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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판 ‘가카빅엿’ 사건 결말은 ‘사과’

    미국의 한 연방판사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조롱하는 인종차별적 농담을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퍼나르기’를 했다가 판사로서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는 비난에 직면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리처드 세불 몬태나주 연방판사는 지난달 20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지인으로부터 받은 한 이메일을 친구 6명에게 재전송했다. 이 메일은 한 소년이 엄마에게 ‘왜 나는 흑인이고 엄마는 백인이에요.’라고 묻자 ‘버락, 네가 짖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란다.’라는 내용으로 흑인을 개에 비유하는 글이었다. 세불은 이 글을 재전송하면서 “글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친구들에게 보낸다.”라고 이유를 붙였다. 하지만 세불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친구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포워딩하고 그것이 또 포워딩되는 일이 며칠간 되풀이되면서 결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를 비롯한 일부 신문 기자들에게도 들어갔다. 세불의 법원 이메일 계정이 붙은 상태로 전달됐기 때문에 신문들은 이를 기사화했다. 세불은 지난달 29일 공식 사과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메일을 친구들에게 재전송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나는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이번 건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넘어선 행동이었다.”고 사과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그러나 몬태나주에서는 세불의 사임을 촉구하는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車, 욕망을 선물하다

    車, 욕망을 선물하다

    포디즘, 그러니까 컨베이어 벨트 위에 생산물을 올려놓고 시간단위로 제품을 찍어내는 거대 공장은 어떤 이미지인가. 영화팬이라면 찰리 채플린의 1936년 영화 ‘모던 타임즈’를 떠올릴 수 있다. 고정된 자세로 장시간 반복노동을 해야 하는 포디즘의 비인간성을 풍자했다. 매카시즘 열풍 때 채플린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추방당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아이러니에 흥미있는 사람이라면 여기다 한가지 더 추가할 수 있다. 포디즘을 비판한 채플린도 빨갱이로 몰렸지만, 포디즘을 만든 자동차왕 헨리 포드도 빨갱이로 몰렸다는 점이다. 노동자 일당이 평균 2.34달러이던 시절, 무려 5달러나 줬기 때문이다. 여기다 1일 8시간 노동을 보장하고, 기숙사를 제공했다. ‘가장 늦게 채용되고 가장 빨리 해고되는’ 흑인, 장애인, 여성까지 채용했다. ‘아무리 고되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기꺼이 노동할 자유’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자와 자유시장주의자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하찮은 노동자들에게 그렇게 퍼주다보면 기업경쟁력이 떨어져 결국은 망하고야 말 것이라는 저주가 그때라고 왜 없었겠나. 여기엔 또 하나의 반전 포인트가 숨어 있다. 정작 포드 자신은 철저한 마초스타일의 우파였다는 사실이다. 생산해낸 차도 오직 기계적 단순함이라는 남성적 스타일만 강조했다. 이는 나중에 GM에 역전당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 고립주의, 반유대주의를 고집했고 노조를 혐오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서 격찬받은 미국인은 포드가 유일했고, 1938년 히틀러는 제3제국 최고의 훈장 독일독수리최고대십자장을 수여하기까지했다. 포드는? 감사히 받았다. 다음 해에 2차대전이 발발했다. 그런 포드가 왜 노동자들을 후하게 대접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 규모를 키우고 싶어서였다. 일부 돈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노동자들도 차를 사야 시장이 커진다. 그럴려면 주머니에 돈도 좀 찔러주고, 과도한 노동으로 파김치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여유가 있어야 주말 드라이브라도 나갈 것 아니겠나. 포드 차를 타고 말이다. 포디즘은 합리적 생산방식으로 주목받는데, 사실 더 주목 받아야 할 대목은 여기다. 대량생산 제품을 대량소비할 수 있도록 ‘대중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포드 스스로도 빨갱이라는 비판에 대해 한마디했다. “높은 곳에 있는 열매를 따기 전에 낮은 곳에 있는 열매를 따야 한다. 대중시장은 얻기 쉬운 열매라 볼 수 있다.” ‘자동차와 민주주의’(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는 이런 측면에서 재미있게 읽힌다. 자동차를 다루되 무엇보다 ‘대중의 욕망’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포디즘 이후 미국의 자동차산업을 쭉 읊는데, 단순한 산업사라기보다 도시문화사나 미국문화사로 읽힌다. 건축, 도시, 지리학 등을 기초로 문명사를 다루는 루이스 멈포드, 데이비드 하비가 등장하고,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뉴욕의 불도저’ 로버트 모제스 같은 인물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자동차산업의 발달이란, 곧 도로의 개발과 그로 인한 도시생태계의 변화, 그 결과 나타나는 라이프스타일 변화까지 포괄한다. 그 변화의 키워드는 외곽타운화, 고립, 단절, 보수화 같은 단어로 요약된다. 포디즘의 영향은 강력했다. 바우하우스 초대 교장인 독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는 1923년 조립식 주택을 만든다. 집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린 것이다. 이는 교외의 대단위 주택 건설로 이어진다. 1947년 부동산업자 윌리엄 레빗이 조립식 주택으로 이뤄진 대단위 거주지 건설 아이디어를 냈고, 오늘말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외 풍경이 속속 생겨난다. 이들은 ‘레빗 타운’이라 불린다. 교외사는 사람들의 도심진입을 용이하게 해주기 위해 ‘거대 도시를 장식하는 리본’이라 불리는 복잡한 고가도로들도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자동차와 도로가 팽창하면서 햄버거가게 맥도날드, 실용적 모텔 체인 홀리데이인, 그리고 대형 쇼핑몰, 스타벅스가 흥행에 성공한다. 자본주의적 욕망이, 자동차란 적혈구를 타고 도로라는 혈관을 따라 미국 전역에 흘러든 것이다. 욕망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급속한 교외화로 인해 백인은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도심은 슬럼화된다. 슬럼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진행된 재개발은 기존 거주자들에게 혹독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심재개발)은 도시 빈민들을 다시 외곽으로 밀어낸다. 어렵지 않게 뉴타운, 용산사태 같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 정치적 보수화에도 기여한다. 교외에서 도심으로 오랜 시간 차를 몰고 통근해야 하는 백인들에게, 보수적 독설로 가득찬 라디오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극우독설가 러시 림보와 글렌 벡의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 저자는 그래서 처음에는 대중시장을 통한 민주주의 확장에 기여한 자동차가, 오늘날 민주주의에는 오히려 역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가벼운 서술이어서 문화적 논쟁 못지 않게 자동차에 대한 소소한 지식도 재미있다. 가령 GM은 왜 창업자 이름을 본뜨지 않고 ‘일반적인 자동차 회사’(General Motors)라는 이름을 택했을까. 최초의 로드무비는? 고급승용차를 뜻하는 세단(Sedan)의 유래는? 히틀러의 아우토반 이전에 등장한 최초의 고속도로는? 1964년 영화 ‘제임스 본드 - 골든 핑거’에 등장해 최초의 간접광고(PPL)로 꼽히는 차는? 토요타가 내놓은 크라운, 코로나, 코롤라라는 자동차 이름의 공통점은? 책 속에 답이 있다. 1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건국대 환경과학과 학생 10명 스와질란드서 봉사활동

    건국대 환경과학과 학생 10명 스와질란드서 봉사활동

    건국대 생명환경과학대 환경과학과 학생 10명이 지난 1월 20일부터 지난달 20일까지 한달간 스와질란드 등 아프리카 남부의 국가를 찾아 에이즈 감염 아동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쳤다. 대학 건설 현장에서 일손을 돕기도 했다. 스와질란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 수준이지만 부와 교육·의료 기회가 소수 백인에게 집중된 탓에 대다수 흑인들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프리카 유일의 왕정국가다. 또 에이즈 감염률이 100명당 45명에 달할 정도로 심각하다. 2학년 이태호(23)씨 등 10명이 한달 동안 스와질란드 최초의 종합대학인 기독교대학(SCU) 건설 현장을 찾아 공사 지원 인력으로 봉사했다. 또 현지 고교를 방문해 한국 문화와 한글, 한류 아이돌 등을 소개하는 등 교육봉사 활동도 폈다. 인근 국가인 모잠비크에서는 고교의 페인팅 작업을 도왔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임마누엘신학교를 찾아 농장일을 돕기도 했다. 특히 학생들은 스와질란드 고아원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이들을 돌보는 보육 봉사로 현지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미리 준비한 색연필과 종이 등 각종 학용품으로 색칠놀이와 종이접기, 바람개비 만들기, 비눗방울 만들기, 공놀이 등을 함께하며 어린이들과 친구가 됐다. 이씨는 1일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빛과 몸짓으로 소통하며 함께한 봉사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건국대 학생들의 봉사활동은 생명환경과학대 윤춘경 교수가 스와질란드에 내년 9월 개교를 목표로 최초의 종합대학 설립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佛 무성영화 ‘아티스트’ 오스카 휩쓴 까닭은

    佛 무성영화 ‘아티스트’ 오스카 휩쓴 까닭은

    2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하이랜드센터에서 열린 제84회 아카데미시상식의 주인공은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였다. 아카데미의 ‘빅5’(작품·감독·남우주연·여우주연·각본상) 중 알짜배기에 해당하는 작품상과 감독상(미셸 하자나비시우스), 남우주연상(장 뒤자르댕)을 거머쥐었다. 음악상, 의상상까지 더하면 5개 부문을 석권한 것. 지난해 11월 말 미국 개봉 당시 고작 4개 극장에 걸렸던 제작비 1500만 달러짜리 영화는 전 세계에서 7654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깜짝 흥행을 기록했다. 뒷심의 정체는 뭘까. 무성영화가 종언을 고하고 유성영화가 등장하는 1920년대 후반 무성영화 톱스타가 겪는 박탈과 새 희망을 그린 ‘아티스트’에는, 배우의 목소리도 없고 스타도 나오지 않는다. 컴퓨터그래픽(CG)과 3차원(3D) 영화에 익숙해진 지금의 관객에겐 낯설고 불편할 것이란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최근 할리우드에 불고 있는 ‘복고’, ‘향수’란 2대 코드와도 맞아떨어진 ‘아티스트’는 올 아카데미 11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촬영상 등 기술 분야 5개 부문 수상에 그친 마틴 스코세이지의 ‘휴고’를 압도했다. 허를 찌른 ‘아티스트’의 습격이 생뚱맞을 건 없다. 선정에 참가하는 5765명 중 94%가 백인, 77%가 남성이며 평균 연령이 62세에 이를 만큼 아카데미 회원들은 편파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이다. 흑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게 보이는 배타성에 대해 비난받자 근래 들어 색깔을 감췄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와 의식적으로 거리를 뒀다. 최근 작품상 수상작 중 ‘킹스 스피치’(2010),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는 영국 영화다. ‘허트 로커’(2008)는 미국의 이라크 파병을 건드린 여성감독의 독립영화다. ‘아티스트’는 배급만 미국 회사(와인스타인컴퍼니)가 했을 뿐 감독과 주요 배우, 스태프 등은 대부분 프랑스 국적이다. 아카데미의 탈(脫)할리우드 행보를 보여 주는 데 안성맞춤인 셈이다. ‘아티스트’는 아카데미의 입맛에 들어맞는 주제의식까지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1세기 동안 ‘영화’라는 매체가 왜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데 있다. 첨단기술과 거대자본의 효과는 ‘양념’에 해당한다. 결국 이야기의 즐거움과 그 안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야말로 영화관을 찾는 목적일 텐데 이런 주제의식을 ‘아티스트’는 되새김질해 낸다. 아카데미와 무성영화의 인연도 흥미롭다. 유성영화가 등장한 2년 뒤인 1929년 출범한 아카데미시상식은 초기에 무성영화를 수상작에서 배제한 탓에 찰리 채플린 등 무성 영화인들의 반발을 샀다. 뒤늦게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이용철 영화평론가는 “사실상 외국영화인 ‘아티스트’에 주요 부문 수상을 안긴 건 작품 자체의 가치도 있겠지만 유럽영화이면서도 미국영화를 가장 영화답게 보여 줬다는 측면을 노회한 아카데미 회원들이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화들이 놓치고 있던, 영화가 가장 순수했던 순간을 ‘아티스트’는 짚어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한국에서 개봉한 ‘아티스트’는 27일까지 4만 9000여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와이드릴리즈(대규모 개봉)의 승산이 없을 것으로 보고 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소규모 개봉했기 때문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워싱턴DC에 흑인 박물관

    미국 수도 워싱턴DC 한복판 내셔널몰에 ‘미국 흑인 역사·문화 박물관’이 생긴다. 이 박물관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그룹 중 하나로 오는 2015년 11월 문을 열 예정이다. 지난해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대형 석상이 내셔널몰에 건립된 데 이어 흑인 역사 박물관 설립이 시작되는 등 최초의 흑인 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일종의 ‘역사 바로 세우기’가 속속 진행되는 모양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인 미셸 여사와 함께 22일(현지시간) 이 박물관 건설 부지에서 열린 기공식에 직접 참석했다.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19번째 박물관이 될 흑인역사·문화 박물관은 흑인의 미국 정착 과정과 노예 해방, 인권 운동 등 미국 흑인 역사를 망라해 전시할 예정이다. 박물관 건설에 필요한 5억 달러 중 절반은 정부 예산으로 지원되며, 나머지는 기업이나 개인의 기부로 충당된다. 월마트, 보잉과 같은 기업과 빌&멜린다 재단 및 오프라 윈프리, 퀸시 존스 등 개인으로부터 벌써 1억 달러가 모금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박물관이 탄생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면서 “미래 세대가 과거 미국 흑인들의 고통, 진전, 투쟁, 희생의 노래를 듣게 될 때, 이런 것들이 미국 역사와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박물관은 이미 2만여점 이상의 각종 유물이나 전시품을 수집한 상태다. 노예해방 여성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이 사용하던 숄,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 앉혔던 열차, 인종차별주의 단체인 ‘KKK단’의 복장 등도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한편 이날 기공식에서는 첫삽을 뜨는 행사가 진행됐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자리에 앉아 쳐다보기만 하는 ‘이상한’ 장면이 펼쳐졌다. 백악관은 박물관 측과 협의에 따라 첫삽 행사는 박물관 관계자만 참석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인 로라 여사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자문위원 자격으로 이 행사에 참석, 첫삽을 직접 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美 대학 ‘소수계 우대’ 법정에… 정치논란 예상

    미국 내 소수 인종의 대학 입학을 촉진한 ‘소수계 우대 정책’이 9년 만에 다시 연방대법원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미 대법원은 21일(현지시간) 주립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인종을 고려하도록 한 소수계 우대 정책의 적절성에 대해 심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심리는 2008년 오스틴 텍사스주립대에 입학을 거부당한 백인 여학생 아비게일 노엘 피셔가 제기한 소송에 따른 것이다. 오스틴 텍사스주립대는 주 내 고교 상위 10%의 학생에게 입학 자격을 우선적으로 준다. 라틴계와 흑인이 많은 텍사스의 특성상 우수 고교생은 주로 이들 인종이다. 이 대학에 지원한 피셔는 상위 10%에 들지 못해 입학이 거절됐다. 이에 피셔는 자신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역차별받았다며 위헌소송을 냈다. 피셔는 루이지애나주립대에 입학했고, 곧 졸업한다. 앞서 미 연방지법과 제5순회 항소법원은 소수계 우대 정책에 따른 입학사정을 실시한 텍사스대 측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법원은 1978년 이후 교육과 공공 분야에서 인종 우대 정책을 사용하는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대법원은 2003년 미시간대 로스쿨의 소수계 우대 정책 소송(그루터 대 볼링어 사건)에서 5대4로 이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판결문을 작성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 판사를 비롯한 5명의 진보적 판사들이 소수계 우대 정책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 정책이 계속 유지될지는 불투명하다. 공화당 출신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거치면서 보수적인 대법관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2003년 이후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새뮤얼 앨리토 등 보수 성향 대법관이 새로 지명되면서 현재 9명의 대법관 중 5명이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에 의해 임명됐다. 또 대입 사정에서 소수 인종에 대해 어느 정도 배려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기준이 없고, 텍사스대의 인종 다양화 정책이 이미 달성됐다는 견해도 있다. 심리는 10월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판결은 이르면 내년 초 나올 예정이다. 공개 심리는 미국 대선 및 중간선거와 맞물리면서 정치적 논란도 예상된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다양한 학생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소수계 우대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피셔는 “법원이 앞으로 텍사스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인종에 관계없이 입학 경쟁을 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리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반면 오스틴 텍사스대의 윌리엄 파워스 총장은 소수계 우대 정책이 유지될 수 있도록 심리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美 싱글맘이 트렌드?

    미국에서 ‘싱글맘’은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30세 이하 미국인 여성의 절반 이상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가 된 것으로 조사되면서 싱글맘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8일(현지시간) 연구기관 ‘아동 추세’(Child Trends)가 국립보건통계센터(NCHS)의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를 인용, 2009년 현재 30세 이하 미국인 산모의 53%가 ‘싱글맘’이라고 보도했다. 한때 빈곤층과 소수인종에 국한됐던 싱글맘이 이제는 중산층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독신 상태에서 출산하는 여성의 비율은 지난 50년간 꾸준히 늘었지만, 최근 20년간은 20대 백인 여성에게서 증가세가 특히 두드러졌다. 연령대를 떠나 미국 전체 싱글맘의 비율도 1990년대 중반의 33%에서 2009년 41%로 증가했다. 싱글맘이 증가하는 이유로 경기침체로 제대로 된 일자리가 줄면서 경제력을 갖춘 미혼 남성들이 감소한 반면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난 데다 사회복지망 확충과 상대방에 대한 신뢰 부족 등이 꼽혔다. 가족 구성의 이런 변화는 새로운 계급적 분화를 야기하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교육 수준이나 경제적 지위가 낮은 계층에서는 결혼을 해도 생활이 달라질 게 없다는 인식이 강해 결혼 자체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결혼으로 경제적, 사회적 형편이 개선되는 특권은 고소득층의 전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4년제 대학 이상 고학력 소유자의 대다수가 여전히 결혼 이전에 출산하지 않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싱글맘의 최종 학력을 보면 고등학교 졸업 이하가 57%, 전문대졸 이하가 38%인 데 비해 대졸 이상은 8%에 불과하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양극화 탓?…美 30세이하 산모 절반이상 싱글맘”

    30세 이하 미국 산모의 절반 이상이 혼외 상태로 아이를 낳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연구단체인 ‘아동 추세’(Child Trends)’가 국립보건통계센터(NCHS)의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를 인용, 2009년 현재 30세 이하 미국인 산모의 53%가 ‘싱글맘’이라고 보도했다. 한때 빈곤층과 소수인종에 국한됐던 싱글맘은 이제 중산층까지 퍼지고 있으며 최근 20년간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20대 백인 여성에게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이러한 가족 구성의 변화는 새로운 계급적 분화를 야기하고 있다. 즉 양극화의 심화로 경제적 여건이나 교육 수준이 낮은 계층은 결혼에 큰 기대가 없어 혼인 자체를 꺼리는 반면 고학력,고소득층에서는 전통적인 결혼관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싱글맘의 최종 학력을 보면 고등학교 졸업 이하가 57% 인데 비해 대졸 이상은 8%에 불과해 고학력 대다수는 아직까지 결혼 이전에 출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사회학자 프랭크 퍼스텐버그 교수는 “이제 결혼은 사치품이 됐다”고 말한다. 싱글맘을 인종별로 보면 흑인은 73%, 히스패닉은 53%, 백인은 29%로 나타났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선비의 향기… ’ 펴낸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백인산

    [저자와 차 한 잔] ‘선비의 향기… ’ 펴낸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백인산

    몇 해 전부터 일기 시작한 우리 그림에 대한 열기. 간송미술관의 ‘풍속인물화대전’, 국립중앙박물관의 ‘초상화의 비밀’, 삼성미술관 리움의 ‘조선화원대전’이 빅히트를 친 지난해 기억이 새삼스럽다. 간송미술관의 ‘풍속인물화대전’은 불과 2주일간의 짧은 전시에 6만명이 다녀갔다. 전시 최종일에는 2㎞의 장사진을 쳐 간송미술관 문턱을 밟기까지 7시간 걸린 초유의 기록도 세웠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소재로 한 영화를 비롯해 소설이나 영화화된 우리 그림과 접해 보자는 기운이 일었어요. 우리 전통에 대한 호기심과 디지털 카메라, 인터넷 영향으로 시각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결합하면서 애호가, 연구자 등에 한정됐던 우리 그림을 향한 관심이 일반인들에게로 번진 것으로 봅니다.” 간송미술관의 백인산(45) 상임연구위원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모르나 아주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대학(서강대 사학과,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과 21년간 간송미술관 연구원으로 지내며, 우리 그림 수천점을 보고 연구해 온 백 위원이 눈높이를 확 낮춘 우리 그림 입문서 ‘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화훼영모·사군자화’를 펴냈다. 초보자라도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는 쉬운 서술이 큰 장점이다. →우리 전통 그림에 낯선 사람이 아직 많은데. -친숙해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그림을 어렵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어릴 적부터 서양 미술에 비해 덜 접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어보지 않으면 어렵듯, 처음의 낯섦을 없애야 한다. 많이 접하다 보면 친해지고, 더 알고 싶어진다. 그림은 읽어야 한다지만 감각적으로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 →화훼영모(花卉翎毛·동식물 그림)나 사군자화가 지닌 매력은. -세월은 흘렀어도 나무와 꽃, 새와 짐승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대중과 공유하고 느꼈던 감흥을 지금도 쉬 공감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산수나 인물화보다는 장수나 무병, 입신을 기리는 길상의 의미에 장식성까지 있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선조들이 그랬듯 우리도 그것을 아끼고 즐기며 사랑할 만한 매력이 있다. 다만 즐기며 사랑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뜻은. -우리는 지금 사물을 대할 때 사군자나 화조(花鳥) 다 마찬가지로 여기지만 옛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예컨대 대나무를 보면 옛 사람들은 지조, 절개, 충절을 떠올렸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러는가. →화훼영모가 사군자화보다 한급 아래라는 인식이 있는데. -조선시대 화원(畵員) 선발시험을 보면 분명 등급이 있었다. 대나무가 1등, 산수가 2등, 날짐승과 길짐승을 그린 영모가 3등, 화훼와 초충(草蟲) 이 4등으로 배점됐다. 왕실이나 사대부의 심미취향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그 순서대로 그림을 좋아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시대에 화훼가 낮고 대나무가 높고 하는 기준, 등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군자(四君子)란 말의 역사가 짧다고 하던데. -매란국죽(梅菊竹)을 사군자라고 하지만 조선시대의 어느 옛 문헌에도 사군자란 표현은 없다. 사군자라고 묶어 칭한 것은 일제시대부터다. 사군자는 중국에서 온 표현이긴 하지만 중국에서조차 17세기부터 나왔다. 과거에는 세한삼우(歲寒三友·추운 겨울의 세 벗)나 삼청(三淸)이라고 해서 송죽매(松竹梅)를 일컬었다. 삼청에 들었던 소나무이지만 문인들이 그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군자에선 빠지게 된다. 이런저런 연원을 알고 우리 그림을 보면 한층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브라질리언만큼…한국 관객들 리액션 화끈”

    “브라질리언만큼…한국 관객들 리액션 화끈”

    소녀가 태어난 곳은 1962년 브라질 상파울루.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라틴 리듬에 심박동을 맞췄다. 한때 음악가를 꿈꿨던 아버지가 위대한 브라질 기타리스트 바든 포웰의 에이전트인 동시에 라이브 클럽을 운영했던 덕분이다. 소녀가 열 살이 됐을 때 가족은 일본으로 이주했다. 이후에도 소녀는 아버지를 따라 1년의 절반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보냈다. ●“브라질·日 제외하면 韓 가장 편한 곳” 시간이 흘러 소녀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브라질 식당을 개업했다. 소녀가 15세가 됐을 때 그곳 라이브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1989년 첫 앨범 ‘카투피리’(Catupiry)를 발표하면서 보사노바란 낯선 음악을 일본에 퍼뜨린다. 중저음의 남성 가수들이 툭툭 던지던 기존의 보사노바 창법과 달리 그의 노래는 구름 위를 사뿐사뿐 걸어다녔다. 1990년대 중반 보사노바의 전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1927~1994), 삼바의 거장 주앙 도나투(78)와 앨범 작업을 함께하면서 비로소 보사노바 흉내를 내는 동양인이 아닌, 브라질 정서를 담아내는 보사노바 뮤지션으로 우뚝 섰다. 새달 3~4일 내한 공연을 앞둔 리사 오노(50)를 15일 일본 교토의 오쿠라 호텔에서 만났다. 전날 이곳에서 밸런타인데이 공연을 마친 뒤라 이른 아침 인터뷰가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노래할 때처럼 산들바람 같은 목소리로 기자를 맞이했다. 오노는 2005년과 2006년 내한 이후 6년 만에 한국에서 공연한다. 오노는 “일본이나 중국, 타이완 팬과 달리 한국 관객은 열정적인 브라질 사람들처럼 리액션이 화끈하다. 첫 내한공연 때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관객이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며 고함을 지르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애틋함을 드러냈다. 오노는 개인적으로도 한국과 남달리 인연이 깊다. 일본군 장군이던 오노의 할아버지는 유독 아끼던 한국 병사가 있었다고 한다. 전장에서 중상을 입은 그를 살리려고 장군 군복을 입혀 일본으로 후송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종전 이후 그 장병은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일본으로 찾아왔단다. 지난해 여름에는 부모와 언니 내외,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휴가를 보낼 만큼 일본과 브라질을 제외하면 가장 편안한 곳이다. 오노에게는 보사노바의 전도사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삼바가 쿨 재즈(1950년대 유행한 백인 재즈)와 화학작용을 일으킨 보사노바는 1960년대 이후 재즈의 한 축으로 음악팬의 사랑을 받았다. 조빔에 의해 보사노바가 탄생했고, 스탄 게츠(1927~1991)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면, 오노를 통해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사노바는 공기… 듣는 이를 편하게 만들어” 오노는 “보사노바는 공기와 같다. 듣는 이를 릴렉스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일본으로 이주한 뒤에도 브라질의 공기가 너무 그리웠고,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보사노바를 선택했다. 한 번도 (브라질인이 아닌) 외국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 정서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브라질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엔카(일본 전통가요) 가수라도 되지 않았을까.”라며 웃었다. 새달 공연의 레퍼토리와 관련, “나와 함께 브라질 감성을 입힌 세계 음악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조빔의 ‘가로타 데 이파네마’(Garota de ipanema), 스티비 원더의 ‘마이 셰리 아모르’(My cherie amour), 카펜터스의 ‘잠발라야’(Jambalaya), 에디트 피아프의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 등은 물론 한국 민요 ‘아리랑’도 선물한다. 3일 용인시 여성회관,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4만~15만원. (02)599-5743. 글 사진 교토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넬슨 만델라 얼굴 담은 지폐 남아공서 발행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93)의 얼굴이 새 지폐에 담겨 발행된다.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만델라라는 걸출한 지도자 덕분에 오늘날의 남아공이 있다.” 면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만델라 지폐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 “흑인인권운동가로 평생을 바치며 전세계인에게 감동을 안긴 그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만델라의 얼굴이 들어간 새 지폐는 현재 제작 중으로 발행 날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나 올해 내 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만델라 전 대통령은 과거 남아공 백인정부의 인종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다 27년간 투옥돼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이후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씨줄날줄] 찢어진 눈/최광숙 논설위원

    2005년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프랑스 파리 에르메스 매장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적이 있다. 화장하지 않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점원들이 영업시간을 넘겼다며 제지한 것이다. 윈프리는 당시 상점 안에 사람들이 쇼핑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생각해 엄청 화를 냈다고 한다. 만약 자신이 가수 셀린 디온,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였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명품 매장들은 명사들에게는 영업시간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결국 에르메스는 윈프리에게 사과했다. 지난해 10월 크리스찬 디올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유대인 모욕 파문으로 해고됐다. 그가 카페에서 한 커플을 유대인으로 지목하고 욕설을 퍼부은 데다 만취한 채 히틀러를 찬양하는 모습의 동영상이 한 언론에 공개되자 크리스찬 디올은 천재적인 디자이너를 가차 없이 잘라야 했다. 세계 30여개국에서는 인종·피부색·종교·성별 등에 따른 차별 또는 모욕 행위를 ‘증오범죄’(Hate Crime)로 분류해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조차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다못해 당초 백인 인형만 출시하던 바비 인형도 흑인·아시아·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의 인형을 내놓고 있지만 사람들 마음속의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을 없애지는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심지어 미국의 한 초등학교 교사마저 “나무에 오렌지 56개가 있는데, 노예 8명이 똑같이 가져간다면 몇 개씩 가져갈 수 있나?”라는 수학 문제를 숙제로 내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니 말이다. 최근 미국 애틀랜타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한국 교민 김모씨가 ‘찢어진 두 눈’이 그려진 음료 컵을 받아 한국인 비하 논란이 되고 있다. 보통 주문을 받으면 컵에 고객의 이름을 적는데 백인 종업원이 김씨의 컵에 ‘찢어진 눈’을 그려 건넸다고 한다. ‘눈이 찢어진’(chinky-eyed)은 서양에서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는 표현이다. 앞서 지난달 뉴욕 맨해튼 파파존스 매장에서 직원이 한국인 고객의 영수증에 ‘찢어진 눈의 여성’이라고 표현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파문이 커지자 파파존스 본사는 해당 직원을 해고하고 트위터를 통해 공식 사과했다. 그나마 성의 있는 답변을 회피하는 스타벅스 측보다 낫기는 했다. 사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우리도 지난해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 여성이 목욕탕 출입을 저지당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적이 있지 않은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여성은 남성다운 얼굴보다 피부 미남에 끌린다”

    “여성은 남성다운 얼굴보다 피부 미남에 끌린다”

    여성들은 남성다운 얼굴 보다 피부가 좋은 남성에 더 끌린다는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노팅험 대학 말레이시아 캠퍼스 심리학 연구팀은 최근 “여성들은 남자답게 생긴 얼굴보다는 피부가 건강한 남성들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34명의 백인과 41명의 흑인 얼굴 사진을 가지고 그들의 피부색깔 밝기 등을 조정한 후 여성들이 부여한 점수를 측정해 평가했다. 연구를 이끈 이안 스티븐 박사는 “여성들은 피부색이 황금색에 가까운 남자들에게 더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서 “이러한 피부를 가진 남자가 건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곧 진화론적 관점에서 여성들은 건강한 남성이 종족 보존이나 건강한 아이 출산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 스티븐 박사는 “피부로 드러나는 건강한 외모가 이성에게 최고의 매력” 이라며 “피부색을 좋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선탠이 아닌 과일이나 야채를 많이 먹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백인 남성, 아시아 여성 가장 선호한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백인 여성은 흑인 남성을 선호하지만, 백인 남성은 아시아 여성을 더 좋아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10일(현지시각)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이 보도했다. 영국 카디프대학 심리학과 마이클 루이스 박사팀은 최근 18세부터 30세까지 남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선호하는 이성의 얼굴을 평가하는 조사를 시행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600명의 이성 사진을 본 뒤, 자신이 선호하는 순으로 평가를 매겼다. 결과는 놀라웠다. 백인 여성은 주로 흑인 남성을 선호했으며 그다음 백인, 아시아인 순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백인 남성은 아시아 여성을 가장 선호했고 그 다음 백인, 흑인 순으로 서로 다른 선호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대학 연구팀은 “이번 실험 결과는 우리(영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의 수치에 따르면 영국내 흑인 남성은 다른 인종보다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비율이 약 1.5배 이상 높다. 또한 아시아 남성이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비율보다 더 많은 백인 남성이 아시아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루이스 박사는 “결혼에 있어 얼굴이 매력의 한 요건으로 작용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면서 “남녀 참가자들이 흑인 남성이나 아시아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뻔한 반복이 싫어 예술의 틀을 벗다

    뻔한 반복이 싫어 예술의 틀을 벗다

    전시를 기획한 박천남 학예연구실장이 한마디했다. “작가에게 미리 말씀은 안 드렸는데, 이게 일종의 회고전 성격입니다.” 보고 나면 확실히 맞다. 제3전시실에는 작가가 15살 때 그렸다는 그림에서부터 20대 때의 작품들이 줄줄이 들어차 있다. 작가는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가서 적응하느라 정신없다 보니 10대 때 사춘기를 제대로 겪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대학 가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10대 때 못 겪은 사춘기가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정말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설명 그대로다. 회화와 드로잉 작품인데 그 충격이 대체 얼마나 컸을까 싶을 정도로 고민과 환멸이 짙게 배어 나온다. “성경 하나 달랑 들고 산에 올라간” 경험도 있다니 그 방황을 짐작해 볼 만하다. 그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선과 명상에 몰입하면서 그림들은 한결 정돈되는 모습을 보인다. 2전시실에서 뉴욕 뒷거리 콘돔과 정크푸드인 초콜릿을 응용한 작품들과 마주치면 작가가 서서히 어두운 내면에서 벗어나 외부의 현대문명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그간 격리되고 소외된 것에서 벗어나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다시 마시고 나만의 언어로 표현해 보자는 결심이 선 때”다. ●“콘셉트가 가장 중요… 아이디어가 정해지면 매체·표현기법 결정” 전시장 분위기가 이런데다 전시타이틀까지 ‘비잉(Being) : 데비 한 1985~2011’이라 붙여 뒀으니 오도가도 못하게 딱 회고전이다. 한데, 작가 데비 한의 나이는 마흔 셋이다. 회고전 하기엔 젊다. 회고전처럼 꾸미면서 회고전이라 작가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게 슬며시 웃음을 자아낸다. 뻔한 반복은 없다. 참 다양한 작업을 했다 싶다. 회화는 물론 사진, 자개, 조각, 설치, 청자, 백자 다 섞여 있다. 대개 작가들은 꾸준히 작업해 나가다 자신만의 표현기법이나 매체를 고정시키기 마련이다.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하는 이유가 뭘까. “저에게 중요한 것은 콘셉트입니다. 아이디어가 정해지면 거기에 가장 알맞은 매체를 고를 뿐이에요. 이번 전시는 기존의 작업을 마무리짓는다는 의미에서 한 겁니다. 이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생각인데 어떤 매체를 써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뭐라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작가는 2003년 한국에 정착한 뒤 비너스를 만들어 왔다. 비너스는 서구적 미의 전형이다. 수학적인 인체비례에 맞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인데 작가는 이를 비틀었다. 1전시실에서는 이 비틀린 비너스들을 숱하게 만날 수 있다. 가령, 동네 찜질방에서 모여 앉아 계란을 까먹는 포즈의 비너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비너스, 감정노동자처럼 공손하게 두 손 모아 인사하는 비너스 등 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비너스로 재탄생했다. ●서구 미의 전형 비너스 비틀어… 문화의 차이에 대한 집중 설치작품 ‘개념의 전쟁’은 아예 비너스 상 수십개를 체스판에 배열하듯 놔뒀다. 살펴보면 얼굴들이 기묘하다. 표정이 아예 지워진 것에서부터 전형적인 서양 비너스는 물론, 아프리카 비너스, 아시아 비너스, 매부리코 비너스 등 다양한 얼굴들이 등장한다. 왜 수학적 인체비례를 갖춘 서양의 비너스만 있어야 하느냐는 얘기다. 아니, 모두가 비틀린 비너스라면 대체 정상적인 비너스는 무엇이냐는 말이다. “저 작품들을 보고 서구적 미의식, 백인중심 문화에 대해 비판했다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 비판, 도전이라기보다 어떤 느낌과 해석이 내려질지 상상해 보자는 제안 정도가 적당할 것 같네요.” 길거리에서 젊은 아가씨들이 팔짱 끼고 수다 떨면서 가는 모습으로 비너스를 표현해 뒀더니, 한국에서는 재밌다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레즈비언으로 여기는 반응을 보였다. 작가의 작품은 그런 문화의 차이에 대한 집중이다. 3월 18일까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2관. (02)737-765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43) 프랑스 천재시인 랭보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43) 프랑스 천재시인 랭보

    1854년과 1891년. 랭보의 생몰연도다. 그는 19세기 중·후반 37년 동안 살면서 ‘지옥에서 보낸 한 철’과 ‘채색판화집’ 이라는 두 권의 시집을 완성했다. 수많은 상징들로 뒤덮여 여전히 열리지 않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십대 시절 쓰인 것들이다. 이 시인은 스무 살 이른 나이에 절필을 하고 문학계를 떠나버렸다. 그때 이후로 그의 수많은 독자들은 그를 ‘천재 시인’ ‘조숙한 반항아’ ‘저주받은 시인’ ‘타고난 방랑자’라 부른다. ●37년 생에 ‘지옥에서 보낸 한 철’·‘채색판화집’ 완성 1870년, 16세가 된 랭보의 프랑스어 처녀작 ‘고아들의 새해 선물’이 ‘모두를 위한 잡지’에 게재되었으니 역시 천재다운 첫 출현이다. 굳이 ‘프랑스어 처녀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라틴어 처녀작’이 이미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일곱 살에 학교에 입학한 이래 랭보는 수석을 놓치지 않았는데, 특히 라틴어 수업에서 단연 독보적이었다. 그는 이 수업을 통해 논리, 수사법 그리고 시를 배울 수 있었다. 그는 라틴어 시를 해체한 뒤 다시 복원하고 패러디하면서 놀이하듯 시를 배워 나갔다. 랭보의 시가 잡지에 게재된 해, 프랑스는 프로이센에 선전포고를 했다. 보불전쟁의 서막이었다. 랭보의 관심은 즉각적으로 여기에 집중된다. 랭보는 나폴레옹 3세와 그 숭배자들을 단순 무식한 민족주의자들이라며 혐오했고, 그들의 전쟁 선동에 분노했다. 그 분노를 드러내는 길이 곧 시 쓰기였다. 랭보의 문학적 스승 중 하나였던 빅토르 위고가 그런 것처럼. 랭보에게는 위고가 문학을 통해 민중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저는 말합니다. 견자(見者)여야 한다.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1871년 5월, 한 편의 짧은 시(詩)와 같았던 파리코뮌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질 즈음 랭보는 시인 폴 드메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견자란 보는 자이고, 예언자다. 미래로부터 온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게 그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시대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랭보는 시 쓰기란 타인들의 고통에 함께 괴로워하고, 현실에 대해 함께 분노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드는 행위라 보았다. 그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민족주의, 기독교 등을 조소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인이 보기에 프랑스는 지극히 형편없었으나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위고를 포함해 탁월한 시인들이 많았으므로. 랭보는 ‘현대 고답시집’을 통해 소위 ‘고답파’로 분류되는 시인들의 세계와 만날 수 있었다. 샤를 보들레르, 스테판 말라르메, 폴 베를렌 등이 그들이다. 특히 그는 낭만주의에서 시작했으나 그것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뛰쳐나온 보들레르에게 크게 경도되었다. 취기와 도시 산책을 통해 현대성을 질문하는 보들레르의 작품들은 모호하고 신비롭게 절망과 죄, 욕망을 그려냈다. 더 이상 작가의 이성이나 사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이미지다! 고전적 형식에서 벗어난 이 시인은 현대시를 열어젖힌 가장 중요한 작가로 기록된다. 보들레르가 그랬듯 랭보 역시 시를 위해, 그리고 시 속에서 기꺼이 타락에 빠져들었다. “저는 지금 최대한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저는 시인이고 싶고, 또 견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모든 감각의 착란을 통해 미지에 도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고통이 극심합니다.” (이장바르에게 보낸 편지 중) ●지옥은 어디 있는가?… 詩 속에서 기꺼이 타락 “아! 다시 삶으로 떠오르기! 우리의 추한 모습에 눈길을 던지기! 그리고 이 독, 정말로 저주받을 이 입맞춤! 나의 연약함, 세계의 잔혹함! 맙소사, 불쌍히 여기시오, 날 숨겨주오, 나는 너무 행실이 나쁩니다!” (‘지옥의 밤’ 중) 그의 ‘타락’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은 단연 베를렌과의 행보에서였다. 랭보는 고답파의 또 다른 시인 베를렌에게 자기 시를 써 보냈고, 1871년 9월 드디어 베를렌의 초대로 파리에서 그를 만난다. 알려진 대로 이후 두 사람은 국경을 넘나들며 사랑을 나눴다. 설마 두 예술가가 만나 한 짓이 고작 압생트와 해시시에 취해 벌거벗고 뒹구는 것뿐이었으랴. 당시 랭보가 바지런히 작업한 시들에는 그들 연애 관계에 도사린 폭력성, 우울한 랭보의 성정 등이 검은 피처럼 스며들었다. 3년여에 걸친 둘의 연애는 어느 날 베를렌이 랭보의 손에 쏘아 박은 권총 탄환으로 끝났다. 베를렌은 감옥에 처박혔고 랭보는 그로부터 달아났다. 고향집에서 랭보가 몰두한 것은 역시나 시를 쓰고 고치고 때론 과감히 폐기해 버리는 것뿐이었다. 이때 탄생된 9편의 작품들이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이룬다. 전체를 여는 ‘서시’, 자기 삶의 연대를 담은 ‘나쁜 혈통’, 환각 기록 ‘지옥의 밤’과 ‘헛소리 1, 2’, 서구 문명과 기독교에 대한 증오를 담은 ‘불가능’, 탈출을 꿈꾸는 ‘섬광’, 지옥의 밤이 끝났다고 외치는 ‘아침’, 방황과 고통의 여정을 끝마치는 ‘이별’ 등이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그 전체가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 시로서 완성된다. 랭보는 베를렌과의 나날들을 지옥으로 여겼을까? 그럴 수도 있다. 둘이 함께 경험한 쾌락과 혐오감, 도취와 불안은 떠나고 싶지 않지만 견딜 수도 없는 지옥 풍경을 만들어냈다. 랭보는 그 시간이 준 독을 그다운 방법으로 치료하고자 했다. 즉, 그는 시 안에서 지옥에 들어갔고, 고통과 황홀함을 겪은 뒤 다시 기어 나왔다. 그러나 그 시들을 한낱 일기장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랭보가 춤추는 마녀와 울부짖는 관자놀이를 노래할 때, 그것은 자신의 어두움을 되는 대로 배설해 내려는 게 아니었다. 그는 장기를 최대한 발휘해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고르고 배치했다. 마치 그 단어들이 구원을 위한 디딤돌이 된다고 믿는다는 듯이. 그리하여 풍부한 상징과 기괴한 이미지, 낯선 언어적 결합으로 살아 있는 거대 요새가 된 그의 지옥은 모호하면서 보편적인 메시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읽는 이에 따라 진정한 신을 갈구하는 이교도의 절규가 되기도 하고, 서구인에게 으르렁거리는 흑인의 외침이 되기도 한다. 랭보의 언어는 가장 나쁜 피가 되었다. 기독교의 피가 아니라 이교도의 피, 백인의 피가 아니라 흑인의 피, 시대에 가장 위협적이고 권력이 가장 혐오하는 피. “나는 짐승이다. 흑인이다. 그러나 구원받을 수 있다. 당신들은 가짜 흑인, 당신들은 미치광이, 무자비하고 탐욕스럽다.” (‘나쁜 혈통’ 중)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내’ 스무살 절필후 세계방랑 랭보는 훗날 ‘채색판화집’으로 출판될 원고더미를 갓 출감한 베를렌에게 맡겼다. 그리곤 돌연 시를 멈췄다. 1875년, 그는 스무 살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침묵했다. 이후 17년을 더 사는 동안 그는 한 번도 시를 쓰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남은 반생 동안 무엇을 했을까? 놀랍지만 장사다. 아프리카로 건너간 그는 커피 중개 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총기 매매도 했다. 그는 관절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쉬지 않고 걸었다. 그 때문에 오른쪽 다리는 끝내 절단해야 했으며,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했다. 베를렌이 지어준 랭보의 별명은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내’였다. 별명답게 랭보는 어린 시절부터 방랑자 기질이 농후했다. 고향에서 틈만 나면 친구와 함께 산과 들을 몇 시간이고 쏘다녔고, 몇 번이나 가출해 파리에 상경했으며, 연애 기간 중에는 수시로 국경을 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엄격한 운율로 엮인 시에서 산문으로, 베르길리우스의 라틴어 시에서 위고의 낭만주의와 보들레르의 현대시로, 스승 이장바르를 지나 연인 베를렌에게로 월경(越境)을 거듭했다. 드메니에게 랭보는 “‘나’란 하나의 타자(他者)입니다.”라고 썼다. 어쩌면 우리는 랭보의 삶 자체를 타자들로 변신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랭보는 움직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비, 고양이, 원숭이들처럼 팔랑거리며 일생을 쏘다녔다. 말은 잘 때도 서서 잔다. 녀석이 바닥에 앉는 것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뿐이다.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애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속으로.” (‘감각’ 중) 수경(남산강학원 연구원)
  • [특파원 칼럼] 어느 미국 할머니의 질문/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어느 미국 할머니의 질문/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지난달 10일 미국 뉴햄프셔주 내슈아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아침 나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현장을 취재하러 한적한 마을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 들어섰다. 거의 백인 일색인 이 동네 투표소에 웬 동양인이 불쑥 나타나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니 책상에 앉아 있던 할머니 중 한 분이 대뜸 “누구냐.”고 묻는 건 당연했다. 70대로 보이는 할머니는 투표진행 자원봉사자인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온 특파원”이라는 대답에 얼굴에서 경계심을 지운 할머니는 이내 “북한에 20대 젊은이가 우두머리로 등장했는데, 한국인들은 그런 상황을 얼마나 위험하게 보느냐.”, “3대 세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을 물었다.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거푸 질문을 쏟아내는 할머니의 표정은 내 의견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측은함과 노여움이 절반씩 섞인 오묘한 얼굴이었다. 말하자면, 한국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과 북한의 3대 세습을 경멸하는 심경이 얼굴에 잔뜩 반죽돼 있는 듯했다. 그 전날 저녁 내슈아의 한 중학교 강당 유세장에서 만난 60대 할아버지의 표정은 아예 험악했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응원하러 왔다는 그는 다짜고짜 “그 토마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자 그 할아버지는 “토마토처럼 뚱뚱하게 생긴 북한의 그 애송이 있잖아.”라고 목청을 높였다. 김정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기저귀나 차고 있어야 할 바보(nut)가 지도자는 무슨 지도자냐.”라며 독설을 마구 쏟아냈다. 그 앞에서 차마 공화당 경선 얘기는 꺼낼 수 없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달라진 것은 시사에 관심이 별로 없는 평범한 미국시민들도 “김정일”, “김정은”이라는 이름을 얼추 정확히 발음할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북한을 거침없이 비난하는 세태도 달라진 점이다. 전에는 주로 한국사람의 얘기를 듣는 편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의견을 더 많이 말한다. 그만큼 ‘굶어 죽는 백성 앞에 등장한 칼로리 과잉의 앳된 지도자’에 대한 비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공화당 성향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필립 크롤리 전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해 현직에 있을 때 기자들이 김정은의 방중 가능성 등을 질문하면 “아는 게 없다.”면서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4성 장군인데 어디인들 못 가겠느냐.”고 비아냥대곤 했다. 독재를 혐오해 온 미국의 역사를 알고 나면 이런 태도가 이해된다. 미국인들이 ‘대통령 3선 금지’ 조항을 헌법에 넣은 것은 나쁜 대통령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다.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재임 1933~1945년)가 높은 인기로 4선에 성공하면서 거의 ‘종신 대통령’처럼 재임하다 사망하자 미국인들은 이러다 왕정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헌법을 고친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이면서도 의회의 권한이 막강한 것 역시 영국 왕정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이런 미국인들 눈에 현대사에 유례 없는 3대 세습과 ‘어린 지도자’의 등장이 어떻게 비칠지는 불문가지다. 중요한 건 격앙된 여론이 축적되고 일반화되면 선거로 뽑히는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공화당 경선 선두주자인 롬니가 지난달 29일 플로리다 유세에서 김정은을 “최악의 지도자”라며 거칠게 비난한 것은 이미 민심의 밑바닥을 읽었다는 얘기다. 역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새 지도부를 자극하지 않고 살살 다루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악재를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와 함께 북한이 새로운 도발을 저지를 경우 미국 국내 정서가 폭발할 수 있음을 직감한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 김정은은 아버지가 앉았던 책상에 앉아 ‘도발’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책상 위에 미국의 민심은 아버지 김정일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보고서도 하나 올라와 있었으면 좋겠다. carlos@seoul.co.kr
  • [시론] 언론, 역사에서 길 찾는 지혜를/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시론] 언론, 역사에서 길 찾는 지혜를/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증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2012년 한국에서 언론은 더 이상 주목의 대상이 아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시대에 언론은 거추장스러운 관문에 불과하다. 포털을 통해 온갖 뉴스를 무료로 이용하는 시대에 매체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진입 장벽이 사라지면서 ‘나꼼수’ ‘이털남’ ‘뉴스타파’ ‘저공비행’ 등 대안언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방에서 불통과 불신, 분노와 절망이 넘쳐난다. 소통에 실패한 정부를 국민은 외면한다. 정치권, 사법부와 대기업에 대한 신뢰는 바닥이다. 분노는 폭력을 낳았고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절망한 영혼들은 죽음에서 위안을 찾는다. 언론의 부재가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다. 도대체 한국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이 역동성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시인은 모두가 막히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차라리 눈을 감자.”고 했다. 과거를 성찰함으로써 배움을 얻으라는 충고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도 대안언론이 대세였다. ‘The Rag’ ‘East Village Other’ ‘Berkeley Barb’ ‘Fifth Estate’와 같은 지하신문을 비롯해 KPFT와 같은 청취자 후원 FM 라디오 방송과 심지어 ‘Liberation News Service’와 같은 대안 통신사도 등장했다. 전주곡으로 비틀스의 ‘태양은 떠오르고 있어’가 흘러나오고, 대학교수와 인기 라디오 진행자가 신랄하게 정치풍자를 할 때 청취자들은 환호했다.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억압되었던 소수자의 목소리가 민권운동으로 불붙은 이래 베트남전쟁은 본격적인 시민불복종 운동을 불러왔다. 모든 제도의 합법성이 도전받고 미국 사회를 지탱해 왔던 사실상 모든 가정(假定)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기득권은 견고했다. 국가안보를 핑계로 정부는 거짓말을 했다. 언론은 정부와 대기업을 비판하는 대신에 홍보 역할에 더 치중했다. 대중의 반역이 시작된 것은 당연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대안언론이 꽃을 피울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어 있었다. 옵셋인쇄로 알려진 새로운 인쇄기술이 등장해 점심값 정도로 수천장의 타블로이드 신문을 찍는 게 가능해졌다. IBM의 볼타자기, 휴대용카세트라디오, 사진복사기와 같은 뉴미디어의 도움도 받았다. 언론이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할 두려움 없이 공적 문제를 공격적으로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대법원 판결도 큰 힘이 되었다.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텍사스의 KPFT는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Ku Klux Klan)로부터 두 번이나 폭탄 테러를 받았고, 정부와 기업은 정치공학에 더 몰두했다. 동일하지는 않지만 2012년 한국 상황과 유사한 점이 참 많다. 정부와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언론인을 통해 여론공학이 일상적으로 진행된 결과, 언론은 물론 기득권 전체가 양치기 목동 대접을 받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대안언론의 황금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대부분의 지하신문은 문을 닫았다. 한국 언론이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여기에 있다. 1971년 뉴욕타임스는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펜타곤페이퍼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1972년 시카고 트리뷴은 주정부의 대규모 투표 사기와 경찰의 만행을 고발했다. 그해 6월 17일 워싱턴포스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함으로써 닉슨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다. 국민은 다시 언론을 믿기 시작했다. 언론인들은 보람을 느꼈다. 영향력도 증가했다. 뛰어난 인재들이 언론계로 몰렸고 언론사들은 그후 최근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미국과 한국은 다르고 한국 언론이 직면한 위기의 원인도 다양하다. 그러나 ‘나는 가수다’의 열풍에서 보듯 언론이 언론다워질 때 국민의 관심은 회복될 수 있다. 너무 늦지 않게 언론다움을 위한 경쟁에 나서기를 바랄 따름이다.
  • ‘부자증세’ 상징 버핏 女비서 초청…美언론 “재선 겨냥한 영리한 연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행한 연두 국정연설은 선거를 겨냥한 대통령 연설의 전범(典範)으로 남아도 좋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재선을 앞두고 낮은 지지율로 부심하고 있는 오바마는 연설에서 자신의 치적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한편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골라 배치하는 등 연설문을 매우 정교하게 구성했다는 느낌을 줬다. CNN 등 대다수 언론과 정치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영리한 연설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오바마는 1시간 5분에 걸친 현 임기 중 마지막 국정연설의 시작과 끝을 자신의 최대 치적인 9·11테러 배후인 알카에다 테러범 오사마 빈라덴 사살에 대한 언급으로 구성했다. 그러면서도 오바마는 경제난으로 신음하는 국민들이 대외정책에 대해 오래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나머지 연설의 대부분을 일자리 창출 등 경제 문제에 할애했다. ●화두는 ‘공정’… 중산층 껴안기 오바마는 특히 ‘공정’(fairness)이라는 단어를 꺼냄으로써 올해 선거구도를 ‘1% 대 99%’로 몰아가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그는 “한 해 100만 달러 이상 버는 고소득자는 최소 30%를 세금으로 내야 하고, 한 해 소득이 25만 달러 미만인 98%에 해당하는 가구에 대한 세금은 올려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계급투쟁 선동”이라는 공화당의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공화당의 아픈 부분을 직공한 것이다. 이날 방청석에 ‘버핏세’를 주장했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의 여비서 데비 보사네크를 초청한 것도 주도면밀한 ‘전략’이다. 보사네크는 지난해 9월 오바마가 “버핏의 비서에게 주인보다 더 많은 소득세율을 물릴 수는 없다.”고 말한 이후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오바마는 또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런 파월 잡스와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등 대선 때 캐스팅보트 지역 주요 인사들을 방청석에 대거 초청함으로써 이날 연설을 선거용으로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오바마는 연설 말미에 자신을 오늘의 자리에 있게 한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때의 명연설 문구 “흑인이든, 백인이든, 아시아계든, 히스패닉계든…”의 표현을 삽입함으로써 ‘옛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도도 내비쳤다. 그는 또 빈라덴 사살작전 때 모두가 정파를 떠나 하나가 된 점을 강조함으로써 통합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 과정에서 “당시 상황실에는 나와 대선 후보를 놓고 경쟁했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있었지만 (국익 앞에서) 그런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말해 의원석에 앉아 있던 힐러리가 멋쩍게 웃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 부인 등 초청 눈길 이날 연설에서는 민주당 의원 주도로 70여 차례의 기립 박수가 나왔다. 연설 직전 지난해 초 총격 사건으로 중상을 입고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의원직 사퇴를 발표한 가브리엘 기퍼즈(민주·여) 의원이 등장하자 모든 의원이 기립 박수를 보내는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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