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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시론] 임시정부 법통계승 기념사업

    1987년 10월12일 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해 10월27일 국민투표를 통해 제9차로 개정된 현행 헌법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대한민국이‘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뜻한다. 법통 계승이 왜 중요한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헌법이 선언적인 의미만 갖는 형식적인 글귀가 아니라면 헌법전문에 명시한 법통 계승은 거기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조치를 요구하고 있음이 당연하다.더구나 같은 전문에 명시된‘3.1운동’과‘4.19민주이념’에 대해서는 가시적인 조치가역대 정권에 의해 취해졌다.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임정에 대해서도 예우가필요하다. 개정 헌법에서 임정과의 관계를 적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헌법하에서 출발한 노태우 정부나 김영삼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다.기껏 김영삼 정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요인 몇분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했을 뿐이다. 50년 만에 교체되었다는 이 정권이 앞의 정권들과 차별성을 보이려면 임정의 법통 계승문제의 해결도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이에 법통 계승과관련된 몇가지를 거론하고자 한다. 첫째,임정 유적지 보존이다.임정은 상해에서 시작하였지만 1932년 한인애국단의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에는 계속 피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임정이 충칭(重慶)까지 옮겨간 여러 지방의 유적지를 찾고 후손들이 찾을 수 있도록보존해야 한다.오랜 세월이 지나 정확한 유적지를 알 수 없는 곳도 많겠지만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에 서둘러야 한다.이런 문제는 주재국 정부와의 외교적 교섭이 앞서야 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둘째,임정기념관의 건립이다.지금까지 임정기념관이 설립되지 않은 것은 임정의 권위와 전통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세력에 의한 것이지만 결코 떳떳한일은 아니다.임정기념관은 임정 관계자료와 독립운동 관계자료 및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자료 등,이 시기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완벽하게 갖춘다.그렇게 되면 이곳에 와서 독립운동과 민족 반역의 역사를 모두 찾아볼 수 있게 된다. 필자는 여러번 임정기념관 설립 최적지는 헐어버린 조선총독부 자리라고 주장한 바 있다.주장의 의도는 광화문 일대의 국가 핵심 건물의 배치도가 종전에는 경복궁→조선총독부→정부종합청사의 순서로 되어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가관이었는데 조선총독부 자리에 독립광장과 임정기념관을 대신한다면 조선왕조가 독립운동(임정)을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게 되었다는 바른 역사의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셋째,효창원 등 국립묘지 밖에 있는 임정 요인 묘역을 국립묘지 수준으로예우하는 것이다.이런 묘역들은 나름대로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립묘지로 이장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현재 효창공원은 임정주석 김구와 임정 요인(이동녕 조성환 차리석),삼 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 묘역으로 조성되었다.이 묘역을 국립묘지 수준으로 격을 높이고,효창공원이라는 이름도 거기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정 자료의 체계적인 편찬이다.여기에는 의정원과 정부의 각종 기록,독립신문,독립운동사 편찬자료 및 각국 정부·인사 및해외 교민들과 왕래한 문서들이 해당된다.그동안 국사편찬위원회 등 여러 곳에서 많은 자료를 출간하였고 최근 대한매일이 발간한 ‘백범 김구전집’에서도 상당 부분 보완하였다.임정 요인들이 귀국할 때에 두 트럭분의 문서를가져왔으나 소실된 것 같다고 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정부는 임정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한시적인 기구를 만들어 본격화시켜야 한다. 최근 임정자료 수집만을 위해 학계 중진들이 연구소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정부가 이 사업을 직·간접으로 지원한다면 역사에 남는 정권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한국사
  • 청파로∼효창공원 1㎞ 테마거리로

    용산구 청파동 청파로에서 효창공원에 이르는 1㎞구간이 ‘테마가 있는 거리’로 꾸며진다. 용산구(구청장 成章鉉)는 걷고 싶은 거리 조성사업의 하나로 지난 5월부터설계를 현상공모,효창공원의 역사성과 숙명여대의 대학문화 등 지역특성을살린 작품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거리는 주제별로 생동의 거리,빛의 거리,연인의 거리,사색의 거리로 나뉜다. 구 관계자는 “효창공원에 백범기념관이 건립되는 것을 계기로 테마가 있는 거리를 만들기로 했다”면서 “이달중 기본 및 실시설계를 마친 뒤 다음달부터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재순기자 fidelis@
  • 오페라 무대 ‘창작’은 있고 ‘작품’이 없다

    창작오페라 무대에 이상열기가 몰아쳤다. 매년 한두편 정도 무대에 올랐으나 올해는 이미 5편이 공연을 끝냈고 준비중인 2편까지 합치면 모두 7작품이 무대에 오르게 된다. ‘둘이서 한발로’(대본 장수동,작곡 김경중,서울오페라앙상블)‘황진이’(대본 구상,작곡 이영조,한국오페라단)‘무등동동’(대본 조태일·김준태,작곡 김선철,빛소리오페라단)‘사랑의 빛’(대본 장수동,작곡 백병동, 서울오페라앙상블)‘백범 김구와 상해임시정부’(대본 이종헌·장수동,작곡 이동훈,강화자베세토오페라단)는 이미 공연된 작품. ‘매직 텔레파시’(대본·작곡 이종구,코레콤)‘산불’(대본 차범석,작곡 정회갑,국립오페라단)은 각각 11월로 공연일정이 잡혀 있다. 이처럼 창작오페라 제작이 활발해진 데는 문화관광부의 무대예술 특별지원사업이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문화관광부가 IMF로 침체한 문화예술계에 활력을 불어 넣고자 문예진흥원을 통해 국고 20억원을 민간단체에 지원키로 한 것이다. 지난 85년부터 문예진흥원이 꾸준히 시행해 온 ‘창작활성화 지원기금’도한몫을 했다.이는 창작오페라에 작품당 1억원(작곡가 2,500만원,대본작가 500만원,단체 7,000만원)을 지원해주는 제도. 올해 공연됐거나 공연할 창작 오페라중‘둘이서 한발로’와 ‘산불’을 빼고는 모두 이들 자금을 지원 받았다.‘둘이서 한발로’는 규모가 요건에 맞지않아서,‘산불’은 민간단체가 아닌 국립오페라단 작품이기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 이 단체들이 지원받은 액수는 적게는 5,000만원에서 최고 1억 2,000만원에이른다. 이같은 창작오페라 지원제도가 오페라 활성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지원대상이 규모가 큰 대극장용 작품에만 치중된 데다 한 단체에 많은 액수를 지원,완성도 떨어지는 대작들만 양산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무엇보다 문제점은 선정과정과 지원 후의 평가가 엄격하고 객관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무대예술 특별지원사업’기금을 받은 공연에 대해서는 전문위원과 심사위원들이 관람하고 자료를 모은 뒤 회의를 열어 평가하도록 되어 있다.그러나예술작품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는 것이 문예진흥원 추진반 관계자의 지적이다. 또 ‘창작활성화 지원기금’규정에 따르면 대극장무대에 오를만큼 규모가 큰 작품이어야 하며,지원단체로 선정되면 그 다음해 말까지 작품을 무대에 올려야 한다.이는 작은 공연을 통한 실험 기회는 포기하고 규모 큰 공연만을기획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창작오페라의 생명은 리브레토(오페라 대본)와 곡이다.소재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성을 담아야 하고 구성에서 드라마적인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먼저 대본작가와 작곡가는 오페라를 잘알고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을 선정하는 데도 유명인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앞에 예로든 작품에 참가한 대본작가·작곡자·연출자 중 오페라 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대본의뢰를 받거나 연출을 맡으면서 오페라 관람을 처음 했다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지난 50년 제작된 현제명의 ‘춘향전’을 첫 창작오페라로 인정할 때 창작오페라의 역사는 50년이나 된다.그동안 많은 작품이 무대에 올랐으나 작품성을 인정받아 재공연된 것은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다. 이에 대해 예술의전당 문호근 예술총감독은 “작곡자와 대본작가를 선정할때 적어도 오페라에 관해서는 잘아는 사람을 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4편의 창작오페라를 연출한 장수동 서울오페라 앙상블 대표는 “작곡이나대본 등 창작분야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작품뱅크’를 제안했다.작곡가나 대본작가들이 작품을 만들어 저장하고,이를 자유롭게 열람하도록 한다는 뜻이다.이를 위해 정부가 지원금을 한 단체에만 줄 것이 아니라 창작하는 젊은이들에게 고루 지원하는 방법을 검토하자는 제의이다. 문예진흥원에서는 올해부터 우수작품을 지원해 주는 ‘우수 레퍼토리 공연’사업을 실시하고 있다.올해 공연된 ‘황진이’와 ‘백범 김구…’두 작품이재공연 또는 해외공연도 추진중이어서 첫 수혜단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번역작품에 비해 창작오페라는 제작비가 많이 든다.민간단체에서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 창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는 힘들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양산되어서는 관객들에게 외면당하기 마련이다.지원금때문이 아니라 진정 좋은 작품이 창작되고 이것을 수정·보완하면서 더욱 완성도 높은작품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이 오페라계의 바람이다. 강선임기자 sunnyk@
  • [발언대] ‘白凡 음악회’에 친일파曲 웬말

    얼마전 백범 김구선생 서거 50주기를 맞아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나라사랑음악회가 열렸다.행사 다음날 방송을 통해 음악회 행사를 볼 수 있었다. 다가오는 21세기를 떳떳하게 맞이하기 위해 국민들로 하여금 백범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으로 마련된 것이라 관심있게 보고 있었다.출연진의진지한 태도는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전달됐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홍난파가 작곡한 ‘봉선화’가 연주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비록 홍난파가 한국 현대음악에 끼친 영향은 컸지만 그 이전에 그는 ‘친일음악의 대부’였다.지난 92년 8월 당시 문화체육부가 이달의 문화인물로홍난파를 선정했다가 흥사단과 연구단체들이 그의 친일행적을 비판하자 취소했다. ‘봉선화’도 민족의 애환과 설움을 달래기 위해 작곡됐으나 일제에 의해금지곡이 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난 96년 4월 친일단체였던 경성후생실내악단의 42년 6월 공연에서 소프라노 김천애가 ‘봉선화’를 불렀던 당시 프로그램이 발견돼 금지곡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봉선화’가 민족의애환과 설움을 달랜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노래말을 보면 민족의 웅건한 기백이나 기상은 찾아볼 수 없다.처량하고 애조 띤 곡조로 오히려 슬픔에 잠기게 해 민족의 설움을 달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봉선화’가 우리민족의 설움을 달래는 ‘민족가곡’으로 일제에 의해 금지곡이 됐던 노래라고 치자.그래도 ‘정의의 개가’‘희망의 아침’ 등 친일가요를 만든 친일파 홍난파가 작곡한 ‘봉선화’만이 민족정서를 대변하는노래로 백범 서거 50년 나라사랑음악회에서 불려져야 했을까.민족의 정서와웅건한 기상을 담고 있는 다른 좋은 노래를 두고 굳이 친일 반역자인 홍난파의 곡을 선정한 의도가 무엇일까. 한평생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백범의 숭고한 정신을 추모하고 본받기 위한 뜻깊은 자리였다.이런 행사에 친일파의곡을 끼워넣어 나라사랑 정신을 희석하는 일이 다시 또 일어나지 않도록 연주곡 선정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할 것이다. 육철희[신시민운동연합
  • [김삼웅 칼럼]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

    ‘20세기의 볼테르’라 불리는 찰스 비어드(1874∼1948)는 정치학,사학협회 회장을 지낸 미국의 대표급 지성이다.‘아메리카문명의 발흥’ 등의 책도썼다. 어느날 강의시간에 한 학생으로부터 인생의 체험에서 배운 모든 것을 5분안에 요약해달라는 까다로운 질문을 받았다.버어드는 한참 생각한 후에 5분도 필요없고 단 네 줄이면 된다면서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첫째,신은 파멸시키려는 자에게 먼저 권력에 눈이 어둡게 만든다. 둘째,역사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돈다.그러나 그 방아는 잘게 갈아나간다. 셋째,벌들은 꽃에 먼저 거름을 준 다음에 약탈한다. 넷째,하늘이 어두워지면 별을 볼 수 있게 된다. 한 역사학자가 신의 섭리,역사의 원리,인간의 도리를 간단명료하게 밝힌 생의 아포리즘이다. 노자(老子)는 ‘천도론(天道論)’에서 여덟자를 통해 천도의 이치를 설명했다. 天網恢恢 疎而不失(하늘의 그물은 촘촘하지는 못하나 결코 놓치지는 않는다) 역사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돌지만 잘게 갈아나가고,천망은 듬성듬성하지만놓치지 않는다는 역사와 하늘의 이치다.이같은 ‘이치’를 김구(金九)선생사망 50주기에 즈음하여 새삼 느끼게 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현실의 패자로서 배척당하고 이단시되었던 백범의 생애와 정신이 이제야 평가를 받게 된 것이 억울하고 부끄럽기는 하지만,‘역사의 물레방아’와 ‘하늘의 그물’은 결국 바르게 천천히 진행된다는 섭리와 원리,이치의 깨달음은 큰 교훈이라 하겠다. 12권의 전집이 출간되고 기념관건립추진위가 결성되고 3년 옥살이하던 형무소터에서 추모음악회가 열리고,북한에서도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백범 김구 선생 회고모임’이 열렸다. 백범은 현실적으로 패배하고 음지의 역경만을 겪은 고난의 인물이지만 역사적으로 성공한 지도자다.그의 삶과 철학은 다수 국민의 흠모의 대상이 되고21세기 민족사의 지표로서 부족함이 없다. 백범은 일제가 쌀 한가마에 20원일 때 60만원의 현상금을 걸고도 체포하지못한 것을 동포가 쏜 총을 두번씩이나 맞아야 했다.한번은 사회주의자가 쏜총탄으로 죽을 때까지 심장부근에 남아있었고 또 한번은 현역 군인의 총격이 백범을 우리 곁에서 앗아갔다. 외적으로부터도 지킨 육신을 동족에 의해 찢기는 모순,그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면서 우리는 백범의 화합정신과 동포애로써 동서간,남북간의 갈등과 시대의 모순을 풀어야 한다.이것만이 참다운 백범정신의 선양이다. 백범은 1949년 3월 ‘안중근의사 순국 39주년 기념’으로 ‘총욕불경’ 이란 시를 썼다.(원문은 한문) 영예와 치욕에 놀라지 아니하고,한가로이 뜰 앞에 피고지는 꽃을 본다.가고 머묾에 뜻을 두지 않고,부질없이 하늘가에 걷히고 펼쳐지는 구름을 따른다. 맑은 하늘과 밝은 달을 어느 곳엔들 날아가지 못하리오.그런데 나는 나방이는 오로지 밤 촛불에 뛰어드는구나.맑은 샘과 푸른 풀은 어느 것인들 먹고마시고 싶지 않으리오,그런데 올빼미는 오직 썩은 쥐를 즐겨 먹는다.아,슬프다! 세상에 나방이와 올빼미 같지 않은 자 몇이나 되는가. 백범은 남북에 분단정권이 들어서자 ‘동족상쟁의 유혈과 국토양단의 위기’를 의식하면서,이해관계 때문에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과도 같고,썩은 쥐를 먹듯이 부패에 젖어드는 올빼미와도 같은 기회주의자들을 지켜보면서 이 시를 썼다. 백범은 ‘총욕불경’을 쓴 얼마 후 암살당했다.그리고 그의 정신과 노선은철저히 금압의 대상이 되었다.불나방과 올빼미들만이 설치고. 백범사상의 정수는 ‘정도냐 사도냐’의 선택지다.“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냐 사도냐가 생명이다”란 선택지의 아포리즘은 이 시대 정치인,공직자,언론인 모두가 새겨야 할 명제가 아닐까.
  • ‘백범 전집’ 告由祭·추모음악회도 열려

    백범 김구(金九)선생 서거 50주기 추모식이 지난 26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 선생 묘소에서 거행됐다.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 이수성(李壽成) 회장은 식사에서 “선생의 서거 50주기를 맞은 오늘,비록 몸은 가셨지만 선생님의 혼과 가르침은 민족의 등불로 여전히 우리의 갈 길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최규학(崔圭鶴) 보훈처장은 추모사를 통해 “21세기를 민족통일과 번영의새시대로 이끄는 것이 조국을 위해 일생을 바친 백범 선생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윤경빈(尹慶彬) 광복회장도 “한평생 ‘완전 자주독립 통일’을 위해 헌신하신 백범 선생은 우리 민족의 사업이 사랑과 평화를 통해 스스로도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살도록 하는 것임을 일깨워 주셨다”고 추모했다.고은(高銀) 시인이 ‘오늘은 나라의 아버지를 가슴에 품은 날입니다’로 시작하는 추모시를 숙연한 분위기 속에 낭송하자 추모객들은 잠시 흐느끼기도 했다. 이어 서거 50주기에 맞춰 대한매일신보사가 12권으로 펴낸 ‘백범 김구전집’을 김삼웅(金三雄) 대한매일 주필과 윤병석(尹炳奭) 백범 김구전집 편찬위원장(인하대 명예교수)이 선생의 영전에 바치는 고유제(告由祭)가 열렸다. 이만열(李萬烈) 숙명여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추도식에는 백범 선생의 둘째아들인 김신(金信) 전 교통부장관 등 후손을 비롯,한승헌(韓勝憲) 감사원장,이원범(李元範) 3·1운동기념사업회장,김근태(金槿泰) 국민회의 의원 등각계인사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에 앞서 민족정기수호국민연합 회원 30여명은 오전 9시부터 효창원 정문에서 선생을 기리는 집회를 가졌다.오후 7시30분에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추모음악회가 열려 200명으로 구성된 연합시립합창단의 합창과 서울대 이애주(李愛珠) 교수의 춤 등 예술인들의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한편 북한도 이날 평양 모란봉 극장에서 ‘백범 김구선생 회고모임’을 갖고 “일찍부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자주 독립을 염원한 양심적인 민족주의 인사였던 선생을 추모했다”고 평양방송이 27일 보도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白凡50주기 추도식/이모저모

    - 백범장례 民族葬·國葬 논란끝 國民葬으로 백범 김구선생 서거50주기를 맞아 49년 7월 5일 ‘국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 관련 ‘회의록 철’이 처음 공개됐다.회의록 철에는 백범이 서거한 당일부터 시작된 장례식 준비과정의 전모와 최종 결산사항까지 상세히 나와 있다. 백범기념사업회는 25일 고(故) 백범김구선생국민장위원회가 작성한 ‘회의록 철’을 공개했다.이 자료는 그동안 백범 차남 김신(金信)씨가 보관해오다가 이번에 처음 공개한 것이다. 장례위원회 구성 논의에 앞서 장례명칭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백범진영에서는 ‘민족장’을 주장한 반면,정부에서는 ‘국장(國葬)’을 들고 나왔다.이에 대해 조완구(趙琬九)선생은 “자기들이 (백범을) 죽여놓고서 무슨 국장이냐”며 당국의 처사에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결국 김규식(金奎植)박사의중재로 ‘국장’과 ‘민족장’을 합친,‘국민장’으로 결정되었다. 27일 국민장위원회(위원장 吳世昌)와 그 산하에 상임위원회(위원장 趙素昻)가 구성되면서 구체적인 장례절차와 일정이 논의되었다.장지와관련,위원회는 백범이 생전에 효창공원 3열사묘 서편 자락에 묻히겠다는 유언을 한 사실을 들어 이곳으로 결정하였다.장례는 10일장으로 7월5일 거행,영결식장은 서울운동장으로 정하고 치산(治山)은 조선 전래식으로 결정하였다.장례당일 불릴 조가(弔歌)는 노산 이은상(李殷相)씨에게 작사를,작곡은 최종 김성태(金聖泰)씨에게 맡기기로 했다.예산은 900만원을 책정하였고 이 가운데 3분의 2 이상을 정부가 부담토록 결정하였는데 6월 28일 국무회의에서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7월 5일 오전 10시 경교장을 출발한 장의행렬은 종로∼서울운동장(영결식)∼남대문을 거쳐 오후 8시 장지인 효창공원에 도착하였다.이날 당국은 장의행렬이 지나가는 도로변에 경찰과 군대를 동원,배치하였다.김신씨는 “장례당일 당국은 경찰관들에게 정부수립후 처음으로 45구경 권총과 실탄을 지급한 것으로 안다”며 “비상사태를 선포만 안했지 사실상 비상사태와 같은 분위기였다”고 증언했다.장례당일 밤 늦게까지 계속된 치산작업에는 인부 700명,봉사인원 2700여명이 참여하였다. 정운현기자- 백범 김구전집…협찬인사들의 감회 대한매일신보사가 24일 펴낸 ‘백범(白凡) 김구(金九)전집’은 여러 후원가들의 도움으로 빛을 보게 됐다.“어떤 후원보다도 의미가 커 가슴 뿌듯했다”는 협찬자들의 감회를 소개한다. 한국전력공사 최수병(崔洙秉)사장은 “백범 서거 50주기를 맞아 선생의 독립애국사상과 통일의지를 되새기면서 민족통일을 위해 우리의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 전집 출간에 참여하게 됐다”면서 “이를 계기로 선생의 민족사랑과 애국정신을 새겨 민족화합과 통일시대를 밝히는 기업으로 거듭 나겠다”고다짐했다. ㈜부영 이중근(李重根)회장은 “선생이 서거했을 때 초등학교 학생이었다”면서 “온 국민이 비탄에 빠졌던 광경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며 50년전을 떠올렸다.이회장은 “때마침 대한매일신보사에서 선생의 전집을 발간한다는 말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힘을 보탰다”면서 “앞으로도 백범선생 추모사업에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코리아스테파 신수연(申受娟)대표이사는 “선생이돌아가신지 50주년이됐는데도 전집 하나 없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평소에 가장 존경하는 선생의 전집 출간에 힘을 보탰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이어 “앞으로 백범 추모기념관 건립과 백범상 제정 등선생 추모관련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밀리오레 유종환(柳宗煥)대표이사는 “평소에 자주독립과 민족통일의 염원을 성취하고자 힘썼던 백범선생을 존경해왔다”면서 “민족정기의 보전과발전을 위해 전집을 발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없이 힘을 보탰다”고 설명했다. 한국담배인삼공사 김재홍(金在烘)사장은 “백범선생은 조국독립에 기여한공헌 외에도 올곧은 행동과 변함없는 지조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면서 “백범전집 출간을 통해 선생의 높은 뜻과 행동이 국민 모두에게 전파되도록 하자는 염원에서 정성을 보탰다”고 말했다. 현죽재단 서원석(徐元錫)이사장은 “민족과 나라의 장래를 걱정했던 선생의민족애와 정기를 후손들이 배워서 선생의 뜻을 자손만대에 영원히 전하자는뜻에서 전집 발간 후원에 동참했다”면서 “어느 때보다 가슴뿌듯한 후원이었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 白凡50주기 추도식 엄수 26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에서 ‘백범 김구선생 제50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회장 李壽成)가 주관하는 이날 행사는 각계인사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최규학(崔圭鶴)국가보훈처장과 윤경빈(尹慶彬)광복회장의 추모사와 고은(高銀)시인의 추모시 헌정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김구선생 서거 50주기에 맞춰 대한매일신보사가 12권으로 펴낸 ‘백범 김구전집’을 선생의 영전에 바치는 고유제(告由祭)가 치러진다. 이날 저녁 7시30분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옛 서대문형무소) 야외무대에서는 KBS 열린음악회 주최로 ‘백범 서거 50년 나라사랑 음악회’가 열린다.서대문형무소는 선생이 안중근(安重根)의사의 동생인 ‘안명근 사건’에 연루돼 1911년부터 5년간 옥고를 치르는 등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일제의 칼날에스러져간 곳이다. 음악회에는 명창 안숙선,바리톤 최현수,가수 이미자·조영남·안치환씨와성남·안산시립연합합창단 등이 출연,‘아리랑’등을 부르며 선생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린다.서울대 이애주교수 등 7명의 춤꾼들은 백범선생이 간절히바라던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큰북연주’판을 벌인다. 음악회는 출연자와 관객이 안익태선생이 작곡한 ‘코리아 환타지’ 가운데애국가를 함께 부르며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한몸을 바친 선생의 삶을 되새기는 가운데 막을 내린다. 전영우기자 - 白凡의 삶 만화로 예찬사 일대기 출간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50주기를 맞아 선생의 불꽃같은 애국의 삶을 만화로그린 ‘만화로 보는 백범 김구’(박찬민 글·그림)가 출간됐다. 이 만화는 도서출판 예찬사가 딱딱한 위인전을 싫어하는 어린이들이 보다쉽고 재미 있게 위인들을 만날 수 있도록 시작한 ‘한국을 빛낸 믿음의 시리즈’의 첫번째 책으로 ‘만화로 보는 고당 조만식’과 함께 나왔다. 이 책에는 김구 선생의 어릴적 모습과 청년시절의 동학 입교와 탈퇴,일본군장교 응징과 이에 따른 사형 언도,탈옥과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해방후 민족분단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등이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어릴때 평범한 개구쟁이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려 어린이들에게 친밀감을 주고 있으며,청년기에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고뇌하는 모습 등은 아이들에게 점점 희박해지는 나라사랑에 대한 개념을 분명하게 해준다. 예찬사 관계자는 “이번 시리즈는 우리 역사의 빛과 소금이었던 위인들을어린이들에게 보다 쉽게 알리기 위해 기획했다”며 “특히 민족의 스승으로추앙받는 백범 김구 선생편을 선생 서거 50주기를 맞아 첫번째로 내놓게 돼의미를 더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 민족정신회복운동 나선 시인 金芝河 특별인터뷰

    요즘 김지하(金芝河·58)시인의 화두는 ‘단군(檀君)’이다.구체적으로 말하면 ‘개방적 주체’를 표방한 단군사상이다.서울대 미학과 학생이던 지난 63년 한일회담 반대투쟁으로 첫 투옥된 이래 반독재·민주화 투쟁으로 청·장년기를 보낸 그가 ‘긴 여행’에서 돌아와 90년대 중반에 안착한 자리는 인간중심의 ‘생명사상’이었다.이제 다시 한 단계 도약하여 ‘단군’을 만났다.지난해 전통 풍류도를 되살리는 문화운동단체인 율려(律呂)학회를 발족한이래 김지하의 사상적 행보는‘담론부재’의 현 시점에서 또 하나의‘담론’으로 떠오르고 있다. 22일 오후 안국동 로타리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서북쪽으로 탁 트인 창,양식사무실 한켠에 한식으로 꾸민 응접실은 그의 사상을 대변하는 듯 했다. 김지하가 임시대표를 맡아 지난 21일 발족한 민족정신회복시민운동연합(약칭‘민족정신’)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민족정신’이 표방하는 것은 종교운동입니까,사상·정신운동입니까. 한마디로 동학사상과 그동안 내가 주창해온 생명사상,그리고 단군사상을 하나로합쳐 민족정신 회복의 구심력을 되찾자는 겁니다.근대 이후 우리 지식인들은 밖(서양)으로만 관심을 돌려 민족의 사상적·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하였습니다.종교 차원이 아니라 문화운동 차원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아 줏대를 바로세우자는 거죠. 정신공황·경제파탄에 담론부재까지 겹쳐 오늘의 형국은 마치 ‘적막강산’과 꼭 같습니다.한마디로 21세기는 ‘문화담론’시대입니다.미학적 생산성,영적 창조력을 키워나가려면 예술가들의 깊은 명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시인이 갑자기 ‘단군’을 거론하는 것은 뜻밖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돌이켜보면 내 청춘은 ‘뿌리를 찾는 여행’이었습니다.4·19후에는 탈춤·판소리·민요 등 민족문화 운동에 탐닉하였고,동학사상을 거쳐‘오적(五賊)’을 발표한 직후에는 가톨릭에 귀의해 내적 평화를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14년전 강증산(姜甑山)동네에 갔다가 단군그림을 보고 영적 충격을 받았습니다.일종의 ‘정신적 환상’이었죠.그런데 당시 나를 치료하던 의사가 집단무의식,즉 조상문제가 그 원인이라고 했습니다.그 때 처음 ‘단군’을 깨달았습니다. ■‘단군’을 모체로 한 운동은 자칫 배타적·국수주의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프랑스 음악가가 우리의 영산회상을 듣고는 ‘하늘의 음악’이라고 극찬한 적이 있습니다.문화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열매입니다.네것 내것하는 식으로 나누지 말고 단군사상을 ‘타자(他者)를 흡수하는 주체’로 승화해 세계화 시대의 지구적·세계적 사상으로 키워보자는 거죠.민주주의는서양만 해온 것이 아닙니다.이미 단군시대에도 신시·화백과 같은 직접민주주의가 있었습니다. ■김 시인이 주장하는 ‘개방적 주체’란 구체적으로 무얼 얘기합니까. 우선 각 문화권이 ‘나와 다른’문화를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서양 지식인들은 지적으로 한계에 이르면 고대로 돌아갑니다.이들이 마르크스,니체,푸코,하버마스 등 대표적인 현대 서구 사상가들을 뛰어넘어 안착한 곳은 바로 그리스 시대입니다.‘고대로 돌아가는 큰 물결’을이룬 셈이죠.그런데 우리 학자들은 모두 서양사람들을 베껴올줄만 압니다.IMF이후 우리도 지구시대의 민족주의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우리는 우리 스스로 서야 합니다. ■단군의 실존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도 논란이 있습니다만. 단군의 실체는 고구려 고분의 묘지(墓誌)나 광개토대왕비(碑)등 명문(銘文)을 통해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입니다.통감부시절 일제는 총 51회에걸쳐 상고사 관련사료 23만건을 몰수했습니다.그런데 그 사료를 파기한 것이아니라 모처에 비밀리에 보관해 두고는 식민사학자들이 이를 참고하여 단군사 등 상고사를 이 지경으로 왜곡하였습니다.우리가 곰의 자식이라니 말이나되는 얘깁니까. ■‘선언’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계획한 사업은 어떤 것들입니까. 왜곡된 상고사 교육을 중지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상고사 연구붐을 일으켜나가면서,남북·재외교포를 망라한 ‘민족역사교육 문화회의’를 소집할생각입니다. 아울러 일제가 탈취해간 상고사,특히 단군 관련사료 반환운동을적극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남북문제도 쌀·비료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닙니다.남북이 동일한 담론인 ‘단군’으로 만나서 정신적 통합을 먼저 이룩해야합니다.당장 통일은 못해도 화합은 이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가 한마디를 던졌다.“내후년이면 환갑입니다.일생의마지막 과업으로 알고 이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생전에 ‘문화국가’건설을 소망했던 백범(白凡)의 영(靈)이 요즘 나를 이끄는 듯 합니다.그러고보니올해가 백범 50주기지요”정운현기자 jwh59@
  • [굿모닝 새천년 패러다임을 바꾸자](7)대립을 넘어 相生시대로

    IBM과 애플은 미국의 대표적인 컴퓨터 회사이다.그러나 두 회사의 경영전략은 판이하게 다르다.애플은 매킨토시라는 PC를 생산하면서 순혈주의를 고집했다.컴퓨터의 부품생산에서 완제품 조립까지 모든 과정을 독점했고,심지어모니터까지 자사가 공급하는 것만 쓰도록 했다.반면 IBM은 문호를 개방했다. 모니터와 본체 등 모든 부품을 교환해 쓸 수 있도록 호환성을 높였다. 이에따라 이용자들은 호환성을 이용,PC를 업그레이드하는 등 성능을 향상시킬 수있었으며 부품업체끼리의 경쟁으로 부품의 질도 높아졌다. 후발주자이던 IBM이 애플을 앞서 나간 것은 물론이다.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이후 애플도 IBM PC용으로 개발된 일부 프로그램을 매킨토시에서 쓸수 있게하는 등 호환성을 높여 나가고 있다. 근대 이후 지구역사는 투쟁과 갈등으로 점철됐다.정(正)과 반(反)이 투쟁과정을 거쳐 합(合)이 된다는 헤겔의 변증법,환경에 적합한 적자(適者)만 생존한다는 다윈주의가 지배한 사회였다.이러한 약육강식의 논리를바탕으로 세계 열강은 다투어 영토를 확장하기에 바빴고 급기야는 두차례의 세계 전쟁으로 비화됐다.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도 투쟁과 갈등,대립,혁명의 원리는 여전히 지구를 지배했다.그 결과 한쪽에서는 풍요를 구가하고 있지만 반대편에서는 식량이 없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또 탐욕스러운 개발욕구는 숲과 산,강을 마구 파헤쳐 놓았다.훼손된 환경은 우리들이 먹고 마시는 물과공기를 오염시키며 부메랑처럼 그 대가를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있다.문명과자연이 상생(相生·Both All)의 길을 찾지 못하고 대립적인 존재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이같은 ‘정글의 법칙’은 21세기의 정보통신사회,지식사회에선 더이상 통용될 수 없다.컴퓨터와 인터넷,디지털 등 정보화 시대의총아들은 폐쇄성을 거부하고 개방,열린 사회를 지향한다.거미줄처럼 뻗어있는 정보통신망은 세계 각국의 안방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국경의 장벽을 제거한다. 새천년준비위원회 이어령위원장은 “다가올 새 천년은 너죽고 나살고 식의파괴의 패러다임이 아니라너살고 나살고의 상생체제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문턱을 높이는 ‘애플’이 아니라 ‘IBM사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생체제는 이미 여러곳에서 감지된다.유럽연합(EU)으로 정치적 결속력을다진 유럽은 올 초 유로통화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경제적 통합을 가속화시켰다.뒤늦은 깨달음이지만 도로로 잘리워진 산허리에 다시 동물들의 이동통로가 만들어지고 강가에는 물고기의 생존과 산란을 위해 콘크리트 벽 대신 수초가 심어진다.통합전산망을 운영하는 항공사들은 승객의 주문을 대지 못할경우에는 경쟁 항공사로 안내해주는 것에 익숙해졌다.고양이와 개처럼 으르렁 거렸던 현대·대우·기아 등 자동차 3사도 자재와 부품,고객서비스 등을통합 관리하는 ‘초고속 전자상거래(CALS)프로젝트’를 구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배타적인 경쟁이 공멸을 가져올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새천년의 전환점에 왜 상생이 화두로 등장하는 것일까. 상생은 말 그대로 함께 사는 것이다.대립과 갈등,투쟁과 전쟁이 아니라 융합하고 화합하고 관용하고 용서하는 것이다.화해와 용서의 정신은 바로 휴머니즘으로 가는 밑거름이다.인간이 기본인 인본주의는 새천년의 화두가 아니라 인류가 생존하는 한 영원한 키워드일 것이다. 임태순기자 stslim@- 밀레니엄 탐방-‘相生’테마 무대공연 활발 문화예술계에서 ‘상생’은 굵직한 테마로 자리잡고 있다.다양한 장르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미술·문학 작가나 무대예술 연출가들은 이미 ‘상생’을주제로 다양한 실험작들을 발표했거나 시도하고 있으며 문화 소비자들도 작품속에 드러난 ‘상생’의 의미를 시대의 당연한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는분위기다. ‘상생’의 의미가 문화예술계에서 이처럼 폭넓게 수용되는 것은 테마 자체가 문화예술의 영역 안에 담겨지기에 훌륭할 뿐만 아니라 보는 이들의 공감대 형성에도 손쉽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상생’의 메시지 전달은 특히 무대예술에서 두드러지는데 민족춤위원회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렸던 ‘민족춤제전’과 서울예술단이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매주 금요일 상설공연하고있는 가무악‘상생-비나리99’ 공연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이 가운데 민족춤위원회의‘민족춤제전’ 공연은 인류가 생긴 뒤 동서양을 이어온 정보의 역사를 나흘간에 걸친 춤으로 꾸민 옴니버스 무대.정보문명과 새 밀레니엄을 무용언어로풀어낸 것으로 관객들은 출연진의 춤과 몸짓 자체가 정보전달에 빼놓을 수없는 수단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마지막날 공연은 사이버 공간에 서있는 인간이 상생 존중의 길을 찾아 순례에 나서는,‘상생’의 의미를강조한 독특한 구성으로 호평을 받았다.이 작품은 지난 15일 부산 경성대 콘서트홀에 이어 오는 9월17∼18일 청주 예술의전당 무대에 다시 오른다. 또 서울예술단의 가무악 ‘상생-비나리99’는 철저하게 상생의 의미를 강조한 공연.근현대사에서 당면했던 어려움을 영상과 마임,춤으로 해석하면서 이념의 갈등,지역간 감정을 상생의 개념으로 해결하자는 내용을 담았다.구체적으로는 액막이를 바라는 서민의 마음을 비나리굿으로 풀어냈다.서울예술단이아픔으로 점철된 20세기를 극복하고 21세기의비전을 제시한다는 뜻에서 기획한 장기공연으로 지난 4월부터 시작해 10월15일까지 예정돼 있다. 아울러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있는 사물놀이단인 사물놀이 한울림도 상생을 강조하고 있는 단체.이들이 세계인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아우르기 위해 벌이고 있는 공연예술·연구교육·음반기획사업에 상생의 정신이 들어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성호기자kimus@- 밀레니엄 포인트-한국인은 지나치게 흑백사고에 젖어있나 상생(相生)의 시대를 열어 가자는 주장에는 늘 ‘한국인이 지나치게 흑백사고에 젖어 있다’는 지적이 따르곤 한다. 한국인은 정말로 흑백사고에 깊이 물들어 있을까. 대답은 제각각이다.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들도많다. 한국인들이 극단적인 사고로 흐른다는 지적은 외국인들로부터도 심심찮게 듣는 소리다. 왜 그렇게 됐을까. 문화계의 팔방미인으로 불리워지는 이어령(李御寧)교수는 그 시초를 조선조의 유교 사상에서 찾는다.조선조의 유교사상이 극단화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주장은 최근 베스트 셀러에 오르 내리고 있는 ‘공자가 죽어야나라가 산다’는 꽤 ‘극단적’인 제목의 책에서도 주장되고 있다. 유교 특히 주자학은 아주 좁은 범위 안에서의 서로 다른 주장 말고는 거의모든 사고,사상,해석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부쳤다.권력 다툼은 곧잘 교리 싸움으로 포장됐다.중재자나 중간자가 설 땅은 매우 좁았다. 이런 극단적인 사고가 국가를 쇠잔하게 만들고 말았지만 조선 왕조가 무너진 뒤에도 우리에게는 다양한 사고를 키울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일제 시대는 지식인들에게 친일이냐 저항이냐의 선택을 강요했고 해방후에는 사회주의냐 반공이냐를 선택해야 했다.백범 김구(金九)를 비롯한 민족 지도자들의 죽음은 중간자가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상 공간에서 차지할 땅이 거의 없음을 보여 주었다. 이어지는 남북분단과 독재는 남이냐 북이냐,민주 투쟁이냐 아니면 독재에붙어 영달을 꾀하느냐의 선택만을 남겨 놓았다.민주화의 주장 속에서는 개발의 공이 안 보였고 개발의 논리에서는 민주화는 잠꼬대 취급을 받기일쑤였다. 이와 관련 이교수는 신한국인이라는 저서에서 “심지어 종교까지도 한국에들어오면 엄숙해지고 엄격해진다”면서 “이념이 착색되면 아주 극단화된다”고 말한다. 서동철기자 dcsuh@
  • [사설] 白凡 정신 바탕의 대화를

    어렵게 열린 베이징(北京) 남북고위급회담이 시작부터 난항을 겪어 가족상봉을 기대했던 1,000만 이산가족들과 국민을 크게 실망시키고 있다.예정보다 하루늦게 열린 22일의 첫 회담에서 남북 대표단은 기본 입장만 밝혔을뿐 회담의 계속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남북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만든 것은 북한이다.북한측은 당초 이번 회담에서 논의키로 약속했던 이산가족문제는 제쳐두고 엉뚱하게 ‘서해사건’을 들고 나왔다.서해사건이 남측의 도발로 일어났으니 사과와 함께 책임있는 대책을 내놓으라는 요구다.이산가족의 상봉에 필요한 생사와 주소 확인을 위한명단교환과 서신거래 등의 실질적 문제를 논의하자는 우리측의 요구는 아예모른다는 태도였다. 서해사건이 북한의 도발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이미 세계가 모두 알고있다.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침범으로 시작된 남북 해군의 대치상황이 북한측의 선제공격으로 교전사태로까지 확대됐던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이처럼 명백한 사건인데도 남쪽에 사과를 요구한다는 것은 회담을 깨기위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북한이 이번 회담의 시작전부터 이유없이 회담시간을 두차례나 연기하고 약속한 비료가 모두 도착하지 않았다며 회담을 일방적으로 하루 연기한데서도 이러한 의도는 짐작됐었다. 우리는 서해 사건에 이은 금강산 주부관광객 억류와 이번 남북 고위급회담에 북한의 계산된 의도가 깔려있다고 본다.받을 것은 모두 받으면서 한반도에 일정한 긴장상태를 유지하여 북한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이중(二重)전략’이라는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남한은 배제한채 미국과 상대하려는 전략일수도 있다. 핵개발의혹과 미사일 추가발사 움직임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어떤 어려움이 있든 남북대화는 계속돼야 한다.대화를 통해 특히 이산가족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이산가족문제야말로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화해·협력의 첫단계이자 남북 모두의 공동 과제이기때문이다.반세기 가까이 계속돼온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되기를 기대할수는 없다.남북관계 개선에 예기치 않은 난관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고 북한의 ‘돌출행동’도 이미 예상되던 일들이다. 올해로 서거 50주기를 맞는 백범 김구(金九)선생은 흉탄에 쓰러지기 한해전인 1948년 4월 19일 남북협상을 위해 38선을 넘었다.온갖 모략과 생명의위험까지 각오한 북행(北行)이었다.민족통일국가 건설을 위해 만난(萬難)을무릅쓴 선생의 정신이 오늘의 남북대화에도 필요함을 강조한다.
  • 白凡 서거 50주년 다양한 추모 행사

    백범 김구선생 서거 50주년을 추모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24일 백범전집(대한매일신보사 펴냄)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서거일인 26일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KBS주최의 추모음악회가 열리고,7월초에는 강화자베세토 오페라단이 창작오페라 ‘백범 김구와 상해 임시정부’를 무대에 올린다. 7월2∼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되는 ‘백범 김구…’는 4막 2장으로 구성됐으며 중국 상하이(上海)시절 백범 김구와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애국활동을 재조명했다. “맹목적인 애국주의가 아니라 한일합방에서 해방,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회고하고 ‘통일’이란 새로운 희망을 담아내겠다”는 것이 대본과 연출을 맡은 장수동씨의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창작오페라가 난해하다는 우려에 작곡을 맡은 단국대 이동훈교수는 “작품 전반에 걸쳐 웬만한 사람도 아리아를 콧노래에 따라 부를수 있을 정도로 쉽게 만들었다”며 “오케스트라의 극적인 연주 부분 등에선 현대적 기법과 한국적 선율도일부 가미했다”고 덧붙였다. 공연 중에 무대 옆 스크린 3대에 나오는 임시정부 당시의 영상화면과 2개의 무대에서 동시에 전개되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 등은 관객에게 색다른 볼거리가 될 전망이다. 오케스트라 지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치용 교수가 맡았으며 김구역은 바리톤 김성길과 류현승이,윤봉길역은 테너 박성원과 이현,김구선생 어머니 곽낙원에는 메조소프라노 강화자와 황경희가 각각 맡았다.윤봉길의 상대역인중국여성 이화림역에는 소프라노 신주련과 신애령이 출연한다. 이번 무대에 이어 오는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현지 교민과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도 추진 중이다.(02)3476-6224. 2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리는 추모음악회에는 200명으로 구성된 연합시립합창단의 합창과 서울대 이애주교수의 춤공연과함께 유명연예인의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강선임기자
  • [사설]‘白凡 金九全集’ 출간

    白凡 金九全集이 출간되었다.조국의 자주 독립과 통일을 위해 순수한 열정으로 한평생을 바친 겨레의 큰 스승 백범의 전집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매일신보사는 창간 95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백범서거 50주기에 맞춰 이 전집을 출간하고 오늘 각계 인사를 모신 가운데 기념행사를 갖게 되었다. 국민적 숙원사업의 하나가 정리된 것이다. 전 12권의 방대한 전집은 본사에서 위촉한 백범연구의 저명한 교수와 전문가 등 10명이 1년여 동안 국내외 자료를 수집하고 발굴하여 편찬한 것이다. 백범의 생애는 민족의 수난과 맥을 같이한다.그는 근현대 민족사의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반봉건·항일독립투쟁, 통일 자주 독립국가 건설에 헌신하다가 암살당했다. 백범의 암살과 함께 통일조국 건설의 꿈은 사라지고 분단체제가 굳혀지면서 반세기 동안 이땅에서는 동족상쟁과 냉전적 적대구조가 지속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백범은 자신의 표현대로 ‘상놈’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에까지 오르면서 오로지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족통일의 일념으로 살아온 우리 겨레의위대한 지도자요 스승이다. “뒷날에 뉘 있어 스스로 나라를 사랑했다 이를 양이면 스스로의 가슴에 조용히 손을 얹고 이제 백범 가신이의 생애에다 물어보지 않고는 스스로 아무나 나라를 사랑했다 생각하지 말아라.”(박두진, ‘오 백범선생’)는 평가가 여전히 공감을 받는 백범은 바로 민족의 영원한 표상(表象)이다. 본사의 이 전집출간으로 자체적으로는 정명(正名)회복과 정체성 확대의 계기가 되고 국가적으로는 올바른 역사정립을 통한 국가발전의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범의 애국정신과 평화통일 사상이 국민통합과 다시 꼬이기 시작하는 남북의 화해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평화통일의 지침이 되길 기대한다. 전집은 국내외 자료를 빠지지 않고 수록하였지만 북한쪽의 자료를 수집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루 빨리 화해와 교류의 문이 열려 백범생가에도 이 전집이 봉정되고 북쪽자료가 추가되는 증보판이 나오게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아! 이제 여기 남을 것은 차운산 한 쪼각 돌에 새긴 ‘대한민국임시정부주석김구’가 아니라 삼천만 겨레의 가슴깊이 대대로 이어갈 비바람에도낡지 않을 마음의 비명입니다.”란 조지훈씨의 ‘마음의 비명’대신 이 전집이 백범연구는 물론 일그러진 한국근현대사를 바로잡고 통일조국을 세우는국민의 지침서가 되었으면 한다.
  • [외언내언] 화교와 클린턴상

    요즘 중국에서는 국적을 지키기 위해 평생 한번밖에 받을 기회가 없는 상(賞)을 포기한 미국 거주의 한 화교 여학생 이야기가 파문을 일으키면서 ‘미·중 관계의 상징’으로까지 비유되는 것으로 보도돼 눈길을 끈다.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최근 미국에서 왕연(王淵)이라는 18세의 한 화교 여학생이 백악관이 해마다 주는 미 대통령상을 거부한 사실을 미담기사로 엮어소개했다.인민일보에 따르면 9세 때 미국으로 이민온 이 여학생은 222년의역사에 빛나는 동부지구 최고의 명문인 매사추세츠의 필립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졸업한 재원.오는 9월 하버드대 법학과에 입학할 예정이기도 한 이여학생은 클린턴 대통령이 주는 전국우수학생상을 받게 됐으나 중국 국적을바꿔야 하는 수상자격요건을 받아들이기를 끝내 거부,결국 상을 받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중국인의 민족적 자존심을 잘 읽게 해주는 이야기다.그러잖아도 얼마전 코소보사태 때의 자국대사관 피폭(被爆)으로 미국에 대한 감정이 나빴던 중국인들로선 다소나마 정신적 보상이 됐음직한 사연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민족적 우월성을 견지하기 위해 서방세계와 맞서 주고 받는 언행들은 특히 두드러진 것들이 많다.이는 근원적으로 자신들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긴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요인으로는 서방 열강들의 무차별적 침략으로 얼룩진 근대사의 쓰라린 경험에서 비롯된 증오와 경계,그리고 경쟁심리를 꼽을 수 있을것 같다.내로라하는 영국 수재들을 뒤로 물리치고 케임브리지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이광요(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구인보다 훨씬 나은중국인의 두뇌를 강조하며 싱가포르 국민들의 개발의욕을 부추겼다. 89년의천안문사건으로 중국 지도층이 서방세계와 벌였던 설전(舌戰)도 만만치 않다. 인권을 총칼로 짓밟는다는 미국의 열띤 비난에 중국측은 전혀 동요 없이“아메리카 인디언과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거나 탄압한 주제에 무슨 할말이 있느냐”고 응수했다.영국의 비난에 대해서도 아편으로 남의 나라를망치려 했던 흉악한 무리로 매도하고 아편전쟁 당시 영국에 맞섰던 임칙서(林則徐)의 구국정신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이러한 민족적 자존심과 우월성의 연결고리 때문인지 중국 본토와 대만 관계도 겉으론 적대적인 것 같으나내면적으론 매우 우호적이어서 민간교류와 경협활동이 활발히 진행중이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도 사상보다 민족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과 위대함을 강조했다.요즘 지속되는 남북관계의 혼미가 중국인의 민족우선주의를 생각케 한다. 우홍제 논설실장
  • [대한매일 발간 白凡 金九 全集](下)새로 발굴된 자료들

    전후 한국의 독립을 처음으로 보장한 ‘카이로회담’은 흔히 미·영·중 3국 수뇌들이 전후처리의 일환으로 내린 결정으로만 알려져 왔다.그러나 이같은 회담결과는 회담에 앞서 김구 주석이 중국의 장제스(蔣介石)를 만나 한국의 독립을 강력히 요청한 데 크게 힘입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이는 임정이 중국을 통해 연합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백범김구전집’ 편찬위가 대만에서 입수한 문건(總裁接見韓國領袖談話紀要,1943.7.26)에 따르면 김구 주석은 미·영·중 3개국 거두들이 모여 전후처리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고 회담개막 4개월전인 1943년 7월26일 중국대표인 장제스를 만나 한국 독립문제를 강력 요청한 것으로 나와 있다.이날 오전 9시 외무부장 조소앙(趙素昻),선전부장 김규식(金奎植),광복군 총사령 이청천(李靑天),광복군 부사령 김원봉(金元鳳)과통역요원으로 안원생(安原生)을 대동하고 장제스를 면담한 자리에서 김구 주석은 장제스에게 “미국과 영국이 전후 한국문제에 대해 국제 공동관리(共管) 방식을 주장하고 있는데 중국이 나서서 한국의 독립을 관철시켜 달라”고요청했다.이에 대해 장제스는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면서 임정측에 정파간 단합·통일을 요청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한편 1943년 11월 하순 카이로회담에 참석한 3국 거두들은 회담을 마치고 11월27일 ‘카이로선언’을 발표했는데 그 속에는 1914년 이래 일본이 점령했던 모든 영토를 빼앗고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기로 결의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이로써 한국은 처음으로 국제사회에서 독립을 보장받게 됐다.결국 장제스는 김구 주석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카이로선언으로 시작된 한국독립의 ‘희망’은 결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대만 총통부 당안관과 국민당중앙당사위원회가 소장중인 장제스의 일기(日記),카이로회담 관련기록에 따르면 회담중 영국의 처칠 총리가 한국의 독립을 반대하자 장제스가 미국의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동의를 구해낸 뒤 다시 처칠을 설득한 것으로 나와있다.그 결과 즉각적인 독립이 아닌 조건부 독립,즉‘적당한 시기’(in due course)라는 단서를 붙여 한국 독립문제에 합의를 이룬 것으로 밝혀졌다.결국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 것은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정측의외교적 노력과 장제스의 측면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김구 주석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최고지도자 장제스를 면담한 것은 1932년윤봉길의사의 의거 직후가 처음이다.이때부터 장제스 정부는 임시정부를 항일운동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김구 주석은 카이로회담에 앞선 면담에 이어 해방 때까지 총5차례 장제스와 면담한 것으로 나와 있다.두 사람의 면담기록은 이번에 대만 국민당 중앙당사위원회에서 전문이 입수돼 대부분 ‘전집’에 수록됐다.내용중 일부가 소개된 적은있지만 전문이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운현기자 - 나석주의사 편지7통 첫 공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金相玉)열사와 함께 대표적인 국내 의열투쟁 독립운동가인 나석주(羅錫疇)의사가 의거 1,2년전 백범과 동지들에게보낸 편지 7통이 처음으로 공개됐다.이 편지들은 모두 나의사가 중국에서 의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쓴 것으로 나의사의 의거에 백범이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사진).나의사가 백범에게 보낸 첫 편지는 7통의편지 가운데 가장 시기가 앞선 1924년 9월11일자이며 두번째 보낸 편지는 이듬해 7월28일자로 베이징(北京)에서 보낸 것이다.두번째 편지에는 ‘…부탁사는 이승춘(李承春)군에게 극비말씀을 동봉하여 보냅니다.이 내용은 이곳두 사람과 선생님,이군 외에는 없습니다’라는 내용과 추기로 ‘중국을 떠나는 동시에 또다시 최후로 소식을 드리겠습니다’고 적고 있어 이 무렵 이미백범과 나의사 간에는 모종의 거사가 진행중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1923년임시정부 내무총장에 취임한 백범은 당시 임정 첩보전의 총책임자격이었는데,나의사는 백범 밑에서 행동대원으로 활동했다. 첫 편지에서 나의사는 ‘나이(羅李)’라는 가명을 사용했는데 이듬해 국내잠입계획에 이승춘을 동참시키려고 하는 과정에서는 석주(石柱)·김영일(金永一) 등의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나와 있다.편지에서 나의사가 백범을 두고 ‘사랑하여 주신 선생님’‘목적을 달성하는 날까지 사랑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등으로 적은 것은 나의사·이승춘 모두 백범의 제자였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편지들은 그동안 소장처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모두 나의사가 1932년에 쓴 것으로 정리해 놓은 바람에 혼선을 빚어왔다.김희곤(金喜坤) 안동대사학과 교수는 “겉봉의 소인을 정밀확인한 결과 이 편지들은 모두 나의사의거전인 1924년(1통),25년(6통)에 작성된 것이 분명하다”며 1925년 이후“의열단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시점에서 나의사의 의거가 가능했던 것은 백범이 키워 놓은 인물과 의열단의 기존조직,그리고 때마침 심산 김창숙(金昌淑)이 국내에서 자금을 들여온 것이 맞아떨어져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당초 나의사는 1925년 중국인의 배를 구입해 여러 명이 함께 국내로 잠입,의열투쟁을 도모할 계획이었다.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못하자 1926년 단신으로 잠입해 그해 12월28일 일제의 경제침략·물자수탈의 본거지인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졌다.그러나 불행히도 폭탄 두 발이 모두 불발되자 나의사는 권총으로 자결,순국했다. 정운현기자- 臨政, 제주도 거점 국내진입 계획 해방 직전 중경임시정부가 제주도를 통해 국내진입을 계획했던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그동안 광복군이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했다가 일제의 패망으로 무위로 끝난 사실은 알려져 왔으나 진입경로를 본토가 아닌 제주도를 우회해진입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밝혀진 사실이다. ‘전집’ 편찬위가 대만에서 입수한 중국측 정보자료에 따르면 김구 주석이 미국의 중국 전구(戰區)사령관인 웨드마이어(중국명 魏德邁)장군에게 편지를 보내 ‘미군이 조선 남부의 제주도를 해방시켜 주면 임시정부가 미군의협조하에 제주도에 진입한 뒤 전 한민족을 영도해 미군의 작전을 돕겠다’고 한 것으로 나와 있다.이같은 내용은 당시 중국군사위원회 판공청 주임 허궈광(賀國光)이 해방 20일 전인 1945년 7월25일자 중국 국민당 비서장 우티에청(吳鐵城)에게 보고한 정보자료(抄韓情近報) 제1항에 나와 있다.김구 주석이 웨드마이어 장군에게 보낸 편지는 찾지 못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중국측 정보기관에서 이를 ‘비밀’ 정보자료로 보고한 것으로 봐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한시준(韓詩俊)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임시정부가 제주도를 전략상 중요지점으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라며 “임정의 국내진입작전의 또다른 계획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임정의 독립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정운현기자
  • 김구선생 추모 음악회등 보훈의 달 특집프로 다채

    KBS 등 방송사들은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의 마지막주말을 맞아 나라사랑의정신을 되새기면서 조국의 분단현실을 되돌이켜 볼 수 있는 대형이벤트를 마련한다. KBS 1TV는 백범 김구선생의 서거 50주년을 맞아 27일 오후 6시30분 서울 서대문 옛 형무소 터인 독립공원에서 ‘나라사랑 음악회’를 열고 이를 생중계한다. 공연은 김구선생의 대형 걸개 초상화를 배경으로,드라마에서 선생의 역할을 도맡아온 탤런트 이영후가 ‘나의 소원’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이애주의 춤, 안숙선의 판소리, 관객 전원의 ‘애국가’ 합창,시인고은의 추모 자작시 낭송,뮤지컬 ‘명성황후’ 출연진의 ‘백성이여 일어나라’ 합창 등이 펼쳐진다. 또 SBS는 한국전쟁 발발 49주년인 25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세계불우어린이 돕기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의 공연을 TV생중계한다.중계시간은 오후 7시부터 11시 30분까지.
  • [대한매일 발간 白凡 金九 全集](上) 주요내용

    백범 서거50주년 기념사업으로 본사가 출간한 ‘백범김구전집’은 백범의일생과 임정의 독립운동사를 집대성한 역작으로 평가되고 있다.본지는 ‘전집’의 주요내용과 편찬과정에서 새로 발굴된 자료를 상·하 두 차례에 걸쳐특집으로 소개한다. ‘백범김구전집’은 일제하에는 조국광복을,해방후에는 자주·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선생의 발자취를 처음으로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우선 큰 의의가 있다.‘전집’은 선생이 활동했던 구한말·대한제국기·일제강점기·해방정국 당시의 관련자료를 포괄적으로수록하였는데 일부 판독이 어려운 자료는 현대문으로 풀거나 일문(日文) 판결자료 등은 국역,부기함으로써 자료의 활용가치를 한층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전12권으로 구성된 ‘전집’은 크게 ‘백범일지’등 선생의 저작물에 대한평가와 동학·의병운동,임시정부 활동,해방후 건국·통일운동,서거후 진상규명·추모 관련자료와 친필휘호·사진 등 총 5부로 나눌 수 있다. ■제1부(1·2권)는 ‘백범일지’와 ‘도왜실기(屠倭實記) 등 선생의 친필저작을 해독,직해본으로 부기하였다.‘백범일지’는 선생이 1926년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령에 취임한 후 살아서 환국할 수 없다고 판단,두 아들(仁·信)에게 집안내력과 자신의 이력을 유서격으로 쓴 것으로 상해시절에 쓴 ‘상권’,1941년 중경에서 쓴 ‘하권’,그리고 환국후 서울에서 쓴 ‘하권의 계속분’ 등 3부작으로 구성돼 있다.‘백범일지’는 해방후 춘원 이광수가 내용중 일부를 윤문하여 1947년 국사원에서 초간본을 출간했는데 이승만정권 시절 한때 금서로 취급받기도 했다.‘전집’에는 이본·판본에 대한 해제·평가도 곁들이고 있다. ■제2부(3권)는 선생의 일생중에서 잘 알려지지않은 청년기를 다룬 부분으로 선생이 17세때 과거에 낙방한 후 동학에 입문,동학농민전쟁에 참여한 내용과 청일전쟁 후 반일운동의 본거지였던 청나라의 요동(遼東)지역을 원정한사실을 당시 자료로 복원하였다.또 선생이 ‘명성황후시해사건’의 원수를갚기 위해 일본군 중위를 살해한,소위 ‘치하포사건’을 규장각 자료와 당시 인천주재 일본영사관자료를 통해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청년백범’이 질풍노도기를 거쳐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해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밖에 안악·신민회사건 관련 내용은 판결문을 번역,부기하였다. ■제3부(4·5·6·7권)는 백범과 임시정부 관련자료의 집대성이다.4권은 임정의 상해(上海)시기(1919.4∼1932.4)와 1932년 윤봉길의거 이후의 이동시기(1932.5∼1938.11)등 임정의 20년 역사를 임시정부 일반·한인애국단·정당·군관학교 등 네 분야의 자료로 재구성한 것이다.총325건.5권은 임정이 중경(重慶)에 도착하여 해방때까지 활동한 기록을 엮은 것으로 당시 선생은 임시정부 주석·한독당 중앙집행위원장·한국광복군 통수권자 등을 맡아 임정과 광복군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활동하였다.자료 속에는 중경시절 선생 명의로 신문·잡지 등에 발표한 글과 선생의 영문 전기(傳記)도 2건 포함돼 있다.총175건.6권자료는 한독당과 광복군 관련자료를 특화하여 편찬한 것으로 광복군 창설과 관련,중국측과의 교섭자료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총168건.제7권은선생이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총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중국측의 지원·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중국측 인사와 주고받은 공함(公函)·간찰들로 이 가운데는 임정 승인문제를 둘러싼 중국내부의 공함들도 포함돼 있다.총318건. ■제4부는 환국후 백범의 건국·통일운동 관련 자료를 정리한 것으로 국내자료(8권)와 미국측 자료(9권)로 나뉘어져 있다.국내자료는 당시의 신문자료와 ‘국내외 동포에게 고함’(1945.9.3) 등 선생 명의의 성명서·연설문·담화문 등을 망라했다.미국자료는 당시 임정세력과 국내정치권에 대한 미군정과정보기관의 보고서·메모록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분석한 것이다. ■제5부는 선생의 서거후 암살 진상규명 관련자료(12권)와 추모록(10권),그리고 선생의 친필휘호·사진(11권)등을 엮은 것이다.친필휘호 가운데는 이번 ‘전집’간행을 계기로 경향각지에서 수집된,‘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등 선생의 대표적 휘호 200여 점이 수록됐으며,암살진상규명 부분에서는 서거 이후 최근까지의 관련자료가 망라됐다.부록으로는 선생의 연보·연구논저목록을 수록했다. ‘전집’에 수록된 자료는 그동안 국내·외에 산재한 백범·독립운동 관련자료를 집대성한 것으로 상당수는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국내자료는 백범기념사업회와 유족이 소장중인 자료를 비롯해 독립기념관·국사편찬위원회·서울대학교 규장각·정부기록보존소·국립중앙도서관 등 관련기관과 개인소장 자료를 모은 것으로 1925년 전후 나석주(羅錫疇)의사가선생에게 보낸 편지 7통 등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해외자료 가운데 대만자료는 총통부 당안관·중국국민당 당사위원회·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국사관 등에서 입수한 것으로 상당수가 최초공개 자료다. 미국자료는 미 국립문서보관소·하버드대 옌칭연구소·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등에서 입수한 것으로 광복군의 OSS 관련문서·사진,해방공간의 자료 등이 보완되었다.일본 외무성사료관에서는 윤봉길·이봉창 등 한인애국단 관련자료가 상당수 발견되었다. 정운현기자 jwh59@
  • 백범 서거 50주년 ‘구국의 발자취’조명

    오는 26일 백범 김구 서거 50주년을 앞두고 선생의 발자취와 그의 큰 뜻을돌아보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마련된다. KBS1TV ‘일요스페셜’은 20일 밤 8시 ‘백범 김구 서거 50주년’을 방송한다.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히는 백범은 청년시절 구국운동에 뛰어든 이후 상해임시정부에서 27년,해방후 환국해 5년간을 오직 민족화합과 통일에 몸바친 민족의 큰 지도자였다.48년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해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위해 단독정부를 세우는데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했던 백범의 기개는 지금도 역사의 생생한 교훈으로 살아있다.이 프로에서는 유서 대신 쓴 ‘백범일지’의 원본을 공개하고,중국 현지 취재를 통해 상해에서 중경까지 ‘임시정부 27년’의 흔적찾기에 나선다.이와함께 윤봉길 의사로부터 받은 회중시계,말년에 늘 짚고 다니던 지팡이,구두 등 백범의 유품을 소개한다. 다큐멘터리 전문 케이블 Q채널(ch25)은 26일 밤 10시 ‘특집다큐 영상발굴백범국민장’을 방영한다.제작진은 49년 7월5일 치러진 백범 국민장 전과정을 담은 15분 길이의 필름을 방송사상 최초로 공개한다.지금까지 일반에 알려진 장례식 장면은 16㎜로 찍은 5분 분량이었으나 이번에 공개되는 화면은35㎜필름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필름은 당시 주한 미국공보원에 근무하던 한국인 직원이 촬영한 것.그동안 백범이 설립한 건국실천원양성소의 동창회장 정문영씨 일가가 보관해오다 최근 백범기념사업회에 기증함에 따라 빛을 보게됐다.백범이 암살된 집무실 ‘경교장’도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았다.한편 백범의 장례식 필름은 24일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백범 김구전집(대한매일신보사 펴냄)출간기념회에서 미리 소개된다. 이순녀기자 coral@
  • [외언내언] 白凡의 추모음악회

    지금은 독립공원으로 바뀐 옛 서대문형무소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인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이 3년 남짓 수감됐던 곳이다.일제의 한반도 강점에 맞서 광복군 무관학교를 세우려다 왜병에 체포돼 징역 15년형을 언도 받은 직후였다.‘백범일지’(都珍淳주해) 따르면 하층민인 백정(白丁)과 범부(凡夫)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바람”으로 원래 연하(蓮下)였던 호를 백범으로 바꾸고 “왜(倭)의 민적(民籍)에서 벗어나고자” 이름자 구(龜)를 구(九)로 고치기로 한 것도 이곳에서였다. “우리도 어느때 독립정부를 건설하거든 그 집의 뜰도 쓸고 창호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 달라”고 백범이 간절히 기도했던 것도 이 형무소의 뜰을 쓸거나 유리창을 닦을 때였다.투옥된 후 처음 아들을 면회한 백범의 어머니가 “나는 네가 경기감사나 한 것보담 더 기쁘게 생각한다”고 씩씩하게 격려했던 것도 이곳에서였다. 백범 서거 50주년이 되는 오는 26일 이곳에서 추모 음악회가 열린다.백범기념관건립위원회(위원장 李壽成) 주최로 KBS 1TV의 ‘열린음악회’가 백범 추모특집으로 꾸며지는 것이다.추모시 낭독으로 시작돼 ‘광복군의 노래’‘우리의 소원’‘백성이여 일어나라’ 등이 독창과 합창으로 불려지고 마지막에 참가자 전원이 안익태(安益泰) 작곡 ‘코리아 판타지’중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할 예정이라고 한다. 올해는 백범이 이끌었던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80년이 되는 해이기도하다.그래서 백범추모 음악회도 다채롭게 마련되고 있다.강화자베세토오페라단은 창작오페라 ‘백범 김구와 상해임시정부’를 오는 7월2일부터 6일까지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장수동 극본·연출,이동훈 작곡,정치용 지휘의 이 오페라는 3·1운동을 시발점으로 해서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부터 윤봉길(尹奉吉)의사가 상하이에서 일본인들에게 폭탄을 던진 1932년까지의 백범 활약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순신(李舜臣)장군과 안중근(安重根)의사를 소재로 한 오페라가 각각 이탈리아·중국 작곡가에 의해 작곡돼 국내에서 공연된 바 있으나 백범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는 이번이처음이다.이 오페라도 애국가 합창으로 끝난다. 백범을 추모하는 열린음악회나 오페라는 그분의 혼백을 오늘에 다시 불러내는 초혼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위인의 생애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그 최후가 비극적이라야 한다”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지만 백범의 죽음은 우리 민족의 큰 슬픔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암살 배후가 철저히 규명되지 못한 탓이다.추모음악회를 찾아 애국가를 함께 부르며 백범의 애국혼을 느껴 볼 일이다. 임영숙논설위원
  • [특별기고] 白凡정신으로 위기 극복을

    올해는 백범선생 서거 50주년이다.백범은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치 않고,‘내 소원은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오,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썼다. 백범은 대한민국이 어떠한 완전 자주독립국가로 되기를 소원했을까? 통일된 창조적 선진 문화국가가 되어 약소국·후진국들을 돕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모범적 국가로 되기를 소원했다. 그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한다.…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그래서 진정한 세계평화가 우리나라에서,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고 썼다. 생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조국독립과 통일을 위해 싸운 백범의 민족주의는 이와같이 ‘열린 민족주의’였다.‘열린 민족주의’가 백범정신의 핵심인것이다. 일찌기 인도의 자와하랄 네루는 세계사에서 민족주의에는 반드시 구분해야할 두개 유형이 있음을 강조했다.그 하나는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약소민족을 침략하고 수탈한 민족주의이다.과거 서양열강과 일본의 민족주의가 이 유형이라고 했다.이 유형의 민족주의는 인류의 절대다수인 약소민족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인류발전과 세계평화에 큰 해악을 끼쳤다. 다른 하나의 민족주의는 열강의 제국주의침략에 대항하여 자기민족의 자유·해방·독립·통일을 추구한 약소민족들의 민족주의,제3세계의 민족주의이다.이 유형의 민족주의는 희생당해 죽어가는 약소민족들을 구원하여 자유와해방과 독립을 준 민족주의이다.이 유형의 민족주의는 인류의 행복과 발전,세계평화와 세계사의 진전에 크게 기여하는 참으로 위대한 이념이라고 했다.백범의 민족주의,한국의 민족주의는 후자 유형의 민족주의이다.백범의 민족주의,한국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압박으로부터 한국민족의 자유·해방·독립·통일만을 추구했지,단 한번도 다른 나라나 민족들을 침략하거나 지배할 것은 상상해본 적도 없는 민족주의이다.그것은 언제나 ‘열린 민족주의’였으며,세계평화를 추구하고 약소민족들을 도우려는 민족주의였다. 그러므로 민족주의의 두개 유형을 구분하지 못하고,서양열강과 일본이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세계화·세계주의를 주창하니까,덩달아 한국인들이 한국민족주의를 비판하고 ‘세계화’를 주창하는 것은 실사구시적인 것이 아니며,옳은 것이 아니다. 열강은 부강국들이므로,약소민족·후진국·중진국들이 민족주의를 버리고‘세계화’만 주창해야 약소민족들의 저항을 받지 않고 열강의 ‘국가이익의 극대화’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화를 권고하고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아직 인류사에는 ‘세계정부’도 없고 ‘보편적 세계화’도 없다.내용을들여다보면 그것은 열강의 ‘국가이익 극대화’를 분장하기 위한 열강의 ‘세계화’의 측면이 강하다. 아직도 인류사의 현단계는 모든 민족과 국가들이 자주독립을 강화하고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면서 국제협력과 세계평화를 강화해 나가는 ‘민족독립국가들의 국제적 협력강화’의 단계이다.그러므로 우리 한국과 같이 겨우 중진국 단계이고 분단국가로서 ‘통일’을 성취해야 할 나라의 국민들은 ‘열린민족주의’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한국은 민족주의를 버리면 열강에게 종속당하고 희생당하며,선진국도,통일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의 ‘열린 민족주의’는 선진국과 통일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애국심과 민족문화를 고취하고,국민경제를 발전시키며,국가이익을 철저히 수호하면서,다른 약소민족들과 후진국들을 돕고 세계평화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민족·국가와 세계를 균형·조화시켜야 하지,민족국가를 경시하거나 버리고 ‘세계화’만 강조하면,한국민족은 또 열강에게 희생당하기 십상이다. ‘열린 민족주의’의 모범이 백범의 민족주의이다.우리는 백범의 ‘열린민족주의’를 배우고 계승 발전시켜 당장의 IMF 사태,WTO 세계체제의 도전을극복하고,궁극적으로는 민족통일을 달성하며,창조적 선진 문화국가를 건설하여 진정한 세계평화와 국제협력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사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6월은 현충일(6일)과 6·25가 있는 호국·보훈의 달이다.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그분들이 남긴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기리는 행사들이 이달내내 전국적으로 펼쳐진다.해마다 맞는 호국·보훈의 달이지만 올해는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한 듯하다.나라와 민족이어려울 때 목숨까지 던지며 위기에서 구한 고귀한 희생정신이 과거 어느때보다 절실한 오늘의 세태(世態)때문일 것이다. 6·25이후 최대의 국난(國難)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사태는 온국민들의눈물겨운 노력으로 위기를 겨우 넘긴 상태이다.그러나 아직도 실업자가 넘쳐나고 많은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맨 채 고통을 참고 있다.조금만 방심하면언제 또다시 위기가 덮쳐올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벌써 언제 그런 위기가 있었느냐는듯 일부 계층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소리가 불길하다.대다수 국민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만 좋고 배부르면 그만이다’는 이기주의가 나라의 앞날을 걱정스럽게 한다.넋 나간 일부 지도층 부인들의 난데없는 ‘옷 로비’사건이 IMF사태로 어려움을겪고있는 서민들을 더욱 서럽고 가슴아프게 만들고 있다.정치권과 공공부문,재벌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도 국가의 장래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이기주의 때문이라 할 것이다.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이 새삼 아쉬운 오늘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올해도 추모식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들이 연례적으로 치러진다.자라는 세대들에게 6·25때의 어려움을 맛보게 해주는 주먹밥과 개떡 먹기도 빠지지 않는다.연례행사에 덧붙여 올해는 반드시 해야할 과제가 있다.독재에 항거하여 목숨을 바쳤으나 아직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많은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제대로 대접해 주는 일이다.정당한평가와 대우로 이들의 고귀한 뜻을 살려야 할 것이다. 순국선열과 국가유공자를 추모하고 그들과 그들의 유가족을 돌보는 일은 국가의 임무이자 국민의 당연한 도리이다.그분들의 뜨거운 애국·애족정신과숭고한 희생정신이 오늘의 바탕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국가재정이허락하고 살림형편이 닿는대로 보훈사업은 늘려야 한다.더욱이 올해는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80주년이다.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金九)선생이 돌아가신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여 더욱 뜻이 깊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정신에 비추어 경건한 마음으로 오늘의 우리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호국·보훈의 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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