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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족 문예지(송화강 5천리:6)

    ◎사무실 한칸없이 창간… 겨우 명맥만/「장백산」·「송화강」·「도라지」 3종 심각한 재정난/조선족 구독률도 저조… 외부지원으로 지탱 송화강유적 조선족문단에서 내는 문예지로 「장백산」 「송화강」 「도라지」가 있다.「장백산」은 길림성 장춘시 남관구 서사도가 16에,「송화강」은 흑룡강성 하얼빈시 건국가 210에,「도라지」는 길림시 통담대로(통담대로) 1에 사무실을 두었다.이 세 문예지를 일러 「장백산(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도도히 흐르는 송화강가에 아름답게 피어난 도라지꽃」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그렇듯 기대를 모으던 문예지들이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장백산는 헐벗어 송화강물은 메말라가고,도라지꽃은 시들어가는 꼴이 되고 있는 것이다.그 가운데서도 「장백산」은 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하얼빈시와 길림시에서 격월간 「송화강」과 「도라지」를 창간하자,12만 조선족을 가진 통화지역에서 자극을 받고 1980년5월에 창간된 것이 「장백산」이다.그리고 나서 1990년에 본거지를 통화에서 장춘으로 옮겼다. ○성 정부서 자금등 지원얻어 장춘시에 있는 장백산 편집실을 찾아갔을때 사무실분위기는 한마디로 썰렁했다.「장백산」을 창간한 실제의 주역 김택원 선생은 이미 세상을 떴고,편집자 한 분인 소설가 이여철(42)씨는 한국에 가느라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마침 자리를 지키고 있던 주필 남영전 선생과 편집인 김영수 선생이 느닷없이 찾아간 손님이 반가웠던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이 들려주는 「장백산」 창간무렵의 사정은 어려웠다.지금도 어렵지만 당시를 회상하면서 연신 「가방편집부」라는 말을 썼다.말이 편집부지 사무실 한칸은 고사하고 책상 하나 없이 원고보따리를 들고 천리 밖 심양으로 인쇄하러 다니던 시절을 그런 말로 표현했다.통화에서 심양까지 가면서 대합실·찻간·여관 등을 전전하면서 「장백산」을 편집해서 독자 앞에 내놓았던 것이다. 「장백산」 창간에는 다섯명의 문인이 참가했다.정확히 1980년5월에 창간호가 나왔는데,창졸간에 나온 터라 그 질이 높지는 못했다는 것이다.인쇄·장정·삽화가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러나 병신이라도 제자식이 귀엽다고 「장백산」 창간호에 대한 애정은 대단했다.독자의 관심도 높아 지금의 백산시인 당시 혼강에 살던 김영철노인은 일흔두살인데도 통화까지 걸어와서 「장백산」을 구독하고 춤까지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그런데 폐간위기는 곧바로 몰려왔다.1982년 5월 운남성에서 열린 전국소수민족작가필회에 참가하고 있던 남영전에게 한통의 전보가 날아왔다.김택원선생이 보낸 전보는 비보였다.「잡지가 폐간될 처지니 만사 접어두고 돌아오라」는 전보를 받은 남영전은 한동안 망연자실했다.처음에는 돌아갈 생각도 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한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한 밀사의 심정으로 회의장에 나가 호소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필회에 참가한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윤해산처장을 먼저 찾아가 「장백산」 폐간위기를 알렸다.그리고 필회에서 소수민족의 작은 잡지 하나가 살림을 꾸리지 못하고 쓰러져야 하는 현실을 개탄했다.그의 발언은 많은 동정과 함께 「장백산」을 살려야 한다는 성원을 받았다.그후 윤해산처장은 중앙에 필회결과를 보고하면서 「장백산」의 딱한 처지를 알렸다.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길이 열렸다. 국가중앙판공실과 길림성 당위원회는 우선 등소평동지가 길림성 방문 때 「장백산」이라고 써준 휘호와 그의 백두산 등정모습을 담은 사진을 잡지에 싣도록 했다.그러고 나서 자금도 길림성정부가 해결해주었다.또 1983년 3월에는 공식간행물로 등록하는 한편 중국작가협회 길림분회 기관지로 비준받는 행운을 잡았다.중국에서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격려도 잇따라 들어왔다. 그렇다고 「장백산」이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장백산」을 살려내기 위해 중국을 백방으로 뛰었던 남영전 선생은 오늘의 「장백산」 현실을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지금은 길림성 민족사무위원회서 해마다 14만원을 대줍네다.그 돈으로 잡지를 꾸려나가기는 사실상 어렵디요.통화에서 장춘으로 이사를 오면서리 편집일꾼들의 집을 사느라 30만원의 빚까지 졌습네다.기리고 종이값과 인쇄비가 해마다 올라 더 어렵디요.올해는 길림성재정청에서 8만원을 부조해주어 숨을 돌리긴 했수다.창업시기에 대면 화수분이긴 합네다만…』 ○조선족 구독 14명당 1권 불과 지난 1994년 전국적으로 출판물이 불황을 겪을 때도 전국 판매량은 62억2천4백만권에 달했다.12억인구가 1인당 5권의 책을 산 셈이다.그런데 한글도서는 2백만 조선족인구 모두에게 1권씩도 채 못 돌아갔다.중국에서 발행되는 잡지는 모두 7천92종인데 한글잡지는 겨우 14종뿐이다.더욱 한심한 일은 조선족 잡지구독률이 전국 평균치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이다.전국 평균치는 1인당 2권인 데 비해 조선족의 한글잡지구독은 14명당 1권을 넘기지 못했다.한글잡지는 80년대만 해도 저마다 찍었다 하면 1만부였는데,지금은 고작 5천∼6천부를 발행하고 있다. 독서와 관련한 우스운 이야기 한토막.어느 회사사장이 수하의 과장들을 불러 자기가 한턱을 내겠다면서 모두 차에 태웠다.그러나 차가 당도한 곳은 요리집이 아니라 서점이었다는 것이다.『돈은 내가 낼 터이니 2백원어치씩 책을 골라가라』는 사장의 권유에 따라 과장들은 책을한보따리씩 들고 나올 수밖에….그것도 한글도서였는데,사장이 한족이었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도라지 문학상」 제정 시상도 길림시에서 나오는 「도라지」는 한국의 월간 「아동문학사」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아동문학사의 지원금으로 「도라지문학상」을 운영하면서 한국의 만나식품의 후원금으로는 조선족작가자제장학금을 마련해놓았다.한국 아동문학사의 지원은 지난 1991년 김철수(46) 사장과 「도라지」부주필 고신일 선생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그들의 만남은 북경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이루어졌는데,김사장은 우리말과 글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조선족의 삶에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러시아를 방문했을때 우리 말과 글을 까많게 모르는 동포처녀들이 작별인사 대신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던 정경이 슬펐다는 김철수 사장.그는 중국동포만이라도 자신들의 뿌리를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에서 「도라지」 지원을 약속하고,또 실천에 옮겼다.그래서 지난해 제1회 「도라지문학상」 시상식을 가졌다.이 시상식에는 김사장과 동행한만나식품 김영록사장도 참석했다.동포작가 자제를 위한 장학기금지원제의는 시상식자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 권력승계와 군부실세(이철수 대위의 증언:2)

    ◎80년대 중반 「곁가지 치기 운동」… 동생부터 제거/“김 부자밖엔 모른다” 이진우가 앞장서/보안부 권한강화… 김정일 앞잡이 활용/군서열 김정일→최광→조명록→김영춘→김명국 순/개방틈탄 밑으로부터의 동요 막게 “전쟁준비” 지시 30년 가까이 「김정일이 최고다」「김정일이 온당히 김일성의 대를 이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며 김정일을 부각시켜 왔다.당의 모든 선전·교양사업은 주민들을 김정일의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는데 집중돼 왔다.이 결과 북한 주민들은 현재 「김정일이 위대한 수령이다」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이토록 오랫동안 교육을 해왔으니 김정일이 후계자로 올라서는데 문제가 있을 수 없다.김일성이 살아 있을 당시도 김정일은 모든 업무를 보고받았으며 자기가 처리하지 못할 일만 김일성과 「토론」했다.김일성도 생전에 『나는 조선에 또 한 명의 장군이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자주 말했었다.사정이 이러하니 주변사람들 또한 김일성이 늙어갈수록 오직 김정일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장성택·김정일최측근 김정일의 측근 실세가운데 김정일의 누이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이 최고로 꼽힌다.이미 장성택에게 붙는 사람이 많다.김정일이 주석이 되면 그도 중요한 직책에 임명될 것이다.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김정일 이외는 누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알려주지도 않는다.알려고 하면 문제시된다.김일성과 김정일 이외에 김일성의 가계에 대해 말하거나 알려고 하면 「종파분자」로 몰린다.「조선에는 오직 김정일밖에 없다」고 교육하고,그렇게 믿을 뿐이다.『어느 간부가 좋다.정말 잘한다』는 말을 할 경우에는 군 정치부·보위부에 즉각 포착되고 이름이 거론된 당사자는 영문도 모른채 호출돼 쿠데타음모를 꾸민게 아니냐는 추궁을 받게 된다.「잘한다」고 생각하는 제3자를 보호하려면 아예 『좋다』 『나쁘다』는 식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이렇듯 군부를 완전히 틀어쥔 김정일은 『총대는 정권에서 나오고 이 총대 위에서 정권이 유지된다.노동당이 총대를 장악해야 한다』고 지시하고 있다.오직 당과 군대를 통해서만 조국통일도 하고,주체혁명 위업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군대와 당 가운데 어디가 우위인가 묻는다면 당연히 당이다.정치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북한으로서 노동당 말고는 볼 게 없다.군부 내 엘리트 그룹들이 쿠데타나 반기를 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그런 말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쿠데타같은 말은 꺼내지 않는게 현명할 뿐이다.또 있을 수도 없다. ○“김정일 밖에 없다” 교육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없으면 조국도,인민도,우리도 없다.오직 김정일을 따라야 찬란한 내일과 희망이 있다』고 선전하고 그렇게 믿는다.이같은 김정일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는 「조선의 하느님」이라는 김일성에 대한 믿음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94년 김일성이 죽었을때,인민들이 울며 불며 한 것은 모두 진심에서 나온 것이다.누가 「지금부터 마구 울라」고 지시해서 우는 것 아니다.사람들이 너무 무질서하게 마구 몰려드는 바람에 단체별로 시간을 배정해 참배객을 받기도 했을 정도다.북한 사회를 남한의 잣대로 재서는 안된다.잘못된 것이 분명하지만 그들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서울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을때 당시 연형묵 총리가 남한의 고위층 인사와 술자리를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취해 『우리끼리 싸움하면서 조선사람끼리 서로 죽이는 일이 있어서는 되겠는가.평화적으로 통일하자,그런 다음 함께 옛날 고구려 땅을 같이 찾자』라고 말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김정일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북한의 속마음은 그런게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를 총리에서 자강도 도당책임자로 떨어냈다. ○오진우 노여움 사 강등 그러나 연형묵이 총리에서 떨어져 나간 「진짜 화근」은 「인민생활이 이렇게 한심한데 국방비에서 1∼2% 떼서 인민생활에 돌리자」고 한 건의였다.당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이 소식을 듣고 김정일에게 말도 안된다며 강력히 반발했고,김정일은 오진우의 말을 따랐다.그만큼 군부의 말에 김정일이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오진우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기전인 70년대 초 김일성과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그의 아들 김평일 등이모인 곳에 배석했다가 김정일이 없는 자리에서 후계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보고 『백두산의 김정일이 있는데 누가 흐지부지 다른 사람을 말할 게 있는가』라며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이같은 호통에 김정일의 친위대인 호위국 요원들이 들어와 「김성애 일파」를 끌어 냈는데 당시 김일성은 한마디도 안했다고 한다.이처럼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세우는데 있어 오진우의 공적은 대단했다.이 때문에 김정일은 오진우가 살아있을때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랐다. 특히 오진우는 지난 80년대 중반 김정일이 「당에서 곁가지를 칠 데 대하여」라는 교시를 들고 나왔을 때 이를 가장 먼저 군에서 실천했다.당시 김정일은 『당에 곁가지가 있을 수 없다.김일성 이외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확고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며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확립을 들고 나왔다.이에 오진우는 인민군대에 「김일성·김정일 이외는 누구도 모른다」는 관점을 갖고 일할 것을 지시했다.이 결과 김평일을 추종하던 종파들은 모두가 제거됐으며 김평일은 이후 외국에 대사로 쫓겨났다. ○김평일 군사지식 탁월 김평일은 김일성의 품격과 인격을 가장 많이 닮았고,미남에 목소리도 김일성과 꼭 닮았다.특히 그는 군사에서도 천재라는 평판을 군 내부에서 듣고 있었다.김일성군사대학을 나왔으며 일선 부대 대대장까지 지냈다.83년 무렵 김일성은 직접 『앞으로 조선의 정치를 보려면 정일이를 보고,군사를 보려면 평일이를 보라』고 말할 정도로 김평일의 군사 지식은 대단했다. 김정일의 「곁가지 치기운동」은 바로 김일성의 이 발언 직후에 나왔다.김정일은 「조선에는 김일성 이외는 누구도 없다」는 이 운동을 펼치며 김평일을 견제하고 꺾어버린 것이다.어쨌든 군부에서는 김평일을 모두가 높게 평가했다.그를 인정하고 추종하는 사람이 많았었던 것은 사실이다. ○군내 정보수집 주업무 그러나 이제는 그같은 일은 있을래야 있을 수도,있지도 않다.그런 말했다가는 「목이 날아간다」.군대내에서는 완전히 정리됐다.반정부 음모 및 반당분자를 밝혀내고 잡아내는 보위부 권한이 현재 북한 군내에서 가장 막강하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과거 군대 조직상 보위부는 정치부의 통제를 받았는데 이제는 「뚝 떨어져 나와」 암행어사식으로 활동한다.국가보위부장은 현재 과거 공군사령관을 지낸 이원웅이 맡고 있다.보위부는 군내 사상동향을 파악하고 반당분자를 적발하는 등 정보수집 업무를 한다. 군부의 인사 결정권은 정치부에 있다.일선부대 정치위원과 정치 지도원,중대 정치지도원,대대 정치지도원 등 정치부 일꾼들이 장악하고 있다.중대장이나 대대장,연대장은 허수아비다.군대 안에는 정치부,보위부,참모부,후방부 등 여러 부서가 있지만 보위부를 뺀 모두가 정치부 아래에 있다. 과거에는 보위부도 정치부의 통제를 받았다.그러나 함북 나남의 6군단 사건으로 보위부의 힘이 세졌다. 함북 청진 나남구역에 6군단 본부가 있는데,현 군 총참모장인 김영춘이 몇년 전 그곳에 군단장으로 부임돼 갔다.군단 실태를 확인해 보니까 군단 전투력이 한심하고 싸움을 할수 없는 정도로 돼 있었다.당시 6군단 보위부는 군단내의 비리현상들,특히 외화벌이와 관련한 숱한 비리현상을 적발,보고하려 했는데 6군단정치부에서 이를 「깔아 뭉갰다」는 것이 확인됐다.김영춘은 이를 「요해」해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했다.김정일은 보위부에서는 일을 제대로 했는데 정치부 때문에 비리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보위부를 정치부에서 「뚝 떼어냈다」.이에 따라 보위부가 자기 맘대로 의심도 하고 뒤로 캐기도 하고 자체 계통을 통해 정보보고를 하게 되자 정치부도 보위부에 절절 메게 됐다.김정일이 보위부의 권한을 높여 준 것이다. 이후 김정일은 지난해 김영춘을 총참모장에 발탁했다.당시 김정일이 김영춘을 총참모장시키기 위해 20년간 검토해왔다는 말이 나돌았다.김영춘은 머리가 좋고 인민무력부에서 못해 본 직무가 없다.정찰국장,작전국장,의료단장,사단장,6군단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나이는 60대이고 러시아 프룬제군사학교를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북한군의 서열은 최고사령관 김정일아래 최광 인민무력부장­조명록 총 정치국장(전 공군사령관)­김영춘 총참모장­김명국 작전국장 순이다. ○정치부가 군부 총지휘 보위부가 독립해서 독자적으로하지만 인사및 북한 군부를 총 지휘하는 것은 정치부이다.김정일은 올 3월에 정치부사람들에 『당 맛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지시했다.당 권한을 「노골적으로 쓰라」는 뜻이다.이때까지는 결함을 보고하면 어떻게든 교양을 시켜 다시 중용했지만 이제는 안되는 사람은 무자비하게 「떼 버리라」는 말이다.정치지도원들은 공공연히 『이제는 비행사 열댓명 없다고 해서 통일 못하는 게 아니다』며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신념이 있소,없소』라는 말을 많이 한다.북에서 말하는 과오라는 것은 바로 이 신념이 흔들린다는 뜻이다.당과 끝까지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투철한 신념이 부족한 사람들,일하던 도중에 비리현상이라든가,당 정책하고 맞지 않는 불평불만을 부르는 현상이라든가를 말로만 교육하지 말고 무자비하게 떼어버리라는 말이다. 김정일은 최근의 나진·선봉개발과 조·미,남북회담과 관련해 자기의 정권을 확고히 하고,밑으로부터의 동요를 막기 위해 올 초 다음과 같은 교시를 내려보냈다.「당의 노선과 정책은 변함이 없다.전략과 전술은 시기시기마다 달라진다.지금 일시적으로 경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사회주의 나라 시장들이 다 무너졌으니까 자본주의 시장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그러려면 이런 저런 나라들과 이런 저런 관계를 맺을수 있는데,옆에서 잘못 생각하지 말고 더욱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라」
  • 대미 평화보장체제 제의 불응 비난(북녘 뉴스라인)

    잠수함을 통해 대규모 무장공비를 남파한 북한은 19일 한·미 양국의 「북침전쟁도발」이 실천단계에 들어서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해 『절대로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미국이 북한측의 새로운 평화보장체계 수립제안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미국의 호전분자들과 남조선 괴뢰들의 북침전쟁책동이 한계점을 이미 넘어서 극히 위험천만한 고비에 들어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주석 박성철,김정일 숭배 촉구 북한은 19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백두산밀영」 창설60주 기념행사를 갖고 전체 당원과 근로자들에 대해 김정일을 절대 숭배하는 충신·효자가 될것을 촉구했다. 내외통신이 20일 평양방송을 인용,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 부주석 박성철은 이날 김정일을 「우리의 운명」 등으로 찬양하면서 전체 주민들은 『그 어떤 정세의 변화 속에서도 오직 장군님만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고 천만리 길을 억세게 걸어나가는 참다운 충신·효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총련에 반정부폭력투쟁 선도 북한은 19일 한총련 조직에 대한 수사를 「폭압만행」이라고 모략·비방하면서 한총련 대학생들의 반정부 폭력투쟁을 선동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한총련 연세대 시위사건과 관련,검찰이 4백38명을 구속 기소한데 대해 『그들의 투쟁은 마땅히 온민족의 찬양을 받아야 할 일이지 결코 탄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비호하면서 『남조선청년학생들은 애국학생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 천백배로 받아내고야 말 것』이라는 등 과격 폭력투쟁 활동을 부채질 했다.
  • “문화·지식관광 개발 과감한 투자를”/진진형 관악구청장(발언대)

    미국의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트 박사가 저서 「그로벌 패러독스」에서 21세기는 물질의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가 중시되는 환경과 문화와 관광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듯 현재 세계 각국은 자국의 문화·관광상품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다. 최근 국제회의의 참석차 영국 등 선진 5개국을 돌아본 결과 관광의 세계적 추세가 하드웨어식 관광에서 소프트웨어식 관광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절실히 체감했다. 즉,현대관광은 이미 한 나라의 수도를 중심으로 하는 깃발식 또는 줄서기식 관광에서 벗어나고 있다.대신 한 나라의 문화유산및 대학가등을 세밀하게 둘러보고 무엇이 그 나라를 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역할을 했는가 하는 문화 및 지식관광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관광산업도 우리실정에 맞는 문화및 지식상품을 개발,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이같은 소프트웨어식 관광상품을 개발하려면 지역별로 산재한 문화재 등 관광자원을 체계적으로 조사,분석해 다양한 문화관광코스를 개발해야 한다.아울러 서울의 물가고와 최고로비싼 호텔숙박료 등은 외국인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장애요인으로 개선돼야 한다. 특히 경기침체와 국제수지 악화 등의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우리의 여행객이 해외에서 올해 쓴 돈이 이미 50억달러에 이른다니 놀랍다.돈쓰기식 해외관광이 아닌 정신적·문화적 확대재생산의 계기가 되는 해외관광상품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한편 관악구는 지난 4월 시내 구청 가운데 처음으로 관광담당부서를 신설,관악산·서울대와 낙성대를 잇는 1일 시티투어상품의 개발등을 추진하고 있다.또 이미 민족의 영산 백두산관광상품을 개발,싼 가격에 운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가 일류국가로 도약하려면 문화및 지식관광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2000년 아셈,2002년 월드컵 등 국제행사에 대비해 관광분야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우리의 미래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 동양화가 박대성(이세기의 인물탐구:104)

    ◎청한­적요가 배인 시인같은 화가/한때 전국산천 스케치… 실경산수” 화풍지켜/인위·조작이 없는 소쇄한 화격에 선모심이… 희부연 연묵과 엷은 보라빛이 먼산을 이루는 가운데 가늘고 섬세한 수목사이로 청명한 물줄기가 운문율처럼 퍼져 있다. 사방이 온통 겨울을 재촉하는 계절의 끝에서 수면에 비친 스산함은 청한과 적요의 시를 흩뿌린다. 인적이 끊긴 촌가며 물가에 매어둔 빈 뱃전에도 긴휴면이 스며들어 보는 이의 가슴에 뭉클한 시심을 던진다. 소산 박대성의 수묵담채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소산은 시인같은 화가다. 실제로 화면에 시를 직접 써넣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카비르의 구절들을 어슷어슷 배경속에 수놓기도 한다. 「저 황홀한 피리소리를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누구의 피리소리인지는, 여기 등불하나가 타고 있다. 불꽃의 심지도 기름도 없이 연꽃 한송이가 꽃피어난다」 그의 작품은 간경·산뜻한 선묘가 특징이다. 묵광의 묘취를 한껏 펼쳐 마치 폭우가 쏟아지고 난뒤의 산자수명을 깊은 사유로 그려내고 있다.그중에서도 지난 94년 1천2백호 대작으로 일컬어지는 「성산포 일출봉」은 갈대가 휘날리는 일대장관을 「풍죽처럼 소화한」 호방한 화면이 일품이다. 이 한폭의 대작을 위해 그는 겨울태풍이 그칠줄 모르는 성산포에 머물면서 배를 타고 몇차례나 섬주변을 돌기도하고 봉우리의 성격을 소상하게 파악한후 「의젓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기상을 포착해냈다」고 말한다. ○추경·초동 즐겨 그려 1천호에 손댄 것은 경주 계림의 고목을 그린 「고목의 정원」이 처음이다. 수백년 풍상속에 의연히 서있는 계림의 노목은 그의 넘치는 화심을 움직여 「미의 내용을 구명하는 작업」에 철저하게 몰두할수 있게했다. 진한 먹을 튕겨서 쓰는 갈필대신 산마호라는 장봉을 써서 큰 그림을 그릴때의 일필휘지의 붓길과 은은한 번지기(휘염)로 변화가 풍부한 산의 형세를 제압한 것이다. 드넓은 공간에 그의 소재들을 들어앉히는 동안 『집사람이 먹을 갈아주는데 정말로 한도 끝도 없이 갈았다』고 웃는다. 부인 정미연씨는 생명이 집결된 누드화로 주목받는 서양화가다. 지방에서 활동하던 소산이 중앙화단에 부상된 것은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다음해 대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그때 심사위원의 한사람이던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새로운 작가, 역량있는 신인을 발견한다」는 대전의 취지대로 「그의 그림은 우선 한눈에 새로웠다」고 못밖는다. 소산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과 「커다란 수확」으로 화단에 받아들여졌다. 그는 주로 늦가을 풍경이나 초동을 즐겨 그린다. 평론가 유홍준은 그의 추경을 보고 「고담한 필묵과 스산한 운치의 적막감이 오늘날 박대성 작품의 미점」임을 상찬해 마지않는다. 작가자신도 아일과 풍요보다 쓸쓸함에 깃든 자연의 천리속에 고격이 숨어있음을 터득하고 있다. 그의 초기그림들은 까슬까슬한 붓자국을 들어낸 석묵으로 소슬한 한국의 산천이 안고 있는 정취를 섬세하게 표출해낸다. 그러나 88년 호암미술관이 초대한 대작전에 이은 최근의 작품들은 벽오동과 청오동, 청람이 넘실대는 바다와 수목에 산호색과 비취색 호박색을 장식하여 화사미를 보인다. 전경은 우람창울하고 원경은 생략과 절제로 짙고 엷고 가늘고 굵은 선과 색채가 상조되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나 그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적 시각은 빠른 붓의 속도와 날카로운 선획으로 스케일이 장대한 대작을 성취하였고 이는 「이제까지의 실경산수의 일반적 유형에서는 맛볼수 없는 다른 화격을 이끌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에대해 오광수는 하나의 형식이나 틀에 안주해버리는 우리 미술풍토에서 「부단하게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그의 자세는 「조선후기의 진경산수와 청전 소정을 중심으로하는 근대산수에 이은 「제3세대」로 정의를 내린다. 그는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화단의 시선을 집중시켰을뿐만 아니라 독학으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가 그림을 공부한 것은 청대초기의 화집인 「개자원화전」이 바탕을 이룬다. 경북 청도 한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3살때 부모를 잃고 왼손마저 다치자 고향의 빼어난 경관을 사생하는 것으로 그는 외로운 시절을 보낸것 같다.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이고 형과 누나들의 도움으로 17세되던해 부산으로 내려가 서정묵화숙에서 사사, 부산동아대가 주최한 국제미전 입상과 21세때 국전 첫입선을 비롯해 연속 8회 입선이 그의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국전서 연속 8회 입선 그러나 연이은 국전입선후에는 당연히 특선이 따르기 마련인데도 학맥 인맥이 없는 그는 번번이 도외시되었고 여기에 한맺힌 그는 「뭔가 최고가 돼야 한다, 실력으로 이 모든 것을 설욕하겠다」는 의지로 전국을 떠돌면서 혼자서 산천을 스케치해 나갔다. 『그림이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놀라서 벌떡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는 고백에는 여전히 저항이 들어가 있다. 그가 화가로서 행운을 잡은 것은 대구매일신문 화랑개관기념 초대전이다. 대구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던 주경과 서동균 등 어느 한쪽을 선택할수 없었던 신문사측이 그에게 기회를 주었고 이 전시를 계기로 대만과 일본초대전에서 그의 그림은 「소산화」로 크게 호평되었다. 당시 대만의 원로화가 양우명은 그의 그림을 「청전 이후」로 비유하면서 대만에 머물 것을 극구 권유했으나그는 중앙화단이 있는 서울에 정착했다. 그리고 뒤늦은 나이인 35세때 효성여대 회화과 출신인 정미연씨와 결혼, 부인의 그림자같은 내조가 「시대감각에 걸맞는 현대한국화」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자녀는 딸만 둘. 성격은 내성적인 편으로 일체의 그룹활동이나 단체전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가 평창동에 화실을 마련한 것은 10년간의 팔당시대를 거친 90년초부터다. 북악터널 못미처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소산의 화실은 선비의 화숙처럼 은일하게 숨겨져 그의 정원과 화실은 하나같이 명품이다. 안방에서 내다보면 북악산 줄기가 사방으로 둘러치고 추분이 머잖은데도 연과 소나무와 죽의 푸르름은 작가의 초일한 화경인듯 시들줄을 모른다. 소산은 독특한 실험정신과 물결치는 소재의 전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는 화풍」을 지켜 기를 앞세운 작업보다 광활한 대자연을 테마로한 서정적 세계로 자기변신을 이루고 있다. 창일한 개성과 영롱한 구슬빛이 감도는 소산의 그림앞에 서면 인위와 조작이 없는 소쇄한 느낌, 거르고거른 영매의 화격에 선모심을 금치못하게 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에 한구절의 시를 품게한다. □연보 ▲1945년 경북 청도출생 ▲66년 국전 18회부터 25회까지 8회 연속입선 ▲68년 부산동아대 국제미전입선 ▲70∼80년 국내서 8차례 개인전개최 ▲74∼75년 태만 공작화랑초대개인전 ▲75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개관기념초대 개인전 ▲76년 일본 후쿠오카(복강) 선화랑개인전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 「추학(추학)」으로 장려상수상 ▲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 「상림(상림)」으로 대상수상 ▲80년 「계간미술」이 선정한 「새시대 9인전」,한국 화랑협회초대 「12인전」출품 ▲81년 국립현대미술관주관 「한국미술,81년」「한국현대수묵화전」 신세계미술관선정 「청년작가 10인전」초대출품 ▲82년 경기도 남양주 팔당정착 ▲84년 샘터화랑초대 「박대성·황창배 2인전」 ▲85년 국립현대미술관초대 「현대미술초대전」출품,가나화랑전속 ▲86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초대 「박대성·강대철 2인전」,도쿄 후지갤러리개인전 ▲88년 서독 쾰른시 파리나갤러리 초대전,중앙일보주관 「박대성 작품전」(호암미술관)에 대작 1백여점전시(3월9일부터 30일간) ▲89년 윤범모와 중국문화기행 ▲90년 백두산 만주일대여행,가나화랑초대 제15회 개인전 ▲94년 실크로드 기행전(동아갤러리),개인전(가나화랑)
  • 나진·선봉 자본주의 실험 무대로(북한은 지금…:4)

    ◎도로·교량 등 건설에 군인력까지 동원/외자조달 실적 “미미”… 성공여부 불투명 중국 혼춘에서 자동차로 비포장도로를 53㎞쯤 달리면 도착하는 혼춘시 경신진 권하.북한의 「자본주의 실험창구」인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와 중국의 혼춘경제특구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길목이다.13일 열리는 나진·선봉 투자설명회에 참석하는 기업인·기자등 한국 방북단도 이곳을 거쳐 나진·선봉지대로 입북하기로 돼 있었으나 북한의 선별초청 방침에 따라 무산됐다. 나진·선봉지대는 유엔개발계획(UNDP)가 주관하는 두만강개발의 우위확보를 위해 혼춘경제특구와 치열한 외화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동해로의 진출을 꾀하는 중국은 한국·러시아·북한·중국·몽골 등 5개국이 북한 나진·선봉­중국 혼춘­러시아 자루비노를 잇는 소삼각지역을 물류중심지로 공동개발하는 두만강개발계획이 마련되자 북한보다 먼저 혼춘특구계획을 추진했다.그러나 북한이 『나진·선봉에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겠다』고 전격 추진하는 바람에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권하국경다리 검문소의 중국인 초병은 『하루에 30∼40대의 트럭과 50∼1백명의 북한 및 중국주민들이 이곳을 통해 중국과 북한을 오가고 있다』며 『북한에서는 철근 등이 나오고 중국에서는 식량 및 목재 등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북한이 경제난 해결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나진·선봉지대는 북한이 91년말 40여억달러를 들여 두만강유역의 나진·선봉항을 중심으로 동해에 접한 7백46㎦에 자유무역지대를 설치,러시아와 중국으로 통하는 수송·유통·제조업 중심지로 중점 개발해 「동해의 로테르담」으로 발전시킨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라고 서울신문과 합동조사에 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신종대 책임연구원은 설명한다. 북한이 사활을 걸고 있는만큼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도 나진·선봉에만은 심혈을 기울이는듯 했다.선진기술을 도입한 선봉석유화학공장이 가동에 들어갈 예정인 데다 선봉에 비행장을 건설하고 헬기장은 이미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최근 나진·선봉을 둘러본 조선족 남모씨는 『대규모 투자설명회를 앞둔 탓인지 도로·통신시설 등을 정비하기 위해 곳곳에 땅이 파헤쳐져 있었다』며 『군인들까지 동원,교량을 건설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고 전한다. 나진·선봉의 시급한 문제인 숙박시설도 「급한 불은 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공무로 나진·선봉을 자주 방문한다는 중국의 한 관계자는 『2백개 객실을 갖춘 3성급의 나진호텔이 외곽공사를 끝내고 막바지 내부공사에 들어갔다』고 전한다.『나진호텔 주변에는 두만강유역의 중계무역을 위해 5백개의 점포가 들어설수 있는 상가센터 부지조성 작업도 거의 마무리됐다』고 그는 덧붙인다. 나진·선봉의 「동맥」인 사회간접자본(SOC)시설과 금융기관도 기본 골격을 갖춰가고 있다고 한다.중국과 연결하는 2개의 고속도로와 철도를 건설중이며 이곳과 혼춘시를 잇는 통신망은 이미 완공됐다는 것.금융기관으로는 네덜란드계 ING은행과 홍콩계 페레그린은행은 지점을 설치할 예정이다. 북한은 이 지역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크게 기대를 걸고 있는듯 했다.백두산 및 칠보산 등 명산과 해수욕장 등을 패키지로 연결하는 대규모 관광지를 조성하는 첫단계로 웅상지역에 해수욕장과 방갈로 건설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의욕적인 추진에도 나진·선봉의 성공여부는 불투명한 것같다.북한·중국·러시아등 접경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데다 나진·선봉의 개발전략이 여러 면에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투자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외자조달 실적은 아직 미미하다는데 있다.북한이 지난 91년말 나진·선봉을 자유무역지대로 지정한 이후의 외화유치 실적은 2억달러선.중국훈춘특구가 작년에 올린 8억달러 정도에 비하면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아직까지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가 우선하고 기업활동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합동조사에 참여한 한석태 경남대 교수는 『나진·선봉이 성공하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방국가의 기업들이 원하는 만큼의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도입해야 한다』며 『북한은 이제 경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말을 되새겨봐야 할때』라고 말했다. ◎참여교수 시각/심지연 경남대 교수/경제개혁·개방정책/체제 경직성부터 풀어야 북한은 1991년 12월28일 정무원결정 78호로 나진·선봉지역을 자유무역지대로 정하고 각종 산업을 이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이 개발이 예정대로 추진돼 환동해경제권이 형설될 경우 나진·선봉은 장기적으로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동북아 물류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다.그러나 나진·선봉개발은 관련국인 중국 및 러시아와 도로·철도·항만·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의 개발과 확장을 위주로 한 전형적인 국토종합개발 성격이 짙어 단기적인 성과는 기대할 수 없으며 현실적으로도 몇가지 난관에 봉착해 있다. 우선 이들 3국은 모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투자재원의 상당 부분을 외자도입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북한은 이들과 외자유치경쟁을 벌이는 위치에 놓여 있다.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일찍이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중국이나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의 경쟁에서 북한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외채상환능력이 결여된데다 체제의 경직성과 폐쇄성마저 겹쳐 현실적으로 외국기업이 투자를 기피하는 나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진·선봉이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표명하고 진출을 시도하는 나라는 현실적으로 같은 핏줄인 한국밖에 없으며 북한의 지배계급은 이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개방이라는 국제 조류에 동참하여 공존을 모색하는 길만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 개신교 올 총회 이달∼10월중 잇따라

    ◎21C 선교전략·집행부 구성 논의/감리·침례,새 교단장 선출문제 최대 현안/예장통합,CATV 부사장제 폐지 대책 주목/기성·기침,KNCC 가입건 싸고 격론 벌일듯 개신교단의 올해 총회가 9월과 10월 차례로 개최된다. 올해 개신교의 이들 총회는 21세기 선교 과제와 방향을 설정하고 교단 집행부를 결정하는 공통점이 있으나 교단의 사회참여와 북한선교등 현안문제는 토의되지 않는다. 장로교단은 9일 기독교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 대신의 총회를 시작으로 다음달 중순 연차총회를 집중적으로 연다.기독교한국침례회와 기독교대한성결교회도 내달 중순 총회를 개최하며 기독교대한감리회는 10월29∼31일 총회를 갖고 감독회장과 7개 연회의 감독을 선출한다. 이번 총회에서 각 교단은 총회장 등 집행부를 구성하고 21세기 선교전략과 교단의 질적성장 등을 논의한다. 교단 총회장의 경우 장로교단은 현 부총회장이 관례에 따라 차기 총회장으로 내정돼 있어 문제가 없으나 감리교와 기독교침례회 등은 새로운 교단장 선출을 둘러싸고 경쟁이 예상된다. 개신교최대교단인 예수교장로회 통합은 12∼17일 서울 소망교회에서 올해 총회를 연다.총회에서는 기독교 CATV의 부사장제 폐지에 따른 교단의 대응책 마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감리회 다음의 최대주주인 통합은 CATV 부사장제가 없어지자 공개적으로 항의하고 있다. 예수교장로회 합동은 17∼20일 청주 중앙교회에서 총회를 개최한다.이번 총회는 정부의 종교교육 폐지결정에 대해 이를 철회해줄 것을 요구하는 건의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이와 함께 다락방전도운동의 사이비성 여부도 규명하게 된다. 기독교장로회는 9∼12일 광주 양림교회에서 총회를 열게 되는데 총회후 개신교단으로는 처음으로 5·18망월동묘역을 참배할 계획이다.기장총회의 주요안건은 ▲한신대 총장의 3선금지조항 ▲백두산 정상기도회 ▲북한동포를 위한 헌금 ▲민족통일을 위한 선언문 채택 등이다. 예수교장로회 고신은 16∼20일 부산 남교회에서 총회를 개최한다.이번 총회의 최대 관심사는 교회와 개인문제로 신자간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의안이며 창조론을 교과서에 포함시키자는 정부건의안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주목」으로 하자는 의안도 올라 있다. 기독교성결교회와 기독교침례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입건을 놓고 토론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16∼19일 서울 신촌교회에서 총회를 갖는 기독교성결교회는 선교의 세계화와 교단위상의 강화를 위해 교회협에 가입하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같은 시기 대전 침례교신학대에서 총회를 여는 기독교침례회 역시 교회협 가입을 논의함과 함께 지난해 거론된 장로직제 신설을 재론할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감리회는 10월 29∼31일 서울 광림교회에서 총회를 갖고 교단장인 감독회장과 함께 7개 연회의 감독등 임기 2년의 새 임원을 선출하게 된다.감독회장 후보로는 현 회장인 김선도 목사의 동생인 김홍도 서울 금란교회 목사와 서울창천교회 박춘화 목사,서울 금호제일교회 장광영 목사 등이 경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예수교장로회 대신은 9∼12일 서울 사랑제일교회에서 총회를 열고 예수교장로회 개혁은 17∼20일 광주 월산교회에서총회를 개최한다.
  • 13일 상오 10시 불일범종 타종 법회

    ◎법련사,불교 전래 1,600년 기념 제작/높이 2.56m… 「세계평화 남북통일」 명문도 송광사 서울 분원 법련사는 13일 상오10시 종로구 사간동 법련사에서 불일 범종타종법회를 갖는다. 불교가 전래된지 1천6백년을 기념하기 위해 청동 1천6백관(6t)으로 만든 불일범종은 조국의 남북통일과 인류의 세계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조성됐다. 종은 높이 2.1m,너비 1.5m이며 종걸이 부분까지 합하면 전체 높이가 2.56m에 이른다. 또 세로 방향으로는 「세계평화 남북통일 불일범종」이라는 명문이 들어있으며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을 조각,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았다. 타종식에는 모두 서른세번의 종을 치게되는데 이는 28천과 윤회세계 인간의 5도 5가지를 상징한다. 법련사는 타종식과 함께 13일부터 15일까지 3일동안 특별법회를 연다. 첫날은 한국불교발전연구원 이사장 월탄 스님,둘째 날은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셋째 날은 역경원장 월운 스님의 설법이 있다. 법련사는 당초 8월15일 타종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송광사 방장인 일각 스님의 입적으로 49재가 끝난 9월13일 타종하게 됐다.
  • 의원 1백97명 여름외유/최근 5년중에 최다 기록

    ◎국회예산 쓴 시찰은 모두 61명/일부 관광 치중… 「의원외교」 무색 여야 원내사령탑인 신한국당 서청원,국민회의 박상천,자민련 이정무 총무가 미국의 민주당 전당대회 참관을 마치고 4일 하오 귀국했다.지난달 24일 출국했으니까 꼭 12일 만이다.원내총무들의 해외 나들이는 이미 짜인 국회상임위 해외시찰계획 가운데 하나로 운영위의 일정에 속한다. 지난 7월말 임시국회 폐회이후 국회예산으로 해외시찰을 나간 의원은 김수한 의장과 오세응·김영배 부의장을 비롯,모두 61명에 이른다.국회예산이 아닌 연구모임이나 친목단체,당 차원의 시찰까지 합치면 훨씬 늘어 1백97명이나 된다.이는 재적의원 2백99명중 65.9%에 해당하는 놀라운 수치다.최근 5년새 가장 많은 숫자라고 국회 국제국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상임위별로 보면 운영위 두차례를 포함,문화체육공보위 등 9개 상임위가 나갔고 한·미 의원외교협의회,한·프랑스 친선협회 등 3개 협회와 한국동란참전의원친목회 등 4개 협회가 시찰을 했다. 정당별로는 신한국당이 1백28명,국민회의가 김대중총재를 수행한 의원까지 합쳐 30명,자민련 34명,민주당 4명,무소속 1명이다. 먼저 김국회의장은 신한국당 유흥수,국민회의 조순승,자민련 정석모 의원 등과 함께 지난달 21일부터 31일까지 일본 호주 베트남 등을 공식 방문,정부 및 의회지도자들과 양국 우호협력증진 방안을 논의한뒤 귀국했다. 오세응 국회부의장은 한·미 의원외교협의회 대표자격으로 지난 7월27일 여야의원 7명과 미국을 방문했고,김영배 국회부의장도 신한국당 장영철,국민회의 박상규,자민련 어준선 의원과 함께 14일부터 28일까지 러시아 체코 노르웨이를 공식 방문했다. 상임위 중 가장 먼저 외유에 나선 위원회는 문화체육공보위.이세기 위원장 등 4명의 의원이 7월말 애틀랜타 올림픽 참가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출국,CNN방송국 등도 시찰하고 8월9일 귀국했고,운영위 소속의원 4명도 8월8일부터 19일까지 러시아 노르웨이 등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통신과학기술위는 지난달 14일부터 25일까지 각국의 첨단산업 기지인 캐나다 전파연구소,미국의 실리콘밸리,일본의 이화학연구소를 방문했다.보건복지위도 지난달 14일부터 동구권의 사회복지제도를 시찰한다는 목적으로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를 방문,현지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의원들의 방문국은 역시 미국과 일본이 주종을 이뤘다.백두산 산행붐이 인 게 특징이지만,애틀랜타 올림픽과 전당대회를 능가하지 못한 탓이다. 아쉬운 것은 의원외교라는 명분으로 추진된 의원들의 해외시찰을 둘러싸고 의사당 주변에 뒷말이 무성하다는 점이다.『무작정 공화당 돌후보의 기차를 타려다 망신을 당했다』『일정을 관광지 방문 위주로 짰다』『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었다더라』 등이 그것이다.
  • 군자산악회/산행때마다 환경캠페인(산하 파수꾼)

    ◎불우이웃돕기 등 사회봉사활동도 활발 서울 광진구 군자동에 둥지를 튼 군자산악회(회장 서갑석)는 산악인들이 모여 만든 친목단체다. 지난 93년 11월 회원 60명으로 첫 발을 내디딘 군자산악회는 그동안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60여차례의 산행을 거듭했다. 그동안 회원이 10명 더 늘어 7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산악회지만 군자동의 직능단체장 등 유지들이 거의 모두 회원으로 가입한 것이 큰 자랑거리다. 『지난 6월 회원 70명 모두가 서울신문사에서 펼치고 있는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 환경감시위원으로 등록했습니다.그동안 등산하면서 각종 쓰레기를 치우는 등 환경캠페인을 벌였으며 동네에서는 한달에 한두차례씩 골목청소를 해왔습니다.그러나 환경운동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곱지않은 눈길을 보내 무척 괴롭기도 했습니다』(서갑석 회장) 불우이웃돕기 등 꾸준히 자선사업을 펴자 그제서야 군자산악회의 참뜻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초 백두산을 등정한 뒤 어렵게 살아가는 중국 연길의 동포들을 찾아 한마당 잔치를 베풀었으며 환경개선에 써 달라고 2백40만원을 쾌척했다.지난 7월에는 수해지역인 경기도 문산,파주,연천 지역을 방문,방역활동을 펴는 한편 복구비와 위문품을 전달했다.그리고 별도로 서울신문사를 통해 수재의연금 1백만원을 내놓았다. 『해마다 연말이면 성금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고 있으며 환경미화원에게는 따뜻한 내의를 선물해왔습니다.산하를 다시 깨끗하게 만들고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지키자는 것이 우리 산악회의 목표입니다』 서갑석 회장은 조그마한 일이 큰 나라사랑의 첫걸음이라는 뜻 아래 이러한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군자동에서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 회원들이 뜻을 모아 처리하는 것도 군자산악회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다.새해에는 각종 부녀회와 한마음회 등을 영입,회원수를 크게 늘려 사회봉사활동과 환경캠페인을 더욱 활발히 전개할 방침이다.
  • MS사 CD롬 오기는 시정되어야(사설)

    ◎「한국 바로알리기」에 적극 나서자 한나라의 국제적 위치는 그 나라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정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CD롬 백과사전과 지도가 한국의 역사와 지리를 왜곡한 사실은 우리를 착잡하게 한다. ○범정부차원의 노력 배가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CD롬 「엔카르타 월드 아틀라스」에 독도가 일본땅으로,백두산 천지가 중국땅으로 표기돼 충격을 안겨준데 이어 또 다른 CD롬 「엔카르타 엔사이클로피디어 96」에 서기 4세기경 일본이 한반도의 일부를 지배했다는 일본사학계의 왜곡된 「임나일본부」설이 그대로 기록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외국 기업의 부주의에 의한 사실왜곡이라고 가볍게 보아 넘겨선 안된다.지금 우리는 OECD 가입등 선진국 대열 진입을 앞둔 시점에 서있다.경제적으로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 우리나라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음을 이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대상으로 왜곡사실의 시정과 문제된 CD롬의 리콜 등을 민간차원에서 강력하게 요구하는 한편 국제사회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전반적인 노력을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우리는 본다. ○한국왜곡 외국교과서 많다 오랫동안 문제가 된 외국 교과서의 한국왜곡이 지금도 여전하고 「브리태니커」를 비롯한 세계유수의 백과사전들에도 한국이 잘못 기술되고 있는 상황이다.지난해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독일의 식민지」(멕시코)라든가 「남한의 수도는 평양」(스페인)이라고 기술하는등 어처구니없게 한국을 왜곡한 외국교과서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이런 외국문헌들이 고쳐지지 않는한 이번과 같은 사건은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다.마이크로소프트사의 한국 왜곡도 일본과 중국의 잘못된 문헌을 바탕으로 한 탓이다. 지난 82년 일본 교과서의 한국왜곡이 문제화 된 이후 잘못된 외국 교과서의 시정작업과 한국 제대로 알리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공보처에 「한국관 시정사업추진협의회」가 설치되기도 했으나 그 성과는 지지부진하다.외국교과서의 한국왜곡 현황 파악도 아직 전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형편이다. ○인력·예산 모두 일본에 뒤져 지난 52년 설립된 일본의 국제교육정보센터는 외국교과서를 분석하고 잘못된 내용의 시정자료를 개발·배포하며 외국 교과서 제작 관련인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갖는등의 작업에만 연간 몇백억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우리는 지난 80년대 초에야 교육개발원에 그런 일을 맡은 기구를 만들었으나 일본의 5분의 1도 안되는 인력에 2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을 뿐이다.따라서 한해 고작 2∼3개국에 관계자를 파견해서 교과서를 수집하고 잘못된 내용을 분석해서 시정자료를 개발·배포하고 있으나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형국이다. 최근 총리실에 대외홍보위원회가 만들어져 그동안 외무부 공보처 교육부 문체부 등에서 개별적으로 펼쳐온 한국알리기 작업을 통합해서 그 효율성을 높이는 시도가 이루어지긴 했다.그러나 이번 사건은 당국의 한국 알리기 작업에 근본적인 허점이 있음을 시사한다.국제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것도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전략을 갖추어야하며 문제가 생길때만 목청을 북돋우고 흥분하다가 금방 잊어버리는 우리의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기업도 「한국학」 적극지원을 당국은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서 한국에 관한 외국문헌의 잘못된 점을 시정하고 체계적·지속적으로 국제사회에 우리의 참다운 모습을 알려야 할 것이다.한국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기반사업인 한국학을 진흥시키기 위해 민간차원의 학술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외국에서의 한국학에 대한 지원이 일본학에 대한 일본의 지원에 비해 5%에 불과하다고 한다.한국학 발전을 위한 당국과 기업의 적극적 지원도 요청된다.
  • 조선족 이주 역사(송화강 5천리:2)

    ◎30년대 일제이민정책에 1만가구 정착/“주택·식량 제공” 감언이설에 속아 집단이주/「만척」서 안전촌 건립… 항일 세력과 연결 차단/부여국­고구려­발해 고대사 무대… 아직도 조선지명 남아 송화강의 큰 원류는 두 갈래가 있다.이도송화강인 이도백하 말고 두도송화강이 그 원류다.두도송화강은 이도송화강을 이도백하라 하는 것처럼 그냥 두도강이라고도 한다.그런데 두도강은 본래 두갈래 물줄기가 합수하여 강을 이루었다.두도강의 한 갈래는 만주어로 어허러인(액혁낙인)이고,다른 한 갈래는 역시 만주어로 사인러인(새인낙인)이라는 이름를 가지고 있다. 어허러인은 백두산 옥설봉에 쌓인 만년설의 눈이 녹아 험준한 바위산을 지나면서 시작되었다.그래서 낙차 57m나 되는 큰 폭포에서 작은 폭포에 이르기까지 폭포군을 이루었다.물이 급하게 흐를 수밖에 없다.일명 긴강이라는 이유가 여기 있다.이에 비해 사인러인은 완만하다는 뜻을 가졌거니와 강의 흐름도 온화했다.일명 만강이라 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부여족 유적 대량 발굴 이들 두 물줄기는 화라자에서 합수했다.바로 두도강인 것이다.두도강은 2백30㎞를 달려서 길림성 화전시 백산진 양강구에서 이도백하를 만나 드디어 합류,장강다운 송화강 물길을 잡아나갔다.송화강유역은 비옥할 뿐 아니라 광활했다.이 풍요로운 땅에 세운 맨 처음의 읍락국가는 해모수를 우두머리로 한 부여국이었다.「자치통감」기록에 나오는 첫 도읍지 녹산지도는 그 어디인가. 오늘날 길림시에는 동단산성과 동단산 평지성,용담산성이 있다.근래 동단산 부근에서는 대량의 부여족의 문물(문화재)이 발굴되었다.금 은 동 철제유물과 도자기 옥석 칠기 등의 유물만 해도 8천여점에 이른다. 또 1978년 동단산 서쪽 서단산 무덤군 돌널무덤에서는 무덤주인공의 머리를 감싼 모직물이 나왔다.양털과 개털을 꼬아 실을 자아내고 이를 천으로 짠 것이다.간단한 직조기를 사용하여 짠 이 모직물은 부여족의 문화가 상당 수준임을 입증했다. 그런데 동단산 일대는 광개토대왕 시기에도 고구려 판도였다.오늘날 길림시내에 남아있는 고구려산성은 용담산성이다.용담산은 산 자체가함지박처럼 중간이 낮고,사방은 높은 산등성이에 둘러싸인 산세를 했다.성은 산세를 이용하여 황토와 자갈로 쌓았다.높낮이는 일정치 않았다.성 서북쪽에 있는 길이 53m,너비 26m에는 용담이라는 못이 있다.이 연못은 1만㎥의 물을 가둘 수 있는 인공 못이라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견해다. 용담산성 망루자리에 올라서면 성 아래로 도도히 흘러가는 송화강과 강 양안에 우뚝우뚝 솟은 길림시의 고층건물들이 한 눈에 조망되었다.망루에 올라 문득 역사를 거슬러 뒷걸음질하고 있을때 피맺힌 비명이 들리는 착각에 사로잡혔다.서기 668년 2월 당나라 장군 설인귀의 공격을 받고 울부짖는 고구려군사들의 비명이….고구려는 용담산성에서 패하고 다시 군사 5만을 모아 공략에 나섰으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이후 한 때는 발해가 용담산성의 주인이 되었다.그러나 역사는 변화하는 것이어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그 역사의 체취가 배인 송화강유역으로 조선족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압록강유역이나 두만강유역에 비해 훨씬 뒤의 일이다.1922년 「동북3성실황」은 이를 뒷받침했다.당시 두만강유역 화룡,연길,왕청 3개현의 조선족은 44만4천4백20명,송화강유역인 안도,돈화,길림,장춘은 4만5천6백명에 불과했던 것이다.그리고 흑룡강성에는 고작 6백61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을 뿐이었다. 송화강유역의 조선족 이주민 유형은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두만강과 압류강 이주민들의 재이주,러시아 이주민들의 유입,일제 이민정책에 의한 집단이주 등이 그것이다.이 가운데 절대적인 비중은 일제 이민정책과 맞물린 한반도로 부터의 조선인 집단이주가 차지했다.일제는 중국 동북지방의 항일세력을 소멸하고 동북에다 중국내지와 동남아를 침략하기 위한 병참기지를 만들 목적으로 이민정책을 서둘러 폈다. ○동남아 침략 병참기지화 그들이 1936년 8월 입안한 이민정책에는 2년내에 일본인 1백만가구 5백만명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이와함께 일본은 1만가구의 조선인 농민들을 동북지방 23개현으로 집단이주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1937년 이를 실행에 옮겼다.일본 이주민들도 적지 않게 들어왔으나 큰 성과는거두지 못했다.그러나 한반도에 사는 조선의 가난한 농민들은 일망무제한 북지대륙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가기만 하면 집과 먹을 것을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조선총독부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이다.그래서 조선농민들은 이주증을 받기가 무섭게 남부여대하고 고향을 등졌던 것이다. 그 당시 집단이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러 길림성에 살고있다.장춘시의 정병남(71)노인도 그런 이주민의 한 분이다.전남 함평군 학교면 학교리 태생인데,당시 사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우리는 1937년 2월에 길림성 유하현에 도착했습니다.함평군 함평면,대동면,광주 송영리에서 각각 열다섯 가구씩 마흔다섯 가구가 집단이주를 한 것이지요.눈보라가 치는 한겨울에 다시차란 데에 떨어지니 집은 커녕 먹을 식량도 없었어요.언땅에 막을 칠 수밖에….만주척식회사(만척)에서 뜬 수수와 좁쌀을 주어 그나마 배불리 먹었습니다.그냥 준 것이 아니라 변리곡이었지요.일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가을에 갚고나면 식량이 없어요.또 만척에서 변리곡을 다시 먹어야 했습니다.빚은해마다 늘고….광복이 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노예로 살았을 겁니다』 유하현 삼원포는 조선독립운동 진원지의 하나였다.1911년에 경학사가 서고 나서 신흥무관학교,1919년에는 대한독립단이 조직되었다.그런데 일제의 수탈기관 만척은 이 일대 땅을 헐값에 사들여 안전촌을 만들었다.경찰을 주둔시키고 무장자위단을 조직했다.마을마다 소총 열자루와 권총 한자루씩을 내주었다.그리고 양민증이 없으면 마을을 드나들지 못했다.항일세력들과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였다. ○양민증 없이 출입못해 집단이주민 무장화 과정에 나타난 유명한 무장자위단은 1944년에 조직한 풍향의용개척단이다.조선에서 보통학교 고등과를 나온 청년 90명을 모집,유하현 대통구촌 신가가에 이주시켰다.이들은 군복을 입고 무기를 휴대한 군사·농업조직이었다.단장을 비롯,군사교관·청치교원 등의 간부는 모두 일본인이 맡았다.조선인 단원 20명은 뒷날 관동군에 편입되었다.일인 간부와 조선인 단원들은 휴가로 고향에 돌아갔다가 식솔들까지 데려와 살았다. 오늘날 송화강유역에는집단이주민마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조선족이 있든 없든 간에 한반도 군명에서 따다 만든 마을 이름들이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유하현에서는 아직도 창성,벽동,가평이라는 이름이 보였다.또 안도현에는 금화,원주,고성,장수,정읍,김제,익산마을이 있다.이밖에 두군의 이름을 딴 청흥(북청·신흥),안산(진안·익산)이 있는가 하면 조선의 양양이라 한 조양마을이 존재했다.이들 마을 이름에서 집단 이주민들의 진한 노스탤지어를 읽었다.
  • 독도 순례(외언내언)

    82년 가수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땅」이란 노래가 대학가를중심으로 유행했을때 일부에서 이의를 제기했던 일이 있다.「대마도는 우리땅」이라면 모르지만 「독도는 우리땅」이란 것 자체가 새삼스럽다는 논지였다. 배타적경제수역(EEZ)선포와 관련해서 지난1월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문제를 다시 제기할 움직임을 보인이래 한·일간에는 또한번 「독도홍역」을 앓고 있다.때문인지 각계에서 독도에 대한 관심이 크다.오는 27일에는 「21세기동북아평화포럼」소속 여·야의원 교수작가 등이 대거 독도를 방문키로 했으며 이에 앞서 21일에는 국민회의의「통일시대 준비위원회」원내외위원장 70여명도 독도를 방문하고 「국토순례 독도세미나」를 연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그러나 이런 일들이 흔히있는 일과성 행사가 아닌가 해서 염려스럽다.91년 가수 서유석 등이 「독도 사랑회」를 만들었고 「푸른독도 가꾸기운동」도 없지 않았으나 잠시였을뿐 흐지부지 되고말았다.반면에 일본에는 독도관련 민간단체가 2백여개나 되고 독도관련 자료도 우리보다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불필요하게 일본을 자극하거나 실리없이 구호만 요란한 「독도는 우리땅」은 재고해볼 일이다.그보다는 누가 들어도 독도는 우리땅임을 명백히 입증할 논리를 개발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충분히 알리는 일이 보다 더 중요하다. 최근 미국의 MS사 제작 CD롬에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영토로,백두산천지가 중국영토로 잘못 표기된 일이 생겨 국회의 최형우 의원이 빌 게이츠 회장에게 항의해 시정을 내락받은 일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그러나 그 문제도 MS사가 어떤 경로로 그런 자료를 갖게 됐는지 원천적인 문제부터 추적했어야 옳다. 일본 교과서엔 독도가 버젓이 자국영토로 기록돼있음에도 독도를 명백히 실효적으로 지배하고있는 한국의 정부나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기록이 없다. 요란스런 행사보다는 중요한 일부터 해야한다.
  • 위험한 연변… 안전대책을

    중국 연길에서 한국기업체 임원이 괴한들에게 피습돼 목숨을 잃은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괴이한 것은 범인들이 주로 북한 간첩의 휴대무기로 알려져 있는 독침으로 공격한 것 같다는 점이다.정부는 중국측이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범인과 그 배후를 밝혀내도록 최대의 외교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단 이번 사건 때문만이 아니라 연변은 한국인 방문자에게 안전한 지역이 아니다.지난해 7월의 안승운목사 납북사건,지난 1월 한국식당주인 김영진씨 피살사건 등 지난 한햇동안 주중한국대사관에 접수된 피살 실종 강도 강간 사기사건만도 2백여건에 달한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25만 주민 상당수는 일제의 억압을 피해 이주한 우리 동포들이다.또한 용정은 항일투쟁의 본거지였으며 자치정부 소재지 연길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5시간 거리인 길목에 위치해 한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같은 친근한 분위기에 이끌려 긴장을 푼 탓인지 상궤를 벗어난 언동으로 현지인의 지탄을 받거나 납북 또는 범죄의 표적이 되는 한국인 방문자들이 급속히 늘어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객기가 발동,유흥업소에서 달러를 뿌리며 돈자랑을 하거나 장난삼아 합작사업을 약속하는 사례까지 있다.정확한 경위가 밝혀지겠지만 17일 귀환한 소설가 김하기씨의 「취중 입북」 역시 긴장이 해이해진 상황에서 객기가 빚어낸 사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범행동기나 배후가 분명치 않은 이번 기아 임원 피살사건에서 보듯 연변은 민족분단을 낭만적 시각으로만 파악하고 취중에 언행을 함부로 해도 될 곳이 아니다.수천명의 조교(조교·북한국적 조선족)와 10여개의 북한식당이 시사하듯 이곳은 북한의 오랜 뒤뜰과 같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중국,특히 연변지역 여행자들의 각별히 신중한 몸가짐을 당부한다.정부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측이 소극적인 심양의 한국총영사관 개설문제를 반드시 관철시켜 한국인 체류자 및 여행자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
  • 첫 물길 이도송화강(송화강 5천리:1)

    ◎이도백하 골짜기마다 선조 항일기상 서려/백두산 천지서 발원 장백폭포수 굽이 흐르고/수차례 주인바뀐 발해 보마성은 터만 남아/연변동포작가 유연산씨 현지 르포 서울신문은 우리 고대사의 무대 중국 동북지방을 관통하는 송화강유역에서 민족의 오늘과 어제를 돌아보는 「송화강 5천리」를 연재합니다.중국 연변 조선족작가 유연산씨가 현장에서 집필,주 1회씩 연재할 이 기획물은 도도한 장강이 안고있는 숱한 사연들을 엮어낼 것입니다.송화강 물길이 굽이쳐 지나는 길림성과 흑룡강성은 독립운동의 기상이 어린 유서깊은 대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광복 51주년을 맞이한 우리에게 보다 큰 감회를 안겨주리라 확신합니다.서울신문은 이 시리즈를 생동감넘치는 기획물로 꾸미기 위해 사진부 김명환 기자를 현지로 파견,작가와 동행취재토록 했습니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송화강은 중국 동북지방인 길림성과 흑룡강성 넓은 땅을 누비고 장장 1천9백72㎞를 흘러 흑룡강성 동강시에서 흑룡강과 합류한다.그 유량은 연평균 7백77억㎥나 되었다.중국에서 여섯번째 큰 강으로 꼽히는 송화강의 만주어 원음은 송알라울라(송아리오람).천하라는 뜻인데,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강이어서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1,972㎞… 여섯번째 큰 강 백두산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천지의 물이 흘러나오는 수구를 달문으로 적어놓았다.달문의 유래는 천지설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그 까마득한 옛날 천지용궁의 용왕은 태자다섯을 두었다.다섯 태자는 용궁생활이 싫증나 천지 수면위로 놀러나갔다.용궁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 네 태자는 용궁으로 귀환했으나 셋째 태자는 바깥세상이 황홀하여 그냥 머물렀다.그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산 허리를 떠받아 천지의 물이 빠져나갈 수구를 냈다. 그 수구가 달문이라는 것이다.달문 출발한 천지의 물은 아주 빠른 속도로 1천2백50m를 흘러 내려오다 장백폭에서 곤두박질을 한다.달문에서 장백폭포 사이의 물살이 빠른 구간도 강이라 해서 승사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강 이름에서 사(차)는 뗏목을 이르는 말이다.당나라 시인 이상은은 뗏목을 타고 하늘을 오른다는 시를 썼다.「해객이 뗏목을 타고 하늘에 오르니/아름다운 성아 일손을 멈추고 반기네」라는 시다. 승사하 물살이 내리꽂히는 68m의 벼랑 장백폭포는 장관을 이루었다.물살이 곤두박질하느라 우레소리를 냈다.이백의 붓끝에서 유명해진 여산폭포 마냥 구천의 은하수가 내리드리우듯 아름다웠다.그리고 누누천년을 두고 쏟아진 폭포는 절벽 아래에 20여m 깊이의 소를 파놓았다.그 소에서 솟구친 물은 다시 흘러 내려갔다.바로 이도백하요,이도송화강 물길이 시작하는 것이다. 이도백하는 깎아지른 듯 바위가 가파른 단애의 계곡을 지나느라 세차게 암벽을 들이받았다.그래서 물소리가 좁은 계곡을 뒤흔들었다.이도백하를 울부짖는 강이라 한 사연을 알만했다.폭포에서 1천m 떨어진 소천지 돌다리에 올라서면 이도백하 물길은 오간데가 없다.백하수는 지하로 숨어든 것이다.천지가 형성되기 그 이전 백두산 화산이 폭발할 때 생겨난 용암의 틈새를 2백만년을 두고 흐른 물줄기가 기어이 수로를 뚫었다.이 동굴의 수로 구간은 이도백하가 분명했지만 물이 숨어 흐른다고 해서 암하라 했다. 소천지 돌다리 옆 바위 허리에는 옥룡천해라고 새긴 글발이 있다.바위가 길을 막으면 꿰뚫고 나가는 물길을 뜻하는 말이기도 한데,이도백하의 정신이자 이도백하 유역에 살아온 조선족들의 개척정신이기도 했다.또 어떻게 보면 이도백하가 지나가는 골짜기마다에서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운동의 기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백두산에서 57㎞ 떨어진 길림성 안도현 이도백하진 서쪽으로 가면 보마촌이라는 마을이 있다.산자락에 기대어 송화강 지류인 보마하를 바라보는 마을이다.마을 넓은 언덕에는 발해의 보마성 흔적이 간신히 남아있다.성안에서는 지금도 기와장이 나왔다.발해와 당나라를 육로로 잇는 요충지의 하나로 역참도 이곳에 있었다. ○풍운의 세월 피난처로 역사의 풍운속에서 보마성의 주인은 여러번 바뀌었다.한때는 요와 금이 차지했다가 명나라가 시작하면서는 눌은부에 귀속되었다.이어 대륙을 장악한 청은 백두산을 자신들 조상의 발상지라 해서 봉금령을 내리는 바람에 보마성은 다른 동북지방과 마찬가지로 무인지경으로 변해 버렸다.사람이 다시 살기 시작한 것은 봉금령이 해제된 20세기 초엽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백두산 자연보호구로부터 이도백하진에 이르는 이도백하 유역에 여섯 마을이 들어섰다. 발재지,대골정자,쾌상봉,내두산,입산골(입산구) 이도백하 등이 그들 마을이다.지금은 내두산과 이도백하만이 남고 다른 마을은 사람들 기억속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내두산촌 최용철(70)노인의 말을 들어보면 사람들이 골 깊고 산 높은 이도백하 유역을 찾아든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수다.이 산골을 가리키는 말이었디요.보이는건 백년산삼이요.발에 차이는 건 녹각이고….여섯 마을 중에 발재지라 한 까닭은 백두산에는 값나가는 자연토산물이 많다는 뜻이였습네다.그리고 요동벌판에 무쇠말이 뛰면 송풍라월이 피난처라는 얘기도 있었디요.전란이 빈번했던 시대라 여기와서 피난을 살았던거우다』 ○산높고 골깊은 청정지대 그 당시 여섯 마을에 조선족은 80%,한족은 20%에 불과했다.해마다 단오나 추석이 오면 내두산촌에 모여 운동회도 열었다.3·1독립만세 이후 대한정의군정사(총재 이규)가,30년대에는 항일연군 제2군 제6사가 내두산에 근거지를 마련했다.일제는 항일연군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심한 토벌로 몰아붙였다.그러자 항일연군은 근거지를 남만으로 옮겼다.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버려 종당에는 몇 집만이 남고 옛날처럼 다시 무인지경이 되었다. 지금 내두산촌에 살고있는 조선족들은 1946년 북한땅 양강도 갑산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흉년에 먹을 것이 없어서 강을 건넌 사람들인데,73가구 2백53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다.이들은 아직도 공해와는 무관한 목가적 삶을 꾸렸다.조무래기들은 이도백하 물가에 나가 가재를 잡았다.개구리 미끼를 넣은 바구니에 돌추를 달아 깊은 소에 담갔다 꺼낼 때마다 가재가 한 바가지씩 잡혔다. 어른들은 겨울이면 사냥을 했다.모든 동물은 보호대상이 되어 법으로는 사냥을 금지하고 있으나 산사람들의 사냥은 여전했다.지난 94년에는 노루덫으로 호랑이를 잡은 사람이 붙잡히기도 했으나,사냥을 뿌리 뽑지 못하고 있다.노루 한 마리가 인민폐로 8백원씩에 거래되었다.겨울 한 철에는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노루생회를 맛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정치지도자와 초선의원들(이동화 칼럼)

    무더위속에서는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은 여름 한철에 휴가와 방학을 즐긴다.정치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지난달 27일 임시국회가 끝난 직후부터 정치인 대부분이 국내외로 흩어져 정가는 하한기를 맞았고 따라서 정국도 소강상태에 머물러있다. 이런 가운데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이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그 하나는 「대권」에 뜻을 둔 인물들이다.국내에 있든,국외를 여행중이든 간에 이들은 뉴스의 초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대부대를 끌고 다니는 한 그 관심의 폭은 커진다.비록 본인은 휴가로 생각하고 움직이더라도 언론이 그를 액면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구상」과 개원준비에 몰두 그결과 「괌구상」「백두산구상」「하와이구상」「제주도구상」등등 「구상시리즈」가 지면에 감돌고 있다.심지어 어느 야당총재가 3주나 당사에 나오지않고 있다고 해서 「칩거구상」이라는 말까지 시리즈에 추가되는 등 남발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정중동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또 하나의 부류는 의욕넘치는 초선의원들이다.이들은 9월 정기국회에서의 예산심의와 입법활동을 위해 자료수집과 공부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두부류의 정치인 모두에게 한편으로 박수를 보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 두가지 움직임의 결과가 국회에서 어긋나게 전개되거나 상충될 소지가 있어 염려스럽다.다시말해 후자 초선등 열성의원들의 활동이 빛을 보려면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국회가 정쟁에 휩싸여 장기 개점휴업상태에 돌입하거나 여야 극한대립을 보인다면 준비한 보따리를 풀 기회가 줄거나 없어진다. ○상대폄하에 익숙한 정치 이번 정기국회의 운영상을 미리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그러나 그동안 우리정치의 흐름을 읽어보면 순항하기는 어렵겠다는 막연한 예상은 할 수 있다.왜냐하면 현재 「3김씨 중심의 정치」라는 특성속에서 우리의 정치행태는 스스로 잘해서 국민의 지지를 얻기보다는 상대방을 끌어내리고 폄하하여 상대적인 우월성을 확보하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각종선거 특히 대선을 앞두고는 이런 증세가 심화되어온 전례를 보아 올 정기국회 역시 파란이 예상되는 것이다.이미 지난 6월초의 15대 개원국회가 한달동안 표류한 것만 보아도 정기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것인가에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정쟁씨앗 뿌리는 특위들 이어열린 임시국회에서 간신히 원구성을 마치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또다른 「폭발물」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우려는 가중된다.타협의 소산으로 만들어진 선거부정조사특위와 정치제도개선특위가 가동되었으나 그 운영을 둘러싸고 초반부터 여야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의 당리당략과 관련된 예민한 사안이 다뤄지기 때문에 예상되던 일이었지만 선거부정조사특위는 여야모두 상대방에 대한 견제를 위해 쓸데 없이 조사대상을 늘리자고 주장하고 있어 교착상태에 있고 정치제도 특위 역시 야당이 검·경의 중립성확보문제에만 집착하고 있어 진전이 없다. 이렇게 가다보면 특위는 정쟁의 터가 되고 정기국회의 순항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가능성이 적지않다.이런 가능성을 줄이거나 제거함으로써국회를 효율화하고 정치를 정상화하는 일에 정치지도자들이 당연히 나서야 한다.눈앞의 소리보다 큰정치를 해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거부정조사대상을 납득할 수 있는 선으로 조정하고 정치제도특위도 이미 부각된 쟁점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정치전반의 민주화를 확대한다는 관점에서 국회법과 선거법 등의 개정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줄 것을 권고한다. ○국회법·선거법 개정해야 당내 의견수렴 뿐 아니라 공청회와 여론조사 등을 통한 국민적 공감을 얻어 대안을 마련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국회 개원이나 예산심의를 정치의안과 연계시키지 않도록 여야가 합의한다든지,법제화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일들을 위해서는 여야의 정치지도자들이 자주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초선의원들도 마당을 마련하기 위해 힘을 합쳐 압력을 가해보자.파행과 볼모와 폭력과 트집등등의 부정적 말들을 추방시키는 노력이 큰정치로 가는 길임을 거듭 강조한다.
  • 정치방학이 더 바쁜 여야3당

    ◎신한국/“대통령 대선 지원유세 여부 당론 확정된 바 없다”/당내외 찬반논란 「교통정리」 신한국당이 13일 여권안팎에서 일고 있는 대통령의 대선유세지원 논란과 관련,『아직 당론으로 정식 확정된 것이 없다』고 「교통정리」를 했다. 상오 고위당직자회의 직후 김철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 형식으로 발표했다. 김대변인은 『현재 여러가지 생각들이 개인차원이나 상식 수준에서 얘기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는 제도개선특위에서 다룰 문제이므로 심사숙고해서 당론을 정교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지난주 손학규 제1정조위원장의 「대통령 유세지원」이라는 화두에 대해 야권은 물론 당내에서도 일진일퇴의 찬반론이 제기되는등 파문이 확산된데 따른 것이다. 최근 백두산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김윤환 상임고문은 12일 『현직 대통령이 차기대통령 후보의 지원유세에 나서는 것은 여타 국가에도 유례없는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하루전 이홍구 대표위원이 『대통령의 선거운동은 원칙적으로 정상적인 것』이라고 긍정적인 견해를 밝힌 뒤끝이어서 자칫 여권내 분열로 비쳐질 수도 있는 터였다. 그러나 신한국당 내부방침이 「불가론」쪽으로 굳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김대변인은 오히려 『당론이 정해지면 관철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언제든 적극적인 대야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국민회의/“당내관계엔 소신 대처 당내문제엔 열린 마음”/DJ괌구상 「윤곽」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13일 「괌구상」의 일단을 밝혔다.그는 이날 휴양지 괌에서 5박6일동안의 휴가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향후 행보의 방향을 내비쳤다.남북·국제·여야 등 대외관계는 소신을 갖고 대처하겠다는 「자신감」,당내 문제는 「열린 마음」을 강조한 것이다. DJ(김총재)는 조세형 부총재에게 당무를 맡긴 오는 19일까지 여전히 「휴가중」이다.하지만 행보는 한가롭지 않다.이날 귀국하자 마자 서울 서교성당에서 「김대중 납치사건」23주년 기념 미사에 참석한 뒤 전북 전주로 지방나들이에 나섰다.이날 한일신학대 통일강연,14일 전주 코아호텔에서 지역 대표급 인사 5백여명과 대규모 조찬 등 빡빡한 일정이 잡혀 있다. DJ는 이날 강연에서 「전북홀로서기」를 경계했다.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개탄에 가까운 말도 했다. 노른자위로 불리는 국회 건교위에 전북 출신 위원이 배제된것도 바로 잡고, 곧 예결위에서도 우대를 약속했다. 이런 지방행보는 최근 두차례 보궐선거에서 나타났듯 예전같지 않은 호남 분위기와 연관돼 눈길을 끈다.전주시장은 국민회의 후보가 당선됐지만 전체 유권자 기준으로 지지율이 10%대에 그쳤다.전남 여천군수는 DJ와 한광옥사무총장 등 지도부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무소속에 넘겨줬다. 특히 그가 이날 강조한 「열린마음」은 김상현지도위의장이 깃발을 세운 당내 「도전행위」와 맞물려 주목되는 대목이다.보다 새로운 각도에서 지지기반을 다지겠다는 뜻을 읽게 한다. DJ는 출국전 일부 중진들에게 『승산이 없다면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대선 불출마 시사라기보다는 「괌구상」에서 모종의 승부수를 준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괌구상」이 「흔들리는 텃밭」속에서 어떻게 구체화 될지 주목된다. ◎자민련/“JP이미지 개선 총력 내각제 집중 홍보”/때이른 대선준비 「눈살」 자민련이 대선체제의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JP(김종필 총재)가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4일째 칩거하며 정국구상에 몰두하고 있으나 당은 대선준비를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당내 일부에서는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론 대선을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내각제는 당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세를 확장하기 위한 매개체로 삼는다는 측면이 강하다. 13일 충남 보령에서 김용환 사무총장 주관으로 열린 사무처 당직자 연수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김총장은 사무처 직원의 단합과 결속을 위한 휴가일 뿐이라고 말했으나 연수계획안에는 『정치상황에 적극 대처하고 수권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그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연수에는 한영수부총재를 비롯,대전·충남출신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12일 마포당사에서 열린 홍보위원회에서도 대선을 겨냥해 JP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홍보전략이 집중 논의됐다.내각제 관련 세미나와 홍보책자를 발간한다는 3단계 내각제 전략도 마련했으나 초점은 「대선」이었다.안택수 대변인은 『현실적으로 대선전 내각제 개헌은 어렵지 않느냐』며 『홍보위원회의 1차적 관심은 내년 대선이고 내각제 개헌은 대선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대선 쪽에 무게를 실었다. 내달 중에는 부총재급으로 구성된 당기획위원회를 발족시킬 예정이다.그 밑에는 대선기획단을 구성,대선활동을 전담케 할 구상이다. 그러나 당 안팎에는 자민련의 대선 「기선잡기」 움직임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적지않다.정기국회를 앞두고 경제회생,민생치안 확보 등 당면한 현안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데 분주해야 할 상황에서 대선준비에 골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국민정서와 맞지않는다는 지적이다.
  • 기지개 켜는 정대철 부총재(오늘의 인물)

    국민회의 정대철 부총재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4·11총선에서 신한국당 박성범 의원 돌풍으로 5선 고지에서 좌절된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일환이다. 그는 최근 『정권교체를 하려면 「지당하옵니다」식은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당내 민주화 요구이자 김대중 총재 일방체제를 겨냥한 대목이다.김상현 지도위의장에 비해 조용히 지내온 그여서 부쩍 눈길이 간다. 정부총재가 대표로 있는 「통일시대준비위」는 오는 21일부터 3일동안 울릉도와 독도에서 「통일염원 국토순례 겸 독도문제 세미나」를 갖는다.지난 94년 「백두산 연변행사」에 이어 두번째다.조순승 조홍규 김한길 김상우 의원 등 원내외 인사 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김의원측은 소개했다. 앞서 그는 10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리는 「장애인·노인·아동 등 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설치 기본법」제정방향에 관한 공청회에 참석,김대중 총재 대신 격려사를 한다. 정부총재는 다음달 5일 성균관대 행정대학원,30일 인천대 행정대학원,10월 1일 호서대학원 초청 강연 등특강 일정이 짜여져 있다.최근 여야 차기주자들 사이에 유행인 「특강정치」를 계기로 그의 새로운 활로 모색의 귀추가 주목된다.
  • 중견작가 전상국씨 창작집「사이코」

    ◎병든 사회의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광기에 휩쓸린 인물 4명의 파행 그려/참된 인간다움이란것의 실존적 관심 중견작가 전상국씨가 모처럼 새 창작집 「사이코」(세계사)를 펴냈다.작가 김유정의 삶을 소설화한 93년작 장편 「유정의 사랑」도 있었지만 창작집으론 89년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이후 7년만이다. 분단의 악령을 진혼하던 이 중후한 작가는 대부분 90년대에 씌어진 이번 작품들에서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을 맹공하는 쪽으로 옮겨왔다.시대변화에 맞춰 소재는 「현대화」됐지만 참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캐묻는 실존적 관심의 불꽃은 여전히 맹렬하다.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급류에 휘말리지 않는 뿌리깊은 바위처럼 미덥고 반갑다. 작품집은 광기에 휩쓸린 인물을 그린 중편 네편이 연작으로 묶여있다.작가는 사회병리를 온몸으로 앓는 광인들을 그들과 달리 아무렇지도 않은듯 적응해 살아가는 정상인들에 대비시켜 병든 사회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이코시대」에서 파행을 일삼다 골칫덩어리로 찍힌 땡삐는 가족들 손에 사이코로 몰려 기도원에 유폐된다.하지만 목소리만 클뿐 무력했던 땡삐에 비해 교활한 적응력을 갖춘 만재는 지역의 유지로 성공한다. 「거울의 알리바이」는 교통위반차량 색출에 총대를 맨 노상관이란 인물을 내세운다.4번과 66번 국도에 매복,무수한 차선위반 차량을 사진찍어 고발하는 것을 업으로 해온 그는 「법이란 지켜져야 한다」는 신념에 고지식하지만 고발당한 이들은 치를 떨며 그를 강박증 환자로 몰아세운다. 한편 어린 시절 살기오른 눈빛에 한끼라도 고기를 못먹으면 환장하는 육탐을 부리다 외지로 쫓겨나다시피 떠난 삼촌이 지자제 선거가 닥친 고향에 홀연히 나타나 막판뒤집기로 시의원이 되는 거짓말같은 과정을 그린 최근작 「개미거미들의 화음」은 복마전 정치판에 대한 풍자다.「시인의 겨울」은 도시의 한 빈민촌에 구멍가게를 낸 시인의 눈으로 일상의 구석마다 스며든 부패를 비춰보고 있다.국민학교 선생,문인,아이들,이웃 할 것없이 탐욕에 젖어 아무도 믿을 수 없게된 이 동네에서 시인은 군대간 이복동생이 백두산까지 횡단하겠다는 포부를 털어놨다가 정신병자로 몰려 의병제대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개미…」에서 삼촌 출마의 전과정을 지켜보는 소설가,「거울…」의 고발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르포작가 등 이번 작품집에는 거의 매편 작가가 등장하고 있다.이를 통해 『글쓰기는 야비하고 던적스러운 광기의 소산』이라며 사회고발 이전에 철저한 자아비판부터 수행한 전씨는 『반성을 통과하며 한매듭 짓고 자유로워졌으니 작가로서 새로운 출발이나 마찬가지』라고 앞으로의 왕성한 창작을 다짐했다.
  • 북 “김하기씨 월경 체포”/중앙통신 보도

    ◎한적,“만취로 실수” 송환 요청 정부는 5일 대한적십자사(총재 강영훈)를 통해 지난달 30일 중국 연변에서 실종돼 현재 북한당국에 의해 체포 상태에 있는 소설가 김하기씨(본명 김영·38)를 인도적 차원에서 송환해 주도록 북한측에 요청했다. 강총재는 이날 북한적십자회(이성호 위원장대리) 앞으로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지난 31일 소설가 김영이 귀측 북부 국경을 불법 침입해 해당기관에서 단속·조사중이라는 귀측 중앙통신 보도를 접했다』면서 『그는 당시 술에 몹시 취한 상태에서 실수로 월경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이에 앞서 이날 상오 평양발 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김씨를 국경침입죄로 체포해 당국에서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소설가 김씨는 지난달 30일 백두산을 등정한 후 중국 연변의 북한식당 「금강원」에서 동생 완씨등과 술을 마시다 실종된 뒤 행방불명됐었다.〈구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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