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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여행 | 슬로바키아 중심에서 만난 몰랐던 유럽②낡은 성들의 유혹 캐슬과 샤또

    해외여행 | 슬로바키아 중심에서 만난 몰랐던 유럽②낡은 성들의 유혹 캐슬과 샤또

    ●낡은 성들의 유혹 Castles & Chateaux 캐슬과 샤또 슬로바키아는 숱한 전쟁의 무대였다. 헝가리와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 몽골 타타르족과 투르크족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음을, 슬로바키아의 남은 성들이 증명하고 있다. 성의 파괴가 적에 의해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세금이나 관리비를 부담할 수 없어서 성주가 일부러 불을 놓 는 경우도 있었고, 세월이라는 파괴자의 위력도 대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슬로바키아에는 100 여 개의 성과 2,100여 개의 대저택들이 남아 있다. 차에서 졸다가 깰 때마다 새로운 성과 성터들이 보이는 이 유다. 용도 폐기된 성들의 운명은 제각각이다. 세계적인 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는 곳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폐허 로 방치되는 곳도 있다. 운이 좋으면 새로운 주인을 만나 호화스러운 호텔로 변신하기도 하고 정부에 귀속되어 박물관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역사의 부침이 컸던 만큼 중세에 우후죽순처럼 불어났던 슬로바키아의 성들은 아 직 각자의 운명을 시험 중이다. 로맨틱한 중세의 유혹 보이니체 성Bojnice Castle 로맨틱한 외관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성이다. 1113년 문헌에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낸 보이니체 성은 목재 요새에서 시작하여 차례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더해진 우아한 레지던스로 변신했다. 현재 모 습대로 네오고딕 양식의 로맨틱한 성이 완성된 것은 성의 소유가 장 팔피Jan Frantisek Palfi, 1829~1908년 백 작에게 넘어가면서다. 최고를 추구했던 탓에 공사가 무려 22년이나 걸렸고, 팔피 백작은 완성된 성을 보 지 못하고 후손 없이 죽고 말았다. 이후 유산을 둘러싸고 일어났을 친척들의 분쟁이야 뻔한 이야기. 황금의 방 Golden Hall, 주방, 사무실 등 호사스러운 내부를 깨알같이 설명해 주는 가이드 투어가 매일 진행된다. 지하의 거대한 동굴과 성 뒤쪽의 공원을 둘러보는 시간도 꼭 확보할 것. Zamok a okolie 1, 972 01 Bojnice, Slovakia 8유로(가이드 투어 포함) 5~9월 9:00~17:00, 10~4 월 10:00~15:00 +421 46 543 06 24 www.bojnicecastle.sk 중부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요새 스피슈 성The Spiš Castle(Spišský Hrad)​ 해발 634m 높이의 고지에 4만1,426km²가 넘는 요새가 우뚝 솟아 있다. 1780년 세금을 피하기 위한 성주의 고의 화재로 소실된 성은 그 뼈대와 터만 남아 있지만 중부 유럽 최대 규모의 중세 요새라는 위용은 여전하다. 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일품.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촬영지인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 잔해일 뿐이 지만 르네상스, 로마네스크, 바로크, 고딕양식의 흔적이 모두 찾아질 뿐 아니라 신석기 시대의 유골이 발견되 기도 했다. 주방, 화장실 터 등도 흥미롭지만 지하의 감옥이나 무기저장고, 중세의 식사예절을 설명해 놓은 전 시 등 보기보다 볼거리가 풍부하다. Žehra, Slovakia 성인 6유로 9:00~16:00(5~9월 9:00~18:00, 4월, 10월 9:00~16:00, 11월 10:00~15:00, 12~3월 폐쇄) +421 53 454 13 36 www.spisskyhrad.com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 트렌친 성Trenčín Hrad 트렌친은 서로마 제국의 국경에 위치했던 도시이자 발칸반도에서 북유럽으로 이어지던 무역로 상에 자리잡은 도시다. 그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많은 침략을 받았지만 같은 이유로 항상 재건되곤 했던 곳이다. 일찌감치 9 세기 모라비아 왕국 때 타워가 세워졌고, 11세기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13세기 마테 카사크Mate Csak 성주의 통치 아래에서 가장 번성했다. 지금도 슬로바키아의 성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인근에 50개의 성을 소유했던 마테는 바강Vah River의 왕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비탈을 거슬러 성 입구로 올라가면 바강을 끼고 형 성된 트렌친과 이웃 도시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터키의 귀족 오마르와 파티마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사랑의 우물을 포함해 여러 개의 궁전으로 구성된 성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가이드 투어가 필수다. Mierove namestie 46 912 50 Trenčín, Slovakia 그랜드 투어 | 성인 5.1유로, 미니 투어 | 성인 3.6유로 +421 32 743 56 57 www.muzeumtn.sk 로마 가톨릭의 화려한 유산 니트라 성Nitra Hrad 니트라는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5세기경 카르파티안 산맥을 넘어온 슬라브족이 처음 자리를 잡 은 곳이 바로 니트라였기 때문. 상인 출신의 사모Samo가 7세기에 첫 번째 통합국가를 건국하였고 830년경 프리 비나Pribina 왕자가 슬로바키아 최초의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833년에 이르러 모라비아의 왕자 모이미 르 3세가 프리비나 왕자를 몰아내고 대 모라비아 제국을 세웠다. 첫 번째 교회의 유적은 니트라 성 아래 묻혀 있다. 성 에머람 성당Cathedral-Basilica of St. Emeram, 주교궁전, 교구 박물관 등으로 운영 중인 니트라 성 은 니트라 교구의 관리를 받고 있는 중요한 가톨릭 박물관이다. 내부에 전시된 성물들의 화려함은 입이 쩍 벌 어질 정도. 입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끌어안을 듯 팔을 벌리고 있는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동상도 인상적이다. Nám. Jána Pavla II. č. 7, P. O. Box 46/A, 950 50 Nitra, Slovakia 10:00~14:00(11~3월은 17:00까지 오픈) +421 37 772 1747 www.nitrianskyhrad.sk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Articular Churches 슬로바키아 목조 교회 목조 건축의 단점은 명확하다. 쉽고 저렴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로 교회 를 세울 때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18세기 초 세워졌던 목조 교회에는 놀라운 탄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슬로바키아는 가톨릭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의 70% 가까이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 863년 데살로니카에서 온 키릴로스St.Cyril와 메토디우스St. Methodius의 포교 이후 그 주류가 바뀐 적은 없었다. 그 한결같음에는 어쩔 수 없이 타 종교에 대한 배타가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16세기 유럽에는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바람이 불었다. 이 영향으로 유럽 전역에 프로테스탄트로의 개종이 급 증하기 시작했다.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분열을 가다듬은 가톨릭의 반격은 특히 합스부르크 영토에서 활발했는데, 신교도에 대한 박해와 순교까지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케즈마록 출신의 백작이 오 스트리아 황제 레오폴드 1세로부터 부분적인 종교의 자유를 얻어냈고, 당연한 수순으로 프로테스탄트들은 교회 를 세우고 싶어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반드시 마을 외곽에 자리잡아야 하고 도로쪽으로는 문도 낼 수 없었다. 건축 재료로는 나무만을, 심지어 못 조차도 나무못을 사용해야 했으며 그것도 1년 안에 완공하는 조건이었다. 눈에 띄는 첨탑 등을 세울 수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이런 조건 아래 완공된 목조 교회들을 ‘아티큘라 교회Articular Church’라고 한다. 계약Article이라는 이름의 ‘미션 임파서블’에도 불구하고 1718년에서 1730년 사이 38개의 교회들이 건립되었다. 현존하는 5 개 중 3개Kežmarok, Hronsek, Leštiny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놀랍지 않을 정도. 현재 슬로바키 아에는 로마 가톨릭과 신교도 교회를 포함하여 총 60여 개의 목조 교회가 남이 있고 그중 유네스코세계문화유 산으로 지정된 것은 총 8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케즈마로크의 목조 교회와 흐론섹의 목조 교회를 차례로 방문했었다. 목재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리석 교회 부럽지 않은 성상과 장식은 정성이라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았다. 교회들은 낡았지만 규모가 컸고, 여전히 예 배를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흐론섹 교회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었던 팔순의 노파도 교회처럼 정정했다. 교회 마당으로 나온 가이드 마틴이 옆집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여기 사세요?’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웅. 운이 나쁘지!”였다. 모두 한바탕 웃었다. 시도 때도 없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상대하는 일이 노파에게는 얼마나 성가신 일이겠는가. 하지만 막상 설명에 나서면 작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알려 주는 그녀의 열정은 직업이 아니라 신앙에 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불가능할 것 같은 조건에서 탄생한 목조 교회들이 수백년 뒤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이 되어 슬로바키아의 자랑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스칸디나비아 스타일로 흐론섹 목조 교회Dreveny Artikularny Kostol Hronsek 땅부터가 척박했다. 흐론섹 목조 교회는 강가의 습지에 세워졌다. 1725년 10월에 공사를 시작했다는 것뿐, 건 축가의 이름도 완공 날짜도 알지 못한다. 건축양식에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 엿보이기에 당시 스칸디나비아 에 있는 루터 교인들의 지원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기둥의 배열이나 지붕을 지탱하는 빔 등의 기술 은 빠른 시일 내에 완공해야 했던 제약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핵심적인 요인이었다고. 이례적으로 2층의 네 면에 모두 좌석을 두어서 중앙의 제단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총1,100여 명을 수용하는 규모다. Augusta Horislava Krčméryho 8 976 31 Hronsek, Slovakia 9:00~17:00 +421 48 418 81 65 스웨덴 선박을 닮은 창 케즈마로크 목조 교회Dreveny Artikularny Evanjelicky Kostol 건물 외벽에 회반죽을 발라 놓은 케즈마로크Kežmarku목조 교회는 1688년 세워졌고 1717년에 재건축된 것이다. 4면으로 뻗은 팔의 길이가 똑같은 그리스 십자가의 형태로 설계하는 과정에 스웨덴 선원이 참여했다는 이야기 가 전해지는데, 교회 창의 모양이 선박의 둥근 창과 매우 흡사하여 이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리석처럼 보이기 위해 세심하게 조각하고 색칠한 제단에서 교회를 아름답게 꾸미고 싶었던 간절함 마음이 엿보인다. Hviezdoslavova, 060 01 Kežmarok, Slovakia 9:00~12:00, 14:00~16:00 +421 52 452 22 42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슬로비카아관광청 www.sacr.sk 슬로바키아관광청 한국사무소 02 2265 2247 슬로바키아대사관 페이스북 www.facebook.com/Slovak.Embassy.Seoul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TV 하이라이트]

    ■장사의 신 - 객주 2015(KBS2 밤 10시) 의주 금문에서 수검을 받던 천객주의 봇짐에서 아편이 발견된다. 천객주는 천가 객주 상단과 의주 군관 사이에 충돌이 벌어져 군관 한 명이 죽어 나가는 아비규환 속에 또 한번 상단이 무너질 위기에 맞닥뜨린다. 결국 뇌물을 바치고 아편을 숨긴 진범을 색출해 내면 상단을 구해 주겠다는 수검관장의 제안에 고심하던 천객주는 옥졸에게 부탁해 길소개를 옥사로 부른다. ■라비린스:미궁(AXN 밤 10시 50분) 시간을 넘나드는 미스터리 이야기. 1209년 십자군과의 전투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트랑카벨 자작은 십자군과 평화 조약을 맺으려 한다. 이에 시몽 드 몽포르 백작은 평화조약의 대가로 카타르 교인들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자신의 시민을 포기할 수 없는 자작은 평화 조약을 맺지 않겠다고 한다. 한편 오리앙은 데브로 백작에게 비밀 전령을 보낸다. ■나를 찾아줘(캐치온 오전 11시 55분)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가는 닉과 에이미 커플. 그러던 어느 날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에이미가 흔적도 없이 실종된다. 유년 시절 어린이 동화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여주인공이었던 유명 인사 아내가 사라지자 세상은 그녀의 실종 사건으로 떠들썩해진다. 경찰은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서들로 남편 닉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는데….
  • SBS 측, “굿바이 미스터 블랙 편성? 논의 중” 이진욱 문채원 달달케미 볼 수 있을까

    SBS 측, “굿바이 미스터 블랙 편성? 논의 중” 이진욱 문채원 달달케미 볼 수 있을까

    SBS 측, “굿바이 미스터 블랙 편성? 논의 중” 이진욱 문채원 달달케미 볼 수 있을까 ’이진욱 문채원’ SBS 측이 이진욱, 문채원 주연의 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 편성을 정정했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 편성을 공식화 한 지 3시간 만에 정정 보도다. 15일 SBS는 정정 보도자료에서 “금일(15일) 발송된 ‘굿바이 미스터 블랙’(SBS 새수목 ‘굿바이 미스터 블랙’ 이진욱-문채원, 男女주인공 확정)관련 보도자료는 제작사의 의뢰를 받아 발송된 보도자료”라면서 “이 과정에서 SBS 주무부서인 드라마본부의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실수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추후 확인 결과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후속으로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으나 몇 가지 협의사항이 남아있어 최종 결정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임을 알린다”고 덧붙였다. 앞서 SBS는 배우 이진욱과 문채원이 SBS 새 수목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에서 남녀주인공으로 출연을 확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암굴왕’이라 불리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한 남자의 강력한 복수극에 감성 멜로를 더했다. 이진욱은 매사 긍정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지만, 절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복수를 꿈꾸게 되는 해군 특수부대 UDT 장교 ‘차지원(블랙)’으로, 문채원은 행동이 거칠고 제멋대로지만 그 모습조차 유쾌한 웃음을 유발하는 깜찍 발랄한 소녀 ‘스완’으로 등장한다. 사진=S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황태자 루돌프’의 연인이 쓴 유서 발견…“사랑에 저항할 수 없다”

    ‘황태자 루돌프’의 연인이 쓴 유서 발견…“사랑에 저항할 수 없다”

    최근 국내 뮤지컬로 무대에 오르며 크게 주목을 받았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Rudolf Franz Karl Joseph, Kronprinz, 1858~1889). 그와 동반 자살한 연인 마리 베체라가 죽기 전에 쓴 유서가 처음 발견됐다고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이 1일 발표했다. 도서관 측은 이번 유서 발견을 두고 “역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딸인 스테파니와의 정략결혼으로 인한 불화에 시달던 황태자 루돌프는 30세 무렵 사촌 리리쉬 백작 부인에게서 남작의 딸인 17세의 마리 베체라를 소개받는다. 몇 차례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졌고, 결국 1889년 1월 말 빈에서 남서쪽으로 24km 가량 떨어진 황실 사냥용 별장 마이얼링에서 권총으로 동반 자살하고 말았다.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소재로 한 오스트리아 작가 프레더릭 모턴의 유명 소설은 국내에서 ‘황태자의 마지막 키스’(원제 A Nervous Splendor)라는 작품으로도 출간됐다. 이뿐만 아니라 원작 소설은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쓰였고 최근 국내에서는 ‘황태자 루돌프’라는 이름의 뮤지컬로도 무대에 올랐었다. 도서관 측은 빈 은행이 1926년에 맡긴 금고를 조사하던 도중 마리 베체라의 유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유서는 두 사람의 시신이 발견된 마이얼링 별장의 이름이 들어간 편지지에 쓰였고 봉투는 루돌프의 봉랍(편지 봉인)으로 붙여져 있었다. 유서는 마리가 자신의 어머니와 자매에게 보낸 것으로 “내 행동을 용서해달라. 사랑에 저항할 수 없다”면서 “사느니 죽는 것이 행복하다”고 적혀있다. 이 유서는 마리의 어머니가 죽은 뒤 파기된 것으로 보이고 있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최초의 오페라는 어떤 모습일까

    최초의 오페라는 어떤 모습일까

    세계 음악사(史)상 첫 오페라는 무엇일까. 1597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베르디 백작 궁정에서 지역 예술가와 귀족들로 구성된 ‘카메라타’ 모임에서 그리스 비극을 재현하기 위해 쓴 ‘다프네’가 꼽힌다. 안타깝게도 악보가 남아 있지 않으며, 악보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에우리디체’(1600)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오페라의 기원으로 인정받는 건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1607)다. 다양한 악기를 동원하고 음악과 극이 어우러진 ‘종합예술’로서의 오페라를 제시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본격적 오페라인 ‘오르페오’가 처음으로 국내 관객들을 만난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오는 23~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오르페오’를 초연한다.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이 “70년 가까운 우리나라 오페라 역사에 ‘오르페오’가 빠져 있다는 것은 악단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지난해부터 공연을 기획해 왔다. 최근 국립오페라단장에 임명된 김학민 경희대 교수가 연출을 맡았다. ‘오르페오’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를 바탕으로 한다. 악사인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 에우리디체를 찾아 저승으로 향하는 이야기다. 김학민 연출은 공연의 콘셉트를 ‘길’에서 찾았다. 시간과 공간, 현세와 저승을 잇는 길들에서 모티프를 얻어 무대 세트를 구상했다. 또 바로크 원전 악기들로 편성된 작품을 현대에 맞게 재연하기 위해 고음악의 대표적 학자인 정경영 교수가 바로크 음악감독을 맡았다. 양진모 지휘자와 함께 ‘오르페오’에서 연주되는 악기 구성을 연구해 바로크 음악 연주법은 유지하되 대부분의 악기는 현대 악기로 편성했다. 양진모 지휘자는 지휘뿐만 아니라 쳄발리스트 김희정과 함께 쳄발로를 연주한다. 주인공 ‘오르페오’는 바리톤 한규원과 테너 김세일이 맡는다. 산천초목까지 감동시키는 노래 실력을 갖춘 오르페우스를 서로 다른 음역대의 성악가가 어떻게 표현할지 시선을 모은다. 아내 ‘에우리디체’ 역에는 소프라노 정혜욱과 허진아가 낙점됐다. 3만~8만원. (02)399-1783.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신영숙, 16년 만에 이룬 꿈…나는 ‘명성황후’다

    신영숙, 16년 만에 이룬 꿈…나는 ‘명성황후’다

    “저, 이다음에 성장해서 꼭 명성황후를 하겠습니다.” 1999년, 당시 24세 나이에 한국 대형 창작뮤지컬 대표작인 ‘명성황후’에서 손탁 여사 역할로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섰던 신영숙(40)은 팀 회식 자리에서 윤호진(67) 에이콤인터내셔널 대표를 향해 ‘당돌한’ 약속을 했다. 16년이 지나 ‘명성황후’의 20주년 기념 공연 소식이 들려올 때쯤 윤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명성황후가 꿈이라고 하지 않았니?” “16년 만에 꿈을 이뤘어요.” 최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만난 배우 신영숙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새달 28일 개막하는 ‘명성황후’ 20주년 기념공연에서 주인공 명성황후 역을 꿰찬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데뷔했던 작품에서 주연이라니 … 일정이 빡빡했지만 어떻게든 하겠다고 마음을 바짝 다잡았습니다.” ‘명성황후’는 그에게 데뷔작 이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성악을 전공했던 그를 배우의 길로 이끈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고민했던 그는 ‘명성황후’ 오디션에 도전했다 합격했다. 조선에 머물던 외국 공사의 부인으로 명성황후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주는 역할이었다. “노래엔 자신 있었지만 연기는 처음이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어리바리하게 연기했던 기억이 나요.” ‘명성황후’를 마치고는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생각에 서울예술단에 들어갔다. “연기와 무용, 국악 등의 기본기를 다지며 배우로 살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된 시절”이었다. 라이선스 뮤지컬 대신 창작극에 매진했던 그는 한동안 낮은 인지도 탓에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오디션에 1등으로 붙고도 떨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이겨내야 하는 현실”이라며 이를 악물고 도전을 거듭했다. 2008년 ‘캣츠’ 라이선스 초연에서 그리자벨라 역을 따냈고, 2010년부터 공연마다 맡았던 ‘모차르트!’의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 그는 뮤지컬계 대표적인 ‘신스틸러’다. ‘두 도시 이야기’의 마담 드파르지,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 ‘황태자 루돌프’의 라리쉬 백작부인 등 카리스마와 코믹, 우아함을 오가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믿고 보는 신여사’로 통한다. 그는 요즘 명성황후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에 한창이다. ‘명성황후’의 원작인 이문열의 희곡 ‘여우사냥’을 비롯해 관련 책과 자료들을 찾아 공부했다. 명성황후에 대한 엇갈린 시각과 비판을 그는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가 잘했건 잘못했건, 30년간 조선의 왕비였으며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왕비였던 건 사실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문화 콘텐츠로서 회자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날씨 좋은 어느 날엔 경복궁을 천천히 거닐며 명성황후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아름다운 궁 안에서 아이를 낳고 뜰을 거닐고 … 어쩌면 명성황후는 그저 아이들과 오손도손 살아가는 걸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그는 “작품에서 (명성황후에 대한)미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명성황후가 살아온 시간을 역사적 사실 그대로 보여주며 한국인의 교감을 끌어내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뮤지컬계에 여배우의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신영숙은 30대 중반에 빛을 보기 시작했다. 올해로 마흔, 이제 정점에 올라섰다는 말에 그는 손가락을 들어 상승 곡선을 쭉 그렸다. “제 배우 인생은 느리게, 천천히 흘러갔어요. 하지만 어떤 배역이든 소중히 여기고 해온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에게 어떤 배우의 삶이 펼쳐질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9월 1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6만~13만원. (02)2250-5923.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大데레사 성녀의 땅, 아빌라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大데레사 성녀의 땅, 아빌라

    16세기 유럽 가톨릭교회는 ‘혼돈의 시대’라는 말 그대로 큰 위기를 겪었다. 가톨릭 교회에선 세속적인 타락과 영적 혼란이 만연한 그 시절, 여인의 몸으로 교회의 영적 쇄신을 이끈 걸출한 인물이 회자된다. ‘첫 여성 교회학자’로 통하는 이른바 대(大) 데레사(1515-1582)성녀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관으로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순례에 나선 일행이 톨레도를 거쳐 지난 8일 찾은 곳은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85㎞ 떨어진 아빌라. 데레사 성녀의 개혁정신이 오롯이 담긴 쇄신의 땅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눈에 들어오는 육중한 황톳빛 성벽. 11세기 후반 국왕 알폰소 6세의 사위 우루고위 백작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쌓은 거대한 로마식 성벽이다. 대 데레사가 하느님을 만나는 황홀경에 빠진 모습의 조각상이 놓인 아빌라 대성당을 지나 안으로 드니 데레사의 숨결이 담긴 흔적들이 널려 있다. 어둡고 비열한 현실에서 무지한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는 수도자의 역할을 강조해 청빈과 고행의 실천으로 일관했던 대 데레사 성녀. 아빌라 출신인 그는 어릴 적부터 신심이 깊었고 일곱 살에 순교 성인전을 읽고 오빠와 함께 순교자가 되겠다며 아프리카로 가려 가출했던 여인이다. “데레사 성녀 탄신 500주년 되는 해”라는 안내자의 설명과 함께 일행이 먼저 찾은 곳은 성녀가 19살 되던 해 입회해 33년간 몸담았다는 엔카르나시온(강생) 가르멜 수도원. 방황과 병치레로 혼란의 사춘기를 보낸 성녀는 이곳에서 기도 중 예수님이 기둥에 묶인 채 매질 당하는 환상을 본 후 크게 각성했다고 한다. 줄곧 성녀가 치중했던 모토는 바로 ‘하느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였다. 인격적인 신을 감각적으로 느끼기를 염원했던 성녀는 잇따른 신비체험을 겪었다. 수도원 뜰에 깔린 ‘7궁방’이 치열했던 수도의 삶을 보여준다. 끝없는 정진과 신비로운 영적 체험을 공유하자는 성녀의 뜻이 오롯하다. 스페인 전역에 17개의 봉쇄수도원을 세운 데레사 성녀. 영적 개혁의 구심점인 이 수도원들의 시작이 바로 가르멜 초기 규칙대로 수도생활을 하자며 4명의 수녀와 함께 세운 ‘맨발 가르멜회’이다. 엄동설한에도 샌들만 신고 다니는 절제와 고행의 실천. 외부와의 만남을 피한 채 좁은 방에서 금욕과 기도를 이어가면서도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바른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뜻의 발현이 새삼스럽다. 당시 수녀들의 유품이 전시된 2층에 놓인 손때 묻은 첼로, 기타 같은 악기며 천장 버팀목들에 그려진 그림들이 선명하다. 훗날 수도원 원장으로 가르멜 수도원으로 돌아온 데레사는 이 2층 방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한 아이를 만나 “나는 데레사의 예수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예수의 데레사’라는 별칭이 붙게 된 신비체험의 순간이다. 생애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를 고백하고 기도생활을 자세히 기록한 ‘자서전’이며 기도 및 영성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 ‘완덕의 길’, 자신의 영성생활을 종합한 ‘영혼의 성’은 수도자들이 탐독하는 저서들이다. “꼭 필요한 것 중에서도 정말 필요한 것을 선별할 줄 아는 영성이야말로 성녀 데레사가 발견한 기쁨이자 충만이었다.” 엔카르나시온 수도원의 다니엘 데 파블로 마로토 신부가 기자에게 전한 귀띔이다. “저는 교회의 딸입니다.” 지금 가톨릭 교회는 임종 때 그렇게 말했다는 ’예수의 데레사’ 정신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르고 있을까. 글 사진 아빌라(스페인)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영적 심장’ 2000년 고도 톨레도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영적 심장’ 2000년 고도 톨레도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은 독특한 천주교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다. 종교개혁의 구호와 운동이 거세게 번지는 격동과 혼란의 순간에도 천주교를 이탈하지 않는 신학과 영성이 유난히 강했고, 그 올곧은 믿음의 정신과 신앙의 질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관으로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스페인의 가톨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영성 성지를 돌아보는 순례 행사가 열려 본지 김성호 선임기자가 동행했다. 4회에 걸쳐 현지 순례 인상을 연재한다. 지난 7일 오전 10시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72㎞ 지점에 오뚝하게 선 2000년 고도 톨레도의 복판인 톨레도 대성당. 고딕의 웅장한 ‘하느님 집’ 외관에 압도당해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경당(소성당) 속 신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성체성혈대축일을 기리기 위해 톨레도의 주교좌성당에 일찍부터 모인 예수님 제자들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 성체성혈대축일은 예수님이 성체성사를 세워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내어줌을 기념하고 되새기는 천주교 일곱 성사 중 하나다. 전체 인구의 85%가 가톨릭 신자인 만큼 가톨릭 국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스페인 대표 영성 성지에서 만난 부활 끝자락의 각별한 인상이 불청객을 사로잡는다. 다소 어두운 듯한 공간에 자리잡은 22개의 경당을 지나쳐 중앙 제대에 이르니 5600개의 조각과 1만 2000개의 황금 나사로 만들었다는 거대한 성광(성체 현시대)이 일행의 눈길을 끈다. 평소 이곳 감실에 모셔진 성체를 성체성혈대축일 때마다 거리로 모시고 나와 행렬을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란다. 맞은편 소성당인 코로에 우뚝 서 있는 백성모마리아. 미사 때 129명의 보좌주교와 참사 신부들이 앉는다는 공간 한가운데 들어선 성모마리아의 턱을 만지는 아기 예수와 그 모습에 웃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현신을 본 방문객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걸출한 영성가들과 아직까지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신학, 신비주의로 압축된다는 스페인 가톨릭의 첫 영성 성지에서 만난 성모마리아의 웃음, 그 웃음에 톨레도를 잠깐 얹어 본다. 로마제국의 지배 후 서고트족이 들어오면서 서고트 왕국의 수도로 번영했던 곳이다. 711년부터 1492년까지 무려 780년간 이슬람 지배하의 수도였으며 1085년 알폰소 6세의 탈환 이후 1561년 펠리페 2세의 마드리드 수도 천도 때까지 스페인 수도로서 정치, 문화, 산업의 중심지였다는 가이드의 낭랑한 목소리가 귀에 박힌다. 그 톨레도는 과연 무엇일까. 로마 지배의 영향으로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인 톨레툼(방어지대)일까, 유대교와 이슬람, 가톨릭이 혼재했던 관용과 융합의 톨레랑스 지대일까. 안내자의 한마디가 콕 박힌다. “적지 않은 부를 형성하고 있었던 30만명의 유대인들이 가톨릭의 중심 도시로 바뀐 뒤 떠날 것인지 머물 것인지를 선택하라는 통치자의 말을 따라 이동했고, 이는 스페인 몰락의 적지 않은 원인이 됐다.” 그 한편에선 성당이며 건축물들을 세우고 복원할 때 이슬람 신자들을 참여시켰다니 톨레도는 관용과 조화의 종교 공간임이 틀림없다 제의실로 들어서니 예사롭지 않은 성화들이 눈에 박힌다. 성당의 주보인 성 일데폰소 대주교가 성모마리아로부터 제의를 하사받는 천장 벽화며 입고 있는 빨간 성의가 벗겨지는 순간에도 평온한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성화인 중앙의 ‘모욕당하는 예수’, 그리고 ‘베드로의 눈물’…. 중앙 제대 뒤편으로 옮기자니 천장 아래로부터 중앙 제대로 쏟아지는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대리석의 바로크식 조각들이 빛을 받으니 무수한 천사가 힘차게 약동한다. 미소 짓는 성모마리아를 뒤로한 채 성당을 나오니 좁은 거리에 기다랗게 이어진 천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오후에 있을 성체성혈대축일 성체 현시대 거동 행사 때 길을 인도하고 햇빛을 가리는 천들이다. 집집마다 벽에 내건 추기경 문장이며 알록달록한 태피스트리들이 강렬한 빛과 색의 조화를 이뤄 눈부시다. 태피스트리와 천들의 향연에 취해 잠시 걷다가 골목 한편에서 맞닥뜨린 산토 토메 성당. 호기심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서자 스페인에선 빼놓을 수 없다는 화가 엘 그레코(1541~1614)의 최고 걸작이라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이 시선을 압도한다. 이 교회의 후원자였던 돈 곤살로 루이스를 매장할 때 스테파노와 아우구스티노 두 성인이 나타나 친히 백작의 시신을 입관했다는 기적의 장면을 묘사한 명화다. 이 명화를 보려는 전 세계의 신자며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안내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톨레도의 가톨릭 영성을 가늠하기란 어렵지 않아 보인다. 톨레도를 휘감아 흐르는 타호강을 건너기 전 뒤돌아본 적갈색의 성채 도시 맨 아래에 자리잡은 산 후안 데 로스 레예스 성당. 이슬람 지배 시절 이슬람 교도들로부터 받은 치욕을 잊지 말자며 성당 외벽에 걸어 놓은 옛 지하감옥의 쇠사슬이 둔중하게 걸려 있다. 스페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심장 격의 역사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톨레도의 가톨릭을 한눈에 압축해 보이는 흔적이 아닐까. 글 사진 톨레도(스페인)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아수라 백작 메이크업으로 ‘화장의 힘’ 설파한 뷰티 블로거

    아수라 백작 메이크업으로 ‘화장의 힘’ 설파한 뷰티 블로거

    아수라 백작을 떠올리게 하는 메이크업으로 ’화장의 힘’을 설파한 뷰티 블로거의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출신 유명 뷰티 블로거 니키(Nikkie·21)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화장의 힘’(The Power of MAKEUP)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공개된 영상 속 민낯으로 나타난 니키는 “최근에 많은 소녀들이 메이크업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다”며 “메이크업은 여러분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재미있는 것이지 그 어떤 부끄러움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화장은 민낯을 가리는 부끄러운 행위가 아닌 자신을 표현하는 또 다른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어 니키는 마스카라, 아이라이너, 셰도우 등 다양한 제품과 도구들로 차근차근 화장을 시작한다. 단, 화장의 마법 같은 힘을 알게 하고자 얼굴의 오른편은 민낯으로 둔 채 왼쪽만 화장을 진행한다. 화장을 끝낸 니키는 극명하게 달라진 화장한 얼굴을 민낯과 비교해 보여준다. 니키는 “메이크업이 재미있다는 것과 여기에는 법칙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며 영상을 마친다. 한편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 공개된 지 한 달 만에 1,322만 건을 넘는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영상=NikkieTutorials/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크리스토퍼 리 별세, ‘키가 가장 큰 주연’ 생전 출연한 작품 무엇있나 보니?

    크리스토퍼 리 별세, ‘키가 가장 큰 주연’ 생전 출연한 작품 무엇있나 보니?

    크리스토퍼 리 별세, ‘키가 가장 큰 주연’ 생전 출연한 작품 무엇있나 보니?‘크리스토퍼 리 별세’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별세했다. 93세. 드라큘라 백작, 스타워즈의 두쿠 백작,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역을 맡은 영국의 유명 배우 ‘크리스토퍼 리’(93)가 런던의 첼시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키가 195센티미터에 달해 ‘키가 가장 큰 주연’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스토퍼 리는 1958년 영화 ‘드라큘라’에서 명연기를 펼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여섯 편의 드라큘라 속편과 해리 앨런 타워스가 제작한 ‘드라큘라가 깨어나는 밤(1970)’에서 드라큘라로 계속 등장했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2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최근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두쿠 백작 역을,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는 ‘백색 마법사 사루만’ 역을 맡았다. 그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제작진과 출연진 중 원작자 J.R.R 톨킨을 직접 만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호빗’ 시리즈에서도 깜짝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드라큘라’ 英 배우 크리스토퍼 리

    [부고] ‘드라큘라’ 英 배우 크리스토퍼 리

    영화 ‘드라큘라’(드라큘라 백작)와 ‘반지의 제왕’(마법사 사루만), ‘스타워즈’(두쿠 백작) 등을 통해 국내에 널리 알려진 영국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지난 7일(현지시간)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93세. 고인은 심부전과 호흡기 질환으로 3주간 런던의 첼시 앤드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뒀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11일 보도했다. 덴마크 모델 출신의 미망인 브리지트 크로엔케는 “고인이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 조용히 보내고 싶어했다”며 리의 타계 사실을 발표했다. 고인은 1940년대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250여편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 2009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고인을 스타덤에 올린 건 1958년 개봉한 영화 드라큘라. 195㎝의 거구와 매부리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으로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007 황금총을 든 사나이’, ‘반지의 제왕’, ‘호빗’, ‘스타워즈’ 등에서 악당과 마법사를 오가며 다양한 팬층을 거느렸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크리스토퍼 리 93세로 별세…사루만·두쿠 백작·드라큘라 등 길이 남을 명배우

    크리스토퍼 리 93세로 별세…사루만·두쿠 백작·드라큘라 등 길이 남을 명배우

    ‘크리스토퍼 리 별세’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별세했다. 93세. 드라큘라 백작, 스타워즈의 두쿠 백작,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역을 맡은 영국의 유명 배우 ‘크리스토퍼 리’(93)가 런던의 첼시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키가 195센티미터에 달해 ‘키가 가장 큰 주연’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스토퍼 리는 1958년 영화 ‘드라큘라’에서 명연기를 펼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여섯 편의 드라큘라 속편과 해리 앨런 타워스가 제작한 ‘드라큘라가 깨어나는 밤(1970)’에서 드라큘라로 계속 등장했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2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최근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두쿠 백작 역을,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는 ‘백색 마법사 사루만’ 역을 맡았다. 그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제작진과 출연진 중 원작자 J.R.R 톨킨을 직접 만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호빗’ 시리즈에서도 깜짝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크리스토퍼 리 별세…사루만·두쿠 백작·드라큘라 등 영화계 족적 남겨

    크리스토퍼 리 별세…사루만·두쿠 백작·드라큘라 등 영화계 족적 남겨

    ‘크리스토퍼 리 별세’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별세했다. 93세. 드라큘라 백작, 스타워즈의 두쿠 백작,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역을 맡은 영국의 유명 배우 ‘크리스토퍼 리’(93)가 런던의 첼시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키가 195센티미터에 달해 ‘키가 가장 큰 주연’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스토퍼 리는 1958년 영화 ‘드라큘라’에서 명연기를 펼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여섯 편의 드라큘라 속편과 해리 앨런 타워스가 제작한 ‘드라큘라가 깨어나는 밤(1970)’에서 드라큘라로 계속 등장했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2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최근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두쿠 백작 역을,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는 ‘백색 마법사 사루만’ 역을 맡았다. 그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제작진과 출연진 중 원작자 J.R.R 톨킨을 직접 만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호빗’ 시리즈에서도 깜짝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반지의 제왕 사루만’ 크리스토퍼 리 별세…향년 93세

    ‘반지의 제왕 사루만’ 크리스토퍼 리 별세…향년 93세

    ‘크리스토퍼 리 별세’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별세했다. 93세. 드라큘라 백작, 스타워즈의 두쿠 백작,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역을 맡은 영국의 유명 배우 ‘크리스토퍼 리’(93)가 런던의 첼시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키가 195센티미터에 달해 ‘키가 가장 큰 주연’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스토퍼 리는 1958년 영화 ‘드라큘라’에서 명연기를 펼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여섯 편의 드라큘라 속편과 해리 앨런 타워스가 제작한 ‘드라큘라가 깨어나는 밤(1970)’에서 드라큘라로 계속 등장했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2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최근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두쿠 백작 역을,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는 ‘백색 마법사 사루만’ 역을 맡았다. 그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제작진과 출연진 중 원작자 J.R.R 톨킨을 직접 만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호빗’ 시리즈에서도 깜짝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크리스토퍼 리, 생전에 참여한 작품 보니?

    크리스토퍼 리, 생전에 참여한 작품 보니?

    ‘크리스토퍼 리 별세’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별세했다. 93세. 드라큘라 백작, 스타워즈의 두쿠 백작,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역을 맡은 영국의 유명 배우 ‘크리스토퍼 리’(93)가 런던의 첼시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키가 195센티미터에 달해 ‘키가 가장 큰 주연’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스토퍼 리는 1958년 영화 ‘드라큘라’에서 명연기를 펼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여섯 편의 드라큘라 속편과 해리 앨런 타워스가 제작한 ‘드라큘라가 깨어나는 밤(1970)’에서 드라큘라로 계속 등장했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2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최근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두쿠 백작 역을,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는 ‘백색 마법사 사루만’ 역을 맡았다. 그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제작진과 출연진 중 원작자 J.R.R 톨킨을 직접 만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호빗’ 시리즈에서도 깜짝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크리스토퍼 리 별세…‘키가 가장 큰 주연’이라는 닉네임의 배우

    크리스토퍼 리 별세…‘키가 가장 큰 주연’이라는 닉네임의 배우

    ‘크리스토퍼 리 별세’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별세했다. 93세. 드라큘라 백작, 스타워즈의 두쿠 백작,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역을 맡은 영국의 유명 배우 ‘크리스토퍼 리’(93)가 런던의 첼시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키가 195센티미터에 달해 ‘키가 가장 큰 주연’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스토퍼 리는 1958년 영화 ‘드라큘라’에서 명연기를 펼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여섯 편의 드라큘라 속편과 해리 앨런 타워스가 제작한 ‘드라큘라가 깨어나는 밤(1970)’에서 드라큘라로 계속 등장했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2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최근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두쿠 백작 역을,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는 ‘백색 마법사 사루만’ 역을 맡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크리스토퍼 리 별세…‘키가 가장 큰 주연’ 누구?

    크리스토퍼 리 별세…‘키가 가장 큰 주연’ 누구?

    ‘크리스토퍼 리 별세’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별세했다. 93세. 드라큘라 백작, 스타워즈의 두쿠 백작,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역을 맡은 영국의 유명 배우 ‘크리스토퍼 리’(93)가 런던의 첼시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키가 195센티미터에 달해 ‘키가 가장 큰 주연’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스토퍼 리는 1958년 영화 ‘드라큘라’에서 명연기를 펼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여섯 편의 드라큘라 속편과 해리 앨런 타워스가 제작한 ‘드라큘라가 깨어나는 밤(1970)’에서 드라큘라로 계속 등장했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2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최근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두쿠 백작 역을,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는 ‘백색 마법사 사루만’ 역을 맡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반지의 제왕’ 크리스토퍼 리, 향년 93세로 별세…무슨 작품에 출연했나 보니?

    ‘반지의 제왕’ 크리스토퍼 리, 향년 93세로 별세…무슨 작품에 출연했나 보니?

    ‘반지의 제왕 크리스토퍼 리’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별세했다. 93세. 드라큘라 백작, 스타워즈의 두쿠 백작,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역을 맡은 영국의 유명 배우 ‘크리스토퍼 리’(93)가 런던의 첼시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키가 195센티미터에 달해 ‘키가 가장 큰 주연’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스토퍼 리는 1958년 영화 ‘드라큘라’에서 명연기를 펼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여섯 편의 드라큘라 속편과 해리 앨런 타워스가 제작한 ‘드라큘라가 깨어나는 밤(1970)’에서 드라큘라로 계속 등장했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2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최근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두쿠 백작 역을,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는 ‘백색 마법사 사루만’ 역을 맡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크리스토퍼 리 별세…사루만·두쿠 백작·드라큘라 등 길이 남을 명배우

    크리스토퍼 리 별세…사루만·두쿠 백작·드라큘라 등 길이 남을 명배우

    ‘크리스토퍼 리 별세’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별세했다. 93세. 드라큘라 백작, 스타워즈의 두쿠 백작,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역을 맡은 영국의 유명 배우 ‘크리스토퍼 리’(93)가 런던의 첼시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키가 195센티미터에 달해 ‘키가 가장 큰 주연’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스토퍼 리는 1958년 영화 ‘드라큘라’에서 명연기를 펼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여섯 편의 드라큘라 속편과 해리 앨런 타워스가 제작한 ‘드라큘라가 깨어나는 밤(1970)’에서 드라큘라로 계속 등장했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2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최근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두쿠 백작 역을,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는 ‘백색 마법사 사루만’ 역을 맡았다. 그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제작진과 출연진 중 원작자 J.R.R 톨킨을 직접 만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호빗’ 시리즈에서도 깜짝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크리스토퍼 리, 생전 어떤 작품에 참여했나

    크리스토퍼 리, 생전 어떤 작품에 참여했나

    ‘크리스토퍼 리 별세’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별세했다. 93세. 드라큘라 백작, 스타워즈의 두쿠 백작,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역을 맡은 영국의 유명 배우 ‘크리스토퍼 리’(93)가 런던의 첼시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키가 195센티미터에 달해 ‘키가 가장 큰 주연’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스토퍼 리는 1958년 영화 ‘드라큘라’에서 명연기를 펼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여섯 편의 드라큘라 속편과 해리 앨런 타워스가 제작한 ‘드라큘라가 깨어나는 밤(1970)’에서 드라큘라로 계속 등장했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2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최근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두쿠 백작 역을,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는 ‘백색 마법사 사루만’ 역을 맡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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