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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박한 미소 ‘한국의 마애불’

    인류는 시대를 망라해 항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담은 조형물을 어김없이 남겨왔다.그것이 종교적인 색채를띠건 소박한 삶의 표현양식이건간에 모두 그 시대 생활상과 사람들의 모습을 추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아닐수 없다. 미래 사회에서의 구원과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욕구를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미륵을 떠올린다.56억 7,000만 년 뒤에용화수 아래에서 성도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미래의부처. 최근 해체복원 작업에 들어간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굳이 들지 않더라도 이같은 미륵 사상을 보여주는 흔적들은 이 땅에서 숱하게 보여진다.다름아닌 ‘바위 위에 새긴불상’ 마애불이다. 다른세상이 펴낸 ‘한국의 마애불’은 전남대 미술교육과이태호 교수가 송광사 성보박물관 이경화 객원연구원의 도움을 얻어 전국 200여 곳의 마애불을 일일이 다리 품을 팔아 훑은 뒤 대표적인 108개를 가려 소개한 땀의 결실이다. 저자 자신이 “어느 마애불 하나 독자성을 갖지 않은 것이 없다”고 밝혔듯 책에 소개된 마애불을 보면 지역과 시기별로 천태만상이다.현존하는 마애불중 첫 작품이라는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부터 구한말 서울 주변에 조성된 것까지 표현방식과 표정 등이 모두 다르다.둥근 눈과 높지 않은 콧날,연잎처럼 툭 피어난 입술의 서산마애삼존불에서백제 특유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면 경주 골굴암마애불좌상에선 살짝 내민 작은 입술의 미소가 마치 순박한 소년을 보는 듯하다.그런가 하면 가느다란 눈과 새침해 보일정도로 삐죽하고 작은 입,광대뼈가 도드라진 충남 홍성 신경리 용봉사 마애불입상은 또다른 분위기를 전한다. 결국 마애불은 단순히 부처의 형상만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룬채 끊임없이 변화를 갈망하며 살아온 한국인의 용모와 심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차원높은 자연·종교·예술의 합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4만5,000원. 김성호기자 kimus@
  • [씨줄날줄] 앙코르 와트의 석탑

    1996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소개하고자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에 취재간 적이 있다.밀림 속 200㎢에펼쳐진 앙코르(도시라는 뜻)유적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세계 최대라는 사원의 규모,그 벽 곳곳에 돋을새김한 수만명의 다양한 인간상,4면에 ‘큰바위 얼굴’을 각각 조각한3∼5m 높이의 탑 수십기 등 하나하나가 정녕 예술품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두가 석조물이란 사실이요,그 돌들을 접착제 하나 쓰지 않고 다룬 옛 크메르인들의 정교한솜씨였다. 석조물 중에는 허물어지고 쓰러진 것도 적지 않았다.크메르 내전이 오래 이어진 탓에 포격을 당한 것이 있는가 하면,땅 위로 100∼200m씩 뿌리를 뻗어가는 열대 수종 ‘고’나무에 휘감겨 짜부라진 종이상자처럼 가라앉은 건물들도 있었다.그리고 그것들은 나름대로 자연의 위대한(또는 광폭한) 힘과 인간욕망의 덧없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처럼 유적지를 둘러보는 가운데 콘크리트를 덕지덕지 발라 겨우 자세를 지탱하는 돌탑을 하나 만났다.한국인 가이드는 “일본인들이 한 짓”이라며 고소하다는 투로 설명했다.몇 해 전 유네스코가 앙코르 보수 계획을 세우자 일본업체가 무료공사를 자처하고 나섰는데,갖은 방법을 쓰고도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해 하는 수 없이 콘크리트를 발라 응급조치만 했다는 것이다.‘옛사람들의 건축 솜씨를 현대인이 따라가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익산 미륵사지석탑을 떠올렸다.그 탑이 선 모양새가 그만큼 미륵사지 석탑과 흡사했던 것이다. 붕괴 위기에 처한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하는 작업이 지난달 31일 시작됐다.국보 11호인 이 탑은 백제 무왕 때인 서기 600∼640년쯤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이다.원래 9층으로 세웠으나 지금은 6층까지만 남아 있다.일제강점기인 1915년에도 무너질 위험성이 커지자남쪽과 서쪽 면 전체에 콘크리트를 덧씌워 지금같은 모양이되었다. 해체 후 복원 계획을 놓고 국립 문화재연구소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고 한다.지금 남은 형태와 석재를 최대한 살릴지,원형을 찾아 아예 9층으로 새로 짓다시피 할지가 핵심이다.결론은 전문가들이 내리겠지만중요한 것은 폭넓게 의견을 모아,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심층 추적 책 두권 나란히 출간

    얼마전 일본의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가 날조된 신석기시대 유물을 마치 실제 발굴한 진품인양 속여온 사실이 드러나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힌 일이 있다.가짜 유물을 진짜로믿고 이를 바탕으로 쓰여진 일본 역사교과서를 고쳐 써야할판이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물론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 가운데 상당 부분이 후대인들의 ‘역사적 잣대’로 쓰여졌다는 사실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최근 고대사의 숨은 비밀을 파헤친 책 두 권,‘만들어진 고대’(이성시 지음,박경희 옮김.삼인 펴냄,1만5,000원)와 ‘한국고대사,그 의문과 진실’(이도학 지음.김영사 펴냄,1만900원)이 동시에 출간돼 눈길을 끈다. ‘만들어진 고대’는 동아시아의 고대사가 일본,한국,중국등 동아시아 근대 국민국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으로 바뀐데 대해 강하게 문제삼고 나선 사론집(史論集)이다. 이 책은 동아시아 고대의 역사적 사실이 근대 국민국가 체제라는 맥락 속에서 어떻게 둔갑하였는지를 밝히면서 이같이 ‘만들어진 고대’의 역사상을 해체하고 새롭게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들어진 고대’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은 ‘광개토대왕 비문’의 해석문제.비문 가운데 “신묘년(391년)에 왜(倭)가 바다를 건너 백제,신라를 쳐부수고 신민(臣民)으로 삼았다”고 해석된 부분은 그동안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지배했음을 입증하는 일급 사료로 간주돼 왔다.그러나 이는근대일본이 청일·러일전쟁을 벌이던 시기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해석의 산물’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한국·북한의 비판과 이의 제기 역시 비문을 통해 한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지은이는 동아시아 고대사의 경우 일국사(一國史)차원을 넘어 광역권에서 새로운 역사 패러다임의 구축이 시급하다고강조하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는 일본 교과서 왜곡사건과 사극(史劇)붐으로 고대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한국고대사,그 의문과 진실’은 이같은 세태를 고려해 나온 고대사 관련 대중 역사서로 보이기 쉽다.그러나 저자는‘대중역사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이 책이 학계의연구성과를 전달하는 이상으로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거나 또는 저자 나름의 해석을 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 예로 저자는 안악3호분(墳)의 ‘고구려 왕릉설’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무덤 속에서 고구려 왕 대신 중국에서 망명한 동수(冬壽)라는 인물의 내력을 적은 묵서(墨書)가 나온점 등을 들어 무덤주인이 고구려 왕이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또 일본에 ‘고려촌’‘고려신사’ 등의 용어가 전해오는 점을 들어 백제는 물론 한반도내 다른 고대국가들도 일본에 영향을 주었음을 상기시키고 있으며 3국시대에도‘첩보전’이 치열했음을 사료를 통해 새로 밝혀내고 있다. 특히 학계에서조차 외면당하고 있는 기자(箕子)조선에 대해서는 중국문헌에 그 존재가 뚜렷하게 남아있음을 들어 연구가 시급함을 주장하고 있다. 또 ‘송서(宋書)’의 기록을 근거로 백제가 중국땅에서 한반도로 이동해 왔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하고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익산 미륵사지 석탑 31일 해체·보수작업

    붕괴위험과 해체 복원을 두고 논란을 빚었던 익산 미륵사지 석탑(서탑·국보11호)이 오는 31일 해체,보수정비 작업에 들어간다.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조유전)는 “2년 동안 정밀사진 실측조사와 주변부 발굴조사,가설 덧집공사,보존처리실 설치 등 안전한 해체와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위한 준비작업을 해왔다”며 “오는 2007년까지 총 80억원을 들여 전면 해체를 통한 보수 정비공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문화재연구소는 31일 오후 3시 미륵사에서 해체공사를 알리는 고유제를 치른다. 백제 무왕이 세운 국내 최고·최대의 석탑으로 본래 쌍탑이었으나 서탑만 남았으며 ‘목탑 형식의 석탑’으로 큰 가치를 지닌다.원래 9층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6층 옥개석 일부까지만 남아 있다.지난 1915년 일제가 붕괴를 막기 위해시멘트로 보수해 원형을 상실한 데다 부식과 균열이 심해서 98년 전면적인 해체보수를 결정했다. 이종수기자
  • 구례 화엄사에 ‘華嚴石經’ 복원된다

    불교 화엄경(華嚴經) 국내 전래의 모태로 여겨지는 ‘화엄석경(華嚴石經)’이 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전남 구례화엄사에 복원된다. 18일 조계종과 화엄사 측에 따르면 화엄사가 주축이 돼화엄사 대웅전 뒤에 보존각을 세워 화엄석경 파편들을 보존,2010년까지 화엄석경을 원래의 모습대로 완전 복원한다.이와 관련,오는 26일 화엄사에서는 화엄석경의 제작연대를 비롯해 돌의 출처와 재질,화엄석경의 서체 등을 규명하는 ‘화엄석경 복원 학술세미나’가 개최된다. 화엄석경이란 ‘해동의 화엄종조’로 통하는 신라 의상대사(625∼702년)가 670년쯤 화엄사를 중창하면서 화엄경을석경(石經)으로 조각한 뒤 동시에 지은 장육전(丈六殿) 사면 벽에 두른 것.임진왜란 때 화엄사가 소실되면서 파괴됐으나 1960년대 초부터 파편들을 수습,보관돼 왔으며 90년보물 제1040호로 지정됐다. 현존하는 석경 편은 61년에 수습된 1만4,000여점과 최근수습된 2,000여점 등 1만 6,000여점.이 돌 조각에는 두세자에서부터 50자 이상의 경문들이 새겨져 있으며 부조(浮彫) 선각(線刻)형 두 종류가 있다. 복원을 주도할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년) 인도 스님 연기조사가 창건한 화엄 종찰.2년전 현 주지 종걸 스님 취임 이후 불교계 인사와 문화재위원,불교사학자 10명으로 구성된 자문회의와 ‘화엄석경 보존복원 연구팀’을 구성해 화엄석경 보존·복원을 위한 기본 연구조사를 진행해왔다. 화엄사 화엄석경 도감인 종서 스님은 “화엄석경은 대승경전 중에서도 교학·사상적으로 불교의 핵심을 가장 깊게 담고 있는 경전을 돌에 새겼다”며 “화엄 사상은 또 삼국통일을 이루어내는 데 일조한 만큼 석경 제작과 조각의의의를 되살려 남북의 화해와 평화정착,통일의 원력을 세우고자 한다”고 복원 의미를 강조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동성왕·무령왕 납신다”

    ‘풍악을 울려라.그리고 경들은 술을 맘껏 들어라’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견훤으로 나오는 인기 탤런트서인석이 백제 동성왕으로 변해 연회를 연다. 이같은 동성왕 연회재연을 비롯한 제47회 백제문화제가 11∼14일 충남 공주시 공산성 등에서 펼쳐진다. 14일 있을 동성왕 연회재연행사 외에도 12일 종합운동장에서 탤런트 김흥기와 안혜숙이 왕과 왕비로 분장하고 나오는 무령왕 즉위식이 열린다. 13일 공산성에서는 봉산탈춤,경기민요,송파산대놀이 등 총 10개의 국가 중요무형문화제가 공연된다. 행사기간 내내 백제 옷에 말을 타면서 사진을 찍는 백제체험,엽전치기·투호·제기차기 등으로 꾸며지는 민속체험,기와 등 백제유물을 탁본해보는 염색체험,횃불을 들고 2.7㎞의 공산성을 밟는 성밟기체험 등 행사도 열린다. 또 계룡산도예촌 주관으로 ‘도자기실습교실’과 함께 ‘분청사기 도예전’이 공산성에서 열려 관심을 끈다. 전야제인 11일 저녁 때는 공산성에서 영구 조명시설 점등식이 열려 200개의 불빛이 공산성 앞의 금강과 아름답게 어우러져앞으로도 관광상품으로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공주시 관계자는 “유적지에 이런 대규모 조명시설을 설치,관광상품화하기는 국내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조약돌] 밀성박씨 대종회 ‘왕건’에 발끈

    KBS드라마 ‘태조왕건’의 일부 장면을 놓고 밀성(밀양)박씨 문중이 발끈하고 나섰다. 밀성 박씨 대종회(회장 박성형)는 지난 9일 밀양시 내일동 밀성재에서 오릉보존회와 중앙청년회,전국 박씨 성손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고 “역사를 왜곡한 KBS측은 전국민에게 사과하고 만약 고증을 거쳐 제작됐다면 관련 자료를 대종회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고 10일 밝혔다. 박씨 대종회는 “9월 마지막주 방영된 드라마 ‘태조왕건’ 내용 가운데 백제 견훤이 신라 경애왕에게 침을 뱉는등 모욕적인 언행은 명백히 역사를 왜곡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전국 500만 박씨 성손의 명예가 실추된 만큼 KBS측은 분명하게 해명하라”고 촉구했다. 이에대해 KBS 안영동(52) 부주간은 “기록상에 침을 뱉는장면이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실상은 훨씬 더 비참한 부분이 많았으며 제작진과 논의를 거쳐 오해가 없도록 문중에 회신하겠다”고 말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
  • [김삼웅 칼럼] 뉘라 ‘역사의 가정’을 부질없다는가

    ‘마침내’ 미국의 아프간공습이 개시되었다.지난달 11일무역센터와 펜타곤이 테러공격을 당한 지 28일만에 미국과영국이 아프간공습에 나선 것이다.테러사건과 보복전의 세계적인 전란에도 한반도가 안전지대로 자리잡은 것은 6·15정상회담의 성과라는 평가다. 그동안 소강국면에서 북한상선의 침범과 ‘평축행사’해프닝 등 불상사도 따랐지만 남북정상회담의 큰 틀이 유지되고한반도가 세계적 위기상태에서 한발 비켜선 것은 다행이다. 국제냉전종식 이후에도 이데올로기대립·문명충돌·종교전쟁·영토싸움·자원쟁탈전 등 지구촌의 폭력가능성은 상존한다.여기에 21세기형 ‘추악한 전쟁’으로 불리는 국제테러단의 도발까지 끼어든다.한반도의 안전장치가 필요한 외생(外生)변수들이다. 국제정세가 불안할수록 남북한은 대화와 협력관계에 성실한 자세가 요구된다.국방부는 지난 6일 경의선 관련 군당국간 합의서의 서명·발효를 위해 남북군사실무회담수석대표접촉을 제의했다.경의선철도 연결 및 도로개설 공사를 더이상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철도담당 고위 인사가 평양을 다녀가는 등 러시아의 횡단철도와 한반도의 종단철도 연결에 국제적 관심사가 높다.한반도를 중심으로 남북한과 중국·러시아·일본·몽골 등 동북아 심장부를 관통하는 대륙철도 연결은 우리 물류비용 절감은 물론 북한에도 많은 이익이 따르고 남북평화체제 구축에 기반이 된다. 그런데 우리 내부에는 여전히 쌀이 남아 처치곤란해도 나눠줘선 안되고,대통령의 말꼬리나 잡아 색깔론을 펴고,화해협력을 흠집내는 냉전세력이 여론을 좌우한다.맹자는 식자(識者)중 ‘하지하(下之下)’는 “터럭을 불어 흠집을 찾는(취모멱자:吹毛覓疵)무리”라 했다.세계사의 큰 흐름,분단사의 아픔을 외면하는 소인배들을 일컫는 말이겠다. 역사상 남북분열 시대에 남북은 세차례의 중요한 회담을가졌다.과거 두차례 회담은 실패하여 민족사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했고,최근의 회담은 진행형이라 아직 속단은 이르다. 제1화:서기 642년 이맘때,신라의 강자 김춘추는 선덕여왕의 내락을 받고 단신으로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방문했다.당시 신라는백제의 침공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김춘추는 연개소문과 만나 ‘양국의 오랜 상쟁 중단’을 제안하고백제공격을 위한 군사지원을 요청했다.이에 연개소문은 90년째 점령중인 구고구려 영토인 죽령 이북의 땅을 돌려주면 구원병을 보내주겠다고 딴죽을 걸었다. 결국 ‘제1차 남북회담’은 결렬되고,구금됐다가 귀환한 김춘추는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7세기 중엽 남북의 두 강자가 대륙정세를 꿰뚫고 협력체제를 구축했다면 고구려·신라의 운명은 물론 한국고대사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제2화:1949년 4월 백범 김구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해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면서 38선을넘어 북한에 갔다.김규식과 함께 평양에서 김일성,김두봉과 만나 분단으로 찢어지는 민족을 다시 묶으려 노력했지만성공하지 못했다.얼마후 백범은 암살되고 남북은 6·25전쟁에 이어 반세기 넘는 분단사를 겪고있다. 제3화:2000년 6월13일 김대중대통령은 국적기를 타고평양으로 날아가 6·15남북정상회담을 갖고 5개항에 합의했다.적대관계의 두 정상이 평화와 협력문제를 논의한 것 그 자체가 큰 변화이고 획기적인 일이다. 김춘추와 연개소문,김구와 김일성의 회담이 성공했다면 한국사의 흐름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를 잃지 않았을지 모르고,6·25동족상잔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뉘라 ‘역사의 가정(假定)’을 부질없다 하는가.역사는 부단히 다시 해석하고 가정하고 교훈을 도출해야 한다.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면 역사의 보복을 받는다 하지않던가. 남북회담은 진전돼야 한다.민족문제만큼은 정파를 뛰어넘어야 한다.과거 ‘남북회담’의 실패나 이번 미국 테러와보복전의 교훈이라면 남북한이 점점 벌어지는 의식과 사고,이에 따른 문화와 행동양식이 또다른 ‘문명’의 길로 갈라서기 전에 협력과 공존체제를 만드는 일이다. 김삼웅 주필 kimsu@
  • [한강 그곳에 가면] 한강변 문화·역사 탐방

    “자녀들 앞세우고 떠나는 한강변 역사기행 어떠세요?” 요즘 한강변은 쪽빛 하늘과 어우러진 맑은 물색이 가을의자태를 한껏 뽐내며 나들이객들을 유혹하고 있다.여기에 조상들의 삶의 흔적을 간직한 채 강변을 따라 줄지어 선 유적지는 나들이와 역사 체험을 겸한 가을 테마 기행으로 손색이 없다.일상 생활에 쫓기는 서울 시민들이 가족과 휴일 하루코스로 홀가분하게 나설 수 있는 한강변 역사 기행을 떠나보자. 한강은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우리조상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강을 끼고 널찍한 평지에 자리한 강동구 암사동 선사주거지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최대 집단취락지다.기원전 3,000∼4,000년전 한반도 선사시대의 생활상과 발전상을 밝힐 독보적 유적지로 손꼽힌다.지난 79년 사적 제267호로 지정된 이 곳에는 신석기시대 움집이 복원돼 있어 시민들의 발길이 잦다. 때맞춰 강동구는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 ‘강동선사문화축제’를 이곳에서 개최,역사·문화적 가치를 부각시킬 예정이다.김형숙(金亨淑) 강동구 예술진흥팀장은“참가자들은 움집만들기,토기를 비롯한 원시도구 제작하기 등을 통해 고대 원시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갖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광진구 아차산성은 서울 주변 백제 고성 가운데 원형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산성.산성 주변의 샛비낭골,도담골,청도밭,은행쟁이 등 정겨운 옛고을의 지명과 유래를찾아보는 것도 좋다. 한강을 낀 옛 한성백제의 도읍지를 찾는 것도 재미있는 이다.암사동 선사주거지와 가까운 송파구 일대가 바로 그곳이다.송파에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적석총 등 삼국시대의 유적이 널려 있어 백제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백제초기의 토성으로 백제가 고대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진한성백제시대의 중요한 거성(居城)이 바로 몽촌토성이다.성안에서는 대규모 지상 건물터와 연못 등을 비롯,세발토기등 각종 유물이 발굴돼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중요한 자료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풍납토성은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을 우려,축조한 토성으로 백제초기 토성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석촌동 적석총은 백제시대 초기 무덤으로 추정되며 백제가가장 번성했던 4세기 무렵의 대외관계와 삼국시대 문화 사료로 가치가 높다.치욕스럽지만 돌이킬 수 없는 우리 역사의 한페이지인 삼전도비도 이곳 석촌동에서 만날 수 있다. 다시는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는 민족적각성을 자녀들에게 교훈으로 남겨 줄 수 있는 곳이다.강을따라 하류쪽으로 내려오면서 조선조의 재상 한명회가 남긴것으로 유명한 강남의 압구정터와 동작의 사육신묘역,마포의 절두산 성지도 찾아보면 좋다. 여유가 있으면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충주 서북쪽의 탄금대까지 발길을 옮기는 것도 좋다.질곡의 역사를 낱낱히간직한 탄금대는 신라 진흥왕때 가야국에서 가야금을 갖고망명한 악성 우륵이 망국의 한을 달래며 이곳에서 가야금을 탓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다. 최용규기자 ykchoi@
  • 한가위 ‘고향의 情’ 듬뿍 느껴보자

    한가위 연휴를 맞아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귀성객들이 고향의 정을 담아갈 수 있는 떡메치기,송편빚기 등 민속체험마당을 비롯해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세계도자기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경기도 이천·여주·광주행사장에서는 30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한가위 큰잔치가 열린다. 송편빚기 전부치기 등 우리 고유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는민속체험마당을 비롯해 어울림 대동마당 등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된다. 충남에서는 백제 망국의 한을 달래기 위한 유왕산 추모제가 눈길을 끈다.다음달 2·3일 부여군 양화면 유왕산 등지에서 열린다. 올해로 5번째인 추모제는 첫날인 2일 유왕산에서의 위령제로 시작된다. 3일 오전 10시30분 용인산에서는 갓개포구∼유왕산∼금성곶이까지 2㎞의 금강에 배 15척을 띄우며 의자왕이 당나라로끌려가던 모습이 재연된다.당시 의자왕과 신하의 복장을 한 180명이 참가한다. 이어 갓개포구에서는 빈 상여를 멘 행렬이 상두소리속에 유왕산까지 가며 망국을 당한 백제 주민들의 혼을 달래주는행사가 펼쳐진다. 전남에서는 28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호남선 종착역인전남 목포역 광장에서 열차에서 내린 귀성객과 함께 하는민속놀이 한마당이 열린다. 국악 및 민속공연과 26개 동사무소와 초·중·고 대항 윷놀이,민속놀이 한마당으로 진행된다. 부채품과 판소리,설장구,남도민요,강강술래,민속무예 시연으로 분위기를 잡고 윷놀이에 이어 제기차기·팽이치기·투호놀이·장기대회로 솜씨를 겨룬다. 수원 김병철·목포 남기창·대전 이천열기자kbchul@
  • 송파구 ‘백제문화제’ 개최

    ‘잃어버린 역사,한성백제’의 찬란했던 문화를 재현하는 문화제가 백제의 옛 도읍지 송파에서 열린다. 송파구는 ‘한성 백제문화제’를 오는 21일부터 3일간 관내 석촌동 일원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 문화제는 ‘풍납토성 일대가 한성백제시대의도읍이었다’는 학계의 설득력있는 주장이 제기된 후 처음 열리는 제전으로 풍납·몽촌토성과 석촌동 초기 백제고분군(群),방이동 백제고분군 등 백제시대 유적이 산재한 송파에서 열려 그 의미를 더해 주고 있다. 22일 오전 석촌동 백제 적석총에서 동명왕 제사와 비류왕 즉위식을 갖는 것을 시작으로 문화행렬과 송파나루 장터재현,국제 민속예술제와 전통 민속예술공연,구민 노래자랑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송파구는 이번 문화제에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시(市)대표단과 일본 나가노시(市)의 민간 단체 등을 초청,상호우호증진의 폭을 넓히는 계기로 삼을 방침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김삼웅 칼럼] 언론사대주의와 IPI의 추태

    역사에서 가장 사악한 무리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해치는 행위다. 과거 그런 일이 적지 않았고 지금도 그치지않는다. 당나라 군대를 불러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는당태종을 칭송하는 데 군신이 하나가 되었다.진덕여왕은 이른바 ‘삼오(三五)의 덕’을 칭송하는 시를 비단에 수(繡)놓아 당태종에게 바쳤다.‘삼오’란 삼황(三皇)과 오제(五帝)를 말한다. 수백만명의 ‘동이족’을 죽이고 고구려 넓은 땅을 빼앗은흉적을 ‘삼오의 덕’에 빗댄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동족의식’이 싹트기 전이라 치자. 그동안 로마교황청 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황사영백서’가 지금 서울에 돌아와 전시중이다.이 백서는 종교탄압에 저항하는 내용이 없지 않지만 외세를 끌어들이려는 문건이다.△청이 조선을 병합하고 그 공주를 조선왕이 취하여 의관을 하나로 할 것 △서양에서 군함 수백척과 정병 5만∼6만명,대포 기타 필수병기를 가지고 와서 조선국왕을 위협하여 선교사의 입국을 자유롭게 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한제국말 일진회수령 송병준은 일본에 건너가 “현하 세계대세의 추세로 볼 때 또 동양의 다난한 현세에 처하여 조선국민이 능히 조선의 독립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조선의내치·외교를 일본정부가 맡아줄 것”을 청원했다.일진회장이용구도 조선통감 스네 아라스케에게 ‘합방청원서’를 제출하여 나라를 헌상하는 일에 앞장섰다. 한국의 언론상황을 관찰하겠다고 방한한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제대로 조사활동을 하기도 전에 한국을 ‘언론자유탄압 감시대상국’으로 선정,발표한 것은 국제언론기구의공정성을 결여한 일탈행위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세금포탈과 횡령혐의로 구속된 신문사주들과 국정홍보처장,야당총재를 면담하고는 서둘러 ‘조사결과’를 발표했다.여당관계자·방송사장·시민단체 대표들과도 만나기로 한 약속을 깨고 결과부터 발표한것은 납득하기 어렵다.‘사전각본설’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IPI는 구속중인 방상훈조선일보 사장이 부회장 겸 한국위원회 위원장이며 조선일보기자가 사무책임을 맡고 있다. 5월에도 언론세무조사를 탄압이라고 주장하면서 탈세언론사를 비호했다. 국회문광위 이미경의원은 IPI의 과거행적과 관련,“긴급조치 9호가 발효되던 때 한국언론을 미국,스위스의 수준으로평가하는 등 결정적 고비마다 독재의 치열한 로비에 휘말려방향감각을 상실했다”고 자료집에서 공개했다. “1980년 300여명의 언론인이 쫓겨난 것은 그들이 부패했기 때문”이고 전두환대통령과 면담하면서 “언론자유는 원칙론이며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고 독재정권을 편들었다. 이런 전력의 IPI를 불러 한국의 언론상황을 왜곡하고 국가이미지에 먹칠하는 족벌언론사의 탈선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족벌신문들은 IPI조사단의 불공정한 조사내용은 대서특필하면서 같은 시기에 조사활동중인 국제기자연맹(IFJ)대표단의 “일부언론의 납세의무 등 공적책임 망각”“IPI ‘감시국’지정은 일방적 잣대”란 지적은 축소보도했다.따라서현업기자들의 조직인 IFJ보고서는 외면하고 사주·발행인들의 이익단체인 IPI에만 의존하는 ‘족벌신문과 IPI의 유착설’이 나도는 것은 당연하다. 언론서의 고전인 ‘허친스보고서’는 “언론의 자유는 언론이 공공의 이익과 부합될 때에만 언론을 발행하는 사람들의 권리로 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주의 범법을 사죄하고 거듭나려는 몸부림보다 ‘외세’에 의존하여 진실을왜곡하고 나라 망신시키려는 족벌언론은 이제라도 ‘공익에부합되는’지면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연개소문이 죽고 권력싸움에서 밀려 당나라에 반부(叛附)한 장남 남생(男生)이 당군의 향도가 돼 본국을 침법하자둘째 남건이 “아무리 권세에 눈이 멀기로 외적을 이끌고동족을 치는 자가 어디 사람인가!”라고 호통쳤다. 김삼웅 주필 kimsu@
  • 고려 책사 최응役 정태우

    책사 최응이 고려를 살리는 젊은 천재라면 정태우(19) 는KBS ‘태조왕건’의 시청률을 지키는 주역인 셈이다.괴질에걸려 입술이 허옇게 말라붙어도 고려의 안위만을 걱정하며눈물을 흘리는 연기력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절절히 울리고있다.정태우의 눈물은 ‘태조왕건’이 ‘여인천하’ 로부터시청률 1위를 탈환하는 데 있어 혁혁한 공신이었다. 정태우는 ‘먼동’‘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용의 눈물’등 6편의 대하 사극에만 출연,‘태조 왕건’의 선배 연기자들로부터 ‘대하드라마 전문탤런트’라는 농을 듣는다.‘한명회’‘왕과 비’ 등에서 단종역만 3번 맡았다.중앙대연극영화과 1학년.최응의 가발과 모자를 벗은 정태우에게서는 풋풋함이 그대로 풍겨난다. 6살때 TV에 나가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라 MBC 베스트셀러극장 ‘버릇’으로 데뷔했다.여려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제트스키,번지점프,스노보드 등을 즐긴다.‘프렌드’라는 연예인 축구단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골을 터뜨릴 때마다 공중에서 1회 돌기를 할 정도로 운동에도 소질이 있다.임권택감독의영화 ‘취화선’에서 청년 장승업 역을 맡았으며 청춘영화 ‘어게인’에서는 ‘놀 줄 아는’ 힙합댄서로 등장한다. 최응은 13살에 천재성이 눈에 띄어 궁예에게 발탁되지만왕건을 도와 고려의 삼국통일에 이바지하다 요절한다.혹시이번 괴질로 최응이 죽지는 않을까 걱정될지 모르겠지만 정태우는 10월말까지 출연한다.기록에 따르면 최응은 삼국통일을 보지 못하고 33세의 아까운 나이에 객사했다. 한달 전부터 극중에서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면서 수염을붙이기 시작한 정태우는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는다”고 귀띔했다.백제 책사 최승우 역을 맡고 있는 전무송과 서로의 마음을 읽으려 실랑이를 벌이는 팽팽한 연기대결은 앞으로도 자주 등장할 전망이다.전무송은 4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선배지만 눈빛 대결에서는 한 치도 밀리지 않는다.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전무송이 문종,즉 단종을 맡은 정태우의 아버지로 출연하기도 했다. “죽과 나물만 먹는 채식주의자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 탓에 한때초등학생들이 최응처럼 똑똑해지려고 밥을안 먹으려 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실제 식성을 물으니 “물만 먹고 어떻게 사나요.최응이 요절한 것은 제대로 음식을 안 먹은 탓도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극본에 줄곧 ‘단아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최응은 다음 주에는 왕건이 견훤에게 아우로서 예를 올리게 되자 바닥에 머리를 찧어 피를 흘리며 괴로워한다.정태우는이 장면을 놓고 “실제 연기보다 화면에는 약하게 보이는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
  • [씨줄날줄] 在野사학자

    1976년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박사와 박시인 서울대교수,임승국 전 경희대교수 등이 주도하는 ‘국사찾기 협의회’가 출범했다.이 단체는 2년 뒤 정부를 상대로 정사(正史)확인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조선은 중국 산동성과 만주·내몽고·연해주를 지배한 동방의 대제국”이라면서이같은 내용을 국사교과서에 반영하라고 요구하는 소송이었다.80년대 후반까지 한국상고사를 다루는 학술회의에서는 재야사학자들이 마이크를 가로채 강단사학자들을 공박하는 광경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재야(在野)'란 초야에 파묻혀 있다는 뜻으로 공직에 나가지 않고 민간에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엄혹하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정권에 의해 거부당한 정치인들을 통칭 재야인사라 불렀고,심할 때는 지금 대통령이 된 김대중씨를 비롯한 몇몇 인사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가 돼 ‘재야인사'가 고유명사처럼 쓰이기도 했다.지금 ‘재야'란 단어는 거의사라졌지만,유독 한국사학계에서만은 ‘재야사학자'란 말이통상적으로 사용된다. 한국사학계에서 재야사학자란,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해 사학과교수가 된 이들,곧 강단사학자를 제외한 모든 역사연구자들을 의미한다.예컨대 사회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한분인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1950년대 미국에서 한국전쟁 관련 논문으로 처음 정치학 박사학위를 딴 소진철 원광대명예교수 등은 뒤늦게 한국고대사 연구에 나섰다고 해서 여전히 재야사학자로 치부된다.또 한국사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대학을 떠나 외부에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는40대 학자도 재야이기는 마찬가지다.굳이 ‘재야'를 구분하는 까닭은 그들의 연구성과를 강단사학자들이 철저히 외면하기 때문이다. 재야사학자라는 범주는 그 학문적 출신이나 학설에서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다.고구려·백제·신라 등 3국이 모두 한반도에는 없었고 중국땅에 있었다는 주장,중국의 역대 왕조는모두 다 한민족이 세운 국가라는 등 황당한 설(說)이 적지않은 것도 사실이다.다만 이들은 현재의 한국고대사 체계가식민사관의 영향으로 크게 위축됐으므로 우리 고대사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국치일(國恥日)을 하루 앞둔 28일 대표적인 재야사학자 임승국씨가 타계했다.언제쯤 한국사학계에서 ‘재야'란 말이 사라질 것인가. 이용원 논설위원
  • 화랑도·골품…‘천년의 문화’ 신라여행

    시리즈물은 출판사 기획팀들에게 늘 고민거리다.기획 초기엔 반응도 좋고 관심도 가져주지만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가 쉽지않기 때문이다.물론 대하소설 ‘토지’나 ‘태백산맥’ 등은 다르다.꼭 재미있는 대목에서딱 끊겨 독자에게 다음 얘기를 목말라 하게 만든다. 그러나 가끔은 인문과학 시리즈도 이런 설렘을 준다.사계절의 ‘한국생활사 박물관’ 시리즈도 그 대열에 있다. 선사시대·고조선·고구려·백제편에 이어 5번째 시리즈 ‘신라’편이 나왔다.전편들에 이어 미세한 현미경으로 신라의 생활을 관찰하고 있다.박물관 탐방 형식을 유지하면서 ‘천년의 문화’를 조명한다. 편찬위원회는 현지 답사지인 경주에서 환청(?)을 들었다고한다.“고구려에 대해서는 넓은 영토와 호방한 문화를 마냥부러워하고,백제에 대해서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잃고 잊혀져 간 걸 마냥 안타까워”하는 후한 점수를 주면서도 “‘삼국 통일’로 민족문화의 주춧돌을 마련했다고 칭찬하면서도,한쪽에서는 ‘반쪽 통일’로 생활권을 축소했다”는 엇갈리는평가를 받는 신라인들의 투덜거림이었다.이 억울한 사연에감정이입이라도 하듯 이 책은 신라의 생활사를 속속들이 보여준다. ‘야외 전시관’코너에서는 ‘토우(土偶)장식 항아리’를시작으로 ‘황금문화’‘불교’‘바다’‘고분’을 항해한다.어디까지나 맛보기다.본격 여행에 접어들면 볼거리가 그득하다. 화랑도의 수련 장면·저울질 하는 상인의 모습 등을 삽화로 재현하는가 하면 금관 등 다양한 유품들을 컬러 사진으로현장감 있게 보여준다.아울러 촌락 사회의 생활상도 자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해상왕 장보고의 활동을 삽화로 설명하는 ‘가상체험실’이나 3차원 그래픽으로 재현한 불국사,입체 해부한 석굴암 사진 등의 다양한 편집은 ‘상상’과 ‘사실’(史實)이라는 두가지 즐거움을 동시에 주기에 충분하다. 경제나 정치 등 거대담론으로 조명해온 한계를 벗어나 평범한 민초들의 생활사를 통해 역사를 풍부하게 한다는 기획의도는 오는 12월 발해로 이어진다.늘어가는 시리즈 번호에 따라 관심도 커져간다. 이종수기자 vielee@
  • 총리실 산하위원회, 부실운영 여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활동이 부진한 것으로 지적됐던 국무총리실 산하 위원회가 여전히 부실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무조정실이 23일 국회 정무위 소속 한나라당 서상섭(徐相燮)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총리실 산하 31개 위원회 가운데 1년 이상 위원회 회의는 물론 실무위원회 회의조차 개최하지 않은 위원회가 14개(45.2%)나 됐다. 또 6개월 이상 위원회 및 실무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은 위원회도 18개(58.1%)나 됐고,연평균 위원회 개최 회수가 1회 미만인 위원회도 15개(48.4%)나 되는 등 상당수 위원회가 사실상 활동 중단상태인 것으로 지적됐다. 서 의원은 “서해안개발추진위원회의 경우 위원회 회의 최종 개최 일자가 지난 90년 2월3일로 10년 이상 회의를 열지않았다”면서 “장애인복지조정위와 접경지역정책심의위,백제문화권개발지원위 등도 설립 이후 단 한차례 회의를 열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 ‘자리마련용’ 위원회 설립이나 사회 현안에대한 일시처방용 위원회 설립이 위원회 부실운영의 원인”이라며 “정부는개선 여지가 없는 위원회를 과감히 폐지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이지운기자 jj@
  • ‘세균 녹즙’ 무더기 적발

    가정에 배달되는 일부 과일·채소주스류(일명 녹즙) 제품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일반세균이 검출됐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가정배달용 녹즙 9개사 17개 제품에대해 일반세균 등의 검출실험을 실시한 결과 8개사 12개제품에서 법정기준치인 ㎖당 10만cfu(단위당 세균수)를 초과하는 세균이 검출됐다고 21일 밝혔다. 세균이 검출된 업체는 풀무원,토마루,자연농원식품,그린벨생즙,대건,새벽을 여는 사람들,생동농산,참다운 건강식품 등이다. 관계자는 “실험결과 각제품에서 기준치보다 2.4배에서최고 55배까지 초과하는 일반세균이 검출됐다”며 “그러나 인체에 치명적인 0-157:H7 대장균이나 리스테리아균,살모넬라균 등 식중독균,표백제(이산화황),보존료 등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일반세균이 많다는 것은 제조,유통과정중 위생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풀무원 등 관련업체들은 비가열,비살균식품중유일하게 녹즙에 대해서만 유통과정에 일반세균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적절치 못하다며먹는 샘물처럼제조당시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고 반박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유종근 전북지사 한밤조깅 까닭은

    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가 오는 9월 개최되는 도민 건강마라톤대회 출전에 대비, 야간 ‘올빼미훈련’을 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유 지사는 9월 2일 전주 백제로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유치기원 도민 건강 마라톤대회’ 출전을 위해 밤 10시를전후한 한밤에 전주시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며 체력을 다지고 있다. 유 지사는 이번 마라톤대회의 10㎞ 전구간을 완주할 계획이다. 주변에서는 57세의 나이에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있으나 연습 때 보인 기량과 컨디션으로 보아 무난히 완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평이다. 유 지사는 지난 12일에 이어 15일 밤 9시30분부터 1시간동안 7㎞ 정도를 뛰었는데 30대 수행원들이 따라가지 못할정도의 체력을 과시했다. 유 지사의 올빼미 마라톤 훈련에 참가했던 박영석 도 공보관은 “스피드와 지구력이 젊은 비서진들도 따라가기 힘들어 훈련에 불려나가기가 무서울 정도”라고 전했다. 유 지사는 “도민의 숙원인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뛰고 있다”면서 “오는 10월 강원도를 제치고 전북이 동계올림픽 국내 개최지로 결정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백제시대 製鋼法 첫 확인

    고대의 독특한 제강법(製鋼法)인 관강법(灌鋼法)이 삼국시대 백제 유물을 통해 확인됐다. 대전보건대 박물관학과 정광용(鄭光龍·42) 교수는 17일홍익대 박사학위 논문 ‘삼국시대의 철기제작기술 연구’를 통해 “지난 95년 순천 검단산성에서 발굴된 철기 화살촉,도끼 등의 미세조직을 금속 현미경을 통해 분석한 결과,서기 5∼6세기 중국 남북조시대에 등장한 관강법이 서기6세기말∼7세기초 백제에서도 사용됐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류길상기자 ukelvin@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3)지조와 훼절

    파인과 최정희의 연애가 무르익어 갈 무렵에 강력한 방해자로 등장한 인물이 시인 김종한(金鍾漢,1914∼1944,일부 문학사전에는 1916년 생으로 되어 있으나 착오임)이었다.‘문장’지를 통해 정지용으로부터 “경쾌한 코닥 카메라 취미”의 “명암이 적확한 회화”란 평을 들으며 그는 1939년 보무도 당당하게 등단했다.이미 그는 동아일보 등에 작품을 발표한 경력에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1937)이란 후광까지 입었던 터라 정지용 사단인 조지훈·박두진·박목월·이한직·박남수와 더불어 시인으로서의 앞길이 창창한 유망주였다.“조금 더,단 1년만이라도 오래 살았더라면 ‘청록집’은 4인 시집이 되었을지 모른다”(大村益夫 ‘윤동주와 한국문학’ 중 ‘김종한에 대하여’)고 할 정도로 암흑기 그의 시는 돋보였다.고향이 파인과 같은 함북 경성(鏡城)이었다는 사실을상기하면 필시 배신자는 고향에서 나온다는 말이 맞을까. 김종한은 최정희에게 끈질기고 추잡하며 노골적이고 야성적인 글을 끊임없이 보냈을 뿐만 아니라 신당동 집으로 찾아가기까지 했던근대 한국문단 ‘스토커’의 챔피언급이었다.그는 삼천리사와 신당동 두 곳으로 여러 형태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사연은 노골적인 사랑의 고백이자,위협이고 유혹인데한글과 일어를 뒤섞어 썼다.“승녀(僧女)는 되지 마시기 바라오며”란 구절을 미망인에게 함부로 한 걸로 볼 때 그는진작부터 최정희에게 깊은 연정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나는 고독한 시계입니다.당신은 내 안의 진자(振子)입니다”는 고백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고,“두 번 주신 엽서에 의하면생존본능의 정력이 소모된 듯한 표정이 보이는 고로 근심하고 있습니다.피차 일반이기도 하려니와,나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깨트려 가려는 자세를 강조하기로 결심했습니다.이것이 연애편질 수가 있다면 나는 좀더 행복자였을 텐데”에 이르면 매우 노골적이 된다.즐겁게 지낸다는 최정희의 편지에 대하여 애인이라도 생겼는지 걱정이라고 덤비는 김종한의 방자함은 한계가 없다.“좋은 동무를 얻었으니 반생이나 동반하려고 공상하지 않은 바도 아니었는데--벌써 절교의 자세를취하십니다 그려.크게 반성하시고 회신을 주시기 바라오며,동경은 오늘도 비가 옵니다.참,”이란 글로 미뤄 보면 어지간한 스토커였던 것같다. “애기(지원,어렸을 때 아란으로 부름.1942년)가 났다지요? 애기 어미는 아마 고양이가 낙태한 듯한 거룩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추측하오며,여하간 크게 축복지지(祝福之地).여무언야(餘無言也)”란 편지를 보낸 이 시인에게 아무리 사람 좋은 최정희인들 고분고분하진 않았을 터이다.이내 절교장을 받은 듯 “이제는 신사로 대접해 주세요”라는 애원조가되지만,“지금 떠나갑니다.명년 춘삼월,다시 뵈올 때까지,연애도 많이 하시고 소설도 많이 쓰시기 바라오며”란 야유가또 등장한다. 이렇게 끈질겼던 김종한은 대체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었던가.일본대학 예술과 학생 때부터 부인화보사(婦人畵報社)에 아르바이트로 나가다가 졸업(1939) 후 정식직원이된 그는 고구려 문인 을파소(乙巴素)를 필명으로 삼았다가‘달밭집’(月田茂)이라는 고향의 택호를 창씨개명으로 정한 괴짜였다.“순수하고 자아가 강한 만큼,서울에 나와서도 가는곳마다 충돌하여 문단 동료들로부터 백안시를 당했다.그는 1942년 도쿄로부터 귀국,‘국민문학’ 편집을 맡았는데,한 때(1943.5)는 경성일보 기자였던 유명한 재일동포 작가김달수(金達壽)와 종로구 사간동 같은 집에 하숙을 하며 가깝게 지냈다.친일파연구가 고 임종국은 김종한을 일언지하에 친일파로 몰아댔는데 오무라 교수는 그가 싱가포르 함락을찬양했던 친일시를 예술성이 없다고 몰아친 용기나,“조선의 옷을 입고 조선온돌에 누워 있어도 훌륭한 황민이 될 수 있다”(좌담 ‘국민문학의 방향’)고 한 말을 주시한다.‘국민문학’에 1년3개월간 근무하다 사직한 그는 정지용을 비롯한 토착적인 민족정서가 강한 홍사용·백석·김동환·주요한·유치환 등의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하려 진력하다가 급성폐렴으로 죽었다.이루지 못한 연애처럼 그의 문학적 위상 또한아직도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다. 시인이라고 다 김종한처럼 경박하지는 않다.그 반대편에 이육사(李陸史)의 편지는 무게를 보탠다.이 강철의 투지를 지닌 대륙적 남성 시인은 절친했던 이병각(李秉珏)시인 부부가 폐병으로 눕자 아예 동거하며 주위의 만류를 듣기는 커녕자신이 피하면 친구가 병이 더 심한 줄 알고 불안해 한다며오히려 가까이 지냈다.1941년은 그에게 액운의 해였다.이병각과 부인의 장례를 다 치른 그는 부친상까지 당했다.너무쇠약해 졌음을 느끼고 여기 저기 요양을 다닌 건 1942년이었는데,항상 바빴던 그에게 여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건강의 악화 때문이었다.최정희에게 보낸 ‘무량사(無量寺)에서’란 편지는 이 무렵의 글일 터인데,대체 무량사란어떤 절인가.김시습이 난세를 피해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의탁했던 곳이다.“백제란 나라는 어디까지나 산문적이란것을 말해줍니다”는 함의는 무엇일까.신라의 지배계급 문학이었던 향가와는 달리 백제의 전설들은 오히려 백성들의 설움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뜻일까.“깨어져 와전(瓦)을 비치고 가는 가냘픈 가을 빛살을 이곳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는모양”이라고 나라 잃은 몽매한 백성들을 안타까워 하면서,“무량사만은 오늘 저녁에도 쇠북 소리가 그치지 않고 나겠지요”라고 문학인의 사명을 쇠북소리에 빗대어 토로하는 이 행동주의 시인의 심경을 꿰뚫어 보라. 이 삭막해 보이는 민족해방투사 시인에게도 연인이 있었던가.모든 선진 사상을 흡수 실천했으면서도 정작 가풍을 좇아 조혼으로 결코 행복스럽지 못했던 부부생활이었던 이육사. 신석초는 “그에게도 단 한 사람의 비밀한 여성이 있었다는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다”(신석초 ‘이육사의 인물’)고 귀띔했지만 그게 누군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너는 무삼 일로 사막의 공주같아 연지 찍은 붉은 입술을내 근심에 표백된 돛대에 거느뇨 /오--안타까운 신월(新月)”(‘해후’)이라는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를 닮은 시가바로 그녀를 그린 작품이라 전한다.비밀결사 대원답게 그는영원히 자신의 연인을 철저히 숨긴 채 친구가 옮겨준 폐병으로 쇠잔해져 자신이 동양의 파리라며 동경했던 도시 북경에서 옥사했다.지조와 사랑은 일치하는 것일까. 이육사와는 사뭇 다른 사랑의 실천자에 이효석이 있다.“이효석씨 하고는 그가 결혼하기 전부터 가깝게 사귀었다.…수송동 그 방에다 살림을 꾸미고 여기서 먹고 자고 했는데,얼마 안돼서 부인이 친정으로 가고 그 방에서 나는 칼도마질이랑 하는 여자를 목격할 수 있었다.…이효석씨는 ‘칼도마 위의 여자’를 ‘넥타이 갈아매는 기분’으로 사귀었다고 나중에 부인에게도,내게도 말했다”(최정희 ‘조광·삼천리 시절’)는 대목은 유명한 문단 야사의 한 토막이다.자신의 바람기까지 익히 알고있는 최정희에게 이효석은 마음 놓고 편지로 모든 아픔을 털어 놓는다.경성제대의 수재였던 그가 18세의 이경원과 결혼하자 호구지책으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취직했는데 입 빠른 평론가 이갑기(李甲基)가 “너도 개가됐구나”라고 모독하자 파인의 고향 경성 농업학교 교사로내려갔다가 평양 숭실전문 교수로 자리를 바꾼 게 1934년.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전문이 1938년 폐교당하자 대동공업전문학교로 옮겼는데,편지는 이 내역을 말해준다.메밀꽃 분위기보다는 장미,된장보다는 버터를 더 사랑했던 이 수재는 편지에서 보듯이 함북 주을(朱乙)온천을 끔찍히 좋아했다.길명지구대란 명승과 함께 68도의 라듐이 내뿜었던 전국 1위의 이휴양지가 이국취향의 유미주의자 이효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였다.아내가 죽은(1940) 뒤 실의에 빠진 모습이 편지에 역력히 나타나있는데,그 자신도 1942년 세상을 떠나고말았다. 꼭 편지에 깊은 뜻이 담긴 것만이 중요하진 않다.화가 김환기(金煥基)의 풋감 그림이 싱싱한 편지는 내용에 못지 않게글씨 자체가 예술품이다.문인과 화가의 관계가 늘상 가깝듯이 김환기도 그림 재료를 사러 거리에 나갔다가 우연히 김동환·최정희를 조우했었는데,헤어져 전차에 올라 생각해 보니 최에게는 건강 안부를 놓쳤고,김은 화가 이종우(李鍾禹)로착각하고 인사를 했다는 고백이다.이 편지는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다.김환기가 이종우로 알고 인사를 한 뒤 헤어져서곰곰이 생각해 보니 ‘김동환’이었다는 사실은 뇌리에 최·김 둘이 자주 어울린다는 ‘소문’을 들었을 개연성도 있다는 묘미가 느껴진다.사람을 몰라 봤던 데 대한 사과의 편진데 이럴 경우 대개는 어물쩍 넘기는 게 오히려 예의일 듯 하건만 굳이밝히면서 다음에 만나면 오토밀이라도 사 드리겠다는 화가의 진솔성이 애교롭다.김환기가 눈치를 챘든 않았든 이 무렵은 파인과 최정희가 꽤나 깊어졌던 때일 것 같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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