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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범암살 관련 의혹/전봉덕씨 15일 출국

    백범 김구선생 암살사건 관련설로 의혹을 사고 있는 당시 헌병 부사령관 전봉덕씨(82·미 로스앤젤레스 거주)가 지난 10일 일시 귀국했다가 15일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김포공항 당국에 따르면 전씨는 자식을 만나기 위해 지난 10일 입국했다가 백범암살에 대한 진상이 보도되자 15일 하오3시 로스앤젤레스행 노스웨스트항공 024편으로 출국했다는 것이다.
  • 백범암살 진상조사/정부,자료제공 협조/정 총리,청와대 보고

    노태우대통령은 16일 『북한이 지난 9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핵안전협정 비준을 통보한 것은 매우 의미가 큰 진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남북대화에 임하고 있는 관계부처는 보다 긴밀히 협조하여 각분과위의 진전을 종합적으로 조정해 나가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정원식국무총리로부터 주례국정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같이 지시하고 『남북대화가 우리가 희망하는 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각은 진전단계 마다 그 성과와 의미를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리도록 하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정부가 확고한 의지를 갖고 실적을 쌓아 나간다면 남북관계개선에 획기적인 진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인식시켜 나가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정총리는 보고에서 『백범 김구선생 암살에 대해 정부가 직접 나서서 조사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매우 어려우나 관련학회등 권위있는 학술단체나 국회가 진실규명을 위한 활동을 벌인다면 자료제공등 필요한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 국무회의

    ◎49년 안두희 신병 처리과정 보고/김법무/교육감 사기진작 위해 봉급인상/이내무 제16회 국무회의는 증권거래법시행령 개정안과 저작권법시행령개정안등 재무·내무·문화·건설부등 4개부처 관련 현안 대통령령안 6건과 외무부등 3개부처 일반안건 4건등 모두 10건의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안건중 특별히 논의가 길어지거나 장시간 토론한 내용은 없었으나 최근 크게 논란이 된 백범 김구선생암살사건에 대한 정부측 입장이 정리됐다. 김기춘법무장관은 지난49년 6월2일 김구선생 암살사건이후 범인 안두희씨의 신병처리과정등 일지를 연대순으로 자세히 보고. 김장관은 사건보고뒤 『지난 60년 4·19직후 김구선생시해 진상규명투쟁위원회가 안두희를 고발,이에따라 고발로 사법처리가 매듭됐다』고 말하고 『때문에 이미 일단의 사법처리가 끝났고 더욱이 15년인 공소시효도 지나버려 공소제기를 전제로 한 검찰·경찰등 수사기관의 수사착수는 법률적으로 불가한 상태』라고 보고. 김장관은 그러나 『정부가 역사적 진실규명을 위한 작업에 소극적이어서는안될 것』이라면서 『이같은 판단아래 당시 사건에 대한 재판기록이나 신문·진술조서등 관련자료들에 대한 조사활동에 적극 협조할 방침』이라고 피력. 김진현과기처장관도 이와관련,『대한민국 정부는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고 김구선생은 임시정부의 상징이었던 인물인 만큼 정통성 구현차원에서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고 부연. 정원식국무총리는 이에대해 『김법무장관의 보고대로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재조사하는것은 법률적으로 어렵다 하더라도 관련학회나 권위있는 학술단체가 진실규명을 위한 활동을 벌인다면 관계부처는 민족정기의 구현과 역사적 진실규명차원에서 자료제공 등 필요한 협조를 아끼지 말도록 하라』고 지시. 정총리는 이어 『국회가 이같은 활동을 벌이는 경우에도 최선을 다해 협조하기 바란다』고 당부,일부 의원들의 진실규명 활동움직임에 협조할 것임을 시사. 이날 상정된 안건 가운데 내무부의 「지방공무원보수규정중 개정안」에 대해 이동호내무장관은 『이 개정안은 시·도 교육위원회에서 선출된 교육감 봉급월액을 직할시장 또는 도지사와 같게 하고 지방별정직공무원으로 임용되는 보건진료원의 종전 경력을 공무원 유사경력으로 인정하도록 해 이들의 사기를 높이려는데 있다』고 안건제안 이유를 설명. 김장관은 『보건진료원이 지방공무원으로 된 근거는 「농어촌등 보건진료를 위한 특별조치법」개정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이에따라 의무직군의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의료업무수당을 별정직 또는 보건진료원에게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고 보고. 이수정문화부장관은 「저작권법시행령중 개정안」에 대해 『저작권에 관한 사항의 심의및 분쟁조정을 담당하고 있는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의 위원장을 비상근에서 상근으로 하여 국내외적으로 증가하는 저작권에 대한 사항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도록 했다』고 보고. ▷의결안건◁ ◇농어촌도로정비법시행령(안)◇지방공무원 보수규정(개)◇중소기업은행법시행령(개)◇증권거래법시행령(개)◇저작권법시행령(개)◇고속국도로선지정령(개) ◇대한민국정부와 요르단하쉬마이트왕국정부간의 대요르단 하쉬마이트왕국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공여에 관한 각서교환(안)◇실업계고교실험실습기자재확충사업을 위한 세계은행 차관협약체결(안)◇기초과학교육 연구기반조성사업을 위한 세계은행 차관협약체결(안)◇1992년도 중소기업제품구매계획(안)
  • “백범암살 자작극 처리/이승만대통령이 지시”/당시 수사검사 주장

    백범 김구선생 암살사건당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이었던 최대교변호사(91)는 15일 『사건처리과정에서 김익진 당시검찰총장(작고)으로부터 이승만대통령이 「한독당의 내부자작극으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 백범암살범 배후 규명/민주,조사단 구성키로

    민주당은 14일 백범 김구선생 암살범의 배후를 철저히 조사하기 위해 당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키로 했다.
  • 미 관련설 근거없다/주한 미문화원

    주한미국문화원 시어즈대변인은 14일 백범 김구선생암살사건에 미국이 관련돼 있다는 안두희씨(75)의 주장에 대해 『주한미국대사관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을 본국정부와 논의해 곧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어즈대변인은 이어 『현재로서는 미국이 백범암살에 관련돼 있다는 것은 근거없는 개인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 역사의 진실은 밝혀져야(사설)

    범행후 지난 43년동안 단독범임을 주장해오던 백범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씨가 자신의 배후에 대해 입을 열었다.그는 김창용 당시 특무대장의 암시적인 사주를 받고 범행했다고 고백하고 있다.그동안 대충 짐작되어 오던 일이기는 하지만 범인의 입에서 나온 이 자백은 새삼 우리를 분노케 한다. 해방후 좌우의 대립과 그에 따르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우리는 민족의 지도자들을 흉탄에 잃는 비극을 겪었다.45년 송진우의 암살에 이어 47년에는 장덕수·여운형이 암살 당한다.그리고 49년에는 김구가 쓰러진다.특히 그 당시의 국정은 백범에게 기대하는 바가 적지않음으로 해서 그의 참변에 대해서는 온 국민이 통곡했다.일제가 엄청난 상금을 내걸고 잡으려 해도 못잡았던 독립투사를 동포의 손으로 잃게 된 아픔의 통곡이었다. 백범의 암살보다도 더 국민을 분노케 하고 어리둥절케 한 것이 범인의 당당한 활보였다.범행 이듬해 6·25가 터지자 장교로 복직되고 대령까지 진급 예편되면서 군납공장을 경영하기도 한다.그 대목이 국민들에게는 의혹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배후세력의 퇴조와 함께 그 또한 어려운 은신생활을 해야 했지만 어쨌거나 이 민족의 죄인은 지금도 살아있는 75세의 노인이다. 『죽어가는 새의 울음소리는 애처롭고 죽어가는 사람의 말은 선하다』는 증자의 말이 있다.민족정기 구현회 권중희회장의 끈질긴 추적도 주효했다 하겠으나 안씨 자신도 인생의 황혼길에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심경으로 입을 열었던 것이 아닐는지.불행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가 생전에 그 자신의 입으로 배후를 밝힌 것만은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밝혀져야 할 진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고도 하겠기 때문이다. 앞으로 안씨 자신이 더 말을 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입을 열었다 해도 미국으로 이민 가 있는 자녀들이 걸려서 말을 못할 대목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또 한낱 하수인이었던 그는 있을지도 모르는 배후의 배후나 횡적인 음모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었을 수 있다.그러므로 그는 「김창용 사주」를 밝힌 것이 한계라고 할 것인지 모른다. 배후의 배후를 두고는 여러가지 말들이 재생되고 있다.범인이 활보하고 다닐 때부터 나돌던 말이다.이는 결국 당시의 고위층으로 귀결되는 「추리」이다.우리는 있을지도 모르는 배후의 배후에 대해 과학적·논리적으로 조명을 비치는 노력에 대해서는 찬성한다.그러나 그 당시의 정치적 입지조건으로 보아 이러저러 했으리라는 심증만으로 왈가왈부하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찬동하지 못한다.증거없는 심증에 대한 감정의 강변은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한 자해행위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CIA의 전신인 OSS의 모중령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암살에 대한 암시를 받았다고 말한 부분에 대한 해석 역시 그렇다.CIA의 협조가 있어서 CIA가 공작한 것으로 나타난다면 모를까,한 중령의 사주를 CIA본부로까지 연관짓는 단정도 신중한 태도라 할 수는 없다. 때늦은 고백이지만 노경의 「선한 말」이다.다른 민족지도자의 암살배후도 소연히 밝혀졌으면 한다.
  • “김창룡도 하수인 불과”/정부차원의 「배후」 수사 요구

    ◎백범아들 김신씨 백범의 둘째아들로 교통부장관을 지냈던 김신씨(70)는 14일 상오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강당에서 백범 암살범 안두희씨의 배후증언과 관련,기자회견을 갖고 『김창용의 지시에 따라 범행을 저질렀다는 안씨의 증언으로 배후의 일각이 드러난 이상 정부차원에서 암살배후를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우종씨(88·백범기념사업회 전회장)는 『안씨나 김창용은 하수인에 불과하다』면서 『백범시해사건은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려는 세력과 친일세력이 결탁해 저지른 것으로 당시 정권차원의 만행이었다』고 주장했다.
  • “장택상 수도청장 암시 받았다”/백범암살 안두희회견

    ◎“CIA개입 주장은 사실무근”/“배후는 김창룡·노덕술·최운하등 4명뿐”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배후를 43년만에 밝힌 안두희씨(75)는 14일 하오 『장택상 김창룡 노덕술 최운하씨 등 4명으로부터 김구선생을 암살해야 한다는 강력한 암시를 받고 이에 공감해 암살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안씨는 이날 문화방송과의 회견에서 『47년 월남한후 서북청년단에 가입해 활동할 당시 김창용등으로부터 「빨갱이들이 쫓기면 모두 경교장으로 꼬리를 감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면서 『이들로부터 서북청년단이 빨갱이를 때려잡는데는 최고인데 왜 아무 힘도 못쓰느냐는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세뇌당해 암살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안씨는 『그러나 이들 4명외에 다른 배후인물은 없었으며 어느 누구로부터도 직접적인 암살지시를 받은 바는 없었다』면서 『미CIA가 개입됐다는 이야기는 권중희씨등으로부터 몽둥이로 맞아 억지로 한 이야기일뿐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장택상씨는 지난 46년9월17일 초대 수도경찰청장으로 임명돼 48년8월4일까지재직했으며 노덕술씨는 2대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으로,최운하씨는 2대 수도경찰청 정보과장으로 46년9월부터 50년5월까지 재직했다.
  • “김창룡 암시받고 백범 살해”/안두희씨 43년만에 범행동기등 밝혀

    ◎권중희씨 3명에 증언녹음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범 안두희씨(75)가 당시 김창용특무대장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한 책임자로부터 암살의 암시를 받았다고 밝힌 것으로 권중희민족정기구현회회장(56)등이 13일 주장했다.이날 육철희한독당동지회청년부장(30),원궁재반민족연구소회원(36)등 3명과 함께 낮12시30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우당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권씨는 『김특무대장과 CIA중령이 여러차례에 걸쳐 백범은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문제의 인물이라고 말해 그를 살해하라는 암시로 받아들였다』고 말한 안씨의 육성 테이프를 공개했다. 이들은 12일 상오11시부터 하오8시30분까지 9시간30분동안 인천 중구 신선동 동영아파트로 안씨를 찾아가 추궁한 끝에 이같은 증언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안씨는 반도호텔 커피숍과 조선호텔 건너편에 있는 「대륙상사」로 위장된 특무대사무실에서 김대장 등과 접촉해 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안씨는 이들로부터 『백범은 제거해야 할 인물』이라는 말을 듣고 암살하는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고 했다. 안씨는 한국독립당원인 홍종만에게 접근,49년 2월 입당과 함께 김구선생을 만나게 되었다고 권씨 등은 밝혔다. 그는 3∼4차례 경교장에 드나들면서 기회를 노리다 49년 6월26일 우연히 독서를 하고 있는 김구선생을 보고 암살을 결행한 것이며 암살일자를 미리 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권씨등은 전했다.권씨 등은 안씨가 사건 당일 헌병대로 연행됐다가 그날 밤 특무대로 이송돼 김대장으로부터 『안의사 수고했소』라는 말을 듣고 술·불고기·냉면·담배 등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특별대우를 받은 것으로 주장했다.
  • 백범등 순국선열 17위/영정봉안·합동추모제/효창원 의열사서

    임시정부 의정원 초대의장이었던 석오 이동령선생과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선생 등 순국선열 7위의 영정봉안 및 제14회 합동추모대제전이 13일 하오2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안 의렬사에서 효창공원순국선열추모위원회(위원장 김재홍)주최로 열렸다. 이날 이곳에 처음으로 영정이 봉안된 7인 선열은 백범·석오선생외에 임시정부국무위원을 지낸 차리석·조성환선생과 이봉창·윤봉길·백정기의사 등이다. 이날 추모대제전에는 이강훈광복회장을 비롯,독립유공자들과 유가족,전두환전대통령·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김대중민주당공동대표 등 각계인사와 시민등 4백여명이 참석했다.
  • 오늘 상해임시정부 수립 73주년/7요인영정 효창원에 봉안

    ◎「추모사업 40년」… 남다른 감회의 김재홍위원장/석오·백구선생등 초상/영정모실 의열사건립에만 12년 진력/“임정기념관 건립이 꿈… 정부수립일 재조정 돼야” 13일은 1919년 중국의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지 73주년이 되는 날. 이날을 맞아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자리잡은 효창원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의정원장과 주석을 지낸 석오 이동령선생과 역시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선생등 이곳에 묻혀있는 임정요인 7인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열린다. 그동안 썰렁하기만 했던 사당 의렬사에 일곱분 선열들의 영정이 이날 비로소 봉안되는 것이다. 지난 52년부터 순국선열들의 추모사업에 헌신,78년 「효창원 순국선열추모위원회」를 만들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온 이 위원회 위원장 김재홍씨(66·한국전통문화사상연구소장)에겐 눈물이 나올만큼 흐뭇한 일이다. 이날 14번째 합동추모대제전과 함께 봉안식을 갖는 영정의 주인들은 석오선생과 백범선생을 비롯,임정 국무위원을 지낸 조성환·차리석선생과 일본왕을 저격했던 이봉창의사,일본군 장성등 10여명을 살상시킨 윤봉길의사,주중 일본공사를 폭살시키려 했던 백정기의사 등이다. 이들 선열의 일생이 조국의 수난사와 운명을 같이 한 파란만장한 것이었던 것처럼 선열들이 잠들고 있는 효창원의 역사 또한 우여곡절이 이만저만 아니다. 효창원은 원래 조선왕조 정조대왕의 맏아들인 문효세자와 그의 생모인 의빈 성씨,순조의 후궁 숙의 박씨 및 영온옹주의 묘가 있던 곳. 그러나 조선왕조를 침탈한 일본은 서울 도심에 있는 이같은 사적을 제거하기 위해 공원법을 만들어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뜯어 고치고 세자묘도 경기도 고양군의 서삼릉으로 이장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조국의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백범선생등은 46년 7월 아끼고 사랑했던 3의사의 유해를 일본으로부터 봉환,안중근의사의 가묘와 함께 이곳에 안장해 일본인들의 잘못을 꾸짖었다. 이어 48년 9월에는 이역만리 중국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치다 순국한 석오선생과 차선생의 유해도 옮겨왔고 다음달에는 환국해 활동하던 조선생도 운명,이곳에 안장됐다. 그리고 이듬해 6월26일 백범선생마저 흉탄에 서거,7월5일 국민장으로 이곳에 봉안됨으로써 오늘의 선열묘역을 이루게 됐다. 47년 육사를 졸업하고 6·25동란에 참전했다가 부상으로 예편한 뒤 순국선열들의 추모사업에 뛰어든 김씨는 자유당정권때 효창공원운동장이 개설되면서 울창했던 공원안의 나무들이 마구 베어지고 철없는 아이들이 선열들의 묘위를 올라가 뛰어노는 등 놀이터로 변해가는 안타까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더이상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게된 지난 78년 이인·이희승·이항령씨 등 40여명과 함께 「효창원 순국선열추모위원회」를 발족시키고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이듬해부터 해마다 임정이 수립된 4월13일이면 추모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요로에 건의를 거듭하기 10년 넘어 마침내 지난 88년 사당이 착공됐고 89년에는 사적 제330호로 지정됐으며 90년 11월 의렬사가 준공됐다. 그러나 사당에 모실 제대로 된 영정이 없어 또한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7억원가량으로 추산되는 영정제작비를 마련할 길이 막연한 것이었다.시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5천만원 이상의 지원은 어렵다고 했다. 이리뛰고 저리뛰던 끝에 재일동포실업가 신해성씨(56)가 거금 5억원을 냈고 한국역사인물연구회장 옥문성씨가 그 돈으로 영정을 모두 새로 그려 이번 추모식에서 봉안식을 갖게 됐다. 효창원에 사당을 짓는데만 12년의 세월이 걸렸고 그후 7인의 여정을 준비하는데도 2년이 걸렸다. 『이곳에 임정기념비와 기념관을 세우는 등 앞으로 할일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나라 민주공화제의 제1공화국을 임시정부로 재정립하는 일과 이에 따른 정부수립일 및 제헌절을 재조정하는 일도 이뤄져야 한다』는 김씨는 『선열추모사업은 몇몇 개인이나 유족들에게만 떠맡겨질 일이 아니라 국민들의 관심속에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안두희씨,백범묘소찾아 참회 눈물

    지난 49년 6월26일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씨(76)가 28일 하오5시10분쯤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묘소를 참배했다.안씨는 베이지색 코트,검은 바지차림으로 백범묘소에 도착,50㎝높이의 대리석제단에 얼굴을 묻고 15분간 흐느끼다 소리내어 울었다. 안씨는 『지난 87년 「민족앞에 진실을 밝히라」며 나에게 테러를 가했던 권중희씨(51·마포구 도화1동 363)가 오늘 아침 집으로 찾아와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해 사죄를 표시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 백범 암살 배후 없다/안두희씨 거듭 주장(조약돌)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씨(75·인천시 중구 신흥동)는 11일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위해하려한 권중희씨(55·서울 서대문구 북가좌1동 384의 10)에게 『백범 암살의 배후는 없다』면서 『자신은 군입대전 서북청년당 총무부장이었으며 당시 미 정보기관인 OSS소속 중위의 부탁으로 정치정보를 수집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또 백범 살해동기는 자신이 정보를 수집한 결과 여순반란사건,국회 프락치사건등에 한독당 좌익세력들이 많이 가담한 사실을 알아내고 한독당 당수인 김구선생을 찾아가 『좌익세력들과 함께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따지자 김구선생이 『지금은 그런 것을 논할때가 아니며 좌·우익 모두 힘을 합쳐 통일을 위해 노력할 때』라며 자신을 꾸짖은데 격분,김구선생을 살해했을 뿐 『배후는 없다』고 주장했다.
  • 백범 묘소 찾는 귀국동포/서동철 사회부기자(현장)

    ◎중국서 영주 귀국… 「그때」기억 생생히 『영구 귀국한뒤 세번째 참석하는 백범선생 추모제이지만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 나오게 돼 더욱 뜻깊게 생각합니다』 26일상오 서울 효창공원에서 열린 백범 김구선생 41주기 추모예전에 참석한 유수송씨(53ㆍKBS교향악단 트럼펫주자)는 외아들 승남씨(25ㆍKBS교향악단 트럼펫부수석)를 추모제에 나온 백발이 성성한 노독립투사들에게 소개하기에 바빴다. 유씨의 부친 평파씨(지난47년 43세로 작고)는 중동임시정부의 경호대 대부(부장)이자 김구선생의 경호부관을 지냈다. 이 때문에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는 지난 88년2월 중국 상해에서 트럼펫 주자로 일하던 유씨를 한국에 초청했고 유씨는 귀국하자마자 영주 귀국을 신청,그해 6월23일 영주권을 받은뒤 부인 하유신씨(51ㆍ중국기공의사)까지 불러 KBS교향악단 주자로 일하며 고국생활을 시작했다. 유씨는 이때 아들 승남씨도 같이 불렀으나 당시 상해교향악단의 트럼펫 주자로 있던 승남씨는 『89년 일본순회연주를 마친뒤 귀국해 달라』는 악단측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지난해 10월 이 교향악단의 일본연주가 끝날 때까지 귀국을 늦춰야만 했다. 이 연주가 끝나자 바로 귀국한 승남씨는 아버지가 평단원으로 있는 KBS교향악단에 부수석으로 들어갔고 현재 우리나라 젊은 세대의 트럼펫 연주자로는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유씨에게는 김구선생이 「위대한 독립운동가」로보다는 「자상한 큰어른」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유씨는 『지난45년 중경임시정부의 주석이던 백범선생이 중경교외에 있던 우리집으로 자주 찾아와 어머니의 요리를 맛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백범선생은 당시 유씨의 어머니 송정헌씨(76)가 만든 만두와 국수를 특히 좋아해 자주 찾아 왔었다는 것이었다. 이날 추모식장에 나온 중경임시정부시절 백범선생의 비서 선우진씨(69ㆍ김구선생 추모사업협회이사)는 유씨를 만나자 『백범선생은 수행원들과 함께 유대부의 집을 자주 찾아가 음식을 들며 광복군의 입국항전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말하곤 했다』면서 『당시 겨우 국민학교 2∼3학년이던수송씨를 여기서 다시보니 마치 유대부를 다시보는 것 같다』고 반가워 했다. 이날 추모제에 처음 참석한 승남씨는 『여기에서 주위분들로부터 백범선생과 할아버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으니 할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 백범 선생 41주기 추모제/각계 5백여명 참석

    「백범 김구선생 41주기 추모예전」이 26일 상오11시 서울 효창공원 선생의 묘역에서 이강훈광복회장과 박영준독립유공자협회장,김대중평민당총재 등 5백여명의 각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우종 백범 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은 이날 추념사를 통해 『선생의 조국광복전 목표와 광복후 건국운동의 목표는 민족자주ㆍ민주ㆍ완전독립이었다』고 상기시키고 『이제 동구제국의 변화와 독일ㆍ예멘의 통일 등 세계정세가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한국의 통일은 민족ㆍ자주에 의해 이룩되어야 하며 강대국은 간섭의 마수를 거두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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