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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예체능계 취업률, 대학평가서 제외한다

    내년부터 대학을 평가할 때 인문·예체능 계열 취업률 지표를 반영하지 않는 방안이 추진된다. 지난달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학평가 지표 중 하나가 취업률인데 이를 높이려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 관련 학과를 폐지하는 대학이 생긴다”고 지적하고, 같은 달 27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총장단이 “대학을 획일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건의한 데 따른 조치다. 교육부는 4일 “앞으로 대학평가를 할 때 양적 평가보다 질적 평가를 하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인문계열 취업률 지표를 배제하는 방안 등을 담은 대학평가 시스템 개선안을 8월 말쯤 발표하기로 했다. 올해 대학평가까지는 지난해 발표한 기준대로 평가가 진행된다. 박백범 교육부 대학지원실장은 “공학·상경 계열의 경우 취업률 지표를 무시할 수 없지만 예체능 계열은 졸업 후 바로 취업하기 힘든 경우가 많고 인문계열 역시 취업률 위주 평가 때문에 교육의 본질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적지표 중심으로 이뤄지는 대학평가는 제대로 된 대학평가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4년제 대학 취업률은 59.5%였지만, 의약계열(73.8%)과 공학계열(62.6%)에 비해 인문계열(48.4%)과 예체능계열(44.1%)의 취업률이 낮게 집계됐다. 지난해 전체 졸업생 가운데 예체능계열 졸업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4년제 11.2%, 전문대 16.9%였다. 인문계열 졸업생은 4년제 13.1%, 전문대 4.0%씩이었다. 그동안 대학평가는 교육역량강화 사업, 정부재정지원 제한 대학 선정, 학자금대출 제한대학 선정 등에 활용되어 왔다. 정부의 대학평가에서 취업률 지표는 15%를 차지했다. 대학평가가 사실상 퇴출대학을 선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동안 대학들이 졸업생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졸업생을 교직원으로 채용하는 등 편법을 동원해 빈축을 사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민주 “정치공작 진상규명” 첫 장외투쟁

    민주 “정치공작 진상규명” 첫 장외투쟁

    민주당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와 관련해 30일 첫 장외투쟁을 갖고 원내외 병행 투쟁에 나섰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등에 대해 여권에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드러나자 본격 대여 공세에 나선 것이다. 당 지지세를 만회해 보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민주당은 원내에서 국정원 국정조사에 주력하는 동시에 원외에서 권역별 규탄대회를 여는 등 병행 투쟁에 나섰다. 제1야당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줌으로써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의 차별화를 드러내는 효과도 있다. 민주당은 부산, 광주 등에서도 순회 집회를 여는 등 여론전에도 주력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정치공작 진상규명 및 국정원 개혁 촉구 서울시당 당원 보고대회’를 개최했다. 보고대회에는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서울지역 민주당원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 민주당이 옥외집회 대신 옥내 대회를 택한 것은 국회를 포기하고 거리로 나설 경우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를 수 있고, 동원 능력에 한계가 예상되는 데다 폭염까지 겹치면서 자칫 참석 인원이 저조할 경우 대여투쟁의 기세가 급격히 꺾일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대회에서 민주당 서울시당 당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요구 등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책꽂이]

    영웅 백범(홍원식 지음, 지식의숲 펴냄) 백범 김구의 생애와 사상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백범 일지’의 사건들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400쪽. 1만 3900원. 활력 경영(정이만 지음, 나남 펴냄) 63시티, 플라자호텔 대표이사를 지낸 저자는 인간 중심 경영을 통해 사람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면 목표 대비 130%, 200%도 달성할 수 있다는 ‘활력 경영’론을 주장한다. 267쪽. 1만 4000원. 길에서 별을 만나다(유별남 지음, 이마고 펴냄) 10여년간 사막이나 고산지대, 분쟁지역을 오간 사진작가 유별남의 편지와 사진을 엮었다. 온몸으로 뚫고 지나온 길 위의 삶이 담겼다. 240쪽. 1만 5000원. 제왕들의 사생활(윌 커피 지음, 남기철 옮김, 이숲 펴냄) 제왕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한 유쾌한 역사서. 이집트의 파라오부터 페리클레스, 네로 등 그리스·로마의 통치자, 루이 14세 등 유럽의 군주까지 제왕 20여명의 삶을 소개했다. 328쪽. 1만 5000원. 셜록 홈즈 추리파일(팀 데도풀로스 지음, 윤금현 옮김, 보누스 펴냄) 150개의 미해결 사건을 제시하고 독자가 직접 이를 풀어내도록 유도한다. 수학적 사고를 추상화한 책의 화법이 돋보인다. 300쪽. 1만 2800원. 신동삼 컬렉션:독일인이 본 전후 복구기의 북한(신동삼 지음, 눈빛 펴냄) 전후 북한과 관련된 500여장의 컬러 사진을 복원해 수록했다. 망명한 북한 유학생 출신 신동삼(83) 선생이 함흥시 재건 현장과 북녘 산하, 문화재 등의 모습을 전한다. 488쪽. 2만 9000원. 사랑은 왜 아픈가(에바 일루즈 지음, 김희상 옮김, 돌베개 펴냄) 감정사회학의 대가인 에바 일루즈의 역작. 오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성 간 사랑의 이면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이 빛난다. 부제는 ‘사랑의 사회학’. 556쪽. 3만원.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테드 코언 외 지음, 문은실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 야구와 철학을 접목한 통섭적인 서술이 독특하다. 테드 코언 시카고대 철학과 교수 등 20명의 필진이 야구사의 흥미로운 사건과 비화를 끄집어내 철학적인 해답을 찾는다. 422쪽. 2만원. 열녀전(유향 지음, 이숙인 옮김, 글항아리 펴냄) 동아시아 2000년 역사에서 고전의 권위를 누려온 열녀전의 완역본. 기존 문헌 속 인물을 선별해 편집하는 대신 저자가 이야기를 변형시켰다. 역사와 서사, 사실과 허구가 섞였다. 712쪽. 2만 9000원. 하루 한 끼의 기적(이태근 지음, 정신세계사 펴냄) MBC다큐멘터리 ‘기적의 사나이’의 주인공이 전하는 1일 1식의 기적. 신장이식을 했던 저자는 1일 1식으로 28년간 약을 끊고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고 있다. 208쪽. 1만 2000원. 밤의 인문학(밥장 지음, 앨리스 펴냄) 늦은 밤 ‘바’에서 벌어지는 인문학의 아라비안나이트. 인문학의 접근 범위를 넓힐 수 있게 도와주는 도서 지침서. 저자가 맥주잔을 기울이며 읽어온 책의 기록이다. 300쪽. 1만 5000원. 상인 이야기(이화승 지음, 행성:B잎새 펴냄) 인의와 실리를 좇아 천하를 호령한 중국 상인사. ‘사기’의 화식열전에 실린 범려, 자공, 백규와 같은 상인들의 경영전략이 담겼다. 국내 학자가 처음으로 집대성한 중국 상인의 성장사다. 384쪽. 1만 8000원.
  •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4주기 추모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4주기 추모

    백범 김구 서거 64주기 추모식 및 경교장 내부 복원 기념식이 26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경교장에서 열렸다. 고 이한열씨의 어머니 배은심(왼쪽에서 세 번째부터) 여사, 백기완 민족문제연구소장,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단상에 헌화하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문화단신]

    김구 선생 서거 64주년 창작 판소리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4주년을 맞는 오는 26일 선생을 기리는 판소리가 울려퍼진다. 창작 판소리 명창 임진택이 선보이는 ‘백범 김구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다. 3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은 1부 청년역정, 2부 대한민국임시정부, 3부 해방시대로 이루어졌다. 임진택은 “‘백범일지’는 한글과 한문이 어우러지고 산문과 운문이 막힘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체’ 문학의 정수로, 그 자체로 판소리 사설의 바탕이 됐다”고 밝혔다. 장충단공원 내 다담에뜰. (02)763-9854.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 데뷔 리사이틀 바이올린 여제 안네 소피 무터를 사로잡은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이 21일 데뷔 리사이틀을 갖는다. 무터가 자신의 재단을 통해 후원하는 현악 연주자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던 최예은은 슈베르트, 브람스, 프로코피에프 등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선보일 예정이다. 예술의전당 IBK체임버홀. 4만~5만원. (070)8879-8485. 바흐와 일렉트로닉의 독특한 하모니 서양 클래식 음악의 시작인 바흐(1685~1750)를 ‘21세기 방식’으로 듣는 무대가 열린다. 19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룩셈부르크 출신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의 첫 리사이틀에서 바로크와 일렉트로닉 음악의 조합이 펼쳐진다. 트리스타노는 클래식 공연장과 클럽, 재즈 페스티벌을 넘나들며 시대와 스타일을 마음껏 충돌시키고 결합시키는 연주자다. 4만~6만원. 1577-5266.
  • [열린세상] 새 정부의 그랜드 디자인/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새 정부의 그랜드 디자인/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넉 달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진용도 갖추어지고, 바야흐로 새롭게 출범한 정부다운 면모를 다듬어 가고 있는 듯하다. 수많은 현안과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외정책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국내정치도 물론 쉽지 않지만 북한을 포함한 주변정세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국제사회의 제재, 일본의 우경화, 중국의 부상, 한·미관계의 재조정 등 새 정부 출범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대북관계와 주변 4강 관계는 한반도 대외정책의 핵심이다. 올 초부터 심각하게 전개된 북한의 핵실험과 유엔의 제재, 그리고 개성공단 폐쇄에 이르는 일련의 긴장국면은 새 정부의 가장 큰 시련이 되고 있다.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한·미 간의 안보협력과 정책공조 역시 지난번 대통령의 방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제였다. 이달 말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점차 중요해지는 한·중관계에 대한 비중 있는 논의가 기대된다. 한편 주변 국가들과의 감정적 대립을 불사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깊어만 간다. 그런데 이런 여러 현안들을 죽 펼쳐 놓으면 무언가 큰 그림이 떠올라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 퍼즐조각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지만 이것들을 다 맞추었을 때 전체가 하나로 뭉쳐지는 그림이 안 보인다는 얘기다. 새 정부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퍼즐조각을 찾기도 힘겨운데 큰 그림도 함께 그리라니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퍼즐이 맞추어지는 과정을 관람해야 하는 국민들 입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현안들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종착점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의 ‘그랜드 디자인’이 약하다는 데 있다. 국내정치 차원에서는 다양한 공약들이 정책화되면서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등의 그림들이 빠르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대외정책의 차원에서는 다양한 이슈들을 한데 모으는 국가전략, 큰 그림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말하자면 한반도 현안과 주변 4강에 관련된 이슈들이 결국에는 우리의 어떤 미래를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거대 담론이 없다는 것이다. 원칙을 중시하는 철학이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중요한 정책 가이드라인이지만, 어디까지나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실무경험이 풍부한 외교안보라인이 많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한데 묶는 통합 프레임워크가 여전히 선명하지 않다. 백범 김구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국가가 ‘아름다운 나라’로서 ‘문화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언급했다. 우리는 스스로 풍족하게 살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과 남의 침략을 막아낼 정도의 군사력만 가지면 족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다만 ‘문화력’만큼은 한없이 가지고 싶어 했는데, 이를 통해 우리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정신을 배양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 문화가 필수적 요소라고 보았다. 백범은 우리나라가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으로서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평화의 기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백범이 신생 대한민국의 정부를 맡을 기회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의 ‘문화국가’는 분명 미래의 나라 모습을 그려낸 큰 그림이었다. 매번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마다 국가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하나로 묶어 미래의 청사진으로 그려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국가전략은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토대로서 의미가 있지만, 정부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궁극적인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복잡다단한 현안들을 헤쳐 나가면서 장차 우리가 도달하려는 목표가 어디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세계무대의 ‘주연 배우’로서 우뚝 서는 문화국가를 제창했던 백범, 국가적 ‘그랜드 디자인’을 그려야 하는 지금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선각자가 아닐까?
  • [위기의 한국사 교육] (4·끝) 논쟁 넘어 대안으로

    [위기의 한국사 교육] (4·끝) 논쟁 넘어 대안으로

    한국사 교육의 파행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교육부는 최근 일선 교사 출신을 포함시켜 한국사 교육 강화를 위한 추진단을 꾸리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추진단은 한국사를 재미있게 가르치는 방법, 학생이 역사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 등을 연구해 종합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하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포함한 대학입시 과목에 한국사 과목 비중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서는 다른 교과목과의 형평성을 들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 지정과 같은 제도적인 대책 외에도 학생들이 역사 과목에 대해 스스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수업 내용과 방식을 보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백범 교육부 대학지원실장은 13일 “국어, 영어, 수학도 (수험생들의 지망 대학에 따라) 수능 필수과목이 아닌데 한국사를 예외로 두기 어렵고, 대학들이 한국사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수능 필수 응시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면서 “입시에서 어떤 과목 성적을 반영할지는 대학 스스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이어 “입시를 위해 한국사 지식을 암기한 뒤 입시가 끝나면 넌더리 나서 다시 들여다보지 않게 만들던 과거 교육도 문제였다”면서 “학생들이 한국사 공부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은 교육부가 학교 현장에서 역사 교육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여론에 떠밀려 소극적인 대책만 내놓는다고 비판한다. 우리역사교육연구회 회장인 이두형 서울 양정고 교사는 “한국인이 한국사를 알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학생이 없고, 역사 과목에 매력을 느끼는 학생도 많다”면서 “하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대입에 포함되지 않은 역사 과목을 공부하라고 무조건 권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역사 교사들이 편향된 이념 논쟁을 걸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진도 맞추기에 급급해 1년 동안 체험학습 한번 못 하는 지금의 역사 교육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0~2011년 역사 과목이 고교 필수과목에서 빠지고 서울대만 수능 중 한국사 성적을 반영하는 일련의 조치가 이뤄진 뒤 수능에서의 한국사 선택률은 2005년 27.7%에서 지난해 6.9%로 줄었다. 학계 역시 교육부의 역사 교육 강화 의지를 의심한다. 대입 반영률 축소 외에 ▲2009년 총 102시간에서 85시간으로 줄어들어 역사 체험활동 교육을 하기에는 부족한 수업 시간 ▲최근 매년 바뀌다시피 한 역사 교육과정 개편으로 인한 수업 연구 미비 등이 역사 교육 황폐화를 불러왔는데, 이 같은 현상을 유도한 게 다름 아닌 교육부라는 지적이다. 김창성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사실만 나열한 역사 교과서를 보며 지금 시대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고, 학생들의 흥미도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가 ‘사전’이었다면 해리포터를 연상시키는 ‘이야기책’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역사를 홀대하는 교육 당국은 전 세계에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이 어떤 방식의 역사 수업을 선호하는지 연구한 경기 화성시 동탄국제고의 이해영 교사는 “교사는 말하고 학생은 듣기만 하는 ‘설명식 수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지만 제한된 수업 시간에 진도를 맞추고 입시까지 고려하면 다른 수업을 시도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역사 교육이 더 개방적으로 변해야 학생들이 제대로 우리 사회를 이해할 것”이라면서 “19세기 이전의 한국사는 동아시아사 속에서, 20세기 이후의 현대사는 세계사 속에서 함께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970년대 이후의 현대사는 역사를 만든 장본인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상 공정하게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1970년대 이후는 국사에서 다루기보다 정치와 경제 등 사회 과목에서 폭넓게 다뤄 학생들의 이해를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여야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해야”

    여야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해야”

    국회 대정부 질문 마지막 날인 13일 교육·사회·문화 분야에서는 ‘역사 교육’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여야는 한국사 교과서 이념 논란에 대해 공방을 벌였지만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있어서는 한 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보수 성향의 학자들이 집필한 검정 교과서에 김구 선생이 테러리스트로 표현됐다는 뜬소문을 민주당이 사실인 양 퍼뜨렸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최근 검정 심의를 통과한 교과서를 놓고 ‘극우 교과서’라는 루머가 유포되고 전교조는 불매운동을 벌일 태세”라면서 “여기에 야당까지 나서서 해당 교과서를 ‘왜곡 교과서’로 낙인찍으려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10일 대정부 질문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백범 김구 선생이 테러리스트냐”고 질의한 뒤 “뉴라이트 교과서에 이렇게 적혀 있고 이것이 통과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올해 8월 말 최종 채택되기까지 검정 결과를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고 해당 내용도 허위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검정 과정 중인 일부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12·12 군사쿠데타’를 ‘12·12 사태’로 표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붙은 ‘역사 왜곡 논쟁’도 국회로 옮아왔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대부분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군을 향해 발포한 사실을 게재하지 않고, 고교 교과서들은 12·12 군사쿠데타를 12·12 사태로만 표기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런 역사 왜곡을 방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로 반(反)민주 세력의 역사 왜곡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면서 “역사 논쟁이 불거지면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극심한 분열과 갈등만 생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사를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야 모두에서 나왔다. 이용섭 의원은 “아이들이 이완용의 매국 행위에 분노하고 성삼문, 안중근의 충절을 배우면서 정의감과 애국심을 키워 가야 함에도 대학입시에 매몰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대입에서 외면받고 있는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면서 “말로만 역사가 중요하다고 할 게 아니라 정부가 청소년들의 역사관 확립을 위해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문제도 잇따라 제기됐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전 전 대통령 자녀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1000억원이 넘는다”면서 “국회에 제출된 추징금 시효를 연장하는 ‘전두환 추징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추징금은 징역 등 본형에 대한 부가형인데, 본형을 집행하고 부가형인 추징을 집행하면서 그게 안 됐다고 해서 징역(형)을 내리면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가족에게 책임을 물리는 문제도 연좌제나 자기책임주의에 반하지 않느냐는 이론적 논란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위기의 한국사 교육] 고교생 69% “한국전쟁은 북침”…무너지는 우리 청소년 역사인식

    [위기의 한국사 교육] 고교생 69% “한국전쟁은 북침”…무너지는 우리 청소년 역사인식

    국내 고등학생 10명 가운데 7명이 한국전쟁을 ‘북침’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서는 ‘안경’을 가장 먼저 떠올리거나,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등 근·현대사의 핵심적인 사건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서울신문이 입시전문업체인 진학사와 함께 최근 전국의 고등학생 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0일 내놓은 ‘2013년 청소년 역사인식’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9%(349명)가 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답했다. 현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6종 모두 한국전쟁의 발발 형태를 ‘남침’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학생들은 북침(北侵)과 남침(南侵)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헷갈리거나 전쟁의 발발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고교생들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단편적인 정보만을 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구 선생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하라는 질문에는 응답자 대부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과 같은 개념을 연결하는 수준에 그쳤다. ‘도시락 폭탄’과 ‘손가락’, ‘도산’ 등 다른 독립운동가와 혼동하거나 ‘어린이날을 제정하신 분’이라는 황당한 답변도 나왔다. ‘민주화’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도 ‘잘은 모르지만 긍정적인 뜻’,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에서 나쁜 뜻으로 쓰는 말’로 답하는 등 뜻을 모르는 학생들도 많았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식민 지배를 찬양하는 등 그동안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역사의 근간으로 여겨졌던 사실들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면서 “청소년들이 우리 역사를 외면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한국사의 근간 자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위기의 한국사 교육] “학생들 친일청산·민주화 이해 못해 區에서 역사관 관할, 격에 맞지 않아”

    [위기의 한국사 교육] “학생들 친일청산·민주화 이해 못해 區에서 역사관 관할, 격에 맞지 않아”

    “서대문형무소는 친일과 반독재의 살아 있는 현장이죠. 하지만 예전과 달리 친일파 청산과 민주화의 당위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구에서 ‘친일인명사전 학교보내기’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영수(47)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은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방문객 중 관심을 갖고 운동의 취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40대 이상의 장년층이어서다. 자신을 86학번이라고 소개한 김 위원은 “시위에 나서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꼈던 우리 세대와 요즘 ‘1020세대’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오는 10월이면 문을 연 지 105주년을 맞는 서대문형무소는 우리 역사 교육의 살아 있는 현장이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렀던 이 형무소는 1998년 11월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관람객 수는 57만 9115명, 이 가운데 외국인도 6만 2888명으로 집계됐다. 박경목(42)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은 “주로 부모님과 함께 체험 학습을 하러 온 학생들과 단체 관광객이 많다”면서 “외부 강연을 나가다 보면 10·26이나 5·18은 물론 경술국치의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를 누가 저격했는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휴일인 지난 9일 가족들과 함께 충북 청원군에서 상경했다는 윤종필(45)씨는 “암울한 역사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을 직접 찾았다”면서 “학교에서 역사교육을 등한시하기 때문 아니겠나”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서울시나 문화재청이 아닌 서대문구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관할한다는 점은 그 역사적 중요성에 비춰 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대문형무소는 백범 김구와 도산 안창호 선생 등 독립운동가 9만여명이 투옥된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국가보훈처가 관리하는 천안 독립기념관만큼이나 민족의 아픔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 10월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곳은 1923년 5월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고, 1945년 8·15 해방 이후부터 1987년 10월까지 서울교도소·서울구치소로 운영됐다. 박 관장은 “개발독재시대 정부의 역사인식을 생각하면 지금은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역사 교육을 보완하기 위한 체험장으로서 전국 학교를 대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우리 현대사의 현장을 널리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고교생 10명중 7명 “한국전쟁은 북침”

    고교생 10명중 7명 “한국전쟁은 북침”

    국내 고등학생 10명 가운데 7명이 한국전쟁을 ‘북침’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서는 ‘안경’을 가장 먼저 떠올리거나,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등 근·현대사의 핵심적인 사건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서울신문이 입시전문업체인 진학사와 함께 최근 전국의 고등학생 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0일 내놓은 ‘2013년 청소년 역사인식’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9%(349명)가 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답했다. 현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6종 모두 한국전쟁의 발발 형태를 ‘남침’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학생들은 북침(北侵)과 남침(南侵)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헷갈려 하거나 전쟁의 발발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고교생들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단편적인 정보만을 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구 선생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하라는 질문에는 응답자 대부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과 같이 개념을 연결하는 수준에 그쳤다. ‘도시락 폭탄’과 ‘손가락’, ‘도산’ 등 다른 독립운동가와 혼동하거나 ‘어린이날을 제정하신 분’이라는 황당한 답변도 나왔다. ‘민주화’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도 ‘잘은 모르지만 긍정적인 뜻’,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에서 나쁜 뜻으로 쓰는 말’로 답하는 등 뜻을 모르는 학생들도 많았다. 응답자의 24%(121명)는 4·19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10항쟁을 군사 반란에 해당하는 12·12정변과 혼동하기도 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식민 지배를 찬양하는 등 그동안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역사의 근간으로 여겨졌던 사실들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면서 “청소년들이 우리 역사를 외면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한국사의 근간 자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1020세대’의 빈약한 역사 인식이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최근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의 본 심사를 통과하면서 이념 논란이 격화하는 등 한국사 교육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경고음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서울신문은 총 4회에 걸쳐 원인과 진단, 대안과 해법 등을 짚어 본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남산공원, 100번째 입양

    남산공원, 100번째 입양

    남산공원이 100번째로 입양됐다. 서울시는 4일 중구 회현동 일대 남산공원 백범광장에서 LG유플러스와 남산공원 돌보미 협약을 맺었다. 협약 후 문승국 행정2부시장과 신용삼 LG유플러스 사장 등 100여명은 잡초 제거와 철쭉 가지치기 등 돌보미 활동을 벌였다. 시는 지난 3월부터 지역의 단체·기업이 공원을 입양해 직접 관리하는 돌보미 사업을 추진해 월드컵공원 등 99개 공원이 129개 단체에 입양됐다. 이번 협약 체결로 LG유플러스는 남산공원에서 쓰레기 줍기와 잡초 제거, 꽃·수목 심기, 시설물 파손 방지 등 꾸준한 돌보미 활동을 하게 됐다. 또 지난해 6월 복원을 끝낸 남산도서관~남산 순환로~힐튼호텔 구간 환경정화와 파손된 시설물 신고 등 다양한 봉사도 펼칠 예정이다. 시는 더 쉽고 편리하게 온라인상에서 돌보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달 중 공원 홈페이지에 녹지 돌보미 웹사이트를 개설할 계획이다. 구아미 공원녹지정책과장은 “돌보미 사업에 기업과 학교, 시민단체 등이 잇달아 참여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지역 공원을 시민들이 함께 가꾸고 즐기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고시열전] ⑧ 행시 28회 합격자들

    [고시열전] ⑧ 행시 28회 합격자들

    행정고시 28회가 1984년 치러졌으니 합격자들은 올해로 공직생활 29년차가 된다. 합격자 절반 정도가 고위공무원 가급(실장급) 또는 나급(국장급) 보직을 맡고 있다. 일부는 차관급에 올랐다. 각 부처에선 27회 출신들과 함께 주력 간부진을 이루어 경쟁을 하고 있다. 가장 앞서 나간 이들은 지난 정부에서 차관급에 오른 사람들이다. 김응권 전 교육과학기술부 1차관, 조율래 전 교과부 2차관,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김정하 전 감사원 사무총장 등 4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명박 정부 임기말에 임명돼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공직을 떠났다. 새 정부의 첫 차관으로 임명된 28회 출신은 3명이다. 이복실 여성가족부 차관, 정현옥 고용노동부 차관, 홍윤식 국무조정실 2차장이 그들이다. 이복실 차관과 정현옥 차관은 둘 다 여성인 데다 동기로 나란히 차관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 차관은 여성부 출범 후 첫 여성 차관이라는 기록을 세워 주목을 받았다. 정 차관은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끝으로 공직을 잠시 떠났다가 차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해 부러움을 샀다. 실·국장급으로 28회 출신들이 많이 포진한 대표적인 부처는 안전행정부와 기획재정부다. 두 부처에서 아직 28회 출신 차관이 나오지 않은 만큼 누가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차관이 될지도 관심거리다. 안행부에는 가급 고위공무원으로 오동호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단장, 김승호 인사실장, 노병찬 대전시 행정부시장, 박성환 울산시 행정부시장이 근무 중이다. 이들 중 오동호 단장이 가급 승진이 가장 빠르고 광역시 부시장도 먼저 했다. 김승호 실장은 대학 재학중 고시에 합격하면서 연수원 교육은 동기들보다 1년 늦게 29회와 함께 받았다. 안행부 지방행정국장에서 승진해 청와대에 나가 있는 박동훈 지방자치비서관도 이들과 동기다. 나급으로는 권영수 소방방재청 기획조정관, 송영철 감사관, 김갑섭 국가가록원 기록관리부장 등이 안행부에서 일하고 있다. 기재부에선 최근 승진한 방문규 예산실장, 정은보 차관보가 가급 고위공무원으로 눈에 띈다. 새누리당 전문위원으로 있다가 기재부 재정업무관리관 공모에 단독 지원한 김상규씨도 조만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보인다. 나급 보직에는 곽범국 국고국장, 문창용 재산소비세정책관, 윤태용 대외경제국장, 최광해 장기전략국장 등이 포진해 있다. 이들 외에 28회 출신 중 가급 고위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사람은 김준동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 박백범 교육부 대학지원실장, 방선규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장, 박용현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 우예종 해양수산부 기조실장, 이병국 국무조정실 정부업무평가실장, 이운호 산업부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이준원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 임옥기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 정길영 감사원 제2사무차장, 권율정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장, 진웅섭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장, 최재해 감사원 제1사무차장, 최정호 국토부 항공정책실장 등이다. 나급 보직에는 문호승 감사원 감사연구원장, 고승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김연근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 김용진 국립생물자원관 생물자원연구부장, 김원찬 교육부 국장(고위과정 교육), 김찬기 전남대 사무국장, 김필구 산업부 제품안전정책국장, 송유종 산업부 에너지자원정책관, 안수영 국조실 경제규제관리관, 오승현 울산시 부교육감, 왕진호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장, 이승재 우정사업본부 서울지방우정청장, 임의택 국토부 부산지방항공청장, 임주빈 국토지리정보원장, 임환수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정양호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환경부), 정일용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공사 등이 있다. 공직을 떠나 공공기관에 진출한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행안부 출신의 김기식 한국승강기안전기술원 기술안전이사, 감사원 행정문화감사국장을 지낸 이세도 한국농어촌공사 감사 정도다. 민간 부문에선 강문석 LG유플러스 부사장, 강승모 유성물산교역 대표이사, 김중규 카스파김중규행정학아카데미 대표 등이 눈에 띈다. 강문석 부사장은 정보통신부 과장 때 공직을 떠나 정보기술(IT) 업계에서 활동해 왔다. 강승모 대표는 부친 가업을 이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김중규 대표는 고시 출신으로는 드물게 공무원시험 전문학원을 세워 크게 성공했다. 학계에는 행자부 출신의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가 강단에 서고 있다. 28회 출신들은 정기적으로 동기모임을 갖는 등 우의가 돈독한 편이다. 동기회 이름은 ‘백사회’다. 연수원 교육을 함께 받은 이들이 104명이라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들은 매월 네번째 월요일 ‘사월회’란 이름으로 오찬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오동호 안행부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단장은 동기들에 대해 “28회 출신들은 다른 기수에 비해 결속력이 강한 편”이라며 “현재 각 부처 주요 실·국장에 포진해 있는 만큼 정부 정책을 당분간 주도해 나가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임창용 전문기자 sdragon@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백기완(80)은 거리에 있었다. 1973년 유신헌법 개정 투쟁 때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도 그는 늘 대오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지금도 거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철거할 때도 백발의 백기완은 새벽같이 나와 천막을 지켰다.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는 곳이 나의 삶터”라고 말하는 백기완.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에 호통치고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는 그는 여전히 젊다. 백기완의 삶과 예술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백기완을 거리로 이끈 것은 가난과 분단이었다. 1933년 황해도 은율 산자락에서 태어났다. 땅 한 뼘 갖지 못한 아버지는 돈이 없었다. 배가 고팠다. “돼지기름 덩어리 한 조박(조각의 황해도 사투리)을 날로 먹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다. 일제의 잔학한 수탈이 계속되던 때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왜놈들이 집에 와서 놋그릇을 뺏어갔어요. 쌀도 뺏고 밥그릇도 뺏고,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그런데 엄마가 그만 울래요. ‘사내 새끼가 자꾸 울면 키가 안 큰다. 어서 커서 엄마 원수를 꼭 갚아 달라’고. 그때부터 민족의식이 싹 텄던 것 같아요.” 1946년 백기완은 아버지를 따라 맨발로 서울에 왔다. 도시는 냉정했다. 설렁탕 집에서 일을 하다가 “식은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그에게 서울은 “주먹으로도 안 되고 참아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곳”이었다. 가진 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저항심리가 그에게 민중 의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학교는 꿈도 못 꿨다. 충무로 책방에서 주인 몰래 영어 사전을 외우다 쫓겨나기를 거듭했다. 그의 할아버지(백태주)에게서 항일투쟁 때 도움을 받았던 백범 김구(1876~1949)와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을 지낸 조소앙(1887~1958) 선생이 학교에 보내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마다했다. 아버지는 “백범에게 밥을 얻어먹으면 백범 같은 사람밖에 안 된다. 깡패가 되든 거지가 되든 혁명가가 되든 혼자서 크라”고 했다. 1950년 전쟁으로 나라가 찢어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은율에 있었다. 남쪽에서 참전한 작은형은 “북쪽에 계시는 어머니를 겨냥해서는 단 한 방도 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만 빵빵 쏜다”는 편지를 남기고 전장에서 숨졌다. 형의 유해를 찾으러 강원도에 갔다가 사격을 당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뛰면서 다짐했다. 언젠가 나라의 허리를 내 손으로 잇겠다고. 전쟁이 끝났다. 국토는 폐허였다. 백기완은 ‘나라가 온통 퇴폐와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고 여겼다. “우리 생명을 심자”며 젊은 날을 나무심기와 농민운동에 바치기로 했다. 1953년부터 꼬박 7년. 그때는 불덩어리 같았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1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뜨거운 청춘이 되살아나는 듯 백기완은 인터뷰를 멈추고 거친 목소리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렀다. “바라보라 붉은 산 햇빛에 탄다/ 저 산을 푸르게 마음도 푸르게/ 저 산을 푸르게 조국도 푸르게/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우리는 선봉이다 자진녹화대” 100만 그루의 나무는 이 땅에 생명이 되었을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승만 독재가 강화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은 반 세기 넘게 이어졌다. 그는 ‘가대기 형(兄)’ 이야기를 했다. “가대기 형은 서울역에서 막일하던 지게꾼이었어요.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그냥 가대기 형이라고 불렀어요. 싸움을 잘했지만 주먹쟁이는 아니었어요. 내가 가난한 친구들이랑 주먹다짐을 하고 나면 이렇게 얘기했죠. ‘싸움은 있는 놈, 나쁜 놈들이랑 하는 거야. 없는 놈들끼리 싸워봤자 서로 코만 터져’ 그 말이 내 인생의 길라잡이가 됐어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백기완에게 ‘나라를 반으로 가른 미국의 앞잡이’였다. 정권을 바꿔가며 30년 넘게 이어진 독재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새 길을 내자”며 4·19 혁명에 참여했다.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 반란이 터졌다. 그가 “독재자의 야욕과 자본주의의 폭악이 결합된 극악한 체제”라고 부르는 ‘박정희 18년’의 시작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이 나왔다. 1974년 1월에는 긴급조치 1호가 나왔다.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던 백기완과 고 장준하(1918~1975) 선생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 풀려났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그때를 꼽았다. 유신은 그에게 ‘반통일, 반평화, 반균등, 반자유, 반문화, 반예술, 반역사, 반진보’였다. “유신 타파 운동을 하다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어요. 탕탕탕, 누가 현관문을 부수고 구둣발로 들어와 이불을 확 베끼더라고. ‘너희 집 안방에 강도가 구두를 신고 들어와서 이불을 벗기면 좋겠어. 빗자루로 쓸어 이 새끼야’ 그랬더니 나를 짓이기며 질질 끌고 가요. 기가 막혔습니다. 내 생각대로 목숨을 걸고 떳떳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끌고 가면 되겠어요. 온몸이 노여움으로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아내에게 “여보, 나 기다리지 마. 훗날 내 무덤에 이름 모를 꽃이 피면 그게 해방 통일의 꽃일 거야”라고 외쳤다. “지금 들으면 어쭙잖은 얘기처럼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때는 죽기 살기로 싸울 때였으니 진지했어요. 거의 반 죽어서 감옥에 있는데 아내에게 편지가 왔어요. 새벽녘 추위가 더 매서운 법이니 견디어 내시라고.” 그러나 1975년 기다리던 아침이 오는 대신 믿고 따르던 장준하가 죽었다. 장준하는 그에게 “모든 통일은 좋다.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틀을 뒤집는 첫 걸음이 통일이다”고 알려준 스승이었다. 그는 “야비한 학살”이라고 했다. 여섯 달을 내리 울었다. 지난달 26일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 공동위원회가 “머리에 둔기를 맞고 숨졌다”는 사인을 발표할 때 백기완은 다시 울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끝난 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또 다른 군사 정권이었다. ‘반동분자’ 백기완은 다시 끌려갔다. 모질게 맞았다. 손톱이 뽑혔다. 정신을 잃으면 물바가지가 날아왔다. 독재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기 살기로 시를 쓰며 버텼다. 그때 쓴 ‘묏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작곡돼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됐다.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중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백기완은 민중후보로 대통령 후보에 추대됐다. 야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백기완이 단일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민주화는 눈앞의 신기루였다. 백기완이 선거 이틀 전 단일화를 외치며 후보를 포기했지만 ‘양김’은 끝내 각자의 길을 갔다.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민중을 위해 싸운 100여년을 승리로 매듭지을 기회를 날렸다. 피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1992년 말 다시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문민’(文民)의 간판을 내걸고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총칼을 앞세운 독재는 사라졌지만 백기완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사이 독재의 폭력은 신자유주의로 횡포로 바뀌고 있었다. 노동 현장을 찾아다녔다. 자본의 낯은 겉으로만 번지르르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가장 극악하게 노동을 탄압한 정권”이라고 했다. 정도는 달랐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돈으로 환산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신자유주의에서 민중이 해방되는 것이 역사적 과제”라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비바람과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여름 한때 없이 떨어지는 가랑잎을 ‘개죽’이라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뜨릴 생각은 않고 그 속에서 출세, 돈벌이, 명예, 행복만 좇다가 개죽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여, 개죽이 되지는 마시오. 개죽으로 사느니 마음껏 자라다가 거름이라도 되는 게 나아요.” 그가 이번 정부에 가장 우선해 요구하는 것이 노동 문제다. “지난해 한진중공업 노조에서 최강서라는 젊은이가 서른넷에 목숨을 끊었어요. 유서에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5년을 더 기다릴 수 없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고 적었어요. 사실상 학살이나 다름없었어요. 장례식에 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이 ‘아빠 왜 안 오냐’면서 사탕을 먹고 있어요. 울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데 앞이 안 보입디다. 하지만 나는 앞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지는 않아요. 그대로 주저앉는 건 자본주의에 져서 인간성을 포기하는 겁니다.” 백기완은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유신 잔재’라는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유신에 대한 거부와 비판이 한마디도 없다”고도 했다. 그는 다시 ‘장산곶매’ 이야기를 했다. “장산곶매는 일찍이 애미 애비를 잃고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올빼미와 까마귀를 찾아가 밥 한 술을 빌다가 부리와 발톱을 빼앗겼죠. 땅 속으로 가면 쥐들이 쫓아오고, 바깥으로 가면 사람들이 보약이라며 달려들고. 그렇게 벼랑까지 쫓기다 보니 앞에는 끝도 없는 바다, 뒤에는 사람과 쥐새끼예요. 장산곶매는 벼랑 끝에서 넓은 바다와 하늘을 보며 깨친 바가 있어 힘이 약한 짐승은 잡아먹지 않고 일년에 두 번 나쁜 놈 하고만 싸우기로 합니다. 장산곶매가 싸움을 떠나는 날 밤이면 숲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나요. 부리질로 제 둥지를 ‘딱, 딱’ 까부수는 소리. 집에 집착하면 온몸으로 싸울 수가 없어요. 싸움을 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돼요.” 2009년 백기완은 “한평생 하는 일들이 죄다 실패였다. 다시 실패의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뛰어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어둠 속에 뛰어드는 그는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 백기완은 둥지가 없다. 백기완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하편에 계속).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백기완은 ▲1933년 황해도 은율 출생 ▲1953년 농민운동 시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징역형,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 출마 뒤 단일화 주장하며 사퇴 ▲1988년 통일문제연구소 개소 ▲1992년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 출마, 낙선 ▲1999년 계간 ‘노나메기’ 창간 ▲2002년 대한축구협회 요청으로 월드컵대표팀에게 강연, 히딩크 감독과 인연 ■주요 저서 항일 민족론(1986) 장산곶매 이야기(1994)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2009) 시집 이제 때는 왔다(1985), 젊은 날(1990) 극본 대륙(1998)
  • [인사]

    ■교육부 ◇실장△기획조정 성삼제△교육정책 심은석△대학지원 박백범◇부교육감△대구시 임준희△인천시 구자문△광주시 이계영△대전시 이지한△울산시 오승현△경기도1 고경모△충남도 전찬환△전남도 이중흔△경북도 이성희◇사무국장△전북대 승융배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바이오과학정보과장 조성범◇간호과장△국립재활원 이부화△국립나주병원 김은주△국립춘천병원 이현주△국립목포병원 권은시 ■국토교통부 ◇국장급△대변인 송석준△국토교통인재개발원장 김기석△동서남해안및내륙권 발전기획단 기획관 주현종<정책관>△국토 박선호△도시 박민우△건축 이화순△주택 김재정△토지 유병권△국토정보 박무익△종합교통 맹성규△물류 김수곤△항공 서훈택△항공안전 권용복△기술안전 전병국<국장>△건설정책 안시권△수자원정책 손병석△도로 권병윤△철도 김경욱<지방국토관리청장>△서울 서명교△원주 변종현△부산 손태락<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부단장 박명식△기획국장 구본환<기획단장>△용산공원조성추진 유인상△국제협력정보화 하동수△자동차정책 권석창<파견>△지역발전위원회 안충환△국무조정실 새만금사업추진기획단 김선태<과장>△기업복합도시 김철흥 ■법제처 △경제법제국 법제관 최영찬 ■국세청 △대전지방국세청장 제갈경배△국세공무원교육원장 김용균◇본청△국제조세관리관 김연근<국장>△징세법무 송성권△개인납세 원정희△법인납세 임환수△자산과세 이학영△조사 김영기◇서울지방국세청 <국장>△조사1 김봉래△조사2 강형원△조사4 한승희 ■경제투데이 ◇선임△편집부국장 김희중 ■일동제약 △대표이사 부사장 윤웅섭
  • 中 상하이·충칭서도 임정 수립 94주년 기념식

    국가보훈처는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제94주년 기념식을 연다고 밝혔다. 12일 보훈처에 따르면 13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원로 독립 유공자와 유족 등 1000여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기념식이 거행된다. 기념식을 마친 후 11시 정각에는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에서 광복회 주관으로 임시정부 요인들을 추모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열 추념식’이 열린다. 한편 중국 상하이와 충칭에서도 12일 오전 중국 지역 독립 유공자 후손, 현지 교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열렸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장준하, 머리 맞아 숨진 뒤 추락”… 약사봉 미스터리, 정국 재점화

    “장준하, 머리 맞아 숨진 뒤 추락”… 약사봉 미스터리, 정국 재점화

    “머리를 가격당해 이미 숨진 상태에서 추락했다.” 서슬 퍼런 유신정권에 맞서 투쟁하다 의문 속에 숨진 장준하(1918~1975) 선생이 타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정밀 감식 결과가 나왔다. 1975년 8월 17일 장 선생 사망 당시 “등산 도중 단순히 발을 헛디뎌 추락해 두개골이 파열되면서 사망했다”고 밝혔던 검찰의 입장과 배치되는 결과다. 법의학자가 유골을 정밀 감식해 타살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야권은 장 선생 사인의 재조사를 촉구하는 등 정국 현안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장준하 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는 26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골 정밀감식 결과를 발표했다. 정밀감식은 법의학자인 이정빈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가 주도했으며 컴퓨터 단층촬영(CT), DNA 검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됐다. 이 교수는 “장 선생의 머리뼈와 엉덩이뼈(관골)가 추락으로 인한 충격으로 동시에 손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머리를 가격당해 목이 부러지면서 즉사했고 이후 누군가 벼랑 밑으로 내던졌거나 추락해 엉덩이뼈가 손상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단순 실족사로 보기 어려운 이유로 우선 어깨뼈 손상이 거의 없다는 점이 제시됐다. 이 교수는 “만약 절벽에서 떨어져 머리와 엉덩이뼈가 동시에 함몰됐다면 이 사이에 있는 어깨뼈가 멀쩡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엉덩이뼈는 가격당해서는 잘 골절되지 않는다. 추락에 의한 골절이 확실해 보인다”면서 “장 선생이 머리를 가격당해 숨진 뒤 절벽 아래로 추락해 엉덩방아를 찧듯 땅 위로 떨어졌어야 지금처럼 유골이 훼손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검에 피를 흘린 자국이 거의 없었다는 점도 타살 가능성을 높이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면 추락해 숨지기 전까지 피를 많이 흘렸어야 한다”면서 “하지만 출혈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볼 때 사망한 뒤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머리에 강한 외부 충격이 가해져 즉사하면 혈액순환이 멈춰 출혈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 ▲추락해 오른쪽 머리뼈가 함몰됐다면 반대편인 왼쪽 안와(안구 주위 뼈)가 함께 손상됐어야 하지만 뼈가 깨끗한 점 ▲뇌 오른쪽에 손상된 흔적이 있는데 외상 부위와 뇌 손상 부위가 같은 것은 추락이 아닌 가격당했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점 등을 들어 머리를 얻어맞아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머리뼈를 가격한 물체는 망치보다는 둥근 큰 돌이나 아령 같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 교수는 또 “추락하면서 바위 등에 긁힌 상처가 몸에 없는 것으로 볼 때 장 선생이 애초 알려진 것과 달리 약사봉 계곡 지면 위로 미끄러져 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결과 발표 뒤 “국민대책위의 의뢰를 받고 전문가로 참여한 것일 뿐 정치적 의도는 없다”면서 “오히려 의뢰를 거절했다면 정치적인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국립공원 지정 무등산 덕 보자”

    무등산을 둘러싼 광주 동구·북구와 전남 화순·담양 등 기초자치단체들이 국립공원에 투입될 예산을 지역 숙원사업비로 지원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최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 주변에 탐방로를 조성하는 등 편의 시설 확충을 위해 올 한 해 100여억원을 투입하기 때문이다. 4일 이들 지자체에 따르면 광주 북구는 원효사 주변 식당 정비 사업 등을 추진키로 했다. 동구는 무등산 주요 진입로인 학동삼거리의 유흥업소 정비 계획을 추진 중이다. 동구는 유흥업소 11곳과 주변의 일방도로를 없애고 백범김구기념관이나 무등산탐방센터 등을 건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동구는 이를 위해 광주시와 공단에 예산 지원을 요구했다. 전남 화순군에는 진입 도로 2곳, 탐방로 16곳, 주차장 4곳, 탐방지원센터 5곳, 청소년 수련 시설 3곳, 야영장 1곳, 휴게소 3곳, 박물관 1곳, 마을지구 1곳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무등산국립공원 동부사무소도 이곳에 들어서고 50여명의 공단 직원이 상주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화순군은 등산로 정비, 특산품과 연계한 체험 관광 발굴, 광주와 화순을 연결하는 순환버스 노선 개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 화순군 관계자는 “무등산국립공원 전체 면적 75.425㎢ 중 20% 이상이 우리 군에 속해 있는 만큼 등산로 등 관련 시설을 확충하는 데 국비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담양군은 남면 인근에 2만㎡ 규모의 야영장과 탐방로 5곳, 탐방지원센터 7곳, 주차장 3곳, 진입로 1곳을 조성해 줄 것을 요청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무등산국립공원 지정 이후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등의 시민사회단체, 해당 지자체 등이 각각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국립공원관리공단 측과 각종 시설물 종류와 배치 장소 등을 협의해 적절한 예산 배분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다시, 김구 선생과 만날 시간

    다시, 김구 선생과 만날 시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구(1876~19 49) 선생이 서거한 장소인 경교장(京橋莊)이 복원돼 국민 품으로 돌아온다. 서울시는 28일 3·1절을 앞두고 3년여에 걸친 경교장(사적 465호)의 원형 복원을 마치고 2일부터 무료 개방한다고 밝혔다.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안에 있는 경교장은 1945년 11월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이 4년여간 거주하며 국무위원회를 주관하고 통일운동을 하다가 1949년 6월 2층 집무실 복도 책상에서 주한미군 방첩대(CIC) 요원인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장소다. 경교장은 1938년 금광으로 돈을 번 최창학이 지은 일본식 건물로 광복 후 김구 선생에게 거처로 제공됐다. 원래 죽첨장(竹添莊)이란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다 김구 선생이 근처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바꿨다. 김구 선생이 서거한 뒤 미군 주둔지와 주한 타이완 대사관저 등으로 사용되다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건물로 사용됐다. 서울시는 삼성병원과 협의, 소유는 그대로 두고 복원하는 데 합의해 2010년 6월 30일 병원시설을 이전한 뒤 복원을 시작했다. 복원에는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복원자문위원회가 참여해 1938년 ‘조선과 건축’ 잡지에 수록된 경교장 도면과 미국 라이프(LIFE)지 사진을 근거로 당시 모습을 생생히 재현했다. 경교장은 총 면적 945㎡ 건물 1동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 규모다. 지상 1층에는 국무위원회 등 임시정부 회의가 개최됐던 응접실과 대외 홍보관계를 담당했던 선전부 사무실, 귀빈식당으로 구성됐다. 2층에는 김구 선생 집무실과 침실, 임정요인 숙소, 욕실, 서재 등을 볼 수 있다. 집무실 복도에는 창문에 서거 당시 총탄 자국을 재현해 놓았다. 지하는 원래 보일러실과 부엌으로 썼으나 임시정부 역사를 조망하는 전시공간으로 꾸몄다. 전시실에는 ‘임시정부 국내 환국’을 보도한 서울신문 호외(1945년 11월 23일자)와 속옷에 빼곡히 쓴 밀서, 김구 선생 유품, 백범일지 초간본 등이 전시된다. 개방은 매주 화∼일요일(월요일 휴관) 오전 9시∼오후 6시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오늘 취임] 국민 30명과 함께 입장… 취임사 뒤 카퍼레이드도 예정

    [박근혜 대통령 오늘 취임] 국민 30명과 함께 입장… 취임사 뒤 카퍼레이드도 예정

    제18대 대통령 취임식 행사는 25일 0시 대통령 임기 개시를 알리는 33차례의 보신각 타종으로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첫 공식 일정으로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참배한다.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리는 취임식은 식전행사와 본행사로 나뉜다. ‘국민대통합’에 초점을 둔 축제형 취임식은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 때보다 2만명 늘어난 7만명이 참석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오전 9시 20분부터 열리는 식전행사에서는 ‘개그콘서트’ 팀이 사회를 보고,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길놀이 공연을 시작으로 김영임 명창 등의 공연이 펼쳐진다. 월드스타 싸이는 직접 가사를 바꾼 ‘강남스타일’을 부른다. 1950년부터 현재까지 각 시대상을 반영하는 영상을 배경으로 출연진이 시대별 대표곡을 부르는 코너도 있다. 박 대통령이 국민대표 30명과 함께 국회의사당 광장에 입장하면 본행사가 시작된다. 취임식은 국민의례, 국무총리 식사, 취임선서, 의장대 행진 및 예포 발사, 대통령 취임사, 축하공연 순으로 진행된다. 애국가는 소프라노 조수미, 바리톤 최현수씨가 부른다. 명창 안숙선, 가수 인순이, 뮤지컬 배우 최정원, 재즈가수 나윤선씨가 윤학원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국민합창단과 함께 ‘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곡을 부른다. 박 대통령 가족석은 26석이 마련됐다. 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과 올케 서향희 변호사, 사촌동생 은희만씨와 은씨 아들 가수 은지원씨 등이 참석한다. 박 대통령 사촌형부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역대 총리 자격으로 초청됐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참석 의사는 전했으나 실제 참석은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초청 인사에는 백범 김구 선생 손자인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 4·19민주혁명회 문성주 회장, 제주 4·3평화재단 김영훈 이사장이 포함됐다. 본행사는 박 대통령이 이임하는 이 전 대통령을 환송한 뒤 중앙통로로 이동해 행진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후 박 대통령은 서강대교 입구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친 뒤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해 한복 차림으로 ‘복주머니 개봉 행사’에 참석하고 청운동·효자동 주민의 환영을 받으며 청와대로 간다. 오후 4시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외교사절 등 국내외 각계 대표 1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경축연회에 참석한다. 이어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요 외빈 초청 만찬을 갖는다. 만찬주로는 씨 없는 반시로 만든 ‘청도 감그린 아이스와인’이 선정됐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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