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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 조경용 수로 첫 발견

    조경 목적으로 만든 7세기 백제시대 물길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408호)을 발굴조사 중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29일 유적지 북편 구릉지역에서 백제시대 궁성 내부 물길을 비롯, 보도시설, 석축시설, 건물터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물길은 구불구불한 곡선 형태의 곡수로(曲水路)다. 너비 80~140㎝로 바닥이 편평한 U자형이며 현재 확인된 길이만 총 228m다. 크게 두 줄기가 발굴됐고, 그 중간에는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물을 저장하는 네모난 집수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이 같은 곡선 형태의 굽은 물길은 중국 동진시대에 후원 조성 요소 중 하나로 유행했고 일본 헤이조쿠(平城宮) 동원정원(東院庭園) 등에서 확인된 바 있으나 국내에서는 처음 발견됐다. 연구소 전용호 학예연구사는 “물길이 꾸불꾸불하다는 것은 이 수로가 배수가 아닌 조경 목적으로 조성됐음을 말해준다.”면서 “이로써 동아시아 고대 후원의 조성 방식에 대한 비교 연구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

    백제의 정신, 미륵·개벽사상, 선비정신 등 지역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근거로 한 제안들까지 그야말로 백가쟁명, 종가의 살림살이만큼이나 다채롭다.정치적 야망에 들떠 선전구호를 목청껏 소리치는 정치인보다 손에 잡힐 듯 명확하게 제시되는 선거공약을 국민에게 정책 패키지로 안겨 주는 문제해결 지향의 정치인을 찾아야 할 때이다.
  • 비빔밥, 판소리, 한옥마을 그리고 전주정신

    전주정신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저항과 풍류를 말하는 이도 있고, 선비정신을 내세우는 이도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새기자고 하는가 하면 ‘택지리’의 ‘지리인성론’ 등에 기댄 기질론도 만만치 않다. 백제의 정신, 미륵·개벽사상, 선비정신 등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근거로 한 제안들까지 그야말로 백가쟁명, 종가의 살림살이만큼이나 다채롭다.정리가 쉽지 않다. 아니 정리가 능사도 아니다.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게 하는 이런 논의 자체가 지역 문화를 풍성하게 해줄 것 같아 오히려 반갑다. 더 복잡하게 이끌어 보자는 유혹까지 느낀다.차마 버리지 못하는 종가의 복잡한 살림살이, 그것을 지키고 간직하려는 정성과 진정성에서 전주정신의 한 단초를 찾아볼 수는 있지 않을까? 이것을 전주가 대표하는 주요 문화코드에 접목해 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예를 들면 전주비빔밥이다. 비빔밥은 간편식이다. 그러나 ‘완전’을 추구하는 땅 전주에서는 그렇지 않다. 적어도 조리과정에서는 간편성을 내세운 ‘대충’이 통하지 않는다. 철분이 풍부한 전주콩나물만 고집하는 등 조리재료의 선택에서도 완전을 향한 정성은 확인된다. 밥도 그냥 물이 아니라 사골국물로 짓는다. 나물 또한 각각의 특성을 살려 따로 조리하며 그것을 배치하는 데에도 색상을 고려한다. 노란 청포묵과 오방색의 고명을 고집하고 중앙에 빨간 고추장을 떠 놓고 그 위를 계란 노른자로 장식하는 모습은 화룡점정의 숙연함까지 느끼게 하는 것이다.차마 대충 하지 못하는 진정성은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판소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동체적 삶의 한과 신명을 고도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인류 최고의 소리음악 자체에 이미 삶의 질곡 속에서 접하게 되는 슬픔을 차마 분노나 절망으로 내몰 수 없다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이 녹아 있다.그러나 전주에서는 이런 소리마저 함부로 자랑 삼지 못하게 하는 귀명창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대충’을 가로막고 있다. 오랜 공력의 삭힘과 익힘 과정을 겪어야 도달할 수 있는 ‘시김새’, 이를 통해서만 펼쳐지는 소리의 바탕에 깔려 있는 오묘하면서도 웅숭깊은 멋 혹은 여유인 ‘그늘’, 이런 판소리 미학의 핵심을 전주 사람처럼 철저하게 요구하는 이도 없는 것이다.전주 한옥마을이야말로 이런 ‘차마’의 진정성이 가장 밀도 있게 집적됐다. 전란의 간난신고 속에서도 차마 태조어진과 왕조실록을 방치할 수 없었던, 그리하여 조선의 역사를 오롯이 지켜낸 선비들의 기개가 서린 경기전. 차마 자기 신앙을 부인하지 못해 순교한 이들의 치명순정이 처연한 건축미학으로 거듭난 전동성당. 차마 편리함을 앞세워 아파트로 피해갈 수 없었던 이들의 근기가 어려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한옥군.그곳에는 실용을 핑계로 차마 예술 공예를 버릴 수 없어 가난을 군자의 고궁(固窮)쯤으로 여기며 세월을 버텨온 장인들의 진한 땀 냄새가 배어 있다. 느리게 무르익은 장과 젓갈의 개미를 차마 버릴 수 없어 화려하고 간편한 음식문화의 유혹을 어렵게 견디어온 또 다른 장인들도 이곳 한켠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완전을 꿈꾸며 느리게 익어 가는 이곳은 그래서 언제나 미완의 터다. 구경이나 하려는 사람 반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줍은 새색시 같아 진정 어린 마음가짐이 없는 이에게는 그 장한 끼를 결코 보여 주지 않는 것이다.이런 차마 삼가는 정성의 마음이 전통문화의 뿌리요, 전주정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백가쟁명의 웅얼거림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보는 것이다.
  • [지방시대]비빔밥, 판소리, 한옥마을 그리고 전주정신/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지방시대]비빔밥, 판소리, 한옥마을 그리고 전주정신/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전주정신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저항과 풍류를 말하는 이도 있고, 선비정신을 내세우는 이도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새기자고 하는가 하면 ‘택지리’의 ‘지리인성론’ 등에 기댄 기질론도 만만치 않다. 백제의 정신, 미륵·개벽사상, 선비정신 등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근거로 한 제안들까지 그야말로 백가쟁명, 종가의 살림살이만큼이나 다채롭다. 정리가 쉽지 않다. 아니 정리가 능사도 아니다.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게 하는 이런 논의 자체가 지역 문화를 풍성하게 해줄 것 같아 오히려 반갑다. 더 복잡하게 이끌어 보자는 유혹까지 느낀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종가의 복잡한 살림살이, 그것을 지키고 간직하려는 정성과 진정성에서 전주정신의 한 단초를 찾아볼 수는 있지 않을까? 이것을 전주가 대표하는 주요 문화코드에 접목해 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예를 들면 전주비빔밥이다. 비빔밥은 간편식이다. 그러나 ‘완전’을 추구하는 땅 전주에서는 그렇지 않다. 적어도 조리과정에서는 간편성을 내세운 ‘대충’이 통하지 않는다. 철분이 풍부한 전주콩나물만 고집하는 등 조리재료의 선택에서도 완전을 향한 정성은 확인된다. 밥도 그냥 물이 아니라 사골국물로 짓는다. 나물 또한 각각의 특성을 살려 따로 조리하며 그것을 배치하는 데에도 색상을 고려한다. 노란 청포묵과 오방색의 고명을 고집하고 중앙에 빨간 고추장을 떠 놓고 그 위를 계란 노른자로 장식하는 모습은 화룡점정의 숙연함까지 느끼게 하는 것이다. 차마 대충 하지 못하는 진정성은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판소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동체적 삶의 한과 신명을 고도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인류 최고의 소리음악 자체에 이미 삶의 질곡 속에서 접하게 되는 슬픔을 차마 분노나 절망으로 내몰 수 없다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이 녹아 있다. 그러나 전주에서는 이런 소리마저 함부로 자랑 삼지 못하게 하는 귀명창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대충’을 가로막고 있다. 오랜 공력의 삭힘과 익힘 과정을 겪어야 도달할 수 있는 ‘시김새’, 이를 통해서만 펼쳐지는 소리의 바탕에 깔려 있는 오묘하면서도 웅숭깊은 멋 혹은 여유인 ‘그늘’, 이런 판소리 미학의 핵심을 전주 사람처럼 철저하게 요구하는 이도 없는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이야말로 이런 ‘차마’의 진정성이 가장 밀도 있게 집적됐다. 전란의 간난신고 속에서도 차마 태조어진과 왕조실록을 방치할 수 없었던, 그리하여 조선의 역사를 오롯이 지켜낸 선비들의 기개가 서린 경기전. 차마 자기 신앙을 부인하지 못해 순교한 이들의 치명순정이 처연한 건축미학으로 거듭난 전동성당. 차마 편리함을 앞세워 아파트로 피해갈 수 없었던 이들의 근기가 어려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한옥군. 그곳에는 실용을 핑계로 차마 예술 공예를 버릴 수 없어 가난을 군자의 고궁(固窮)쯤으로 여기며 세월을 버텨온 장인들의 진한 땀 냄새가 배어 있다. 느리게 무르익은 장과 젓갈의 개미를 차마 버릴 수 없어 화려하고 간편한 음식문화의 유혹을 어렵게 견디어온 또 다른 장인들도 이곳 한켠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완전을 꿈꾸며 느리게 익어 가는 이곳은 그래서 언제나 미완의 터다. 구경이나 하려는 사람 반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줍은 새색시 같아 진정 어린 마음가짐이 없는 이에게는 그 장한 끼를 결코 보여 주지 않는 것이다. 이런 차마 삼가는 정성의 마음이 전통문화의 뿌리요, 전주정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백가쟁명의 웅얼거림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보는 것이다. 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 [부고]

    ●이성옥(창성교회 목사)씨 별세 기호(삼성에버랜드 마이에버스테이지 대표)씨 부친상 25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2258-5965●장은수(민음사 대표)은성(그물코출판사 〃)씨 부친상 25일 을지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30분 (02)970-8444●장충호(전 충북도 교육위원)씨 별세 해욱(전 주택은행 지점장)해성(재미 약사)해창(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마리셀린(예수성심시녀회 수녀)씨 부친상 김창곤(인천여자공고 교사)씨 빙부상 24일 단양노인요양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043)421-4444●김홍식(KBS보도본부 라디오 부장)씨 모친상 이숙현(청주동중 교사)씨 시모상 정택주(충북도청 환경정책과)씨 빙모상 25일 청주 참사랑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43)286-9513●김영수(경북도 자치행정과 사무관)씨 모친상 25일 영남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53)620-4242●손병운 병우(부산축산 회장)병위(미트빌 대표)영희(패시피아 〃)씨 모친상 이우석(한국은행 총무국 국장)씨 빙모상 23일 부산 동아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51)256-7011●박평원(한국경제TV 사회취업팀 PD)씨 부친상 24일 부산 영락공원장례식장, 발인 26일 오전 10시 (051)790-5068●이성우(백제문화제추진위 사무총장)씨 부친상 23일 충남 천안하늘공원장례식장, 발인 26일 오전 8시 (041)621-8013●장판기(KIA 타이거즈 프로야구단 운영팀 차장 겸 1군 매니저)씨 부친상 25일 광주한국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62)380-3041●황희성(전 한나라당 국장)씨 모친상 금기창(세무법인 삼한 대표)김학면(에스까다 코스메틱 〃)정주천(사업)씨 빙모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02)3410-6901●이성화(진주보호관찰소 사무관)동호(자영업)임선(한국국제대 교수)씨 모친상 고영진(한국국제대 총장)씨 빙모상 25일 경남 진주 제일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55)750-7233●성경환(MBC 아카데미 사장)씨 빙모상 25일 전북 정읍 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63)530-6744
  • 성유리 “인형이 여배우로 눈뜰 때…” (인터뷰)

    성유리 “인형이 여배우로 눈뜰 때…” (인터뷰)

    “‘인형’ ‘요정’ 예쁘다는 수식어가 항상 넘어서야 할 대상이었어요.” 신기할 만큼 변치 않는 미모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보는 사람을 숨죽이게 하던 성유리(28)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공주님 인형 같은 얼굴은 분명 성유리를 배우의 길로 이끈 하나의 견인차였다. 하지만 그녀의 새로운 도약 앞에서 번번이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는 고백이다. ◇ 가요계 요정→드라마 속 캔디공주→여배우 되기 아직도 성유리라는 이름은 90년대를 대표했던 걸그룹 핑클에 대한 향수를 아련히 떠오르게 한다. 혹자는 드라마 ‘천년지애’에서 경직된 사극대사를 읊던 백제 공주님의 미모를 기억할 수도 있다. 노래를 부를 때도 연기에 갓 입문한 신인연기자가 됐을 때도 성유리의 예쁜 외모는 어떤 단점을 단박에 덮어주는 마법의 묘약이었다. “핑클로 가수 데뷔를 한 것도, 드라마 ‘나쁜 여자들’로 처음 연기자가 된 것도 제 이미지나 얼굴이 큰 역할을 해 준 건 사실이에요.” 드라마 ‘천년지애’ ‘황태자의 첫사랑’ 등에서 성유리를 내세웠던 이관희 PD도 그녀에 대해 “심은하 이후 TV에서 가장 예쁘게 나오는 배우”라며 감탄했다. 하지만 성유리의 연기 경력이 늘어갈수록 대중은 더 많은 것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바로 연기력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하는 것은 두려웠다.”고 성유리는 고백했다.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연기력 논란은 매서운 채찍질처럼 생채기를 남겼고, 그 과정에서 성유리는 포기와 노력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 8편의 드라마를 거치며 시간 속에 단련된 성유리는 연기자로 데뷔한지 7년 만에 첫 영화 ‘토끼와 리저드’(감독 주지홍)를 조심스럽게 선택했다. 이제 스스로를 신인여배우라고 소개할 때가 된 것이다. ◇ 여배우, 아직은 부끄럽지만… 프랑스에서 먼저 데뷔한 주지홍 감독의 첫 국내영화 ‘토끼와 리저드’는 멜로를 표방하고 있지만 주연배우 성유리와 장혁 사이에 따뜻한 포옹, 달콤한 키스 한 번 나오지 않는다. 성유리는 “기존의 한국 멜로 영화와는 다른, 건조하고 불친절한 멜로영화”라며 미소 지었다. 익숙하지 않은 스타일의 영화를 스크린 데뷔작으로 선택하는 것이 큰 모험이 아니었냐는 질문에 성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전작들이 있었다면 그런 부분을 걱정했을 거예요. 하지만 영화라면 뭐든 처음인 저는 오히려 두려움 없이 선택했어요. 게다가 시나리오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운명이라고 느낄 정도였죠.” 성유리가 분한 메이라는 캐릭터는 성유리의 기존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메이는 신비롭지만 날카롭고, 예쁘지만 어딘가 음울한 20대 여성이다. “사실 다른 영화 시나리오도 많이 받았는데 제가 기존에 연기했던 ‘캔디’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게 거의 없었어요. 실제로 제겐 ‘토끼와 리저드’의 메이 같은 모습이 더 많아요. 제게 이런 이미지도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죠.” 최근 막을 내린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언론시사회 등에서 ‘토끼와 리저드’는 호평을 받았다. 메이로의 변신을 꾀한 성유리의 달콤씁쓸한 연기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 자체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며 성유리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신인여우상에는 욕심이 나느냐고 묻자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잠시 머뭇거리던 성유리는 “아주 조금 기대가 된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건 비밀이지만… 연말 영화제 시상식에서 입을 드레스를 알아보기도 했어요.(웃음) 하지만 ‘토끼와 리저드’의 개봉 시기가 늦춰지는 바람에 올해 영화제에는 수상 후보로 오르지 못할 것 같네요. 내년을 기대해볼까요?”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팔관회는 불교의례? 그 왜곡과 진실 찾기

    팔관회는 불교의례? 그 왜곡과 진실 찾기

    “고려시대는 조선왕조에 의해 배척되고 왜곡된 상처와 흔적을 안고 있다. 그 상처가 지금까지 유산으로 남아있고, 흔적은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상처를 기억하고 흔적을 규명해 고려시대의 진실을 밝히고 복원하는 것이 고려인의 후예라면 피할 수 없는 흥미로운 책무이다.” ●조선 성리학적 사대주의의 오류 한흥섭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이런 ‘책무’를 고대부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역사 속에 녹아든 음악사상에서 찾는 것으로 실현한다. ‘한국의 음악사상’, ‘우리 음악의 멋 풍류도’, ‘한국 고대 음악사상’ 등을 집필한 한 교수는 신작 ‘고려시대 음악사상’(소명출판 펴냄)에서 고려시대의 문화사 복원의 하나로 국가제전인 ‘팔관회’와 궁중음악 ‘아악’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한 교수는 “고려에는 드높은 위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음악적 유산이 있었지만 조선왕조에 들어와 철저히 배제되고 왜곡됐으며, 이런 관점이 무비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왜곡의 바탕에는 너무나 견고한 조선 성리학자들의 사대주의적 시각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신라에서 이어져 고려왕실의 공식행사 중 하나가 된 팔관회로, 고려 문화의 결집체이자 상징이었다. 신라시대에는 위령제적 성격이 짙은 불교의례였지만 고려시대에는 천령과 명산대천 등에 제사하고 복을 비는 토속의례의 성격이 강해진다. 팔관회의 핵심 의례인 ‘백희가무’에는 국선, 선가, 선랑, 화랑 등 춤추고 노래하며 토속신령에 기원하는 가무단이 행사를 이끈 것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또 왕의 사찰방문과 환궁 행렬이 이어지면서 축제적 성격도 띤다. 결국 팔관회는 유교적 의례와 신선이나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도교적 취향, 사찰 방문이라는 불교적 행사, 백희가무에서 드러나는 토속신에 대한 신앙 등이 총체적으로 연출된 종합행사다. 그러나 팔관회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려 전통을 인정하지 않는 부류들과 배불정책에 따라 철폐된다. 팔관회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 없이 단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두고 팔관회가 불교의례라고 단정짓는 것에 대해 저자는 “피상적인 시각에서 비롯한 오류에 불과하다.”면서 “팔관회의 본질적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는 작업은 고려문화의 실제에 접근하기 위해 필수적이고 중대한 절차”라고 강조한다. ‘궁중음악의 총칭’으로 정의되는 아악에 대해서도 저자는 문제를 제기한다. 아악이 고려 예종 11년(1116년)에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왔다는 한국국악계의 지배학설도 시대착오에 불과하다는 것. ‘고려사’를 통해 국가제사를 진행하고 문물제도를 정비한 성종(982~997년) 때 이미 아악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성종은 원구에서 풍년을 기도하고, 태묘를 건축해 친히 제향을 치뤘다. ‘고려사’의 ‘예지’에 나온 의례절차를 보면 이들 의례에는 반드시 악()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성종 때에 이미 아악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아악은 삼국시대부터 존재 아악기의 구성을 따지면 아악이 삼국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중에서 연주되는 아악과 당악, 향악에는 각기 고유의 악기로 연주한다. 예컨대 생, 우, 훈, 편종, 편경 등 아악기는 철저히 아악에만 사용했다. ‘삼국사기’의 ‘악지’에는 고구려악을 소개하면서 생, 소, 지 등의 악기를 거론한다. 당나라 역사서인 ‘북사’에 백제의 아악기 우와 지가 소개돼 있고, 신라 눌지왕 때 만든 ‘우식악’에는 훈과 지 등의 악기 연주가 묘사돼 있다. 당시 일반인들은 악기를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는 점, 또 외국 문헌에는 보통 한 국가의 궁중에서 사용하는 것들이 전해진다는 점을 종합하면 이미 그 전에도 궁중음악인 아악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전에는 ‘현존하는 아악을 문묘제례악 한 곡 뿐’이라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도 엄연히 궁중음악인데, 이를 제외하는 오류도 범한다고 지적한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많은 부침을 겪은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은 음악사상 분야도 벗어날 수 없다. “고려시대 음악문화의 실상에 대한 논의나 상상력이 더욱 풍요롭고 다양해지기를 기대한다.”는 말에서 저자가 풍부한 자료를 근거로 들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해진다. 2만 6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백제 멸망시기 8세기 중반~ 9세기 초로 봐야”

    백제사를 7세기 후반 한반도에서의 멸망 시점이 아니라 백제 유민들이 당나라 요동의 건안고성(建安故城)에서 재건한 왕국이 발해에 병합된 8세기 중반 내지 9세기 초반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교수는 20일 “당은 보장왕을 수반으로 한 고구려 유민들을 요동에 거주시켰고, 이 집단이 소(小)고구려의 기원이 됐다. 당이 웅진도독 부여웅을 수반으로 하는 백제 유민 집단을 건안의 고성으로 이주시킨 것도 이와 유사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즉, 건안고성에서 존속된 백제 유민 집단도 소백제로서 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백제의 멸망시점은 31대 의자왕이 나당군에 항복한 660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이 교수는 당이 백제에 설치한 행정관청 웅진도독부를 백제부흥운동의 연장선상으로 파악해 웅진도독부가 신라의 공격으로 해체된 672년을 백제사의 종지부로 주장해 왔는데 이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한 근거로 ‘삼국사기’와 중국 역사서 ‘구당서’ ‘신당서’에 기록된 “그 땅(백제)은 이미 신라·발해말갈에게 분할되어 국계(國系)가 끊기고 말았다.”는 구절을 지목했다. 백제 영역이 신라로 넘어간 건 맞지만 발해말갈로 분할되었다는 내용은 기존의 통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어서 이 구절은 오류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당나라는 676년 건안고성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유민들을 모여살게 하고, 이듬해 백제의 태자 부여웅을 웅진도독 대방군왕에 봉해 통치하게 했다. 이 교수는 “부여융은 조부인 무왕이나 부왕인 의자왕이 당으로부터 부여받았던 대방군왕 관작(官爵)을 동일하게 습봉하였다.”면서 “실질적인 독립국은 아니더라도 명목상 백제 왕국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건안고성에 재건된 백제는 언제까지 존속했을까. 이 교수는 “이 문제는 발해의 요동 지배시점과 맞물려 있다. 건안고성의 백제 왕국은 8세기 중반이나 9세기 초반 어느 때 요동 지역으로 세력을 뻗친 발해에 병합되었다.”면서 “‘삼국사기’등 사서에 기록된 ‘발해말갈에 분할되었다’는 구절은 이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 ‘당에서 재건된 백제’를 다음달 6일 부산 경성대 인문학연구소가 주최하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정부-지자체 취소된 축제비용 정산 줄다리기

    정부-지자체 취소된 축제비용 정산 줄다리기

    신종플루 확산으로 취소된 축제의 준비 비용 정산 문제를 놓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줄다리기하고 있다. 정부가 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예산을 조기 집행했고, 지자체들은 정부의 시책에 따라 일찌감치 축제 준비 작업에 들어가 예산을 미리 썼기 때문이다. 19일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따르면 올해 전국 57개 국비 지원 축제 가운데 10개가 신종플루 여파로 취소됐다. 나머지 47개 축제는 이미 개최됐거나 예정돼 있다. 취소된 축제는 ▲안성 바우덕이축제 ▲천안 흥타령축제 ▲충주 세계무술축제 ▲봉화 춘양목송이축제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 ▲진주 남강유등축제 ▲횡성 한우축제 ▲울주 외고산 옹기축제 ▲정선 아리랑제 ▲공주·부여 백제문화제 등이다. 이들 지자체는 지난 1월부터 발빠르게 국내외에 축제를 사전 홍보하고 기획사와 계약하는 등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중앙정부도 총 16억 9000만원의 국비 보조금을 지원하며 발 맞췄다. 그러나 신종플루 확산을 우려한 행정안전부 등 중앙정부는 지자체에 축제 취소를 강권했다. 이들 지자체는 부득이하게 축제를 취소해야 했다. 비용 정산 문제를 떠안게 됐다. 지자체들은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미 교부받은 국비 및 시·도비 보조금의 전액 또는 일부를 반납해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게다가 이들 지자체는 기대했던 지역 홍보와 경제활성화 등도 한순간 물거품이 됐다. 실제로 안동시는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4일까지 10일간 개최 예정이었던 국제탈춤페스티벌에 국비 8억원과 도비 4억원 등 모두 12억원을 지원 받았다. 이미 기획사 계약 등으로 5억 6200만원을 집행한 안동시로서는 답답한 형편이 됐다. 올해 송이축제 준비에 2500만원을 들인 봉화군도 국·도비 1억 4000만원을 되돌려 줘야 한다. 다른 8개 지자체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축제 보조금을 반납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들 지자체는 축제를 사실상 정부가 강권해 취소한 만큼 비용 전액 또는 상당액을 보전해 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가뜩이나 재정여건이 열악한 지자체들로서는 상당한 부담이기 때문이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올해 축제 조기 준비 및 취소는 중앙정부의 예산 조기 집행과 신종플루 확산 방지 지침에 따른 만큼 비용 전액을 지원해 주든지 최소한 당초 예산 배분 비율만큼 보조금으로 보전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비 보전 비율에 따라 시·도비 보조율도 정해지는 만큼 신속한 결정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중앙정부는 원칙적으로 해당 지자체의 축제 준비 비용 전액을 국비로 보전해 준다는 것은 곤란하다는 반응이다. 문화부 관계자는 “개최되지도 않은 축제의 준비 비용 전액을 보전한다는 것은 무리”라며 “올해처럼 신종플루로 국비 지원 축제가 무더기 취소되는 사례가 드문 만큼 충분한 검토를 거친 뒤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도시와 산] (29) 전주 고덕산

    [도시와 산] (29) 전주 고덕산

    고덕산(高德山·603.2m)은 ‘천년고도’ 전북 전주시를 지켜온 산이다.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과 대성동, 완주군 구이면과 상관면 등에 걸쳐 있다. 전주시가지의 높은 건물이나 막힘이 없는 곳에서 보면 남쪽으로 우뚝 솟아오른 정상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시내에서 가깝지만 교통이 약간 불편해 가까우면서 먼 산처럼 느껴진다. 사람 발길이 뜸한 만큼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고 남고산성, 관성묘, 남고사 등 문화유적과 명승지가 많아 전주시민들의 애틋한 사랑을 받고 있다. 가을이면 활엽수들이 어우러져 연출하는 단풍이 빼어나고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을 밟으며 오르는 산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고덕산은 덕이 높은 산이란 뜻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고대산(孤大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덕산(高德山) 또는 고달산(高達山)으로 기록돼 시대마다 달랐다. 고달이란 최고에 도달한다는 뜻으로 ‘높다리기’라고도 불렸다. 산의 모습이 우뚝 솟아 있으면서도 날카롭지 않고 기품이 있어 “덕이 높다.”라는 고덕이 어울리지만 유래는 알 수 없다. 높다라기산에서 차음됐다고도 한다. 임진왜란을 비롯해 전란이 닥칠 때마다 고덕산과 그 줄기에 있는 남고산성은 전주를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치열한 전쟁터였다. 고덕산 줄기에는 둘러볼 만한 유적들이 많다. 관성묘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장군을 무신으로 받들어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관성묘는 고종 32년(1865) 전라도 관찰사 김성근과 남고산성을 책임지던 무관 이신문이 제안해 각 지역 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건립했다. 사당 안에는 관우의 상이 있고 양쪽 벽에 ‘삼국지연의’ 내용을 그린 벽화가 있다. 남고진 사적비에는 남고산성의 내력이 담겨 있다.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 등 각 봉우리에서는 한옥마을을 비롯한 전주시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만경대에는 고려 말기 충신이자 유학자 정몽주(1337~1392년)가 당시 서울인 개경을 바라보며 지은 시가 지금도 돌벽에 그대로 남아 있다. 정몽주는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년)가 전승 기념으로 전주 오목대에서 큰 잔치를 베풀면서 고려를 엎고 조선을 개국할 뜻을 피력하자 말을 달려 남고산 만경대 올라 기울어가는 고려를 걱정해 이 시를 지은 것으로 전해내려온다. ●문화유적의 보고 남고산성 고덕산에 오르다 보면 남고산성(사적 제294호)을 거치게 된다. 고덕산의 서북쪽 골짜기를 에워싼 포곡형 산성이다. 고덕산 줄기인 남고산(220m) 정상을 중심으로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둘러 쌓았다. 남고산성은 문화유적의 보고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 따르면 남고산성은 901년 후백제의 견훤(867~935년)이 쌓았다. 이 때문에 견훤산성 또는 고덕산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견훤은 전주의 동서남북을 제압하기 위해 산성을 쌓고 동서남북에 각각 사찰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남고산성은 폭 3.4m 높이 1.2m, 길이 5.3㎞로 축성됐으나 현재 3㎞ 구간만 밝혀졌다. 전주에서 남원, 순창으로 통하는 교통상 요지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을 받았으나 이곳에서 끝까지 대항했다. 현존하는 성벽은 임진왜란 당시 전주 부윤 이정란이 왜군을 막을 때 쌓았다. 1811년(순조 11년) 관찰사 이상황이 증축, 이듬해 박윤수가 관찰사로 부임해 완공했다. 전주시가 1997년부터 2005년까지 108억원을 들여 성곽길이 2950m 가운데 1546m를 복원했다. 이 산성은 조선 순조 때 수축해 남고진을 두었고 효종 때 설치한 중진영, 숙종 때 쌓은 위봉산성과 함께 전주를 지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산성 안의 남고사 앞쪽에 남장대, 뒤편에 북장대를 두었다. 남장대 아래 계곡에 군기고, 화약고 등이 있었고 산성별장 1명이 22명의 지휘관과 1400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주둔했다. ●사방 탁 트인 조망권 장관 고덕산은 전주시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등산코스로 유명하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3~4시간이면 정상을 밟는다. 남고산성 성벽 위를 걷기도 하지만 정상에 이르는 길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코스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동서학동 좁은목 약수터 방향, 평화동 흑석골 방향, 전주교육대학 뒤쪽 등이다. 예전에는 약수터를 경유하는 코스를 많이 선택했지만 평화동에 아파트 밀집지역이 형성되면서 학산 쪽에서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아졌다. 문화유적탐방을 나서는 등산객들은 아직도 전주교대 뒤쪽길을 선택한다. 어느 코스든 비교적 길이 평탄하고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지 않다. 초입부터 중턱까지 구간은 소나무숲이 우거져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여성 등산객들이 선호한다. 비교적 경사가 급하지 않던 산행길은 남고산성 북동쪽 성곽 뒤로 올라서면서 급격하게 고도를 높인다. 성곽길을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는 전주시가지가 펼쳐지고 오른쪽으로는 고덕산 정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지막 정상부근 오름은 만만치 않다. 아마추어 등산가들은 10여분 정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짝 힘을 써야 정상을 밟을 수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압권이다. 북서쪽으로는 발 아래 전주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지고 익산시까지 내려다보인다. 동쪽으로는 기린봉, 치명자산 너머 진안 마이산이 가물거린다. 남동쪽으로는 아득히 지리산 연봉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고 서쪽으로는 모악산의 자태를 살펴볼 수 있다. 고덕산은 최근 들어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등산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적한 산행을 즐기려는 등산객과 문화유적을 탐방하는 가족단위 나들이객이 많아졌다. 남쪽 기슭에는 전원생활을 추구하는 동호인들의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남고사도 가보세요 남고사(南固寺)는 전주시민들에게 친근한 사찰이다. 역사적 의미가 큰 남고산성 안에 있는 절로 전주 사람들은 초·중·고 시절 한두 번쯤은 소풍을 간 경험이 있다. 예로부터 해질녘에 들리는 남고사의 종소리를 ‘전주팔경’의 하나로 꼽을 만큼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전주시내 남쪽에 위치한 작은 사찰로 접근성이 좋아 주민들이 산행할 때 자주 찾는다. 산 아래 주차를 하고 20분 정도 걸어 오르면 도달한다 남고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보덕의 제자 명덕화상이 668년 창건했다. 보덕이 고덕산 남쪽에 경복사를 창건해 열반종의 근본 도량으로 정했는데, 명덕화상이 남고사를 창건해 그 말사의 자격으로 열반종의 전통을 이어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때는 남고연국사(南固燕國寺)라고 불렸다. 남고연국사가 남고사로 표기된 것은 견훤이 산성을 쌓고 사고(四固) 사찰을 지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때까지는 교종 계통의 사찰이었으나 조선 세종 때 선·교 양종을 통합하면서 정한 48개 사찰에 들어가지 못해 사세가 크게 위축됐다. 임진왜란 이후 선종이 크게 신장되면서 선종계 사찰이 됐다. 1680년(숙종 6년)에 관음전이 들어서고 1881년(고종 18년)에 중건했다. 1981년 대웅전, 1984년 삼성각, 1985년 관음전을 중건했다. 1992년 관음전과 요사가 불에 탔고 1995년 관음전을 인법당으로 복원하고 1996년 목조관음보살상을 모셨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관음전, 삼성각, 사천왕문 등이 있다. 관음전은 1680년 창건돼 1992년 10월7일 불에 탄 것을 1995년 복원했다. 사천왕문에는 다른 절에서처럼 사천왕상을 모시지 않고 사천왕을 그린 탱화만 둔 점이 특이하다. 옛 절터 남고사지는 현재 대웅전 오른쪽 앞 건물자리다. 도 기념물 제72호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송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유엔 공인

    송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유엔 공인

    송파구가 유엔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인정받았다. 국내 도시가 국제공인된 살기 좋은 도시상을 수상하기는 처음이다. 송파구는 지난해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안전도시·건강도시 공인을 받은 데 이어 이번 수상으로 겹경사를 맞았다. 구는 13일 오전 1시(한국시간) 체코 필센에서 열린 ‘2009 리브컴 어워즈(LivCom Awards)’에서 인구 20만~75만명인 도시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상(賞)’을 수상했다고 이날 밝혔다. 올해로 13회째를 맞은 ‘리브컴 어워즈’는 유엔환경계획(UNEP) 공인 하에 비영리기구인 ILC(International Liveable Communities)가 지구환경보호에 기여한 도시를 대상으로 1997년부터 수여하고 있는 세계적인 권위의 상으로, 매년 전 세계 250여개 도시가 응모하고 있다. 그동안 이 상을 수상한 도시는 뉴질랜드 뉴플리머스(2008), 스웨덴 말뫼(2007), 중국 둥관(2006), 영국 코벤트리(2005), 독일 뮌스터(2004) 등이며, 이들 도시는 전 세계인이 찾고 싶어하는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올해도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와 호주 골드코스트시티,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 등 70여개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 부문 최종 결선에 진출해 치열한 수상 경쟁을 펼쳤다. 구는 ‘살기 좋은 도시’ 부문 가운데 인구 20만~75만명 도시를 대상으로 한 ‘카테고리D’ 경쟁에 참가해 호주 최고의 휴양도시인 골드코스트시티와 로간시티 등을 제치고 중국 광둥성 둥관시의 스룽진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구는 ▲도시경관 증진 ▲효과적인 문화유산 관리 ▲커뮤니티 구축 ▲친환경 정책과 실천 ▲건강한 생활양식 ▲미래계획 등 6개 심사부문에서 골고루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전날 도시별로 진행된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2000년 전 고대 백제 수도로 출발한 구의 역사와 문화를 선보인 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과 다양한 친환경 정책을 소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구를 둘러싼 27㎞의 물길을 친수공간으로 조성하는 워터웨이 프로젝트와 세계 최초로 시도한 환경보전 및 복지정책의 혁신적 모델인 태양광 나눔발전소, 자가 발전형 운동시설과 태양광 발전 분수대 등을 갖춘 기후놀이터, 친환경 교통수단인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최첨단 자전거차체잠금형 무인대여시스템 등을 소개해 찬사를 받았다. 한편 시상식에는 청와대 직속기구인 녹색성장위원회가 공식 참관해 국가적인 관심을 보인 가운데, 구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주최측인 ILC 본부로부터 2011년 ‘리브컴 어워즈’ 유치 의사를 제안받았다. 리브컴 어워즈를 유치할 경우, 결선에 오른 전 세계 70여개 도시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관광효과는 물론이고 도시 이미지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21세기 친환경도시로 우뚝 기후놀이터등 강한 인상준 듯”

    “송파가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된 것은 송파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역사적 사건입니다.” 13일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인하는 ‘2009 리브컴 어워즈’에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상’을 수상한 김영순 송파구청장은 “옛 백제의 도읍지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송파가 21세기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친환경 도시로 우뚝 섰다.”며 소감을 밝혔다. 김 구청장은 “우리나라는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국민들의 삶의 질과 환경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왔다.”면서 “국내 도시의 친환경 정책과 주민들의 삶의 질을 바로 알리기 위해 리브컴 어워즈에 도전하게 됐다.”고 참가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송파구가 추진해온 태양광 나눔 발전소와 기후놀이터, 최첨단 자전거차체잠금형 무인대여시스템 등 다양한 친환경 정책들이 21세기형 환경정책의 새로운 모델로서 심사위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 같다.”며 “이곳에서 만난 주요 도시 관계자 대다수가 한국을 꼭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리브컴 차기 대회를 유치할 수 있다면 관광은 물론이고 국가인지도 제고에도 큰 도움일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유치 의사를 내비쳤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도미부인 사당 추모제향 참석

    신준희 충남 보령시장 12일 오천면 백제시설 정절의 상징인 도미부인 사당에서 개최된 추모제향에 참석했다.
  • [뉴스다큐 시선] 사라져 가는 청계6가·이태원 헌책방

    [뉴스다큐 시선] 사라져 가는 청계6가·이태원 헌책방

    이번 주인공은 사라져 가는 ‘헌책방’입니다. 40년 전통의 서울 청계6가 헌책방 골목과 영어서적을 파는 이태원을 다녀왔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골목은 한산했습니다. 책 주인이 책장 사이에 끼워둔 단풍잎을 발견하는 기쁨, 밑줄 그어 놓은 구절을 읽고 고개를 주억거리던 기억이 그립지 않나요. 올가을 헌책방에 들러 헌책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에 취해 보는 건 어떨까요. 글 사진 동영상 오달란 유대근기자 dallan@seoul.co.kr “내 이름은 여재촬요입니다. 1893년(고종 30년)에 오횡묵이 쓴 지리서입니다. 한국과 세계의 지리를 담고 있습니다. 세계지도와 조선전도가 흠집 하나 없이 들어 있습니다. 개화기에는 지리 교과서로 인기가 많았죠. 우리 헌책방에서 나이가 가장 많습니다. 몸값도 상당하죠. 100만원에도 나를 사갈 고서 수집가가 있을 겁니다.”(서울 청계6가 상현서림의 헌책) “서점 밖 인도에 쌓아둔 책더미 맨 위에 내가 있습니다. 약초한방대백과가 내 이름입니다. 계절별로 나는 약초의 이름과 효능을 사진과 함께 설명한 책입니다. 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요. 50대 중년부부가 나를 집어 드네요. 올컬러 634쪽의 통통한 자태에 반한 모양이에요. 주인 아저씨는 단돈 9000원을 받고 검은 비닐봉지에 나를 담아 부부에게 건넵니다.”(청계6가 양지서림의 헌책) “나는 1913년에 영국에서 출판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입니다. 빨간 하드커버 위에 금색 잉크로 코끼리와 알리바바를 새겨 넣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죠. 헌책방에 들어온 지도 어언 20년이 넘었네요. 주인 부부가 잘 관리한 덕분에 96살 먹은 책치곤 상태가 좋습니다. 내 몸에서 나는 은은한 바닐라 향기가 느껴지나요?”(이태원 포린북스토어의 헌책) 서울 청계6가 평화시장의 헌책방 골목. 2평 남짓한 가게 공간이 부족해 인도에까지 쌓아둔 책들이 손님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간혹 두어 명의 행인들이 서점을 기웃거리지만 한두 권 꺼내 들춰 보다가 이내 자리를 뜬다. 눈부신 가을햇살에 책 표지만 빛을 바래가고 있다. 40년째 이곳에서 양지서림을 지키고 있는 성세제(63)씨는 “1970년대 150개가 넘었던 책방이 지금은 50개도 안 남았다.”고 말했다. 책이 귀했던 시절, 헌책방은 배움에 목마른 학생들과 지갑을 선뜻 열기 어려운 서민들의 책 욕심을 두둑이 채워줬다. 청계천 골목은 새학기가 시작되는 3~4월과 9~10월이면 교재를 마련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성씨는 “새까만 머리밖에 안 보일 정도였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신학기 대목에 번 돈으로 1년을 나기도 했다고 하니…. 2대째 상현서림을 운영하고 있는 이응민(45)씨는 “아버지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대학 교재를 팔아 번 돈으로 집도 사고 삼형제를 키워 장가까지 보내셨다.”고 말했다. 1970~1980년대 장발의 대학생들은 헌책방에 책을 내다판 돈으로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다. 부모님에게는 새책을 산다고 둘러대고 헌책을 구입한 뒤 남은 돈을 갖고 술집으로 향하는 주당들도 있었다고 한다. 유통이 금지된 불온서적들도 헌책방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청년들은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공산당사 등 사상서적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찾았다. 책방 주인들은 벽장이나 다락에 깊숙이 숨겨둔 책을 꺼내 신문지에 싸서 학생들에게 주었다. 조순 전 서울대 교수의 ‘경제학원론’은 헌책방 골목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여겨지던 이 책을 확보하기 위해 헌책방 주인들 사이에서 피 말리는 경쟁이 벌어질 정도였다. 1980년대 등장한 복사기는 헌책방 호황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학가 곳곳에 1장당 10원을 받고 교재를 복사해 주는 복사집이 대거 들어서면서 헌책방을 찾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다. 급기야 책의 모든 쪽을 복사해 한 권의 책처럼 만들어 파는 제본 방식이 유행하면서 헌책방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태원 포린북스토어 “200명 단골들은 보물1호… 도올선생도 내 고객” 이응민씨는 2001년 아버지 이상화(72)씨의 헌책방을 물려받았다. 1977년부터 책방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삼형제 중 맏아들인 이씨가 대신 가업을 잇기로 했다. 슈퍼마켓 유통 영업소장으로 10여년 일한 이씨는 장사라면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슈퍼에서 야채 팔듯이 책을 팔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선 8000권에 달하는 책을 5000권으로 줄여 공간을 확보하고 책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비슷한 시기에 인터넷 헌책방도 시작했다. 인터넷 경매쇼핑몰에 헌책방을 내고 책 사진을 찍어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루에 택배 상자 54개를 부칠 때도 있었다. 오프라인 헌책방 수입의 2배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경매쇼핑몰의 수수료가 비싸 3년 전 인터넷 헌책방을 그만뒀다. 대신 헌책방 블로그를 시작했다. 이씨의 블로그는 하루 평균 700~1200명의 고정 방문자가 있을 만큼 명소가 됐다. 책방 운영 9년째에 접어든 이씨는 “책 장사는 그냥 장사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5000권이 넘는 책을 빨리 팔아치우겠다는 마음으로 덤볐더니 손님도 줄고 매출도 뚝 떨어졌다.”면서 “어느 순간 ‘못 팔면 내가 읽으면 되지.’ 하는 느긋한 생각으로 임했더니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남은 소원은 중학교 1학년인 큰딸에게 책방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는 “이 녀석이 예전의 나만큼 책 읽기를 싫어한다.”면서 “책을 싫어한 죄로 책방을 하게 된 아비의 운명을 닮아가려는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서울 지하철 녹사평역 1번 출구에서 나와 조금만 걷다 보면 진초록 천막을 드리운 2층 건물이 보인다. 한눈에도 오래돼 보이는 이곳은 최기웅(66)·김영자(61)씨 부부가 1973년부터 운영해온 포린북스토어다. 영어서적을 전문으로 취급한다. 최씨는 1967년 종로 화신백화점(현 종각타워) 뒷골목 노점에서 헌책 장사를 시작했다. 미군부대 근처 고물상을 뒤져 수집한 헌책은 이발소와 봉투집에서 많이 사갔다. 읽기 위해서가 아니다. 면도크림을 닦고 군밤과 과일을 담는 봉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최씨는 명동 뒷골목으로 자리를 옮겨 ‘읽기 위한 책’으로 팔기 시작했다. 컬러인쇄된 책이 귀하던 시절 그가 팔던 라이프, 루크, 포스트 등 미국 월간지는 좋은 구경거리였다. 영어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도 그의 노점을 찾았다. 최씨는 “이화여대 영문과 학생들이 단골이었다. 내가 파는 잡지와 단행본으로 공부해 교수하고 있는 친구도 있을 것”이라며 기억을 떠올렸다. 1985년 이태원의 지금 자리로 이사를 왔다. 소설, 여행안내서, 요리책, 역사서 등 10만권의 책이 2~3중으로 설치한 책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최씨는 영어책을 판다는 자부심으로 한길을 걸어 왔다. 부동산 붐이 일던 1990년 초, 서점을 치우고 부동산을 차리자는 친구의 제안도 단번에 거절했다. 최씨는 “그 당시 부동산을 했으면 큰 부자가 돼 있겠지만 그래도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에게 10만권의 헌책은 자식과 마찬가지다. 새것처럼 보이도록 매일같이 먼지를 떨고 손질한다. 24색 매직펜으로 칠이 벗겨진 표지를 덧칠하고 칫솔에 표백제를 묻혀 누렇게 바랜 책 옆면을 쓱쓱 닦아낸다. 10여분의 손질이 끝나면 새책처럼 깔끔해진다. 200명이 넘는 단골들은 최씨의 보물 1호다. 도올 김용옥 선생, 이팔호 전 경찰청장 등 유명인사들도 그의 책방에서 원서를 뒤적였다. 최씨 부부는 살림방이 딸린 이 책방에서 딸 셋을 키워 대학원까지 보냈다. 부인 김씨는 “책과 함께 커 온 딸들은 책방을 놀이터와 공부방으로 여기며 자랐다.”면서 “헌책방 운영이 예전 같지 않지만 여생을 책과 함께 마감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 맨해튼 한복판에 거북선 떴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3일(현지시간) 거북선과 백제탈, 태권도 시범단 등이 도심 한복판을 누비는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행사에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맨해튼 6번 애비뉴를 따라 41가에서 24가 사이에서 2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퍼레이드에는 200여개 단체에서 5000여명이 참여했다. 뉴욕시 기마경찰대가 퍼레이드를 인도한 가운데 서울시에서 지원한 왕궁 수문장 전통복식을 한 행렬이 거북선과 함께 행진했고 백제탈을 쓴 행렬도 등장했다.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김경근 뉴욕총영사와 함께 행진을 이끈 뒤 32가 코리아타운에 마련된 야외장터의 비빔밥 행사장에 참석, 500인분의 초대형 비빔밥을 직접 비비고 맛있게 시식했다. 3선 도전에 나선 블룸버그 시장의 지지자들은 한인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코리안 퍼레이드는 뉴욕시의 5대 퍼레이드 가운데 하나로 올해로 29회째를 맞이했다. 하용화 뉴욕한인회 회장은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많이 참여해 우리를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코리안 퍼레이드를 더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뉴욕 연합뉴스
  • [여행가방]

    ●리조트에서 추석맞기 고향과 조상을 찾지 못하는 마음이야 불경스러움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짧은 연휴 불가피한 부분도 있음을 조상님들이 이해해주시길 바랄 따름이다.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리조트에서 추석의 넉넉한 느낌과 조상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으로 갈음해 보자. 곤지암리조트에서는 추석 당일 각종 민속놀이가 진행되는 ‘한가위 한마당’이 열린다. 특히 온 가족이 함께 리조트 조리장에게 직접 배울 수 있는 요리강좌가 열린다. 참가비는 가족당 실비 정도다. 국내 최대 동굴와인카브를 표방하는 ‘라그로타’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분위기를 낼 수 있다. 현대성우리조트(033-340-3000)는 연휴 기간 동안 ‘떡절편 만들기’ 행사를 갖는다. 또 3일 막국수 등 강원도 전통 음식을 재래 방식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향토먹거리 체험’을 진행한다. 용평리조트(02-3270-1122)는 3일 ‘한가위 송편 만들기’ 행사를 가지며, 인절미, 녹두부침, 막걸리, 식혜 등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참가비 1만원. 또 2~3일 오전에는 대형윷놀이, 제기차기, 림보 등이 펼쳐지는 ‘추억의 명랑운동회’를 연다. 전국 8개 직영리조트를 운영중인 대명리조트(1588-4888)에서는 차례지내기, 전통 공예 등 한가위 체험 행사가 열린다. 특히 강원도 홍천 비발디파크에서는 한가위 고객 노래자랑, 강강술래, 남사당패 등이 추석 명절의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휘닉스파크(1577-0069)는 추석 당일 오전 10시 합동차례를 진행한다. 가족별로 절하고, 술 올리도록 했으며 제례 후 음복까지 진행한다. 저녁에는 언더그라운드, 아마추어밴드의 공연을 펼친다. 서울 한복판 용산 드래곤힐스파(02-791-0001)는 시어머니, 며느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를 마련했다. 추석 당일인 3일 차례를 모신 뒤 함께할 수 있도록 오후 2시부터, 노래자랑, OX퀴즈 등 ‘한가위 대박축제’를 벌인다. ●공주에서 줍는 명품 알밤 백제문화권 전담여행사 ‘데모스투어’가 공주의 알밤과 웅진시대 역사유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주알밤 October 페스트’ 패밀리형 여행상품을 내놓았다. 9~11일 열리는 알밤축제에 맞춰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참가비는 1인당 3만5000원이며 예약문의는 (02)395-3933 또는 홈페이지(www.demos.co.kr)에서 가능하다.
  • JAPAN 문화의 뿌리 나라현을 가다

    JAPAN 문화의 뿌리 나라현을 가다

    │나라(일본) 이경원특파원│최근 충남의 어느 시골을 갔다. 버스가 다닌 지 채 5년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요즘 흔치 않은 깡촌임에도 멀리 고층 아파트 몇 채가 보였다. 대한민국 어느 곳도 아파트 역병(疫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적어도 여행이 휴식을 의미한다면, 스카이라인과 네온사인에 이력이 난 현대인들이 한적한 곳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파트 광풍에 허덕이는 한국인에게는 더욱 더. 사흘간 발도장을 찍고 온 일본의 나라(奈良)현은 이런 면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곳이다. 오사카부와 교토부 등 대도시에 둘러싸여 있지만 고층건물이 아닌 골목이 눈에 들어오는 소소한 매력이 있다. 나라현에 고층 건물이 없는 이유는 건축업자들이 공사를 꺼려하기 때문이란다. 나라현 관계자는 “땅을 파면 뭔가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우스갯소리를 건넨다. 나라현은 ‘아스카시대’와 ‘나라시대’가 시작된 일본 역사의 뿌리이자 보고(寶庫)다. 공사를 시작하면 국보급 유물이 출토돼 공사가 지체될 때가 많아 업자들이 달가워할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 덕분에 나라현은 일본 고유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됐다. 일본의 전통이 자연스레 물들어 있는 골목의 풍광과 여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담한 일본의 목조 가옥은 마치 소인국에 온 느낌을 자아낸다. 간사이 공항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아스카 지역은 이런 분위기를 느끼기에 최적의 장소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 골목을 누비는 데 반나절이면 족하다. 자전거 대여료도 1시간 300엔(약 4000원), 하루 1000엔으로 일본의 높은 물가 치고는 저렴하다. 일본의 전통 기와가 덮여 있는 가옥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담이 낮아 도리어 탁 트인 느낌이다. 낮은 담 너머 다섯평 남짓한 자그마한 마당에는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정원이 눈길을 끈다. 이렇게 이쁘게들 산다. 일본 문화의 뿌리답게 골목 곳곳에 있는 국보급 유적지는 운치를 더한다. 거석을 쌓아 올린 이시부타이 고분, 일본 최고(最古)의 절인 아스카데라, 에도시대의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이마이초 마을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학창시절 배운 국사 교과서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삼국통일 뒤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들이 이곳 아스카에 터전을 잡고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구절. 아스카데라 주지스님이 “아스카 문화는 한국으로부터 문화를 받아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한국인을 무척 좋아한다.”고 반색하며 맞이한다. 아스카를 벗어나 나라현의 현청 소재지 나라시로 향한다. 나라현에서 가장 큰 도시지만 그 모습은 여느 대도시처럼 화려하지 않다.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와카쿠사산 정상에 오르면 도시 전경이 한 폭의 양탄자 같다. 높은 건물로 어디 한 곳 모난 구석이 없다. 와카쿠사산 아래 나라공원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천마리의 사슴들이 뛰어노는 곳이다. 목동이 먹이를 주기 위해 나팔을 불면 숲속에 있던 사슴들이 쏜살같이 뛰어 나온다. 머리로 사람들의 몸을 건드리며 먹이를 달라고 아양을 부릴 때면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공원을 빠져 나오는 길목에는 우키미도라는 육각정이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연못과 숲, 멀리 보이는 산이 함께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 같다.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에 귀가 뻣뻣해진다. 현청 소재지 한복판에 있는 공원이 맞나 싶다. 나라 공원을 빠져나오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가스가타이샤 신사와 도다이사 등 일본이 자랑하는 유적지가 있다. 오층탑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고후쿠지사, 신성한 산이라 하여 벌채가 금지돼 있는 가스가산 원시림도 자전거로 산책하며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다. 나라 시내 긴데쓰 나라역 주변을 걷다 보면 대표적인 골목 ‘나라마치’가 나온다. 아스카의 골목이 논과 어우러진 한적한 모습이 특징이라면 나라마치는 다소 도시화된 세련된 맛이 있다. 목조 창살이 내부를 가리고 있어 다소 투박해 보이기도 하지만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여운이 느껴진다. 나라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이카루카 지역은 ‘일본 국보의 총아‘로 불리는 호류사로 유명하다. 아스카시대 불교를 보급하는 데 힘쓴 쇼토쿠 태자가 607년 창건한 이 절은 일본인들의 자부심이 그대로 배어 있다. 국보급 문화재만 190점에 달한다. 백제의 승려 담징이 그렸다는 금당벽화를 비롯해 백제 관음상 등 우리 문화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당벽화가 담징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가이드의 말이 다소 거슬리긴 했지만 민족주의는 잠시나마 접어뒀다. 일단 그들이 보여주는 것 자체에 집중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이카루카에서 차를 타고 시기산을 오르면 멀리 오사카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이곳의 야경은 나라현 최고의 백미로 꼽힌다. 시가·이코마 스카이라인 로드의 우거진 숲 사이로 멀찌감치 보이는 도시의 야경은 마치 달빛에 반사된 밤바다같이 신비롭다. 야경의 아쉬움을 접고 시기산의 한 온천에서 몸을 데운다. 우거진 숲 사이 노천을 발가벗은 몸으로 거닌다는 게 여간 어색하지가 않다. 나라현의 온천은 규모가 크지 않아 유명세는 덜하다고는 하지만 아쉽진 않았다. 나라의 한적한 분위기 덕분에 풀어낼 여독이 크지 않았던 까닭이다. 지금 나라현은 축제 준비로 분주하다. 오는 2010년 ‘헤이조쿄(나라의 옛 이름) 천도 1300주년’을 맞이해 1년 내내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잔뜩 들떠 있는 분위기다. 지난 23일에는 축제 100일 전 행사도 성대히 치렀다. 일본 역사의 시작은 보통 6세기 중엽 아스카 지역에서 시작된 ‘아스카시대’로 보고 있지만 본격적인 중앙집권 국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기준점은 ‘나라시대’가 개막된 710년 헤이조쿄 천도를 꼽는다. 아스카 시대가 ‘일본의 잉태’를 의미한다면 헤이조쿄 천도는 ‘일본의 탄생’을 뜻한다. 그만큼 일본인들의 마음 속에 ‘710년’의 의미는 크다. 나라현은 이번 행사를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나라시의 헤이조궁 유적지에서는 관광객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된다. 내년 4월24일부터 11월7일까지 개최되는 유적지 탐방 투어를 비롯해 고대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한 퍼레이드가 열린다. 고대의상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을 비롯해 붓을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이밖에 4월24일부터 5월9일까지 ‘꽃과 신록의 페어’, 8월20일부터 27일까지 ‘빛과 등불의 페어’, 10월9일부터 11월7일까지 ‘헤이조쿄 페어’가 열리며 관광객들을 끌어 모은다. 이번 헤이조쿄 천도 축제를 비롯해 나라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나라현 한국어 홈페이지(www.pref.nara.jp/nara_k/)를 참고하면 된다. 글 사진 leekw@seoul.co.kr
  • 5세기 백제 금동신발 출토

    5세기 백제 금동신발 출토

    전북 고창군 봉덕리에 위치한 5세기 초 백제시대 분구묘에서 지금까지 나온 것 중 상태가 가장 완벽한 형태의 금동신발 한 켤레가 발굴됐다. 지난 6월부터 봉덕리 고분군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28일 1호분 내 석실에서 이 금동신발을 비롯, 일본식 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쏟아졌다고 밝혔다. 이날 1500여년 만에 햇빛을 본 금동신발은 30㎝가량 크기로 목 부분과 양쪽 측판, 바닥을 각각 작은 못으로 결합한 형태다. 측판과 바닥에는 투조(透彫·판의 일부를 파내 무늬를 만드는 방식)로 용과 봉황, 역사상(力士像) 등 화려한 무늬를 새겨 넣었고, 바닥에는 스파이크 모양의 징 18개를 붙였다. 현재까지 백제시대 금동신발은 공주 수촌리 고분군의 3켤레를 포함해 총 14켤레 정도가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금동신발은 이전 것들과 달리 상태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어 당시 금속 세공기술의 실태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와 함께 1호분에서 소호장식유공광구호(小壺裝飾有孔廣口壺)도 처음으로 출토됐다. 작은 항아리형 토기를 덧붙이고 몸통에 작은 구멍을 뚫은 이 항아리는 일본 스에키(須惠器) 계통 토기로 그릇받침과 함께 완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그외 석실에서는 5세기 중국 남조에서 수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를 비롯, 대나무잎 모양 청동제 장식품, 귀걸이 2쌍, 곡옥 2점, 칠기 화살통, 대도 2점, 손칼 등이 발견됐다. 이날 유물이 발굴된 1호분은 봉분 하나에 석실분 5기, 옹관묘 2기를 갖춘 마한 전통의 ‘벌집형 고분’이다. 길이 72m, 너비 50m, 높이 7m 규모로 그중 4호 석실분은 백제 고분 중에는 최초로 천장에 기와를 얹은 형태를 보여 주기도 한다.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최완규 소장은 “이 출토 유물들은 당시 이곳 세력들이 오늘날의 중·일 지역과 활발한 문화교류를 행했다는 근거가 된다.”면서 “이번 발굴이 고창 지역 고대문화 정체성 확립의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대가야박물관 관람객수 국립박물관 누른 비결은

    대가야박물관 관람객수 국립박물관 누른 비결은

    ‘신비의 왕국’ 대가야의 도읍지 경북 고령군립 대가야박물관이 ‘대박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대가야박물관의 전체 입장객 수가 전국 웬만한 국립박물관을 훨씬 앞질렀다. 인구가 적고 외진 농촌지역의 박물관이 도심 접근이 쉬운 국립박물관과 달리 유료로 운영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관광객 수는 엄청난 것이다. 23일 고령군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대가야박물관을 찾은 관람객 수는 36만 860명(외국인 3016명)으로 최종 집계됐으며 관람료 징수액은 1억 5700여만원에 달했다. 2007년 29만 3120명보다 23%(6만 7740명) 늘어난 것이다. 이는 같은 기간 전국 국립박물관 12곳 중 중앙·경주·공주·부여 등 4곳을 제외한 다른 8곳의 국립박물관보다 관람객 수가 많은 것이다. <표 참조> 특히 규모와 시설면에서 대가야박물관과 비슷한 전국 군립 및 공립박물관보다는 10배 가까이 많다. 올 들어서도 지난달 현재 대가야박물관 관람객 수는 21만 1660명이다. 전국 국립박물관의 지난해 총 관람객 수는 659만 6860여명으로 2007년 597만 6920명에 비해 11%(61만 9940명) 증가했다. 지난해 5월부터 무료로 운영되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대가야박물관에 관광객들이 몰리는 것은 신라, 고구려, 백제 등 삼국시대의 박물관에 식상해한 나머지 대가야만의 독특한 역사·문화 관광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서다. 게다가 신라 등 삼국의 유물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금관·장신구·마구·무기류 등 대가야의 진품 유물 2000여점을 전시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 것도 한몫했다. 지난해 5월과 지난 7월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승수 국무총리가 이례적으로 박물관을 찾아 전시물을 둘러보고 깊은 감명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태근 고령군수는 “대가야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순장묘이자 최대 규모인 지산동 44호분을 원형 그대로 복원, 재현해 신비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도시와 산] (25) 전남 장성 백암산

    [도시와 산] (25) 전남 장성 백암산

    운문일영무인지(雲門日永無人之·운문의 해는 긴데 찾아오는 이 없고)/유유잔춘반낙화(猶有殘春半花·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일비백학천년적(一飛白鶴千年寂·백학이 한번 나니 천년 동안 고요하고)/ 세세송풍송자하(細細松風送紫霞·솔솔부는 솔바람이 붉은 노을을 보내는구나).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양사 진입로에 들어서면 조그만 안내판에 조계종 5대 종정을 역임한 서옹(1912~2003년) 스님이 남긴 시구를 만날 수 있다. 이 사찰의 방장으로 지내다 2003년 12월13일 입적하기 며칠 전 지은 열반송(涅槃頌)이다. 고려 말~조선조엔 이색, 정몽주, 김인후, 송순 등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백암의 절경을 노래하기도 했다. 백암산은 깎아지른 듯한 병풍바위로 백양사를 품에 감싸고 있다. 해발 741.2m의 상왕봉을 정점으로 전남 장성군 북하면과 전북 순창군 복흥면, 정읍시 입암면에 걸쳐 있다. 봄·여름은 안개 낀 골짜기와 원시림을 선사하고, 가을은 곱디고운 단풍으로 물든다. 겨울과 이른 봄엔 고로쇠 물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매년 단풍철엔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진입로가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이다. 북동쪽과 맞닿은 내장산, 북서쪽의 입암산과 더불어 ‘내장산국립공원’이라 불린다. 단풍의 유명세는 내장산에 밀리지만, 정작 산악인들은 백암산을 ‘으뜸’으로 친다. 산세와 풍광이 빼어나 예부터 사찰이 많고 골마다 천년 역사가 살아있다. 장성문화원 김진노(46) 사무국장은 “천년 고찰 백양사는 장성군의 얼굴이나 다름없다.”며 “사찰에 얽인 설화나 전설 등을 관광문화 콘텐츠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학이 날개를 편 백학봉 산 이름은 중턱에 자리한 백학봉(白鶴峯·651m)에서 유래했다.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의 하얀 바위가 가파르게 솟아 있다. 늦은 오후 석양이 바위를 비추면 거대한 거울 병풍이 백양사 골짜기를 비추는 형상이다. 밑자락에 고불총림 백양사가 자리하고 있다. 많은 스님이 수행 정진하는 절이란 뜻의 총림이 붙을 정도로 법력이 높은 곳이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선사가 세웠다. 그때 이름은 산 이름과 똑같은 백암사(白巖寺)였다. 조선 선조 때(1574년) 백양사로 고쳤다. 환양선사가 백련암에서 7일간 백연경을 설법하는데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렸으며, 이 가운데 흰 양이 한마리 섞여 있었다. 법회가 끝나는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저는 본래 이 산에 사는 양인데 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사람으로 환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날 영천굴 아래서 죽어 있는 흰 양을 나무꾼이 발견해 화장해 주었다. 그 이후로 백양사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백양사 이외에도 서옹 등 큰스님들이 주로 머물던 운문암, 동학혁명 당시 전봉준이 관군에게 붙잡히기 전 3일간 머물렀던 청류암, 천연 동굴로 이뤄진 영천암, 약사암, 비구니승의 도량인 천진암 등 수많은 암자가 흩어져 있다. ●빼어난 풍광·희귀 동식물의 보고(寶庫) 백암산은 빼어난 경관 못지않게 생태계의 보고로 통한다. 백암사무소~백양사에 이르는 1.5㎞ 남짓한 숲길은 가히 비할 데가 없다. 단풍철이면 더욱 그렇다. 하늘이 쳐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아기단풍과 수령 700년 된 갈참나무, 노송, 비자나무 등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절문앞 쌍계루와 연못은 백학봉과 어울려 ‘대한 8경’으로 꼽힌다. 숲길 여기저기엔 개화철을 맞은 상사화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스님과 처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전설을 담은 슬픈 꽃이다. 이영숙(28·여·광주 남구 봉선동)씨는 “단풍나무 길을 걸으면 내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며 “집에서 차량으로 40분쯤 거리여서 맘 내킬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백암산과 내장산 일대엔 1653종의 동물이 분포한다. 하늘다람쥐, 사향노루, 수달, 담비, 까막딱따구리 등 80여종의 포유류와 조류가 있다. 이에 따라 각종 동식물을 탐방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김모(13·광주 서초등학교 6년)군은 “사슴벌레 등 희귀한 곤충류 등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 희귀 식물도 지천이다. 절 뒤쪽의 비자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153호이다. 이곳이 우리나라 비자나무의 북방한계선이다. 사자봉 동쪽의 운문암 주변에는 아열대성 상록활엽수인 굴거리나무 숲(천연기념물 제91호)이 자리한다. ●산행코스는 순탄 산세에 비해 등산로는 순탄한 편이다. 백양사~약사암~영천굴~백학봉~상왕봉~사자봉~가인마을에 이르는 8.5㎞ 구간을 많이 이용한다. 영천굴~백학봉은 급경사이지만 백학봉~정상 능선은 경사가 완만하다. 정상(상왕봉)~순창새재~소죽엄재~까치봉~ 신선봉~내장사에 이르는 횡단코스는 8시간 정도 걸린다.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더라도 등산 거리는 10㎞ 안팎으로 당일 산행이 가능하다. 장성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장성주민들 백암산 이름 되찾기운동 전남 장성군은 몇년 전부터 ‘잃어버린 백암산 이름 되찾기’에 나서고 있으나 전북의 반발을 잠재우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2년 전 전북 정읍시와 명칭 개정 문제를 놓고 극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지금껏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 문제는 정부가 지난 1971년 내장산·백암산 등을 한데 묶어 ‘내장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내장산국립공원의 총 면적 81.715㎢ 중 백암산이 차지하는 공간은 42%인 34.211㎢이다. 나머지 38.045㎢와 9.459㎢는 각각 정읍시와 순창군에 속해 있다. 장성 주민들은 1970년 후반 지역 유림들을 중심으로 공원명칭 개정안을 국회와 건설부(국토해양부 전신) 등에 제출하는 등 백암산 이름 되찾기에 강한 의지를 표시해 왔다. 2007년 9~12월 주민 3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와 환경부 등에 제출한 뒤 국립공원 명칭을 ‘내장산·백암산 국립공원’으로 고쳐줄 것을 요구했다. 백양사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산문폐쇄’와 사찰소유지 국립공원 해지를 위한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며 한때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사찰 측은 백암산이란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고문헌 등에서 수백년간 사용돼온 만큼 하루빨리 이름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전남·전북도의 광역단체장 협의가 이뤄지면 현행 ‘자연공원법’을 변경해 이름을 고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지자체 간 첨예한 대립으로 협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성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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