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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20) 무역의 나라-고려

    903년 3월,왕건은 수군을 거느리고 서해를 내려가 나주지역을 점령하였다.909년에는 해군 대장군으로서 나주를 지키면서 후백제가 절강성의 오월국에보내는 사신선을 나포하기도 하였다.그는 경기만의 함선을 거느리고 영산강하구와 인근 섬에서 창궐하는 해적들을 소탕한 백선(百船)장군이었다. 해양세력인 그의 가계는 매우 독특하다.선조 호경은 백두산 산신이다.작제건은 주몽처럼 신궁으로 서해용왕의 딸과 혼인했다.단군신화나 해모수신화등과 구조적으로 일치하는 고려의 건국신화는 바다와 관련이 있다.하늘과 바다의 만남,산신과 해신의 결합에서 탄생한 것이 왕건이다. 경기만은 한반도에서 가장 훌륭한 해륙교통의 요지이고,중핵에 있다.그 가운데에 위치한 강화도 일대는 해구(海口),혈구(穴口)라고 하여 서울과 개성,해주 등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것이다.해상세력이 해양력을 바탕으로 물류체계를 장악하면 경제력과 정치력을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인 거점이다.왕건의집안은 황해 남부와 경기 서부, 강화도가 만나고,황해와 한강 하류와 예성강이 합쳐지는 소지중해와 같은 이곳에서 성장한 해상토호이다.송악(개성)은후에 해양경영을 염두에 두고 계획도시로 조성되었다(한재수 설). 고려는 처음부터 해양활동이 매우 활발하였다.북방의 요나라를 견제하고,문화를 받아들였으며,무역을 위해서 한족과는 자주 교섭하였다.태조때부터 황해를 건너 후양(後梁)과 교섭했으며,송(宋)이 건국한 다음부터는 본격적이었다.송은 거란을 치기 위해 고려에 파병을 요청하기도 했다.160여년간 고려는 송라에 57번을,송은 고려에 30번의 사신을 보냈다.2년에 한번 꼴로 사신단이 오고간 것이다.이 때 탁월한 외교관이었던 서희(徐熙)는 7년동안 끊어졌던 외교를 바다를 건너 재개시키기도 하였다.송과의 교섭은 해양이 아니면불가능했다. 송나라에 간 유학생들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하기도 하였다.반대로 고려에서 관직을 받은 송나라 사람도 있었다.승려 의통(義通)은 947년 바다를 건너가 영파에서 법(法)을 전파했다.대각국사 의천은 절강성 항주에 머물기도했는데,근래 서호(西湖) 부근에서 고려의 절터가 발견되었다. 고려와 송나라는 엄청난 규모의 무역을 했다.사신선들은 공무역선이었다.송은 고려에 의복 상아 차 칠 옥 물소뿔 악기 술 새(鳥)등을 수출했고,고려는비단 삼 부채 종이 먹 등 수천점을 보냈다.1078년에는 송이 100종이 넘는 품목과 6,000건에 달하는 물건을 보냈고,고려도 그에 상당한 물건을 보냈다.그러나 당대의 문장가이며 관리였던 소동파는 고려와의 무역이 피해가 심하다고 비판적이었다. 민간의 무역은 더욱 발달하였다.고려사에 따르면 1012년부터 1278년까지 266년간 송나라의 상인이 129회 5,000여명이 왔다.황해는 엄청난 무역이 이루어지는 황금의 바다(gold-sea)였다.상인들은 주로 절강성 복건성 광동성 출신이었다.서역상인들도 많이 와서 1024년에는 100여명이 온 적도 있었다.개성은 다양한 인종과 물건들이 모이는 동아지중해의 유명한 국제도시였다.고려가요 ‘쌍화점(雙花店)’에서 여인의 손목을 잡은 회회인(回回人)은 바로서역의 상인이었다. 반대로 고려인들도 중국의 남방의 여러 도시에 진출하여 살고 있었다.지금도 영파에서는 고려관터를 발굴하고 있다.이러한 교역은 원나라가 세워진 다음에도 지속되었다.원의 세조인 쿠빌라이는 쌀을 강남에서 고려로 3차례 운송하기도 하였다.특히 일본원정을 위해서는 20만석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면 당시의 항해술과 항로는 어떠했을까? 처음엔 주로 고려의 배로 왔다갔다 했다.태조인 왕건이 사신을 파견했을 때,등주 근처에서 배가 파손하여90여명이 익사하였다.1019년에도 등주 부근에서 배가 파손되었다.어려운 항해였다.항로는 크게 3개가 사용되었다. 첫번째는 예성강 하구에서 출발해 옹진반도까지 나간 다음 황해를 직횡단하여 등주로 들어가는 항로다.초기에 사용됐는데 2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두번째는 역시 예성강구와 산동반도 하단의 밀주를 잇는 항로다. 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동중국해 사단항로다.이 항로는 북송의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극(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란 책에 일정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즉 배는 영파를 출발,보타도에서 바람을 기다린 다음 북상하여 상해만 바깥바다까지 와서 거의 사선으로항해하여 흑산도로 향했다.이어 고군산도 자연도 등을 거쳐 예성강 하구에 도착하였다. 이 항해는 늦봄에 남서풍을 타고 해류의 흐름을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도착할 수 있다.송사(宋史)에 의하면 순풍일 경우에 흑산도까지 5일이 걸린다고하였다.필자는 지난 1997년 6월 하순에 뗏목 ‘동아지중해호’를 타고 이 항로를 답사했다.항로는 일치했지만,흑산도까지 17일이 걸렸다.동중국해 사단항로는 원양항해구역이므로 고난도의 천문항법에 능숙해야 한다. 원양항해와 대규모 교역은 성능이 훌륭하고 큰 배가 있어야 가능하다.왕건의 전투선은 23m 넓이에,위에 다락이 있었다.동해에서는 여진의 해적선들을격퇴하기 위하여 과선(戈船)을 만들었는데 이름대로 뱃전에는 창검을 꽂았고,앞머리에는 적선을 들이받는 충각을 달았다.70여명이 탈수 있었고 적재용량이 1,000석인 큰 배였다. 송의 사신선은 신주(神舟)와 보좌하는 객주(客舟) 여러 척으로 구성되었다. 객주는 길이가 30m,배높이가 9m 폭이 7,5m이고,돛은 높이가 30m이고,곡식 2,000섬을 실을 수있다.신주는이보다 3배쯤 크다.상인들의 배도 큰 차이가 없었다.이 대형선박들이 황해와 동중국해를 누비며 고려와 중국을 이어주었다. 고려는 장보고의 전통을 이어받은 해상세력들로 출발해 문화와 경제가 발전한 국제적 국가였다.반면에 조선은 바다를 막아 해양력을 제거하면서 수동적이고 폐쇄적이 되어 주변부 국가로 전락하였다.21세기는 바다가 열린 신세기이다.세계질서는 물론이고,특히 동아지중해의 질서는 해양력이 민족의 생존력임을 역사가 증명해왔다. [尹明喆 동국대겸임교수]
  • 백두산 고산초원 첫 공개

    북한이 최근 개방한 백두산의 서쪽 코스 대협곡과 1,500m 고원의 고산초원등이 TV 뉴스를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MBC는 23,24일 ‘아침뉴스 2000’ 및 ‘뉴스데스크’시간에 특집 편성될 ‘천지 방송’코너를 통해 이를 공개한다고 22일 밝혔다. MBC가 최초로 중국정부의 공식 취재방송 허가를 받아 제작한 ‘천지 방송’은 제작진이 12∼20일 9일간 중국 현지에서 취재,리포트한 내용으로 구성되며,백두산 일대의 풍광과 관광사업화 현황 등을 하루 4건 정도 리포트할 계획이다. 손정숙기자 jssohn@
  • [義烈 독립투쟁] (6) 윤봉길 의사

    1932년 4월29일 오전 11시30분쯤 상하이(上海) 홍구(虹口)공원(현 노신공원)에서는 일본군이 상하이사변의 승전기념식을 겸해 일본국왕의 생일잔치,이른바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이 거행되고 있었다.이날 한국의 의혈청년 윤봉길(尹奉吉)이 그 단상에 폭탄을 던져 상하이 침공의 우두머리인 일본군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則)대장을 비롯한 10여명의 원흉들을 쓰러뜨렸다. 당시 현장에서 러시아 여행객이 찍은 비디오를 보면,사열대와 함께 엎어지고 쓰러지는 원흉들의 모습은 마치 일본 제국주의와 세계 제국주의가 함께무너지는 장쾌함을 보였다.윤의사가 세계로부터 정의의 삶을 대변한 ‘의사'로 불리고 있는 것는 바로 이 때문이다.당시 세계의 언론들은 상하이를 주목했는데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언론일수록 제국주의를 맹타한 윤의사를 높이치켜세웠고 또 한국의 독립운동을 들먹였다.국내외 동포들은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특히 ‘상하이의거’를 주도한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그리고 한인애국단 단장 백범 김구(金九)를 주목하기 시작했다.임시정부가 한인애국단을 결성해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것도 그러한 주목을 끌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왜냐하면 1차대전이 끝난 뒤에는 파리강화회의의 안정기조라고 하는 신제국주의적 질서에 온 세계가 눌려 독립운동도 외면당하고 있었으므로 그 신질서를 깨야 할 필요가 있었다.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한인애국단을 만들고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때마침 뉴욕 월가(街)의 증권파동을 계기로 경제공황이 몰아쳐 왔고,일본제국주의가 만주를 침공하더니 다시 상하이를 침공하여 상하이의 한국 임시정부 인사들은 그것을 파리강화체제를 무너뜨리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임시정부는 한인애국단을 만들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대륙침략에 대한 반격작전을 세웠다.이봉창(李奉昌)의사로 하여금 일제의 심장인 도쿄 궁성을,최흥식(崔興植)·유상근(柳相根)의사로 하여금 만주침략의 아성인 관동군사령부를 공격토록 한데 이어 윤의사로 하여금 상하이 침공의 선봉을 꺾어놓는다는 소위 ‘삼면작전’을 세웠다.이같은 작전을 구상한 사람은 백범이었는데윤의사의 ‘상하이 의거’ 성공으로 전세계를 진동시켰다. 윤의사는 원래 농민운동을 통해 고향의 부흥을 꾀하던 진보적 계몽주의자였다.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야학당과 청년회·체육회·부흥원을 조직하였으며 ‘농민독본’도 저술했다.그러나 경제공황까지 덮친 식민지 하에서 농민운동이 성공하기는 어려웠다.윤의사는 마침내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즉 ‘대장부는 뜻을 세워 한번 집을 나서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며 중국 대륙으로 향했다.그것이 1930년 윤의사가 23세 때의 일이다. 처음 산둥(山東)반도의 칭다오(靑島)에서 세탁부로 일하던 윤의사는 이듬해5월 상하이로 건너갔다. 때마침 상하이에서 상하이사변이 일어나 일본군과중국군이 싸우는 대포소리를 들으며 고향의 어머님께 보낸 편지에서 “민족과 민족이 부닥치는 소리가 꽝꽝합니다”라고 표현했다. 그 꽝꽝하는,민족과민족이 부닥치는 소리를 들으며 윤의사는 의사가 되기 위해 꿈을 키웠다. 청년 윤봉길은 백범 김구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자신의 생명을불태워 정의를 현양하는 꿈을 실현코자 했다. 윤의사는 ‘성인군자는 살아서영예가 있지만 의사는 죽어서 말한다’는‘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1932년 4월29일 아침 윤의사는 일본식 도시락과 물통,일본 국기를 들고 홍구공원을 향해 떠났다.도시락과 물통이 바로 폭탄이었다.이 폭탄은 당시 중국군 장교로 상하이 병공창에 근무하던 김홍일(金弘壹·중국명 王雄·전광복회장)이 만든 것이었다. 의거 당일 아침 윤의사는 백범과 살아서는 ‘마지막 식사’를 같이했다.그리고 윤의사는 자신의 시계와 백범의 시계를 바꾸어 찼다.자신의 시계는 6원짜리였고 백범의 것은 2원짜리였다.“선생님,나는 한시간밖에는 시계가 필요치 않습니다”라며.죽음을 앞에 둔 청년이 보여준 태연한 여유를 보면서 백범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렇게 떠나간 윤의사에게 시계는 아니나 다를까한 시간밖에 필요치 않았다.11시반쯤 홍구공원의 폭음과 함께 그 시계도 멈추고 말았다. 윤의사의 의거로 침체됐던 독립운동이 생기를 찾고 활기를 띠게됐다.또 국내외 동포가 다시 임시정부로 마음을 모으게 됐고 국제적으로도 한국독립을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중일전쟁 와중에서 임시정부가 중국대륙 곳곳으로 이동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이나 1940년 충칭(重慶)에 정착,8·15광복때까지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은 윤의사의 의거로 국내외 동포들의 마음을 한 군데로 모으고 중국정부를 비롯한 국제적 지원을 얻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의거후 현장에서 체포된 윤의사는 일본으로 이송돼 그해 12월19일 가네자와(金澤)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일제는 윤의사의 시신을 길거리에 묻어 행인들이 밟고 다니게 했는데 이같은 야만성은 일본제국주의밖에는 없다.해방후 윤의사의 유해는 백범의 지시로 이봉창·백정기(白貞基)의사등과 함께 봉환,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尹의사의 사회개혁 활동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는 초창기 야학·문맹퇴치운동 등에 헌신한 개혁주의 성향의 농촌운동가였다.윤의사가 20세 되던 해인 1927년에 출간한 ‘농민독본(農民讀本)’은 윤의사의 계몽사상을 집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초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권은 유실되고 현재 제2·3권만 전해오고 있다. 제2권은 ‘계몽편’으로 편지 쓰는 법,인사법 등 생활교양과 조선지도,백두산 등에 대한 소개 등 일반상식을 가르치고 있는데 현재 8과까지만 보존돼있다. ‘농민의 앞길’이란 제목의 제3권은 농촌개혁 방향과 농민의 당면과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앞부분에는 ‘소리의 갈래’등 한글맞춤법도 소개돼 있다. 총 25과로 구성된 제3권은 현재 7과까지만 보존돼 있다. 제2권이 기초학습자료라면 제3권은 일종의 사상독본이라고 할 수 있다.당시 윤의사로부터 야학지도를 받은 예산군 덕산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농민독본’을 암송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김학준(金學俊)인천대총장은 윤의사 평전에서 “매헌은 한낱 시골의 야학당교사가 아니라 이미 이 무렵부터 사회개혁과 이상국가 건설을 꿈꾼 선각자적 지식인이었다”고 평했다. 정운현기자 jwh59@kdaily·com *윤봉길의사 직계후손들 근황 윤의사는 부인 배용순(裵用順·88년 작고)여사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윤의사 의거 당시 장남 종(淙)씨는 세살이었고 둘째 담(淡)은 배 여사 뱃속에 있었다.둘째 담은 두살때 영양실조로 일찍 세상을 떴다. 일제때는 일제의 방해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장남 종(淙)씨는 해방후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10여년간 농수산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84년간경화로 타계했다. 윤의사의 부인 배여사는 남편없이 외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살다가 88년 82세로 작고했는데 배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윤의사 의거 50주년인 82년 배여사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는데 이 해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배용순 효부상’을 제정,매년 윤의사 의거일인 4월29일 예산 충의사(忠義祠)에서 시상하고 있다. 현재 윤의사 직계후손 가운데 가장 웃어른은 윤의사 며느리 김옥남(金玉南·67·서울 동작구 상도동 거주)씨.김씨는 딸 여섯에 끝으로 아들 하나를 두어 겨우 윤의사의 대를 이었다.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金信)장군이 교통부장관 재직시절 김포공항에 스낵 가게를 주선해줘 겨우 살림을꾸려왔다”며 “윤의사의 후예 7남매를 모두 반듯하게 키운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윤의사의 유일한 손자 주웅(柱雄·29)씨는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현재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 재직중인데 97년에 결혼,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주웅씨 위로 누나 여섯 사람도 모두 출가했다. [정운현기자]
  • KBS등 방송3사 ‘자축 상차림’ 푸짐

    방송의 날을 기념, 방송사들마다 이런저런 특집프로그램을 마련했다.자축상차림이라선지 새로운 기획다큐멘터리 한두가지에 한국방송대상 수상작들을앙코르로 물렸다. 한국방송대상 대상을 수상한 MBC TV ‘칭찬합시다’팀은 앙코르특집을 오후7시부터 마련,김국진,최불암,김혜자,임성훈 등 연예인들의 축하메시지를 듣고 지난 5월4일 방송됐던 ‘대통령과 함께 점심을’편을 재방송한다.또 지난달 19일부터 23일까지 백혈병 및 소아암을 앓았거나 투병중인 14세∼22세 청소년 7명이 백두산을 등반하는 과정을 취재한 다큐멘터리 ‘종찬이의 아름다운 여행’을 오전 11시부터 한시간동안 내보낸다. KBS 1TV는 ‘밀레니엄 기획 한국최초 히말라야 등정 생방송-여기는 캉첸중가 베이스캠프’(7시35분)를 준비했다.해발 8,586m 캉첸중가봉을 정복하기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이어질 SNG(위성중계) 생방송의 테이프커팅격.밤 10시 ‘코리안 네트워크 한인방송’에서는 지난 86년 미 FCC(연방통신위원회)로부터 미주지역 최초로 독립방송국 면허를 취득한 하와이의 한국어 방송 KBFD-TV와 오는 10월 서울프라이즈 라디오부문 최우수상을 받게될 길림성 훈춘인민방송국의 맹활약이 소개된다.특선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2TV)도 방송된다. 이와 함께 ‘영상기록 병원 24시-어떤 형제’,‘일요스페셜-황사’(이상 KBS 2TV),‘잃어버린 백제를 찾아서’,‘바다의 무법자 불가사리’(이상 MBC),‘황수관의 호기심천국’,‘그것이 알고싶다-국군포로 장무환…’‘기둥에서문살까지’(이상 SBS) 등 한국방송대상 수상작들이 재방송된다. 손정숙기자 jssohn@
  • 인터뷰-연극계 노장 장민호씨

    KBS-1TV TV문학관 ‘아우와의 만남’방영일자가 우여곡절끝에 새달 26일로잠정결정됐다. 작가 이문열씨의 동명 원작을 얼개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북에 남은 이씨 아버지 생존여부를 둘러싼 최근 일련의 해프닝 ‘덕’에 일단 화제를 업고 들어가게 된 것이 사실. 이처럼 도드라지지는 않으나 드라마에 눈밝은 이들이라면 반가워할 작은 ‘호재’도 숨어 있다.연극배우 장민호(72)씨의 출연이다. 지난 97년 배우인생 50년을 맞은 장씨가 TV나들이에 나서는 것은 지난 96년SBS 민영TV의 날 특집극 ‘아까딴유’이래 3년만. “북에 두고온 처를 50년만에 만나려고 연길행 비행기에 오르는 노인역입니다.이복동생을 찾는 주인공만으로는 단조로워질 수 있는 드라마에 활력을 더해주는 요소라고나 할까요.”역시 황해도 출신 월남민인 장씨에게 배우생활 50여년은 분단시계 흐름과 바로 일치한다.때문에 그는 연기자보다 실향민으로서 할말이 더 많다. “백두산이라면 아무 민족이나 가질 수 없는 명산인데요,그나마 반쪽이 중국에 팔렸어요.또 우린 우리 민족 소유도 아닌중국쪽으로 로케를 가기 위해그 까다로운 비자심사를 거칠 수밖에 없었으니 이 얼마나 희비극적입니까.”그는 또 거리를 둔 자만의 특권으로 방송제작의 졸속 관행도 공박한다. “운나쁜 이는 열흘 올라도 해를 볼 수 없다는 백두산 정상 로케일정이 딱하루 잡혀있더군요.나쁜 일기에서 고군분투하고 돌아섰는데 그 다음날 등반팀에게서 천재일우의 맑은 날을 봤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모두 아쉬움을 금치 못했습니다.”북경에서 열린 베세토연극제에 함세덕의 ‘무의도 기행’을 올리고 며칠전돌아온 장씨는 아직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영원한 현역’임을 자부했다. 손정숙기자
  • [외언내언] 경복궁 복원

    경복궁 복원 공사를 둘러 싸고 말이 많다.토종 소나무가 아닌 수입 목재가대량(30%) 사용되고 있고 나무를 충분히 말리지 않아 기둥 곳곳이 심하게 갈라졌으며 흥례문의 처마 기울기가 40㎝ 가량 높게 시공되는 등 원형과 다른복원사례가 50건이나 된다는 것이다.감사원의 특별감사 결과에 대한 일부 언론의 이같은 보도에 대해 문화재청은 펄쩍 뛴다.실제로 사용된 수입목재는 4% 이하(백두산 장백송 포함)에 불과하고 기둥 갈라짐은 소나무의 특성상 불가피한 현상으로 기존 고건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며 복원사례가 원형과 다르다는 지적은 말도 안된다는 주장이다. 지난 90년 10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경복궁 복원 공사는 민족정기 회복을 위한 대역사(大役事)다.일제가 계획적으로 훼손한 조선왕궁 궁제의 기본틀을회복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 내고 총 48동의 전각을 새로 복원해2009년 까지 84개의 전각이 들어서게 된다.고종 당시 330여동의 전각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투입되는 예산만도 수천억원에 이른다.따라서 한치의 오차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감사원의 특별감사 결과는 그래서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드는데 문화재청의반론을 들으면 어느쪽이 옳은지 헷갈리게 된다.감사원은 그 권위를 누구도의심하기 어려운 기관으로 이른바 끗발에서 문화재청은 한참 밀린다.그러나문화재청은 경복궁 복원사업이 추진된 이후 70여회의 전문가 자문회의를 개최하는 등 철저한 고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서 자문에 응한 문화재 위원들은 감사원이 접근할 수 없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끗발에 밀려서 심혈을 기울인 경복궁 복원공사 관련자들의 사기가 떨어져서는 안될 일이고 전문성의 장막에 가려 경복궁 복원이 잘못되는 것이 방치돼서도 안될일이다.결국 대통령이 지시했듯이 복원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조사해서 시정할 것이 있으면 시정해야 할 것이다. 수입목재 사용량과 나무를 충분히 건조시켜 사용했는지 여부는 조사결과 쉽게 밝혀질 것이지만 문제는 수입목재 사용이 불가피 했느냐이다.일본에서는자국의 산림자원 보존차원에서 문화재보수용 목재를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지만 경복궁 복원에 사용할 나무는 가능한 국산 목재가 바람직하다고 본다.경복궁 복원공사에서 목수일 총책인 도편수를 맡은 인간문화재 신응수(申鷹洙)씨는 지난 91년 한 신문 인터뷰에서 “고건축 복원에는 국산 적송이 가장 좋다”고 말한 바 있다.기둥과 서까래용으로 사용될 200∼300년된 목재를국내에서 구하기 힘들다지만 경복궁 복원용 정도는 정부 차원에서 나선다면충분히 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고증문제는 심도 깊은 토론이 따라야 할 것이다./임영숙 논설위원
  • 서울대 수의대 黃禹錫교수 ‘백두산 호랑이 복제한다’

    멸종위기에 있는 백두산 호랑이(한국 호랑이)를 체세포 복제방식으로 대량복제하는 연구가 진행돼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내 처음으로 체세포(體細胞) 복제를 통해 복제 소(牛) ‘영롱이’와 ‘진이’를 탄생시킨 서울대 수의과대 생물공학연구실 황우석(黃禹錫)교수는 22일 “소가 태어난 것과 같은 방식으로 호랑이를 복제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두산 호랑이의 귀에서 떼낸 세포핵을 탈핵난자에 이식시켜 복제한 뒤 대리모에 착상시키는 방법이다.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것과 같은 방식이다. 하지만 호랑이의 경우 핵을 이식할 다량의 난자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황교수는 다른 동물의 난자를 사용하고 있다. 황 교수는 “아직 연구 초기단계여서 어떤 동물의 난자가 사용되는지 밝힐수 없지만 전 세계에서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이종(異鍾)간 핵이식이어서학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종간 핵이식이 성공한다면 사람의 각종 장기세포를 다른 동물에 이식시켜만들어내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황 교수의설명이다.황 교수는 수컷 호랑이도 복제해 낼 계획이다. 생쥐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유전자 클로닝으로 수컷을 탄생시킨 예가 없다. 황 교수는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것은 6·25 전쟁과 과도한 국토개발로 생태적인 여건이 부적절했기 때문”이라며 “암수 호랑이 여러 쌍을 탄생시켜 일정 기간 키운 뒤 자생할 수 있도록 자연 속으로 돌려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종전 이후 40여년간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아 숲이 우거지고 먹이사슬의 하위동물이 다양하게 분포된 비무장지대가 백두산 호랑이의 자생을 위한 최적지로 꼽힌다.‘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까지 보내질 지도 모른다. 백두산 호랑이 복원계획은 동물다양성 문제를 다루는 유엔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황 교수는 전했다. 함혜리기자
  • [외언내언]‘8월의 친일인물’

    친일파 청산문제를 줄기차게 추진해오는 민족문제연구소(소장 박봉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8월의 친일인물’로 선정,발표했다.연구소 쪽은 인터넷홈페이지에 박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에 관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는데,박 전대통령이 42년 당시 일본의 괴뢰국이던 만주국 신경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사를 거쳐 45년 8·15광복을 맞을 때까지 만군 중위로 복무한 것은 잘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70년 여름 필자는 인도네시아에 취재를 갔다가 가루다항공 국내선에서 인도네시아 육군 소령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수하르토의 쿠데타로 축출돼 보고르궁(宮)에서 유폐생활을 하고 있던 수카르노가 얼마전에 사망했던지라,수카르노의 정치적 공과(功過)가 화제에 올랐다.소령은 수카르노가 친공(親共)노선에 기울었고 국제정치적 명성을 얻는 데 집중한 나머지 인도네시아를 가난에 빠뜨렸다고 비난했다.그러면서도 그는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수카르노의 독립투쟁 관련 업적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소령은 지나가는 말처럼 필자에게 물었다.“그런데,박대통령은 ‘패트리엇 헌터’였다면서요?” ‘패트리엇 헌터’라니?‘애국자 사냥꾼’이라면 ‘독립군 토벌대’란 뜻이 아닌가?나는 그가 항일 독립투쟁 시기 박대통령의 관동군 경력을 말하는 것을 깨닫고,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그때 나는 ‘한국의 신문사 기자’이자 ‘예비역 공군중위’라고 나 자신을 소개했던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96년 여름에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가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옌지(延吉)로 향하던 관광버스 안에서의 일이다.버스가 지린성(吉林省)안투(安圖)를 지나던 때 조선족 관광안내원이 말했다.“이곳이 바로 일본 관동군사령부가 있던 곳으로,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관동군 장교로 조선독립군을 토벌했다고 합니다” 필자를 비롯해서 한국인 관광객들은 대꾸할 말을 잃고 서로 얼굴을 돌아볼 뿐이었다. 8월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국치일(國恥日)과 국권을 회복한 광복절이 함께 들어있는 달이다.친일파 청산문제는 역사의 이름으로 엄정하게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이다.그것은 역사의 기둥을 올곧게 세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우리는 오늘날 일본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군국주의’경향에 대해서도 경계와 대책을 게을리해서는 결코 안된다./장윤환 논설고문
  • 전민조씨 ‘가짜사진 트릭사진’ 출판

    사진은 가장 사실적인 장르다.있는 그대로를 표현한다.그러나 조작·왜곡·합성 등으로 사진의 사실성이 훼손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가짜사진 트릭사진’(전민조 엮음)은 이러한 사진의 허상을 폭로하고 있다.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된 대표적인 사진 중의 하나는 북한이 지난 1994년 공개한 ‘백두산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사진이다.김정일의 키가 아버지보다작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이 사진에서는 키가 비슷하다. 신문 사진기자 출신의 지은이는 김일성·김정일의 사진을 백두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촬영한 다음 각기 오려서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몽타주했다고분석한다. 맥아더 장군이 상륙정에서 내려 바지를 적시며 걸어나오는 유명한 사진에도‘허상’이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 사진을 인천상륙작전 때의 모습으로 알고 있다.그러나 태평양전쟁 중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에 상륙할 때 찍은사진이다. 맥아더 장군이 일본군에 쫓겨 이동해 있다가 필리핀의‘코레이돌’을 떠난지 2년 7개월여만인 1944년 10월20일 필리핀으로돌아오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더욱이 이 사진은 연출된 작품이다.맥아더 장군의 역사적인 필리핀 상륙 장면을 놓친 ‘라이프’지(미국의 사진전문 잡지)의 칼 마이단스 기자를 위해 1945년 1월19일 군함을 동원, 루손 섬에서 상륙 장면을 재현하며찍은 사진이다. 이 책은 그밖에 지난 대통령선거 때 김대중 후보와 김일성을 나란히 있게변조한 사진,멸종되었다고 믿고 있던 한국산 호랑이가 경북 대덕산에 나타났다며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호랑이를 보도한 이야기,한국의 악우회(岳友會)등반대가 정상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진을 찍고 정상을 등정했다고 발표한내용을 비롯 많은 조작·표절·오보·컴퓨터 그래픽 조작 등을 담고 있다. 지은이는 사진의 이러한 ‘허상’에 우려를 나타낸다.그는 특히 한국 사진기자들이 현장에서 연출을 하지 않으면 사진이 안되는 것처럼 연출사진 중독증에 걸린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연출은 조작과 날조로 이어질 수있으며 한국의 사진 저널리즘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지나친 사진 연출이 없어져야 한다.’이창순기자 cslee@
  • 고참 상습구타에 이병 자살 한달만에 뒤늦게 밝혀져

    지난 6월 19일 육군 백두산부대 65연대 수색중대 소속 김영식 이병(20·울산)이 고참들의 심한 구타와 폭언,부소대장의 가혹행위를 참다 못해 유서를남기고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자민련 정책위원회(의장 車秀明)는 13일 “자민련이 PC통신에 게시한 ‘군사병 구타사망 예방 토론방’을 본 김이병의 누나가 차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같은 사실이 알려졌다”면서 “육군은 이번 사건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민련에 따르면 김 이병은 지난 2월20일 강모 상병(21·구속)에게 목욕탕으로 불려가 ‘군가를 부르는 데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주먹 등으로 머리와 가슴을 맞은 데 이어 3월3일 김모 상병(21·구속)에게도 같은 이유로보일러실에서 전투화발로 가슴 부분을 5차례 구타당했다.고참병의 구타와 간부의 폭언을 견디지 못한 김 이병은 부대 인근 야산에 “그 X 부모 형제 자식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귀신이 되어 복수하겠다.개처럼 살기 싫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 자살했다. 김인철기자 ickim@
  • 양천구, 어린이 문화운동 전개

    양천구(구청장 許完)가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위해 문화복지행정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아동 문학·음악·미술가와 어린이도서 출판인 등과 손잡고 ‘어린이 문화운동’을 펼치는가 하면,어린이와 엄마가 함께 하는 동화모임을 만드는 등다양한 가정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구는 지난 12일 목4동으로 이전한 사단법인 어린이문화진흥회와 공동으로 목동어린이문화샘터와 목동작은도서관을 개관했다.어린이문화샘터에서는 진흥회 회원인 아동문학가·신문기자·논술전문가들이 지도하는 ▲독서▲컴퓨터글쓰기▲논술▲독서상담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목동작은도서관은 2만여권의 도서를 갖추고 있으며 현재 후원회원을 모집중이다. 구는 이밖에 ‘볕내생협 동화읽는 어른의 모임’이라는 주민 동아리를 만들어 어린이들의 책고르는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볕내’란 ‘양천’을 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며 ‘생협’은 ‘생활협동조합’의 준말.현재 회원은 12명이며 매주 금요일 목동도서관 지하의 문화교실에 모여 동화책에 관한 이론서를 읽고세미나도 갖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구청 다목적회관에서‘팥죽할머니와 호랑이’‘내 짝궁 최영대’‘백두산이야기’‘은지와 푹신이’등 그림책을 멀티슬라이드로 상영하는 빛그림 이야기 행사를 가졌다. 구 관계자는 “미래 세대인 어린이들을 위한 투자를 과감하게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순기자 fidelis@
  • SBS ‘출발모닝와이드’ 백두산 조선족 농촌생활 엿보기

    백두산 하늘 아래 첫동네인 중국 길림성 이도현 내두촌.해발 1,100m에 자리잡은 이 마을에는 조선족 60가구 180명이 살고 있다.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100여년 전 간도 대이주때 둥지를 틀고 집단부락을 형성했다.워낙 오지인 탓에 연길이나 도문에 사는 조선족들도 잘 모를 정도이다. SBS ‘출발모닝와이드’(매일 오전 6시)는 21일부터 13부작으로 이 곳 주민의 생활상을 보여준다.부제는 ‘윤동혁PD의 백두산 조선족 탐방기’. 연길에서 자동차로 6시간 거리의 내두촌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가장 가까운 읍내로 나가려면 3일에 한번씩 오가는 마을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로 산길 22㎞를 달려야 한다.제작진은 마을 촌장집에서 일주일간 머물면서 순박하기 이를데 없는 주민들의 일상을 엿보았다.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고,두부 찌꺼기로 돼지를 먹이는가 하면 어느새 남편과 술을 빚는 홍미엄마는 영락없는 우리 시골 아낙네의 모습이다.고사리를 캐는 할머니를 따라 집을 나선 제작진은 운좋게 백두산 원시림을 촬영,화면으로 내보낸다.영화세트장 같은 내두촌의모습은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곳에도 코리안드림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딸을 대구로 시집보낸 집도 있고,아들을 서울대학교에 유학보낸 이도 있다.제작진은 또 서른명 남짓되는 조선어린이들이 조선말로 공부하는 초등학교를 방문했다.2학년과 5학년은 한 명도 없고,중학교는 50리 떨어진 읍내로 나가야 한다. 이 프로는 내두촌에 이어 중국내 조선족 200만명 가운데 100만명이 모여살고 있는 연변지역을 탐방했다.HOT의 노래가 유행하는 이 곳은 취업사기와 탈북자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악화돼있다. 윤PD는 “한국대표팀과 중국대표팀이 경기를 벌이면 연변 조선족 열이면 열 모두 중국팀을 응원하는 데 깜짝 놀랐다”면서 “우리가 조선족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고 취재과정에서 느낀 점을 털어놓았다. 이순녀기자 coral@
  • 한·중·러·일 ‘바닷길’잇따라 열려

    서해교전으로 안전항해에 심각한 위협이 제기된 환(環)서해권 항로를 대체할 수 있는 환동해권 항로가 잇따라 개설된다. 16일 해양수산부와 해운업계에 따르면 오는 7월 중 부산과 러시아 포시에트를 잇는 정기 컨테이너 항로가 개설된다.8월에는 백두산 관광객 및 개인사업 여객을 위한 ‘백두산 항로’(속초∼러시아 포시에트∼중국 훈춘)개설에 이어 부산∼북한 나진∼일본 니가타∼부산을 연결하는 정기컨테이너 항로가 개설된다. 특히 오는 9월부터는 러시아의 모든 항로를 부산항과 연결하는 것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환동해 경제권이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연말에는 한서해운이 독점 운영 중인 부산∼나홋카(블라디보스토크 인근) 항로가 복수 경쟁체제로 바뀐다. 환동해권 항로는 우리나라 동해를 통해 한국,중국,러시아,일본을 연결하는여객 및 컨테이너 항로.지금까지는 러시아,중국과의 항로개설협의가 원만치못했고 환동해 경제권의 교역규모도 미미해 10년전부터 개발된 환서해권 항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되지 못했었다. 지금까지 중국동북부 지역의 화물은 중국 다롄항을 통해 일본이나 한국으로 수출됐으나 앞으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환동해권 항로가 각광받을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해양부 관계자는 “냉전의 유산이 남아있어 활성화되지 못했던 환동해 경제권이 해상운송로의 개설로 활성화될 것”이라며 “속초와 부산을 거점항만으로 활용하면 중국동부부와 러시아 연해주의 화물운송로를 확보해 환동해권항로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함혜리기자 lotus@
  • [외언내언] 백두산 가는길

    동해항로를 이용하는 새로운 백두산관광길이 빠르면 8월 중 열릴 것 같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강원도 속초항에서 출항,러시아 포시에트항에 도착한 후중국 훈춘(琿春)까지 연결하는 해륙교통로 개설에 관한 3국간 협의가 완료됨에 따라 새로운 백두산관광길이 개설된다고 밝혔다.동해 백두산항로는 속초항을 출발,포시에트항에 닿은 뒤 러시아쪽에서 통과비자를 받아 43㎞ 떨어진 훈춘에 도착해 이곳에서 백두산까지 339㎞를 버스 등 육상교통을 이용하게된다‘동해 백두산항로’가 8월 개설되면 백두산관광이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새로운 동해 백두산항로는 중국 단둥(丹東)이나 다롄(大連)항을 거쳐 우회육로를 이용했던 기존의 한·중 해상운송로를 1,000㎞ 정도 단축시킬 수 있다.속초에서 25시간이면 백두산에 도착할 수 있어 기존의 인천항∼단둥∼백두산코스(48시간)에 비해 시간을 절반 가량 줄일 수 있다.여행경비도 140달러(한화 16만8천원)로 기존 서울∼베이징(北京)∼옌지(延吉)간 항공요금 420달러(50만원선)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진다.특히 동해 백두산항로가 개설되면 중국 동북지역과의 교역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현재 우리나라와 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성 등 중국 동북지역과의 교역이 4억5,000만달러규모에서 10억달러 규모로 크게 활성화될 수 있다. 두만강개발계획(TRADP)에 따라 북한 나진·선봉과 훈춘·포시에트를 꼭지점으로 설정된 1,000㎢ 규모의 두만강 경제삼각지대 개발도 활기를 띨 것으로예상된다.이번에 새로 개설되는 동해 백두산항로는 그동안 러시아가 여러가지 이유로 지연시켜오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러시아 국빈방문 직후 동의함으로써 양국 관계 증진의 단면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백두산 가는 길이 점자 넓어지고 있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한 성과를 기대할 수있다.민족의 성산(聖山)인 백두산관광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한반도 평화정착에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현재 우리 기업들이 북한 내륙을 통한 백두산관광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적잖이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리고 백두산관광이 활성화되면 옌볜(延邊)지역의 우리조선족 동포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우리 국민들의 백두산관광이 격감됨에 따라 옌볜지역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한다.지난해 2백여개 소의 노래방 가운데 올들어 40여개 소가 문을 닫았을 정도다.새로운 동해 백두산항로 개설이 북녘땅의 문호를 개방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도록 기대해 본다.
  • 백두산 항로 빠르면 8월 뚫린다

    빠르면 오는 8월부터 속초항에서 러시아 포시에트 항과 중국 훈춘(琿春)을거쳐 백두산 관광을 할 수 있게 된다. 해양수산부는 속초항과 러시아 포시에트를 잇는 항로개설 제안에 대해 러시아 측이 최근 동의해 옴에 따라 속초∼포시에트∼훈춘간의 해륙교통로인 ‘백두산 항로’가 올 8월 중 개설된다고 9일 발표했다. 백두산 항로는 우리나라와 러시아,중국을 연결하는 최초의 여객항로로 93년 한·중 두 나라가 속초∼훈춘 항로개설에 합의한지 6년만에 개설되는 것이다.이에 따라 중국 길림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 등 중국 동북지역과 우리나라의 운송거리를 1,000㎞ 이상 단축시켜 교역특수를 유발하고 장기적으로 환동해(環東海) 경제권 조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해양부는 포시에트항 경유를 위한 비자수속 절차 등을 이달 중 매듭짓고 동북훼리 등 사업자에 대한 여객운송사업면허 발급,속초항 국제여객터미널 건립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백두산 관광 본격화 백두산 관광의 경우 속초∼훈춘∼백두산코스(912㎞,25시간)는 기존의 인천∼단둥(丹東)∼백두산 코스(1,848㎞,48시간)보다 거리와 소요시간을 절반정도 줄일 수 있으며 비용도 서울∼베이징∼옌지(延吉)간항공비(420달러)의 3분의 1 수준인 약 140달러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93년 사업자로 선정된 동북훼리는 1만2,000t급 카페리선을 투입해 주 3항차 정도 운항할 계획이다. 백두산 관광은 속초에서 러시아 포시에트항에 도착한 뒤 러시아 측으로부터통과비자를 받아 육로로 43㎞ 떨어진 중국 훈춘을 거쳐 백두산까지 296㎞를이동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중국 동북지역과의 교역증대 조선족 200여만명이 살고 있는 중국 지린(吉林)성 및 헤이룽장(黑龍江)성과 우리나라간 교역규모는 현재 4억달러선.지금까지 주로 인천∼다롄(大連))항로를 이용해 이뤄졌으나 앞으로는 인천항의교역물량 중 상당부분이 백두산 항로로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해양부는 백두산항로를 통한 교역 총량이 1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환동해 경제권 주도 해양부 홍승용(洪承湧)차관은 “청진∼블라디보스토크∼옌지(延吉)의 ‘두만강 경제개발지역’과 그 지역내 두만강변의 나진∼포시에트∼훈춘으로 이어지는 ‘두만강 경제지대(TREZ)’ 개발의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장기전략 아래 이번 항로개설이 추진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속초∼포시에트항로 개설로 해양부는 속초항을 국제 무역항으로 육성,이 지역의 개발기지로 삼는다는 생각이다.포시에트항에 우리 여객선이 들어가면서 인접한 나진항의 개항도 유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함혜리기자 lotus@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4) 만주벌에서 바다로

    우리역사에 고구려란 나라가 있다.군사력이 강하고,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한반도 중부 이북에서부터 만주벌 요하 일대,연해주와 멀리 북방의 초원까지 장악한 나라.하늘과 빛을 지향하는 자의식이 강한 천손(天孫)민족으로 늘 자유를 꿈꾸고,실천하는 사람들의 나라였다. 고구려의 이러한 발전의 배경에는 철기로 무장한채 말을 타고 달리는 기마군단과 강건한 문화가 있다.하지만 또하나,중요한 힘의 원천이 있으니 그것은 하얀 돛을 단 범선으로 동아지중해를 누비던 광범위하고 활달한 해양활동과 그 문화이다.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는 이미 해양활동 능력의 기반을 갖추고 있었으나 초기에는 대륙의 강 위에서만 수상활동을 하였다. 인간은 처음 강에서 수상활동을 하였으며 점차 바다로,대양으로 나갔다.그래서 강은 문화의 출발점이었다.중국에는 황하와 양자강의 유장한 흐름이 수천년간 대하드라마를 연출해왔다.우리들의 배냇고향인 만주에도 큰 강이 초원과 평원 사이를 흘러가며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고 물자를 배분해줬다.백두산에서발원한 송화강은 장춘을 지나 북으로 흘러 초원지대인 대안에서 대흥안령산맥을 출발한 눈(嫩)강과 만나 동류 송화강으로 거듭난다. 북부여 천제인 해모수(解慕漱)가 따라 내려왔을지 모르는 눈강은 배가 다닐 수 있는 통항(通航)거리가 700여㎞이다.송화강은 북만주를 거쳐온 흑룡강과 만나 동해로 들어가는데 통항거리가 무려 1,890㎞에 달한다.수도인 국내성옆을 흐르던 압록강도 통항거리가 750여㎞다.그외에도 요하,혼강,두만강 등은 수로가 깊고 길며 바다로 이어져 큰 배들이 항행할 수 있다. 이러한 강에는 어느 시대,어느 지역에건 이른바 강상수군(江上水軍)이 있다. 고구려는 교역과 전쟁을 하면서 영토를 넓히기 위해 만주벌에 그물처럼 뻗은 강을 관리하는 수군이 필요했다.주몽의 아버지인 천제 해모수는 물의 신으로 불린 하백의 딸 유화부인과 결합했다.고구려는 태양숭배집단과 물에 세력기반을 둔 토착세력이 혼인동맹을 맺으면서 통합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고구려인들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배도 띄웠던 것이다.고구려는 내륙수군에만 만족하지 않고,초기부터 동해로 진출하였다.동옥저가 동해에서 잡은 해산물들을 공급하였으며,민중왕과 서천왕때는 고래잡이도 성행한 듯 야광눈을왕에게 바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동아(東亞)의 지정학적인 구도나 본격적인 국제교역을 위해선 황금의 바다인 황해로 진출해야 했다.그렇다면 험준한 산성전투에 능하고 기마전을 장기로 하는 고구려가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배타고 활동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말을 탄 채 수천리를 행군하는 정복욕이 강한 집단은 해양에도 과감하고 신속히 진출한다.유목문화와 해양문화는 똑같이 이동성을 특성으로 하기 때문이다.고구려는 3대 대무신왕때부터 황해로 진출했을 가능성이 많지만 태조대왕(146년) 때에는 출해구(出海口)인 압록강 하구의 서안평을 공격,대방(帶方)의 수령을 죽이고 낙랑 태수의 처자를 포로로 하였다. 그런데 3세기 전반에 이르러 중국대륙은 위오촉(魏吳蜀) 삼국시대였고,고구려는 위나라와 대결하는 복잡한 상황이었다.이때 강남에 터전을 굳힌 오나라의 손권은 위(魏)를 배후에서 압박하면서 군마와사치품인 담비가죽을 수입하기 위해 고구려를 필요로 했다.반면에 고구려는 중계무역과 남방의 귀중품을 수입할 목적으로 원교근공책을 취했다.해양활동을 활용해 국가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고구려는 233년,동천왕시대 양자강유역의 오(吳)와 황해를 천수백km나 종단하면서 본격적인 해양외교를 펼쳤다.당시 오는 최고의 수군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해양에 관한 기술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한편,위는 대방을 일본열도까지 이르는 해상 네트워크의 중계지로 삼아 황해 횡단항로를 구축했는데 이것은 교역뿐만이 아니라 고구려를 겨냥한 광범위한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의도였다.그러나 고구려는 황해 북부의 해상권을장악해가면서 남쪽에 있는 낙랑 대방 등의 한족세력을 고사시켜갔다. 그러면 고구려와 오나라 사이의 항로는 어떠했을까? 당시의 국제관계와 황해의 해양조건을 살펴보면 알 수가 있다.갈 때는 압록강하구인 서안평을 출발,요동만을 우측으로 보면서 멀리 나가서 산동반도 근해를 통과한 다음 위의 세력권을 벗어나 양자강으로 들어갔다.그러나 곧 공손씨의 배반으로 요동반도를 거치는 연근해항로는 피해야만 했다.실제로 오의 수군함대는 산동반도에서 위나라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따라서 강남에서 출발할 경우 안전을 위해 산동권으로 진입하기 전 일단 먼바다로 나가 종단으로 북상하다가 압록강하구로 들어갔다.위험부담이 많은 원양항해에 가까운 항로이다. 양쪽을 오간 배의 크기와 규모는 정확히 알수가 없다.그런데 235년 오나라의 사굉(謝宏)이 탄 사신선이 적어 고구려가 준 수백필 가운데 80여필만 싣고 돌아갔다.수십필의 말과 군사,화물을 실고 다닐 정도이니 큰 선박임이 틀림없다.육지의 나라,기마군단의 나라였던 고구려는 바다로 나가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경영하면서 고조선의 역사를 재현했던 것이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아스팔트로 끊긴 백두대간 야생동물 이동통로 만든다

    도로,댐 등의 건설로 끊어진 야생동물의 이동통로를 복원하기 위한 공사가남한지역의 백두대간(백두산∼지리산) 곳곳에서 실시된다. 환경부는 국토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 때문에 단절된 백두대간에 야생동물이 오갈 수 있는 통로를 지속적으로 설치한다는 방침 아래 최근 ‘야생동물 이동통로 설치지침’을 건설교통부 및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했다. 97년 10월1일 현재 도로 때문에 끊어진 남한지역의 백두대간은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대관령의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평창군 도암면 구간 등 모두 47곳.대관령을 비롯해 진부령,미시령,한계령,구룡령,죽령,조령,이화령,추풍령,육십령 등 도로가 개설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모든 고개는 야생동물이이동할 수 있는 자연상태의 길이 없다. 이 때문에 멧돼지,고라니,노루 등 야생동물이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건너다가 자동차에 치여 숨지기 일쑤다.이동통로 단절은 또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제한함으로써 근친교배를 조장해 열등한 후손이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하도록 하는 부작용도 낳는다. 환경부는우선 지난해 9월30일 86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지리산국립공원 내 전남 구례군 방광리 해발 850m의 시암재에 높이 5m,폭 6m,길이 12m의 지하터널형 이동통로를 설치했다.강원도 양양군 서면∼홍천군 내면에 걸쳐 있는해발 1,013m의 오대산 구룡령에는 내년 10월 준공을 목표로 높이 5.5m,폭 30m,길이 30m의 고가(高架)형 통로를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환경부는 시암재와 구룡령을 제외한 나머지 45곳 가운데 5번 국도(경북 영주시∼충북 단양군)가 지나는 죽령,6번 국도(강원도 강릉시 연곡면∼평창군도암면)가 지나는 진고개에 야생동물 이동통로가 시급하게 설치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부 자연정책과 鄭裕淳 사무관은 “이동통로는 야생동물의 이동 뿐 아니라 서식지 확대라는 생태학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문호영기자
  • ‘국토 등뼈’ 살리기 제2녹화사업/백두대간 복원 주요내용

    건설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이 14일 내놓은 백두대간 보전 및 관리방안은 제2녹화사업을 통한 생태환경의 복원과 녹지생태축(그린 네트워크) 조성으로 압축된다.국토 중심축인 백두대간의 역사·지리적 개념을 복원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 병사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한반도 남북 1,400㎞를가르는 국토의 등뼈.마천령산맥과 함경산맥,낭림산맥,태백산맥,소백산맥으로 이어진다.10대 강 물줄기의 발원지이며 한반도의 골격을 이루는 명산들이 자리잡고 있는 한반도 자연환경의 허파지대다.남한의 경우 6개 도와 12개시,18개 군에 걸쳐 있다. 제 2녹화사업 추진 현재 백두대간에는 70개 이상의 도로와 철로가 지나고있다.특히 포장도로는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각종 군사시설과획일적인 산림구성,농지개발 등도 백두대간의 생태계를 훼손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도로와 댐 등의 개발사업으로 단절됐거나 훼손된 자연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범국가적인 녹화사업을 추진해야 한다.주요 산림지역고개의 도로는 터널형으로 만들고 반드시 생태계 연결통로를 설치토록 한다.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국립공원의 주요지역에 안식년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있다. 그린 네트워크 구축 백두대간 남한쪽의 자연공원과 산,환경보호지역을 잇는 종단축(그린 네트워크)을 형성한 뒤 점차 이를 전 국토로 확대토록 한다. 그린 네트워크는 민족의 생태공원으로 지정한다.생태환경 조사 결과에 따라중요한 곳은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확대·지정한다. 생태관광과 테마관광산업 육성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산업도 적극 육성한다.선진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생태 관광(Eco-Tourism),즉 개발을 하지 않고자연 그대로를 보여주는 관광상품을 개발한다.이를 위해 지역주민이나 관련법인체들에게 세제감면 등의 각종 혜택을 준다.백두대간 종주 등반이나 동해 해돋이,단양∼문경∼영주∼안동을 연결하는 유교문화지 탐방 관광상품 등이 사례가 될 수 있다.
  • 정부, 白頭大幹살리기 나섰다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白頭大幹) 중 남한쪽 670㎞ 구간에 생태공원 등을 갖춘 ‘녹지생태축(그린 네트워크)’이 구축된다. 또 비무장지대∼금강산∼백두산으로 이어지는 북쪽 백두대간의 종합 관리와 환경복원을 위해 남북한 공동 협의기구 설립이 추진된다. 건설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은 14일 국토연구원 강당에서 ‘백두대간의 개념복원과 관리방향 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을 열고 이같은 방안을 제시했다.이안은 통일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쳐 제4차 국토계획(2001∼2020년)에반영될 예정이다.백두대간의 보전 및 관리방안은 일부 환경단체들이 거론한적이 있으나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기는 처음이다. 정부는 백두대간의 주요능선과 보전의 필요성이 높은 곳은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환경훼손이 심각한 설악산 중청·대청,소백산,지리산 노고단·세석평전 등은 제2 녹화사업을 벌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로 했다. 녹지생태축을 장기적으로 비무장지대는 물론 금강산과 백두산까지 연장하기 위해 남북한 공동기구를 설립하는 방안을 통일부 등과 협의하기로 했다. 정부는 자연생태계의 보고(寶庫)인 비무장지대에 동서횡단의 ‘민족생태공원’을 조성,국제적인 생태관광지로 관리하는 방안도 관계 부처와 협의할 방침이다.
  • 충북 전교조 출신 姜聖豪씨“해직10년, 교단에 서고 싶다”

    “해직 10년,저는 언제쯤 교단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충북도내 유일의 전교조 출신 미복직교사 姜聖豪씨(38·전교조 충북지부 사무국장)는 6일 아침에도 여느날과 같이 충북도교육청 현관 앞으로 출근했다. 전공과목인 일본어 책을 들고 수업을 하며 복직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姜씨가 이처럼 ‘출근투쟁’에 나선 것은 이번 학기에 복직이 될 것이라는당초의 기대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姜씨는 전교조 결성이 추진되던 지난 89년 5월 24일 제천시 제원고교 3교시 일본어 수업 도중 ‘6·25는 미군의 북침으로 일어난 전쟁이었다’는 이른바 북침설 교육을 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연행돼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받아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하지만 姜씨의 북침설 교육을 증언했던 학생은 4명에 불과했고,똑같은 강의를 들은 수백명의 학생들은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姜교사는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된 NIE(newspapers in education) 교수법으로 신문에 게재된 북한관련 사진을 일어로 설명했고 민통련에서 제작한‘보고싶은 산하’라는 백두산 사진첩을 활용했을 뿐이다. 교단에서 쫓겨난 姜씨는 그후 전교조 활동을 계속하며 복직을 기다려 왔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해직됐다는 이유로 복직대상에서 제외됐다. 姜씨는 “전교조의 결성을 저지하고 전교조의 이적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북침설 수업을 날조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그것이 전교조 활동이 아니라는것은 자가당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교육부는 현재 姜씨를 포함,시국사범으로 낙인찍혀 임용되지 않은 19명에 대한 확인작업을 거쳐 공안부처와의 협의하에 빠르면 내년에 이들에게교사발령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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