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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범 암살전 이 대통령 만나/안두희씨 회견

    ◎“범행 고무하는 말 들었다” 백범 김구선생암살범 안두희씨(75)는 24일 하오6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우당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범행직전인 지난49년6월20일 당시 경무대 대통령집무실에서 이승만대통령을 직접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이대통령으로부터 백범암살을 고무하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구체적인 암살일시와 방법에 대해선 자신이 속해있던 포병의 장은산사령관으로부터 명령받았으며 채병덕육군참모총장을 통해 신성모국방장관이 배석한 자리에서 이대통령을 만나 윗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으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경찰은 현장에 안씨를 데리고 나타난 권중희민족정기구현회회장(56)을 안씨에 대한 납치등의 혐의로 인천중부서로 연행,조사중이다.
  • 백범암살 안두희씨/권중희씨 등이 납치

    【인천=김학준기자】 백범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씨(75)가 23일 상오6시 인천시 중구 신흥동3가38 동명아파트502호 자신의 집에서 그동안 암살배후를 캐기 위해 끈질기게 안씨를 쫓아다니던 권중희씨(56·민족정기연구회장)등 4명에게 납치됐다. 부인 김명희씨(59)는 『평소와 같이 아침운동을 하려고 아파트문을 나서는 순간 권씨등이 문을 제치고 집안으로 들어와 나를 밧줄로 묶어 건넌방에 가둔뒤 중풍으로 몸이 불편해 안방에 누워있던 남편을 끌고나가 번호를 알 수 없는 승용차에 태워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 “백범선생 암살 장은산이 지시”/안두희 새 진술

    백범 김구선생 서거 43주기를 맞은 26일 백범암살범 안두희씨(75)는 『당시 장은산 포병사령관이 백범의 암살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 백범선생 43주기/효창원서 추모제

    백범 김구선생의 제43주기 추모제가 26일 상오10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내 고인의 묘소에서 거행됐다. 이날 추모제에는 백범의 장남 김신씨(70)등 유족들과 김영삼·김대중·정주영씨등 3당대표,국회의원,백범선생 기념사업회 회원등 5백여명이 참석,조국의 광복과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고인의 업적을 추모했다.
  • 백범유족 초청 격려

    노태우대통령은 25일 낮 백범 김구선생 서거 43주년을 맞아 아들인 김신 전 교통부장관,장손자 김진씨,장손녀 김미씨등 유족들과 백범기념사업회 장충식회장(단국대 총장)등 간부들을 청와대로 초청,격려했다.
  • 백범암살 배후 규명/정부에 법제정 촉구/진상규명위

    백범 김구선생 시해 진상규명위원회(회장 이강훈)는 29일 정부 및 국회에 백범암살 사건의 배후규명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 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위원회는 『범국민적 차원에서 백범암살 진상규명활동을 펼치기 위해 28일부터 해외동포를 포함,전국민을 대상으로 「1천만 서명운동」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 백범암살진상규명위 어제한글회관서 출범

    「백범 김구선생시해 진상규명위원회」(회장 이강훈광복회 회장)는 27일 하오4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한글회관 2층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정식출범했다.이 자리에는 이시찬(88)한국독립당동지회 회장,채문식(67)민자당 고문,양순식(67)국민당 고문등 독립유공자및 정계인사와 권중희(56)·곽태영(57)·김용희(72)씨등 백범암살범 안두희씨(75)를 집요하게 추적했던 인사등이 참석했다. 이 위원회 김용희법정투쟁위원장은 『헌법에 현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승계한 것으로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임시정부의 수반을 시해한 사람들을 용납하는 것은 민족정기를 위축시키는 행위』라며 『백범 시해에 관련된 배후세력을 밝혀내 처벌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 장택상 전 국무총리 유족/국사편찬위장 고소/명예훼손 협의로

    장택상전국무총리의 셋째딸 장병혜씨(61)등 유족들은 15일 박영석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을 출판문에 의한 명예훼손등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장씨등은 소장에서 『박씨가 지난달 26일자 중앙일보의 백범 김구선생 암살배후와 관련한 인터뷰기사에서 「장택상 당시 외무부장관같은 사람들은 반민족분자의 머리부분」이라고 말해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 민족자존의 회복/우홍제 본사 편집위원(굄돌)

    오래전 사회정화와 도덕성회복 운동에 관계했던 원로 한분이 탄식조로 했던 말 한마디가 생각난다. 『해방이후에도 줄곧 친일파가 득세한 사회분위기속에서 애국이니 정의니 하는 말이 도대체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질수 있겠는가』 이분의 지적은 약소국가였던 이 나라 백성이 그토록 고대했던 해방을 맞았는데도 친일파가 계속 권세를 누리고 독립운동가는 외면을 당하다시피 했던 우리 현대사의 한 장이 국민들의 사회관 국가관을 비뚤어지게 만든 근인이란 것이었다. 항일독립투쟁에 나섰더니 3대째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는 중이며 친일했던 인사들은 3대째 잘 살고 있다 한다.독립운동을 하느라 일제로부터 핍박을 받아 가세가 기울어 졌으니 그런 와중에서 자식들이 제대로 배울수가 없었을 터이다.친일인사들의 경우는 물론 이와 정반대일게다. 얼마전부터 메스컴에는 백범 김구선생 살해범인 안두희의 자백과 배후조종인물들에 관한 기사가 계속 실리고 있다. 백범과 관련된 중국대륙에서의 독립운동이 해방후의 이 땅에서 홀대를 받은 뚜렷한 또 하나의사실로는 독립공채 보상문제를 들수 있을 것같다. 항일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해외에 거주했던 교포들을 대상으로 독립공채가 발행됐으나 해방이후 백범살해사건이 난 뒤엔 유독 중국에서 임시정부에 의해 발행된 공채에는 보상이 이뤄지질 않았다.까맣게 잊혀졌던 이 문제는 80년대초 한 국회의원의 노력에 의한 입법으로 세상에 자세히 알려져 겨우 해결됐다.그나마 그때까지 공채를 간직했던 사람들은 얼마 안됐고 일부는 선대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보상받기 보다는 가보로 보존하겠다고 말한것으로 기자의 취재기록에 남아있다. 민족적인 울분을 자아내는 정신대문제도 독립운동과 연관해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적잖은 것 같다. 선열의 몸을 바친 독립투쟁이나 정신대피해자의 억장이 무너져 내리던 통한은 모두가 분명히 일제만행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이와 관련,정신대피해에 대해 일본측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할 게다. 그러나 일제를 탓 하기에 앞서 친일파득세 독립운동가 쇠락의 과거잘못된 역사흐름을 재조명,이제부터라도 반성과 비판의 거울로 삼고 애국적 차원에서 자체적인 보상등의 방법으로 정신대패해자를 우리가 앞장 서 적극 감싸는 노력을 다해야 할 것같다. 일제가 준 상처를 스스로의 힘으로 치유해나가지 못한다면 민족자존을 바탕으로 한 새가치관 확립도 쉽지 않을 것이다.
  • “부친 백범암살과 무관/당시 의원 낙선… 안동에 칩거”

    ◎장택상씨 두딸 주장 건국초기 수도경찰청장을 지낸 고 장택상씨의 유족들은 4일 안두희씨가 장씨의 암시를 받아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했다는 주장에 대해 『안씨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덮어버리려는 의도에서 거짓말을 했으며 백범암살사건과 고인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주장했다. 장택상씨의 셋째딸인 병혜씨(61·미국뉴저지주거주)와 다섯째 딸인 병초씨(48·미국 메릴랜드주거주)는 이날 상오 기자회견을 자청,이같이 밝히고 『고인은 백범선생 암살당시인 49년 6월26일에는 경북안동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낙선해 쉬고 있었으며 외무부장관직 역시 이승만대통령과 정견을 달리해 취임3개월만인 48년 11월15일에 물러났으므로 이정권에 유리하도록 백범암살을 암시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 달아오르는 경선표밭… 민자 양진영 움직임

    ◎결속모임… 출마회견… 서로 “필승” 다짐/“JP도 우리편합류” 기세올리기/김후보측/“대의원민심 보여주겠다”/이후보측/공화계는 내부 혼선… JP,“내부정리” 나서 민자당의 대권후보 경선에 나선 김영삼대표·이종찬의원이 후보등록을 완료하고 25일 대규모 지지모임과 기자회견을 가짐으로써 대권후보 레이스가 공식화 됐다.양측은 모두 승리를 장담하고 있으나 장고를 거듭해온 김종필최고위원이 27일 김후보 지지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돼 초반 경선판세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후보 진영◁ ○…김후보 진영은 이날 상오9시 전국 15개 시·도에서 50명이상씩의 추천을 받아 대의원 1천3백81명의 서명으로 후보등록을 마친데 이어 민정계 위원장 및 전국구 당선자 등 88명의 민정계추대위 인사들은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범계파추대위 구성을 위한 확대회의를 열어 김후보에 대한 지지를 결의. 이날 상오9시30분부터 열린 김후보측 민정계 진영의 결속단합대회는 이치호의원의 사회로 김윤환 전총장의 인사말,김재순전국회의장의 격려사,김종호 전총무의 범계파추대위 구성동의,이웅희의원의 「우리의 입장」낭독 등의 순으로 약 1시간동안 진행. 김전총장은 인사말에서 『6·29정신과 3당 합당정신을 계승·완성시키기 위해서는 평생을 민주발전을 위해 싸워온 김대표가 민자당의 대통령후보로 추대돼 정권 재창출이란 역사적 소명을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 이날 참석자들은 『김대표만이 세대간·지역간·계층간의 갈등과 위화감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유일한 정치지도자』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김대표를 대통령후보로 추대해 연말의 대선에서 기필코 승리할 것을 다짐. 이날 김후보 지지를 결의한 원내외 지구당위원장들은 ▲서울 13명▲부산 6명▲대구 4명▲인천 3명▲광주 1명▲경기 8명▲강원 8명▲충북 5명▲전북 3명▲전남 4명▲경북 14명▲경남 14명▲제주 1명 등 모두 84명이었으나 나웅배의원 등 외유중인 위원장과 빙모상을 당한 이영창위원장 등 13명의 인사들은 불참. 때문에 총 1백57명의 민정계 지구당위원장중 현재 김후보 진영에 합류한인사는 54% 수준에 해당. 한편 이날 모임에서는 김대표추대위 공동위원장(민정계대표)에 권익현 전민정당대표를 선임. ◇…민정계의 지지결의에 이어 이날 낮 순수 민주계도 62명의 지구당위원장및 전국구당선자들이 모여 김후보 지지를 다짐. 최형우장관 주재로 열린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민자당의 대통령후보경선과 12월 대통령선거에서의 승리는 한개인 한정파의 승리가 아니라 이나라 정치의 전진이며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전제,『민주주의의 완결,국민화합을 위한 점진적 개혁및 국민통합을 위해 김대표가 대통령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결의. 김명윤고문은 격려사를 통해 『일부에서는 김대표를 대권욕에 사로잡혔다고 비난하지만 정치하는 사람이 대통령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면서 『김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3당합당정신의 순리』라고 역설. 한편 최장관은 이날 『김종필최고위원이 범계파추대위원장이 될 것』이라고 언급. ◇…경선정국에서 거중조정역을 자임하며 김대표·이의원 등 양후보에 대한 선택적 입장표명을 유보해온김종필최고위원이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김대표쪽으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 김최고위원의 측근인사들은 이같은 선택에 대해 『두 후보의 대선득표력을 저울질한 끝에 정권재창출을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YS·JP의 연대배경에는 모종의 「역할분담론」이 개재돼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 김대표와 김최고위원이 24일 시내 H호텔에서 비밀회동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는데 이와관련 김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YS의 대중적 기반과 JP의 경륜을 합쳐 국정을 운영할 경우 상호보완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 그러나 공화계는 그동안 김용채의원 등 대다수 중진의원들이 친금대표성향을 보여온 반면 김용환의원 등 일부 중진과 대전·충청권 소장파의원들이 반금대표입장을 표명하는 등 내부적으로 혼선을 빚은 바 있어 전체의 15·8%에 이르는 계파 대의원들이 김대표지지로 돌아설지는 미지수. 28일 출범하는 범계파추대위에는 김용채·구자춘의원과 최재구고문 등이 참여할 것으로 보이나 공화계 지구당 위원장 29명 전원이 가세할지 여부는 25·26일동안 진행될 김최고위원의 설득여부에 좌우될 듯. ▷이후보 진영◁ ○…이후보측은 24일 후보등록에 이어 이날 출마기자회견,선거대책본부 현판식을 가짐으로써 출마에 즈음한 의식을 모두 완료. 이후보측은 이제부터 대의원과의 직접 접촉과 개인연설회 등을 통해 세대교체·지역감정타파논리만 제대로 전파된다면 초반 열세가 충분히 만회되리라고 기대하는 눈치. 이후보 비서실장인 박범진당선자는 『우리는 거의 무에서 시작하는 만큼 앞으로 개척여지도 무한하다』며 『대의원의 민심이 어떤지를 보여주겠다』고 장담. 이후보진영 일각에서는 김종필최고위원이 김대표를 지지할 것이 확실시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으나 박당선자는 『김최고위원이 김대표 지지를 선언할 경우 함께 따라갈 대의원표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 ○…이날 상오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후보의 출마기자회견은 회견장을 가득 메운 대의원과 당원들의 박수 및 환호속에 시종 열띤 분위기로 진행. 이의원은 이날 상오9시 박태준최고위원,심명보·박철언의원과 양창식당선자등 7인 중진협멤버들과 함께 회견장에 도착해 참석자 3백여명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등단,회견문을 읽은뒤 곧바로 기자들과 일문일답. 이의원은 그동안 자신의 경력에 대한 비판이 많이 제기되어 왔던 탓인지 『국가안보가 중요시되던 때에 육사를 선택,안보에 기여한 것과 중앙정보부에 근무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답변. 이의원은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갖고 있으며 나도 부끄러운 것이 있지만 그것을 노출시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피력. 이날 회견에는 이한동·박준병의원을 제외한 7인 중진협 멤버를 비롯,윤길중고문과 김현욱·이긍령·이광로·이동진·고세진·오유방·이윤자·김중위·이건식·정원조·조남조·조기상·지대섭·유경현·이상하·남재두·이덕호·장경우·이영일·홍희표·김장숙·이호종·구천서씨등 30여명의 원내외지구당위원장과 14대 당선자들이 참석.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이후보캠프는 『할말은 다했다』고 만족해하면서 오는 28일의 관훈토론회와 개인연설회등에서 보다 구체적 내용들이 나올 것임을 예고. 이후보진영은 특히 이후보가 『공정한 경선이 되지 않을 경우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힌 사실에 대해 앞으로 여권핵심부가 김대표에게 지나치게 경사될 경우 「경선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 이후보는 당초 이번 회견에서 지구당위원장 지지서명과정에서 벌어진 회유와 협박을 조목조목 지적할 예정이었으나 최재욱대변인등이 『굳이 공개석상에서 김대표측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개진,이들 내용이 빠졌다는 것. 이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뒤 박최고위원,심명보·박철언의원등 20여명의 원내외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광화문사무실에서 이종찬후보추대위원회와 선거대책본부현판식을 거행. 이어 이후보는 선거대책본부관계자들과 국립묘지와 백범묘소를 참배한후 상공회의소에서 박최고위원,심명보·박철언의원등과 오찬을 함께 하며 결속을 다짐.
  • 백범기념관 건립 추진/노 대통령,내각에 지시

    노태우대통령은 24일 『정부는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회의 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백범선생을 기리는 기념관건립을 적극 검토하여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정원식국무총리로부터 주례국정보고를 받고 『우리가 아직도 백범선생의 기념관 하나 마련하지 못했고 백범선생기념사업회가 셋집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럽고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하고 이같이 말했다.
  • 백범암살/엇갈리는 증언… 진상규명 본격화해야

    ◎일제청산·단정반대로 이박사와 갈등/극우·친일파 조직적음모 여부가 초점/안 1년복역후 출감… “암시”발언 의무투성이 백범 김구선생 암살사건의 진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암살지령을 내린 배후는…? 사건발생 43년이 지나도록 줄곧 단독범행을 주장해온 암살범 안두희씨(75)의 최근 증언으로 이 사건이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안씨는 최근 두차례에 걸쳐 『김창용육군특무대장·장택상초대 수도경찰청장,노덕술수도경찰청수사과장,최운하수도경찰청정보과장 등이 나와 반공이념·인생철학이 같았으며 이들 모두 백범을 미워했다.누구로부터 암살지시를 받지는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알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증언해 갖가지 추측만 무성하게 낳고 있다.백범암살사건의 전말과 관계자들의 증언,앞으로의 사건전개 전망등을 짚어본다. ○안두희발언 계기 사건전말·관계자주장 재조명 백범은 1919년 중국의 상해로 건너가 이봉창·윤봉길의사등의 의거를 지도하는 등 독립운동에 몸바쳐 임시정부의 주석에까지 올랐다.그는 8·15해방을 맞아 45년11월 26년만에 광복 조국에 돌아왔다. ◎반탁운동에 앞장 백범은 서대문 경교장에 숙소를 정한 뒤 28년 이시영 이동령 등과 함께 중국에서 창당한 한국독립당을 이끌며 45년 12월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의되자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47년 11월 국제연합(유엔)은 남북총선거에 의한 독립정부수립을 결의하고 48년초 총선거감시위원단을 한반도에 파견했다. 그러나 백범은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은 남북분단을 고착화 시킨다』면서 5·10선거에의 참여를 거부하고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김규식과 함께 평양으로 가 김일성 김두봉등과 4자협상등을 벌였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백범은 8월15일 이박사를 대통령으로 한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경교장에 머물며 일제잔재의 청산과 통일정부수립 등의 노선을 견지,갈수록 이박사등과 거리가 멀어졌다. 이같은 상황아래서 49년 6월26일 정오 경교장 2층 집무실에 있던 백범은 육군포병사령부 소속 안두희소위가 쏜 4발의 총탄에 맞아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다. 안두희는 범행직후 『단독범행』이라고 밝힌뒤 헌병사령부 김병삼대위 등 헌병들에게 연행돼 육군중앙고등군법회의(재판장 원용덕소장)에서 「살인및 군인의 정치관여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이태원 형무소에 수감됐다.한달뒤 대전형무소로 이감된 그는 곧이어 징역15년으로 감형됐으며 백범 1주기를 하루 앞둔 50년 6월25일 6·25의 발발과 함께 형집행정지처분으로 석방됐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해 7월10일 육군소위로 복직됐으며 51년 국회질의에서 이같은 사실이 문제가 되자 소령으로 예편,강원도에서 식품군납업체를 경영하게 됐다. 그의 「단독범행」주장에 대해 49년8월 한독당 중앙상무위원회는 이대통령에게 ▲백범이 안을 응대한 시간이 겨우 3분에 불과하고 안과 같은 청년과 정치언쟁을 벌였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범인의 심리로 일시적 흥분에 의한 것이면 1발로 족할 것이며 저격후 8발의 탄환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권총을 던지고 체포당한 것은 안의 개인적 행동으로 간주할 수 없다▲경교장 경비경찰관의 손에 체포되는 즉시 난데없이 헌병대가범인을 데려간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등의 진상규명 요청서를 보내 의문을 제기했다.백범의 장례는 그해 7월5일 서울운동장에서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새로운 내용은 없어 백범암살에 대한 안두희씨의 최근 증언이후 안씨의 배후문제에 대한 또다른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으나 그동안의 증언들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새로운 것은 별로 없으며 안씨 역시 최근 두차례의 증언에서 일부 대목을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안두희씨(범인)=당시 백범을 암살하라는 직접적인 지시를 받지는 않았으나 김창용육군특무대장 초대수도경찰청장을 지낸 장택상씨와 친일경찰관으로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이던 노덕술,정보과장 최운하씨 등으로부터 백범을 암살해야 된다는 강력한 암시를 받고 공감해 범행했다. ▲김신씨(70·백범아들·전교통부장관)=김창용육군특무대장 등이 지시했다는 안씨의 증언은 빙산의 일각이다.이승만정권하에 있던 친일세력과 해방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한 세력을 중심으로 당시 군부와 경찰·정계 고위층을 망라한 정권차원의 배후세력이 선친살해에 관련되었다는 일부 증거를 갖고 있다.그러나 정확한 명령계통을 밝히지 못해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진상규명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 ▲최대교씨(91·변호사·당시 서울지검장)=사건직후 최초지휘때 김병삼헌병대위가 한때 경교장출입을 막기도 했다.권승렬법무부장관과 함께 대책을 숙의하기 위해 이범석국무총리 집에 갔으나 꿩사냥을 갔다고 해 신성모국방장관 집으로 가 아프다는 신장관을 겨우 만나 『경무대에 빨리 백범피살 사실을 알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자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가 됐다』고 말했다.또 검사장인 나도 모르게 범인 안씨에게 비밀당원증을 발급해준 김학규 한독당 조직부장 등 민간인 7명의 살인교사죄 구속영장을 김익진 당시 검찰총장이 직접 청구,한격만서울지법원장에 의해 발부됐다.이를 김총장에게 항의하자 『저 영감(이대통령 지칭)이 일체 비밀로 하라고 해서 그러니 양해해 달라』고 해 백범암살 수사가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얼마뒤 사표를 냈다. ◎“동족에 죽을일 없다” ▲선우진씨(71·당시 백범비서실장)=백범피격 하루전 대광고교 교감 박동엽씨가 찾아와 『옛 제자인 김정진소령을 만났더니 역시 제자인 오병순소위가 암살조에 가담,괴로운 나머지 털어 놓았다』고 밝혀 『몸조심 하십시오』라고 백범선생께 말했다.백범은 『동족에게 맞아 죽을 일은 하지 않았다』면서 이같은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을 박씨로부터 들었다. ◎인천에서 사격 훈련 ▲정관일씨(71·안씨와 육사특8기 동기생으로 포병사령부에 함께 근무)=안씨는 당시 장은산포병사령관의 지시로 인천앞바다 비밀사격훈련장에서 주5회 극비사격훈련을 받았다. ▲홍영기씨(74·국회의윈·당시 육군법무감실검찰과장)=안씨를 기소한뒤 채병덕육참총장이 부르더니 『안두희에게 몇년을 구형할 생각인가』고 물어 『살인범이니 마땅히 사형』이라고 대답했더니 『사형은 너무 심하니 징역10년만 구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후 은폐위한 사기 ▲한필동씨(72·사건당시 김창용특무대장과 같은 부대에 근무·미국거주)=김창용의 지시로 백범을 암살했다는 안두희씨의 증언은 진짜 배후인물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다.내가 알기로는 신성모국방장관·채병덕육참총장,김태선내무장관 등의 비호아래 장은산포병사령관이 요원들을 훈련시키고 전봉덕헌병사 부사령관이 작전을 지휘하는등 백범암살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김교식씨(56·현대역사자료연구소장)=안씨의 증언은 앞뒤가 맞지않으며 직접 명령을 내렸던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사건뒤 수사과정에서 처음 만난 김창용을 끌어들였을 뿐이다.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장택상 노덕술 최운하씨 등도 암살사건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김태선씨 또한 김지웅을 지원하며 경찰쪽에서 별도의 암살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포병장교인 안씨와 접촉이 있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암살계획의 시나리오는 포병사령부쪽에서 실행을 맡고 헌병사령부쪽에서 현장을 감시하며 육군정보국제3과에서 수사종결처리를 맡는 것으로 짜여진 것으로 보는게 옳다. ○서거43년… 「백범암살 재조명」을 보며/박성수 정문연교수 ◎민족정기 바로잡는 계기로/「통일민족주의」의 큰뜻 되새겨야 할때 최근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범 안두희가 범행 40여년만에 드디어 일부 배후 인물을 밝혔다 하여 세인을 놀라게 하고 있다.그러나 그의 증언 내용이 겨우 빙산의 일각을 드러냈을 뿐 바다속의 엄청난 얼음덩어리는 여전히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잠겨 있다. 안두희의 증언 자체가 이처럼 불성실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범행이 얼마나 중대한 과오였는가에 대해서도 거의 반성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는게 세론이다.아직도 안두희는 자신을 애국지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그의 증언 태도는 오만하기까지 했다. 백범 김구선생은 한국독립운동사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큰 인물이다.그의 이름 두자를 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사를 쓸 수 없음은 물론 광복이후 47연사도 기술할 수 없는 것이다. 『백범이 살아 있었어야 한다』는 말은 어느 누구에게 물어 보아도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대답일 것이다.백범은 생전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칭송받게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었다.「아름다운 나라」란 더러운 나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선생 자신이 아름드리 거목이듯이 이 나라도 아름드리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군정을 반대하고 남북협상의 불가능에 도전한 사실을 안두희와 같은 극우반공주의자들은 단순한 용공주의자로 몰아 세울수 있었을지 모른다.그러나 평생을 통일운동에 몸바친 선생의 혈적을 모르는데서 온 무지의 소치였다.흔히 임정을 상해시대 14년(1919∼32년),이동시대 8년(1932∼40년),중경시대 5년(1940∼45년)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27년을 단순한 독립운동의 역사로 보아서는 안된다.그것은 동시에 통일운동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특히 중경시대에 이르러 모든 민족주의 진영은 임정산하에 통일되었으나 공산주의자들 만은 연안으로 도주하여 중공산하에 들어갔으며 1950년 6·25 남침의 주력부대가 되는 김무정의 소위 조선의용군이 되었다.김구선생은 귀국후 임정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통일운동을 광복된 조국에서 실현하려고 했다.그것이 군정반대로 나타난 것뿐이다.그에게 있어 남북통일은다름아닌 한국독립운동의 연속이요 완성이었던 것이다. 좌우익투쟁의 피비린내나는 해방정국에서 그것은 부당하게도 김구로선으로 명명되어 그 실질이 왜곡되고 말았으나 그것은 김구자신의 역사신앙이었던 것이다. 만일 김구선생이 그때 없었어도 될 안두희라는 인간,아니 짐승에게 쓰러지지 않고 살아계셨더라면 우리 현대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를 모두들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아쉬워하고 있다. 다른것은 몰라도 최소한 남북의 분단상태를 악용한 이른바 사이비 통일민주주의만은 이땅에 뿌리 내리지 못했을 것이고 진실된 통일민주주의가 자라나서 통일의 날을 앞당겼을 것이다. 오늘처럼 김구선생의 독립정신,통일정신이 절실한 때가 또 있었을까.또 오늘처럼 우리나라가 아름드리 나라로 커야 한다고 바라던 시대가 또 있었을까.다시한번 경교장의 비극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앞날을 생각할 때라 할 것이다.
  • 각계의견과 앞으로의 과제/국회특별조사단 구성 바람직

    ◎진실 반드시 밝혀 역사 다시 쓰도록 안두희씨의 최근 증언에 대해 사회각계에서는 안씨가 배후가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데 의미가 있을 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데는 여전히 미진하기 짝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원식국무총리는 『정부가 직접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면서 『국회나 관련학회 등 권위있는 학술단체가 진실규명활동을 벌인다면 필요한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 관계자들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데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도 어긋나 검찰이 직접 재수사에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민자당은 지난 17일 당무회의에서 당내에 「민족사관 정립특별위원회」(위원장 김중위의원)를 구성하기로 했으며 민주당은자체진상조사활동과는 별도로 제14대 국회가 개원된 뒤 「여야공동조사단」의 구성을 제의하기로 하는 등 여야정당들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백범기념사업회측은 『실정법에 제한이 있으므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역시 국회차원의 한시적인 특별조사단을 구성하는 것이 좋으며 민족단체와 관련학자·법조인 등으로 광범위한 자문단을 구성,공동활동을 펴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서울대 신용하교수(사회학과)는 『안두희가 단독범행을 주장하다 배후에 대해 처음 입을 열었고 친일파가 백범암살에 깊숙이 관련돼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 만큼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국회안에 사법권을 가진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암살배후를 철저히 재조사해야 하며 주요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런 형태의 특위구성사례는 외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교수는 또 『정부도 문서공개 등 의혹을 해명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현석변호사도 『국회차원의 진상조사단구성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박용만의원(민자)은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인 만큼 역사적 진실이 반드시 밝혀져야 하며 이를 위해 국회나 행정부에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밝히고 『그러나 역사를 밝히는 것은 좋으나 폐인이 되다시피한 안두희씨의 횡설수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며 이미 고인이 된 당시 인물들을 사실확인도 없이 매도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백범암살 이 대통령 책임”/당시 주한미대사관 직원이 밝혀

    【워싱턴 연합】 백범 김구선생 암살사건은 권력기반을 강화하던 이승만 전대통령에 그 책임이 있었다고 당시 미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도널드 맥도널드씨(73)가 22일 말했다. 현재 조지타운 대학에서 한국정치를 가르치고 있는 맥도널드 교수는 이날 『누가 구체적으로 지시했는지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우리는 이승만대통령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하고 『직접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그는 부하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일을 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 “백범암살 전봉덕이 지휘”/“안두희증언 거짓” 전헌병대령 주장

    【로스앤젤레 연합】 백범 김구선생 암살사건 당시 김창용전특무대장과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예비역 육군헌병대령 한필동씨(72·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거주)는 김창용씨의 지시로 백범을 암살했다는 안두희씨의 증언은 『진짜 배후인물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밝히고 백범암살사건은 당시의 정계인사와 군고위층이 개입된 조직적인 정치음모에 의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한씨는 지난 20일 『내가 알기로는 신성모국방·채병덕참모총장·김태선내무장관등의 비호아래 장은산포병사령관이 요원들을 훈련시키고 전봉덕헌병사령부 부사령관이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등 조직적으로 백범암살이 이루어졌다』고 사건의 내막을 폭로했다.
  • 김구선생 암살 관련/미에 공개사과 요구/부산문화원서 시위

    【부산】 민주주의 민족통일 부산연합 배다지의장과 간부 등 20여명은 18일 상오9시부터 부산시 중구 대청동 부산 미문화원 앞에서 미국의 백범 김구선생암살배후 사주에 항의하는 시위를 1시간 가량 벌였다.
  • 「백범암살 재조명」 계기 책출간·연구모임 잇따라

    ◎“친일청산” 학계논의 활발/친일파 인명사전·역사강좌 등장/“일시적관심 아닌 현대사정립 계기로” 지적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사건 배후에 친일경력을 지닌 지배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친일청산에 대해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백범의 일생과 친일문제를 다룬 책들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고 재야사학자 고 임종국씨가 정리한 친일관련자료집 「친일파 인명사전」「임종국전집」「친일파총사」등이 잇따라 발간될 예정이며 이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잡지가 발간되고 시민역사강좌가 열린다.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이리화)는 오는 23일부터 6월4일까지 연구소 강연실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친일파·민족반역자 열전」이라는 주제로 한국사교실를 개최한다.매주 목요일 하오 7시에 열리는 한국사교실은 모두 7차례에 걸쳐 친일파집단의 형태를 유형별로 나눠 대표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오는 23일 서중석교수(성균관대)의 「친일파를 다시 본다­친일파·민족반역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제목의 강의로 시작되는 이번 「친일파강좌」는 이리화소장의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매국노의 오명­이완용·송병준」,문학평론가 임헌영씨의 「친일을 애국으로 착각한 지식인들­이광수·최남선」,박현채교수(조선대)의 「비행기를 헌납한 친일기업인들­박흥식·문명기」,미술평론가 윤범모씨의 「일제를 위해 붓을 잡은 화가들­김기창·김은호」,강정숙씨(영남대 강사)의 「이땅의 아들 딸을 전쟁터로 몰아낸 여성명사들­김활란·모윤숙」,그리고 방기중연구실장의「8·15이후의 친일파집단­이승만정권을 떠받친 경찰·관료·지식인들」순서로 진행된다. 서중석교수는 『근·현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친일파의 문제를 항상 걸림돌이 되어왔다』고 전제하고 『해방을 맞은지도 반세기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과거사에 대한 처벌보다는 잘잘못을 학문적으로 정확히 분석하고 특히 이들이 친일행위를 하게 된 동기와 배경및 구체적인 과정을 규명해내는 일은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라면서 이번강좌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그동안 일본문제를 자주 다뤄온 격월간지 「순국」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3·4월호에 「한국현대사를 움직인 친일군상」이라는 특집을 실고 친일문인과 친일교육계인사,친일화가·음악가·영화인 그리고 언론인등으로 분야를 나눠 친일파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 2월말 반민족문제연구소(소장 김봉우)가 주최한 「식민지배 청산문제의 민족사적 이해」라는 주제로 열린 3·1절기념학술심포지엄에서도 친일파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됐는데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친일파문제를 비롯,식민지배의 청산은 민족의 주체적·평화적 재통일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불가결한 밑거름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연구에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친일파연구는 친일파의 대명사격인 이완용이라는 인물을 분석해놓은 논문 한편 없을 정도로 아직은 미진한 상태이다. 이에대해 서중석교수는 『현재 학계의 연구가 초보단계에 머물러있지만 관련자료도 풍부하고 연구의 필요성에 인식이 모아져 일단 연구만 시작되면 해방전후 우리 현대사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의 연구와 함께 최근 정신대문제와 MBC­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분노의 왕국」등을 둘러싼 한일양국간의 외교적인 갈등,일본의 재무장·군사대국화의도의 표면화,그리고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배후에 대한 새롭게 밝혀진 사실등이 맞물리면서 고조된 친일파와 일본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은 일시적인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진정한 과거청산의 계기가 되어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 민자 전당대회 대의원/총6천9백4명 확정/당무회의

    민자당은 17일 당무회의를 열고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대의원 6천9백4명을 확정했다. 당무회의는 또 지난 8일부터 16일까지 열린 지구당 및 시·도지부개편대회의 결과를 승인하고 백범암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민족사관정립위원회(위원장 김중위의원)구성안을 의결했다. 이춘구사무총장은 ▲후보추천대의원수는 대의원 총수의 20%까지로 제한하고 ▲개인연설회는 15개 시·도에서 1회씩 개최하며 ▲합동연설회는 후보자 전원이 합의하면 개최할 수 있다는 내용의 대통령후보선거관리위원회의 시행규칙을 보고했다. 당무회의는 이밖에 지방자치단체장선거시기의 조정에 따른 문제점 및 제도개선을 위한 지방자치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20일 총선공약 평가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 백범암살 관련 의혹/전봉덕씨 15일 출국

    백범 김구선생 암살사건 관련설로 의혹을 사고 있는 당시 헌병 부사령관 전봉덕씨(82·미 로스앤젤레스 거주)가 지난 10일 일시 귀국했다가 15일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김포공항 당국에 따르면 전씨는 자식을 만나기 위해 지난 10일 입국했다가 백범암살에 대한 진상이 보도되자 15일 하오3시 로스앤젤레스행 노스웨스트항공 024편으로 출국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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