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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료법 연구로 박사학위 받은 79세 김기일 옹

    “배움에 나이가 따로 있습니까.” 중·고교 생물교사 출신의 할아버지가 요료법(尿療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는다. 오는 20일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학위수여식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는 김기일(79·경기 고양시 일산구)옹이 주인공.김옹은 ‘요료법이 고혈압과 혈청지질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학위 심사를 통과했다. 백발을 휘날리며 불룩한 배낭을 메고 대학 캠퍼스를 누비는 김옹이 요료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91년.서울 구정중 정년퇴임 때 퇴임교원들을 위한 특별강연에서 오줌을 마시며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을 들으면서 부터다.김옹은 “호기심으로 한번 해봤더니 30년 동안 앓아온 무좀이 사라지고,찬바람이 불면 꺼칠해지던 피부질환도 수그러들었다.”고 말했다. 김옹은 동의보감을 비롯한 옛 서적과 일본에서 만든 생물학 서적 등을 뒤져보다 체계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2000년 3월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매일 오전 9시부터 밤늦게까지 도서관과 실험실을 오가며 향학열을 불태웠다.그는 이번 논문에서 31∼80세 정상군(群)과 고혈압군 성인 14명을 조사한 결과 요료법이 고혈압군의 체중과 혈압,혈청,콜레스테롤 수치 등을 감소시킨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내 몸을 변화시킨 요료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다.”면서 “그저 즐겁게 공부하다 보니 박사 학위를 밟는 4년간 단 한번 지각·조퇴도 하지 않고 공부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25년 함경남도 이원군 동면 장문리에서 출생한 김옹은 45년 10월 남하,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뒤 37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환갑 때인 1986년에는 한양대 교육대학원에서 생물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부인 박승봉씨와의 사이에 2남2녀와 손자 9명을 둔 김옹은 앞으로 기업체와 노인대학 등에서 건강 관련 강의를 하고 요료법 등을 다룬 건강 서적을 펴낼 생각이다. 박지연기자 anne02@˝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아,옛날이여

    “서울 세종로의 차량 증가 비율만큼 늘어난 골퍼들로 주말 골프장은 마치 명절 전날의 대중탕처럼 혼잡하고,서울 인근의 골프장은 주중에도 200여 명이 늘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984년 발행된 최영정의 ‘18홀’이라는 골프 칼럼 모음집에 실린 글이다.그 시절에 차량의 통행이 제일 많은 도로는 종각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세종로였고,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추석이나 설 전날이면 묵은 때를 벗겨내려고 대중목욕탕을 찾았다.2004년의 시점에서 바라볼 때,차량증가 비율의 기준을 ‘세종로’로 잡고,혼잡의 잣대를 ‘명절 전날의 대중탕’에 들이댔다는 사실은,참으로 고색창연한 비교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80년 대 후반에 골프를 시작했는데 그 시절만 해도 골퍼의 태평성대였다.친구와 둘이서 라운드를 하면서 구불구불 펼쳐진 산 아래쪽 홀들을 굽어다 보면,우리들처럼 둘이나 혼자서 라운드하는 골퍼들이 적지 않았다.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서 한 시간도 넘게 골프장에 늦게 도착했음에도,내 앞 시각에 티샷을 해야 할 다른 골퍼들도 나와 똑같은 일을 당한 탓에,나는 첫 홀부터 라운드를 한 적도 있다. 요즘,주말에 라운드를 나갈 때면 나는 용사처럼 몸과 마음을 무장한다.첫 번째 시련은 골프장까지 가는 길에서 겪어야 한다.도로상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 위에서 시루의 콩나물처럼 범퍼와 범퍼 사이에 끼어서 꼼짝 못하고 갇혀 있으면 파란 잔디가 그리워지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이 그리워진다.두 번째 역경은,탈의실에서 넘어야 한다.옷장의 개수나 목욕시설을 여성골퍼가 증가하는 비율로 맞추지 못한 골프장의 여성탈의실에 들어서면,정말 ‘명절 전날의 대중탕’이 연상된다. 세 번째 난관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골프코스에서 뚫어야 한다.티잉 그라운드에서는 하품을 불어 끄며 속절없이 기다리고,페어웨이에서는 포수에게 몰리는 토끼처럼 뛰다보면,아,옛날이 그리워진다. “30년 전에 내가 여기 회원권을 샀는데,골프장 측에서 대출도 알선해 주면서 반강제로 회원권을 안겼지.아침에 일찍 와서 서너 홀 치고,점심시간에 서너 홀 치고,저녁 무렵에 나머지 홀을 치고….여자라야 하얀 삼각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캐디뿐이었어.남자골퍼 하나에 젊은 여자캐디 한 명씩을 묶어 주었으니까,연애사건도 종종 일어났고….” 옛날이 좋았노라고,입을 내밀고 투정을 부리고 있는 내게,구력 40년이라는 백발의 노인이 먼먼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하이라이트

    ●백만송이 장미(오후 8시25분) 혜란의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는 명주 때문에 불안해진 현규는 인환에게 레인보우의 투자를 거절하라고 말한다.그러나 인환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며 딱 잘라 거절한다.한편 집에 들어온 귀분은 순영이 차려다 준 밥상을 뒤엎는데, 순영은 오히려 귀분이 직접 치우라며 나가버린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밤 12시10분) ‘울고싶어라’의 가수 이남이가 주축이 된 밴드 ‘철가방프로젝트’와 소설가 이외수가 특별한 무대를 마련한다.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뮤지컬 ‘캣츠’의 여주인공 조디 길리스의 감동적인 무대도 함께 한다.‘김제동의 리플해주세요’는 ‘몰래 교제 중인 사내 커플’의 고민을 함께 나눈다. ●베스트극장(오후 9시55분) 어린시절 지원은 아빠의 재혼으로 현수와 가족이 된다.지원이 어엿한 성인이 되던 어느날, 재욱이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집에서 나온 지원은 현수의 친구인 성준을 만나 사랑을 한다.하지만 현수는 지원에 대한 동생 이상의 감정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 ●형사(오후 9시55분) 혜영은 친구들로부터 연하 애인 지호를 누가 낚아챌지 모르니,빠른 시일 안에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어 놓으라는 충고를 듣는다.하지만 지호는 꿈쩍도 하지 않고,화가 난 혜영은 다훈을 이용해 질투 유발 작전을 펼친다.그런데 다훈은 그런 혜영을 진심으로 오해하고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코미디쇼 4막5장(오후 10시50분) ‘북치고 장구치고’는 영화 ‘친구’를 패러디하고,‘이경래의 폭탄쇼’는 ‘안개주’를 제조해본다.‘흑과 백’은 고지식한 백발도사와 딴지거는 흑발제자 사이의 궤변 싸움에서 ‘신체발부 수지부모’에 대한 교훈을 전한다.‘NG는 없다’는 동화 ‘신데렐라’에 도전한다. ●문화센터(오전 11시) 특별한 날 디저트로 좋은 초콜릿 만드는 방법을 알아본다.초콜릿으로 컵을 만들어 아이스크림을 담아내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예쁜 모양을 내지 않아도 놀라운 효과를 얻을 수 있다.디저트용 과일이나 쿠키 등을 초콜릿에 담가 먹는 초코 퐁듀도 만들어본다. ●과학과 미래(오전 8시30분)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는 있어도 함부로 만질 수는 없는 그림의 떡.돈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 한국조폐공사를 찾아가 생산과 유통을 거쳐 소멸되기까지의 과정을 알아본다.화폐의 역사에서부터 외국의 지폐까지 모든 화폐와 지폐에 관한 궁금증도 풀어본다.˝
  • 53년만에 부른 “아버지…”/국군포로 전용일씨 ‘눈물의 성묘’

    “사랑하는 아버지,어머니.그리고 형님,불효 자식 용일이가 5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큰절 받으십시오.” 20일 0시쯤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도착한 국군포로 전용일(73)씨는 경북 영천시 화산면 유성리 동생 수일(64)씨의 집에서 첫밤을 보낸 뒤 부모님과 형님의 묘소가 있는 신령면 완전리 선영을 찾았다.고령에다 그간의 여독이 덜 풀린 탓인지 새벽 한때 정신을 잃고 인근 병원에서 링거를 맞기도 했다. 1951년 12월 입대할 때만 해도 홍안의 청년(20세)이었던 전씨는 일흔이 넘은 백발로 부모님의 묘소 앞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동생의 부축을 받아 반세기 만에 이뤄진 성묘에서 그는 감회가 벅찬 듯 수십 차례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아버지”를 큰소리로 외쳐댔다. “이 아들 53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따뜻한 부모님의 품에 안겼습니다.이 불효 자식을 부디 용서해 달라.”고 절규했다. 전씨는 “내가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온 것은 부모님이 끝까지 걱정해 주신 덕분”이라며 “50년 전의 헤어짐이 영원한 이별이 될지는 몰랐다.”고 흐느꼈다. 그는1999년 77세의 나이로 작고한 인근 형님 환일씨의 묘소에도 절을 올린 뒤 “형님,몇 년만 더 사셨더라도 이 동생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요.왜 그렇게 빨리 가셨습니까.”라며 형님을 애타게 불렀다. 그는 성묘를 마친 뒤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신령면 신덕1리 마을회관을 찾아 주민들이 마련해준 다과와 손국수로 점심식사를 했다.그는 이 마을에 사는 가까운 친척집에도 들렀다. 전씨는 앞서 영천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혼자 사는 형수(완전리)를 찾아 인사한 뒤 차로 5분여 거리인 동생집으로 향했다. 마중 나온 환영객 50여명은 전씨에게 꽃다발을 전하며 환영했다.그는 환영객들에게 “환영해 줘서 감사하다.만나서 반갑다.”며 “여러분의 도움으로 사랑하는 조국과 고향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편 영천시와 영천시의회는 설 연휴가 끝난 오는 27일 오후 영천시민회관에서 전씨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범시민 환영식을 성대히 개최할 예정이다 영천 김상화기자 shkim@
  • “힘 닿는데까지 함께 나누며 사는게야”공동체운동 실천하는 원경선옹

    ‘나눔의 삶에 멈춤은 없다.’ ‘생명운동 전도사’인 유기농부 원경선(元敬善·90·환경정의시민연대이사장)옹.그는 요즘 28년간을 꾸려온 경기 양주시 회천읍 4만평의 공동체 ‘한삶회’를 정리하고 내년 3월 충북 괴산 청천면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IMF때 현미식혜를 개발했다가 소비위축과 재벌그룹 일반 식혜 덤핑으로 큰 손해를 본 후부터 공동체 이전을 준비해 왔어요.” 양주에선 유기농재배와 함께 현미식혜·두부·야채효소 등의 농산물 가공공장도 운영했지만,괴산에서는 전체부지 7만평중 대부분을 자신이 설립한 풀무원식품의 농장으로 쓰고 6000여평에 20여명의 공동체 식구들이 벼농사와 채소·감자·고구마 등 ‘소금만을 뺀’ 필요한 먹을거리 모두를 농약과 비료를 안 쓰는 유기농으로 경작할 예정이다. ●아직도 트랙터 모는 아흔의 유기농부 원옹은 최근 괴산에서 함께 살 20여명의 공동체 식구들을 선발했다.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들은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필요한 것은 나눠쓰고 몫은 따로 챙기지 않는다.’는데 동의했다.자녀들은 고등학교까지 공동체에서 보내준다. “새롭게 시작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아직도 트랙터를 몰 수 있어요.자신 있습니다.” 성성한 백발,동안(童顔)의 미소에 괭이를 둘러맨 그의 모습은 언제나 편안한 느낌을 준다.지난 98년 서서영 화백이 그려준 캐리커처에도 이같은 그의 이미지가 잘 표현돼 있다. “공동체운동은 힘이 있는 한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나누며 사는 거지요.도둑과 다툼이 없고 전쟁이 없는 세계를 지향하는 평화운동입니다.” 1914년 평안남도 중화의 극빈 가정에서 태어난 원옹은 초등학교를 16살에 간신히 졸업하고 그해 아버지를 여의었다.18살 때 기독교를 알게 된 후 “평생을 전도인의 자세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23살 때 홀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에서 광복 때까지 인쇄소를 운영했고,45년 귀국해 미군부대 공사청부업으로 재산을 모았다.53년 부천 미군비행장 미군 군목의 권유로 떠돌이 전쟁고아나 비행청소년들을 모아 ‘풀무원농장’ 공동체를 만들었다.그대로는쓸모없는 쇳덩어리를 연장으로 만드는 풀무처럼 새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란 뜻을 담았다. ●현미 주식으로 하면서 건강 되찾아 회갑을 넘긴 76년 양주에 터를 잡고 친환경 유기농 공동체를 만들었다.당시만 해도 생소한 유기농법은 처음엔 경험부족 등으로 실패했지만 78년부터 매스컴의 각광을 받고 일반인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해 부인 지명희(86) 여사와의 사이에 얻은 2남 5녀중 맞아들인 혜영(전 부천시장)씨가 서울대총학생회장을 하다 시국사건으로 복역 후 출소,사업에 동참했고 풀무원식품을 설립했다. 원 전 부천시장은 지난 96년 풀무원 경영수익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현재 기금이 22억원으로 불었다. 양주에서 유기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원옹은 100%의 현미만을 먹었고 주위에 현미를 ‘완전식품’으로 권했다. 현미를 주식으로 하면서 어린시절 간디스토마에 걸려 객혈까지 한 이후 그를 괴롭혀온 악성 빈혈증세도 모두 사라졌다.“쌀에 비해 단백질이 조금 모자랄 뿐 부족한 엽록소를 콩류로 보강하면 최고의 건강식이지요.” 원옹은 5개월 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다.수술을 집도한 서울 강남의 U정형외과 의사는 원옹의 전반적인 건강과 특히 골밀도가 젊은이 못지않게 높은 데 놀랐다.그래서 젊은이들도 힘들다는 인공관절 요추 삽입수술을 했다. 원옹은 환경과 생명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95년 유엔환경계획(UNEP)의 ‘글로벌 500상’을 수상했고 인촌상과 국민훈장도 받았다.요즘도 일주일에 한 두 차례는 풀무원식품과 이사장을 맡고 있는 환경정의시민연대,경실련(고문),국제기아대책회의(이사),거창고교(이사장) 등에서 종교·사회사업·교육 관련 강의에 나선다. ●“유기농은 땅과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 서울 나들이에 나설 때면 교통편이 마땅치 않은 양주 ‘한삶회’ 거처에서 의정부까지만 승용차를 타고 나머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지난 2월엔 금강산 시범육로관광단에 최고령으로 참가해 북한을 다녀오기도 했다. 원옹이 이사장인 환경정의시민연대는 지난해 제1회 ‘올해의 나쁜 광고 대상’으로 ‘맥도널드 해피밀’을 선정한 데 이어 지난달엔 제2회 대상으로 화학물질 남용과 친환경 방법을 부정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P&G의 ‘페브리즈’를 선정했다. “농사지어 먹고 살기 힘들게 된 건 사실이지.그러나 유기농은 포기할 수 없어요.신이 주시고 만든,땅과 인간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니까.” 불혹(不惑)에서부터 반세기,힘든 사람들과 함께하며 든든한 어깨가 되어 준 ‘인간상록수’ 원옹의 겨울은 그래서 미리 다가선 봄날처럼 따듯하다. 글·사진 양주 한만교기자 mghann@
  • 현지 표정·각국 반응/“사담에 죽음을” 바그다드시민 환호

    |바그다드 외신·파리 함혜리·도쿄 황성기·베이징 오일만특파원|후세인의 체포 사실이 외신을 통해 전해진 14일 이라크 전역에서는 거리로 몰려나온 이라크인들이 하늘로 수백발의 총을 쏘면서 축제 분위기를 넘어서 치안 부재의 불안한 상태로 번졌다.후세인 체포 소문은 이날 새벽 키르쿠크 지역에서 나돌기 시작,빠르게 확산됐다.바그다드의 한 주민은 “결혼식처럼 우리는 축하하고 있다.”며 “마침내 범인을 제거했다.”고 말했다. ●일부시민 “희망 잃었다” 일부 시민들은 체포된 후세인의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비쳐지자 “사담에게 죽음을,이라크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환호했다. 바그다드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하의 뜻으로 총을 공중으로 쏘아 대거나 춤을 추고,또 자동차 경적을 울려대는 모습이 목격됐다.버스와 트럭에 탄 일부 시민들은 ‘사담을 잡았다.’며 연호했다. 그러나 일부 이라크인들은 후세인 생포 소식을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며,또 후세인이 아무런 저항없이 손쉽게 체포된 것을 아쉬워하는 등 엇갈린 반응이 나타났다. 팔레스타인 호텔의 경비원인 아빌 다우드는 “우리는 유일한 희망을 잃었다.”고 후세인의 생포를 안타까워 했다.또 일부 바그다드 시민들은 체포된 후세인을 겁쟁이라고 꼬집었지만 다른 쪽에서는 후세인이 순교자로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세계 각국 일제히 환영 영국 등 이라크전쟁에 참여했던 동맹국들은 물론 프랑스·독일 등 이라크전 반대 국가들도 14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체포 소식에 이라크의 악몽을 종식시키고 평화로운 이라크의 미래를 건설할 전기가 마련됐다고 일제히 환영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체포 소식에 “후세인의 체포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큰 희소식으로,오랫동안 이라크인들의 뇌리에 맴돌던 후세인 재등장의 악몽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후세인의 체포 소식을 반가워하고 있다고 카트린 콜로나 대변인이 밝혔다. 콜로나 대변인은 후세인의 체포는 이라크의 민주화와 안정에 기여할 매우중요한 사건이라며 시라크 대통령은 후세인의 체포로 이라크 국민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일본 TV들은 14일 오후 8시쯤 넘어 후세인의 체포를 속보로 전하기 시작했다.NHK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후세인 체포 소식을 전했다. 한편 사쿠라다 준 도요가쿠엔 대학 전임강사는 전쟁 이후 대량파괴무기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후세인 체포로 미국의 전쟁 목적이 99% 달성됐다면서 일본이 자위대를 파병하는데도 환경이 정비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케사다 히데시 방위연구소 주임연구관도 자위대 파병의 대의명분 부족으로 고심했던 일본 정부가 후세인 체포로 더 늦어지기 전에 파병을 서두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CCTV 등 중국 언론들은 14일 저녁 ‘긴급 자막’을 통해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의 체포 사실을 전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이날 중국 정부의 공식 반응은 없었다. lotus@
  • ‘레슬링 영웅’ 자선사업하며 제2인생/76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씨

    1976년 8월1일 오전 10시.제21회 하계올림픽이 열린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낭보가 전해졌다.방송은 급히 이국땅에서 태극기가 게양되는 장면을 생중계했고,서울 거리에는 호외가 뿌려졌다.‘장하다 양정모’라는 노래도 만들어졌다. 양정모는 몽골의 ‘레슬링 영웅’이자 세계선수권대회 2연패에 빛나는 오이도프와 결선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맞붙었다.양정모는 이미 미국의 진 데이비드에게 허리감아돌리기로 폴승을 거뒀고,데이비드는 오이도프를 판정으로 이겼기 때문에 5점차 이상으로만 패하지 않으면 우승할 수 있었다.점수 관리만 잘하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양정모는 오히려 저돌적인 공세를 펼쳤고,막판 2점을 내줘 8-10으로 졌다.그러나 금메달은 양정모의 몫이었다. 그로부터 27년이 넘게 흘렀다.대한민국에 건국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양정모(51)는 백발이 성성한 중년신가 돼 있었다. ●국민에게 받은 사랑, 사회에 환원 3일 서울 삼성동 포스코빌딩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굳은 살이 박인 뭉뚝한 귀가 우선 눈에 띄었다.딱 벌어진 어깨와 날카로운 눈매로도 그가 레슬링 영웅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양씨는 지난 97년 팀이 해체되기 전까지 23년간 조폐공사 레슬링팀에 몸담았다.이후 개인사업을 한 양씨는 남은 인생의 목표로 자선사업을 택했다.5년 동안 준비한 끝에 지난 7월 역대 동·하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참여한 자선단체 ‘올림픽챔피언 클럽’이 출범했고,그는 초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자.”는 양씨의 제안을 금메달리스트들이 흔쾌히 받아들였다.정회원은 손기정(2002년 타계)옹부터 지난해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여자쇼트트랙 우승자 고기현(17)까지 98명이나 된다. ‘천사의 날(1004-Day)’이었던 지난 10월4일에는 동두천에서 백혈병 어린이들을 위한 달리기대회를 열었고,인터넷으로 봉사에 동참하고자 하는 일반 회원을 모집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양씨는 챔피언 클럽이 단순한 친목단체로 흐르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친목단체라면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양씨는 “소외된 이웃은 물론 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도 힘이 되는 단체가 돼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메달에 목매는 현실 안타까워” 뭉크러진 귀가 평생 펴지지 않는 것처럼 그의 가슴에는 언제나 레슬링이 웅크리고 있다.영원한 레슬링인으로 남고 싶은 그에게 지난달 전국체전에서 체중감량으로 사망한 김종두(17)군 사건은 충격을 넘어 분노로 다가왔다.강산이 세 번도 더 바뀌었는데 후배들이 아직도 자신이 겪은 ‘살인적 감량’의 고통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대회 하루 전 한차례만 계체량을 하지만 그가 운동할 때에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매일 경기 직전 몸무게를 쟀다.양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도망치고 싶었다.”면서 “종두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양씨는 운동하는 후배들에게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지는 못할망정 뒤떨어지지는 말라고 간곡히 당부한다.금메달을 따면 인생이 바뀌는 시대가 아닌 만큼 성적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레슬링의 특성을 잘 살리면 훌륭한 레크리에이션이 될 수 있는데 아직도 메달에만 목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한다. 양씨는 또 “사회의 변화에 선수들이 적응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사회도 묵묵히 운동하는 어린 선수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스포츠를 통해 얻는 국민의 기쁨은 자신이 첫 메달을 땄을 때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양씨가 자리를 뜨려는 참에 50대로 보이는 사람이 머뭇거리며 다가왔다.“양정모씨 맞지요.당신은 아직도 우리의 영웅입니다.” 글 이창구기자 window2@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
  • 모성 - 여성사이 번민 시인의 몸짓으로 표현/ 고정희상 수상 김승희교수

    “내가 여성주의적 시각의 글을 쓰지 않은 것은 여성이란 사실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한 것인지도 모른다.왜 사람들은 ‘인어 공주’를 좋아하지 않느냐,말 못하는 여성을 말이다.그러나 내 궁극적 관심은 여성이다.” 시인 김승희(51·서강대 교수)씨가 제2회 고정희상을 수상했다.고정희는 14년 전 타계한 시인이요 여성 운동가였다.지난 28일,이화여대 학생문화관에서 있었던 수상식에서 그는 칠순의 노모와 대학생인 딸과 함께 참석해 기쁨을 나눴다.김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이제 도망갈 수도 없는 자리에 섰다.”며 여성적인 삶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이야기할 것을 천명했다. 고정희상 수상위원회는 “김 시인은 ‘김승희 윤석남의 여성이야기’란 책에서 시적 진실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특히 자매애를 통해 그것을 이루어 내려는 면에서 고정희 시인의 궤적과 매우 흡사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고 시인이 쓴 책은 일상에서 심리적으로 구속당하는 모성과 여성이라는 자아를 건지려고 발버둥친 시인의 몸짓을 적나라하게 내보인다.이는 비단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 여성들,특히 직장을 가진 여성들에게는 꼭 자신의 이야기같다. “어머니들의 끈질긴 사랑과 구속은 ‘치명적 모성’이다.미국 현대 여성시를 모은 ‘엄마와 딸,그 얽힌 넝쿨들’에서도 그것을 발견하면서 크게 놀랐던 적이 있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연민,혐오,족쇄,그리움으로부터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세상의 여자들이 모두 같다는 사실을 통해 세상의 여성이 거의 비슷한 원형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테야.”라고 선언한 ‘엄마죽이기 선언문’을 낭독한 1세대라고 자신을 설명하는 시인은 그러나 결국은 캥거루의 주머니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로서 자식으로서 어머니로서 또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세상의 이모저모를 쉴새없이 관통해 나가야 하는 자신의 삶을 ‘119 소방 대원’이라고 말했다.한국적 문화에서 가정과 자기의 일을 가진 ‘겸직’ 여성들은 누구나 119 소방 대원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며,이런 삶을 ‘아프거나 바쁘거나’라고 정리해 공감을 얻어냈다. 서늘한 눈매와 시원시원한 말투의 김 시인은 “평등을 위해 싸울 줄 아는 사람만이 꿈꿀 자격이 있다.”고 여성들을 향해 말했다. 김 시인의 뒷자리에 앉은 백발의 노모가 딸의 어깨에서 티끌을 떼내느라 바빴다.책에서와 달리 시인도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허남주기자
  • “인생은 마라톤” 날마다 백발 날리며 力走/마라노토 CEO 민계식 현대중공업 사장

    세계 최대 조선소인 현대중공업 민계식(閔季植·61) 사장은 마라토너로도 유명하다. 새벽이나 점심,혹은 늦은 밤,흰 머리카락을 날리며 조선소 안 바닷가 방파제를 매일 10∼20㎞ 뛴다. 예순이 넘었지만 마라톤대회 42.195㎞ 풀코스를 한달 3번까지 참가해 완주한다.기록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3시간 20분대를 넘기지 않는다. 그는 재계 최고경영자 가운데 가장 부지런한 사람으로 소문나 있다.그의 하루는 늘 시간이 모자라 수면은 3∼4시간.이르면 밤 11시,보통은 다음날 새벽 1시쯤에 퇴근한다.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회사에서 밤을 샌다.퇴근을 아무리 늦게해도 오전 6시에는 일어난다.그래야 40분뒤 아침회의시간에 맞출 수 있다. ●타고 난 달리기 꾼 별다른 놀이가 없던 해방직후 어린 시절,동네 친구들과 모여 달리기를 하며 놀았다.어른들은 재미삼아 사탕을 내걸고 자주 달리기 시합을 시켰다.시합때마다 2∼3살 많은 동네 형들을 제치고 1등을 했다. “부모님을 닮아 달리기 소질을 타고 났나 봅니다.” 6·25때 군에 입대해 의무감(준장)으로 제대한 그의 아버지는 경성제국대학 의과대학을 다닐 때 마라톤 선수를 했다.어머니는 숙명여고 농구선수였다. 8남매 가운데 민 사장을 포함해 남자 5형제는 모두 경기중·고와 서울대,여자 3자매는 경기여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한 수재집안이다.그럼에도 그의 부모는 자식들이 게으름을 피울까 “너희들 같은 머리는 보통이고 흔하다.그런 머리로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더 있겠니.”라며 늘 경각심을 주었다고 한다. ●국가대표 선수촌까지 들어가 그는 경기고에 진학한 뒤 고등학교 학도호국단 체육대회 마라톤 대회 때마다 단골 선수로 나갔다.당시 학교측은 전과목 평균 80점이 넘는 학생만 운동대회 출전을 허락했다.대학 1학년 때인 61년 마라톤 국가대표 선수 제의를 받았다.1년쯤 선수를 해 볼 생각에서 국가대표 선수촌에 들어갔으나 부모가 뒤늦게 이를 알고 찾아와 “공부를 안하고 뭐하고 있느냐.”며 야단을 치는 바람에 1주일 만에 나왔다.마라톤 국가대표 선수가 될 뻔 했다. 그해 9·28 서울수복기념 마라톤대회에 출전,에티오피아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와 함께 뛰어 2시간 23분 48초의 기록으로 7등을 했다.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의 최고 기록이다. 민 사장은 경기고 졸업 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가 4개월만에 자진 퇴교한 이력이 있다. “명예위원을 하라는 요구를 거절했다고 몇몇 선배들이 보이지 않게 불이익을 주는 것을 보고 이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도일규(都日圭) 예비역 대장(육사 20기)과 경기고 동기로 육사에도 같이 입학했었다. 4개월여 육사에 다녔기 때문에 그는 당시 병역제도에 따라 군제대를 인증 받을 수 있었으나 학군장교(ROTC) 3기로 입대해 맹호부대원으로 월남전까지 참전했다. ●미국 금속노조 평생 조합원 민 사장은 미국유학시절,막노동·백화점 청소부·깡통회사 근로자·트레일러 운전사 등 안해본 일이 없다. 69년 첫 아들이 체중 1.8㎏상태로 예정보다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병원비가 많이 들었다.4년동안 학업을 중단하고 돈을 벌어 밀린 병원비를 갚았다. 트레일러 운전을 하기위해 부두 노동자로취업할 때 평생 조합비를 냈다.이 때문에 지금도 그는 미국 금속노조 조합원이다.4년마다 하는 조합장 선거때마다 투표하라고 연락이 온다. “5살때 에디슨 전기를 읽고 발명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일찍부터 에디슨을 인생의 길잡이로 삼아 최고 기술인의 꿈을 키우고 이뤄냈다. 그는 기업이건 국가건 살아남으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술개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우에 근무할 당시 김우중 회장에게 사업 확장은 자제하고 특정분야에 집중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철저한 애프터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건의 했습니다.그러나 영업을 중시하는 경영인이었던 김 회장은 ‘기술은 사오면 되는데 왜 힘들게 개발하느냐? 당신도 영업으로 나서라.’며 영업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사고차이 때문에 현대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대우그룹이 문을 닫은 뒤 만났던 김 전회장이 “그때 자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민 사장의 기업경영철학은 인재를 중시하고 기업경영을 잘해 이익이 사회에 고루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현대중공업이 9년 연속 무분규를 이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민 사장은 노사 모두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해마다 국내·외에 2편씩의 논문을 발표한다.지금까지 발표한 논문은 130여편.웬만한 대학교수를 앞지른다.국제발명특허 50여개,국내 발명특허는 200여개를 갖고 있다. 수면시간이 모자라고 회사에서 밤을 새는 게 짐작이 된다.대학교수로 오라는 권유가 더러 있었으나 자신의 손으로 개발, 설계한 제품이 만들어져 나오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아 현장에 남았다.취업난 때문에 유능한 기술인재들이 일할 곳을 찾지못해 노는 것을 보는 게 경영인의 한사람으로 안타깝다. ●풀코스만 130여차례 완주 민 사장은 현대중공업 마라톤 동우회(회원수 370여명) 명예회장이다.동우회는 점심시간이나 토요일 오후 회사안에서 달리기를 하고 매달 한차례 전지훈련을 하며 각종 마라톤 대회에 참가 한다.민 사장은 그동안 마라톤대회 풀코스만 130여차례 완주했다.한해 10차례 완주하려고 애쓴다. “참고 꾸준하게 달려야 하는 마라톤은 인생과 같습니다.다시 태어나도 기술인으로 마라톤을 좋아하며 살 것입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달릴때마다 소아암 환자 희망 쌓이죠”/사랑 전하는 닥터 마라토너 김태형 교수

    서울아산병원의 소아종양혈액과 김태형(64) 교수는 ‘마라톤맨’이다.환갑을 넘겨 정년을 고작 1년 남짓 앞둔 ‘원로 의사’지만 틈만 나면 뛴다.지치고 힘들어도 포기하는 법이 없다.그가 내딛는 발자국마다 소아암을 앓는 어린이 환자들의 ‘소망’이 소복소복 담기기 때문이다. ●완주때 모인 후원금 치료비로 전달 마라톤 풀코스 42.195㎞를 완주하면 후원자들이 4만2195원씩을 성금으로 내도록 해 소아암 환자들을 돕는다.후원자들의 숫자가 220∼230명이어서 한번 완주하면 1000만원 쯤 모아 애들에게 전달한다. “워낙 치료비가 많이 드는 병이라 그 정도로는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는 마라톤 풀코스에 나가서 한번도 포기해 본 적이 없다.그가 가져갈 완주 메달을 받고 싶어하는 어린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한발짝 두발짝 내딛는 걸음이 소아암 환자의 치료비잖아요.그러나 그것보다는 반드시 완주해야 메달을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그걸 받아 목에 걸어 보고 싶어하는 얘들이 얼마나 많은데…”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지난 1987년이었다.미국 애틀랜타의 에모리대의대 소아병원 교수로 재직할 때였다.공부에 빠져 집과 병원만 오가는 생활을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몸이 지쳐갔다. 혈압은 뛰고 몸은 푸석푸석 붓기 일쑤였다.하루는 아들과 함께 등산을 갔는데 때맞춰 마른 번개가 치면서 난리가 났다.“산등성이에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쏜살같이 내달려 피할 곳을 찾는데,너무 숨이 차 죽을 것 같더라고요.그때 생각했어요. 병이 없다고 결코 건강한 몸이 아니구나.내 몸을 이렇게 건사해서야 되겠나.” 생각은 그랬지만 마땅한 운동이 잡히지 않았다.그래서 그날부터 별 생각없이 운동화를 챙겨 신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동료들은 대부분 골프를 즐겨했어요.일요일이면 골프장에서 사는 사람들인데,전 그럴 여건이 안됐어요.저는 외국인 교수였고 강의를 준비해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는데,준비를 할 시간이 일요일밖에 없었거든요.운동은 해야 했고 시간은 많이 주어지지 않아 시작한 게 달리기였어요.” 그때부터 그는 새벽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5㎞ 정도로 시작해 매일 10㎞씩을 달렸는데,이게 몸에 익으니 달리지 않고는 안될 지경이 됐지요.” 그러다 1993년 풀코스에 처음으로 도전했다.애틀랜타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훗날 올림픽 정규 코스를 달렸다.그 인연으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성화 봉송 주자로 뛰었는가 하면,황영조 등 우리나라 마라톤 대표에게 코스를 안내했고 KBS의 마라톤 중계방송 때는 코스해설가로 일하기도 했다. ●1993년 도전 이후 42.195㎞ 18회 완주 첫 풀코스를 완주하면서 그의 달리기에는 자연스럽게 값진 ‘사랑’이 담기기 시작했다.“고통을 견디며 달리는 일과 어려운 치료를 묵묵히 견뎌내는 소아암 환자들의 용기는 확실히 닮았어요.” 그 때부터 그는 어린 소아암 환자들에게 꼬박꼬박 완주 메달을 건네며 격려하기 시작했다. 메달을 받아 든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것만으로도 풀코스 완주의 고통을 보상받고도 남았다.그가 마라톤을 중도에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전 미리 애들에게 얘기해 줍니다.‘내가 마라톤대회에 나가는데 이번 메달은 너에게 주마.대신 치료를잘 받아 꼭 낫겠다는 약속을 해줘야 해.’라고요.”이렇게 완주한 것만 18회나 된다.그러다 한번은 달리는 도중 무릎 연골이 파열됐다.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그 때도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30년에 걸친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게 된 지난 1997년부터 ‘희망 레이스’를 기획,실천에 옮겼다. “후원자들을 모집해 내가 1m 달릴 때마다 1원씩 내 소아암 환자들을 돕자는 것이지요.금액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미력이나마 다하자는 뜻이죠.” 그는 “우리 보험체계가 미흡해 많은 소아암 환아들이 치료비나 생활비 부담을 갖고 있어요.그들에게 적으나마 힘이 됐으면 하고 시작했는데,회원들에게 매번 부담을 줘 미안하기도 하고,또 주변에서 잘 이해해 주지 못하는 측면도 있고…,쉽진 않아요.” ●“보험체계 정비해 소아암환자 도움줘야” 의료 보험을 얘기하면서는 “보험 체계를 정비해 소아암 환아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귀국후 1000명이 넘는 소아암 환자를 치료했지만 대부분 보험 체계가문제가 됐다.”며 진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꼭 필요한 사람을 돕자는 의료 보험의 취지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으며,자신이 부담한 보험료만큼 치료를 받고 말겠다는 국민 의식도 문제라는 것이다. 나이가 예순을 넘어서면서 풀코스 완주 기록은 예전의 3시간대에서 4시간대로 늘어났지만 그 나이에 그런 기록을 갖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도,흔히 있는 일도 아니다.가장 최근의 기록은 지난달 19일 완주한 춘천마라톤에서의 4시간 17분.그는 “병마에 맞서는 아이들의 강인한 의지,‘나도 선생님 같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환아들의 얼굴에서 삶의 건강성을 확인한다.”며 조용하게 웃었다.그의 ‘희망 레이스’를 후원하는 모임은 지난달 19일 춘천마라톤에 나서는 그를 두고 기금 모금 안내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김태형.백발의 42.195㎞.그의 뜨거운 심장 소리는 소아암 환자들의 지지 않는 희망의 노래입니다.턱밑까지 차오르는 거친 숨소리는 그의 아이들을 위한 투혼입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이언탁기자 utl@
  • “당구테이블 인생의 축소판입니다”/‘1만점 기록 보유’ 당구명인 양귀문씨

    ‘따∼악,휘리릭∼’ 큐를 떠난 흰 공이 경쾌한 파열음을 내며 빨간공에 부딪치는가 싶더니 마치 끈으로 잡아당기듯 이내 반원을 그리며 녹색테이블 구석의 또다른 빨간공을 향해 휘어진다.물 흐르듯 춤추는 큐를 따라 3개의 당구공은 레일을 따라 구르기도 하고,때론 큐를 기어오르기도 하면서 온갖 기하학적인 모양을 그려낸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 조끼,백발을 깔끔하게 빗어 넘긴 노신사는 마음씨 넉넉한 여느 집 큰아버지 같은 모습이지만 금테안경 너머로 공의 한 점을 꿰뚫어보는 눈매에서는 매서움이 묻어난다. 대한당구연맹의 수석부회장 양귀문(67)씨.그는 자신의 공식 직함보다는 ‘당구 명인’으로 더 유명하다.국내 최고의 당구(4구) 점수인 ‘명예 2만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한번에 1만점을 쳐내 기네스북까지 오른,말 그대로 ‘당구 귀신’이다. ●목포 만석꾼 양아들의 ‘당구병’ 양씨는 서울 중학동의 내로라하는 부잣집 외아들로 자랐다.목포 만석꾼 출신의 아버지 정모씨 슬하에서 유복한 소년 시절을 보낸 뒤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수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남모르는 아픔도 컸다.자신의 생부가 따로 있었던 것. 본래 정씨 주치의의 셋째아들인 그는 갓난아기 때 강보에 싸인 채 만석꾼 집의 양아들로 들어갔다.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아들이 없던 정씨가 주치의의 막내아들을 양자로 낙점했고,아들만 셋을 둔 그의 생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씨 성으로 자란 그가 다시 자신의 성을 찾게 된 것은 17년 뒤.생부가 사망한 뒤 부산 피란 시절 둘째형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끈질기게 양아버지인 정씨를 설득해 양씨 성을 되찾았다. 양씨의 당구 인생을 열어준 사람 또한 다름아닌 양아버지.대학에 입학한 뒤 취미로 잡은 큐로 인해 ‘당구병’이 도진 그가 밤늦도록 공과 씨름한 뒤 집 안으로 월담하다 장독을 깬 것만 수차례.이후 선뜻 집 안에 당구테이블을 들여놓으며 “당구를 얼마나 치기에 그렇게 빠졌느냐.”고 미소짓던 양아버지의 눈매를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일본 최고수의 제자로 양씨의 당구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귀화 일본인 윤춘식(일본명 다카키 쇼지)씨.14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33세에 당구공 하나로 전 일본을 제패한 윤씨는 지난 1971년 양귀문에게 일본 당구유학을 권한다.당시 영화제작 등 사업에 분주하던 양씨는 모든 것을 접고 ‘최고봉’에 오르겠노라며 대한해협을 건넜다. “두달 동안은 당구공 구경도 못했어요.하루에 꼬박 두 시간씩 큐를 밀어치는 연습만 했지요.오른팔에 근육이 뭉칠 무렵,그제서야 공을 놓아주더라고요.”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더욱 혹독한 훈련 뿐. “세리(빨간공 두 개의 간격을 일정하게 모아놓은 상태에서 쿠션 레일을 따라 이동시키는 기술) 훈련을 하루에 열 바퀴씩 시키더군요.한 바퀴 점수가 2000점이니 열 바퀴면 2만점인데 꼬박 두시간 반을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쳐내야 했지요.” 1년여의 유학을 마친 양씨는 8·15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침침한 백열등과 자욱한 담배연기로 상징되는 한국의 당구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사업도 뿌리친 채 당구에 매달렸다.국내외 대회에서 60여차례 우승을 휩쓸었고,당구 보급을 위해 개최한 세미나만 1700여차례나 된다. 지난 84년 한큐 1만점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그는 2000년 5월 1대 조동성(사망)씨에 이어 2대 ‘당구 명인’으로 추대됐다. ●당구가 주는 절대교훈 ‘겸손함' 양씨의 당구 철학은 의외로 싱겁다.‘가장 쉬운 공을 가장 어렵게 쳐라.’는 것과 ‘강해져야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것. 양씨는 “당구 테이블은 인생의 축소판이지요.큐 하나로 온갖 모양을 다 그려내면서도 고통은 고통대로,희열은 희열대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당구입니다.무엇보다도 가장 쉬운 상황을 가장 어려운 듯 완벽하게 풀어나가는 겸손함이 당구가 주는 절대 교훈이지요.” 양씨는 또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나폴레옹,그리고 미국의 조지 워싱턴 등 세계를 다스린 제왕과 지도자들도 모두 당구를 즐겼다.”면서 “절대적인 권력과 강인함을 갖추었으면서도 완급과 강약을 아우르는 통치력을 그 안에서 배웠을 것”이라고 확신애 찬 듯 강조했다. 양씨의 당구에 대한 정열은 ‘이순’을 훌쩍 넘어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종심(70살)’을 바라보면서도 끝이 없다.서울 서초동의 한국당구아카데미에서 매주 강의 중인 양씨는 지난달부터 인터넷 강좌까지 개설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큐 하나로 ‘종심’을 향한 불꽃을 태우고 있다. 글 사진 최병규기자 cbk91065@
  • 기고/ 장수(長壽)가 즐겁지 않은 시대

    타고난 목숨의 연한이 수명일진대 과연 그 연한이 얼마여야 천수(天壽)를 누린다고 할 수 있을까?인간의 수명 한계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수명이 자꾸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진시황(秦始皇)이 그처럼 갈망했던 불로초(不老草)도 현대 의학이 언젠가는 해결해 줄 것으로 보인다.더구나 베일에 싸여 있었던 인간유전자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신(神)의 영역에 대한 과학의 도전이 도대체 어디까지 계속될지 자못 궁금하다. 최근 통계청의 생명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한국 여자의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남자의 경우도 10년 만에 5세가량 수명이 늘어난 72.8세를 기록,당(唐)나라의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희망한 70세는 이미 수명 목표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보편화된 지 오래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보건의료 수준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인류와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 같다.곧 십장생(十長生)의 반열에 당당히 사람이 포함될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우린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준비 없는 장수(長壽)가 가져올지도 모르는 고통과 재앙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서구의 부유한 국가와는 달리 사회복지 서비스가 미약한 우리 현실에서 노후를 나라에만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자식에게 노구(老軀)를 의지했던 우리 부모세대처럼 그런 방식이 변함 없이 통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국민연금의 재정 고갈 위기가 거론되고 있고 그나마 연금보험료는 더 높이고 연금액수는 자꾸 줄이려 하고 있어 이 역시 전적으로 믿을 대상은 아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사회에 광풍처럼 불어 닥친 조기퇴직 바람은 소위 ‘사오정’(45세 조기 정년퇴직)이니 ‘오륙도’(56세 정년을 기대하는 것은 도둑 심보)니 하는 속어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심각한 현상으로 자리잡았다.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한데 해가 일찍 저무는 꼴이다.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른다.‘오는 세월 막대로 막고 가시로 막으려 해도 백발이 용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던 옛시조 구절처럼 노후는 먼 훗날의 일이 아닌 당장의 현실이 된 지 오래다.문제는 그럼에도 그 심각성이나 중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앞날이 불투명하기도 하거니와 먹고 살기에 바쁜 작금의 상황에서 일부 사람들에게는 노후 문제가 ‘한가한 사치’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미래에 대한 준비 소홀은 ‘인생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지금 사정이 어려우면 노후는 더 어려울 수도 있기에 오히려 더 준비를 해야 하는 논리가 성립되기도 한다.사실 노후 대책은 부자들의 문제가 아닌 일반 서민들의 문제인 것이다. 2001년 생명표에 따르면 인생의 반환점은 남자의 경우 37세,여자는 40세였다.평균수명이 늘어나면 이 반환점도 높아지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기간보다 짧아질수록 노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 읽었던 옛날 이야기가 생각난다.산 속 깊은 곳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두 젊은이….하지만 그들은 이미 수백 살이나 먹은 신선(神仙)이었다.이제 그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바로 미래 우리 인류의 모습으로 언젠가는 등장할 것 같다. 먼 미래 신선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초라하고 초췌하며 구차한 노후를 살 것인지 아름답고 풍요로우며 ‘젊은이’ 같은 황혼을 보낼 것인지는 어떤 선택과 준비를 하느냐 하는 당장의 문제가 아닐까?내일을 위한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박병욱 금호생명 사장
  • 백발제자들 모여 스승 회고전 열어/故이종무 화백展 서울갤러리서

    “화단의 중진인 제자들이 모여 회고전을 잘 치르고 있는 걸 보면 아버님도 저 세상에서 흐뭇하시겠죠.”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전 홍익대 서양화과 교수 고 이종무(李種武·전 예술원 회원)화백의 회고전이 화제가 되고 있다.칠십이 다 된 제자 30여명이 고인이 된 스승을 위해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층 서울갤러리에서 ‘이종무 화백 대한매일 초대 회고전’을 열고 있는 것.오는 12일까지 계속되는 이 회고전에는 고인을 기리는 제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전시회가 시작된지 열흘이 다 되가지만 제자들의 정성은 식을 줄 모른다.고인의 차남인 이경렬(48)씨는 이에 대해 부친의 제자들에게 “그저 고맙다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 화백이 사고를 당한 것은 ‘미수(米壽)기념전’을 준비하던 지난 5월 26일 밤 9시.지난 97년 아호를 따 건립한 충남 아산의 당림(棠林)미술관 앞에서 근처 집으로 가기 위해 건널목을 건너다 승합차에 치여 숨졌다.매일 4시간씩 캔버스 앞에서 전시 준비에 매달리던 중이었다.비보를 접한 홍익대 제자 등은 긴급모임을 갖고 스승이 마지막 순간까지 전념한 회고전을 대신 마무리 짓기로 뜻을 모았다.이들은 70점의 전시 작품 선정,팜플렛과 화집 출간 등 회고전의 실무를 도맡았다.비용도 추렴하려고 했으나 유가족들이 극구 사양해 대신 전시장 벽에 작품을 거는 등 일손을 도왔다.지금도 틈나는 대로 전시장을 찾고 있다. 이근신(64) 전 강남대 서양화과 교수는 “1958년 대학에 입학한 이래 이 화백은 예술적인 스승일 뿐 아니라 친아버지 같은 분이었다.”면서 “제자로서 스승의 회고전을 준비하는 것은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 선택 / 신념 택한 양심수의 ‘고집’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그러나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탄압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24일 개봉하는 ‘선택’(제작 영필름·신씨네)의 첫 장면을 장식하는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문구는 이 영화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사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전 생애를 감금한 현실,그래도 그 사상에 대한 ‘선택’을 유지한 인간의 아름다움…. 영화의 주인공은 45년간 수감됐다가 2000년 9월 북송돼 ‘세계 최장기수’란 별명을 얻은 양심수 김선명옹이다.앵글은 광복 이후 좌익활동과 체포,구형,그리고 사상전향각서 강요에 맞서기 등 줄곧 그의 선택을 타고 흐른다.그 과정에서 25살의 청년이 잦은 고문과 폭력,죽음보다 더 힘든 독방의 외로움을 견디며 70세에 풀려날 때까지 꺾지 않은 ‘아름다운 고집’이 클로즈업된다. 92년 멍텅구리배를 소재로 한 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댔던 홍기선 감독의 시선은 이념보다는 진실을 향한 한 인간의 올곧은 의지와 맑은 꿈에 무게를 두었다. 당연히 김선명 대척점에 있으면서 평생 그를 고문하고 회유하는 중앙정보부 요원 오태식(안석환)의 삶도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으로 그려진다.그에 힘입어 “선택은 어느 한 쪽을 고르는 게 아니라 다른 한 쪽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했던 김선명옹의 감동어린 삶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홍 감독은 “신문을 보고 김선명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했다.”며 “만나보니 뿔도 달리지 않았고 그저 독립투사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맑은 눈빛만큼 일관된 그의 삶을 담으려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김선명역을 맡아 열연한 김중기는 88년 남북청년학생회담을 주도했던 운동권 리더.연극과 영화판에 뛰어들어 화제가 된 배우다.자신의 젊은 날의 선택과 무관하지 않은 듯 “처음으로 영화 속에 들어간 생생한 느낌이었다.”고 전한다.주로 감옥을 무대로 한 영화여서 따분할 것으로 예상한다면 오판. 정제된 대사와 홍기선 감독의 연출력에 오태식역의 안석환,이영운역의 김종철 등 연극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보태져 관객을 빨아들인다.영화의 백미는 마지막의 다큐 삽입부문.풀려난 김선명옹이 병상에 누운 94세의 어머니를 상봉하는 장면에선 코끝이 찡해진다.아들을 본다는 일념 하나로 버틴 깡마른 어머니와,백발이 성성해 돌아온 아들의 포옹은 영화의 감동을 압축한다. 분단이라는 현실은 다른 사상을 선택한 숱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강요했고 아직 그 잔재는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해서 영화의 의미는 0.75평의 감옥 공간에 갇히지 않는다.순수한 한 인간의 ‘선택’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면 부산영화제에 가면된다.3,5,7일 ‘새로운 물결’부문에서 만날 수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
  • 軍, 자주국방 중기계획 발표/조기경보기 4대 2010년 배치

    국방부가 내년부터 향후 5년간 추진할 주요 사업 계획이 담긴 ‘2004∼2008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다.국방부 관계자는 26일 “이번 계획은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자주적 선진국방 구현을 위한 기반구축’을 목표로 했으며,국가경제와 재정전망 등을 고려해 장병 복지개선과 자위적 방위 역량 구축에 필요한 소요를 중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신규 전력투자사업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도입사업(E-X)이 대표적이다.내년부터 조기경보통제기(AWACS) 도입사업에 착수,1조 9596억원을 들여 2010년까지 4대를 일선에 배치할 계획이다.AWACS는 공중에서 반경 350∼400㎞내 수백개의 목표물을 탐지하고 지상레이더가 잡을 수 없는 저공 침투 항공기와 미사일을 원거리에서 포착할 수 있다.또 작전 중인 아군에게 적진 깊숙한 곳에 있는 항공기·전차·차량 등의 동향을 낱낱이 탐지 통보하는 등 ‘공중지휘사령부’ 역할을 한다. 전투 및 지휘체계까지 겸비한 차기 보병전투장갑차를 도입하는 사업도 2007년 착수된다.총사업비는 2조 2000억원에 이른다.또 작전 반경이 현재의 10배인 500m에 이르는 중고도 무인정찰기 개발을 위한 연구 개발과 수백발의 장거리 대잠 어뢰개발사업도 2007년 착수된다. 이와 함께 최근 국방부가 사업계획을 발표한 다목적헬기개발(KMH) 사업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밖에 오는 2008년까지 448개 대대분의 내무반을 소대단위 침상형에서 분대단위 침대형으로 바꾸고,25년 이상된 노후관사를 24∼32평형 국민주택 규모로 개선하는 사업도 포함돼 있다. 대대급 이상의 부대에 근거리통신망(LAN)을 완비하는 등 2008년까지 정보화 기반구축도 마칠 계획이다. ●차질빚는 전력사업 적잖은 전력투자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국방부측이 당초 내년도 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0%는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2.8%에 그친데다 추후 재정전망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상당수 사업은 일정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대표적인 경우가 공중급유기 도입사업.당초 국방부는 전투기의 작전범위를 대폭 확장시켜 공군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내년부터 약 2조원 규모의 이 사업에 착수할 계획이었다.그러나 재정 형편상 내년 사업에서 제외된 것은 물론 착수조차 어려워졌다.또 차기 유도무기사업(SAM-X)과 항법유도장치(GPS) 유도폭탄 도입의 추진 일정도 모두 상당기간 늦춰지게 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정부 재정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국방 중기계획의 일정이 계속 달라지고 있다.”면서 “내년도 재조정될 ‘2005∼2009 국방중기계획’에서 올해 부족분에 대한 보전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향후 10년내 자주국방 토대 마련’을 목표로 하는 현 정부의 자주국방 스케줄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오늘 개봉 ‘방탄승’/총알도 비켜다니는 不死의 스님

    ‘와호장룡’에서 청룡검을 지키는 무림 고수로 나왔던 저우룬파(周潤發)가 이번에는 날아오는 총알을 비켜다니는 절대무공의 스님이 됐다.할리우드에 진출한 우위썬(吳宇森)감독작 ‘방탄승’(Bulletproof Monk·19일 개봉)은 세계평화를 지키려는 한 티베트 스님의 무용담을 그린 할리우드 액션.저우룬파는 소림무술에서 현대적 액션까지 다양한 몸동작을 펼쳐보이는 주인공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티베트의 이름없는 젊은 스님(저우룬파)은 읽기만 해도 엄청난 힘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신비의 두루마리를 고승에게서 전해받는다.세계정복을 노리는 악의 무리가 이를 빼앗으려 호시탐탐 노리고,저우룬파와 그의 후계자가 된 소매치기 카(숀 윌리엄 스캇)가 이를 물리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940년대 티베트에서 출발한 영화는 이내 60년 뒤의 미국 뉴욕으로 무대를 싹 바꾼다.이후 속도감 넘치는 화면으로 버디액션물의 공식을 무난히 밟아나가는 듯하다.그러나 새로움을 찾는 관객에게는 실망스러울 법하다.뚜렷한 선악구도,이렇다할 반전없이 쫓고 쫓기는단선적인 드라마는 진부하다.귀신같이 총알을 피해다니는 저우룬파,느린 화면의 총알이나 두루마리의 글씨들이 카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컴퓨터그래픽 장면들은 현실감각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홍콩 누아르의 카리스마 하나로 버텨온 저우룬파로서는 단단히 용기를 냈음에 틀림없다.신비의 두루마리를 무사히 후계자에게 넘긴 뒤 순식간에 주름투성이의 90세 백발노인으로 변신하는데,그만 실소가 터지고 만다.또 하나의 안타까운 사실.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코트자락 휘날리며 멋드러지게 쌍권총을 뽑던 고독한 영웅이 이젠 늙어보인다. 황수정기자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 ‘DIY 천국’ 미국 생활속 몸에 밴 ‘내 스스로’

    지난 5월 워싱턴 지역으로 이민 온 송모(43)씨는 일주일간 ‘생고생’을 했다.집과 자동차는 주위 도움으로 샀지만 식탁과 컴퓨터 책상,침대 등은 직접 골라야 했다.대형 할인점의 전시장엔 한국에서 50만원이 넘는 나무 책상이 199달러,4∼6인용 원목식탁이 349달러였다.평생 쓸 요량삼아 299달러짜리 나무 침대도 샀다.60달러를 주고 배달을 부탁했다.6일 뒤 송씨는 깜짝 놀랐다.주문한 가구는 오지 않고 포장된 원목들과 나사들만 잔뜩 배달됐다.착오가 생긴 것 아닌가싶어 당황했던 송씨는 대형 할인점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포장된 물건들이 떠올랐다.자신이 보고 주문한 게 ‘조립형 가구’의 전시용이었다는 걸 깨달았다.송씨는 가구들을 조립하느라 일주일 넘게 비지땀을 흘렸다.조립을 제대로 못해 틈이 벌어지고 모서리에 상처가 나기도 했다.괜히 샀다 싶었지만 조립하고 나니 뿌듯했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에선 이처럼 제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이 가구조립 뿐만이 아니다.개인주의적 생활습관이 일상화한 미국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쉬운 일에도사람을 쓰기 보다는 ‘스스로 작업(Do It Yourself)’을 즐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집이나 자동차를 사고 팔 때에도 중개인을 통하지 않고 직접 거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대형 쓰레기를 직접 하치장에 내다버리고 이삿짐을 꾸리고 풀 때에는 트럭을 빌려 손수 몬다. ●집안 일엔 전문가가 따로 없다 지난 6월 말 워싱턴 일대 지역신문은 조립형 가구를 전문적으로 파는 ‘아이케아(IKEA)’에 관한 기사를 1면에 크게 실었다.워싱턴을 허리띠처럼 감아돈다 해서 붙여진 순환고속도로 ‘벨트웨이’로부터 북쪽의 볼티모어와 뉴욕으로 가는 95번 고속도로 옆에 새 매장이 들어서 교통대란이 예상된다는 고발성 보도였다. 그만큼 주민들의 관심이 크고 IKEA에 대한 호응도가 남다르다는 의미다.매장에는 책상에서 걸상,식탁,침대,찬장,서랍장 등 모든 종류의 가구가 전시됐으나 판매는 조립형 부품이 든 ‘패키지 형태’로 이뤄진다.소파마저 일부는 조립형으로 나온다.1940년대 초 스웨덴에서 시작,전 세계 34개국에 매장을 둔 IKEA의 최근 모토는 ‘디자인된 가구의 저가 공급’이다.배달하고 사용하기 쉬운 재료들을 사용,미 동부지역에서 인기를 끌며 급성장하고 있다. 워싱턴 시내에 사는 흑인 여성 캐롤 던햄은 “조립형 가구는 디자인이 현대적인 데다 값이 싸고 이사할 때에도 분리해서 운반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라고 말했다.한때 애를 먹은 송씨는 조립하는 재미가 있다며 지금은 전동 드라이버까지 구입,조립형 가구에 푹 빠졌다.가격은 일반 가구보다 20∼30% 싸며 무게도 훨씬 가볍다. 집을 고치거나 관리하는 것도 본인의 몫이다.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잔디를 심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잔디가 보통 20㎝ 이상 되면 1주일마다 주택단지를 살피는 지역관리소에서 1차 경고를 한다.그래도 깎지 않으면 법원에 고발,벌금을 물게 한다.마당이 넓은 단독주택이나 저택의 경우 월 250∼400달러를 주고 잔디깎기를 시킨다.갓 이민 온 라틴계들의 주요 직업이다. 그러나 연립주택형인 타운하우스나 상당수 단독주택의 거주자들은 스스로 잔디를 깎는다.잔디깎는 기계도 하나로는 부족,2∼3개씩 갖고 있다.집 내부는 직접페인트 칠하고 발코니는 손수 고친다.가정 개선용품점인 홈 디포나 로우스 등이 불황에도 잘 견디는 것은 수요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지붕이나 벽,전기,TV 등의 가전제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사는 ‘내 스스로 한다.’는 게 미국인의 좌우명이다. ●귀족 운전자는 ‘NO’ 미국의 주유소에선 운전자가 직접 차에 기름을 넣는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려졌다.물론 기름을 넣어 주고 앞 유리 등을 닦아 주는 ‘풀 서비스’ 주유소도 있으나 99%는 ‘셀프 서비스’다.미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들도 기름 주입구를 차안에서 여는 장치가 없을 정도다. 물론 기름을 넣기 전후에 돈을 내는 방식이 지역마다 달라 번거로운 점도 있다.일부 주유소는 값이 싼 대신 현금만 받고 미 국방부 인근의 주유소처럼 회원제로 운영돼 군인들만 사용하는 곳도 있다.그러나 주유소들이 불필요한 서비스는 거부하는 실용주의가 전형화한 곳임에는 틀림없다. 지난달 조지 워싱턴대에 연수 온 김모씨는 자동차를 산 뒤 행정당국으로부터 배기가스 검사를 받으라는 통지를 받았다.검사 장소와 요금 등의 안내서가 첨부됐으나 꺼림칙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정비업체를 찾아 갔다.배기검사를 대행해 주느냐고 물었더니 “이 나라에선 장관도 배기가스 검사를 자신이 직접 받는다.”는 말에 머쓱해졌다. 용기 백배하고 검사장에 갔다.배기 검사 시설이 갖춰진 철판 위에 2분 정도 시동을 걸고 차를 세워 놓자 검사를 쉽게 통과했다.주변을 보니 백발의 노인들이 직접 차를 몰고 와 검사를 받았다.검사소는 각 도시마다 위치해 기다리는 시간은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차를 사고팔 때에도 중개인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점차 느는 추세다.자동차 딜러에게 팔면 제 값에서 2000∼3000달러 이상 손해보기 때문에 중고차의 경우 먼저 신문에 광고를 낸다.예컨대 ‘99년 도요타 캠리,6만마일 주행,가죽시트,CDP포함,상태 양호,1만 1000달러,협상 가능’하는 식으로 광고를 내면 사겠다는 사람들이 찾아 온다.차를 살피고 운전을 해본 뒤 거래가 이뤄지면 차량등록증에 파는 사람이 서명만 하면 그만이다.계약서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등록에 꼭 필요한 것은아니다. ●내가 이삿짐 전문센터 미국에서도 이사할 때에는 사람을 부린다.인부 3명 기준으로 3시간에 기본요금 450∼500달러,1시간 추가할 때마다 100∼150달러씩을 낸다.그러나 피아노,소파,식탁 등 무거운 짐이 많을 경우 인부를 사고 독신이나 가구가 많지 않은 경우는 혼자 힘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많다.이삿짐 트럭만 전문적으로 빌려주는 ‘U-홀’이나 ‘라이더’ 등의 업체가 성업하는 것도 스스로 이사하는 미국인들이 많아서다. 미국에서는 이사할 때 나오는 대형 쓰레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승용차나 밴에 싣고 가까운 쓰레기 처리장에 가 직접 버리면 된다.짐이 많다 싶으면 역시 이사 차량을 빌리면 된다.트럭은 시간당 또는 거리당으로 계산해 반나절이면 1대의 임대료가 40∼70달러 정도다. 쓰레기 처리장이 한국처럼 시 외곽에 있는 게 아니라 주택가 주변에 있는 것도 편리하다.녹지대에 위치,외부에 가려졌으며 먼지 등이 날리지 않고 지저분하지 않도록 공장형으로 마련,주민들의 반발도 적다. mip@kdaily.com 美골프장 캐디 없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스스로 모든 일을 하는 문화에 익숙한 미국에서는 대통령도 캐디없이 골프를 친다. 미국에서 골프가 대중화한지 40년이 넘었다.지역마다 퍼블릭 골프장이 10개 안팎이 된다. 워싱턴 주변 지역의 경우 골프장이 100여 곳 넘는다.요금도 40달러에서 80달러 정도다.그러나 캐디가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회원제 골프장도 마찬가지다.프로 골퍼들이나 캐디들이 붙지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골프채를 끌기 싫으면 전동차에 실어 타고 다니면 된다.이 경우 한 사람당 12∼16달러의 전동차 요금을 낸다. 미국 대통령이 가끔 찾는 앤드루 공군기지 골프장에도 캐디는 없다.대통령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지는 않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6월 일반인과 똑같은 요금인 39달러를 내고 각 홀마다 동시에 티 샷을 하는 ‘샷 건’을 즐겼다. 경호원들이 골프장 곳곳에 배치되고 지상에는 특수 정찰기가 떴지만 일반인들을 제재하지는 않았다.일반 골퍼들처럼 부시 대통령도 앞 팀이 가까우면 기다렸다가 샷을 하곤 했다.한국에서흔히들 말하는,앞 뒤 홀이 텅텅 빈 ‘대통령 골프’를 미 대통령도 마음대로 즐기지는 못한다.
  • 로버트 김 “아버지 아직은 눈감지 마세요”/간첩혐의 美수감… 애끊는 思父曲 병상부친 육성듣고 아들이름만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여수생선과 김치를 함께 먹어보고 싶습니다.”,“채곤이…채곤이….” 17일 오후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의식을 회복한 김상영(90)옹은 장남인 로버트 김(63·한국명 김채곤)이 육성테이프로 전해온 눈물의 사부곡(思父曲)을 듣고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경기도 남양주의 요양병원에 입원중인 김옹은 미국 국가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체포돼 미국 펜실베이니아 앨런우드 연방교도소에 7년째 수감 중인 아들의 육성을 5분 분량의 녹음테이프를 통해 들었다.로버트 김은 “아버님,저 채곤입니다.맏아들 노릇은커녕 심려만 끼쳐드려 마음이 더더욱 무겁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그는 “백발이 성성한 초로가 되어서야 부모님의 은혜를 뼈에 사무치도록 깨닫고 있지만,전 자유를 빼앗긴 채 머나먼 미국의 한 교도소에 있으니….”라며 흐느꼈다.로버트 김은 “늘 그리워하며 뼈를 묻고 싶은 우리의 조국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답답하기만 합니다.”라면서 “건강하셔서 아들이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것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옹은 지난 닷새 동안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의식을 잃을 정도로 병세가 위독해져 가족이 장례준비를 마친 상태였다.그러나 장남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는지 김옹은 이날 아침 의식을 회복,아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육성테이프는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는 로버트 김의 부인 장명희씨가 김옹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9일 로버트 김과 전화 면회를 해 녹음한 것이다.김옹의 손을 꼭 잡은 부인 황태남(82)씨는 몇 차례나 테이프를 되돌렸다. 김옹은 로버트 김 후원회 관계자들과도 “고맙네,고마워.”라며 눈을 맞추었다.로버트 김으로부터 북한관련 정보를 받았던 백동일 대령은 김옹의 손을 잡고 “아드님은 나라를 위해 큰 희생을 하셨다.”면서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아드님을 볼 수 있으니 꼭 살아계시라.”고 기도했다.2선 국회의원과 한국은행 부총재를 지낸 김옹은 지난 2000년 아들을 면회한 뒤 중풍과 심장수술 후유증이 겹쳐 자리에 드러누웠다.가족과 후원회측은 김옹이 사망할 경우 상주(喪主)인 로버트 김이 장례에 참석할 수 있도록 일시 석방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18일 미국 법무부와 주한 미 대사관에 보낼 예정이다. ●로버트 김 사건이란 96년 9월 미국 해군정보국(ONI)에 문관으로 근무하던 로버트 김이 미국의 국가기밀을 빼내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의 해군 무관에게 넘겨줬다는 이유로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간첩 및 간첩음모 혐의로 체포,기소된 사건을 말한다.로버트 김은 1심에서 9년형을 선고받은 뒤 연방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미 대법원은 99년 9월 기각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우연히 라디오듣고 참전 한국인 며느리까지 얻어”한국전 캐나다 참전용사 루이스 머피

    캐나다 육군 이등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루이스 머피가 백발이 성성한 고희의 나이로 한국을 다시 찾았다.50년 만이지만 한국땅이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전쟁이 끝나 캐나다에 돌아가서도 한국을 잊지 않았습니다.”함께 참전했던 전우들과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만나며 한국노래와 한국음식을 즐긴다고 머피는 설명했다. 뿐만 아니다.그는 최근 한국인 며느리를 얻어 한국과 사돈지간을 맺었다.대를 잇는 인연에 감사할 뿐이라고 머피는 말했다.“정말 사랑스러운 며느리를 맞았다.”는 그의 표정엔 벌써부터 한국인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철철 넘쳤다. 참전용사 머피와 한국과의 인연은 지난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한국전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당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있는지도 몰랐던 그는 소련,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가 자유국가를 침범했다는 소식에 51년 덜컥 유엔연합군에 지원했다고 한다.그는 “불같이 뜨거운 뭔가가 내 몸 안에 흐르는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52년 8월 19살의 나이로 한국전에 참전,통신병으로 최전방에 배치됐다.여러 고비를 넘기며 무사히 살아 남았지만 바로 옆에 있던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전쟁터에서 만난 전우들은 정말 좋은 친구였고 때론 아버지같고 형제같았죠.” “그런 전우가 죽음을 당해 더이상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당시엔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머피는 동료들의 죽음이 아직까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지금은 추억거리지만 당시에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지기도 했습니다.”전쟁 중에 캐나다에 있는 여자친구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봉투 안에는 그가 선물했던 반지가 들어있었다.이별을 고하는 편지였다.1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지만 그에게는 사연이 많은 듯 했다.한국전쟁 정전50주년을 기념해 캐나다 대사관의 초청으로 다른 참전용사들과 함께 지난 23일 서울에 도착한 머피는 그사이 전쟁기념관과 판문점 등을 돌아봤다.50년 전으로 되돌아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전우들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그리고 “세계적인 도시로 거듭난 서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참전용사라는 점이 더욱 자랑스럽다.”며 뿌듯해했다. 또 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부산을 방문하게 된 그는 “전쟁이 끝나고 캐나다로 돌아가면서 자그마한 꽃다발을 선물받았는데 그 곳이 부산항이었습니다.”라며 설렌 표정을 지었다. 머피와 인터뷰를 할수록 한국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느껴졌다.그의 아들이 한국인과 결혼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아들 대니는 자라면서 누구보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제가 한국전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요.”머피는 아들이 한국에서 영어교사로 살게 된 것은 자신때문이라며 웃어 보였다.그리고 인터뷰 마지막에 “50년전 남과 북은 체제의 이질성 때문에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지만 모두 똑같이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젊은 세대가 통일을 이루기 바란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글 강혜승기자 1fineday@ 사진 강성남기자 snk@
  • 구직난 속 빛난 ‘노익장’

    ‘백발의 신사’ K(68·서울 구로구 오류동)씨는 동네 햄버거체인점 종업원이지만 자부심이 대단하다.지난해 8월부터 1년째 손자·손녀뻘 되는 10∼20대 젊은이들과 어울려 손수 만든 햄버거를 손님들에게 내놓거나,실내청소 등 허드렛일을 주로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뒤질 세라 늘 바쁘게 움직인다.그가 받는 파트타임 급료는 시간당 3000원.“굳이 돈벌이가 아니더라도 사회에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뿌듯함 때문에 잡일을 하더라도 사회봉사의 기회를 잡으려는 또래의 늙은이들이 많다.”며 아이처럼 활짝 웃는다. 최근 경제난 등으로 청년실업자가 늘어났는데도 정작 ‘3D’ 산업현장에는 인력이 크게 모자라는 기현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55세 이상의 고령자 취업은 급증하고 있다.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14곳에 설치한 고령자취업알선센터를 통해 상반기 일자리를 구한 노인은 5003명.지난해 상반기의 1482명에 비해 무려 238%나 늘어났다.고령자취업센터를 통한 취업자 수는 2000년 3179명,2001년 3361명,지난해 3452명으로 제자리걸음을 걷다가 올 들어 큰 폭으로 늘었다.이런 추세라면 올 연말까지 취업자 수가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서울시는 내다보고 있다. 고령자취업센터가 활기를 띠는 것은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구직에 나서고 있는 데다,불경기를 맞아 기업에서도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되고 낮은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고령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초구 양재동 서초노인복지관내 고령자취업알선센터는 8개 직종의 구인·구직을 중개하고 있다.파트타임에서부터 경비직 등 월 급여가 64만∼90여만원에 이르는 직종이다.이 곳에서 취업을 알선받은 노인은 월 35∼40명에 이른다. 취업자 연령층 분석을 통해서도 노인층의 취업 열기는 뚜렷이 나타난다. 동작구의 경우,자체운영 중인 3개 취업센터를 통해 지난 한달간 일자리를 찾은 구직자 364명 가운데 55세 이상이 94명으로 26%를 차지했다. 서초구 고령자취업센터 박지혜 선임상담원은 “고령자에 대한 컴퓨터 교육강화 등 취업 여건이 좋아지면서 최근 들어 노인들의 취업영역이 경비원,파견근로 등 단순 직종에서 통역,텔레마케팅,무역컨설팅 등 전문분야로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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