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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말 이쑤시개 튀김’ 유행…전문가들 “식품 용도 아닌데 왜”

    ‘녹말 이쑤시개 튀김’ 유행…전문가들 “식품 용도 아닌데 왜”

    녹말 이쑤시개를 기름에 튀겨 먹는 ‘녹말 이쑤시개 튀김’이 유튜브와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유행이다. 식용으로 제조된 제품이 아닌 만큼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23일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에서 ‘이쑤시개 튀김’을 검색하면 다수의 관련 먹방 영상들이 나온다. 이쑤시개 튀김 먹방이란 치아 사이에 낀 음식물을 빼내는 용도로 사용되는 녹말 이쑤시개를 기름에 튀겨서 먹는 것이다. 관련 영상들을 살펴보면 녹말 이쑤시개를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뒤 치즈나 불닭볶음면 소스 등과 함께 먹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녹말 이쑤시개는 나무 이쑤시개를 대체해 자연환경을 보호하려고 만든 제품으로, 옥수수 전분과 식용색소 등 인체에 무해한 재료들로 만들어졌다.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 설명에도 ‘사용 후 자연 분해되는 녹말로 만든 무공해 자연 제품’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방부제나 표백제도 들어 있지 않다. 먹어도 인체에 무해하지만 그래도 녹말 이쑤시개는 식용 목적 제품이 아니다. 제품에도 ‘인체에 무해하나 드시지 마십시오’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한경닷컴에 “성분만 두고 보면 이쑤시개를 끓는 물에 넣었다가 꺼내서 먹어도 상관 없겠지만 불에 직접 닿아 태우는 건 어떤 제품이든 좋지 않을 것”이라면서 “녹말 이쑤시개는 (식품이 아닌) 위생용품·일회용품 제조 기준에 맞춰 만들어진다. 먹는 용도로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도 한경닷컴에 “이쑤시개가 식품 용도로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튀기거나 섭취하지 않기를 권장한다”고 전했다.
  • [최보기의 책보기] ‘개나발’을 위하여 마늘과 쑥을 마구 먹자

    [최보기의 책보기] ‘개나발’을 위하여 마늘과 쑥을 마구 먹자

    러시아 코밑까지 북쪽으로, 티벳 고원 넘어 서쪽으로, 히말라야 넘어 남쪽으로, 만주벌판 넘어 동쪽으로 땅 욕심을 있는 대로 부렸던 중국이 동쪽 끝 한반도는 끝내 접수하지 못했다. 초강대국 중국에 잇대고 있으면서 끝까지 살아남은 주변 국가는 고비사막 북쪽으로 피신한 몽골, 험난한 산악과 밀림을 사이에 둔 베트남, 한국(한반도)이다. 이 셋 중 특히 한반도는 중국과 사이에 사막, 산맥, 밀림 같은 지리적 장벽도 없는데다 겨울이면 압록강이 얼어붙어 평지나 다름없다. 그러나 한반도 공략에 실패하면 역으로 자신의 왕조가 위기에 빠졌던 탓에 중국도 명나라 이후에는 가급적 한반도 공격을 자제했다. 아마도 중국의 역사책 행간에는 한반도를 향해 ‘저 독종들!’이란 단어가 숨어있을 것이 분명하다. 홍대선의 『한국인의 탄생』은 그러한 서사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탓에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던 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대신 이제 그 존재를 알게 됐으니 ‘정말 반가운 책’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 『한국인의 탄생』, 정말 반가운 책이다. 심지어 흥미진진 재미있기까지 하다. 저자는 저 먼 원시 인류의 조상이 한반도에 처음 들어와 살게 된 때부터 (고)조선-고구려, 가야, 백제, 신라-고려-조선-한국에 이르는 역사를 더듬어 ‘독특한 한국인, 그들이 형성되는 과정’을 연구했다. 결론은 ‘우리는 우연히, 운 좋게 여기에 있게 된 것이 아니다. 한국인은 위대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결정(結晶)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 저자는 특히 ‘마늘과 쑥’, ‘단군, 고려 현종, 조선 정도전’ 등 다섯이 큰 획을 그었음을 낱낱이 파헤쳤다. 먼저 마늘과 쑥을 보자. 단군이 최초 국가 조선(朝鮮)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던 한반도는 사계절 돌아가면서 연중 평균기온차가 무려 60도를 넘나드는, 70% 산악지형에 평야도 많지 않은, 사람이 정착하기에는 아주아주 척박한 땅이었다. 식량이 귀한 땅에서 지독한 더위와 추위를 함께 견디며 생존하기 위해서는 뭐든 닥치는 대로 먹어야 했다. 대신 먹고 나서 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면역력과 항균작용이 뛰어난 마늘과 쑥을 양껏 먹어야 했다. 그러므로 백일간 마늘과 쑥을 먹고 곰이 사람으로 변하는 단군신화의 대목은 그냥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기질과 관련된 은유와 시사점을 깊이 내포하고 있다. 마늘의 뒤를 고추가 잇는다. 한국인은 ‘고추가루 서 말 먹고 뻘 속 삼십 리를 가는, 청양고추에 고추장 찍어 먹는 사람들’이다. 고려 현종 때 처음으로 한반도에 ‘우리’라는 정체성이 생겼다. 강대국 요나라(거란)와 30년 전쟁을 치르면서 중국과 다른, 중국에 대항하는 국가(고려)와 군주, 백성이 구체화됐다. 그 중심에는 2차 전쟁의 영웅 양규 장군이 있었다. 때마침 TV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양규 이하 젊은 군인들의 뜨거웠던 조국애와 민족애가 집중 부각됐다. 그들의 결기와 희생 탓에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도 가능했다. 정도전은 비록 이방원(태종)의 칼에 쓰러졌지만 그가 그렸던 국가 설계도가 조선 5백 년을 거쳐 오늘에 흐른다. 바라건대 『한국인의 탄생』을 많은 국민이 읽음으로써 빈부, 세대, 성별, 지역을 넘는 상호 애정을 키우고, 내전 마냥 우려가 깊은 작금의 정치적 대결과 증오, 저주를 깨부수는 대동단결과 화합의 나라로 나아가길 기대해본다. “마늘이 만약 산삼만큼 귀한 식물이었다면 가격이 산삼보다 천 배는 더 비쌀 겁니다.” 어떤 식물학자의 미확인 전언이다. ‘개나발! 개인의 건강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오늘도 마늘과 쑥을 일삼아 많이 먹을 일이다.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숙원사업 해결”… 총선 앞두고 지자체들 공약 발굴 경쟁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숙원사업 공약화에 나서고 있다. 각 정당에 현안 사업을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압박해 정부 정책에 반영하거나 국비를 확보하려는 목적이다. 전북도는 11일 총선 공약사업 133개를 발굴해 각 정당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1대 총선 당시 제안된 125개 사업보다 소폭 늘어난 것이다. 전북의 총선 공약사업은 신산업, 경제, 농생명, 문화·체육·관광, 새만금·균형발전, 지역개발·SOC, 안전, 환경·녹지, 복지, 교육·소통 등 10개 분야다. 사업별로는 지역개발·SOC 35개, 신산업 19개, 문화·체육·관광 17개, 농생명 14개, 새만금·균형발전 13개, 경제 9개 등의 순이다. 주요 사업은 상용차 자율주행 특화단지 구축, 기후 에너지 투자공사 설립, 종자 생명산업 혁신클러스터 조성, 전주 후백제 고도 지정 및 복원, 군산항 3단계 항로준설, 새만금∼정읍∼지리산 고속도로 건설, 전주∼김천 철도망 구축 등이다. 충북도도 공약 발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충북도 실·국은 지난달부터 총선 공약에 반영할 사업을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각 정당에 건의할 현안과 지역구 공약, 도내 11개 시·군 공약으로 나눠 정리해 이달 중에 전달한다. 울산, 전남 등은 의대 설립이 공약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총력전을 펴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가 요구하는 공약을 모두 이행하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해 채택 여부는 미지수다. 전북만 하더라도 공약 이행에 필요한 사업비가 69조 5581억원에 이른다. 전북도 관계자는 “전국 지자체들이 내년 총선 공약에 현안 사업들이 대거 채택될 수 있도록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총선은 지자체가 숙원사업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 순교자들의 피 묻은 돌 위에 세워진 성지, 전주 전동성당 [한ZOOM]

    순교자들의 피 묻은 돌 위에 세워진 성지, 전주 전동성당 [한ZOOM]

    1656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1599~1667)는 “동양의 전통의식인 제사는 우상숭배라고 볼 수 없다”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1715년 클레멘스 11세(1649~1721)가 기존 교황청의 입장을 뒤집고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선언하면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다. 이 혼란은 1939년 비오 12세(1876~1958)가 제사를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선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1791년 전라북도 진산에 살고 있는 양반 윤지충(尹持忠, 1759~ 1791)이 어머니 제사를 천주교식으로 치르고,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불태우는 사건이 일어났다. 종친들이 격렬히 반대했지만, 같은 천주교인이었던 외사촌 권상연(權尙然, 1751~1791)까지 윤지충의 편을 들면서 일은 점점 커져갔다. 결국 윤지충과 권상연은 구속되었고, 두 사람은 유교적 사회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로 참형에 처해졌다.  역사는 이 사건을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해박해(辛亥迫害)’로 기록하고 있다. 내가 왕이 될 상...아니 여기가 왕이 될 땅인가. 전주(全州)는 삼국시대부터 전라도의 중심도시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왕의 성(姓)이 ‘전주 이씨’였기 때문에 전주는 그 어느 도시보다도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해방 후 남북의 초대 지도자였던 이승만(전주 이씨)과 김일성(전주 김씨) 모두 본관이 전주로 알려져 있으며, 견훤(甄萱, 867~936) 역시 전주를 수도로 후백제를 세웠으니,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의 기운이 영험하긴 한 것 같다.  전주 남부시장에서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이제 겨우 11살인 아들이 고개까지 박은 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역시 전주는 발 닿는 모든 곳이 맛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한옥마을 방향으로 걷다가 전주성 남문, ‘풍남문(豐南門)’을 만났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전주성은 원래 한양 사대문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주성의 남문인 풍남문을 보면 한양의 남문 ‘숭례문(남대문)’의 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영조가 화재로 불탄 전주성 남문을 재건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풍패(豊沛)의 남쪽(南)’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풍패는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의 고향이다. 정리하면 조선 태조 이성계 선조의 고향 ‘전주’를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 ‘풍패’로 비유한 것이다.  1900년대 초 일본 통감부는 조선의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이 살 집을 짓기 위해 전국의 모든 성(城)을 허무는 ‘폐성령(廢城令)’을 내렸다. 이후 전국 수많은 성들이 허물어졌고, 성벽의 돌들은 집과 도로를 만드는데 쓰였다. 이때 전주성이 무너졌고 풍남문 역시 크게 훼손되었다. 다행히 1970년대 후반 복원공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순교자의 피 묻은 돌로 지어진 성당 풍남문을 지나 길을 건너면 전주 한옥마을 입구가 나온다. 한옥마을 입구 바로 오른쪽에는 전라도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전동성당(殿洞聖堂)’이 있다. 전동성당은 1791년 유교식 전통을 거부하고 천주교식 장례를 치른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형을 당한 바로 그 자리에 서있다.  두 사람이 참형을 당한 날로부터 100년이 지난 1891년, 프랑스인 보두네(Baudounet) 신부가 이 땅을 사들이고 성당을 지었다. 성당의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을 완공한 경험이 있는 프와넬(Poisnel) 신부가 맡았다. 당시 일제가 폐성령에 따라 전주성을 허물던 시기였기 때문에 전주성에서 나온 흙으로 벽돌을 굽고, 성벽에서 나온 돌로 주춧돌을 세웠다. 전주성의 흙과 돌로 성당을 지은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윤지충과 권상면 외에도 이 자리에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참형을 당했다. 그들의 목은 백성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전주성 성벽에 매달렸고, 순교자들의 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성벽 안으로 새어 들어갔다. 그들의 희생으로 조선에서 천주교가 지켜졌으니, 그들의 피가 묻은 돌을 발판으로 이 땅에 천주교를 일으키기 위한 성전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던 것이다. 전동성당을 떠나며 전동성당 입구와 마당에는 평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 아래 순교자들의 피가 묻은 돌이 이 성당을 받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짧은 생각이었다. 순교자들도, 순교자들이 피를 뿌린 땅에 성당을 지은 신부들도 사람들이 이 곳에서 고통의 역사를 느끼기 보다는,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되찾기를 바랐을 것이다.
  • 전북 내년 국가예산 9조원…특별자치도 시대 연다

    전북 내년 국가예산 9조원…특별자치도 시대 연다

    전북도가 2년 연속 9조원대 국가예산을 확보했다. 전북도는 26일 2024년도 국가예산 9조 163억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도와 정치권, 도민들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내년에는 더욱 특별한 전라북도를 견인하고 새만금사업을 정상화시킬 수 있도록 9조원대 전북 예산을 지켜냈다”고 평가했다.이날 전북도가 밝힌 2024년도 국가예산 확보 현황에 따르면 새만금 SOC 예산은 4513억원이 반영됐다. 새만금 입주기업의 원활한 경영활동과 민간 투자유치를 위한 국제공항, 항만, 고속도로, 지역간 연결도로 사업비가 확보됐다. 이로써 세계 잼버리 파행으로 촉발된 새만금 국가예산 대폭 삭감 사태는 복원 결과로 일단락 됐다. 또 내년 1월 18일 출범하는 전북특별자치도의 초석을 마련한 농생명, 문화관광, 미래첨단, 민생특화, 고령친화 등 5대 핵심산업의 실행 예산을 확보해 글로벌 생명경제 도시 육성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27건의 사업에 1130억원이 반영돼 장기적으로 1조 1221억원의 총사업비가 투입될 기반이 마련됐다. 특히, 주력산업 경쟁력 강화, 기업유치와 일자리 창출 등 전북의 산업 생태계를 혁신할 신규 예산 396건 3330억원이 확보됐다. 이들 사업에는 앞으로 총 4조 1506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전북의 미래 먹거리 산업의 지속 성장을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드시 필요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던 전북권 산재전문 병원 건립, 이차전지 실시간고도분석센터, 식품문화복합 혁신센터 구축, 내수면 창업지원 비즈니스센터 건립, K-문화 콘텐츠지원센터 구축 예산을 정치권, 시·군과 공조해 반영시키는 성과룰 거두었다. 이밖에도 홀로그램 기술 사업화 실증 지원 등 산업·경제예산 6632억원, 그린바이오 소재 첨단분석시스템 구축 등 농생명산업 분야 1조 4126억원, 국립 후백제역사문화센터 건립 등 문화·체육·관광 분야 2809억원, 안전·환경·복지 분야 4조 5304억원 등을 확보해 역점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김 지사는 “도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열망하고 한뜻으로 노력했기에 9조원대 예산 확보가 가능했다”며 “도정의 발전적 진화를 이뤄내 도민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전북특별자치도의 기틀을 반드시 만들어 내겠다”고 강조했다.
  • [정재정의 독사만평] 강남 개발 60년, 서울 재도약의 발판 삼기를/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재정의 독사만평] 강남 개발 60년, 서울 재도약의 발판 삼기를/서울시립대 명예교수

    박정희 정부는 1963년 1월 1일 경기도 12개 면 90개 리를 서울에 편입했다. 서울의 면적은 일거에 268㎢에서 597㎢로 2.2배가량 넓어졌다. 지금 서울 면적이 605㎢이니 현대 서울의 탄생이라 할 만한 획기적 조처였다. 당시 성동구에 들어온 광주군 4개 면은 한수(漢水) 이남, 영동(영등포와 성동의 사이), 남서울 등으로 불렸다. 정부가 이 지역을 본격 개발한 1967년부터 1988년까지도 보통 영동지구라 일컬었다. 강남은 봄철에 날아오는 제비의 고향 곧 양자강 이남을 의미했다. 서울시는 1975년 10월 1일 성동구를 분할해 강남구를 신설하고, 1979년 10월 1일 관악구·강남구 구역을 떼고 붙이며 강동구를 설치했다. 그리고 1988년 1월 1일 강남구와 강동구를 쪼개 서초구와 송파구를 만들었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강남 지역은 이처럼 서울시의 대규모 영역 확장과 빈번한 구역 조정으로 출현했다. 정부와 서울시는 1967년 11월부터 1989년 3월까지 강남 일대에 개발촉진지구 등을 지정하고 택지개발촉진법 등을 시행해 대대적으로 신도시 조성 사업을 벌였다. 이른바 강남 개발이다. 그 결과 허허벌판이던 강남 지역은 60년 만에 서울시 면적의 24%, 인구의 22%를 차지하는 첨단 신시가지로 완전 탈바꿈했다. 서울에서 강남 개발이 지닌 의미는 각별하다. 먼저 안보 불안의 경감이다. 북한군은 6·25 남침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역대 정부는 와신상담의 각오로 강남 개발을 추진했다. 군사적 안목에서 남산에 3개 터널과 한강에 29개 대교를 건설하고 사방으로 지하철망을 구축했다. 중앙 부처와 명문 학교 등도 이전했다. 인구 분산을 위해 지은 강남 아파트는 건축물의 40%를 차지하며 주민의 일상생활은 물론 사고방식까지 혁명적으로 바꿔 놓았다. 강남 개발은 곧 경제 발전이었다. 강남에는 수출 주도 산업화를 견인하는 무역센터를 비롯해 대형 쇼핑몰, 다국적기업, 벤처산업 등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그리하여 강남 지역의 총생산액과 종사자 수는 각각 도성 안의 3배와 1.5배를 넘었다. 개인의 축재에서도 강남은 탁월한 효과를 발휘해 신흥 중산층을 형성했다. 강남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강남은 한국과 서울의 위상을 높이고 인상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주요 무대는 강남이었다. 두 국제행사를 계기로 아름답게 정비된 한강과 그 주변은 서울의 변경에서 품안으로 들어와 시민의 공원이 됐다. 강남의 발전된 모습은 영상을 통해 세계에 알려져 ‘한강의 기적’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싸이의 말춤 ‘강남스타일’은 세계인을 홀렸다. 강남이 이제 지구촌 선망의 대상이 된 증거였다. 또 하나, 강남 개발은 서울의 역사를 수천 년 늘리는 뜻밖의 가치를 창출했다.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등이 서울에 들어옴으로써 서울은 대한민국 70년뿐만 아니라 조선 600년과 백제 500년 수도까지 포괄하는 ‘천년 고도’로 거듭났다. 여기에 암사동 선사유적이 더해져 서울은 생동하는 수천 년 역사도시로서 ‘한강문명’을 세계에 발신하게 됐다. 요즘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포시의 서울 편입 등을 논의하는 모양이다. 통신기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도시의 지리적 경계는 희미해지고, 인재·돈·정보가 유망 대도시로 몰리는 현상이 심해졌다. 도시의 경쟁력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현실에서 서울의 확장은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서울은 이미 강남 개발 60년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아울러 그 강남도 어느덧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서울시는 서울의 영역을 평면적으로만 확장하지 말고 기존 시가지를 포함해 도시 자체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기 바란다. 강남 개발 60년의 노하우를 살려 서울이 재도약하면 좋겠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풀꽃처럼… 인생은 오래 견디며 살 만한 것” [임형주의 임의 동행]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풀꽃처럼… 인생은 오래 견디며 살 만한 것” [임형주의 임의 동행]

    나태주(78)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가을과 겨울의 교차점이었다. 낮에는 따뜻한 볕이 기분 좋게 들었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저녁이 한참 지났을 때는 찬 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시인의 대표작에서 이름을 딴 ‘나태주 풀꽃문학관’은 충남 공주 구도심, 낮은 산자락 아래에 놓여 있다. 백제의 역사가 곳곳에 남아 있는 구도심을 가로지르는 제민천 주변에 고풍스러운 상점들이 자리했다. 겉은 예스러운데 실내에는 세련된 인테리어에 주문용 키오스크도 설치돼 있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달까. 시인의 시를 떠올린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감각은 손주뻘인 젊은 세대의 감성에도 가닿는다. 간결하고도 가슴 울리는 그의 작품에 모두 열광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풀꽃’) 풀꽃문학관 안 온돌방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뜨끈한 차를 마시는 시인의 모습은 마냥 귀여워 보인다. 다른 표현을 쓰고 싶지만 그저 이런 생각뿐. 대체 시인은 어떻게 저리 간단하면서도 애정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시를 썼을까.시인은 2002년 초등학교 교장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교장이었지만 ‘특기적성교육’을 맡아 목요일마다 아이들과 두 시간씩 수업하면서 책을 읽고 노래도 하고 글도 지었다. “어느 날 학교 정원에서 풀꽃 그림을 그려 보라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빨리, 너무 쉽게 그리는 거예요. 그 풀꽃은 실제 풀꽃과 전혀 닮지 않았어요. 아이들에게 종이를 주면서 다시 그려 보라면서 이런 말을 했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워’라고. 복사지를 들고 돌아서서 가는 아이들 뒷모습이 너무나도 예뻐서 그걸 보고 또 말했어요. ‘그래, 너희들도 그렇단다’라고. 교장실로 돌아와 문장을 다듬어 쓴 것이 ‘풀꽃’이었죠.” 그는 “내가 초등학교 선생을 하지 않았다면 쓰지 못할 시이고, 내 앞에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있었다면 쓰지 못했을 시였다”고 했다. 세상이 정한 옳고 그름을 벗어난 아이들이 있어 ‘국민시’가 나왔다. 시인 역시 세상이 정한 기준 속에서 숱한 고민과 열등감을 가졌다고 했다. 교사가 되자는 생각에 공주사범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어떻게 살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때 나름 얻어 낸 답은 ‘시인이 되자’, 그리고 ‘나처럼 살자’였다고 한다. 그런 삶의 자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디에 있든 어떻게 살든 내 삶의 목표는 ‘시인’이었고 ‘나처럼’이었습니다. 43년 교직에 있을 때도 그랬어요. 교직은 생계를 위한 일이었고, 시인은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그러니까 두 손에 하나씩 삶의 과제를 들고 살았던 거예요. 성공이란 건 몰라도 충실히 하고자 노력했어요. 그런 삶 속에서 내가 가진 생각은 ‘인생은 직렬이 아니고 병렬이다’라는 것,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교직에 몸담으며 아이들과 자연으로부터 아름다운 시(詩)타래를 뽑아낸 시인을 보니 행복감마저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요즘의 교권이 떠올라 물었더니 그는 “전쟁터에 젊은 병사들만 남겨 놓고 빠져나온 노병인 듯한 미안함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사들의 절절한 상황과 삶을 내려놓은 일이 전해졌을 때 그들을 위한 시를 썼다며 ‘교사들을 위하여’(사진② 오른쪽)를 낭독해 줬다. “매우 어렵고 심각한 상황이에요. 답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래도 교직은 아름답고 고귀하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앞으로는 조금씩 좋아질 거라는 말, 포기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모두 노력해서 선순환의 세상을 맞이하자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아름다운 풍경화 같은 시를 쓰는 그도 “날마다 삶이 고달프고 쓰라리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 반대의 삶을 희망하고 추구한다. 내 시들은 그런 반대의 노력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댔다. “1970년대의 실연, 1990년대 교직에서의 좌천, 2007년의 병고….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 전환점이 있었고 새로운 인생과 시의 계기를 얻었습니다. 말하자면 나의 시는 고난의 결과물, 씨앗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나의 삶이 무난했고 행복했고 나의 사랑이 잘 이뤄졌고 만족스러웠다면 나는 결코 시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며 밝은 시, 아름다운 시, 사랑의 시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의 시는 내 인생의 반대 상황으로의 표현과 노력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러고는 마음속에 품고 있는 문구를 들려줬다. ‘신은 항상 인간의 등 뒤에 있다. 더러는 인간을 세게 밀어서 넘어뜨리기도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말고 일어나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신의 뜻을 알 때가 온다. 그러므로 인생은 쉽게 포기할 것이 아니고 오래 견디며 살 만한 것이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면서 등단한 시인은 52년간 시집, 시화집, 산문집, 동화집 등 100권이 훌쩍 넘는 책을 냈다. 2010년부터 7년간 공주문화원장을 지냈고, 2020~2022년에는 한국시인협회장을 맡았다. 2014년부터는 풀꽃문학관을 운영하면서 풀꽃 문학상 등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그간의 저서를 엮은 전집을 준비하는 중이고, 그동안 만난 사람들의 기억이 녹아 있는 사진집도 출간 작업을 하고 있다. 강연을 하러 오가는 차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려 올라탄 기차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시작(詩作)을 한다. 왕성한 활동의 원동력이 궁금해 물었더니 그의 시처럼 간결하지만 선명한 답이 돌아왔다. “젊어서는 날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았고, 중년에는 날마다 이 세상 첫날처럼 하루를 맞고 날마다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하루를 정리하면서 살았어요. 노년에는 날마다 욕 안 얻어먹고 밥 안 얻어먹고 살자 했죠. ‘날마다 새날, 날마다 새사람으로 살기’가 변함없는 삶의 목표였어요.” 여기에 주변의 많은 이가 그를 굳건하게 지탱해 줬다고 했다. 어려서는 외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 조금 더 자라서는 친구 몇 사람, 시인이 돼서는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들, 결혼한 뒤에는 아내와 딸, 이제 ‘늙은 시인’이 돼서는 내 시를 읽고 함께해 주는 독자들까지.그는 박목월 시인과 김남조 시인 이야기를 꺼냈다. 박목월 시인은 그가 등단할 당시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를 맡았던 분이고 그 인연을 이어 가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 주기도 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남조 시인을 그는 ‘시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내게 많은 영향과 보살핌을 주신 분”이라며 “세상을 살면서 영감으로 통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내게는 딱 한 분 김남조 선생이 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장 3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끝낸 뒤 그는 방 한쪽에 놓인 풍금을 향해 걸어갔다. 그 시절 초등학교 교실에 있던 작은 나무 풍금 앞에 앉아 ‘고향의 봄’, ‘엄마야 누나야’ 등을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직접 풀꽃문학관 곳곳을 보여 주더니 작은 선물이라며 귀여운 양말과 핸드크림을 건넸다. 먼 길 왔으니 꼭 저녁 식사를 하고 가야 한다며 어느 소박한 만두전골 집에 데려갔다. 만두를 접시에 떠 주는 온정 가득한 모습에 겨울 칼바람도 거뜬히 이겨 낼 뜨거운 감동이 번졌다. 시인의 미소는 할아버지의 따스한 품과도 같았다. 험하고 거친 세상살이 때로는 울며불며 속상하다는 어리광을 부리고 싶을 때, 상처받은 마음 다 알고 있다는 듯 우리를 위무하는 그 작품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공주의 남자’ 나태주 시인의 시는 ‘사람’을 향해 있었다.교사들을 위하여 - 나태주 43년 교직에 머물다 물러난 사람으로 교직에 있는 젊은 교사들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 마치 전쟁터에 젊은 동지들만 남겨 놓고 저 혼자만 빠져나온 듯한 마음 왜 아니리 그대들 머무는 그곳이 바로 생명의 전쟁터 사랑의 전쟁터 인간의 전쟁터 그대들 물러서면 안 된다 그대들마저 지면 안 된다 그대들이 마지막 보루다 그대들 견디어 낼 때 이 세상에 인간의 꽃이 피어나고 평화와 사랑도 피어날 것이다. 2023.7.17.
  • “점 빼려다가 피부가 녹았습니다” 日 발칵…‘알리’서 산 크림 뭐길래

    “점 빼려다가 피부가 녹았습니다” 日 발칵…‘알리’서 산 크림 뭐길래

    중국 직구 사이트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일명 ‘점 빼기 크림’을 구매했다가 피부가 괴사하는 사례가 일본에서 다수 발생해 현지 당국은 주의를 당부했다. 지난 13일 일본 국민생활센터(NCAC)는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광고하는 ‘점 연고’ 크림을 얼굴에 발랐다가 화학 열상을 입는 사례가 5건이 보고됐고 이 중 4건에서 심각한 피부 손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한 70대 여성은 지난 5월 이마에 난 점에 이 크림을 발랐다가 피부색이 변하고 일부가 괴사하는 피해를 당했다. 이 여성은 제품 사용법을 따라 점 위에 크림을 약 20분가량 방치했는데, 피부가 붉어지며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소비자도 지난 6월 이 크림을 얼굴 점에 발랐다가 즉시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피부에 화상을 입었다. 한 50대 여성은 지난 7월 이 크림을 면봉에 덜어 코 주위 얼룩과 점에 세게 문질러 발랐다가 화상을 입었다.문제가 된 제품은 연회색의 크림으로 피부에 바르면 점·사마귀·기미 등이 제거된다고 SNS에서 광고하고 있다. NCAC가 해당 크림을 회수해 검사한 결과, pH 14 수준의 강알칼리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물은 pH 7로 중성인데, 해당 크림은 양잿물 수준으로 강한 부식성을 지닌 것이다. 크림의 주요 성분은 산화칼슘과 수산화나트륨이었다. 산화칼슘은 강한 알칼리성 물질이라 피부·점막을 상하게 해 흡입만 해도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보통 석회비료, 건조제, 시멘트, 표백제 등의 용도로 쓰인다. 수산화나트륨은 대표적인 강염기 물질에 속해 주의가 필요한 물질이다. NCAC 측은 “이 크림은 피부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으며, 눈에 들어갈 경우 심각한 눈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며 “SNS상에서 확인되지 않은 의약품이나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 송파구, 겨울방학 맞아 7개 박물관 스탬프 투어 ‘박물관 나들이’ 개최

    송파구, 겨울방학 맞아 7개 박물관 스탬프 투어 ‘박물관 나들이’ 개최

    서울 송파구는 겨울방학을 맞아 오는 22일부터 내년 2월 25일까지 관내 7개 박물관과 함께 가족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송파구 박물관 나들이’를 개최한다고 18일 밝혔다. ‘송파구 박물관 나들이’는 송파구에 위치한 박물관들이 협업해 방학마다 운영하는 전시 체험프로그램이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롯데월드민속박물관 ▲문화실험공간 호수 ▲소마미술관 ▲송파구립 예송미술관 ▲송파책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 ▲한국광고박물관 등 7개 박물관이 참여한다. 송파구 박물관 나들이는 스탬프투어 방식으로 운영한다. 박물관마다 역사, 미술, 광고 등 모두 다른 주제의 전시를 진행하고 있어 더욱 유익하다. 롯데월드민속박물관의 ‘왁자지껄! 살아있는 박물관 원데이 역사체험’, 송파책박물관의 ‘웰컴투 조선’ 등 각 박물관의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참여방법은 7개 박물관에서 리플릿 및 교육교재로 활용하는 ‘감상활동지’를 지참하고, 각 박물관 별 프로그램에 참여해 확인 도장을 받으면 된다. 모두 참여하면 방문 순서에 상관없이 마지막 박물관에서 공식 수료증을 제공한다. 이 수료증은 추후 학교 겨울방학 과제로 인정받을 수 있다.특히 이번 ‘송파구 박물관 나들이’는 개최 30회를 기념해 체험키트 이벤트를 준비했다. 신청자 중 30명을 추첨해 박물관마다 전시 내용에 맞게 구성한 체험 키트를 제공할 예정이다. ▲문화실험공간 호수-크리스마스 오너먼트 ▲소마미술관-그래피티아트 ▲송파책박물관-페이퍼플라워 ▲한성백제박물관-칠지도 만들기 등이다. 신청은 18일부터 서울시공공예약시스템에서 접수 가능하다. 박물관별 운영하는 기획 전시나 체험 활동 일정이 다르기 때문에 방문 전 홈페이지를 확인해야 한다. 한편 송파구에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문화전시 공간이 더욱 확충되고 있다. 2024년에는 올림픽공원 내 위치한 몽촌역사관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로운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며, 국내 최초 체육사 박물관인 국립체육박물관도 오는 2026년 개관을 앞두고 있다.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많은 어린이들이 송파구 박물관에 방문해 역사, 고고학, 민속, 미술 등 다채로운 문화를 체험하며 알찬 방학을 보내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송파구 곳곳의 유관시설과 연계하여 특색있는 기획전, 프로그램 등을 발굴하여 색다른 문화체험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전했다.
  • 휘도는 용의 기세…휘감는 꿈의 기운

    휘도는 용의 기세…휘감는 꿈의 기운

    충남 홍성 용봉산(381m). 이름 한번 거창하다. 야트막한 산인데도 ‘용’(龍)과 ‘봉’(鳳) 등 전설적인 동물들을 이름으로 삼았다. 안내판은 이름의 유래를 이렇게 적고 있다. “산세가 운무 사이를 휘도는 용의 형상과 달빛을 길어 올리는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용봉산이라 부른다.” 새해는 푸른 용의 해다.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으면서 용의 기운까지 받을 수 있는 산을 찾고 있다면 용봉산이 제격이다. 봉우리마다 기암을 이고 있어 ‘작은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용의 형상과 봉황 머리를 닮았다’ 용봉산은 말 그대로 가성비가 좋은 산이다. 짧고 굵다. 가파르지만 위험하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산은 작은데 등산 코스는 여럿이다. 용봉초등학교를 출발해 투석봉과 정상, 노적봉, 악귀봉 등을 찍는 종주 산행은 4~5시간 정도 소요된다. 여행 삼아 용봉산을 찾은 이들에겐 다소 긴 코스일 수 있다. 용봉산자연휴양림을 출발해 정상만 찍고 오는 이들도 있다. 이 경우 소요 시간도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한데 너무 야박하다.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용봉산의 정수를 돌아보려면 노적봉과 악귀봉까지는 다녀와야 한다. 용봉산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3시간 남짓 걸리는 코스다. 용봉산을 찾는 산객들 대부분이 이 코스로 오른다. 코스가 그리 길지 않아 출근 전에 운동 삼아 오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이번 산행의 들머리는 용봉산자연휴양림이다. 휴양림 숙박객은 물론 등산객을 위한 주차장 등 각종 시설이 잘 갖춰졌다. 하늘엔 아직 별이 총총이다. 부지런히 오르면 용봉산 정상에서 해가 돋는 광경과 마주할 수 있다. 물론 사위가 캄캄할 때 단독 산행에 나서는 것이 마뜩잖은 이도 있을 터다. 한데 용봉산엔 새벽 산행을 즐기는 이들이 은근히 많다. 혼자 산에 오르는 걸 겁낼 필요 없다. 두런거리며 앞서가는 이들을 자박자박 따르다 보면 금세 정상이다. 용봉산은 조금만 올라도 하늘이 트인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내포신도시가 펼쳐져 있다.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한 신도시다. 도시의 가로등과 아파트 불빛 등이 어우러져 제법 볼만한 풍경을 펼쳐낸다. 다가오는 ‘푸른 용의 해’ 마중할까노적봉~악귀봉 기암괴석 줄줄이바위 틈엔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 ●새벽 산행 자박자박 걷다 보니 정상 용봉산 정상까지는 줄곧 오르막이다. 평소보다 더 자주, 더 길게 쉬며 오른다. 땀을 내지 않기 위해서다. 겨울 산행에선 가급적 땀을 흘리지 않는 게 좋다. 땀이 식으면서 체온도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용봉산 정상까지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쉬엄쉬엄 걸어도 그렇다. 정상에서 산객을 맞는 건 이른바 ‘길냥이’들이다. 랜턴을 비추면 수십 개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먹이를 던져 주는 산객이 많아 정상 일대를 거처로 삼은 듯하다. 용봉산 정상은 사실 표지석 외에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하이라이트는 노적봉에서 악귀봉으로 향하는 암릉길이다. 불과 300여m 거리지만 사자바위, 물개바위 등 기암괴석이 줄줄이 이어진다. 정상에서 노적봉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된다. 노적봉 아래 바위에는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가 뿌리박고 있다. 이른바 ‘용봉산의 보물’이라 불리는 소나무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생명력이 놀랍다. 분재처럼 앙증맞은 크기지만 수령이 100년을 넘나든다고 한다. 이처럼 자연엔 어느 하나 만만히 볼 게 없다. 여기부터 암릉 산행은 절정을 이룬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이어지고 거대한 바위 군락을 넘어설 때마다 색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예산의 덕숭산, 서산의 가야산, 내포평야가 시원스럽게 다가오고 동쪽으로 금마천과 삽교천이 느릿하게 흐른다. 악귀봉은 봉우리 전체가 기암괴석의 집합체다. 행운바위, 물개바위 등 용봉산에서 유명한 바위들은 죄다 여기 모인 듯하다. 악귀봉을 내려서면 임간휴게소다. 여기서 용바위를 거쳐 신경리 마애석불로 내려선다. 마애석불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홍진세계에서 온 중생을 토닥거리기라도 하는 듯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다. 홍주읍성 등 문화유적 둘러보고남당전망대 눈부신 ‘장밋빛 노을’갯벌서 방금 캔 석화는 탱글탱글 ●신경리 마애석불, 나를 토닥거리네 병풍바위를 등지고 용봉사가 단아하게 앉아 있다. 개창 연대는 백제 말로 거슬러 오르지만, 여러 전란과 화마를 거친 탓에 1905년 새로 지어 올렸다고 한다. 절집은 소박하다. 대웅전엔 조선 숙종 때 제작된 ‘영산회괘불탱화’(보물)가 보관돼 있다. 지방의 소도시지만 홍성엔 뜻밖에 문화 유적이 많다. 대부분 읍내 중심부에 몰려 있어 돌아보기도 수월하다. 홍주읍성부터 간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옛 성벽이다. ‘홍주’는 홍성의 옛 이름이다. 홍주읍성의 성벽 둘레는 축성 당시 1772m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은 800m가량 남았다. 읍성 안에 있던 옛 관아 건물과 성곽 문루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 파괴됐다. 조양문과 군청 정문처럼 쓰이는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 등이 복원돼 남아 있다. 홍주아문 옆엔 해마다 성탄 트리가 세워진다. 고색창연한 조선시대 유적과 현란한 성탄 트리가 제법 잘 어울린다. 홍성 주민들의 인증샷 명소이기도 하다. 이제 홍성의 바다로 나간다. 서해 쪽이다 보니 아무래도 해넘이 풍경이 빼어난 공간들이 많다. 요즘 가장 ‘힙’한 노을 명소는 세 곳이다. 남당노을전망대는 남당항 바로 옆에 있다. 해 질 무렵이면 해변의 모래들이 노을빛을 받아 붉게 물든다. 옅은 장밋빛이라 해야 할까. 아무튼 이 느낌이 참 좋다.●연인 조형물 ‘행복한 시간’ 핫플로 바로 이웃한 어사리 노을공원은 요즘 핫플로 뜬 곳이다. 연인의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 ‘행복한 시간’ 덕에 요즘 한창 사진 명소로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노을공원 바로 아래에 주민 공동작업장이 있다. 해거름에 갯일 마치고 돌아오는 어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갯벌에서 방금 캔 석화도 살 수 있다. 속동전망대는 뭍과 바짝 붙은 섬에 조성한 전망대다. 요즘 홍성 스카이 전망대 공사가 한창이다. 홍성엔 역사책에서 자주 봤던 위인들의 탄생지가 많다. 홍성 북쪽의 홍북읍은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이웃한 노은리엔 조선 초의 충신 성삼문 유허지가 있다. 독립투사들의 유적지는 ‘홍성 8경’으로 지정해 알리고 있다. 그만큼 이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이 강하다는 방증일 터다. 홍성 서쪽엔 한용운(3경), 김좌진(7경) 생가지가 이웃해 있다. ‘만주벌 호랑이’ 김좌진 장군은 저 유명한 ‘청산리 대첩’을 이끈 독립투사다. 갈산면 행산리에 그의 생가와 기념관, 사당 등이 조성돼 있다. 인접한 결성면에선 만해 한용운이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작성하고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하는 등 저항문학에 앞장선 인물이다. 생가 주변에 민족시비공원, 만해문학체험관 등이 있다. ■ 여행수첩 산행의 피로는 온천에서 푼다. 용봉산에서 예산 덕산온천이 지척이다. 스플라스 리솜은 용출온도가 약 50℃에 달하는 온천수를 활용해 워터파크, 스파, 리조트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 휴식 공간이다. 오는 24일 ‘비보이 산타 스페셜 공연’, 31일 ‘굿바이 2023 스페셜 공연’ 등도 선보인다.
  • 60년 전 시민들이 만든 전주종합경기장, 5년 후 마이스 복합단지로 재탄생된다

    60년 전 시민들이 만든 전주종합경기장, 5년 후 마이스 복합단지로 재탄생된다

    60년 전 시민들의 성금으로 만든 전북 전주종합경기장이 마이스산업 복합단지로 재탄생한다. 시설 노후화로 활용이 어려워져 10여년 간 방치됐던 전주종합경기장 부지에 전주시와 민간 사업자인 롯데쇼핑(주)가 오는 2028년까지 1조 3000억원을 투입해 대규모 전시컨벤션센터를 포함한 복합단지로 만들 것을 약속하면서 개발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전주시는 13일 전주여성가족재단 대강당에서 우범기 전주시장과 정준호 롯데쇼핑(주) 대표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전주 종합경기장 MICE 복합단지 개발사업 변경 협약 체결에 따른 민·관 협력 공동선언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번 선언은 시와 롯데쇼핑(주)이 최근 체결한 종합경기장 부지개발 사업 시행 변경 협약의 연장선이다. 특히 이번 변경 협약서에는 사업 기간(협약체결일로부터 66개월)과 착공 기한(협약체결일로부터 30개월)이 명시돼 실행력을 담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협약 주요 내용은 기존 ‘종합경기장 이전사업’에서 ‘종합경기장 마이스(MICE) 복합단지 개발 사업’으로의 변경이 핵심이다. 전주시와 롯데쇼핑(주) 측은 기존 제1종 육상경기장과 야구장에서 전시컨벤션센터로 변경하고, 수익시설은 호텔과 백화점, 쇼핑몰에서 쇼핑몰을 제외한 호텔과 백화점으로 바꾸기로 했다. 또 사업방식도 애초 종합경기장 전체 부지(12만715㎡) 중 53%(6만3786㎡)를 민간 사업자에 넘겨주는 ‘기부 대 양여’ 방식에서 종합경기장 전체 부지의 27%(3만3000㎡)를 롯데쇼핑에 변제하는 ‘대물 변제’ 방식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민간사업자인 롯데쇼핑(주)이 2만㎡ 규모의 전시장을 갖춘 대규모 전시컨벤션센터(3000여억원)을 지어 전주시에 공공시설로 기부채납한다. 이후 시는 종합경기장 전체 부지의 27%인 3만 3000㎡를 대물로 변제하고, 롯데쇼핑(주)는 전시컨벤션센터를 지원하는 4성급 호텔과 판매시설(5000여억원)을 건립하게 된다. 시는 종합경기장 부지에 ▲글로벌 MICE 산업 핵심 거점 공간 ▲새로운 문화예술 거점 공간 ▲메타버스 융복합 청년 스타트업 공간 ▲시민을 위한 도심 속 열린 광장 등 4가지 비전의 총 6개 전시·회의·문화·예술·교육·창업시설을 집적화할 계획이다.현재 변경된 협약 내용에 따라 전시시설 건립계획에 대한 산업통상자원부와의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시는 내년 1월 중 전시컨벤션센터 건립 타당성조사(지방행정연구원)와 도시관리계획 변경 등을 위한 용역을 병행해 실시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추진에 나설 방침이다. 아울러 시는 종합경기장 부지 내 대규모 밀집 시설 건립에 따른 교통 대책으로 백제대로에 지하차도를 설치해 교차로와 주변 도로의 교통 소통도 개선키로 했다. 지하차도 상부에는 열린 광장을 조성해 가맥·음식 축제와 공연·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를 상시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정준호 롯데쇼핑(주) 대표이사는 “롯데쇼핑과 전주시가 힘을 합쳐 건립할 전시컨벤션센터는 향후 지역특화 전시·회의 유치 등의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마이스 복합단지가 전주와 전북지역의 랜드마크로서 전주시의 발전과 경제 활성화를 선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종합경기장 부지가 마이스산업 거점으로 탈바꿈되면 기업 유치와 지역 특화산업 발전을 위한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산업 거점 공간으로서의 몫을 다 하겠다”며 “향후 경제적 파급효과와 고용 창출 등으로 이어져 뒤처진 지역경제를 되살리고 전주가 국제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돼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 유기견 볼일 보다 도화선 불 껐다…다이너마이트 테러 막은 사연 [여기는 남미]

    유기견 볼일 보다 도화선 불 껐다…다이너마이트 테러 막은 사연 [여기는 남미]

    폭탄테러 타깃이 된 페루의 일가족이 기적처럼 참변을 모면했다. 아찔한 위기에서 가족을 구한 주인공은 동네 유기견이었다. 페루의 대도시 트루히요에서 최근 발생한 사건이다. 단독주택에 사는 피해 여성 주민은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서다가 정문 앞에 놓여 있는 물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닥에 놓여 있는 건 영화에서나 봤던 다이너마이트였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피해자는 “태어나서 처음 봤지만 다이너마이트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면서 “다이너마이트에는 심지(도화선)까지 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기겁을 한 피해자는 바로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 폭발물 처리반까지 출동하는 등 난리법석이 벌어진 뒤에야 피해자와 가족을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경찰은 “도화선에 불이 붙어 폭발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태였지만 누군가 도화선의 불을 껐다”고 했다. 폭발을 막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감식 결과 도화선에 불을 끈 건 동네에 사는 유기견이었다. 도화선은 젖은 상태였고 바닥엔 유기견의 소변이 고여 있었다. 피해자 가족은 테러를 수포로 돌아가게 한 유기견을 잘 알고 있었다. 현지 언론이 ‘영웅’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유기견은 평소 피해자의 자택 정문에 실례를 하는 일이 잦았다. 피해자는 “유기견이 거의 매일 문에다 볼일을 보는 바람에 (유기견을 쫓기 위해 문에) 표백제를 뿌리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날 피해자 가족은 문에 표백제 뿌리는 걸 깜빡했다고 한다. 유기견은 표백제 냄새가 나지 않는 문을 찾았고 볼일을 봤는데 마침 타들어가고 있던 다이너마이트 도화선의 불을 끈 것이다. 경찰은 “다이너마이트 도화선에 타던 자국이 남아 있다”면서 “개가 다이너마이트인 줄 알고 도화선 불을 껐을 리는 없지만 기적 같은 일이었고 영웅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폭탄테러를 당할 뻔한 피해자와 일가족은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피해자는 “갱단으로부터 협박이나 경고를 받은 일도 없고 누군가의 원한을 산 적도 없다”면서 “왜 우리 일가족을 노렸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협박으로 돈을 뜯어내기 위해 갱단이 본보기로 삼았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사 관계자는 “폭탄테러를 감행한 후 비슷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피해자는 돈을 쉽게 내놔 갱단으로선 범행이 훨씬 쉬워진다”고 말했다.
  • 진흙 구덩이서 찾은 ‘국보 중의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

    진흙 구덩이서 찾은 ‘국보 중의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

    1993년 12월 12일.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군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진흙에 파묻힌 유물 하나가 발견됐다. 높이 61.8㎝,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는 흙더미 속에서도 존재감을 뽐냈고 이 유물이 얼굴을 드러내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1500여년 전의 백제 예술의 정수가 담긴 백제금동대향로는 그렇게 뜻밖의 방식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듬해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인 이 향로를 보기 위해 2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6만 8000여명이 찾았을 정도로 관심이 남달랐다. 당시 명칭은 백제 금동용봉봉래산향로. 지금은 사라진 국보 지정번호로는 제287호였던 이 유물은 백제 미술사와 고고학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12일 발굴 30주년을 맞은 금동대향로는 ‘국보 중의 국보’로 평가받는 유물이다. 오랜 세월에도 옛 자태를 잃지 않은 모습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줬고 들여다볼수록 감탄하게 되는 세밀함은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창적인 매력을 뽐냈다. 금동대향로는 유려한 동작을 보여주는 용이 받침을 이뤄 무거운 향로를 짊어지고 있다. 그 위로는 활짝 피어난 연꽃을 떠올리게 하는 몸체가 있고 23개의 산이 4~5겹으로 된 뚜껑과 그 위에 봉황이 배치됐다. 향로 정상의 봉황은 막 비상하려는 듯 날개와 꼬리를 거의 50도 가량으로 펼친 모습이다.향로에 표현된 86개 얼굴은 목을 앞으로 길게 빼고 있는 모습의 새, 무예의 한 동작을 묘사하는 듯한 사람, 세로줄 무늬가 돋보이는 호랑이, 날개 달린 상상 속 동물 등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신나현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연꽃잎 한 장, 산봉우리 하나마다 생생하게 담긴 86개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백제인이 꿈꾼 이상세계의 평온함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동대향로는 당대 백제 문화를 보여주는 집약체로 여겨진다. 벌집과 소기름을 섞은 밀랍 덩어리를 녹여 여러 도상을 새기거나 붙이는 방식인 밀랍 주조법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늘날에도 이런 방식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공기를 빨아들이는 구멍 5개와 연기를 뿜어내는 구멍 7개 등 총 12개의 연기 구멍 가운데 일부 크기를 수정한 점에서는 당시 백제인들의 정교한 공예 기술도 엿볼 수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발굴 30주년을 맞아 기획전시실에서 향로의 의미를 되새기는 특별전 ‘백제 금동대향로 3.0-향을 사르다’를 내년 2월 12일까지 전시한다.발굴 30주년을 맞아 박물관은 이날 고유제(어떤 일에 대한 사유를 신령에게 고하는 제사)를 봉행했다. 이날 현장에는 30년 전 백제금동대향로 발굴의 주역들인 신광섭 전 백제문화제재단 대표이사(당시 국립부여박물관장 겸 조사단장), 김정완 전 국립대구박물관장(당시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겸 책임조사원), 김성명 전 국립제주박물관장(당시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사 겸 조사원), 김종만 충청문화재연구원장(당시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사 겸 조사원), 진성섭 세종문화재연구원 부원장(당시 국립부여박물관 연구원 겸 보조원) 등이 참석해 3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 美 “중국산 마늘이 안보 위협”…中 “뱀파이어도 아니고” 응수[핫이슈]

    美 “중국산 마늘이 안보 위협”…中 “뱀파이어도 아니고” 응수[핫이슈]

    중국산 마늘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이 미국에서 나오자 중국이 '뱀파이어'를 언급하며 응수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인 더 힐 등에 따르면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미 상원의원(공화당, 플로리다주)인 릭 스콧은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산 수입 마늘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콧 상원의원은 “중국은 마늘 재배시 인분을 비료로 사용하고, 하수를 이용해 물을 주는 등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마늘을 키운다. 또 표백제를 이용해 마늘을 하얗게 만들기도 한다”면서 중국산 마늘을 ‘오물(sewage) 마늘’이라고 표현했다.이어 “중국의 마늘 재배 과정은 온라인에 업로드 된 영상이나 각종 요리 블로그 등에 ‘잘 문서화 돼 있다’”면서 “식품 청결과 안전은 생존과 관련한 긴급 상황이며, 이는 우리의 국가 안보, 공중 보건, 경제 번영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면서 무역확대법을 언급했다. 스콧 상원의원이 언급한 무역확대법에는 특정 수입품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마늘에 대한 근거없는 두려움…시대에 뒤떨어져” 스콧 상원의원의 주장을 접한 중국 관영언론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며 곧장 사설을 통해 반박 기사를 내보냈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11일 사설에서 “뱀파이어에 관한 서양 전설을 제외하고, 마늘에 대한 이런 근거 없는 두려움을 갖는 사람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비꼬았다.이어 “중국의 마늘이 사람의 배설물로 키워지고 시궁창에서 재배되었다는 주장은 스콧과 다른 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상상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졌는지를 보여준다”면서 “중국은 사용되는 비료와 관개수뿐만 아니라 대기질까지 포함하는 수출 마늘 안전 기술 재배 표준을 엄격히 준수한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과 관련된 문제를 광범위하게 안보화하는 미국의 경향은 가장 작은 문제도 충분한 증거 없이 국가 안보와 연결되도록 허용함으로써 일부 반중 정치인들이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서 이번 마늘 논란을 ‘중미 관계의 냉혹한 현실 반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아동 친화’ 송파 돌봄시설, 장관 표창 영예

    ‘아동 친화’ 송파 돌봄시설, 장관 표창 영예

    서울 송파구는 보건복지부가 주최하고 아동권리보장원이 주관하는 ‘2023년도 전국 돌봄시설 공모전’ 평가에서 기관 부문 최고 훈격인 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평가에서 구는 송파키움센터가 2023년 한 해 동안 진행한 ▲송파구 역사·문화 명소를 탐방하고 체험하는 ‘송파문화여행’ ▲10월 개최한 아동 공연발표회 ‘키움문화 페스티벌’ 등 돌봄시설 프로그램 운영 성과를 인정받아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특히 ▲한성백제왕도길 탐방 ▲송파산대놀이 탈춤 체험 등 구만의 스토리를 담아 지역 특성을 활용한 프로그램 운영이 큰 성과로 꼽혔다. 학부모들을 초청해 아동들이 키움센터 활동을 통해 성취한 내용을 공연 및 전시로 발표하는 등 공적 돌봄 만족도 제고와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점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이 외에도 구는 지난 11월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 어린이 꿈축제 상상플레이 경연’에서 대상을 받았다.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앞으로도 다양한 지원 정책을 마련해 우리 아동, 청소년들이 어려움 없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 송파구, 전국 돌봄시설 공모전 복지부장관 표창…아동친화도시 인정

    송파구, 전국 돌봄시설 공모전 복지부장관 표창…아동친화도시 인정

    서울 송파구는 보건복지부가 주최하고 아동권리보장원이 주관하는 ‘2023년도 전국 돌봄시설 공모전’ 평가에서 기관 부문 최고 훈격인 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고 11일 밝혔다. 아동 친화 도시의 위상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번 평가에 구는 송파키움센터가 2023년 한 해 동안 진행한 ▲송파구 역사·문화 명소를 탐방하고 체험하는 ‘송파문화여행’ ▲지난 10월 개최한 아동 공연발표회 ‘키움문화 페스티벌’ 등 돌봄 시설 프로그램 운영 성과를 인정받아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특히 ▲한성백제 왕도길 탐방 ▲송파산대놀이 탈춤 체험 등 구만의 스토리를 담아 지역 특성을 활용한 프로그램 운영이 큰 성과로 꼽혔다. 학부모들을 초청하여 아동들이 키움센터 활동을 통해 성취한 내용을 공연 및 전시로 발표하는 등 공적 돌봄 만족도 제고와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점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이외에도 구는 지난 11월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 어린이 꿈축제 상상플레이 경연’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가락2동 송파키움센터 아동 15명이 참가해 미래 쓰레기 매립문제를 우주공간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을 재활용품 로켓을 형상화하여 공연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아 대상에 선정됐다. 현재 송파키움센터는 지역 중심의 돌봄체계를 구축하고 방과 후부터 귀가 전까지의 틈새 돌봄, 맞벌이 가정을 위한 저녁 돌봄, 토요 돌봄 등을 운영해 초등가정의 양육부담을 완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구는 이달 중 풍납지역 키움센터 1개소를 확충해 총 19개소 키움센터 운영으로 관내 초등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힘쓸 예정이다.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 발달을 위해 일선에서 힘쓰고 계시는 송파키움센터 종사자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지원 정책을 마련해 우리 아동, 청소년들이 어려움 없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전했다.
  • 군산 “1900년대부터 관리” vs 김제 “고조선 후부터 관할”

    1918년 총독부 지형도에 첫 경계1976년 고군산군도 군산시 관할로2005년 지형도엔 해양경계선 없어군산 주장에 김제 “일제 유물 청산”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김제시 관할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습니다” “1900년대 들어 100년 넘게 충남 서천 남쪽부터 전북 부안 격포 앞바다까지 모두 군산시 해역입니다” 전북 김제시와 군산시가 새만금지구 관할권을 놓고 치열한 영토 분쟁을 벌이는 가운데 고군산군도 역사와 해상경계선 변천 과정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군산군도는 군산시 남서쪽 바다에 63개로 이루어진 섬의 무리다. 고려시대에 수군진영을 두고 ‘군산진’이라 불렀다. 조선 세종 때 진영이 육지로 옮겨지면서 지명까지 가져가 이 섬들은 옛 고(古)자를 앞에 넣어 고군산군도로 부르게 됐다. 고군산군도는 새만금 사업으로 일부 해역이 육지로 변하자 관할권 다툼이 벌어졌다. 군산시는 고군산군도를 포함한 현재의 해상경계선이 새만금 관할권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상경계선은 1914년 일제 강점기에 그어졌다. 1918년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지형도에 처음 나타난다. 이후 1976년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에서도 고군산군도 근해는 해상경계선 기준으로 군산시 관할이다. 하지만 2005년 발행된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해양경계선을 표시하지 않았다. 이에 김제시는 해상경계선은 청산해야 할 일제 강점기 유물이라고 반박한다. 김제시는 ‘고군산군도의 역사와 해상경계선의 변천 과정’이라는 책자를 통해 “고군산 군도는 삼국시대부터 1697년 동안 김제시 관할이었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 고문서와 고지도를 제시했다. 김제시에 따르면 고군산군도는 고조선 멸망 이후부터 통일신라 경덕왕 이전까지 633년(108년~741년) 동안 백제의 두내산현(당시 만경 명칭) 관할이었고, 통일신라시대 275년 동안은 김제군 관할 만경현에 편입돼 있었다. 고려시대인 1018년부터 1105년까지 87년 동안은 임피현 속현의 만경현이다. 1106년 속현에서 분리된 뒤부터 조선시대 갑오경장 이전인 1895년까지 789년 동안 독자적으로 만경현 땅이었다.
  • 삼국시대부터 우리 땅, 고군산군도 역사 전쟁

    삼국시대부터 우리 땅, 고군산군도 역사 전쟁

    “고군산군도(古群山 群島)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김제시 관할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습니다” “1900년대 들어 100년 넘게 충남 서천 남쪽부터 전북 부안 격포 앞바다까지 모두 군산시 해역입니다” 전북 군산시와 김제시가 새만금지구 관할권을 놓고 치열한 영토 분쟁을 벌이는 가운데 고군산군도 역사와 해상경계선 변천 과정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6일 전북도에 따르면 고군산군도는 군산시 남서쪽 바다에 63개 섬으로 이루어진 섬의 무리다. 고려시대에 수군진영을 두고 ‘군산진’이라 불렀다. 조선 세종 때 진영이 인근 육지로 옮겨지면서 지명까지 가져가 이 섬들은 옛 고(古)자를 앞에 넣어 고군산군도로 부르게 됐다.고군산군도는 새만금 사업으로 일부 해역이 육지로 변하자 관할권 다툼이 벌어졌다. 군산시와 김제시는 과거와 현재의 고군산군도 역사, 해상경계선 변천 과정을 바탕으로 관할권을 주장한다. 역사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군산시는 고군산군도를 포함한 현재의 해상경계선이 새만금 관할권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상경계선은 1914년 일제 강점기에 그어졌다. 1918년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지형도에 처음 나타난다. 이후 1976년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에서도 고군산군도 근해는 해상경계선 기준으로 군산시 관할이다. 하지만 2005년 발행된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경계 분쟁의 근원이 된 해양경계선을 표시하지 않았다. 이에 김제시는 해상경계선은 청산해야 할 일제 강점기 유물이라고 반박한다. 김제시는 ‘고군산군도의 역사와 해상경계선의 변천 과정’이라는 책자를 통해 “고군산 군도는 삼국시대부터 1697년 동안 김제시 관할이었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 고문서와 고지도를 제시했다. 고군산군도는 고조선 멸망 이후 통일신라 경덕왕 이전 633년(108년~741년) 동안 백제의 두내산현(당시 만경 명칭) 관할이었고 통일신라시대 275년 동안은 김제군 관할 만경현에 편입됐다고 주장한다. 다만 고려시대인 1018년부터 1105년까지 87년 동안은 임피현 속현의 만경현이다. 그러나 1106년 속현에서 분리돼 조선시대 갑오경장 이전인 1895년까지 789년 동안 독자적으로 만경현 땅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이 군산시와 김제의 주장이 맞서는 가운데 대법원이 2013년 해상경계선을 관할권의 기준으로 삼았던 관습법적 효력을 뒤집는 판결을 해 새만금 관할권 결정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 ‘30년 숙원’ 전철 1호선 개통…연천, 사통팔달 교통 요지로[연천&양주-발품 행정 척척 새해 설계 착착]

    ‘30년 숙원’ 전철 1호선 개통…연천, 사통팔달 교통 요지로[연천&양주-발품 행정 척척 새해 설계 착착]

    경기 연천군은 한반도 허리에 있으며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과 평화 생명이 공존한다. 6·25 전쟁 전에는 원산~서울을 잇는 주요 길목 도시였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요충지였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뱃길로, 일제강점기에는 기찻길로 번화했다. 서울~원산을 연결하는 좁고 길며 낮은 골짜기인 추가령지구대는 주요 교통로였다. 뱃길과 경원선 철도도 이곳을 따라 났다. 뱃길이 쇠퇴하고 경원선이 단절되면서 쇠락했으나 관광객이 몰려들고 경원선은 전철로 다시 태어난다. 5일 김덕현(66) 연천군수로부터 지난 한 해 성과와 새해 설계를 들어봤다.-올해 군정 성과를 평가해 달라. 사통팔달 교통 구현이었다. 지난 30년 숙원 사업인 경원선 전철 1호선이 오는 16일 개통한다. 지난 5월 국도 3호선 우회도로가 개통됐다. 구불구불하던 길이 직선 터널로 펴지면서 20분 이상 단축돼 경제적 효과를 누리게 됐다. 평생복지 보장도 약속했다. ‘군민들이 떠나는 연천이 아니라 살고 싶은 연천’을 만들기 위해서다. 인구유입과 투자유치를 위해 인구정책실도 신설하고 국회나 중앙부처를 향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할 서울사무소도 개설했다. 그 결과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기회발전 특구법에 연천이 포함될 수 있게 개정된 법안이 5월 국회를 통과했다. 인구감소 지역과 접경지역이란 약점이 강점으로 전환하는 대변혁의 시기를 맞았다. 그래서 지난달 7일 양주·포천·동두천·가평 등 4개 지역 시장 군수와 지역 국회의원들이 우리 지역에 와서 상생 협약식을 갖게 됐다. 각종 정부 공모사업에 참여해 전년보다 48% 더 많은 예산을 타 왔다. -새해 중점 정책은 무엇인가. 갑진년 새해에는 푸른 청룡처럼 연천군도 잠룡에서 벗어나 비룡의 해가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밥솥을 깨뜨리고 타고 온 배를 가라앉혀 퇴로를 차단해 죽기 살기로 싸우겠다는 ‘파부침주’(破斧沈舟)의 자세로 오직 앞만 보고 과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새해 설계를 했다. 내년 예산집행의 편성 키워드는 ‘알뜰 재정 살뜰 민생’으로 정부의 예산 긴축 기조에 맞춰 적시성, 타당성, 효과성 등 3대 원칙 아래 불요불급한 예산은 과감히 삭감하고 민생을 위한 예산을 집중 편성했다. 새해 본예산은 전년 대비 0.87% 감소한 6133억원으로 편성했다. 교통 인프라 구축과 안전한 연천 건설 예산에 847억원, 살고 싶은 연천 삶이 행복한 복지예산에 1880억원, 양질의 일자리 제공과 인구유입 증대를 위한 지역개발 예산에 3019억원, 연천군의 미래 먹거리인 문화관광예산에 387억원을 편성했다. -구체적인 교통망 확충 계획은 무엇인가. 우선 서울~연천 간 고속도로 건설에 매진하겠다. 올해 전철 1호선 개통으로 의정부, 서울까지 연천군민이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이젠 연천에서 생산한 농공산품 등이 쉽게 오갈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양주까지 연결하려는 고속도로를 연천까지 끌고 와야 한다. 이를 위해 평화로가 지나는 4개 시군 공동으로 국회 및 중앙부처에 건의문을 전달했다. -교통 외 역점 사업은 무엇인가. 전곡에 에듀 헬스케어센터를 신축하고 청산면 커뮤니티센터 부지에 축구장을 건립한다. 중면은 DMZ 접경지역 최초로 탄소중립 마을로 조성하겠다. 댑싸리 정원을 국가 정원으로 만들기 위한 시작점으로 관광과 탄소중립을 연계한 신사업 창출을 통해 연천군의 미래를 위한 블루오션을 개척하겠다.
  • [서울광장] 여행길, 명나라 장수 공덕비와 마주치면/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여행길, 명나라 장수 공덕비와 마주치면/서동철 논설위원

    공주 공산성은 백제가 부여로 천도한 이후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 북방성으로 기능했다. 이후 신라는 웅천주, 고려와 조선도 공주목의 중심으로 활용했다. 성 내부의 공주목 관아는 17세기 중반에야 지금의 시내 중심가 중동으로 옮겨 갔다. 공산성 내부에는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라는 생뚱맞은 비석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제독 이공(李公)과 위관 임제, 유격장 남방위를 기린다. 1598년 세운 것을 1713년 고쳐 세웠다고 한다. 공산성은 당나라 웅진도독부 치소(治所)로도 쓰였으니 중국과의 인연이 질기다. 2030년 부산 엑스포 예정지였던 북항이 내려다보이는 부산진성에는 진남대(鎭南臺)가 있다. ‘남쪽을 진압한다’는 장대의 이름은 말할 것도 없이 왜를 겨냥한 것이다. 곁에는 상당한 크기의 비석이 있는데, 뜻밖에 천만리영양천공비(千萬里潁陽千公碑)다. 천만리는 1597년 평양과 울산 전투에 나섰던 명나라 장수다. 귀화한 영양 천씨 후손들이 1947년 세웠다. 왜군은 정발 장군이 분전한 부산진성을 헐어 내고 뒷산에 증산왜성, 바닷가에는 보조성 자성대왜성을 쌓았다. 왜군이 물러나자 명나라 장수 만세덕을 기리는 부산평왜비(釜山平倭碑)를 세웠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조선은 1607년 옛 부산진성을 보수하는 대신 왜성을 그대로 부산진성으로 활용했다. 지금 보이는 가파른 성벽도 왜성의 흔적이다. 고금도는 강진 남쪽, 완도 동쪽의 섬이다. 강진에서 연륙교로 이어지고, 완도에서도 신지도를 거쳐 자동차를 타고 고금도로 들어갈 수 있다. 간척사업으로 고금도와 합쳐진 묘당도는 이순신의 조선수군과 진린의 명나라 수군이 주둔했던 군항이었다. 고금도 관왕묘비는 1713년 좌의정 이이명이 비문을 짓고, 삼도수군통제사 이우항이 글씨를 썼으며, 승려 처환이 새긴 것이다. 관왕묘는 중국인들이 신으로 믿는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진린은 1598년 고금도에 관왕묘를 세우고 직접 제례도 올렸다고 한다. 앞서 이이명은 1710년 고금도 관왕묘에 이순신과 진린을 함께 배향했다. 그런데 1931년 소설가 이광수가 불러일으킨 여론이 변화를 몰고 왔다. 이광수는 ‘고금도에서 충무공 유적 순례를 마치고’라는 답사기에서 “통분한 것은 관우의 묘정 서무(西廡)에 충무공을 배향한 것이니, 충무공이 관우의 신하처럼 됐고 동무(東廡)의 진린보다도 아래 서게 됐다”고 썼다. 묘금도 관왕묘는 1947년 이순신 사당이 되어 1953년 충무사 현판을 내걸었다. 명나라는 1592년 원병을 조선에 보냈고, 많을 때는 10만명 남짓한 병사가 주둔했다. 명군은 1600년 모두 돌아갔는데 길지 않은 기간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다. 서울에는 민충단ㆍ무열사ㆍ선무사가 세워졌고, 남원ㆍ안동ㆍ성주ㆍ여수 등에 관왕묘가 지어졌다. 장수를 기리는 비석은 공주, 부산, 고금도와 함께 보령, 남해, 울산, 청산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여행길 명나라 장수를 떠받드는 비석을 발견했다고 자괴감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조선 후기 유행한 지방관의 선정비가 그렇듯 비석이란 세운 이들의 존경이 아닌 고통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명나라 장수를 칭송하는 비석도 이면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조선의 진심은 이랬다. 부산평왜비를 다룬 선조실록 1599년 10월 1일자 사관(史官)의 평가다. ‘옛날에는 기록할 만한 명망과 공로가 있어야 비석을 세웠다. 그래야 세월이 오래될수록 공로가 알려지고 시대가 멀어질수록 명망이 높아진다. 그럼에도 중국 장수들은 한 모퉁이에서 군사를 거느린 채 왜노(倭奴)가 물결을 드높이며 바다를 건너가는 것을 앉아서 보고만 있었다. 헛된 명성을 과장하더니 돌에다 공적을 새겨 이름을 전하려 하고 있으니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극에 이르렀구나.’ 오늘날 국가의 문서에도 어느 구석 진심을 적어 후세에 전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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