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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 TV 하이라이트]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백범 김구 제1편(KBS1 밤 10시)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이 생을 마감한 지 63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여전히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힌다. 우두머리가 되기보다 무리를 지탱하는 다리가 되고자 했으며 여느 지도자들보다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 백범 김구.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인 그의 일대기를 담았다. ●맛있는 퀴즈쇼! 행운의 식탁(KBS2 오후 5시 30분) 달콤한 과즙이 일품인 포도부터 울릉도의 향기가 담긴 건나물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빛깔이 고운 파프리카까지. 식욕을 돋우는 푸짐한 과일과 채소들을 퀴즈를 맞힌 사람 중 추첨해 증정한다. 치솟는 물가에 가벼워진 주부들의 장바구니를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우리 먹을거리들로 가득 담아본다. ●그대 없인 못살아(MBC 밤 8시 15분) 상도의 모텔에서 만나게 된 가영과 인혜. 몸싸움을 하던 중 가영이 다치게 되자 놀란 상도는 인혜를 밀쳐 낸다. 상도가 가영과 함께 나간 뒤 인혜는 서러움에 가득 찬 눈물을 흘린다. 한편 민도와 지수는 신혼여행지에서 임신 사실을 확인한다. 집으로 돌아온 인혜는 어머니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통보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오후 5시 35분) 여덟 살 연우는 선천다발성 관절만곡증을 앓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한창 글씨를 배울 나이의 연우. 하지만 두 손을 사용해야 간신히 연필을 쥘 수 있어 초등학교 입학을 1년 미뤄 놓았다. 연우가 다른 친구들처럼 예쁜 글씨를 쓰고 뛰어놀기 위해서는 성장이 멈출 때까지 계속 수술을 해야 하는데. ●달라졌어요(EBS 밤 7시 35분) 캠퍼스 커플로 만나 행복한 연애 시절을 보냈던 두 사람. 하지만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준비되지 않은 결혼을 하게 됐다. 임신을 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시댁에 들어가 살게 된 아내는 낯선 환경과 육아 문제로 힘들어했지만 남편은 버팀목이 돼 주지 못했다. 그렇게 서로 이해하지 못한 부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가 않았는데…. ●멜로다큐-가족(OBS 밤 11시 5분) 시부모를 모시고 살다가 11년 전 홀로 된 친정어머니도 같이 모시게 된 황인자씨와 류정열 이장 부부. 어렵고 어려운 게 사돈 관계라는데 백발에 옷까지 맞춰 입고 친자매처럼 닮은 안인순 시어머니와 한기남 친정어머니. 아들과 딸의 결혼으로 맺어진 아주 특별한 사돈 간의 행복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OBS 032-670-5000 EBS 02-526-2000 서울신문STV 02-777-6466
  • 총기 무장 떼강도, 65세 할머니에 ‘혼쭐’ 줄행랑

    총기 무장 떼강도, 65세 할머니에 ‘혼쭐’ 줄행랑

    총기로 무장한 5명의 강도들이 백발이 성성한 65세 할머니에게 혼쭐이 난 후 도망쳐 화제가 되고 있다. 현지언론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애처로운 떼강도’로 보도된 이 사건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가든 글로브의 한 보석점에서 일어났다. 매장 CCTV에 생생히 녹화된 화면을 보면 문 밖에 한대의 SUV 차량이 정차한다. 그 직후 복면을 쓰고 총을 든 한 남자가 문 안으로 들어가고 연이어 무장한 4명의 남자가 매장을 급습한다. 이들 강도들은 점원과 손님을 총기로 위협하고 금품 갈취를 시도하다 뜻밖의 강적을 만났다. 바로 이 보석점의 주인 할머니. 할머니는 매장 뒤에 있다가 소리를 듣고 뛰쳐나와 강도들에게 총을 발사했다. 이에 강도들은 모두 혼비백산, 황급히 도망쳤으며 출입문 앞에서는 서로 먼저 나가려고 난장판이 됐다. 강도들은 대기중이던 차량을 타고 모두 쏜살같이 줄행랑을 쳤다. 가든 글로브 경찰 제프 나이튼게일은 “할머니는 강도들이 손님과 점원을 다치게 할 것 같아 바로 총을 두발 발사했다고 말했다.” 면서 “이 과정에 총을 맞아 다친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도망친 강도들을 쫓고 있으며 피해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인터넷뉴스팀   
  • [김문이 만난사람] ‘푸른 눈’ 원로 국악학자 해의만의 국악사랑 50년

    [김문이 만난사람] ‘푸른 눈’ 원로 국악학자 해의만의 국악사랑 50년

    쇼팽과 바흐, 베토벤 등 우리나라 사람이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보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교양과 품격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외국인이 우리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부르는 모습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마도 대부분 의아해하거나 놀라워할 것이다. 특히 한평생 직업으로 여기며 살아간다면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해의만(81·본명 알렉 헤이먼)씨는 29살 때부터 한국에서 우리의 전통음악을 공부하고 익히며 연구해 온 보기 드문 원로 국악학자이다. 1931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1953년 위생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 강원도 양구에서 근무할 당시 국악과 처음 접한 것이 인연이 돼 우리의 전통음악에 푹 빠져 살아오고 있다. 국악 연구는 물론 가야금, 단가, 민속장고와 북, 거문고, 태평소, 설장고 등 우리의 전통악기를 대부분 아주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그동안 뉴욕과 파리 등에서 ‘삼천리 나라 무용’, ‘한국 판소리 해설’, ‘한국 민속음악과 무용’, ‘한국음악, 음악대사전’ 등을 직접 펴냈으며 ‘한국 무가’, ‘한국 무속’, ‘한국 가면극’, ‘한국 민속무용 해설’, ‘한국 전통무용과 탈춤’, ‘한국 전통악기’ 등 수십 권을 영문 번역해 해외에 알리기도 했다. 이런 공로로 지난해 4월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또 한국외국어대학과 국민대, 한세대 등에서 학생들에게 영어와 전통음악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한국인 여성과 결혼, 아들과 딸을 두었으며 ‘서울 해씨’의 시조가 됐다는 점도 흥미롭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음악에 빠진 그를 지난달 27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만났다. 부인이 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에어컨이 고장나서 좀 더울 텐데….”라고 친절하게 맞이한다. 해씨도 “어서 와요.”라고 말한다. 몸이 약간 불편했던지 부인의 부축을 받으며 의자에 앉았다. 옆에 놓인 가야금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악기를 다루는지 먼저 물었더니 가야금은 홍원기 선생, 민속장고와 북은 지영희 선생, 거문고 산조는 신쾌동 선생, 태평소는 최인서 선생 등에게 배웠다는 대답이 나지막이 돌아온다. 그는 요즘 외부 활동을 거의 안 하고 있다. 대신 집에서 전화로 영어를 가르치면서 국악자료를 번역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몸이 불편해 부인이 항상 옆에서 도와 주고 있다. 가끔 제자들이 찾아와 목욕탕에 가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다. 부인한테 이런 얘기를 잠깐 들으며 거실 벽에 세워진 한문 글씨의 병풍을 바라봤다. 글씨 끝 부분에 그의 이름 ‘해의만’(海義滿)이라고 적혀 있었다. 성씨를 왜 바다 해(海)라고 했을까. “원래는 내가 좀 더 일찍 (한국에)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1950년대 말) 민간인 신분이라 입국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좀 기다렸다가 입국허가가 풀리는 1960년에 한국행 배를 탔습니다. 일본을 거쳐 왔지요. 그때 배 안에서 선교사를 만났는데 한국식 이름을 지어 주더군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는 뜻의 바다 해(海)와 옳은 일로 가득 차라고 해서 의만(義滿)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한양(서울) 해씨의 시조가 됐지요(웃음).” 슬하에 자녀가 있으니 서울 해씨가 새로운 성씨로 대대손손 쭉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해서 그가 국악을 좋아하게 된 사연을 듣기로 했다. “강원도에 있는 야전병원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중국군과 북한군 빨치산들이 산속에 있었는데 새벽 2~3시만 되면 북, 태평소, 징, 꽹과리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다른 군인들은 잠을 못 자 아주 싫어했지만 저는 아주 매력적으로 들렸습니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소리가 있었어요. 다른 군인한테 물어봤더니 태평소 소리라고 하더군요.” 정전협정 이듬해인 1954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뉴욕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음악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 들었던 국악 소리를 늘 잊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인 유학생을 만났다. 궁금했던 차에 한국음악에 대해 자세히 들을 기회가 됐다. 한국에는 5000년 역사를 간직한 전통악기가 많을 뿐 아니라 다양한 국악 장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른바 ‘필이 꽂혔다’라는 말처럼 무작정 한국 전통음악을 배워 보겠다는 생각에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때 수소문해서 인사동 근처에 있는 한국국악예술학교에 무작정 찾아갔지요. 교장 선생님한테 ‘전통음악을 배우고 싶다. 공부하게 해주면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교장 선생님께서 흔쾌히 승낙해 주셨습니다. 내가 미국에서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오선보 사용법도 동시에 가르쳤습니다. 그때 여류 명창 박녹주 선생 등 훌륭하신 분들과 만나게 되면서 국악을 열심히 배웠지요.” 이와 동시에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펴낸 교재를 구입해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혀 나갔다. 그렇게 3년이 지난 1963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뉴욕 아시아학회’에서 한국전통음악에 대한 발표와 함께 바라춤을 직접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이듬해에는 우리 전통공연예술단의 미국 공연을 성사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때 현지 대학과 대학원 등을 포함, 27곳에서 순회공연을 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등 유럽에 한국전통음악을 알리는 데에도 노력했다. 영국의 음악가 존 레비(1910~1976)가 1964년 우리나라에서 50일간 머물렀을 당시 가곡, 판소리, 기악연주, 궁중음악, 민속음악 등의 전통음악을 집대성할 수 있도록 주선했던 것. 레비는 당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스위스제 녹음기 나그라를 사용, 모두 10장의 CD에 담았는데 지금도 중요한 음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씨는 또 전국을 다니며 귀중한 국악 자료를 수집, 연구하면서 국악강연과 번역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지난해 말에는 그가 평생 모아 온 국악 자료 중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서애악부’(1504), ‘정축진찬의궤’(1877), ‘설중회춘곡’(1905년 추정) 등을 비롯해 200여점의 고서적과 녹음자료를 국립국악원에 기증해 화제를 모았다. 이에 대해 해씨는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증하게 됐는데 문화적 자산으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한국음악을 듣는다. 밤중에는 가끔 소리를 크게 틀어놓아 옆집에서 항의를 받기도 한다. 그에게 한국의 전통음악이 왜 좋은지 다시 물었다. “한국음악은 아주 즉흥적이면서도 기쁨과 슬픔 등 인생의 혼이 담겨 있어요. 서양음악은 4분의3박자인 경우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똑같이 반복되지만 한국의 민속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반복 없이 진행됩니다. 넓은 사상이 있어요. 각 지역의 서민들의 삶이 담겨 있지요.” 그런데도 요즘 젊은이들이 한국음악을 좋아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때문에 대학강의나 초청 강연 때에는 전통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단다. “국악은 중요한 것입니다. 결코 잊어버리면 안 되지요. 세월이 갈수록 잊어버리는 가락이 많습니다. 그런 가락들을 악보로 써서 남겨야 하는데…. 가야금 악보도 써야 하고, 요즘 들어 기력이 별로 없어요.” 푸른 눈의 백발, 국악학자의 길을 오롯이 걸어온 그는 살아 있는 동안 국악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작업만큼은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전국민속예술축제 50년사’를 번역하고 있다. 기력이 떨어지고 불편한 몸에도 여전히 국악사랑에 대한 열정은 변치 않고 있다. 어쩌다 가끔 집에서 염불하며 바라춤을 추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염불은 최인서 선생에게 배웠다. 바라춤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춤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부인과 어떻게 만나 결혼했느냐고 하자 “머릿결이 곱고 아주 길었다.”며 웃는다. 옆에 있던 부인이 “간호사로 독일 가려고 학원에서 공부할 때 남편이 영어 선생이었다. 3년 동안 사귀다가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고 거들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He is ~ 1931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1952년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음악학사를 받았으며 1953년 6·25 전쟁에 참전, 위생병으로 근무할 당시 국악을 처음 접했다. 1959년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음악석사를 마친 뒤 1960 다시 한국으로 와 4년 동안 한국국악예술학교에서 전통음악을 공부했다. 이때 홍원기, 박녹주, 지영희, 신쾌동 선생에게 가야금과 시조, 단가, 민속장고와 북, 거문고 산조 등을 익혔다. 이후 태평소(취타와 염불), 태평소 시나위, 범패와 작법, 설장고 등을 배웠다. 국립국악원 장기과정(1990~1994)을 수료했다. 주요 저술은 삼천리 나라의 무용(1964), 한국 판소리 해설(1972), 한국 민속음악과 무용(1974) 등 5권이 있다. 영문번역으로는 한국가면극(이두현·1974), 한국민속무용해설(성경린·1974), 한국전통악기(이혜구·1982) 등 수십권이 있다. 이 밖에 1964년 한국삼천리가무단을 인솔해 미국 27개 대학과 뉴욕 카네기홀 공연 및 강의를 통해 한국 전통음악과 무용을 소개했다. 1973년 국립국악원연주단과 함께 이란, 프랑스, 서독 등 여러 차례 공연 및 강의를 통해 한국의 전통음악을 알렸다. 주요 수상으로는 한국국제문화협회 문화상(1982), 국악의 해 유공표창(1995), 한국유네스코위원회 문화상(1991), 은관문화훈장(2011) 등이 있다.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꿈속 신령이 일러준 약수… 인제 비경 9곳중 하나

    지금부터 300여년 전 인근 마을에 나이 많은 심마니가 살고 있었다. 이 노인은 산삼을 캐기 위해 산에 오르기 전 항상 몸을 단정히 하고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하얀 도복을 입은 백발 노인이 나타났다. 이 노인은 “나는 이 산의 산신령인데 언제나 지성을 다하니 모르는 체할 수가 없구나. 산삼이 있는 곳을 알려주겠노라. 삼을 캔 자리 밑에 만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수가 있으니 병든 사람들이 마시고 낫도록 널리 알리도록 하여라.”하고는 사라졌다. 심마니는 다음 날 여느 때처럼 삼을 캐러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동자가 나타나더니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손짓하는 곳에 가 보니 동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육구만달(큰 산삼)이 있었다. 육구만달은 60년생의 씨가 달린 산삼을 뜻하는 것으로 신비의 명약으로 불린다. 심마니는 정성을 들여 산삼을 캔 뒤, 꿈속에서 노인이 알려준 대로 땅밑을 파기 시작했다. 얼마쯤 더 파들어 가니 약수가 용출되기 시작했다. 이 약수가 바로 지금의 방동약수라고 한다. 심마니는 이후 세상사람들에게 만병통치의 약수를 알리면서 살았다. 병든 사람들이 이 약수를 마시자 즉시 효력을 보았다. 그 후부터 방동약수를 찾는 이가 늘어났으며, 지금도 도처에서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전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약수터에는 300년 묵은 엄나무(두릅나무과로 ‘음나무’라고도 함)가 서 있어 또 다른 명물로 자리 잡았다. 인제군과 방동2리 약수마을 주민들은 힘을 합쳐 정자를 짓고, 입간판을 세우는 등 주변 정비사업을 벌였다. 위장병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최현 인제군 민원봉사과장은 “방동약수는 인제군이 선정한 9곳의 비경 가운데 한 곳”이라며 “새로운 도로명으로 지역의 약수 이름을 반영한 방동약수로와 개인약수로가 생겼는데, 약수의 명성처럼 낯익은 이름으로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씨줄날줄] 신(新)노인/주병철 논설위원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52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산티아고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고기잡이하는 노인이다. 84일째 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하다 85일째 1500파운드나 되는 큰 상어를 발견하면서 밤늦게까지 사투를 벌인 뒤 무사히 귀항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40대도 부럽지 않은 힘을 가진 이 노인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당시 기대 수명이 남자는 50대 초반, 여자는 50대 중반이었으니 50대 안팎쯤일 것이다. 노인 같지 않은 노인이었다. 평균 기대 수명이 50세 미만이던 19세기에 태어나 여든한 살까지 산 미국 시인 헨리 롱펠로(1801~1882)는 백발이 되어서도 정열적인 시를 끊임없이 발표했다. 감탄한 한 청년이 “선생님은 노인이신데 어떻게 그처럼 시를 잘 쓰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저 나무처럼 양분을 잘 섭취하면 저렇게 푸르게 자라 열매를 맺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식생활 개선과 의학의 발전으로 고령층이 늘고, 평균 수명도 연장되면서 노인의 개념을 숫자만으로 정의하긴 어렵게 됐다. 사회 규범에 따른 사회적 연령, 외모 등 기능적 연령, 건강 등 생물학적 연령, 심리적 성숙 등 심리적 연령 등을 고려해야 한다. 19세기 후반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가 노인의 기준으로 정한 65세는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만 65세 이상 1만 1542명을 대상으로 ‘2011년 노인 실태조사’를 해 봤더니 응답자의 59.1%가 노인의 연령기준을 70~74세로 꼽았고, 75~79세를 노인으로 본 응답자도 11.3%였다. 70대 이전에는 ‘노인’ 소릴 듣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80대 노인이 친구 아들인 60대가 경로당에 나타나는 걸 보고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근데 노인의 연령 기준을 70대로 바꾸자고 하면 정작 반대하는 사람은 노인들이라고 한다. 180여만명에 이르는 65~69세 노인들이 각종 복지혜택에서 사각지대로 남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법은 만 60세 이상, 노인복지법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65세로 규정돼 있다. 또 노인복지회관은 만 60세 이상, 경로당은 만 65세 이상이다. 물론 유엔 인구통계도 65세 이상을 고령인구로 구분하기 때문에 우리만 노인의 연령 기준을 덜렁 바꿀 수는 없겠다. 하지만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급증하는 복지지출 예산 등을 고려할 때 일관성 있는 노인복지 혜택을 위한 연령 기준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계적인 접근도 가능할 것 같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연극리뷰] ‘봄의 노래는… ’

    [연극리뷰] ‘봄의 노래는… ’

    1막은 잔잔했고 2막에선 감정이 휘몰아쳤다. 휴머니즘에 강한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그의 2012년 신작,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가 그렇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조선 남도의 외딴섬에 있는 홍길이네 이발소의 가족과 그곳에 주둔 중인 일본군, 조선인이지만 일본 헌병에 자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에 희생된 자들의 아픔을 말한다. 1막은 평탄한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액자구조 형식을 취한 연극은 백발의 노인이 된 영순과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혼으로 부인 영순 곁을 맴도는 홍길의 대화로 시작된다. 68년 전 이들은 바다 내음이 봄의 남풍을 타고 코를 찌르던 지금의 봄과 같은 절기에 이뤄진 둘째 딸 미희의 결혼식을 떠올리고 극은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홍길이네 가족의 과거는 따뜻하면서도 아프다. 홍길과 영순에게는 왼쪽 발이 부러져 발목이 90도 정도 돌아간 절름발이 진희, 가수를 꿈꾸며 일본 부대의 클럽에서 노래하는 둘째 딸 선희와 그녀의 전 남편 춘근, 남편 만석이 자신보다 큰언니 진희를 더 사랑한다는 사실에 늘 질투하는 셋째 딸 미희, 당차고 사회 의식이 강한 넷째 딸 정희가 늘 곁에 있다. 홍길이네 이발소에 오가는 사람 중엔 홍길이네 가족 외에도 전쟁터에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일본군 중좌 시노다, 조선인이지만 어려운 집안 살림을 일으키고자 일본 헌병에 지원해 일본인과 조선인 모두에게 미움받는 대운이 있다. 2막 대부분의 장면에선 정의신 작가 특유의 눈물샘 자극 효과가 발동된다. 공연 시간 내내 등장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일화가 주변 경계인, 가족, 한·일 양국의 역사, 그 역사 속에 희생된 사람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일본군 기지를 폭파하려다 정희가 일본군에 체포되면서 평화롭던 홍길이네 가족에게 위기가 닥치고 정희로 인한 슬픔을 토해 내는 영순 역의 배우 고순희가 선보이는 눈물 명연기는 관객의 눈물까지 훔치게 한다. 작품은 관객을 적절히 웃겼다 적절히 울린다. 연출은 관객에게 아예 맘껏 울라는 듯 슬픈 장면이 끝나면 비교적 긴 암전 시간에 애절한 음악을 흘려보낸다.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다. 한쪽 다리가 절단된 연기를 펼치는 시노다 역의 배우 서상원은 2시간 가까이 한쪽 다리를 접어 고정한 채 목발에 의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끔 등장하는 가족들의 몸싸움 장면에선 모든 배우들이 몸을 아끼지 않는다. 음주 연기도 실제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며 때론 격한 감정을, 때론 정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배우들의 감정선도 풍부하다.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는 7월 1일까지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전석 2만 5000원. (02)758-2150.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42년전 공훈 기리려 법까지 고친 美

    1968년 6월 로즈 메리 세이보 브라운은 그녀의 이름처럼 인생이 장밋빛으로 보였다. 고교 시절부터 사랑했던 동창생 레슬리 세이보가 마침내 그녀에게 청혼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행복은 한달 만에 날아온 베트남전 징집 통지서로 일그러졌다. 브라운은 징집에 응하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공산주의의 박해를 피해 헝가리에서 이민 온 가정 출신인 세이보는 “공산주의와 싸울 의무가 있다.”며 약혼녀의 요청을 뿌리치고 징집에 응했다. 군의 특별 배려로 휴가를 나와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지만 세이보는 곧바로 베트남으로 떠나야 했다. 달콤한 신혼 생활은 불과 1개월뿐, 이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달콤한 신혼 1개월… 다시는 못 만나 1970년 5월 10일 베트남 정글에서 정찰 중 적의 매복 공격을 받자 당시 22세의 세이보 상병은 적의 수류탄으로부터 동료를 몸으로 감싸 보호했는가 하면 총상을 무릅쓰고 적의 벙커에까지 기어가 수류탄을 투척해 제압하는 등 영웅적인 활약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벙커 안에 던진 수류탄의 파편에 그도 결국 숨졌다. 세이보의 동료들은 그를 미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 수여자로 추천키로 했지만 훈장 수여를 위해 작성한 공적 서류가 전쟁통에 분실되면서 흐지부지 세월이 흘러 버렸다. 그러다 1999년 세이보의 전우였던 참전용사 토니 맵이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세이보의 공적 서류를 발견해 훈장 수여 운동에 나선다. 하지만 당시 미국 법에 따르면 ‘명예훈장’은 무공 후 3년 이내에 추천이 이뤄져야 했다. 전우들은 의원들을 설득했고 결국 의회는 2008년 법을 고쳤다. ●남편 대신 훈장 안고 말없이 흐느껴 16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레이 오디어노 육군 참모총장, 베트남전 참전용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세이보의 훈장 수여식이 거행됐고 이 장면은 미 전역에 TV로 생중계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발의 로즈 메리 세이보 브라운에게 훈장을 수여한 뒤 따뜻하게 포옹했고 남편 대신 훈장을 안은 그녀는 말없이 흐느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중국통신]中 75세 노인의 득녀 화제

    70를 훌쩍 넘긴 남편과 불혹이 지난 아내가 자연임신으로 딸을 출산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충칭천바오(重慶晨報) 16일 보도에 따르면 충칭에 사는 스(石, 男)씨는 지난 13일 득녀의 기쁨에 젖었다. 2.9kg으로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은 스씨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하지만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이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는 바로 아이의 부모였다. 사별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둔 딸이 벌써 5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 뜻밖에도 자연임신으로 딸을 갖게 된 스씨와 그의 아내. 재혼 후에도 14세, 3살이 된 아들 둘을 낳았다. 올해 75세로 백발이 성성한 스씨와 42살의 부인은 병원을 찾은 순간부터 모든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의료진조차 “인공수정으로도 임신이 불가능한 나이에 자연임신, 게다가 자연출산에 성공했다”며 세월도 비껴간 부부금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편 자녀 양육은 현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를 고령의 부모가 잘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상당하다. 이에 관해 스씨는 “여러가지 어려움, 특히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겠지만 아직 일할 수 있는 힘이 있어 문제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스씨는 “내가 먼저 가더라도 아내가 아이들을 잘 키워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중국통신원 홍진형 agatha_hong@aol.com
  • 83세 ‘세계 최고령 슈퍼모델’ 몸매 공개

    83세 ‘세계 최고령 슈퍼모델’ 몸매 공개

    8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령 슈퍼모델’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15일 보도했다. 런던에 사는 다프네 셀페는 올해 83세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지만 젊은 모델들 못지않은 탄탄한 몸매와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포즈로 주위를 압도한다. 나이가 들면서 피부가 쳐지고 기미나 반점이 생기기도 했지만, 셀페는 자신감을 가졌다. 포토그래퍼에게 절대 ‘포토샵 효과’를 요구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의 사진만을 써 달라고 당부해 왔다. 또 보톡스 시술이나 성형수술 등에 전혀 의존하지 않은 채 스스로 꾸준한 관리와 운동 등으로 모델로서의 삶을 이어나갔다. 20살에 모델 생활을 시작할 당시 그녀의 허리 사이즈는 24인치. 현재는 27인치로 몸매 역시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어머니는 95세까지 사셨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매우 아름다웠다. 아마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좋은 유전자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오랜 모델 생활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유명 모델들이 소속된 에이전시의 공식 슈퍼모델인 셀페는 최근 마돈나의 상징이자 패션의 아이콘이기도 한 의상을 완벽하게 소화해 수많은 모델과 포토그래퍼들의 찬사를 받았다. 셀페는 “병 때문에 몸져 누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가장 걱정”이라면서 “그 전까지는 더욱 열정적으로 일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살아남으려 일본 순사가 됐다”… 친일파의 서글픈 변명

    “살아남으려 일본 순사가 됐다”… 친일파의 서글픈 변명

    “지나고 나면 흐름이 보이지만, 그 시대 속에 푹 파묻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시대를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만으로 힘겨울 수도 있지 않겠나.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는 친일파라면 매장하는 분위기다. 그들을 변호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과 고통이 있지 않았겠느냐, 함께 생각해보자고 쓴 것이다.” 장편 역사소설 ‘북성로의 밤’(한겨레출판 펴냄)을 최근에 펴낸 조두진(45)씨는 잘 팔리지도 않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 소설을 써낸 이유를 22일 전화로 이렇게 설명했다. 대구 출신으로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성로는 대구 도심 한복판에는 있는 조선시대 대구성의 흔적을 말한다. 남성로, 동성로, 서성로 등과 한 묶음이다. 대구성은 1590년 왜구의 침략을 우려해 흙으로 축성했다가 임진왜란 때 허물어지자 1736년 돌로 성을 다시 쌓았다.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던 흥선대원군이 1870년 대구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는데, 불과 40여년만인 1906년 경상도 관찰사 서리 박중양의 묵인 아래 일본 상인들이 이 성을 허물었다. 그 성을 허물어뜨린 대표적인 일본 상인이 ‘북성로의 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미나카이 백화점의 창업주 나카에 도미주로였다. 나카에 도미주로는 일본 시가현 곤도에서 반농·반상인의 아들로 1903년에 조선 땅을 밟았다. 1905년 1월 대구에 잡화와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포목점을 열었고, 경부선 열차와 함께 전국으로 지점을 넓혀가던 중 1933년 미나카이 백화점 대구 본점과 경성점을 개장했다. 1941년 중국 남경점까지 연 그는 1945년 해방 직전까지 18개 지점, 종업원 4000명, 연매출 1억엔을 자랑하는 백화점 그룹으로 성장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40년대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한 전후다. 주인공은 미나카이 백화점의 성실한 조선인 배달부인 노정주와 창업주의 딸이자 의전에 진학한 똑똑하고 아름다운 아나코로 설정돼 있다. 마치 청춘소설 같다. 하지만 독자들은 ‘개천의 용’으로 똑똑하지만 일본 순사로 전락한 노태영, 야마모토 쇼시에 더 주목할 것 같다. 소작인의 아들로 일등을 해도 일등 자리를 양반 지주에게 내줘야 했던 태영에게는 설움이 많다. 신분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 설움, 가난의 설움, 고문에 이골이 난 악질적인 순사지만 물렁한 일본인 동료에게 승진에서 밀리는 설움 등이다. 가족의 주린 배를 책임져야 할 가장 태영에게 나라 잃은 설움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태영은 독립운동에 나선 친동생 치영을 거론하며, 사촌 동생인 노정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금 그어진 대로 살아라. 치영은 세상에 금이 잘못 그어졌다고 말하는데, 금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에 따라 이렇게도 그어지고, 저렇게도 그어진다.”라고. 또 태영은 “조선 농민은 종일 뼈가 빠지도록 일해도 멀건 죽으로 연명해야 하고, 일본 농민은 쉬어가면서 일해도 쌀밥을 먹는다. 농민의 잘못이 아니라 나라의 잘못이다.”라고. 그는 또한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태평양전쟁으로 조선인 징용과 징병에 열을 올리자 “쓸모가 없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 치영이 “신념을 팔아서 배를 채우는 것이 부끄럽지 않느냐.”고 추궁할 때도 태영은 “배를 채우는 것이 내 신념이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식민지에서 생활인으로 살아야 하는 태영의 모습은 독재시대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살아온 1970·80년대 산업역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두진씨는 “북성로에 가끔 70~80세가 된 백발의 일본인들이 찾아오는데, 다가가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보면 몹시 두려워한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거쳐 중년까지 살았던 일본인들인데, 고향을 잃어버린 불행한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뤄지고 나서 아나코는 대구에 찾아와 이렇게 독백한다. “나는 조선에서 22년을 살았고, 일본에서 22년을 살았다. 지금쯤 하얀 찔레가 한창이겠지요. 나는 사쿠라 향기를 몰라요. 어른이 돼서 사쿠라를 접한 사람은 그 꽃향기를 알 수가 없다고 해요.” 이 책은 독일 법학자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와 오버랩되는 지점이 있다. 나치 전범이 될 수밖에 없었던 문맹의 한나와 그녀를 사랑한 법학도 마이클의 이야기는 단순 연애담이 아니다. 현대 독일(마이클)이 유대인 학살 등 전쟁범죄를 저지른 구(舊)독일(한나)과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과거와 화해가 필요하다. 어떤 방식으로 과거와 화해할 것인가는 과거를 청산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북성로의 밤’은 말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백발백중!” 78세 세계 최고령 명사수 할머니

    ‘세계 최고령 명사수’로 꼽히는 인도의 한 70대 노인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23일 보도했다. 올해 78세인 찬드로 토마르는 최근까지 25차례의 전국대회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땄을 만큼 실력 있는 명사수다. 토마르는 자녀 6명, 손자 15명을 둔 백발의 할머니지만 쉬지 않고 닦아온 사격 실력은 변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사격계에 입문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 손녀딸과 함께 한 지역사격대회에 구경을 갔다 자신 안에 숨은 열정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부끄럼을 타기도 했지만 이내 적응한 토마르는 매주 쉬지 않고 훈련에 참가했고, 집안일과 아이들 돌보는 일 만큼이나 사격 훈련에 열중했다. 그녀의 코치인 파루크 파산은 “토마르가 처음 사격 클럽에 왔을 때는 매우 놀랐고, 빠른 적응력을 보고 더욱 놀랐다.”면서 “그녀는 정말 대단하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격선수일 것”이라고 칭찬했다.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사격클럽에는 인도 각지서 그녀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인다. 여기에는 경찰관이나 군인을 꿈꾸며 사격훈련을 하는 젊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토마르는 “인생을 살며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또 많은 사람들에게 내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면서 “집중만 한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팔다리 잃은 군인, 백발 할머니… ‘오륜기 정신’ 건넨다

    제30회 런던올림픽 개막이 128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성화를 봉송할 주자들이 20일 공개됐다. 런던조직위원회는 8000마일(1만 2875㎞)에 이르는 성화 봉송 경로와 7300명의 주자 명단을 공표했다. 7300명은 조직위와 코카콜라, 로이드보험, 삼성전자 등 스폰서 업체들의 프로그램을 통해 선정됐다. 나머지 700명은 선수와 유명인 위주로 선정되는데 이달 안에 발표된다. 그리스를 출발한 성화는 5월 18일 잉글랜드에 도착, 이튿날부터 70일간 영국과 아일랜드 더블린까지 모두 1018곳을 돌고 돌아 7월 27일 런던올림픽 스타디움에 안착하게 된다. ●5월19일부터 70일간 영국 순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08년 베이징 대회 당시 인권단체들이 중국의 티베트 탄압을 비판하며 국경 밖 봉송 경로에서 집회를 벌인 이후 성화 봉송을 개최국에서만 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아일랜드를 봉송 경로에 포함시키는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7300명 중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다 팔다리를 잃은 퇴역 군인, 최고령 현역 소방수, 자선기금 모금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돼 있다. 대다수가 사회공헌 활동을 했거나 주변에 용기와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국민들로 선발됐다. 최연소 주자는 11세 도미닉 맥거완(오른쪽)이고, 최고령 주자는 오는 5월 23일 100세가 되는 런던 시민 다이애나 굴드(왼쪽) 할머니다. ●100세 굴드 “평지 걷기는 자신” 굴드는 BBC 인터뷰에서 “평지에서만 걷는다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자들은 각자 300m씩 나눠 뛴다. 봉송 첫날인 5월 19일 주자로 나서는 해안경비대 자원봉사자 데이브 잭슨(61)은 “첫 주자로 나서게 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성화를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계속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잉글랜드 최서단 콘월주 펜잔스의 랜즈엔드 곶에서 시작하는 성화 봉송은 세계인들이 영국의 문화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석구석을 누비게 된다. ●최종 주자는 개막식까지 비밀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성화가 영국인의 95%를 16㎞ 반경 안에 두고 지나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부분 걷거나 뛰게 되지만 일부는 스케이트를 탄 채 봉송한다. 조직위는 그러나 성화 봉송 마지막 이틀 동안의 경로와 올림픽 성화대에 점화할 최종 주자는 비밀에 부쳤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합창지휘계의 대부’ 윤학원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김문이 만난 사람] ‘합창지휘계의 대부’ 윤학원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나는 환상 속에서 모두 정직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봅니다. 나는 떠다니는 구름처럼 항상 자유로운 영혼을 꿈꿉니다.’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는 이탈리아어로 ‘내 환상 속으로’란 뜻이다. 1986년 영화 ‘미션’의 주제곡으로 유명하며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했다. 합창곡으로 널리 불리기도 한다. 합창은 말 그대로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른다. 제각기 목소리가 다르지만 아름다운 화음을 내기에 가히 환상적이다. ‘천상의 하모니’라고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14일 오후 2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는 보기 드문 합창 무대가 열렸다. 합창 지휘계의 대부로 알려진 윤학원(73)씨가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스승 최영섭씨를 무대로 초청, ‘이야기가 있는 커피 콘서트’를 가져 주목을 끌었던 것. 이 시대의 걸출한 음악인으로 자리 잡은 두 사람이 숨겨 둔 이야기와 깊이 있는 음악 얘기를 곁들여 가며 훈훈한 추억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특히 최씨가 작곡한 ‘그리운 금강산’과 ‘사랑의 날개’ ‘아리랑 환상곡’ 등을 합창할 때는 다들 기립 박수로 감동의 무대를 함께했다. 윤 씨는 현재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지휘자를 맡고 있으면서 합창을 대중화하는 한편 합창의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 순회 연주 등을 통해 우리의 합창 예술의 수준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특히 그는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의 멘토 역할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발산동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올해로 ‘합창지휘 인생 50년’을 맞는 윤 감독과 만났다. 백발이었지만 청춘 같은 목소리가 ‘열정의 50년’을 단박에 느끼게 한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지금 막 커피를 직접 내리고 온 것이라 일반 커피와 맛이 좀 다를 것”이라며 커피를 한 잔 권했다. 먼저 스승 최씨와의 인연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그래요. 당시 아버지 말씀에 따라 인천공고에 진학했지만 음악에 대한 생각을 접을 수가 없었지요. 작곡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있던 중 그분이 우리 동네와 가까운 곳(인천)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무작정 찾아가 몇 달 동안 집중적으로 작곡 공부를 했습니다.” 이후 둘은 연주회 장소에서 서로 만나면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깊이 쌓아 갔다. 그럴 때마다 최씨는 훌륭한 지휘자가 된 윤 감독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다가 이번 무대에서 소중한 만남의 기회를 갖게 됐던 것이다. 윤 감독 또한 후배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매주 토요일이면 연습실에서 이들과 만남의 시간을 어김없이 갖는다. 애제자 우효원, 오병희, 이현철, 안효영씨 등이 주축이 된 젊은 작곡가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은 한국 합창 음악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여기에서 만들어진 곡으로 2010년 2~3월 미국합창지휘자협회(ACDA)의 초청을 받아 전국 순회 공연 가진 일은 지금도 음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순회 공연 이후 미국 대학 교수들과 각종 대학 합창단이 ‘합창클리닉’을 받겠다고 몰려왔습니다. 작년에는 컨커디어 대학 합창단이 70명의 단원을 이끌고 한국에서 합창 클리닉을 받고 돌아갔지요. 메나리, 아리랑 등 우리가 직접 작곡한 곡으로 말입니다. 컨커디어 대학 합창단은 영국 BBC 방송 및 각종 언론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일이 있기까지에는 윤 감독의 열정과 실험 정신이 많은 역할을 했다. 다음은 윤 감독이 술회하는 3년 전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2009년 3월 7일 오클라호마시티 중심가에 있는 시빅센터 뮤직홀 3000여석을 세계 각국에서 온 합창 지휘자들이 가득 메웠다. 윤 감독은 인천시립합창단원들을 세 군대로 나누었다. 한 팀은 무대에, 또 한 팀은 객석 왼쪽, 그리고 다른 한 팀은 객석 오른쪽에 배치했다. 이윽고 객석의 불이 꺼졌다. 윤 감독은 서서히 손짓을 했다. 화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대와 객석 양쪽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 노래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이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미국 사람들로서는 이런 형태의 연주가 처음 접하는 광경이었다. 마침내 세 군데서 나오던 소리가 한 군데로 모이고 특이한 한국적 화음과 울림을 이루었다. 객석에서 노래하던 단원들이 무대를 향해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올라가는 장면은 전율 그 자체였다.’ “첫 곡이 공간 음악으로 만든 ‘메나리’였는데 이 곡이 끝나자마자 3000명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며 기립 박수를 치더군요. 두 번째 곡은 미국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다윗이 그 소리를 들었을 때’였습니다. 18성부나 되는 현대 화성의 어려운 곡을 거침없이 연주해 내자 다들 놀라워하더군요. ACDA 메코이 회장이 무대 뒤로 달려와 ‘미국 ACDA 컨벤션 50년 사상 첫 곡부터 기립 박수가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흥분하던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한 국의 합창 수준과 강렬한 인상을 미국 합창계에 남긴 계기가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는 한국적인 것으로 승부하겠다는 열정의 결과였다. 윤 감독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적일 것’, ‘세계화할 수 있을 것’, ‘현대적일 것’ 등 세 가지를 늘 강조한다. 이 가운데 ‘팔소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팔소성은 8가지 웃음소리로 표현한 곡으로 ‘아리랑’, ‘메나리’와 함께 공간 음악의 으뜸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다 세계에서는 드물게 18성부까지 만들어 내는 창조성이 보태진다. “16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의 합창 음악은 외국에 비해 200년 정도 뒤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세계가 인정합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적인 것으로 공간 음악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지요. 합창을 하면서 8가지 웃음을 소리로 내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다들 박수 칠 수밖에 없습니다.(웃음)” 청춘합창단의 김태원씨와는 어떻게 해서 인연을 맺었을까. “방송국에서 저에게 멘토를 맡아 달라고 해서 승낙했지요. 얼마 뒤 경희대에서 청춘합창단 멤버 오디션이 있던 날 김태원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런데 선글라스를 쓰고 있더군요. 지휘자는 단원들과 눈을 마주치며 지휘를 해야 하는데 걱정이 되더라구요. 뭐 불량스러운(?) 지휘자라고나 할까요.(웃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의 겸손한 태도와 따뜻한 말투가 보기와는 달라 아주 친근감이 생겼습니다. 특히 참가자들의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합창 정신은 곧 열정과 배려이거든요.” 이 대목에 이르러 윤 감독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합창의 요체는 하모니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뛰어난 목소리를 가진 사람도 주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합창단원으로는 실격이라는 것이다. 자기 소리를 책임 있게 내면서도 다른 사람의 소리를 잘 듣고 융화하는 것이 합창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요즘 문제가 되는 학교폭력이 왜 생겨났는지 아십니까. 바로 예체능을 없애고 입시 위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학교 내에서의 합창반이나 반 대항 합창이 많았는데 거의 없어졌습니다.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같이 화음을 내는 경험을 한다고 해 보십시오. 적어도 동료 아이들을 때리거나 왕따시키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윤 감독은 이런 현실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일을 하나 벌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어린이합창단을 만들 것을 엄명했다. 윤 감독 자신도 최근 모 방송사와 이 같은 사업을 함께 하기로 계약을 맺었고, 이미 서울과 부산, 대구, 대전, 수원 등에서 24개의 어린이합창단을 만들었다. 이에 대한 그의 의욕은 대단하다. “올해 최소 30개의 어린이합창단을 만들 예정이며 3~4년 내에 수백개의 합창단을 만들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합창의 매력과 정신을 심어 줄 생각입니다. 제자들도 이 뜻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항상 새로운 곡으로 합창단을 이끌어 나가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아마추어 합창 운동이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윤 감독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음악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손풍금을 든 선생님한테 노래를 잘 부른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였다. 이후 비록 음악의 천재는 아니었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특유의 열정으로 차근차근 감동을 연출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의 아들 의중씨는 서울대 음대를 나와 창원시립합창단에서 지휘를 하고 있으며, 딸 혜경씨도 서울대 음대를 나와 외국인학교에서 합창 지휘를 하고 있다. 부인도 성악을 전공했다. 이런 분위기여서 그런지 손자 또한 지휘 공부를 하는 중이다. 식구끼리 만나면 항상 음악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합창을 하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갑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가 얼른 가까워집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윤학원 예술감독은 황해도 옹진 출신이다. 인천공고와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했다. 이후 인천문화원어린이합창단(1962~67), 극동방송소년소녀합창단(1965~68), 한국마드리갈합창단(1969~83), 선명회어린이합창단(1970~2003), 대우합창단(1983~88), 서울레이디스싱어즈(1989~2000) 등에서 지휘자를 역임했다. 또한 중앙대 음대교수(1979~2004), 세계합창경연대회 심사위원(1997~2010), 세계합창연합회 이사(1989~97), 한국합창총연합회 이사장(1988~92) 등을 지냈다. 현재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지휘자, 한국합창지휘자아카데미 원장, 윤학원코랄 단장 겸 지휘자를 맡고 있다. 주요 수상은 월간음악상(1973), 세계합창경연대회 최우수상 및 지휘자상(1978),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음악상(1999), 옥조근정훈장(2004) 등이있다.
  • [문화마당] 팬덤 문화의 두얼굴/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팬덤 문화의 두얼굴/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최근 ‘사생팬’이 각 포털 검색어 순위에 일제히 올랐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좇는 극성팬을 지칭하는 말이다. 얼마나 좋아하면 그럴까 싶지만, 도가 지나쳐 자칫 범법의 수위를 넘나드는 일이 허다하다. 그 심각성이 오래되었지만, 뚜렷한 해법이 묘연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유명 아이돌 그룹이 소속된 기획사일수록 감내해야 할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생팬의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고 공격적이다. 그 집요함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낄 정도다. 외형적 동선으로 살펴보아도 사생팬은 자신의 일상을 포기한 것처럼 보여 걱정이 앞선다. 아이돌 그룹이 포진한 대형기획사 앞에서 진을 치고 노숙하는 모습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팬들의 부산한 움직임은 임대한 택시를 이용할 만큼 기동력까지 갖췄다. 연예인의 이동이 시작되는 동시에 실시간으로 근접해 움직임을 따라잡는다. 사고의 우려도 높다. 도로 위의 곡예가 펼쳐진다. 단 한순간,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치고는 너무 위험천만하다. 사생팬의 정보력도 놀랍다. 단순 스토커의 범주를 뛰어넘을 만큼 주도면밀하다. 장난 전화가 너무 잦아 연예인이 휴대전화를 바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번호까지 알아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사를 하는 집 앞에서 대기하는 팬들과 맞닥뜨릴 때 손발이 떨렸다는 일화가 가십 뉴스로도 알려진 바 있다. 무단침입은 많은 연예인들이 팬들에게 당한 사례 중 하나다. 위성항법장치를 통한 차량 추적도 간헐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도청은 물론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 연예인과 대면하는 대범함도 보였다. 이 정도의 집착을 보이는 사생팬들이 라이벌 관계의 연예인들에게 가하는 위해는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팬덤 경쟁의 역사는 극소수이긴 하지만 상당히 ‘진화’해 왔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남성 팬과 친분이 있는 여자 연예인에게 얼굴을 난도질한 사진과 함께 면도칼을 우편으로 보낸 사건은 대표적 사례다. 위해 물질이 든 음료수가 배달되고 입에 담기 힘든 극단적 내용이 담긴 혈서 사건들은 그 심각성에 경종을 울렸다. 걸그룹의 한 멤버는 공연 도중 난입한 남성팬에게 끌려나가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웬만한 대중 인기 스타들이라면 극성팬들의 도를 넘어선 애정 공세를 여러 차례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훈계하고 타이르는 것도 무용지물이다. 팬들의 묵과할 수 없는 ‘무경우’는 신변에 위협을 가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일들은 매니저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고도 남는다. 극소수의 팬덤 행태이기는 하지만, 가요계가 음악성보다 비주얼 중심으로 변질되면서 이 같은 현상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생팬들의 관심이 음악이 아닌 ‘특정 가수’에게 집중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극대화됨으로써 팬덤의 결과물이 실시간으로 드러나 과열 경쟁을 부채질했다. 이것을 중재할 대안은 모색하지 않은 채 우리는 더 새로운, 더 트렌디한 콘텐츠 만들기에만 급급했다. 그리고 혀를 차며 과열 팬덤을 삿대질했다. 일반 청소년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날 기회가 없고 소통도 불가능한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포용할 대화 상대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찾을 수 없다. 마음이 맞는 또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만나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학교와 방송, 문화계가 전방위적으로 이러한 문화적 대안에 현실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일그러진 팬덤은 ‘지속 발전’할 것이다. 대화 없는 소통은 불가능하다. 얼마 전, 화려한 데뷔로 주목을 받았던 한 젊은 뮤지션의 팬 사인회장에서 만난 60대 여성 팬의 말이 가슴을 떠나지 않는다. 백발이 아름다웠던 그녀는 젊은 뮤지션 앞에 나타나 응원하는 것이 행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아닌지 우려했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사이로 눈물까지 맺혔다. 마치 소녀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배려를 아끼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진정한 팬이다.
  • [프로농구] 열공…모비스, 3쿼터 3점슛 7개 폭발

    [프로농구] 열공…모비스, 3쿼터 3점슛 7개 폭발

    어차피 패는 나와 있었다. KCC는 높고 화끈하다. 하승진(221㎝)과 자밀 왓킨스(204㎝)가 버티는 ‘트윈타워’는 철옹성 같다. 모비스는 조직력이 있고 외곽포가 좋다. 듀얼가드 시대를 열어젖힌 양동근을 필두로 테렌스 레더와 함지훈의 짜임새가 조화롭다. 전문가들은 섣불리 승자를 예상하지 못했다. KCC는 포스트를 장악할 거고, 모비스는 외곽포를 터뜨릴 테니. 감독들도 감을 못 잡았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1차전을 해봐야 알 것 같다.”고 했고, 허재 KCC감독은 “잘 모르겠다. 애들이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했다. ●트윈타워 vs 외곽포 대결 7일 전주체육관에서 6강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 1차전이 열렸다. KCC 전태풍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결국 벤치를 지켰다. 유재학 감독은 KCC를 잡을 두 가지 모토를 공개했다. 양동근이 공격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과 외곽포가 터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함지훈이 복귀하기 전까지 해왔던 농구를 하겠다는 얘기. 어차피 KCC의 ‘트윈타워’와 맞닥뜨릴 방법은 외곽포뿐이었다. 초반부터 빡빡했다. 하승진과 왓킨스, 레더와 함지훈이 들어찬 골밑은 빈틈이 없었다. 패스가 들어갈 통로가 안 보였다. 양동근이 3점포를 꽂으며 수비를 끌어냈지만, KCC 골밑의 하승진·왓킨스의 파괴력도 만만치 않았다. 엎치락뒤치락. 1·2쿼터는 모비스가 34-33으로 앞섰다. 승부는 3쿼터에 갈렸다. 모비스가 무려 7개의 3점슛을 꽂아넣었다. 박구영이 3개를 넣었고, 양동근과 김동우가 2개씩 곁들였다. 성공률 100%. 함지훈이 수비가 집중된 틈을 타 외곽에 오픈찬스를 열어준 덕분이었다. 3쿼터에만 어시스트 4개를 기록했다. 백발백중 3점포에 KCC는 급격히 무너졌다. 하승진이 덩크를 넣고 소리를 지르며 독려했지만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마지막 쿼터는 김빠진 시간이었다. ●함지훈 어시스트 11개 힘 보태 결국 모비스가 KCC를 91-65로 대파했다. 12개가 터진 3점포가 KCC(5개)를 압도했다. 레더(33점 14리바운드)와 양동근(26점·3점슛 6개)이 ‘미쳐줬고’, 함지훈은 무려 어시스트 11개(11점 6리바운드)를 뿌렸다. 모비스가 먼저 1승을 챙겼다. 역대 PO에서 1회전 승리한 팀이 4강PO에 오를 확률은 무려 96.7%다. “적지에서 1승1패만 해도 만족”이라던 유 감독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전주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백발백중 명중이 무관을 꿈꾸다(박상률·염정섭 글, 이영림·이준선 그림, 사계절 펴냄) 초등학교 학생용 역사 교과서가 워낙 재미가 없다 보니 또래 어린이를 등장시켜 역사와 생생하게 만날 수 있도록 일기체로 보여준다. 상상력이 들어가지 못할 만큼 깨알 같은 그림이 백미. 1만 2800원. ●열세 번째 아이(이은용 글, 이고은 그림, 문학동네 펴냄) 짙은 갈색 머리에 다 자란 키가 187㎝, 냉철한 성격으로 ‘맞춰진’ 열네 살 시우. 엄마가 원하는 완벽한 아이로 살아가던 중 동갑내기 감정 로봇 레오를 만나면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수많은 감정을 알게 된다.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다소 묵직한 내용이지만 술술 읽힌다. 1만 1000원. ●키스 마이 매스(대니카 매켈러 글, 배수경 옮김, 민음인 펴냄) 이 책이 ‘수학 귀신’처럼 베스트셀러가 될까? 초등학교 고학년생부터 중학교 저학년생을 위한 스토리텔링형 수학 학습서다. 정부가 무조건 암기하는 것이 아닌 창조적 수학 교육을 하겠다고 하는데 이 책처럼 가르치려나. 1만 6000원. ●맨홀장군 한새1·2(김우경 글, 오승민 그림,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9년 작고한 저자의 동화.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린 탓에 작은 생명과의 삶에 귀를 기울인 작가의 소박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 권 1만원.
  • 마·차이 총통후보 또다른 선거 주역들

    마·차이 총통후보 또다른 선거 주역들

    타이완의 퍼스트레이디인 저우메이칭(周美靑) 여사와 야당 후보 공개 지지를 선언한 여당 출신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13대 타이완 총통 선거의 또 다른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저우 여사는 이번 선거에서도 다시 한 번 마 후보 당선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선거운동기간 내내 남편인 마잉주 후보의 취약지역으로 꼽히는 남부 지역을 독자적으로 훑고 다니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경제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남부 지역은 전통적으로 야당인 민진당의 텃밭이다. 그러나 저우 여사가 시장 유세에 나서면 그녀와 악수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100m도 넘는 장사진이 펼쳐진다.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소속된 민진당은 아예 유세 도중 저우 여사를 만날 경우 되도록이면 마주치지 말고 피하라는 내부 지침을 내렸을 정도다. 저우 여사에 대해 괜한 인신공격을 했다가 거꾸로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계심이 작용한 것이다. 저우 여사의 대중적 인기는 지난 1998년 타이베이시장 부인 시절부터 한결같은 몸에 밴 겸손함과 서민적 행보에 기인한다. 화려한 옷차림이나 요란한 헤어스타일로 눈길을 끄는 대신 염색하지 않아 백발이 성성한 커트 머리와 화장기 없는 얼굴, 수수한 옷차림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자원봉사에 앞장서는 모습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끌어내고 있다. 미혼인 민진당의 차이 후보 ‘외조’는 정치적 멘토인 리덩후이 전 총통이 자처하고 나섰다. 리 전 총통은 이날 타이완 북부 지역에서 열린 차이 후보의 마지막 유세장에서 지원 유세를 벌였다. 그는 현재 대장암 제거 수술 뒤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다. 지원 유세에 나가는 것은 생명을 위협할 만큼 위험하다는 진단에 따라 그동안 친필 서신과 육성 녹음으로 지원 유세를 대신해 왔다. 때문에 이날 빗속 유세 장면이 감동을 불러일으켜 표를 대거 끌어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리 전 총통은 차이 후보를 정계로 입문시킨 당사자로 원래 국민당 출신이다. 타이완과 같은 약소국을 지켜낼 수 있는 간웅(奸雄) 조조의 지략을 가진 리더로 회자된다. 중국과 타이완은 사실상 별개의 국가라는 양국론(兩國論)을 펴면서 타이완의 존엄을 지켰다는 평을 받는데, 차이 후보는 이 양국론의 초안을 집필한 바 있다. jhj@seoul.co.kr
  • ‘대도’ 조세형 ‘강도짓’ 무죄

    ‘대도’ 조세형 ‘강도짓’ 무죄

    “절도는 해도 강도짓은 안 한다.”며 결백을 주장했던 피고인 조세형(73)씨에게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서울 동부지법 형사11부(부장 설범식)는 22일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좀도둑’으로 전락할 위기를 벗어났다. 조씨는 민모(47)씨 등 공범 2명과 함께 2009년 4월 경기 부천시 한 연립주택 3층에 위치한 금은방 주인 유모(53)씨 집에 침입, 1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치고 유씨 가족을 흉기로 위협해 부인과 아들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씨는 70대가 넘는 고령에 2000년 일본에서 총상을 입어 오른팔을 쓰지 못하고 사건 4개월 전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다치는 등 신체 상태가 범행을 저지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증인으로 출석한 공범 민씨가 진술을 번복해 신빙성이 떨어지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도 범행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면서 “조씨가 무거운 처벌을 받을 위험성에도 처음 보는 공범과 범행할 개연성이 적어 공범이 허위 자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 함께 참여한 12명의 시민배심원과 기자 7명으로 구성된 ‘그림자 배심원’ 역시 국민참여재판에서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놨다. 지난 21~22일 이틀간에 걸친 재판은 뚜렷한 물증 없이 공범 민씨와 피해자 유씨 가족, 조씨와 수십년간 알고 지내온 교도소 동기 등의 증언에 의존해 진행됐다. 반백발의 머리에 회색 양복을 입고 법정에 선 조씨는 최후진술에서 “이번 사건만큼은 정말 억울하다.”면서 “어리석은 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챔스 32강 결산] 최고는 레알, 최악은 디나모

    [챔스 32강 결산] 최고는 레알, 최악은 디나모

    2011/2012시즌 ‘별들의 전쟁’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가 모두 끝났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이변이 속출했다. 지난 시즌 ‘준우승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유로파 챔피언’ FC 포르투가 유로파 리그로 강등됐고 ‘독일 챔피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역시 축구공은 둥글다. 올 시즌 32강 최고의 팀은 단연 ‘갈락티코’ 레알 마드리드였다. ‘스페셜 원’ 주제 무리뉴 감독과 함께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레알은 32개 클럽 중 유일하게 6전 전승을 기록하며 16강 토너먼트 무대에 올랐다. 경기 내적인 면도 완벽했다. 19골을 터트렸고 2골 밖에 내주지 않았다. 이는 1992년 출범한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 32강 최고 골잡이는 메시 아닌 고메즈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팀은 레알이었지만, 최고의 골잡이는 바이에른 뮌헨 소속의 마리오 고메즈였다. 독일 출신의 고메즈는 6골을 넣으며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와 함께 32강에서 가장 많은 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시간당 득점률은 고메즈가 메시를 앞섰다. 메시는 450분 동안 6골을 넣었지만 고메즈는 388분 동안 6번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 득점 랭킹 10위 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는 알렉산더 프라이(바젤)이었다. 과거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에서 전성기를 보낸 프라이는 마치 회춘이라도 한 듯 순도 높은 골 결정력을 선보였다. 특히 맨유전에 강했다. 그가 터트린 5골 중 3골이 맨유전에서 나왔다. 세이두 둠비아(CSKA 모스크바)도 배놓을 수 없다. 그 역시 5골을 작렬시켰다. 도움 부분에서 니콜라스 가이탄(벤피카)이 5개로 1위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가이탄은 6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맨유와의 5차전(2-2)을 제외한 5경기에서 1개씩의 도움을 기록했다. 벤피카가 그 중 4경기에서 1골씩을 넣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이탄의 활약상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 도움 2위는 놀랍게도 레알의 원톱 카림 벤제마(4개)다. 이밖에 가장 많은 슈팅을 시도한 선수는 메시(17개)이고, 오프사이드 맨은 바페팀비 고미(12개)였다. 또한 가장 많은 경고를 받은 선수는 4개의 옐로우 카드를 수집한 벤자민 허겔(바젤)이고 가장 많은 파울을 저지른 선수는 21개의 디디에 조코라(트라브존스포르)였다. 참고로 가장 많은 파울을 당한 선수는 프랑크 리베리(바이에른 뮌헨)이다. ▲ 숫자로 보는 챔피언스리그 32강 결산 3 - 맨유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건 1994/1995시즌과 2005/2006시즌 이후 이번이 3번째다. 3 - 야야 투레가 맨시티 유니폼을 입고 득점에 눈을 뜬 것일까? 투레는 과거 33번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1골 밖에 넣지 못했다. 그러나 올 시즌 맨시티에서 3골을 터트렸다. 4 - ‘드록신’ 디디에 드로그바가 발렌시아 킬러로 등극했다. 드로그바는 4골로 꿈의 무대에서 발렌시아를 상대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4 - 나폴리를 16강으로 이끈 에딘손 카바니의 골 결정력이 화제다. 그는 4개의 유효슈팅을 시도했고 이를 모두 골로 연결시켰다. 비록 슈팅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백발백중이었다. 7 - 논란의 팀이 된 올림피크 리옹의 공격수 고미는 디나모 자그레브전에서 4골을 넣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 7번째로 한 경기에서 4골을 터트린 선수가 됐다. 참고로 앞선 6명은 마르코 반 바스텐, 시모네 인자기, 다도 프로소, 루드 반 니스텔루이, 안드리 세브첸코, 리오넬 메시다. 9 - 아스날은 조별리그에서 가장 많은 9개의 에러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중 3개가 골로 연결됐다. 아르센 벵거의 16강 과제는 실수를 줄이는 일이다. 10 - 맨시티는 32강에서 10점을 기록했지만 16강에 들지 못했다. 2006/2007시즌에도 맨시티와 같은 팀이 있었다. 바로 베르더 브레멘이다. 당시 브레멘도 10점이었지만 2위 안에 들지 못했다. 역시 A조는 죽음의 조였다. 22 - 승부조작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 크로아티아 클럽 디나모 자그레브는 32강에서 무려 22골을 실점했다. 무엇보다 리옹과의 6차전 1-7 대패가 컸다. 정말 자그레브는 리옹과 은밀한 거래를 했던 것일까? 101 - 바르셀로나가 조별리그에서 기록한 슈팅 숫자다. 바르셀로나는 101개의 슈팅을 시도했고 20골을 터트렸다. 32개 팀 중 가장 많은 골이다. 40% - 도르트문트의 수문장 로만 바이덴펠러는 평균 방어율 40%을 기록했다. 이는 32개팀 주전 골키퍼 중 최악이다. 이 때문일까. 도르트문트는 F조 4위로 유럽 무대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73.6% - 볼 점유율은 바르셀로나가 최고였다. 73.6%로 2위 맨유(62.6%)보다 10% 가까이 높았다. 74% - 맨유가 탈락했다. 그리고 네마냐 비디치는 시즌 아웃됐다. 맨유는 비디치 함께 74%의 승률을 기록 중이다.(2006년 비디치가 입단한 이후) 그러나 비디치가 없을 때는 59%로 승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91.5% - ‘패스=바르셀로나’라는 공식은 이번에도 변함이 없었다. 바르셀로나는 91.5%의 패스 성공률을 자랑했다. 그 다음은 16강 진출에 실패한 맨시티(88.7%)였다. 사진=텔레그래프 서울신문 나우뉴스 유럽축구통신원 안경남 pitchaction.com
  •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굴 가야” 주룽지 주도… 15년만에 ‘승선’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굴 가야” 주룽지 주도… 15년만에 ‘승선’

    중국이 ‘G2’의 반열에 올라서는 데 있어 ‘일등공신’은 WTO 가입이다. WTO 가입은 중국이 국제사회에 세계 무역질서를 준수하겠다는 ‘확인서’를 보냄으로써, 외화 유치의 기폭제가 되고 대외수출을 늘리는 도화선으로 작용해 고도 경제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이 중국 경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중국의 WTO 가입 협상 과정은 파란곡절 그 자체였다. 1986년 시작된 WTO 가입 협상은 ‘결렬’과 ‘협상’이라는 냉온탕을 반복하면서 15년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2001년 9월이 돼서야 마무리됐다. WTO 가입 협상에 참가한 중국 대표들의 머리가 ‘흑발’에서 ‘백발’로 바뀌었을 만큼 협상 과정이 치열했다고 ‘WTO 가입 10주년’을 맞아 중화공상시보(中華工商時報) 등이 보도했다. 가입의 가장 큰 ‘장벽’은 미국과 중국의 강경파를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미 매파들은 중국의 열악한 인권상황과 노동 환경을 문제 삼아 격렬히 반대했다. 당시 대외경제무역합작부(현 상무부) 부부장으로 WTO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던 룽융투(龍永圖) 주요 20개국(G20) 연구센터사무총장은 최근 “미국 측은 (중국 상황을 빌미로)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된다며 도무지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협상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던 1999년 11월 15일 주룽지(朱鎔基) 당시 총리가 실무 협상장을 전격 방문, 샬린 바셰프스키 미국 측 수석대표와 면담하면서 돌파구가 극적으로 마련됐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중국 내 강경파의 설득도 녹록지 않았다. 중국 최고 지도부 내 일각에서는 “미국이 WTO를 이용해 중국을 분열시키려고 한다.”는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당시 주 총리가 “WTO 가입만이 살 길”이라고 ‘총대’를 메고 나서고,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리펑(李鵬) 전인대상무위원장 등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지원 사격을 하면서 협상 타결을 이끌어 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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