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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승 물러나라” 조계종 수행승 첫 집단성명

    전 화계사 주지 수경 스님을 비롯한 수좌(선방에서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 10명이 ‘조계종 도박 파문’과 관련해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수좌들의 움직임은 ‘조계종 사태’이후 총무원장 거취를 직접 겨냥한 첫 조치이자 수행승들의 이례적인 집단행동이어서 파문이 확산될 전망이다. 수경 스님과 연관(봉암사 선덕), 영진(백담사 무금선원 유나), 현진(전 봉암사 선원 입승), 원타(봉암사 주지), 함현(전 봉암사 주지), 철산(문경 대승사 선원장), 월암(문경 한산사 용성선원장), 혜안(선원 수좌), 성종(선원 수좌)스님은 22일 성명을 내고 현 사태에 대해 참회했다. 스님들은 ‘부처님오신날 목놓아 통곡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정녕 조계의 깃발은 찢어지고 말았는가. 오늘 이 후안무치의 작태는 불교라는 울타리와 무관하게 온 나라 사람들의 심기를 어지럽힌 과보를 떨쳐낼 수 없게 되었다.”며 탄식했다. 성명에 참여한 스님들은 종단 행정에 관여하지 않은 채 제방 선원에서 수좌들을 이끌고 있는 중진들이다. 수좌 스님들의 집단 행동도 이례적인 것이지만 이들의 요구가 총무원장과 집행부를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스님들은 “총무원장은 지금의 모든 책임을 통감하며 퇴진해야 한다.”면서 “자승 원장은 마지막 참회의 기회로 건전한 사부대중에게 그 임무와 책임을 순조롭게 넘겨주는 소임에 충실하고 그나마 명예롭게 퇴진할 것”을 요구했다. 혼란을 빙자한 일체의 음모를 차단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총무원장이 수임기구를 설치해 종단을 정상화하라는 것이다. 총무원장의 이권과 관련 있는 연주암을 즉각 포기할 것도 주문했다. 그러면서 “인구에 회자되는 도박, 술집, 성매매, 폭로, 조폭 등 세속에서조차 언급하기 난감한 말이 조계종의 핵심부를 향한 사회적 비난에 동원되고 있다.”고 질책했다. 최근 사태해결과 계율 확립을 위해 출범한 승가공동체 쇄신위원회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스님들은 폭로를 일삼고 있는 훼불 행위자에게도 더 이상의 망동을 삼갈 것을 엄중히 촉구했다. 한편 조계종 소속 승려들의 도박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허철호)는 22일 억대 도박을 한 혐의로 고발당한 승려 2명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밤늦게까지 조사했다. 검찰은 지난 21일 조계종 호법부로부터 도박 관련 진상조사 결과를 건네받아 승려 8명의 신원을 파악, 개별적으로 소환 일정을 통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승려 가운데 일부는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극도로 신분 노출을 꺼리고 있어 소환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이들을 상대로 지난달 23일 전남 백양사 인근 호텔에서 도박을 한 경위와 돈의 출처, 판돈의 규모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김성호 선임기자·최재헌기자 kimus@seoul.co.kr
  • 도박 몰카 배경 싸고 설 분분

    조계종 승려 도박 사태를 둘러싼 고소·고발전이 확대 양상을 띠면서 현장을 촬영한 ‘몰래카메라’의 배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몰래카메라는 원래 도박 현장을 폭로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는 당사자의 주장이 제기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도박 몰카’가 유포되고 일반에 알려진 건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 종책특보를 지낸 김영국씨와 전 금당사 주지 성호 스님을 통해서다. 두 사람은 동영상을 찍은 주체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전달받았다.”(김 전 특보), “사찰 대웅전에서 우연히 발견했다.”(성호 스님). ●동영상 전달 2인 모르쇠 일관 두 사람의 주장과는 달리 불교계에선 온갖 추측이 무성하다. 그런 가운데 몰카에 찍힌 전 조계사 부주지 의연 스님이 15일 페이스북에 “도박이 벌어진 호텔 방은 전 백양사 방장 수산 스님의 49재 전날 원로 스님들이 투숙하려던 방인데 중진 스님들이 대신 들었다.”는 글을 올려 주목된다. 의연 스님은 “어떤 스님과 일반인 세 명이 방을 예약했고 투숙객을 가장해 몰카를 설치했다.”면서도 정작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황을 종합해 보면 몰카의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수산 스님 입적 후 새 방장·주지 옹립을 둘러싼 백양사 내분과 ▲백양사 사태에 편승한 조계종 다툼 ▲일부에서 조심스럽게 점치는 진보·보수 이념 갈등이다. 이 가운데 백양사 내분이 직접적 배경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몰카의 목적이 백양사 후임 방장·주지와 관련한 원로들 대화 녹취’라는 의연 스님의 주장이 뒷받침한다. ●집행부 인사비리 폭로 소문도 이념 갈등설도 전혀 무관해 보이진 않는다. 도박 현장을 세상에 알린 성호 스님은 ‘조계종단을 지배해 온 진보좌파 실천불교전국승가회를 척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공교롭게도 도박 당사자인 전 조계사 주지(토진)·부주지(의연)는 모두 실천승가회 소속이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집행부를 포함한 조계종단 내 권력 다툼이다. 여기에는 명진 스님과 김 전 특보가 끊임없이 거론된다. 명진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 당선에 큰 역할을 했으면서도 봉은사 주지 사퇴 등 현 집행부와 대척점에 섰다. 명진 스님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김 전 특보의 현 집행부에 얽힌 구연도 끼어든다. 몰카를 촬영한 사람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런 가운데 불교계엔 자승 총무원장과 종단 집행부 인사들의 비리가 담긴 메가톤급 폭로가 곧 터질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일각에선 그로 인한 총무원장 사퇴와 중앙종회 해산 등 최악의 사태까지 들먹거린다. 김성호 선임기자·문소영기자 kimus@seoul.co.kr
  • [단독] “승단 정화 안되면 또 핵폭탄급 폭로”

    [단독] “승단 정화 안되면 또 핵폭탄급 폭로”

    조계종 승려들의 호텔 도박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성호 스님은 13일 “이(도박동영상)보다 더 큰 핵폭탄이 있다.”면서 “도박한 승려에 대한 검찰 수사와 종단의 대처 방안을 보고 터뜨릴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성호 스님은 이날 서울신문 기자와 만나 “승려들의 도박, 음주, 음행, 횡령, 은처(隱妻·부인을 숨겨 두는 행위)가 고위층에도 존재하며 그에 관한 자료, 사진, 동영상을 갖고 있다.”면서 “그것을 제가 폭로하지 않도록 그 전에 승단이 정화됐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9일)한 이후 어떻게 지냈나. -신변에 위험을 느껴 동가숙서가식으로 지낸다. →어디서 기거하나. -보안상 말씀 드리기 어렵다. →동영상 발견 경위는. -대웅전에 기도하러 가는데 부처님 앞에 휴대용 저장장치(USB)가 놓여 있었다. 그게 지난 7일이었다. 시간은 말씀드리기 어렵다. 컴퓨터에 넣어 보니까 도박하는 영상이었다. 부처님께서 나한테 심부름 시킨 일이란 생각이 탁 다가왔다. →어느 절에서 발견한 건가. -밝힐 수 없다. 운명적으로 내가 (고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불교를 위해 희생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종단이 잘되기 위해선 아픔과 희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동영상이 부처님 앞에 있더라는 얘긴 납득이 안 간다. -그런 걸 갖다 놓은 사람들이 나라면 (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도박에 연루된 스님들과 다른 계파인가. -난 계파에 소속돼 있지 않다. 그들 대부분은 지금 종권을 잡고 있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실천승가회) 소속이다. 지금의 총무원장은 이들 위에 얹혀 있는 형국이다. →총무원 내 계파 간 갈등, 백양사 현 주지와 후임 주지를 둘러싼 갈등이 복합돼 있다는 시각이 있다. -백양사 내분은 모른다. 도박한 스님이 백양사 문중이라고 하는데 난 모르겠다. →도박한 스님들은 안면이 있는 분들인가. -T, E, B 등 세 명 정도다. 그들은 직업이 승려가 아니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스님처럼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도박, 음주, 결혼, 축재 등 계율을 어기는 스님들이 어느 정도인가. -중벼슬은 닭벼슬이라고 했는데 스님들이 권력놀음에 심취해 있다. 국회의원을 국민이 걱정하듯 국민들이 종교인을 걱정한다.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스님들은 특권층이 아니지 않은가. 사회악을 일소해야 할 검찰과 경찰에선 알고도 종교집단이라고 겁먹고 조사도 않고, 여론 수그러들면 그냥 넘어가다 보니까 이렇게까지 일이 커진 것이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을 했으면 이런 사태가 안 났을 것이다. 해외에서 몇백억원을 잃었다는 스님들도 있다. →자승 총무원장이 대국민사과를 했는데. -그건 쇼다. 그 사람이 나가야 한다. →조계종의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돈이라고 본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돈을 만지면서 도박이란 데 손을 대고, 시주란 게 자기 돈이 아닌데 자기 돈처럼 쓴다. 스님이 월급이 뭐냐. 다 도적질한 거다. 신도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내놓은 걸 자기 돈처럼 쓴다. 스님은 정진수행하고 돈 관리는 신도들이 해야 한다. 제가 고발한 것은 고발장에 적시한 피고발자에 한정한 것이 아니라 계율을 어긴 스님을 다 청소해 달라는 것이다. 사회악 척결차원에서 해야 한다. →제2, 제3의 폭로가 이어질 것이란 소문이 있다. -엄청난 핵폭탄이 있다. 그보다 더 큰 게 있다. 제가 고발할 때는 그냥 했겠나.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화해야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고 순교한다는 각오로 하는 것이다. 종단이 바로 가야 한다. 종단이 망할 수는 없다. 종단 정화가 들불처럼 일어나길 바란다. →언제쯤 터뜨릴 건가. -상황 봐서 종단이 정신 못 차린 것 같으면, 검찰 수사가 미진하면 한다. 정치적인 중들, 종단을 사당화한 세력들, 처자식 숨겨 놓은 스님들은 종단에서 특별기구를 만들어 다 뿌리 뽑아야 한다. 폭탄을 터뜨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갖고 있다는 폭탄의 실체가 있나. -자료가 있다. 어마어마한 것이다. 서류, 동영상, 사진도 있다. →혼자서 그런 일들을 못할 텐데, 누구와 같이 하는 건가. -그런 게 자발적으로 온다. 얼마나 심하면 (다른 스님들이) 그런 걸 찍었겠나. 여러 곳에 묻어 놓았다. 김성호·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성호스님은 누구 1958년생으로 전북 익산 남성고를 나와 법대 2학년을 마치고 사법시험 공부를 위해 들어간 사찰에서 ‘금강경 오가해’를 접하고 1976년 금산사에서 출가했다. 동국대에서 선학과 박사를 마친 뒤 충남 대조사, 경북 운남사, 전북 금당사 주지를 했다. 송월주 스님의 총무원장(1994~98년) 시절 호법부 상임감찰, 사업국장, 사서실(비서실) 차장을 지냈다. 2009년 총무원장 선거 때 현 자승 총무원장과 관련된 괴문서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멸빈(승적 박탈)의 징계를 받았으나 법원에서 제적 징계의 효력 정지 판결을 받은 바 있다.
  • 도덕성 추락·종단 갈등·기획 폭로 ‘합작품’

    불교계는 이번 도박 사태를 불교 성직자의 도덕성 추락과 종단 갈등, 그 틈새에서 기획성 폭로가 결합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불교계는 폭로의 당사자 성호 스님을, 이유야 어찌됐건 자타가 인정하듯 현 조계종 집행부에 대한 강한 반감을 지닌 스님으로 보고 있다. 조계종 자성과 쇄신을 주도하고 있는 도법 스님이나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처럼 불교와 종단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한 개혁운동이나 이념 투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번 도박 추태와 관련된 백양사 문중과도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 그런 점에서 현 집행부와의 불화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성호 스님을 평소 잘 아는 불교계 인사들은 성호 스님 자신도 도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귀띔한다. 불교 시민사회단체의 한 관계자는 ‘그의 음주 폭행 전력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전한다. 어찌됐건 성호 스님은 현 집행부와 불교계의 타락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고발과 폭로가 그의 말대로 진정한 불교 사랑과 부처님 정신의 회복을 위한 것인지는 결국 종단의 쇄신 노력과 검찰 조사 결과가 재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종단 내 이념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님은 “뉴라이트 계열의 성호 스님이 이전에도 종단 내 종북좌파 배제를 지적한 바 있다.”면서 “이번 사태는 사회의 이념 갈등이 조계종 내로 침투, 확산된 느낌”이라고 밝혔다. 이 스님은 “게다가 안티 자승 총무원장 세력인 M스님 측에서도 이번 폭로전에 개입한 것 같다는 소문이 있어 사태의 불똥이 종단 최고위층에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휴일인 13일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비롯한 주요 부서 스님과 종무원들이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총무원 호법부는 지난 12일 도박 당사자들을 불러 도박을 하게 된 경위와 판돈 규모에 대해 조사했다. 관련자들은 대부분 도박을 한 사실을 시인했으나 ‘억대 판돈’은 부풀려졌다고 소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종회 의장단은 14일 오후 2시 상임분과위원회를 열어 당사자 처벌 수위와 종단 입장을 조율한다. 오후 4시에는 총무원장과 교육원, 포교원, 호계원 등 조계종 3원장과 중앙종회의장이 참석하는 확대회의를 열어 대책 논의를 이어간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참회문에서 밝힌 대로 15일부터 108배 참회정진을 시작한다. 원로회의도 조만간 모임을 갖고 대국민 사과 형식의 참회문을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집행부 부·실장 스님들의 일괄 사퇴로 사실상 종무행정이 겉돌고 있는 상태여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조기에 마련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Weekend inside] ‘승려 도박’ 파문에… 조계종 총무원장 사과문 발표했지만

    [Weekend inside] ‘승려 도박’ 파문에… 조계종 총무원장 사과문 발표했지만

    조계총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11일 승려들의 호텔 도박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국민과 불자 여러분께 참회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참회문 형식이다. 세상에 사건이 알려진 지 하루 만의 전격적인 사과다. 조계사 폭력 사태가 난 1994년 이후 18년 만이다. 자승 스님은 참회의 뜻으로 15일부터 100일 동안 108배로 일과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사결정이 느린 평소와 달리 총무원이 발빠른 행보를 보이자 불교계에선 사태를 서둘러 봉합하려는 처사라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총무원장이 직접 발표하지 않고 출입기자의 이메일을 통해 보낸 것에 대해서도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총무원의 조기봉합 노력이 근본적인 사태 수습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 사건이 조계종의 뿌리 깊은 파벌 싸움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비관적인 관측이 많다. 교계 안팎에선 조계종 5대 총림의 하나인 백양사 고불총림의 파벌 싸움과 총무원 집행부에 대한 골 깊은 반감이 얽혀 터진 ‘예고된 참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부 스님들의 부도덕과 일탈 차원을 넘어선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백양사 고불총림은 4월 23일 방장 수산 스님이 입적한 이후 후임 방장과 주지 선출을 놓고 갈등을 빚어 왔다. 수산 스님이 입적하기 전 후임 방장·주지와 관련해 남긴 유서를 현 주지 측이 인정할 수 없다며 대치해 온 것이다. 수산 스님 49재 하루 전날 백양사 인근 호텔에서 도박판을 벌인 8명은 백양사 문중 스님들이다. 불교계에선 호텔 도박 폭로 사건은 백양사 스님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기획’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13시간짜리 동영상 속 당사자들이 전혀 촬영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데다 타인의 방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었던 점이 그 가능성을 높인다. 동영상을 공개한 전북 진안의 금당사 전 주지 성호 스님이 밝힌 동영상 입수 경위도 선뜻 납득할 수 없다. 성호 스님은 “대웅전에 염불을 드리러 갔는데 불상 앞에 도박 장면이 담긴 USB(휴대용 저장장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우연치고는 너무 작위적이다. 성호 스님은 2009년 총무원장 선거 때 괴문서 유포 혐의로 승려 자격이 제적된 멸빈승이다. 이후 총무원장 당선 무효소송 등 6건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에서 모두 기각 또는 무혐의 처리된 바 있다. 지난해 12월엔 조계사 앞에서 1인시위를 하다 토진 스님 등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며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그런 구연을 알고 있는 백양사 스님들이 도박판 촬영과 폭로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을 것이란 관측이 돌고 있다. 이번 사태가 총무원 집행부의 구조적인 문제와 관련됐다는 시각도 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지난 선거에서 화엄·무차·무량·보림회 등 모든 계파의 동의로 추대됐다. 조계종단에선 이례적이지만 사실상 각 계파의 스님들로 집행부를 구성해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불교계엔 요즘 종단의 주요 소임을 맡은 인사들의 개인 비리를 폭로하는 괴문서가 나돌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호텔 도박 사건에 이은 제2, 3의 폭로·고발 사태가 예상된다는 종단 안팎의 우려는 여기에 근거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거액 포커판 벌인 스님은 도대체 뭔가

    비승비속(非僧非俗)이다. 스님도 속인도 아니다. 먹물옷을 입었지만 속세의 화려한 옷과 무엇이 다른가. 삭발을 한들 무엇하나. 그들의 머리에는 끊임없이 무명(無明)의 풀이 자라나고 있지 않은가.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8명이 거액 포커도박판을 벌인 사건이 온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전남 장성 백양사 방장스님 49재 전날 인근 호텔에서 밤샘 도박판을 벌였다고 한다. 종단 내 반대파에 의해 계획적으로 촬영된 동영상에 의해 불거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시정잡배 수준의 저질 행태다. 최악의 불교계 추문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조계종 총무원은 집행부 간부들이 일괄 사직서를 내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은 즉각 소환조사해 종헌종법에 따라 엄벌하라.”고 지시했다. 성직자에 대한 일반의 기대수준을 감안하면 그 이상의 ‘비상한 해법’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문제의 당사자들을 처벌하고 총무원 스님 몇몇의 사표를 받는 선에서 끝낼 일이 아니다. 지금 불교계에 필요한 건 그런 대증요법식 처방이 아니다. 고질화된 파벌과 불신의 뿌리를 도려내는 ‘원인요법’으로 다스려도 오히려 부족할 판이다. 속인보다 더 속인 같은 일부 스님들의 행태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한다. 그래도 많은 이들은 불교계의 자정능력을 믿는다. 조계종 집행부도 ‘자정과 쇄신’을 종단 최대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자체 정화운동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격미달 스님들을 처리하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28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조계종 종정 진제 대종사는 ‘진아’(眞我)를 찾을 것을 당부했다. 중생을 구제하기에 앞서 스님들부터 참나를 찾으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불교계의 뼛속 깊은 자정을 기대한다.
  • ‘도박 파문’ 조계종 곪은 내부갈등 터지나

    ‘도박 파문’ 조계종 곪은 내부갈등 터지나

    불기 2556년 부처님오신날(28일)을 앞두고 터져 나온 조계종 스님들의 억대 도박 사건으로 불교계가 뒤숭숭하다. 불교계는 도박 사건에 연루된 스님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이번 일이 불거진 조계종 내부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건이 표면화된 것은 지난 4일 불교닷컴이 ‘방장 49재 날 노름으로 밤샘한 후학들’이란 제목으로 스님들의 도박판을 상세하게 보도하면서부터다. 불교닷컴은 “전남 장성군의 한 호텔방에서 스님들이 손에는 카드를 들고 일부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만원권부터 오만원권들을 베팅하며 카드놀이에 열중한 스님들은 날이 새는 줄 몰랐다.”면서 “밤 9시 10분쯤 룸서비스를 청했는지 술과 안주도 배달됐다. 카드놀이 삼매경에 빠진 스님들의 술 심부름을 하던 재가자(불교신도)가 멀뚱멀뚱 바라보며 술과 안주를 전해 주곤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이 같은 내용은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했던 성호 스님이 9일 서울중앙지검에 스님 8명을 도박 혐의로 고발하는 고발장을 접수시키면서 공식화됐다. 고발된 승려 가운데에는 조계종 본사인 J사 주지 겸 중앙종회 의원인 T스님과 부주지인 E스님 등이 포함됐다. 성호 스님은 고발장에서 “백양사의 고불총림 방장 49재(4월 24일)를 위해 모인 스님 8명이 23일 밤 백양사 인근 호텔 스위트룸에서 술과 담배를 하며 수억원에 이르는 판돈을 걸고 포커 도박판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성호 스님은 몰래카메라로 찍은 13시간 분량의 도박 현장 동영상을 검찰에 자료로 제출했다. 동영상에는 반팔 차림의 스님이 호텔방에 둘러앉아 카드 패를 들여다보고 술과 담배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조계종 관계자는 “호법부(경찰·검찰 격)에서 현장에 있었던 스님들을 소환 조사해 사실을 확인 중이지만 억대 판돈은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조사 결과는 1개월쯤 뒤에 나오지만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조기에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무원이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제재는 승적을 박탈하는 것이며 조계종 내 공직 취임을 제한하는 징계도 내릴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참여불교재가연대는 “도박과 비밀 촬영 모두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가연대는 “조계종 스님들이 하필 열반에 드신 교구본사의 방장 스님 49재에 참석해 도박판을 벌였고 이것은 계획적으로 촬영된 동영상으로 밝혀졌다.”면서 “도박은 승속을 떠나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부도덕한 사회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을 폭로한 성호 스님은 전북 진안에 있는 K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총무원 호법부에서도 일한 바 있다. 조계종에 따르면 성호 스님은 2009년 총무원장 선거 때 괴문서를 주도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며 선거에 당선됐던 자승 스님의 총무원장 당선 무효 소송을 낸 적이 있다. 성호 스님은 “내부의 일을 외부에까지 퍼뜨렸다.”는 이유로 승적을 박탈당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몰래카메라로 촬영되고 외부에 알려진 것이 조계종 내부의 정치적 갈등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조계종 집행부 부·실장들은 사표를 낸 뒤 곧바로 짐 정리를 해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총무원은 중앙종무기관에서 일하는 종무원들에게 자숙을 위해 외부 식사를 삼가라고 지시했다. 국·차장 대행체제가 된 총무원 새 집행부는 석가탄신일 이전에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김성호 선임기자·최재헌기자 kimus@seoul.co.kr
  • ‘조계종 억대 도박’ 총무원 집행부 총사퇴

    조계종 고위직인 종회의원과 주지를 포함한 스님 8명이 전남 장성의 백양사 인근 호텔에서 억대 포커 도박을 벌인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조계종의 자승 총무원장은 10일 “관련자를 소환해 종헌 종법에 따라 죄를 물어 처벌하고 대대적 인적 쇄신을 하라.”고 지시했다. 총무원은 종단 차원의 대국민 사과 및 재발방지 방안을 이르면 11일, 늦어도 다음 주에는 발표할 것을 검토 중이다. 조계종 총무원의 집행부인 부·실장 7명은 이날 오전 총사퇴했다. 앞서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했던 성호 스님은 지난 9일 서울중앙지검에 이들 스님을 도박 혐의로 고발하는 고발장을 제출했다. 성호 스님은 이들이 호텔방에서 도박하는 13시간짜리 동영상을 자료로 검찰에 냈다. 검찰은 사건을 형사부에 배당하고 서울 종로·전남 장성 등 해당 경찰서에서 수사토록 했다. 불기 2556년 부처님오신날(28일)을 앞두고 이날 대구 동화사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승가(僧家)와 절집에도 염의를 입고 시주 밥을 먹고 살지만 발심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못난 짓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을 대신해 참회하겠다.”고 밝혔다. 대구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6)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6)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

    사람의 시간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긴 세월을 살아가는 나무의 침묵은 언제나 견고하다. 역사의 침묵을 닮았다. 결코 스스로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과거에 대한 관심에 기대어서야 비로소 숱한 사실들이 생명을 얻고 일어난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침묵하는 생명이지만, 그를 둘러싸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은 마침내 나무가 세월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지나온 많은 이야기들을 드러내게 한다. 이 땅의 큰 나무를 찾아보고, 그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결국 사람의 역사를 찾아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현재의 질문들이 긴 역사를 풀어내고, 나무의 견고한 침묵도 깨뜨릴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나무를 찾아야 하는 확실한 이유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옛 절집… 오롯이 그 곁을 지키다 남도 끝자락, 진도의 임회면 상만리에는 내력이 정확하지 않은 절터가 있다. 흔히 ‘상만사지’(上萬寺址)라고 부르는 폐사지다. 한때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했을 전각들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남은 건 오로지 오층석탑 한 기뿐이다. 사라진 옛 절집의 이름도, 그 절을 스쳐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제대로 남지 않았다. 그곳에 비구니 스님의 절집, ‘구암사’가 있다. “탑이 남아 있어서 절터라고 짐작할 수는 있지만, 절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어요. 1950년대 초반에 마을 사람들이 근처의 밭에서 돌부처를 찾았다고 해요. 그때 초가를 지어 절을 일으키고, ‘만흥사’라고 한 게 구암사의 시작이에요.” 아담한 절집 구암사의 용운(庸芸) 스님은 세월 속에 흩어진 구암사의 토막난 역사를 퍼즐 맞추듯 가만가만 꿰어 맞춘다. 그러나 빈 자리는 여전히 크기만 하다. 밭에 나동그라져 있던 돌부처 외에 절집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이 상만리여서 사라진 옛 절을 상만사라고 하는 건데 근거는 없어요. 그보다는 구암사라는 이름이 맞지않나 싶어요. 진도 향토사에는 아주 옛날에 구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에 있던 절인지는 모르죠. 그런데 이 뒷산의 바위를 마을에서 ‘비둘기 바위’라고 부르더군요. 그렇다면 비둘기바위라는 뜻의 이름인 구암(鳩巖)사는 이곳에 있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절집은 사라졌지만, 그 부침의 역사를 지켜본 나무가 한 그루 있다. 비자나무다. 전하는 이야기처럼 옛 절집이 사라지기 전부터 있던 나무라면 필경 절집 앞마당, 최소한 담벼락쯤에 있던 나무라고 볼 수 있다. 절집의 자취가 없어 지금은 마을 당산나무, 혹은 ‘천연기념물 제111호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라고 부른다. #넉넉하지 않은 시절 영양간식으로 비자나무 심어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는 구암사가 깃든 그 비둘기 바위와 마을 사이의 언덕 길가에 서 있는 큰 나무다.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옛 절과 이 나무가 일정한 관계를 가졌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절집에 주석(駐錫)한 스님이 직접 심고 키운 나무까지는 아니라 해도 최소한 절집의 흥망성쇠를 또렷이 지켜본 나무임에는 틀림없다. 절집의 흔적인 오층석탑은 대략 고려 후기에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바탕으로, 사라진 사찰의 역사는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오래됐다고 보아야 한다. 1000년쯤 전에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추측하는 근거다. 오층석탑에서 불과 100m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비자나무는 600년쯤 이 자리에서 살아왔다. 적잖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큰 절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에 결코 모자란 세월이 아니다. 누구도 그 시절의 자취를 알 수 없지만, 나무는 필경 이 자리에서 절집의 살림살이를 빤히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비자나무는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예전에는 절집의 스님들이 공들여 키운 나무로 알려져 있다. 비자 열매는 영양이 풍부해서 먹을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에 좋은 간식거리였을 뿐 아니라, 구충제 성분까지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스님들은 비자나무를 심고 열매를 거둬서 절집 식구들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고 한다. 장성 백양사, 고흥 금탑사, 화순 개천사 등의 비자나무 숲이 모두 그런 까닭으로 스님들이 조성한 곳이다. “비자나무에 대한 기록도 있을 리가 없지요. 나무가 있는 위치를 절집 마당쯤으로 볼 수도 있다지만, 사실 절집의 위치가 정확한 건 아니거든요. 비자나무와 옛 절과의 관계는 어떤 내용으로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12m 옹골찬 품… 마을의 쉼터이자 수호신으로 상만리 비자나무는 키가 12m쯤 되고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의 둘레는 6.5m, 밑동 부분의 둘레는 7.5m 가까이 된다. 얼핏 봐서 그리 큰 나무는 아니지만, 유난히 옹골찬 수형을 가졌다. 키에 비해 굵직한 줄기는 물론이고 나뭇가지도 매우 촘촘하게 돋았으며, 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 바늘잎도 무성하다. 사방으로 펼친 품 또한 만만치 않다. 동서 방향으로 12m, 남북으로는 8m를 펼친 품은 무척 넉넉한 모습이다. 절집의 기억을 줄기 안 깊숙이 간직한 채 나무는 이제 마을의 정자나무로 살아간다. 나무 줄기에 바짝 붙여 놓은 평상은 십여 년째 그대로다. 나무는 마을의 쉼터이면서 사람들의 안녕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매달렸다가 떨어져도 별로 다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사람을 위할 줄 아는 나무라는 이야기다. 용운 스님도 한마디 덧붙인다. “비자 열매는 마을 사람들이 잘 거둬서 이용하는 모양이에요. 옛날에는 당산제도 지내고 나무 앞에서 줄다리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안 해요.” 종종 세월은 사람살이의 흔적을 송두리째 삼키곤 한다. 그러나 세월보다 더 강한 힘으로 나무는 사람살이를 지킨다. 옛 절터에 살아남은 비자나무의 속내가 점점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글 사진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681-1: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인 진도대교를 건넌 뒤 ‘진도대로’로 불리는 국도 18호선을 이용해 진도군청이 있는 진도읍까지 간다. 진도읍에서 서남쪽으로 5㎞쯤 가면 임회면으로 들어서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우회전하여 2.5㎞ 더 가면 다시 진도대로와 만나게 되는데, 오른쪽 길을 이용해 6㎞ 가면 송월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1.5㎞ 가면 상만리에 이른다. 나무는 왼편의 마을 안쪽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 350m쯤 들어가면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0)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0)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네덜란드 출신의 그림책 작가 레오 리오니의 작품 중에 ‘잠잠이’(최근 ‘프레데릭’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가 있다. 주인공인 새앙쥐 잠잠이는 봄부터 가을까지 햇살 좋은 양지 녘에 쪼그리고 앉아 낮잠만 즐긴다. 일은 안 하고 졸기만 하는 잠잠이를 모두들 불만스러워하지만 잠잠이는 끈질기게 잠만 잔다. 그리고 새앙쥐 마을에 겨울이 찾아왔다. 대지에 찬란하던 빛깔도 요란하던 소리도 모두 사라지고 침묵에 들었다. 새앙쥐들도 지루하게 이어지는 권태를 견디기 힘들었다. 잠잠이가 그때 모두의 앞에 나섰다. 봄부터 가을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모아두었던 빛깔과 소리를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잠잠이는 결국 침묵과 권태의 계절인 겨울에 모두에게 봄의 희망, 생명의 노래를 전해 주는 아름다운 시인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느티나무 사람의 마을에 매운 바람이 불어오면 세상은 침묵으로 잦아든다. 하얀 눈까지 소복이 쌓이는 날이면 시골 들녘은 적막이 감돌 만큼 고요해진다.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찾아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들녘이 꼭 그랬다. 찬바람 맞는 게 결코 좋을 수 없는 노인들만 사는 마을이어서 대문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아예 불가능했다. 눈 내리는 단전리 마을에는 들녘의 커다란 느티나무만 홀로 겨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키 20m, 줄기 둘레 10.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느티나무다. 사람 없는 들녘에서 나무는 하얗게 침묵으로 잦아드는 겨울의 권태와 적막을 덜어 내기 위해 가물가물 잊혀 가는 옛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림책 속의 새앙쥐 ‘잠잠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도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줄기 안에 켜켜이 쌓아 두었던 많은 이야기를 서리서리 펼쳤다. 나무 이야기는 이곳 단전리에 처음으로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던 400년 전의 옛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단전리는 임진왜란 직후에 도강김씨(도강은 전남 강진의 옛 이름) 가문이 삶의 터전으로 일구고 살아온 오래된 집성촌이다. 마을을 일으키는 중심 역할을 한 이 마을의 입향조(入鄕祖)는 김충로라는 분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자리에 보금자리를 근사하게 일구긴 했으나 그에겐 견디기 힘든 아픔이 있었다. 함께 하지 못한 형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충로의 형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무공을 세우고 전장에서 산화한 김충남이라는 장군이다. 보금자리를 이루기는 했으나 함께해야 할 가족을 잃은 김충로는 설움을 달래지 못했다. ●단전리 입향조가 처음 심고 키운 나무 그가 마을 들녘에 나무를 심은 건 그래서였다. 물론 마을을 처음 일으킨 기념으로 마을 어귀에 나무를 심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오랫동안 크게 자라서 마을에 들고 나는 악한 기운을 막겠다는 뜻도 있고, 마을 상징으로서의 의미도 있었다. 김충로라고 그런 뜻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가 나무를 심을 때에는 전사한 형, 김충남 장군의 넋을 기리자는 생각이 더 컸다. 집성촌인 이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가문의 선조이기도 했으니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무를 심은 김충로도 전쟁터에 나가서 형처럼 목숨을 잃었다. 전사한 형제를 나라에서 선무원종공신으로 제수한 게 그나마 가문의 한을 위로할 뿐이었다. 장군으로 불리던 사람도 그를 기리기 위해 나무를 심은 그의 동생도 장군이 되어 똑같이 전쟁터에서 사라졌다. 들녘의 나무만 주인을 잃은 아픔을 안고 무럭무럭 자랐다. 장군 형제의 넋이 담긴 들녘의 느티나무를 사람들은 그때부터 ‘장군 나무’라고 불렀다. 마을 사람들은 적어도 한 해에 한 번은 나무 앞에 모였다. 장군 형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해마다 음력 정월 초닷샛날 치른 당산제가 그것이었다. 단전리 당산제는 유난히 즐거웠다.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사람들은 우마제(牛馬祭)를 지냈다. ●애국 충정의 찬란한 기억으로 살아남아 농사의 동반자인 소와 말의 먹이를 나무 뿌리 주위에 가지런히 내려 놓고 소와 말의 건강을 빈 것이다. 우마제 뒤에는 나무가 바라다보이는 공터에 나무를 쌓고 불을 피웠다. 이글거리는 불 가장자리에서는 농악대가 풍물을 쳤고, 뒤따르는 사람들은 흥에 겨워 춤을 췄다. 사람의 풍경을 바라보는 나무도 따라서 즐거웠다. 평화롭게 세월이 흐르던 1950년, 장군의 넋과 장군 나무가 지켜 주는 단전리에 다시 전쟁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마을을 떠났다. 참혹한 전쟁의 폭풍이 지나고서야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멀리 떠난 뒤였다. 그때부터 누가 결정하지도 않았건만 우마제도 풍물놀이도 당산제도 모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단전리에는 전쟁 전에 70가구가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20가구와 일흔 고개를 넘나드는 노인들만 남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입향조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젊은 시절에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한 많은 어른들이다. 여전히 멈추지 않는 세월은 마치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리는 하얀 눈처럼 세상살이의 흔적을 하나둘 덮을 것이다. 노인들만이 알고 있는 마을의 기억도 종작없이 사라질 것이다. 마을에는 하릴없는 적막감이 찾아오고, 견디기 힘든 권태감이 휩쌀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어도 나무는 옛 마을의 영화를 온전히 기억하고 우뚝 서서 찬란했던 옛 마을의 평화로운 빛깔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은 사람들에게 전할 것이다. 마치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에 나오는 새앙쥐 주인공 잠잠이처럼. 글 사진 장성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291. 호남고속국도의 백양사나들목으로 나가서 백양사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호남선 백양사역을 조금 지나면 사가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백양로를 타고 5㎞쯤 가면 장성호 관광지에 닿는다. 장성호를 끼고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을 3㎞ 가면 북하면 소재지인 약수리에 들어서게 된다. 이 길을 따라 계속 3.5㎞쯤 고갯길을 넘어가면 처음으로 나오는 주유소 맞은편에 나무가 있다. 주유소 근처의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한다.
  • [Weekend inside] 무법자 멧돼지 출몰에 잠 못 이루는 농촌 마을

    [Weekend inside] 무법자 멧돼지 출몰에 잠 못 이루는 농촌 마을

    ‘멧돼지를 잡아라.’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가인마을 민가 옥상에서 엽사 2명이 사냥총을 든 채 이틀을 꼬박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혹시 마을에 내려올지 모르는 멧돼지를 잡기 위해서다. 이 마을은 백암산 국립공원 안에 있으며, 20여 가구 70여명의 주민이 민박과 고로쇠 수액 채취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거의 매일 밤 나타나는 멧돼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로 밤에 내려오는 멧돼지는 4~5마리씩 떼지어 마을 안을 누비며 밭작물 훼손은 물론 된장이나 간장 항아리마저 부숴놓기 일쑤다. 이 마을 이장 한봉운(75)씨는 “백양사가 위치한 국립공원 지역으로 사냥이 금지된 터라 멧돼지의 개체수가 갈수록 늘고, 피해도 그만큼 증가하고 있다.”면서 “최근 들어 멧돼지가 마을에 너무 자주 출몰해 군청에 민원을 제기했고, 급기야 전문사냥꾼까지 불렀다.”고 말했다. 16일 전남도에 따르면 올해 장성군에 접수된 야생조수 피해 건수는 177건으로 지난해 70건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피해는 대부분 멧돼지에 의한 것으로 고구마, 옥수수, 벼 등 각종 농작물이 파헤쳐지거나 훼손되고 있다. 장성군은 이에 따라 지난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 순환수렵장의 허가를 얻어 야생조수 사냥에 나섰다. 한 달 남짓 동안에 멧돼지 18마리를 잡았다. 강원과 경북 등의 산간벽지도 사정은 비슷하다. 특히 폭설 등으로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는 멧돼지가 민가에 내려오는 횟수가 늘고 있다. 이달 초 서울 도봉산에서 내려와 날뛰던 300㎏짜리 수컷 멧돼지가 사살되는가 하면 부산 금정구 주택가에 멧돼지가 출몰해 경찰에 포획되기도 했다. 지난 13일 울산 동구 서부동 마골산 당고개에서도 멧돼지 5마리가 사살됐다. 또 15일 새벽 부산 사상구 주례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몸길이 1m, 무게 150㎏가량의 멧돼지 1마리가 경찰에게 사살됐다. 이처럼 산간 마을이나 도심을 가리지 않고 멧돼지가 잇따라 출몰하는 것은 개체수 증가와 서식지 파괴, 먹잇감 부족 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환경부는 최근 5년간 100㏊당 멧돼지의 서식밀도가 3.5~4.6마리로, 전국적으로 25만여 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국립환경과학원이 연구를 통해 제시한 적정 서식밀도는 100㏊당 1.1마리다. 결국 적정 수를 크게 초과한 개체수 증가는 농작물 피해와 도심 출현 등을 야기해 사람과의 잦은 ‘충돌’을 빚게 되는 것이다. 멧돼지의 도심 출현은 2009년 31건에서 지난해 79건으로 2배 이상 늘었으며, 올 11월 현재 65건을 기록했다. 멧돼지에 의한 농작물 피해액도 2009년 53억원에 이어 지난해엔 64억원으로 늘었으며, 이는 야생동물에 의한 전체 피해액의 절반을 넘는 수치다. 전남 22개 시·군의 야생동물 농가 피해는 최근 5년간 평균 12억~15억원에 이르는 등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 지역의 피해농가도 2008년 1498개 농가, 2009년 1803개 농가, 2010년 2088개 농가, 올 현재 1538개 농가 등 4년 새 모두 6927개 농가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미신고 건수까지 합치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환경부와 해당 자치단체들은 포획과 도심 출몰 예방 등 멧돼지 퇴치를 위한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환경부는 순환수렵장을 전년도 22개에서 올해 30개로 늘렸다. 수렵허용 면적도 전년도 8315㎢에서 1만 2408㎢로 넓히는 등 ‘멧돼지와의 전쟁’을 펼치고 있다. 지자체는 ‘멧돼지 기동포획단’을 편성해 운영에 들어갔다. 포획단에는 경찰, 소방본부,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관계자 등이 참여한다. 이와 함께 울타리, 방조망, 경음기 등 야생동물 피해 예방시설 설치와 피해 보상조례 제정, 보상액 증액 등을 꾀하고 있다. 전문 엽사들은 사방에서 호출을 받아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장성군 관계자는 “올해 야생동물 피해보상을 위해 1000만원의 예산을 세웠으나, 솔직히 턱없이 부족한 만큼 내년부터는 민간 보험사에 보험을 드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조계종 13대 종정에 진제스님

    조계종 13대 종정에 진제스님

    한국불교 맏형 격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차기 종정에 대구 동화사 조실인 진제(77) 대종사가 추대됐다. 조계종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종정 추대회의를 열고 진제 스님을 제13대 종정에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 추대 위원들은 별 이견 없이 진제 스님의 종정 추대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제 스님의 임기는 내년 3월 26일부터 5년간이며, 별도의 추대법회를 통해 종정에 오른다. 진제 스님은 종정에 추대된 뒤 원로회의 사무처장을 통해 “여러 스님과 종단 안팎 사부대중의 뜻을 안아 동양 정신문화의 정수인 간화선을 세계에 진작하는 데 정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스님은 특히 사부대중에게 ‘대지여우인막측(大智如愚人莫測)이요, 수래방거역비구(收來放去亦非拘)로다.’(큰 지혜를 가진 이는 어리석어 보임이나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함이요 진리의 전을 거두어 놓는 데 또한 걸림이 없음이로다)라는 게송을 전했다. 경남 남해 출신인 진제 스님은 ‘남진제 북송담’으로 회자될 정도로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이다. 1954년 해인사로 출가해 석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57년 통도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67년 당대 선지식 향곡 선사와의 법거량을 통해 전법게(傳法偈·이미 득도한 큰스님에게서 깨달음을 인정받는 것)를 받고 33세에 경허·수월·운봉·향곡 스님으로 이어져 오는 법맥을 계승했다. 부산에 해운정사를 창건해 금모선원의 조실로 추대된 이후 선학원 중앙선원 조실, 봉암사 태고선원 조실 등을 역임했고 현재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 등을 맡고 있다. 특히 1998·2000년 백양사 무차선대법회에서 초청 법주를 맡았으며 2009년 부산 벡스코에서 백고좌대법회를 여는 등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 계승에 앞장서 왔다. 조계종 종정은 조계종단의 법통을 상징하는 정신적 지도자로 종단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선승 18인의 인간적 면모와 번뇌

    화두를 들고 참구해 깨달음을 얻는 선 수행인 간화선. 이 간화선 전통이 오롯이 살아 있는 한국불교의 중심엔 귀감 격의 선승으로 추앙받는 선지식(善知識)들이 있다. 세상의 불교에 대한 인식과 불교 자체의 위상이 변하면서 “지금 한국불교엔 선지식이 없다.”는 푸념도 적지 않은 터. 하지만 여전히 간화선 중심의 한국불교를 지탱하고 이끄는 핵은 그 선지식들이다. 불퇴전의 꺾이지 않는 수행정신과 ‘나’를 잃지 않는 올곧은 생활방식을 고수하기로 이름난 한국의 선지식. 선방에서 참선에 매진하는 수좌들이나 일상의 삶에서 깨달음의 방편을 얻으려는 일반인 모두에게 그 선지식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표 선지식으로 알려진 18인을 직접 만나 나눈 대담집 ‘산승불회’(山僧不會·불광출판사 펴냄)는 눈길을 끌 만한 책이다. 백양사 방장 수산, 송광사 방장 보성, 수덕사 방장 설정, 통도사 방장 원명, 봉암사 수좌 적명, 보살사 조실 고산, 봉선사 회주 밀운, 황대선원 조실 성수, 기림사 서장암 동춘, 전 법주사 회주 혜정, 석남사 회주 정무, 죽림정사 조실 도문, 동화사 조실 진제,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인환, 금봉암 고우 스님이 주인공. 월간 ‘불광’ 취재팀장인 저자 유철주씨가 조계종 총무원 홍보팀에서 ‘5대 총림 방장 및 원로의원 스님 홍보콘텐츠 제작사업’으로 이룬 결과물에 덧붙여 지난 1년 6개월간 전국의 암자를 누벼 마주한 선승들의 전언이 생생하다. 출가 후 50여년 동안 토굴과 암자에서 수행에만 매진한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의 인터뷰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하다. “벽립천검(壁立千劍)이라고 했습니다. 벽에 천 개의 칼을 세워 두고 정진한다는 말입니다. 둔공(鈍功)이라고 했습니다. 바보같이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가지로 바닷물을 퍼내는 심정으로 공부하기 바랍니다.”(적명 스님) 선지식의 사자후 같은 일갈과 교훈은 역시 책의 근간이다. “집 지을 때 하는 기초공사가 수행자에게는 바로 계입니다. 옛 어른들은 그릇을 바로 놓아야 물이 많이 담긴다고 했습니다. 이와 함께 그릇 안에 담긴 물은 흔들리지도 않아야 합니다.”(고산 스님) “세상사 바쁘다 해도 ‘참 나’를 깨닫는 이 일을 밝히는 것보다 바쁘고 급한 일이 없습니다.”(진제 스님) 그런가 하면 젊은 시절 국숫집을 찾다가 불고기 냄새를 맡고는 번민에 휩싸였다는 종산 스님의 고백은 기개가 시퍼런 선승들의 인간적 면모와 고민을 들춰내 흥미롭다. “한 분 한 분 스님을 만나는 것이 역사 그 자체와 마주하는 경험이었다.”는 저자는 18명의 스님이 보여주는 18가지 색깔의 가르침이 ‘명불허전’(名不虛傳)을 실감케 한다고 말한다. 1만 6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갈등의 시대, 해법을 논하다] ‘부디스트 크리스찬’ 폴 니터 & ‘한국의 고승’ 진제 대선사

    [갈등의 시대, 해법을 논하다] ‘부디스트 크리스찬’ 폴 니터 & ‘한국의 고승’ 진제 대선사

    “일부 비뚤어진,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리스도교인을 향해 함께 미워하지 말고 불교가 먼저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폴 니터 교수) “불교는 갈등을 부추기고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형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둘이 아니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닌데, 무슨 투쟁이 있고 반목이 있겠습니까.”(진제 대선사) 이심전심(以心傳心)이며, 염화미소(拈華微笑)였다. 한국 선(禪) 불교의 법맥을 잇는 큰스님이 알 듯 모를 듯한 총론을 얘기하면 푸른 눈의 세계적인 신학자는 구체적인 각론으로 응답했다. 통역을 가운데 두고 선문답처럼 오가는 대화 속에서도 현실적 의제에 대한 공감의 폭과 깊이는 무르익어만 갔다. 언뜻 낯설어 보이는 만남과 대화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세 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갈등이 증폭되는 시대에 적지 않은 울림을 줬다. 2010년이 저물어가는 31일 오후 대구 동화사 설법전 앞마당은 전날 내린 눈이 소복이 덮여 있었다. 동화사 들머리 앞쪽에 내걸린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과 사찰 경내에 걸린 ‘불교를 탄압하는 이명박 정부 규탄한다’는 현수막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종교 갈등, 사회 갈등이 심상치않은 시기임을 짐작케 한다. ●“기독교·불자간 갈등 유감스러워” 조계종의 대표 선승인 진제 대선사와 세계적인 종교신학자인 폴 니터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교 교수가 불교, 기독교 사이의 경계와 벽을 허물고 나눈 대화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설명하기도 한다. 종교 간 갈등, ‘4대강 개발 논란’ 갈등 등 사회 전반에 반목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두 사람의 만남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동화사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이른바 ‘동화사 땅밟기’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이는 등 한국 사회 내 종교 간 갈등의 첨예한 현장 중 한 곳이었기에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상처가 깊을수록 치유의 효과도 큰 법이다. 니터 교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최근 한국 사회의 군사적, 종교적 갈등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내놓았다. 니터 교수는 “현재 남북 사이에 커다란 군사적 긴장 관계가 형성돼 있으며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기독교와 불자들 사이의 갈등도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봉은사와 동화사에서 무례하게 행동한 이들은 전체 그리스도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럽게도 생각하고 내가 대신 사죄한다.”고 말했다. 진제 대선사는 이에 대해 “어려운 시기에 니터 교수가 구만리 장도에 오셔서 한국을 염려해주니 대단히 반갑고 고맙다.”면서 “모든 불자와 그리스도인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합심해 인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라고 화답했다. 니터 교수는 단순한 사과의 뜻을 넘어 그리스도인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도 에둘러가지 않았다. 그는 “이웃은 물론 적까지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는데 이들은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고 이는 예수님의 복음과 어긋난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예수님의 근본적 가르침인 정의, 평화, 사랑의 가치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자신의 다원주의적 종교관의 핵심을 피력했다. 두 영적 지도자들은 굳이 수다스럽게 자기 의견을 내놓을 것도, 서로 상대방 의견에 애써 동의할 것도 없었다. 많은 말을 섞지 않았음에도 종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상통됐다. 72세, 77세 두 원로의 대화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겼건만 훈훈함만 쌓여가며 그칠 줄 몰랐다. 서로에 대한 인간적 궁금함도 묻고 답해졌다. “저는 로만-가톨릭이에요. 어릴 적 사제가 됐다가 30세에 사회로 돌아왔죠. 유일 진리를 얘기하는 그리스도교임에도 다원주의 가치를 갖게 된 것은 20대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마침 로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2000명 이상의 가톨릭 주교들이 모였고 ‘다른 종교에도 하느님이 계시고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의견들이 오고갔었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배우는 것은 기회일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큰스님’께서는 어떻게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니터 교수는 진제 대선사를 부를 때마다 꼬박꼬박 서툰 우리말로 ‘큰스님’이라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한국 선불교의 대표적 은둔 수행승인 진제 대선사는 10여분가량 깨달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니터 교수는 눈을 반짝거리며 듣다가 하나의 화두를 붙들고 2년 반 동안 수행한 뒤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진제 대선사는 “분별없는 참된 나, 즉 인간 본연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 청정무구의 평화로운 마음을 되찾는 방법으로서 선 수행이 중요하다.”면서 “선은 불교 전통으로 이어오는 것이지만 신앙의 대상이 아닌 만큼 종교를 떠나 인간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세상에 접근하는 구체적인 방식에는 작은 이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진제 대선사가 “우리는 자아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참나를 발견하라는 간화선을 던지는 것”이라면서 “내 눈이 어두운데 중생을 안락국토로 인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명상 수행 동안에도 고통받는 사람 있음을 생각해야” 하지만 니터 교수는 “내가 지금 명상 수행을 하는 동안에도 지구에는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들, 전쟁과 폭력, 고문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진제 대선사와 생각이 다름을 내비쳤다. 니터 교수는 함께 방문한 그의 부인 캐서린 코넬과 함께 서구사회에서 보기드물게 ‘그리스도-불자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1980년대부터 전쟁과 기아, 고통이 있는 곳에서 사회운동을 해온 탓이다. 그 또한 세계적 권위의 가톨릭 신학자이면서도 오랫동안 불교 선(禪) 수행을 해왔고, 최근에는 달라이 라마로부터 티베트불교 전통에 따라 ‘연꽃 치유자’(Lotus Healer)라는 법명과 함께 수계도 받았다. 공식적으로 ‘불자-그리스도인’이 된 셈이다. ‘부처님이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는 그의 최근 저서는 미국을 비롯해 서구 종교계에 큰 화제를 몰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진제 대선사는 대담을 마친 뒤 니터 교수에게 ‘진아’(眞我)라는 법명과 함께 직접 쓴 ‘처처작주’(處處作主·어디에 머무르건 참나를 찾아 삶의 주인이 되라는 뜻) 편액을 선물하며 이미 충분히 가까워진 종교 간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니터 교수는 “불교식 선 수행이 나의 기독교 신앙을 더욱 성숙시켰다.”면서 “나는 이제 72세인데 큰스님처럼 수년 동안 화두 붙들고 수행하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까요?”라고 기쁨과 감사의 뜻을 표현했다. 이날 두 정신적 지도자의 만남은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고려 최초의 대장경) 제작 1000년인 2011년을 맞아 특별히 성사된 ‘밀레니엄 평화 대담’이다. 외세 침략 앞에 무력으로 맞서지 않고 종교적 염원이라는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장경을 조성했던 정신을 기린다는 의미다. ●종교초월 사회 통합위한 ‘야단법석’ 진제 대선사와 니터 교수의 대담 이후에는 동화사 수좌 스님들을 비롯해 대구 경북 지역 불자와 기독교 단체가 니터 교수와 함께 한자리에 모이는 ‘야단법석’(野檀法席)을 펼쳤다. ‘불교-기독교 간 수행 전통에 대한 이해와 교류’를 주제로 한바탕 깊은 얘기를 나눴다. 행사를 주관한 동화사 주지 성문 스님은 “이번 대화는 종교의 벽을 넘어 21세기 함께 사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마련했다.”면서 “대화를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선 불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종교를 초월하여 사회 통합과 평화를 이뤄내자는 불교계의 간절한 의지를 전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니터 교수는 1일 동화사에서 초청 강연을 마친 뒤 5일까지 부산 해운정사, 부산 범어사, 서울 국제선센터 금차선원을 잇는 전국 순회 평화 토크를 가진 뒤 6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대구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폴 니터 1939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1966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정을 이수, 목사가 됐으며 1972년 독일 마르부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부터 미국 유니온 신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달라이 라마, 데스몬드 투투 등과 함께 평화평의회국제위원회의 이사로 활동해으며 무슬림과 힌두, 불교 신도들과의 심층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의 정점에 서 있는 그는 교회 중심주의·그리스도 중심주의에서 신 중심주의로, 해방의 실천을 통한 구원 중심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세계를 돌며 마음의 평화와 세계 평화에 대해 설파하는 인기 강연자이다. ●진제 대선사 1934년 남해에서 태어났다. 1954년 해인사로 출가해 전국 선원에서 수행했으며, 향곡 선사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았다. 경허-해월-운봉-향곡으로 이어지는 한국 선불교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사찰의 최고 어른)과 동화사 조실이다. 선객들 사이에서 ‘북송담, 남진제’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인천 용화사의 송담스님과 더불어 불교계를 대표하는 정신적 지도자로 꼽힌다. 1971년 부산에 해운정사를 창건했다. 선학원 이사장, 문경 봉암사 조실을 거쳤고 1998년과 2000년 백양사 1·2차 무차선대법회 초청법주, 2002년 국제무차선대법회 법주에도 몸담았다.
  • “산사서 하룻밤” 인기

    고즈넉한 산사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심신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산사 체험(템플스테이)이 남도의 인기 체험관광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5일 전라남도에 따르면 도내 산사 체험 참가자가 올 들어 10월 말 현재 2만 728명이나 되는 등 연말까지 2만 5000여명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보다 10% 정도 증가한 것으로 산사 체험이 남도의 대표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해남 미황사, 대흥사, 순천 송광사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찰 체험객이 다녀갔으며, 외국인이 가장 선호한 사찰은 나주 심향사(367명), 순천 송광사(259명), 구례 화엄사(203명) 등이다. 미황사는 하룻밤 산사 체험을 통해, 삶에 지친 현대 도시인들이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기본 프로그램 외에 어린이 한문학당, 청소년 문화학교 등을 365일 상시 운영해 전국적인 성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나주 심향사는 다문화 가정 및 외국인 근로자 프로그램, 사찰 음악회 등으로 외국인 참여가 높은 사찰이다. 최동호 전남도 관광정책과장은 “국내외 관광객의 한국 불교문화 이해를 위한 산사 체험 공간은 물론 주변 관광지와 연계된 프로그램 개발을 적극적으로 유도해 나가겠다.”며 “이를 통해 남도 산사의 정갈한 음식과 바쁜 도시인들의 하룻밤 안식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남도 내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은 장성 백양사 등 18개 사찰이며, 전남도에서는 도내 대표 체험관광상품인 템플스테이 운영 활성화를 위해 운영비 및 홍보물 제작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무안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전국플러스] 전남 주요사찰 방화선 구축

    전남도내 주요 사찰에 방화선이 구축된다. 9일 전남도에 따르면 봄철 산불 예방을 위해 11개 사찰 주변의 칡덩굴과 잡목 등을 제거해 폭 15m 이상의 방화선을 만든다. 산불이 날 경우 사찰과 문화재 등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방화선이 구축되는 곳은 ▲여수 흥국사 ▲구례 천은사 ▲나주 다보사 ▲화순 쌍봉사 ▲장성 백양사 ▲곡성 도림사·태안사·관음사 ▲보성 대원사 ▲해남 대흥사 ▲강진 백련사 등이다.
  • [학술·종교플러스] 청화 대종사 기리는 불교사상 학술강연·전시회

    사단법인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와 전남 장성 백양사는 26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청화(淸華·1923~2003) 대종사를 기리는 ‘불교사상 학술강연·전시회’를 개최한다. 학술강연에는 박성배 스토니브룩 미국 뉴욕주립대 종교학과(불교학) 교수가 나서 스님의 염불선 수행, 원통불법 사상 등에 대해 되짚어 본다. 스님의 유묵 작품 등을 내거는 전시회는 기념관 1층 나무갤러리(26~12월 2일)와 광주 대동갤러리(12월11~16일)에서 열린다. (062)381-0070.
  • [환경플러스]

    ●백암산 생태체험 여행 인기 내장산 국립공원 백암사무소(소장 정석원)가 시범 운영중인 ‘비자향 가득한 백암산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생태체험 프로그램이 탐방객과 지역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생태체험 프로그램은 백암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백양사에서 숙박하거나 야영장에서 캠핑을 하면서 자연속에서 휴식과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탐방객들은 복분자 따기, 곶감깎기, 차 만들기, 천연염색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생태관광은 20명 단체로, 전화와 인터넷으로 신청이 가능하다. (061)392-7288. ●함양 지리산문화제 6~7일 영·호남 2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되어 있는 지리산권 시민·사회단체협의회가 주관하는 지리산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지리산의 자연과 문화를 담은 ‘제4회 지리산 문화제’가 6~7일 양일간 경남 함양군 상림 야외무대에서 개최된다. 6일 밤에는 전야제로 ‘찾아가는 마을영화관’이 개설되고, 7일에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노래한 작가들 사인회, 사진전, 노래공연, 천년숲 생태체험 프로그램 등이 열린다.
  • [도시와 산] (25) 전남 장성 백암산

    [도시와 산] (25) 전남 장성 백암산

    운문일영무인지(雲門日永無人之·운문의 해는 긴데 찾아오는 이 없고)/유유잔춘반낙화(猶有殘春半花·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일비백학천년적(一飛白鶴千年寂·백학이 한번 나니 천년 동안 고요하고)/ 세세송풍송자하(細細松風送紫霞·솔솔부는 솔바람이 붉은 노을을 보내는구나).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양사 진입로에 들어서면 조그만 안내판에 조계종 5대 종정을 역임한 서옹(1912~2003년) 스님이 남긴 시구를 만날 수 있다. 이 사찰의 방장으로 지내다 2003년 12월13일 입적하기 며칠 전 지은 열반송(涅槃頌)이다. 고려 말~조선조엔 이색, 정몽주, 김인후, 송순 등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백암의 절경을 노래하기도 했다. 백암산은 깎아지른 듯한 병풍바위로 백양사를 품에 감싸고 있다. 해발 741.2m의 상왕봉을 정점으로 전남 장성군 북하면과 전북 순창군 복흥면, 정읍시 입암면에 걸쳐 있다. 봄·여름은 안개 낀 골짜기와 원시림을 선사하고, 가을은 곱디고운 단풍으로 물든다. 겨울과 이른 봄엔 고로쇠 물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매년 단풍철엔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진입로가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이다. 북동쪽과 맞닿은 내장산, 북서쪽의 입암산과 더불어 ‘내장산국립공원’이라 불린다. 단풍의 유명세는 내장산에 밀리지만, 정작 산악인들은 백암산을 ‘으뜸’으로 친다. 산세와 풍광이 빼어나 예부터 사찰이 많고 골마다 천년 역사가 살아있다. 장성문화원 김진노(46) 사무국장은 “천년 고찰 백양사는 장성군의 얼굴이나 다름없다.”며 “사찰에 얽인 설화나 전설 등을 관광문화 콘텐츠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학이 날개를 편 백학봉 산 이름은 중턱에 자리한 백학봉(白鶴峯·651m)에서 유래했다.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의 하얀 바위가 가파르게 솟아 있다. 늦은 오후 석양이 바위를 비추면 거대한 거울 병풍이 백양사 골짜기를 비추는 형상이다. 밑자락에 고불총림 백양사가 자리하고 있다. 많은 스님이 수행 정진하는 절이란 뜻의 총림이 붙을 정도로 법력이 높은 곳이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선사가 세웠다. 그때 이름은 산 이름과 똑같은 백암사(白巖寺)였다. 조선 선조 때(1574년) 백양사로 고쳤다. 환양선사가 백련암에서 7일간 백연경을 설법하는데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렸으며, 이 가운데 흰 양이 한마리 섞여 있었다. 법회가 끝나는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저는 본래 이 산에 사는 양인데 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사람으로 환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날 영천굴 아래서 죽어 있는 흰 양을 나무꾼이 발견해 화장해 주었다. 그 이후로 백양사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백양사 이외에도 서옹 등 큰스님들이 주로 머물던 운문암, 동학혁명 당시 전봉준이 관군에게 붙잡히기 전 3일간 머물렀던 청류암, 천연 동굴로 이뤄진 영천암, 약사암, 비구니승의 도량인 천진암 등 수많은 암자가 흩어져 있다. ●빼어난 풍광·희귀 동식물의 보고(寶庫) 백암산은 빼어난 경관 못지않게 생태계의 보고로 통한다. 백암사무소~백양사에 이르는 1.5㎞ 남짓한 숲길은 가히 비할 데가 없다. 단풍철이면 더욱 그렇다. 하늘이 쳐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아기단풍과 수령 700년 된 갈참나무, 노송, 비자나무 등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절문앞 쌍계루와 연못은 백학봉과 어울려 ‘대한 8경’으로 꼽힌다. 숲길 여기저기엔 개화철을 맞은 상사화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스님과 처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전설을 담은 슬픈 꽃이다. 이영숙(28·여·광주 남구 봉선동)씨는 “단풍나무 길을 걸으면 내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며 “집에서 차량으로 40분쯤 거리여서 맘 내킬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백암산과 내장산 일대엔 1653종의 동물이 분포한다. 하늘다람쥐, 사향노루, 수달, 담비, 까막딱따구리 등 80여종의 포유류와 조류가 있다. 이에 따라 각종 동식물을 탐방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김모(13·광주 서초등학교 6년)군은 “사슴벌레 등 희귀한 곤충류 등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 희귀 식물도 지천이다. 절 뒤쪽의 비자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153호이다. 이곳이 우리나라 비자나무의 북방한계선이다. 사자봉 동쪽의 운문암 주변에는 아열대성 상록활엽수인 굴거리나무 숲(천연기념물 제91호)이 자리한다. ●산행코스는 순탄 산세에 비해 등산로는 순탄한 편이다. 백양사~약사암~영천굴~백학봉~상왕봉~사자봉~가인마을에 이르는 8.5㎞ 구간을 많이 이용한다. 영천굴~백학봉은 급경사이지만 백학봉~정상 능선은 경사가 완만하다. 정상(상왕봉)~순창새재~소죽엄재~까치봉~ 신선봉~내장사에 이르는 횡단코스는 8시간 정도 걸린다.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더라도 등산 거리는 10㎞ 안팎으로 당일 산행이 가능하다. 장성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장성주민들 백암산 이름 되찾기운동 전남 장성군은 몇년 전부터 ‘잃어버린 백암산 이름 되찾기’에 나서고 있으나 전북의 반발을 잠재우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2년 전 전북 정읍시와 명칭 개정 문제를 놓고 극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지금껏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 문제는 정부가 지난 1971년 내장산·백암산 등을 한데 묶어 ‘내장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내장산국립공원의 총 면적 81.715㎢ 중 백암산이 차지하는 공간은 42%인 34.211㎢이다. 나머지 38.045㎢와 9.459㎢는 각각 정읍시와 순창군에 속해 있다. 장성 주민들은 1970년 후반 지역 유림들을 중심으로 공원명칭 개정안을 국회와 건설부(국토해양부 전신) 등에 제출하는 등 백암산 이름 되찾기에 강한 의지를 표시해 왔다. 2007년 9~12월 주민 3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와 환경부 등에 제출한 뒤 국립공원 명칭을 ‘내장산·백암산 국립공원’으로 고쳐줄 것을 요구했다. 백양사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산문폐쇄’와 사찰소유지 국립공원 해지를 위한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며 한때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사찰 측은 백암산이란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고문헌 등에서 수백년간 사용돼온 만큼 하루빨리 이름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전남·전북도의 광역단체장 협의가 이뤄지면 현행 ‘자연공원법’을 변경해 이름을 고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지자체 간 첨예한 대립으로 협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성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역사신탁운동 국내서 첫 발

    근·현대사적 보존 가치가 높은 건물을 직접 사들여 복원하는 ‘역사신탁’(History Trust) 운동이 국내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시민과 종교인, 문화인, 역사학자들이 주축이 된 ‘역사를 여는 사람들’은 28일 서울 예장동 문학의 집에서 발기인 대회를 열고 남산 역사신탁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 소설가 서해성씨, 지선 백양사 주지스님,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박원순 변호사 등 50여명이 발기인이다. 역사신탁은 자연·문화자산 보호를 기치로 활동하는 내셔널 트러스트(The National Trust) 운동과 비슷한 맥락이다. 첫 과제는 조선통감 관저터 복원. 내년이 경술국치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이 곳은 1910년 8월22일 한일합방 조약이 맺어진 ‘치욕의 장소’다. 관저는 남산 중턱에 2층 건물 2동짜리 왜식 목조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은행나무 한 그루와 관저 터였음을 알리는 판석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 단체는 내년 8월29일 복원을 목표로 한·일 역사학자, 건축가들로 복원위원회를 구성해 국내·외 모금활동 및 보존 서명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주요 발기인인 소설가 서해성씨는 “남산은 한국 근대사의 주요 배경이 되는 곳이지만 역사의 기억인 건물들은 허물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단체는 옛 중앙정보부 본관(현 서울유스호스텔) 등 건물 4곳을 아시아인권·평화박물관으로 개조한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2011년 6월10일(중정 창설 50년)을 건립 목표로 하고 있다. 유엔·아우슈비츠박물관을 모델로 삼고 있다. 그는 “중정 건물도 현대사의 한 단면이다. 앞서 서울시청, 국립중앙박물관 때처럼 역사적 고민없이 헐리게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역사신탁의 목적은 두가지다. 역사적 경관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하면서 시민들이 보존, 운영의 주체가 되는 것. 서씨는 “땅은 고정불변의 존재지만 그 위에 들어선 건물과 기억은 인간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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