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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3)잃어버린 먹거리

    고한 김일성 주석과 공개석상에서 또는 비공식으로 수십여 차례 만났던 얘기는 책 한권을 엮을만큼 많은 사연이 있지만,그동안 가장 미묘한 부분이기 때문에 한번도 제대로 써서 발표한 적은 없었다.몇 년 뒤의 회갑 때에 가서나회고록 안에서 정리를 해볼 작정이다. 맨 처음에 만났을 때에는 다 알려진 바와 같이 문익환 목사 일행과 동석한자리였다.접견 장소로 들어가는데 그가 집무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서있었다.체격이 크고 쇳소리가 나는 음성이었다.김 주석은 그의 젊은 시절의 사진들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호남자의 인상이었다.완전한 백발은 아니고 회색의 반백 머리를 올백으로 넘겼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눈썹이 짙고 길게 드리워져 있는 점이었다. 원형의 식탁에 모두 둘러 앉았는데 주석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문목사가 왼편에 내가 앉고 수행원들도 함께 앉았다.그는 당시에는 살아 계시던 문목사 노모의 안부도 물었고 용정이나 북간도 시절의 추억도 말했다.문목사는 만주용정에 살 때 집에 독립운동가들이 수많이 묵기도 하고 드나들기도 했는데안중근 의사도 모친이 대접해드린 일이 있다고 말했다. 김주석도 만주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중국 항일군들과 연대할 때에 중국인부락을 지나다가 군량을 보급 받거나 숙박하고 나서 돈이 없으면 간단한 차용증을 써주고 ‘조선인민혁명군 김사령’이라는 글을 남기곤 하였는데,중국혁명 이후에 옛날 지주들을 척결하면서 김사령의 차용증을 지닌 지주들은 거의 다 사면했다는 말이 있더라고 중국정부의 간부들 가운데서 자신과 가장가까웠던 주은래가 전하더라면서 웃었다.그는 특히 옛날 중국의 시 속에서나 꺼우리 라는 만주 지역 사람들의 성씨에도 나타나듯이 만주는 고구려의 옛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의 서안을 비롯한 예전 고구려 땅에서 남에서는 ‘식혜’라고 하는 감주를 담가 먹는다는데 등소평이가 감주를 썩 좋아한다면서,그 너르고 기름진 땅을 우리 조상들이 국토로서 보존해내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였다.그렇지만 함경북도 일대에는 한때 여진족이 살았다고 하면서 아오지 탄광의 아오지는 ‘불타는 돌’이란 여진 말이며,주을 온천의 주을은‘뜨거운 물’이라는 여진 말이라면서 인민들 중에도 예전 여진의 성을 가진 사람이 간혹 있어서 모두우리 식으로 고쳐 주었다고 했다. 일행 중의 누군가가 느닷없이 주석님 어머님이 전도부인이 아니셨느냐고 묻자 그는 잘 못들었다는 시늉으로 귓가에 손을 갖다 대며 되묻고나서 측근이모친께서 교회에 나가시지 않았느냐 하는 말씀이라고 설명해주자 웃으면서대답했다. 우리 오마니는 살기 힘드시니까 교회에 가서 주로 주무셨디…. 사실 주석의 외조부는 장로교의 목사였고 외삼촌은 장로였으며 부친도 장로교단 소속인 숭실학교를 다녔으며 모친도 ‘강반석’이란 성명인데 그 뜻은‘베델’이란 세례명에서 왔다고 한다. 이같이 나도 일찍이 개화한 집안 분위기를 나도 아는 터이고 당시 이북의 개화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게 흔한 일이었다.김주석의부친 김형직은 교회 식의 야학을 운영하면서 청년들을 모으고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을 하다가 나중에 러시아 혁명과 신문물에 접하면서 무산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독립운동에 눈 뜨게 되는데 그때가 아마도 어린 김성주와 가족을 평양에 남겨두고 만주로 떠날 때가 아닌가 생각 되었다.북선지방의 근대주의자는 마르크시스트와 크리스천의 두 얼굴에서 비롯된다는 것은참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나는 그 뒤에도 이미 작고했지만 당시에는 중국에 망명 중이던 캄보디아의 시아누크공 부처와 만찬을 함께했던 적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점심을 함께한 적이 몇번 있었다. 공식적인 만찬 자리에서 그는 언제나 활달하게 좌중에 음식을 권하고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한식과 중식이 서로 적당히 어우러진 듯한 정식이 코스로 나오곤 했는데 약주도 즐겨 들었다.만찬 술은 인삼주이거나 백두산 들쭉술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15도 짜리 들쭉술을 좋아했다.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내외도 들쭉술을 좋아해서 열 두 상자나 비행기편에 실어 보냈다고 했다.들쭉은제주도의 멀구슬처럼 새까맣고 동그란 일종의 들딸기라고 하는데 고원지대에서만 자란다고 한다.요즘에는 남에서도 북한산 들쭉술을 먹을 수 있지만 한정된 야생의 열매로 그 많은 물량을 감당할 수는없을테니 혼합주로 맛을 낸 것이 분명하다.진품 들쭉술은 약간 쌉싸름하고 조금 떫은 것이 진한 적포도주 비슷하면서도 매우 향기롭다.전에는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웠지만 주위에서 하도 말려서 겨우 끊었다고 한다.그는 점심 뒤에 한 시간씩 집무실옆의 방에서 오침을 한다고 말했다. 가 깊은 인상을 받은 어느 점심은 매우 소박했다.작은 메추리 다리를 몇 개먹고나서 국수가 나왔다.주석은 자신이 국수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두 끼만 국수를 먹어도 곧 질린다고 하지만,자기는 한 열흘은 먹을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국수를 담은 유리 대접을 내려다보니 면이 그야말로새까만 색이었다.콩물국수인 셈인데 하얀 콩물에 검은 국수가 잠겨있는 모양이 이색적이었다.주석이 다른 날처럼 음식 설명을 내게 해주었다. 이거이 언 감자 국수라고 하는 거요.일전에 독일의 작가 루이제 린저 여사가 왔을 때 독일에 감자 음식이 많은줄 아는데 이렇게 조리하는 방법은 아느냐고 했더니,얼린 감자로 요리하는 건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고 하더군. 검정색‘언 감자 국수’의 면발은 찰지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언 감자를 우려내어 녹말을 낸 다음에 끓는 물에다 국수를 뽑는다는데 차디찬 콩물에 말아 먹는다.위에는 검은 깨를 뿌리고 함경도식 갓김치를 얹어서 먹는다. 그가 음식의 유래를 내게 말해 주었다. 우리가 두만강 연안에서 항일 투쟁할 때에 인민들이 많이 도와 주었소.화전하는 인민들도 저이 먹을 것이 없는데 우리가 지나는 산길에다 표를 해두고감자를 묻어놓군 합네다.눈이 한 길이나 쌓이고 땅은 꽁꽁 얼어 붙어 있디. 감자를 파내면 시꺼멓게 얼어서 돌덩이야.근거지루 질머지구 가두,언 감자를 구워도 못먹고 삶아도 못먹어요.그때 왜놈들 청야작전이 철저해서 보급선을 멀리서 차단하고 있대서.얼어 죽거나 굶어 죽고 남은 빨치산들을 토벌하겠다는 소리요. 인민들이 준 것을 버려서는 안된다구 그때 함경도 출신 동무가 우려내서 국수 만드는 법을 생각해냈소.가난한 인민들은 다 살아갈 궁리를 하는 지혜가있소. 맹물에다 소금만 넣고 끓인 국수가 어찌나 맛이 있던지. 나중에 뉴욕에서 나는우연히 개마고원이라는 냉면 집에서 이 국수의 조리법을 듣게 된다.아는 사람에게 듣기로는 그 집의 물김치가 기가 막히게 시원하고 맛있다는 것이었다.그래서 찾아가 보니 북청에서 피난 나왔다가 미국으로 이민했다는 사람네 집이었다.과연 물김치가 일품이었다.무는 보통 물김치처럼 나박썰기가 아니라 길쭉 길쭉하고 얇게 썰었고 배추 잎도 그만한 크기로썰었는데 오이쪽이 간간이 떠 있다.얇게 채 썬 밤,대추,사과,배,쪽파,등속의 건더기가 알맞게 섞였고 역시 김치 국물이 한 대접이다.고춧가루를 채에 걸러서 탔는지 붉은 물이 들었지만,나중에 뉴욕에 왔던 한시해 부부장에게서들으니 진짜 개마고원 김치는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집의 할머니가 팔십이 다 된 분인데 ‘언 감자 국수’를 알고 있었다.함북지방의 화전민들이 곧잘 해먹는다는 것이다. 언 감자를 강판에 갈아 채에다 녹말을 내리는 것은 감자국수 해먹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반죽을 하여 국수틀에 넣고 끓는 물에 국수를 뺀다.국수를 찬물에 우릴 적에 손가락으로 세심하게 끈기를 씻어내어야 찰기가 더 좋다고한다. 콩물 내는 것은,물에 담갔다가 위로 뜨는 콩을 버리고 골라내어 비린 맛이가실 때 쯤까지 끓이다가 설컹할 적에 건진다.그래야만 콩의 고소한 맛이 살아 있다고 한다.믹서에 갈 적에는 물을 조금 붓거나 편리한 대로 두유를 함께 넣어도 맛있다.콩국의 맛을 내려면 땅콩이나 잣을 갈아서 넣어도 좋고 들깨나 참깨도 좋다.검은 참깨를 뿌리고 위에다 함경도식 갓김치를 얹어 먹는다.함경도 산야의 들갓은 길이가 짧막하고 줄기도 여리다.여기 갓김치는 전라도 식으로 젓갈을 전혀 쓰지 않아서 깊은 맛은 없는 대신에 쌉쌀하고 향긋한 갓의 냄새가 싱싱한 것이 특징이다.
  • 남북 정상회담/ 북한 접대음식 요리법

    요리솜씨는 남에선 전라도요,북에선 평안도를 최고로 친다.북한음식은 양념을 많이 안써 담박한 맛이 특징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첫날인 13일.영빈관내 숙소에서 김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함께 한 점심식사에는 깨즙을 친 닭고기와 생선전,남새튀김,청포종합냉채,설기떡,풋배추김치,평양온반,맑은국,쏘가리깨튀기,옥돌불고기,새우남새볶음,밤정과,인삼차 등이 나왔다.박준영 대변인은 김대통령이 식사후 “북측이 준비한 음식이 정성들여 만들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면서 “특히 닭국물에 밥을 말아서 만든 평양온반이 담백하고 맛있었다”고 말했다고전했다. 이날 오후7시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만찬은 칠면조 향구이,생선수정묵과 냉채,삼지연 청취말이쌈,쑥송편,약밥,쇠고기굴장즙,칠색송어구이,잣죽,백두산들쭉크림,인삼차 등 모두 15가지 메뉴로 이뤄졌다.이중 메추리완자탕인 ‘륙륙날개탕’은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이 당초예정된 6월12일 남북정상회담을기념하기 위해(6+6=12) 직접 이름을 지은 요리로 알려졌다. 북한의 귀빈음식으로는 이밖에도 우족과 소꼬리,소힘줄 등을 삶아 만든 ‘소발통묵’과 평양 대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숭어에 후추를 넣어 끓인 영양만점의 ‘대동강 숭어국’등이 유명하다.북한의 조선요리협회가 펴낸 ‘이름난평양음식’에서 평양온반과 청포종합냉채를 소개한다. ◆평양온반흰쌀밥에 녹두지짐과 닭뼈,버섯 등의 꾸미를 놓고 따끈한 국물을 부어먹는영양가 높고 입맛이 산뜻한 음식으로 잔치때나 명절에 별식으로 먹는다. ◆재료 쌀 600g,녹두 150g,닭뼈 250g,닭고기 200g,마른버섯 150g,파 50g,마늘 30g,소금 5g,간장 30g,참기름 20g,참깨 2g,돼지기름 10g,달걀지단 실고추약간,양념장 30g◆만들기 ①쌀은 깨끗이 씻어 되직하게 밥을 지어 놓는다 ②냄비에 닭뼈를넣고 1시간정도 끓이다가 닭고기를 넣어 30분정도 더 끓인다.고기는 건져서보기좋게 찢어 양념장에 무쳐 놓으며 국물은 받아서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맞춘다 ③마른버섯은 물에 불려 잘게 찢어서 물을 꼭 짠 다음 참기름에 볶다가 엇썬 파와 다진 마늘,간장으로 버무린다 ④녹두는 타개 3∼4시간 물에 불궜다가 껍질을 벗기고 보드랍게 갈아 소금과 다진 파를 넣고 돼지기름을 두른 후라이팬에 5∼6cm크기로 노르스름하고 얄팍하게 지진다 ⑤그릇에 따끈한밥을 담고 그 위에 닭고기와 버섯,녹두지짐을 놓은 다음 지단,실파, 실고추를 얹으며 국물을 꾸미가 잠기지 않을 정도로 붓고 참깨를 뿌려낸다◆청포종합냉채청포묵을 쇠고기,미나리,오이와 함께 초간장 양념으로 상큼하게 무친 찬음식이다.비만,고혈압을 막는 건강장수 음식이며 더위를 막는데 특효가 있다. ◆재료 청포묵 400g,쇠고기 100g,오이 100g,녹두나물 100g,미나리 100g,김 3g,간장 10g,참깨 3g,참기름 5g,파 10g,마늘 5g,설탕 5g,식초 10g,붉은고추 40g◆만들기 ①쇠고기는 가늘게 썰어 여러가지 양념으로 밑맛을 들인뒤 기름을두른 후라이팬에 센불로 볶다가 자분자분하게 물을 붓고 간이 들 때까지 한소끔 끓인다 ②청포묵은 납작하게 썰어 초간장에 무치며 오이는 가늘게 썬뒤소금을 뿌렸다가 물기를 짜 살짝 볶는다.붉은고추는 굵게 채썬다 ③녹두나물과 미나리는 5cm길이로 잘라서 데친다음 소금,식초,설탕,참기름,참깨로 무치며 김은 적당한 크기로 썰어 참기름에 살짝 볶는다 ④접시에 준비해놓은청포묵과 나물,붉은고추,쇠고기를 보기좋게 놓은 다음 김과 참깨를 뿌려낸다허윤주기자 rara@
  • 남북정상회담/ 金대통령 맞는 평양 표정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6월의 평양은 부드러운 바람과 맑은 날씨속에 온 도시가 녹음에 싸인 가운데 세계가 주목하는 역사적인 회담을 기다리고 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12일 오후 평양 현지발로 보도했다. 다음은 신화통신이 전한 정상회담 전야의 평양 현지 표정이다.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조선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민족화해와 단결,교류와 협력,평화와 통일 등 중대 문제들을 협의한다.한반도가 분열된지 반세기여만의 첫 정상회담이다. 평양은 한반도의 유명한 고도이다.서기 427년 고구려가 이곳에 수도를 정한후 이미 1,5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지금의 평양은 중후한 역사적인유물과 새로운 현대적 분위기가 혼연일체가 돼 이 ‘화원의 도시’ 특유의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남북정상회담의 개최로 평양은 전세계가 주목하는 초점으로 변했다.같은 민족이면서도 왕래가 드물었던 한국 손님들을 맞이하고,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선측은 5월말부터 각종 준비작업을 시작했다. 최근 조선측과 평양을 방문한 한국측은 치밀한 협상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체류시 머물 숙소와 교통노선,참관 장소 등을 결정했다.역사적인 회담의 안전과 경호에 한치의 차질도 없도록 하기 위해 조선측은 각종 안전조치들을 취했으며 한국측에 한국대표단의 신변안전을 보장하는 비망록도 전달했다. 평양시 각계 각층은 최근 대대적으로 환경정리에 나서 시가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상회담을 맞이하도록 준비했다.김대중 대통령이 도착할비행장과 평양시내를 연결하는 길과 개성∼평양 고속도로도 이미 깨끗이 개보수됐으며 길가의 가드레일들도 새 페인트로 산뜻하게 단장됐다. 정상회담이 임박함에 따라 평양의 조용한 분위기에 최근 몇가지 새로운 모습들이 더해졌다.거리의 여자 교통경찰관들이 하얀 색의 여름 복장으로 갈아 입었으며,금수산기념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고 김일성 주석을 기념하는 영생탑 아래에서는 중학생들로 구성된 고적대가 손님 맞이 음악들을 진지하게 연습하고 있다. 또 평양체육관 등 수많은 장소에서 학생들이 바쁜 모습으로 단체제조를 연습하고 있다. 가장 최근 발간된 ‘조선화보’는 남북한의 화해를 상징하는 한편의 그림을 게재했다.이 작품에서 한 조선 소년과 한 한국 소녀는 각자 손으로 주전자를 잡고 있었다.그림은 백두산 천지의 물과 한라산 백록담의 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khkim@kd
  • 평양 지하철역은 ‘벽화 미술관’

    “북한의 모든 미술은 조선화로 통한다.평양은 공공미술의 천국이자 기념비적 조소예술의 나라다.”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미술을 밀착소개한 책이 나와 관심을 끈다. 윤범모 교수(경원대 미대)가 쓴 ‘평양미술기행’(옛오늘).98년11월 국내 최초로 북한 미술계를 시찰하고 돌아와 썼다. 윤교수는 동양화를 주체미술화한 조선화가 북한미술의 본령이라고 전한다.수묵화는 조선왕조 양반들의 향락주의의 이용물로서 비현실적이며 봉건시대의잔재라는 이유로 배제했다. 그래서 먹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화려한 색채를 통해 선명성과 간결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택했다는 것.윤곽선을 무시하고 면으로 화면을 처리하는 몰골법을 쓴다.동양화나 벽화나 똑같다. 조각과 벽화 등 공공미술품들이 시내 곳곳을 장식하고,만수대창작사 소속 작가들의 공동작품이라서 작가 이름이 없는 것도 특징. 평양시내 지하 100m는 온통 벽화미술관이다.영광역의 대형벽화 ‘백두산 천지’를 비롯해 지하철역마다 자리잡은 벽화들은 캔버스 그림처럼 보이지만실상은 타일 모자이크인 ‘우리식 쪽무이 벽화’다. 천리마동상,주체사상탑,개선문,대성산 혁명열사릉,만수대 대기념비 등 5개조각품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윤교수는 평한다.미술품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며 극진히 보호받는 것도 감명적이었다고. 1959년 창립된 만수대창작사에는 창작가 1,000명을 비롯해 기술·행정 지원요원 등 모두 3,700명이 소속돼 있다.조선화 유화 조각 출판화 벽화 도자기공예 수예 보석화 도안 등 10여개 창작단으로 구분된다. 조선미술박물관은 고분벽화나 김홍도 등의 그림을 모두 모사화로 전시한다. 진품은 창고에 보관한다.근대미술실에 진열된 30여점중 김은호 김용진 이상범 허건 등 남한 출신 화가의 작품이 대다수를 차지한다.김기창과 장우성의작품까지 걸려 있다.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에 북한 현역작가의 작품이 단 한점도 없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평양에는 화랑이 없다.대신 미술품을 전시하지는 않고 전문적으로 판매만 하는 회사는 있다.옥류민예사.자체 화가 120명을 거느리고 있다. 김주혁기자 jhkm@
  • 남북정상회담 대표단 본지에‘다짐’기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하는 대표단은 9일 대한매일에 보낸 기고문에서 이번 회담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기반을 다지고 민족의 통합을 이루는 계기가 되도록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경제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경제협력,문화교류 등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인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가시적 성과에급급하거나 서두르기보다는 반세기 대결과 불신의 질곡을 메우는 징검다리를 놓는 마음으로 지켜야할 원칙을 분명히 지키면서 실천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지원(朴智元)문화부장관은 “정상회담 이후 남북 사이의 문화·예술·관광·체육 교류가 본격화되어야 하는 것은 순리요 상식”이라면서 문화재 공동발굴,금강산행 철도연결,백두산·묘향산 관광,시드니 올림픽 공동입장,월드컵 공동개최 등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헌재(李憲宰) 재경부장관은 “앞으로 경제협력은남북 모두에게 이익이되는 실천가능한 일부터 성사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원호(李源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상근부회장은 “현지에서 북한의경제담당 부서 책임자들을 만나 중소기업 교류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제5단체장은 공동 발표문을 통해 “정상회담이 남북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대외신인도 제고와 안정적인 경제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라면서 “남북경협을 활성화하기 위해 각종 제도적 환경을 정비하고 사회간접자본시설의 개선을 위한 공동노력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도운기자 dawn@
  • 대기업 對北경협사업 선점경쟁 ‘후끈’

    현대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대북 경협사업을 둘러싸고 치열한 선점경쟁을벌이고 있다. 현대와 삼성은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과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방북을 서두르는 등 정상회담 이후의 ‘대결’에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종합상사를 통한 사업영역 확대에도 총력을 쏟고 있다. ◆치열한 현대와 삼성/ 현대는 2030년까지 3단계에 걸쳐 금강산을 세계 최고수준의 종합관광단지로 개발하는 계획을 이미 짜 놓았다.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관심이 쏠릴 ‘이산가족 상봉’의 면회장소로 장전항 인근에 들어설 종합 편의시설을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정부와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강원도 간성∼온정(북한)간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총 연장 30여㎞의 ‘금강산철도’를 건설하고 서해의 해주와 남포 사이에 2,000만평 규모의 공단을조성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삼성은 대북경협의 공식 창구가 현대에서 정부쪽으로 옮겨지면서 자신감이붙었다.현대가 서해안공단 조성부지로 점찍어 둔 해주지역을 전자공단 부지로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북한과 협의를 벌이고 있다.현대의 금강산개발에 맞서 백두산·묘향산 개발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 SK, 대우는?/ LG는 상사·전자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상사는 기존의 자전거 조립 합영사업,가리비 조개양식 사업 등을 확대하고,추가로 10억달러를들여 비무장지대에 국제물류센터를 건립해 종합가공사업에 진출할 계획이다.전자는 96년 평양에 설립한 컬러TV 임가공공장을 합영공장으로 확대시킨다는 전략이다. SK는 손길승(孫吉丞)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다른 기업보다 앞선 정보통신·석유화학분야를 대북경협의 주종목으로 잡아 두고 있다. 한때 대북경협의 선두주자였다가 그룹해체로 사업을 중단했던 ㈜대우는 남포의 가방·셔츠·재킷 등 3개 봉제공장을 재가동하는 등 재기를 노리고 있다. 주병철기자 bcjoo@
  • 北 영상물 제작·교류 현황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영상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방송위원회는 이에 발맞춰 최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남북방송교류 정책수립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열고 북한의 영상물 제작현황과 남북 교류현황을 살펴보았다. 이날 발제된 방송진흥원 이우승(李雨昇)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북한은 1년에약 30∼40편의 영화를 만들며 제작된 모든 영화의 보관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 영화를 관리하는 곳은 중앙영화필름관리소이며 유사시를 대비해 지하 보관소를 따로 두고 있다.이 관리소의 남조선실에는 한국영화 300편이 보관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 배우들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아래 백두산창작단,보천보창작단 등10개 창작단에 소속돼 있다.우리나라 톱스타에 해당하는 ‘인민배우’는 장관급 대우를 받는 전문적 연기자.‘인민배우’ 다음은 ‘공훈배우’로 대부분 원로연기자나 중견연기자들이다.즉 ‘공훈배우’는 경력에 의해 선정되는 것이다.이런 배우들은 평양영화대학의 영화배우학부와 배우양성소에서 배출된다. 북한 영상물의 국내 수입절차는 이원화돼 있다.남북한 직교역에 해당되면통일부,3국을 경유하면 문화관광부의 영상물등급위원회를 거쳐야 한다.직교역의 형태로 국내에 수입된 영상물은 18편.이중 영화가 13편으로 가장 많고만화영화가 2편,금강산 기록영화나 고려의학 관련 영상물 등 기타 영상물이3편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방영된 북한 영상물은 5편이다.‘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임꺽정’,‘온달전’ 등 영화 3편과 ‘평양교예단 공연실황’,금강산 기록영화 등.북한영상물의 시청률은 10%대 초반으로 썩 높지 않은 편이다. 주목할 점은 20대나 30대가 아닌 장년 및 노년층의 시청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남북한의 방송개방 논의는 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문화적·정서적 측면이 강하다”면서 “북한의 영상물은 국내 방송환경이 다매체다채널 시대로 변화는 과정에서 다양한 콘텐츠 확보라는 면에서도 고려돼야한다”고 덧붙였다. 전경하기자 lark3@
  • 문명자씨 특별기고/ 내가 본 김정일 총비서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한매일은 회담의 상대방인 북측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의 면모를 알아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이 특집은 재미언론인 문명자(文明子)씨의 ‘내가 본 김정일 총비서’특별기고와 북한문제 전문가인 서대숙(徐大肅) 미 하와이대 정치학 석좌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의 국제전화 인터뷰로 구성했다.이번 기획특집은북한을 현실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위원장의 품성과 지도자적 자질이 어떠한지를 전문가들을 통해 파악해보자는 것이다.이는 김정일 위원장을 ‘성격이괴팍한 영화광’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의 성격과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최근 북한연구자들이 김정일 위원장을 재평가하는 연구서를 잇따라 출간하고 있는 것도이같은 의미로 풀이된다.문씨의 기고는 지면사정으로 절반가량 압축한 것이며 함께 실린 사진은 문씨가 제공했다. [편집자주]■나는 지난 92년 4월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인터뷰했다.참으로 어렵게 마련된 자리였다.인터뷰 성사까지는 꼬박 2년이 걸렸는데 그것은 오찬을 겸한 인터뷰였다.장소인 금수산기념궁전 접견실에는 식탁 가운데에 김정일화가 장식되어 있었다.김 주석은 그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꽃을 개발한 일본 사람의 요청에 따라 ‘김정일화’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는데 사실 저 꽃이 너무 고와서 조직비서 성격하고는 맞지 않는단 말이오.우리 조직비서는 통이 크고 사나이 답거든.” 김 주석은 아들을 꼭 ‘조직비서’라고 불렀다.나는 내심 갸우뚱했다.서방에 알려진 ‘내성적인 영화광’이라는 평과는 다른 얘기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자식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부모다.계속 연구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비로소 김정일 총비서와 만나게 된 것은 94년 7월 14일 김일성 주석의장례식 시기였다. 비록 국장의 마당이었지만 나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그를세밀하게 관찰했다.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렇게 멀리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가짐은 정중했고 목소리에는 무게가 있었다.최은희 신상옥 부부의 주장과는달리 말을 더듬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얼굴은 여위고 눈자위가 붉어져 있었지만 손은 따뜻했고 손아귀에 힘이 있었다.전혀 건강에 이상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조문 후 잠시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그는 말했다. “지난 4월 쓰신 수령님 인터뷰 기사를 잘 읽었습니다.제가 글자를 크게 확대해서 수령님께도 가져다 드렸습니다.” “혹시 잘못된 곳은 없었습니까.” “아주 정확히 쓰셨습니다.잘 읽었습니다.” 나는 김정일 총비서와의 면담을 포함해 김일성 주석의 언급,측근들의 증언,주변 취재,북한 인민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그의 진면목에 다가서 보고자 했다.단지 김정일 총비서와의 94년 7월 이후의 면담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자세히 밝힐 수 없어 양해를 구한다. 나는 김정일 총비서의 생일 명절인 2.16 기간에 북을 방문한 일이 있다.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었지만 본인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전에도자신의 생일 행사에 나타난 적이 없다는 얘기였다.그 시기 그는 어디로 갔을까.나는 그 점이 궁금했는데 뒤에 알게 되었다.그는 매년 그 무렵이면 백두산을 찾는 듯 했다.특히 99년 2월에는 백두산 천지를 등반한 후 2월 16일 갑무(갑산-무산) 경비도로를 달리다 차에서 내려 10리를 걸었다고 한다.갑무경비도로는 길 양편으로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한대림이 끝없이 이어진 풍치 좋은 길이다.그러나 이 무렵의 백두산 지역은 영하 40도를 오르내린다.혹한 속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그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며 특히 백두산의 겨울을 좋아한다고 한다. 서방의 관측통들은 지금까지 그가 “내성적이며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그가 사람들 앞에 나서지않는 것은 사실이었다.김일성 주석의 급서 후 나는 당시 북미 회담의 북측대표이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국가원수가 서거하셨는데 회담 진행에 차질이 없겠습니까.” “물론 회담은 수령님의 결재로 진행되어 왔지만 장군님께서 직접 지도해오신 사업이기 때문에 예정대로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은 상식으로 되어 있지만 그 때만 해도 김정일 총비서가 막후에서 북미회담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뉴스였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 사후에도 김 총비서는 외교 의전 일선에 나서는 시기를계속 미루어 왔다. 서방의 관측통들은 그 이유 중 하나를 그의 ‘내성적인성격’ 때문으로 평가해 왔다.반면 그의 측근 인사인 김용순 비서는 그를 “박력 있고 한 번 한다면 하는” 성격의 소유자라 평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 나는 종종 두 인물을 비교해 달라는 요청을받는다.물론 차이가 있다.소년 김정일은 대단히 영리했던 것 같다.김정일 총비서는 아버지를 꼭 ‘수령님’이라 불렀다.그런데 김정일 총비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라 외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바로 94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였다.남북정상회담 성사에 고무된 김일성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7월 한여름 더위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대통령이 들르게 될 묘향산 특각을 직접 돌아보기 위해 평안북도로 떠났다.묘향산 인근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고 묘향산 특각에 도착한 김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 부처가 묵게 될 방의 냉장고 문까지 열어보았다고 한다.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노인의 건강을 염려한 김정일 총비서는 김일성 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평양으로 돌아올 것을 계속 권유했다.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성공의 일념에 가득차 있던 김 주석은 말을 듣지 않았다.계속 설득하던김 비서가 마침내 전화통에 대고 소리쳤다. “아버지! 제발 돌아오십시오.” 김정일 총비서가 스타일상 김 주석과 다른 점이라면 표현 방식의 차이를 들수 있을 것이다. 김 주석과 달리 김 총비서는 노기를 표현하는 인물이다.그만큼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 사후 대부분의 평자들은 김정일 정권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점쳤다.짧으면 3개월,길어야 3년 안에 붕괴한다는 것이다.그 유력한 논거 중하나가 북의 새 지도자 김정일은 아버지의 후광으로 후계자가 되었을뿐 아버지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오늘날 페리 보고서조차 ‘김정일 정권의 안정성’을 공언하는 것을 보면 이같은 문제는 해소되었다는 얘기가 된다.지난 95∼97년 사이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총비서는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입증한 것이다.그의 정책 결정의 특징중 하나는 ‘의외성’이라 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의 장지가 금수산기념궁전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현재 금수산기념궁전은 북의 사회 통합의 구심이 되고 있다. 98년 8월 북이 발사한 ‘물체’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며칠 후 북이 그것을‘인공위성’이라 발표했을 때 세계는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국문제의 인공위성은 한반도의 정세를 뒤바꾸어 놓았다. 미국에게 북은 ‘붕괴시켜야’ 하거나 ‘변화를 유도해야’ 하는 대상에서 ‘있는 그대로의 체제를 인정해야’ 하는 대상으로 변화했다.물론 심각한 식량난 속에서 막대한외화를 들여 인공위성을 개발했어야 하는가라는 비판도 있다.이에 대해 북의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우리에게 그같은 능력이 없었다면 미국은 우리를 이라크나 유고처럼 대했을 것이다.그것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이었다.” 북의 인민들은 김 총비서의 정책적 의외성을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나가는’ 강점으로 인식하지만 서방에서는 ‘예측불가’라는 그다지긍정적이지 않은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내가 아는 김 총비서는 다양한 방면에 대해 화제가 풍부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이같은 측면이 성격적 대담성과맞물려 정책의 ‘의외성’을 빚어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일 총비서는 64년 6월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지도원으로 당사업을 시작했다.총비서에 이르기까지 37년간의 당 사업에서 그는 여러 가지 일화를남겼다.업무스타일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것은 ‘한밤중의 전화’다.나는 북의 여러 고위인사들로부터 이같은 얘기를 들었다.김 총비서는 “서류를 결재하던 중 의문이 생겨 늦은 시간이지만 부득이 전화했다”며 낮에 올린 결재서류에 대해 보다 자세히 묻곤 한다고 한다. 그가 반드시 묻는 말 중의 하나가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라는 것이다.그러니 부하들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듯하다.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도 김 총비서 업무스타일의 한 특징이라 한다.“새로 작곡된 음악을 틀어놓고 평가하면서 눈으로는 결재 서류를 검토하는 한편 전화로는 누군가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식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서구식 양복을 입지 않는다.그가 서구식 양복을 입지 않는이유를 물었을 때 한 측근 인사는 “화려한 옷차림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계셨다”고 했다.가장 좋아하는 꽃이 목화꽃이라는 점은 같은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목화꽃은 화려하지 않으나 유용하다. 서방과의 교류가 많지 않은 북의 지도자 김 총비서가 세계적인 추세를 제때에 파악해 나가는 수단은 무엇일까.김 총비서가 서방의 방송,영화를 많이 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이것은 단순히 영화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서방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나는 특히 그가 영어를 이해하는 것으로 느꼈다.그가 구사하는 것은 전통적인 영국식 영어가 아니라 현대미국어였다. 김일성종합대학에는 ‘김정일 사적관’이 있다.전국에서 유일한 곳이라 한다.이 곳에서는 김정일 총비서의 대학시절을 잘 볼 수 있다.사적관에서 필자는 그가 재학중 쓴 ‘3국통일 문제를 다시 검토할 데 대하여’라는 논문을특히 관심깊게 보았다.핵심내용은 “신라의 3국 통일은 통일이 아니다”라는것이다. 동시대 조선반도에 발해라는 다른 주권국가가 존재하고 있었으며,신라는 영토를 넓히려는 야심만 있었을 뿐 통일국가를 세우려는 지향이 없어서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국가를 멸망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초의 민족통일은 3국중 통일 지향이 가장 강했던 고구려를 이어 받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적관에는 김정일 학생과 동료들이 군사 강의,사격훈련,점호,야간습격 전투훈련,군사야영훈련 등을 받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다.사적관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다 보면 재미난 공통점이 발견된다.학급 동료들과 함께 찍은 여러장의 사진에서 김정일 학생은 사진의 가운데 있는 인물이 아니다.그의 모습은 항상 맨 뒷줄 한켠에서 발견된다.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던 4월 10일 나는 평양에 있었다.4일부터 8일까지 계속된 제9차 조일회담 취재차 방북했다가 역사적인 뉴스에 접하게 됐던 것이다.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김 총비서의 한 측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분단이후 여러차례 최고위급 회담 성사를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이루어지지 못했다.특히 94년에는 수령님의 서거로 최고위급 회담이 무산되었는데 이제 드디어 성사되었으니 우리 민족의 손으로 통일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닌가.장군님께서는 지금 회담 준비로 대단히 바쁘다.그 분의 건강을지켜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그는 특히 “지난날 조문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며 이번에는 아무런 전제 없이 서로가일단 부딪혀 보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오는 6월 12일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될 남북의 두 정상.그 한 당사자인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나는 30년간의 취재 파일을 바탕으로 지난해 책을 한 권출간한 바 있다. 나의 눈에는 두 정상의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게 비친다.오는 정상회담에서 이 두 정상의 서로 다른 캐릭터가 어떻게 어우러져 분단 50년의 역사를 청산해 나갈지 기대되는 바가 크다. ◆ 문명자씨 프로필. 문명자(文明子)씨는 올해 71세의 재미 원로언론인으로 미국 ‘US아시안 뉴스서비스’의 주필이며,아직도 미 백악관을 출입하고 있는 현역이다.61년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시작으로 국내 여러 언론사의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문씨는 73년11월 당시 보도금지 사항인 ‘김대중 납치사건’을 보도한 직후미국에 망명했다.90년 이후 10여차례 방북 취재했고 두 차례에 걸쳐 김일성주석을 회견했다.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면담한 바 있다.그녀는 서방기자중‘최고의 북한소식통’으로 불릴 정도로 북한 지도층과 북한 사회에 이해가깊다.
  • 이산가족 상봉 주선 민간업체 문 열었다

    강원도 속초시 지역에 남북이산가족의 생사확인 및 상봉을 주선하는 업체가처음으로 생겨 관심을 끌고 있다. 18일 사무실 문을 연 ㈜백두산에 따르면 실향민이 많이 살고 있는 속초지역남북이산가족의 생사확인 및 상봉을 주선하기로 했다. 의뢰인이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이나 상봉을 신청하면 북한의 가족에 대한자료를 모아 중국에 있는 본사에 연락,가족상봉이나 서신교환 등을 주선하게된다. 의뢰인이 부담하는 비용은 북의 가족에 대한 생사여부 확인시 100만원,생사여부 확인 후 서신교환때 200만원,상봉시 300만원으로 돼있다. 이 회사는 이달말쯤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및 상봉을 위한 각종 절차와 방법,성과 등을 홍보하고 의뢰인을 중심으로 한 실향민의 가계를 정리할 계획이다. 한편 속초시 전체 인구의 30% 가량은 북에 가족을 두고온 실향민이며,이들이 많이 살고 있는 청호동 ‘아바이 마을’에는 실향민과 그 가족 등 5,000여명이 집단거주하고 있다.또 인근 고성과 양양지역에도 상당수의 실향민이살고 있다. 속초 조한종기자 bell21@
  • 수라상 기장미역 민속주 산성막걸리 부산 특색식품 지정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기장미역과 전통의 민속주 산성막걸리 등 식품 10종이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개발된다. 부산시는 16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학계와 요리연구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음식문화 향상사업 심의위원회를 열고 19개 업소의 식품 10종을 부산의 특색식품으로 지정했다.이들 먹거리는 2002년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 행사에서부산의 특색식품으로 소개된다. 이번에 선정된 특색식품은 기장미역,기장멸치액젓,오복간장,백두산오가피주,산성막걸리,태평한차,명란젓,육포,복어포,부산어묵 등 10종류다. 기장멸치액젓은 화학조미료나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 1년간 숙성시킨 것이며 오복간장은 맛과 향이 뛰어나다.태평한차는 각종 한약제를 이용한 건강차이고,명란젓은 참명란만을 선별해 죽염을 첨가한 것이 특징이다. 육포는 독특한 풍미로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복어포에는 DHA 등이 함유돼 있다.부산어묵은 맛과 영양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는 이와 함께 부산의 향토전통음식 연구사업을 벌여 지난해 생선회와 동래파전,흑염소불고기를 상품화한데 이어 올해에는 복어요리와 곰장어,해물탕을,내년에는 아귀찜과 오리보양탕,재첩요리를 각각 상품화할 계획이다. 시는 오는 10월 제81회 전국체전 기간에 부산의 음식을 소개한 ‘부산의 맛’ 홍보책자를 발간해 부산의 특색식품 10종,향토전통음식 3종,관광호텔음식14종과 부산지역 유명음식점 150여곳, 먹거리 집단촌 14곳 등을 적극 홍보할계획이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수묵화가 박대성씨 5년만에 개인전

    소평(小平) 박대성(55).수묵의 운필로만 30년의 화력을 쌓아온 그는 대자연을 스승으로 독학,한국 수묵화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온 입지전적 작가다.활달한 붓놀림과 강인한 필세,청명한 갈필(渴筆)과 은은한 먹빛.소평의 그정갈하고 자유로운 선과 묵향의 세계는 수묵화 본연의 품격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자연의 진리를 먹그림에 담아온 그가 18일부터 6월 11일까지 서울 평창동가나아트센터에서 5년만에 개인전을 연다.‘해금 일출’‘삼선암’‘향원정’‘묘향산 만폭동’‘평양 연광정’등 99년작과 올들어 완성한 ‘금강전도’‘돌담수화(樹話)’‘정방산 성불사’‘병산서원’‘오견금강산도’,문인화 ‘가지’등 근작 40여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묘향에서 인왕까지’라는 제목이 붙었다.그렇듯 조국의 산하가 주된 소재다.작가는 지난 10년동안 묘향산,금강산,백두산,정방산 등 북한지역에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북한산,인왕산까지 골골샅샅이 누볐다.그런 다리품 끝에 묘향산의 정기를 담아낼 수 있었고,화가로서 도전하기 쉽지않은 안동의병산서원을 농축된 화법으로 그려 냈다.작가는 북한에서 제일로치는 묘향산을 “백두와 금강을 합친 것”이라고 말한다. 수묵화의 생명은 선(線)이다.선이 살아 있어야 한다.소평 역시 그런 필선을 중시한다.그의 거실에 걸려 있는 마우쩌둥의 시 ‘만강홍(滿江紅)’을 옮겨 쓴 현판은 소평 그림의 수려한 필선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하다.그는 요즘고려불화의 선에 매료돼 있다.“섬세하면서도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고려불화의 선은 거미줄에서 예지를 얻은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소평은 지난 98년 북한 화문(화文)기행을 포함,수차례에 걸쳐 북녘의 산하를 둘러 봤다.그 때 스케치해둔 북녁의 풍광이 이번에 먹그림으로 온전히 되살아났다.전시작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오견금강산도’.가로 11m,세로21㎝의 장축으로 연결된 그림이다.동해의 장전항에서부터 온정리를 지나 외금강,삼선암,괴면암,만물상,삼일포,해금강,명사십리,신계사,그리고 조선 후기부터 대가들이 즐겨 그렸던 옥류동 계곡,비룡폭포,구룡폭포에 이르기까지금강산 절경이 차례로묘사돼 있다.그 풍경 사이사이엔 꽃을 그려넣어 사계절의 경계를 지었다.적재적소에 배치된 산뜻한 색깔의 할미꽃,도라지,금강초롱,해당화,구절초가 자칫 단조로워지기 쉬운 산수화의 약점을 거둬낸다.해금강 일출 대목은 해가 뜨는 자리에 ‘양’자의 도장을 찍어 멋을 내기도 했다.동양화에서 흔히 쓰는 ‘유인(遊印)’,즉 문자도장이다.장축의 그림은 제작하기가 쉽지 않다.채우고 비우는 허허실실이 맞아야하고 음양의 조화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묵산수화는 전통적으로 문인화적인 화풍 일색이었다.실재하는 자연을 그린 실경산수화일지라도 정신성을 중시하는 사의(寫意)의 세계를 드러내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소평의 수묵화 또한 그런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하지만 그는 다양한 소재와 표현형식을 통해 문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다.그의 그림에는 현대적인 감각들이 시원스레 배어 있다.문방사보와 함께 옥판선지와 한지를 사용하는 그는 더러는 붓질을 건너뛰고,대담한 간필(簡筆)을 활용하며,망실된 구조물을 복원해 그리기도 한다.그의 화면경영은 어떤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롭다.(02)3217-0233. 김종면기자 jmkim@
  • 언론계 남북기자 교류 추진

    다음달중 열릴 예정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언론계가 남북기자 교류를 추진하고 있어 성사여부가 주목된다. 지난달 말 한국신문협회(회장 최학래)는 각 회원사 발행인 앞으로 보낸 공문에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와 공동으로 북측 조선기자동맹과 교류를 가질 계획”이라며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였다.이에 앞서 신문협회는 지난달 20일 회장단 모임을 갖고 이 문제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뜻을 모은 바 있다. 신문협회는 북한 조선기자동맹 위원장 앞으로 보낼 남북교류 제의서 초안에서 “그동안 남북한 언론은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나 화해·협력은 커녕 오히려 반목과 대립만 조장해 왔는데 이는 초보적인 교류조차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신문협회 등 언론 3단체는 상호이해와 협력을 물꼬를 트기 위해 남북 기자교류를 시작할 것을 제의한다”고 밝혔다. 제의서 초안에서 신문협회 등 3단체는 ▲조선기자동맹 대표단과의 정례회담및 상호방문 ▲평화통일을 위한 언론인 공동선언 마련 ▲남북한 공업지역 및 경제특구 상호 방문취재 ▲백두산과 한라산 등 주요지역에 대한 생태계,환경교환취재 ▲서울과 평양 상주기자 파견 추진 등의 교류사업을 검토하고 있다.신문협회는 이를 위해 3단체의 대표와 조선기자동맹 대표가 하루빨리 예비접촉을 갖자고 제안하고 북측에 성의있는 답변을 촉구했다. 정운현기자
  • 제주 여미지식물원 새단장

    그동안 매각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었던 제주 여미지식물원이 국제적 관광명소로 거듭나게 됐다. 서울시는 9일 여미지식물원에 대한 장·단기 경영개선방안을 마련,올해부터2004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해 동양 최대식물원으로서의 위상을 되살리기로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추진해온 외국 투자기업과의 매각협상이 최근 무산되자 자체경영하기로 방향을 전환한 것. 이같은 방침에 따라 서울시는 우선 올해 1억2,000만원을 들여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교체하고 3억4,000여만원의 예산으로 온실 기둥과 식재지 지붕,온실동 입구 지붕배수로 등 노후시설을 모두 개·보수하기로 했다.또 12억3,500만원을 추경예산으로 편성,입장권 판매 및 부대매장 전산화작업을 추진하고식물원내 벤치 등 편의시설도 대폭 보강할 방침이다. 내년부터는 식물 재배시설인 비닐하우스 5개 동을 이전한 뒤 이곳에 외국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옥외정원을 조성할 계획이다.한라산 자생식물코너와백두산,히말라야 등 고산식물 전시장도 따로 마련할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인근 부지를 매입해 주차공간을 넓히고 식물관리를 강화,전문가의 연구활동을 지원하며 국·영문판 제주 자생식물도감을 편찬하는 등 홍보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아울러 제주 특산식물의 재배방법 등을 수록한 책자도 발간,판매하고 지금까지 옥외정원 입구만 경유하던 관람 전동차를 늘려 각국 정원을 경유하도록할 계획이다. 지난 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서울시가 보상비를 선지급한뒤 삼풍으로부터 매각을 전제로 기부채납받아 한시적으로 관리해온 여미지식물원은 지난 96년 연중 173만명이 입장해 90억8,000만원의 수입을 올렸으나 97년 인수당시의 파업과 IMF 영향 등으로 수입이 격감,지난해에는 입장객 116만명에수입액이 70여억원에 그쳤다. 서울시 관계자는 “더이상 매각에만 매달릴 수 없어 적극적인 경영체제로전환하기로 한 것”이라며 “앞으로 식물원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백두-광주 도보종단 추진

    5·18광주민중항쟁 21주년인 2001년,백두산에서 광주를 도보로 걷는 국토종단 대행진 행사가 추진된다. 5·18기념재단은 2일 “올해 20주년을 맞아 열리고 있는 국토종단 대행진의범위와 그 의미를 확대해 내년 21주년에는 백두산을 출발, 광주에 도착하는국토종단 도보 대행진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단은 이를 위해 올 5·18행사가 끝나는대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마련,통일부에 행사가능 여부를 타진하는 한편 행사 성사를 위해 북한과 활발한 경제협력을 하고 있는 현대측에 행사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다. 재단측은 이같은 계획이 성사되면 백두산∼광주간 거리가 1,000여㎞에 이르는 만큼 내년 4월초 백두산을 출발,5월17일 도청 앞에서 열리는 전야제에 맞춰 광주에 도착한 뒤 다음날 5·18묘역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행사 일정을 마련할 방침이다.또 행사에는 5월단체 회원은 물론 국내·외인권·사회단체 회원 및 해외동포까지 참석범위를 확대시키기로 했다. 기념재단 이성길 사무처장은 “남북정상회담 성사가 이번 국토종단대행진추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며 “이번 대행진이 성사되면 5월정신을 통일로 이어가는데 첫발을 내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념재단측은 올해 20주기 행사중 오는 18일 임진각에서 열릴 예정인통일음악회는 당초 북한의 교향악단과 서울시향이 고(故)윤이상씨의 곡 ‘광주여 영원히’를 협연하는 것을 기획하고 지난 3월초 통일부에 성사 여부를타진했었다. 통일부측이 그러나 시일이 너무 촉박하고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불가통보를 보내와 남북한간 통일음악회는 무산됐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北관련 도메인 한·미국인 ‘싹쓸이’

    [뉴욕 연합] 북한이 대외개방 움직임을 보이면서 북한 관련 인터넷 주소가한국인은 물론 미국인까지 가세한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인터넷 도메인 등록업체 ‘네트워크 솔루션’에 따르면 김일성닷컴은지난해 9월 서울에 거주하는 심(沈)모씨가,김정일닷컴 역시 지난 1월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사는 교포 오(吳)모씨가 등록했다. 또 평양닷컴과 나진-선봉닷컴도 한국인이 오래 전에 등록을 마쳤으며 노스코리아닷컴(Northkorea.com)은 지난 98년 7월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출판사가 등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 백두산과 두만강,대동강 등 북한내 유명 산과 강이나 지명 등과 관련된 인터넷 주소도 한국인이나 미국인이 ‘싹쓸이’ 등록을 해놓은 것으로나타났다. 북한은 일반 주민의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인터넷 이용이 확산돼있지 않아 도메인 선점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북한 관련 도메인 선점은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해 나중에 비싼 값을 받고팔기위한 투기적 행위가 대부분이지만 북한의 이런 점을 감안한‘선의의 선점’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백두산관광 동해뱃길 열려

    동해를 거쳐 백두산을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속초∼러시아 자루비노 항로에1만2,000t급 카페리 동춘호가 28일 첫 취항했다. 한·중 합작선사인 동춘항운 소속의 동춘호는 김진선 강원도지사,나드리첸코 연해주지사,이정문 지린(吉林)성 인민대표회의 부주임 등 한국·중국·러시아 관계자와 속초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취항 기념행사를 갖고 속초항을 떠나 자루비노로 향했다.동춘호는 속초항을 떠난 뒤 20시간 만인 29일 오전 11시(현지시간)에 자루비노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자루비노항에서 육로로 중국 훈춘(琿春)과 옌지(延吉)를 거쳐 백두산으로들어갈 수 있다.백두산까지는 뱃길과 육로를 포함해 총연장 944㎞로 25시간이 걸린다.동춘호는 매주 월,수,금요일 속초항을 출발하며 연간 8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실어나를 것으로 전망된다. 함혜리기자 lotus@
  • 시각장애 딛고 백두산 올랐다

    “시각 장애인의 눈과 다름없는 맹인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세계 맹인견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시각장애인 3명이 맹인 안내견(래브라도 리트리버종)의 도움을 받아 국내 최초로 민족의 성지인 백두산에 올랐다. 장애인들은 이날 오전 6시30분 백두산 길목인 중국 연변자치주 안도현 이도진에 도착,왕복 20㎞의 등정을 시작했다. 선두는 맹인견 ‘창공’과 김기철(金幾哲·27·대구대 영어교육과4)씨였다. 맹인견 ‘재미’와 김대운(金大運·27·대구대 사회복지학과3)씨,맹인견 ‘토담’과 노영관(盧永官·23·대구대 경제금융보험학과2)씨가 뒤를 따랐다. 삼성맹인견학교 관계자 등 20여명도 함께 등정을 시작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날씨가 변한다는 백두산.등정길은 1m씩 눈이 쌓여 허벅지까지 빠졌다.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눈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강풍과 함께 자욱한 안개가 뒤덮였다.하지만 안내견들은 주인들을 안전한 길로 이끌었다.눈구덩이가 있으면 주인이 피해 갈 수 있도록 멈추었다. 등정을 시작한 지 5시간만인 오전 11시30분 백두산 천문봉을 불과 300여m앞둔 2,400m고지.갑자기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안개와 사람의 몸이 날아갈 정도의 강풍이 몰아쳤다.주인을 이끌던 안내견도 위험을 느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주인의 명령에 어긋나더라도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지적(知的) 불복종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결국 주인도 안내견의 고집을꺾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노영관씨는 등정 실패를 아쉬워하면서도 토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랑한다”며 고마워했다.그는 “안내견은 단순히 제 생활을 보조하는 차원을넘어 새로운 세상을 제게 안겨주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김기철씨도풀이 죽어 칭얼대는 창공이를 달랬다. 정상을 지척에 둔 곳에서 충직하게 주인을 이끈 창공·재미·토담이에게 보건복지부장관이 발급한 장애인보조견 표지가 지급됐다.올해 발효된 ‘장애인복지법 공공시설 편의시설 접근권’ 조항에 따라 주인과 함께 대중교통·식당 등 어느 곳에도 출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성맹인견학교 관계자는 세계 맹인안내견협회 켄 로드 회장이 전세계 31개국 2만여마리의 맹인견을 대표해 보내온 축하 편지를 전달하며 “국내에 활동 중인 28마리의 안내견과 22만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고 말했다. 백두산 조현석기자 hyun68@
  • 복제 백두산호랑이 7월 탄생

    국내 첫 복제 백두산호랑이가 오는 7월 말 태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체세포 복제기술로 젖소‘영롱이’와 한우‘진이’를 탄생시킨 서울대 수의과대학 황우석(黃禹錫)교수팀은 멸종 위기의 백두산호랑이(일명 한국호랑이)를 복제하기 위해 체세포 복제방식으로 이뤄진 백두산호랑이 수정란을 대리모인 용인 에버랜드의 백두산호랑이 체내에 이식했다.에버랜드 및 연구팀 관계자는“지난 5일 체세포 복제 수정란을 호랑이 체내에이식했다”며“호랑이는 소와 달리 생식기가 작아 복부를 절개한 뒤 수정란을 체내에 주입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대리모 체내에 이식된 백두산호랑이 복제 수정란은 같은 백두산호랑이의 귀에서 채취한 체세포를 미리 핵을 제거한 소와 고양이 난자에 각각 주입한 뒤 약한 전기적 자극을 통해 수정란 상태로 만든 것이다. 이식된 복제 수정란이 정상적으로 대리모 체내에 착상될 경우 첫 복제 백두산호랑이는 임신기간(103∼108일)을 거쳐 오는 7월 말쯤 태어나게 된다. 수원 연합
  • 백두산 바닷길로 간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최단거리·최소비용으로 갈 수 있는 백두산 항로가 오는 28일 개설된다. 해양수산부는 강원도 속초와 러시아 자루비노를 잇는 백두산 항로에 한·중 합작선사인 동춘항운(대표 金甲中)이 28일 1만2,023t급 카페리선 동춘호를취항시켜 주 3회 왕복운항키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동춘호는 한번에 여객 470명,20피트짜리 컨테이너 136개를 동시에 실을 수있는 규모로 이 항로를 통해 연간 여객 8만명,화물 5,040TEU를 수송할 계획이다. 새로 개설된 백두산 항로를 이용하면 카페리로 자루비노까지 간 뒤 육로로중국 훈춘(琿春)을 거쳐 백두산까지 총연장 944㎞를 25시간이면 갈 수 있다. 기존의 인천∼단둥(丹東)∼선양(瀋陽)∼옌지(延吉)∼백두산코스(1,848㎞·소요시간 48시간)에 비해 거리를 1,000㎞ 이상 단축시키고 시간도 거의 절반으로 줄이는 셈이다.비용도 단체실 이용시 4박5일(선상 2박 포함)에 44만9,000원으로 항공편(서울∼선양 혹은 베이징∼옌지)을 이용해 백두산에 가는 비용(100만∼109만원)보다 훨씬 저렴해 백두산 관광의 대중화를 앞당길 것으로기대된다. 해양부는 특히 이 항로의 개설이 지린(吉林)성,헤이룽장(黑龍江)성 등 중국동북지역과의 교역특수를 유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항로 개설을 계기로 옌지 주변공단에 중소기업진흥공단의 100여 중소기업이 입주할 계획이며 오는 6월 옌지에 도매시장 성격의 중소기업중앙회 백화점이 개점한다.동대문 의류상인들도 훈춘에 도매시장을 열 계획이다.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이 항로를 중국 동북지역의 중고차 수출항로로 이용할예정이다. 함혜리기자 lotus@
  • 자치단체 對北교류 활성화 기대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 계기로 지방자치단체들이 북한 자치단체들과 각종 교류 사업을 적극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그동안 정부간 문호가 개방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던 대북 교류가 정상회담을 계기로 활성화될 것으로기대된다. 11일 부산시에 따르면 북한선수단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참여와 지역기업의 북한 진출을 위해 안상영(安相英) 부산시장과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인사, 부산지역대북교역업체 대표 등 15명의 방북을 추진중이다. 지난 4월초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 목적은 부산 아시안게임의 북한선수단 참가와 백두산 성화 채화 문제 협의, 부산지역 신발산업 등 지역기업의 북한 진출 모색 등이다. 시는 이번 접촉신청에 앞서 대북교역업체 등 민간인들을 내세워 북한측 민간기구와 이미 접촉을 위한 의견을 사전조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 성사가 부산시의 계획 추진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남도는 지난 98년부터 추진하다 중단됐던 대북 교류를 적극 재개하기로했다. 교류가 시작되면 도 기획실 내에 남북교류협력기획단을 설치해 분야별로 내실있는 교류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전남도는 평안남도를 교류파트너로정해 지난 98년 7월부터 99년 12월 말까지 허경만(許京萬) 지사 등 5명이통일부로부터 북한주민접촉승인을 받고 도립국악단 방문공연, 농업기술과 각종 우량종자 제공, 폐어선 제공 등 세부 교류사업을 시도했으나 북한측의 기피로 성사되지 못했었다. 전북 군산시도 지난해부터 시도했던 황해도 해주시와 자매결연,공동어장 개발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인천시 옹진군은 6·25로 군이 둘로 나뉘어진 황해도 옹진군과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옹진군과 고성군은 그동안 북한주민접촉승인을 신청하는 등 적극적인 교류사업을 추진했으나 북한측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었다. 강원도 고성군도 설악산과 금강산을연계한 관광개발사업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광주 임송학·부산 김정한기자 sh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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