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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봉창 의사 85주기 추모식

    이봉창 의사 85주기 추모식

    10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이봉창 의사 묘역에서 열린 제85주기 이봉창 의사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이봉창 의사는 1931년 1월 도쿄 경시청 앞에서 육군 관병식에 참석하러 가던 히로히토 일왕 일행을 향해 폭탄을 던진 후 현장에서 체포돼 1932년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2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이 의사의 유해는 백범 김구 선생에 의해 1946년 6월 30일 국내로 봉환돼 효창공원에 안장됐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한국광복군 창군 77주년 기념식

    국가보훈처는 14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한국광복군 창군 제77주년 기념식’이 열린다고 13일 밝혔다. 한국광복군동지회가 주관하는 기념식은 피우진 보훈처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 동지회원, 시민, 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한다.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장이 ‘한국광복군의 시대정신’을 주제로 학술강연을 하고 질의응답과 토론을 한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중국 충칭 가릉빈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할 국군으로 창설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광복군을 주축으로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1943~1945년 중국군과 함께 항일전을 벌였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역사를 기억하는 개발… 용산 ‘서울의 맨해튼’으로 용솟음친다

    [자치단체장 25시] 역사를 기억하는 개발… 용산 ‘서울의 맨해튼’으로 용솟음친다

    “역사가 숨 쉬면서도 개발의 선두에 서 있는 도시, 용산이 서울에서 제일가는 부촌이 될 것입니다.”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은 지난 4일 구청 사무실에서 이뤄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이같이 밝혔다. 용 산기지 이전으로 인한 국가공원 조성에서부터 국내 최대 규모의 관광호텔 완공, ‘음악의 섬’으로 변신하는 노들섬까지 용산은 서울에서도 굵직한 개발이 진행 중인 곳이다. 반면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 임시정부 요인과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있는 용산 효창공원과 외국관광객에게 명소로 꼽히는 전쟁기념관이 있는 등 역사를 간직하고 계승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성 구청장은 민선 5기에서 6기까지 구청장을 역임하면서 ‘개발’과 ‘역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고 가운데서 ‘균형추’를 잡아 왔다.특히 용산은 110여년 만에 용산미군기지 반환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점에 서 있다. 반세기 동안은 일제 병참기지로, 해방 이후에는 미군 주둔지로 무려 113년간 외국군이 점거했던 용산 부지가 이제 국가공원으로 변신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성 구청장은 “과거와 현재가 함께 아울러지고 후손을 위해 미래를 내다보는 공원이 돼야 한다”면서 “서두르지 말고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 구청장은 “현재 용산국가공원 사업을 국토교통부라는 한 부처에서만 맡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다양한 주체가 공원 조성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국무총리실 산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산 공원에 남게 되는 한미연합사령부와 드래곤힐호텔, 헬기장과 미 대사관 신축 부지가 공원 곳곳에 남게 되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잔류시설이 부지 여기저기에 남게 되는 바람에 누더기가 될 공산이 크다”면서 “공원 한쪽 가장자리에 모아 놔야 미군 측 입장에서 관리도 쉽고 공원 활용도 용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용산구청 부지 반환 끈질긴 노력… 뚝심 구청장 미군을 설득하고 이 같은 요구를 관철할 가능성에 대해 성 구청장은 굳은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민선 5기 용산구청장을 지내면서 과거 아리랑 택시 부지(미군기지)였던 현 용산구청 자리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끈질긴 노력 끝에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의제’로 끌어올렸고 2003년 결국 지자체 최초로 3300여평에 달하는 부지를 돌려받은 경험이 있다. 성 구청장의 이런 뚝심은 최근에도 빛을 발했다. 용산구는 2015년 전쟁기념관 안 부지를 무상으로 사용해 온 한 정부기관을 밝혀냈다. 2년여간의 소송 끝에 이 기관을 상대로 사용료 징수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하는 쾌거를 이뤘다.다만 미군부대가 이전하면 2027년 용산공원이 조성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이태원 등 주변 상권에 타격을 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에 성 구청장은 “봄 장사는 봄이 아니라 겨울에 준비하는 것”이라면서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용산기지 이전을 예상하고 오래전에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놨다는 것이다. 성 구청장은 1998년 43세의 나이로 당시 최연소로 구청장에 당선됐지만 2년 만에 선거법 위반 판결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봄’을 준비했다. 필리핀 내 미군기지였던 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빅 해군기지가 1991~1992년 잇따라 폐쇄된 뒤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필리핀을 방문했다. 성 구청장은 충격을 받았다. 성 구청장은 “눈으로 확인한 현장은 참혹했다”면서 “상권이 다 주저앉았고 모두 폐허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성 구청장은 자칫하다가 우리 용산도 미군기지가 떠난 후 필리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그때부터 구청장이 다시 된다면 용산과 이태원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2000년 민선 5기와 2014년 6기에 잇따라 당선되면서 꿈꿔 왔던 구상들을 차근차근 실현했다. 2013년 해밀턴 호텔 뒤편 약 510m 구간을 국비를 지원받아 세계음식 문화거리로 조성했다. 매년 전 세계 관광객 100만명이 찾는 이태원지구촌축제도 자리잡게 했다. 주차난 해소를 위해 250대 규모 공영주차장도 건설했다. 오는 11월에는 한남동에 전통공예문화체험관이 문을 연다. ●서울역~노량진 구간 국철 지하화 추진 용산역 일대도 획기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다. 용산역 옛 관광버스터미널 부지에는 다음달이면 국내 최대 규모인 1700실을 갖춘 ‘서울 드래곤시티’ 호텔이 문을 연다. 11월에는 전 세계 화장품 업계 7위에 오른 아모레퍼시픽이 용산역 앞 신사옥에 입주한다. 성 구청장은 “2025년까지 서울역에서 노량진으로 가는 국철을 지하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원효대교부터 동작대교에 이르는 강변북로 지하화도 추진해서 그 위는 녹지대로 만들어 한강까지 걸어갈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구가 개발에만 ‘올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구는 효창공원 의열사에서 매년 백범 김구를 비롯해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 등 3의사 등 7위 선열 의열사 제전을 열고 있다. 또 의열사를 재정비해 지난해 5월부터 일반인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2015년 이태원부군당 역사 공원에는 유관순 열사의 추모비를 세웠다. 이봉창 의사의 옛집이 자리했던 효창동 118 인근에는 이봉창 의사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성 구청장은 “유관순 열사가 18년 동안 용산 이태원에 묻혀 계시다가 일본 사람들이 그곳에 군사기지를 만든다는 미명 아래 그 공동묘지를 파헤치면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없애 버렸다”면서 “추모비를 세운 것은 누가 구청장이 되더라도 당연히 해야만 해던 일”이라고 말했다. 성 구청장은 “후대에서 보고 배우고 부족한 것은 채울 수 있도록 우리가 잘 갈무리해 둬야 한다”고 했다. ●용산복지재단 출범… 노인 위한 복지 특별구로 노인과 청년,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복지 사업도 꾸준히 펼쳐왔다. 용산 하면 ‘청춘의 핫플레이스’인 이태원을 떠올리지만 지난달 기준 구내 노인(65세 이상) 비율은 15.8%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4위다. 국내 제일가는 부자들이 몰려 사는 곳이면서도 서울역이나 용산역 주변에 노숙자 등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 세심한 복지 정책이 필요한 도시다. 이에 용산구는 지난해 6월 용산복지재단을 출범시켰다. 기본재산 37억원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55억 3000만원을 확보했다. 성 구청장은 “용산에서 사는 사람은 최소한 먹을 게 없어서 굶는다거나, 옷이 없어서 추위에 떠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구청장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혹시나 예산이 없어 복지 혜택을 줄이거나 하는 일 없이 흔들림 없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재단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2014년에는 실버세대를 위해 서울 자치구 중 처음으로 ‘어르신의 날’도 만들었다. 성 구청장은 “새로운 시도와 남들이 가지 않은 길들이었으나 용산구민과 구청장을 믿고 뒷바라지해 준 공무원들이 있었기에 많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었다”면서 “용산이 서울의 중심이자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김구 선생 中피난처 안내 간판, 배우 조재현·서경덕 교수 기증

    김구 선생 中피난처 안내 간판, 배우 조재현·서경덕 교수 기증

    배우 조재현(52)씨와 서경덕(43) 성신여대 교수가 29일 중국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시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피난처 건물 정문에 한글과 한자를 병기한 안내 간판을 달았다.서 교수는 29일 “김구 선생 탄생일과 경술국치일을 맞아 건물 정면에 가로 40㎝, 세로 140㎝ 크기로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쓴 ‘김구피난처’(金九避難處) 간판을 만들어 걸었다”고 밝혔다. 간판 제작 및 사전답사 등은 서 교수가 맡았고, 모든 경비는 두 사람의 자비로 충당했다. 두 사람이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에 한글 병기 간판을 기증한 것은 항저우(杭州) 임시정부 청사, 상하이(上海) 윤봉길 기념관, 창사(長沙) 임시정부청사에 이어 네 번째다. 조씨는 “간판 기증이 한국 관광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일본과 아시아, 미주, 유럽 등의 유적지에도 한글이 병기된 간판을 달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구 선생은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구공원 폭탄 투척 이후 일제의 수배를 받자 상하이에서 자싱으로 피신해 은신했다. 자싱시는 2001년 김구 선생의 피난처 옆에 ‘김구 전시관’을 신축하고, 한국 독립기념관의 지원을 받아 선생 관련 사진과 문헌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살이] 만초천은 살아 있다

    [노주석의 서울살이] 만초천은 살아 있다

    얼마 전 용산 주한미군기지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종종 드나들었지만 기지를 돌려받는다는 전제가 없는 ‘남의 떡’이었기에 눈여겨보질 않았다. 한국 속 이국 풍경을 그저 심드렁하게 쳐다보았을 뿐이다. 찬찬히 기웃거린 뒤에야 용산기지 곳곳에서 풍기는 묘한 이국 정서의 정체가 파악됐다. 왜색이었다. 일본군의 상징인 오각별 문양이 뚜렷한 빨간 벽돌 건물은 일본이 모방한 서구 건축물의 전형이다. 자료를 뒤져 보니 기지 내 1245개 건물 중 무려 132개가 일본군이 지어 사용하던 건물을 재활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백범 암살범 안두희가 수감됐던 일본군 감옥이 의무대로 둔갑했다. 여기가 미군 기지인지 일본군 기지인지 얼른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들 어떠리. 1906년부터 올해까지 무려 111년 만에 반환받는 마당에 까짓것 눈감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용산은 고려 때 몽고군, 임진왜란 때 왜군, 청일전쟁 이전 위안스카이의 청군까지 7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외국군의 점령지로 얼룩져 있질 않은가. 서울의 한가운데 알토란 같은 100만평의 땅을 내 세대에 되찾게 된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남산만 한 크기의 땅이다. 아파트의 사회문화사가 말해 주듯 우리의 근대화와 산업화는 ‘주거와의 전쟁’이었다. 그린벨트보다 백배 강력한 미군부대였기에 용산과 둔지산 일대가 이렇게 온전할 수 있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남의 나라 이름으로 부어 놓은 적금을 찾는 셈 치자. 무엇보다 반가운 건 만초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으로 보던 만초천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살아 있었네!”라는 환호성이 나왔다. 구불구불하던 자연하천 만초천은 일본군에 의해 직선화된 상태로 300m가량 노출돼 있었다. 서울 땅 아래 35개의 하천 대부분이 복개돼 도로 아래로 들어갔다. 무악재(안산)에서 발원해 서대문 영천시장~서울역 뒤편 청파로~용산 전자상가~한강으로 흘러드는 만초천 7.7㎞ 구간 대부분도 1967년 이후 깜깜한 도로 밑을 흐른다. 조상들이 불을 밝히고 게를 잡던 용산팔경(龍山八景)의 모래밭 만초천은 태종 때 용산강에서 남대문을 관통하는 운하가 될 뻔했다가 일제강점기 욱천(旭川)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름으로 개명당했다. 봉준호 감독이 2006년에 만든 영화 ‘괴물’에서 괴물의 은신처로 나오는 원효대교 북단 하수도가 한강 쪽 출구다. 만초천의 옛 이름 넝쿨내를 살리자는 시민단체가 활동하고 있고, 만초천 물줄기를 찾아다니는 팬덤도 있다. 복개된 뒤 이름 없이 사라진 다른 하천에 비하면 복받았다. 용산기지를 ‘국가공원’으로 만든다고 한다. ‘국립공원’도 아니고, 새로 생기는 공원의 개념이 얼른 와 닿지 않는다. 정부가 만든 용산공원조성 특별법을 읽어 봐도 마찬가지다. 청와대가 옮겨 올지도 모르고, 자기 건물이 없는 정부기관 그리고 한미연합사와 미국대사관이 들어설 ‘국가의 공원’이라는 뜻인지?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관할 자치단체인 서울시, 용산구가 티격태격하는 걸 보면 뭔가 탈이 난 것 같다. 남산이 자신의 품에 안긴 용산기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우리 정부는 해방 후 남산 공원용지를 이 기관, 저 기관, 이 학교, 저 학교에 선심 쓰듯 내주어 오늘날 ‘벌레 먹은 남산’을 만든 전과가 있다. 미군 통신기지가 차지하고 있는 남산 제1봉수대 자리도 반환 대상에서 빠져 있다. 어렵사리 되찾은 용산과 만초천도 또 그렇게 망칠 작정인가.
  • [광복절 경축사] “2019년은 건국 100주년”… 건국절 논란에 쐐기

    [광복절 경축사] “2019년은 건국 100주년”… 건국절 논란에 쐐기

    “산업화·민주화 구분 넘자…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 이승만·박정희 역사 속에 있다”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72주년 경축식 경축사에서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진보·보수 대립의 최전선이었던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건국절’은 2006년 7월 식민지근대화론자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의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언론 기고문에서 비롯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 뉴라이트 단체의 ‘대안교과서’ 출판,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이념 갈등’으로 불붙었다. 지난 9년간 보수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일을 1948년 8월 15일로 규정했고, 독립운동 단체와 진보진영에선 임시정부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문 대통령은 “진정한 광복은 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며, 진정한 보훈은 선열들이 건국 이념으로 삼은 국민주권을 실현해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 이제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 진영의 정치적 셈법에서 비롯된 건국절 논란을 매듭지음으로써 미래지향적 통합의 길을 나가자는 의도인 셈이다. “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대를 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일이다.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 김대중·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또한 “지난 100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100년을 위해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보수·진보, 정파의 시각을 넘어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경축식에 앞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현직 대통령이 김구 선생의 묘역을 찾은 것은 1998년 6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두 번째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은 “너무 당연한 1948년 건국을 견강부회해서 1919년을 건국이라고 삼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면서 “건국과 건국 의지를 밝힌 것은 다른 말”이라고 반박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포토] ‘선열들이 이룬 광복,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포토] ‘선열들이 이룬 광복,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이봉창·윤봉길·백정기 등 삼의사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 대통령, 광복절 맞아 백범 김구 묘역 참배

    문 대통령, 광복절 맞아 백범 김구 묘역 참배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제72주년 광복절을 맞아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묘역과 삼의사 묘역을 참배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30분 효창공원을 방문해 백범 김구 묘역에 참배하고, 이봉창 의사·윤봉길 의사·백정기 의사 등 삼의사 묘역에 참배했다. 이어 이동영·조성환·차리석 선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도 들러 넋을 기렸다. 이날 참배에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피우진 보훈처장, 더불어민주당 진영 의원, 성장현 용산구청장 등이 배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국 방방곡곡에서 광복절 기념 행사 열려

    전국 방방곡곡에서 광복절 기념 행사 열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14일 오후 3시 서울역 맞이방에서 가곡 ‘봉숭아’(봉선화)의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국립국악중학교 2학년 정서연양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잠시 뒤 300여명의 학생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깜짝 공연을 이어갔다. 봉숭아 연주가 끝난 뒤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부르는 ‘아리랑판타지’ 곡이 역사 곳곳에 울려 퍼졌다. 이날 공연은 고척중, 성보중, 선린인터넷고 등 서울 지역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서울시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기획 단계부터 준비한 ‘플래시몹’(여러 명이 특정 장소에서 벌이는 깜짝 공연) 행사였다. 추진위원장인 선린인터넷고 2학년 이성효군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을 위로하고 공감하자는 취지로 이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어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회복에 힘을 보태고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것도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광복 72주년을 맞아 젊은 세대들도 전국 각지에서 광복의 기쁨을 알리는데 동참했다. 대학교 풍물패는 꽹과리를 들고 거리로 나왔고, 고등학생들은 직접 안무를 짜 춤을 췄다. 1인 청년 창업가는 안중근 의사의 수인(손도장)이 찍힌 티셔츠와 무궁화와 815가 새겨진 티셔츠 등을 제작했다. 광복절 기념 배지 등을 만들어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려는 시도도 잇따랐다.  이날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남인사마당에서는 고려대 풍물패인 고대농악대 20여명이 길거리 공연을 펼쳤다. 이번 공연은 광복절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인 ‘얼씨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시민들과 즐겁게 소통하기 위해 박자가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1-1호인 ‘진주삼천포농악’을 택했다. 강지원(21) 고대농악대 대표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광복절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면서 “광복절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고 밝고 기쁜 날로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대전 지역 32개 고등학교 연합 단체 ‘SPAD’ 소속 300여명은 지난 13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광복절 공연을 했다. 15일 대전 시내에서 열리는 공식 행사를 앞두고 프로축구 경기 하프타임 때 프리뷰 성격으로 10분간 진행된 공연에서는 개그맨 양세형과 힙합 가수 비와이가 부른 ‘만세’라는 곡을 배경으로 춤을 췄다. 공연에 나선 고등학생 중 고3 학생들도 32명이나 된다. SPAD 6기 대표인 대신고 3학년 이우열(18)군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역사도 중요하다”면서 “광복의 기쁨을 전하면서 느끼는 전율은 말로 표현 못한다”고 말했다.  한동대 창업동아리 출신인 1인 창업가 김우림(26) 심플핏 대표는 역사를 모티브로 한 제품을 만들어 판다. 3.1절, 6월 민주항쟁에 이어 광복절을 주제로 한 제품을 지난 10일부터 판매했는데 이미 일부 제품은 동이 났다. 김 대표는 “바른 역사를 알자는 취지에서 ‘바론’(바른의 순우리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면서 “역사를 디자인으로 세련되게 풀어 젊은 층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로 구성된 ‘김라문 스튜디오’는 대한민국 뿌리찾기인 ‘기리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백범 김구,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등 독립운동가의 배지와 엽서를 만들어 판매한 뒤 제작비를 제외한 수익금은 관련 단체에 기부를 하는 것이다. 최근 두 차례에 걸쳐 모금 활동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목표 달성 금액에는 미치지 못했다.  경남 마산의 여고생들로 구성된 취미미술 동아리 ‘TRA’도 태극 문양과 무궁화를 이용한 광복절 기념 배지를 만드는 기획을 했다. 제작비와 배송비를 제외한 수익금 90%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하려고 했지만 이 또한 후원금 저조로 무산됐다. 전유정 TRA 동아리장은 “우리 역사의 뜻깊은 날인 광복절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일상에서 쉽게 달고 다닐 수 있는 배지를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백범 암살 배후 파헤치지 못한 기자의 늦은 참회록

    백범 암살 배후 파헤치지 못한 기자의 늦은 참회록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수차례 응징해 안두희의 ‘천적’으로 불렸던 권중희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였다. 그는 1970년대 말 이화여대 앞 로터리에서 조그만 기원을 운영했다. 바둑에 한창 재미를 붙일 때라 기원을 자주 찾았는데 말수가 적으면서도 인정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때문에 그가 1992년 안두희를 폭행한 뒤 경찰에 잡혔을 때 평범했던 ‘기원 아저씨’를 떠올리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의 눈빛은 예전과는 달리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그는 “안두희가 미국으로의 이민을 시도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뒤 13년에 걸친 ‘추적자’의 여정을 시작했다. 어릴 적 ‘백범일지’를 읽은 뒤 김구를 흠모하기는 했지만, 먹고살기도 힘든 판이어서 백범 암살에 관한 진상 규명은 ‘거창한’ 사람들이나 국가기관이 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기관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1983년 하던 일을 그만두고 홀로 안두희 추적·응징에 나섰다. 민족지도자를 시해했음에도 곧바로 사면을 받고 군 납품업체를 운영해 큰 돈을 번 뒤 군 사단장의 신임 인사를 받을 정도로 교만하게 살아온 안두희에게 비로소 ‘임자’가 등장한 것이다. 권중희는 집요한 추적 끝에 마침내 1992년 9월 23일 안두희로부터 ‘김구 암살의 배후는 이승만’이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전까지 안두희는 “김구 암살은 개인 소신에 의한 것으로 배후는 전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해 왔다. 권중희가 당시 기자에게 전해준 안두희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1949년 6월 20일(백범 암살 6일 전) 부대 안에 있는데 장은산 포병사령관실로 오라는 전갈이 왔다. 가보니 육군본부에서 나온 중위인지 대위인지 위관급 장교가 와 있었는데 장 사령관은 계급이 훨씬 높은데도 굽실거렸다.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의 연락장교 같았다. 경례를 붙였더니 그는 “총장 각하께서 부르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타고온 지프차를 타고 삼각지에 있는 육군본부 참모총장실로 갔더니 채 총장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함께 있었다. 신 장관은 날 보더니 “아, 자네가 포병 사격대회에서 관측장교상을 받은 안 소위지”라고 했다. 그 뒤 채 총장과 신 장관이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가 불쑥 경무대 얘기를 꺼냈다. 채병덕이 “경무대 구경이나 갈까 한다”고 하자 신성모는 “마침 나도 보고할 게 있는데 같이 가자”고 말했다. 그러고는 나에게도 같이 갈 것을 권했다. 그것이 연극이라는 것을 내가 능히 감지할 정도였다.(안두희를 경무대에 데려가기로 맞춰놓고 실제 안두희 앞에서는 우연히 경무대 얘기가 나온 것처럼 각본을 짜놓았다는 의미) 경무대에 가니 미리 연락해 두었는지 비서가 맞이했으며 곧바로 대통령 접견실로 안내됐다. 신 장관이 “각하, 포병 사격대회에서 상을 받은 안두희 소위입니다”라고 소개하니까 이 대통령은 내 손을 잡으며 “장관으로부터 자네 얘기 많이 들었다”며 정겹게 말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진중한 투로 “높은 사람이 시키는대로 말 잘 들어라”라고 말했다. 나에게 높은 사람이란 지휘계통인 장은산 포병사령관, 채병덕 참모총장 등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에도 이승만으로부터 김구 제거를 의미하는 듯한 말을 2∼3차례 들은 뒤 20∼30분 정도 있다가 나왔다. 그 당시 높은 사람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지시했다. ‘대충 언질만 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경무대에서 나오니 퇴근 무렵이었다. 다시 부대로 가서 장은산 사령관에게 보고했더니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거봐 내 말이 맞지”라고 했다. 경무대에 다녀온 뒤 김구를 암살하기로 결심했다. 장은산은 내가 막상 암살 결행을 못하자 ‘배후에 거물이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며 여러 차례 회유했다. 결국 “내 말이 맞지”라는 장은산의 말은 “내 말대로 거물이 있지”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대통령이 일개 소위를 직접 만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안두희의 육성 녹음(8시간 분량)이 동반된 이 증언은 백범 암살사를 다시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결정타가 되지 못했다. 안두희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권중희의 폭행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번복했기 때문이다. 권중희는 1995년 기자에게 위의 안두희 진술 내용을 전해주면서 “내가 진술을 받을 당시 처음에 안두희를 때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안두희는 한번 말문이 터지자 묻지도 않은 말까지 자연스럽게 진술했다”면서 “경무대 접견실 배치도와 접대받은 차 종류 등 안두희가 당시 정황을 설명한 대목은 실제 겪지 않고서는 도저히 꾸며낼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후 인천 신흥동 안두희 자택을 찾아 진술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 했지만 그는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아 결국 기사화하지 못했다. 워낙 큰 이슈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 안두희의 뚜렷한 진술이 필요했지만 끝내 얻어내지 못한 것이다. 안두희는 결국 1996년 10월 자택에서 권중희 추종자인 박기서에 의해 몽둥이로 살해됐다. 안두희의 빈소에는 단 한 명의 조문객도 찾지 않았다. 그의 후처인 김모씨만이 검시 때 잠깐 모습을 비췄을 뿐이다. 권중희는 뜻밖에도 안두희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그는 “안두희에게 보약을 먹여서라도 오래 살게 해 역사적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권중희는 안두희가 살해된 뒤에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안두희를 추적하는 동안 조금 있던 재산을 모두 탕진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농장의 소우리를 개조해 만든 단칸방에서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지내다 2007년 11월 세상을 떠났다(향년 71세, 본관 안동). 타계하기 3년 전 서울신문사를 찾았을 때 기자가 차비나 하라며 돈을 조금 건넸더니 “늘 이렇게 남에게 신세를 끼치니…”라며 수줍어하던 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기자는 권중희 타계 후 부채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가 보여준 치열함의 반쯤이라도 기자정신을 지녔더라면 진실 규명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 때문이다. 기자가 권중희로부터 들은 안두희의 증언을 22년만에 공개하는 것은 김구 암살 배후에 대한 진상규명이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다. 세상에는 권중희를 돈키호테나 테러범 쯤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기자는 그를 진정한 ‘의인(義人)’으로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일관되게 백범 암살사 규명에 진력함으로써 결코 가볍지 않은 증언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역사에 남을 큰 죄를 짓고도 교만하게 살아온 안두희에게 “죄를 지으면 이렇게 괴롭구나”라는 사실을 유일하게 깨우쳐 준 사람이다. 권중희는 지난날 기자에게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까지 설치됐는데 왜 이승만 백범 암살 개입설에는 무관심한지 모르겠다”면서 “아직 진실을 알만한 사람들이 일부 생존해 있으므로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이승만 김구 암살 개입설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 들어 성역 없는 과거사 진상규명을 다짐하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먼’ 백범 암살 배후 진상규명을 도외시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직무 유기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이방인… 노숙자… 소외된 아픔을 들춰내다

    이방인… 노숙자… 소외된 아픔을 들춰내다

    “아이를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해요.…나는 무식한 아줌마여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어요. …제발, 사람이 소중한 나라, 사람 목숨이 소중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아들이 입고 뛰었던 운동복을 든 여인은 북받치는 울음을 삼키며 가슴속에 맺힌 한을 털어놓는다. 백범 선생의 좌상을 본뜬 거대한 조형물에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비롯해 탈북 예술가, 해고 노동자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귀화한 영화배우, 동성애 인권운동가, 20대 청년 등이 각자의 소원을 말하는 모습이 투사된다. 한결같이 억압과 차별을 견뎌 온 사람들, 심리적 외상과 박탈감에 고통받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가득 메우며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인전을 갖는 폴란드 출신의 공공미술 거장 크지슈토프 보디츠코(74)의 신작 ‘나의 소원’이다. 자주적인 문화대국을 꿈꿨던 백범의 ‘나의 소원’에서 강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지난해 5월부터 약 1년간의 조사를 거쳐 백범을 상징적인 인물로 선정한 데 대해 그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통일된 한국에 대한 비전을 기쁨의 국가,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교환되는 민주적인 국가, 제국주의가 아니라 건강하고 아름다운, 문화에 초점을 맞춘 그런 국가를 꿈꿨다”면서 “이상적인 사회, 특히 민주주의를 향한 기대감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결코 타인의 고통의 깊이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타인의 고통에 대해 귀 기울일 수 있으며 또한 귀 기울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면서 “심리적 외상을 겪은 사람들이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예술가도 사회의 고통과 문제를 극복하도록 예술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1943년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보디츠코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1968년부터 현미경을 디자인하는 산업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업무 이외의 시간에는 실험적인 예술인과 지식인들이 운영하던 대안공간(갤러리 포크살)을 중심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1977년 캐나다의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캐나다로 이주한 그는 1980년대 들어 미국 뉴욕과 독일 슈투트가르트와 카셀 등 여러 도시에서 사회비판적,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야외 프로젝션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특히 그는 세계 각지에서 난민, 외국인, 노숙자, 가정폭력 희생자 등 상처받고 억압된 사람들이 공적인 공간에서 발언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공공 프로젝션과 디자인 작품을 선보여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이번 전시는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이라는 제목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의 주요 작품 80여점이 총망라된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사회의 주요 담론을 선도해 온 보디츠코의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회고전 형식의 5전시실은 모두 4개 파트로 구성됐다. 폴란드에서의 초기작으로 최초의 퍼포먼스 작품인 ‘개인적 도구’와 바삐 움직이는 공공장소에서 혼자 느린 속도로 걸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수레’, 사방으로 감시당하고 막막한 상황을 표현한 ‘자화상’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억압 간의 긴장을 다룬 작품들이 소개된다.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을 논의할 때 자주 언급되는 대표작 ‘노숙자 수레’도 눈길을 끈다.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폐타이어를 태운 열로 몸을 녹이는 노숙자, 쇼핑카트에 빈 캔을 모아 파는 노숙인들의 모습을 본 그가 쇼핑카트를 개조해 만든 복합기능의 수레는 사람들이 길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도록 내몰린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90년대 초에 발표한 ‘외국인 지팡이’와 마우스피스 모양의 ‘대변인’은 거리에 들고 나가면 누구라도 쳐다볼 기이한 모양이다. 보는 사람들이 말을 걸게 만듦으로써 발언과 소통의 기회를 내포한 작품들을 작가는 ‘문화적 보철기구’라고 부른다. 공공장소에서 건물 외벽 등을 스크린 삼아 영상작업을 투사하는 공공 프로젝션에서는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현지 공동체와 함께 진행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치료에서 차별을 받은 재일조선인 등 원폭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히로시마 프로젝션’(1999), 가정폭력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티후아나 프로젝션’(2001) 등 10점의 영상이 소개된다. 보디츠코는 “프로젝션 프로젝트의 목표 중 하나가 많은 사람의 목소리와 경험을 다른 곳으로 확장하는 것”이라면서 “대규모 집회나 시위를 통해 공공장소가 활기를 띠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를 공공장소에서 보여 준다면 시위나 집회가 일어날 이유와 조건이 조금은 줄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 ‘나의 소원’은 7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효성그룹 대 이은 나라사랑 정신

    효성그룹 대 이은 나라사랑 정신

    효성그룹이 국내외에서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호국보훈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1사 1묘역 정화’ 활동, ‘나라사랑 보금자리’ 사업 후원 등이 대표적이다.효성은 2014년부터 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등 사업장 인근 국립묘지와 1사 1묘역 자매결연을 맺고 헌화와 묘역 정화 활동을 하고 있다. 효성 임직원들은 호국보훈의 달인 6월과 국군의 날인 10월 1일을 전후로 매년 두 차례에 걸쳐 묘역 헌화, 청소, 벌초 등을 하고 있다. 6·25 전쟁과 월남전 참전 국가유공자 중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선정해 집을 고쳐 주는 나라사랑 보금자리 사업도 2012년부터 후원하고 있다. 지난달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를 방문해 나라사랑 보금자리 지원기금 1억원을 전달했다. 이를 통해 30명의 참전 용사에게 새 보금자리를 선물할 예정이다. 해외에서도 활발한 호국보훈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효성USA는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2013년부터 매년 6·25 참전 미군 용사 초청 행사를 열고 있다. 앨라배마주에서는 한국전 참전 용사에게 자사에서 생산된 탄소섬유로 만든 보행용 지팡이를 선물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임시정부 유적지 보존 활동 등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유적지 보호 활동도 진행했다. 백범 김구 선생 피난처 보존사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구 활동 지원이 대표적이다. 효성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6·10 만세운동의 주역으로 일제 부역을 거부하고 무역과 제조업에 뛰어들어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창업주 조홍제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서울신문 주최, 제44회 서울보훈대상 시상식

    서울신문 주최, 제44회 서울보훈대상 시상식

    서울신문이 주최하고 국가보훈처 서울지방보훈청이 후원하는 ‘제44회 서울보훈대상 시상식’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올해 수상자 5명을 비롯해 김영만 서울신문사 사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등 내빈과 수상자 가족 15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영만 서울신문사 사장은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이러한 뜻깊은 행사를 주최함으로써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올해 수상자로는 전몰군경 유족 안상필(76)씨, 전몰군경 미망인 최혜숙(70)씨, 특수임무 유공자 서상수(67)씨, 6·25참전 유공자 안수옥(83), 월남참전 유공자 김삼곤(70)씨가 선정되었으며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이 각각 전달됐다.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제광 건국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은 “국가 안위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거나 가족을 잃는 등 큰 아픔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우리 사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앞장서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랑스러운 분들이었다”고 심사평을 통해 밝혔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국가유공자로서 그리고 국가유공자의 가족으로서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다. 오늘 여러분의 수상은 모든 보훈 가족의 자랑이며 여러분의 삶이 많은 분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라며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편, ‘서울보훈대상 시상식’은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한 국가보훈대상자를 발굴 포상하여 보훈가족의 명예 선양과 보훈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제정됐다.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백범 김구 선생 68주기 추모식

    백범 김구 선생 68주기 추모식

    백범 김구 선생 68주기인 26일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해방 전까지 신민회, 한인애국단,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독립운동을 이끈 김구 선생은 남북분단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던 중 1949년 이날 사저인 서울 종로구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연합뉴스
  • 서울시의회 김제리의원 “경의선 ‘화물기차 숲길 사랑방’ 탄생”

    서울시의회 김제리의원 “경의선 ‘화물기차 숲길 사랑방’ 탄생”

    서울시의회 김제리 의원(더불어민주당, 용산1)은 지난 1년 간 준비 끝에 6월 15일 오후 4시 경의선숲길 시작부에 설치된 숲길내 화물기차(화차)를 리모델링해 지역 주민 및 공원방문 시민들의 여가공간으로 개방했다. 특히 주민의견 수렴 시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와 고밀의 주상복합아파트가 있어 인구밀도가 높고 젊은 층이 증가 추세로 주변여건을 감안 다양한 프로그램보다는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특화된 내용을 기획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지역주민들이 상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랑방 기능이 필요하다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당일 식전행사로 현장예약자 50명의 코르크 화분 만들기를 시작으로 숲길 사랑방 현판식에 이어 마을 도서관 고래이야기 위원님의 도서 기증식(150권) 효창동 주민센터 동아리 모임인 주민들로 구성된 오카리나회원들의 공연으로 주민과 함께하는 축제의장이 됐다. 김제리 의원은 축사를 통해 경의선 숲길 조성 경과에 대해 설명을 하고(경의선 숲길 가좌에서 원효로 까지 총 연장 6.3㎞ 중 용산구간 새창고개 백범교 부터 원효문배체육센터 뒤편 길이 730m 용산구 구간 총사업비 46억 1천1백만 원) 숲길 사랑방 개소 시 까지 고생한 서부공원녹지사업소 공원여가과 강현주 과장을 비롯한 관계공무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상설로 운영될 어린이 목공교실과 특설인 주민 목공 기초교실 및 주민 도서기증으로 만들어진 기차책방 운영에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하고 향후 주민들의 의견 수렴를 통해 보다 더 행복한 여가공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촌 안 부러운 ‘남촌’, 회현동 일대 재탄생

    북촌 안 부러운 ‘남촌’, 회현동 일대 재탄생

    내년까지 158억원 투입해 5대 명소 중심으로 도시재생 40여년간 개발에서 소외됐던 서울 중구 회현동 일대 ‘남촌’이 북촌 같은 명소로 재탄생한다. 종로구 가회동 일대인 북촌은 각종 지원을 통해 한옥마을로 거듭났지만, 남촌은 1979년 ‘회현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을 끝으로 방치돼 왔다. 남산과 인접해 있어 고도제한 등을 이유로 발전방향 마련이 쉽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는 청계천 북쪽을 ‘북촌’, 청계천 남쪽과 남산 일대를 통틀어 ‘남촌’이라고 불렀다. 서울시는 내년까지 158억원을 투입해 ‘남촌재생플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7일 밝혔다. 남촌재생플랜은 3개 부문, 15개 세부사업으로 나눠 ‘서울로 7017’과 맞닿아 있는 남촌(50만㎡)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우선 회현동의 5개 명소를 발굴해 5대 거점으로 재생한다. ▲우리은행 본점 앞 회현 은행나무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 집터 ▲회현 제2시민아파트 ▲근현대 건축자산 밀집지역 ▲남산공원 등이 대상이다. 통합광장, 예술인 주거창작공간, 놀이터 등으로 변신한다. 시는 남촌 5대 거점이 남산, 서울로 7017, 명동과 쉽게 연결되도록 5개 보행중심길을 조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소월로(남대문시장~서울로 7017~백범광장)를 비롯해 퇴계로 2길, 퇴계로 4길, 퇴계로 8길, 퇴계로 12길이 대표길로 자리매김하도록 간판 정비, 보도 확보 등의 사업을 추진한다. 주민·상인과 함께 남촌의 역사 자원, 스토리를 발굴하는 작업도 한다. 북촌이 한옥을 브랜드로 활용한 것처럼 남촌만의 자산과 가치를 활용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회현에서 배출된 12정승, 정약용, 퇴계 이황이 활동했던 ‘현자(賢者)의 남촌’,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고 할 정도로 술이 유명한 회현동의 특징을 따와 ‘술을 잘 빚는 남촌’이라는 고유 이미지와 정체성을 만들 예정이다. 한편 남촌 재생은 회현동·중림동·서계동·남대문시장·서울역 등 5개 권역(195만㎡)을 아우르는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의 세부 사업 중 하나다. 시는 다음달 말 서울역 일대 종합안에 대한 주민의견 수렴을 위해 공청회를 열고, 시의회 의견청취, 도시재생위원회 심의를 차례대로 거쳐 12월 중 고시할 예정이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철길로 끊어졌던 서울역 일대를 보행길로 연결하는 ‘서울역 7017’ 개장 이후 회현동 일대를 재생하는 일로 새 전기를 맞았다”면서 “역사·문화자산을 다양하게 보유한 남촌이 북촌과는 또 다른 특색 있는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한 걸음 한 걸음… 순국선열의 숨결을 찾아서

    한 걸음 한 걸음… 순국선열의 숨결을 찾아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이 땅을 지켜낸 옛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스민 곳들을 돌아볼 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6월의 걷기 여행길’ 가운데 몇 곳을 골랐다. ‘걷기 좋은 길’이라기보다 ‘걸어야 할 길’이라 보는 게 좀더 정확하겠다. 남의 나라 순례길을 빠삭하게 꿰는 만큼 제 나라의 순례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지 곱씹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한국관광공사북한산둘레길 2코스-서울 강북구 순하고 아기자기한 숲길이 깔끔하게 조성돼 있어 온 가족이 함께 걸을 만하다. 민주화의 성지 4·19국립묘지를 비롯해 3·1운동, 임시정부, 헤이그특사 등 역사책에서나 봤던 민주, 독립운동사의 주인공들이 이 길 곳곳에 잠들어 있다. 아이들과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 된다. 코스는 솔밭 근린공원~4·19 전망대~이준열사묘역 입구까지다. 거리는 2.3㎞,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인천 강화 강화는 예부터 외세의 침입을 막는 방파제이자 외국의 문화가 들고나던 관문이었다. 남과 북에서 흘러온 강물은 바다에서 모이고, 이 바다를 따라 돈대가 늘어서 있다. 호국돈대길은 이 돈대들을 따라가는 길이다. 몽골과의 항쟁, 병인·신미양요 등 국난 극복의 이야기가 스몄다. 코스는 강화역사관을 출발해 갑곶돈대~화도돈대~광성보 등을 돌아보고 초지진에서 마무리한다. 거리는 17㎞, 약 6시간 쯤 걸린다.‘토영 이야~길’ 1코스 예술의 향기길-경남 통영 조선 선조 38년부터 300년 가까이 남해를 지키던 삼도수군통제영, 이순신 장군의 유물을 만날 수 있는 충렬사 등을 돌아보는 길이다. 예부터 도보꾼들을 통영으로 불러들이는 강력한 동기가 됐던 길이기도 하다. 길은 통영의 문화유산 대부분을 거치며 걸을 수 있게 설계됐다. 화가 이중섭과 소설가 박경리 등 예술가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코스는 문화마당~동피랑벽화마을~통영세병관~중앙시장이다. 거리는 10㎞, 4시간 정도 걸린다.마곡사 솔바람길 1코스 백범길-충남 공주 1896년 열혈 청년이었던 백범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를 황해도 안악에서 처단하고 붙잡힌다. 그리고 1898년 백범은 탈옥을 감행해 마곡사로 숨어든다. 백범이 거닐었을 것이라 여겨지는 절집 뒤편의 산길이 바로 ‘백범길’이다. 소나무 빽빽한 숲길을 걸으며 백범의 마음을 느끼고 명상에 잠기기 좋다. 천왕문을 출발해 대광보전~삭발바위~군왕대를 거쳐 천왕문으로 돌아온다. 거리는 3㎞,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오방길 2코스 산성길-전남 담양 담양호, 금성산성 등과 연계돼 있어 주변 경치를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다. 금성산성은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 3대 산성으로 꼽힌다.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수많은 의병과 녹두장군 전봉준, 그리고 동학농민군의 애국정신이 깃들어 있다. 트레킹 뒤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 수 있다. 코스는 담양리조트에서 금성산성까지 오가는 단순한 구조다. 거리는 10.5㎞,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구불길 6코스 달밝음길-전북 군산 구불길은 모두 11개 코스로 나뉜다. 그 가운데 6코스 달밝음길은 금강과 서해를 한눈에 굽어보며 걷는 길이다. 길 곳곳엔 일제강점기의 흔적과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들머리는 은파관광안내소다. 이어 월명호수~3·1운동기념탑~해망굴(홍천사)~째보선창~경암동철길~군산역으로 이어진다. 군산의 어지간한 볼거리는 죄다 꿰며 간다. 거리는 약 16㎞, 6시간 정도 걸린다.상당산성길-충북 청주 상당산성은 둘레 4㎞가 넘는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백제와 신라를 거쳐 조선까지 내려오면서 겪은 수많은 국가적 위기를 당당히 버텨낸 곳이기도 하다. 성벽을 따라 걷는 내내 청주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굽어볼 수 있다. 높낮이가 별로 없어 가족단위 나들이에 그만이다. 코스는 상당산성 입구에서 공남문(남문)~서장대~미호문(서문)~진동문(동문)을 거쳐 다시 산성 입구로 온다. 거리는 4㎞, 2시간 정도 걸린다.제주올레 18코스 산지천~조천 올레-제주시 산지천마당에서 조천만세동산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제주 4·3사건 때 마을 전체가 불탄 곤을동 마을터,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환해장성의 흔적 등을 볼 수 있다. 조천 만세동산엔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와 마주할 수 있는 항일기념관이 있다. 코스는 산지천마당~김만덕 객주터~사라봉 정상~곤을동 마을~삼양검은모래해변~조천만세동산이다. 거리는 약 19㎞, 6시간 정도 걸린다.
  • ‘서울로’ 첫 주말 23만명 발길…도심 공중정원 눈길

    ‘서울로’ 첫 주말 23만명 발길…도심 공중정원 눈길

    불볕더위에도 남녀노소 산책길 트램펄린 ‘방방놀이터’ 인기만점 “1970년대 산업화 시대를 상징했던 자동차 전용 고가가 사람을 위한 보행로로 변화했다. 성장만을 믿고 의지하던 시대에서 시민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로 바뀌었음을 상징한다.”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역 고가도로가 ‘서울로 7017’ 공중정원으로 정식 개장한 지난 20일 이렇게 축사했다. 2014년 9월 박 시장이 미국 뉴욕에서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구상을 발표한 지 2년 8개월 만이다. 1970년에 지어진 서울역 고가도로는 오랜 추억을 뒤로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정원이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됐다.30도 안팎의 초여름 날씨에도 주말 동안 23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개장한 오전 10시 이전부터 서울로에 진입할 수 있는 퇴계로, 만리동 등 주요 진입로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60~70대 노인들은 모자와 양산으로 햇빛을 피하며, 연신 부채질했다. 서울시 공식 집계는 23만 6050명(21일 오후 7시 기준)이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친구와 온 양은희(26·여)씨는 “문화행사들로 눈과 귀가 즐겁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을 위해 트램펄린을 마련한 ‘방방놀이터’도 눈에 띈다”면서 “도심 고층 건물 사이에 6개 지역으로 이어지는 보행길을 만든 건 좋은 시도”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만리동 광장 쪽에 마련된 ‘거리 예술존’에서는 오즈의 마법사 OST인 ‘오버 더 레인보우’가 흘러나왔고, 대우재단빌딩 연결로에서는 ‘서울로 365 패션쇼’가 열렸다. 밤이 되자 은은한 청색 조명이 켜진 서울로는 노을과 어울러져 시민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박규빈(9·여)양은 서울로 곳곳에 놓인 다양한 식물들에 정신을 빼앗긴 듯했다. 서울로에는 645개의 원형 화분에 50과 228종 2만 4085그루의 꽃과 나무들이 있다. 박양은 “평소에 못 보던 식물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학교 체험 학습 시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아요”라며 활짝 웃었다. 미진한 부분도 없지는 않다. 식물 이름을 따서 명명한 수국식빵(토스트), 목련다방(전통차) 등 간식 가게들은 개장한 날 오후 5시쯤 문을 열었다. 족욕 시설은 사용 중간에 문제가 발생했다. 안내 표지판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전에서 올라온 지체장애인 박승현(38)씨는 “안내 표지판이 글자와 배경 색깔이 비슷해서 그런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장애인 화장실 찾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보행 불편’, ‘휴식 공간 부족’ 등 그동안 지적돼 온 문제들도 빠른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진입 통제를 해 고가의 수용인원을 최대 5000명 정도로 조절하고, 그늘막 등 휴식·편의 시설도 보강하겠다”고 말했다. 개장 전 논란을 빚은 공공예술 작품 ‘슈즈트리’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들어 연신 사진을 찍고, 감상평을 한마디씩 내놨다. 슈즈트리는 헌 신발 3만 켤레를 활용해 만든 높이 17m의 설치미술 작품이다. 경기 광명에서 온 설준석(44)씨는 “조금 전 슈즈트리에 꽃을 심는 행사에 참여하고 왔다”면서 “신발이 보행길로 바뀐 서울로의 의미를 잘 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강서구 화곡동에서 온 최하나(29)씨는 “예술적 차원에서 이해해 봐도 아쉬운 느낌이 분명히 있다. 작품 자체가 기괴하고 ‘신발=보행로’식의 접근은 너무 1차원적”이라고 혹평했다. 우려했던 악취는 없었다. 개장 이튿날인 21일에는 남산공원 백범광장에서 서울로 7017 상부를 거쳐 남산공원 백범광장으로 돌아오는 걷기대회 ‘거북이마라톤’이 열렸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백범일지 출간 70주년 ‘김구 선생 기념 메달’ 발매

    백범일지 출간 70주년 ‘김구 선생 기념 메달’ 발매

    한국조폐공사가 18일 백범일지 출간 70주년을 맞아 제작한 김구 선생 기념 메달이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공개되고 있다. 31.1g짜리 금메달(370개)과 은메달(970개), 1㎏짜리 은메달(170개) 등 3종류로 구성돼 있다. 메달 앞면에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김구 선생의 초상을 담았다. 뒷면에는 백범일지 초판본 ‘나의 소원’에서 발췌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다. 오는 22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국민은행, 농협, 신한은행, 우체국 등에서 예약하면 선착순으로 구매할 수 있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보수 후보 단일화 압박 속 대한노인회 찾은 두 후보 입장차

    보수 후보 단일화 압박 속 대한노인회 찾은 두 후보 입장차

    시간·동선 엇갈려 인사 못 나눠 노인정책 발표… 어르신표 공략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26일 같은 장소에서 어르신 공약 대결을 벌였다. 두 후보 모두 ‘보수 후보 단일화’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어 이날 만남이 더욱 주목됐지만, 시간과 동선이 엇갈리면서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다. 이날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대한노인회 초청 대선 후보 토론회에 홍 후보와 유 후보는 각각 노인정책 구상을 내놓으며 어르신 표심을 공략했다. 두 후보 모두 ▲기초연금 인상 ▲노인복지청 신설, 노인 의료부담 완화, 치매 어르신 관리·지원을 공통적으로 제시했다. 대한노인회에서 제안한 국회의원 비례대표 직능별 공천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했다. 단일화 문제에도 두 후보는 온도 차를 보였다. 홍 후보는 앞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유 후보는 차차기를 위해 끝까지 갈 것 같다. 유 후보가 (단일화를) 안 하려고 한다”면서 “굳이 우리는 단일화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조원진 새누리당 후보와 남재준 통일한국당 후보만 들어오면 사실상 보수진영은 단일화된다”며 유 후보를 배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이날 열린 노인회 토론회에서도 홍 후보는 “(경남지사 하다) 뒤늦게 와보니 깨진 사발인데 이걸 붙이는 데 거의 한 달 걸렸고, 붙이다 보니 선거는 곧 다가오고 있다”며 “좌파·우파가 기호 1·3·5번 3명이고 4번(유승민)은 보수인가 아닌가 자세히 모르겠다”면서 유 후보를 보수 후보로도 규정하지 않았다. 그는 또 바른정당 의원들을 겨냥해 “분가하고 가출한 사람들 오라고 만날 찾아본들 선거 못한다”면서 “큰 물줄기가 흐르는데 작은 물줄기가 합류하지 않으면 말라붙어 버리는 게 자연의 섭리”라고 강조했다. 홍 후보는 곧바로 대구로 이동해 서문시장에서 보수층에 거듭 지지를 호소했다. 유 후보는 이날 서울 관악노인종합복지관 방문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일부 바른정당 소속 기초의원들이 한국당으로 이탈한 상황에 대해 “그분들의 뜻인지 (그 지역) 국회의원들의 뜻인지 모르겠다”면서 “제가 싸우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의 잘못된 비민주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제 갈 길을 가면서 그 점에 대해 말씀드릴 필요가 있으면 드리겠다. 지금 제 입장은 변화가 없고 제 갈 길을 갈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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