 준 소중한 가야문화 유산이라는 타임캡슐을 절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문화·자연 등 아우른 관광 공동사업 필요 김태영 경남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장은 ‘영호남 상생협력 추진 현황 및 전략 과제’ 주제 발표에서 영호남 통합 협의체 구축의 필요성과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영호남의 상생발전을 위해 제각각 운영 중인 가야문화권시장군수협의회, 남해안상생발전협의회,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 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 등의 협의체를 ‘영호남상생협의회’(가칭)로 통합하는 더 강력한 협의체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남해안과 지리산권, 가야문화권, 전라천년문화권에 추진 중인 9개 부분별 사업을 남해안권, 영호남내륙권, 다도해권으로 통합하는 영호남 초광역 계획 수립 및 부분별 협력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세길 전북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야역사문화유산의 지역연계통합관광 활성화 방향’ 주제발표에서 “영호남 가야문화권의 화합은 결국 공동 사업을 통해 가능하다”면서 “기념품의 통합 개발과 마케팅, 통합관광 패스라인 구축, 가야역사유적 방문의 해 개최, 단체 관광객 유치 및 연계 지원 사업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또 “문화. 커뮤니티, 자연, 기술과의 ‘융합’ 사업으로 산간지역 가야유적과 예술(대중문화)을 연계하고, 백두대간 자연환경을 활용한 가야 스테이, 생태 음식 및 건강 음식 공동 개발 및 마케팅을 추진하자는 의견도 내놨다. 그러면서 “전북은 그동안 가야문화권에 속하면서도 소외돼왔다”면서 “또다시 경상도 지역에 집중될 경우 전북은 ‘들러리’에 불과할 것이며 전북 가야는 가야사에서 영원히 소외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금요칼럼] 태안해양유물전시관과 해양문화사의 복원/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태안해양유물전시관과 해양문화사의 복원/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 오는 18일 전면 개관한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12월 제1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만으로 조촐하게 문을 열었음에도 8월에만 1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았을 만큼 이미 지역의 문화적 명소로 떠올랐다. 완전 개관에 따라 실물 크기로 재현된 고려시대 마도1호선을 비롯해 서해안 수중 발굴의 성과가 제대로 공개되면 ‘휴양’에 초점이 맞춰졌던 태안반도 관광 산업에 ‘해양 문화유산’이 더해지는 부수 효과도 뒤따를 것이다. 우리의 해양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은 전남 신안 바다 밑에서 발견된 중국 무역선에서 본격화된 것으로 봐야 한다. 1975년 어부의 그물에 중국 도자기가 잇따라 걸려 올려오자 이듬해부터 수중 발굴이 이루어졌고, 건져 낸 선박의 부재를 보존 처리하는 시설이 신안에서 가까운 목포에 만들어졌다. 수중 발굴의 성과가 쌓이면서 1994년에는 국립해양유물전시관, 2009년에는 보존 및 연구를 총괄하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목포에 세워졌다.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은 2007년부터 충남 태안의 마도 앞바다에서 5척의 난파선이 확인되고 2만 8000점의 각종 유물이 수습됨에 따라 건립이 추진됐다. 지금은 충청 해역은 물론 인천과 경기 해역의 난파선 8척을 비롯해 3만점 남짓한 수중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해양문화재연구소와 해양유물전시관은 짧은 역사에도 수중고고학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럴수록 서해안 해양문화의 거점인 태안에 해양유물전시관이 들어선 것을 계기로 수중고고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해양 유적 조사와 역사 복원에 본격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태안 마도는 고려시대 송나라 외교사절을 위한 일종의 영빈관이 있던 섬이기도 하다. 1123년 송나라 사신 일행이 뱃길로 고려에 다녀간 여정은 서긍이 남긴 ‘고려도경’에 자세히 서술돼 있다. 이들은 오늘날의 저장성 닝보를 출발해 흑산도를 스쳐 지난 뒤 군산도 군산정, 마도 안흥정, 자연도 경원정, 예성항 벽란정을 거쳐 개경에 닿았다. 군산도는 오늘날의 선유도, 자연도는 영종도다. 우리 역사에 유례가 없는 국제항로의 외교 유적이지만, 일부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흑산도 관사를 제외하면 정확한 위치를 포함해 실체를 알지 못하고 있다. 마도4호선은 조선시대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도성으로 나르던 조운선이었다. 고려시대 이후 서해안에서 침몰한 세곡선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많을 때는 한 해 세곡선의 3분의1이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대부분 태안반도와 안면도 서쪽 해역에서 침몰했다. 태안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운하를 파는 계획이 일찌감치 고려시대부터 추진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반도였던 안면도가 17세기 후반 국가적 토목공사로 섬이 된 것도 운하 개착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안면도 서쪽의 위험 항로였던 쌀썩은여라도 피해 보려는 궁여지책이었다. 이렇듯 태안 앞바다는 국제항로이면서 국내 문물이 활발히 오가는 조운로였다.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 부분 개관하며 가졌던 ‘바다에서 찾은 고려의 보물들’ 기획전 역시 조운로에서 침몰한 고려시대 화물선에서 찾은 문물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고려와 조선시대 조운의 출발점인 전국 12∼13조창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해양문화에 반드시 동반됐을 정신사적 측면도 무시하면 안 된다. 태안반도 한복판에 우뚝 솟아 3면의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백화산의 백제 마애삼존불은 삼국시대 중국을 오가던 뱃사람들이 항해의 안전을 빌었던 기도처였다는 점에서 명백한 해양문화유산이다. 해양문화재연구소와 해양유물전시관이 고고학적, 정신사적 증거를 찾아 복원하고, 나아가 문화자원화해야 할 해양문화사는 한마디로 무궁무진하다. 태안해양유물전시관 전면 개관이 문화재청 차원에서 이런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가을이, 산으로 내려오셨네 ― 내장산 단풍축제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가을이, 산으로 내려오셨네 ― 내장산 단풍축제

    #내장산단풍축제 #애기단풍나무 #외국인관광객 “이것 봐,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단풍나무 혼자서 온몸 벌겋게 달아오르네” < ‘단풍나무 한 그루’ 중에서, 안도현, 1997> 시인 안도현은 단풍을 ‘몸살 끝에 돋는 한기(寒氣)’라고 말한다. 한 여름 뙤약볕 꼿꼿하게 견뎌내 결국 몸살 번져 열 오른 산자락의 붉은 속살이 단풍일까. 늦가을이다. 이맘때면 누구라도 혼자만 알기 아까운, 그리하여 보여주고픈 단풍 색깔 고운 자신만의 ‘단풍 핫 플레이스’ 한 두 군데쯤은 있으리라. 단풍이 고와도 너무 고운 곳, 그래서 그만 도시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정읍 내장산 단풍축제다.전라북도 정읍은 도시에 남겨진 이야기들이 많은 곳이다. 우선 1400여 년 전 백제여인의 애달픈 사랑을 노래한 ‘정읍사’, 가사 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의 발원지, 동학농민운동의 발원지가 된 ‘황토현 전적지’, 단풍 하나로 대한민국을 접수(?)한 내장산 단풍축제 등 정읍은 나름의 여행 정체성이 확실한 곳이다. #인산인해 #영은산 #대표단풍관광지바로 이 정읍에 가을마다 인파가 몰린다. 바로 내장산 단풍축제다. 정읍에 위치한 내장산(內藏山)은 예로부터 호남을 대표하는 5대 명산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8경 중 하나로 손꼽혀 왔으며 우리나라의 8번째 국립공원으로 1971년에 지정된 곳이다. 특히 가을이면 펼쳐지는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대한민국에는 제일의 대표 단풍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내장산은 원래 영은산(靈隱山)으로 불리다가 산 안에 감춰진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하여 안 내(內), 감출 장(藏)을 받아 내장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총 면적이 80.708k㎡이고 신선봉(763m)을 주봉으로 하는 내장산은 높이는 그리 높지 않다. 대개 해발 700m 내외의 봉우리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일조 시간이 길고 일조량이 많아 단풍 하나는 기가 막히게 드는 산이다. 봄에는 꽃내음, 여름에는 짙은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 등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내장산은 사시사철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특히 내장산 단풍터널은 일주문에서 내장사까지 108주의 단풍나무로 우거져 있어 단풍 속의 단풍을 연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매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기도 한다. 올해 내장산의 단풍은 예년에 비해 늦게 들었지만, 색은 훨씬 더 곱다. 특히 내장산에 심어진 애기단풍나무의 잎은 어린 아이들의 손처럼 작고 모양도 고와서 여느 산들의 단풍잎들과는 확연히 구별되어 진다. 촘촘히 그물망처럼 내려온 단풍잎들이 색감마저 제 각각이어서 방문객들의 눈길을 한시라도 놓치지 않는다.다만, 이맘때쯤의 내장산 단풍 축제는 ‘사람 반, 관광객 반’이라는 말처럼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린다. 특히 우리나라 관광객은 물론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의 관광 인파도 눈에 띄게 많아 조용한 가을 단풍 산행을 즐기려면 아침 일찍 산행에 나서는 것이 좋다. 산행길도 다양해서 ‘일주문 → 벽련암 → 원적암 → 내장사’로 가는 기본 코스 외에도 케이블카나 금선 폭포 노선을 이용한다면 호젓한 가을 산책도 가능하다. <내장산 단풍축제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데이트 코스, 동호회 모임 다 어울린다. 다만, 단풍축제 시기의 내장산은 인파가 너무 많다. 3. 가는 방법은? - 정읍시 내장동 일원 - 내장산 국립공원 입구에 차량 통제를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무료 셔틀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제일 낫다. 4. 내장산 단풍축제의 특징은? - 우리나라 대표 단풍 축제의 현장을 확인한다. 애기단풍나무 숲이 만들어 내는 촘촘한 단풍잎의 색감은 화려하다. 5. 여행 조언은? - 내장산 단풍축제의 경우 인파가 많이 몰린다. 따라서 기본 일주문과 내장사 코스가 아니라 신선봉이나 까치봉, 서래봉, 상왕봉 코스로 빠지면 넉넉한 자신만의 단풍 내음을 간직할 수 있다. 6. 꼭 가 볼 장소는? - 일주문, 단풍터널, 내장사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먹거리는? - 만두 ‘솜씨만두’, 비빔짬뽕 ‘양자강’, 팥칼국수 ‘보안식당’, 우렁쌈밥 ‘국화회관’, 갈비젓갈조림 ‘갈비박스’ 8. 홈페이지 주소는? - 요금 및 운영 관련 자세한 내용은 http://www.jeongeup.go.kr/culture/index.jeongeup?menuCd=DOM_000000601001001000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무성서원, 전설의 쌍화차거리, 백정기의사기념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관람객들이 너무 많아서 주말이면 주차장에는 대한민국 관광버스가 다 모인다고 보면 된다. 주말 산행을 한다면 명동 시내보다 훨씬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다. 아침 일찍 관광버스가 도착하기 전 일주문에 도착하는 것이 내장산 단풍 축제의 비법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경남 18개 시군 전체가 위대한 유산… 다시 움트는 ‘가야 황금기’

    경남 18개 시군 전체가 위대한 유산… 다시 움트는 ‘가야 황금기’

    사적문화재 고분군만 15건 ‘문명의 증거’ 창원 현동 고분군서 유물 1만점 쏟아져 정교한 돛단배 형상 가야토기 ‘국보급’ 금귀고리·말 갑옷·고리자루 희귀성 높아 창녕 토기가마터 가야문화권 최대 규모 가야사 발굴에 2037년까지 1조원 투입‘땅만 파면 문화재가 나오는데 가야 유물이 수두룩하다.’ 경남 곳곳 토목공사 현장에서 건설이나 문화재 관계자 사이에 자주 나오는 얘기다. 몇 년 전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1329 일원에서 국도 건설공사 중 땅파기를 하다 문화재가 나왔다. 840기가 넘는 국내 최대 규모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확인됐다. 불꽃무늬토기를 비롯해 갑옷, 투구 등 1만점이 넘는 유물도 쏟아져 나왔다. 특히 가야시대 항해용 돛단배를 형상화한 웅장하고 정교한 배 모양 토기는 가야고분군에서 처음 나온 유물로 국보급으로 평가됐다. 역사기록과 연구 등에 따르면 경남은 18개 시군 전 지역이 1600여년 전 크고 작은 가야연맹체 중심지역이거나 세력권역이었다. 2015년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굴·확인된 가야유적 665곳 가운데 82%인 544곳이 경남에 몰려 있다.● 금귀걸이 등 5건 보물 지정 예고 경남도는 정부의 가야사 연구·정비 국정과제 채택에 발맞춰 ‘가야사 조사연구 및 정비 복원 종합계획’을 세워 시군과 힘을 합쳐 2017년부터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2037년까지 국·지방비 1조 726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경남 곳곳에 1600여년 동안 묻혀 있던 가야 유적이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경남 지역에서 발굴·조사된 가야유적 가운데 고분군, 가마터, 성곽, 패총 등 모두 30건이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됐다. 도 지정이 14건이고 나머지는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비지정 문화재로 남아 있다. 의령군 대의면에서 출토된 수레바퀴 모양의 가야시대 토기인 도기바퀴장식 뿔잔은 1978년 보물 제637호로 지정됐다.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된 이 유물은 경남에서 출토된 가야유물 중 유일한 보물이다. 5세기 제작된 토기로 추정된다. 지난달 문화재청은 경남 지역 가야고분군에서 출토된 중요 유물 5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합천 옥전 28호분과 M4호분, M6호분에서 한 쌍씩 나온 금귀걸이 3건(3쌍 6점)과 M3호분에서 출토된 고리자루 큰칼 1건(4점), 함안 마갑총에서 출토된 말 갑옷과 고리자루 큰칼 1건 등이다.이들 금귀걸이는 5~6세기 제작된 것으로 가야시대 독창적이고 뛰어난 금속세공기술을 보여 준다. 화려하고 보존상태도 뛰어나 예술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M4호분에서 나온 금귀걸이 한 쌍은 무덤 주인공이 귀에 달고 있던 자리에서 발견돼 실제 사용된 사실도 확인됐다. 가야시대 최고 수장 무덤으로 도굴되지 않은 M3호분에서 출토된 대가야식 고리자루 큰칼 4점은 여러 점의 칼이 한 무덤에서 나란히 출토된 최초 사례다. 손잡이와 칼 몸통 등을 금은으로 화려하게 장식해 삼국시대 같은 종류의 유물 가운데 제작기술과 형태가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됐다. 문화재청은 M3호분에서 일괄 출토된 큰칼은 가야 최고 지배층 장묘문화와 한국 전통공예 역사를 잘 보여 주는 데다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고대사 및 고고학 연구에도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해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가야시대 철제 말 갑옷과 칼이 출토된 함안 마갑총은 함안군 가야읍 말이산 고분군 구릉에 있는 아라가야 고분군으로 1992년 건축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됐다. 그해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해 무덤 주인공 좌우에 매장된 말 갑옷과 칼을 발굴했다. 5세기 아라가야에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말 갑옷은 원형 그대로 보존돼 희귀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가야인 삶 깃든 ‘가야사의 보고’ 고분군 경남에 있는 국가지정 사적 가야문화재 가운데 고분군이 15건으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성 8건, 유적 및 능이 각 3건, 패총 1건이다. 이 가운데 역사·문화적으로 가치가 높은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창녕 교동·송현동, 고성 송학동, 합천 옥전 등 5곳의 고분군은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된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가야인들의 삶이 담긴 가야 고분군은 가야문명의 존재를 보여 주는 증거로서 특별한 가치가 있는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2월 창녕군 계성면 영축산 구릉에 봉분 261기가 모여 있는 계성 고분군을 국가사적 제547호로 지정했다. 비화가야 초기 중심세력의 무덤으로 비화가야의 성립과 가야에서 신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됐다.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 등 토기류와 금제 귀걸이, 은제 허리띠 장식, 말안장 꾸미개를 비롯한 마구류, 무기류 등이 많이 출토됐다.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삼가고분군은 사적 지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1~6세기에 소가야집단이 조성한 고분군으로 대형봉분 328기가 확인됐다. 무덤에서 굽다리 접시를 비롯한 토기류, 각종 말갖춤새(마구), 쇠창과 같은 무기류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아라가야 양식 철기류가 출토돼 남강을 통한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1600년 된 토성 ‘아라가야 왕궁지’ 지난해 4월 경작지 조성 과정에서 토성벽 일부가 우연히 발견된 함안 가야리 유적은 아라가야 왕궁지로 확인돼 지난달 국가사적 제554호로 지정됐다. 아라가야 최대 고분군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 근처에 있는 가야리 유적은 가야시대 지배층 생활 및 군사시설 유적으로 1600년 전 대규모 토목공사를 해 토성과 목책, 건물지 등을 조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건물지 안에서는 쇠화살촉과 칼, 쇠도끼, 비늘갑옷 등이 나왔다.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가야시대 다라국 왕성이었던 성산토성은 사적지정 절차를 밟고 있다. 옥전고분군을 조성한 최고 지배층의 5~6세기 취락유적으로 조사됐다. 성곽과 건물지, 제사유구 등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 창녕읍 퇴천리 비화가야 토기가마터는 지난 7월부터 발굴조사한 결과 가야 토기가마터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됐다. 류명현 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확인된 김해 원지리 고분군과 함안 남문외 고분군, 창녕 영산고분군에 대해 이른 시일 안에 국가문화재로 지정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가야사 연구복원 전문가인 김수환 도 학예연구사는 “경남 18개 시군 전체가 고대 가야시대의 유적지이자 박물관”이라며 “발굴·조사가 지속되면 유물·유적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관광활성화 연계… 특별법 제정 후 복원 속도 도는 가야문화재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가야문화를 활용한 관광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5월 국토연구원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경남연구원에 용역을 맡겨 ‘가야문화권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 기본계획 수립 및 사업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 박정혜 도 가야사복원 주무관은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가야문화권 사업 타당성 조사 결과가 내년 5월쯤 나오면 이를 토대로 가야문화권 정비 종합계획을 보다 구체화하고 보완해서 가야문화 연구복원사업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추진 경남 가야고분군 5곳 철과 흙으로 빚은 찬란한 역사, 한중일 교역물의 수장고●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 금관가야 고도인 김해시 대성동에 있는 왕과 지배층 무덤이다. 219기 유구와 대형목곽묘 69기가 확인됐다. 갑옷과 큰칼을 비롯한 철기 유물과 후한시대 중국제 거울, 일본 고분에서 보이는 통형동기(筒形銅器)와 파형동기 등이 출토돼 당시 금관가야가 바닷길을 이용한 한중일 문물교역의 중심지였음을 보여 준다.●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515호) 아라가야 중심지인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말이산 주능선과 가지능선에 조성된 왕과 지배층 무덤이다. 봉토분이 있는 127기를 포함해 1000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150여기 무덤에서 800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 갑주, 마갑, 마구류와 같은 무기류 유물은 아라가야의 뛰어난 제철기술을 보여 준다.●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사적 514호) 창녕군 창녕읍 일대에 조성된 비화가야 지배층 무덤이다. 지금까지 320여기가 조사됐다.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 사이 조성됐으며 가야와 신라 문화가 섞여 있다. 비화가야가 신라와 가야 경계에 있어 일본, 신라, 백제와의 교류를 보여 주는 300여점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성 송학동고분군(사적 119호)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에 있는 가야시대 중국~백제~가야~일본을 연결하는 해양 교류 중심지였던 소가야 지배층 무덤이다. 고성을 중심으로 산청, 진주, 사천 등 경남 서부지역이 소가야권에 속한다. 송학동 고분군에서는 백제계 토기를 비롯해 금동제 고배, 신라계 마구장식, 일본계 토기·장식마구 등이 출토됐다.●합천 옥전고분군(사적 326호) 합천군 쌍책면에 조성된 후기가야인 다라국 지배층 무덤이다.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역 주변에 있다. 봉토분 28기를 포함해 121기의 유구가 확인됐고 유물 3000여점이 출토됐다. 신라 금동관과 백제 청동합, 일본 갑주, 로마양식 유리용기인 로만글라스 등이 나와 강을 통해 신라~백제~일본 등과 교역했음을 보여 준다.
  • 남원설… 장수설… 고령설 반파국의 위치를 찾는다

    남원설… 장수설… 고령설 반파국의 위치를 찾는다

    새롭게 떠오르는 전북가야의 역사적 뿌리를 찾고 올곧게 복원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전북도는 전북가야 역사 원형 정립을 위한 ‘2019년 전북가야 학술대회’를 오는 15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전북도가 주최하고 전북사학회·우석대 산학협력단이 주관하는 이번 학술대회는 문헌학과 고고학적 검토를 통해 전북가야의 실체를 체계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반파국 위치의 ‘남원설’, ‘장수설’, ‘성주설’, ‘고령설’에 대한 논의와 토론을 통해 전북지역에 반파국이 존재했다는 가능성을 제기할 계획이다. 학술대회는 전북지역 고대 정치세력과 가야에 대한 논문 발표와 토론 등으로 이뤄진다. 이는 가야 전 단계인 고대 정치세력의 고고학적 실체를 파악하고 가야의 문헌사적 연구를 통해 전북가야의 역사성을 체계화하기 위한 것이다. 1부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를 거쳐 백제가 전북 권역에 진출하기까지 과정을 전문가들 발표와 토론을 통해 짚어 본다. 제1주제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까지 전북지역 정치체제’는 이종철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의 발표에 이어 한수영 호남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 주재로 토론회가 열린다. 제2주제 ‘호남권역 철기문화 중심세력의 성격과 특성’은 김상민 목포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발표한다. 김 교수는 호남지역 철기문화가 만경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해 주변 일대로 내적 확장을 했으며 기원 1세기 이후 기술과 소재의 한계로 독자적인 철기문화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지만 제3세기 대의 지역 정치체제로 성장하는 배경이 됐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제3주제 ‘백제의 전북지역 진출 과정과 추이 변화’에서는 고대국가 백제와 전북 권역의 마한, 가야세력이 어떻게 존재했고 융합됐는지 검토한다. 2부에서는 전북 남원 기문국의 주변 세력과 반파국의 위치에 대해 학계의 견해와 문제점을 검토하고 논의한다. 반파국의 위치 파악은 가야사 향방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기문국과 주변 세력’, 백승옥 전문위원은 ‘반파국의 위치 재론’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한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더 높은 곳, 더 큰 왕의 기운… ‘철강 르네상스’ 경북 고령 대가야

    더 높은 곳, 더 큰 왕의 기운… ‘철강 르네상스’ 경북 고령 대가야

    1600년 전 강력한 철기문화를 앞세워 영호남 지역을 호령했던 ‘경북의 가야문화권’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21세기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경북의 가야문화권은 삼국유사 등 문헌에 경북의 고령(대가야), 성주(성산가야), 상주(고령가야)로 전해지며, 그 중심에는 4~6세기 고대 가야 연맹의 맹주였던 대가야가 있다.●4~6세기 연맹국… 전기는 금관가야, 후기는 대가야 중심 가야라고 하면 흔히 그 대표 세력으로 김해의 ‘금관가야’를 머릿속에 먼저 떠올리지만 가야가 역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4세기 전반부터 신라에 의해 562년 멸망할 때까지 그 중심 세력은 고령에 근거를 둔 ‘대가야’였다. 광개토왕비, 송서(宋書), 일본서기 등 문헌과 사료 대부분이 대가야에 집중돼 있고 고고학적 사료들도 대가야의 국력이 가장 컸던 정치세력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학계에서는 ‘전기 가야는 금관가야 중심, 후기는 대가야 중심’이라는 통설을 부정한다. 대가야는 철 생산을 통해 경제적·군사적으로 급성장하면서 5세기 후반에는 고령뿐만 아니라 경남 합천·거창·함양, 전북 남원·장수, 전남 순천까지 세력을 넓혀 백제·신라와 대등한 단계로 발전했다. 삼국 사이에서 뛰어난 철제기술을 바탕으로 ‘철의 왕국’으로 일컬어지는 찬란한 고대문명을 꽃피웠다. 대가야는 신라가 전체 가야를 멸망시킨 후 중심지였던 지금의 고령 지역을 대가야군으로 편제한 데서 위상이 드러났다. 적대국이었던 신라까지도 인정한 이름이었다. 경북도와 도내 가야문화권 시군들은 이처럼 융성했던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해 가야 르네상스를 여는 것은 물론 특히 대가야의 문화유산인 지산동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12일 경북도에 따르면 도내 가야문화권의 주요 문화유적으로는 148곳(국가지정 5곳, 도지정 3곳, 비지정 140곳)이 있다. 지역별로는 고령·성주 각 73곳, 상주 2곳 등이다. 고분과 산성이 주를 이룬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 중인 고령군 대가야읍의 ‘대가야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이다. 고령에는 이 외에도 ▲‘주산성’(사적 제61호) ▲가야 유일의 벽화 고분인 ‘고아동 벽화고분’(사적 제165호), ▲대가야 왕들이 마셨던 우물인 ‘어정’ ▲대가야 가실왕(?~?)과 우륵(?~?)이 창제한 가야금 등이 있다. 2013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고, 2015년 3월엔 ‘우선등재 추진대상’에 선정된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읍을 병풍처럼 감싸는 주산(해발 310m) 주능선을 따라 길게 분포한 대가야시대 최대 고분군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 묘 왕릉인 지산동 제44·45호분을 비롯해 왕족과 귀족 무덤으로 추정되는 크고 작은 704기의 무덤이 분포한다. 특히 2010년 지표조사 결과 이 일대에는 1만기가 넘는 고분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고, 한반도 최대의 삼국시대 고분군으로도 인정받았다. 대가야가 성장을 시작한 400년쯤부터 멸망할 때까지 만들어진 대가야의 무덤으로 화려했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해준다. 무덤은 해발 160∼180m 구간에 직경 20m 이상의 대형분, 해발 100∼160m 구간에 직경 10∼15m의 중형분이 집중돼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큰 것을 볼 때 왕의 힘이 점점 커지면서 더 높은 곳에, 더 큰 무덤을 만들려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능선 높이에 상관없이 대형분의 주위와 능선 사면에는 봉분이 없는 소형 무덤이 광범위하게 자리잡았다.●능선 704기·흔적만 1만기…자산 고분군 세계유산 자신 경북도는 지산동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에 자신감을 보인다. 고분군이 대가야 문화를 대표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유한 데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규모와 내용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인접한 성산 가야고분군(사적 제86호)도 관심을 끈다. 성주의 진산인 성산 능선에 3~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353기의 분묘가 있다. 성주지역 최대 규모이자 중심 고분군이다. 대부분 중·대형 고분군에 속하며 성산가야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식 발굴된 5기의 출토 유물과 묘제(墓制)의 형식이 신라 형식과 거의 유사해 학계에서는 가야의 일원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산가야의 정체성 규명이 가야 연구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성산가야는 ‘삼국유사’에 나라 이름만 있을 뿐 발전 과정이나 내부 구조, 멸망 시기 등의 역사적 사실 기록이 전혀 없다. 현재까지 미지의 나라인 셈이다. 상주시 함창면 증촌리에는 고령가야왕릉으로 전해지는 유적이 있다. 200m 거리를 두고 2개의 큰 능이 존재하고, 재사인 만세각이 있는 것으로 미뤄 왕릉으로 추정된다. 함창의 가야는 얘기로 전해지는 역사라서 공식적으로는 전(傳) 고령가야국이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함창은 본래 고령가야국이었는데 신라가 빼앗았다’고 기록했다. 이들 지역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는 일제강점기 때인 1910년대 후반부터 일본인에 의해 몇 차례 이뤄졌으나 본격적인 학술조사가 아닌 침략사관에 기초한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증명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뤄졌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이 고대 한반도 남부 가야 지역에 식민 국가를 건설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학술적인 보고서가 작성되지 않았으며, 출토된 대부분 유물은 일본으로 유출됐다.● 독특한 ‘고분축조·장의문화’ 우리 손에 의한 발굴조사는 1977년 처음 시작됐다. 대가야고분군의 정화사업에 따른 제44·45호분의 조사였다. 44호 고분에서 32기나 되는 순장덧널이 발견됐고, 45호 고분에서도 11기의 순장덧널이 확인됐다. 이듬해부터 지산동 32~35호분 등을 발굴 조사하면서 대가야 문화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특히 2007년 3월 30년 만에 발굴조사가 재개되면서 신라와 구별되는 대가야식 고분 축조방식이 확인됐다. 여러 명을 석곽에 함께 순장한 것으로 보이는 대가야의 순장 문화도 입증됐다. 지산동 고분군의 가치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됐다. 고령 대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거나 확인된 주요 유물로는 가야금관 및 부속 금제품(국보 218호)과 1978년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금관(보물 제2018호) 등이 있다. 올해 3월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 내 소형 석곽묘에서 출토된 가야 건국설화 그림이 새겨진 토제방울도 고대사 특히 가야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헌으로만 전하던 고대 건국설화를 시각화한 유물이 발견되기는 국내에서 처음이기 때문이다. 지산동 고분군 발굴로 얻은 소중한 가치는 ‘독특한 고대 장의문화’다. 세계유산 잠재목록에 등재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704기라는 세계적 규모인 데다 ▲고분군 위에 인공 구조물을 짓지 않은 자연친화적인 장의문화 ▲고분군이 생전 거주지가 보이는 곳에 형성된 점으로 미뤄 엿볼 수 있는 이승과 저승이 구분되지 않는 내세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순장곽 배치 등이다.●대가야·왕릉·우륵 테마박물관, 효율적 문화재 보존·관리 경북도와 고령군은 지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문화재의 효율적인 보존과 관리 등을 위해 2000년 4월에 왕릉전시관을 개관했다. 왕릉전시관은 국내 최초로 확인된 순장 무덤인 지산동 제44호분 내부를 재현해놨다.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일반인들이 더 쉽고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차원이다.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무덤의 구조와 축조 방식, 주인공과 순장자들의 매장 모습, 껴묻거리의 종류와 성격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또 2005년과 2006년 연이어 대가야역사관, 우륵박물관을 개관했다. 대가야역사관은 대가야 고분군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유물 1만여점을 전시·소장한 국내 유일의 대가야사 전문역사관이며, 우륵박물관은 전시실과 가야금제작체험장·가야금전수교육관 등의 시설을 갖춘 전국 유일의 ‘우륵과 가야금’ 테마박물관이다. 지금까지 왕릉전시관 등 3곳을 다녀간 관람객은 모두 443만명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2017년 6월에는 고령 대가야읍 고령향교 인근을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가야를 통틀어 왕들이 살았던 ‘대가야 궁성지’를 증빙할 수 있는 해자(폭 6∼8m, 깊이 최대 1m, 길이 16∼17m)와 성벽(폭 7m, 길이 16m)이 처음으로 발굴돼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곳의 해자, 성벽 등은 대가야 중요 거점인 궁성지를 효율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시설로 보인다. 당시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발굴 현장을 찾아 관심을 보이며 “대가야 궁성지 발굴·정비를 적극 지원하고 주산성 복원 정비계획 수립 시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경북도 등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된 가야사 연구 및 복원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선 도는 내년까지 ‘가야사 연구 복원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끝낸 뒤 관련 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또 2022년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고령에 있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단’을 중심으로 행정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2017년 경북도, 경남도, 전북도 관계자와 학예연구사 등으로 구성된 추진단은 가야의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국제학술대회, 해외전문가 자문, 연구자료집 발간 등의 업무를 총괄하는 독립 기관이다. 도는 이와 함께 2028년까지 총사업비 2192억원 투입하는 기존의 가야고분군 및 산성 등의 정비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도내 가야문화권의 실체 규명을 위한 문화재 조사 및 연구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 나가기로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가야는 신라·유교와 더불어 경북 3대 문화의 한 축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정체성까지 확보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은 우리 도가 추진해온 가야 부활 프로젝트에 날개를 달아 준 셈이 됐다. 호기를 맞아 가야 유적 발굴 복원과 관광자원 기반 구축사업을 연계 추진해 지역의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고령·성주·상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영남과 뿌리 다른 전북가야… 위대한 유산, 문화재 지정 시급”

    “영남과 뿌리 다른 전북가야… 위대한 유산, 문화재 지정 시급”

    “전북가야는 가야 중의 가야입니다. 봉수와 제철유적은 전북가야만의 위대한 유산이지요.” 곽장근(58·가야문화연구소장) 군산대 역사철학부 교수는 전북가야의 산증인이다. 그는 37년 동안 전북의 산과 들을 발이 닳도록 누비며 역사 속에 잠들어 있던 가야 유적들을 세상 밖으로 초대했다. 고고학자로서 최고 권위인 문화재 위원도 마다하고 오로지 전북가야 조사·연구에 매달리는 곽 교수를 11일 서울신문이 만났다. -호남은 가야사 연구의 불모지다. “가야 연구를 시작할 당시 많은 분들이 걱정했다. 가야 연구에 관심도 없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포기하고, 외도하고 싶을 때마다 지하의 영혼들이 호통을 치는 것 같아 자세를 가다듬었다. 예산 지원이 없어 유적발굴은 못하고 발품으로 가능한 지표조사만 열심히 했다.” -전북가야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계기는. “1982년이다. 당시 88고속도로 건설공사를 하다가 남원시에서 대형 고분군이 발견됐다. 백제시대 고분군으로 예상하고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발굴 과정에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전북 동부지역에 가야 유적이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 -전북가야 문화유산 조사 환경은. “그동안 가야 중의 가야가 전북에 있다고 호소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가야사 조사·연구 및 복원을 국정과제로 선정하면서 전북가야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가야사는 유적과 유물로 쓰는 역사다. 그동안 전북은 발굴할 수 없어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북가야의 역사적 의미는. “전북가야는 영남과 뿌리가 다르다. 영남가야는 변한이 가야로 발전한 것이지만 전북가야는 마한이 가야문화를 수용해서 가야로 변한 것이다. 마한세력이 특정 시기에 가야문화를 받아들여 가야왕국으로 변했다. 이제 고구려, 백제, 신라로 이뤄진 삼국시대 중심의 역사인식을 바꿔야 한다.” -전북가야가 영남가야와 다른 특징은. “전북가야만의 유산이 풍부하다. 봉수와 제철유적은 영남에서는 보고되지 않은 귀중한 자료다. 봉수는 국가가 있었다는 증거이자 국력을 대변하는 척도다. 전북 동부에서 100여개의 봉수가 발견된 것은 대단한 가야왕국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가야가 철의 왕국이었다는 증거도 전북가야가 뒷받침한다. 영남에서는 보고되지 않은 제철유적이 200여개나 발견됐다. 봉수와 제철유적은 유적 중의 유적이고 위대한 유산이다.” -전북가야의 정체성 확립과 계승을 위한 과제는. “아쉽게도 호남에서는 가야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연구도 부진했다. 이제부터라도 전북가야의 뿌리 찾기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연구자와 전문가가 부족하다. 그동안 가야 연구의 99%는 영남에서 이뤄졌다. 혼자 가야를 연구하는 과정이 너무 버겁고 어려움이 많았다. 도민들도 적극 나서 민관이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지속가능한 전북가야 발전 전략은. “학술연구보다 문화재를 지정받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 학술연구는 5년 내 결론을 못 내지만 실체를 밝혀 문화재로 지정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화재로 지정돼야 미래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국가가 보증을 선 것과 같아 정부에서 지원을 받게 된다. 국정과제 시작 전 영남은 가야 관련 국가사적이 27건인 데 반해 우리는 한 건도 없었다. 전북은 최근 단기간에 2건을 지정받았다. 전북가야 유적의 역사성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관광산업 등 지역발전 연계 방안은. “전북가야는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 품 안에 있다. 자연생태계의 보고와 역사의 만남은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백두대간 주변은 사방이 관광자원이다. 이를 전북가야와 연계시키기만 하면 된다. 구슬을 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적은 예산으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전북가야의 봉수로를 복원해 레이저아트로 연결하면 많은 사람들이 백두대간 품 안으로 올 것이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전북은 지붕 없는 가야사박물관…1500년 역사의 보물 깨우다

    전북은 지붕 없는 가야사박물관…1500년 역사의 보물 깨우다

    2017년 11월 25일 백두대간 봉화산 치재에서는 역사적인 행사가 열렸다. 송하진 전북지사와 7개 시군 단체장은 이곳에 기념비를 세우고 ‘전북가야’를 선포했다. 기념비에는 ‘봉수왕국전북가야’라고 새겼다. 송 지사는 이 자리에서 “1500년 전 백두대간 속 전북 동부지역에 기반을 두고 발전했던 가야세력을 하나로 묶어 ‘전북가야’라고 명명했다”며 “전북가야를 집중적으로 발굴·복원하고 세계유산에 등재해 전북 자존의 시대를 여는 큰 축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후 전북도는 전북가야 정체성 확립과 계승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문재인 정부가 국민 통합과 영호남 상생 발전을 위해 ‘가야문화권 조사·연구와 정비사업’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면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예로부터 전북은 백제의 영역이었다. 백두대간 서쪽 전북은 마한 이래 줄곧 백제문화권에 속했던 곳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중심의 고대사 인식에 대한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고고학적 조사와 새로운 연구방법으로 가야사의 공간적 범위가 영남은 물론 호남 동부지역을 아우르고 있음이 밝혀졌다. 전북도가 ‘전북가야’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도내에 독창적이고 우수한 가야시대 문화유산이 의외로 넓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북 14개 시군 가운데 남원, 완주, 무주, 진안, 장수, 임실, 순창 등 동부 7개 시군에서 가야의 융성과 발전 과정을 풍부하게 보여 주는 유적과 유물이 대거 발견됐다. 전북을 ‘지붕 없는 가야사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현재까지 497곳에서 822건(고분 456기, 제철유적 219곳, 봉수 101개, 산성 46개)의 가야 문화유산이 확인됐다. 출토된 유물도 2414점에 이른다. 이들 유물과 유적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전북 내륙지역에 경상가야와 차별화되는 강력한 가야국이 존재했었음을 보여 준다. 전북도는 “전북가야가 일제강점기부터 조사·연구가 이뤄진 경상가야에 비해 뒤늦게 시작했지만 대박을 터뜨린 게 ‘전북가야’를 선포한 배경”이라고 11일 밝혔다.●국내 유일·최고 밀집도 ‘봉수왕국’ 전북가야 전북 동부지역에서 가야왕국의 존재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는 유적은 봉수다. 봉수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변방의 급박한 소식을 중앙에 알리던 통신시설이어서 국가를 상징하는 가장 진솔한 고고학적 증거로 평가된다. 전북 동부지역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봉수는 101개나 된다. 백두대간 산줄기를 따라 4~6㎞ 거리를 두고 연결된다. 발굴된 봉수들은 밀집도가 높을 뿐 아니라 남원, 장수 등 전북가야 영역, 제철유적과 일치하는 특징을 보인다. 전북가야를 ‘봉수왕국’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다. ‘일본서기’에는 가야왕국 반파가 513년부터 백제와 3년 전쟁을 치르면서 봉후(수)를 운영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봉수가 학계에 보고된 곳은 전북 동부지역이 유일하다. 백두대간 동쪽 영남지역에서는 삼국시대 봉수의 존재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 곽장근(가야문화연구소장) 군산대 역사철학부 교수는 “봉수는 오늘날 정보통신기술과 같은 것으로 국가가 있었다는 증거이며 국력을 대변하는 척도”라고 말했다.●‘철의 왕국’ 가야는 전북가야가 중심지 제철유적 역시 전북에 ‘철의 왕국’ 가야가 존재했음을 알려 주는 징표다.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고 부른 이유는 가야 왕릉 고총에서 철기유물이 많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남지역 제철유적이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반면 전북에서는 집단으로 발견돼 진정한 철의 왕국은 전북가야에 기반을 두고 있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학계에 보고된 전북 동부지역에서 발견된 제철유적은 219곳에 이른다. 장수군 61곳, 무주군 57곳, 남원시 36곳, 완주군 32곳, 진안군 27곳 등이다. 가야의 초기 철기시대를 짐작게 하는 유적이 집중적으로 존재를 드러낸 지역은 전북이 유일하다. 국내 최대 밀집도를 자랑한다. 학계는 “가야의 발전 원동력으로 알려진 철의 생산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당시 첨단산업단지인 제철유적 발견으로 전북가야가 철기 공급기지로서 백제와 신라뿐 아니라 일본과 동남아까지 아우르는 물류의 중심지였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전북가야 고분에서는 삼국과 중국, 일본의 유물이 공존한다. 이로 미뤄 볼 때 전북가야는 150~200년간 철의 왕국으로 융성하다가 백제에 복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에서는 초기철기시대부터 후백제까지 1000년 동안 철이 생산됐다.●독자적인 학술적 토대 마련 과제 남원과 장수지역에서 발견된 고분군도 전북가야의 존재를 보여 준다.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과 장수 동촌리 고분군은 발굴과 동시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됐고 면적도 크다. 2020년 이후 사적지정 후보군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 국제실사단은 “남원에서 참가야가 보인다”며 전북가야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전북 동부지역 가야고분은 131곳에서 456기가 발견됐다. 특히 남원과 장수에는 중·대형 고총이 집중돼 있어 전북가야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원 운봉고원 일대에 180여기의 가야고총을 남겼다. 청계리 고분군에서는 호남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가야고총이 최근 확인됐다. 이 고분에서는 호남 최초로 수레바퀴 장식 토기와 나무 빗이 출토됐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청계리 고분에서 나온 출토품은 운봉가야가 함안 아라가야, 고령 대가야, 왜 등과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월산리 고분군에서는 청자 계수호(닭머리 모양 청자)와 철제 초두(쇠자루솥),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에서는 청동 수대경(거울) 등 최고급 위세품(고대국가에서 중앙정부가 하사하는 귀한 물건)이 출토됐다. 이는 가야계 정치체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하지만 전북가야는 그 가치가 매우 우수함에도 초기 걸음마 단계로 조사·발굴 및 정비사업 확대가 절실한 실정이다. 전북가야를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학술적 토대 역시 부족하다. 정체성 확립과 계승을 위해 ▲독자적인 학술적 토대 구축 ▲전문가 양성 ▲거점기관 지정 ▲대중적 확산 ▲지속가능한 활용방안 등이 시급하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가진 봉수와 제철유적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도 과제다. 이주철 전북도 문화유산과장은 “전북가야를 관광산업 등 지역발전과 연계시키기 위해 중요 자원 발굴과 함께 세계유산 등재, 활용·발전 기반도 구축할 방침”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가야사 특별법 제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일상이 예술되고, 예술이 일상 되게”… 송파문화재단 출범

    “일상이 예술되고, 예술이 일상 되게”… 송파문화재단 출범

    “문화는 도시의 품격이자 경쟁력입니다. 송파가 문화예술의 중심도시로 발전해나갈 때 지역의 가치도 더 높아질 것입니다. 구민의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다시 일상이 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나가겠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지역의 각종 문화 콘텐츠 개발 구심점 역할을 할 송파문화재단이 공식 출범했다. 박성수 송파구청장은 지난 8일 송파동 송파여성문화회관 4층에서 열린 문화재단 출범식에서 “민선 7기 ‘서울을 이끄는 송파’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주민 중심의 문화자원을 제공할 필요성을 절감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송파문화재단 신임 대표이사를 맡은 김보성 작곡가가 구의 문화 비전을 발표했다. 강은형 재즈 보컬리스트와 장경아 연주자, 최잔디 판소리연구가와 장재영 고수의 ‘심청가’ 등 장르를 아우르는 다양한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이번 문화재단 출범에는 박 구청장의 의지가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 구청장은 “문화재단 출범은 서울시 자치구 중 20번째로 비교적 늦은 편”이라면서 “송파구민이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높은 데도 관내 문화재단이 부재한 게 안타까워 지난해 취임 후 문화사업 분야에서 가장 우선순위로 뒀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송파구는 지난해 말 송파문화재단 설립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지난 1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설립 타당성 검토 용역에 이어 송파구와 서울시의 출자·출연기관 운영심의위원회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은 뒤 구의회와의 협의를 통해 예산안 확정 및 ‘서울시 송파구 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 등의 과정을 거쳤다. 구는 향후 재단을 중심으로 풍납토성, 몽촌토성 등의 한성백제 역사와 석촌호수, 롯데월드타워 등의 서울 랜드마크를 보유한 지역 특색을 살린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민관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그동안 구 문화체육과에서 담당해오던 지역 축제나 각종 문화행사도 재단에서 주도적으로 맡아 전문성을 높인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복면가왕’ 원더걸스 이세은, 무대서 쏟은 눈물 “출산 후 벅찼다”

    ‘복면가왕’ 원더걸스 이세은, 무대서 쏟은 눈물 “출산 후 벅찼다”

    ‘복면가왕’ 원더걸스의 정체는 배우 이세은이었다. 3일 방송된 MBC ‘복면가왕’에서는 가왕 ‘만찢남’에 맞서는 복면가수들의 대결이 공개됐다. 원더걸스와 노가리가 가장 먼저 1라운드 무대에 올랐다. 원더걸스와 노가리는 이문세 ‘사랑이 지나가면’을 불렀다. 원더걸스가 청아한 목소리로 무대의 포문을 열었다. 노가리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무대에 깊이를 더했다. 결과는 노가리가 74표를 얻어 2라운드에 진출했다. 원더걸스는 솔로곡 강수지 ’흩어진 나날들‘을 부르며 정체를 공개했다. 원더걸스의 정체는 배우 이세은이었다. 이세은은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쏟으며 노래도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이세은은 “내가 결혼도 했고 출산도 하면서 활동을 4~5년 쉬었다. 오랜만에 방송에 나오면서 벅차 눈물이 났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고구려 공주, 백제인 역할을 했지만 ‘나미꼬’로 기억을 해주시더라. 영광이면서도 깨고 싶은 게 있었는데 이젠 저로 인사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이세은은 “현재 영화 촬영 중이다. 앞으로 다양한 활동으로 인사 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조선의 심장서 만난 고려 영웅·미당의 삶… 가슴 시린 ‘천년 역사’

    조선의 심장서 만난 고려 영웅·미당의 삶… 가슴 시린 ‘천년 역사’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7차 관악산 아랫마을’ 편이 지난 26일 관악구 남현동과 인헌동, 봉천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사당역 6번 출구 앞 관악 예술인마을에서 집결했다. 남현동이라는 지명에서 남태령을 떠올리긴 쉽지 않지만 이곳은 서울에서 과천으로 넘어가는 해발고도 183m, 길이 6㎞에 이르는 남태령고개의 시발점이다. 일행은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으로 변신한 옛 벨기에영사관~서울 유일의 백제 도자기 가마터~효민공 이경직 묘역을 둘러봤다. 미당 서정주의 삶이 오롯이 담긴 봉산산방과 서울에 남아 있는 고려의 영웅 강감찬(948~1031) 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터, 사당(안국사)이 있는 낙성대공원을 탐방한 뒤 일정을 마무리했다. 관악산 아랫마을은 2시간의 짧은 여정 동안 백제~고려~조선~근대~현대의 흔적을 두루 느낄 수 있는 함축적 역사공간이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미당 서정주의 집 봉산산방이 유일했다. 해설을 맡은 황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깊어 가는 가을의 정취와 역사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도록 푸짐한 코스와 꼼꼼한 해설을 참가자들에게 선물했다.서울을 세계의 여느 다른 도시와 차별화하는 자연환경적 특징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서울은 인문지리학적으로 4개의 내사산(백악산-낙산-남산-인왕산)과 4개의 외사산(삼각산-용마산-관악산-덕양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유일의 역사도시다. 이는 정치지리학적 관점에서 서울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남산(262m)이 옛 서울(한양)의 남쪽 경계라면 한강 너머 관악산(629m)은 강남을 품은 현대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다. 관악산이야말로 서울의 진정한 앞산(남산)이라고 할 수 있다. 관악산은 서울 관악구 및 금천구와 경기 과천시 및 안양시에 걸쳐 검붉은 바위기둥이 타오르는 불길을 닮은 형상으로 우뚝 솟아 있다. 옛 선비들이 갖춘 의관의 관처럼 생겼다고 해서 말할 때는 ‘갓뫼’(갓산)라고 하고, 글로 쓸 때는 관악이라고 썼다. 산세가 험하고 경관이 뛰어나 개성의 송악, 가평의 화악, 파주의 감악, 포천의 운악과 함께 ‘경기 5악’에 꼽혔다.관악산 주봉 ‘연주대’라는 지명은 망한 고려왕조에 지조를 지킨 ‘두문동 72현’ 가운데 태조비 신덕왕후 강씨의 오라비 강득용이 은거, 개경을 바라보며 왕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동생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준 효령대군이 기거하면서 연주대라는 글씨를 새겼다. 그 덕분에 연주암 효령각에 효령대군의 영정이 모셔졌다. 강득용의 묘역은 정부과천청사 뒤, 양녕대군의 사당 지덕사와 묘역은 동작구 상도동 사자산 아래, 효령대군의 사당 청권사와 묘역 또한 서초구 우면산 북서쪽 기슭에 각각 자리를 잡아 죽어서도 관악산과의 연을 놓지 않았다. 관악산 주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사당역~관음사, 낙성대길, 서울대입구~도림천길, 삼성산길, 시흥동 호압산길, 과천 자하동길, 안양 석수역 유원지길 등 여러 갈래다. 관악산 자락 삼성산은 신라 때 고승 원효·의상·윤필이, 고려 때 지공·나옹·무학이 각각 수도했고, 삼막사는 조선 때 무학·서산·사명대사가 도를 닦은 유서 깊은 도량이다. 전국 어디에 가도 이만한 내력을 품은 산이나 사찰은 보기 드물다. 삼각산이 서울의 조상산이라면 관악산은 아침마다 알현하는 신하산이다.고려의 명신 강감찬 장군의 탄생지는 봉천동 218-14에 있다. 북두칠성 중 네 번째 별이자 문운을 관장하는 문곡성이 떨어진 곳, 낙성대다. 빌라와 단독주택이 빽빽하게 둘러싼 주택가 한가운데에 손바닥만 한 소나무공원이 남아 있다. 유허비와 향나무 한 그루가 땅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장군과 함께 자랐고 이후 1000년 동안 집을 지킨 ‘강감찬 향나무’는 1969년 고사했다. 높이 17m에 둘레 4.2m의 향나무는 살아생전 서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 중 하나였다. 생가터의 주인이 바뀌면서 잘려 나갔으나 2004년 수소문 끝에 두 갈래 밑동 중 하나를 찾아 낙성대공원 안 강감찬전시관에 전시 중이다. 현재의 향나무는 170년 묵은 후계목이다. ‘진짜 낙성대’는 서울시기념물 제3호로 지정돼 있다. 서울시기념물 제4호 ‘낙성대 삼층석탑’이 있던 자리에는 ‘강감찬장군낙성대유허비’ 한 점이 달랑 놓여 있다. 생가터인 낙성대와 안국사 사당이 있는 낙성대공원을 헛갈리면 안 된다. 인위적으로 성역화한 낙성대공원은 생가터에서 약 400m 떨어진 봉천동 228에 있다. 1974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영정을 모신 사당을 현재의 낙성대공원에 지었다. 이때 낙성대공원으로 옮겨진 삼층석탑은 절이 아닌 사람의 집에 세워진 탑이라는 점에서 매우 희귀하다. 불탑을 닮은 이 석탑 때문에 더러 안국사를 사찰로 착각하곤 한다. 13세기에 높이 4.5m의 화강암으로 지어진 삼층석탑은 임진왜란 때 탑 꼭대기 장식이 훼손됐다.왜 비석이 아닌 탑을 세웠을까.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 현재의 봉천동과 금천구 시흥동 일대는 고려시대 금주(금천)지역에 뿌리내린 금천 강씨의 지배지역이었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었던 부친(강궁진)에 이어 나라를 구한 안국공신을 기리는 가문의 기념물로 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둘째는 불교 왕국답게 비석이 아닌 석탑을 세웠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강감찬은 신라의 김유신, 고려의 윤관·최영, 조선의 남이·임경업 장군과 함께 탄생설화와 전설, 전기소설 등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대첩 중 하나인 귀주대첩의 주인공이다. 35세 늦깎이로 과거에 장원급제, 최고관직 문하시중에 오른 고려의 명재상이었다. 또 금천 호족 출신답게 남경(고려시대의 서울)을 다스리면서 호환을 일으키는 호랑이를 쫓아내는 등 전국에 걸쳐 화려한 설화를 남기고 있다. 올해는 귀주대첩 10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현재 낙성대공원 안국사에 모셔진 공의 영정은 모사화다. 1974년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표준영정은 1998년 1월 10일 도난당한 뒤 행방이 묘연하다. 문화재청은 도난당한 가로 110㎝, 세로 200㎝ 규격의 영정을 도난문화재로 공시 중이다. 낙성대는 인헌초등학교 후문 쪽에 있고, 낙성대공원은 인헌초등학교 정문 쪽에 있다. 관악구에서는 인헌초·중·고교를 비롯해 인헌동, 인헌시장 등 공의 호를 딴 지명과 은천동, 은천로 등 공의 아명을 딴 지명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빌라 이름 등 상호에도 ‘강감찬 마케팅’이 활용되고 있다. 조선의 심장 서울에서 만나는 고려의 전설, 강감찬 장군의 유적은 감흥을 준다. 낙성대 생가터가 서울시기념물 3호이고, 낙성대공원 안 삼층석탑이 서울시기념물 4호인 것만 봐도 그 존재감을 알 만하다. 강감찬 장군 탄생지인 ‘낙성대’는 볼품이 없지만 서울 2000년사의 절반인 서울 1000년을 증언하는 대단한 역사 현장이다. 으리으리하지만 혼이 없는 ‘낙성대공원’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8차 서울의 대중가요3(단장의 미아리고개) ■집결 장소 : 11월 2일(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솔샘역 1번 출구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일상 품었던 읍성, 일상 지켜준 도성

    일상 품었던 읍성, 일상 지켜준 도성

    경기 광주시 청량산 일대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본성과 외성까지 포함한 성곽의 총길이가 1만 2335m, 면적 220만 9270㎡에 달하는 국내 최대 산성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남한산성은 안쪽은 낮고 얕으나 바깥쪽은 높고 험해서, 청나라 군사들이 처음 왔을 때 병기라고는 날도 대보지 못했고, 병자호란 때도 결코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병자호란 피란수도, 남한산성 광해군을 폐위시키는 군사 반정으로 즉위한 인조는, 이듬해인 1624년 이괄의 반란으로 한양을 뺏기고 공주로 피란하게 된다. 혹독하게 고생한 그해 임금의 입보와 조정의 파천이 가능한 남한산성을 수축하게 된다. 1636년 병자호란을 당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옮겨 45일간 수성으로 침략을 버틴다. 화력과 기동력에서 열세였던 조선군 1만 3000여명으로 수십만의 최정예 청군을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산성의 견고함 때문이었다. 결과는 일방적인 패전과 치욕적인 항복이지만 산성이 함락된 것이 아니라 원군과 물자의 결핍으로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 용골대가 통역 정명수에게 말했다. -단단해 보인다. 산골나라에는 저런 성이 맞겠어. -조선은 성안이 허술합니다. -허나 성벽은 날카롭구나. 깨뜨리기가 쉽지는 않겠어. -바싹 조이면 깨뜨리지 않아도 안이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 보느냐. 듣기에 좋다. (김훈의 ‘남한산성’에서)산성의 위치는 절묘하다. 서울의 동쪽 흥인지문을 나와 살곶이다리로 중랑천을 건너 광진나루에 다다른다. 배로 한강을 건너 평야지대를 지나면 남한산성에 입성할 수 있다. 빨리 걸으면 대략 8시간, 한나절 거리다. 병자년 12월 9일 압록강을 넘은 청나라의 기병들은 빛의 속도로 남하해 12월 14일 개성에 도착했고, 바로 그 시간 인조는 궁궐을 떠나 당일 남한산성에 입보할 수 있었다. 남한산성은 평균 고도 450m의 고지에 떠 있는 천혜의 요새다. 봉우리와 능선을 연결해 약 10㎞의 본성을 쌓았다. 청량산 일대에는 신라시대 쌓았던 주장성이 폐허로 남아 있었다. 인조 대의 남한산성은 대략 기존 주장성의 흔적을 따라 돌로 견고하게 쌓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처럼 대규모의 산성을 2년이라는 단기간에 완성하기 위해 택한 나름 현명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때 완성한 본성은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성 밖에 있는 벌봉이나 남한봉은 안의 봉우리들보다 40여m 높아 성안을 들여다보는 고지였다. 중장거리포로 무장한 청군은 이곳에 화포를 설치해 산성 안을 무차별 공격할 수 있었다. 이 결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후대에 벌봉을 감싸는 봉암성을 쌓고, 남한봉과 연결하는 외성인 한봉성을 쌓게 된다. 또한 성 밖의 능선을 확보하기 위해 남문 근처에 3개 옹성을 덧붙여 쌓았다. 완벽한 방어용 산성으로 보완됐지만 이후에는 재래식 외침도, 재래식 수성도 없었다.●산성수축론에서 산성거주론까지 한국과 같은 산악 국가는 곳곳에 산성을 쌓고 이를 거점으로 방어망을 형성하는 것이 전통적인 군사전략이었다. 고구려는 산성의 나라라 할 정도로 수많은 견고한 산성을 경영했다. 인구 2만명의 안시성이 당나라의 수십만 대군을 물리치지 않았던가. 특히 수도 방어를 위해 국내성 인근에 환도산성을, 평양성 뒤에 대성산성을 쌓았다. 평상시에는 평지 도성에서 일상을 영위하지만, 유사시에는 배후 산성에 입보해 침략으로부터 지켜 냈다. ‘평성과 산성’이라는 2성제는 백제와 신라는 물론 후속 왕조인 고려도 채택한 전통적인 도성 방어체계였다. 조선 왕조는 군사용이 아닌 한양성만 쌓았을 뿐 도성 방어용 산성을 만들지 않았다. 대국인 명나라나 야만국인 일본이 수도를 함락할 정도로 전면 침략할 리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발발 20일 만에 수도가 함락되고 조정은 국경인 의주로 파천했다. 전시 재상인 유성룡은 무기력한 조선의 방어체계를 개탄하며, 유사시에 대비해 튼튼한 산성을 마련하자는 산성수축론을 주장하게 된다. 남한산성은 산성수축론이 실현된 본격적인 예다. 산성은 수축과 관리에 막대한 자원이 소요된다. 또한 산성 수호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성 밖의 백성과 재산을 지키지 못하니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산성무용론을 펼친 실학자 유형원은 평소 생활 터전인 읍성의 방어 능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읍성보강론을 주창했다. 이 주장은 설득력을 가져 여러 지방의 읍성을 마치 산성과 같이 방어용으로 개축하게 된다. 읍성보강론은 결국 1797년 수원화성 건설로 결실을 맺었다.그러나 아무리 튼튼해도 읍성은 지리적 한계로 인해 방어력이 떨어진다.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던 강항은 산성에 인구를 유입하고 거주 기능을 높이자는 산성거주론을 주장했다. 군사적인 산성 안에 본격적인 생활기능을 담을 수 있다면 거주와 방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높은 곳의 산성은 지리적 접근이 어렵고 내부 토지도 좁아 인구 유입에 한계가 많다. 산성 거주를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1683년 남한산성에 광주유수부를 설치하게 된다. 유수부란 수도권의 광주, 강화, 개성, 수원에 둔 군사·행정을 통합한 특별 통치 단위였다. 광주유수부에는 6000명이 넘는 군인과 수백명의 지방 관료와 그 가족들이 이주했다. 또한 세금 감면과 경작지 제공 등 혜택을 줘 1000호, 40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산성도시가 됐다. 남한산성의 진정한 가치는 이 높은 분지에 도시가 이뤄졌고, 유수부가 폐지된 1917년까지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 번성이 유지됐다는 사실에 있다.●상황 따라 기능 달라지는 이중적 도시 구조 이 산성도시는 평시에 일반적인 읍성과 같이 기능하지만, 유사시엔 임시 도성이 되는 이중적 성격을 가졌다. 도시의 뼈대 역시 이중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남문·북문을 이루는 간선도로의 중앙에 동문으로 통하는 중심도로가 접속한, 丁자형 가로를 이룬다. 그 교차점에 종각이 있고, 그 뒤에 행궁을 뒀다. 동서 관통로인 종로에 남대문로가 접속한 한양의 도로체계와 유사하다. 또한 행궁과 경복궁의 위치도 비슷하다. 지형에 따라 방위만 바뀌었을 뿐 한양 도시체계를 축소 반복한 임시 도성의 모습이다. 일반적인 읍성의 중심은 객사다. 행궁 남쪽에 객사인 인화관을, 그 뒤로 관청들을 뒀다. 동문로에는 큰 물줄기가 흐르는데, 물줄기 양쪽에 나란히 두 개의 도로가 놓였다. 한 길은 행궁으로 통하고, 다른 한 길은 객사로 통한다. 다시 말해 하나는 도성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읍성의 길이다. 두 길 사이의 공간에는 장터와 군사훈련장, 공공 정원인 지수당 연못을 둬 공공 지역으로 설정했다. 지수당 연못은 원래 3개로 경관용인 동시에 저수지 역할까지 했는데, 현재는 2개만 남아 있다. 연무관 앞의 훈련장과 장터는 세계유산센터와 주차장, 일반 음식점들이 어지럽게 들어서 흔적이 없어졌다.행궁의 규모는 비록 작지만 왕궁의 격식을 따라 외전과 내전을 중첩시켰다. 눈에 띄는 것은 행궁 뒤 북쪽 산 옆에 자리한 좌전이라는 건물군이다. 도성의 종묘에서 역대 임금들의 위패를 가져와 모시는 임시 종묘인 셈이다. 행궁의 남쪽 지역에는 우실이라는 사직단을 뒀다고 한다. 제왕이 있는 도성이 되려면 좌측에 종묘, 우측에 사직단을 설치해야 한다는 이른바 ‘좌묘우사’의 원칙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공공 지역과 시설 주위로 자리한 1000여호의 민가에서는 수천명의 주민이 농사뿐 아니라 수공업과 상업 등에 종사하며 다양한 도시적 일상을 살았다. 한창때는 효종갱이라는 아침 죽을 한양까지 배달할 정도로 여러 특산물의 산지였다. 남한산성 400년의 역사에서 병자호란 45일은 비일상적인 특수한 기억일 뿐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산성도시로 번성했고, 천주교의 순교지이자 구한말 의병운동, 일제 독립운동과 애국계몽의 근거지였다. 해방 후 남한산성은 수도권의 중요한 관광지로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국제적인 명소가 됐지만 성곽만 부각될 뿐이어서 늘 아쉽다. 특별하고 의미 있는 도시 구조가 재건된다면 명실상부한 산성도시가 될 것이다. 성곽은 이미 날카롭다. 내부의 산성도시가 건강하게 살아난다면 남한산성은 영원히 마르지도, 깨지지도 않을 것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고종이 지은 안동별궁, 55년 만에 디지털로 복원된다

    고종이 지은 안동별궁, 55년 만에 디지털로 복원된다

    내년 개관 서울공예박물관에 전시1881년 지어졌다가 1965년에 해체된 옛 안동별궁의 모습을 내년 개관 예정인 서울공예박물관에서 디지털 자료로 볼 수 있게 된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옛 풍문여고 터에 있던 안동별궁은 1881년 고종이 지었고, 1882년 당시 세자였던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과 세자빈의 가례가 열린 곳이다. 서울시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 이곳에 서울공예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개관은 2020년 하반기를 목표로 했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서울공예박물관 디지털 문화유산 데이터 구축’ 사업을 추진하면서 내년 2월까지 안동별궁과 소장 자료를 3D 스캔 데이터로 가공해 초고화질 디지털 이미지로 구축하기로 했다. 확보한 자료를 디지털 전시·홍보 콘텐츠로 활용하고 아카이브(기록보관소)를 조성하는 데 쓴다. 안동별궁 부속 건물로는 경연당·현광루·정화당이 있었으나, 1937년 궁의 소유권이 민간에 넘어갔고 1965년 풍문학원이 풍문여고 운동장 확대를 위해 별궁을 해체하면서 정화당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현 메리츠화재연수원), 경연당과 현광루는 경기 고양의 한 골프장으로 각각 이전했다. 경연당과 현광루는 한동안 잊혔다가 2006년에 안동별궁 부속 건물로 확인된 뒤 2009년 충남 부여의 문화재청 산하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이전·복원됐다. 박물관 측은 3D 스캔과 모델링 기술을 활용해 경연당과 현광루의 현 모습을 디지털 자료로 만든 뒤 전시 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다. 박물관 측은 송파구 한성백제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중요 소장 자료 9개도 3D로 스캔하거나 초고화질 사진으로 촬영해 디지털화할 방침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백제 왕도 승하 땐 화장했나… 석촌 고분서 부숴진 인골 발굴

    백제 왕도 승하 땐 화장했나… 석촌 고분서 부숴진 인골 발굴

    한성백제 왕실묘역서 총 무게 4.3㎏ 뼈 고온 장시간 노출… 유전자 분석은 못 해 100m 길이의 초대형 ‘연접식 적석총’도 “연결된 고분 형태 학계 보고된 바 없어”한성백제(기원전 18∼기원후 475) 왕실묘역인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사적 제243호)에서 화장 후 분골 과정을 거친 사람 뼈와 다량의 토기, 장신구, 기와 등 유물이 대거 발굴됐다. 백제 고분에서 화장된 인골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백제왕실 장례문화에 화장이 있었다는 증거가 처음으로 나온 것이다. 여러 개의 적석묘(돌무지무덤)가 100m 길이로 서로 이어진 초대형 ‘연접식 적석총’도 처음으로 발굴됐다. 서울시 한성백제박물관은 이런 내용의 석촌동 고분군 발굴조사 중간결과를 23일 발표했다. 이번에 발굴한 인골의 무게는 총 4.3㎏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화장하면 2~3㎏ 유골이 나오는 점을 고려하면 여러 사람 뼈로 볼 수 있다. 같은 부위의 뼈가 2개 발견되기도 했다. 다만 뼈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높은 온도에서 오랜 시간 노출됐기에 유전자 분석은 불가능하다. 연접식 적석총은 고분군 아래쪽에 자리한 1호분 주변부터 중간 2호분 사이 지역에서 발견됐다. 네모꼴 작은 적석묘 16기와 이들을 잇는 연접부, 화장된 인골을 묻은 매장의례부 3곳을 빈틈없이 이어 붙여 규모를 늘려간 형태다. 시 관계자는 “이렇게 연결된 형태의 고분은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새로운 형태”라고 설명했다.적석총 발굴 과정에서 금귀걸이, 중국 청자, 유리구슬을 비롯해 유물 5000여점이 나왔다. 특히 매장의례부에서는 화장 후 잘게 부순 사람 뼈와 다량의 토기, 장신구, 기와 등이 고운 점토로 덮인 채 발견됐다. 석촌동 고분군은 1974년 잠실 일대 개발에 앞서 유적 유무를 확인하는 지표조사와 유적발굴조사가 진행되면서 백제 왕릉급 고분군으로 인식됐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90기 이상이 남았던 것으로 조사됐으나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대부분 무덤이 사라졌다. 고분군은 조사 후 1987년 백제고분공원으로 조성됐고 현재 적석총 5기와 흙무덤 1기 등 총 6기가 복원·정비됐다. 박물관은 이번 연접식 적석총 발견으로 석촌동 고분군 조사·연구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복원·정비돼 있는 6기 외에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고분이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시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이나 부여 능산리 고분군과 같은 왕실묘역인 점을 감안할 때 석촌동·가락동 일대에는 아직도 지하에 무덤 일부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서울포토] 서울 석촌동 고분군서 화장된 유골 첫 발굴

    [서울포토] 서울 석촌동 고분군서 화장된 유골 첫 발굴

    한성백제 왕실묘역인 석촌동 고분군(사적 제243호)에서 화장 후 분골과정을 거친 사람 뼈가 발굴됐다. 백제 고분에서 화장된 인골이 다량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3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에서 조사단 관계자가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2019 .10. 23.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전국은 지금 누님같이 생긴 ‘국화 옆에서’

    전국은 지금 누님같이 생긴 ‘국화 옆에서’

    함평 국향대전, 임정 100주년 접목 유혹 백제 무왕 모티브 익산 ‘천만송이 축제’ 마산항 120년 기념 초대형 국화작품도 전국이 가을 국화향으로 가득하다. 곳곳에서 열리는 국화축제 때문이다. 지자체들은 차별화를 강조하며 “우리 국화축제가 최고”라고 뽐낸다.22일 충북도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청남대에서 국화축제가 열린다. 국화 1만 1000여점이 전시되는 행사에서는 1983년부터 20년간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사용된 청남대의 단풍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청남대관리사업소 김찬중 축제담당은 “대청호와 어우러진 청남대 단풍은 한 폭의 수채화로 불릴 만큼 아름답다”고 설명했다. 지난 18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전남 함평군 엑스포공원에서 열리는 ‘함평 2019 대한민국 국향대전’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접목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실제 크기(높이 14.28m)로 재현한 독립문과 백범 김구 선생 동상, 평화의 소녀상 등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릴 수 있는 대형 국화 조형물이 전시된다.고찬훈 군 자원기술팀장은 “독립문은 지난 5월 틀을 만든 뒤 현애국 5000주를 심어 완성했다”며 “1주당 1000송이 이상 피는 점을 감안하면 국화 500만 송이가 독립문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전북 익산시 중앙체육공원에서 열리는 익산 천만송이 국화축제는 ‘사랑 고백’을 테마로 잡았다. 국적을 뛰어넘은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묘로 알려진 쌍릉이 익산에 있어서다. 꽃다발 고백 포토존과 10커플을 대상으로 한 웨딩마치 이벤트 등이 운영된다. 경남 창원시는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마산합포구 창동·오동동 일원에서 마산국화축제를 연다. 창원시로 통합된 옛 마산시는 1960년 우리나라 최초로 국화 상업재배를 시작한 곳이다. 올해는 마산항 개항 120주년을 기념해 해양발전 꿈을 표현한 가로 10m, 높이 6m의 초대형 국화작품을 공개한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경기지역 유통 식품, 표백제 사용기준 적합

    경기지역 유통 식품, 표백제 사용기준 적합

    건조과일의 색을 유지하고, 포도주 생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생물 번식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표백제’가 기준치 이하로 관리되고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은 도내에 유통 중인 포도주, 과채 가공품, 절임식품 등 41개 식품을 대상으로 표백제 사용량을 조사한 결과 모두 사용기준에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5∼30일 포도주 10종, 과채 가공품 10종, 건조 채소 10종, 절임류 11종 등 총 41개 제품에 포함된 ▲무수아황산 ▲아황산나트륨 ▲메타중아황산칼륨 ▲산성아황산칼륨 ▲메타중아황산나트륨 ▲차아황산나트륨 등 표백제 6종의 함유량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41종에 포함된 표백제의 kg당 평균 함량은 포도주 1.00g, 과채 가공품 0.153g, 건조 채소 0.020g, 절임류 0.017g 등으로 대부분 절반 이하 수준으로 나타났다. 미생물 번식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식품첨가물인 표백제는 호흡 곤란, 재채기, 두드러기, 구토, 설사 등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식품 유형에 따라 사용량이 제한 관리되고 있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는 “도민들이 먹는 식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이전 조사를 실시했다”라며 “앞으로도 도민들에게 안전한 먹거리가 제공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행주산성에서 삼국시대 축성 석성 ‘최초’ 확인

    행주산성에서 삼국시대 축성 석성 ‘최초’ 확인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경기 고양시 행주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한 ‘퇴뫼식 석축산성’으로 조사됐다. 김수현 고양시 학예연구사는 8일 “그동안 행주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축조한 포곡식 토축산성(包谷式 土築山城)으로 알려졌으나, 서기 7세기 때 정상부 능선을 따라 축조한 테뫼식 석축산성(山頂式 石築山城)인 사실이 최초 확인됐다”고 밝혔다. 석성의 규모는 지형에 따라 높이가 1.6~4.3m, 전체 길이는 450m에 달한다. 축조 시기도 기존에 알려진 것 보다 수백년 앞섰다. 고양시는 문화재청의 국비를 지원받아 지난 7월부터 한양문화재연구원을 통해 국가 사적 제56호인 행주산성 내 석성구역을 발굴조사해 왔다. 발굴 성과와 출토유물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현장설명회를 이날 오후 2시 행주산성 정상에서 갖는다. 김씨에 따르면 이번 발굴조사는 지난 3월에 실시한 7개 지점 시굴조사를 거쳐 석성의 범위와 축조 기법 등을 확인하기 위해 5개 지점을 구체적으로 선별해 진행했다. 조사 결과 석성은 장방형으로 자른 화강암을 이용해 지형이 낮은 부분부터 외벽을 쌓은 후 외벽이 내벽과 동일한 높이에 이르면 내부에 돌을 채우고 흙을 다져 내·외벽에 석성을 동시에 쌓는 기법이 사용했다. 석성은 축성 이후 한 차례 고쳐 쌓았으며, 동쪽 일부 석성에서는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바닥에 흙을 다져서 보강한 토성이 발견되기도 했다. 발굴조사를 통해 한성백제기의 대옹편 및 신라시대의 토기, 선문 및 격자문 기와편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돼 행주산성이 오랫동안 한강유역의 전략적 요충지 였음이 증명됐다. 김씨는 “이번 발굴조사로 행주산성의 유적 가치가 한층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사이언스 브런치] 욕실 때 지우려다 건강도 지우는 표백제… 창문 열어라

    [사이언스 브런치] 욕실 때 지우려다 건강도 지우는 표백제… 창문 열어라

    물기가 마를 날이 없는 욕실이나 주방, 세탁실에는 자칫 방심하면 찌든 때가 끼거나 곰팡이가 생기기 십상이다. 실내에서 발생하는 곰팡이는 공기 중에 미세한 포자를 퍼트려 번식하기 때문에 사람이 흡입할 경우 기관지염, 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이나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곰팡이와 찌든 때를 없애려고 표백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건강을 해칠 위험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토론토대, 미국 버크넬대 화학자들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은 실내 청소나 소독에 많이 사용되는 표백제를 환기가 잘되지 않는 곳에서 사용할 경우 심각한 호흡기 질환, 심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3일 밝혔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환경학 분야 국제학술지 ‘환경 과학기술’에 실렸다. 실내 소독과 곰팡이 제거에는 차아염소산나트륨(NaOCl)을 주성분으로 하는 염소계 세제가 많이 쓰인다. 흔히 ‘락스’라고 불리는 염소계 세제는 사용할 때 일부가 염소가스나 차아염소산(HOCl) 형태로 공기 중에 퍼진다. 락스로 청소를 할 때 코를 톡 쏘는 독특한 냄새가 바로 염소가스 때문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염소가스가 다른 개인위생용품이나 방향제에 쓰이는 리모넨 같은 화학물질과 반응하면 휘발성유기화합물(VOCs)로 변해 실내 공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리모넨은 오렌지나 레몬향을 내는 데 사용되는 화합물이다. 실제로 연구팀은 공기 중에서 리모넨과 차아염소산, 염소가스가 만나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이들 화합물은 실내 먼지 같은 다른 오염물질들과 만나서 VOCs나 2차유기에어로졸(SOAs)을 만들어 내는 것이 관찰됐다. 특히 햇빛이 잘 비치거나 조명이 켜진 상태에서는 이런 화학물질 합성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이 확인됐다. VOCs나 SOAs는 악취나 오존을 발생시키는 대표적인 공기오염물질로 새집증후군이나 미세먼지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더글러스 콜린스 버크넬대 화학과 교수는 “실내에서 표백제를 사용할 때는 창문을 열거나 환풍기를 틀어 놔 환기를 시켜야 건강상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전주 전통 명문 주거지… 교육·교통환경 ‘굿’

    전주 전통 명문 주거지… 교육·교통환경 ‘굿’

    현대건설 컨소시엄(현대건설·금호건설)이 전주시의 전통 명문 주거지인 효자동에서 ‘힐스테이트 어울림 효자’를 다음달 분양한다. 힐스테이트 어울림 효자는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1가 166-1번지 일원(효자구역 주택재개발)에 들어선다. 지하 3~지상 최고 17층, 17개동 총 1248가구의 대단지로 조성되며 전용면적 59~101㎡ 905가구를 일반분양한다. 힐스테이트 어울림 효자가 들어서는 전주시 효자동은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유명한 주거밀집지역으로 주택 시장에서 강조되는 인프라를 두루 갖춘 곳이다. 우선 단지 앞에 전주시 남북을 잇는 주요 도로인 백제대로가 위치해 시내 곳곳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백제대로를 통한 고속·시외버스터미널, KTX전주역 접근이 용이하다. 사업지 주변에 60여개 시내버스가 정차해 대중교통 이용도 쉽다. 교육 환경도 돋보인다. 전주의 명문 자율형 사립학교인 상산고가 인근에 있으며 화산초, 효정중, 전주상업정보고 등 여러 초·중·고가 도보권에 자리한다. 아울러 전주 내 유명 학원가가 밀집한 서신동이 가깝고 효자동 내 학원도 이용할 수 있다. 다양한 편의시설도 가깝다. 1㎞ 안에 홈플러스(전주효자), CGV(전주효자), 효자몰, 완산구청, 우체국, 주민센터 등이 위치하며, 백제대로를 따라 롯데백화점(전주점), 이마트(전주점), 전주종합경기장, 전북대 병원 등 대형 상업·문화·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힐스테이트 어울림 효자는 전 가구를 남향 위주로 배치해 일조·채광을 극대화했고, 소형부터 중·대형까지 다양한 평면으로 구성해 수요자들의 선택 폭을 넓혔다. 정비사업에서 보기 드문 특화 평면도 적용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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