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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파, 여름방학 특별기획전 줄줄이

    즐거운 여름방학이지만 무더위에 야외활동이 꺼려지기만 한다. 그렇다면 집에서 가까운 미술관·박물관을 방문해 문화생활을 즐겨 보는 건 어떨까. 송파구 관내 미술관·박물관들이 구와 손잡고 일제히 청소년들을 위한 특별기획전을 개최한다. 1일 송파구에 따르면 구청 갤러리를 비롯해 관내 예송미술관, 갤러리 수(水) 등에서 지난달 말부터 방학을 겨냥한 특별전을 잇따라 시작했다. 예송미술관은 이달 말까지 현대미술에 청소년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그림책 나무전’을 연다. 1·2부로 나뉜 전시에는 도형을 이용한 작품, 동화책 그림 작가들의 작품 등 총 35점이 전시된다. 갤러리 수는 다음 달 14일까지 ‘오토포이 박사의 연구실’이라는 이름으로 동심과 일상의 즐거움을 일깨우는 설치 작품 및 회화 30여점을 전시한다. 구청 갤러리에서는 지역 중견작가들의 회화 작품이 걸린다. 더불어 구는 예송미술관, 롯데월드 민속박물관, 몽촌역사관, 서울올림픽기념관, 소마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한국광고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 등 관내 8개 미술관·박물관과 손잡고 ‘송파구 박물관 나들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미술관·박물관 방문을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된 나들이 프로그램은 각 전시관을 방문하면 스탬프를 찍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네 번째 방문하는 전시관부터는 참가자들을 위해 마련한 소정의 기념품을 챙길 수 있다. 8곳을 모두 방문하면 덤은 커진다. 마지막 방문한 전시관에서 송파구 박물관 나들이 공식 확인증을 받아 방학 과제 증빙 서류로 제출할 수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남편 삼은 사내 도망가자 암곰은 새끼와 강에 빠져죽어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이다. ‘고마’(固麻)는 곰의 옛말이며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다. 웅진은 1500여년 전인 475년 문주왕이 북한성에서 천도해 538년 성왕이 부여로 옮기기까지 백제의 도성이었다. 고마나루는 금강 일대와 연미산 무령왕릉 서쪽의 낮은 구릉지대를 포함하고 있다. 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 깊은 명승지이자 공주의 태동지이다. 백제 역사의 중심 무대로 국제적 교통의 관문이기도 했다. 660년 당나라 장군인 소정방이 백제 공격을 위해 주둔했고, 멸망 후에는 웅진도독부가 설치된 곳이다. 신라 신문왕 때 웅천주(熊川州), 경덕왕 때 웅주(熊州)라 불렸고 고려 태조 때 공주(公州)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략을 받아 나주로 피란할 때 곰나루를 이용했던 기록에서 보듯 당시 남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 기능을 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지명은 곰나루 전설에서 유래했다. 옛날에 한 남자가 연미산의 암곰에게 잡혀 부부의 인연을 맺고 2명의 자식까지 두게 됐다. 이후 곰이 방심한 틈을 타 남자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곰은 강가에서 “돌아오라.”고 울부짖었지만 사내가 외면한 채 강을 건너자 새끼들과 함께 물에 빠져 죽었다. 사내가 건너온 나루가 고마나루 또는 곰나루로 불리게 됐다. 마을에서는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나루터 인근에 곰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현재 웅진단(熊津壇) 터와 연미산 중턱의 곰굴, 나루터 인근의 곰사당이 금강변의 넓은 백사장과 450여 그루의 솔밭, 나루 북쪽의 연미산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고마나루 주변은 풍부한 백제의 역사·문화자원 및 공주보 수변공원 등과 연계해 지역의 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해마다 7~8월에는 고마나루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7월 21일부터 8월 26일까지 매주 주말 수상공연장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오는 12월이면 고마나루 전시·컨벤션시설인 고마문화복합센터도 문을 연다. 공주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2)공주 고마나루 명승길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2)공주 고마나루 명승길

    비단물결은 깊은 산림을 지나 백제의 옛 도시 공주로 휘감아 돌아간다. 공산성의 깃발, 고마나루의 황포돛은 옛 정취를 자아내고 백제의 옛 숨결을 전해주듯 비단 물결에 나부낀다. ‘잊혀진 왕국’ 백제의 옛 도읍인 공주에 역사의 향취를 느끼며 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고마나루 명승길’이 조성됐다. 백제 웅진시대의 숨결과 근현대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어 의미를 더한다. 고마나루길은 공산성~무령왕릉~공주박물관~공주보~연미산자연미술공원~금강교를 돌아보는 코스가 14㎞에 달한다. 단순히 보고 지나칠 수 없는 명승지가 많아 완주하려면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공산성~무령왕릉~공주박물관~고마나루 등 웅진시대와 황새바위~공주보~연미산자연미술공원~금강교를 답사하는 근현대사 코스 설계가 가능하다. 공산성과 고마나루, 무령왕릉은 공주시민이 선정한 ‘공주 10경’에도 포함됐다. ●“공산성은 천혜의 요새” 접근성이 좋은 공산성이 출발점이다. 웅진시대 방어거점이었던 공산성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포곡형(包谷型) 산성으로 길이가 2.66㎞에 달한다. 강 건너편에서 보면 성곽이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모습이다.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 석성으로 개축했다. 성벽은 높이 2.5m, 폭 3m 정도로 보수됐고 성벽을 따라 노란색 바탕에 봉황 등이 그려진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공산성은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로 통일신라시대 김헌창의 난이 일어났고, 조선시대 이괄의 난 당시 인조가 피란한 역사를 품고 있다. 금서루·공북루·영동루·진남루 등 동서남북 4개 누를 비롯한 다양한 유적이 복원됐다. 금서루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공주의 구도심을 한번에 조망할 수 있다. 동성왕의 연회 장소였던 임류각, 조선시대 임금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던 쌍수정, 우물인 연지, 영은사 등을 통해 역사 속에만 있는 ‘웅진’을 만나게 된다. 4~10월(7, 8월은 제외) 매주 토·일요일 오전 11시부터 5시까지 정시마다 수문장 교대식이 열린다. 오인숙 문화관광해설사는 “공산성은 금강과 계룡산, 차령산맥을 품고 있는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면서 “현재 입구는 서문이지만 과거에는 호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남문을 거쳐 북문에서 배를 타고 한양으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남문 앞에는 박찬호 선수가 운동을 했던 느티나무가 있어 관심을 끈다. 무령왕릉 가는 길에 황새바위에 들렀다. 황새가 많이 살았다는 설과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목에 씌우는 칼인 ‘항쇄’를 차고 바위 앞에 끌려가 처형돼 황쇄바위로 불렸다는 설이 함께 존재한다. 1801년 2월 28일 김대건 신부의 외조부로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이 서울에서 충청 감영(공주)으로 환송돼 황새바위에서 참수된 후 순교지가 됐다. 사형이 집행될 때면 백성들은 공산성에 올라 그 광경을 구경했다고 한다. 순교자 337위와 순교탑, 명상의 길 등이 조성돼 있으며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순례지가 되고 있다. 송산리고분군의 7호분으로 불리는 ‘무령왕릉’은 묘지석과 최초의 토지거래서인 매지권이 발견돼 피장자를 확인할 수 있는 삼국시대 유일의 왕릉이다. 무덤에서는 다량의 유물이 발굴됐는데 12종목 17건이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절대연대가 확인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백제사 연구의 보고(寶庫)로 평가받는다. 중국의 무덤 형식인 벽돌무덤으로 중국제 도자기와 일본산 금송을 사용한 관재 등을 통해 백제사회의 국제성을 엿볼 수 있다. 지난 1997년 영구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 후 고분의 내부를 직접 볼 수는 없고, 지난 4월 리모델링한 송산리고분재현관에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다. ●현대의 공주 속으로 지난해 10월 공주보가 완공됐다. 총연장 280m의 보는 무령왕을 상징하는 봉황을 모티브로 비단수(금강)를 지키는 모습을 상징화했다. 수변공원과 32.4㎞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가 조성돼 수려함을 더한다. 연미산은 연미터널이 건설되기 전까지 공주와 청양을 연결하던 연미치고개로 유명하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은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 입구에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나무, 흙 등 자연 재료를 주로 이용해 만든 작품들이 숲과 어우러져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정안천생태공원은 공무원과 시민들의 참여로 조성된 상징적인 공원이다. 33만㎡에 연꽃 연못(9만㎡)이 만들어졌고 10만여 송이의 튤립, 100만 포기의 꽃잔디 등이 식재돼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자전거 산책로와 메타세쿼이아길, 앵두나무길 등 테마길이 조성돼 있다. 1만 5000㎡의 자연학습장은 장미동산과 물레방아 연못, 모래놀이터 등을 갖춰 유치원생들의 생태학습 및 체험 장소로 활용된다. 공주시 산성동과 신관동을 연결하는 다리인 금강교는 1933년 만들어졌다. 1986년 공주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던 유일한 ‘통행길’이었다. 6·25 전쟁 당시 교량 대부분이 파괴돼 복구가 이뤄졌다. 현재는 구시가지로 진입하는 차량만 이용 가능한 일방통행로로 공산성과 연계, 명소로 부상했다. 택시기사 김정권씨는 “전에는 다리가 이것밖에 없어 버스 2대가 묘기를 부리듯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녔다.”면서 “추억이 깃든 장소이다 보니 운전할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여행의 즐거움 중에는 맛난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공산성 서문 맞은편에는 대표적 음식거리인 ‘백미고을’이 있다. 공주의 대표음식을 만날 수 있는데 밤의 고장답게 밤국수와 밤피자 등을 내놓는 음식점은 물론 쌈밥, 60년 전통의 따로 국밥집, 칼국수집 등 다양하다. 가까운 거리에 ‘백미백선’(백가지 맛과 백가지 볼거리가 있는)을 지향하는 산성시장에서 장터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고마나루 인근, 공주보에서 시내방향으로 한옥마을이 조성됐다. 한옥 10여채가 모여 있는 이곳은 지자체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조성한 숙박촌이다. 공주를 둘러본 뒤 부여에서 숙박, 단순히 지나치는 지역에서 머무는 도시로 변화하는 첫 시도로 전통 한옥의 구들장 체험을 할 수 있다. 숙박객이 직접 나무를 때보고, 공주 밤과 감자 등을 구워 먹을 수 있어 겨울철에 인기가 높다. 공주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13회는 대구 ‘칠성로’와 광주 ‘육판서길’을 소개합니다.
  • 60년만에 열린 소이산길 안전 걱정말고 걸으세요

    울산 울주의 하늘억새길. 해발 1000m가 넘는 간월산·신불산·영축산·천황산·재약산·가지산 등 7개 능선이 이어진 길이다. 드넓은 억새 군락지로 유명하다. 경기 양평 남한강·북한강 물가에 펼쳐진 흙길인 물래길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연꽃·갈대·철새·여울이 수려해 영화·드라마촬영 장소로 이름난 곳이다. ●행안부 ‘녹색길 베스트10’ 선정 24일 행정안전부는 이 두 곳을 포함,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는 ‘우리 마을 녹색길 베스트10’을 뽑아 발표했다. 광주 동구 ‘무등산 자락 다님길’은 도심 무등산 줄기에 노선이 완만해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길이다. 강원 철원의 소이산 생태 숲 녹색길은 원래 군 작전도로였다. 6·25전쟁 이후 60년간 민간에 개방된 적이 없는 곳이다.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일품이다. 서산 아라메길을 걷다보면 마애삼존불·혜미읍성 등 백제와 조선시대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에서는 동백나무 숲터널을 지나 해안을 따라 기암괴석 절경을 즐길 수 있다. ●안전요원 1411명 배치해 순찰 이 밖에 충북 충주 비내길, 전북 정읍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 경북 예천 삼강 회룡포 강변길, 경남 함양 지리산 자락길 등도 베스트 10에 올랐다. 행안부는 관광객의 안전을 고려, 안전요원 1411명을 배치했다. 김장주 행안부 지역녹색정책관은 “동호회 참여 걷기대회 개최, 홍보책자 소개 등으로 걷기 붐을 조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수학여행 전북으로 오세요

    전북도 내 5개 시·군이 문화재청에 의해 수학여행 적지로 추천됐다. 전북도는 전주, 익산, 김제, 부안, 고창 등 5곳이 ‘교과서 속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선정됐다고 20일 밝혔다. 이번에 추천된 지역은 문화유산 해설사 등 전문가 70여명이 현장을 답사해 평가했다. 전주시는 조선왕조의 발상지이자 세계무형문화유산인 판소리의 고장으로 한옥, 한식 등 전통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점이 강점으로 꼽혔다. 조선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 한옥마을과 국내 향교 가운데 유일한 국가 지정 문화재인 전주향교 등이 답사 코스로 추천됐다. 익산은 백제 중흥의 꿈이 서린 미륵사지를 돌아본 뒤 지평선과 수평선이 교차하는 김제 심포 망해사를 거쳐 고대 농경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벽골제를 방문하는 코스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부안은 지층 박물관으로 불리는 채석강을 중심으로 한 변산반도, 성천과 격포를 잇는 마실길 코스, 단청과 꽃창살문으로 유명한 내소사가 빼어나다고 소개했다. 고창은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군, 조선읍성의 원형이 잘 보존된 고창읍성을 통해 멀게는 청동기시대, 가깝게는 조선시대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송파·中 차오양구 관광 협약

    박춘희 송파구청장이 지난 3월 지정된 잠실관광특구를 알리기 위해 몸소 해외 마케팅에 나섰다. 송파구는 박 구청장이 지난 13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와의 관광·홍보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고 17일 밝혔다. 박 구청장과 정련원 차오양구 구장은 차오양구에서 관계 공무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해각서에 각각 서명했다. 여기에는 두 도시가 관리하는 TV, 인터넷 홈페이지, 전광판 등 각종 홍보매체에 서로를 알리는 관광홍보영상, 문화행사 소식 등을 표출시키고, 또 각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안전·편의를 위해 힘을 모은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협약식 자리에서 박 구청장은 오는 9월 열리는 제12회 한성백제문화제에 차오양구 관계자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차오양구는 베이징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구로 베이징 인구의 5분의1이 살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서울신문 STV ‘인터내셔날퍼스트뷰티’ 왕관 정하은씨 품에

    서울신문 STV ‘인터내셔날퍼스트뷰티’ 왕관 정하은씨 품에

    17일 서울워커힐 호텔에서 서울신문STV주최로 열린 ‘인터내셔날퍼스트뷰티’ 선발대회에서 미스인터컨티넨탈코리아로 뽑힌 정하은(22·백제예술대 졸업)씨가 홍성추 서울신문STV 대표로부터 상금과 꽃다발을 받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신화 리더십을 말하다’ 삼국유사 전문가 고운기 교수

    [저자와 차 한 잔] ‘신화 리더십을 말하다’ 삼국유사 전문가 고운기 교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고운기(51) 교수는 ‘삼국유사’에 빠져 사는 ‘삼국유사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학원 박사 과정 이후 줄곧 삼국유사에 천착해 살았고 2009년부터는 이른바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에 몰두, 지금까지 모두 세 권을 펴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국문학자이면서 삼국유사라는 역사서에 흠뻑 젖어 사는 독특한 학자. 그가 시리즈의 네 번째로 세상에 낸 ‘신화 리더십을 말하다’(현암사 펴냄)는 요즘 대선 정국에 흔한 화두인 리더십을 겨냥했다. 삼국유사 속 건국신화의 주인공 11명을 도마에 올려 그들이 가졌던 리더십을 풀어내는 시각이 독특하다. ●삼국유사 속 건국신화 주인공 11명 리더십 “나라를 세우고 경영한 건국 주체라면 응당 범상치 않은 리더십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삼국유사의 건국신화에는 그 리더십들이 명확하게 펼쳐집니다. 대통령을 새로 뽑아야 할 시점입니다. 선택의 판단 기준을 삼국유사 속 건국 주체를 통해 생각해 본 것이지요.” ‘삼국유사로 읽는 리더십’이랄까. 웅녀를 비롯해 해부루와 금와, 고주몽, 온조, 박혁거세, 석탈해와 김알지, 김수로, 견훤, 왕건의 건국과정과 국가운영, 그리고 결말을 통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리더십이 다양하게 비교된다. 이를테면 단군을 낳은 웅녀는 자신의 목표를 확실히 갖고 주장을 대범하게 표현했던 용기와 희생의 ‘바리데기 리더십’의 소유자요, 큰 나라 부여를 변방의 소국으로 전락하게 한 해부루와 금와는 ‘삽질 리더십’의 위인, 고구려 대국의 주춧돌을 놓은 고주몽은 절묘한 균형감을 갖춘 ‘물지게 리더십‘의 경륜자로 풀어진다. 그런가 하면 가락국에서 버림받았지만 결국 신라를 거목으로 키워낸 석탈해는 ‘모퉁잇돌 리더십’, 후백제를 세워 왕건보다 우월한 입장에 있었지만 결국 비전을 갖지 못해 굴복한 견훤은 ‘자전거 리더십’, 다투지 않고 순응한 채 차례를 기다려 고려를 세운 왕건은 ‘물레방아 리더십’의 인물이다. “삼국유사의 기사들을 분석하다 보니 건국주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흐름엔 부인할 수 없는 특징이 있게 마련입니다. 가장 원형적인 우리 토종의 정신사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생각하고 판단해 보자는 뜻입니다. 대통령을 선택할 때도 개개인이 좀 더 주체적인 판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형적인 왕조사인 삼국사기에 비해 삼국유사는 당대의 사회를 다양하게 보여 주는 ‘대안 사서’의 성격이 강하다는 고 교수. 당대의 규범을 벗어난 ‘야사’란 평가와 달리 훨씬 더 풍부하고 포괄적인 콘텐츠를 담은 역사서이기 때문에 삼국유사에 더 매력을 느낀단다. 국문학자이면서 줄기차게 역사서 ‘삼국유사’에 천착해 사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의 정체성 생각하고 판단해 보자”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으면서도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할 약을 구해 험한 길을 갔던 용기와 희생의 바리데기. 그 바리데기의 리더십이야말로 지금 대선 후보들이 가장 새겨야 할 덕목임을 고 교수는 거듭 강조한다. “따져 보면 리더십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지요. 누구나 각자의 입장에서 리더이고 리더가 될 수 있는 작은 리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건국신화에서 건져내 쉬운 교훈으로 드러내 보인 리더십들. 비단 리더십 말고도 ‘대안 사서’ 삼국유사엔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익한 덕목과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그래서 고 교수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물론 삼국유사의 스토리텔링 건져내기다. 지금 집중해 내년 상반기에 낼 삼국유사 속 모험담이며 절·탑·불상, 고승열전, 귀신 이야기, 향가 이야기…. “현장을 다녀보면 훌륭한 콘텐츠를 담고 있는 삼국유사 속 현장이 왜곡되고 훼손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문화사업이란 명목으로 앞다퉈 벌여 대는 이벤트 탓에 생겨난 역사 훼손의 흉물들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일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경주 남산의 재발견…신라 1000년의 미소와 만나는 길

    경주 남산의 재발견…신라 1000년의 미소와 만나는 길

    남북 8㎞, 동서 4㎞. 경북 경주의 진산, 남산(495m)의 체격입니다. 산 치고는 작고 야트막한 편이지요. 한데 덩치는 작아도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깊이는 깊고 또 넓습니다. 과장 좀 보탤까요. 딱 ‘나무 반 유물 반’입니다. 확인된 절터만 150곳이고 불상은 129기, 탑은 99기에 달한다고 합니다. 전체 문화유적은 694개소이고요. 고(古)신라부터 통일신라 이후, 심지어 고려시대 유물까지 빼곡합니다. 산 전체가 절집이자 지붕 없는 박물관인 셈입니다. 그러니 국립공원으로 지정(1968년)된 건 당연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2000년)된 것도 어색할 게 없지요. 여름방학을 앞두고 아이들과 경주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남산을 프로그램에 넣는 걸 잊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경주 남산(南山)은 옛 월성 왕궁의 ‘남’(南)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산의 이름도 이 같은 지리적 특성에서 비롯됐다. 대릉원 등 문화재가 밀집한 도심이나, 불국사가 깃든 토함산 등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은 지역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남산이 늘 관광객들의 시선에서 한발짝 비켜 섰던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산엔 신라의 모든 것이 새겨져 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를 품은 우물 나정(井)과 후백제 견훤의 공격을 받은 신라가 종말을 고한 포석정이 각각 남산 자락에 있다. ‘신라의 역사가 시작되고 끝난 곳’이란 표현은 그래서 나왔다. 화산으로 치자면 남산은 활화산이다. 최근까지도 끊임없이 문화재가 발굴되고 있다. 2007년에도 남산 열암곡에서 대형 마애석불이 발견됐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발견될지 모르니 ‘남산에선 구르는 돌 하나도 문화재급’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겠다. ●절터 150곳·불상 129기·탑 99기…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남산을 둘러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정표도 두 가지 종류로 세워져 있다. 노란색 글씨는 문화재 탐방 코스, 흰색은 단순 산행 코스다. 가장 일반적인 건 삼릉~용장골 코스다. 바둑바위와 금오산 정상을 찍고 용장계곡으로 내려온다. 이 코스에선 ‘신라 1000년의 미소와 만나는 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다양한 문화재와 만날 수 있다. 단순 산행이라면 3시간 남짓 걸리지만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곳저곳 문화재를 들여다보자면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 들머리는 삼릉이다.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이 잠든 봉분 셋이 연달아 솟아 있다. 삼릉을 찾게 하는 건 주변의 솔숲이다. 이리 휘고 저리 굽은 소나무들이 빼곡해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다. 솔숲을 지나 가장 먼저 만나는 불상은 석조여래좌상이다. 남산 일대 상당수의 불상들이 그렇듯, 이 불상도 목과 얼굴 부분이 없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의 희생양이었을 거란 게 유력한 추정이다. 인근 계곡에 쳐박혀 있던 것을 196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얼굴은 잃었지만, 불상의 자태는 당당하다. 넓은 어깨와 가슴, 선명한 옷 매듭 무늬 등에선 기백이 넘친다. 경주남산연구소의 김구석 소장은 “7~8세기 신라 초기의 불상들은 이처럼 가슴이 넓고, 목 주름 등이 박력 있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라며 “통일신라 후기로 갈수록 허리 부분이 잘록해지고 가슴의 윤곽도 좁아지는 등 미려함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석조여래좌상 위엔 아담한 크기의 마애관음보살이 서 있다. ‘미스 신라’라고 불리는 불상이다. 키 154㎝로 아담하고, 입술은 루즈를 바른 듯 붉다. 신라 석공이 붉은 빛 도는 돌 부분에 부러 입술을 새겼다니, 선인들의 해학에 설핏 웃음이 새어나온다. ●일곱 부처와 비승비속의 신선을 만나다 큰 바위에 아미타부처 여섯 분을 새긴 선각육존불을 지나면 선각여래좌상이다. 고려시대 때 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남산의 문화재 가운데 가장 ‘어린’ 마애불상인 셈. 코는 두리뭉실하고 입술은 썰면 반근은 족히 나올 만큼 두툼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눈은 실실 웃고 있다. 부둥켜 안고 있는 바로 옆의 부부바위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고 계신 건지도 모를 일이다. 남산에서 얼굴이 가장 잘생겼다는 삼릉계 석불좌상과 기골이 장대한 마애석가여래좌상을 지나면 바둑바위에 닿는다. 대릉원 등 경주의 주요 문화유적이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다. 남산에 들면 최소한 두 번은 놀란다. 그 작은 산에 유물이 빼곡한 것에 놀라고, 암릉이 많은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선 굵은 바위들이 주르륵 늘어서 있는데, 설악산 공룡능선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믿겠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불상과 탑들이 이 같은 풍경과 기막히게 잘 어우러져 있다는 거다. 하나하나가 ‘있을 만한 곳에 있’다. 다리쉼을 하려는 고갯마루, 한 굽이 돌아 시선이 닿는 암벽마다 어김없이 유물들이 세워져 있다. 이는 유물들을 가까이서 보는 것도 좋지만, 몇 발짝 떨어져서 완상하는 게 더 낫다는 뜻과 맥이 닿는다. 금오산(468m) 정상을 찍고 용장계곡으로 향한다. 골이 깊어질수록 풍경도 속도를 낸다. 하산길의 으뜸 명소는 용장사곡 삼층석탑이다. 높이는 4.5m. 경주사람들은 이 탑을 ‘한국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부른다. 남산 자체를 기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원래 탑을 세울 때 기단을 쌓는데 이 석탑은 별도의 기단을 세우지 않았다.”며 “해발 380m만큼의 산을 기단 삼았으니 국내 최고 높이의 탑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산길에 가끔 뒤를 돌아보시라. 늘 이 석탑이 보일 만큼 풍경의 주인 노릇을 톡톡히 한다. 삼층석탑 아래 삼륜대좌불도 인상적이다. 원반 모양의 세 돌받침(삼륜대좌) 위에 부처를 모신 특이한 구조다. 삼륜대좌불 아래는 매월당 김시습의 발자취가 서린 용장사터다. 김시습은 용장사에 7년간 머물며 ‘금오신화’를 지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돌아봐도 나무랄 데 없다. 한데 기왕 나선 길, 봉화골의 칠불암까지는 다녀오는 게 좋겠다. 남산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 가운데 유일한 국보(312호)다. 다만 남산 동쪽의 통일전이 들머리여서 서쪽의 삼릉~용장골 코스와 하나로 묶자면 체력이 달릴 수 있다. 통일전에서 왕복 3시간 남짓 걸린다. 칠불암 바로 위는 신선암 마애불이다. 결가부좌를 튼 대부분의 불상과 달리 구름 위에 한 쪽 발을 떠억하니 담그고 있다. 비승비속(非僧非俗)의 호방한 형상이다. ●신라의 건국 신화와 함께… ‘삼릉 가는 길’ 삼릉~용장골 코스가 산행을 겸한 답사길이라면 ‘삼릉 가는 길’은 남산 아래 자락을 따라 걷는 트레킹 길이다. 신라의 역사가 시작된 나정 등을 끼고 있어 신라의 건국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복원 공사 중인 월정교에서 삼릉까지 약 8㎞ 거리지만 코스의 중간쯤인 나정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담긴 우물터다. 박씨 문중의 제각을 수리하려고 땅을 파다 팔각건물지와 부속건물지, 배수로 등이 발견됐다. 경주사람들은 나정이 박혁거세의 신궁(神宮)터라고 믿고 있다. 박혁거세 신화 또한 이 대목에서 역사로 굳어진다. 신궁의 실체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길은 1980년대까지 실제 사용됐던 남간 마을의 신라 시대 우물과 신라의 첫 왕궁터 창림사지, 배리 석불입상, 포석정 등을 거쳐 삼릉에서 끝난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을 나와 35번 국도를 타고 곧장 가면 삼릉이다. KTX는 서울역에서 신경주역까지 2시간 10여분이 소요된다. 경주남산연구소(www.kjnamsan.org)는 다양한 남산 답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 무료. 777-7142. ▶맛집:삼미정은 직접 빚은 동동주와 두부가 맛있는 집이다. 삼릉 초입에 있다. 745-8761. 고두반은 지역 농산물로 상을 내는 농가맛집. 담백하고 정갈한 맛이 일품이다. 748-7489. ▶잘 곳:가족 단위 여행객이라면 보문단지 내 한화, 대명리조트 등이 좋겠다. 최근 문을 연 블루원 리조트도 깔끔하다. 한옥 펜션인 야선미술관은 단체가 묵기 좋다. 자체 생산한 농산물로 차려낸 밥상도 맛있다. 010-9215-1618. 글 사진 경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1500년전 칠지도 ·환두대도 만나보세요

    1500년전 칠지도 ·환두대도 만나보세요

    고대 제철 방식으로 복원한 ‘칠지도’(위·七支刀)와 ‘무령왕 환두대도’(아래·環頭大刀)가 일반에 공개됐다. 충남도 백제역사문화관은 3일부터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화단지 내 문화관 1층에서 최근 복원한 칠지도와 환두대도를 상설 전시한다. 칠지도는 칼날 양쪽에 굴곡진 가지를 3개씩 돋아나게 만든 것으로 백제시대 한·일 교류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다. 일본 국보로 지정돼 현재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신궁에 보관돼 있다. 칼에 칠지도라는 이름과 함께 ‘백제가 왜왕에게 만들어 주었다’는 내용의 글자가 금으로 상감돼 있다. 이 칼을 일본 왕에게 선물한 왕은 백제 근초고왕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환두대도는 1971년 무령왕릉 출토 시 무령왕의 허리춤에서 발굴됐다. 백제유물 역사상 주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칼로 환두대도 중 최고 걸작으로 평가된다. 손잡이에는 금실과 은실이 차례로 감겨 있고, 양쪽 끝은 봉황이 새겨진 문양으로 장식돼 있다. 실물은 국립공주박물관에 있으나 부식 등으로 원형이 많이 훼손돼 있다. 두 칼은 제철에서 세공까지 전문가의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전통 제철 기술로 만들어졌다. 역사문화관 관계자는 “단접기술(쇠를 접는 기술)로 칼날을 복원하는 등 1500년 전 백제의 최첨단 기술을 재현한 데 의미가 있다.”며 “문화관에는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 등 백제 복제 유물 250여점도 전시돼 있다.”고 말했다. 부여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수원 화장실문화공원 4일 문 엽니다

    수원 화장실문화공원 4일 문 엽니다

    경기 수원시는 화장실의 역사와 문화의 변천을 보여 주는 화장실문화공원을 4일 개장한다고 2일 밝혔다. 장안구 이목동에 있는 화장실문화전시관 해우재(解憂齋·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480㎡) 주변 5190㎡에 조성된 화장실문화공원은 신라시대 귀족 여인들이 사용했던 수세식 변기와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화장실인 백제시대 왕궁리화장실 모형부터 조선시대 이동식 변기인 매화틀까지 우리나라 변기의 변천사를 보여 준다. 고대 로마의 변기에서부터 중세 유럽과 현대까지 서양의 변기 변천사를 보여 주는 모형도 설치됐다. 짚으로 엮은 뒷간이 지역별 특색대로 재현됐고 제주도에서 인분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돼지를 사육하던 통시 변소는 제주도 화산석으로 지어졌다. 공원 곳곳에는 용변을 보는 어른, 아이의 모형이 사실적으로 표현됐다. 이원형 심재덕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고 심재덕 전 시장이 해우재를 지으며 거실 중앙에 화장실을 만든 것은 화장실을 쉬쉬하며 피하지 말고 드러내 말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금강 공주·백제보 물로 가뭄 해소한다

    금강 공주·백제보 물로 가뭄 해소한다

    4대강살리기 사업으로 건설된 금강에 있는 보의 물이 댐과 저수지로 보내져 농공업용수로 활용될 전망이다. 충남도는 2일 농림수산식품부와 국토해양부를 방문해 금강의 공주보와 백제보 물을 예당호와 보령댐으로 끌어와 각종 용수로 활용하는 ‘금강 다목적 용수개발사업’을 벌이겠다며 모두 930억원의 국비 지원을 요청했다. 이 사업은 안희정 지사가 지난달 28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화상회의에서 건의한 것으로 이 대통령이 “좋은 제안”이라며 관계 부처에 검토를 지시해 탄력이 붙었다. 이충한 도 개발정책계장은 “예전부터 구상해 온 사업인데 금강에 물을 가두는 보가 없어 계속 미뤄오다 4대강 사업으로 보가 만들어지고 최근 극심한 가뭄까지 겹치면서 사업이 현실화됐다.”면서 “국비만 확보되면 2014년까지 사업을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보의 물을 양수기로 끌어올려 송수관으로 저수지 등으로 보내는 것이다. 공주시 웅진동~우성면 평목리를 연결하는 공주보는 1500만t, 부여와 청양을 잇는 백제보는 2300만t의 담수량을 자랑한다. 먼저 공주보에서 하루 8만 6000t의 물이 예당호 상류인 광암천을 통해 예당호로 보내진다. 이를 위해 도는 공주보~광암천 구간 25㎞에 직경 70㎝의 송수관을 설치할 계획이다. 사업비 540억원이 예상된다. 예당호는 모두 6917㏊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예산군 일대 5610㏊의 농경지는 물론 인접한 홍성군 논밭 1270㏊가 혜택을 본다. 특히 예당호 물은 삽교호로 흘러가고, 이 물이 기존 송수관을 통해 다시 당진시 담수호인 대호지로 들어간다. 대호지는 하루 공업용수 11만t 등을 대고 있다. 예당호 물은 올해 말 충남도청이 옮겨가는 내포신도시(홍성·예산)에도 요긴하게 사용된다. 백제보에서도 하루 8만 6000t의 물이 보령댐으로 공급된다. 보령댐 상류인 복덕천까지 물을 끌어와 보령댐으로 흘러가는 형태다. 22㎞ 떨어진 복덕천까지 직경 70㎝의 송수관이 설치된다. 예상 사업비는 390억원이다. 보령댐은 보령시 6533㏊, 서천군 8531㏊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한다. 또 태안군 등 인근 7개 시·군에 하루 29만t의 식수와 공업용수를, 보령화력 등 3개 화력발전소에 6만 2000t을 제공하는 충남 서해안 주요 물 공급지다. 보령댐 물은 농공업용수 공급처인 웅천천과 부사호로도 연이어 유입된다. 하지만 공주보는 광암천보다 300m, 백제보는 복덕천보다 200m쯤 낮아 중간의 높은 지대에 대형 양수기를 최소한 1대씩 설치해 보의 물을 끌어올린 뒤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이 계장은 “극심한 가뭄으로 최근 예당호와 보령댐의 저수율이 15%와 20%까지 떨어져 위험했었는데 이 사업이 끝나면 항상 40%까지 유지해 가뭄 걱정을 크게 덜 수 있다.”며 “ 연계 담수호까지 수질개선 등 긍정적인 부수 효과도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11)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11)

     두만간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  떠나간 그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님이여 그리운 내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이시우(李時雨) 작곡『눈물 젖은 두만강』의 1절이다. 김정구(金貞九)의 대표작이기도 한 이 노래는 1935년에 OK「레코드」에서 취입됐다. 국내뿐 아니라 만주(滿洲) 일본 등지에 있는 교포들을 숱하게 울린 노래로, 그리고 근 40년 꾸준히 애창된 노래로 손꼽힌다. 2년 뒤면 60살이 되는 노장 가수 김정구(金貞九)는 지금도 술집 무대에서 이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김정구(金貞九)의「팬」이었던 사람들의 아들 딸들이 이제 다시 김정구(金貞九)의「팬」이 되어 이「두만강 푸른 물-」에 박수 갈채를 보내는 것이다.  김정구(金貞九)는 1934년에「레코드」사「뉴·코리아」에서『어머님 품으로』란 노래를 취입함으로써 가요계에「데뷔」했다. 최근 감기 몸살로 4일간 쉬었다는 그는『4일간이나 노래를 못부른 건 평생 처음』이라고 말할 만큼 꾸준히 노래를 불렀다. 김정구(金貞九)야말로 가요 사상 최장수(最長壽) 가수다.  출생지는 함남(咸南) 원산(元山). 작곡가 겸 가수로 날린 김용환(金龍煥)이 바로 친형이고 일본(日本) 동경(東京)음악학교 출신의 여가수 김(金)안나가 바로 누나다.  『16살에 고향을 떠났읍(습)니다. 그때까지는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 공부를 했죠. 3남매가 남매 합창단이 되어 강원도 일대의 교회를 돌기도 했읍(습)니다』  형 김용환(金龍煥)씨한테「바이얼린」을 배웠고 이흥열(李興烈·작곡가) 황재경(黃才景·목사) 두 사람한테「클래식」을 배웠다. 그러니까 당초 김정구(金貞九) 의 꿈은 정통 성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대중 가요로 목청을 돌린 건 돈벌이 때문이었다. 일본서 고학으로 음악학교에 다니는 누님이 너무 고생하는데 자극 받아 돈벌이가 되는 대중 가요를 택했다 한다. 물론 이 시도는 충분히 성공했다.「데뷔」1년 뒤『눈물 젖은 두만강』이「히트」함으로써 김정구(金貞九)는 돈방석에 올라 앉게 된 것이다.  학비 벌려 대중가요 택해···코믹·송으로 인기를 다져  『그때 취입료, 무대 출연료 모두 합쳐서 한달에 1천원 가량 받은 일이 있었죠. 3백50원 주고 고향에 대궐 같은 집을 샀읍(습)니다』그러나 세월 좋을때 마련한 재산은 고스란히 고향에 두고 1·4 후퇴때 빈 손으로 내려왔다.  당초 김정구(金貞九)의 인기는 만요(만謠)라고 불린「코믹·송」으로 굳혀졌다.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로 시작되는『총각 진정서』나「비단이장사 왕서방」의『왕서방 연서』가 그 방면의 대표곡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장「실크·해트」를 쓰고 부동 자세로 노래하는 게 무대「매너」였다. 만요가수 김정구(金貞九)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익살스런 노래에 맞춰 익살스런 몸짓을 해야 했기 때문에 손발을 흔들고 몸짓, 고갯짓을 했다. 이것이 새로운『제스처』라고 관객의 환영을 받았다.  목소리가 형 김용환(金龍煥)과 비슷해서 처음에는 오해를 받았다. 김용환(金龍煥)은「포리돌」전속이었는데 김정구(金貞九)가「뉴·코리아」에서『어머님 품으로』를 취입 발표하자 김용환(金龍煥)이 타사에서 취입했다고 일대 소동을 벌였다는 것.  OK로 옮겨와 처음「히트」한 노래가 박시춘(朴是春) 작곡의『항구의 선술집』이다.「부어라 마셔라 탄식의 선술집」이렇게 시작되는 이 비탄조의 노래는 그때 술집 기생들이 무척 즐겨 불렀다.「사나이 우는 맘을 누가 알리요」하는 2절은 그야말로 갈 곳없는 젊은이들의「엘레지」.「파이프 연기처럼 흐르는 신세, 내일은 어느 항구 선술집에서」의 3절은 방황하는 젊은이를「마도로스」에 비유한 것이라 한다.  대표곡『눈물 젖은 두만강』의 작곡 이면에는 흥미있는 일화가 뒤따르고 있다. 작곡자 이시우(李時雨)는 그때 만주지방 공연단을 따라 두만강변 국경 지대인 도문(圖門)에 머무르고 있었다.  갈채받은 노래 때문에 유치장 신세까지  국경의 허술한 여관방에서 잠 못이루고 뒤척이던 그의 귀에 조용히 흐느껴 우는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산란하던 그는 그 여인을 불러 우는 이유를 물어봤다. 그 여인은 남편을 찾아서 국경을 넘어 왔는데 돈벌어 온다던 남편은 일본 경찰에 잡혀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는 것. 그때 독립운동단체의 연락 책임을 맡았던 탓으로 남편은 아마 죽음을 당한 것 같다는 사연.  이 여인의 슬픈 사연을 이시우(李時雨)는 5선지 위에 올렸고 당시 작사자로 날린 김용호(金用浩)가 가사로 만들었다 한다.  만주 지방에 흩어진 교포들은 김정구(金貞九)가 부르는 이「두만강 푸른 물에-」자기들의 설움을 담아 위안을 삼았다. 『낙화삼천(落花三千)』은 김정구(金貞九)에게 1주일간 유치장 신세를 지게 한 노래.「물어보자 물어보아(자) 3천궁녀 간 곳 어디냐」하고 부르는 이 노래는 망해 간 백제(百濟)를 소재로 한 것인데 일경(日警)의 귀에는 항일의 노래로 들린 것 같다. 평양 지방공연에서 이 노래가 갈채를 받자 그때 일경의 앞장이 였던「다까야마」란 한국인 형사가 김정구(金貞九)를 평양경찰로 연행해 가 1주일간 유치장에 넣었다. 마침내 노래마저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묘한 것은 이 노래가 바로 지원병 응모를 장려하는 총독부의 국책영화『너와 나』의 주제가 였다는 점이다.  <조관희(趙觀熙)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3월 18일 제6권 11호 통권 제23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서울서 신라시대 도로·집터 발견

    서울서 신라시대 도로·집터 발견

    서울에서 신라시대 도로와 집터가 발견됐다. 겨레문화유산연구원은 안양천에 인접한 금천구 독산동 도시개발사업구역(1구역)에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에 이르는 신라시대의 도로와 함께 굴립주건물지(掘立柱建物址) 58동, 수혈건물지(竪穴建物址) 6동, 우물, 집수시설 등의 유구(遺構)를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굴립주건물은 땅을 파서 기둥을 세운 뒤 지상보다 높은 위치에 주거면이나 시설물을 마련한 집을 말하고 수혈건물은 구덩이를 파고 둘레에 기둥을 세운 뒤 지붕을 덮은 움집이다. 조사구역 남쪽에서 확인된 동·서 도로의 유구는 길이 115m, 폭 5.2~6m(양쪽 배수로 포함) 규모. 도로면에는 수레가 지나간 흔적이 있다. 신라는 주로 자갈을 깔아 다지는 방식으로 도로를 조성했다. 그러나 이곳 도로는 자갈을 깔지 않는 백제의 축조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발굴조사단은 기존의 백제 도로를 계속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4대강 수상레포츠, 안전대책 없다

    4대강 수상레포츠, 안전대책 없다

    4대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살리기 사업으로 수량이 크게 늘면서 강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낚시, 야영 등으로 수질오염 행위를 일삼는 것은 물론 제트스키 등 수상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부쩍 증가해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안전시절 등 대책은 전혀 없다. 14일 4대강 인근 지자체 등에 따르면 최근 들어 강 살리기 사업으로 신설된 보(洑) 상류지역에 수상레포츠 동호인 등이 몰려 윈드서핑과 제트스키, 카약, 카누 등을 즐기고 있다. 경북 낙동강 구간 안동·상주·낙단·구미·칠곡·고령 등 6개 보 상류지역에는 평일과 주말에 수십~수백명씩이 찾고 있으며, 공주보와 10㎞쯤 떨어진 금강 상류지역에도 수상스키와 오리배를 타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충남 부여군의 금강 줄기인 백마강에도 카누와 카약 등을 즐기는 동호회원들이 종종 눈에 띈다. 백제보 상류 1㎞ 안팎이 이들의 주요 활동지다. 주말 공주보에는 낚시꾼 30~40명이 몰려 붕어와 배스를 잡고 있다. 이는 4대강 살리기 사업 이후 보로 인해 확보된 수심과 수질 개선으로 평소 수상레포츠를 위해 주로 바다를 찾던 동호인 등이 가까운 인근 강을 찾기 때문이다. 이들이 아직 준공이 안 된 4대강을 찾아 수상레포츠 등을 즐기더라도 현행 법으로는 제재할 규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4대강의 수상레포츠 인구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 더욱 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보가 설치된 지역의 지자체들은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4대강변에 수상레저 기구를 접안시킬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는 한편 수상레포츠 인구 유치에도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준설로 인해 수심 4~11m 정도로 깊어진 4대강 구간에 수상레포츠 인구 등을 위한 안전요원이 배치되지 않은 데다, 물놀이 금지구역과 안전시설도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노평 부여군 주무관은 “예전엔 수심이 얕아 황포돛배가 강 바닥에 걸리기도 했는데 물이 깊어지면서 낚시꾼 등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안전 요원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후 4시 10분쯤 경북 성주군 선남면 낙동강 성주대교 밑에서 이모(52·대구 달서구)씨가 몰던 제트보트가 다리 교각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보트를 운전하던 이씨와 이씨의 아들(27) 등 일가족 4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4대강의 수질 오염도 우려되고 있다. 물놀이나 시원한 강 바람을 즐기기 위해 낙동강으로 몰려든 주민들이 낚시, 야영, 취사 등 수질을 다시 오염시킬 행위를 일삼고 있으나 이를 단속하기 위한 지자체의 활동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물론 관련 단속 규정도 없다. 특히 상수원 보호구역인 경북 구미보 인근에는 낚시꾼들이 몰려 상수원을 위협하고 있다. 낙동강 인근 주민들은 “낙동강 살리기 사업으로 강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은 크게 증가한 반면 안전 요원이나 안전 시설물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면서 “관계 당국은 무더위가 닥치기 전에 서둘러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이에 미온적이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낙동강변에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관련 시설물을 설치하려고 해도 당장 예산과 관련 규정이 없어 불가능하고, 설사 예산 등이 있더라도 국토해양부로부터 강 살리기 사업 인계·인수가 이뤄지지 않아 곤란하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충남, 백제옛길 밑그림 제시

    충남, 백제옛길 밑그림 제시

    충남 공주, 논산, 부여, 서천과 전북 익산 등 5개 시·군의 백제역사문화를 잇는 ‘백제옛길’ 밑그림이 나왔다. 충남도는 11일 도청에서 중간보고회를 갖고 모두 225㎞에 이르는 5개 루트의 옛길을 발표했다. 지난달 개통한 지리산둘레길 274㎞에 버금가는 규모다. 용역을 수행 중인 충남발전연구원이 내놓은 노선은 ▲1루트 공주∼탄천∼부여(31.4㎞) ▲2루트 부여∼임천∼홍산∼서천 기벌포(53.3㎞) ▲3루트 서천∼한산∼웅포∼함열∼익산(49.4㎞) ▲4루트 익산∼여산∼강경∼논산(50.3㎞) ▲5루트 논산∼연산∼노성∼공주(40.0㎞) 등이다. 걷는 길과 자전거 및 자동차 도로가 혼합돼 있다. 이성우 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백제옛길은 백제의 찬란한 역사문화 유산을 잇는 길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는 곳”이라면서 “옛길이 조성되면 국내외 관광객이 늘어나 백제 문화유산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옛길 주변 5개 시·군에는 중요한 백제역사유적이 산재해 국보, 보물, 무형문화재, 천연기념물 등 132개가 있다. 부여군이 50개로 가장 많고 공주시 43개, 익산시 18개, 논산시 13개, 서천군 8개 등이다. 공주 무령왕릉, 수천리고분군과 부여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고분군에 익산 미륵사지, 왕릉유적 등 7개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돼 있다. 이 밖에도 공주 공산성과 고마나루, 부여 나성지구와 청마산성지구, 익산 쌍릉과 입점리고분군 및 제석사지 등 백제유적이 즐비하다. 또 공주 계룡산과 금강자연휴양림, 논산 대둔산, 서천 희리산자연휴양림 등 자연관광자원이 풍부하고 백제문화제를 비롯해 논산 딸기축제, 익산 서동축제 등 갖가지 축제가 연이어 열려 옛길을 걷는 재미를 더해 준다. 도는 다음 달 중순 최종 용역보고회를 갖고 이를 토대로 관련 시·군과 협의를 거쳐 사업계획을 확정한 뒤 2016년까지 옛길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기존 도로를 정비하고 안내시설, 이정표, 화장실, 역사체험관, 방문자센터 등을 설치한다. 지난해 5개 시·군의 관광객은 서천 688만명 등 모두 2142만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고구려 성까지 만리장성으로 덮어씌워서야…”

    “고구려 성까지 만리장성으로 덮어씌워서야…”

    중국이 6000㎞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2만㎞에 이르는 삼만리장성으로 확대했다는 소식에 학계는 술렁이고 있다. 이 문제를 두고 7일 김운회 동양대 교수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역사의아침 펴냄), ‘대쥬신을 찾아서 1·2’(해냄 펴냄), ‘삼국지 바로 읽기’(삼인 펴냄) 등을 내면서 국수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고대사를 연구해 왔다는 평을 받아 왔다. ●“한반도까지 중국땅이라 말하려 무리수” →먼저 만리장성이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가. -대개 진시황이 흉노족을 막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명나라 때인 15~16세기에 대대적으로 고쳐진 것이다. 명 태조 주원장의 건국이념이 “오랑캐를 몰아내고 한족의 부흥을 이룩한다.”(驅逐胡虜恢復中華)였다. 한나라 이후 북방유목민의 지배를 받다가 이제야 한족 정권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런 명나라가 만리장성에 손댔기 때문에 당연히 만리장성은 한족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기네 땅이다. 일부는 기존 만리장성을 고치고, 여기다 험한 산세나 암벽을 이용해 장책(長柵), 변장(邊牆), 변문(邊門)을 추가로 만들었다. 이는 기존 만리장성에다 현재의 랴오닝성(遼寧省)을 연결한 것이다. 그러니까 한족은 만리장성 이남과 요동반도 정도만 자기네 땅이라고 본 것이다. →만리장성이 삼만리장성으로 불어나는 과정은 어떠했나. -2000년대 중반까지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6000㎞이고 동쪽 끝은 베이징 인근 산해관(山海關)이라는 데 아무 이의가 없었다. 근거를 들라면 사기(史記)를 비롯해 수많은 자료가 있다. 그런데 중국은 2009년 랴오닝성 단둥지역, 그러니까 압록강 하구의 박작성(泊灼城)을 호산장성(虎山長城)으로 둔갑시켰다. 이 성은 당나라 침입을 막기 위해 고구려가 쌓은 성이다. 648년 당 태종의 침입에도 함락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성쌓기 방식이나 출토유물이나 고구려식 우물 등으로 봐서도 분명히 고구려성이었다. 그런데 2004년부터 호산장성을 복구한답시고 고구려 유물을 훼손하고 고구려산성 위에다 중국식 만리장성을 덮어씌워 버렸다. 거기다 한족의 조상인 황제 동상까지 세웠다. 정말 웃기는 것은 중국은 이 성이 명나라 때 여진족을 물리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우기는데, 실제 성의 구조를 보면 각종 수비시설이 남쪽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여진족을 견제하려고 했다면 북쪽에 수비시설이 몰려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것은 요동반도를 넘어 만주, 압록강 일대는 물론 한반도 북부까지 모두 자기네들 땅이라 말하고 싶어서다. ●“개라 부르더니… 중화민족이라 우겨” →우리 고대 사학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사실 중국보다 우리 책임이 더 크다. 한족이 북방유목민을 분열시키기 위해 지어낸 주장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령 삼국사기를 보면 말갈족이 지금의 서울·경기지역에 거주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도 우리는 말갈하면 무슨 미개한 북방 오랑캐 취급을 한다. 조선시대 소중화에서 벗어나질 못해서다. 우리 고대사는 시베리아-몽골-만주-한반도로 이어지는 유목민의 역사다. 서쪽으로는 전연과 북위, 동쪽으론 고구려와 백제, 신라까지 모두 이어진다. 이런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싸움은 점점 어려워진다. →중국도 학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법도 한데 왜 이러는 건가. -만리장성의 강력한 상징성을 활용해 현재 정치적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번 되돌이켜 생각해 보자. 역사적으로 한족과 사이(四夷)를 구분한 뒤 물과 기름 같다는 둥, 절대 융합될 수 없다는 둥 해온 것은 그들 자신이다. 한족은 한국인을 아예 예맥(濊貊)이라 불렀다. 똥고양이다. 다른 민족들도 개, 돼지, 승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개, 돼지, 승냥이도 중화민족이라고 우긴다.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동북아재단, 북방사 연구자 위주 개편을” →대응방법이 있을까. -동북공정이라고 법석을 떨지만 사실 이 문제는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 중국 중등 교과서를 보면 타이완, 한국, 필리핀을 회복해야 할 영토로 명시해 뒀다. 이제 비로소 그 실체가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동북아역사재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일본과의 문제가 독도 문제 정도라면,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 역사 자체를 말살하는 작업이다. 어느 것이 더 시급한가. 북방사 연구자 중심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여기다 중국의 역사전쟁은 한국뿐 아니라 주변 민족 모두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과의 연합같은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오늘 부처님 오신 날] 1600년 절집, 서양미술을 품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 1600년 절집, 서양미술을 품다

    부처님오신날을 하루 앞둔 27일 인천 강화군 온수리 전등사 무설전(無說殿) 공사 현장. 김영원(65) 홍익대 조소과 교수, 오원배(59) 동국대 서양화과 교수, 이정교(51) 홍익대 공간디자인과 교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절반가량 진행된 법당의 공정을 확인하러 나온 이들은 무설전의 불상, 불화, 공간구성을 각각 맡고 있다. 서양미술을 전공한 이들이 어떻게 ‘전통의 벽’이 높은 불사에 손을 대게 됐을까. 원래 전등사(381년 고구려 때 창건)에서는 템플스테이에 쓸 건물을 짓고 있었다. 이것을 본 오 교수가 지난해 이맘때쯤 “이왕 할 불사라면 새로운 방식으로 해 보자.”고 전등사 측을 설득했다. 옛날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미술가들이 현대적 감각으로 새로운 걸 한번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작가들로서는 도전이겠지만, 절의 입장에서는 모험이다. 전등사 회주 장윤 스님이 고심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일은 시작됐다.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아랫부분 공간만 따로 떼내어 딴판의 설계에 들어갔다. 절집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전통불교와 서양미술의 짜릿한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18억원이라는,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비용을 들인다. 지난 4월부터 재공사가 시작됐고 9월 불상이 들어오면 마무리된다. 욕심낸 이유를 묻자 세 교수 모두 호흡이 척척 맞았다. “부처와 대중이 한 몸이라는 것, 그래서 깨달음도 바깥에서 찾지 말고 자기에게서 찾으라는 것, 그래서 모든 대중이 부처라는 것이 바로 불교의 가르침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자꾸 부처를 높이다 보니 부처가 마치 별개의 존재처럼 만들어지면서 부처에게서 인간의 모습이 사라졌어요. 인간의 모습을 되돌려 놓고 싶어요.”(김 교수) “서양미술사를 보면 예수나 마리아의 모습, 십자가 도안 같은 것에서 시대의 변화가 읽혀져요. 그런데 우리 불화에서는 그런 모습이 없어요. 시대가 안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100~200년 뒤 후손들이 지금의 불화를 봤을 때 ‘아, 100~200년 전에는 저렇게 살았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오 교수) “설법하는 곳은 부처가 대중과 가장 친숙하게 만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전체 공간의 콘셉트를 ‘만남의 광장’으로 정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이것저것 볼거리가 있어서 꼭 신자가 아니어도 기웃댈 수 있는 공간이 목표입니다.”(이 교수) ●불상마다 캐릭터 부여해 친근하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까. 김 교수는 제작 중인 불상을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으로 보여 줬다. 주불은 1m 60㎝, 그 옆에 배치될 협시불 4개는 1m 40㎝ 높이다. 모두 잘생기고 늘씬해서 섹시하기까지 하다. “그럼요. 전 정말 아름다운 불상을 만들 겁니다. 고려시대 불상은 무신정권의 영향 때문에 너무 용맹한 모습이에요.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 때문에 손재주는 있다 해도 비전문가인 스님들이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머리가 크고 인체 비례에 안 맞는 불상이 많아요.” 불상마다 캐릭터도 부여했다고 한다. “주불은 그야말로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입니다. 대웅이라는 게 큰 수컷이라는 뜻이잖아요. 대신 관세음보살에겐 다정한 엄마, 보현보살에게는 앳된 여성, 지장보살에겐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 문수보살에겐 유니섹스한 매력을 넣었어요. 요즘 사람들이 봐도 ‘거 참 멋지다’ 할 수 있도록요.” 이번 작업에 관심이 많은 이기선 불교조형연구소장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를 떠올리면 됩니다. 원래 불경에도 깨달음을 얻으며 벌린 팔의 길이가 키와 똑같다는 식으로 인체비례에 대한 언급이 나와요. 고대 인도와 서구의 문명교류 때문이에요. 그게 서양에선 다빈치로, 동양에선 불상으로 이어진 거죠. 석굴암 본존불을 보세요. 비례가 환상의 극치잖아요. 신라만 그런 게 아니에요. 일본이 아끼는 국보 중에 호류지(法隆寺) 백제관음상이 있어요. 백제가 만들어 일본에 준 것인데, 앙드레 말로가 감탄했을 정도로 비례미가 빼어나요. 그 전통이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차츰 사라져 버린 거죠.” 불상은 원래부터 쭉쭉빵빵이었다는 얘기다. 주불은 프레스코 기법의 탱화에 둘러싸인다. 이 부분은 오 교수가 맡았다. 우선시한 것은 공간의 성격이었다. 명칭 자체가 무설전, 그러니까 설하지 않고 설을 전파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림을 좀 달리 그렸습니다. 보통 불화는 부처 주변에 보살들을 배치하는데 저는 제자인 가섭과 아난을 부처 제일 가까이에 그렸습니다.” 권위적이기보다 다정한 부처를 그려 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설법을 하는 곳이라면 제자가 부처 곁에서 친근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어울린다고 봤어요.” ●탱화엔 프레스코 기법 넣어 거부감 없게 무설전 입구 왼쪽 벽에 걸어 둘 탱화도 완성된 뒤 꼭 보라고 권했다. 붉은 안료 바탕에다 얇은 은색 선을 넣어 그리는데, 일단 색을 부드럽게 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 불화를 두고 무섭고 이상하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너무 강렬하니까 위협적이고 이질적이어서 당집 같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걸 자연스럽게 풀어 주고 싶어요.” 주불 뒤의 불화에다 프레스코라는 서양화 기법을 적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프레스코라는 게 결국 물감을 벽에다 흡착시키는 거예요. 기존 불화는 발색이 너무 강렬해서 서양미술하는 사람들은 불편해하거든요. 벽에다 흡착시키면 장엄한 느낌을 주면서도 강렬한 발색으로 인한 거부감을 확 줄일 수 있는 거지요.” 등장인물도 파격적일 거라고 했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이나 트럼펫 같은 현대 악기들이 등장하고요, 몇몇 인물은 베레모를 쓰거나 쌍꺼풀 수술한 자국도 있을 거예요. 이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이 그림을 봤을 때 ‘아, 저게 바로 우리 모습이지’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법당은 베네치아 광장처럼 편안하게 전체적인 그림은 이렇게 된다. 주불 뒤엔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린 불화가, 협시불 뒤에는 천불상이 들어선다. 눈길을 끄는 건 이들 불상이 모두 하얀색, 그러니까 백색불이라는 것. 무설전 입구에 들어서면 높이 3.5m, 너비 28m에 이르는 정면 공간에 햐얀 부처가 가득 들어찬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노리는 바가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런 표현이 어울릴까 모르겠는데 약간은 그로테스크한 느낌, 그러니까 조명을 비추면 불상은 하얗게 빛나면서 두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로 그림자가 떨어지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존 법당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약간 낯설 수도 있지만, 산 속에 있는 갤러리나 미술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래서 이 교수의 포인트도 ‘한발 빼기’다. “중간중간에 배흘림기둥 형식을 배치해 둬서, 비유하자면 베네치아 광장 같은 분위기를 낼 겁니다. 그 누구보다 불자들이 이 공간의 주인인 만큼 너무 나서기보다 물러서서 내주는 공간으로 구성할 겁니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이해받기 어려운 법이다. 오 교수는 “우리가 하는 것을 완벽하다기보다는 새로운 시도로 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승만·박정희 동상에다 광화문 세종대왕상도 만들었다. 참 많은 말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이런저런 말이 없다면 그건 졸작이란 뜻”이라면서 “오히려 조형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냥 법당이 아니라 법당을 넘어선 신비스러운 공간으로 남아 준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며 웃었다. 강화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유독물 치아미백제 ‘사람 잡을 뻔’

    공업용 과산화수소수가 들어간 불법 치아미백제를 제조, 환자들에게 시술한 유명 치과그룹이 경찰에 적발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해당 미백제를 섭취하면 입과 목, 식도에 심한 자극을 줘 화상까지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최대 네트워크형 치과그룹으로, 전국 100여개 의원 지점을 둔 이곳은 무료 미백이벤트를 ‘미끼상품’으로 내세워 추가 치과 진료를 유도하기도 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4일 불법 치아미백제를 제조해 사용한 A치과그룹 소속 치과의사 박모(35)씨와 상담실장 강모(35·여)씨 등 42명을 약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불법 치아미백제 제조법을 알려준 납품업체 대표 정모(60)씨 등 4명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또 미국으로 출국한 그룹 대표 김모(46)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하고, 수배 조치했다. 박씨 등은 2008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공업용으로 분류되는 34.5% 농도(15% 초과는 공업용)의 과산화수소수 2~8방울에 치아연마제로 사용하는 브라이트 파우더를 섞은 치아미백제를 제조, 시술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환자 4000여명이 해당 치아미백제로 시술을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술을 받은 환자들 중 일부는 이 시림이나 통증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 등은 치과그룹 산하 병원에서 공업용 과산화수소가 치료용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화공약품을 1병당 9000~1만원에 납품하고, 제조법을 병원 관계자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미국으로 출국한 김 대표는 그룹 산하 치과병원에 공업용 과산화수소수 등을 제조, 공급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10월 출국했다. 공업용 과산화수소수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의해 유독물로 분류돼 종이펄프나 섬유 표백, 폐수처리 등에 사용된다. 환경부 고시에서도 과산화수소를 6% 이상 함유한 혼합물은 ‘유독물’로 분류돼 있다. 박관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관련 법령에 과산화수소수의 유해기준을 판단할 수 있는 통계 기준이 명시되지 않아 유독물을 사용한 치아미백제 제조 행위를 가중처벌할 수 없다.”면서 “법률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다른 치과병원의 불법 의료행위를 적발한다며 도청한 이 치과그룹 직원 김모(45·여)씨 등 7명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남한산성 행궁, 10년만에 다시 문 열다

    남한산성 행궁, 10년만에 다시 문 열다

    병자호란 47일간의 항전과 삼전도(三田渡)의 굴욕, 일제에 의한 훼손 등 굴곡진 역사를 안은 남한산성 행궁이 10여년의 공사를 끝내고 24일 일반에 공개됐다. 경기도는 남한산성 행궁권역 복원 공사 완료를 축하하기 위해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행궁 인근에서 낙성식을 가졌다. 둘레 약 8㎞로 백제 온조왕 때 축성된 남한산성 안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행궁(조선 인조 4년 건립)은 1907년 일제가 군대해산령을 내리고 성안의 무기고와 화약고를 파괴하면서 사찰 및 문화재와 함께 훼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는 행궁에 대한 발굴 작업을 거쳐 2002년 상궐(침전)의 내행전, 좌승당, 재덕당, 행각 등 72.5칸을 처음으로 복원했다. 이어 2004년에는 좌전 26칸, 2010년에는 하궐(정전)의 외행전과 일장각, 한남루, 행각, 통일신라유적지 등 154칸을 복원한 데 이어 올해 하궐 단청과 남한산성 안내전시시설 설치를 끝으로 10여년 간에 걸친 복원공사를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모두 215억원이 투입됐다. 도는 낙성식을 조선 정조 때 발간된 수원 화성 성곽 축조에 관한 경위와 제도, 의식 등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등의 고증을 통해 전통 낙성연을 그대로 재현해 진행했다. 도는 이날부터 낙성연이 계속되는 오는 28일까지 일반인들에게 남한산성 행궁을 무료 개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낙성연 기간인 26일에 풍류음악회, 27일에 광지원농악을 공연하는 등 다양한 전통문화공연도 펼칠 예정이다. 행궁 관람은 앞으로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가능하다. 이재철 도 문화예술과장은 “연간 320만명이 찾아 도내에서 에버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객이 많은는 남한산성의 행궁이 복원 완료되면서 남한산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한산성은 2010년 1월 10일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정식으로 등재됐고, 지난해 2월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국내 13곳의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가운데 우선 등재 대상으로 선정했다. 내년 1월 유네스코에 정식으로 등재신청서가 제출될 예정이며, 등재 여부는 2014년 6월 결정된다. 도는 낙성식을 계기로 3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 추진위원회도 출범시킬 계획이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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