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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사랑 도디… 함께 한 여행 너무 황홀”

    “내 사랑 도디… 함께 한 여행 너무 황홀”

    “내 사랑 도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커프스 단추를 당신께 선물하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1997년 8월13일. 당신을 사랑하는 다이애나.” 다이애나 스펜서 영국 왕세자비가 97년 8월31일 숨지기 전 연인이었던 이집트 출신 백만장자의 아들 도디 알 파예드에게 쓴 마지막 편지 2통이 공개됐다. 17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 미러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편지들은 런던의 법원에서 16일(현지시간) 이들 커플의 사망 원인을 밝히는 심리 도중 도디의 아버지 마호메드 파예드에 의해 공개됐다. 다이애나는 켄싱턴 왕실 노트에 쓴 편지를 통해 “여자 친구(chick)인 내게 삶의 기쁨을 가져다 준 것에 대해 도디 당신에게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애틋한 정을 담았다. 앞서 같은 달 6일 도디에게 쓴 편지도 더불어 공개됐다. 다이애나는 이 편지에서 “최근 함께 한 크루즈 여행은 바다에서 보낸 가장 매혹적인 6일”이라면서 “내 마음을 하늘만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묘사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씨줄날줄] 보일러 룸/우득정 논설위원

    “여러분도 여기서 3년만 일하면 백만장자가 된다. 그때까지는 친구도, 가족도 모두 잊어버려라.”27세의 젊은 사장은 주머니에서 최고급 승용차 페라리의 열쇠를 신입사원들이 앉아 있는 회의실 탁자 위로 던지며 백만장자의 꿈을 심어준다. 그제 영화전문 채널 CGV가 긴급 편성해 방영한 ‘보일러 룸’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바로 전날 검찰이 BBK주가조작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주모자 김경준에게서 압수한 DVD라고해서 화제가 됐다.‘보일러 룸’은 전화로 주식거래를 중개하는 무허가 브로커조직을 의미한다. 미공개 정보라며 신약을 개발한 제약사 주식을 사면 3개월내 수익률 30∼40%의 대박을 터뜨린다고 투자자들을 현혹한다. 다른 직원들은 투자 권유가 사실인 양 바람잡이를 한다. 주인공 세스 데이비스는 대학을 중퇴하고 불법도박장을 운영할 정도로 이재에 밝다. 주식중개인이 돼서도 단연 발군이다. 김경준이 세스에게서 영감을 받아 주가조작의 기법을 배웠다는 검찰의 설명은 영화를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김경준은 버려진 공사장에 전화 수십대만 갖다 놓은 영화속 유령회사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고 세스역을 맡은 지오바니 리비시를 대표이사로 내세웠다. 세스는 연방판사인 아버지까지 사기행각에 끌어들이려다 나중에 부자가 함께 곤경에 빠진다. 검찰의 설명에 따르면 김경준은 가족 모두가 한 패거리다. 세스는 늦은 밤 우연히 사무실에 들렀다가 주가조작 증거물 파기장면을 목격하고 유령회사의 실체까지 확인하게 된다. 훗날 JP모건과 같은 초일류회사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온갖 감언이설로 끌어들였던 투자자들이 사장의 돈벌이 사기극의 피해자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FBI의 추적에 걸려들게 된 세스는 주가조작의 모든 증거 수집과 법정 증언을 조건으로 FBI와 흥정한다. 플리 바겐이다. 검찰이 플리 바겐을 제의했다는 김경준의 메모가 공개되면서 정치권이 들끓고 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는 “검찰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품에 안겼다.”고 공격한다. 영화에는 세스의 참회가 있지만 김경준은 아직 진행형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탕아(蕩兒)「시내트러」의 여성편력 그 전부(全部)

    탕아(蕩兒)「시내트러」의 여성편력 그 전부(全部)

    돈·여자·주먹- 남자라면 어느 하나도 선망의 과녁이 아닐 수 없는 3가지를 한 손에 쥔채, 노래·영화·「쇼」의 세계를 세상이 좁다고 30년간 가로 세로 주름잡던 연예계의 왕자「프랭크·시내트러」(55)-바로「프랭키」가 스스로 왕좌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아무래도 미남 아닌데 국제적 플레이·보이로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의 소년들처럼 하고한날 싸움이나 하고 다니던,「뉴저지」주「호버케인」시 빈민가의 똘만이가 노래로 몸을 일으키더니 이제는 정치를 하겠단다. 하기야 노래보다 사업가로 더 커버린 자신을 돌이켜, 늙으막의 정리도 바람직한 것이지만 여자라면「마릴린·몬로」, 남자라면「프랭키」- 하던 그가 노래와 여자를 빼면 과연 무엇이 남을는지......? 한세상을 내노라 지내던 국제적「플레이·보이」인「프랭키」지만 그에게 아무리 점수를 잘 줘도 결코 미남이라고는 할수 없다. 작은 키에 얼굴도 어딘가 원숭이를 닮았다. 「일대의 탕아」된 요인은 천성적인 불량성 때문 도대체 무엇이 1940연대 여자들의 가슴을 태우도록 인기를 불러 일으켰을까. 물론 최대의「포인트」는 그의「달콤한 목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빙·크로스비」따위를 멀리 아래로 굽어 보게 한것은 그가 지닌「불량성」과「호색성」의 숨은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란 것이 또한 묘한 동물로,「안방골 선생」「타이프」나「신사의 얼굴」로는 선량한 줄을 알아도「섹시」한 매력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 불량성은「플레이·보이」의 자격구비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건. 그에게는 무엇보다 돈을 쓸줄 아는「논다니」로서의 천성적 불량성이 보배가 된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로하여금「일대의 탕아」로 만든 요인. 아무리 돈을 벌어「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백만장자가 되었어도 그의 몸에 배어있는 불량성은 빠지지 않았다. 좋게 말해「서민적」이라 할수 있을지 모르나「서민적」치고는「깡패적」이었다. 그가 공식적으로 결혼한것은 3번. 1951년「낸시·밸버드」와 이혼한 후 바로「에바·가드너」와 결혼, 5년을 채 못살고 헤어졌다. 혼외정사 수가 없어도 여자끼리 싸우겐 안해 「시내트러」치고는 긴 편이었는지 모르나, 아뭏든 61년엔「줄리에트·프라우즈」와 약혼했다 파혼, 66년「미아·패로」에 정착했는가 했더니 2년만에 다시 깨지고 말았다. 결혼생활은 그렇다치고 혼외의 정사는 어떠했을까. 그가 꺾고 그가 지나간 여자들, 아마 그 자신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가 감독으로「하와이」에서『용감한 사람만이』라는 영화를「로케」한적이 있었다. 「시내트러」는 전용 별장에 미국 본토에서 미녀를 불러들였는데, 들고 나고 그 수가 10명 남짓. 불과 40일간의 체재중의 일이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촬영현장을 구경하러 왔기 때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눈에 띄게된 셈인데 이들은 이틀 정도로 돌아가기도 하고 5~6일씩 묵는 아가씨도 있었다. 아뭏든 어떻게 교묘하게「스케줄」을 짜는지 아가씨들끼리 얼굴을 맞닥뜨려 싸우는 일을 볼수가 없었다는 후일담. 스타들은 모조리 거쳐「그레이스」와도 염문 「시내트러」감독은 어떤 여자에게도 부드러운 얼굴로 환대하곤, 오는대로 순서 있게 돌려 보낸다. 비행기「티케트」는 물론 여비 일체에다 용돈까지, 두둑하게 얹어 보낸다. 이렇게 수많은 여자를 거의 매일처럼 바꿔가며 즐겨도 도무지 체력에 축이 나는 줄 모른다니, 감탄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에바·가드너」는 지금껏 그의 매력을 잊지 못해 한숨을 짓는다고 하지만 그녀이래 그의 여인 편력은 한말로 다 할수 없다. 『밤의 표범』,『황금(黃金)의 딸』에서 공연한「킴·노박」과도 정을 통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로렌·바클」과도 소문이 자자했다.『상류사회』에서 공연한「그레이스·켈리」와는 어떠했을까?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 워낙 놀라운 솜씨라 일단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는것이 옳다.「도로시·프로바인」과도 어울려 다닌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리타·헤이워즈」,「라너·터너」와의 염문도 자자했었다. 조강지처 못잊는 늙음 파티참석도 이젠 싫어 영화제작에「네트·워크」「텔레비전·프로」제작,「레코드」회사, 연주회,「호텔」경영, 광고선전회사등등…「시내트러」집안에서 직접 경영하는 것만 해도 영화「프러덕션」, 항공회사,「미사일」공장, 비행기 부품공장,「라스베이거스」의「산즈·호텔」따위가 있고, 전 미국에 걸쳐 토지, 부동산에 투자하기도 하고 세계적으로도 20여가지 일에 손을 대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그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줄잡아 한해 3백50만$. 한화로 계산 12억원이 되는 셈이다. 「레코드」는 얼마나 팔렸을까. 이것도 또한 수백만장. 한장 한장 쌓아 올리면 실로 1만7천5백「피트」.「매디슨·스퀘어·가든」에 하루 밤 나가 노래만 불러도 10만$쯤은 거뜬히 벌수가 있었다. 이러한 일세의「플레이·보이」도 나이에는 어쩔수 없는지 이제는 한물 간듯「파티」에 나가는것도 싫어한다고. 29살이나 나이가 아래인 딸자식뻘 밖에 안되는「미아·패로」와의 파경도 그런데 있었던거나 아닌지. 2년 남짓한 교제끝에 맺어진 부부지만 그후의 2년간의 부부생활중「별거」가 많았다. 젊은 시절을 실컷 바람을 피우다 늙으막에 돌아온 탕아 처럼「시내트러」도 조강지처는 잊지못하는 듯, 첫아내「낸시」에게 되돌아 왔다. 환갑을 앞두고 이제 겨우 철이 들었는지『모험이나 젊은 여자들과의 불장난에 싫증이 났다. 역시 이해력 많고 가정적인 여자가 최고』라는 것이었다. [선데이서울 71년 4월 4일호 제4권 13호 통권 제 130호]
  • “러시아 석유부자를 잡아라”

    세계 최고급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퉈 모스크바로 몰려들고 있다. 오일머니로 돈 풍년이 든 러시아에서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신흥 갑부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다. 지난 22∼25일 모스크바 근교 대형 전시장에서 열린 ‘백만장자 박람회’에서는 침구, 보석류, 자가용은 물론 개인 전용기까지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명품 브랜드 200여개가 열띤 세일즈 경쟁을 벌였다고 뉴욕타임스가 29일 보도했다. 베르사체 수석디자이너 도나텔라 베르사체, 구치 전 수석디자이너 톰 포드, 루이뷔통그룹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 등 내로라하는 패션계 거장들도 새로운 금광을 선점하기 위해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탔다. 러시아 갑부들의 사치품 소비는 급속도로 팽창중이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등이 타고 다니는 전용기 ‘걸프스트림’은 대당 최저 가격이 5400만달러(약 500억원)이지만 러시아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 시장이다.하버드대 러시아·유라시아연구소 마셜 골드만 선임연구원은 “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1990년대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러시아가 세계 사치품 시장의 큰손”이라고 말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러시아에는 53명의 억만장자가 있고, 이들의 총재산은 2820억달러(약 262조원)에 달한다. 백만장자는 10만명(6700억달러)이 넘는다. 현금 보유액은 적지만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한 부동산 백만장자까지 따지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20대에 이미 큰 부를 일군 젊은이들도 꽤 있다.전시장을 찾은 예브게니아 유마토바(21)와 스베틀라나 투로프소바(26)는 부동산 중개업으로 백만장자가 된 여성들이다. 유마토바는 “자동차를 고르고 있는데 벤츠와 포르셰 가운데 고민중”이라고 말했다.올해로 3년째 박람회를 주최한 네덜란드 사업가 예브스 지라드는 이번 박람회로 인한 직간접적 매출이 7억 43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러드 신임 총리는

    하워드 총리의 5선 연임 도전을 물리치고 차기 총리로 확정된 케빈 러드(50) 노동당 당수는 자수성가형 인물이다.1957년 퀸즐랜드주 시골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열한살 때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 거주하던 농장에서 쫓겨나 한동안 자동차에서 생활하는 등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때의 경험은 그가 4년 뒤 노동당에 투신하는 데 일조했다. 호주국립대에서 중국어와 중국사를 전공한 러드 당수는 졸업 후 외교관으로 스웨덴과 중국 등지에서 근무했고,1988년부터는 퀸즐랜드 노동당 주정부에서 근무했다. 이후 1998년 두 번의 도전 끝에 연방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로 나섰다.3선 의원인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호주 병력 파병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지난해 12월 노동당 대표로 선출됐다. 지적이고 어려보이는 외모 탓에 ‘해리포터’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4년 전 미국 뉴욕에서 만취상태로 스트립쇼를 관람했던 사실이 유세기간 중 공개돼 망신을 사기도 했다. 기업가인 백만장자 부인 테레스와의 사이에 세 자녀를 뒀다. 자녀 모두 중국어를 공부했고, 사위도 중국계 호주인이다. 테레스는 이번 선거에서 여성 유권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문화마당] 80/20의 법칙/이득재 가톨릭대 노문학 교수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20년 동안 철도기사로 일하다가 경제학으로 관심 방향을 바꾸었다. 그는 그 스스로 행한 여러 가지 경험적인 관찰들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네크워크과학 이론가인 A L 바라바시에 따르면 파레토는 원예사로서 80%의 완두콩은 20%의 콩깍지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한 그는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예리한 통찰의 결과 이탈리아 땅의 80%는 인구의 20%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냈다.‘80/20의 법칙’으로 알려진 파레토의 법칙 내지 원리는 최근 머피의 경영 법칙으로 발전했다. 이 법칙에 따르면 기업 이윤의 80%는 종업원 중 20%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파레토 자신은 한 번도 80/20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지만 이 표현은 주식투자 등 비즈니스 관련 문헌, 통계 문헌 등에서만 공공연히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따른 사회 양극화를 이야기하는 데에도 단골 메뉴로 쓰이고 있다. 전체 돈의 약 80%를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벌어간다는 사실이 파레토의 발견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 주변에 그대로 존재하고, 미국 사람들 10명 중 8명은 가난하게 태어나더라도 열심히 일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80/20의 법칙은 맞긴 맞는 법칙인가 보다. 하지만 2005년도 통계로 전 세계 백만장자가 870만명이라면 이때에는 파레토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가난하게 태어나도 열심히 일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이데올로기이고, 정작 세상은 그 이데올로기에 의해 로또 복권으로 한 방 날리려는 도박판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유전유학·무전무학의 세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바라바시가 말하듯이 멱(冪)함수 법칙에 따라 다수의 작은 사건들이 소수의 큰 사건들과 함께 발생한다고 해서 대부분의 다수는 아주 적은 돈만 벌고 대부분의 돈은 소수의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버는 식으로 소득 분포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식으로 과학의 법칙을 사회의 법칙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그렇다면 삼성 이건희 회장이 말하듯이 천재 한 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아닌가? 파레토 법칙은 자칫하면 80/20의 사회를 긍정하는 논리로 사용될 수 있다. 파레토나 바라바시가 주장하는 것은 웹이든 할리우드이든 세포든 복잡한 시스템들의 배후에 법칙이 있다는 것인데, 그 법칙이 멱함수 법칙을 따른다고 해서 두 개의 한국, 두 개의 일본, 두 개의 미국을 80/20의 틀로만 설명하는 것은 왠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왜냐하면 두 개의 한국, 두 개의 일본, 두 개의 미국은 신자유주의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낸 산물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비정규직이 30% 이상이나 되고 맥잡(McJob)이라는 용어에서도 표현되듯, 미국도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으며 하루에 7달러 이하로 사는 사람의 숫자가 7600만명이나 된다.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55%나 된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한 사회가 80/20으로 양극화되는 것은 파레토의 법칙 탓이 아니라 그 법칙 배후에 있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콩, 땅, 이윤, 소득 등이 서로 다른 형태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파레토의 법칙을 따른다고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중심으로 파레토의 법칙을 작동시키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흐름이 준비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미래에 ‘저주받은 88만원 세대’로 살아갈 전망이다. 신자유주의가 청산되지 않는 한 신자유주의는 세계 각국을 제국의 네트워크로 연결시켜 그 제국에 파레토의 법칙을 심어 나갈 것이다. 바라바시는 파레토의 경험적 관찰을 넘어 80/20에 대한 대항논리를 네트워크과학에서 찾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이득재 가톨릭대 노문학 교수
  • [Seoul In] 20일 구민회관서 교양강좌

    종로구(구청장 김충용) 20일 오후 3∼5시 창신동 구민회관에서 제3회 종로교양강좌를 연다. 강의는 최윤희(프리랜서 카피라이터)씨가 ‘마음만 바꾸면 나도 백만장자’라는 주제로 한다. 최씨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세미나에서 외부 강사를 초청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처음으로 강의를 한 주인공이다. 흉악범, 향락업소 여종업원, 교회목사 연수모임 등에서 ‘앙코르 강사’로 유명하다. 자치행정과 731-1664.
  • 한국 금융자산 백만장자 9만9000명

    우리나라에서 집 등을 제외하고 100만달러 이상의 금융 자산을 보유한 ‘백만장자’가 9만 9000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중 438명은 3000만달러를 초과하는 금융자산을 가진 초고액 순자산보유자(Ultra-HNWI)인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메릴린치가 컨설팅 회사인 캡제미니와 공동으로 발간한 ‘아시아태평양 부자 보고서 2007’에 따르면 한국 고액순자산보유자(HNWI·주거지, 소비재를 제외하고 최소 100만달러 이상의 금융 자산을 보유한 사람)는 2006년 말 9만 9000명으로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총 2660억달러에 이른다. 한국의 HNWI 증가율은 14.1%로 싱가포르(21.2%) 등에 이어 아시아에서 네번째,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높았다. 한국 HNWI의 1인당 평균 순자산은 270만달러로 지난해 350만달러에서 급격히 줄면서 조사대상국 가운데 8위를 차지했다. 또한 한국 HNWI의 전체 자산 가운데 부동산 비중은 42%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높았다. 주식 비중은 2005년 20%에서 작년 13%로 떨어져 아시아태평양 국가 가운데 가장 낮았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인터넷 황제주’ 구글 사상 첫 600달러 돌파

    ‘인터넷 황제주’ 구글 사상 첫 600달러 돌파

    인터넷 황제주 구글의 주가가 8일(이하 현지시간) 사상 처음 600달러(약 55만원)를 돌파해 600달러 클럽에 합류했다. 이날 미국증시에서 구글의 선전에 힘입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다우존스,S&P500 지수가 나란히 하락한 것과 대조적으로 0.3% 상승했다. 구글은 오는 18일 3·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8일 나스닥에서 종가 609.62달러로 종가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 610.26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전날 대비 15.57달러(2.6%) 상승했다. 구글 주가는 지난 12거래일 동안 사상 최고치를 여섯 차례나 경신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구글의 주가가 2004년 8월 공모가인 주당 85달러와 비교해 3년 만에 무려 7배 이상 뛰어올랐다고 9일 보도했다. 시가총액도 1900억달러로 불어나면서 월마트, 코카콜라, 휴렛패커드(HP),IBM 등을 제쳤다. 지난 한달 동안에만 시가총액은 250억달러가 늘어났다. 지금까지 주가 600달러 이상을 기록한 종목은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와 시보드, 시카고상품거래소(CME)그룹, 워싱턴포스트 등 6개에 불과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구글의 주가가 지난 1년간 무려 40%나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내년에 주당 700달러 돌파도 가능하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구글 주가는 불과 10개월 만에 500달러에서 600달러를 돌파했다. 그 전에 400달러에서 500달러를 넘어서는 데는 1년 이상 걸렸다. 이에 따라 구글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각각 200억달러에 이르는 재산을 모아 주가 급등의 최고 수혜자로 떠올랐다. 최고경영자(CEO)인 에릭 슈미트가 보유한 구글의 주식 가치도 수십억달러에 이른다. 구글 직원 수백명 역시 주가 고공행진 덕택에 백만장자 반열에 올라섰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日·타이완 백만장자의 호화 국제결혼식 눈길

    유명 타이완 여행사 사장과 일본 부호의 호화 결혼식이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 충칭(重庆)시 일간지 ‘충칭천바오(重庆晨报)는 11일 “최근 10년 동안의 결혼식 중 가장 성대하고 호화스러운 결혼식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타이완 최대 여행사인 톈시(天喜)여행사 사장 궈정리(郭正利)씨와 일본 야마시로 온천 부호로 유명한 신타키 쇼코(新滝祥子)씨. 신랑 궈씨는 오랫동안 동성애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왔으나 이번 결혼식을 계기로 그 의혹을 모두 떨쳐버렸다. 일본 온천업계 부호의 딸로 태어난 신부 신타키씨는 200번 이상 선을 봤음에도 신랑감을 찾지 못하다 5년전 타이완에 방문했을 때 신랑 궈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신부가 입고 등장한 기모노만 수억 원을 호가한다.”며 “결혼식에 참석한 3천여명의 하객들은 고급 대나무 젓가락과 술잔등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또 “결혼식을 보기 위해 1천명이 넘는 일본인이 비행기를 타고 건너왔다.”며 “식장은 개업 이래 가장 많은 외국인 하객을 맞이했으며 피로연도 저녁까지 이어졌다.”고 전했다. 신랑 궈씨는 멀리서 온 하객들에게 300개의 객실을 무료로 제공했을 뿐 아니라 ‘홍바오’(紅包·경사를 치르는 집에서 요리사·고용인에게 주는 돈)만 600만 타이완달러(한화 약 1억 7천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신성일(申星一) 찾는 신성일

    신성일(申星一) 찾는 신성일

    『제2의 신성일을 키우겠다』『「올·뉴·페이스」의 영화를 만들겠다』 『백만장자가 되겠다』새해로 접어들면서 영화계에 꿈틀거리는 벅찬 의욕들. 좀더 풀이하면 감독으로 「데뷔」하는 신성일이 자신의 후계자 물색에 나섰고, 상업감독으로 알려진 정인엽(鄭仁燁)이 「뉴·시네마」운동을 펼치고, 「톱·스타」남궁원(南宮遠)이 신발장사로 돼지꿈을 펼치게 된것. 『연애교실』이란 작품을 가지고 감독으로 「데뷔」하는 신성일은 요즘 마땅한 새얼굴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그가 찾는 신인은 남녀주연급 각 1명씩. 남자는 21~22살가량의 청년(가급적 대학생) 으로 운동신경이 발달된 사람. 미남일 필요는 절대로 없으나 사진발이 잘 받는 개성있는 얼굴일 것. 여자는 천성적으로 생기발랄한 19~20살 처녀.역시 빼어난 미모보다는 개성있는 얼굴 이어야 하고 키가 절대로 1백60cm를 넘지 말 것. 『현역 여배우처럼 축 처진 인상이어서는 안된다』고 강조. 이런 조건을 내걸은 신성일은 각 대학교와 양복점, 양장점, 이발소, 미장원, 목욕탕까지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세포망을 총동원해서 신인 색출작전을 펴고있다. 일단 뽑은 신인은 3년간 자신과 계약하고 『책임지고「스타」로 만들겠다』 는 공약. 감독으로 「데뷔」하는 목적중의 하나가 이 신인배우 양성이라고 신성일은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뽑아놓기만 하고 한두작품으로 버림받은 배우지망생의 비극을 숱하게 보아왔다』고 말했다. 감독될 생각은 오래전부터 막연히 품어왔다고 한다. 직접적인 계기는 작년 11월 14일 그들의 결혼기념일에 아내 엄앵란(嚴鶯蘭)의 권고가 불을 붙였다. 『이제 자신의 시간을 가져야 할때』라고 말하는 그는 『내 영역은 어디까지나 청춘물의 주역이다. 그런데 지금 나이(34)로는 젊은 연인역도 중년남성역도 어울리지 않는다』 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스타」로서의 인기가 떨어지니까 재빨리 새길을 잡는거라는 일부의 빈정거림에 대해서는 『인기떨어지면 감독 된다고 한다면 감독들이 화낼거』라고 담담한 반응. 지금 출연중인 12개 작품은 평상 편수의 절반도 못되지만 작품수를 줄이는쪽은 오히려 신성일 자신이라는게 정확할 것 같다. 『로맨스 빠빠』(59연도)이후 11년간 그가 해낸 주연영화는 약 4백70편. 감독에의 전업 이란 말을 극히 꺼리는 그지만 출연 작품을 줄이려는 건 자연스런 추세다. 『내가 하고싶었던 발랄한 현대젊은이 상을 이제 내가 뽑은 신인을 시켜 내가 만들어보겠다는 거죠』그는 감독으로서도 자신이 있다는 표정이다. [선데이서울 71년 1월24일호 제4권 3호 통권 제 120호]
  • 나라 없는 사람/커트 보네거트 지음

    “나는 모든 사람의 머리가 쭈뼛 설 만큼 무시무시한 리얼리티 프로를 구상하고 있다. 제목은 ‘예일대 C학점’이다. 조지 W 부시는 주변에 C학점 상류계급 학생들을 끌어모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1)역사와 지리를 전혀 모르고 (2)백인 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3)이른바 기독교도이며 (4)정말 놀랍게도 정신병자, 즉 영리하고 번듯하게 생겼지만 양심은 전혀 없는 자들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이런 식이다. 웃긴다. 웃기되 ‘실소’가 아닌 ‘블랙유머’다. 목에 착 달라붙어 컥컥대게 하는, 가시뼈가 폴폴 돋은 웃음이다. 그의 유머는 사회적 약자를 위로하나, 강자의 의식은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른다. 읽는 이에 따라 유쾌하고도 불쾌하다. ●마지막 작품이자 유일한 회고록 보네거트는 지난 4월11일에 죽었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기 엿새 전이었고, 여든네 살이었다. 보네거트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반전운동가였으며, 히피의 대항문화를 선도했다. 무엇보다 ‘초거대 제국’ 미국의 광기를 사납게 공격했다. ‘나라 없는 사람’(문학동네)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일한 회고록이다. 그가 수석편집인으로 있던 잡지 ‘인디즈타임스’에 5년간(2000∼2005년) 연재했던 글을 묶었다. 보네거트는 “어떤 웃음은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썼다. 그는 2차대전 막바지였던 1943년 연합군으로 징집됐고, 그 연합군에 의한 독일 드레스덴 폭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나치의 아우슈비츠 학살만큼이나 연합군의 드레스덴 학살(13만 5000명)에 치를 떨었던 사람이 보네거트였다. 살아 남았을 때 터져나온 건 소름끼치는 웃음뿐이었다고 보네거트는 말했다. 그의 유머는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맹렬한 유머다. ●“정신병자·비양심적” 맹공격 그래서다. 전쟁을 일으키는 인물들에게 보네거트는 무섭게 분노한다. 부시 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을 “정신병자들” “양심도 동정심도 수치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라 쏘아붙인다.“베트남 전쟁은 백만장자들을 억만장자로 만들었으나, 오늘날의 전쟁은 억만장자들을 조만장자로 만들고 있다.”고 일갈하고,“미국 지도자들이 권력에 취한 침팬지라고 말한다면 나는 중동에서 싸우다 죽어가는 우리 병사들의 사기를 꺾는 매국노가 되는 걸까?”라며 정색하고 묻는다. 특히 ‘문명’과 ‘지성’의 이름으로 ‘반문명’과 ‘무지’를 타자화하는 식자(識者)들에게 치를 떤다. “‘슈렙널’이라 불리는 유산탄은 ‘슈렙널’이라는 이름의 영국인이 발명했다. 여러분도 그런 발명품에 자기 이름을 붙이고 싶은가? 네이팜탄은 하버드에서 발명됐다. 진리란 그런 것인가?” ‘나라 없는 사람’이란 책 제목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보네거트에게 미국은 “내 나라요.” 외칠 조국이 아니었다.“내가 사랑하는 미국”이 아닌 “내가 사랑했던 미국”이라 말하는 사람. 커트 보네거트는 ‘나라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1999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저무는 20세기의 묘비명을 이렇게 쓰고 싶다 말했었다.“아름다운 지구여! 우리는 그대를 구할 수 있었지만, 너무나 속악하고 게을렀도다.” 95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뉴요크 한복판서 백만장자(百萬長者)의 꿈을

    뉴요크 한복판서 백만장자(百萬長者)의 꿈을

    <뉴요크=김경식(金景植)특파원> 말이 쉬워 1천2백만「달러」지 돈 많은 나라 미국에서도 이 정도의 매상이면 백만장자축에 낀다. 이런 미국에서 10년전 단돈 50「달러」를 가지고 건너온 한 한국청년이 이 기적을 이루어 놓았다. 바로 가발 수출업체인 다나무역의 안인모(安仁模)사장(37). 흑발 전문의 가발업자로 이미 미국선 널리 알려져 「뉴요크」시 한복판 「웨스트」32번가. 밀림처럼 들어선 「빌딩」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앉은 다나무역 「뉴요크」사무소는 흑발(黑髮) 전문의 가발수출업자로 이미 미국안에선 널리 이름나 있다. 「웨스트」32번가 하면 미국 가발시장의 핵심. 미국안에서 소비되는 가발의 50%가 한국산이니 32번가 한복판에 안사장의 사무실이 들어앉았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서 흔히 자수성가라고 일컫는 재력(財力)에의 욕망을 미국선 「밀리어네어」(백만장자)의 꿈으로 부른다. 재력이 그 사회서 차지하는 비중이 유독 큰 미국인지라 백만장자가 되려는 꿈은 청년이면 누구나 한두번쯤 품어보는 꿈. 숱한 세계의 젊은이들이 백만장자의 꿈을 안고 「뉴요크」를 찾아오지만 정작 이 자수성가의 꿈을 이룩한 사람은 미국 전인구의 0.5%도 채 못된다. 더우기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에겐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고작해야 백인의 그늘에서 먹고 살만한 처지가 되면 다행이다. 이런 하늘의 별따기를 안사장은 투지와 「아이디어」로 이루어 놓았다. 안사장이 「뉴요크」에 꿈을 둔 것은 10년전인 1960년. 그해 외국어대학을 졸업한 안사장은 거친 사회에의 첫발을 소위 취직시험이란 관문을 거쳐 내디뎠다. 안사장이 처음 이력서를 내민 직장은 자동차판매를 주로하는 어느 외국인상사. 취직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같은 대학의 2,3년 선배를 포함, 모두 1백명에 가까왔다. 그중에서 시험을 거쳐 최종합격된 사람은 단 두명뿐. 물론 안사장도 그 두사람중의 하나였다. 50대1의 험난한 관문을 뚫고 취직은 되었으나 그다음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초라했다. 일을 했으면 당연히 받아야 할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월급밀리기 석달째. 안사장은 회의에 잠겼다. 도미후 먹고 살기도 바빠 아예 공부할 생각은 포기 『이런 취직을 왜 해야하나?』 험한 경쟁을 뚫고 입사했을 때의 꿈은 월급 3개월 체불로 말끔히 사라졌다. 생각끝에 사표를 내기로 했다. 『미국에 가 다시 더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고 사표를 써 집어내던진 것이 취직 6개월째. 그러나 마음먹은 미국가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는 무역회사가 있어 이회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도미후 무보수로 이 회사의 일을 거들어 준다는 조건으로 도미수속에 필요한 절차상의 편의를 제공받게 된 것. 60년 겨울. 「트렁크」 한개와 1백「달러」를 가지고 김포공항을 떠났다. 주위에서 얼마 돈을 더 보태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으나 1백「달러」이상을 갖고나가는 것은 불법이며 또 귀한 외화를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거절했다. 오직 믿는 구석이 있다면 「뉴요크」 「자마이카」 병원에 석달 먼저 와 「인턴」으로 지내고 있는 아내뿐. 「뉴요크」에 도착, 아내와 만났을땐 호주머니속엔 겨우 50「달러」가 남아 있었다. 공부를 계속할 생각으로 여러 대학에 「스칼라십」을 얻기 위해 편지를 내어보왔다. 그러나 주급 70「달러」인 아내의 월급으론 대학공부는 커녕 먹고 살기도 바빴다. 그래 어느 보험회사에 들어갔다. 3백여 사원중 황색인종은 안씨 단 하나뿐. 제법 좋은 성적을 올렸으나 주위의 질시로 이 직장도 끝. 다음 들어간 것이 어느 한국수출업계의 한 회사. 그러나 결국 「샐러리맨」으로선 아무런 승부도 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자립의 길을 찾았다. 안사장은 밤이면 도서관에 틀어박혀 한국에서 원료를 많이 구할 수 있고 또 인건비가 싼 한국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런 안사장 머리에 가발이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세계 가발시장은 「유럽」제품이 지배하고 있었고, 일본제품이 서서히 파고들기 시작할 무렵. 안사장은 우선 일본제품을 사들여 미국시장에 팔아 보았다. 제법 잘 팔려나갔다. 63년 안사장은 「체이스·맨해턴」은행으로 부터 3천「달러」를 융자받아 기술자와 약품을 들고 서울로 돌아와 공장을 차렸다. 첫 제품은 아무래도 「유럽」제품보다는 못했다. 흑인여성에게 알맞은 검은 가발에 착상 그러나 장사는 판로가 제일 큰 문제. 안사장은 이미 「유럽」제품에 정들어 있는 백인여성들 대신 흑인여성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성이라면 흑백을 불문하고 아름다와지려는 욕망은 마찬가지. 이런 점에 착안한 안사장은 검은 「세일즈맨」을 써 한국산 검은 가발을 검은 여성들에게 팔았다. 이 판매전략은 그대로 적중했다. 첫 해에 벌써 물건이 달려 못 팔 지경. 자신을 얻은 안사장은 서울공장을 신갈로 옮겨 확장했다. 해마다 매상은 3배에서 10배까지 뛰어올랐다. 그간 안사장이 가발 수출한 실적을 살펴보자. 66년엔 6만7천「달러」, 67년엔 67만「달러」, 68년엔 1백만「달러」, 69년엔 4백80만「달러」, 올해는 11월말 현재 1천55만「달러」를 수출했다. 이렇게 보면 한해 수출액의 증가율은 2배에서 10배. 다나무역의 성장율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엄청난 성장율 뒤에는 『질좋은 상품, 새로운 「디자인」, 그리고 신용만 지키면 가발시장은 튼튼하다』는 안사장의 철학이 숨어 있다. 안사장은 또 『돈을 무덤에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다』란 신조를 갖고 있다. 외대(外大)재학시절부터 불우아동을 돕는 「등대회」「멤버」이던 안사장은 해마다 시립아동병원의 어린이들에게 구호의 손을 뻗친다. 내년부터는 모교인 외대에 장학기금도 마련할 생각. 1천2백명의 여공을 갖고있는 신갈공장에선 매달 한번씩 YWCA와 공동주최로 교양강좌를 연다. 단순히 봉급받고 일하는 직장이 아니라 다나의 가족을 만드는 것이 노사협조를 위한 지름길이라 믿고 있기 때문. 그래서 여공들의 기숙사는 마치「호텔」과도 같다. 지난 11월30일 제7회 수출의 날에 철탑산업훈장을 탄 안씨의 구호는 『「달러」를 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①간접비의 절약 ②과감한 수출행정의 간소화 ③국내업자끼리의 과당경쟁 지양등이 우선 이루어져야겠다고. 이제 안사장의 꿈은 포화상태인 미국시장을 떠나 「유럽」시장을 꼭 제패하고야 말겠다는 것이 안사장의 포부. 2남1녀를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약물로 얻은 기록 신뢰성 떨어진다”

    “약물로 얻은 기록 신뢰성 떨어진다”

    행크 에런의 기록이 깨뜨려지길 원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미국내 여론의 기류는 본즈의 기록 경신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스포츠전문 채널인 ESPN은 전문가 7명의 견해를 들어 “대기록은 인정하지만 위대함은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제리 크래스닉은 “대기록 달성을 위해 선택한 지름길(스테로이드 복용)이 옳지 않아 본즈를 존경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팀 커키전도 “본즈의 기록 수립으로 에런의 755홈런이 더욱 위대하게 느껴진다. 에런은 정직하고 합법적으로 홈런 기록을 세웠다.”고 본즈를 깎아내렸다. 본즈의 야구 인생도 어느 스타들보다 밝고 화려했지만 그림자 또한 깊었다.1986년 빅리그에 첫발을 디딘 이후 22년간 리그 최우수선수(MVP) 7차례, 골든글러브 8차례, 실버슬러거 12차례, 올스타 14차례 등 화려한 성적표를 남겼다. 특히 1993년 내셔널리그 첫 시즌 40홈런-40도루 클럽 가입,1998년 최초의 400홈런-400도루 달성,2001년 단일 시즌 최다인 73홈런,2004년 OPS(출루율과 장타율의 합) 1.422 등 기록들을 잇달아 갈아치운 ‘최강의 타자’였다. 하지만 본즈는 2003년 금지약물 복용 의혹에 수년째 시달렸다. 지난해 은퇴 의사를 비치기도 했던 그는 올해 샌프란시스코와 1년간 1580만달러에 재계약한 뒤 홈런 레이스를 이어왔다. 그러나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의심은 여전히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역사적인 공을 주운 매트 머피란 청년은 백만장자의 꿈을 이루기 어렵게 됐다. 이 홈런볼은 지난 1998년 마크 맥과이어(당시 세인트루이스)의 시즌 최다 70홈런볼이 올린 320만달러(약 30억원)의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홈런볼의 값어치가 떨어지게 된 이유는 본즈가 약물의혹의 중심에 있는 데다 그의 ‘까칠한’ 성격이 미국인들의 등을 돌리게 하고 있기 때문. 여기에 10년 안에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가 그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것도 거액을 부를 손님들의 입을 막고 있다. 임병선 전광삼기자 bsnim@seoul.co.kr
  • ‘붕∼붕∼’ 하늘을 나는 ‘스카이카’ 나왔다

    하늘을 나는 꿈의 차 ‘스카이카’가 눈앞에… 공상 과학 영화에서만 나올 법한 하늘을 나는 차 ‘스카이카’(Sky Car)가 머지않아 우리의 실생활 속으로 다가올 것 같다. 최근 캐나다 출신의 발명가 폴 몰러(Paul Moller)박사는 원형 스카이카인 ‘M200G Volantor’를 직접 조종해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몰러 박사가 중형 승용차 크기만한 이 원형 스카이카를 조종하며 시속 50마일(약 80㎞)의 속도로 공중 부양한 것. 스카이카 개발에 공동 참여한 ‘몰러 인터내쇼날’(Moller International)측은 “M200G가 실제로 상용화될 수 있도록 수십년간에 걸친 끈질긴 노력과 훈련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또 “스카이카가 백만장자들만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어마어마한 가격을 책정하지 않겠다.”며 “실제로 판매를 하게 되면 아마도 4만4000파운드(한화 약 8300만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하늘을 나는 스카이카를 본 한 시민은 “정말로 좋은 아이디어”라며 “그러나 저 차를 운전하게 되면 운전면허증이 필요한지,보험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 하늘을 나는 차 ‘스카이카’ 나왔다

    하늘을 나는 차 ‘스카이카’ 나왔다

    하늘을 나는 꿈의 차 ‘스카이카’가 눈앞에… 공상 과학 영화에서만 나올 법한 하늘을 나는 차 ‘스카이카’(Sky Car)가 머지않아 우리의 실생활 속으로 다가올 것 같다. 최근 캐나다 출신의 발명가 폴 몰러(Paul Moller)박사는 원형 스카이카인 ‘M200G Volantor’를 직접 조종해 보는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몰러 박사가 중형 승용차 크기만한 이 원형 스카이카를 조종하며 시속 50마일(약 80km)의 속도로 공중 부양한 것. 스카이카 개발에 공동 참여한 ‘몰러 인터내쇼날’(Moller International)측은 “M200G가 실제로 상용화되기까지 수십년간에 걸친 끈질긴 노력과 훈련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또 “스카이카가 백만장자들만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고가의 가격을 책정하지는 않겠다.”며 “실제로 판매를 하게 되면 아마도 4만 4천파운드(한화 약 8천 3백만원)정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하늘을 나는 스카이카를 본 한 시민은 “정말로 좋은 아이디어”라며 “그러나 저 차를 운전하게 되면 운전면허증이 필요한지, 보험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WSJ, 백만장자들의 대륙별 소비행태 소개

    “유럽의 백만장자는 예술품을 구입하고, 중동 부호는 보석과 시계를 산다. 아시아에서는 골프회원권이 부의 상징이고, 미국에선 희귀 야구카드를 가진 자가 진정한 부자로 통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 전세계 950만명에 달하는 백만장자들이 대륙별로 상이한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미국 투자회사 메릴린치와 캡제미니의 분석 보고서를 소개했다. 가장 많은 320만명의 백만장자가 몰려 있는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선 사치품 구매비용의 가장 많은 부분(26%)이 자동차와 요트, 비행기 등에 사용됐다. 또한 예술품 구입에 인색한 대신 사치품 소비의 19%를 희귀 야구카드와 동전 등 수집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대륙에선 찾기 힘든 구매 행태다. 반면 유럽의 백만장자들에겐 예술품 구입이 인기다. 각종 사치품 구매액 가운데 예술품 구입 비율이 25%나 된다. 미국(15%), 중동(15%), 아시아(19%)의 백만장자들과는 취향이 달랐다. 전문가들은 귀족문화가 뿌리깊은 유럽에선 저택을 장식하기 위해 예술품을 구입하는 문화가 익숙하고, 예술품을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비해 중동 부호들은 사치품 구매액 가운데 32%를 보석 구매에 사용하고 있었다. 모든 대륙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재산을 항상 들고 이동했던 유목민의 전통이 여기서도 나타났다. 260만명에 달하는 아시아의 백만장자들은 과시형 소비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동차와 요트, 비행기 구매에 사용되는 액수가 전체 사치품 구매액의 30%로 다른 대륙의 백만장자들을 앞질렀다. 보석 구매에 사용되는 비율도 24%로 중동(32%)다음이었고, 예술품 구매액 비율(19%)은 미국(15%)보다 앞섰다. 보고서는 특히 아시아 백만장자들은 유별나게 골프회원권 구입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지적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아들 낳은 값은?”… 백만장자 vs 씨받이 법정싸움

    “5만 위안(약 600만원)이냐,100만 위안(1억 2000만원)이냐.” 중국 대륙에 아들을 대신 낳아준 값을 둘러싸고 백만장자와 씨받이간에 법정 소송이 벌어지는 바람에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성 스옌(十堰)시에 살고 있는 한 백만장자가 자신의 아내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젊은 여성과 씨받이 계약을 맺고 아들을 봤으나,씨받이한 값을 제대로 주지 않않아 법정 소송이 벌어져 주변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고 북경일보(北京日報) 인터넷신문인 첸룽(千龍)망이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건축업자인 쾅젠밍(況建明)씨는 아내와 알콩달콩 살며 지난 몇년간 큰 돈을 모아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부를 쌓았다.이 덕분에 이들 부부는 아무런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냈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은 한 구석에는 육장 돌덩이을 얹어 놓은 것처럼 답답함이 자리잡고 있었다.백만장자의 가산을 이뤘으나 아내가 불임이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바람에 자식 문제가 제대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이들 부부는 이에 따라 아내 대신 아이를 낳아줄 씨받이를 들이기로 결심했다.2005년 여름 쾅씨는 젊은 여성 왕아이친(王艾琴·가명)을 알게 됐다. 서로 눈이 맞은 쾅-왕씨 이들 두사람은 동거에 들어가기 직전 “만약 아이를 낳아주면 우선 10만 위안(약 1200만원)을 주겠다.”고 구두 계약을 맺었다.왕은 2006년 7월 아들을 낳았다. 쾅씨는 왕이 아들을 낳자마자 구두계약과는 달리 5만 위안(약 600만원)만 달랑 던져주고 아들을 데려가 버렸다.왕씨와 함께 동거하던 집을 찾아가지 않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왕씨는 아들이 생각나 쾅씨에게 아들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몇번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이에 화가 난 왕씨는 스옌시 장완(張灣)구 법원에 쾅씨를 상대로 아이를 돌려주고 생활보상비조로 100만위안(약 1억 2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냈다. 쾅씨와 왕씨는 올초 이후 물밑 교섭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들 두사람아의 입장 차가 워낙 커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아들 낳은 값은? 백만장자-씨받이 법정싸움

    “5만 위안(약 600만원)이냐,100만 위안(1억 2000만원)이냐.” 중국 대륙에 아들을 대신 낳아준 값을 둘러싸고 백만장자와 씨받이간에 법정 소송이 벌어지는 바람에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성 스옌(十堰)시에 살고 있는 한 백만장자가 자신의 아내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젊은 여성과 씨받이 계약을 맺고 아들을 봤으나,씨받이한 값을 제대로 주지 않아 법정 소송이 벌어져 주변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고 북경일보(北京日報) 인터넷신문인 첸룽(千龍)망이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건축업자인 쾅젠밍(況建明)씨는 아내와 알콩달콩 살며 지난 몇년간 큰 돈을 모아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부를 쌓았다.이 덕분에 이들 부부는 아무런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냈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은 한 구석에는 육장 돌덩이을 얹어 놓은 것처럼 답답함이 자리잡고 있었다.백만장자의 가산을 이뤘으나 아내가 불임이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바람에 자식 문제가 제대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이들 부부는 이에 따라 아내 대신 아이를 낳아줄 씨받이를 들이기로 결심했다.2005년 여름 쾅씨는 젊은 여성 왕아이친(王艾琴·가명)을 알게 됐다. 서로 눈이 맞은 쾅-왕씨 이들 두사람은 동거에 들어가기 직전 “만약 아이를 낳아주면 우선 10만 위안(약 1200만원)을 주겠다.”고 구두 계약을 맺었다.왕은 2006년 7월 아들을 낳았다. 쾅씨는 왕이 아들을 낳자마자 구두 계약과는 달리 5만 위안(약 600만원)만 달랑 던져주고 아들을 데려가 버렸다.왕씨와 함께 동거하던 집을 찾아가지 않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왕씨는 아들이 생각나 쾅씨에게 아들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몇번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이에 화가 난 왕씨는 스옌시 장완(張灣)구 법원에 쾅씨를 상대로 아이를 돌려주고 생활보상비조로 100만 위안(약 1억 2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냈다. 쾅씨와 왕씨는 올초 이후 물밑 교섭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들 두사람아의 입장 차가 워낙 커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구글을 떠나는 직원들

    구글을 떠나는 직원들

    “구글에서의 경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온라인 인맥 구축 서비스업체인 닷지볼의 공동 창업자 데니스 크롤리와 알렉스 레이너트가 최근 모회사인 구글을 떠나면서 내뱉은 독설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두 사람은 2005년 닷지볼이 구글에 인수되면서 대박 신화를 거머쥔 젊은 기업인들이다. 당시 매각 추정가는 약 3000만달러. 구글에서 2년을 보낸 크롤리는 그러나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구글은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 닷지볼을 지원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영국 가디언은 30일 세계 최대 인터넷 업체인 구글이 회사로 인해 백만장자가 된 직원들의 인력 유출로 고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글은 2004년 기업 공개로 자사주식을 보유한 900여명의 직원을 백만장자로 만들었다. 또 닷지볼처럼 인수합병을 통해 유튜브 창립자와 더블클릭의 주주들을 돈방석에 앉혔다. 하지만 이렇게 백만장자가 된 직원들은 이제 구글의 심각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새로운 둥지를 찾아 하나둘씩 빠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9년 구글에 합류했다 2005년 퇴직한 아이딘 센쿠트도 그 중 한명이다. 초기 구글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떼돈을 벌었지만 구글을 떠났다. 입사때 직원 50명에 불과했던 구글이 1만 1000명이 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바뀐 기업환경이 주된 원인이다. 센쿠트는 “초기에 구글은 아주 특별했다.”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때의 특별함을 되찾긴 어려웠다.”고 말했다.“구글 직원들의 삶을 바꾸는 것은 돈이 아니라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라며 아쉬워했다. 한때 구글에서 일했던 기업 컨설턴트 리즈 바이어도 “대다수 직장인들은 돈에 상관없이 뜨거운 열정이 있는 한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구글이 스키 여행과 보육 시설, 근무시간의 20%를 스스로에게 투자하도록 하는 등 어느 회사보다 직원들의 복지향상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성공한 정보기술(IT)기업 상당수가 그러하듯 “돈으로 충성심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구글은 지금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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