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백령도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개원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고사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ICT 기업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봉사단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46
  • [열린세상] 봄은 왜 이리 더디 오나/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 교수

    [열린세상] 봄은 왜 이리 더디 오나/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 교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봄이 수상하다. 계절을 잊은 듯 유난히 많은 눈과 비가 지난 3월을 유린했다. 청명이 지났건만 겨우내 해묵은 이불과 옷가지를 내다 걸기에는 아직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다. 조상 묘에 떼 입히는 작업을 미룬 사람들이 주위에 적지 않다. 지난주 학생들과 함께 영남 신라문화권으로 고적답사를 다녀왔다. 예년 같으면 사찰이며 서원이며 가는 곳곳마다 온갖 꽃들이 앞을 다투며 피어나 남녘의 화사한 풍광과 정취를 누릴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번 답사에서는 계속되는 비와 쌀쌀한 날씨로 설레는 봄의 향연을 맛볼 수 없었다. 봄이 더디 오고 있는 것이다. 뒤처진 봄의 도래는 작물 생산에도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일조량이 부족한 탓이다. 광합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자양분이 모자란 과채류는 수정과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과도한 습기로 인해 생소한 병충해가 여러 곳에 번지고 있다. 참외 생산의 본산인 경북 성주에서만 수천억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다. 채소 값을 중심으로 밥상 물가가 치솟고 있으니 농민들만 하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계절의 모양새가 분명 탐탁지 않다. 천안함 참사는 음울한 날씨만큼이나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이 생명의 계절에 46명에 달하는 이 땅의 아들들과 남편들이 험한 파도 아래로 실종되었다. 더욱이 그 영문마저 알 수 없으니 갑갑함이 이를 데 없다. 각각 세 아들과 세 딸의 아버지인 남기훈 상사와 김태석 상사는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 앞에 돌아왔고, UDT의 살아있는 전설 한주호 준위는 칠흑 같은 바다 속에서 35년의 군 생활을 마감했다. 백령도 앞바다에도 봄은 오지 않았다. 불교계의 갈등 또한 보는 이들의 심정을 착잡하게 한다.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을 둘러싼 조계종의 내홍 앞에서 이승의 권력과 탐욕은 그저 덧없고 허망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단연 무색해진다. 게다가 정치권의 개입까지 의심되는 실정이다. 무소유의 고귀한 정신을 만천하에 보여준 법정 스님의 향불이 채 꺼지기도 전에 우리는 전혀 다른 불교계의 일면을 마주하고 있다. 정치권에는 과연 봄이 왔는가. 한명숙 전 총리의 수뢰혐의 사건은 법정공방을 거듭하면서 국민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진위 여부를 떠나 한 국가의 최고위직에 있었던 인물이 볼썽사나운 문제에 휘말려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가뜩이나 못마땅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다. 한 준위의 영결식장에서는 우리 정치권의 수준을 가히 짐작케 하는 행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빈소를 찾은 몇몇 인사들은 온 나라가 초상집 분위기에 휩싸인 와중에 영정사진 앞에서 기념촬영을 서슴지 않았다. 그토록 쓰리고 저린 이별 앞에 망연자실한 유가족에 대한 결례의 차원을 넘어 국민들을 모독하는 처사다. 장본인 중 한명이었던 한나라당의 중진의원은 “역사적 기록으로 의미가 있다.”는 허접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얼굴이 찍히지 않으면 한 준위의 숭고한 희생에 ‘역사적 의미’가 없단 말인가. 정치인들의 의식 속에 언제나 봄이 찾아올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정치권에 당부한다. 천안함 사태를 포함하여 최근에 불거진 사태들을 제발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않길 바란다. 정진석 추기경도 간곡히 부탁했고 대통령도 공언하였다. 6·2 지방선거가 목전에 임박한 시점이라 더더욱 절실히 다가오는 과제다. 깊은 바닷속에 갇혀 있는 장병들과 비통함에 빠져 있는 가족들 그리고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경이롭다. 꽃과 나무는 비바람이 거셀수록 뿌리에 힘을 실으며 강한 생명력을 유지한다. 늑장을 부리는 봄이 야속했건만 어느덧 꽃망울이 터지고 나무에 움이 튼다. 모진 고통을 용케 견디어 낸 것이다. 우리 또한 도처에서 엄습하고 있는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고 이를 오히려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시절이 얄궂긴 해도 근사한 봄의 교향곡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 [천안함 침몰 이후] 해병 TOD는 천안함 폭발장면 정말 못봤나

    [천안함 침몰 이후] 해병 TOD는 천안함 폭발장면 정말 못봤나

    천안함 폭발 장면을 찍은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은 정말 없을까?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하고 있는 민·군 합동조사단은 지난 7일 해병6여단 디지털 영상기록장치(DVR)에 남아 있던 침몰 당시 TOD 화면을 새로 공개했다. DVR은 초소에서 TOD로 찍은 화면을 실시간으로 상급부대 상황실 등에서도 함께 볼 수 있도록 전송해주고 동시에 자동녹화하는 장치다. 새로 공개된 동영상은 지난달 31일과 1일 두 차례에 걸쳐 공개됐던 백령도 해병6여단 소속 238초소의 TOD 동영상의 앞부분에 해당한다. 여기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함미(艦尾·배 뒷부분)의 침몰 직전 모습이 담겨 있었다. 군이 지난 1일 40분 분량의 TOD 화면을 공개하며 “더 이상의 동영상은 없다. 순식간에 가라앉아 함미 부분이 찍힌 동영상이 없다.”고 했던 게, 또다시 뒤집힌 셈이다. 군은 지난달 31일 처음 TOD 동영상 1분20초 분량의 편집본을 공개할 때도 “찍힌 모든 부분”이라고 했다가 이튿날 곧바로 40분 분량의 전체 영상을 공개했다. 그래서 침몰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폭발 장면이 더 있을 것이란 의심의 눈초리가 적지 않다. 특히 해병이 애초부터 DVR을 통한 자동 녹화 시스템을 모르고 있진 않았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새로 공개된 영상은 사고 당일 천안함이 오후 9시2분26초부터 3초간 정상 기동하는 장면과 함수(艦首·배 앞부분)와 분리된 함미가 오후 9시22분38초부터 1분1초간 빠르게 가라앉는 장면을 담고 있다. ●軍 “폭발음 듣고 TOD 돌려” 해명 하지만 사고 발생 시각부터 영상 시작 부분까지는 불과 38초의 간격에 불과한데 TOD의 녹화버튼을 안 눌러도 DVR로 자동녹화되는 시스템이라면 천안함이 폭발할 때 영상도 있을 것이란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은 8일 “폭발 순간을 담은 영상은 없다.”고 거듭 부인하면서 “TOD 운영병이 천안함이 지나가자 딴 곳을 감시하다가 폭발음을 듣고 TOD 카메라를 그쪽으로 다시 돌린 것으로 보여, 이 TOD화면을 전송받는 DVR기록에도 폭발 때 영상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병 상황실선 사고순간 봤을수도” 그러나 국내 한 보안업체의 DVR 전문가는 “일선 소초의 TOD 감시화면이 DVR로 소대·중대·대대·여단에까지 중계되는데 모든 부대가 한꺼번에 한눈을 팔고 있던 게 아니라면 천안함 침몰 장면을 못 봤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더구나 백령도 같은 접경지역은 TOD를 24시간, 사각지대가 없도록 겹쳐서 운영하는 게 가장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제서야 함미가 침몰하는 영상을 찾아냈다는 것과 관련, “해병이 자동녹화 기능을 몰랐다.”는 군의 해명도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TOD운영병 출신 예비군들은 사고 초기부터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TOD는 자동녹화된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홍성규 오이석기자 cool@seoul.co.kr
  • [천안함 생존자 증언] “쾅! 소리에 정전… 펑! 소리에 배가 90도 기울어”

    [천안함 생존자 증언] “쾅! 소리에 정전… 펑! 소리에 배가 90도 기울어”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침몰 13일 만에 공개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최원일 함장을 포함한 생존 승조원 58명 가운데 57명이 7일 오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강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침몰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신은총 하사는 참석하지 못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고발생 보름이 다 돼가는데 가족들은 실종 장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함장도 살아있을 것으로 기대하나. -(최원일 함장) 실종된 장병들이 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희망을 계속 갖고, 복귀신고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고 해역에서의 주임무는 무엇이었나. -(최 함장) 2008년 8월에 부임해 20개월 근무했다. 그 구역은 누구보다 자신있는 구역이고 16회 정도 경비했다. 주요 임무는 도발대비 태세 유지였다. ●정확한 사고발생 시간은 →사고 시각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과연 몇시 쯤 사고가 났나. -(작전관 박연수 대위) 함교에 당직사관이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 모니터가 있다. 마지막으로 직접 확인한 시간이 21시24분이다. 그 시간에 대해 정확성은 판단할 수 없다. →9시16분쯤 백령도 방공진지에서 큰 소음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들린 게 있나. -(통신장 허순행 상사) 9시14분부터 18분까지 통화를 했다. 함 내부에서 들렸다면 분명 전화를 끊고 상황파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들렸다. -(갑판병 황보상준 일병) 9시16분 당시 좌현 함교 외부 당직이었다. 16분대에 일체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디젤엔진이나 기관실 등에서 폭발 소리를 들었나. -(정종욱 상사) 함정이 6노트(11㎞) 저속일 때는 디젤엔진으로 기동한다. 군생활 17년 됐는데 배에서 폭발했다는 것은 전혀 들은 바 없다. →포술장의 최초 보고 내용과 ‘피격’이라고 한 것의 의미는. -(최 함장) 비상통신기와 휴대전화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제가 계속 통신기를 잡고 있으면 현장 구조가 어려워 옆에 허순행 상사를 위치시켜 지시한 내용을 전파하라고 했다. ‘뭐에 맞은 것 같고 충격이 너무 컸다.’고 우리끼리 얘기했다. -(김광보 중위) 밖으로 올라가 휴대전화로 함대 직통실에 보고했다. 너무 정신이 없어 직통실 전화가 아니라 군부대 교환대를 이용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 안난다. 상황장교가 전화를 받았고 제가 처한 위치나 상황, 구조요청 등을 두서없이 말해서 기억이 안난다. →함장이 사고시각을 침몰 다음날 27일 9시25분으로 했다가 28일 번복한 이유는. -(최 함장) 당시 전술지휘체계(KNTDS) 컴퓨터 자료를 검색하던 중 우측화면에서 오후 9시23분으로 확인했다. 저는 사고 다음날 바로 현장에 가서 선체나 실종자 상황을 지휘, 보좌하고 있었다. ●사고 순간, 꽝 소리는 두번 →‘꽝’ 소리가 두 번 났는데, 파편을 본 사람 있나. -(전탐장 김수길 상사) 자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꽝, 꽝’ 소리를 두번 느꼈다. 처음 ‘쿵’하는 소리는 어디에 부딪힌줄 알고 제가 바로 전탐실로 향했고, 이후의 ‘꽝’하는 소리는 약간의 폭음과 전등이 떨어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사고 순간에 폭발음이 났다고 발표가 됐다. 그 이후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가. -(병기장 오성탁 상사) ‘쾅’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에 붕 떴고 정전이 됐다. 정신을 차려보니 암흑세계였다. 아무 것도 안보였다. 발밑에 걸리는 게 있어서 만져보니 출입문이 바닥에 있었다. 순간 다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90도로 기울었다. ‘쾅’ 소리는 귀가 아플 정도로 컸다. 문 주위의 컴퓨터책상이 모두 무너져 문이 안 열렸다. 가족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살겠다는 일념으로 손에 잡히는 집기를 모두 치워서 15분만에 밖으로 나왔다. 외부에 의한 충격으로 생각했다. →화약 냄새라든지 폭발 징후라고 느꼈던 것들이 있었나. -(오 상사) 제가 탄약을 담당하는 병기장이라서 잘 아는데 만약 화약이 있으면 불이 나고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그 순간 화약냄새는 전혀 안났다. ●사고직후 물기둥은 못봐 →갑판에 있었던 사람이 있었나. 물기둥은 봤나 -(김 상사) 침실에 들어가는데 ‘쿵’ 소리 후 3∼5초 있다가 다시 ‘쾅’소리 났다. 90도로 배가 기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부 소화호스 타고 5∼7분 걸려 탈출하고 난 뒤 달빛 보고 외부로 향하려고 하는데 외부 함미가 없었다.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함정은 야간이 되면 등화관제를 실시한다. 적에게 발견되지 않기 위해 각종 문을 닫고 있다. 기본적인 항해등만 켜고 항해해 물기둥은 실제적으로 볼 수 없다. →천안함이 오래됐다. 물이 새는 등 내부 문제는 없었나. -(기관장 이채권 대위) 물이 샌다고 하는 경우는 잘 모르는 대원들이 함정 내부에 온도차에 의해서 파이프에 물이 맺히는 경우를 두고 말한 것이다. 외부에서 물이 스며드는 건 전혀 없었다. →마지막으로 안전점검 받은 일자는. -(이 대위) 부임한 지 50일 가량 됐는데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출항 2∼3일 전부터 작동을 시작하니까 장비나 선체의 노후는 아니라고 본다. ●해경 구조선에서 지휘보고 →사고 후 구조대가 오기까지 한시간 동안 함장 지시는. 뭐하고 기다렸나. -(박 대위) 함교에서 좌현 통로로 외부로 나온 뒤 구조선이 오기 전까지 구조세력이 왔을때 선체에 접근을 해서 어느 방향으로 대원들을 이함시킬지 함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통신관 박세준 중위) 전투상황실 당직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많은 장비들이 떨어졌다. 전탐실에서 끼어있었던 하사 2명을 구조한 뒤 올라와서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는 대원들을 안정시키는 임무를 했다. -(김덕원 소령) 우현으로 배가 기울고 함장실 앞에 있는 외부 도어를 풀고 가장 먼저 올라왔다. 확인 결과 함미가 안보였다. 여러 대원들이 갑판 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밑에서는 함장실이 잠겨 있어서 풀려고 노력했고 함장이 구출된 뒤 인원파악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통신망으로 상황전파 후 침착하게 함장 지시에 따라 대처하면서 구조세력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사병들 가운데 함미를 사고 직후 본사람 있나. 구조 직후 함장이 말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나. -(최 함장) 해경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였다. 나는 사관실로 이동했고, 병들은 치료 휴식을 위해 해경정에 있는 침실에 배치됐다. 해경에서 지휘보고가 이뤄졌다. 참모총장, 작전사령관과 통화해 보고를 했다. 휴대전화 회수는 사실이다. 구조가 해경, 고속정 등 여러 곳에서 이뤄졌고 당시 피흘리고 다리 골절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혼란방지 차원이었다. ●다른 가능성은 →암초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김병남 상사) 암초에 걸리면 기본적으로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배가 출렁인다. 외부 충격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초 상황시 사고 원인에 대한 보고는 없었나. -(최 함장) 당시는 급박한 구조 상황이었다. 사고원인은 차후였다. 오후 10시32분 통화할 때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충격으로 느꼈다. →어뢰, 기뢰, 암초, 내부폭발, 선체폭발 등 사고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최 함장)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세상이 생명과 같은 천안함을 제발 있는 그대로 이해해줬으며 감사하겠다. 아직도 옆에있는 듯 장병들이 가슴에 묻혀있다. 누구보다 슬퍼할 실종자 가족들 생각 뿐이다. ●사고당시는 정상근무중 →사고 직전에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나. 비상상황인가 휴식상황인가. -(박 대위) 함교 당직사관으로서 정상근무 중이었다. 특이한 일이 있었다면 나한테 보고가 됐을 거다. 따로 보고된 바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사고 직전이나 혹은 그 이전이라도 함정의 소나(음파탐지기)에 이상징후 포착된 것 있나. -(홍승현 하사) 특별한 음탐신호가 없었다. 당직자는 정상근무였다. →사고직전 외부와 통화했던 승조원들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나. 끊을 만한 상황이 있었나. -(허 상사) 오후 9시14분부터 18분 몇 초까지 전탐실 후부 계단에서 집사람, 딸과 통화했다. 아내가 임신한 상태라서 관련해서 통화했고 딸에게는 엄마가 많이 힘드니까 도와주라고 했다. 이상 상황은 없었고 바로 통신실로 복귀했다. -(기관장 이채권 대위) 기관장이 상황이 있거나 주로 근무하는 위치는 기관조정실이다. 당시 정말 특별상황이 있었다면 고속추진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내가 당연히 기관조정실에 있어야한다.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후타실에 5명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 갔을 것으로 보나. -(오 상사) 저는 운동을 좋아해 그 시간대면 거기 가 있는다. 사고발생 한시간 반 전에 가서 늘 운동했었다. 그날은 업무보고 때문에 후타실에 안 갔다. 추정되는 5명은 항상 운동하는 인원이다. →함미부근 후타실에서 운동할때 어떤 복장으로 가나. -(전준영 병장) 속옷 내의와 반바지를 입고 한다. 운동을 했다면 복장이 그랬을 거다. 나는 침실서 쉬고 있었는데 특별한 상황이 없었기에 속옷만 입고 있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천안함 생존자 증언] 합동조사단 5대의혹 해명

    [천안함 생존자 증언] 합동조사단 5대의혹 해명

    민·군 합동조사단은 7일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주요 의혹과 해명을 짚어 본다. 합조단은 발생시간을 “3월26일 오후9시22분”으로 확정했다. 생존자와 실종자들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해군 전술지휘체계(KNTDS) 기록시간, 천안함과 해군 2함대사령부 간 국제상선공통망 교신내용,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기상청의 지진파 감지 시간 등을 근거로 내놓았다. ① 천안함 침몰시각은 합조단은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통해 오후 9시16분쯤 침몰했다는 일부의 의혹을 일축했다. 실종자 한 명이 사고 당일 오후 9시16분에 가족과 통화하던 도중 “지금은 비상상황이니 나중에 통화하자.”고 말했다는 진술과 관련, “통신사실 확인자료 분석결과 통화한 사실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차모 하사의 문자메시지 중단 의혹에 대해선 “실종자인 차 하사가 여자친구에게 오후 9시16분42초에 마지막 문자를 보냈으나 여자친구가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합조단은 오후 9시16~22분에 통화한 내역도 새로 공개했다. 생존자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회 결과 A상사와 그의 부인이 오후 9시14분11초에서 오후 9시18분52초까지 4분41초간 통화한 사실이 나왔다. B하사에게 그의 대학후배가 오후 9시14분31초와 사고 직전인 오후 9시21분25초에 문자를 발송한 기록도 찾았다. 통화 기록 조회 내용 중에는 실종된 C상병의 동생이 집전화를 이용해 오후 9시17분19초~21분47초 실종된 D중사의 휴대전화로 3차례 전화를 걸어 C상병과 통화했던 기록도 나왔다. KNTDS 기록은 보다 논리적인 정황 증거 역할을 했다. 합조단 조사결과 천안함으로부터 발신되는 자함 위치신호가 오후 9시21분57초에 중단됐다. 백령도 지진파 관측소가 진도 1.5 규모의 지진파를 감지한 오후 9시21분58초, 백령도 기상대 관측소가 지진파를 탐지한 오후 9시22분쯤도 KNTDS의 기록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천안함과 2함대사령부가 국제상선공통망으로 오후 9시19분30초에서 오후 9시20분3초 사이 33초간 교신한 내용도 공개됐다. 당시 2함대사는 “갈매기232(천안함), 여기는 갈매기200(2함대사) 감도 있습니까.”라고 호출했고, 천안함은 “여기는 갈매기232 이상”이라고 답신했다. 또 2함대사가 “여기는 갈매기200, 감도 양호 감도 양호 이상”이라고 통신망 유지상태를 물었고, 천안함은 “귀국 감도 역시 양호 교신 끝”이라고 답신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② 섬엔 왜 가까이 갔나 천안함이 수심이 얕은 백령도 남쪽 1.8㎞ 해안을 이동한 것과 관련, ‘정상적인 운항’이 아니라는 의문들이 제기됐었다. 수심이 낮아 암초에 걸려 좌초되거나 물 흐름이 빨라 초계함이 운항하기에는 위험한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백령도 어민들도 “사고 지점은 까나리어장 안쪽으로 바다 위에 흰색 부표를 띄워 어장을 표시하기 때문에 해군 함정은 항상 어장 남쪽으로 다녔다.”는 진술들이 잇따랐다. 합동조사단은 사고 발생 지점을 백령도 남쪽 2.5㎞라고 고쳐 발표했다. 생존 승조원들의 진술, KNTDS 기록 등을 근거로 군의 최초 발표보다 남쪽으로 700m 더 아래쪽이라고 밝혔다. 또 천안함은 지난해 11월10일 대청해전 이전에는 백령도 서북쪽 경비구역 안에서 기동했으나, 같은 달 24일 2함대사령부의 지침에 따라 백령도 서남쪽 지역으로 조정된 경비구역에서 작전하게 됐다고 한다. 합조단은 “천안함의 기동수역은 홍합여, 연봉 등 암초가 있는 백령도 남쪽지역으로부터 9~10㎞ 떨어져 있다.”고 밝혀, 운항 안전성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혔다. 천안함 함장으로 부임한 지 20개월 된 최원일 함장이 그동안 사고발생 지역에서 16차례 임무를 수행해 지리적으로 익숙했다는 판단과 함께다. ③ 당시 작전중이었나 지난 3일 일부 언론이 보도한 ‘군 상황일지’에 따르면 해경의 보고 일지에는 ‘3월26일 오후 9시15분’ 천안함의 위치를 위도 37도50, 경도 124도36으로 기록돼 있다. 군이 당초 ‘오후 9시22분’을 기준으로 천안함의 사고 지점을 위도 37도55, 경도 124도37로 밝힌 것과 비교할 때 천안함이 7분사이에 9.4㎞쯤 북상한 것이 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천안함이 가스터빈 엔진까지 가동하며 시속 40노트(시속 74㎞) 이상으로 빠르게 북상한 게 북한 잠수정 등에 의한 긴급한 작전이 벌어진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놨다. 이에 대해 합동조사단은 이날 “천안함은 사고 당시 정상기동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합조단에 따르면 사고 전날인 지난달 25일 풍랑주의보가 발효돼 경비구역을 빠져나와 대청도 동남쪽으로 피항했던 천안함은 사고 당일 오전 8시20분부터 정상 경비 구역에서 정상적인 작전 임무를 했다. 또 “지난달 26일 오후 8시 이후 야간 당직근무자 29명을 제외한 인원이 휴식이나 정비활동을 하고 있었다.”면서 “비상 기동하고 있었다면 전원 근무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합조단은 “천안함은 사고 발생전 백령도 북서쪽으로 시속 6.3노트(시속 11.3㎞)로 정상 기동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④ 침몰원인 좌초였나 천안함 사고 뒤에 일부 공개된 해경 보고서에 따르면 해군 2함대사령부 당직사관이 해경정 지원을 요청하며 ‘백령도 서쪽 우리 함정에서 좌초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천안함이 암초에 걸려 물이 새고, 피항(避航)하기 위해 빠르게 기동하다가 결국 두동강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하지만 합조단은 “상황 전파가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합조단은 “사고 당일 오후 9시28분 천안함 포술장에게서 휴대전화로 최초 상황보고를 받은 2함대 상황장교는 ‘포술장이 다급해하며 빨리 구조해 달라는 뜻의 말을 하면서 좌초되었다고 보고했고, 다시 좌초되었냐고 묻자 포술장이 좌초라고 말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천안함 포술장은 “당황해 빨리 구조해 달라는 말을 했지만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 못한다.”고 진술했다. 합조단은 “급박한 상황에서 경황이 없어 정확한 용어 사용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⑤ 5명 후타실 왜 갔나 해군 2함대사령부는 지난달 26일 천안함 침몰사건 뒤 생존자들의 진술을 통해 실종자들의 당시 선내 위치를 설명하면서 “후타실에 5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초계함 승조 경력자들은 “일반적으로 후타실은 출입금지 구역으로, 5명이나 있었다는 건 조타장치에 문제가 있어 후타실에서 배를 조종해야 할 급박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합조단은 “후타실에 있던 5명은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후타실에는 배의 엔진과 스크루가 연결되어 방향을 잡는 조타장치가 있다. 예전에는 후타실이 개방되지 않았지만 최근 승조원들의 선내 체육활동을 위한 운동기구를 후타실에 갖다 놓으면서 체력단련실로 활용됐다. 생존 승조원들도 “후타실에 휴식시간 때 운동을 하려고 자주 들어갔다.”는 진술도 나왔다. 합조단은 “만약 긴급상황이었다면 장교와 함께 병력이 투입되는데, 사고 당시 하사 3명과 수병 등만 있었던 것으로 추정돼 긴급상황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함정 도면·TOD…발가벗겨진 軍기밀

    초계함 설계도면, 열상감시장비(TOD) 녹화 동영상, 접경지 해안초소 위치, 해군 전술지휘체계(KNTDS)…. 군사 기밀이 줄줄이 발가벗겨지고 있다. 두 동강나 바다에 가라앉은 천안함의 사고 원인이 미궁 속에 빠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의 등살은 우리 군의 전력을 낱낱이 공개하길 요구한다. 더구나 천안함 침몰사건에 쏠린 여론의 관심에 편승하려는 몇몇 정치인들의 군사 기밀 공개 경쟁이 우리 군의 보안 누수 현상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지난달 26일 오후 9시22분 천안함이 인천 옹진군 백령도 남쪽 해역에서 침몰한 뒤 곧바로 해군의 핵심 초계함인 천안함의 설계도면이 언론에 공개됐다. 함장실의 위치, 승조원들이 머무는 선실, 무기고 현황은 물론 승조원들의 근무 현황까지 속속들이 들춰졌다. 접경지역인 백령도 해안 초소의 위치와 해안 경계를 위해 이용되는 TOD 운영방법도 모두 일반에 공개됐다. TOD의 배율과 운용 원리는 물론이다. 이와 함께 TOD 운영병으로 근무하고 제대한 인터넷 논객들까지 일반인들은 모르는 TOD의 실체를 공개하는 데 가세했다. 해군의 실시간 작전지휘체계 시스템인 전술지휘체계(KNTDS)도 감춰져 있던 속살을 드러냈다. 실시간으로 군함의 이동경로가 표시되고 적의 동향까지 파악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해군 작전지휘체계의 핵심 하드웨어다. 전부 공개되진 않았지만 함정 간, 함정과 함대사령부 간 교신 내용도 일부 공개됐다. 통상적인 교신 시간도 유추해낼 수 있을 정도다. 천안함의 이동 경로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해군 함정들의 운항 경로와 제원들도 모두 알려지게 됐다. 더불어 북한 군 감시 동향 정보도 공개됐다. 김학송 국회 국방위원장은 지난 5일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를 만나 얻어낸 북한 사곶·비파곶 해군기지에 배치된 잠수정들의 동향과 무장 수준 등을 우리 군이 어느정도까지 파악하고 있는지도 낱낱이 공개했다. 북한이 이를 역(逆)으로 이용할 수 있는 위험성도 떠안게 된 셈이다. 너무 많은 군사 정보, 군사 기밀 유출에 대해 국방부 한 관계자는 “이 정도면 군의 모든 작전·정보 체계를 백지에서 새로 만들어야 할 판”이라며 혀를 찼다.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도 6일 군사 기밀 유출에 따른 군의 공식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원 대변인은 “최근 일부 언론 매체나 사회 지도층 등이 군의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교신내용, TOD, 군함 내부 배치도 등을 무분별하게 노출하고 있어 유감스럽다.”면서 “확고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군사기밀은 유사시 작전의 성공은 물론 장병의 생명과 직결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너무 많은 정보가 새어나가 이 정보를 받는 상대방 쪽에서 이 게 진짜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나갔다.”고 푸념했다. 한 군사 전문가는 “한국 군의 정보는 미군과의 공조체제를 통해 구축하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무분별하게 정보가 새어나간다면 미국과의 공조체계에 적잖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회 국방위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쓸데없는 공명심이 군의 정보체계 노출을 경쟁적으로 부추기면서 국가 안보태세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772함 귀환’ 시 의대교수가 썼다

    [천안함 침몰 이후] ‘772함 귀환’ 시 의대교수가 썼다

    “희망이 없더라도 우리는 결코 승조원들의 생환에 대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천안함 침몰 사고 후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라는 시를 올려 국민의 심금을 울린 네티즌이 동아대 의대 김덕규(55·내과) 교수로 파악됐다. 김 교수는 6일 “우리들의 수병을 지켜달라는 뜻으로 이 글을 쓰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는 “사건 발생 3일째이던 지난달 29일 아침 인터넷신문 기사를 통해 천안함 침몰 당시의 위치와 각각의 그림을 보던 중 갑자기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생겨나더니 온몸을 휘감았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내렸으며 그 자리에서 제 가슴을 휘젓는 뜨거운 감정들을 자판을 통해서 써내려갔다.”며 당시 상황을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당시 얼굴도 모르는 46명 수병의 이름이 순식간에 제 가슴 속에 뛰어들어왔다.”며 “지금 생각해 보니 누군가가 46명의 생명을 내 가슴 속에 품게 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해본다.”라고 덧붙였다. 육군 군의관 출신인 김 교수는 가장 친한 친구가 해군 군의관으로 백령도에서 근무한 탓에 “백령도 군생활에 대해서 알게 됐다.”라고 했다. 그는 또 “2002년 발생한 ‘제 2연평 해전’ 때 부상당한 군인과 사상자, 유가족에 대한 국가의 대접을 보고 울분을 삭이지 못했으며 그때부터 해군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 교수는 “이제 국민이 ‘SOS’를 쳐야 하지 않을까 한다.”라며 “우리의 수병을 지켜주소서(Save Our Sailors)라는 뜻”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 교수는 1990년에 동아대 의대에 부임해 현재 내과학교실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3m파도·강풍… 바지선 대청도 대피

    천안함 인양작업 이틀째인 6일 백령도 해역의 기상 악화로 인양작업이 중단됐다. 천안함 함수 인양 준비작업을 하던 해양개발공사는 새벽 사고해역 해상에 바람이 초속 8~10m로 세게 불고, 파도 역시 2~2.5m로 높게 일자 작업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오전 4시30분쯤 바지선과 크레인 등을 인근 대청도로 이동시켰다. 함미 인양을 맡은 88수중개발도 이날 새벽 바닷속에 고정된 바지선의 앵커 4개를 걷고 사고해역을 떠났다. 해군 측은 오후 작업을 기대했다. 하지만 오후들어 파도가 3 m로 오히려 높아지고 바람도 초속 16~17m에 달해 작업을 재개하지 못했다. 지난 1~3일 ‘사리’ 기간이 이어지면서 조수간만의 차가 커져 최대 5노트까지 올라갔던 조류는 이날 0.5노트까지 떨어졌지만 바람과 파도가 인양을 가로막는 ‘복병’이 된 것이다. 해군 관계자는 “기상 악화가 7일 오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여 7일 오후는 돼야 작업 재개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지난달 26일 이후 백령도 해역의 날씨는 계속 변했으며, 수중작업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 적은 별로 없었다. 이처럼 백령도 기상 조건이 좋지 않은 것은 해역의 특성과 계절적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기상청은 설명했다. 서해는 온도차와 기압 배치 등에 따라 해수면의 수증기가 급속히 증발해 삽시간에 짙은 구름이나 안개를 만들어 내는 일이 흔한 곳이다. 또 확 트인 바다여서 다른 곳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나 파도를 막아 줄 만한 장애물도 없다. 특히 백령도 해역은 조류가 매우 빠른 곳으로, 한 달에 2차례 발생하는 사리(조수간만의 차가 커지는 시기) 때는 수중작업이 어렵다. 7∼9일은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조금’ 시기여서 작업에 비교적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파도, 안개 등도 중요한 변수여서 낙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李대통령 “합동조사단장 민간서 맡아야”

    이명박 대통령은 6일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 “어떤 사람은 이번 사건이 지방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선거에 이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하면서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면서 “북한이 관련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번 사건은 객관적으로 철저하게 확인할 것”이라며 의혹 없는 사태 수습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현재 군이 맡고 있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책임자를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민간 전문 인사가 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방부는 적극 검토하도록 하라. 그래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서 “그렇게 결론이 나야 우리 정부도 단호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요 20개국(G20) 회원국과 6자회담 회원국 등 국제 사회가 주목하는 초미의 관심사”라고 강조했다. 최근 일부 참모들과의 간담회에선 “결과가 나오면 그게 북한이 됐든 우리 군이 됐든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7일 천안함 생존 장병의 공개 진술을 듣기로 했다. 또 실종자 가족들 가운데 4명을 민·군 합동조사단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치료 중인 생존자 가운데 원하는 장병에 대해 언론 인터뷰를 실시하고, 실종자 가족협의회에서 명단을 주면 합조단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군은 이날 인천 옹진군 백령도 남쪽 1.8㎞ 해역에서 선체 인양 작업을 하려고 했으나 기상 악화로 하지 못했다. 김성수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주인공 김덕규씨를 만나다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주인공 김덕규씨를 만나다

     장병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는 글을 올려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네티즌 김덕규’는 동아대 의과대학 교수 김덕규씨인 것으로 밝혀졌다.그는 한 언론을 통해 이 글을 쓴 당사자는 자신이라고 밝혔다. 그는 6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글을 올린 것과 관련, “천안함 침몰 당시 승조원들의 추정 위치와 이름이 쓰여있는 기사를 읽고 있다가 갑자기 가슴에 뜨거워지며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이어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46명 수병의 이름이 순식간에 제 가슴 속에 뛰어 들어왔다.”면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그 자리에서 내 가슴을 휘젓고 있는 뜨거운 감정들을 자판을 통해 써내려갔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금 구명활동 상황이 아주 어렵지만 희망이 제로 포인트에 도달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승조원들의 생환에 대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라면서 “이제는 임무교대를 해 우리가 SOS를 타전하자고 말하고 싶다. ‘SOS’는 구조신호인데 나는 이 SOS를 이렇게 번역하고 싶습니다. ‘Save Our Sailors….우리의 수병을 구원해 주소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고는 “장병들이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면 우리 기도가 이루어진 것에 대해 먼저 감사를 드리고 싶고, 그들이 생환하게 된 것은 온 국민의 염원과 기도의 결과였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또 “이번 사건은 매우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라면서 “우리 국민들이 국군을 좀 더 많이 격려하고 사랑하고 신뢰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다음은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전문  천안함 침몰사고 며칠 후 ‘772함 수병(水兵)은 귀환(歸還)하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 한편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실종 된 장병들에게 무사히 귀환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는 내용이었는데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대단한 화제의 글이 됐었죠. 도대체 이 글을 쓴 분은 어떤 분일까, 네티즌들 사이에서 궁금증이 쌓여가고 있었는데 저희가 나흘 동안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찾았습니다. 감동의 글을 쓴 주인공 김덕규 씨 직접 만나보죠.  -김현정 앵커> 어렵게 모셨습니다?  ▲ 김덕규> 해군이 상중이고 수병들이 안 돌아왔기 때문에 사실 언론에 이렇게 나오는 것 자체가 좀 굉장히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 김현정 앵커> 고민을 하셨군요. 어떻게 이런 글을 쓰고 올리게 되셨습니까?  ▲ 김덕규> 그러니까 천안함 침몰사건 발생 후 3일 째 되는 3월 29일 아침이었죠. 제가 출근해서 연구실에서 인터넷 신문을 보니 기사가 눈에 띄었어요. 그 기사가 아마 ‘대한민국의 수명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겠습니다’ 이런 제목이었는데요. 천안함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침몰 당시에 있었을 거라고 추정되는 승조원들의 위치와 각각의 이름을 표시 해 둔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을 보고 제가 한 사람씩 이름을 읽어 가는데 갑자기 제 가슴 속에 어떤 뜨거운 것이 생겨나더니 온 몸을 휘감았습니다. 동시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내렸고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제 가슴을 휘젓고 있는 뜨거운 감정들을 자판을 통해서 써내려갔습니다.  -김현정 앵커> 그렇군요. 그냥 가슴에 있는 말씀을 한번에 휙 쓰신 거예요. 일필휘지로요.  ▲ 김덕규> 거의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제가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46명 수병들의 이름이 순식간에 제 가슴 속에 뛰어 들어왔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누군가가 46명의 생명을 내 가슴 속에 품게 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앵커> 해군 홈페이지에 그 글을 올렸는데 이게 어느 정도 화제가 됐는가 하니 접속자가 폭주해서 사이트가 마비 될 정도였고요. 여기저기 네티즌들이 퍼 나르면서 수백만 명 수천만 명이 봤습니다.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거라고 예상 하셨습니까?  ▲ 김덕규> 전혀 예측을 못했죠. - 김현정 앵커> 파장이 커서 놀라기도 하셨을 것 같아요?  ▲ 김덕규> 그럼요. 굉장히 놀랐습니다.  - 김현정 앵커> 그만큼 이 시를 읽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고 저도 읽으면서 울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가슴을 울리는 이런 글을 쓴 사람이 대체 누구냐, 해군 전역자일 것이다, 그런 소문들이 있었는데요. 해군 출신이신가요?  ▲ 김덕규> 그렇지 않고요. 저는 군 생활을 육군에서 했습니다.  - 김현정 앵커> 그렇다면 혹시 글을 쓰는 작가이신가요?  ▲ 김덕규> 그렇지 않죠.  - 김현정 앵커>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세요?  ▲ 김덕규> 저는 동아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진료 연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앵커> 해군을 잘 아시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인연이 없으신 겁니까?  ▲ 김덕규> 제가 말씀을 드린다면 제가 군의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육군 대위로 군의관으로 임관되어서 동부전선으로 배치되었고요. 저의 가장 친한 친구는 해군 군의관으로 백령도에 배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를 통해서 백령도의 군 생활이 어떤가를 알게 되었고요. 결정적이라고 할까요. 여러분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2002년도 월드컵 당시에 제 2 연평해전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당시에 우리 윤영하 소령 외 5명이 전사하고 상당한 장병들 부상을 당했는데 당시 사상자들과 가족들에 대한 국가의 대접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국민 한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울분이 많았습니다. 그 울분들이 점차 해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앵커> 연평해전 보면서부터, 그때부터 해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생겼다는 말씀이세요.  ▲ 김덕규>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앵커> 이번 참사 2주됐는데 지켜보시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안타까우셨어요?  ▲ 김덕규> 물론 아직 실종자들이 돌아오지 않는 부분은 온 국민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일 거고요. 그 외에 구명작전 중에 발생한 고 한주호 준위님의 순직, 금양98호 선원 실종 사망 참 안타까운 일이고요. 또 다른 각도로 제 느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국군을 좀 더 많이 격려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군은 사기가 생명이지 않습니까? 국민들이 군을 좀 더 신뢰했으면 합니다. 국군은 대한민국의 군대입니다. 그래서 국군이 무너지면 우리나라는 그것으로 끝입니다.  - 김현정 앵커> 군인들도 격려 해 달라, 군도 격려 해 달라, 이런 말씀이세요.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보다 실종자 가족들이겠죠. 가족들한테도 한 말씀 하신다면?  ▲ 김덕규> 아시다시피 지금 구명활동 상황이 아주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희망이 전무하더라도, 희망이 제로 포인트에 도달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승조원들의 생환에 대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제는 임무교대를 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SOS를 타전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SOS는 구조신호죠. 저는 이 SOS를 이렇게 번역하고 싶습니다. Save Our Sailors, 우리의 수병을 구원해주소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김현정 앵커> 들으면서 가슴이 한 번 더 아픈데요. 장병들 이름 하나하나 부르면서 꼭 무사히 돌아오라고 명령을 내리셨는데 장병들 돌아오면 뭐라고 말씀해 주고 싶으세요?  ▲ 김덕규> 참... 그저 우리 기도가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먼저 감사를 드려야 되겠고요. 그들이 생환하게 된 것은 온 국민의 염원과 기도의 결과였다, 이런 말 하고 싶습니다.  - 김현정 앵커> “고생했다 장하다” 이런 이야기 해 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저희가 조사해보니까 의료봉사단체 단장도 맡으시면서 사회봉사활동도 열심히 하시는 그런 분이시더군요. 이 글처럼 무사히 장병들이 돌아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고 또 안타깝습니다. 오늘 아침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인양업체 “날씨 좋으면 1주일”… 6일 체인작업

    [천안함 침몰 이후] 인양업체 “날씨 좋으면 1주일”… 6일 체인작업

    침몰된 천안함 인양작업에 나선 군과 민간 전문업체는 5일 본격적인 인양준비에 나섰다. 민간 전문업체들은 2명씩 3개조의 잠수사를 바다 밑으로 내려보내 선체가 놓인 각도, 해저지형, 체인 감을 위치 등을 파악하는 사전조사를 펼쳤다. 함미 부분을 끌어올릴 2200t급 해상크레인 ‘삼아 2200호’는 전날 사고해역에 도착, 이날까지 크레인을 작업위치에 고정시키는 작업을 마쳤다. 함미 침몰 지점에서 6.4㎞ 가량 떨어진 곳에서는 함수 부분에 대한 인양작업도 동시에 진행됐다. 인양업체 관계자는 “5일 사전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했다.”면서 “기상상태만 좋으면 내일부터 체인작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은 선체 인양작업과는 별개로 9척의 함정과 헬기 2대 등을 동원해 백령도 해상에서 실종자 및 함체 잔해 부유물을 찾는 탐색작업을 펼쳤다. 해군 관계자는 “실종자 구조작업은 중단됐지만 해상 및 해안에 대한 탐색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침몰된 천안함 인양 작업이 당초 예상보다 빨리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문가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르지만 민간업체가 축적한 기술과 경험으로 볼 때 지금까지 통설처럼 돼 온 ‘한 달 이상’보다는 훨씬 앞당겨 인양할 수 있다는 것이 공통적인 분석이다. 군에 천안함 인양작전을 자문한 진교중(58) 예비역 해군 대령은 인양작업 소요시간을 최단 1주일, 최장 20일로 분석했다. 진씨는 “배가 놓여진 상태 등을 파악하는 사전조사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면서 “조사가 끝나면 바로 함체에 체인을 감는 작업이 시작되는데 1주일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진씨는 “고난도인 체인작업만 끝나면 크레인으로 끌어올리는데는 서너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다만 파도, 조류, 안개 등이 변수가 될 것”라고 강조했다. 해난구조대(SSU) 출신인 진씨는 1993년 서해 훼리호, 98년 여수 북한 잠수정, 99년 동해안 북한 잠수정 인양작전을 지휘했다. 함미 인양을 맡은 ‘88수중개발’의 이청관(70) 전무의 견해도 비슷하다. 이 전무는 “조류가 빠르지 않은 ‘조금’ 때에 집중적으로 작업하면 1주일이나 10일 안에 끝낼 수 있다.”며 “6∼7일 시작되는 ‘조금’을 놓치면 보름을 기다려야 하는 만큼 야간작업이라도 펼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천안함 함미가 함수보다 인양작업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해저 침몰위치가 함미(45m), 함수(25m)로 2배 차이에 불과하지만 기압 때문에 함미가 훨씬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곳곳서 한숨·탄식소리” “이제 대화마저 끊겼다”

    4일 이른 아침부터 경기 평택 해군 2함대 예비군 훈련장 실종자 가족 숙소에는 침울함과 비통한 분위기가 무겁게 감돌았다. 실종자 수색 및 구조작업 중단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뒤라 희망을 얘기하는 가족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웠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가족들에게 이번 결정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무엇에 기대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을 힘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숙소 복도에서는 울다 지쳐 힘이 빠진 실종자 어머니들이 다른 가족들의 부축에 의지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숙소 한쪽에 마련된 이동진료소에는 몸과 마음이 지친 가족들이 진료를 받고 있었다. 일부는 몸을 옮기기조차 힘들어 의료진이 직접 가족들의 방을 찾았다. 숙소 곳곳에서는 실종자 가족들이 링거 바늘을 팔뚝에 꽂은 채 허망한 표정으로 천장만 응시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이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남기훈 상사가 백령도에 정박 중인 독도함에서 헬기로 2함대 임시 안치소로 운구되는 과정을 TV로 지켜봤다. 상당수 가족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곳곳에서 한숨소리와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울음과 위로의 말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혹시 다른 실종자가 발견될까 하는 기대에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가족들도 많았다. 심영빈 하사의 동생 영수(25)씨는 “모두들 (남 상사의 사망 소식을) 자기 일처럼 힘들어한다.”며 “어머니가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셔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슬퍼했다. 주말을 맞아 많은 친지들이 실종자 가족을 찾았지만 무거운 공기가 흘러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박경수 중사의 사촌형 경식(36)씨는 “구조작업이 한창일 때는 가족들이 TV를 보며 가끔 대화라도 했는데, 이제는 그마저 끊겼다.”면서 “인양작업에 시간이 걸린다니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며 숙소 분위기를 전했다. 가족 숙소를 찾은 친지들은 부대 내 성당과 교회, 절을 찾아 실종자 추가 발견과 극적 생환을 기대했다. 한편 남 상사가 살았던 평택 해군 아파트는 하루 종일 슬픔에 잠겼다. 이 아파트에는 실종 승조원 6명이 살고 있다. 이곳에 사는 이모(30·여)씨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는데 안타깝다. 너무나 슬프다.”고 안타까워했다. 백민경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사설] 민간지원 금양호 희생도 국가가 예우해야

    천안함 실종 장병들을 구조하기 위해 지원에 나섰던 저인망 쌍끌이 어선 금양 98호 사망·실종자들이 국민들을 안타깝게 한다. 더욱이 금양 98호 침몰 뒤 조난위치 자동발신장치가 작동했는데도 해양경찰청 관계자들의 착오로 구조가 1시간 가까이 늦어진 건 이유 여하를 떠나 유감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금양 98호 실종이 천안함 수색과정과 무관하다고 했지만 금양 98호는 분명 정부의 요청에 따라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위해 조업 해역인 충남 앞바다를 떠나 낯선 백령도 해역까지 가 수색작업을 했다. 수색이 거친 조류 등으로 힘들자 중단하고 일단 철수하다 역시 낯선 밤의 뱃길에서 사고를 당했다. 김재후 선장을 비롯한 쌍끌이 어선 선장들은 작업 후 그물이 찢어지는 등 손해가 있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실종자 수색작업을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고도 한다. 조국이 부르면 언제라도 위험지역에 다시 달려가겠다는 애국심이다. 함께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어선 관계자들이 “같은 바닷사람끼리 뭘 해줄 수 있겠느냐. 내 아들이 군대에 가서 그렇게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작은 단서라도 건져 올리겠다고 보여준 결의는 울림이 크다. 애국에는 크고 작음이 없다. 그들의 애국심이 결코 홀대나 차별을 받으면 안 된다. 인간애를 발휘한 외국인 선원의 희생도 적절히 평가받아야 한다. 정부는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면서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실종·사망한 금양 98호 선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를 검토해야 한다. 특히 “저인망어선 선원 다수는 1년 중 10개월을 바다에서 보내기 때문에 가정을 제대로 못 꾸린다.”는 주변사람들의 말을 새겨봐야 한다. 이런 민초들이 국가의 부름을 받고 주저없이 나선 것은 너무 장하고 또 장하다. 예상대로 금양호의 선체나 선원들의 보험금은 미미하다고 한다. 가족들이 정부에 보상금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는 선원들의 고귀한 행동을 욕되게 한다. 그보다는 정부가 앞서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적용을 검토해 보길 우리는 적극 권고한다. 국가가 외면하면 누가 위험을 무릅쓰겠는가. 금양 98호 선원들의 희생은 국민 애국심 고취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
  • [천안함 침몰 이후] 함미 절단면 식당 통로서 시신수습

    고(故) 남기훈 상사는 백령도 서남쪽 2.4㎞ 해역 수심 45m에 가라앉은 천안함의 함미 원·상사 식당 부분에서 발견됐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요원 석규주(34)·송하봉(32) 중사는 3일 오후 5시59분쯤 함미 절단면을 수색하다 남 상사의 시신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쌍끌이어선 금양호 실종’침통’ 4일 석 중사 등에 따르면 천안함은 함정의 가운데에 위치한 원·상사 식당이 절단돼 있었다. 시야가 30㎝에 불과해 석 중사 등은 손 감각에 의지해 함미의 바깥쪽 절단면을 확인한 뒤 식당안으로 진입하다가 남 상사의 시신을 발견했다. 천안함 침몰 이후 8일만에 첫 번째 실종자가 발견된 순간이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고 수중이어서 거수 경례를 할 여유도 없었다. 석 중사는 “천안함 절단부 조사를 위해 원·상사 식당 방향으로 더듬어 가다가 소방호스인 줄 알고 잡았던 것이 사람 다리였다.”면서 “원·상사 식당 통로쪽에 시신이 끼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얀색 천을 두르고 밴드에 묶인 채 남 상사의 시신은 보트에 실려 광명함을 거쳐 인근 독도함으로 이송됐다. 남 상사의 시신은 해군 2함대 안치시설로 들어갔다. 남 상사가 발견된 위치는 지난달 26일 사고 직후 해군2함대 측이 생존 승조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실종자 위치’<서울신문 3월29일 5면 참조>와 맞아떨어진다. 이에 따라 실종 승조원 상당수가 함미에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승조원 일부는 빠른 조류에 휩쓸려 함미 밖으로 이탈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해군 측은 보고 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사고 당시 원·상사 식당에서 함미쪽 방향으로 봤을 때 뒤쪽에 승조원 식당이 있었고, 실종된 이창기 원사 등 7명이 간식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두 식당 가운데는 주조종실(MCR)이 있고, 최한권 상사 등 6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주갑판층 아래 지하1층에는 중사휴게실과 후타실이 있다. 중사휴게실에는 문규석 중사 등 5명이, 후타실에는 손수민 하사 등 5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해군은 후타실에 운동기구가 있어 손 하사 등이 사고 전 운동을 하기 위해 들렀던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층 기관부 침실에는 신선중 하사 등 13명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관가 포커스] “현장서 가장 보고 싶은건 생존자”

    “(구조작업을 하면서) 가족보다 생존자의 얼굴을 더 보고 싶었습니다.” 백령도 인근에서 침몰한 해군 천안함 실종자 구출에 나섰던 소방방재청 중앙119대원들은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날씨 등이 도와주지 않아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중앙119구조대의 구조능력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올 초에는 아이티 지진현장에도 출동했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내든, 외국이든 사고 현장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은 가족이 아닌 생존자의 얼굴이라고 한다. ●해군 실종자 구조작업 때도 출동 천안함 실종자 구조작업에 나섰던 백근흠 중앙119구조대 긴급기동팀장은 4일 “중국·아이티 지진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재해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했지만 이번만큼 마음이 아팠던 적은 없었다.”면서 “모두가 동생·후배 같아 빨리 구해내고 싶었는데 날씨까지 협조를 해주지 않으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중앙119구조대는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불암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1995년 창설 이후 국내외 각종 재난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펼쳐온 119구조대의 본산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한발 앞선 대응, 즉각적인 출동은 중앙119구조대의 본분이다. 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구조대원은 평소 실전과 같은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전 대원은 분기별 1회 이상 산악, 수난, 항공, 화생방 훈련을 통해 구조능력을 향상시킨다. 당연히 구조대원들은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무장돼 있다. 그렇지만 구조대원이 슈퍼맨이 아닌 이상 크고 작은 재난현장에서는 적잖은 부상을 입는 경우도 많다. ●타이완에선 활보살로 추앙 해외에서 대형재난이 발생하면 중앙119구조대는 국제구조대를 편성해 구조활동에 나선다. 출동지는 모두 아비규환의 현장이다. 지난 1월 국제구조대가 출동한 아이티 지진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물과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리마다 방치된 주검과 가족을 잃은 아이티 국민의 울부짖음이 가득했다. 국제구조대의 출동은 1997년 캄보디아 민항기 추락사고를 시작으로 터키, 타이완, 알제리, 중국, 인도네시아, 아이티 등 14회에 걸쳐 재난으로 어려움에 처한 국가에서 헌신적인 구조활동을 펼쳐왔다. 실제로 타이완 정부는 1999년 9월 대지진 때 우리 119구조대가 당시 6세 소년을 극적으로 구조한 것에 감사하는 동상을 세운 후 살아있는 보살을 의미하는 ‘활보살(活菩薩)’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지진파로 볼때 어뢰나 기뢰 가능성”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천안함 침몰 당시 사고해역인 백령도 인근에서 지진파를 감지한 것으로 확인돼 사고 원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전문가들은 기뢰나 어뢰 폭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사진]침몰 천안함… ‘무심한 하늘’ 해군 전문가인 김태준(전 공주함 함장)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은 2일 전화 인터뷰에서 “지진파를 기준으로 볼 때 기뢰 아니면 어뢰 두 개를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따르면 천안함 침몰시각과 비슷한 지난달 26일 오후 9시21분58초에 백령도 인근에서 리히터 규모 1.5의 지진파가 감지됐다. 지질연은 170~180㎏의 TNT가 폭발한 것과 같은 위력이라고 설명했다. 지질연이 일반적인 지진일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어 기뢰나 어뢰, 암초 충돌에 의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김 소장은 지진파의 정도가 강하다는 점에서 계류기뢰와 부유기뢰보다는 해저기뢰일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계류기뢰와 부유기뢰는 떠다니는 기뢰이기 때문에 지진파가 생기더라도 정도가 약하다.”면서 “해저기뢰는 지진파가 보다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암초에 의해 지진파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국방부는 사고 해역에 암초가 없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한 바 있다. 김 소장은 “1200t의 배가 탄약과 연료를 싣고 12노트의 속도로 움직이면 엄청난 힘이 발생한다.”면서 “암초가 없다는 발표가 있지만 배가 밑바닥에 걸리면 지진파가 발생할 수 있어 여러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기뢰나 어뢰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아 이번 사건이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제시했다. 김 소장은 “기본적으로 어뢰나 기뢰가 폭발하면 강한 물기둥이 치솟게 되고 함교 좌우 양측에 근무하는 장병이 모를 리 없다.”면서 “기뢰가 폭발하면 그 힘 때문에 수많은 파편이 생기는데 이런 것이 없다고 해 혼돈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종적인 원인은 함정을 물 위로 끌어올려서 과학적인 정밀 감식을 해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무슨 얘기든 상상력만 가지고 하는 얘기에 불과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소장은 일직선으로 북쪽으로 이동한 미상물체가 새떼라는 국방부의 발표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보통 식별되지 않은 물체에 대해서는 (포를) 한 발 내지 두 발 쏜다.”면서 “새떼는 130발을 쏘기 전 이미 흩어진다.”고 주장했다. 정현용 김양진기자 junghy77@seoul.co.kr
  • 수색 참여 저인망어선 실종

    수색 참여 저인망어선 실종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참여했던 쌍끌이 저인망어선 1척이 2일 사고해역 근처에서 실종됐다. 실종 해역 인근에서 기름띠 등이 보여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오후 8시30분쯤 인천시 옹진군 대청도 남서쪽 48km 해상에서 선원 9명을 태운 99.48t급 저인망어선 98금양호(선장 김재후·48)로부터 조난신호 자동발신장치(EPIRB)를 감지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해경은 마지막으로 조난신호 발신장치가 작동된 해역에 파견한 경비함정이 기름띠를 발견함에 따라 어선이 침몰한 것으로 추정하고 주변 해역에서 선박과 선원들을 찾고 있다. 이 어선을 비롯한 쌍끌이어선 10척은 오후 3시10분부터 17분까지 백령도 천암함 사고 해역에서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그물이 파손되는 등 문제가 발생해 작업을 중단하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금양호가 수색을 마치고 조업을 하다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해경은 또 인근에서 항해중이던 캄보디아 선적 1472t급 화물선이 98금양호와 충돌한뒤 도주해 어선이 침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 화물선도 함께 추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도 “쌍끌이어선들은 잠시 수색작업을 하다 그물 파손으로 금세 돌아갔다.”면서 “천안함 수색작업과는 무관하게 조업을 하다가 실종된 것 같다.”고 했다. 해경은 경비함정과 헬기 등을 동원해 실종 어선들을 찾고 있다. 해군도 해경 지원 요청을 받고 링스헬기와 조명항공기, 초계함 등을 급히 투입해 수색활동에 나섰다. 실종된 선원들은 선장 김씨와 안상철(41), 박연주(49), 김종평(55), 이용상(46), 정봉조(49), 허석희(33)씨, 인도네시아인 유수프 하에파(35), 캄방 누르카이(36) 등이다. 김학준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사진]침몰 천안함… ‘무심한 하늘’
  • [천안함 침몰 이후] 가족들 “구조 끝날때까지 바다 안떠난다”

    [천안함 침몰 이후] 가족들 “구조 끝날때까지 바다 안떠난다”

    2일 오후 인천 옹진군 백령도 앞바다의 천안함 함미 수색해역은 하루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구조작업을 지휘하는 광양함 갑판 위에서는 실종 승조원 가족 10여명이 해난구조대(SSU)와 해군 수중폭파팀(UDT) 소속 잠수사들의 구조 활동을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사진]침몰 천안함… ‘무심한 하늘’ 일부 가족은 광양함에 내리자마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오열했다. 대부분은 실종 승조원들의 이름을 외치며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를 원망스레 내려다봤다. 가족들은 오전 악천후로 중단된 구조작업이 재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군용 헬기를 타고 이곳으로 날아왔다. ●“軍 믿고 구조 기다릴뿐” 실종자 박경수 중사의 형인 경식씨는 “답답한 심정에 가족들이 힘들고 지친 가운데에서도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 현장으로 달려온 것”이라면서 “배를 인양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테니까 지금은 군을 믿고 실종 승조원들부터 구해내야 할 때”라고 울먹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광양함과 독도함에서 당분간 머물며 수색작업을 참관한다. 해군 관계자는 “구조 작업이 잘 안 보이면 가족들과 함께 고속정(참수리)을 요청해 더욱 가까이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함미 구조 현장의 바다는 여전히 거칠었다. 애타는 가족들의 심정을 모르는 듯 파고는 1.5~2.5m로 높았고, 바람도 매서웠다. 수온 3.5~5도, 유속 2~3노트로 잠수 여건도 좋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들은 실낱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한 가족은 “내 자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살아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마지막 시신 한 구가 나올 때까지 이 곳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라며 울먹였다. ●해병보트 10여척 사고해역 수색 높은 파도를 헤치고 해병대원 4~5명을 태운 검은색 고무보트 10여척이 실종자와 유류품을 발견하기 위해 사고 해역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산소통 2개씩을 등에 짊어진 잠수사들이 함미 지하 1층 승조원 식당으로 진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군은 24개조 48명의 잠수 요원을 투입, 실종자가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함미 부분에 인도줄을 연결, 왼쪽 출입구를 통해 격실진입을 시도했다. 이와 함께 해군 함정과 해경 방제정 등도 함미와 함수가 발견된 해역 일대에서 수색 작업을 벌였다. 다른 실종자 가족 44명도 구조작업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오후 8시쯤 부천함을 타고 해군2함대 사령부를 출발했다. 3일 오전 7시쯤 사고현장에 도착한다. 공동취재단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현지 어민들 “선체인양 6~7일이 적기”

    천안함 침몰지역 바닷속 상황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험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 지역 어민들은 자신들의 조업 경험도 수색에 참고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어민들은 사고 해역 물살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에서도 가장 거세다고 전했다. 이들은 “바닷물이 차는 사리와 그 반대인 조금이 7∼8일 간격으로 반복되는데, 조금이 시작되는 오는 6∼7일쯤 선체 인양작업을 하면 좋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자문까지 했다. 군이 수색작업에 첨단장비를 동원하는 동시에 어민들의 지식과 경험도 최대한 받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민들의 주장은 과학적 지식과도 일치하고 있다. 백령기상대는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 있는 사고해역은 조류가 다른 해상보다 2∼3배가량 빠르다고 공식 확인했다. 유속이 빠른 것은 지형과도 관계 있다. 백령기상대 관계자는 “사고 해역은 대형 섬인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 낀 바닷물 길목으로 유속이 매우 빠른 곳”이라며 “선체 인양은 조금이 시작되는 6일쯤이 무난할 것”이라며 어민들과 같은 주장을 폈다. 섬과 섬 사이로 마치 계곡처럼 생긴 지형이라 물살이 빠르다는 것이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사진]침몰 천안함… ‘무심한 하늘’
  • 금양98호 침몰시킨 외국 화물선 나포

    금양98호 침몰시킨 외국 화물선 나포

     ‘천안함’에 수색작업에 나섰던 저인망 어선 ‘금양98호(99t)’는 외국 화물선과 충돌해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 어찌 이럴수가… ‘쌍끌이 어선’ 금양98호 침몰  인천해양경찰서는 캄보디아 국적 화물선(1472t)이 2일 오후 8시30분쯤 인천시 옹진군 대청도 서방 30마일 해상에서 발생한 금양98호 침몰사고의 가해 선박으로 보고 나포했다고 3일 밝혔다.  인천해경은 금양98호 침몰 이후 사고해역을 통과한 선박 6척의 항로를 조회하던 중 유일하게 사고추정 시각에 해당 해역을 통과한 캄보디아 국적 화물선 1척을 발견했다.  해경은 즉각 경비함정으로 추적에 나서 3일 오전 2시쯤 사고해역 북서쪽 50마일(93km) 해상에서 해당 선박을 수색한 결과, 뱃머리 부분에 충돌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선장을 추궁해 선박충돌 혐의를 시인받았다.  해경은 금양98호의 침몰 원인을 신속히 밝히기 위해 화물선을 당초 계획했던 인천항이 아닌 검거가 이뤄진 해역에서 비교적 가까운 대청도로 이동시켜 조사하기로 했다.  해경은 대청도에 수사관들을 보내 화물선의 충돌 흔적을 정밀감식하는 한편 승선원들에 대한 조사도 펼칠 방침이다.  선원 9명을 태운 금양98호는 2일 오후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수색작업을 펼쳤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조업장소를 향하다 사고를 당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金국방 “어뢰 가능성이 좀더 실질적”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2일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 “어뢰와 기뢰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 모두 있지만 어뢰 가능성이 좀더 실질적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국회본회의 긴급현안질문에서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이 “어뢰나 기뢰일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사진]침몰 천안함… ‘무심한 하늘’ 김 장관은 그러나 “사고 당일 소나(SONAR·음파탐지)병이 어뢰 접근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군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 “북한 해군 기지에 있는 잠수정을 계속 관찰했는데, 지난달 24일부터 27일까지 확실히 보이지 않은 잠수정 2척이 있다.”면서 “그러나 기지에서 백령도까지의 거리가 멀고 잠수함은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어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은 별로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김 장관은 암초 충돌 개연성에 대해서는 “사고 당일 풍랑이 워낙 강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현실성은 다소 떨어진다.”고 했다. ‘피로파괴’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그런 것도 가능하지만 천안함은 낡은 것이 아니어서 피로파괴될 정도는 아니다.”고 했다. 내부폭발 여부에 대해서도 “포탄은 발사와 동시에 안전장치가 풀려야만 폭발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침몰 당시 열상감지장비(TOD)를 찍는 병사가 ‘물기둥을 본 것 같다.’는 진술을 했고 ‘기름냄새가 났다.’는 진술도 있다.”고 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